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재스터8 -1울림- "무슨 소리야?" "그래, 재현아. 그게 무슨……." "……." "……." "오라버니 말도 안 돼요. 저희 변태 오빠가 선대 디재스터라니……." 나의 말에 모두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당연하다. 엄청 충격적인 발언이었으니까. 특히 현실의 민호를 알고 있는 민혜와 나래 누나, 특히 녀석의 동생인 민영이는 완전 패닉 상태. 그런 내 말에도 민호 군은 여전히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이런 상황에도 웃고 있다니...장하다, 장해. 한편 그 순간 여전히 민호는 미소와 함께 말하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농담이 저질이군요." "그, 그래, 오빠. 농담이..." 그때 민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민혜. 난 한참 동안 민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밝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장난이었어." "휴우." "오라버니가 그럴 리 없죠!" 내 한마디에 당황스러웠던 분위기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난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런 그녀들을 한번 보았고 잠시 후 민호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 민호냐?" "죽어도 민호죠. 제 사랑의 증표를 보여 드릴까요?" "절대 거부하마……." 그래. 그가 디재스터라고 불리던 존재라도 상관없다. 지금 내게는 민호니까 말이다. "당신을 가질 수 없다면 당신을 파괴하겠어." "응?" "왜그래?" 갑작스럽게 허공을 향해 의문을 토하는 예진을 향해 민정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 물음에 예진이 당혹한 듯 입을 열었다. "방금 무슨 소리가……." "무슨 소리?" "아, 아니, 무언가 차가운 여자 목소리가……." "……." 잠시 그런 예진을 바라보는 민정. 잠시 후, 민정이 웃으며 말했다. "재현이와 사귀고 나서 잠 못 자고 있어?" 깜짝. 그 말에 예진은 기겁했다. 그녀가 당황한 어조로 말했다. "그, 그걸 어떻게……." "헤헤,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아니, 그것보다 실망인걸. 그걸 내게 말도 안 해 주다니."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섭섭해." "민정아, 그게 아니라…… 재현이가 일단 비밀로……." "이제 친구보다는 남편…….?" "지, 진짜 그게 아니라……." 민정이의 장난에 얼굴이 붉어진 채 어쩔 줄 모르는 예진. 민정에게는 그런 예진이 귀엽기만 했다. 그때였다. "즐거워? 나를 여기 가둬 놓고?" "……." 또다시 들려온 소리에 예진은 그만 굳어 버렸다. 한편 그 모습을 본 민정이는 의아한 듯 예진이에게 다시 물었다. "왜? 너무 놀려서 삐쳤어?" "아, 아니야." "…….?" 예진은 말하고 싶었다. 방금 전에 또다시 그 의문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재현과 사귄다는 사실이 아직도 설레서 환청이 들린 거라고. -2돌아온 머신맨- "제길……!" 머신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몇 있던 자신의 소녀떼가 사라진 것을 보고 말이다. 지난번 조각 사건 이후 근신을 받고 돌아와 보니 남은 소녀들은 한 명도 없었다. 말 그래도 제로. 그에 반해 재현이라는 악마(?)는 인기 급상승 중. 도대체 왜, 왜, 왜 재현이라는 놈에게 여자들이 붙느냔 말이다! 근신하는 내내 그 생각만 한 머신맨이었다. ……물론 반성의 시간은 없었다. 솔직히 얼굴도 자신과 비슷하고(재현이가 훨씬 잘생겼다), 키나 몸매도 비슷한 데다가(재현이 훨씬 잘 빠졌다), 성격은 자신이 더 좋다(……). 그리고 싸움 실력이나 운동 실력도 비슷하다. 근데 왜 재현이 놈에게만 왜 여자가……! "혹시?" 놈에게는 혹시 여자를 끌어들이는 묘술 같은 게 있딴 말인가! 그렇다면……. "그 악마 놈을 따라 하면?" 자신에게도 소녀들이 몰려온다? 참으로 단순한 공식이 성립했다. 그분이 오셨다. 머신맨. 요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지난번에 나한테 누명 씌우고 근신을 먹었다지?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하하하!" "……." "……." "……." "....." "하하하하! 부담 없이 즐겨라!" "……." "……." "……." ……당신 같으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겠수? 난 이미 우리의 비밀을 알고 있는 민정, 예진과 식사하면서 속이 메슥거림을 느꼈다. 아니, 교사라는 작자가 왜 남의 반에 와서 밥을 드시고 계신 거냐? 뭐, 자기 반이라면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저 머신맨과 우리 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담임은 절대 아니고 부담임도 아니다. 그렇다고 임시 담임역할도 맡은 것도 아니다. 전혀 연관이 없다. 근데 그런 반에 와서 도시락을 열어 놓고 소음 공해를 일으키는 이 상황이 너무 아이러니컬하다. 그떄 갑자기 나를 바라보는 머신맨. 그러더니 갑자기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숨도 안 쉬고 밥을 퍼 넣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냐, 저 인간? 한동안 쉬었다 오더니 미친 거냐? 내 눈에는 그렇게밖에 안 보인다. 그때 머신맨이 밥을 다 먹었는지 갑자기 일어나 외쳤다. "하하하! 내 승리다!" "……." "……." "……." 설마……설마……. 지 혼자 밥 빨리 먹시 시합이라도 한 거냐. 머신맨의 그런 삽질은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아, 내가 임시 담임이 되었다." "마, 말도 안 돼." "선생님은?" "어디 갔지?" "어제 웬 괴한에게 습격당했다고……." "말도 안돼. 그렇다고 저 머신맨이……." "왜 하필 머신맨이야!" "부담임은?" "부담임도 괴한에게……." 머신맨이 우리반 임시 담임이 되었다고 하자 반 전체가 난리가 났다. 절대 좋은 의미로 난 난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 담임과 부담임이 괴한에게 습격당했다고? 그리고 때마침 자진해서 우리 반에 온 저 머신맨. 난 알 것 같다, 그 괴한의 정체를. 진짜 한 달 쉬고 오더니 왜 저렇게 됐냐? "자유시간." "지, 진짜 머신맨 왜 저래?" "너무 이상해." "한 달 쉬더니 미친 거 아니야?" 웅성웅성. 학생들은 난리다. 왜냐고? 체육시간이면 미친 듯이 자기의 건강미를 선보이기 위해 여학생들을 제외한 남학생들에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미션을 내렸던 것이다. 예를 들어, 운동장 30바퀴 먼저 돌기라든가 푸시업300개, 윗몸일으키기 500개등,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과제를 낸뒤 자기만 성공해서 뽐내는 참으로 유치찬란한 작전이었다. 물론 나는 다 소화했지만. 찌릿. 그떄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 오새 계속해서 느꼇던 건데. "저분, 나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나신 건가?" 자유시간이라 해 놓고 쉴 새 없이 나만 바라보는 머신맨. 진짜 거북스럽다. "아무리 봐도 내가 더 매력적인데?" 제현을 관찰해 본 결과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더 매력적이다 못해 왕 매력적이다. 재현을 100번 관찰해 봐도 자신이 더 매력적이다. 그런데 왜! 왜! 왜! "소녀들은 나보다 저 자식을!" 선택하냐는 거다. 분명 자신은 왕 매력 덩어리인데 말이다. "설마?" 그때 머신맨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아니, 그거다! "내가 선생이라서 부담되는 것?" "머신맨 완전 미쳤다." "돌아이." "하아, 저렇게 미치다니." "충격이 컸나 봐." "완전 갔어, 갔어." "……." 난 학생들의 웅성거림에 말없이 긍정 한 표 던진다. 저 머신맨, 정말 맛 갔다. 그것만큼 저 상태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왜냐고? ……갑작스럽게 교복 입고 오셨기에. 그것도 상당히 타이트하다. 마치 쫄티 같은 느낌? 물론 선생이 학생 교복 입고 출근한다는 게 말이 되겠느냐만 학교는 의외로 조용했다. 아무래도 뭔가 뒷공작을 펼친 것 같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 하얀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의 내 생각이다. 지금까지의 미친 짓하고는 격이 다르다. 어떻게 저런 미친 짓이 가능한 거지? 교복 입고 출근하는 선생이라니. 드르륵. 그때, 교복을 입은 머신맨이 교실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교탁 위에 두 손을 얹더니, "들이대려면 부담 없이 들이대라." "……." "……." "……." "……." "……." 우리 반 급격히 얼어 가는 중. "왜 없지?" 편하게 들이대라고 교복까지 입었다. 그런데 들이대는 여학생이 없다. 왜 그런 걸까? 교복만으로는 자신이 아직 선생같이 느껴지는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판단 완료. 그래, 그렇다면 교복만으로는 안 된다. 학생이라는 느낌이 마구 들 무언가가 필요하다. 학생 같은 느낌을 줄 무언가가. 그리고 혹시나 자신이 너무 잘나서(?) 여자친구가 있을 거라 생각해 다가오지 못할 확률도 상당히 높다. 그렇다면 여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면 된다. 흐흐흐. "…….제대로 미쳤구나." "나름대로 좋은 선생이었는데." "응.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아." "아아, 잘 가세요, 머신맨." 고별을 했다. 학생들은 완전히 미친 머신맨을 보고 말았다. 오늘도 머신맨은 교복을 입고 등장했다. 하지만 그냥 교복이 아니다. 남학생들처럼 교복에 일일이 칼주름을 잡고, 교칙에 어긋나는 목걸이와 팔찌, 반지를 끼고, 머리는 왁스를 발라 올백으로 넘기셨다. 이건 말 그래도 불량 학생의 모습? 그러니 학생들이 고별인사를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때 그는 다시 교실로 돌아오더니, "…….나 여자친구 없다." "……." "……." "……." "……." "소녀들은 모두 기억하도록."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인데? "왜애!!" 아무도 안 오냔 말이다! 왜 한 명도 안 오는 거지? 응? 자신의 계획대로라면 소녀들이 막 몰려오는 스토리가 전개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왜…….! "그건 제가 없기 때문이죠." "너, 넌……?" 그때 민호의 모습을 본 머신맨은 경악했고, 잠시 후 민호는 그런 머신맨을 향해 웃으면서 말하였다. "형님이 왜 인기인인지 궁금하신가요?" "……." 궁금했다. 하지만 적에게 묻기도 그렇다. 그렇지만 우리 친절한 민호 씨는 알아서 말해 주었다. "제가 서포트해 주기 때문이죠." 재현이 들었으면 발작할 소리였다. 솔직히 말해, 민호라는 놈이 붙어 있는데도 재현이 그만큼 인기 있는 것도 기적이었다. 만약 민호가 없었더라면 전국 제패(?)했을 것이다. 보통 민호라는 이상 생물이 붙으면 아무리 얼짱이라 해도 여자들이 좀처럼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민호 파워는 엄청났다. 하지만 머신맨은 민호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네, 네가?" "네, 저의 서포트가 엄청난 거죠." "……." "그리고 도움을 줄 용의는 있습니다." "…….!" 민호가 와 주겠다고 말하자 머신맨은 눈을 휘둥그레 떳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자신도 재현과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다. 아니, 그의 인기를 넘어설지도! 그런 생각이 들자 머신맨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이라고 생각한 민호가 그냥 도와줄 리는 없다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머신맨이 경계 어린 말투로 물었다. "원하는 게 뭐지?" "원하는 거요? 없습니다." "……."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이냐?" "네." "……."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하자 살짝 미시쩍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곧 인기인이 되리라는 생각에 그 약간의 미심쩍음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때 민호의 입이 열렸다. "여자들이 열광하는 노홍철 성자님의 저질 댄스를 전수해 드리죠." "저질……댄스?" "네. 100년 전 폭풍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춤이죠." "……." 난 쓸쓸히 교문 밖으로 퇴장하는 머신맨을 보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또다시 1개원 근신. 그 이유는 여자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했기 때문이다. 그 몹쓸 짓이란……. "저질 댄스." "……." 100년 전 전설이었다는 저질 댄스를 여학생들 앞에서 마구 춰 버리신 거다. 정말 그런 걸 여학생들 앞에서 마구 추면……. "민호……." 또 뭔 헛소리로 그분을 유혹했는지 참으로 궁굼하다. 저 궁극의 댄스는 민호 님만 알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어쨌든 머신맨은 쓸쓸히 퇴장했다. 왠지 되게 불쌍하다, 흐으음. -3퀘스트- 내 사전에 공짜란 없다. 이게 내 모티브고 내 삶이다. 일을 하면 그 대가를 받는 게 인지상정. 그게 예의라는 것이다. 난 그걸 당연하게 여겼고 지금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얼마든지 부려 먹어 줘." "그, 그건 아니고……." "난 예진이 너를 위해서라면 불태워 버릴 정열도 있어." "……." 나의 닭살 멘트에 심히 당황하는 예진이. 뭐, 본론은 이게 아니고, 공짜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나지만, 나의 베이비, 아니 내 귀염둥이이자 여자친구인 예진이라면 평생 무보수로 일할 용의가 있다. 그런 내 모습에 예진이 미안한 듯 입을 열었다. "아, 아니, 꼭 할 필요는……그냥……." "노노, 해야 돼. 너의 부탁이라면." "……." 그 말에 야릇해지는 분위기.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한번 안아 보고 싶다만, 그런 용기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주위의 시선도 너무 많다. 사실 지금 사귄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손 한 번 못 잡아 봤다는 게 말이 되냐? 수없이 많은 도전과 민호 님의 최면술(?)에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진전이 된 건 하나도 없다. 흐흐흑. 한편 이런 내 모습에 민호 군이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저질이군요." "내가 뭐!" 난 민호의 말에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자 민호가 되물었다. "형님의 사상은 공짜는 죽어도 없다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근데 그런 신념을 이렇게 허무하게 부수다 못해 빠개 버리시면……." "그래도 예진이의 부탁이니까……." "이용하죠" "…….?" 민호의 뜬금없는 한마디가 이어졌다. "부탁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탈곰하다 못해 정역적인 키스를 해 달라고요." "……." "어떻습니까?!" 난 그만 굳어 버렸다. 원래 저놈의 말이라면 무조건 즐즐즐 했을 나다. 하지만 저 제안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그리고 지금 난 예진과 사귀는 사이다. 그 정도의 부탁……이라면 좀 이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부탁들 들어주는 조건인데 좀 강도가 심한 걸로 해도 되지 않을까? 어느새 혼자서 타협해 버리는 나. 정말 싫다. 왜 예진이만 관련되면 이렇게 나쁜 남자가 되는 거냐? "누님, 형님이 누님의 부탁들 들어주는 대신 형님도 부탁이 있답니다." "부, 부탁요?" "네." "……야!" 상상에 빠져 혼자 히죽거리는 나를 내버려 둔 채 예진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민호. 내가 언제 한다고 했어, 이 자식아!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게 당연하잖아. 다음 순간, 예진이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원하는 거 있으면 그냥 말해, 재현아. 네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줄게. 뭐든지." ……아, 뭐든지? 뭐……든지? 저 한마디가 말 내 머리를 점령했다. 뭐든지, 뭐든지, 뭐든지... 아악! 또 왜 이래! 저건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청결했던 것 같은 나. 하지만 이제는 뭐라 한 마디만 해도 멋대로 발작하는 변태가 되어 버렸다. 나의 본래의 청결함을 돌려줘잉!! "그리고 나도 부탁을 했으니 부탁 하나 들어줘야지. 그래야 내가 덜 미안할 것 같다." 예진의 카운터펀치가 날아왔다. 난 당장 그녀에게 다가갔다. 뭔가 변태스런 짓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러 착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미안해 할 필요 없다고 얘기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오해 없도록. 진짜 착한 마음이다. 한편 다가온 나를 약간 얼굴을 붉힌 채 힐끔힐끔 바라보는 예진이. 그래도 말하는 거다. 우리는 애인 사이. 키스 정도의 부탁은……부탁은……. "……손잡게 해 줘." ……못하겠다.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일행 중 재현과 예진의 사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당사자들은 숨긴다고 숨기지만, 그 둘을 제외하고는 다 알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눈치 하나는 끝내 주게 없는 커플이다. 물론 그렇다곤 해도 이곳에 있는 민혜나 나래, 민영, 에리아스, 이리스는 여전히 재현을 맘에 두고 있는 것 같지만.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그녀들이 어이없어 하는 건, "……손잡게 해 줘." 재현의 부탁 때문이었다. 아니, 저걸 부탁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한 과제다. 예진이의 부탁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재현이가 부탁을 한다. 그 부탁은 손을 잡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둘이 아주 거북한 사이라면 말도 안 한다. 하지만 엄연히 사귀는 사이. 사귀는 사이에 부탁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손을 잡게 해 달라니 기가 막힌 것이다. 좋게 풀이하면 순진한 것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등신인 거다. 하지만 뭐 그녀들은 불만이 없었다. 저 대화로 인해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난 등신이야!" 난 주저앉은 채 울고 있었다. 분명 키스해 줘! 하고 외치자고 얼마나 마음으로 다짐했단 말인가? 근데 입에서 나온 말이 손을 잡게 해 달라니! 예진도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었으나, 이내 웃으며 수줍은듯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기회를 놓쳤어! 난 등신이야! 아악!" "정말 등신이군요." "……." 그때 불난 집에 에어컨 100대를 가동하시는 민호 님.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민호는 떳떳하다는 투다. "형님은 남자의 이름에 먹칠을 하다 못해 페인트칠을 하셨습니다." "……." "그 좋은 기회를 이런 식으로 버리시다니, 정말." "……." 그런 민호의 말에도 난 반박할 수 없다. 그 냉엄한 평가에 더욱더 할 말이 없었다. 민호의 말대로, 난 남자의 이름에 먹칠을 하다 못해 페인트 칠을 했다. 인정한다. 미치도록 인정한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잔혹하게 말할 필요가 있냐? "형님 같은 사람은 남자가 아닙니다. 저질입니다." "……." "저질, 저질, 저질, 저질, 저질, 저질." 퍼억! 나는 어느새 옆에 쪼그려 앉아 저질을 반복하는 민호를 한방에 잠재운 뒤 다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이라도 그 부탁을 다른 걸로 변경한다고 할까? 부탁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만 하라고, 무엇이든지 들어준다고 했는데. 예진이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도전을……. 하지만 해 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런 내 자신이 싫어! 예진의 부탁은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니었다. 도대체 이런 사소한 부탁 하나에 몇 시간이나 머뭇거리다니, 우리 예진이는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예진이의 부탁은 단지 퀘스트를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별로 어렵지도 않은 퀘스트였다. 그때 민호의 노래가 들려왔다. "형님은 남자가 아니죠? 그럼~ 저질이죠!" "……." "저질, 저질, 저질." "닥쳐." "전 형님이 너무 한심해서 이렇게라도 깨우쳐 드리려는 겁니다." "……알았으니 닥쳐." "흐음." 하아, 진짜 제발 닥쳐 주셈. 나도 지금 그것 때문에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용기가 안 나는걸! 저 순수한 눈망울을 보고 어떻게 그런 저질수런 말을 한단 말인가! 남자라는 보기만 해도 심장이 뛰는 저 천사 같은……. "누님, 저랑 달콤한 키스를……." 퍼억! 어느새 예진에게 다가가 개소리를 해 대는 민호를 자근자근 밟으며 난 그녀를 향해 고개 숙였다. "미안해." "아, 아니……." "정말 미안." "괘, 괜찮아." "원래 좀 애가 미쳤으니 이해해 줘." 난 얼굴이 사과처럼 붉어진 예진에게 쉴 새 없이 사과했다. "너, 너, 이민호! 어떻게 그런 소리를!" 잠시 후, 나는 민호와 단독으로 면담하면서 흥분을 금치 못했다. 그런 내 모습에 민호가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뭐가요?" "방금 내 여자친구한테 네놈이!" 생각만으로도 막 울화가 치민다. 아무리 장난이라지마 남의 여자친구보고 달콤한 키스? 이자식이 단단히 미쳤구나! 곧, 민호의 변명이 들려왔다. "전 어떤 남자도 못한다기에 남자 대표로 나온 겁니다." "……." "전 죄 없습니다." "……." "엄연히 남자 대표로서, 남자들은 멋지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이니까요." 멋대로 생각 좀 읽지 마시고요. 굳이 그런 저질스런 걸로 남자 대표를 자처하는 건 좀……. 그리고 그게 멋진 거냐? 남의 여자친구한테 달콤한 키스나 하자는 게? 에휴우. 「퀘스트를 공유하시겠습니까?」 "오케이!" 「퀘스트가 공유되었습니다.」 【퀘스트" 레드 엘프들을 찾아라 그들을 찾아서 그 수장을 만나 데스타닌이 준 목걸이를 전해 준다.】 예진과 퀘스트를 공유하자 순식간에 내 앞에 뜨는 창. 마치 홀로프램 같아서 손쉽게 다룰 수 있다. "레드 엘프?" "으응, 나도 처음 들어 봐. 지나가는데 어떤 사람이 다급하게 이 목걸이를 전해 달라고 해서……." 그러면서 붉은색의 수수한 장식의 목걸이를 하나 내밀었다. 난 그 목걸이를 받아 들었다. 이걸 레드 엘프인가 하는 분들의 수장에게 전해 주라고? 뭔가 구릿한 냄새가 난다. 갑자기 나타난 부탁만 하고 사라진 것도 그렇고, 레드 엘프라는 괴상한 종족도 그렇다. 하지만 예진이는 원래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천사. 어쩌다 퀴스트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레드 엘프가 어디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나에게 부탁한 것이다. 솔직히 이런 구릿한 냄새가 나는 퀘스트라면 당장 때려치운다. 내가 이 게임을 하면서 해 본 퀘스트라면 전직 퀘스트……. 그 내용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어찌 됐든 퀘스트랑은 정말 인연이 없던 나다. 하지만 그런 나라도 예진이가 원한다면 상관없다. 그나저나 레드 엘프에 대한 정보는? "가질 수 없다면 파괴하겠어." 섬뜩. 그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목소리였다. 너무나도 차가운 목소리. 그 목소리에는 너무나도 큰 증오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은……? "예진이?" 분명 예진이 쪽에서 소리가 났다. 한편, 내 눈에 보이는 예진도 당황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말이다. "예진아, 방금 여자 목소리……들었어?" "너, 너도 들은 거야?" 나의 질문에 반색을 하면서 되묻는 예진이. 난 그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으응." "이상하게……며칠 전부터 가끔씩 들렸어 그런데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못 들었대. 그, 근데 재현이는 들은 거야?" "으응." "나 계속 이 목소리가 나한테만 들려서 무서웠어." 예진이가 무서워하고 있다. 그리고 느낌으로 알 것 같았다. 뭐가 이상하다는 걸 말이다. 예진이의 말대로 이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우리만 들은 것 같다. 뭔가, 뭔가가 톱니바퀴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 "……."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들은 이는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민호는 생각했다. '형님이 힘을 찾는 과정에서 그녀도 깨어나는 걸까요? 이거 정말 좋지 안흔 스토리인데요.' 난 무서워하는 예진이를 다독거려 주었다. 자기 혼자만 들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예진은 조금씩 안정해 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말로 그녀를 다독거려 주면서도 나도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뭐, 대충 넘어가자. 내가 생각해 봤자 답지 나오냐? 그냥 되는 대로 사는 거지. 그나저나, 우리는 지금 예진이가 받은 퀘스트 덕분에 레드 엘프인가 뭔가 하는 애들을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답게, 개털만큼의 정보도 안 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빈둥빈둥 노는 시간만 늘어났다. 뭐, 사실 예진이랑 이렇게 같이 있는 시간만으로도 감사하기는 하다만. 그나저나……. "민호는?" 그렇다. 민호 사마가 안 보이는 것이다. 분명 10분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야설 읽는 광경을 목격했는데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 설마 여자들의 왕국인가 뭔가 하는데 놀러 간 거? 정말 속편한 녀석이다. 그나저나, 빨리 레드 엘프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레드 엘프, 풀이해서 빨간 엘프. 붉은 돼지도 봤기에 별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엘프가 빨갛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썩 좋지 않다.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어떤 이상한 사람이 전해 주라고 했따는 목걸이를 살펴보았다. 혹시라도 여기에 단서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런데 그 순간, "헉…….!" 발견했다. 어마어마한 단서를. 너무 어마어마해서……. "이 자식!" 욕이 나온다. "재, 재현아?" 목걸이를 살피던 중 갑자기 화를 내는 나를 예진이 당황한 어조로 불렀다. 난 그 부름에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가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 "그나저나 이 퀘스트…….. 포기하는 게 어때?" "포기?" "응." "그, 그래도 중요한 게 아닐까?" 중요는 개뿔. 하지만 말할 수는 없다. 난 웃으면서 말했다. "별로 안 중요한 거야." "……." "나 믿지?" "으응." "그럼 이 퀘스트는 접도록 하자." "알았어." ……접는 게 좋다. 예진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 퀘스트는 일면 사기 퀘스트. 한마디로, 완전 낚였다. 우어억!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목걸이에 적혀 있는 한마디. 