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프리스트 5권 마계 ---------------------------------------------by.흡혈성향 §차례§ 1장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 2장 다크프리스트의 2차 전직 3장 뮤직미디오 4장 인형의 마을 5장 호스트? 6장 데린계 7장 마계 8장 암살 9장 비밀통로 10장 마왕 11장 유물 ---------------------------------------------------------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 으으윽. 난 서서히 눈을 떴다. 그러자 내 눈앞에 보이는 동굴 벽. ......나 산 거냐? 죽은 거냐? ......아마도 전자겠지. 죽었으면 이런 곳이 아닌 집 안 게임 기 안에서 눈을 떠야 정상일 테지만. "오빠!" "괜찮아?" 그 순간 내 옆에서 들려오는 두 명의 익숙한 목소리. 누군지 다 안다. 한 명은 예은이었고, 다른 한 명은 혜경이었다. "으윽. 별로 그리 괜찮지는 않지만...... 어떻게 된 거야?" 난 지금의 상황이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데에 누워 있는 걸까? 분명 여관은 아 니고, 동굴 같은데? 이런 내 질문에 혜경은 침착하게 대답해 주었다. "여기는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 님의 레어야." "아 그렇구......나가 아니라 드래곤 로드의 레어?!" "......응." 난 혜경의 말에 경악했다. 눈을 뜨자마자 듣는 소리가 드래곤 로드의 레어라니. 이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 "오빠가 기절하시고 곧바로 세르키스 님이 나타나 저희들 을 이곳으로 데리고 왔어요." "......" 예은이 말했다. 한마디로, 내가 기절하자 절묘한 타이밍으로 나타났다는 말인가? 그거 참 미묘하군. 하필 기절하고 나서 오는 이유를 개인적으로 묻고 싶을 뿐 이다. "저기, 윤현아." "혜경아, 왜?" "금방 깨어나서 정신이 없을 테지만 이건 꼭 말해야 될 것 같아서......" "뭔데?" "그게......" "......?" 무슨 말이기에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모르겠다. 혜경은 한 번 심호흡을 하더니, "놀라지 마." "응." "가르 씨 말야." "가르가 왜?" "가르...... 씨랑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 님이랑 서로 아는 사이......" "흐으음, 그렇구나. 가르는 드래곤 로드와는 친분이.....가 아니라!! 뭐, 뭐라고?!" 난 혜경의 말에 기겁했다. 방금 내가 잘못 듣지 않았다면, 혜경은 분명 이렇게 말했 다. 가르는 드래곤 로드를 알고 있다. 다크프리스트의 유물 증폭 마법뿐만 아니라 드래곤 로드까 지 알고 있는 가르? 난 설마 설마 하는 어조로. "혜경아...... 다시 한 번만 말해 줄래?" "가르 씨랑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 님, 서로 아는 사이......" "......" 그제야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혜경이는 가르가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가 뭔가 미묘한 사이라는 것을 내게 말하고 싶은 거구나. 왜! 왜 둘이 미묘한 사이인 건데?! "깨어나셨군요." ......! 그 순간, 갑자기 내 등 뒤에 포털을 열고 나타나는 한 남자. 2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그리고 푸른색의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기른 미남자. 잘생기기도 했지만 시원시원한 느낌에 더욱 호감이 가는 남자였다. 아 참, 내가 남자를 품평하다니, 꽤나 충격 먹었나 보군. "......세르키스 님이세요." 내 옆에 있던 예은이 살며시 말하자 그 말에 나는 갑자기 나타난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 남자가......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 다크프리스트의 세 번째 유물에 대한 단서를 가지고 있는 남자. 그리고 가르와 아는 사이...... 싱긋.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내가 자신의 얼굴을 계속해서 바라보자, 세르키스는 사람 (?)