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http://cafe.naver.com/fantasy9.cafe 프롤로그 순수의 기준 황당한 의뢰 신성왕국 베리타니아 페리네이아 숲 러브레터? 청룡의 엉덩이 현무의 특수 기술 절대 방어막! 해결법 여자들의 도시 레리타 살인 산장 이리스의 고민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 미래 청룡의 사랑? 다시 에르카니아로? 외전 민호의 일기 -------- 순수의 기준 콰앙! 수천 마리의 용들이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 내 주변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전문 용어로 싹쓸이라고나 할까? 수백 미터 안에 잇던 모든 게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이게 청룡의 스킬?" 스킬을 쓴 당사자도 어안이 벙벙하다. 아무리 청룡의 스킬이라고 하지만 이 사기적인 데미지와 광역은 뭐란 말인가. 제대로만 사용하면 한 방에 무지무지 많은 존재들을 없애버릴 수 있는 스킬이다. "멋지다." 난 감동했다. 약간(?) 이상한 청룡이기는 해도 그놈 덕택에 이런 화려하고 멋지고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못해 감동의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의 스킬을 얻게 된 것이다. 드디어 나에게 빛이 내린다, 빛이! 난 너무나도 감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데……. "아무 이상 없네?" "……." 분명 본체가 튀어나올 거라는 나의 순진한 생각과는 다르게 본체가 나오기는 커녕 방금 전에 내가 상대했던 그림자들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신다. 아아악, 이게 뭐야! 아무리 파괴력이 강하고 멋지고 어마어마하다 해도 그림자 한테는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게냐?! 흠,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쓸데없는 데 힘을 낭비하다니, 자연을 다루는 자는 바보 같군." "……." 빠직! 그때 조롱하는 분위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예상이 들리지 않다면 뒤에서 저 그림자들을 조종하는 본체 자식이다. 난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를 향해 도발적인 말투로 외쳤다. "덤벼!" 그런데 들려오는 대답은……. "내가 바보인가?" "……." "그런 하찮은 도발에 넘어가게." "……." 얘는 똑똑하네? 아니, 저게 정상인 거겠지. 내 주변에 워낙 이상한 애들이 많아서 이제는 저런 정상적인 모습조차도 어색하다. "남자라면 정정당당히 붙자!" 다시 한 번 도발을 감행했다. 그렇지만……. "크크, 이제부터 남자를 포기하지." 이렇게 응수하신다. 아아악, 이런 제길! 뭐야, 저 능글능글한 자식! 짜증 제대로 난다. 계속해서 이렇게 치졸하고 더럽게 놀아 보겠다는 소리지? 제길! 지금 난 청룡의 스킬 때문에 상당한 힘을 소모한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전투를 하면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무슨 수로 그림자를 해치워야 되는 거냐?! 그리고 그림자라는 거, 해치울 수나 있을까? "해치울 수 있죠." "……. 그때 어느새 민호가 나타나 한마디 했다. 난 그런 민호를 보면서 물었다. "언제 왔냐?" "방금요." "……. "형님이 마구 곤란해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찾아왔습니다." "정확하네." "저는 형님의 피앙새니까요." "……. 제발 그 피앙새라는 단어는 제거해 줄래? 듣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심히 안 좋아서 말이다. "방금 네가 한 말 사실이냐?" "물론입니다." "그림자를 상대하는 방법을 알아?" "그렇습니다." "네가 어떻게?" "잘요." 아니, 난 그런 의미로 물어본 게 아니라 네놈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느냐는 걸 묻는 거다,이 자식아! " '차가운 냉커피'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 "후훗." '차가운 냉커피' 는 '뜨거운 핫커피'와 용호상박을 이룬다는 전설의 야설이었다. 난 묻고 싶다. 왜, 왜, 왜 야설에 그림자를 상대하는 방법따위가 적혀 있는 거냐? 그뿐만이 아니라 그때 그 보물지도도 관련되어 있고, 청룡에 대한 것도 적혀 있다. 뭔가 이상하다, 확실히! 그리고 난 단정할 수 있다. 저 '뜨거운 핫커피'랑 '차가운 냉커피'는 레어 급 야설이기도 하지만 거기엔 무언가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하아, 야설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이라……. 뭔지 모르게 알롱달롱하군. 일단은 급한 일부터 처리하자. "방법 불어." "다 얼려 버리십시오." "……?" "그림자도 언답니다." "그래?" "네." "근데 난 처음 들어본다? 그림자가 언다는 소리는……." "저도 처음 들어 봅니다." "……." 그거 참 갈수록 의문투성인 야설이다. 아무튼 지금은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해 보는 수밖에 없다. 모두 얼려 버린다? 그렇다면……. "쇼 타임인가?! 물러서!" "네." 내 말에 민호는 무슨 제트기처럼 재빨리 뒤로 빠졌다. 이럴 때는 엄청 빠르다. 죽기 싫었나 봐. 푸시시식. 그때 다시 그림자들의 창이 나를 가리키더니 그대로 돌진했다. 하지만 난 피하지 않았다. 저 정체불명의 야설을 믿겠어! "폭설!" 파아앗! 순간적으로 어마어마한 눈이 내 주변 100미터에 강타했다. 그리고 엄청난 폭설의 힘으로 100미터 안에 있는 것들을 다 얼려 버렸다. 잠시 후였다. "……!" 진짜 말 그대로 얼었다. 나에게 날아오던 그림자 창들이 얼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인간의 모습에 근접한 그림자도 그대로 얼어 버린 채 있었다. 저놈이 본체인가? 파아앗! 갑자기 산산조각이 나 버리는 그림자들……. 엥? 진짜 얼음에 약했던 거야? 역시 이번에도 들어맞았다. '차가운 냉커피'의 조언(?)이 말이다. 이렇게 되자, 난 더 이상 묵언할 수 없었다. 당장 '뜨거운 핫커피' 와 '차가운 냉커피'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과연 그 안에 펼쳐져 있을 미지의 세계가 무엇일지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봐도 절대 평범한, 아니 전설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야설로만 치부하기엔 무리다. 확실히 무언가가 있다. 나의 두 손에 쥐어진 '뜨거운 핫커피' 와 '차가운 냉커피', 난 심호흡을 했다. 이렇게 떨리기는 처음이다. 너무 떨려서 벌렁거리는 심장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아무튼 그만큼 긴장했다는 말이지. "휴우, 이 책들의 비밀을 파헤쳐 주지!" 난 그 말과 함께 '뜨거운 핫커피'를 아주 당당하게, 위대하게, 카리스마 있게 열었다. "……." 하지만 난 곧 말문이 막혀 버렸다. 눈을 비비고 또 비비면서 봤다. "백지잖아!" 다른 페이지를 전부 펼쳐 보아도 백지 뿐이다. 이게 뭐야! "형님,왜 그러십니까?" "너, 뭐 하자는 거냐!" "……?" "이런 이상한 책을 왜 주냐고!" 이 자식이 아무것도 없는 책으로 나를 능욕하다니! 크윽, 참기가 힘들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민호는 번데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뻔뻔스럽게 말했다. 뭐, 예상은 했다. 저 자식이 순순히 인정할 리는 죽어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난 '뜨거운 핫커피'를 내밀면서 말했다. "다 백지잖아! 진품 내놔!" "네? 그게 진품인데요." "지금 장난쳐? 백지라고, 백지!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흐음." 그 말에 민호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너,왜 그러는 거냐? 민호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순수하지 않은 마음으로 이 책을 보려고 하셨군요." "무,무슨 소리?" "혹시 다른 목적을 가지고 보려고 하신 거 아닙니까?" "헉!" 저 자식이 그걸 어떻게 안 거지?! 설마 또 내 생각을 읽은 거냐,이 외계인아! 하지만 민호의 말에 의하면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이 책들은 순수하지(?) 못한 마음으로 읽을 시 글이 나타나지 않게 제작되어 있습니다." "……." "말 그대로 순수한 자들만 본다는 거죠."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어! 순수한 사람들한테만보인다고? 그럼 난 악한 인간이라는 거냐? 그런데 잠깐! 왜 네놈은 볼 수 있지? 네놈이 순수하다는 건 있을 수 없는데 말이다. 난 설마 하면서 물었다. "그 순수의 기준이 뭐냐?" "야설을 사랑하는 마음이죠." "……." "진정으로 야설에 대해 뜨겁고, 열정적으로 모든 걸 불태워 버릴 수 있는 마음이랄까요?!" "……." "그게 바로 진정 순수한 마음입니다." 그게 변태지, 무슨 순수한 마음이냐. 아무튼 간단하게 정리하면, 저 책은 웬만한 변태가 아니고서야 필독할 수 없다는 말이군.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아악! 보고 싶은데, 보고 싶은데……! 저 두 책에 담겨 있는 비밀을 말이다. 제길, 변태성 미달로 못 보다니, 참으로 미묘 그 자체다. 하지만 난 이 책들의 비밀을 파헤칠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다. 물론 변태가 된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오해 말도록. 나름대로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 반드시 읽고 말 것이다! 제 2장 황당한 의뢰 '폭풍전야'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상황에 참으로 적합한 단어다. 제국과 왕국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드래곤과 정체불명의 존재가 자신들의 공격을 순식간에 막아 내자, 바짝 경계를 하고 있다. 그 때문에 모든 나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다. 그리고 마이블라스트에게 도착한 정체불명의 도발 편지. 룰루비데(?)라는 이름의 세계 정복단이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에르카니아의 계속되는 실패와 드래곤들의 반란 등등 한마디로 모든 것이 개판 오 분 전이었다. 물론 그렇게 만든 '그분'들은 별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즉 난장판은 그들이 만들고, 무관심한 상황이랄까? 사실 '무엇이든지 들어드립니다'는 모든 걸 들어준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그런 까닭에 별 괴상한 의뢰도 다 들어준다. 예를 들어 귀신 퇴치라든가 요리, 고백, 호문클로스 찾기등 별별 의뢰가 다 들어왔다. 그리고 성공률 100%! 100%라는 단어가 심심해서 굴러다니는 단어도 아니고, 사실 엄청나게 멋진 단어다. 어찌 됐든 우리는 성공률 100%에 달하는 대단한 단체였다. 하지만 이런 우리들이라 해도 이렇게 황당한 의뢰가 들어오면 수습이 안 된다. "외계인의 침략을 막아 주세요!" "……." "……." "……." "외계인들이 침공할 거예요!" "……." "……." "……." 안에서 열렬하게 말하는 20대 초반 남자의 말에 우리 일행들은 할 말을 잊어버렸다. 외계인이라니? 무슨 이런 개뼈다귀 같은 소리를? "진짜라고요!" "……." "……." "……."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럼 나라도 입을 열어 주는 게 예의인가? 하아! "손님, 죄송하지만 아무리 저희들이 '무엇이든지 들어드립니다'라고 간판을 걸고는 있지만, 없는 외계인을 무슨 수로 막아요?" 그렇다. 아무리 무엇이든지 들어준다지만, 없는 것까지 만들어서 들어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자 남자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에요! 믿어 주세요." "하아." 솔직히 장난 같으면 하이 킥 한 방이다. 하지만 무척이나 진지하게 말하신다. 사실 현실에도 없는 외계인이다. 그런데 여기는 판타지 세계, 판타지 세계에 외계인이라니 생각만으로도 황당하다. 만약 이 세상에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이 게임의 개발진도 외계인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말도 안 되는 개소리다. 이 게임을 만든 사람들이 아무리 할 짓이 없어도 외계인을 만들 이유는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흥미를 더해 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럴 확률은 무지 희박하다. "1억 골드를 드릴게요!" "……." "외계인들을 무찔러 주세요!" 그때 남자의 제안, 1억! 갑자기 내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구라 쳐. 일만 받는다고 하고 망상에 젖은 저 인간한테 돈만 뜯어 내는거야. 크크! 으윽! 그건 정말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범죄다. 하지만 1억이다. 1억이면 대부분의 빚을 갚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액수인 것이다. 아아악! 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하죠, 형님." "……." 그때 민호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난 민호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물었다. "구라를 치자는 거냐?!" "아뇨." "그럼?!" "외계인들의 침공을 막으면 되지 않습니까." 이런 미친놈! 네놈은 또 왜 그러는 거냐? 마치 외계인이 있다는 듯한 말투는 뭐야? 하지만 잠시 후 민호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외계인은 있습니다." "……." "우연찮게 지나가다 봤다고 할까요?" "……." "진실입니다." 솔직히 민호가 '구라계의 레전드'이기는 하지만 이런 일에는 절대 구라를 치지 않는다. 물론 이상한 일에는 구라를 잘 치지만, 한마디로 민호의 알 수 없는 정보 루트는 꽤 믿을 만하다는 거다. 그렇다면 외계인이 정말 있다는 거냐! 판타지 세상에 무슨 외계인이냐! 이런 말도 안 되는! 난 기가 막히다 못해 황당해서 그냥 굳어버렸다. 외계인, 판타지 세상에 외계인이래. 으헤헤헤! "어떻게 하면 우연히 지나가면서 외계인을 볼 수 있는 거지?!" 그렇다. 민호의 발언! 우연히 지나가다가 목격했단다. 외계인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외계인이 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볼 수 있는 애들이니? 그게 말이 돼? 으윽! 머리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아프기까지 하다. 지금 난 의뢰를 허락한 상태다. 민호의 말을 믿고 외계인이 있다는 가정하에 외계인을 막고 1억 골드라는 금액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진짜 존재한다고 해도 무슨 수로 찾아?!" 세상에나, 아무리 어떤 일이라도 한다지만 이건 난감하다못해 어질어질한 상태다. 하아, 외계인이라니, 그리고 그 외계인의 침략을 막아 달라니. 도대체 무슨 수로 외계인을 무찌르지? "……." 막막하다. 말도 안 나올 정도로 말이다. 그래, 침착하게 생각해 보자. 일단 민호 자식의 말에 의하면 지나가던 길에 그 외계인인가 뭔가 하는 작자들을 봤단다. '우연히' 말이다. 외계인이 우연히 지나가다가 볼 수 있는 애들임을 오늘 처음 알았지만, 자기가 그렇다고 우기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리? 그래, 그것보다는 외계인을 목격했다는 장소가 어디인지가 중요한 거다. 난 민호에게 물었다. "걔네들 어디서 봤니?" 나의 물음에 민호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왜 그러는 거냐?! 말하기 곤란한 장소인가? "페리네이아 숲이요." "페리네이아?" "네." 난 그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페리네이아라?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들어 봤더라? "거, 거기는 드래곤들조차도 출입이 금지된 장소인데!" 그때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하는 이리스. 잠깐! 드래곤들 조차도 출입이 금지된 장소? 난 민호를 말도 안 된다는 듯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 장소에 외계인들이 있었다고?!" "네." "그것도 우연히 지나가다가 봤다고?" "그렇습니다." "드래곤들조차도 출입이 금지된 곳을 네놈이 무슨 수로 지나가?!" "글쎄요." "……." "세상은 아름다우니까요." 지금 그 말이 왜 튀어나오니? 머리가 혼란스럽다. 이리스의 말에 의하면 페리네이아는 정말 골 때리는 곳이었다. 그곳은 말 그대로 자살을 위한 장소라고 해야 하나? 누구든 들어가면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세뇌를 당해서 자살을 해 버린단다. 그게 아무리 정신력으로 먹고 사는 드래곤이라고 해도 말이다. 솔직히 드래곤들의 정신력은 상상 초월이다. 그런 드래곤들조차도 무언가에 홀려서 자살을 해 버린다고 하니 말 다 한거지. 그러니 다른 존재들이 견뎌 낼 재간이 있겠는가? 그런데 왜 저놈은 괜찮은 거지?! 드래곤들조차도 무언가에 홀려서 자살하는 곳을 어떻게 민호 자식은 그냥 우연치 않게 지나가다가 외계인들을 볼 수 있는 거냐! "아무래도 그 정체불명의 홀리는 기운이 민호에게는 적용 되지 않는 게 아닐까?" 나래 누나의 한마디. 그래,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이다. 마치 홀린 듯 자살하는 거라면 누군가가 정신을 조작하는 무언가를 한다는 거다. 하지만 민호의 정신세계는 드래곤들조차도 자살하게 만드는 그 미묘한 무언가도 침투하지 못한다는 사실. 한마디로 정의해서 대단하다 못해 섬뜩한 놈이다. "왜 그러십니까?" 한편 순진무구한 얼굴로 바라보는 민호. 난 그놈을 보면서 말했다. "네놈이 짱 먹어라." "……?" 일단 저 숲에 들어가려면 필수인 게 있다. 그건 바로 정신을 보호해 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거다. 물론 민호 자식은 예외지만 나머지는 그런대로(?) 정상적 이기에 꼭 필요하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런 걸 어디서 구하냐?!" 드래곤들의 정신력조차 무시할 정도의 세뇌라면 일반적인 것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다.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런 물건이 있나?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이리스를 바라봤다. 무엇이든 알고 있을 것 같은 그녀라면 대답을 해 줄지도 모른다. 나의 이런 진한 눈빛에 당황하는 이리스 양. 그런 이상한 눈빛 아니니 당황하지 마십시오. 괜히 제가 무안해지잖아요. 난 당황하는 이리스를 더 당황하게 만들 수 없어 재빠르게 말했다. "이리스." "네?!" "……." 너무나도 화들짝 놀라신다. 흠, 심히 무안하다. "혹시 정신력을 완전히 보호해 줄 만한 무언가가 없을까?" "정신력을 완벽히 보호해 주는 거요?" "응." 내 말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정신력을 완벽히 보호해 주는 거라면 '디스테란도'라는 아이템이……." "……!" 있구나, 그런 아이템이! 역시 있었다. 완벽하게 정신을 보호해 주는 아이템이 말이다. 난 기대에 찬 어조로 물었다. "그 아이템이 어디 있는데?" "그러니까 그 아이템이……." "응, 응!" "신성왕국 베리타니아의 교황청 깊숙한 곳에 있다고……." "……." 신성왕국 베리타니아의 교황청 깊숙한 곳?! 제 3장 신성왕국 베리타니아 신성왕국 베리타니아. 8개의 왕국 중 하나다. 하지만 다른 왕국과는 격이 다르다. 한마디로 말만 왕국이지. 힘은 제국과 비등비등하다고 할까? 신성왕국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여기엔 성기사나 프리스트등 신성계열의 집합소가 대부분이었다. 왕국 자체도 신성력으로 보호되어 있어서 마법사들이 여기서 마법 한 번 쓰면 피가 역류해서 뒈질 확률이 높을 정도다. 어찌 됐든 말만 신성왕국이고 힘은 제국인 나라가 이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쪽수보다는 질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렇게 많은 인원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한사람 한 사람이 일당백이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특히 성기사들, 자기 몸에 버플 걸고 생지랄(?) 하면 정말 무섭다. 아니, 그것보다……. "기분이 꿀꿀해." 그렇다. 이곳에 온 이후 기분이 심각하게 꿀꿀, 아니 더럽다. 공기 자체가 나와 안 맞는다고 해야 하나? 이 베리타니아에 온 순간 이 모양이 된 것이다. "왜 이런 거지." 난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면서 중얼거렸고, 그런 내 중얼거림에 대답이 들려왔다. "그건 이곳이 신성력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죠." "……." "형님 같은 대형 범죄자로서는 최악의…… 꾸엑!" 어느새 상대를 눕힌 채 밟고 있는 나. 난 웃으면서 말했다. "자꾸 대형 범죄자 만들래, 이 자식아!" "사실이잖습니까." "……." "제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무지무지 많은데요." "……." "형님은 하늘에 당당하신가요?" "……." "정말 당당하신가요?!" "……." "한 줌의 부끄럼도 없이?!" "……." "정말요?" "……." 아악! 민호의 알 수 없는 박력에 움찔거리는 나. 민호 말대로 난 범죄자였다. 그것도 대형 범죄자. 아무리 갖은 핑계를 대 봐도 벗어날 수 없다. 한두 번이면 실수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한두 번이 아니다. 꽤 번번하게 한 것 같다. "하지만 형님." "……?" 그때 민호는 진지한 얼굴을 하더니 갑작스럽게 물었다. "이왕 한 거 범죄자의 정점에 서는 건 어떨까요?" "……." "이미 순수해지기는 무리. 그럴 바에는 범죄자의 레전드……." 퍼억. "아악." 네놈 목적이 그거였구나? 이 자식을……! 나를 단순히 최고의 범죄자로 만들고 싶어서 또 개소리를 해 댔던 거냐? 아아앙? 왜 자꾸 순수한 사람을 나쁘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레전드 급으로 만들려는 거냐! 아앙? "형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고나 할까요?" "……." "세계 최고의 악당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 "진실되게 말입니다." 제발! 왜 그런 걸 보고 싶은 건데, 이 자식아! 정상적인 부탁이면 내가 진짜 선심 써서 들어준다. 하지만 뭐? 세계 최고의 악당이 되는 모습? 왜 그런 걸 보고 싶은데! 으응?! 말해 봐, 이 자식아! 난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도대체 왜 보고 싶은데? 이유라도 듣자! 아앙?" "아름다우니까요." "뭐가?!" "형님이 최고의 악당이 되신다면 분명 아름다울 겁니다." "……." "그거야 말로 아름다움이죠." 난 여기서 한 가지를 망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민호 자식을 정상ㅅ적인 생각으로 이해하기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걸 말이다. 장담하건대 이 세상, 아니 전 차원을 뒤져도 이렇게 이상한 놈은 없을 거다. 그건 단언할 수 있겠다. 하아! "형님, 전 보고 싶습니다!" 그때 민호의 강력한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미소 짓는 나. "보여 줄게." "정말입니까?!" "물론." 내 말에 무지 감격한다. 하지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대신 나도 조건이 있어." "……?" "야설계를 떠나라." "……." "왜?" "……." 민호는 그대로 석탑이 되었다. 민호의 저런 모습 처음이다. 그 어떤 말에도 전혀 흔들림 없던 민호가 야설계를 떠나라는 말에 흔들리고 있다. 그 말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냐?! 하지만 잠시 후. "그냥 형님이 대악당 되는 걸 안 보고 말겠습니다." "……." "야설계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민호의 의지가 보이는 모습이다. 난 정말 어떤 의미에서는 그를 존중하고 싶다. 보통은 저렇게 열정을 불태우기 힘든데 저 자식은 불태우는 것을 넘어서 홀라당 다 녹이겠다. 물론 그게 야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빠." "으응?" 그때 갑작스러운 민혜의 부름. 그녀는 나와 민호를 보더니 물었다. "눈에 띄는 행동은 안 하는게 좋지 않을까?" "아." 그렇지.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왜냐면 여기에 온 의도가 건전하지는 않으니까. 사실 교황청에 가서 '당신들의 보물인 디스테란도를 빌려 주세요!' 라고 하면 빌려 주겠는가? 당연히 안 빌려 주지.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약간(?) 범죄적인 행동을 하기로 했다. 그냥 몰래 빌려 쓰고 갖다 주기라는 걸 말이다. 절대 훔쳐가는 건 아니다. 일시적인 대여일 뿐이다. 그러니 범죄는 아니야! "그렇습니다. 미학이죠." 미학은 아니고, 이 자식아! 사실 내가 원래부터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당연하지만 이런 범죄적인 생각의 원천은 바로 민호다. 처음에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훔치죠." 하지만 더 이상의 범죄는 싫었다. 납치도 모자라 도둑질까지라니! 그러기는 정말 싫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떄 민호의 입질이 시작되었다. "그럼 대여하죠." "……." "잠시 쓰고 갖다 주는 거면 착한 짓입니다." "……." "착한 짓이에요." 글쎄다. 남의 물건 멋대로 가져가서 쓰고 돌려주는 게 착한 짓이라는 이야기는 네놈한테서 처음 듣는다. 아무리 돌려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범죄다. 그런데 그걸 착한 짓이라고 단정 짓는 저 자식. 하지만 그 말에 반응해서 실행하는 나. 사실은 내가 제일 나쁜 놈이 아닐까? 흐흑! "흐음?" 정말 사람 많다. 프리스트부터 성기사, 몽크 등 온갖 신성력 쓰는 애들이 다 모였다. 그리고 저런 분들을 보니 기분이 더 상큼하다. 아악! 진짜 민호 말대로 내가 범죄를 너무 저질러서 그런 것일까? 그래서 신성력이라는 힘에 이렇게 압박을 받는 건가? 아니, 그것보다는……. "뜨겁군." 그렇다. 너무 뜨겁다. 사람들의 시선이 말이다. 일단 남정네들의 시선이 뜨겁고, 여자 분들의 시선 또한 뜨겁다. 굳이 그 이유를 말하자면, 이리스의 너무나도 아름다운 외모때문이겠지.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후드맨들이기에……. 사실 걸리는 게 많은 나는 후드를 뒤집어썼고, 저번에도 언급했지만 민혜 누나와 나래 누나는 공주여서, 그리고 에리아스는 남자들의 시선이 싫다는 이유로 우리 일행엔 후드맨이많다. 당연한 말이지만 후드 하면 떠오르는 건 법사, 즉 마력을 사용하는 자들이다. 사실 마력과 신성력은 어울리고 싶어도 어울릴 수 없는 미묘한 관계이기에 법사들과 신성력을 다루는 사람들과의 사이는 좋지 않다. 그런 까닭인지 법사로 오해받기 딱 좋은 우리들의 모습에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거다. "멋지군요." "……?" 그때 민호가 한마디 던진다. 멋지다니? 뭐가? 민호는 갑자기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말했다. "저길 보십시오." "……?" 난 그 말에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 그대로 백지가 되어 버린 나의 머릿속. 왜냐고? 거기에는 내 모습이 찍혀 있는 대형 포스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포스터도 아니고 대형 포스터다. 