섀도우 월드 "후아암…." 하품이 터져 나온다. 아아… 역시 새벽부터 돌아다니는 게 아니었어. 운동을 한답시고 동네를 한바퀴 돌았더니 죽이는군… 거기다 이제 겨우 2월인데… "도장이나 갈까?" 어느새 해가 솟아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태권도장이나 갈까? 오늘은 강 사범님이 나오신다고 했던 거 같은데? 나는 도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내 이름은 김현진. 올해로 20살의 팔팔한 청년이다.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불쌍한 백수이기도 하고… 내 부모님은 내가 상급학교 2학년때 돌아가셨다. 아, 상급학교. 대한민국은 2087년도부터 의무교육기간을 8년으로 줄였다. 초등학교 4년. 상급학교 4년. 거기에 선택으로 대학 3, 4년. 그러니까 내가 13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인데…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해외여행을 가시다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돌아가셨으니... 아마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을 뜨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본다. 즐거운 여행 중 돌아가셨으니… 전에 이 말을 친구녀석한테 주절거리다 정신이상자라는 오명을 쓴 적도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이 생각을 꿋꿋이 고수하고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아르바이트를 해 가면서 학교를 끝마쳤다. 교육비야 공짜니까 상관없지만 부모님이 물려주신 아파트 한채는 고수해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험... 옛날처럼 보험이라는 것이 존재 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안타깝게도 지금은 보험이 없다. 몇 십년 전에 사라졌는데 온라인과 기계의 발달로 보험금을 타기 위한 사기 행각이 너무 심해져 보험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 대신 사고를 당한, 나 같은 놈들은 은행의 이자를 17%까지 높여준다. 다른 사람들이 10%도 안돼는 것에 볼때 좋기는 하지만... 저금할 돈이 없으니... 더구나 보상금도 이자를 늘려주는 것으로 바뀌었으니... 학교 갔다와서 12시까지 아르바이트. 그리고 취침. 다시 학교 갔다가 아르바이트. 하루하루가 규칙적이었다. 친척들이 보내주는 생활비 조금과 국가에서 나오는 유지비 덕에 아직까지 집을 지키고 있었고 대학도 나왔다. 그리고 취미활동으로 태권도에 검도까지 수준급으로 배웠다. 이러면서 성적이 상위권이라는 것은 나에게도 미스터리다. 하· 지· 만.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내 생활은 굉장히 어려워졌다. 성인으로 인정받은 후 국가에서는 보조금이 끊겼고 요새는 하루 세끼 전부를 라면으로 떼우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42평에 최신식이라 유지비가 엄청났기에 아르바이트비와 친척들이 근근히 보내주는 돈으로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다. 뭐, 지금은 태권도와 검도 사범을 맡고 있어서 어느 정도 사정이 나아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 방편이고 제대로 된 직업이 필요했다. 으음… 내가 대학에서 전공한 것이 그 유명한(?) 철학과였지? 젠장! 내가 미쳤다고 철학을 전공하다니! 철학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어이없어하던 친척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흑흑. 난 그저 철학과에 통일대 최고의 퀸카가 있다고 해서 들어갔을 뿐인데… 뭐, 그 퀸카는 내가 입학한지 몇 개월만에 유학을 가버렸지만… 생각해 보니 우울하군… 사회에 나가 취직하기 가장 어렸다는 철학과 출신이기에 내가 취직할 곳은 찾기 힘들었다. 아… 고달픈 인생이여… 나는 투덜거리며 길을 걸어갔다. 얼마 후. 태권도장에 도착한 나는 벙찐 얼굴로 굳게 닫힌 출입구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으윽!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일년에 단 세 번뿐인 쉬는 날 중에 하나? 이, 이런 어이없는 일이. 점심이나 얻어먹으려고 했더니… 으음… 확실히 나도 문제가 있군. 임시 사범이라는 놈이 노는 날을 기억 못하고 있다니… 나는 투덜거리며 집으로 걸음을 돌렸다. 오늘은 아르바이트도 없으니 집에서 뒹굴거려야겠다. 10분 정도 뛰자 내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위실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는 수위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나 참. 어째 2125년이라는 연도에 저런 구식 담요를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거지? 정말 옛것을 사랑하는 아저씨라니까? 나는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수위아저씨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다. 고속 엘리베이터는 금방 내려왔다. "24층." 내 중얼거림에 엘리베이터는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하아암." 내가 하품을 한번 더 하는 사이 '띵~.'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나는 목을 흔들거리며 집 앞에 그려진 발판 위에 올라갔다. 파란빛이 내 눈을 훑고 지나갔다. -확인되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현진 님- 약간 기계적인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약간 어둑어둑한 거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불 켜." 화악. 순식간에 집안의 모든 곳에 불이 들어왔다. 으윽. 이러니 전기세가 그리 많이 나오지. 그렇다고 이사를 갈 수도 없는 것이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일한 것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점퍼를 벗어 던지고는 거실의 소파에 몸을 묻었다. 푸근한 느낌에 잠시 눈을 감았던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TV켜." 내 정면에 위치한 벽의 일부가 '스르르' 올라가며 완전 평면 TV가 나타났다. 으으… 저것도 돈 먹는 놈 중에 하나야. TV에서는 웬 광고 하나가 뜨고 있었다. 호오? 섀도우 월드? 어… 저거라면 요새 한창 인기몰이 하고 있는 가상현실 게임 아냐? 한 1년 전에 베타서비스 시작했었지? -최신 가상현실 게임 섀도우 월드-그림자의 땅-이 오는 3월 1일부터 상용화를 시작합니다. 기존의 미숙한 점이 많던 다른 가상현실 게임들과는 달리 완벽한 성능을 자랑하는 섀도우 월드. 일년간의 테스트기간을 마치고 드디어 상용화를 시작합니다. 유래 없는 숫자의 테스터 신청이 쏟아졌던 섀도우 월…- 호? 상용화? 이제 하나보네? 도장 애들한테 들어보니 엄청 유명한 게임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동안 아르바이트하랴 공부하랴 운동하랴. 시간이 없어 게임 등의 오락활동과는 담을 쌓고 있었기에 그 유명한 가상현실 게임도 한번 못해봤다. 뭐, 솔직히 말하면 돈이 깨질까봐 못했던 거지만… 으음… 섀도우 월드… 지금껏 나왔던 게임들보다 훨씬 뛰어난 게임이라고 하던데… 해보고 싶은걸? 한번 큰맘 먹고 시작해봐? 아니지… 해야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아냐. 그래도 하루에 몇 시간이라면 들어보니 섀도우 월드는 가수면 모든지 뭔지 하는 것도 있다고 하던데… 흐흠. 먼저 이용가격을 보고… -섀도우 월드를 이용하시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 캡슐 세트가 필요합니다. 게임 캡슐과 일루젼 고글, 전자 충격 슈트, 게임 접속기 등이 모두 갖춰져 있는 이 세트의 가격은…- 스크린에는 상당히 멋있어 보이는 캡슐과 고글. 그리고 약간 낯뜨거워 보이는 타이트 형 슈트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 가격은? -…250만원…- 불가. 2, 250!? 거의 150만원에 육박하는게 이 집 유지비 전분데… 거기에 내 각종 생필품에 식료비 등등해서 최대한 절약에 절약한 한달 생활비가 모두 약 210만원. 내가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이 총 80만원. 임시 사범 일로 버는 게 200만원인데… 허억! 그럼 내 두 사범직의 월급과 맞먹, 아니 뛰어 넘는 가격!? …불가. -…으로 운송료는 없습니다. 그리고 한달 게임비가…- 커억! 한달 게임 비? 저기에 더 있단 말인가? -…25만원입니다.- 미치겠군. 절대 불가능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섀도우 월드의 광고를 무시했다. 여러 몬스터들과 중세 시대 풍의 도시 등 새도우 월드의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곧 섀도우 월드의 광고는 끝났고 다른 광고가 시작되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나의 신세를 한탄했다. 크흑. 다른 친구 놈들은 저런 비싼 게임을 어떻게 했던거지? 아, 몇 놈은 PC방에서 한다고 했던거 같은데? 거기서 하면 쌀까? 아, 아니지. 거기서는 가수면 모드가 안 된다고 했지… 크흑. 슬프다. 내가 신세 한탄을 하는 사이 TV에서는 처음 보는 프로 하나가 방영되고 있었다. 뭐냐? 하는 얼굴로 바라보니 100년 전통에 빛나는 대한 복권의 당첨자 추첨이었다. 복권이라… 응? 그러고 보니 어젠가 그저껜가 복권하날 산적이 있었는데? 분명히 <사상최대 상금. 일등 5000억원. 대한 복권>이라는 네온사인 하나보고 그날 저녁 먹으려 했던 치킨 한 마리를 포기하며 샀던 피같은 복권하나가… 특명 복권을 찾아라!(-.-;) 아, 여기 있군. 나는 점퍼 속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복권하나를 끄집어냈다. 흐음… 6459236번이라. 엄청 난데? 이것만해도 당첨될 확률이 얼마야? 6459236명이면… 계산 불가. -제 357회 대한 복권 당첨자 추천을 시작합니다- 그래 시작해. -먼저 명예의 일등상을 추첨합니다- 명예? 웃기네. 그런데 왜 일등상이 먼저야? 아래서부터 추첨하는 거 아니었나? 에이. 몰라. 언제 복권 사본적이 있어야지. TV스크린에서는 미스코리아 뺨치는 미모의 누님들이 걸어나와 작은 석궁을 빙글빙글 회전하는 회전판에 겨누고 있었다. 저걸로 정하는 건가? 첫 번째 석궁이 발사 되었고 그 화살은 회전판의 어느 숫자에 박혔다. 뭐, 뭐냐? -예. 일등의 일의 자리 숫자는… 3입니다.- 젠장. 그러면 그렇지. 될 리가 있나? 나는 내심 기대했던 만큼 투덜거리며 나머지 석궁들을 무시했다. 곧 일등상 추첨은 끝났고 이번에는 이등상 추첨이 이어졌다. -나왔습니다. 이등상 일의 자리 숫자는! 7입니다!- 끄아악! 어떻게 하나도 안 맞을 수가 있는거냐? 이건 사기야! 어떻게 일자리 하나도 안 맞는 거냐고? 앙? 저 망할 여자들 같으니! 나는 괜한 도우미들만 씹어대며 TV를 노려보았다. 이제 삼등상. -에… 삼등상 일의 자리는… 6입니다!- 오! 6? 드디어 하나 맞았네. 흐흠. -예! 삼등상 십의 자리… 또 6입니다!- 크윽! 저 사회자 목을 댕강 자르고 싶네. 어떻게 이럴 수가. 겨우 하나 맞냐? 나는 하늘을 원망하며 계속 웃고 있는 저 망할 놈의 사회자를 노려보았다. 뭐가 좋아서 웃어? -그럼… 추첨 마지막. 특별상 추첨이 있겠습니다- 호? 특별상? 그런 것도 있어? 음… 일의 자리, 일의 자리. -일의 자리, 6!- 그렇지! 예감이 좋아! -십의 자리, 3!- 허허. 드디어 두 개를 돌파하는군. 별일일세? -백의 자리, 2!- 오! 세 개! 내일 운수가 좋으려나? -천의 자리, 9!- 허? 정말 별일이네? 몇 개 맞았지? -만의 자리, 5!- …서, 설마! 그, 그래! 가랏! -예! 십만에, 4입니다!- 커허억! 마, 마지막 하나? 잠깐 제대로 봤나? 번호가… 6459236. 으음! 서, 설마… 도, 도우미 언니 6! 666666! -드디어 마지막 백만의 자리! 예! 숫자는…- 그래! 숫자? 몇? 제발 6, 튀어! -6입니다!- "아자앗! 으아아아앗! 당첨이닷! 우헤헤헤헤헷! 당첨이야 당첨! 으라찻! 아자!" 아, 아니지. 발광하던 나는 머리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을 느끼며 다시 한번 유의 깊게 내 손에 조심스레 들려있는 복권을 바라보았다. 호, 혹시 저번 회 아냐? 으음 357회. -예! 제 357회 특별상, 행운의 번호는 6459236입니다!- 357회 맞네. 숫자 맞나? 나는 TV에 떠 있는 커다란 숫자와 복권에 적혀 있는 숫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화, 확실하네?" 지, 진짜 당첨이란 말인가? 그, 그래.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래 상품, 상금은? -예, 특별상 상금은… 15억원입니다!- "시, 15억!" 나는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고는 재빠르게 계산을 시작했다. 15억이라. 그래 은행이자가 연간 17%. 그러니까 이자가 대충 연간 1억 6천? 흐엑! 이자만으로 놀고먹겠다! 세, 세상에! 일등상 몇 천억은 아니지만 그거 탄 사람은 목숨이 위험하다고도 하니까 이게 적당할지도… 그래! 신이 내린 선물 이닷! 나는 내 생활비와 당첨금을 대비해 가며 히히덕거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발광을 했을 텐데… 나는 워낙 험하게 자라서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정말 15억 당첨이야? 실감이 안 가잖아? -예, 그리고 상품으로는 요새 (주)리자드에서 만든 가상현실 게임, 섀도우 월드의 캡슐 세트와 일년 무료 이용권을 드립니다- "허억! 섀도우 월드!? 캡슐 세트에 일년 공짜? 땡잡았닷!" 나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집안을 뛰어다녔다. 어무이, 저 벼락부자 됐어요! 힌개미 섀도우 월드-그림자의 땅- (가.현) [4 회] 2003-07-19 조회/추천 : 10739 / 36 3월 1일. 섀도우 월드의 게임 캡슐 세트를 배달하러온 배달부들은 실실거리고 있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직 기쁨에서 세어나오지 못한 나는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배달부들이 (주)리자드의 직원들이었는지 그들은 설치할 장소를 물어왔다. "음, 어디에다 설치하실 겁니까?" "예? 아… 저기 저 방이요." 나는 얼떨결에 내 침실 옆의 빈방을 가리켰다. 평수 7평의 아담한 사이즈의 방이었는데 그 방을 둘러본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내가 제대로 고른 모양이었다. 커다란 상자를 낑낑거리며 옮기는 직원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빨간 날에도 뼈빠지게 일하는 구나. 크크. 나는 일 안 해도 돈이 굴러 들어오는데… 허억! 나, 나도 모르게 이런 못된 생각을!? 아, 아니야! 나는 이런 속물이 아니었어. 캡슐이 든 상자를 옮기던 (주)리자드의 직원들은 머리를 감싸 안으며 머리를 마구 휘젓는 현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끝난겁니까?" 10분만에 작업을 마치는 직원들을 보며 나는 약간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예. 온라인 선도 연결했고 접속기 점검도 끝냈습니다. 설명서는 저 탁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뭐,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면 저 접속기를 켜 섀도우 월드에 연결시키신 다음, 저기 있는 슈트를 착용하시고 저 캡슐 안의 의자에 앉으시면 됩니다. 고글은 캡슐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 그리고 섀도우 월드 홈페이지는 저 접속기로도 들어갈 수 있고 게임 상에서도 접속이 가능합니다. 그럼." 빠른 속도로 좔좔좔 설명을 늘어놓던 회사 직원은 동료들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아마 상당히 바쁜 모양이다. 하긴 이제 상용화를 막 시작했으니 바쁘기도 하겠지. 문이 잠기는 것을 확인한 나는 캡슐이 설치된 방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 세워둔 탁자에 놓여진 설명서를 집어든 나는 '기본 가이드'라고 써 있는 곳을 읽기 시작했다. -섀도우 월드의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먼저 게임 이용방법을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접속기를 이용하셔서 섀도우 월드에 접속하십시오. 접속기는 기본적으로 전원을 트는 즉시 연결이 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전자 충격 슈트를 착용하신 후 캡슐 안으로 들어가셔서 의자에 앉으십시오. 앉는 순간 장착되는 것들은 게임 이용을 위해 장착되는 것이니 오해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의자에 앉으시면 고글이 앞으로 나오고 그 고글을 장착하시면 드디어 새도우 월드에 첫 걸음을 내딛게 되시는 겁니다. 그리고 유의하실 점은 캡슐의 건강 체크기가 이용자의 몸에 병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해 내면 게임 접속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타박상 등은 예외로 감기 같은 병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지루하다… 게임 방법이나 봐야지 원… -새도우 월드의 직업은 캐릭터가 익히고 있는 스킬에 의해 정해집니다. 스킬은 최대 10개까지 익히는 것이 가능하며 예를 들어 나무베기 스킬은 스킬을 익힌 후 나무를 베는 것으로 스킬치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 나무베기 스킬이 다른 스킬에 비해 가장 높을 경우 레벨 20때 나무꾼으로 직업이 설정됩니다. 직업은 한번 결정된 이후로는 특수 상황이 아닌 경우 바뀌지 않습니다. 스킬이 올라갈 때마다 그 스킬에 맞는 능력치가 올라갑니다. 직업 결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뒤에 있습니다. 초보 유저들이 생겨나는 마을은 단 5곳으로 랜덤하게 결정됩니다. 게임 시작시 기본 스탯은 힘15. 체력15 순발력15. 지력15. 지혜15. 신앙15. 재주15. 운15. 보너스 수치10입니다. 스탯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뒤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시작시 배분 스탯은 20이 주어지며 유저 분들은 이 여유 스탯을 자신이 원하는 직업에 맞게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스킬 포인트 10이 주어지며 이 포인트들은 스킬을 베울 수 있도록 해주며 같은 스킬에 두 개 이상의 포인트를 사용하실 경우 그 스킬의 레벨은 사용한 포인트와 같습니다. 또한…- 제길. 더 이상은 못 읽어. 뭐가 이렇게 지루한 거지? 에이. 게임을 하다보면 알게 되겠지. 그러니까 간단하게 스킬은 그 스킬에 맞는 행동을 하면 올라가고 레벨은 몬스터를 잡으면 올라간다는 건데 멀 이리 풀어 써놓은 거지? 머리를 휘저은 나는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소형 노트북 모양의 접속기의 전원을 켰다. 곧 <섀도우 월드에 접속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 색의 무슨 충격 슈트를 집어들었다. 으음… 타이트라… 에이. 게임인데 뭐. 나는 자기 합리화를 시켜가며 생전처음으로 타이트 형 옷을 입어보게 되었다. 후후. 옆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이군. 중얼거리던 나는 캡슐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캡슐 안에 환한 불이 들어왔다. 1평 남짓한 공간의 중앙에 푹신해 보이는 의자 하나가 있었다. 나는 냉큼 올아 앉았고 순간 당황했다. 끼이잉~! 철컥! 척! "어엇! 뭐, 뭐야?" 나는 내 몸에 검은 색의 물체들이 착용되는 것을 보고는 당황하고 말았다. 아, 설명서에 써 있었지. 설명서 대로 고글이 앞으로 나왔고 나는 팔을 잡고 있는 검은 족쇄를 바라보았다. 당황하던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손을 들어올려보았다. 지이잉. 마치 족쇄처럼 내 손을 잡아두고 있던 것은 내가 들어올리는 대로 따라 늘어났다. "헤? 신기한데? 으음… 고글을 쓰면 되는 거랬지?" 나는 고글을 집어다가 착용했다. 평생 안경한번 써보지 않았었지만 이 고글은 너무 쉽게 쓸 수 있었다. "응?" 나는 고글을 쓰자마자 나타나는 반투명한 판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듣기 좋은 미성이 들려왔다. -섀도우 월드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디를 입력해 주십시오. 새로운 계정을 만드실 경우 '새로 생성'이라고 말해 주십시오- "새로 생성." 내가 입을 열자마자 반투명한 막에 두 개의 칸이 떠올랐다. -사용하실 아이디를 말씀해 주십시오- 아이디라… 흐음, 뭐가 좋을까? 아, 그렇지. "벼락부자." ……내가 말하고도 좀 쪽 팔리는군. 하지만 맞는 말이니까…. -알겠습니다. 벼락부자 님. 비밀번호를 말씀해 주십시오- "********." 음? 이상하게도 나는 소리를 내서 말했는데 목소리는 '삐, 삐.'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비밀번호라서 그러는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홍채와 뇌파 검사가 있겠습니다- 갑자기 밝은 빛이 터져나오고는 금새 사라졌다. 내가 눈을 멀뚱히 뜨고 있는데 다시 그 미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계정이 생성되었습니다. 현실의 그림자. 그림자의 땅에서 즐거움을 얻으시길- 말소리가 사라지자마자 갑자기 눈앞의 풍경이 변했다. 약간 어지러움을 느끼는 사이 나는 나도 모르게 발을 딛고 서 있었다. "어라? 뭐야? 숲이잖아?" 나는 갑자기 생겨난 숲을 보며 당황한 음성을 내질렀다. 나는 간단해 보이는 옷을 입고는 숲에 나 있는 공터에 서 있었다. "신기하네? 이게 가짜란 말이야?" 나는 바닥에 있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었다. 돌멩이는 마치 진짜처럼 느껴졌다. 손에 잡혀 있는 돌멩이의 감촉과 무게 감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헤…." 내가 헤픈 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 갑자기 내 앞에 이상한 돌기둥 세 개가 생겨났다. 그 돌기둥에는 각각 1, 2, 3이라는 숫자가 써 있었다. 그리고 '1'이라고 적혀 있는 돌기둥에서 빛이 세어 나오고 있었다. "흠… 빛이 나오는 기둥을 만지라고 했나?" 내가 빛이 세어 나오는 돌기둥에 손을 대자 순식간에 돌기둥이 사라지며 한 인영이 생겨났다. 짧은 검은머리에 약간 갸름한 얼굴선. 후훗, 약간 깊은 심유한 눈빛. 완벽한(?) 모습. 나하고 똑같이 생긴 모습이었다. -원하시는 모습을 설정하십시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몸을 약간 떨고는 고개를 좀 기울이고는 나와 똑같이 생긴 캐릭터를 바라보았다. 음… 역시 완벽하군. 도, 돌 날라 올까? 어쨌든 나도 미소년…이 아니고 미청년(?)에 속하는 몸이다. "뭐, 괜히 얼굴을 바꿀 필요는 없겠지? 머리나 좀 기를까? 어… 머리 허리까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앞에 서 있던 캐릭터의 머리카락이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길어졌다. "음… 괜찮네. 설정 끝." -캐릭터 설정을 끝내시겠습니까?- "예." -캐릭터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이름? …… 흠… 세한." -알겠습니다. 세한 님. 섀도우 월드로 안내하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목소리가 사라지자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나자 갑자기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눈을 찡그리며 손을 들어 눈앞을 가리는 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과 중세 풍의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내 몸을 둘러보니 아까 봤던 대로 머리카락이 허리 정도까지 자라있었다. 그리고 복장도 똑 같은 간편한 면 옷이었다. 그때 갑자기 내 눈앞에 아까와 같은 반투명한 창이 생겼다. 아마도 내 능력치인 모양이었는데 모든 수치가 15를 기록하고 있었고 남는 스탯이 20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흠… 정말로 20이 남아 있네? 뭘 올려야 되지? 아, 먼저 스킬부터 정할까? 스킬 창." 내 중얼거림에 내 능력치가 나타나 있던 창이 사라지고 여러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창이 떠올랐다. 작은 그림들은 검이나 말, 주먹 등 별 희한한 것들이 다 나와 있었는데 아마도 스킬들인 모양이었다. 그 그림들 아래에는 그 스킬의 이름들이 나타나 있었다. "음… 뭘 고르지. 스킬은 10개가 끝이라고 했으니까… 지금 보너스 포인트가 10. 흠… 역시 판타지는 검이지? 소드 마스터리 하나." 내가 손으로 소드마스터리(Sword Mastery) 라는 그림을 누르자 흑백이던 그림이 칼라로 변하면서 오른쪽 아래에 '1'이라는 숫자가 생겼다. "음? 익힌건가? 이 숫자가 스킬 레벨인 모양이지? 음… 그럼… 아, 검이 부숴지면 맨몸으로 싸워야 하니까 파이트 마스터리(Fight Mastery)? 권법 스킬이라… 어쨌든 이거 하나에… 다치면 치료를 해야지? 붕대감기 하나. 엉? 라이딩 마스터리(Riding Mastery) ? 여러 동물과 몬스터를 탈수 있게 해준다? 멋진데? 좋아 이것도 하나. 그리고 흠? 단검 던지기? 이것도 괜찮네? 이것도 하나… 마법은 됐고… 오? 은신술? 적에게 보이지 않고 이동하는 기술이라… 이것도 접수. 음… 4개 남았나? 그리고 실드 마스터리(Shield Mastery) 하나. 이제 3개… 흠? 함정 파기? 오케이. 이것도. 이제 두개 남았는데… 두 개는 남겨 둘까?" 만약 섀도우 월드, 아니 웬만한 게임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현진과 같은 짓은 절대로, 죽어도 하지 않을 것이다. 보통 검사를 원하는 사람은 소드 마스터리에 실드 마스터리 정도에 보조로 붕대 감기 등의 스킬을 사용해 완전한 검사용 캐릭을 만들 것이다. 나이트, 기사를 목표로 하는 사람은 소드나 랜스 마스터리에 라이딩 마스터리에 보조로 붕대 감기 스킬. 이런 식으로 한가지 직업용 스킬을 골라 놓으면 스킬이 오르면서 그 직업에 맞는 스탯이 올라간다. 자동적으로 그 스킬과 직업에 맞은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스킬끼리 연관이 있어 한가지 동작으로 두 개의 스킬을 다 올릴 수 있고…. 그런데 현진은 완전히 짬뽕을 만들어 놨으니… 이렇게 되면 스킬간의 연계는 사라지고 오히려 하나의 스킬을 익힐 때보다 스킬을 올리기가 배는 힘들어 질 것이다. 프로그램의 구성상 한 개의 직업만 완성하는 것보다는 여러 개의 직업을 동시에 올리는 것이 몇 배는 힘들게 되어있었으므로. 그것은 한가지 직업을 마스터하고 다른 직업을 배우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진은 그런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으니… 완전히 완벽하게 꽝 난 캐릭을 만들고 만 것이었다. "흠… 이거면 되겠지? 나머지 포인트 두 개는 소드 마스터리와 파이트 마스터리에 집어넣고 오케이. 완성. 그런 능력치를 올려볼까? 캐릭터 창. 엥?" 캐릭터 창을 불러온 나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아까는 분명히 모든 능력치가 15였는데 지금은 들쑥날쑥하게 바뀌어 있는 것이었다. 잠시 당황하던 나는 아까 가이드북에서 읽은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스킬을 올리면 그에 맞는 능력치가 올라간 다고 했었지. 어디보자 힘이… 컥! 30? 체력은 20? 뭐야 이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흠… 순발력 25. 지력, 지혜는 그대로. 신앙도 그대로. 재주가 25. 보너스가 20. 그런데 보너스 수치는 또 뭐야? 으으… 머리 아프네?" 나는 점차 복잡해지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게임도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날이었다. "에이… 모르겠다. 그럼 훈련을 가야하나? 아, 먼저 스탯을 올리고…." 나는 지혜, 지력, 신앙을 뺀 나머지에 5씩 투자했다. 운과 보너스는 올라가지 않아서 나머지 4개에만 투자했기에 똑같이 5씩 올릴 수 있었다. "음, 능력치는 다 올렸고… 가이드북에서는 그 스킬에 맞는 행동 같은 걸 하면 스킬이 올라간다고 했지? 그럼 소드 마스터리는 검을 휘둘러야 되나? 단검은 단검을 써야 될 테고… 권법은 그냥 주먹 휘두르면 되나? 으으… 어쨌든 무기점에 들려야 되겠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무기점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응? 뭔가를 잊은 듯한 기분이… 아, 맞다. 돈! 돈이 있기는 하나? "아이템 창." 사라져 있던 반투명 창이 다시 생겼다. 거기에는 돈주머니로 보이는 자루 하나와 쇼트소드라는 검 하나가 나타나 있었다. "엥? 검이 있네? 그럼 검은 필요 없고… 그런데 돈이… 1골드? 많은 거야 적은 거야? 에이… 처음부터 있던 건데 많은 돌일 리가 있나. 어쨌든 검은 됐고 단검이나 사야겠네." 결국 다시 무기점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무기점을 찾았다. 유저들의 수가 상당했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차림을 한 사람들 이었지만 중 일부는 갑옷을 입거나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기도 멋있어 보였다. 거리 구경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이 도시는 차렌이라는 도시라는 것이었다. 거리의 가게 중에 많은 수가 차렌 여관, 차렌 꽃집. 차렌 목공소 등 차렌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고 유저들이 여기가 차렌이니 뭐니 하는 소리도 들었기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얼마간, 한 20분 정도 거리를 구경하며 걸어가자 차렌 무기점이라는 간판이 걸린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NPC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없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NPC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허어? 웬일로 손님이 오는군. 마을의 구석 골목이라 손님이 거의 없었는데?" 헉!? 구석 골목. 이런. 내 길 찾기 실력은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거야? 아무도 오지 않는 가게에 오다니. "그래 뭘 사러 왔나?" 무기점 주인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주위의 진열대를 둘러보며 대답했다. "단검을 사러왔는데요." "단검이라…." 가게 주인은 카운터 뒤로 가더니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내가 빤히 바라보는 가운데 주인은 그 상자를 열고 단검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척 보아하니 처음 시작한 친구 같군. 그러면 돈도 1골드 뿐일테고… 암살자 스킬을 올린 모양인데 초반 스킬 올리기에는 이 하급 단검들이 좋지. 여기 단검 20개네. 하나단 5실버. 1골드야." 내가 처음 시작하는 거라는 것을 금방 알아본 NPC를 나는 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상당히 유능한 NPC인 모양이지? 주인은 단검 20개를 앞으로 내밀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얼빠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멀뚱히 서 있자 주인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돈 안 줘!?" 가게 주인의 고함소리에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돈을 어떻게 꺼냅니까?"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질문이라고 느낄 정도였으니 가게 주인의 충격은 엄청났을 것이다. 역시 가게 주인은 입을 조금 벌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바보아냐?" 커헉! 바, 바보!? 으으… 내가 그런 말을 들어야 한다니…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가게 주인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품속에 손을 넣으면 아이템 창이 뜨네. 그러면 알아서 할 수 있을 거야." 가게 주인의 말대로 품속에 손을 집어넣자 아이템 창이 떠올랐다. 호오… 정말이네? 음… 1골드라고? 내가 1골드를 꺼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 손에 동전 하나가 들려있었다. 품속에서 손을 꺼내 보니 금화하나였다. 주인은 냉큼 손을 내밀었고 나는 얼떨결에 금화를 건네주었다. "고맙네. 단검 챙기게나." 나는 단검들을 집어들고는 약간 주저하며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역시 아이템 창이 뜨면서 단검 목록이 새로 생겨났다. 단검 그림에 숫자 20. 신기한데? "아, 스킬을 올려야 되는데 어디서 올려야 되는지 아세요?" 내 질문에 무기점 주인 NPC는 금화를 작은 상자 속에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허, 정말 초보로군. 저어기. 동쪽 입구로 나가면 나무꾼들이 나무를 베는 숲이 있지. 상당히 넓은데 거기서 검을 휘둘러 나무를 베던지 단검을 던지던지 주먹으로 후려치든 자네가 원하는 대로하게. 부순 나무들은 목공소에 팔면 돈 좀 될 꺼야." 어? 나무를 팔라고? 그건 나무꾼들이 하는 거 아냐? "아… 저기… 나무를 베서 파는 건 나무꾼 아닙니까? 저는 나무베기 스킬은 올린 적이 없는데요?" "하아… 꼭 나무베기 스킬이 있어야 나무를 베는 건 아니지. 나무베기 스킬은 나무를 보다 쉽고 상급품으로 자르는 것일 뿐이야. 꼭 나무 베기 스킬이 있어야 나무를 베는 건 아니지." 아. 그런 건가? 어쨌든 나무 베기 스킬을 익히고 있는 사람보다는 힘들다는 거네? 에이. 별 상관없겠지. "아,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아, 잠깐." "예?" "자네 배낭이나 자루는 있나?" 배낭? 자루? "없… 습니다만." 내 대답에 가게 주인은 헛웃음을 지었다. "허, 참. 재미있는 친구군. 배낭이나 자루가 없으면 나무는 어디에 담으려고 하나?" "예? 그거야 아까 단검처럼 품속에…." "단검에서 쇼트소드 정도의 작은 거야 품속에 들어가겠지만 나무들은 안 들어갈 거네. 그래서 아이템을 얻으려면 배낭이나 자루가 있어야하는데… 음… 어딨더라?" 가게 주인은 말하다 말고 카운터의 아래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흠… 배낭이나 자루가 있어야 한다고?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배낭을 매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던데 그건가 보군. "아, 여기있군." 가게 주인 NPC는 약간 낡은 듯한 가죽 자루 하나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이거 가져가게. 그리 좋은 게 아니라 넣을 수 있는 양이 적겠지만 그래도 쓸만하지. 아, 이것도 가져가게나. 침낭인데 필드에서 잘 수 있게 해주지. 거의 새거야." "예? 저는 돈이 없는데요?" "공짜네." 헉! 공짜? 음, 좀 낡기는 했어도 괜찮아 보이는데? 호, 혹시 보이지 않는 결함이 있다거나… "자네가 이 가게를 연 후 첫 손님이라 특별히 주는 거네. 거기다 자네도 마음에 들었고. 하하핫! 솔직한 게 말이네. 다른 놈들이었으면 무슨 상관이냐며 고함을 질렀을 텐데 말야. 다음에 또 오게나. 싸게 해주지. 내 장담하는데 차렌에서는 우리 가게 물건이 가장 좋다네. 허허헛." 첫 손님? 내가? 어지간히 장사가 안돼는 가겐가 보다. 음… 어쨌든 자루도 공짜로 얻고 나도 마음에 든다고 하니 다음에 한번 더 와볼까? "아, 감사합니다. 그럼 가보죠." "하하. 그러게나. 아, 그렇지 내 충고 한마디하세." "예?" 충고라… 들어서 나쁠 건 없겠지. 그런데 가게 주인의 얼굴이 약간 이상했다. 기분 탓인가? "자네가 익히고 있는 스킬들 레벨을 모두 40정도까지 올리지 않고 사냥을 갔다가는 죽기 십상이네. 고블린한테도 죽을지 모르지. 그러니 스킬들 레벨이 40이 되기 전까지는 나무나 베고 있게나, 껄껄걸." "그, 그래요?" 뭔가 미심쩍은 곳이 없잖아 있었지만 나는 그저 그러려니 하며 가게를 나왔다. 흠… 동쪽이라. 좋아! 가잣! "여긴가?" 동쪽 입구를 나오자마자 엄청난 크기의 숲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금껏 절대로 볼 수 없던 엄청난 크기의 숲. 숲이 이렇게 생겼었군.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끔씩 나무를 베고 있는 나무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섀도우 월드는 꼭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이런 기본적인 직업을 택하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하더니 나무꾼들의 수도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나무를 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나와 같이 스킬을 올리는 듯한 사람들도 보였다. "흠… 웬만하면 사람이 없는 곳이 좋겠지? 더 들어가자."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기로 마음먹은 나는 계속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10분쯤 걸어가자 근처에 사람이 없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무도 상당히 많았다. "흠… 척 보니 목재로 쓰기 좋은 나무들 같은데? 여기서 스킬을 올리는 게 좋겠군." 여기로 장소를 정한 나는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눈앞에 아이템 창이 떠올랐다. "어… 검부터 할까? 자루도 꺼내고…." 내가 손을 꺼내자 단순한 모양의 쇼트 소드와 아까 무기점의 NPC에게서 받은 자루가 딸려 나왔다. 좋아. 자루는 바닥에 내려놓고. 이 검으로 나무를 찍으면 되나? 이럴 줄 알았으면 가이드북을 더 자세히 읽을 것을… 쇼트소드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힘이 딸려서 그런가? 아니면 워낙 나쁜 검이라서 일지도… 검의 무게에 대해 불만을 토하던 나는 내 정면에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참나무 하나를 목표로 삼았다. 검도 배우던 대로하면 될 테니. "하아앗!" 나는 작게 기합을 내지르며 나무를 후려쳤다. 그래 후려쳤지. "뜨아악! 내 손! 끄으으… 무슨 몽둥이야? 거의 베이지도 않잖아." 그랬다. 초기에 공짜로 주는 검이라서 그런지 이 검은 베기보다는 후려치는 것에 더 가까웠다. 나무도 한 5미리 정도만 잘렸을 뿐이었다. "우이씨… 좀더 작은 나무로 바꿔야지…." 나는 투덜거리며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끔찍한 참나무에 비해 상당히 왜소한(?) 크기의 나무 하나를 목표로 삼았다. 이 나무는 내 키보다 약간 더 크고 지름은 내 허리만 했다. "이게 좋겠네? 좋았어. 연속 베기닷! 핫!" 나는 검도장에서 악명을 떨치던 연속 베기를 시작했다. 후훗! 이걸로 나무인형 꽤나 부숴 먹었지… 툭! 틱! 쩌걱! 나무에는 상처가 점점 늘어갔다. 으이… 정말 단단하네. 한참을 치고 또 쳐도 나무는 쓰러지지 않았다. "헉, 헉. 뭐 이런 괴물 같은 나무가 다 있어? 아, 아니지. 어차피 스킬 레벨을 올리는 중이니까 이게 더 좋은 건가? 좋았어. 그대로 버텨라." 내 목적을 상기한 후, 나는 나무의 이곳 저곳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밑 둥에서 잔가지까지 번갈아 가면서 치다보니 불쌍한 나무씨는 점차 토막나 갔다. 우수수… 털썩. 결국 나무를 쓰러뜨린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제길. 더럽게 힘드네. "헥, 헥. 스킬이 올랐을라나? 후… 스킬 창." 금새 반투명한 창이 생겨났다. 아까와는 달리 내가 익혀둔 8개의 스킬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중 소드 마스터리가 가장 앞으로 나와 있었다. 하나의 검이 떠올라 있는 그림의 아래에는 '4'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오옷! 2나 올랐다. 그럼 나무 하나에 2씩 하면… 아까 그 NPC가 모든 스킬이 40이 되야 한다고 했었지? 그럼 이제 18그루? 좋아! 이놈이랑 비슷한 나무들만 찾아서 베잣!" 나는 호기롭게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잠시 쉬자 체력이 회복된 듯 했다. "좋아. 그럼 나무를 찾으러……." 미소를 지으며 외치던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나무 조각들을 보고는 슬그머니 시선을 내렸다. 흐흠. 돈은 착실히 모아야지? 음, 그럼. 나는 허리를 굳히고는 나무 조각들을 줍기 시작했다. 역시, 가난뱅이 근성은 어디가 지 않는구나. 보기에 괜찮다 싶은 나무 조각들은 모두 자루 속에 집어넣었다. 도끼로 조심스레 베어 넘긴 것이 아니라 검으로 박살을 내놓은 것이라 장작으로 쓸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쩝. 생각보다 쓸만한 게 별로 없잖아. 나머지는 완전 톱밥 수준인걸…." 나는 바닥에 버려둔 작은 나무 조각들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깝다. 하나만 가져가 볼까? 저것도 팔 수 있을지 몰라. 나는 작은 조각 하나를 슬쩍 집어들었다. "그럼 다시 스킬 올리기 시작이닷!" "이럴 수가…." 나는 한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나무를 베기 시작한지 몇 시간이 지나자 날이 어둑어둑해졌고 갑자기 배가 고파져서 여관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정말 사실성 짙은 게임이다. 배가 고프다니… 거기다 꼬르륵거리는 소리도 나고 힘도 빠지는 것이 진짜 현실 같았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힘 빠져 하는 이유는 바로 스킬 레벨 때문이었다. 지금껏 나무를 20그루 정도 베었건만 소드 마스터리 레벨은 겨우 8에 머물러 있었다. 처음 나무 한 그루에 레벨이 2가 오르던 것에 비해볼 때 너무도 적은 수치였다. 아마도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필요한 경험치가 높은 모양이다. 그리고 이제는 처음 자르던 작은 나무는 대여섯 방이면 쓰러진다. "하아… 생각보다 쉽지 않구나…."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목공소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머리 위에 NPC라는 글자가 떠 있는 사내가 나무를 깍고 있었다. 어라? 머리 위에 NPC? 아까 무기점 주인 머리 위에는 NPC라는 글자가 없었는데? 그럼 NPC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내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중 나무를 깍고 있던 NPC가 나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예?"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힘겹게 들고 온 자루를 내밀었다. "나무를 팔려고 왔는데요." NPC는 자루를 받아들고는 안에 든 나무들을 꺼내보았다. 내가 박살을 내놓은 나무들을 보며 NPC는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 "나무베기 스킬이 낮은 모양이군. 최하급이야. 이 정도면 이 정도 조각 5개에 1실버야." NPC는 내 팔뚝 길이의 나무 조각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1실버라… 돈의 단위를 모르니 원. "그렇습니까?" "그렇네. 흠… 모두… 53개로군. 11실버 주지. 괜찮게 쳐 준 거야." "아, 예." "음? 이건 뭐야?" NPC는 내가 슬쩍 밀어 넣어 놓은 내 엄지손가락 만한 나무토막을 집어들고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아, 그게…." "괜찮군." "예?" 앙? 괜찮아? 그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커다란 조각만 챙겨 와서 이런 작은 토막 만들기가 힘들었는데 말이야. 귀찮거든. 이 정도 크기의 나무토막들은 생각보다 쓰이는 데가 많지. 이음새를 만들기에도 좋고 말이야." 뭐, 뭐야? 그렇단 말이야? 그, 그럼 괜찮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말씀? 얼마야? "이것도 5개에 1실버 주지. 크기에 비하면 꽤 큰 가격이네." 저 큰 거하고 똑같다고? 그럼 더 많이 가져올 수 있겠군. "이제 보니 상당한 눈썰미를 가진 나무꾼이었군." "예?" "처음에는 완전 초본 줄 알았는데 말야." "하? 아, 저는 나무꾼이…." "다음에는 이런 큰 반에 작은 거 반으로 가져오게. 그게 좋을 거 같군. 하하! 오랜만에 괜찮은 나무꾼을 만나는군 그래! 또 오게나. 여기 15실버 주지. 자네, 마음에 들었어. 하하하!" NPC는 껄걸거리며 작업실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고 나는 얼빠진 눈으로 그 NPC를 바라보았다. 허, 내가 NPC가 보기에는 괜찮은 놈인가? 이 NPC나 저 NPC나 내가 마음에 든다고 그러는 거지? 아, 혹시 여자 NPC도? 흠… 여기서는 사이버 섹스도 있다고 했는데… 헉!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으으… 복권 당첨 뒤로 약간 이상해 졌어… 절약 정신은 여전한데… 나는 머리를 흔들며 목공소를 빠져 나왔다. 돈을 벌었으니 음식을 먹으러 여관으로… 아, 아니지? 침낭은 있으니까 숲에서 자면 되고… 그럼 여행 식품을 사가서 아예 거기서 살까? 흠… 생각을 좀 해보고… 잠시 후, 나는 식료품 점에서 육포를 한가득 사서 숲으로 향했다. 기이잉~! 찰칵. 척! "하아…." 나는 한숨을 쉬며 캡슐에서 걸어나왔다. "후암… 아주 폐인 다됐군." 정말 이제 폐인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섀도우 월드를 시작한지 어언 한달. 이제는 아주 질릴 지경이었다. 매일 하루종일, 밥먹로 화장실 갈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게임을 하면서 지냈다. 게임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섀도우 월드에서는 현실보다 시간이 세배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니까 현실에서의 한시간이 게임에서는 세시간이다. 덕분에 나는 지금 세 달 동안 나무나 베고 살고 있었다. 아, 베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먹으로 후려치고 날라차기로 쓰러뜨리고 단검 꽂고 방패로 후려치고. 아주 나무들을 박살을 내놓고 있었다. 얼마나 심했으면 마을 촌장이 나무좀 그만 죽이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덕분에 지금은 나무도 못 베고 있었다. 대신에 병원에서 붕대나 감고 있다. 그런데 그런 만행(나무들 학살?)에도 불구하고 스킬 레벨은 저조하기 짝이 없었다. 소드 마스터리는 그나마 잘 올라서 현재 레벨 36을 달리고 있었지만 나머지 스킬들은 대부분이 20대였다. 라이딩 마스터리는 거의 배우지를 않아서 겨우 7이었고. 이상하게도 소드 마스터리에 비해 다른 스킬들은 엄청난 노력을 해야 레벨 하나가 올라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 현재 레벨 30대인 소드 마스터리 하나를 올리는 것보다 레벨 20대인 파이트 마스터리를 올리는 것이 배는 힘들었다. 덕분에 세 달 동안 나무만 쓰러뜨리고 있었는데도 스킬 하나도 40을 넘지 못했다. 그 이상한 무기점 주인의 말을 따르고 있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정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스킬을 올리고 사냥을 가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오늘은 좀 쉬자." 지겨운 게임을 잠시 중단하기로 결정한 나는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하아… 한달 동안 도장이고 뭐고 다 빠졌군. 하긴, 이젠 일할 필요가 없기는 하지만… 그런데 도대체 스킬이 오르지 않는 이유가 뭐야? 이제는 나무를 한 수백, 아니 수천 그루는 베어야 레벨 하나가 오르니… 덕분에 하루에 자라는 나무의 양보다 죽이는 나무 양이 더 많아졌으니…." 그랬다. 내가 얼마나 나무를 죽여댔는지 하루에 다시 자라나는 나무보다 내 손에 죽어 가는 나무의 양이 훨씬 많았다. 그러니 마을에서 부탁이 온 것이고… 덕분에 지금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을 수밖에. "젠장! 그냥 때려 칠까? 어떻게 세 달, 아니 한달 인가? 어쨌든 그렇게 나무만 베어댔는데 그 가게 주인이 말했던 40에는 하나도 오르지 못했잖아? 으아…." 나무베기 금지령이 내리기 전에는 나무를 부수는 것으로 레벨이 오르던 스킬들의 성장이 멈춰 있었다. 아무리 나무를 박살내도 레벨이 오르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 받은 김에 아주 숲의 3/1을 박살을 냈었고… 거기다 나무를 얼마나 많이 가져다 팔았는지 나는 목공소의 VIP 손님이 되어있었고 나아진 실력으로 일급 나무꾼으로 불리고 있었다. 나무베기 스킬을 올리지 않은 나로 써는 억울한 일이었지만…. "하… 메일 온거 있나? 인터넷." 지잉~! 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컴퓨터의 전원이 들어오며 인터넷에 연결되었다. <읽지 않은 메일 204통입니다> 커억! 2, 204통? 뭐가 그리 많은거지? 나는 눈을 크게 뜨고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형? 왜 안나와??> <김 사범? 어디 아픈가?> <이 자식아! 아르바이트를 빼먹으면 어떻해!!!!> <새도우 월드-월간지 1호> <야! 요새 뭐하느냐고 전화를 안 받아? 여행 중?> 등, 등. 정말… 읽기가 겁나게 많은걸? 그 중에 가장 최근에 온 메일에 저절로 눈이 갔다. <동창회 공지다 인마> 동창회라… 어느 때지? 설마 초등학교일리는 없고… 대학이나 상급 학교일 테지… "동창회 공지." 그 메일의 내용이 떠올랐다. 보낸이-꼬마악마 오늘, 4월 7일 오전 8시 43분에 도착했습니다. 김현진! 잘 있었냐, 인마. 나 박진성이다. 작년에 한번보고 계속 못보고 있었네? 취직은 하셨나? 크큭! 그 유명하신 철학과 출신이 설마 아직도 백수는 아니겠지? 하하. 이 귀하신 몸이 친히 메일을 보내신 이유는 우리 태극 상급학교 동창회 때문이다 인마. 어쩌다 보니까 내가 연락하는 임무를 맡게 돼서 말이야… 너 아직도 서울에 살고 있지? 그래서 말인데 말야… 동창회 너희 집에서 하면 안될까? 가게 빌리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말야. 아마 아직 이사를 가지 않았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기에 보내는 메일이다. 너희 집 넓잖아. 생각해 보고 연락 주라. 동창회, 얼마 뒤에 열거니까 되는대로 빨리. 허허… 우, 우리 집에서? 저, 저런 뻔뻔한 놈. 박진성… 그래도 전에는 내 아르바이트도 도와주고 하던 죽마고우였는데 대학을 공주에 있는 곳으로 가면서 만나는 일이 좀 뜸해진 녀석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온 연락이 내 집좀 빌리자고? 뻔뻔한 놈. "어쩐다? 그냥 오라고 할까? 이제 돈도 많으니… 흠… 답변." <예. 말씀하십시오> "알았다.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빨리 와서 준비나 해라. 빌려주는 대신 준비는 너희가 해. 나는 신경 끌 테니. 올 시간 다시 메일로 보내." <꼬마악마 님께 전송합니까?> "응." <전송되었습니다> "답변 오면 말해." 나는 몸을 일으키고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한달 동안 머리를 자르지 않았더니 게임에서만큼은 아니지만 어깨 정도까지, 상당히 길게 자라있었다. "이렇게 기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 화장실에 들어가서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거의 일주일 만이다. 스킬을 올린답시고 게임만 하다보니 제대로 씻지 않은 적도 많았다. 잠시 후. 뽀송뽀송해진 몸으로 나오니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보낸이-꼬마악마 고맙다, 친구. 괜찮다면 지금 가도 될까? 혹시 몰라서 서울을 돌아다니며 가게를 고르고 있었거든. 지금 제 4구역에 있는 PC방이니까 금방 갈 수 있는데? 짧군… 뭐, 할 일도 없으니 오라고 하지. "답변. 와." <꼬마악마 님께 전송합니까?> "응." <전송되었습니다> 나는 관리 컴퓨터의 음성을 뒤로하고 부엌으로 걸어갔다. "뭐 마실게 있을라나?" 냉장고를 열어보니 얼마 전에 상가의 편의점에서 사온 캔커피가 들어있었다. 아무거나 하나 집어든 나는 거실로 나가 소파에 주저앉았다. "TV켜." 벽이 올라가며 TV가 드러나자 나는 아무 방송이나 틀어놓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게임과 현실이 잘 구분이 가지 않는 것이 약간 혼란스러웠다. 특히 요새는 현실에서 한 일과 시간보다 가상현실에서 한 일과 시간이 더 많아 더욱 그랬다. 30분 정도 지나자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아마도 진성이 같았다. 역시나 현관 카메라에 잡힌 녀석은 진성이 녀석이었다. "현관 문 열어." 철컥. 문이 열리며 진성이가 들어왔다. 한 손에는 오렌지 주스, 다른 한 손에는 라면 봉지를 들고 있는 것이 예전과 변한 것이 없었다. 부모님이 큰 기업을 경영하셔서 이 녀석은 옛날부터 나를 많이 도와줬었다. 나도 진성이네 부모님과 상당한 친분을 쌓고 있었는데 진성이 녀석이 얼굴 도장을 찍어 놓으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라고 우겨서 찾아가 인사를 드린 것에서 인 연이 시작되었다. "여어… 김현진!" 집안으로 들어오며 진성이가 장난스레 인사를 건넸다. "잘 있었냐?" "물론이지. 어? 그런데 너 머리 기르냐? 태권도 하는데 거치적거린다고 항상 짧은 머리였잖아." 좀 길게 기른 내 머리를 발견한 듯 진성이가 질문을 던졌다. "아… 그게…." "그것 보단 이것 좀 받아라. 무겁다고." 진성이 내미는 쥬스 상자를 받아든 나는 부엌으로 걸어갔다. 당첨금을 받고도 돈을 쓰지 않아 옛 모습 그대로인 내 집을 보며 진성이 녀석은 '역시'라고 하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웃샤. 여기다 놔." 내가 냉장고 앞에 쥬스 상자를 내려놓자 진성이도 라면 봉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냉장고에 안 넣어?" 진성이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냉장고가 꽉 차서 말야." 내 말에 진성이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긴, 지금껏 우리 집 냉장고가 반 이상 차 있는 것을 본적이 없었으니… 진성이 녀석은 미심쩍어 하는 얼굴로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허억!? 이게 웬일이냐? 허어억! 이, 비싼 것이! 이건 또 뭐야? 2000산 와인? 네가 미쳤구나? 호, 혹시 목숨을 끊으려고? 죽기 전에 먹고 싶었던 거라도 먹어 보자는 거냐? 안돼! 이 팔년지기 친구가 허락할 수 없다. 목숨은 자살은 안돼! 아직 살아갈 날이 창창한…." 어이없는 오해를 하고는 흥분해 떠드는 진성이 녀석을 나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계속 주절거리던 녀석도 내 반응이 무덤덤하자 더욱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내가 자살하려고 하는 걸로 알았나 보다. '호, 혹시 이 녀석 정말로 자살하려고? 그, 그렇다면 이 녀석이 자기 집을 동창회 집으로 내놓은 것도 마지막으로 친구들 얼굴을 보고 죽으려 한 것이란 말인가? 여, 역시, 이 짠돌이 녀석이 이리 쉽게 집을 빌려줄 리가 없지. 아, 안돼 막아야 한다!' 빠르게 머리 회전을 마친 진성은 더욱 격렬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아, 안돼, 현진아! 아무리 철학과 출신이라도 네가 할만한 일은 있을 거야! 정 안되면 우리 아버지 회사에라도…." "으윽… 자살하려는 거 아냐 인마." 눈물마저 흘려가며 날 설득하려 노력하던 진성이는 내 퉁명스러운 어조에 미심쩍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후… 이런때는 빨리 알려주는게 좋겠지? 나는 손을 까딱거리며 섀도우 월드의 게임 캡슐이 설치된 방으로 걸어갔다. 의아한 얼굴로 따라온 진성이는 방안을 장식하고 있는 게임 캡슐을 보고는 입을 쩍 벌렸다. 진성이는 어릴 적부터 게임 광이었으니 이것도 알고 있겠지. 섀도우 월드의 게임 캡슐을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던 진성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내게 얼굴을 확 돌렸다. 진성은 다시 눈물을 뿌려가며 나를 향해 비장한 어조로 외치기 시작했다. "안돼, 현진아!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도둑질은 안돼! 어디를 턴 거야? 은행?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하라니까! 내가 어릴 적부터 게임을 못하고 자란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으으… 이놈이 진정 내 팔년지기 친구가 맞다는 말인가? 어떻게 꼭 저런 쪽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 거지? "크아악! 아냐 이 자식아! 복권 긁어서 타 거란 말야!" 내 어깨를 마구 흔들며 소리치던 진성은 말을 딱 멈췄다. 그리고는 놀람 반, 불신 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복권?" "그래 복권! 상품으로 탄거야!" 마침내 내 어깨까지 놓아준 진성은 한 걸음 떨어지며 입을 쩍 벌렸다. "허어억! 보, 복권으로 섀도우 월드 캡슐을 타다니! 이거 시가가 250만원이나 하는 건데… 임마! 드디어 팔자 피는 구나!" 마치 자기 일인 양 발광하는 진성을 보며 나는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역시… 네놈은 내 진정한 친구다. 돈 좀 찾아서 선물이라도… "어? 그런데 좀 이상하다? 내가 아는 너는 이런 게임 세트보다는 현금을 더 좋아하는 놈인데? 이거 왜 안 팔고 있는 거냐?" 크윽! 역시, 이 놈은…. "돈도 받았다." 얼굴을 찡그리는 나를 무시하며 진성이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도, 돈도! 얼마나?" "15억." "커어억!" 15억이라는 말에 진성은 숨이 막힌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시, 15억에 섀도우 월드 캡슐이라면… 설마, 저번 대한 복권 특별상 당첨자가 너였냐?" 엥? 어떻게 아는 거지? "맞는데? 어떻게 아냐?" "신문에서 봤지. 너하고 이름이 같아서 반신반의했는데… 당첨자 주소 같은 건 안 나오잖냐. 그런데 정말로 너라니… 축하한다 임마!" 진성이는 그말을 끝으로 나를 덥썩 끌어안았고 나는 입을 쭈뼛거리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 15억이나 벌었으면 한턱 쏴야지 말야… 역시 짠돌이는 짠돌이군." 얼마 뒤. 진정이 된 진성이는 이번에는 자신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이유로 투덜거리고 있었다. 찔리는 것이 있는지라 나는 별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하하… 미안. 요새 저 섀도우 월드를 하고 있어서 말야… 아, 너도 섀도우 월드하지?" "물론이지. 베타 서비스 때부터 키워서 레벨 238의 고수다. 검사로 키워서 그랜져까지 승급한 랭커지. 우하하." "우와… 대단하다. 난 그거 하느라고 요새 죽을 맛이다." 내 말에 진성이는 감탄한 얼굴이었다. "네가 게임을? 하긴, 공짠데 못할 이유가 없지. 그래 연락도 못할 정도로 열심히 한 달이면 레벨이 꽤 될텐데? 레벨이 몇이야? 직업은?" "직업? 그런거 없어. 그리고 아직 레벨 1인데?" 내 대답에 진성이는 황당해 하는 얼굴이었다. "1? 한 달이나 했다며? 그것도 엄청 열심히. 그게 말이 되냐? 한 달이면 아무리 못해도 레벨 50까지는 올리겠다." 나는 괜스레 흥분하는 진성이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야? 난 한달, 게임에선 3달 동안 나무만 벴다고. 그래도 스킬 레벨이 40이 안돼서 계속 스킬 레벨만 올리는 중인데?" 내 말에 진성이는 그야말로 외계의 생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 한달 동안 스킬만? 스킬 레벨이 몇인데?" "스킬 레벨? 음… 소드 마스터리가 36. 파이트 마스터리가 27. 라이딩 마스터리가 7. 실드 마스터리가 21. 단검 던지기가 24. 함정파기 20. 은신술 23. 붕대 감기가 21인데?" 나는 내 말이 이어질수록 점점 이상해져 가는 진성이의 얼굴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진성니는 나를 위험한 핵 폭발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잠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 미쳤냐?" "앙?" 미쳐? 내가? 뭔 소리야? "이 바보야! 스킬은 몬스터를 잡다 보면 저절로 오르게 되어 있어! 그래서 대부분의 유저들이 스킬 레벨 5정도면 사냥을 간다고!" "뭐, 뭐야!?" 그, 그게 무슨… 서, 설마, 그 망할 영감이 구라를? "나무를 베는 걸로 40이라니… 그건 불가능이라고! 미쳤다고 세 달 동안 나무를 베고 앉아있어!? 아, 아니. 그건 그렇다고 치고 말야… 도대체 너, 무슨 직업을 가지려고 스킬을 그따위로 골라 놓은 거냐?" "지, 직업? 난 그냥 가이드북에 저절로 정해 진다고 해서…." "임마! 가이드북을 어떻게 읽은 거야! 지금 내가 익힌 스킬들은 검사 스킬에 기사, 격투가, 도적, 트랙터, 치료술사 스킬이 마구 뒤섞여 있단 말야! 그럼 스킬 레벨 올리기가 몇 배는 힘들어 진다고! 한가지 직업의 스킬들은 서로서로 연관을 가지고 있어서 스킬을 한가지씩 올릴 때보다 여러 개 동시에 올리는 것이 더 빠르게 올라가지만 네가 한 대로 섞어놓으면 서로 연계는 물론 오히려 서로 역작용을 해서 스킬을 익히기가 몇 배는 힘들어 진다고. 한가지 직업을 마스터하고 다른 직업을 익혀도 몇 배는 힘들어 지는데 그딴 식으로 동시에 올리면… 아마, 성장이 몇 배는 느릴걸? 능력치도 뒤죽박죽이 되고 스킬 레벨 올리기도 엄청 힘들어지고 말야." "헉!?" 진성이 자식이 너무 흥분해서 소리쳤기에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진성의 말을 통해 한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내 캐릭, 망했다. "후… 그러니까. 스킬을 올린 건 그냥 네가 좋다고 생각하는 걸 올린 거고… 미친 듯이 나무를 벤 건 그 이상한 NPC가 한 거·짓·말 때문이고? 크큭. 그런데 너도 독종이다. 어떻게 나무만 베고 스킬 레벨을 그렇게 높게 만들 수 있는 거냐? 몬스터를 잡아도 그렇게 많이 올리기는 힘든데? 그것도 세 달만에? 스킬 마스터 레벨이 100이니까… 정말 독종이다. 거기다 마을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사실을 알 수 있었을 텐데… 큭큭." 진성이가 비웃는 소리도 잘 들려오지 않았다. 이럴 수가. 이건 있어서는 안돼는 일이야! 한달 동안 죽어라고 키운 캐릭이 완전 망했다니. 크윽! 그 NPC. 가만 두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대단한걸? 서로 다른 직업의 스킬들을 그렇게 높게 올리다니 말야. 아마 검사 스킬을 가장 먼저 올려서 검사 스킬이 주를 이루게 된 모양이다. 실드 마스터리가 높은 편인 이유도 그게 검사 스킬에도 속해 있기 때문인 모양인데?" "그래? 후우…." 진성이는 내가 세상 다산 듯한 얼굴을 하고 있자 내 등을 세게 내리치며 나를 격려했다. "힘내라 마. 그런데 새로 키울거냐?" 새로? 새로라… 왠지 그러기는 싫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키운 건데… 거기다 세 달 동안을 그 모습으로 보내서 애착도 갔다. 으으… 하지만 내가 해놓은 건 완전 망한 거라는데… 뒤로 갈수록 레벨 올리기도 힘들어진다고 하고… 거기다 어쩌면 레벨도 느리게 오를지 모른다고 하니… 정말 다시 키워야 되나? 아냐! 그래도 그 동안의 노력이… "그만 하자. 그래 동창회는 언제 하기로 했어?" 진성이도 내가 힘 빠진 채로 있는 것이 불쌍해 보였는지 더 이상 게임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이번 주 토요일로 하려고. 몇몇 친했던 애들한테 물어 보니 토요일이 가장 좋다고 해서. 술먹다 뻗어도 다음날이 노는 날이니까 말야." "술 먹다 뻗어도? 아주 내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려고 작정했냐?" 내가 어이없다는 투로 얘기하자 진성이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이지! 거기다 너 복권도 당첨됐다며! 좋은 술 좀 사라. 이제 돈걱정도 없는데 뭘 그래?" "돈하고 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허… 그렇다고? 15억이나 탄 놈이 쥐죽은듯이 지내더니 말야… 한턱도 안내고… 이번에 벗겨 먹을 테다. 그 동안 연락도 없던 네 잘못이니까 뭐라 하지 말라고." 짐짓 화난 듯한 얼굴로 말하는 진성이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상금을 타고도 연락이 없던 나도 잘못이 있기는 하다만…. "젠장. 좋아. 맘대로 하셔. 그런데 누구누구 오는 거야?" 포기한 듯한 내 말에 미소를 짓던 진성이는 손가락은 꼽아가며 상급학교 시절의 친구들의 이름을 대기 시작했다. "재훈이는 온다고 했고… 정복이도 온다고 했고… 현철이도… 대희도 온다고 했고… 여자 애들은 소영이하고 지현이… 세진이, 유리… 아, 그러고 보니 제시가 온다고 했는데?" "제시?" "그래, 우리 상급 4학년 때 왔었던 교환학생 있잖아. 프랑스 출신 이랬나? 어쨌든 걔. 얼마 전에 이민 왔데. 요새 소영이들 하고 어울리고 있다고 하던데? 걔 알지?" 제시? 아,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상급학교 4학년 때. 그러니까 15살(만으로. 학교가 개편되면서 나이를 만으로 세도록 바뀌었다)때 우리 반으로 왔던 교환학생이지. 부모님 사업이 한국으로 진출해서 왔던 거라고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민? 이번에는 아예 이민을 오는 모양이지? "아는거 같은데?" "같은 데는 무슨 같은 데야? 알면 아는 거지. 어쨌든 걔도 온다고 했어. 대충 10명 정도 올 거 같은데… 솔직히 동창회라고 하기에는 좀 적지?" "뭐, 동창회야 사람 수는 상관없지. 친한 애들만 모이면 어때? 걔네만 불러." 물론. 동창회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지. "짠돌이. 술값 때문에 그러냐?"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허걱! 귀신같은 놈! "그러면 그렇지. 걱정 마라. 나까지 딱 열 명만 데리고 오마. 제시가 올지 안올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와도 10명이야." 진성이는 내 얼굴이 안도감으로 물드는 것을 슬쩍 바라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다, 대단해. 어떻게 15억이나 번 놈이 그 짠돌이 근성은 여전하냐? 가히 존경스러울 정도다." "쳇! 그럼 8년간 베인 습관이 그리 쉽게 없어지겠냐?" 내 말에 진성이는 큭큭거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 가게?" "아, 아니. 근처 PC방이나 가려고. 애들한테 메일도 보내고 섀도우 월드나 하려고. 너도 할꺼냐?" 섀도우 월드라… 어쩐다지? 하는건 상관없지만 캐릭을 어떻게 할지… 내가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자 진성이 자식은 또 큭큭거렸다. "어쩔 거야? 웬만하면 새로 키울 것을 추천한다만. 내가 도와 줄게. 돈도 팍팍 대주고 아이템도 괜찮은 걸로 맞춰주마." 으음… 고민된다… 어쩌지? 우짜지? 에이… 몰라! 하던 대로하고 말지. 내가 처음 만든 내 그림잔데…. "에이… 그냥 계속 할란다. 지금껏 키운게 아까워서라도 계속 해야지 뭐." 내 말에 진성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지. 그러고 보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최상위 랭커 중에 너처럼 캐릭을 키운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뭐라!? 나처럼 키운 사람이 있다고? 나 같은 초보였나? 하지만 최상위 랭커라면… "정말?" "그래. 베타 때부터 하던 사람인데… 지금 레벨이 거의 400이 다 되어 간다고 하던데? 나같이 간신히 랭커에 들어있는 놈과는 하늘과 땅 차이지. 그런데 아이디는 모르겠어. 아이디 공개를 안하고 있어서 말이야." "헤… 어쨌든 나처럼 키워서 최상위 랭커가 된 사람도 있다는 소리네? 그럼 희망이 있다는 소린가?" "너무 기대하지는 마라. 확실히 너처럼 키우면 모든 능력치가 높아져서 그렇게 키우는 사람들이 몇몇 있기는 했지만 모두 포기했어. 레벨 올리기가 너무 힘들어서 말야. 어쩌면 그 사람은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어서 그렇게 올린 건지도 몰라. 랭커 중에 그런 짬뽕 캐릭을 만든 사람은 그 사람뿐이거든." "그래…?" 제길. 힘 빠지네. 그 사람 한명이 유일하다고? 정말 무슨 요령이 있는 건가? 음… 그냥 포기를 할까? 아니지. 한번 도전해 보자. "그래도 한번 해보지 뭐." "큭큭. 그래라. 하긴 너는 스킬 레벨은 엄청 높으니까. 렙 238의 이 몸도 소드 마스터리 레벨이 겨우 61데 말야. 큭큭. 렙 1짜리 캐릭이 36이라… 킥킥." "그만해 인마." "그래. 그럼 나는 PC방으로 간다. 아, 너 어느 마을에 있냐? 내가 가서 좀 도와 줄께." "차렌." "차렌이면… 푸른 산맥 오른쪽에 있는 초보 마을이지? 텔레포트 협회에 돈 좀 내야겠군. 그래 아이디는?" "……세한." "……." 진성이는 약간 당황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좀 놀란 모양이다. "세한…이면. 너희 아버지 이름…?" "응. 그럼 빨리 와라." 내가 얘기하기 싫다는 듯한 느낌을 팍팍 풍기자 진성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집을 나섰다. 인사도 하지 않고 가는게 상당히 당황한 모양이었다. "으쌰!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나는 팔을 휘두르며 게임 캡슐이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눈을 뜨니 여관의 천장이 보였다. 눈을 몇 번 깜박거린 나는 몸을 일으켰다. 방을 나선 나는 1층 홀로 내려갔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섀도우 월드에서는 술에 취할 수도 있다. 정말 엄청나게 현실 같은 게임이라니까. 여관 문을 나선 나는 옆에 딸려있는 마구간으로 걸어갔다. 거금 10골드를 들여 구입한 내 애마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그 망할 무기점 주인의 말만 믿고 있던 나는 라이딩 마스터리를 올리기 위해 말까지 구입했었다. 덕분에 지금은 말을 타는 것이 너무도 간단해 졌다. 마을에서는 말을 타지 못하지만 숲 등의 필드에서는 말을 탈수 있다. 거기다 나는 숲에서 승마를 시작해서 스킬이 너무도 쉽게 올랐다. 진성이의 말로는 라이딩 마스터리는 올리기 가장 힘든 스킬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마구간에서 내 말, 씽을 데리고 나온 나는 내가 게임을 맨 처음 시작했을 때 찾아갔던 무기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처음 그곳에 한번 들리고는 한번도 들리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나무를 학살하던 곳은 마을의 동쪽인 것에 비해 그 무기점은 마을의 서쪽 끝에 위치했기에 후에 구입한 스몰 버클러나 단검을 잡화점에서 구입했다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덕분에 세 달 동안 속고 있었던 거지만…. 5분 정도를 걸어가자 그 무기점이 있던 골목이 나타났다. 그래. 여기를 지나가다가 저 골목에 무기점 간판이 있는 걸보고 들어갔지. 그게 이 불운의 시작이었고 말이야. 세 달 동안 헛짓거리를 한 것을 생각해 보면 이가 갈린다. 씽을 무기점 앞에 묶어놓고 나는 살기를 피어 올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손님이 없는 가게 안에는 그 망할 놈의 늙은이가 서 있었다. 그 늙은이를 보는 순간 나는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 높아진 파이트 마스터리와 은신술 스킬 덕분에 내 순발력은 엄청나게 높아져 있었고 덕분에 나는 순식간에 그 무기점 주인의 멱살을 틀어쥘 수 있었다. 무기점 주인은 아는 얼굴인 나를 발견하고는 인사를 건네려다가 멱살을 잡히자 어이없다는 얼굴이었다. "이, 이보게. 왜 그러나? 내가 뭘 어쨌다고…." 이, 이 늙은이가… "뭐야! 이 망할 늙은이가! 네놈이 지껄인 헛소리 덕분에 세 달 동안 나무나 베고 있었잖아! 어쩔 거야! 앙!? 도대체 그런 헛소리는 왜 지껄여서 말야! 죽고 싶어!?" 이성을 잃은 나는 평소에는 결단코 쓰지 않은 욕설들을 퍼부어 댔다. 내게 멱살을 붙잡힌 가게 주인은 네 고함소리에서 내가 이 소동을 일으키는 이유를 알아내었는지 당황한 어조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 그, 그건… 켁켁. 이, 이보게… 이것좀… 놓고… 얘기하세나!" 가게 주인의 고함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슬며시 손을 풀었다. 으윽! 너무 흥분했어. 숨을 헉헉 들이쉬며 옷을 가다듬던 가게 주인은 약간 경계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엥? 그러고 보니 이 가게 주인… 머리 위에 NPC 표시가 없잖아? 다른 NPC들은 다 있었는데? "흠흠… 이, 이제 얘기를 좀 나눠 보세나. 왜… 그런 난동…을 부린 건가?" 슬쩍 슬쩍 내 눈치를 봐가며 말하는 가게 주인에게 나는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몰라서 물어? 전에 스킬 레벨 전부다 40은 넘겨야 사냥을 간다며. 그런데 오늘 들어보니 스킬 레벨은 5만 되도 사냥을 간다고 하더군. 당신 덕분에 세 달 동안 나무만 베고 있었단 말야! 어떻게 책임질 거야!" 내 말에 가게 주인은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크윽! 이 늙은이가! "허, 정말이지… 그, 그 말을 계속 믿고 있었단 말인가? 아, 그럼… 자네가 그 나무 학살자이자 일급 나무꾼으로 불린다는 그…." "그래! 당신 덕분에 그런 웃기는 별명까지 얻었단 말야! 나는 나무 베기를 익힌 적도 없단 말이다! 어떻게 책임질 거야!" 가게 주인은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식은땀까지 흘리던 가게 주인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 설마 자네가 그 말을 정말로 믿을 줄은 몰랐다네. 속는다고 해도 금방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섀도우 월드 홈페이지나 가이드북에도 나와있는 거라… 미안하구먼." 홈페이지? 가이드북? 무슨 NPC가 이런 전문적인 용어를 쓰는 거지? "아… 혹시 당신 NPC가 아닌가?" 뭔가 이상한 질문이었지만 가게 주인은 별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정말 둔하군. 내 머리 위에 NPC라는 메시지도 뜨지 않을 텐데? 나는 플레이어라네. 플레이어들도 가게를 열 수 있거든." 아… 그랬었구나. 왠지 계속 이상하다고 했는데… 엉? 그럼 진짜로 나이가 저렇게 많은 건가? 설마 젊은 놈이 늙은이로 캐릭을 만들 리는 없으니… 그럼 존댓말을 써야 되는 건가? "아… 그럼 존댓말을… 이, 이게 아니지!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야!? 이봐! 책임지라니까!" 뭔가 잘 넘어간다는 얼굴이던 가게 주인의 얼굴이 좀 일그러졌다. 가게 주인은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정말 자네가 그 말을 믿을 줄은 몰랐어. 대신에 내가 선물을 좀 주지. 쓸만한 아이템을 몇 가지 주겠네. 아, 자네 단검 던지기 스킬을 올렸지? 굉장히 좋은 물건이 있다네." "단검 던지기? 그것도 올리기는 올렸지." 내 퉁명스러운 말에 가게 주인은 의아해 하는 얼굴이었다. "'그것도'라고? 그럼 다른 것도 올렸다는 건가?" "물론이지! 소드 마스터리에 파이트 마스터리, 라이딩 마스터리까지 있단 말야! 덕분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내 외침에 가게 주인은 아까 진성이가 나에게 보내던, 마치 외계에서 내려온 생물체를 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표정은 금세 없어졌고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럼… 여러 직업의 스킬을 섞었단 말이군. 능력치를 높게 올릴 수 있다 이건가? 호…." 어? 나는 그런 생각으로 올린 거 아닌데? 하지만 자존심 상 몰라서 그렇게 올린 건데요? 라고 할 수는 없지. 나는 당당한 얼굴로 가게 주인을 마주보았다. 가게 주인은 나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왜 이러는 거지? "자네, 스킬은 어떤걸, 얼마만큼 올렸나?" 엥? 그걸 왜 물어? 아, 혹시 해결책이라도 알고 있는 건가? "흠… 소드 마스터리 36에 파이트 마스터리 27. 실드 마스터리 21. 단검 던지기 24. 함정파기 20. 은신술 23. 붕대 감기 21. 라이딩 마스터리 7인데?" 내 말에 가게 주인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나는 뭔 일인지 몰라서 멀뚱히 서 있었다. 잠시 후 생각을 끝냈는지 가게 주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굉장하군. 세 달 동안 나무만 베었다지만 엄청난 수치인데? 흠… 정말로 재미있는 친구야… 후후후… 하하하하핫!" 뭐, 뭐야! 미, 미친 건가? 내가 머리를 너무 세게 흔들었나? 내가 시덥잖은 걱정을 하는 사이 웃음을 멈춘 가게 주인은 카운터 밑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커다란 상자 하나를 꺼내들었다. 뭐 하는 상자지? 내가 의아해 하는 사이, 가게 주인은 상자를 열고는 안에서 검은 색의 건틀릿 하나와 반지 하나를 끄집어냈다. "이거 가져가게." "예?" 이걸? 왜? "사과의 표시지. 후후. 한번 열심히 해 보게나. 혹시 아나? 미토스처럼 엄청난 고수가 될지? 하하하!" 미토스? 그게 누구야? "저기… 미토스가 누구죠?" 선물을 받은 순간 나는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하하. 미토스 말인가? 자네와 비슷하게 케릭을 키운 유저지. 현재 새도우 월드 랭킹 7위라네." 7위!? 아, 그럼 미토스라는 사람이 진성이가 말했던…. "나도 그를 따라서 여러 직업의 스킬들을 섞어서 성장했지만 도중에 포기 했다네. 다만 미토스, 그 친구와 친분이 좀 있지. 이 물건들도 미토스 그 친구가 나보고 힘내라며 줬던 물건이고. 언젠가 미토스를 만나면 이 아이템들을 보여주고는 하크라는, 내 이름을 대 보게.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거야. 하하하!" 허억! 이 사람도 내 동지(?)!? 그런데 도중에 포기했다면… 그런데 그 엄청난 랭커가 준 아이템이라면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상당히 비싼 아이템일 테고… "아, 이거 받아도 괜찮은 겁니까?" "물론이네. 어차피 이제는 필요 없는 물건이니. 아, 자네 소드 마스터리가 가장 높지? 그럼 검을 들고 다녀야 할 텐데… 이거 가져가게." 가게 주인은 상자에서 롱소드 하나를 꺼내며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 검을 받아 들었는데 내가 쓰던 쇼트소드보다 훨씬 큰 크기에도 불구하고 더 가벼웠다. 그걸로 볼 때 평범한 검은 아닌 듯 싶었다. "미스릴이 60% 섞여 있는 검이네. 레어 아이템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은 유니크 아니템이지. 강도와 내구성은 굉장히 뛰어나지. 다른 부수적인 옵션도 나쁘지는 않지. 아, 너무 좋아하지는 말게나. 그건 돈 받을 테니. 100골드만 주게." 크윽! 100골드? 내 전 재산이 120골든데… 그래도 이 건틀렛에 반지, 미스릴 합금 롱소드면 싼 건가? 나는 입맛을 다시며 골드 금화가 가득 담긴 주머니를 내밀었다. 돈 주머니를 받아든 가게 주인은 돈도 세보지 않고 돈 상자에 집어넣었다. 나는 건틀렛과 반지를 품속에 넣고는 그 롱소드는 허리에 차고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런 선물을 받고 보니 아까 화낸 것이 괜히 거북스러웠다. "아, 그렇지 이것도 가져가게." 또, 또 있어? 이번엔 뭐냐? 가게 주인은 이번에는 카운터 뒤의 문으로 들어갔다가 갑옷하나를 들고 나왔다. 플레이트 메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좋아 보이는 고급 체인메일 이었다. "이거 가져가게. 대금은 아까 100골드로 끝내지. 이것도 괜찮은 아이템이네. 아, 여기 배낭은 덤이네." 나는 멋있어 보이는 체인메일과 배낭을 얼떨결에 받아들고는 멍하니 서 있었다. 뭐, 뭐냐? "하하. 도움이 필요하면 또 오게나. 대신 다음부터는 돈을 받을 거네. 그리고 언젠가 미토스를 만나면 안부 물어주게나. 잘 가게." 가게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고 나는 얼떨결에 가게 밖으로 나갔다. 뭐, 뭔가 이상해! 나는 골목을 나서며 아이템 창을 열었다. 저 늙은이, 설마 엄청 나쁜 아이템을 준건 아니겠지? 아이템 창에는 내가 가지고 나온 몇 가지의 아이템들이 늘어있었다. 흠… 먼저 이 까만 건틀릿부터… 나는 내 손에 끼워져 있는 건틀렛을 내려다보았다. 오거 파워 건틀릿(Oger Power Gauntlet) 오거의 힘을 내게 해 준다는 건틀릿. 몬스터들에게 오거가 주는 공포심을 느끼게 한다. 모든 전투 직업 사용 가능 공격력-230~350 방어력-36 내구력 무한 옵션 힘 증가 100포인트 체력 증가 50포인트 오거 피어(Oger Fear)-오거 대면시 몬스터 능력치 상승 오거 미만의 몬스터 대면시 몬스터 능력치 하락 크에엑! 오거 파워 건틀릿? 공격력이 왜이리 높아? 거기다 힘 100상승에 체력이 50상승? 마, 맙소사! "캐, 캐릭터 창." 캐릭터 창이 떠오르자 나는 급히 힘과 체력의 수치를 확인했다. "헉! 힘이 212? 체력 193? 이, 이럴 수가…." 우아악! 거, 건틀릿이 이 정도라면 지금 끼고 있는 반지는? 나는 이번에는 반지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성장의 반지 성장을 도와주는 반지. 모든 직업 사용 가능 옵션 경험치 상승 20% 증가 마법저항력 35% 증가 자동 치유-초당 최대 H.P, M.P의 2% 증가 마, 맙소사! 경험치 20% 증가? 마법 저항력도 오르고 자동 치유는 또 뭐냐? 이, 이럴 수가… 이, 이런 꿈같은 아이템들이 내 손에? 음? 아니, 잠깐. 이건 엄청난 아이템들을 가지고도 포기했다고? 아까 가게 주인의 말을 떠올린 나는 머리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 맙소사! 이런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도 포기할 정도면… 크으… 마냥 좋아할 것도 아니군. "이, 검하고 갑옷도 봐야하나?" 역시 검하고 갑옷도… 샤프 소드(Sharp Sword) 미스릴 합금. 미스릴 60% 강철 40% 상당히 날카로운 롱소드로 엄청난 강도와 날카로움을 자랑한다. 검사, 투사, 기사 용 공격력-170~210 내구성-450 옵션 공격시 13%의 확률로 라이트닝 데미지 마법 저항력 10% 증가 허… 이것도 엄청나군. 그런데 건틀릿을 보다가 이걸 보니 감흥이 덜한데? 으으… 복에 겨웠구만. 진정해라 현진! 리턴 체인 메일(Return Chain Mail) 적의 공격을 되돌려 주는 신의 축복이 내린 갑옷. 마법사, 정령사를 제외한 모든 직업 착용가능 방어력 153 내구력-340 옵션 7%의 확률로 적의 공격을 되돌려 준다 마법 저항력 15% 증가 흑마법 저항 보너스 "어, 엄청나다." 나는 충격에 휩싸여 멍하니 서 있었다. 턱이 빠져 멍하니 서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작은 창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피드-야, 현진아! 차렌에 도착했다. 어디에 있냐? 나, 지금 분수대에 있다만.> 아, 진성이가 접속한 건가? 분수대면… 중앙광장이겠지? 음? 그러고 보니… 이, 이거… 귓말이라고 하던가?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휘젓고는 분수대로 걸음을 옮겼다. 분수대에 가면 찾을 수 있겠지. <새피드-인마! 어딨냐고!> 나는 애써 무시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새피드-야! 김! 현! 진!> 망할! 나는 결국 달리기 시작했다. 엥? 이상하네? 평소보다 힘이 덜드는데? 아, 이 건틀릿 때문인가? 체력하고 힘이 엄청나게 올라갔지? <새피드-흑흑. 야, 제발 대답 좀 해라. 화났냐? 왜 그래?> 윽! 이 자식은 또 웬 청승이야? 으휴… 빨리 가야지. 나는 곧 분수대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순간적으로 나의 예상이 거대한 난관에 봉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헉! 그러고 보니 이 게임…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지. 으으… 내 생각만 하다 가 낭패봤네. 누가 진성이야?" 나는 진성이를 찾아 분수대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젠장! 어디 있는 거야? 찾을 수가 없잖아! 내가 속으로 고함을 질러대며 돌아다니기를 얼마. 갑자기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내가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금발 머리를 짧게 자른 절세 미남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누구?" "하… 현진이 맞구만." 엥? 이 목소리… "진성이?" "그래 인마! 귓말을 안 보내는 이유가 뭐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 걱정은 개뿔이… 그것보다 이 모습은 뭐냐? 아주 절세 미남을 만드셨구만. 허, 금발에 완벽한 팔등신 몸매에 저 수려한 외모라니… 현실에서 진성이는 짧은 검은머리에 약간 귀티나 보이는, 그냥 어느 정도 생긴 편인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 완벽한 나(?)보다 훨씬 뛰어난 외모라니… 아, 아니지. '훨씬 뛰어난'은 아니고… 약간 뛰어난 외모는… "아… 미안. 그 귓말인지 하는 걸 어떻게 보내는지 몰라서 말야. 그건 그렇고… 너, 그 얼굴은 뭐냐?" 귓말을 보내는 방법을 모른다는 말에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진성이는 외모 어쩌구 하는 말이 언급되자 겸연쩍어 하는 웃음을 흘렸다. "하하… 멋지지? 어… 그러니까 내가 평소에 꿈꾸던 모습을 만든 거랄까… 이 게임에서는 자기 맘대로 외모를 바꿀 수 있잖아. 원래 대부분이 이런 잘생긴 얼굴을 만든다고. 너처럼 얼굴에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놈들을 제외하고는 말야." 훗! 하긴 내 얼굴이 괜찮긴 하지. 그러고 보니 이 게임에서 못생긴 사람은 하나도 못 봤군. NPC는 빼고. 확실히 여지껏 내가 봐온 소수의 유저들은 대부분이 미남 미녀였다. 심지어 나무꾼 마저 절세 미남 뺨치는 외모였으니… 그 이상한 가게 주인 같이 중년의 외모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런가? 뭐, 그런 문제는 넘어가자." "그래. 그런데 너 귓말을 어떻게 보내는 지 모른다고?" "응." 내 대답에 진성이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냥 '귓말'이라고 말하고 귓말 보낼 사람 아이디를 말한 다음 전할 말을 중얼거리면 돼. 음성모드하고 문자 모드가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문자모드로 설정되어있고… 그 외에도 파티 대화 창이나 길드원 대화 창 같은 게 있고… 뭐, 대충 이 정도만 알아도 별 문제 없을 거다." "그래? 흠…." "어? 그런데 그 고급스러워 보이는 무기들은 뭐냐?" 진성이가 내가 장비하고 있는 아이템들을 보고는 의문을 표했다. "아, 그 이상한 NPC가 사실은 플레이어더라고. 그 가게 주인이 사과의 표시라며 준 건데… 그 사람도 나 같이 스킬을 섞어서키웠었대." 내 말에 진성이는 놀란 얼굴이었다. "너처럼? 혹시 그 엄청난 랭커?" "아니. 그냥 도중에 포기했데. 대신에 그 엄청난 랭커… 랭킹 7위라던가? 그 유져… 미토스라는 사람하고 친분이 있다고 하더라. 이 건틀릿하고 반지를 선물로 받았었는데 나 같은 사람한테 도움이 된다고 선물로 줬어." "미토스? 7위? 맞는거 같다. 아이디는 잘 모르지만 7위는 맞을거야. 그런데 그런 사람이 준 아이템이라면 엄청 좋은 거겠는데? 이름이 뭐냐?" 이름? 이 녀석은 이름만 들어도 성능을 알아맞추나? "오거 파워 건틀릿에 성장의 반지." "히엑!?" 엥? 아는 건가? "오거 파워 건틀릿이면… 베타 때 딱 한번 풀렸던 최고급 레어 아이템 아냐? 전 대륙에 20개정도 밖에 없을 텐데… 그거 능력치 엄청나지 않냐? 거기다 성장의 반지는… 딱 3개 있다고 하는 엄청난 아이템인데… 경험치 20% 상승. 맞지?" 뭐, 뭐냐 이놈은? 어떻게 이런걸 다 알고 있는 거지? "어떻게 아냐고 묻는 듯한 표정인데… 그건 나 같은 고렙이면 다 아는 엄청 유명한 아이템들이야. 팔면 수천 골드 거의 수만 골드까지 호가할걸? 확실히 미토스라는 사람이 대단하긴 대단하네. 그런 아이템을… 잠깐! 그럼 그 가게 주인은 또 뭐야? 그런걸 너한테 왜 주는 거냐?" "엥? 어… 자기 말로는 그냥 도움이 될 거라고 하면서 주던데? 언제 미토스르 만나면 안부 전해 달라고 했고… 자기는 이미 포기했으니까 필요 없데. 나보고 열심히 하라면서 준거야." 내 말에 진성이는 진정으로 부럽다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부럽다, 정말. 네가 요새 아주 복이 대박으로 터지는 구나." "복이 대박? 세 달 동안 헛짓한거 모르냐?" "그거야 네가 멍청해서 그랬던 거고." 으으… 맞다. 그럼 이 롱소드하고 체인 메일도 알아볼까? "야. 그럼 이건 아냐? 이 롱소드, 샤프 소드라는 건데? 그리고 이 체인 메일은 리턴 체인 메일인가? 뭐, 그런 이름이었어." 내 질문에 진성이는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모르나? "당연히 알지. 그것들도 꽤 유명한 아이템인데? 수가 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조금씩 나오는 유니크 아이템인데… 숫자도 얼마 안될걸? 설마 그것도 공짜로 받은 거냐?" "아니? 100골드 냈는데?" "거의 공짜구만. 그 검만 해도 1000골드는 하는 건데… 우우… 그만하자. 내 배만 아프다. 그럼 사냥이나 가야겠는데… 너 렙은 1이여도 스킬도 엄청나게 높고 아이템 빨이 죽여주니까… 고블린이나 오크 정도는 그냥 잡겠지? 좋아! 이 근처에 리자드 맨 서식지가 있지? 좀 위험하더라도 리자드들이나 잡으러 가자." 리자드 맨? 그게 뭐야? 직역하면 도마뱀 사나이인데… "그게 뭐야?" 내 질문에도 진성이는 히죽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별거 아냐. 너 정도면 1:1, 아니 1:2로 붙어도 잘 하면 이길 꺼야. 가자." 흠… 뭔가 수상한데?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진성이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 그건 뭐냐?" 진성이가 내 애마 씽을 보고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내 말." "너 말도 있었냐? 아, 라이딩도 올렸댔지?" "응." "그 말을 타고 가려고?" "왜? 안돼?" "안 될거 같은데…." 엥? 안 된다고? 왜? 이 녀석이 얼마나 빠른데? 매일매일 열심히 돌본 좋은 말이란 말이다! 뭐, 그렇게 열심히 돌본건 라이딩 마스터리를 올리려고 했던 거긴 하지만… "왜?" "리자드들이 사는 곳이 동굴이라고 들었거든. 동굴에 말을 끌고 들어가게?" 동굴? 그럼 안되겠군. 흑흑. "그럼 놓고 가지 뭐." 나는 씽을 다시 마구간에 집어넣었다. 꺼내자마자 다시 돌려보내니 마구간지기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으윽! 내 잘못이 아니야! "가자, 현진아." 흠… 가야지… 그런데 계속 이름을 부르려니 뭔가 이상하군. 그래도 여긴 현실이 아니니 여기서의 이름을 불러야 되는 거 아닌가? "그래. 가자 새피르." "호… 그래, 가자고, 세……." 말을 하다말고 내 눈치를 보는 진성, 아니 새피르. 으음… 아무래도 아이디를 잘못 정한 것 같아. 내가 미쳤었지.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을 붙이다니…. "상관없어. 어차피 이제는 별 감흥도 없는데… 그냥 세한이라고 불러라." "하, 하지만…." 여전히 머뭇거리는 진성. 으으… 뭔가 방법이…. "아, 그럼 '한'이라고 불러, 나도 널 '필'이라고 부를 테니." 내 말에 진성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필. 새피르에서 아무렇게나 따온 건데… 괜찮을 라나? "필? 흠… 나쁘진 않네. 그럼 그렇게 불러. 나도 한이라고 부를게." 확실히 그게 편하겠어. "그런데 그… 도마뱀 서식지는 어디에 있냐?" "아, 남문으로 조금 내려가면 있지. 한 30분만 걸으면 돼. 아, 중간에 오크나, 고블린 같은 놈들도 잡고." 남쪽으로 걸어가던 나는 30분이라는 말에 얼굴을 찡그렸다. 30분이라는 말에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필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오크라… 그 돼지머리? "그 돼지머리?" "킥. 그래 그 돼지들. 고블린이나 코볼트 보다는 강한 놈들인데 초보부터 중반까지 주로 사냥하는 몬스터지. 강한 놈들도 많아. 오크 로드라는 놈들은 2계급, 아니 3계급하고도 맞짱을 뜨거든. 나도 그 녀석 죽이기가 쉽지 않지." 히엑! 3계급이면… 검사로 따지면 1계급이 검사. 2계급이 소드 맨. 3계급이 소드마스터지? 소드마스터면 렙이 150은 넘어야 되잖아? 돼지가 그렇게 세단 말야? 절로 심각해지는 내 얼굴이었다. 잠시 킥킥거리던 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지마. 오크로드는 거의 없거든. 보통 오크들은 렙 1짜리도 한 마리 정도는 죽일 수 있어. 그런데 넌 스킬도 죽이고, 아이템도 좋으니 괜찮을 거야." 흐음… 그렇단 말이지. 우리가 얘기를 나누며 잠시 걸어가자 남문이 나타났다. 바로 숲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내가 나물를 베던 숲과는 달리 약간 어두운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저기엔 몬스터가 서식한다 이거지? 긴장한 나는 무장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샤프 소드는 등뒤로 둘러맸고 쇼트소드는 오른쪽 허리에 찼다. 잡화점에서 싸게 구입한 스몰 버클러는 팔에도 낄 수 있기에 왼팔에 장착했다. 흠… 이거면 될까나? 아, 단검도 꺼내고… 필은 내가 단검까지 두자루 꺼내 양손에 꼬나 쥐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긴장하지 마라. 절대 죽지는 않게 해줄 테니까. 그리고 어차피 너는 직업도 없잖아. 직업이 없는 초보들은 죽어도 스킬 레벨 다운은 없어." 필의 말에 약간 안심이 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헌데, 죽지는 않게라… 역시 이놈은 왠지 불안해. 숲 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눈앞에 작은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전투 필드. 어둠의 숲> 허… 여기가 어둠의 숲이라고? 역시 전투 필드구나. 긴장. 긴장. 필도 그 메시지를 봤는지 검을 뽑아 들었다. 화려한 롱소드의 검신에 나는 작게 감탄을 토했다. 내 샤프 소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멋진 검이었다. 유니크 아이템인가? 필은 검을 그냥 아래로 늘어뜨리는 것이 나와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크윽! 강자의 여유라는 거냐? 우리는 숲 안으로 계속 들어갔다. 몇 분 정도 지나자 어디선가 '취익, 취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오크로군. 한, 조심해." 필의 말에 나는 긴장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어디지? 그때 우리의 옆쪽에서 돼지 머리를 가진 땅딸막한 몬스터 4마리가 걸어나왔다. 그놈들은 작은 도끼나 짧은 검들을 들고 있었다. 그놈들은 계속해서 '취익, 취익'거리고 있었는데 콧방귀를 뀌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취익. 인간이다! 취익. 죽이자!" "취익! 공격!" 헉!? 말을 하네? 내가 내심 감탄하는 사이 오크들은 그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리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무기를 꼬나 쥐고 살기를 피어 올리는 것이 어느 정도 공포심이 들게 했다. 거기다, 상당히 빨랐다. "헉!? 빠르네? 야, 필. 어떻게 좀 해봐." 내 외침에 필은 약간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능글맞게 대답했다. "네가 알아서 해. 실전경험도 쌓고 좋지 뭐." 뭐, 뭐야!? 이놈이… 내가 눈을 부라리는 순간. 필은 나를 앞으로 밀어버렸다. 헉! 이, 이런. 내가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서자 오크들은 나를 목표로 정한 듯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우아앗! 우짠다냐? 필. 저 망할 놈! 어, 엇!? 우웃! 가, 가까이 온다. 가까이 오기 전에 어떻게 공격을… 무기, 무기. 아차. 손에 단검 있지. 던져야 되나? 좋아! 세 달 동안 나무에 구멍을 내던 실력을 보여주마! 자, 잠깐! 그러고 보니 움직이는 놈들은 맞춰 본 적이…. 쉬익! 순식간에 휘둘러지는 내 두손. 빠른 속도로 날아간 두 개의 단검. 단검들은 달려오던 오크 두 마리의 목줄기에 정확하게 꽂혔다. 어라? 무의식중에… 스킬 때문인가? 오옷! 두 마리 잡았어! "취익! 주, 죽었다." "취익! 인간! 취익! 죽여라!" "취익! 복수다!" 갑자기 쓰러진 동료들을 돌아보던 나머지 두 마리의 오크들은 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어엇! 다, 단검이… 꺼내려면 시간이… 아냐! 진정하자! 방금 봤잖아. 이길 수 있다. 나는 어깨로 손을 가져갔다. 손에 샤프소드의 손잡이가 쥐어졌다. 좋아! 검도를 하던 느낌을 살려서! 나는 달려오는 오크들에게 달려나갔다. 뒤에서 필이 "어, 어? 야!" 어쩌고 당황한 목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시. 무시. 어느새 눈앞에 다가와 있는 두 마리의 오크. 좋아. 그대로 검을 뽑으며 휘두른다. "취익!" 오크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대로 검을 뽑으며 아래로 휘둘렀다. 써걱! 어라!? 내 샤프소드와 맞부딪친 오크의 검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이거 왜이래?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손에 느껴지는 이상한 감촉. 써걱. 오크의 몸통이 두 조각이 나는 모습이 두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이, 이런. 너무 실감 나는 거 아냐? "취익!" "인마! 조심해!" 갑자기 들려온 필의 고함소리. 오크가 던진 도끼가 날아오는 것을 발견한 나는 기겁을 했다. 헉! 방심 했닷! 나는 왼손을 들어올려 도끼를 막았다. 하지만 역시 잡화점에서 산 물건의 성능이 좋으면 얼마나 좋으랴. 버클러는 그대로 잘리며 팔에서 따끔 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큭!"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도끼를 던졌기에 무방비 상태 던 오크의 모가지가 하늘로 치솟았다. 쓰러진 오크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피를 바라보며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 죽였어? 내가 얼빠진 얼굴로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필이었다. 필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하아? 아… 그러고 보니… 이 자식! 그런 걸로 네 죄가 용서될 줄 아느냐! "이놈이!"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바닥을 짚은 왼손에서 통증이 오는 것을 느끼고는 다시 주저앉았다. "아야야…." "가만있어라 마. 그 버클러가 고물인 모양이지? 제대로 막았는데 그대로 뚫리다니." 크윽… 역시 무기점에서 사는건데… 거기다 나무를 치고 난리를 쳤던 거니 정상일 리가 없지. 으… 후회된다. 캐릭터 창을 열어보니 H.P가 꽤 깎여 있었다. 그나마 체인 메일 덕에 피해가 적었군. 한 10/1만 줄었네. 그래도 아픈건 아픈 거다. 크흑! "대단하던데? 내 예상으로는 10분은 걸릴 줄 알았는데 말야. 그 단검 던지기에 발검은 예술이더라. 너 어디 가서 레벨 1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다." 나는 필의 말을 무시하며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후… 붕대감기를 익히길 잘했지. "맞다. 너 레벨 확인해봐. 아마 올랐을 걸? 대부분 렙 1짜리는 오크 한두 마리만 잡아도 레벨이 오르거든. 너도 올랐을… 아니지. 스킬 때문에 안 올랐을 라나?" 음? 레벨? 그러고 보니… 확인해 보니 레벨이 3로 올라가 있었다. 2나 올랐네? "올랐는데? 3으로 올랐어." 내 말에 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별 차이가 없나보다. 어쩌면 직업이 결정나면 레벨이 잘 안 올를지도… 거기다 넌 성장의 반지도 있잖냐. 오크 4마리에 레벨 2가 오르면… 그 반지 덕인가 본데? 다른 사람들보다도 빨라." 아, 맞다. 성장의 반지. 그것 덕분인가? 흠… 왠지 기분을 좋은데. "그런데 레벨이 올라도 보너스 스탯은 없네?" "없어. 대신 스탯 몇 개가 1씩 올랐을걸? 운하고 신앙 빼고. 레벨이 오르면 명성하고 H.P, M.P, 스태미나만 올라가. 보너스 스탯은 승급을 할 때마다 50씩 주고 스킬을 올릴 때 스탯이 조금씩 올라가지." 아, 그런가? 확실히 스탯들이 하나씩 올라가긴 했다. 운은 아직도 15지만… 아, 이제 별로 안 아픈데? 나는 팔의 통증이 가라앉은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붕대 감기가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일한 게 효 과가 있군. 봉급도 짜서 불만이었는데…. "호? 멀쩡한가 보지? 그래, 몬스터를 죽여보니 기분이 어떠냐?" 기분? 더러웠지. 정말 이 게임, 너무 실감나는 거 아냐? 플레이어를 죽이면 사람을 죽이는 기분이 들까나? 그나마 몬스터라서 좀 괜찮았던 것 같다. "더러워." 내 대답에 필은 좀 킥킥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치? 나도 처음에는 소름이 다 돋더라. 그래도 하다보면 익숙해져. 뭐, 정 못 참겠으면 게임 시작하기 전에 감도를 좀 낮춰 두던지." 감도를 낮춰? 그런 것도 있나? 흠… 생각해 보고… 아차! 단검 회수, 단검 회수. 나는 오크의 목에 꽂혀 있는 단검을 뽑아들었다. 기분은 좀 나빴지만 돈보다 중요한 건 없지. 필은 내 행동을 보고 기가 질린다는 얼굴이었다. "대단하다. 정말 수전노셔. 짠돌이 자식." "신경 꺼." 단검에 묻은 피를 대충 닦은 나는 필을 노려보았다. 몸을 흠칫 한 필은 불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왜 그러냐?" "허허… 왜 그러냐? 날 앞으로 떠밀었겠다. 얼마나 놀랐는줄 알아!? 처음 몬스터랑 싸워보는 사람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딨어!?" 필은 땀을 삐질 흘리며 변명을 내뱉었다. "어, 어쨌든 레벨도 오르고 좋잖아? 그리고 실전 경험도 쌓아줄 겸해서…." 필은 내가 내미는 손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마치 뭔 뜻이냐고 묻는 듯한 시선에다는 당당하게 외쳤다. "보상금! 혹은 위로금 내지는 정신적 피해 위약금이라고 하지. 10골드만 내놔." "끄으으… 치사한 짠돌이 자식! 꼭 돈을 받아야 겠냐?" "물론이지!" 필은 너무도 당당한 나의 태도에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금화 몇 개를 내밀었다. 개수를 세어본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1골드 모자라." "크윽!" 필은 투덜거리며 다시 동전 하나를 던졌고 나는 씨익 웃으며 금화들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후훗! 돈 벌었다. 나는 오크가 떨군 아이템과 돈들을 챙겼다. 필이 은화 몇 개를 슬쩍하려 했지만 내 눈총에 손을 거두곤 했다. "짠돌이." "내가 다 잡았잖아. 근데 돈도 별로 안 주네? 겨우 5실버가 뭐냐? 5실버가." "돼지가 다 그렇지 뭐.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는 필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젠장! 무슨 오크들이 그렇게 많아!?" "진정해. 어차피 다 죽였으니 다행이지." "너는 싸우지도 않았잖아!" "그거야 네 경험을 위해서…." "시끄러 이 치사한 자식아!" 내가 두르고 있는 망토는 아주 걸레가 다 되어 있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동굴에 도착하기 위해 걸어오는 도중 일어난 오크들과의 가벼운(?) 마찰 덕분이었다. 이 숲에는 오크들만 살고 있는지 맨 처음의 전투 이후 6번 정도 오크무리를 더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 내 배낭은 상당히 두둑해져 있었다. 한계 용량 수치를 보니 거의 절반이 채워져 있었다. 그 대부분이 작은 도끼나 쇼트소드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치사한 필. 이 망할 자신은 지금까지의 전투에 한번도 참가하지 않았다. 솔직히 오크들이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니라 나 혼자서도 어떻게 물리 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역시 힘든 것은 사실. 더구나 저 치사한 놈은 내가 6마리의 오크들에게 둘러쌓여 도움을 청하는 데도 깨끗이 무시했다. 덕분에 내 망토가 이런 꼴이 된 것이고… 지금 내 레벨은 9였다. 오크를 한 30마리 정도는 해치웠지만 역시 레벨이 올라갈수록 필요한 경험치는 더욱 많았다. 하지만 필이 빠른 성장이라고 감탄하는 것이 성장의 반지 덕분인 모양이었다. 아마도 직업이 생기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과 성장 속도가 같은 것 같다는 필의 예상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스킬 레벨은 그대로였다. "여기가 도마뱀들이 사는 곳이야?" "리자드라니까! 아마 여기엔 리자드 맨이나 강해 봐야 리자드 워리어까지 있을 거야." 리자드 워리어? 직역해서 도마뱀 전사라… 강할까나? 지금까지의 필의 설명으로는 오크보다는 훠얼씬 세다고 했다. 음, 역시 긴장되는데… 단검도 이제는 얼마 안 남았는데… "들어가자." 필이 자신의 검을 꼬나 쥐며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헉!? 검을 들어올렸어! 리자드들은 준비를 해야한다는 소리!? 이런… 난 지금 방패도 없는데… 나는 샤프소드를 오른손에 쥐고는 왼손에는 단검 하나를 역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왼손을 가슴 높으로 들어올리고 오른손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지금껏 겪어본 바로 가장 괜찮은 자세였다. <새피드 님이 파티를 신청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음? 파티? 아,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파티도 맺지 않고 있었잖아. 필, 저 푼수자식. "받아들인다." <파티가 결성되었습니다. 파티 창을 여시겠습니까?> "응." 내 시야의 위쪽으로 필의 상태 창이 작게 떠올랐다. 그랜져. 렙 238. 히야… 죽이는 구만. 아이템 빨이 받쳐주는 나보다도 능력치들이 훨씬 높은 것이 역시 고수의 위엄을 보여주는 듯 했다. "나왔다." 필의 말에 나는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의 앞쪽에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해 보였다. 저건가? 나는 즉시 단검을 집어던졌다. 쉬익~! "인마! 리자드들의 가죽은 엄청 질기다고! 단검 정도로는…." 쿠에에엑! 필의 목소리는 갑자기 들려온 괴상한 비명소리에 파묻히고 말았다. 헹! 내 오거 파워 건틀릿을 잊은 모양이지? 필도 내 건틀릿에 생각이 미쳤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들어올렸다. 나는 단검을 꺼내는 대신 쇼트소드를 뽑아들고는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아무래도 단검보다는 이게 더 세겠지? 훗! 와라! 쿠르르륵! 괴성과 함께 거대한 도마뱀 여러 마리가 모습을 나타냈다. 헉! 어, 엄청 크잖아! 나는 나보다 머리 하나정도는 커 보이는 도마뱀들을 보며 경악했다. 두 다리로 서 있는 데다 가죽 갑옷에 어떤 놈들은 강철 갑주까지 걸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가죽 갑옷을 입은 놈들의 가슴에는 'MAN'이라는 글자가 있었고 강철 갑주를 입은 놈들의 가슴부위에는 'WARRIOR'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하하… 센스하고는…. "한. 조심해. 워리어가 3마리다. 거리에 리자드 맨도 5마리니… 생각보다 수가 너무 많아!" 뭐, 뭐야! 이런 멍청한! 그, 그냥 도망가는 게… 아니지. 친구를 버리고 갈 수는 없지. 그럼. 그래도 도망가고 싶다. 흑흑. 크워어? 크르르… 엥? 갑자기 리자드들이 주춤했는데? 왜 그러지? 마치 뭔가 공포에 질린 듯한… "오거 파워 건틀릿 때문이군." 아, 맞다. 이 건틀릿에는 그런 기능도 있었지? 몬스터 능력치 하락. 어? 그런데 아까 오크들은 별 반응 없었는데? "이상하네? 아까 오크들은…." "킥킥. 어디서들은 적이 있는데 OPG는 오크한테는 아무런 공포를 주지 못한데. 오크들은 어깨 위가 허전해서 머리를 얹고 다닌다고 하거든. 큭큭. 그에 비해 저놈들은 신체 구조상 말은 못해도 머리는 좋으니까… 킥킥." 하? 그러니까 오크들은 멍청해서 느낌이 없다? 큭큭. 나는 긴장이 다소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쨌든 도움이 되겠는데? 몬스터 능력치 하락이라…." "그럴까?" 솔직히 그리 큰 도움은 될 것 같지 않다. 크… 크라라라락! 크르륵! 그때 리자드들이 괴성을 지르더니 앞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크윽! 시작인가? 타앗! 그때 필이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내 뒤를 따라와!" 나는 군말 없이 필의 뒤를 따랐다. 곧 필과 리자드 워리어가 격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아앗! 연격(連擊)!" 엥? 저게 뭐야? 필은 이상한 말을 외치더니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저리 빨리 휘둘러? 눈에 잘 보이지도 않잖아? 필은 여러번을 이어서 계속 후려쳤고 리자드 워리어는 처음 한번은 막았지만 두 번째 공격부터는 그대로 적중 당해 죽고 말았다. 멋진데? 크아악! 헉!? 나는 내 옆에서 커다란 대도를 휘두르는 리자드 맨을 발견하고는 급히 뒤로 물러섰다. 내가 물러선 자리로 대도가 무서운 기세로 지나갔다. 헉! 위험했다. "하앗!" 나는 리자드 맨이 무기를 거두는 시간을 이용할 심산으로 검을 찔러넣었다. 하지만 리자드 맨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순신간에 대도를 비틀어 내 검을 후려친 것이다. "크윽!" 나는 팔에 가해지는 충격에 신음을 흘렸다. 흑! 이 OPG가 진짜 오거의 힘을 내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왼손에 들린 쇼트소드를 리자드 맨의 가슴으로 집어던졌다. 가죽 갑옷은 쉽게 뚤렸고 리자드 맨은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헉! 힘들어라." 나는 또 다시 날아오는 리자드 워리어의 팔치온을 급히 피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훨씬 빠르네. 흑흑. 살아갈 수 있을까? "하아앗! 연격!" 필은 예의 그 연속 공격을 또 한번 날리며 리자드 워리어 한 마리를 쓰러뜨렸다. 정말 대단하다.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인데… 크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팔치온을 휘드루는 리자드 워리어. 으으 단검, 단검. 뒤로 물러서 공격을 피한 나는 재빨리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다행히 단검이 몇 개 남아있었다. "핫!" 단검을 꺼내자마자 리자드 워리어를 향해 집어던졌다. 낑! 헉!? '낑'? 이상한 소리와 함께 단검은 리자드 워리어의 강철 갑옷에 박혔다. 반도 박히지 않은 것이 별 충격을 주기 못한 모양이었다. 키에엑! 역시 리자드 워리어는 다시 괴성을 지르며 팔치온을 휘둘렀다. 으으… 끔찍한 녀석! 두 손으로 샤프소드를 꽉 움켜쥔 나는 크게 베어져 오는 리자드 워리어의 검을 막았다. 까아앙! 허공에서 충돌한 리자드 워리어의 팔치온과 내 샤프소드. 내 샤프소드는 팔치온에 반쯤 박혀들었다. 헉! 이런 예상과 다르잖아. 잘릴 줄 알았는데… 꽤 좋은 건가 보지. 크우웅? 리자드 워리어는 내 검이 자신의 무기를 반쯤 뚫어놓자 이상한 괴성을 내질렀다. 아이고 귀야! 가까이서 들으니 엄청 시끄럽네. 젠장! 이 검은 왜 안 빠져! 내 샤프소드는 아무리 잡아당겨도 빠지지 않았다. 으윽! 상당히 강하게 박힌 모양이지? 그럼 어떻게… 그 때 내 눈에 리자드 워리어의 가슴에 살짝 박혀 있는 단검이 발견됐다. 저거 닷! 나는 오른손을 놓고 왼손만으로 검을 쥐었다. 힘이 반감되자 리자드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내 검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한발을 강하게 내딛으며 오른손으로 리자드의 가슴에 박힌 단검을 강하게 내질렀다. 쿠에엑! 단검은 깊숙이 박혀 들어갔고 리자드 워리어는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그대로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집어 던졌다. 날아간 단검은 리자드 워리어의 목줄기를 깨끗이 뚫어놓았다. 리자드 워리어의 시체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샤프소드를 주우려 했다. 부우웅!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이 들려오자 나는 몸을 숙인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방금 전에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리자드맨의 검이 박혀 있었다. 제길! 검이… 그 리자드맨은 바닥에 박힌 검을 다시 뽑아들며 내게 달려들었다. 크윽! 맨손으로 싸워야 겠군. 하긴, 이런 때를 대비해서 파이트 마스터리를 올린 거지. 나는 주먹을 움켜쥐며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철컥! 엥? 이, 이게 뭐야!? 내가 주먹을 쥐며 파이팅 포즈를 취하자 OPG에서 날카로워 보이는 강철 손톱들이 튀어 나왔다. 헥? 이런 기능도 있었나?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리자드맨에게 달려들었다. 리자드맨을 검을 내질러 왔지만 몸을 비틀어 피한 나는 리자드맨의 품속으로 달려들었다. 헷! 저런 큰 무기는 이렇게 접근하면 쓰지 못하지. 나는 그대로 리자드맨의 가슴에 연타를 먹이기 시작했다. 필의 것처럼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속도의 연타를 얻어먹은 리자드맨은 괴성을 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헉, 헉. 젠장. 죽겠구만." 나는 다음을 대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3마리. 리자드들이 8마리였으니까… 어느새 리자드들은 모두 죽어있었고 리자드 워리어 한 마리만이 남아 필과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실력차이가 너무도 훤했다. 겨우 레벨 9인 나도 3마리를 쓰러뜨렸는데 필이 당할려고. 역시 필은 압도적으로 리자드 워리어를 몰아부치고 있었다. 마치 데리고 노는 것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하앗!" 필이 리자드 워리어의 팔치온을 강하게 쳐내자 놈은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필은 눈을 빛내며 허공에 대고 검을 휘둘렀다. 뭐하는 짓이야? "핫! 연격! 검기(劍氣)!" 필은 아까와 같이 검을 빠른 속도로 여러번 휘둘렀다. 다른 점이라면 필의 검에서 검기들이 날아갔다는 것이었다. 와아… 저게 검기? 무협지에서 본적이 있기는 하다만… 멋있다! 리자드 워리어는 피를 뿜어대며 쓰러졌고 필은 한숨을 내쉬며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끝, 끝난 건가? 긴장이 풀린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휴… 이번엔 정말로 죽을 뻔했네… 힘이 하나도 없잖아. 아, 레벨이 올랐을 라나? 캐릭터 창을 불러낸 나는 레벨을 확인했다. 히익! 15? 6이나 올랐어? 내가 경악하는 사이 필이 나에게 다가왔다. "여어~! 할만 하냐?" 크윽! 이 뻔뻔한 자식! 날 이런 위험한 곳으로 데려오다니. 죽을 뻔했잖아. 솔직히 한 대도 맞지 않기는 했지만 한 대라도 맞았다간 그대로 게임 오버가 됐을 것이다. 순발력이 높아서 간신히 피해 다녔을 뿐. "장난 하냐? 죽을 뻔했잖아!" "안 죽었으면 됐지. 그래도 레벨은 꽤 올랐을 텐데? 얼마나 올랐어?" 나는 떨어진 샤프소드를 회수하며 투덜거리면서 대답했다. "젠장, 뻔뻔하구만. 6올랐다." "여~ 많이 올랐네?" "하… 아, 맞다. 너 아까 그 이상한 기술들 어떻게 쓴 거야?" 내 질문에 필은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역시 이놈은 걸어다니는 가이드북이라니까. "그 기술들은 다 내가 만든 거야. 스킬 레벨이 올라가면 자기가 만들 수 있거든. 예를 들어서 소드 마스터리 레벨이 60이 넘으면 나처럼 6번 연속으로 베는 게 가능해지지 내가 쓰던 연격은 레벨 20때 만들어 놓은 건데 간단하게 두 번 베기로 시작한 거야. 간단하게 말해서 레벨이 20이면 두 번 베는 게 가능하고 30이면 3번 베는 게 가능한데… 이걸 경로를 정해서 저장하고 이름을 정해 놓으면 전투 시에 그 기술 이름을 말하면 저절로 사용이 되. 다른 전투스킬들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꼭 이렇게 만들어 쓰는 기술만 있는 건 아니고 승급을 할 때마다 기술이 몇 개씩 생기지. 아까 내가 쓴 검기도 소드마스터에 들면서 생긴 건데 검에 마나를 실어서 날리는 기술이야. 그걸 연격에 합쳐서 쓴 거지. 원래는 한번만 나가는 기술이야. 아, 너도 기술 만들 수 있을 걸? 스킬 레벨들이 다 20이 넘는 다며? 소드마스터리가 36이면 3연격까지 가능해. 그걸 경로를 정해서 기술을 만들면 되지. 기술은 스킬 창에서 전투기술이라고 말하면 뜨는 창에서 만들 수 있어. 한가지 더 추가하면 기술을 만들어 놓으면 레벨이 올라가 능력치가 올라갈수록 기술도 강해지고… 또 숙련도라는 게 있는데 숙련도가 높아지면 딜레이가 짧아지지." 길다… 정말 엄청나구만. 흠… 자기가 만드는 기술이라고? 흠… 그럼 폼나게 한번 만들어 볼까? 필 같은 마구 베기가 아닌 진짜 멋있는 걸로… 내가 고민하는 사이 필은 시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돈과 아이템들을 모아왔다. "야, 돈은 모두 2골드 35실버다. 너는 1골드 10실버. 나는 나머지. 내가 한 마리 더 잡았으니 가져가는 거다. 아이템은… 네가 가져갈 거 먼저 꺼내가." 돈을 품속에 집어넣은 나는 아이템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하급 단검들 몇 개가 있어 단검들을 챙기자 별로 가져갈 것도 없었다. 그저 팔치온 하나와 강철 몇 개를 챙겼다. 강철이야 대장간에 팔면 되니까. 팔치온과 강철을 배낭에 집어넣자 나머지 아이템들을 바라보던 필은 인상을 찡그렸다. "쳇! 쓸만한 게 없잖아? 팔치온이나 챙기고… 나머진 다 버리고 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샤프소드를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동굴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려는 순간. 필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발견한 나는 그대로 멈춰 섰다. 내가 빤히 바라보자 필은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한, 미안하다. 나는 나가 봐야겠는데? 시간이 다 돼서… PC방이잖아."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하긴 여기까지 오는데 거의 2시간이 걸렸었고 리자드 잡고, 아까 마을에서 까먹은 시간하면… 현실시간으로 1시간 정도 지났네? "그래? 그럼 가봐. 나는 조금 더 할 테니까. 아, 동창회는 어쩔 거냐?" "내일 너희 집으로 갈게. 몇 시에 갈까? 오늘 애들하고 연락하면 몇 명이나 올지 알 수 있으니까, 내일 알려줄게. 준비도 좀 하고…." "오전 아무 때나 와." 내 말에 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흔들었다. 몸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 로그아웃을 한 모양이었다. 흠… 나는 이제 뭘 하지? 여기서 혼자 사냥하는 건 미친 짓이고… 아, 동굴을 나가서 기술이나 만들까? 나는 기술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하고 동굴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스킬 창. 전투기술." 동굴 밖의 바위 위에 걸터앉은 내 중얼거림에 스킬 창이 떠오르더니 이상한 스크린이 있는 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술을 만들 스킬을 선택해 주십시오> "에… 소드 마스터리." <알겠습니다. 현재 소드 마스터리 레벨 36. 3연격까지 가능합니다. 만드실 기술의 이 미지를 떠올려 주십시오> 이미지? 머리 속에 떠올리면 되는 건가? 좋아! 멋지게 만들어 보자고! 약 30분이 지난 후. 나는 샤프소드를 움켜쥐고 어둠의 숲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후훗! 기술도 생겼겠다 오크정도는 쉽게 상대할 수 있겠지. 레벨도 올랐고. 나는 자신감에 차서 숲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리자드 동굴에 혼자 들어가는 건 미친 짓 같아 오크를 잡기로 결정한 것이었는데… 잠시 후, 내 앞에 나타난 오크 떼거지를 보며 나는 내 자만심을 후회했다. "으윽… 도, 도대체 저게 몇 마리야? 거의 20마리 정도… 튀, 튀어야 하나?" 하지만 도망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저런 돼지머리들한테서 도망칠 수는 없지. 이판사판이다! 나는 샤프소드를 검집에 집어넣고 아까 와는 다르게 허리에 찬 단검들에 손을 가져갔다. 후… 우선 단검 기술이다! 무기들을 꼬나쥐고 나를 노려보고 있던 오크들은 내가 무기로 손을 가져가자 제멋대로 흥분해서는 달려들기 시작했다. "취이익! 죽여라! 취익!" "취이이익!" "죽여라! 취익!" 으으… 저 '취익, 취익'거리는 소리 정말 듣기 싫어! 나는 단검의 자루를 움켜쥐었다. "간다! 대거 댄싱(Dager Dancing)!" 순식간에 단검 4개가 오크무리를 향해 날아갔다. 흠… 대거 댄싱이라… 이름과는 달리 단순한 연속 던지기다. 2연격까지 가능하기에 한 손에 두 개씩 던져서 4개의 단검을 적에게 날리는 기술. 얼핏보기에 단검을 던지는 손동작이 현란해서 붙인 이름인데… 훗! 뭐 어떠냐. 멋있으면 됐지. 날아간 단검에 3마리의 오크가 쓰러졌다. 단검 하나는 웬 애꿎은 나무 하나를 파고 들어있었다. 흠… 여기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이야. 나는 샤프소드의 손잡이를 쥐었다. 맨 처음과 같은 어깨에 손을 올린 자세가 된 나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훗! 목표는 맨 앞의 오크 3마리. 금세 거리는 좁혀졌고 나는 호기롭게 외쳤다. "받아랏! 발검(拔劍)! 연환격(連環擊)!" 훗! 멋들어진 이름이지. 내 몸은 순간적으로 움직였다. 격투가와 도적 스킬이 있기에 내 순발력은 상당히 높았고 필 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한 빠르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 쉬익! 나는(내가 움직이는 건 아니었지만) 빠르게 검을 뽑아들며 정면의 오크를 그대로 내리 찍었다. 그 오크는 검을 들어 내 공격을 막았지만 샤프소드는 그 검을 두 동강 내며 오크를 그대로 반으로 조각 냈다. 그리고 검을 내리찍으며 함께 무릅을 꿇은 나는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이며 몸을 일으켜 내 오른쪽에 서 있는 오크를 아래에서 위로 베어내었다. "취이익!" 오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순간. 나는 다시 몸을 왼쪽으로 움직이며 왼쪽에서 징그러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오크를 수평으로 베었다. "취엑!" 우, 우왔! 효과 만점이닷! 단번에 3마리를 끝장내다니! 엥? 그런데 왠지 몸에 힘이 빠지는 듯한 기분이… "취익! 죽어라!" 허억!? 어느 샌가 내 앞으로 다가온 오크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도끼를 내리찍고 있었다. 우왁! 죽는닷! "으읏! 크로스(Cross)!" 내 외침과 함께 나는 샤프소드를 빠른 속도로 두 번 휘두르며 오크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던 오크는 X자의 상처를 입고 이승 하직했다. "헉, 헉. 정말 죽는 줄 알았네. 망할 오크 자식!" 하지만 이제 겨우 7마리를 죽인 거다. 내 앞에 남아 있는 오크는 12마리 정도. 약간 거리가 있으니 대거 댄싱을… 분명히 단검을 8개를 차고 있었지? 나는 허리의 단검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대거 댄싱!" 날아가는 두 개의 단검. 어라? 두 개? 나는 허리를 더듬었다. 분명히 두 개 더 남아있는데? 그때 내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 마, 망할! 왠지 내 몸을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 이, 이럴 수가. 내가 던진 단검에 쓰러지는 2마리의 오크가 눈에 들어왔지만 내게 큰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맙소사… 아직 10마리는… "허억!" 나는 순식간에 내 눈앞으로 날아오는 작은 도끼를 발견하고는 급히 머리를 틀었다. 투둑! 헉! 머리카락이! 간신히 피하기는 했지만 어떤 오크가 던진 투척용 도끼는 내 볼을 스쳐지나가며 내 머리카락 일부를 잘라갔다. "취이익! 죽여라!" "복수다! 취이익!" 나머지 오크, 정확히 11마리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더 이상 기술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충격에 휩싸여 있던 나는 그 모습에 침을 꿀꺽 삼켰다. 으으윽!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작전상 후퇴닷!" 나는 그대로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갑자기 필이 그리워진다. 젠장! 방법이, 방법이… 그렇지! 리자드 동굴의 입구로 가서 한번에 3마리 정도씩 상대하면…. "좋았어! 동굴로 달린닷!" 쉬익! "허억!?" 내 팔을 스쳐 지나가는 오크의 도끼. 나는 달리는 속도가 절로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망할! 허억. 허억. 거의 다 왔다. 저 멀리 동굴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좋았어! 우선 뒤돌아서 단검을… 나는 달리는 그대로 몸을 약간 뒤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짧은 다리로 열심히 쫓아오고 있는 오크들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단검을 집어던졌다. "선물이닷! 먹고 떨어져!" 남아있던 두 개의 단검이 날아갔고 나는 공격 성공 여부를 확인도 하기 전에 다시 고개를 돌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도, 도끼닷! 퍼억! "크윽!" 나는 눈을 부릅떴다. 젠장! 한 대 맞았다… 왼 어깨에 명중한 도끼는 다시 떨어져 나갔지만 어깨에 남은 상처는 상당히 컸다. 망할! 붕대, 붕대. 나는 품속에서 붕대를 꺼내서는 어깨에 감기 시작했다. 게임에서가 아니면 불가능한, 죽어라고 달리면서 동시에 붕대를 감는 신기(?)를 보여주며 나는 동굴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쳇! 끔찍하게 아프네." 동굴 안으로 들어온 나는 조금만 안으로 들어갔다. 이 동굴은 입구는 좁다가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 졌으니 여기가 가장 적당하다. "와랏!" 뒤돌아 서서 잠시 기다리자 오크들이 뛰어들어왔다. 우선 4마리인가? "취이익! 죽여라! 취익!" "취익! 잡아라!" 난 몬스터가 아닌데? 나는 샤프소드를 휘두르며 오크들에게 달려들었다. 4마리. 거기 다 정면이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앗!" 나는 기합과 함께 가장 오른 쪽에 위치한 오크를 내리찍었다. 오크는 짧은 검을 들어 내 공격을 막았지만 나는 샤프소드의 위력을 믿고 그대로 내려찍었다. 서걱! 역시 내 예상대로 오크는 자신의 검과 함께 두 동강이 났고 나는 그대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내가 있던 자리를 지나가는 오크의 무기들. 히익!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왼쪽으로 검을 휘두르며 몸을 일으켰다. 후… 어라? 또 한 마리 죽었잖아? 내가 휘두른 검에 맞았는지 오크 한 마리가 더 쓰러져 있었다. 후훗! 좋았어! "취이익!" 오크들이 내게 달려들자 나는 뒤로 좀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다. 오크보다 내가 길이에서는 더 유리하다. 오크는 팔이 잘리며 비명을 질렀다. 좋았어! "취이익! 취익!" "취이익!" "취익! 도망가라! 취익!" 엥? 오크들은 갑자기 소란을 피우더니 동굴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제네 왜 저래? 내가 너무 무서웠나? 나는 열심히 도망가는 9마리의 오크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9마리나 되는 놈들이 도망을 가? "왜… 흡!" 나는 급히 앞으로 몸을 던졌다. 느, 늦었다. 서거걱! 나는 등에서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바닥을 굴렀다. "크으윽…." 힘겹게 몸을 일으킨 내 눈에 거대한 리자드 한 마리가 들어왔다. 크, 크다… 아, 아차 붕대부터… 나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리자드에게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저놈은 뭐야? 내 앞에서 엄청난 크기의 대검을 들고 있는 리자드의 가슴에는 내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마, 마스터다… 내 머릿속에 아까 필이 해주던 리자드에 대한 설명 중 하나가 떠올랐다. -리자드들은 종류가 꽤 되는데 가장 약한 놈이 리자드맨이지. 한 레벨 20정도의 유저면 상대할 수 있는 놈인데… 너라면 쉽게 이길 수 있어. 아까 오크들 죽이는 모습을 보니까 괜찮겠더라. 스킬하고 아이템이 짱이니까. 그리고 가장 강한 놈들을 들면… 아까 저 동굴에는 기껏해야 워리어까지 있을 거라고 했지? 워리어는 리자드맨보다 한단계 위의 놈이지. 그리고 그 워리어들을 통솔하는 리자드 마스터가 있어. 그리고 그 마스터들을 데리고 다니는 리자드 킹이있고… 몇 놈이 더 있기는 한데 넘어가고… 리자드 킹은 정말 괴물이지. 도마뱀이 화염마법을 쓴다니까? 나도 섯불리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놈이야. 리자드 마스터는 쉽게 이길 수 있지만… 하지만 마스터 그놈도 괴물은 괴물이지. 내가 레벨 170인가? 그때 덤볐다가 죽은 적도 있으니까 말야. 아마도 트롤하고도 맞짱을 뜰 수 있을걸? 조금 밀리기는 하겠지만. 거기다 트롤은 재생능력도 있으니 트롤이 이기려나? 하지만 능력만으로는 트롤과 맞먹지. 도마뱀이 그렇게 쎄다고 하면 믿겠냐? 거기다 리자드 킹은 오거하고 싸워도 별 밀리지 않을거 같은데… 뭐? 여기 있는 동굴에는 마스터도 없을거야. 여기는 기껏해야 초급 던젼인데 여기에 그런 강한 놈들이 있을 리가. 뭐…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만약에 여기서 마스터를 만나면 너는 그대로 튀어야 돼. 내가 막을 테니까. 그리고 마스터는 속도도 엄청 빨라서 도망가기도 힘들지. 리콜 스크롤이 있으면 모를까… 마, 망할! 필, 그 자식은 믿을 수가 없어! 마스터가 없다고? 여기 입구까지 나와 있구만. 그런데 저놈이 왜 여기에 있는거야!? 아, 아까 리자드 워리어들이 죽어서 확인하러 온 건가? 리자드 워리어들을 통솔한다고 했었으니까… 아, 안돼! 집중이닷! 흑흑. 난 리콜 스크롤도 없는데… 엄청난 몸집을 자랑하던 리자드 마스터는 내가 자신과 마주보고 서자 크르륵거리기 시작했다. 흑. 무섭다. 크라라라락! 으아아! 오, 온다! 리자드 마스터는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젠장! 나는 급히 샤프소드로 그 공격을 막아갔다. 흑. 검의 크기가… 퍼억! "우아악!" 나는 그대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뭐, 뭐가 이렇게 세! 나는 동굴 벽으로 날아가 쳐박혔다. 허어억… 이러다 진짜로 죽겠다. "으으윽… 정말 괴물이군… 헉!?" 나는 위에서 내리쳐 지는 엄청난 크기의 검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옆으로 굴럿! 콰지직! 나는 간신히 옆으로 피해 뒤로 물러섰다. 헉! 바위를 쪼개고 들어갔어? 괴물이잖아! 아, 원래 몬스터던가? 나는 이를 악물며 리자드 마스터를 주시했다. 흑, 지, 진성아… 필… 정말 네가 보고 싶어지는 구나. 너는 어떻게 저런 놈들을 잡는 거냐? 나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리자드 마스터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죽을 때 죽더라고 멋있게! 부우우웅! 맙소사! 저게 검에서 나오는 소리냐? 나는 욕설을 퍼부으며 앞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가까이, 품속으로 다가가면 저런 큰 무기로는 공격할 수 없다. 철컥! 나는 왼손의 건틀릿에서 손톱들을 꺼냈다. 됐다. 성공이다. 나는 리자드 마스터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품속으로 다가가는데 성공했다. 좋았어! 이대로 한방 후려주마! 나는 왼손을 휘둘렀다. 퍼억! 예~! 왜 내가 날아가는 거지? 나는 육중한 리자드 마스터의 다리에 얻어맞고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커억…." 털썩! 바닥에 떨어진 나는 신음조차 흘리지 못했다. 젠장… 죽는 건가? 리자드 마스터가 검을 내리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크으…! 이대로 죽을 순 없다! "흐아아아! 크로스(Cross)!" 리자드 마스터는 내가 이미 끝났다고 여겼는지 좀 느리게 검을 내리치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에 몸을 약간 일으키며 기술을 사용했다! 제발! 발동 되라! 써거걱! 써걱! 순식간에 리자드 마스터의 가슴에 X자의 상처를 남기며 스쳐 지나가는 내 몸. 언제 일어섰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정신도 혼미한 것이 상당히 어지러웠다. "흐으… 성공인가?" 나는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리자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제, 젠장! 리자드 마스터는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는지 쓰러지지 않았다. 크라라라락! 나를 돌아보며 괴성을 지르는 것이 더욱 화만 돋군 모양이었다. 젠장… 이제 방법이 없나? 리자드 마스터는 나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아까보다는 약해 졌지만 역시 엄청난 위력의 공격이었다. "핫!"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리자드 마스터의 검은 내 몸을 베어 들어왔다. 큭! 첫 죽음인가? 쿠에에에엑! 나는 상당한 충격에 뒤로 날아가면서도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다. 왜 저놈이 비명을 질러? 그러고 보니 내 몸에는 상처가 없었다. 엄청난 충격에 뒤로 날아가고 있기는 했지만… 쿠당! 동굴의 벽에 몸을 처박고 바닥에 떨어진 나는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젠장! 움직일 힘이 없어. 캐릭터 창을 보니 간신히 죽지 않고 있는 것이 H.P가 딱 4가 남아있었다. 으으으… 그런데 저 망할 괴물 도마뱀은 계속 크르륵거려? H.P가 서서히 차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으으… 붕대를… 정말 이해할 수 없지만 이런 타박상에도 붕대를 감으면 치료가 된다. 혹시 죽은 사람은 못 살릴라나? 나는 붕대를 감으며 리자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크으… 붕대 감다가 저 세상 가는 거 아냐?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리자드 마스터는 엄청난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 "뭐, 뭐야…." 나는 어이없어하는 기분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몸을 꿈틀거리며 계속 크르륵거리는 것이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거의 빈사 상태로 보였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나는 리자드 마스터의 상처가 좀 묘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리자드 마스터는 아까 자신이 나를 공격한 곳과 똑같은 곳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아! 리턴 체인메일(Return Chain Mail)!" 그러고 보니 이 갑옷에 7%로 공격을 되돌려 주는 기능이 있었지? 우아아! 살았다! "이런 어이없는…." 나는 기쁜 어조로 중얼거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H.P는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있었기에 나는 아무런 걸리낌 없이 리자드 마스터를 향해 다가갔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리자드 마스터는 나를 보며 크르륵거렸다. 으으… 무섭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공격하는 거 아냐? 나는 샤프소드를 들어올려 경계하며 리자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후우… 허억!? 