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http://cafe.naver.com/fantasy9.cafe 프롤로그 제1장 베르자니아 제2장 의심 제3장 에리아스와의 미묘? 제4장 갑부가 되는 법? 제5장 비상상태 제6장 사신 제7장 뿌요뿌요 제8장 군고구마 제9장 지략가 제10장 사칭 제11장 진실 제12장 잠복근무 제13장 슈퍼 울트라 하이테크 성? 제14장 병문안 제15장 헌터들의 담합 제1장 [베르자니아] 파지짓. "……." 에르카니아의 몬스터들은 너무나도 손쉽게 제거되었다. 솔직히 말해, 내가생각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얼마나 강해졌는지 짐작조차도 불가능하다. 한 번 손을 휘저으면 두 동강이 나 버렸으니까. 무기의 성능이 훌륭한 이유도 있겠지만, 엄청난 힘과 스피드가 더해져 상상 초월이다. "크아악!" 그때 등 뒤에서 미묘하고도 오묘하고도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외쳤다. "썬더!" 콰앙! 그대로 번개를 불러서 내리꽂았다. 그리고 잠시 후였다. "……." 난 번개의 파괴력에 압도당해버렸다. 물론 범위는 그대로였지만, 데미지 부분에서는 며칠 전과 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얼마나 강한 번개였으면 땅을 수십 미터 아래까지 파헤쳐 버렸단 말인가. "만약에……." 이 파괴 데미지에 3대 현자의 도움을 받아서 범위만 극대화시킨다면 정말 답 안 나온다. 완전 인생 막장이랄까? 그런 생각이 난 들자, 난 기운이 마구 샘솟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다 덤벼!" 방금 전에 한 말 취소하겠다. 아무리 강해도 이건 아니다. 완전 개 떼 공습이다. 정말 심각할 정도다. 간단하게 비교해 보자면 엄청나게 강한 저것들도 나의 기준에서 보면 오크보다못한 애들이라는 거다. 하지만 오크보다 못한 애들이라도 3시간 동안 끊임없이 달려들어 봐라. 완전 미친다. 이게 전문 용어로 '다구리'라고 하지. '다구리는 다구리'라는 엄청난 시가 있다. 여기에 옮겨 보자면……. -다구리. 다구리. 다구리. 아, 다구리야! 넌 다구리야. 인생은 왜 다구리일까. 제일 무서운 건 다구리다! 다구리가 짱이다. 다구리는 아름다워. 다구리! 이런 유명한 시가 있다고 들었다. 믿든가 말든가 자유다. 왜냐하면 이 정보의 출처가 민호라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어찌 됐든 다구리를 치는 내용을 섬세하게(?) 다룬 시라는건 확실하다. 잠시 이야기가 샜지만, 그만큼 다구리의 미학이라고 할까? 강함과 상관없이 다구리는 정말 무섭다. 그리고……. "끝이 안 보여." 저 뒤에서 사랑스럽게도 계속 나타나는 괴물들. 어떻게 된 게 3시간 동안이나 대량 학살을 했는데도 끝이 안 보여! 토네이도만 벌써 10번째인데, 도대체 이 차원의 정체가 뭐야? 응?! 그렇게 내가 이 차원에 대한 원망을 할 때였다. "디재스터, 후훗." "……." 누군가가 내 앞에 나타났다. 한 남자였다. 흑발을 길게 늘어뜨리고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될 것 같은 카리스마를 가진,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자. 하지만 한 가지, 이 남자가 누구인지는 알 것 같다. "대충 소개는 해 주지. 에르카니아의 지배자 베르자니아다." "……."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이러는 거냐? 넌 지금 충분히 강해졌다고! 모든 스텟의 상승뿐만 아니라 성도 부서져서 재수 없는 패시브 스킬이 엄청 올라간 상태다. 아무리 이 동네에서 짱먹는 놈이라지만 말조차도 안 나오다니! 제길, 이건 무슨 현상이냐? "이렇게 먹잇감이 알아서 와 주니 일단 고맙다는 말은 전하지." "……." "크크크." 완전히 순진한 존재를 먹잇감이라고 비하하는 저 나쁜 자식, 내가 어디 먹을 데가 있다고 그런 저질적인 말을 해 대는 거냐! 이 변태! 짐승! 악마! 그만 하겠다. 내가 하고도 좀 무안하다. 잠시나마 긴장감을 풀기 위해서 오버한 거니 이해해 주도록. 하지만 사실 긴장감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내 속은 바싹 타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머뭇거릴 수는 없다. '선빵필승'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선빵을 날린다고 반드시 필승을 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조금 유리한 건 사실이다. 이왕 싸울 존재라면 저말대로 선빵이다. 먼저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는 거다. 그렇다면 내가 제일 자신 있는 스킬……. "썬더!" 콰앙! 숙련도가 가장 높으면서 나름대로 제일 잘 다루는 스킬이다. 이걸로 당당하게 기선 제압을 하는 거다. 하지만 그때 난 믿을 수 없는 현상을 보고 말았다. 모든 게 멈추었다. 나의 움직임도 멈추었고, 근처의 괴물들도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리고 강하게 내려찍던 번개도 멈추었다. 하지만 단 하나, 이런 시간의 정지 속에서 한 존재만은 움직였다. 그 존재는 바로……. "베르자니아." "호오, 시간의 정지 속에서도 말을 하다니, 정말 박수 치고 싶어지는 걸." "……." "정말 감동이야. 의식도 있고 말이야." 베르자니아는 그 말과 함께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런데 그 모습이 한 대 쥐어 패고 싶을 정도다. 그만큼 재수 없는 모습이란 뜻이다. "넌 강해." "칭찬이냐?" 난 꿀리지 않기 위해서 그놈의 말에 대꾸했고, 그러자 그놈은 더욱 재수 없는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칭찬이지. 내가 인정한 존재는 신이라는 놈과 디재스터, 그 둘 뿐이다. 영광으로 생각해도 좋을 거다." "글쎄? 영광은 커녕 오히려 기분 더러운데?" "후훗." 나의 가벼운 도발에도 그는 여전히 웃음을 지은 채다. 그것만으로도 이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감이 잡힐 거다. 남자는 더욱 가까이 내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넌 강해. 네놈의 사부보다도 강한 것 같군." "……." "하지만 말이야. 아무리 강해도 이렇게 시간의 제어 속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지." "……." 맞는 말이다. 이렇게 시간이 멈춰 버린 세계에서 내가 신조차도 한 방에 보낼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 뭐 하는가. 행동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인데.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놈 말이 맞다. "나조차도 정식으로 붙으면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야. 후훗." "……." "네놈의 스승까진 정식으로 붙어도 자신이 있는데, 네놈은 시간도 그리 많이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강해지다니 놀라워. 한번 붙고 싶을 정도야." "그럼 이런 재수 없는 짓 그만 하고 붙을래?"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베르자니아는 비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승리가 더 좋지." "……." "게다가 이번에 승리를 하면 신조차도 없애 버릴 힘이 생기거든." "그거 좋겠수다." "좋지. 후후후." 제길, 무언가를 해야 한다. 이대로 허무하게 자연의 힘을 뺏긴다면 답 안 나온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시간의 제어 속에서 무력해져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젠장! "아, 잡담이 길었군." "난 더 했으면 좋겠는데." "크크. 아무리 머리 굴려 봤자 이 제어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 나름대로 배려해서 한 번에 힘을 흡수해 주지." 그런 거지 같은 배려는 갖다 버려 줄래? 으악! 베르자니아는 내게 더욱더 근접해 왔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손을 내 심장으로 향했다. 제길! 무슨 행동인지 알 것 같다. 나의 힘 자체를 강탈하려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자 따위에게 내 가슴을 내주다니! 어찌 됐든 완전 미쳐 버릴 것 같은 상황이다. 그런데……. "……!" "……!" 갑자기 공간이 흐트러졌다. 그리고 내 앞에 있던 베르자니아의 모습도 사라졌다. 그가 심하게 당황하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보였다. "무슨 짓을!" 베르자니아는 분노했다. 몇 초 뒤면 자신은 신의 힘을 뛰어넘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떤 한 존재가 난입해 강제로 자신의 먹잇감과 그의 동료들을 원래대로 보내 버린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하다니! "제길, 도대체 어떤 놈이!" 베르자니아는 자신을 방해한 존재를 찾기 위해 눈을 붉혔다. 도대체 누가 이런 발칙한 짓을! 그런 그 순간이었다. 베르자니아의 눈에 한 존재의 잔재가 남았다. 그리고 잠시 후……. "백호?" "무, 무슨 일이지?!" 난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방금 전 난 나의 순결한(?) 가슴을 한 변태에게 농락당할뻔했다. 아니, 농락당하면서 내 힘을 흡수당할 뻔했다고 해야 하나?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파지짓 하더니 순식간에 이장소로 왔다. 우리가 강제로 에르카니아로 이동되기 전의 장소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인 거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걸까? 누군가가 강제로 옮기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그건 그 시간 제어의 힘을 무시할 수 있어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존재기에 그게 가능한 거지? 으윽! "이런! 역시 아포라 여신님은 저를 버리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 그때 머리 아파서 끙끙거리는 내게 민호가 다가오더니 개소리를 해 댔다. 아포라 여신? 그건 뭐 하는 여신인 게냐?! 내가 신에 대해서 그렇게 박식하지는 않아도 대충 이름을 들으면 있는지 없는지 정도의 구분은 가능하다. 하지만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난 민호를 향해 물었다. "그게 누구냐?" "……?" "아포라 여신이라는 이름, 처음 듣는데?" "그걸 모르시다니. 형님은 역시 순수하지 못하군요." 저기 민호 군, 내가 아포라 여신이라는 분을 모를 수도 있는 건데, 왜 그게 '순수'라는 단어랑 연관이 되어야만 하는지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데? 그렇게 내가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자, 민호가 말을 이었다. "아포라 여신은 '차가운 냉커피'에 등장하는 여신입니다." " '차가운 냉커피' ?" "네." "……." 그럼 내가 모르는 게 당연하잖아! 난 네놈 같은 변태가 아니어서 그런 저질적인 책은 읽어 보지도 않았다고! 그러니 그 책에 나오는 인물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이 이상한 놈아! 그런데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야설에 여신이 등장하는 거지? 하지만 이내 내 머리를 강타하는 한 가지 생각. 설마 아닐 거다. 그건 정말 아니야. 그래 아무리 야설이라고 해도 내가 잠깐 짐승 같은 생각을 한 것일 거야. 그렇지 민호야? 난 그런 생각과 함께 민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민호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이 야설이 명작이라고 칭송받는 이유가 이 장면 때문이죠. 주인공이 심오하고도 아름답게, 나비처럼 깃털처럼 날아서 여신을 덮치는 장면 말입니다." 으윽! 이런 짐승 같은 책이 있나! 어디 다룰 게 없어서 신성의 대명사인 여신을 덮친다는 내용을! 완전 저질이다. 그리고 심오하고도 아름답게, 나비처럼 깃털처럼 날아서 덮친다는 건 뭐냐?! 그때 민호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물론 그냥 덮치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엔 과격하게 여신의 옷을 찢어……." "그만 해, 이 변태 자식아!" "후훗." "……." 그때 살며시 미소를 짓던 민호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솔직히 말해 흥미롭죠?" "……." "여신을 덮치는 이야기라니, 형님도 감동하셨죠?" "……." "인정하십시오." 난 그 말에 잠시지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제길,이게 아니잖아! 솔직하게 말해 나도 남자인 이상 여신이……. 아악, 이건 아니야! 이건 저 자식의 유혹이야! 으아악! 난 속으로 소리쳤다. 그리고 잠시 후 담담한 척하며 말했다. "난 안 했어!" "후후, 참으로 안타까운 변명이군요." "……." "남자라면 사뭇 즐겨야 하는 이 아름다운 세계를 그렇게 부인하시는 형님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솔직히 말해, 남자의 예의상(?) 성인물을 봐 주는 건 운명이다. 하지만 저 자식은 너무 심하다. 사람을 변태 수준으로 타락시킬 만한 최악의 성인물을 권하고 있다. 그래서 인지 저기에 물들어 버리면 방 안에서 이상한 사전들을 보며 헉헉거리는 초 변태가 될까 봐 두려운 게 사실이다. 그때 민호는 다시 한 번 염장을 질렀다. "강요는 하지 않겠습니다." "……." "하지만 언젠가는 보게 될 겁니다, 언젠가는. 후훗." "……." 민호의 알 수 없는 웃음, 기분 더럽다. 그리고 다짐하는데, 다른 성인물은 보더라도 네놈이 추천한 변태물은 죽어도 안 볼 거다! 그걸 보는 순간 인생 막장이 될 거라는 생각이 마구 드니까. "이야기가 갑자기 이상해졌는데?" 원래 하던 이야기는 갑작스러운 이동에 대한 것이었는데, 민호의 한마디에 이야기의 내용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원래 목표는 3대 현자의 단서가 있다는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를 찾는 거였다. 그리고 민호가 거기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는데, 에르카니아로 강제 이동되었다가 거기서 난 먹이로 될뻔하다가 기괴한 현상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니 간단하게 요약하면, 자연의 힘을 모두 다루기 위해서는 에르카니아에 가서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를 찾아야 된다는 거다. 하지만 거기에는 너무나도 숙성된(?) 나를 노리는 변태 괴물이 있다. 가서 힘 빨리고 죽음으로 엔딩. 아아악! "아, 형님." "왜?" 그때 민호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날 부르더니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저번에 형님의 사부이신 성자님……." "너, 미쳤냐?" "……?" "어딜 봐서 그 인간이 성자인데? 응?" "제가 보기에는 성자보다 더 멋지신 분이던데요." "……." 미안하다. 너도 미친 변태였지. 미친 변태에 눈에는 더 멋지겠다. 그래, 멋져 해라. "그래서?" "그분이 저번에 형님한테 얘기 좀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 "에르카니아에 사는 베르자니아라는 괴물의 시간 제어를 이겨 내는 방법은 모든 자연의 힘을 완벽히 다루는 것이라고요." "……!" "한마디로 자연의 힘을 모두 완벽하게 다루면 그 시간의 제어도 이겨 낸다고 합니다." "……!" 그런 엄청난! 한마디로 자연의 힘을 모두 마스터하면, 그 개 같은 시간정지 놀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냐?! 하지만 문제는……. "힘을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가 필요한데. 이게 에르카니아에 있다는 문제다." 그러니깐 결국 베르자니아라는 놈하고 싸울 수 있는 방법은 알아도 그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결론이다. "형님, 걱정 마십시오." "……?" 민호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렇게 된 것,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의 진본을 찾는 수밖에요." "으응? 뭔 말이야?" "간단하게 말해, 방금 저희들이 간 곳에 있는 건 가짜고, 진본은 다른 데 있습니다." "……." "하지만 문제는 진본을 찾기 위한 단서가 제로 곱하기 1억 이라는 데 있습니다." "……." 간단하게 요약해 보자.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는 진본과 가짜가 있는데 가짜는 에르카니아에 있다. 그리고 진본은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을 찾는 데 대한 단서가 제로 곱하기 1억이라는 숫자만큼 없단다. 표현 자체가 상당히 복잡하지만, 한마디로 진본에 대한 단서가 벼룩만큼도 없다는 소리다. "……." "걱정 마십시오. 형님,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때 민호의 다짐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맙다. 최선을 다해 줘서, 하지만 벼룩만큼도 없는 단서로 어떻게 찾아낼 거냐?! 그런 내 생각에 민호가 냉큼 대단했다. "저의 불타는 정열적인 마음으로요." "……." "꼭 보고 말 것입니다. 신이 만든 야설을 말입니다." 이글이글. 말을 마친 민호는 온몸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난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진짜 가능할지도……. 저 정도로 의욕에 불타오르는 민호는 처음 본다. 그만큼 놀랍다고 해야 하나? 난 말했다. "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를 찾아 3대 현자를 만나고 자연의 힘을 마스터한다면 복수해 주마. 베르자니아." 시간이라는 터무니없는 기술에 낚였지만, 난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어서 말이다. 한마디로 지금부터 '세계 정복 및 베르자니아 변태 대장 처리' 라는 목적으로 변경 완료다! "그래서 당신은 저 세계를 지우려고 생각 중인가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한 여성의 말이 울려 퍼졌다. 곧 그 말에 남자의 대답이 들려왔다. " 신의 힘이 개입된 세계다." "……." "물론 인간들은 그곳을 게임, 즉 가상현실세계라고 부르지만 그곳 같은 경우는 신의 힘이 개입된 곳, 인간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물론 무조건 한다는 것은 아니다." "……?!" "나를 누군가가 이길 수만 있다면 그 세계를 포기하지." "그런 말도 안 되는! 투신 벨리나크, 당신을 무슨 수로!" "그 게임에 직접적인 힘을 준 존재가 누구인지 아는가?" "……?!" "나에게 유일하게 패배를 안겨 준 신, 디재스터라는 존재다. 그는 말 그대로 모든 자연을 다루었다. 그리고 나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다." "……." "하지만 이제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의 힘이 미쳐 있는 그곳에서 디재스터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와 싸우겠다는 거지." "하지만 그 존재는 인간이에요!" "글쎄, 거기까지 배려해 주고 싶지는 않군." "……." 제2장 [의심] "……." 요즘 들어 문득문득 의문이 든다. 그것은 바로 '게임 정복'이라는 미묘한 문제에 대한 의문이다. 사실 정복 0.1% 해 놓고 할 대사는 아닌 것 같지만, 지금 까지 난 상당한 시간을 게임 정복에 투자했다. 그만큼 게임 정복에 목숨 걸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새는 자꾸 '사실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내가 연애 지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여자가 세계 정복을 좋아한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남자들 중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 세계 정복이라는 미친 꿈을 꾸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여자들은 그런 남자를 무조건 선망한다니, 심히 이상하다. 하지만 주변에 물어봐도 다들 그렇게 대답하고, 컴퓨터를 사용해도, 민혜한테 직접 물어도 대답은 하나다. 세계 정복, 아니 게임 정복이야말로 모든 여자들의 미학이라니? "하아, 미치겠네." 생각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무언가 알 수 없는 느낌이 나를 감쌌다. 뭐라고 해야 하나, 마치 파닥거리는 미묘하고도 짜릿한 느낌?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파닥거리는 역할이고 말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의심을 하기 시작하자, 생각은 더욱더 깊어진다. 원래 의심은 하면 할수록 더 커지는 법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번쩍!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지나갔다. 혹시……. "민호 자식이 뒤에서 조작한 거 아니야?" 갑자기 든 의문인데, 민호 자식이 뒤에서 이 모든 상황을 조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평범한 인간이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저놈한테는 가능한 일이다. 저놈은 외계인을 뛰어넘는 비과학적인 인간이니까. "아, 그러고 보면……." 저번에 내가 민혜에게 처음 물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민혜에게 여자들은 세계 정복을 좋아한다는 식으로 말했고, 민혜는 그 말에 말도 안 된다는 듯 대답했다. 그런 게 어디 있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 민호가 끼어들더니 민혜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은 그렇지 않지만 자신의 친구들을 다 그렇다고 했다. 왜 민호가 사라진 후 대답이 달라진 거지? 응?! 그리고 지식인, 이것도 잘 생각해 보니 의심스럽다. 답변 자체가 전부 민호 풍의 느낌이 나는 대답이었다. 하나 정도는 딴 데로 새는 대답이 나오는 게 보통일 텐데 대답은 하나같이 게임 정복을 외치고 있었다. 물론 그런 현상이 가능하려면 그 사이트를 점령해야 하는데 그게 과연 가능 할까? "가능할 수도?" 범죄라면 초인이 되어 버리는 민호, 그라면 그런 대형 사이트조차도 점령해 버리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 냄새가 난다. 무언가 냄새가……. 혜화 여자 중학교. 민혜까 다니는 여자 중학교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하다. 민혜와 이야기를 할 게 있어서다. 그녀라면 진실을 말해 줄 것이다. 저번에는 무엇때문인지는 몰라도 거짓을 이야기 한 것 같지만, 해충 같은 민호가 없는 이상 잘만 하면 진실을 말해 줄 것이다. "아, 오빠?" 저 멀리서 민혜가 친구 세 명과 같이 오다가 나를 발견했는지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동시에 친구들이 한꺼번에 입을 열었다. "나,남친?" "우아, 잘생겼다!" "역시 같은 레벨끼리 사귀는 건가?" "아, 아니야. 나, 남자 친구라니……." 민혜는 친구들의 장난기 어린 말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통은 그런 장난에 그리 당황하지 않는데, 이상할 정도로 심하게 당황하시네. 흐음. 친구들도 한마디씩 던졌다. "너무 격렬하게 반응하네?" "사실이야?" "아님 짝사랑?" "무, 무슨 소리야!" "헤?" 친구들의 말에 민혜는 얼굴까지 빨개지며 손사래를 쳤다. 어메, 귀여운 거! 아니, 이게 아니지. 자꾸 내 목적을 망각하면……. "오, 오빠, 가자!" "으응." 그때 민혜가 다급히 나를 끌고 갔다. 좀 반응이 격하네? 나를 남자 친구로 오해하는 게 그렇게 싫었던 거니? 흐흑! "미안 친구들이 장난이 심해." "아니, 재미있는 친구들이네." 싱긋. 그러면서 난 웃었다. 하지만 마음은 쓰리다. 나랑 사귄다는 거 자체를 저렇게 질색(?) 하다니, 크윽! 남자로서 슬프다. 물론 나에게는 예진이가 있기는 하지만……. "저기 ,민혜야." "응?!" 내 말에 민혜는 깜짝 놀랐다. 오늘따라 유난히 이상하다. 피곤한 건가? 왜 저러는 걸까. 난 그런 민혜에게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아파?" "아니, 아니야." "……." "저,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 그런 것치고는 얼굴이 너무 붉다. "그런데 오빠, 무슨 일 있어?" 다급히 화제를 돌리는 민혜. 난 약간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냥 신경 끄기로 했다. 본인이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난 민혜를 만난 목적을 상기해 내면서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민혜야, 하나만 물어볼게." "뭘?" "진실을 말해 줄 수 있어?" "갑자기 진실이라니?" "부탁해." "……." "응?" "아, 알았어." 내가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자, 민혜는 승낙했다. 난 속으로 '예스!'를 외치면서 말했다. "저번에 물었던 건데, 진짜 세계 정복을 여자가 좋아해?" "……." "……." 그 질문에 민혜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확실히 무언가가 왔다. 전문 용어로 '입질'이 말이다. 난 애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진실을 말해 줘." "……." "응?" "그러니까 사, 사실은……." 쉽사리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민혜와 계속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나. 그 순간이었다. "-날아가네, 날아가네, 형님이 날아가네." "……." "……."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익숙한 노랫소리. 너무나도 익숙해서 오한이 들 정도다. 민호였다. 민호는 무선 마이크를 이용해 저 멀리서 괴상한 노래를 하고 있다. "-형님이 저기로 날아가네. 아아, 5년은 무엇으로 보상하는가." "……." "……." "-슬픈 5 년이야." "너, 뭔 짓이냐?!" 민혜가 진실을 말해 줄듯한 순간에 갑자기 나타나 방해하는 민호에게 윽박지르듯 소리치자, 민호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노래인데요." "……." "제가 작사 작곡했습니다." "……." "흥미로운 노래죠? 안 그래요, 민혜 양?" 흠칫. 그 말에 민혜는 흠칫했다. 그리고 잠시 후였다. "사, 사실이야. 여자는 세계 정복을 좋아해." 민혜의 한마디. 