포스터 중에서 제일 커! "이제 형님의 악명이 다른 왕국까지 전해졌나 봅니다. 역시 두 제국을 건들었더니 이런 아름다운 상황이 오는군요." "……." "흐음, 상금은 엄청나군요. 3억 골드라……." "……." "단숨에 빚을 다 갚을 수 있겠습니다." 난 그 말에 민호를 빤히 바라봤다. 이 자식이?! 난 매서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의미냐?! 이 자식, 설마 나를 팔아먹고 빚 다 갚으려는 파렴치한 생각을 한 거냐?!" "아닙니다." "……." "전 단지 형님의 몸값이 더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그래야 더 멋지잖습니까." 한마디로 범죄를 더 저질러서 금액 올리라는 말이냐! 이건 나를 팔아먹는다는 말보다 더 최악의 말이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 그 순간이었다. "저기, 실례지만 얼굴 좀 볼 수 있을까요?" "……!" 갑작스럽게 다가온 성기사 다섯 분. 그들은 우리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허억, 젠장! 너무 난리를 피운 건가?! 그들의 말에 무지무지 당황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한 분은 아주 당당하다. "싫은데요." "……." "……." "……." "……." "……." 민호의 한마디에 그대로 굳어 버리는 성기사들. 어떻게 저리 당당할 수가 있는 거냐?! 아아앙?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의 표정이 더욱더 굳어졌다. 그러고는 우리들을 더욱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왜 못 보여 주겠다는 겁니까?" 중앙에 서 있던 남자가 나서며 물었다. 그러자 민호는 웃으면서 말했다. "비밀이라죠?" "……." "……." "……." "……." "……." 난 여기서 느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말이다. 민호 자식의 단호한 말에 성기사들이 서서히 검집에 손을 갖다 댔다. 그 행동은 우리를 이미 의심스러운 자들로 여겼다는 뜻.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아마도 우리를 구속하려는 거겠지. 제길! 상황이 이러하니 난 별수 없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다. "튀어!" "잡아라!" "수상한 자다!" "저자들을 잡아!" "놓치면 안 된다!" 뒤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소리. 아아악, 행복해라(?) ! 경비가 삼엄해졌다. 쳇! 민호와 툭탁거리는 장면이 하필 성기사들에게 포착되는 바람에 의심을 받아서 이 모양이 되어 버린 걸 어찌하리. 하아! 그래도 그렇지……. "너무 포장한다(?)." 여기서 포장한다는 나의 거룩한 표현이 궁금할 테다. '포장한다=집 안을 공사한다.' 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면 한마디로 완전 방어 시스템 모드로 돌입했다는 거다. 최고의 도둑들조차 한 발자국도 못 들어오게 말이다. "……." "……." "……." 묘한 침묵이 흐른다. 나름대로 쉽게 슬쩍 할 수 있었는데 괜히 민호와 삽질하는 바람에 이렇게 순식간에 어려워지다니!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는 느낌이군요." "……." "그렇지 않습니까?" 그때 민호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지금 이 상황에 왜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는 건데? 그렇게 흥분할 만한 상황은 아닌데 말이다. 민호의 말이 이어졌다. "이런 범죄를 할 수 있다니!" "이런 범죄라니?" "한 마디로 미리 범죄 상황을 알리고 그걸 당당하게 이뤄내는 짜릿한 범죄?!" "……." "말로 형언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네놈은 무슨 생각으로 인생을 사는 거냐?! 저번에는 야설에 나오는 상황을 따라 하더니, 이제는 범죄 쪽도 짜릿한 게 좋은 거냐? 그리고 아무리 짜릿하면 뭐 해? 저 철벽 방어막을 무슨 수로 뚫느냐고. 드르륵. 그때 땅 밑의 출구가 열렸다. 물론 그 출구를 연 놈은 다름 아닌 민호였다. "가죠, 형님." "이건 뭐냐?" "뭐긴요, 비밀 통로죠." "……." "왜 그러십니까?" "왜 이런 게 있는 거니?" "혹시나 몰라서 만들어 뒀습니다." "……." "교황청으로 직방입니다." "그렇구나." "그렇습니다." 저 자식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느끼는 건데, 너무나도 황당해서 말이 잘 안 나온다. 그래서'……'가 제일 많아. 도무지 말을 이어 갈 수 없게 황당함이 나를 지배하니까. "이번 일은 위험하니 이곳을 잘 아는 민호와 나만 갈게. 나머지는 대기해 줘." 이런 비밀 통로로 많은 인원이 가면 난감하니까. 하지만 내 말에 민호는 이상한 대꾸를 해 왔다. "절 덮치지는 마세요." "안 덮쳐,이 자식아!" "믿어 보겠습니다." "……." 미치겠다. 이 자식하고 둘이만 간다는 사실 때문에 말이다. "야!" "네." "이건 뭐냐?" "보시는 대로입니다." "……." 난 레일 위에서 굴러가는 미니 열차에 탄 채 침묵을 유지했다. 민호는 진지하게 말했다. "비밀통로에서 열차 타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그럼 즐기시죠." "……." 그렇다고 비밀 통로에 미니 열차나 레일을 설치하는 미친 놈도 없을 것 같은데? 할 짓이 없지 않고서야 이렇게 시간과 돈을 들이며 왜 개지랄을 하겠냐! 앙? "전 안 미쳤습니다." "그러냐?" "그렇습니다." "좋겠네?" "그렇죠. 전 즐기는 남자니까요." 그래 많이 즐겨라. 그런 미친 짓거리 많이 즐겨. 누가 말려? 자기가 하고 싶다는데.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미니 열차를 타고 열심히 갔다. 그런데……. "이 열차, 왜 이리 느리니?" "빨리 가면 재미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너무 느린데?" "별로 안 느립니다. 한 30시간이면 도착합니다." "……." "왜 그러십니까?" "속도 올려,이 자식아! 여기 구경할 게 뭐가 있다고 30 시간이냐!" "형님." "왜?" "이게 규정 최고 속도인데요." "……." "더 이상 무리입니다." 거의 시속 3킬로미터로 가는 기차, 이게 최고 속도란다. 아, 정말 미치겠네!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든가! 이 미친 자식아, 이래서 언제 가! 네 말대로 정말 30시간 걸려서 갈 바에는 안 타고 만다! "그래도 만든 기념으로……." "네놈이나 실컷 타,이 자식아!" 민호에게 쏘아붙인 난 그대로 열차에서 내렸다. 사실 속도가 거지 같다 보니 그냥 내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런 내 모습을 본 민호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뭘 알아?!" "비상 제트 엔진을 사용하죠." "……." "물론 한 번 사용하면 다시는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형님을 위해서 쓰겠습니다." "그런 게 있냐?" "네." "흐음." 난 그 말에 슬그머니 다시 기차에 탑승했다. 그런데 민호가 갑자기 확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형님, 꽉 잡으십시오." "으응?" "판타스틱 할거거든요." "……."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푸지직. "뭐, 뭐야?!" 그때 갑자기 주변이 철창으로 막히고 내 몸에 무언가가 씌워졌다. "이건 뭐냐?" "보호 장치죠." "갑자기 웬 보호 장치?" "안전을 위해서죠." "……." 여기서 안전이 왜 나오는 거야? "도대체 무슨 짓……!" "갑니다." 푸시식. 그때 뭔가 미묘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였다. "아아아악!" "……." 나의 애타는 비명 소리가 시작됐다. 살려 줘! "……." "……." 나와 민호는 혼이 빠진 채 멍하니 있었다. 그런 우리 옆에는 완전히 파괴된 미니 열차가 있다. "……." "……." 정신이 몽롱하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몽롱 그 자체다. 그렇게 몇십 분이 지났을까?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난 정신을 차리자마자 소리쳤다. "너, 날 죽이려고 작정했지?" 그리고 민호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러자 민호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형님이 원했지 않습니까?" "내가 언제!" "빠르게 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이게 빠른 거냐? 미친 거지!" 거짓말 안 하고 말하겠다. 시속 100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달린 것 같다. 무슨 슈퍼 제트기도 아니고, 1000킬로에 달하는 폭발적인 힘으로 30시간 걸릴 거리를 4분 만에 와 버린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끔찍했다. 롤러코스터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말이다. 아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 그나마 다행이라면 ……. "안 죽었어." 시속 1000킬로미터로 달리는 열차에 타고 있었으니 어쩌면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 그것 만으로도 감사하자. 신조차도 가볍게 밟아 버릴 정도로 재수 없는 나로서는 빅행운인거야! 긍정적으로, 긍정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자 왠지 모르게 빛이 보인다. 아아아. 그래, 사람은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형님." "……." 그때 들리는 민호의 끈적거리는 목소리, 그리고 불안해지는 내 마음. 듣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내 마음속 절규다. 하지만 이런 내 절규를 철저히 짓밟는 악몽의 소리가 들려왔다. "지나왔는데요." "……." "여기는 탈출구 지역입니다." "……." "걸어서 다시 돌아가야 할 듯 싶습니다." 털썩. 난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아악!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왜 항상 이런 상황이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시 열심히 걸어서 돌아가는 중이다. 지금 걸은 지 2시간은 된 것 같다. 별로 밝지도 않은 이곳에서 말이다. 난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는 민호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일을 하려면 제대로 하든가!" "실수입니다." "……." 난 그 모습에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진짜 실수였을까? 하는 생각이 말이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그냥 도착하면 별로 짜릿하지 않으니까요'라는 민호의 말이 떠올랐다. 난 민호를 노려봤다. 그러자 민호는 웃으면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너, 일부러 그랬지?!" "무슨 말이신지?" "일부러 지나온 거 아니야?! 별로 짜릿하지 않다든가 뭔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에 말이야!" "억울합니다." "……." "제 억울함이 얼굴에 안 보이십니까?" "응, 안 보여." 아니, 오히려 웃고 있잖아.이 자식아, 웃고 있는데 어디서 억울한 모습을 보라는 거냐?! 그러자 민호가 말했다. "실망입니다." "실망을 하기 전에 그 표정부터 바꾸지 그래? 싱글싱글 웃고 있는데 어딜 봐서 억울한 모습이 보인다는 거냐?!" "보입니다." "……." "형님은 진실한 모습으로 저를 보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저의 모든 걸 느끼고 싶다는 마음으로 보신다면,지금 이 웃고 있는 모습에서 억울한 모습을 발견하는 게 가능합니다." "……." "저의 모든 걸 말입니다." 흠, 내가 왜 기분 나쁘게 네놈의 모든 걸 느끼고 표정을 알아맞혀야 하냐? 절대 사절이다. 어찌 됐든 우리는 진짜 힘들게 교황청으로 침입했다. 이제 남은 것은 교황청 지하 창고를 방문(?) 하는 거다. 뭐, 그 점에 대해서는 민호가 알아서 안내해 주고 있으니……. 그렇게 민호는 한참을 요리조리 다니며 아무도 없는 곳으로 잘도 안내했다. 이 인간은 뭘 해도 왜 이리 신기한 거지? 흐음. 그 순간이었다. "하아, 이런 아름다운 분들의 안내를 맡게 돼서 영광입니다." "고, 고맙습니다." "……." "아뇨, 저야말로 영광인걸요." "……." "……." 저 멀리 교황청 내부에 있는 모 분을 보고 난 그대로 굳어버렸다. 왜 저분이 여기에 있는 거지? 아아악! "절묘한 인연?" "이런 인연은 좀 사양하고 싶다만……." "당당해지십시오." "……." 범죄를 저지르면서, 그것도 좋아하는 여자애가 바로 앞에 있는데 당당해지라니! 그게 말이 되냐? 지금 저 앞에 있는 두 명의 여인 중 한 명은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예진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예진이의 친구인 나영이라는 분이다. 그리고 저 남자 놈은……. "뭐야?!" "글쎄요." "……." 저 남자 놈은 뭐냐! 차림으로 봐서는 성기사인가 보네. 아, 이게 아니라 왜 예진이 옆에 다른 남자가 있는 거냐! 더군다나 저 자식에게서 심각하게 불순한 의도가 느껴진다. 바로 그 순간 그 성기사의 손이 슬쩍 움직이면서 예진이의 몸을 만지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난 당장이라도 이성이 상실되어 튀어 나갈 뻔했지만, 다행히도 나영이라는 분의 눈빛 한 방에 그 미친 남자놈이 손을 거뒀다. "하아! 저 자식이 감히……!" 감히 나의 공주님을 만지려 들다니! 이런 쌍쌍바 같은 영혼이! 너무 흥분이 되어서 뭔 말을 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혼란스럽다. 그때 그놈의 느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척이나 아름다우십니다." "아, 고맙습니다." "후훗." 계속해서 닭살 멘트를 치는 저 자식! 나의 살기가 급증하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성 상실! "저 자식 죽여…… 으읍!" 그때 민호가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뛰쳐나가려는 나를 말리면서 입을 막았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들키면 안 됩니다." "……." "참으십시오." "……." 그래, 지금 내 입장을 생각하자. 아무리 봐도 당당한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저 자식을 그냥 두기에는 속에서 끓어오르는게 너무나 크다. 으악! "걱정 마십시오. 나중에 기회를 틈타 잘 죽이지요." "……." 난 한마디 하는 민호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말했다. "보통 이러면 다른 사람들은 말리는데,넌 왜 동조하니?" 그렇다 .보통의 경우 , 흥분해서 ' 저 자식 죽여버리겠어!'라고 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진정해!'라는 멘트를 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저 자식은 '걱정 마십시오. 나중에 기회를 틈타 잘 죽이지요'라는 멘트를 치신다. 뭔가 이상해. "왜 그러시는 건가요?" "아니……." 사실 정상적인 애가 그리워서 말이다. 아니, 그것보다……. "저 자식은 왜 계속 집적거리는 거야!" 지금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참고는 있다. 하지만 그놈은 쉴새 없이 예진이에게 집적거린다. 성기사라는 자식이 지금 뭐 하는 거야?! 그 순간이었다. 움찔. 은근슬쩍 예진이의 손등을 스쳐 가는 그놈의 손가락. 그리고 그런 행동에 깜짝 놀라는 예진이. 부숴 버리고 싶다. "형님." 그때 민호가 검은 복면을 쓰윽 내밀었다. 난 그것을 바라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땡스." 그리고 착용 완료." "윈드!" 난 바람과 함께 사라지면서 그 미친 성기사 놈을 순식간에 납치해버렸다. 물론 그놈이 갑자기 사라지자 예진이와 나영이가 당황했지만, 그게중요한게 아니니까. "너,넌 뭐냐?!" 성기사 놈은 밧줄에 꽁꽁 묶인 채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복면을 벗으면서 말했다. "대악당이다. 왜?" "……." "하아……." 한숨을 내쉬는 나.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네. 이 자식이 지금 누구한테……! 그때, 그놈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너,넌 2억만 골드가 걸린……!" 아차! 너무 흥분해서 나도 모르게 복면을 뒤집어썼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저 자식이 나를 파악해 버린 거다. 아아악! 저놈도 유저일 텐데 또 소문을 내면 이번에는 '교황청 지하 창고 털다!'라는 주제로 포스터가 걸릴 거다. 제길! 앗! 그러고 보니……. "예진이가 여기 있다는 건……." 나의 거대 범죄 수배 포스터를 봤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거다. 더군다나 크기도 일반적인 것하고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사이즈로 제작된 나의 수배 전단. 아아악, 모든 게 끝났어! 난 예진이에게 범죄자로 낙인찍히고 말 거야. "걱정 마십시오, 형님." "지금 걱정하지 않게 생겼냐!" "제가 있지 않습니까." "……." "제가 미리 예진 누님과 나영 누님에게는 절대 정보가 들어가지 못하게 100% 차단해 놨습니다." "헉!"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지,진짜냐?" "진짜입니다." 진짜라면 완전 대박이다. 그런데……. "무슨 재주로?" "극비입니다." "……." "그러니 걱정 마시고 범죄를 더욱 당당하게 즐기십시오."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는 몰라도 예진이에게 정보가 들어가지 않게 해 준 건 참으로 고맙다. 그런데 범죄를 당당하게 즐기고는 싶지 않다.! "제길, 어서 저 대악……." 퍼억! 나를 보며 대악당이라고 하는 그놈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난 다시 복면을 벗고 말했다. "누가 대악당이야? 아아앙? "……." "지금 나 기분 안 좋으니까 제발 스파킹(?) 으로 대화하자?" "이 바보 자식, 스피킹이다!" 빠직! 그 순간 머리가 휙 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였다. 퍽! 퍽! 퍽! "크아아악!" "으하하하! 이 자식이 지금 죽으려고!" "크아악! 자, 잠시……." "개뿔!" 난 사정없이 밟았다. 그런데 민호가 그런 나를 막았다. 설마 민호 너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었던 거냐? 남의 고통을 보고 싶지 않아 하는 순수한 마음? 하지만 이내 난 이런 내 순수한 생각은 한참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알았다. "좀 더 고문을 하고 죽이죠." 그럼 그렇지……. 난 나름대로 진짜 착한(?) 마음으로 반만 죽였지 진짜 죽이진 않았다. 그리고 교황청 지하 창고로 가서 디스테란도를 빌려 왔다. 그런데 왜 내가 악당이 되어 있는 거지? "흐음, 좋군요." 그때 민호는 한곳을 보면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성 한쪽 벽면에 걸린 포스터가 보였다. 거기에는 내 얼굴은 물론이고 밑에 3억골드라는 엄청난 액수가 쓰여 있었다. "이 자식아, 당장 떼! 지금 누구 약 올려?!" "그럴 리가요." "지금 뭐야?! 안 그래도 나가면 내 사진이 도배되어 있는데! 응? 그리고 예진이에게 이 사실이 들어가면……. 아아악!" "걱정 마시라니까요. 저를 믿으세요. 예진 누님 귀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도록 조치해 놨다는 사실을 100% 장담해 드리죠." "그러니까 무슨 수로?" "극비죠. 먹고살아야죠." "……." 여기서 먹고산다는 말이 왜 나오는데? 아아앙? 그래. 믿어 보자. 믿는 수밖에. 아니, 그것보다……. "그 포스터 거슬린다니까!" 제 4장 페리네이아 숲 페리네이아 숲, 그 외계인들이 산다는 미지의 숲이다. 이곳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두 이성을 상실하고 자살한다. 그래서 난 그걸 대비하기 위해 아이템 디스테란도를 빌려 왔다. 빌려 왔단 말이다! 진짜 빌려 오는 순수한(?) 마음을 가졌을 뿐인데, 왜 그것을 훔친 대악당이 되어 버린 거지? 으응?! 왜 그런 거냐, 도대체! "……."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눈물이 나온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저주들이 달라붙었기에 이런 일이 일어 나는 거지? 진짜 신조차도 가볍게 밟아 버릴 정도의 재수 없는 사람인 건가? 이 알 수 없는 자괴감, 절망감, 우울함……. 뭐지, 뭐지?! 난 진짜로 너무나도 재수 없는 인간이다 못해 인간 말종이야(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음)?! 아아악! 난 싫어! "뭐 하는 거야, 오빠?" "……." 한편 나의 이런 모습을 본 민혜가 황당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난 그 말에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와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요새 민호랑 어울리더니, 오빠도 약간 이상한 증세를 보여." "컥!" "농담이 아니고." "마,말도 안 돼!" "진짜야." 그런 말도 안 되는! 내가 민호랑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마디로 내가 미쳤다는 거냐?! 안 돼! 그건 나보고 죽으라는 말이잖아. 정말 그런 최악의 말은……! "형님, 이제 우리는 끈적끈적하게 이어지는 건가요? 쑥스러운데요." "……." "아이." 이 미친 자식아! 내가 왜 네놈하고 끈적끈적 이어저야 하는데! 응?! 절대 싫어, 임마! 그 순간이었다. "앗, 여기는!" "또 쟤는 뭐야?" 현무가 갑자기 탄성을 지르더니,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기는 페리네이아 숲?" "……." "이곳에 들어가면 자살을 한다는 그 숲?!" "……." "마스터, 위험합니다. 이 숲에 들어가는 건!" 난 눈을 가늘게 뜬 채 녀석을 바라보았다. 현무야, 네놈이 보통 바보는 아니라는 사실을 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바보 수준이 아니잖니?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그걸 견뎌 내기 위해 교황청까지 갔잖니? 그건 잊어버렸어? 하아! "위험해요, 마스터! 이곳에 들어가려면 교황청 지하 창고에 있는 '디스테란도'라는 아이템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정신력을 완벽하게 보호해 주는!" "……." "그냥 들어가면 자살을 해 버립니다!" "……." "마스터, 왜 그러신지요?" "아니다." 머리를 붙잡는 나를 보고 현무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현무야, 방금 전에 우리가 한 것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거니?! 교황청 한번 방문했다가 몸값 1억이나 올랐잖아, 나. 물론 현상금 얘기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거에 대한 기억은 어디다 갖다 버렸니? "어찌 됐든 위험해요!" "고맙구나." "저는 천재니까요." "그렇구나." "네!" 왜 말이 안 나오는 걸까. 흐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머리가 백지화가 되어 버렸다. 난 진지하게 얘기하는 현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참으로 고맙다, 고마워." "전 잘났으니까요!" "……." 그냥 넘어가자. 상대하기에 벅찬 존재다. 어쩌면 민호보다 더 상대하기 힘든 놈이다. 너무 바보여서 이야기가 안 통하니까 말이다. 그나마 민호 이야기는 들을 순 있잖아. 그런데 민호 자식은 현무하고 잘도 이야기한다. 음, 그럼 뭐지? 알면 알수로 정말 두려운 놈이다. "아, 내 엉덩이……." "……." "베리 굿." "……." "이 탄력과 이 부드러움! 아아, 행복해." "행복하냐?" "네! 마스터도 제 엉덩이 만져 보실래요?" "……." 나 안 미쳤거든? 내가 왜 네놈의 엉덩이를 만지냐, 미 친 청룡아. 정말 한숨만 나온다. 자기 엉덩이를 마음껏 능욕(?) 하면서 나한테까지 엉덩이를 만지지 않겠냐고 말하는 저 자식을 보고 말이다. 내가 여자라면 모를까……. 아니, 그게 아니라 어찌 됐든 내가 변태도 아니고 난 엉덩이를 만지는 그런 저질적인 행동은 이때까지 해 본 적……. "에리아스 양은요?" "……." "저번에 주물럭거리고 프렌치 키스까지 한 흐뭇하다 못해 환상적인 마스터의 행동이 아직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 "제, 기억이 잘못된 걸까요?" "가자." 난 다급히 말을 돌렸다. 괜히 상대해 봤자 나만 불리하다. 난 푸른색의 목걸이를 하나 꺼냈다. 이게 바로 정신력을 보호해 준다는 디스테란도다. 외형만으로도 엄청 비싸 보이는 아이템이다. 잠시 아이템에 대한 설명을 보자면……. 디스테란도(전설) 반경 15미터 안에 있는 모든 존재들의 정신을 완벽히 보호해 준다. 추가로 마법 캐스팅을 10% 단축해 준다. 흐음, 전설급 아이템이었냐? 솔직하게 말하겠다. 전설급 아이템치고는 좀 구리다. 사실 이런 경우 아니면 굳이 정신력을 보호해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 아니 정신을 공격하는 직업을 상대로 한다면 무적이라는 타이틀이 가능하지만 그런 존재가 많은 건 아니다. 결론적으로 전설급 아이템치고는 성능이 많이 떨어진다고 할까?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앞장서서 나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왠지 소름 끼치는 기분이다. "야, 민호." "네." "왜 항상 시끄럽던 놈이 조용해?" "맞혀 보시지요." "장난쳐?" "아닙니다." "……." "뭐, 굳이 말하자면……." "굳이 말하자면?" 그때 갑자기 민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냐?! 네놈한테 그렇게 안 어울리는 표정은! 당장이라도 갖다 버리라고 하고 싶을정도로 안 어울렸다. 민호는 심각하게 말했다. "그냥요." 휘청! 이 개자식은 안 그래도 긴장되는데 사람 힘 빠지게 만들어서 어떻게 하자는 거냐! 하아! 그래도 침묵을 지키는 것보다는 나으려나?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 침묵이다. 진짜 왜 이러지? 오늘따라 민호와 현무, 청룡패거리가 조용하다. 그리고 여자들까지 조용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곳에 들어온 순간 위압감이라는 것이 들어서 나도 입이 잘 떨어지지 않지만, 입을 다물고만 있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 무슨 화려한 화제를 찾아 이 위압감을 없애야 할 텐데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런데 그때였다. 파직! "……!" 난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 손에 쥐어진 전설급 아이템 디스테란도에 금이 간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말이다. "이곳의 미묘한 힘이 그 디스테란도의 힘을 압도하는 것 같군요." "……!" "흐음, 난감 그 자체인데요." "전설급 아이템을 압도한다고?!" 아무리 미지의 힘이라지만 전설급 아이템을 부술 정도의 힘이라니! 이건 말도 안 된다. 아니,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파지짓! "……!" 더더욱 금이 간다. 컥, 제길! 이대로 가면 결국 깨져 버릴 거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모두 자살이라는 터무니없는 죽음으로 끝나는 거냐? 그건 최악이다. 차라리 싸우다가 죽으면 몰라, 마치 무언가에 홀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자살이라니! 퍽! "제길!" 그때 완전히 부서지는 디스테란도. 그리고 디스테란도가 무너지자, 순식간에 눈빛이 멍해지는 일행들. 