등신, 쪼다, 멍청이 즐. 이 목걸이 건네준 놈, 뒈진다. -4에리아스의 사랑- 에리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남자, 아니 마지막이라고 해도 될 테다. 평소 남성 공포증 때문에 남자라면 기겁을 하는 그녀다. 하지만 재현에게는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더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진무구한 에리아스는, 재현에게 이미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죄가로 생각하는 그녀였기에. "하야." 한숨이 나왔다. 왜 마음처럼 되지 않는 걸까? 자신의 주인님은 이제 사랑해서는 안 될 존재. 그런데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처음으로 한 사랑이어서? 잘 모르겠다. 투욱. "고민이 있으신가요?" "꺄악!" 에리아스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기겁했다. 그 이유는, 손을 올린 사람이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르륵! "……." "뜨끈뜨끈하군요." 믿을 수가 없었다. 처음이었다. 모든 것을 소멸해 버리는 자신의 불꽃을 견디는 존재가 있다니! 아니, 물론 지금도 활활 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불꽃에 휩싸인 채, 민호가 입을 열었다. "전 뜨거운 남자인 건가요?" "……." 에리아스 그만 굳어 버렸다. 어쨌든 화재(?)는 진압했다. 그리고 그런 민호에게 쉴 새 없이 사과하는 에리아스. "죄송해요." "전 괜찮습니다. 나름대로 화끈한 남자가 되어 보았으니까요." "……. "가끔씩 에리아스 양에게 불 좀 빌리죠." "그, 그건……." 그 말에 질색하는 듯한 에리아스.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남성 공포증이 있다. 남자가 자신의 어깨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무서워하는 그녀였다. 그녀의 그런 반응에 민호가 웃으며 말했다. "농담입니다." "……." "타오르는 남자는 별로 재미없기도 하고요." …….뜨겁긴 뜨거웠나 보다. 아니, 소명되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이다. 주작의 불꽃에 소멸되지 않다니. 그나저나, 에리아스는 그가 왜 불꽆에 휩싸이면서까지 자신을 건드렸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녀가 묻기도 전에 민호가 선수를 쳤다. "형님이 사랑스럽죠?" "……." "미치도록 사랑스러울 겁니다." "그, 그건……." "모든 걸 열어서 표현하세요." "……." "일명, 오픈 마인드?" 물론 좋아하기는 한다. 하지만 민호의 말처럼 '미치도록' 까지는 아니고, 모든 걸 열고 표현하기에 에리아스는 너무 내성적이었다. 그때 민호의 말이 이어졌다. "형님을 가져서 마음대로 능욕(?)하고 싶지 않습니까?" "……." "능욕하고 싶지 않습니까?" "……." 능욕이라는 말에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이는 에리아스. 능욕이라니, 말도 안 된다. 19금 단어에 에리아스는 그만 경직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에리아스의 반응에는 아랑곳없이 민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는 거군요." 혼자서 결론 내린다. 그 말에 에리아스는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뜨겁고 달콤한 핫키스를 다시 해 보고 싶은 건가요?" "……." 그 말에 에리아스의 머리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재현과 제일 많이 가신(?) 분이 바로 에리아스였다. 프렌치 키스부터 시작해 성추행도 당하고, 심지어는 맨살에 가슴도 만졌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말 많이 진행된 사이인 것이다. 그런 사실을 민호가 툭 건드리니 에리아스의 머리에서는 연기가 날 수밖에 없었다. 민호가 말을 이었다. "뭐, 대충 알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능욕하고 싶다고 치죠." "……."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에리아스는 그냥 가만히 있기도 했다. 왠지 말이 계속될수록 버거운 상대였으니까. 민호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비법을 전수해 드릴까요?" "……?" "형님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비법을요." "……." 에리아스의 귀가 자신도 모르게 솔깃해졌다. 재현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비법이라니.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주인님은 이미……." "여자친구가 있다는 건가요?" "……." 그 말에 완전 시무룩해져 버리는 에리아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민호가 갑자기 강렬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나약하군요." "네?" "골키퍼가 있다면 골키퍼를 밟으세요." "……." "제가 사랑학 개론을 강습해 드리죠." 그리고 곧, 민호의 사랑학 개론, 아니 화려한 말놀림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민호의 말재주는 재현조차도 순간적으로 넘어갈 정도로 화려하다. 순진무구의 대명사인 에리아스가 견뎌 낼 확률은 제로였다. "저, 주인님……." "응?" 업무(?)를 보던 내게 에리아스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불렀다. ……근데, 내가 업무를 본다는 말에 왜 이렇게 의심의 눈초리가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마치……. '즐.' '구라 치지 마!' '인생 왜 그리 살아?' '구라쟁이' 이런 소리들이 막 들리는 것 같다.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나도 업부를 본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하는 거. 맨날 내가 놀기만 한다고 오해하는 데 절대 그렇지 않다. 나도 엄연히 이곳의 길드장으로서 업무를 본다. 그 업무가 뭐냐고? ……많은 걸 알려 하면 다친가. 크흐으음, 이건 넘어가고. "아, 에리아스, 얘기해." 난 얼굴을 붉힌 채 머뭇거리는 에리아스를 향해 최대한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에리아스를 볼 때마다 마치 귀여운 여동생 같아서 정말 흐뭇하단 말야. 흐흐흐. …….이상한 웃음은 절대 아니니 오새 말도록. 그때였다. "흡!!" "……." 공습이 온 건. 정확히 말하면, 에리아스의 입술이 나의 입술을 공습했다. 가, 갑자기 이게 무슨…….? 그때, "흐엥……죄송해요오!!" "……." 마구 울면서 뛰쳐나가는 에리아스. 저기, 에리아스 양, 이런 말 하기는 그런데, 피해자는 난데 왜 갑자기 내가 가해자가 된 느낌이지? "……." "……." "……." "……." 그떄 느껴지는 미묘한 침묵. 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예진은 물론 민혜, 나래 누나, 이리스가 경직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서부터?" "키스하는 것부터." 민혜가 대답했다. 아앙, 그렇구나. 에리아스가 날 엎친 건 못 보고 키스하는 장면만 봤구나. 아니, 이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나. 난 최대한 분위기를 잡으며 물었다. "내가 피해자라고 하면 안 믿어 주겠지?" "……." ……그럴 것 같다. 분명 키스를 한 후 에리아스가 울면서 뛰쳐나갔으니까. 당연히 내가 강제로 그녀에게 키스해서 울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설마 먼저 덮친 에리아스가 울면서 뛰쳐나갈 리는 없을 테니까. "…….." "……." "……." 예진과 나의 미묘안 침묵. 미치겠다, 미치겠어! 다른 여자라면 상관없지만 예진이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리고 에리아스가 울면서 나가는 모습까지 봤다. 여자친구 있는 놈이 다른 여자한테 키스해서 울린 저질스런 놈으로밖에 생각 안 될 것이다. "저, 저기……?" "으응?" 순간, 예진의 말에 화들짝 놀란 나. 예진의 말이 이어졌다. "난 괜찮아." "……." 그리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심히 안 괜찮아 보인다.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보고 괜찮아 하는 여자친구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분은 그냥 천사다 보니 내가 신경 쓸 걸 의식해서 한마디 한 것이다. 하아. 왜 이리 착한 거야! 난 예진이를 보며 말했다. "나 믿어 줘." "……." "정말 상황이 미묘하고 미묘해서 이렇게 된 거야." "……." "……." 그래, 믿어 달라는 것도 좀 염치가 없다. 왜! 왜! 왜! 에리아스는 갑자기 와서 키스를 하더니 울면서 뛰텨나가느냔 말이다! 물론 싫지는 않아……. 아, 아니, 이게 아니라! 갑자기 그런 이상한 행동을…….크오옥. 예진이가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믿을게." "예, 예진아." "……." 하지만 분위기는 정말 우울하다. 아무리 내가 피해자라 해도 일단 여자랑 키스를 한 건 사실이니까. 우어억! 젠장! 예진이랑은 아직 손도 못 잡아 봤는데. 그래, 지금이라도 손을 꼭 잡아 주면서, 난 너밖에 없어라는 멘트 한번 날려 주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유치하게 손잡고 난 너밖에 없어 하는 이런 멘트, 형님은 안 치시겠죠." "……." "……." 어느새 나타나 내게 웃으며 말하는 민호 군. 그래, 미안하다. 유치해서 미안하다. "에리아스 왜 저런 거야?" "……." "갑자기 이상한……." "아, 그거요?" "너 알고 있냐?" 내가 다급히 묻자 민호가 대답했다. "제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갑자기 키스 한 방 날리고 오라고요." "……." "……." 결론인즉, 네가 원인? 잠시 동안 민호와의 면담을 끝낸 뒤 고민에 잠겼다. 내가 아무리 등신이라고 하지만 민호의 말과 지금의 행동을 조합해 보면.... "날 좋아하는 거?" 에리아스가 날 좋아한다. 남성 공포증인 에리아스가. 귀여운 동생 같았던 에리아스가, 그런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니. 하아, 기쁘긴 하지만 왠지 한숨만 나온다. 물론 예진이는 웃으면서 잘 다독거려 주려 했지만. "……하아." 예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재현이가 신경 쓸까 봐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도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아직 손도 재데로 잡아 본 적 없는데, 재현이는 다른 여자와 키스를 하다니. 천사 같은 마음씨의 그녀라 해도 질투가 나는 건 사실이었다. "내가 너무 적극성이 없는 걸까?"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얼마나 내성적인 성격인지. 물론 이런 점에서 재현이가 리드를 해야겠지만 그녀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할 뿐. "하아."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렇게 벼룩만큼도 진전이 없는 커플도 흔치 않는 것이다. "……." "……." 에리아스와 난 말없이 앉아 있었다. 에리아스가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해요……." "아니, 죄송할 건……." "죄송해요, 훌쩍." "아, 아니, 진짜 괜찮아." 내가 뭔 말을 해야 할까. 죄송하다며 우는 에리아스에게 말이다. 저런 귀여운 미소녀가 나 같은 놈을 좋아해 준다는 게 이얼마나 가문의 영광이란 말인가! 하지만 여기서 나 좋아하지 마라고 자르면 그녀는 분명 상처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럼……? '좋은 남자!' 괜찮은 남자를 소개시켜 주면 나를 향한 이 마음도 사라질테고, 우리 귀여운 에리아스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그래, 그거다! 그게 정답인 거야. 난 훌쩍거리는 에리아스를 다독이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울지 마. 괜찮으니까." "주, 주인님." 정말 못 말리는 여동생이라니까. "저는 사절하죠." "……." 그때 멋대로 나타난 제대로 삽질하시는 민호 군. 난 그런 민호 군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즐이다, 임마! 넌 죽어도 제외야!" 이 세상 모든 남자가 저 자식 같다고 하면 차라리 에리아스에게 혼자 살 것을 권유할 테다. '하아' 차라리 잘못을 지적하고 화를 냈으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이렇게 세심하게 배려해 주니 마음을 거두고 싶어도 도저히 거둘 수가 없다. '주인님,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마음이 제 생각처럼 되지 않아요.' -5나의 생일- 「형니님, 저예요오오오오!」 "……." 「전화 받아죠오오오!」 "……." 「형니임……!」 달콤한 휴일 아침에 들려온 개거지 같은 벨소리에 그대로 귀를 막아 버렸다. 젠장! 오늘은 일요일이라고! 이런 날에는 날 좀 내버려 줘! 잠 좀 푹 자고 싶던 나에게, 아침 8시부터 울리는 민호 전용 벨소리는 귀에 거실리기 그지없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 아침부터 저 녀석과 통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형니임, 저예요오오오오!」 그때 한동안 안 받자 끊기는 벨소리. 하아, 다행이다. 포기했나 보다. 자자, 그럼 다시 잠을……. 「띠리리리리리.」 그때,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멜로디. 이, 이건!! "……예진이!" 벌떡. 민호의 벨소기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반응하는 나의 몸. 그리고 어느새 휴대폰을 열고 있다. "안녕?" 최대한 다정다감한 어조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네, 안녕하십니까. "……." 분명 예진이 전화번혼데 왜 민호라는 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냐? 환청? -접니다. "……." -우연히 지나가다가 예진 누님과 만나서 누님의 핸드폰을 빌려서 전화합니다. 왠지 제 전화는 형님이 안 받는 듯싶어서요. 헛소리. 어떻게 우연히 예진이와 만난 건데? 그리고 내가 자기 전화를 의도적으로 피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건…… 역시 방심할 수 없는 존재다. 결국, 기분 잡혔다. 내가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뭔데? 나 피곤하거든?" -누님, 형님이 피곤하시다고 누님 오지 마시라고……. "내가 언제 그랬어!!" 옆에 있는 걸로 추정되는 예진에게 헛소리를 해 대는 민호. 나는 기겁했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이 자식, 순식간에 괴소문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진정해야 한다. 옆에는 문병 예진이가 있다. 그래, 진정해야해!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심호흡을 한번 한 뒤 말했다. "그래, 천천히 말하렴." -천천히 말하는 건 매력적이지 못해서 재미없는데요. "……."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거냐? 지금 걸려 온 전화가 민호 휴대폰이었다면 그냥 전원을 끄고 배터리를 뽑아 던져 버리겠지만 지금 걸려 온 전화는 예진이의 폰. 그냐가 바로 옆에 있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해!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최대한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러냐?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네, 그럼. 뚜욱. "……." 이 개자식!! 지금 염장질을 하려고 작정한 거냐? 앙? 이 자식 아침부터 뭐하는 짓이야! 도대체....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방에서 나와 대문을 내다보았다. 갑자기 대문이 알아서 열리더니 모습을 들어내는 민호 녀석. 당장 그 자식을 향해 분노의 발차기를 날리려는데, "누님과 같이 왔습니다." "……." 간단히 설명하자면, 민호과 예진이는 정말 우연치 않게 만났다. 그것도 우리 집 앞에서. 그럼 여기서 질문. 그냥 들어오면 될 것 가지고 왜 전화로 장난질이냐! "제 짜릿한 모님인사입니다. 잠이 확 깨지 않습니까?" "……그래, 참 고맙다." 너무 잠이 확 깨서 문제긴 하다만. 물론 좋은 의미는 절대 아니다. 그런데 네놈은 왜 아침부터? 예진 양은 새벽이든 아침이든 저녁이든 언제든지 환영이지만 네놈은 절대 아침부터 보고 싶은 얼굴이 아니다. 왠지 아침부터 네놈을 보고 시작하면 하루 일진이 영 좋지 않아서. 그 순간이었다. 내 눈에 무언가가 잡힌 건. 예진이가 들고 있는, 어마어마한 부피의 비닐봉지. 흔히 볼 수 있는 마트 봉투여서, 저걸 어디서 가져왔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아니, 그것보디……. "이, 이렇게 무서워 보이는 걸 들고 온 거야?" 그렇다. 저 연약한 몸으로 저렇게 무거운 걸 들고 온 것이다. 이런 물음에 예진은 쑥스러운 듯 내게 말했다. "음식……해 주려고." "……." 아. 요리는 해 주려고 아침부터 저런 무거운 걸 들고....이런 여자친구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행복한데.... "…….민호야." "네." "아무리 문 앞에서 만났다니만 지금 저건 네가 들고 있는게 정상 아니니?" 그렇다. 문 앞에서 만났건 어쨋건 연약해 보이는 예진이가 저런 걸 들고 있다면 얼른 받아 들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왜 예진이가 들고 있는 것인가. 그에 민호 군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전 소중하니까요." "……." 잠시 이동. 민호를 어디다 내팽개친 뒤 예진이와 나는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각종 재료가 주위에 널려 있고 보기만 해도 엄청 맛있을 것 같은 요리가 준비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음식이 있었으니. "……미역국?" 그렇다. 생일, 혹은 임산부들이 아기를 낳고 먹는 그 전용 미역국. 물론 평소에도 먹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저걸 보면 생일 같은 게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이런 내 반응에 예진이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당연히 오늘은 미역국을……." "……?" "재현이 생일이잖아." "……." 난 그 말에 주변을 살펴 부엌에 걸려 있던 달력을 보았다. 그리고 날짜를 확인했다. 삐리리(내 뇌가 계산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결과가 나왔다. "12월 18일?" 무슨 날짜를 이런 식으로 계산하느냐고 묻는다면, 날짜 개념을 어디다 갖다 버려서 시간에 대한 인지능력이 떨어진다고 대답하겠다. 어찌 됐든 12월 18일이……내 생일? "……." "……?" 예진이가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소리쳤다. "내 생일이다!" "……." 난 내 생일인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예진이는 본인도 모르는 생일까지 챙겨 주다니. 거참. 그나저나 생일 하니 저번 일이 떠오른다 예진이의 생일날이었는데 막 이상하게 일이 꼬여 버렸고, 끝내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민호의 헛소리의 진실도 알아차렸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한심 그 자체. 여자가 세계 정복을 좋아한다는 개소리를 믿다니. 하지만 엄연히 속을 수밖에 없는 게, 인터넷에서든 여자들에게 물어보든 무조건 게임 정복이라고 했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근데 문득 궁금한 건데, "왜 민혜와 나래 누나는 나에게 거짓말을?" 민영이야 뭐 지 동생이니 그렇다 치고, 민혜와 나래 누나는 내게 거짓말한 이유를 모르겠다. 혹시 떡값(?)이 오고 간 건? ……그냥 해 본 말이다. 재미없었나 봐? 분위기가 싸늘한걸 보니 말이다. "저기, 재현아, 음식 다 됐어." 그때, 주방엣 우리 천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꺄아! ……그냥 넘어가고, 어찌 됐든 단둘이서 흐뭇하고 아름다운 식사를…… 흐흐흐. 여태껏 살면서 사장 아름다운 생일이 될 거야!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식당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 "형님, 방가 방가?" "……." 분명 절데 삽질 못하도록,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만들어 놨는데 언제 회복된 거냐? 아니, 그것보다, 왜 나의 꿈같은 식사를 방해하느냔 말이다! 이 자식! 난 예진이의 엄청난 요리 실력에 감탄을 터트리기보다는, 내 옆에 앉아 열심히 깔짝대는 민호를 주시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나는 예진이 몰래 녀석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빨리 먹고 나가 주지 않으련?" "싫은데요." "……." "밥은 꼭꼭 씹어 먹어야 합니다." "그러니?" "그렇죠." 빌어먹을 자식.분명 의도적이다. 나와 예진이의 달콤한 시간을 방해하지 위한 악덕질. 그리고 서서히 입질이 온다. 내가 민호와 하루 이틀 사이도 아니고 이쯤 되면 알 수 있다. 난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목적이 뭐야?" "들어주실 건가요?" "……." "들어주신다면 뭐." 이 자식! 오늘은 내 생일이라고! 그런데 남의 생일을 이용해서 제 목적을 달성하려 하다니. 크으윽. 나중에 두고 보다. 나.중.에……! 그렇게 난 속으로 이를 갈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입을 열었다. "말하렴." "형님이 쓴 야설을 읽고 싶습니다." "……." 그건 저번에 네 생일 때 들었던 부탁 같은데? 뭐 그런 부탁이라면 아주 간단.... "그런 사람 염장 지르는 야설 말고 제대로 된 야설 말입니다." "……." "야설, 야설, 야설을 원합니다." "……." 이 자식! 아주 작정했구나! 야설이라니! 엄연히 여자친구가 있는 이 몸에게 야석이라니! 하지만 그런 민호의 제안을, 나는 거부하지 못했다. 왜냐고? 예진이와 단둘이 있고 싶었으니까. 나중에 약속을 지키라 하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알았으니 어서 가렴." "뭐, 알겠습니다. 형님이 원하신다면, 잘 덮치십시오." "안 덮쳐!" "……."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쳐 버린 나. 예진이는 그 소리를 듣고 크게 당황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야." "……." "저, 절대 이상한 의미는 아니고 그러니까……음……." "누님, 한 가지만 말씀드리죠. 남자는 다 늑대입니다." "……." "……." "늑대죠, 늑대. 단둘만 있게 되면 형님이……흐흐흐흐흐호호호호호호호" "당장 안 꺼져!" 뻐엉! 난 그래도 민호 녀석을 발로 차서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시, 신경 쓰지 마. 하하하." "……으응." 하지만 심히 신경 쓰시는 모습이다. "……." "……." 단둘이 있게 되었지만 남은 건 침묵뿐이다. 민호 님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양념질을 하고 가신 덕택일까? 원하던 대로 예진과 단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지만 이런 어색한 침묵은 좀, 아니 많이 그렇다. 크윽. 이민호, 끝끝내 초를 치고 나가는구나! 그렇게 우리는 몇 분간을 말없이 앉아 식사만 했아. 문득 이렇게 시간을 보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내가 먼저 말을 건네기로 했다. "저기, 예진아." "으으?" "……." 나의 부름게 심하게 놀라신다. 이건 분명 아까 민호 님이 하신 그 말 때문이다. 빌어먹을……! 어서 빨리 난 늑대가 아님을 설명해야 한다. "아까 민호가 한 말……." "으으응." "그, 그게, 그러니까……." 신경 쓰신다. 내가 예진이를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을 잘 못하는 그녀이기에 저런 반응은 신경이 잔뜩 쓰인다는 말돠 다름없다. 난 차근차근 설명해 들어갔다. "물론 남자들 중에 늑대가 많기는 해." "……." "하지만 나는 늑대가 아니야." "……." "난 성자야." 위이잉. 뭔가 찬바람이 우리가 있는 공간을 지나간다. 아, 이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키자고 저질 농담 한번 때렸다니 마구 찬바람이 불어 닥치는구나. 앞으로는 좀 더 깊이 생각하고 개그해야겠다. 그래도 그런 참바람 개그도 효과가 있었는지 어색한 분위기는 약간 풀리는 듯했다. 그때 예진이가 갈비찜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제일 신경 많이 썼어. 재현이가 갈비찜 좋아한다는 소리 듣고." 허억!나를 위해서 이렇게 세심한……. 그때였다. 내가 미친 건(?) "저, 예진아." "응?" "하나만 집어 줄래?" "……." 허억! 말을 하고 나서야 난 내가 무슨 말을 했고, 내가 심히 미치다 못해 돌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어마어마한 난이도(?)의 말을 이렇게 거침없이 하다니! 도대체 나 왜 이래? 그런 그런 내 부탁에 예진은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이내 약간 용기를 낸 어조로 말했다. "으응." "……?" 오오오오오! 이런 어마어마한(?) 부탁을 들어주다니! 이게 바로 생일의 힘인가? 오오오, 할렐루야! 예진이의 허락에 난 마구 불을 내뿜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급흥분 상태. 예진이가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뼈를 발라 주자. 그걸 본 나는 생각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그리고 예진이와 나는 엄연한 공식 커플! 그렇다면? "머, 먹여 주면 안 돼?" "……." 그 한마디에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진 예진. 허억! 내가 너무 엄청난 걸 요구해 버린 걸까? 우어억!너무 서둘렀다. 상황 보고 진행했어야 하는데. 하지만……. "응……." 너무나도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녀는 승낙을 표시했다. 아아, 영혼이 이탈하는 느낌이야. 지금 내 앞으로 달려오는(?) 저 갈비찜. 예진이가 쓰던 젓가락으로 얌얌 받아먹으면 간접 키스가.... 아, 어서 오렴. 갈비야, 젓가락아. 약간 미쳐 보이는 것 같지만 그만큼 예진이의 이 선물은 눈물 날 것 같다. 그리고 다음 순간, "……." 난 입술에 닿기로 전에 미리 가서 그대로 삼켜 버렸다. 한 마디로, 몸이 먼저 들이댄 것이다. 예진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맛있어?" "베리 굿!" 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눈물을 흘렸다. 너무 맛있기도 하고 행복해. 이게 꿈이냐, 생시냐? "왜 그래?"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에 예진이 당황해서 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훌쩍이면서 대답했다. "넘 행복해서." "……." "흐흑." 이렇게 행복하다니. 이건 말 그대로 겪어 보지 않는 자는 모른다. 행복해서 눈물이 주르륵. 이런 내 모습에 예진이는 당황하는 듯싶었지만 잠시 후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괜찮으면 내가 반찬 먹여 줄까?" 허억! 내성적인 예진이의 파격적인 제안. 이, 이건 하늘이 내려 주신 생일선물이다. 그렇다. 이번에는 절대 차 버리면 안 된다. 이 기회를! 난 승낙을 하려고 했지만……. 찌릿. 갑자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 서서히 고개를 돌리자 민혜와 나래 누나, 그리고 민영이의 모습이 보였다. 민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가야겠네?" "아니, 같이 먹자." 왠지 민혜가 무서워졌다. 둘만의 생일은 물 건너갔지만 나름대로 굉장히 즐거웠다. 이렇게 시끌벅적한 생일이 있었던가? 아무래도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있었던 것 같기도……. "파……괴……하겠어." "크윽……!" "왜, 왜 그래?!" "오빠!" "재현아!" "오라버니!" 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자 다가오는 여자들. 난 그런 그녀들에게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갑자기 쓰러졌잖아!" 민혜의 말에 난 애써 웃으면서 답했다. "진짜 괜찮아. 그냥 일시적인 빈혈?" "……." "……." "하하하." 