도대체 저 자식은 무슨 짓을 한 거지? 괴상한 노래를 듣더니 민혜는 예전하고 같은 대답만 하고만다. 도대체 저 자식은 무슨 짓을, 아니 무슨 마법을 부린 거냐? 응?! 노래를 분석해 보자. 그래서 무엇이 그녀를 돌변하게 만들었는지 캐 보는 거다. '날아가네, 날아가네, 형님이 날아가네.' 뭐가 날아간다는 거냐? 내가 새도 아니고 어떻게 날아간다는 거냐? 응? 왜 이 알 수 없는 노래를 듣고 민혜는 흠칫한 거지? 정말 이해 불가능하다. "미쳐 버리겠군." 진짜 미치겠다. 저 노래 뭐냐고! 날아가다니, 그리고 내가 날아가?! 이거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암호인 거냐? 응? 그렇지 않고서야 도대체 왜 민혜가 그런 반응을 보이냐고! "……." 생각을 거듭할수록 막 탈모 현상도 일어났다. "이 문장은 포기하자, 다음 문장을……." 난 다음 문장을 떠올렸다. '형님이 저기로 날아가네. 아아, 5년은 무엇으로 보상하는 가.' 날아간다는 문장은 패스. 그럼 '아아, 5년은 무엇으로 보상하는가' 라는 대목을 풀이해 보자. 뭐가 5년(민혜가 짝사랑한 기간)이라는 거지? 5년이라니? 설마? "민혜가 혹시 주식 투자?" 정말 미안하다. 원체 막막하다 보니. 저질 개그 한번 해 봤다. 아아악! 누가 이 알 수 없는 노래를 해석 좀 해 달라고, 응? 왠 암호를 걸어 놔도 이런 미친 암호를 거느냔 말이다! 머리카락이 몇 시간 만에 몇만 개는 빠진 것 같다. 너무나도 고민을 하다 보니 탈모 및 안색 창백, 그리고 금세 시체라도 될 것 같은 나의 모습, 정말 안습이다. "젠장, 도무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민호의 마수가 뻗치지 않는 곳으로 가서 이 심오한 암호를 해석해 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아니, 그것보다 여자들이 세계 정복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말해 줄 사람이 절실하다. 그 방면에서는 나래 누나가 제격. 부산에 살고 있는 나래 누나에게 직접 가서 일대일로 물어 보는 거다. 한마디로 민호의 마수가 뻗치지 않는 곳으로 장기 출장을 간다는 소리다. 약 1시간 만에 돌파했다. 요즘은 교통수단이 매우 발달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열차가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난 기차에서 내린 뒤 부산역에 마중을 나온다는 나래 누나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극비로(?) 간다고 하자. 누나는 반갑게 마중 나와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찾는 게 상당히 쉽다. 왜냐고? "우아." "완전 미치네." "저게 인간이냐?" "연예인 지망생?" "연예인보다 더 예뻐." "미쳤어!" "정말 예쁘네." 사람들의 관심이 한 곳으로 몰려 있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말이다. 그리고 이런 시선 집중은 매우 익숙하다. 워낙 그녀들과 자주 다녀서 그런가? "누나." "아, 재현아!" 그때 내가 부르자, 누나는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달려왔다. 그리고……. '저 자식 뭐야.' '개 같은 자식!' '나쁜 놈!' '아, 짜증 나!' '아아악! 죽여 버리고 싶다!' '저놈을……!' 급증하는 살기가 느껴졌다. 당연히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그리고 새삼 느끼는 거지만.이런 초미소녀와 한 번 만나기 위해서는 강력한 심장과 철면피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녀를 보호할 수 있는 힘까지? 초미소녀를 만나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참으로 아슬아슬하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누나가 나를 보더니 한마디 던졌다. 난 그런 그녀에게 웃으며 말했다. "뭐 한 가지 물어볼 것도 있고, 누나랑 놀고 싶기도 하고." "헤?" "……." "주목적은 뭐 물어보는 거?" 흠칫! 눈치도 빠르다. 거의 광속 수준이네. 땀이 삐질삐질나왔다. 이런 내 모습을 본 누나는 웃으며 말했다. "뭐, 상관없어. 어차피 그 뒤의 데, 이, 트 가 중요하잖아. 그치?" "……." 데이트? 크윽. 그 말에 왠지 예진이의 순수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여기서 '이건 데이트가 아냐!'라고 소리칠 수도 없고 말이다. 그 순간이었다. "뭘 물어보고 싶은데?" 나래 누나의 물음에 난 주변을 살펴 보았다. 혹시라도 그 외계 생명체가 있으맂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나를 향한 살기와 나래 누나에 대한 애정의 눈빛만 보였다. 쳇! 사람들 정말 차별 심하네. 어찌 됐든 난 진지한 눈빛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저기 ,누나." "응!" "진실을 말해 줄래?" "진실?" "응." "……." 나의 '진실'이라는 말에 나래 누나는 약간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난 그런 누나에게 다정다감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안 될까?" "……." "응, 누나아." "……." 평소 하지도 않던 애교 어린 말투도 해 봤다. 그만큼 내게 절박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그러자 누나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 뭔데?" "직접적으로 말할게." "응." "여자가 세계 정복을 좋아해?!" "……." "진실을 말해 줘!" 초롱초롱 빔. 이날을 위해 일주일을 연습한 초롱초롱 빔. 거울을 보고 얼마나 연습했는지 모른다. 이 초롱초롱 빔을 연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 이런 나의 초롱초롱한 눈빛의 효과가 있었는지 누나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 "에……." 누나는 무척 난감해 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올렸다. 초롱초롱 빔의 강도를 말이다. 아, 내가 하고도 더럽게 민망하네. 하지만 진실을 알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노력은 필수란 걸 난 잘 안다. 그렇기에 이렇게 얼굴이 후끈거려도 하는 거다. "그, 그게, 그러니까…… 여자가 세계 정복, 아니 게임 정복……." 꿀꺽. 나래 누나의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 난 온몸이 마구 불타올랐다. 이걸로 이제 진실이 밝혀진다. 모든 진실이 말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아아아, 형님이 떠나가네." "……." "……." "-형님이 저 멀리서 떠나가네에에에에에에에에, 아웅." "……." "……." 갑자기 기차역 플랫폼에서 방송으로 노래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굳어 버렸다. 아니, 특히 굳은 사람은 나였다. 아니, 특히 굳은 사람은 나였다. 어떻게 저 인간이 역전 방송실을 점령한 거지?! "-잠시 실례했습니다. 그럼." 그때 그 말과 함께 민호의 목소리가 사라졌고, 잠시 후였다. "-죄,죄송합니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 이곳의 관리 책임자가 사과하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나래 누나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무지 좋아해." "……." 민호, 이 개자식! 민호, 저 신비의 자식은 우주를 가도 따라올 게 분명하다. 이렇게 된 이상, 민호가 방해해도 흔들리지 않을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존재란 여자 중에서 딱 한 명밖에 없다. 전 세계, 아니 전 차원을 뒤져도 그녀밖에 없을 거다. 일명 이민영, 야설계에 떠오르는 샛별이자 민호의 여동생이다. 취미는 나 덮치려 하기, 미모는 완전 작살, 몸매 글래머, 어찌 됐든 약간 이상한 취미와 성격만 아니라면 정말 완벽 그 자체인 소녀다. 어찌 됐든 난 그 소녀를 만났다. "하나만 질문할게." "대가는요?" "……." "대가 지불, 몰라요?" "잘 알아." "그럼 제가 요구할 것도?" "……." "헤헤." 내가 물어볼 게 있다고 하자, 아주 당당하게 대가를 요구하는 민영 양, 감동적이다. 그리고 그녀가 요구하는 게 대충 뭔지도 안다. 하지만 난 순결해! 물론 싫은 건 아니…… 아, 이게 아니라 어찌 됐든 난 순결의 대명사이므로. 흠흠! "그 대가는 무리야." "왜요?" "난 소중하니까." "저도 처음인데요." "……."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고……. 괜히 내 얼굴까지 붉어졌다. 아아악! 이분 역시 민호 사마의 여동생이어서 감당하기가 정말 힘들다. 하지만 그만큼 민호의 괴이한 행동을 무시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존재이기도 하다. "뭐, 특별히 대가 없이 대답해 줄게요." "고마워." "뭘요." 아무런 대가 없이 나의 질문을 들어 주겠다는 민영 양의 말에 참으로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난다. 그때였다. "그 대신……." "……?" " '민영이를 덮치고 싶어' 라고 제 귀에 속삭여 주세요." "……." "그것도 안 해 주면 싫어요!" "……." 아니, 그건 대가가 없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저신념에 가득 찬 눈빛.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거다. 그래, 내 순결함을 뺏기느니 차라리……. "민영이를 덮치고 싶어." 난 그녀의 귀에 재빨리 속삭였다. 그러자 얼굴에 행복한 표정이 떠오르는 그녀. 그 말을 듣고 행복해 하다니, 정말 이해하기 힘든 소녀다. 아, 쟤가 민호의 여동생으로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정말 완벽 그 자체인데. 미모와 몸매는 톱클래스 1인자인데, 그놈의 성격이 이상해. 정말 아쉽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가보인 초미소녀를 민호자식이 망쳐 놨다는 거다. 결론적으로 그놈은 나쁘다? 흐음. "뭐, 좋아요. 질문이 뭐예요?" 그때 요구를 만족시켜 주자, 그녀는 내게 물었다. 난 그녀에게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여자는 정말로 세계 정복, 아니 게임 정복을 그렇게 좋아해? 진실로?" 내가 묻자마자 그녀의 대답이 바로 들려왔다. "네! 무지무지 좋아해요." "……." "엄청 좋아하죠. 오빠, 그것도 모르셨어요?" "아, 아니. 알고 있었어." "설마 몰랐나 했죠. 그걸 모른다면 남자로서 실격이예요." "그, 그런 거야?" "네에." 그걸 모르면 남자로서 실격이라니? 진정 여자는 게임 정복을 하는 남자가 좋단 말이냐?! 사실 아직 좀 찜찜하다. 하지만 민호의 포스를 무시하는 게 가능한 이분조차도 같은 대답인 것으로 보아 진실이라는 쪽에 가깝다. 하아, 정말……. "좋은 거짓말이군요." "이제 됐어?" "네, 뭐." 재현이 사라지고 나서 곧바로 민호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런 민호를 본민영이는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약속 지켜." "물론이죠." "분명 오빠 입으로 이번에 이렇게 말해 주면 재현이 오빠를 잘 덮치게 도와준다고 했다?" 그렇다. 그녀는 민호의 흥정에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민호 이 인간도 보통 미친 게 아니다. 자신의 여동생이 남자를 잘 덮치게 도와준다니, 심히 상태가 이상하다. 그리고 민호의 대답이 들려왔다. "제가 신용의 대명사죠." "구라의 대명사겠지." "흐음." "어찌 됐든 약속 안 지키면 두고 봐." "걱정 마십시오. 지킵니다." "별로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그렇게 민영이는 말했고, 그 순간 민호가 대답했다. "전 순수함의 결정체니까요(미친 개소리." 제3장 [에리아스와의 미묘?] 작전 대폭 변경이다! 원래 나의 작전은 조금씩 장악을 해 가는 것이지만, 그게 무지 힘들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포기. 그렇다면! "폭풍 공습!" 나의 새로운 작전명이다. 일명 디재스터의 힘을 극대화 시키고, 확실한 자금줄로 용병들을 사서 단숨에 끝내 버리는 폭풍 공습이라는 거다. 한마디로 한 번에 다 쓸어버린다는 어마어마한 작전인 거다. "심히 무식한 방법인데요. 형님." "넌 닥쳐." "흠." 그때 나의 환상적인 작전에 민호 자식이 태클을 걸었다. 그럼 네가 제대로 해 보든가! 이상한 짓 하지 말고 말이다. 하지만 이 멤버에도 지략가가 있다면 몰라, 암울한 애들만 있는 관계로 이 작전이 최후다. 폭풍처럼 몰아 붙여라. 사기적인 자연의 힘으로, 사기적인 자본의 힘으로 한 번에 쭉 밀어 버리고 세계 정복 완료?! 사실 내가 생각해도 무식한 방법인 것, 인정한다. 하지만 방법을 못 찾겠다고! 야금야금 방법도 머리 잘 돌아가는 애들이 있어야 해 먹지, 없으니까 못해 먹겠다. 차라리 이 무식한 방법이 더 효율성이 높을 것 같다. "젠장." 그때 난 민호를 바라보면서 '젠장'이라는 말을 외쳤고, 그말에 민호는 놀라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난 민호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만약에 저놈이 저 비상한 머리를 이쪽으로 돌린다면 10일안에 게임 정복을 완료할 텐데……. 하지만 저놈의 머리는 평범한 일에는 더럽게 안 돌아간다는 단점이 있다. 그때였다. "전 남자한테 관심 없는데요." "……." "이러지 마십시오." "너 또 뭔 미친 개소리냐?!" "형님, 이건 불건전합니다." 네놈의 입에서 불건전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불건전이라는 단어가 착해 보인다? "또 뭔 이상한 말로 사람 염장 지르려고!" "염장을 지르다니요. 전 형님이 단지……. 크윽." "……." 그러면서 고개를 돌렸다. 순간적으로 불길해진다. 난 재빠르게 말하려고했다. 그냥 그 내용을 잘 고이 간직 하고 있으라고 말이다. 하지만 민호가 조금더 빨랐다. "저를 사랑하지 마십시오." "……." "형님의 그런 애타는 눈빛. 정말 부담됩니다." "……." "전 남자는 별로이니까요." 저기요, 민호 씨? 내가 언제 너에게 애타는 눈빛으로 바라봤니?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지. 이 자식아 왜 갑자기 네 맘대로 애타는 눈빛이 되는 건데? 난 갑자기 나를 게이로 만들어 버리는 민호를 향해 그대로 달려들었고, 그 순간이었다. "형님, 덮치면 곤란합니다!" 민호가 대뜸 크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 "……." "……." "……." 하필 내가 우아하게(?) 달려드는 모습을 본 여자들. 그 모습에 갑자기 등 뒤로 땀이 흘렀다. 난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절대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해." "……." "……." "……." ……."" "흐음 ,뭐라고 해야 하나? 지금 이 장면은 내가 이 자식을 덮치려는 게 아니라 때리려고 달리는 거거든?"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방금 전에 '나를 잡아먹어 버리겠어!'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 "형님, 이러지 마십시오. 전 남자는 사양입니다." "……." "제발요." 삐질. 민호의 너무나도 애타는 말투가 나를 진짜 게이로 몰아갔다. 그리고 급습되는 당혹함……. 그런데 그 순간! "또, 저 짓이네." "……." "……." 갑자기 민영 양이 나타나서 구세주 같은 한마디를 날렸다. "오빠가 가끔식 저런 짓을 즐겨요. 신경 쓰지 마세요." "아." "그렇구나." "의심해서 미안." 그녀들은 민영이의 한마디에 모두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쳇." "……." 민호 녀석은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다. 난 그런 민호를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너의 미래가 보이지 않니?" "안 보이는데요." "……." "제게는 미래를 보는 능력은 없어서 말입니다." 싱긋. 그러면서 화사한 미소를 작렬시켰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하지만 난 그 말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뱉을 수 있다. 특히 민호 저놈에게는 수십 번 뱉어 주마. 난 그 생각과 함께 그대로 날았다. 백조처럼(?). 아, 그런데 백조가 날던가? 그럼 수정해서 청동오리처럼 날았다. 그리고 잠시 후……. "쿠에에엥."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아, 정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또다시 쓸데없는 데 힘을 써 버리고 말았다. 비효율적이다 못해 암담한 걸로 에너지를 쓰는 내 자신이 싫지만, 그걸 쓰게 꼭 만드는 민호 자식이 더 싫었다. "바람이나 쐬어야겠다." 난 모 분에 의해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옴에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무척이나 싱그러운 바람 냄새가 느껴졌다. 후우, 약간이지만 마음의 안정이 되는구나. 그렇게 마음의 안정을 조금씩이나마 찾아갈 때였다. "좋아해요!" "저, 저기……." "저랑 결혼해 주세요!" "이, 이건……." "제발!" 사람은 가끔씩 봐서는 안 될 장면이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장면은 그 안 될 장면에 속하리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 장면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한 여자가 한 여자에게 결혼을 신청하고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프러포즈를 하는 여자는 누군지 모르고, 프러포즈를 당하는 입장은 누군지 아주 잘 안다는 점이다. 그건 바로……. "에리아스." 남자 공포증이자 남자가 다가오기만 하면 무적이 되어 버리는 에리아스 양. 그분이 지금 프러포즈를 받고 계신다. "저도 알아요! 남자를 극도로 싫어하는 마음을요. 언니도 저랑 같은 계열이죠?" 어이,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분이 아직 10대인 에리아스에게 언니라니? 그런 충격적인 발언을 너무 쉽게 하신다. 한편 그런 질문에 에리아스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전 그냥 단지 남자가 무서워서……." "그럴니까요! 그게 바로 레즈의 피가 흐르는 거예요!" "……." "그러니 언니, 결혼해요." 뭔가 민호와 닮은 이론이다. 저분, 남자가 무서워서 이야기 안 하는 걸 왜 레즈 계열로 바꿔 버리는 거지? 저 황당무계하고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론은 민호 전용인데. 흠. 그리고 그 순간, "그, 그래도 가까이할 수 있는 남자도 있어요." "뭐라고요? 어떤 쓰레기 같은 남자예요?!" "……." "어디 갖다 버려서 묻어 버려야 될 남자냐고요!" 저기요, 왜 갑자기 저를 묻으세요? 네? 그리고 왜 쓰레기가 되어 버려야 하는 겁니까. 에리아스와 단지 이야기가 가능한 유일한 남자라는 이유로? 너무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그때 에리아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주, 주인님이요." "주인님?" "네, 그분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 "머, 멋지신 분이에요." 두근두근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다른 말 다 빼고 딱 한마디, 에리아스의 '멋지신 분'이라는 말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저런 보호 본능 자극 미소녀가 나보고 멋지대. 으아! "참고로 형님은 저기서 몰래 지켜보고 계십니다." "……!" "……!" "야, 이민호!" 그때 민호가 귀신같이 나타나더니 진짜 몰래 훔쳐보고 있던 나를 가리켰다. 저 개자식, 나의 비기를 선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언제 회복이 완료되었단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 "절대 의도적인 건 아니야." 불그스레해지는 에리아스의 얼굴. 내 모습을 본 에리아스는 마구 당황하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에리아스에게 고백한 그 여자가 내게 터벅터벅 오더니 말을 내뱉었다. "쓰레기 같은 남자." "……." "짐승 같은 남자." "……." "이 인류에서 사라져야 할 남자 같으니!" 연속해서 악담을 퍼붓고 사라졌다. 나 한 거 없는데, 왜 내가 저런 악담을 들어야 하는 거냐?! 그것보다 더 괘씸한 건……. "이민호, 개……." "……."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더럽게 빠르네. 이건 말 그대로 빛의 속도? "하아……." 한쪽에서 한숨을 퍽퍽 쉬고 있는 에리아스. 보는 내가 안타까울 정도다. 다른 여자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거절했을 거다. 하지만 우리 에리아스는 제대로 거절하지 못한 채 저렇게 한숨만 퍽퍽 쉬고 계신다. 난 그런 에리아스에게 물었다. "괜찮아?" "아." "그냥 거절하면 되잖아." "그 ,그래도……." "……." "상처를……." 보호 본능 완전 제대로의 포스를 풍기신다. 정말 민호의 뻔뻔함을 1그램만 닮았어도 저러지 않을 건데. 너무나도 착하고 순수하다. 휴우. 난 그런 에리아스에게 말했다. "그럼 내가 도와줄게." "저, 정말요?" "응." "고맙습니다, 주인님!" 내 말에 에리아스의 얼굴이 급격히 환해졌다. 뭐, 내가 챙겨야지 누가 챙기겠냐? 간단하게 그런 레즈 아줌마는 내가 무찔러 주지! "짐승!" "……." "아멜라(이곳에 서식하는 몬스터로, 구더기와 비슷한 종류임) 같은 더러운 놈." "……." "메리타운(이곳에 서식하는 생물로, 상당한 악취를 풍김) 보다 더 냄새 나는 놈." "……." 나를 보자마자 온갖 욕을 해 대는 그분 때문에 정말 땀이 삐질 흘러나왔다. 도대체 내가 뭘 했는데 짐승에다가 아멜라, 메리타운 등 이 곳에서 제일 인생 막장인 애들과 나를 비교하는 거냐? 내가 뭘 잘못했다고! 하지만 저 정도의 비난은 예상했다. 그리고 이 한마디면 끝나겠지. 우후후! 난 당당하게 말하였다. "에리아스는 제 것입니다." "……." "……." 나의 한마디에 에리아스랑 그 레즈 언니(?) 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뭐지? 의미를 잘못 알아들은 것 같은 이 분위기는? 절대 이상한 의미가 아니다. 그냥 단순히 애인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난 오해를 풀기 위해서 황급히 말했다. "아,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제 애인이라는 말이에요!" "주, 주인님!" 이런 나의 말에 급격히 당황하는 에리아스. 물론 나도 조금 쑥스럽다. 그렇지만 에리아스를 위해서다. 저런 변태 레즈 언니를 당당하게 무찌르려면 이 정도는 필수다. 하지만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걸까? 그녀의 한마디는 충격적이시다. "제가 알 바 아닌데요." "……." "애인이 있든 없든 저 언니에게는 레즈 본능이 있어요." "……." "그 본능을 제가 일깨워 드리는 거예요." "……." 아니, 저기요. 무슨 에리아스에게 레즈 본능이 있는 겁니까. 제가 지켜봤지만 그런 본능 따위는 죽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단순히 남성 공포증이지. 레즈 본능이라니, 좀 당혹스럽다. 한편 그런 말에 에리아스도 당황하며 말했다. "저, 저는 그런 취미는……." "아니에요! 언니는 저와 같은 냄새가 나요." "……." "순결한 냄새가!" 이건 무슨 울트라가 저글링한테 쥐어 터지는 소리냐? 차라리 민호가 순수하다는…… 건 좀 그렇고, 어쨋든 이건 말이 안 된다. 레즈한테서 순결한 냄새가 난다니! 나 장담하는데, 저분 민호과다. 물론 정신세계가 18차원인 전설적인 민호님에게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호에게는 치욕(?)이겠지? 하지만 저분도 예사로운 분은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어서 와요, 언니." "……." "저랑 불꽃적인 뜨거움을 느껴요. 저 더럽다 못해 치졸하고 상대할 가치조차도 없는 인간은 잔인하게 지근지근 밟아서 불태워 버리고요." 도대체 제가 뭘 잘못한 건데요? 잔인하게 지근지근 밟아서 불태우라니, 온몸에 오싹한 한기가 돌았다. 그만큼 표현 자체가 엽기 그 자체다. "저, 저기, 그건 말이 심한……." "언니, 저 사악한 남자가 뭐 볼 게 있어요?! 저 얼굴로 얼마나 많은 여자를 가지고 놀았을 것 같아요?!" "……." "아마 심심하면 여자를 겁탈하고 버리는 저런 쓰레기 같은…… 삐리리리(모자이크 처리)!" 너무 심한 욕이라 내 머릿속에서 자체 모자이크 처리를 하겠다. 모두 양해를 부탁한다. 어찌 됐든 난 완전 찌꺼기가 아닌 찌꺼기 분리대에서 남은 왕찌꺼기로 분리하는 그 분, 그렇게 한 10분이 지났나? 난 막 흥분하는 그분을 향해 간단하게 한마디 던졌다. "아무리 그래 봤자 저희 둘은 사랑한다는 거." "……." "포기하세요." "……." 나의 말에 노려보는 그녀.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말문이 열렸다. "좋아요. 포기할게요." "……." 어라? 이건 내가 예상치 못한 반응인데? 분명 반발이 있을거라고…….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그럼 그렇지, 그냥 순수하게 승낙할 리는 없지. 그녀의 말문이 열렸다. "당신이 한 여자만을 사랑한다는 걸 증명하세요." "……." "자신 없나요?" 갑자기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물론! 뭐든지 자신 있어. 난 순수하거든(?)." 방금 전에 내가 말했다시피 난 순수함의 결정체이다. 믿든 안 믿든 그건 강요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내가 아무리 순수해도 정말 땀이 삐질 나온다. 솔직히 말해 난 순수함이 약 99.9%다. 자꾸 노려보지 말자. 쑥스럽다. 어찌 됐든 난 순수함이 99.9%다. 그렇지만 여기에 오면 순수함이 100%인 남자들이라도 분명 미칠 듯 당황할 거다. 그 이유라면……. "오빠." "아이잉." "안아 줄게요." "잘생기셨다." "헤헤." "어때? 나 먹고 싶어?" "화끈하게 놀까?" "나 테크닉 좋아." "오래갈 수 있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자 수십 명이 속옷 차림, 즉 팬티와 브래지어만 입은 채 나를 마구 유혹하신다. 그것도 다들 한 인물 하시고 말이다. 그뿐 아니라 그중에는 19세 미만이 들어서는 안 되는 언어도 심히 포함되어 있고 말이다. "견디세요. 당신이 진정 언니를 사랑한다면 말이에요." "……." "후훗." 저 악마 같은 여자! 이건 의도한 게 분명하다. 이런 여자들 사이에서, 그것도 속옷 차림의 여자 수십 명을 포진시켜 놓으면 성자라도 당황할 거다. 그런데 혈기 왕성한 나에게 붙여 놓다니! "아웅, 더워." "헉!" 그때 갑자기 덥다면서 브래지어를 풀어 버리는 한 여인의 모습에 난 잽싸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외쳤다. "할렐루야!" "……." "……." "……." "저를 구원하소서어어어!" "……." "……." "……." 나의 이상 현상에 순식간에 침묵이 흐르지만, 그걸 상관할 여력이 없다. 단지 이 알 수 없는 세계를 탈출하고 싶을 뿐. "아이, 귀여워." 