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고 그렇게 물었다. 나는 그런 세르키스를 향해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가르......의 정체가 뭐죠?" "가르 님의 정체가...... 흐으음." 나의 말에 고민에 잠기는 세르키스. 도대체 그 자식 정체가 뭐지?! 어떻게 드래곤 로드를 알고, 다크프리스트의 증폭 마법을 아는 거냐. "뭐, 정체 정도는 말해도 상관없겠죠." 꿀꺽. 세르키스의 한마디에 난 침을 삼켰다. 드디어 가르의 정체가 밝혀진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기는 하다 했다. 신을 믿지를 않나, 갑자기 별 이유 없이 나를 따라온다고 하지를 않나. ......잘 생각해 뵌 엄청 수상한 놈이다. "마신의 대리인......이라고 하면 될까요?" "......" 차라리 피닉스가 천사 같은 마음을 가졌다는 말을 더 믿고 싶은 게 지금의 내 심정이다. 방금 세르키스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마신의 대리인이라니...... 이 게임에서 신의 역활을 맡고 있는 그 마신? 주신과 쌍벽을 이룬다는 그 마신? 내가 아는 한 마신이란 그것밖에 없다. "가르 님은 마신의 대리인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 자, 잠깐. 그,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한 행동. 바보 같아 보이던 그 행동과 신을 향한 절실한 기도...... 그게 설정이라는 거냐? 그리고 나는 그 설정에 완벽히 속아 넘어간 거고?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관계로 당장 물었다. 세르키스, 그럼 가르가 우리에게 바보같이 굴던 그 행동이 나 신에게 기도하는 모습 같은 게 다 설정이었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엥?" "설정이 아니라, 그게 바로 가르 님의 본모습입니다." ...... 차라리 설정이라고 했으면 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저분은 설정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가르의 본모습이라고? "가르 님은 분명 마신의 대리인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하지만, 머리가 조금 달리십니다. 그리 고...... 마신의 대리인이면서...... 주신에게 신을 숭배하는 기도를 하지요...... 맞습니다. 그게 본모습입니다." "......" "사실입니다." "저, 저기......" "말씀하세요." "......왜 마신은 그런 애를 대리인으로 쓴대요?" "......글쎄요. 저도 사실 그게 궁금합니다." "......" "마신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이 미스터리는 안 풀 릴 것 같군요." 그럴 것 같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마신은 가르처럼 바보인 데다, 자신이 아닌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신에게 기도를 하는데 대리인으로 선택한 걸까? 도저히 그 생각을 알 수가 없다. 그나저나...... "한 가지 더 질문이 있는데요." "......?" "다크프리스트 아시죠?" "물론입니다." 싱긋. 그러면서 씨익 웃는 미소 한 방. 여자였으면 꺄꺄거리겠다. 크흐음. 그게 아니라...... "......도대체 이 직업......뭐예요?" "무슨 뜻이신지?" "저 사실, 이 직업 거의 강제적으로 전직당한 거예요. 그런 데...... 그런데...... 강제로 전직당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갑자기 이상한 복면맨(?)들한테 습격당했다고요. 개네들한테 물어보면 '척살'이라고만 말할 뿐, 정말 미쳐 버리겠다니까 요. 그리고 그 사기꾼 대마왕은 유물만 다 찾으면 비밀을 알 수 있다니? 정말......" 난 거의 푸념하듯 세르키스에게 말했다. 왠지 저분, 마음이 편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능력을 갖춘 분이다. "흐으음. 저도 구체적인 것까지는 모릅니다. 아마도 가 르 님이나 세키린 님은 아시겠죠. 제가 아는 건 이 세계를 구성하는 두 신이 관련되어 있다는 겁니다." "두...... 신?" "네, 주신과 마신 말입니다." 저기, 이야기가 상당히 심각해지는데요? 물론 이 직업 자체가 마신과 관련되었다는 건 대충 감 잡았 다. 