이렇게 웃고는 있지만 방금 전 들려온 한마디. 이번엔 남자의 목소리였다. 모든 것의 파괴를 갈망하는 목소리. "흐으음." 한편, 그 모습을 벽에 기댄 채 바라보던 민호는 약간은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제가 생각한 스토리 중 제일 재미없는 스토리에 당첨되셨네요." -6최고의 보물- "이번만이다!!" 난 소리쳤다. 아마도 이번이 나의 마지막 미션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지금까지 게임 정복을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게임 정복은 삽질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제 내 목표는 이 게임을 지켜 내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내가 아직 초특급 대형 범죄자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흐흑. 어찌 됐든 이번 일을 끝으로 난 이제 일을 안 해도 된다. 나한테 직접거렸던 마이블라스트도 단숨에 밀어 버린다. 물론 베르자니아 님은 내가 직접 상대해야 하는데 아직 나머지 두 명의 현자 못 만났으니 패스. 일단은 나름대로 손쉽게 제거할 수 있는 마이블라스트부터 밀어 버리는 거다. 세계평화를 위해서! 난 정의를 사랑하니까. 크흐으음. 아니, 그것보다 지금 내가 이렇게 발작한 이유는 바로 보물 때문이다. 보물. 빛날 보, 많은 물. 그래서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하지는 않으니 진짜 궁금하면 사전 검색을 요하는 바. 뭐가 어쨋든 보물이라는 이름은 듣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보물에도 격차가 있다. 열나게 많은 보물도 있고 적은 양의 보물도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노리는 건……. "빅히트 베리베리 굿 보물!" 그렇다. 열나게 많은 정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양의 보석이다. 민호의 말에 의하면 현실에서 시가 약 1,000억에 달하는 보물이란다. 1,000억. 헉!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짜릿해지는 그런 액수다. 그리고 나의 이 저주받은 삶을 순식간에 아름다운 삶으로 변경해 줄 것 같은 느낌도 마구 든다. 아니, 해 줄 거다. 1,000억이라면! 모든 게 해피앤딩? 미리 김칫국부터 마시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보석들을 찾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난 이번 일에 올인 할 작정이다. 그만큼 빅히트다. 물론 헛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봤지만 그럴 확률은 희막하다. 왜냐고? 그건 바로……. "미개척지 대륙!" 그렇다. 지금 우리가 갈 곳은 아직 개척도 안 된 딴 동네였다. 그러니 그런 동네에 이런 특별 금액의 보물이 몰려 있는 센스는 당연한 것. 그리고 그 냄새를 맡고 수천 명이나 되는 강자들이 미개척지 대륙을 향해 몰려가고 있었다. 아, 이 얼마나 전율이 느껴지는가? "민호, 우리 배는?" 일단 바다를 건너야 하는 관계로 배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 질문에 민호는 손으로 한쪽으로 가리켰다. 곧 민호가 가리킨 곳으 바라본 난, "허억!"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에 정박한 배 중에 제일 크다. 거의 몇 톤에 달하는 크기? 그만큼 압도적이다. 난 당장 민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너, 너 또 설마……." "대출 안 했습니다." "그럼 훔쳤냐?" "아뇨." "……." 난 왜 저 자식이 하는 행동은 뭐든 순수하게 볼 수 없는 걸까? 민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돈 벌 일을 준비해 놨습니다." "엥?" 저런 커다란 베를 빌리거나 사놓고 돈을 벌다니? 하지만 민호 님의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이번에 형님과 저, 이리스 양이 잡일부로 들어가기로 했거든요." "……." "……." 나의 폴리모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번 대작전에는 이리스만이 동행한 상태였다. "……잡일부?" "네." "밥도 주고, 잠도 재워 주고, 배도 태워 주죠." "……." 즉, 저 커다란 배는 우리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가 일할 장소였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공짜로 다 때우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 같기는 한데. "자유롭지가 않아." 그렇다.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자유로움이 필수인데, 잡일부면 일하느라 만날 배에서 묶여 있는 게 사실. 그리고 배의 주인이 가고자 하는 데로 가야지 내가 가고 싶은 데로는 못 간다. 민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예산이 없습니다." "……." "지난번에 성을 점령당하면서 예산 거의 다 날아간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건 알고 있다. 빌어먹을 이상한 자식이 성을 점령하더니 오리데오콘으로 만든 골렘을 보냈고, 그 덕택에 자금 다 날아가셨다. 그리고 중요한 건, "네놈도 원인이잖아!" "……?" "저번에……으윽!" 생각하지 뒷목이 당긴다.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로, 여자아이를 고용해 자신을 존경하는 역할을 시키고 600만 원 방출. 생각만으로도 고혈압이! "형님도 하고 싶으십니까?" "……." "그럼 다음에 돈 생기면……." "그런 짓거리 다시 한 번 하면 묻어 버려 줄께." 나는 싱긋 웃었다. 그러자 민호 군도 웃으면서 말한다. "주의하겠습니다." 역시나 배의 크기만큼이나 인부들이나 물품, 그리고 고용된 용병들이 상당히 많았다. 아무래도 미개척지로 가다 보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유도 있겠고, 언제 갑자기 저 많은 배들 중 하나가 공격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이란 돈에 눈이 멀면 보이는 게 없는 법이니까. "형님." "왜?" 난 잡부에게 지급하는 허름한 옷을 입고 썩 기분 좋지 않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자 어느새 나랑 같은 옷을 입은 민호가 다가와 말했다. "장악하죠." "……." "형님의 무력이라면 여기 그냥 털어 버릴 수 있습니다. "됐어." "편하게 가고 싶지 않습니까?" "민호 군, 난 이제 여자친구도 있어. 더 이상 그런 악행은 저지르고 싶지 않아." "그게 마음대로 될까요?" "……." "형님은 지금부터 이 배를 털 겁니다. 제가 숫자를...." 퍼억! 난 그대로 민호의 뒤통수를 갈기고 녀석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상한 짓 작작하고, 그런 시간에 일이나 하렴. 아, 그리고 이리스는 하늘에서 따라오고 있는 거지?" "네." 이리스가 여기서 잡부로 일하는 건 내가 용납 못한다. 그래서 플라이 마법으로 뒤따라오라고 한 것이다. 역시 청소한 뒤에는 상큼함이……안 밀려오네. 절망감이 밀려온다. 지금 내게 배정된 건 일명 청소. 세세하게 들어가자면 밀대로 바닦을 닦는 작업이다. 하지만 얼마나 넓은지 끝이 보이지도 않는 배. 젠장. "야, 이민호! 얼마나 했어?" 나는 나와 같은 구역을 맡은 민호에게 소리쳤다. "1미터요" "……." "정확히는 1미터 30센티미터 한 것 같습니다." "……." 분명 이 일을 시작한지 2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밀대 한번 쓰윽 미는 것보다 더 적은 범위를 닦은 민호. 난 어이가 없어서 성큼성큼 민호에게 향했다. 그곳에서 민호는 이미 밀대를 저쪽에 던져 놓은 채 한가하게 바닥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난 황당한 어조로 물었다. "너 뭐 하냐?" "독서 중입니다." "……." 야설 읽는 것도 독서에 포함되기는 하니 패스하고 지금 중요한 건……. "일은?" "전 소중하니까요." "……." "그래서 안 하고 있습니다." 넌 소중하고 난 안 소중하냐, 이 자식아!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입누로 고용된 주제에 자기 소중하다고 인 안 하고 있다니, 뭐 이런! "형님도 그냥 노시죠?" "너 장난쳐? 나중에 검사하러 온다고!" "훗, 순진하군요." "……?" 내가 좀 한 순진 하기는 하지만 직접 그런 말을 들으니 쑥스럽다. ……뭐야, 이 분위기는. 민호의 말이 이어졌다. "검사하는 사람이 오면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죠." "……." "그럼 됩니다." 너, 단단히 미쳤니? 점사하러 온 사람이 왜 청소 안 했어! 그러면 대화 좀 하죠, 그러면 되니? 이 자식, 점점 왜 이래! 그때였다. 진짜 일이 터진 건. "이게 뭐야! 중간점검 하러 왔는데 둘 다 뭐하는 짓이야!" "……." 때마침, 보는 것만으로도 깐깐 그 자체인 아저씨 한 분이 오신 거다. 허억. 제길, 전 저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요. "너희둘 당장 해고……." 아저씨는 당장 이렇게 말하려던 듯싶었으나……. "뭐라고요?" "……." "다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느새 그분의 뒤로 이동한 민호가 단검으로 그분의 목을 위협하고 있었다. 저 자식은 언제 저기까지 갔냐? 아니, 이게 아니라…… 결론은 또 범죄냐! 민호에게 협박당하는 아저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절대 해오하지 않겠다고요. 하하하." "그런 건가요?" "네, 네. 물론이죠." "그리고 청소, 너무 잘하지 않았나요?" "……." 진짜 저 인간, 뻔뻔해도 어떻게 저 정도로 뻔뻔할 수 있는거냐. 한눈에 봐도 정말 더러운데 너무 잘했다고 강요하다니. 하지만 말보다 칼이 먼저였을까? "그렇군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요." "네, 넵." "그리고 이 일은 조용히 넘어가 주시면 좋겠군요. 후후후" "무, 물론이죠." 민호의 음침한 미소에 완전 가 버리셨다. 정말 저 자식은 협박의 지존이다, 지존. 사흘째. 맏은 구역 청소 안 한 지 사흘때였고, 또한 출발한 지도 사흘째였다. 민호의 활약(?)에 힘입어 나 역시 청소를 때려치웠다. 어차피 검사하러 오지도 않는데 열심히 할 정도로 열정적이진 않으니까. 그 시간에 낮잠 자고 이리스와 대화나 하면서 논다. 어떻게 보면 나도 민호라는 놈과 똑같은 놈일지도. 크오옥. "고, 공격이다!" "해적선이다!" "공격 태세를 갖추어라!" "자신의 자리를 사수해라!" 나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열심히 난리치시는 분들. 난 하품을 쩌억 하며 말했다. "시끄럽겠다." "그렇겠죠." 새삼 말하는데 우리는 엄연히 잡부들이다. 전투에 참여하라고 고용된 건 아니라는 뜻. 그러니, 우리 구역이나 잘 지키고 있으면 된다. "저기, 민호 군." "네." 여전히 독서 삼매경에 빠진 채 민호가 대꾸했다. "이 배에서 언제 내림?" "글쎄요." "……." "미개척 대륙을 찾는 만큼 꽤나 오래 걸리겠죠." "……그러냐?" "그렇죠." "……." 그리고 민호는 다시 독서에 임하신다. 콰아앙! "저, 적이!" "아악!" "대포 준비!" "발사해라!" "해적들을 몰살시켜라!" 역시나 민호와 나와는 달리 저쪽은 상당히 시끄러웠다. 그순가느 내 눈에 보이는 배 몇 척. 그 배들이 지금, 우리가 맡은 구역을 향해 직선으로 다가오고 계신다. 그리고 그런 본 난, "즐!" 해일을 일으켜서 그대로 다 엎어 버렸다. 개인적으로, 사색을 방해하는 건 직색이니까 말이다. 난 약간의 도움을 줬다. 난 착하니까. ……왜 내가 이런 말만 하면 급속냄동이 되는 거냐? 응? 진짜 모르겠다. 뭐, 어찌 됐든 나의 모둠으로 해적선 20여 척이 그대로 파도에 휩쓸려 가 버렸다. 그걸 본 사람들이 외쳤다. "신이 이 배를 보호해 주고 있어!" "우리 신한테 선택받은 거야?" "아아아!" "신이 우리를 보호한다!" "우리는 무적이다" 저 사람들, 신의 진면목을 못 봐서 그렇지, 그 신이라는 분이 이상한 야설이나 만들었다는 걸 알면 꽤 충격일 것이다. 어쨋든 난 사람들이 착각을 하든 말든 관심을 끈 채 계속해서.... 놀았다. 난파……. "시, 신의 저주다!" "으아악!" "어, 어떻개 이런 일이!" "말도 안 돼!" ....정말 말이 안 된다. 배에 정착된 대포가 이물질로 인해 갑자기 안에서 터져 버리는 기이한 사태 발생.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었다. 터진 파편이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도 화약창고로 향했고 그런 다음 이 모양이다. "……." "……." 민호와 난 부서진 나뭇조각에 몸을 기댄 채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괜히 미안해진다?" "미안해야죠." "……." "분명 형님의 저주가 작열했을 거라고 봅니다." "아니거든?" 난 부인했다. 내 저주라니!그런 가 할 줄 몰라! 하지만 민호는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여태까지 형님과 다녀 본 결과, 말도 안 되는 저주가 내려지면 모두 형님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 "게다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어이없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형님밖에 없습니다." "……." "형님은 멋쟁이니까요." 제발, 멋쟁이 아니어도 된다. 이런 저주받은 삶, 정말 싫다! 왜 말도 안 되는 사건이 터지면 다 나랑 관련 있는 거야! 아악! 제발 나 좀 내버려 두라고! 나란 인간은 다르기는 정말 다른가 보다. 어떻게 바다 위에서 두세 시간을 둥둥 떠다니는데 구조가 안 되는 거냐? 아니, 다른 사람들도 보인다면 이런 말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같이 조난당한 그 수많은 사람들 중 아직도 바다 위에 둥둥 떠나니고 있는 건 나랑 민호뿐이었다. 진짜 신기하네? 왜 나랑 민호만 계속 바다 위에서 조난 상태인 걸까. 나의 의문에 민호는 나를 보고 싱긋 웃으며 답했다. "형님은 멋쟁이니까요." "……." 그래, 내가 멋쟁이어서 우리만 제외하고 다들 구출하고 가셨다 보다. 아,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 현상. 무슨 말이 필요하냐? 그때 민호가 말했다. "형님, 추운데요." "……나보고 어쩌라고." "그냥 춥다고요." "개겨." "그러죠." 당연한 말이지만, 차가운 바다 위를 두 시간 동안 동동 떠다니면 춥다. 둘 다 워낙 강인한 체역의 소유자라 이 정도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미 추워서 뒈졌을 게 분명하다. 그만큼 바다의 날씨는 쌀쌀해. 아잉. "재, 재현 님! 민호 님!" "이리스!" 그때, 내 눈에 멀리서 날아오시는 이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우억! 드디어 이리스 님이 우리를 구출하러 오신 거다. 이리스가 미안한 어조로 외쳤다. "갑자기 길을 잃는 바람에 찾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요! 죄송해요!" "아, 아니, 이렇게 구해 주러 온 것만 해도 고마운걸!" 난 이리스의 모습에 눈물이 나왔다. 아. 드디어 구조되는구나. 이런 저주받은 나지만 이리스는 용케도 찾아 오셨구나. 그만큼 저주를 극복했다는 말이지. 하하하. 드디어 나의 저주를 풀어 주시는구나! 하지만, "우어억!" "재현 님!" "이것 참." 나의 비명과 이리스의 당혹한 목소리와 민호의 한숨. 갑자기 바다에 소용돌이가 일어난 것이다. 진짜 갑자기다. 말 그래도 갑자기, 저리 봐도 갑자기. 어떻게 멀쩡하던 바다가 순식간에 소용돌이가 이는 거지? 정말 이건 너무하잖아! 하지만 더욱더 너무한 건. "싫어!!" "즐기죠." 민호의 개소리와 함께, 나와 민호는 그대로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여긴 어디니?" "보면 알 것 같은데요." "……." 그래, 보면 알 것 같다. 주변을 살펴보니 물이 가득했다. 그리고 올 누드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분들. 아..... "남탕이죠." "……." 민호의 말대로 남탕이다. 왜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오니 남탕이니? 민호 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왜 여탕이 아닐까요?" "왜 그걸 나한테 물어." "정말 정말 슬프군요." "……." 진짜 슬퍼진다. 나도 이왕이면 남탕보다는 여탕…… 허억! 무, 무슨 이런 생각을! 차, 차라리 남탕이 낫다. ……절대 이상한 의미는 아니고, 여탕에 떨어졌다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났을 게 뻔하니까. 특히 민호의 돌발행동에 더욱더 난리가 날 확률이 높다. 일단 그것보다. "……." "……." "……." 갑자기 나타난 우리에게 쏠린 남자들의 시선. 여자의 시선이면 환영한다. 하지만 올 누드 남성들의 시선은 심히 거북하다. 난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목욕하세요. 저희들은 이만……." 그 말과 함께 나와 민호는 번개와 같은 속도로 그곳을 뛰쳐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우린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이곳은! "……우리가 출발한 그 동네이군." 우리가 배를 탔던 곳, 테이런 선착장이었다. 그리고 방금 우리가 나온 목욕탕은 그 근처에 있는 목욕탕 이었다. 우어어. "이걸로 저희는 며칠간 열심히 삽질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 "역시 형님, 킹왕짱!" "……." ……말을 못하겠다. 민호가 한 '삽질' 이라는 말. 누구 때문에 일어난 것이지 잘 알기에 말이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아! 난 짜릿한 남자니까! 난 그렇게 다짐하면서, 근처에 버려져 있던 낡은 배로 향했다. 큰 배를 탔는데도 그 모양이라면 이번에는 버려진 낡은 배가 안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 "……." 출발한 지 2분도 안 되어 가라앉은 배. 또다시 그 밑에 생긴 소용돌이, 다시 빨려 들어가는 우리들. 즐이다! "……." "형님, 포기하시죠." "……." "벌써 열네 번이나 시도했습니다." "그러니?" "네. 그리고 모두 열네 번 소용돌이에 휘말려, 남탕에만 열네 번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여탕도 아니고 남탕에만요." "……." "왜 남탕에만 떨어지는 겁니까?" ……그걸 나한테 물어봤자 답이 나올 거라 생각하냐? 난 격렬히 흥분하시는 민호 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고? 나도 모르니까. 솔직히 말해서, 열네 번이나 남자들의 나체를 구경하는 것도 고역이다. 소용돌이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재미라도 있지 남탕 구경은 이거 뭐. 문득 민호가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던지는 한 마디! "때려치워야 할 것 같습니다." "……." "형님의 저주가 있는 이상 절대 불가능할 거라고 사료됩니다. 민호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민호의 말대로 나의 저주가 있는 이상 이 바다를 건너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는 걸,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저기에 보물이 있는 거군." 날 이렇게 방해하는 걸로 봐서는 확실히 저기에 보물은 있었다. 1,000억 정도의 보물이..... 아악! 알면서도 가지 못하는 이 심정, 누가 이해하랴! 한 방에 모든 걸 끝내려는 나의 야무진 생각은 열네 번의 남탕 방문과 함께 종료했다. 흑. -7가제- 사람을 한 방을 노리면 안 된다.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 성실하게 일하다 보면 그에 맞는 대가를 받은 거다. 절대 한 방만 노리는 건 좋지 않다. 내가 실패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안 좋다는 거다. 그래, 안 좋아! 안 좋아! 안 좋아! 한 방을 노리는 건 짐승이야! 그래, 짐승이라구! "……."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참으로 내 자신이 비참해 보인다. 흐흐흑. 이게 뭐야! 보물 찾으러 갔다가 열네 번이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남탕으로 떨어지는 건! 한두 번이면 말도 안 해. 하지만 무려 열네 번이다. 이건 절대 우연히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날 수 없는 현상. 오직 나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아우우웅!" "재현아?" "아우웅!!" "저, 저기……." "허억!." 고독한 늑대의 울음소리를 내느라 나의 천사 예진이의 부름에 뒤늦게 반응하고 말았다. 나는 다급히 예진이를 보며 말했다. "미, 미안." "아니, 미안까지야……." "……." "……." 그리고 이상한 침묵. 아…… 내가 좀 더 말을 잘했다면 이런 이상한 분위기는 안 만들 수 있는 건데! 이상하게 예진이 앞에만 서면 떨려서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분명 우리 둘은 사귀는 사이고 현재 엄청나게(?) 진행해서 손까지 잡은 상태다. 그런데도 이렇게 떨리다니! 으윽. 그때 예진이의 조심스러운 말이 들려왔다. "저…… 내가 알기로 재현이가 빚이 좀 있다고……." "허억." 그 말에 난 깜짝 놀랐다. 왜냐고? 그 미묘미묘한 상황이 떠올랐다고나 할까? 한 남자에게 어마어마한 금액의 빚이 있어서 그걸 보고 기겁한 연인이 당장 헤어지자고 말하는 스토리. 난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내, 내가 어떻게서든 다 갚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 "그러니 날 버리지 말아 줘!" "……." 뭔가 좀 비참해 보이기는 하지만 예진이가 내 곁을 떠난다면 견딜 수 없을 거야! 그러나 이어지는 예진의 말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재현이를 버리다니. 난 그런 게 아니라…… 가게 하나 차려서 재현이의 빚을 갚으면 어떨가 해서……." "으응?" "모두랑 얘기해 봤는데 차라리 장사를 해서 그 돈으로 재현이의 빚을 갚는 게 좋겠다고……." "……!" 허억! 한마디로, 나의 천사가 나의 빚을 위해서 일을 하겠다고? 그것도 다른 불들도 모두 찬성? 성의는 고맙다. 하지만 받아 줄 수는 없다. 아무리 내가 무능력한 남자라 하더라도 예진이와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차라리 내가 좀 더 부지런하게 일하는 게 맘이 편할 것이다. "안 될까? 나 재현이한테 도움이 되고 싶을걸." "……." 예진이가 나를 바라본다. 아아, 천사의 눈빛이다! 하지만 그녀가 고생하는 건 진짜 싫은데. "안 돼?" 다시금 내게 허락을 구하듯 묻는 예진디. 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예진이가 말하는 건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아, 알았어. 하지만 무리하지 마, 절대!" "응!" 베시시 웃으면서 대답하는 예진 꺄아악!! ……자중하겠다. 일면 장사 프로젝트. 얼굴이 알려져서는 안 되는 민혜와 나래 누나, 민영은 주방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요리를 잘하는 예진이도 주방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청룡, 현무, 이리스는 서빙 담당. 에리아스도 넣고 싶었으나 까딱하다 남자 손님이 다이 하시면 곤란한 관계로 패스. 그래서 그냥 주방으로 돌리기로 했다. 민호는 잡무를 당담하고, 나느 폴리모프 한 뒤 카운터를 보기로 했다. 완벽해! 완벽해! 우헤헤! 그 순간 들려오는 민호의 목소리. "형님, 가게를 구했습니다." "오오!" 가게를 구했단다. 사실 우리가 좀 예산이 없다. 아니, 거의 없다. 즉 다시 말하면 거지. 그러다 보니 상당히 적은 예산으로 가게를 내야 했는데 이게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민호는 용케도 그 적은 예산으로 가게 자리를 구한 것이다. 난 그런 민호를 보며 기대 어린 말투로 물었다. "쓸 말한 거지?" "물론입니다. 무지무지 엄청나게 멋진 분위기죠." "오오! 그 돈으로?" "네, 보시면 눈물을 흘리실 겁니다." "……!" 난 그 말에 심장이 더 거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번에는 정말 잘해 보자. 그래서 빚도 다 갚고 재벌이 되는 거다. 한 방을 노리기보다는 이렇게 성실하게 일해서 차근차근 빚을 갚자. 민호의 말대로 난 눈물을 흘렸다. "……." 물론 지금 내가 감동의 눈물을 흘릴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난 뒤에 따라오는 민호를 보며 물었다. "이게 뭐니?" "가게입니다." "가게구나." "가게 맞습니다." 확실히 가게는 맞다. 대략 30편 정도 되어 보이는 홀에, 15평 정도 되는 주방이 있었다. 제법 넓은 점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자세히 살혀보면... "……."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같이 금이 간 벽과 갈라진 바닥. 금이 조금 간 것도 아니다. 완전, 판타스틱하게(?) 가셨다. 농담 안 하고 지금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금이 가셨다는 말. 한편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을 본 민호가 입을 열었다. "15골드 내에서 나름대로 최고로 좋은 가게를 섭외했습니다." "……." 사실 우리 재산을 탈탈 털어 본 결과 15골드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도 예진이가 갖고 있던 돈이 많았다. 난 민호에게 5골드를 쥐어 주면서 가게 자리를 알아보라고 했고, 결국 지금 내 앞에 판타스틱한 가게 자리가 나타난 것이다. 규모는 대만족이지만 크기만 하면 뭐 하나? 가게가 무너지면 바로 게임 종료인데. 게다가 1초 안에 무너질 것 같은 이런 가게에 누가 오긴 오는 거냐? 민호 님이 말하였다. "요즘은 평범한 컨셉으로는 성골할 수 없습니다. 모두들 색다른 걸 좋아하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무너지기 직전의 짜릿함을 느끼게 해 주는 컨셉으로 설정했다 하죠." "……." "이래 보여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이죠." "……." 한마디로, 손님들에게 사기를 치자는 거냐? 실제로 무너져 가는 가게를, 모습만 그럴 뿐 실제로는 되게 안전하다고 뻥을 치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래서는 열심히 일하는 의미가 없잖아! 그때 민호가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이 정도는 애교죠." "……."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가게를 정상적인 가게라고 사기 치는 게 애교하고 당당히 말하신다. 그래, 네놈한테는 애교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그런 애교 사양한다. 이번에는 진짜 정직하게 돈 벌 거다. 친구들이 그렇게 성심을 다해 내 빚을 갚아 주려고 노력하는데 여기서 저 사악한 민호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또다시 타락할 수는 없다. 이번에야말로 정직하게……! "정직하게 속이죠." "……" 정직하게 속이는 건 어떻게 속이는 거? 참으로, 말하는 거 보면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온다. 민호 말은 그냥 생무시하고 지금부터 이 가게를 수리한 방법을.... 빠직. "……." "잘못…… 들은 거겠지?" "제 귀에는 빠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나도 그런 소리 들었는데? 제대로 들었다는 말이냐? 기쁘다. ……아니, 이게 아니지. 빠지직. 우르르! "아아악!!" 다음 순간, 죽죽 그어진 금들이 쩍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가게는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난 정말했다. "……이건 아니잖아!" "역시 형님의 저주가……." "이 자식아, 이게 내 저주냐? 네놈이 이상한 가게를 구해 온 거잖아!" 지가 저딴 가게 자리 구해 와 놓고 가게가 완전히 무너지자 또다시 내 저주 타령하고 있다. 분명 내 저주가 작열했는지 모른다. 절대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일은 100프로 다 내 탓은 아니다. 민호 녀석이 저런 거지 같은 가게 자리를 구해 온 게 일단은 제1원인이었다. 하지만 민호의 대답은 여전했다. "형님의 저주입니다." "……." "전 잘못 없습니다." "……." "형님의 저주를 인정하시죠." 계속 내 저주 타령만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민호의 억지에도 당당하게 반박할 수 없었다. 나란 인간 자체가 워낙 재앙 덩어리다 보니, 그리고 전적이 화려하다 보니 기가 착 죽었다고 해야 하나? "결론은 형님 잘못~." "……." "아무리 봐도 요리 봐도 조리 봐도 형님의 저주!" "……." "형님은 킹왕짱!" 어느새 나의 저주로 굳어 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난 고개를 저었다. 분명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었던 가게다. 절대 내 저주가 작열했지 때문이 아니다. 