뭉클. "……." 그때 누군가가 나를 껴안았고, 내 머리에 무언가 출렁거리는게 느껴 졌다. 그것도 생으로! 아마도 방금 전 브래지어를 벗은 그 상체 누드의 여자 분이 나를 안은 걸로 추측한다. 그래서 생으로……. 아아악! 막 피가 역류한다. 거짓말 안 하고 난 이런 데 정말 약하다. 저번에 이리스의 나체를 보고 출혈 과다로 사망한 일에 비추어 보면 알 테다. 그만큼 나는 면역력이 약하다. 그 순간이었다. 스르륵. 스르륵. 스르륵. 뭔가가 벗겨지는 소리와 내게 달려드는 촉감들……. 난 그 느낌을 끝으로 피가 역류하면서 쓰러졌다. 다행히도 죽지는 않았다. 다행인 건가? 어쨌든 죽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치자. 침대에 누워서 종이로 코를 막고 있는 나를 레즈 언니는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에리아스에게 말했다. "저게 남자라는 동물이에요." "……." "만약에 저 였더라면 견뎠을걸요?" "……." 그건 댁이 여자니까 그렇지. 아니, 솔직히 말해서 견딜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나를 무시무시한 악당으로 만드는 이분, 분명 비웃고 계신다. 아아악, 누가 이 상황을……! "제가 제안 하나 하죠." "민호!" 그때 마치 구세주처럼 나타나신 민호 님. 민호는 나를 보고 싱긋 웃더니 그 레즈 언니에게 말했다. "만약에 이걸 견디신다면 저희 쪽에서 물러나죠." "야, 이 미친 자식아!" 민호가 자기 마음대로 계약을 해 버렸다. 하지만 이런 내 반응에 민호는 당당하게 말했다. "자신 있습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 "부탁드립니다." 아니, 별로! 믿을 인간을 믿어야지, 하필 너라는 놈을 믿으라는 사실이 제일 찜찜하고 기분이 더럽다. 차라리 지나가던 달팽이 아저씨가 100미터를 2초대에 돌파한다는 게 더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민호는 나를 너무나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크윽! "좋아요. 무슨 도전이든지 받아들이죠." 그때 레즈 언니가 승낙했다. 즉, 나의 의사 따위는 무시되어 버리는 거다. 어찌 됐든 순간적으로 18차원 정신세계의 민호와 차원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그 레즈 님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민호가 먼저 제안을 했다. "저랑 야설에 대해 토론을 하죠." "……." "……." 나와 에리아스는 그 말에 굳어 버렸다. 이건 단순이 네놈이 즐기려고 하는 거잖아, 이 변태 자식아!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뭐 , 좋아요. 그런 건 하찮거든요. 저도 다 이미 굴러 본 몸이어서요." "……." 과감히 야설에 대한 토론을 받아들이는 레즈 언니, 특히 마지막 말이 걸렸다. 상당한 유경험자(?)라는 건데? 저런 뻔뻔함을 가졌으면……. 그 순간 민호가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귓속말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그 여자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면서 외쳤다. "이 더러운 남자들! 난 가겠어요!" 그러고는 그대로 대결을 포기하신다. 어라?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을 하면 저 이상한 레즈 님을 단숨에 포기하게 만드는 거지? 난 그런 눈빛으로 민호를 바라봤고, 민호는 내게 미소를 지으면서 한마디 내던졌다. "사랑스러운 말이었습니다." "……." 사랑스러운 말을 들으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냐? 그 사랑스러운 말이 뭔지 알고는 싶지만, 알아 봤자 나만 정신적으로 더럽혀질까 봐 그냥 안 들으련다. 변태 자식! 제4장 [갑부가 되는 법?] 난 생각한다. 단숨에 갑부, 즉 재벌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작전명은 '한 번에 끝내자, 장땡모드!'다. 그 모드에 필수인 건 아무리 봐도 자연의 힘을 마스터하는 것과 막대한 자금뿐이다. 자연의 힘을 마스터하는 건 민호가 그 신이 만든 야설을 찾기 전까지는 무리고, 그렇다면 남은 건 돈 버는 법 뿐이다. 물론 '무엇이든지 들어드립니다'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뭔가 획기적이고 이것보다 더 많이 돈을 벌 수 있는 걸 원한다. "새끼 치죠." "……." "새끼를 쳤으면 합니다." 뭘 쳐? 새끼를 쳐? 그게 뭔 말이냐? 난 민호의 알 수 없는 전문 용어에 머리를 돌려 봤지만, 이해가 안 갔다. 난 순수해서 말이다. 왜 모두 나를 노려보는 느낌이? 흠. 그때 민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단계를 하자는 거죠." "……." "한 번만 잘 새끼 치면 대박 납니다." "……." "형님도 들어 보셨을 겁니다. '새끼 잘 친 자 부흥하리라' 라는 명언을요." 저기 민호 님, 전 그런 말은 들어 본 적도 없거든요? 그리고 '새끼 잘 친 자 부흥하리라'라는 명언,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안 열린다. 여기서 혹시나 자신이 너무나도 깨끗하고 청렴하고 맑은 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이해를 못한 분이 있을까 봐 간단하게 풀이하겠다. 새끼 치다. 다단계를 하자. 한마디로 간단하게 말해서 '사기'다. 다단계 루트라고……. 아, 더 이상 언급할 수는 없다. 나의 이미지에 큰 손상이……. 어찌 됐든 상당히 저질적인 사기라는 것만 알아두자. 그런데 그런 사기를 저놈은 권장하고있다. 아이고, 머리 아파라. "어차피 범죄의 정점에 서신 형님이십니다. 이런 건 범죄 축에도 못 들죠." "……." "형님 명성에 비하면 귀여운 행동?" "제발 날 나쁜 놈으로 만들지 마라. 응?" 내가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민호는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더니 펼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표정이 굳어졌다. "형님의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 민호가 꺼낸 건 나의 대형 현상 포스터였다. 왜 저 자식은 저걸 무겁게 들고 다니는 거야. 응? 그런 거 가지고 다닐 여유 있으면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야설이라도 들고 다니든가! 그때 민호가 말했다. "야설도 좋지만 이것도 좋습니다." "……." "보면 감동적이니까요." 남의 현상 포스터 보고 감동하는 네 모습, 나도 너무 감동스럽다. 이 미친 자식아! 그래, 저놈 말에 귀를 귀울인 내가 죽일 놈이다. 죽일 놈! "아님……." "말하지 마!" "건전한 건데요." "……." "진짜 건전한 겁니다." 내가 미리 말하기도 전에 봉쇄해 버리자, 나를 애타게 바라보면서 건전한 거라고 우기는 민호. 난 여기서 선택해야 했다. 저놈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무시해야 하는지 말이다. "형님……." "……." "부탁드립니다." "……." "형님……." 마치 내가 저 말을 안 들어주면 인간 말종이 될 것 같은 너무나도 애절하다 못해 슬프고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민호. 여기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을 것 같다. "말해." "감사합니다." 진짜 거부하고 싶다. 하지만 저 이상야릇한 눈빛 때문에 거절도 못하겠고 정말……. 하아. 그때 민호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일명 야바위라고 아십니까?" "……." "간단하게 말해 세 개의 컵만 있으면……." 아아, 그냥 듣고 싶지도 않다. 한마디로 또 사기 이야기다. 새끼, 아니 다단계 사기에 이어 야바위를 추천하는 민호, 그리고 그 두 가지의 공통적 특징은 사기다. "하아……." "형님, 어떤가요?" 나의 한숨에 민호가 의견을 물었다. 난 그런 민호를 보면서 말했다. "거듭 말하지만 난 사기라든가 범죄 이런 행위를 하지 않는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 네가 제일 잘 알잖니?" "풋." "……." 뭐냐, 그 비웃음은! 민호는 웃으며 말했다. "너무 구라를 잘 치셔서 잠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 구라라니! 이 자식을 진짜, 콰악! 요새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는 거냐?!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표정이 굳어진 민호는 약간 목소리를 깔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형님, 형님은 이미 5억 금화가 걸린 초특급 범죄자입니다." "……." "그런데 그런 범죄자인 형님이 범죄를 하지 않는다니요." "야, 그거 내가 하고 싶어서 했어? 나도 진짜 억울한 몸이라고!" 진짜 억울해서 눈물이 나온다. 내가 자진해서 공주하고 성녀(?)를 납치한 거냐? 그리고 자진해서 조금 과격한 행동을 한 거냐? 절대 아니다. 난 오히려 피해자고, 상황에 휩쓸렸을 뿐이다. 그러다가 흘러 흘러 5억 금화라는 사상 초유, 아니 이 게임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아무도 깰 수 없을 거라는 금단의 현상금 영역에까지 온 거다. 한마디로 진짜 피해자는 나라는 거다. "그런 변명하는 모습 역시 대형 범죄자인 만큼 리얼……." 난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주둥아리를 나불거리는 그놈을 그대로 눕혔으니까. 여기서 이상한 상상은 금지! 황금의 도시. 내가 꿈꾸는 도시다. 물론 허황되다 못해 유치한 상상이라는 것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냥 이곳에 황금의 도시라는 게 존재했으면 하는 상상 정도는 허락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황금의 도시에 있는 건물을 다 때려 부숴서, 아니 말이 격했다. 그냥 정중하게(?) 부숴서 가져 오면……. "재벌인 건가?" 물론 이미 주인이 있다면 당연히 범죄다. 하지만 보통 황금의 도시 같은 데 가면 사람 한 명도 없더라. 이미 그거 만든 사람들은 이 세상과 이별하고 남은 건 황금뿐이다. 그러니 당당하게 때려 부숴서 가져도 상관 없다(민호의 이상 이론에 감염 기가 보임). 어찌 됏든 그런 세상이 있다면 난 당장 재벌이 될 텐데 하는 조금은 망상 어린 생각도 해 본다. "이 세상엔 황금 도시가 존재한다! 어, 어라?!" "……." 그때 갑자기 웬 개소리, 아니! "야 현무!" "네." "바, 방금 뭐라고?!" "……?" "무슨 황금 도시가 존재한다고 했잖아!" "제가요?" "그럼 누가 해!" "전 그런 기억 없는데요." "아니, 방금 전 네가……." "……?" 저번에 전설의 약 먹고 조금 똑똑해진 것 같더니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거냐?그런 거냐? 제길! 저 바보 거북이 자식, 또 사람 염장지르기 시작하네. 차라리 몰랐으면 몰라도 갑자기 황금 도시가 존재한다고 외친 후 기억상실증이라니…….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 현무는 저래 봬도 보고의 지식 거북이다. 한마디로 저 안에 있는 내용은 다 진실이라는 거다. 그러니 지금 저놈은 진실을 말한 거다. 하지만 결론은……. "뭐냐?" 이거다. 결론은 '뭐냐'라고나 할까. 저 자식은 단순히 그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나를 흥분시켰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난 잘 안다. 지금 자기 머리 위에서 물음표를 동동 뛰우는 현무를 말이다. 처음에는 패면 기억난다는 소리를 듣고 정말 했고, 그 이후로는 기억을 찾아 준다는 특별 비법들(말하지는 않겠다), 예를 들면 아주 약간 거시기 한 음식들? 어찌 됐든 모든 걸 다 처방해 봤지만 결국엔 지지였다. 말 그대로 굿바이 게임이랄까? 저 자식에게서 다시 무언가가 튀어나오기를 기대할 바에는 옆에서 자기 엉덩이를 황홀하게 만지는 청룡에게 기대하겠다. 그런데 그 순간! "저 알아요!" "엥?" 갑작스럽게 청룡이 손을 들면서 한마디 했고, 난 그 말에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안다고? 할 줄 아는 건 자기 엉덩이를 사랑하고 영혼 조차도 사랑해서 심각한 고민밖에 못하는 네가 안다고?! 왜 할 말이 없는 거지? 어찌 됐든 난 안다는 말에 부리나케 청룡에게 달려갔다. "그래? 어, 어디니. 황금 도시라는 곳은?" 두근두근. 심장이 심하게 뛰었다. 황금 도시에 가서 그 건물들 다 때려 부수고……. 흐흐흐, 하하하! "황금 도시는 모르는데요." "……." "황금 도시가 어디죠?" "야, 방금 전에 안다며! 바보 거북이랑 어울리더니 너도 바보 된 거냐?!" "아, 아니요. 전 황금 도시가 아니라 황금 골렘을 안다고요." "황금 골렘?" 황금으로 도배하신 골렘을 말하는 건가? 온몸에 황금을 도배하신 그분? "대충 크기가 50미터 정도일 거예요." 50미터?! 난 그 말에 곧바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저기에서 저기까지 50미터니까 황금 골렘의 크기가 50미터라면……! "장난 아니다?" 황금 골렘. 청룡의 설명에 의하면 황금으로 이루어졌고, 꽤 난감한 자식이다. 상당한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죽도록 패야 한단다. 그리고 웬만한 존재 같은 경우는 아예 대미지가 0이 들어가고. 그래서 청룡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스터가 아무리 초괴수의 데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이 황금 골렘이라는 야도 최고수의 피와 방어력을 가지고 있어요. 못해도 10시간의 장시간 싸움이 필요할 거예요. 물론 승리는 마스터가 하겠죠.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무지 걸린다는 겁니다.' 간단하게 말해, 랭킹 유저들 몇백 명이 모여서 사오 일을 다구리를 쳐야 할 정도? 그만큼 엄청난 방어력과 피를 가진 괴물 자식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공격과 속도 면에서는 젬병이라는 거다. 하지만 이것도 내 기준이지, 다른 사람 기준에서는 엄청난 공격과 속도라는 거다. 그러니 이 황금 골렘을 잡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아니 , 10시간 동안 걔랑 놀 생각은 없으니까. 그래서 결론은……. "내가 상대하는 사이에 나머지가 몰래 가서 금을 뜯어내자." 이런 심오한 작전이다. 그러니 간단하게 말해, 내가 그 황금 골렘과 노는 사이에 민호와 청룡이 투입되어서 금가루라든가 금을 가져오는 거다. 여기서 왜 현무의 이름을 제외했는지는 모두 알 거라고 믿는다. 그 바보 거북이를 투입했다가는 100% 자기가 할 일을 까먹는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작전명을 심히 말아먹다 못해 볶아서 드실 확률도 있기에 제외했다. 모두 내 마음 알 거라고 난 믿는다. 흐음. 어찌 됐든 이 작전의 핵심은 민호와 청룡이다. 그들이 과연 얼마나 열심히 금을 떼어내는지가 포인트니까. 특히 난 한 존재에게 기대가 크다. 그건 바로……. "민호야 , 알지?" "저를 믿어 주십시오." "그래, 믿어 주마.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건 절대적으로 믿어 주지." 절대 다른 건 저 자식을 안 믿는 나다. 하지만 단 하나, 불법적인 일에서만큼은 저 자식이 최고다. 골렘이기는 하지만 일단 금 떼는 작업이다. 포괄적으로 불법적인 일에 해당된다. 그리고 대충 봐도 저 자식은 어디선가 금 같은 것을 잘 우려낼 것 같지 않은가? 그러니 황금 골렘에게서도 금을 잘 우려먹을 거다. 나의 무한한 신뢰. 흠. 골렘의 전당……인지는 모르겠고 난 청룡의 안내로 그 엄청 큰 50미터짜리 황금 골렘이 있다는 동굴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어디 있는 거냐?" 아무리 눈을 비비고 비벼도, 맹렬히 돌아다녀 봐도 청룡이말한 황금 골렘은 안 보였다. 이건 무슨 일인 게냐?! 난 슬며시 청룡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물었다. "황금 골렘은?" "……?" "여기에 황금 골렘이 있다며!" "제가 언제요?" "……." 빠직. 청룡의 한마디에 내 머리의 혈관들이 난리쳤다. 뭐? 제가 언제요? 하아, 하아, 하아!(이상한 신음 아니다)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거냐? 지금 나를 가지고 놀았다는 거냐? 응? 으악! 그때 버서커 되기 1초 전, 청룡의 말문이 열렸다. "전 있었다고 한 건데요." "……." "이미 잡힌 지는 한참 됐어요." "……." 그러니까 네 말을 요약하자면 여기에 황금 골렘 님이 계셨다. 하지만 그 황금 골렘 님은 이미 잡히셨고, 넌 이제 아무도 없는 이 장소로 나를 데려왔다는 거냐? 그런 거지? "그렇죠." "……." 그때 또 내 머릿속을 침해하는 민호 자식.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흐흐흐." 저 자식이 결론적으로 나를 낚았다는 거다. 순진무구해서 말만 하면 낚이는 나를 말이다. 으하하하. 그런 거다. "왜, 왜 이러세요?" 그때 내 눈동자가 변하자 청룡이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난 그런 청룡을 주시한 채 한마디 던졌다. "민호야." "네, 형님 잘 알았습니다." "자 , 잠깐! 무슨 짓……?" 하지만 이미 민호는 청룡을 제압했다. 그러고는 뭐, 상상은 자유라지요. "하아……." 긴 한숨만이 나온다. 솔직히 말해, 내 주제에 재벌을 꿈꾸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정말 되는 일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형님의 운발로는 순수하게 일해서 뭔가대박터지는 건 절대, 절대, 절대, 절대 불가능할 거라고 사료됩니다." "……." "죽어도, 죽어도, 죽어도 안 된다는 말이죠." 저기, 민호 님. 잘 알고 있거든요? 굳이 '절대'를 그렇게 강조하지 않으셔도, '죽어도'를 그렇게 강조하지 않으셔도 잘 알고 있어요. 근데 그렇게까지 강조해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려야겠니? 하아.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그때 민호가 말하였다. 난 그런 민호를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은행 털자고?" "아뇨." "……." "비슷한 말이기는 하지만 아닙니다." "……?" 뭔 말이냐, 비슷한 말이기는 하지만 아니라니? 그때 민호가 지도를 꺼내더니 쫙 펼쳤다. 그러고는 말했다. "은행을 터는 건 저질적인 행동이란 걸 알았습니다." 오오, 민호 군! 민호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한마디로 범죄를 저지르는 자신에 대한 반성이라는 건가?! 그런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말을 뱉지 않을 테니까. 민호야, 그래도 양심은 남아 있었구나! 아니 ,정확히는 나의 순수함(?) 이 저 녀석을 교화시킨 거다. 아아, 무지 감동적이다. 눈물까지 나올 정도로! 한마디로 난 악의 중심축을 마침내 선하게 만든 거다. 그 누구도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을 내가 해낸 거야! 이로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선은 악을 이긴다? 후훗!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금세 깨진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느끼는데, 말은 끝까지 다 들어봐야 하는 것이다. "은행 건물 자체를 뽑아서 가져오는 겁니다." "……." "쫀쫀하게 은행을 터는 건 아름답지 못하니까요." 제 5장[ 비상사태 ] "헉! 거짓말!" 난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믿고 싶지 않았다. 수십 번이나 볼을 꼬집어 봤고, 꿈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눈을 감았다 떴지만 그대로였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내 앞에 예진이가 있다. 하지만 예진이의 모습만 가지고 내가 이렇게 지랄발광을 할 리는 없다. 날 이렇게 만든 원인은 예진이 옆에 있는 웬 남자 한 놈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 놈과 즐겁게 이야기하는 예진이……. 물론 연인들이 주로 하는 스킨쉽, 즉 손을 잡는다든가 팔짱같은 건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저 분위기만으로도 마구 우울하다. 아악! 이건 아냐! "하아……." 한숨만이 나를 점거하신다. 어제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절대 남자 친구는 아니라고, 절대 예진이랑은 그런 사이가 아닐 거라고 몇 번, 아니 몇백 번 이나 마음을 다잡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제 그 두 사람은 너무나도 다정해 보였다. 물론 내가 오버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본 나로서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 난 내머리를 붙잡았다. 예진이 정도의 천사라면 분명 긴장해야 했는데 그놈의 게임 정복에 미쳐 버려서, 아니 게임 정복을 하기 전에 이미 예진이가 다른 남자에게 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배제해 버린 거다. 젠장!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한 내가 정말 바보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그건 바로 저 둘, 무슨 사이일까? 예진이는 분명 외동이라고 알고 있으니 남매일 리는 없고……. 아아악! "꺅! 예진이 너, 요새 남자 친구 생겼어?" 그때 예진이를 향해 항상 도청기처럼 주시하던 내 귀로 들려오는 목소리, 그리고 그 질문에 당황하는 예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 무슨 소리야?" "요새 더 예뻐진 것 같아." "……." "안 그래도 인간의 외모가 아닌데, 여기서 더 예뻐지다니! 분명 남자 친구가 생긴 거야." "아, 아니야." "아니야! 뭔가 의심스러워." 덜컹. 그때 내 심장이 마구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에게 애인이 생긴다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다. 당연하게도 여자 입장에서는 더 잘 보이기 위해 신경을 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확실히 더 예뻐진다. 그리고 지금 자세히 보니까 확실히 더 예뻐졌어? 아악!그럼 정말 남자 친구가 생긴 거야(재현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 뿐)?! 방과 후, "예진아, 같이 가자!" 예진이의 단짝 친구인 민정이가 다가오면서 하는 말에 예진이는 미안한 듯 대답했다. "오늘 약속이 있어서……." "약속?" "응." "뭐, 그러면……." 약속? 약속! 그 약속의 대상이 짐승보다 못한 그 남자인 건가? 그런 거야?! 아아악! 수, 숨이! 머, 머리도! 순식간에 난 극도의 흥분 상태가 되었다. 그런 내 모습을 발견했는지 예진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내게 다가와 물었다. "어디 아파?" "아, 아니……." "오늘 아침부터 약간 이상한 것 같은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그냥 컨디션이……." "건강이 최고래. 들어가서 푹 쉬어." 나를 위해 진심으로 해주는 말,하지만 저건 단순히 친구로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예진이는 데이트를 하러 가는……? 아니야, 오버야! 그래, 확정된 것도 아니잖아?! 괜한 망상일 수도 있는 거고, 내가 삽질하는 것일 수도 있는 거다.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거야! "아, 재현아, 나 먼저 갈게." 그때 그 말과 함께 시간이 촉박했는지 예진이가 재빠르게 한마디 던지고 나갔다.난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아니, 난 단순히 진실을 알고 싶을 뿐, 절대 미행 따위의 저질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난 스토커가 아니니까. 단순히 정말 진실만을 알기 위한 순수한 의도인 거다. 그냥 그런 거다. 묻지 마라, 어찌 됐든 난 진실을 파헤치러 떠난다. 다시 말하지만, 미행이 아니다. 진실을 밝혔으니 절대 오해하지 말도록! "……." 오 마이 갓! 나의 마음속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건 예진이가 저번에 우연치 않게 본 그 남자를 만나는 시점부터였다. 믿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저 둘의 사이는 미묘한 거라는 사실 말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리고 다급히 만나야 할 상대라니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남자 친구'라는 말밖에 말이다. "……." 마치 세상이 날 버린 것 같고, 삶의 희망이나 모든 게 사라지는 아득한 기분. "오빠?" 그때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흑, 민혜야!" 난 깊은 생각 같은 건 할 새도 없이 우연히 만난 민혜를 그대로 껴안아 버렸다. 그러자 민혜는 당황하는 어조로 물었다. "무, 무슨 일이야?!" "모든 게 끝났어!" "진정해, 왜 그래?" "마이 러브 다이!" "……." "다이 러브! 다이, 다이!" "……." "세상은 날 버렸어!" "……." "니하오마(……)!" "……." "왜 그러니?" 예진이의 사촌오빠인 영진이는 갑자기 한 곳을 바라보더니 멍해지는 예진이의 모습에 물었지만, 예진이는 듣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한 곳을 바라보았다. 영진이도 무슨 일인가 하고 예진이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상당한 외모의 남자와 예진이 이후로 처음 보는 엄청난 미소녀가 서로 껴안는 장면이 보였다. 곧 영진이는 예진이의 어깨를 툭 치면서 물었다. "괜찮은 거니?" "아! 죄, 죄송해요. 오빠." 그제야 정신을 차린 예진이의 모습에 영진이는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는 사이야?" "아, 아니에요." "……." "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도 급격히 고개를 숙이는 사촌 동생의 모습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그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 저번에 재현이를 찾아온 여자 아이였다. 그것도 상당히 예쁜 여자 아이. 그리고 그런 여자 아이랑 길거리에서 과감히 안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재현과 그 여자 아이가 말이다. 도대체 이런 현상은……. '여자 친구?'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대담하게 껴안는 상황이 말이다. 단순히 아는 동생을 길거리에서 껴안는다? 말이 안 된다. 그러니 둘이 특별한 사이라는 건 확실한 거다. "진정해." "마이 러브 다이!" "오, 오빠!" "……." 난 그때 사랑의 죽음을 외치고 있었고, 그런 내 모습에 민혜는 강하게 한마디 했다. 그제야 약간이나마 정신이 돌아왔다. 