다크프리스트의 유물 스킬을 마신이 직접 제조했다고 했 으니까 관련이 있는 거겠지. 그것보다 주신까지 연관되어 있다니? "마에스트로 님을 급습하는 그 정체불명의 단체. 그들은 이 세계 자체를 어떻게 할 작정입니다. 하지만 단 한 존재 가 그들의 앞길에 거슬리죠. 그건 바로 다크프리스트라는 이름. 그렇기에 마에스트로 님을 습격하는 겁니다." 머리 아프다. "......가르." "네, 형제여." 난 다른 방에서 대기 중에 있던 가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깃 해골뼈다귀만 있어서 무슨 표정을 짓는지 하 나도 모르겠다. 아 참, 이게 아니라. "좋은 말로 할 때 불어." "뭐, 뭘 말씀이십니까?!" "후후." 나는 웃었다. 가르의 목소리가 떨렸다. 크크크. "다크프리스트의 비밀." "저, 전 모릅니다." "근데 왜 목소리가 떨리지?" "......" "몇 대 맞고 불래?" "지, 진짜 모릅니다." "장난하냐? 네가 마신의 대리인인데 모를 리가 있어!!" "진짜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저는 절대 모릅니다." ......내 귀에는 절대 압니다로 들리는데, 왜 그럴까나. 크크 크. "어쩔 수 없군. 다시 원만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몸을 부 딪치자." "흐엑!" 내 말에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서는 가르. 하지만 소용없다. 이 방에는 나와 가르 둘뿐이었으니까. 후후훗. "이리 와, 해골뼈다귀." "사, 살려......" 덥석. 난 그대로 도망가려는 가르를 붙잡은 뒤 다시 한 번 웃어 주었다. 20분 후. "흐흐흑." 나는 반쯤 쓰러진 채, 남자에게 억지로 당한 여자가 비관하 는 듯한 자세를 취한 가르를 보며 말했다. "......자꾸 그런 자세 하지 마라. 징그럽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해골에게는...... 그나저나, 독하군. 그렇게 맞아도 물지 않다니. "잠깐 쉬고 다시 시작하지." "혀, 형제여. 저, 정말 모릅니다!!" "구라 치지 마, 이 자식아!" "지, 진짜 몰라요!!" "풋. 네가 모른다는 말보다 피닉스 자식이 겸손하다는 말이 더 믿음이 가는구나." "시, 신께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저, 정말 모릅니다!" "......" 자, 잠깐. 신에게...... 맹세까지 할 수 있다고? 가르는 거의 미친 듯이 신을 숭배하는 광신도다. 그런 놈이 신에게 맹세할 정도라고? 그 말은...... 지금 가 르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녀석은 정말로 이 직업의 비밀을 모르고 있다는 소리. "저는 단순히 형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파견되었을 뿐입 니다." 허억. 젠장. 역시 이번에도 비밀을 파헤치지 못하는 건가. 역시 비밀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유물을 다 찾는 것뿐. 그 방법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너의 한마디가 거슬린다. 가르. "가르야." "네, 형제여." "방금 네 입에서 나온 말이...... 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파견되었다고?" "그런데요." "......" "왜 그러십니까?" "장난하냐?" "네?" "네가 언제 내게 도움을 줬니?" "......" "내 기억에는 너의 그 화려한 텔레포트 마법 덕택에 생고 생한 것만 남아 있는데 말이다." "시, 실수......입니다. 지금이라면 잘할 수 있습니다!" "진짜?" "......" "왜 말을 못해?" "조, 조금 불확실하기도......" "조금이 아니라 100%겠지." 도대체 이 마신이라는 분, 도움을 주기 위해 파견할 거면 좀 더 멋지고 제대로 된 리치를 파견해 주든가. 왜 마법도 제대로 사용 못하는 이딴 놈을 보내느냔 말이다! [다크프리스트의 2차 전직] "그나저나, 마에스트로 님. 레벨이 얼마 정도 되셨습니 까?" "으음?" 그때, 차를 마시고 있던 내게 갑작스럽게 묻는 세르키스. 우리는 지금 드래곤 레어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 다. 물론 가르는 빼고, 피닉스는 부리로 열심히 찍어 먹으신 다. 정말 대단한 새다. 아 참, 그게 아니라...... "제 레벨요?" "네." "300 다 돼가는데요." "2차 전직을 하실 때가 되었군요." "2차 전직......?!" 