제길, 나도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나마 괜찮다면 정신력이 강한 이리스 정도, 나머지는 벌써 눈이 풀렸다. 그리고 서서히 움직였다. 마치 죽음을 원하는 사람처럼 어디론가 향해서 말이다. "크윽! 안 돼! 이리스, 슬립 마법!" "네." 이리스도 정신이 혼미해지는지 멍한 상태에서도 나의 말에 반응해 모두를 바라보면서 외쳤다. "슬립!" 그러자 일행들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후속타로 이리스도 쓰러졌다. 아무래도 마법의 효과가 적용된 듯하다. 제길! 하지만 이것도 임시방편이다. 다시 깨어나게 되면 자살하려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거다. 그나마 지금 서 있는 사람이라면 나뿐? "힘내세요. 제가 있지 않습니까." "……." 번쩍. 누군가의 한마디에 갑자기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난 그 존재를 보면서 어안이 벙벙해져서 물었다. "너, 괜찮냐?" "괜찮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아?" "그런데요." "……." "왜 그러십니까?" "……."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드래곤 로드조차도 견디지 못한다는데 저놈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싶다. 그리고 방금 전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이곳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만들었다. 뭐냐?! "흐음, 그나저나 모두 잠들었군요. 이때입니다! 덮치세요." 퍽! 지금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을 던지는 민호에게 난 사랑의 하이 킥을 날렸다. 난 쓰러진 민호를 향해 물었다. "지금 장난할 때냐?" "진담인데요." "……." "슬립 마법이 걸린 이상 깨어나지 못합니다. 원하는 대로 골라……." 퍼억. 난 손바닥으로 그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고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변태냐, 이 자식아? 그런 짐승보다 못한 짓을 하게!" "흐음……." "또 뭐야?!" 민호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아뇨, '내가 변태냐?'라는 말이 너무 웃긴다고나 할까요?" "그건 무슨 의미냐?" "아무런 의미도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이 개자식이! 지금 무지 신경쓰게 해놓고 그 한마디만 하면 어떡하자는 거냐! 아니, 진정하자. 일단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지금 상황에 서 어떻게 해서든 탈출해야 한다. 이건 무력적인 힘이 아무리 강해도 정신이 지배당하는 순간 끝이야. "형님." "왜, 임마? 말 걸지마. 너랑 놀면 정신이 이상해진다니까!" 그렇다. 지금 이상황에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저 자식과 이야기하다 보면 정신이 다시 해롱거리니까. "하지만……." "뭐가 하지만이야!" "저기를 좀 보시면 안될까요?" "……?" "저희가 찾고 있는 그분인 것 같은데요." "……?" 무슨 소리냐? 난 민호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이동했다. 그런데……. "헉! 외, 외계인?!" 보통 영화에 등장하는 그 외계인이다. 무척이나 독특한 모습, 비대칭에다 뭔가 미묘한 패션…….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분이시다. E.T? "DJFODJFDJSJDKSJDSIJK." "……." 저건 또 무슨 개소리인고.? 그때 외계인이 우리를 보고 엄청 놀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민호는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인간이 우리가 개발한 네코네이더를 이길 수가있지? 말도 안 돼!'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 난 번역해 주는 민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민호가 웃으며 말했다. "추측입니다." "……." 추측인 거냐? 그렇게 믿자. 추측이라고 말이다. 그 순간이었다. "어떻게 인간이 우리가 개발한 네코네이더를 이길 수가 있지? 말도 안 돼!" 외계인의 입에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저 외계인 분이 언어 번역기 같은 걸 쓴 거겠지. "네가 번역한 거랑 똑같네?" "흐음, 우연인데요?" "그래?" "네, 우연이군요." "……." 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계 언어를 번역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뭐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내 결론은 0%다. 아무리 분위기로 대충 때려잡는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완벽히 번역하는 게 가능할 리 없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저놈이 저 외계인 말을 알아들었다는 거야? 아니면 가끔 보이는 그 이상한 능력, 남의 생각 읽어 버리기? 그렇지 않다면 나머지 하나는……. "전 외계인 아닙니다." "아직 생각도 안 했는데?" "그럴 생각을 할 예정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 그런 생각을 하려고 했다. 몇 초 뒤에 말이다. 움찔! 무섭다. 이제 저 자식이 무섭다 못해 오한이 든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저런 말도 안 되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자기 말로는 계속 우연이라고 하지만, 우연은 말 그대로 몇번 맞아떨어지는 게 우연이지 저놈처럼 밥 먹듯이 하는 건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인간들, 지금 뭐 하는 거지? 아니, 나의 네코네이더를 어떻게 견뎌 낸 거지?!" 외계인이 잔뜩 흥분한 채 말했다. 난 그놈의 물음에 조용히 대답했다. "나도 알고 싶다." "……." "네가 얘 좀 데려가서 연구해 봐라." 그러면서 난 민호를 앞으로 밀었다. 그러자 민호가 말한다. "별로 실험을 당하고 싶지 않은데요." 아니, 실험을 당하고 싶은 사람이야 원래 없을 테고(있다면 마조히스트?) 난 단순히 저 외계인의 힘을 빌려서라도 너의 18차원 정신세계를 알아 보고 싶어서……. "제길! 인간 놈들, 죽여주지!" "……!" 그때 갑자기 외계인이 SF영화에서나 등장할 만한 레이저총을 꺼냈다. 푸지직! 그리고 그 레이저 총을 나와 민호에게 발사했다. 너무 빨라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그리고……. "아악?!" 그 순간 어느새 내 모습이 개로 변했다. 아악! 뭐야?! "이 레이저에 맞게 되면 동물로 바뀌게 되지. 크크!" "……." 내 주변에는 개가 되면서 자동으로 벗겨진 옷이 널려 있다. 그나저나 민호는? "흐음." "……!" "……!" 나랑 외계인은 진짜 일편단심으로 놀랐다. 거기에는 완전히 멀쩡한 민호 군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게뭐야?! 외계인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외쳤다. "어떻게 이걸 견딜 수가?!" "글쎄요." "……." "그나저나 그 총, 참 재밌는 총이네요?" "……." 나도 할 말이 없다. 아니, 이건 말이 안 돼! 왜 저놈은 뭐든 공격이 차단되느냔 말이다! 으응?!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거지? 민호는 당황하고 있는 외계인을 향해 다가가더니 말했다. "재밌는 분이시군요." 흠칫! "심오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 "이리 오세요." "……." 그 말과 함께 외계인은 제압됐다. 아무리 봐도 이번 임무의 1등 공신은 민호다. 외계인이라는 종족을 상대로 자기 혼자 살아남아서 제압했다. 이걸로 미루어 보아……. "외계인조차도 민호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건가." 털썩. 난 주저앉았다. 외계인조차도 굴복시킨 민호, 난 그를 알고 싶다. 제발 방송국에서 나와서 저놈에 대한 조사 좀 해 줘! 너무 궁금해! 하지만 무리겠지? 저놈의 18차원 정신세계를 파헤칠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 아니 전 차원을 뒤져도 없을 거야. 하아! 제 5장 러브레터? 나는 지금 학교에 가는 길이다. "으음, 뭔가 상큼하단 말이야?" 저번에 외계인을 해치운 이후 난 빚을 거의 다 갚게 되어 버렸다. 예전에 괴물들이 때려 부숴서 생긴 수리비까지 대충 말이다(자기가 부순 건 생각지도 않고 괴물들에게만 돌린다). 그런 까닭인지 아주 행복하다. 이제 빚은 거의 사라져 가고 남는 건 게임 정복뿐! 아아, 아름다워. 물론 지금까지 조금(?) 안 좋은 일로 인해 전 나라에 포스터가 걸리기는 했다. 민호의 말대로라면 전 나라에 포스터가 걸린 존재는 나밖에 없다더라. 그리고 범죄자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면서 감격해서 울더라. 아아악, 싫어! 그런 지주는 말이다. 진짜 왜, 왜, 왜?! 내가 악한 마음을 가져서 그 정도 금액이 걸렸다면 말도 안 한다. 하는 일마다 꼬이고 꼬여서 전부 나한테 몰리는 느낌?! 제길! 이게 바로 그 빌어먹을 타이틀 때문이다. 모든 능력치 2,000이라는 상승은 아름답지만, 반면에 인생은 바닥을 긴다. 털썩!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 그 방법밖에 없다.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행운따위는 오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좌절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긍정적으로, 난 그렇게 생각하면서 교실로 들어왔다. "아, 안녕. 재현아." "으응!" 나를 반겨 주는 한 천사. 아아, 귀여워! 정말 너무 귀여워! 나의 깜찍이, 나의 프린세스, 나의 히메, 나의 지주, 나의 꿈! 나의 사랑! 오오! "왜, 왜 그래?" "아니야." "……." 잠시 흥분해 버렸다. 하아, 시간이 지날수록 상상병은 악화되어 간다. 여기서 잠깐, '상상병'이 뭔지 궁금할 거다. 상상병이란 상사병의 형님 단어로, 무지무지 심한 사랑을 앓고 있을 때 붙는 단어란다. 나도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는데, 민호가 그랬다. 사실 별 신빙성은 없어 보인다. 그래도 그만큼 내 마음이 애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예진이와 가벼운 인사를 끝낸 뒤 난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내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이건 뭐냐?" 그건 바로 분홍색의 알롱달롱한 편지였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물건이지? "러브레터인데요." "기척 좀 내고 다니라니까." "전 짜릿한 남자거든요." "……." 짜릿한 거하고 기척의 관계를 좀 가르쳐 줄래, 민호 군? "러브레터?" "네, 형님을 사모하는 한 소녀가 보낸 것 같습니다만." "헉!" 뭐? 나를 사모하는 소녀가 편지를?! 컥! 진짜냐?! 아니, 이게 아니라 난 예진이가 있잖아! 고백같은 거 받아도 당당하게 거절할 줄 알아야 된단 말이야! 물론 남자로서 고백을 받는 건 좋기는 하지만, 난 예진이가 있어! 그래! "그래도 한번 읽어는 보시죠?" "……." "보낸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말입니다." "크……." 사실 이 편지를 읽으면 뭔가 심란해질 것 같은 느낌에 읽지 않으려고 했지만, 민호 말도 맞다. 힘들게 편지를 쓴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읽어는 봐야 한다. 거절도 당당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지! 난 그런 마음과 함께 편지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 분홍색의 편지지를 펼쳤다. -오빠, 안녕하세요 전 오빠를 사모하는 한 소녀입니다. 대략 엘라니아라고 불러 주세요. 아직은 너무나도 쑥스러워서 본명은 밝히기가 그래요. 헤헤. 전 오빠에게 푹 빠져 버렸답니다. 오빠의 멋진 모습과 완벽한 얼굴, 그리고 뛰어난 운동 신경까지 너무나도 멋져요. 한마디로 오빠를 잡아먹고 싶어요. 잠깐! 중단! 뭐야, 저 표현은?! 아스트랄을 넘어선 섬뜩한 표현이다. 오빠를 잡아 먹고 싶다니, 내가 무슨 고기도 아니도 잡아먹긴 뭘 잡아먹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건 말 그대로 위기 센스? 아니다. 분명 그런 의도로 적은 게 아닐 거다. 제대로 읽어 보자. -헤헤, 깜짝 놀랐죠? 농담이에요. 그냥 오빠를 순수하게(?) 덮치고 싶을 뿐이니까요. 오빠, 기다려 주세요. 전 오빠를 순수하게 덮칠 테니까요. 후후후! 사랑해요. 오빠. -엘라니아 올림. 말이 안 나온다. 이게 러브레터라고 불릴 성격의 편지냐?! 내가 알고 있는 러브레터의 개념과는 너무 다르다. 아아악, 이건 러브레터가 아니야! 무슨 이런 무서운 러브레터가 있어? 잡아먹는다고? 덮친다고? 그것도 여자가? 아악! "엘라니아? 으음." "……?!" 그때 내 옆에 있던 민호가 그 편지 주인공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안다는 말투네? 난 다급하게 민호에게 물었다. "아는 애냐?" "그냥 조금요." "……?" "형님, 제게 야설 쪽에 대한 정보가 좀 있습니다." "……." 여기서 왜 야설 이야기가 나와? 민호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까닭에 야설을 쓰는 분들에 대해 좀 알고 있죠." "서, 설마?!" 난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민호의 이야기. "네, 엘라니아라는 분이 있습니다. 여성이시고요. 요새 새로운 샛별로 부상하는 야설 작가입니다." 그럼 이 편지의 주인공은 야설을 사랑하는 한 소녀? 으악! 오한이 든다. 그리고 무섭다. 나를 잡아 먹겠…… 아니, 덮치겠다는 소녀. 이런 섬뜩한 편지라니, 지금이라도 당장 편지의 내용을 잊고 싶다. 하지만 잊고 싶어도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여잫나테 그런 편지를 받는 기이한 체험은 하고 싶어도 할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아." 몸에서 마구 식은땀이 흐른다.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야, 처음! 크윽!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으응? "왜 그래?" "아." 그때 예진이가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아마도 처음부터 이상 반응을 보이는 내 모습에 의아했나보다. 난 그런 예진이에게 얼버무리며 말했다. "조금 미묘한 일이 있다고 해야 하나?" "미묘한 일?" "차마 말하기는 그렇고……." "……." 그렇다. 이걸 예진이에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 어떤 여자가 편지로 덮치겠다고, 잡아먹겠다고 경고한 내용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 괜히 그런 거 알아 봤자 우리(?) 예진이한테 별로 좋지 않은 영향만 줄 거야. "뭐, 형님에게 심오한 느낌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야, 이민호!" 그때 민호 자식이 가볍게 한마디 한다. 제길, 뭐야! 그러자 예진이는 약간 머뭇거리며 물었다. "펴, 편지?" "으응." "호, 혹시 러브레터?" "아, 아니 그러니까……." "그런 종류죠." "아니라고! 이게 왜 러브레터냐!" 그때 민호의 한마디에 예진이는 약간 멍한 모습을 보였다. 왜 그러는 거지? 예진아, 왜 그래?! 예진이는 나를 보더니 중얼거렸다. "러, 러브레터구나." "아, 아니야. 이런 말도 안 되는 러브레터가 어디 있어!" "……?" "자, 직접 봐." "……." 난 그 말과 함께 편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아차 했다. 잠시 흥분해서 보여 줘 버렸지만, 예진이가 봐서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편지를 읽고 난 후 예진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 그러고는 말문이 닫혀 버렸다. "누, 누가 장난한 거겠지. 하하하." "……." "그러니까 잊어버려! 이런 건 좋지 않아!" 그래, 좋지 않다 이런 저질적인 일에 반응하면 말이다. 예진이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말했다. "농담이겠지." "그럴거야." "……." "……." 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래, 농담이다. 과민 반응이야. 누가 장난친 게 분명해. "후훗, 과연 장난일까요?" "……." "이 편지에서 전 왠지 모르게 진실이 느껴집니다. 그것도 열정!" "……." "확실해요." 그런 건 확실해 하지 마, 이 자식아! 나, 너무 불안해! 무서워 으아악! 이런 공포감, 살면서 처음이다. "……." 나의 취침 장소(?) 인 학교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 정도로 긴장했다는 거다. 나도 솔직히 말해 이해할 수가 없다. 왜 그깟 편지 한 장에 이렇게 긴장을 하는지 말이다. 민호 말대로 이 편지에서 너무나도 따뜻한(?) 진실을 느낀 탓일까? 나의 이런 극도로 예민한 모습은 나 자신도 이해 불가다. "괜찮아?" "아." 그때 예진이가 도시락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저 도시락은 나의 전용 도시락으로, 나의 사랑 예진이가 나를 위해서 싸 주는 도시락이다. 그걸로 보아 지금은 점심시간! 아, 너무 고민을 하다 보니 배고팠는데, 좋다. 도시락을 반기는 나의 모습에 예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같이 먹어도 돼?" 헉! 헉헉! 너무나도 기겁해서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예진이의 말에 온몸에 마치 아드레날린 저글링 할아버지들이 날뛰는 느낌이랄까? 한마디로 미쳐 버릴 정도의 흥분 상태다. "안 돼?" "아 , 안 되긴! 당장 돼!" 난 그러면서 비어 있는 의자를 초스피드로 끌어와 내 앞에놓았다. 그러고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 앉아." "응." 예진이가 대답하며 그 자리에 착석했다. 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모르겠다. 너무나도 행복하고 황홀한 느낌이다. 정말 미치겠다. 헉! 그러고 보니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 그 이상한 편지 덕택? 한마디로 '행운의 편지'라는 거냐?! 오오! 왠지 갑자기 그 편지가 사랑스러워진다. 아이 러브 유! 난 그렇게 행복에 젖으면서 남자 놈들의 미친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진이와 밥을 먹었다. 물론 보통의 경우 너무 질투를 받아 체하겠지만 난 아니다. 너무 행복해서 그런 건 그냥 패스다. 후후후! 헤헤헤! 약간 미친 것 같다만 그냥 넘어가자. 그렇게 내가 꿈에도 그리던 밥 먹으면서 예진이의 모습을 보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며 행복에 몸 둘 바 몰라 할 때 였다. 흠칫! 불현듯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난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지만 거기에는 즐겁게 식사하는 학생들의 모습만 보였다. 뭐지? "왜 그래?" "아니, 누가 날 지켜보는 것 같아서……." "……?" "아, 신경 쓰지 마." 내 말에 예진이가 신경을 쓰는 듯하자, 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 느낌, 솔직히 말해 심히 의심스럽다. 흐음. "재, 재현아?!" "……?" "너, 무슨 사고 쳤냐?" "무슨 소리?" 난 갑자기 내게 다가와 한마디 던지는 태한이를 보고 의아해 되물었고, 그 말에 태한이는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어떤 애들이 너 내놓으라고야구방망이 들고 와서 설쳐! 경비 아저씨는 맞아서 쓰러졌고……!" "엥?!" 난 태한이의 말을 듣고 다급하게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태한이 말대로 완전히 개판이 되어 있다. 다른 의미로 말이다. 야구방망이를 들고 온,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10명은 야구방망이를 내팽개친 채 그대로 바닥에 개구리처럼 엎어져 있다. 그리고 그런 그들 앞에 개폼 잡으며 서 있는 한 남자, 우리는 그를 이렇게 부른다. 머. 신. 맨. 우리 학교에는 머신맨이라는 괴물이 존재한다. "으으, 제길! 엘라니아 님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다니." 엥? 엘라니아?! 나에게 미묘한 편지를 보낸 그 분?! 난 다급히 엘라니아라는 이름을 거론한 그 남자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무슨 용건이냐?" "너냐?!" "……." "네놈이 재현이라는 놈?!" "근데." "크윽! 제길, 납치를 성공했어야 하는데." "……." 납치? 잠깐!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하지만 오로지 그 생각밖에 안 든다. 그 생각은 바로 애들을 통해 날 납치해서 덮친다는 계획? 아아악! "하하하." "……." "모든 소녀들이여, 보았는가. 나의 위대하고도 멋지고도 빛나는 모습을 말이야!" "……." "하하하! 달라붙어라, 소녀들이여!" 그때 완전 자축 분위기인 머신맨, 그렇게 좋으세요?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우르르! "……." "……." "……." 갑자기 50명쯤 되는 남자들이 나타났다. 하나씩 무기를 들고 말이다. 그러고는 외쳤다. "엘라니아 님을 위해 재현이라는 놈을 포획해라!" "으아!" "포획해라!" "포획!" "우리의 희망을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포획!" 미. 쳤. 다. 미친 것도 고이 미친 게 아니라 이상하게 미쳤다. 아무래도 엘라니아 인가 뭔가 하는 여자의 팬들 같은데, 이렇게 대담하게 방망이 들고 학교에 쳐들어올 정도면 완전히 미쳤다는 거다. "헉!" 한편 머신맨은 50명 정도 되는 인원을 보더니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크! 비, 빈혈이…… 생리통도(?) ……!" 이러면서 사라진다. 빛의 속도였다. 말 그대로 빛. 저기요, 근데 빈혈은 이해해 주겠는데 왠 생리통? 당신이 여자입니까? 하아, 한마디로 그냥 도망간 것이다. 아무리 머신맨이라고 해도 50명은 겁나나 보다. 솔직히 제아무리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가졌다 해도 싸움과는 별개니까 말이다. "재현이라는 놈을 찾아라!" "오오!" "찾아라!" "엘라니아 님을 위하여!" "위하여!" "우리들의 희망을 위해서라도 포획해라!" "찾아!" 마구 아우성치는 미친 추종자들을 보며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희망까지……. 하아. 난 거의 버서커가 되어 버린 그들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난데, 재현이가." "너냐?!" "저 자식이다!" "저놈을 납치해라!" "우리 엘라니아 님을 위해!" "으아!" 마구 흥분하면서 달려왔다. 50명이면 꽤나 많은 숫자였다. 하지만 싸움에 익숙한 존재들은 아니고, 그저 쪽수 믿고 달려왔다. 이럴 경우엔 몇 명 잡아서 공포만 주면 순식간에 와해되어 버리는 거다. 무, 굳이 와해가 되지 않아도 저 정도야 처리 가능하다. 난 가볍게 자세를 잡으면서 외쳤다. "다 덤벼." 15분 후 50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다 바닥에 누워 있다. 정말 가관이다. 내가 쓰러뜨린 50명과 머신맨이 쓰러뜨린 10명이 운동장을 점거했다. 그 순간……. "꺅! 재현이 멋져!" "정말 멋져!" "더 멋있잖아." "재현아, 사랑해." 쿨럭. 여자 아이들의 목소리. 대략 난감하다. 그 순간 원한이 맺힌 눈동자로 나를 쳐다본 한 존재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머신맨.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분노에 찬 어조로 외쳤다. "감히 내가 빈혈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모두 해치우다니, 이 간악한 놈!" 어이, 아저씨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그냥 튄 걸로 보이는데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아, 실망이다." "막 도망가." "머신맨 왕 실망." 여자 아이들의 말이 들려온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머신맨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뛰어 가신다. "으아악!" 뭔가 안타까우면서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무지무지 든다. 저분, 교사잖아. 흐음. "……." 교실에 들어온 나. 그리고 내 책상에 놓여 있는 편지 한 장. 아침에 받았던 그 러브레터다. 아아악, 또?! 읽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적을 알아야 백전백승' 이라는 말이 있다. 이걸 읽고 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용기를 내서 그 편지를 펼쳤다. -제 심장이 더욱 두근거려요. 저의 친위대를 멋지게 무찌르는 오빠의 모습을 보니 막 흥분이 돼서 미쳐 버리겠어요. 한마디로 더욱더 잡아먹고 싶어졌다고 할까요. 마치 탐스러운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미치겠어요. 신음소리를 글로 적지 말란 말이야! 문체는여자 글씨체인데 거기에 신음 소리가 적힌 걸 보는 내 입장도 좀 고려해 주길 바란다. -어찌 됐든 전 이제 완전히 오빠에게 필 받았어요. 오빠만 덮칠 거예요. 오빠만 잡아먹을 거예요. 오빠만! 아이 러브 유! 오빠, 사랑해요. 오늘은 이만 물러날게요. 하지만 언제든지 오빠를 덮칠 준비는 완료입니다. 으윽! 이게 뭐야! 덮칠 준비가 완료라니! 털썩!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맨 마지막에 있는 추신이 보인다. -아 그리고 저희 오빠랑 사이좋게 지내 주셔서 고마워요. 저희 오빠가 보통 이상한 게 아니어서 다른 분들하고는 어울리지 못하는데, 오빠는 오랜 시간 어울렸다고 들었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존경해요. 감사해요. 저희 오빠를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려요. 그럼 앞으로도 열심히 덮칠 계획을……. 후후! 뭔가 의미심장한 추신이다. 저희 오빠? 몇년 동안? 나하고 몇 년 동안 가까이 지낸 놈이라고 하면……? "민호?" "휴우, 못 말린다니까요." "……." 그때 어느새 민호가 나타나 말했다. 난 그런 민호를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게 뭔 일이냐?" "제 말괄량이 동생이 형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나 봅니다." "……." "왜 그러십니까?" "네 동생?" "네." "이 편지의 주인공이?" "네." "그런데 왜 말했니? 필명만 야설계의 떠오르는 별이라고 말했잖아. 이 자식아!" "형님이 안 물어보셨잖아요." "……." "그래서 말 안 했습니다." "제발 그런 건 먼저 말하라고!" 하아, 미치겠다. 저 자식! 그런 건 미리 말해주면 어디 덧나?! 꼭 물어봐야지 대답하는 거냐?!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제 무언가가 이해되기 시작한 다는 거다. 이 말도 안 되는 편지를 적은 소녀가 말이다. 민호의 여동생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아아, 무지무지 수긍이 가는구나. "그럼 네 동생이니까 이런 거 좀 하지 말라고 해!" "불가능합니다." "왜!" "제 말 안 듣거든요." "……." "그래서 불가능합니다." "네놈은 오빠잖아!" "요새 애들은 오빠 말도 안 듣습니다." 요즘 여동생들이 오빠 말 듣는 경우는 흔치 않지. 그렇지만 네놈의 동생이 나를 덮치려고 한단 말이다! 상황이 이러면 오빠로서 이런 저질적인 행동은 막아야 되지 않겠니?! "아름답군요." 으윽! 정상적인 오빠가 아니라는 걸 깜빡했다. 