잠시나마 패닉 상태가 되어 버려서 내가 뭔 소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민혜는 어느 정도 진정한 나를 보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내가 이 모양이 된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난 그 말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 를 떠올렸다. 예진이가 함께 있던 남자와의 모습을 말이다. "아아악! 거짓말이야!" "지, 진정하라니까. 또 왜 그래?" "으악!" "일단 집으로 가자! 응?" "집은 필요 없는 거야!" "……." 약간 미쳐 버린 내 모습에 민혜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팔을 잡아끌었다. 난 이미 힘 따위는 없어진 지 오래여서 그냥 줄줄 끌려갔다. "그러니까 오빠 말은……." "응, 예진이한테…… 남자 친구가, 흐흑……." "……." 흐느끼는 나와 당황하는 민혜. 집에 도착한 이후 계속 이 모양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민혜뿐이고, 난 그런 민혜에게 이야기를 할 뿐이다. "오빠." "……?" 갑자기 진중한 어조로 말하는 민혜, 잔뜩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곧 민혜의 입이 조심스레 열렸다. "물론 지금 이런 상황에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게 싫어." "……?" "하, 하지만 나, 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걸." 무슨 소리일까, 놓치고 싶지 않다니? 민혜의 알 수 없는 말에 난 좌절하던 상황도 잊고 당황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 난 오빠를 좋……." "좋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는군요." "꺅!" "……." "흐음." 그때 갑자기 귀신처럼 나타난 민호를 보고 민혜는 너무나도 놀라서 주저앉아 버렸다. 나야 저 자식의 저런 귀신 템포는 이미 익숙해진 터라 놀라지 않는다만 민혜에게는 무리겠지. 그나저나……. "민혜야, 무슨 말?" "아, 아니야." "……?" 방금 전 그녀의 말이 꽤 궁금했지만 본인이 아니라니까. "뭔 일이냐?" 난 민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안 그래도 우울한데, 저 자식은 무엇 때문에 나를 찾은 거냐. "할렐루야 소식입니다." "……?" 할렐루야 소식? 그건 뭐 하는 소식이냐? 참으로 다양한 언어를 지어내는 데는 정말 천재를 넘어 초 천재이다. 의미조차도 잘 파악이 안되는 저런 말을 일상화시킬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해. 한편 민호는 큰 소리로 말했다. "특별 소식! 예진 누님이 만난 남자는……." "……!" 민호의 한마디에 난 긴장했다. 그 남자는? 응? 누군데? 누구인 거야? 역시 남자 친구……? "사촌오빠랍니다." "……." "에?" "한마디로 형님이 실수로 넘어지는 바람에 그런 미묘하다 못해 미묘한 장면이 연출된 거죠." "정말인가요?" "정말입니다." "……." 예진이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밝아졌다. 어제 본 그 모습이 단순히 실수로 일어난 장면이었다니, 정말 다행이다. 정말! 예진이는 안심한 어조로 말했다. "전 재현이가 더이상 저를……." "아닙니다. 형님은 아직 누님을 사랑하십니다." "아, 저기, 죄송한데 언제까지 이렇게……." 예진이는 궁금했다. 민호의 말대로라면 통통볼처럼 튕겨야지 나중에 오래간다는 말을 믿고 이러고 있지만, 그래도 내내 불안한 게 사실이었다. 혹시라도 재현이가 마음을 거둘까 싶어서 말이다. 그 말에 민호는 눈을 감더니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저를 믿으십시오." "……." "축복이 내릴 겁니다(저주가 내리겠지)." "도대체 오빠의 생각을 모르겠어!" 민혜도 이번에는 단단히 화가 났는지 강한 어조로 말했고, 그 말에 민호는 눈을 감고만 있었다. 민혜의 말이 이어졌다. "도대체 목적이 뭐야? 오빠를 방해하기도 하고, 나도 방해하고, 또 둘이 잘되게 해 주기도 하고! 도대체 오빠의 생각 자체를 1프로도 이해 못하겠어!" 민혜의 그런 폭풍 같은 말에 민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모두를 휘청거리게 하는 한마디를 던졌다. "비밀입니다." 제6장 [사신] "사,살려주세요!" "흐음." "전 아직……. 제발요!" 내 앞에서 마구 공포에 떨면서 의뢰하는 이 남자. 20대 중반으로, 그리 나이를 먹은 분은 아니다. 그런데 이분이 왜 이렇게 의뢰를 하면서 엄청난 공포에 떠는지 궁금할 거다. 그건 바로……. "사, 사신이 저를, 5일 뒤에 저의 영혼을……!" "흠." "살려 주세요!" 사신에게 경고 메시지를 받았다는 거다. 사신. 명계 속성의 존재로, 그들이 가진 낫은 순식간에 목숨을 가져간다고 전해 진다. 하지만 사신이라는 자들이 이렇게 경고때리고 목숨을 가져가는 분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분에게는 친히 경고를 때렸단다. 그 이유는 죽음의 공포를 미리 맛보라는 건가? 그것만으로도 이 남자가 예사롭지 않은 남자라는 사실은 알겠지만, 그건 상관할 바 아니다. 내가 들은 일은 오직 사신에 대한 이야기니까. "절 살려만 주신다면 5,000만 금화를 드릴게요!" "흠." "제발 부탁드립니다." 부들부들. 얼마나 공포에 질렸으면 말을 하는 내내 온몸을 떨고 있다. 하지만 나도 섣불리 승낙을 하기는 그렇다. 5,000만이라는 엄청난 액수를 주는데 왜냐고?! 그건 바로……. "명계의 존재." 그렇다. 사신은 명계 속성이라 일반적인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영혼체이다 보니 직접적인 영혼의데미지를 주지않는한 아무 소용이 없는 거다. 마족이나 천족, 정령들은 영혼의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인간들은 불가능하다. 자연의 힘도 직접적으로 영혼에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1억을 드릴게요! 목숨……." "살려 드리죠." "……." "저만 믿으십시오. 성공률 100%에 달하는 울트라 하이 급이 저희니까요." 아아악! 또 나도 모르게! 1억이라는 액수에 뒷일 생각 안 하고, 또 덥석 물어 버렸다. 무슨 내가 단세포도 아니고 왜 이렇게 돈만 커지면 그냥 물어 버리는 거지?! 뭔가 자괴감이 들었다. "흐음, 디재스터인가?" 사신 레헌은 검은 후드 속에서 미소가 가득한 어조로 말했고,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과연 에르카니아의 그분이 사랑하는 이유를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있으려나?" "……." 이곳 사신계를 이끌어 가는 데루자니의 얼굴엔 난감한 표정이 가득하다. 그는 사신들의 총관리자이자 사신들의 왕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여기서 엄청 권력자라는 거다. 하지만 실질적인 무력앞에서는 2인자다. 도저히 그도 한 존재만은 절대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자는 바로 사신 레헌이다. 전설의 사신이라 불리는 레헌. 그의 무력은 에르카니아의 베르자니아조차도 흠칫할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만큼 그의 엄청난 힘은 명계 역대 사상 최고인 것이다. 그리고……. "베르자니아조차도 인정한 디재스터……." 자연의 힘을 다루는 자, 그리고 베르자니아조차도 인정한 남자. 물론 저번에 시간의 흐름이라는 다소 예상치 못한 베르자니아의 힘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당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편법이 아닌 정식으로 붙으면 베르자니아조차도 승률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강한 존재, 그게 바로 디재스터다. 사신계의 역사상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레헌과 인간들 중 최고라고 불려지는 디재스터. 만약에 이 둘이 정식으로 격돌한다면? "머리 아프군."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진다. 자신이 만류한다고 사신 레헌이 그만둘 리는 없으니까. 그는 자신이 지목한 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베고 마는 존재니까. 물론 저기 상급 악령이 인간의 몸에서 기생을 하고 있다는 걸 디재스터에게 알려준다면 분명 디재스터도 난감해 하겠지만 순순히 수긍할 거다. 하지만 이건 엄연히 사신 레헌의 도발이었다. 그것은 쉽게 끝낼 수 있는 일을 굳이 엄청 복잡하게 만드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그는 디재스터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원하는 것이다. "하아, 제발 조용히 끝내야 할 텐데. 베르자니아가 인간계로 향하는 터널을 열기 위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거늘, 명계의 최강자라는 놈이 호승심에 못 이겨서……. 휴우." 그는 빌었다. 그 둘이 격돌한 파장으로 어떤 일이든 일어나지 않도록. 흠칫. "왜 그러십니까?" "아니." 긁적긁적. 난 갑작스럽게 느껴진 위압감에 고개를 돌렸고, 그 모습에 민호가 물었지만 난 금새 고개를 돌리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도 착각이겠지. 사신이라는 말에 긴장을 한 건가? "영혼에게 직접 타격을 주는 게 있기는 하겠지?" "물론이죠." 나의 중얼거림에 알아서 대답하는 민호 군. 역시 어디서 잡소문은 정말 잘도 주워 온다. 대단한 자식, 민호가 말을 이어 갔다. "뿌요뿌요라고, 그것만 착용하면 모든 공격이 영혼에 타격……." "저, 저기, 잠깐." "……?" "뿌요뿌요?" "네." "……." 뭔가 이름이 충격적이다. 뿌요뿌요라니, 아이템 이름이? 그리고 그 아이템의 효과는 모든 공격이 영혼에 타격을? 효과 면에서 보자면 엄청나게 좋을 것 같은 아이템인데 이름은 참 희한하다. "뿌요뿌요는 신급 아이템입니다." "……." "왜 그러십니까?" "아니, 다소 충격적이어서." 전설도 아니고 신급 아이템의 이름이 뿌요뿌요라니. 도대체 누가 작명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분에게 약간의 존경심이 들 정도다. 한번 들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만한 획기적인 이름을 지었으니까, 아니 , 한 분은 제외하고. 현무 씨는 뿌요뿌요든 뽀씨뽀씨든 어떤 단어든 기억 못할 거니까 말이다. "그게 어디 있는데?" "그건……." "잠깐, 민호 군." "……?" "이번에는 절대 범죄 안 저지른다. 으응?" "흠." 왠지 모르게 불안함이 들었다. 또 어딘가를 털어야 할 것 같은 이 기분, 절대 사절이다. 이제 더 이상 타락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타락의 끝에 도달했다고 사람들은 외치지만, 그렇다고 더욱 타락에 젖을 순 없어! 그렇게 난 민호를 향해 경고했고, 민호는 잠시 후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건전한 겁니다." "저기." "네, 형님." "이게 건전한 거냐?" "무지무지요." "……." 참으로 건전한 일이구나. 아니, 은행으로 통째로 뽑아서 튀자는 네놈에게는 무지무지 건전한 일 일지도. 신급 아이템 뿌요뿌요에 대해 한 여자가 알고 있다고 민호가 말했다. 그리고 그 여자의 이름은 에스탄디아. 30대 초반의 섹시함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하지만 워낙 깐깐해서 그녀에게 정보 하나를 들으려면 10년을 달라붙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의 민호 군은 말했다. "그분을 유혹해서 정보를 가져오는 건전한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비 짓이라고 해야 하나? 여자를 우려 먹는 일이다. 근데 저분은 건전하단다. 아니, 네놈은 납치도 아름다운 일이라고 하는데, 뭐 이제는 그런가 싶다. "출동." "……?" "어서 가서 정보 가지고 와." "제가요?" "……." 내가 출동이라고 외치자, '제가요?'라고 묻는 민호 군. 그럼 그런 범죄적인 일을 너 말고 누가 하냐? 그때 민호는 나를 진하게 바라보았고, 눈빛이 너무나도 진하다. 왜 나를 보는 거냐?! 민호는 여전히 나를 주시한 채 말했다. "형님." "뭐냐?" "형님도 한 범죄 하시지 않습니까?" "……." 뭔가 반박을 해야 하는데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도 사실 느꼈다. 어쩔 수 없이 범죄를 하지만 난 느꼈어. 범죄계의 혼을 말이다. 부정하고 싶다. 난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 하지만 범죄 성공률이 100%다. 웬만해서는 이런 성적 안 나온다. 했다 하면 성공이라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말 자의적으로 한 건 아니다. 상황이 계속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 순간 민호가 말하였다. "형님, 가십시오." "저기, 민호야." "네, 형님." "내가 이런 말하기는 그런데, 지금 여기서 내가 후드를 벗으면 뭔 일이 일어날 것 같으냐?" "개 떼 공습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빙고!" 맞다. 지금 난 후드를 쓰고 있지만, 만약 저분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후드를 벗는 순간 난 이 주점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거다. 난 5억 금화라는 멋진 남자였으니까. 하아! 그 순간이었다. "그럼 현무 님을 투입하죠." 그 한 마디에 난 민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가락 세 개를 펴면서 물었다. "이거 몇 개?" "세 개인데요." "아직 숫자는 볼 줄 아는 구나?" "……?" "아니, 현무를 투입하자는 네놈의 의견에 네놈이 맛이 간 줄 알았지." 맛이 가지 않은 이상 저 말은 절대 튀어나올 수가 없다. 현무를 투입하자니, 그냥 있어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두려운데 투입하자고? 말도 안 된다. "성공할지도 모릅니다." "……."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으니까요." "……." 자신의 의견을 강력히 밀어붙이는 민호. 그래, 네놈 말대로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다. 하지만 예외라는 건 무언가가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지 예외라는 말이 해당되는 거지, 현무 저 자식은 여건 발생률이 아예 없다. "어차피 시도해 봤자 해가 되는 건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오히려 현무 님의 백치미(?)에 반할 수도 있습니다." "……." 현무의 백치미? 으윽, 속이 메슥거린다. 백치미라니! 그건 아름다운 여자들이 약간 멍해 보일 때의 모습을 말하는 건데, 그걸 현무에게 적용시키다니……. 다시 말하지만 백치미라는 건 약간 멍한 느낌이지, 저렇게 1초 기억상실증하고는 별개였다. 뭐, 이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래, 해가 되는 건 없으니까." 난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현무가 여자를 꼬시는 역할로 투입된다. "헉, 이럴 수가!" 나의 눈은 동그랗게 떠졌고, 입은 쫙 벌어졌다. 세상에 기적 따위는…… 역시나 일어나지 않았다. "저게 뭐냐?" "맞고 있습니다만." "……."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군요." "……." "보통 이럴 때, 전혀 의외의 인물이 기적을 일으키는 패턴이 나와 주는데 말입니다." "민호 군, 그건 내가 말한 것 같은데? 그런 건 일말의 가망성이 있어야지만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일어나는 것 같다만." "흐음, 전 현무 님의 백치미로 한번 도전해보려고했죠." 제발 '백치미'라는 이름을 모욕하지마라. 백치미라는 단어가 너무 슬퍼서 흐느끼는 소리가 안 들리니? 그냥 동치미를 하든가. 흠흠, 저질 개그 해서 할 말이 없다. 아무튼 저렇겐 놔뒀다가는 오늘 거북이 한 마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다. 난 가만히 있는 민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두들겨 맞고 있는 현무를 어서 데려오렴." "갔다가는 저도 맞을 것 같은데요?" "……." "심히 염장을 질렀나 봅니다. 제가 보기에는 분노지수 1424% 같습니다." "동의." 지금 저 현무를 패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가히 분노의 여신이 강림한 모습이다. 한마디로 현무가 도대체 뭔 짓을 했는지 몰라도 그녀를 가히 괴수로 만들었다는 거다. "쟤 맞아 죽게 생겼는데?" "제가 동료를 버릴 사람으로 보입니까?" "응." "흐음." 난 당당하게 말했다. 니놈이라면 그런 놈이니까 가능하다고 본다. 그 순간 민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동료를 버리지 않습니다. 단지 저분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거죠." "분노가 가라앉는다?" "네." 한마디로 다 패고 나면 데려온다는 거냐? 그것 참 아름다운 동료애군. 하지만 현무가 너무 두들겨 맞는다. 차마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처절하게 말이다. 분명 이 광경의 원인은 저 자식이고 말이다. 난 민호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어서 구출해 와!" "좀만 기다리고 구출해 오면 안 될까요?" "안 되거든?" "흐음." "지금 당장 데려오렴." "흐음." "흐음만 하지 말고! 네놈이 벌린 일이니까 마무리는 네가 해. 이 자식아!" "저, 나중에 가고 싶은데요." "맞고 갈래, 그냥 갈래?" "그냥 가죠." 꼭 주먹을 쥐어야만 얌전해진다. 어찌 됐든 바로 거북이 구출하러 민호가 투입 됐다. "……." 퍽! 퍽! "으악!" "이런!" 난 바보 거북이 구출하러 갔다가 그 여인의 분노에 휩싸여서 같이 두들겨 맞는 민호를 보면서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저 여인, 얼마나 분노의 여신이 강림하셨으면 보이는 게 없나 보다. 그리고 무섭다. "마스터, 구하러 안 가요?" 그때 나를 보며 청룡이 한마디 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구하러 갈 거다. 하지만……." "하지만?" "저분 분노 다 가라앉으면." "……." 아까 민호 말대로 저분 분노 다 가라앉으면 (다 패고 나면) 구하러 갈 거다. 난 동료를 버리지 못하는 남자니까. "너무하십니다." "……." "이제야 구해 오시다니요. 섭섭함 그 자체입니다." "결론적으로는 구해 왔잖니?" "……." 그렇다 .결론적으로 구해 왔다. 물론 다 맞고 내팽개쳐진 채 있는 두 놈을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패고도 화가 안 풀렸는지 그 여자는 씩씩거리면서 나가 버렸다. 난 그걸 보고 느꼈다. 정보 얻는 난이도가 하드코어로 변경되었다는 걸 말이다. 도대체 현무 자식은 무엇을 했기에 저분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궁금하기는 하지만 물어 봤자 기억을 못할 테니 그냥 넘어 가자. "넌 회복 끝이냐?" "네." "……." 똑같이 맞았는데 병실에 누워 있는 바보 거북이와 달리 아무 이상 없이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우리의 민호 군, 정말 대조적이다. 무슨 회복 속도가 트롤이라는 몬스터보다도 더 빠르다. 진짜 저놈은 무엇으로 이루어진 유기 생물체지? 확실한 건 평범한 존재는 절대 아니라는 거다. 그때였다. "형님,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청룡 님을 투입하죠." "……." "반전의 반전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청룡 님의 엉덩이에 매력을 느낄 지도 모르죠." 방금 전에 현무의 백치미를 우기더니, 이번에는 청룡 엉덩이의 매력이라는 거냐? 그래 솔직히 말해 현무의 백치미보다는 청룡의 엉덩이가 매력……. 잠깐, 속이 좀 안 좋다. 청룡의 엉덩이에 '매력'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 있어 속이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고 할까? 그래, 참자, 참아. 어찌 됐든 현무의 백치미보다는 청룡의 엉덩이가 매력적인 건 사실이다. 으윽! 말을 하고도 느껴지는 자괴감, 휴우. "내놈은 지금 염장을 끝까지 올려놓고 또 청룡을 보내자고?" "형님, 지금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타개할 수없습니다. 에스탄디아 님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유혹이 필요합니다." "……." "어차피 이제 남은 남자는 청룡 님밖에 없고요." 그건 맞는 말이다. 1차 투입된 현무와 민호는 오히려 역효과만 일으키고 돌아왔고, 난 투입 불가다. 그렇다면 남은 건청룡뿐이다. 후우, 난 심호흡을 하고 자아도취에 빠진 청룡을 향해 장렬하게 외쳤다. "청룡!" "네?" "너의 그 엉덩이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해!" "걱정 마십시오!" 걱정 돼, 하아! 세상에나! 헉! 헉! 헉! 내가 이렇게도 심하게 놀라는 이유, 그건 바로……. "기적이 안 일어났어." "흠." "……." 그렇다.여전히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진짜 개 맞듯이 맞는 청룡,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메모지에 무언가를 끼적이는 민호. 그럼 여기서 다시 심하게 놀란 이유를 밝힌다면……. "너무 판타스틱 하게 맞는다고 해야 하나?" 청룡의 맞는 모습이 그렇기 때문이다. 사실현무랑 민호가 불을 냈고, 거기에 청룡이 휘발유 약 몇 톤을 들이 부은 셈이다. 그러자 저분은 분노의 여신을 넘어 측정 불가의 모습으로 변했다. 솔직히 말해 구해 주고 싶다. "너무합니다, 그건!" 그때 20대 중반의 한 남자가 끼어들어서 개 맞듯이 맞는 청룡을 구출하려는 아리따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으아악!" 순식간에 같이 휘말려서 맞고 있다. 이걸로 저분은 정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사람 패는 데도 재주가 넘쳐흐른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형님보다는 안 짜릿했습니다." "……." "형님의 비기와는 격이 다르죠." "……." "형님의 비기는 짱입니다." 그거,칭찬으로 들어도 되는 거냐? 아니, 그런 개소리를 할 시간에 저분에게 신급 아이템에 대한 단서를 얻어 낼 방법을 찾았으면 하는데 말이다. 계속 염장질만 해 대서 이제는 가망성조차도 안 보인다. 그 순간 민호가 입을 열었다. "휴우, 역시 순수한 방법으로는 어렵군요." "……." 여자를 꼬인 다음 정보 우려먹는 방법이 순수한 방법으로 표현되는 민호. 그래, 네놈의 기준은 그거였냐. 그때 민호는 나를 보더니 물었다. "그럼 살짝 순수한 방법은 어떨까요?" "그게 뭔데?" "납치요." "……." "납치해서 알아내는 겁니다." "지금 그 말은 납치해서 여자를 패서 협박하라고?!" "아니죠, 전 그런 짐승이 아닙니다. 제가 여자를 설득하는데는 자신이 있거든요." "……." "절 믿어 주십시오." 난 심히 고민에 휩싸였다. 어느새 그 여자를 납치해 버린 내 자신에게 말이다. 분명 몇 시간 전만 해도 범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다. 하지만 민호의 사탕발림에 또 낚여 버렸다. 진짜 미치겠다. 저 자식이 말하면 너무나도 달콤해서 나도 모르게 현혹되어 버렸다.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설득한다는 거지?" 민호는 납치만 해 준다면 자기가 알아서 설득한다고 말한뒤 '설득실'이라는 곳으로 그분과 들어갔다. 여기서 잠깐, 또 이 방은 왜 만든 거냐, 고문실에 이어서 설득실이라니, 뭔가 미묘하다. 난 그런 생각과 함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 설득실 근처로 다가갔다. 그런데……. "뭐하는 짓이야?" "잘하는 짓이요." "이, 이 변태!" "후후후." "어, 어딜 만져!" "목을 만졌습니다." "으, 으……!" "후후후, 귀여운 입술이군요." "너, 너 도대체…… 아악! 뭐, 뭔 짓을!" "볼을 쓰다듬고 있습니다." 콰앙! 난 그대로 그 설득실을 부숴 버렸다. 그리고 난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여자에게 치한 행위를 하고 있는 민호를 보고 말이다. 물론 심각한 치한 행위는 아니다. 단순히 볼 쓰다듬고 목까지, 아니 이게 아니라 결론적으로는 변태 짓거리, 즉 성추행중이라는 것이다. 한편 민호는 문을 부수고 나타난 나를 보더니 물었다. "형님도 설득하시겠습니까?" "네놈은 이게 설득이냐? 변태 짓거리지!" 그대로 난 우아하게 날았다. "죄송합니다." "……." "정말 죄송합니다." "……." "할 말이 없습니다." "……."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난 내 앞에서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있는 에스탄디아에게 진심으로 사죄했다. 항상 문제는 다른 놈이 저지르고, 마지막에는 내가 사과한다. 아,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란 말이냐. 정말 우울하고 억울해 죽겠다. 하아! 그 순간이었나? "사죄하는 사람이 후드를 계속해서 뒤집어쓰고 있는 게 예의인가요?" "……." "최소한 그 후드는 벗고 사과를 하셔야 하지 않나요?" 그녀는 내게 후드를 벗을 걸 강요했다. 하지만 난 후드르 벗으면 안 되는 몸이다. 왜냐고? 세계 톱스타랑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관심의 대상이었으니까. 세계 톱스타는 좋은 의미로 관심의 대상이지만 난 무지 나쁜 대상으로……. 흐흑. "너무하시는군요." "……?!" 그떄 갑자기 옆에 있던 민호가 굳은 얼굴로 에스탄디아에게 말했다. "감히 초대형 범죄자 중 한 명인 저희 형님에게 얼굴을 드러내라고 하다니 ,그건 모욕입니다!" 난 굳었다. 지금 민호가 한 말을 풀이하자면 난 범죄자 중 1인자다. 그러니 답 나온다? 그리고……. "5억 금화!" 단숨에 때려 맞히신다. 아아악! 탈모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아. 그때 민호는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정답입니다." 이민호! 도대체 저놈은 내 편인지, 아니면 나를 방해하기 위한 놈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어느 때는 무척이나도움이 되지만, 어느 떄는 열심히 초를 치신다. 물론 물어보면 민호는 '저는 자랑스러운 형님이 당당해지실 걸 원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당당해질 수 없는 건 네놈이 잘 아는 거 아니냐?! 도대체 이 상황에서 뭘 당당해져?! 내가 미쳤어? 지금 상황에서 당당해지게? 그리고 무엇보다 요새 나의 비기가 효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플레이즈으으으 엔디비아 랄랄랄랄 구구구굿'이 말이다. 회복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고 해야 하나? 거의 1분이면 회복이 끝난다. 물론 다른 존재들은 아니다. 나의 이 비기가 효과 만점이다. 