나는 그 말에 먹던 차를 내뿜을 뻔했다. 2차 전직? 1차 다음 그 2차? "모르셨습니까?" "......네." "다크프리스트의 2차 전직은 제가 알기로는 300레벨에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 잠깐 300레벨?! 지난번에 분명 294였다. 그리고 마물의 숲에서 폭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309 HP/MP: 7,340/6,600 힘: 1,429(실제 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797(실제 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 승합니다.) 지능: 232(실제 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 다.) 체력: 224(실제 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 다.) 행운: 5(실제 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탯: 75 ......300 넘었다. 분명히...... 허억! 그렇다면 나, 나 2차 전직을 할 수 있다 는 말인가! 자, 잠깐. 일단 진정하고 스텟 재분부터 하자.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309 HP/MP: 7,340/6,600 힘: 1,429(실제 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872(실제 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 승합니다.) 지능: 232(실제 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 다.) 체력: 224(실제 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 다.) 행운: 5(실제 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탯: 0 이번에도 역시 민첩성에 올인이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긴 한데, 지금 중요한 건 2차 전직! 몰랐다면 아무렇지도 않았겠지만 분명 세르키스의 입에서 2차 전직이라는 말이 나왔다. 다른 존재도 아니고 드래곤 로 드의 입에서 말이다. 그게 뜻하는 바는 100% 확실한 정보라는 거다. "뭘 하고 계십니까?" 그때 스텟 재분을 하던 나를 보고 의아한 듯 세르키스가 물 었고, 나는 그 물음에 대답했다. "레벨 확인하고 있었어요." "그러시군요. 300이 넘으셨나요?" "네! 정확히 309! 전직 가능해요?" "물론입니다." 전직이래...... 전직! 전직!! 전직!!! 우어어엉! 이 가슴을 불태우는 정열. 오랜만에 느껴 본다. 특히 생각지도 못했던 2차 전직이었기 에, 내 가슴은 더욱더 뜨거워졌다. 이 사나이의 기분! ......자, 잠깐. 그렇게 불태우던 나였건만 금세 그 불이 가라앉았다. 잘 생각해 보자. 나는 1차 전직을 하기 위해서...... 거의 죽 을 뻔했다. 아니, 죽었었다. 레벨 1한테 말도 안 되는 전직 시 험을 던져 주는 것이 바로 이 직업의 특징이다. 그런데...... 2차 전직이라고 하면...... 분명 평범이라는 단어와는 안드로메다와의 거리만큼이나 차이가 있을 게 분명하다. 난 불안한 어조로 세르키스에게 물었다. "저기...... 그 시험, 분명 평범한 거랑은 거리가 멀죠?" "그렇긴 합니다." "......" 내 이럴 줄 알았다. 세르키스의 한마디에 불타오르던 나의 열정은 금세 다운되 다 못해 좌절 분위기로 돌변했다. 이, 이럴 수가. "마에스트로 님이라면 충분히 깰 수 있을 겁니다." 그때 그런 나를 위로하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그 렇게 한마디 던져 주는 세르키스. 난 그런 세르키스를 향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그 시험이 뭔지...... 들어 봐도 될까요?" "흐으음......" "괜찮아요. 어떤 거라도 각오하고 있으니까요. 이번에는 만 마리의 뱀하고 싸우는 전직 스토리?" 지난번에는 백 마리였으니까 이번에는 만 마리. 솔직히 말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만 마리의 뱀 이라니. 꾸어억! 내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스치기만 해도 그 독이 치사량을 넘는 뱀이라면 무지무지 곤란한 전직 시험 이다.