마, 맙소사! 리자드 마스터의 상처는 그야 말로 끔찍 그 자체였다. 얼마나 깊게 잘렸는지 뱃속이 다 들여다보일 지경이었다. "히엑! 이런 상처를 내가 입었으면 그대로 골로 갔겠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리자드 마스터를 내려다보았다. 목숨을 끊어야 한다. 운이긴 했지만 내가 잡은 몬스터다. 단번에 죽여주마! "후우… 살검(殺劍)!" 죽이는 검. 나는 순식간에 리자드 마스터의 목을 날렸다. 살검은 삼 연격 기술로 같은 부위를 세 번 찌르는 기술이었다. 명중하면 한번에 그 부위를 끊어내는 기술. 우수수… 나는 떨궈지는 아이템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돈벌었다. 후훗… 허억!? 나는 급히 몸을 날렸다. 내 머리 위에서 아까 리자드 마스터가 사용하던 검이 뚝 떨어는 것이 목숨을 위협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허억! 위험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이이템들을 쓸어모았다. 흐어억! 86골드? 나는 긁어모은 돈의 크기에 경악했다. 돈 만해도 부피가 상당하군. "흠… 단검이 몇 개 있네? 모두 허리에 차고…." 나는 단검들을 허리에 찼다. 모두 6개가 떨어졌는데 상당한 고급품으로 보였다. 후훗! 복 터지는 군. 혹시 유니크 아이템은 없을까? 오? 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망토는? 나는 희미한 은빛이 감도는 회색 망토를 보고는 히죽 웃었다.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이 옵션이 한 개 정도는 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 지금 내 망토는 아주 걸레가 됐으니 금상첨화지. 후후훗… 나는 롱소드 몇 개와 버클러, 타워 실드까지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도, 도대체 이놈은 플레이어를 얼마나 죽였으면 아이템이 이렇게 많은 거야?" 몬스터에서 나온 아이템은 그 몬스터가 죽인 플레이어의 숫자와 비례하므로 이 리자드 마스터는 엄청난 수의 플레이어를 죽였다는 공식이 성립되는데… 나는 3개의 롱소드를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어느게 좋을까… 내 쇼트소드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기에 쓸만한 검이 하나 더 필요했다. "그 가게에 가서 감정해 보지 뭐." 나는 그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무기점에서 감정하기로 결정하고 롱소드들을 배낭에 쓸어담았다. 버클러는 하나만 있었기에 그대로 왼손에 장착했고 타워 실드는… 등에 매야겠군. 나는 속도를 중요시하기에 이런 큰 방패는 쓸 수 없다. 비싸 보이니 팔면 되겠지. 히죽거리던 나는 리자드 마스터가 사용하던 엄청난 크기의 검을 보며 미소를 지웠다. 헉! 거의 내 키에 육박하잖아? 나는 배낭에도, 자루에도 이 검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들고 가야겠군. 아니, 끌고 가는 건가? 힘들지만 비싸 보이니…." 이 대검이 비싸 보이기에 차마 버릴 수는 없었던 나는 샤프소드를 검집에 집어넣고 대검을 집어들다가… 포기하고는 끌기 시작했다. 엄청난 무게에 들지는 못했지만 검끝을 바닥에 대니 쉽게 가져갈 수 있었다. 후훗! 돈벌었다. 이 체인메일 덕을 톡톡히 봤군. 이런 엄청난 몬스터를 잡다니. 나는 히죽 히죽거리며 동굴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리콜 스크롤이 없는 게 한스럽다. "이상하네? ……." 이상하다. 정말로 이상한데… 나는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숲을 걸어가고 있었다. 거의 가득 찬 배낭과 등에 맨 타워 실드. 그리고 이 끔찍한 크기와 무게를 자랑하는 대검을 들고 있는 나는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인지라 아까부터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지금은 의아함이 생기는 것이… 몬스터가 공격해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무게의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기에 내 몸놀림은 상당히 둔해져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오크들이 공격해 온다면 상당히 위험할 테지만 이상하게도 오크들은 나에게 공격을 가해오지 않았다. OPG 때문도 아닌데… 나는 계속 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어? 저기 또 있네?" 나는 저 멀리에서 나를 훔쳐보다가 도망가는 오크들을 보며 또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유가 뭐야? 왜 저렇게 도망가는 거지? 고민하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뭐, 어떠냐. 공격도 안 당하면 좋은 거지."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후훗! 오크도 몇 마리 잡았고 리자드 마스터까지 잡았으니 이번 사냥은 상당히, 아니 엄청난 수확이… 어? 그러고 보니 레벨 확인을 안 했잖아. 리자드 마스터면 렙 150짜리 유저도 피해 다니는 몬스터면… 경험치도 엄청날 텐데? 거기다 성장의 반지까지… "캐, 캐릭터 창." 나는 급히 캐릭터 창을 불러내었다. 그리고 레벨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비명을 내질렀다. "히이익! 이, 이게 뭐야! 82!?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마, 맙소사! 도대체 레벨이 몇이 오른 거야!? 분명히 15였으니까… 67!? 마, 맙소사! 도, 도대체… 필이 리자드 마스터는 렙 200짜리가 잡아도 레벨을 1올려준다는 말을 들은 거 같기는 한데… 67이 올랐다고? 아, 경험치 20% 증가로 하면… 원래는… 56정도 오른 건가? 그, 그것만해도 경이적인 숫자잖아!? 어? 그러고 보니 필의 말로는 렙 20이 돼서 직업이 생기면 레벨 올리기가 힘들어지고 나는 배는 더 힘들어질 거라고… "이건 또 뭐야!?" 나는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이, 이건 또 뭐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직업을 확인한 나는 황당한 '문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직업-??? 계급-??? '?'은 또 뭐냐? 직업을 모른다는 거야 뭐야! 미치겠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마구 흔들려… 했으나 손에 들린 물건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 이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아, 호, 혹시 스킬에도 이상이 생긴 거 아냐?" 나는 급히 스킬 창을 열어 스킬들을 확인했다. 호, 혹시 내려가기라도 했으면… 그리고 스킬 창을 보는 순간,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오, 올랐어?" 이건 또 뭐냐? 왜 스킬들이 올라 있는 거야? 나는 스킬들의 레벨이 모두 5정도씩 올라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이건 혹시 버그? 호, 혹시 캐릭 삭제되는 거 아냐? 아, 혹시 능력치들은… 다시 캐릭터 창을 확인한 나는 정상적인(?) 능력치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전보다는 훨씬 높아져 있었지만 그거야 레벨이 오르면서 조금씩 오르고 스킬 레벨이 상승하면서 오른 거겠지. 한가지 이상한 점이라면 스탯 포인트가 없다는 것? 필의 말로는 20이 돼서 승급을 하면 50이 생긴다고… 나는 입을 다물고는 머리를 휘저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심각한 얼굴로 걸어가던 나는 어느새 차렌 마을에 다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후… 그냥 좋게 생각하자. 그냥 당당하게 행동하기로 결정한 나는 열심히 검을 끌기 시작했다. 후… 힘들어라. 마을 입구로 다가가며 남쪽 입구를 지키고 있는 마을 경비병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그런데 그 경비병의 얼굴이 이상한 것이 파랗게 질려서는 나를 바라보다가 급히 마을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엥? 왜 저러지? 혹시 얼굴에 이상한 거라도 묻었나 싶은 나는 몸을 한번 둘러보고 캐릭터 창을 불러내 내 얼굴을 확인했다. 정상인데? 이 멋진(?) 얼굴을 보고 왜 도망가는 거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마을로 들어갔다. "………." 뭐, 뭐냐? 나는 이를 갈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자식들이! 내가 이렇게 힘들게 이 검을 옮기는 것이 신기하다 그거냐! 남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 하는 게 웃기냐고! 내 주위에 몰려들어 수근거리는 수많은 유저들을 보며 내가 속·으로 소리친 말이었다. 젠장! 뭐, 구경났다고 저렇게 몰려드는 거지? 내가 마을로 들어서자 길을 지나가던 유저들 몇 명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에서 시작된 이 현상은 점차 커지고 있었다. 점점 나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지금은 거의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날 구경하고 있었다. 거기다 그 중에는 상당한 고수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눈에 이채를 띄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이건! 내가 잘생긴 건 인정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보는 건 실례잖아! 속으로 씨부렁거리던 나는 힘겹게 검을 끌며 그 무기점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서 움직인 다는 것이었다. 스토킹하냐!? 곧 그 플레이어가 주인으로 있는 무기점이 있는 골목에 다다른 나는 큰 포위진(?)을 형성하고 있는 유저들의 한 부분으로 다가갔다.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 방향으로. 우르르. 흑흑. 도대체 뭐야? 내가 다가가는 방향에 서 있던 사람들은 분분히 옆으로 비켜서 길을 만들어 주더니 내가 골목으로 들어가자 우르르 따라 들어왔다. 미치겠네. 무기점에 다다른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사람이 하나도 없어 썰렁했다. "어? 자네 왔…나…? 나를 카운터에 앉아 있다가 나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하던 가게 주인은 문 밖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는 말끝을 흐렸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다 뭔가?" 가게 주인의 얼빠진 질문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몰라요. 아까부터 따라오는 것이… 제 미모에 반해서 팬클럽이라도 결성했나 보죠." 내 말에 해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가게 주인은 고개를 젓고는 용건을 물어왔다. "무슨 일인가? 보니 상당히 무거워 보이는… 서, 설마 클레이모어?" 엥? 그건 또 뭐야? 가게 주인은 나를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치 밖에 몰려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나는 눈썹을 치켜 뜨며 이 망할 대검을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으하… 이제 좀 살겠네. 이거 감정 좀 해줘요. 뭐 하는 검이에요?" 내 말에 가게 주인은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이, 이게 뭔지 모르는 건가?" "엥? 당연히 모르니까 가지고 왔죠. 비싼 겁니까? 설마 싸구려는 아니겠죠? 그거 가져오느냐고 엄청 고생했는데…." 내 말에 가게 주인은 고개를 휘젓고는 대검을 다시 내게 건냈다. "읽어 놨으니 자네가 봐 보게." 흠? 빠르네? 나는 대검을 받아 들고는 아이템 창을 열었다. 이건가? 클레이모어라… 클레이모어(Claymore) 리자드 마스터의 무기.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기에 최상급의 투사가 아니면 사용하기 어렵다. 검사, 투사 장비 가능 공격력-240~670 내구력-360 제한 능력치-힘 600 옵션 오크, 리자드 종류(리자드 킹, 리자드 마스터 제외)의 몬스터에게 공포심을 주어 접근을 방지함. 힘 증가 30포인트 운 증가 10포인트 공격히 상대의 H.P를 5%씩 뺏어오는 기능 허억! 이게 뭐야! 최고 공격력이 670? OPG랑 샤프소드는 완전 애 취급이네? 이런 엄청난 아이템이었단 말야!? "이, 이거 팔면 얼마나 해요?" 내 말에 가게 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아마 6, 7천 골드는 할 것 같군. 거기다 큰 도시의 경매장에 내놓으면 1만 골드까지 호가할 지도. 클레이모어는 리자드 마스터도 잘 떨구지 않는 귀한 아이템이라서… 소장가치도 있거든." 칠 천!? 만 골드!? 때, 땡 잡았다!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끼며 대검, 클레이모어를 쓰다듬었다. 후후훗, 귀여운 녀석. "허, 자네 레벨이 얼마길레 리자드 마스터를 잡은 건가? 아마 저 친구들도 클레이모어를 알아보고 따라온 것 같은데… 여기는 초보들이 있는 마을이니 리자드 마스터는 거의 보스급으로 쳐줄텐데… 들어보니 리자드 동굴에 갔던 유저들이 다 리자드 마스터에게 당했었다고 하던데 말야…." 아, 그래서 따라온 건가? 신기해서? 허허… "자네 레벨이 낮은 줄 알고 있었는데?" 가게 주인은 나를 정말 궁금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하하… 이것 덕분에…." 내가 리턴 체인메일을 가리키다 가게 주인은 놀란 표정이었다. "아, 그것? 확률이 7% 아니었나? 그리고 그거 한번으로는 죽지 않았을 텐데?" "한방 정통으로 먹인 다음에 걸려서… 쓰러져 있는걸 목을 따버렸죠." 내 말에 가게 주인은 좀 큭큭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다른 건 감정할거 없나? 아이템이 상당히 많을 텐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에 맨 타워 실드와 세 자루의 롱소드를 건넸다. "롱소드 중에 가장 좋은 걸로 하나 골라주세요. 나머진 팔 거고… 타워 실드는 가격되는 대로 팔 거고요." 가게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씩 감정을 시작했다. 롱소드 중에 하나를 골라 건넨 주인은 다른 것들은 카운터 아래에 내려놓았다. "이게 가장 좋군. 공격력도 120정도 되고… 샤프소드 만큼은 안돼도 강도도 괜찮은 편이군. 거기다 옵션으로 라이트닝이 60%야. 이 타워 실드는 괜찮긴 한데 완전 성기사 용이라 자네에게는 별 필요 없겠고… 다른 롱소드들은 그리 좋은 건 아니네. 롱소드들 가격은 한 300골드 나오고… 이 타워 실드는 상당한 유니크 아이템이군. 한 1000골드는 나오겠어. 경매에 붙이라고 권하고 싶은걸?" 경매라… 그런데 이 클레이모어도 그렇고 저 방패도 그렇고 어떻게 들고가지? "그런데 그걸 어떻게 들고 갑니까?" 내 말에 주인은 약간 벙찐 얼굴이더니 입을 열었다. "보관소에 가서 맡기게. 자네가 가는 마을로 이동되니 아무대서나 꺼낼 수 있지. 이용료가 있긴 하지만 그리 큰 비용은 아니야. 한 달에 1골드 정도일 걸세." 훗. 그럼 괜찮군. 나는 히죽 웃으며 타워 실드를 도로 가져왔다. "아, 이 버클러 좀 봐 주시죠?" 나는 왼손에 차고 있던 버클러를 내밀었고 가게 주인은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돌려주었다. "괜찮군. 방어력이 62인데 강도가 상당해. 합금인 모양이군. 웬만한 공격에는 뚫리지 않겠지. 옵션은 없지만 우리 집에 있는 버클러들 보다는 좋은 물건이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버클러를 다시 팔에 찼다. 그리고는 뚱뚱한 배낭과 자루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이 안에 든거 다 팝니다. 주은 아이템들뿐이니…." 배낭과 자루 안을 들여다 본 주인은 돈 상자를 끄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대충 이것들은 600골드 정도. 괜찮은 유니크들이 한 두개 있군. 자네가 쓸만한 것들은 아니지만… 여기 모두 900골드네." 나는 가게 주인이 건네는 돈주머니를 품속에 집어넣고는 내가 쓰고 있던 아이템들을 모두 벗어서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수리해 주세요. 아, OPG는 아니구나. 아… 그리고 이 망토 좀 읽어주세요." "망토? 어라!? 이건 천상의 망토로군. 이벤트 유니크 아이템이라 몇 개 있지도 않은 귀한 물건인데? 망토치고는 상당한 물건이지. 팔 건가? 한 5000골드는 나올 거야. 어떤 멍청한 놈이 이거 입고 싸우다 죽은 모양이군." 히엑! 5000!? 오늘 돈복이 터지는군. 근데 뭐하는 아이템이야? "이건 가져가게. 내구력 무한이니. 다 고치려면 약간 걸릴 거야. 한 30분만 있다가 오게나. 이 물건들도 정리를 해야하니…." 가게 주인은 내 아이템들을 카운터 뒤의 방안에 가져다 놓고 와서는 나중에 오라고 했다. 흠… 뭐 하고 있지? 가서 술이나 마실까? 아, 클레이모어 하고 타워 실드 맡기고 올까? "이거 어디다 맡겨요?" "마을 북쪽에 가면 자칼 보관협회라고 있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북쪽이라? 나는 망토를 걸치고 타워 실드는 다시 등뒤로 맨 후에 클레이모어를 끌며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건 내 실수였다. "이보시오! 혹시 리자드 마스터를 잡은 건가?" "그거 클레이모어 같은데 말야. 정말인가?" "그거 클레이모어 맞죠? 싸게 파세요." "어? 어?" 마, 맙소사! 이게 뭐야? 거기다 저 탐욕에 젖은 눈빛을 한 검은 무리는? 나는 얼떨결에 도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헉, 헉. 어, 어떻하지?" "후후. 조심하게나. 도둑들이 들러붙을 지도 모르니. 빨리 보관소에 맡기는 게 좋을 거네." 으으… 속을 긁어대는 구만. 사람들은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가게가 비좁아 보여서 들어오지 못하는 모양이지? 벌컥! 헉! 들어왔어!? 내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서는데 의외의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 마을의 촌장 할아범이었다. 잉? 저 할아버지는 또 왜 오는 거지? NPC가 이걸 뺏으려 할 리도 없고. "허허… 자넨…." 촌장 NPC는 나를 보고 놀란 얼굴이었다. "설마 리자드 마스터를 잡았다는 사람이 자네였나? 나무꾼인 줄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나 보군." 쳇! 쳇! 내가 언제 나무꾼이라고 한적 있수? "무슨 일이십니까?" "아, 자네가 리자드 마스터를 잡았다고 하기에 상금을 전해주러 왔네. 여기 있네 상금 1000골드야." 엥? 상금? 1000골드. 퀘, 퀘스트였단 말야? 그럼 원래는 리자드 마스터가 있는 곳이 아니었나? 흠… 그럼 필의 말이 맞았을 수도 있겠네? 나는 잽싸게 돈을 받아들었다. 준다는데 사양할거 없지.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는데 실패하더니… 드디어 그 놈을 해치웠군. 그래, 레벨이 상당한 모양이로군." 하하… 레벨이 상당? 그게 아니라… 음…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피곤해 질지도… "하하… 아뇨. 이제 레벨 82입니다. 운이 좋아서 해치웠죠." 내말에 촌장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껄걸 웃기 시작했다. "껄껄걸. 대단하구만. 그 레벨로 그 엄청난 놈을 잡았다는 건가? 대단하군. 소문이 크게 돌겠어. 허허허. 그럼 나는 가보겠네." 촌장은 껄껄거리며 가게 밖으로 나갔고 창문 밖으로 많은 사람들이 촌장에게 달려들어 질문 공세를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으으… 불안해… 그래도 1000골드 벌었군 후훗.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하지? 내가 어떻게 보관소까지 갈지 한창 고민하는 중에 갑자기 작은 창이 떠올랐다. 귓말? <운영자 46-실례합니다, 세한 님. 운영자 페페입니다. 세한 님의 캐릭터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잠시 소환을 하겠으니 놀라지 말아주십시오.> 헉! 운영자! 설마 내 캐릭 삭제하려고… 내가 당황하는 사이 갑자기 내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이런! 순간 세한은 무기점 안에서 사라졌다. "후후. 저 친구도 시작한 모양이군." 무기점 주인이자 플레이어인 하크의 중얼거림이었다. 지이잉~! 빛이 사라지면서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당연히 가게 안은 아니었다. 이상한 통나무 집 안이었는데 나무의자들과 탁자 하나가 놓여져 있었고 의자 중에 하나는 어떤 예쁜 여자 하나가 차지하고 있었다. 갈색 머리를 길게 기른, 조용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아마 나를 부른 페페라는 운영자겠지? "앉으시죠." 내가 멀뚱히 서있자 그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권했다. 후… 앉으라면 앉아야겠지? 나는 의자 하나에 앉고는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운영자 페페라고 합니다." 역시 운영자로군. 흠… 자기 소개를 했으니 나도 소개를 해야 할까? "아, 예. 저는… 세한이라고 합니다." 페페라는 운영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고 있습니다. 세한님은 저희 운영자들 사이에 상당히 유명하시거든요." 엥? 유명? 내가? 내가 벙찐 표정이자 페페는 미소를 지었다. 아아… 녹는다 녹아… 헉! 이게 아니지! 지금 내 캐릭터가 위험한데… "세한님은 스킬을 뒤죽박죽으로 섞어서 키우는 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이고 세 달 동안 스킬만 올린 것으로 운영자들 중에서 상당히 유명하답니다. 하지만 설마 레벨 15에 리자드 마스터를 잡으시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레벨이 상당히 높아지셨더군요." 헉! 그런걸 다 알고 있단 말야!? 이럴 수가. "아, 저… 그 폭렙이 문제가 되는 겁니까?" 내 질문에 페페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햐… 진짜 예쁘네? "아뇨. 약간의 버그가 있기는 했지만 그건 저희들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니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사실 일부 운영자들은 문제가 있다고 하기도 하지만요." 휴… 다행이다. 그럼 캐릭터 삭제는 아니구나.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보며 미소짓던 페페는 다시 입을 열었다. "후훗. 걱정하셨나 보군요. 제가 세한님을 부른 것은 세한님의 직업 때문입니다." 어? 직업? "아, 그러고 보니 직업이 물음표로 나오더군요. 그것 때문입니까?" 페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섀도우 월드에서는 직업이 레벨 20에 결정되어서 일차적으로 승급을 하며 레벨업 시에 필요한 경험치 등이 변화합니다.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필요로 하는 경험치가 많아지죠. 하지만 세한님의 경우에는…." 페페는 말을 하다말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흠흠… 어, 얼굴에 피가 쏠리는 느낌인데… "직업은 스킬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은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점에서 문제가 일어났습니다만… 다른 대부분의 유저 분들은 한가지 직업을 위한 스킬만을 선택하시기 때문에 직업 결정 시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몇몇 유저 분들은 여러 가지 직업의 스킬들을 한꺼번에 올리려 하시더군요. 여러 직업의 스킬을 동시에 올리면 능력치도 높아지고 여러 가지 기술을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그게 성공한 대표적인 예로 랭킹 7위의 미토스님이 계시기에 그런 유저 분들이 한때 증가 추세를 보이기도 했었죠." 햐… 목소리도 예쁘네? "하지만 서로 다른 스킬들을 익힐 시에는 스킬의 레벨이 오르는데 필요한 경험치가 훨씬 많아집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저들이 직업을 얻기도 전에 포기하시곤 하지요. 하지만 직업이 생기기 전까지는 레벨은 스킬에 상관없이 오르기 때문에 직업이 생길 때까지 캐릭터를 키우시는 분들도 꽤 있지요. 하지만 그 분들은 한가지 직업이 정해진 후 레벨을 올리는데 필요한 경험치까지 증가하는 것을 알아차리시고는 포기하시죠." 여기까지 말한 페페는 다시 한번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서부터 본론인가? "하지만 세한님의 경우에는 상당히 특이한, 그러니까 미토스님과 비슷한 케이스이시죠." 엥? 그 엄청난 랭커하고? "다른 대부분의 유저 분들은 자신이 가장 먼저 익힌 직업의 스킬이 가장 잘 오르는 것을 알아차리시고는 그 직업의 스킬들을 가장 많이 올리시죠. 덕분에 직업이 정상적으로 정해졌고요. 하지만 세한님의 경우에는… 우선 검사 스킬로 소드 마스터리와 실드 마스터리를 익히셨는데… 소드 마스터리를 가장 먼저 익히셨기에 그 스킬이 가장 높으시더군요. 그 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검사의 다른 스킬인 실드 마스터리가 기사 스킬과 투사 스킬에도 끼어있다는 점이었습니다만… 투사 스킬에도 소드 마스터리가 있습니다. 때문에 세한님은 검사 직업과 투사 직업의 공통적인 스킬을 주로 익히셨다는 얘기가 되지요. 그러면 세한님이 스킬은 검사나 투사가 되셔야하는데…." 길다. 대단한걸. 그런데 소드 마스터리가 빨리 오른 이유가 있었구나. 어? 그런데 실드 마스터리는 느리게 올랐는데? "저… 실드 마스터리도 소드 마스터리에 비해 느리게 올랐습니다만?" "예, 그러시더군요. 그 이유는 기사 스킬 때문입니다. 실드 마스터리는 기사 직업의 스킬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 스킬이 실드 마스터리 하나라면 상관없겠지만 세한님은 라이딩 마스터리까지 익히셨더군요. 그것도 현재 스킬 레벨 14로요." "아, 예." " 때문에 검사, 투사 스킬과 기사 스킬이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닙니다만… 문제는 암살자 스킬이 세 개나 되고 그 레벨들이 모두 상당히 높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격투가 스킬이 두 번째로 높더군요. 만약 세한님이 세 달 동안 나무를 베서 스킬 레벨들을 골고루 높이지 않으시고 사냥을 통해 스킬을 높이셨다면 사냥 중에 주로 사용하신 무기의 스킬이 높을 확률이 높기에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세한 님은 나무를 베시면서 스킬을 골고루 올리셨고 덕분에 레벨이 20이 되실 때 프로그램이 버그를 일으켰습니다. 알맞은 직업을 찾지 못한거죠. 스킬은 검사와 투사의 주 스킬인 소드 마스터리가 가장 높으신데… 솔직히 투사의 주 스킬은 투핸드 소드 마스터0리기에 검사로 결정될 수도 있었습니다만 실드 마스터리가 기사 스키과 충돌을 일으켜 두 번째로 낮은 스킬로 전락했고 암살자 스킬이 세 개가지나 된다는 점과 격투가 스킬이 두 번째로 높다는 점에 회복 스킬까지. 이런 복잡한 상황 때문에 컴퓨터가 오류를 일으켜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계신 겁니다." 아아… 그런건가? 그럼 내가 올린 스킬과 세 달 동안 나무만 벤 미친 짓이 합쳐져서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그럼 이 폭렙은? "그리고 그 폭렙에 대해서는… 세한님과 같은 상황에 처하셨던 분들이 두분 더 계셨었습니다. 세한님처럼 스킬이 높은 것은 아니셨지만요(여기서 미소). 그분들은 스킬 레벨은 낮았지만 세한님과 같은 상황으로 충돌을 일으키셨습니다. 바로 미토스님과 하크님이죠. 하크님은 만나보셨죠?" "예." 아아… 그 무기점 주인? 그 사람도 나하고 같은 케이스? 미토스도? "그 분들에게는 레벨 20이 되실 때 운영자들이 찾아가 직업을 정해 주셨습니다. 때문에 레벨업시 필요한 경험치가 다른 유저들처럼 높게, 아니 더 높게 수정 되셨죠. 그런데 세한님은 레벨 15때 리자드 마스터를 잡으시면서 순식간에 레벨이 20으로 오르셨고 저희가 직업을 정해드리기 전에 레벨이 쭉 올라가 그런 엄청난 폭렙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정말 우연의 일치로군. "하지만 그것은 저희 운영진의 잘못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세한님을 소환한 이유는… 세한임의 직업 때문입니다만... 이것은 단 한번의 기회입니다. 지금 결정을 하신 면 무를 수 없고 다시 캐릭터를 키우신다고 해도 저희들이 감시를 할 것이기 때문에 다시 이 기회를 얻으실 수는 없습니다." 갑자기 진지 모드로 나오는 페페를 보며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알겠습니다." "세한님은 보통 기본적인 직업과 새로운 직업.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십니다. 기존의 직업을 선택하신 다면 직업들 중에 원하시는 직업을 설정해 드리고 스킬도 그 직업의 스킬들로 교체해 드리겠습니다. 같은 레벨로요. 하지만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신 다면… 그 직업은 기존 직업들에 대해 막강하고 능력도 뛰어납니다. 얻게 되시는 새로운 스킬과 전투 기술도 강하죠. 하지만 레벨을 올리시기가 기존의 직업들에 비해 훨씬 어렵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미토스님과 하크님은 모두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셨죠. 하지만 미토스님은 1년 동안의 엄청난 노력 끝에 다른 10위권 안의 랭커들에 비해 낮은 레벨에도 강한 기술들로 랭킹 7위를 차지 하셨지만 하크님은 포기하셨습니다. 그만큼 이 직업에는 좋은 점도 있지만 엄청난 핸디캡도 있다는 소리죠. 참고로 미토스님은 1년 동안 밤낮없이 섀도우 월드만을 하셔서 그런 위치에 오르셨고… 사실 미토스님이 막 새로운 직업을 얻으셨을 당시 랭킹 1위이던 유저께서 그분을 많이 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버그도 있었고요. 솔직히 미토스님이 너무 사정을 하셔서 그때는 넘어갔습니다만… 그에 비해 하크님은 정상적으로 플레이하시다가 포기하셨죠. 그럼… 설명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선택하세요." "……."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새로운 스킬이라… 아무리 내가 지금 폭렙을 했었다지만… 이후로도 그런 행운이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거기다 미토스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버그로 그런 위치에 선 것이고… 그런 기연이 없던 하크씨는 포기를 했다고 했으니… 지금 내 스킬 레벨이 좀 높다고는 하지만… 거기다 스킬이 높은 만큼 기존의 직업을 선택하면 훨씬 쉬울 텐데… 고민된다. "어떻게 하실거죠?" 다시 진지모드에서 미소모드로 돌아온 페페였지만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으으… 뭐가 좋을까… 새로운 직업은 강하기는 한데 엄청 힘들고… 기존의 스킬을 선택하면… 성장 빠르고 지금 스킬들도 그 직업 스킬로 바뀌고… 그러고 보니 기존 직업을 선택하면 나쁠게 없잖아? 크으… 그냥 기존 직업을 선택할까? 고민. 고민. 고민. 고민. 고민. 나는 거의 10분이 넘는 시간을 계속 고민했다. 페페는 친절하게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오히려 이해한다는 듯한 친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 결정했다! "새로운 직업으로 해보죠." 내 말에 페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그럼 하루 정도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새로운 직업의 이름을 정하고 보너스 스킬하고 기술들을 만들어야해서요." 엥? 그럼 새로운 직업이라는 게 그때그때 만드는 거였나 보지? "그 새로운 직업이라는 거… 그때마다 새로 만드는 건가요?" 내 질문에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이름도 그때마다 정하는데… 승급해도 명칭이 바뀌지는 않아요. 다만 마지막 승급을 하면 명칭이 바뀌죠. 하크님은 닌자셨고… 미토스님은 피오니어(Pioneer-새로운 분야의 개척자)로 시작하셔서 지금은 투신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계시죠." 닌자면 일본의 암살자고… 피오니어? 개척자던가? 새로운 분야의… 흠 나는 뭐가 될까? "그럼 이제 계시던 곳으로 돌려보내 드릴게요." 어, 어… "잠시만요." "예?" "거기 말고 차렌의 자칼 보관협횐가? 거기로 보내줄 수 있으세요?" 페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가능해요. 거기로 보내드려요?" "예." "알겠어요."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고 나는 설명을 들으며 풀어두었던 타워 실드를 도로 매고 클레이모어를 집어들었다. "그럼 이동시켜 드릴게요." "아, 잠시!" "예?" "그 얼굴… 원래 예쁜 겁니까?" 내 질문에 페페는 당황하며 얼굴을 붉히더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운영자들은… 겉모습을 바꿀 수 없어요…." "아… 또 만나기를 기대할게요." 나는 붉어진 페페의 얼굴이 환한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후훗. 부끄러운 건가? 얼굴이 빨게지니 더 예쁜데? 내가 눈을 뜨자 익숙한 마을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차렌 마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자칼 보관협회-차렌>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큰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클레이모어를 질질 끌며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십쇼." 한 NPC가 붙임성 있게 인사를 건네 왔다. 카운터에 앉아있는 중년의 NPC였는데 뭔가 장부같은 것을 끄적거리고 있었다. "보관소를 이용하려고 왔는데요?" 내 말에 NPC는 환한 미소를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계정 아이디를 말해 주시겠습니까?" 어라? 계정 아이디로 하는 건가? "아, 예. 벼락부자입니다만?" "예, 알겠습니다." NPC는 신나게 장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엥? 귓말? 보안을 위해서 그러는 건가? 나는 내 앞의 NPC가 보낸 귓말이 맞는지 확인하고자 NPC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 맞습니다." 내 시선을 이해했는지 NPC가 먼저 입을 열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NPC 4456이라는 아이디로 귓말을 보냈다. <********> 역시 '삑, 삑'거리는 소리로 들리는군. 고개를 끄덕인 NPC는 장부에 또 뭐라고 적더니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떤 물건을 맡기시겠습니까?" 나는 클레이모어를 힘겹게 들어올려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 타워 실드를 풀러 내리며 말했다. "이 클레이모어하고… 으샤! 이 타워 실드입니다." NPC는 클레이모어와 타워 실드를 고개를 끄덕였다. "리자드 마스터의 클레이모어와 유니크 타워 실드 신성의 방패, 맡았습니다. 어느 마을의 지점에서도 찾을 수 있으니 이용해 주십시오. 보관 비용은 한 달에 1골드입니다. 선금으로 내시겠습니까?" 카운터에 올려둔 클레이모어와 타워 실드가 없어지는 것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여기 10골드입니다." 금화 열 개를 받아든 NPC는 빙그레 미소지으며 금화를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10개월치의 선금을 내셨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건물을 빠져 나왔다. 내게 인사를 건넨 NPC는 다시 장부를 끄적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대로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후아… 직업이 생기려면 하루가 지나야 된다고 했지? 그럼 장비나 찾아서 사냥을 하던지 로그아웃을 하고 놀던지 해야겠군. 나는 하크씨가 운영하는 무기점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금쯤이면 사람들도 가고 없겠지? 나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르륵거리는 망토의 감촉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역시 고급은 다르군. 엥? 그러고 보니 이게 무슨 망토인지도 안 봤잖아? 나는 아이템 창을 불러내어 망토의 성능을 확인했다. 천상의 망토 신의 축복이 내린 망토로 지닌 사람에게 신의 축복을 내린다. 상당한 고급 망토로 미스릴을 특별 처리해 만들었기에 무한한 내구성과 뛰어난 감촉을 자랑한다. 모든 직업 착용가능 방어력-105 내구력 무한 옵션 운 20 증가 10%의 확률로 적의 공격을 흘려보냄 마법저항력 50% 증가 흑마법 저항 보너스 M.P 초당 최대량의 4%씩 회복 ……이젠 감탄도 안 나온다. 아아… 나는 왜이리 운이 좋은 거지? 이런 환상적인 망토를… 거기다 망가지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드는구나. 그런데 이게 미스릴로 만들었다고? 금속으로 어떻게 천을 만든 거지? 나는 의문 부호를 떠올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웅성웅성. "뭐, 뭐냐?" 나는 놀란 얼굴로 하크가 운영하는 무기점을 바라보았다. 이, 이럴 수가… 말도 안돼… 하크의 낡은 무기점은… 손님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 후미진 골목에서 파리만을 날리던 이 가게에 이런 많은 수의 손님이… 나는 머리를 휘저으며 사람들이 쉴새 없이 들락날락 하는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잠깐 유저들의 말소리를 들어본다면… "햐… 어떻게 이런 곳에 이런 무기점이 있을 수 있는 거지?" "그러게 말야. 상급 물건들이 넘쳐나고 최상급 물건들도 몇 개 있으니… 거의 대도시의 유명한 무기점 수준인데?" "확실히 리자드 헌터가 올 만한 곳이야. 그런 안목이 있으니 그 낮은 레벨에 리자드 마스터를 잡아 내지." "여기 자주 와야겠는데. 가격도 싼 게… 거기다 리자드 헌터가 판 무기들이 꽤 좋을 거 아냐? 그걸 사가면…." 리자드 헌터? 설마 날 말하는 건가? 허… 나는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지나가는 유저에게 슬쩍 다가가 말을 건넸다. "저기 실례합니다만…." "예?" "그, 리자드 헌터가 뭡니까?" 내 질문에 나를 돌아본 유저가 흥분한 얼굴로 설명해 주었다. "아, 리자드 헌터 말입니까? 이 차렌 마을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른 플레이어죠. 100도 안돼는 레벨로 리자드 마스터를 잡았답니다. 거기다 아무도 모르는 이런 무기점을 찾아낼 정도로 안목과 수완 또한…." "실례했습니다." 나는 급히 얼굴을 돌리며 골목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젠장! 나잖아! 명물!? 안목!? 수완!? 미치겠네. 젠장… 이제부터는 아이디 비공개를 절대로 풀지 말아야지. 수완 좋아하네. 그냥 길 헤매다가 찾은 곳이란 말야! 나는 속으로 씨부렁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많은 수의 유저들이 서 있는 것이 무기 프로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크으… 내가 살 물건도 다 가져가겠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카운터로 다가갔다. 하크씨는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반가워하는 미소를 지었다. "여… 왔구만 VIP!" VIP? 그건 또 뭐냐? "뭔 소리예요?" "허허… 말 그대로지. 자네 이제부터 우리가게 VIP야! 자네 덕분에 손님이 이렇게 많아졌다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단골 10여명만 가끔 들리던 한적한 가게였는데 말야. 조용하게만 지내다가 이렇게 시끌벅적해지니 나쁘지 않구만!" 후… VIP라… 그럼 싸게 해줄까? "그럼 깎아 줄 겁니까?" "허… 정말 수전노로군. 그 정도 벌었으면 점 관대해질 만도 한데… 조금씩 깎아주지. 그리고 좋은 아이템이 생기면 자네에게 일차적으로 팔고. 자네 아이디는 알고 있으니 생기면 귓말 주겠네." 후훗… 그럼 나쁘지 않군. "맡긴 장비들 좀 주세요. 사냥가게. 그리고 중급 단검 되는대로 많이 주시고요." 나는 비어있는 자루를 꺼내 카운터에 올리며 말했다. 하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루를 들고 카운터 뒤의 문으로 들어갔다. 음? 왠지 뒤에서 뭔가 수근거리는 듯한 느낌이… "여기 있네. 단검은 모두 50개고… 더 이상은 다른 사람에게도 팔아야 하니 못 주겠군. 자네 장비들은…." 내가 단검이 담긴 자루를 받아들자 카운터 위에 내 장비들이 '짠'하고 나타났다. 보관협회와 같은 건가보군. 나는 담담하게 장비들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어라? 놀라지 않는 구만? 놀랄 줄 알았는데…." "보관협회에서 봤죠." "그런가? 흠… 100골드야. 수리비까지 해서." 좀 실망한 투로 얘기하는 하크를 보며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품속에서 돈주머니를 건네자 하크는 군말없이, 여전히 돈도 세지 않고 상자에 집어넣었다. "야, 저사람 리자드 헌터 아냐? 주인하고 친한거 같은데… 저 장비들도 낯이 익지 않냐?" "어? 그러고 보니? 검은머리를 허리까지… 그리고 저 망토는…." 우이씨! 나는 장비들을 장착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손을 놀렸다. 걸리면 귀찮아 진다! 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는 점차 많아졌고 순간 장비들을 모두 착용한 나는 몸을 돌리는 순간 가게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하크씨가 '씨익' 미소짓는 것을 본 거 같은데? 걸리면 안돼! 직업이 생기기 전에 빨리 렙업을 해야된단 말이다! 페페는 오늘 사냥을 하면 안 된다고 한 적이 없었다. "헉, 헉… 후… 다행히 잡히지 않았네…." 정말 땀 한번 쫙 뺐다. 내가 달려 도망치는 것을 보고 확신한 듯 몇몇 유저들이 나를 쫓아왔던 것이었다. 쫓아오면서 하는 말이 같이 사냥을 가자나? 괜히 파트를 맺어서 싸우는 것보다는 혼자 사냥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아서 그냥 무시하고 달렸고 지금 어둠의 숲에서 그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후우… 지금은 클레이모어도 없으니 오크들이 덤비겠지? 지금이면 쉽게 이길 수 있을까?" 오크들은 레벨 1도 잡을 수 있는 허약한 몬스터라고 했으니까… 나는 등에 매고 있는 샤프소드 대신 롱소드를 꺼내들었다. 신고식을 해야지. "취이익! 인간이닷! 취익!" "취익! 죽인다!" 빠르군…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마나도 많아졌고 기술도 마음껏 쓸 수 있다. 그다지 무서울 것은 없지! 곧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휘파람! 휘파람! 나는 즐겁게 휘파람을 불며 리자드 동굴을 바라보았다. 후후… 강해졌어. 이제 오크들은 꼬마 돼지들로 보일 지경이다. 물론 방심하면 어디선가 투척용 도끼가 내 몸을 스쳐지나가곤 했지만 심한 상처를 입은 적은 없었다. 그저 한번 엽구리를 슬쩍(?) 베였을 뿐? 하지만 그 상처도 붕대감기에 의해 금방 회복됐다. 그리고 신기한 것이 분명히 베였던 망토가 스스로 붙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이래서 내구력 무한인가? "좋아! 여기서 레벨을 최대한 올리는 거다! 리자드 마스터도 이제 없겠지. 퀘스트라 나왔던 거라고 하니까…." 리자드맨이나 리자드 워리어는 쉽게 이길 수 있다. 리자드맨이야 정상적인(?) 렙 20이면 어떻게 상대를 할 수 있는 몬스터고… 한 렙 30~40이면 이길 수 있는 몬스터니 렙 82인 나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몬스터다. 하지만 문제는 워리어인데… 이놈들은 정상적으로 렙 80은 돼야 이길 수 있다지? 내가 아이템 빨로 1:1에서 승리를 거둔 전적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도 쉽지는 않다. 떼거지로 몰려온다면… 스킬 레벨이 있어 내 예상으로는 4, 5마리는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단검을 쓰지 않았으니… "그냥 들어가 보지 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굴 안이 이렇게 밝은 것이 신기하단 말야? 도마뱀을 찾습니다. 얼마 걸어가지 않아서 나는 곧 리자드맨들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먼저 온 사람이 있나보지? 지금은 입구까지 리자드 워리어가 나오지 않는 듯 워리어의 시체는 없었다. "흠… 자잘한 상처가 많은데… 그럼 아직 레벨이 낮은 사람들이 들어온 건가? 단검에 검상에 마법에 맞은 녀석들도 있으니… 여러 명이 파티를 맺어서 들어온 모양이네… 나처럼 여러 개를 올린 사람이 흔한 건 아니니까…." 나는 투덜거리며 안으로 계속 들어갔다. 그 사람들하고 다른 길로 가면 되겠지? 리자드 워리어 떼거지를 만나면 위험하지만 지금은 리콜 스크롤도 있으니… 나는 계속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리자드맨 여러 마리의 시체를 몇 번 더 보고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싹쓸이를 했잖아… 아직 리젯도 되지 않은 것 같고…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내 앞에 위치한 두 갈래 길을 보고 고민에 잠겼다. 어디로 가지? 운 나쁘면 앞서간 파티와 맞부딪친다. 그럼 오늘 사냥은 꽝 이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왼쪽의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파티를 만나면 나도 끼워 달라고 하지 뭐. 저벅. 저벅. 크라라라라락! 저벅, 저벅. "안되겠다. 도망가!" 저벅, 저벅. "우리들 레벨로는 못 버텨 도망가!" 잘못 들었군… 왜 왼쪽으로 온 것일까? 그냥 오른쪽으로 가는 건데… 그런데 밀리고 있나 보지? 리자드 워리어라도 만난 모양이군… 도와줄까? 하지만…. "꺄악! 제시!" 여자?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들리던 목소리가 좀 가늘더니… 여자라면 도와야지! 나는 당장 허리에 손을 가져가며 달리기 시작했다. 스릉. 단검들이 뽑혀 나오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한판 해보자고! 약간 좁은 통로를 달리는데 순간적으로 통로가 넓어져 광장처럼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여긴가? "파이어 볼!" 오옷! 불덩이 날라 가고! 역시 여기군. 4명의 여성 유저들이 리자드 워리어 무리와 싸우고 있었는데 레벨이 그리 높지 않은지 밀리고 있었다. 흠… 모두 예쁘군. 하지만 위조(?)한 얼굴일 수도… 페페는 천연(?)인데 말야… 리자드 워리어의 숫자는 6마리였다. 여성 유저들 중 두 명이 검사인지 검을 들고 싸우고 있었고 한 명은 뒤에서 단검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사로 보이는 여자 한명. 그 여자의 손에서 날아간 불덩이는 리자드 워리어에게 명중하기는 했지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한 듯 했다. 잠시 주춤거리게 했을 뿐. 모두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 전체적으로 엄청 밀리는 분위기였다. 6마리를 이길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의문을 떠올리는 순간 앞으로 달려들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 어차피 지금은 직업이 없어서 죽어도 다운은 없다! 거기다 남자면 몰라도 여자들인데… "대거 댄싱!" 순식간에 단검 4개가 공중을 날았다. 갑자기 들려온 고함소리에 놀란 마법사와 도둑? 암살자?로 보이는 여자가 고개를 돌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무시. 내가 던진 단검은 검사 유저 중 한 명을 내리찍던 리자드 워리어에게 다다닥 꽂혔다. 성공이닷! 쿠워어어어! 좋아 뒤로 물러났고 상처도 입었다. 우선 한 마리! "발검(拔劍)! 연환격(連環擊)!" 나는 괴성을 흘리며 뒤로 물러나는 리자드 워리어에게 쇄도하며 샤프소드를 뽑아들었다. 이 한 놈에게 세 번 공격! 내 의지에 따라 나는 리자드 워리어 한 마리를 내리찍고 양옆에서 두 번 베었다. 큰 상처를 입은 놈이 뒤로 쓰러졌다. 한 놈 처치 성공! 크아악! 헉!? 옆!? 나는 급히 왼손을 들어올려 버클러로 날아오는 팔치온을 막았다. 미치겠군. 너무 많아. 나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나를 노려보고 있는 5마리의 리자드 워리어와 덤으로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여자들을 볼 수 있었다. 쳇! 당신들은 안 싸워!? "뭐 합니까!? 핫! 크로스!" 나는 여자들에게 한마디 해준 후 리자드 워리어 하나에게 달려들었다. 십자, 아니 X자 베기다! 카캉! 쳇! 리자드 워리어가 첫 번째 공격을 막는 바람에 내 공격은 한번을 베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후… 전에는 이 세 개를 쓰면 마나가 바닥났는데? 지금은 다르겠지? 나는 몸을 돌리며 내 검에 베인 리자드 워리어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핫! 살검(殺劍)!" 나는 리자드 워리어의 목을 세 번 공격해 목을 날려버렸다. 이제 두 마리. 크아악! 헛! 나는 나에게 날아오는 두 개의 거대한 팔치온을 보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슬프게도 두 개의 팔치온은 나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큭! X자 상처 났다. 나 따라하냐!? 나는 이를 악물며 허리로 왼손을 가져갔다. "대거 댄싱!" 두 개의 단검이 날아가 리자드 워리어 한 놈의 목을 파고들었다. 하… 운이 좋았어. 두 대 다 맞다니! "조심하세요!" 어떤 여자의 고함소리. 흡!? 나는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급히 앞으로 굴렀다. 큭 또 등 베였어 혹시 리자드 마스터 아냐? "쳇!" 미처 전투 기술을 사용하지 못한 나는 단검 하나만을 집어던졌다. 다행히 리자드 마스터는 아니었고 리자드 워리어 중에 하나였다. 왠지 안도감이 느껴져. 철컥! 나는 단검을 던진 왼손에서 OPG의 손톱을 꺼냈다. 공격력은 이게 더 좋지. "죽어랏! 더블이닷! 크로스!" 나는 내 등을 후려친 리자드 워리어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리자드 워리어는 두 개의 X자 상처를 입고는 쓰러졌다. 그 상처 중에 하나는 선명한 손톱자국이 나 있을 걸? 단검에 당황하는 바람에 성공했군. 크윽… 죽겠구만. "파이어 볼!" 핫! 그 여성 마법사가 만들어낸 불덩이는 내 등을 노리고 있던 리자드 워리어에게 명중했다. 땡큐! 나는 급히 앞으로 뛰며 뒤를 돌아봤다. 리자드 워리어 하나가 불덩이에 맞아 뒤로 물러나고 있었고 그 녀석에게 검사들과 그 도둑인지 암살잔지 알 수 없는 여자가 달려들고 있었다. 한 마리는 죽이겠지? 나는 남아있는 리자드 워리어 한 마리에게 달려들었다. 가슴과 등에 입은 큰 상처들이 컸지만 나는 이를 악물며 참았다. 크라라락! 내가 달려들자 리자드 워리어는 괴성을 지르며 팔치온을 휘둘렀다. 으으… 위협적이야. "헛! 살검(殺劍)!" 나는 샤프소드로 날아오는 팔치온을 세 번 가격했다. 팔치온은 그대로 박살났고 나는 무기를 잃고 당황하는 리자드 워리어의 품속으로 다가갔다. 억울하면 너도 좋은 무기 들고 다녀! "받아! 승룡권(昇龍拳)!" 역시 이름은 멋져! 나는 왼손으로 리자드 워리어의 가슴을 두 번 연타하고는 그대로 어퍼컷으로 턱을 날려버렸다. 내가 이렇게 왼손을 잘 쓰다니… 난 오른손잡인데 말야… 효과가 있나? 크에에에엑! 리자드 워리어는 턱이 찢겨 나가서는 괴성을 지러대었다. 성공! 나는 샤프소드를 두 손으로 쥐고는 위로 휘둘러 리자드 워리어의 목을 날려버렸다. 헥… 피 떨어진다! 나는 쏟아지는 리자드 워리어의 녹색 피를 피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크윽… 등허리야. 다행히 얼마 안 묻었군. "저… 괜찮으세요?" 어느새 다가온 여성 마법사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어왔다. 흠… 예쁘네. 전형적인 외국인의 모습인데… 진짜 외국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말도 다 번역해서 들리니… 음… 근데 왠지 낯이 익군. 외국 연예인의 얼굴인가? 나는 붕대를 감으며 대답했다. "뭐, 그다지 괜찮지는 않지만… 버틸 만은 합니다." 좀 뻔뻔스러운가? 나는 체인메일과 옷을 들어올리고는 윗통에 붕대를 칭칭 감았다. 후… 위험했어. 내가 붕대를 감는 사이 리자드 워리어를 처치했는지 다른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역시 모두 여자 군. 그런데 저 여자는… 도둑인 모양이지? 4명의 여성 유저들은 모두 상처를 입고 있었는데 그래도 나만큼은 아니었다. 쳇. 이 망토가 이런 특이한 게 아니었으면 또 걸레 하나 만들 뻔했군. 거기다 이 망토가 공격의 위력을 많이 줄여준단 말야? 나는 붕대를 다 감고는 내 앞에 서 있는 4인방을 올려다보았다. "뭐하세요? 붕대라도 감아드려요?" 내 퉁명스러운 말에 여자들은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쳇! 내가 무슨 백마 탄 왕자님인줄 아셔? 그저 레벨도 올리고 죽어 가는… 여자가 있길래 왔던 거라고… 여자 비명소리는 마음에 안 들어서 말야. 그리고 지금 이런 중상을 입어서 상당히 기분이 안 좋다고. 하이고… 레벨이 올랐을까? 캐릭터 창을 불러내 확인해 보니 2가 올라 있었다. 아까 오크잡고 지금 리자드 워리어 5마리니까… 대충 해서… 많이 오른 거군. 현재 직업이 없어 필요한 경험치가 적은데다가 성장의 반지가 있어 빨리 오른 모양이었다. "저기…." "예?" 내게 말을 걸려고 하던 마법사는 내가 좀 퉁명스러운 어조로 반문하자 당황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이런 내 태도가 거슬렸는지 검사 중에 한 명이 화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봐요! 왜 그렇게 짜증나게 구는 거예요!?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려고 하던 것뿐인데 그렇게 대할 건 없잖아요!" "뭐요!?" "맞는 말이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당신은 스틸을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이, 이 계집애가… "뭐야! 스틸!? 그럼 당신들이 다 죽은 다음에 싸울걸 그랬나!? 앙!? 나 혼자 싸웠으면 이렇게 안 다쳤어! 당신들 구하려고 붙어서 싸우다가 다친 거라고! 그리고, 내 성격이 원래 그래서 좀 퉁명스럽게 대한 것 가지고 뭘 그렇게 성깔이야!" "뭐, 뭐야!" 내 말에 더욱 화가 치민 듯 그 여자 검사도 마주 대고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와 여자 검사의 설전에 다른 여자들은 여자 검사를 말리려 하는 듯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쳇! 짜증나는 여자네. 괜히 구했나보다. 그런데 왠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한 느낌이…. "저기요!" "그러니까 당신이… 엥?" 나는 가만히 있던 여자 마법사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와 말싸움을 하던 여자도 조금 놀란 눈으로 여자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빤히 쳐다보자 그 여자 마법사는 얼굴을 약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태극 상급학교… 다니시지 않으셨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물론 다른 여자들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태극 상급학교? 이 여자가 어떻게 내 모교를 알고 있는 거지? 난 저런 외국인… 어라!? 그러고 보니 낯이 익더니… 설마!? "제… 시?" 자신 없이 꺼낸 내 말에 그 여자 마법사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꺄아~! 얼굴을 보고 설마 했는데… 진짜 현진이잖아!" 마, 맙소사! 이, 이게 뭔 일이 데냐? 헉! 그, 그러고 보니 저 여자 검사와 말싸움하던 것이 익숙하더니 설마… "어라? 진짜 현진이야? 왠지 익숙하더니… 야, 나 소영이야." 헉!? 최, 최소영이닷! 자, 잘못 걸렸어! 하필이면 얘네들이… 그럼 저 둘도…. "어라? 현진이라고? 야, 나 기억나냐? 나 유리야." 도둑 직업을 가진 것으로 보이던 여자의 말이었다. "어… 나 지현인데… 정말 현진이야?" 저 검사는 지현이? 원래 모두 예쁜 편에 속하는 얼굴이긴 했는데… 너무 다르다… 이, 이런 우연이 있나… "나… 현진이 아닌… 데요…." "죽을래?" 주먹을 들어올리며 사납게 외치는 소영. 흐흑… 잘못 걸렸다. 왼쪽으로 오는 게 아니었어… "오… 너 상당히 레벨이 높은가 보다? 리자드 워리어를 5마리나 해치우고?" "흐으… 그런말 해도 별로 기쁘지 않아. 아악! 그거 비싼 거야!" 나는 리자드 워리어들이 떨군 아이템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쁜 놈…이 아니구나. 나쁜… 헉. 왠지 엄청난 욕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왜지? 흠… 치사한 녀어… 흑. 이것도 그렇고… 여자에게 할 만한 뭔가 좀 고상하고 신선한 욕은 없는 건가? "이이… 치사하게! 다 내가 죽인 거란 말이다!" 내가 광분해서 소리치자 소영이, 세시(아이디)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호호…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크으…." 제길! 나 쟤 싫어! 상급학교 시절부터 만나기만 하면 말싸움을 하던 소영이었다. 왠지 성격이 안 맞아서 항상 충돌을 일으켰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필이면… 크악! 왜 게임에서도 쟤를 만나야 되는 거지!? "저기… 현진아, 그러면 나는 안 가져갈게." 조용한 제시(아이디도 제시)의 목소리. 흑흑. 너밖에 없다. 저기서 열심히 아이템과 돈들을 쓸어 담는 세 녀… 헉. 머리 좀 젓고. 어쨌든 천지 차이로군. "후… 아냐. 너도 챙겨라. 요새 돈을 잘 벌어서 큰 관심은 없이니…." 크흑! 내가 왜 이런 거짓말을! 내 짠돌이 근성이 어디 간다고! 제시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후후. 현진이 많이 변했다? 전에는 돈 100원에 목숨을 걸더니?" 흐으… 확실히 그런 때가 있기는 했지. 하지만 요새는 그 정도에는 목숨을 걸지 않는다고. 당첨금이 15억이야. 한 천원은 돼야 목숨을 걸지. 차마 이런 말을 내뱉지는 못한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후후… 그래?" 크으… 진성이 이 망할 자식! 도대체 소문을 어디까지 퍼뜨린 거지? 소영이 4인방은 내가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내 캐릭터가 이상하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건 다행이지. 알았다면 마구 비웃어 댔을 테니… 어느새 아이템들을 싹쓸이한 셋이 다가왔다. 유리, 리아(아이디)는 제시에게 작은 자루 하나를 내밀었다. 여자들끼리는 저렇게 사이좋게 나누어 가지면서 나는… 흑. 제시는 리아가 내미는 자루를 내 눈치를 봐 가며 받아들었다. 후우… 그럼 나는 이만 사냥을 떠나야 겠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어? 어디가게? 사냥 갈거면 같이 가자. 너 따라다니면 레벨 잘 오르겠다." 크윽! 세시의 말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고는 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만 로그아웃하려고. 도장에 나가봐야 되거든." 흑흑. 레벨 더 올려야 되는데… 하지만 얘네 하고 같이 다니느니 그만 하는 것이…. "뭐야! 우리를 두고 혼자 가겠다고!?" 지현이, 리사(아이디다. 유리와 맞춰서 지은 아이디라고…)의 고함소리에 나는 절망적으로 바뀌어 가는 상황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이런… 그래도 옛날에는 지현이도 착했는데… 소영이에게 물들어 버린 건가? "……사냥가자." "좋아!" 기뻐하는 리아(유리. 헉. 저도 헷갈립니다. --;)의 외침소리. 후우… 내가 한숨을 내쉬고 있자 제시가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괜찮아? 나가봐야 되는 거 아냐?" "별로 괜찮지… 물론 괜찮지! 가자고! 내가 너희들 레벨업 팍팍 시켜줄게!" 괜찮지 않다고 말하려던 나는 세시의 눈총을 느끼며 활기차게 대답했다. 젠장. 어쩔 수 없이 같이 사냥을 해야 하는 건가? 후… 내가 소영이, 세시만 없었어도 기분좋게 같이 갔다. 나는 속으로 신세 한탄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하아… 제시의 웃음소리가 들렸던거 같은걸? 소영이들과 파티를 맺은 나는 품속에서 단검들을 꺼내 허리에 끼워 넣으며 걸음을 옮겼다. 하긴… 레벨을 올리는 게 좋을 수도. 내일부터는 올리기가 힘들어질 테니까… 잠시 걸어가던 나는 걸음을 딱 멈췄다. 뒤에서 따라오던 4인방은 내가 멈춰 서자 덩달아 멈춰 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야. 왜 멈춰? 나왔어?" 나는 몸을 돌리며 불평을 토해냈다. "내가 왜 맨 앞에서야 되는 거냐? 나부터 죽으라 이거야?" "당연하지. 그리고 너 검사잖아? 네 정도 레벨이면 이글아이(EagleEye)가 꽤 높을 텐데?" 이글아이? 독수리의 눈이라는 건가? 나를 보고 검사라고 하는 것을 보니 내가 검을 두 개나 차고 있는 것을 보고 그렇게 예상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이글 아이라는 것 익힌 적 없는데? "나 이글아이… 안 익혔어." 내 말에 세시와 리사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엥? 왜그러슈? "검사가 이글아이를 안 익혔다고?" 마치 뭔가를 따지는 듯한 소영이… (왜 이러냐…(작)) 세시의 말에 나는 눈썹을 들어올리며 대답했다. "나 게임 안 하던거 알잖냐. 처음 키울 때 뭐가 뭔지 몰라서 그걸 안 익혔지. 그래도 특별히 어려운 건 없던데?" 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아보겠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던 세시는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섰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앞으로 나설게. 그런데 넌 왜 캐릭터 창을 공개하지 않는 거야? 레벨이 몇인지도 모르겠네." 나는 일행의 가장 뒤로 걸어가다 소영이의… (커헉! 또다!) 세시의 마지막 질문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는 캐릭터 창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직업에 '???'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보여주랴. "레벨은 84야." 내 말에 일행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흠… 현재 내가 일행에서 레벨이 가장 높았다. 나를 제외하고 일행 중에 가장 높은 사람은 세시로 레벨이 61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50대였다. 모두 시작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 두 달 되었다나? 그리고 지금은 접속하지 않았지만 옛날에 어울려 다니던 친구 중에 하나인 세진이도 섀도우 월드를 한다고 한다. 모두 세시의 꾐에 빠져 게임을 시작했다고… 세시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우리들도 보조를 맞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아… 심심한데 누구하고 얘기를… 옆을 바라보니 제시가 스태프를 짚어 가며 걸어가고 있었다. 흠… 확실히 얘기하기에는 제시가 가장 좋겠지? 가장 정상적(?)이니까. 나는 제시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음?" "아, 그냥 얘기나 하자고." 제시가 긴장해서 날 올려다보자(제시는 나보다 10cm정도 작다. 내키는 완벽한 186cm) 나는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한국엔 왜 온 거야?" "아… 부모님 회사의 본점을 한국으로 옮겼어. 그래서 부모님이 한국으로 오실 때 따라온 거지." "그럼 이민?" "응." 진짜로 이민을 온 거였구나… 흠… "한국은 살기 좋냐?" 내 질문에 제시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람들도 친절한 편이고… 재밌는 것도 많고. 프랑스에서도 한국은 꽤 유명했거든. 한때 분단국이었던 나라잖아. 음… 솔직히 음식이 너무 맵기는 하지만…." 제시의 마지막 말에 나는 큭큭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프랑스 음식에 비해 맵기는 하겠다." "응." 우리가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자 앞서 걸어가던 세 명의 여인네들이 우리를 돌아봤다. "너희 사귀냐?" 세시의 물음에 제시는 얼굴을 붉혔지만 옛날부터 소영이와 상당히 주의 깊고 심각한 대화(?)를 나눠 왔던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부럽냐?" "하! 아니, 제시가 불쌍해서." 후후… 역시 한마디도 안 지셔. 음!?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굳히며 허리로 손을 가져갔다. "조심해! 대거 댄싱!" 나는 소리를 지르며 단검들을 집어던졌다. 내 외침에 일행은 화들짝 놀라며 무기를 들어올렸다. 쿠에에엑! 내가 던진 단검에 몸이 뚫린 리자드 워리어 한 마리가 괴성을 질렀다. 쳇! 몇 마리지? 리자드 워리어들이 한 10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젠장! 그 이글아인지 뭔지 하는 것도 다 소용 없구만." 세시가 뭐라고 말대꾸를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던진 말이었지만 세시는 긴장한 듯 말이 없었다. 하긴, 6마리에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10마리나 튀어나왔으니… "파이어 볼!" 제시의 외침과 함께 불덩어리가 날아갔다. 저거, 큰 상처는 주지 못해도 견제용으로는 괜찮겠지? 나는 샤프소드를 뽑아들며 왼손으로는 단검들을 계속 집어던졌다. 어디 열심히 레벨을 올려보자고! 기이이잉. 찰칵. "후아…." 나는 한숨을 토해내며 캡슐에서 나왔다. 흐윽! 머리가 다 아프네. 역시 소영이들은 너무 시끄러워. 세상 여자들이 모두 페페나 제시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아… 90이 끝이구나." 현재 내 레벨은 90이었다. 거의 하루종일 사냥을 한 결과였는데 소영이 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자신들보다 레벨이 높은 내가 레벨이 더 빨리 올랐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소영이들은 레벨이 5씩 올랐다. 리자드 워리어들을 거의 50마리에 가깝게 잡은 결과지… 흐아아… 7마리 리자드 워리어 무리를 모두 사냥한 후. 계속 사냥을 하려고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나는 그만 로그아웃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운영자 46-세한님. 페페입니다. 지금 레벨을 올리고 계시더군요. 죄송하지만 오늘은 사냥을 하지 말아주십시오. 깜박 잊고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아직 다른 운영자들은 모르고 있으니 그만 해 주세요. 저는 모른척해 드릴게요. 세한님은 제 첫 관리 대상이셔서 넘어가 드리는 겁니다.> 페페에게서 날아온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소영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크흑. 이 양해를 구하는데 리콜 스크롤을 4개나 줬으니… 이런 치사한… 소영이들이 마을로 돌아간 후. 나는 침낭을 피고는 안전지대를 설정하고는 로그아웃을 해 버렸다. 후우… 던젼에서 로그아웃 한 건 처음이군. 던젼에서 비전투시 그냥 로그아웃을 하면 가장 최근에 들린 마을로 되돌아간다. 때문에 던젼을 탐험하는 사람들은 침낭을 피고는 안전지대를 설정하고 로그아웃을 한다. 그러면 계속 던젼에 위치하고 있으니까… 게임용 슈트를 벗어 던진 나는 메일을 확인했다. 꼬마악마… 박진성… 보낸이-꼬마악마 여… 지금도 사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확인해 봤는데 말야. 소영이, 지현이, 세진이, 유리, 제시까지 다 온데. 남자들은 나하고 재훈이 현철이 정복이 대희가 온단다. 네가 주문한 데로 10명만 데리고 가마. 나는 금요일 저녁에 갈게. 너희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마. 다른 애들은 토요일날 올 거다.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공짜로는 안 돼지. 뭘로 뜯어낼까… 나는 행복한 고민을 시작하며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한바퀴 돌고 와야지. 요새 너무 운동을 안 하고 지냈어. "후아암…." 오랜만에 개운하게 자보네. 후아… 가수면 모드로 수면을 취하다가 진짜로 한잠 자고 나니 잠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드르륵. 나는 침실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하아… 시원하다. 역시 자연풍이 좋지? 우리 집에는 벌레도 쉽게 못 들어오고… 흠… 섀도우 월드를 할까? 직업이 뭐로 결정 났을지… 하지만 아침부터… 한잠 개운하게 잤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하아… 이거 소위 말하는 게임중독?" 나는 게임 캡슐 안으로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크흑. 나는 그런 것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었건만… <계정 아이디를 말씀해 주십시오> "벼락부자." <계정 비밀번호를 말씀해 주십시오> "********." <홍채검사와 뇌파 검사가 있겠습니다> 환한 빛이 내 눈을 훑고 지나갔다. 아… 눈부셔라. <확인되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벼락 부자님. 현실의 그림자. 그림자의 땅에서 즐거움을 얻으시길> 그리고 순간 숲 안에 서 있는 이 몸. 내 눈앞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 캐릭터가 서 있었다. 다만 머리의 길이가 조금 다를 뿐. 그 캐릭터의 머리 위에는 '세한'이라는 글이 떠 있었다. 나는 캐릭터에 손을 가져갔다. "후와?" 나는 눈을 뜨며 주위를 살폈다. 흐음… 분명히 리자드 동굴 안이었지? 그런데… 여기는 어디요? 나는 동굴 안이 아닌 이상한 숲에 떨어져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엥? 여기가 어디야? 나는 침낭을 배낭속에 집어넣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쉬이익! 음? 이상한 소리? 그리고 서늘한 느낌. 화살이군. 모두 3대. 오른쪽 뒤편. 2초 후 적중. 발사자는 내 뒤 남서방향 20M. 나는 나도 모르게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당황했다. 뭐, 뭐지? 그리고 저절로 움직이는 내 몸. "연속기. 검(劍), 권(拳)." 엥? 저절로 벌어지는 입과 저절로 흘러나오는 목소리. 뭐, 뭐야. 그리고 내 몸은 순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검을 뽑아들며 동시에 왼손의 OPG의 손톱을 꺼내는 나. 그리고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러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내는 나. 이, 이런 환상적인 움직임이? 화살들을 쳐낸 나는 그대로 발을 내뻗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내 주먹에서 날아가는 기(氣) 덩어리. 그 권기는 나무사이로 날아가며 허공에서 폭발했다. 크아악! 괴성을 지르며 몸을 나타내는 금빛의 스켈레톤 아처. 그 몬스터는 몸이 허물어지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마, 맙소사. 이게 뭐야? 왜, 내 몸이… <언젠가 지금과 같은 능력을 얻기를 기원합니다. 대륙에서 유일한 솔져(Soldier)여> 갑자기 이상한… 약간 신비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솔져? 전사(戰士)? 병사(兵士)? 그게 뭐요? 그리고 내 몸은 빛에 휩싸였다. 우이씨! 어제에 이어 오늘 일진이 왜 이러는 거지? 눈을 떠 이번에 떨어진 장소를 확인한 나는 익숙한 나무집 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긴… 혹시!? "다시 뵙네요, 세한님?" 핫! 페페닷! 전과 같이 나무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페페를 발견한 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흠… 어쩌면 일진이 좋을 수도… 그러고 보니 내가 페페나 제시 같은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의 여자를 선호하게 된 것에는 소영이가 많은 기여를 한 것 같아. "헤… 음… 여기 시간으로… 대충 삼일 만인가요? 반가워요 페페." 내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자 페페도 미소를 지었다. 햐… 정말 예쁘다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아! 그러고 보니 방금 이상한일이! 제 몸이 환상적으로 저절로 움직이더니 웬 해골바가지 한 놈을 쓰러뜨렸는데요? 그리고 갑자기 이상한 목소리도 들리고…." "이런 목소리요? '대륙에세 유일한 솔져여.'" 헉! 똑같다! 왠지 좀 친근한 느낌도 들더니. 저렇게 말하니까 정말 여신 같은 미모가 한층 빛을 발하는 구나. 헉!? 내가 지금 뭔 헛소리를… "어라? 그거 페페가…." 내 질문에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솔져는 세한님의 직업이자 명칭이죠." 호… 솔져? 전사, 병사라는 뜻이지? 괜찮은걸? 어라, 그러고 보니 아까 이상한 행동을 한 다음에 들려온 목소리에서… "어? 그럼 제 레벨이 높아지면 아까와 같이 강해진다는 말씀?" "예. 아까 이상하게도 공격이 날아온 방향과 위치 등을 알 수 있으셨죠? 그건 솔져 만의 스킬인 식스센스(Six Sense)의 능력이에요. 간단히 말하면 이글아이의 발전형인데… 육감이 엄청나게 뛰어나지는 거라고 할까요? 지금은 아까와 같은 엄청난 능력은 발휘하지 못하시겠지만 스킬 레벨이 높아질수록 뛰어난 능력을 보일 거예요." 헉! 언젠가 그런 엄청난 능력이? 하지만 스킬 레벨을 올리는 게 장난이 아니겠지? 어쨌든 좋은 거 같은데? "그리고 아까 연속기라는 것을 사용하셨죠? 그건 미토스님과 하크님에게도 있는 능력이죠. 스킬은 아니고 서로 다른 무기를 함께 섞어서 사용하거나 연속으로 사용하는 기술을 만들 수 있어요." 오… 이것도 쓸만하군. 키우는 보람이 느껴지겠어. "그리고 솔져만의 스킬이 하나더 있기는 한데… 이건 나중에 계급이 올라가면 익힐 수 있으실 거예요. 그러니 나머지 스킬 하나는 남겨두세요." "아, 예." 흠… 괜찮은데? 이 직업을 선택하기를 잘 했군. 그런데 솔져면… "그런데 솔져면… 병사 아닌가요?" 내 질문에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 뜻도 있고 전사라는 뜻도 있죠. 세한님의 솔져는 전사라는 뜻이에요. 운영자들이 투표를 했는데 그 이름이 당첨 돼서요." 당첨이라… 그렇게 정하는 거였군. 생각보다는… 뭐랄까, 허탈? 뭐, 어감은 나쁘지 않으니… 느낌도 괜찮고. "그럼 그것 때문에 부른 건가요?" "이 문제도 있고… 그리고 한가지 알려드릴게 있어서요." 흠? 뭘까? "세한님. 혹시 현실에서의 한 주, 저번 주 동안 올린 레벨이 얼만 줄 알고 계세요?" 흠? 저번 주면… 내가 레벨은 올린 건 어제 일요일 밖에 없는데? 일요일은 이번 주잖아?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기자 페페는 뭔가를 떠올린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제가 말씀 드리는 저번 주는 저번 주 월요일부터 어제까지예요." 헹? 그러고 보니 일주일을 그렇게 세기도 하지? 그럼… 어제 내가 올린 레벨이… 지금 내 레벨. 90에서 1을 빼야되나? "89 올렸군요." 내 말에 페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89를을 올리셨죠. 약간의 버그가 있기도 했지만… 어쨌든 덕분에 세한님이 이벤트에 당첨되셨어요." 엥? 이벤트? 이건 또 무슨 소리요? "이벤트요?" "예. 섀도우 월드에서는 각 주마다 레벨 20 아래에서 시작한 유저 분들 중에 가장 많은 레벨을 올리신 분들을 선정해서 한 장소에 들여보내 드리죠." "한 장소요?" "예. 마신의 신전이라는 곳이에요." 마신이라… 왠지 으스스 한 것이… 나보고 거기에 들어가라는 말씀? 강한 몬스터들이 있을 것 같은데? "거기… 몬스터들 강하지 않아요?" "조금 강하죠. 적어도 한… 레벨 150은 돼야 통과 할 수 있을 정도?" 150은 돼야 통과? 클리어도 아니고 통과? 나는 내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게 아니잖아. 들어가서 죽으면 어쩌라고? 내 생각을 읽었는지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 던젼은 특별한 이벤트용 던젼이라 유저의 레벨은 오르지만 게임오버를 당해도 레벨 다운은 없어요. 그리고 그 던젼의 끝에 다다르면… 마신의 무구 중에 한가지를 가지고 오실 수 있죠. 모두 엄청난 성능의 아이템들이에요. 신기(神器)라고 하죠." 신기? 신의 무기라는 건가? 하긴 마신도 신은 신이니까… 하지만 가기가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거기까지 가기가 쉽지는 않아요. 아마 레벨 150은 되야 간신히 갈 만한 곳인데… 길은 외길이기 때문에 길을 잃은 염려는 없지만요. 참고로 지금까지 수많은 유저분들이 그 던젼에 들어가셨지만 끝까지 다다른 분은 한 분도 없으셨죠. 모두 도중에 몬스터에게 당해서 게임오버가 되셔서 던젼에서 나오게 되셨어요. 한 번 죽으면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거든요." 흠… 쉽지 않아. 아니 거의 불가능이야. 렙 150이 간신히 갈 정도. 그러면 간단하게 렙 200은 돼야 클리어할 가능성이 보인다는 소리와 일맥상통? 아무리 나라도 불가능이야! 하지만 죽어도 레벨 다운이 없으면 나쁠 건 없겠지? "죽어도 레벨 다운이 없으면 도전 할 만 하군요." "그렇죠." "하지만 들어가는 사람들의 레벨에 비해 난이도가 너무 높은거 아닌가요? 아마 제가 들어간 사람 중에 최상위 클래스에 속할 텐 데요?" 내 질문에 페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레벨 8, 90대의 유저 분들이 몇 분 계셨지만 모두 실패 하셨죠. 하지만 세한님은 레벨도 90대시고 스킬도 높으시니… 그리고 마신의 신전은 몬스터들보다는 함정이 더 위험하죠. 그러니 함정파기 스킬을 익히신 데다가 식스 센스까지 있으시니 훨씬 쉬우실 거예요. 어쩌면 초대 통과자가 되실 수도 있겠죠." 호오? 함정파기와 식스센스라… 가능성이 있다고? 후후후… 이 엄청난 아이템 빨에 신기까지 생기면… 거기다 그 신기라는 놈들… 비싸겠지? "언제 갑니까?" "현실시간으로 내일, 섀도우 월드의 시간으로 3, 4일 뒤요. 그 동안 레벨도 더 올리시고 준비를 하세요. 아이템은 얼마나 가져가시던지 상관없어요." 좋아. 그럼 포션하고 단검을 한가득 가지고 가서… 나는 즉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진성이, 필을 꼬셔서 어디 고렙 던젼에서 레벨을 좀 올리고… 이것저것… 아차! 얘기하는 중이었지! "아, 죄송해요." "후훗. 아뇨." 흠… 이제 얘기가 끝난 모양이지? "그럼 다시 돌려보네 드릴게요. 그, 리자드 동굴로 보네 드릴게요. 식스센스 스킬은 이미 익혀져 있을 거예요." "예. 아, 잠시. 혹시 나이가 몇 인지 알 수 있을 까요?" 내 질문에 페페는 잠시 당황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스물 한살이랍니다." 헉! 한 살 연상? 흠… 그래도 그리 나이차이가 큰 건 아니지? 흠… 내가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 예. 다음에 또 만나길 기대할게요." 나도 손을 마주 흔들어 줬고 곧 환한 빛이 내 몸을 감쌌다. "후앗!?" 나는 한숨을 내쉬며 앞을 바라보다가 비명을 질렀다. 헉!? 왜 바로 앞에 리자드 워리어 떼거지가… 헉? 뒤에도? 식스 센스 덕분인지 뒤돌아보지 않고도 뒤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상당히 많은 수가… "도마뱀 동창회라도 하니?" 나는 급히 품속에 손을 집어넣어 리콜 스크롤을 꺼내 그대로 찢었다. 우와악! 발동까지 5초! 그런데 왜 팔치온들이 열 개가 넘게 날아오는 거야? "히에엑!" 나는 급히 몸을 숙이며 앞으로 굴렀다. 크흑! 등판 또 잘렸네. 그리고 또 다시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 나는 환한 빛이 내 몸을 감싸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헉!?" 나는 마을의 분수대를 발견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크으으… 살았다! 아이고 등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여기로 보내달라고 할걸.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붕대를 감았다. "쳇. 붕대가 다 떨어져 가네?" 나는 투덜거리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후… 그 식스 센슨지 뭔지 괜찮구만. 뒤에서 공격이 날아오는 것도 느끼게 해주고 말이야. 아, 보너스 스탯이 생겼겠다. 나는 캐릭터 창을 불러냈다. 캐릭터 창의 맨 위에는 '솔져. 1계급'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내 예상대로 보너스 스탯이 50이 생겨 있었다. "루루루… 흠… 뭐에 올릴까…." 능력치들을 살펴보던 나는 10은 힘에 올리고 25는 순발력. 15는 체력에 투자했다. 순발력이 가장 딸리니까… 원래는 순발력이 가장 높아야 되는 건데… OPG의 영향이 크지. 나쁜 건 아니지만… 좋아! 이제부터 열렙 시작이다! "야, 한아. 반드시 가지고 돌아와라." 나는 필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이제 렙도 94고… 가능성이 있어. 반드시 돌파한다!" "그래! 그리고 나 1000골드 주기로 한 거 잊지 마라?" 크으… 역시 이놈도 돈에 관해서는 철저한 놈이야.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물론 통·과·할 때 얘기지만…." "어쨌든 잊지 마라." 필은 나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1000골드를 제시했다. 나는 거기에 '던젼을 통과하면'이라는 추가했고. 그리고 나와 필은 3일 동안 렙 200짜리들이 들락거리는 던젼들을 돌아다녔다. 사냥은 주로 필이 하고 나는 뒤에서 단검을 던져 엄호하는 식으로… 그리고 던젼들의 함정과 내가 익힌 함정들을 비교해 가며 철저히 준비했다. 하지만 역시 레벨은 잘 오르지 않았다. 레벨 90대인 내가 레벨 200대들이 가는 던젼에서 사냥을 했지만, 비록 레벨이 높은 필이 파티라 경험치의 분배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성장은 너무도 미미했다. 삼일동안 로그아웃 한번 안하고 레벨을 올렸는데 겨우 4가 오르다니… 하지만 식스센스 스킬은 16까지 올라있었다. 그냥 길을 가면서 주위의 동물들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것으로도 스킬의 레벨이 올랐으니 어느 정도 예상보다는 빠르게 오른 것이었다. 3일간의 플레이로 강제 로그아웃 당해 한숨 늘어지게 잔 나는 필과 함께 섀도우 월드에 접속해 각종 물품들을 준비하고 전의를 다지고 있었다. "포션 챙겼지?" "물론이지. 100개나 있다." "단검은?" "중급으로 100개." "붕대는 넉넉해?" "물론." "흠… 좋아! 힘내라!" "당연하지!" 주위에서는 우리를 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우리는 깨끗이 무시했다. 당신들이 지금 우리의 심정을 아쇼? 지금 결의에 불타는 우리의 심정을 아시냐고? 그렇게 우리가 장비를 점검하고 있을 때 내 앞에 페페가 보낸 메시지가 뜨기 시작했다. <운영자 46-세한님 시간이 되었습니다만… 준비는 끝내셨습니까?> <예.> <운영자 46-그럼 소환하겠습니다.> "야! 시작이다! 기다려!" "오옷! 크로스!" 나는 필과 팔을 맞대며 씨익 웃었다. 곧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페페에게 소환되었다. 눈을 뜨자 상당히 어두운 숲 안이었다. 뭔가가 '끼룩끼룩'하고 우는 것이 새의 울음소리 갔았는데 왠지 소름이 끼치는 것이… 후우… 무서운데. "여기예요 세한님." 내 등뒤에서 페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던 나는 별로 당황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여기가 어디죠?" "악마의 숲이라는 곳이에요." 악마의 숲이라… 그래서 이렇게 어두 침침하군. 그런데 그 마신의 신전인지는 어디 있는 거지? 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페페는 나에게 손짓을 하며 한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조금 걷지 않아 페페는 멈춰 섰고 역시나 던젼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하지 못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응? 좀 이상한 느낌이… 나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걸리는 것을 느끼고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뭔가가 있는데? 페페는 그런 나를 보며 미소를 짓더니 넙적한 바위 위에 올라앉았다. 온 정신을 집중해 주위를 살핀 나는 페페가 앉아 있는 바위에서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바위를 가리켰다. "무슨 문제를 내신 것 같은데… 그 바위가 입구인가요?" 내 질문에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식스센스를 꽤 올리신 모양이죠? 상당히 잘 감춰져 있는 건데…." 페페는 바위에서 일어나더니 바위에 손을 가져갔다. 페페가 손을 갖다 대자 바위에서 빛이 좀 흘러나오더니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르르륵. 철컹. 바위가 오른쪽으로 움직이자 바위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나타났다. 구멍 안에는 아래로 향하는 돌계단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가 마신의 신전이에요." 꿀꺽. 나는 침을 삼키고는 그 돌계단이 시작되는 부분에 다가섰다. 거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 식스센스가 쉴새없이 위험신호를 보내는 것이 느껴졌다. 크으… 렙 200짜리 던젼하고 비슷한데…? "안에 얼마나 오래 계신던지 상관없어요. 다만 죽기 전에는 빠져 나오실 수 없고 마신의 무구를 손에 넣으면 차렌시로 이동될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나는 지금 등에는 샤프소드, 양 허리에는 롱소드들을 차고 있었다. "후우… 그럼… 들어갑니다." "예. 열심히 하세요. 아… 그리고, 저기… 꼭 성공하도록 노력해 주세요… 사실… 이 이벤트의 결과를 놓고 내기를 했거든요. 다른 운영자들이 비웃으면서 안 된다고 하기에… 홧김에 성공하는데 걸어버려서…." 핫!? 내기라… "성공에 몇 명이나 걸었는데요?" 내 질문에 페페는 약간 난처한 얼굴이었다. 호, 혹시… "저 혼자요…." "………." 어, 어쨌든 페페는 나에게 걸었다고 하니까… 크으으… 후후후… 다 실패에 걸었다고? 반드시 성공하고 만다. 나는 투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검을 움켜쥐었다. 롱소드를 꽉 움켜쥐는 내 모습을 바라보던 페페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성공하시면 제가 차나 한번 대접할게요." "……현실에서."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층더 투지가 끓어오르는군! "그럼… 다음에 만날 때는 마신의 무구 중 하나를 보여드리도록 해보죠." "조심하세요." 나는 페페가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을 뒤로하며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좋아! 시작이닷! 기다려랏 마신의 무구! "………." 조용하다. 어둡다. 불길하다. 위험하다. 내가 돌계단을 내려가며 떠올린 주요 느낌들이다. 내가 계단을 조금 내려가자 바위는 다시 원상 복귀해 내 퇴로를 막아버렸고 주위는 순식간에 어두워 졌다. 거의 바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젠장! 이래서야 어떻게 몬스터와 싸우라는 거지?" 투덜거리며 조심스레 계단으로 내려가는 나. 그리고 내 불만에 대답하듯 순식간에 수백개의 횃불들에 불이들어오기 시작했다. 화악! 화아악! "………." 호, 혹시 내 말을 알아들은 것? 진짜 불길한 곳이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마지막 계단에서 발을 내렸다. 꿀꺽. 상당히 밝아진 신전 안의 풍경을 살펴본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페페의 말대로 신전 안은 외길로 보였다. 갈림길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폭이 20M는 되는 길의 양옆에는 수많은 기둥들이 서 있었고 그 기둥들에 횃불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양 벽면에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컨셉 죽이는군." 그랬다. 마신의 신전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어울리게도 벽화는 대부분이 악마들이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끔찍한 장면을 나타내고 있었다. 후우… 간이 작은 사람들은 오면 쓰러지겠어? "이 해골들은 또 뭐야?" 나는 온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해골들을 보며 불만을 토했다. 지금 겁주는 거냐! 이 신전에 들어온 모든 침입자들은 이렇게 된 다로 외치는 듯한 모습에 나는 이를 갈았다. 난 롱소드를 움켜쥐고 한 손은 허리춤의 단검에 가져가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외길에 넓은 곳에서 몬스터가 왜 보이지 않는 거지? 저벅, 저벅. 내 걸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너무 조용해… 몬스터가 많다고 했던거 같은데… 처음은 함정으로 시작한느 건가? 나는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며 걸음을 옮겼다. "핫!? 걸렸다!" 뭔가 느껴졌어! 뭐냐! 나는 걸음을 멈추고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아무 것도 없는데? 함정인가? 하지만 사방에서 위험신호가… 주위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뭔가가… 따다다닥! 따다닥! 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기려고 하던 나는 이상한, 마치 뼈들이 서로 부딪히는 듯한 소리에 몸을 굳혔다. 뼈, 뼈들이라… 허허허…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뼈다귀 몬스터를 봤었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해골들이 넘쳐나는 길의 한복판인데… 따다닥! 철컥! "제에에엔자아앙!" 뭔가 쇳소리가 울려 퍼지자 나는 급히 몸을 틀며 검을 휘둘렀다. 내 뒤로 수많은 스켈레톤들이 검을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이 뼈만 남은 모습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쇼트소드 하나씩만 들고 있는 해골들. 젠장. 천 쪼가리라도 걸치지. 소름이 돋는 구만. 파캉! 내 롱소드와 한 스켈레톤이 휘두른 쇼트소드가 허공에서 격돌했다. 끄으으… 역시 샤프소드가 아니면 자르지는 못하지? 나는 급히 왼손을 휘둘렀다. 쉬익! 퍼억! 오케이 이마에 명중!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검을 거두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쉬이익! 망할 스켈레톤은 마빡에 단검이 박혔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걸 신호로 다른 스켈레톤들도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크으… 원래 시체라서 단검하나 박는 걸론 무린가? 나는 이를 갈며 급히 롱소드를 검집에 집어넣고 샤프소드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그럼 두부 자르듯 깨끗이 갈라주지! "발검(拔劍)! 연환격(連環擊)!" 내 외침에 따라 내 몸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정면의 한놈 내리찍고. 퍼서석! 머리와 왼쪽 어깨가 그대로 잘려나가는 스켈레톤. 내 몸은 그대로 움직이며 옆에서 검을 들어올리는 두 놈의 해골들을 한번씩 후려쳤다. 파각! 퍼석! 오케이! 세 마리 처치!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른 스켈레톤을 바라보았다. 다음은 너다! 음?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경고. 헛! 왼쪽!? 나는 급히 왼손을 들어올려 버클러로 공격을 막았다. 헉! 아까 머리통과 어깨가 작살난 놈이 남아있는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이 없어 선지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이… "이게 완전 괴물… 크아악!" 놀란 얼굴로 중얼거리던 나는 이번에는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느끼고는 몸을 반 회전시키며 오른손으로는 검을 휘둘러 공격을 막고 왼손으로는 손톱을 꺼내 반쯤 남은 스켈레톤을 강타했다. 퍼석. 나는 이상한 느낌을 받고는 고개를 슬쩍 돌려 왼손으로 후려친 스켈레톤을 바라보았다. 그놈은 내 공격에 완전 박살이나 허물어지고 있었다. 어랏! 그럼 이놈들에게는 권법이 더… 충격 범위가 더 큰 거라 그런가? 간단하게 결론을 내린 나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좋아! 주먹으로 후려치란 말이지. 부츠도 쇠로 된 걸 신고 왔으니… 나는 샤프소드를 접어 넣고는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철컹. 오른손의 OPG에서도 손톱이 튀어나오자 나는 그대로 달려들었다. "죽여주마! 연타(連打)!" 후웃! 한 손당 3대씩 모두 6대. 순식간에 스켈레톤 한 놈이 허물어졌다. 좋았어! 계속이다! "우하하하하! 승룡권(昇龍拳)! 연타(連打)!"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나는 두 기술을 연속으로 사용하며 스켈레톤들의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후훗! 맞춰봐! 검이 짧아서 피하기 쉽군. 나는 그동안 배워왔던 태권도가 헛것이 아니었음을 실감하며 열심히 해골들을 후려쳤다. "흐아… 힘들다." 나는 뼈다귀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뼈다귀에 엉덩이를 찔리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 아직 첫 번째 방인데… 도대체 몇 시간째지?" 나는 상처에 포션을 들이붓고 마시고 붕대를 감으며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이 신전은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첫 번째 방을 빠져나가면 두 번째 방. 이런 식으로… 저 멀리 커다란 문이 하나보이는 것이 저기로 나가야 되는 모양이었다. 지금 있는 곳에는 순 뼈다귀들밖에 없었다. 한 놈의 힘으로는 리자드 워리어보다는 약했지만 수십 마리씩 떼지어 다니니 정말 기가 질릴 정도였다. 정말 싸우는 도중에 마나가 다 떨어져서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행히 몸으로 직접 타격을 주는 것이 상대하기 쉽다는 사실을 발견해서 어떻게 다 해치우기는 했지만… 정말 오늘에서야 태권도의 효능을 알 수 있었다. "흠… 시간이… 헉! 3시간 동안 뼈다귀하고 놀고 있던 거야? 이래서야 며칠은 걸리겠다." 현재 시간(섀도우 월드에서)을 확인한 나는 경악성을 토했다. 맙소사. 그럼 모두 통과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나는 머리를 젓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H.P는 거의 다 차 있었고 동시에 상처에서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다음 방으로 가볼까? 저벅, 저벅. 역시 조용하단 말야. 이제 더 이상 몬스터로 변하지 않았던 뼈다귀들은 없었다. 아까 저 문 앞까지 돌진했다가 엄청난 수의 스켈레톤들이 일어나서 도로 도망쳐 와서 하나씩 해치웠으니까… 문 앞에 다다른 나는 한숨을 쉬며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손잡이는 동그란 쇠고리였는데 이상한 모양의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흠? 멋있는데? 끼이이익… 문은 카다란 소리를 내며 서서히 열렸다. 안은 아까와 같이 어두운 것이 들어가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흠… 이것도 불평을 하면 불이 켜질까? "불켜! 너무 어둡잖아!" ………. 불은… 켜지지 않았다. 후우… 여기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게 다행이지? 흑. 내가 어쩌자고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나는 머리를 젓고는 방안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화악! 화아악! "………." 사람이 들어오면 불이 켜지는 거였군… 허험… 그런거였어. 나는 버클러를 들어올리며 방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위의 풍경은 아까와 똑같았다. 저 멀리 커다란 문이 조그맣게 보이는 것도. 하지만 여기에는 뼈다귀가 없었다. "뼈다귀가 없네? 그런데 이게 더 불안한 이유는 뭐지?" 나는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몬스터는 없었다. 흠… 이번에는 땅 속에서 솟아나니? 나는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며 금방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자세를 유지했다. 흠… 한발, 한발. 또 한발, 한발… 철컥. "뜨아악! 제기랄!" 그 동안 필과 함께 돌아다닌 던젼에서 겪었던 상황 중에 이것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 나는 머리를 감싸며 급히 몸을 날렸다. 촤착! 휘리릭! 쉬이익! 각종 소리들을 내며 날아오는 수많은 화살들. 제발 아래로 오는 화살은 없어라… 내 바램은 내 식스센스에 대충 나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들이 감지되며 깨지고 말았다. 으윽! 머리를 감싸고… 머리에 맞으면 그대로 끝이다! 푹! 퍼억! "뜨아아악!" 나는 옆구리와 어깨에서 화끈한 통증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흑흑. 감도를 낮추는 건데… 하지만 이런 위험한 곳에서 감각이 떨어지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 못된다. 따라서 나는 감도를 현실과 똑같이 맞추어 놓았고 덕분에 지금 상당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현실에서 화살에 맞는 거에 비하면 훨씬 덜 아픈 거겠지만… "우욱… 지금 몬스터가 튀어나오면 그대로 죽겠다…." 나는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더 이상의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고 나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크으으… 나는 옆구리와 어깨에서 화살들을 뽑아냈다. 흐으… 포션 들이붓고, 마시고 붕대 감고… 이래서야 금방 다 쓰겠다. 걱정되는걸… 몸이 회복된 것을 느낀 나는 감각을 곤두세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몬스터는 없고… 그럼 여기는 함정들이 있는 곳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길… 내 식스센스 스킬이 조금만 더 높았어도… 철컥. "………끄아악! 제에기라아알!" 흐흑… 인생이 왜이리 고달픈 거냐… 나는 또다시 화살의 과녁이 되고 말았다. 흐흐흑… "젠장. 젠장. 젠장!" 나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내가 달리고 있는 통로의 뒤는 점차 허물어지고 있었다. 우우웃! 저 밑에서 번쩍이는 검날들을 보라! 그리고 그 검날들에 꿰여있는 해골들도! 나는 저런 꼴 되기 싫어! 쉬이익! 쉬익! 나에게 쇄도하는 몇 개의 화살들. 저 쳐죽일 해골바가지들이! 나는 나에게 화살을 쏘고 있는 스켈레톤 아처(Skeleton Archer)들을 향해 악담을 퍼부어 대며 왼손과 오른손을 각각 휘둘러 버클러와 롱소드를 이용해 화살들을 쳐냈다. 후우… 이 짓도 꽤나 익숙해 졌어. 쿠쿠쿠쿠쿠쿠쿵~! 크아악! 이런 빌어먹을 일이 있나! 내 뒤에서 무서운 기세로 무너져 내리는 바닥들. 두 번째 함정의 방을 통과하니 더 이상 문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스켈레톤들과 함정들은 연합(?) 공격이 있었을 뿐. 아마 처음의 두 방은 경고의 의미가 강했던 모양… 제기랄! 나는 롱소드를 집어넣고 어깨 위의 샤프소드에 손을 가져갔다. 내 앞을 두 마리의 스켈레톤 워리어(Skeleton Warrior).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롱소드와 스몰 실드(Small Shield), 해드 캡(Head Cap)을 착용하고 있는 죽일 놈들! 저 꼴에 또 상당히 강해서 리자드 워리어들을 능가하기도 한다. 속도가 엄청나고 공격이 날카로운 것이… "하앗! 발검(拔劍)! 속검(速劍)!" 순식간에 뽑혀져 순식간에 스켈레톤 워리어들을 베고 지나가는 이 몸. 물론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지. 쿠콰아아아앙~! 저 끔찍한 함정이 있으니… 제길! 무슨 함정이 이렇게 길어! 무슨 마신의 신전이 이러냐고! 신전이 다 부숴지는 것을 각오하겠다 이거쇼!? 가르륵! 크륵! 난 저 소리도 싫어! 말을 못하면 소리를 내지 말란 말야! 나는 다시 내 앞을 가로막는 좀비(Zombi)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저놈들은 베면 느낌이 이상해서 싫은데… 나는 투덜거리며 검과 왼손을 들어올렸다. "하앗! 더블 크로스(Double Cross)!" 나는 샤프소드와 OPG를 함께 휘두르며 망할 좀비들을 스쳐지나갔다. 쿠에에엑! 젠장! 차라리 리자드들의 괴성이 더 듣기 좋았지. 저런 가래 끓는 소리라니… 콰콰콰콰콰콰콰쾅! "왜 안 끝나는 거야!" 나는 내게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내며 짜증이 담긴 고함소리를 질렀다. 젠장! 이 던젼 만든 놈이 누구냐! 머리통을 뽑아 줄까 보다! 무슨 함정이 이렇게 무시무시해! 렙 200짜리 던젼도 이렇지는 않았어! 쿠쿠쿠쿠쿠쿠쿵~! "망할! 도대체 왜… 이건 뭐야!" 나는 내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벽을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왜 길이 막힌 거냐!? 주위를 둘러봤지만 다른 통로는 없었다. 이 길은 일자라고! "젠장!" 나는 무서운 기세로 무너져 내리는 통로를 보며 이를 갈았다. 이런… 최대한 벽에 가까이… 나는 길을 막고 있는 벽에 몸을 바싹 갔다댔다. 쿠쿠쿠쿠쿵~! "으아아앗! 엥?" 무너져 내리는 길과 그 아래의 검날 들을 보며 비명을 지르던 나는 갑자기 내가 서 있던 장소가 푹 꺼지자 순간 당황했다. "뭐, 뭐냐아아아앗!" 나는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고 곧 내가 어두운 통로를 따라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아차렸다. 크읏! 이런 거였나? 빌어먹을! 엄청 놀랐네… 호… 이거… 생각보다 재밌잖아! 슬라이드를 타는 듯한… 퍼억! "꾸에엑!" 재밌다고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튀어나와 있는 날카로운 돌멩이에 머리를 박고는 비명을 질렀다. 크으… 역시 고달퍼… 쿠당! "크윽… 엉덩이야…." 바닥에 떨어진 나는 엉덩이를 문지르며 신음을 흘렸다. 그 망할 슬라이드 통로는 거의 10분 가량 계속되었다. 도대체 얼마나 깊은 거야? 거기다 깔끔하지가 않아 돌에 찍힌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후우… 여기도 횃불이네? 아, 화롯불인가?" 나는 이 방의 중간에 위치한 화롯불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화롯불이 크기는 했지만 하나 밖에 없어 선지 좀 어둡구나… 크르르륵! 음? 이 소리는? 왠지 정감이 가는 것이 아까 좀비들의 끔찍한 괴성을 들으며 떠올렸던 소리가 아닌가? 아… 왠지 반가운 느낌이 드는데? "……이, 이게 아니잖아! 어디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히 몬스터는 없었고 다만 방의 저~ 끝에서 한 거대한 물체가… 나는 좀 어두운 저 쪽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리자드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입을 쩍 벌렸다. 저… 저건… 분명 한 마리. 리자드 한 마리. 그래, 이 큰방에 단 한 마리야. 그런데 이 엄청난 위용과 공포는… 크라라라라락! "마, 마스터(Master)!" 리자드 마스터닷! 왜 여기에 저런 끔찍한 괴물이… 아… 렙 150이 간신히 통과한다는 말이 바로 이거였나? 하긴 아까 함정들과 스켈레톤들도 나 같은 특이한 놈이 아니었으면 금방 죽었을 만한 곳이었지만 렙 150정도면 그리 엄청나게 어렵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지… 크라라라라락! 시, 싫어… 전에 저 놈을 이긴 건 우연이었다고… 신나게 얻어터지다가 간신히 이긴 거였는데… 크라락! 리자드 마스터는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제길! 음? 샤프소드를 들어올리며 준비하던 나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리자드 마스터의 움직임이 저번에 만났던 놈보다 좀 느렸다. 여기에 있는 놈은 조금 약한 놈? 후훗! 좋아. 그럼 가능성이 있지. 이 방은 조금 어둡고 화로가 있는 중앙을 제외하면 좀 떨어진 곳은 상당히 어둡지. 하지만 은신술 스킬을 올린 나에게는 그다지 어두운 곳은 아니다. 거기다 다른 몬스터들은 보이지 않고… 식스센스에도 걸리지 않아. 거기다 이런 돌 바닥과 이런 형태의 방에는 기관이나 함정을 설치하기 어렵지. 후후후… 그렇다면… 크라라락! "훗! 잡아봐!" 나는 즉시 은신술을 발동시키며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리자드 마스터는 갑자기 내 몸이 사라지자 어리둥절해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좋아 뒤로 이동… 크라락! 헛!? 내가 몸을 움직이자 나를 감지했는지 리자드 마스터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크웃! 부우웅! 엄청난 소리를 내며 휘둘러지는 클레이모어! 나는 급히 뒤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리자드 마스터가 잠시 몸을 주춤하는 순간.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감췄다. 크르르… 리자드 마스터는 내가 다시 사라지자 괴성을 흘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좋았어. 여기서 공격을 한 다음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훗! 대거 댄싱!" 내가 입을 열자마자 리자드 마스터는 내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리자드 마스터가 공격을 하기도 전에 날아드는 6개의 단검들. 스킬 레벨이 30을 넘어섰기에 가능한 일이지. 6개의 단검 중 4개는 갑옷에 맞고 튕겨나왔지만 2개는 각각 팔과 다리에 명중했다. 좋아. 다시 숨자! 크라라락! 리자드 마스터는 내가 또 없어지자 상당히 열이 오른 듯 괴성을 질러댔다. 크큭. 화가 나나 보지? 나는 점점 뒤로 이동해 리자드 마스터에게서 떨어졌다.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동해 리자드 마스터의 뒤로 가는 거다! 음? 등 뒤에… 몬스터나 함정은 아니고… 그냥 벽 같은 거로군. 조용히 등을 가져가자. 스슥. 리자드 마스터를 주시하며 조금씩 뒤로 이동하던 나는 등뒤에 뭔가가 닿는 것을 느꼈다. 흠… 벽은 아니네. 손을 내밀어 슬쩍 만져본 나는 이게 감옥 등에 쓰이는 쇠창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옥인가? 안에 몬스터는 없고… 내가 마신의 신전에 들어 온지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훨씬 넘게 지났다. 처음 스켈레톤들이 있던 방은 3시간만에 지났지만 두 번째 함정의 방에서 거의 반나절을 넘게 소비했다. 함정에 호되게 당한 후, 긴장에 또 긴장. 신중에 신중을 기해가며 천천히 통과했기 때문이었고 그 다음 복합의 방에서는… 말하기도 싫다. 정말 끔찍했지 정말 잠도 못자고 비전투시에 육포가 한두 개씩 뜯어먹고 말았으니… 하지만 이 하루하고 반나절이 넘는 시간동안 초긴장 상태였던 내 식스센스 스킬의 레벨은 무섭도록 성장했다. 무려 9나 올라서 현재 25. 덕분에 주위에 뭐가 있나 없나. 주위에 있는 것이 몬스터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저번에 솔져라는 직업을 처음 얻었을 때에 보였던 것에 비하면 새 발에 피였지만… 어쨌든 감옥 안에 몬스터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슬슬 옆으로 이동하며 리자드 마스터의 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크르르… 리자드 마스터의 울음소리가 점차 크게 들려온다. 리자드 마스터의 등뒤가 보인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나는 엄청난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리자드 마스터의 등뒤로 다가가고 있었다. 후… 심장이 터질 것 같아. 크르르… 헉!? 드, 들킨 줄 알았잖아… 나는 리자드 마스터가 갑자기 꿈틀거리자 흠칫하고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크르… 좋아. 괜찮은 거리야. 여기서 연속기를 날리는 거다! 후우… 너무 긴장해도 될 일이 안 된다. 좋아! 승부를 가리자고 리자드 마스터! "대거 댄싱!" 슈슈슉! 크앙!? 내 외침과 함께 날아가는 단검들. 그리고 순간적으로 흠칫하는 리자드 마스터. 찰나의 시간. 나는 단검들과 함께 리자드 마스터의 등으로 달려 들었다. "발검(拔劍)! 연환격(連環擊)! 속검(速劍)!" 나는 순식간에 리자드 마스터의 등뒤로 쇄도했다. 크아아악! 내 단검에 어깨와 목을 찔린 리자드 마스터가 괴성과 함께 목을 돌리려 했다. 그렇게는 안돼! 나는 순식간에 샤프소드를 뽑아들며 검을 휘둘렀다. 위에서 내리찍고. 크아악! 양옆에서 벤 다음! 크라라라락! 속검(速劍)! 순식간에 리자드 마스터의 등을 난도질한다! 크라라라락! 그리고… "더블 크로스!" 나는 OPG의 손톱과 검을 세우며 공격해 들어갔다. 하지만 리자드 마스터는 드디어 몸을 돌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내 공격은 절반만이 성공했다. 검은 실패, OPG로는 성공. OPG는 리자드 마스터의 갑주를 뚫기는 했지만 그리 큰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크라라라락! 크윽! 실패다. 크로스를 사용하면 스쳐지나가서 멈추기가 힘들어! 화로 바로 앞에서 간신히 멈춰 섰다. 급히 몸을 돌리니 살기가 철철 흘러 넘치게 변한 눈을 부라리며 클레이모어를 휘두르는 리자드 마스터를 볼 수 있었다. 크윽! 젠장! "으아아아! 살검(殺劍)!" 나는 몸을 비트며 리자드 마스터의 목을 노리고 검을 내찔렀다. 푸확! 크륵! 공격은 성공! 리자드 마스터의 목을 연속으로 찌르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또한 리 자드 마스터의 클레이모어는 나의 몸을 가격했다. 엄청난 상처와 함께 뒤로 날려 가는 나. 쾅! 투화악! 나는 화로와 부딪히며 바닥을 굴렀다. 수많은 불똥들이 휘몰아치는 것을 바라보던 나는 정신을 잃었다. "크으으…." 나는 눈을 뜨자마자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신음을 흘렸다. 끄으으… 죽지는 않은 모양이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을까? "………." 나는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몸을 느끼며 시간을 확인했다. 으… 7시간이 지났어? 그럼 이 던젼에 들어 온지 대충 이틀이 되는 건가? "크윽." 나는 고통을 참아가며 몸을 일으켰다. 어두웠다. 내가 날아가며 화롯불을 넘어뜨리는 바람에 불은 없어졌고 덕분에 주위는 굉장히 어두웠다. 나도 간신히 바로 앞을 대충 알아 볼 수 있을 정도. 발광석(發光石)이 하나 있기는 한데… 아직까지 무사한걸 보니 리자드 마스터도 죽고 다른 몬스터도 없는 모양이다. 괜히 소비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품속에서 포션을 꺼내 상처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정말 엄청난 상처였는데 내 허리의 3/1가량이 잘린 것 같았다. 어두워서 상처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붕대를 다 감은 나는 다시 드러누웠다. "젠장… 그냥 포기하고 싶군… 얼마나 더 있을 지 모르는데… 크크…." 왠지 내가 폐인이 되가는 기분이야.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상처가 쑤시기는 했지만 내가 기절한 동안 아이템들 덕분에 회복이 됐고 다만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있었기에 H.P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던 거였기에 상처를 치료하자 몸 상태는 많이 괜찮아 지고 있었다. 그때 메시지가 뜨기 시작했다. 어라? 귓말은 안 되던데? <축하드립니다. 2계급으로 승급하셨습니다. 보너스 스탯을 분배하시길 바랍니다> 아… 승급한 건가? 리자드 마스터를 잡아서? 과연 레벨을 확인해 보니 101로 올라 있었다. 던젼에 들어와서 죽인 몬스터들하고 리자드 마스터가 합쳐져서 레벨이 꽤 오른 모양이었다. 7이나 올랐으니… 하긴… 리자드 마스터는 경험치를 꽤 많이 주고 스켈레톤에 좀비들을 엄청나게 죽여댔으니… 보너스 스탯 50은 힘에 10. 순발력에 15. 체력에 10. 재주에 10. 지력에 5를 올렸다. 지력을 올리면 마나가 올라가니까… 스탯 분배를 끝낸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시체를 확인해야겠지? 돈도 좀 있나 보고…." 집중이 되지 않아 식스센스가 별 다른 효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손으로 더듬으며 바닥을 기어다녔다. 리자드 마스터의 육중한 몸을 발견한 후, 나는 주위에서 많은 동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템들도 있었지만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어차피 여기서는 아이템도 떨구지 않으니 좋은 아이템이 있을 리가 없다. 클레이모어는 찾을 수 없었다. "크으… 벽에 기대어 있는 게 좋을까?" 나는 리자드 마스터의 시체를 지나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얼마 후, 나는 반대쪽에 있던 것과 같은 쇠창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크으… 설마… 몬스터가 있는 건 아니겠지…?" 잘 되지 않는 식스센스를 발동해 본 나는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그다지 위험한 느낌은 들지 않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몬스터는 없는 것 같았다. 아마 이 방은 리자드 마스터가 차지하고 있던 곳인 것 같았다. 어차피 죽으면 죽는 거고… 손을 더듬어 문을 찾아낸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몬스터가 있으면 발광석을 키면 되고 만약 다른 방에서 몬스터가 넘어오기라도 한다면 여기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크으… 더럽게 아프네… 바닥에 뼈다귀는 없고…." 습관적으로 뼈다귀의 존재 여부를 확인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더 이상 서 있기가 힘이 들었다. 후우… 바닥이 차구만… 나는 손을 더듬으며 벽을 찾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아… 도대체 벽이 어디… 응?" 물컹. 헥!? 뭐냐? 나는 뭔가 부드러운 것을 만지고는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뭐, 뭐지? 뭔가 이상하면서도 기분 좋은… 머리를 휘저은 나는 품속에서 발광석을 꺼내 들었다. 뭔지 확인하는 게 좋겠어. 피이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발광석이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발광석을 바닥에 내버려두고는 내가 손을 더듬었던 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힉!?" 여자!? 나는 웬 여자 하나가 쇠고랑에 묶여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헉! 그럼 내가 만졌던 건… 으으… 머리에 피 몰리네. 거기다 발가벗고 있잖아. "누구지? 여기에 유저가 있을 리가 없으니 NPC인가?" 그 여자를 자세히 살펴본 나는 신음을 흘렸다. 약간 검은 피부와 뾰족한 귀. 그리고 엄청난 미모… "엘…프(Elf)? 다크 엘프인가?" 뾰족한 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엘프고… 피부가 검으니 다크 엘프… 필에게서 들은 말에 의하면 확실하군.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의 몸에는 상처들과 멍자국들이 상당히 많았다. 아무래도 몬스터들에게 잡혀온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은 살아있다. "아무래도 치료를 해주는 게 좋겠지?" 그런데 포션이 NPC에게도 먹히나? 나는 의문 부호를 떠올리며 포션을 다크 엘프의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흠… 낯뜨거워라. 상처에 포션을 바르고 새 포션을 꺼낸 나는 다크 엘프의 입안으로 포션을 흘리기 시작했다. 흠… 먹히는 건가? 상처에 붕대도 감아준 나는 망토를 벗어 엘프의 몸을 덮어 주었다. 크으… 솔직히 더 보고 싶은데… 머리를 부여잡고 마음을 가라앉히던 나는 쓰러져 있던 다크 엘프의 숨소리가 안정되어 가는 것을 느끼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의 숨을 멈추고 있더니… 그래도 깨어나려면 멀었겠지? 잠이나 잘까? 로그아웃이 될지 모르겠네? 게임에서 자는 것도 가능하지만… 거의 가수면 모드 수준이다. 캡슐 수면이라는 건데 게임 안에서 자는 거기도 하고… 간단히 설명하면 로그아웃을 반정도 한 거라고 할까? 게임 캡슐 안에서 자는 거니… 어쨌든 그거라도 안 하면 강제 로그아웃 되겠지? (3일 밤 동안 게임에서 잠을 자면 강제 로그아웃 시간이 하루 연기된다. 잠을 자지 않으면 피로도가 올라가 굉장히 졸리고 몸 동작이 둔해진다.) 나는 침낭도 꺼내지 않고 잠에 빠져들었다. 게임에서 졸음을 느끼다니… 진짜 실감나는 가상현실이야… 응? 내가 왜 일어났지? 게임에서 잠을 자면 날이 밝지 않는 한 피로가 다 회복될 때까지 자게 되는데… 여기는 해도 없는 데다가 아직 굉장히 졸리고 몸 상태가 나쁜데… 몬스터라도… 부스럭.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나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잠을 자다가도 위험을 감지하면(능력치가 되는 한도에서) 깰 수도 있다. 특히 지금은 안전지대 설정도 되어 있지 않으니… 몬스터? 발광석은 꺼져 있었고 주위는 상당히 어두웠다. 뭐지? "으으음…." 웬 여자의 신음소리… 미치겠군. 아까 그 다크 엘프인가 보지. 내 망토를 덮어줬으니… 하아… 내 망토가 끌리는 소리였잖아. 다시 게임 수면을 할까 생각하던 나는 시간을 확인해 보고는 발광석을 꺼내들었다. 이미 5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마 여기까지 오는데 힘이 들어서 아직 피곤한 모양이었다. 뭐, 이 정도면 괜찮지. 피이이… 발광석이 켜지자 나는 다크 엘프를 돌아보았다. 내 망토 속에서 곤히 자고 있었는데 완전히 회복된 모양이었다. 아마 이 이벤트에 첨가되어 있는 퀘스트 같은 건가 보지? 아마 여기까지 온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리자드 마스터를 잡는 게 힘들기도 하고… 어쨌든 이 엘프를 깨워야 얘기가 되겠군. "저기요. 일어나 봐요. 엘프 아가씨." 내가 몸을 흔들며 계속 불러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다크 엘프는 정신을 차렸다. 흠… 눈동자 색도 검은 색이네? 다크 엘프는 나를 바라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 ,누구… 꺄악!" 불안한 얼굴로 내 정체를 묻던 다크 엘프는 자신이 알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비명을 질렀다. 시끄럽다… 얼마 뒤 진정이 된 다크 엘프는 다시 내 정체를 물어왔다. "누, 누구시죠?" "모험가. 당신 다크 엘프입니까?" 내 질문에 다크 엘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 왜 여기에 있는 거죠?" 내 질문에 다크 엘프는 몸을 흠칫 떨더니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설명을 시작했다. "저, 저는 베르시나라고 해요. 제 약혼자에게 꽃을 선물하려고 잠깐 마을을 나왔었는데… 마을 근처에는 몬스터가 접근하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몬스터들이… 정신없이 도망을 치다 보니 이상한 남자가 나타나서 여기로 끌고 왔어요. 저, 저기에서 리자드 마스터가 지키고 있고… 흑." 설명을 하던 다크 엘프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크으… 진짜 같아. 정말 믿고 싶을 정돈데? 그럼 이 여자를 구해야 한다는 말씀? 하지만 어떻게? 혼자서 통과하기도 끔찍하게 힘든 곳인데… 거기다 NPC 아냐? 죽어도 별… 하지만 진짜 사람 같은걸… 하긴, 마을의 NPC들도 진짜 사람들 같았지. 크으… 구해주고 싶은데… "그런데 당신도 잡혀들어 왔나요?" 어느새 울음을 그친 다크 엘프… 베르시나라고 했나? 가 내게 물어왔다. "아뇨. 여기에 마신의 무구인지 뭔지가 있다고 운영자가 집어넣고 같는 데…." 아, 그러고 보니 NPC가 운영자라는 말을… 알고 있겠지. 마을의 NPC들도 자신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던데… 어떻게 보면 NPC들은 하나의 인공생명체지? "마신의 무구요? 그럼… 여기가 마신의 신전인가요?" 흠? 알고 있네? "예.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 그럼 당신이 리자드 마스터를…." "저기 죽어있어요." 내가 리자드 마스터의 시체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하자 베르시나는 놀랍다는 얼굴 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 대단하시군요. 그렇다면… 저기… 호, 혹시 제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부탁이라… "물론이죠." 내 말에 베르시나는 자신의 머리에서 작은 핀 하나를 꺼냈다. 저게 어디에 있었지? 몰랐는데? "그럼… 이걸 제 약혼자에게 좀 전해 주세요. 그리고 제 동생에게도…." 음? 구해달라는 말이 아니잖아. 이건 유언 아냐? 나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제가 사는 마을은 악마의 숲의 남쪽에 위치한 호수에 있어요. 저희 다크 엘프들은 인간들을 경계하지만 이 핀과 제 이름을 대면 들여보내 줄 거예요. 제 약혼자의 이름은 미시안이에요. 제 동생의 이름은 베르시아고…." "당신은 나가지 않습니까?" 내 질문에 다크 엘프는 슬픈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될 거예요. 여기에는 몬스터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저까지 따라가면… 그리고 이 족쇄에는 마법이 걸려져 있어요. 절 여기로 끌고 온, 마기를 풍기던 남자가 채워놓은 건데… 아마 억지로 풀면 그가 눈치챌 거예요. 게다가 그 남자는 저기에 있던 리자드 마스터를 조종하던 사람이에요." 베르시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샤프소드를 뽑아들었다. 베르시나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나는 베르시나의 발에 차여 있는 족쇄의 쇠사슬을 겨냥했다. "비키세요. 저랑 같이 나가다 죽든 여기서 그놈에게 죽든 똑같습니다. 여기에 남으면 무조건 죽어요. 조금이라도 살 가망이 있는 것에 희망을 거는 게 좋지 않습니까?" 내 말에 베르시나는 감동을 받은 듯 나를 바라보았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좀 멋진 말이지. 하지만 진심이다. 아무리 NPC라도 이런 곳에서 죽게 하기는 싫다. 망할 운영자 자식들. 아, 페페는 빼고. 이 던젼을 만든 놈을 만나면 반드시 한방 갈기고 만다. "후… 한번에는 안 되겠지? 살검(殺劍)!" 샤프소드가 빠르게 움직였다. 깡. 칭. 챙! 세 번째 공격에 쇠고랑은 깨져나갔다. 한숨을 내쉰 나는 베르시나를 일으켜 세웠다. "읏샤. 그 핀은 직접 전해요. 내가 도와줄 테니까." 베르시나는 좀 불안한 얼굴이었지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걸을 수 있어요?" "예." 나는 망토를 제대로 입혀주고 바닥에서 발광석을 집어들었다. 아직 수명이 꽤 남아있겠지. "따라오세요. 주위를 잘 살피고요." 베르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에 바짝 붙었다. 이 방에는 몬스터가 없었는데… 그래도 긴장하자. 식스센스가 발동되며 주위를 살폈지만 역시 몬스터는 없었다. 베르시나가 말했던 놈이 나올지 모르니 조심하고… "와… 정말로 리자드 마스터가…." 음? 베르시나가 리자드 마스터의 시체를 보며 감탄을 토했다. 이상하네? 아직 안 없어졌어? 아, 이벤트, 퀘스트 중이라 그런가? 내가 성공하거나 실패하면 새로 생기는 모양이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 하는 베르시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NPC라는 느낌보다는 진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베르시나는 죽으면 다시 생기지 않겠지. 일시적인 퀘스트의 조각이니까. 거기다 NPC들은 진짜 사람하고 비슷하게 만들어 놨으니… 하지만… 여기서 같이 살아나가면… 살 수 있겠지. 나는 샤프소드를 꽉 움켜지며 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커다란 문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핫! 이, 이 느낌은…." 갑자기 베르시나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왜 그러지? 핫!? "누구냐!?" 나는 그대로 단검을 집어던졌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장소로 빠르게 날아간 단검은 그대로 허공을 통과했다. 어디로 갔지? "꺄악!" "이, 이런! 베르시나! 누구냐!" 단검을 꺼내며 뒤를 돌아보니 베르시나의 가슴에 검이 하나 튀어나와 있었다. 제기랄! 나는 베르시나의 뒤로 단검을 집어던졌다. 쉬익! 스스슥! 뭔가 움직였다. 나는 식스센스에 무언가가 걸리는 것을 느끼며 쓰러지는 베르시나를 안아들었다. 제길! 심장을 관통했어! 아직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는지 베르시나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 부탁… 기억해…… 감사…." 베르시나의 몸이 축 늘어지는 것을 느낀 나는 이를 뿌드득 갈며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이 느껴지는 곳으로 단검을 집어던졌다. "대거 댄싱!" 세 개의 단검이 약간의 간격을 벌리고 날아갔다. 챙! 단검 중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건… "다크… 워리어?" 마신이 신전에 들어오기 전에 홈페이지에서 확인했던 어둠의 몬스터 중에 있던 놈이다. 하급 마족… 어둠의 전사…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공격하는… 나는 살기를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 "네놈이냐?" 다크 워리어는 기분 나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크크크… 그렇지… 오랜만에 재미를 좀 보려고 잡아온 계집이었는데… 네놈덕분에 망쳤군…." "으드득… 네놈! 베르시나를 건드린 거냐!" 내가 이를 갈며 소리치자 다크 워리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뭘 모르는군… 엘프들은 강제로 순결을 잃게되면 그대로 자살하지… 그건 다크 엘프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년의 꿈속에서는 즐거웠지… 케케케…." "개자식! 죽인다!" 베르시나를 안고 있었기에 달려들지는 못한 나는 단검을 집어던졌다. 하지만 다크 워리어는 간단히 막고는 케케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케케케… 진정하라고… 크크크크… 어차피 네놈이 신전의 끝에 다다르면 만나게 될 테니… 케케케… 내 장난감이던 도마뱀을 죽이다니…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놈이군… 크크… 이제 거의 다 왔으니 열심히 해 보라고… 케케케케." 그 말을 끝으로 다크 워리어는 어둠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단검을 하나 더 던졌지만 단검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개자식…! 반드시 죽인다!" 그리고 이 던젼을 만든 새끼도 언젠가 경을 치게 해주지… 크크크… 너무 실감났어… 빌어먹을! 젠장! NPC의 시체는 왜 빨리 사라지지 않는 거야!? 앙! 이 빌어먹을 운영자야! 만나게 되면 정말로 지옥을 경험하게 해 준다! "젠장!" 나는 욕설을 퍼부으며 망토를 몸에 걸쳤다. 바닥에 눕혀둔 베르시나는 내 침낭 속에 들어가 있었다. 다크 워리어가 사라지고 얼마 후, 분노를 가라앉히고 어느 정도 냉정을 되찾은 나는 사라진 다크 워리어를 찾아내 반드시 죽이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러려면 이 던젼의 끝까지 가야한다… 그리고 아무래도 다크 워리어 쯤 되는 놈이라면 흑마법도 사용할지 모르고 그렇다면 천상의 망토가 꼭 필요했다. 때문에 베르시나의 시체에서 망토를 벗기고 침낭 속에 뉘여 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핀도 챙겼다. 죽어서 나가더라도 부탁은 들어줘야지… "흐으… 마치 현실 같아… 그나마 몬스터를 죽일 때는 괜찮았지…." 그야말로 죽은 듯이 누워있는 베르시나를 바라보던 나는 이를 갈며 문으로 다가갔다. 젠장! 그 다크 워리언지 하는 자식! 반드시 죽인다! 후…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이 던젼을 통과해야지… 끼이이이이… 커다란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나는 굳은 얼굴로 방안으로 들어갔다. 화아악! "여긴…." 횃불들에 불이 들어오며 나타난 모습은 지금껏 왔던 방들과 똑같은 방이었다. 방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큰, 세 번째 방하고 비슷한 크기로 보였는데 식스센스가 쉴새 없이 위험신호를 보냈다. "쳇!" 혀를 찬 나는 문을 도로 닫았다. 몬스터가 베르시나의 시체에 딴 짓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내 퇴로가 줄어들지만… "있음직한 함정은… 걸음을 옮기면 화살이 날아오거나… 길이로 보니 기관장치를 하기에 좋아 보이는군. 전과 같은 바닥이 내려앉는 함정도 가능하겠어…."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는 나였다. 크으… 설마 여기도 그럴까… 나는 바닥에 함정을 설치한 흔적이 없는 지주의 살펴보며 걸음을 옮겼다. 한 10M 정도 전진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 것도 없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다시 한번 주의 깊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무 것도 없었다. 몬스터도 함정도. 함정은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함정만 몇 개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느낌이 너무 불길했다. "뭐지? 느낌이… 상당히 좋지 않은데…." 내 발 앞에 아무런 장치도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후… 불길하다… 나는 샤프소드를 꽉 움켜잡았다. 후우… 절대로 죽을 순 없어! 저벅… 저벅… 저벅. 지이잉… "흡!" 젠장! 뭐야!? 분명히 아무 것도… 기관이 움직이는 기미도… 하지만, 분명히 뭔가가 반응을… 화아아아악! 화르륵! 삽시간에 주위가 밝아졌다. 그리고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뭐…지?" 황급히 주위를 두러본 나는 엄청난 수의 불덩어리들이 날아오는 것을 발견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마법이었군. 나에게 마법을 감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기, 마나를 다루는 수준까지 성장했다면 모르지만… 제길! 식스센스가 위험신호를 보내던 것이 바로… 화르르륵! 나는 바로 내 눈앞까지 다가온 불덩어리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끄, 끝이다… 아, 안돼! 그 개놈의 자식을 만나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 나는 이를 악물며 망토로 온 몸을 감쌌다. 크으… 제발 막아라… 죽을 수 없닷! 쉬이이이잉! 어!? 뭐지? 나는 갑자기 내 몸 주위로 솟아오르는 검은빛의 기둥을 보며 당황했다. 그 기둥은 원통형으로 내 몸 주위를 둥그렇게 감싸고 있었는데 짙은 검은빛을 띄고 있었는데도 나는 그 빛의 기둥 너머를 볼 수 있었다. 빛의 기둥과 충돌하는 불덩어리들. 콰아아아앙! 막았다!? 불덩어리들과 부딪히며 빛의 기둥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불덩어리들이 모두 터지고 나자 그 기둥도 사라졌다. 뭐, 뭐야… "허억!?" 털썩. 몸에 힘이 쭉 빠져 바닥에 쓰러진 나는 신음을 흘렸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 그때 내 눈앞에 작은 메시지 창이 뜨기 시작했다. <경고합니다. 스킬의 과도한 사용으로 H.P, M.P, 스태미나가 모두 떨어지셨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스킬? 난 스킬 쓴 적 없어! 나는 급히 캐릭터 창을 불러냈다. 그리고 곧 경악하고 말았다. 허억! H.P가 11? MP는 24고… 스태미나 79라… 지금도 계속 차고는 있었지만 지금의 수치로 내가 쓰러졌을 당시 수치들이 어땠을 지를 알 수 있었다. "주, 죽을 뻔했잖아… 그런데 나는 스킬을 쓴지가… 아!" 내 머리 속에 전에 페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솔져만의 스킬이 하나더 있기는 한데… 이건 나중에 계급이 올라가면 익힐 수 있으실 거예요. 그러니 나머지 스킬 하나는 남겨두세요.> 계급이 올라가면 익히게 된다고 했었지? 그러고 보니 리자드 마스터를 죽이고 계급이 올랐었는데…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스킬 창을 불러내었다. 마지막 비어있던 슬롯. 거기에는 어떤 인영의 머리가 그려진 그림과 '마인드 바리어(Mind Barrier= 정신 방벽) '라는 문구가 들어서 있었다. "정신 결계? 뭐 하는… 아, 아까 그건가?" 아까 내 몸을 감쌌던 검은빛의 기둥을 떠올린 나는 급히 스킬의 효과를 찾아보았다. 마인드 바리어 시전자의 의지에 반응해 정신력으로 물리적, 마법적 타격을 막아내는 방벽, 결계, 바리어를 만들어 냄. 레벨이 올라갈수록 만들어내는 방벽, 바리어의 위력과 범위가 넓어짐. 식스센스 스킬과 연계. 식스센스 스킬의 레벨이 높을수록 정신력이 높아져 크고 강력한 바리어 생성이 가능. *스킬의 레벨에서 불가능한 크기의 바리어를 만들어 낼 때 M.P, 스태미나, H.P 순으로 감소. 후아… 바리어? 그런데 방금 그거 만들고 이렇게 쓰러졌는데… 그럼 작은거 밖에 못 만들겠네? 그래도 마법을 막을 수 있으면… "후… 언제 연습을 좀 해봐야겠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던 나는 뭔가를 깨닫고는 이번에는 머리를 휘저었다. 아니지. 이 방안을 보니까 마법 트랩만 설치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지금 해봐야 되나? 흠… 그럼 우선 회복부터 하고… 나는 포션을 몇 개 들이키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가오거나 눈에 들어오는 몬스터는 없었다. 얼마 후, H.P와 M.P가 어느 정도 차 오르자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 마인드 바리언지 정신 방벽인지 뭔지를 사용해 보려는 찰나… 나는 중요한 문제점에 봉착했다. "이거… 어떻게 쓰는 거냐?" …… 후… 어떻게 쓰는지 뭘 알아야 쓰던지 말던지 할거 아냐. 머리를 붙잡고 고민하던 나는 스킬 설명에 있던 문구를 기억해 냈다. 시전자의 의지에 반응해… 어쩌구 저쩌구… 흐음… 기술을 만들던 때처럼 이미지를 떠올리는 건가? 결론을 내 린 나는 자그마한, 내 손바닥만한 빛의 방패를 떠올렸다. 으으… 상상력이 부족해. 쉬이이잉. "헛!?" 나는 내 앞의 공중에 나타난 조그만 방패 모양의 빛의 장벽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그럼 좀 크게 해서… 내 몸통 만하게만… 쉬이이잉. 순식간에 작았던 바리어가 내 윗통 만하게 커졌다. 오오! 신기한데! <경고합니다. 