하지만 민호는 그 비기조차도 흡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래서는 저자식의 제어 선이 아예 없어진다. 조만간 '플레이즈으으으으 엔디비아 랄랄랄랄 구구구굿'2탄을 개발하러 산속으로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 목적이 뭐죠?" 그때 나의 정체를 알자, 에스탄디아는 순식간에 경계와 공포 태세로 들어갔다. 도대체 나란 인간이 어떻게 소문이 났으면, 정체를 알고 나선 다 저 모양이 되는 걸까. "형님이 직접 인간을 회 떠 먹는다는 소문도 있죠." "……." "특히 인육을 즐기신다죠?" "……." 도대체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소문은 어디서 나타난 거야! 내가 회를 떠 먹어? 그리고 인육을 내가 왜 먹어?! 내가 미친놈이야?!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이……. "그뿐 아니라 범죄 건수만 해도 1억 건에 달한다고 알려져있습니다." "……." "모든 범죄란 범죄는 마스터하시고, 어떤 범죄든 형님의 발가락 때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다고 알려졌습니다." "……." "그뿐 아니라……." "그만!" "……." "그만 해! 크윽." 들어 봤자 정신만 황폐해질 것 같다. 이걸로 나에게 5억 금화가 걸린 이유를 잘 알 것 같다. 저렇게 악마라는 말이 귀여울 정도로 악의 중심체로 소문난 나다. "형님의 현상금 인상에 관한 건이 전 나라에 건의 중에 있답니다." "……." "10억 금화라고 하죠?" "그냐?" "그렇습니다." 내가 10억 금화라는 몸값이 되기 위해 건의 중에 있다니 참으로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 요새 조용히(?) 살았네, 왜 몸값을 두 배로 올리는 걸까? 하아! "워, 원하는 게 뭐죠?!" 그때 에스탄디아가 너무나도 공포에 떨면서 물었다. 그 말에 민호가 말하였다. "신급 아이템 뿌요뿌요에 대한 정보입니다." "아, 알겠어요. 말할게요." 너무나도 쉽다. 엄청 깐깐해서 10년 동안 달라붙어야지만 알 수 있다는 정보를 단순히 내가 원한다고 이렇게 금세 가르쳐준다니, 뭔가 아이러니하다. 한마디로 난 악의 결정체? 휴우.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정보를 얻고도 이렇게 기분이 더럽기는 처음이다. 단순히 나의 악명에 너무나도 손쉽게 정보를 불어 버린 에스탄디아, 그것만으로도 나라는 인간의 영향력이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잘 알겠다. 물론 그렇다고 민호의 꼬임대로 절대 막 살 것도 아니지만……. 하지만씁쓸해. 휴우. "괜찮으세요?" "휴우." "……." 근심에 빠져 있는 내게 이리스가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난 그런 그녀에게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글쎄, 미묘하다고 해야 하나." 그 말에 이리스는 진심 어린 어조로 말했다. "힘내세요, 재현 님. 재현 님이 착하(?)시다는 걸 저희들은 알잖아요." "……." "단순히 오해가 쌓이고 쌓여서 그런 거지 ,재현 님은 엄청 착하다는 사실을 여기에 계신 분들은 다 알고 있어요." "……." 그래, 오해가 너무 많이 쌓여서 바깥세상에는 나를 그렇게 매도하지만, 내 주변의 초미소녀들은 나의 순수함을 알아주었다. 내가 얼마나 맑은 영혼인지 말이다. 그래, 그거면 돼! 저런 미소녀들이 나를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한 거였어! 그래, 그런 거야(자기 타협 중)! 제7장 [뿌요뿌요] "축하드립니다!" "……." "20억으로 오르셨어요!" "……." "한 왕국을 반쯤 부숴 버리더니 어느새……." "내가 안 했거든?" "형님이 한 걸로 소문났는데요?" "……." 지금 민호가 외친 20억은 나의 현상금이다. 하루 전만 해도 5억이었던 나, 그런데 단 하루 만에 몸값이 4배로 뛰었다. 그 이유는 내가 게르난 왕국을 침범해서 부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난 지금 뿌요뿌요에 대한 단서를 찾는다고 바쁜 몸이다. 그런데 내가 언제 그렇게 부술 수 있었겠냐? 그리고 그때 동원된 인원만 해도 엄청나다는데, 난 인생이 거지여서 용병 한 명 고용할 돈도 없다. 하지만 결론은 내가 했다는 거다. 그러니 간단히 생각해 보면……. "그놈들인가?" 파괴를 원하는 단체 마이블라스트, 분명 그놈들이 나에게 엿 먹이려고 한 게 분명하다. 죄를 나한테 다 뒤집어씌우려고 말이다. 그때 민호가 말하였다. "형님, 편지가 한 명 도착했는데 읽어 볼까요?" "편지?" "네." 갑자기 편지라니 좀 의아스럽기는 하지만, 난 민호에게 말했다. "읽어 봐." "룰루비데 세계 정복단 각오해라." "……." 저 문장으로 확실해졌다. 우릴 노리고 전면 선포를 한 게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 룰루비데는 사실 알려지지 않은 특별이름이다. 이 이름을 아는 존재는 파괴 단체인 그놈들밖에 없다. 그러니 결국엔……. "전쟁 선포냐?!" 지금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냐? 앙? 지금 사방에서 들이대시는데 그렇다고 기죽을 나도 아니고 덤벼라 이거야. 아, 물론 지금은 의뢰가 더 중요하니 진정하자. "그래, 그분께서는 그 뿌요뿌요인가 뭔가 하는 신급 아이템이 어디 있다고 하니?" "상당히 가까운 데 있었습니다." "흐음?" 상당히 가까운 곳이라? 설마 바로 앞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 하하. "4대신 중 한 명인 현무라는 분이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 "흐음." "저, 저기……." "네." "다시 한 번 말해 주겠니?" "그러죠. '4대신 중 한 명인 현무라는 분이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라고 다시 한 번 말해 드립니다." 난 그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방긋방긋 웃고 있는 현무가 있고 말이다. 그리고 난 절규했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야!"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현무에게 무언가를 얻어 내는 일이다. 특히 정보 같은 것, 즉 머리 굴리는 거 말이다. 이건 아무리 해도 답이 안 나오고, 아무리 전설적인 영약을 먹여도 답이 안나온다. 그런데 나보고 어쩌라고?! 한마디로 말해 지금 최악의 상황인 것이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지만, 난 현무를 보면서 세상에도 불가능은 있다고 느꼈다. 현무가 똑똑해지는 것 말이다.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 "초비상 사태인 건가?!" 그 아이템만 있으면 사신인지 아닌지 몰라도 직접 대응이 가능한데, 시간도 이제 겨우 하루밖에 안 남았다. 하지만 이 아이템의 단서는 현무가 들고 있는 것, 온몸을뒤져보고 거북이 등껍질도 점검해 봤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은 어딘가 숨겨 두었다는 건데, 현무가 그걸 기억해 내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현무가 그걸 기억해 내기를 바랄 바에는 민호가 순수계의 별이 되는 게 더 신빙성이…… 없구나.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 꽈배기처럼 꼬인 거다. 하아! "형님, 그래도 현무 님이 잊어버리지는 않는 게 있습니다." "……?!" 그때 너무나도 충격적인 한마디가 들려왔다. 뭐? 현무가 잊어버리지 않는 게 있다고? 난 믿을 수 없다는 듯 민호를 바라보았다. 이런 내 사실에 민호는 입을 열었다. "현무 님은 '뜨거운 핫커피'와 '차가운 냉커피'는 잊어버리지 않고 계십니다." "……." "물론 그뿐만이 아닙니다. 글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 외우고 계십니다." "헉!" 말도 안 돼! 어떻게 글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 외우는 게 가능한 거냐?! 그건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 그런데 저 순간 기억 상실증에 1초 바보 거북이가 글씨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고? "현무님. '차가운 냉커피' 232페이지 5번째 줄을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그 여자의 손이 차가운 기운과 함께 스멀스멀……." "돼, 됐어!" "……?" "……?" 당황스럽다. 232페이지 5번째 줄을 말하라고 하자, 순식간에 술술 나오는 현무의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아니, 그것보다……. "결론은 네놈도 마스터했다는 거군." "기본이죠." 글쎄다. 인간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책의 모든 내용을 기억하는 게 기본이라니. 그리고 몇 페이지를 가리키면 그에 해당되는 내용까지 다 떠올리는 게 기본이라면, 누구든 시험 걱정 없이 살겠다. 하아.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 바보 거북이가 엄청난 모습을 보여 주기는 했다만 지금의 상황하고는 별 연관이 없어 보였다. 저놈이 외운 건 단순히 야설일 뿐이니까. 물론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든 그 신급 아이템을 구해야 되는데……. "이거, 뭔가 참 재미있게 사는 인간이군." 기척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만약 상대가 마음먹고 공격했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물론 여기가 내 홈이어서 방심한 탓도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방심한 것도 아니다. 그런 나를 완전히 무시한 채 들어오다니……. "……." "하지만 베르자니아의 사랑을 받는다니 뭔가 의아스러운데?" "……." 베르자니아 아저씨도 나오셨다. 그 짐승, 나의 가슴을 마구 만져 대려 한 짐승 같은 존재! 어찌 됐든 그 이름만으로도 내 등 뒤에 있는 남자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다. 베르자니아의 이름이 나왔으니까. "디재스터, 실망스러워. 난 멋진 남자인 줄 알았거든. 베르자니아의 사랑을 받는다고 하기에 말이야." 한마디로 안 멋지다는 거냐? 이런 거지같은 영혼이 있나! 그리고 난 베르자니아인가 뭔가 하는 자의 사랑 따위는 절대 거부하고 싶다. 하지만 제멋대로 나를 짝사랑(?) 하시는데 어떡하라는 거냐? 인기인에 비극이라고! 쨍그랑. 그 순간 정확하게 내 앞으로 떨어지는 푸른색의 펜던트. 그리고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찾고 있는 거다." "……." "나를 상대하려면 그게 필수이겠지?" 나를 상대하려면? 그 말을 가볍게 풀이하자면 내 등 뒤에서 나불거리는 분이 그분이라는 거냐? 명계 소속 계열의 사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신이라고 해도 심히 건방지다. 적인 나에게 이렇게 획기적인 아이템을 던져 주다니! 뭐, 그렇다고 자존심 찾으면서 '필요 없어!'라고 외면하는 미친 짓은 안한다. 원래 난 주는 것 잘 챙기는 게 체질이어서 말이지. 난 그런 생각과 함께 그 펜던트를 짊어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스윽! "……!" 내 옆의 공간이 열리면서 붉은색 낫이 내 목을 노리면서 날아왔고, 난 거의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여 그것을 피해 냈다. 등 뒤로 땀이 흘렀다. 그때 뒤쪽에서 웃음끼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펜던트를 드는 순간 게임 시작이라고." "아무런 말도 없이 하냐?" "내 마음이지." 별로 아름답지 못한 놈이군. 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180cm 정도의 키에 검은색의 후드를 뒤집어쓴 채 붉은색의 낫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한 존재가 보였다. 저게 사신이라는 존재들이냐? 참으로 패션 감각 없네. "그럼 이번에도 잘 피해 보라고!" 그때 그 패션 감각 미달이신 사신님이 그렇게 외치면서 낫을 휘둘렀고, 또다시 공간이 갈라지면서 바로 내 앞에 나타나는 붉은색의 낫. 하지만 피하지 않았다. 나도 저 낫을 막을 만한 무기가 있다고. 챙! 나의 와이어와 낫의 뜨거운 만남, 아니 그냥 만났다. 그리고 그순간 놀랍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호, 내 낫을 막아 내는 무기가 있다니, 멋진데?" "글쎼 ,감탄은 언제든지 하고, 조심 좀 하고 살지 그래?" "흐음." 어느새 찢어져 버린 후드. 순간적으로 바람의 힘으로 공격한 효과다. 하지만 그 바람조차도 피해 버리시다니, 멋지신걸. 그리고 그 순간 즐겁다는 말투가 들려왔다. "이런, 디재스터에 대한 모욕이었나? 그럼 즐겁게 놀아 볼까?" "……." 그래 ,즐겁게 놀아 봤으면 하는데. "다른 데서는 어때?" "싫은데?" "……." 여기 내 성이거든? 또 부수라고? 빌어먹을! 나의 제안은 무시됐다. 그리고……. "아악!" "뭐 하는 거야?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한 광대 짓인가?" "빌어 먹을!" "키키." 저 개자식을! 지금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아무 데나 막 낫을 날려 대는 저 무식한 자식의 낫을 막으러 돌아다닐 뿐이다. 내가 지금 원하는 건 이 건물의 보존이다. 생각해 봐라. 얘도 복구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파괴되면 슬퍼서 울 거다(자기가 돈 깨져서 울겠지). 그러니 난 이 아이를(?) 지켜야 한다. 철컥! "아구구." "으아악!" 그때 하필 사신의 낫이 공중을 가로질러 날아가 그대로 부숴 버리는 샹들리에. 난 절망했다. 저거 무지 비싼 건데! "어머나, 어머나." 쾅쾅쾅! …… 그때 패닉 상태가 되어 버린 짧은 시간에 건물 다 부수는 사신. 그리고 서서히 나의 영혼이 탈피되어 갔다. 『재수 없는 자 패시브 스킬, 극으로 발동됩니다. 모든 능력치 10만 상승』 무언가가 끊어졌다. 그리고 디 엔드. "……." 승리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자식이 튀었다. 하지만 그 승리의 뒤에는……. "리아 양만이 살아 있습니다." "……." "건물의 모든 게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로 변경되었답니다." "……." "한마디로 다 부숴 놓으셨습니다. 복구 불능, 저희들의 아지트 엔딩입니다." "……." "물론 리아 양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뭐, 새로 지어야지요." 그래,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복구 불가능." "재미있는데?" 사신 레헌은 웃었다. 정말 장난 아니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밀렸을 정도로 말이다. 디재스터, 확실히 베르자니아가 좋아할 만한 먹잇감이라는데 수긍이 가는 레헌이었다. 하지만……. "이성 조절은 잘 못하네?" 그렇다. 자기 성을 다 날려 먹은 그 모습이 과격 그 자체다. 제8장 [군고구마] "군고구마 사세요." "뭐, 뭐지?" "필드 위에서?" "군고구마." "아, 웃겨." "키키키." "뭔 코미디 찍어?" 크윽! 난 사람들의 조롱 속에서도 묵묵히 군고구마를 구워야 했다. 도대체 내가 뭐 하는 짓이란 말이냐! 왠 저질 사신에게 낚여서 성 다 날려 먹고, 의뢰자는 갑자기 종적을 감춰서 돈도 못 받고(사신 레헌에게 제거당함). 하아, 정말 한숨이 나온다. 눈물도 나온다. 군고구마가 뭐야! 게임 정복을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에 초보자 필드에 와서 군고구마나 구워 대는 내가 진짜 슬프다. 아악! "군고구마 10개만 주세요." "예이!" 뭔가 알 수 없는 엽기적인 느낌이다. 10대 후반의 한 소녀가 와서 군고구마를 달라고 하자, 난 재빨리 군고구마를 종이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어차피 지금 이리스의 힘으로 인해 폴리모프한 상황, 들킬 염려는 없다. 그렇게 난 순식간에 군고구마를 다 담은 뒤 말했다. "7체크입니다." "여기요." 내 말에 소녀는 1베리(체크 ㅡ 베리 ㅡ 금화 순으로 액수가 나눠진다. 10체크는 1베리, 10베리는 1금화. 즉, 현금으로 1만원에 해당된다)를 내게 넘겼고, 난 그 돈에 감동의 눈물까지 흘렸다. 아아, 처음 팔았어. 하지만 그게 끝이었을까? 그 소녀를 끝으로, 다들 신기하다는 듯 우습다는 듯 비웃기만 하고 그 누구도 군고구마를 사러 오지 않으신다. "형님, 이런 평범한 방법으로는 대박이 날 수 없습니다." "……?" 그때 민호가 갑자기 나타나 한마디 했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민호가 말했다. "군고구마를 10개 사신 분에게 저의 뜨거운 입맞춤이라는 사은품을 거는 건 어떨까요? 물론 여성에게만 해당됩니다. 물론 남자 분들에게는 청룡 님의 뜨거운 엉덩이를 만질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너 미쳤냐?" "아뇨."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안 나오는데?" 완전 사업 말아먹으라고 작정한 것 같은데? 네놈의 키스와 청룡의 엉덩이를 사은품으로 걸으라니, 군고구마 먹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사람도 절대적으로 사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사은품 걸었다가는 말이다! 하아. "구해 왔냐?" "네." "너, 범죄 저지른 거 아니지?" "설마요, 이번에는 아주 정식적으로 가져왔고, 그뿐 아니라 획기적인 신상품도 가져왔습니다." "획기적인 상품?" "네." 그러면서 민호는 검은색 보자기에 손을 집어넣었고, 잠시후 무언가 주섬주섬 꺼냈다. 그건 신비의 인체(?) 였다. 아니, 한마디로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이다? "인간의 모양?" 분명 민호가 꺼낸 식물은 인간을 닮은 모습이다. 그리고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더라면 저런 식물은……. "끼이익!" "꺅!" "끄악!" "뭐? 으아악!" "으아!" 그 인간 식물의 비명과 함께 각종 비명이 들려오면서 근처에 있던 모든 초보 유저들이 쓰러졌다. 그나마 제정신인 사람은 나랑 민호 씨뿐이다. 그리고 민호는 말하였다. "만드라고라 신상품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 "획기적인 신상품이죠?" "……." 그래, 획기적이다. 하지만……. "이상한 짓을 해서 사람들을 다 기절시켰어요!" "저 자식 잡아!" "무슨 짓을!" "무조건 잡아라." "……." 어느새 경비병들이 성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난 재빨리 리어카를 끌 준비를 했다. 그다음그대로 튀었다. 내가 생각해도 빛의 광속으로 말이다. 퍼억. "왜 그러십니까?" 내가 뒤통수를 갈기자, 민호가 억울한 듯 물었다. 난 그런 민호의 멱살을 잡으면서 말했다. "이 인간아! 내가 고구마만 캐 오라고 했는데 만드라고라는 왜 가져오는 거냐!" "신제품입니다." "네놈 같으면 만드라고라 먹을 것 같아? 앙?" "취향 나름이지요." "……." "어쩌면 히트를 쳤을지도요." 하아, 정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자식아, 그거 말이라고 하냐?! 만드라고라를 삶아서 팔면 그게 히트를 쳐? 아니, 그것보다 히트를 쳤다고 해. 희귀식물의 하나인 만드라고라를 어디서 조달할 건데? 1회 상품이냐? 젠장, 저 자식은 생각을 해도 어떻게 저런 저질 축에도 못 드는 상상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사건 때문에 장사를 하루 만에 접었다. 그때 민호가 감탄 어린 어조로 내게 말하였다. "그나저나 형님, 역시 형님이라는 말밖에 안 나오는군요."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건데?" "아뇨,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도 또 쫓기지 않습니까?" "……." "역시 대단하십니다." "이 개자식아, 네놈 때문이잖아!" "전 만드라고라를 가져온 것밖에 없는데요." "그게 원인이잖아!" 아아, 난 머리를 붙잡은 채 절규했다. 도대체 과거에 뭔 죄를 저질렀기에 나에게 이런 일만 일어 나는 거냐? 응? 나란 인간은 정말 살 가치가 없는 걸까? 분명 난 예진이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기 위해 이 게임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걸까? 처음에 그 정말 특별한 자에게만 지급된다는 단검을 받았을때부터였을까, 아니면 그 속옷 도둑을 만났을 때부터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디재스터라는 직업에 혹해서 여자속옷을 훔치러갔을때? 그 인간이 준 물건을 만진 죄? 아니야, 그게 아니면 민호를 믿고 성을 지으라고……. 아아악!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얼마나 절망적인 일만 있었는지 생각도 잘 안 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성 하나 지었다가 빚을 졌는데, 그 성이 풍비박산이 나고 사방에는 적이 수두룩 깔리면서 나의 현상금은 20억으로 올라갔다고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겠다. "난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이야!" 으아악! 생각을 정리하자, 이런 결론이 나온다. 난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결론 말이다. 그래, 난 인간쓰레기에다가 아메바에다가 찌꺼기, 오염물질,짐승, 구더기보다 못한 놈이었던 거야. 그랬던 거야. 아아, 그런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그리고 나 같은 놈이 게임 정복이라니 말도 안 돼.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트라우마 적용 중). 난…… 크하하하! "……." "……." "……." "……." 일행들은 한쪽에서 어둠의 기운을 물씬 풍기는 재현이를 보고 할 말을 잊어버렸다. 사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들은 다가가서 위로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어둠의 포스가 얼마나 강한지 쉽사리 다가설 수 없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지금 재현의 주변은 어둠 그 자체였다. "심각한데요." 한편 민호도 심각한 포스를 보이는 재현의 모습에 한마디 했고, 모두들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심각하다. 저건 이미 막장 인생의 눈빛이었다. 희망이라든가 미래라든가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말 그대로 암흑천지. 그 순간, 그런 그에게 다가가는 한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바로……. "마스터." "……." 난 흠칫했다. 너무나도 진중한 목소리, 위엄이 있는 목소리였다. 순식간에 패닉 상태에 빠졌던 날 꺠우는 목소리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존재였다. 그건 바로……. "현무?" 그렇다. 현무였던 것이다. 위엄 어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현무였던 것이다. 난 혹시나 꿈인가 해서 내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아프다. 꿈은 아니다. 그럼 현실? 아님 내가 미쳐서 환상이 보이는 건가?! "마스터, 제가 한 가지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으응. 뭐." 그때 현무의 위엄에 눌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현무는 입을 열었다. "만약 불행의 연속이 마스터를 노린다고 하더라도 마스터는 그 불행조차도 부숴 버리시면 될 겁니다. 그게 진정한 '디재스터'라는 이름이니까요. 그 한마디에 갑자기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한마디로 어떤 불행이 나에게 닥쳐오든 다 때려 부수라는 소리?! 현무 네가 이런 멋진 말을! 난 그런 현무에게 너무 감동해서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그순간이었다. "푸헤헤. 전 천재니까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현무. 뭔가 알 수 없는 느낌이 나를 감쌌다. 하! 하지만 단 하나 무언가는 깨달았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다시 시작하는 거야!불행을 없애버리는 거야! 으아!" 저주받은 인생에 대한 전쟁 선포였다. 난 포기를 모르는 남자니까. 아지트야 다시 상자 더미에서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니까! 그래, 그런 거야! 불행이여, 나에게 들이대라! 아니, 그렇다고 너무 들이대면 좀 그러니 조금씩(약해지는 재현). 제9장 [지략가] 눈을 감는다. 그리고 상상한다. 도대체 우리 멤버에는 무슨 문제점이 있는지 잘 상상해 보자. 그리고 잠시 후 결론이 도출된다. 휴, 다 잘못됬구나. 여자들 빼고 다 이상한 애들이니 이 모양이다. 이건 분명 내가 재수 없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일단 멤버 구성에대한 문제점을 강력하게 제거하고 싶다. 특히 지략가, 즉 머리굴리시는 분의 부재. 아, 이게 정말 치명적이다. 현무 님은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고, 청룡은 자기 엉덩이만 사랑하고, 그리고 문제의 민호. 하아! 사실 민호. 이 인간, 정말 머리 좋다. 거짓말 안 하고 아이큐가 얼마인지도 측정이 불가능하다.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도 민호랑 붙는다면 지칠 거다. 그만큼 저놈은 과거와 미래를 다 통틀어도 최고로 엄청난 놈이다. 하지만……. "범죄에만 돌아간다는 거." 이게 문제인 거다. 아무리 천재면 뭐 하냐? 제갈공명 사마도 지치면 뭐 하냐? 저놈은 오로지 범죄 계열에서만 절대적인 천재성을 보인다. 다른 쪽? 특히 정상적인 루트? 그런 방면에서 저놈이 머리 굴리는 걸 찾는다면 그게 기적이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민호를 바라보았고, 그 순간 난 민호랑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민호는 싱긋 웃으면서 말하였다. "남자는 사절입니다." "……." 저런 미친 소리만 자주 한다. 아아, 그립도다. 정상적인 지략가, 참모가 말이다. 흐흑. 세상은 날 버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형님, 체린이라는 엄청난 천재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 "그는 너무나도 천재여서 천재들 사이에서도 배척된 존재라더군요." "헉!" "한마디로 순수하게(?) 영입할 기회입니다." 그때 민호에게 들려온 '순수하게'라는 말, 난 저 말만 들으면 소름이 끼쳤다. 온몸에 닭살도 돋았다. 저 자식의 순수 기준을 난 잘 알고있기에 저 순수라는 의미가 대충 파악 가능하다. 한마디로 강제로 끌고 와서 협박으로 영입하자는 말로 들린다는 거다. 물론 이런 내 생각이 오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 자식과 워낙 오래 같이 있다보니 그렇게 느껴졌다. "한마디로 눈빛만 봐도 탕하는 사이?" "그건 아니고……." 제발 잡소리는 그만! 