그래도 너무 심하잖아! 여동생이 한 연약한(?) 남자를 덮친다는데 그냥 방치하다니, 정말 이해하고 싶지 않은 놈이야. 제 6장 청룡의 엉덩이 나에게는 아주 큰 고민이 있다. 그것은 그 누구라 해도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 고민이다. 그건 바로 나의 저주받은 타이틀. 신조차도 하찮게 밟아 버릴 정도의 재수 없는 사람이라는 전설적인 타이틀! 도대체 신조차도 밟아 버릴 정도로 재수가 없으면 얼마나 재수가 없단 말인가? 대충 유추해 볼 순 있다. 순수하게(?) 빚 갚는 도중에 늘어난 나의 몸값, 아니 현상금. 3억골드였다. 하지만 지금은 더 늘어나서 5억 골드다. 난 그동안 한 거 없거든? 근데 왜 2억 골드나 올렸냐고, 이 빌어먹을 인간들아! 흐흑, 젠장! 진짜 이건 아니다. 이 모든 건 분명 타이틀 탓이다! 아니, 혹시 타이틀 탓이 아니라 정말 내가 죽도록 재수 없는 놈이어서 그런 건 아닐까? 이제는 그런 생각마저 든다. "뿌듯합니다." "……." "멋지십니다." 별로 멋지고 싶지 않다. 민호의 말대로 나 다음으로 많이 걸린 현상금이 300만 골드이니 나랑 격차가 빌어먹을 만큼 크다. 차라리 2위하고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 같지만, 이건 나의 독주 상태이다 보니 충격이 더하다. "주인님, 왜 그러세요?" 한편 나의 이런 모습을 본 에리아스는 당장이라고 잡아……. 아악! 제길, 민호 여동생인가 하는 그분 때문에 나도 모르게 표현이 이상해졌어. 다시 정상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너무나도 보호해 주고 싶은 모습으로 내게 말했고, 난 그런 에리아스에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너무 재수가 없는 것 같거든." "……." "이대로 가다가는 게임 정복은 순탄치 않을 거야." 확실히 이대로 재수 없이 가다가는 게임 정복에 치명적일 거다. 뭘 해도 일이 꼬인다면 제대로 진행이 될 리가 없지. 하아. 그래서 항상 걱정이다, 걱정이야. "형님." "왜." 그때 민호가 또다시 나타나 말을 걸었다. "행운을 가지고 싶으십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저 자식은 너무나도 당연한 걸 묻는다. 솔직히 말해 그 누가 행운을 갖고 싶지 않겠는가. 특히 행운이라고는 바닥을 기다 못해 하수구를 기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이다. 이런 나의 반문에 민호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 "형님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방법이요." "헉?!"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방법? 그런 게 있다고? 헉, 설마! 그런 게있다면 난 당장이라도 게임 정복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거다. 난 민호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불어!" 그러자 민호가 말했다. "한 위대한 책에 의하면……." "저기, 잠시." "……?" 난 '한 위대한 책'이라는 소리에 민호의 말을 끊었고, 그러자 민호는 날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난 설마 하는 생각에 물었다. "그 위대한 책이 설마?" " '뜨거운 핫커피' 요." "그렇구나." "네." 예상을 한 탓인지 이제 그렇게 놀랍지도 않다. 난 민호에게 물었다. "그래, 그 위대한 책에 뭐라고 적혀 있니?" "청룡의 엉덩이를 1분간 주물럭거리랍니다." "……?"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뭐? 누구의 엉덩이를 1분간 주물럭거려? "청룡 님요." "청룡?" "네." "청룡?" "그렇습니다." "저 청룡?" 난 자기 몸을 막 만지면서 쾌락에 젖은 미친 놈 한 마리를 손으로 가리켰고, 그 말에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제발 잘못 들었기를 기도하면서 물었다. "정말 쟤 맞니?" "그렇겠죠." "……." "청룡이라는 분은 저분밖에 없을 겁니다." "……." 그렇겠지. 청룡이라는 분은 저분밖에 없을 거야. 저기서 자기 몸을 만지면서 행복해 하는 미친 용은……. 그렇다면 간단히 요약해 보자. 민호의 말에 의하면, 아니 정확히는 뜨거운 핫커피라는 책에 의하면 저분의 엉덩이를 1분간 막 주무르면 행운이 몰려오신단다. 하지만 그 행운을 보기 위해서는 저 엉덩이를 1분간……. 아아악! "……." 절대로 거부하고 싶다. 여자 엉덩이라면 또 몰라. 아니, 이게 아니지. 어찌 됐든 남자 엉덩이라니, 그것도 1분이나 주무르라니 미친 거 아냐?!" 못한다, 절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 '뜨거운 핫커피'의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정보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실 '뜨거운 핫커피'는 야설이라고 하지만, 야설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미스터리한 책이다. 사실 내가 본 적이 없어서 실제 야설인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흠, 참고로 난 순수하게 야설을 사랑하지 않아서 볼 수 없다. 아무튼 이게 뭐야! 그런 말도 안 되는……. 털썩. 정말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하지만 저 '뜨거운 핫커피'의 말씀(?) 대로 저게 진실이라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게 분명하다. 단 1분간의 악몽을 겪고 앞으로의 인생에 행운이 몰아친다면? 음, 생각만으로도 황홀해지는구나! 하지만……. "구라면?" 아무리 신빙성이 높은 책이라고 하지만 100%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한마디로 구라일 수도 있다는 거다. 만약에 구라라고 가정하면, 난 아무런 이유 없이 청룡의 엉덩이를 1분간 주무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할 것은 '아무런 이유 없이'라는 말이다. 아아악!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행운을 몰아준다는 가정하에 1분을 만지는 것도 미쳐 버리 겠는데, 그게 아니라면 난 진짜 완전히 미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난 민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민호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네가 실험해 봐." "……." "네가 저놈 엉덩이 1분간 주무른 뒤 행운이 몰려오나 실험 해 봐." "제가요?" "그럼 누가?" "흐음." 내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짓던 민호는 잠시 후 말했다. "두렵습니다." "……." "남자 엉덩이는 별로." "맞고 할래, 안 맞고 할래?" "안 맞고 하죠." "……." 이렇게 웃으면서 협박해 줘야지 금방 대답이 나온다. 하지만 민호는 다시 나를 보더니 말했다. "진짜 별로인데요." "……." 흐음, 너무한 것 같기도 하다. 남자보고 남자 엉덩이를 1분동안 주무르라니……. 그렇다고 내가 먼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난 잔인해져야 한다. "해." "해야 합니까?" "해야 돼." "……." 민호는 나를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크윽! 미안하다, 이런 잔인한 일을 시켜서. 하지만 난 도무지 못하겠다고! 이런 내 모습을 본 민호는 천천히 청룡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장엄하고 슬픈지 막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미안해. 미안해, 민호야. 정말 미안해, 크윽! 난 진심으로 미안해 하면서 민호를 떠나보냈다. 잘못 들으면 이상한 뜻으로 알아듣겠네. 큼큼!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서……. 민호는 침착한 발걸음으로 청룡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엉덩이를 탐스럽게 만지면서 즐기는 청룡에게……. 아악! 설명하는 내 입장도 미치겠다. 설명하는데 온몸이 소름이 끼친다. 한편 청룡에게 다가간 민호는 말했다. "엉덩이 좀 만지겠습니다." "응, 그래." "……." 엉덩이를 만지겠다고 하는 민호나 너무나도 흔쾌히 허락해 주는 청룡이나 참 상황이 미묘하다. 물론 민호는 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 순간 민호의 손이 청룡의 엉덩이를……. 아아악! 난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볼 수 없어! 저걸 어떻게 봐! 난 고개를 돌린 채 눈을 감았다. 그런데 나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눈을 감게 되면 청각 같은 기능이 더 업그레이드된단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그렇단다. 그것보다……. "아아앙." "……." "아웅." "……." "좋아. 나의 탐스러운 엉덩이." "……." 소름은 물론 경기가 일어난다. 난 완전히 귀까지 틀어막은채 주저앉았다.듣고 싶지 않아! 그 순간이었다. "저, 저게 뭐예요?!" "……." "……." 어느새 리아가 나타나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난 그런 리아에게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깊은 사연이." "주, 주인님, 제 눈이 썩어 들어가는 것 같아요!" "……." 나 역시 마찬가지야. 난 눈뿐만 아니라 귀도 썩 좋지 않아. 그렇게 약 1분 동안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의식이 끝났다. 그리고 어느새 초췌해진 채 다가오는 민호…….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헉, 민호가 눈물을 흘리다니! 그만큼 고통스러웠던 거니? 민호는 나를 보더니 굳은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괴로웠습니다." "……." "아렇게 인생이 괴롭기는 처음이군요." "……." "제 인생에서 가장 치욕입니다." 미안하다. 뭐라 해 줄 말이 없다. 정말 미안해, 민호야. 미안해! 난 진심으로 미안해 했다. 정말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닌걸 본의 아니게 시켜 버렸다. 저런 잔인한 일을 시키다니 난 인간의 탈을 쓴 악마란 말인가?? 한편 저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앙. 내 엉덩이 만질 사람?" "……." "나의 탄력 넘치는 엉덩이는 아름다워!" "……." "뿡까뿡까." 청룡은 모든 사람에게 대테러를 일으키고, 혼자 즐거워하고 있다. 차라리 현무가 낫지. 저건 진짜 완전 테러다, 테러! 난 그런 민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소설대로라면 분명 행운이 올 거야."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2시간 후, "형님!" "……?"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간다고 한 뒤 들어온 민호는 엄청 흥분한 모습으로 나를 불렀다. 뭐냐? "형님, 너무나도 기쁩니다!" "뭐가?" "구했습니다. 구했어요!" "도대체 뭔 말이냐?" 그때 민호는 또다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번에는 고통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이지만 말이다. 민호가 말했다. "'아이이잉,너를 잡아먹을 거야!' 라는 걸요." "……." '아이이잉, 너를 잡아먹을 거야!' 라니? 이름에서부터 민호의 설명이 들려왔다. " '뜨거운 핫커피' 나 '차가운 냉커피'와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그것들을 제외하고는 나름대로 어마어마한 야설입니다!" "……." "아, 감동적입니다. 이런 걸 줍다니!" "엥?" "왜 그러십니까?" "주워?" "네." "그거,방금 네 말에 의하면 엄청 귀한 거 아니야?" "귀한 거죠." "그런데 그걸 주웠어?"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바람을 쐬고 있다가 고개를 숙였는데 이 책이 있더군요." "진짜냐?" "100% 자연산 진실입니다." 만약에 진짜라면 설마? 아니다. 우연일 거다.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진짜라면 이 말도 안 되는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은……! "청룡의 엉덩이?" 아아악, 아니야! 그건 아니야. 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청룡의 엉덩이가 진짜 행운을 가져 온다고?! 하지만 그 구하기 어렵다는 저 야설을 주웠다는 말도 안 되는 행운을 무슨 수로 설명해야 할까? 단순히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 난 현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번만 더 확인하자, 한 번만! 난 그런 생각과 함께 현무를 불렀다. "현무야." "네?" "넌 천재지?" "물론이죠!완전 천재죠!" "그럼 당연히 청룡의 엉덩이를 1분간 만지겠네?" "……?" "원래 천재들은 그러잖아!" "아, 그렇군요!" "어서 갔다 오렴." "네!" 너무나도 단순해서 기쁘다. 이렇게 단순한 놈이 있다니……. 한편 현무는 청룡에게 다가가더니 엉덩이를 만지기 시작했고, 이미 겪어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냥 눈 감고 귀 막았다. 하아! 2시간 후였다. "꺄울! 마스터, 저 우승했어요!" "우승?" "네, 퀴즈 마스터에서 우승했어요." "헉!" "……?" 뭐라고? 퀴즈 마스터에서 우승을 해?! 1초 전의 일도 까먹는 네놈이 퀴즈 대회에서 우승을 해? 이무슨 말도 안 되는 개거지 같은 소리를! 그때 현무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막 시합을 시작하려는데, 참가자 전원한테 이상이 생겨서 제가 부전승으로 우승했어요! 으하하! 역시 천재인가 봐요, 저는!" 글쎄, 부전승으로 우승 한 게 천재인 것 같지는 않고 중요한 건……. "어떻게 참가자 전원한테 이상이 생겨서 부전승으로 우승하는게 가능한 거지?" 그렇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는 거다.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아무리 생각해도 0%다. 그런데 현무는 그런 기적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역시나 한 가지……? "청룡의 엉덩이 힘?" 민호가 엄청나게 구하기 힘든 야설을 주운 것과 1초 기억력을 가진 현무가 우승을 할 수 있게 해 준 사건, 이건 말도 안 되는 행운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진실이다!" 하아! 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과연 내가 이 짓을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민호와 청룡의 엄청난 행운, 정말 부럽다. 너무 부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말 그대로 1분만 청룡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면, 게임을 정복해 단숨에 예진이에게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서 만져요." "……." "어서요. 격렬하게, 환상적으로!" "……." "마구 탐스럽게, 하아, 하아……." 그때 청룡이 나를 재촉한다. 황홀해 하는 모습이 정말 쥐어 패고 싶다. 그만큼 재수 없다는 거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행운의 의식을 위해서는 저놈의 엉덩이가 필수였으니까. "형님, 시작하시지요." "휴우." 난 민호의 말에 심호흡을 했다. 그래, 시작하자. 시간을 끌어 봤자 좋을 게 없다. 결정을 했다면 얼른 시작해야지! 예진이와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희생할 수 있다. "으아악!" 난 비명을 지르면서 그대로 나에게 내밀고 있는 청룡의 엉덩이로 향했다. 그런데……." 파짓! "……!" 엉덩이에 거의 접근할 무렵, 갑자기 검은 스파크가 튀었다. 그걸 본 난 당황해서 얼른 손을 뒤로 뺐고, 민호를 보면서 물었다. "너 봤냐?" "네." "……." "검은 스파크가 튀더군요." "……." 여기서 질문, 왜 내 손이 저기로 가니까 검은 스파크가 튈까요? 정전기인가? 근데 정전기가 저렇게 눈에 뛸 정도로, 그것도 검은색으로 튀지는 않는데?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갑자기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몰려왔다. 손에서 땀이 배어난다. 그래도 궁금한 건 못 참는 관계로 난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손을 청룡의 엉덩이에 갖다 대었다. 그런데……. 파지지짓! "뭐, 뭐야?!" 어마어마한 스파크가 인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잠시 후! "……." 그 스파크는 사라졌다. 하지만 무언가가 완전히 없어진 느낌이랄까? 그때 민호는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졌군요." "무슨 말?" "청룡 님의 행운의 엉덩이도 형님의 신조차도 가볍게 밟아 버릴 정도의 재수 없는 힘에는 당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 "형님은 신조차도 가볍게 밟아 버릴 정도의 능력을 지닌 분, 아무리 청룡님의 엉덩이가 대단하다고 해도 해당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돼!" "사실입니다." 아아악, 그런 게 어디 있어! 내가 얼마나 용기를 냈는데! 그런데 뭐 ? 나의 신조차도 가볍게 밟아 버릴 정도의 재수 없음은 청룡의 행운의 엉덩이조차도 밟아 버렸다고? 그럼 한마디로 그냥 이대로 살다가 뒈지라는 의미인 거야? 그건 싫어! 정말 싫다고! 이 저주받은 타이틀이여, 제발 사라져라! 그날 이후 청룡의 행운의 엉덩이 효과는 사라졌다. 아무래도 나의 저주받은 재수 없음에 소멸되어 버린 듯하다. 아마도 사실이겠지. 제7장 [현무의 특수 기술 절대 방어막!] "하아, 오랜만에 쉬어 볼까나?" 난 성안에 꾸며 놓은 내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고, 그 순간 민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맨날 쉬잖습니까." "……." "뭘 새삼스럽게." 반박할 말이 안 떠오른다. 그래, 사실대로 말해 진짜 매일 쉰다. 의뢰 없는 날은 매일 논다. 아주 매일매일 말이다. "도대체 뭘 하라고!" "……." 그렇다. 일단 게임 정복인가 뭔가 하려면 자금력이 필수인데, 자금력은 제로다. 아니, 아직 빚까지 조금 남은 상태다. 이렇다 보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게임 정복이 힘든 일일 줄은 상상도 해 본 적도 없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힘들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세계 정복자들의 고충(?)을 말이다. "나도 미치겠어!" 왜 이리 진행률이 더딘지, 뭘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하는 지……. 그리고 돈도 없고, 병력도 없고, 뭐도 없고 다 없어. 그러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하아,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고 싶은데 그 방법도 막막하니……. "마스터!" "……?" 그때 미친 거북이 한 마리가 달려왔다. 그는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절대 방어막에 대한 게 생각났어요!" "……!" "절대 방어막을 배우려면 케네아산……." "케네아산 뭐?!" 난 불길한 느낌을 뒤로한 채 다급히 물었다. 하지만 현무는 갑자기 머리를 긁적이더니 오히려 나한테 되물었다. "케네아산이 왜요?" "……." "흐음?" "야, 바보 거북이! 생각해! 생각해! 뒷말 생각해, 이 자식아!" "왜, 왜 그러세요?" "너 죽을래? 아니, 죽어라, 이 자식아!" "왜 그래요!" "오빠 진정해!" "무슨 일이야?" "주인님?!" 마구 흥분해서 날뛰는 나를 막아서는 여자들, 하지만 진정이 되지 않는다. 난 잔뜩 겁먹은 바보 거북이를 보면서 외쳤다. "생각해! 뒷 부분을!" 일단은 케네아산으로 돌진하고 있다. 하지만 목적은 모른다. 그 이유라면 저 바보 거북이 때문이지. 말해 주려다가 잊어버리는 기이한 자식. 사실 여자들만 아니었다면 오늘 거북이 한 마리 초상 치를 뻔했다. 솔직히 내 입장이 되면 완전 미칠 거다.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뭐 저런 바보 같은……. 아아악! 생각을 하면 할수록 뒷목이 땅긴다. "힘내, 재현아. 행운이 있을 거야." "누나." "응?" 난 행운이 있을 거라고 위로하는 나래 누나를 보며 침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에게 행운 따위는 없습니다." "……." "저주만이 저를 반기죠." "……." 사실 맞는 말이다. 얼마나 재수 없으면 행운조차도 다 없애버릴까. 뭔 말이 필요하겠어. 이제는 그저 제발 조금만 재수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바람이 소박해졌다. "여기가 케네아산인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는 산. 참고로 365일 내내 겨울이란다. 그뿐만이 아니라 365일 내내 눈이 내린다. 그런데 특이한건 춥지 않다는 거다. 아니, 오히려 약간 따뜻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뭔가 좀 이상하긴 한데, 그게 저 산의 특징이다. 그리고 저 산에는 몬스터도 꽤 많아서 사람들의 주 사냥터이기도 하다. 주변을 살펴보면 바글거리는 유저들로 대충 알 수 있겠지? "힐러 구해요!" "데미지 딜러 구합니다!" "탱커 구해요!" "어그로 관리해 주실 분!" 파티를 구하는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푸근함을 느꼈다. 저런 모습은 사실 처음 봤다. 그래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파티 구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라니, 정말 인생 이상하게 살았구나. 그 순간이었다. 쿵쾅쿵쾅! 어마어마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비명……. "끄아악!" "제길!" "젠장!" "피해!"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길이 5미터에 달하는 하얀 털을 가진 괴물에게 쫓기고 있다. 그리고 그걸 본 유저들은 놀라 외쳤다. "아이스 오우거?!" "대장급 몬스터?!" "저놈들 뭐야!이곳까지 끌고 오면……." "튀어! 랭커들 아니면 못 잡아!" "제길! 랭커들도 많이 모여야 하는데!" 흐음, 아무래도 유저들의 말에 의하면 대장 급 몬스터, 그 것도 랭커들이 아닌 이상 잡기 힘든 몬스터인가 보다. 어찌 됐든 주변은 이미 개판 5분 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그냥 가볍게 손가락을 부딪치면서 외쳤다. "썬더!" 콰아앙! 번개를 불렀고, 번개는 단숨에 아이스 오우거인가 뭔가 하는 놈을 태워 버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유저들이 경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번개?!" "번개라니?!" "무슨 일이야?!" "아이스 오우거가 한 방에?!" "뭐지?" 다들 당황한 표정이다. 뭐 내 알 바 아니지만, 난 그런 유저들을 뒤로한 채 일행들에게 말했다. "올라가 볼까." 그렇게 우리는 10분 정도 걸어갔고, 잠시 후 난 뒤로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목적이 뭐야?" 한 20대 초반의 남자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아뇨. 자연의 힘을 가져오는 게 너무 신기해서 말입니다." "흐음?" "혹시 마리나 왕국을 지켰던 그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범상치 않은 남자다. 하지만 이젠 저런 애들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저런 애들 집합체인 것 같은 민호랑 놀아 봐라, 저 정도는 식상하지. 난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정답이야. 근데 선물은 없는데? 굳이 원한다면, 네 목숨?" "너무 살벌하신데요?" "글쎄, 네가 가진 의미에 따라 살벌해져야지, 안 그래?" "흐음, 그건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절대 해가 되는 의미는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싱긋. 그러면서 웃는다. 난 그 말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그럼 용건 말해. 어서." "그럼 말하죠. 당신들의 목숨입니다." "흐음." 엄청 해가 되는 의미인데? 그 순간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우리 주변을 둘러쌌다. 그러자 그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식으로 소개해 드리죠. 데스나이트 길드의 마스터 제로라고 합니다." 데스나이트? 아, 요새 실전하는 최강의 어쌔신 길드? 걔네들 부려먹기 비싸잖아. 그때 민호가 나서서 말했다. "제 선물이 많이 안 좋았나 보군요." "선물?" "호문클로스요." 호문클로스? 아! 그 파괴 정복단 마이블라스트인가 뭔가가 의뢰한 물건? 근데 선물이라니? 설마 민호 자식? "그 호문클로스 유전자에 뭘 한 거냐." "뜨거운 사랑을 불어넣었죠." "글쎄, 사랑을 불어 놓았는데 왜 어쌔신들이 오는 걸까?" "제 사랑을 이해 못했나 보죠." 그래, 잘났다. 사실 네놈의 사랑을 이해하는 놈들이 더 이상한 거다. 그나저나 이분들을 상대하는 건 귀찮다. 괜히 나나 이리스가 상대하면 일이 커져 버려서 사람들 눈이 몰린다. 그렇다면…….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나의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음성에 그들을 파악하지 못한 어쌔신들은 당황한다. 그럼 카운터 재 볼까? 2분 12초라……. 100명의 어쌔신들을 암살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역시 저분들은 정말 무서워. "네,네놈, 도대체……! 그리고 저 어쌔신들은……." "아, 저분들? '테리스나이트'라고 하시던데." "테리스나이트?! 말도 안 돼! 전설이라고 불리는 어쌔신 단체인데 이미 사라진 지가……!" "나한테 묻지 말고 저분들한테 물으렴." 난 데스나이트 마스터를 향해 그렇게 답해 주고 나서 일행들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는 출발!" 물론 뒤에서 느껴지는 비명은 옵션으로 들으면서 말이다. "크아악!" "젠장!" "안 보여!" "막아라!" 이제 나는 무얼 해야 하는 걸까. "……." "……." "……." "……." 일행 모두가 침묵을 지킨다. 왜냐하면 할 게 없으니까. 현무의 자그마한 힌트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현무가 그 다음을 잊어버려서 더 이상 진행 불가다. 아아악! 뭐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어떻게 말을 하는 도중에 그 다음 내용을 잊어버릴 수가 있는 거지?! 그것도 완전히 백지처럼 말이다. 이게 가능하단 말이냐! 인간으로서, 아니 거북이로서 말이다. 난 현무를 노려 봤다. 그런 내 눈빛에 흠칫한 현무가 처량한 눈빛으로 물었다. "왜, 왜 그러세요?" "……." "그,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 "무서워요." 지금 내 눈은 한마디로 거북이 탕을 끓여 먹고 싶다는 눈빛이다. 그만큼 열 받아 뒈지겠다. 어떻게 자기한테 제일 중요한 특별 스킬조차 제대로 기억 못해서 이렇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느냔 말이다. 하아, 진정해야 한다. 여기서 흥분해 봤자 내 몸만 안 좋아진다. 하지만 너무 인생이 막막해!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던 나에게 모 분이 보인다. 혹시 저분 이라면! "야, 이민호." "네." "너 특수 스킬 써 봐!" "……?" "그 있잖아, 남의 생각 멋대로 읽기!" 그렇다. 