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그럼......?" "린콘이라는 걸 찾아서 제거해야 합니다." "린콘......? 그게 뭐예요?" "흐으음. 기생충이라고 해야 할까요?" "기생충요?!" 갑자기 기생충이라니. 이건 무슨 거지 같은 시나리오냐? 여기서 기생충이 왜 나오는 거지? "린콘이라는 기생충이 있습니다. 놈은 인간을 숙주로 삼 아 자라나는 존재입니다. 그 존재를 잡아서 제거하면 시험 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흐으음. 한마디로, 사람에게 달라붙어 있는 린콘이라는 기 생충을 잡아 족치면 된다는 건가? 생각 외로 평범(?)한걸? "그 기생추잉 어디 있는데요?" "모릅니다." "......" "누구에게 붙어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생하는 숙주가 자주자주 바뀌는 걸로 알고 있습ㄴ다." "저기, 질문요." "......?" "아무런 힌트도 없습니까?" "......네." "......" 일단 정리해 보자. 2차 전직을 하려면 사람에게 붙어사는 린콘이라는 기생충 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 기생추으이 행방에 대한 단서는 아 무것도 없다. 한마디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좀 더 안 좋은 소식이지만 린콘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 해서는 최소 못해도 제 반경 1킬로미터 안에 있어야만 느 낄 수 있습니다." "에...... 그러니까, 세르키스 님은 느낄 수는 있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단 1킬로미터 안에 있을 경우만요." "저기...... 계속 질문해서 죄송한데요." "상관하지 마시고 질문하세요." "그 기생충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존재는 누구누구 있어 요?" "저밖에 없습니다." "......" "그래서 이번 다크프리스트의 전직을 위해 제가 미약하 나마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기도하는 리치. 맞는 것을 좋아하는 천족 변태 검사. 깐죽 거리고 제 잘난 맛에 사는 피닉스.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드래곤 로드. ......화려한 파티다. 아니, 화려하다 못해 폭발하시겠다. 하지만 왠지 감동적이기도 하다. 드디어 우리 파티에 마법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존재가 탄생한 것이다. 물론 드래곤 로드면서 마법을 제대로 못 쓰는 어이없는 상황이 생길까 봐 무지무지 걱정했지만 그건 나의 부질없는 걱정일 뿐이었다.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의 마법 실력은 환상적이었던 것이다. 9서클 마법도 펑펑 써 대는 세르키스.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나올 정도다. 흐흐흑. "아 참, 그리고 이걸 전해 드리겠습니다." "......?" 그러면서 내게 스킬북을 하나 건네주는 세르키스. 이게 뭐지? "다크프리스트 세 번째 유물 루비언입니다." "......루비언?" 이전 두 스킬의 이름보다 확실히 글자 수가 적다. 뭐, 그렇 다고 성능이 떨어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다만. 그나저나 그렇게 애타게 찾아 대던 세 번째 유물 스킬이라 니!! 무지무지 기대된다. 나는 당장 드래곤 로드가 건네준 스킬북을 체크했다. -루비언- 반경 100미터 안에 있는 모든 적에게 동시에 다크 블레스, 다크 힐. 다크 큐어를 걸 수 있다. 이때 걸리는 다크 블레스, 다크 힐. 다크 큐어는 현재 사용하 고 있는 스킬의 힘의 약 열 배에 달한다. 단, 한 번 사용 시 다크 힐, 다크 큐어. 다크 블레스를 이틀간 사용할 수 없다. 마나는 소모되지 않는다. 허억!! 이 어마어마한 스킬은 뭐지? 루비언. 반경 100미터 안에 있는 모든 적에게 다크 블레스, 다크 큐 어, 다크 힐을 걸 수 있는 엄청난 스킬이다. 게다가 지금 사용하는 스킬의 약 열 배의 힘이라고 한다면, 상상 초월이다. 그런 걸 한 명도 아니라 100미터 반경 안에 있는 모든 적에 게 동시라니!! 기절초풍하겠다. 물론 한 가지 썩 내키지 않는 점은 있지만...... 단, 한 번 사용 시 이틀간 다크 힐, 다크 큐어, 다크 블레스 를 사용할 수 없다. 이 구절......