체린이라는 존재에 대한 조사 작업이 완료됐다. 일단 키 175cm 정도에 상당한 호남형의 얼굴을 가진 남자. 신체 사이즈는 내 알 바 아니고, 나이는 10대 후반으로 나랑 비슷한 나이란다. 그리고 뭐 특이한 점은……. "뭐가 이래?" 너무나도 착하다는 거다. 실수로 꽃 한 송이 밟은 뒤 3일 제사를 지내 주셨단다. 그리고 3일 동안 금식을 하셨고, 그뿐만이 아니다. 지나가다가 죽은 오우거를 위해 무덤과 이름까지 지어 주셨단다. 난 민호를 보면서 물었다. "이분 아직 살아 있니?" "잘 살아 있습니다." "운이 상당히 좋나 보네?" "그런가 봅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서 아직까지 연명 중인 걸 보면 정말 엄청운이 좋다. 다시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서 그가 한 업적을 나열하자면, 죽어 가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를 발견하고 매우 슬퍼한 그분은 나무를 살리기 위해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을 그 옆에서 나뭇잎 깔고 주무시면서 나무를 보살폈단다. 하지만 결국 그 나무는 죽을 때가 다된 나무였기에 결국 죽어 버렸다. 한마디로 그는 1년 동안 헛짓거리를 한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끝나면 섭섭하다. 그 죽은 나무를 위해 제사를 1개월간 지내 주었다고 전해진다. "미친놈이죠." "……." "확실히 말입니다." 민호의 말에 반박할 말이 없다. 그래, 긍정적으로 보면 너무나도 착해서 미쳐 버리게 착한 존재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방금 민호의 말처럼 단순히 '미친놈'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보자. 일단은 착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극도로 착하신 분이 우리 일에 참여할까?" 이게 키포인트다. 죽은 나무를 위해 1개월 동안 제사 지내 주실 정도로 착하고, 꽃 밟았다고 3일 제사는 기본. 나는 모르지만 무수히 많은 전설을 만들어 낸 그분. 그런 분에게 내가 가서 '이 세상을 정복할 건데 도와주세요! 당신의 머리가 필요합니다' 라고 한다면 승낙해 줄까? 절대 불가능하다. 그분이 나의 작전에 동참할 확률은 그야말로 0%다. 그 순간 민호 왈, "일단 그분을 데려오죠." "어떻게?" "잘요." "어차피 데려와 봤자 헛짓거리 같은데?" 방금 전에도 언급했지만, 괜히 데려와 봤자 헛짓거리, 즉 생고생일 것 같다. 확실히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 말에 민호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생고생이 아니게 만들면 되는 겁니다." "……?" "간단하게 말해 그분이 정상(?) 적인 사람이 되도록 저희들이 노력하면 되지 않습니까?" 흠칫. 민호가 말한 '정상'이라는 단어에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무언가 알 것 같은 느낌, 정상이라는 의미를 아주 잘 알 것 같다. 난 설마 하는 어조로 물었다. "협박?" "빙고입니다." "……." "협조 안 하면 밟는 겁니다. 협조할 때까지." "……." "그러면 언젠가는 우리와 같은 정상인이 되지 않을까요?" 왜 우리라고 묶는 건데? 너랑 나랑은 따로 분리해 주길 바란다. 난 정상인이고, 넌 미친놈이니 말이야. 어찌 됐든 민호의 의견을 정리하면 납치해서 패자, 협조할 때까지? 그건 아니다. 너무나도 맑은 한 존재를 그렇게까지 해서 타락시키고 싶은 거냐? 그래, 넌 최고의 악이니까 그러고 싶겠지. 하지만 난 아니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도 않고, 이 세상에 그런 순박하다 못해 결정체인 사람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든다. 난 그런 생각에 당장 이 작전을 폐기하라고 고개를 저으려했다. 그때 민호의 말이 들려왔다. "형님이 승낙하실 걸로 사료되어서 미리 납치해두었습니다." "……." "역시 전 형님의 큐티가이입니다." "……." "후훗, 칭찬은 사양하죠." "……." "뭐, 이 정도야 기본 아닙니까?" 개뿔! 내가 승낙하실 걸로 사료된다는 의미는 뭐냐?! 그리고 나의 큐티 가이? 미친 거 아냐?! 네가 왜 네놈을 큐티 가이로 사용하는데? 절대 용납 못한다. 그뿐 아니라 민호는 뻔뻔스럽게도 스스로 칭찬을 거부한단다. 미안하지만, 내 주먹이 스스로 쥐어졌다. 그걸 본 민호는 조심스레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칭찬해 주지." "사양하겠습니다." "아니, 해 줄거야, 많이." "절대 사양하겠습니다." "노노! 사양은 안 돼. 내 성의를 무시하는 거잖아?" "무시하고 싶은데요?" "닥쳐!" 잠시 모자이크 처리 부탁한다. 나와 민호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숲으로 들어갔다. 전이었다면 납치를 저지르신 민호 님이 납치한 사람을 우리 성 안에 감금시켜 놓았기에 금방 접촉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다시 아지트 없는 방랑 생활하는데 민호가 감금시켜 놓을 데가 어디 있겠는가? 민호는 당당하게 '근처에 있는 숲을 이용했습니다'라고 했다. 근처에 있는 숲에다가 밧줄로 열심히 묶어 놓았단다. 납치된 입장에선 어이없을 것 같고, 열받을 것 같기도 하고, 원한이 맺힐 것 같다. 잘 생각해 봐라, 갑자기 이유도 모르고 납치되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나마 이해한다고(?) 쳐 주자. 보통 납치를 하면 그래도 바람이라도 되는 방이나 아무리 열악한 데라도 어딘가에 데려다 놓는다. 그렇지만 이게 뭐냐? 납치당하자마자 숲 안으로 들어와서 나무에 묶여 봐라. 그 사람 입장이 아니라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꽤 불쾌한 기분이 들 거다. 그나저나……. "왜 이리 머냐?" "혹시 모르니까요." "……?" "누군가가 구출해 주면 난감하지 않습니까?" "……." "그래서 아주 깊숙이 사람들의 발길이 절대 닿지 않을 곳에 묶어 두었습니다." 이 자식, 진짜 무섭다. 단지 누군가가 구해 줄까 봐 사람들의 발길이 절대 닿지 않을 곳에 묶어 두다니, 정말 답 안 나오는 놈이다. 3시간이 흘렀다. "언제 도착이냐?" "이제 다 됐습니다." "……." 3시간이다. 무려 3시간이나 정체불명의 숲을돌아다녔다. 물론 그냥 간 것도 아니고, 바위도 타고 물도 건너가고 산도 넘어가고 온갖 이상한 루트를 다 통해서 갔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절대 다른 사람은 눈치 못 채겠군." 이런 알 수 없는 깊숙한 곳에 들어올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아니, 그것보다 이런 험악한 곳까지 오면서 길도 잃어버리지 않는 민호 자식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 남자를 데리고 온것도 신기하다. 한마디로 모든 게 신기하다. "여기입니다." 그 순간 민호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난 그 말에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한 남자가 기절한 채 나무에 묶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괘, 괜찮아요?!" 난 그 모습을 보자마자 다급하게 다가가며 당황해 소리쳤다. 그런 나의 외침에 남자가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더니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힘없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배고픈 걸 제외하고는요." "……." 뭐지, 이 포스는? 분명 지금은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로 나를 대하고 있다. 아아악, 너무 신성해! 신성 그 자체야. 아니, 너무 착해! 그때 나무에 묶여 잇는, 민호보다 한 살 정도 어려 보이는 남자는 민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이제 원망의 소리가 들려오겠구나. 아무리 착한 남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납치해서 이런 곳에 묶어 둔 사람에게 원한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게 비정상일테니까.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어이없게 빗나갔다. 아니, 내 귀가 잘못됐나 싶은 소리도 들었고 말이다. 그 소년은 싱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형, 오셨나요?" "……." "흐음." 형? 형이라고? 도대체 뭔 소리야? 그 순간 민호도 싱긋 웃으면서 물었다. "이제 협조하지 않겠습니까?" "죄송해요, 형. 하지만 그런 일에 동참은……." "이런, 여전히 순수하지 못한 존재이군요." "형……." "휴우, 정말 안타깝습니다." 난 저 두분의 대화엔 별 관심 없다. 내가 지금 관심 있는 것은 '형' 이라는 단어 뿐이다. 난 민호를 슬쩍 툭툭 치면서 물었다. "혹시 둘이 아는 사이?" "네, 아는 사이입니다." "……." "정말 형님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저 순수하지 못한 존재가 제 남동생입니다." "……." "왜 그러십니까?" "친동생? 에이, 그냥 아는 동생이지? 응?" 난 민호의 입에서 그냥 아는 동생이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도했다. 왠지 모르게 친동생이라는 말이 나오면 세계 종말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을까? 그 순간 민호는 싱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친동생입니다." "……."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게냐! 민호의 가계도를 살펴보자. 일단 민호가 장남이란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좀 미쳤다. 아니, 많이 미쳤다. 그리고 범죄학의 정점에선 분으로, 그의 앞에서 범죄나 야설에 대해 언급하는 건 개가 호랑이한테 개기는 거랑 마찬가지다. 그리고 민호의 여동생 민영 양, 이분은 엄청난 초미소녀시다. 너무나도 성스러워 보이는 외모와 글래머 몸매, 한마디로 정말 굿이다. 하지만 단점이라고 한다면, 민호에게서 바이러스가 옮아 야설계의 떠오르는 신인이라는 거다. 그리고 나한테 덮침을 당하고 싶어 하는 참 엽기적인 미소녀다. 마지막으로 여기, 나무에 묶인 채 웃음을 유지하고 있는 소년. 이 소년은 민호와 민영이의 중간에 있다. 즉 둘째인 것이다. 그는 너무나도 착하고 여린 심정을 가져서, 나무에 한 달 동안 매달려 제사를 지내주시는 '미친' 분이시다. 결론적으로 이분도 착하긴 한데 무지무지 착한 것으로 미친 거지. 어찌 됐든 이렇게 민호의 가족에 대해 알아봤다. 결론은 다들 무섭다는 거다.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다. 그리고 특히 장남인 민호! 네놈이 제일 무서워! 난 민호에게 소리쳤다. "넌 동생을 나무에 매달다니, 양심도 없는 거냐?" "아주 많습니다." "아주 많은 놈이 저런 천벌받을 짓을 해?" 자기 말로는 아주 많다는데, 개소리라는 걸 모두 알고 있을 테니 패스. 한편 민호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아악! 또 저 눈빛이야. 사람 섬뜩하게 만드는 민호의 진지한 눈빛. 정말 보고 싶지 않다. 그 순간 민호의 말문이 열렸다. "전 제 동생이 악령에 씌어 순수하지 못한 걸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러는 겁니다." "……." "악령 퇴치입니다." 악령 퇴치래……. 한마디로 자기 동생이 무지 착한 걸 보고 악령이 깃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내가 보기에는 악령은 네놈이 씐 것 같다만? 아니, 저놈은 악령 따위에 휘둘릴 것 같지도 않지만. 어찌 됐든 민호의 이론은 과하게 착해서 좀 미쳐 보이는 자기 동생을 정상인(?)으로 만들고 싶어서 이런 천벌 받을 행위를 한다는 거다. 내가 뭔 말을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형, 이제 그만 하세요. 더 이상의 악행은……." "……." "저와 함께 많은 존재를 돕고 살아요!" 그때 감히 우리 범죄계의 정점인 민호 님에게 건전하게 살것을 요구하는 민호의 동생. 우아, 정말 왠지 모르게 감탄이 절로 나온다. 민호에게 저런 권유를 할 수 있다는 게 말이다. 그러자 민호가 싱긋 웃더니 말하였다. "즐입니다." "……." 어찌 됐든 일단은 민호의 동생을 나무에서 풀어 준 뒤, 대충 빵 같은 걸로 식사를 하게 해 주었다. 그러자 그 소년은 나를 보고 웃더니 말하였다. "좋은 분이군요." "……." "형이 세계 정복을 원하는 분이라고 하기에 어떤 분인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좋은 분이셨다니……." 이제 알았니? 나 원래 좋은 사람임. 뭐야, 이 개구라 치지 말라는 시선은? 큼큼! 일단 그냥 패스하자. 그리고 그때였다. "세계 정복이라는 약한 행위는 접으시고, 저랑 함께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 민호의 동생은 내게 정중히 나무랑 1년 동안 동거할 것을 간접적으로 권유하였다. 미안하지만,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나무도 생물이니 소중하게 아끼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 옆에서 나뭇잎 깔고 1년을 있는 건 좀……. 그 순간. "후훗, 어이없군요." "형." 갑자기 민호가 한마디 하신다. 그리고 그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대 악당 중에서도 초특급 대악당이신 형님에게 그런 웃긴 제안을 하시다니." "……." "……." "너무 하찮습니다." 저기, 민호야. 나 원래 거절하고 싶은마음은 있었는데, 넌 꼭 이런 날 악한 놈으로 만들어야겠니? "어서 정상인이 되십시오." 이어지는 민호의 말에 소년이 대답했다. "형님, 저와 함께 다른 존재를 위한……." 둘이 알아서 해라. 난 모르겠다. 머리 아프다. 이상한 것들……. 그래서 결론을 말하겠다. 간단히 말해, 민호 동생인 기현 군은 우리와 동행(?)하게되었다. 그 이유는 자신의 형을 남 도와주는 착한 분으로 교화를 시키기 위해서란다. 풋! 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감히 민호 사마를 남 도와주는 착한 사람으로 교화를 시킨다? 차라리 오우거와 개미가 결혼한다는 게 더 말이 되겠다. 물론 나의 세계 정복에 협조는 하지 않아 있으나마나다. 괜히 옵션 떨거지 하나 붙은 기분이랄까? 그러고 보니 우리 파티 원들은 한 명 한 명이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대단하다. 굳이 설명은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제10장 [사칭] 안습. 지금 내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저거다. 다른 단어 필요 없다. 이게 지금 내 상황과 제일 맞아떨어 진다. 처음에 난 너무나도 쉽게 생각했다. 간단하게 게임 정복을 한 뒤 예진이에게 멋지게 프러포즈한다. 그런 다음 해피 엔딩. 하지만 이게 참 내 생각대로 안 되더라. 게임 정복을 하는 도중 약간(?) 불법적인 일들도 감수해야 했고, 맑은 영혼이었던 난 약간 검은 영혼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그런 많은 대가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진행률 0.1%라는 거다. 아니, 오히려 진행률 0.1%에 내 전 재산까지 다 날려 먹었으니 참으로, 하아! 더 이상 이야기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패스하겠다. 그렇게 서럽다 못해 안습인 나다. 그런데……. "이게 뭐냐!" "형님의 범죄죠." "……." 민호의 한마디에 말문이 닫혀 버렸다. 민호는 어느새 나의 범죄 리스트를 뽑아 왔다. 그것도 1주 만에 한 범죄 행위 리스트 말이다. 그걸 간단하게 살펴보면……. 방화 32차례. 폭행 84차례. 살인 141차례. 성추행 100차례. 납치 129차례. 협박 20차례. 기타 등등. 이게 모두 내가 일주일 만에 한 범죄였다. 단 일주일 만에 말이다. "그나저나 어느새 이렇게 위대한 업적을?" 민호의 한마디에 난 너무 흥분해서 당장 그 자식의 멱살을 잡으면서 물었다. "내가 이런 더러운 짓을 하는 놈으로 보여?" "네." "……." "아주 리얼하게 보이는데요." 아니, 거기서 그렇게 수긍하면 내가 다음에 할 말이……. "난 일주일 내내 바빴다고!" "범죄 저지르냐고요?" "아니라고,이 자식아! 네가 내 옆에 있었잖아!" "글쎄요, 형님과 저는 가끔 헤어질 때도 있었지 않습니까?" "……." 그건 자러 가는 거잖아! 아, 정말 미치겠네. 지금 이 자식은 저런 막장 범죄 행위를 한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하다. 난 요 1주일 동안 마을 한 번 들른 적도 없고, 인생이 너무 우울해서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그런 내가 저런 범죄를 저지른 게 가능하냐? 그것도 총 500차례에 걸친 범죄를 말이다. "잘요." 그때 민호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잘요? 그래. 잘하면 되겠지. 아니, 이게 아니라……. "거듭 말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시간조차도 없었다고!" "하지만 모든 목격자들이 형님이라고 하는데요." "……." 뭐라고? 이건 무슨 아름다운 소리냐? 목격자들이 전부 다 나를 봤다고? 난 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날 봤다는 거냐? 그사람들 환각 아냐? 아, 정말 미쳐 버리겠네. "인정하시지요." "안 했다고, 이 자식아!" "뭐, 그렇게 우기는 점도 형님의 매력이죠." "죽을래?" "살 겁니다." "으악!" 난 비명을 질렀다. 난 정말 아니라고! 진짜 아니라고! 이럴 수가! 내 모습이 화면 안에 담겨 있다. 각종 범죄를 산뜻하게 저지르고 있는 내 모습이 말이다. 저건 아무리 봐도 나, 다르게 봐도 나, 유턴해서 봐도 나, 삼바 춤을 추면서 봐도 나다.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이다. "이제 인정하시지요." "……." 그때 나에게 범죄 행각의 모습을 보여 준 민호가 말했고, 난 그 말에 당황하면서 외쳤다. "저, 저거 나 아니야!" "그럼 누구죠?" "내가 어찌 알아!" "흐음." "진짜 아니라고!" "흐음." "아니라고!" 난 정말 아니다. 진짜 아니라고! 정말 억울해서 미쳐 버리겠다. 왜 내 모습이 저 모니터에서 활동 중인 거냐?! 응? "오빠." "미, 민혜야." 그때 민혜가 우울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난 그녀에게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나 아냐, 나 아냐!" "……." "정말 아니라고! 민혜야, 넌 나 믿지?" "응." 왠지 대답하는 어투가 믿는 느낌이 아닌데? 아아악, 진짜 제기랄! 그 순간 민혜는 너무나도 슬픈 눈동자로 말했다. "오빠, 왜 그랬어……." "……." 혈압이 급상승한다. 민혜가 한마디 하니까 막 정신이 오락가락하려고 한다. 아니, 그것보다 정말 일주일 사이에 뭐 한 가지라도 저질렀으면 억울하지도 않다. 하지만 한 가지도 저지르지 않고 1주일 만에 500차례의 범죄를 저지른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아야 하다니! 그렇지만 저기서 범죄 저지르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나다. 혹시 내가 잘 때 몽유병으로……? 그건 개소리고, 정말 …… 아악! "아, 그리고 형님, 형님 현상금이 50억으로 초상승입니다." "……." "축하드립니다." "……." "이렇게 몇 주만 더 타면 100억도 가능할 듯 싶습니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난 아니라고!" 그 말과 함께 난 그대로 달렸다. 난 정말 아니라고!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소년의 질문에 엘라스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주인님이 생각하신 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크크, 그렇겠지." "……." 마이블라스트의 천재 소년, 지금 초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재현의 뒤에는 그가 있었다. 그가 저번에 파괴된 호문클로스를 응용해서 한 인간을 복사한 거다. 그게 바로 재현이다. 역시 그의 아이큐가 230이라는 게 거짓이 아님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파괴된 유전자를 이용해서 자신의 적의 모습으로 만든 뒤 모든 관심을 그에게 돌리게 만드는 행동, 확실히 평범한 존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다. 이런 엄청난 모습을 보여 주는 소년이었지만, 엘라스는 항상 걱정이었다. 그 이유는……. "하지만 그 남자……." "또 그 남자 이야기인가?" "……." 자신의 주인이 그 남자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잘 알고 있다. 저번에 뒤통수 한 방 맞은 이후로 그 방글방글 웃고 있던 민호에 대한 원한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 아무리 주인이 싫어한다지만 그 존재의 이야기를 꺼내서 부각시켜야 했다. 다시는 그런 패배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엘라스의 마음을 알았는지 그 소년은 내키지는 않지만 입을 열었다. "알겠다. 절대 방심하지 않지." "감사합니다." "그래, 절대로 다시는 그런 치욕을 당하지 않을 거야." 뿌드득. 소년은 부서지도록 이를 갈았다. 저번에 민호에게 너무나도 어이없게 당한 게 그만큼 충격이었다는 거다. 그런 모습을 본 엘라스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이제 자신의 주인이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아무리 그존재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왜인지 모르게 불길했다. 분명 자신의 주인이 절대 방심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이 불안감은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다.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했나?" 엘라스는 그렇게 자신을 다독였다. 그래, 분명 그런 거다. 자신이 예민하게 반응한 거다. 그런 생각으로 엘라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 "왜 그러나, 엘라스?" "그, 그자가……!" "……?!" 그 말에 소년은 재빠르게 창문 밖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다. 그자라니? 소년은 물었다. "무슨 소리이지?" "바, 방금 그 남자가 웃으면서……." "……." "……." "엘라스, 피곤한가?" "죄송합니다." "흠." "제가 잘못 본 것 같습니다." 그래, 잘못 본 거다. 여기는 자신들의 본진, 여기까지 들어와 태평하게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자신이 너무 긴장한 탓에 잘못 본 게 분명하다. "흐음." 민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더니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참으로 재미있게 사시네요." 그러고는 마이블라스트의 비밀 기지를 슬쩍 한 번 바라보았다. 제11장 [진실] "난 아냐!" 난 절규했다. 정말 난 아니다. 억울해서 미쳐 버릴 것 같아! "형, 전 알아요! 형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 그때 요새 새로 영입된 민호의 남동생, 기현 사마가 내게 한마디 던졌다. 그렇지? 넌 나를 알아주는 거지?! "제가 요 1주일간 형의 악행을 지켜보기 위해서 1분 1초도 눈을 떼지 않았어요." "……." "하지만 평범하게 사신다는 걸 직접 봤습니다." "……." 1분 1초도 눈을 안떼고 나를 지켜봐 준 거니? 나의 악행을 지켜보기 위해, 아니 정확히는 막기 위해서겠지. 어찌 됐든 그렇게 정열적으로 날 스토킹한 거였냐? 어쩐지 요즘 어디선가 무슨일이 생겨도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바로 네놈이었냐? 아, 누구 동생 아니랄까 봐, 아무리 선이라는 타이틀 가지고 있어도 넌 역시 민호의 피와 같은 거다. 뭐,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일주일간 날 지켜 봤으면 내가 저런 짓을 안 했으리라고 잘 알겠네?" "물론입니다." "그럼 가서 해명 좀 해 줄래?" "해 드릴게요." 흐음, 애가 넌무 착하다 보니 말만 하면 척척 해 준다. 민호였으면 '제가 왜요?' 혹은 '대가를 지불하시죠?'라고 했을 텐데 말이다. 휴우. "오빠 , 미안……." "나도……. 오해했어." "주인님, 괜찮으시죠?" "힘내세요." "역시 나를 덮칠 오빠가 그런 악행을 하지 않았을 줄 알았어요." "……." 뭐지, 이 상황은? 아직 기현 군이 나에 대한 오해를 풀어 주기 전이다. 그런 데 일행들이 있는 임시 거주지(약 30만원짜리의 자그마한 집)에 가자마자 모든 오해가 풀렸다는 듯 나를 반겼다. 어라? 도대체 무슨 일이? "제가 했습니다." "……." "형님의 오해를 다 풀어 드렸습니다." "……." 그때 민호가 나서서 한마디 했다. 난 그런 민호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네가 이런 남 잘 되는 꼴을 만들었다고? 그리고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민호 오빠가 너무나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던걸." 그때 민혜가 카운터 한 방을 날렸다. 난 금세 경계 태세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외쳤다. "너 민호 아니지? 누구냐!" "아닙니다." "……." 그때 그 가짜 민호는 너무나도 쉽게 자신이 민호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리고 잠시 후였다. "순수 최강 민호입니다." 민호 맞구나. 저런 미친 소리는 민호 빼고는 누구도 불가능하니까. 그런데 민호인데, 민호가, 민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조건도 없이 해명을 해 줬다는 거냐?! 난 슬쩍 볼을 꼬집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악!" 아프다. 결론은 꿈은 아니다. 그럼 현실인가? 정말 미쳐 버리겠다. 다른 존재가 저런 행동을 했다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민호가 저런 짓을 하니 소름이 끼치고 오한이 들고 머리까지 어지럽다. 아아,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민호 너에게 한 가지만 권유해 주고 싶다. "이런 짓 하지 마." "……?" "평소에 안 하던 이런 착한 짓을 하면 주변 사람들 소름 끼쳐 함." "……." "참고하도록." 그냥 네놈이 살던 대로 살아 주길 바란다. 왠지 모르게 네가 이렇게 착한 일 한 번 하니 기분도 꿀꿀하고 몽롱해진다. 한마디로 혼란이 가중된다. "뭐라고?!" "뭐, 그런 거죠." "……!" 난 민호의 설명을 듣고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그 꼬맹이 자식이? 아아악! 저번에 나에게 1억짜리 의뢰를 한 의뢰자이기도 하고 세계 파괴단의 핵심 인물인 그 꼬마. 민호의 말에 의하면 상당히 머리가 좋다고 한다. 