저 자식의 미묘한 스킬, 일명 남의 생각에 아무런 허락 없이 침투하기. 저 스킬 때문에 나의 사생활이 많이 침해된다. 한편 나의 이런 말에 민호는 대답했다. "그런 스킬 없는데요." "너 내 생각 맨날 읽잖아!" "그건 형님의 표정이 다양해서 읽을 뿐인데요." "……." "전 무지무지 정상적인 사람이어서 그런 비과학적인 일은 못합니다." "……." 저기 민호 군, 한마디만 하고 싶네. 네놈 자체가 완전 비과학 그 자체거든? 어딜 봐서 네가 정상적이냐? 온 우주를 살펴 봐라, 네놈처럼 비과학적인 인간이 어디 있나. 특히 범죄 계열에서 넌 지존이다. 아니 ,지존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거야. 넌 신이다. 범죄계의 신! "진짜냐?" "아시잖습니까. 제가 진실만을 사랑하는 걸요." "구라만을 사랑하겠찌." 진실이라는 이름이 울겠다. 네놈처럼 구라 좋아하는 놈도 이 세상에 드물 거다. 하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현무의 스킬을 위해 막연히 여기서 맴맴 돌아야 하는 거냐? 맴맴? "요새는 맴맴 돌지 않고 휙휙 돌기도 합니다." "……." 제발 이런 내 잡생각은 읽지 말라고. 그리고 휙휙 도는 거냐? 참으로 세상 좋아졌네. 하아, 이게 아니라……. "정말 이대로 끝?" 여기까지 와서 이대로 물러나야 하다니! "아악!" "……?!" 그때 갑자기 현무가 비명을 지르더니 입을 열었다. "케네이산에 블랙 라이……." "으응? 블랙……. 야!" 스르륵. 그 순간 갑자기 쓰러지는 바보 거북이. 난 당황했다. 왜 이래, 이 자식? 한편 그 모습을 본 민호가 말했다. "너무 많은 걸 기억해 내려다가 충격을 받으신 듯싶습니다." "너무 많은 걸?" "네." "어딜 봐서 '너무 많은 걸' 이라는 건지 궁금한데?" 도대체 어딜 봐서 너무 많은 건데? 저 바보 거북이가 생각해 낸 거라고는 케네아산하고 블랙라이가 전부다. 그것도 뒷말을 제대로 해 주지도 않았어. 흑흑! 고작 그 몇 마디 생각해 내는 게 기절까지 할 정도로 충격을 받을 일이라는 것을 오늘 처음 깨달았다. 하아, 늘어나는 건 한숨뿐이구나. 블랙 라이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바보 거북이는 이미 기절 상태고,깨어나 봤자 사람 허파 뒤집어지게 할 뿐이니 자력으로 찾아야 한다. 그나마 아까보다는 상황이 좋다. 블랙 라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근데 왜 기분이 더 암울해지는 거지? "전 알 것 같은데요." "……!" 그때 민호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뭐, 알 것 같다고?! 네가 무슨 수로 블랙 라이라는 걸 안다는 거냐?! "정확한 명칭 블랙 라이 타이거. 몸이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호랑이입니다." "……!" 검은 호랑이? 그런 호랑이도 있었나? 아니, 뭐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저놈이안다는 사실이다! 난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어디냐?!" " '차가운 냉커피'에 의하면……." 또 나왔다, '차가운 냉커피' ! 도대체 왜 모든 힌트가 '뜨거운 핫커피' 나 '차가운 냉커피'로 시작되는 거지? 특히 나의 직업과 관련 된 모든 게 말이다. 혹시 그거 지은이, 이 직업 원조 아니냐? 이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순간 민호의 말이 이어졌다. "블랙라이타이거는 케네아산에 산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 케네아산 어디 사는데?" "제가 어찌 알까요?" "……." "당연히 모르죠." "야, 방금 '차가운 냉커피'에 나왔다면서." "네, 이렇게 나왔어요. '블랙 라이 타이거는 케네아산에 산다. 운 좋으면 만난다'라고요." "……." "왜 그러십니까?" "진짜 그게 다냐?" "그게 다죠." "……." 뭐야, 그게! 그 이상한 이름의 주인공은 '검은 호랑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산다? 그게 끝? 뭐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이야! "기도하죠." "……." "기도하다 보면 행운이 오겠죠." "염병!" 신을 밟는 나인데 신애 행운 따위가 나에게 적용될 확률은 없다. 절대 말이야. 그렇다면 남는 건……. "찾자!" 이 보기만 해도 넓은 산에서 검은 호랑이를 찾는 거다. 물론 찾기 위해서는……. "헤어지자." 내가 옆에 있는 이상, 절대 행운이 따라 주지 않을 테니까. 차라리 내가 없어지는 게 나을 거야. "……." 모든 일행과 떨어진 나, 비참하다. 눈물이 나온다. 흐흑! 이게 뭐야. 나란 인간이 얼마나 저주받은 인간이었으면 이렇게 떨어져야 하는 거냐?! 하지만 분명 행운이 무지무지 필요할 것 같은 이 상황에서 내가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평생 못 찾을 수도 있다. 물론 내 생각이 조금 지나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걸리는 게 빌어먹을 이 저주 타이틀이고, 그뿐 아니라 실제로 재수 없는 것의 근원은 항상 나부터 시작하더라. 그러니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고 해도 이런 생각이 드는건 당연지사다. "그래도 슬퍼." 난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적어 갔다. '슬프다, 슬퍼'라는 미묘한 글씨를. 그때 가까이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수상해 보이지 않아?!" "그렇지?" "나도 그런 생각이……." "정말 수상한데?" "……." 갑자기 모습을 더래넨 네 명의 기사. 난 묻고 싶다. 왜 이런 산 중턱에 기사들이 있는 거냐? 아니, 그것보다 그냥 후드 뒤집어쓰고 주저 앉았는데 왜 수상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냐? 응?! 그 이유 좀 가르쳐 줄래? 딱 나 혼자 되니 엄청난 일들이 마구 벌어질 것 같은 구질구질한 느낌. 뭐지? 착각일 거야. 그래, 착……? 휘이익! "……." 그 순간 마침 불어 닥친 바람에 후드가 벗겨지자, 내게 다가오던 기사들이 외쳤다. "5억 골드가 걸린!" "잡아!" "무조건 잡아야 된다." "……." 기사들이 나를 잡아먹을 듯 달려온다. 난 비극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껏 그나마 일행들이 나의 저주를 막아 주고 있었던 거냐? 딱 나 혼자 되니 완전히 저질이 되어 버린다. 아악! 이건 아니야! "무슨 일이지?" 민혜는 갑작스럽게 시끄러워진 지금의 상황에 당황하면서 물었고, 그 순간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나면서 외쳤다. "5억 골드야!" "잡아!" "잡으면 인생 펴는거야!" "내 거야!" "5억 골드 현상범이다!" "잡자!" 그 소리를 들은 민혜는 설마 하면서 말했다. "5억 골드가 걸린 현상범? 설마?" "형님밖에 없죠." "……." 민호의 단호한 한마디가 들려왔다. 그렇다. 그만큼 액수가 걸린 범죄자(?)는 재현이밖에 없다. 5억 골드라는 한마디만 나와도 딱 연상되는 사람이 재현이니까. 민호의 말에 민혜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을까?" "뭐, 이 정도야 형님에게는 아무것도 아닐걸요?" "……."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을 많이 당하신 분이니까요." "……." 민호의 말대로 어쩌면 이건 별거 아닐 수도? 그에게는 엄청나게 화려한 과거들이 존재했으니까. "그럼 우리는 형님을 믿고 어서 블랙 라이 타이거를 찾죠." 민호의 한마디에 모든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믿는다. 재현의 끈질긴 생명력을. 헉,헉,헉. "뭐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개떼처럼 몰려들었다. 마치 나를 잡아먹기 위해서 모든 애들이 몰려오는 느낌, 정말 괴롭다. 시간이 지나면 줄어야 할 텐데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아악! "저기다!" "어서 잡아!" "내 거야!" "5억 골드다!" "돈이다!" 이 자식들아, 날자꾸 5억 골드라고 부르지 말라고! 누구는 그걸 달고 싶어서 달았겠어? 앙?! 안 그래도 열 받아 돌아가시겠는데……. 그때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오고, 난 와이어를 펼치면서 외쳤다. "다 덤벼!" 자연의 힘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고? 그건 저번에 마리나 왕국을 방어할 때 사용해서 지금 자연의 힘을 사용하면 동일 인물이라는 게 밝혀지니까 어쩔 수 없다. 한마디로 그렇게 되면 흩어졌던 눈들이 한 곳으로 집중되고,난 집중포화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자연의 힘은 사용이 불가하고 지금 와이어 하나만 들고 싸우고 있다. 하지만……. "제길, 체력 고갈인가?" 거짓말 안 하고 얼마나 상대했는지 모르겠다. 그 5억 골드가 무엇이기에 이 사람들을 버서커로 만들었단 말인가. 그냥 버서커도 아니고 광 버서커로! 아니, 나라고 해도 그러기는 하겠다만, 너무 달려든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존재가 누구냐고 하면, 당연하지만 목숨을 포기하고 싸울 줄 아는 자다. 그래서 버서커라고 불리는 분들이 무서운 거다. 그리고 이분들도 돈 때문인지 완전 목숨 버리고 달리다 보니 평소보다 2배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되고, 상대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만큼 힘들어진다. "하아……." 난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난 근처의 동굴에 숨어 있는 상태다. 밖에는 수천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켠 채 나를 찾고 있다. 제길! "넌 누구지?" "……!"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중후하면서도 엄숙하게 울리는 목소리다. 난 그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 즉 동굴 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굳어 버렸다. 거기에는 한 호랑이님이 계신다. 그것도 검은 색의 호랑이가……. 쟤가 말한 거니? 아니, 그게 아니라 검은색의 호랑이라는 건! "블랙 라이 타이거?" "나의 이름을 아는군." "헉!" 그럼 말하는 호랑이인 당신이 현무의 스킬 절대 방어막을 안다는 바로 그분? 두근두근!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드디어 찾아냈다. 내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절대 방어막에 대한 비밀을 아는 존재를 말이다. 그때 그 검은색의 호랑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묻겠다. 넌 누구지?" 난 그 물음에 웃으면서 대답한다. "디재스터라고 하면 알까? 현무의 스킬을 배우기 위해서 왔다!" "……." 그 말에 나를 빤히 바라보던 검은 호랑이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좋다, 가져가라." "……!" 오, 너무나도 순조롭다. 너무 순조로워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된다는 사실을 오늘 절실히 깨달았다. 검은 호랑이의 말을 듣고 난 순간 얼어 붙어 버렸다. "현무를 똑똑하게 만들어라." "……."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제 8 장 [해결법] 블랙 라이 타이거의 충격적인 미션 발언! 기억력 1초, 아니 소수점에 달하는 바보 거북이를 똑똑하게 만들라는 미션이다. 물론 그 기준이 남처럼 똑똑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단지 지금보다 조금 더 똑똑해지는 거다. 예를 들어, 말하던 내용 다 말할 수 있는 레벨쯤? 그 정도면 되는 거다. 하지만……. "불가능해" 겨우 두 단어를 기억해 내고 기절하는 바보 거북이를 무슨 수로 그 레벨까지 만든단 말인가! 성으로 복귀한 난 좌절에 빠진 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진짜 이건 말도 안 되는 미션이다. 차라리 민호를 정상인으로 만들라는 미션……보다는 낫겠네. 잠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큼! 어찌 됐든 지금 난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난 내 앞에 있는 현무에게 다가가 말했다. "현무야." "네. 마스터." "아니다." "……?" 말해서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감동하겠지.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난 다시 고개를 옆으로 돌려 민호를 바라봤다. 그리고 진지한 어조로 불렀다. "민호야." "네. 형님." "내가 하나만 물어볼게. 진실만 말해 줄래?" "그러죠."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놈이 그나마 제일 나으니까. 난 한숨을 내쉬면서 물었다. "현무가 똑똑해질 확률은?" "흐음, 형님." "왜?" "진실대로 말할까요?" "방금 전 그러라고 했잖니." "알겠습니다. 진실대로 말해서 0%입니다. 일명 제로라고하죠." 예상했다. 하지만 민호야, 그래도 너무 단정 짓는 거 아니니? 0%는 아예 가능성이 없다는 건데 ,최소 0.000000001% 정도라고는 해 줘야 나름대로 희망이……. "형님, 제로, 제로, 제로, 제로, 제로, 제로, 제로, 제로의 가능성입니다." "……." "그러니 불가능합니다." 얄밉다. 저 자식, 진짜 얄밉다. 굳이 저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의 마지막 기대조차도 완전히 박살내 버리는 저 자식. "난 천재다!" 그때 현무의 외침이 들려왔다. 미치겠다, 진짜! "저, 저기." "……?" 그때 완전히 돌아 버릴 것 같은 나에게 말을 거는 이리스, 무슨 일이지? 그녀는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데켄이라는 아이템을 복용하신다면……." "데켄?" "네."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아이템 이름인데? 다시 이리스의 말문이 열렸다. "데켄이란 영구적으로 지능을 대폭 상승시켜 주는 영약이라고 해요. 그걸 먹으면 누구든지 천재가 된다고……." "헉! 지,진짜?" "네." "……!" 믿을 수 없는 이리스의 정보. 데켄이라는 영약을 복용만 하면 그 누구든지 천재가 되어 버린단다. 그 말인즉 저 바보 거북이도 천재가 된다는 소리다! 아, 그러고 보면? "이리스." "네?" "혹시 능력치 같은 거 볼 수 있으려나?" 드래곤이라면 남의 능력치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본 것이다. 그 말에 이리스는 난감한 듯 대답했다. "볼 수는 있지만 많이는 못 봐요. 한 개 정도? 그리고 사용 한 후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지만 가능하고요." "아."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남의 능력치가 막 보이거나 그러진 않는구나. "그럼 한 가지 능력치는 볼 수 있는 거네." "네." "……!"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드디어 한 가지의 절대 미스터리가 풀릴 것 같은 느낌이다. 난 당장 이리스에게 다가가서 애절한 어조로 부탁했다. "저 바보 거북이 지능지수 좀 봐 줄래?" "……." "안 돼?" "아뇨, 가능해요." 앗싸!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제일 궁금한 게 그거였다. 바보 거북이의 지능지수는 얼마나 될까 하는 거 말이다. 마법 데미지를 올려 주는 역할이기도 하지만 기억력이라든 가 머리 돌리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스텟, 그게 지능이다. 두근두근! 난 기대 어린 눈빛으로 이리스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바보 거북이의 지능지수 점검에 들어간 이리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리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봤다. 그러고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제, 제가 시, 실수를 했나 봐요." "왜 그래?" "마, 말도 안 되는 수치가." "엥?" 설마 저 자식이 엄청난 천재? 그때 이리스의 한마디.난 너무나도 충격을 받았다. "-3,248,143으로……." 마이너스? 플러스도 아니고 마이너스? 그리고 수백만? 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리스가 제대로 측정한 거라면 과연 그 영물인가 뭔가를 먹어도 쟤가 똑똑해질 수 있냐는 거다. 어떻게 지능지수가 -3,248,143이 나오는 게 가능한 거지? 이리스는 자신의 실수라고 하지만, 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리스는 제대로 봤다. 저놈의 비과학적인 돌대가리가, 아니 돌에 비유하는 것 자체가 돌에 대한 모욕이니까 이제 비교할 대상도 없는 입장이다. "신기하군요." 그때 민호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그래, 신기하다. 정말 신기해. "개인적으로 네놈의 뇌도 조사하고 싶다." "전 지극히 정상적이어서 정상적인 것만 나오는데요?" "……." 그래, 네놈 혼자 정상인이라고 믿고,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지! "이리스, 데켄이라는 게 어디 있어?" "아." "……?" 그때 갑자기 곤란한 기색을 띠는 이리스. 왜 그러는 거지? 잠시 후 그녀는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저기, 조금 곤란한 장소인데……." "으응? 괜찮아, 괜찮아. 이제는 뭘 들이대도 두려울 게 없는 나야." 그렇다. 할 짓 못할 짓 다 해보고 거의 막장까지 간 나인데 무엇이 두렵겠냐? 이제 별로 두렵지도 않다. 이런 나의 자신만만함에 이리슨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자들만 출입 가능한 장소, 레리타……." 레리타. 방금 전에 이리스가 말했듯이 남성은 절대 출입 금지. 예외란 없다. 무조건 남자 절대 출입 금지, 보이는 순간 척살. 척살, 경고도 없다. 한마디로 남자들에게 최악의 마을이 저기다. 하지만 나는 저기에 들어가야 한다. 무조건 말이다. 현무를 똑똑하게 만들기 위해, 즉 특별 방어 스킬 절대 무적 스킬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무슨 수로? "여자로 변신하죠." "……." "형님은 얼굴도 반반하니 잘 꾸미면 초미녀가 되실 것 같은데요." "……." "제가 또 한 분장합니다." 네가 못하는 게 뭐니? 그래도 여장이라니, 여장이라니! "절대 형님의 여장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 "단지 도움이 되고 싶은 저의 순수한 마음?" 단숨에 저놈의 목적이 드러나는구나. 이제는 저 자식과 워낙 오래 있다 보니 나도 달인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저 자식의 목적은 내가 여장한 모습을 보고 즐기는 거다. 순수한 마음 따위는 절대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유혹이 너무나도 달콤해서 뿌리칠 수 없다. "형님." "……." "가셔야지요. 특별 스킬을 위해서라도." "……." "포기하실 건가요?" 크윽! 물론 우리 일행에 여자들이 많아서 그녀들만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미묘한 물건 찾기는 내가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든다. 사실 그녀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내가 가야 된다는 거다. "형님의 의지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겁니까?!" "……." "그럼 정말 실망입니다." 민호의 얼굴에 엄청나게 실망한 모습이 역력하게 떠오른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외쳤다. "하면 될 거 아니야!" "역시 형님입니다." "……." 하지만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미소를 짓는 민호를 보고 난 본능적으로 느꼈다. 낚였다는 사실을. 제길! 여장의 미학. 그딴 미학이 어디 있어! 하지만 한 모 인물은 말한다. "역시 여장의 미학은 환상적이라고나 할까요? 너무나도 좋습니다." 남은 여장을 시켜 놓고, 미학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제 가시지요." 민호는 나에게 한마디 건네고, 난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여자들이 충격이나 덜 받았으면 하는 게 지금 내 바람이라고나 할까? "저기, 누구?" "오빠, 누구야?" "누구?" "에?" 내가 민호와 나타나자 쏟아지는 질문들, 그 질문의 대상은 민호다. 민호는 그녀들을 물음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형님이신데요." "에에?!" "말도 안 돼!" "저, 저 사람이 주인님이라고요?!" "……." 모두 할 말을 잊어버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난 그런 그녀들에게 어색한 어조로 물었다. "왜, 왜 그래?" "오빠, 너무 예뻐!" "주인님, 저 , 정말……." "재현이 너……." "……." 나를 보고 눈을 반짝이는 여자들. 무서워. 왜 그러는 거야. 그리고 예쁘다니? 남자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암울하다고. 그 순간 나래 누나가 거울을 내밀더니 말했다. "직접 봐!" "……?" 난 그 말에 누나가 내민 거울을 봤다. 그리고……. "아악! 이게 누구야?!" 난 거울에 비친 한 미소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물론 초미소녀 계열은 아니지만, 충분히 연예인들과 비등할 정도의 미소녀가 있다. 얘는 누구니? "형님인데요." "……." "확 잡아먹고 싶을 정도입니다." 찌릿! 그 말에 난 민호를 노려봐 주었고, 민호는 웃으며 말했다. "농담입니다." 진담 같은데,이 자식아? 아무튼 도대체 이건 분장이 아니잖아? 분장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한마디로 변신? 진짜 변신이다. 난 민호를 보면서 말했다. "너한테도 이런 정상적인 재주가 있었구나." 다른 사람으로 변신을 시키는 능력, 범죄 능력 말고도 이런 건전한(?) 능력이 있다니, 마구 눈물이 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역시 몰래 침입하기 위해서는 변신술이 필수입니다." 그랬던 거냐. 이것도 범죄의 일종이었구나. 일명 변신술, 상대방의 눈을 피하기 위한 변신술. 그랬던 거다. 이것도 범죄를 위한 거였어. 범죄 능력 말고 건전한 능력이 있다고 믿은 내 자신이 왠지 밉다. 저 자식은 오로지 범죄 능력 계열에만 완벽했던 것이다. "그럼 들어가 볼까요?" "……." 어느새 민호도 순식간에 미녀로 변신해 버렸다. 무섭다. 이건 진짜 변신물 찍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마구 든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물론 민호 자식이 좀 얼굴이 돼서 가능한 거겟지만. 어찌 됐든 변장, 아니 변신을 해 버린 우리 일행. 현무와 청룡을 제외하고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여자들의 도시 레리타로! 제9장 [여자들의 도시 레리타] "아!" 난 레리타에 들어온 이후 계속 이 모양이다. 뭐라고 해야 하나, 행복하면서도 흥분이 되는 그런 미묘한 상황? "좋습니까?" "벼, 별로." 그때 민호가 웃으면서 한마디 하자 난 당황하면서 대답했고, 그 말에 민호는 주변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역시 가끔 올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최고죠." "……." "뷰티풀해요. 휴우." 지금 민호의 반응과 내 반응이 왜 이런지 궁금할 거다. 아마 남자라면 모두 이런 반응을 보일 거다. 그건 바로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미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거의 옷을 벗다시피 한 파격적인 옷차림들. 아무래도 남자가 없다는 생각에 화끈한 옷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가끔?" "왜 그러십니까?" "아니, 방금 네 말을 들으면 여기에 온 게 처음은 아니라는 소리 같아서." "당연히 처음은 아니지요." "……." "이런 행복한 동네를 와 주지 않는 건 죄악입니다." 저기 민호 씨, 왜 여기서 죄악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만 결론적으로 이 마을에 가끔 들렀다는 거네? 이 변태 자식! "하루에 한 번씩은 와 줘야 하는데 요 며칠 동안 못 와서 섭섭했습니다." 야, 그거에 어떻게 가끔이라는 말이 적용되는 건데? 응? 가끔이라는 기준이 넌 하루냐? 거의 매일 온다는 거잖아! 아, 그러고보니 매일매일 민호가 밖으로 사라질 때 난 들었었지. '넌 매일 어디를 가는 거냐?' '신성한 장소에 갑니다.' '…….' '나중에 형님도 꼭 데려가 드리겠습니다.' 설마 그 신성한 장소가 여기는 아니겠지? 난 멍하니 민호를 보면서 물었다. "여기가 네가 말한 신성한 장소?" "네." "……." 어딜 봐서 여기가 신성한 장소냐! 남자들에게는 그냥 타락의 장소이구만! 청렴결백한 남자들도 이곳만 오면 눈을 어디다 둘지 모를 게 분명하다. 그정도로 많은 여자들과 그녀들의 노출은 파격적이다. 뭐 그래도 좋기는 하다. "좋아?" "뭐, 약간. 아, 아니. 절대 안 좋아!" "헤헤." "……." 민혜의 기습적인 질문에 잠시 본색을 드러냈고, 얼른 말을 돌렸지만 이미 늦은 느낌? 그러자 민혜는 웃으면서 차갑게 말했다. "민호와 닮아서 좋겠네요?" "아악!" "축하, 축하!" "자, 잠깐! 민혜야, 그런 심각하다 못해 자살 충돌을 일으키는 말은……." "흥!" "으악!" 도무지 인간으로서는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어 버렸다. 절대 인간으로서는 들어서는 안 될 '민호와 닮아서 좋겠네요?' 라는 말. 그 말을 풀이하면 민호 같은 미친놈이라는 결론이 나오는거다. 말도 안 돼! "형님, 축하드립니다." "……." 그때 민호가 내 옆으로 오더니 한마디 던졌다. 뭐야, 이 자식아! "저랑 닮았다는 말을 들었잖습니까?" "그게 왜 축하할 일인데!" "저랑 닮았다고 하잖아요." "……." 진정 너는 저 말이 좋은 말로 들리는 거냐? 네놈을 닮았다는 말이? 아아, 미치겠다. 이 자식. "진짜 미치겠네." 지금 내 심정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 너무 좋다. 너무 행복하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무슨 소리냐 하면……. "눈 돌릴 곳이……." 그렇다. 너무나도 행복한(?) 패션 덕택에 어쩔 줄 몰라 한다. 뒤에 계신 여자들의 시선 덕택이지. 만약에 저분들이 없었다면 난 아주 대놓고 당당하게 진짜 철가면 두르고 침까지 줄줄 흘리면서 보는 민호처럼 됐을지도 모른다. 진짜 뻔뻔해, 저 자식. "어머, 민지 아니니?" "아, 안녕?" "……." 난 그때 봐서는 안 될 걸 봤다. 한 10대 후반의 여자아이가 다가오더니 민호에게 말을 걸었고, 그 말에 민호는 순식간에 목소리가 여자로 변해서 인사했다. 충격 그 자체였다. 너무나도 귀여운 목소리다. 평소에는 남성적인 목소리의 주인공인데 어떻게 저런 귀여운 목소리가 나오지? "어, 어떻게?" 그걸 본 나래 누나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했다. 아무리 변조를 한다고 해도 저건 심하다. 보통 남자가 여자목소리로 변조한다 하더라도 약간은 남자의 톤이 남는다. 하지만 저건 거의 100% 바뀌었다. 마치 음성 변조기 같다고 할까? "우아! 반가워, 민지야! 진짜 오랜만이다." "응, 나도 오랜만이야. 정말 반가워." 웩! 토할 것 같다. 속이 안 좋다, 진짜. 저놈의 내부가 남자라는 걸 잘 아는 나로서는 역겹다 못해 미칠 것 같다. 응, 나도 오랜만이야? 헉! 심장 발작이……. "근데 저분들은 일행?" "응, 아는 언니들이야." 아아악. 진짜 진짜 진짜 너무해! 이 자식아! 그 순간 민호와 인사하던 여자아이가 우리 쪽을 바라봤다. "우아, 연예인보다 예쁘다." 그녀는 에리아스랑 이리스를 보고 말했다. 사실 지금 나래 누나랑 민혜는 공주라는 타이틀 때문에 살짝 분장을 한 상태. 그런 까닭에 원래 미모보다는 확 죽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예쁘다. 그렇다 보니 지금 우리 일행 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 이리스랑 에리아스. 그렇지만 두 분 다 내성적이다 보니 이런 시선들을 심히 부담스러워하신다. 