과도한 스킬의 사용으로 M.P가 떨어졌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젠장! 이만한 걸 만드는 데는 마나가 필요한가 보지? 흠… 나는 계속 연구한 결과 내 왼손에 붙어 있는 버클러와 비슷한 크기가 한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 스킬 레벨은 1이지만 식스센스가 높아서 이런 모양인데… 나중에 가면 꽤나 쓸만해 지겠다. "좋아… 스킬 탐색도 끝났고… 슬슬 전진해 볼까?" 나는 자그마한 빛의 방패를 내 주위에 맴돌게 하고서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후… 땀난다. 저만한 놈을 만드는데도 엄청나게 힘들더니 저렇게 돌아다니게 하니까 아주 죽겠구만.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크으… 평소에 책을 좀 읽어서 풍부한 상상력을 키우는 건데… 그런데 저런 조그만 놈으로 아까 그 불덩어리들을 하나라도 막을 수 있을까? 나는 내 손바닥만한 빛의 방패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흐음… 에이 위험하면 좀 크게 키우지 뭐. 저벅, 저벅. 으으… 또다시 식스센스가 요동을 치는군. 나는 식스센스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빛의 방패가 사라져 버렸다. "………." 미치겠다. 내 정신력이 이렇게 허약했단 말인가? 아마 스킬 레벨 탓도 있겠지만 이미지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내게도 문제가… 자기 혐오에 빠져 있던 나는 고개를 휘젓고는 다시 식스센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발동되면 만들지 뭐. "저긴가?" 나는 내 앞 5M 정도의 바닥을 보며 중얼거렸다. 식스센스가 그 즈음에서 가장 심하게 반응하는 것이… 흐으… 레벨만 높았어도… 하지만 그 주변에서도 쉴새 없이 불길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그 지점을 우회해서 걷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지잉. 헛!? 나는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뭔가가 느껴진 것 같았는데… 급히 양옆을 살펴본 나는 불덩어리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다… 퍼어엉! "커헉!" 순간 나는 등뒤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고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다. 크으으… 뒤에서 오고 있었구나… 빌어먹을… 왠지 점점 멍청해져 간다는 듯한 느낌이… 부우웅! 공중을 아름답게 비행한 나는 기둥하나에 부딪히며 바닥에 떨어졌다. 으으으… 등판에 삭신에 쑤시는 구만… 쿠콰콰콰쾅! 헉!? 이, 이런 소리는 왠지 불길해. 저번에 바닥이 무너질 때도 이런 소리가… 힘겹게 고개를 돌린 내 눈에 엄청난 기세로 타오르며 내게로 다가오는 불의 장벽이 비쳐졌다. 저, 저게 바로 파이어 월(Fire Wall)? 그 불의 장벽은 엄청난 속도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으으… 벌써 거의 다… 쿠쿠쿠쿠쿠! 시, 싫다… 복수고 뭐고 당장 살기가 급박하니…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나는 기둥에 등을 기댄 후 망토를 덮고 버클러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쉬이이이잉! 내 앞으로 생성되는, 내 앉은 키를 조금 넘는 크기의 검은빛 바리어. 역시 짙은 검은빛을 띄는 그 바리어 너머로 다가오는 불의 장벽을 볼 수 있었다. 크으… 머리 아퍼… <경고합니다. 과도한 스킬사용으로…> 크아악! 짜증나네! 그럼 죽을까? 나는 경고 메시지를 아예 꺼버리고는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불의 장벽이 바리어와 부딪혔다. 콰차차차창! 엄청난 소리와 함께 충돌을 일으키는 바리어와 불의 장벽의 일부. 그리고 곧 바리어가 깨져 나갔다. 크으… 내 머리도 아프다… 하지만 충돌을 일으켰던 불의 장벽의 일 부분의 불길이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으음… 한번 해보자! "으아아앗!" 나는 불길이 약해진 부분으로 몸을 날렸다. 지글지글… 허억! 내 머리카락 타는 소리가… 끄으으… 엄청 뜨겁네… 투확! 그리고 순간적으로 내 몸은 불의 장벽을 뚫고 굴러 나왔다. 크아아… 일진이 왜 이럽니까? "쿨럭, 쿨럭. 켁켁. 흐아아…." 주저앉아 기침을 해대던 나는 급히 포션을 꺼내 그냥 몸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온몸이 화상인데… 신음을 흘리며 일어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정말 불덩이 천지네… 좀 시원한 거라도…." 쉬이이익! 촤아아악! "………." 나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얼음의 창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젠장! 정말 이 던젼이 내 말을 알아듣는 다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어! 나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얼음 창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젠장! 그래! 이렇게 된 거 이판 사판이지! 나는 샤프소드를 움켜쥐며 통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냥 끝까지 뚫고 가 주마!!!" 나는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나에게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얼음의 창들. 하지만 내가 달려가고 있으니 내게 적중하는 건 저거 하나다! 나는 정면에 위치한 얼음의 창을 향해 단검을 집어던졌다. 통할까? 쉬이익! 챙! 단검은 얼음의 창의 일부분을 부수는 것에서 그쳤다. 후후… 좋아! "속검(速劍)!" 나는 샤프소드를 빠르게 휘둘러 얼음의 창을 깨부쉈다. 얼음 조각들이 비상하며 내 얼굴에 날카로운 상처를 입히고 지나갔다. 크으… 이거는 약과지… 화아아악! 이번에는 불덩이냐? 사방에서 날아오는 불덩어리들. 후우… 아직 문은 보이지도 않아… 나는 급히 바리어를 만들어내었다. 저놈들은 검으로 어떻게 할 성질의 놈들이 아냐… 하지만 달리면서 바리어를 함께 움직이기는… 그렇지! 쉬이이잉! 나는 내 앞에 나타난 버클러 크기의 바리어에 왼손에 장착된 버클러를 가져다 대었다. 딱 맞네? 좋아! 이대로 유지하자… 화르르르륵! 불덩어리들이 무서운 기세로 내게 날아들었다. 으아아! 끝까지 달린닷! 쿠당탕탕~! "흐으으…." 문을 거의 박살내듯이 열고 뛰어든 나는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허억… 살았다… 저 끔찍한 마법 트랙을 통과했어… 으… 이 버클러에 바리어를 친 게 성공했군… 내가 생각해도 대단했어… 거의 500M는 되는 거리를 통과하다니… "여기는…." 내가 뛰어들어온, 혹은 굴러들어온 방안은 상당히 어두웠다. 저 멀리 보이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굉장히 고급스럽고 예술적으로 보이는 문의 옆에 걸려있는 두 개의 횃불이 조명의 전부였다. "저… 문은…." 서, 설마 다 온 건가? 아까 마법 트랙들이 끝? 나는 벌떡 일어나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희미하게 보이고 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저, 저기가… 핫! 그렇다면 여기에… "…생각보다 빨리왔군… 케케케…."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나는 앞으로 점프하는 동시에 몸을 비틀며 단검을 집어던졌다. 챙! 허무하게 떨어져 내리는 단검. 어둠 속으로 희미하게 다크 워리어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크… 날 봐준 건가? 식스센스에 걸리는 몬스터의 존재는 이 방에서 다크 워리어 하나였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다크 워리어를 바라보던 나는 다시 살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죽여주마."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내 공격은 허공을 갈랐고 다크 워리어의 모습은 금새 사라졌다. 제길! 이런 어둠에서는 저놈이 훨씬 유리해. 나는 이를 갈며 정신을 집중했다. 식스센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크크크크…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군… 어쨌든 대단하다고 해 주지… 그 마법 트랙을 뚫고 오다니 말야… 나도 그리 쉽게는 뚫지 못할 건데… 케케케… 살기를 좀 가라앉히시지…." 나는 이를 갈며 발광석들을 여러 개 끄집어냈다. 이걸로 어느 정도 주위를 밝히는 수밖에… "…흥분을 가라앉히라니까… 어차피 그년이 죽은 것도 네놈 잘못인데… 케케케…." 저 개 같은 자식이! "닥쳐!" "…싫구만… 여기에 인간이 들어온 게 오랜만이라… 그리고 사실이 아닌가? 크크크… 네가 그대로 두고 왔으면 죽지는 않았겠지… 케케케… 아, 아니군… 내가 직접 죽여서 시체를 보여 줬을라나? 케케케… 그럴 때의 인간들의 얼굴이 궁금하군… 케케케…." 피이이… "시끄러…." 나는 빛을 발하는 발광석들을 주위에 뿌렸다. 주위가 좀 환해지면서 방의 윤곽이 드러났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그저 좀 넓은 방이었다. "케케케… 그런다고 날 죽일 수 있겠나? 크크크…." 저기군. "대거 댄싱." 나는 단검들을 집어던지며 함께 몸을 날렸다. 챙! 단검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놈의 위치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죽어봐라! "살검!" 세 번의 찌르기… 채채챙! 내 공격은 모두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놈의 모습이 나타났다. 여전히 로브를 걸치고 있었지만 롱소드 길이의 검은 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나는 이를 갈며 달려들었다. "더블 크로스!" 철컥! OPG의 손톱이 튀어나오며 나는 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내 공격이 놈에게 닿기도 전에 나는 엄청난 충격에 뒤로 날아갔다. "커헉!" 바닥에 떨어진 나는 충격이 전해진 복부를 살펴보았다. 뭔가 검은 기운이 아직 남아 있었다. 마법인가? 나는 이를 악물며 샤프소드를 들어올렸다. 젠장. 괴물이잖아? 순간 다크 워리어의 몸이 사라졌다. 쳇! 어둠 속으로 숨은 건가? 그럼 최대한 밝은 곳으로… 나는 횃불이 걸려있는 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발광석 몇 개 더 꺼내고… 피이이거리는 소리와 함께 발광석들이 불을 발했다. 좀 더 빠르게… "음!?" 나는 급히 오른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어느새 나타난 다크 워리어의 검과 내 검이 불꽃을 튀기며 충돌했다. 크으으… 힘이 엄청나시구만? "케케케… 괜찮군. 하지만 너같은 애송이는 상대가 아니지." 그리고 순간 나는 다시 공중을 날았다. 빌어먹을! 벽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진 나는 통증을 무시하며 다시 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저기에 도달해야 이길 수 있다. "크크…." 이번엔 왼쪽? 나는 버클러를 들어올리는 대신 바리어를 생성했다. 이대로 달린다! 파캉! 간단하게 바리어가 깨져나가며 놈의 검이 내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제길! 나는 포션을 들이부으면서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황당한 놈이로군…." 저 자식이! 나는 애써 무시하며 계속 달렸다. 곧 문 앞에 도달한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튀어나온 다크 워리어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덤벼 이 자식아! "크크… 끝난 건가? 케케케… 어쨌든 축하해 주지. 네 놈이 첫 번째다." 엥? 무슨 말씀? 그 순간 내 뒤에서 약간 어두움이 섞인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그… 내가 슬쩍 뒤를 돌아보니 문이 열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방의 중앙에는 제단이 하나 있었고 그 위에 여러 개의 무구들이 올려져 있었다. 저게 마신의 무구? "크크크… 어쨌든 통과를 했으니 보내주지. 가서 하나를 골라라. 마신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케케케케…." 가? 내가 왜?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웃고 있는 다크 워리어를 노려보았다. 네놈을 죽이고 간다. "내가 왜? 네놈부터 죽이고 간다." 내 말에 다크 워리어는 웃음을 뚝 그치더니 나를 물끄럼이 바라보다가 황당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웃기는군. 네놈이라면 네가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건 알텐데?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들어가라. 나는 이곳을 통과한 사람은 죽일 수 없다." "헛소리. 속검! 살검!" 나는 순식간에 기술들을 발동시키며 달려들었다. 다크 워리어는 내 갑작스런 행동에 몸을 움찔하더니 검을 들어올렸다. 그래야지! 순식간에 다크 워리어의 앞으로 쇄도한 나는 놈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은 내 공격을 모두 간단히 막아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세 번을 찔러 넣은 내 공격. 하지만 역시 놈은 간단히 피해버렸다. 크으… "크로스!" 나는 다시 기술을 발동시키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콰앙!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뒤로 날아갔다. 부우웅! 쾅! 방안의 제단에 부딪혀 멈춰선 나는 문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다크 워리어를 보며 이를 갈았다. 크으… 샤프소드를 휘두르며 달려들려고 하던 나는 샤프소드가 부러진 것을 알아차리고는 몸을 굳혔다. 이, 이게 부러지다니… 거기다 내 가슴에는 X자의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내 기술을 되돌린 거냐?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보다는 분노가 앞섰다. 까드득! 이를 간 나는 부러진 샤프소드를 검집에 집어넣고는 제단을 돌아보았다. 제단에 고이 모셔져 있는 검은빛의 검. 나는 이것저것 잴 것도 없이 그 검을 집어들고는 다크 워리어에게 달려갔다. "죽여버린다!" 다크 워리어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무슨… 그때 나는 환한 빛이 내 몸을 감싸는 것을 느끼고는 신음을 흘렸다. 제길! 그러고 보니 마신의 무구를 잡으면… "빌어먹을! 너 이 자식!" 나는 황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 있는 다크 워리어의 모습을 노려보며 텔레포트 되었다. "저, 저 사람 좀 봐." "저런 상처를 입고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야, 저 사람 혹시 리자드 헌터 아냐?" "맞는 거 같은데?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런 꼴이지?"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며 주위의 사람들이 내뱉는 말이었다. 확실히 내 상처가 심하긴 하지… 가슴엔 X자의 엄청난 상처에 어깨는 찢겼고 마법 덕분에 그을리고 찔리고… 빌어먹을… 나는 내 손에 들린 검은빛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크으… 이걸 잡는 게 아니었어. 차라리 롱소드를 뽑아드는 건데… 마신의 무구 중에 하나라면 강할 것 같아서… 헉!? 그러고 보니 샤프소드가 부러졌지. 크으… 망할 자식! 이대로 끝낼 순 없다. 나는 즉시 페페에게 귓말을 보냈다. <페페!> <운영자 46-어라? 세한님?> 페페의 답신은 곧 전해져 왔다. <예. 세한인데요.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 <운영자 46-그렇긴 한데… 그럼 그 나무 집으로 소한 할게요.> <예.> 곧 환한 빛이 나를 감싸며 다시 텔레포트 되었다. 텔레포트가 끝나고 나는 나무 집 안에 서 있었다. 페페는 이번에도 나무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페페는 내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반가운 얼굴로 미소를 짓다가 내 몰골을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세상에, 세한님! 그, 상처는…." 나는 나무 의자 하나에 걸터앉으며 신전에서 가지고 나온 검을 탁자 위에 던져놓았다. "마신의 무구 중에 하나입니다. 방금 나왔어요." "아…." 페페가 놀란 얼굴로 검은 검을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마신의 신전에 다시 들어가고 싶습니다." 내 말에 페페는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거기는 이벤트용 던젼이기 때문에 다시는 들어갈 수 없어요. 도대체 왜…." "그, 던젼에 있는 다크 워리어를 죽이려고요." 내 말에 페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간단하게 던젼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내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던 페페는 내 얘기가 끝나자 차분한 얼굴로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세한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습니다만… 하지만 그 다크 엘프는 초대 통과자인 세한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퀘스트의 일부예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 다크 엘프는 NPC일 뿐이고 그녀가 부탁한 일은 자신의 핀을 약혼자에게 전해달라고 한 것이라고 하셨잖아요. 세한님이 그 다크 워리어에게 화가 나신 것은 알겠지만… 좀…." 페페는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끝냈다. 흠? 그러고 보니 베르시나는 NPC였지? 부탁한 것도 복수가 아니고 핀을 전해주는 거고… 그런데 내가 왜이리 열을 낸 거야? 너무 실감나서 그런가? 흐음… 하긴… 이건 게임인데… 거기다 마신의 무구도 가지고 왔으니… 그냥 핀만 전해주고 말까? 어차피 지금 다시 붙는 다고 해도 그냥 게임 오버 당할 텐데… 그냥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손봐주기로 하는 게… 페페의 말에 내가 왜이리 열을 올린 건가 떠올리던 나는 점점 복수를 포기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하긴 이건 게임이지…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이어진 페페의 말에 산산히 깨어지고 말았다. "거기다가… 그 다크 워리어는 운영자세요. 마지막 방에서 던젼을 통과한 유저들을 방해하는 분 이신데… 그분이 마신의 던젼을 만드신 분이라 지키고 계시는 거죠. 그러니 복수는 포기하시는 편이…." 페페는 말을 하다 거의 불똥이 튀기는 수준까지 번쩍거리는 내 눈을 보고는 말을 멈췄다. 허허… 그 놈이 그 망할 던젼을 만든 놈이시라… 날 그렇게 개고생 시킨 위대하신 분이 바로 그분이시라고? 후후후… 결정 났다. 베르시나의 복수도 있고 내 개인적인 복수까지 해서 그 운영자! 반드시 죽인다! "운영자면… 죽일 수 없는 건가요?" 내 질문에 페페는 약간 당황한 얼굴로 설명을 시작했다.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저 같은 운영자들은 죽일 수 없지만 그분의 경우에는 몬스터로 활동하시는 분이라… 어떻게 보면 일종의 플레이어신데… 아마 보스급 정도로 활동하시는 분일 거예요. 운영자보다는 그 악마의 숲, 지방의 몬스터들을 관리하는, 마신의 종이라는 것이 설정이거든요. 그리고 전에 그분이 한번 죽으신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때는 데스 나이트셨는데 어떤 랭커들에게 죽임을 당하셨었죠. 때문에 지금 다크 워리어로 떨어지신 것이고…." 너무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페페. 후후… 그런단 말이지… 죽여도 된다? "그런데 그 마신의 신전에만 있었을 텐데 어떻게 랭커가…." "아, 그분은 이벤트가 진행될 때만 신전에 들어가서 관리를 하시거든요. 평소에는 악마의 숲하고 근처의 마신의 던젼들을 돌아다니세요." "흠… 그럼 마신의 신전에 들어가지 않고도 그 운영자를 만날 수 있다는 말씀?" 내 질문에 페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하지만 그분을 찾기가 힘드실 거예요. 그리고 찾으신다고 해도 지금의 세한님은 절대 이기지 못해요. 데스 나이트 때보다는 약해 지셨지만 지금도 레벨 300 정도의 마스터 유저도 상대할 수 있으실 테니…." …… 제길. 그러니 한 대도 못 때렸지. 렙 300이면 필도 지겠군. 흠… 어쨌든 언젠가는 복수를 하고 만다. 베르시나의 일도 있지만 감히 던젼을 그따위로 만들어 놔? 어? 그러고 보니 베르시나를 죽는 걸로 설정한 인간도 그 운영자 아냐? 흠… 복수의 조건 성립이다.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상처는 괜찮으세요?" 언젠가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던 나는 페페의 지적에 내 몸을 둘러보았다. …… 아프잖아… 지금껏 왜 모르고 있었던 거지? "크으으…." 나는 짜증 섞인 신음을 토하며 포션을 바르기 시작했다. 내가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던 페페가 미소를 지었다. 아, 페페는 운영자지? "페페. 혹시 상처 치유 같은 건 못해요?" 내 질문에 페페는 곤란해 하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운영자는 그런 데에 끼어 들면 안 돼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붕대를 꺼내 몸에 칭칭 감기 시작했다. 흠… 괜찮아 지는군… "아, 페페. 악마의 숲이 어디에 있죠?" 내 질문에 페페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세한님이 계시는 곳이 차렌이죠? 거기서 정 반대에 위치해 있는데… 텔레포트 마법진을 사용하지 않으면 가는데 한 몇 달은 걸릴 거예요." 몇 달… 돈 좀 써서 텔레포트로 가야되네… 퀘스트지만 너무했다. 정 반대에 위치해 있다니… "그런데 왜 하필 검을 가지고 나오신 거죠?" 내가 가지고 온 검을 만지작거리던 페페가 던진 질문이었다. 흠… 사실대로? "그게… 그 다크 워리어 하고 싸우다가 검이 박살나는 바람에… 얼떨결에 검을 집어 공격하려다가…." 내 말에 페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쿡쿡거렸다. 흐아… 괜히 말했나? "후후. 어쨌든 제가 내기에서 이기게 됐네요." 흠? 내기라… 맞아! 페페가 나한테 걸었었지!? 거기다 차를 마시기로 약속까지! "제가 언제 차 한잔 대접할게요. 흠… 현실에서 마시기로 했었으니까… 오늘이 수요일이죠? 내일 시간이 어떠세요?" 내일? 나야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니… "괜찮은데요." "그럼 제가 내일 전화를 드릴게요." "아, 전화번호는…." "아, 그렇군요. 흠… 그럼 제가 내일 아침까지 메일을 보낼게요. 세한님 메일 주소는 알고 있으니까요." 흠… 운영자니까 메일 주소는 알고 있나보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라? 빈혈인가? 별걸 다 겪는 구만. 나는 페페에게서 검을 받아들고는 머리를 휘휘저었다. "그럼 돌려보네 드릴게요." "아, 웬만하면 하크씨가 운영하는 차렌 무기점 앞으로 좀…."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리로 보내 드릴게요." 나는 손을 흔들어주었고 페페가 마주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을 보며 환한 빛에 휩싸였다. 흠… 샤프소드… 고칠 수 있을까? 내가 눈을 뜨자 익숙한 골목을 볼 수 있었다. 하크씨의 무기점이 있는 골목. 여전히 꽤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놀라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무시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하크씨는 그냥 카운터에 앉아 있었는데 대신 웬 젊은 NPC와 유저 하나가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둘다 여자였다. 특히 한명은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으니… "어라? 제시?" 분주히 돌아다니던 제시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나를 돌아보더니 반가워하는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어라? 제시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여어~ VIP! 우리 가게 점원한테 꼬리치는 건가?" 날 발견했는지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하크의 목소리. 흠? 점원이라?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양이지? "현진이 왔어?" "아… 세한인데… 뭐, 어쨌든. 그런데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거야?" 나는 제시의 호칭을 바로잡아 주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후… 정말 내가 아버지의 귀신에 홀렸던 건가? 아이디를… 흐아… 제시는 내 질문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응. 다른 애들이 접속을 안하고 있을 때는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이제 겨우 이틀째야."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카운터로 다가갔다. 제시도 나를 따라오더니 하크의 뭔가 불만스러워 하는 얼굴을 보고는 다시 일을 하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혼자서 하시지 무슨 아르바이트?" "허, 자네 여자친군가?" "친구는 맞는데…." "흠, 원래는 저 NPC만 고용해서 꾸미려고 했는데 저 아가씨가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재미있는 아가씨더군. 자네처럼. 하하하!" 나 처럼이라… 초보라 이거지? 하긴 제시도 게임하고는 거리가 멀었으니… 나는 한숨을 쉬고는 장비들을 벗어 카운터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하크는 내가 올려놓는 장비들의 몰골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특히 길이가 반으로 줄어있는 샤프소드를 보고는 실성한 듯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맙소사… 샤프소드가 부러지다니… 거기다 이 체인메일은 아주… 혹시 OPG는 부숴지지 않았나 걱정이군." "고칠 수 있어요?" 내가 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어보자 하크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글쎄… 리턴 체인메일은 몰라도 샤프소드는… 알다시피 이건 미스릴 합금이 아닌가? 미스릴을 구하기가 상당히 힘든데… 재고에 있을지 모르겠군. 내 알아보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신의 신전에서 들고 나온 검을 내밀었다. 하크는 검집도 없는 검을 내가 내밀자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신의 신전에서 가지고 나온 건데… 감정 좀 해주세요.' 마신의 신전에서 가지고 나왔다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짓던 하크는 검을 받아드는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정할 필요 없지. 그런데서 얻은 물건은 다 읽혀져 있으니…." 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장비들이나 고쳐주세요. 흠… 며칠 뒤에 찾으러 올게요." 하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샤프소드 등을 카운터 아래에 내려놓았다. "알았네." 나는 망토를 다시 두르고는 가게를 나서기 시작했다. "어라? 벌써 가게?" 아, 맞다. 제시가 있었지? "아… 응. 로그아웃하고 좀 쉬려고. 토요일에 보자." "그래? 알았어…." 제시는 좀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손을 흔들어 주고는 가게를 나섰다. 후아… 여관에서 자면서 로그아웃을 하는 게 좋겠지? 여관으로 걸음을 옮기며 나는 아이템 창을 불러내어 검의 성능을 확인했다. 흠… 이름이… 마검 마나르트 ??????????????????? 공격력-350~350 내구력 무한 옵션 ????????????????????? ……… 이건 뭐니? … 왜 ?로 나오는 거지? 읽히지 않았으면 아예 뜨지를 않았을 텐데… 빌어먹을. 나는 여관에 도착해 방을 하나 잡고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후우… 빨리 로그아웃을… -음냐, 음냐… 후아암~ 잘 자고 있었는데… 왜 깬거지? …아까는 빈혈이더니 이제는 환청까지? 미치겠군. 후우… 어서 로그아웃하고 잠이나 푹 자야지. -엥? 뭐야? 어떤 썩을 놈이 이 고귀하신 몸에 손을 대는 거냐! 으으으… 빨리 로그아웃을… -대답 안 해!? 뭐 하는 놈이냐! 누군데 이 고귀하신 마나르트 님의 옥체에 손을… 흠? 마나르트라… 방금 본 검의 이름하고 똑같네? 후우… 신경이 너무 과민해 졌군. -야 이 망할 자식아! 대답하란 말이다! 호, 혹시… 잠자는 사이에 말을 거는 능력에 문제가… 흠? 이번엔 좀 심각한 목소리로군. "짜증난다… 얼마동안 게임을 하지 말아야지 정말…." -어? 야! 난 들린단 말야! 게임을 하지 말아!? 안돼! 얘기 좀 하다가 로그아웃해! …… 나는 머리를 휘젓고는 내 손에 들려있는 검을 내려다보았다. 이 검이? 그럴 리가? 아, 그러고 보니 필이 말하는 아이템이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마신의 무구 중에 그런 놈이 있으면 그걸로 가지고 오라고 했지? "어이. 검아. 니가 말했니?" 나는 스스로 한심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검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왔다. -검아!? 이 자식이! 마족 서열 107위를 자랑하던 이 몸을 그렇게 부르다니! 죽어볼래!? "니가 말한 거냐?" -그래 이 돌머리야! 나는 슬슬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돌머리? 죽어봐? 망할 자식? 나는 이 검이 나에게 던졌던 말들을 떠올리며 살기를 피어 올렸다. "죽고싶니?" -……괜찮은 살기군. 흠흠… 진정하시게나 주인 씨. 흠흠… 나는 마족 서열 107위를 자랑하던 최상급 마족 마나르트라네. 지금은 검 속에 봉인되어 있지만… 흠흠. 부탁이니 그 부러뜨리려고 하는 듯한 포즈는 거두어 주게나. 나는 검을 무릎에서 내려놓으며 제대로 들어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흠… 말하는 검이라 그거지? 비싸겠군." -물론이지. 보통 에고 소드(Ego Sword)만 해도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데 이 고귀한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검이 가치를 따질 수 있겠나? "성능은 떨어지는 게 말은 많군." 내 말에 검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성능이 떨어진다니! 나는 마족 서열 107위를 달리던 위대한 최상급 마족… "닥치고 그럼 네 성능이나 대봐." -……흐흠. 공격력이 350으로 최소와 최대 공격력이 차이가 없는 뛰어난 벨런스… 거기에 무한한 내구력이… "헛소리하네. 차라리 OPG가 낫지. 옵션도 많고…." -흠흠. 나를 그런 장갑 따위와 비교를 하나? 후우… 금방 조용해지는 것이 꿀리는 것 같은데… 그래도 에고 소드면… 비싸겠지? 성능이 나쁘면 팔까? 아니지… 페페가 엄청난 신기들이라고… 그리고 그 고생을 해서 얻은 건데… "그럼 좋은 점을 대보라고." -으음… 그러니까 나에게는 작은 단검의 크기에서 지금과 같은 크기로 변하는 기능이… "젠장! 갖다 버려야지. 이런 허접한 검을…." 내가 화가나 외치자 검이 급히 소리치며 설명을 계속했다. -거기다 던져도 알아서 돌아오는 데다가 순간적으로 검날을 넓게 만들어서 적의 공격이나 마법을 막을 수… "…역시 필요 없잖아. 단검은 사면되고 마법은 이제 바리어로 막으면 돼." 하아… 내가 어쩌자고 이런 꼴통 같은 검을… 이게 다 그 다크 워리어 때문이야! 이런 한심한 검을… -지, 지금은 이것뿐이지만 나중에 가면 엄청난 기능이… 흠? 나는 다급히 소리치는 검, 마나르트라고 했나? 어쨌든 검의 말에 약간 호기심을 보여주며 검에 얼굴을 갖다댔다. "말해봐." -지금 내가 이 검에 들어와 있는 것은 망할 마신께서 나의 악행에 벌을 내리고자 넣어둔 것이라네. 그리고 내 힘을 뺏어서 봉인한 후에 다크 엘프들에게 맡겨 두셨는데 주인 된 자가 나타나면 찾으러 가라고… 다크 엘프? 호오… 어차피 가야되는 곳이지? 그런데 망할 마신은 또 뭐냐? 아, 운영자? "망할 마신이라는 놈. 운영잔가 보지?" -잘 아는군. 지가 우리를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서열 107위에 빛나는 내 마력과 능력을 다 뺏어 가는 것이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정말 독선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입 좀 다물지?" -………. 큭큭. 이 검하고 같이 다니면 심심할 일은 없겠군. "그래. 그럼 힘을 되찾으면 강해진다?" -물론이지! 나의 서열 107위에 빛나는 이 위대한 마력과 엄청난 능력들이… 금방 기세가 살아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까만 검. 시끄럽기도 한데… 그런데 107위? 100등에도 못들어? "야. 마족이 모두 몇이나 되냐?" -흠… 글쎄… 대충 십만 명은 넘겠지. 대부분 마계에 살고 있으니 너희들이야 모르겠지만. 호오… 십만 중에 107등이면 상당히, 아니 엄청나게 강한 거잖아? 후후후… 힘을 되찾으며 그렇게 강해진다… "괜찮은데?" -물론. 너 같은 천한 인간은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있던 곳에 있던 이 고귀한… "한번 부러지나 안 부러지나 해볼까?" -흠흠. 이성을 되찾게나 주인 씨. 나는 무릎에서 검을 내려놓으며 싱긋 웃었다. "난 조용한 것이 좋다네. 검 씨." -흠흠. 노력해 보도록 하겠네, 주인 씨. "좋아. 그런데 힘을 되찾기 전에는 그다지 좋은 검은 아니잖아. 샤프소드보다야 좋지만… 아, 그렇지. 너 엄청나게 커져서 온몸을 나 감쌀 수 있냐?" 내 질문에 검은 생각에 잠긴 듯 대답이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마법 트랩에 겁먹을 필요가 없을 텐데… -지금은 무리로 보이네 주인 씨. 아마 힘을 되찾으며 될지 모르네만. "쳇! 그럼 결국은 그 봉인된 힘인지를 찾아야 된다는 말씀? 어떤 물건인데?" -내 검집이라네, 주인 씨. "………." 진짜 센스 없는 운영자로군. 검집을 가져가? 어떤 수정 같은 데다가 가져가면 안 되나? 그럼 검집을 하나 구입해야 되나? "어이, 검 씨. 날을 뭉툭하게 만들 수 있으신가?" -뭉툭? 날카롭게도 아니고? 특이한 주인 씨로군. 몽둥이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날이 없는 검처럼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네, 주인 씨. "그래? 그럼 그렇게 변해봐." 내 말에 검의 날이 순간적으로 변했다. 호오? 내가 손을 가져갔지만 베이지 않았다. 괜찮은데? 이대로 들고 다니거나 천에 싸서 다니면… 샤프소드가 고쳐지느냐 마느냐가 관건인데… "괜찮군." -물론이지. 이 마족 서열 107위에 빛나는 마나르트 님의 뛰어난 능력, 다른 에고 소드들은 흉내내지 못하는 뛰어난 능력이 아닌가? 그런 멍청한 놈들은 지 몸에 불이나 붙이고 말야. 세상에 다시없는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나는 그게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별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앞을 볼 수는 있는 건가? -그 고개를 젓는 행동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하군, 주인 씨. 헉!? 보이나 보지? "흠흠. 빈혈이 좀 있어서 그렇다네, 검 씨." -그렇다면 다행이구만. 몸조심하게. 자네가 죽으면… 아, 게임에서 말고 현실에서의 얘기라네. 그 망할 마신의 말로는 자네들이 현실이라는 곳에서 죽으면 아예 사라진다며? 우리야 다시 똑같이 태어나면 되지만… 만약 자네가 죽으면 또 망할 마신에게 돌아가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으니. 웬만하면 좀 오래 즐기고 싶네만. "그러지. 그런데 내가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건가?" -음? 게임에서를 말하는 것 같군. 계속 자네의 손에 있을 테니 걱정 말게. 아마 내 몸에 더러운 손을 대는 미천한 것들이 있으면 그대로 미쳐버리게 해 줄 걸세. "어이, 검 씨. 지금은 힘이 없다며?" -흠? 그렇군… 흠… 어차피 날아다니는 기능이 있으니 엄청난 잔소리와 독설로 그 미천한 놈의 정신 세계를 황폐하게 만든 다음 날아서 돌아오지. 어떤가 주인 씨? "……나에게는 그러지 말게나." -자네야말로 만만치 않다네. 나는 좀 큭큭거리고는 검을 안은 채로 침대에 누웠다. 흠… 이제 로그아웃을 해야지… 킥킥. 재밌는 검인데? 마나르트라… "이봐 검 씨. 나는 로그아웃을 해야겠어." -흠? 그러게나. 웬만하면 빨리 돌아오라고 말해주고 싶군. 빨리 몬스터들의 내부 세계를 구경하고 싶다는 욕망이 마구 솟아나니 말이네. "한 이틀 후면 만나게 될 거네." -이틀이라… 내 자서전 저술 작업을 한… 1000페이지만 하면 지나가겠군. 다녀오게나. 기다리고 있을 테니. "킥킥. 열심히 해보게." 나는 킥킥거리며 로그아웃을 시작했다. 재밌는데? 정말 심심할 일은 없겠어. 기이이잉! 찰칵! "휘유~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은걸? 너무 오랫동안 게임을 했던 모양인데…." 나는 캡슐에서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머리가 멍~한게 로그아웃을 하루 연기한 것 때문인 모양이다. 흐흠… 오늘 괜찮은 녀석을 얻은 것 같은데… 힘만 되찾게 되면 즐겁겠군. 나는 침실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우우… 내일 페페하고 만나기로 했는데 내일을 위해 잠을 좀 자둬야… 나는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우우우…." 나는 힘겹게 눈을 떴다. 으으… 머리가 멍하네… 조금 더 자는 것이… "전화 받아! 전화 받아! 우헤헤헤헤!" "까드득!" 어떤 놈이 이른 아침부터 전화질이냐! 음? 아침? 나는 상당히 밝은 방안을 둘러보다가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11:27'이라… 늦잠 잤네? 그런데 아직도 머리가 멍한거지? "우헤헤. 전화 받아! 전화 받아!" 망할. 무시하고 메일 온건 없나? 페페가… 음? 아이디 '페페'… 이거겠지? 보낸이-페페 오늘, 4월 12일 오전 9시 34분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세한 님. 페페예요. 메일로 대화하기가 그래서 전화를 드리려고… 메일로 전화번호를 좀 보내주시겠어요? 전화번호라… "답변. 02-10-301-1983." <알겠습니다. 페페 님께 전송합니까?> "응." <전송되었습니다.> 후아암… 그럼 한숨 늘어지게… "전화 받아! 우헤헤헤헤! 전화 받아! 전화 받아!" 질긴 녀석이군. 누구지? 나는 투덜거리며 전화기로 다가갔다. 전화 걸 놈 별로 없는데? 수화기 들고. "누구세요?" -이 망할 놈아!! 크으으… 귀아프다… 이 목소리에 화상 모니터에 나타난 얼굴… 진성이잖아? "진성이냐?" -그래! 전화를 왜이리 늦게 받는 거냐!? "늦잠 잤어. 네 덕분에 깼다." 이러면 할 말 없겠지. 흐흠… 졸린데… 확실히 진성이는 내 얼굴을 살펴보는지 뭔가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머리 부스스하고 얼굴도 초췌한 것이 맞나보군. 흠흠… 너 성공했다며? 성공? 뭘 성공해? 이 놈이 페페하고 만나기로 한걸 알리는 없고… 아, 맞다! 1000골드!? "무슨 말씀인지?" -안됐지만 늦었어. 홈페이지에 마신의 신전 초대 통과자가 나타났다고 난리니까. 네 아이디는 밝히지 않았고. 네가 좀 특별하잖냐. 그냥 검사에 별명 리자드 헌터라고만 나왔다. 그런데 너 새로운 닉네임이 탄생됐다. 너 검을 들고 나왔다며? 마신의 검을 들고 있다면서 다크소드라고 하던데? 호, 홈페이지에? 리자드 헌터로? 다크소드는 또 뭐니? 어쨌든 아이디는 밝혀지지 않아서 다행이군. 어? 그래도 얼굴이 밝혀지면… "야! 내 얼굴은!?" -앙? 네 얼굴? 얼굴은 안 나왔는데… 어쩌면 차렌시에 있던 유저 중에 하나가 올릴 수도 있고… 흠… 너 1000골드 잊지 마라. "안 잊어. 한 이틀정도 게임을 쉴 거니까 좀 기다려라." -니가? 완전 중독인줄 알았는데? 신기하네… 여자라도 만나냐? "끊는다." -어? 어이!? 친구!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으으… 놀라운 녀석이야. 그런데 내 꼴이 어때서? 옆의 거울을 들여다본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부스스한 머리에 진짜 얼굴로 좀 초췌해 보이는 것이… 샤워라도… 나는 즉시 샤워를 시작했다. 아아… 살겠구만… "전화 받아! 전화 받아! 우헤헤헤헤!" 후우… 이번엔 누구셔? 또 진성인가? 또 늦게 받으며 일 나겠다 싶은 나는 타월로 하체만 가리고 다른 타월로는 머리를 닦으며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화상 모니터에 뜨는 갈색 머리의 예쁜 아가씨. 페페? -아, 세한 님? 목소리도 얼굴도 다 똑같네? 진짜 천연(?)이었잖아? "아, 페페… 진짜로 게임하고 완전히 똑같네요?" 내 말에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세한 님도 똑같으신데요? 머리만 좀 짧으시고… 아, 그렇지? "아… 그런데… 이름이나 좀 알려주시면… 계속 페페라고 부를까요?" -아뇨. 전 강초연이라고 해요. "전, 김·현·진 입니다!" 내가 경례를 하며 낮게 소리치자 페페… 초연? 흠… 초연 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샤워하는 중이셨어요? 흠? 그러고 보니… 헉! 위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잖아! 다행이 아래는 다 가리고 있지만… 다행히 태권도와 검도를 오래한 덕분에 내 몸매는 보기 좋게 발달되어 있었다. 그래도 쪽 팔리네? 나는 머리를 닦고 있던 타월을 망토 비슷하게 걸치며 머쓱하게 웃었다. "죄송해요." -아뇨. 아… 서울에 사시죠? "옙! 10구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아, 그럼 다행이네요. 제가 10구역에 잠시 들릴 곳이 있었는데… 그럼 1시 정도에 만나기로 해요. 음… 10구역에 '아다지오'라는 카페 아세요? 아다지오? 아, 태권도장 근처에 있지? 그러고 보니 그 카페 주인아저씨하고 꽤 친했었는데… 한달 반정도 못 갔군… "예. 알고 있죠. 그럼 거기서 1시? 흠… 점심은 제가 대접하죠." -그럼 차는 제가 대접할게요. 그럼 나중에 비요 세한 님.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흠? 세한 님이라… 확실히 게임에서만 만났으니 이름이 입에 잘 안 붙는데… 그런데 아다지오에 들리면 도장의 강 사범 님이… 걸리면 죽는다. 흠… 그래도 가서 인사를 들이지 않으면 나중에 더 깨질지도… 게임 덕분에 한달 동안 나오지 않았다고 하면… 태권도를 너무, 아니 광적으로 사랑하시는 강 사범님과 100번의 대련이 시작될지도… 애들도 문제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옷을 챙겨 입었다. 물론 깨끗하고 좋은… 없잖아. 당첨되고 옷한벌 사지 않았으니… 나는 투덜거리며 그나마 심플하고 좀 부티나 보이는 옷을 골라 걸쳐 입었다. 진 바지에 하늘색 난방… 나한테 양복이 있을리 만무하고… 나는 한숨을 쉬며 집을 나섰다. 이제 날씨가 풀려서 인지 수위아저씨는 담요를 덮고 있지는 않았다. 대신 부채를 슬쩍 슬쩍 흔들고 있는 것이… 어떻게 저런 전통 부채를 가지고 계시는지… 무자게 비쌀 텐데? 나는 수위아저씨가 손을 흔들자 미소로 답하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몸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대비해야지… 안그럼 뼈가 부러질 지도… 실제로 강 사범님과 대련을 하다가 뼈가 부러진 적이 몇 번… 나는 고개를 휘저으며 계속 달렸다. 헉!? 그러고 보니 검도 도장도… 거기 한 사범 님은 더 끔찍하지. 검도복에 보호를 받고 있으니 죽어라고 두들겨 패는데… 나중 일은 나중에… 이게 다 내 잘못인걸… 나는 기합소리가 들려오는 태권도장의 앞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살 수 있기를… 나는 비장의 무기로 사온 아이들에게 줄 피자와 치킨. 강 사범 님께 드릴 전통주를 내 목숨을 살려줄 무기라도 되는 듯 끌어안았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헉!? 강 사범 님이다! 없기를 바랬건만… 나를 살기가 감도는 눈으로 바라보시는 것이 불길했다. 그때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오기 시작했다. "잡아라!" "조직의 쓴맛을!" 조직의 쓴맛은 뭐니? 내가 없는 사이에 새로 생긴 모양이지? 흐흠… 내가 다시 점검을 좀 해야겠어… 나는 피자와 치킨을 앞으로 내밀었다. "먹기 싫은 사람?" "먹을 거다!" 아이들은 나에게 달려드는 대신 피자와 치킨들을 받아들고는 도로 달려갔다. 후후… 역시 예상대로. 이 짠돌이가 이런 호의를 베풀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는 눈빛을 보내는 놈들. 기억해 두지. 하지만 이건 약과다. "왔나? 김·현·진 임시 사범?" 강 사범 님의 목소리에 나는 급히 달려가 강 사범 님의 앞에 무릎을 꿇고는 손에 들린 비싼 전통주를 내밀었다. "안녕하셨습니까? 제가 요새 게임도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겪는 바람에 들리지 못했습니다. 얼마간 사범 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한 죄를 달래고자 이런 약소한 것이라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상책이다. 나중에 걸리면 그야말로 지옥을 가게 될 테니. 강 사범 님은 현재 47세. 현역때는 올림픽 대포로 출전하셔 금메달을 딴 적도 있으신 괴물이다. 간신히 2단을 따낸 나하고는 상대가 안돼는… 나는 전통주를 내밀었다. 태권도를 사랑하시는 강 사범 님은 전통주도 좋아하시지. 예상대로 강 사범 님은 굉장히 놀란 얼굴로 나와 전통주를 번갈아 보다가 껄껄 웃으셨다. 성공? "허허허! 설마 김 사범에게 이런 선물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군. 그런데 돈이 어디서 났나? 흐흠… 어쨌든 성의를 무시하면 안 되니… 그런데 게임과 여러 가지 일이라고 했나?" 좋아! 어느 정도 먹혔어! 나는 준비해온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감동과 격려를 해줘야하는 말들을 하는 거다! "제가하는 게임은 섀도우 월드라는 게임으로 여러 가지 전투를 하는 게임입니다. 저는 태권도의 효능을 확인하고 더욱 발전을 시킬 방법을 찾다가 실전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에 그 게임을 통해 태권도를 더욱 깊이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게임속에서 일본의 가라데를 하는 사람을 만났었는데 실제로 목숨을 걸고 싸워 태권도로 승리를 일구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일은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사범 님은 가라데를 죽도록 싫어하시지… 내 화려한 말들에 흥미롭다는 얼굴이던 강 사범 님은 내가 말을 끊자 긴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흐흠… 좀 낯뜨거운데? 거짓말이긴 하지만… "흐흠… 뭔가? 그 중요한 것이란?" "……평생을 바칠 여자를 만났나이다." "우와아!" "현진이 형 멋지다!" 제길! 내가 정녕 살기 위해서라지만 이런 헛소리를 해야한단 말인가? 솔직히 페페를 만나기로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건 순 구라아냐? "흠흠… 평생을 바칠 여자라… 자네가? 먹여 살리 돈은 있나?" 좀 감동을 받은 듯한 목소리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후후훗. 강 사범 님은 이런 옛 멋을 풍기는 말에는 쉽게 넘어가시지. "얼마 전에 제가 많은 도움을 줬던 친구로부터 동업의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복권에 당첨되어 15억의 거금이…." "허어억!" "저 짠돌이 형이 15억이라곳!" "그래서 이런 음식들을!" 나는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무시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 허나 그런 것이 아니었더라도 평생 고생을 해서라도 함께 살고 싶은 진정한 사랑을 만났습니다!" 정말… 미치겠군. 강 사범 님은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부터 나를 잘 돌봐주시던 분이다. 이 도장의 주인이기도 하시고… 그러니 이런 말을 하는데 설마 패기야 하실까? "흠흠… 나는 옛날부터 자네를 친아들처럼 생각해 왔지. 흠흠… 잘되었구만. 열심히 해 보게. 응원해 줄 테니. 흐흠… 자네 정도의 사내라면 노력만 하면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었겠지… 흠… 솔직히 언젠가 내 조카딸을…." "작은아버지!" "음?" "어?" 많이 들어본 여자의 목소리… 마, 맙소사! 저, 저건… 손을 흔들며 도장 안으로 들어오는 여자는 페페였다. "아, 초연이 왔냐?" "예. 작은아버지." 헉!? 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페페, 아니 초연씨와 강 사범님을 돌아보았다. 강초연. 강진철. 같은 강씨라… 언젠가 조카딸을 소개 시켜 주려 하셨다? 난 죽었다. 절망하는 내 귓가로 피자와 치킨을 먹고 있던 아이들이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와… 저 누나 진짜 예쁘다." "강 사범 님 조카라는데?" "조카?" "음. 전에 본적 있어. 진짜 예쁘지?" 오늘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굳은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고 있는데 페페, 아니 초연 씨가 나를 발견했다. 헉!? 안돼! "어? 어머, 세한… 아, 현진 님. 왜 여기서?" "현진 님!?" 강 사범님의 놀란 목소리. 흐흑. 페페. 직업 정신이 너무 투철해요. 여기는 게임이 아니라고욧! "하, 하하… 초, 초연 씨… 아다지오에서 만나자고…." 절망 적인 목소리로 질문하는 나를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초연 씨. "아… 여기 이 분이 제 작은 아버지시라… 그런데 세한… 아니, 현진 님은 왜 여기에…." 또 현진 님!? 나, 난 죽었다. 그때 강 사범님의 살기 띤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허… 김·현·진 사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현진 님이라… 네놈 내 조카딸에게 무슨 짓을!" "억울합니다!" 나는 급히 몸을 일으켜 뒤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가슴 앞을 가드 했다. 그리고 그 위에 작열하는 강 사범님의 돌려차기. "크윽!" 나는 신음을 흘리며 뒤로 나가 떨어졌다. 몸을 급히 일으킨 나는 이를 악물며 강 사범님을 바라보았다. "흐흠… 실력이 늘기는 한 모양이로군. 어차피 해야 될 대련. 지금 바로 끝내지." "오해라니까요!" 하지만 곧바로 날아오는 공중 돌려차기. 미치겠다. 마치 게임에서의 나 같아. 나는 급히 뒤로 물러서며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흑흑. 팔이 얼얼하네. "그럼 대련을 하면서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눠 보세나." "자, 작은아버지. 무슨…." 초연이 놀란 목소리로 강 사범님께 질문을 던졌다. "후후… 걱정되겠지만 좀 기다리거라. 나하고의 대련으로 죽을 놈이면 네 남편이 될 자격도 없으니." "예?" 크흑. 이제 페페의 얼굴을 어떻게 본다니? 하지만 지금은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순식간에 날아오는 강 사범 님의 발을 간신히 막아내었다. 흐흑. 현실에서도 이렇게 날아다니냐? 나는 매트 위에 풀썩 쓰러졌다. "흠… 현진 군. 평생을 바칠 여자라… 거기다 '현진 님'이라…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척 궁금하구만…." "오해라고요!" 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항의했지만 역시 빠르게 다가오는 강 사범님의 발차기. 미치 겠다. 나는 또 한번 공중을 부유했다. "크윽…." "설마 착하다고 생각하던 자네와 우리 초연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겠나 만은… 만약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나야 둘의 결혼을 절대로 반대하지 않겠네만… 그래도 약간의 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구만." "그러니까 그게… 헉!?" 강 사범님. 오해라니까요… 나는 다시 한번 공중을 부유했다. 크윽! 이대로 당할 수는 없지. 크으… 이거 내 옷 다 망가지겠네… 강 사범님은 내가 몸을 일으키며 자세를 취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흐흠… 물론 그래야지. 그 정도의 근성이 없다면 인정을 할 수 없다네." "저기, 작은아버지. 도대체 무슨…." "좀 기다리거라." 결혼이니 어쩌니 하는 말에 놀란 초연 씨의 물음을 깨끗이 무시한 강 사범님은 그대로 내게 달려들었다. 크흑! 이대로 당하진 않는다. 퍽! 팍! 쿠당! 퍼억! 쉬익! 뻐억! 쿠당! 퍽! 쿠당! 빌어먹을! 상대가 안돼. 나는 온몸이 쑤시는 것을 느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강 사범님이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나를 놀람 반, 걱정 반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페페… 아니, 초연 씨. 그리고 나와 사범님. 초연 씨를 번갈아 보며 수근거리는 아이들. "야, 그럼 그 평생이 어쩌고 한 여자가 저 누나?" "와… 현진이 형 베짱 좋다. 강 사범님 조카딸을…." "그런데 현진 님이라고 했지?" "그, 그런거 같은데?" "그건 그렇고 현진이 형, 오늘 오래 버틴다?" 저 망할 놈들! 나는 이를 갈다가 점차 다가오는 강 사범님의 모습을 보며 절망 적인 표정을 지었다. 가, 가망이 없어… "허허… 말하던 것보다는 실력이 떨어지는 구만. 좀더 해보게." "가, 강 사범님. 지금 약간의 오해가… 우웃!" 나는 빠르게 날아오는 발차기를 힘겹게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제길! 이렇게 된다면! 나는 빠르게 강 사범님에게 쇄도했다. "호오… 한번 해보자 이건가?" 순식간에 공중으로 떠올르며 돌려차기를 날리는 강 사범님. 하지만 나는 막는 대신 몸을 아래로 숙이며 강 사범님을 지나쳤다. "응?" 강 사범님의 의아해 하는 목소리. 죄송함다. 나는 그대로 초연 씨가 서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초연 씨의 눈망울이 커지는 것이 보였다. 사과는 나중에… "죄송해요." "예? 꺄악!" 나는 초연 씨를 그대로 안아들고는 도장을 뛰쳐나갔다. 살려면 어쩔 수 없다. 크으… 술값 날렸네. "어? 현진이 형 도망갔다." "오오… 저게 사랑의 도피라는 건가?" "얼마나 급했으면 도망을 치냐? 지금껏 죽어도 도망은 치지 않더니?" "자기 애인한테 깨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게 아닐까?" 수근거리는 아이들. 강진철 사범은 건물 밖으로 걸어나가며 아이들에게 입을 열었다. "잠시 나갔다 올 테니 그거나 먹고 있거라. 아, 그리고 저 술은 사무실에 갖다 놓거라." "예!" 강 사범은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도장을 나섰다. "후훗. 그러니까 저를 평생을 바칠 여자라고 했다고요?" 웃음을 터뜨리는 초연 씨. 나는 찢어진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하지만 강 사범님은 7단에 저는 2단이라… 살려면 달리 방도가 없었어요. 거기다 솔직히… 초연 씨가 현진 님이라고 한 것이 여파가 컸는데…." "후훗. 죄송해요." "아뇨…." 크으… 아프다… 여기는 아다지오 카페 안. 도장 밖으로 도망친 나는 어쨌든 차를 마시기로 한 것을 이행하기 위해 여기로 도망을 쳤다. 그리고 앞 뒤 사정을 설명한 후, 현재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얼씨구… 또 맞았나 보네? 그런데 이 아가씨는 애인이냐?" 차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물어오는 카페 주인 아저씨. 무슨… "아뇨… 그냥 아는 숙녀 분." "그렇겠지. 네가 감히 강 사범의 조카딸을 건드리겠냐. 강 사범이 이 아가씨를 얼마나 아끼는데." 초연 씨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바라본 나는 새삼 내 삶이 얼마나 폐쇄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 심지어 도장의 아이들까지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니… 주인아저씨가 돌아가고 커피 잔을 홀짝이던 초연 씨가 내가 질문을 던져왔다. "그런데 왜 여기로 오신 거예요??" "예? 당연히 여기서 차를 마시기로… 헉!?" 이, 이런! 망했다. 당장 나가야! 아까 도장에서 여기서 만나기로 했었다고… 내가 얼굴을 굳히자 초연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후우… 이미 늦었어요." 헉!? 그때 내 뒤에서 들려오는 강 사범님의 목소리. "도망친 곳이 겨우 여긴가? 생각보다 머리가 나쁜 것 같군." 나는 모든 것에서 해탈한 얼굴로 대답했다. "후후… 저는 철학과 출신이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의 일정은 변해선 안 되죠. 특히 약속은…." "그런가? 어쨌든 나와 함께 도장으로 돌아갔으면 하네만?" "섭섭한 말씀을. 충분히 맞았답니다. 거기다 옷까지 찢어졌습니다. 술도 받으셨는데 그만 하고 앉으시죠." 확실히 전통주가 효과가 있었는지 강 사범님은 잠자코 자리에 앉았다. 초연 씨 옆에. "그래… 설명을 들어볼까?" 나는 한숨을 쉬며 설명을 시작했다. 한 5분 정도 내 설명을 들으시던 강 사범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흐흠… 그럼 둘 사이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란 말이군… 흐흠… 미안하네. 하지만 그런 헛소리를 나불대던 자네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겠지?" "왜 아니겠습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페페의 웃음소리가… 아, 초연 씨, 초연 씨. 어쨌든 오늘은 일정은 산산조각 나게 생겼군. "흠… 어쨌든 지금이라도 내가 초연이를 소개시켜 줄까? 어차피 언제 만나게 해주려 했었는데… 흠… 초연아 전에 내가 말 한 적이 있었지? 괜찮은 녀석이 내 도장에 있다고…." 얼쑤? 지금 뭔 말씀을? 초연 씨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흠… "초연 씨. 사범님이 뭐라고 하셨죠?" "아… 철학과를 나오셨는데… 유쾌하고 성실한 젊은이라고… 후훗. 그리고… 좀 짠돌이 기질이 있다고 하시던데…." 크윽! 나는 강 사범님을 노려보았다. 내 눈빛에 좀 당황하시던 사범님은 헛기침을 하시며 입을 여셨다. "흐흠… 어쨌든 복권에 당첨 된 건 사실이라며? 그럼 좀 나아졌겠지. 흐흠… 그렇게 노려보지 말게나. 나는 그저 자네가 아들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리 친근하게… 흠흠… 알았네." 후우… 미치겠군. 오늘은 일진이 별로 좋지 못 한 것 같아. 거기다 왠지 기분도 더러운데… 나는 커피 잔을 단숨에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돈은 제가 낼게요. 점심은 다음에 대접하죠." 내가 찢어진 난방을 바로잡으며 카운터로 걸어가자 초연 씨가 당황한 얼굴로 일어났다. "아, 차는 제가 대접하기로…." "아뇨…. 괜찮아요…." 내가 카운터로 다가가자 초연 씨가 급히 따라왔다. 그리고 덤으로 강 사범님까지. "어라? 벌써 데이트 끝난 건가?" "아아… 사범님 덕분에요…." "큭큭. 힘내게나." 내가 힘없이 다가오자 주인아저씨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내 대답에 뒤의 강 사범님을 바라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후우… 슬프구나… 나는 카드를 꺼내서 아저씨에게 건넸다. 하아… 오늘 이미지 망가지네… "차는 제가 대접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다가온 초연 씨가 당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휘우… "나중에 섀도우 월드에서나 대접해 주세요. 그럼 이만…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카페는 2층에 있지… 내 뒤를 따라오는 두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후우… 게임에서 식스센스에 집중하다보니 현실에서도 주위에 신경을 좀 쓰는군… 음? 그런데 왜이리 어지러운가? 나는 계단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아아… 어지러워라. 순간 계단을 다 내려섰다. 어, 어라? 언제 계단을 다 내려왔지? 나는 몸이 비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흐아? "괜찮으세요?" 어느새 다가온 초연 씨가 나를 부축했다. 덤으로 강 사범님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나는 얼떨결에 초연 씨를 뿌리쳤다. 어, 어. 몸이 왜이래? 초연 씨가 당황한 얼굴로 내게서 떨어졌다. 흐으… 어지러워라… 순간 바닥이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뭐지? "혀, 현진 씨!" "기, 김 사범!" 초연 씨와 강 사범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끝으로 나는 의식을 잃었다. "흠…." 나는 눈을 떴다 감았다 깜빡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흐음? 역시 아직 여관 안이군.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보게, 주인 씨. 헉!? 깜짝 놀랬잖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내 손에 들린 검. 마나르트를 바라보았다. 으음… 왠지 화난 목소리로군. "왜그러나, 검 씨?" -내가 자서전 저술 작업을 얼마나 해냈는지 궁금하지 않나? "말해보게." -무려 3000페이지라네. 이 고귀하신 영혼을 가진 몸이니 하루에 500페이지 씩 구상하는 거야 별거 아니네만… 슬프군, 처음 만난 주인이 약속을 개떡처럼 여기는 분이라니. 이틀이라 하지 않았나? 무려 6일이 지났다네. "……미안하군. 뇌진탕 덕분에 정신을 잃고 있었지. 그리고 실수했네만… 현실시간으로 말하고 갔었군. 내가 말한 시간은 여기의 시간보다 3배 느리다네." 뇌진탕. 내가 어제 쓰러졌던 이유다. 덤으로 왠지 기분이 더러웠던 이유이기도 하고. 강 사범님이 날렸던 분노의 돌려차기들이 원인이라고 하는데… 덕분에 거의 하루만에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거의 울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초연 씨와 강 사범님. 내가 눈을 뜨고 처음 본 사람들이었다. 초연 씨가 밤새도록 나를 간호하고 있었다나? 의사의 말로는 강 사범님에게 받은 충격이 쌓였다가 얼마 있어 받은 정신적 충격(내 뒤에 갑자기 나타난 강 사범님)덕분에 뇌진탕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덕분에 병원비는 강 사범님이 모두 냈고… 후훗. 그리고 초연 씨가 내일 저녁에 우리 집에 와서 동창회 준비를 도와준단다. 저녁을 사준다고 하는 것을 동창회 핑계로 거절했더니… 그럭저럭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섀도우 월드에 접속했다. 뇌진탕이라고 해 봐야 하루 밤 자고 나면 완전 정상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니… 한숨 늘어지게 잔 거라고 할까? 때문에 섀도우 월드에서 접속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다음부터는 일찍 알려주게나… "노력하지 마나르트." 나는 친근감을 높이자는 의도에서 마나르트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인간에게 내 이름을 불리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로군. 이런 문구는 어떤가? 내가 마검 속에 봉인 된지 어언 120년. 드디어 만난 주인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으니 나는 인간과 마족의 첫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되었더라. 어떤가? 자서전에 쓰면 멋질 것 같지 않나? … 역시 재미있는 검이로군. 나는 배낭을 들쳐 매고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졌다. 흠…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돌아다니면 도둑이 꼬일지도… 초연 씨의 말로는 나를 따라하는 인간들이 생겨서 얼마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나는 머리카락들을 조금 앞으로 옮겨서 얼굴을 가렸다. 흐으… 좀 음침한데? -대단하군. 머리카락의 위치를 이동시키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그렇게 바뀌다니. 마치 고급 마족 뱀파이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군. 그런데 주인 씨의 이름은 무엇인가? "아아… 세한이라고 하지, 마나르트 씨." -흠… 특이한 이름이군. 세한이라… 나는 마나르트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여관을 나섰다. 흠… 샤프소드가 고쳐졌을까? "미안하네." "………." 나는 하크가 내미는 짧은 길이의 소검을 보며 침묵을 지켰다. -허어… 괜찮은 검이긴 한데 너무 짧군. 설마 이게 자네가 말하던 샤프소드라는 놈인가? "시끄럽네." -………. 혼자 중얼거리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하크는 내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자 움찔거렸다. "이거 왜이래요?" "재고에 미스릴이 없더군. 합금도 없고… 그래서 나중에 큰 도시로 가면 고치라고 소검으로 만들어 뒀네. 어차피 그 검이 있으니 괜찮지 않나? 아마 바로드 시에 가면 고칠 수 있을 거야. 상당히 큰 도시니… 여기서는 미스릴을 도저히 구할 수 없었네. 그리고 바로드에는 경매장도 있으니…." 나는 한숨을 내쉬며 샤프소드를 받아들었다. 진짜 짧아졌군. 쇼트소드와 비슷? 아니 조금 더 짧을 지도… 나는 역시 짧게 바뀐 검집을 허리에 차고는 다른 장비들을 장착했다. 후우… 씁쓸하군. 그래도 마나르트가 샤프소드보다는 좋으니… "바로드 시라…." "어이, 한!" 필이로군… 여기로 오라고 했으니 나는 몸을 돌려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필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녀석이 몸을 흠칫 떠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놈도 그러네? 하크 씨하고 제시도 그러더니… 내가 그렇게 음침하게 보이나?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는데?" "그렇지?" "흠… 1000골드." 나는 한숨을 내쉬며 돈을 건네주었다. 흑흑. 이제 겨우 100골드 남았네. 나는 희희낙락해 하는 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좋냐? "흐으… 이젠 돈도 없으니 꼼짝없이 바로드로 가야겠군. 경매장에서 클레이모어를 팔아야지…." -흠? 클레이모어? 그 웃기게 덩치만 큰 녀석 말인가? 그럼 얘기가 쉽지. 나를 보게나. 그 녀석처럼 커지고 훨씬 강해져도 깃털 같은 무게가… "닥치게나." -………. 다시 한번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하크와 필. 크흐… "닥치긴 뭘 닥쳐? 너 바로드에 갈 거면 퀘스트를 하면서 가지? 바로드는 상당히 큰 도시라서 상단 호위 퀘스트가 많으니까." 흠? 퀘스트라… 용병일을 하라는 거지? 월급도 받고 바로드도 가고… 일석이조로세. 접수. 하지만 오늘 저녁에 필이 찾아오기로 했지… "그래도 오늘은 안 된다. 내가 너희 집에 가기로 했잖아." "알고 있어. 그럼 사냥이나 갈까? 같이 갈래?" 내 질문에 필은 씨익 웃더니 새끼손가락을 들이대며 히죽거렸다. "안됐지만 이거를 만나러 가야된다네. 그럼 나는 가본다. 아, 돈 고마워." 흠? 여자 친구라… 게임에서를 말하는 건지 현실에서를 말하는 건지… 어느 쪽이나 여자 꽤나 홀릴 놈이니… 성격이 좀 괴팍해서 그렇지만… "그럼… 제시 너라도 갈래?" 혼자 가기가 그래서 제시에게 권유를 해 보았으나 하크 씨가 눈을 치켜떴다. "좀 있으면 손님 몰릴 시간이야. 사냥이나 잘 하고 오게나 VIP." "하크 아저씨 말이 맞아. 다음에…." 아쉬워하는 얼굴의 제시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혼자서 가지 뭐. 오랜만에 리자드 동굴이나… -드디어 사냥을 가는 건가? 후후후… 어서 가세나. 빨리 몬스터의 내부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네. 망할. 혼자가 아니었지. 나는 길을 걸으며 고개를 휘저었다. 재밌기는 하지만 성가시기도 하는데… 오랜만에 어둠의 숲에 들어왔다. 흐흠… 이제는 오크들 정도는 쉽겠지? 그 짜증나던 투척 도끼들도 마신의 신전에서의 화살들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흐으… 다시 한번 그 다크 워리어에게 불타는 적개심이 느껴지는군… 마나르트의 힘을 되찾으면 이길 수 있을까? "어이, 마나르트." -무슨 일인가, 세한? "자네가 있던 신전말이야… 거기에 있던 다크 워리어… 알고 있나?" -물론이지. 서열 107위에 빛나는 이 몸의 뛰어난 마력을 가져간 망할 마신 님과 같은 운영자 아닌가? "그럼 그 녀석과 자네가 싸우면 누가이기나?" 그래도 운영잔데 그 다크 워리어가 이길까? -글쎄… 하급 마족이기는 하지만 원래는 중급 마족인 데스 나이트던 운영자지? 게다가 운영자라 상당히 강한데… 하지만 서열 107위에 빛나는 고귀하신 최상급 마족 마나르트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는 놈이지. 헉!? 상대도 안돼? 호오라… 괜찮은데? "그럼 내가 자네의 힘을 되찾아준 다음에 그놈과 싸우면 어떻게 되겠나?" -자네가 80% 질 것 같군. 내 힘을 되찾아도 자네가 쓰지 못하면 그대로 꽝이야. 그리고 검에 봉인되면서 나도 많이 약해 졌다네. 거기다 자네 실력이 너무 떨어질 걸? 이, 이놈이 내가 싸우는 모습을 언제 봤다고… "너무 섣부른 판단은 금하지 그래? 흠? 오크잖아?" 나는 취익거리며 나타난 몇 마리의 오크들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오크? 그 돼지머리 몬스터? 처음으로는 그런 약한 놈들의 내부세계를 구경해 가는 건가? 점차 강한 놈들의 속을 구경하게 되겠지? 흠… 그럼 자서전에 추가할 준비를 해 놓고… "취이익! 인간이다!" "취익! 죽인다! 취익!" 나는 한숨을 쉬고는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오랜만에 들어도 저 듣기 싫은 콧소리는 여전하군. 그때 웬 오크 한놈이 던진 도끼가 날아왔다. 훗. 간단히 쳐내주지. 스아아악! 헉!? 갑자기 엄청나게 넓어지는 마나르트. 뭐, 뭐야? 내가 당황하는 사이 도끼는 넓어진 검날에 막혀 떨어졌다. -후후후… 어떤가? 놀라운 실력이 아닌가? 자네가 죽지 않도록 약간의 배려를 했다네. 이, 이 망할 놈이… 검이 주인 허락도 없이 커지냐!? "주인 허락도 없이 커지는 검이 어딨어! 나는 저 도끼를 쳐낸 다음, 바로 달려들 생각이었단 말야!" -허, 살려줘도 잔소린가? "젠장… 샤프소드가 나았지… 자네가 안 도와줘도 여기에는 날 죽일 만한 놈들은 없어! 내가 명령을 내리기 전에는 가만히 있게나. 앙!?" -………. 나는 마나르트가 조용해진 것을 확인하고는 오크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커졌다가 줄어든 검을 보며 오크들은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가 내가 달려들자 정신을 차리고는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취이익!" 내 허리 높이로 날아오는 쇼트소드. 나는 검으로 쳐낸 뒤 옆으로 움직이며 오크의 목을 베었다. 아니, 베려고 했다. 퍼억! 오크는 목도에 맞은 듯 앞으로 쓰러졌다. 이, 이건… 맞다. 이 자식… 전투를 하는 중에도 검날을 바꾸지 않는 거냐? "에라이! 이, 한심한 검 같으니! 싸움을 시작하면 날을 세워야 할 것 아냐!" -허, 명령을 내리기 전에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않았나? 비꼬는 듯한 마나르트의 말에 나는 짜증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런 눈치와 수완도 없는 자식이 무슨 마족 서열 107위야! 그런 오크도 할 만한 생각을 하지 못한단 말야! 이래서야 차라리 보통 검이 났잖아!" -가, 감히 나를 오크보다 못하다고 하다니… 말이 너무 심하지 않나! 거기다, 이 고귀한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검이 보통 검보다 못하다니! 취소하게! "시끄러!" "취, 취익! 미, 미친 인간이다. 취익!" "미, 미친 인간은 취익! 싸우면 안된다 취익!" "취익! 하지만 저런 취익! 고물 검을 가지고 있는 취익! 인간이 미쳤다고 해도 취이 익!" "미쳐!?" -고물 검!? 나는 중얼거리는 오크들을 노려보았다. 흐흐흐… 미쳤다고… "이보게나, 마나르트. 왠지 마음이 맞은 것 같지 않나? 나는 저런 말을 듣고서 참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네." -열심히 하게. 내가 성심성의껏 보좌하지. 나도 고물 검이라는 말을 듣고 참을 만큼 마음이 넓은 검이 아니라네. "후후훗. 한번 해볼까?" -내 뛰어난 머리로 자네가 무딘 날이 필요할 때와 날카로운 날이 필요할 때를 구분해 알아서 바꿔주지. 길이도 물론 바꿔 주겠네. "기대하지. 죽어봐라 이 돼지머리들!" "취, 취에엑!" "취이익!" 나와 마나르트는 한마음 한뜻으로 오크들에게 살기를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죽어랏! 이 망할 돼지 대가리들! "취이익!" 내 주위에는 열 마리가 넘는 수의 오크들이 쓰러져 있었다. 거기다 내가 싸우고 있는 오크들로 6마리나 되는 것이 오크들 단합대회라도 하는 듯 했다. "취이익! 죽어라!" 내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 하지만 나는 깨끗이 무시하며 앞의 오크를 베어 넘겼다. 스아아아악! 순식간에 검날의 옆이 길어지며 내 옆을 가렸다. 검날과 비슷한 두께와 길이와 크기였지만 오크의 검을 막기에는 충분했다. 깡! "취이익!" 마나르트는 생각보다 괜찮은 검이었다. 저렇게 옆에서 공격이 오면 지가 알아서 옆으로 검을 늘려 막아내었는데 날카로움으로 그냥 검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검날을 무디게 만들어 오크들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하지만 내가 쓸 때는 무지하게 날카롭다. 후훗. 마음이 통하니 괜찮군. -이보게, 세한. 이제 오크들은 너무 지겹구만. 근처에 다른 놈들은 없나? 투덜거리는 마나르트. 나는 검을 휘둘러 또 다른 오크를 베어내며 대답했다. "이제 리자드 동굴이 나오지. 리자드 워리어까지 서식하는 곳이네." -그런가? 그럼 자서전에 리자드의 자리를 구상해야겠군. 흠… 좀 들어보겠나? 오크에 대해서 쓴 건데… 흐흠… 누구나 돼지머리를 한 허약한 몬스터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검이 되고 첫 주인을 만났을 당시 그 돼지머리들의 몸 속을 연구 할 수 있었다. 마치 돼지우리 속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은 상당히 불쾌감을 주었다. 하지만 나와 나의 주인에게 무례한 언동을 했던 개미만도 못한 지능과 저돌성은 높게 평가할… 나는 큭큭거리며 마나르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물론 오크들을 다 죽이고서. 내가 떨어진 돈들을 다 줍자 마나르트의 말도 끝났다. -어떤가? 이 정도면 마계에서 베스트 셀러를 차지할 수 있을까? 마계에서 '검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출간할 계획인데. 아, 그냥 여기다 책을 내볼까? "후훗. 재밌기는 하더군. 하지만 아직은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일세." -그렇지? 나도 느끼고 있다네. 아무래도 몇 번의 여행이 더 필요할 것 같네. 그런데 리자드 동굴은 어딘가? "아, 다 왔는… 뭐지?" 나는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리자드 동굴의 입구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다가 입구에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런… 마나르트. 얼마간을 말을 걸지 말게나. 아, 아니지. 말을 거는건 상관없지만 대답은 못해 주겠군. 그리고 날은 날카로움을 유지해 주게. 샤프소드 정도로. 그리고 모습도 변하지 말고." -알았네. 그런데 파티를 맺고 동굴을 들어가려는 것 같은데? "그런 것 같군."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구로 다가갔다. 모두 5명의 사람들이었다. 남자 둘에 여자 셋. 역시나 모두 미남 미녀… 아, 아니구나. 남자 중에 하나는 중년인의 모습이었다. 마법사로 보이고 멋지게 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실제 나이가 저 정도인 모양이지? 흠… 저런 수의 사람들과 같이 들어가면 잡을 몫이… 안 그래도 가뜩이나 레벨도 안 오르는데… 그때 나를 발견했는지 여자 중에 한 명이 나를 가리키며 뭐라고 입을 열었다. 다른 일행들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는데 모두 한번씩 놀란 표정을 짓거나 흠칫거리는 것이 나의 변신을 실감케 하고 있었다. 나는 별 신경 쓰지 않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그 중년의 남자가 나를 붙잡았다. 뭐야? 나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흐흠… 미, 미안하네. 하지만 해줄 말이 있어서…." "뭡니까?" 겉보기와는 달리 목소리는 괜찮다 싶었는지 좀 안도한 표정을 짓던 남자는 내가 빤히 바라보자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 리자드 동굴에 리자드 버서커들이 나타난다고 하더군." "리자드 버서커?" 그게 뭐래? 리자드 워리어보다 강한 놈들인가? 그래도 마스터보다는 약할텐데… 마스터가 두 번째로 강한 놈이니… -리자드 버서커는 말 그대로 미친 도마뱀이지. 먹이 감을 보면 그야말로 미쳐서 달려든다네. 자네라면 1:1로 붙으면 쉽게 이길 거야. 아까 보니 신기한 능력도 많고 실력도 좋더군. 한 레벨 100정도는 되야 상대할 몬스터지. 정말 똑똑하고 현실적인 검이야. 레벨까지 알고 있으니… 하긴 운영자를 씹어대는 놈이니 알고 있을 만도 하지… "그래서 여기에 모여 계시는 겁니까?" 내 질문에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혹시나 리자드 헌터라도 있으면 몰라도 우리 레벨로는 혼자서 잡기는 불가능이라… 혹시 자네 우리 파티에 들어오지 않겠나? 앞에서 싸울 전사들이 부족해서… 지금 자리가 딱 하나 남아있다네." 파티는 6명이 끝이지… 그런데 이렇게 꾸미니까 못 알아 보내? 기왕에 하는 거 성격도 좀 싸늘하게 바꿔봐? 나는 나를 좀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4명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 남자는 마법사고… 다른 한 명의 남자는 검사로 보인다. 여자들은… 한 명은 신관 복을 입고 있는 것이 신관으로 보이고… 한 명은 마법사. 마지막 한 명은… 도둑?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을 훑어보자 슬슬 시선을 피했다. 크흑. 도대체 내가 얼마나 무서워 보인다고! 세한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음산하게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검집도 없는 검은빛의 검을 들고 있는 세한은 가히 마족이 풍기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어쩐다? 그냥 파티를 맺고 들어갈까? 흠… "그런데 그 버서커란 놈이 몇 마리나 있길래…." 내 질문에 중년 마법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음? 당연히 한 마리지. 여기에 그런 강한 놈들이 많으면 얼마나 있겠나? 레벨 120은 돼야 잡을 수 있는 몬스터인데…."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의 실력도 짐작하겠군. 아, 나도 그렇게 고렙은 아니지? 그래도 한 마리면 너무… "후… 받아들이죠." 중년의 남자는 미소를 지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약간 불만에 찬 표정이었다. 아마도 이 마법사는 내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파리운 님이 파티를 신청하십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응." 나는 대답을 하면서 내 정보 공개를 최하로 맞추어 두었다. 직업을 들키면 안되지… 파티 창을 열어보니 다른 사람들의 레벨과 직업. 아이디가 떠올랐다. 모두 평균적으로 80정도… 가장 높은 것은 이 중년의 마법사였는데 레벨이 89였다. 리자드 워리어를 상대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이 정도면 이 던젼 통과는 하겠지만… 버서커가 워리어들과 함께 나오면 어쩌려고… "음? 자네는 공개하지 않을 건가?" "아,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어서… 레벨은 93. 검사입니다. 이름은 한입니다." 내 말에 중년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가 뭔데 공개를 하지 않냐고 하는 듯한데… 왠지 짜증나는군… "그럼 들어 가세나. 음… 자네가 나와 앞장을 서 주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내 옆으로 그 마법사가 따라 붙었고 다른 일행들은 뒤를 따라왔다. "섀도우 월드를 한지 얼마나 됐나?" "한 세 달 정도…." "하하하. 자네도 현실에서는 평범한 직장인인 모양이군. 나도 상용화를 하면서 시작했는데 아직도 89에 머물고 있다네. 이 친구들도 비슷하지. 모두 게임 밖에서도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라네." "그렇군요." 마법사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말을 걸었다. 허, 참. 다른 사람들은 가까이에도 오려고 하지 않는 구만 특이한 사람일세? 뒤에서는 여자들이 내가 재수가 없느니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밌는 인간이군. 흠흠… 자서전에 추가할 만한 게 더 늘었어. 이런 마족의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인간이라… 마나르트의 중얼거림에 나는 빙긋 웃음을 지었다. 내 웃음에 파리운이라는 마법사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시하며 검을 들어올렸다. "오, 온 건가?" "버서커는 아닌 거 같군요. 한 6마리 정도…." 내 말에 뒤에서 검을 뽑아드는 소리가 나더니 테일이라고 했나? 그 남자 검사가 파리운의 앞을 막아섰다. 파리운도 순순히 뒤로 물러나며 조심하라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앞에서 6마리의 리자드맨들이 나타났다. 흠… 리자드맨? 후훗. 장난 좀 쳐볼까? 나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 이봐!" 테일이라는 검사가 당황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큭큭. 나는 망토를 옆으로 조금 젖히며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 뒤에서 '어어…' 어쩌구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리자드맨들이 크르륵 거리며 앞으로 나서자 나는 단검들에 손을 가져갔다. "대거 댄싱." 양손에 순신간에 휘둘러지며 6개의 단검들이 날아갔다. 크라락! 리자드맨들이 당황하는 사이. 단검 3개는 리자드맨들의 목에 정확히 박혔고 나머지 3개는 가슴과 팔을 찌르는 데 그쳤다. 헤헤헷! 갈고 닦은 실력이라 이거야! 이제 단검 던지기도 40을 넘었다고! 확실히 내 스킬들의 레벨은 대부분이 40대에 진입해 있었다. 후훗. 놀랐을라나? 나는 3마리의 리자드맨들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마나르트를 뽑아들고 뒤로 물러났다. 다른 일행들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 자네. 검사라고…." "저는 좀 쉬죠." 내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는지 테일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흠? 나만 날뛰는 것은 못 봐주신다? 리자드맨 세 마리와 싸움을 벌이는 테일. 잘하네? 곧 테일은 세 마리를 모두 해치우고는 나를 노려보며 돌아왔다. 프리스트, 아니 아직 명칭이 없나? 어쨌든 신관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대단하구만… 그런데 자네 검사라고…." …… 괜히 잘난 척 했네. 그냥 있는 건데… 뭐라고 한다… 내가 속으로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사이. 다른 일행들도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일종의 경계심도 섞여있었다. 크으… 뭐라고… 음? 나는 식스센스에 몬스터들이 잡히는 것을 알아내고는 얼굴을 굳혔다. 머리카락에 가려 표정은 보이지 않겠지만 내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일행들도 덩달아 동굴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크라라라… 크르륵! 'WARRIOR'. 워리어 8마리… 그리고 그 워리어들의 중앙에서 케르륵거리는 붉은 빛을 띄는 이상한 리자드… 저놈이 버서커? 끔찍한데? 저 놈을 죽이면 경험치가 좀 오를까? -후후… 재밌게 생겼지? 주인 씨. 저놈의 내부세계를 탐험하고 싶네만? 저놈을? 가까이서 보면 더 끔찍하겠는데… 내가 심각한 고민을 하는 사이 전투 준비를 끝낸 일행은 놀란 목소리로 말을 나눴다. "워, 워리어가 8마리나… 어쩌죠?" "글쎄… 먼저 리자드 워리어를 해치우는 동안 누가 버서커를 막고 있어야…." "하지만 워리어 8마리면 버서커가 없어도 해치우기 힘든, 위험한 숫자라고요."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는 일행들. 흠… 나 혼자였으면 나도 죽었겠다. 워리어 8마리면… 이길 수 있겠지만 저 리자드 버서컨지 하는 놈이 위험해 보이는데… -세한, 부탁이네. 저놈과 싸워.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란 말일세. 흐이그… 쫑알거리기는… 나는 고개를 휘휘 젓고는 앞으로 나섰다. "저 버서커는 제가 맡죠." "흠? 정말인가?" "예. 다른 놈들이 끼어들지 못하게 좀 해주세요." "알았네." 크라락! 영화의 한 장면이냐? 우리의 짧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리자드들이 달려들었다. 혹시 여기에도 운영자가? 나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체인 라이트닝!" 파리운의 고함소리와 함께 앞으로 뻗어나가는 전기, 아니 번개. 그 전류 덩어리는 맨 앞의 리자드에 적중하더니 옆으로 계속 이어지며 다른 리자드들을 감전시켰다. 리자드 워리어들이 주춤하는 사이 나는 사이로 파고들며 리자드 버서커에게 달려들었다. 케에엑! 헉!? 빠르다! 나는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지는 리자드 버서커의 팔치온을 막아내었다. 우이씨… 위력은 낮지만 속도는 상당한데? 케에에에엑! 리자드 버서커는 괴성을 지르며 검을 마구 휘둘러대었다. 젠장! 음!? 그때 내 뒤에서 느껴지는 위험신호. 다른 사람들은 뭐하는 거야! 챙! 그때 내 뒤에서 검의 소성이 울리더니 테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 말고 싸워." 어쭈 반말!? 아, 나보다 나이가 많았나?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반격해 들어갔다. 삼연격 이상의 기술을 사용하면 의심을 받을라나? "크로스(Cross)!" 챙! 푸욱! 하나는 막히고 하나는 베고. 나는 리자드 버서커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는 스쳐지나갔다. 케레레레레렉! 상당히 열이 뻗은 모양이지? 나는 버서커가 몸을 돌리자마자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맹수들은 사냥감이 이렇게 물러나면 더 따라온다고 하던데… 케레렉! 순식간에 달려드는 리자드 버서커. 나는 급히 바리어를… 생성하면 안돼! 내가 멈칫하는 사이 버서커의 검이 내 가슴을 갈랐다. "크읏!" 나는 신음을 흘리며 물러났다. -어, 어이, 세한! 어디 아픈가? 그걸 못 막아서… "시끄러!" 나는 고함을 지르며 버서커에게 달려들었다. 크으… 너무 자만에 빠져있었나? 오크나 리자드맨이야 나한테는 별 경험치도 주지 않는 몬스터인데… 나는 스스로를 질책하며 리자드 버서커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버서커는 왼쪽으로 피하며 위에서 검을 내려찍으려 했다. 여기서 OPG로 승룡권을… 쓸 수가 없잖아! 나는 위에서 내려 떨어지는 팔치온을 간신히 피했다. 크으… 내 다시 파티를 맺나 봐라. 또 다시 날아오는 팔치온. 이날 나는 여러 기술의 조합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깨달았다. 하긴… 검술만 사용하면 나는 보통 내 레벨의 검사와 비슷하지? 조금은 강하겠지만… 케레렉! 빌어먹을… 기술도 못쓰고 주먹도 못 쓰고… 이런 변이 있나? 나는 급히 뒤로 몸을 날 렸다. 바닥을 강타하는 팔치온. 조금 뒤로 물러나니 리자드 워리어들을 상대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호오라… 안보고 있다는 말씀? -이봐! 아까에 비해서 너무… "다물게나." 나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리자드 버서커에게 달려들었다. "속검(速劍)…." 기술명을 이렇게 작게 말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나는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며 리자드 버서커의 검들을 후려쳤다. 4번째 공격에 팔치온이 하늘로 올라갔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승룡권(昇龍拳)." 철컥! 튀어나오는 OPG의 손톱. 리자드 버서커의 가슴을 두 번 강타하고 어퍼컷을 날린다. 키르륵! 리자드 버서커의 머리가 하늘을 향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팔치온을 휘둘러 나를 찍고 있었다. 크으… 피하기가 늦었는데… 이래서 광전사니? 나는 몸을 비틀며 검을 내질렀다. "살검(殺劍)." 나는 빠르게 검을 찔러 리자드 버서커의 목을 따버렸다. 하지만 내 어께에도 팔치온이 작렬했다. "커어억!" 나는 비명을 토하며 뒤로 물러섰다. 끄으으… 어깨 안 잘렸나? 동굴의 벽에 등을 기댄 나는 리자드 버서커의 몸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치이이… 마스터도 아닌데 이런 상처를… 어깨를 부여잡으며 포션을 꺼내려 품속에 손을 집어넣던 나는 얼굴을 굳혔다. 일행의 가장 뒤에 있던 여자 신관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드, 들킨 걸까? 곤란해지는데… 그 여자 신관은 나를 빤히 돌아보더니 한창 싸움이 일어나는 곳을 우회해서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치료해 주겠다? 그런데 조심 좀 하시지… 나는 단검을 하나 던졌다. 쉬이익! 달려오던 신관은 내가 단검을 던지자 놀라서 멈춰 섰다가 자신의 옆에서 리자드 워리어의 괴성이 들려오자 다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내 단검에 팔을 맞아 주춤거리던 리자드 워리어는 전기와 불의 합동 공격을 받으며 괴성을 질렀다. 큭큭. -흐음… 이제 보니 실력을 숨기려 한 건가? 왜? 그런데 저 여자는 보고 있던데? "……좀 일찍 말해 주지 그랬나?" 크흑… 직업을 물어오면 어떻하지? 사실대로 말해? 음? 그러고 보니 말해도 별 상관은… 있나? 내가 고민하는 사이 그 신관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 젠장. 뭐라고 한다… 내가 심각한 고민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그 신관은 내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손에서 이상한 빛을 내더니 그 빛을 내 어깨로 가져갔는데 서서히 치료가 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품속에서 붕대를 꺼내서 어깨를 감아주는 것이… 솔직히 나보다 못하는데… "당신 검사 맞아요?" 크으윽! 뭐라고 한다!? 솔져라고 말했다가는 뭔가 여파가 클 것만 같은데… 페페가 알려주면 귀찮아 질지 모르니 가만히 있으라고… 미토스도 그래서 비공개를 하고 있는 거 아냐… 내가 빠르게 머리를 돌리고 있는데 마나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 정체를 숨기려 한다는 거지? 아마도 자네의 그 특이한 것들을 감추려 하는 거 같은데… 내가 좋은 거 알려주지. 말하면 죽인다고 그래. ……이런 망할 자식이! 죽이긴 뭘 죽여! -자네 성격에 망할 자식이 어쩌고 죽이긴 뭘 죽이냐고 지랄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네만… 자네야 잘 모르겠지만 지금 자네의 분위기는 가히 마족의 분위기라네. 죽인다고 조용히 협박하면 입을 다물고 있을 거야. 날 한번 믿어 보게나. 흠? 정말일까… 으음… 그 여자 신관, 세나라고 했나? 그 신관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흐으… 한번 해보지 뭐. "……보셨다면 입을 다물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음산한 목소리를 내려 노력했고 그 결실은 여자 신관이 흠칫 몸을 떠는 것으로 드러났다. 호오? 진짜 효과가 있잖아? "무슨… 말이죠?" "아까 단검을 던지는 걸 보셨을 겁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드리죠." 여자 신관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것을 확인한 나는 몸을 일으켰다. 후… 어제부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많이하게 되는군… 어제는 그것 덕분에 기절까지 했는데… 이번엔 괜찮을까? "치료 감사합니다." 나는 마나르트를 들어올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흐음… 워리어들은 3마리가 남아있었는데 마법에 죽은 놈들도 3마리나 되는 것이 저 마법사들의 실력이 제시보다 훨씬 뛰어난 모양이다. 제시가 잘못 키운 건가? -푸헤헤헤헤! 하란 다고 진짜하나!? 크크크… 진짜 효과 죽이지? 자네라면 마계에서도 살수 있을지 몰라. 푸헤헤헤! ……참고 만다. 통과했으니… 크으으… 다른 일행들을 도와주려고 다가가던 나는 식스센스에 다른 몬스터들이 걸리는 것을 느끼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저쪽인데… 신관은 나를 긴장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 뒤로… 케레레… 하, 한 마리라며! 나는 신관의 뒤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는 리자드 버서커 한 마리와 리자드 워리어 5마리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부, 불가능. 지금 뒤의 일행들은 나머지 놈들을 죽이는데 바쁘고 나는 부상. 그렇다면 결론은… "모두 도망쳐!" 내 외침에 일행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튀라면 튈 것이지!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리자드들을 보며 굳어있는 여자 신관을 발견하고는 그리로 달려갔다. "버, 버서커가, 또 한 마리…." 뒤에서 파이룬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던 리자드들이 덜덜 떨고 있는 신관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쳇! 저런 멍청한! 도망을 쳐야지 바닥에 주저앉아!? 나는 혀를 차며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꺄악! 세나!" 뒤에서 일행의 여자 중 한 명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튀라는데 안 튀고 뭐해! 동굴 안에서 나타난 리자드들은 어느새 세나라는 신관의 지척에 다다르고 있었다. 제길! 늦는다! "마나르트, 미안하네. 좀 천천히 돌아오게나." -엥? 무슨 말인가? 어어… 우와앗! 나는 그대로 마나르트를 집어던졌다. 단검정도로는 버서커를 멈추게 할 수 없다. 하지만 마나르트라면… 마나르트는 빠르게 날아가 리자드 버서커의 가슴에 박혔다. 버서커가 괴성을 지르며 멈춰 섰다. 좋아! 신관에게 도달한 나는 그 신관을 안아들고는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튀어요!" 나는 리자드 워리어 2마리를 남겨두고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일행들에게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일행은 리자드 워리어들을 물러서게 하고는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허허… 뒤에서 엄청난 살기가 느껴지는데… 내 예상이건만 저 살기에는 마나르트의 것도 섞여 있을지 모른다. "후웃! 선풍각(仙風脚)!" 우헤헤… 신선의 바람과 같은 이 몸의 발차기에 한번 쓰러져 보셔! 나는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리자드 워리어의 관자놀이를 돌려차기로 날려버렸다. 그것도 빙빙 돌며 두 번 연속으로. 내게 안겨 있는 신관이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은데… 흐음… 내가 현실에서도 이럴 수 있으면 강 사범님께 깨지지 않을 텐데… 크르륵! 케레렉! 뒤와 옆에서 들려오는 도마뱀들의 울음소리. 내가 저런 울음소리를 그리워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구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일행들의 뒷모습이 보이고 있었는데 내가 돌려차기를 하는 것을 보지 못한 듯 했다. 하긴, 그래서 한 짓이니까… "방금 것도 발설하지 말아주십쇼." 내 말에 신관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세한이야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 빠르게 달리는 덕분에 세한의 머리카락들은 뒤로 넘어가 있었고 그런 그의 얼굴을 세나라는 신관이 놀란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후우… 마나르트가 뭐라고 꽥꽥거릴지 걱정이군… 검에게 시달릴 걱정을 하는 주인이라니… 뭔가 입장이 뒤바뀐 듯한 느낌이… 한숨이 나오는군… "헉, 헉. 죽는 줄 알았군." "버서커는 한 마리뿐이라면 서요." "미, 미안하구만. 정보가 잘못됐던 모양이야." 나는 달리는 도중 뒤로 넘어간 머리를 다시 앞으로 넘기고 있었다. 후우… 누가 보지 않았나 걱정이군. 그런데 마나르트는 뭐하고 있을까? 우리 일행은 동굴에서 나와서도 한참을 달려 어둠의 숲의 어딘가에 멈춰 쉬고 있었다. 리자드들은 도마뱀들답게 뜨거운 태양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그리 멀리까지 쫓아오지 않았다. "후우… 이 멤버로는 모두 죽이기 힘들 것 같습니다." 내 말에 파리운이 내게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그럴 것 같군. 그래도 자네가 버서커를 한 마리 해치워 주는 바람에 내 레벨이 하나 올랐다네. 워리어들만 잡으면 이 일행으로 한 20마리 정도는 잡아야 간신히 오르는 건데 말야. 고맙구만." 후우… 정작 죽인 나는 1도 오르지 않았답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일행을 돌아보았다. 여자들은 한곳에 모여 앉아서 뭔가를 수근거리고 있었다. 어라? 혹시 저 신관이 내 얘기를 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자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돌아보던 신관이 고개를 저었다. 흠… 믿을 수 있을라나… "아, 이보게 한." 또다시 자기들끼리 뭔가를 조잘거리는 여자들을 노려보고 있던 나는 파리운의 부름에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신지… "왜 그러십니까?" "자네 혹시 이번 일요일하고 월요일에 시간 있나?" 흠? 일요일과 월요일? 일요일은… 동창회 온 애들이 돌아가면 시간이 되고… 월요일이야 시간이 남아돌지? "괜찮습니다만?" 내 대답에 파리운은 기뻐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그럼 우리와 함께 상단 호위를 하지 않겠나? 바로드로 가는 상단의 호위인데 그리 큰 상단은 아니라 고용된 사람들은 우리가 다지. 일요일은 휴일이고 월요일도 우리가 다니는 회사가 쉬는 날이라 그날로 잡았었는데… 자네라면 환영이네만?" 호? 바로드로? 안 그래도 가려고 하던 곳인데… 파티를 맺기를 잘했군. 혼자 들어가 면 위험할 지도 몰라서 같이 들어간 건데…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을까? 테일을 바라보니 오히려 환영하는 눈치가… 그럼 여자들은… 여자들은 돌아보니 불만을 가진 얼굴들은 아니었다. 그냥 날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 왜 저래? 아까는 재수 없다며? "흠… 다른 분들이 동의하신다면야…." "물론. 오히려 환영 할걸세. 우리 일행을 위해서 검까지 버린 사람인데. 암." ……왠지 찔리는 군. 하지만 여기서 사실을 말해서 일 망칠 이유는 없지. "그러면 일요일 몇 시쯤…." "현실시간으로 오전 11시 출발이네만?" 11시라… 동창회 온 애들이 어떻게 할지 모르겠군… 11시면 섀도우 월드에서는… 역시 오전인가? 오전 9시정도군. "어쩌면 조금 늦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 음… 그럼… 여기 상단이 지나가는 길이 있으니까 따라오게. 혹시 말이 있나?" 나는 파리운이 내미는 작은 지도를 받아들었다. 흠? 그러고 보니 씽을 보지 않은지가 오래됐어?(거의 잊혀진 녀석, 아니 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파리운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조금 늦더라고 따라오게나. 우리는 걸어서 이동하니까. 어차피 더 이상 고용될 사람도 없으니… 자네가 늦으면 곧 따라온다고 말해 두지." 흠… 친절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하하. 아니네. 그럼 다른 곳으로 사냥을 가지. 근처에 괜찮은 사냥터가 있다네." 음? 안 되지. 마나르트를 데리러 가야 되니까… "죄송합니다. 지금 가야할 곳이 있어서…." 내 말에 파리운은 실망한 얼굴이더니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상단 집결 지점은 차렌시의 술집이네. 하나뿐이니 알고 있겠지? 파티는 해체하지 않겠네. 어차피 멀리 떨어져 있으면 경험치 분배도 되지 않으니…."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나는 대충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자들을 지나치던 나는 세나라는 신관을 한번 노려보고는 일행에서 멀어졌다. 흠… 마나르트가 화가 많이 났으면 어쩐다… 후후훗. 어설프군… 나는 지금 동굴의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우선 겉보기로는… 스으으…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 아까부터 내 주위를 천천히 돌아다니는 '어떤' 녀석이 내는 소리였다. 흐음…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시오, 마나르트 씨? 느낌이 약간 어둡고 화살도 아니고, 검의 느낌이 짙은 것이 마나르트가 90% 확실했다. 아마도 날 놀라게 하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마나르트가 아직 내 식스센스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그냥 무시를 해줘? 그리고 놀라는 척을 해주면 화가 좀, 풀릴지도… 아니면 맞뿔 작전으로 한번 붙어? 흐으음… 내가 고민을 하며 걸어가는데 천천히 날아다니던 놈이 내 뒤로 오더니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내게 날아와 내 목에 겨눠지는 까만 검 하나. 예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칼날이… -나쁜 놈! 나를 사지에 버려 두고 가다니! 복수의 칼날을 받아라! "……날이나 세우고 그렇게 말하게나." -허억!? 낮은 비명을 지르는 마나르트. 나는 얼떨결에 말을 내뱉은 입을 꾹 다물며 마나르트를 움켜쥐었다. 후우… 어차피 이렇게 된거 부딪혀 봐야지… 아, 아니지 적절하게 사탕도 섞어서… "올 거면 빨리 오지 왜 주위를 날아다니나?" -헉!? "이래뵈도 자네 주인인데 그 정도는 기본이지. 자네 정도의 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정도 실력은 있어야 되지 않겠나?" -………. 흠? 왜 아무런 말을 없지? 좋아할 줄 알았더니? 흠… "그런데 리자드 버서커 구경은 잘 했나?" -자네 덕에 상당히 오래하고 있었지. 그 망할 자식이 날 부러뜨리려 하더군. 도망치는데 고생을… "…했을 리가 없겠지. 마족 서열 107위에 빛나던 자네가 그 허접한 리자드 버서커 따위에게 고생을 했을 리가 있겠나? 난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자네를 던졌던 거라네." -………. 마나르트는 할말을 잊은 듯 침묵을 지켰다. 휴우? 넘어간 건가? 생각보다 단순하단 말이야. 나는 휘파람을 부르며 숲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하필 나를 던진 건가? 역시 간단히 끝날 리가 없지… "리자드 버서커 정도면 단검에는 쓰러지지 않을 것이 아닌가?" -그러면 허리에 달려있는 그 롱소드는 뭔지 궁금하군. …… 크으… 단단히 준비를 하신 듯 한데… "나는 그저 자네의 성능에 믿을 가지고 행한 일이었는데… 저번에 던져도 알아서 돌아온다는 얘기를 한 것은 쓰라고 알려준 것이 아니었나?" -그래도 상호간의 동의하에 아까의 일이 이루어졌으면 더욱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거기다 마족 서열 107위에 빛나는 이 몸을 그런 인간 여자 하나 구하는데 써야 겠나? 거기다 신관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마족이라네. 무슨 검이 이렇게 깐깐하지? 검은 쓰라고 있는 거 아냐? 그런데 이제 보니 신관을 구하기 위해서 던진 것에 불만이 있었던 모양이지? "흐흠. 마족이 신관을 구한 사건도 자서전의 일부를 차지하지 않겠나?" -그런 내용을 첨가하느니 태워버리겠네. 자네 같은 주인이나 그 마법사 같은 특이한 인간들은 자서전에 수록할 만한 자리가 있지만 그런 신관에 대해 기록하느니 그 자리에 오크에 대한 찬가를 적어놓고 말겠네. 거기다 말일세… 계속 뭐라고 주절거리는 마나르트. 나는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잘 맞을 때는 괜찮은데 어떤 때는 너무 시끄럽단 말이야. "좀 조용히 하게나. 검 씨." -싫구만, 주인 씨. 지금은 내가 꿇릴 것이 없다네. 잘못은 자네가 하지 않았나? "빌어먹을! 검이 쓰라고 있는 거지 미관상으로 들고 있는 건가!?" -허! 이 고귀하신 영혼이 깃든 이 엄청난 검을 평범한 검하고 비교를 하나!? "뭔가 그 고귀한 영혼에 맞는 기품과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 후에 그런 말을 하게나." -흥! 자네야말로 나에게 어울리는 강력한 주인이 되도록 노력하게나. 자네 정도의 인간은 이 곳에 널리고 널렸어! "빌어먹을! 네놈을 꺼내온 것이 누군데 헛소리야!" -네, 네놈? 취소하게! "시끄러!" …… 오크들이 튀어나오지 않는 것이 나를 보면서 미친놈이라고 수근거리는 것이 아닌가 불길하군. 나와 마나르트의 말싸움은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여관의 침대에 드러누운 나는 마나르트를 움켜쥐었다. 마을에 들어온 후 암묵적인 휴전협정을 맺고는 아직 말이 없었다. "나는 로그아웃을 하지. 마나르트. 한 5일 정도 걸릴 걸세." -흥! 백년을 있다와도 상관없으니 말 걸지 말게나. "그래? 그럼 새로운 캐릭터를 한번 키워볼까? 정상적으로…." -기다리지. 영구적 휴전 조약을 체결하세나. "좋지. 책이나 쓰고 있게나." -흠… 그럼 리자드 버서커에 대해… 시뻘건 피부를 가진 재미있는 형상을 한… 나는 중얼거리는 마나르트의 목소리를 들으며 섀도우 월드에서 빠져 나왔다. 딸칵. 나는 캔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확인했다. 9시라… 진성이가 올 시간이 됐군. 나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대충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일은 페페가 오기로 했으니까 미리 청소라도… 똑똑. 흠? 집안을 분주히 돌아다니던 나는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현관으로 달려갔다. 진성이? 카메라에 잡힌 모습은… 저 여자는 누구? 나는 의문에 잠기며 문을 열었다. "여어, 현진아!" "어, 왔냐?" 나는 진성이를 집안으로 들이면서도 진성이의 뒤에서 따라 들어오는 여자를 살펴보았다. 처음 보는데? 누구지? 내 시선을 알아챘는지 진성이가 입을 열었다. "아, 현진아. 여기는 내 여자친구 신다혜 양. 다혜야 여기는 내 목숨받이 친구 김현진이." 흠? 여자 친구? 아까 말했던 사람인 모양이지? 겉보기에는 상당히 차분하고 착한 이미진데… 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신다혜라고 해요. 얘기는 진성이에게 많이 들었어요." "아, 예. 김현진이라고 합니다." 진성이라… 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 실례지만 화장실이…." "아, 저깁니다." 진성이의 여자친구라는 여자가 화장실로 들어가자 나는 진성이를 끌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진성이는 별말 없이 따라 들어왔다. "저 여자는?" "말했잖아. 내 애인. 아까 게임에서 말했던. 섀도우 월드에서 만났던 사람인데…." 나는 진지한 얼굴로 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흠… 너희 집에 대해서 얘기했냐?" "아직. 걱정 마라. 착한 여자니까." "인마. 나는 아직도 네가 질질 짜던 때가 생각난단 말야." 내 말에 진성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상급학교 시절이었는데… 진성이네 집안을 보고 접근한 여자에게 진성이가 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 돈도 많이 뜯겼었는데… 그때 진성이가 나를 붙잡고 통곡을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로도 그런 여자들이 꽤 있었고… 그래서 내가 여자를 사귈 때 집안에 대해서 얘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섀도우 월드에서 만났으면 그런 여자는 아닌 모양이지? "걱정 말게나, 팔년지기. 자네가 걱정하는 일은 다시는 겪지 않을 테니." "그래? 잘해봐라." 나는 미소를 지으며 진성이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흠… 잘 되면 좋겠는데… 그럼 팔년지기 친구로써 여자 점검에… 어라? 그러고 보니… "야. 그러고 보니 니 애인은 왜 데리고 왔냐?" "어라? 아직 말 않했나? 동창회에 자기애인들 데리고 오기로 했는데?" 뭐, 뭐야!? 그, 그런… 진성이는 내 얼굴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더니 당황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얘, 얘기 안한 모양이지? 재훈이하고 세진이가 사귀잖아. 그리고 대희하고 지현이도 지금 커플이라던데? 그래서 다른 애들도 질 수 없다고 애인들 데리고 온다고… 뭐, 소영이나 제시는 남자친구가 있을 리 없으니… 유리나 현철이, 정복이는 모르겠고…." 뭐, 뭐야! 그럼 사람이 얼마야! 한 15명은… 자, 잠깐. 그게 아니지? 그럼 이 자식은 자기 애인하고 내 집에서 자겠다는 말씀? "그, 그럼 다혜 씨하고 내 집에서 자겠다는 소리?" "음? 그런데?" 나는 이를 갈며 진성이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 이런 망할 자식! 어디까지 간 거냐! 나를 그렇게 앞지른다 이거지! 이걸 팔년지기 친구라고…." "지, 진성아!" 헉!? 나와 진성이는 동시에 옆을 바라보았다. 언제 나왔는지 다혜 씨가 나와서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설마 팔년지기끼리 싸움이라도 하겠습니까? 하하… 그럼 잠시…." "아, 걱정하지마." 나는 슬쩍 방문을 닫고는 진성이를 노려보았다. 진성이는 히죽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 망할 놈. "너, 아직 여자친구가 없는 모양이지? 그럼 제시하고 소영이 둘 중에 하나를 물지 그래? 돈도 있겠다… 특히 제시하고는 짝도 하도 친하지 않았냐? 이번에 애인 데리고 오는 애들을 봐서 한 명… 왜 그러냐?" 마, 맙소사… 그, 그러고 보니 내일 페페… 아, 아니 초연 씨가 오기로… 아, 안돼 막아야 한다! 나는 급히 전화기 앞으로 달려갔다. "어이… 왜 그래? 누구한테 전화 하냐?" 나는 깨끗이 무시하며 초연 씨네 집에 전화를 걸… 그러고 보니 전화번호를 모르잖아! 전화는 초연 씨가 했었지. "왜 그러냐?" "아, 그렇지! 강 사범님!" 나는 급히 태권도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제발. 제발. 강 사범님은 핸드폰이나 핸드메신저도…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맙소사. 문 닫았다. "왜 그러냐고!" 진성이의 고함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럴 수가… 어제도 그렇고 이제 내일도… 페페… 아니, 초연 씨 얼굴을 어떻게 본다니… "왜 그러냐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고함소리에 놀란 다혜 씨가 문을 슬쩍 열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크으…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한다… "큭큭큭." "시끄러!" 젠장.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었어. 나는 내 옆에 누워 있는 진성이에게 베개를 휘둘렀다. 진성이는 크억! 하는 단말마를 토해내고는 잠잠해 졌다. 크으으… 미치겠다. 어떻게든 초연 씨에게 연락을… 그런데 방법이 없잖아. 그때 부활한 진성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후후… 좋게 생각하지? 어쩌면 우리에게 애인사이로 굳어져서 좋은 결과가…." "죽엇!" "커헉!" 내 분노의 배게 공격에 진성이는 다시 쓰러졌다. 으으으… 이놈을 여기서 재우는 것이 아니었어. 거기다 미쳤다고 전에 있던 얘기를… 내 집의 방은 4개로 내가 침실로 쓰는 이 방에 게임 캡슐이 있는 제일 작은 방. 나머지로 괜찮은 크기의 방이 2개 있었다. 그 두 개의 방은 깨끗이 청소를 해 놓고 손님 접대용 방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다혜 씨는 거기서 자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남녀를 같은 방에서 재울 수는 없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오히려 좋은 효과가…." "크아악!" "꾸엑!" 진성이는 진짜로 기절했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잠겼다. 후… 이래서는 내일 초연 씨가 급한 볼 일로 오지 못하는 것을 바래야…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잠들었다. "여어! 현진아! 오랜만이다?" "오랜만이다. 현철아." 상당히 건장한 몸을 자랑하는 신현철. 상급학교 시절 우리 패거리 중 한 명. 그는 혼자서 들어왔다. "후후후… 진성아. 이 일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 하하하? 나, 나는 쟤들이 애인을 데려온다고 하길래…." "뭔 소리야?" 현철이가 의아한 눈으로 나와 진성이를 바라보았다. 거실에 가져다 놓은 음식들을 먹고 있던 다른 녀석들이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진성이가 여자친구 데려왔어! 대단한 놈이지?" "뭐? 너, 설마 그 말을 진짜로 믿은 거냐?" 진성이는 말이 없었다. 동창들 사이에 앉아 있던 다혜 씨는 얼굴을 붉히고 있었는데 다른 여자들이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 다른 애들이야 농담 삼아 애인을 데려오니 어쩌니 한 것이었는데 진성이는 진짜로 애인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나에게는 어느 정도 다행이라고 할까… "에이, 뭐 어때. 내 여자친구 소개도 하고 좋지 뭐. 그렇지 현진아?" "그렇지. 뭐, 애인을 데려오지 말라고 한 적은 없으니…." "물론." 나는 다혜 씨가 곤란하지 않도록 별일 아니라는 투로 얘기했다. 어차피 내가 애인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반대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었으니… "흐음?" "아, 가서 앉아. 이제 재훈이만 오면… 세진아! 재훈이 언제 온데?" "나 찾니?" "엥?" 활짝 열어둔 현관으로 재훈이가 들어서고 있었다. 안경에 깔끔한 인상. 척 보기에 엘리트로 보이는 겉모습. 하지만 저 녀석이 겉과 속이 따로 논다는 사실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지. "왔어? 문닫고 들어와." "그래… 오랜만이다, 철학과." "킥킥킥."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군. 하지만 넘어가 주지. 지금 기분이 상당히 좋으니. 현재까지 초연 씨가 오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무슨 볼일이 생긴 모양인데… 덕분에 나는 빙긋 빙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나를 다른 녀석들이 의아한 눈으로 혹은 미친놈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문제였지만… "야아! 다 모였으니 시작을 해 볼까?" "오옷!" 나는 부엌으로 가서 술 상자를 가지고 왔다. 상당히 비싼 놈들이지… 고급 와인도 있으니… 이게 다 진성이와 다혜 씨의 눈빛 공격 때문이야… 하지만 거실에서 부침개나 먹고 있던 녀석들은 환호를 내질렀다. "야아… 네가 술을 다 사냐? 역시 돈이 좋기는 좋으시지?" "오옷! 와인이닷! 그것도 꽤 고급으로!"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술들을 꺼내 돌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은 맥주는 병채로 마시지… 나는 여자들에게는 와인을 따라주었다. "헛!? 차별이냐!?" "너희는 맥주나 마셔. 이거 비싼 거니까 마셔봐. 아, 다혜 씨도." "훗! 김현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내게 생각이 있다." 내가 미소를 지으며 다혜 씨에게 와인을 건네자 진성이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쭈? 뭘 어쩌신다고? "얘들아! 오늘 현진이의 아리따운 여인이 온단다!" "뭐야!?" "현진이의?" "꺄아… 현진이가? 정말이니?" 저, 저 자식이! "박진성! 이 배신자!" 내가 달려들자 진성이는 재빨리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성이의 눈짓에 따라 빠르게 현철, 대희가 내가 달려들었다. 순간 나는 둘의 밑에 깔리고 말았다. 이, 이런 배신을! 박진성! 말하면 죽는다! 라고 외치려하던 나는 대희가 입을 막는 바람에 말하지 못했다. "웁웁웁! 웁웁!" "박진성. 말해봐라. 현진이의 여인이라니?" "빨리!" 내가 온 힘을 다해 저항하자 정복이가 다급히 외쳤다. 내 뒤에서 들려오는 여인네들의 말소리. "저, 저래도 괜찮을까?" "별 상관없을걸? 맞아봐야 진성이만 맞을 텐데… 그리고 궁금하잖아." "그래도…." "너도 듣고 싶지 않아?" "진성아 빨리 말해!" 크흐… 유일한 반대파 제시와 진성이를 독촉하는 다른 여자들. 젠장! 어제 말하는 게 아니었어. 진성이는 다른 이들의 기대 어린 눈초리를 받으며 호기롭게 외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강초연!" "호오? 강초연? 이름은 예쁜데…." 이건 재훈이의 목소리? 젠장! 박진성! 죽고 싶냐!? "읍읍읍!" "기다려 봐 현진아. 후후후…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흠?" "이틀전 현진이가 그녀의 작은아버님께!" 저, 저런 죽일 놈! 나는 온 힘을 다해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나보다 덩치가 큰 현철이에 대희까지 더해져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자신의 평…" 끝? 똑똑똑. 갑자기 들려온 노크소리에 진성이는 말을 멈추고 현관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현관을 바라보았는데… 서, 설마 초연 씨? "문을 열어줘야 되나?" "그, 글쎄?" 어느새 일어난 제시가 쪼르르 달려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선 갈색 머리의 여인. "죄송해요 세한… 아, 아니 현진 씨. 일이 생겨서 늦… 어머? 왜 그렇게…." 늦었다고 사과를 하며 들어오던 초연 씨는 현철이와 대희에게 깔려있는 나를 보고는 놀란 얼굴이었다. 젠장! 나는 결사적으로 몸을 움직였고 방심하고 있던 현철이와 대희는 얼떨결에 나를 놓치고 말았다. 좋았어! 나는 급히 일어나 초연 씨에게 달려갔다. 초연 씨의 눈망울이 커지는 것이… 이틀 전에도 이런 상황이… "죄송해요." "예? 아…." 나는 급히 신발을 신는 즉시 초연 씨를 안고 밖으로 도주했다. 제길. 내 집에서 내가 도망을 치다니… "어, 저 여자가?"-현철 "예, 예쁜데?"-재훈 "이재훈!"-세진 "진성아, 저 사람이 초연 씨 맞아?"-정복 "맞는 것 같은데? 갈색 머리에 조용, 차분한 이미지… 대충 들었던 것과 일치하는군."-진성 진성 등, 현진의 동창들은 현진과 의문이 여인이 사라진 현관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후훗. 이번엔 애인이에요?" "죄송해요… 진성이라는 친구가 얘기를 그렇게 퍼뜨려서…."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사과했다. 여기는 아파트 산책로인데… 초연 씨가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내가 인도한 곳이다. 후아아… 미치겠다. "괜찮아요.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면 올라가 봐야…." "그래야죠. 초연 씨는 이만 돌아가 보세요. 같이 올라가셔서는 오해만 더 커질 것 같은데요? 제가 어떻게 무마시켜 볼게요." "아… 꼭 그러시지…." "예?" "아, 아뇨. 그,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식사나 차는 나중에 대접할게요. 후훗. 점점 연기되는 데요?" "그렇네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직 대낮이니 에스코드는 좀 그렇겠지? 후우… "그럼… 다음에는 섀도우 월드에서 보겠네요. 동창회, 즐겁게 보내세요." "예…." 나는 초연 씨가 택시를 잡아타는 것을 확인하고는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박진성… 죽여주마. 나는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는 집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커허어어어억!" 곧 내 집에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알코올 수치가 적정 수치를 벗어낫습니다.> "커헉!?" 나는 비명을 질렀다. 이, 이럴 수가! 술을 마셔도 접속이 되지 않는 건가? 나는 캡슐에서 힘없이 빠져 나왔다. 크으… 진성이들을 몰아내고 나니 접속이 안돼? 비극이로다… 현재 시각은 일요일 오전 10시 47분. 어제 대낮부터 술을 마셔대던 나의 동창들은 밤이 되기도 전에 모두 뻗어버렸다. 가장 먼저 쓰러진 것은 진성이였는데 나에게 얻어터진 울분을 달래기 위해 엄청난 폭음을 하다가… 하여튼 쓰러진 친 구들을 처리하는 것이 곤역이었다. 오바이트를 한 놈도 있었고… 여자들은 내 침실의 침대와 이불을 깔고 눕히고… 그나마 제시가 살아남아서 도와줬다. 후우… 반대로 남자들은 두 개의 남은 방들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불만을 토하기는 했지만 자기들 잘못인지라… 나의 끈질긴 노력 끝에 동창들을 모두 돌려보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약속을 지키고자 섀도우 월드에 접속하려 했더니 알코올이 어쩌고 하면서 접속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쩌지? "후우우… 지금 시간이 50분이니까… 10분안에 술이 깰까? 아, 술 깨는 약이… 어쩌면 남았을 지도." 나는 술 깨는 약, 그 이름도 찬란한 '어택 알콜'이라는 드링크를 찾아 헤맸다. 크으… 다른 놈들 술 깨우느냐고 정작 나는 안 먹고 있었네. 나는 어느 정도 치우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저분한 집안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저절로 청소까지… 드링크는 어디 있니? "……됐다! 마나르트, 마나르트." 예! 드디어 접속했어! 11시 30분. 드디어 접속에 성공했다. 그 동안의 과정이라면… 드링크 하나를 발견해 들이키고 가 글하고 물 마시고 음료수도 마셔보고 아주 별별 짓을 다 해봤다. 하지만 출발시간에는 30분이 늦었으니… 여관 방에서 눈을 뜬 나는 마나르트를 찾기 시작했다. 어딨지? "아, 저기!" 침대 밑에서 마나르트를 발견한 나는 급히 손을 뻗었다. 이상하네? 전에는 계속 침대 위나 내 손안에 있었는데… 부르르! 헉!? 나는 뻗어가던 손을 급히 회수했다. 뭐, 뭐야? 갑자기 검이 울렸어? 아, 아니 부르르 떨었어? 마나르트는 갑자기 부르르 떨더니 옆으로 한바퀴 굴렀다. 왜, 왜 저래? 나는 놀란 얼굴로 다시 한번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내 손이 있는 쪽으로 한바퀴 구르는 마나르트… 마치 잠꼬대라도 하는 듯한… -쿨… 오오… 그대는 서열 201위의 밤의 숙녀 바시린 양? 오랜 만… 쿨… 이, 이런 망할 검이! 나는 이를 갈며 다른 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머리 속에는 마나르트의 잠꼬대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씽! 씽! 씽! 나는 마구간에서 씽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술집에 가보니 일행은 이미 떠나고 없었고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출발한지 한 한시간 반정도… 그래서 나는 씽을 찾으러 마구간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딨지? 도대체 이놈의 마구간은 말들을 왜 풀어놓는 거야!? 나는 한참을 헤매서야 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쪽 구석에서 무언가를 씹고 있는 씽. 나는 기뻐하며 달려갔다. "이야! 씽! 드디어 찾았다! 가자! 네가 필요한…." 덥썩! "뜨아악!" 나는 씽에게 내밀었던 팔은 물리고는 비명을 질렀다. 이, 이놈은 또 왜이래? 호, 혹시 너무 늦게 왔다고 화를 내는 것은… 나는 애써 고통을 참아가며 씽을 쓰다듬었다. "하, 하하… 씽, 미안하다. 그 동안 일이 있어서… 대신 지금부터 신나게 달릴 테니까 화 좀 풀어라. 응?" 푸르르. 나는 씽이 나를 외면하려 하든 말든 무시하고 마구간에서 끌고 나왔다. 마을에서는 말을 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씽을 끌고 가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 후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모두 개성이 너무… -크아악! 이 망할! 네놈이 뭐라고 내 마력을! ……미치겠군. 나는 마나르트의 잠꼬대를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놈은 왜 깨지 않는 거지? 드디어 마을 밖으로 나온 나는 지도를 꺼내 상단이 지나간 길을 확인했다. 흐음… 이 길이 확실한데… "실례합니다. 혹시 아까 어떤 상단이 지나가지 않았습니까?" "예? 아… 예! 마, 맞습니다. 아, 아까 용병 몇 명을 고용한 상단이… 예. 지나갔습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은 내 질문에 잔뜩 얼어서 대답했다. 왜 저래? 아, 혹시… "저… 제가 무서워 보입니까?" "예? 아, 아뇨!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맞았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씽을 돌아보았다. 혹시 너도 그래서 반항하던 거니? 나는 내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들을 뒤로 넘겼다. 씽이 푸르르 거리는 것을 확인한 나는 내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흐으… 화도나고 왠지 모를 거부감에 반항을 했다는 소리구만. "좋아! 가자고 씽!" 히히히힝! 나는 안장 위에 단숨에 올라타며 고삐를 움켜쥐었다. 좋아!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 나와 씽은 빠른 속도로 차렌 시에서 멀어졌다. 후… 드디어 이 마을을 떠나는 구나. 왠지 감정적이 되는… -우엥? 이건 뭐야!?? 왜이리 떨리는 거냐! ……역시 도움이 안돼. "소개하지, 마나르트. 나의 애마 씽이라네! 이랴!" 히히히힝! -엥? 말? 어디 가는데 말을 타고 가나?" 아, 그러고 보니 마나르트에게는 말한 적이 없네? "바로드로 가는 상단을 쫓아간다네. 이랴!" -상단? 자네 도둑으로 전업했나? "재미없어!" 이놈은 주인을 뭘로 보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씽을 더욱 빠르게 달리게 했다. 이대로 가면 라이딩도 20을 넘을 수 있겠는데? 50을 넘으면 유니콘이나 와이번을 탈수도 있다고 하던데… 좀 힘들긴 하지만… 한 70은 되면 능숙한 조종이 가능하고… 좋아! 레벨 70을 목표로! "더 빨리, 씽! 이랴!" 이히히히히힝! 그 동안 푹 쉬었는지 씽은 힘찬 울음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었다. 내 귓가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마나르트의 조잘거림이 들려왔다. "씽, 힘드냐?" 히히힝! 산길을 달린 지가 꽤 되었다. 아래로는 숲이 보이고 위로는 꽤 높은 산봉우리가 보이는 멋진 경치를 보여주는 장소였다. 산길이라도 길이 넓고 정비가 잘 되어 있었지만 오르막길과 내리막 길이 많아서 씽에게는 많이 힘들텐데… 그런데 상단은 왜 보이지 않는 거지? -허어… 경치가 상당하군. 여기도 자서전에 수록할 만한 가치가 있네. 나느 마나르트의 중얼거림을 무시하며 주위를 살폈다. 나, 아니 우리는 지금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경사가 그리 가파르지는 않지만 거리가 길어 언덕의 끝이 꽤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이었다. 나는 씽을 배려하느라 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내리막길에서는 속력을 내도 괜찮을까? -어라? 이봐, 세한. 자네도 느꼈나? "음? 무슨… 이, 이런!" 나는 마나르트의 말에 의문을 표하다가 식스센스에 몬스터들이 걸리는 것을 눈치채고는 급히 씽을 달리게 했다. 느껴지는 곳은 저 언덕을 지나서다! 거기다 전투 중. "이봐, 마나르트. 잠 좀 잤으니 이번엔 일 좀 하게나." -허, 내가 잠을 잔 건 그 동안의 자서전 저술로 인한 피로를 풀기 위한 거였지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네. "그래도 오래 잔 것 갔던데… 잠꼬대까지… 특히 마족 서열 201위 바시린 양과의 사랑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네." -헉!? 내, 내가 그 얘기를 할 리가… "재밌을 것 같지 않나? 내 친구들에게 자네가 마족의 영혼이라는 얘기를 하며 바시린 양과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뭐든지 시켜만 주게!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씽을 멈추게 했다. 언덕 위에 도착했으니 상황을… "체인 라이트닝!" "테일! 저놈! 꺄악! 세나야 빨리!" "젠장! 이런 놈들이 나온다는 말은… 핫!" 호오? 파리운 일행과 세대의 마차라… 그리고 파리운 일행과 힘을 합쳐 싸우고 있는 NPC 호위병들. 드디어 찾았네? 그런데 저들은 공격하는 저 웃기고도 끔찍하게 생긴 몬스터들은? 상단을 공격하고 있는 몬스터들은 인간처럼 두발로 서 있었는데 키는 조금 더 크고 피부가 갈색을 띄는 것이… 확실히 인간은 아니었다. "마나르트. 저게 뭔가?" -반딧(Bandit-산적)이로군. 리자드 워리어들 보다 조금 강한 인간형 몬스터라네. 지능은 인간보다 조금 못한 정도. 저렇게 상단을 공격할 정도면 얼마나 똑똑한지 알겠지? 레벨 90~100정도의 인간들이 싸울 만한 놈들이야. 100이 넘어가는 인간들은 어느 정도 쉽게 잡겠지. 필과 맞먹는, 아니 훨씬 똑똑한 놈이라니까. 현실적이고. 100이 넘으면 쉽게라… 어쨌든 내 동료들이니… 거기다 저 파리운이라는 마법사 아저씨는 마음에 들었어. 테일이라는 전사도… "가자, 씽!" -하하하하! 소설의 한 장면이로군! 어때, 세한? 저 일행 중 누가 위험해 지면 나를 던지는 거야. 위험에 빠져 비명을 지르던 인간은 갑자기 조용해지자 슬쩍 눈을 뜨고, 쓰러진 몬스터에 박혀있는 내 모습을 알아본 사람들이 '이건!? 한이 온 건가!?'라는 희망에 찬 외침을… "충고 고맙네." 나는 여자 도둑, 젠시였나? 그 여자와 그 여자를 치료하고 있는 세나라는 신관에게 쇄도해 가는 반딧을 향해 마나르트를 집어던졌다. -어어? 이, 이봐. 반쯤은 농담… 이이잇! "자네가 동의한 것이지!?" 날아가는 마나르트를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씽! 더 빨리!" 히히힝! 몬스터들에게 겁을 먹은 듯한 씽이었지만 내가 독려하자 힘찬 울음소리를 내며 속력을 높였다. 그리고 저, 아래에서는… "꺄아악!" 자신들에게 검을 휘두르는 반딧을 보며 비명을 지르는 젠시와 세나. 그리고 공격하던 몬스터를 꿰뚫고 바닥에 박힘으로써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둘을 구하는 마나르트. 그리고 일행들은 내 검을 알아보고 놀란 얼굴로 달려오는 나를 발견한다. "하, 한이다!" 미치겠군. 마나르트의 말이 맞을 때가 나는 제일 싫어. 하지만 좋게 끝나기는 하지… 나는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그럼 영웅 놀이를 시작해 볼까? 히히히힝! "씽! 마차 사이에 숨어있어!" 나는 씽의 안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상당히 높은 곳에서 도약한 덕분에 나는 반딧이라는 몬스터의 머리를 넘을 수 있었다. 하이잇! 웃기는 목소리네? 나는 반딧들의 외침을 들으며 내 앞으로 다가오는 반딧의 머리를 공중 돌려차기로 날려버렸다. 그대로 쓰러지는 반딧. 나는 아래로 떨어지며 롱소드를 바닥에 쓰러진 반딧의 목에 박아 넣었다. "하, 한!" 이건 파리운의 목소리? 나는 기뻐하는 얼굴의 파리운을 슬쩍 바라보았다. 다른 일행들도 파리운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좀 늦었습니다." 남은 반딧들의 수는 한 10마리 나는 내 옆을 베어오는 반딧의 검을 피하며 롱소드를 집어넣었다. 내 행동에 일행들의 눈이 커졌다. "하, 한! 그게 무슨!" "마나르트!" 내 외침에 마나르트가 내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이 상황에서 실력을 숨기는 건 미친 짓이지. 나는 몸을 회전시키며 내 뒤에서 검을 휘두르는 반딧의 허리를 베었다. 히잇! 역시 웃기는 비명이네?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뛰어올랐다. "선풍각(仙風脚)!" 허리를 베여 머리가 내려온 반딧의 관자놀이에 직격하는 나의 돌려차기. 그리고 두 번째 돌려차기는 가슴을 강타해 반딧을 넘어뜨렸다. "처리를 부탁합니다." 나는 파리운에게 외치는 즉시 옆으로 몸을 날렸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반딧의 도(刀)가 박혀 있었다. 이놈은 도를 쓰나 보지? 그나저나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죽겠어? 거기다 이 수에 나혼자 싸우려니… 쳇! 이번엔 왼쪽! 챙! 어느새 다가온 테일이 반딧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흐음? "나도 이제 90을 넘었다고! 핫!" 좋아! 동료 한명! 나는 내 정면에 위치한 반딧에게 달려들었다. "핫! 연환격(連環擊)!" 한번 내리찍고 옆으로 두 번. 나는 쓰러지는 반딧을 바라보다가 급히 몸을 숙였다. 흐익! 내 머리카락! 머리카락이 조금 잘려나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왼손의 OPG에서 손톱을 꺼냈다. 철컥! "승룡권(昇龍拳)!" 나는 순식간에 반딧을 후려치고는 어퍼컷을 날렸다. 그리고 마나르트를 휘둘러 하늘로 치솟은 머리를 잘라버렸다. 후… 헉!? 석! 내 옆구리를 베고 지나가는 반딧의 검. 나는 바닥을 구르며 일어서자 마자 단검을 집어던졌다. "대거 댄싱!" 날아간 단검들은 한 반딧의 몸에 다다닥 박혔다. 반딧들은 갑주를 걸치고 있지 않았다. 흐으… 아프다… 나는 앞으로 도약하며 검을 찔렀다. "살검(殺劍)!" 빠르게 반딧의 목을 따버린 나는 앞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내 등을 스쳐 지나가는 반딧의 공격. 나는 등이 살짝 베이는 것을 느끼며 몸을 한번 굴리고는 벌떡 일어났다. 아직도 5마리는… "라이트닝!" 갑자기 떨어지는 번개여…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할까? 나를 노려보던 반딧이 번개에 감전되어 쓰러졌다. 호오? 뒤를 돌아보니 파리운이 씨익 웃고 있었다. 멋진데? 나는 앞으로 달려가며 그 반딧의 목을 따버렸다. -호오… 자네 실력이 생각보다 높군. 그 바리어라는 것만 사용하면 상처도 별 입지 않을 수 있겠어. 마나르트의 감탄. 하지만 바리어는 안되지. 그것까지 써버리면 돌파구가 없어. 나는 나를 노리고 날아드는 검을 버클러로 튕겨내며 공격해 들어갔다. 하이잇! 그리고 나와 같이 달려드는 반딧. -오오옷! 소설의 한 장면이야! 서로 스쳐 지나가는 두 인물. 한 놈은 풀썩 쓰러지고 승자는 무상처나 작은 상처. 라이벌 전은 아니니 커다란 상처는 안되지. 그리고 마나르트의 말대로 나와 스쳐지나간 반딧은 허리가 잘려 넘어졌고 나는 이마를 얕게 베였다. 제길. 마나르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 역시 내 예상은 정확하군. 조심하게나, 세한. 