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간단히 요약해, 이 유물급 스킬을 사용하면 내 밥줄 스킬인 다크 블레스를 이틀간 봉인해야만 한다. 다크 큐어랑 다크 힐은 그리 잘 쓰지 않아서 별 상관없지만 다크 블레스는 아니다. 나의 능력치를 두 배 혹은 그 이상 상승시켜 주는 무지막지 하고 아름다운 스킬이다. 그런 스킬이 봉인된다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내 레벨이 300대임에도 불구하고 500-600정도의 스텟을 가 질 수 있는 건 다크 블레스 덕분이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까지의 전투는 불가능했다. 그만큼 내게는 엄청난 스킬, 그것이 다크 블레스다. "뭐, 히든 스킬로 남겨 두는 것도 괜찮지." 만약에 이걸 사용 시 상대방의 능력은 열 배라는 엄청난 속 도로 감소한 후 거의 죽음 직전이 될 것이고, 나의 능력은 최 소 못해도 5,000씩 상승할 것이다. 한마디로, 그 시간 동안에는 인간이 아닌 초인에 가까워진 다. 휴우. 그나저나, 오늘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다시 내일부터는 나머지 세 개의 유물 스킬과 함께 린콘이 라는 기생충을 찾아 나서야겠다. 뭐, 물론 이번에는 휴식도 취 할 겸 제법 평범한 여행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 게임을 시작한 이래...... 너무 심하게 달려왔다. 한 번쯤은 휴식을 취하는 것도 괜찮겠지. [뮤직비디오] "예은아." "네?" 예은이 아버지의 부름에 깜짝 놀라 대답했다. 아버지는 꽤나 무뚝뚝해서 이렇게 식사 중에 입을 여는 건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예은을 부른 아버지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 했다. "부탁이 있구나." "부, 부탁이라니요?" "좀...... 너에게 부담이 될 듯싶은데, 못하겠다면 굳이 강 요하지는 않으마." "무슨 일이신데요?' "흐음......"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 싱긋. 예은은 오랜만에 나눈 아버지와의 대화에 미소를 지었다. 항상 무뚝뚝하지만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해 주시는 아버지. 그녀는 그런 아버지가 좋았다. 그런 아버지가 부탁을 한다니, 웬만해서는 뭐든지 다 들어주고 싶은 게 그녀의 마음이었다. "내 아는 사람의 아들이 연예인으로 데뷔한다는구나." "아......" "그것도 가수로 말야. 그런데...... 요새 시대가 그렇다 보 니 신인이라도 눈에 확 띄어야 하지. 그런데 그러려면 사람들 의 시선을 집중시켜야 할 무언가가 필요해. 그래서 그 사람이 너를 뮤직비디오에 출현시켰으면 하는구나." "뮤......직비디오요?" "그래." 예은은 그 말에 당황했다. 뮤직비디오라니, 당황스러웠다. 자신은 엄연히 가수. 연기와는 좀 거리가 먼 직업이다. 아 니, 요즘은 대부분의 가수가 연기를 겸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녀는 오로지 노래에만 열정과 시간을 쏟아 붓는 가수였던 것 이다. 하지만 그것도다 더욱 중요한 건...... "안 되겠니?" "아빠. 그, 그렇지만...... 뮤직비디오에 출현하면 상대역이 보통 남자......이지 않나요?" "그렇기는 한데." "......" "물론 네가 남자 앞에서는 숫기가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그 사람이 특별히 부탁한 거다. 그리고 혹시라도 네가 상대하기 편한 남자라도 있으면 말해 보거라. 그러면 최대한 그 사람을 상대역으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 말은......? 예은이 조심스레 물었다. "일반인도 되나요?" -전화 받으시오. 안 받으면 죽여 버리겠소." "......" "전화 받으시오. 안 받으면 죽여 버리겠소." 뭐냐? 이 요상한 벨소리는? 분명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다. 그러면 당연히 벨소리고. 문제는 이런 벨소리를 지정한 기억이 전혀 없다는 거다. 아, 어제 영현이 녀석이 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만 그 놈이 범인인 게구나. 그나저나, 아무리 다양한 벨소리의 시대 라지만 이건 좀 지나치게 특이하다. 전화 안 받으면 죽여 버리겠소라니. 어디 살벌해서 살겠나. -전화 받으시오. 안 받으면 죽여 버리겠소. 그때 또다시 들려오는 벨소리. 그래, 받는다. 받아! 