그래, 그런 거야! "형님의 왕저주……." 퍼억! 나는 계속해서 저주 타령을 하던 민호의 뒤통수를 한번 갈긴 뒤 싱긋 웃으며 말했다. "누구 잘못?" "제 잘못인 것 같군요." "정말?" "정말입니다. 완전 제 잘못입니다." "그렇구나." "네, 그렇죠. 제 잘못이죠." 민호 군은 결국 인정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절대 내가 오른손 주먹을 꽉 쥐고 있어서는 아니고, 스스로 자기 잘못을 깨달은 것이다. 사실 내가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이 건물의 위치. 워낙 판타스틱한 가게의 자태에 말하는 것 잊어버렸는데, 이곳은 마을 안에서도 초 외각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 건물이란 이것 딱 하나다. 참고로, 건물이 우르르 다 무너지도록 주위에 사람 한 명 안 보이신다. 그만큼 사람들이 사는 곳과 거리가 있다는 거지. 이런 곳에서 장사를 하겠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잃게 가게까지 붕괴해 버렸으니.....미래가 없다. 나름대로 정말 정직하게 일하려고 했었는데! "어쩔 수 없습니다. 이 기회를 살려서 야외 카페로 전향하죠." "……." "탁 트인 공간, 멋지지 않습니까?" 탁 트인 공간……. 정말 탁 트였다. 그 탁 트인 공간으로 보이는 건, 여기에 건물이 있었음을 증명할 만한 벽돌의 잔재와 휑하다 못해 확 트여서 슬퍼 보이기까지 하는 공간. 이런 곳에서 야외 카페? 슬픈 카페겠지. 야외 카페는 개뿔. 하지만, 남들에게는 슬프다 못해 눈물이 철철 흐를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이제는 담담하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인간의 적응력이라는 게냐? 개인적으로 이런 적응력은 사양하고 싶다. 그때, 민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을 데려와서 건물을 재건할까요?" "……?" 난 민호의 말에 지그시 녀석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의 말대로 사람들이 건물의 재건을 도와준다면 정말 땡잡는 것이다. 하지만.... "……도와줄 리가 없잖아!" 그렇다. 사람들이 할 짓이 없어 이런 외곽에 와서 일을 하겠는가? 나라도 안 한다. 이런 내 걱정을 알아차렸는지 민호가 말했다. "저에게 엄청난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오늘 안에 재건해 드리겠습니다." 너무나도 자신만만한 민호의 모습. 왠지 모르게 영 찜찜하다. -8민호의 약점- "……." 난 경악했다. 민호는 장담했던 대로, 약 1시간 만에 1,000명이나 되는 마을 사람들을 끌고 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마치 버서커처럼 눈을 붉힌 채 마구 일을 하고 있다. 난 황당한 어조로 민호에게 물었다. "무, 무슨 마법을 부린 거냐?" "별거 안 했습니다." "……?" "열심히 일하면 형님의 키스를 선사한다고 했죠." 그 말에 잠시 내 뇌 기능이 정지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구라라 판정 내렸다. 왜냐고? 저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남자의 키스를 원할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저 중에는 여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구라죠." "……." "일명, 말도 안 되는 개소리." "……." 알고 있어. 인마, 그냥 말해 본 거야. 정말 내 키스를 원해서 왔다면 저 사람들 단단히 미친 것이고, 어쨌거나 난 죽어도 키스해 줄 용의가 없다. 그나저나, 그럼 무슨 방법으로 저 사람들을? 그 순간 어느새 무언가는 꺼내는 민호. 그리고 그걸 본 나는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간단하게 말해. 잡가지 머리에서 화로가 연결되면서 답이 나왔다는 거? '뜨거운 커피' 라는 제목의 책이. 민호의 말이 이어졌다. "뭐 이 소설을 조금 읽어 주고, 제게 협조만 해 준다면 나머지를 들려준다고 했습니다." "……." "그러자 다들 저렇게 몰려오셨죠." 그러니까 저렇게 버서커가 된 이유가, '뜨거운 커피' 라는 야석책을 읽기 위해서라는 건가? 정말 어이가 없다. 단지 야설책의 뒤의 내용을 알기 위해 저렇게 미친 듯이 몰려오다니. 진짜 답 안 나온다. 순식간에 건물 한 채가 지어졌다. 뭔 제트기 공사냐? 모든 공사가 끝나가 사람들은 헉헉대면서도 민호에게 몰려갔다. 민호는 그런 사람들을 성자처럼 맞았다. 이런 미친. 도대체 왜 야설 따위에 저러는 걸까? 아무리 환상 야설이라지만. 아니, 잘 생각해 보면, "저 소설이 그렇게 미치도록 매력적?" 혹시 저 책에는 사람들 끌어당기는 마약과 같은 요소가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저렇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저거 값 좀 나오겠는데?"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상당히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대략 몇십억, 아니 몇백억일지도. 후르르 쩝쩝(?). "뭐, 뭐 하시는 거 겁니까?" "……." 그때 사람들을 전도(?)하고 있떤 민호 군이 '뜨거운 커피'에 입맛(?)을 다시는 나를 보고 기겁했다. 난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님." "방금, 엄청난 탐욕의 시선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러면서 시선은 또 나도 모르게 그 책을 향했다. '뜨거운 커피' 에. 갖고 싶다, 아니 팔고 싶다. 저것만 팔면 모든 게……. "혀, 형님! 설마!" "……." 나의 순수한(?) 의도를 파악했는지 경악하는 민호 군. 그는 손에 들린 뜨러운 커피를 황급히 끌어안았다. "제, 제 생명을 노리는?" "저기, 민호야." "……?" "이왕 들킨 거 솔직하게 말할게. 그거 하나 팔면 우리는 모든 게 할렐루야야! 괜히 가게 구해서 장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 우리가 만나고 처음으로 말문을 닫은 민호 군. 항상 뺀질뺀질 말만 잘하던 민호가 침묵을 지킨다. 이건 역사에 길이 남을 참으로 신비한 미스터리지만 일단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난 천천히 민호에게 다가가면서 최대한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넘겨." 미소는 자항갰지만 말투는 나도 모르게 강제적이다. 이런 내 말에 민호는 비장한 어조로 대답했다. "못 넘깁니다." "허허." "저의 혼입니다." "이런, 이런." 난 고개를 저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랐건만. 허허허. 그때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는 민호와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다른 사람지는 마을 사람들. 난 단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거 하나면 모든게 해피해피야." "죽어도 못 드립니다." "흐으음." 민호는 더욱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줄 수 없다고 말한다. 남들이 보면 열혈투사인 줄 알겠다. 그만큼 그는 비장함 그 자체. 하지만 그렇다고 나도 포기할 수는 없다. 저거 한 권이면 모든 게 만사 오케이인 것디아. 난 민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민호야." "형님! 정말 이러시면 안 됩니다!" "민호야, 넘겨라." "못 넘깁니다." "허허허." "형님,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러긴. 다 먹고 살자는 게 아니더냐? 어차피 그 소설의 내용은 다 기억하고 있는 걸로 안다. 이렇게 된 바에 팔아서 우리 팔자 좀 펴자." "이, 이건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더욱더 강하게 책을 끌어아는 민호 군. 뭔가 엄청나게 중요한 책이었다면 책을 지키려는 저 모습을 멋지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걸 야설이다. 뭐 어찌 됐든 이걸로 더 이상 평화협정은 불가능하다. 그럼 무력 동원. 파앗! 다음 순간, 마치 바람같이 튀어 버리는 민호 군.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난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민호 포획 작전 실행! 흐으음. 민호를 포획하는 과정에서 약간(?) 거칠게 다루다 보니, 방금 전 완성한 가게는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뭐 별로 상관없다. 어차피 지금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카페가 아니고 오직 민호의 '뜨거운 커피'뿐이다. 저거 한 권이면 굳이 카페를 운영할 필요도 없으니까. 크크크. "혀, 형님! 왜 이렇게 타락하신 건가요!" 나무에 꽁꽁 묶인 채, 민호가 슬픈 눈빌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옜날 같았으면 타락이라는 말에 꿈틀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꿈틀거리지도 않는다. 그만큼 이제 나도 좀 순진(?)해진 건가? 크흐으음. 뭐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민호야, 어서 내놓거라." "못 내놓습니다." "진짜 이럴 거냐?" "차라리 저를 죽이십시오!" "이런, 이런." 자기의 못숨까지 걸어 버리는 민호 군. 정말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감동할 장면이다. 하지만 난 감동은커녕 웃음만 나온다. 그나저나 이 자식은 언제 뜨거운 커피를 빼돌린 거냐?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갖고 있떤 뜨거운 커피가 사라진 것이다. 수색영장(?)을 발부해서 온몸을 뒤졌건만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분명 부피가 있는 책이라 숨기는 일도 쉬는 게 아닐 텐데 말이다. 어찌 됐든 난 다시 민호를 향해 나름 자상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일단은 협박보다 화유를 할 작정이었다. "어서 불렴. 좋은 말 할 때." "나쁜 말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전 못 드립니다." "……." "그리고 언제 좋은 말 하신 적이라도 있습니까?" 빠직. 이 자식이, 나름대로 좋은 말로 하려고 했거만 자꾸 건드네. 하아하아. 절대 이상한 신음 소리는 아니니 오해 말도록. 내가 그렇게 자상하게(?) 배려하고 또 배려했는데 이 자식은 협조하지 않는단다. 뭐 그렇다면 남은 건.... "저를 죽도록 고문하셔도 안 뱉습니다." 쯧. 미안하지만 고문 같은 건 안 한다. 네가 얼마나 질긴 놈인지 잘 아니까. 무슨, 힐이 오토로 시전되는 듯 경이적인 재생 속도, 난 잘 알고 있따. 그래서 육체적으로 타격을 주는 건 무리라고 보고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건 바로……. "네놈의 정신을 황폐화시켜 주지." "전 정식력 강합니다." 그래. 강하겠지. 외계인조차도 무찌르고 이상한 도플갱어도 즉사시키는 너의 미친 정식력을 누가 이기랴? 하지만 내가 말한 건 그런 의미가 아니다. 사실, 이건 정말 힘들게 알아냈다. 민호게데고 최대의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그건 바로! "짜잔!" "……허억!" 내 손에 쥐어진 한 권의 책을 보고 기겁하는 민호 군. 흐흐흐. 역시 나의 정보다 틀리지 않았군. 지금 내 손에 들린 책 제목을 굳이 밝히자면, '금단의 사랑, 민호의 경제의 뜨거운 사랑' 이었다. 운 좋게도 제목에 민호의 이름이 들어간 것. 한마디로, 그를 더욱 고문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이 책에는 게이들이 등장한다. 좋은 말로 풀이하면, 야오이물이다. 야오이물. 레즈물과 함께 분휴된 금단의 소설. 레즈비언 물이라면, 미인이 등장할 경우 그래도 봐 줄 용의가 조금은 있다. 하지만 이 야오이물 같은 경우는 아무리 등장인물이 초미남들이라 해도 죽어도 보고 싶지 않다. 죽어도 못 본다. 어찌 됐든 민호의 최대 약점은 야오이물이었던 것이다. 크크크. "어, 어떻게 약점을!" "민영이한테 조금 조언을 얻었지." "……!" 그렇다. 이 민호의 궁극의 약점을 가르쳐 준 건 민영 양. 자신의 오빠가 야오이물이라면 거의 절망적으로 싫더한다는 사실을 캡처해 낸 것이다. 물론 그 정보를 얻는 대가로 예진이에게 살짝 미안한 일을 저질렀다. 물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습적으로……. 흐흣. 이 점에 대해서는 넘어가고, 난 그 책을 민호의 앞에 들이댔다. "좋아?" "아악!" "좋아?" "아아악!" "좋아?!" "크아악! 그만 하십시오!" "히히히." "형님, 제발!" "헤헤헤." 자, 잠깐 민호가 처음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게 나도 모르게 희열이……. 요새 나도 꽤 정상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많이 미쳐 있었다. 털썩. 그때 민호가 갑자기 고개를 푸욱 숙이더니 그대로 기적해 버리신다. 단지 야오이물을 봤다는 이유로. 내용도 안 보고 단지 책에 쓰여 있는 제목만 보고. 내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효과 짱인데!" 드디어 외계생물체를 무찌를 최첨단 과학무지(?)가 발견된 순간이냐? 그렇다고 나한테 노벨상 주면 쑬스러운데. 크크크. "으음." 한동안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떤 나에게 들려오는 민호의 신음 소리." 그 소리에 나는 제법 여유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깨어났냐?" "으윽." "흐흐." 왠지, 참 갑작스럽게 영화 속 악당이 된 느낌이다. 내가 악당이고, 저기 민호가 선량한 주인공 같다. 하지만 뭐 보는 사람도 없으니 상관없으려나? 난 다시 잔뜩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 "이제야 불 마음이 들었나?" "……." 분명 기절하기 전까지만 해도 당당하게 개겼던 민호 님이었으나 지금은 당당히 개기지도 못한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는 뜻? 나는 다시 한 번 그데게 물었다. "다시 묻지. 그것은 어디 있지?" "……." "난 인내심이 많지 않아." 그 순간. 민호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씀…… 못 드립니다." "허허." 오호라? 아 자식, 생각 외로 끈질긴걸?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속으로 피식 웃으면서 그 최첨단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민호 앞으로 들이밀었다. 잠시 후, "으으악!" "불어!" "크아악! 혀, 형님!" "어서 불라고! 그 책은 어디 있는 게냐!" "으악! 그, 그만!!" "으하하! 불란 말이야!" "크억!" 털썩. 다시 기절해 버리는 민호. 정말 독종이군.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불지 않다니. 뭐 그렇다면 이제 2단계를 실행해야지. "……." 50년이나 늙은 모습으로 깨어나는 민호. 난 그런 민호는 향해 음침한 미소와 함께 물었다. "좋은 꿈 꿨는가?" "……." "침묵은 긍정이라고 하지." "……." 밴질이 대마왕 민호 군의 입술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입은 정식적 충격은 대충 할 수 있었다.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뭐 저놈이 날 엿먹인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다. 그리고 그 책만 있으면 모든 게 해피 앤딩이란 말이다. 난 말할 의지조차도 잃어버린 듯한 민호에게 다가갔다. "불 마음은 들지 않는 게냐? "……." "이런 나도 정말 괴옵다." "……." "그냥 뜨러운 커피를 숨긴 장소만 불면 넌 자유로워지는거다." 흔들흔들. 그때 난 보았다. 민호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하지만……. "못 드립니다." "....." 어느새 다시 굳은 눈빛으로 돌아오더니 개기고 있다. 하하. 뭐 어쩔 수 없지. 네가 선택한 길이 그 길이라면 말이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2단계 작전에 돌입했다. 그건 바로……. 처억. "……!" 그대로 책을 펼친 것이다. 이제 그 책의 내용까지도 모두 보여 주려는 나의 순수한 의도! 하지만 믾오는 그냥 눈을 감아 버린다. 뭐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난 펼친 책을 민호의 얼굴에 들이밀고 마구 비비며 외쳤다. "느껴라! 이 책의 영혼을!" "아악!" "하하하!" "아아악!" 눈은 감고 있지만 느껴질 것이다. 이 책의 영혼이 말이다. "아아악! 너무하십니다!" "너무하기는 개뿔!" "아악!!" "하하하!" "아아아!" 내가 조금 악마틱해진 것 같기는 하다만, 뜨거운 커피를 위해 이 정도의 희생은 필요하다. 자자, 어서 불어라! "전 불지 못합니다!" ……민호의 선언. 그 말로 난 깨달았다. 마지막 3단계 작전에 돌입해야 한다는 것을. 한데 그 작전은 실행한 나조차도 정신이 황폐해진 정도로 위험한 작전이다. 하지만 뜨거운 커피를 위해... 희생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긴장은 여태껏 느껴 본 것 중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만큼 이 작전에는 어마어마한 위험요소가 깃들어 있었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내 정신조차도 황폐화할지도 모른다. 그건 바로……. "소설 읽기." 이 야오이물을 읽어 주는 것이다. 솔직히 듣는 입장에서도 미치겠지만 읽는 입장에서도 미친 것이다. 나 역시 민호 녀석처럼 저렇게 발작할 정도는 아니지만 야오이물에 두려움이 가득한 평범한 남자다. 그런데 그것을 직접 읽으려니.... 확실히 고난이도의 미션. 하지만 그것으로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면! 난 그런 각오를 다지며 민영이가 가르펴 준 예의 242페이지를 펼쳤다. 민영이 말로는 여기가 클라이맥스라고 한다. 한마디로 제일 임팩트한 부분이라는 것. 민호에게 읽어 주기 위해서는 일단 그 부분을 미리 탐사(?)해야 하는 관계로 난 비장의 각오를 하며 그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털썩. 장렬하게(?) 기절했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내 입으로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야오이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처음으는 가게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에는 두 남자의 정신적 황폐화만이 남은 비극의 사건으로 종료되었다. -9민호의 존재- 저번 장사 프로젝트 이후 내게 이상한 일이 있이 생겼다. 뭐가 요상할 일이냐고? 요즘 들어, 갑작스럽게 새록새록 솟는 디재스터의 힘. 분명 지난번 3대 현자 중 한 명이 프로아에 의해 업데이트(?) 해서 자연의 힘이 강화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계속해서 조금씩 업데이트 되더니 장사 프로젝트 이후 그 속도가 급격히 빨라 졌다. 가만히 있어도 자연의 힘이 더욱더 친근해지고, 숙련도 오르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하루하루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었다. "이건 뭔 시추에이션?" 나머리 2대 현자를 만나야만 모든 힘을 갖게 될 줄 알았던 내게는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왜 가만히 있는데 자연의 힘이 업데이트 되는 거지?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어서? 응? 설마 게이물을 본 부작용? 심심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번 해 봤다. "이제 서서히 시작인가요?" 민호는 예측하고 있었다. 이미 3대 현자 중 한 명을 찾아서 그 힘을 얻었다. 그렇데 되자 서서히 동기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처음 다루는 힘이면 모를까, 디재스터의 힘은 그 누구보다도 재현이 많이 다췄던 힘이다. 이렇게 한 번의 동기화만으로 순식간에 모든 힘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두 존재는 반응하는군요. 최대한 그들은 건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역시 형님과 이어진 거라고 할까요?" 어둠만이 짙게 물든 방. 그곳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의 한 남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가 던진 한마디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모든 공격인원들은 디재스터를 향한다." "마, 마스터……!" "내 명은 절대적이다." "잠깐! 이건 아닙니다. 저희들의 목적은 엄연히 게임을 파괴하기 위한...." "이제 그런 건 의미가 없다.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내가 원하는 건 디재스터의 차단." "……." 베리킨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그들은 타 게임에서 고용된 용병과 비슷한 존재다. 그리고 지금의 마스터는 자신들의 리더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진짜 목적은 무시한 채 디재스터에게 눈을 돌리다니. 그것도 잠시, 베리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마스터의 행동은 보고……." 푸직. 그러나 그는 말을 마칠 수 없었다. 어느새 그의 배에 꽂혀 버린 칼. 그는 강하다. 그런 그조차도 이렇게 손쉽게 죽일 정도라니! 베리킨이 피를 줄줄 흘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다, 당신……." "말하려면 해라. 어차피 내가 키운 곳이다." "……." "내 명령이 1쉰위다." "……." "그리고 내 명령은 디재스터의 파멸이다." 마이블라스트, 사실상 여러 게임 업체에서 협동해서 만든 단체다. 그들의 주목적은 게임의 파괴. 그리고 이 게임에서 사람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 그 총책임자가 마이블라스트의 리더 제로안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이제 게임 파괴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그 재현과 민호의 죽음만이 그의 관심 대상이었다. "민호는?" 난 근처에 있던 나래 누나에게, 갑작스럽게 사라진 민호의 행방을 물었다. 그 물음에 나래 누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이 세계를 정리해야 한다면서……." "정리?" "응.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고……." "……." 시간이 다 되다니,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 다음 순가느 나래 누나는 갑자기 기억났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더니 내게 말했다. "아, 맞다. 이 말도 했어. 형님을 위해 그들의 존재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필요 없어졌다고." "……." "……?" "크아악!" "무슨!" "어, 어떻게 네놈이!" "지원을……!" "누구?" 사라지고 있다. 제국조차도 두려워했던 마이블라스트가 말이다. 그 거대한 규모의 단체가 단지 한 남자의 손에 의해 사라지고 있다. 그것도 너무나도 쉽게. 제로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 넌……? "오랜만이죠?" "도, 도대체 무슨……!" 제로안은 믿을 수가 없다. 저자는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남자다. 그리고 두 번째로 증오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무력은.... 아무리 게임 속이라지만 이건 말이 안 된다! 2년 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자신은 항상 1등이었다. 싸움도, 공부도, 운동도 모두. 하지만 그 앞에 나타난 재현. 그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굴욕이라는 단어를 실감하게 해 주었다. 아무리 이기고 싶어 발악해도 그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말 그래도, 넘볼 수 없는 존재라고 할까? 이후, 디재스터의 정체를 안 뒤부터 항상 생각해 왔다. 현실에서 이길 수 없는 존재라면 게임에서라도 이기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은 재현이 아닌, 그 곁에 있는 참모와도 비슷했던 민호라는 남자에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런 힘을 갖게 된 거지!" "글쎄요." "……." "뭐, 궁금하시다면 나중에 시간 날 때 가르쳐 드리죠. 그리고 이렇게 제가 직접 온 이유는, 형님이 직접 상대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 "생각 외로 좀 저질적인 스토리가 되어 버릴 것 같아서... 형님이 귀찮아 하실까 봐 여러분들은 제가 직접 처리하려고요." 따악. 그리고 그 순간, 민호의 손가락이 튕겨졌다. 그와 함께 마이블라스트라는 이름은 그대로 사라졌다. "자, 그럼 이제 두 번째 방해물을 제거하러 가 볼까요?" "너, 넌....?" 베르자니아는 자신의 앞에서 웃고 있는 남자를 보고 경악했다. 분명 알고 있다. 자식의 먹잇감인 디재스터의 옵션(?). 그런 그가, 자신도 숨이 막히는 위압감을 뿜으며 자신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한편 민호는. "본래 제가 힘을 써서는 안 되지만 형님이 귀찮아 하실까봐 떨거지(?)들은 제가 제거하러 온 겁니다." ……제대로 미쳤다. 베르자니아 보고 떨거지라니. 그 누가 그런 망언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민호는 오히려 웃으면서 말하고 있다. 베르자니아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리 말했다. "하하하. 잠깐이나마 위압감을 뿜어낸 건 칭찬해 주지. 하지만, 감히 나를 떨거지라고 하다니. 하하하." "떨거지죠." "……." "상떨거지?" "……." 민호의 말에 그래도 굳어 버린 베르자니아. 그리고 다음 순간, "이놈!" 콰앙……! 시간이 멈추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런 능력 자체는 재미있지만 저한텐 별로 효과적이지 못한 것 같네요." "……!" 베르자니아는 어느새 자신 옆으로 와서 속삭이는 민호를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분명 시간은 멈추었다. 하지만 이 존재는 그런 것조차도 무시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베르다니아 님이 떨어지인 이유 가르쳐 드릴까요?" "……." 이어지는 민호의 한마디. 하지만 베르자니아는 대꾸하지 못했다. 시간의 흐름에 묶인 건 오히려 베르자니아였으니까. 물론 의식은 있다. 하지만 몸과 입은 굳어 있따. "당신이 항상 먹잇감이라고 하시던 분은 당신이라는 존재가 보기도 아까운 존재거든요. 그리고 투신 벨리나크가 임시로 만든 이 세계는 없애겠습니다. 더 이상 형님에게 필요 없을 것 같거든요." "미, 민호 님!" "……." 아포라와 벨린아크의 반응이 엇갈렸다. 아포라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고, 벨리나크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소멸한 줄 알았던 민호다. 하지만, 이 힘은 분명 신이라는 존재들만 사용 가능한 힘. 그리고 그 힘조차도 민호만의 힘이다. "사, 살아 계셨군요." 아포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큼 그녀에게 그의 생존은 너무나도 기쁜 일이었다. 한편 벨리나크는 여전히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원래 알 수 없는 놈이기는 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인간들이 만든 게임에 그분이 사용하던 직업을 부활시키고, 이제는 신의 힘을……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무슨 짓을…….' "……." 난 느꼈다. 어마어마한 힘을. 그 힘이 발생한 지점은 두 군데로, 한 곳을 베르자니아가 사는 그 저질 동네, 그리고 또 한 곳을 아마도 마이블라스트의 본거리고 추측되는 곳.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힘은 인간의 힘이 아니다. 난 생각했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그리고 민호 네놈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거야? 도대체 무엇을…….' 나래 누나가 내게 전해 준 민호의 말을 난 기억하고 있다. 나를 위해서라고, 나라는 존재를 위한 거라고 말이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하지만 물어봤자 대답해 주지는 않겠지. 그리고 민호에 대한 것.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확실하게 알 것 같다. 