저기 아가씨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 자네는 지금 마족에서 인간으로 돌아와 있다네. 푸헤헤헤. 확실히 내 앞머리가 잘리는 바람에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쳇. 나는 혀를 차며 옆에서 다가오는 검과 반딧을 한꺼번에 잘라버렸다. 반딧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머리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머리가 잘려도 한시간 정도가 지나면 다시 자라난다. 나는 다시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리고는 몸을 날렸다. 땅에 박히는 반딧의 도. 나는 그 도를 박차고 날아올라 반딧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후우… "연격(連擊)!" 필과 같은 기술명을 외치며 두 번 연속으로 검을 휘두르는 테일. 마지막 남은 반딧은 풀썩 쓰러졌다. 후… 속검을 쓰지 않기를 잘했어. 테일이 2연격이니 내가 3연격을 써도 별 이상하지는 않겠지. 이제 권법가 기술을 넘겨야 하는데… 뭐, 그냥 여러 가지를 올렸다고 하지 뭐. "후우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상단의 마차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테일도 상처를 감싸쥐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흠… 그러고 보니 테일도 방패가 없는데… 검은 보통 한 손용 검인데? 내 옆에서 헥헥거리던 테일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 아니, 너? 음… 어쨌든 대단한걸? 도대체 무슨 스킬을 올렸길래…." 나는 미소를 지으며(보이지도 않지만) 대답했다. "검사 스킬들에 권법가 스킬을 좀 올렸습니다. 단검던지기도… 모두 꽤 높게 올려나서… 지금은 레벨을 올리기가 엄청나게 어렵죠." "허… 그렇게 하면 갈수록 힘들어질텐데… 어쨌든 대단한데? 그런데 레벨이 정말로 90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뇨. 사실은 100이 넘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내 말에도 테일은 별 상관없다는 투로 얘기했다. "그래? 그거야 별 상관없고… 어쨌든 고마워." "그런데 테일은 어떤 스킬을 올렸죠?" "나? 나는 소드, 투핸드, 이글아이, 해부학 등등 완전히 검사 스킬만 올려 났지. 그리고 생활직업 스킬도 좀 올렸고… 생활직업 스킬은 충돌이 없잖아." 흠… 그런 거였군. 그런데 테일은 어느 순간부터 아무런 거리낌없이 말을 놓고 있었다. 허허… 특이한 사람이야? 하지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우리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파리운이 대화가 끝나자마자 끼어들었다. "한! 정말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모두 죽었을 거야." 너무도 열성적으로 외치는 파리운을 보며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 그런데 그 검은 어떻게… 아까 보니 공중을 떠다니기도…." 헉!? 나는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럼 마나르트의 기능을 축소해서… "아, 이 검은 제 시야 안에 있으면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죠. 저번에 동굴에서 잃어버렸을 때 다시 찾아왔습니다." "허? 그럼 그때 혼자 갔던 이유가… 도와달라고 하지 그랬나?" "아, 아뇨." 곧 파리운은 상단의 책임자를 만나러 간다며 마차로 뛰어갔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자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저기요…." "예?" 조심스럽게 나를 부른 여자 마법사 베나. 그녀는 내가 자신을 바라보자 몸을 잠깐 떨고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저… 그 머리카락을 좀 뒤로 넘기시면…." 헉!? 나는 놀란 눈으로 기대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세 명의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아까 본 건가? 나는 약간 사나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대로가 더 좋아서요." 나는 찔끔하는 여자들을 잠시 바라보고는 씽에게 다가갔다. 후… 다행히 무사하구나. 씽은 나를 보며 푸르르거렸다. 흠… 몬스터를 보고 충격을 먹었나? 왜이리 반가워하는 거지? 원래 이게 정상이건만 오히려 이게 더 불안한 나였다. 후우… 그때 나를 따라온 테일이 씽을 보며 감탄을 토했다. "히야… 큰데? 특급까지는 아니라고 일급은 되는 말이로군. 멋져." "고맙습니다." "아, 그런데 자네 얼굴을 그렇게 가리는 이유가 뭔가? 아까 슬쩍 봤네만 그 머리가 없으니 분위기도 틀리고 잘생겼던데? 보통 돌아다니는 금발에 완벽한 미남까지는 아니지만 여자 꽤나 울릴 얼굴이던데? 아마도 현실에서의 얼굴인 모양이지?" 호? 날카롭네? 그런데 여자 꽤나 울려? "맞긴한데… 저 아직 여자친구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그냥 이 검에 맞춰서 분위기를 만드느냐고…." 약간 투덜거리는 투로 얘기하는 나를 보며 테일은 킥킥거렸다. 휘유… 그때 파리운과 웬 뚱뚱이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머리 위에 떠 있는 NPC라는 표시. 첫인상이 괜찮은 뚱뚱이는 나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분이…." "예. 그 한이라는 친굽니다." 파리운의 말에 그 뚱뚱이가 껄걸 웃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엥? 악수? 나는 얼떨결에 손을 내밀었고 뚱뚱이는 열성적으로 내 손을 흔들어대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중요한 물건을 호송하는 중이었는데…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 예…." -호오? 중요한 물건이라… 한번 훔쳐보는 것이 어떠오, 도둑 씨? 아까 상단을 쫓아간다는 말에 도둑이라고 주절거리던 마나르트의 말이었다. 거기다 아까 집어던진 것에 대한 불만도 있는 모양인데… "사례를…." 순간 내 눈이 번쩍였다. 물론 머리카락에 가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후후후… 사례를 주신다? 흠…약간 거절을 해야… "아닙니다. 제 동료들도 있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 다른 사람들과 같은 봉급만…." "무슨! 그렇게 거절하지 마십시오. 제 작은 성의로…." "하지만…." 파리운과 테일은 약간 씩 밀고 당기는 나를 보며 어이없다는 얼굴이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이상하게도 상인이 주겠다는 돈은 조금씩 올라갔고 나는 타이밍을 맞춰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승낙했다. "후… 좋습니다. 다른 상인들에 비해 훌륭한 분이시군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든 봉급을 깎으려고만 하는데… 그럼 작은 성의로 알고 받도록 하죠."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바로드에 도착해서 봉급에 합쳐서 드리지요. 그럼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그 뚱뚱이는 껄껄 웃으며 마차로 돌아갔고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저런 약간의 허영심이 있는 사람들은 좀 거절을 하 면서 추켜세우면 저렇게 되지. 후후후… "허, 참. 대단하구만. 저 상인, 우리하고 계약할 때는 돈을 깎으려고 애를 쓰더니… 지금은 오히려 기분이 좋아서 돌아가는군. 그때 자네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 나는 피식 웃고는 포션을 꺼내 상처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후… 아퍼라…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는 나를 보며 파리운은 화난 목소리로 세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세나! 치료를 해주지 않고 뭐하는 거야!?" "엥? 그러고 보니 나도…." 나를 따라다니다 덩달아 치료를 받지 못한 테일은 자신의 손에 흠뻑 묻어 나오는 피를 얼빠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테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파리운. 바로드까지는 얼마나 걸립니까?" "흠… 한 3일 정도? 충분히 쉬면서 가도 3일이면 가지." 3일이라… -후아암… 또 졸린데… 세한. 나는 좀 자겠네. 언제 일어날지 몰라… 날은 뭉툭하게 해두지… 검이 무슨 잠을 이렇게 자는 거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드라… 빨리 가면 좋겠는데… 클레이모어랑 그 타워 실드를 팔고… 악마의 숲으로 가면 되는 건가? 나는 급히 달려오는 세나라는 그 여자 신관을 보며 생각을 멈췄다. "뭐야!" 나는 급히 눈을 뜨며 마나르트를 휘둘렀다. 잘 자는 중이었는데… 몬스터? "꺄악!" 내 머리를 만지고 있던 어떤 물체를 향해 검을 휘두르던 나는 여자의 비명소리에 가까스로 검을 멈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나르트에 목이 겨눠져 떨고 있는 젠시와 다른 두 여자들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왜 가만히 자는 사람의 머리를 건드려? "뭡니까?" 내가 이를 갈며 질문을 던지자 세 여자는 몸을 흠칫 떨었다. "저, 저… 이, 이것 좀…." 자신의 목에 겨눠져 있는 마나르트를 덜덜 떨며 바라보던 젠시라는 도둑 아가씨가 떨리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별말없이 마나르트를 회수하며 여자들을 쏘아보았다. "뭡니까? 아직 제 차례가 아닌 걸로 아는데요." 내 불침번 차례는 파리운 씨 다음이었지. 내가 가히 살기까지 내뿜으며 질문을 던지자 베나라고 하는 여자 마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저… 그게… 세나가… 머리카락이 없으면… 그게…." "제 얼굴을 확인하려고 하신겁니까?" 내 말에 세 여자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 미치겠군. 즐거운 꿈을 꾸고 있던 거 같은데…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머리카락들을 모두 뒤로 넘겼다. 여자들이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신기한가? "됐습니까?" "아… 예. 그런데 그게 더 보기 좋은데…." "사정이 있어서… 일어난 김에 제가 불침번을 서죠. 주무십시오." 내가 모닥불로 다가가자 여자들은 좀 쭈뼛쭈뼛 거리다가 자기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후… 캡슐 수면도 꿈을 꾸네? 나는 주위에 정신을 집중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에도 식스센스를 집중해 주위를 살핀다. 이게 내가 식스센스를 수련하는 방법이었다. 확실히 지난 이틀 밤 동안 이러고 있었더니 스킬 레벨이 3이 올랐다. 물론 낮에 쓰던 것까지 합해서 오른 거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안 잡니까?" 갑자기 터져 나온 내 질문에 침낭 속에 들어가 있던 그 세나라는 신관이 몸을 움찔 떨었다. 다른 여자들은 잠든거 같은데…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마나르트를 천으로 감기 시작했다. 힘들게 감아둔 건데… 아까 휘두르면서 거의 다 풀렸어… 이번엔 꽁꽁 묶어야지… 첫째 날 잠이든 마나르트는 그 후로 전투시가 아니면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덕분에 지금도 상당히 조용했다. 어디 아픈 건가? 나는 내 질문이 스스로 어이없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상단을 호위하며 겪은 전투 횟수는 5회.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반딧들의 공격이었다. 한번은 오크무리였고…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레벨이 겨우 2올랐다는 것인데… 마신의 신전에서 나온 뒤로 오크, 리자드맨에 버서커. 반딧 2,30마리. 이런 숫자를 쓰러뜨렸는 데도 겨우 레벨이 2오르다니… 이제 내 레벨은 103다. 나에 비해 훨씬 적은 수의 반딧을 잡은 테일의 레벨이 4가 올랐다는 것에 비해 볼 때…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바로드 도착 예정 시간은 내일 정오쯤. 이제 흔들리는 말 위에 하루종일 앉아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 나는 라이딩 마스터리를 올리기 위해 계속 씽을 타고 있었다. "안 자요?" "예? 아, 예…." 아직까지 자지 않고 있던 세나가 몸을 흠칫 떠는 것이 느껴진다… 식스센스가 점점 확실해져 가는데… 나는 마나르트를 천으로 감는 작업을 모두 마치고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후… 악마의 숲이라… 내 레벨로 통과 할 수 있는 곳인가? 마신이 신전이 대충 평균으로 180대 던젼이니… 그런 신전을 품고 있는 숲이니 역시 쉽지는 않을 텐데… 더 낮으면 좋겠지만 더 높을 가능성도 있다. 마신의 신전은 이벤트 용 던젼이니까… 그리고 다크 워리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이 바뀌었어. 오늘 밤 새서 식스센스나 높여야지. 다크 워리어는 어둠 속에 숨어 다니는 놈이니 식스센스가 중요해. 나는 세나라는 신관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바리어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레벨은 낮더라고 스킬 레벨은 높여야 한다… 결국 나는 밤을 새고 말았다. "자, 자네 졸리지 않나? 걸어서 가는 것이…." "하하하. 멀쩡합니다. 겨우 하루 정도 자지 않았다고…." "하지만 전투를 가장 많이 치룬 것이 자넨데…."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흐으… 졸려서 멍한 머리에 이런 흔들림까지 더해지니까 아주 죽겠구만…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씽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 한. 자네 진짜 이름을 알려주면 안 되겠나? 친구등록이 되지 않는 군." 친구등록은 그 사람의 아이디, 그러니까 이름을 알고 그 사람을 보면서 등록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름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으니…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어서요…." 내 말에 파리운은 좀 안타까워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 파리운에게만 알려줄까? 하지만 그랬다가 운이 나쁘면 내게 도둑이 꼬일 지도 모르는데… 나는 애써 합리화를 시키며 말을 모는데 정신을 집중했다. 후… 빨리 바로드에 들어가야지… "여기 있습니다." 나는 그 뚱뚱이 상인에게서 돈주머니를 받아들어 품속에 집어넣었다. 드디어 바로드야. 상업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바로드 시는 정말 번화한 도시였다. 도시로 진입하는 상단만 해도 상당히 많았다. 뚱뚱이 상인의 상단은 굉장히 작은 축에 속할 정도였다. 계약금 했던 금액에 조금씩을 더 받은 파리운 일행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흠… 이만 헤어져야겠지? 나는 파리운 씨에게 다가갔다. "파리운 씨.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벌써? 어디로 가는데?" 테일이 섭섭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바로드에 있을 생각인데… 지금은 경매장에 가려고요." 내 말에 파리운이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도 얼마간은 여기에 있을 텐데… 어차피 내일까지는 게임을 계속 할 수 있으니… 뭐, 자네가 혼자 가겠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아, 그런데 자네 경매장에 가본 적은 있나?" "아뇨." "그럼 우리 일행 중에 경매장이 가본 사람이… 경매장도 상당히 복잡하다네. 입장료에서 뭐… 특히 물건을 팔려면 좀…." 흠? 복잡하단 말야? 그건 모르고 있었네? "하하… 그건 몰랐군요. 그렇다고 신세를 지기는 좀 그러니… 대충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흠… 그러지… 그러니까 입장료가…." 파리운 씨가 설명을 하려는 순간, 다른 여자들과 뭐라고 소근거리던 여 도둑 젠시가 입을 열었다. "잠깐, 잠깐." "응?" 우리가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자 젠시와 베나가 세나를 앞으로 떠밀었다. 엥? 저 신관을 어쩌라고? "세나하고 같이 가세요. 세나가 경매장에 대해서 잘 아니까. 전에 잠깐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대요." "아, 아니 난…." 본인이 싫어하는 거 같은데? 자신을 떠민 두 여자에게 뭐라고 말하려하는 세나를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인이 별로 좋아하시지…." "하하하. 그래? 그럼 세나가 안내를 해주게. 우리는 중앙 광장의 푸른 용이라는 여관에 있을 테니. 다녀오게나. 하루를 머물 거면 자네도 거기로 오게. 그럼 가지." 엥? 이 인간은 또 왜이래? 나는 급히 다른 일행들을 이끌고 사라지는 파리운을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았다. 뭐야? 나와 일행에게서 거의 버림받은 수준의 세나는 멍하니 사라져 가는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후아? 나는 고개를 젓고는 내 옆에 서 있는 세나를 바라보았다. "경매장이 어디 있죠? 장소만 알려주세요. 그러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내가 좀 부드러운 어조로 얘기했음에도 고개를 젓는 세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수? "아, 아뇨. 안내해 드릴게요. 경매장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이, 이쪽이에요." 나는 세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세나도 급히 따라왔는데 뭔가 긴장한 얼굴이… 흠… 그냥 머리를 뒤로 넘겨? 역시 이 분위기 때문이겠지? 나는 머리를 모두 뒤로 넘겼다. "가죠." "아… 예."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세나는 내 옆으로 다가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클레이모어하고 타워 실드를 꺼내야… "아, 보관협회에 가서 물건을 찾아야…." 하지만 세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경매장 안에 보관협회가 있거든요. 자칼 보관협회 같은 웬만한 협회는 다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호오? 정말로 잘 아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나가 인도하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아 도착한곳은… 그야말로 현실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던 6층 크기의 건물이었다. 섀도우 월드에도 이런 건물이 있네? 대단한데? "여긴가요?" "예. 저기로…." 나와 세나는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커다란 입구로 다가갔다. 그 입구에서는 몇 명의 NPC들이 작은 상자를 하나씩 들고 들어가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걷고 있었다. 크으… 들어가는데 돈 깨지네? "저거 꼭 내야 됩니까?" 내 질문에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걸로 경매장을 운영하거든요. 저걸 내는 것 덕분에 경매장을 이용해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따로 돈을 내지 않아요. 이용료는 1골드인데…." 세나는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어 돈을 내려했다. 흠… 고민되는군… 여기서는 내가 내야하나? 2골드면… 거기다 안내까지 해줬는데… 나는 세나를 제지하고는 2골드를 입장료를 걷는 NPC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경매장에서 무슨 즐거운 시간이… 나는 고마워하는 표정의 세나에게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후… 넓다? "먼저 경매에 붙일 물건을 찾아야 하는데… 보관협회는 저기에요.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게요." "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나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아가기 시작했다. 호오… 보관협회가 많네? 자칼, 치타? 제이… 한 5, 6곳은 되는군… 나는 다시 머리를 앞으로 돌려 얼굴을 가리고는 자칼 보관협회로 다가갔다.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NPC가 세 명이라 금방 내 차례가 되었다. "어서오…세요…." 여성 NPC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후… 정말 내 변화를 실감케 한단 말야? 현실에서도 이러고 다녀볼까? "물건을 찾으러 왔습니다." "아, 예…." NPC에게서 자신이 보낸 것이라는 확인을 들은 나는 '벼락부자'라는 상쾌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말해주었다. "예… 보관 중인 아이템이 두 개 있습니다. 무엇을…." "두개다." "알겠습니다." 순간적으로 카운터 위에 클레이모어와 타워 실드가 나타났다. 뒤에서 숨을 죽이는 소리가… "클레이모어?" "우와… 저거 경매에 붙이는 거겠지? 야, 길마 님께 연락 드려라." "저 친구 운이 좋았군. 클레이모어는 리자드 마스터가 떨굴 확률이 3% 밖에 안 되는데… 거기다 리자드 마스터면 상당히 강한…." 나는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무시하며 두 개의 아이템을 챙겼다. 타워 실드는 등에 매고 클레이모어는 바닥에 끌고. 세나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는데 주위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으음… 이걸 여기서 도둑맞을 위험은 없겠지? 어차피 무거워서 쉽게 가져가지 못할 테고… 사람도 많고 경비병도 있으니… 거기다 내 음산한 분위기가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듯 했다. -음냐, 음냐… 자네 뭐하나? 음? 클레이모어로군. 그걸 팔려고? 어느새 일어났는지 마나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나는 되도록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맞아. 더 이상 대답은 없네. 사람이 많아서…." -알았네. 흠… 나를 기다리고 있던 세나는 내가 클레이모어를 가지도 돌아오자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클레이모어… 그, 그럼 당신이…." "전에 동굴에서 했던 말 기억나세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드리죠… 그 말을 떠올렸는지 세나는 얼굴을 굳혔다. "아… 저, 저쪽이에요." 세나는 한쪽에 위치한 방을 가리켰다. 흠… 저쪽에 있는 마법진에는 사람이 엄청 많은데… 저기는 사러온 사람들인가 보지? 세나가 안내한 방으로 들어가니 유저들보다 NPC들이 더 많았다. NPC 중에 몇 명이 우리를 바라보고는 가까이 다가왔다. "세나? 웬일로…." 어떤 여자 NPC의 말에 세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에요, 언니. 오늘은 이분이…." 세나가 나를 가리키자 그 NPC는 나를 자세히 살펴보다가 클레이모어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흐음? "룩! 특급손님이야! 빨리!" 특급? 여자 NPC의 고함소리에 깔끔한 정장을 입은 남자 NPC가 달려왔다. 그 남자는 내가 가지고 있는 클레이모어를 보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클레이모어? 오랜만에 특급 경매가 열리겠는데? 셀! 6층 경매장 열어! 클레이모어 경매 시작한다! 아, 그 타워 실드도 파는 겁니까? 그거는…." 내 타워 실드를 둘러보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괜찮은 물건이긴 한데… 특급에는 턱없이 모자르니… 이건 보통 방어구 경매 층으로…." 사내는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고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와 세나는 멀뚱히 서서 NPC들이 소란을 일으키며 뛰어 다니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클레이모어 경매를 여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까… 우선 타워 실드부터 경매에 들어갑니다. 확인을 하시려면 3층 방어구 경매장으로 오시죠. 클레이모어는 가져가겠습니다." "아, 예." 설마 NPC가 도둑질을 하지는 않을 테니… 나는 세명의 건장한 남자 NPC들이 클레이모어를 힘겹게 들고가는 것을 보며 측은한 눈길을 보냈다. 힘들겠다… "아… 한? 따라오세요. 3층으로 가야죠." "예." "아, 클레이모어 경매는 30분 후에 열겠습니다. 그 전까지 여기로 오세요." 그 남자 NPC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아까 그 마법진으로 나를 데리고 간 세나는 3층이라고 중얼거리더니 사라졌다. 흠? 3층이라고 하면 되나? "3층?" 내가 중얼거리자 잠깐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많은 의자들이 놓여있는 방이 나타났다. 세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긴가? 무대 위에서는 어떤 NPC가 여러 가지 방어구들을 가지고 경매를 벌이고 있었다. 흠… 재밌겠다. 하지만 클레이모어하고 그 타워 실드를 팔기 전에는 돈이 없으니… 나와 세나는 빈 의자에 앉아서 경매가 열리는 모습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곧 내가 가져온 타워 실드가 나타났다. "성기사 여러분께 어울리는 물건이 나왔습니다. 타워 실드, 신성의 방패. 성기사 스킬 레벨 1증가에… 신앙 25증가! 운 10증가에, 방어력은 130! 내구력은 340입니다! 그럼 경매는 800골드에서 시작합니다!" "여기 810골드!" "830!" 여기저기에서 외침소리가 터져 나왔다. 흠… 괜찮은 아이템이었네? 그런데 나에게는 완전 꽝인 아이템이었잖아? 800골드에서 시작된 경매는 어느새 900골드까지 올라가 있었다. "1000골드!" 하크 씨가 말했던 감정가가 1000골드였지? 1000골드에서 잠시 조용하던 경매장은 어떤 남자가 1020골드을 부르면서 다시 시끄러워졌다. 흠… 얼마까지 올라갈까? "1150골드!" 최종 낙찰가는 1150골드였다. 깨끗한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는 기사에게 팔렸는데 그 기사는 위로 올라가서는 돈을 내고 타워 실드를 가지고 내려왔다. 1150골드라… "가요. 아까 거기에서 돈을 받으시면 돼요." 나는 세나의 말에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그 방에 들어가니 여전히 바쁘게 돌아다니는 NPC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아까 그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오셨군요. 여기 1150골드입니다. 클레이모어 경매는 이제 시작하니까… 따라오세요. 특급 경매는 손님도 무대 위에 올라가셔야 합니다?" 헉!? 무대 위에? "꼭 올라가야 합니까?" "예. 저희 경매장의 규칙이라서… 특급 경매는 아이템의 주인과 직접 거래를 하도록 되어 있어요." 쩝. 그렇다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남자는 나를 끌고 방의 중앙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으로 걸어갔다. "아, 저는 여기에 있을 게요." "예." 세나의 말에 대답을 해준 나는 그 남자와 함께 어디론가 이동되었다. "왔다." "시작해라!" 내가 옮겨진 곳은 어느 경매장의 무대 위였다. 정장을 입고 있던 사내는 어느새 음성 확장기를 들고 있었다. "아, 거기에 앉으세요." NPC의 말에 나는 옆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흐으… 이 시선 몰리는 것 좀 보게? 클레이모어가 그렇게 대단한 건가? 리자드 마스터는 레벨 200이면 잡는다며? "예! 경매를 시작합니다. 오늘의 물품은 클레이모어. 리자드 마스터가 3%의 확률로 남기는 아이템이죠. 리자드 마스터 자체도 대부분 이벤트에서만 출현하기 때문에 상당한 희귀성을 지니는 아이템입니다. 공격력 240~670 내구력 360! 하지만 제한 힘이 600으로 최상급의 투사가 아니면 사용이 힘듭니다. 하지만 그 희귀성으로 소장가치도 높습니다! 그리고 옵션으로 힘 30증가 운 10증가 리자드 종류의 몬스터와 오크의 접근 방지! 공격시 상대의 H.P를 5% 뺏어옵니다. 그럼 경매 6000골드부터 시작합니다!" "6100골드!" "6200!" 순식간에 시끄러워 지는 경매장. 나는 얼떨떨한 눈으로 서로서로 가격을 외쳐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3%의 확률? 이벤트 몬스터? 내가 운이 좋기는 좋구나… "7000골드!" 순식간에 7000골드를 돌파하는 가격. 대단한데. 나는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막으려 애를 썼다. 그때 내 눈에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경매장의 가운데에 앉아있는 갈색 머리의 여자… 페페잖아!? 나는 놀란 눈으로 페페를 바라보았다. 페페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가 자신을 알아본 것을 눈치채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때 페페의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페페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헉!? 서, 설마 애인!? 그, 그러고 보니 애인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없잖아! <운영자 46-안녕하세요, 세한님. 오랜만… 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페페가 보낸 귓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페페에게 귓말을 보냈다. <얘. 그런데 여기는 왜…> 페페는 자신의 옆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귓말을 보냈다. <운영자 46-이분이 세한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요. 만나게 해드리려고 모시고 왔어요.> 음? 나를 만나고 싶어해? 보통 유저라면 운영자에게 그런 부탁을 하기도 어렵거니와 운영자가 그런 부탁을 들어줄 리도 없는데? 그런데 그렇다면 애인은 아니라는 말씀?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검사? 투사? 상당히 큰 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투사로 보이는데… 녹색 머리를 짧게 기르고 있는 호감이 가게 생긴 남자였다. 키는 나보다 조금 큰게… 한 190정도? 덩치가 그리 큰 편은 아니고… 얼굴에 약간 미소도 띄우고 있는 것이 성격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누구지? "10500골드!" 헉!? 나는 어느새 만 골드를 돌파한 가격에 놀라 그 남자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언제 넘어간 거지? 이 경매장은 아까의 경매장과는 달리 앞은 낮고 뒤쪽은 높게 설계되어 있었는데 맨 뒤, 그러니까 가장 높은 곳에 앉아있던 덩치 큰 사내가 일어나 호기롭게 외쳤다. "11000골드!" 헉!? 11000?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말을 들어보니… "저 사람은… 투사 최고 길드인 워리어스(WARRIOR'S) 길드의 길드 마스터 아냐? 저 사람도 왔네? 랭킹 8나 되는…." "저 사람이면 클레이모어도 쓸 수 있겠다. 투사 중에서는 전체 2위 아냐?" 우와… 투사 2위? 랭킹 8위? 8위면 그 미토스라는 사람보다 겨우 하나 아래잖아? 나는 새삼 감탄한 얼굴로 그 덩치 큰 남자를 바라보았다. 흠… 투사 최고 길드의 길드장이라… 11000골드라는 가격이 상한선이었는지 경매장안은 조용해 졌다. 흠… 저 사람에게 팔리는 건가? "2만 골드." 허억!? 경매장이 술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마, 맙소사 누구지? 살펴보니 페페의 옆에 앉아 있던 그 남자였다. 나를 만나러 왔다는… 그 남자는 일어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장난기가 느껴졌다. 2, 2만 골드… "예! 2만 골드! 엄청난 가격이 나왔습니다! 더 부르실 분!?" 하지만 더 이상의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랭킹 8위라는 사람마저 놀란 얼굴로 주저앉아 있을 정도였으니… 하크도 높게 받으면 만 골드라고 했었는데… 저, 저 남자는 도대체… "예! 저 남자 분께 낙찰! 2만 골드에 낙찰되었습니다! 아,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사회자의 말에 그 녹색 머리의 남자가 무대 위로 걸어 올라왔다. 점차 가까워지니 그 사람에게서 왠지 모를 위엄 같은 것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뭐, 뭐지? 내 앞에 귓말 창이 뜨기 시작했다. <미토스-안녕하세요. 미토스라고 합니다. 하크 씨에게서 얘기 들었습니다. 반가워요.> 나는 놀란 얼굴로 내게 다가오는 녹색 머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미, 미토스? 랭킹 7위의… 나와 같은… 새로운 직업을 소유한 3인중 하나… -대단한데? 엄청난 인물이야. 중급, 아니 어쩌면 상급 마족과도 맞서 싸울 만한 인물이로군. 대단한 자야. 마나르트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그리고 미토스라는 그 남자가 내 앞에 멈춰 섰다. 그, 미토스는… 여전히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끝났나요?" 내가 NPC와 함께 방으로 돌아오자 세나가 일어나며 질문을 던져왔다. 아, 세나를 잊고 있었네? "아, 손님이 와서… 따라 오세요." "예? 아, 예…."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 밖에는 페페와 녹색머리의 남자, 클레이모어를 너무도 쉽게 들고 있는 미토스가 서 있었다. 크흐… 괴물이야. 저걸 저렇게 들고 있다니… "아, 나오셨네요?" 페페가 나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음… 그러고 보니 세한이라고 말하면… <세한이 아니라 한이라고 부르세요.> 내가 귓말을 보내자 페페와 미토스가 눈을 한번 깜박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그럼 어디 차라도 마시러 갈까요? 섀도우 월드에서라도 먼저 차를 대접해야… 현실에서는 식사를 하기로 해요." "그러죠. 그럼… 푸른 용이라는 여관 아세요? 여관이면 식당도 같이 할텐데… 이 아가씨 일행이 거기에 있어서… 제 일행이기도 했으니까…." "아, 그럼 거기로 가죠. 가요."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잡아끌었고 나도 미소를 지으며 따라 나갔다. 미토스는 클레이모어를 어깨에 걸치고는 따라오기 시작했다. 세나는 제자리에 서서 우리를 좀 바라보는 것 같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급히 뒤따라왔다. "흠… 그런데 듣던 것 보다 분위기가 어두운데? 하크 씨 말로는 밝고 유쾌하다고…." "맞아요. 머리를 왜 그렇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미토스가 놀란 얼굴을 하는 것이… "신기한데? 머리카락이 위치에 따라 분위기가 그렇게 변하다니… 호오…." 미토스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계속 히죽히죽 웃고 있는 것이 유쾌한 성격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는데… 저렇게 웃고 있으면 입이 아프지 않을까 걱정이야… "그런데 페페 씨하고 한하고 사귀는 사이? 상당히 다정해 보이는데?" "그렇… 끄윽…." 그렇게 웃으면 얼굴 아프지 않냐고 물으려 하던 나는 돌발적으로 튀어나온 미토스의 말에 혀를 깨물고는 신음을 흘렸다. 크으으… 아프다… 페페 역시 놀란 듯 얼굴을 붉히고 있었는데… 끄으으… 아까 그 위엄까지 느껴지던 모습이 거짓말 같아… 히죽 히죽거리는 미토스를 보며 내가 떠올린 생각이었다. -푸헤헤헤! 아프지? 그런데 그런 강한 부정은 긍정과 일맥 상통이라네. 푸헤헤헤헤! "그… 흐으… 그런 사이는 아니고… 제가 다니는 태권도장 사범님이… 페페의 작은아버지라… 으으… 따가워… 크흑! 그만 웃어요!" 내 외침에도 미토스는 계속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랭킹 7위나 되는 사람이라 좀 무게 있는 사람인줄 알았더니? "그런데 그 클레이모어는 왜 그렇게 비싸게 산 거죠?" 내 질문에 미토스는 클레이모어를 툭툭 치더니 대답했다. "전부터 이걸 가지고 싶었거든. 그리고 너에게 선물을 주려는 의도도 있었지. 하크 씨에게는 OPG하고 성장의 반지를 줬었으니까. 열심히 하라고."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같은 동업자(?)라 그런 호의를 베푼다고? "왜 그런 호의를 베푸는 데요? 그리고 그 OPG하고 반지는 지금 저한테 있는데…." "아아…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대하지 말라고. 나도 편하게 말을 놓잖아. 흠… 이유라면… 전에 나를 도와준 분이 나도 다른 사람들을 좀 돕고 살라고 해서 말야. 그리고 그 OPG랑 반지는 하크 씨가 준거지 내가 준 게 아니잖아?" 역시 특이한 사람이네? -특이한 인간이로군. 자서전 추가. 상급 마족과도 싸울 수 있을 것 같은 그 인간은 다른 인간, 특히 내 주인에 비해 아주 관대했다. 나의 주인에게 선뜻 거금과…… 시끄럽구만. 하지만 특이하다는 것에는 동의야… 나는 계속 실실 웃고있는 미토스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흠… "아… 다 왔어요." 페페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푸른 용이 그려져 있는 간판이 걸린 여관을 볼 수 있었다. 드래곤도 아니고 용이네? 혹시 유저가 경영하는 상점인가? 여기는 배경이 서양이잖아?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페페와 미토스는 여관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우… 같이가지… 시끌 시끌… 여관 안에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세나와 함께 들어온 나는 파리운 일행을 찾기 시작했다. "여어! 왔나!?" 오른쪽에서 파리운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일행을 볼 수 있었다. 맥주잔을 들고 있는 것이 술을 마시는 중이었나 보군… 나와 세나는 그 테이블로 다가갔고 페페와 미토스가 우리의 뒤를 따랐다. "잘 다녀왔나?" "아, 세나야 왔어?" 파리운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고 다른 여자들은 세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세나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방에 가 있을래. 열쇠 좀." "어, 어? 왜 그래?" 여자들은 세나를 따라 우르르 몰려갔다. 덕분에 빈 2개의 자리에 원래부터 비어있던 한자리.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파리운의 옆에 앉았다. "세나가 왜 저러나?" "글쎄요? 저도 잘… 아, 페페, 미토스 앉아요." 음? 그러고 보니 미토스라는 이름은 함부로 말해도 되나? 내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페페는 내 옆에 미토스는 테일의 옆에 앉았다. 미토스나 페페의 눈치를 보니 별 신경 쓰지 않는 듯 한데… "음? 그 아가씨는 누군야? 네 애인? 여자친구 없다며?" 테일의 질문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까부터 왜이래? 좋기는 하지만… "아니… 페페라고 운영자시죠. 아는 사이." 테일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뭔가 미심쩍다는 얼굴이었다. 이번에는 파리운이 미토스에 대해 물어왔다. "그런데 저분은… 거기다 저 검은…." "하하하. 클레이모어죠. 한에게서 샀습니다. 전 미토스라고 합니다. 투사죠." 헉!?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아이디를 밝히는 미토스. 저래도 되는 건가? 왠지 내가 바보가 되는 듯한 기분이… 파리운은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클레이모어… 그럼 한, 자네가… 아, 아니 그것보다… 클레이모어를 그렇게 들고 계시는 걸 보니 엄청난 고수시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파리운, 마법사입니다." 절로 존대를 하시는군… 하긴… 나도 얘기를 나눠보기 전에는 왠지 모를 위엄을 느끼기까지 했으니… 파리운은 지나가는 종업원을 불렀다. "뭘 마시던지 하지?" 나는 페페를 돌아보았다. 차를 마시기로 하기는 했었는데… "이 분위기에 차를 마시기는 그렇겠죠?" "후훗. 그렇네요. 저는… 술은 그러니 레몬티로." "아, 나는 맥주, 아니 와인? 맥주? 와인? 흠…." 왔다갔다하는 미토스의 주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레몬티 하나에 맥주 두 잔으로." "예." "어엇! 한! 나는…." "아껴야 잘 살아요." 내 말에 미토스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흠… 그런데 미토스 저 사람은 왜 찾아온 거래? "그런데 미토스는 왜 절 찾아온 거죠?" "음? 그냥." 그냥이라… 그런 이유로도 운영자를 부려먹는 사람이라니… 알기 힘든 사람이야… 곧 종업원이 맥주와 레몬티를 가지고 왔다. 흠… 맥주 맛이 좋은데? 진짜 같아… 미토스는… 커다란 맥주잔에 얼굴을 박고는 조금씩 빨아들이고 있었다. -재밌는 인간이군. 그런데, 세한. 다크 엘프들은 만나러 가지 않나? 내 검집을 찾아야지. 아, 그러고 보니 악마의 숲에 대해 물어봐야 하는데… "페페. 악마의 숲은 레벨이 대충 어느 정도죠?" 레몬티를 홀짝거리던 페페는 내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마 180정도? 마신의 신전과 비슷한 곳이에요. 하지만 입구는 동쪽뿐인데… 상당히 넓어서 마신의 신전에 비해 더 어렵다고도 할 수 있죠. 거기다 정확한 지도도 없기 때문에…." 흠… 180이라… 마신의 신전과 비슷하다면 어떻게 잘 하면 통과도 가능할 수도… 하지만 넓고 지도도 없다면 불가능인데… 그때 맥주를 홀짝거리던 미토스가 고개를 들었다. "악마의 숲에는 왜 가는데?" "아… 그게… 다크 엘프를 찾으러 가요." 내 말에 미토스는 물론 파리운 씨와 테일도 놀란 얼굴이었다. "다크 엘프? 그게 있기는 있어? 엘프는 몇 번 발견된 적도 있기는 하지만…." 테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퀘스트로 받은 거니 확실히 있겠지. 그때 미토스가 뭔가를 생각하더니 약간 곤란한 얼굴로 파리운과 테일을 바라보았다. "저… 죄송하지만… 음… 한과 얘기할 것이 있어서…." 미토스의 말에 파리운과 테일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맥주잔을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흠… 한, 언제 또 보세나. 우리는 얼마간 머무를 건데… 이제는 얼마간 게임을 못해서… 직장 때문에… 언제 다시 보세나." "얘. 잘 가세요." 나는 손을 흔들어주었고 파리운과 테일도 손을 좀 흔들어 주고는 계단을 올라갔다. 흠… 그럼 얘기를 들어볼까? "뭐예요?" "흠… 너 직업이 뭐야?" ……뭐냐 이 인간은. 갑자기 얘기의 흐름이 바뀌는 이유는 뭐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솔져. 미토스는 피… 피오니어? 뭐, 그랬던거 같았는데… 지금은 투신이라면서요." "우우… 부럽다. 멋진데. 내 직업명은 뭔가 어려워서…." 후아… 도대체 말하려는게 뭐야? 페페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말하려는게…." "아, 다크 엘프를 찾으러 간다고?" "예. 정확히 말하면 다크 엘프들의 마을을 찾아가는 건데…." "흠… 악마의 숲의 남쪽 호수에 있는?" 어? 알고 있잖아? 하긴 미토스 정도의 랭커라면 악마의 숲도 클리어 했겠지. 나는 순 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가 보셨어요?" "아니." "………." "후훗." 페페의 웃음소리. 정말…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사람이군… 나는 고개를 저으며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흐으… 페이스에 말리면 안돼… "발견은 했는데 들어가지를 못했거든. 남자 전사 다크 엘프들이 못 들어가게 막더라고. 그걸 알려주려고… 괜히 많은 사람이 알 필요는 없는 곳이잖아. 아름다운 곳이던데… 사람들이 알려지면 나쁜 길드에서 침략해 갈지도 몰라." 그런가? 그러고 보니 섀도우 월드에서 엘프가 팔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그럼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는걸. "그런데 너는 어떻게 거기를 아는 거지? 나도 간신히 알아낸 곳인데? 충고해 주면 가봤자 들어가지 못 할거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들어갈 수 있어요. 퀘스트로 받은 거라…." 내 말에 미토스는 눈을 반짝 빛내더니 열성적으로 외쳤다. "나도 데려가 줘! 가보고 싶어!" "………." 미토스와 같이라… 좋기는 한데… 괜찮은 건가? 나는 페페를 바라보았다. 운영자니까 뭔가 충고를 해달라는 뜻이었다. "상관없어요. 같이 가는 건 세한님의 자유거든요. 그리고 미토스 님은 평판이 상당히 좋으신 분이죠. 악질 P.K범도 퇴치하러 다니시고… 초보 유저들도 많이 도와주시고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 솔직히 미토스님이 아니셨으면 제가 세한님에게 안내해 드리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럼 같이 가도 되겠네. 나야 편하고 좋지. "그럼 같이 가요. 그런데 시간은 되세요?" "물론! 남는 게 시간이지. 거기다 다크 엘프를 만나러 간다는데… 흠… 여자 엘프들 …예쁠까?" 몽상에 잠기는 미토스. 특이한 사람이야… 그때 페페가 귀가 번쩍 뜨이는 제안을 해왔다. "그럼 저도 같이 가면… 이번 주는 휴가라서요. 제가 키우는 캐릭터도 있는데… 저도 다크 엘프는 본적이 없어서요." 오옷! 페페까지. 대환영입니다! "그럼 고맙죠. 그런데 페페도 캐릭터가 있어요?" "예. 정령사로 키우고 있는데… 아마 지금 레벨이 180정도…." 180이면… 정령술사? 상당히 높은 거잖아. 내가 제일 저렙? 후… 어쨌든 다크 엘프 마을로 향하는 파티 결성인가? 즐겁겠는데. "그럼 셋이서 가요. 오늘은 샤프소드를 고쳐야 되는데…." 내 말에 몽상에 잠겨있던 미토스가 고개를 들었다. "샤프소드? 내가 고쳐 줄까? 대장장이 스킬이 있는데? 미스릴도 있고… 내가 깨끗하게, 아니 더 좋게 고쳐줄게." 흐음? 미토스는 대장장이 스킬도 올린 모양이지? "그럼 부탁드릴게요." "좋아. 다크 엘프의 마을에 데려가 준다는 데야…." 기대 어린 얼굴로 다시 몽상에 잠기는 미토스. 정말 절정 고수의 무게감이라든지 위엄을 찾기가 힘든 사람이군. -으음… 왠지 개성이 독특한 인간들이로군… 정상적인 인간은 없는 건가? 자네도 정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네 마나르트.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한 사람 당 100골드!?" "그, 그렇습니다." "지금 나하고 농담 따먹기 하자는 겁니까?" "아, 아니… 그게…." "깎아." "하, 하지만…." 질기다… 그런데 악마의 숲까지 가는데 100골드? 100골드면… "100골드면 괜찮은 단검이 몇 갠지 알아!? 적어도 100개는 산다고! 그런데 텔레포트 하나 쓰는데 100골드!?" 내 고함소리에 텔레포터 NPC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악마의 숲은 여기서 거의 정반대라… 거, 거기다 악마의 숲 외곽에 설치한 마법진은 사용자가 거의 없기에… 관리하기가 수입에 비해서… 그, 그리고…." "한. 그냥 가지 그래? 돈도 많으면서…." "그래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냥…." 미토스와 페페의 말에 나는 이를 갈며 텔레포터를 노려보았다. 크으으… 그래, 100골드 가져다가 즐겁게 살아봐라… 으으… 100골드면… 나는 투덜거리며 돈을 건네었다. "가, 감사합니다." 나는 현재 예의 그 음산 모드로 변해 있었기 때문에 NPC는 상당히 겁을 먹고 있었다. 으… 조금만 더 하면 될 수도 있었는데… 페페는 투덜거리는 나를 토닥거리더니 마법진으로 데리고 갔다. 페페의 현재 모습은 운영자일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겉모습은 아예 똑같은 게, 그러니까 현실의 모습이었고 약간 헐렁한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정령사의 특성상 정령을 부리면서도 가벼운 검으로 몸을 보호하는 것이 보편적이니… 나나 미토스처럼 키우지 않는 페페는 현재 레이피어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그, 그럼 악마의 숲으로 이동합니다." 텔레포터의 말이 끝나자 환한 빛무리가 생기더니 순간적으로 어디론가 이동되었다. 페페가 소환하던 것에 비해 좀… "이야… 오랜만이다. 악마의 숲." 미토스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음… 진짜 음침하군… 안에서 봤을 때도 상당히 어두운 느낌이더니… 어둠의 숲은 상대가 안 되는군… "여기에 주로 있는 몬스터는 뭐죠?" 내 질문에 페페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아마… 구울(Ghoul)이나… 구울 크로울러(Ghoul Crawler, 거대동물) 그렘린(Gremlin), 스펙터(SPECTER) … 레이스… 그리고…." "듀라한." 갑자기 입을 여는 미토스. 듀라한? 그거 상당히 강한… 대가리를 들고 다니는 웃기는 최하급 마족… 그리고 구울이면… 뱀파이어가 만든 흡혈 괴물… 굴 크로울러 피 빨아먹는 동물이라… 그런데 스펙터하고 레이스가 뭐지? "스펙터하고 레이스는 뭐하는 놈들이죠?" "둘 다 유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펙터는 마법에만 타격을 입고 레이스는 마법을 흡수하기 때문에 무기에만 타격을 입어요. 아마… 세한님의 그 검이라면 스펙터를 공격할 수 있을 거예요." 흠? 마나르트? -물론이지. 내가 힘을 뺏겼다 해도 그런 웃기는 유령을 죽이는 건 가능하다네. 어때? 놀랍지 않나? 잘난 척은… 그때 미토스가 부가 설명을 시작했다. "이런 놈들도 있지만… 위험한 건 듀라한과 로우 데몬(Low Demon, 하급 악마)인데… 나야 괜찮겠지만 페페 씨나 너는 위험할거야. 적어도 레벨 150은 돼야 저항을 할만한 놈인데… 로우 데몬은 마법 저항이 굉장히 강해. 그러니까 세한 네가 페페를 지키라고." 레벨은 내가 더 낮은데… 혼자 왔으면 죽었겠다. 마신의 신전은 함정하고 마법 트랙 때문에 레벨이 높았던 건가 보군… 내가 한숨을 내쉬자 페페가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잘 부탁드려요." "아… 예." 내가 얼굴을 좀 붉히자 미토스가 투덜거렸다. "쳇, 쳇, 쳇! 나도 여자친구 하나 만들어서 같이 오는 건데… 빨리 가자고." 으씨… 저 인간이… 나와 페페는 숲 안으로 들어가는 미토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길은 알아요?" "물론이지! 한번 갔던 길을 잊어 먹겠어?"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단 말야? 우리는 악마의 숲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미토스… 여긴 아까 거기 같은데요?" "……그, 글쎄…." "하아… 이제 슬슬 몬스터들이 나올 시간이…." 나는 고개를 돌리며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미토스를 쏘아보았다. 역시… 이 인간을 믿는 게 아니었어. 숲에 들어 온지 30분 정도가 지났는데… 몬스터는 만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길치, 혹은 방향치 미토스라는 복병을 만나 숲을 헤매고 있었다. "정말 가본 적 있는 거 맞아요?" "무, 물론이지. 이, 이상하다? 여기였던 거 같은데?" 미토스는 정신없이 주위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돈좀 아끼자고 지도도 사지 않고 왔으니… 저 인간의 어디를 믿고… "세… 세한…." "예?" 미토스를 노려보던 나는 페페가 나를 부르자 고개를 돌려 페페를 바라보았다. 어어? "몸이… 이상…." 툭. 몸을 좀 비틀거리던 페페는 내 어깨에 몸을 기대며 정신을 잃었다. 이, 이런. 나는 급히 페페를 부축했다. 뭐, 뭐지? "그렘린! 세한! 페페를 보호해!" 미토스가 클레이모어를 어깨에서 내리며 외쳤다. 그렘린? 슬립 마법… 페페를 보니 확실히 잠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야 아이템이 받쳐주니 마법에 잘 걸리지 않지? 거기다 그렘린의 마법이라면 흑마법 계통일테니… 순간 내 식스센스에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큭! "미토스! 오른쪽!" 내 외침에 미토스는 오른쪽을 향해 클레이모어를 휘둘렀다. 클레이모어에서 뻗어나가는 엄청난 검기. 검기가 날아간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많은 수의 그렘린들과 구울 크로울러들이 나타났다. "페페를 보호해! 내가 상대하지!" 미토스는 몬스터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저런 엄청난 무게의 검을 들고 있으면서도 나보다 더 빠른 몸놀림이었다. 나는 마나르트를 뽑아들었다. 마나르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조심하게나, 세한. 내가 지키는 데도 한계가 있어. 아직 힘도 되찾지 못했으니… "알았네." 나는 페페를 품에 안으며 뒤쪽에 바리어를 생성했다. 콰콱! 치… 페페를 안고 있으니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 나는 앞으로 몸을 날리며 몸을 한바퀴 돌렸다. 길게 튀어나온 이빨을 휘두르던 구울 크로울러. 나는 단검을 집어던졌다. "대거 댄싱." 크에에에엑! 거대한 애벌레는 괴성을 지르며 공격해 왔다. 거의 사람의 크기에 육박하는 크기의 애벌레 씨. 저걸 어떻게 공격하지? 키헤헤헤헤!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웃음소리에 급히 마나르트를 휘둘렀다. 깡! 하는 소리와 함께 그렘린의 삼지창과 마나르트가 충돌했다. 키헤! 이번에는 뒤? 나는 페페를 품에 안으며 몸을 날렸다. 푸욱! 흙 속에 박히는 쇼트소드. 저놈은 검을 쓰네? 나는 페페를 꼭 끌어안으며 바닥을 굴렀다. 젠장! 여자를 안고 있는데 감흥을 받기도 전에 날아드는 몬스터들이라니… 스아악! 마나르트가 늘어나며 애벌레의 촉수를 막았다. 제길! 나는 급히 몸을 일으키며 뒤로 물러섰다. 다시 뻗어오는 애벌레의 촉수. 나는 급히 검을 휘둘렀다. 크에에엑!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꿈틀대는 구울 크로울러.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보기가 싫은데… 케헤헤헤! 갑자기 들려오는 그렘린의 웃음소리. 늦었다. 그렘린의 창은 정확히 페페가 있는 곳을 찔러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여자는 지킨다! 평소 신조에 따라 나는 급히 몸을 돌려 페페를 보호하며 그 망할 삼지창을 대신 맞았다. "크윽!" -오옷! 내 주인이 이런 고귀한 귀족 정신을! "닥쳐! 살검(殺劍)!" 나는 계속 해서 달려드는 그렘린의 목을 따버리며 뒤로 물러섰다. 제길! 페페를 지키면서 싸우는 데는 한계가… 푸욱! "커허억!" 나는 등허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빌어먹을! 그렘린인가? 내 허리를 뚫고 지나온 쇼트소드는 페페의 왼팔까지 찌르고 있었다. "흐아앗!" 나는 허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한채 몸을 돌리며 돌려차기를 넣었다. 죽어! 그렘린의 키는 내 허리 정도… 그렘린은 머리에 가격 당하고는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날아가는 내 단검. 그렘린은 목이 뚫리며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빌어먹을…." 허리가 반쯤 잘렸어… 나는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공중을 날아 내 머리를 공격해 오는 그렘린 한 마리… 크크큭. "마나르트…." 나는 양해를 구하다 말고 마나르트를 위로 집어던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마나르트는 별말 없이 날아가 그렘린의 몸을 뚫어놨다. "아… 세…한?" 흐흐흑. 이제 깨면 뭐합니까? 아까 팔을 찔린 고통에 정신을 차리고 있는지 페페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애벌레, 구울 크로울러의 등에서 촉수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는 샤프소드를 뽑아들었다. 미토스의 실력으로 더욱 멋있고 강해진 샤프소드… "죽엇!" 나는 그대로 샤프소드를 집어던졌다. 미안하다… 맹렬한 기세로 날아간 샤프소드는 애벌레 씨의 머리에 박혔다. 허어… 저 꿈틀대는 것 좀 보게? 크에에엑! 머리에서 이상한 액체를 쏟아내던 구울 크로울러는 곧 동작을 멈췄다. 죽었군… 그때 오른쪽에서 무언가가 공격해 들어오 것이 느껴졌다. 크으으… 방법이… 챙! 어느새 날아온 마나르트가 그렘린의 검을 막고는 내 손으로 떨어졌다. 후후… 고맙다…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그렘린의 목을 단번에 베어 올렸다.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그렘린. "꺄악! 세, 세한! 괜찮아요!?" 이제 완전히 정신을 차렸는지 페페가 비명을 질러댔다. "젠장! 페페! 뒤!" 내 고함소리에 페페는 급히 몸을 돌리며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손톱을 휘두르며 달려들던 구울이 뒤로 물러났다. "샐레맨더!" 페페의 외침에 불붙은 도마뱀? 불로 이루어진 도마뱀이 나타나더니 구울을 향해 불을 뿜었다. 엄청난 화력. 구울은 불길에 휩싸이더니 비명을 지르며 나무들 사이로 도망갔다. 똑똑한 놈이네… 나는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는 주저앉았다. "세, 세한. 괜찮아요?" 나는 간신히 미소를 지어주고는 포션을 꺼내 상처에 들이부었다. 크으으… 내가 신음을 흘리자 페페가 어쩔 줄을 몰라하며 안절부절 했다. 나는 붕대를 감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죽엇! 헉!? 이봐 애벌레! 뭘 던져!?" 저 인간은 싸우면서도 미소를 짓고 있잖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미토스가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허… 저런 무게의 검을 저리 쉽게 휘두르다니… 그런데 미토스는 무슨 직업들의 스킬을 올렸을까? 주 스킬이 투사 스킬인 모양인데… 잠시 후, 몬스터들을 모두 정리한 미토스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후… 길치만 아니면 좋을 텐데… "괜찮아?" "그럭저럭…." 미토스는 대가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자기도 앉아 쉬기 시작했다. 정말 태평한 분이시군… 페페도 얼떨결에 내 옆에 앉았다. "괜찮아요?" "예…."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야… 차라리 페페가 없는 편이 더 도움이 되겠는데… 마법 저항을 올려주는 아이템이 별로 없나봐… 그때 미토스가 페페를 좀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에… 페페 씨?" "예?"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페페는 미토스가 자신을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저… 괜찮으시다면… 돌아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여기는 그렘린들이 넘쳐나는 곳인데… 마법 저항이 약하시면 도움이… 지금도 세한이 페페 씨를 지키다가…." "아…." 페페는 다시 나를 한번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토스의 말을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흠… 좀 슬프긴 하지만 페페가 위험해 지는 것 보단 나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세요… 이번 주가 휴가시면… 으으… 집에서 쉬시는 것도… 직업이 섀도우 월드에서 일하시는 거니 현실에서 쉬는 것도… 끄으으…." 흐흑. 말할 때마다 상처가 쑤셔… 나는 신음을 흘리며 상처를 감쌌다. 누가 계속 손톱으로 할퀴는 기분이야… 프로그램 상 상처의 고통만은 실제보다 작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야… 페페는 신음을 흘리는 나를 걱정스러움 반, 미안함 반이 뒤섞인 눈으로 좀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아무래도 저는 별… 성공하시면 연락 주실래요? 제 메일은 아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페페는 아쉬운 얼굴로 나와 미토스를 바라보더니 인사를 하고는 로그아웃을 시작했다. 비전투시 근방 50m에 몬스터가 없으면 전투 필드에서도 로그아웃이 가능하다. 대신 마지막으로 들린 마을로 돌아가지만… 나는 손을 흔드는 페페에게 손을 흔들어 주다가 페페가 사라지자 얼굴을 굳히며 바닥을 굴렀다. "크흐흑! 아파라… 그 망할 꼬마 악마가… 으으윽…." 미토스는 바닥을 구르는 나를 한숨을 내쉬며 바라보더니 고개를 젓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고맙지? 옆에 애인이 있으면 나쁜 점도 많다니까." "크으으… 애인이 아니라니… 흐윽." -한심하구만… 좀더 정진하게. 까딱하면 죽겠구만. "시끄러…." 미토스는 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마나르트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흐음… 알아보는 건가? "이게 그 마검인 모양이지? 에고 소드? 그런데 별다른 힘은 느껴지지 않는데…." -저, 저런 무례한! "큭. 맞아요. 말만 많은 놈이죠." -뭐, 뭐야! 내가 힘만 찾으면… "자기 말로는 자신의 검집에 힘이 봉인되어 있어서 그걸 찾는 중이죠." -………. 마나르트가 조용해진 것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토스는 좀 심각한 얼굴로 마나르트를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성격은 괜찮아? 운영자들이 준 아이템이니 만큼 나쁜 건 아니겠지만… 혹시 나쁜 검이면 너를 잠식할 수도…." "성격은 괜찮은 편인데…." 잠식이라… 마나르트가? -후후훗. 그래, 내 성격이 괜찮긴 하지. 푸헤헤헤헤! 그렇게 생각하기는 힘든데… 미토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괜찮을 거야. 유저들을 위해 일부러 만든 검이니까… 그런 나쁜 의도는 없겠지. 그럼 이제 갈까?" 아직 상처가 쑤시기는 했지만 거의다 회복된 것을 느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다시 출발인가? "제발 부탁이니 길 좀 제대로 찾아요. 그냥 남쪽으로 가면 될 것을 왜 자꾸 옆으로 빠져요?" 미토스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중한 얼굴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흠… 일단은 남쪽이 맞는 거 같은데… 이상하게 어느 순간 보면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단 말야? 그런데 아무 말 할 수 없는 것이 미토스의 말로는 남쪽으로 계속 가도 중간에 막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나는 열심히 주위를 살피며 걸어가는 미토스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곳을 찾아올 수 있는 거죠?" "미, 미안…." 나는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절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지각 변동 비슷한 것 때문에 갈라진 모양이지? 절벽의 아래도 나무들이 울창한 것이 같은 숲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 망할 애벌레의 뇌수를 닦던 샤프소드를 검집에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기억에 있어요?" "그, 글쎄? 있던 거 같기도 한데… 마을을 가다가 멀리서 이런 높은 절벽을 본 적이…." 그럼 저 아래라는 얘기 아냐? 그럼 이 절벽을 내려가서 저 끝으로 가야 된다는 소리? "정말… 어떻게 이렇게 방향감각이 없을 수가… 차라리 제가 앞장을 설 게요." "하지만 위험하잖아." "괜찮아요. 느낄 수 있으니까." 몇 번의 전투로 내 식스센스의 존재를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던 미토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가 있는 장소를 자신보다 훨씬 일찍 알아내는 나를 보며 놀라던 모습이 떠오르는군…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내려가지?" 내 중얼거림에 미토스가 간단하게 말했다. "뛰어내리자." "………." "나는 공중 부양 스킬이 있는데? 얼마간 떠있을 수 있어." 자신의 비밀 스킬을 저리 쉽게 말하다니… 저런 사람이 어떻게 미지의 랭커로 있을 수 있는 거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절벽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의 8층 높이 정도… "그럼 나는…." "내가 안고 내려가지 뭐." "……나는 남자 취향이 아닌데…." 내 말에 미토스는 킥킥거리다가 절벽의 아래를 살폈다. 음… 설마 진짜로 뛰어내리려는 건 아니겠지? 음? 나는 뒤에 몬스터들이 모이는 것을 느끼고는 얼굴을 굳혔다. "미, 미토스." "앙? 왜?" 고개를 돌린 미토스는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이럴 수가… 구울이 한 10마리에… 스펙터… 그렘린도 좀 있고…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듀라한…." "세 마리…." 미토스는 그대로 절벽으로 뛰어내렸다. 저, 저런 배신자! 랭킹 7위라는 인간이… 나는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좋아! "빌어먹을!"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미토스와는 다르게 절벽에 바싹 붙어서 뛰어내렸다. 오랜만에 보드나 좀 타볼까? -이봐! 어쩌려고… 쉬이이이잉! 내 발 밑으로 생기는 보드 모양의 바리어. 보통 보드보다는 훨씬 크지만… 나는 그 바리어를 밟고는 바리어의 한쪽 끝을 절벽에 박아 넣었다. 투투투투투투! 바리어는 절벽을 허물어뜨리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속도는 늦춰졌다! 나는 바리어를 빼내며 이번에는 보드를 타는 것처럼 절벽에 바리어의 밑을 가져다 대었다. 트트트트! 다행히 절벽은 완전한 수직이 아닌 급한 경사였기에 휙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속도가 붙기는 했는데… "어라!? 멋진데!"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느릿느릿한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미토스를 볼 수 있었다. "비겁자!" "하하… 나는 네가 떨어지면 받으면서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이 속도를 보라고…." 확실히 미토스는 느린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고 내가 그냥 뛰어내렸다면 받을 수 있었을 것처럼 보였다. 으으… 그냥 뛰어내릴걸… 미토스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 속도가 훨씬 빠르니까… -스릴이 넘치는데? "그래?" 나는 바닥에 거의 다다른 것을 확인하고는 바리어를 없앴다. 순간 허공에 뜨게 되는 나… -허어어억! 무슨 미친… 쉬이이이잉! 순간 절벽에서 튀어나오는 바리어. 나는 그 바리어의 끝을 손으로 간신히 붙잡았다. 크으… 어깨 빠지는 줄 알았네… 바닥은 한 3m 정도 아래… 나는 그냥 뛰어내렸다. 이 정도는 멀쩡하지… 탁! 털썩. 바닥에 내려선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흐으으… 죽는 줄 알았잖아… 도대체 저 미토스라는 인간은… 곧 미토스가 내려섰다. "멋진데? 나도 그런 게 있었으면…." "헉, 헉… 나는… 그게 더 부러워요… 헥헥." 숨을 들이키던 나는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와 다를 것이 없는 똑같은 숲. 그런데 남쪽이면… 지금 해가 오른쪽에… 지금은 오후, 그러면 정면이 남쪽. "가요." "그쪽 맞아?" "적어도 미토스 보다는 정확할 걸요?" "그래?" 미토스는 조금 걸음을 빨리 해서 내 옆에 섰다. 흠… 나를 보호해 주시겠다는 말씀? -세한. 이 방향이 맞는 것 같군. 내 기와 똑같은 기가 흘러나오는데? 이 방향에서. 여기로 쭉 가면 되겠네. 마나르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좋아! 어서 가서 베르시나의 부탁을… "몬스터!" 나는 급히 소리치며 마나르트를 휘둘렀다. 나무 위에 숨어 있다가 떨어져 내리며 손톱을 휘두르던 까만 몬스터가 마나르트에 맞고는 내려서자마자 뒤로, 우리의 앞으로 물러섰다. 간신히 막았네. 저건 뭐지? "저게 뭐죠?" "저게 로우 데몬이야. 귀엽지?" 확실히 귀여운데… 몸이 온통 까맣기는 한데… 키는 내 허리정도 눈도 동글동글하고… 장난기가 느껴지는 녀석인데? 다만 손에 튀어나와 있는 저 손톱이… "그런데 저게 150은 되야 저항이 가능하다고요?" 내 물음에 미토스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아니. 지금은 레벨 100도 안돼는 사람도 상대할 수 있지. 하지만…." 카아아아악!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 귀여워 보이던 녀석이 끔찍한 괴성을 지르며 부풀어오르더니 그야말로 악마의 형상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키는 거의 2.5m… 살기가 감도는 눈에 거의 쇼트소드와 비슷한 크기의 손톱들. 우람한 근육… 눈을 부릅뜨고 굳어있는 나를 킥킥거리며 툭툭 건드린 미토스가 앞으로 나섰다. "이놈은 내가 상대하지. 너는 뒤에서 오고 있는 놈이나 상대해." 후… 다행이군. 뒤에 있는 몬스터는… 한 마리네? 하지만 로우 데몬은 아니야.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몸을 돌려 몬스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저벅, 저벅. 챙. 롱소드를 겨누며 걸어나오는 듀라한. 자신의 머리를 왼손에 들고 있는 웃기는, 하지만 위력은 전혀 웃기지 않는 최하급 마족… 로우 데몬하고 동급인 녀석… 거기서 거기구만… 카아아아악! 콰아앙! 뒤에서 울려 퍼지는 엄청난 충격음. 그래. 여기가 좋을 거야. 저런 완벽한 악마는 싸우기가 무섭지…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마나르트를 들어올렸다. 휙, 휙. 저놈은 머리가 잘려서 말을 못하기에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다른 몬스터들의 괴성을 대신한다. 어찌 보면 코믹하기도 하지만… 타닥! 저 엄청난 속도를 보면 웃을 수가 없지… 나는 급히 뒤로 몸을 날리며 단검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대거 댄싱!" 날아가는 4개의 단검. 듀라한은 검을 휘둘러 단검 두 개를 쳐냈지만 두 개는 몸에 박혔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듀라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앗! 속검(速劍)!" 나는 듀라한을 향해 검을 여러 번 휘둘렀다. 현재 내 스킬 레벨은 자랑스런 51! 5번을 연속으로 휘두르는 나. 전에 필이 보여주던 것과 비슷한 속도의 공격이었다. 나는 순발력을 높여주는 스킬들을 익히고 있으니… 내 빠른 공격에 당황하던 듀라한은 방어를 하는 대신 검을 찔러 들어왔다. 덕분에 듀라한의 몸을 난도질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어깨를 뚫린 나는 검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났다. 듀라한은 저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역시 듀라한은 신음이나 비명도 지르지 않고 내게 달려들었다. 엥? 그러고 보니 당연한 거잖아? "마나르트, 부탁!" 나는 그대로 마나르트를 듀라한에게 집어던졌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마나르트. 듀라한은 롱소드를 휘둘러 마나르트를 튕겨냈다. "선풍각(仙風脚)!" 마나르트를 막아내고 나에게 공격해 들어오려 하던 듀라한은 내 돌려차기에 적중 당해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내 손으로 빨려 들어오는 마나르트. -이보게, 주인 씨. 요새 나를 집어던지는 것에 맛이라도 들렸나? "그럴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자네 덕분에 근근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네. 고마워." -훗! 그럼 언제 향수 목욕이라도 시켜주게나. 요새 몸에 피냄새가 베는 것 같단 말야. "다크 엘프의 마을에 향수가 있을까?" -다크 엘프 중에도 여자가 있으니 향수도 있겠지. 여자라… 쳇! 베르시나가 생각나네? 베르시나가 생각나면 왠지 열이 뻗치는 것이… 휙, 휙. 검을 휘두르며 걸어오는 듀라한. 너 잘 걸렸어. 나는 그대로 달려들었다. 왼손의 OPG에서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손톱. 철컥! "하앗! 더블 크로스(Double Cross)!" 계속 애용하는 기술이지. 마지막 마무리를 위한 일격 필살로는 살검과 더불어 가장 좋은 기술인 크로스… 나는 듀라한을 스 쳐지나갔다. 푸확! 내 어깨에서 피가 솟아 나왔다. 크흐… 당했다… 나는 급히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 다. "연환격!" 롱소드를 휘두르던 듀라한은 내 공격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좋아! 하지만 다시 앞으로 달려나오는 듀라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으면 서도 죽지 않다니… "마나르트. 저놈 약점이 어디야? 크읏!" -그냥 완전히 갈라버리면 되기는 하는데… 나도 힘이 없고 자네는 검기도 없으니… 검을 못쓰게 팔을 날린 다음에 머리고 뭐고 다 박살을 내! "속검!" 마나르트의 말에 나는 검을 휘두르는 듀라한의 팔을 그대로 잘라버렸다. 그 대가로 내 배에 검이 박히긴 했지만… "커헉!" -이봐! 정신차려! 마나르트의 고함소리… 나는 잘 움직이지 않는 왼손을 움직여 검을 빼냈다. 무기를 잃어버리고 당황하던 듀라한이 맨몸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크으… 질긴 놈… 나는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둘렀다. "괜찮아?" 미토스가 나의 상황을 보러 왔을 때. 나는 듀라한의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절단해 놓고 있었다. 헉, 헉. 정말… 끈질긴 놈이야… 이제야 죽다니… "죽을 맛." 미토스는 피식 웃고는 나를 일으켰다.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는 죽어있는 듀라한을 바라보았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무한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 "가자." 미토스의 말에 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으으… 다크 엘프를 찾는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차라리 함정이 넘쳐나던 마신의 신전이 좋았어… 나와 미토스는 나무들 사이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카아아아악! "………." "돌겠군." 나와 미토스는 우리의 앞에서 고함을 지르는 로우 데몬 세 마리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미토스 혼자라면 몰라도 나를 보호하면서는… "세한." "에?" "알아서 튀어." "하아?" 뭔 소리? 하지만 미토스는 여전히 히죽거리며 내 등을 철썩 때렸다. 무슨 뜻? 그때 미토스의 검에서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나는 마범검사… 아니 마법투사? 검사? 투사? 흠… 어쨌든 마법하고 투사 스킬을 동시에 올렸지. 덕분에 이상한 버그가 생겨서 직업을 받은 후, 도중에 레벨이 갑자기 빨리 올랐는데…." "본론만 얘기해요." "아, 이거는 파괴력이 너무 강해서… 그러니까 알아서 도망다녀." 말을 끝내고 미소를 지어 보인 미토스는 세 마리의 로우 데몬들에게 달려들었다. 흐윽!? 그리고 일어나는 엄청난 폭발… 잘못하면 죽겠다. 나는 급히 바리어를 생성하며 뒤로 몸을 날렸다. -허허… 대단한데? 저런 폭발이라니… 하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겠군. 아마 자네를 보호하기가 힘드니까 빨리 끝내려는 생각인 모양인데… 데몬들은 마법 저항력이 강하니까… 마나르트의 말을 들으며 나는 감탄한 눈으로 미토스를 바라보았다. 햐아… 저게 고수의 위력? 여전히 미소를 짓고는 있었지만 미토스의 실력은 환상적이었다. 클레이모어를 휘두르면 불꽃과 검기가 합쳐진 화려한 검날이 날아갔다. 우와… "마나르트…." -앙?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자네야 마법은 올리지 않았지만 내가 있잖아. 나도 마법을 사용해 주지는 못하지만 마력을 이용해 비슷한 효과는 줄 수 있어. 그리고 자넨 저 인간만큼 성장한다면 근접전에서는 누구든 압도할 수 있을걸? 거기다 레벨이 같다면 자네가 이길 수도 있겠지. 바리어와 이 고귀한 마나르트님이 있으니. "그럴까?" 하긴… 미토스는 마법과 검술을 혼합해 사용하지… 나는 완전 전투 스킬만 올렸으니… 언젠가 나도 저런 고수가 되면… 한번 싸워 보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살아야 한다는 거지!" 나는 나를 덮쳐오는 불길을 보며 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크으… 지금은 페페가 그리운데? 정령사니까 물로 저 불을 잡을 수도… 스으으으… 마나르트의 검날이 넓어지고 나는 그 위에 바리어를 씌웠다. 이 정도면… 불길과 부딪힌 나는 뒤로 튕겨져 나갔다. 우우… 검기만 있었어도 갈라버리는 건데… 나는 내 레벨이 낮음을 한탄하며 나무에 처박힌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켁켁. 우우… 끝났나?"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지자 나는 마나르트을 들어올리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흙먼지를 헤치며 미토스가 나타났다. "쿨럭. 으으으… 먼지 좀 봐라. 괜찮아?" "물론. 멋지던데…." 내 말에 미소를 좀 진하게 지은 미토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더 없어?" 아주 내게 의존을 하시는 구만. 나는 식스센스에 정신을 집중해 보았다. 근처에는 없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고 미토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좋아! 가자!" 씩씩하게 걸어가는 미토스… 하이고… 사람이 저렇게 방향감각이 없을 수가… "왼쪽, 왼쪽." 내 말에 걸음을 멈춘 미토스는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몸을 돌려 남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후우… 실력을 빼면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이로군… 나는 다시 앞장을 서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시 내 옆으로 다가온 미토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레벨은 올랐어? 지금쯤이면 130정도 됐을 지도…." 130? 그게 말이 되나? 이 숲에 들어올 때 레벨이 103이었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캐릭터 창을 불러냈다. "허억!?" "뭐야!? 몬스터!?" 내 비명소리에 놀란 미토스가 클레이모어를 어깨에서 내리며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런… "아니… 레벨이 많이 올라서…." 순간 움직임을 멈춘 미토스는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몇인데?" "132…." "대충 맞게 올랐네." "음?" "지금까지 잡은 몬스터들은 대부분이 레벨 150은 넘는 놈들이니까… 제일 약한 놈들이 그렘린들인데… 그놈들도 레벨이 150대야. 그러니 네 레벨이 빨리 오를 수밖에. 이런 전투 필드의 레벨은 파티 6명이 들어왔을 때 통과가 가능하냐로 따지는 거니까… 듀라한 같은 놈들은 혼자서 잡으려면 대충 레벨이 200은 되야 되거든. 그렇게 보면 우리가 참 특이한 거지. 하하하!" 우리라… 듀라한이 레벨 200? 내가 그렇게 강해졌나? 그러고 보니 듀라한을 잡을 때 공격이 좀 빨라진 것 같기는 했는데… 하기는 지금까지 잡았던 몬스터들은 기껏해야 레벨 100… 기껏은… 나도 100이었지? 어쨌든 그런 놈들이었으니까… 지금까지 순수히 내 힘으로 잡은 놈들이… 그렘린이 20마리가 넘고… 듀라한이 2마리… 구울이 10마리 정도… 구울 크로울러 5마리 정도… 스펙터 5마리 정도… 레이스 10마리 정도… 대충 그정도 되는 건가? 거기다 미토스가 잡은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 "햐… 확실히 고수하고 다니니 좋기는 좋네요? 나 혼자서는 절대로 못 들어올 곳이니…." 나는 새삼 미토스에게서 고마움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후훗. 이대로 가면 검기를 얻을 수 있을 지도… 150, 그러니까 3계급이 되면 검기 등을 가지게 되지? "그럼 열심히 가자고!" 미토스는 호기롭게 외치며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라? 그런데 방향이… "미토스… 왼쪽, 왼쪽." 후우… 어느새 방향을 바꿔서 걷고 있던 거야? 잠시라도 눈을 떼면 미토스는 엉뚱한 곳으로 걷는다. 덩달아 나도 생각에 잠겨 있었으니… 미토스는 머쓱하게 웃더니 제대로 방향을 잡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름답다…." "그렇지?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거야." 나와 미토스는 높은 절벽 위에서 저 멀리 보이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와… 저런 호수에 석양빛이 비춰지는 모습이라니… 해가 지는 방향이 아닌 게 한스럽다. 하지만…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로 멋진데? 나는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호수를 바라보며 감탄을 토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크 엘프들의 마을이 보이지 않는데? "여기로 내려가야 돼." 미토스는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약간 가파르지만 간신히 내려갈 만한 길을 가리켰다. 흠… 이 정도면… 미토스가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던 나는 다시 한번 바리어로 보드를 만들었다. 현실에서는 보드장 이용료가 비싼데… 일년에 한번 가면 기적일 정도로… "예에~!" "어엇!" 미토스는 바리어를 타고 내려가는 나를 보며 당황해 낮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까 절벽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해냈는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허… 이런걸 어디서 배웠는지 궁금하군. 언젠가 마족으로 돌아가면 해볼만한 가치가 있겠어… 마나르트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흠… 이게 괜찮은데? 가끔씩 섀도우 월드에서 보드나 타러 다닐까? 탁! 절벽을 다 내려선 나는 바리어를 없애며 미토스를 기다렸다. 내가 너무 일찍 내려가자 포기했다는 듯, 미토스는 공중에 떠서 내려오고 있었다. 흠… 정통 마법사면 하늘을 나는 마법을 익혔을 텐데… 마법사가 아니라 그런 마법까지는 배우지 않고 검에 마법을 불어넣는 것만 익힌 모양이다. 운영자가 저런 스킬을 준 것을 보면… "그거 재밌겠다." 바닥에 내려선 미토스가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아까 호수가 있던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음… 이제 슬슬 시간이…." 내 옆에 따라붙어 걸어가던 미토스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무슨 말이야? 시간? 내가 의아해 하고 있을 때, 상당한 수의 무언가가 식스센스에 잡혔다. 저 절벽 위와 이 글의 끝.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두 개의 절벽 밑의 사이에 나 있는 길로 포위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미토스. 뭔가가…." 내 말에 미토스는 미소를 지었다. "그 다크 엘프 전사들이야. 나도 여기서 만났었는데… 처음 화살이 날아오고 마법들이 날아올 때는 놀랐었지." 미토스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대로 멈춰 섰다. 덩달아 멈춰선 미토스는 나를 한번 바라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알고 있으니 모습을 드러내십쇼!" 내 외침에 절벽 위와 이 협곡형의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여러 명의 다크 엘프들이 나타났다. 모두 남자였지만 베르시나와 같이 피부는 약간 어두운 빛을 띄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베르시나와 같은 회색머리나 흰머리들을 가지고 있었다. "많네요?" "음…." 우리가 다크 엘프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길의 끝에 서 있던, 협곡의 끝에 서 있던 엘프들 중에 한 명이 걸어나왔다. 저 다크 엘프가 대장인가 보지? 그 다크 엘프는 나와 비슷한 체격을 하고 회색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다크 엘프는 우리와 10m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대단하군. 우리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다니… 여기는 무슨 일로 왔지? 여기는 우리들의 땅이다. 인간들이 들어오는 것은 허용할 수… 응?" 싸늘한 어조로 얘기하던 다크 엘프가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미토스를… "당신은… 전에 왔던 그 인간이로군. 이번에도 길을 잃은 거요?" "…아… 그, 그게…." 내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거리는 미토스 나으리… 저번에 여기에 왔던 것도 길을 잃어서? "미·토·스!" "아, 하하? 그, 그게 말야…." 나는 미토스를 이를 갈며 노려보았다. 그때 다시 들려오는 그 다크 엘프의 목소리. "저번에도 말했지만 여기는 들어올 수 없소. 그대가 강하다는 건 알지만 우리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오." 미토스의 실력을 알고 있는지 다크 엘프는 약간 긴장한 듯한 목소리였다. 어느 정도 예의까지 갖추어 말하는 것이… 흠… 그럼 내 용건을… 베르시나가 줬던 핀이… 나는 품속을 뒤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음… 이 마을에 살던… 베르시나라는 다크 엘프로부터 부탁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약혼자인 미시안과 동생… 베르시아라는 다크 엘프들에게… 음… 이걸…." 내 말에 놀란 표정을 하고 있던 다크 엘프는 내가 품속에서 작은 핀을 하나 꺼내자 눈을 크게 뜨더니 내게 다가왔다. "좀 봐도 되겠소?" 어느새 나에게까지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추고 있는 다크 엘프였다. 나는 순순히 핀을 건네었다. "화, 확실하군… 베르시나의… 음… 마을로 안내해 주겠소." 떨리는 어조로 중얼거리던 다크 엘프는 나에게 핀을 돌려주며 몸을 돌리며 손을 들어올렸다. 그가 손을 들어올리자 절벽 위에 있던 다크 엘프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협곡의 끝에 있던 다크 엘프들만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따라오시오." 그, 대장 다크 엘프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장으로 보이는 다크 엘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베르시나는… 그녀는 어떻게 됐소?" 쳇. 나는 침울한 어조로 대답했다. "…죽었습니다." 내 말에 다크 엘프는 몸을 흠칫 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흠… 베르시나와 잘 알던 사이인가 보지? 제길. 기분 씁쓸해… 게임이라는, 현실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어느새 미토스도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내가 왜 다크 엘프를 찾아오는 지는 모르고 있었지? 후… 곧 협곡을 빠져 나온 우리의 앞으로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 호수의 왼쪽에 위치한… 숲을 이용한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웅성, 웅성. 우리가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다크 엘프들이 모여들었다. 상당히 경계를 하는 눈치… 나와 미토스는 약간 거북함을 느끼며 우리를 안내하는 다크 엘프의 뒤를 따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집들은 대부분이 나무 위에 지어두거나, 혹은 나무 속을 신기하게 파내서 만들어 둔 듯이 나무에 문이 달려있는 집이 있었다. 나무 속에 만들어둔 집은 마법을 이용한 것 같았다. 그리고 직접 지은 집보다는 마법을 이용한 듯한 집들이 월등히 많았다. "들어오십시오." 어느 집, 혹은 나무 앞에 멈춰선 다크 엘프가 문을 열며 우리를 들여보냈다. 뒤에서 다른 다크 엘프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인간이 들어온 적이 없었던 모양이지? 나무 속은 상당히 넓었다. 확실히 마법을 이용한 듯했다. 나무가 상당한 고목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크지는 않았으니… 작은 거실에는 나무로 만든 탁자가 하나 놓여있었고 나무 의자 몇 개가 놓여있었다. "앉으십시오. 곧 베르시아가 올 겁니다." "아… 미시안이라는 분은…." "……접니다." 웃!?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무 의자 하나에 앉았다. 베르시나와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는 예상했지만… 후우… 분위기가… 미토스도 아까부터 미소를 짓지 못하고 있었다. "베르시나는…." "예?" "베르시나는 어떻게…." 나는 얼굴을 굳히며 마신의 신전에서 있었던 일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차마, 그 다크 워리어가 베르시나의 꿈이 어쩌고 한 얘기와 그 다크 워리어가 운영자라는 말은 해주지 못했다. 다만 그 일대를 관리하는 마신의 종이라고만… 내 이야기 내내 미시안이라는 다크 엘프는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덩달아 미토스도… 미시안이라는 다크 엘프는 베르시나가 죽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는지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올 뿐… 벌컥! "미시안 오빠!" 얘기가 끝나고 침묵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며 여자 다크 엘프 한 명이 뛰어들어왔다. 그런데… "베르…시나?" "예?" 파랗게 질려 있던 여자 다크 엘프는 내 중얼거림에 나를 돌아보았다. 닮았어… 자세히 보면 베르시나보다 좀 어려 보이고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때 미시안이 입을 열었다. "베르시나의 동생인 베르시아입니다. 시아, 네 언니의 소식을 가져오신 분이다." "아… 어, 언니는… 저, 정말로 언니가…." 베르시아라는 다크 엘프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크으… 빌어먹을! 내 그 망할 다크 워리어를…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한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의 언니가 죽었다는 대답과 다름없는 내 반응에 베르시아라는 다크 엘프는 바닥에 주저앉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으으…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한 듯 미토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 그 핀을 주시겠습니까?" 미시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베르시나가 나에게 건네주었던 핀을 미시안에게 건넸다. 그 작은 핀을 지긋이 바라보던 미시안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여전히 울고 있는 베르시아의 손에 그 핀을 쥐어주었다. 베르시아는 그 핀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흐으으… "따라오시겠습니까? 장로원으로 가셔야겠습니다." 미시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미토스도 급히 일어나 내 뒤를 따라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엄청나게 몰려든 다크 엘프들을 볼 수 있었다. 몇몇 여자 다크 엘프들은 베르시아가 울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급히 집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다른 다크 엘프들은 미시안에게 뭔가를 물으려 하다가 미시안 살기를 내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세한… 자네… 괜찮나? 천에 쌓여 있는 마나르트의 목소리가 머리 속에 울렸다. 나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시안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우리의 뒤로는 다른 다크 엘프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베르시나가 상당히… 중요? 대충 그런 위치에 있던 건가? 저, 미시안이라는 사람은 전사들의 우두머리쯤으로 보이는데… "베르시나는… 저희 마을의 장로님 중 한 분의 손녀입니다. 때문에…." 미시안은 더 이상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와 미토스는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으음… 제길! 내가… 구해왔다면… 내가 이를 갈아대자 옆에서 걸어가던 미토스가 내 머리에 손을 올리고는 마구 헝클었다. 쳇! 위로할 필요는 없다고… 장로원이라는 곳은 엄청난 크기의 고목이었다. 다른 집들에 비해 문의 크기도 훨씬 큰 것이… 나무라는 것만 빼면 인간들의 마을의 시청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미시안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회의실 비슷한 공간이 나타났다. 커다란 원탁에 둘러 앉아있는 늙은 다크 엘프들… 원탁 중에 우리의 정면에 위치한 자리는 하나는 비어있었다. "음… 거기에 앉도록 하게… 흠… 우리 마을에 인간이 들어온 것은 처음이네만… 자네들은 특별하니…." 원탁의 가운데. 내 정면에 앉아있는 늙은 다크 엘프의 말이었다. 미토스와 시선을 주고받은 나는 남아있는 자리 하나에 앉았다. "이, 이보게. 베르, 베르시나가 정말로…." 내 오른쪽에 앉아 있던 늙은 다크 엘프 중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저 엘프가… 베르시나의 할아버지인 모양이지? 다른 다크 엘프들이 아무런 제지를 가하지 않는 것이 내 짐작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한번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사실입니다. 마신의 신전에서… 죄송합니다." "허허허… 흐윽. 크흐흑…." 베르시나의 할아버지로 보이는 다크 엘프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작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젠장… 미치겠네… 그때 가장 높은 장로로 보이는… 원탁의 가운데에 앉아 있는 다크 엘프가 입을 열었다. "설명해 줄 수 있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아까 들었음에도 얘기를 듣는 미시안의 살기가 뒤에서 전해져 왔다. 장로들은 잠시 미시안을 바라보기는 했지만 별다른 제지를 가하지는 않았다. 이해한다는 건가? 내 얘기가 진행될수록 장로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으으음… 먼저… 고맙다고 하겠네… 우리 다크 엘프들의 수는 만 명을 넘지 못하지… 때문에 한 명 한 명이 아주 소중하다네… 그런 가족의 소식을 알려주고… 목숨을 걸고 지켜주려 했으니… 고맙네… 자네라면 언제든 우리 마을에서 받아주겠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제길. 이런 식으로 친해지는 건 기분이 좋지 않은데… 좀 즐거운 기분으로 친해지게 해주면… "다시 한번 말하지… 고맙네. 으음… 그럼 좀 쉬게나… 이제 날이 어두워 졌으니…."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조심스러워 하는 마나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세한? 내 검집은… 이런 장로회를 소집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네. 그러니… 마나르트의 말에 나는 얼굴을 좀 굳히고는 나에게 말을 하던 장로를 바라보았다. 그 장로는 내 시선을 알아채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할 말이 있나?" "예… 음… 마신이 이 마을에 맡겨두었다는 이 검의 검집을 가지고 가고 싶습니다." 나는 마나르트를 감아둔 천을 벗기며 마나르트를 원탁 위에 올려놓았다. 장로들의 눈이 커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확실히 이 곳에 마나르트의 검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나르트를 바라보던 그 장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오… 이, 이건… 마신님의… 그럼 자네가… 흠…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손님이었구만… 으음… 알겠네. 우선 오늘은 쉬게나. 내일 검집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겠네." 마나르트를 집어든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니네… 마신께서 정중하게 부탁하셨던 일이니… 그분이 선택한 이라면 우리 마을의 귀빈이지… 그럼 쉬게나."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는 미시안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후우… 별로 좋은 기분이 아냐… -미안하네. 이런 상황에 그런 말을… "괜찮아…." -………. 밖에는 아직도 많은 수의 다크 엘프들이 모여 있었다. 소식이 전해졌는지 울고 있는 다크 엘프들이 꽤 있었다. 나보다 [ 먼저 나갔던 미토스는 좀 주춤거리더니 내 뒤로 슬쩍 다가왔다. 후… 하긴 이 인간 성격상에 저런 시선 받기는 힘들겠지… 미시안은 장로원의 오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좀 걸어가니 집들이 좀 적은 곳이 나타났다. 미시안은 그 중에 한 나무에 다가가더니 문을 열었다. "여기서 쉬십시오. 내일 소식이 오면 연락을 드릴 테니…." 나와 미토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나무 속으로 들어갔다. 맨 처음 들어갔던 나무 집과 비슷한 구조였는데 상당히 깨끗했다. 방은 두 개. 각 방마다 침대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나는 집안을 한번 둘러보고는 거실에 놓여있는 나무 의자에 걸터앉았다. "후우…." "괜찮냐?" 역시 의자에 앉은 미토스의 걱정스러워 하는 질문. "예. 미안해요. 괜히 이런 일로 데리고 와서." 내 말에 미토스는 고개를 저으며 클레이모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니… 어차피 이 마을에 들어오고 싶었던 거니까… 분위기가 이렇긴 해도 뭐… 확실히 여자 다크 엘프들은 예쁘던데?"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렇죠… 예쁘죠? 흐음… 베르시나도… 으으… 그냥 NPC… 게임의 일부분일 뿐… 그렇지? 그래… 그저 게임의 일부분…." "그렇지… NPC니까…."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미토스가 어두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후우… 이제 자야지… 하루종일 너무 고생했어… "그럼… 먼저 잘게요…." "아… 그래 나도…."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각자의 짐을 들고 각각 방 하나에 들어갔다. 으음… 나무 냄새가 풍기는데… 싫지는 않은 냄새야… 나는 짐들을 대충 정리해 놓고는 마나르트를 들고 침대에 누웠다. 후우… 캡슐 수면? 아니면 로그아웃? 지금이 오후 8시정도… 날이 밝으려면 현실시간으로 3, 4시간… "마나르트, 잠시 로그아웃을… 날이 밝기 전에 접속할 거네…." -음… 쉬다오게나… 나도 생각할 일이 있어서… "음…." 후… 페페…초연 씨에게 전화나… 나는 로그아웃을 시작했다. 전화기 앞에 앉아서 한숨을 내쉬는 나. 으으… 그러고 보니 전화번호를 아직도 모르고 있군. 메일로 보내야지… 초연 씨에게 성공했다는 메일을 보낸 나는 거실로 나가 소파에 몸을 뉘였다. "이제 아침…." 밖을 보니 해가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흠… 그럼 페페가 로그아웃을 한 때가 한밤중이었을 테니… 좀 늦게 일어날 수도…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대충 아침이나 때우기 위해 부엌으로 걸어갔다. 먹을 만한 것이… "나도 이제 사람다운 집을 만들 필요가…." 순 인스턴트나 순간 조리 식품들만 눈에 들어오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흐으… 미트볼을 먹을까? 미트볼을 순간 조리기에 집어넣은 나는 냉장고에서 캔커피를 하나 꺼냈다. 캔커피를 따는 순간, 미트볼의 조리가 끝났고 나는 미트볼과 캔커피를 들고 게임 캡슐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놓아둔 탁자에서 아침을 먹던 나는 게임 캡슐을 바라보았다. 후… 왠지 다시 들어가기가… 식사를 끝낸 나는 침실로 들어가 알람을 3시간 뒤로 맞춰 놓고 잠을 청했다. 아침이긴 해도 빛을 차단하면… 무지 어둡군… 나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초연 씨가 보낸 메일에서 보니 가족들과 며칠간 여행을 다녀온다고 한다. 일주일 중에 반 정도를 알람에 맞춰 일어나 메일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섀도우 월드에 접속했다. <그림자의 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물씬 풍겨나는 나무 냄새.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마나르트는 내 손안에 얌전히 쥐어져 있었다. 후후… -일어났나? "음… 별일 없었지? 지금 시간이…." 아침 6시… 거의 새벽이네? 나는 몸을 풀며 침대에서 빠져 나왔다. 아, 상쾌해라. 숲 속의… 그것도 나무 속에서 자서 그런가? 기분 좋게 창 밖의 경치를 구경하던 나는 상당히 진지한 마나르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세한. 할 말이 있네. 이상하게 진지한데? "무슨? 말해 보게나." -내 검집… 그걸 찾는 것을 연기하면 안되겠나? 음? 검집을 찾는 것을 연기하라고? 얼마 전, 어제까지만 해도 검집을 빨리 찾자고 난리를 치더니… "어째서?" -내게서 마력이 빠져 나간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 지금 마을에 조금씩 흘러나오는 마력… 솔직히 내 생각보다 강해… 마력이 없는 동안 내가 약해진 모양인데… 정말 전에 없도록 진지한 목소리… 그런데 힘이 약해져? 마력이 없는 채로 지내서 마력을 제어하기가 힘들다는 말인가? -솔직히… 내 힘을 되찾았을 때… 이봐, 세한. "왜 그러나?" -나는 자네가 좋아. ………갑자기 썰렁해지는 이유가 뭘까? "검의 사랑고백인가? 자네 남자 아냐?" -그런 뜻이 아니네. 친구로써, 정말 자네가 좋고 마음에 들어. 그건 고맙군. 내가 좋은 놈이라는 소리 아냐? 그런데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지? -내가 힘을 찾으면… 내가 제어하지 못한 마력과 힘들이 자네에게 침투해 엄청난 고통을 줄지도 모르네. 그래서 말인데… 음… 자네, 내 힘을 원하나? 힘을 원하냐고? 물론이지. 그 다크 워리어에게 복수할 힘. 다시 운영자들이 내게 끔찍한, 슬픈 일을 겪게 하게 할 때 그것을 막을 힘. "물론. 걱정 말게. 그 정도 고통은 감수해서라도 힘을 얻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정말로 힘을 가지고 싶어… 운영자들이 계획하는 일들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불가능한가? 음… 어쨌든 강해지고 싶어." -후후. 그런가? 그럼 막지 않겠네. 음… 그리고… 지금 한마디 해두는데… 계속 노력하게. 음… 자네라면 내가 없어도… 무사히… 스스로 강해지겠지. 그리고… 괜히 그림자를 쫓지 말게. ………정말 진지하고 약간 슬픈 어조이기는 한데…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군. 선문답하나? "무슨 말인가?" -후후. 스스로 알게 될 거야. 아, 누가 왔는데? 그 특이한 인간인 모양이군. 다시 쾌활한 어조로 돌아온 마나르트. 나는 미소를 지으며 방문을 열었다. 미토스가 서 있었다. 그리고 미시안도… "일어났잖아? 자네 검의 검집을 가지러 가자는 군. 이 마을의 중심이라고 하던데?" "그래요?" 다크 엘프들은 빨리 일어나나 보네? 나는 장비들을 착용한 뒤 망토를 메고 마나르트를 집어들었다. "가자고." -가세나!" 아, 괜히 어두운 이미지를 고수할 필요는 없지? 나는 내 얼굴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들을 정리했다. 딱딱한 표정이던 미시안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 나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미시안은… 검은 상복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후… "역시 힘을 얻고 싶어." "뭐?" 미토스와 미시안이 의아해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젓고는 방 밖으로 걸어나갔다. 미시안이 몸을 돌리더니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곧 얻게 될 거야. 걱정 말게. 마나르트의 목소리에 나는 미소를 짓고는 옅은 안개가 끼어 있는 마을을 걷기 시작했다. 주위에 조금 모여 있던 다크 엘프들이 나를 보며 수근거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흠… 마나르트 때문인지 내 분위기 때문인지… 나는 미시안을 따라 마을의 중심으로 걷고 있었다. "왔구만… 어서 오게. 편안히 지냈나?" 장로들은 거대한 고목의 앞에 모여 있었다. 모두가 검은 상복을 입고 있는 것이… 나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편안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 여기에 검집이 있지. 그런데… 자네 분위기가 상당히… 밝아 졌구만?" 나는 멋쩍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광장 비슷한 곳인 것 같은데… 미토스는 내 뒤에 서서 주위의 다크 엘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 구경 실컷 하세요… 아마 행사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고는 구경을 나온 모양이다… "검집은 이 나무 속에 있네. 이 나무도 마신께서 심어두고 가신 거지." 장로들의 장. 장로장? 어쨌든 그 장로가 나무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마나르트를 늘어뜨리고는 그 나무에게 다가갔다. 우우웅… 마나르트가 공명을 일으켰다. 확실히 저 안에… -정말 저 안에 있나본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한 고목을 올려다보았다. 크다… 그때 장로장이 다가오더니 내 가슴 높이로 손을 들어올리며 나무를 가리켰다. "작은 구멍이 보이나? 구멍이라고 하기 보다는 흠집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구멍? 나는 나무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확실히… 검 자국 같은 구멍이… 꼭… 마나르트의 크기와 같은… 나는 무의식 중에 마나르트를 들어올렸다. 주위에 몰려있던 장로들과 미시안, 덩달아 미토스까지 뒤로 물러나는 것이 느껴졌다. 이 안에… 마나르트를 집어넣는다. 스스슥… 딱 맞아… 마치… 검집 같이… 검신의 반 정도가 들어갔을 때 마나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노력하고 정진하게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자네가 좋아. "뭐?" 순간 마나르트의 검신이 모두 박혀 들어갔다. 그리고… 우우우우우웅~! "뭐, 뭐지?" 나는 내 손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몸을 떨었다. 나무가… 나무가 흔들린다? 그리고… 마나르트의 손잡이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으… 손이 찌릿찌릿해… -크아아아아악! "핫!? 마, 마나르트?" 나는 마나르트의 비명소리에 화들짝 놀라 검을 도로 뽑으려 했다. 하지만 마나르트는 고정된 것처럼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놓으려 해도 손이 펴지지 않았다. -끄으으… 크아아악! 다시 들려오는 마나르트의 비명소리… 나는 얼굴을 굳혔다. 내 손을 타고 검은 기운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뭐, 뭐지? "세, 세한!" 뒤에서 미토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쩌저적! 거대한 고목이 반으로 갈라진다. 우우우우웅! 반으로 갈라지며 소멸되는 거대한 고목. 그리고 사라지는 나무들의 잔해, 그 안에서 화려한 검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을 주는… 그 검집이 씌워진 마나르트는 심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폭사되는 엄청난 기운… -크아아아아! 계속해서 들려오는 마나르트의 비명소리… "크으윽…." 나 또한 내 몸속으로 스며드는 검은 기운들 때문에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내 몸 속을 이상한 기운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게 마력? 마나르트의… 이게 마나르트가 말한 것인가? "세, 세한! 괜찮아!?" "이, 이런… 괜찮소!?" 내 뒤에서 들려오는 미토스와 장로의 목소리… 대답할 여력도 없다오… 내 몸이 검은 기운에 휩싸이며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으윽… 쿨럭." 나는 내 입에서 기침과 함께 터져 나오는 붉은 피를 보며 신음을 흘렸다. 흐으… 진짜 죽을 것 같다… -크으… 컥! 으아아악! 계속해서 들려오는 마나르트의 비명소리… 제, 제길… 이, 이게 뭐야… 또 운영자의 농간인가? 나는 엄청난 고통에 흐릿해져가는 의식의 끈을 붙잡으며 마나르트를 바라보았다. 아까보다는 떨림이 줄었어… 그리고 내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들도 점차 줄어가고 있었다. "으으… 마, 마나르트…?" 다시 마나르트에게 빨려들어가는 검은 기운들… 공중에 떠 있던 내 몸은 서서히 내려가더니 다시 바닥에 서게 되었다. 이제 고통도 많이 줄어있었다. 내 몸 안을 이상한 기운들이 돌아다니고 있기는 했지만… 상당한 고통이기는 했지만 간신히 참을 만은 했다. 하지만 마나르트의 비명은 계속되고 있었다. -크극… 커허억! 끄아아아악! "쿨럭. 마, 마나르트?" 나는 고통을 참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크으아아악! 크으으… 크…………. 갑자기 비명을 멈추며 조용해지는… 마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것 같은… 나는 눈을 부릅뜨며 마나르트를 바라보았다. 내 몸안에는 아직도 이상한 기운들이 돌아다니고 몸에서는 검은 빛이 조금씩 솟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조용한… 말이 없는 마나르트… 서, 설마… "마, 마나르트? 이, 이봐… 마나르트. 마나르트!" 나는 마나르트를 휘둘러보기도 하고 검집에서 꺼내보기도 하며 계속해서 마나르트를 불러대었다. 내게 다가오던 사람들이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전보다 훨씬 확실하게… "어이! 대답해! 마나르트!" 나는 부들부들 떨며 마나르트를 불러대었다. 하지만… 마나르트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전처럼 잠을 자는 건가? 피곤해서? 고통을 받은 것 때문에? 하, 하지만 전에는 잠을 자도…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오거나 쿨쿨거리는 소리가… 거기다 왠지 모를 존재감이… 하지만… 지금은… "마, 마나르트! 이 망할 자식아! 장난 그만하고 대답해! 대답… 마나르트…." 마나르트의 목소리는, 마나르트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내 앞에 박혀 있는 마나르트를 바라보았다. 화려한 검집에 쌓여 있는 검은빛의 검. "이봐. 죽은 거야?" '나는 마족 서열 107위에 빛나는 최상급 마족 마나르트라고 하지.' "후우… 대답 좀 하면 어디 덧나나?" '내가 성심성의 껏 보좌하지.' "자네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데…." '검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할 생각인데….' "책, 출간한다며?"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마나르트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스으으으… "크윽…." 내 손을 타고 올라와 몸을 휘감는 검은 기운. 내 몸 속으로 들어가 큰 고통을 주는 검은 기운. 내 몸에서 뿜어 나오는 검은 빛. 마나르트에서 흘러나오는 어두운 기운. 나는 이를 악물며 마나르트를 뽑아들었다. 스르릉.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검신. 나는 마나르트를 들어올려 가상의 적을 향해 검을 세웠다. 스아아악! 순식간에 넓어지며 내 주위를 보호하는 검신. 나는 검을 휘둘렀다. 내 마나르트에서 뻗어나가는 검은 기운… 마치 검기 같은… 이게 마나르트의 마력… 콰아앙! 나무와 부딪히며 폭발을 일으키는 검은 기운. 후우… 나는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하고 마나르트를 도로 검집에 집어넣고는 손을 뗐다. 사라지는 고통. 사라지는 검은 기운. "이상하지? 내 의지에 따라서 검이 변하고 마기가 움직여. 자네를 쥐고 있을 때만. 훨씬 강해지고. 이게 자네가 말하던 힘인가?" '곧 얻게 될 거네.' "후우… 노력하고 정진하라고 했나?" '노력하고 정진하게. 나는 자네가 좋아.' "자네 말을 따르지. 스스로 강해지겠네. 그럼 언젠가 자네가 돌아올지도… 그렇게 믿어도 될까?" '그림자를 쫓지 말게.' "쫓고 싶어. 자네는 이 마력을 제어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지. 그리고 힘이 나를 침범할 거라고…." '그림자를 쫓지 말게. 노력하고 정진하게. 나는 자네가 좋아.' "지금… 자네가 그 힘을 제어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겠네. 내가 강해지면… 후… 그만 나오시죠." 내 말에 나무 뒤에서 미토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걸어나왔다. 짐을 모두 꾸리고 있는 것이… 이제 가나 보네? "이제 가세요?" "음… 넌 정말 안가?"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간 더 머무를 거다. 이 주위의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3계급이 되면… 이 마기를 제어할 수 있을 지도… 솔직히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희망이 필요하다. 마나르트… "어쩔 수 없지. 다음에 보자.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고. 음… 힘내라."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토스는 내게 다가오더니 나를 한번 끌어안고는 숲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언젠가… 또 만나겠지. 그때는 나도…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마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나르트를 가지고… 다시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 졌고 더욱 익숙해져야할 통증… 나는 밝게 빛나는 달을 바라보며 협곡을 걷기 시작했다. 계획을 시작하자. "몬스터를 퇴치할 생각 없으십니까?" 장로들은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기…." 나와 함께 행동하고 있는 젊은 다크 엘프의 목소리. 나는 고개를 들었다. 레이스… 나는 등에 매고 있는 마나르트에 손을 가져가다가 머리를 젓고는 샤프소드를 뽑아들었다. 샤프소드의 위치는 허리로 옮겨져 있었다. "뒤에서 엄호해." 젊은 다크 엘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활을 들어올렸다. 나는 레이스들에게 달려들었다. "몬스터들은 악마의 숲의 중앙에서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악마의 숲의 각지로 퍼져나가죠. 그러니 마을의 주위의 몬스터들을 퇴치하면 다크 엘프들의 활동 범위가 넓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베르시나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겠죠." 장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시안이 전사들의 우두머리라고 하더군요. 그는 승낙했습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장로들은 잠시 의견을 나누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네." 키아아아아… 빛을 일으며 허물어지는 레이스. 나는 옆에서 빛의 손톱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레이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샤프소드에 반으로 갈라지며 허물어지는 레이스. 나는 뒤를 돌아서서 활을 들고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다크 엘프에게 다가갔다. "가자." "예, 예!" 다크 엘프는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내 검, 샤프소드에서는 검은 기운이 솟아나고 있었다. 약 한달 전… <3계급으로 승급하셨습니다. 검기, 권기 사용이 가능합니다.> "승급인가?" "무슨…." 내 뒤에서 젊은 다크 엘프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어왔다. "별거 아냐. 주위를 살펴." "예." 나는 샤프소드를 들어올렸다. 일주일… 다크 엘프들과 악마의 숲을 사냥하고 다녔다. 이정도는 당연한 건가? 내 몸에 흐르는 마나가 느껴졌고 검에서 검은 기운이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 마나르트의 영향인가? 나는 마나르트을 뽑아들었다. 스으으으… 검은 기운들이 솟아 나왔다. 조금씩 느껴지는 통증. 하지만 전보다는 훨씬 적었다. 된 건가? 하지만 마나르트에서 나오는 검은 기운이 갑자기 많아졌다. "크윽." "세, 세한님?" "괘, 괜찮아…." "아…." 내가 강해질수록 흘러나오는 마력도 강해진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얼마나 강해져야 하는 거야!? -미토스 정도까지. 나는 몸을 굳혔다. "마… 나르트?" -듣기만 하게나." "마나르트!" "세, 세한님?" -후… 그림자를 쫓지 말라고 했건만… 나는 살아있으니 걱정 말게나, 주인 씨. 마나르트가 확실하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내 손에 있는 검을 바라보았다. 엄청난 통증. 맨 처음 검집을 얻었을 때와 비슷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힘들지? 내가 제어를 하지 않고 있어. 말을 하려면 그 수밖에… 빨리 말하지. 노력해. 정진하게나. 그림자를 쫓지마. 강해지게.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기뻤다. 일주일 동안 기다린 목소리… -언젠가… 자네가 강해지면… 다시 만나세. 자네가 강해질수록 자네에게 가는 힘도 강해져. 미안하네. 설마 그 마신이 이런 장난을 해뒀을 줄이야… 내가 약해진 탓이네. 미안해… 나는 무릎을 꿇었다. 몸이 떨린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온다. -이만 가야겠군. 열심히 하게. 다시 오기는 힘들 거야. 요새 자네 성격이 좀 변했던데… 즐겁게 살게나. 그게 어울려… 통증이 가라앉았다. 마나르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또한 존재감도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었지. "렌. 오늘은 달이 밝지?" "예." 거의 한달 반 동안 나를 따라다닌 젊은 다크 엘프. 자기 말로는 이제 200살이라고 하는데… 설정이겠지? 처음 나를 보며 뻣뻣하게 굳어있던 때가 생각난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 졌지만… "킥킥. 그래… 헬레나 하고는 잘 돼가냐?" 내 질문에 렌은 얼굴을 붉혔다. 큭큭. 순진한 녀석이야. 다른 다크 엘프들도 순진하기는 하지만 이 녀석은 특히 심하다니까… "아… 그게…." "내가 술이라도 준비해 줄까? 그녀가 취하면 더 쉽지 않겠어?" 렌의 얼굴이 문어처럼 빨게 지더니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농담이야. 나하고 술을 마시자고. 혹시 알아? 네가 취해서 화끈하게 고백할지?" 나는 곰곰히 생각에 잠기는 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후… 달이 밝다… 나는 지금 다크 엘프들의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져 있다. 친하게 지내는 다크 엘프들도 많고… 베르시아는 아직도 쌀쌀 맞지만… 항상 나만 보면 열을 내는 베르시아를 떠올린 나는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그녀에게서 베르시나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자, 렌." "예!" 나는 순진한 다크 엘프, 렌과 함께 마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후… 이제 레벨은 172… 현실시간으로 보름 동안 사냥만 한 결과다… 상당히 성장이 늦어지고 있다… 이제는 듀라한 3마리도 상대한다. 물론 마나르트를 뽑았을 때… 마나르트를 뽑으면 체력, 마나, 정신력 모두가 증가한다. 거기다 엄청난 기능… 하지만 30분 이상 사용하면… 그대로 기절이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는걸. '그림자를 쫓지마. 강해지게나.' "이 숲에는 그림자가 넘쳐난다네…." 렌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강해진다. 적어도 4계급까지는 성장하고 마을이 안정되면… 그때는 떠나야지?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지만… "어? 헬레나다! 아…." 마을의 입구에 서 있는 여자 다크 엘프를 발견한 렌이 기쁜 목소리로 외치더니 달려가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후훗.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렌은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후… 페페… 초연 씨가 보고 싶어… 아, 그러고 보니… 태권도장에서 만나자고 했었지? 내일이었나? 나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커졌어. 지금은 호수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곳의 몬스터들을 모두 몰아내고… 전에는 이 협곡과 호수의 왼쪽 조금에서만 모여 살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그때 나는 마을의 입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 다크 엘프를 볼 수 있었다. 미시안이군… 지금 나와 같이 지내고 있는데… 나는 손을 흔들어 주며 마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즐거운 곳이야… 한창 무더위가 쏟아지는 8월. 서울 제 10구역에 위치한 태권도장의 안. "헉, 헉… 끝입니까?" 나는 바닥에 대자로 뻗고는 강 사범님을 올려다보았다. 강 사범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일으켰다. "앉아있겠습니다." "그러게나." 내가 매트 위에 앉자 강 사범님도 덩달아 내 옆에 앉았다. 아직 아침… 도장 안은 조용했다. 후우… 얻어맞기는 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은데… "그런데 웬일로 일찍 온 건가? 거기다 먼저 대련을 신청하다니? 나는 해가 서쪽에서 뜨고 있나 확인하고 싶을 정도였다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도장의 문을 가리켰다. "저 분을 기다리느라고…." 강 사범님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초연 씨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귀나?" "글쎄요…." 애매 모호한 내 대답에 강 사범님은 미소를 지었다. 후… 옛날 날 병원에 입원시킨 후로는 많이 부드러워 지셨어… 초연 씨와 사귄다… 사귀는 건가? 서로 사귀자고 말한 적은 없는데… 솔직히 주위에서 사귀냐고 물어오기는 하지… "빨리 3단이나 따게. 정식 사범이라도 돼야지. 뭔가 일을 하기는 해야 하지 않겠나?" 일이라… 나는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는 초연 씨를 보며 잠시 생각했다. 돈이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일을 하는 것도… 계속 게임만 하면서 살수는 없으니… "자네 실력이 많이 좋아졌어. 3단은 쉽게 딸 거네." "후… 그러는 사범님이나 5단으로 승단 하시죠?" "뭐야!?" 나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내 머리가 있던 곳을 통과하는 주먹. 후… 그 맹세가 뭐라고… "농담입니다. 어서 오세요 초연 씨." "으음… 여기는 내 도장이네만…." 강 사범님의 중얼거림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초연 씨가 왜 날 보자고 한 거지? 요새는 게임에서는 만난 적이 없고… 현실에서야 몇 번 만났었지만 대부분이 저녁이나 점심, 혹은 차를 마시는 거였는데… 왜 이 태권도장이야? "무슨 일로 여기에서…." 내 질문에 초연 씨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혹시… 저희 집에 오실 수 있으세요?" 엥? 나는 놀란 얼굴로 초연 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 하지만 초연 씨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내 시선을 피했다. "오오… 도훈 형님이 현진 군을 만나보겠다고 했구나." "예…." 기쁜… 목소리로 말하는 강 사범님과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초연 씨… 뭐지? 왠지 남자 친구를 소개시키는 자리라는 느낌이 풍기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강 사범님이 내 등을 툭 치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잘해 보게나. 지금 형님이 자네에게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 남자에게 별 관심이 없던 초연이가 자주 만나러 다니는 남자라고. 거기다 내가 좀 좋게 말을 했었지. 하하하!" 뭐라? 나는 얼빠진 얼굴로 강 사범님을 바라보다가 초연 씨를 바라보았다. 얼굴을 붉히며 내 시선을 피하는 초연 씨… "자네 어디 아픈가?" 걱정스러움이 담긴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네는 미시안… 하지만 인식을 하지 못한 나는 대답하는 대신 멍한 얼굴로 노래하는 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 맙소사…." 미시안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 같은데… 나는 눈을 깜박이고는 미시안을 바라보았다. "뭐야?" "………." 대답 없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미시안… "어디 아픈 것 같아서…." "아아…." 별거 아니었군. 나는 다시 멍한 눈으로 노래하는 새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후… 머리가 이렇게 멍한 이유가 뭐지? 섀도우 월드에서 접속을 거부하지 않은 것을 보니 병에 걸린 것은 아닌데… 미시안이 긴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혀어엉~!" "오빠!" 강하게 문을 열며 집안으로 뛰어드는 어린 다크 엘프들… 그 아이들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달려오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미시안을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아이들. "세, 세한이 형이 왜 저래요?" "오, 오빠가 이상해…." "이잉? 피리 불어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재밌는 얘기도…." 나에게는 편하게 대하는 미시안이지만 아이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차갑게 대하는 미시안이었다. 그러고 보며 내가 NPC들에게 인기가 많기는 하다니까… 으음… 나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으음?" "어? 정상으로 돌아왔어!" "혀엉! 피리 불어 줘!" "아아… 그래." 나는 제일 어린 다크 엘프 소녀를 안아 올리며 집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곧 다른 아이들이 내 곁에 들러붙었다. 뒤에서 나를 바라보는 미시안의 시선이 느껴지는군… "여어! 돌아왔나?" 길을 걸어가던 다크 엘프 하나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미소로 화답하고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 가는 곳은 조금 떨어진 곳의 꽃밭. 자연적으로 생겨난 곳인데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곳이다. 베르시나가 실종되었던 곳이고… 지금은 완전히 안전해 졌지만… 처음 그곳을 찾아간 나는 휘파람을 불며 쉬고 있었는데… 꽃을 따러온 아이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아이들과 놀아주게 되었다. 그리고 현실에서 내가 주워 들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나는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내 휘파람을 피리라고 부르는데… 이유는 나도 모른다… "와아!" 아이들의 탄성소리… 이상하게 다크 엘프들은 휘파람을 불지 못한다. 가끔씩 간신히 소리를 내는 다크 엘프들이 있기는 하지만… 종족의 특성? 나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 저녁에…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하셔서….' '왜….' '저… 그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얼떨결에….' "형! 왜 멈춰?" 갑자기 들려온 꼬마 다크 엘프의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후우…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았어… 흠… 초연 씨… 페페가… "오빠!" 헉!? 나는 고개를 젓고는 다시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후우… 긴장도 되고…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서 섀도우 월드에 접속했는데… "어? 형. 저기." 나는 휘파람을 멈추며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꽃들이 만발한 작은 동산을 바라보았다. 악마의 숲에 조금이지만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은 미스터리야… 그리고 그 꽃동산의 중간에 서 있는 여자 다크 엘프… 나는 어린 소녀를 내려놓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얘들아, 미안. 아무래도 오늘은 놀기 힘들겠다. 시아 누나가 작정을 하고 왔나봐." "어? 또 싸우는 거야? 형, 그냥 이겨버려. 도망 다니지 말고." "알아서 할 테니까 돌아가. 빨리." 내가 짐짓 인상을 쓰며 돌아가라고 하자 아이들은 입을 삐죽거리며 마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후… 귀엽긴 하지만 좀 성가시기도 하군. 나는 몸을 돌려 베르시아를 바라보았다. "또?" 내 말에 베르시아는 레이피어를 뽑아들며 내게 다가왔다. 후우… 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부탁이니 진지하게 싸워 줘요. 언니를 죽인 마족… 얼마나 강한지 알고 싶고… 아니면 당신이 약한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어요. 나는 언니와는 달리 전투 기술을 익혔어요. 당신에게 지지 않는 다고요." 나는 얼굴을 굳히며 베르시아를 바라보았다. 후… 오늘처럼 쌔게 나온 적은 처음이군. 정말로 작정을 하고 온 모양이지? "시아. 나는…." 입을 열던 나는 순식간에 내 가슴을 찔러오는 레이피어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표정이 장난이 아닌데… 거의 울 것 같은… 후… 콰앙! 레이피어를 찔러오던 베르시아는 꽃들 속에 파묻혔다. 그녀의 레이피어는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확실히 뛰어난 실력이야…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의 나라면… 이렇게 쉽게 제압하기는 힘든… 아마도 구울 정도는 상대할 실력… 레이피어에 정령도 있으니… 나는 씁쓸해 하며 쓰러져 있는 베르시아에게 다가갔다. "시아. 괜찮…." "흑흑…." 눈물을 흘리고 있는 베르시아를 발견한 나는 얼굴을 굳혔다. 으아아… 이건 또 뭐냐!? "흑… 언니를 죽인 마족… 흐흑… 강하죠…?" 눈물을 흘리며 내게 물어오는 베르시아. 후… "언젠가는… 반드시 복수 할거야…." "흑, 흐흑. 으아아아앙…." 크게 울음을 터뜨리는 베르시아를 잠시 바라보던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흐음… 그냥 가야하나? 아니면 그냥 있어? 흠… 결국 계속 같이 있어주기로 결정을 내린 나는 꽃들 사이에 몸을 파묻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다… 베르시아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세한… 대련을 신청하지." 이것들이 오늘 서로 짜고 이러는 건가? 나는 두 자루의 롱소드를 내밀며 진지한 어조로 말하는 미시안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베르시아가 울다가 지쳐서 잠든 지 얼마 후. 베르시아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로 결정한 나는 몸을 일으키다가 저 멀리서 두 자루의 검을 들고 굳은 얼굴로 다가오는 미시안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게 다음 상황이니… "자네가 단 한번의 공격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놈… 자네와 싸워서라도 그 놈의 실력을 알아보고 싶어." 정말 짜고 하는 것 같군. 솔직히 미시안의 이런 생각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는 순순히 검을 받아들었다. 후우… 콰캉! 미시안의 실력은 엄청나다. 만약 식스센스와 바리어가 없었다면 내가 질 정도로… 하지만 실력도 많이 높아졌고… 스킬도 높아지고… 특히 식스센스와 바리어의 레벨이 엄청나게 높아진 나와 미시안의 실력은 별 차이가 없다. 물론 미시안이 정령이나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하지만 그렇게 치면 나도 마나르트를 들고 싸우면 미시안이 마법이나 정령을 사용해도 이길 자신이 있다. 파캉! 우리는 서로 휘두른 검이 허공에서 만나 멈춰 서자 약속이나 한 듯 검을 거두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나와 미시안은 거친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후… 후… 자네가 한 대도 맞추지 못했다면… 얼마나 강한 거지?" "하아… 지금이라면 당연히 한 대 정도는 맞출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때보다는 월등히 강해졌으니… 그래도 이기기는 불가능 할거야…." 