나는 그대로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크으. 오랜만에 행복한 침대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데 방해 하는 놈은 누구냐?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휴대폰의 액정을 바라보았다. 그런 데 거기에는...... 순식간에 잠이 달아나게 만드는 이름이 있 었다. 예은 예은이다! 예은이야! 우억!! 왠지 모를 이 감격. 기쁘도다. 물론 꽤나 자주 통화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다. 예은이의 천사 같은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물론 매일 게임에서 만나기는 한다. 하지만 아무리 실제 지향적 게임에 근접했다 하지만 실제 와 게임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미묘한 무언가가...... 어찌 됐든 이런 생각 할 때가 아니다. 어서 예은의 전화를 받아야지. 난 그런 생각과 함께 동시에 곧바로 휴대폰을 열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귓가로 갖다 대며 반가운 목소리로, "예은아." -아, 오빠. 안녕하세요. "안녕." 나와 예은은 그렇게 평소와 마찬가지로 인사를 나눴다. 참 예의 바른 소녀다. -저, 저기. 오빠. "응?" -......시간 되세요? "시간?" -네...... 곤란한 어투로 묻는 예은. 왜 그러지? "나야, 뭐 남는 게 시간이긴 한데." -저...... "예은아, 말해. 괜찮아." -그러니까...... 무슨 곤란한 말인지 제대로 말을 못하는 그녀.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사실 예은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줄 각오가 되어 있는 나다. 괜히 곤란해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 "신경 쓰지 말고 말해." -오빠, 뮤직비디오......에 같이...... 출연해 주세요. ...... 뮤직비디오? "흐으음. 자네, 연예인 지망생인가?" "아, 아뇨." "상당히 잘생겼군. 이번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킬 만한 얼굴이야." "고,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차예은 양이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남자라...... 둘 사이가 궁금해지는데 이거......" 별로 궁금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 감독 아저씨. 내 앞에 있는 남자.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다. 키는 175센티미터 정도로 그리 큰 키는 아니고, 전체적으로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수염은 덥수루갛게 길렀고. 딴에는 폼 좀 내려고 기른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지저 분하기만 하다. "자, 이게 이번 뮤직비디오의 시나리오네." 그러면서 내게 묵직한 종이뭉치를 건네주는 감독 아저씨. 이게 뮤직비디오 시나리오?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그 종이뭉치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잠시 그 시나리오를 살펴보던 중 그대로 굳어 버렸 다. 마지막 부분에서 말이다. "저, 저기...... 감독님." "왜 그러나?" "......이거 진짜로 하나요?" "그럼 가짜로 하겠나?" "......" "요새는 가짜로 하면 흥미를 못 불러일으킨다고." "아, 아무리 그래도......" "차예은 양이 허락했네." "......" "설마 싫은 건 아니겠지?" "절대...... 그럴 리는 없습니다." 싫기는커녕 너무도 멋지다. 그나저나...... 예은이가 허락했다니. 이 신을 말인가? 예은 이가 조금 대담한 면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는, 간단하게 한 문장으 로 설명하면 이해될 것이다.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과 키스한다. 키스! 키스!! 키스!!! 그 말인즉 나와 예은이...... 키스?! 우어억!! 두근두근. 