하지만 뭐 예뻐서 그런 걸 어쩌겠는가. 그런데 여자분들, 약간 시선이 메롱메롱 하시네? 한마디로 말해 불건전한 시선들이다. 심히 말이다. 예쁜 여자들을 보면 보통 여자들은 선망의 눈빛들을 보내지만, 일부 여성들은 그런 시선이 아니다. 하아(?) 하는 눈빛. 굳이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다. 하지만 혹시라도 자기가 순수하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분들을 위해서라도 한 번 언급하겠다. 레. 즈. 비. 언. 여자랑 여자가 응응 하는 그거다. 더 이상 말하기에는 내가 곤란해서 그만 하겠다. 난 순수함의 결정체니까, 그런 말을 입에 올리는 건 어울리지가 않으니까. 근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어찌 됐든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이곳에 있다는 데켄, 초특급으로 머리 똑똑해지는 약을 찾기 위해. 그리고 이리스의 말에 의하면 그 약은 성녀라고 불리는 여자에게 있다고 한다. 성녀, 신의 신탁을 받는 아름다운 분. 마음이 곱고 고우신 분, 특히 얼굴도 초미소녀 라는 그 분이 바로 성녀다. 그리고 그 성녀라는 분은 이 마을에 계실 뿐만 아니라 데켄이라는 아이템도 가지고 계신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나름대로 순수한(?) 의도로 성녀라는 분을 뵐 수 있었다(도대체 민호 자식 얼마나 여기서 살았으면 성녀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인맥을 쌓아 놓으셨다. 저질 자식!). 성녀라는 분을 직접 보고 느낀 점은 새로운 초미소녀의 발굴? 대략 16살 정도로 보이는 모습에 에메랄드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소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드는 소녀다. 그리고 글래머다. 뭔 말이 필요하리? 글래머 장땡?! 이게 아니라, 어찌 됐든 성녀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게 보이는 소녀다. 한편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사람들을 둘러봤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저기,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 미? 나랑? 안 돼!난 모습만 여자지 목소리는 남자란 말이다. 이야기를 하면 바로 들통 난단 말이다. 하지만 그 성녀라는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당황하는 나를 붙잡고 끌고 갔다. 어, 어라? 저기, 갑자기 이건 무슨……. 만난 지 5분도 안됐는데 갑자기 나를 어디로?! 이런 모습에 일행들도 당황했다. 물론 민호 놈 빼고. 신성력이 가득 찬 방. 아마도 그녀의 방이겠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덮치려면 지금 덮쳐요." "……." "아니면 제가 덮쳐 드릴까요?" "……!" 너무나도 청순한 모습으로 말한다. 그리고 난 충격을 받았다. 말도 안 돼! 내가 잘못 들었을 거야. 그래, 잘못 들어겠지. 덮치라니, 덮쳐 드릴까요라니? 저 청순한 모습하고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단어잖아? 응? 스르륵. 그때 갑자기 무언가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악! 꿈일 거야, 꿈! 이건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야. 내가 가진 성녀라는 이미지가 초전박살이 나는 거야! 그 순간, 그녀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이왕이면 야설에 나오는 거처럼 자극적으로 덮쳐 주세요." "……." "저 지금 속옷만 입은 상태거든요, 오빠." "……." 아아악! 뭐야, 이분! 진짜 이건 아니잖아 당신은 성녀란 말입니다. 성녀라는 분이 갑자기 방으로 끌고 오더니 왜 옷을 벗고……. 그리고 야설에 나오는 것처럼 자극? 잠깐! 야설? 난 야설이라는 말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야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놈, 이민호. 야설계의 거장이자 야설에 희망을(?) 불어넣은 절대적인 영웅이다. 나름대로 야설계에서는 그렇게 불리니 그렇게 말해 주자. 그리고 그런 야설계의 거장 밑으로는 떠오르는 샛별이 있다. 일명 엘라니아, 민호의 여동생이다. 남동생도 아니고 여동생. 털썩. 뭔가 힘이 빠지는 구나.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저번에 그 여 동생이 한 건 하는 바람에 우리 학교가 개판 된 적도 있다. 설마 아닐 거야. 그래, 그럴 리는 없을 거야. "저희 오빠 말로는 데켄이 필요하다던데요?" "……." 그러면서 푸른색의 둥그란 알약을 내밀었다. 그녀는 사람 녹여 버릴 것 같은 미소로 말했다. "이게 데켄이에요." "……." "이것만 먹으면 그 누구도 똑똑해지죠." "……." "저를 덮쳐 주는 대가로 드리죠." "저, 저기……." "……?" "민호 동생?" 난 묻고 싶지 않았지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아까 우리 오빠라는 부분에서 대충 감 잡았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외면하고 싶어. 저렇게 아리따운 초미소녀가 민호의 동생에다가 야설계의 떠오르는 별이라니! 아악, 믿고 싶지 않아!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이미 알면서." "……." "자, 어서 이리로 와요." 그러면서 침대에 다소곳이 누워 있는 초미소녀. 아아악, 이건 아냐! 너무 유혹적이야! 저런 초미소녀가 나를 유혹한다. 아아악! 나에겐 예진 님이 계셔. 이런 건 좋지 않아! 난 거의 수도승 기분으로 자제하며 침착하게 물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민호가 어떨까 하는 생각 안 했어요?!" 강렬하게 말했다. 한마디로 오빠를 들먹이면서 지금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나의 방법. 하지만 나의 이런 질문에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해요." "……." "제가 오빠가 상상하는 걸 왜 해요." 참으로 아리따운 남매군. 그 순간 그녀는 약간 부끄러운 어조로 나를 재촉했다. "어서 해 주세요. 저, 처음이에요." "……." 처음이에요, 처음이에요, 처음이에요……. 이 말이 내 귓가를 맴돈다. 아아악, 무슨 이상한 상상을 하는 거냐! 나 정말 이런 놈이었던 거냐?! 난 예진이를 사랑한다고! 그때 그녀의 한마디. "이왕이면 좋아하는 남자에게 덮침을 당하고 싶어요." 충격적이다. 그런데 하나 의아한 게 있는데, 덮치는 건 강제적이라는 의미인데 좋아하는 남자에게 강제적으로 당하는 게 좋은 건가요? 순수한 난 이해 불가. 그리고 그녀는 한마디 더 한다. "오빠 말로는 직접 경험하면 야설을 더욱 잘 쓸 수 있대요. 그러니 도와주세요." 이. 민. 호! 도대체 여동생에게 무슨 개소리를 해 댄 거냐! 오빠라는 놈이 저런 저질적인 소리를 해도 되는 거냐?! 응? 네가 오빠야?! 보통은 미쳐도 이러지는 않아! 이 저질 자식아! 난 그녀에게 옷을 입힌 뒤 차근차근 설명했다. 민호의 개소리는 무시하라고, 그리고 이런 건 좋지 않다고 말이다. 그녀는 그 고운 얼굴로 나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더 귀엽네요." "……." "뭐, 양념을 친 다음 잡아(?) 먹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오빠. 그게 더 짜릿할 것 같기도 하고요." 무섭다. 너무 공포스러워! 청순하다 못해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클리닝(?) 되는 미모를 가진 여자가 저런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치다니 정말 무섭다. 하지만 그때였다. "대신 제 가슴 한번 움켜쥐어 주세요." "……." "그것도 안 된다면 전 이 약을 드릴 수가 없어요, 오빠." 그러면서 데켄을 내밀었다. 아아악, 지금 저 소녀가……! 꿀꺽. 그때 나도 모르게 내 눈이 클로즈업이 되는 글래머 한 가슴. 거듭 말하지만 글래머다. 나이가 16살이신데도 글래머다. 그리고 얼굴도……. 아아악! "어서요!" 그녀는 강제로(?) 내 오른손을 잡더니 곧바로 가슴에 갖다댔다. 뭉클. 오, 할렐루야(?) ! 이건 아니야! 이건 정말 예진이에게 죄를 짓는 거라고! 다른 여자의 가슴을 만지고 '오, 할렐루야!' 라니, 나 미친 거 아니야? 아무리 내가 혈기 왕성한 남자라지만 이건 좀 아니잖아! 응? "분위기 좋은데요." "……." "……." "……." 그때 어느새 들어온 일행들. 민호는 웃고 있었고, 민혜와 나래 누나. 그리고 에리아스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석화 마법에 걸린 것처럼. 난 왜 그런지 반응이 궁금했지만, 잠시 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으아악! 오, 오해야!" 난 재빨리 엘라니아의 가슴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분위기. 난 맹렬히 고개를저었다. "진짜! 난 억울해!" 이미 난 짐승이었다. 오해가 풀릴 수 없는 상황이다. 엘라니아는 오해라는 말은 절대 해 주지 않았고, 그 상황은 아무리 봐도 핑계를 대기엔 미묘한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난 여자들에게 '변태'로 찍혀 버린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10억 골드……." 여자들의 마을에 침투해서 성녀까지 납치해 온 대악당이 되어 현상금이 10억으로 쭉죽 올랐다. 아니, 그것보다……. "난 들킨 적 없는데?" 한 번도 들킨 적 없이 몰래 엘라니아까지 빼돌렸는데 왜 내가 범인으로 지목되고 현상금이 올라간 거지? 응? "그건 제가 제보했으니까요." "……." "지금까지 항상 제가 열심히 제보했습니다. 형님, 저 잘했습니까?" "……." "칭찬은 쑥스러운데요." 이제야 나의 알 수 없는 천문학적인 현상금에 이유가 있음을 알았다. "이민호, 네놈이 원인이었잖아!" 그대로 슈퍼 하이 킥! "꾸엑!" 그날 그 엄청난 약을 먹은 바보 거북이. 하지만……. "난 천재다!" 효과 제로였다. 이럴 수가! 바보도 초천재로 만든다는 약을 먹고 그대로라니! 역시 수백만이라는 마이너스 지능지수는 어쩔 수 없는 거였단 말인가? 아아악! 그나마 다행인 점도 있다. "그 약까지 복용을 했는데도 저 모양이라면 불가능하다는 거. 조금이나마 기대를 했건만, 어찌 됐든 노력한 점을 봐서 주겠다." 그렇게 현무의 스킬 절대 방어막을 얻게 되었다는 거다. 제 10장 [살인 산장] 흐흑! 정말 너무해. 어서 게임 정복을 해서 우리 사랑스러운 예진이에게 멋지게 고백하고 싶은데, 정말 미쳐버리겠다. 솔직히 말해서 한번 들이대고는 싶지만, 그랬다가 피 보는 상황이 연출될까 봐 그것도 못하겠다. 수많은 제국과 왕국이 나를 사랑(?) 한다면 솔직히 부담된다. 휴우. 세상에서 제일 힘든 말이 게임 정복이라는 게 절실히 느껴지지만, 후회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걸 지나왔을지도 모른다. "저기, 재현아." "응?" 나를 조심스럽게 부르는 예진이의 말에 난 벌떡 일어났다. 사실 수십 번도 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게임 정복이라는 게 너무 힘들다. 하지만 내가 견뎌 낼 수 있는 건 무조건 저분덕택이다. 물론 게임에서 여자들과 약간(?) 미묘한 일이 있었지만, 안 보면 장땡 아닌가? 헉! 뭐지? 나란 놈이 이렇게 뻔뻔했던 거냐! 좋아하는 여자 아이를 앞에 두고 안 보면 장땡이라는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그 순간 '들키면 범죄 안 들키면 예술'이라는 말이 귀를 울렸다. 민호 자식이 심심하면 외치는 소리여서 나도 모르게 세뇌를 당했나 보다. 자, 지금이라도 뉘우쳐서……. "미안." "응? 뭐가 미안?" "아니, 이유는……." "……." 나의 미안하다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예진이. 하지만 난 상세한 이유까지는 말 못하겠다. 민혜와의 키스, 에리아스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고 프렌치키스, 나래 누나와의 미묘한 무엇,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호 여동생의 가슴을 움켜쥔 것까지……. 아아악!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난 더럽게 나쁜 놈이잖아! "……?" 이런 나의 좌절한 모습에 더욱 의문을 띠는 예진이. 난 다급히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아냐. 휴, 그나저나 할 말 있어?" "아." 그러자 갑자기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예진이. 하지만 그녀는 심호흡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 나랑 별장에 안 갈래?" "……!" 별장이란 자는 곳? 그것도 남자와 여자 단 둘이? 한마디로 미묘한 그곳?! 으악! "……." 지금 난 별장에 온 상태다. 사실 처음 별장이라는 말에 난 한 마리의 짐승이 되었는지 도 모른다. 하지만 예진이의 추가타에 그대로 무너진다. '삼촌이 며칠 동안 쉬는 직원을 대신해 줄 사람이 필요하대. 근데 내가 아는 남자는 너밖에 없고…….' '…….' '미,미안.' 사실 그 말을 듣고 거절 따위가 가능할 리 없다. 내가 사랑하는 소녀의 부탁이다. 그런 일 정도는 당연히 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너무 기대해서, 아니 내가 그런 변태적인 상상을 한 것부터가 잘못인 거다. 그리고 그나마 희망적이라면……. "예진이도 같이 왔다는 거지." 그렇다. 나만 온 게 아니라 예진이도 삼촌 일을 도와주러 온 거다. 한마디로 완전히 죽 쑨 건 아니라는 거다. 나중에 남는 시간에……. 우훗. 큼큼, 자중하겠다. 그렇게 난 열심히,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성실성을 하늘이 안 좋아하나 보다. 왜냐고? "허어, 이게 무슨 일인지……." 갑자기 쏟아진 엄청난 폭설로 인해 산장 주변은 통행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린 거다. 한마디로 일 끝나고 오붓한 데이트 따위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인 거지. 그리고 지금 수십 명이나 고립된 상태다. "꺄악!" 그때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무슨 일이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 곳으로 사람들이 달려갔다. "……." 난 멍하니 바라봤다. 어떻게 이런 일이……? "무슨 일이야?" 그때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는 듯 물으면서 둘러보려는 예진이의 모습이 보이자, 난 그대로 예진이를 껴안았다. 그러자 예진이가 당황하면서 물었다. "왜 그래?" "보지 마." "……." "안 보는게 좋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줄이야……. 사람이 살해당했다. 40대 초반의 남자였는데, 온몸에 칼이 박힌 채 죽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끔찍해서 그걸 본 사람들은 헛구역질을 하고 계신다. 그나마 난 괜찮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 내 눈에 피로 쓴 글씨가 보인다. "이곳에 나는 있다? 재미있는 살인 쇼를 시작해 보도록 하지, 크크! 나를 찾는다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런 영화에서나 등장할 만한 일이! 이곳 주인이자 예진이의 삼촌인 그도 패닉 상태고, 이곳에 갇혀 버린 손님들도 모두 자신의 방에 틀어박힌 채 발 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그 피로 쓴 글씨, 한마디로 이 이유도 알 수 없는 살인범은 이렇게 서로를 의심하게 해서 떨어뜨려 놓으려는 의도인 게분명하다. "……." 난 이런 충격적인 상황에 멍하니 있는 예진이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걱정 마." "……." "내가 지켜 줄게." "재, 재현아." 나의 부드러운 음성에 떨리는 어조로 말하는 예진이. 어라, 뭔가 분위기가 야릇하다? 헉, 아니다! 지금은 장난이 아니야. 무지 위험한 상황인 거다. 하지만 갑자기 이런 이상한 분위기는……. "식사하시죠." "그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도 모르는데 식사하라고?! 네놈이 범인인 거지?! 응?" "먹기 싫으면 말고요." "으아악!" 그때 어디선가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 목소리와 싸우는 한 남자의 음성도 들려왔다. 너무나도 익숙하다, 저 목소리. 그리고 잠시 후, "형님, 식사하시죠." "……." "……." 나와 예진이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음식을 가지고 다니는 민호 자식을 보고 말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 너무 반갑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살인 사건에 저런 놈이라도 나타난 것만으로도 뭐라 할 수 없는 안도감이 든다고 할까? 하지만 중요한 건…….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건데?" "알바 뛰는 중인데요." "……." "제 알바가 음식 서빙입니다." 뭔가 미묘하다. 살인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이 공포에 떠는 상황인데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민호를 보니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알바를 하게 된 것이 우연일까? 순식간에 공포 분위기였던 방은 민호의 등장으로 어색해졌다. 저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인 사건에 대한 공포감이 이렇게 해소되다니, 참으로 신기한 자식이다. "그나저나 형님, 식사 안 하십니까?" "아니, 하고는 싶은데……." 방금 전에 민호와 싸웠던 남자의 음성이 귀에서 맴돌았다.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 그때 민호는 동그란 모양의 기계를 꺼내더니 음식에 갖다댔다. 그리고 잠시 후, "없습니다." "……." "인간에게 해로운 건 없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저기, 민호 군." "네." "이건 뭐니?" "인간에게 해로운 물질을 검사하는 기계죠." "……." "왜 그러십니까." "아니." 네놈이 그런 걸 왜 들고 다니는지 궁금해서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저런 걸 들고 다닐 확률은 제로다. 누가 독이 들었을까 봐 조사하는 그런 걸 가지고 다니냐? 그리고 기능만으로도 엄청 비싸 보이는데? 난 살인자보다 사실 저놈이 더 무섭다. 심히 말이다. "예진아, 원래 저놈이 약간 이상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신뢰가 있으니 음식은 먹어도 될 것 같아. 배고프지?" "아." "일단 먹고 힘내야지." 그러면서 난 음식물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 그 모습에 민호는 내게 다가오더니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회입니다." "……?" "어서 먹고 힘내셔서 덮쳐야죠." "……." 난 그 말에 번뜩 일어나면서 싱긋 웃었다. "잠시 스피킹?" "싫은데요." "……." 난 간단히 거절하는 민호를 이끌고 방 안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예진이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니까. "하아." 한 남자가 자그마한 구멍을 통해 예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소녀다. 지금까지 살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소녀는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남자로서의 성적인 욕망을 채운 뒤 저 연한 살결을 찌르고 싶다. 그런 욕망이 가득하다. 그때 두 명의 남자가 갑자기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런데 그 두 남자 중에서 항상 미소를 짓던 한 남자가 자신이 몰래 지켜보는 방향을 보더니 손을 흔든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다른 한 남자에게 그 남자는 한 대 얻어맞고……. 흠칫! 그 살인범은 착각이라고 믿고 싶었다. 자신이 몰래 훔쳐보는 걸 감지했다고? 그건 말도 안 된다. 잠시 후였다. 쿵쿵쿵. 화장실에서 미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한 거야?" 화장실에서 나오자 예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난 그런 그녀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왔을 뿐." "……." "아, 그나저나 입맛이 없어?" 예진이 앞에 놓인 음식이 거의 줄지 않은 것을 보고 묻자, 예진이는 근심 어린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살인 사건이라는 게 생각이 나서 도저히 음식이 넘어가지 않아." "흠." "그리고 나만 먹는 것도 그렇고……." 아마도 다른 사람들까지 걱정하는 모양인데 솔직히 말해서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가 여기서 음식을 권해 봤자 음식에 독탔다고 오히려 범인으로 몰아세울 테니까. 아, 저런 천사 같은 소녀가 있나. "역시 악과 선이라는 걸까요." "……." 그때 어느새 민호가 부활해서 내게 속삭였다. 저 자식의 부활 속도는 가히 섬뜩하다. 상당히 질근질근 밟았는데 어느새 회복했다. 평범한 사람의 수천 배에 달하는 저 회복력, 하아! 민호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형님." "왜." "뭔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뭐가?" "배롱배롱(?) 한 느낌이요." 그건 뭐 하는 느낌이냐?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느낌……. 흠칫. 그때 민호의 말대로 근원을 알 수 없는 싸늘함이 내 몸을감쌌다. 그리고……. "끄아아악!" 남자의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난 그대로 고개를 돌리면서 민호를 향해 말했다. "민호, 예진이 알지?" "저만 믿으십시오." 별로 믿고 싶은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믿어 보련다. "저기, 근데 형님." "왜?" 다급히 뛰어가려는 나를 부르는 민호,민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서 없이 한마디 했다. "냄새가 나는데요." "뭔 냄새?" 갑자기 살인이 일어난 상황에 냄새라니? 저 자식, 뭐 하자는 거냐. 민호는 내 이런 질문에 답했다. "방금 비명 말입니다." "……." 넌 비명에서도 냄새가 나냐? 거참! 네 코는 완전히, 아니 심히 미쳤구나. 비명에도 냄새가 나니 말이다. 그 순간 민호 왈. "이건 예술적인 비명이 아닙니다." "……." "비예술적이에요." "……." 저기요,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해 대는 겁니까?! 예술적인 비명은 뭐고 비예쑬적인 비명은 뭐냐?! 응? 민호는 진지한 얼굴을 하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방금 비명은 민호의 원리에 의하면 고통과 공포에 어우러진 목소리가 아닙니다." "민호의 원리?" "네, 제가 개발한 원리죠." 참으로 좋겠다. '민호의 원리'라는 근원도 알 수 없는 원리를 만들어 내서 말이다. 하지만 그건 네놈한테만 적용되는 원리라는 건 알고 있겠지. 그나저나 저 비명 소리가 들려온 데로 가 봐야 하는데, 목적을 말하시지. "그럼 간단하게 요약해서,이 비명에는 카타르시스가 없습니다." "카타르시스." "네." "그거 쾌락이라는 거 아니냐?" "맞죠." "……." 민호의 원리에 의하면 비명에도 카타르시스가 있단다. 이 미친 자식아, 고통에 그딴 게 어디 있어! 응?! 이젠 별 개소리가 다 나오는구나.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죠.이 비명은 구라입니다!" "엥?" "구라요." "거짓말?" "네." 잠깐! 뭐, 뭐라고? 구라라고? 한마디로 거짓말?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렇게 실감 나게 비명을 지르는데 구라라니? 민호는 추가 설명에 들어갔다. "보통 살인을 당할 때 목소리 톤은 최고의 톤이 됩니다." "그건 당연하잖아." "하지만 제 귀는 포착했습니다. 인위적으로 낸 하이톤이라는 걸 말이죠." "……." "그리고 사람들을 모두 끌어 모은 뒤……." "모은 뒤?" "예를 들어 저 그림을 박차고 뛰어나와서 예진 누님을 노리는 스토리?" "……!" 난 그 말에 민호가 가리킨 가짜 모나리자 그림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위압감이 들었다. 난 조심스럽게 그림을 향해 다가갔다. 휘익. 그리고 그대로 그림을 들어 올리자 거기에는 텅 비어 있는 공간이 보였다. 한마디로 벽이 아니라 옆방으로 이어졌다는 거다. "어머나, 우연이군요." 민호의 한마디였다. "이럴 수가……." 한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말도 안 된다. 자신이 공들여 만든 비밀 문을 단숨에 파악 해 내다니, 저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온몸의 치부가 다 드러나는 느낌이 드니까. "야, 민호." "네." "너, 어디까지 아는 거냐?" 저 자식, 도대체 어떤 놈인지 알고 싶다. 솔직히 말해 살인자보다 저놈이 더 무섭다. "대충 범인 정도?" "그런 건 미리 말하라고!"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요." "……." "심증만 있죠." 난 침을 꿀꺽 삼키면서 물었다. "누구냐?" "흐음, 대략 벽에 저런 구멍을 만들 수 있는 사람?" "무슨 말이야?" "한마디로 손님이 저런 구멍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 그 말에 내 머리로 한 분이 지나간다. 설마? 말도 안 돼! "마 , 말도 안 돼요!" 그때 나랑 같은 생각을 했는지 예진이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고, 나도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민호야, 그건 아니다. 이곳의 주인은 예진이 삼촌이거든." 그렇다. 손님이 아니라면 주인이다. 하지만 이곳 주인은 예진이의 삼촌, 즉 예진이의 삼촌이 살인자이자 예진이의 목숨을 노린 다는 것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민호는 이런 우리들의 반응에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예진 누님의 삼촌이라고 한 적 없습니다." "……?" "……?" "예진 누님의 삼촌으로 변장한 살인범이라고 하고 싶었죠. 그리고 처음부터 예진 누님을 노린 것 같습니다만……." "……!" "……!" "마침 폭설도 내려 주고, 아마도 장땡 잡으신 듯……." 후다닥. 난 민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갔다. 어디로? 그 예진이의 삼촌이 묵고 있다는 주인장의 방으로. "무슨 일인가?" 그 방 근처에서 나와 마주친 예진이의 삼촌. 난 살짝 주먹을 움켜 쥐면서 말했다. "아뇨, 한 가지 물어 보려고요." "……?" "진짜 예진이 삼촌은 어디 가셨습니까?" 파앗!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마어마한 속도로 뽑혀 나온 단검이 나의 심장을 노렸다. 보통 실력으로 나오는 스피드가 아니었다.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을 연습해야 나올 정도의 스피드. 하지만 이미 초긴장상태였기에 피하지 못할 것도 없다. 난 몸을 살짝 비틀었고, 그 단검은 나의 심장을 비켜갔다. 그리고 그 순간……. 퍼억! 그대로 내 주먹이 그대로 작렬했다. 다행이다. 예진이의 삼촌은 단순히 외국에 볼일이 있어서 나간 거였다. 그 말을 들은 예진이가 얼마나 안심을 하던지 나도 감격스럽다. 그리고 내가 잡은 살인범, 상당히 경악스럽다. 100명 가까이나 살인을 한 살인범이었다. 그것도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배운 것 같은 기술로 말이다. 한마디로 그냥 만들어진 살인범은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 "네." "고맙다." "별말씀을요, 전 형님의 귀염둥이니까요." 