미시안은 눈을 감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자네가 마을을 떠날 때… 같이 떠나고 싶어. 수련을 하고 싶어… 하지만 마을을 지켜야 하니…." 아마 미시안은… 순수하게 검술 실력만으로 하면 5계급의 검사나 투사와도 맞먹는 실력을 가졌다. 거기다 정령과 마법까지 더하면… 어쩌면… 마스터 레벨들과도 싸울 수 있을지도… 물론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그건 나도 마찬가지… 지금 내 레벨은 214, 4계급. 마스터는 6계급. 고로 나보다 레벨이 최소한 100은 높지… 하지만 마스터와 싸워도 어느 정도 버틸, 쉽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언젠가 그 마족을 죽일 기회가 오면… 나를 불러주면 좋겠군." "물론." 내 대답에 미시안은 씨익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돌아가자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켜 베르시아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후우… 아직도 자네? 나는 베르시아를 안아들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시안의 얼굴이… "세, 세한… 시아와 무슨…." "헛소리 말고 가자고. 얼굴을 보면 모르겠어?" 미시안은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베르시아를 잠시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또 덤볐나 보군… 상대를 해준 모양이지?"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시안은 베르시아를 잠시 바라보더니 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후우… 마을로 들어가니 베르시아를 안고 있는 나에게 뭐라고 지껄이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와 미시안의 살인적인 눈빛에 금새 입을 다물었다. "후우…."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흐음… 역시 서울은 여기나 저기나 비슷비슷하다니까? 나는 초연 씨가 그려준 약도를 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으음… 떨리는데… 나는 지금… 어느 정도 깔끔하고 점잖아 보이는… 그러면서도 활동적인, 상당히 비싼 옷을 입고 있었다. 흠… 이거 초연 씨가 골라줬던 건데… 무려… 30만원이나 주고 산… 내가 정장은 싫다고 버티자 초연 씨가 그래도 이런 점잖은 옷은 있으면 좋다며 골라준 옷이다. 흐음… "청진 빌딩… 32층… 강도훈…." 나는 내 앞에 높게 솟아올라 있는 높은 빌딩을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아래는 사무실로, 위는 가정집으로 쓰이는 빌딩이다. 내가 사는 곳이야 아파트지만… 이런 곳도 시설이 좋은데… 흠… 지금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상가 지역만 지나면 되는데… 지금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가… 그냥 골목으로 갈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골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옛날에는 이런 골목 안에 소위 깡패라 불리는 인물들이 많았다고 하던데… 회칼 들고 나이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아다가 돈도 뺐고 하는… 그리고 자기들끼리 패싸움도 벌이고… 하지만 좋아진 치안 덕분에 지금은 없다. 여 전히 골목은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지만 그건 그리 깨끗하지 않은 주위 때문. 결코 깡패들 때문이 아닌… "좋은 말로 할 때 내놔!" …… 나는 걸음을 멈추며 한숨을 내쉬었다. 깡패? 그럴 리가… 하지만 진짜 깡패라면… 경찰들을 피해 다닐 만한 엄청난 실력자들이라는… 그래도… 그냥 갈까? 아, 아니지… 철학과의 도덕성이 있지… "이 늙은이가…." 퍽! 늙은이라… 요새는 한 70대는 되야 늙은이로 쳐주지만… 저런 깡패들이 하는 말에는 심한 비약과 요약, 압축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어쨌든 나이가 많으신 분이라 이거지… 나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길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 길에서 잡아다가 끌고 들어왔나? 퍽! 퍽! "정말 질기네… 젠장. 그냥 죽일까?" 골목 사이로 보니 한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쓰러져 있었고 그 주위를 3명의… 검은 옷을 입은 깡패? 그렇게 보기에는… 흔히 있는 정적 타도 등? 흐음… 그렇다면 힘들지도… 근처에 각목 같은 것이… 없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상황을 살폈다. 검은 정장들을 입고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며 뭐라고 얘기를 나누는 인간 3명. 바닥에 쓰러져서도 품속에 자신의 가방을 꼭 안고 있는 남자… 중요한 것인가 보군… 체격이 그리 좋지는 않은데… 그저 평범한 정도… 일반적 회사원이다. ……도와야겠지…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검은 옷을 입은 놈들 중 한 놈이 나이프를 꺼내들자 결심을 굳혔다. 우선 앞머리 내리고… 현실에서도 먹힌다. 신기하게도… 대충 준비를 끝낸 나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어이." "앙? 저 새끼는 또 뭐야?" 저 새끼라… 나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 상당히 깨끗한 궤도로 날아가는 내 돌려차기. 순식간에 까만 놈들 중 한 놈이 쓰러졌다. 다른 두 놈이 놀란 눈을 하는 것이… "젠장! 경호원인가? 죽여!" 경호원 아닌 댑쇼? 나는 나이프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까만 친구들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그때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퍽! 나는 머리에 느껴지는 충격에 몸을 비틀거리다가 내 지척으로 다가온 날카로운 나이프들을 보며 급히 몸을 틀며 주먹을 날렸다. 크흐… 이거 한번도 안 입은 새옷… 치익. 내 왼팔에 상처를 입히고 내 옷을 잘라먹은 친구… 죽어라! 나는 분노의 돌려차기를 먹이며 동시에 급히 뒤로 물러났다. 장난이 아니네? 나는 내 옷의 앞깃을 잘라놓은 나이프를 노려보았다. 좋아… 한번 해보시자 이거요? 바닥에 쓰러진 남자가 몸을 일으켜 앉는 것을 확인. 죽지는 않았네? 나는 그대로 달려들었다. "으으… 쓰라려…." 나는 나이프에 베어진 상처들을 감싸 쥐었다. 후우… 미치겠네? 시간은 늦었고… 옷은 이 모양에… 피범벅이라… 솔직히 범벅까지는 아니라도… 나는 바닥에 기절한 채로 쓰러져 있는 까만 놈들을 바라보았다. 망할… 저런 나이프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니… 몸놀림도 보통은 넘던데… 간신히 이겼잖아… "음, 괜찮습니까?" 고개를 돌려보니 찢어진 입술을 가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 중년의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도와준 사람이라고 존댓말을 하시는 건가? 후우… "괜찮습니다. 몸은…." "예, 좀 쑤시긴 하지만… 솔직히 저보단 그쪽이…." "후우… 괜찮습니다. 그런데 말을 낮추십시오. 저 아직 어립니다." "아, 하지만…." "부장님!" 그때 저쪽에서 뛰어오는 몇 명의 사람들. 아까 전화를 하는 것 같더니 저 사람들을 부른 모양이지? 모두 꽤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나와 쓰러진 세명을 보고는 잠시 움찔하더니 그 남자를 살피기 시작했다. 동료? "괜찮으십니까? 아, 그리고 그건…." 그거? 아… 저 남자가 뺐기지 안으려고 한 가방에 든 건가 보지? 내 예상이 맞았는지 그 남자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게. 으음… 중요한 약속이 있었는데… 미안하네만 우리 집에 연락해서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해주겠나? 걱정시키기는 싫어서…." "예. 알겠습니다. 병원으로… 아, 저분이 부장님을 구해주신 겁니까?" 상처를 감싸고 서 있는 나를 가리키며 물어오는 남자. "맞네. 아, 상처를 치료해 드릴 테니… 함께… 가겠나?" 아무래도 주위를 의식한 모양인지 말을 낮추고 있었다. 후… 역시 이게 편하지. 저런 나이의 어른에게 존대를 받는 건 역시 거북해. 그런데 치료라… 공짜면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약속이 있었으니… 이런 꼴이지만 가기는 가야…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약속이 있어서… 좀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성의는 감사합니다만…." 내 말에 그 남자는 섭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품속을 뒤적거리다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명함도 없구만… 으음… 신 과장. 자네라도 명함을 좀…." 명함? 나는 그 젊은 남자, 나보다 한… 몇살 정도 나이가 많은 듯한대… 그런데 과장이면 능력이 좋은 건가? 나는 그 남자가 건네주는 작은 명함을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언젠가 연락이라도 주게나. 반드시 사례하지." "아닙니다. 음… 어쨌든 받기는 하겠습니다만… 아, 그럼 저는 이만…."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에서 20분 늦었다. 망할. 처음부터 찍히겠네… 나는 급히 인사를 하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후우… 그 남자들이 급히 인사를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흐아… 현진이 달리는 사이. 그가 주머니에 대충 넣어놨던 명함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리자드. 섀도우 월드 운영 기획부, 개발과 과장. 신대관. 명함에 적혀 있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현진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후우… 꼼짝없이 망했구만… 명함도 떨어뜨리고… 옷은 이꼴에… 피를 철철…." 나는 투덜거리며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었다. 후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주위 사람들이 보인 눈빛을 보니… 생각하기도 싫군… 땡. 32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자 밖으로 걸어나가려던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초연 씨를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내가 늦어서 걱정이 되신 모양이지? "아, 초연 씨… 죄송해요. 좀 늦었…." "꺄악! 혀, 현진 씨! 몸에 상처가… 그, 피 좀 봐… 어떻게 된 거예요?" 급히 사과하던 나는 초연 씨가 피에 절은 내 옷들을 보며 비명을 지르자 입을 다물었다. 이런… 놀란 것 같은데… 아무리 늦었기로서니… 좀 닦고 올 것을 그랬나? 내 몸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초연 씨는 급히 나를 잡아끌었다. 어어… 나는 금새 초연 씨의 집안에 들어가 있었다. "엄마! 엄마!" ……크으… 첫 등장이 이렇게 되다니… 미치겠네… 곧 초연 씨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걸어나왔다. 역시 조용하고 차분한, 원숙미를 자랑하시는 중년의 아주머니… 어머님(?)은 천천히 걸어오다가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시고는 입을 벌리셨다. 후우… "세상에…." "엄마! 약상자! 약상자!" 초연 씨가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은 처음 보는데… 어느 방안으로 들어가신 초연 씨의 어머니는 작은 구급상자를 들고 나오셨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한결 나은데요?" 나는 상처들에 감겨진 붕대들을 보며 쾌활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여전히, 아니 더 쓰라리지만… 휘유… 역시 소독약은… 나는 지금 바지만 입고 윗도리는 벗고 있었다. 그리고 양팔과 가슴에 감겨 있는 붕대들… 으음… 실력이 좋으 신데? 마치 게임에서의 나를 보는 듯한 깔끔한 솜씨. 그런데 게임과는 회복의 속도차이가… 당연한 거지만… "현진 씨, 어떻게 된 거예요? 약속 시간에 늦으셔서 걱정했는데… 도대체…." 초연 씨가 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후… 한숨 한번에 수명이… 얼마 준 댔지? "도중에 골목을 지나왔는데… 좋지 못한 무리와 만남을 갖는 바람에… 어떤 사람이 맞고 있더라고요. 도와준다고 뛰어들었는데… 이기기는 했는데 이렇게 됐네요. 죄송해요." "아…." 내 말에 초연 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어머님도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것이… 점수 쟁취?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초연 씨 아버님은 안 계시네?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아버님은…." "아, 급한 일이 생기셔서… 미안하지만 저녁은 우리끼리 먹으라고… 죄송해요." 으음? 음… 뭔가가 떠오르는데… 에이. 별일 아니겠지. "괜찮아요. 어차피 이런 모습으로 인사를 드리기도 뭐하니…." "아, 그럼 식사를 준비할게요. 초연이하고 얘기나 나누고 있어요." 부엌으로 사라지시는 어머님. 흐음… 나는 한숨을 내쉬며 상처들을 매만졌다. 운이 그다지 좋다고는 볼 수 없군… "괜찮아요?" "예." 미토스가 했던 말이 절실히 이해되는 날이야… 애인이 옆에 있으면 나쁜 점도 있다고 했던가… 후우… 초연 씨는 나를 좀 걱정스러워 하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섀도우 월드에서는 아직도 그 마을에 계세요?" "예. 이제 나가려고 해요. 더 이상 레벨도 오르지 않고…." 미토스에게서 내 얘기를 들었는지 초연 씨는 좀 걱정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모습으로 와서 미안해요." "아뇨… 괜찮아요. 오히려 엄마는 더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나와 초연 씨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부엌에 계시는 초연 씨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녁 준비가 다 됐다고… 초연 씨와 함께 식탁으로 다가간 나는 놀란 눈으로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우와… 내 이런 음식들을 먹어본 지가 거의 만 7년이… 순간 내 얼굴에 슬픈 기색이 떠올랐는지 초연 씨가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얘기를 들었는지 어머님도 잠시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시더니 나를 자리에 앉히셨다. "앉아서 좀 들어요. 어머? 초연이 너는 왜 거기에 앉니? 현진 씨 옆에 앉아야지. 거긴 내 자리란다." "어, 엄마!"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후후. 초연 씨는 얼굴을 좀 붉히더니 내 옆의 의자에 앉았다. 으음… 이거 완전히 애인사이로 굳어 버린 건가? 나쁘진 않은데… "어서 들어요. 후후. 초연이가 만나러 다니는 남자라고 하기에 어떤 사람인가 했는데… 정말 남자답고 멋진 사람이네요. 아마 초연이 아버지도 마음에 들어할 거예요. 도련님이 괜찮은 청년이라고 하시던데… 정말 듣던 대로예요." 도련님이라… 하긴 강 사범님은 결혼도 하지 않으셨지… 아마 처음 만났을 때부터 도련님이라고 부르다가 그 호칭이 입에 붙으신 모양이다. 우리 친척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아, 아뇨. 강 사범님이 좋게 보신 겁니다. 어릴 적부터 저와 친분을 쌓아 오신 분이라서…." 내가 어색한 얼굴로 대답하자 어머님은 미소를 지으시더니 고개를 저으셨다. 흐음? "그건 아니에요. 도련님은 사람을 보는데 엄격하시거든요. 오랜 시간을 봤으면 현진 군에 대해서 많은 걸 아신다는 소린데…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네요. 아, 어서 들어요. 애써 만든 건데 모두 식겠네. 초연이 넌 뭐하니. 현진 씨 챙겨야지." "어, 엄마!" 나는 미소를 지으며 차려진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먹는 따뜻한 밥이다… 즐거운 날이야… <그림자의 땅에서 즐거움을 얻으시길.>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리턴 체인메일에 샤프소드와 OPG 등등… 그리고 지금은 검은 색으로 바뀌어 있는 천상의 망토. 다크 엘프들이 내 부탁으로 색을 바꾸어 주었다. 미스릴을 이렇게 만드는 기술을 가진 것이 엘프들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다크 엘프들도 이렇게 색을 바꾸어 줄 수 있었던 것이고… "마나르트…." 마지막으로 마나르트를 집어들자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크으… 천으로 화려한 검집을 감싼 후 나는 마나르트를 등에 맸다. 샤프소드와 자리가 바뀌었어… 하지만 이제부터는 샤프소드를 사용해야지… 마나르트는 위험한 상황에만…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차를 마시고 있던 미시안이 나를 돌아보았다. "아, 왔군. 오늘…." 반가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던 미시안은 짐을 챙겨 나오는 나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이제 가나 보군…."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마을도 안정됐으니까. 너라면 잘 할 것 같은데?" 내 말에 미시안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찻잔을 내려놓은 미시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웅이라도 해주지… 언제… 다시 들리라고. 자네는 이미 우리 마을의 일원이야… 후… 오늘 울음바다 나겠군." 나는 씁쓸히 웃으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미시안이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날씨 화창한데? 섀도우 월드에서는 봄이지… 겨울 동안은 몬스터들의 습격이 제일 심하다. 겨울은 이제 지났어. 내가 있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지… 길을 걸어가던 다크 엘프들이 인사를 건넸다. "야아! 돌아왔군. 이번엔 좀 늦었…."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다크 엘프들은 미시안과 같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장로원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장로들에게 인사는 하고 가야지. 주위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 진다. 어느새 내 뒤를 따라오는 다크 엘프들의 수가 불어나 있었다. 후우… 거기다… 내가 장로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장로들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이런… "세, 세한… 가는 건가? 벌써? 아, 아니… 벌써는 아니군… 이제는 겨울도 지났으니…." 안타까워하는 얼굴의 장로들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안녕히 계십시오. 언젠가 다시 들리겠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장로장이 뭔가를 떠올린 듯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빼서 내게 건넸다. 이게 뭐지? "다크 엘프들의 일족임을 상징하는 거라고 생각하게나. 그래도 엘프들과도 교류가 있으니… 엘프들도 어느 정도 대우를 해줄 걸세. 그리고 다른 다크 엘프들의 마을도 한 두 개 있으니… 가져가게." 나는 그 반지를 받아들고는 OPG를 벗고 반지를 끼었다. 으음… 뭔가 몸에 힘이 도는 듯한 기분인데… "힘이 넘치지? 좋은 반지라네. 늙은이의 운신을 도와주던 것인데… 후후… 가져가게. 그럼 나는 들어가 보지… 배웅이야 다른 사람들이 해 줄 것 같군." 나는 장로원 안으로 들어가는 장로들에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으음… 역시 저런 어르신들은 살아온 연륜이 있다니까… 나는 피식 웃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새…." 정말 많군… 내 주위를 보니 온 마을의 다크 엘프들이 다 몰려온 듯 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협곡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음? 나는 저쪽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휘파람. 나는 휘파람을 불며 걷기 시작했다. 협곡에 다다르자 미시안이 내 어깨를 툭 쳤다. 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내 얼굴이 미시안의 스트레이트 펀치가 작렬했다. "크윽… 뭐야?" "내 원한이 담긴 주먹이지. 네가 처음 왔을 때부터 한번 갈기고 싶었거든."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하는 미시안을 나는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쳇! 아팠다. 나는 미시안을 끌어안았다. "복수는… 반드시 같이 한다." "기다리지. 다음에는 더 강해져 있을 거다." 나는 미시안을 놓아주고는 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미시안은 마을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협곡 안으로 들어가자 나를 지켜보고 서 있던 다크 엘프들이 각기 인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잘 가! 다시 오기를 기다리지! 네놈 은혜는 잊지 않는다!" "잘 가라!" "흑! 잘 가요!" 나는 손을 들어주고는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울음소리들이 들려온다. 너무 오래 있었나… 쳇! 역시… NPC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들이야. 아니. NPC가 아닌 생명들이고 내 친구들이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협곡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려오기는 쉬운데… 협곡을 모두 올라가니 렌과 헬레나가 앉아 있었다. "둘이서 밀회를 즐기고 있었나 보네? 방해해서 미안." 렌과 헬레나는 얼굴을 붉히며 일어났다. "그게… 여기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언제 돌아오세요?" 아마도 여기서 만나고 있다가 내가 간다는 소리를 듣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나 보군… 다크 엘프의 청각이면 저런 소란을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글쎄… 언젠가. 내가 돌아왔을 때는 귀여운 아기나 보여주지?" 나는 렌과 헬레나의 얼굴이 빨게 지는 것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렌에게 다가간 나는 한번 안아 주고는 입을 열었다. "잘 있어라. 헬레나도. 즐거웠어!" 나는 손을 흔들어 주고는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둠의 숲의 남쪽은 모두 정리했지만 이 협곡 다음부터는 아직 몬스터들이 돌아다닌다. 이 협곡만큼 방어하기 좋은 곳은 없기에 이 협곡을 경계지로 삼은 것이다. 만약 인간들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막기 쉽도록… 숲 속을 조금 걷던 나는 걸음을 멈췄다. 이번엔 베르시아? "시아. 여기는 위험해." 내 말에 여행 준비를 갖춘 듯 배낭에 레이피어를 차고 있는 베르시아가 걸어나왔다. 날 따라간다는 거야 뭐야? "나도 데려가 줘요." "헛소리. 다크 엘프가 인간 세상에 나간다고? 미시안이면 몰라도 너는 안돼. 나에게 일격에 쓰러진 너야. 나보다 강한 인간들은 널리고 널렸다고."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지만… "강해질 거예요." "후… 미시안에게나 배워. 적어도. 미시안과 싸워서 십분은 버틸 실력을 가지라고. 그럼 나중에 와서 데려갈게." 내 말에 베르시아는 인상을 썼다. 하긴… 내가 언제 올 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잠시 슬픈 표정을 짓던 베르시아는 몸을 돌렸다. "반드시 돌아오세요. 뭐, 솔직히 안 된다고 할 줄 예상했으니까…." "돌아올 거야." 내 대답을 들은 베르시아는 마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후우… 다행이군… 저번에 한번 상대를 해주기를 잘했나? 나는 몸을 돌려 숲을 걷기 시작했다. "후우… 후후후후… 크크크… 으아아아아악!" 나는 괴성을 지르며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망할 자식들! 아주 날 말려 죽이려고 작정을 했나 보지? 나는 내 주위에 널리고 널린 몬스터들의 시체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으으으… 이놈들이 내 얼굴을 기억하나? 이렇게 엄청난 수라니… 아주 숲에 있는 놈들이 다 몰려온 것은 아닌지 걱정이구만…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물론 돈은 다 주으면서. 듀라한이나 로우 데몬이 아니면 그리 좋은 아이템은 주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 근처에 마을이 있기는 있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혹시 로그아웃을 하면 바로드 시로 돌아가지 않을까? 아, 아냐… 어쩌면 마을로 돌아갈 수도… 그럼 쪽팔려서 어쩌냐… 그냥 계속 가는 수밖에… 우선 악마의 숲을 빠져나가야 겠지? 나는 계속 걷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다 빠져나왔으니… 쿠에에에에엑! 키아악! 케헤헤헤헤! ……또 온 건가? 주위를 둘러본 나는 식스센스에도 위험신호가 오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쪽인데… 날 노리는 건 아닌가 보지? 다른 사람들이 있나? 악마의 숲은 그리 인기 있는 사냥터가 아닌데?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4계급이 되면서 생긴 기술들. 순간 도약에 퀵 스텝(Quick Step). 보통보다 훨씬 높게 점프하고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기술. 마나의 소비가 그렇게 적은 편은 아니지만 나에게 그리 부담이 되는 정도는 아니다. 아이템 빨이 있으니… 은신술과 퀵 스텝을 섞어서 사용한 나는 기척 없이 전투가 일어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아이스 스톰(Ice Storm)!" 오오! 멋있다! 한 여자 마법사가 외침과 함께 손을 내뻗자 얼음 폭풍이 일어나며 몬스터들을 향해 날아갔다. 으음… 마법사들은 대부분이 화염, 얼음, 전기 세 가지 중에 하나를 골라서 주로 익힌다고 하던데… 저 여자는 얼음 계통을 익힌 모양이다. 다른 속성은 부로 익히고… 케헤헥! 그 얼음 폭풍에 그렘린들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마도 저놈들을 죽이기 위해 사용한 모양이지? 멋있는데… 헉 !? 이게 아니잖아! 나는 그 여자 마법사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명? 미친 거 아냐? 혼자서 여길 들어와? 마법의 위력을 보니 그리 강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아마도 4계급 정도… 아차! 나도 4계급이지? 하지만 나는 레벨에 별 구애를 받지 않으니… 크아아아악! "꺄아악!" 갑자기 로우 데몬이 나타났다. 또 그 귀여운 형상을 하고 있다가 변한 모양이지? 나는 거대한 육체를 자랑하며 고함을 지르는 로우 데몬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 아마 저 아가씨 혼자서는 못 이기지… 로우 데몬은 4계급 전사 (검사, 투사, 기사 등 전투 직업 통칭)들이나 이길 정도니… 마법 저항이 엄청나니까… "아이스 스피어(Ice Spear)!" 순식간에 나타나는 세 개의 얼음의 창. 호오… 로우 데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아가씨네? 저런 물리적 타격도 있는 마법이 좋기는 하지… 하지만… 크아악! 파가각! 로우 데몬의 공격 한번에 모두 깨져나가는 얼음의 창들. 나는 씁쓸히 웃었다. 저 아가씨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것이 끝인가 보군… 나는 바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비켜요! 속검(速劍)!" 나는 새로운 기술을 별로 만들지 않았다. 전에 만든 것들이 가장 실용적이여서… 그 기술들에 강기들만 추가하고 위력만 높아졌을 뿐… 그 여자 마법사가 옆으로 비키는 동시에 허공을 난도질하는 내 샤프소드. 그리고 많은 수의 검기들이 로우 데몬을 향해 날아갔다. 크아아아악! 로우 데몬은 피를 솟구치며 뒤로 물러섰다. 좋아! 나는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여자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좋아.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여 마법사는 도와준 사람이 되려 고개를 숙이자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며 그녀에게 달려가 그녀를 안고는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몬스터와 싸우면 곧 다른 몬스터들이 몰려든단 말야. 난 귀찮은 건 싫어. 크라라락! 크아아아! 예상대로 뒤에서 많은 수의 괴성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로우 데몬들은 지능도 상당하다고 하던데… 내 품에 안긴 아가씨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내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몬스터들을 따돌리자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는… 없군." 얼마간을 열심히 달리던 나는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몬스터는 없고… 마법사를 내려준 나는 동쪽을 찾기 시작했다. 해가 뜨는 쪽이지? "저기…." 바닥에 내려서 옷가지를 바로잡던 여 마법사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예? 무슨… 아, 그것보다는 당장 나가세요. 여기는 혼자 들어오기에는 너무 힘든 곳이라… 거기다 마법이 먹히지 않는 놈들이 넘친 다고요." "아, 아니 일행이 있기는 했는데 떨어져서…." 아, 그런 거였군. 파티를 맺고 들어왔다가 떨어진 모양이지? "저기… 그런데… 아이디가… 세한 아니세요?" 나는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이 여자는 뭐냐? 어떻게 내 아이디를… 내가 아는 여자 마법사. 제시하고… 그 베나라는 마법사 그리고… 없는데? 나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여자 마법사를 살펴보았다. 전혀 모르는 얼굴인데… 음… 뭔가 익숙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어떻게…." 내가 일단 긍정을 표하자 그 여자 마법사는 환하게 웃더니 기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꺄… 현진 씨? 저 다혜에요. 진성이 여자 친구." 어라? 다혜 씨? 확실히 약간 닮은 구석이 있기는 하군… 현실에서보다 더 예쁘기는 하지만… 좀 조용한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혜 씨가 왜 여기에… "다혜…씨? 왜 여기에…." "아, 다혜가 아니고 에린이라고 해요. 그렇게 부르세요. 여기 온건… 진성이, 필이 세한 씨를 찾으로 가자고 해서…." "필? 진성이도 왔어요? 그럼 떨어진 일행이…." "예. 진성이가 5계급이 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몬스터가 많더라고요. 아까 듀라한 두 마리에 엄청난 수의 몬스터가 나타나서 유인해 갔는데…." 오오? 진성이가 5계급? 하긴… 내가 처음 시작한 그러니까 한 4달 전에 진성이 레벨이 238이었지? 그러니 12정도는 4개월이면 올릴 수 있는 수치지. 그 녀석이야 게임 광이라고 할만 하니까… 한 2백 6, 7십 정도 되겠지? 그런데 혼자 유인? 많은 몬스터? 설마… 날 잡으러 몰려온 몬스터들과 만난 건가? 그건 그렇고 여긴 왜 온 거지? 그러고 보니 필에게는 어둠의 숲에 있다고 하기는 했지… 수련하기에 좋은 곳이 있어서 나무 집 하나 짓고 살고 있다고… 만나러 온 건가? "어디서요?" "아… 아까 있던 곳에서 북쪽으로 좀 올라간 곳이었는데…." "둘이서 들어온 겁니까?" "예. 괜찮을 줄 알았는데 몬스터가 너무 많아서… 저도 레벨이 200은 넘어서 안심하 고 있었는데…." "크으… 제길. 실례할게요." "예?" 나는 다혜 씨… 에린을 다시 안아들고는 대충 방향을 맞춰서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유저가 거의 들어오지 않으니… 근처에 마을도 없고 좋은 던전도 없다고 알려져 있으니… 하긴 그렇지 않았으면 다크 엘프의 마을이 아직 알려지지 않기는 힘들지. "그런데… 필의 말로는 레벨이 그리 높지 않다고… 그래서 여기에 있는 것이 걱정이 된다고 온 건데… 정말 강하시네요?" "그냥 어느 정도… 여기서 살 만한 실력은 있죠. 아마 필도 여기서 죽을 정도는 아니니… 어디서 싸우고 있을 겁니다." "예…." 얼마간 달리자 나는 근처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많은 수의 몬스터들… 역시 식스센스가 편리하다니까… "찾았다!" "예?" 나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달리기 시작했다. 곧 한창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을 발견한 나는 급히 멈춰 섰다. 비싸 보이는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는 짧은 금발머리 검사. 나는 에린을 내려놓으며 급히 달려나갔다. 미친 자식. 로우 데몬에 듀라한까지 있는데 미쳤다고 싸우고 있냐? 플레이트 메일 덕분에 심한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처가 꽤 많아 보였다. 몬스터가 약해도 수가 많으면… "에린! 엄호! 더블 크로스(Double Cross)!" 몬스터들을 향해 날아가는 두 개의 X자 모양의 마나 덩어리. 몇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하지만 듀라한이나 로두 데몬들은 이리 쉽게는 안 죽지… 적어도 4계급은 되는 사람들이 죽자고 싸워야 쓰러뜨리는 몬스터니… 나야 마나르트가 없어도 3마리 정도까지는 어떻게… 하기야 필도 그 만큼은 되겠지. "한? 너 이 자식!" "누가 들어오래!? 그것도 자기 여자친구를 끌고 들어 오냐? 다혜 씨 죽을 뻔했잖아!" "구했어?" "당근!" 잠시 서로를 보며 악을 써대던 우리는 다시 몬스터들을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검기를 계속 썼다가는 마나가 고갈된다… 이제는 근접전으로… "연환격(連環擊)!" 순식간에 두 마리의 구울을 쓰러뜨린 나는 곧바로 로우 데몬 한 놈에게 달려들었다. "살검(殺劍)!" 순식간에 도약해 로우 데몬의 목을 뚫어버린 나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내가 서 있던 자리를 통과하는 애벌레 씨의 촉수들… "대거 댄싱!" 나는 얼마 남지 단검들에 마나를 실어서 애벌레를 향해 집어던졌다. 단검들은 깊숙이 들어가 박혔고 애벌레는 괴성을 지르며 몸을 꿈틀댔다. 으으… 몸에서 힘빠지네… 나는 급히 검을 옆으로 휘두르며 뒤로 물러났다. 챙! 내 검에 막히는 듀라한의 롱소드. 나는 검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듀라한을 한번에 갈라버렸다. 푹 쓰러지는 듀라한. 머리가 없으니 힘이 배로 들어… 나는 헉헉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은 건 듀라한 두 마리와 구울들 조금… "아이스 스톰!" 구울들을 찢어놓는 얼음 폭풍…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하나 남은 듀라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서운 속도로 검을 휘두르는 듀라한. 정말 머리도 없는 놈이 이렇게… 챙! 챙! 챙! 챙! 순식간에 검격을 교환하는 나와 듀라한. 끝낸다! "크로스!" 나는 순식간에 듀라한을 스쳐지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엄청난 상처를 입고 쓰러지는 듀라한.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후훗. 이제 듀라한이나 로우 데몬 같은 놈들의 행동 패턴은 거의 외웠다니까. 한… 일년? 그 동안 이놈들만 잡았으니… 그래도 아직 미토스에게 다가가려면 멀었다… "너… 정말, 강해졌다." 필의 얼빠진 중얼거림이었다. "그럼 레벨이 214?" "응. 다크 엘프들 덕분에. 정말 강하더라. 특히 미시안이라는 친구는 마스터 레벨과도 싸울 수 있을 거야. 이기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너는 이길 거야." "으으…." 다크 엘프의 마을에서 있었던 얘기를 들은 필은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그래도 팔년지기 친구인 데다가 믿을 수 있는 녀석이기에 다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에린에게는 들리지 않게 귓말로 설명했다. 에린에게는 수련을 온 다크 엘프들 몇몇과 만나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고만 애기해 두었다. 에린에게 비밀로 하는 것은 필도 동의한 일이었다. 좀 씁쓸해 하기는 했지만… "그럼 그 다크 엘프들이 숲을 떠나서 한도 숲을 나오는 중이었군요?" "예. 왠지 혼자 있으려니 이상하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에린가 필을 만난 거고. 하지만 레벨이 많이 올라서 기분은 해피죠." 내 말에 에린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214에 그 정도면… 네 직업 때문이냐?" 직업에 대해서는 에린도 알고 있다. 이건 그리 엄청난 비밀은 아니니까… 에린 정도의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할 만한 일이지. "음. 거기다 스킬 레벨들의 평균이 80이니까… 라이딩 마스터리는 아직도 50정도지만… 그 다크 엘프들이 말도 가지고 있었는데 숲에서는 말을 타기가 힘들잖아. 어쨌든 아마 나보다 레벨이 50정도 높은 사람과 동수를 이룰 거야. 문제는 내 레벨의 몬스터를 잡아서는 레벨이 제자리라는 건데… 지금은 듀라한이나 로우 데몬을 아무리 잡아도 레벨이 오르지를 않아." 내 말에 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에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래서 레벨 214에 랭커에 오르신 건가요? 아이디를 숨기고 있고 직업도 그래서 직업 랭킹에는 없지만 전체 랭킹에는 올라 있던데…." "예? 랭킹이요?" 랭킹? 뭔 소리? 내가 눈을 멀뚱히 뜨고 반문하자 에린은 순간 당황한 얼굴이었고 필 또한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후우… 제발 부탁이니 섀도우 월드 홈페이지 좀 들락거려. 너 랭킹에 올랐어. 나하고 비슷할걸? 몇 등인지 나오지는 않았지만… 음… 내가… 계산해 보니 대충 8천 몇 등이었는데… 내가 8000 몇 등이니까… 네가 대충 8000등정도? 전체 랭킹은 레벨이 아니라 스킬과 여러 기술들을 종합해서 내리는 거니까… 어쨌든 전체 랭킹은 1000등부터만 제대로 알려주니까 그저 예상이지만. 정말… 내 레벨이 271이건만… 4계급에게 따라잡히다니…." 필이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멍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랭커? 내가? 대충 8000등… 하지만 솔직히 그것보다는 높을 것 같은데… 마나르트가 없어도 필은 이길 자신이… 모르는 사람은 그게 랭킹이냐며 비웃을 지 모르지만… 섀도우 월드의 세상의 크기는 미국의 크기와 비슷… 플레이어의 숫자는 우리 나라와 외국 유저들까지 합쳐서… 약 3000만 명… 거기다 계속 늘고 있고… 우리 나라의 인구의 3분의 1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흥행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으니 이 정도 숫자는 당연할 걸지도… 그러니 3000만 중에 1만의 랭커에 든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아마 나 정도의 랭커들은 조금만 성장해도 등수가 거의 백이 오를 것이다. 200대에 멈춰 있는 랭커들의 수가 엄청나니까… 그리고 랭킹 1만 등과 5천 등의 실력차이는 별로 없으니… 그래서 랭커들은 1000등 안에 들어야 확실한 등수를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확실히 미토스는 괴물이다. 레벨 400이 넘는 사람들은 한 100명 정도… 그중 미토스는 400을 간신히 넘었음에도 세계 랭킹 7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내가 랭커?" "그래. 순식간에 랭커에 들었다고 말들이 많던데? 랭킹에는 다크소드라고 나와있다." 으음… 8천 등? 높기는 높은 거지… 이용자 3000만 명… 그중 일부는 생활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들을 빼면 한 2500만 명… 그 중에 몇 %지? 으음… 모르겠다… 뭐, 잠시의 재미를 위해 하는 사람들이 꽤 있으니… 게임에 미쳐서 사는 일부의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된 건가? 전에 T.V에서 보길… 섀도우 월드에서 상용화를 시작한 이후 현실에서 일반 직업에 종사하며 틈틈이 게임을 즐긴 사람의 평균 레벨이 150이라고… 그러면 나는… "폐인 등록이다. 큭큭." 으으… 저놈의 주둥아리를 찢어주고 싶다. 하지만 사실인걸… 현실에서는 몰라도 지금 나는 검은머리에 음산한 분위기. 거기에 검은 망토까지 두르고 있었기에 분위기가 상당히 살벌했다. 하지만 저놈은 신경도 쓰지 않는군… 하기야 필은 내 본성을 잘 알고 있는 놈이니… *여기서 잠깐. 옛 베타 서비스를 하던 사람들. 이들의 수는 딱 1만. 그렇다면 이 1만의 사람들이 랭킹에 있어야 하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이들 중 일부도 생활직업. 그리고 베타 서비스 중에는 현실의 시간과 게임상의 시간이 똑같이 갔다. 다만 밤이 짧았다고… 그리고 상용화가 되면서 그만둔 사람이 3/1. 이들의 평균 레벨은 200이었다고 한다. 현재 100등 안에 드는 랭커 전부가 옛 베타 서비스 때부터 해오던 사람들. 그들의 평균 레벨은 400. 그리고 1만 등에 턱걸이하는 사람들의 평균 레벨은 230. 그렇다면 세한은? 그야말로 캐릭의 특성덕분. 그리고 이 랭킹에서 마나르트의 능력은 제외. 어둠의 숲에서 빠져 나온 나는 필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디로 갈 거야?" "아… 그게… 나는 에린하고 여행을 다니는 중인데… 음… 솔직히 섀도우 월드에서는 현재 신혼부부나 다름 없…." "피, 필." 에린이 얼굴을 붉히며 필을 만류했다. 후우… 그러셔? 하긴… 섀도우 월드에서는 양자가 동의하면 못 할 것이 없으니… "괜찮아. 저 녀석은 그런 것 신경 쓰지 않거든. 그리고 저 녀석에게도 아리따운 연인이 있으니… 요새 많이 만나러 다닌다더니… 집에도 갔다며?" 헉!? 저놈이 어떻게… 내가 놀란 얼굴을 하고 있자 필이 피식 웃으며 설명을 추가했다. "훗, 네 도장의 강 사범님에게서 입수한 정보다. 그럼… 마법진으로…." 얼빠진 얼굴로 허망히 서 있는 내 어깨를 툭 치는 필. 음? 마법진? 하지만 여기는 텔레포터도… "여기는 텔레포터가 없잖아?" "아… 스크롤이 있지. 텔레포터 협회에서 판매하는 건데… 일회용으로 자신이 원하는 도시로 갈 수 있어. 엄청 비싸지… 하나에 300골드야…." 300!!??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하, 하하… 나는 걸어서 갈게. 신혼 여행 잘 보네… 으음…." 내가 어색한 얼굴로 뒤로 물러서자 필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선물이다." "고맙네, 친구." 에린이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후우… 아껴야 잘 산답니다. 마법진으로 다가간 필은 내게 작은 스크롤 하나를 건넸다. 도둑놈들… 이런 작은 종이쪼가리 하나를 300골드나 받아 처먹어? 내가 이를 갈며 스크롤을 노려보자 필이 피식거렸다. "가고 싶은 도시 이름을 대면서 찢으면 된다. 나야 너나 한번보고 가려고 온 거니… 언제 한번 보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에린의 눈치를 보며 필에게 귓말을 보냈다. <현실에선? 너희 집안.> <필-아직. 지금 우리 집이 엄청 가난하다고 알고 있는데…> <데려가라. 내가 허락하마.> <필-…네가 무슨 권리로… 어쨌든 나도 그럴 생각이다. 그런데… 에린네 집이 그렇게 잘 사는 집은 아닌데… 괜히 사이가 벌어지는 건 아닐까?> <그럴 것 같지는 않아.> 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한번 끌어안고는 에린과 함께 마법진 위로 올라갔다. 흐음… 게임에서 신혼? 뭔가 언밸런스 한데… "잘 가라. 웬만하면 귓말 좀 켜둬. 하긴 지금까지는 다크… 거기에 있어서 꺼뒀겠지만…." 다크 엘프가 어쩌고 주절거리려 하던 필은 말을 바꾸며 말을 끝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잘 가라. 아, 에린… 아니 다혜 씨도 잘 가세요. 언제 진성이와 저희 집에 한번 들리시고…." "예." 내가 손을 들어올리며 엄지를 치켜세우자. 필도 따라 하더니 에린과 함께 몇 마디를 중얼거리더니 함께 스크롤을 찢었다. "메들린." 환한 빛에 휩싸여 사라지는 둘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흠… 신혼이라… 비록 게임이지만 좋겠다. 둘을 보면 현실에서 조만간 국수를 먹을 수 있을 지도… 페페를 잠시 떠올린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마법진 위로 걸어 올라갔다. "어디로 가지?" 바로드? 아니지… 역시 차렌이 좋겠지? 하크 씨도 보고… 제시가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까? 어쨌든… 거기를 먼저 들린 다음 여행이나 다닐까? 여러 엘프들의 마을도 찾아 돌아다녀 보고… 그리고… 라이딩을 올려서… 괜찮은 놈들이나 잡아서… 으음… 페가수스를 노려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차렌." 스트롤에서 번져 나온 빛이 내 몸을 감쌌고 곧 나는 차렌으로 텔레포트 되었다. "오랜만입니다!" 나는 힘차게 소리치며 일명 '차렌 무기점'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전히 하크 씨는 카운터에 앉아 있고 제시와 NPC하나가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 자네… 오랜만이구만, VIP!" "아… 현진, 아, 아니 세한아!" 나는 손을 흔들어 주며 카운터로 다가갔다. 가게 안에 있던 몇몇 유저들이 나를 바라보았지만 곧 시선을 거두었다. 내 분위기에 쫄았나? "허허… 분위기가 더 살벌해 졌군. 모르는 사람이 보면 기가 죽겠어… 돌아온 건가?" "예. 웃샤!" 나는 배낭에서 자루 하나를 꺼냈다. 모조리 유니크 급 아이템들만 들어있는 자루… 듀라한 등을 잡으며 얻은 아이템들. 지금 내 배낭은 미시안이 선물로 준 최고급이기에 이런 것도 들어간다. "감정. 비싸게." "후후… 여전히 수전노로 사는 모양이군. 어디 보자…." 하크 씨가 무기들을 꺼내며 감탄을 토했다. 어느새 여러 유저들도 모여들어서 눈을 반짝거리며 내 자루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여기는 초보 마을이지? "여, 제시. 아직도 아르바이트야?" "으응… 오랜만이네?" 왠지 제시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약간 달라진 듯한…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활기차게 입을 열었다. "아직도? 레벨이 몇인데?" "112인데… 요새 소영이는 연애한다고 별로 들어오지 않거든. 다른 애들은 늦게나 들어오고… 나는 밖을 돌아다니기도 뭐 해서 오래하는데…." 아… 제시는 외국인이니 별로 할 일이 없겠다. 으음… 그럼 제시하고 같이 여행이나… 아니지… 혼자 다니는 것이… 내가 고민에 잠겨 있는데 하크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감정가 나왔네. 2000골드 주지. 엄청나구만. 어디서 사냥했기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카운터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하크 씨가 건네는 돈주머니를 품속에 집어넣은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랭킹에 올랐더군. 빠르구만." 아, 그러고 보니 하크 씨도 랭킹에 들어있나? "아, 그런데 하크 씨는 몇 위죠?" "나? 자네보다야 높겠지만… 거기까지 올리는데 너무 힘들어서 포기 했다네." 음? 이상하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내가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자 하크 씨는 씁쓸해 하는 얼굴로 설명했다. "나는 암살자… 덕분에 사냥이 쉽지 않았지. 레벨은 252이네만… 포기한 이유는 그것이 크지…." "아…." 아아… 그러고 보니… 하크 씨의 직업이 닌자였지? 그러니… 하기야 나는 스킬레벨도 높았고 운도 좋았고 다크 엘프들의 도움에 미토스의 도움도 받았었고… 버그도 좀 있었고… 나도 행운아군… 미토스 보다는 아니라도 레벨이 오르는 것에 어느 정도 우연이… "여행이라도 갈 건가? 충고하는데 길드들을 조심하게나. 자네 같은 실력자들이 많이 있는 길드도 몇 개 있으니… 웬만하면 동료를 만들라고 하고 싶군. 하다 못해 가디언이라도 얻던지…." 으음… 길드… 동료… 가디언… 차라리 베르시아를 데리고 올걸…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아, 제시. 또 보자. 언제 전화라도 해. 놀러오고 싶으면 오고… 주소라도 알려주면 내가 놀라갈 수도 있고…." "응. 고마워. 초연 씨하고 잘 해." "으음… 너도… 진성이로군…."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가게에서 나서며 진성이를 씹어댔다. 크으… 입싼 녀석. 다크 엘프들 얘기는 말하지 않을까 걱정이군. 뭐, 그런 것에는 확실한 녀석이기는 한데… 그런데… 아주 초연 씨하고 연인사이로 굳어버린 건가?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걸?"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맑고 화창한 날씨였다. 그럼… 어디로 갈까?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친다. 레포트는 다음시간까지 제출하도록." 안경을 쓴 늙은 교수의 말에 지하는 컴퓨터를 끄며 일어났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강의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야, 지하야!" 가방을 매던 지하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18살 정도의 청년이 서 있었다. "아, 길수? 웬일이냐? 네가 인류학 강의를 다 듣고? 어차피 F학점으로 결정 났잖아?" 지하의 말에 길수라 불린 노랑머리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게… 쳇, 맞는 말이니 반박하기도 힘들군… 섀도우 월드 때문에. 연락 왔는데 태희 형하고 도희가 퀘스트를 하나 받았데. 지금 우리 빼고는 길드원이 다 모여있단다. 뭐… 솔직히 길드원이라고 해도 우리까지 7명이 끝이니… 어쨌든 4명 다 모여있단다." 길수의 말에 지하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급히 강의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길수가 급히 따라갔다. "PC방?" "물론." 어느새 대학 건물을 빠져 나온 둘은 대학 입구에 위치한 PC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아르바이트생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 또 왔냐? 정말… 오늘도 후불로?" "응." 아르바이트생은 헛웃음을 지으며 작은 키 두개를 건넸다. 섀도우 월드 캡슐을 여는 키다. 그 키를 하나씩 받은 지하와 길수는 섀도우 월드 캡슐들을 늘어서 있는 곳으로 달려가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캡슐이라기 보다는 작은 방이라는 것이 더 어울리는 큰 캡슐이었다. <아이디를 입력해 주십시오.> 검은 슈트를 입고 캡슐 속의 의자에 앉은 지하는 빠르게 입을 열었다. "칼레도르."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 <뇌파, 홍채 검사를 실시합니다. 확인되었습니다. 섀도우 월드, 그림자의 땅에서 즐거움을 얻으시길.> 푸른 머리를 길게 기른 5계급의 검사. '레도르'. 이게 섀도우 월드에서의 지하의 이름. 그의 그림자다. 갈바린 시. 대륙에서 어느 정도 괜찮은 도시에 속하는 곳이다. 대도시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근처 사냥터의 레벨이 모두 150을 넘는, 상당한 고수들이 모이는 도시이다. 그리고 그 갈바린 시의 중앙 광장 분수대 옆에 푸른 머리를 기른 검사 하나가 나타났다. "후우… 지미는 어딨지?" "레도르." 레도르는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거기에는 금발을 길게 기른 검사 하나가 서 있었다. 상당한 고급으로 보이는 플레이트 메일을 걸치고 있는 검사. 4계급의 검사 지미. "아, 왔어? 다른 사람들은 어딨어?" "남쪽 입구에 있다고 하던데? 얻은 퀘스트가 리자드 늪지에서 있다고 했어." "리자드 마스터라도 나오는 건가? 보수는 괜찮데?" 레도르의 질문에 지미는 씨익 웃고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놀라지 마라! 무려 2000골드에 은 제 롱소드 두 개! 놀랍지 않냐? 시드 형이 받은 퀘스트 치고는 멋지지?" 지미의 말에 레도르의 눈이 커졌다. 2000골드에 은 제 롱소드… 엄청난 보수… 레도르는 미소를 지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가자!" "고럼." "아, 레도르 오빠!" "왔네?" 레도르와 지미는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에 멈춰 섰다. 일행으로 보이는 5명의 사람들이 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총 길드원이 7명밖에 되지 않는 제르난 길드의 구성원들… 하지만 모두 레벨이 200을 넘는 상당한 고수들이다. "아, 세린." 레도르는 자신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도둑클래스로 보이는 갈색머리의 여자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곧 다른 일행들도 다 모여들자 레도르는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다 왔네?" "음, 그래 길드장. 퀘스트에 대해 설명해 줄까?" "아, 부탁해요 시드 형." 레도르의 말에 회색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마법사가 설명을 시작했다. 제르난 길드의 길드장은 레도르. 간단하게 레벨이 가장 높은, 랭커에도 들어가는 고수이기에 친구들끼리 간단한 모임 형식의 길드를 창설할 때 길드장으로 뽑혔다 시드라는 회색머리의 마법사는 일행 최 연장자로 그래봐야 다른 사람들에 비해 두 살 정도 많은 21살이었다. 나머지들은 모두 18, 19세. "음… 모험가 길드에서 정식으로 의뢰 받은 일인데… 리자드 늪지대에 마스터 여러 마리가 나타났다고 하더군. 마스터들이야 200만 되도 잡을 수 있는 몬스터니 그리 어렵지는 않잖아. 그런데 문제가 있는데… 모험가 길드에서 말하기를 확인되지 않는 강한 몬스터가 하나 있다고 하더군. 적어도 위력은 마스터와 비슷하데. 마법을 사용한다고 하던데… 아, 그리고 다크소드가 이 근처로 오고 있다고 하던데… 조심하라고 하더군." 모험가 길드. 섀도우 월드에는 일반 플레이어들이 만드는 길드와 원래부터 존재하는 정보 제공 등을 하는 모험가 길드, 용병 일을 하는 플레이어들을 위한 용병 길드 등의 몇 가지 길드가 존재한다. 모험가 길드는 여러 가지 퀘스트들을 부여하는 길드로 용병 길드와 함께 가장 많은 이용을 받는 곳이다. "리자드 마스터… 그리고 마법을 쓰는 리자드 마스터 급 몬스터… 이 정도면 성공이 가능 하겠네요. 그런데 다크소드면… 위험인물 아니에요?" "맞아요. 상당히 무서운 인물이라고 들었는데?" 레도르의 말에 금발을 길게 기른 여자 신관이 동의하며 끼어들었다. "확실히… 레도르나 레아의 말대로 위험인물이기는 한데…." 다크소드. 약 두 달 전부터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유명한 랭커로 비록 베스트 1000 안에는 들지 못하지만 오히려 1000등 안의 유저들 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다. 차렌 마을에서 100도 안돼는 레벨로 리자드 마스터를 잡은 것이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계기였는데 그 다음에는 마신의 신전의 초대, 유일한 통과자로 마검을 손에 넣은 인물로 이름이 높은 유저다. 상당한 외모를 지녔다고 하지만… 검은머리를 길게 기르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데다가 검은 망토를 입고 다니는 상당히 어둡고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소유자로… 특히 마검을 들었을 때는 최상위 랭커들과 맞먹는 위력을 낸다고 하는 엄청난 인물이다. 한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자로… 쟁쟁한 길드들의 스카웃 제의도 거부한 사냥꾼. 누구도 그의 아이디는 물론 레벨, 직업도 알지 못하고 언제 어디서 돌아다니는 지도 모르는 자로 항상 혼자 행동하는 사람이다. 섀도우 월드의 시간으로 5달 전에 랭커에 든 인물로… 엄청나게 잔혹한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전에 마검을 훔치려고 꼬인 도둑 길드의 수십의 도둑들을 혼자서 모두, 그것도 가장 끔찍한 방법을 동원해 죽였다고 이름높은데… 그의 마검을 잡은 사람은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그대로 절명했다는 소리도… 그 후로 그에게 달라붙는 도둑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어쨌든 다크소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 유저는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에게 공포의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데…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미지의 랭커, 랭킹 7위를 자랑하는 의문의 랭커와 상당한 친분이 있다는 것이다. 정말 미지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상당히, 아주 어두운 이미지의 랭커다. "하지만… 설마 만난다고 해도… 악질 PK범으로 불리는 것도 아니고… 설마 죽이지는 않겠지. 아직 수배령도 내리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잖아. 그리고 선행을 베푸는 유명한 랭커와 친분도 있다고 하던데…." 시드의 말에 가장 어린 외모를 소유한 소녀,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정령사 유미가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전에 술집에서 들어보니까… 그 다크소드라는 사람… 다른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지만 갖은 방법으로 엄청난 고통과 공포를 준 다음에 풀어준다는… 거기다 여자들은…." "하, 하하… 서, 설마… 그러기야 할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상당히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레도르와 같은 푸른… 하지만 분위기는 정반대로 엄청난 차가움을 느끼게 하는 여자 검사, 이시린. 그녀의 말에 레도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조심은 해야… 잘못걸리면… 지금 어디에 있데요?" 그의 질문에 다른 일행들의 시선이 시드에게 집중되었다. 시드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그게… 오고 있다고는 했지만… 정확한 정보는 모른 데. 그저 추측이라고 하던데…." 일제히 한숨을 내쉬는 일행. 지미가 투덜거리며 입을 열었다. "쳇. 역시… 시드 형의 말은 긴장감은 있는데 사실을 알고 나면 뭔가 허전하다니까. 그럼 가요. 가지 길마 씨?" "그래… 파티는 아직 풀지 않았지? 그럼 가자…." 일행은 성문을 지나 숲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패치가 실행되면서 파티 수의 제한이 8명으로 늘어났다. 어차피 길드 파티를 하면 그런 숫자에는 구애받지 않지만… 제르난 길드의 7명의 사람들은 길드 파티보다는 보통 파티를 맺고 다녔다. 그 이유는 처음 길드를 만들 때 레도르가 말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저기…." 일행들은 갑자기 나무 속에서 걸어나온 남자를 보며 걸음을 멈췄다. 검은 망토를 맨… 잘생긴 얼굴을 가진 남자였다. 검사. 상당히 착한 이미지의… 처음 검은머리에 검은 망토를 바라본 일행은 잠시 움찔했지만 얼굴을 보고는 긴장을 풀었다. 그 무섭다는 다크소드와는 이미지 자체가 다른 남자였다. "무슨…." 레도르가 대표로 나서 질문을 던졌다. "저… 리자드 늪지라는 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목소리도 듣기 좋은 미성이었다. 일행들은 그저 다크소드를 따라하는 평범한 유저로 판단하고 완전히 긴장을 풀었다. "아… 저희들도 거기로 가는 도중인데… 저기 레벨이…." "246입니다." "아, 그럼 파티를 맺고 가시겠어요? 마침 자리가 하나 비는데…." 그 남자는 일행을 한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모두 7분인데… 파티는 6명이 끝 아닙니까?" "하하… 얼마전에 패치로 바뀌었는데… 혼자 돌아다니시는 분인 모양이군요. 8명으로 늘었습니다. 동행하실래요?" "아,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검사, 한이라고 합니다. 그럼 얼마간 신세를 지겠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였다. 길드 파티에서 일반 파티로 바꾸려면 성가시니까… 한이라는 검사와 레도르가 악수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행들은 새삼 레도르의 선경지명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럼 혼자서 여행을?" "예. 처음 시작할 때부터 대부분을 혼자서 다녔거든요. 섀도우 월드가 생애 처음하는 게임이라서 상당히 힘들었죠." "하하." 레도르와 한은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상당히 친해진 둘을 지켜보던 세린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한 씨. 그 모습은 다크소드를 흉내낸 건가요? 분위기는 전혀 달라도 대충 비슷한데?" "아… 그냥 처음부터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음… 요새 들어 다크소드를 따라한 거냐고 말이 많더군요. 혹시 제가 다크소드라는 사람처럼 보이나요?" 약간 당황한 얼굴이던 한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고 그의 마지막 질문에는 모든 일행들이 미소를 지었다. "헤헤. 아뇨. 그냥 옷차림하고 머리색만 같지 분위기는 전현 달라요. 그 다크소드는 엄청나게 무서운, 완전 마족같은 사람이레요." 유미의 말에 한은 쓴웃음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그, 그래요? 별로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인 모양이죠?" "물론이죠. 완전히 악마래요. 무슨 마검인지를 들고 싸우면 완전 괴물로 변한다고 하던데… 몸에서는 완전 검은 기운들이 솟아 나오고… 전에는 도둑들을 잔인하게 죽여서 도둑도 피해 다니는 인물에… 거기다 저 같은 여자들에게는 못된 짓도 한다고 하던데…." 신랄한 유미의 설명에 한은 상당히 난처해 하는 얼굴이었다. 일행이 의아해 하는 얼굴로 바라보자 한은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하하… 그런 사람으로 오해를 받고 있었다고 하니까… 좀 껄끄러워서…."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다크소드라는 랭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던 한은 일행의 가장 끝에서 묵묵히 걸어가는 이시린을 발견하고는 슬쩍 다가갔다. "아, 이시린이라고 하셨죠. 말이 없으시네요?"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한을 잠시 바라보던 이시린은 한을 외면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이시린의 말에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한에게 지미가 다가가 어깨를 다독였다. "후후… 신경 쓰지 말라고. 원래 딱딱, 차가운 애라… 현실이든 게임이든 남자친구 하나 없거든." "지미!" 지미는 이시린의 눈총에 급히 입을 다물고는 뒤로 물러났다. 헛웃음을 짓던 한은 다시 레도르의 옆으로 다가갔다. 미소를 짓고 있던 한이 다가오자 친근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일행들이 좀 독특하죠. 모두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이라… 모두 게임 밖에서도 아는 사이에요. 시드 형을 빼고는 모두 대학생이죠." "아… 그래서 길드를 만들어서?" 한이 말에 레도르는 겸연쩍게 웃고는 대답했다. "아, 길드라기 보다는 거의 모임 정도? 겨우 7명이 끝인데요." "그럼 길드장이 레도르?" 한의 질문에 일행 모두가 놀란 눈으로 한을 바라보았다. "하하… 레벨도 가장 높아 보이고… 무엇보다 리더라는 느낌이 오는데… 다른 사람들을 잘 이끄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거든요." "헤… 관찰력이 좋네요? 확실히 레도르 오빠가 리더십이 있기는 한데… 거기다 랭커에도 든 고수라고요." 유미가 자신을 치켜세우자 레도르는 난처한 얼굴이었다. "아… 랭커라면… 5계급이 넘으신 모양이죠? 와… 그럼 다크소드에게 꿀릴 것이 없잖아요." 한의 말에 레도르는 물론 다른 일행들도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행의 반응에 한은 얼떨떨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크소드는 저하고 격이 다르죠. 아무리 못해도 마스터 레벨은 될텐데… 거기다 마검을 집으면 레벨 400이 넘는 랭커하고도 맞붙어 싸우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전 이제 겨우 랭커에 들었는데 무슨…." "맞아요. 레도르 오빠가 우리 중에 유일한 랭커라지만 다크소드에게는 힘들다고요. 그 사람은 완전 악마라고…." "흠… 쉽게 지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승산은 없겠지." "그, 그렇습니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여는 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아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나이가 몇이세요? 저희야 시드 오빠만 빼면 모두 19살인데… 유미는 18살이고…." "아, 저는 20살…." "어? 그럼 형? 하하. 형이라고 부를까요?" 레도르의 말에 한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상관은 없지만… 좀, 어색한데…." 레도르 등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다크소드와 모습은 비슷해도 너무도 다른 인물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럼 형이라고 부르죠." "헤헤. 맞아요. 오빠. 헤헤. 아, 맞다. 오빠도 우리 길드에 가입하면 안 되요?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고요." "예?" 한이 놀라서 반문하자 다른 일행들도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흠… 좋기는 하겠는데… 검사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거기다 레벨이 247이면 레도즈 다음…." "맞아요! 오빠 같은 미남은 환영이죠!" "커헉! 그럼 나는 미남이 아니라는 거냐?" 세린의 말에 슬픈 어조로 물어오는 지미. 하지만 여자 일행들을 모두 그를 외면했다. 그녀들은 현실에서의 지미를 잘 알고 있었다. 웃기는 괴짜. 그의 별명… "어때요, 형? 여행가라도 별 상관은 없는데… 우리도 가끔씩 여행도 다니고 강제적인 것도 없고… 싫다면 어쩔 수는 없지만요. 형도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데… 어차피 길드 식구야 많으면 좋고…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으면 떠나셔도 되요. 아, 혹시 다른 길드에 가입하셨어요?" 일행은 한에 대한 첫인상이 굉장히 좋았기에 열성적으로 길드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한은 그런 제르난 길드의 사람들을 보며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그게… 다른 길드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혹시 나쁜 사람이면 어쩌려고…." 한의 말에 일행들은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보기에 한은 죽었다 깨어나도 나쁜 사람이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것이 30분 동안 한을 관찰한 일행의 공통적 의견이었다. "에이… 형이 나쁜 사람이면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어차피 게임 안인데 상관없잖아요. "아…." 난처한 얼굴로 일행들을 살피던 한은 아직도 무표정한 얼굴로 길을 걷고 있는 이시린을 발견하고는 돌파구를 찾았다는 듯이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이시린은? 찬성인가요? 반대?" 한의 질문에 이시린은 간단히 대답했다. "상관없어요." 한은 씁쓸해 하는 얼굴로 빙긋빙긋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어때요?" "아, 늪지에 다 왔다. 지금부터는 조심해. 몸이 가라앉는 곳도 있으니… 별로 있지는 않지만… 그리고 언제 마스터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마스터?" 한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레도르가 간단히 대답했다. "아, 우리가 받은 퀘스튼데 마스터들이 나타난데요. 몇 마리가. 거기에 마스터 급에 마법을 쓰는 몬스터도 있고…." 순간 한의 눈이 번쩍였다. 잠시 지만 한의 표정이 이상해지자 일행들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스터 급… 마법이라… 후후…." "엥? 아, 이게 아니지. 형. 가입할래요?"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한은 다시 이어지는 일행의 눈빛에 한은 난처한 얼굴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은 일행들을 둘러보며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음… 그럼 말이야… 만약에 내가 그 다크소드라는 사람이라도 너희 길드에 받아들일 거야?" 한의 뜻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레도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도… 형은 착한 사람으로 보이는 데요? 다크소드라는 사람과는 전혀 달라요."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 한은 씁쓸히 웃더니 입을 열었다. "아, 내 말은… 음? 나왔다!" 일행은 한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자 놀란 얼굴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크라라라락! 케레레레렉! 리자드의 괴성에 일행들은 긴장한 얼굴로 각자의 무기들을 뽑아들었다. 그 와중에도 가장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레도르가 한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 어떻게…." "마스터… 버서커…." 레도르가 놀란 얼굴로 주위에서 걸어나오는 리자드들을 돌아보았다. 일행을 포위하듯 감싸고 있는 리자드 마스터 3마리… 거기에 리자드 버서커 10마리… 엄청난 전력… 일행은 일제히 얼굴을 굳혔다. 그때 일행의 몸을 뻗뻗하게 굳히는 한의 말이 들려왔다. "미치겠네… 리자드 킹…." "예?" 한의 말에 일행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한은 전과는 달리 긴장한 얼굴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크라라라락! 그때 엄청난 크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레도르 일행은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가 들려온 장소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엄청난 크기, 거의 3, 4m에 달하는 크기의 리자드가 서 있었다. "마스터 급… 마법이라… 마스터보다 훨씬 강한 실력에 화염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 그렇다면 리자드 킹이지… 설마 했었는데…." "마, 맙소사…." 일행은 굳은 얼굴로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는 리자드들과 뒤에서 자신들을 노려보는 리자드 킹을 바라보았다. 이런 포위 공격… 확실히 저런 괴물이 없으면 하기 힘든… "힘들겠어…." 한의 중얼거림. 그리고 리자드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크라라라락! 케레레레렉! "조심해!" 레도르가 고함을 내질렀다. "야앗!"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는 이시린. 그리고 공중에서 격돌하는 이시린과 리자드 버서커의 팔치온… 차앙! "샐레멘더!" "아이스 스톰!" 곳곳에 펼쳐지는 마법과 정령술. 상당한 장관이었다. "지미!" 레도르가 지미의 뒤를 노리는 리자드 마스터에게 달려들었다. 빠른 속도로 휘둘러지는 레도르의 검. 리자드 마스터는 팔을 베이고는 목표를 바꿔 레도르를 공격해 들어왔다. "화룡(火龍)!" 레도르의 외침에 레도르의 검에서 불이 치솟아 오르더니 빠르게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리자드 버서커 한 마리와 검을 섞고 있던 한이 작게 감탄했다. "대단한데… 마법검인 모양이지? 확실히 랭커에 들만한… 음? 쳇! 살검(殺劍)!" 순식간에 버서커의 목을 따버린 한은 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앞을 가로막는 리자드 마스터. 그는 이를 갈며 검을 휘둘렀다. "하앗!" 리자드 마스터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은 레도르는 살이 익는 냄새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동시에 검을 뽑으며 뒤로 빠져 나왔다. 살기를 내뿜으며 클레이모어를 휘두르는 리자드 마스터. 패치 이후 마스터와 킹의 능력이 더 강해졌다. 이제 리자드 킹은 마스터 레벨은 되야 잡을 만한 몬스터… "크윽! 음? 그러고 보니 리자드 킹은… 이런! 시드 형! 이시린!" 마스터의 공격을 막으며 리자드 킹의 행방을 쫓던 레도르는 이시린에게 쇄도해 가는 리자드 킹을 보며 고함을 질렀다. "이시린!? 맙소사! 이시린 피해! 아이스 스피어!" 세린, 레아와 함께 서 있던 시드는 리자드 킹의 모습을 보고는 급히 마법을 시전 했다. "아이스 플라워!" 빠르게 검을 휘둘르던 이시린은 일행들의 외침에 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자신을 공격해 오는 리자드 버서커… 속도만큼은 빠르기 때문에 쉽게 떨치기가 어려웠다. 그때 그녀를 스쳐 지나가는 얼음의 창들. "리자드 킹…." 그때야 리자드 킹을 발견한 그녀는 파랗게 질리며 뒤로 물러서려 애썼다. 하지만 쉽게 그녀를 놔주지 않는 두 마리의 리자드 버서커. 쉬이잉! 이시린에게 달려들건 리자드 킹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얼음의 창들을 보며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왼손을 휘둘렀다. 리자드 킹의 왼손에서 뻗어나가며 얼음의 창들과 격돌하는 화염. 얼음의 창들은 산산이 깨지며 퍼져나갔다. 그리고… "꺄악!" 그 얼음 조각들은 이시린을 덮쳤다. "이, 이런!" "시, 시드 형!!" 놀라서 소리치는 시드와 레도르. 하지만 이시린의 동작은 이미 흐트러졌고 그런 그녀의 어깨에 리자드 버서커의 팔치온이 박혀들었다. "꺄아악!" 그대로 주저앉는 이시린.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리자드 킹이 다가와 검을 내리찍었다. "젠장!" 레도르가 리자드 마스터의 클레이모어를 힘겹게 쳐내며 급히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너무도 먼 거리… 그는 이시린에게 내리쳐 지는 리자드 킹의 거대한 검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꺄악!"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아나 도마뱀?" 비명을 지르던 이시린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달려온 한이 리자드 킹의 검을 막고 있었다. 한은 리자드 킹의 검을 막고 있는 오른손 대신 왼손을 들어올렸다. "바로… 여자의 비명소리거든! 강(剛)!" 한의 왼손에서 리자드 킹의 가슴으로 날아가는 검은 마나 덩어리… 크라락! 리자드 킹은 검을 거두며 뒤로 물러났다. "거, 검은 색의 마나…." 시드의 중얼거림. 그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한이 그를 바라보았다. 시드가 몸을 움찔 떨자 한은 미소를 지었다. "다크소드에게서 유명한 색이죠?"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는 한. 그런 그의 모습에 레도르 일행은 전투도 잊고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 맙소사… 다크…." 한은 이시린의 목소리에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피식 웃고는 등에 매고 있던 천에 묶인 검에 손을 가져갔다. 크라라락! 케레레렉! 한에게 달려드는 리자드 킹과 버서커들. 한은 등에 매고 있던 검을 천에 묶인 채로 휘둘렀다. 파캉! 리자드 킹의 공격에 벗겨지는 천. 한은 급히 검을 회수하며 검집을 벗겼다. 화려한 검집이 사라지며 검은빛을 띄는 검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꺼낸다 마나르트!" 순식간에 검의 옆에서 날카로운 검날들이 튀어나오더니 달려드는 리자드 버서커들의 머리를 찔렀다. 전혀 방비 없이 검만을 휘두르던 리자드 버서커들은 힘없이 무너졌다. 크라라락! 괴성을 지르는 리자드 킹. "열 받냐? 나도 열 받아!" 스으으으… 한의 몸에서 솟아나는 검은 마기들… 리자드 킹이 괴성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동시에 뻗어 나오는 화염. 한은 이를 갈며 자신의 뒤에 쓰러져 있는 이시린을 바라보았다. "쳇!" 순식간에 리자드 킹의 앞을 가로막는 검은 막. 리자드 킹의 공격과 화염 마법은 그 막에 막혔고 동시에 그 막이 깨어졌다. "역시 강하네?" 감탄하던 한은 이시린을 안아들고는 시드 등이 모여 있는 곳으로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퀴 스텝. 한의 독문 기술. 시드는 순식간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을 보며 몸을 움찔거렸다. "레아? 치료나… 레도르! 리자드 킹은 내가 맞는다! 나머지 청소해! 아, 우선 돌아와라!" "예? 아, 예!" 한의 외침에 레도르가 얼떨결에 대답하고는 지미와 함께 한과 시드 등이 모여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을 따로오는 마스터와 버서커들… "대거 댄싱!" 한은 순식간에 많은 단검들을 던져 리자드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사이 레도르와 지미가 일행에 합류했다. 약간 공포가 섞인 눈으로 한을 바라보는 레도르 일행. 한은 씨익 웃고는 입을 열었다. "후후. 내가 다크소드라는 사람인데… 놀랬지? 신기하지? 정말 멋지지 않아?" "아…." 소문과는 너무도 다른 한의 행동에 제르난 길드의 사람들은 얼빠진 얼굴로 한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짓는 한. "큭큭. 정말 소문은 무섭더군. 아까 유미들이 말하는 말을 들을 때는…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이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니까. 킥킥." 아까부터 다크소드의 소문들을 열심히 얘기하던 유미 등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런 유미의 머리를 몇 번 건드린 한은 살기를 뿜어대며 달려오는 리자드 킹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른 놈들이나 잡아!" 레도르는 엄청난 양의 검은 기운들을 내뿜으며 리자드 킹에게 달려드는 한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한의 외침에 지미를 돌아보았다. "가자!" "으, 응." 레도르와 지미는 남아있는 다수의 리자드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둘의 모습에 시드와 유미는 급히 엄호를 시작했다. 비전투 직업인 레아와 부상자 이시린은 리자드 킹과 엄청난 사투를 벌이고 있는 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자드 킹과 한은 누구도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레도르 등이 다른 리자드들을 물리치고 피 범벅이 되어 있을 때까지도 한과 리자드 킹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 망할 도마뱀이… 내가 오늘 널 못 죽이면 성을 간다!" 크라라라락! "하아앗! 크로스(Cross)! 마검기(魔劍氣)!" 크라락! 쿠아아아앙! 엄청난 폭발과 붉은 화염과 어두운 마나와 마기… 리자드 킹과 한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레도르 일행의 얼굴이 감탄으로 물들었다. "무, 무섭긴 한데… 멋지다…." 세린의 중얼거림. "대단해…." 좀처럼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 이시린의 얼굴도 감탄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 사람이… 다크소드?" 제르난 길드의 7명의 일행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한과 리자드 킹의 사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크윽!" 나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틀었다. 제길. 리자드 킹이 강해졌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오거보다도 강할지도… 오거도 강해졌나? 크르륵! 화아악! 리자드 킹의 손에서 생성되는 화염. 나는 급히 바리어를 생성하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바리어와 화염이 충돌. 그리고 나는 마나르트를 찔러넣었다. "살검(殺劍)!" 가슴을 찔리고 괴성을 지르는 리자드 킹. 나는 급히 뒤로 몸을 빼며 마나르트를 들어올렸다. 후우… 생각보다 훨씬 강한데? 그 동안 열심히 해서 5계급이 됐는데도 이렇게 고전하다니… 뒤에서 감탄을 늘어놓고 있는 레도르 일행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으으… 설마 이런 소문이 돌고 있을 줄은… 그때 도둑들을 죽인건 사실이지만 잔인하게는… 마나르트를 집었던 놈은 마기를 견디지 못하고 죽었던 거고… 그런데 여자를 뭘 어쨌다는 거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마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아아아아… 내 몸에서 더욱 짙게 피어오르는 검은 마력들. 내 마나와 합쳐진 마력은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한다. 크라라라락! 엄청난 기세로 검을 휘두르는 리자드 킹. 나는 왼손의 OPG의 손톱을 꺼냈다. 왼손에 엄청난 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크라라라락! "흐아아앗!" 엄청난 기세로 불어나며 리자드 킹의 몸을 감싸는 마기. 순간 리자드 킹의 움직임이 굳었다. 이놈에게도 먹히는군… "더블 크로스!" 마나르트와 OPG에서 검은 기운들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두르며 리자드 킹을 스쳐 지나가는나. 리자드 킹은 엄청난 상처를 입고 괴성을 질렀다. 크라라라라라! 크으… 아직 안 죽었어… "크으으…." 나는 엄청난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크으… 더 이상 버티기가… 떨어진 체력이 마나르트의 마력과 마기를 감당하기 힘들게 하고 있었다. 하긴… 이미 시간을 초과했으니… 크라락! "한! 조심해요!" 레도르? 내 귓가로 들려오는 맑은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리며 급히 몸을 띄웠다. 순간 도약… 높게 뛰어오른 나는 리자드 킹의 공격을 간발의 차로 피했다. 하지만 내 등에 몰려오는 통증… "크으윽…." 화르르르륵! 그리고 내 몸을 불길이 덮치기 시작했다. 제, 제길… "이, 이런… 한!" 한과 리자드 킹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레도르는 한이 공중에 떠오른 채로 불길에 휩싸이자 앞으로 달려나가려 했다. "어, 야! 너는 그대로 죽어 인마!" 레도르는 자신을 막는 지미를 노려보며 앞으로 달려나가려 했다. "시끄러! 동료라고!" "그래서 너까지 죽겠다는 거야!?" 레도르와 지미가 다툼을 벌이고 있을 때, 시드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저, 저기!" "응?" 시드의 외침에 아웅거리던 레도르와 지미는 시드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불길이 갈라지며 거기서 한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의 몸 주위에 검에서 뻗어 나온 듯한 검은 갑주가 씌워져 있었다. "아…." "젠장! 고맙다, 마나르트!" 나는 리자드 킹의 머리를 향해 검을 찌르며 중얼거렸다. 5계급이 되면서 마나르트가 가끔씩 자의로 나를 도와주기도 했다. 아직 말을 하는 단계는 아니었지만 아주 위급한 상황이면 내게 마력을 좀 많이 돌리고는 지금과 같이 내 주위를 감싸주거나 하는 것이… 그때 상당한 고통이 따르긴 하지만… "으아아! 스트라이크(Strike)!" 나는 위에서 검을 빠르게 휘두르며 리자드 킹을 내리찍었다. 으으… 더 이상 버티기는 힘들다… 나는 바닥에 내려서는 순간 리자드 킹의 턱을 올려쳤다. "승룡(乘龍)!" 턱이 떨어져 나가는 리자드 킹. 하지만 리자드 킹의 검은 내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마나르트를 회전시켰다. "스핀(Spin)!" 두 번을 돌면서 처음은 가슴, 두 번째는 목을 날려버린 나는 그대로 마나르트를 놓치며 무릎을 꿇었다. 크으… 정말… 최악이다… "크으…." 내 몸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며 마기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으음… 리자드 킹은 머리가 잘린 채로 쓰러져 있었다. 죽었군… "한!" 레도르?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달려오는 레도르 일행을 올려다보았다. 으음… 후후… 나보고 길드에 들어오라고 했었나? "레도르…." "예?" "그… 길드 가입… 아직도 유효하냐?" 내 질문에 레도르는 자신의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시드, 이시린이 급히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일행들로 덩달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눈앞에 뜨는 창… <제르난 길드에 가입하십니까? 총 길드원 7명. 길드 마스터 레벨 264. 레도르.> 내가 승낙이라고 웅얼거리자 창이 사라지며 길드원들의 정보 창이 떠올랐다. "물론이죠. 가입을 축하해요. 몸은 괜찮아요?" 하크 씨… 동료를 만들라고 했었나? 지금까지 길드의 스카웃 제의를 모조리 거절하고 있었는데… 크큭. 이런 길드 같지도 않은 길드에 가입하고 마는구나… 하지만 좋은 사람들이야… "괜찮아 보여?" "아, 아뇨… 아, 레아! 빨리 치료!" "아, 아…." 금발의 여신관… 레아가 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으으… 이렇게 반 죽도록 당한 것도 오랜만인데… 나는 엄청난 고통에도 자존심을 지키고자 쓰러지지는 않고 버티고 있었다. 으음… 어느 정도 통증이 멎는데… 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으아… 죽겠구만… 그래… 그 이름도 찬란한 공포의 다크소드를 구경. 거기다 길드원으로 받아들이신 길마의 소감을 들어볼 수 있을까?" 내 질문에 레도르는 황당해 하는 얼굴이더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최고." "그래… 마나르트." 저 멀리 나무에 박혀 있던 마나르트가 내 손으로 날아왔다. 레도르 일행이 놀란 얼굴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후우… 아까는 이놈이 내 몸을 감싸는 것도 봐 놓고는 이거에 놀라니? 나는 검집에 마나르트를 집어넣었다. "와… 대단해요, 오빠. 그게 그 마검?" 유미의 질문.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그런데 말야… 내가 여자에게 뭘 어쩐다고?" 내 질문에 유미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킥. 나는 시드를 돌아보았다. 나보다 한 살이 많지? "그나마 시드형이 제일 고맙더군요… 유일한 내 편이었어요." "하, 하하… 그, 그렇지?" 어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시드. 나는 마나르트를 흙 속에 박아 넣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아… 좀 쉬어야지… 나는 나를 멀뚱히 내려다보는 레도르 일동을 보며 입을 열었다. "쉬자." "하, 하하…." 저마다 털썩 털썩 주저앉는 7명의 길드원들. "정말… 한이… 아, 세한? 아이디가 세한이네? 흐음… 한이 더 익숙해서…." 길드에 가입되면서 내 아이디가 알려졌는지 레도르가 잠시 머뭇거렸다. 길드에 가입하면 정보 공개 등급을 최소로 낮춰도 아이디와 레벨은 나타난다. "한. 내 아이디를 뿌리고 다녀서는 귀찮아져서…." "아, 예. 한 형. 그런데 소문과는 너무…."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이런 엄청난 소문이 퍼진 이유가 뭘까… 확실히 별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과 만났을 때는 좋은 말투를 쓰지 않기는 했지만… "소문이란 과장되기 마련이지… 음… 죽기 싫으면 닥치고 꺼져." 내가 마지막에 열 받았을 때나 짜증나는 놈들을 만났을 때의 말투를 사용하자 모두가 몸을 흠칫 떨었다. 역시… 이것도 한몫을 했군… 큭큭… "킥킥킥… 너, 너무 쫄지 말라고… 큭. 하하하하!" 내가 웃음을 터트리자 장난임을 알아차렸는지 레도르 일행은 얼굴을 붉혔다. 잠시 후 좀 진정이 된 내가 웃음을 그치자 삐진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유미가 입을 열었다. "음… 그래도 정말 멋있던데… 그 마검을 들고 싸울 때… 그런데 왜 평소에는 그 검을 쓰지 않아요?" "아아… 이게 내 고통이지. 이 검을 집으면 엄청난 고통이 밀려오거든. 이 검의 마력이 내 몸으로 들어와서 말야. 끔찍하지. 으음… 한 30분까지는 버티는데… 그 이상 버티면 까딱하면 기절이야. 그것도 내 얘기지 다른 놈이 만지면… 혹시 이 검에 손댔던 도둑 얘기 들었어?" 내 말에 일행은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미소를 짓고는 마나르트를 천으로 감기 시작했다. 크으… 또 아프네… 일행들은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확실히 믿는 눈치였다. "듣긴 들었는데…." "어쨌든 멋졌어요. 와아… 반할 것 같아…." 눈을 반짝 반짝 빛내는 세린… 나는 약간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 하하… 포기하지? 난 애인도 있는 몸이라고." 내 말에 세린은 내 옆에 찰싹 달라붙더니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웅…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고 하는데… 게임에서라도 어때요?" 나는 어색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껏 여행을 하면서 미인계로 나오는 여자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서 그렇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글쎄… 내 애인도 섀도우 월드에 있어서…." "에이… 나도 꽤 강하다고요." "…운영자야." "에?" 세린은 물론 다른 일행들도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유저와 운영자의 만남이 이상하다는 건가? "확실히… 평범한 우리와는 뭔가가 다른 사람이로군…." 지미의 중얼거림…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배낭에서 작은 자루를 하나 꺼냈다. 일행은 배낭 속에서 자루가 나오자 신기하다는 얼굴이었다. 후후… 이 배낭으로 말하자면 다크 엘프들 최고의 걸작배낭(?)이라고 하지… "음… 자, 선물." 세린은 내가 내미는 예쁜 보석 목걸이를 보고는 입을 벌렸다. "이, 이거… 저 주는 거에요?" "물론. 길드에 들어간 기념으로 주는 거지. 보기에도 예쁘지만 순발력과 스태미나를 높여주는 목걸이야. 상당히 비싼 거지. 던젼에서 얻은 건데…." 세린은 미소를 지으며 내가 건넨 보석목걸이를 목에 걸고는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 목걸이를 바라보던 레아와 유미가 내게 달려들었다. "저, 저하고도 사귀어요!" 나는 내게 안겨오는 유미에게서 급히 몸을 빼며 자루 속을 뒤적거렸다. 곧 몇 개의 목걸이들을 더 찾아낸 나는 목걸이들을 레아와 유미에게 건네주었다. "이거는 지력하고 지혜를 높여주는 거고… 이거는 신앙하고 운을 높여주는 건데… 이것도 다 보석목걸이야. 도둑이 꼬일 지도 모르니 잘 숨겨서 다녀." 레아와 유미는 방긋 방긋거리며 목걸이들을 목에 걸며 살펴보았다. 내가 피식 미소를 짓고 있는데 지미가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저, 저는요?" "난 남자한테는 관심 없는데…." "으으…." 나는 피식 웃고는 자루에서 얇은 강철제 밴드를 꺼내서 지미에게 건넸다. 지미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흐음… 물건 볼 줄 모르네… "그거 비싼 거야. 힘을 꽤 올려주고 마법 저항력도 좀 올려주는 거라고." "햐아…." 감탄하는 지미. 나는 자루 속에서 별다른 장식 없는 수정 반지를 꺼내서 시드에게 건넸다. 시드는 얼떨결에 받아들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형은 남자니까 예쁜 건 별롤 테고… 그거 좋은 거예요. 걸음 속도도 조금 높여주고 지혜, 지력 증가. 마법사용이죠." "아… 고, 고맙다." 시드는 감탄한 눈으로 수정 반지를 바라보았다. 흐음… 그럼… 그게… 나는 자루를 뒤적거리다가 드래곤 날개 모양의 티아라, 그러니까 헤드기어를 건넸다. 한쪽 머리에만 은빛 드래곤의 날개가 나온 거였는데… 내가 낄까 하다가 지금 컨셉에 맞지 않아서 그냥 두던 건데… "이건 길마 꺼. 내가 눈독을 들였을 만큼 멋진 물건이다. 내 컨셉하고 맞지 않아서 쓰지는 않던건데… 너라면 괜찮게 어울릴 거야. 검사 스킬 레벨 1업에 힘, 체력 증가다. 죽이지?" "아…." 은 제 헤드기어를 받아들고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레도르는 정신을 차리고는 입을 열었다. "고, 고마워요. 아… 그런데… 이시린은…." 호오? 이시린 챙기는 것 좀 보게? 내가 뭔가 음흉함이 담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레도르는 몸을 흠칫 떨었다. 후후… 나는 자루를 뒤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물론 있지. 숙녀 분에 검사라 마지막으로 미루고 있었는데… 음… 분명히 이 자루에… 아, 여기 있다." 일행은 내가 꺼내는 물건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내가 꺼낸 것은… 장갑이었는데… 최고급 가죽에 군데군데에 미스릴로 보호를 하고… 멋진 양각에 척 보기에 상당한 고급품이라는 티가 나는 물건… 비싸게 팔려고 두고 있던 건데… 어차피 다른 물건들도 비싼 거니… "이시린, 여기. 멋지지? 방어력도 괜찮고 내구력은 무한. 마법이 걸린 거라서… 거기에 공격 속도 업에 힘, 순발력도 증가. 맘에 들어?" "아… 고마워요…." 내심 섭섭함이 있었지만 성격상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는 듯 이시린은 상당히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빙긋 웃어주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각자 선물로 받은 물건들을 보며 즐거워하던 레도르들은 얼떨결에 따라 일어났다. "가자. 갈바린이지?" "예!" 일행은 모두 힘차게 일어나더니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저것들이… "스톱!" "에?" "떨어진 돈들과 아이템을 줍는다. 실시." 솔선수범을… 나는 즉시 몸을 숙여 1실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떨어진 것들을 줍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잠시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몸을 숙여 아이템들을 줍기 시작했다. 음. 그래 야지. 일하기 편하네… 우리는 얼마간 아이템들을 줍고 있었다. "확실한 거냐?" "물론입니다." 투사로 보이는 거대한 도를 들고 있는 사내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의 이름은 메르칸. 갈바린 시의 길드 중 가장 큰 길드인 메르칸 길드의 길드 마스터. 어차피 갈바린 시가 그리 큰 도시가 아니어서 메르칸 길드도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 큰 길드는 아니다. 하지만 길드원 200명의 길드라고 불릴 만한 조건은 모두 갖춘 길드. 메르칸 길드의 길드장 메르칸은 5계급의 투사로 랭킹에 들어있는 랭커다. 갈바린 시에서는 레도르라는 작은 길드의 길드마스터와 최고로 꼽히는 인물. 덕분에 메르칸은 제르난이라는 작은 모임형식의 길드를 상당히 못마땅하게 보고 있었다. 자신의 길드의 길드원 중에 랭커에 든 사람은 그와 부 길드장 둘. 거기에 나머지 길드원들은 약 60명 정도가 레벨 200이 넘는 고수들. 메르칸은 레도르에 비해 자신이 길드는 물론 실력도 좋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와 레도르는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 "흠… 리자드 마스터들이면… 거기다 퀘스트면 인증이 있겠군." "그렇습니다. 그러니 돌아오는 숲의 길목에 매복을 하고 있다가 모두 해치우고 그 인증을 빼앗으면… 어차피 길드와 길드의 싸움으로 무마시키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확실히…." 메르칸은 자신의 참모 역할을 하는 부길드장 시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간의 싸움으로 만들면… 그 거슬리는 레도르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메르칸은 시프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아. 해보자고. 그럼 지금 동원 가능한 인원은?" 메르칸의 말에 시프는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대답했다. "레벨 150이상의 길드원이 40명. 200이상의 길드원이 10명 정도입니다. 거기에 저와 길마님이 가시면… 겨우 7명 뿐인 제르난은 끝이죠. 가장 위험한 건 레도르인데… 어차피 길마님의 상대가 되겠습니까?" 약간 아부성을 띄는 시프의 말에 메르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당장 가지. 시작하자고." 메르칸의 말에 시프는 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메르칸은 잠시 후 펼쳐질 일에서 레도르가 보일 반응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음… 이게 인증? 이걸 가져가면 된다고?" 나는 내 손에 들려있는 검은 수정같은 돌멩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언제 이런 퀘스트를 한 적이 있어야지… "예. 그나저나 리자드 킹의 인증이라니… 정말…." 레도르는 미소를 지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월등히 큰. 리자드 킹이라고 적혀 있는 검은 수정을 쓰다듬었다. 흠… 하긴… 레벨 264면 리자드 킹을 잡기는 불가능하겠지. 나야… 레벨이 267이라도… 직업의 특성상… "헤에… 그런데 오빠는 직업이 뭐에요? 진짜로 검사?" 헉!? 유미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말해도 되나… 나쁜 친구들은 아니니… 솔직히 그리 엄청난 비밀은 아니지… "솔져." "예?" 내 말에 유미가 입을 삐죽 내밀며 나를 흘겨보았다. 다른 일행들도 피식거리며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내가 유미를 놀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그런 게 어딨어요. 아까는 검사라면서요. 그런데 아까는 단검도 던지고 해서 물어본 건데… 나도 성인이라고요. 애 취급하지 마요!" 이런… 나는 난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솔져라니까… 숨겨진 직업이라…." "에?"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보는 7인의 길드원들. 하나같이 놀랬다는 얼굴인 것이… "숨겨진 직업이요? 그런 것도… 아, 혹시 그 미지의 랭커도…." 호? 레도르는 아는 게 많네?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와 같은 직업은 아니지만… 솔져는 나 하나. 그 랭킹 7위의 랭커도 새로운 직업의 소유자지." "으으… 역시 평범한 우리와는 뭔가가 다른…." 지미의 신음과도 같은 중얼거림. 다른 일행들도 마치 외계생물체를 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그거 어떻게 한 건지 알 수 있을까?" 시드의 물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돼요. 알려주지 말라고 해서… 거기다 새로운 직업은 특이한 능력은 많아도 성장이 엄청 느리죠. 나도 여기까지 오는데 몇 달 동안 사냥만 하고 살았으니까… 간신히 올라온 거라서… 웬만해서는 추천하고 싶지 않군요." "솔져라는 직업… 특별한 능력이 있나보지." "빛이 있어야 어둠이 있는 거니까." "흠… 능력이 좋은 만큼 그만큼의 대가가 있다는 거군…." 나와 시드가 진지한 얼굴로 얘기를 나누고 있자 잠시 침묵하던 일행들이 입을 열었다. 놀란 얼굴로 말하는 레도르. "와… 하하… 저보다 레벨도 높고… 능력도 뛰어난데… 길드장을 형이하는 건 어때요? 부담스러운데…." 나보고 길마를 하라고? 미쳤니? 그런 귀찮은 자리에 있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그런 귀찮은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지. 거기다 길드원들이 많아지면… 나는 그런 일에는 재주가 없다고. 그리고 나는 오늘 들어온 신입 길드원인데." 내 말에 레도르는 겸연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길드원은 더 이상은… 별로 유명한 길드도 아니고…." "에에… 오빠는 유명하잖아. 메르칸하고 둘이서 갈바린 최고라고 불리는데…." 호… 갈바린 최고수? 메르칸은 누구? "흠… 멋진데? 그런데 메르칸이라… 아, 기억났다! 메르칸인지 뭔지 하는 웃기는 길드의 길마 아냐? 전에 나한테 자기 길드에 들어와 달라고 사람을 보냈었지? 그때 왔던 친구가… 암살자 클래스였는데… 시프였나?" "어, 어… 메르칸이 오빠한테 스카웃 제의를 했었어요?" 놀란 얼굴로 물어오는 세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왔었지? 갈바린 시에 있는 길드인데… 길마와 같은 위치에 있게 해준다고… 흠… 총 길드원이 몇백이라고 자랑을 하더니… 후… 그런 괜찮은 길드를 놔두고 이런 소길드 가입이라… 재밌네? 하지만 이 일행은 마음에 드는데… "응. 거절했지만… 흠… 좋아! 내가 너희 길드에 들어갔다고 소문을 내는 거야! 그럼 길드에 들려는 사람들이 많아질걸? 아, 아니지… 어쩌면 아예 없어질 수도… 내 소문이…."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잠기는 나를 당황한 얼굴로 바라보던 레도르가 입을 열었다. "더 이상 길드원을 받을 생각은 없는데… 그냥 친구들끼리의 모임이라니까요." "흐음… 그래? 그래도 좋은 사람들은 몇 명… 아, 혹시 내 친구들을 너희 길드에 넣어도 될까?" "형 친구들이요?" "형의 친구면… 강하겠지… 역시 평범한 우리와는 다른…." "그 랭킹 7위는 어때?"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레도르 등은 황당하다는 얼굴, 혹은 엄청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흠… 미토스라면… 길드 가입을 아직 하지 않았으니… 그저 친구를 사귀는 형식으로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올 수도… 거기다… 필도… 필은 지금 거의 마스터가 다 되어가니… 거기다 필이 들어오면 에린 씨도… 에린 씨도 5계급이지? 거 기에… 오, 하크 씨도 가입시켜서 무기나 뜯어내? 거기에… 제시나 세시도… 내가 상상이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레도르가 당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 무슨… 그런 엄청난 사람을… 말도 안돼요."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다른 사람들. 나도 받아들이고는 무슨… "그 사람하고 상당히 친하거든… 그리고… 더 끌어들이면 마스터 한명에 5계급 마법사 하나… 그리고 150대 5명 정도도… 거기에… 대장장이 마스터…." "헉, 마, 마스터…." "5계급 마법사?" 내 말에 경악스럽다는 듯이 신음까지 흘려대는 일행. 나는 피식 웃고는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음? 이건… 포위? 나는 걸음을 늦추며 일행의 가장 뒤로 물러났다. "어? 형, 왜 그래요?" "준비해. 매복이 있다." 내 말에 긴장하며 무기들을 뽑아드는 레도르들. 나는 주위를 관찰했다. 흠… 약 50명… 상당한 고수도 있군… 거의 레도르 수준… 활을 든 놈들이 있나 본데? 엄청나게 높아진 식스센스는 적들의 수와 능력까지 대부분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역시… "누구냐!" 검을 뽑아들며 외치는 레도르… 확실히… 뭔가 리더로서의 능력이 있는 놈이야… 그런데… 왠지 렌의 모습과 겹쳐 보이네? 약간 순진하고 그런 것이… 그때 우리 앞의 나무들 뒤에 숨어있던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음? 저 투사로 보이는 녀석 옆에 있는 놈은… 레도르는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무리를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메르칸 길드… 거기에 메르칸에 시프까지… 무장을 모두 갖추고 온 것으로 볼 때 자신들이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뭐지?" 레도르의 말에 시프와 함께 앞으로 나서 있던 메르칸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 길드간의 전쟁이나 해 볼까 하고… 음? 그건… 리자드 킹의 인증!?" 레도르는 '아차'하는 얼굴로 검은 수정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상당한 실력의 투사인 메르칸이라면 저 정도 거리에서 인증을 알아보는 것을 쉬울 것이다. 역시 인증을 알아본 메르칸은 자신의 도를 뽑아들었다. 상당한 크기의 대도였다. "운이 좋군… 그것도 접수해 가도록 할까? 어차피 시체는 말이 없으니까… 후후… 오늘로 네놈도 끝내주지. 그 웃기는 모임도." 레도르는 이를 갈며 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푸른 기운이 레도르의 검에서 솟아 나왔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지미와 이시린도 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시드와 다른 일행들도 몸을 굳히며 전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안되겠군…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레도르네 길드의 7명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저 웃기는 메르칸이라는 놈은 레도르 보다 좀 약하기는 하지만… 저… 아, 시프였지. 저 녀석이 단검을 날리기라도 하면… 거기다 4계급은 되어 보이는 놈들이 10명 정도… 나머지도 3계급은 되어 보이는데… 나는 머리를 앞으로 넘기고 마나르트에 감긴 천을 풀었다. 다크소드로 움직여야겠지? 어느새 메르칸 길드의 녀석들은 거의 다가와 있었다. 뒤에 남아있는 10명 정도는 활을… 나는 쓰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어, 형!?" 나는 놀란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레도르에게 손을 들어주고는 메르칸과 시프의 앞을 막아섰다. "뭐야? 이 까만 놈은?" 날 알아보지 못하는지 나를 보며 얼굴을 찡그리는 메르칸. 아마 레도르의 일행에 같이 있다가 나와서 다크소드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에 비해 나를 한번 만난 적이 있는 시프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네놈이 메르칸?" 내 말에 메르칸이라는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건방진… 네놈도 레도르 녀석의 밑으로 들어간 놈인가 보지? 허접한 실력으로 개기지 말고 꺼져." 허접한 실력… 나는 절로 살기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이 자식…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웃기는 모임을 없앤다… 내가 속한 길드를 없앤다고? 후후… 거기 시프. 어떻게 생각하나?" 메르칸은 내가 자신의 부하를 알고 있는 듯이 말하자 고개를 돌려 시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파랗게 질려있는 시프의 얼굴을 보고는 눈을 찡그렸다. "뭐야?" 메르칸의 물음에 침을 삼키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시프. "다, 다, 다크소드… 다크소드입니다." 시프의 얼굴에 메르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후후… 그럼 본격적으로 위협을 시작해 볼까? 나는 온몸에서 마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내 머리카락들이 미세하기 떨리며 검음 기운들이 주위로 퍼지기 시작했다. "크크크… 재미있군… 나를 자기 길드에 들어오라고 하더니… 이번엔 죽이겠다… 미안하지만 나는 오늘 부로 제르난 길드에 들어갔다. 한번 이 악마의 실력을 구경해 보시지…." 내 마기에 위축된 듯 메르칸은 몸을 흠칫 떨고는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모, 몰라 뵙고… 그런데… 제르난 길드에…." "그렇다." 내 대답에 하얗게 질리며 이를 악무는 메르칸. 충격 먹었니? 너희 길드보다는 훨씬 좋은 곳이란다. 나는 메르칸을 노려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무, 물러나겠습니다. 다, 다시는 제르난 길드의 일에 끼어 들지 않겠으니 제발…." 흠… 여기서 싸운다면… 대충 회복되기는 했지만… 쉽지는 않겠지? 나는 메르칸을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꺼져." "가, 감사합니다." 내게 고개를 숙이고는 급히 돌아서는 메르칸. 거만한 얼굴로 메르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흠… 전에 이런 일이 한번… 나에게 덤볐던 작은 길드가 하나 있었는데 그때는… 쉬이익! 화살. 오른쪽. 2개. 3계급 정도… 스아아아… 순식간에 마기가 옆으로 몰려들며 날아오는 화살들을 막아내었다. 갑자기 들려온 화살 소리에 놀라 급히 몸을 돌린 메르칸은 창백하게 질려서는 내 옆에 떠 있는 화살을 바라보았다. 흠… 저기 나무 옆에 서 있는 놈이로군… "죽어." 나는 마력을 이용해 화살을 되돌렸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내가 일주일 동안 연습한 일이라오. 놀라 몸을 굳히고 있던 궁수가 화살에 맞아 비명을 질렀다. 나는 창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메르칸을 노려보았다. "후후후… 한번 해보자 이건가…." 나는 마기를 최대한 뿜어내며 메르칸 놈들이 서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다가드는 검은 기운들을 놀라 바라보던 메르칸은 급히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젠장! 도망가라!" "으, 으아아아!" "다, 다크소드다!" "도, 도망가! 잡히면 죽는다!" …… 확실히 소문의 위력은 무서워… 저놈들이 다 덤볐으면 내가 죽었을 텐데… 도대체 얼마나 강하다고 소문이 난 거지? 랭킹 1000에도 들지 못했구만… 조금 있으면 들지도 모르지만… 마나르트의 위력은 빼서 랭킹이 그렇게 높아지지는 않으니… 나는 멀어져 가는 메르칸 길드의 사람들을 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크으… 마나르트는 집어넣고… 나는 한숨을 쉬고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나는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꺄악! 오빠 멋있어요!" 내게 안겨드는 세린. 크윽! 숨막혀… 나는 세린의 팔에 목이 막혀 켁켁거렸다. 하지만 세린은 떨어지기는커녕 더욱 매달리며 꺅꺅거렸다. "형… 정말…." "잘했지? 으으… 세린. 좀 놔!" 나는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레도르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다가 세린을 떼어놓으려 애를 썼다. 으으… 19살 짜리가 이렇게 남자 품에 덥썩덥썩 안기고 그래? "하아… 앞으로 메르칸 놈이 덤빌 일은 없겠군…."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는 시드. 나는 미소를 짓고는 세린을 떼어놓았다. "헥, 헥. 좀 떨어져. 19살 짜리 처녀가… 무슨…." "에이… 사귀자니까요."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른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약간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시린. 하지만 역시 약간은 놀란 모양인데… "후후. 멍청한 놈들이라 살았네. 아무리 나라도 메르칸에 시프, 둘만 되도 쉽게 이기기 힘든데… 멍청이들. 킥킥." "하아? 그럼 싸웠으면 졌다는 소리?" "그렇지." 일행들은 뻔뻔한 얼굴로 대답하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흠… 좋게 끝났으면 된 거지. 그리고 얼마 후… 제르난 길드에 다크소드가 가입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펴져 나갔다. 소식이 아니라 소문인 것이 아직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소문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크소드가 그저 제르난 길드와 아는 사이고 잠시 같이 있던 중 메르칸이 잘못 건드렸다고 판단하는 대서 그쳤다. 그럼에도 불가하고 제르난 길드에 몰리는 길드 가입 신청자들의 수는 엄청나게 불어났다. "힘들어…." 나는 피곤에 절은 얼굴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는 레도르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같이 여관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일행은 레도르를 보며 연민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좋게 생각해. 길드 가입 신청자가 많으면 좋지. 그래. 받아들이긴 했냐?" 폭주하는 길드 가입 신청자들을 처리하느라 일주일간 계속 시달리던 레도르는 고개를 저었다. 흠… 좀 받아들이면 어때서… "이대로가 좋아요. 뭐… 나중에 가면 더 받을 지도 모르지만… 제르난 길드는 우리들 모임이라니까요." "그래. 알았어. 그럼 나중에 내 친구들이나 받아줘라." 레도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불쌍해라… 나는 지금 그저 평범한 가죽 갑옷을 있고 앉아 있었다. 제르난 길드의 사람들과 다크소드의 모습으로 있어서 좋을 거 없으니까… 나는 맥주를 마시고는 레도르의 머리를 토닥거렸다. "흐이그…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면 귓말을 무시하던가 꺼두지… 그걸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답변을 보내냐?" "하지만… 그래도 가입을 하고 싶다고 한 사람들인데 예의가… 그리고 그랬다가는 욕을 먹을 지도…." "후… 역시… 흠… 너 내가 아는 친구 중에 렌이라는 녀석과 많이 닮았어." 내 말에 레도르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렌?" "아아… 언제 만나게 해주지. 좀 나중에…." 길마기는 하지만… 좀더 지켜본 후에… 나중에 좋은 녀석들이라는 확신이 들면 마을에나 놀러갈까? 다른 사람들도 제르난 길드에 집어넣고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뭔가 부드러운 것이 내 팔에 와 닿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세린이 내 팔을 붙잡고는 기대앉아 있었다. 목욕 끝냈나 보지? "세린… 떨어져…." "에이… 좋으면 좋다고 하지 무슨…." 나는 고개를 젓고는 다시 테이블에 쓰러져 있는 레도르의 머리를 건드렸다. 이미 세린의 이런 행동은 나에게나 다른 일행에게나 익숙해진 행동이니… "왜요?" 레도르가 고개를 들고는 피곤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 던젼 탐험 안 갈래? 혼자 가기는 그래서… 아, 아니다 쉬어라." 나는 절망적으로 굳어지는 레도르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레도르는 다시 머리를 박았고 나는 다른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짐. 너는?" "으윽… 지미라니까요!" "짧은 게 좋지. 너라도 갈래?" "전 됐어요. 이제 나가봐야 돼서…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가기로 했거든요." "그래?" 음… 시드 형은 접속을 하지 않고 있고… 그럼 남는 건… "우웅… 오빠… 저하고 같이 가요… 던젼이면 어두울까…? 하아…." 유혹하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세린… 후… "후우… 그래… 너하고라도 가야지… 크으… 내 팔자야… 유미나 레아는 들어오려면 멀었고… 아, 이시린. 같이 갈래?" 나는 세린을 데려가기로 결정하고 조용히 음식을 먹고 있는 이시린을 불렀다. 이시린은 포크를 내려놓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저요?" "아아! 오빠! 둘이서 가요!!" "시끄러. 너만 데려가서는 안심이 안 된다. 널 관리할 사람이 있어야지… 같이 가자, 이시린." "아… 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시린. 좋아. 이 셋이서 가면 되겠군. 흠… 레벨이 대충 200정도였지? 이정도면 통과가 가능하겠군. 흠… 그때는 끝까지 가다가 시간이 없어서 포기했었는데… 흠… "가자. 레도르.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라." "예…." 나는 레도르의 힘 빠진 목소리를 들으며 여관을 나섰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많은 수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세린은 내 오른쪽 팔에 달라붙어 있었고 이시린은 내 왼쪽에서 묵묵히 따라오고 있었다. 음… 뭔가 조합이 맞지 않는 파티인데…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던전이 어디에 있어요? 이런 곳에 던젼이 있을 리가… 아, 혹시 내 마음을 받아들이려고 이런 으슥한 곳으로?" 어두침침한 숲의 깊숙한 곳. 나는 세린의 말을 들으며 이를 갈았다. 으으… 시끄러… 이 숲은 그리 높은 레벨의 숲이 아니라 여기까지 오는데 그리 힘들지는 않았는데… 정말 세린이 문제야… 나는 지금 다크소드라 불리는 음산 모드로 변해 있었지만… 나에 대해 잘 아는 세린과 이시린은 거리낌이 없었다. "세린. 제발 조용히 해." "에에… 이시린처럼 조용하기만 해도 문제죠." "으… 너하고 이시린이 반반 섞이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고는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고목에 다가갔다. 세린과 이시린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가운데 나는 그 나무의 바로 앞을 강하게 내리 밟았다. 우수수수수… 후두둑. 그대로 무너지는 바닥. 순식간에 세린과 이시린이 서 있는 바닥까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 전에는 이렇게 심하지 않았는데… 패치로 바뀐 건가? "꺄아악!" "아!" 큰 비명을 지르는 세린과 낮게 신음을 흘리는 이시린. 나는 급히 세린과 이시린을 품에 안았다. 세린과 이시린의 눈이 커졌다. "무, 무슨…." "어머? 오빠도 상당히…." "시끄러! 이 던젼은 한 백 미터는 떨어져야 된다고!" 내 외침에 하얗게 질리는 세린과 이시린. 세린은 곧장 비명을 지르며 내게 안겨왔다. 으윽… 솔직히 기분나쁘다고는 못하겠다만… 숨막힌다… 나는 굳어있는 이시린도 가까이 끌어안고는 내 발 아래로 바리어를 만들었다. 보드모양에서 훨씬 길게… "꺄아악!" 콰콰콰콰콰! 양옆의 벽에 박히며 흙들을 허물어뜨리며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는 바리어.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세린과 이시린을 놓아줄 수 없는 것이… 서 있는 장소가 너무 좁아… "후… 전보다 떨어지는 공간이 넓어졌네?" "오, 오빠… 도대체 이런 곳은 어떻게 발견한 거예요?" 세린의 물음에 나는 머쓱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아… 그게… 아까 그 숲에서 운 나쁘게 트롤들을 만나서… 그 고목에 몸을 기댔었는데 바닥이 꺼지더라고. 정말 놀랬었지. 으음…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야."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겠지? 내가 발견한 던젼들은 대부분이 이런 곳이란다. 그때 좀 쑥스러워 하는 듯한 이시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이것 좀 놔주시면…." "아, 미안. 하지만 내가 놓는 순간 아래로 떨어질걸?" 내 말에 잠시 몸을 움찔하던 이시린은 말없이 내 몸을 끌어안았다. 역시 평소에는 차갑게 있어도 이런 상황에는 무섭나 보지? "후후. 오빠도 좀 밝히네… 이럴려고 우리 둘만 데려온 거죠?" "글쎄 올시다…." 음? 다왔다. 나는 바닥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는 바리어를 조금 더 깊숙이 박아 넣었다. 충격에 대비해 세린과 이시린을 꽉 껴안자 둘이 몸을 흠칫거렸다. 문제는 이시린은 몸을 딱딱히 굳히는 것에 비해 세린은 오히려 안겨 온다는 것인데… "조심!" 턱. 음? 뭔가 이상하게 물컹한데… 그때 세린과 이시린이 당황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꺄악! 오, 오빠 무슨 짓이에요! 꺄! 어, 어딜 만져요!?" "아, 무, 무슨…." 엥? 나는 아무 짓도… 순간 내 몸에 무언가가 감기기 시작했다. 뭔가 축축한 촉수 비슷한… "젠장!" 나는 급히 품속에서 발광석을 꺼내 던졌다. 발광석에 불이 들어오며 주위가 좀 밝아졌다. 세린과 이시린의 중요부위들을 감싸고 있는 이상한 거대 식물… 저거 운영자가 움직이는 건… "맨이터(Man Eater)!" *맨이터(Man Eater) : 보통 식물의 모습을 의태화한, 식육식물 몬스터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의 식물과 비슷하게 변하기 때문에, 정해진 모습은 없습니다. 상대를 휘감아 묶어 올리는 것으로 공격합니다. "아, 꺄악!" 얼굴을 붉히고 있던 세린과 이시린은 자신들을 묶고 있는 거대 식물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저것들이… 나를 변태로 아나… 으음… 레도르나 유미, 시드 형 중에 한 명도 없는 것이 원통하다… 저놈은 불을 싫어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 동안 몬스터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쌓은 나였다. 명성이 괜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 "하아앗! 속검(速劍)!" 나는 샤프소드로 세린과 이시린을 묶고 있는 줄기들을 끊어내었다. 상당한 두께였지만 내 난도질에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꺄악!" "아…." 바닥에 떨어진 둘은 빨개진 얼굴로 약간 벌어진 옷을 가다듬었다. 태평하시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내게 달려드는 식물의 줄기를 올려쳤다. 순식간에 잘려나가는 줄기. "선물이야. 강(剛)!" 왼손에서 날아간 수많은 검은 마나 덩어리들에 얻어맞은 거대 식물, 맨이터는 꿈틀거리다 움직임을 멈췄다. 흠… 죽었나? 붙잡히면 힘들지만 그리 강한 놈은 아니니… 소리가 없는 게 마음에 드는군. 나는 만족스럽게 웃고는 몸을 돌려 바닥에 주저앉아서 옷들을 가다듬고 있는 세린과 이시린을 바라보았다. "으이그… 도대체 나를 뭘로 보고… 안 훔쳐봐!" "힝…." 나는 세린과 이시린이 옷들을 제대로 입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모양은 같은데… 좀 난이도가 높아진 건가? 아까 떨어지는 곳에서 입구를 지키는 식물이라니… 나는 품속에서 작은 구슬 모양의 수정을 꺼냈다. "라이트." 내 중얼거림에 밝은 빛이 들어오며 둥 떠오르는 수정. 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다니는 고급품이지… 거금 50골드를 주고 산… 음… 정리를 끝낸 세린과 이시린이 내게 다가왔다. "와… 마법석이네? 오빠 완전 갑부네?" "별로… 그런데 너희는 나를 뭘로 보고 그런 변태적 소행의 범인을 나로 지목하는 거냐?" 얼굴을 붉히며 딴청을 부리는 둘. 나는 그런 둘을 잠시 노려보고는 투덜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쳇, 쳇. 나는 애인도 있는 몸이라니까… 정말… 같은 길드의 동생들에게 이런…." "꺄아악!"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내게 안겨드는 이시린. 이시린? 세린이 아니고? 나는 놀란 얼굴로 내 품에 안겨 있는 이시린을 바라보았다. 왜이래? 그때 내 의문을 해결시켜 주는 세린의 목소리. "어? 쥐에 뱀까지… 그러고 보니 이시린… 쥐를 무지 싫어하는데." "헉!? 이, 이시린, 정말?" "아, 그, 그게… 꺄악!" 내게 달려오는 작은 쥐를 보며 얼굴을 파묻는 이시린… 미치겠군… 이 던젼에 랫트들이 꽤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망했다… 차라리 혼자 올 것을… *랫트(Rat) : 작은 개정도 크기의 쥐입니다. 하수도나 동굴 등의 구질구질한 장소에, 수 마리에서 십 수 마리로 무리를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투가 되면, 복수의 랫트와 싸우게 되겠지요. 보통은 겁이 많은 성격으로 먼저 싸움을 거는 일은 없습니다. "하아… 이래서야… 이시린은 랫트 같은 작은 몬스터하고도 못 싸우겠네? 문제다… 고수가 그런 작은 몬스터한테 도망이라도 가면…." "아, 하, 하지만…." "됐고… 저리가! 이것들이!" 내가 쥐들을 걷어차서 쫓아버리자 이시린이 내 몸에서 슬쩍 떨어졌다. 그 모습에 세린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흥. 치사하게… 합법적으로 오빠에게 안기겠다는 뜻? 흠. 질 수 없지." 다시 내 팔에 찰싹 달라붙는 세린. 흑. 정말 피곤하네… 그냥 혼자 올 것을… 나는 한숨을 내쉬며 걷기 시작했다. 세린은 내 팔을 껴안고는 따라 걸었고 이시린은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내 뒤를 따라왔다. 위험해… 아아… 고달프구만… "아아…." 낮은 비명을 지르며 내게 안겨오는 이시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시린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걱정마. 저놈들은 순해서 먼저 공격하지는 않으니까." "예…." 이시린은 바닥을 기어다니는 랫트들을 창백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정말… 심하군… 내 팔에 매달려 있는 세린이 불만에 찬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음… 오빠 혹시 이런걸 노리고 이시린을 데리고 온 것은?" "나는 이시린이 쥐를 무서워하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믿을 수 없어요!" "믿어." 나와 세린이 말싸움을 하는 동안 우리는 랫트 무리를 통과했다. 쥐들이 없어지자 이시린은 다시 떨어졌다. 나는 샤프소드를 뽑아들며 주위를 경계했다. 여기부터는 몬스터들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조심해. 지금부터는 좀 위험하니까." "흥. 그래도 안 떨어져요." 이시린이 자신의 검을 뽑아드는 것에 비해 세린은 내 팔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정말… 얘가 이러는 이유가 뭐야?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카라락… 이상한 울음소리. 흠… 첫 번째는 구울? 좀비? "으에… 구울?" 난색을 표하는 세린과 검을 들어올리는 이시린.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세린을 떼어내었다. 이번에는 세린도 별말 없이 떨어져서 단검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보통 구울은 아니고… 하드 구울(Hard Ghoul)? 그쯤 되는 것 같은데…." 보통 구울 보다 거무튀튀한 색을 자랑하는 모습. 세린과 이시린은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한걸? 구울이면 몰라도 하드 구울은… 뭔가 지휘관 급 녀석이… 전에는 그냥 구울이었는데? 그르르륵!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구울. 번쩍거리는 손톱이 끔찍한데… 나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세린, 엄호. 이시린. 내 뒤에서 놓치는 놈들!" 세린이 단검을 던지며 뒤로 물러났고 이시린이 내 뒤에 따라붙었다. 약 10마리 정도… 보통 구울을 잡는 적정 레벨은 160정도… 그럼 이놈들은 높게 잡아 200… 쉽지는 않군… "연환격(連環擊)!" 맨 앞에서 달려드는 두 마리의 구울을 절단한 나는 급히 몸을 틀며 검을 휘둘렀다. 빠르게 다가온 다른 구울의 손톱이 허공을 갈랐다. 위험한데? "플래쉬(Flash=섬광)!" 순식간에 검을 찔러 구울을 쓰러뜨리는 이시린. 역시 빠르네… 속도만은 5계급 수준이야… 나는 이시린의 공격속도에 감탄하며 몸을 띄웠다. "선풍각(仙風脚)!" 구울들을 머리를 걷어차 그대로 터뜨린 나는 바닥에 내려서는 순간 몸을 회전시켰다. "스핀(Spin)!" 빠르게 회전하며 주위의 구울들을 벤 나는 비틀거리는 놈들의 목을 날려버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잠시만 서 있어도 손톱들이 날아오니… 내가 완전히 죽이지 못한 놈들은 이시린과 세린이 간단히 해치우며 내 뒤를 따라왔다. 마지막 구울의 머리를 날려버린 나는 주위의 광경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별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지? 빨리 가자." "아아… 어지러워라…." 머리를 짚으며 내게 몸을 기대는 세린을 몸을 틀어 흘려보낸 나는 휘파람을 불며 동굴을 걷기 시작했다. 뒤에서 세린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비해 내 옆에서 묵묵히 걸어가는 이시린. 정말로 둘이 반반 섞이면 딱 좋을 텐데… 흠… 생각을 해보자… 하드 구울 정도 되는 몬스터를 조종하고… 이런 미궁이라고 부를 만한 동굴을 지키는… 구울을 조종하는 것으로 봐서는… 마물… 그보다는 마족에 더 가까울까? 하드 구울이 엄청 강한 몬스터는 아니니까… 하급 마족까지는 아닐텐데… 그럼 최하급 마족 중에? 최하급 중에 이런 미궁을 지키는 놈이 있을 리가… "오빠." 세린이 긴장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흐음? 나는 생각을 멈추며 앞쪽을 바라보았다. 해골? 스켈레톤… 워리어… 그리 강한 놈들은 아닌데… 저건… 스켈레톤 워 치프? 직역-뼈다귀 전투 지휘관… 뼈다귀 장군들이 없는 것이 다행이군. 스켈레톤 워리어들이 한 20 놈. 워 치프가 5 놈… 나는 샤프소드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OPG에서 손톱들을 꺼낸 나는 세린과 이시린의 앞을 막아섰다. "흠… 만만한 놈들이 아닌데… 전에 왔을 때는 여기를 통과하면 마지막이었어. 마지막 벽에 이상한 문자들이 있어서 무슨 아이템이 있을 줄 알고 온 거니까… 여기서 한 100m만 가면 된다. 중간에는 끽해야 랫트니까 계속 뛰어. 혹시 좀비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고. 그리고 문양을 건들면 몬스터가 튀어나오니 건들지 마라. 여기는 내가 다 죽이고 가지. 길을 뚫는 순간 뛰어라." "웅… 알았어요." "랫트…."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하는 세린과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이시린. 나는 이시린의 머리를 토닥여 준 다음 뼈다귀들에게 달려들며 양손을 내뻗었다. "다크 캐논(Dark Canon)!" 내 손에서 날아간 검은빛의, 엄청난 두께의 빛줄기는 동굴의 한 쪽 벽에 붙어있는 스켈레톤들을 뚫고 지나갔다. 벽의 바로 옆이 비워지자 나는 손을 거두며 살아남은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음… 이 기술은 멋있고 강하긴 한데… 마나의 소비가 좀 심하단 말야… "저기로 뛰어!" 내 외침에 비어진 곳을 세린과 이시린이 통과해 달리기 시작했다. 스켈레톤들이 막으려 했지만 내 공격에 다시 방향을 바꿔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좋아. 세린의 단검이나 속도위주인 이시린의 검은 뼈다귀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으니… 어차피 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중간에도 좀비나 좀 나오고… 이시린과 세린이면 충분히 통과다. 마지막에 문양들을 건들지만 않으면… 문양을 건들고 겪었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린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OPG를 휘둘렀다. "랫트…." 이시린이 바닥을 기어다니는 개 정도의 크기의 쥐들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함께 달리고 있던 세린이 이시린의 어깨를 '탁' 하고 쳤다. "정신 차려! 얼마 있지도 않구만. 무시하고 뛰어." 세린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이시린은 이를 악물고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몸놀림이 중요한 도둑인 세린에게 뒤지지 않는 속도였다. "오빠는 괜찮겠지?" 세린은 스켈레톤들과 싸우고 있을 한을 떠올렸다. 스켈레톤 제너럴들은 없지만 워 치프도 레벨 200은 되야 싸울 만한 놈이다. 거기에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속도가 상당한 스켈레톤 워리어가 20마리… "에이… 다크소드가 설마…." 한의 닉네임(?)을 떠올린 세린은 미소를 지으며 이시린과 보조를 맞추어 계속 달리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랫트 이외에 다른 몬스터는 없었다. 뭔가가 이상함을 느낀 세린은 이시린에게 의견을 묻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저기, 이시…." 이시린의 얼굴을 바라본 세린은 두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랫트들 덕분에 이시린은 지금 정상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세린은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별다른 함정도 보이지 않는 그저 평범한 동굴… 세린은 좋게 생각하기로 하며 계속 달렸다. "후… 몬스터가 없네?" 랫트들이 사라지자 정신을 수습한 이시린이 세린에게 물어왔다. 세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가리켰다. "다 왔나보네? 오빠 말대로 저기 이상한 문양들이…." 막다른 동굴의 끝에 이상한 문자? 문양? 그런 것들이 그려져 있었다. 한의 말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약간 넓어져 둥그런 공간을 형성한 마지막 장소를 둘러보던 둘은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아무 것도 없는데…." "이런 시시한 던젼에 뭐 하러 우리를… 아, 저 문양을 만져 볼까?" 세린의 말에 이시린이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한 오빠의 말 못들었어? 몬스터들이 나온다잖아. 가만히 있어. 좀 오빠 말 좀 듣는 게 어때?" "흥. 너도 오빠를 좋아한다 그거야?" "무, 무슨…." 당황하는 이시린은 노려보던 세린은 콧방귀를 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딱딱한 얼굴로는 무릴 걸? 애인도 있다는데… 나도 그렇고…." "………." 