모든 미궁의 열쇠는 민호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에게 모든 걸 말해 줄 것이다. 때가 온다면 말이다. 그것이 민호를 믿는 나의 마음이다. 그러니 일단 빚이나 갚으면서 민호가 말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10식료품 장사- "아악!!" 난 절망했다. 이건 아니야! 저건 분명 내 작전이었는데! "운도 지지리 없군요." "……." "형님이 버리신(?) 군고구마가 저런 대히트를 치다니." "……." 진짜 말도 안 돼! 저번 일을 기억하는가? 한때 땅거지가 돼서 시작한 군고구마 장사. 필드 위에서 갖은 비웃음을 당하면서 시작했지만 단 하루만에 접어야 했던 그 비극의 군고구마. 사실 난 정말 열심히 군고구마 장사를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떤 분이 고구마 대신 만드라고라를 뽑아 오시는 바람에 모두 기절하고 순식간에 범죄자로 낙인 찍혀 접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박났어……." 아마도 내가 필드 군고구마 장사하는 것을 누가 보고 훔친 게 분명하다. 그건 내가 원조한 말이다! 특허(?) 낼 준비까지 하고 있었는데. "형님은 재수 없음이 하늘을 감동시키는군요." 덥석! 그때 옆에서 깐죽거리는 민호의 멱살을 잡은 나. 그런 후 표정을 왕창 굳히며 말했다. "지금 누구 때문에 그 장사 접었는데! 아앙!" "형님 때문?" "장난해? 네놈 때문이잖아! 고구마 캐 오라 했더니 만드라고라 가져오는 바람에 말아먹었잖아, 이 자식아!" "언제요?" "……맞으면 생각날 기야." "방금 생각났습니다." 시치미를 뚝 때던 민호였지만 내 한마디에 금세 수긍한다. 하지만 할 말은 다 하신다. "근데, 형님. 저건 엄연히 군고구마 장사로 히트 친 거라 보기에는 무린 것 같은데요." "뭔 소리?" "지금 저분은 필드 위를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분들에게 군고구마를 팔고 다른 음식도 겸해 팔아서 부자 된 건데요?" "뭐, 뭔 소리야! 그래도 일단은 군고구마가 들어가잖아!" 그렇다. 필드 돌아다니면서 군고구마를 판 건 내가 시초였다. 이런 내 말에 민호 군이 대꾸했다. "참으로 저질적으로 우기시는군요." "……." "추잡해 보입니다." "크윽." 난 그 말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민호 말대로 조금 추잡스러운 억지인 것 같기는 하다. 필드에서 먼저 장하샜다고 특허(?)라니. 하지만 뭔가 억울한 것도 사실이다. 쳇. 그렇지만 이대로 물러날 내가 아니다. 돈 냄새를 맡았다면 그 냄새를 따라 추격해야 하는 건 인지상정. 난 장렬한 어조로 외쳤다. "자! 이제 붕어빵 장사하러 가자!" 군고구마는 이미 알려졌으니 이제는 붕어빵이다. "……." "……." 나와 민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예 필드 전체에 유저들이나 NPC들이 장사를 나온 것이다. 몬스터들을 견제하기 위해 용벙들까지 끌고 말이다. 그들은 군고구마나 붕어빵, 기타 군것질거리를 잔뜩 가져와서 팔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한마디로, 형님과 같은 생각을 하신 분이 널렸다는 증거죠." "……." "이미 초보다 필드는 장악됐습니다." 그렇다. 초보자들이 다니는 이 곳목은 이미 장악되었다. 그, 그렇다면…….?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돼!" 붕어빵 등 기타 군것질거리를 들고 좀 더 깊숙한 곳으로 파견 나가는 것이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진짜 마지막 전 재산을 털어서 산 리어카에 음식을 싣고 눈을 붉혔다. 그래, 가자! 가는 거야! 중급자 필드 장악. 물론 많은 장사꾼들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액수를 받지는 못할 것 같다. 왜냐고? 라이벌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난 열심히 리어카를 끌고 고렙 사냥터를 지나 초고렙 사냥터로 진입하고 있었다. 리어카를 끌고. 물론 그 과정에선 웬 버러지(?)들이 나타나 방해하기는 했지만 간단하게 밟아 주고 이동하는 중이다. "이거 참, 레벨 1,300에 트윈 오우거가 버러지가 되다니." 민호의 중얼거림은 무시한 채 열심히 진격 중. 사실 고렙 사냥터에도 이렇게 리어카를 끌고 오는 사람은 없다. 그 이유는 묻는다면, 언제 공격할지 모르는 몬스터 덕분이라 말하고 싶다. 장사하러 왔다가 뒤지는 사태가 충분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장사할 바에는 차라리 사냥하는 게 더 효율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점점 깊숙이 들어오자 이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리어카 끄는 분들도. 그저 나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고렙 유저들만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선에도 난 아랑곳하지 않고 진격한다. 초고렙들만 있다는 마의 던전 헬 제라이트로! "도, 도착했어!" 드디어 내 눈에 보이는 이곳. 붉은색 기운으로 감싸여 있는 이곳. 초고렙들도 혼자서는 절대 오기 불가능하다는 헬 제리라이트라는 던전이다. 하지만 난 묵묵히 왔다. 그것도 리어카 끌고! "저, 저것 봐." "설마 여기에서 장사하려고?" "여, 여기까지 리어카 끌고 온 거야?!" "상당히 초고렙?" "근데 왜 리어카 끌고 장사를?" "맞아. 여기서 파티 사냥만 해도 엄청나게 돈을 벌 텐데." 갑작스럽게 헬 제리라이트 던전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나를 보고 수군대는 유저들. 하지만 그대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마의 저주를 말이다. 몬스터나 죽도롭 잡아 봐라. 아이템 하나 나오는지. 내가 정말 아이템만 나온다면 자연의 힘으로 다 쓸어 버려서 재벌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쓸어 봐도 아이템은커녕 찌꺼기도 안 나오는 실정이다. 이런 내 비극을 알리 있겠는가? "저기 파는 것들입니까?" "에이!" "……." 그때, 어느새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초고랩 유저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장사꾼이 되어 있었다. 뭔가 아이러니컬하군. 하지만 관심도는 급상승 중이다. 이런 긴장감 넘쳐흐르는 던전에서 음식을 먹을 수가 있다니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거듭 말하지만 전투를 격렬히 하면 할수록 허기가 지고, 배가 고파지면 전투력이 하락한다. 그런 점 때문이라도 음식은 중요하다. "이 붕어빵 얼마죠?" 한 남성 유저의 물음에 나는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5개에 3골드!" 30배의 가격이다. 하지만 남자는 군말 없이 3골드를 내밀었다. "12골드어치만 주세요." "……!!" "전 저기 음료수를……." "어! 저는 저 음식을……." 와글와글 몰려들기 시작하는 유저들. 어느새 전투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 허기를 채우려던 그들에게 나는, 사냥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박 히트다! 2,000골드를 벌었다. 하루 만에 말이다. 즉 현실에서는 2,000만 원! 이, 이렇게만 나가면……. "며칠 안에 초재벌?" 진짜 이게 이렇게 대히트를 칠 줄은 나도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여기세 있는 유저들 대부분이 초고렙이다 보니 먹는데 쓰는 액수가 장난이 아니다. 저렙들에게는 엄청난 돈이 이들에게는 푼돈이었던 것이다. "아아아앙!! 행복해!!" 난 드디어 내 미래가 밝아짐을 느꼈다. 성실히 일한 자, 그 대가를 받는다는 명언. 이제야 절실히 그 의미가 와 닿는다. 하하하하!! "발록이다!!" "어, 어떻게!" "헬을 통해서 발록이 나왔어!" "젠장! 저 괴물딱지를 어떻게 이겨!" "모두 공격해!!" "이런!!" "……." 그때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 헬 제리라이트 던전. 갑자스럽게 일어난 소란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이제는 텅 비어 버린 리어카를 이끌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보이는 광경. "이게 뭐야!!" "……." "크윽." "아악!" "제, 제길……." "이길 수 없어." 내 소중한 손님들이 다 드러누우신 것이다. 다음 순간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상한 괴물. 처음 보는 몬스터다. 두 개의 뿔을 머리에 매단 채 울긋불긋한 커다란 몸을 내게 선보이고 계신다. "난 지옥의 최강자 발록." …….지가 최강자 발록이라고 하신다. 자세한 문의는 지식 검색을 이용해 주세요. 왜냐고? 지금 저 자식의 외형 따위를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죽어도 없었으니까.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다. 그건 바로, "죽었어!!" 내 손님들 몰살시킨 저 발록인가 개록인가 뭔가 하는 놈의 죽음이다! "……." 혁명이 되었던 나의 장사는 단 하루 만에 무너졌다. 단 하루 만에……. 그 이유는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제가 설명해 드리죠, 형님은 손님들을 몰살시킨 발록 님을 보고 급흥분하셨습니다. 그리고 화려하게 버서커 부활.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발록만 없앴다면 모든 건 해피했을 거라는 겁니다. 하지만 극도로 흥분한 형님이 그럴 리가 없겠죠. 눈에 뵈는 게 없는 형님에게 지옥의 문조차 지근지근 뽀개지는 광경이 보였습니다." "……." "지옥의 문이 완전히 뽀개지면서 사냥터도 망가졌고요, 그래서 더 이상 그 던전은 사용할 수 없게 되고 형님의 장사도 디 앤드라죠." "……설명 참 고압게 해 주는구나." "칭찬은 너무 들어서 지겹군요." "……." 너 잘났다. -11제나- "하아." 학교에 와서도 연신 한숨뿐이다. 도대체 뭐 이리 되는 일이 없는 거야! 보물찾기도 안 되고 카페도 제대로 안 되고 심지어는 음식배달도 잘 안 된다. 어떻게 하는 일마다 이렇게 다 좌절만 내려지는 거냐! 디재스터. 말 그래도 나란 인간 자체가 재앙이어서? 아하. 정말 답답하다. 이럴 때 어서 예진이의 얼굴이라도 보고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싶다. 예진 양, 어서 학교로 와 주세요. "왜 이러지?" 예진은 갑작스러운 어지러움에 이마를 짚으면서 비틀거렸다. 지금 교복도 다 입은 상태고 이제 자신의 방문을 나서려는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즐거워?" "……!" 또다시 들려오는 의문의 여자 목소리. 예진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그 의문의 목소리가 예전보다 더 자신을 점령한 느낌이었으니까. "나와 그를 방해하니 즐거워?" "무, 무슨…… 말씀이죠?" 예진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물었다. 그런 예진의 말에 의문의 여자 목소리가 조롱 어린 어조로 말했다. "모르는 척하는 거야? 모르는 거야?" "도, 도대체 누구시……아……." 털썩. 다음 순간, 예진은 그만 쓰러져 버렸다. "흐으음." 예진이가 안 나타난다. 그녀를 보고 마음의 안정을 취하려 했는데 그녀가 오지 않는다. 그려는 결석이나 지각을 모르는 소녀다. 그런 그녀가 아침 9시가 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니. "……." 그렇게 되자 점점 초조해지는 나. 혹시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완전 내 머리를 장악했으니까. 그렇게 온통 예진이 생각으로 어쩔 줄 몰라 하던 나. 그때 였다. "재, 재현아!" "……?" 예진의 제일 친한 친구 민정이가 허겁지겁 내게 다가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예진이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대!" "……!!" 난 그 말에 당장 예진이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실려 갔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고에는 예진이의 부모님이 잔뜩 걱정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런 그들의 시간을 방해할 수가 없어서 글며시 구석으로 가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누군가를 불렀다. "……이민호." "……."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임마." "어머나. 눈치도 빠르시군요." "……." 역시나, 역겨운 한마디와 함께 나타나는 민호 군. 난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는 예진이를 힐끗 본 뒤 민호에게 물었다. "넌 알지?" "뭐를요?" "……장난 사절." "흐으음." "아니, 알고 있겠지." "무슨 말씀이신지."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며칠 전 나는 확실히 알았다. 민호라는 존재를 말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질 수 없는 힘을 사용했다. 난 네가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몰라도 기다려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야겠다. "예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거냐?" "흠." "우리에게 신이라고 불리는 너라면 충분히 알 것 같은데?" "……." "감출 필요는 없어.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물론 다른 존재들에게 비밀로 하는 건 당연한 거고." "역시 형님은 킹왕짱입니다. 이 자식은 이런 진지한 분위기에도 저런 말이 나오는 거냐? 민호의 말이 이어졌다. "뭐 저도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말할 수도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 숨기고 싶지는 않은데 말을 할 수가 없다니. 그 순간 민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순간적인 쇼크 때문에 힘을 얻는다면 형님이 무너질지도 모르니까요." "……?" 뭐? 내가 무너지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이냐? 난 더욱더 이상한 소리를 해 대는 민호를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민호가 그런 나를 보고 말했다. "1,424년을 기다렸습니다." "…….?" "형님을 찾기까지 말이죠." "도, 도대체 뭔 말이야!" "거듭 말하지만 말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이런 저를 이해해 주십시오." "……." "물론 예진 누님은 아직은 괜찮습니다. 아직은…… 말입니다." "……아직은? 그건 무슨 말? 그럼 나중에는 어떻게 되는데!" "비밀입니다." "……" 아직은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안 괜찮다는 거냐? 도대체 저 자식,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는 거야? 민호가 나를 보고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예진 누님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형님밖에 없습니다." "……?" 나만이 예진이를 구할 수 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이냐? 아, 젠장! 이민호!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놈이냐! 물론 나에게 해가 되는 존재는 아니라는 건 확실하게 알겠다. 하니, 뭔가 도움을 주려는 존재하는 게 정확하겠지. 그렇기에 말을 숨기는 그를 닦달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궁금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더욱 증폭될뿐. "젠장." 띠링. 「민혜 님에게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 그때 들려오는 휴대폰 문자 오는 소리. 솔직히 다른 분들이었따면 무시했겠지만 민혜의 문자라니 무시할 수가 없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퓨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잠시후, 문자를 확인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오빠, 예진 언니가 게임에 접속해서 오빠 안 온다고 찾는데? "그, 그럴 리가!" 지금 예진이는 쓰러져서 병원에 누워 있다. 그것도 지금 내 눈으로 확실히 확인한 상태. 그런데 게임에 접속을?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 절대 가능할 리가 없다. 예진이는 분명 지금 병원에 실려 가 게임에 접속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예진이는? "아, 재현아." 어느새 나를 보고 웃으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는 예진이. 지난번 민호로 변신을 하던 그 이상한 생물체는 아니다. 그들에게서는 아무 미세하게나마 이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예진이는 아니다. 확실히 예진이다. 하지만……. "예진이가 아니야." "무, 무슨 소리야?" 내 말에 당황하는 그녀. 간단히 말해, 지금 내 앞에 있는 예진이는 예진이기도 하지만 예진이가 아니다. ……솔직히 내가 말하고도 무슨 말인지 혼란스럽다. 그런 내 말에, 옆에 있던 민혜가 더욱더 황당하며 물었다. "오빠, 그게 무슨 이상한 소리야?" 난 그런 민혜에게 말했다. "예진이 지금 병원에 있어." "……!" "쓰러져서 병원에서 누워 있어. 그런데 게임에 접속했을 리가 없잖아?" "마, 말도 안 돼!" 내 말에 기겁하는 민혜. 나도 이런 이상한 상황에 어질어질해서 민혜에게 뭐라고 설명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예진이의 표정이 차가워진 건. "역시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어도 그대로네?" "……." "아, 짜증나." 그리고 얼굴에 짜증스러운 기색을 그래도 나타낸다. 짜증스러워하는 모습고 저렇게 매력…… 아, 이게 아니라. 예진이의 새로운 표장에 이야기가 잠시 딴 데로 샜다. 크흐으음. 분명 지금 엄청나게 이상한 상황인데도 나란 인간은참. 그 순간 예진이의 말문이 열렸다. "난 예진이 맞아." "……." "하지만 몸만 예진이지 정신적으로는 제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그러니까, 지금 님하는 제나라는 거지? 그때 예진이의 입을 통해서 나온 제나의 충격 발언. "현실에서 이년의 몸을 컨트롤하기 위해 미리 실습 나온 거야. 인간들이 만든 게임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말이야." "……!!" 난 그 말에 순간적으로 머리가 어지러워 옴을 느꼈다. 그리고 순식간에 굳어지는 내 얼굴. 지금 나는 저 말에 담긴 의미를 확실히 알 것 같다. 쓰러져서 의신불명의 상태인 예진이와, 그런 예진의 몸을 컨트롤하기 위해 실습하러 왔다는 제나. 하마디로, 지금 제나라는 존재는 현실의 예진이를 차기하려는 것이다. "어머, 표정이 굳었네?" 나의 굳어진 표정을 본 제나가 비웃음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한마디 덧붗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가르쳐 줄까?" "……." "지금 나를 네 앞에 있는, 게임 속의 예진이를 죽여. 그러면 네가 사랑하는 그년도 정신을 차릴 거고 나라는 존재도 사라져." "……!" 난 그 말에 제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게임 안에 있는 예진이만 없앤다면.... 하지만 그렇다고 예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제길! "왜? 이 모습이 거슬려?" "……." 그렇다. 아무리 진짜가 아니라지만 눈앞에 여자는 예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 그녀를 죽이다니……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뭐, 날 죽이지 않는다면 예진이라는 년은 내게 몸을 뺏겨서 영원한 죽음을 맞게 될 테지만 말이야. 호호." 흠칫. 난 그 말에 예진이의 모습을 한 제나는 바라보았다. 지금 저 모습 떄문에 망설인다면, 현실의 예진이가 제나가는 여자에게 몸을 뺏길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서 눈 딱 감고 제나를 해치운다면…… 예진이는 무사하다? 파지짓. 그런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너무나도 자현스럽게 모여드는 자현의 힘. 이제는 내 일부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그렇게 그 순간 뭔가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나를 감쌌다. 내가 여기서 공격하면 무언가가 비틀어질 것만 같은 위압감이 나를 지배한다. 그리고 그 순간. "그 화려한 말발은 여전하시군요, 제나 님." 어느새 나타나 그녀를 보고 방금 웃는 민호 군. 잠시 후 민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제나 님은 지금 예진 누님과 이어진 상태입니다. 만약 여기서 소멸한다면 두 분 모두 소멸되어 버립니다." "……!" 내가 느낀 위압감의 원인은 바로 이거였다. 만약 나도 모르게 그녀를 공격했따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한편 민호의 등장에 제나가 더욱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민호라고 했나? 많이 컸네? 감히 내 앞에서 이렇게 깐죽대다니 말이야." "글쎄요. 전 순수한데요?" "……." "그리고 전 소속이 형님 밑이거든요." "하아? 그래서, 위아래도 없다는 거야? 정말 건방지네." "별로요." 여전히 싱글싱글 웃으면서 대꾸하는 민호 군. 반면 제나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파악!! 어느새 민호의 앞으로 이동한 제나의 주먹이 그의 배를 강타했다. 아니, 전확히는 예진이의 무적이었지만. 그리고 공격을 눈치 챈 순간, 제나는 이미 제자리로 돌아가있었따. "내가 아무리 1프로의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지만 너 정도는 쉽게 해치울 수 있다는 걸 명심해." "……명심만 하죠." "후훗. 여전히 입만 살았군. 아, 뭐 오늘은 이쯤 해 둘까?" "……!" 그말과 함께 사라지는 예진이, 아니 제나. 털썩. "미, 민호?" 민호가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무릎을 꿓었다. 그리고는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참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그 말은 내가 너한테 해 주고 싶은 말인데. -12각성- 예진이가 쓰러진 지 어느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일주일 동안 제나라는 존재는 그 어느 곳에서도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게임 안에서 제나한테 한 방 얻어맞은 민호는.... 요양 중이다. 게임 안에서만 그치는 타격이 아니라 영혼에 직접 충격을 주는 공격이라나? 그래서 게임 안에서 상처를 입었어도 게임과 연결되어, 현실에서도 또같이 상처를 입는 것이다. 하아. 사실 민호라는 존재가 비밀을 풀 열쇠를 가지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그 비밀에 나와 예진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건 이재는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크윽. 도대체 이 디재스터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그저 어이없고 황당한 직업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게임 안에서 말도 안 되는 힘을 발휘하는 벨런스 파괴용 직업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지금에서야 새삼스럽게 무언가 알 것 같다. 디재스터. 신이라는 존재와 연루된 직업이자 게임 속 모든 것의 핵심이라는 걸 말이다. "하아." "저, 저기……" "……!" 일주일 내내 병원을 떠나지 않고 예진이의 주변을 살피고 있던 내게 들려온 목소리. 거기에는 약간 홀쭉해진 모습으로 어느새 내게 다가와 나를 부르는 예진이가 있었다. 난 그녀를 보고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괜찮아?" "으응,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나저나 제나인가 뭔가 하는 존재는 들어간 건가? 지금 나의 본능적인 감이 예진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제나라는 여자는 깊숙이 들어간 듯 했다. "저기, 재현아." "……?" "무서웠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잔뜩 공포에 질린 채 온몸을 바들바들 떠는 그녀. 그 모습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껴안았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널 지켜줄께. 무슨 일이 있어도." "재, 재현아." 푸욱! "……?" 그 순간이었다. 난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섰고, 잠시 후 믿을 우 벗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느새 내 심장을 관통한 한 자우릐 칼. 도, 도대체……. "이년을 지키기 위해 먼저 네 몸을 지키는 건 어때, 크라이?" "……." 순식간에 기운 자체가 변했다. 방금 전 내가 예진이라고 단했던 그 기운이. 그리고 어느새 가음에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분명 심장을 관통당해 흘러내리는 피겠지. 하지만, 왜 난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거지? 아니, 그것보다 제나가 어떻게 예진이의 기운을.... "이미 동기화는 끝났어. 간단하게 말해서 지금의 너로서는 내가 이렇게 살짝 연기해 주는 것만으로도 예진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야." "……." "뭐 각성하기 전에 너라는 존재를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날 원망하지 말라고, 디재스터, 크라이라고 불리는 존재..... 호호." "……." 하지만 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의식이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 뒤늦게 도착한 민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힘을 완벽히 찾지 못한 재현이기에 제나의 간악한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숨이 끊겼군요." 숨이 끊겼다. 한마디로, 죽음의 상태. 하지만 그러 엄청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민호의 표정에서는 절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잠시 후 민호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무리수지만 지금 시작해야 할 것 같군요. 뭐, 일단 호흡을 조금이라도 돌리기 위해 저의 혀를 넣은 프렌치 키스를...." 벌떡. 그 말에 일어났다. 분명 숨이 끊겨 있떤 재현이 벌떡 일어났다. 어느새 험악한 표정을 지은 재현이 힘겹게 내뱉었다. "죽……고…… 싶냐?" "어머나." "……." 털썩. 하지만 그 말과 함께 대현은 다시 쓰러졌다. 방금 전화 다른 건 미세하게나마 숨을 쉬고 있다는 것. 한마디로, 민호의 저질스런 말 한마디가 전기 충격기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뭐…… 그럼 이제 시작하죠." 다음 순간 민호의 눈이 감겼다. 민호의 손에서 푸른빛이 난다 싶더니, 어느새 민호와 재현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 "……!" 아포라와 벨리나크는 믿을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 그분의 힘. 그리고 그분의 옆에는 민호라는 존재가 있따. 그 순간 아포라와 벨리나크의 머릿속을 지나가는 한 가지 생각. "서, 설마!" "……." 지금까지 그가 사라졌던 이유가, 죽었다고 알려진 이유가 만약 그분을……. "깨우기 위해서라면?" 아포라의 얼굴이 밝아졌다. 드디어 그분이 깨어나신다. 디재스터 크라이라고 불리는 그분이. 하지만 기뻐하는 아포라와는 달리 벨리나크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가 아포라에게 한마디 건넨다. "……크라이 님만 깨어난 게 아니다." "무, 무슨 말이죠?!" 아포라는 벨리나크의 말에 당황했다. 잠시 후 벨리나크가 말을 이었다. "질투와 파괴의 존제 제나 님. 그리고 혼돈의 존재 플라카라스 님도 깨어난다." "……!" 그 말에, 아포라는 기겁했다. 그건 아니다! 디재스터이자 자신들의 지주인 크라이가 깨어나는 건 분명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들까지 깨어난다면..... "몇만 년 전 일이 되풀이될지도. 