저기 민호 군, 그 뒷말은 제거해 줄래? 기분 더럽거든. 제 11장 [이리스의 고민] "자, 제군들. 어떤 의견이든 듣겠네. 말해 보게. 우리의 게임 정복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것 말일세." "……." "……." "……." 둥그런 책상에 앉은 채 말하는 나. 하지만 나의 말에 그냥 눈만 껌벅거리는 민호, 그리고 바보 거북이와 청룡. 이런 분위기니 한숨조차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말했다. "어떤 의견이라도 괜찮네." "전 천재니까요!" "청룡의 엉덩이는 탐스러워!" "그런 걸 생각할 시간에 야설이나 한편 읽을 생각입니다." 퍼어억. "꺄울!" "왜 그래요." "진정하십시오!" 난 그대로 탁자를 엎어 버렸고, 나의 이런 모습에 바보 거북이랑 청룡, 그리고 민호는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들을 보고 이를 갈면서 말했다. "야, 이 자식들아! 지금 우린 회의 중이라고!" "……." "……." "……." "게임 정복하는 아이디어 내라니까 한 미친 거북이는 이상한 소리 해 대고, 한 미친 용가리(?)는 자기 엉덩이가 탐스럽다 해. 그리고 이민호! 그런 생각에 야설이나 한 편 더 읽겠다고? 다 죽고 싶어?!" "……." "……." "……." "너희들 정말……. 아아악!" 보통 회의라면 모두 모여서 엄숙한 분위기로 개폼 잡으면서 한다. 하지만 우리는 회의 자체가 안 된다. 일단 이야기가 안 되거든. "하아." 난 머리를 붙잡은 채 제대로 사용해 본 적도 없는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차라리 저런 회의실을 만들지 말 것이지, 무슨 회의실 크기가 30평이다. "하아." 솔직히 말해 크기로 따지면 엄청 큰 편에 속하는 회의실이다. 아직 사용 용도는 제로, 저 큰 회의실은 그저 개폼이었다. "아." "어라, 이리스, 안녕?" 그때 한숨을 내쉬던 나를 발견하고 탄성을 지르는 이리스를 향해 난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고, 그 모습에 이리스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더니 고개를 숙였다. "왜 그래?" 난 그런 이리스에게 다가가 혹시나 열이라도 있는 게 아닌 가 해서 그녀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그러자 이리스는 더욱 더 얼굴이 붉어지면서 말했다. "죄, 죄송해요!" "으응?!" "……." 한마디만 남기고 냅다 어디론가 가신다. 어, 어라? 왜 그러는 거지? "하아." 이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재현을 보면 갑자기 심장이 미칠 듯이 뛰는 게 말이다. 다른 여자와 이야기를 하면 왠지 모르게 힘이 없어지고, 평소에도 자신도 모르게 저 남자를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지우려고 노력해 봐도 더욱 선명해질 뿐이다. 이런 감정을 처음 느끼는 그녀로서는 너무 혼란스럽다. "사랑이란 겁니다." "……!" 그때 민호가 어느새 나타나 손가락 한 개를 치켜 올린 채 웃으면서 말했다. 이리스는 당황했다. 언제 다가왔는지 드래곤 로드인 자신이 기척조차도 느끼지 못했다.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지만, 확실히 예사로운 존재는 아니었다. "사, 사랑이라니요?" 민호의 한마디에 이리스는 더욱 관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민호는 여전히 방글방글 웃으면서 말했다. "이리스 양은 형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 이리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럴 리는……." "형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죠?" "……." "형님의 얼굴만을 보면 심장이 벌렁거리죠?" "……." "다른 여자랑 이야기를 하면 힘이 없어지고요." "……." "그리고 계속해서 형님의 얼굴만이 생각날걸요." "……." 이리스는 민호가 정확히 짚어 내는 자신의 현상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다. 하나의 오차도 없이 지금의 자신의 증상을그대로 말하고 있다.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막 덮치고 싶죠?" "네?" "뜨겁게 말입니다." 발그레. 민호의 과격한 표현에 이리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했다. 앞의 것들은 다 맞았지만 뒤의말, 뜨겁게 덮치고 싶다는 생각은 든 적도, 아니 한 적도 없다. 이런 모습에 민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진정한 사랑이 부족하군요." "……." 덮치고 싶은 거랑 진정한 사랑의 연관 관계가 심히 궁금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민호에게 그런 걸 물어 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사람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괴상한 질문 뿐이다. 차라리 그냥 넘어가는 게 속이 편하다. 민호는 이리스에게 계쏙 말을 걸었다. "인정하세요." "……." "도와드리겠습니다." "……." "이리스 양의 사랑을 말이죠." "……"! 그 말에 이리스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사실 자신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이게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는 걸 말이다. 그런데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하고 제일 친한 존재가 자신을 도와준다고 한다. 이건 말 그대로 장땡, 아니 행운이다. 그렇지만……. "이유가 뭔가요?" 그렇다. 자신을 도와주는 이유가 뭔지 알고 싶은 거다. 왜 이 남자는 자신을 도와주려고 하는지. 그 질문에 민호는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순수하니까요." "……." "뭐, 솔직하게 말해서 순수한(?) 의도이니 걱정 마십시오." "……." "절대로 말입니다(절대로 순수하지 않은 마음을 가진 민호 군)." "대대적인 테러에 나선다." 한 남자, 아니 드래곤의 말에 10명이나 되는 정예 드래곤들이 긴장했다.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지상 최고의 생물체라는 드래곤들이 긴장하는 걸까? 그건 바로……. "우리의 여신 이리스 님을 모셔 오는 거다! 악마 같은 인간디재스터에게서!" "……!" "우억!" "데려오는 거다!" "물리 쳐라!" "이겨 낼 것이다." 자연을 다루는 자. 디재스터. 그의 힘은 상상 초월이다. 아무리 자신들이 강한 존재라지만, 자연이라는 모든 것을 파괴로 이끌 수도 있는 힘을 상대로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자신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자신들에게는 여신이라고 불리는 존재인 이리스가 대악당(?) 인 디재스터에게 납치된 상황,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출해야 한다. "테나." "네." "넌 이리스 로드님을 한 곳으로 데리고 가라." "알겠습니다." "테나가 이리스 로드님을 어딘가로 데려가면 그 순간 우리는 디재스터, 그 대악당(?) 변태 저질을 제거한다." "……." "……." "……." 그 말에 더욱 긴장하는 드래곤들. 그리고 그 남자는 말한다. "이번에 우리의 목숨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대 변태에게서 이리스 님을 구출하기 위해서 그 정도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너희들은?" "동의한다." "이리스 로드님을 위해서라면……." "대변태를 제거하겠다. "우어억!" 원래 협동심이라고는 진짜 없는 드래곤 분들이시지만, 이번에는 정말 최고의 협동심을 보인다. 그것은 순전히 재현이 덕택? "저기, 잠시 같이 바람 좀 쐬어 주실래요?" "……?" 갑자기 이리스가 부탁을 한다. 사실 좀당황스럽다. 이리스가 부탁하는 건 처음이기에, 하지만 뭐 그깟 바람 정도야 이런 미소녀의 부탁이라면 365일로 풀타임으로 들어줄 수 있다. 그렇다고 진짜는 무리고……. 이리스는 민호의 말을 상기해 냈다. '과감히 데이트를 신청하십시오.' '그, 그건…….' '물론 형식적인 데이트라는 말을 직접 언급하실 필요 없습니다. 한마디로 둘만의 시간을 만들라는 거죠.' '…….' '둘만의 시간을 말이죠. 후후' 그 말과 함꼐 미소를 짓는 민호.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어색해 하는 이리스. '제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머지 않았군요.' '…….' 그 말에 민호의 꿈이 심히 궁금해지는 이리스였다. 어색. 지금 이리스와 나와의 분위기다. 정말 어색하다. 땀이 날 정도로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분하고 단둘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긴장이 돼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이리스와 만난 후 이렇게 단둘이 있게 된 것은 처음이기도 해서다. 그것도 이런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말이다. "이리스." "네?" "……." 나의 말에 심하게 놀라는 이리스 양. 아, 그 모습이 너무 잡아…… 아아악! 나 자꾸 왜 이래! 젠장! 이민호 개자식 때문이다. 자꾸 그 자식이 옆에서 잡아먹는다는 비교육적인 단어를 사용해서……. 무슨 사람이 음식도 아니고 잡아먹는다니, 그런 잡스러운 단어는……. 제길! 이래서 사람 잘 사귀라는 말이 있는 거다. 다시 말해서 귀엽다는 거지. 하지만 또다시 침묵. 아, 미치겠다. 그 순간이었다. "저 이리스 로드님." "아, 테나 님 아니세요?" 갑자기 공간이 열리면서 오크 한 명이 텔레포트로 건너왔다. 근데 말도 하고 공간도 잘 여시는 걸로 봐서 절대 그냥 오크는 아니다. 그리고 이리스보고 로드님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드래곤인가?' 확실히 인간의 기운도 아니다. 너무나도 강대한 마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니까. 이리스는 의아한 어조로 그 테나라고 불린 오크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아, 깊이 상의할 게 있어서……." "……?" "시간 괜찮으십니까?" "아, 물론 괜찮아요." "그럼 저와 저기로……." "재현 님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인가요?" 그때 나를 슬쩍 보고 말하는 이리스 양, 그 말에 그 오크는 다급하게 말했다. "드래곤 일족의 이야기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재현 님, 잠시만 실례 좀 ……." "으응, 그래." 난 살포시 고개를 숙이면서 오크를 따라가는 이리스를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오크가 뒤를 돌아보더니 마치 날 불타는 닭 꼬치로 만들 것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글이글! 아아악, 녹아 버릴 것 같아! 이게 아니라, 난 오늘 저분 처음 본다. 근데 저 눈빛은 뭐냐? 난 죄 지은 거 하나도 없는 청렴결백 그 자체인데 말이다. 스르륵. 스르륵. 스르륵. 그 순간 누군가가 내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살짝 고개를 돌리자 오우거부터 엘프, 드워프, 다크엘프, 트롤 기타 등등 별 희귀한 애들이 나를 포위하고 있다. 그리고 나를 노려본다. 예술적으로 풀이하면 아름답게? 그나저나 저렇게 다양한 분들이 몰려서 다닐 확률은 제로다. 오우거와 엘프, 그리고 다크엘프, 드워프, 기타 등등 별별 종족이 다 모이는 경우는 절대 불가능. 그렇다면? "드래곤?" 폴리모프를 한 드래곤들이라면 저런 이상 현상도 가능하다. "……." "……." "……." "……." "……." 하지만 나의 질문에 오직 침묵만을 유지한다. 이게 바로 절대 침묵이라는 건가. 숨소리조차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다. 그저 나만 쑥스럽게 계속 노려본다. 그 순간이었다. "이리스 로드님이 오시기 전에 제거한다." "알겠다." "죽여라!" "익스플로젼!" "헬 파이어!" "아이시클!" "체인 라이트닝!" "왜, 왜 이러셔요?!" 난 갑작스럽게 연약한(?) 나를 향해 마구 마법을 퍼붓는 드래곤들을 보고 무척이나 당황했다. 이유를 알고 당하면 억울 하지도 않다. 침묵만을 유지한 채 나를 뜨겁게 보신 뒤, 갑자기 마법을 난사한다. 솔직히 말해 졸라게, 아니 난 지성인(?) 이니까 엄청 당황스럽다. 그렇다고 그냥 맞았다가는 돌아가시는 관계로 난 거의 무의식적으로 외쳤다. "절대 방어막!" 현무의 스킬. 사실 사용해 보는 건 처음이다. 잘 시전될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저 난사에 가까운 대규모 마법들을 막을 건 이 절대 방어막밖에 없을 것 같다. 내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을 감싸는 푸른색의 둥그런 막. 그리고 콰아앙……. 이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게 정상인데 안 들려오네? 저기에는 폭발 마법도 분명……. 콰아앙! "크아악!" "무슨 짓을!" "어, 어떻게!" "이런!" "젠장!" 들려오기는 했다. 내 쪽이 아닌 마법을 사용한 드래곤 쪽에서 말이다. 난 한 것도 없는데 자기들끼리 초토화되어 버린 드래곤들. 뭐지? 무슨 일인 거냐?! 난 단지 방어막을……. "아!"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한 가지 생각, 현무의 절대 방어막의 능력. 그건 모든 공격을 차단하는 기능도 있지만……. "공격자의 공격을 2배로 되돌린다?" 하지만 이건 마법인데? 설마 마법 공격 자체도 반사를 해 버린다는 거냐? 그것도 공격력 2배로? 그런 말도 안 되는……. "크윽! 제길, 무슨 짓을!" "무슨 요술을 부린 거지?!" "넌 악마인가?!" "무슨 짓을!" "제길!" 한편 자기 마법 자기가 맞고 나를 이상한 놈으로 몰아가는 드래곤들. 땀이 저절로 난다. 난 단지 스킬 한번 시전했을 뿐인데 거의 몰살 분위기라니. 물론 마법 종족인 드래곤인 만큼 자신의 공격력 2배에 달하는 마법에 적중했다고 해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지만 타격은 클 것이다. 그때였다. "퇴각한다." "……." "이상한 짓을 하는 존재다." "……." "더 준비를 해야겠다. 이대로 무사하지는 못할 거다!" 그 말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지는 드래곤들. 뭔 일이냐, 진짜. 아니, 그것보다……. "이게 현무의 스킬?" 난 한참을 그대로 멍하니 있어야 했다. 고위급 마법 10개쯤을 그냥 막아버리고 그 마법조차도 2배로 증폭시켜서 돌려 버리는 기술. 사실 이런 기술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기술을 내가 사용할 수 있다니!이 말할 수 없는 희열! 확실히 청룡의 스킬보다 더 좋은 느낌이 난다. 물론 청룡의 스킬이 안 좋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주작의 스킬과 백호의 스킬까지 포함해서도 그중 제일 좋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 절대 방어막이라는 스킬 자체는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주작의 스킬이나 백호의 스킬도 모르는 거지." 솔직히 이제는 기대가 된다. 청룡의 스킬과 현무의 스킬만으로도 무적이 된 기분인데, 만약에 나머지 스킬을 찾고 디재스터의 스킬까지도 숙련도를 완전히 채우면? "혼자서 다 쓸어버려?!" 가능할지도? 제 12장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도 짜릿한 카페라떼] 나에게 도착한 편지 너무나도 오랜만이어서 감동적이어야 하는 상황같지만 난 절대 감동적이지 않다. 아니, 이 편지 자체가 증오스럽다. 왜냐고? 속옷 변태한테서 온 편지였으니까. -잘 지내는가 모르겠군. 요새 성자 활동이 활발해서 한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네. 아직도 자기 입으로 성자 활동이라는 개소리를 해 대는 거냐?! 도대체 속옷 훔치는 게 왜 성자 활동으로 탈바꿈이 되느냔 말이다! 응? 그건 좀 너무하잖아, 이 변태야! -하지만 난 성자 활동을 하는 도중에도 열심히 3대 현자에 대한 걸 조사했네. 3대 현자.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저번편지에서도 거론되었던 이름. 그들을 만난다면 자연의 힘을 마스터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발견했네, 그들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난 뚫어지게 편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눈이 잘못된게 아니라는 듯 확실히 보인다. '그 들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이라고 쓰여 있는 게 말이다. 두근두근. 순식간에 심장 박동 수가 올라갔다. 난 침착하게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리 고보이는 마지막 문장…….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를 차자야 하네! 거기에 현자를 찾는 방법이!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 뭐지, 이 아스트랄한 이름은? 온몸에 경기가 일어날 정도의 아스트랄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 '뜨거운 핫커피'와 '차가운 냉커피'가 생각이 난다?" 이유 없이 왠지 그게 자동적으로 생각이 난다.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 어이없어." 난 나도 모르게 혼자서 중얼거렸고, 그때였다. "혀, 형님!" "……?" 갑자기 민호가 내 혼잣말을 듣더니 숨넘어가는 소리로 나를 불렀다. 저런 이색 반응은 처음이었다. 민호가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네다니! 감동? "뭐냐?" "바,방금 그거 다시 한 번만……." "……?" "다시 한 번만 말해 주십시오." 덜덜덜. 손까지 떤다. 아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진짜 신기 그 자체다. 민호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게 말이다. "부,부탁드립니다." "아, 뭐……." 계속 더듬거리며 말하는 민호, 난 도대체 왜 저런 미친 반응을 보이는 건지 심히 궁금했지만, 뭐 저렇게 원하니…….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라고……." 털썩! "야!" "……." "야! 이민호!" "……." "야, 정신 차려!" 민호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난 민호에게 다급히 다가가 몸을 흔들지만 요지 부동이다. 난 다시 한 번 외쳤다. "야, 이민호! 왜 이래?!" "……." "서, 설마……." 말도 안 돼. 유령 사건을 제외하고는 절대 기절하고 거리가 먼 민호다. 그런데 단지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라는 말만 듣고 기절을 했다? 말도 안 된다. 그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내 앞에 일어난 현상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다. "기절했어?" "……." 난 기절한 민호를 침대에 옮겨 놓고 그 옆을 지키면서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가 뭐라고……. 그 편지에 의하면 3대 현자랑 이어진 것은 알겠지만, 민호가 저렇게 기절까지 할 정도의 무언가가 있는 걸까? "오빠는 어때?" 그때 민혜가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물었다. "글쎄……. 상당히 기네." 저번에 유령 사건 때도 기절하기는 했지만 1시간도 안돼서 회복한 자식이다. 하지만 지금 5시간이 지났건만 깨어날기미가 안 보인다. "그만큼 충격이라는 건가." 민호에게 5시간이면 다른 사람의 기절 시간 곱하기 10배, 그러니까 한 50시간을 쳐도 될 것 같다. 그만큼 저놈의 회복력은 미쳤으니까. 그러니 더욱 의문만 가중된다.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가 뭐라고." "응? 오빠, 뭐라고?" "아, 민호가 저 소리를 듣더니 기절해 버렸거든." "……?" 내 말에 민혜는 무척 궁금한 표정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되물었다.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 뭐라고?"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 "아, 그 이름을 듣고 저 모양이 된 거라고?" "응." "……." 내 말에 민혜는 멍하니 있더니 나를 보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어조로 되물었다. "농담이지?" "진담." "진짜?" "내가 거짓말을 왜 하겠니." "……." 그 말에 민혜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민혜의 심정이 이해간다. 그게 지금 내 심정이니까. 그런데 그순간이었다. "으음……." "야, 정신 들어?!" 그때 민호가 뒤척이면서 소리를 낸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외치자 민호는 반응을 보였다. "흐음." 그러면서 민호가 눈을 번쩍 떴다. "꺅!" "미,민혜야." 갑작스럽게 두 눈을 치켜뜬 민호를 보고 민혜가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 난 다급히 민혜를 부축하여 물었다. "괜찮아?" "으응." "야, 이민호." "네." "좀 평범하게 눈 떠!" "그러면 재미없지 않습니까." "……." 솔직히 말해, 어떤 미친놈도 저런 기발한 상상은 못한다. 단지 기절했다가 재미없다는 이유로 눈을 번쩍 떠서 사람을 공포게 질리게 하는 저 미친 상상……. 결론적으로, 아직 제대로 미쳐 있다는 거다. 난 넘어진 민혜를 일으켜 주면서 말했다. "네가 이해해라." "으응. 그래도 너무 놀랐어." "그렇겠지." 무슨 공포 영화도 아니고 갑자기 눈을 번쩍 뜨는데 안 놀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지금 중요한 건……. "도대체 왜 기절한 거냐?" 이게 중요하다.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이름 한번 듣더니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고 그대로 기절까지 해 버린 민호. 그때 민호는 얼굴이 굳어지더니 민혜를 보면서 말했다. "잠시 자리 좀 비켜 주시겠습니까?" "아, 알았어." 민호의 요청에 민혜는 밖으로 나갔고, 방에는 우리 둘만 남았다. 근데 이 어감 자체도 기분 더럽다. 우리 둘이라는 거 말이다. "이제 이유를 말해 주실까?" "형님." "왜."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 라는 걸 들어 보셨습니까?" "아까 그 속옷 변태가 준 편지에서 처음인데." "휴우, 실망입니다." "……." 도대체 뭐가 실망인 건데! 엉?! 내가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를 모르는 게 왜 실망이라는 부류에 들어가는지 상세하게 말해 주면 내가 수긍이나마 해 주겠는데, 단지 그걸 모른다고 실망이라니! 민호는 갑작스럽게 눈물을 흘렸다. "흐흑." "민호야." "네, 흐흑." "많이 힘들었구나." "……?" "이렇게 미치다니……." 지금까지의 행동도 진짜로 미친 거여서 가능했단 말인가. 난 거의 반 농담으로 했는데 말이다. 그런 내 반응에 민호 왈. "저 안 미쳤습니다." "타인이 보기에는 미친 것 같은데?" "아뇨, 이건 형님도 아시면 저와 똑같은 반응이 올 것입니다." "도대체 뭔데?" 도대체 왜 저 자식이 막 울고 기절하고 손 떨고 경악하고 발작을 해 내는 건데? 으응? 너무궁금하잖아. "뜨거움녀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는……." 꿀꺽. 그때 말문이 열리는 민호. 그리고 잠시 후. "신이 만들어 낸 야설입니다!" "……." 신이란 무엇일까? 만물을 창조하고 만물에 힘을 주고 그 누구도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을 이루어 내며 인간이 넘볼 수 없는 존재가 신이라고난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연약한 인간들은 신이라는 거대한 존재에게 기도를 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신이, 그런 신이……. "야설을 만들었다?" 지금 이런 내 소리에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거다. '어디서 개뼈다귀 텔미(?) 댄스 추는 소리 하네'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내가 말한 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민호라는 괴상한 애가 말한 거다. 오해하지 말도록. 그래서 전문 용어로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라는 건 소설, 그것도 신이 만들어 낸 야설이라는 거다. 야설, 민호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자 민호가 거장으로 있는 종목. 야한 소설의 줄임말로, 19세 미만 청소년들이 보면 안 되는 상당히 자극적인 내용으로, 웬만한 변태 수준에 돌입하면 본다는 야설. 그런 야설을 신이 썼다? 신이? 신이 써?! "이 자식, 개소리 할래?! 앙? 장난쳐!" 난 그대로 민호를 윽박질렀다. 이 자식, 지금 내가 착해 보이니(?) 말도 안 되는 개구라를 치는데, 나도 참는 데 한계가 있단 말이야, 이 자식아! 뭐, 신? 신이 야설을? 하하하, 웃음도 안 나온다. 내가 진짜, 천사가 야설을 지었다고 했으면 그냥 웃기라도 하지, 그 런데 저 자식은 신이 야설을 썼대. "진실입니다." "진실? 너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으응? 한번 나의 초절정 비기를 맛봐야 정신 차릴 거니?" "억울합니다. 전 진실만을……." 퍼억. 난 계속 생구라를 치는 민호의 뒤통수를 갈겼다. 그리고 눈을 치뜨면서 말했다. "장난도 정도가 있어! 으응? 민호 군!" "혀, 형님,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러긴, 네가 자꾸 개소리를 해 대니 이러지! 으으응?" "왜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야, 개소리도 한도라는 게 있지, 신이 야설을 적어? 그것도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라는 야설을? 이걸 믿으라고? 내가 미쳤니, 이런 걸 믿게? 내가 돌았어?" "휴우," 그때 한숨을 내쉰 민호는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 그건 바로 아까 속옷 도둑이 보낸 편지였다. 저놈은 언제 저걸 챙긴 거냐. 민호는 그 편지를 쫙 펼치더니 맨 마지막 부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 참고로 그건 야설 책이네. 신이 만든 야설 책. 이렇게 추신에 적혀 있다. 털썩. "형님, 왜 이러십니까." 난 그대로 쓰러졌다. 그러자 내게 다가온 민호는 내 두 손을 꼭 잡더니 물었다. "형님도 감동하신 겁니까?" "……." "저와 같은 마음이신 겁니까?" "……." "소문으로만 존재했던 신이 만든 야설이 실제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기쁨을 받으신 거죠?" "……." "제가 기절한 이유를 이제 절실히 아실 겁니다." 털썩. 그 말을 끝으로 난 기절했다. 오해할까 봐 그러는데, 난 감동받아서 기절한 게 아니고 미친 소식에 심장마비로 기절한 거다. 제 13장 [미래] "이게 뭐냐?" "무료 점 이용권입니다. 점술계의 달인이라고 하더군요." "달인?" "네, 그가 때려맞히는 건 확률이 100프로랍니다." "……." "한마디로 엄청난 존재입니다. 함부로 점도 봐 주지도 않고 개인 정보 같은 건 절대 보장이랍니다." "……." "즉 형님 같은 범죄자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왜 잘 나가다가 꼭 그 말은 붙이는 거니? 형님 같은 범죄자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한마디가 마음의 비수가 되어 버렸다. 제길……. 민호가 말했다. "어찌 됐든 전 신의 야설에 대한 정보를 위해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뭐,그 티켓의 행방은 형님의 자유입니다." "……." 