세린과 이시린이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 갑자기 문양의 앞에 위치한 바닥이 조금씩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 기척을 느낀 세린과 이시린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스르륵. 몸에 칭칭 감긴 붕대의 끝자락을 끌며 사람의 형체를 한 몬스터가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긴장한 눈으로 바라보던 이시린이 검을 뽑아들며 중얼거렸다. "미라? 갑자기 왜…." "난 아니야."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부인하는 세린. 이시린은 한숨을 내쉬며 검을 들어 완전히 몸을 일으킨 미라를 바라보았다 그때… 우스스… 후드득… 몸에서 흙들을 떨구며 바닥에서 솟아나는 10여 구의 좀비들. 세린과 이시린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사이 좀비들이 둘을 포위하듯 둥글게 대열을 맞추고 섰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는 좀비들. 그때 그 미라가 손을 들어올리자 좀비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 이시린. 미라가 좀비들을 조종한다는 얘기… 들은 적 있어?" 고개를 젓는 이시린. 세린은 의아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는 미라를 바라보다가 생각을 접었다. 지금은 달려드는 좀비들을 처리해야 한다. 이시린이 한 방향으로 달려들었고 세린이 이시린의 뒤에 따라붙으며 단검을 날리기 시작했다. "크윽! 연타(連打)!" 퍼퍼퍼퍼퍼퍽! 우스스… 허물어지는 스켈레톤 워 치프를 무심한 얼굴로 바라보던 나는 어깨를 움켜쥐었다. 마지막에 어깨에 당한 일격이 상당히 강했다. 그리고 여러 곳에 있는 자잘한 상처들… 나는 한숨을 쉬며 OPG의 손톱을 집어넣었다. "조금 시간이… 빨리 가야지… 세린의 성격에 문양을 만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나는 동굴을 따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퀵 스텝. 상당히 빠른 속력을 내주게 해주는 기술. 나는 나를 스쳐지나가는 랫트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시린이 고생 좀 했겠군. 그래도 무사히 지나간 모양이지?" 쥐를 무서워한다… 하아… 어머니도… 헉!? 뭔 생각을? 나는 고개를 휘저으며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슨 전투의 흔적이 하나도 없잖아? 전에는 이 길에 좀비들이 조금 있었는데? 그리고 문양에 도달해서 문양을 만지면 꽤 강한 놈들이 나왔었고. "혹시…." 문양을 만질 수 있는 곳, 그곳에 이 길에 있어야 될 놈들이 몰려있는 거 아냐? 잠깐… 그렇게 본다면… 하드 구울이나 스켈레톤 워 치프… 아무리 봐도 저런 놈들은 지휘관이나 조종자가 있어야… 이런 동굴에 자연적으로 서식할 몬스터는 아니지? 섀도우 월드는 사실성을 강조하는… 그렇다면… 이 동굴의 끝에… 이 놈들의 지휘관 급… 자, 잠깐… 그럼 여러 좀비들에… 레벨 200짜리들을 조종하는 몬스터면… 5계급은… 적어도 리자드 마스터 급 몬스터… "실수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최대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세린과 이시린이 위험할 수도… 너무 생각이 짧았어…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나는 저 멀리 약간 넓어지는 장소를 발견하고는 급히 몸을 날렸다. 스르르륵… 허공을 나는 붕대… 붕대? 미라… 퍽! 그 붕대는 바닥에 박혔다. 그 붕대에 팔을 베이며 신음을 흘리는 이시린… 다행이다. 아직 죽지는… "오… 오빠?" 나는 세린의 목소리에 급히 옆을 돌아보았다. 큰 상처는 없지만 충격을 받은 듯 힘없이 쓰러져 있는 세린. 그 주위에는 좀비들이 쓰러져 있었다. 나는 급히 세린에게 다가가 안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괜찮아?" "응…." 큰 상처는 없는데… 저 미라에게 얻어맞기라도 했나? "저 미라한테 얻어맞아서… 강하더라… 좀비들은 나하고 이시린이 다 쓰러뜨렸는데… 저 미라는…." 미라가? 미라는… 기껏해야 3, 4계급 몬스터… 그리고 이런 곳에 있을 이유가 없는… 그러고 보니 이시린이 상당히 고전하고 있었다. 가끔씩 공격을 성공하고는 있었지만 상처가 꽤 많았다. "이시린이 고전을? 왜 미라 따위에게…." "그게… 엄청강해… 리자드 마스터 보다… 거기다 저놈이 이 좀비들을 조종하던데…." 좀비들을? 그럼 저 놈이 이 동굴을 관리하는 놈인가? 미라가 이런 동굴을 관리할 수 있을 리가… 자, 잠깐? 미라의 모습… 미궁 격의 동굴… 설마… 마미(Mummy)? *마미(Mummy) : 붕대에 둘둘감겨져 있는 미이라의 모습을 한 언데드입니다. 묘지와 미궁의 수호자가 되어 있는 일이 있습니다. 자신을 쓰러뜨린 상대에게 저주를 걸어, 생명력과 정신력을 빼앗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몬스터입니다. "위, 위험해!" "예?" 나는 세린을 앉혀 주고는 급히 몸을 날렸다. 젠장! 막아야 돼! 저놈은 죽이지 않으면 스스로 소멸되면서… "플래쉬!" 이시린이 빠른 속도로 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간단하게 피하는 마미… 그 순간 마미의 붕대가 풀리면서 이시린의 몸을 묶었다. "윽! 뭐, 뭐…." 느, 늦었다… "이시린! 도망가! 강!" "아? 오빠?" 이시린이 내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마미가 어두운 기운을 흘리더니 그대로 소멸되었다. 내가 쏘아보낸 마나덩어리는 허공을 지나갔다. 그리고 마미에게서 솟아 나온 그 어두운 기운이 작게 뭉쳐지더니 이시린에게 날아가 스며들었다. 붕대에 감겨 있던 이시린은 피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아… 아아악!"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이시린. 그리고 순간 붕대들도 사라졌다. 크윽… 마미는… 빨리 죽이지 않으면 저런 식으로 저주를… "이시린, 괜찮아?" 나는 이시린을 안아들며 몸을 흔들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는데… 얼굴이 하얀 것이… "오, 오빠. 이시린이 왜…." 어느새 다가온 세린이 놀란 목소리로 물어왔다. "저주… 빌어먹을! 이시린. 어디가 아파?" 내 질문에 부들부들 떨고 있던 이시린이 힘겹게 자신의 복부를 가리켰다. 복부? 그렇다면… 기생 저주? 그럼 살릴 수도 있다. 나는 급히 이시린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이시린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지만 반항을 하지 못했다. 이미 힘이 빠진 모양인데… "오, 오빠! 무슨 짓이야!?" 급히 나를 만류하는 세린. 나는 계속 옷을 벗기며 입을 열었다. "살릴 방법이 있어. 그러려면 옷을 벗기던지 해야되고. 알았으면 찌그러져." "그래도 여자 옷을 벗기는건… 차라리 죽으라고 해! 어차피 게임이니까…." "나는 죽는 게 더 싫어! 게임이라도 남이 죽는 건 싫다고!" 나는 살기까지 섞어서 외쳤고 세린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바닥에 주저앉고는 이시린의 안색을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바지와 속옷을 제외한 옷을 모두 벗긴 후 복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배꼽 위가 약간 검게 변해 있었다. 여긴가? 나는 품속에서 최상급의 단검을 꺼내들었다. 내가 갑자기 단검을 꺼내들자 세린이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오, 오빠, 그게 무슨…?" "이시린. 아파도 참아라. 아, 이미 감각이 없어졌을…." 나는 말을 하다말고 단검으로 그 검은 부위를 가르기 시작했다. 그 확실히 감각이 사라졌는지 이시린은 비명을 지르거나 하는 대신 약간 인상을 찡그렸다. 한 5cm만 가르긴 했지만… 그래도 좀 아프기는 한 모양인데… 키이이… 뭔가 검은 덩어리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놈이군… 역시 기생저주. 이게 걸릴 확률이 40%였지? 나는 조심스레 단검으로 그 놈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키이이이… 꿈틀거리며 반항을 시작하는 기생체. 차라리 죽여서 도려낼까? 나는 마나를 주입해 놈을 조용히 시킨 후 단검으로 도려내기 시작했다. 조용해 진 것을 보니 죽었나 보네… 내가 이시린의 배를 가르고 이상한 검은 것을 꺼내자 세린이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시린도 눈을 감고 있었다. 역시 여자들이 보기에는 끔찍하지… 나는 완전히 꺼낸 검은 물질을 노려보았다. 이게… 키이이! 갑자기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기생체. 그 놈은 내 얼굴로 튀어 올랐다. "오, 오빠!" 세린의 비명소리. 나는 급히 머리를 돌리며 단검으로 그 기생체를 반으로 갈랐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기생체는 조금 꿈틀거리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으드득…." 나는 이를 갈고는 그놈을 밟아 짓이겼다. 물컹거리는 것이 기분이 나쁜데… 나는 인상을 찡그리고는 쓰러져 있는 이시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흠… 얼굴이 더 찡그려 지는 것이… 감각이 돌아오나 보지? 다행이다… "휴우… 다행이네…." "괜찮은 거야?" 내 중얼거림에 세린이 내게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붕대를 꺼내서 가른 상처를 둘러매기 시작했다. 상처를 서로 붙게 하고… 한번만 감아 포션이 스며들 정도로 만든 나는 포션을 부어주고는 붕대를 칭칭감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심. "됐다. 히유… 미안하다. 설마 저런 놈이 새로 생겼을 줄은… 괜찮아?" "괜찮긴요!" 내 말에 세린이 꽥 소리를 질렀다. 나는 깨끗이 무시하며 이시린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시린. 나는 미소를 지어주고는 바닥에 주저앉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흐아…." "빨리 옷이나 입혀요!" 날카롭게 소리치는 세린. 나는 눈썹을 들어올리며 대답했다. "내가? 아까는 위급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아닌데? 뭐, 굳이 나보고 입히라고 한다면야 사양은 하지 않겠지만…." 내 말에 입을 삐죽 내민 세린은 이시린에게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후우… 이번에도 이 던젼 깨기는 틀렸군. 다음에는 레도르하고 시드형을 끌고 와야지… 나는 세린이 이시린의 옷을 입혀주는 것을 흘낏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으으… 내 실수야… 내가 속으로 자책하고 있는데 갑자기 작은 창이 눈앞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귓말? 아, 아닌데… 길드… <형! 레도른데 일났어! 빨리 와!> 길드 창… 레도르? 무슨 일이지? <뭔 일?> <웬놈이 유미를 잡아다가 협박을 하는데… 나하고 비슷한 정도의 고수야! 형을 불러오라고 난리야. 빨리! 지금 남문 밖의 숲에 있는데… 길에서 반쯤 오다가 오른쪽으로 오면 대충 맞을 거야. 빨리!> <날? 알았어.> 나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세린은 이시린의 겉옷을 모두 입히고는 갑옷을 입혀주려 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나는 이시린을 안아들고는 품속에서 리콜 스크롤들을 꺼냈다. "어? 왜 그래? 방금 길드 창에 뜬거 때문에? 뭐였는데?" 옷을 입히느라 읽지 않았는지 세린이 의아한 어조로 물어왔다. 나는 리콜 스크롤을 하나 건네주고는 나는 두 장을 잡았다. 아무래도 이시린이 이걸 찢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나는 축 늘어져 있는 이시린을 품에 안으며 리콜 스크롤을 찢기 시작했다. "유미가 죽을 지경이래. 빨리." "유미가?" 세린이 놀란 얼굴로 급히 스크롤을 찢었다. 곧 환한 빛에 휩싸이며 나와 이시린이 먼저 갈바린으로 텔레포트 되었다. 무슨 일일까… 유미를 인질로 잡고 나를 찾는다고? 난 특별히 원한 진 적이 없는데… 누구지? 모르겠군… 나는 만나면 알아보기로 하고 생각을 접었다. 내 눈앞에 나타나는 갈바린 시의 중앙 광장. 걸어가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흠칫 몸을 떨었다. 쳇. 그러고 보니 다크소드의 복장… 거기에 여자까지 안고 있으니… 뭐라고 소문이 퍼질지 무섭구만… "오빠!" 뒤따라온 세린이 내게 달려왔다. "가자. 남문의 숲이래." 내가 바로 달려가려 하자. 세린이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시린은? 여관에…." "시간 없어. 네가 안고 갈 수 있겠어?" 도둑이라 힘이 딸리는 세린이 이시린을 안기는 힘들 것이다. 거기에 그런 꼴로 가면 도둑들이 들러붙거나 좋지 못한 무리들이… 세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시린은 추슬러 품속에 꼭 안고는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했다. 곧 세린의 옆에 따라붙은 나는 작게 속삭였다. "남쪽 숲. 중간 쯤 오다가 오른쪽. 먼저 간다." 남쪽 숲은 몬스터가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세린 혼자서도 올 수 있다. 나는 최대한으로 속도를 높이며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애써 무시하며 계속 달렸다. "으… 음…." 좀 괜찮아 진 듯 이시린이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흠… 이제 죽을 걱정은 저리 갔군. 곧 남문이 나타났고 나는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NPC 경비병들을 무시하며 그대로 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뒤에서 달려오는 세린이 알아서 설명을 해주겠지. "중간쯤이라고 했나?"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숲의 길을 벗어나 나무들 사이로 달려들려갔다. 중간에서 오른쪽이면… 이 방향으로 계속 달려가면 된다. 나뭇가지들이 무서운 속도로 내게 다가왔지만 식스센스가 엄청나게 높아진 나는 쉽게 피하며 계속 달렸다. 파사삭! 나무들을 헤치고 나가는데 갑자기 여러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레도르… 제대로 왔네? "형!" "왔군…." 반가운 목소리로 외치는 레도르와 안도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시드 형. 모여 있는 사람들은 레도르에 시드 형. 레아. 그리고 웬 검은 갑옷을 입고 있는 검사로 보이는 남자에게 붙잡혀 있는 유미였다. 나처럼 검네? 망토가 아니고 갑옷이 검은 것이 다르지만… "저 놈이야?" "예. 그런데… 이시린은 왜…." 레도르가 내 품에 안겨 있는 이시린을 보며 의아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던젼에서 일이 좀 있었거든. 레아. 치료 좀 해줘." 레아가 급히 다가와서는 이시린을 받아들고는 바닥에 눕혔다. 이제 됐고… 저놈이… "저놈이 날 찾았다고?" 내 질문에 레도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하는 놈이지? 본 적 없는데? 유미에게 검을 들이대고 있는 놈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나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뭐지?" 내가 자신에게 다가오며 질문을 던지자 그 까만 검사는 잠시 날 바라보다가 유미를 놓아주었다. 호? 유미는 곧장 레도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인질은 놔준다… 실력은 레도르와 비슷… 그런 놈이… "흑, 으아아앙!" ……역시 애야. 18살이나 먹었다는 것이 신기하다니까… 하긴… 여자가 겪기에는 힘든 일인가? 나는 울음을 터뜨리는 유미와 달래는 레도르와 시드의 목소리를 들으며 까만 검사에게 다가갔다. 흠… 가까이서 보니까… 역시 모두 검은 색 일관인데? 옷에서 갑옷, 검, 장갑에서 부츠, 거기에 머리카락에 눈동자 색까지… 나는 등에 매고 있던 마나르트를 끄집어 내렸다. "한번 붙어 보자고 온 건가? 전에도 그런 놈이 몇 놈 있었는데… 그럼 정식으로 상대해 주지." 나는 마나르트의 천을 벗기고는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까만 검사가 입을 열었다.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엥? 존댓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싸우러 온 것이 아닌가? "뭐지?" "스프리스 길드를 무너뜨렸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스프리스?" 스프리스라… 아, 기억났다! 전에 내게 덤볐던 메르칸 길드하고 비슷한 크기의 길드였는데? 길드장 하나만 랭커고 나머지는 다 중급 유저. 대부분이 암살자라 암살 청부도 받는다고… 어쨌든 나한테 인사하는 척 하다가 화살을 날린 놈들이 걔들이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길드의 일원인가? 복수?" 나는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졌다. 뒤에서 레도르들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몸의 움직임과 긴장으로 나오는 투기… 나는 까만 검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스프리스 길드에는 저런 강한 놈이… 순간 까만 검사가 보인 행동에 나는 얼이 빠져 눈을 크게 떴다. "부하로 받아주십시오!" "………." 무릎을 꿇으며 내게 외치는 까만 검사. 왠지… 서늘한 바람이 불어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나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 까만 검사를 바라보았다. 부하? 뭔 소리? "부, 부하?" "뭐야?" 어느새 도착했는지 세린의 목소리도 들려왔고 당황한 레도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건 뭐냐? "부하라고? 왜?" 내 질문에 그 까만 검사는 진지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제 여동생이… 그 길드에 의해 암살 당했었습니다. 그 때문에… 복수할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스프리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의 실력과 많은 길드원 때문에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크소드께서 그 길드를 궤멸시켰다는 말을 듣고… 보답도 하고 평소 존경하던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부하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 황당한 친구로군… 나는 고개를 휘휘 젓고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후… 여동생이 당했으면 당한 거지… 복수라… 내가 복수해준 걸로 알고 그 여동생하고 즐겁게 놀지 부하는 무슨… 볼 일 없어." 약간의 짜증이 묻어있는 내 목소리에 까만 검사는 약간 침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 여동생은…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습니다. 원래… 몸에 병이 있고 밖을 돌아다니지 못해서 섀도우 월드를 하고 있던 건데… 그때 충격으로 이 게임도 그만두고 집에서만… 그래서 복수를 다짐하던 거고… 부탁드립니다. 다크소드님을 따라다니고 싶습니다." 미치겠군… 이런 친구가 있을 줄이야… 혹시 정신이 이상하다거나 한 건 아니겠지? 하지만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 동생이 병 때문에 돌아다니지를 못해서 이 게임을 하다가 암살 당하고 충격으로 게임을 접고 두문불출한다. 그래서 복수를 하려는데 쉽지 않았고 복수를 대신 해준 격인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존경을 담아 부하가 되겠다. 흠… 하긴 섀도우 월드가 일부 병든 사람들에게는 생활을 즐기게 해주는 매개체로도 쓰인다고 하더니… "일 없다니까. 부하는 무슨… 어차피 당신도 현실에서 할 일도 있을 텐데? 그럼 날 따라다니기도 힘들 테니 그만 가라고." "저도 병이 있어 집에서만 생활합니다." ……미치고 팔짝 뛰겠구만… " 때문에 이 세상은 저에게 현실이나 다름없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부하로 삼아주십시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면 할 말이… 있나? 흠… 평소에 책을 좀 읽었으면 이런 상황에 할 만한 멋진 말을 알고 있을 수 있을 텐데… 나는 뭐라고 할 말을 생각나지 않아 침묵을 지켰다. 그런 나의 행동에 그 까만 검사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부탁입니다." "……후… 동료." "예?" "동료로 같이 다니죠. 솔직히 당신을 아직 믿지도 못하겠으니… 그냥 동료로 따라다녀요. 언제 당신네 집에나 초대하던지. 뭔가 신뢰하기가 힘드니… 우선은 동료로 따라다녀요." "감사합니다!" ………. 뭔가… 정상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어쨌든… 느낌상으로는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 까만 검사를 일으켰다. 흠… 뭐하는 사람이지? "이름이?" "최태경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캐릭터 이름이…." "아, '칼'입니다." 칼이라… 나는 친구 등록을 실행시켜 보았다. 진짜네? 나는 친구 등록을 해 놓고는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음? 특별 이용자. 정말이네? 특별 이용자는 몸이 불편한, 이 사람이 말한 대로 그런 사람들이… 흠… 직업 검사에… 레벨은 262… 랭커. 흠… "미안하지만 아직 내 아이디는 알려주지 못하겠네요. 대신 저기, 레도르 네 길드에 가입하면 길드 창으로 연락을 할 수 있으니… 레도르!" "예?" 레도르가 놀라서 달려왔다. 나는 칼을 가리켰고 레도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칼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흠… 한 10분 가량 얘기를 나누던 레도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악수를 하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가입 됐어요." "땡큐. 흠… 그럼… 에… 어쨌든 레도르가 길드마스터고 당신보다도 고렙이니까… 대우를…." "명령이시라면. 잘 부탁드립니다. 길드 마스터." 나와 레도르는 울 듯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말… 이해를 하기가 힘든 사람이야…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저은 나와 레도르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일행에게 돌아갔다. 칼이 조용히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으음… 왠지 은근히 불안해… 혹시 자객이라거나…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바닥에 누워 있는 이시린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예…."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이시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칼을 돌아보았다. "흠… 칼? 유미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죄송합니다.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아, 아뇨…." 얼떨결에 사과를 받는 유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내 말이라면 다 듣겠다는 것 같은데… 가디언 흉내내나? 사과를 끝낸 칼은 다시 내 뒤에 시립 했다. 왠지 식은땀이 흘러… 식스센스에 위험신호는 오지 않지만… 얼마 전에 새로 알아낸 사실이지만 식스센스는 상대가 나쁜 마음을 먹고 있는지도 대충 파악해 준다. 조금씩 위험 신호 등을 보내 주는 것으로… 하지만 이 사람은… 레도르나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은데? 완전히 신뢰할 판독 방법은 아니지만… "그, 그럼 돌아가자…." 서로서로 황당한 얼굴을 주고받고 있던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갈바린 시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모두 긴장한 얼굴인데… 그렇다고 이시린도 내버려두고 가냐? "아이고… 읏샤." 나는 이시린을 안아들고는 레도르들을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칼은 여전히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기, 기분이 이상해… "죄송해요…." 나지막이 들려오는 이시린의 목소리.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후… 기분이 이상한데… 흐음…." 얼굴을 붉히는 이시린. 이런. 말을 잘못했어. 나는 칼에 대해서…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걸음을 좀 빨리 해 일행에 합류했다. 하지만 곧바로 내 뒤에 따라붙은 칼. 으음… 레도르가 내 품에 안겨 있는 이시린을 보고 '아차'하는 얼굴이었지만 다른 일행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는 얼굴이었다. 으음… 역시 충격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해요. 이런 부탁을 드려서…." "하하. 아니네. 자네야 내 생명의 은인인데 이 정도야… 어차피 나도 수원에 갈 일이 있었으니 걱정 말게. 회사에 일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껄껄 웃으며 차를 운전하시는 초연 씨 아버지. 흠… 알고 보니 그때 구해준 사람이 초연 씨 아버지였다는… 처음 초연 씨 집에 찾아간 다음 한 일주일 뒤에 다시 초대를 받아 가보니… '음? 자네는….' '어? 혹시 전에….' '오오! 자네였나? 초연이와 사귄다는 사람이!?' '아… 그렇… 습니다만….' '결혼도 허락하겠네!' '아, 아빠!?' '어머? 현진 군과 아는 사이? 좋은 젊은이죠? 도련님 말대로 라니까요.' '허허허! 물론! 좋은 젊은이지. 내 생명의 은인인데. 하하하!' 으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역시… 내가 운 하나는 타고난… 아니지… 운이라… 올해 초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놈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쳇. "하하하. 그때 자네가 아니었으면 나도 죽고 우리 회사도 죽었을 거네. 경쟁 기업에서 중요한 프로젝트의 정보를 가져가려는 것이었는데… 하하하. 그때 그 가방을 빼앗겼으면 끝이었지. 자네는 우리 회사의 은인도 된다네." "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많은 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수원이라… 칼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사는 곳이 수원이라고 한다. 그때 만난 바로 그날… 칼이 자기 집으로 와주면 안 되겠냐고 해서… 나야 차도 없으니 어떻게 갈까 고민하는데 마침 우리 집에 찾아오신 아버님이 수원에 사업차 가실 일이 있으시다고… 덕분에 차를 얻어 타고 수원으로 가는 길. "하하하. 자네가 옆에 있으니 든든하구만." 나는 미소를 지었다. 좋은 분이시지… 부부는 닮는다고 하더니 초연 씨 어머님이나 아버님 모두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시다. 정말…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런 느낌일 지도… 나는 미소를 짓고는 안내도를 확인했다. -수원 13구역- "아, 아버님. 여기 같습니다. 이제 내려주셔도…." "아, 그런가? 내가 가야할 곳은 14구역이라… 한 1시간이면 끝날 테니 볼일 마치면 전화하게나. 다시 태워다 줄 테니." "아, 꼭 그러실 것까지는…." "하하하. 아니네. 꼭 전화하게나.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릴 테니."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알았네." 나는 차 문을 닫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버님의 차는 곳 사라졌고 나는 약도를 꺼내 위치를 확인했다. 흠… 여기면… 헉? 주택가? 나는 약도와 길을 대조해 보며 재차 확인했다. 맞는데? 13구역 42번이면… 주택가 지역이잖아? 거기에 32, 최지학… 주택가면… 엄청난 부자… 나는 감탄을 해가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곧 주택가가 시작되었다. 우와… 정말…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돈이 많은 거지? 땅값이 천문학적 가격일 텐데… "흐음…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도 방 하나 만들 땅 사기도 힘드니… 칼, 아니 태경이가 잘 사는 집안 사람인가 보지?" 태경이는 나이가 나와 같은 20살이라고 하는데… 동생인 민경 씨도 같은 20살. 쌍둥이라고 한다. 둘 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라고… 동생인 민경이는 눈이 보이지 않고…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아서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고… 그런데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이 그런 얘기를 그날 처음 만난 나에게 거리낌없이 얘기하는 이유가 뭐지? 자기 말로는 내가 존경스럽다나? 거기다 감사하는 마음이 어쩌고… 내 평판이 그리 좋지 않은 걸로 기억하는데… 생각을 하는 사이 주택가의 꽤 깊숙한 곳에 들어온 나는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32… 32… 내 바로 옆에 있는 집을 보니 21. 좀더 가야되나?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27, 30, 32! "여…기?" 나는 얼빠진 얼굴로 거대한 정원까지 딸린 거대한 주택을 바라보고 섰다. 이, 이런… 엄청난… 나는 입을 쩍 벌리고 서서는 집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최지학… 32… 맞는데? 저, 정말 여기에 산단 말인가? 나는 경악한 눈으로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대문을 바라보았다. 왜, 왠지 들어가기가 무서워… 내가 초인종을 누를지 말지 망설이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헉!? "혹시, 김현진님?" 문을 열고 나온 백발의 중년 남자의 물음. 집사? 대충 그런 복장인데…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시군요. 도련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오시죠." "아, 예." 나는 그 남자에 의해 집안으로 들어갔다. 허억!?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정원과 정원의 한가운데에 나 있는 연못. 그리고 많은 나무들과 그 아래에 놓인 하얀 나무 의자… 저 뒤는… 산책로? 거기에 집은… 크다… 나는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집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렸다. "들어오시죠." 집의 문을 연 집사가 나를 안내했다.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간 나는 깔끔하고 조용한 집안의 분위기에 또한번 감탄했다. 몇 명의 하녀들이 보였는데… 정말 소리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으음… 저게 메이드? 역시 프로(?)라는 말? 집사는 나를 집 깊숙한 곳으로 안내하더니 한 방문 앞에 섰다. 여기? "도련님. 현진님이 오셨습니다만." "예.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게임에서 듣던 것과 비슷하지만 좀 가느다란 날카로운 목소리… 칼의 목소리… 집사는 문을 열고는 나를 들여보냈다. 상당히 큰방이었지만 역시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 나는 감탄한 얼굴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내가 방안으로 들어가자 집사는 밖에서 문을 닫았다. 흠… "아… 칼?" 나는 컴퓨터 앞 휠체어에 앉아있는 내 또래의 남자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확실하군. 게임과 별 차이가 없어. 약간 날카로운 저 눈빛… 다만… 몸이 훨씬 약해 보이는데… "아, 한님. 정말로 오셨군요. 그런데 게임하고 똑같으시네요?" "하하? 님은 빼라니까. 그리고 김현진이다. 게임에서는 몰라도 현실에서는 그냥 친구로…." "하지만…." 칼은 게임에서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보다는 좀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게임에서보다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고 할까… 나는 약간 침울한 얼굴로 방을 둘러보다가 방의 중앙에 있는 탁자를 발견하고는 의자 하나를 꺼내서 앉았다. "흠… 뭐하냐? 아, 이렇게 편하게 대해도 될까? 신분이 장난이 아닌 모양인데?" 내 말에 태경이는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그런데… 정말 게임하고 똑같은데…." "그래? 음… 그런데… 어디가 안 좋은 거야?" 내 조심스러운 질문에 휠체어를 탁자까지 움직인 태경이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리… 걷지를 못해요. 거기다 몸도 약하고… 그래서 게임에서 생활하는 것이 더 좋은데… 민경이도… 아, 민경이 보러가실래요? 아마 지금쯤 정아 누나하고 산책을 하고 있을 텐데… 민경이는… 저와 비슷한 몸에 눈도 보이지 않거든요. 민경이는 현진님… 아, 아니… 음… 현진? 현진의 팬이거든요. 전에 홈페이지에 올라온 동영상을 하나 보더니… 아, 게임 속에서요. 그리고… 혹시 다시 게임을 하도록 말해주시면…." 나하고 나이도 같은데 저렇게 존대를 하는 거지? 게임에서 내 부하를 자청하고 있다지만…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쁠 것 없지. 민경이도 4계급은 된다던데… 내가 몸을 일으키자 태경이는 미소를 짓고는 휠체어를 움직여 내 옆으로 다가왔다. 와… 마우스 움직이듯이 손만 움직이는데 움직이네? 저런 휠체어를 타본 적이 없으니…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태경이는 나를 집의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안내했다. "산책로는 뒷문에 있어서… 저기 어디 있을 텐데… 아, 누나!" 계단조차 간단하게 내려가는 휠체어를 신기하다는 얼굴로 보고 있던 나는 태경이가 누군가를 부르자 고개를 들었다. 나무들 사이에 어떤 여자 하나가 서 있었는데… 20대 후반? 그리고 그 여자의 앞에는 태경이와 같은 휠체어를 타고 있는 소녀하나가 있었다. 태경이하고 같은 나이라고 하더니… 태경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데? "아, 태경아. 손님?" "예. 에… 우리를 보살펴주시는 누나. 정아 누나에요." "김현진입니다." "예… 신정아 랍니다. 민경이를 보러 온 거야? 민경아." 휠체어에 앉아있던 소녀가 우리가 서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몸이 정말 약해 보이는데… 거기다 눈이… 멍한 느낌이… 아마 소리로 우리가 있는 곳을 알아낸 모양이지? "오빠? 무슨 일…." 정말 가느다란 목소리다. 흐음… 왠지 스프리스 길드에 대한 적개심이 무럭무럭 솟아나는구나… 지금은 없어지고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운데… "민경아. 다크소드. 그 사람이 왔다. 네 복수도 해줬어." 태경이의 말에 민경이는 눈을 몇 번 깜빡거리더니 손을 내뻗었다. 뭐지? 그때 정아라는 누님이 내 손을 잡더니 민경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 눈이 안보이니까 이런 식으로… "다크소드? 정말로요?" "하? 정말이긴 한데… 너하고 같은 나이거든. 태경이도 그렇고 왜 나한테 존대를 하는 건지… 흠… 안녕? 김현진이라고 해. 섀도우 월드에서는 다크소드라고 불리는데…." "겉모습도 똑같아." 옆에서 끼어 드는 태경이. 그때 갑자기 민경이가 내 얼굴을 더듬기 시작했다. 어라? 내가 당황하는 얼굴이자 정아 누나가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있으라는 듯한 손짓을 해 보였다. 흐음? "정말이네… 비슷한 것 같아… 그런데 목소리가 너무 순해요…." 이렇게 손으로 더듬으면 아는 건가? 그런데 뭔가 의심하는 듯한 목소린데… 나는 피식 웃고는 손을 슬쩍 빼고는 머리들을 앞으로 넘겼다. 눈이 보이지는 않겠지만 이런 분위기가 되면 싸늘한 목소리가 더 잘 나오더라고… 정아 누나가 몸을 흠칫 떠는 것이… 그에 비해 태경이는 신기해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닥치고 꺼져라…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어때? 똑같지?" 예의 그 기분 더러울 때의 목소리를 들려주자 민경이가 눈을 몇 번 깜박였다. 그러더니 미소를 짓는 것이… 귀엽네? 나하고 나이가 같은 여자에게 이런 느낌이라니. 마치 어린 동생을 보는 듯한… "정말이네… 정말로 보고 싶었는데…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침울한 목소리고 중얼거리는 민경이…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다시 섀도우 월드를 하는 건 어때? 태경이가 나하고 같이 다녀. 원하면 우리 길드에도 들어올 수도 있고… 모두 좋은 사람들만 있는걸. 다시 한번 해봐." 내 말에 태경이가 긴장한 얼굴로 민경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민경이는 얼굴을 조금 찡그리며 생각을 좀 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무서워요. 우리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갑자기 암살자들이 찾아오고… 무서워서…." "그래… 음… 내가 지켜주면? 우리 길드원들은… 음… 숫자가 좀 적기는 해도 모두 강하다고. 다시는 죽지 않도록 지켜줄게. 어때?" "………." 입을 다물고 있는 민경.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생각해봐. 다시 할 생각이 나면 태경이에게 얘기해서 우리 길드로 오고. 흠…."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태경이를 바라보았다. 역시 약간 실망한 얼굴로 나를 마주보는 태경. 우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민경이의 뒤에 서 있는 정아 누님도 좀 안타깝다는 얼굴이었다. "저기…." "응?" 갑자기 입을 여는 민경이. 뭐지?" "저… 제 부탁하나 들어주시면 안돼요?" 부탁? 이런 갑부 집 딸이 나한테 부탁을 하니? "뭔데?" 민경이는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입을 열었다. "저… 제 또래의 친구들을 몇 명 소개 시켜주면 안될까요? 너무 심심해서… 친구가 한 명도 없거든요…." 씁쓸한 미소를 짓는 태경과 정아. 어어? 이거 들어줘도 되는 건가? 가능하기는 한데… 나는 고개를 돌려 태경이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태경. 흠… "좋아. 몇 명이고 소개시켜 줄게. 흠… 우선은 한두 명만… 며칠 뒤에 여기로 데리고 오면…." 내가 말을 하다말고 자신의 눈치를 보자 태경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가 보지? 민경이도 미소를 짓고 있는데… 좋게 끝난 건가? 누가 좋을까… 오늘 초연 씨나 만나러 가서 언제 같이 올까? 아… 그러고 보니 제시가… 언제 둘하고 같이 오면… "벌써 가게요?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정말 저 존대는 어떻게 할 수가 없구만… 저 집사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것을 좀 보렴. 부담스러워… "미안. 일행이 한시간이면 일이 끝나서 시간을 맞추느냐고. 음… 오늘밤에는 접속할텐데… 너도 들어올 수 있으면 들어와. 음… 난 간다." "잘 가요…." "잘 가세요." 아쉬운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태경과 미경. 나는 집사의 배웅을 받으며 대문을 나섰다. "저…." "예?" 나를 불러 세우는 집사. 나는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뭡니까? 혹시 저 둘이 존댓말 쓴다고 뭐라 그려려는 것은… "자주 들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현진님이 계시니 도련님과 아가씨가 즐거워 보이시는군요. 평소에는 조용히 방에만 들어가 계시는 분인데… 부탁드립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집사님. 어어… "아, 무, 물론이죠. 새로 생긴 친군데… 자주 오겠습니다. 어차피 게임 속에서 자주 만나기도 하는데… 집으로 오라면… 되는 대로 자주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는 집사. 으음… 당황스럽다… 나는 화려한 주택가를 빠져 나오는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흠… 확실히 좋은 애들인데… 뒤에서 칼(?)맞을(칼은 항상 내 뒤에 붙어다닌다.) 걱정은 덜었군. 흠… 그런데 부하라니… 하필이면… "아, 왔나?" 내 전화를 받고 기다리고 계시던 아버님이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네신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차의 앞좌석에 앉았다. "잘 끝났나 보지?" "예… 아, 아버님. 초연 씨 집에 있나요?" 내 질문에 아버님은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껄걸 웃으시며 대답 하셨다. "물론 있지. 만나고 가려나? 나도 집으로 가는 길이니 저녁이나 먹고 가게나. 하하하."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한 후 몸을 기댔다. 후… 오늘 보면 현실에서는 3일 만인가? 후… 섀도우 월드에서는 한 일주일 정도전에 차를 한번 같이 마셨는데… 그 통나무집에서… 나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창 밖의 풍경으로 눈을 돌렸다. 섀도우 월드와는, 그림자의 땅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 나는 어느 세상이 더 마음에 드는 거지? "아, 현진 씨." "어머? 현진 군도? 이런… 저녁 메뉴를 좀 바꿔야…." 아버님과 함께 들어서는 내 모습을 보며 초연 씨가 다가왔다. 오늘은 일이 없나? 흠…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저 손에 들려있는 두꺼운 서류는… "이런… 날을 잘못 맞춘 모양인데… 바쁜 거 아니에요?" "아, 아뇨. 그리 급한 건 아니라서… 들어오세요." "후… 여보. 어딨소? 초연이는 이 애비한테는 관심이 없나보구려. 허허." 푸념을 늘어놓으시며 부엌으로 걸어가시는 아버님. 나와 초연 씨는 좀 당황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후우… 여기오면 항상 이렇다니까… 처음엔 정말 당황스러웠지… 나는 고개를 좀 젓고는 거실에 주저앉았다. 내 옆에 앉는 초연 씨. "아, 부탁이 있어서 왔는데… 언제 시간 있으세요?" 내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린 초연 씨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무슨…." "아, 새로 사귄 친구가 있는데… 그 녀석 동생이 몸이 안 좋아서 집에서만 생활하거든요. 전에는 섀도우 월드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만두고 집에만 있어서… 혹시 친구를 소개시켜 줄 수 없냐고 해서요. 언제 만나보시면…." "어머? 괜찮아요. 언제 한번… 그럼 오늘 아빠하고 다녀온 곳이…." 찍찍!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 달려드는 작은 쥐를 붙잡았다. 작은 쥐라고는 해도… 아무리 봐도 크단 말야… 거의 다람쥐 크기니… "연. 제발 달려들지 좀 마라. 정말로 도둑고양이한테 던져준다?" 찌찍. 시끄럽게 떠들며 바둥바둥거리는 하얀 쥐. 햄스터라고 했나? 전에 초연 씨에게 선물한 녀석인데… 이런 쥐가 무지 비싸더구만… "후훗. 연은 현진 씨가 맘에 드나봐요. 저보다 현진 씨를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초연 씨의 말에 나는 눈썹을 들어올리며 하얀 쥐, 연을 내 눈앞으로 들어올렸다. "야. 네 주인은 저기 예쁜 누나라니까? 내가 아니야. 나는 얼마 보지도 않으면서… 여기서 하루종일 사는 녀석이 주인을 따라야지…." "나중에 둘이 결혼하면 둘 다 보고 살텐데?" "헉!?" "꺄악!" 갑자기 들려온 어머님의 목소리에 충격을 받은 나는 연을 놓치고 말았다. 이런… 그러게 바둥거리지 말라니까… 나는 급히 손을 움직여 떨어지는 연을 낚아챘다. "세이프. 후… 놀랬네…." "엄마!" 빙긋 웃으며 과일을 내려놓는 어머님. 후… 잘못하면 오늘 쥐 한 마리 묻을 뻔했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초연 씨가 건네주는 사과를 받아들었다. "그런데 그 서류는 뭐죠?" 내 질문에 초연 씨는 서류를 들어올리며 뭐라고 말하려다가 뭔가를 깨달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 맞다. 현진 씨. 요새 시간 있으시죠. 이일 한번 해보실래요? 미토스님께 부탁드릴까 하다가…." 흠? 뭐지? "무슨 일인데요?" 내 질문에 초연 씨는 서류 중에 한 장을 내게 건네주었다. 프로필? 웬 사진 하나와 여러 정보들이… 레딕… 섀도우 월드 캐릭터 아냐? "이게…." "악질 PK범이에요. 초보에서 중급의 유저들만 사냥하면서 아이템 같은 것들을 가져가는 사람인데… 5계급의 랭커죠. 현진 씨보다는 약해요. 제가 이 유저를 처리하는 일을 맡게 돼서… 미토스님께 연락을 할까 하다가… 도와주실래요?" 악질 PK범이라… 뭐야 이건. 초보 유저 사냥터를 지키고 있다가 오는 사람들을 무차별 살해? 완전 사이코 아냐? 직업은 검사로 추정? 하지만 특이한 아이템 덕분에 암살자 스킬을 사용하기도 함… 하, 이건 다 뭐냐… 나는 줄줄이 이어지는 악행들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후… "예. 지금 제가 있는 길드의 녀석들도 있으니까… 도와 드릴게요. 흠…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레일에 있다고 하던데… 거기서 동쪽으로 이동중이라고… 잡을 기간은 무제한. 천천히 추격하면서 잡아도 상관은 없지만 빨리 잡을수록 좋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류에 붙어 있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좀 사악해 보이는 놈인데? 나야 공포스러운 분위기지만 이놈은 아주… 훗. 기다려라… 내가 날카로운 눈으로 사진을 노려보자 초연 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흥분하지는 마세요. 위험한 유저니까 조심해야… 그런데 지금 어디에 계세요? 괜찮으면 저도 따라다닐게요. 운영자로 다녀야 하기는 하지만 운영자는 몬스터들의 공격에 타격을 받지 않으니까…." "아, 갈바린 시에… 거기 미켈 여관에 머물고 있는데…." "그럼 오늘밤에… 12시쯤에 만날 수 있을까요?" "예. 그 시간이면 우리 길드 사람들도 다 있을 테니… 이 서류는 가져가도 괜찮을까요?" 초연 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베딕이라… 내 생각은 어느새 기어올라왔는지 내 얼굴에 매달리는 연 덕분에 깨지고 말았다. "후… 아프다 녀석아. 쥐가 사람한테 덤비는 거냐?" 나는 연을 손에 잡으며 배를 간질거렸다. 찍찍거리며 몸을 바둥거리는 것이… 간지러움을 타기는 하는 모양이군. 초연 씨가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위기 좋은 것 같긴 한데… 현진 군. 저녁 먹어요." 우웃! 또 떨어뜨릴 뻔했네… 나는 연을 내려놓으며 초연 씨와 함께 식탁으로 향했다. 역시 진수성찬… 집에서는 거의 인스턴트나 순간 조리 식품이나 먹고사는데… 나는 의자 하나에 앉았다. 아버님 어머님은 정면의 두 자리에 앉아계시고… 그럼 자동적으로 초연 씨는 내 옆에 앉는데… "어머? 그러고 앉아 있으니 정말 부부 같네. 호호." "흠… 현진 군이 직업만 마련하면 바로 식을 올려도…." 두 분이 결혼하는 건 어떠냐고 그러시는 것을 거부하는 최후의 보루가 내 직업이다. 백수. 아직 직업도 없는데 무슨 결혼이냐고 나와 초연 씨가 결사적으로 거부하는 바람에… 왠지 씁쓸하기는 하지만… 두 분이야 돈이 많으니 천천히 얻으라 그러시지만… 도대체 이리 빨리 진행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단 말야… 아는 선배들은 결혼하기 힘들다고 난리를 치더니만… "무, 무슨…." 나는 이미 익숙해져 해탈했지… 나는 얼굴을 붉히며 항의하는 초연 씨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항상 저런 다니까… 내가 올 때마다 저런 말씀들을 하시는데… "오늘은 자고 가나?" 이것도 항상 물어보시는 말 중에 하나… "하하. 아뇨. 초연 씨 일 때문에 섀도우 월드에 들어가야 돼서… 저하고 초연 씨가 할 일이 있거든요." "흠… 할 일?" "예. 게임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녀석을 잡는 건데… 초연 씨 같은 운영자는 공격이 불가능해서 제가 도와주기로 해서… 이런. 여기 해바라기 씨." 나는 내가 앉아있는 의자를 기어오르려 마구 긁어대는 연에게 식탁의 구석에 쌓여 있는 해바라기 씨 몇 개를 놓아주었다. 갉작거리는 소리… "흠… 그러고 전에 신 과장이… 플레이어 중에 그런 범죄자들을 잡는 사람들을 정식으로, 운영자 급으로 임명, 고용하는 것은 어떠냐고 하던데… 오오. 승인해야겠군. 그럼 현진 군 직업도 해결돼는구만. 신 과장의 생각은 쓸만한 것들이 많단 말야. 언제 한번 휴가나 보내 줘야…." "하, 하하…."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해바라기 씨 몇 개를 더 집어들었다. 으음… 그런 직업이라면 나쁘지는 않겠지만… 나는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는 두 분과 빨개진 얼굴로 항의하는 초연 씨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느새 해바라기 씨를 다 해치우고 의자를 기어오르려 하는 연에게 해바라기 씨를 몇 개 더 놓아주었다. 여기 오면 항상 유쾌한 기분이 들어… 나는 미소를 지었다. 미켈 여관의 문 앞에 선 나는 길드 창에 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포석을 깔고… <한이다. 모두 어딨지?> <형? 우리 미켈 여관에… 칼 씨를 빼고는 다 모여 있어. 왜?> <야, 레도르. 전에 나를 밑에 두기가 힘들 댔지?> <그런데?> <그럼 동급으로 올려. 스페셜 길드원? 이상한데… 장로? 내 나이가 있고… 흠… 어쨌든 너하고 동급으로 올려 줘.> <동급? 알았어. 모두 인정하지?> <응.> <싫어할 이유가 없지. 반대할 이유도….> <좋아요.> <상관없습니다.> <그럼… 알았어. 이제 형은 길드 마스터인 나하고 동급. 됐지?> <좋아.> 나는 미소를 짓고는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쪽 구석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있는 레도르 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한 레도르가 손을 흔들었다. "할 일이 있어." "엥?" 일행은 내가 테이블로 다가오자마자 일 타령을 하자 의아한 얼굴이었다. "불법 PK범을 잡는 일이다. 기한은 무기한. 놈의 아이디는 레딕. 5계급의 검사. 하지만 아이템 덕분에 암살자 스킬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하더군. 레도르보다 약간 뛰어난 수준. 오늘 부로 우리 길드원들은 그놈을 뒤쫓는다. 운영자 한명이 우리와 동행. 현재 놈의 소재지는 레일. 거기서 동쪽으로 이동 중. 운영자가 오면 출발한다." "뭐?"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일행들. 나는 깨끗이 무시하며 자리에 앉았다. 세린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PK범? 형이 그런 일을 받아오다니… 어떻게?" "아, 아니 그것보다는… 위험이야 형이 있으니 됐지만… 갑자기 우리는 왜 끌어들여요?" 지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방금 나를 길마의 위치에 세운 건 너희들의 의지였지? 그리고 말야…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에 내가 준 것이 끼어있지 않아?" 몸을 흠칫하는 일행. 나는 사악해 뵈는 미소를 지으며 일행을 둘러보았다. 먼저 레도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좋은 일 같으니까… 나는 인정할게. 하자." "으음… 좋아. 나도 하지." 레도르와 시드 형이 찬성을 하고 나오자 다른 일행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한쪽 팔을 껴안는 세린… "우웅… 나는 무조건 찬성. 그냥 우리 둘이서 가면 어때요?" "하, 하하?" "세한."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많이 들어본 목소린데… 나는 급히 몸을 돌리며 손을 들어올리려 했다. 이이… 좀 떨어지지… "아, 왔어요, 페페? 이분이 그 운영… 세린, 떨어져!" "어머? 그 여자 분은…." 나를 끌어안고 있는 세린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페페. 흐윽? 이런…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세린이라고 저희 길드 동생이죠. 세린! 떨어져! 오해받잖아!" "우웅… 그럼 이 분이 그 애인?" 페페를 바라보며 잠시 얼굴을 찌푸린 세린은 떨어지는 대신 내게 더 안겨왔다. 이, 이게… 페페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구원의 손길이 뻗쳤으니… 레아와 유미가 세린을 잡아떼기 시작했다. "떨어져, 세린! 오빠가 곤란해하잖아!" "어어… 하지만…." "기절시켜 줄까?" "히이…." 결국 떨어져 나가는 세린.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페페에게 의자를 권했다. 페페는 떨떠름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순간 일행들의 시선이 페페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평범하지 않은 외모로군요… 가히 미의 여신을 보는 듯한…." "으음… 현실에서야 모르지만… 저런 얼굴은 만들기도 힘들지… 확실히 한이 세린의 육탄공세를 극복하며 일편단심을 바칠 만한 여성이야." "그렇죠?" "확실히 다크소드라는 위명은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군." 그것과 이게 무슨 상관이야!? 페페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소개를 시작했다. "여기가 제르난 길드 길드장 레도르. 5계급의 랭커죠." "안녕하세요. 레도르입니다. 아… 한 형의 애인?" "예? 아, 예… 반가워요. 운영자 페페에요." 내 애인이라는 사실을 페페가 인정하자 레도르 등의 얼굴이 묘하게 굳어졌다. 왠지 안타깝다는 시선인데… "어라? 왠지 안타깝다는 듯한 그 얼굴들은 뭐지?" 내가 은근히 살기까지 섞어서 질문을 던지자 레도를 등은 얼굴을 굳히고는 다시 페페와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시드입니다. 마법사죠. 4계급입니다." "4계급 신관 레아예요." "정령사 유미에요 안녕하세요…." "검사. 이시린입니다." "흥. 세린이에요." "지미입니다. 4계급 검사죠. 흠… 한가지 물어봐도 괜찮을 까요?" 마지막으로 소개를 하다말고 질문을 던지는 지미. 세린을 보며 얼굴을 찌푸리던 나는 의아한 얼굴로 지미를 돌아보았다. "예? 예, 상관없어요." "아… 혹시 그 얼굴… 현실에서도…." 내가 던진 빵덩어리에 얼굴을 직격 당하고는 말을 멈추는 지미. 저런…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일행의 시선일 느껴졌다. 헛? 얼떨결에… "아, 쏘리. 페페 얼굴은 현실하고 완전히 똑같아. 야, 괜찮냐?" 감탄을 토하는 일행들 가운데 지미가 테이블에 푹 쓰러졌다. 기절했네? 나는 신경을 끄고는 이번 일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쓰러진 지미의 숨이 붙어있는지 확인한 일행은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간단하지. 레딕이라는 놈을 잡으면 끝. 그 동안 페페가 우리와 동행한다. 중간에 빠질 수도 있지만… 그놈을 제압하면 처리는 운영자들이 할거야. 그리고 사례는…." 나는 페페를 바라보았고 페페는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억? 저놈들 표정이… 나는 몽롱하게 변해있는 레도르와 시드를 보며 이를 갈았다. 저놈들이… 레도르 네놈은 이시린 좋아하는 거 아니었냐? <레도르… 이시린이 보고 있다. 찍히면 어쩌려고…>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굳히는 레도르. 나를 경악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이번 일의 보수는… 원래는 세한이 혼자서 하면 보수도 필요 없는 건데… 세한이 제르난 길드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겠다고 해서요… 운영자들과 상의를 했는데 성공 시 길드의 유지비를 없애드리기로 했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원하는 한가지 스킬의 레벨을 2씩 올려드리기로 결정했죠. 그리고 더 원하신다면 약간의 보수를 더 드릴수도 있고요." <레도르-혀, 형. 어떻게….> 나는 다급하게 귓말을 보내는 레도르에게 빙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하지만 내 미소는 이어지는 세린의 말에 사라지고 말았으니… "한 오빠하고 헤어지는 건요?" "으아악! 유미, 입 막아!" "웁웁웁!" "죄, 죄송해요. 얘가 장난이 심해서…." 세린의 입을 막고 어색하게 웃는 레아와 유미. 나와 페페는 서로를 마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휘우… 나는 아직도 굳어있는 레도르에게 말했다. "어이, 길마. 어쩔 거야? 보수는 이 정도면 좋지 않아? 흠… 듣긴 들었어?" "에? 아, 그, 글쎄요?" 당황한 얼굴로 대답하는 레도르. 못 들었나보군… 당황하는 레도르 대신 시드 형이 나서서 제의를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그 정도면 엄청난 거죠. 좋은 일도 하고 보수도 있으면… 야, 정신차려. 왜이래?" 다시 멍하니 모드로 돌아간 레도르를 보며 시드가 혀를 찼다. 너무 충격이었나? 척 보니까 그런 것 같아서 거의 찍은 건데… 나는 세린과 세린을 붙잡고 있는 레아와 유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좋지?" "물론이죠. 벌써 승낙도 했는데… 세린! 가만히 있어!" "이잉… 깨물지 마…." 몸부림치는 세린을 붙잡고 힘들어하는 둘. 나는 한숨을 내쉬며 페페를 돌아보았다.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세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아가씨가 세한을 좋아하나 봐요?" "그, 글쎄요?" 평소와 약간 다른 느낌의 미소를 지으며 물어오는 페페에게 나는 어색한 얼굴로 대답했다. 위, 위험해… 그때 약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님. 저 왔습니다." …… 칼이로군… 나는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온통 검은 색 일관의 까만 검사, 칼이 다가오고 있었다. 접속했네? 그런데 현실과 게임에서의 느낌이 저리 다른 이유가 뭐지? "왔어? 아, 인사해라. 여기… 에, 내 애인… 운영자 페페 씨." 내 소개에 페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잠시 페페를 바라보던 칼이 고개를 거의 직각으로 숙였다. 뭐, 뭐지? "형수님이십니까? 칼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예? 아… 바, 반가워요… 그런데 그렇게 깍듯이 인사할 필요는…." "저는 한님의 부하이니 상관없습니다." "예?" 의아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는 페페. 음… 뭐라고 설명을… 그런데 형수님은… 그냥 동생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이상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부하라고 자청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왠지 예의 그 조폭의 분위기가 드는 건 왜지? "그러지 말라니까… 민경이는?" 걱정이 담긴 내 질문에 칼은 잠시 침울한 얼굴이더니 곧 무표정을 회복하고는 대답했다. "제 동생은 아직… 조금 더 생각을 해본다고 합니다." "그래… 아, 페페 씨가 언제 민경이를 만나본다고 하셨어." 내 말에 칼은 다시 한번 페페에게 고개를 숙였다. 페페가 당황하는 모습이… "감사합니다." "아, 아뇨…." 후… 나는 머리를 휘젓고는 의자를 하나 꺼내 칼을 앉혔다. 칼은 내 옆이 아니면 앉지 않고 내 뒤에 시립 한다. 정말… 이해하기가… 미토스와 비슷한 인간이야… 마나르트가 봤으면 뭐라고 할까? 나는 왠지 씁쓸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칼. 일이 있다. 불법 PK범을 잡는 일인데 다른 사람들은 다 찬성했고… 너는 어쩔래?" 헉!? 나도 모르게 가끔씩 하대가 나온다니까… 하지만 칼은 그걸 더 좋아하는 분위기다. 칼은 고개를 숙이고는 대답했다. "한님이 가신다면 무조건 따라갑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 그래? 고맙다…." 세린과 같은 무조건이지만 이유는 완전히 다른데… 차라리 세린이 나을지도… 나는 레아와 유미에게 잡혀있는 세린을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레일은 여기서 꽤 머니까… 텔레포트 협회를 이용해야되나? 돈이 좀 깨지겠네…." 내 푸념에 페페가 미소를 지으며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을 전해주었다. "이 일을 하는 동안은 협회에서 무료로 텔레포트를 시켜줄 거에요. 물론 저하고 같이 있을 때 얘기지만… 제가 잠시 떨어져 있을 때는 돈을 받을 지도…." "그래요? 어쨌든 지금은 공짜라는 이야기… 후후… 그럼 레일로 가도록 하자. 뭐 챙겨야 할 것 있는 사람은 빨리 짐 챙기고. 레도르. 정신차려." 레도르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아 등 여자들은 세린을 이끌고 방으로 올라갔고 시드 형은 지미를 깨워서 방으로 올라갔다. "아, 형. 제 물건도 좀…." 레도르의 부탁에 시드는 별일이라는 듯이 레도르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올라가고 나와 페페, 칼만이 남게되자 레도르가 나를 바라보았다. 뭐니? <레도르-어떻게 알았어요?> 큭. 이것 때문에 남아있던 건가?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네 행동을 보니 대충 알겠던데… 맞나보지? 솔직히 확신은 없었다고. 그런데… 다른 애들은 몰라도 시드 형은 눈치가 좀 있던데… 왜 아직 들키지 않은 거지? 어때? 내가 도와주랴?" 내가 소리를 내서 말하자 레도르는 당황한 얼굴이더니 칼은 여전히 무표정. 페페는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고는 안도한 얼굴이었다. "아, 아뇨…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리고 전에 얘기를 들었는데…." "뭐?" "아, 아니에요." 나를 바라보며 이상한 얼굴을 하며 중얼거리던 레도르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왜 저래?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페페를 돌아보았다. "그럼 페페는 계속 같이 다니는 건가요?" "아마도… 중간에 몇 번 빠지기는 할 거예요. 하지만 급한 일이 생기면 가봐야 되기도 하고… 우선 지금은 같이 다니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내게 미소를 지어주는 페페를 보며 레도르가 부럽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하던 말을 까먹었나? "아, 이시린." 내가 계단을 향해 손을 흔들자 레도르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큭. 역시 렌하고 비슷한 녀석이야… 나는 빙긋 웃고는 페페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형!" 레도르의 고함소리가… 나는 킬킬 웃고는 미소를 짓고 있는 페페와 계속 얘기를 나누었다. 레도르의 얼굴이 좀 붉어져 있었다. 그런데… 레딕이라… 훗. 운영자들은 전투능력이 없으니… 그 다크 워리어는 몬스터고… 새도우 월드에도 범죄가 있기는 있지… 현실만큼은 아니라도… 레딕이라… 어떤 놈일까? 레벨 100정도의 유저들이 이용하기 알맞은 사냥터… 아르센 초원. 너무 넓어 유저들이 서로 만나기 힘든 곳. 그곳의 일부분에 두 명의 사람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이 자식! 놔 줘!" 어깨에 검이 박혀 무릎을 꿇고 있는 검사가 사납게 외쳤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에는 회색의 검사 하나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검사에게 한 여자 마법사가 안겨 있었다. "뭘 놔주라는 거지?" 비웃는 듯한 회색 검사의 말에 무릎을 꿇고 있던 검사가 이를 갈았다. 그의 마음속에 차오르는 것은 분노였다. 순수한 분노. 모두가 재밌다 했었다. 즐겁다고 했었다. 그 말을 믿었고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이 세계에 들어왔다. 한 동안, 즐거웠고 계속 이어지리라 믿었다. 하지만 오늘. 그 믿음이 깨지고 있었다. "흐음… 살기가 굉장한데… 하지만 그런 살기는 힘이 있을 때나 가지라고. 음… 이 여자 때문인 모양인데…." 촤악! 회색 검사가 자신이 안고 있는 여자의 옷을 찢었다. 그리고 그녀의 속살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다리는 박살이 나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이미 정신을 잃고 있었다. 죽은 것은 아니다. 죽었다면 이미 사라졌을 테니… 자신의 연인의 가슴이 드러나자 그 검사는 부들부들 떨며 회색의 검사를 노려보았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가히 그 회색 검사를 몇 번이고 죽였을 눈빛… 하지만 회색의 검사는 피식 웃고는 검을 휘둘러 여자의 목을 잘랐다. 서서히 희미해져 가는 여자의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허망한 얼굴을 하고 있던 남자의 머리에 단검 하나가 박혔다. 사라져 가는 남자. "후후후… 이 세상은 참 좋단 말야… 이런 짓을 해도 별다른 제약이 없으니… 운영자들은 공격 능력도 없고… 나는 돈을 내고 이용하는 유저다! 이용자라고! 하하하하하하!" 죽음. 게임 오버를 당해가던 그 남자가 찍고 있던 동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그 동영상이 끝나고…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던 레도르 일행은 엄청난 살기에 몸을 떨었다. 그 살기의 출처는 자신의 연인 페페라는 운영자와 함께 걸어가고 있던 한이었다. 레도르 일행은 그가 얻은 다크소드라는 이름이 괜히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어쩌면 부족한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자식… 왜 삭제시키지 않는 겁니까?" 내 목소리가 이상해… 동영상을 보지 않은 레도르 등의 시선이 느껴지는군… 내 질문에 하얗게 질려있던 페페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섀도우 월드의 규약 상… 아이디 삭제는 불가능해요. 버그를 일으킨 캐릭터를 제외하면… 이 레딕이라는 플레이어는… 버그가 아니고… 그저 악질 PK범으로만 걸리는 유저라… 처음의 규약 상 이런 플레이어들은 운영자들이 경고 조치를 하거나 아니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의뢰를 받아 해치우는 것으로 되어있어요. 이런 유저, 플레이어들의 캐릭터는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않죠. 소멸이에요. 이게… 사실성을 최대한 높인다는 회사의 방침이고… 이것 때문에 이런 유저들을 해치우는 사람들을 정식 직원으로 고용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거고…." 이 자식… 레딕이라… 반드시 죽인다… 반드시… 내가 이런 살의를 느낀 건 그때 다크 워리어를 제외하면 이놈이 처음이다… 아니… 더 강한가? 왠지 화가 나… 이 세계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세계다… 이곳을 썩게 만드는 더러운 놈이라 이거지… "하하하… 확실히… 다른 녀석들에겐 보여주지 않은 게 다행이네요… 큭큭… 잘 봤어요… 잘… 빌어먹을!" 내 말에 페페는 물론 다른 일행들까지도 몸을 움찔거렸다. 젠장… 나는 이를 갈며 동영상에 나왔던 그 녀석의 얼굴을 떠올렸다. "잠시 다녀오죠. 여기서 유명한 여관이 플라이라고 했나? 거기에 있어요. 레도르. 인솔해라." 내 말에 레도르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내게서 떨어지고 싶다는 얼굴인데… 나는 살기를 가라앉혔다. 마나르트이 마기에 휩싸여 있는 내 살기는… 엄청나지… 현실에서 이런 다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텐데… 페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잠시 들릴 곳이 있어요. 페페 같은 여자들이 가기에는 별 좋지 않은… 한시간 이내로 플라이로 가죠. 레도르. 준비를 하고 기다려라." 내가 살기를 가라앉히자 한숨을 내쉬던 레도르가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린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별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는 따라가겠습니다." 하긴… 내 부하를 자청하는 분이시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기는 레일 시의 중앙 도로. 내가 가야하는 곳은… 후미진 골목이다. 칼(태경이)이 필요할 일이 있을 지도 모르지… 칼이 내 뒤를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페페가 레도르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헉, 헉. 길마님!" 나무 걸상에 앉아서 단검을 만지작거리던 중년의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저놈? 단검을 걸상 위에 꽂은 도둑, 암살 길드의 길드마스터가 자신에게 말을 건 사내를 돌아보았다. "뭐야?" 길마의 말에 나를 인도해 달려들어간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두운 방. 나는 문을 열고 어둠속에 숨어있었기에 길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검은 복장의 칼만을 잠시 노려보았을 뿐. "다, 다크소드. 다크소드님이…." 사내의 말에 길마는 얼굴을 찌푸리며 칼을 바라보았다. 하. 칼을 나로 착각한 모양이지? 같은 검은 옷을 입고 있으니… 하지만… "저놈이? 너무 허약한데… 거기다 듣던 것과도 다르군." 모욕적인 발언에도 칼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이런… 나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미 다크소드의 복장에 마나르트도 손에 쥐고 있었다. 다만 천에 감아 역으로 쥐고 있을 뿐.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마나르트의 주인인 나는 이 정도로도 마나르트의 마력을 쓸 수 있었다. "당신이 이 길드의 길드마스터?" 내 말에 사내의 얼굴이 푸르죽죽해졌지만 나는 별 상관하지 않았고 길마라는 사람도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강하군… 최소한 마스터… 내가 온힘을 다 끌어내야 이길 수 있는 상대다. 길드마스터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나를 마주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대치하자 사내의 얼굴은 하얗게 변했고 칼의 손이 허리에 차여 있는 검으로 다가갔다. 쉬익! 빠르군. 길마가 던진 단검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내게 날아왔다. 대단한데… 내 속도와 비슷하군… 이 사람도 단검던지기를 마스터했나? 길드마스터가 단검을 던지자 사내와 칼이 움찔했다. 그리고 내 코앞으로 다가드는 단검… 칭!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단검이 허공에 멈춰 섰다. 이상한 검은 기운에 잡힌 듯 검은 기운에 둘러쌓여 있는 단검. 나는 미소를 지었고 단검을 던진 길마도 미소를 짓더니 의자에 앉았다. 검을 뽑아든 칼이 그를 노려보았지만 내 손짓에 검을 집어넣고는 다시 시립 했다. "진짜로군… 원하는 것이 뭐지?" 길마의 말에 나는 대답대신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내 의도를 알아챈 길마가 손짓을 했고 그 사내는 방을 나갔다. "됐나? 이제 말하게나." "떨거지들 치우지? 어쩌면 천장 위와 바닥아래에 있는 친구들 모두가 죽음을 경험하게 될 거야." 내 말에 길마는 경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책상을 내리쳤다. 사라지는 기척들. 나는 빙긋 웃고는 내 옆에 있는 조잡한 나무 의자를 끌어다 놓고는 걸터앉았다. 칼이 내 뒤에 시립(侍立) 했다. "용건은?" "레딕이라고 알겠지?" 완전한 하대였지만 길드마스터는 개의치 않고 대답했다. "상당히 크군." "좋아. 어둠은 어디, 누구에게나 존재하겠지?" "물론이지." 칼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품속에서 보석하나를 꺼내서 던져주었다. 최소한 1000골드짜리… "멋진데… VIP로 해주지. 이거 받게나." 나는 길마가 던지는 동그란 패 하나를 받아 품속에 집어넣었다. 길마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레딕… 악질 PK범으로… 운영자들이 소멸의 벌을 내린 녀석이지… 죽이면 사라지는… 얼마전까지 여기에 있었지. 지금은 없어." 나는 코웃음을 치고는 마나르트를 빙글 돌려 내 어깨에 걸쳤다. 길마가 몸을 움찔했다. "오늘 한번 죽어보고 싶나? 당신이라면 죽었을 때 피해가 장난이 아닐 텐데… 거기다 방금 VIP라고 한 건 뭐지?" 내 사나운 말에 길마는 한숨을 내쉬더니 계속 말하기 시작했다. "알았네. 지금 죽음의 숲에 있어. 레벨 150정도의 숲. 거기에 좋은 아이템을 가진 검사 하나와 그 검사의 연인 파티가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말야. 어제 용병 길드에서 중급의 안내용 가디언 하나를 3일 동안 고용해서 말야 그 숲은 특별해서 숲 안에 여관하나가 있으니… 어제 떠났지. 됐나?" "좋아… 내가 나간 후 그놈에게 연락이라도 한다면… 이 길드 문 닫게 될 줄 알도록." 내 말에 길마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그래도 이용자의 정보는 일체 말하지 않아. 레딕이라는 놈은 우리 길드의 아이들도 몇 명 죽인적이 있는 놈이니 그럴 의리도 없어." "후후… 그래… 어떤 커플을 따라갔다… 재미있군…." 내가 살기를 뿜어내며 말하자 길마가 몸을 움찔했다. 후후… 저렙 커플… 좋은 아이템을 가진… 동영상에 나왔던 것과 같은 짓을 하려고… 큭큭. "어쩌려는 건지 알 수 있겠나?" 길마의 질문에 나는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친구에게 볼일이 있어서… 그럼 가보지. 지금 문 앞에 모여있는 놈들이 나나 여기 이 녀석을 건드리는 즉시 길드를 박살내 주지." "놀랍군… 별일 없을 거야." "흥." 나는 코웃음을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칼이 내 뒤에 시립 했고 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 문 앞에는 몇 명의 도둑, 암살자들이 서 있었다. 나는 싸늘하게 웃어주고는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에 모여 있던 도둑과 암살자들이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품속에서 아까 길마가 던져준 패를 꺼내들었다. -암흑 길드 연맹. 특급 회원- "훗. 암흑… 특급이라… 다크소드라는 이름은 암흑이 어울린다는 건가?" 칼이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별 신경 쓰지 않고 걸어갔다. 내가 손짓을 하자 칼이 내 옆에서 뒤로 자리를 옮겼다. "죽고싶나?" 내가 살기를 피어 올리며 싸늘한 어조로 말하자 천장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던 녀석이 빠르게 사라졌다. 웃기는 놈들이군. 나는 피식 웃고는 대륙의 대도시 가운데 하나인 레일 시의 골목으로 나왔다. 어둡군… 암흑 길드 연맹이라… 큭. 나와 칼은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여러 유저들이 나와 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앞으로는 다크소드와 그의 충직한 부하로 소문이 나는 건 아닌지 겁나는데? "여기가 왜 죽음의 숲이야?" 페페와 꼭 붙어 다니는 나 덕분에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은 듯한 세린의 투덜거림이었다. 확실히… 죽음의 숲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기는 하지. 너무 밝아. 좀 고요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죽은 자, 즉 언데드들만이 있거든요. 스켈레톤에서 좀비, 가끔씩 미라도 등장하죠. 하지만 엄청나게 강한 몬스터들은 나타나지 않아요." "흥." 페페의 설명에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리는 세린. 페페가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무시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렇게 당했는데도… 페페도 순진하다니까… "여기에 있는 건가… 훗, 가자." 내 말에 레도르들이 긴장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기의 몬스터들은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그 레딕이라는 놈이 문제였다. 암살자 스킬을 사용하는 놈이니… 어차피 내가 있는 한은 기습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은 감추지 못하나 보다. "여기는… 후…." 내 뒤에서 칼이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지? 나는 의아한 얼굴로 칼을 돌아보았다. 내 시선에 칼은 잠시 당황하더니 입을 열었다. "니베. 민경이가 죽었던 곳입니다." 칼의 말에 나는 한숨을 쉬고는 주위를 살폈다. 여기라고? 으음… "그럼 나중에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반드시 죽여야겠군. 다시 접속하면 여기서 시작이 될지도 모르니…." 유저가 죽으면 마을로 돌아가거나 그 필드에 다시 나타난다. 각각 50%의 확률로. 물론 필드에 나타나도 근처에 몬스터가 없는 안전지대로 나타난다. 여기라면 그 여관에 나타나겠지… 여기는 이름에 비해 경치가 좋아서 커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감사합니다." 나는 칼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마나르트를 뽑아들었다. 일행들이 흠칫 놀라며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나는 그들을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걱정 마라. 여기서 우리를 건들 수 있는 놈들은 없어. 오늘은 사냥이나 할 기분이 아니군…." 따다닥. 딱! 도르르르. 케르르… 바닥에서 일어나는 스켈레톤들과 좀비. 상당한 숫자였다. 뒤에서 일행들이 긴장하며 무기를 조심스럽게 뽑아들고 있었다. 후… 나는 마나르트를 역수로 쥐며 그놈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죽고싶나?" 따다다다닥! 케르르르… 내 몸에서 검은 마기들이 방출되기 시작했다. 그 마기에 몬스터들이 주춤거리고 있었다. 최상급 마족의 힘이다. 저런 몬스터들이 덤빌만한 힘이 아니지… 나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마나르트를 몬스터들에게 겨냥했다. "명령한다. 꺼져." 순식간에 사라지는 몬스터들. 마나르트로는 저런 언데드 같은 마족이나 마물 계열의 몬스터들을 통제할 수 있다.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기능이지만… "형?" "아아… 이 검의 기능이다. 가자." 내가 다시 마나르트를 등에 둘러매자 일행들이 한숨을 내쉬고는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선… 여관을 찾아가야 하나? 레딕사냥 "숲의 여관으로!" 내가 짐짓 쾌활한 어조로 외치며 걸음을 옮기자 일행들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 너무 차갑게 있었나? 나는 히죽거리다가 슬쩍 뒤로 물러나며 페페의 옆에 다가섰다. 세린의 눈이 묘하게 빛나는데… 순간 레아와 유 미가 세린을 양옆에서 붙잡았다. "으으…."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푹 숙이는 세린. 나는 미소를 지었다. 페페가 좀 쿡쿡거리더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후… 저 번쩍거리는 눈빛들이… "죽고 싶은가 보지…." 흠칫하는 일행들. 내 몸에서 살기가 터져 나왔다. 페페도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헉!? 오해받았다. 나는 고개를 젓고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어가기 시작했다. "숲의 여관으로. 나중에 가지. 찾았다." 내 말에 일행들이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 그럼 우리도…." "맞아요. 혼자서는 위험해요, 세한 씨." 따라오겠다고 말하는 레도르들과 페페에게 나는 고개를 저어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칼이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몸을 돌렸다. "칼. 페페를 지켜 줘." 내 말에 걸음을 멈춘 칼은 잠시 그대로 서 있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페페의 뒤에 가서 시립 했다. 하… "별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일 것 같아서… 가있어." 내 말에 일행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 칼이야 원래 굳은 얼굴이지만… 나는 피식 웃어주고는 나무들 속으로 들어갔다. 약 50m… 전투…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듯 한데… 하지만 유저과 몬스터는 아니다. 둘 다 유저. 아니… 셋 인가? 밀리는 쪽이 둘이군… 나는 마나르트를 뽑아들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레딕이라면… 죽인다. 얼마 달리지 않아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 도착한 나는 상황을 살폈다. 상처를 입고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검사 하나. 이미 죽은 듯한 가디언 하나. 덜덜 떨며 주저앉아 있는 여자 신관 하나였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버티고 있는 검사를 무시하고 여자에게 다가가는 회색의 검사… 무릎을 꿇고 있는 검사가 고함을 질렀다. 동영상과 비슷한 상황인데… "건드리지 마!" "시끄럽군… 어차피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섹스도 불가능한 세상 아닌가? 크크크… 하지만 그짓만 아니면 뭐든…." 여자에게 손을 뻗던 레딕은 자신의 앞에 박히는 단검을 보고는 몸을 굳혔다. 나는 단검을 던진 손을 회수하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쯤 해둬… 심판의 시간이 도래했어 친구…." 나는 마기를 풀풀 풍겨대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런 상태로는… 한 3, 40분이 한계다… 요새 좀 익숙해 지기는 했어도… 좀 힘을 줄여야… 나는 힘을 줄여 최대한 힘을 숨긴채 앞으로 나섰다. "웬 떨거지… 다크소드?" 나를 바라보며 얼굴을 굳히는 레딕.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레딕은 어이없다는 얼굴이더니 여자를 놔두고 내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 여자 신관이 급히 무릎을 꿇고 있는 검사에게 다가갔다. "다, 다크소드… 도, 도와주시는 겁니까?" 그 검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나르트를 들어올렸다. "숲의 여관으로 가도록. 거기에 갈색머리의 운영자가 있다. 이름은 페페. 아니면 푸른 머리의 검사가 끼어있는 파티를 찾아. 한이라는 이름을 대면 보호해 줄 거다. 웬만하면 거기 가디언 시체도 들고 가. 보기 싫으니까." 여자 신관이 급히 치료를 하자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검사가 가디언의 시체를 매고는 급히 사라졌다. 도망치기 전에 나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그 검사와 신관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나는 레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얼굴을 찌푸리지 말게나." 내 말에 레딕이 이를 갈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내게 온 사신치고는 명성 높은 어르신이군. 후후… 하지만 쉽게 죽지는 않아… 듣던 것보다는 허약한데?" "그래?" 나는 피식 웃었다. 힘을 줄여놓으니 너무 기어오르네?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레딕이 이를 갈며 허리에서 작은 소검을 꺼내 왼손에 쥐었다. 오른손에는 화려한 롱소드… 왼손에는 회색 빛의 소검(小劍)이라… 쇼트소드보다 작은데… 저 소검이 그 이상한 아이템인가? "날 죽이려는 이유가 뭐지? 네놈도 암흑의 검사가 아닌가?" 누가 암흑의 검사야? 나는 얼굴을 굳히고는 입을 열었다. "누가? 이름만 그렇지… 겉모습 덕분에 말야…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지?" "아직 대답을… 컥!?" 험악한 얼굴로 말하던 레딕은 내 마나와 마력을 뒤섞은 공격에 뒤로 나가떨어졌다. 아직 마력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어… 그거에 죽지는 않을 테니…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지금 실력은 나와 비슷한데… 덤벼봐." 내 말에 레딕이 이를 갈며 왼손에 들린 소검을 집어던졌다. 뭐야? 그냥 마구잡이 아냐? 나는 의아한 얼굴로 검을 쳐냈다. 튕겨나가는 소검. 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레딕을 노려보았다. "장난은 그쯤하고 덤벼." 5계급 후반. 294의 랭커. 하지만… 나는 마나르트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마나르트가 없어도 내가 유리하다. 레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너무 광오한데… 뒤나 조심하시지?" "뭐? 아… 이거?" 나는 뒤에서 날아오는 아까 그 소검을 몸을 슬쩍 움직여 손에 잡았다. 레딕의 눈이 커졌다. 흥. 보니까 마나르트의 능력과 비슷한 기능이 있는 모양이지? 하지만 단검던지기 스킬 한 3, 40 정도밖에… 저렙이나 잡고 다녔으니 이걸로도 통했겠지. 나는 소검을 레딕에게 던져주었다. "그거라도 있어야 재밌겠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레딕이 앞으로 달려나오며 소검을 집는 즉시 롱소드를 휘둘렀다. 빠른데… 나는 망토자락이 조금 베인 것을 보고는 감탄했다. 레도르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군… 굉장한데… "죽어!" 고함을 지르며 검을 휘두르는 레딕. 나는 얼굴을 굳히며 샤프소드에 손을 가져갔다. "발검(拔劍)! 연환격(連環擊)!" 순식간에 검을 뽑아들며 세 번을 연속으로 공격하는 내 공격에 레딕은 팔을 슬쩍 베이고는 옆으로 몸을 날렸다. "킬(Kill)!" 빠른 속도로 나를 찔러오는 검. 내 살검과 비슷한 것도 같은데… 순간 레딕의 검의 검로가 바뀌었다. 젠장. 나는 급히 옆으로 몸을 틀었지만 레딕의 검은 내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지지직! "크윽!" 나는 허리에서 온몸으로 퍼지는 전기에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뒤에서 느껴지는 그 소검. 나는 급히 몸을 틀었지만 감전에 의해 느려진 몸은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고 그 소검은 내 왼팔을 뚫고 지나갔다. "큭. 젠장… 마법검…." 내가 이를 갈며 말하자 레딕이 킬킬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에 아르센 초원에서 웬 멍청한 검사 놈에게 뺐은 건데… 그 유명하신 천하의 다크소드도 이런 것에는 어쩔 수 없으신 모양이군. 들어보니 완전한 악귀라고 하던데? 한번은 거의 미쳐서는 길드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렸다며?" 나는 히죽 웃었다. 그랬지… 스프리스 길드… 그 동안 너무 시달려서 내 성격이 좀 변했거든? 요새는 초연 씨하고 레도르 녀석들 덕분에 많이 가라앉았지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차렌에서 떠난 지 한달 정도… 별일을 다 겪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5개월. 정말 더러운 일도 당해봤지만… 거의 미쳐서 발광을 한 적도 있지만… 좋고 즐거운 일도 많았다… 그래서 이 세계가 좋아. 어쩌면 현실보다도… 아, 아니지. 초연 씨하고 같이 있을 때는 현실이 더 좋지. 나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하긴… 미쳤을 때는 완전 악귀였지. 한때였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강했어… 몸을 사리지 않고 싸웠으니… 동정심도 없었고… 레딕은 갑자기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미친놈을 본다는 얼굴이었다. 헤헷. 그래… 스프리스 길드를 날릴 때는 내게 이런 면도 있었나 의아할 정도였으니… 요새 물러졌나? 하긴… 전에도 나쁜 짓은 안 했어! 그 암흑 길드 연맹인지도 들어가지 않았고! 지금은, 아까 들었지만… "미쳤나? 그럼 악귀의 모습이라도 보여 보시지. 너무 싱거운데? 아, 네놈의 동료들도 있다고 했나? 여자 운영자라… 그년이나 한번 건드려봐?" 이죽거리는 레딕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후… 좀 진정이 되는 구만… 지금이 좋지만… 나는 피식 웃고는 샤프소드를 들어올렸다. "그럼 2차전 시작하지. 강(剛)!" 내 왼손에서 검은 마나 덩어리들이 레딕을 향해 날아갔다. 레딕이 날아올랐다. 그래. 지금은 악귀가 아니지. 되고 싶지도 않아. 흠… 그러고 보니 다크소드라는 이름도 괜히 얻은 건 아니군.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 이름을 얻게 된 이유가 어느 정도 순하게(?) 대한 도둑들 때문에 생긴거라는 건데… 왜 스프리스 길드의 얘기는 세간에 떠돌지 않는 걸까? "승룡(乘龍)!" 나는 위에서 검을 내리찍는 레딕에게 어퍼컷을 올렸다. "뭐, 뭐야!? 격투가?" 레딕의 당혹한 외침소리. 핫!? 그러고 보니 얼떨결에 손을… 검사는 검으로 상대해야지. 나는 올리던 왼손을 그대로 회전시키며 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큭!" 가슴을 베이며 물러나는 레딕. "누가 격투가야?" "제길… 페인팅?" ……… 난 그런 거창한 기술을 쓰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지금껏 검사는 검으로, 격투가는 맨몸을 싸웠다. 이유야… 그냥이라고 할까… 특히 이놈은 검으로 쓰러뜨리고 싶은데… 그게 더 참담하지 않을까? "계속 하자고. 속검(速劍)!" 순식간에 달려들어 검을 휘두르는 나. 레딕은 내 공격을 잘 막아내고는 반격해 들어왔다. 내 가슴으로 파고드는 검… "크로스!" 나는 한번으로는 검을 쳐내고 한번은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레딕은 하늘로 솟은 검을 아래로 내리찍어 내 어깨를 베었다. "치이… 쉽지는 않군…." "크크… 역시 소문대로… 죽어!" 나는 내 뒤에서 날아오는 소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내 등을 노리고 검을 휘두르는 레딕. "스핀." "큭!" 내가 빠르게 회전하며 검을 베어오자 레딕은 급히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푸른 검기가 날아왔다. 흠… 이런 놈도 이런 색의 검기를 사용하다니… 저 놈보다는 착하다고 자부하는 이 몸은 검은 색인데… 나는 급히 검에 마나를 불어넣어 날아오는 검기를 막아내었다. 쾅! 폭발하는 검기. 원래대로라면 내 공격의 위력이 더 뛰어나겠지만 급히 끌어올리느라 위력은 비슷비슷했다. 제길… 순간 내 허리를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레딕. 늦었나? 나는 허리를 비틀며 피해를 줄이고는 레딕의 어깨를 찔렀다. "크으…." "컥!"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는 레딕. 순간 또다시 검기 다발이 내 몸을 덮쳤다. 이게… 나는 급히 방어하며 식스센스를 집중시켰다. 후… 없어? "빌어먹을!" 나는 도망가는 레딕을 발견하고는 급히 뒤를 따랐다. 50m 밖으로 도주하면… 쉬이익! 하지만 놈의 날린 소검을 방어하느라 잠시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다. 젠장… 나는 이를 갈며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대충 이 방향이었는데? 비겁한 자식… 지금 로그아웃을 해버리면 잡기가 힘들어진다… 급히 달려가는 내 눈앞에 길드 창이 뜨기 시작했다. 뭐야? <한 형! 일 났어! 칼의 여동생이라는 분이 접속했다는데 이 숲에서 시작됐데! 지금 마을로 간다고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데… 레딕은!? 죽였어? 칼이 급히 쫓아갔는데….> 뭐야? 민경이가 왜… 으아악! 내가 오라고 했지? 하필이면 이런 때에… 나는 글을 읽다말고 주위에 감각을 최대한 집중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지? 나는 길을 찾아가며 주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우선 민경의 안전을 확보해야… 잘못해서 레딕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나는 10분 정도를 뛰어다니다가 급히 달려오는 레도르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제길… "형!? 레딕은?" 급히 물어오는 레도르. 페페를 비롯한 다른 일행들은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도망쳤어. 지금 어디야? 칼이 쫓아갔다고? 혹시 레딕 그 새끼를 만나기라도 하면…." <한님! 위험, 도와…> 나는 내 눈앞에 뜨는 길드 창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설마… 나는 이를 갈며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민경이가 길을 따라간 건 당연한 일일 테니…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내 뒤를 일행일 급히 뒤쫓았다. 제길. 그냥 온힘을 다해 죽이는 건데… 괜히 맛 좀 보여준다고 지랄을 떨다가… 나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달리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지잉. 순간 내 전투가 일어나는 곳이 느껴졌다. 사람들. 4명? 수가 맞지 않기는 하지만… 나는 급히 느낌이 오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일행들이 급히 방향을 바꿔 달려왔다. 카아앙! 콰아아아! 엄청난 폭발음과 하늘로 치솟는 빛. 검기의 충돌? 나는 얼굴을 굳히며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순간 약간 나무들이 듬성한 곳으로 이른 내가 보게 된 것은… "음? 크크… 또 네놈이냐?" 빌어먹을… 레딕이잖아? 나는 이를 갈며 그놈을 노려보았다. 내 앞에 한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죽지는 않았는데… 레딕의 앞에는 칼이 큰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 간신히 죽지는 않았는지 레딕을 노려보다가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레딕에게 붙잡혀 있는 소녀는… 민경이? "혀, 현진님?" 내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 이 목소리는… "정아 누나?" 태경이와 민경이를 보살핀다는 누나 아냐? 나는 정아 누나로 보이는 여자를 부축해 주며 레딕을 노려보았다. "누나 맞아요? 왜…." "아… 나는 민경이의 보호자로 따라다니는데… 쿨럭. 저놈이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컥." 피를 토하는 것을 보니 상처가 심한 것 같은데… 나는 포션을 입안에 부어주고는 조심스레 눕혀 주고 일어났다. 레딕은… 민경이… 니베라고 했지… 니베를 품에 안고는 단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제길… 그런데 저 자식은 옷은 왜 찢는 거야? 나는 속옷이 드러나 있는 니베를 보며 이를 갈았다. "한… 님…." "흑, 다, 다크소드 오빠?" "형!" 어지럽다… 나는 각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잠시 혼란을 느끼고는 우선 칼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레딕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일으켜 세워주자 칼은 떨리는 몸으로 간신히 일어서서는 레딕을 노려보았다. 이상하네… 칼이면 이렇게 쉽게 당했을 리가… 거기다 저 놈은 상처도 없잖아? "왜이리 당한 거야?" 내 질문에 칼은 이를 갈더니 대답했다. "저 놈이… 니베를 인질로 잡아서…." 안 봐도 뻔하군… 나는 사나운 얼굴로 레딕을 노려보았다. 니베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후… "형." 어느새 다가온 일행들이 내 옆에 모여서는 레딕을 쏘아보고 있었다. 후… 지금 상황에서는 숫자는 별 상관이 없는데… "큭큭. 한번 공격해 보라고. 이 계집을 방패로 삼아줄 테니… 크큭." 저 개자식이… 나는 부들부들 떨며 레딕을 노려보았다. 크… 니베를 또 죽게할 수도 없고… 그러면 이번엔 아주 들어오지 않을 수도 뒤에서 페페가 내 등을 다독거리고 있었다. 후… "흠… 이 계집은 너무 어린 느낌이 드는데… 어이, 다크소드 어르신. 거기 여자 중에 한 명하고 교환하는 건 어때? 이 년은 보내주지. 크크…." "저…." <세린인데… 내가 나갈까?> 내 눈앞에 뜨는 길드 창. 세린? 나는 물론 모든 일행이 세린을 바라보았다. 페페는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었지만… <몸은 내가 제일 빠르니까… 헤, 한 오빠가 구해줄 거야?> 나는 입술을 깨물고는 세린을 외면했다. 제길… 그때 죽였으면… 그때 세린이 앞으로 걸어나갔다. 큭… 세린이 앞으로 걸어나가자 레딕이 큭큭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 년? 좋아. 괜찮은데… 무기는 다 버려." 세린은 멈칫 하더니 무기들을 바닥에 버리기 시작했다. 하나 정도는 남겨뒀겠지? <형. 세린은 머리카락 속에 작은 단검 하나를 넣고 다녀.> 갑자기 떠오르는 길드 창. 아… 그런 거였나? 나는 내색하지 않고 계속 레딕을 주시했다. 세린이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천천히 오라고… 킥킥." 세린이 레딕의 바로 앞에 다다랐을 때… 레딕이 니베를 옆으로 내던졌다. "이, 이런…." "이제 이 계집은 필요 없어!" 니베의 목으로 날아가는 레딕의 검. 하지만 그 검은 니베를 찌르는 대신 세린의 등을 찔렀다. "세, 세린!" 세린이 니베를 껴안고 검을 대신 맞자 예상했다는 듯이 레딕은 빙긋 웃고는 쓰러져 있는 세린을 한 손으로 일으켜 세우더니 검을 겨눴다. 후우…… 이 기분… 오랜만이야… 레도르는 이를 갈며 자신의 앞에서 킥킥거리는 레딕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달려들 수는 없는 것이… 인질이 두명. 어차피 죽어도 다시 살아나기는 해도… 니베라는 여자는…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의 생각인지 달려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죽이지도 않았다. "역시 예상대로군… 큭큭. 정의 사도 어르신들 이제 누구를… 오, 거기… 죽이는데… 갈색머리 계집… 전투력이 없는데… 아, 그 운영자로군. 이번엔 내년이다. 타격은 주지 못해도 건들 수는 있지? 큭큭… 운영자하고는 그짓이 가능한지 모르겠군." 레도르를 비롯한 제르난 길드의 사람들은 급히 페페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페페를 걱정해서 한의 뒤에 서 있으라고 부탁했었다. 그런데… '뭐야? 분명히 한 형의 뒤에 서 있으라고… 없어?' 레도르는 페페의 앞에 서 있어야할 사람이 없는 것을 깨닫고는 얼굴을 굳혔다. 어디로… 그러고 보니 왠지 주위가 어두워 졌어… 레도르는 주위가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슬쩍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해가지지 않았는데… 레도르는 레딕의 주위도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그 속도가 느려서 레딕이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는 모양인데… "빨리 오라고. 여기 둘보다 훨씬 예쁘구만… 음? 좀 어두워… 밤인가? 큭큭. 밤이면 더 좋지 않나? 즐기기에 더 좋잖아. 빨리 오라고." 레딕도 주위가 어두워진 것을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페페를 자기에게 보내라고 말할 뿐… 레도르는 이를 갈며 레딕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페페가 서서히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누, 누나!?" "안됩니다." 페페의 앞을 가로막는 칼. 그는 한의 부하를 자청하고 있으니… 페페가 나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일까? "하지만 칼. 나가지 않으면 저 둘이…." "맞다고. 큭큭큭. 이 둘은 보내주지. 어서 그 계집이나…." "그 말로… 넌 끝났어." "끄아아악!"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는 레딕. 검을 들고 있던 레딕의 오른손이 손목부터 잘려 떨어지고 있었다. 레도르 등은 놀란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담담한 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님이 처리하신다고 합니다." "아…." 진짜 악마처럼. 한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두움에 휩싸여 있는 검을 들고 있는 한은 살인적인 눈으로 레딕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 세린과 니베의 몸을 감아 올리는 검은 기운. 허공으로 떠오르는 둘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한은 레딕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가서 쉬어. 약속대로 구해 줬다." 누구에게 한 말? 둘 모두 한과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었기에 감동 받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둘은 저절로 레도르 일행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으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뒤돌아 도망가는 레딕. 치이잉! 순간 검은 마기가 레딕의 몸을 휘감아 더 이상 달려가지 못하게 했다. "이 공간에서는 내가 무적이야, 친구. 심지어 랭킹 1위라고 해도. 그 친구들이야 빠져나갈 수야 있겠지만… 너는 아니지…." "으으…." 순간 한의 모습이 사라졌다. "무슨…." "사라졌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레도르와 시드가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몸이 희미해지면 사라진 한.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한의 모습에 레딕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은신술…." 페페의 중얼거림에 레도르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다른 일행들은 세린과 니베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레도르의 눈에 비친 페페는… 하얗게 질려있었다. 은신술… 마나르트의 마기로 만들어낸 어둠. 극성의 은신술… 거기에 한은 퀵 스텝까지 적용했다. 완벽한 조합… 그리고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휘둘러졌다. "으아아아!" 순간 레딕이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그의 나머지 한 손도 잘려나가 있었다. 어느새 나타난 한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 가지 잊고 있었어…." "으아아!"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는 레딕. 그 모습을 비웃음이 담긴 얼굴로 바라보던 한의 모습이 다시 사라졌다. 일행이 놀란 얼굴을 하는 사이, 레딕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기가 그를 막지 않았다. "이, 이런…." 레도르가 달려나가려는 순간. 레딕의 오른팔이 하늘로 솟구쳤다. 분수와도 같은 핏줄기와 함께. "여기서만은… 나는 어디에나 있다고 할 수 있지… 도망은 소용없다." 어느새 다시 모습을 드러낸 한. 그의 얼굴에 피가 묻어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레도르 일행은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만 칼의 얼굴은 무표정했고 페페는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페페, 초연은세한이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고 그때는 그녀가 다시 착한, 유쾌한 청년으로 돌려놓았었다. 그때 일을 떠올린 페페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었다. 쉭! 레딕의 한쪽 눈을 날려버린 한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 같은 놈들은… 그냥 단번에 죽이는 것이 정답인데… 얼마간 너무 편하게 지냈더니 지난 시간 동안 얻은 교훈을 잊고 있었군…."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진 한은 어느새 레딕의 뒤로 돌아가 남은 왼팔을 날려버렸다. "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주저앉은 레딕이 급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한이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너는 이미 끝났으니… 좀 길게 끌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떤가 친구?" "으아아…." 순간 날아간 단검이 레딕의 다리를 땅에 고정시켰다. 양팔이 날아간 레딕은 그 단검을 뽑지 못하고 몸부림쳤다. 무심한 얼굴로 다가가는 한. 레딕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한은 레딕의 다리에 박힌 단검을 걷어찼다. 우드득. 뻐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단검이 빠져 나왔고 레딕은 비명을 질렀다. 레도르 일행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갔다. 스으으으… 검은 마기에 휩싸여 공중으로 떠오르는 레딕. 그의 몸에서는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고 있었다. 한이 미소를 지으며입을 열었다. "이상하지? 피가 흐르지 않지 않아? 피가 흘렀다면 벌써 죽었을 텐데… 마력은 쓸 곳이 참 많아. 지혈도 가능하고 말야… 내 동료들을 건드린다고 했나?"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던 한의 말이 마지막에 가서는 악마의 목소리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한이 레딕의 가슴을 후려쳤다. 날카로운 OPG의 손톱에 갈비뼈가 들어나는 레딕이 가슴. "아까는 말야… 그저 가지고 논 거였다고… 네놈은 아직 날 몰라 친구. 나도 나에 대해 잘 모르겠는데 자네가 알겠나?" 퍽! 레딕의 가슴에 박혀드는 한의 돌려차기. 레딕이 허공을 날아 레도르 일행의 조금 앞에 떨어졌다. "으…." 레도르가 질린 얼굴로 레딕과 한을 바라보았다. 다시 레딕에게 걸어온 한이 레딕의 머리에 발을 올려놓았다. 금방이라도 밟아 터뜨릴 것 같이… "세… 아니, 한… 그만해요." 나지막한 페페의 목소리에 한이 고개를 들어 페페를 바라보았다. 무심한 얼굴. 하지만 눈에는 살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하지만 페페는 맑은 눈으로 한을 마주보고 있었다. 레도르 일행은 식은땀을 흘렸다. 당장이라도 한이 자신들을모두 죽여버릴 것 같았다. "괘, 괜찮을까?" "확실히… 다크소드라는 이름은…."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는 가운데 한이 입을 열었다. "으… 너무 흥분했네…." 전과 같이 장난기가 느껴지는 목소리. 일행은 놀란 얼굴로 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순간 어둠이 사라졌다. 다만 한의 손에 들린 검은 검. 그 검에 엄청난, 칠흑과도 같은 검은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으… 미안해요. 다시는 이러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용서해 줄거에요?" 불안한 얼굴로 페페에게 질문하는 한. 이번에도? 레도르를 비롯한 일행들은 영문을 몰라 한과 페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페페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요… 이번 건 쉽게 용서하기가…." "그때처럼 키스해 줘요?" 페페의 말을 끊으며 질문을 던지는 한. 페페는 얼굴을 붉혔고 레도르 등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일행의 시선이 모아지자 페페는 얼굴을 더욱 붉히며 한에게 말했다. "우, 우선 그 발부터 치워요." 페페의 말에 미소를 지은 한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레딕의 머리에서 발을 내렸다. 레딕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던 한이 페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페페를 꽉 껴안는 한. 순간 페페의 얼굴이 새빨개졌고 레도르 등이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으며 세린의 눈이 날카롭게 번쩍거렸다. 그때 한이 페페를 놓아주고는 레딕을 돌아보았다. "저놈… 죽여도 돼요?" 잠시 굳어있던 페페가 정신을 차리고는 한의 옆으로 다가가며 대답했다. "예. 운영자 회의에서 그렇게 결정 났어요." "그래요?" 한은 자신의 얼굴을 적시고 있는 피를 닦아내며 칼을 바라보았다. 한의 시선에 칼이 고개를 숙였다. "네가 죽일 거냐?" "승낙하신다면." 한은 잠시 칼을 주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검을 뽑아든 칼은 비틀거리며 레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레도르 일행이 질린 얼굴로 바라보는 사이 덜덜 떠는 레딕의 목을 몸에서 분리 시켰다. 사라져 가는 레딕과 한숨을 내쉬는 일행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은 페페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 페페? 그 옷… 미안해요." 피범벅이던 한의 품에 안겼던 페페의 옷은 역시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페페는 고개를 젓고는 손수건을 꺼내 한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괜찮아요. 미안하면 현실에서 옷 한 벌 사주세요." 한은 피식 웃고는 비틀거리며 레아에게 걸어갔다. 레아가 눈을 깜빡거리며 한을 바라보았다. "레아." "예?" "나 좀 살려 주라." 한의 말에 황당해 하는 레아. 순간 한이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세, 세한?" "혀, 형!?" "오빠!" "아, 이… 이 검!" 레도르가 달려들어 한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검을 걷어차 멀리 날려버렸다. 한의 몸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검은 기운. 덩달아 검이 맺혀 있던 검은 기운도 사라졌다. "으아아… 레아! 빨리!" "으, 응." 레아가 급히 치료에 들어갔고 다른 일행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한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의 첫 번째 임무는 끝났다. "형." "음?" 나는 레도르가 나를 부르자 고개를 들었다. "그거는 안 들어?" 사이클롭스(Cyclops)가 떨군 엄청난 크기의 대검을 가리키는 레도르. 이, 이 자식이… "꼭 이것까지 들어야겠냐?" 내 질문에 레도르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등에 자신의 돈 자루를 매어주는 세린. 으으… "세, 세린… 너까지…." "흥." "야, 너는 구해줬잖아!?" "그래도 벌은 벌이죠." "한님 제가…." "칼은 가만 있어욧!" 현재 나의 상황을 말하자면… 등에는 세 개의 배낭을 매고… 각종 아이템들이 담긴 자루 4개에… 여러 거대한 장비들. 거기에 사이클롭스가 떨군 엄청난 크기의 대검. 정말 전문 짐꾼들도 이렇게 많은 것들은 들지 않을 것이다. "너무해." 내 푸념에 시드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잘못했으니 아무거나 시켜달라는 말을 한 건너라고. 흠… 던젼 하나를 클리어 했는데도 이리 가볍다니… 천국이네?" "맞아." 크으… 정말… 내가 왜 그런 헛소리를… 내가 죽음의 숲에서 미친 짓을 했으니 사과의 의미로 아무거나 부탁하라고 한 것이 실수였어… 좋은 아이템이나 달라고 할 줄 알았더니… 이런 던젼에 끌고 와서 노동을 시키냐? 솔직히 내가 잘못한 것은 없단 말야… 흑흑… "알았어…."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후… 그래도 전과 똑같이 대해주는 것이 다행이지… 역시 좋은 놈들이라니까… 나는 투덜투덜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미소를 지으며 함께 걷는 레도르 등. 내 협박에 굴한 지미와 원래 성격상 자기 짐은 자기가 들고 가는 이시린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벼운 걸음걸이였다. 후… 한의 노동은 며칠간 계속되었다. 주영진 "어이. 페페 씨." 특별히 정해진 업무가 없기 때문에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던 페페는 통나무집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를 보고는 몸을 일으켰다. "어머? 시렌 씨? 무슨 일이세요?" 페페의 질문에 시렌이라 불린 운영자는 씨익 미소를 짓고는 서류하나를 내밀었다. "페페의 담당 플레이어가 생겼어요. 여기 그 사람의 프로필입니다. 그래봤자 그리 특별한 건 없지만… 어째면 곧 끝날지도 모르고… 아마 지금 하고있는 PK범 분류하고 이 사람 하나만 담당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럼 전 가보죠." 시렌은 서류를 들고 좋아하고 있는 페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페페가 플레이어를 담당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저 플레이어를 페페에게 맡긴 것도 그가 힘을 써서였다. 시렌이 나가고 페페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프로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세한…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맡게된 플레이어였다. 콱! 콱! 콱! 콱! 페페는 얼빠진 눈으로 나무를 후려치고 있는 세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영자의 특권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 지금 페페는 한 고목의 꼭대기에 앉아서 세한이 나무를 베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레벨 1인 세한은 페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콰드드득… "흐아… 힘들다. 이걸로 딱 300그루 째네… 쳇. 덕분에 나무꾼이라는 별명만 얻고 말야… 그런데 스킬은 왜이리 오르지 않는 거야?" 페페는 쓰러진 나무를 조각내며 투덜거리는 세한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특이한 플레이어. 레벨 1에 스킬들의 레벨만 비정상적으로 높은 플레이어… 거기에 여러 직업의 스킬들을 섞어서 익히고 있는 플레이어. "이상하네…." 하지만 페페가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런 부분이 아닌 아주 사적인 일이었다. 왠지 비슷한 느낌. 페페는 세한을 보며 현실에서 단 한번 만난 적 있는 소년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의 첫사랑. 약 7년 전에 만났던 소년. 페페는 나무를 베며 투덜거리는 세한을 보며 그 소년을 떠올리고 있었다. 왠지 비슷한 느낌… 초연은 7년전 만났던 소년을 떠올렸다. "아빠 어디가요?" 초연은 고급 승용차의 뒷 자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옆에 앉아있는 그녀의 엄마. 그리고 앞의 두 자리에는 초연의 아빠와 작은 아빠가 타고 있었다. 조용한 성격 덕분에 친구가 없는 초연이 유일하게 따르고 의지하는 사람들. 그 세 사람은 모두 검은 상복을 입고 있었다. 초연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그녀의 작은 아빠, 강진철이었다. 그녀의 기억에는 당시 작은 아빠는 중요한 태권도 시합을 치르는 중이었다. 시합의 연습도 내팽겨치고 가야할 급한 볼 일이 있는 곳. "음… 장례식 장이지. 작은 아빠의 친구 분들이 돌아가셔서… 왜? 가기 싫어?" 작은 아빠의 얼굴이 어두웠다. 7년 후였다면 수심이 가득하니 등의 말을 했겠지만… "어? 작은 아빠 얼굴이 까만데…." 그 당시 초연은 아직 어리다고 할 나이였다. 거기다 약간 심하다 할만큼 순진했다. 나이는 14살이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려보이는 얼굴과 순진한 행동으로 10살 정도의 어린아이로 생각할 만큼… 후에는 너무 성숙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지만… 그녀의 말에 작은 아빠, 강진철은 피식 웃으며 초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앞을 보고 앉았다. "그… 김세한이라고 했나? 그 친구에게 어린 아들이 있지 않았어? 초연이하고 비슷한 나이였는데…." 아빠의 말. "예… 전에 형님도 본 적이 있었는데… 똑똑하고 강한 아이죠. 혼자 남아서는… 세한하고 소희 씨가 남긴 집을 지킨다고 이사도 안 가고 있는 놈이니까요…." 세한? 소희? "안된 아이네요… 도련님 도장에 다닌다고 하지 않았나요?" "예. 아직 초보긴 한데… 그냥 심심풀이 삼아 다니는 정도죠. 별달리 의욕이 없어서… 그나마 지금은 아예 나오지도 않고…." "힘들겠군…." 초연은 심각해지는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후로도 세 어른은 계속 심각한 어조로 얘기를 나눴고 초연은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 모두 엄마 아빠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초연은 작은 아빠의 손을 잡고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초연은 작은 아빠와 함께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두 개의 사진과 작은 함 두 개가 놓여 있는 방. 그 곳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이상한 모자를 쓰고 앉아 있었다. TV에서 장례식에서 상을 당한 사람들이 쓰는 것임을 본 적이 있는 초연은 그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의 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초연의 눈에 사진과 함이 놓여있는 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있는 소년이 들어왔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소년.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왠지 지금까지 보아 왔던 아이들과 다른 느낌의 아이였다. 그때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던 작은 아빠가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얼떨결에 함께 그 아이에게 다가간 초연. "괜찮니?" 걱정이 묻어나는 작은 아빠의 말에 그 소년이 고개를 들어 작은 아빠를 바라보았다. 왠지 멍하면서도 깊어 보이는 눈이 들어 났다. "강… 사범님?" "그래… 괜찮니?" "예… 어서 오세요." 고개를 꾸벅 숙이는 소년. 작은 아빠는 그 소년을 한번 안아주고는 초연을 그 소년 앞에 앉혔다. 그 소년이 초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범님 조카다. 예쁘지?" 초연이 얼굴을 붉히며 인사를 했지만 그 소년은 잠시 초연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작은 아빠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초연을 일으키고는 향이 타고 있는 상에 절을 하고는 방에서 빠져 나왔다. 분명히 무시를 당했다. 하지만 초연은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아이의 눈이 계속 머리 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강 사범." 어떤 사람이 작은 아빠를 불러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 사이 작은 아빠의 손을 놓고 있던 초연은 인파에 휩쓸려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 여기가 어디지?" 주위를 둘러봐도 아빠나 엄마, 작은 아빠가 보이지 않자 인상을 찡그린 초연은 가족들을 찾아 돌아다니기시작했다. 거의 한시간. 한시간을 돌아다녀도 가족을 찾지 못한 초연은 차에 가서 기다리기로 하고 건물을 빠져 나왔다. 환한 햇빛이 내리 비추는 야외 주차장. 초연은 자신이 타고 온 차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어라? 귀여운 애네?" 그 소년의 눈을 생각하고 있던 초연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는 몸을 움찔거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보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 소년 둘이 초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에 이상하게 피어싱을 하고 있는 소년들. 별로 좋은 사람들 같아 보이지 않았다. 초연은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헤헤. 오빠하고 놀래?" 초연은 자신의 손을 잡는 한 소년을 뿌리 쳤다. 그 소년이 얼굴을 찡그리자 초연은 놀라서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초연의 모습을 인상을 쓰며 노려보던 두 소년을 투덜거리며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얏!"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정원 같은 곳을 달리던 초연은 돌에 걸려 넘어지고는 울상을 지었다. 바닥에 부딪힌 무릎을 보니 상당히 심하게 찢어져 있었다. "히잉… 아픈데…." 나무에 기대고 앉아서 피가 흐르는 무릎을 호호거리며 불고 있던 초연은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자 소스라치게 놀라 옆을 바라보았다. 아까 그 이상한 소년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음? 누구?" 하지만 초연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아까 그 두 소년이 아닌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자기 또래의 소년이었다. 키는 초연보다 약간 큰… 깊어 보이는 눈을 가진 그 소년… 그 소년은 피가 흐르는 초연의 무릎과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초연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마셔." 초연은 소년이 내미는 캔커피를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커… 피?" 마시려고 갓 열었는지 마신 흔적은 없었고 안에 갈색 액체들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초연은 눈을 깜빡거리며 그 캔커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아이는 이런 걸 마시는 건가? 엄마가 이런 건 어른들이 마시는 거라고 했는데? 초연은 의아해 하다가 갑자기 무릎에 부드러운 것이 와 닿자 흠칫 놀라서 무릎을 바라보았다. 그 소년이 손수건으로 상처를 닦고 있었다. 초연은 얼굴을 붉혔다. "넘어 졌나 보지?" 차가운 목소리에 초연은 몸을 움찔했다. 역시 자신이 학교에서 알고 지내는 아이들과는 좀 다른 소년이었다. "마시라니까." 소년이 입도 대지 않은 캔커피를 보며 말하자 초연은 얼떨결에 시원한 커피를 꿀꺽 마셔버렸다. 약간 씁쓸하기는 했지만… 사실 초연은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긴장해 있었다. 초연의무릎을 닦고 피로 물든 손수건을 내려다보던 소년은 한숨을 내쉬고는 깨끗한 쪽으로 손수건을 접더니 상처가 심한 곳에 손수건을 묶어주었다. "맛있지?" 소년이 초연이 캔커피를 마시는 것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물어왔다. 약간 달달한 맛을 느끼고 있던 초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 살이야?" 소년의 질문에 초연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14살…." 초연의 말에 소년은 놀란 얼굴로 초연을 바라보았다. "14살? 그럼 누나잖아? 오히려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뭐, 상관 없으려나? 후… 그거 이제 안 마셔?" 소년이 캔커피를 가리키며 물어오자 초연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마시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초연은 소년에게 자신이 마시던 커피를 건네주었고 소년은 그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평소 학교에서 친구들이 간접키스니 뭐니 하면서 좋아하는 남자애들이 마시던 컵이나 음료수를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초연은 다시 한번 얼굴을 붉혔다. 그런 초연의 기색에 소년은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돈을 아껴야 돼서… 돈이 별로 없거든. 그런데… 넌… 누나라고 불러야 되나? 어쨌든 여기서 그런 꼴로 뭐하고 있는 거야?" 자신의 안부를 묻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에 초연은 몸을 움찔했다. "길을 잃어서… 엄마 아빠를 잃어버렸어." 초연은 자신의 말에 소년의 안색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초연은 자신이 뭔가를 잘못 말했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 데려다 줄까? 걸을 수는 있지? 가자." 소년은 빈깡통을 그냥 아무 곳에나 던져두더니 초연을 일으켰다. 초연은 남자애에게 손을 잡혔지만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소년은 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초연을 데리고 걷기 시작했다. 초연은 자신을 끌고 걷는 소년을 따라 걸으려 했다. 하지만… "아야…." 소년은 초연이 무릎을 굳히며 낮은 비명을 지르자 걸음을 멈췄다. 초연이 걷기 힘들다고 판단한 소년은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상당히 커다란 정원의 한가운데. 자신의 친척들이 캔커피를 마시는 것을 발견하면 시끄럽기에 이 장례식장의 정원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던 소년은 얼굴을 굳혔다. 초연은 소년의 얼굴이 굳어지자 불안한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업혀." 초연은 소년이 자신을 업으려 하자 별말 없이 소년의 등에 업혔다. 약간 비틀대던 소년은 이내 다시 걷기 시작했고 초연은 소년의 등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얼마 걷지 않아 나무들은 사라지고 검은 아스팔트가 깔린 주차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초연은 자신의 엄마와 아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다." "음?" 초연의 중얼거림에 소년이 멈춰 섰고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고 다니던 초연의 엄마가 초연을 발견했다. 소년의 등에 업혀 있는 초연에게 엄마와 아빠가 급히 달려왔다. "초, 초연아. 어디에. 어머? 이 상처는 뭐니?" 소년이 자신을 내려주자 힘겹게 서 있던 초연은 자신의 상처를 보며 놀라는 엄마와 아빠를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너, 넘어졌어. 어떤 애가 도와줬는데… 저 애가… 어?" 소년을 가리키던 초연은 어느새 그 소년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자 당황했다. 엄마와 아빠가 그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아이가? 누구지? 착한 아이네… 초연아. 놀랬잖아. 14살이나 되서는… 너무 순진하다니까. 작은 아빠가 기다리신다. 가자." 초연은 아빠의 등에 업혀서는 차로 돌아갔다. 한시간 동안 초연을 찾아다니던 세 사람은 안도하며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차의 뒷자석에 앉아있던 초연은 자신의 엄마가 마시고 있는 음료수를 보고는 손을 뻗었다. "엄마. 그거 마실래." "뭐? 커피를?" "응." 엄마는 의아한 얼굴로 커피를 건네주었고 초연은 그 커피를 마시며 아까 그 소년을 생각했다. 그 후로 초연은 커피를 마실 때마다 그 차가운 눈의 소년을 생각했다. "느낌이 비슷해… 하지만… 그 아이는 정말 차가웠는데…." 나무를 베며 투덜거리는 세한을 바라보던 초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한…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그 소년의 이름은 아니었다. 누구였지?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고 있지… "재밌는 사람이네?" 페페는 투덜거리는 세한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 소년과는 정반대로… 페페는 통나무집 안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세한, 현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는데… '그 던젼에 있는 다크 워리어를 죽이려고요.' 마신의 신전에 들아 갔다 나와서 했던 말… 그 말을 할 때 페페는 세한과 옛날의 그 소년이 겹쳐 보이는 것을 느꼈다. 똑같은 차가움. 하지만 자신의 설득 몇 마디에 다시 유쾌한, 재밌는 사람으로 돌아가는 세한을 보며 페페는 자신의 느낌이 틀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작은 아빠의 도장. 현진이 자신을 안고 찻집으로 도망. 자신을 평생을 바칠 여자라고 했다는 말을 들을 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현진이 쓰러진 후 작은 아빠가 말해준 얘기는… '이 녀석 기억 나는지 모르겠구나. 전에는 괜찮은 친구라고만 했었는데… 자세히는 얘기하지 않았지? 아미 전에 본 적이 있을 텐데… 7년 전에 장례식장에서… 인사를 시키지 않았었니? 그때 현진이 무시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작은 아빠의 말을 따르면 현진, 세한이 자신이 전에 만났던 소년. 자신의 첫사랑이라는 말이 되는데…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예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던 페페, 초연이었다. 현진이 그 소년이던 아니던… 현진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았고 자신도 얼떨결에 부모님께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현진이 그 소년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너무 분위기가 틀렸으니까… 성격도… 한가지 비슷한 점은… 돈을 아낀다는 것인데… 페페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자신은 세한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때 피투성이가 되어서 집으로 왔을 때 가슴이 떨리는 것도 그렇고… 그와 차를 마시고 쇼핑을 다닐 때도 항상 즐거웠다. 하지만… 왠지 이런 감정이 그 추억의 소년 때문이 아닌지 걱정이 되는 페페, 초연이었다. 아직 세한, 현진이 그 소년인지 확실하지 않다. 가물거리는 기억이기에… 솔직히 거의 확실한 거지만… 페페는 확신이 없었다. 벌컥! "페페!" 생각에 잠겨 있던 페페는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드는 시렌을 보고는 정신을 차렸다. "시렌 씨? 무슨…." "헉, 헉… 다, 다크소드 말야. 페페 씨 담당. 아주 일 났어. 스프리스 길드에서 습격을 해가지고… 페페 씨 애인이라며? 그거 알려주려고… 헉…." "예?" 시렌의 말에 놀란 얼굴을 하고 있던 페페는 급히 세한이 있는 곳을 탐색했다. 세한의 담당자인 페페는 세한이 있는 곳을 알 수 있었다. "이봐 페페. 그런데 위험한 건 그 친구가 아니라… 벌써 갔네?" 뭔가를 얘기하려고 하던 시렌은 이미 페페가 사라지고 없자 고개를 젓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오랜만에 땀을 뺀 시렌이었다. 콰콰콰콰쾅! 어느 숲에 도착한 페페는 엄청난 폭발음에 흠칫 놀라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왠지 주위가 어두웠다. 운영자인 페페는 이 검은 안개 같은 것들이 마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페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후후. 네가 길마? 죽고 싶은가 보지? 기습이라… 난 네놈에게 잘못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스프리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의 멱살을 잡아 올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는 세한. 그 길드마스터의 양팔이 사라지고 없었다. "후후… 덕분에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 아직도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답례로 깨끗하게 죽여줄까?" 페페는 순식간에 여러 조각으로 잘리는 길드마스터를 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계속 해서 이어지는 비명소리. 페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세한을 바라보았다. 일방적 학살. 페페는 세한의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에 당황하고 있었다. 요새 들어 조금 이상해 졌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거기다… 지금의 세한은 옛날의 그 소년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차가웠다. "끄아아아악!" 어떤 사내의 사지를 다 잘라내고는 머리를 밟아 터뜨리는 세한.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느새 수십의 플레이어들이 죽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후… 부모님 돌아가시고 얼마 동안을 빼고는… 이런 기분은 처음인데? 후후… 어라? 한 놈이 더 있었네?" 페페는 세한이 검은 검을 들어올리며 벌벌 떨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고는 급히 달려갔다. "그, 그만해요!" 세한이 페페를 돌아보았다. 하지마 페페를 보면서도 그의 검은 그 사내의 목을 절단해 놓았다. 페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세한을 바라보았다. "페페? 웬일? 말리러 온 거였나? 미안하지만 늦었네요. 이미 다 죽었으니… 후후…." 페페는 자신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는 세한을 보며 옛날의 그 소년이 세한, 현진 임을 확신했다. 똑같았다. 저 눈… "세, 세한?" "뭡니까?" "혹시… 7년 전에… 부모님 장례식 때…." 페페의 말에 세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긴장. 