아니,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겠지. 엄연히 동급 레벨의 최초 신들이다. 2대1이라는 싸움 자체를 이겨 낸 크라이 님이라 하더라고 이번만은...." "……" "도대체 민호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위험한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분을 깨우려는 거지? 이런 상황은 그분도 원치 않을 텐데." 그렇다. 몇만 년 전 일이 되풀이된다면, 아니 오히려 상황만 악화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런데 도대체 그는 왜 이런 위험을..... "믿는다고 했어요." "……." "크라이 님을 믿는다고 했어요." "무슨 말이지?" "자세한 건 저도 몰라요. 몇십 년 뒤면 그분들의 봉인이 풀린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크라이 님을 믿는다고 했어요. 디재스터라는 이름의 크라이 님을요." "헛된 믿음이군." 헛된 믿음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크라이의 힘이 강하다지만 파괴와 혼돈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신을 혼자서 상대하는 건 솔직히 무리였다. 몇만 년 전만 해도 한 여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제나를 봉인하지 못했을 것이도 지금과 같이 플라카라스를 깊이 잠들게 하는 것도 무리였다. 최초의 신이 셋 있다. 질투의 여신 제나, 혼돈의 신 플라카라스, 그리고 디재스터 크라이. 이들은 최초의 신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사이가 좋았다. 보는 사람이 시샘할 정도였다. 그만큼 그들은 그 우정을 영원히 간직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제나의 갑작스러운 고백으로 인해 모든 것은 깨졌다. 제나는 크라이를 좋아했던 것이다. 하지만 크라이는 그런 제나의 마음을 받아 줄 수아 없었다. 그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크라이의 거절에 제나는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고, 이후 크라이가 자신보다 한참이나 신분이 낮은 여신과 살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분노한다. 자신은 최초의 신. 그런 최초의 신이,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그런 하찮은 여신에게 밀리다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 그 여신을 죽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의도는 크라이에 의해 불발되었고, 상황은 순식간에 크라이와 제나의 대림으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여기서 제나에게 행운이 따른다. 파괴만을 원하는 플라카라스가 제나에게 붙은 것이다. 그렇게 되자 순식간에 최초의 신 둘을 상대하게 된 크라이. 당연하지만 그들의 힘은 비슷비슷하다. 그런게 1:2라니. 승리는 절대 불가능했다. 모두 크라이가 무참히 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크라이는 이겨 냈다. 물론 크라이의 연인이었던 여신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순수 전투력만으로도 그들과 비등했던 것이다. 물론 대가는 있었다. 제나는 크라이의 연인인 에이리에게 봉인되고, 플라카라스는 크라이에 의해 한국 어딘가 한적한 곳에 봉인당했지만 크라이 또한 곧 소며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소멸한 파편을 찾아낸 이가 바로 민호였다. 하지만 민호는 크라이의 힘을 되찾는 데 문제점을 발견했다. 디재스터의 힘은 비과착적인 존재의 힘. 그런 존재의 힘을 현실에서 얻을 시 정신적인 충격으로 소멸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그때 유행하고 있던 가상현실게임을 이용하기로 했다. 디재스터 크라이, 아니 재현의 힘을 조금씩 안정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지금까지 닫혀 있던 판도라의 상자가. "……용케도 나를 찾아냈구만." "전 형님의 피앙세거든요." "즐." "고생한 동생에게 즐이라니, 섭섭합니다." "네가 나를 엿먹인 건 생각 안 하니?" "무슨 말씀이신지." "게임에서 나 삽질하게 만들었잖아!" 저 자식을 그냥 확. 민호의 말대로 녀석이 고생만 하지 않았어도 나의 정의의 주먹이 날아갔을 것이다. "억울합니다." "또 뭔 개소리 하려고." "전 엄연히 디재스터라는 직업의 퀘스트를 만들어 내고 베르자니아 님께 연결만 해 드렸을 뿐입니다." "……." "한마디로 나머지는 전부 다 형님에 의해 일어난 일입니다." "……." "아무리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라도 인과율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는 거, 형님이 제일 잘 알지 않습니까?" "……." 그건 그렇다. 아무리 엄청난 존재인 신이라 해도 인과율, 운명이 흐름에 직접적인 간섭을 불가능하다. 그, 그렇다면……. "나한테 일어난 그 불행은?" "운명이죠." "……." "그래서 저는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형님이 불행에 말입니다." "……." "한 마디로 킹왕짱?" 그런 건 진심으로 감탄하지 말라고, 제발. 저놈은 몇천 년 전부터 미쳤었지만, 여전히 미쳐 있다. 세월이라는 게 흐르면 뭔가 달라진다는데, 재는 어째 더 심해져. 파지짓……! "……." "……." 그때 나를 자극하는 정체불명의 기운. 너무나도 익숙하다 못해 눈물이 날 것 같은 이 친숙함. "플라카라스." "정답입니다. 하지만 상품은 없죠." "기대도 안 했어." 지금 상황에서 뭔 상품이냐. 하아. 나도 모르게 지난 전투가 떠오른다. 거의 기적이었다. 플라카라스와 제나를 상대로 비등하게 싸운 건 말이다. 힘이 비등한 존재 둘을 상대로 그 정도까지 한 것만 해도 기적. 물론 민호가 굳이 나를 깨워서 그들이 동시에 깨어나는 위험이 닥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십 년만 지나면 그들은 어차피 부활할 것이도, 그때 만약 내가 깨어 있찌 않은 상태였다면 완전 속수무책이다. 차라리 몇십 년이라는 시간을 앞당겨서 내가 다시 한 번 그들과 싸우는 것이, 극소의 확률로 그들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 그나저나……. "에이리, 나이 예진이와 제나의 분리법은?" "이미 알아 놨습니다." 왠지 처음으로 믿음직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잠시 후, 나는 그렇게 생각한 나를 저주했다. "엉덩이 댄스와 저질 댄스가 필요합니다." "……." "그것이야말로 예진 누님과 제나 님의 분리법." 그 말에 난 얼굴을 구겼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저질 농담이 나오냐? 앙? 민호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절대 농담이 아닙니다." "……난 절대 농담처럼 들리는데?" "형님, 지금 제나 님과 예진 누님을 분리하려면 제나 님의 정신에 심각한 타격을 줘야 합니다." "……." 그건 맞는 말이다. 확실히 제나에게 정신적 타격을 줘야만 분이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엉덩이 댄스와 저질 댄스가 그것과 무슨 관연이 있지? 민호의 말이 이어졌다. "제나 님은 한 번도 형님의 그 화려한(?) 댄스를 보지 못했습니다." "……." "만약에 그 댄스를 보면 옛날에 좋아했던 남자의 새로운 모습에 쇼크를 받지 않을까요?" "……." 화려한(?) 댄스라고 하기에는 좀 부담스럽다. 아니, 그것보다……. "……진짜 효과 있냐?" "만점이죠." "……." "완전 베리 굿하게 효과 있을 거라고 사료됩니다." "……."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보다 제나 님에게 쇼크를 줄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거든요." 그 말에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신력을 가진 존재다. 그런 존재에게 평범한 방법으로 쇼크를 주는 건 무리. 하지만……. "그 짓을 또 하라고?" "이미 모든 사람들 앞에서 춘 전적이 있지 않습니까?" "있기는 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폴리모프 상태였잖아! 하지만 이번에는 맨 얼굴을 드러내 놓고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엉덩이 댄스라는 이상한 퍼포먼스도 추가된 채 말이다. 고민하는 내게 민호 군의 말이 들려왔다. "예진 누님을 위해서 입니다." "……." "예진 누님에게서 제나 님을 분이할 방법은 아무리 봐도, 요기 보고 조리 봐도, 좌회전해서 우회전해서 유턴해서 봐도 형님의 그 전설(?)의 댄스입니다." 아무리만 보면 되지 유턴까지 해서 보는 건 뭐야? 하아. 답답하다. 또다시 나에게 대려진 시련. 나는 분명 알고 있다. 예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대 자신을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정말 한숨만 나온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너랑 같이 한다는 거." "……?" "……." 그때 내가 민호를 보면서 말하자 민호는 무슨 말이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고 잠시 후 싱긋 웃으면서. "형님 혼자 하셔야죠." "……." "저까지 끼어들면 효과가 감소할 거라고 샤료됩니다." "……." "뭐 구경하면서 사랑의 윙크 정도는 날려 드리죠." 난 멍하니 민호를 바라보았다. "뭐, 뭐라고? 나 혼자 그 미친 짓을 하라고?" "제가 거들면 효과가 감소할지도 모릅니다." "그, 그렇지만……." "그러니 형님 혼자 가셔서 마음껏 즐기고 오시기 바랍니다." "……." "형님의 정열을 모두!" 즐기긴 개뿔. 갑자기 내앞에 어둠만이 가득하다. 제나 앞에서, 아니 제나가 플라카라스 앞에서 그 미친 짓거리를 해야 한다니. "쪽……팔려." "하셔야 합니다." "미쳤다고 할 거야." "그러면 쇼크를 받았다는 거죠.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 "형님이 일시적인 충격만 준다면 분리는 제가 담당하죠." "……." "자, 고고고고!" 이런 미친. "어머나! 오랜만이야, 플라카라스." "……." 예진이의 몸을 장악한 제나가 플라카라스에게 인사했다. 그러나 제나의 인사에 플라카라스는 아무런 대꾸로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성격. 제나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허공에 대고 말하는 듯한 느낌은 이제 익숙하니까 말이다. 제나가 한쪽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내가 네 봉인을 풀기 전에 크라이한테 작은 선물을줬는데, 내 선물이 맘에 안 들어나 봐? 거절한 걸 보니 말이야." 그녀의 선물. 한마디로 죽음이라는 이름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는 최초의 신이다. 단지 심장이 관통되었다고 죽지는 않는다. 물론 그걸 모르는 제나도 아니었지만. "그는 강하다." 그때 처음으로 플라카라스의 입이 열렀다. 그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로 인정한다는 의미. 제나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 강해. 크라이는 너무나도 강해. 분명 우리와 같은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응용력이나 전투 방식으로 우리 두 명을 상대했어. 하지만 그것도 저번뿐이야. 지난번에는 자연의 힘을 응용하는 걸 보고 당황했지만 이제는 대충 알고있어. 그리고 미약하나마 복병이었떤 이 여자의 몸도 내가 가지고 있고." "……." "한마디로,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는 거지." 제나는 자신만만했다.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싸움. 둘 중에 한 존재만 해도 크라이와 비등하게 싸울 수 있는데 그런 존재가 하나가 아니다. 한편, 자신만만해 하는 제나의 말에 플라카라스가 한마디 툭 던진다. "아직도 그 하찮은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군." 그 말에 갑자기 제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가 소리쳤다. "닥쳐!" "……." "하찮은 자존심? 내가 그런 하찮은 여자한테 밀렸어. 크라이는 나보다 하찮은 여자를 선택했다고!" "상관없다. 너의 목적 따위는" "……." "난 파괴가 즐거운 뿐이니까.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서는 너와 맞을 뿐이고." "그래. 상관없지. 지금 우리가 합심하는 건 일시적이니까 말이야." "……." "이제 크라이만 없애면 세상을 아예 지워 버릴 거야. 아니, 크라이는 없애지 않아. 박제해 버릴 테니까. 평생 나만 보게 말이야." 삐뚤어졌다. 그 자좀심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신이라는 존재를 악녀라는 말조차도 무색하게 만들었딴 말인가? 하지만 플라카라스는 그 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없었다. 자신은 오직 파괴를 원할 뿐이니까. "오느라 수고했어, 크라이." 난 나를 반갑게 맞아 주는 제나를 보고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조금 후에는 어마어마한 것을 해야 하기 때문인지 비장한 표정밖에 지어 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내 표정을 제나는 오해한 듯하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거야?" "……." "뭐 그냥 죽이지는 않을 거야. 너를 박제해서 평생 내 옆에 둘 테니까." 섬뜩. 그 말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상한 의미는 절대 아니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저분, 한동안 안 본 사이에 참으로 무섭게 변했다. 날 박제하겠다니. 으으윽. 생각만으로도 오한이 느껴진다. "형님, 시작하죠." "……." "형님." "……." 어느새 내게 다가와 속삭이는 민호. 난 그가 시작하자는 게 무엇인지 아주 작 알고 있따. 일면 예진이와 제나의 분이법. 궁극(?)의 그 짓이다. 하지만, 하지만……. "진짜 나 혼자?" "그럼, 다 혼자." "……개그?" "네." 고차원적인 개그는 사양한다. 알아들어야 웃든지 말든지 하지. 그때 민호가 다시 한 번 내게 속삭였다. "저, 어서 해야 됩니다." "……재촉하지 마." "쟁촉할까요?" "즐." 이 자식, 내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또 그런 고차원적인 개그 한다. 아, 진짜 뭔 저런 허접한 개그가 다 있어! 물론 민호의 의도는 잘 알고 있따. 최대한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저러는……. "이런 개그는 별로 안 먹히는군요. 버려야겠습니다." ……건 절대 아니군. 내가 네 개그 마루타냐? 아악! 싸우기 전부터 머리가 아프다. 한편,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본 제나가 비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둘 다 뭐 하는 거야? 죽기 전에 나에게 웃음이라도 주려는 거야?" 절대 그런 의도는 없다. 단지 저 자식이 옆에서 삽질해서 그런 것뿐. 민호가 다시 속삭였다.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알았어, 임마!" 그 말에 난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면서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내 탐스러운……이 아니라, 그냥 엉덩이가 제나와 플라카라스를 향한다. "필살기 작렬!" "……." "……." 그래도 엉덩이를 마구 흔들었따.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이 폭풍 같은(?) 필살기는 2탄이 남아 있다. 휙! 난 순식간에 다시 몸을 돌려 자세를 잡았다. 그 전설의 춤을 추기 위해. 한편 나의 필살기 제1탄에 정신적 충격을 받은 듯한 제나. 그에 비해 플라카라스는 표정 변화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필살기 제2탄 작렬! "후아! 후아! 후아!" "……." "……." "후! 후! 후!" "……." "……." 난 민호에게 배운 후렴구(?)까지 다 따라 하면서 그들을 자극했다. 진짜 미치도록 쪽팔렸지만 오로지 예진이를 위해 열심히 저질 댄스를 췄다. 그렇게 약 5분 정도 지났을까? 난 제나가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근데……. "……." 웃고 있다. 제나는 웃고 있었다. 전혀 충격받은 모습이 아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참 재미있는 춤이네?" "……." "설마 그걸로 날 자극하려 한 거야?" "……." "아니, 정확히는 날 자극해서 이년과 날 분리하려는 작업을 하려고 한 거겠지." ……할 말이 없다. 그녀는 나와 민호의 작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너무 얕봤던 것 같다. 제길! "이런, 첫 번째 작전부터 실패해서 이제 승률이 0프로가 되어 버렸네? 내가 이년의 몸을 하고 있는 이상 넌 절대 날 공격하지 못할 테고 말이야." "……." 맞는 말이다. 부정할 수 없다. 난 제나를 공격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예진이의 몸을 가진 제나를 공격할 수 없다. 제길. 제나와 예진이의 몸을 분리하지 못하다니! 정말 최악이다. "세상은 아름답죠." "……." 그때, 싱긋 웃으면서 민호가 입을 열었따. 넌 지금 이 상황이 아름다워 보이냐? 아무리 이상한 놈이라지만 이런 상황에서 저런 반응은 정말 어이가 없다. 하지만 다음 순간..... 파지짓. "……!" "……!" "……." 나와 제나는 눈을 의심했따. 어느새 우리발밑을 점령한 기이한 룬문자. 문양은 마치 별 모양과 같지만 그것과는 미세하게 다르다. 순식간에 붉은 빛이 우리를 감싸 안는다. 제나는 그 빛을 보고 무척이나 당황하는 표정이었고, 마찬가지고 나도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었다. 그 문양의 의미를 잘 알기에. "강제 분리 주문?" "정답입니다." "이, 이걸 어느새!" "아까 형님이 열정을 내뿜을 때 슬쩍 시전하고 있었거든요, 혹시나 쇼크 작전이 실패할 것을 대비해서 말입니다." "아……." 정말 대답하다. 이 자식, 나와 제나, 심지어는 플라카라스의 눈까지 속이고 마법을 시전하다니! 민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귀엽더라도 너무 귀여워하지는 말아 주세요." "염병." 꼭 잘 나가다가 한마디 한다. 정말 칭찬을 해 주고 싶어도 해 줄 수가 없는 놈이라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꺄아악!!" 제나의 비명이 들려온다. 그리고 예진이의 몸가 서서히 분리되는 한 존재. 난 엄청난 속도로 예진이에게 달려갔다. 물론 플라카라스의 공격을 예상하고. 하지만 내가 분리된 예진이를 안고 오기까지, 플라카라스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따. 왜 이런 기회를 버리는 거지? 콰앙!! 그때 내 등 뒤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아차 하면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커다랗게 파인 구멍과 함께 피를 흘리는 민호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민호는 보며 플라카라스가 싸늘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네놈, 거슬리는군." "어머나…… 칭찬인가요?" "……." "남자의 칭찬은 달갑이 않은데 말이죠." "……." 피를 줄줄 흘리면서 저런 소리를 해 대는 민호 군. 정말 대답하십니다. "플라카라스…… 상당히 저질이네? 저런 약한(?) 민호나 공격하고 말이야." "재미있는 농담이군." "……." "신들의 역사상 최고라 불리는 존재이자, 최초의 신인 너와 나, 제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건들 수 없는 존재를 약하다고 말하다니." "……." "게다가 우리의 눈을 속이고 강제 분리 마법까지 시전했다." 그건 그렇다. 약하다고 하기는 좀 그렇지. 혼도의 힘에 가장 가까운 플라카라스의 공격을 맞고 고작(?) 피를 흘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플라카라스나 제나의 공격을 스치기만 해도,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도 한 방에 소멸하고 만다. 하지만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호 님은 제나한테나 플라카라스한테 처맞고도 살아남으셨다. 정말 대단하다. 민호가 입을 열었다. "저 잘난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압니다." "……." "……." "그러니 그망 칭찬하시죠, 무안하잖아요." "……." "……." 입에서는 피를 줄줄 흘리면서 그런 말은 안 어울린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 하찮은 존재가!!" 어느새 실체화한 제나가 민호에게 달려들었다. "너 정말 사랑 맣이 받는구나?" "그렇죠. 부담됩니다." "응. 부담되겠다." 최초의 신이가 최강이라 불리는 거 둘의 사랑을 듬뿍 받다니 진짜 힘들 일이다. 콰앙! 실페화한 제나의 주먹이 앞으로 내밀어지면서 순간적으로 압축된 공간이 깨졌다. 그리고 반경 수천 미터 내에 있는 모든 것이 그대로 날아가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물론 그걸 지켜만 본 나도 아니고 말이다. 파짓. 주문 따위는 필요 없다. 이미 난 자연과 같은 존재. 내 힘을 굳이 언어화할 필요는 없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바람의 힘을 수만 번, 아니 수천만 번 이상 중첩시켜 내 앞에 방어막을 쳤다. 곧이어, 내 방어막과 제나의 공격이 부딪쳤다. 콰앙! 제2차 충격파. 농담 아니고, 거의 100킬로미터 공간이 단숨에 날아가는 듯한 충격파였다. 제길. 이 충격에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참고로, 차원은 미리 복사해서 옮겨 놨으니 걱정 마시죠." "……." "전 형님의 피앙세를 넘은 피앙세 넘버 1이거든요." 피앙세 넘버 1은 뭐 하는 애니? 장말 이 자식은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어느새 차원까지 복하새 버렸다. 정말 감동적이야! 파앗! 하지만 이런 내 감동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플라카라스가 카오스 블레이드를 만든 채 내게 달려들었다. 카오스 블레이드. 혼돈의 검이자, 모든 걸 갈라 버릴 파괴력을 지닌 검. 거젓에 맞으면 나라도 절대 무사할 수 없었다. 난 재빨리 민호에게 예진이를 넘기며 외쳤다. "부탁해, 예진이를!" "저는요?" "개소리 작작 하고." 난 민호의 말은 무시한 채, 태양의 힘을 수만 번 중첩시켜 화염의 검을 실체화했다. 태양열 자체를 여기에 모두 집중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마저도 수만 번이나 중첩했기에, 만약에 그 힘을 개방할 경우 그 자체의 결기만으로도 지구를 녹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저 카오스 블레이드를 상대하는건 불가능. 그렇다면……. 파짓. 이번에는 아예 태양의 검에 물의 힘을 더한다. 이번에는 역시 수만 번이나. 제어가 순간적으로 빗나가는 순간 이곳은 거대한 태양의 힘과 물의 힘에 의해 모든 게 초토화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정도가 아니면 저 카오스 블레이드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콰앙! 내가 만들어 낸 자연의 검과 카오스 블레이드의 뜨거운 만남. 어느 쪽도 밀리지 않고 팽팽히 대립해 왔다. 하지만 난 어쩔 수 없이 검을 뒤로 빼야 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제나가 민호와 예진이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그런 제나를 본 민호가 소리쳤다. "이러지 마세용!" 까딱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저런 여유는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진짜 궁금하다. 콰앙!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난 제나의 앞을 막사어면서 그들을 보호했따.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빠져나가." "흐으음." "어서 이 복사된 차원을 벗어나. 안 그러면 너랑 예진이가 위험해." "이길 확률은요?" "100프로." "그럼 알겠습니다." 싱긋. 그 말과 함께 차원을 열고 나가는 민호. 이런 우리의 대화를 들은 제나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를 이길 확률이 100프로? 크라이, 농담이 많이 늘었구나." "농담 아닌데?" "……." "참고로 난 너희처럼 만날 논 게 아니어서 말이야." "무슨 말이지?" 저들은 강하다. 하지만 그 절대적인 강함이 지금 상황에는 오히려 해가 된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 설명 들어가신다. 말 그대로 그들은 너무나도 강해서, 그 어떤 상대든 압도적인 힘으로 눌러 버린다. 그렇기에 어떤 전투 방법이 실용적인지 어떤 것이 효율적인 전투인지 전혀 모른다.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물론 나도 그랬따. 절대적인 강함. 이건 말 그대로 양날의 검과 같다. 간단히 말해서, 절대적인 힘으로 상대방을 눌렀는데 만약에 힘에서 동등한 상대가 나타난다면? 그리고 그 상대가 저 둘과는 달리 실전에 이골이 난 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새삼 말하지만 경험이란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어도, 경험이 부족한 탓에 너무나도 허무하게 패배할 수도 있는 날이다. 그리고 난 그 경험이라는 걸 얻었다. 저들과 다르게 말이다. 피식.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가상현실게임 속에서 겪었던 사건들. 남들은 즐기기 위해 게임을 했지만 난 살아남기 위해 겜일을 했다. 얼마나 많은 재앙을 떠안고 살았는지는 직접 나열하기도 불가능할 정도. 하지만 그런 재앙 덕분에 지금은 혜택을 보고 있다. 저들과 달리 전투의 방법을 알게 됐다고나 할까? 난 서서히 태양의 힘과 물의 힘이 담긴 덤에 모든 자연 속성의 힘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름 순간, 그래도 달려 나갔다. "나름대로 특별훈련(?) 경험자니 무시하지 않는 게 좋을걸!" -13전투- 나의 검이 플라카라스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제길! 한 타임 늦은 건가? 조금만 더 깊숙이 찔러 넣었다면…… 하지만 이런 내 후회가 채 가시기도 전에 플라카라스의 반격이 들어왔다. 파앗! 마치 모든 걸 베어 버릴 듯한 기세로 허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카오스 블레이드. 하지만 나는 이미 예측한 뒤였다. 피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굳이 자연의 힘을 생성해 막아 내지도 않고 그대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콰앙! "……!!" 엄청난 공기 폭발에 순식간에 내 몸이 주르르 밀린다. 다행히 방금 전 땅의 힘을 이용해 중첩 방어막을 시전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심각한 타격을 받았을 공격이다. 그리고 내게 그런 공격을 시도한 존재는.... "제나." "어머나. 나를 잊은 거야?" "……." "그 자신감의 이유는 충분히 알았어, 더 강해졌구나. 예전의 우리였다면 손도 못 써 보고 졌을 정도로 말이야." "……." 무슨 말이야? 예전이라니? 그럼 지금은? 제나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합동공격이라는 걸 한다고, 물론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말이야." "……." "어때, 우리의 합격진이?" "저질." 그 물음에 나는 민호의 말투를 살짝 빌렸다. 제길! 혼자 놀기 좋아하던 것들이 이제는 합격진까지 펼치더니. 나름대로 자존심을 버려야만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렇게까지 나를 죽이고 싶은 거냐? 제나, 그리고 플라카라스..... "거슬린다. 이 세상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너의 존재가 거슬린다." 플라카라스는 내가 거슬린다고 한다. "그나저나 언제부터 그렇게 난폭해졌냐?" "……."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심해지네?" "……." "설마 거창한 이유라도 있어?" 보통 이럴 떄 보면 파괴신이 한 번씩 이런 대사를 읊어 준다. '세상은 타락했다. 그러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듣는 사람에 따라, 어찌 생각하면 조금 멋있어 보이는 대사다. 하지만 플라카라스는 달랐다. "없다. 그냥 파괴다." 그런 거창한 이유는 없단다. 특별한 이유도 없고, 그냥 파괴하고 싶단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저어진다. 