그러면서 빠져나가는 민호. 난 방금 전 민호가 준 푸른색의 티켓 한 장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게 특별 한정판(?) 점 보는 티켓인 거냐? 뭐, 이런 거 구해 온 민호도 정말 대단하지만 별 관심 없다. 난 점이라든가 이런 건 찜찜해서 말이다. 뭐, 성의만 고맙게 받아 주마. 성의만, "……." 원래 기준은 성의만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인생이 불행 그 자체로 도배되어 있는 나라는 인간. 미래가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티켓 버리기도 아까워서 한번 오기로 해봤다. 이스텐티. 변방 마을이다.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변방 마을이다. 하지만 이런 변방 마을에 사람들 완전 작살이다. 뭐, 그 이유라 하면 지금 최고의 점쟁이라고 알려진 제스펜 이라는 이분이 이곳에 계시고 그 분에게 한 번이라도 점을 보기 위해서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 달려온다. 참고로 이분에게 점 한 번 받는 게 그렇게 어렵단다. 정확한 만큼 자주 사용 불가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이렇게 티켓 가진 사람들만 볼 수 있다. 물론 각국의 왕들이나 왕자들도 불가. 이건 절대 예외가 없다. 그러니 이 티켓 하나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난 그렇게 생각하면서 떼로 몰려 있는 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그 점술사의 집으로 들어갔다. 물론 들어가기 전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과 살기,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섞인 시선들이 나를 메롱메롱했지만 별 상관 없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서 말이다. 끼익. 그렇게 난 약간은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그 집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어, 어떻게 오신 거죠?" "……." 나를 반기는 참으로 아스트랄한 반응. 어떻게 오기는, 잘 왔지. 아니, 정확히는 티켓 받아서 그거 이용해서 점 보러 온 건데? 뭐지, 이 불길한 기분은……. 그 순간 그 내 앞에 있는 남자(키는 앉아 있어서 잘 모르겠고 머리카락은 하늘색, 그리고 상당히 선한 인상의 소유자다)는 버벅거리면서. "저에게는 약간의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 하지만 방금 전까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 어라?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이분은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나는 찾아온 거다. 말 그대로 미래를 미리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오는 것도 못 맞혔다. 자기가 직접 시인했고, 상당히 불안해지고 있다. 뭔가 사이비 냄새가 풀풀 나신다. 풀풀. "아…… 실례했습니다. 제가 컨디션이 별로 안 좋은거 같군요. 티켓 좀 주시겠습니까?" "아,네." 난 뭐 미심쩍기 그지없었지만 어차피 내 돈 드는 것도 아니고 하니 그냥 한번 보기나 하련다. 그리고 난 그런 생각과 함께 민호가 준 그 티켓을 건네주었고 그 티켓을 본 수상한 점쟁이는 잠시 확인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확인 완료했습니다." "네." "그럼…… 시작하죠." "네." 상당히 스피드하다. 보통 사기꾼들은 잡설로 정신 흩느려 놓아서 구라친다고 한다. 그 점을 생각해서는 이 사람이 진짜인 거 같기도 하고, 에라 , 모르겠다. 뭐, 받아 보면 알겠지. 난 그런 생각과 함께 그냥 가만히 있었고 그리고 잠시 후 그 남자는 눈을 감더니 자신의 앞에 놓여져 있는 하얀색의 수정 구슬을 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 "허억!" 나도 놀랬고 그분도 놀라셨다. 하얀색의 수정구슬이 검정색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완전한 암흑천지로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나를 보더니. "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 "당신이라는 존재의 미래가 보이지가 않아요! 아니, 인간이라는 존재의 미래가 아니에요! 마치, 마치,…… 거대한 신을, 아니 그런 신 조차도 상대가 되지 않을 거 같아요!!" "……." "누, 누구신 겁니까! 마, 마신?!" 온갖 말 다 하신다. 그러니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내 미래는 암흑천지라는 거냐. 열라게 감동스럽다. 그리고 한 가지는 잘 맞히시네. 내 타이틀을 생각해서 맞히신 건가? 그냥 신경 끄자. 별 기대도 안 했으니까. 사이비다, 사이비. 난 그런 생각과 함께 그대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다, 당신에게는 암흑만이…… 아니 암흑조차도 집어삼킬 불행만이 있어요! 당신이라는 존재는……." 흠칫. 그 한마디에 갑자기 멈춰 섰다. 서, 설마 나의 이 재수 없는 인생을 캡쳐한 건가? 그리고 그 순간 그 남자의 한마디. "당신에 대한 건 알 수 없어요!하지만 단 하나, 당신의 미래에는 미래가 안 보입니다. 짙은 어둠의 어둠, 그리고 또 다른 어둠만이 보일 뿐입니다." ……. 아니다. 개소리다. 그래 ,괜히 헛소리하는거다. 어둠에 어둠, 그리고 또 어둠이 보여? 아니다. 난 그렇지 않을 거다. 그래. 이제부터는 나에게도 행운이 올 것일 게 분명하다. 그런 거다. 저 인간…… 나를 능욕하는 거다! 난 그렇게 자기 세뇌에 빠졌고 그대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외쳤다. "거짓말!! 인정 못해!! 나에게는 행운만이 올 거야!! 으아악(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수긍한 재현)!!" "제 14장 [청룡의 사랑?] "전 오늘도 열심히!" 엄청나게 힘을 불끈거리면서 나가는 민호. 저 모습도 벌써 일주일째다. 저렇게 활력이 넘치다 못해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모습, 나름대로 색다르다. 그리고 저런 정열을 게임 정복에 투자한다면……. "무지 금방 될 것 같다만……." 하지만 그런 일은 없겠지. 저놈이 매일매일 저렇게 열정적으로 싸돌아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다. "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 라는 신이 쓴 야설을 찾기 위해서인가." 휴우. "어라, 오늘도 민호 난리 났네. 요새 왜 저러는 거야?" 그때 나래 누나가 오렌지 주스를 한 잔 들고 내게 다가오면서 물었고, 난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글쎄." "……?" "난 잘 몰라." "……?" 나래 누나는 나의 이런 반응에 더욱 궁금해하지만, 난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신이 지은 야설 찾으러 갔다고는……. "오라버니." 흠칫! 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청순가련한 모습의 한 절대 미소녀님께서 해맑게 웃으면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저건 외형일 뿐이야. 왜냐하면 저분은 민호의 동생이자 야설계의 떠오르는 샛별이었으니까. "아, 안녕. 하하." 내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인사하자 엘라니아는 뚱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오라버니, 제가 별로 반갑지 않은가 봐요?" "그, 그럴 리가. 무지 반가워서 눈물이 나." "정말요?" "정말." 솔직하다. 반갑다. 저런 미소녀를 볼 수 있다는 게. 하지만 저분하고 얽히면 뭔가 일이 터질까 봐 무섭기도 하다. 한편 내 말에 사람 녹여 버릴 것 같은 미소를 지은 엘라니아. "할 말이 있어요." "할 말?" "네." "무슨 할 말?" "여기서는 곤란하고 제 방에서요." "……." 난 그 말에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자는 생각으로 말했다. "여, 여기서 말하지." "아뇨, 제 방에서 말해야 해요." "……." "싫다고 하시면 절 덮쳤다고……." "가자." 그 말에 난 일어서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는 거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 차리면 안 뒈진다는 명언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호랑이는 때려잡으면 되는데, 미소녀는? 미소녀 집에 들어가서 정신 차리는 게 가능하냐? "무슨 일?" 방에 도착하자마자 질문하니 엘라니아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요새 글이 안 풀려요, 오라버니." "……." "하아." 아마도 글이라는 건 야설이겠지. 아무리 봐도 저 청순한 외모의 소녀와 야설은 도무지 매치가 되지 않아 너무 혼란스럽다. 차라리 그냥 미소녀면 말도 안 하는데 하필 청순하게 생긴 미소녀다. 그런 소녀의 입에서 야설이라는 저질적인 단어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심적으로 타격이 큰 나다. "그, 그래서?" "도와주세요." "응? 뭘?" "글 쓰는 거요." "나한테?" "네." 미안하지만 전 야설을 쓰는 재주 따위는 없는데요. 그리고 야설계의 떠오르는 별 엘라니아 양과는 엄청난 차이가……. "아뇨,그 뜻이 아니에요." "……?" "경험을 시켜 주세요." "푸후." 그 말에 너무 충격이어서 침을 엘라니아에게 튀겨 버린 나. 하지만 그녀는 별 상관없이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경험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인정하기 싫지만, 오빠는 그래도 야설계의 거장이니까요." 아니, 민호 같은 놈 인정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별로 도움도 안 되는 놈이야. 그놈.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더니 말했다. "이제 숙성(?) 도 잘 된 것 같아요." "……." "어서……." "……." "덮쳐 주세요." 아아악! 살았다. 난 아직 덜 숙성(?) 되었다는 핑계로 힘들게 그녀의 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숙성이라니? "내가 어느새 먹이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야설을 쓰는 분이어서 그런지 표현 자체가 아스트랄하다. 보통 숙성(?) 이라는 단어는 모르는 분이 대부분인데……. "하아." 정말 나는 왠지 모르게 살았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고, 그때 저 멀리서 다급하게 누군가가 뛰어오신다. "마스터!" "또 왜?" 그분은 바로 청룡이라는 분이다. 그는 무척 당황하며 나를 보면서 말했다. "도와주세요." "……?" "심각한 고민에 빠져 버렸습니다." "……." 도와 달라니?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니? 한마디로 내가 할짓 없이 네놈의 말을 듣고 있어야 된다는 거냐? 어림도 없는 소리다. 난 손을 휙휙 저으면서 말했다. "저리 가, 저리 가. 상담은 바보 거북이한테 해. 난 바빠." "너무하십니다." "뭐가?" "현무랑은 대화도 안 되는데 무슨 상담입니까." 그건 그렇네. 대화도 제대로 안 되는 바보 거북이랑 상담하라는 것 자체가 약 올리는 것이다. "귀찮…… 아니, 바빠. 다른 데 가서 알아봐." 사실 무척 귀찮은 나였기에 그렇게 말했고, 그런 내 반응에 청룡은 단단한 결심을 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의뢰를 하겠습니다." 번쩍. 그 말에 눈을 치켜뜨는 나. 어느새 내 두 손은 근처에 있는 소파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는 '무엇이든 지 들어드립니다' 서비스입니다. 저희 '무엇이든지 들어드립니다'는 성공률 100%라는 엄청난 실력을 자랑하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손님." "……." 헉! 거의 내비게이션 수준으로 안내해 버리는 나의 입. 이게 바로 직업병이라는 거냐. 하아! "그래 뭐냐, 고민이?" 난 소파에 앉은 상태에서 마주 앉아 있는 청룡을 향해 말했다. "전 나쁜 놈인가 봐요." "그럼 착한 놈인 줄 알았냐?" "……." "아니다." 상담하고는 별 인연이 없는 몸이어서 약간(?) 못하는 편이니 모두 이해 부탁. 청룡의 말이 이어졌다. "마스터, 어떡하죠?!" "뭘 어떡해. 임마, 말을 해, 말을." "저, 저…… 다른 존재를 좋아해 버리게 됐어요." "……?!" 난 그 말에 아연실색했다. 뭐라고? 다른 존재를 좋아하게 됐다고? 난 내 귀를 의심했다. 항상 자기 몸뚱이를 쓰다듬으면서 자기가 제일 좋다는 놈이 사랑에 빠져 버렸다고? 이 성에 있는 다양한 미소녀들에게도 한 치의 관심도 안 보이던 네놈이? 난 갑작스럽게 궁금증이 일었고, 진중한 어조로 물었다. "누구냐?" "저의 영혼이요." "……." "제 영혼이 너무 좋아져 버렸어요." "……." "한마디로 전 바람둥이?! 아아, 제 몸도 좋고 제 영혼도 좋아요. 어떡하죠?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마스터!" 나를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는 청룡. 잠시지만 뭔가 정상적인 말이 나오기를 기대한 내가 병신이다. 아, 젠장. 귀가 썩어 들어간다. "마스터!" 하지만 나름데로 자기 딴에는 꽤 진지했는지, 청룡은 나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난 그에게 한마디 해 줬다. "대충 살아." "……." "자 상담 끝. 수고비로 1,000만 골드." "마, 말도 안 돼요! 상담 끝이라니 ! 그리고 그런 큰 액수를 날로 먹으려고 하다니!" "뭐? 날로 먹어?! 네놈의 이상한 소리에 내 귀는 썩어 갔어! 천만도 적어!" "제대로 해 주세요! 안 그러면 못 드립니다!" "뭐? 이 자식이!" 난 개기는 청룡을 쏘아보며 벌떡 일어났고, 청룡은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 어느새 이리스가 오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청룡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외쳤다. "아니, 저 악덕 마스터가 나에게 삥을 뜯으려 하잖아!" "……." 그 말에 이리스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난 그 말에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 아니야.뭔 소리야, 삥이라니! 이건 엄연히 의뢰비를 받는 거라고!" "그럼 의뢰를 제대로 해 줘요!" "……." "안 그러면 삥 뜯는 거죠!" 젠장! 저 자식이! 하지만 알다시피 여자들 앞에서는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는 게 내 입장이다. 참아야 한다. 그래, 명언 한마디 던져 주면 되겠지. 난 다시 청룡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너의 지금 고민은 네 자신의 몸도 좋고 영혼도 좋다. 이거지?" "네!" "한마디만 해 주마." "……?" "이 한마디면 모든 해결 끝이야." 꿀꺽. 그 말에 청룡은 긴장한 채 나를 바라봤다. 난 그런 청룡을 향해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말했다. "소크라테스으(?) 아저씨가 말했어." "……?" "네 주제를 알라고." "네?" "그러니 네 주제를 알라고……." "저기, 마스터. 지금 그거랑 제 고민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아니 ,그것도 모르냐?" "……." "이런 바보 같으니!" "……." 사실 나도 모르겠다. 그냥 떠오르는 게 저거밖에 업성서 말했을 뿐이다. 솔직히 꽤 무안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이리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무슨 의미인가요? 저도 잘 이해가……." "흠." 머리 좋은 종족 하면 드래곤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이해를 못했다? 당장 개구라라는 게 탄로 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난 말했다. "농담." "……." "……." 급격히 분위기가 이상해졌지만, 난 이런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재빨리 선수를 쳤다. "그럼 정식으로 상담해 주지." "저, 정말요?" "그럼. 하지만 상담이란 건 단둘이 해야 하는 거야. 알지?" "아, 네!" 사실 머리 좋은 사람 있어서 두려운 것뿐이었다. 나와 청룡은 청룡의 방으로 이동했다. 난 의자에 앉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말했다. "잘 들어." "무, 물론입니다!" "내가 명언들을 알려주마." "……." 뭐야? 내가 명언을 들려준다는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청룡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물었다. "지금 제 고민하고 명언하고 뭔 상관이죠?" "있어, 임마! 들어 보기나 해." "아, 네." 솔직히 말해서 자기가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데 어쩌라고? 뭔 해답을 해 주겠냐? 말도 안 되는 고민이고, 난 그걸 들어줄 재주도 없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순수하게 (?) 명언 들려주면서 시간 때우고 돈 챙기자고……. 정말 순수함의 결정체인 나이기에 이런 상상이 가능한 거다. "어서 말해 주세요." 난 그런 청룡의 재촉에 귀를 후벼 파면서 말했다. "옛날에 에디슨 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어." "……?" "들키면 범죄, 안 들키면 예쑬." "……." "기억에 세겨 둬." "……." 솔직히 말해 저 말을 왜 했는지는 모르겠다. 워낙 옛 인물에 관심이 없어서 말이다. 하지만 저번에 민호가 저 개소리를 해 댄 이후 하도 정말이라고 우겨서 믿어 주기로 했다. 믿어 줘서 나쁜 건 없으니까. 그떄 청룡은 다시 손을 들더니 물었다. "근데 제 고민과 무슨 상관?" "그냥 대략 들어." "……." "그럼 다음 명언, 어떤 모 분께서 말하셨어." "……?" "잘먹고,잘 살자." "……." "그리고……." "저, 저기, 마스터." "왜?" 그때 청룡이 심하게 당황하더니 말했다. "도대체 제 고민인 제 영혼을 사랑하는 거랑 지금 이야기가 뭔 관계인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데요." "에이, 대충 들으라고 했지?" "……." "그럼 조용히 하고, 다음에는 흐음……. 또 한 분이 말했어, 빈대떡은 아름답다." "……." 그렇게 나의 근원을 알 수 없는 명언 교실은 시작됐다. 30분 후. "휴우, 오늘 상담 끝이다. 제대로 해 줬으니까 돈 내놔." "뭘 해 준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만 하셨잖아요!" 빠직! 아니, 아주 힘들게(?) 명언(?) 들을 들려준 나보고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이게 얼마나 삶에 도움이 되는 말들인데! "못 줘요!" 청룡의 외침에 난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문 쪽으로 다가가 살며시 방문을 잠갔다. 그 모습을 본 청룡은……. "서, 설마?" "내가 왜 방으로 데려왔겠니?" "자, 잠깐! 마스터, 이건 완전 범죄라고요!" "범죄라니? 허허, 난 상담해 주고 돈을 받는 것뿐.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의뢰인이 돈을 지급하지 않아 해결을 하려는 것 뿐이야." "마, 마스터, 이러지 않으셨잖아요!" 뜨끔! 그 말이 비수가 되어 갑자기 내 가슴에 꽂혔다. 언제부터였지? 하얀 도화지 같았던 내가 이런 범죄 행위를 하기 시작한 게? 솔직히 말해 이건 완전 범죄(?)다. 엉터리로 강좌를 한 뒤 폭력으로 돈을 뜯어내는 행위, 한마디로 범죄였던 것이다. 아아악, 내가 왜 이러는 거야! 아무리 돈이 걸렸다지만, 정말 인간으로서 하면 안 되는 일이란 말이다! 재현아, 아무리 10억 골드가 걸린 몸이라고 해도 이렇게 막 나가면 안 돼! 응? 이건 안 되는 거라고! 갑자기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에게 빚이 있었따. 그리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이런……. "모습을 보여도 될 것 같다." "……?" "청룡아, 미안. 너도 빚이 있으면 나의 이런순수한(?) 행동이 조금 이해가 될지도……." "자, 잠깐! 설마? 마스터!" "내놔." "못 줘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플레이즈으으으으 엔디비아 랄랄랄랄 구구구굿!" 난 악한 짓을 한 게 아니다. 단순히 여기서 먹고 자고 놀고 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가져왔을 뿐 (그 액수가 너무 커서 문제다). 그러니 순수하게 가져온 거다. 그러니까 난 당당해도 된다. "흐흑." 청룡이 흐느끼는 모습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난 네놈의 마스터로서 이 정도는 받아야 된다고, 고작(?) 1,000만 골드에 저렇게 서럽게 울다니, 하아! 그래도 찔린다. 난 울고 있는 청룡에게 다가가 최대한 자상하게 말했다. "야." "……." "이건 네 식비야. 알아?" "……." "절대 삥 뜯은 거 아니야." "……."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혼이 좋으면 둘 다 좋아해." "헉!" 그때 대충 던진 한마디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청룡. 왜 저러냐?! "그, 그렇군요! 이런 엄청난 해결책을! 그래요, 전 제 모든걸 사랑하는 겁니다! 영혼조차도! 그러면 된 거예요." "……." "마스터, 고맙습니다!" 후다닥. 그러면서 희열에 찬 채 사라지는 청룡. 난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저놈도 머리 수준이 이상하네?" 잠시 똑똑한 줄 알고 착각한 내 자신이 싫다. 제 15장 [다시 에르카니아로?] "형님 구해 왔습니다!" 그때 항상 싸돌아다니던 민호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뭘 구해 와? 민호가 말했다.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를 찾을 수 있는 길로 안내해 준다는 것을요." "뭔 말이냐?" "이것입니다." 그때 뜬금없이 무언가를 꺼내는 민호. 그리고 그걸 본 난 경악했다. "아악?!" "왜 그러십니까." "아니, 과거가 무지 생각나서 말이다." 푸른색의 둥그런 보석. 예전에 나를 에르카니아인가 뭔가 하는 저주받은 동네로 보낸 그 구슬과 모습이 아주 흡사하다. 아니 ,똑같다. 그냥 단지 크기만 그때 10배 정도랄까? 그것만 다를 뿐이다. "그게 '뜨거우면서도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면서 짜릿한 카페라떼'를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준다고? "아마도요." "흐음, 잠시 줘 봐." "네." 민호가 구슬을 건네주자,난 아무런 생각 없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설명을 보기 위해 창을 열었다. 그런데……. ……. ……. ……. 뭐, 뭐냐?! 이 3연속 점은 예전의 그 빌어먹을 보석하고 설명 부분이 같잖아?! 그 순간이었다. 번쩍. "꺅!" 갑자기 빛이 나는 보석. 아니다. 그럴 리는 없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이건 정말 아니야! 이러면 안 돼! 정말 너무하잖아! 안 돼! 아이 돈 나우! 베리 베리 나우(너무 충격 받아서 이상해짐)! 하지만 이런 나의 간절한 바람과는 다르게 그 구슬은 무언 가를 삼켰다. 우리 성 전체를? "무슨 일이야?!" "뭔 일이야?!" "주, 주인님?" "에?!" 그때 갑작스러운 차원 굴곡으로 나타난 이상 현실에 그대로 뛰어오는 일행들. 난 그녀들을 바라보며 마치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애처롭게 물었다. "아니겠지?" "무슨 말이야?" "아닐 거야. 그렇지, 민혜야? 응? 그렇다고 말해 줘." "잠깐, 오빠. 왜 그래?!" 내 모습에 민혜가 무척이나 당황하면서 말했고, 난 그런그녀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아니라고 해 줘!" "오,오빠, 진정해." "아니야. 이건 아니야! 거짓말! 꿈일 거야! 아니야, 거짓말이야! 거. 짓. 말!" "오빠, 제발 진정을……." 지랄 발작을 해 대는 나를 말리는 민혜. 하지만 발작이 멈추지 않는다. 그만큼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 내 뇌리를 자꾸 점거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리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큰일났어요! 괴 생물체들이……!" "……." "주인님?!" 괴생물체라는 말에 난 패닉 상태에 돌입했다. 그리고 걱정해서 나를 부르는 리아. 괴. 생. 물. 체. 아하하! 그래, 아니야. 괴생물체는 많잖아? 개생물체잖아 (완전 반 돌았음)?! 개가 생물을 연구하잖아. 우헤헤헤. 아이고, 세상 좋아졌네. "일, 일단 화면을 띄울게요!" 그때 리아가 다급해 하면서 홀로그램으로 된 화면을 띄웠다. 그리고 난 보았다. 너무나도 익숙하다 못해 깜찍한 이들의 모습을. 더 이상의 부인은 무의미하다. 인정해야 했다. 이곳이 어디인지를 말이다. 그래, 이곳은……. "에르카니아……." 저주받은 차원. 버려진 자들, 그중에서도 최강자들이 모인 공간 덤으로 이 곳 대빵 아저씨는 나를 꿀꺽하려고 완전히 미쳐 있는 곳. 한마디로 난 먹이가 되려고 다시 찾아온 꼴이다. "주인님!" 그때 다시 리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길!" 난 그 말에 당장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이렇게 멍하니 있는 시간에도 저 괴물들은 우리 성을 향해 달려왔다. 그전에 막아야 한다. 모두 부서지기 전에. 내가 당장 전투 준비를 하려고 할 때였다.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타이틀을 얻으셨습니다.」 타이틀? 「혼돈조차도 갈라 버릴 정도의 재수 없음을 가진 당신, 어떤 말이 필요하리 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특별 효과가 적용됩니다.」 이제는 어떤 말도 안 나온다. 「혼돈조차도 갈라 버릴 정도의 재수 없음을 가진 당신, 어떤 말이 필요하리. 당신이라는 존재는 엄청나다!」 "……." [ 모든 능력치 10,000 상승효과.] 10,000?? 모든 능력치가 10,000이 상승된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갑자기 미친 듯이 심장이 뛴다.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10,000이라니, 10,000이라니……! 모든 능력치가 10,000상승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강해진다는 거냐?!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새로운 스킬도 얻으셨습니다.」 "스킬?!" 「패시브 스킬. 모든 존재가 인정한 재수 없는 자라는 걸 얻었습니다」 패시브라면?! 확인을 위해 난 곧바로 스킬 창을 열었다. [모든 존재가 인정한 재수 없는 자, 패시브. 상황이 불행으로 가득 찰 시 능력치가 상승된다. 공격 속도, 이동 속도 등 모든 것에도 적용이 된다. 최고 100,000이라는 수치까지 가능하다.] 한마디로 인생이 막장이 될수록 강해지는 패시브 스킬이라는 거냐? 무슨 이런 개 같은 스킬이! 한마디로 그냥 코 박고 죽으라는 소리하고 뭐가 달라! 응? "형님, 몬스터가 성 일부를 깨 먹었는데요." 그떄 민호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난 그 순간 온몸이 아드레날린이 마구 날뛰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이게 바로 지금 얻은 패시브 스킬의 효과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성이 부서지고 효능이 나타나는 건 좀 아니거든?! 그 순간 내 몸은 사라졌다. 바람보다 더 빠르게 말이다. <『디재스터』제 5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