하지만 그러면서도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이상한 느낌. 페페는 7년 전. 소년을 만났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고 이런 기분이었는데… "넘어져서 울고 있는 소녀에게… 캔커피를 주지 않았어요?"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한의 얼굴은 여전히 차갑고 살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캔커피? 흠… 잘 모르겠는데… 아, 한 웃기는 여자 애를 만나기는 했었지. 나보다 나이가 많다면서 어린아이 같은… 죽어." 페페는 빠르게 날아가는 검은 검기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간신히 기어가고 있던 한 도둑이 그대로 두 동강이 나서 죽어갔다. 세한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페페가 미소를 지어주며 입을 열었다. "세한. 이거 알아요?" 세한이 페페를 노려보았다. "당신 내 첫사랑이에요." 순간 세한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주위의 어둠이 사라졌다. 페페는 놀란, 동시에 붉어진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세한을 바라보았다. 아까의 차가움은 사라지고… 평소 세한이 보여주던… 유쾌한…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세한이 있었다. "뭐요?" 얼빠진 목소리.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머? 정상으로 돌아왔네요?" 페페의 말에 세한이 눈을 깜빡였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더니 바닥에 집어던져 박히게 했다. "후… 잠깐 정신이 나갔었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인데… 그런데 뭔 소리에요? 순식간에 분노고 뭐고 다 사라지네. 정말 충격적인 농담이었어요." 세한은 헛웃음을 지으며 페페를 바라보았다. "농담 아니에요. 그때 그 소녀가 저였거든요. 그때 제가 만난 소년이 제 첫사랑이었고." 페페의 말에 세한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페페를 바라보았다. "엥? 그럼 그때 소녀가 페… 아, 아니 초연 씨? 아니.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 소녀… 그때 딱 한번 본 걸로 기억하는데요?" 세한의 말에 페페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렇긴 한데… 원래 첫사랑이 다 그런 거죠.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세한을 보니까… 그때가 떠올라서…." 빨개진 얼굴로 말하던 페페는 세한이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자 말을 멈췄다. 페페의 코앞에 멈춰선 세한은 페페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지금은요?" 진지한 세한의 목소리에 페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지금도…." 잠시 페페를 내려다보던 세한은 난처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체들은 사라졌지만 학살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그 모습을 씁쓸한 얼굴로 돌아보던 세한이 입을 열었다. "이런… 하필이면 이런 일로… 이거 용서가 되는 겁니까?" 세한의 질문에 페페는 좀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 "규약상 용서는 되지만… 저는 용서 못해요. 세한은 그런 차가운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그 소년이 그런 모습이기는 했지만 지금 내가…." 페페는 자신의 말을 멈추게 하는 세한의 따뜻한 입술을 느끼며 나머지 말을 삼켰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보고 있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그런 모습의 세한이라고요. 페페가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 하지만 페페는 자신의 입술에 닿아있는 세한의 입술과 서서히 자신의 입안으로 들어오는 세한의 혀를 느끼며 딱딱히 굳어있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페페는 세한이 키스를 끝내고 자신을 내려다보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새빨개진 페페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세한이 입을 열었다. "이러면 용서가 되요?" 장난기가 섞여 있는 세한의 질문에 페페는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그보다 중요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는데… 털썩. 대답을 들어야할 당사자가 풀썩 쓰러진 것이었으니… 세한의 몸이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죽음. 페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세한을 바라보았다. 그날… 마나르트의 마력을 너무 오래 사용한 세한은 처음으로 죽음을 경험했다. 하지만 어떤 운영자의 도움으로 능력치는 거의 깎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역시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인가? "물이라니까!" "바람이야!" "바람이 어떻게 불은 끈다고 그래?" "촛불을 보라고.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그대로 꺼지잖아." "그럼 엄청 큰집에 대형 화재가 났는데 바람불면 불이 꺼지냐? 물로 끄잖아! 애는 가만히 있어!" "누가 애야! 괴짜나 가만히 있어!" "이게!" -이봐. 답은 언제 말할 거지?- 일제히 한숨을 내쉬는 일행들. 열심히 말싸움을 하고 있는 지미와 유미. 대단하다… 한시간 동안…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아있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세린이 내 왼팔을 껴안고는 불만에 찬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정말… 엄청나게 싸우네. 스핑크스마저 지친 얼굴이에요." "내가 더 지쳤어. 일주일간 노동을 끝내고 처음 오는 던젼이라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는 시시한 몬스터에 지금은 스핑크스 덕에 한시간 째 이러고 있으니…." *스핑크스(Sphinx) : 사자의 몸에 여성의 머리와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몬스터입니다. 지능이 높고, 고대어 마법을 외울수 있습니다. 또한, 수수께 끼를 좋아해, 만난 모험자에게 문제를 내어, 풀면 협력해 주는 일도 있습니다. -인간. 어서 답을 말하도록- 거대한 바위 위,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벽의 앞에 버티고 앉아있는 스핑크스의 목소리… 처음에는 위엄이 넘치고 묵직한 목소리였건만… 지금은 짜증에 절은 목소리다. 그냥 죽이고 지나가? 하지만 이런 미궁의 스핑크스는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저놈… 년? 얼굴은 여자니… 어쨌든 저 친구를 죽인다고 문이 열릴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 "우… 오빠 저 졸린데…."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이를 갈며 말하자 세린이 입을 삐죽 내밀고는 입을 다물었다. 으으… 짜증난다. 저런… 나는 강렬한 눈으로 레도르를 노려보았다. "레도르!" "왜?" "길마가 뭐해!? 빨리 끝내!" 내가 살기까지 섞어서 얘기하지 레도르는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까지 튀겨가며 싸우는 지미와 유미를 보며 레도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드 형. 답이 뭐라고 생각해요?" 내 질문에 내 옆에 앉아서 지친 얼굴을 하고 있던 시드가 대답했다. "물이 아닐까?" 역시나… 물이라…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는… "죄송합니다만. 문제를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레도르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스핑크스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레도르의 행동에 지미와 유미도 말싸움을 멈추고는 스핑크스를 바라보았다. 한숨을 내쉬는 스핑크스. -후우… 끔찍한 인간들이로군. 그나마 저기 다크 엘프의 표식을 가진 인간이 있어 참고 있었다만… 어쩔 수 없지. 다시 알려주마- 나를 바라보며 다크 엘프를 언급하는 스핑크스. 그러고 보니 OPG를 벗고 있었잖아? 저놈이… 나는 살기를 피어 올리며 스핑크스를 노려보았다. "다크 엘프? 무슨…." 레도르의 말을 무시하며 나는 스핑크스를 노려보았다. "닥치시지. 더 이상 입을 열면 가만히 있지 않아." 내 살기에 반응해 마나르트에서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따분한 얼굴이던 스핑크스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아무리 너라도 나를 이기기는 힘들 것이다. 어쨌든 발설하지 말라니 입을 다물어 주지. 그럼 문제를 알려주마. 모든 생명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 그곳의 맨 처음을 지키는 것. 그것이 사용하는 것. 이것은 죽이지 못하지만 그것은 이것을 죽이는 것. 그것은 조용하고 고요하나 한때는 엄청난 분노를 보이고 이것이 없으면 인간은 살수 없다. 이것은 무엇인가?- 대단해… 이것, 그것, 이것, 그것. 처음에는 문제의 이해도 어려웠으니… 잠시 생각하던 레도르는 일행을 둘러보았다. "모두 모여 봐. 상의를 좀 하자." 레도르의 말에 일행들이 모여들어 둥그렇게 앉았다. 나는 귀찮아서 그냥 앉아 있었고 덩달아 세린도 내 팔을 껴안고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이시린과 내 뒤에 시립하고 있는 칼도. "오빠는 안 가요?"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속삭이는 세린.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좀 떨어져." "후우… 애인하고는 키스도 하고 껴안기도 하더니… 나하고는 어때요?" 유혹하듯 속삭이는 세린.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모든 생명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 천국 아니면 지옥인데…." 레도르의 말에 시드가 대꾸. "하지만 맨 처음을 지키는 것. 문지기라는 것 같은데… 천국은 몰라도 지옥에는 켈베로스가 있잖아. 그놈은 불을 뿜고." 시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까도 여기까지는 추측했으니까… 그러면 뒤로 넘어가서… 불은 죽이지 못하지만 이것은 불을 죽인다? 뭘까요?" 레아의 말에 지미와 유미가 외쳤다. "물!" "바람!" "이유를 대봐." "물이 없으면 못살아! 바람이야 있든 말든." "바람이 없으면 구름이 움직이지를 못해서 비가 못내려! 이 멍청한 괴짜!" 아까도 저기서 지미와 유미가 충돌을 일으켜 한시간 동안 싸움을 벌였지. 나는 고개를 젓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뒤에는 칼이 있고… 나는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이시린을 바라보았다. 엥? 나를 보고 있었네? 내가 자신을 바라보자 이시린은 시선을 돌렸다. 흠… 쿵. 쿵. 쿵. 쿵. 갑자기 내게 다가오는 스핑크스 열심히 토론을 나누는 녀석들이야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지만 남아있던 사람들은 긴장한 얼굴로 내 옆으로 다가왔다. "오, 오빠."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세린. 어느새 이시린이 내 오른쪽에 앉아 있었고 칼이 검을 뽑아들고 내 앞을 막고 서 있었다. 후… 왜이리 긴장을 하는 거지? "칼. 물러나." "하지만…." "괜찮아." 칼은 내 말에 검을 집어넣지는 않은 채로 내 뒤로 걸어왔다. 스핑크스가 내 앞에 멈춰 서서는 아까처럼 엎드려 누웠다. 흠… 얼굴이 예쁜 편이긴 한데… 너무 커. "뭐야?" 내 질문에 스핑크스가 입을 열었다. -다크 엘프의 마을에 갔던 모양이군- 나는 인상을 썼지만 이시린이나 세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어? 오빠. 들렸어요?" 세린의 말에 나는 스핑크스를 바라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스핑크스는 마법도 쓰지? "이런… 잠시 당황했네. 맞아." 내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스핑크스로 미소를 지었다. 괜찮은 녀석이네? 마법으로 말을 건네고. 그리 머리가 나쁜 친구는 아니군. -놀랍군… 어디에 있는 마을에 간 거지?- 나는 눈을 번뜩였다. 호… 마을이 여러 개라는 걸 알고 있나 보지?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나도 다크 엘프들의 마을이 한 개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악마." 내 간단한 대답에 스핑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의 숲이라… 후… 아쉽군… 혹시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나?- 부탁이라… 퀘스트인가? 나쁘지는 않겠지… 그런데 얼굴은 여잔데 말투는 남자라…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세린과 이시린이 의아한 눈으로 나와 스핑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스핑크스의 눈을 좀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군. 칠흑의 숲이라는 곳이 있지. 자네라면 살 수 있는 곳이야.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곳의 중앙에 다크 엘프의 마을이 있지. 거기에 가면… 테티오라는 스핑크스가 살고 있어. 그 스핑크스에게 이 보석을 전해주게- 순간 내 앞에 푸른빛의 보석이 떠올랐다. 허억!? 브, 블루 다이아몬드!? 나는 놀란 얼굴로 푸른 빛의 다이아몬드를 바라보았다. 세린과 이시린도 놀란 눈으로 보석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블루 다이아몬드를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보석이 나와서 놀란 정도? 나는 의아한 얼굴로 스핑크스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군. 나를 믿을 수 있나?" 내 질문에 스핑크스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얼굴이 좀 커서 그렇지 미소를 지으며 꽤 예뻤다. -물론. 그 반지는 엘프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맡길 만한 자에게만 주는 물건. 그런 물건을 가진 사람을 믿지 못한다면 믿을 수 있는 존재는 하나도 없겠지. 엘프들의 눈은 정확하니까. 그건 엘프든 다크 엘프든 다 마찬가지야- 이 반지가 그런 엄청난 거였단 말야? 나는 놀란 눈으로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바라보았다. 좋아. 나는 고개들고는 공중에 떠 있는 블루 다이아몬드를 낚아챘다. 스핑크스가 미소를 지었다. -고맙군- "어?" 이번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세린과 이시린이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었고 스핑크스는 바위위로 돌아갔다. "뭐가 고맙다는 거예요?" "글쎄…." 내 대답에 세린의 눈꼬리가 올라갔지만 나는 무시하며 아직도 토론 중인 일행을 바라보았다. 정말… 순간 의견을 모았는지 레도르 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정했나 보지? 하지만 아까 그대로 라면 문제가 좀 심각한데… 나는 약간 긴장한 눈으로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때 지미가 앞으로 나섰다. 어? 설마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다른 일행들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데… 그렇다면… 맙소사! "정답! 물!" "에라이!" 스핑크스의 앞에 강한 기운이 모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 나는 급히 앞으로 달려나갔다. 세린이 넘어지는 소리가… 나는 마나르트에 손을 가져갔다. "모두 물러서!" 내 고함소리에 놀란 레도르들이 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날아오는 엄청난 크기의 빛줄기… 미치겠네… 나는 마나르트의 마기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쿠아아앙! "뜨아아악!" 검은 마기와 환한 빛줄기가 충돌. 그리고 나는 엄청난 충격에 뒤로 날아갔다. 으으… 철푸덕. "커헉!" 벽에 몸을 처밖은 나는 신음을 흘렸다. 저놈의 스핑크스… 장난이 아니네… 일행들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칼이 검을 스핑크스에게 겨눴다. "이 자식!" 헉!? 나는 칼이 스핑크스에게 달려들려 하자 마기를 이용해 칼을 묶었다. 칼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한님?"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스핑크스를 향해 말했다. "정답. 땅. 혹은 흙이라고 하지." 내 말에 일행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스핑크스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환한 빛을 내며 열리는 스핑크스 뒤의 문. 아까까지는 벽이었지만 지금은 문으로 변해 있었다. -부탁하지. 지혜로운 인간- 나는 콧방귀를 뀌고는 넘어져 울상을 하고 있는 세린을 일으켜 주었다. "강한데? 아무리 급히 막았다지만 엄청났어." 나는 미소를 짓는 스핑크스를 바라보다가 세린이 훌쩍거리자 놀라 고개를 숙였다. 세린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허억!? "야, 그걸로 울어?" "미안하면 안아줘요." "………." 나는 당장 세린의 손을 놓고는 레도르에게 다가갔다. 레도르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후우… "불은 물을 증발 시킬 수도 있지. 하지만 흙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아. 대지는 조용하지만 한번 열받으면 완전 깽판치지. 대지가 없으면 인간은 살 수 없지. 앞으로는 내 의견도 좀 묻고 살아." 내가 특히 지미와 유미를 쏘아보자 둘은 시선을 피했다. "가자." "예." 문의 뒤는 지금까지의 동굴과는 달리 신전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대리석이 깔린 통로였다. 그때 뒤에서 세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앙." "………." 나는 얼굴을 굳혔고 걸어가던 레도르 등도 걸음을 멈추며 뒤를 돌아보았다. 으음… 잠시 나와 내 뒤를 번갈아 바라보던 레도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안아줘요. 페페 씨에게는 비밀로 해줄게요." "………." 그대로 매정하게 몸을 돌려 걸어가는 레도르. 시드 형과 지미 등도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후… 스핑크스가 재밌다는 듯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으으… 세린의 울음소리가 계속 이어지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순간 들려오는 스핑크스의 목소리. -후후. 겉보기는 그렇지 않은데 공처가인 모양이지? 거기다 페페라는 여자도 있는 모양인데… 공처가에 바람둥이라… 하하하!- 순간 칼이 몸을 움찔했다. 갑자기 내가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더니 눈에서 살기를 뿜어냈으니 당연한 반응일 수도… 나는 마나르트를 뽑아들었다. "오, 오빠. 다시는 안 그럴 게요. 제, 제발… 꺅. 기, 기분이 이상…." "………." 내가 대답없이 싸늘하게 노려보자 울상을 짓는 세린. 세린은 벗겨지려고 하는 옷을 부여잡으며 애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 오빠. 제, 제발. 나, 이, 이런 거 싫… 꺄악!" "시끄러." 내 싸늘한 대답에 세린은 배신감을 느끼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곧 눈길을 거두며 바둥거리는 세린. "흑, 나, 난 이런 거 싫어! 꺄악!" 나를 세린이 비명을 지르던 말던 신경 쓰지 않으며 하던 일을 계속 했고 오히려 다른 일행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혀, 형. 내려주는 게 어때?" "그, 그래. 한. 진짜로 울려고 하는 것 같은데…." "후후후… 공처가라… 거기에 바람둥이… 후후후…." 내 싸늘한 목소리에 입을 다무는 일행.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포기하기로 한 모양인데… 마기에 묶여 허공에 떠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 세린이 몸을 바둥거렸다. "흑. 내려줘요. 기, 기분이 이상한데… 힝… 꺄악!" "마기니까 당연하지." 나는 어깨에 걸치고 있는 마나르트를 빙글 돌려 역수로 쥐었다. 심하게 흔들거리는 세린. "꺄아악! 오, 오빠. 제발… 꺅!" 세린은 울상을 지으며 공중에서 흔들거렸다. 그리고 안쓰러워 하는 눈으로 세린을 바라보는 레도르 등. 나는 코웃음을 치고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덤으로 딸려 나오는 세린과 내 뒤를 지키고 있는 칼. "꺄아아… 오, 오빠! 그거 계속 들고 있으면 안 된다면서요." "전투에 쓰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마기만 살짝 쓰면 상관없어. 적어도 몇 시간은 버틸 수 있으니까 걱정 마라." "흑, 나, 난 고소공포증이… 흐흑." "겨우 2m 떠있는데 고소공포증이 무슨 상관이야. 헛소리 말고 옷이나 붙잡아." 솔직히 마기에 의해 공중에 떠올라 이리저리 흔들리면… 웬만한 여자들은 다 무서워하겠지… 하지만 나는 무시하며 계속 걸어갔다. "저기… 한 오빠. 세린 언니 정말로 고소공포증이 조금…." "너도 한번 공중에 떠볼래?" 내 말에 뒤로 물러나는 레아. 그리고 내가 지금 평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일행은 조용히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세린이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내 옆으로 이동시키며 앞으로 걸어갔다. 내 오른쪽에 떠올라 바둥거리는 세린. 하지만 나는 깨끗이 무시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흑. 너무해. 여자한테… 꺅. 혹시 페페한테는… 꺄악. 혹시 이렇게 묶어 놓고는… 어, 어어… 으아앙. 자, 잘못했어요." 세린은 내가 마나르트의 천을 풀고 뽑아들자 파랗게 질려서는 몸을 가리고는 떨기 시작했다. 흥. 나는 세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꺄악!" "무, 무슨!" 레도르가 놀라서 앞으로 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바닥으로 떨어지는 세린. 세린의 머리카락들이 짧게 잘려있었다. 일행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나와 세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벌은 그걸로 끝. 나는 잠시 나갔다 오지." "예?" 레아와 유미가 세린을 살펴보는 것을 보고 있던 레도르가 나를 바라보았다. "꺄아아악!" 순간 들려오는 여자의 비명소리. 세린은 아닌데… 앞에 몬스터가 있는데 습격? 나와 눈빛을 주고받은 레도르가 급히 세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알아서 따라오겠지. 나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내 뒤를 따라오는 칼과 이시린. 우리가 달려가자 지미와 시드가 따라오기 시작했다. "꺄악!" 계속해서 들려오는 여자의 비명소리. 그런데 이상한데… 식스센스에 의하면… 크아아… 순간 우리앞에 드러난 몬스터들의 모습에 나는 급히 멈춰 섰다. 이, 이놈들은… "커헉? 로우 데몬이잖아? 거기다… 이게 몇 마리야?" 시드의 놀란 목소리. 오랜만에 보는 녀석들이네… 이미 커다랗게 변한 것이 안타깝다. 작을 때는 귀여운데… 순간 나는 로우 데몬들의 중간쯤에 쓰러져 있는 녹색머리의 여자를 발견했다. 허억!? 페페 뺨치는 미모. 거기에 옷은 반쯤 찢어져서 가슴이 보일락 말락 한데… "허억!? 미인이닷!" 지미의 놀란 목소리. 그 여자를 관찰하고 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괴성을 지르는 로우 데몬들. "아이스 스피어!" 나를 앞서 날아가는 얼음의 창들. 이제 타이밍이 척척 맞는단 말야. 나는 로우 데몬들이 얼음의 창들을 막는 순간 마나르트를 휘둘렀다. "속검(速劍)! 마검기(魔劍氣)!" 같은 마력을 지녔지만 내 마력이 훨씬 강하지. 마력이 실린 내 검기들에 로우 데몬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우 데몬들의 사이로 파고든 나는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살검(殺劍)!" 한놈의 목이 날아가고… 나머지 비틀거리는 놈들에게는 이시린과 칼이 달려들었다. 어차피 정상인 로우 데몬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가진 둘이니 상관할 필요는 없고… 크아악! 나는 내 가슴을 찔러오는 손톱을 보며 몸을 비틀었다. 좀 늦었나? 스아아앙. 로우 데몬의 공격을 미리 막는 바리어. 덕분에 공격이 늦어진 로우 데몬. 나는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크아아아악! 또 한놈의 머리가 날아가고… 내 손에 엄청난 피해를 입자 로우 데몬들은 나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흠… 도대체 손톱들이 몇 개야? 나는 급히 위로 도약했다. 로우 데몬들의 머리위로 뛰어오른 나에게 몰리는 시선들. 그 시선에는 그 녹색머리의 여자도 있었다. "후… 스핀 스트라이크(Spin Strike)!" 몸을 회전시키며 주위의 데몬들의 머리통을 찍어 내리는 나. 내가 바닥에 내려서는 것과 동시에 로우 데몬 몇이 풀썩 쓰러졌다. "멋져…." 음? 녹색머리의 여자가 나를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뭐야? 순간 나를 향해 날아오는 손톱들. 나는 급히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어라? 벌써? 화룡(火龍)!" 세린을 포함한 여자들을 이끌고 달려온 레도르가 검에 불을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쓰러지는 로우 데몬들. 이미 내가 힘도 빼놨고 레도르의 실력이 원래 뛰어나니… 일행들이 모두 합세하자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전멸 당했다. 마지막 몬스터의 숨통을 끊어놓은 레도르가 한숨을 쉬며 레아의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나는 별 상처도 입지 않았구만… 뭐, 바리어 덕분이긴 하지만… 그때 녹색머리의 여자가 우리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옷의 윗부분이 뜯겨 흘러내리는 것을 팔로 붙잡고 있는 것이 상당히 매혹적인데… "예쁘다…." "아름다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지미에… 시드? 시드는 또 왜… "아…." 레도르의 신음소리. 내가 고개를 돌리자 얼이 빠져 있는 남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칼까지… 한심하구만… 그때 내 앞에 그 녹색의 여자가 멈춰 섰다. 음? "멋지군요…." 마치 유혹하는 듯한 목소리. 세린과는 차원이 다른데? "강인한 전사…." 순간 그 여자가 옷을 붙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옷이 흘러내리며 드러나는 가슴. 새하얀 피부… 뒤에서 세린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 여자 뭐야!" "하, 한 오빠!" 남자 녀석들을 돌아보니… 붉어진 얼굴로 녹색머리의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그때 그 여자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녹색 눈을 들어 내 눈을 바라보는 여자. 흠… 확실히 멋지긴 한데… 가슴도 보기 좋고… 뒤에서 세린이 발광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날 가지고 싶지 않나요?" 내 몸에 손을 얹으며 얼굴을 가져다 대는 여자. 거기다 온 몸을 내게 밀착시키고 있었다. 뒤에서 세린을 포함한 여자들이 달려오는 것 같은데… 나는 마기를 움직였다. 내 마기에 얻어맞은 모든 일행들이 몸을 흠칫거렸다. "혀, 형!?" 정신을 차린 듯 레도르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으로 욕을 퍼부은 나는 자신의 얼굴을 내 얼굴로 가까이 가져오는 녹색머리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촉촉하게 젖어 있는 입술… "오, 오빠!" 세린의 고함소리.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 여자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마주치는 입술. 마치 전에 페페와 키스를 하는 듯한… 아니 더 좋은데… "으아악! 혀, 형! 뭐하는 거야!" "하, 한 오빠!" "한님!?" 당황한 목소리로 외치는 일행들. 키스를 하고 있던 나는 순간 살기를 피어 올리며 그 여자의 눈을 노려보았다. 그 여자는 내가 자신의 몸을 새게 끌어않자 몸을 움찔했다. 살짝 입술을 땐 나는 미소를 지어주며 입을 열었다. "이봐… 확실히 몸은 좋은데… 키스하는 것도 괜찮고… 그런데 말야… 나는 저 한심한 일행들 같지 않아서 말야… 어쨌든 더러운 기분은 풀렸어." 순간 여자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마기를 끌어올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죽어." 밀착되어 있는 몸과 다시 맞대고 있는 입술을 통해 엄청난 양의 마력과 마기가 여자에게 흘러갔다. 몸을 부르르 떠는 여자. 순간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흠… 역시 식스센스는 정확하다니까. 끼이이이악! 순간 나를 뿌리치며 뒤로 물러나는 녹색머리의 여자. 나는 입술을 닦으며 뒤로 물러났다. "훗. 기분은 나쁘지 않은데…." "혀, 형?" "오, 오빠! 무슨…." 나는 일행들을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이런 한심한 친구들아. 너희는 사람하고 몬스터도 못 알아 보냐? 특히 남자 동지들. 확실히 매혹적인데다가 유혹 마법을 쓰고 있었다지만… 그렇게 멍하니 있어? 흠… 어쨌든 키스는 나쁘지 않던데…." 끼이이이이이악! 순간 증폭되는 기운에 나는 몸을 돌렸다. 어느새 좀 크게 부풀어 오른 녹색머리의 여자. 그 여자의 하반신은 거대한 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라미아(Lamia)…." *라미아(Lamia) : 라미아는 상반신이 여성이고, 하반신이 큰 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고대어마법에 능통하여, 자주 "체인지"의 주문으로 인간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라미아는 사람의 생피를 흡수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게임에서야… 피를 먹지 못해도 살기야 합니다. 레도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맞아. 흠… 내가 마음에 들었었나 보지? 내 피를 뽑아먹으려 했다… 흠… 키스 정도로는 아까운 피를 줄 수는 없지. 그런데 이 던젼에는 고대 몬스터들이 많은가 본데…." 아까는 스핑크스에 이번에는 라미아라… 둘 다 고대 괴물. 고대마법을 사용하는 놈들인데… 그래고 스핑크스보다는 라미아가 더 약하지… 나는 마나르트를 들어올렸다. -인간… 대단하군- 아까와 같이 매혹적인 목소리. 나는 피식 웃으며 라미아를 노려보았다. 뭐… 나야 마법 저항이 높아서… 네 정체를 아는데 별 힘들지는 않았다만… "흠… 키스는 좋던데? 한번 더 할래?" 끼아악! 괴성을 지르며 나를 노려보는 라미아. 나는 미소를 짓고는 마기를 발산했다. 어두워지는 주위. 오래는 힘들어… "모두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라. 엄청 강한 놈이니. 아까부터 이 검을 써서 아마… 한 15분 정도가 한계일텐데… 알아들었냐?"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집어들었다. "시드 형. 라미아는 마법 공격이 꽤 강하니까 좀 도와줘요. 공격대신 마법 방어만. 마법 공격은 유미가 정령으로 대신. 나머지는 모두 검기를 끌어올려서 공격. 레아는 보조 마법에 마법 방어좀 해주고… 세린은 단검으로 견제." 흠…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격을 준비했다. 순간 라미아의 앞에 모이느 마나. 나는 왼손을 허리에 가져갔다. "나는 따로 행동하지. 레도르. 지휘해라. 대거 댄싱!" 단검을 집어던진 나는 곧바로 은신술을 이용해 몸을 숨겼다. 마법을 방해받아 괴성을 지르는 라미아에게 레도르를 선두로 모두 공격을 시작했다. 쳇. 나는 라미아에게 다가가던 몸을 뒤로 뺐다. 은신술을 사용해 보이지야 않겠지만… 달려드는 다른 사람들을 막기 위해 라미아는 자신의 주위로 불의 장막을 펼치고 있었다. 멋지네… "화룡(火龍)! 화격(火擊)!" 불의 장막을 뚫고 들어가며 검을 휘두르는 레도르. 그리고 시드가 마법을 사용했다. "프리즈." 동결? 시드의 마법에 불길이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다른 일행들도 곧 라미아를 향해 공격해 들어가는데… 저건 뭐지? -건방진… 죽어라!- 라미아의 손에 생겨나는 검은 창. 그것도 삼지창이네? 흠… 지금까지는 위가 알몸이라 보기 좋았는데… 창 덕분에 좀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콰드드득! 엄청난 공격. 라미아가 창을 한번 휘두르자 아주 주위가 박살이 났다. 바닥은 뒤엎어지고 벽은 무너지고… 끔찍한데… 그 창에 얻어맞은 지미가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지미! 젠장! 크림슨!" 엄청난 불길을 일으키며 라미아를 노리고 달려드는 레도르… 거기에 이시린과 칼까지… 하지만… "컥!" 라미아의 마법과 무시무시한 창에 모두 변변한 공격도 해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역시… 시드 형과 레아가 있어도 힘든가? 나는 라미아의 뒤로 움직였다. 이 옅은 어둠 속에서는 난 무적이다. 끼아아아아아악! 마나르트에 어깨를 찔리고 비명을 지르는 라미아. 일행은 내가 갑자기 나타나자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가 라미아가 휘두르는 눈먼 창에 급히 뒤로 물러났다. 끼아아악! "시끄러워." 라미아의 등에 매달린 나는 마나르트를 밑으로 내려긋기 시작했다. 심장으로… "형! 조심해!" 음? 순간 날아오는 라미아의 꼬리… "커헉!" 등을 호되게 얻어맞은 나는 약간 위로 솟구쳤다. 크윽… 마나르트를 놓쳤어… 라미아의 머리를 붙잡은 나는 공중으로 날아가는 대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며 라미아의 목을 붙잡았다. 음? 그러고 보니… 앞으로 돌아왔네? 어느새 내 몸에 라미아의 가슴이 닿아있었다. 흠… 애로틱 해라… "웬만하면 옷을 좀 입고 다니지 그래?" 나는 물컹거리는 라미아의 가슴을 느끼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흠… 좀 거대해 지니까 가슴도 커졌네. 거기다 저 눈동자… 거의 내 주먹만한데… -죽어라- "생각 없어." 나는 라미아의 창이 날아오는 것을 무시하며 OPG에서 손톱을 꺼냈다. 그리고 라미아의 가슴을 후려친다. 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라미아. 분명히 이쯤이었는데… 라미아의 가슴을 뚫고 들어간 내 손에 마나르트의 검날이 닿았다. 좋아. 퍼억! "커헉!?" 순간 내 등을 후려치는 라미아의 창. "형!" "으아아! 미치겠네! 거기 붙어있으니까 도와주지도 못하잖아!" 시드의 고함소리. 크으… 등이 터진 것 같은데… 나는 이를 악물며 검날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잡아당긴다. 끼이이이악! 엄청난 비명을 지르는 라미아. 마나르트의 검끝이 라미아의 가슴을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크으… 더이상 마력을 버티기가… 거기다 검끝을 잡고 있으니 마력 제어가 훨씬 힘들어… 끼아악! "마나르트!" 순간 마나르트의 검날이 넓어지며 라미아를 반으로 갈랐다. 몸통의 반이 날아간 라미아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떨어지는 마나르트와 나. 크으으… 아주 피범벅이 됐군… 털썩. 라미아의 시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죽었다… 하필이면 내 위로 떨어지니? 나는 라미아의 밑에 깔리며 괴로워 했다. 으아아! 안 그래도 등 아퍼 죽겠는데 내 몸을 또 눌러!? 이 망할 몬스터가! 내 몸을 누르고 있는 것이 여인의 알몸이든 아니든… 아픈 건 아픈 거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잡아당겨 밖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고맙긴 한데… 더 아프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괜찮아요?" 걱정스러워 하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이시린, 레아, 세린, 유미.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아이템을 줍고 다니는 시드와 지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 꺼내고 있는 건 칼과 레도르인가? 레아가 무릎을 꿇고는 치료를 시작했다. 으음… "별로 괜찮지는 않은데… 그래도 키스에 여자 알몸을 건드린 벌이라고 생각해야지… 레아. 거기보다는 등이 더 아프다." 라미아의 몸에서 빠져나온 내가 몸을 일으켜 앉자 레아가 등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으음… 나는 붕대나… 품속에서 붕대를 꺼낸 나는 다른 상처를 감기 시작했다. 후… 머리가 단발로 바뀐 세린과 다른 여성 동지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성동지들은 칼을 빼고는 모두 아이템을 주우러 다니고 있고… "오… 단발도 잘 어울리네?" 내 말에 세린이 인상을 찡그렸다. 살기등등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세린. "오빠!" "으음… 아직도 시끄럽네… 한번 더 해볼까?" 내가 마나르트를 불러들이며 빙긋 웃자 세린은 몸을 흠칫 하고는 내 옆으로 다가앉았다. 후우… 그래도 내 옆에 달라붙는 건 여전하네… "아, 아뇨. 괜찮아요. 많이 아프죠?" 아부성 짙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거는 세린.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남성동지들이 가지고 오는 아이템들을 바라보았다. "좋은 거 있냐?" 내 말에 레도르가 미소를 지었다. 괜찮은 것들이 좀 있나보지? "꽤 많아요. 흠… 보석도 몇 개 나왔고… 괜찮은 건틀릿에… 검도 있고…." 으윽… 다 필요 없는 것들이네. 검이고 건틀릿이고 좋은 것들만 가지고 있으니… 레아의 치료가 끝나자 나는 몸을 일으켜 아이템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으음… 내가 쓸만한 게 없잖아…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음? 저기가 끝? 나는 옆으로 꺽이는 통로를 지나 옆을 바라보았다. 막혀 있는데… 어라? 저기 제단 위에 앉아있는 두명의 어여쁜 아가씨들… "………." "어머? 오랜만에 오신 손님이네…." 나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다가오는 두 여자. 문제는… 아까 라미아처럼 옷을 벗으면서 다가온다는 것과… 사람이 아닌 몬스터라는 건데…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돌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야! 튀어! 리콜 스크롤!" "에?" 아이템들을 챙기고 있던 레도르 등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얼굴을 붉히는 남성동지들과 파랗게 질리는 여성동지들… 벌써 왔어? 몸을 돌려보니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는 두 여자를 볼 수 있었다. 으음… 나는 급히 마기를 발산했다. 두 여자의 앞을 가로막는 검은 기운. "이런… 눈치를 챘나 보네?" "대단하군요… 어머? 델도 죽어 있잖아?" 순간 사라지기 시작하는 레도르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리콜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빠르구만… 두 여자의 눈이 붉게 변하며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으음… 보기는 좋은데… 스크롤을 찢자 환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다 떠나고 없는 일행. 후… "크로스." 나는 선물 삼아 X자의 검기를 날려주며 텔레포트 되었다. "어? 그럼 혼자 간다고요?" "응." 놀라서 물어오는 레도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앗! 오빠! 나하고 같이 가요!" "싫어." "한님. 저는…." "칼은 차렌으로 가서 니베나 도와줘. 레벨을 좀 올려줘서 우리 길드원들하고 같이 다닐 수 있게. 아, 그리고 니베하고 같이 있는 제시도 좀 도와주고." 니베. 민경이는 지금 차렌에서 제시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얼마 전에 제시를 소개시켜 줬더니 죽이 맞아서는… 아예 차렌에서 살고 있는 니베였다. 하크 씨 무기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흠… 형이 가면 어려운 던젼은 가지 못하겠네…." 레도르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내가 없는 동안 좀 강해져 봐. 강한 놈들만 나오면 나만 고생이니…." 내 말에 레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칠흑의 숲이 꽤 떨어진 곳에 있으니… 텔레포트 협회를 이용해야 하나? 그때 잠시 머뭇거리던 이시린이 입을 열었다. "제가 같이 가면 안될까요?" "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이시린의 말에 의아한 얼굴로 이시린을 바라보았다. 흠? 왜?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돼. 너희는 대학생이라 못하는 시간도 있고…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어서…." 내 말에 이시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좀 쑥스러워 하는 듯한 얼굴로 음료수를 마시기 시작했다. 흠. 그럼 끝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배낭을 둘러맸다. "그럼… 길드창은 꺼둔다. 할 말 있으면 귓말로 보내. 그럼… 음… 나중에 보자." "버, 벌써 가게요?" 레도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있어서 좋을 것 없지. 일행들이 아쉬워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손을 흔들며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세린이 내게 달려들었다. "어? 뭐… 웁." 뭐, 뭐냐? 나는 세린이 내게 입을 맞추자 놀라서 세린을 밀어냈다. 기, 기습 키스를… 순순히 물러난 세린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호호. 이별 선물로 받아 둘게요. 나중에 봐요." "너… 너!" 재빨리 방으로 도망가는 세린. 나는 이를 갈다가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일행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 나 간다… 잘들 지내…." "아, 다음에 봐요…." "아… 잘 가요 오빠!"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던 레도르 등이 어설프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으으… 나는 한숨을 쉬고는 손을 흔들어주며 여관을 나섰다. 햇살 좋네… 지금이야 망토도 벗고 머리도 뒤로 넘기고 있으니 시선 끌 일도 없고… 한숨을 내쉬며 길을 걸어가려던 내게 세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호. 잘 가요, 오빠!" 고개를 들어보니 2층의 창문에 세린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주 손을 흔드는 세린. 나는 고개를 젓고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혼자 다니는 것도 오랜만인데… 흠… 그냥 다크소드의 모습으로 다닐까?" 이제 괜히 숨길 필요도 없다는 생각에 나는 천상의 망토를 꺼내 둘렀다. 그리고 머리를 앞으로 넘긴다. 그리고 얼마 뒤 주위에서 숨죽인 비명소리, 혹은 탄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짜 아닐까? 하고 중얼거리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확실히 나를 따라하는 사람도 있나 보지? "후… 갈바린 시도 이제 안녕이군." 나는 텔레포트 협회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끼룩! 끼룩! 크아아앙! "………." 나는 질린 얼굴로 내 앞에 펼쳐진 울창한 숲을 바라보았다. 으음… 도, 도대체 이게… 여기에 다크 엘프들이 살기는 하는 걸까? 이런 엄청난 기세라니… 쉴새 없이 이상한 괴성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으음… "좀… 혼자 들어가기가 무서운 곳이군… 그냥 레도르들을 데리고 올걸… 아, 아무래도 작전상 후퇴를…." 나는 괴성이 들려오는 칠흑의 숲을 바라보며 낮은 웃음을 흘렸다. 하하… 이곳의 다크 엘프들은 더 죽은 듯이 지내고 있겠는데… 솔직히 다크 엘프 전사들은 대부분 레벨 200정도의 능력이 있으니… 어느 정도 살기는 하겠군. "아무래도 숲 안에 안전지대를 설정하고 로그아웃을 하는 게 좋겠지?" 숲 안으로 조금 들어간 나는 침낭을 꺼내 안전지대를 설정하고는 로그아웃을 시작했다. 으음… 아무래도 홈페이지에… 철컥. "휘유우…." 캡슐에서 빠져 나온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했다. 음? 페페가 보낸 메일이… "오늘 만나자고? 흠… 오후 3시면…." 시계를 확인한 나는 섀도우 월드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아직 2시… 일요일이라 그런지 인터넷의 속도가 좀 느려진 듯한 기분이 드는데… 2.45 패치. 홈페이지의 맨 처음에 떠오르는 공지 사항. 또 패치냐? 흠… 한번 볼까? 2.45 패치. 드래곤 추가. 모든 몬스터 레벨 상향조정. 반인족 추가. ……… 대충 훑어 보던 나는 드래곤이라는 글을 보고는 눈을 깜빡였다. 드래곤? 그러니까 용? 이놈이 추가된다고? 호기심이 동한 나는 그 항목을 선택했다. 드래곤 추가. 드래곤. 레벨 1000. 크기 약 100m 정도. 모든 마법을 사용. 최고의 A.I로 섀도우 월드 컴퓨터 중 하나가 조종합니다. 드래곤은 단 한 마리로 최강이라 알려진 레드 드래곤이 추가됩니다. 드래곤의 레어가 생기는 곳은 적색 산맥. 유저 분들은 최대한 접근을 줄여주시길. 드래곤은 운영자들의 통제를 벗어난 몬스터로 하나의 독립 컴퓨터로 하나의 진짜 생명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프로그램 상 먼저 인간을 공격하는 일은 없도록 했지만 분노 상태 시 도시 하나를 날려 버릴 수도 있습니다. 드래곤의 위력을 알려드리려는 차원에서 곧 드래곤의 능력을 보여드리기로 했습니다. 현실시간으로 10월 6일. 정오에 패치가 실행된 후 이틀 뒤 10월 8일 오후 6시에 섀도우 월드의 모든 여관에서 중계됩니다. "와… 레벨이 1000이면… 미토스가 떼거지가 몰려들어도 지겠는데? 그런데 독립된 몬스터? 컴퓨터 하나가 조정한다고… 최고의 A.I라… 중계를 꼭 봐야겠군." 오늘이 10월 6일. 좀 있으면 패치가 되겠군… 나머지 항목은 귀찮아서 읽지 않기로 한 나는 게임 정보에서 칠흑의 숲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칠흑의 숲… 오, 여기…." 활동 몬스터. 미노타우르스 트롤. 오우거. 그리폰, 와이번?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망할 스핑크스 자식… 이런 숲에서 어떻게 살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와이번이라면… 지금 라이딩이 61인데… 그렇다면! 한 마리 잡아? 와이번 라이더라… 흠… 생각해 보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가는 유저들의 수가 굉장히 적다… 다크 엘프의 마을이 있다는 소리는 역시나 없고… 그러면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른다는 소린데… 그 스핑크스에게 숲의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어야 했어… 지금은 텔레포트도 벌써 했으니… 돈 때문에 다시 갈 수도 없고… "힘들겠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컴퓨터를 끄고는 거실로 나갔다. 흠… 드래곤이라… 그런데 레벨 1000이면… 잡으려면 엄청 오래 있어야겠군. "으음… 3시라… 전화가 올까?" 아마 전화가 올 테지… 내가 섀도우 월드를 하고 있나 확인하려 할테니… 지금 전화가 오면 신호가 오도록 맞춰 놨으니… 나는 냉장고에서 캔커피를 하나 꺼내들고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캔커피라… 큭." 전에 초연 씨가 전에 했던 말이 떠오르는데… 흠… 내가 첫사랑이라… 솔직히 그때 기억… 거의 가물가물한데… 그 여자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구만… 언제 초연 씨 앨범이나 봐볼까? "현실도 나쁘지 않아." 나는 울리기 시작하는 전화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발신자는 강초연이었다. --------------------------------------------------------------------------------------------------------------------------------------------------------------------------------------------------------------------------------------------------------------------------------------------------------------------------------------- 약간 서늘한 날씨. 나는 시원한 가을 바람을 느끼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긴 장발을 휘날리며 길을 걷는 내 모습에 몇몇 여자들의 시선이 모이기도 했다. 흠… "강 사범님이 계시겠지…." 초연 씨가 만나자고 한 곳은 강 사범님의 태권도장. 그걸로 볼 때 오늘 강 사범님이 도장에 나오시는 날이라는 말일텐데… 요새 도장에 나가는 일이 별로 없다. 임시 사범 일도 그만둬서… 흠… 섀도우 월드에서 정식으로 고용하다는 그 직업… 헌터라고 했나? 섀도우 월드에서 일어나는 범죄들을 막는 사람… 실행되는 것이 일주일 뒤… 내가 1기 헌터로 뽑혔다고 하는데… 우선 결정된 사람은 나 하나. 미토스가 같은 헌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들어보니 미토스도 백수라고… "킥." 작게 웃음을 흘린 나는 살짝 단풍이 들어가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흠… 이상하게 헌터로 뽑힐 만한 사람들이 적던데… 나야 초연 씨하고 친분도 있고… 아버님하고도 친분이 있고 유명하기도 하니까… 요새는 운영자들 사이에 미토스보다 내가 더 유명하다고 하던데… 그 무식한 스킬 올리기와 운영자의 꽃이라는 페페의 애인이라는 소문으로… 어쨌든 제 1기 헌터로 확정된 것은 나 하나다. 헌터에 지원하더라도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태권도장이 눈에 들어오자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2시 40분이라… 약간 일찍 왔는데… 나는 바로 옆 피자 집에서 피자 두판을 사들고는 도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보며 눈을 빛내는 아이들. "먹을 거!" 아주 내가 먹을 것 주는 사람으로 굳었구만… 나는 피식 웃고는 도장 아이들에게 피자를 건네주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요일이라 어른들도 꽤 있는데… 모두 내가 아는 사람들이고 사람들을 지도하고 있는 강 사범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 현진 군!" 나를 보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모두 나보다 최소 5살은 더 먹은 분들이니… 내 또래의 인간들은 일요일에는 죽어도 안나온다. "초연이를 만나러 왔나?" "물론이죠. 아니면 일요일에 여길 올 이유가…." "현진 씨?" 강 사범님과 얘기를 나누던 나는 초연 씨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초연 씨.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 머리 위를 지나가는 강 사범님의 주먹. "음… 장하긴 한데 왠지 기분은 나쁘군. 초연이 왔니?" 후… 그 동안 강 사범님의 행동 패턴을 익히고 있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슬쩍 초연 씨를 향해 다가갔다. 초연 씨 옆에 있으면 폭력을 쓰지 못하시는 강 사범님의 약점을 이용한 삶의 지혜라고 할까… "여기 김치하고 밑반찬인데…." 초연 씨가 손에 들고 있는 종이 가방을 내밀자 강 사범님이 받아들고는 미소를 지었다. 강 사범님은 혼자 살기에 초연 씨 집에서 저런 반찬들을 챙겨준다고 하는데… 나는 초연 씨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초연 씨. 오늘은 무슨 일로…." 내 질문에 초연 씨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데이트요. 그리고 전에 옷 한 벌 사주기로 하셨죠?" 아… 그랬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연 씨과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에 어르신들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모두 강 사범님의 성격을 아는 사람들이니… 모두 감탄과 존경심까지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흠… 벌써 가는 거냐?" 나를 노려보며 말씀하시는 강 사범님. 나는 침을 삼키며 곧바로 움직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혹시 모른다… 내가 긴장하는 모습에 작게 쿡쿡거리던 초연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현진 씨하고 들릴 곳이 있어서… 다음에 또 들릴게요." "다음에 전통주 한 병을 바치겠나이다." 내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강 사범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지." "그럼 다음에 뵈요." "잘 가거라." "만수무강하십쇼." 내 인사에 인상을 찡그리는 강 사범님. 나는 약간 발걸음을 빨리 해 도장에서 빠져나갔다. 길거리로 나와 한숨 돌린 나는 미소를 짓고 있는 초연 씨를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죠?" "아… 저녁은 저희 집에서 먹기로 했으니까… 6구역으로 갈까요?" "세이드 스트리트… 좋아요." 미소를 지으며 내 오른팔에 팔짱을 끼었다. 얼마 전부터 있던 일이라 나는 미소를 지으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쏠리는 시선… 잠시 생각하던 나는 머리카락을 앞으로 넘겼고 우리를 향하는 시선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후후." "음… 효과만점이죠?" 나와 초연 씨는 서로를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41만원입니다." "………." "현진 씨. 괜찮아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41만원이라… 약간 겁에 질린 듯한 남자 종업원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초연 씨. 죄송한데 나가서 택시 좀 잡아 주시겠어요?" 내 말에 초연 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 밖으로 걸어갔다. 좋아… 초연 씨가 나간 순간. 나는 게임에서 단련된 숙달된 살기를 피어 올리며 종업원을 바라보았다. "좀 비싸군요." 내 시선에 몸을 움찔거리는 종업원. 나는 미소를 지어주며 종업원을 바라보았다. 식은땀을 흘리던 종업원이 계산서를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삼십… 팔 만원입니다." "고마워요." 나는 씨익 웃으며 카드를 건네주었고 종업원은 슬픈 얼굴로 계산을 하고는 카드를 건네주었다. 전에 친구 놈에게 들은 바로는 이 종업원, 이 가게 주인의 아들이다. 실질적 주인이기도 하고. 역시 정보는 많을수록 좋지. 나는 휘파람을 불며 밖으로 걸어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초연 씨가 택시 하나를 잡고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훗. 왠지 운이 좋은 듯한 하루인데…. 찌찌찍! "아, 현진 군. 어서 와요." "아, 자네 왔나? 드디어 저녁을 먹겠군. 정말 요새 내가 소외 받는 느낌이야. 하하하." 나는 내 다리를 기어오르는 연을 집어들며 고개를 숙였다. "건강하셨… 으윽. 연아. 아프다." "호호. 저녁상 다 차렸어요." "감사합니다." 연의 목덜미를 잡은 나는 대롱대롱 흔들리는 연을 살살 흔들며 식탁으로 다가갔다. 역시 진수성찬… 온다고 말만 하면 이런 엄청난 요리들을 해놓고 계시니… 역시 내 옆에는 초연 씨가 앉고 앞에는 어머님과 아버님이 앉게 되었다. "하하. 들어보니 자네가 그 헌터라는 것에 1기로 임명되었다고 하더군." "예. 아버님 덕분이죠." "으음… 그럼 초연이하고 결혼식은…." "아빠!" "어머? 그러다 현진 군한테서 점수 깎인다, 초연아."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해바라기 씨를 의자를 긁어대는 연의 앞에 놓아주었다. 식사가 시작되면서 내 헌터라는 직업 얘기에서 시작해 각종 섀도우 월드의 정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하. 자네 드래곤이 나온다는 말 들었나?" "예. 대단하다고 하던데… 아예 컴퓨터 하나가 그 몬스터를 담당한다고…." 내 말에 아버님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시작하셨다. "대단하지. 거의 인간과, 어니 어쩌면 더 뛰어난 A.I일지도 모르네. 컴퓨터 하나가 조정하는 것에 인공지능은 거의 독립된 하나의 생명체에 가까운 것이니… 거기다 섀도우 월드의 대부분의 정보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어느정도 관리까지 하는 중요한 시스템이지. 전에 내가 지키려고 하던 것도 이 드래곤에 관한 거였지. 자네 덕에 드래곤이 나타난 것이나 마찬가지야. 하하하." 음? 그러면 전에 아버님이 까만 놈들에게 공격을 당하신 이유가… 나는 놀란 얼굴을 지었다. 그런데 그렇게 따로 독립된 체계라면… "하지만 그렇게 완전 독립 시스템에 가까운 것이라면… 위험하지 안습니까?" "그래도 컴퓨터네. 메인 컴퓨터의 관리에 놓여있고 프로그램 상 위험한 점은 없지. 혹시 위험이 감지되면 다시 수정하면 되는 것이고… 다만 문제는 게임 속과 게임밖에 공존을 한다는 거네. 두 가지 세상에 동시에 있어 정보 처리가 힘들기도 하거든. 하지만 이것도 완벽하게 해결됐지. 가장 큰 걱정은 드래곤이 도시 하나를 날려버리면 어쩌냐는 거라고 하던데… 그건 신 과장 말로는 이틀 뒤에 드래곤의 힘을 보여줘서 유저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더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얼마나 강할까? 레벨 1000이면… 공포로군. 이제 마력을 최대한 사용하면 그 공간에서는 무적이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겠어… 그때 초연 씨가 입을 열었다. "아, 현진 씨. 혹시 제 부탁을 좀 들어주실레요?" 음? 부탁? "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하는 일인데요?" 내 질문에 초연 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난처한 얼굴로 대답했다. "죄송해요. 말씀은 드리지 못하고… 음… 좀 힘든 일인데… 섀도우 월드에서 누구를 만나주시면 되는 건데… 이일을 해 주시면 헌터 월급을 높여준다고 운영자 회의에서…." "하죠." 내 말에 초연 씨가 미소를 지었다. 월급을 높여 준다고… 후후. "그런데 상당히 힘든 일인데… 나중에 절 원망하시면 안돼요." 음? 왠지 좀 불안해 지는데… "무, 물론이죠… 음… 그러면 이일을 해주면 초연 씨가 뭔가 보답을 해주면 되죠. 그러면 그 보답을 위해서 하는 거라고 하면… 음…." "보답이요? 뭘…." "글쎄요?" 잠시 침묵에 잠기는 나와 초연 씨. 보답이라… 나와 초연 씨가 침묵을 지키고 있자 아버님이 끼어드셨다. "간단하게 결혼은 어떤가?" "아, 아빠!" "호호. 그게 싫으면 키스는?" "예?" 어느 정도 수치가 내려가자 초연 씨는 눈을 깜박이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키스? 나쁘지 않지. 그러고 보니 현실에서는… "하하. 마음에 드는 모양이로군. 그럼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떠냐 초연아?" 약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는 초연 씨. 흠… 현실에서 첫키스라… 그 정도면 힘든 일이라도… "흠… 누구를 만나야 되는 거죠?" "아, 이틀 뒤 정오에 이동시켜 드릴게요. 그런데… 그 드래곤의 힘을 보여주는 중계를 볼 수는 없는데…." 음? 그 중계를 못 봐? 이래서 원망하지 말라고 한 건가? 뭐… 홈페이지에 동영상일 뜰 테니… 별 상관은 없겠지? "상관없어요." 대충 식사가 끝나자 아버님이 눈을 빛내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오늘 밤에 특별한 일이 있나?" "예? 아, 아뇨. 별일은 없습니다만…." 내 대답에 아버님은 껄걸 웃으시더니 시계를 바라보셨다. 흠? "음… 8시라… 이 정도 시간이면… 자네 나하고 술 한잔하겠나?" 술? 술 한잔이라… 물론 한잔은 아닐 테지만… 이미 일이 없다고 대답을 했기에 나는 어쩔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하하. 기다리게. 내가 좋은 술을 구해 놔서 말야. 아, 초연이 너도 좀 마셔봐라. 당신도 좀 마시고. 비싼 술을 얻어서 말야. 하하하." 얼떨결에 아버님에 의해 거실로 자리를 옮긴 나는 엄청난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저, 저건… 유, 유나이티(Unity=통일)? "마, 맙소사… 아, 아버님. 그건 유나이티…." 고급스러워 보이는 술병 하나와 각종 맥주 등을 가지고 오시던 아버님이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 앉으셨다. "하하. 자네도 아는군. 맞네. 통일주. 드래곤 프로젝트가 무사히 끝나서 받은 술이지." 나는 놀란 눈으로 고급스러운 술병을 바라보았다. 저거… 우리 나라 통일 기념으로 담갔던 와인이잖아? 거의 100년이 다 되어 가는… 저거 사려면 돈이… "하하하! 마시세나!" 술잔 네 개를 가져오신 어머님이 술잔을 돌리자 내가 유나이티를 잔들에 따르기 시작했다. 색 죽이네… 내 평생에 이 술을 한번 마셔보며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 "음… 역시 좋군. 자네도 마시게나. 초연이도 마셔봐라." 나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후아… 지금껏 마신 술하고는 차원이 다른데?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에… 뒷끝도 좋고… 헌데 문제는… 좀 독하다는 건데… "하아…." 와인을 조금 마신 초연 씨가 신음을 토했다. 얼굴로 약간 빨개진 것이… 술이 좀 약한 모양이지? "맛있죠?" "맛있기는 한데…." "하하. 초연이는 놔두고 마시게나. 한잔 따라주게." 나는 아버님께 와인을 따라드리고는 내 잔에도 다시 한잔을 따랐다. 흠… 술병이 그리 큰 것이 아니라 거의 다 마셔가는데… 나는 어머님과 초연 씨의 잔을 가득 채워 주고는 다시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화… 멋진데? 얼마 뒤. 와인을 모두 마신 아버님은 이번에는 맥주를 따기 시작하셨다. 와인을 마신 뒤의 맥주라… 그리 좋은 조합은 아닌데… "오늘 한번 신나게 마셔보지. 하하하. 한잔 받게나." 나는 공손히 술잔을 내밀어 술을 받고는 마시기 시작했다. 으음… 위험해… 어느새 빈 술병의 수가 두 자리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가끔씩 건네지는 술을 마시고 있는 초연 씨는 이미 상당히 취한 모양인데… 나야 술이 상당히 강해서… 아버님도 술이 강하신 듯 거의 멀쩡해 보이셨다. "호호. 현진 군 조심해요. 초연이 아버지 별명이 술고래였거든요. 회사에서도 주량을 따를 사람이 없다고 하던데… 조심하세요." 헉!? 회사라면… 그 (주)리자드 아냐? 무지하게 큰 회산데… 거기서 따를 사람이 없다면…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술에 좀 강한 편이긴 하지만… 그리 엄청나게 강하다고는… 오늘 어쩌면 기절할 정도로 취하는 것은 아닌지… 거실을 채우는 빈 술병의 수는 점점 늘어갔다. 동침 "으으…." 나는 신음을 흘렸다. 머리가 아주… 눈앞도 뿌옇게 변해 있는데… 으음… 맞다. 어제 아버님하고 한밤중까지 술을… 그런데 여기가 어디냐? "으음…." 푹신푹신한 것을 보니 침대 같은데… 침대라… 몸에 어느 정도 감각이 돌아오자 나는 내 몸에 뭔가 부드러운 것이 닿는 것을 느끼고는 눈을 깜박였다. 우이… 뭐야? 아무래도 왼쪽으로 돌아누워 있는 것 같은데… 시야 확보가… "음… 이게 뭐야? 갈색…." 눈을 깜박거리던 나는 순간 몸을 굳혔다. 갈색 실같은… 내 몸에 닿는 뭔가 부드러운…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내 품속에 안겨 잠들어 있는 초연 씨… "헉!?" 나는 낮은 비명을 내질렀다. 마, 맙소사… 내게 안겨있는 초연 씨… 나를 살짝 껴안고 있는 것이… 나는 급히 내 상태를 확인했다. 헉!? 왜 윗도리는 아무 것도 없냐? 이불에 가려있기는 해도… 느낌상 다행히 바지는 입고 있는 것 같은데… 초연 씨를 바라보니… 귀여운 곰돌이들이 그려져 있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으음… 단추 간격이 넓어서… 속살이 다… "이, 이런… 왜…." 옷을 입고 있기는 한데… 크윽! 기억이 없어! 분명히 얼마 남지 않는 맥주에… 한 12시쯤에… 아버님이 따라주신 술을 한잔 마신 것까지는 기억이… 서, 설마… 아, 아니겠지? 으음… 그런데 나는 왜 윗몸은 벗고 있는… "으음…." 약한 신음을 흘리며 나를 끌어안는 초연 씨… 끄, 끌어안아!? 나는 내게 안겨오는 초연 씨를 바라보며 정신이 혼미해 지는 것을 느꼈다. 아, 안돼! 정신 차려! "이익!" 이를 악문 나는 주위 상황을 살피기 위해 눈을 돌렸다. 여긴… 초연 씨 방인데… 섀도우 월드 캡슐에… 컴퓨터 하나… 베이지 색 벽지… 문은 닫혀 있고… 지금 나와 초연 씨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주위를 살핀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술에 취해서 일을 벌인 것은… 어, 어쩐다? 이대로 슬쩍 빠져나가면… 어제 초연 씨도 꽤 취했던 것 같은데… 그냥 어쩌다 보니 같은 침대에서 자게 된 것일 수도… "우웅…." 몸을 움직이더니 살짝 눈을 뜨는 초연 씨. 이, 이런! 빠져나가기도 늦었다. 눈을 몇 번 깜박이던 초연 씨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혀, 현진… 씨?" "아… 그, 그게…." 순간 붉어지는 초연 씨의 얼굴. 잠시 나와 자신의 몸을 돌아보던 초연 씨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순간 비명을 지르는… "꺄아악!" "우왓!" 초연 씨는 뒤로 물러났고 나도 얼떨결에 낮은 비명을 지르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뻑! "컥!?" 한가지 망각하고 있던 사실이 있었으니… 내 뒤가 벽이라는 것… 나는 엄청난 통증을 느끼며 신음을 흘렸다. 이, 이런… "크으으…." "아… 혀, 현진 씨. 괜찮아요!?" 몸을 추스르던 초연 씨가 나를 보며 다급히 물어왔다. 괜찮냐고 물으신다면… 체면상 괜찮다고 해야겠지만… 나는 내 손에 살짝 묻어나는 피를 보며 안색을 굳혔다. 이, 이런… 머리 깨졌다… 아무런 대비 없이 벽에 머리를 갔다 박았으니… 내 손에 묻어있는 피를 확인한 초연 씨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세상에… 괘, 괜찮아요? 조, 좀 봐봐요." 다시 내게 다가오며 내 머리를 살피는 초연 씨… 으으…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군… "아… 좀 찢어진 것 같은데… 그리 심하지는… 아… 자, 잠시만요." 걱정스러운 어조로 얘기하던 초연 씨는 얇은 잠옷 하나만 걸치고 있는 자신의 옷차림을 인식했는지 급히 이불로 몸을 가렸다. 으으… 나는 머리 뒤를 손으로 누르며 초연 씨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새빨간데… "저… 혹시 어제…."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하자 초연 씨는 잠시 생각하다가 울상을 지었다. 설마… "모, 모르겠어요. 술을 조금 마시다가… 잠들었던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초연 씨는 술을 마시기 시작한 뒤 조금 있다가… 내게 기대서 잠들었었는데? 깨우지 않으려고 가만 뒀었고… 그때 아버님이 껄걸 웃으시던 것이… "서, 설마… 아니겠죠? 음… 전 바지도…." 내가 어제 입고 온 바지가 그대로 입혀져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잠옷을 둘러보는 초연 씨. 정황을 봐서는 일을 벌이진 않은 듯한… 초연 씨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약간 안도한 얼굴이었다. "아, 아마도…." "……… 아무래도… 아버님이나 어머님께 정황을…." 잠시 서로를 마주보던 나와 초연 씨는 침대에서 빠져 나와 슬쩍 밖으로 나갔다. 시계를 보니 11시… 으으… 아직도 머리가… "아버님께는 못 물어보겠군요…." 나와 초연 씨는 거실의 소파에 몸을 기대고는 기절한 듯 쓰러져 있는 아버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거실에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는 술병들을 보니… 왠지 불안해 지는데… 나는 오른손을 머리를 감싼 채로 집안을 둘러보았다. 음… 어머님이… 부엌으로 가니 어머님이 식탁에 엎어져 잠들어 계셨다.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 혀, 현진 씨!" 나는 초연 씨의 비명소리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초연 씨는 거실의 가운데쯤에 앉아서 뭔가를 보고 있었는데…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작은 쥐… "헉!?" 나는 급히 거실로 다가갔다. 초연 씨가 울상을 지은 채 축 늘어져 있는 연을 들고 있었다. 뭐. 뭐야? "주, 죽은 건…." 나는 초연 씨에게 연을 받아들고는 세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쥐죽은듯이 가만히 있는 연이. 원래 이 시간이면 마구 뛰어다닐 시간인데… 그리고 원래는 잠잘 때도 몸을 꿈틀거리면서… 설마 오늘 쥐 한 마리 묻는 것은… "음… 휴… 작게 숨을 쉬는 것 같기는 한데…." 나는 미세하게 부풀었다 줄어드는 연의 배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초연 씨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은 왜… 나는 연이 쓰러져 있던 장소를 바라보았다. 넘어져 있는 술병… 바닥에 고여 있는 맥주… "이 녀석… 취한 것 같은데…." 초연 씨가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풋. 귀여워… 나는 웃음을 참으며 연이 쓰러져 있던 곳에 고여 있는 맥주를 가리켰다. 맥주를 확인한 초연 씨는 안도한 얼굴로 연을 받아들었다. 후… 놀랬네… "어머? 현진 군하고 초연이… 일어났네?" 부엌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어머님이 약간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계셨다. 취하셨군… 초연 씨가 약간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 엄마. 어제 현진 씨 어디서…." 초연 씨의 중요한 부분을 다 떼어먹은 질문에 어머님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셨다. 그리고는 상체는 벗고 있는 나와 잠옷 바람인 초연 씨를 바라보시는 어머님. 이, 이런! 옷을 입고 나왔어야… "설마… 둘이서 같이 잔 거니?" 미심쩍어하는 목소리로 물어오시는 어머님… 순간 초연 씨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반응에 상황을 짐작하신 듯 어머님은 나와 초연 씨를 번갈아 바라보시더니 미소를 지으셨다. "후후. 둘이 꼼짝없이 결혼해야겠네. 음… 내 기억으로는 어제 초연이 아버지가 현진 씨를 초연이 침대에… 그런데 초연이 너는 왜 그 침대로 간 거니? 마음이 있었나 보네? 호호호." 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러니까… 어제 내가 술에 취해 잠드니까… 아버님이 딱히 재울 곳이 없어서 대충 윗도리만 벗어서 초연 씨 침대에 눕혀두셨다. 그런데 초연 씨는… 나와 초연 씨는 얼빠진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상황을 보니까 초연이가 술에 취해서 모르고 침대에 끼어서 잔 모양인데… 설마…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어요, 현진 군?"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시는 어머님… 뭐라고 해야 되는 거지? 나는 당황한 얼굴로 초연 씨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둘 다 기억이 없는데… 아마도 별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냥 잠만…." "그, 그래요…." 서로를 마주보며 중얼거리는 나와 초연 씨를 잠시 바라보던 어머님은 낮게 웃음을 흘리시고는 부엌으로 돌아가셨다. 후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나와 초연 씨는 붉어진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조금 정신을 차린 듯 연이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으음…." 나는 한숨을 내쉬며 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후우… 아버님이 쓰러지신 것이 다행이었어… 만약 깨어 계셨으면… 나는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별로… 지금이 오후 2시니까… 섀도우 월드의 시간으로는 6시… 나는 내 앞을 막고 있는 칠흑의 숲을 바라보았다. 역시 공포스러워… "흠… 현실로 내일 정오면… 계산을 해보자… 오늘하고… 내일… 이틀 뒤 정오로군." 섀도우 월드의 시간으로 계산을 해본 나는 초연 씨가 이동시킨다고 한 시간이 이틀 뒤 정오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침낭을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후… 중계 방송은… 그 다음날 새벽 6시정도… 공지를 보니까 중계 시작 한시간은 여러 가지 설명을 하고… 드래곤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7시부터 시작이라고 하던데… 그 동안에 돌아가면 좋겠는데… "으음… 왠지 무서운 곳이야… 이러다 오거라도 만나면… 위험한데…." 트롤이나 미노타우르스야… 미노타우르스는 아주 적다고 하니… 주 몬스터는 트롤이고… 가끔씩 와이번… 나는 한숨을 쉬고는 숲 안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크 엘프의 마을은 어디에 있을 라나…." 나는 예상을 해 가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자했다. "크로스!" 크르라락! 괴성과 함께 몸을 비틀거리는 트롤. 으… 피가 녹색이라 왠지 기분 나뻐… 리자드들보다 더 기분 나쁜데… 저 정도 상처로는 죽지 않고 곧바로 재생을 하니… 나는 몸을 돌려 점프해 트롤의 목을 날려버렸다. 크르르… 목이 잘리고도 잠시 괴성을 흘리던 트롤은 곧 움직임을 멈췄다. 끈질기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나무에 등을 기댔다. 정말 강한 놈들만 모여 사는 곳이군. 아까 오거 한 놈을 만났을 때는… 정말 죽을 뻔했다. 트롤도 세 마리 이상이면 목숨의 위협을 받는데… 치고 빠지는 전법을 이용해서 간신히 죽지는 않고 있다. "미치겠네… 다음부터는 제르난 애들을 끌고 와야지… 칼이라도 데리고 올 것을…." 후회는 언제 해도 늦다고 하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무작정 숲의 가운데로 걷고 있다. 우선 가운데에서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악마의 숲에서는 가장 깊숙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이었지… 지도를 보면…." 칠흑의 숲은… 대륙에서 최북단에 위치해 있고… 숲의 북쪽과 복동쪽이 사람이 가지 않는 가지 못하는 곳. 그렇다면 대충 북쪽과 북동쪽의 사이로 걸어가면… 문제는 숲이 너무 넓다는 것이지만…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걷기 시작했다. 유일한 위안은 습격을 할만큼 몸집이 작은놈들이 없다는 것이지…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짓던 나는 순간 몸을 굳혔다. 샤아아악! 가슴에서 푸른빛이 솟아 나오고 있었다. 뭐, 뭐지? 나는 당혹한 얼굴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근처에 몬스터가 있으면 골치 아픈데… 나는 급히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블루… 다이아몬드?" 빛을 내고 있는 것은 그 던젼에서 스핑크스가 주었던 블루 다이아몬드였다. 이런… 그 스핑크스… 정말 날 괴롭히는구만… 나는 짜증을 내며 블루 다이아몬드를 손으로 감쌌다. 이런… 이래도 빛이 조금… 그때 앞에서 뭔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 몬스턴데… "와이번? 오우거나 트롤은 아닌데…." 뭔가 이상한 느낌. 와이번은 한번도 본적이 없으니 와이번일 수도 있는데… 공중이 아니고 바닥을 걸어서오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데… 음? 그러고 보니 약간 익숙한 느낌이… "설마… 스핑크스?" 그리고 내 앞에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스핑크스 하나가 나타났다. 던젼에서 봤던 스핑크스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크기와 얼굴이 약간 달랐다. -음? 그대인가? 지라드가 보낸 인간이?- 지라드? 나는 스핑크스의 말에 고개를 거렸다. 이 스핑크스가 테티오? "당신. 다크 엘프의 마을에 사는 스핑크스?" 내 질문에 스핑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테티오라고 하지. 그 블루 다이아몬드는… 그 보석의 기운을 따라서 온 거다. 그 보석은 내 힘이 담겨있는 보석이라 근처에 있으면 공명을 일으키지. 지라드가 보낸 모양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테티오라… 맞네? 나는 블루 다이아몬드를 내밀었지만 테티오라는 스핑크스는 고개를 젓고는 몸을 낮췄다. -타라. 다크 엘프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다크 엘프와 친분이 있는 인간인 모양인데… 하긴, 그러니 지라드가 너를 믿고 일을 맡겼겠지. 마을로 데려다 주겠다- 호… 스핑크스를 타게 되다니. 별일을 다 겪는군. 어쨌든 시간 절약이닷! 나는 냉큼 테티오의 등 위로 뛰어올랐다. 음… 털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그래도 푹신푹신한데… -알아서 균형을 잡도록- 뭐? 그리고 순간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스핑크스. 웬만한 나무들은 그냥 뛰어넘으며 숲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몸을 낮게 숙이고는 필사의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 우왁!?" 나는 앞뒤로 흔들리는 몸을 간신히 추스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빠른데? 언제 스핑크스를 길들여보면… "커헉!?" 나는 내 머리를 강타하는 나뭇가지를 노려보며 몸을 눕혔다. 으으… 오늘은 머리가 수난을 많이 당하는군… 현실에서는 머리가 깨지지 않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순간 멈추는 테티오. 고개를 들어보니 테티오의 앞을 오거 두 마리가 가로막고 있었다. -건방진…- 테티오가 살기를 내뿜으며 오거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스핑크스라면 오거 두 마리는 이길 수 있겠지만… 나도 어떻게 상대하 가능하니까. 하지만… 그럴 시에는 내가 상당한 고초를… 나는 한숨을 쉬고는 마나르트를 뽑아들었다. -뭐지?- "달려!" 순간 앞으로 뻗어나가는 마기에 테티오가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순간 오우거들의 움직임이 멈추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스핑크스의 몸높이가 대충 2.5m… 오우거의 몸높이가 3m 정도니… 하지만 오거의 몸을 너무도 쉽게 뛰어넘고 10m 정도의 나무들을 뛰어넘는 이 점프력… 절로 탄성이 나오는군. 하지만 내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아. -대단하군. 나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실력이야- 마나르트를 검집에 집어넣으려 애쓰는 나를 향해 날아오는 테니오의 꼬리.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그 꼬리는 내 다리를 붙잡아 고정시켰고 그 사이에 나는 마나르트를 집어넣었다. 다시 원상 복귀하는 꼬리. "고맙군… 휘유… 얼마나 더 가야되지?" -거의 다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악마의 숲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협곡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호수. 하긴… 엘프들이 살려면 저런 호수가 있어야… 악마의 숲과 다른 점은 호수의 주위를 높은 절벽이 감싸고 있다는 것이었다. 절벽 아래는 평화로워 보이는 숲, 다크 엘프들의 마을이고… 저래서 이런 곳에서 버티고 사는 모양이지? "테티오님. 오셨습니까?" 협곡에 다다른 테티오는 걸음 속도를 낮췄고 곧 몇 명의 다크 엘프들이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 아마 여기서 수호수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런데 저 선두에 서 있는 다크 엘프… "호… 미시안과 비슷한 실력인데?" 내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다크 엘프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굳어지는 다크 엘프들의 얼굴. 다크 엘프들은 검을 뽑아들었다. 이런… 실수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OPG를 벗어 반지를 빼어 그 우두머리로 보이는 전사에게 반지를 던져주었다. 반지를 살펴보던 우두머리의 안색이 밝아졌다. "악마의 숲에서 온… 일족의 은인을 뵙습니다. 저는 이 마을의 전사 디렐이라고 합니다." "앙? 어? 왜 그렇게 존대를 하고 그래? 악마의 숲의 다크 엘프들은 편하게 대하던데?" 내 질문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다크 엘프가 오히려 더 당황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던 디렐이라는 다크 엘프가 입을 열었다. "아마 마을을 떠나실 때 이 반지를 받으신 모양이군요. 이 반지는 다크 엘프들의 은인이자 다크 엘프들의 모든 협력을 받을 수 있는 증거입니다." 어째 저 반지의 위력이 점점 높아지는 것 같은데… 나는 테티오에서 뛰어내려 디렐이라는 다크 엘프에게 다가가서 반지를 받아들었다. "그냥 편하게 대하라고." -그 인간의 내 손님이기도 하지. 우선 내 거처로 데려갈 테니 장로들을 데리고 오도록- 테티오의 말에 디렐은 고개를 숙이더니 다크 엘프들을 이끌로 마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테티오의 등에 올라탔고 테티오는 다크 엘프들의 마을이 있는 곳의 반대쪽. 호수의 오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타나는 동굴 하나. "멋진데?" -고맙군. 다크 엘프들이 마련해준 곳이지- 동굴 안은 상당한 장식에 곳곳에 마법을 걸어 두었는지 빛을 발하는 광구(光球)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 깊지 않은 동굴의 가장 끝에는 큼지막한 바위하나가 놓여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약 1000년 가량 머물렀지. 그 보석는 이 마을에 머물기 전, 지라드에게 잠시 맡겼던 것인데… 나보다 훨씬 위험하게 사는 친구이기에… 아마 그 보석을 돌려보낸 것을 보니 훨씬 강해진 모양이군. 요새는 몬스터들이 강해져서 힘이 필요하던 때. 시기를 잘 맞췄군- 1000년이라… 설정. 이 보석에 있는 힘을 전해주기 위해 나를 보낸 모양이지? 나는 테티오가 그 바위 위에 앉자 근처를 둘러보다가 의자 몇 개가 있는 것을 보고는 하나를 끌어다 앉았다. 아마 다크 엘프들을 위해 마련한 의자인 모양이군. -어려운 일을 해줘서 고맙군. 그대가 강하기는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테지. 뭔가 보답을 해주겠네- 순간 내 눈이 번뜩였다. "뭘 주려고?" 내가 눈을 번뜩이며 질문하자 테티오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앞발을 한번 휘저었는데 순간 허공에 검은 공간이 열리더니 보석 하나와 둥근 알 같은 것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 두 개의 물건은 내 앞에 살짝 내려앉았다. -그 보석은 조금이지만 내 힘이 들어있는 보석. 지니고 있으면 전투 시에 마법에 대한 저항과 마나가 많아지지. 그 알은… 뭐가 나올지는 나도 모른다네. 두 개중에 하나를 고르게- "두개 다는?" 내가 눈을 반짝이며 질문하자 테티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치. -하나만 가져가게나. 그 물건들은 이 마을에도 도움이 되는 것들이니… 이 보석이 돌아왔으니 그 두 개중에 하나는 다크 엘프들에게 주려하네. 하나만 고르게- "그래? 으음…." 뭐가 좋을까… 우선 확실한 것은 이 보석인데… 마나를 높여준다고… 거기에 마법 저항… 그에 비해 이 알은… 뭐가 나올지도 몰라? 하지만… 여기서 나온 놈이 와이번 같은 놈이라면… 어려서부터 키우면 나를 잘 따를까? 흠… 뭘… "어이. 숫자 하나만 대봐." 갑자기 내가 자신에게 말을 건네자 테티오는 눈을 깜박였다. -음? 숫자? 이유를 모르겠군. 8은 어떤가?- 8? 이 알이 짝수로 정했었지? 나는 알에 손을 가져갔다. "8? 좋아. 이 알로 하지." -…… 뭔가 이상한 방법으로 골랐다는 의심이 생기는군. 어쨌든 좋네. 그 알을 가져가게. 자네의 마나를 불어넣으면 한 며칠 뒤에 깨어날 거야. 그 알에서 태어난 놈은 자네의 명령을 듣겠지. 남에게 넘기려면 알로 돌아가라고 하고 넘기면 되고… 그럼 이 보석은 디렐에게 주는 것이 좋겠군- 나는 내 머리 만한 알을 들어올렸다. 흠… 부탁이다. 와이번 나와라. 아니면 그리폰도 괜찮아. 알 씨. 흠… 그러고 보니 켈베로스도… 뭐가 나올라나? 내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동굴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뭐지? 나는 알을 옆구리에 끼고는 샤프소드에 손을 가져갔다. "누구… 아, 다크 엘프…." -흠? 대단하군. 이상한 능력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나는 이제 알아차렸는데…- 약간 신경을 쓰고 있었느면 더 일찍 알았을 텐데… 거기다 저 친구들이 적의를 가지고 있었으면 훨씬 일찍 알았을 테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나는 검에서 손을 떼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스으으으… 내가 알에 마나를 집어넣자 알에서 검은, 내 마나와 같은 색이 새어나오더니 한번 강하게 빛을 발하고는 엷은 검은 빛을 띄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스핑크스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호… 검은 마나라… 특이하군. 아까 사용한 마기에 영향을 받아 그렇게 된 모양이지? 어떤 녀석이 나올지 궁금해 지는군. 마나에 마기까지 가지고 태어날 녀석이라… 태어나면 나에게도 보여주면 고맙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알을 무릎 위에 올리고는 망토로 감쌌다. 따뜻한 것을 좋아할까? 괜찮은 놈이 태어나기를… 그리고 웬만하면 날아다니는 놈이 태어나면 좋겠는데… 나는 빙긋 웃으며 동굴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몇 명의 늙은 다크 엘프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모두 7명. 그 중 한 명은 디렐이었다. "인사드립니다. 마을의 수호자시여." 가장 앞서 걸어오던 늙은 다크 엘프. 아마도 장로장이겠지? 그 장로장의 인사에 테티오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든 장로는 나를 향해 살짝 목례했다. "처음 뵙겠소. 일족의 은인이시자 수호자의 손님이시여. 나는 이 마을의 장로장을 맡고 있는 드리크라고 하오." 나는 무릎 위의 알을 조심스레 안으며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세한이라고 합니다. 악마의 숲의 방문자였습니다." 내 정중한 인사에 장로들은 미소를 짓더니 마주 고개를 숙였다. -디렐- 스핑크스의 부름에 디렐이 고개를 숙이고는 앞으로 나섰다. 테티오는 그 보석을 디렐에게 건네주었고 디렐은 의아한 눈으로 테티오를 바라보았다. -내 힘이 담긴 보석이다. 도움이 되겠지. 네가 사용하거라- "아… 감사합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인 디렐은 감탄한 얼굴로 보석을 바라보더니 다시 장로들의 뒤로 돌아갔다. 아마 호위를 하는 모양인데… 음… 이러고 보니 저 보석도 끌리네? -나는 별로 할 말은 없군. 자네들끼리 얘기하게나- 테티오는 그 말을 끝으로 대화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듯이 바위 위에 편하게 누웠다. 흠… "악마의 숲의 일족은 어떻게 지내는지…." 어느새 의자들에 앉은 장로 중 하나가 질문을 던져왔다. 흠… 저렇게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존대를 하니 이상하군. NPC라도 노인 공경은… "하대를 하십시오. 제가 떠나올 때까지만 해도 무사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마을에서 다크 엘프들을 도와 주위의 몬스터들을 몰아내고 마을을 확장했으니 괜찮을 겁니다." 내 말에 놀란 얼굴을 하던 장로들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고 나는 마을에서 있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얘기해 주었다. 마나르트의 얘기에서는 디렐의 눈이 번쩍였다. 역시 무인이라 무기에 관심이 쏠린다는 듯… 다른 장로들도 마신의 검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새삼 감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악마의 숲의 마을은 안전하다고도 할 수 있다는 말이십니까?" 내 설명이 끝나자 드리크가 질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그곳의 몬스터들은… 그 마을의 전사인 미시안은 거기 있는 디렐이라는 분과 비슷, 동급의 실력자입니다. 지금은 더 강해졌을 것이고… 아마 그 숲에 있는 몬스터들로는 마을을 해하기는 힘들 겁니다." 자신과 동급이라는 말에 디렐이 호기심이 동한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고 다른 장로들도 놀란 얼굴로 디렐과 나를 바라보았다. "디렐과 동급이라면… 대단하군요. 이곳보다 몬스터들도 약한 곳인데… 그런 뛰어난 실력자가… 음… 실례지만 세한님의 실력은…." 장로장의 질문에 디렐을 포함한 모든 다크 엘프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냥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좋겠지? "이 마검을 쓰지 않고도 저 디렐이라는 분은 제압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정령이나 마법을 사용해도 말입니다." 내 말에 장로들의 얼굴이 감탄이 떠올랐고 디렐의 눈이 호승심으로 불타고 있었다. 으음… 그런데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도… -사실이다. 저 인간은 마검을 사용하지 않아도 오거 정도는 쉽게 상대하겠더군. 마검을 사용한다면 나도 목숨이 위험하다- 스핑크스 테티오의 말에 다크 엘프들은 거의 경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으음… 아이템 빨이긴 하지만… 확실히 마나르트를 사용하면 테티오에게도 어느 정도 승산이 있지… "언제 대련을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디렐의 말에 다른 장로들이 질책하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흠… 대련이라… 전에 미시안하고도 한 적이 있으니 그리 힘들 것은 없지… 이곳 다크 엘프들의 검술도 알아보고… 솔직히 내가 쓰는 건 거의 마구잡이니… 그때 다크 엘프들이 사용하는 검술도 도움이 됐으니 여기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디렐은 고개를 숙였다. "흠… 죄송하지만 얼마간 여기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물론 숙식비 삼아 주위 몬스터 퇴치라도…." 내 말에 오히려 장로들이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귀빈으로 대접을… 부탁드립니다만… 요새 몬스터들의 능력이 강해져서…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장로들이 고개를 숙이자 나도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을 테티오가 빙긋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흠… 그러니까 테티오는 몬스터들이 쳐들어오지 않는 한은 나서지 않는 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테티오님은 이 마을이 위험에 처했을 때만 힘을 빌려주시지요. 사실 그것이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디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테티오 정도의 강한 몬스터가 계속 나서주면 다크 엘프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할 수는 없겠지… 밤이 깊어 가기에 디렐과의 대련을 내일로 미룬 나는 디렐의 안내를 받아 숙소로 가는 중이었다. 지금 내 손에는 둥근 알이 들려있었다. "그런데… 그 알은 테티오님이…." 디렐이 내 알에 관심을 보이며 물어왔다. "그렇죠. 뭐가 나올지 모른다고 하던데… 어쨌든 태어나면 도움이 될 거라고 하더군요." "예…." 디렐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나무로 다가갔다. 흠… 집의 형태는 비슷하단 말야. 똑같이 나무에 문이 달려있고… 역시 마법이라는 설정이겠지. "이 집을 사용하십시오. 부탁하신 대로 주위에는 주거하는 집이 그리 많지 않아 조용합니다. 남쪽으로 조금만 가시면 장로원이 있습니다. 음… 필요하시다면 시중을 들 아이를 붙여드리겠습니다만… 음… 아시리라 믿지만 저희 엘프들은…." 약간 어색한 어조로 얘기하는 디렐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시중을 받더라도 잠자리를 같이 하거나 하는 건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걸 테지.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중은 필요 없으니… 언제 먹을 음식이나 좀… 오늘밤은 쉬고 내일 오전 중에 연습장으로 가지요. 마을의 서쪽이라고 했나요?" "그렇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과일 같은 것들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한 8시쯤에 보내드리지요. 그럼." 디렐은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흠… 왠지 미시안하고 비슷한 성격의 친구로 보이는군… 다크 엘프 전사는 다 저런가? 나는 피식 웃고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집의 구조도 거의 같았는데… 약간만 틀리고… 거실의 위에는 작은 빛 덩어리 하나가 떠다니고 있었다. "음… 그럼 로그아웃을 해서… 잠시 놀까? 이제 10시 정도니… 한 2시간 좀 넘게 놀면 밤은 지나가겠군." 나는 침실 하나에 들어가 갑옷을 벗고는 침대에 누웠다. 알은 내 옆에 눕혀두고… 침대에 누워서 로그아웃을 하면 잠을 자는 것과 같이 침대에 누워있으니 혹시 이놈이 깨어나도 내 옆에 있겠지? 나는 알을 이불로 덮어두며 정작 나는 아무 것도 덮지 않은 채로 로그아웃을 시작했다. 제발 좋은 놈이 나오기를… 며칠이라고 했으니 더 있어야 하나? 캔커피 한잔에 요새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해 읽기 시작한 책을 좀 읽던 나는 다시 섀도우 월드에 접속했다. 흠… 철학과를 졸업하기는 했어도 그 동안 놀았더니… 그때 칼이 부하로 받아달라고 할 때 멋진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충격이었어… 그래도 수위에 드는 성적으로 졸업했건만… 너무 급박한 삶을 살다보니… 책을 보니 졸음이 오는군… 거기에 약간 남아있는 취기도 더해서… "아직 그대로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아직도 엷은 검은빛을 띄는 알을 보며 혀를 찼다. 역시 조금 더 지나야 되는 건가? "읏차… 완전히 장비를 갖추는 것이… 지금이 몇 시야? 음… 7시 47분이라…." 시간을 확인한 나는 갑옷과 장비들을 모두 장착한 후 알을 집어들었다. 만약 태어나면 그 모습이 보고 싶은데… 들고다니자. "흠… 왠지 조금 무거워 진 것 같은데…." 원래부터 그리 무겁지는 않았지만 약간 무거워 진 것 같은데… "조금 큰 건가?" 알속에 든 녀석이 조금 커졌다고 생각한 나는 거실로 나갔다. 8시쯤에 아침을… 의자에 주저앉은 나는 잠시 명상에 잠겼다. 명상이라기 보다는 잠시 조는 것에 더 가깝겠지만… "저기…." 나는 문이 열리자 슬쩍 눈을 뜨고는 문가를 바라보았다. 여자 다크 엘프 하나가 바구니 하나를 들고 서 있었다. 음… 음식을 가지고 온 건가? "아… 아침입니까?" 내 질문에… 에… 베르시아 또래 정도 같은데… 어쨌든 꽤 젊어 보이는 여자 다크 엘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탁자? 혹은 식탁으로 다가와서는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흠… 역시 과일… 나는 바구니 속에서 희한하게 생긴 과일들을 확인하고는 사과하고 비슷하게 생긴 것을 하나 꺼내 먹기 시작했다. "………." "………." "안 가요?" 나는 과일을 배어 먹는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다크 엘프에게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잠시 눈을 깜박이던 다크 엘프는 약간 어설퍼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 오빠가 시중을 좀 들어드리라고… 음… 무, 물론 인간들이 말하는 그…." 빌어먹을… 무슨 인간들은 시중하면 그 짓만 하는 줄로 아는 거 아냐? 다크 엘프들의 사상을 주입한 프로그래머 씨를 만나보고 싶은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뭔가를 오해하시나 본데… 인간들이 그렇게 문란한 생활을 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시중은 필요 없으니 가보세요." 하지만 다크 엘프는 나가지 않고 그대로 앉아있었다. 내가 다른 과일을 하나 꺼내며 바라보자 여자 다크 엘프는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그, 그게… 오, 오빠가 오늘 세한님과 대련이 있다고 연습장으로 안내해 드리라고…." 음? 내 이름도 아네? 그런데 오빠가 나하고 대련이 있다면… "디렐의 여동생인가 보죠?" 내 질문에 다크 엘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리야라고 해요. 기본적으로 정령만 다루는… 그저 평범한 다크 엘프죠. 그런데… 정말로 오빠를 이길 수 있으신가요? 오빠는 마을에서 가장 강한 전사인데… 어제 밤부터 대련을 대비한다고 검을 휘두르던데…." 맙소사. 어제 밤부터?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디렐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연습장에…." 리야라는 다크 엘프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일 세 개면 아침으론 충분하지… 나는 옆의 의자에 놔두었던 알을 집어들었다. "그럼 연습장으로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내 알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약간 머뭇거리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기… 그 알… 제가 들고 가면 안될까요?" 엥? 이 알을? 너모도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리야. 으… 왠지 거절하면 나쁜 놈이 될 것 같은데… 어차피 내가 들던 저 다크 엘프가 들던 별 상관은 없으니까… "좋습니다. 다만 조심해서…." 내 말에 리야는 기뻐하는 얼굴로 알을 받아들었다. 정말 아기라도 안는 듯이 조심스럽게… 나는 안도하며 집 밖으로 걸어나갔다. 역시… 다크 엘프들은 아침이 이른가 보지? 이미 다크 엘프들이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크 엘프들은 내가 길을 걸어가자 신기해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흠… 악마의 숲에서 겪었던 경험이군… 그런데… "안내 안 해줍니까?" 알을 쓰다듬느냐고 뒤로 쳐져있던 리야가 화들짝 놀라서 걸음을 빨리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알은 꼭 껴안고 있는 것이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리야를 따라 걷다보니 중앙 광장을 통해 마을의 서쪽으로 가게 되었다. 그 중에 많은 다크 엘프들이 모여들어 나를 구경하거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일부러 그러는 것 같은데… 대련의 관중을 모은다는 건가? 약간 커다란, 나무 속을 파낸 것이 아닌 나무를 잘라서 만든 건물에 도착한 나는 운동장 비슷한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눈에 전사임을 알아볼 수 있는 다크 엘프들이 꽤 많이 모여있었고 모두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디렐이군…." 나는 연무장. 이 말이 맞겠는데… 연무장의 가운데에 서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디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미시안과 비슷한 검법에… 검사로서의 능력도 비슷하군. 다른 것들은 모르지만… 아마 4, 5계급 정도의 실력… 검을 휘두르고 있던 디렐은 나를 발견하고는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내게 다가오는 디렐. "오셨습니까?" "예. 흠… 지금?" 내 질문에 디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서 있는 다크 엘프에게 눈짓을 보냈다. 한 다크 엘프가 연습용으로 보이는 날 없는 롱소드 하나를 가져와 내게 건넸고 어느새 나와 디렐은 연무장의 중앙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둥글게 모여 서서는 구경하고 있는 수많은 다크 엘프들… "이곳에 인간이 들어온 것은 처음입니다. 거기에 저를 뛰어넘는 실력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동한 모양이군요." 뭔가 묘하게 비꼬는 듯한 뉘앙스… 그러니까 내가 지면 창피라 이거지? 나는 미소를 지어주고는 검을 들어올렸다. 마주 검을 들어올리는 디렐. 곧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카카카캉! 대련을 시작한지 약 10분 정도… 짧다면 짧다고 할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나와 디렐은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후… 역시… 미시안과 맞먹는 실력인데? "후… 봐주시는 겁니까?" 싸늘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디렐. 나는 눈썹을 들어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흠… 들켰나? "지금부터는 최선을 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마법을 쓰겠습니다. 정령은 몰라도 마법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으니 조심하시죠." 약간 화난 듯한 디렐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내 뒤에서 화기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흠… "섬광(蟾光)!" 순간 앞으로 뻗어나가며 검을 찌르는 나. 디렐은 힘겹게 막았고 나는 등뒤에 바리어를 생성시켰다. 바리어와 정령의 충돌. 어느 급의 정령인지는 몰라도 마스터한 내 바리어를 깨지는 못한다. "연환격(連環擊)!" 내 연속 공격에 옆으로 빠져나가는 디렐. 나는 그대로 몸을 띄웠다. "선풍각(仙風脚)." 내 돌려차기에 어깨를 얻어맞고는 공중으로 붕 뜨는 디렐. 흠… 나는 그대로 주먹을 올렸다. 손톱은 꺼내지 않고. "승룡(乘龍)!" 하지만 내 어퍼컷은 갑자기 생성된 바람의 장벽에 막혀 저지되었다. 바람의 정령… 그리고 양옆에서 강한 화기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으음… "스핀(Spin). 스트라이크(Strike)." 나는 검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몸을 회전시켜 정령들을 소멸시키고는 아래로 내려가는 디렐을 공격했다. 황급히 검을 들어 공격을 막고는 땅과 강한 충돌을 일으킨 디렐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흠… 실전이었으면 죽었다네 친구. 나는 공격을 하는 대신 뒤로 물러났다. "계속?" 내가 검을 늘어뜨리며 묻자 디렐은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좋은 경험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디렐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잠시 눈을 깜박이던 디렐은 역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는 비틀거리며 뒤돌아 걸어갔다. 들려오는 박수소리. "오, 오빠! 괜찮아?" 알을 들고 있어 차마 손을 내밀지는 못한 리야가 디렐에게 다가가며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흠… 아무래도 알을 받아드는 것이… 순간 리야의 옆으로 다가간 나는 알을 들어올렸다. "어? 꺄악!?" 퀵 스텝을 이용해 빠르게 다가온 나를 잠시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리야가 낮은 비명을 흘렸다. 피식 웃으며 알을 망토로 덮은 나는 디렐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흠… 대충 삼일 정도는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은데… 몬스터 퇴치 같은 일들은 언제 있죠?" "4일 뒤에… 그럼 그 동안은 거처에서 쉬도록 하시죠. 마을을 돌아다니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럼… 몸이 별로 좋지 못해서…."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근처의 전사 다크 엘프에게 검을 건네주고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모여 있던 다크 엘프들이 분분히 길을 열어 주었다. 나는 피식 웃고는 휘파람을 불며 길을 걸었다. 구경하고 있던 꼬마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역시 여기 다크 엘프들도 휘파람을 불지 못하나? 보통 엘프들은 휘파람을 잘 분다고 들었는데… 이날 나는 테티오의 동굴을 방문해 알의 조언을 구했다. 테티오가 전해준 조언은… -나도 잘 모르네. 그 알은 음… 얼마 전에 운영자가 언제 줄 사람이 있으면 주라고 준건데… 그러니 나도 잘은… 아마 태어나면 자네를 주인으로 인식하겠지. 그냥 마나나 조금 더 넣어주던지… 뭐라고 조언을 해주기는 힘들군- 맙소사… 그걸 조언이라고 해주는 스핑크스 씨도 정말… 조언을 해주기 힘들다니… 자기가 준 거면 뭔가를 알고 있어야지… 그런데 운영자라… 저 정도 몬스터는 운영자를 알고 있는 모양이지? 다크 엘프들도 알고 있기도 하니… 그저 이 세계를 관리하는 신계의 인물들 비슷하게 인식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크 엘프들은 현실도 또 다른 세상.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NPC들은 늙기도 하니까… 거처로 돌아온 나는 놀러온 용감한 아이들에게 휘파람과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새 과일을 가져온 리야도 돌아간 깊은 밤. 여전히 알은 변화가 없었다. 약간 더 무거워 졌을 뿐. 내가 한숨을 쉬며 알을 바라보고 있는데 페페의 귓말이 도착했다. <운영자 46-세한? 칠흑의 숲의 다크 엘프의 마을에 있네요?> <예. 무슨 일로….> <운영자 46-아, 내일 아침에 거기로 갈게요. 이동을 시켜드려야 하니까….> 흠… 내일 온다고? 아, 페페에게 이 알에 대해서나 물어볼까? <페페. 스핑크스의 부탁 하나를 들어줬더니 이상한 알을 줬는데… 마나를 주입하면 얼마 뒤에 깨어난다고… 이것을 준 스핑크스도 뭔지 모른다고 하는데 이 알에서 뭐가 나오는지 알아요?> 페페하고 귓말을 나눌 때는 음성모드를 사용한다. 덕분에 나는 페페가 놀란 듯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얼마 뒤 들려온 페페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운영자 46-호, 혹시 그 알… 아, 아니에요. 내일 가서 확인을 해볼 테니… 지금은 일이 있어서요. 저…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그 알은… 아, 아니에요. 그럼 내일 봐요.> <아…? 예. 내일 봐요.> 페페의 귓말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흠… 왠지 내가 이 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혹스럽다는 것 같았는데… 뭔가 끔찍한 녀석이 나오는 것은… "하하. 설마 그럴 리가… 뭐, 좀 끔찍하게 생겼어도… 내 말만 잘 따르면… 음… 로그아웃이나 해야겠다." 어제와 같이 알을 내 옆에 눕혀놓은 나는 로그아웃을 실행했다. 괜찮은 녀석이 태어나면 좋겠는데… 로그아웃을 하니 한밤중. 아니, 새벽이다… 거의 밤이 끝나 가는 시간. 나는 알람을 맞춰두고는 잠시 눈을 붙였다. 음… 그다지 졸리지는 않은데… 내 침대 옆에는 <심리. 그 깊은 의미> 어쩌고 하는 두꺼운 책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반인족얻다 "으으음…." 나는 신음을 흘렸다. 으음… 역시 설정을 잠으로 맞춰놓고 로그아웃 했다가 로그인을 하면 진짜로 잠에서 깨는 것과 비슷하단 말야… 나는 좀 뿌연 눈을 깜박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뭐야?" 나는 뭔가 무거운 것이 내 몸을 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왠지… 얼마 전에도 이런 일이… 어라? 내 윗도리가 반정도 벗겨져 있는 이유가 뭐지? 어라? 그런데 이 뾰족한… 짧은 털도 나있는 귀는… "고양이 귀?" 나는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으음… 지금 내 옷을 반쯤 벗기고 나를 끌어안고 있는 15세 가량의 소녀… 흠… 머리에는 고양이 귀하고 비슷한 생김새의 귀가 나 있고… 엉덩이에는 몽글몽글한 꼬리가… 나머지는 다 보통 사람의 여자하고 다 같은데… 그런데 피부가 좀 검은… 엷은 갈색? 다크 엘프들하고 비슷한… 그건 그렇고… 왜 알몸으로 내게 안겨있는 거지? "………." 나는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끼고는 침을 삼켰다. 뭐, 뭐냐? 어디서 이런 여자가… 이런 집에서는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 다크 엘프들은 프로그램 상 절대로… 내 안색은 점차 하얗게 질려갔다. 무엇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 옷은 반쯤 벗겨져 있고… 이 이상한 소녀는 완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나를 끌어안고 있다는 건데… 잠시 멍한 얼굴로 그 소녀를 바라보던 나는 얼굴을 붉혔다. "우와악!?" 나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 이상한 소녀를 떼어놓으려 행한 일이었건만… 이 이상한 소녀는 내 몸을 꽉 끌어안고는 놓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더 강하게 안겨오는 것이… "으아악!? 뭐, 뭐야?" 그리고 내 사고를 정지시키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평소에는 아름답다고 생각한 목소리였지만 지금은 지옥에서 나를 손짓하는 사신의 목소리로 들렸다. "세, 세한!? 무슨 일이에요!?" 놀란 목소리로 소리치며 급히 방문을 열며 달려 들어오는 페페.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페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놀란 얼굴로, 부들부들 떨면서 나와 나를 안고 있는 이상한 소녀를 바라보는 페페. 뭐, 뭔가 심각한 오해가 파생되고 있는 듯한… 잠시 나를 바라보던 페페가 가까이 다가왔다. "저, 저기… 페페… 헉!?" 뭔가 변명을 늘어놓으며 애쓰던 나는 페페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안색을 굳혔다. 이, 이런… 짝! 나는 뺨을 맞고는 얼이 빠져 페페를 바라보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페페. 아, 아냐! 이, 이건 오해가… "실망했어요. 아무리 반인족을 얻었다고 해도 세한은 이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음? 바, 반인족? 순간 내 머리 속에 홈페이지에서 봤던 패치의 내용이 떠올랐다. 2.45 패치. 드래곤 추가. 모든 몬스터 레벨 상향조정. '반인족' 추가. ……… 반인족 추가. 반인족이라… 나는 놀란 눈으로 고양이? 어쨌든 그런 동물의 귀와 꼬리를 가지고 있는 약간 어두운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저, 정말이에요?" 빨개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질문하는 페페. 나는 부어오른 뺨을 문지르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에요. 그냥 로그인을 했더니 이 여자애가 이렇게 껴안고 있었다니까요. 맹세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던 페페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 미안해요…." 흑… 내 생전에 여자에게 따귀를 맞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답니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아뇨… 충분히 그런 오해가 가능한 차림이었으니… 그런데… 이게 반인족 인가요? 스핑크스가 준 알에서 나온?" 내 질문에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페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 이상한 소녀는 이불로 몸이 덮여 있었다. 이상하게 내 몸에서 떨어지지를 안아서 그냥 내 품에 안겨 있었고… "예. 대륙에 지금 몇 안돼는 수가 퍼져 있는데… 아마 반인족 중에… 인간의 형태일 때는 그런 고양이? 호랑이? 이런 모습인 모양이에요. 아마 보통 고양이나 호랑이로도 변할 수 있을 테고… 그리고 괴수의 형태로도…." 나는 놀란 눈으로 나를 안고 있는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흠… 이런 예쁜 소녀가 괴수로… 흠… 왠지 그다지 보고 싶지는 않군. 하지만 괴수라면… 타고 다닐 수도… "그럼… 이 소녀가 피부가 검은 이유가… 내 마기 때문인 모양이네요. 머리카락이나 귀하고 털고 검고… 음? 그러고 보니… 왜 내 옷을 벗기고 안겨 있던 거죠?" 내 질문에 페페는 얼굴을 확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엥? 왜 이러는 거지? 페페는 그야말로 개미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홈페이지에서… 패치의 내용… 보지 않으셨어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였지만 대충 알아들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을 빼면…." 내 대답에 페페는 작은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바, 반인족은…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가디언 비슷한 거기도 하지만… 음… 그러니까… 그… 사이버 섹스를 위한 것이라는 성격이 더 강해서… 프로그램 상 주인과… 음… 어쨌든 그런 종족이라… 아마 세한이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렇게…." 페페의 설명에 나는 얼굴을 붉히며 나를 안고 잠들어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헉!? 그러니까… 이 여자애가… 일부러 옷을 벗기고는 안겨 있었다는…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는 소녀를 떼어내려 했지만 반인족 소녀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으으… "이익… 왜 안 떨어지는…." "아마 아직 어려서 그럴 거예요. 지금은 괴수로 변하기는커녕 고양이로 변하기도… 아마 일주일 정도는 있어야…."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안고 잠들어 있는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어, 어쩌지? 나는 페페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을 하기는…." 고개를 젓는 페페. "알아듣기는 하지만 말은 하지 못해요. 완전히 성장해서 간단한 단어 몇 가지는 몰라도… 머리가 그렇게 좋게 설정되지는 않아서… 일주일 정도면 완전히 성장하니까… 음… 그러니까 지금은… 완전히 인식하고 있는 게… 음… 하아…." 말을 하다 말고 한숨을 내쉬는 페페. 이, 이런… 솔직히 나도 남자니 그리 기분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아직 총각이얏! 경험도 없단 말이닷! 거기다 이래서야 페페의 얼굴을 어떻게 본다지? "어, 어쩌죠? 테티오가 물러줄 리도 없고…." "팔아버리면…." 페페가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고 페페의 말에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생명을… 거의 인간과 똑같은 아이를… 거기다… 얘는 팔면 완전 성적인 노리개로 굴러다니는 것 아냐? 나는 약하게 살기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페페도 내 속을 안다는 듯이 약간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냥 데리고 다녀야… 조금 크면 말을 완전히 알아들을 테니… 크면 이런 소녀의 모습이 아니라 한… 18, 19살 정도일 텐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그때 나를 안고 있던 소녀가 몸을 움직였다. 순간 몸을 굳히는 나와 페페. "우웅…." 약한 신음을 흘리며 눈을 깜박이는 소녀. 나는 하얗게 질린 눈으로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페페도 당황한 얼굴로… 완전히 정신을 차린 듯 소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주인…님?" "말했어?" 아름다운 목소리. 나는 놀란 얼굴로 페페를 바라보았다. 말 못한다고… 간단한 단어도 완전히 커서라더니… 하지만 페페도 놀란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혹시… "제 마나에 마기가 섞여있어서 이런…." "어, 어쩌면 그럴 수도… 아마 다른 반인족 보다는 좀 똑똑할지도… 완전히 말을 익히지는 못하겠지만…." "그러면…." 진지한 어조로 질문을 하려고 하던 나는 소녀가 나를 꼭 끌어안자 입을 다물었다. 으으… 소녀의 가슴이 내 몸에 와 닿았다. 페페가 붉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님…." "으으… 이, 이거 어떻게…." 나는 내 몸에 몸을 부비적거리는 소녀를 떼어놓으려 애썼다. 페페도 살벌한 눈으로 '나'와 소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억울해요!" "그럼 어떻게 해봐요!" 나는 커다란 눈으로 바를 올려다보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나는 마나를 실어 소녀의 뒷목을 가격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소녀. 덤으로 내 몸에서도 떨어져 나갔다. "너, 너무 폭력적이지 않아요?" "으으… 어떻게 해보라면서요!" "음… 그래도…." 나는 한숨을 쉬고는 소녀를 안아서 침대 위에 고이 눕히고는 이불로 몸을 덮어두었다. 으음… 앞으로 피곤할 수도… 그런데 이거 고양인지 호랑인지 알 수가 없네? 흠… 그거야 상관없고… 괴수일 때 어떤 형태일지… "후… 리야에게 옷이나 한 벌 얻어야겠다… 페페. 잠깐 지키고 있어줘요." "예." 나는 장비를 챙기고는 집밖으로 나섰다. 흠… 이 시간이면… 리야가 올 시간이… 역시 저 멀리 바구니를 들고 오는 리야.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리야에게 다가가 옷을 한벌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침대에서 잠? 기절? 흠… 잠들어 있는 소녀와 그 소녀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페페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왠지 앞으로 힘들어 질 듯한… 잠시 후 리야가 옷을 하나 가지고 왔고 페페와 리야가 소녀에게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거실에 앉아있는 내게 벽을 넘어 들려오는 목소리. '꺄아! 살결이 너무 부드러워.' '……….' '페페 씨. 얘 좀 봐요 너무 예쁘지 않아요?' '별로….' '와… 이 부드러운 머리칼 좀 봐… 엘프인 나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어머? 이 귀하고 꼬리도 너무 예쁘다.' 끄으으… 미치겠다. 조용히 옷이나 입히지 저렇게 떠드는 이유가 뭐냐!?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명상에 들어갔다. 후… 평심을 유지해야 하느니라… 내가 의자에 앉아서 온갖 청승을 떠는 동안 옷을 모두 가라 입힌 페페와 리야가 거실로 나왔다. "꺄아… 세한님. 저 여자 애 너무 예뻐요. 저 애하고 결혼하는 사람은 행복하겠다…." 순간 살벌하게 변하는 페페의 눈초리. 으음… 무섭다. 저런 반응을 보인 건 처음인데… 전에 세린이 내게 안기고 난리를 쳐도 별 반응이 없던 페페가… 아, 반인족은 완전… 주로 섹스를 위해서 만들어 졌다고 했었나? 음… "그런데 저 소녀가 왜 여기 있는 거죠?" 호기심 어린 리야의 질문. "스핑크스가 준 알에서 쟤가 나왔어요. 반인족이라는데…." 알에서 여자애가 나왔다는 말에 리야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열린 문을 통해 보이는 소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후… "어? 그럼… 세한님하고 결혼하는 건가?" 순간 나를 향하는 페페의 시선에 나는 몸을 경직시켰다. 이, 이런… 나는 급히 고개를 젓고는 시간을 확인했다. 차, 차라리 만나야 된다는 사람이나 만나러… 시간… 9시라… "페페. 그 만나는 시간을 좀 당겨서 지금 만나러 가죠? 일찍 만날수록 빨리 끝날 수도… 빨리 끝나면 드래곤 중계도 볼 수 있는데…." 내 말에 잠시 나를 바라보던 페페는 삐진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왜, 왠지 불안해… 나는 한숨을 쉬고는 방으로 들어가 짐들을 챙겼다. 후… 적어도 하룻밤은 지낼 테니… 마지막으로 마나르트를 집어든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흐음… 풋." 다크 엘프들과 비슷한 피부색에 고양이과 동물의 귀라… 15, 16세 정도의 소녀… 대충 키는 160이 조금 안돼는 정도? 그런데 리야의 옷을 입혀두니 옷에 파묻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흠… 얘는… "페페. 얘도 데려가야 될까요?" 나를 따라 방으로 들어왔던 페페가 침대에 누워있는 소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인족은 근처에 주인이 없으면… 데려가야 되요. 음… 만약 그러기가 귀찮으면 팔면… 후… 아니에요. 지금 이동시켜 드려요?" 페페의 말에 소녀을 안아든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잠시 사나워 지는 페페의 눈초리. "어? 그런데 페페는 안가요?" 내 질문에 페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아쉽다는 얼굴인 것이… 뭔가 이유가 있나보지? "예. 저는 만나러 갈 수가 없어서… 음… 제가 이동시키는 곳은 어느 산 속일 텐데… 거기서 위로 한 50m만 올라가면 집 하나가 보일 거예요. 거기에 사는 사람을 만나면 되요." 흠… 집이라… 뭐 하는 사람인데… 내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리야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 이 집은 비우고 기다려 달라고 해야지. "아, 리야. 이 집은 비워주실래요? 며칠 뒤에 돌아올 테니…." 리야가 고개를 끄덕이자 페페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흠… 조금씩 빛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때 페페의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한? 음… 조심하세요. 그리고… 다운은 없어요. 그리고 일시적이에요. 음… 그리고… 그 반인족하고는 절대…." "물론이죠." 앞의 말이 뭔 소린지 몰라 눈을 깜박이던 나는 마지막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를 지어주는 페페. 후… 역시 페페는 미소가 더 어울리는데… "다녀오세요!" 손을 흔들어주는 리야. 순간 나와 반인족 소녀는 어디론가 텔레포트 되었다. "흠… 여기가 어디지?"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여러 산봉우리들을 보며 탄성을 토했다. 오… 거의 백두산 수준인데? 그럼… 위로 50m라고… 나는 소녀를 안고 산 위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도 거의 산의 꼭대기 같으데… "우웅…." 순간 경직. 나는 소녀가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자 걸음을 멈췄다. 위험하다… "주인님?" 나를 바라보고는 다시 나를 끌어안는 소녀. 나는 급히 소녀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뒤로 물러섰다. 이런… 이런 때에 퀵 스 텝을 사용하다니… 갑자기 내가 멀어지자 소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겉으로 보이는 나이에 알맞지 않게 아장아장 걸으며 내게 다가왔다. "자, 잠깐. 스톱! 멈춰!" 딱 멈춰서는 소녀. 호? 말은 잘 듣네? 주인 말에는 복종하는 건가? 하긴…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종족이면… "앉아봐." 소녀는 약간 비틀거리며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것이… 흠… 귀여운데… "이름이 뭐지?" 내 질문에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이름이 없다는 건가? 흠… 그럼 하나를 정해줘야… 잠시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것이 좋지. "좋아. 네 이름은 린이다. 린."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 잠시 소녀를 바라보던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린. 너 동물이나 괴수로 변할 수 있어?" 내 질문에 린은 눈을 깜박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흠… 아직 어려서 완전히는 못 알아듣나? 일주일이면 완전히 자란다고 하니… "왜요?" ……알아들었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타고 다니게." 내 말에 뭔가 고민하는 얼굴을 하는 린. 잠시 후 린이 입을 열었다. "타는 거… 지금… 더 좋아요." 끄으… 혀 깨물 뻔했다… 제, 젠장… 으으… 정말 반인족을 만든 작자의 머릿속을 해부하고 싶다는 욕망이…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피곤하겠다… 페페의 말로는… 다 크면 한 19세 정도의 외모로 성장한다고… 그 모습으로 덮치면(?)… 위험한데… "그, 그 소리가 아니고… 후… 그냥 동물로 변해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소녀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아장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뭐지? 아까와는 분위기가 달랐기에 나는 가만히 서 있었고 내게 다가온 린은 내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검은 기운에 휩싸이는 린. 그리고 뭔가가 내 팔에 매달렸다. "냐…." "………." 나는 내 오른팔에 매달려 버둥거리는 내 주먹만한 고양이과 동물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맙소사… 왜이리 작아? 완전 새끼 고양이의 크기… 성장하면 커질까? 나는 한숨을 쉬며 새까만… 이거 고양인가? 하지만 고양이하고는 생김새가 좀 다른데… 왠지 표범이나 호랑이 같은 느낌도 좀 오고… 하지만 그렇다면 이렇게 잘 빠진데다가 작을 이 유가… 어쨌든 나는 린은 붙잡아서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냐…." 작은 입을 한번 벌리고는 몸을 내 목에 부비적거리는 린. 그래… 이게 더 낳다… "린 계속 그 모습으로 있어." 내 말에 작은 머리를 살짝 흔드는 린. 풋. 귀, 귀엽다. 내 주먹만한… 그냥 고양이라고 불러야지… 내 주먹만한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상당히 해학적인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흠… 그럼 이 문제도 일단락. 그 누군가를 만나러 가 보실까?" 린을 어깨에서 내려 품속에 안은 나는 산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품속에 안긴 린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낮은 울음을 흘리더니 몸을 부비적거리고 있었다. 흠… "핫!" 내 앞을 막는 큰 바위를 뛰어넘은 나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넓은 분지. 내가 서 있는 곳은 작은 숲과 비슷한 곳이었고 여러 작은 동물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숲을 지나면 넓은… 광활한 분지라… 거기에 저 절벽. 거기에 동굴은 무지 크네? "흠… 왠지 무서운 놈이 살 것 같은 던젼인데?" "후훗. 그렇죠. 정말로 무서운 놈이 살고 있는 곳이에요." "그래요? 웬만하면 가지 말아야겠네… 그런데 여기에 집이 하나 있다고… 어? 누구냐!" 갑자기 들려온 누군가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던 나는 순간 안색을 굳히며 뒤로 물러났다. 어깨로 다가가는 손. 식스센스에 걸리지 않았어… 뭐지? 그리고 나는 내 눈앞에 서 있는 존재를 보고는 허망한 기분을 느꼈다. "어머? 빠르네? 당신이 날 찾아온 인간인가요?" 붉은 머리에 붉은 눈. 완벽한 미모를 자랑하는 아가씨… 아니 소녀? 대충 나하고 비슷한 또래로 보이기는 하는데… 하지만… 나는 식스센스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이상해… 인간이라는 느낌은 오지 않고… 몬스터라는 느낌도… 그냥 존재한다는 생각이… "뭐지? 운영자? 운영자라도 이런 느낌은… 넌 누구냐!?" 나는 품속에서 린이 부르르 떠는 것을 느끼고는 마나르트를 뽑아들었다. 만일을 대비해 천도 벗겨 두었기에 쉽게 빠져나오는 마나르트. 나는 강한 마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페 뺨 연속으로 칠 만한 미모를 가진 여자는 빙긋 웃더니 전혀 긴장하는 기색 없이 입을 열었다. "와… 대단하네. 확실히 운영자가 보낼 만한 인간이야… 아직 마스터 레벨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검은 집어넣어요. 들고 있기 힘들텐데…." 이, 이 여자는 뭐냐? 어떻게 내 레벨에 마나르트까지… 나는 여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한,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눈… 왠지 거역하기 힘든 느낌을 주는 눈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마나르트를 집어넣었다. 젠장… 예쁘면 뭐하냐… 라미아도 그렇고 이 여자도 위험하다… 역시 페페가 좋은데… 그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는 붉은 머리의 여자. 그때 린이 내 어깨 위로 기어올라왔다. "어? 린? 왜…." 순간 뭔가 묵직한 것이 느껴지며 다시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온 린이 내 오른팔을 껴안고 있었다. 파랗게 질린 얼굴. 내 앞의 여자에게 공포심을 느끼는 듯한… "흠… 반인족이네? 모습을 보니 아직 어리군요. 그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갓 태어난… 다 크면 당신과 잘 어울리겠어요. 그런데… 이상하네? 왜 고양이와 호랑이의 기운이 섞여있는 거지? 이유가… 아, 당신의 마기 때문인 모양이네. 약간 이상한 반인족이 나온 모양이네요. 흠… 좀더 똑똑한 것 같은데… 괴수 형태도 강하겠는데요?" 그 여자가 자신을 바라보자 린은 부르르 떨더니 내 등뒤에 숨어서는 나를 꼭 붙잡았다. 으으… 나도 당장 튀고 싶다. 이 여자는 뭐냐? 운영자는 아닌데… 어떻게 이런 걸 다 아는 거지? "이리로 오세요. 손님이 왔으니 집으로 안내를 해야죠." 여자는 나를 잡아당기더니 숲을 걷기 시작했다. 거리낌없이 뒤를 내보이는 행동. 뭔가… 차원이 틀리다는 느낌이 오는데… 조금 걷자 페페의 집과 비슷한 통나무집 하나가 나타났다. 그럼… 이 여자가 페페가 만나라고 한 사람이 맞는 건가? 아니… 사람이 맞는 지도 모르겠군… 통나무집 안은 간단한 구조. 방 두 개와 거실 하나. 그리고 벽난로. 이게 끝이었다. 부엌도 대충 만들어져 있고… 여자는 의자에 앉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앉아요." 잠시 침묵하던 나는 포기하고는 의자에 앉았다. 린은 몸을 덜덜 떨며 내게 안겨왔고 나는 별말 없이 린을 안아주었다. 그 모습을 빙긋 웃으며 바라보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흠… 그냥 노리개로 사용하는 건 아닌가 보네요. 흠… 실력을 보니… 그 마검을 사용하면 인간들 중에서는 최강의 반열에 오를 만한 실력이군요. 흠…." 순간 여자의 눈이 깊어졌다. 뭔가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 나는 이를 악물며 그 눈을 마주봤다. 이상한 공포심이 느껴진다. 도대체… 이 여자는 뭐지? "호호. 역시… 선택될 만 하네… 음… 여기는 적색 산맥. 저의 이름은 세르페이린. 대륙의 유일한 레드 드래곤. 적색 산맥의 지배자입니다." "아… 드래곤?" "그래요." 드래곤이라… 역시… 뭔가 이상한 느낌이더니… 알고 나니 차라리 해탈하는군. 어차피 튀어봐야… 흠… 페페가 만나라고 했으니 설마 죽이기야 할까. "와… 드래곤을 보게 되다니… 그런데 왜 인간의 모습으로?" 내 질문에 오히려 자신을 드래곤이라고 소개한… 에… 세르페이린? 이름 기네… 어쨌든 그 여자가 놀랍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 놀라지 않네요? 저에 대해 듣지 못했나요?" "듣긴 들었는데… 지금 날 죽일 것 같지는 않으니까. 흠… 그럼 린이 이렇게 떠는 것도 드래곤이 앞에 있어서 그런 거였나? 왠지 느낌이 틀리다고 했더니… 드래곤이었군… 후훗…." 내 앞에 앉아있는 여자는 내 안색이 점차 하얗게 질려가자 흥미롭다는 얼굴이었다. 으음… 내 앞에 앉아있는 아가씨가 드래곤이다. 페페는 이 드래곤을 만나라고 하며 날 보냈다. 원망하지 말라고… 키스가 보답. 흠… 중계 방송을 보지는 못한다. 거기에… 으음… 다운이 없다고? "내가 당신하고 싸워야 되나?" 내 질문에 여자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페이린. 그렇게 불러요. 흠… 인간들은 날 보면 겁에 질려서 벌벌 떨 줄 알았는데… 당신 특이하네요? 그래도 기분은 나 쁘지 않은데… 후후. 맞아요. 내일 아침에 당신하고 나하고 싸우게 되어있죠. 중계 방송도 한다고 하던데요?" "…세한." 죽었다… 죽으면 기분 나쁜데… 나는 질린 눈으로 내 앞에서 호호거리고 있는 페이린을 바라보았다. 레벨 1000의 드래곤과 레벨 300도 되지 못한 이 몸이 P,K… 맞짱을 뜬다라… 내일 두 번째로 죽겠군. 흐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죽겠군…." "어머? 너무 상심하지 마요. 죽어도 능력치가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하니까." ……현실에서의 키스 하나 때문에 이런 죽을 게 뻔한 싸움을… 아니지. 나쁘지는 않나? 