제나는 나를 박제하겠다고 하고 플라카라스는 아무런 이유없이 세상을 파괴하겠다 하고. 그러고 보면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킬 착한(?) 신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뭐 그게 임무라면 맡아야지. 나 같은 착한(?) 애들이 말이다. ……뭐, 뭐야? 왜 내가 착하다는 말에 불신의 눈빌들을 보내는 거지? 솔직히 말해 저 이상해진 두 애들(?)보다는 그나마 내가 착한 편이다. 진심이다. 그러니 반론은 받지 않겠음. 스으윽. 플라카라스가 어느새 내 등 뒤를 점령했다. 하지만 예측하고 있었기에 막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듯 했다. 난 그런 생각과 함께 그래도 뒤돌아 자연의 검을 부딪쳤다. 하지만……. "나를 잊은 거야?" "……!" 어느새 내 바로 곁에 도달해 있는 제나. 제길! 당한 건가? 지금 여기서 자연의 검을 회수하면 그대로 카오스 블레이드에 맞는다. 하지만 회수하지 않으면 제나의 공격을 맞는다. 한마디로, 둘 중에 하나를 골라서 맞아야 한다는 거. 뭐 이런! 하지만 선택의 폭은 좁았다. 제나의 파괴력도 무시할 건 절대 아니지만, 카오스 블레이드는 자칫하면 한 방에 갈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제나의 공격은 한 방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물론 충격이 무척이나 심하겠지만. 파악! "크으윽!!" 난 카오스 블레이드와 마주한 채, 제나의 공격을 등으로 받았다. 제길!! 더럽게 아파. 그 한 방에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어때, 짜릿해?" "……글쎄." 입가에 붉은 피를 흘리는 나를 보며 짜릿하냐고 묻는 제나. 어떻게 봐야 이 광경이 짜릿해 보이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타앙! 그떄, 다시 한 번 맹렬히 공격해 들러오는 플라카라스. 잠시의 쉴 틈도 없이 또다시 플라카라스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조금 전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단지 검을 부딪혔을 뿐인데 온몸의 내장이 뒤틀리고 터질것 같은 고통. 크윽. 제길. 제나의 공격을 직격탄으로 맞은 게 영향이 크다. "다시 한 번!" 또다시 즐거운 듯 외치면서 내 등 뒤를 공격하는 제나. 둘이 완전히 눈 맞은 거야, 뭐야? 완전 호흡 척척이다. 앞뒤로 들이대는데 정말 대책이 안 설 정도디. 한쪽을 방어하면 다른 한쪽에서 공격이 들어온다. 그러니 두 개의 공격 중 하나는 맞을 수밖에 없다. 전투가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100프로 나의 패배다. 파지짓! 난 그런 생각과 함께 바람의 힘을 수만 번 중첩시켜서 등뒤에 방어막을 만들었다. 과연 이 방어막이 레나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담은 채 말이다. 콰앙! 바람의 실드와 레나의 주먹이 부딪쳤다. 그리고, "젠장!!" 너무나도 쉽게 깨져 버리는 바람의 실드. 콰앙! "크으윽!!" 또다시 레나의 주먹에 직격당했다. 물론 바람의 실드로 인해 데미지가 감소했다고 하지만 갈력한 건 사실이다. 그리고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또 한 번 맏으니 정말 저질스럽다. 퍼억! "크억!" 어느새 나타나 내 옆구리를 발로 차 버리는 플라카라스. 난 그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날아가 버렸다. 쿠웅!! 그리고 근처에 있던 낡은 건물에 부딪쳐 그 무너진 파편에 파묻히고 말이다. "제길……" 건물 잔재 속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쿨럭." 다음 순간, 입에서 한껏 흘러내리는 검은 피. 내상을 입은 것이다. "호호, 어머나, 많이 아파?" 그때 제나가 나를 향해 비웃음과 함께 말했고 난 그 말에 애써 웃으면서. "별로……." "얼굴은 아파 보이는데?" "원래 이런 설정이거든." "아아. 뺀질거리는 민호 놈이랑 다니더니 너도 그렇게 됐구나?" "칭찬 감사." "……." 내가 생각해도 정말 민호의 이상한 정신세계에 감염된 게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이상한 소리는 못할 테니까. 뭐 이런 생각은 일답 접어 두자. 저들이 또다시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제길……!" "아……." 예진은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정신을 잃었고, 다시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다.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분명 바닥에 쓰러졌는데 어떻게 침대에.... 아니, 그것보다 자신의 옆은 민호가 키지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민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콰아앙! 콰아앙! 쾅! "……제길!!" 견디는 것만도 기적이다. 이 싸움이 시작되고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거라는 예측만 할 뿐. 그러는 사이 그들에게 조금씩 상처를 입히고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내 상처를 그들이 입은 것보다 더욱 깊었으니까. 털썩. 어느새 기운이 다 빠져서 그대로 주저앉은 나. 자연의 힘을 너무 사용한 탓인지 더 이상 끌어당길 힘도 없었다. 즉 회복할 힘도, 공격할 힘도, 스태미나도 모두 고갈. 그런 나를 본 제나가 웃으면서 천천히 다가온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나의 고개를 손으로 들어 올린다. "이게 박제가 될 차례네?" "별로 되고 싶지 않은데?" "너에게 선택할 권리는 없어. 알잖아?" 그렇겠지. 내가 뭔 선택의 권리가 있겠냐. 제길. 경험이라는 걸 바탕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들의 합동공격이 너무나도 예상 밖이었다. "자자, 그럼 이 상태에서 박제로 만들어 줄게." "……." 그러면서 서서히 내게 손을 뻗는다. 젠장. 피해야 한다. 하지만 몸이……. "이런, 뜨겁군요." "……." "……." 어느새 나타나 방긋 웃는 민호.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지금 네놈이 와 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어차피 저듯의 먹잇감만 될 뿐. 제나가 그런 민호를 향해 이죽거렸다. "너도 죽고 싶어서 왔어? 아니, 어차피 죽이려고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찾아오다니." "전 죽기 싫은데요." "……." "전 오래 살 겁니다. 그래서 모든 야설을 볼 겁니다." ……정말 사람 냉동시키는 데는 엄청난 재주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순간이었나? 민호가 나를 보고 싱긋 웃은 건. "제 연약한 몸을 형님이 지켜 주실 거라고 믿거든요." "어머나. 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도 못한 크라이가 너를 지켜 준다고? 너 정말 미쳤구나?" 재 원래 좀 미쳤다. 근데 좀 더 미쳤구나. 지금 내 꼬라지가 안 보이냐? 금방이라도 박제당할 위기에 처한 내 모습 말이다. 그때 민호가 갑자기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 "……?" "형님, 제가 주는 사랑의 큐피드 화살입니다. 앙!" "……." 그때였다. 파지짓!! 거의 소모되었던 자연의 힘이 급속도로 충전된 건.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기본적인 힘에 더해, 그 힘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모여드는 엄청난 힘들. 설마……. "너 계속해서……?" "이걸 준비하고 있었다죠." "……!" 그리고 다음 순간 내 힘이 순식간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저 자식, 내가 싸우는 내내 이걸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시공을 초월해서, 일시적으로 모든 자연의 힘을 끌어올리는 고도의 마법진을. 워낙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므로 정말 실행 자체가 어려운 기술이다. 그런데 저 자식이! "어때요? 제 큐피드의 화살은요?" "…….큐피드는 거부하고 선물만 받으마." 난 그 말과 함께 씨익 웃었다. 플라카라스가 아무 말 없이 민호를 향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플라카라스의 등 뒤로 이동한 상태. 콰앙! 그대로 다리를 들어 올려 플라카라스를 내리찍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민호가 말했다. "역시 제 예언이 맞는 거?" "글쎄다." "도, 도대체……!!" 너무나도 강해진 나를 보고 할 말을 잃어버린 제나. 제나가 민호를 보더니 악을 쓰듯 외쳤다. "저 하찮은 존재가! 또다시!" 그래, 신분으로 따지면 너희에 비해 하팒을지 모른다. 하지만 말이다, 이민호라는 괴상한 존재는 그런 너희를 충분히 능욕(?)했잖아? 파지짓. 난 모든 힘을 끌어 모았다. 공간과 시간, 차원, 모든 걸 담아서 말이다. 그러자 서서히 생성되는 자연의 검. 다음 순간 그 자연의 검을 허공에 놓았다. 파지짓!! 자연의 힘이 깃든 검 알으로 힘이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점점 커져 간다. 그렇게 약 1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생성된 자연의 검들이 온 하늘을 뒤덮을 정도였다. 난 조용히 읊는다. "인데스트럴." 콰앙!! 그 말과 함께, 거대한 자연의 검은 그래도 복사된 파원을 뒤덮었다. -에필로그1-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민호는 인간이 아니다. 그럼 민호의 동생들은?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민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그의 친동생이 맞았다. 하지만 리얼리티를 위해 신에 대한 기억만 봉인해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민영이가 2년 동안 날 좋아해서 야설의 세계에 빠졌는데, 그게 2년이 아니라 200년이란다. 하아.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무론 지금은 모든 기억을 찾았지만.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크크크크크크, 크헤헤헤." "……." "……." 나의 야성미(?)넘치는 웃음소리에, 옆에 있던 민혜과 나래누나는 그만 굳었다. 여기서 한 가지 엄청난 사실을 밝히겠다. 지금 내 옆에서 굳어 버린 그녀들도 천사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으신 분들이다. 이 또한 민호가 수작을 부려서 잊어버렸다가 이제야 되찾은 기억이다. 인간이 아닌 외모를 가졌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인간이 아니었다. "저, 크라이 님." "민혜, 또!" "아, 미안. 오빠." 기억이 모두 돌아온 이후 가끔씩 나를 크라이라고 부르는 민혜. 아무래도 내 직책이라는 게 신경이 쓰이나 보다. 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난 그냥 재현이라는 이름이 좋다. 민혜가 다시 조심스러운 어조도 묻는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내일 크리스마스 이브거든." "아." "……?"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말에 갑자기 기가 푹 죽는 민혜. 난 그녀의 그런 반응이 이상하기만 하다. 그래서 민혜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열은 없는데?" "아, 아니야." "……." 뭐가 아니라는 걸까. 이런 궁금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민혜가 애써 웃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예, 예진이 언니랑 즐거운 시간...." "……흑." "……?" "……?" 예진이란 이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나온다. 그래, 이번 크리스마스는 예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하지만, 그녀는 이미 해외로 나가셨다. 부모님과 함께. 사실, 나에게도 예진이에게도 부모님이 있다. 이 몸 자체는 엄연히 부모님에 의해 탄생한 것이도, 영혼만이 계속해서 리필(?)되어 온 것이다. 즉, 예진이는 에이리라고 불리는 여신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이름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뭐 이야기가 복잡한가? 이 얘기는 일단 그냥 넘어가고. 어찌 됐든 예진이에게는 아직 여신의 기억을 찾아 주지는 않은 사태가. 굳이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것보다는 지금 인간으로서 즐겁게 사는 걸 더 원한다고나 할까? "오빠?" 민혜가 강상에 젖은(?) 나를 불렀다. 난 다시 방금 전 상황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예진 님은 해외로 가셨어." "아." "……." "그, 근데 아까 그 웃음은?" 아아, 아까 나의 순진하고 맑은 웃음이 신경 쓰인 거구나. 그 웃음의 원인은..... "이민호, 크하하하하!" "……." "드디어! 드디어! 이민호! 이민호! 이민호!!" 나에게도 복수할 기회가 왔기에 웃은 것이다. 예진이와 단둘이 있고 싶건만 만날 끼어들어서 초를 치셨던 이민호.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분노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복수할 기회가 왔다. 크리스마스날, 태평하게 게임 안에서 데이트를 하겠다는 이민호. 누군 궁상떨고 있는데, 뭐? 아포라랑 데이트를 한다고? 지랄염병이다. 내가 데이트를 그냥 지켜만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나도 철저히 복수해 주마. 철저히 밀이야. "으하하하하하하하!!" "……." "……." "으하하하! 이민호!!" "……." "……." "기대해라!!" 아포라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당한 게 너무 많아서 이대로 가만히 민호가 행복하게 데이트를 즐리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날이 왔다. 과연 민호라는 사악한 생물체 때문에 괜한 아포라에게까지 피해를 주어야 하는가 밤새 고민해 밨지만 역시 결론은 어쩔수 없다는 거다. 녀석 때문에 피 본 게 한두 번이어야지 말야. 이번에는 그 자식이 피를 보게 만들 테다. "아, 민호 님." "안녕하세요." 그때 열심히 잠수 타고 있던 내 눈에 포착된 장면. 그건 민호와 아포라의 만남이었다. 아포라는 푸른색 블라우스에 붉은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민호 앞에 등장하겼는데 그 모습에 주변 남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여기서 다시 언급하는데 아포라는 여신님이시다. 아름다운 외모는 기본이라는 거지. 자자. 이제 내 작전대로 가볍게 걸어가는 거다. "저기…… 일단 걸을까요?"' 아포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에 민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죠." 그렇게 둘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래, 나이스! 모든 게 내 작전대로야! 이제 단둘이 걷는 저위로 비를 내리는 것이다. 아니, 비로는 모자라. 우박을 떨어트리는 거다. 케케케. …….점점 내 자신이 비참해지는구나. 아니,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우박을 떨어트리고 나서! 난 그렇게 결심하며 민호를 타깃 삼아 우박을 떨어트리려고 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묘한 광경. 너무도 좋아하는 아포라의 얼굴이 보인다. 붉게 물든 저 얼굴이 그녀가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악! 난 얼른 손을 거두면서 중얼거렸다. "하, 할 수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여인의 아름다운 순정을 짓밟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여리다." 제길, 이민호. 운 좋은 줄 알아라. 크윽.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그 순간이었다. "결혼할까요?" "네에?" "……." "결혼하지 않겠습니까?" "……." 갑작스러운 민호의 말에 그대로 굳어 버린 아포라. 도대체 저 녀석, 무슨 진전이 이렇게 초스피드야! 만난 지 10분밖데 안 됐는데 대뜸 결혼하자니! 뭐 저런 파렴치한 인간, 아니 외계 생물체가 있나? 하지만 그런 외계 생물체의 말에 무척 당황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아포라.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민호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참 마음고생이 심했구나. 근데 왜 저런 애를 좋아한 거니. 난감하다. 그때 또다시 내뱉어지는 충격 발언 제2탄. "그럼 내일 할까요?" "네, 네?" "내일 결혼하자는 거죠." "……." 미쳤다. 만난지 10분 만에 프러포즈하고, 다음 날 결혼하자는 미친놈. 아무리 급해도 그렇기 내일 당장을 좀 오버잖아! 아포라가 당황한 듯 민호에게 말한다. "그, 그래도 결혼은 준비할 게……." "이왕이면 크리스마스에 하고 싶다는 걸까요?" "……아." "그렇다는 거죠, 뭐." "하,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주례 같은 건……." "형님이 있지 않습니까?" "크라이 님요?" "네. 어차피 내일 놀고 계실 텐데, 그냥 맡기죠." ……저 자식, 내가 노는 게 불만이야? 앙? 게다가 내 신세도 서러워 죽겠는데, 내가 지금 네놈 결혼식 주례를 할 정도로 한가해 보이냐? 절대 거정리다. 절대 절대 절대 말이다! 내가 미치지 않는 이상 절대 없어! "……." "꺄아아! 진짜 예뻐." "웨딩드레스 너무 잘 어울린다." "진짜 초스피드 결혼?" "……." 다음 날 우리는 근처 예식장을 통째로 빌렸다. 완전 통째였다. 돈의 출처는 나는 모르고, 민호 님이 조달해 오셨다. 어찌됐든 최고급 예식장에 초스피드 결혼식이다. 프러포즈한 지 단 하루 만에 말이다. 그런데…….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내가 왜 주례자리에 서 있는 거냐? 난 분명 거절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건만, 영리한 민호 자식은 직접 오는 대신 아포라를 보냈다. 한마디로, 거절하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 난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그렇게 그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결혼식장에는 거의 모든 신들과 상급 직책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마디로, 여기 모인 분들 포스가 장나이 아니라는 거. 아니, 그것보다……. "진짜 싫어!" 크리스마스날 비참하게 혼자 구시렁거리는 것도 그런데, 이 나이에 남의 결혼식 주례라니. 지금 당장이라도 울면서 뛰쳐나가고 싶다. 하지만 보는 시선이 많아서 그것도 무리. 크윽. "신랑 입장!" 사회자, 나래 누나의 외침에 서서히 들장하는 민호 군. 요새 유행하는 예복을 입고 나타났는데, 즐이다. 정말 왕짜증! 민호가 천천히 내 앞에 다가와 서더니, 이내 진지한 어조로 핫소리 한마디 하신다. "제가 떠나서 슬픈가요?" "……." "저는 남자는 싫거든요." "나도 싫거든?" 이 자식, 결혼식장에서도 개소리는 여전하다. 오늘만큼은 조금이라도 진지해 봐라, 응? "신부 입장!" 나래 누나의 외침에, 이번에는 아포라가 어떤 아저씨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오신다. 저 아저씨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포라 양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이자 형님의 직속 상위신이신 트라스 님입니다." "나도 알아, 임마." "모르셨으면서." "안다고!나도 내 직속 신 정도는 알고 있다고." "구라 즐요." "……." 당장이라도 눕혀서 패고 싶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행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민호, 이 결혼식 끝나면 각오해라. 앙……? 그렇게 분노만 삼키던 나. 이윽고, 트라스가 섭섭한 표정으로 아포라의 손을 민호에게 건네준다. 트라스, 그 심정 압니다. 웬 저질 변태에게 딸을 보내는 심정이겠죠. 지금 당장이라도 누군가가 판 안 엎어 주나? "안 엎어 줄 겁니다." "……." "절대 절대 절대 말입니다." "……." 그때 들려오는 민호의 한마디. 그래. 거참 섭섭하구나. 그렇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나래 누나의 음성이 다시 한 번 들려온다. "자, 그럼 주례를 맡으신 크라이 님의 주례사가 이어지겠 습니다. 그 말에 나는, 떨떠름한 기분으로 준비해 온 주례사를 열었다. 누군 크리스마스에 외로워 죽겠는데 남의 결혼식 주례나 서 주다니, 그 기분 누가 알까? 모른다, 몰라. 그렇게 난 인상 팍팍 구기면서 주례가사 적힌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굳었다. '뭐, 뭐야? 이 미친 글씨들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는 깨알같은 글씨들. 대충 훑어본 사람도 어이가 없는데 이걸 다 읽으라는 소리냐? 이래서 항상 주례 듣다가 잠드는 사람이 많은 거다. 난 그리고 그런 이들을 위해……. 타악. 주례사가 적힌 종이를 책상 위에 엎어 높았다. 그리고 민호와 아포라는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말한다. "잘 살아 보세." "……." "……." "……." "……." "……." 내 한마디에 순식간에 냉동되어 버리는 결혼식장. 진짜 이건 내 나름의 배려다. 지겨운 건 후딱 넘어가게 하려는 배려. 절대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니 오해 말도록. 뭐, 뭐야, 그 불신의 시선들은? 정말이라니까! 근데 아무도 안 믿는 분위기…… 난감하군. 결혼식은 그렇게 임팩트하게 진행되었다. 만난지 10분 만에 프러포즈, 프러포즈 한 지 하루 말에 결혼식, 그리고 주례사는 단 한 마디. 역사상 최단시간 결혼일 것이다. "멋진 주례사였습니다." 민호가 내게 찾아와 그렇게 말했다. 흐음, 역시 뭘 아는군. "근데, 선물은요?" "……." 그때 갑자기 선물 타령하는 민호. 난 그에게 웃으면서 말했따. "주례해 줬잖아?" "그런가요?" "그런 거야." "흐으음." "어서 신부한테나 가셈." 난 훠이훠이 쫓아냈다. 신랑이라는 놈이 신부 옆에는 안 붙어 있고 도대체 어딜 싸돌아다니는지 원. 나는 그렇게 녀석을 아포라에게 보냈다. 한편, 다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난 오늘 유난히도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선물이라……." "와아!" 아포라는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난히 날이 맑았고 오늘은 절대로 눈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새 주위를 뒤덮은 하얀 눈. 한테 차갑지는 커녕 너무나도 따뜻한 기분이다. 세상의 모든 어둠과 상처를 피유해 줄 만큼 따뜻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눈은 모든 아츰을 씻어 내리고 있었다. "그거 알아? 지금 내리는 눈, 이 지역에만 내리는 게 아니래. 전 세계에서 동시에 내리고 있대!" 민혜가 당황해서 그렇게 말하자, 그 말에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전 세계에 동시에 눈이 내릴 가능성은 절대 없다. 그것도 이런 특이한 기운을 담은 눈이라면 더더욱.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한 남자가 눈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린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에필로그2- 허억허억. 어느새 내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너무나도 격하게 한 탓일까? 땀이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19금 장면을 상상한 사람들은 변태. 나는 세계의 평화(?)를 지킨 뒤 다시 게임으로 컴백했다. 이제는 이 세계 자체가 너무나 익숙해서 떠날 수가 없다. 또 이곳의 존재들과도 정이 많이 들었다. 어찌 됐든 난 게임 이후에도 열심히 돈을 벌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왜!! 항상 이 모양인 게야!" 오늘도 이곳 온천 개발지에서 온천을 파내면 무조건 내거라는 말에, 민호와 함께 삽을 들고 당장 파견 나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약 1시간에 하나 파내는 데 비해, 우리는 내리 사흘을 펄야근무를 하고 있는데 물 한 방울도 안 보인다. 민호가 말했다. "이건 강제 노동입니다." "닥쳐." "전 피곤합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가정이 있습니다." "내 알 바 아님." "악마." "뭐라 부르든 상관없어. 내 이번에는 꼭 파낼 거니까 말이야." "초악마." "……." "대장 악마." "……." "저질 악……." 퍼억! 난 참지 못하고 그대로 민호의 대갈통을 갈겼다. 그러자 민호는 억울하다는 듯. "무슨 말을 해도 괜찮다고 하셨잖습니까?" "……." 그렇다고 진짜 마구 해 대냐. 그냥 말이 그렇다고……! ……미안하다. 저 자식과 이야기를 한 내가 잘못이다. 난 그 말과 함께 난 다시 묵묵히 삽질을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번에야말로 나에게 씌인 저주를 물리치겠다. 성실과 근면함으로 말이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다시 삽을 들고 열심히 파냈다. 그리고……. "아악!" 드디어 터졌다. 물이 터졌다. 드디어 온천을 파낸 것이다. 이제 여기서 장사만 시작하면 대박(?) 막 흥분된다. 하지만 그 순간, "이건 그냥 지하수인데요, 온천수가 아닙니다." "……." 민호의 한마디에 난 그래도 쓰러졌다. 제길. 디재스터…… 재앙의 늪은 나를 놓아 주지 않는다. 나에게는 어느새 꿈이 생겼다. 바로 나만의 게임을 하나 만드는 거랄까? 그리고 그 게임의 초히든 클래스는……흐흐흐. "야" "왜 그러십니까." "이런 직업, 멋지지 않을까?" "……?" "모든 무기를 마스터 한 자. 그리고 그 힘에 자연의 속성을 불어넣은 어마어마한 직업." "저질인데요." "……죽을래?" 내가 생각해 낸 그 어마어마한 직업을 저질이나리. 솔직히 히든 클래스로 만들면 진짜 멋있을 것 같다. 물론 내가 당한 것도 많으니 절대 쉽게 주지는 않을 거야. 크크크. 내가 당한 만큼……후하하하! "악마 같군요." "……닥치셈." "악마. 악마. 악마." 퍼억! 난뒤에서 조잘거리는 민호를 순식간에 잠재운 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모든 무기를 소환해서 인첸트하는 사기 직업! 생각만으로도 멋지다. 그리고 그 직업의 이름은……. "마스터 오브 웨폰……?" 우와! 삘 오는데? 이런 내 말에 민호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전 다크 프리스트라는 아름다운 직업을 만들 겁니다." "……별로 아름다워 보이는 이름은 아닌데?" "아름답습니다. 힐 주면 상처를 악화해 주는 거죠. 그리고 처음 시험은, 독사 200마리랑 즐겁게 사냥하는 스토리?" "……." ……그 직업, 누가 하게 될지 몰라도 정말 디재스터(재양)스럽겠다. <『디재스터』The End> -에필로그, 그 후- "쫓겨났습니다." "……." "상큼하게 말이죠." 난 내 앞에서 집적대는 민호 군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왜 쫓겨났는데 남의 집에 와서 노는 중이냐? 쫓겨났으면 부랑자 행세를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예진이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착한 이포라한데 쫓겨나는 거야? 내가 그런 질문을 하기도 전메 미리 선수 치시는 민호 님. "외박을 좀 했습니다." "……." "사흘 정도 한 것 같군요." "……." "아무 말도 안 하고 잠수 탔다고 화를 내십니다." "너, 너 장난치냐?" 결혼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외박이냐! 그것도 사흘씩이나. 아니, 그것보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외박하면 어쩌자는 거냐! 그 순간 민호가 나를 찐하게 바라본다. 그러자 이상하게 가슴이 콕콕 쑤신다. 으잉? 왜, 왜 이러는 거지? 난 모든 게 순수한데 말이다. "……." 계속해서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민호. 난 그 시선을 애써 외면하면서 두리번거리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꽥 소리를 질렀다. "왜! 왜 쳐다봐!" "모르시는 겁니까?" "뭘?" "제가 쫓겨난 이유를요." "외박해서 그렇다면서!" "흐으음." 왜 지가 쫓겨난 이유를 나한테 묻는 게냐? 