아니,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놈이, 그놈이! "나를 엿 먹이려는 거냐!" "그런 겁니다." "날 왜 건드는 건데?!" "글쎄요(건들게 만드는 주범, 마이블라스트는 민호의 개인행동을 재현의 행동으로 알고 있음)." "……." "아무래도 세계 정복단과 파괴 정복단은 어울리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다. 그 자식들은 여기를 없애 버리고 싶어 하는 거고, 난 순수하게(?) 정복만 하려는 거다. 아무리 봐도 내가 착한 거고,그놈들은 나쁜 거다. 그래, 그런 이론이야. 어찌 됐든 간접적으로 나한테 입질을 해 대더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한다, 이거냐?! 안 그래도 성이 날아간 이 시점에? 아아악! "힘내십시오. 형님 곁에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 "……." 전에도 이런 유사한 대화를 나눈 것같은데? 참고로 네놈이 있으면 더 암울해진다.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알았지? "이런 정보를 어디서 가져온 거냐?!" 이게 더 궁금하다. 이건 거의 국가 기밀 수준의 정보일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정보를 무슨 옆집 소문같이 주워 오는 이 자식……. 그 말에 민호가 대답했다. "지나가던 나무 님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 난 잠시 그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지나가던 나무 님? 그 말을 풀이하자면 나무가 자기 멋대로 움직였다는 거다. 땅에 박혀 있던 나무가 말이다. 난 민호를 보았다. 그러고는 물었다. "개그냐?" "네." "……." "신선하지 않습니까?" "무지……." 너무 신선해서 미쳐 버리겠다. 한마디로 개그를 한 거란다.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개그를 왜 하는 건데? 뭐 알아 들어야지 웃든가 말든가 하지! 이건 고차원의 개그라기보다는 미래가 안 보이는 개그다. 지금 권유하는 바다. 때려치워라. 뭐 이야기가 딴 데로 새어 버렸지만, 다시 본론을 이야기하자면……. "시비질을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지?" 그렇다. 그쪽에서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대응한다. 일단 대응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중요한 게 있다. 그건 바로……. "저 짜가 놈을 콰악!" 나의 모습으로 열심히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신다는 그분을 잡아야 한다. 민호의 정보에 의하면 상당한 무력의 소유자일 뿐만 아니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신단다. 그래서 위치 추적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넋 놓고 볼 수도 없는 게 내 입장이다. 그 자식이 범죄를 저지를수록 나만 더 나쁜 놈 되는 거다. "어떻게 잡아야 하지?" 우리 신비의 인간 민호조차도 추적이 불가능한 그분을 어떻게 낚아야 잘 낚았다는 소리가 들리려나? 정말 궁금할 뿐이다. "저기 ,잘하면 제가 알 수도……." "……!" 그 순간, 우리의 정식 참모 기현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었다. 그래, 이런 추리 같은 건 머리 좋은 사람들이 하는 게 정상이라고! 기현이 말했다. "범죄 행위가 일어난 시간과 장소를 모두 알 수 있다면 그 존재의 패턴을 파악하고 심리를 이용해서……." 응? 뭔 심리? 갑자기 심리라는 단어가 왜 나오는 거니. 아니, 그것보다 범죄 행위가 일어난 시간과 장소를 전부 다 알 수는 없잖아? 일주일에 500건에 달하는 마구잡이식 악행이란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간과한 점이 있다. 그건 바로……. "혹시나 해서 알아뒀습니다." "……." 그러니? 혹시나 해서 일주일 사이에 생긴 내 가짜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 완료한 거니? 그게 가능한 일이라는 게 도대체 내 머리로는 이해 불가다. 내 가짜 녀석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혹시나 저 범죄를 내가 저지른 건 줄 알고 나중에 '형님의 범죄'라는 책을 발간할 의도로 알아 놓은 건 아니지?" 왠지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나불거리는 나였고, 그 말에 민호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빙고입니다!" 난 날았다. 왜냐고? 그건 퀴즈로 남겨 두겠다. "……." 추리에 들어간 지 어느새 12시간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 왜 결론이 안 나오는 거지? 난 슬며시 민호에게 다가가 물었다. "네 동생, 천재 맞지?" "맞다고 합니다." "그런데 뭐 이렇게 오래 걸려?" "흐음, 대충 10초면 추리를 끝냈을 텐데요?" "……?" 그럼 뭐 하는 건데? 추리가 끝났는데 12시간 동안 뭐 하는 거냐?! 난 궁금해서 물었다. "그럼 도대체 저분, 뭘 저렇게 생각하는 거임?" "확인 작업이겠죠." "……." "저분은 남에게 절대 피해를 줄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사상을 가지셔서 확인 작업을 측정 불가에 달할 만큼 하십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천 번쯤했을 것 같은데요?" 할 말이 없다. 남에게 절대 피해를 줄 수 없다는 마음으로 확인 작업만 수천 번? 그리고 민호야, 거듭 말하는데 네놈 사상이 이상한 거거든?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는 사상을 왜 말도 안 되는 걸로 변환시키는 거냐. 하아. "이제 됐으니까 추리 결과나 불러 달라고 해." "형님." "왜?" "하룻밤 주무시고 오시죠?" "……." 그건 뭔 말이냐?! 하룻밤 주무시고 오라니? "저분은 자기가 100% 확신하지 않으면 절대 말 안합니다." "……." "그러니 앞으로 30시간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 "뭐, 인생이 그런 거죠." 30시간? 그 시간이면 가짜가 엄청난 악행을 무지무지 저지르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런데 자고 있으라니, 말도 안 된다! 난 당장 기현에게 다가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지금 당장 말해!" "아직 확신……." "곱게 말할래, 더럽게 말할래?" "마,말할게요." "……." 뭔가 본의 아니게 협박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때 옆에서 스르륵 나타난 민호가 말했다. "굿 잡입니다." "……." "저분을 단숨에 협박으로 재우다니, 역시 형님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고 멋지십니다. 형님은 대단하십니다. 정말 끝내준다죠?" 뭐, 일단 칭찬이라고 알아들을게. 제 12장 [잠복근무?] 우리는 대기를 타는 중이다. 풀이하자면, 기현이 추리한 장소에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그 가짜 녀석이 나타나면 그대로 척살인 거다. 물론 여기서 무슨 심리학에다가 이론에다가 어쩌고저쩌고 하기는 했는데, 그런 걸 내 뇌에 담기에는 너무나도 힘들다. 간단하게 말해, 그냥 듣고 싶지 않다는 거지. 어찌 됐든 그렇게 우리의 기현이 미리 예측한 초콜릿 마을 에서 기다리고 있다. 근데 이름이 초콜릿이라니, 참으로 민망하면서 기억에 남는 이름이다. 그렇게 민호와 한참을 대기하고 있는 중에 민호가 물었다. "심심한데 야설 이름 대기나 할까요?" "……." "흥미진진할 것 같습니다." "너 혼자 하렴." "흐음." 미안하지만 난 야설에 대해서는 '뜨거운 핫커피'랑 '차가운 냉커피', 그리고 뭐 신이 만든 야설? 이름이 길어서 외우기도 싫다. 어찌 됐든 그것 세 개 밖에 모른다. 그에 비해, 야설계의 거장인 너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거다. 한마디로 게임 상대가 안 된다. 그렇게 난 민호의 제안을 거절한 채 하품을 연이어 뱉어 냈다. 도대체 이 자식은 어디서 나타나는 걸까. 지금 반경 1킬로미터 안에 바람의 힘을 펼쳐서 무슨 일이든 터지면 당장 알 수 있게 만들었건만 3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다. "저기, 형님." "……?" 그때 갑자기 민호가 나를 불렀다. 또 왜? 뭔 이상한 소리를 하려고! 난 저놈이 말만 하면 그냥 긴장 모드다. 한편 민호는 조용히 말을 이어 갔다. "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 말입니다." "……!" 혹시 찾은 거냐?! 나의 힘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3대 현자에 대한 유일한 단서가 담긴 신이 만든 야설을 말이다. 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민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민호의 뜨거워 보이는 입술…… 아아악! 나 미친 거냐?갑자기 왜 그런 미친 소리를 한 거지! 요즘 내 정신 상태가 이상해지고 있구나. 제길! 그렇게 내 자신을 비하하고 있을 때, 민호의 입이 열렸다. "왠지 모르게 조사를 하면 할수록……." "할수록?" "말해야 할까요?" "나랑 장난 치냐?" "아뇨, 형님이 약간(?)의 충격을 받으실까 봐." "……." 내가 충격을 받을 만한 이야기? 갑자기 듣기싫어진다. 하지만 들어야 한다. 그래, 듣자, 들어! 난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로 마음을 다독거리고는 말했다. "말해." "휴우." "……." 자꾸 한숨 쉬지 말고 말하라고! 사람 미치게 만들려고 작정 한 거니? 안 그래도 지금 미칠 것 같단 말이다. 곧 민호의 충격적인 한마디가 들려왔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왠지 모르게 현무 님과 아주 밀접한……." 난 기절했다. 그대로 풀썩! "……." 난 기절해서 꺠어나자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가 현무랑 연관이 있다니! 그 말은 그냥 포기하라는 말로 밖에 안 들린다. "아직 확정은 아닙니다." "……." "뭐, 밝은 미래가 있겠죠." 민호의 한마디가 그나마 안정을 주었다. 그래, 확정은 아니다. 그냥 단지 조금 연관되어 있을 수 있는 거다. 굳이 현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개소리는 아닐거야. 그래, 그런 거야! 앞으로 나에게 밝은 미래는……! "……."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 느낌, 참으로 아름답다. 아니, 이게 아니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긍정적인 상황이 온다는 말이 있잖아? 그래, 긍정적으로! 난 항상 부정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봤는지 모른다. 그래서 항상 일이 꼬였던 것이고 말이다. 이제부터는 밝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그러면 나에게 행복이……! "호이, 호이!" "……." "룰루랄라." "……." "뿡양!" 뭐지? 이섬뜩하고도 익숙한 목소리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에 오한이 들었다. 너무나도 섬뜩하고 심지어는 공포가 온몸을 점령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갑자기 세상이 노래지는 이상한 경험도 옵션으로 따라오고 있다. 그리고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닐 거다. 그래, 이건 내가 너무 피곤해서 들은 환청이다. 확실해. 그런 거야! "호?! 오, 제자 군이 아닌가?!" "……." "이거, 정말 반가운걸." "……." "오늘도 열심히 성자 활동 중인데 이렇게 제자를 만나다니, 허허허." "아아악!" 난 비명을 질렀다. 환청은 아니었다. 왜냐고? 눈앞으로 그 인간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왜 당신이 여기 있는 거야? 응? 지금부터 밝은 미래를 꿈꿔 가면서 살 예정인 내 앞에 왜 나타난 거냐! 한편 그 속옷 변태는 나를 보더니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나중에 합체하지." "……." "그럼." 슈우욱! 그 말과 함께 정말 바람과 함께 사라지셨다. 그리고 그제야 난 그속옷 변태가 내게 건네준 그 '무언가'를 확인했다. 붉은색의 팬티였다. 아니, 푸른색도 있고 하얀색도 있다. 대략 6가지 종류의 색깔로 이루어진 팬티들이었다. 난 이상황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분명 어디선가 많이 본 상황, 데자뷰 현상인 건가? 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었고, 그 때문에 난 한 편의 '도망'이라는 주제로 엄청 도망가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흐음, 왜 그런 걸까나? "저기 속옷 도둑이다!" "저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다!" "잡아!"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야 한다!" "왕비님의 팬티를!" "……." "잡아라!" "죽여!" 그때 우르르 몰려오면서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나를 지목하는 기사들. 아, 그러고보니 난 분명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그 속옷 변태가 나를 어떻게 알아본 거지? 무슨 투시안이라도 개 발한 거냐? 정말 신기하구나. "즉결 처형이다." "폐하께서 잡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직위를 박탈하신다고 했다." "폐하를 위해서!"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건 저번보다 더 애들이 미쳤다. 흐음. 일단 생각은 나중에 하고, 지금 할 일은……. "……." 잽싸게 도망가자. "……." 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튀니까 순식간이다. 정말 이 직업, 속옷 변태들에게는 최상의 직업일지도. 그나저나……. "왕비의 팬티?" 저번에는 공녀의 팬티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왕비의 팬티다. 황제의 부인, 그러니까 유부녀의 팬티를 훔쳤다는 거냐? 아아, 이 인간 도대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짐승보다 못한 행동을 하다니! 아무리 그래도 유부녀 팬티를 훔치다니, 답이 안 나온다. "허허, 역시 고마워." "……." 그때 어느새 그 속옷 변태가 내 앞에 나타났다. 진짜 내가 저자의 제자라는 게 저주 스럽다. 진짜 말이야! 난 그 속옷 변태에게 고함을 질렀다. "제발 이런 저질적이다 못해서 왕저질스러운 일 좀 하지 마요! 결혼 안 한 사람 속옷 훔치는 것도 저질인데, 이제는 결혼한 사람 속옷을 훔쳐서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결혼하지 않은 여자 속옷 도둑도 왕 저질인데, 심지어는 유부녀의 속옷을……. 하아, 진짜 내가 쪽팔려서 미칠 것 같다.그때 그 속옷 변태는 무의식적으로 들고 있던 팬티들을 유유자적 집어 들면서 말했다. "난 성자가 되기 위해 이러는 거네." "……." 염병! 도대체 그런 저질적인 모습과 성자와의 연관성이 어디 있단 말이냐? 짝짝짝. 그때 뜬금없이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난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느새 쫓아온 민호 사마가 감동에 찬 얼굴로 눈물 을 흘리고 있었다. 진짜 눈물 말이다. 그것도 마치 무슨 시상식에서 대상이라도 받은 뒤 흘리는 감동의 눈물처럼. 그리고 말하였다. "이런 멋진 성자 분이!" "오!" "……." "……." 둘은 서로를 뜨겁게 바라보았다. 차갑게도 아니고 뜨겁게 왠지 미묘한 눈빛으로? 나도 뭔 말인지 모르겠으니 넘어가 주길 바란다. 한편 그 속옷 변태는 감동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최고의 성자에 달할 존재를 우리 제자가 알고 있었단 말인가?!" "저는 아직 성자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아까운 존재입니다." "허어! 아니네, 자네는 성자네!" "아닙니다. 오히려 성자는 그쪽이십니다!" "허허! 너무 겸손해도 좋지 않은 거네." "전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이런! 이렇게 아름다운 성자가……." "그쪽이야말로." 난 할 말을 잊어버렸다. 두 미치 변태의 대화에 말이다. 아아악! 이해할 수가 없어. 아니 , 이해하고 싶지 않아! 그들의 알 수 없는 대화를 들으니 내가 넘볼 수 없는 마의 벽이라는 게 마구 느껴졌다. "저를 제자로 받아 주는 게 가능하시겠습니까?" "허허." 그때 민호의 한마디가 들려왔고, 그 말에 속옷 변태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이미 난 제자가 있는 몸." "흐음." "난 우리 제자에게 성자의 길을 보여 주고 싶네." "안타깝군요." "저기요!" "……?" 그때 나의 강력한 외침에 날 보는 속옷 변태. 나는 그를 향해 어이 상실한 얼굴을 한 채 말하였다. "지금 뭐라고요?!" "제자에게 성자의 길을 보여 준다고 했네만." "……." "나의 사명감이지." "……." 한마디로 나보고 속옷변태가 되라는 거냐? 여자에게는 관심 없고, 오직 여자 속옷에만 관심 있는 변태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리고 그딴 사명감 갖다 버려라. 난 죽어도 당신들이 말하는 성자의 길에는 안 들어갈 거다. "형님 , 기회입니다." "기회는 개뿔!" "저렇게 위대한 분이 위대한 세계로 이끌어 주실 기회입니다. 정말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더 어렵다죠?" "닥쳐!" "안타깝군요." 안타깝기는 개뿔! 난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이 변태들과 더 있다가는 내가 이상해질 것 같다. "……!" 물러나는 도중이었다. 그들이 나를 동시에 바라본 건 말이다. 그러더니 위험한 눈빛으로 나에게 속삭였다. "즐기죠." "즐기자." "……." "어서 이리 오십시오, 형님." "그래, 제자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난 냅다 달리면서 외쳤다. "오, 오지 마! 이 변태들!" "헉, 헉!" 난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도 쉬지 않고 그 변태들과 격차를 벌리기 위해 달려왔더니 너무 힘들다. "정말 섬뜩했어." 이게 그 유명하다던 시너지효과라는 건가? 혼자만으로도 강력한 압박을 줄 수 있는 두 사람이다. 그런데 둘이 합체해 버리니 도저히 감당해 낼 자신이 없다. 한마디로 말로 표현이 불가능 하다. "허허! 세상이 어찌 되려고." 그냥 변태도 아니고 왕변태도 아니고 쓰리변태가 출몰한단말인가. 정말 세상이 망할 징조인가 보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미친 변태들이 요새 양성화되고 있다는 게 슬픈 현실이지. 옛날의 적당한 (?) 변태들이 괜찮았지, 허허허! 난 마치 신선이 된 듯 옛날 타령을 했다. 좀 오버한 감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세상이 이만큼 타락했다는 거다. "꺅!" "……." 그때 어디선가 무언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이건 위급한 상황에서 나오는 여자들의 상징, 비명 아닌가?! 솔직히 처음 들어 본다. 왠지 모르게 신선…… 아, 이게 아니지! 어서 구출하러 가는 거다! 드디어 나도 착한 일을 하는 거냐?! 오오, 내가 바로 이걸 원한 거라고. 상황이 날 타락시켰지만 나도 이런 기회만 오면 언제든지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순수한 남자라는 걸 보여 주는 거다! "……." 난 굳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물었다. "넌 누구니?" "……." "아니, 질문한 것 자체가 잘못인가?" 내 앞에 있는 한 남자, 내 모습과 완전히 똑같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같을 수가 있는 걸까? 닮은 것도 아니다. 완전히 나다. 한마디로 복제 인간? "사, 살려주세요! 꺅!" "……!" 그때 난 다시 들려온 소녀의 전매특허 비명 소리에 고개를돌렸다. 그런데……. "……." 거기에는 40대 초반 정도로 되어 보이는 여자 분이 계신다. 한마디로 아. 줌. 마. 물론 위기에 처한 여성을 구해 주고 그 일을 계기로 뭔가가 일어난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나에게 예진이가 있으니까 필요 없다는 게 정답이겠지. 하지만……. "이건 좀……." 물론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만 40대 아줌마가 왜 소녀의 비명 소리를 지르냔 말이다. 뭔가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기분? 그게 느껴진다. 파악! 그 순간 순수하다가 못해 순수계의 훈장(미확인 사실)까지 받은 날 타락의 존재로 만든 가짜 녀석이 검 한 자루를 들고 다가왔다. 확실히 빠르다. 흐음,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충분히 그렇게 대형 범죄들이 펑펑 터질 만하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내 기준에서는 하품 나오는 속도다. 모든 저주받은 운을 받은 나지만, 그 대가로 얻은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초강력 울트라 메가패스(?) 인 나의 힘이다. 디재스터의 스킬만으로도 엄청나지만, 타이틀 덕택에 올 능력치 10,000 그리고 패시브가 적용되면 100,000까지 올라 간다. 한마디로 막장이라는 거지. 이런 엄청나다 못해 흥분되는 무력을 가진 나지만, 그 대가로 잃은 게 너무 많아서 그리 좋지는 않다. 휴우.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생각을 해 주는 시간에 어느새 다가온 그 가짜 녀석에게 난 그대로 손을 내밀었다. 그런 다음……. "에어 블레이전." 콰앙! 난 공기의 압축을 이용한 디재스터의 특별 스킬 한 방을 선물해 줬다. 그런 다음 일어난 현상은……. "디 엔드?" "……." 그 가짜 녀석은 흔적도 없이 멀리멀리 사라져 버렸다. 대략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말도 안되는 무력에 내 자신이지만 소름이 끼쳤다. "꺅! 제 생명의 은인이세요!" "……." 그때 위기에 처했던 40대 아줌마가 여전히 소녀의 목소리로 염장을 질렀다. 저기, 나이도 드셨는데 이런 건 옳지 않아요. 듣는 입장에서는 소름 끼친다고요. 그리고 그 순간, 그분은 쑥스러워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용사님, 드릴 것은 저밖에 없어요." "……." "이 소녀, 용사님을 위해 한 몸 바치겠습니다." "……." "저를 받아 주세요." 무섭다. 난 오늘 한 가지 알았다. 세상에는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말이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 "제자와 같이 다니기 위해서지롱!" "……!" 난 속옷 변태의 너무나도 당당한 한마디에 그대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나랑 같이 다닌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때 속옷 변태의 말이 이어졌다. "앞으로 제자도 성자가 되도록 적극 협조하겠네." "전 열심히 도와드리겠습니다." "……." 날 성자(속옷 도둑)로 만들겠다는 엄청난 발언. 그리고 그 성자 프로젝트에 적극 도움을 주신다는 민호 님,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자, 첫 번째 강습은 속옷에 대한 종류를……." "안 배워요!" "허허." "형님, 기회입니다." "넌 닥치고! 그런 저질적인 이야기 좀 하지 말라고!" "성자라네." "개뿔!" 이날 일행에게 재앙적인 존재가 한 명 추가되었다. 그러고 보면……. "디재스터=재앙? 난 재앙을 달고 다니는 남자?" 미묘하게도 내 직업과 무지무지 흡사하다. 착각이겠지? 응? 누가 착각이라고 말해 줘, 제발! 제13장 [슈퍼 울트라 하이테크 성?] 휴우, 드디어 이제 끝이구나. 난 게임을 시작할 당시 어느 한 정체불명의 존재 때문에 1억 8천 240만 원이라는 빚을 졌다. 하지만 난 좌절하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순수하게 의뢰를 맡아 가면서 빚을 갚아 나갔다. 하지만 나의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에르카니아의 몬스터들, 그들은 나의 성을 부쉈다. 아,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자기가 부순 건 생각 안함). 그래도 난 좌절하지 않았다. 또 열심히 빚을 갚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열심히 빚을 갚던 나, 어느새 빚을 다 갚고 있더라. 그런데 사신인가 뭔가 하는 삐리리(음성 변조 처리) 자식이 오더니, 그대로 내 성을 말아먹었다. 그것도 전부 다(이것도 자기가 다 부쉈음). 하아, 정말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았다. 일단 자그마한 아지트를 하나 마련한 뒤 잠수 타며 또 돈을 벌었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인간 승리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제 200만 원이야!" 그래, 200만 원 남은 거다. 저 돈만 갚으면 난 드디어 '빚쟁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으하하하! "저기, 형님." "……?" 그때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서 한참을 웃던 내게 민호가 오더니 미소를 지었다. 난 그에게 물었다. "왜?" "축하드립니다." "뭐, 일단은 고맙다고 해 두지." 네놈 때문에 일이 그렇게 된 점도 있으니 너의 축하 인사도 영 반갑지도 않은 나다. 그렇다고 축하한다는데 무시할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제가 형님을 위한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 "왜 그러십니까?" "방, 방금 선물이라고 했어?!" "네." "헉!" 민호가 선물을 주다니, 이런 세심한 면이 그에게 있었단 말인가?! 내가 빚을 다 갚는 모습에 감동해서(?) 선물을 준비하다니! 미안하다, 민호야. 지금까지 오해를 했던 것 같구나. 너에게도 쥐꼬리만큼, 아니 개미만큼의 양심은 있었구나. 뭐,그 정도로만 인정해 줘도 감사해라. 그 순간 민호가 겸연쩍은 듯 말했다. "큰 선물은 아닙니다." "아니, 크건 작건 중요하지 않아! 성의가 중요한 거지!" 그래, 그런 거다. 100원짜리라도 성의만 있으면 되는데 100원에 별로 성의는 안 보인다. 가끔씩 난 '100원 짜리라도 성의만 있으면 돼'라고 말하는 분들을 본다. 하지만 막상 100원짜리 내밀면 인상 구기신다. 왜 그런 걸까? 사실 일정 액수는 넘어가야 성의가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물론 정말 100원에 성의를 팍팍 넣어서 준다 해도 변하지는 않는다. 어찌 됐든 난 민호를 정말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며칠 전에 만난 변태 속옷 도둑과 어울려서 더 변태가 될줄 알았는데, 이렇게 기특하게 변하다니. 