흠… 수지 맞는 장사일수도… 드래곤하고 한번 싸워도 보고 초연 씨하고 첫 키스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은데… 그저 죽을 때 기분이 더럽다는 것과… 드래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 좀 그렇다는 건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흠… 그럼 계속 이 산맥에서만 산다고요?" "그래야겠죠. 먼저 인간들을 공격하지는 말라고 하니까…." "하지만 드래곤은… 음… 유희? 뭐 그런걸 한다고 들었는데?" "글쎄요? 하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나가면… 하긴 세한 같은 강자들도 많지는 않을 테니…." "그렇겠죠." "그런데 여자?" "그렇죠. 여성체거든요." 죽음이 기정사실화 된 지금. 나는 레드 드래곤 페이린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화기애애하게. 벌써 해가 지는 시간. 혼자 살아서 심심하다는 페이린. 정말 얘기가 끝이 없었다. 드래곤이면 엄청 대단한 존재일 줄 알았는데… 흠… 지금 린은 어느 정도 면역이 됐는지 부들부들 떠는 대신 불안한 눈으로 페이린을 바라보며 내 팔을 껴안고 있었다. "흠… 그런데 드래곤이면 엄청 위엄이 넘치는 모습일 줄 알았는데… 페이린은 그렇지 않네요?" 내 질문에 페이린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입을 열었다. "글쎄요… 다른 인간들은 모르지만… 세한은 이렇게 대해도 별 상관없을 것 같은데… 그… 페페였나? 그 운영자가 이번에 오는 인간은 친구로 사귀는 것이 어떠냐고 하던데요? 확실히 인간 친구가 한 명 있어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친구를 사귀려면 세한밖에 없어요. 여기는 순 몬스터들이고 내일 내 힘을 보여주면 오는 인간들은 없을 테고 만약 온다고 해도 싸우러 오는 인간들일 테니… 따분하죠. 그리고 세한은 손님으로 온 것이기도 하니까…." 페페가… 후… "……뭔가 위험한 친구라는 느낌인데… 내일 싸움은 언제죠?" "제가 6시쯤에 데리러 올까요? 7시부터 중계라고 하던데? 촬영하러 운영자 몇 명이 온다고 했어요." "그럼 운영자들이 오는 시간이… 음… 휘유… 그런에 페이린은 레어에 들어가 있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본체로 있으면 거추장스러워서… 좀 작은 게 움직이기도 편하잖아요." 뭔가 드래곤이라는 느낌이 오지 않는군. 그냥 보고 있으면… 그저 예쁜 아가씨로 보이는데… 하지만… 저 눈은… 위험하다는 신호가 오는데… 식스센스도 뭔가 공포심을 느끼게 해주고 있으니… 확실히 위험한 느낌이야… "음… 그런데 첫 만남 기념으로 선물 같은 건 안 주나요?" 내 말에 페이린의 얼굴이 날카롭게 빛났다. 오오… 엄청난 오한과 공포가 밀려오는데? 린이 다시 떨기 시작했다. "호호호… 오히려 인간이 세한이 뭔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흠… 차라리 죽고 말죠. 이래뵈도 상당한 수전노로 평가받고 있답니다." "호호호. 수전노는 아니지만 전 보석을 사랑해서요. 선물은 좀 부담스럽네요." "후후. 제가 주는 것이 아니라 페이린이 주는 건데 부담스러울 이유가? 흠… 설마 최강의 드래곤이 보석 하나가 아까워서 그러는 것은 아닐 테고…." "호호호." "하하하하…." 으음… 불꽃이 튀기는 것 같아… 내가 왜 드래곤하고 눈싸움을 하고 있는 거지? 식은땀이 다 흐르네. 린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차. 나는 손을 들어올렸고 페이린은 눈을 깜박이더니 린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저급한 반인족은… 이 정도 살기에 그렇게 죽으려 하다니…." 페이린이 투덜거리는 것이… 나하고 눈싸움 하는 것이 재미있었나 보지?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린을 다독거렸다.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는 것이… "린. 동물로 변해있어." 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작은 고양이 비슷한 모습으로 변하더니 내 품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세한이 마나를 조금씩 넣어주면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 게예요. 아마 저에게 공포를 느껴서 미숙한 변신이 풀린 모양인데…." 페이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린에게 마나를 조금씩 흘려보내 주었다. 약간 몸을 움찔하던 린이 곧 다시 내게 몸을 부비적거렸다. 흠…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그 검… 최상급 마족이 영혼이 잠들어 있군요." 페이린의 말에 나는 몸을 굳히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마나르트라고 하는 마족이 들어있는데… 지금은 제 힘이 달려서 마력을 제어하느라 잠들어 있죠." 내 말에 페이린이 잠시 생각하더니 약간 놀란 얼굴을 지었다. "마나르트면… 최상급… 흠… 한 서열 100위 정도였는데… 와… 그런 마족이 들어있다니… 마나르트 같은 마족 세 명이면 저도 승리를 확신하기 힘든데… 굉장한 검이네요." 와… 마나르트를 알아? 흠… 말 뿐이 아니었군. 나는 마나르트에 대한 평가를 변경했다. 그런데… 마나르트 세 명이 덤벼야… 오싹한데? "어머? 시간이 이렇게 됐네? 저는 레어로 돌아가야 겠군요. 여기서 같이 잘 수는 없으니… 흠… 혹시 여기서 자면 세한이 덮칠 건가요? 이런 모습이면 인간들이 덮치기도 한다던데?"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쿡쿡거리던 페이린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오죠. 그 반인족 때문에라도 여기에는 못 있겠어요. 준비하고 있어요. 이동." 순식간에 사라지는 페이린. 와… 역시 드래곤은 다르다 이건가? 페이린이 사라지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 긴장됐어… 편하게 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냐…." 린이 품속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페이린이 없어지자 신이 나는 모양이지? "린. 그 모습으로 있어. 알았지?" 내 말에 나를 빤히 바라보는 린. 나는 한숨을 쉬고는 방문을 열어보았다. 침대가 하나… 그런데 여자가 쓰는 것 같은 느낌의 침대… 페이린이 자던 침대 같은데… 나는 고개를 젓고는 다른 방의 문을 열었다. "……도서관?" 무슨 책들이 이렇게 가득 차 있는 거지? 호기심이 동해서 잠시 책의 제목들을 바라보던 나는 안색을 굳히고는 방에서 빠져 나왔다. <건들지 마요, 세한>이라고 적혀 있는 책들을 건들 수는 없지. 결국 페이린의 침대로 가서 누운 나는 꿈틀거리는 린을 이불로 잘 덮어 주고는 생각에 잠겼다. "후… 내일…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냥 브레스 한방에 통구이 되는 거 아냐? 바리어가 거의 마스터 되기는 했지만… 그러고 보니 레벨이 올라가면 바리어도 강해지는 것 같던데… 드래곤과의 싸움에서는 식스센스는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덩치가 워낙 크니… 아무래도 공격은 마나를 실어서 검기나 권기로 해야할 테고… 그래도 효과가 있을까? 으음… 마나르트만 완전히 제어할 수 있어도…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캡슐수면을 시작했다. 로그아웃을 해서는 초연 씨에게 따질까 겁나서… 쳇. 마스터만 됐어도… 졸린다… 눈을 떠보니 아직은 좀 어두운 새벽이었다. 으음… 무의식중에 옷이 제대로 입혀져 있나 확인하는 되는군… 다행히 옷은 제대로 입혀 있는데… "좀 커진 것 같은데?"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내 팔을 끌어안고 있는 린. 왠지 어제보다 좀 커진 것 같은데… 일주일이면 다 성장한다더니 하룻밤사이에 좀 큰 건가? 내 팔을 안고 있는 린을 힘겹게 떼어낸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5시 50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장비들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우웅… 주인님?" 어느새 깼는지 린이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장비를 장착하고 있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 린. 흠… 나쁘지는 않은데… 잠시 린을 바라보던 나는 다음으로 린이 한 행동에 감명을 받았다. "검." 마나르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서는 검이라는 말과 함께 내게 건네는 린. 시중을 드는 건가? 그리 똑똑하지는 않다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어떻게… 마나르트를… "리, 린… 너… 어떻게 그 검을…."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린.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넣어준 마나에 마나르트의 마기가 있어서 적응이 된 것일 수도…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거실로 나갔다. 린이 어제보다는 좀 낳아진 걸음걸이로 뒤따라 나왔다. <깨울 필요는 없네요. 그럼 분지로 나와요. 반인족은 두고. 그 집에는 결계를 쳐둬서 충격에서 보호할 게요.> 페이린의 목소리. 나는 린을 돌아보았다. "린. 위험하니까 이 집에 가만히 있어. 창문으로 구경을 하는 건 몰라도… 절대로 나오지 마라. 음… 명령이야." 잠시 나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린. 흠… 백치미… 나는 고개를 젓고는 린의 머리를 토닥여 주고는 문을 열고 나왔다. "후… 상쾌한… 뭐지?" 기지개를 펴던 나는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단검을 빼들어 던졌다. 오른쪽. 음? 공중에 멈추는 단검. 자세히 보니… 저기서 어떤 남자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운영자잖아? 촬영이라도 하러온 모양이지? 근처에서 몇 명의 운영자를 더 발견할 수 있었다. 페페는 없네… 순간 엄청난 기운을 느낀 나는 몸을 움찔하고는 분지를 바라보았다. 크오오오오오!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거대한, 붉은 비늘에 둘러 쌓여 있는 드래곤. 무섭다… 정말… 이런 공포를 느낀 건 처음이야…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분지로 내려갔다. 그리고 마나르트를 뽑아들었다. 아직 싸우려면 한시간이 남았지만… 좀 긴장할 필요가… 마나르트를 쥐자 역시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후… "차라리 자네를 잡고 있을 때가 더 진정이 되는데?" 순간. 고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축하드립니다. 6계급으로 승급 직업 마스터 하셨습니다. 솔져, 명칭 전신(戰神)의 칭호를 얻으셨습니다.> "뭐?" 나는 급히 캐릭터 창을 불러내었다. 레벨… 헉!? 500? 이게 뭐야? 보너스 스탯이 지금… 250이나… 도대체 왜… 아, 그러고 보니 페페가 일시적이라는 말을… 드래곤하고 싸우는 거니 일시적으로 능력을 높여준다는 건가? 나는 미소를 지으며 스탯들을 분배하기 시작했다. -어? 세한.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반가운 목소리를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스탯을 모두 분배하니 등장하시는 구만. "정말… 오랜만에 목소리를 듣는데?" -나야 가끔씩 들어서 그리 감동적이진 않네. 그런데 어떻게… 내가 힘을 막다가 기절이라도 했었나? 왜 갑자기 이렇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엄청난 놈과 싸워야 돼서 운영자 어르신들이 잠깐 능력을 높여주셨지. 현재 레벨에 500이라네." -500? 그렇게 높여주고 싸워야할 놈이… 드, 드래곤!? 저 이상 비만 도마뱀이 왜!? 거기다 그 포악한 레드!? 저 짠돌이 자식이 왜… 짠돌이? 확실히 돈에 관한한 나하고 쌍벽을 이루더니만… "저놈이 우리의 상대야. 자네 힘. 모두 제어가 가능하지?" -물론. 흠… 그래도 쉽지는 않겠는데… 자네 모슨 스킬을 마스터했나? 스킬 마스터에 레벨 500. 거기에 내 힘까지 합하면… 쉽게 지지는 않겠군. "될 수 있으면 이겨야지. 오랜만에 자네하고 함께 싸우는 기분인데…." -흠… 그럼 열심히 해보지. 검기를 사용하게. 나 혼자로서는 저 껍데기를 뚫지 못한다네, 주인 씨. "자네가 고통스러울 만큼 마나를 불어넣어 줄 테니 걱정 말게나, 검 씨." -기대하지. "기대하라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페이린을 바라보았다. 좋아! 한번 해보자! 나는 머리카락을 앞으로 넘기고 망토를 완전히 두르며 마기를 발산했다. 힘들지 않아? 하하하! 나는 다크소드라 불리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 "여… 미토스. 왔냐?" "음… 할딘. 아직 시작 안했어? 7시가 다 되가는데?" 클레이모어를 어깨에 둘러맨 미토스가 자리에 앉으며 맞은 편에 앉은 금발 머리의 마법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체 랭킹 6위. 마법사 할딘. 미토스의 동료. "아직이야… 한시간 동안 저렇게 열심히 떠들면 힘들지 않을까 걱정인데… 그런데 어떤 불행한 플레이어가 저 끔찍한 드래곤과 싸우는 건지 궁금하군. 랭킹 1위는 아니라고 하던데…." 할딘이 여관의 가장 큰 벽에 걸린 스크린에 떠오르고 있는 레드 드래곤을 보며 탄성을 토했다. 역시 드래곤의 위용에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미토스가 입을 열었다. "글쎄… 어쨌든 멋진데? 언제 기회가 되면 가까이서 보고 싶어…." "언제 같이 가자고." "그래…." 그때 드래곤의 모습이 사라지며 마이크 비슷한 것을 들고 있는 운영자 하나가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하하! 불만을 토하시고 계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대단한데?" 미토스의 중얼거림. <그럼. 드래곤의 모습은 10분 후에 계속 보시길! 그럼 오늘 드래곤과 맞서 싸울 플레이어를 소개합니다.> 순간 운영자의 모습이 사라지며 어떤 바위 위에 앉아있는 사람이 스크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검은머리에 검은 망토. 공포스러운 분위기. 주위에 마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인물. 요즘 이름을 날리고 있는 다크소드. "맙소사! 한!?" 미토스가 놀라 고함을 질렀다. 의아한 얼굴로 미토스를 바라보는 할딘. "한? 다크소드잖아. 아는… 아, 저 친구하고 친분이 있다고 했지? 자네와 같은 케이스라고 했었나? 흠… 재밌겠군…." "맙소사…." 얼굴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들 사이에서 차가운 눈동자를 빛내고 있는 세한을 보며 미토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저씨, 빨리와요!" "후… 거기 있었군." 무기점을 잠시 닫고 칼과 함께 여관을 찾은 하크는 테이블 하나를 맡아놓고 있는 제시와 니베에게 다가갔다. 하크와 칼, 제시와 니베. 상당히 친해진 이들이었다. "그래. 호오… 저게 드래곤인가? 멋진데?" "전 무서운데… 그치 제시?" "응. 왠지 공포스러운데… 하지만 어떻게 보면 아름다워…." "맞아. 저 반짝거리는 몸을 좀 봐… 와…." 하크는 몽롱한 얼굴로 드래곤의 모습을 보고 있는 자신의 무기점의 점원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4인용의 작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않은 4인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스크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한님은 이걸 보고 계실지 모르겠군요." 약간 걱정스러워 하는 칼의 목소리에 하크는 미소를 지었다. 세한의 부하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이 청년은 지금도 세한을 걱정하고 있었다. 정말 못 말릴 친구라고 생각한 하크는 운영자가 드래곤과 싸울 플레이어를 소개한다는 말에 흥미로운 얼굴로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 맙소사. 한!?" "하, 한님!?" "어? 세… 아, 아니 한이잖아!?" "다크소드 오빠다!" 4인은 놀란 거의 경악한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아, 필! 에린 씨!" 사람으로 가득 찬 바로드 시의 여관 안을 돌아다니던 필과 에린은 자신들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 테이블에 필의 현실에서의 동창들, 세시와 리아, 리사, 제인이 앉아있었다. 상당히 큰 테이블이었고 그 테이블에는 다른 일행도 합석을 하고 있었다. 모두 괜찮은 인상의 사람들. 필과 에린은 그 테이블에 합석했다. "야… 우연이네? 어떻게 여기를 딱 오냐?" "너희야 말로… 그런데 제시는 없냐?" 필의 질문에 세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차렌에 남아있어. 그 무기점 주인하고 친해져서 말야. 그리고 얼마 전에는 현진이가 보냈다는 여자도 한 명 와서…." "그래? 아, 안녕하십니까. 검사 필이라고 합니다." "예. 저는 마법사. 파리운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동료들." "검사 테일입니다." "세나에요." "젠시입니다." "베나에요." 이것 참… 정말 우연이라 할 수 있는 만남? 세한과 친분이 있는 파티.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필은 그저 평범한 중급의 파티라고 생각하며 인사를 나눴다. "여기는 제 여자 친구인 에린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예. 잠시 이 숙녀 분들과 합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하. 정말 멋진 모습이죠?" 파리운은 스크린을 보며 감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역시 스크린에 나타난 레드 드래곤을 바라본 필과 에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멋지다…." "좀 무서운데…." "야, 필. 저 드래곤하고 싸운다는 플레이어가 나온다. 와… 정말 공포스러운… 어? 그런데 어느서 많이 본 듯한…." 소영, 세시의 의아해 하는 목소리. 스크린에 새롭게 떠오른 한 남자를 관찰하던 필은 눈을 부릅떴다. "마, 맙소사! 혀, 현진이, 한이잖아!?" "한!? 파리운 한이에요." "어? 정말이네?" 순간 서로를 돌아보는 테이블의 사람들. 잠시 어색한 침묵을 유지하던 사람들 가운에 필이 입을 열었다. "한을… 아십니까?" 파리운의 대답. "예. 전에 한번 여행을 같이… 요새는 다크소드라고 불린다지요?" "야! 저거 정말로 한, 현진이야!?" 세시의 외침에 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 녀석이 왜…." 테이블에 합석하고 있던 사람들은 각자 놀랐을 때 지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으아…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레도르는 여관의 식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그때 그의 뒤에 서 있던 이시린이 레도르를 잡아끌었다. "어? 이시린?" "저기." 이시린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스크린에 정신이 팔려있는 제르난 길드의 동료들을 발견한 레도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드 등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시드 형." 테이블로 다가가며 반가운 어조로 시드를 부르는 레도르. 하지만 테이블의 누구도 레도를와 이시린을 바라보지 않았다. 레도르는 당황하며 테이블로 다가갔다. 비로소 일행들이 무언가에 크게 놀란 얼굴로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레도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레, 레도르. 저 스크린!" 이시린의 목소리에 레도르는 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아까까지 레드 드래곤의 모습을 보여주던 스크린에는 레 도르에게 아주 익숙한 한 남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바위 위에 앉아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하나뿐인 솔져. "하, 한 형!?" 레도르는 비명 같은 말을 내뱉었고 그 제서야 시드 등이 고개를 돌려 레도르와 이시린을 바라보았다. "와, 왔냐?" "이, 이시린! 저거, 저거 봤어!?" 레도르와 이시린은 남은 두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스크린으로 향하는 시선. 스크린에 나타난 한은 바위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때 바람이 불었는지 한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고 한의 원래 얼굴이 살짝 드러났다. 잘생긴 미남의 모습에서 공포스러운 다크소드의 모습으로 순간적으로 변하는 모습은 신비로웠고 주위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특히 여자들의 목소리가 제일 높았다. "이시린… 위험하지?" "음… 어쩌면…." 낮게 속삭이는 세린과 이시린.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한을 바라보느라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때 운영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랭커 다크소드. 마검의 주인입니다. 마검이 없어도 랭커에 드는 실력을 지니신 분으로 마검을 사용하시면 랭킹 1위의 플레이어와 싸워도 대등한 실력을 지니신 분입니다.> 운영자의 목소리에 여관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한 형이 그렇게 강했어?" "가, 강하긴 강했지만…."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제르난 길드의 사람들. 운영자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래곤과의 싸움에서는 이기기 힘드시겠죠. 그래서 일시적으로 레벨을 500으로 올려드렸습니다. 현재 랭킹 1위이신 플레이어보다 조금 높은 레벨이시죠. 유저 분들과 최대한 비슷한 레벨이면서 어느정도 드래곤의 실력을 보일 만한 레벨로 정했습니다. 물론 이 대결이 끝나면 레벨은 원상복귀 됩니다. 그럼 이제 곧 레드 드래곤과 다크소드님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부디 이 광경을 보시고 레드 드래곤의 힘을 깨달으시길.> 그리고 다크소드가 드래곤과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런 다크소드를 노려보는 레드 드래곤. 드래곤이 머리를 들어올리며 포효했다. "한 형… 괜찮을까?" "그, 글쎄?" 서로를 바라보는 제르난 길드의 사람들의 눈에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드래곤의 몸앞에서 엄청난 화염이 생성되며 다크소드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여관 안의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화르르르륵! 엄청난 기세. 엄청난 속도로 나를 덮쳐오는 불길. 순식간에 내 눈앞으로 다가온 화염. 순간 나는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아앙! 폭발음과 함께 치솟아 오르는 불길을 보며 나는 신음을 흘렸다. 이런… 엄청나군… 그런데… 내가 피한 건가? "마, 마나르트. 지금 내가 피한 것 맞나?" 마나르트의 대답은 순식간에 들려왔다. -당연하지! 레벨이 높아졌잖아! 안 그럼 벌써 통구이가… 으아! 빨리 뛰어! 순간 집결되는 한기. 나는 급히 몸을 띄웠다. 우와… 순간 도약이… 지금 몇십m를… 최대한 높게 뛰고 마력도 이용하면 페이린의 머리도 때릴 수 있을 지도… 쩌저저정. 내 발 아래로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휘이… 죽이는데… 순간 페이린의 몸이 돌아가며 거대한 꼬리가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크윽… 스아아앙… 그 꼬리를 막아서는 바리어. 역시… 바리어도 강해졌어… 하지만 엄청난 위력의 꼬리치기는 바리어를 깨부수고는 나를 향해 날아왔다. 후… "흐아아앗! 크로스! 마검기!" 최대한 힘을 끌어올려 날아오는 꼬리를 향해 검기를 날려보낸 나는 일어나는 폭발의 여파를 이용해 뒤로 날아가며 바닥에 착지했다. "후… 정말 순간순간 엄청난 공포가 몰려 오는데?" -저 비만 도마뱀들은 무식하게 쌔거든. 그때 엄청난 강풍이 내 몸을 습격했다. 우웃… 날아가겠다… 샤프소드를 뽑아들어 바닥에 박아넣는 것으로 몸을 고정시킨 나는 하늘이 사라진 것에 충격을 받았다. 물론 내 착각이었지만… 공중으로 날아오른 페이린의 입가에 붉은 기운이 모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브레스닷! 브레스? 그 최강 공격!? 나는 마나를 최대한 끌어올리며 동시에 내 앞으로 바리어를 생성시켰다. 이동형. 나를 따라 움직여라. -무, 무슨 짓을… "브레스를 뚫고 올라가서 입안에 공격을 퍼붓는 거야. 좋은 생각이지?" -이, 이런 미친… "그런 소리 말고 자네 스스로도 좀 막아줘. 나도 마력을 이용해 최대한 띄울 테니. 그런데 마력을 이용해 몸을 띄우면…." 순간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붉은 광선이 내게 쏘아져 오기 시작했다. 주, 죽인다… 내가 저걸 뚫으려 했단 말야? "오옷! 철학과는 계획을 미루지 않는닷!" 나는 순간도약과 마력을 이용해 몸을 띄웠다. 내 앞에서 함께 움직이는 바리어. 순간 페이린의 브레스와 내 바리어가 충돌을 일으켰다. "우와아아아악!" -제에에엔장아앙! 미쳤어어어어어어!!!!!!!!!! 내 의지와 마나르트의 의지, 살고 싶다는 의지는 좋은 효과를 얻었다. 마력이 최대한 집중되며 브레스의 가운데를 뚫기 시작한 것. 콰드드드드… 이상한 소리와 함께 내 주위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마나, 마력와 부딪힌 브레스의 기운. 으으… 뜨겁다… 이대로는 못 뚫고 지나간다… "흐아아아아! 속검(速劍)!" 나는 마력을 최대한 응축해 검기를 마구 뿌려댔다. 간신히 브레스를 뚫고 지나가는 검기들. 브레스가 뚫린 곳으로 놀란 눈…으로 보인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페이린의 거대한 얼굴이 나타났다. 생각보다 많이 올라왔군… "우와아아아악!" 순간 브레스에 휩쓸려 바닥에 처박히는 나. 엄청난 열기에 몸이 녹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위대한 레드 드래곤이 비명을 질렀다. 크우오오오! 얼굴에 내 검기를 얻어맞은 페이린의 울부짓음. 얼굴이 좀 약한가? 하긴… 입하고 눈은 비늘이 없으니… 최대한 힘을 끌어올려 브레스를 밀어낸 나는 급히 옆으로 몸을 날렸다. 내가 빠져나가는 사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 브레스. 그 폭발에 휩싸인 나도 덩달아 날아가기 시작했다. -젠장! 내가 미친 짓이라고 했지! "나도 알고 있어!" 간신히 몸을 일으킨 나는 내 눈앞에 일어난 처참한 광경을 보고는 안색을 굳혔다. 분지가…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흔적이 생겨나 있었다. 저걸 조그만 더 막고 있었으면 그야말로 죽었겠군… 드래곤의 브레스는 하루에 3번이 끝이라고 들었는데… <대단하군요, 세한…> 왠지 화난 듯한 목소리. 페이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나를 향해 엄청난 수의 빛의 화살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제길… 차라리 강력하더라도 하나만 날아오는 것이 더 좋은데… 이렇게 많아서야… "마나르트!" -맡겨보라곳! "좋아! 토탈(Total)!" 순식간에 마나르트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지며 이상한 기형의 검으로 변했다. 그리고 토탈이라는 기술… 그야말로 모든 기술들을 다 조합한 것이니… 쉬이익! 날아가는 단검들에 돌려 차면서 검 휘두르고 주먹 휘두르고… 누가 옆에서 보면 상당히 멋있는 모습일 텐데… 전의 내 레벨로는 사용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움직임으로 기술을 펼쳐내고 있었다. -죽이는데! 퍼퍼퍼퍼펑! 순서대로 마구 터져나가는 빛의 화살들. 모든 화살들을 막아낸 나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허공에 노출된 나에게 날아오는 화염. 아까보다도 뜨거워 보이는 것이… -날 내뻗어! 마나르트의 말을 따라 손을 내뻗자 마나르트 스스로 마력을 움직여 시커먼 마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충돌하는 화염과 마기. 곧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제길…." 폭발로 일어난 빛 무리를 뚫고 날카로운 이빨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드래곤의 입이 나타났다. 하나의 이빨이 롱소드보다 더 커 보였다. 빌어먹을… "다크 건(Dark Gun)!" 내 왼손에서 주먹만한 굵기의 검은 광선이 날아갔다. 내 마나와 마력, 마기를 뒤섞어 응축한 광선. 다크 캐논의 축소판. 어쩌면 드래곤의 브레스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검은빛이 광선은 페이린의 이마를 가격했고 페이린의 몸이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나는 거대한 드래곤의 머리를 밟고 높이 도약했다. 후우… 높다… "다크 캐논!" 아까보다 훨씬 굵은 빛줄기가 드래곤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곧바로 사라지는 드래곤. 으앗! 텔레포트? 블링크? "빌어먹을!" -위야! 마나르트의 외침에 나는 몸을 비틀어 위를 바라보았다. 붉은 브레스가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내 왼손에서 날아가고 있던 다크 캐논이 궤도를 바꿔 브레스와 충돌했다. 하지만 확연히 밀리며 내게 밀려들어오는 다크 캐논. "으아아!" 바리어에 마나르트를 넓히고 검기 날리고 방어를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나는 좀 약해진 브레스에 명중 당해 땅 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나를 강타하는 엄청난 폭발과 열기. 신음이 흘러나온다… "빌어먹을! 저게 인간이야!?" 전체 랭킹 2위의 검사 딜럿은 자신이 따라 다니는 주군 랭킹 1위 재퍼슨의 화난 고함에 몸을 움츠렸다. "저게 말이 되냐고! 내 레벨이 468이야! 그런데 저런 움직임은… 아니, 저런 움직임의 반도 소화하지 못하는데 저 자식은…." 살기가 무럭무럭 솟아나는 재퍼슨의 말에 딜럿은 식은땀을 흘렸다. 랭킹 2위나 되는 딜럿이 그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었다. "빌어먹을! 저 새끼가 레벨 400만 되도 나는 가지고 놀겠구만! 젠장! 그렇다고 저 검은 뺐을 수도 없고! 크아아아악!" 결국 재퍼슨의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다만 딜럿이 약간 떨어진 곳에서 불안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을 뿐. 그때 여관의 가장 구석에 앉아있던 은발의 청년이 낮게 중얼거렸다. "마검의 주인이라… 나와 너무 대조를 이루지 않아?" 그 청년은 자신의 손에 들린 하얀 검을 향해 중얼거리고 있었고 그 청년의 말을 알아듣는 다는 듯이 그 흰빛의 검이 진동을 일으켰다. 성검 레지엘. 섀도우 월드는 사실성을 강조한 게임이다. 빛이 있어야 어둠이 있는 법. 성검의 주인은 마검의 주인이 싸우는 모습을 존경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 성검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는 이미 마스터의 반열에 올랐지만 성검과 마검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마검은 온갖 역경을 뚫고 온 사람에게 엄청난 고통을 동반해 힘을 주었고, 성검은 아무런 제약도 없이 힘을 주었다. 성검의 힘이 현재, 마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현재 성검을 보는 사람들은 그저 특이한 검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은발의 청년은 그 사실에 대해 화를 내지는 않았다. 자신도 언젠가는 저런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기에. "언제 싸워보고 싶어…." 그의 중얼거림에 성검이 화답하듯 진동했다. 청년, 성기사 직업을 마스터한 청년 레지엘은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성검의 이름은 청년의 이름을 따른 것. 둘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마검이 자신의 주인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에 비해. 마검은 주인에게 고통을 준다. 성검에 머물어 있는 천족, 세파빌의 설명을 들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레지엘은 마검의 주인을 동정하는 동시에 존경하고 있었다. 이곳은 게임의 세상. 즐거움을 얻기 위한 곳이다. 하지만 저 사람은 고통을 감수하며 힘을 얻고 있었다. 만약 성검도 그 렇다면… 자신도 그럴 수 있을지 레지엘은 자신이 없었다. 그와 세한은 게임을 하는 이유가 달랐다. "우와아!" 레도르는 놀란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여관 안의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고 레도르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스크린에서는… 움푹 패인 분지의 한가운데에서 마나르트에 휩싸인 세한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괜찮을까?" 세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입가에 피가 묻어있는 것이 피를 토한 모양이었다. 거기에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거의 죽음에 다다른 사람의 걸음걸이였다. "끝인 것 같아…." "그래도 대단하다… 저런 엄청난 괴물하고 저렇게 싸우다니… 아까 몸놀림이 완전 환상이었다니까." "정말… 저 사람 조금만 강해져도 지존자리를 꿰차겠는데?" 주위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맙소사… 저런 사람이 우리 길드에 있단 말이지?" 시드의 중얼거림에 레도르는 정신을 수습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촬영 실력 죽이는데?" 지미의 말대로 정말… 완벽한 구도였다. 힘겹게 걸음을 옮긴 다크소드가 레드 드래곤을 노려보는 모습이 완벽하게 나타내어지는 스크린. 정말 박진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멋져…." 이시린이 몽롱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다 몸을 흠칫하고는 일행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다른 여자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 온다…." 레드 드래곤이 공중을 날아 다크소드에게 날아가는 것을 보며 레도르가 신음을 흘렸다. 그는 세한이 이번 공격에 죽을 것이라 예상했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크소드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작전?" 시드의 중얼거림. 하지만 작전은 아니었다. "다행이야…." -그렇군. 저 비만 도마뱀은 자네가 끝난 줄 알았나 보군. 역시 인간은 아이템이 좋아야 한다니까. 분명이 엄청난 충격에 피까지 토한 나지만 내 아이템들은… 회복에는 최고다.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니라 충격을 입어 지친 상황. 아이템들은 체력과 마나를 회복시켜 주고 있었다. 이 싸움에서 포션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싸움을 시작하기 전. 운영자 하나가 포션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온다…." 페이린이 날아서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날아서 온다… 작전대로… -잊지마. 날개가 약점이야.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온 힘을 다하면 찢을 수도 있어. "해보자고." 순간, 주위에 검은 안개가 형성되었다. 무적의 공간. 하지만 드래곤의 크기에 비하면 턱없이 작았다. 크오오오오! 거친 포효와 함께 브레스를 내뿜는 페이린. 브레스는 검은 안개를 쓸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소멸되는 검은 안개. 세한이야 듣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영웅의 자리를 꿰찬 다크소드가 당했다는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흙먼지가 가라앉고 나타난 광경에 입을 다물었다. 시체가 없다. "와, 완전히 소멸?" "하지만 저 검은…." 분지에 비스듬히 박혀있는 마나르트. 그리고 사람들은 공중을 부유하고 있는 레드 드래곤의 날개 아래에서 한 인형을 발견했다. "성공이닷!" 아자잣! 나는 내 눈앞을 막고 있는 거대한 날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우선 날지 못하게 한 후에… 가까이 붙어서 싸우면 승산이 있다! 마나르트 만을 남겨서 안개를 형성해 내가 그 안에 있는 것처럼 꾸미고… 그것을 공격하는 사이에 옆으로 빠져서 날개를 공격한다. "오옷! 역시 완벽한 계획이야! 검인 마나르트가 죽을 리도 없고! 흐아아앗! 속검, 크로스!" 엄청난 양의 검기와 X자의 검기를 날린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오오… 성공? 콰콰쾅! 크오오오오! 페이린의 비명…이라고 볼 수 있을 포효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 거대한 레드 드래곤의 날개가 형편없이 찢어져 있었다. 드디어 성공이야… 하지만 곧이어 날아온 공격에 내 미소는 싹 사라졌다. 부우우우웅! 엄청난 기세로 날아오는 페이린의 꼬리. 젠장! 지금은 마나르트도 없어서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기가… 나는 샤프소드를 휘둘렀다. 챙강… 꼬리와 충돌하며 그대로 두 조각이 나는 샤프소드. 망했다… 나는 거대한 꼬리에 가격 당했다. "커허억…." 이렇게 맞아서 날아다니는 것도 오랜만이야… 나는 분지의 끝까지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분지 아래로 수많은 산들의 끝자락이 펼쳐지고 있었다. 흐으… 크오오오! 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돌려 페이린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끝났어… 가까이 붙어 있지도 않고… 브레스야 이제 못 쓰겠지만… 마법으로 원거리 사격을 하면…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날아오는 마나르트를 힘겹게 붙잡았다. 뼈들이 으스러진 것 같은데… 마나도 거의 바닥이군… -괜찮나? "아아… 별로…." -제길. 음? 저 도마뱀… 뭐 하는 거지? 마나르트의 의아한 목소리에 나는 페이린을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이빨들이 들어 나도록 쫙 벌린 입가에 붉은 기운이 모여들고 있었다. "브레스? 하지만 세 번 모두…." -흥. 저 비만 도마뱀들의 알량한 자존심이지. 뭐, 자네를 인정한다는 뜻일걸? 자기 같은 위대한 존재들이 인정한 존재니 최강의 공격으로 끝낸다는 식의… 좀 무리를 해서라도 깨끗한 죽음을 준다. 뭐, 이런 뜻이겠지. 망할 도마뱀! "아아… 그래서 저렇게 오래 걸리는군. 무리를 하는 거라… 그럼… 한번 싸워봐야겠지?" -흥! 저런 도마뱀들이 자존심을 세우게 할 수는 없다! 오오옷! 최상급 마족의 힘을 보여주마! "이봐. 싸우는 건 나야." -내 힘도 있잖아! 나는 피식 웃고는 마나를 끌어 모았다. 체력이야 몰라도 마나는… 금방 차지. 어느새 거의 꽉 차있는 마나. 하지만 이걸 다 사용해도 저 공격을 막을 수 있을지… 거기다 이런 상태로 마나를 무리하게 사용하면… 죽겠지? "해보자!" -흐아아앗! 내 몸 주위로 엄청난 마기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끝난 듯 아까와 비슷한 브레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페이린. 후… 최후의 발악을 해 볼까나? <오오오… 이거 예상치 못한 상황입니다. 레드 드래곤이 다크소드를 인정하는 모양입니다만… 하루에 사용 가능한 브레스는 3번. 하지만 드래곤은 자신이 인정한 존재는 항상 브레스로 죽음을 줍니다. 예상보다 뛰어난 다크소드님의 분투에 드래곤이 감동을 받은 듯? 이 정도면 드래곤의 위력을 짐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 드래곤은 마법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려 다크소드님의 공격은 날개를 찢은 것 외에는 큰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죠.> "운영자가 해설도 하나? 어쨌든 저 드래곤, 한 형이 마음에 들었나본데?" "나도 홈페이지에서 읽은 적 있는데… 별로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인정을 받아서 최강의 공격을 받다니…." "그런데 좀 만화와 같은 상황이지 않아?" "게임이잖아. 멋지면 된 거지!" 약간 어색한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던 레도르는 세린의 고함소리에 피식 웃었다. 확실히… 운영자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드래곤의 위력도 확인했고 저 드래곤이 지금 무리를 해서라도 브레스로 한을 죽이려 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뭐, 저렇게 설명한다는 것이 좀 웃긴다는 거였지… "이걸로 끝나겠지?" "후… 돌아오면 파티라도 열어줘야 하나?" "물론!" 제르난 길드의 사람들은 긴장한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정말 환상적인 솜씨로 운영자는 다크소드와 레드 드래곤의 대립을 잡아내고 있었다.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장된 얼굴로 마지막 공격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거… 드래곤의 위력도 잘 알겠지만… 단단한 비늘에 엄청난 위력의 브레스. 봐주면서도 레벨 500의 마검의 주인을 저렇게 쉽게 패퇴시키는 위력… 그런데…." 할딘의 말을 미토스가 받았다. "다크소드가 너무 부각되는 것 같지 않아?" "운영자들… 지금 당황하고 있을 걸? 처음에는 다크소드를 좀 강하게 해서 드래곤한테서 조금이라도 버티게 하려고 했을 텐데… 이래서야 다크소드만 좋은 일 한 거 아냐?" 할딘의 말에 미토스는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화려하고 좋지? 언젠가 다크소드가 우리를 꺾을 지도 모르니… 그때 덜 창피하지 않겠냐?" 미토스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할딘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누가 진다고?" 미토스는 미소를 지으며 스크린을 주시했다.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 미토스가 낮게 중얼거렸다. "언제 파티라도 열어줘야 되나?" 한에게 어떤 선물을 줄지 고민하기 시작하는 미토스였다. "한님! 막아야 됩니다!" 으르렁거리는 칼을 보며 하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친구로군… 하지만 뭐라도 탓하기 힘든 것이… 칼하고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더 있었고… 같은 일행인 제시와 니베도 반짝이는 눈으로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좀 진정하라는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하크는 일행을 진정시키는 대신 스크린을 주시했다. 드래곤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져 나가고 있었다. "우와앗! 막아랏! 태극 상급학교의 위엄을 보여봐!"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파리운 일행도 필과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정말… 환상적인 구도라는 것이 모든 이의 생각이었다. 혹시 짜고 저러는 것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어쨌든 파리운도 지금은 흥분하고 있었다. "그래 죽어버렷!" 어느새 재퍼슨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던 딜럿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랭킹 1위의 위엄이라는 것이… 차라리 강한 친구군. 열심히 해서 이겨라! 라는 등의 말을 외쳤다면 이렇지도 않았을 텐데… 딜럿은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는 자신의 주군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절대자의 위엄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야. 딜럿은 재퍼슨의 사촌이었고 그를 뛰어넘기보다는 보좌하는 것이 더 좋았다. 하지만… 정말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되는 딜럿이었다. "힘내요." 레지엘의 말에 성검도 부르르 떨며 검끝을 스크린으로 향했다.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와 다크소드의 검은 빛줄기가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다크 캐논!" -하아아앗! 마나르트의 검 끝을 통해 다크 캐논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흐으…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브레스와 다크 캐논이 서로 맞부디쳤다. -좋아! 브레스가 아까보다는 약해! 온 마력을 다 집어넣어주마! 죽어랏! 비만 도마뱀! "크으… 나는 끔찍하구만… 쿨럭. 누구는 수다를 떨고 있나?" 나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느끼며 진저리를 쳤다. 제길… 그래도 엄청나게 밀린다… 브레스와 다크 캐논이 만나는 곳에서는 엄청난 폭발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있었고 빠른 속도로 내 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제길… 마나르트!" -앙? 왜 그러나 세한? "구경 잘하고 오게. 자네가 말하는 비만 도마뱀의 내부 세계를 구경하게 해 주지." -왜,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드는… 마나르트의 떨리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나는 남은 모든 힘을 쥐어짜서 마나르트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마나르트에서 검은 기운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검기하고는 좀 다른데?" -나도 모르겠군. 어쨌든 위력은 상당한데? 약간 나에게도 부담이… "좋아! 부탁하네! 자서전의 일부를 차지할 경험이야!" 모든 기운을 다 쏟아넣은 나는 마나르트를 집어던졌다. 다크 캐논을 통해 날아가는 마나르트… 순간 내 몸에서 모든 힘이 사라졌다. 망할… "제대로 갔나?" 다크 캐논에 가려서 마나르트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완전히 사라지는 다크 캐논. "뭐, 뭐야!?" 다크 캐논이 사라지자 브레스가 정확히 나를 향해 날아왔다. 뭐가 어떻게… 제길! 실패한 건가!? 지금은 마나르트도 없으니… 방어할 방법이… "흐아아악!" 젠장 머리 깨지겠네! 나는 정신력에 남아있는 모든 수치, 마나 체력 스태미나를 모두 동원에 내 몸에 바리어를 둘렀다. 앞을 막는 것이 아니라 갑옷 비슷하게 내 몸 전체에… 마치 풀 플레이트 메일를 입은 것과 비슷한 모습… 이제 간신히 서 있는 거나 마찬가지… 콰아아아아! 브레스가 내 몸을 덮쳤다. 스크린을 바라보던 레도르는 신음을 흘렸다. "제길… 아까 갑옷 같은 게 생기긴 했는데… 저걸 견딜 수 있을 리가…." 크오오오오오오! 갑자기 드래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큰 소리는 사람의 말소리, 그러니까 세한의 고함은 들리지 않아도 드래곤의 포효는 들려온다. 사람들은 브레스를 내뿜던 드래곤이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마검!?" 드래곤의 입천장에 검은 기운이 불타고 있는 마검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브레스의 공격이 끝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다크소드. 사람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페이린은 자신의 입에 박혀 있는 검이 주는 고통에 치를 떨고 있었다. 이런 방법을 쓸 줄은… 날아오던 마검은 다크 캐논의 힘을 모두 흡수하며 브레스를 뚫고 들어왔다. 면적이 큰 브레스와 작은 검의 면적 차이였다. 크오오오오! 크게 포효한 세르페이린은 꼬리를 쳐들어 세한을 공격해 갔다. 하지만 세한은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대로 서 있었고 페이린은 얼떨결에 방향을 틀어 세한의 바로 옆을 후려쳤다. 그리고 세한이 서서히 앞으로 쓰러졌다. 사라지지 않는 것 으로 보아 죽지는 않은 것인데… 페이린은 최강이라고 인식되어 있는 자신의 브레스를, 비록 약화되기는 했으니 그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고 살아있는 세한을 보며 허탈감을 느꼈다. 쓰러진 세한을 잠시 내려다보던 페이린은 자신을 주시하던 운영자들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이벤트는 끝났다. 페이린은 급히 인간으로 모습을 바꾸며 세한에게 다가갔다. 짝짝짝짝짝. 여관 안에 박수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 등장한 드래곤과 그 드래곤과 맞서 싸운 플레이어. 둘 중 누구에게 보내는 박수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주 리자드라…." 나는 내 앞에 솟아있는 높은 빌딩을 바라보았다. 섀도우 월드를 개발, 운영하고 있는 한국 10대 기업중 하나. 원래는 무역과 온라인 산업이 5:5의 비율이었다고 하지만 섀도우 월드를 개발한 후 섀도우 월드를 중점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섀도우 월드로 한 달에 버는 돈도 천문학적이라고 하는데… "흠… 53층. 섀도우 월드 운영기획부. 게임 운영 팀." 나는 명함 하나를 들고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명함에는 강초연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고… 흠… 게임 운영 팀이 운영자들이 있는 곳인 모양이지? "가볼까?" 나는 미소를 짓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깔끔한 복장에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이 얼굴에… 완벽한 팔등신 몸매… 흠… 어쨌든 나도 머리를 앞으로 넘기지만 않으면 미남인데… "린?" 나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고양이를 보며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라? 커졌네? 전에는 내 주먹만 하더니… 지금은 거의 세배 정도로 커져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작은 게 귀여운데? 그때 순식간에 린이 사람으로 변하며 나를 끌어앉았다. "컥!?" "주인님. 무서워요." "앙?" "이, 이, 하찮은 반인족이!" 페이린 이잖아? 나는 화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페이린을 보고를 피식 웃었다. 흠… 기절했었나? "페이린. 어떻게…." 내 질문에 린을 노려보고 있던 페이린이 고개를 돌리고는 의자에 앉았다. "이벤트는 끝났어요. 운영자가 보답으로 마스터 레벨로 남겨둔다고… 레벨 300이 조금 넘어있을 걸요? 세한은 내 브레스를 막고는 기절해서… 지금 기절하고 하루하고도 반나절만에 깨어난 거예요. 흠… 아직도 입속이 얼얼한데…." 아… 그 브레스… 간신히 버티기는 했는데… 그 후로는 기억이 없네? 살짝 캐릭터 창을 확인한 나는 레벨이 307인 것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레벨 올리기 힘들었는데… 좋은데? "마나르트." 벽에 기대져 있다가 내 손으로 빨려 들어오는 마나르트. 크으… 역시… 마나르트는 쥐고 있을 때 고통이 있어야 익숙하다는 느낌이… 왠지 내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괜찮나? "흠? 뭐야? 말이 가능한가?" -조금. 길게는 못해. "좋군." 나는 미소를 짓다가 내 뒤에 숨어서 페이린을 바라보는 린을 바라보았다. 흠… 리야가 준 옷이 딱 맞네? 이제 완전 성인인데? 흠… 위험해… "페이린? 린이 다 큰 건가요?" 내 질문에 페이린이 탐탁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요. 뭘 봐! 아마 세한의 마기의 영향인지 성장도 빠르고 반인족 치고는 똑똑하더군요." 약한 살기를 뿌리며 말하는 페이린. 린은 몸을 떨며 머리를 내 등에 파묻었다. 후… 나도 좀 떨리네. "그럼… 칠흑의 숲으로 돌아가야…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지?" "칠흑의 숲… 다크 엘프의 마을을 말하는 거죠. 제가 보내 드릴 수 있어요. 그런 유사 종족의 마을들의 좌표는 다 알고 있어서… 그런데 벌써 가게요? 더 놀다가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후… 드래곤과 같이 지내는 건 고역이 될 텐데… "만나야될 사람도 있고… 다크 엘프들과 약속한 것도 있어서요." "흠… 그럼 언제 놀러와요." "예? 아… 노, 노력하죠." 과연 내가 여기를 또 방문할 날이 올까? 모르지… 혹시 레벨이 500이 되면… 나는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간 뒤. 나와 린은 다크 엘프의 마을의 중앙 광장에 서 있었다. "어라? 저 사람…." 나는 큰 고속 엘리베이터 안에 서서 밖의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보니… 괜찮은데? 그때 몇 되지 않느 탑승자 중, 한 남자가 나를 가리키며 옆의 사람과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뭐야? 내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저… 혹시 섀도우 월드를 하지 않으십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머리카락들을 앞으로 가져왔다. 잠시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던 남자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하하. 역시… 섀도우 월드 운영 팀, 운영자 박정호, 시렌이라고 합니다. 오늘 헌터로 임명되시는 김현진 씨?" 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김현진입니다." "하하. 정말 얘기는 들었지만 정말 신기하십니다. 초연 씨에게 얘기를 많이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분위기가 너무 쉽게 바뀌시는데요?"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을 시작하기 전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52층… 엘리베이터 안으로 낯익은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 아버님." "부, 부장님!" 전에 본적이 있는 젊은 과장과 함께 아버님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계셨다. 어라? 우연의 일치? "음? 자네 왔나? 올 시간이 되어서 올라가려는 참이었는데… 하하. 잘 됐구만. 아, 신 과장. 자네도 전에 본 적이 있지?" 옆에 서 있던 젊은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는 감사했습니다. 신대관입니다." "아, 예. 김현진입니다." "인사는 그만하고… 다 왔군."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아버님이 밖으로 걸어나가셨다. 53층… 여기네? 밖으로 나가니 게임 운영 팀이라는 안내 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사람들 몇 명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상당히 넓었지만 넓이에 비해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하긴… 운영자들이면 게임 속에 있어야 하니까… "아, 현진 씨. 아…버지." 저쪽에서 초연 씨가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집에서는 아빠라고 부르더니 회사라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모양이지? 덩달아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바라봤는데… 왜, 왠지 몇몇 젊은 남자들의 시선이 날카롭다는 느낌이… 하지만 음산 모드를 하고 있는 내가 자신들을 바라보자 급히 시선을 돌리거나 눈총을 거뒀다. "이런… 이번에도 현진 군 먼저냐? 슬프구나." 아버님의 푸념에 초연 씨의 얼굴이 좀 붉어졌고 옆에 서 있던 박정호라는 운영자와 그 과장이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킥. 부장님. 원래 애인이 생기면 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너무 슬퍼하시지 마십쇼." "그런가? 그래도 슬픔이 가시지를 않는 구만… 흠… 어이! 일동! 주목!" 아버님이 목청을 높여 고함을 지르자 사람들이 모두 우리 주위로 다가왔다. 그 사이 내게 다가온 초연 씨가 잠시 얼굴을 찌푸리고는 내 머리카락들을 뒤로 넘겼다. "이러고 다니지 말라니까요." "아, 미안해요." 잠시 사람들이 멈칫 하다가 다시 다가왔다. 흠? 분위기 변환에 놀란 거야, 아니면 질투심에 저러는 거야? 사람들이 모여들자 아버님이 나를 앞으로 내세우셨다. "헌터 1기로 채용된 김현진 군이다. 내 사위가 될 사람이니까 알아서 대접하게나." "하하하하." 주위에서 웃음이 터져나왔고 초연 씨의 얼굴이 붉어졌다. 맙소사… 여자 운영자들은 초연 씨에게 몰려들어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 놀리는 것 같은데? 그때 그 젊은 과장이 앞으로 나섰다. "헌터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하지요. 물론 다 알고 있겠지만 아무리 절차를 무시하고 사는 우리라도 이런 간단한 절차는 거쳐야겠죠?" 뭐, 뭐냐? 이 분위기는… 부장이라는 분이 이런 사람들과 농담을 하는 것에 모자라서… 뭔가 자유분방한 분위기야… "헌터. 섀도우 월드 내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해결하는 사람을 칭한다. 이 범죄는 규약을 어기는 모든 일에 해당하며 무력 사용을 허가한다. 자신이 헌터라는 것은 최대한 숨기도록 노력하며 지시 하달이 있기 전에는 평범한 플레이어로 행동한다. 운영자와 동급으로 운영자와 협력하여 일을 처리한다. 플레이 상 이득은 없으며 따라서 헌터는 자신의 레벨에 맞는 임무를 받는다. 그리고 생략. 간단히 말해서 나쁜 놈들을 때려잡으면 된다는 말이죠. 제 1기 헌터, 헌터들의 리더로 김현진 씨를 임명합니다. 아직 다른 헌터는 없으니 리더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그때 한 30대 정도 남자가 내게 다가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서류봉투 하나를 건넸다. 어라? 어디서 본적이… "아, 그때 드래곤과 싸울 때 촬영을 하던…." "하하, 맞네. 그때 단검이 날아올 때는 놀랐지. 이건 임명 서류하고… 여러 회사 규약. 뭐, 등등이네. 나는 게임 운영과 팀장, '박관호'라네. 자네야 회사에서는 나와 비슷한 위치니… 음… 말을 들어보니 신생 게임 범죄 퇴치 팀이었나? 그런 팀의 팀장으로 자네가 임명된다고 하던데… 물론 헌터들이 더 모였을 때 얘기고. 하하. 그때 드래곤과의 싸움은 끝내줬네!" 내가 서류봉투를 받아들자 그는 그때 드래곤과의 싸움에 대해 열성적으로 떠들어대었다. 곧 주위에서는 그때 드래곤이 어쩌고 내가 어쩌고 하는 소리로 시끄러워 졌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빠져 나온 초연 씨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빠져 나왔네? 나는 미소를 지어주며 서류 하나를 꺼내 들었다. 흠… 무슨 규약들이… 어쨌든 외우기는 해야지… 그런데 정말로 내가 팀장? 아버님이 그런 얘기가 오갔다고는 했는데… "좀 당황스럽죠?" "재미있는데요?" 초연 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님이 손을 들어올리셨다. 음? 이상하게 불길한 느낌이… "주목. 전에 김현진 군과 초연이가 드래곤과의 싸움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초연이와의 키스를 정했지. 일도 끝났으니 연인 사이를 공표하기도 할 겸 여기서 받을 걸 받는 것이 어떤가!?" "오오!" "아, 아빠!" "아버님!?" 이, 이런!? 아버님의 기습 공격(?)이닷! 나는 얼빠진 얼굴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흥미롭다는 듯, 기대감 섞인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 이런… 초연 씨도 당황했는지 아버지 대신 아빠라고 외치며 항의하고 있었다. 제, 제길. 위험하닷! "어머. 어때서 그래? 이미 현진 씨하고 사귄다는 거 모두 다 알고 있는데…." "하, 하지만!" "하하핫! 재밌겠구만! 빨리 해보게나 헌터!" "오오? 키스 헌터? 마우스 헌터?" "우하하하핫!" 아주 신났구만… 나는 질린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초연 씨는 다른 여자들에게 항의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냐? 그때 아버님이 내게 뭔가 손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음? 아버님은 초연 씨를 피해 뒤로 물러나 있었고 덕분에 아버님의 손짓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흠… 동그라미. 위로. 동그라미. 위로. 그리고 뭘 마시는 듯한 포즈… 그리고… 처음 건 월급 인상? 두 번째 것은 술이라도 마시는… 그럼 이건… 아버님은 초연 씨와 나를 가리키며 뭘 안는 듯한 포즈를 하시더니 잠을 표현하는, 그러니까 손을 합쳐서 머리 옆에 놓는 것으로 잠을 뜻하는 듯한 포즈를… 협박이다!! 내 얼굴이 굳어지자 아버님은 미소를 지으며 뭔가를 말하겠다는 듯이 입을 뻐끔거리셨다. 마, 맙소사… 그때 아버님의 행동을 눈치챈 신 과장이 의아한 얼굴로 아버님의 얼굴을 살폈다. 신 과장을 가리키며 미소를 지으시는 아버님. 젠장! 어쩔 수 없다. 나는 결심을 하고는 내게 등을 보이고 여자들에게 뭔가를 항의하고 있는 초연 씨를 바라보았다. 흠… "초연 씨?" 내가 부르자 몸을 돌리는 초연 씨. 나는 그 순간을 노려 초연 씨를 붙잡고는 입을 맞췄다.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는 초연 씨. 주위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옷! 싸나이! 멋진데!?" "우와앗!" "꺄아! 멋져! 좋겠다, 초연아." 뭐라고 계속 떠드는 사람들. 잠시 입을 맞추고 있던 나는 입술을 떼고는 고개를 들었다. 붉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초연 씨. 나는 살짝 미소를 지어 주고는 아버님을 돌아보았다. 크으… 비겁합니다. 내 시선에 아버님은 웃음을 멈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 "좋아! 내가 한턱 쏘지! 나가세!" "아, 다른 과 사람들도요?" "물론 아니지." "꺄아! 좋아요!" 아버님은 호기롭게 외치며 엘리베이터로 걸어가셨다. 뒤를 따르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오늘 쉬는 날인 모양이지? 나는 내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초연 씨를 데리고 사람들의 뒤를 따랐다. "미안해요." "아, 아뇨." 내 말에 초연 씨는 얼굴을 붉히며 미소를 지었다. 후… 이렇게 된 거. 먹을 거라도 얻어먹어야지… 그때 아버님이 나를 돌아보셨다. 뭐, 뭐지? "어라? 자네는 왜 오나?" "예?" "키스도 했겠다 둘이서 시간을 보내지 우리는 왜 따라 오는 건지 모르겠군. 흠… 데이트 잘 하게나. 아, 그리고 초연이가 오늘 집에 안 들어와도 별말 안 하겠네." "그, 그런… 아버님!" 사람들은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탑승했고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문을 닫고는 내려가 버렸다. 다, 당했다… 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순식간에 숫자가 내려가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바라보았다. 음… 돈이 조금… 나는 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으음… 역시 돈을 쓰면 좀 마음이 아프다니까… "오늘 고마웠어요." 초연 씨 가족이 사는 빌딩에 도착하자 초연 씨가 내게 미소를 지었다. "아뇨. 저도 즐거웠으니까… 그럼 들어가세요." "그럴 게요. 잘 가요." "예." 초연 씨가 빌딩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나는 한숨을 쉬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은… 희미하게 보이고 있었다. 역시…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건가? 그때 초연 씨가 다시 내게 걸어왔다. 응? "아, 현진 씨. 지금 집에 들어가시면 섀도우 월드를 하실 건가요? 제가 헌터들에게 할 일을 전해주는 연락관 비슷한 일을 맡아서… 제 통나무집으로…." 초연 씨는 내가 고개를 젓자 말을 멈췄다. "죄송해요. 오늘밤에는… 갈곳이 있어서… 내일 사람들이 새 캡슐을 가져오면 그때 접속하려고요. 제가 귓말을 보낼게요." 내 말에 초연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게요. 그런데… 이제 8시가 넘었는데 이 시간에 어딜…." "이상한 데를 가는 건 아니니까 안심해요. 음… 다음에 초연 씨도 같이 가볼 곳인데… 어쨌든 지금은… 들어가세요." 내 말에 초연 씨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엘리베이터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뭔가 걱정스러워 하는 얼굴인데… 초연 씨가 사는 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것을 확인한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흠… 여기였나? 잠시 길을 걷던 나는 한 커다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한 젊은 남자 하나가 걸어나오며 인사를 하다가 반가워하는 미소를 지었다. 대희였다. 옆에 지현이도 있는 것이… 확실히 약혼한 사이로 보이네. "너 왔냐?" "그래. 부탁한 거." "아아… 가지고 오마." 주위에는 각종 차들과 바이크(오토바이 그냥 이렇게 불러요.)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차량 판매점… 대희가 운영하는 가게다. *까먹고 설명을 안 했군요. 이 시대 차량들은 바퀴가 아니라 공중에 약간 떠서 다니는, 부양 식입니다. 오토바이도 물론. 연료는 물. 꿈같은 얘기죠? 원리 설명을 요구하시면… 설명 못합니다. 그냥 그러려니 해 주세요. 그리고 평소에는 밑에 간이 이동용 체인. 그러니까 탱크와 비슷한 게 달려있어서 좀 느리지만 바퀴로 갈 수도 있다? "부탁? 너 뭐 사는 거야?" 지현이가 다가오며 질문을 던졌다. 하긴… 내가 이런 곳에 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겠다… "응. 어차피 돈은 있고… 그리고 오늘 취직도 했으니…."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지현. 내가 취직한 것이 그렇게 놀랍나? "어디에?" "주 리자드."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지현. 그때 대희가 바이크(자전거 아님) 하나를 끌고 왔다. 상당히 멋진, 최신형… "여기 있다. 신고도 모두 끝냈고. 수수료도 주냐?" "히엑! 이거… 최신형 아냐? 완전 보안 장치에… 이거 4000만원인가 하지 않아? 혀, 현진아. 이거 정말로 네가 사는 거야? 너, 자격증이 있기는 해도…." 경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지현.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면 학교에서 면허증, 자격증을 따게도 해준다. 한때는 바이크 하나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좋아했었는데… 옛날에 진성이 바이크를 타고 다니기도 했었고… 고민하다가 결국 사기로 했다. 후… 그래도 대희가 도와줘서 좀 싸게 샀지… 나는 카드를 대희에게 건네주었다. 옆에 있는 카운터로 다가가 계산을 하는 대희. "딱 10만원만." "고맙다. 화끈해 졌네? 하긴 내가 좀 깎아 줬으니… 후후… 술값으로…." 계산을 끝내고 카드와 영수증을 가지고 온 대희가 카드를 넘기고는 바이크의 사용 불가 장치를 제거했다. 그리고는 보안장치를 초기화하는 대희. "내 정보 입력해." 나는 보안 장치에 증명 카드를 한번 긁고는 음성을 저장시켰다. 그리고 시동은 지문으로… 좋은데? "이거 모델명이… TX-680이다. 그냥 이 간이 체인으로도 달릴 수는 있어. 느리기는 하지만… 하지만 부양장치를 쓰는 게 좋지. 이건 위급 상황용이니까. 보안 장치는 완벽하고… 체온까지 재고 기계음도 구별해서 음성, 지문 위조도 불가능하다. 그냥 내려서 손을 떼기만 해도 몇 초 후면 알아서 보안을 시작해. 최고 시속 400에 자동 운전도 있고… 100% 안전 보장이다. 충돌시 방어 장치도 있고. 이 친구의 이름으로 맹세하마. 최고의 물건이다. 후후. 거기다 상당히 커서 초연 씨도 태울 수 있고. 크기를 늘릴 수도 있어서 아이가 생겨도 데리고 다닐 수 있지. 설명서 여깄다. 보증서도 있고… 등록카드." 장황한 설명이 끝나고 대희가 건네준 카드들을 받아든 나는 그 카드들을 지갑 속에 넣고는 바이크를 끌고 가게를 나가기 시작했다. "어디 갈데 있냐? 없으면 우리하고 술이나 한잔하지?" "아, 그래." 대희와 지현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갈 곳이 있어." "그래? 어디? 초연 씨 만나러 가냐?" "아니. 부모님." 대희는 눈을 좀 크게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현이도 더 이상 별말 하지 않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장사 잘해라. 첫 월급 받으면 술이라도 사 줄게. 장담은 못하지만." 기대하겠다는 대희의 말을 뒤로하며 나는 가게를 나섰다. 바이크에 올라탄 나는 작은 버튼 하나를 눌렀다. 공중으로 약간 떠오르는 바이크. "오랜만이네?" 나는 빠른 속력으로 달리기(맞나? 떠 있으면 뭐라고 표현을 해야하는 거지?) 시작했다. 죽이는데? 평생을 타야지… 요즘은 이런 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이 꽤 많다. 차하고 안전성도 비슷하고… 어차피 모든 차량에는 안전 센서가 붙어있어서 충돌할 위기가 오면 자기가 알아서 충돌을 면하게 하거나 방어 장치를 사용한다. 거기다 이 TX-680은 안전성 100%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놈이니… 거기다 대희가 손도 좀 봤고… 시원하다… 30분 정도를 달린 나는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7년 전에 내가 있던 곳… 초연 씨와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지… 나는 주차장에 바이크를 세워 놓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 건물의 지상은 장례식장 같은 곳이고… 지하는 묘지? 매장을 법으로 금지한 이후 사람들은 화장을 했고 이런 건물에 납골당 같은 곳을 만든다. 지하로 내려가니 사람들이 몇 명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건물에 모셔져 있는 고인들만 해도 만 명이 넘으니… 이렇게 사람이 있는 것도 그리 놀랍지는 않지. 지하 7층까지 내려온 나는 많은 방문들을 가지고 있는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복도의 중간쯤 걸어간 나는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갔다. 약간 어두운 방안. 향냄새가 맡아졌다. "후… 오랜만이네?" 작년 가을에 한번 오고는 오지 않았지? 어차피 옛날처럼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니니… 어쨌든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도 이곳을 적게 찾는 편이다. 와서 좋을 것 없으니까. 나는 방의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강화유리 뒤로 웃고있는 부부의 사진이 있고 작은 함 두 개나 놓여 있었다. 다행히 두분 모두 시신을 찾았었지… "기뻐하십쇼. 드디어 취직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할까? "흠…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는데… 7년 전에 보셨을 걸요? 장례식에 왔었거든요. 거기다 강 사범님 조카랍니다. 흠… 어머니보다 더 예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꿈에 나와서 따지지는 않겠지?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후… "첫 월급 받으면 백합이나 가져다 놓을게요. 그런데 생전에 왜 백합을 좋아해서 아들을 곤란하게 만드시는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잠시 부모님의 사진을 보고 서 있었다. "집은 지키고 있습니다. 말씀 드리지 않았지만 복권에 당첨됐거든요. 아, 알고 계실지도. 저야 죽어보지를 않아서 저 세상에서 정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서요."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 잠시 사진을 응시하던 나는 한번 고개를 숙이고는 뒤에 놓여있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내 버릇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오면 거의 몇 시간 동안 혼잣말을 중얼거린다는 것. 전에 함께 왔던 친구 녀석들에게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을 받은 적도 있었지. "으음… 음료수라도 하나 들고 올 것을…." 나는 팔짱을 끼고는 부모님이 웃고 계시는 사진을 응시했다. "김현진님?" "예, 맞습니다." (주) 리자드의 직원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저번보다 더 커 보이는 캡슐… 무겁겠다… 낑낑거리며 상자를 옮긴 직원들은 저번 캡슐이 있던 장소에 새로운 캡슐을 설치했다. 원래 있던 캡슐은 회사로 반납하고… 그 대신 헌터용으로 개발된 새로운 캡슐이 설치되고 있었다. 조금 더 커지고… 뭔가 복잡한 것들이 더 있는 것 같은데… "설치 끝났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음… 이 헌터용으로 개발된 캡슐은 게임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48시간, 그러니까 게임에서 6일로 연장되어 있습니다. 캡슐 수면의 효과가 더 높아졌거든요. 정말로 잠을 나는 것보다 훨씬 피로가 풀리죠. 물론 중간 중간에 로그아웃을 해서 식사는 하시고… 하지만 중간에 4시간 이상을 로그아웃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리고 집에 손님이 왔을 때 게임 안으로 신호가 가도록 되어있습니다. 집안의 A.I와 연결해서 게임에서 집안의 물건들을 작동시킬 수도 있고… 자세한 설명은 저 책자에 있습니다. 그럼." 직원들은 땀을 흘리며 전 캡슐을 들고 돌아갔고 나는 새로 들어선 캡슐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흠… 헌터용 캡슐이라… "슈트도 조금 바뀐 것 같은데…." 나는 설명서를 집어들었다. "흠… 감도. 상처 시 고통을 조금 낮춰주며… 몸의 움직임의 감도는 더욱 높여준다. 이득은 없다고 하더니 이런 건 괜찮은데?" 그리고… 에… 슈트의 성능에는… 흠… 몸의 피로를 풀어주도록 약한 전자 충격으로 몸을 지압하기도 하고… 이야… 좋은 것 많은데? "흠… 헌터를 하기를 잘 했나?"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 슈트는 꼭 입고해야겠네? 저번에는 그냥 옷을 입고 할 때가 많았는데… 별 상관은 없어서… 슈트를 입던 그냥 옷을 입던 별 상관은 없다. 슈트를 입으면 그냥 감도가 좀더 좋아지는 것을 뿐이었는데… 이거는 될 수 있는한 입고 있어야지… "그럼 접속할까?" 나는 슈트를 입기 시작했다. 음… 그래도 웬만하면 이런 타이트는 하지 말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라? 통나무집?" 섀도우 월드에 접속한 나는 내가 있는 곳이 다크 엘프들의 마을이 아니라 페페의 통나무집이라는 사실에 당황했다. 흠… 이렇게 바꿔두었었나? 아, 맞다, 린은… "여기있네?" 나는 내 어깨 위에 잠들어 있는 린을 발견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거의 애완용 고양이라는 느낌이… 가끔씩 밤에 날 덮치려고 하는 게 문제지… 똑똑한 게 좋은 건지 모르겠단 말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에 앉아서 서류들을 정리하는 페페. 내가 들어서자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 세한. 왔어요?" "예. 그런데… 그 서류는 뭐죠? 설마 제가해야 될 일은…." 내가 서류들을 보며 긴장한 모습을 보이자 페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 아니야? "헌터의 자료 같은 건데… 일은 아니에요. 지금까지 있던 일들은 보통 플레이어들이 의뢰를 받고 일하고 있고… 다음 일부터 세한이 맡겠죠. 아, 그리고 제가 완전히 범죄 처리 팀으로 옮겨졌는데… 퇴치가 아니고 처리가 어감이 좋다면서… 제가 운영자들하고 헌터들 연결을 맡기로 했죠. 팀 사무실은 운영 팀과 같은 층에 둔다고 하니까… 지금은 아니라도 헌터들이 더 생기면 일주일에 며칠은 출근을 해야할 거예요." "아… 그래요?" "그런데 헌터 규약은 다 읽어봤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 내용은 없던데… 간단하게 평범한 플레이어로 살다가 일이 터지면 해결하면 된다는 말을… 몇 장으로 늘려놓은 건지… 내가 길고 길었던 헌터 규약의 내용들을 떠올리는 사이, 페페가 작은 구슬 하나를 들고 왔다. "이거 가져가세요." 이게 뭐지? 내가 구슬을 받아들고 의아한 얼굴을 하자 페페가 입을 열었다. "이동용 구슬이에요. 그냥 꺼내서 이동이라고 하면 이 통나무집으로 오게 될 거예요. 그리고 이 통나무집에서 원래 있던 곳으로 갈 수도 있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12시에 마을에서 송별식이… "아, 가봐야겠네… 할 일이 있어요. 흠… 일이 생기면 연락 주세요. 아, 그리고 헌터에 지원해서 1차 심사를 통과한 사람들의 정보를 제게도 보내주실래요? "예? 알았어요. 지금은 미토스님하고… 미토스님의 동료인 할딘이라는 분이 신청을 하셨어요. 거의 확정되었는데…." "아, 그 둘은 됐어요. 다른 사람들로." "그럼 아직은 없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럼 돌아갈까? "흠… 그럼 가볼게요. 이번에도 이동이라고 하면…." "예. 그럼 잘 가요." "예. 음… 이동?" 순간 구슬에서 밝은 빛이 나더니 주위가 어두워졌다. 히엑? 뭐지? 그리고 얼마 뒤. 나는 다크 엘프의 마을, 중앙 광장에 서 있었다. "뭐, 뭐야?" "어라? 세한님?" 음? 고개를 돌려보니 디렐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아… 잠깐 어디 좀 들렸다 오느냐고… 그런데…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당연히 세한님 송별식 준비입니다만?" 어라? 주위를 둘러보니 다크 엘프들이 몰려나와 있었다. 흠… 정말… 그러고 보니 옆에는 장로들과 테티오도 나와 있었다. 겨우 3주정도 밖에 머무르지 않았는데… 역시 다크 엘프들과 친해지려면 몬스터 퇴치에 휘파람인가? -놀랍군. 마나가 모이는 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테티오가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흠… 텔레포트는 아니라는 말이지? 주위의 시선에 린이 몸을 꿈틀거리더니 고개를 들었다. "냐… 주인님?" "아, 신경 쓰지 마." 신기하게 고양이일 때도 말을 한단 말야… 주위를 둘러보던 린은 곧 내 품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흠… 내가 멀뚱히 서 있자 장로장이 나를 앞으로 내세웠다. "흠… 간단하게 몇 마디 하겠네. 우리 일족의 은인인 세한님이 마을을 떠나심을 안타까워하며 송별식을 열었으니… 준비한 음식들이나 들게나." 다크 엘프들이 과일주와 여러 과일들을 들고 자신을 바라보자 장로장 드리크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끝냈다. 나는 피식 웃고는 리야가 건네주는 과일 주를 받아들었다. 음… 향기가 정말 좋단 말야… "언제 또 오실 겁니까?" 디렐이 내게 다가오며 물어왔다. 흠… 어째 3주 동안 같이 몬스터를 잡고 다녔는데도 이리 딱딱하냐?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는. 우선은 다른 엘프들의 마을도 가볼 생각인데… 혹시 또 어디에 있는 지 알려줄 수는…." 내 질문에 디렐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는 건가? 엘프들 마을 순회나 할까 했더니… "저도 모릅니다. 다크 엘프들의 마을은 악마의 숲과 저희의 마을을 제외하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떨어진 곳에 있을 지는 모르지만… 서로 교류가 있던 마을은 저희뿐입니다. 섀도우 엘프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엘프들의 마을은 장로님이…." 디렐이 드리크를 돌아보자 장로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엘프의 마을은 환희의 숲. 그곳에 있는 곳 하나 뿐이지. 악마의 숲과 저희, 그곳의 엘프들만이 서로 교류를 하고 있으니… 다른 곳에도 있을 지 모르지만… 악마의 숲에서 받은 반지가 있으니 엘프들도 대우를 해줄 거네. 어쨌든 우리는 한 종족이니…." "그렇습니까?" 환희의 숲이라… 전에 들은 적이… 그 근처에 엘프들이 가끔씩 모습을 들어낸다고 알고 있는데? 대륙에 떠도는 엘프들, 그러니까 노예로 팔리는 엘프들은 거기서 사로잡힌 거라고… 어라? 그러고 보니 그것도 불법 아냐? 유사인종을 노예로 취급하는 것도… 설마 암거래 길드하고 싸워야 되는 건 아니겠지? 가, 갑자기 헌터라는 직업이 그리 좋지만은 안다는 생각이… "이별 선물은 없나?" -그 반인족을 얻은 걸로 만족하게. 인간들이 제일 좋아하는 거라고 들었는데?- "글쎄…." "냐… 주인님은 린 싫어한다." "아니라니까." -그런데 설마 그 알이 반인족들의 알인지는 몰랐네- "나도 놀랐는데…." -흠… 나는 이 반인족이 싫다네. 감히 이 고귀한 몸을 마음대로 만지다니… "크윽… 말하지마! 얼마나 끔찍한지 아나?" -흠… 테티오가 앞으로 다가오는 나무를 훌쩍 뛰어넘었다. 음… 정말 편리한 교통수단이야. 그건 그렇고 정말 시끄럽구만… 마나르트는 가끔씩 나에게 힘을 돌리고는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정말… 그때의 고통이란… 거기에 린도 좀 시끄럽고… "바인드(Bind)!" 마기에 묶여 걸음을 멈추는 트롤들. 정말… 이일 때문에 마나르트를 들고 있지 않을 수도 없고… 다시 엄청난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호… 꽤 늘었군. "다물게나!"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거지? 아, 그 검이 에고소드인가?- "주인님. 이 깜장 검. 린한테는 말 안 해요." "으아아! 시끄러!" 이러다 미치는 거 아냐? 얼마 뒤 테티오는 숲의 외곽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떨어질 것 같다며 내 목에 찰싹 붙어있던 린이 다시 어깨 위에 편하게 앉았다. 마나르트는 집어넣어야지… 나는 마나르트를 검집에 집어넣고는 테티오를 바라보았다. -잘 가게. 지라드의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웠네. 그럼- 테티오는 그대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흠… 역시 고등한 고대 종족이라 그건가? 몬스터이긴 해도 인간에게 우정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것 같은데… 나는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려 초원을 걷기 시작했다. 그럼 마법진으로 가서… "허억!?" 그, 그러고 보니! 일회용 스크롤! 까먹고 안 사왔다! "어, 어쩌지?" 나는 내 앞에 펼쳐진 드넓은 초원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디야? <나드 초원> 나드 초원이라… 여기를 걸어서 통과하면… 여기가 대륙이 북단이니까 남쪽으로 가야되겠지? 남쪽은… 이대로 걸으면 되는군. "후… 미치겠네? 언제 대륙 전체 지도를 하나 구입해야지…." "냐… 주인님. 린은 안돼? 사람으로 다니면? 연인이다 주인님." 뭔가 이해하기가 힘든 말이지만… 그러니까 사람으로 변해서 나하고 연인처럼 다니면 안되냐는 말? "나는 지금이 더 귀여워, 린." "냐…." 내가 쓰다듬어 주자 기분이 좋은 듯 몸을 비비는 린. 흠… 귀엽기는 한데… 아, 맞다! 린은 괴수였나? 그런 모습으로도… "린. 너… 괴수? 어쨌든 큰 모습으로 변할 수 있지? 그렇게 변해라. 타고 가게." "괴수? 큰 모습? 싫다. 주인님. 린 싫어한다. 그냥 이대로 다녀야 주인님이 린 좋아한다." …… 정말…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것도 힘들단 말야… 그러니까… 크게 변하면 좀 이상하게 생겨서 내가 싫어한다는 말인가? 흠… "괜찮아. 크게 변해, 린." "싫어요!" 결사적으로 반대하며 품속으로 들어가는 린. 이런… 안되겠네… 걸어가야 되나? 자기가 싫다는데 억지로 변하게 할 수도 없고… "좋아!" 나는 퀵 스텝을 사용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마나야 거의 무한이나 마찬가지니… 아이템이 좋으니까… 그런데 여기에는 몬스터가 없나? 쉬이이이익! 나를 향해 날아오는 여러 개의 창. 저건… 켄타우르스… 반인반마의… 오오! 맨티스(Mantis)도 있네? *맨티스(Mantis) : 숲이나 초원에 살고있는 거대한 사마귀입니다. 살아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태연히 습격합니다. 전투에서는 커다란 낫 형태의 양손으로 동시에 공격해옵니다. *켄타우르스 : 초원에 사는 반인반마의 종족입니다. 원래는 지능이 인간과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유사 인종이지만 제 글에서는 몬스터의 하나로 등장시킵니다. 몬스터의 능력은 랜덤으로 활이나 창을 사용하며 가끔씩 초원 외의 지역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상당한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길…." 이 초원을 뚫고 지나가려면… 쉽지는 않겠군… 저 숲하고 거의 비슷한 수준이잖아? 돌겠군… 나는 샤프소드를 뽑아들며 주위에 바리어를 생성시켰다. 흠… 샤프소드 마저 검게 변했어… 다크 엘프들에게 수리를 맡겼더니… 점점 무기들이 까매진단 말야… "좀 아깝긴 해도 다음부터는 일회용 텔레포트 스크롤을 꼭 사야지… 후…." 나는 내게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맨티스들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음… 저 앞발은 끔찍한데… 키에엑! "냐아아… 주인님, 린 무서워요!" 으음… 린의 겁에 질린 외침. 거기에 마나르트는 자기 스스로 몸을 울리며 자기로 싸우라고 시위를… "젠장! 너무 산만하잖아!" 나는 짜증 섞인 고함을 지르며 샤프소드를 휘둘렀다. "오옷! 빠른데!?"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켄타우르스. 그 등에 타고 있던 나는 씨익 웃으며 단검들을 주위로 던지기 시작했다. 후후… 역시 말은 말이야. 라이딩을 올리기를 잘했지… 키에엑! 역시… 속도 하나는 죽이네… 나는 재빨리 단검을 던지며 몸을 숙였다. 내 머리 위를 스쳐지나가는 맨티스의 앞발… 무서워라… 다가닥, 다가닥. 빠른 속도로 초원을 질주하는 켄타우르스. 좋아. 이대로 계속 달리면… -이봐. 정말로 살려주나?- 내가 타고 있는 켄타우르스가 의심이 든다는 듯 질문을 던져왔다. 어느 정도 말도 할 줄 안단 말야… 흠… 아까 처음 만났던 켄타우르스들과 싸우다가 우연찮게 등에 앉았는데… 그 전에는 왜 켄타우르스가 말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물론이지." 그런데 이곳에는 켄타우르스 하고 맨티스들만 사는 건가? 오른손으로는 켄타우르스의 목에 단검을 겨누고 있던 나는 이상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앞쪽.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 많은 맨티스들이 몰려 있었다.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맨티스들이 갑자기 쓰러진다는 것. "느낌이… 좋지 않아…." 나는 켄타우르스를 멈춰 세우고는 땅으로 뛰어내렸다.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켄타우르스. "가봐. 웬만하면 남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해두지." 켄타우르스는 곧 달려가기 시작했고 샤프소드를 뽑아든 나는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앞에서… 뭔가 좋지 않는 놈이 오고 있다. 그때 마나르트가 심하게 울렸다. 그리고 저절로 뜯어져 나가는 천. 흠… 뭔가 중요한 일인가? 마나르트를 뽑아들자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제길… -세한! 위험해. 이상한 놈이 오고있어! 강해! "나도 알고 있으니 다물게나." 좀 가라앉는 통증을 느끼며 나는 마나르트를 다시 집어넣었다. 후… 앞으로 걸어가니 그 이상한 풍경이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꽤 많은 수의 맨티스들이 몰려있었고… 이상한 날이 맨티스들을 베어 내리고 있었다. 뭐지? 긴장되는데… 나는 식스센스를 최대한 사용하며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키에엑!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맨티스 두 마리가 쓰러지면 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회색머리? 특이하군. 평범한 가죽갑옷… 하지만 왠지 모를 기운이… 마법이 걸린 건가? 그것 보단… 나는 그 남자가 어깨에 걸치고 있는 거대한 낫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뭔가 위험한 기분이 드는… 마치 사신의 무기와 같은데? 그 남자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앞으로 걸어나왔다. 서로를 향해 걷던 나와 그 회색머리의 남자는 나무 하나 없는 탁 트인 곳에서 멈춰 섰다. 으음… 저 낫… 양날? 위와 아래 모두가 날이 서 있어… 그리고… 저 남자. 얼굴이 왠지 기분 나쁜데? 뭔가… 광기 같은 것이 느껴져… 그때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다크소드?" 음산한 목소리… 나는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지? 실력은… 미토스와 비슷한데… 최상위 랭커인가? 내 대답에 긴장하고 있는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낫을 휘둘렀다. 그 거대한 낫의 끝이 땅을 파고 들었다. "잘됐군. 한번 만나보고 싶었지. PK, 배틀을 신청한다. 나는 랭킹 3위 천악(天惡). 하늘의 악마, 공간의 악마라 불리는 사신이다." "천악? 처음 듣는데… 솔직히 랭킹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말야. 그런데 내가 PK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내 말에 나를 잠시 노려보던 천악이란 놈이 미소를 지었다. 으음… 처음듣기는 하는데… 위험한 놈 같은데? 확실히 미토스에게 랭킹 3위인 놈이 랭킹 1위를 꺾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 실질적 랭킹 1위라고 하던데… "받아들이던 말던 상관없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불법으로 공격하지. 어차피 불법 PK를 한 적도 있으니… 거기다 웬만하면 명예롭게 죽는 것이 좋지 않나?" 터프한 친구군. 나는 머리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저놈이 날 얕본 거 맡지? 좋아. 받아주지. 나는 샤프소드를 집어넣고는 마나르트를 뽑아들었다. 어차피 저놈이 불법으로 싸움을 걸면 내가 해결해야 되는 거 아냐? 괜히 범죄자 만들 필요없지. "받아주지. 그런데 무기가 독특해." "피차 일반 아닌가?" 나는 얼굴을 굳히며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으음… 역시 30분이 한계. 그 안에 끝내야… 그때 천악이라는 놈이 낫을 휘둘렀다. 크기 덕분에 엄청난 속도로 내게 쇄도하는 거대한 양날. 스아아앙. 나는 바리어로 그 공격을 봉쇄하며 앞으로 뛰어들었다. "재밌군." 미소를 지으며 몸을 회전시키며 낫을 위로 휘두르는 천악. 엄청난 속도… 그런데 저놈은 직업이 뭐야? 투사인가? 검을 쓰지 않으니 투사겠지… 나는 마나르트로 공격을 막고는 뒤로 물러났다. "대거 댄싱." 놀란 눈으로 단검들을 바라보는 천악. 그리고 순식간에 낫이 휘둘러지며 단검들을 조각냈다. "역시 마검은 다르군. 이 공간의 낫을 막아내고. 그런데 미토스와 같은 케이슨가 보지? 특이한 기술에 단검까지 쓰는군. 재밌어. 미토스는 내게 최고의 즐거움을 준 상대였다. 재퍼슨, 그 얼간이 보다 훨씬 강했지. 네놈도 즐거움을 줘봐라." 왠지 사이코 같은데? 그런데 미토스를 꺾었다고? 이런… 이러다 또 한번 죽을지도… "잡담이 길지 않아?" 나는 그대로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엄청난 속도로 낫을 휘둘러 내 공격을 막아내는 천악. 빌어먹을. 저렇게 큰 무기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냐? 그것도 이렇게 빠르게? "승룡!" 낫의 아래를 지나 놈에게 다가간 나는 그대로 왼손을 올려쳤다. 하지만 쉽게 피하는 천악. 제길… 역시 레벨의 차이가 너무 심해. 속도도 상당… 퍼억! 낫의 자루에 얻어맞은 나는 공중에 잠깐 떴다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제길… 그리고 순식간에 내게 날아오는 거대한 낫이라니… 정말 악마 아냐? 나는 급히 몸을 틀며 뒤로 물러났다. 내 왼팔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리고 순식간에 위에서 내리 베어오는 거대한 날이라… "큭…." 나는 피가 뿜어져 나오는 어깨를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제길… 오늘 욕 많이 나오네… 완전 괴물이군. "덤벼라." 도발하는 듯한 천악의 말투. 나는 높이 뛰어오르며 위에서 단검들을 집어던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간단하게 막아내는 천악. 미치겠군… "스트라이크…." 나는 놈의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뒤로 몸을 날리며 낫을 휘두르는 천악. 제길… 그때 낫의 날이 사라졌다. "뭐…." 순간 내 가슴 앞에 생겨나는 검은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낫이 튀어나왔다. 이, 이런… 푸확! "대단하군." 간신히 약한 바리어를 생성해 치명상은 피한 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천악을 바라보았다. 제길… 방금 그건 뭐였지? "공간의 낫. 이 무기의 기능이지." 힘겹게 몸을 일으킨 나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리, 린. 품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다행히 린은 싸움이 시작되자 품속의 아공간에 들어가 있었는지 아이템 목록에 린의 이름이 떠오르고 있었다. 휴… 다행이다. 십년감수했네… 붕대로 대충 상처를 감은 나는 무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천악이라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하늘의 악마, 공간의 악마… 공간의 낫이라… 기이이… 작은 소리와 함께 내 위에서 내리찍어오는 낫. 빌어먹을! 나는 급히 앞으로 몸을 날리며 마나르트를 휘둘렀다. 날아가는 검은 마기. 놈은 날이 사라진, 막대기에 불과한 낫을 휘둘러 마기를 퉁겨내었다. 빌어먹을. 그 자루도 상당한 건가 본데… -세한. 최대한 힘을 끌어올려. 빌어먹을! 이 망할 검은 이런 순간에 힘을 돌리면… 나는 신음을 흘리며 마기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주위에 생겨나는 검은 안개. 천악이라는 놈이 놀란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순간 은신술과 퀵 스텝을 사용해 놈의 뒤로 돌아들어 가는 나. "죽어." 내가 검을 휘두르자 급히 앞으로 몸을 날리는 천악. 지지지직! 나는 내 손을 타고 올라오는 전류에 신음을 흘렸다. 제길… 저놈 등을 조금 베는데 끝났잖아… 라이트닝 마법이 걸린 갑옷… 기이이이… 순간 내 뒤에서 느껴지는 그 망할 놈의 낫. 나는 등이 베이는 것을 느끼며 급히 몸을 날렸다. 그리고 내 눈앞으로 다가오는 낫의 자루… 스아아앙. 나는 눈앞에 바리어를 생성시키며 그 공격을 막고는 몸을 굽히며 베어 들어갔다. 하지만 위로 뛰어오르며 나를 걷어차는 천악. 강도가 상당한 강철제 부츠네? 하지만 그런 공격은 내가 더 유리하지…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발차기를 흘려보낸 나는 옆으로 움직이며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곧바로 뛰어올라 놈의 어깨에 검을 박아넣었다. "여기선 내가 유리해." 검에 찔린 천악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뭐, 뭐지? 그때 내 뒤에서 공간을 뚫고 날아오는 낫. 그 낫은 내 어깨와 천악의 어깨를 함께 뚫고 지나갔다. 이, 이런… 자기는 다쳐도 상관없다는 거냐? "이, 이런 미친… 컥." 그대로 팔꿈치로 내 얼굴을 찍어버리는 천악. 젠장. 나는 OPG의 손톱을 꺼내 놈의 등판을 찍어버렸다. 그제서야 낫을 없애고는 내게서 떨어지는 천악. 그리고 동시에 낫을 뒤로 휘두르며 내 어깨를 깊게 베었다. 빌어먹을… "네놈… 제정신이냐?" "물론. 이 정도 피해야 당연한 거지. 역시 네놈도 상당하군. 안전하게 싸워도 이길 자신은 있지만… 좀 스릴이 있는 것이 좋지 않나? 그럼… 잘 가라." 뭐야? 그때 내 망토 자락에서 뭔가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 이건… 마법 폭탄… 천악은 끝났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낫을 들어 나를 겨누고 있었다. 자폭을 막는다는… "나는 네놈과는 달리 여러 직업을 섞지는 않았어도… 이런 도구는 잘 이용하지." 순간 엄청난 빛과 함께 폭탄이 폭발했다. 빌어먹을! 콰아아아앙! 엄청난 크기의 폭발을 보며 천악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즐거웠다." 몸을 돌려 걸어가는 천악… "너만 즐거우면 다냐?" 천악이 급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작렬하는 스트레이트 펀칫! 마나르트가 내 몸을 감싸고 있느라고 손톱이 없는 것이 원통하다. 천악은 그대로 나가떨어져서는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죽지… 않은 건가?" 저, 저런 망할!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제길… 이 그을린 모습이라니… 다행히 마법 저항력도 높고 마나르트가 갑옷 역할도 해줘서 간신히 살았다만… 그래도… 거의 죽기 직전이군… "아직… 어둠도 끝나지 않았어…." 천악은 갑자기 사라진 내 모습에 흠칫 하고는 급히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크… 끔찍하군… 몸 상태가… 이제 버티기가 힘든데… 그래도 저놈이 날 가지고 노느라 피해를 입은 것이 다행이지… 순간 천악의 옆으로 다가간 나는 그대로 검을 찔러 넣었다. 기이이… 위에서 공간이 열리며 낫이 베어 들어온다. 흥! 이제 익숙해졌다고! 나는 검을 찌르는 동시에 천악을 향해 몸을 밀어붙였다. 급히 옆으로 몸을 돌려 공격을 피하는 천악. 하지만 왼팔에 상당한 상처를 입고는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나에게도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크… 이 망할 전기라니… "내가 몇 번이고 당할 것 같냐?"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는 나. 천악은 이를 갈며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크으… 이제 얼마 못 버텨… 내 상태를 아는지 이런 중요한 순간에 마나르트도 조용히 있었다. "어둠이 문제라 이거지…." 낮게 중얼거리던 천악이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뭐, 뭐야!?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바닥으로 집어던지는 천악. 저건… 빌어먹을! 섬광탄!? 순식간에 밝아지는 주위. 어둠의 안개도 얼마간은 무용지물이다… 그렇다면… 순간 내 뒤에서 서늘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또냐? 기이이… 나는 마나르트를 두 개로 나눠 낫을 막고는 그대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빠르게 달려드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 천악. 시간이 없어… 천악은 뒤로 물러나며 원 상태로 돌아온 낫을 내게 겨눴다. 그대로 서 있어! 스아아앙! 천악의 뒤로 생성되는 바리어. 천악은 뭔가가 자신을 막자 흠칫 하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걸렸다! 내 바리어에 막혀 뒤로 물러나지 못하는 천악. 승부… 철컥. "더블 크로스!" 검과 OPG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나. 마나르트와 OPG에서 검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순간 천악의 눈이 진지해 지며 낫을 들어올렸다. "취명(取命)." 엄청난 기세로 낫을 휘두르는 천악… 순간 나는 엄청난 충격에 뒤로 날아갔다. "쿨럭…." 피를 토하며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바로 선 나는 천악을 바라보았다. 우… 역시 피를 토하고는 한숨을 내쉬며 나를 노려보는 천악… 뒤로 상당히 밀려나 바닥에 길게 끌린 발자국이… "빌어먹을…." 나는 마나르트를 떨어뜨렸다. 더 이상 들고 있으면 죽는다… 내가 검을 놓아버리자 천악의 눈이 꿈틀거렸다. "뭐 하는 짓이지?" "더 이상은 못써… 힘을 그냥 주는 게 아니거든…." 내 말에 인상을 피고는 피식 웃는 천악. 뭐야? "역시 피차 일반이군. 그 공간 가르기도 끝이다. 6번이 끝이지. 훗. 나도 꽤 당하긴 했지만 내 승리 같군." "어차피 네놈이 봐줘서 이 지경인 것 아닌가?" "글세…." 나는 샤프소드를 뽑아들었다. 곱게는 안 죽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낫을 휘두르는 천악. 나는 급히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제길… 속력이 느려졌어… 끼기깅. 샤프소드를 반쯤 자르고 들어온 공간의 낫… 마나르트가 아니면 막기도 힘든 건가? 그때 천악이 자루를 놓으며 내게 집어던졌다. 빙글 회전하며 나를 후려치는 낫. 나는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쳇…." 등에 매고 있던… 스태프는 아닌데… 봉? 쇠로 만들어진 듯한 긴 막대기를 두 손으로 움켜쥔 천악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길… 이 낫은 왜 안 떨어져? 낫을 떼기도 전에 내게 달려드는 천악. 빌어먹을…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나를 후려치는 금속 봉. 나는 샤프소드를 놓치며 뒤로 날아갔다. 낫과 분리되며 바닥을 구르는 샤프소드… 살짝 떴다가 땅에 발을 디딘 나는 바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제길… 끝났다… 다시 낫을 집어든 천악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끝인가? 어쨌든 대단하군. 후…." 등과 어깨, 팔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천악의 모습도 보는 사람의 동정을 끌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저 낫을 들고 있으니 오히려 진짜 악마처럼 보이는데… 제길… "크…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인다…." "기대하지." 그대로 낫을 집어던지는 천악. 제길… 오늘 두 번째로 죽는구나… 빙글빙글 회전하며 낫이 내게 날아오고 있었다. 후… 크아아아! 음? 갑자기 내 앞에 검은 빛 무리가 생기며 낫이 퉁겨져 나갔다. 뭐, 뭐냐? 그리고 이 울음소리는… 약간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나는 내가 어떤 푹신한 것의 위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뭐지? "제길! 네놈은 뭔데 이런 놈을 애완용으로 들고 다니는 거냐!" 천악이 나를 향해 악을 쓰고 있었다. 음… 긴 검은 털들… 스핑크스보다 약간 작은 이 크기에… 대충 머리를 보니… 흠? 호랑이하고 표범을 섞어 놓은 듯? 그리고 약간 길어 입 밖으로 솟아 나온 날카로워 보이는 송곳니… 그리고 긴 검은 꼬리라… 흠… 샤벨 타이거였나? 그놈하고 약간 비슷한데? 하지만 이게 더 멋진데… "후… 그냥 돌아가지. 품속에서 이런 괴물이 튀어나오다니… 역시 평범하지는 않는 놈이군. 다음에 만났을 때는… 죽여주지…." 발로 낫을 위로 차, 손에 집는 천악. 품속에서? 그럼… "린…?" =흑. 나 이상하죠 주인님. 머릿속에 울려오는 목소리. 린의 목소리? 약간 낮아지기는 했는데… 그럼 이게 린의 괴수일 때의 모습? 이게 끔찍하냐? 멋지구만. "미치겠네… 어이, 천악. 언제 찾아가지. 그때는 상황이 좀 바뀔 거다." "기대하지. 후… 테이머나 라이딩 스킬도 올린 건가? 후… 그래도 그런 엄청난 놈을 기른다는 말은… 마기가 철철 넘치는군. 제길. 내 몸 상태만 이렇지 않았어도 네놈도 죽었다. 고양이." 크아아악! 포효를 내지르며 천악을 노려보는 린… 음… 이름을 바꿀까? 이런 모습에 린이라고 부르려니… 뭔가 좀 터프한 이름으로… 그때 린의 몸에서 엄청난 마기가 발산되기 시작했다. 마, 마기? 허허… 그러자 린을 노려보던 천악이 이를 갈고는 몸을 돌렸다. "이번엔 내 승리였다. 어차피 이긴 거니 네놈을 꼭 죽일 필요도 없지. 빨리 강해져서 덤비라는 배려다." 그리고는 뭐라고 작게 투덜거리고는 초원을 걸어가는 천악. 잠시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곧 빛에 휩싸여 사라지는 천악. 리콜 스크롤… 제길… "린…." =예? "이게 끔찍하냐!? 멋지구만! 으으… 앞으로는 변하라고 하면 재깍 변해!" =에? 예… 멋져요? 기뻐하는 린의 조잘거림을 무시하며 나는 땅으로 뛰어내려 샤프소드와 마나르트를 집어들었다. 으음… 상처가 너무 심해… 다시 린의 위로 뛰어오른 나는 편하게 누워서 상처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으음… 처참하게 깨졌군… 제길! 나는 이를 갈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후… 그나마 마나르트가 있어서 간신히 버텼지… 마나르트가 없어도 다른 아이템들도 좋은 것들이구만… 으으… 아무래도 절전 기능이 있는 검을 사던기 샤프소드에 기능을 추가해야지 정말… 아직도 그 전기 충격이… "린." =예. 주인님. "이 방향으로 계속 달려. 사람들이 보이면 돌아서 가고. 마찰이 일어나게 될 것 같으면 내게 말하고… 으음… 출발… 몬스터는 무시해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쪽으로 달려가는 린. 으음… 온몸이 쑤시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대자로 뻗고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다… 으음… 차라리 스핑크스보다 린이 탑승감이… 그때 내 시야가 흔들렸다. <미토스-세한. 나야.> 엥? 미토스? 나는 눈을 깜박거리고는 미토스에게 귓말을 보냈다. <미토스? 무슨 일이죠?> <미토스-아아… 잠깐 만나자고. 헌터 일도 있고… 할딘도 같이 있어.> <그래요? 어딘 데요?> <미토스-너는 어디야?> <대륙 북단의 나드 초원. 어쩌다 보니 날아왔는데… 근처 어디에 마을이 있는 줄 알아요?> 잠시 귓말을 보내지 않는 미토스. 생각하는 중? 아, 그러고 보니 미토스는… <할딘-나는 할딘이라고 하는데… 자네 미쳤나? 미토스에게 길을 물어보게?> ……저도 반성합니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이번에는 할딘이라는 사람에게 귓말을 보내기 시작했다. <저도 실수를 했다고 인정합니다… 길 좀 알려 주실래요?> <할딘-계속 남쪽으로 오다가 보면 돌기둥 하나를 볼 수 있을 거야. 거기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조금 가다보면 절벽이 나오지. 내려가는 길이 5군데야. 오른쪽에서 두 번째. 내려와서 서쪽으로 오다보면 길을 발견할 수 있겠지. 길을 따라 오면 카루나 성이네. 그 성안의 중앙 광장에 있는 카나 주점에 있겠네.> 흠… 절벽에서 두 번째 오른쪽 길. 서쪽. 길. 카루나 성. 카나 주점.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가죠.> <할딘-오늘 안에 오기나 하시지.> 흠… 왠지 차가운 사람 같아… 나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평야. 그리고 돌기둥 하나. "린. 남서쪽. 이쪽으로 달려."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린. 음… 지상에서 한 2m 정도 떨어진 높이… 안락한데? "절벽이 나오면 얘기해." =예. 나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드러누웠다. 으음… 하늘이 참 파랗다… 한 10분 정도 달린 건가? 아직 절벽에 이르지 못한 건가? 나는 기지개를 피며 몸을 일으켰다. 으음… 거꾸로 앉아있으니 풍경이 점점 멀어지는데… 저 켄타우르스들은 뭐야? 쫄아서 쫓아오지도 않잖아? 그에 비해서 맨티스들은 열심히 쫓아오다가 지쳐서 픽픽 쓰러지고 있었다. 나는 웃음을 흘리고는 몸을 돌렸다. "린. 절벽은?" =아직이요. "그래?" 시원하다… 스핑크스보다 더 빠른 것 같아. 아, 그때는 숲이었나? 흠… 모르겠는데… =주인님. 사람. 갑자기 들려온 린의 목소리에 나는 급히 일어나 앞을 바라보았다. 사람? 음? 저건 뭐야? 앞에서 뭔가 빠른 것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음… 최상위… 휘익! 높게 뛰어올라서는 린의 위로 뛰어올라오려는 물체. 여자? =주인님! 어, 어떻해요? "가만있어." 그때 그 여자가 내 앞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오오… 대단한데? 흠… 레인저? 암살자로 보기에는 무장이 좀 많고… 날렵한 몸놀림에 쫙 빠진 몸. 간편한 복장. 허리의 쇼트소드와 카타나… 그리고 등에 달린 작은 석궁. 확실하군. "말 좀 묻자." 헉!? 이시린 저리 가라? 엄청나게 싸늘, 차가운 목소리에 나는 얼굴을 굳혔다. 흠… 엄청난 미인은 아니지만 몸매는 진짜 좋은데… 머리카락도 연녹색인 것이… "물어." 내 말에 눈썹을 찡그리는 여자. 순식간에 좀 짧은 길이의 카타나가 내게 날아들었다. 흠… 성질 급한 아가씨네… 그런데 나를 얕보는 건가? 아까에 비해 그리 빠르지가… 탁. 나는 OPG로 카타나를 막고는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뭐야?" "너… 음? 그러고 보니… 다크소드?" 그제 서야 나를 자세히 관찰하고는 경악하는 레인저 아가씨. 후… 뭐 하는 사람이야 이거… "맞는데… 뭐야?" "야. 나는 최상위 랭커라고. 좀 대우를 해주는 것이 어때?" 이거 웃기는 아가씨네? 불법 탑승을 해 놓고는 어디서 행패야? "마음만 먹었으면 타기도 전에 목숨을 끊어 놨어. 물어볼 거나 물어보고 꺼져."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여자. 린은 이 와중에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말을 잘 듣네? 나를 노려보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혹시 큰 낫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나? 회색머리에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데?" 엥? 회색머리에 낫? 그럼 한 놈밖에 없잖아? "천악? 왜?" 내가 천악을 알고 있다는 듯 얘기하자 순식간에 카타나가 날아들었다. 허억!? 빠, 빠르다… 순간 내 목에 겨눠지는 카타나… 이거… 위험한데… "네놈… 천악과 한패냐?" 한패? 나쁜 놈 같아 보이지는 않던데… 좋지 않은 일을 하고 다니나? 나는 아까 나와 배틀을 펼쳤던 천악을 떠올려 보았다. 약간… 전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나쁜 놈은… 아마 아닌 듯 했는데? "그것보다… 이거 치우지 않으면 다친다." 내가 살기를 피우며 말하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여자는 콧방귀를 뀌었다. "네가? 어떻게?" 이게… 나는 내 몸에 남아있는 마기를 한꺼번에 방출했다. 그 충격에 카타나와 함께 뒤로 좀 밀려나는 여자. 나는 단검을 뽑아 여자의 목에 겨눴다. 상황역전이지? 하지만 빠르게 몸을 비틀며 단검을 쳐내고는 다시 카타나를 날려왔다. 으으… 까딱하면 죽겠다. 나는 얇은 바리어를 만들며 몸을 비틀어 카타나를 퉁겨내었다. 그리고 날아가는 주먹. "흥." 하지만 빠르게 몸을 회전하며 주먹을 흘려보내고는 발차기를 날리는 레인저 아가씨. 제길… 나는 얇은 바리어와 팔꿈치로 공격을 막고는 동시에 돌려차기를 넣었다. 하지만 몸을 퉁기듯 솟구치며 린의 꼬리 쪽으로 날아 내려서는 여자. 후… 대단한데? 속도는 나보다 훨씬 빨라. 공격마다 얇은 바리어로 속도를 조금 늦춰서 맞지는 않았지만… "빠른데?" "너… 무슨 이상한 기술을 쓰는 거지? 공격마다 중간에 뭔가가 걸렸어." 으르릉거리며 나를 노려보는 여자. 무섭구만… 마나르트를 들고 최선을 다해야 이길만한 상대야… 나는 손을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만, 그만. 이쯤에서 관두지. 천악과 한패는 아냐. 아까 그 친구하고 배틀을 했거든." 내 말에 여자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엥? 왜 저러는… "서, 설마… 네놈이 이긴 건가? 천악은 자신과 싸운 상대는 반드시 죽이는…." 아… 그런 거였나? 그럼 미토스도 죽었었겠네? 잠시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약간 짜증이 섞인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여자. "아아… 내가졌어. 이 녀석 덕분에 간신히 죽지만 않았지. 나도 상처를 꽤 입혔거든. 다음에는 죽인다고 하더군. 그런데 그리 나쁜 놈 같지는 않던데… 왜 쫓는 거지?"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여자가 이를 갈며 대답했다. "오빠의 복수. 어디로 갔지?" 흠? 복수라… 천악에게는 상대도 안될 것 같은데… "그러다 네가 죽겠… 아, 알았다고." 나는 내가 날아온 단검을 간신히 낚아채고는 손을 내저었다. 무시무시한 눈으로 바라 노려보는 여자. 으음… 적어도 랭킹 100위안에는 드는… 상당한 실력인데? "리콜로 떴어. 여기에는 없을걸?" "제길!" 욕설을 퍼붓는 여자. 잠시 육두문자를 마구 뱉어내던 여자는 순간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뭐, 뭐냐? 설마 저 여자도 배틀을 거는 건 아니겠지? 지금 싸우면 그대로 골로 간다… "네놈 때문이잖아! 왜 배틀은 해 가지고… 죽고싶어!?" 이, 이게… 나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여자를 마주 노려보았다. 크… 오늘 죽더라도 네년에게는 굽히고 들어가지 않는다. "어차피 네년이 갔어도 깨졌어! 차라리 고맙다고 인사를 하지 그래?" "뭐, 뭐야!? 나도 랭킹 20위안에 드는 몸이라고! 1000위에도 들지 못하는 놈이…." 흥. 그거야 능력치로만 하니까 그렇지. 나는 콧방귀를 뀌며 여자를 마주 노려보았다. "미안하지만 나는 레벨에는 별 구애를 받지 않아서 말야… 방금 까지 나와 손을 섞던 랭커가 누구셨지?" 정말 시선이 마주치는 곳에서 폭발이라도 일어나겠군… 나와 여자는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크… 잠시 그렇게 대치하고 있던 여자가 입술을 깨물더니 다시 편하게 주저앉았다. 뭐야? "에이. 몰라. 야, 마을까지 태워다 줘." "뭐, 뭐야? 이게…." "너 때문에 허탕을 쳤잖아!" "빌어먹을… 내가 몸만 괜찮았어도 널 아주 찢어 죽였다." "지금 해보시지?" 잠시 여자와 마주 노려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드러누웠다. 후… 별달리 적의는 없는 것 같군. 암살자도 아니니 살기를 감추기는 힘들 테니… "야, 이름이 뭐냐?" 내 질문에 꽥꽥거리는 여자. "알아서 뭐 하려고! 너 몇 살이야!?" 크으… 갈수록 짜증나네… 하지만 마주 대고 화를 내는 것보다는… "흥. 게임에서 나이가 무슨 소용이야? 흠… 20살이다." 내 대답에 득의 만만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여자. "난 23살이야! 존댓말 써!" "미쳤구만… 나이 많은 게 자랑인가 아줌마? 불쌍해라… 그래서 얼굴이 그렇구나…." 솔직히 예쁘게 생겼다고 할만한 얼굴이지만… 어쨌든 여자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 이게! 아줌마? 야, 망할 자식아! 내가 뭐 어떻다고!?" "흥. 그럼 나이는 그만두시지… 밥 좀 더 먹었다고 좋은 거 아냐… 오히려 나같이 팔팔한 영계들이 그쪽 같은 노땅들 보다 좋지…." "너 죽고싶어!!?" 나는 킬킬 웃고는 새빨갛게 변해 나를 노려보는 여자를 힐끗 바라보았다. 큭큭. 재밌다… 반응 죽이는 구만… =주인님. 절벽인데? "아, 음… 저기로 내려가." 나는 절벽을 둘러보다가 한 내리막길을 가리켰고 린은 곧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흠… 나는 아직도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어이, 노땅." "이, 이게…." 음… 좀 위험하군… "알았어. 예쁜 아가씨." 이죽거리는 내 말투에 더 화가 치미는 듯 나를 죽일 듯이 쏘아보는 레인저 아가씨. "어라? 자기가 예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음… 미안해. 실수했네. 호박이라고 불러줄까?" 나는 급히 몸을 틀며 날아오는 단검을 쳐내었다. 후… "어이. 이러다 내 애완동물이 다치면 어쩌려고? 절벽에서 한번 굴러보려고 그래?" 거친 숨을 내쉬며 나를 노려보는 여자. 으음… 이제 그만 해야지… "아, 린. 이쪽으로." =네.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는 린. 흠… 좋은데… 그때 알을 고르길 잘했어… 주위를 보니 몇몇 파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린을 발견하고는 경악한 얼굴로 뒤로 물러서는 사람들. 나는 손을 흔들어주고는 다시 주저앉았다. "린. 마기로 주위에 약한 방어벽을 만들어." 곧 마기가 흘러나오며 약한 결계를 형성했다. 놀란 얼굴로 주위를 바라보는 여자. "무, 무슨 짓이야!? 아, 안 나가지잖아? 야! 무슨 짓이야!?" "아아… 걱정 말라고. 호박에는 관심 없어." 순간 나를 향해 달려드는 여자. 칫. 나는 급히 몸을 회전시키며 카타나를 흘려보냈다. 하지만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카타나. 다행히 체인 메일을 뚫지는 못했다. "연타(連打)." 그래도 내 잘못인데 상처를 입힐 수는 없고… 나는 손톱도 꺼내지 않는 채로 주먹을 연속으로 내질렀다. 먼저 머리와 어깨… 하지만 순식간에 몸을 비틀어 피하는 여자. 그리고 단검 하나를 뽑아들더니 역수로 쥐고는 주먹을 내지르며 베어 들어왔다. 캉. 손톱을 꺼내 단검을 막은 나는 몸을 굽히며 다리를 걷어차려 했다. 하지만 간단히 뛰어오르며 내 머리를 걷어차는 여자. 크읏… 나는 살기를 피어 올리며 주먹을 위로 뻗었다. 후와아앙… 강한 권풍에 여자의 머리카락이 위로 솟았다. 머리를 뒤로 눕히며 다리를 들어올려 내 가슴을 걷어차는 여자. 나는 뒤로 물러나며 한바퀴를 회전하느라 노출된 여자의 등으로 약한 마나를 날렸다. 약한 신음을 흘리며 자세를 바로하고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여자. 나는 여자를 뒤로 물러서게 하고는 얻어맞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흐으… 진짜로 때리냐? 아아… 그렇게 의아해 하는 얼굴은 하지 말라고. 내 잘못이었으니… 이제 그만. 여기가 넓은 것도 아니고." 잠시 나를 노려보다가 자리에 앉는 여자. 제길… 안 그래도 몸도 안 좋아 죽겠구만… 거기다 하필이면 가슴을 걷어차냐? 나는 신음을 흘리며 포션을 들이마셨다. "씨아다." "앙?" "씨아. 내 아이디." "아아… 나는 세한. 다크소드라고들 부르더군." 침묵하는 나와 씨아라는 레인저 아가씨. 하지만 저 싸늘한 눈초리는 변하지 않는 구만…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린의 머리로 올라갔다. "아, 저긴가?" 나는 저 멀리 보이는 큰 성을 보고는 감탄했다. 와… 크다… 저게 카루나 성? 주위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에는 몬스터가 없네? 린을 보며 경악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크아아아앙! 린을 크게 포효하며 성으로 달렸다. 후훗. 장난치는 건가? 주위에서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하긴… 마기까지 섞여 퍼져나가는 포효소리니… 나도 좀 떨리는데… 식스센스로 확인해 보니 씨아라는 레인저는 그대로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머, 멈춰라!" 성문으로 다가가니 일단의 경비병 무리가 창을 들이대고는 우리를 막아서고 있었다. 덜덜 떨고 있는 것이… 나는 한숨을 쉬고는 뛰어내렸다. "다크소드라는 사람입니다. 카루나 성에 들어가려 합니다만." 주위에서 놀란 목소리로 수근거리는 소리가… 나는 깨끗이 무시하며 경비병들을 바라보았다. 내 분위기에 겁을 먹었는지 눈치를 살피는 경비병들. "이 녀석이 문제가 되는 겁니까?" "아, 그, 그렇습니다." "흠… 어이, 호박. 내려." "이게…." 순식간에 내 뒤로 날아드며 킥을 날리는 레인저 아가씨. 나는 간신히 피하고는 린을 돌아보았다. "린." =예에…. 순간 검은 빛에 휩싸이며 사리지는 린. 후… 거리면 안되지… 작아지는 순간 마기에 가려진 고양이 모습의 린을 품속에 넣어둔 나는 경비병을 바라보았다. 놀란 얼굴로 주위를 바라보고 있는 경비병들. "됐습니까?" "예. 드, 들어가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안으로 들어갔다. 와… 멋진데? 나는 중앙 광장으로 걷기 시작했다. 모든 마을의 공통점. 항상 도시의 중앙에 광장이 존재한다. 나는 성의 중앙으로 걷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타박, 타박. 뭐야? 나는 고개를 돌려 씨아라는 레인저를 바라보았다. "뭐야?" "그러는 너는 뭐야?" "중앙 광장으로 가는데?" "제길. 나도 다." "쳇." 왠지 기분이 나쁜데? 나는 투덜거리고는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역시 뭐라고 투덜거린 씨아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으으… 기분 나뻐. 난, 저런 소영이 과의 여자들이 싫더라. 얼마간 걷자 대충 성의 중앙으로 들어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씨아는 좀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고… 아, 저기다. 카나 주점. 나는 화려한 간판의 술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앙?" "어?" 주점의 문앞에서 마주친 씨아와 나. 뭐야? "재수 없네… 또 뭐야?" "내가 할 말이야. 오빠하고 애인 만나러 왔다. 불만 있냐?" "별로. 나도 그저 아는 사람을 만나러 왔을 뿐. 흠… 애인이라는 사람이 불쌍하군…." "이게…." 순식간에 내 얼굴로 다가오는 발차기를 흘려보낸 나는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돌려차기를 넣었다. 하지만 몸을 굽히며 간단히 피하며 내 턱을 올려 차는 씨아. 왼손으로 발차기를 막아낸 나는 내 옆구리에 날아오는 발차기를 간신히 막고는 이를 갈며 씨아를 노려보았다. 역시… 속도에서 밀리는군… 최선을 다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태권도를 배우지 않았으면 벌써 바닥에 누웠을 지도… "그만하지?" "그쪽이나." 주위에서 경악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했다가는 경비병 몰리겠군. 나는 투덜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오는 씨아. 가게 안에 들어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초록 머리니까 찾기는 쉬울 텐데… 방금의 소란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구,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중에 손을 흔들고 있는 녹색 머리의 남자, 미토스네? "여어!" "아, 미토스." "오빠!" ………. "앙?" "뭐야?" 서로를 돌아보며 의문을 표하는 나와 씨아. 뭐야? 오빠? 미토스가? 그때 의아한 얼굴을 한 금발의 마법사가 일어나 우리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할딘? 미토스가 오빠. 저 사람이 애인? "넌 뭐야?" "그러는 넌?" "………." 제길.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나를 노려보는 씨아와 의아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미토스, 할딘을 바라보았다. 뭐야? "흠… 그러니까… 여기 아·가·씨가 미토스의 여·동·생, 이자 여기 할딘의 애·인, 이다?" 참으로 놀랍고 서글프다는 듯이 딱딱 끊어서 얘기하는 내 말투에 미토스가 헛웃음을 지었고 씨아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흠… 거기에 할딘이라는 사람은 별 표정 없고… 싸늘한 분위기로군. "그래… 흠… 에… 나와 할딘은 헌터에 거의 확정 됐다고 하던데… 2기 헌터는 우리 둘은 끝?" 미토스의 질문에 할딘도 나를 바라보았고 씨아도 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흠… "아뇨. 둘이 확정된 것은 맞는데 2기 헌터에 몇 명을 더 추가한 다음에 임명한다고 하더군요." 내 말에 미소를 짓는 미토스. 흠… 그러면서 씨아의 어깨를 잡는 것이… "아, 그럼 씨아도." "절대로 안됩니다." "뭐, 뭐야!? 이게…." 당혹한 미소를 짓는 미토스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씨아. 흥. "네가 뭐라고 되니 안되니 하는 거야!?" "아아… 내가 1기 헌터이자 헌터들이 속하는 게임 범죄 처리 팀의 팀장. 헌터들의 리더거든… 헌터 임명에 내 입김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나?"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는 씨아. 거기에 약간 놀란 기색도… 그때 조용히 있던 할딘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네가 헌터들의 리더가 된 건가?" "그렇죠. 거기에… 흠… 설명하자면 회사에서 운영자들이 속하는 곳이 게임 운영 팀. 그리고 헌터들이 속하는 곳이 게임 범죄 처리 팀이죠. 그 팀의 팀장으로 제가 임명 됐어요. 1기 헌터이기도 하고… 그리고 회사에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리자드에서 제게 빚진 일도 있거든요." 고개를 끄덕이는 할딘. "흠… 한. 부탁이니까 씨아도 집어넣어 주라. 꽤 강하잖아? 성격이 좀 괴팍하긴… 커헉!?" 씨아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는 미토스. 불쌍하다… 저런 여자하고 어떻게 한집에서 사는 거지? 나는 동정심 담긴 눈으로 할딘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저런 여자하고 애인 사이가…." 할딘도 씨아가 좀 남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다 보니… 알고 보면 착하고 부드러운 면도 있지." 헉!? 착하고 부드러운 면? 에이… 설마… "글쎄요…." "너 죽을래!?" "얼씨구. 헌터 되기 싫소? 솔직히 당신이 헌터가 되어서야 범죄를 처리하기는커녕 더 크게 만들 것 같은데…." "으으… 그건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가기는 하지만… 내가 잘 관리하지…." 머리를 들어올린 미토스의 말. 흠… 미토스가 관리를… 남매가 다 똑같이 성격이 이상해… 나는 할딘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잘 관리하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토스가 입을 쩍 벌렸다. "하, 한. 나를 못 믿는다는 말이야?" "전에 악마의 숲에서도 미토스를 믿었다가 좀 힘들었죠…." "으음…." 할말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는 미토스. 흠… 씨아를 헌터로? 실력은 발군이지만… 엄청난 랭커니까… 그때 내 품속에서 뭔가가 꾸물거리더니 내 어깨로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린이네? 다른 세 사람은 갑자기 웬 조그만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오자 놀란 얼굴로 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냐…." 낮게 울음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린. 잠자고 있었나 보지? 그때 씨아가 눈을 빛내더니 린을 낚아챘다. 뭐, 뭐냐? "와… 귀엽다…." "냐?" 린을 얼굴에 대고 부비적거리는 씨아… 음… 확실히 저렇게 보면 평범한 여자 같은데… 나는 할딘을 바라보았다. "혹시 저런 모습을 하고 있을 때 걸린 거 아니에요?" "으음…." 맞나보네? 씨아는 린을 데리고 장난을 치느라 대화에서 소외되었다. 조용하고 좋네. "그런데 헌터 봉급이 어떻게 돼?" 미토스의 질문. 아, 그러고 보니 할딘은… "할딘도 백수에요?" "음… 그렇지. 부모님 재산으로 놀고는 있지만… 뭔가 직업이 필요해서…." "흠… 월급으로 기본 200만. 사건 하나 처리 시 20만원 추가. 거기에 헌터들은 게임 이용료가 면제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무지 좋은 조건이죠. 게임 하면서 돈버는 거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미토스와 할딘. 만족스러운 모양이지? 백수로 살면서 이 정도로 게임을 하는 것을 보니… 둘 다 집안에 돈이 많은 모양이니… "그런데 일은 어떻게 하달되는 거지?" "아, 운영자들과 연계가 되요. 우선 페페, 미토스는 알죠? 페페가 우리 헌터들과 운영자들 연결 고리가 되는데 헌터가 되면 페페의 통나무집에 가는 구슬을 받을 테고… 일이 생기면 그 통나무집으로 가는 거죠. 아직은 헌터가 나 혼자. 거기에 미토스와 할딘. 둘이 확정되었으니 그때마다 거기서 모여 셋이서 일을 하게 될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둘. 그때 미토스가 씨아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럼 씨아도 신청한다?" 흠…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닌데… 나는 약간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씨아라면… 통과되겠지. "너도 그냥 통과시켜 주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러면 2기에 미토스, 할딘, 씨아. 이 셋은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 레도르들도 되면 좋을 텐데 아직 대학생이니… "냐… 주인님. 구해줘요." 린의 목소리. "어? 마, 말했어?" 린이 경악한 얼굴로 린을 바라보았다. 미토스와 할딘도 놀란 얼굴로 씨아의 손에 잡혀 있는 린을 바라보았다. 후… 나는 씨아에게서 린을 뺐어들고는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냐…." 얼빠진 얼굴로 나와 린을 바라보는 3인. "얘가 아까 그 검은 괴수거든?" 내 말에 놀란 얼굴을 하는 씨아. "그, 그 고양이가?" "응… 아, 맞다. 미토스. 천악이라고 알아요?" 내 말에 린에게서 시선을 거둔 미토스가 놀란 얼굴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굳어지는 할딘의 얼굴. 뭐, 뭐야? "어라? 알지. 랭킹 3위. 실질적 지존인데? 랭킹 1위를 꺾었거든. 왜?" "아… 여기 오기 전에 천악하고 배틀을 하고 왔거든요." "뭐, 뭐야?" "네가?" 믿기 어렵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미토스와 할딘. "서, 설마 이긴 거야? 어떻게 살아왔냐?" "아… 초원에서 우연히 만나서 싸웠는데… 졌죠. 하지만 이 녀석 덕분에 살았고… 그런데 천악이 미토스 얘기를 하던데요?" 린 덕분에 살았다는 말에 의아한 얼굴이던 미토스와 할딘의 얼굴이 굳어졌다. 미토스는 좀 안타깝다는 얼굴이었지만 할딘의 얼굴은… 분노? "아아… 전에 한번 싸웠거든. 내가졌지만… 죽었지. 할딘도 당한 적이 있고… 뭐, 강하더라. 별 감정은 없어. 정당한 대결이었으니…." "그 이상한 낫만 아니었으면 이길 수 있었어." "천악은 낫이 없어도 강하다고. 그리고 아이템이 좋은 것도 실력이지 뭐. 그런 아이템 얻기도 힘들잖아." "흥." 흠… 미토스는 그냥 인정하는 것 같은데 할딘이 좀… 흠… 그럼 씨아가 복수가 어쩌고 한 것이… 미토스와 할딘이 당한 것 때문인가? "흠… 그럼 씨아가 천악을 찾고 있던 이유가… 웁?" "호, 호호… 아, 아무 것도 아니야." 다급히 내 입을 틀어막고는 어색한 웃음을 짓는 씨아. 뭐, 뭐야? 미토스와 할딘이 놀란 눈으로 씨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난 얼굴로 씨아를 바라보는 미토스와 할딘. 뭐냐? 나는 씨아의 손을 떼어내고는 둘을 바라보았다. "씨아… 그만 두라고 했잖아. 너는 개죽음이야. 이 잘나신 오라버니도 당했는데 내가 어떻게…." "내 복수는 내가 한다. 너는 끼어 들지 말라고 했잖아."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마지막으로 나를 노려보는 씨아. 뭐, 뭐야? 순간 씨아의 주먹이 내 뒤통수에 작렬했다. "컥?" "너 때문이잖아, 멍청아!" "이, 이게…." 하지만 그대로 가게를 빠져나가는 씨아. 저, 저 여자가… 나는 이를 갈며 씨아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한숨을 내쉬는 미토스와 할딘. "으으… 저러는 이유가 뭐예요?" "아아… 복수한답시고 쫓아다니는 거지 뭐… 우리는 하지 말라는데…." "저 실력으로 가서는 그냥 당할 것 같은데? 천악… 아주 괴물이더구만…." "강하지…." 침묵하는 우리. 으음… 그러니까 지금 모여있는 셋 모두 그 천악이란 친구에게 당했었단 말이지? 으음… 왠지 서글퍼지는 구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미토스가 린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큰일이네… 전에 드래곤과의 싸움 잘했다고 선물로 애완동물이나 사주려 했더니… 벌써 있잖아? 그런데 어떻게 말을 하는 거지?" "선물은 됐어요. 음… 반인족이라는데… 내 마기 덕분에 말을 좀 잘하죠." "음? 반인족?" "어라? 반인족이면…."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둘. 뭐, 뭐냐? 약간 의외라는 얼굴… 제, 제길… "그냥 데리고 다니는 거예요. 자가용 삼아서… 괴수 모드로 변하면 타고 다니기 좋아서… 흠… 그만 하죠?" 그제 서야 시선을 거두는 둘. 쳇. "헌터로 임명되려면 회사로 와야되는데… 아마 좀 기다려야 될 걸요? 뭐, 할 일 있어요?" 고개를 젓는 둘. 흠… 레도르 녀석들에게 가기 전에 둘을 좀 따라다녀 볼까? "그럼 저하고 던젼 탐험이나 안 갈래요?" "나쁘지는 않지만… 씨아도 같이 다니는데?" 순간 내 얼굴일 꿈틀거렸다. 으으… 그 여자하고 같이 다녀서야 제명에 죽지 못할 거야… 고민에 잠겨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던 할딘이 입을 열었다. "내가 관리하지. 미토스의 말보다 내 말을 더 잘 듣는 녀석이니까." 으음? 미토스를 바라보니 서글픈 얼굴로 맥주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흑. 벌써부터 자기 애인을 챙긴다 그거야. 정말… 오빠인 나는 거리낌없이 주먹을 날리면서 말야. 어떻게 생각해?" "미토스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한숨을 내쉬며 맥주잔을 들어올리는 미토스. 할딘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같은 헌터가 될 거면 호흡을 좀 맞춰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런데 좀 조심해라. 얼마 전에 우리 둘이서 어떤 길드의 길마를 해치웠거든. 소멸의 벌이 내린 놈이었는데… 남은 길드의 녀석들이 복수한답시고 쫓아다녀서 요새 귀찮다. 괜찮겠나?" 흠? 길드에 쫓긴다고? 음… 이 둘에 씨아, 나까지 있으면 그리 힘들지는 않겠지. 어쨌든 이 사람들과 같이 다니면 심심하지는 않다는 말이지? "별 상관없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할딘. 으음… 얼마간은 조용한 날이 없겠어…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지. 린이 다시 품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페이나의 미궁. 대륙 북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미로. 섀도우 월드의 바탕이 되는 신화들 중 마족을 동경한 천족의 미궁이다. 그 천족의 이름은 페이나. 자유분방하고 자신의 힘을 위주로 하는, 천계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마계를 동경한 천사. 하지만 그로 인해 타락 천사가 되어 페이나는 마계로 가게 된다. 천사가 아닌 저주받은 타락천사. 페이나는 마계에서 자신을 받아주리라 믿었다. 대륙 북동쪽.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는 곳. 하지만 절벽은 거대한 미궁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현재 아무도 다다르지 못한 곳. 미궁을 통과한 사람이 없기 때문. 몬스터들의 강함도 있지만 미궁, 미로의 복잡함에 플레이어들이 클리어하기를 포기한 곳. 다른 좋은 곳도 있는데 괜히 힘들게 미로를 통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미로, 페이나의 미궁을 지나면 절벽에 다다르게 된다고 한다. 페이나와 수많은 하급 마족들의 전투가 벌어졌던 곳. 천사의 살과 피는 마족들의 힘을 증가시켜주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고 페이나는 힘을 원하는 하급 마족들에게 쫓김을 당했다. 절벽에서 간신히 마족들을 물리쳤으니 자신도 엄청난 상처를 입어 죽어가던 페이나. 타락천사는 그 절벽에 자신의 모든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