민호가 다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한 마디 던지신다. "사흘입니다." "……." "연속 사흘 외박 하면 뭔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흠칫. 그 말에 무언가가 내 머리를 살짜 스쳐 지나갔지만 난 애써 외면했다. "그, 글쎄……." "흐으음." "뭐, 뭔 말이니? 하하하." "왜 형님 강제징용한 기간이랑 같을까요?" "……." 그 말에 난 순식간에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민호의 말이 이어졌다. "형님이 온천 판다고 신혼인 저를 강제징용한 기간도 사흘이죠." "……." "그리고 제가 쫓겨난 이유도 사흘 동안 외박했기 때문입니다." "……." "뭔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네가 말하고 싶은 건 내가 사흘 동안 데려다 온천 파게 해서 쫓겨났고 그게 내 탓이라는 거냐? 아니, 그것보다……. "무단외박이라면서." "원래 남자가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야 멋있거든요." "……." "그래서 말없이 나온 겁니다." ……미친 자식. 무단 외박하면서 말없이 떠나야 멋있다고 하신다. 솔직히 말하면 내 잘못도 있다. 하지만 저런 미친 신념 때문이 아포라한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튀어나온 저 자식의 잘못이 더 크다. 민호의 말이 이어졌다. "한동안 형님 집에서 신세 좀 지죠." "……." "양심이 있으시다면 저를 묵게 해 주시겠죠." "……." "분명히 말입니다." 제길……. 난 민호와 같은 지붕 아해서 12시간이나 살았다. 나름대로 아름다운 소녀들과 한 지붕 아래 사는 것이 내가 꿈꾸던 모습이기는 한데, 남자와 단둘이 생활하는 것은 제일 원치 않는 설정이다. 외계 생물체와 살고 싶지 않는 내 마음……이라고 할까. 아니, 그것보다……. "네놈의 성지가 있잖아!" 민호의 성지라 하면, 온갖 음란물을 모아 놓은 하이테크한 지하기지. 그곳이라면 충분히 즐길 건 다 즐길 수 있을 텐데 왜 여기에 와서……. "흐흑." "……." "왜, 왜 울어, 임마!" "너무 슬픈 기억이 나서요." "……." "흐흐흑." "야야, 갑자기……." "흐흐흐흑." "……." 민호가 눈물을 줄줄 흘린다. 얼마나 슬퍼하는지, 보는 내가 마음이 찡할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자의 눈물을 감상하는 취미는 없으므로, "야야, 작작 울고 이야기를 해 봐. 뭔 일인데!" "사라졌습니다." "……." "제 성지 님(?)이 승천하겼습니다." "누, 누구한테?" "아포라 님한테요." "들킨 거냐?" "네." "……." "……." 나와 민호는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왠지 민호가 불쌍하기도 하면서, 결혼이라는 게 무서워지기도 한다. 쫓겨나지를 않나, 거의 죽어라 모은 레어템들이 하루 만에 승천을 당하지 않나. 무섭다. 서, 설마 결혼이라는 게 원래 저런 거냐? 어찌 됐든 난 약간의 책임감을 느끼고 민호를 우리 집에 묵게 했다. 그런게……. "왜 예진이가 네놈의 밥까지 해 줘야 하는 거냐?" 그렇다. 항상 내 밥을 챙겨 주러 오는 예진이가, 민호라는 덤 하나 때문에 일이 더 많아진 것이다. 그러자 민호는 웃으며 말한다. "지금 제가 여기 있는 이유를 잘 생각해 보시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 참자, 참아. 그래, 어찌 됐든 원인 제공은 내가 했으니까 말이다. "재현아, 식사 다 됐어." "저, 민호 님." 우리가 식사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예진이가 민호를 부른다. "왜 그러십니까, 사부인?" 퍼억! "개소리 작작해." "……." 갑자기 웬 사부인이냐. 어디서 굴러 들어와 우리 예진이를 당황하게 만드는 거야. 넌 엄연히 불청객이라고. 한편, 사부인이라는 말에 잠시 당황한 예진이었지만 그런대로 안정을 찾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신혼인데…… 집에 안 들어가셔도 돼요?" "들어가고 싶은데요." "……?" "쫓겨났습니다." "……?" "모 분 덕분에 말이죠." 뜨끔. 그 말에 다시 심장을 바늘에 찔린 것 같은 느낌이 마구 든다. 젠장. 저 자식 언제까지 우려먹을 작정이냐! "그, 그런가요." "네." 왠지 이상한 우리 둘의 분위기에 예진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야, 분명 궁금할 법도 한데 이렇게 나를 배려해 주다니. 너무 귀여워. 저렇게 일일이 챙겨 주는 예진이를 보니 어서 결혼하고 싶다. 한집에서 오순도순 예진이랑 살고 싶다. 하지만 아직 전생의 기억을 찾지 못한 예진이는 엄연히 미성년자이니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싶다. 그나저나 저런 천사랑 한 집에서 산다고 생각하면……. "아이잉."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내 모습을 본 민호가 진지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결혼은 마치 지옥 같습니다." "……." "저를 모십시오. 사흘 만에 쫓겨났습니다." "그건 네 처사 문제고." 결혼하자마자 사흘 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잠수 탔는데 그저 쫓겨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라. 그리고 난 분명 녀석을 데리로 갈 때 아포라한테 얘기하고 오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런데도 멋진 남자 타령하며 말 안 하고 온 것이다. 그렇게 약 몇 시간이 더 지났다. 난 열심히 빈둥대고 계신 민호 님을 보고 못마땅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집에 들어가지?" "못 들어간다니까요." "미안하다고 하면 되잖아." "안 되던데요." "엥?" "미안하다고 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그, 그럴 리가?" 내가 아포라 성격을 좀 아는데, 그녀 성격상 남이 사과를하면 곧바로 받아 줄 것 같은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아무리 화가 나도 자신의 잘못만 인정한다면 용서해 주는 스타일이라는 거다. 그런데 그런 아포라가 사과를 거저럤다고? "제발 특별히 알몸이 되어 드러누운 뒤 저를 마음껏 능욕하고 화를 풀라고 했죠." "……." "저 나름대로는 최고의 사과였는데 퇴짜 맞았습니다." "……." 이유를 알 것 같다. 아포라가 사과를 안 받아들인 이유를. 저 미친 자식은 사과라고 하면서, 알몸으로 드러누운 뒤 아포라에게 자기를 능욕하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변태적인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포라는, 자신의 잘못도 인지 못하고 이상한 짓거리만 해 대는 민호를 보고 용서할 마음이 절대로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 또라이 자식아! 그게 사과냐?" 난 넘나도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소리 질렀다. 그 말에 민호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 "제 성격상 그런 엄청난 사과는 처음인걸요." 이제 아내도 있고 하니 좀 덜 미쳤으면 하는 바람인데, 아직도 미쳐 있다. 혼시라고 2세가 태어나면 왠지 세상이 끔찍해질 것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 그렇군요." "……?" 그때 갑자기 탄성을 지르는 민호. 그는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형님의 방식대로 강제로 덮쳐야 했던 건가요?" "이 자식아! 제발 멀쩡한 사람 변태 만들지 마!" 젠장. 아포라, 얘 좀 데려가 줘. 흐흑. "민혜야, 부탁해." "으응." 난 엄청난 결심을 했다. 그건 바로 민호와 아포라를 화해시키는 것. 저 자식, 우리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이상한 것만 계속해서 보는데 정말 방해된다. 한마디로, 요 며칠 우리 집에서 이상한 신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는 소리. 물론 동영상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믿는다. 어찌 됐든 그런 민호를 보내기 위해서는 아포라를 설득해야 했는데, 내가 그렇게 화려한 말발의 소유자가 아니다 보니 지원군은 필수였다. 그래서 민혜에게 같이 가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아, 크라이 님." 약속 장소로 잡은 근처 카페에 단정한 모습으로 나와 있는 아포라. 긴 머리카락을 붉은색 리본으로 포니테일 형식으로 묶었는데 정말 예쁘다. 솔직히 누가 저분을 아줌마라고 생각할까. 그나저나 아포라도 이제 인간이 다 되었군. 매번 신세대 옷을 갖춰 입고 나타나는 걸 보면 말이다. 뭐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저기, 아포라." "네?" 난 아포라가 앉기도 전에 먼저 말을 건넸다. 하지만 조금 성급했다는 걸 깨닫고 곧 사과했다. "아, 미안. 앉아." "미안하실 거 없어요, 크라이 님." 아초파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앉는다. 아무리 봐도 너무 착하신 분인데 이런 분이 왜 그렇게 화를 낸 거지? 뭐 모든 진실은 이 자리에거 밝혀지겠지. 난 원래부터 민호 녀석의 말은 귀 기울여 듣지도 않았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난 아포라를 향해 나름대로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민호랑 심하게 싸웠어?" "아." 민호 이야기가 나오자 급격히 얼굴이 어두워지는 아포라. 난 그런 그녀를 보고 다급히 말했다. "그러니까 아포라, 지난번에 사흘간 외박한 건……." "아니에요." "엥?"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에요." "……." 민호 녀석은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 자식, 또 구라구나. 뭐 애초페 믿지도 않았기에 별 충격이 없기는 하다만. 아포라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한껏 가라앉은 어조로 내게 말한다. "도대체 민호 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겠어요." 그거 알면 노벨상을 싹 쓸기에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만 분위기가 영 그래서 일단 패스. 아포라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똑같아요. 결혼하기 전이나 후나." "……." "항상 웃기만 하고, 저를 사랑하는 건지 아닌지 전혀 감을 못 잡겠어요. 물론 말로는 살아한다고 하지만 다른 건……." "……." 한마디로, 그 뺀질거리는 생동은 결혼 전이나 후나 전혀 변화가 없다는 거네? 그리고 아포라는 그런 민호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어쩐지 몰라서 이렇게 가슴 아파 하는 거고. 근데 분명 내가 생각한 민호라면 결혼 후에 아포라한테 마구 저질스런 행동을 할 것 같았는데? "저, 저기 근데 이런 말 해서 좀 그런데……." "……?" "민호가 너한테 막 저질스런 행동 같은 건 안 해?" 도리도리. 헉! 난 고개를 가로젓는 아포라를 보고 경악했다. 미, 민호 자식이 안 했다고? 분명 결혼하면 아내에게 별의별 변태 행각을 벌일 것 같았던 민호가?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포라의 추카타에 비해서는 말이다. 아포라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아직 손도 제대로 못 잡아 본 걸요." "……." 세상에나! 이건 세상이 망할 징조다. 민호가, 그 민호가 자기 마누라랑 손도 안 잡아 보다니! 당연한 말이지만 손도 안 잡아 봤다면 그 이상의 단계는 꿈도 꾸지 않은 상태라는 거. 허억. 이건 말도 안 된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건, "그리고 전 쫓아낸 적 없어요." "……." "갑자기 민호 님이 며칠 후에 들어온다며 그냥 나가셔서……." 쫓겨났다는 것도 구라로 판명. 한마디로 구라, 구라, 구라, 구라, 구라다. 진실 따위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왜 민호가 아포라랑 손도 안 잡는 거지? 사식은 숙맥이어서? ……미안하다. 좀 말도 안 되는 개소리 해 봤다. 민호가 숙맥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요즘 내가 좀 미쳐 가는 것 같다. 자자, 정신차리자. "아포라, 우리 집에 같이 가자. 거기에 민호 있어. 이런 건 이야기를 해 봐야 한다고." "흐으음." "미, 민호님." 아포라를 보자마자 곤란해 하는 민호 군. 확실히 뭔가 구린내가 난다. 난 그런 민호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너의 구라는 이미 밝혀졌어. 아니, 그건 일단 넘어가고…… 도대체 아포라랑 손도 안 잡은 이유가 뭐냐?" "흐으음." "……." 진짜 궁금하다. 결혼까지 한 사이면서 손도 안 잡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설마 숙맥은 절대 아닐 테고, 혹시 비주얼 캐릭터들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초변태인가! 그때 민호의 말문이 열렸다. "꼭 말해야 하나요?" "응." "꼭이요?" "꼭." "왜요?" "말 안 하면 네놈이 구라 친 것에 대한 보복이 이어질 테니까." "하아. 어쩔 수 없군요." 꼭 구타 이야기가 나와야지만 말을 듣는다. 네가 짐승도 아니고 좀 말로 끝내자. 응? 왜 꼭 날 이렇게 나쁜 놈으로 만드는지. 에휴. 민호가 아포라를 바라본다. 그런 민호의 시선에 쑥스러워하는 아포라. 민호가 그녀에게 진지한 눈빛으로 말한다. 어마어마하게 멋진 말을……. "……그 누구보다 소중하니까요." "……." "……." "……." "아포라 님이 이상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배려해 드린 겁니다. 저한테 그 누구보다 소중한 분이니까요. 아포라님이 인상을 찡그리는 건 절대 원하지 않거든요." "……." "……." 할 말이 없다. 정말 없다. 하필 그 순간 내 머리를 스펴 지나가는 한 가지 궁금증! "너, 너 그러면 가출은……?" "덮치고 싶은 걸 참느라 가출했죠." "……." 항상 저질 변태라고 불리던 민호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니. 믿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아포라를 덮치고 싶었지만, 아니 말이 좀 이상하네. 결혼한 사인데 뭐라고 해야하나. ……일단 그냥 넘어가고. 아포라와 깊은 스킨십을 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그녀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배려해 준 거라는 얘기다. 그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이기에. 이민호. 너한테 이런 멋진 모습이……? "저, 저는 민호 님이라면 어떤 짓이라도 상관없어요." 아포라가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말한 순간, 민호의 가출 사건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사흘 후. "크라이 님! 민호 님 좀." "왜 그래, 아포라?" 예진이와 식사 도중 다급히 나를 찾아온 아포라는 울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다시 문이 열리면서 등장하는 한 존재. 웬 복면을 뒤집어쓴 남자였다. 하지만 누구인지는 아주 잘 알겠다. 난 어이없는 어조로 복면을 쓴 남자에게 말을 거넸다. "민호 군……. 뭐 하는 짓?" "덮치는 플레이입니다." "……." "평범한 건 재미없거든요." "……." "크라이 님! 미, 민호 님 너무 변태 같아요!" 아포라는 눈물을 흘리고, 예진이는 얼굴이 붉어진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민호는 즐거워한다. 사흘 전 민호 자식에게 멋지다고 했던 말 바로 취소한다. 그때 민호가 예진이의 등 뒤에 숨어 있든 아포라에게 천천히 다가와 음침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이리 오시지요, 베이베." "……." "……." "……." "자, 순순……." 퍼억! 다음 순간, 나는 그 변태를 조용히 밟은 뒤 어디론가 끌고갔다. 그리고 잠시 후, "우어억……!" 아름다운 괴음이 울려 퍼졌다. 어느새 나랑 예진이는 대학교 2학년이 되었다. 한마디로 사귄 지 꽤 오래됐다는 것. 하지만 우리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진전……이 없어." 3년 전 손 한번 잡아 본 걸로 기억하는데 그 이후로 진전이 없다. 도대체 3년 동안 난 뭐 한 거냐! 물론 아주 가끔씩 팔짱이라든가 가벼운 스킨십 정도는 하지만 그 이상은 없다. 예를 들어 키스 같은 것. 내가 남자니까 과감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예진이만 보면 아직도 심자이 두근거려서 잘 안 된다. 아, 이런 한심한 영혼 같으니. "참으로 등신 쪼다죠." "……." "한심합니다." 어느새 내 뒤로 와서 조잘거리는 민호 군. 안 그래도 지금 열 받아 뒈지겠는데 염장질이냐? 하아…… 젠장, 나도 하고 싶다고! 이런 나를 본 민호가 설레설레 고개를젓더니 선심 쓴다는 어조로 내게 말했다. "형님을 위해서 특별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 "예진 누님과 뜨거운 키스를 하기 위한 선생님이죠." 뭐? 키스를 위한 선생님? "오라버니!" "허억!"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습을 드러내는 청순 미소녀. 이제 고3으로 완전 전성시대 그 자체를 누리는 청순 미소녀였다. 하지만 아직 야설의 영향이 남아 있는지, 이제 야설을 읽지 않는다는데도 불구하고 좀 무섭다. 민영이 나를 보며 말했다. "저 오라버니 후궁(?)도 괜찮은데." "……." "어때요?" ……저기요. 지금 어느 시대인데 후궁 타령입니까. 물론 민영이가 싫은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본 때마나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진이와 더불어 이쪽 저쪽 집적거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호 말로는, 최초의 신인 나 정도의 존재라면 기본으로 하렘이 있어야 한다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넌 순수한 일편단심이니까. "지나친 구라는 몸에 해롭습니다." "……." 이 자식은 왜 이렇게 태클을 거는 거냐? 그냥 한 번만 넘어가자? 응? 그나저나……. "키스 훈련이라더니 민영이는 왜?" "간단한 걸 물어보시는군요." "……?" 간단하다니.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으니 물어보는 게 아닌가. 민호가 민영 양을 가리키더니 내게 말한다. "민영 양이 예진 누님이라고 생각하고 실습을 하는 겁니다." "뭐, 뭐?" 난 기겁했다. 난 애인이 버젓이 있는 몸이다. 그런데 연습이라 하더라도 다른 여자랑 키스를 하라니! 민호가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진짜로 할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 "그래서 그렇게 놀란 거고요." "……." "전 단지 그냥 하는 척만 하며 연습하자는 의미였는데요." "……." "완전 짐승이군요." 그, 그건……. 네놈이 워낙 하는 짓거리가 그렇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진짜로 하라는 말인 줄 알았단 말이다. 으윽, 제길! "거듭 말하지만 형님의 음침함 욕구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게 아닙니다." "누가 음침한 욕구불만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민영 양과 실제로 키스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 "형님은 지금 욕구불만 그 자체입니다. 제 야동생에게 이상한 짓 하지 마시길." "안 해, 인마!" 제길. 내가 음침한 욕구불만이라니 절대 인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저 자식은 나를 완전히 그렇게 취급하는 눈빛. 그래, 무시하자. 무시해. 그게 건강에 좋아. "오라버니, 옷부터 벗어요? 침대부터 올라가요?" "……." 그때, 내게 참 이상한 걸 묻는 민영 양. 난 황당한 어조로 되물었다. "가, 갑자기 옷은 왜 벗고 침대는 왜 올라가?" "리얼리티를 위해서요." "……." "침대에서 키스하실 거잖아요. 옷 벗고." "허억."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상상하고 말았다. 옷을 벗고 침대 위에서 나의 키스를 기다리는 예진이의 모습……. "아악! 뭐 하자는 거냐!" 정말 내 자신이 싫다. 어느새 헛된 망상에 빠져 버린 내가. 어쨌든 민영이가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녀에게 침착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 이상한 키스는 절대 아니고 순수한 키스." "으음." "그, 그래. 순수한 키스를 하려는 거야!" "……." ……솔직히 내가 말하고도 순수한 키스가 뭐 하는 키스인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민영이가 생각하는 그런 19금 키스신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은 것이다. 터벅터벅. 그때 내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빤히 쳐다보는 민영 양. "오라버니." "응?" "아, 해 봐요." "아?" "네." "왜?" "해 봐요." "……뭐, 뭐" 난 이유가 궁금하긴 했지만 민영이가 하라는 대로 아, 했다. 그리고……. "흐읍!!" "……." "……." 곧 내 입술에 민영이의 입술이 겹쳐지면서 혀가……(심의 삭제). 쿠오옥. 난 너무 당황해서 아무것도 못한 채 굳어 버렸다. 잠시 후 민영이가 살포시 입술을 떼더니 내게 묻는다. "이런 순수한 키스?" "……." "오라버니, 이런 거죠?" "……." "왜 그래요?" 순결을 또 뺏겼다. 한데 민영이가 도리어 이렇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오라버니가 제 첫키스를 강제로(?) 훔쳐 가버였네요. 아잉, 부끄러워." ……내가 언제? 나름대로 특수 훈련을 끝낸 나. 진짜 예진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용기를 얻었다. 오늘 하고 말 것이다! "저기, 예진아?" "응?" 긴 머리를 간편하게 묶고 푸른색 원피스를 입고 온 예진이. 그 모습이 얼마나 미치게 아름다운지 완전 돌아 버리겠다. 벌렁벌렁 뛰기 시작하는 내 심장. 아, 안 돼! 특수 훈련까지 마치고 왔잖아! 오늘은, 오늘은……. "……." "왜 그래?" "아, 아니." 분명 들이대려고 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여!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다! 그렇게 내 몸을 향해 명령을 내리지만 정말로 안 움직인다. 그런데 그 순간. "……." "……." 마치 홍당부처럼 붉어진 예진이의 얼굴이 내 앞에 다가와있다. 그리고 내 입술에 닿은 무언가. 그냥 단순히 입술만 부딪쳤을 뿐인데 온몸이, 온몸이……. 우어억! "부, 부끄러워 더 이상은……. 일단 이걸로 만족해 줘." "……." "미, 미안." 그러면서 얼굴을 붉히 채 근처 화장실로 뛰어가는 예진이. 아쉽다. 조금만 더 해 주지. "……등신 쪼다." 또 실패했다. 흐윽. 세상에 큰 재앙이 생겼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인류가 망하기 위해 태어난 재앙. 디재스터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존재가……. "형님, 저의 2세 어떻습니까?" "……." "참으로 아름다운 성격을 가질 것 같습니다." 그렇다. 민호의 2세가 태어난 것이다. 민호 2세라니 생각만 해도 무섭다. 아니,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자기 아버지에게 감염되지 않도록 내가 보호해 주면 인류를 구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름은 이정우라고 지었습니다." "……." "멋진 이름이군요." 지가 말하고 지가 감탄한다. 이정우? 뭐지? 이 섬뜩하다 못해 무서운 이름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이 기분! "이정우, 착한 정신세계를 가진 아이가 될 것입니다." "……." "제 아들이니까요."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걸 느꼈다. 난 단지……. "……." 정우라는 이름을 가진 민호의 2세가 따라붙을 한 존재에 대한 애도를 표할 뿐이다. 누가 될지 몰라도 인생 살기 싫겠다. "아, 그리고 선물입니다." "……." 그 순간 민호가 선물이라면서 무언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서류?" "선물입니다." "……." "제가 가면 열어 보시죠." "……." 그러면서 휘적휘적 사라지는 민호 님. 도대체 뭐야?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서류를 열었고 잠시 후 굳어 버렸다. 구분 성명 출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 성별 본인 이재현 ******* ******-******* 남 혼인상황 구분 성명 출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 성별 배우자 김예진 ******* ******-******* 여 배우자 이민혜 ******* ******-******* 여 배우자 이나래 ******* ******-******* 여 배우자 에리아스 ******* ******-******* 여 배우자 이리스 ******* ******-******* 여 배우자 이민영 ******* ******-******* 여 배우자 레에니 ******* ******-******* 여 구분 상세내용 혼인 [혼인신고일]****년 **월 **일 [신고관서]서울시 [기록일]****년 **월 **일 [배우자]김예진 [주민등록번호]******-******* [배우자]이민혜 [주민등록번호]******-******* [배우자]이나래 [주민등록번호]******-******* [배우자]에리아스 [주민등록번호]******-******* [배우자]이리스 [주민등록번호]******-******* [배우자]이민영 [주민등록번호]******-******* [배우자]레에니 [주민등록번호]******-******* 도대체 이게 뭐냐! 아니, 그것보다 언제 게임 속 여자들의 주민등록번호까지……. 이민호! 도대체 무슨 짓을! 그때 같이 들어 있던 하얀 종이가 보인다. 난 재빨리 그 종이에 써 있는 것을 읽어 나갔다. 모든 여자 분들이 동의하셨습니다. 그러니 형님은 아리따 운 미소녀 일솝 분을 부인으로 맞이하시지요. 그리고 이미 소문은 다 냈습니다. 형님이 이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순식간 에 형님은 여자들을 버리는 잔인한 남자로 전락할 것입니다. "……." 소인, 형님을 위해 오늘도 하렘을 향해 달립니다. 이민호 배상 난 잠시 비틀거리면서 근처 벽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소리친다. "이민……호!! 잡히면 죽여 버리겠어!!" -디재스터 등장인물 프로필- 이름 : 이재현 취미 : ……순수하게 살기(본인 주장) 특미 : 무술 특이사항 : 순수하다(본인 주장)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 난 순수하다 이름 : 이민호 취미 : 야설읽기 특기 : 야설쓰기 특이사항 : 미쳤다(……), 그것도 많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 전 짜릿한 남자거든요 이름 : 이예진 취미 : 꽃꽃이 특미 : 요리 특이사항 : 재현이의 연인이자 마음씨 착한 소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 잘 부탁드려요 이름 : 이민혜 취미 : 재현이 오빠 이야기하고 놀기 특미 : 재현이 오빠 따라다니기 특이사항 : 재현이를 많이 좋아한다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 전 재현 오빠가 제일 좋아요! 이름 : 이나래 취미 : 비디오 감상 특미 : 달리기 특이사항 : 글쎄, 없다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 저 기억해 주세요! 이름 : 청룡 취미 : 자기의 탐스러운 엉덩이 만지기 특미 : 자기의 탐스러운 엉덩이 더 잘 만지기 특이사항 : 민호 다음으로 미쳤다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 내 엉덩이는 귀여워 이름 : 에리아스 취미 : 글쎄? 특미 : 남자라면 다 태운다 특이사항 : 너무도 마음이 여리고 순수하다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 나, 남자 분들은 오지 말아 주세요 이름 : 현무 취미 : 불특정함(모든 걸 즐김) 특미 : 없음(……) 특이사항 : 단기 기억상실증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 난 천재입니다! 이름 : 레에니 취미 : 인형 모으기 특미 : 영혼 수집 특이사항 : 사신 중 최강자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 재현아, 결혼해 이름 : 이민영 취미 : 음악 듣기(……나름 건전함) 특미 : 야시시한 몸짓 특이사항 : 청순한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야석 마니아. 지금도 은밀히 즐겨 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 저 넘보지 마요. 전 오라버니 거예요! 이름 : 이리스 취미 : 과자굽기 특미 : 다방면에 재주가 있다 특이사항 : 마음 여린 청순 드래곤 로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