어쩌면 변태 속옷 도둑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모습이 비춰져서 충격을 받은 걸까?! 오,이건 예상치 못한 수확인데? "근데 형님의 사부님은 보면 볼수록 감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 "말 그대로 이미 성자이신 것 같군요." 반전은 안 일어나는군. 너무 많은 걸 바랐는지 모른다. 그래, 일단은 민호 군도 이렇게 조금씩 변하는 것에 의미를 두자. 너무 많은 게 변하면 죽을 때가 되었다고 하지 않은가? 그나저나 선물은 무엇일까?! "……." 난 민호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에서 사람이 없는 필드 위에 지어진 어마어마한 크기의 한 건물을 보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민호를 보면서 물었다. "이건 뭐니?" "아지트지요." "……." "저희의 제 2아지트입니다." "……." 뭐? 제2의 아지트? 잠깐! 제2의 아지트라니 그건 무슨 말이냐?! 나 이해가 안 간다, 민호 군? 그때 민호가 말했다. "형님이 제1아지트를 다 부수셔서 제가 2아지트를 지었습니다." "……." "물론 보강도 충분히 했습니다.성 내부는 오리데오콘으로 도배를 해서 형님이 아무리 폭주하셔도 다시는 부서질 염려가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 "그뿐 아닙니다. 전 제1아지트보다 크기가 3배가 되면서 다양한 도움이(?) 되는 많은 방이 추가되었습니다." "……." "물론 이것뿐만이 아니죠. 성에 근접할 수 없도록 베리어를 형성……." "저기, 민호 군." "……?" 난 민호의 설명을 듣다 말고 그에게 말하였다. 그래, 오리데오콘으로 만들든 크기가 늘어나든 베리어가 추가되었든 내 알 바 아니다. 지금 내가 알고 싶은 건……. "돈은?" "대출받았죠." "……." "28억 2천만 원입니다." "……." 갑자기 멍해진다. 설마? 싱긋. 그때 민호는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제 명의로 했습니다. '선물' 이잖습니까?" "휴우," 그 한마디에 한숨을 마구 내쉬었다. 난 혹시나 했다. 저자식이 무슨 개지랄을 해서 내 이름으로 또 빚을 만들어 낸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하니 너무나도 마음이 놓인다. 그렇지만……. "성 만든 것까지는 좋아. 근데 성을 만들기 위해 빚진 금액은 뭐로 갚을 건데?" 그렇다. 이게 핵심 포인트다. 약3억 정도의 빚을 갚으면서 내가 얼마나 뼈 빠졌는데. 근데 저놈은 당당하게 28억 2천만원을 빌렸다. 도대체 돈에 대한 개념은 어디로 보낸 거지. 뭐, 워낙 자신의 야설이 천문학적인 가격이다 보니 걱정 없다는 건가? 드디어 이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 형식으로 다가가기로 변경한 건가? 마구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민호가 말했다. "뭐 갚아지겠죠." "야설 팔아서?" "아뇨." "그럼 뭐로?" "글쎄요." 야설을 팔아서 갚는 것도 아니면 뭐로 갚는 건데? 아니, 그것보다 이런 대책도 서지 않는 놈에게 누가 그런 거액을 선뜻 빌려 준 거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난 궁금한 거 참지 못하는 체질이기에 바로 물었다. "근데 용케도 그런 큰 액수를 빌려 오다니 그것도 신기하다?" "뭐, 형님이 워낙 신용도가 높으니까요." "……?" "한마디로 형님이 아주 확실한 존재였습니다." 뭔 말이냐? 네가 그 큰 액수를 빌려 온 거랑 나랑 뭔 상관이냐? 내 신용도하고 네놈이 돈 빌려 오는 것의 상관관계가 궁금하다. "간단하게 형님의 보증으로 한 거죠." "……." 잠시 생각해 보자. 보증? 내가 알고 있는 보증이란 큰 돈을 빌릴때 그사람이 갚지 못할 걸 대비해서 대타를 준비하는 거다. 그게 내가 아는 보증이다. 그리고 민호는 나를 보증인으로해서 그 큰 금액을 빌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민호는 절대 돈 갚을 능력이 안 된다. 그러니 즉……. "……." 보증 선 내가 갚아야 된다는 결론? 난 그대로 죽었다. 일명 쇼크사. 저번 이리스의 누드 사건으로 출혈 과다에 이은 쇼크사였다. 제14장 [병문안] "하아……." 예진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한 곳을 보고 말이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결석이라는 걸 모르는 존재다. 그런데 오늘은 결석이었다. 그리고 예진이는 그 비어 있는 책상을 보면서 너무나도 큰 허무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서방님이 안 오셔서 상심 중?" "무, 무슨 소리야?" 그때 갑작스럽게 앞에 나타나더니 한마디 하는 민경이의 말에 예진이는 너무나도 놀랐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민정이는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 "정답이구나?" "……." "에구구, 서방님 얼굴 하루라도 안 보면 많이 상심이 오나 봐?" "저, 정말 아니야!" 예진이는 그 말에 열심히 부인했다. 하지만 제일 친한 친구인 민정이다. 그녀가 아무리 부정해 봤자 민정이를 속일 수는 없었다. 그 순간 민정이는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더니 속삭였다. "너, 이 소문 들었어?" "갑자기 소문이라니?" "재현이의 결석 이유!" "……." 민정이가 말을 이어 나갔다. "저번에 온 그 초특급 미소녀 여중생과 함께 야반도주를 했대!" "……." "물론 헛소문일지도 모르지만 진짜일지도 모르잖아." 두근두근. 민정이의 한마디에 예진이는 급속도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설마 그러지는 일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만약에 저 황당무계한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러면 자신은……? "개소문입니다." "꺅!" "뭐, 뭐야?!" 그때 학교 불가사의 중 하나인 민호가 갑자기 나타났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예진이는 비명을 질렀고, 민정이는 날카롭게 한마디 했다. 민호는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더니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개소문입니다." "……." "……." 민호의 포스에 두 소녀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래도 회복 속도는 민정이가 좋았는지 약간 당황한 어조로 물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학년 배지를 보니 1학년 같은데……." 1학년은 파랑, 2학년은 초록, 3학년은 빨강으로 표시되어서 배지만으로 학년의 구별이 가능하다. 근데 이렇게 1학년 학생이 2학년 교실에 냅다 들어오는 건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왜냐고? 민호는 학교 불가사의에 속한 무서운 존재였으니까. 괜히 그랑 엮이면 저주가 내려서 죽는다는 둥 재앙이 내린다는 둥 별별 소문이 다 돌고 있는 거다. 그래서 민호랑은 그 누구도 터치를 하지 않는다. 심징어는 선생님도 말이다. 어찌 됐든 민정이의 그런 질문에 민호는 자신 있게 말했다. "형님이 민혜 양과 야반도주를 했다는 건 구라라는 거죠." "민혜?" "저번에 왔던 그 귀여운 미소녀의 이름이 민혜라죠." "아……." 하지만 민정이는 잠시 후 의문이 생겨 다시 물었다. "그럼 재현이가 왜 결석을 한 건데?" "감동(?)을 받으셨다고 할까요?" "에?" "……." 감동과 결석과의 상관관계가 심히 궁금해지는 민정이와 예진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의 궁금증은 이어지는 민호의 말로 금세 풀렸다. "제가 자그마한 선물(?)을 드렸습니다." "……?" "……?" "그리고 그걸 받으신 형님은 너무나도 감동을 받으셔서 그만 쇼크로 몸져누우셨습니다(정말 뻔뻔 그자체)." "……." "……." 그녀들은 알고 싶다. 감동을 받았는데 왜 쇼크로 몸쳐누웠는지 말이다. 아무리 감동을 받았다 해도 쇼크로 누웠다는 경우는 처음이다. 그러니 결론은 민호가 제대로 된 선물을 준 게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예진이가 그런 것까지 알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많이 아픈 거야?" 예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 "심히 아프십니다." "……." "매우 아프시죠." "……." 예진이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민호는 예진이에게 살짝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그래서 예진 누님의 간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민호도 벼룩만큼의 양심은 있다!)." "하아, 하아, 하아……." 난 침대에 드러누운 채 흥분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건 절대 이상한 소리가 아니다. "이민호!" 이 빌어먹을 자식 때문에 아파서 소리 내는 거다. 드디어 200만 원만 갚으면 난 자유의 몸이었다. 하지만 그 자식은 나를 담보로 28억 2천만 원을 빌려서…… 아아악! 생각만으로도 엄청난 쇼크가 날 몰아쳤다. 사실 그 자식이 빌린 돈이다. 그리고 그 자식이 그걸 갚을 능력이 되면 내가 이러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자식이 열심히 갚을 놈도 아니고, 그렇게 되면 당연하지만 나다. 내가 그 돈을 대신 갚아야 한다. 그래서 이 보증이라는 게 무지 무서운 거다. 아아악! "죽여 버리겠어!" 나는 감정이 복받쳐 마구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익숙한 향기가 내 콧속으로 들어왔다. 난 설마 했다. 아닐 거야, 그래, 아닐 거야. 그렇지? 그러면서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나의 지랄발광에 너무나도 깜짝 놀란 예진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방금 전 나의 그 발작, 봤을까? 봤겠지? "……." "……." 우리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계속 흘렀다. "괜찮은 거야?" "으응, 뭐……." 무한 침묵 이후 예진이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온 거야?" 분명 문은 잠겨 있었다. 그런데 예진이가 어떻게 들어왔지? 그 말에 예진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너랑 제일 친한 동생이라는 민호라는 분이 열어 주셨어." "……." "왜 그래?" "아, 아니야. 하하하." 민호라는 말에 순식간에 경직되는 날 보고 묻는 예진이를 향해 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무튼 민호가 불법으로 집 문을 따고 예진이를 들여보냈다는 거군. 아악! "그래도 그 동생이 너를 많이 걱정하나 봐. 나보고 가서 위로라도 해 주라고." "……." 나를 많이 걱정해? 그래, 이렇게 예진이를 보내 준 것에 대해서는 진짜 감사해서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하지만 내가 누구 때문에 지금 이모양인데! "컥!" "왜, 왜 그래?" 갑자기 뒷목을 잡자 예진이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난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 "단지 한 아름다운 놈이 생각나서." "……."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이런 내 모습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리가 없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다. 하아, 그래! 일어서야 한다. 예진이에게 이런 얼굴을 보이는 건 좋지 않아. 그래! "아! 아무것도 안 먹었지? 죽이라도 쒀 줄까?" "……." 그 한마디에 갑자기 천국에 온 느낌이 들었다. 죽이라도 쒀 줄까? 그 말은 직접 예진이가 요리를 해서 나에게? "싫어?" "절대 좋아." "……." "무지하게 좋아." "그, 그럼 주방 좀 빌릴게." "많이 빌려! 언제든지!" "……." "……." 왠지 떨린다. 예진이가 우리 집 주방에서 나를 위해 죽을……? 아악! 생각만으로도 미쳐 버릴 정도로 좋다. 그리고……. "예진이의 앞치마 차림을……." 볼 수만 있다면! "알몸 에어프렌 말입니까?" "이 개 자식!" 그때 갑자기 나타나서 한마디 던지는 민호를 본 난 순식간에 그녀석의 멱살을 잡아 포획했다. 그러자 민호는 버둥거리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너, 이 자식!" "진정하십시오." "진정하게 생겼어?" "알았습니다. 제 죄를 용서해 주신다면, 예진 누님과 완전히 행복한 시간을 보내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 그 말에 난 순식간에 민호의 멱살을 놓았다. 그러고는 약간 무안한 엉조로 말했다. "큼큼, 뭐 그렇다면 특별히 용서를……." "감사합니다." "……." 뭔가 낚인 기분인데? 그렇지만 예진이와 행복한 시간만 보낼 수 있다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것 같다. 난 예진이 덕분에 쇼크의 충격에서 회복되었다. 그런데 '계속 아픈 척하셔야 합니다. 그것도 무지무지'라고 한 민호의 말이 기억났다. 난 민호의 말에 당황하면서 물었었다. '예진이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네.' 그떄 너무나도 담담하게 '네'라고 해서 살짝 당황했지. 다시 민호와의 대화를 기억하면……. '그렇게 하시면 제가 예진 누님이 형님에게 죽을 떠먹이게 유도하겠습니다.' '…….' '싫으시면 뭐, 거짓말 안 하셔도 됩니다.' '하겠다.' 이런 내가 미웠다. 하지만 예진이가 직접 떠 준 죽을 먹…… 아아악! 생각만으로도 너무나도 행복해서 미쳐 버릴 것 같은 이 기분! 만약 그런 꿈같은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열심히 거짓말해 줄 용의가 있다. "네?!" "직접 해 주셔야 할 듯 싶습니다." "제가요?" "네." "……." 예진이는 민호의 제안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직접 죽을 떠먹여 주라니,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말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민호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아프십니다." "……." "심히 아프십니다." "……." "그런 형님에게는 예진 누님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 "그렇게 생각 안 하십니까?" 또 발동된 화려한 입놀림, 다시말하지만 민호의 저 화려한 입놀림은 마치 그걸 꼭 해야 하거나 진실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화술의 신이라고 해야 하나? 한편 그런 민호의 사탕발림에 심각하게 고민하던 예진이는 잠시 후 너무나도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제 , 제가 도움이 된다면……." 낚였다. "……." "저기, 내, 내가 먹여 줘도 될까?" "……." 얼굴이 붉어진 채 그 말을 하는 예진이가 그렇게 깜찍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깜찍해서 돌아 버릴 정도다. 그리고 민호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그 녀석 말대로 예진이의 저 발언, 정말 너무나도 놀랍다. 한편 멍하니 있는 날 본 예진이는 부끄러운 듯 물었다. "시, 싫어?" "아니!" "……." "……." 그리고 침묵이 흐른다. 두근두근. 나의 심장은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하아, 이런 꿈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 실제로 일어난단 말인가?! 예진이가 나에게 직접 죽을 떠먹여 주는 이런! 그때 예진이는 여전히 얼굴이 심히 빨개진 채 조심스럽게 죽을 떴다(뭔 죽인지는 관심 없음). 그리고 그 죽을 뜬 숟가락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왔다. 아아! 이런 파라다이스 같으니! 잠시 후 난 그대로 그 숟가락을 덥석 물었다. 그러고는……. "……." "저, 저기, 뜨거울 건데……." "……." "괜찮아?" 너무 뜨겁다. 너무 뜨거워서 뒈지겠다. 아아악! "너무 성급했습니다." "네?!" "그때는 호호 하면서 식혀주셔야죠." "……." "형님은 중환자(?)입니다." "그, 그건 그래도……." "사랑하는 형님을 위해서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 죽을 떠먹여 주는 건 그렇다 치고 그걸 입으로 불어서 식혀 주라니, 상당한 난이도의 미션이다. 특히 부끄럼이 많은 예진이에게는 엄청난 미션인 것이다. 하지만 민호의 말도 사실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서 그 정도는 해 줘야 한다. 다시 입이 데지 않게 말이다. "저, 저기……." "……?" "저번에 저에게 고백한 거 있잖아요, 재현이가……." "네." "그거 이제 승낙하면 안 될까요?" 예진이 성격상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 자체가 마음이 쓰이고, 자신도 당당하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 말에 민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 "거듭 말하지만, 전 형님과 예진 누님의 영원한 사랑을 원합니다." "……." "예진 누님도 그걸 원하시죠?" "무, 물론요." "그렇기에 제가 마음이 아프지만(구라) 이렇게 두 분의 사랑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죄송해요." 또 낚였다. 너무나도 순진한 예진이에게는 악의 결정체인 민호를 당해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재현이라면 그나마 모를까, 예진이는 불가능하다. "후우." "……." 허허허. 난 조심스럽게 죽을 식혀 주는 예진이의 모습에 그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얼굴이 빨개진 채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다고 해야 하나? 정말 날 미치게 만든다. "저, 저기, 그렇게 보지 마." "미, 미안." 예진이는 내가 강렬히 쳐다보자 그렇게 말했고, 난 그 말에 얼른 사과했다. 그러자 예진이가 다시 말하였다. "아니, 기분이 나쁜 건 아니고, 이런 건 진짜 처음이어서 부끄러워." "……." 처음이란다. 사상 초유, 역사상 예진이의 호호(?)는 내가 최초란다. 이런 역사에 남을 순간을 비디오에……. "……." 찍고 있군. 난 어느새 예진이를 향해 몰래 카메라를 돌리고 있는 민호 군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민호 군도 엄지로 답해 주었다. 네놈이 저지른 만행은 말로 형언할 수 없지만, 이번 건은 살짝 넘어가 주마.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날 난 행복 속에서 살았다. 예진이가 하루 종일 간병해 준 덕택에 난 평소보다 더 건강해 졌다. 그런데……. "더 누워 계시죠?" "……?" "더 누워 계시면 예진 누님에게……." "아." "뭐, 거짓말이 싫으면 어쩔 수 없고요." "……." "이런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난 알고 있다. 여기서 저 민호의 사탕발림에 넘어가면 난 진짜 나쁜 놈이라고. 순진 무구한 우리 예진이에게 거짓말을 또 하게 되는 거라고. 하지만……. "할게." 예진이랑 단둘이 있고 싶다. 흐흑! 다시 한 번 그녀의 간병을 받고 싶어서 난 하나도 안 아픈 데 또 드러누웠다. 그리고 사흘 내내 예진이의 간호를 받았고 말이다. 예진아, 정말 미안해!난 나쁜 놈이야! 제 15장 [헌터들의 담합] "룰루라라라라라라!" "……." "……." "……." "……." 일행들은 당황하는 눈치다. 게임 접속 이후 평소보다 더 활기 찬 내 모습을 보고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민혜는 내게 물었다. "오 ,오빠, 내가 저번에 문병 갔을 때 누워 있었잖아." "……." "근데 갑자기 무슨 기운이? "글쎄?" "……." "한번 누웠더니 불끈 힘이 솟는다고 할까?" "……." "하하하, 뭐 그런 게 있어!" 민혜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내가 이렇게 미친 듯이 힘을 내는 이유는 나랑 민호만 아니까. 우헤헤헤! 난 신나게 웃으면서 외쳤다. "세계 정복이다!" "……." "……." "다시 새롭게 빚 갚고 행복하게 시작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해피 엔딩이야! 예진아, 기다리고 있어! 그녀들은 당황했다. 갑자기 너무나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바뀐 재현을 보고 말이다. 도대체 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괜스레 궁금해진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저렇게 열광적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 "……." "……." "……." 방에는 침묵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방에 있는 존재들을 보면 유저들은 너무나도 놀라 기절한 것이다. 이곳 페리언 월드에 존재하는 최고의 헌터들. 범죄자들에게는 그들의 이름만으로도 벌벌 떨게 만드는 최고의 범죄자 헌터 수십 명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도대체 한 명 한 명 만으로도 위엄을 줄 수 있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모인 걸까? 그때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한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모인 이유는 모두 잘 알고 있을 겁니다." "……." "……." "……." 말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사상 최고의 범죄자, 50억이라는 현상금이 걸린 '그' 를잡기 위해서입니다." "……." "……." "사실 우리 각자 한 명 한 명만으로도 수십 명의 범죄자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자는 아닙니다. 50억이라는 사상 초유의 액수가 걸린 만큼 오히려 우리들이 모여서 공격하기도 힘들 정도죠." 끄덕끄덕. 그 말에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그 존재의 힘에 대해서는 그들도 인정한 것이다. "그는 자연을 다룬다고 합니다. 아니, 정확히는 재앙을 다룬다고 하죠. 그래서 그의 이름은 디재스터라고 불립니다. 사실 아무리 뛰어난 자들이 뭉쳤더라도 자연과 대적해서 승리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긴 하죠." "휴우……." 그 말에 헌터들은 다시 한 번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저희들도 편법을 사용했으면 합니다." "편법이라니요?" "무슨 말입니까?" "어차피 그는 범죄자입니다. 범죄자를 특별하게 대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 "……?" "……?" 그 검은색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남자의 말에 이해를 하지 못하는 헌터들. "간단하게 말해, 그의 동료들을 이용해서 무력을 봉쇄하자는 겁니다." "……!" "……!" "제가 알기로는 그의 동료들은 무력 자체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동료들을 이용해서 무력을 봉쇄하는 겁니다." "잠깐만요!" 그때 이곳에 있는 헌터들 중 몇 명 안되는 여성 헌터가 한마디 했다. 그러고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그럼 저희랑 범죄자가 다른 게 뭐죠?" "다르죠." "……." "저희는 단지 그들이 향한 행동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뿐이니까요." "그건 궤변이에요!" "마음에 안 들면 안 하셔도 됩니다." "……." "하지만 정식으로 해서 승리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 그 말에 그 여성 헌터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포기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액수다. 나눈다고 하더라도 한 존재에게 몇 억은 떨어지는 액수다. 그리고 더 이상의 반발은 없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사진을 펼치더니 말을 이어 갔다. "일단 납치된 공주들과 다른 여자들입니다. 디재스터라고 불리는 남자가 이들을 상당히 아끼는 듯싶으니 그들을 이용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천천히 여자들의 사진과 더불어 청룡, 백호에 대한 사진도 내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 남자는 그의 핵심 인물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많은 일을 도맡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남자도 상당히 핵심 포인트이니 이 남자에 대한 포획은 절대로 실행해야 합니다." 그 사진에 있는 인물은 방실방실 웃고 있는 민호의 모습이었다. "어떤가?" "모든 헌터들을 선동해 놨습니다. 마스터." "흐음." 저번 헌터들의 모임에서 디재스터를 공격하자고 추진했던 남자, 베리킨. 그리고 그런 그의 보고에 의문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이 어두워서인지 그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베리킨이 그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네란과 엘라스의 처리는?" "놔둬라." "흐음." "어차피 그들에게 벅찬 존재였을 뿐." "디재스터의 전설의 무력과 그 참모의 머리가 합쳐진 이상, 사실 쒸운 싸움은 아니겠지." "마스터, 마스터의 궁극 목표는 파괴입니다. 왜 그들을 제거하지 않으시는 거죠?" "제거하지 않는 게 아니다. 못할 뿐이지." "……." "물론 싸운다면 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극심한 피해는 입겠지. 난 그게 염려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전력이 감소되면 안 된다. 단 한 존재에 의해 그들의 전력이 감소된다면, 제국들과 왕국들과의 싸움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디재스터라는 존재는 자신들의 전력을 순식간에 없앨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광역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니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여전하군, 재현이 놈과 민호의 콤비 말이야." 마이블라스트 마스터의 자그맣나 한마디였다. < 『디재스터』제 6권에서 계속> 죄송합니다 외전은 안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