예은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이 키스신이라니, 너무 떨린다. 사실 그녀에게는 첫 키스였다. 첫 키스를 뮤직비디오에서 하는 건 조금 그렇지만 감독의 집요한 요구와 더불어 상대방 이 윤현이라는 점이 그녀가 이 키스신을 허락한 중대한 이유 였다. 물론 상대방이 윤현이 아니었다면 감독이 아무리 집요하게 요구했다 해도 거절했을 것이다. ...... 이 어색한 분위기는 뭘까? 예은과 나 사이에 흐르는 이 어색한 느낌. 정말 어색하다. 원래 이런 느낌이 없었는데 왜 오늘은 유난히 어색한 걸까? 여기서 그 원인을 아주 간단히 추리할 수 있다. 바로 오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키스신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좋다. 미치도록 말이다. 아니, 이미 내 정신은 미쳤다. 그만큼 예은과의 키스신이라는 상황은 나를 불태우다 못해 소멸시킬 정도였다. 나처럼 예은이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 다. 물론 내가 지금 여기서 아무 말도 안 하면 별문제 없이 키 스신을 찍을 수 있다. 최고의 미소녀이자 최고의 아이돌인 예은과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예은아, 무리할 필요 없어." "네?" "마지막 장면 신경 쓰이지?" 내 한마디에 예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역시 마지막 장면이 신경이 쓰이는 구나. 난 하고 싶다. 정말로 하고 싶다. 하지만 난 여자를 배려할 줄 아는 멋진 남자이므로, 그녀를 배려해야 한다. ......그런데 나 왠지 모르게 피닉스의 잘난 척을 닮아 가는 것 같은데? 그래, 100% 착각이다. 그런 일은 있어서도 안 된다. 어찌 됐든, 나는 정말정말 하고 싶었지만 예은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어. 감독님한테 거절하고 와." "......" "난 괜찮아. 하하하." ......하나도 안 괜찮다. 지금 내가 말하고도 후회 중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말없이 마지막 장면까지 갈걸! 으아악!! 나는 절망했다. 하늘이 내게 준 절대적인 기회. 그 기회를 내 발로 뻥 차다 니. 이렇게 한심할 수가...... 그렇게 한참을 나 자신을 탓할 때였다. "괘, 괜찮아요. 하, 할 수 있어요." "......정말?" "네......" 얼굴은 심하게 홍당무가 된 채 고개를 끄덕이는 예은. 할 수 있대. 할 수 있대. 으하하하하하하! ......나, 너무 늑대 같나? 여기서 일단 간단히 이야기할 게 있다. 그건 바로 뮤직비디오의 스토리! 아주 간단히 설명하겠다. 한 남자가 있다. 한 여자가 있다. 그리고 둘은 사이가 좋다. 하지만 여자가 납치당한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를 멋지게 구 한다. 그리고 키스신...... ......내가 생각해도 너무 간략하게 정리했다. 사실 내게 다른 장면 따위는 필요 없다. 마지막에 액션신이 있기도 하지만 그런 건 신경 쓰고 싶지 도 않은 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마지막 키스신이다. 그것 외에는 눈에 뵈는 게 없다. "자자. 지금부터 촬영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때 들려오는 감독의 한마디. 시작하자!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저기, 감독 아저씨. 너무 스피드하게 진행하시는데요? 보통 감독이라면 다시, 다시, 다시......라는 말이 더 많은데 이분이 아니다. 다 오케이다. 심히 엄청난 속도로 뮤직비디오 를 찍고 계신다. "자자, 오늘 하루 만에 끝낼 테니 최선을 다하자고." 뮤직비디오를 하루 만에 다 찍어요? 심히 난감하다. 뮤직비디오를 하루 만에 끝낸다니, 무슨 제트기 뮤직비디 오냐? 정말 할 말 없게 만든다. 그래, 내 알 바 아니지. 마지막 장면까지만 빨리 도달하면 되는 거다. 크하하하하! 다른 건 필요 없어. 퍼퍼퍽! "오호호. 엄청난 무술 실력인데?" 감독의 감탄사. 그 말에 나는 괜히 머쓱해졌다. 드디어 마지막 장면으로 달리고 계신다. 한 마디로 최종 액 션신. 20대 1로 맞장 뜨는 신이었는데, 나는 대역 촬영을 거부했 다. 내가 직접 연기할 것을 주장했고, 그 말에 감독이 미심쩍 은 눈빛을 보내긴 했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이래 봬도, 무술에는 자신 있었으니까. "자자, 드디어 마지막 장면! 여자를 구하면서 키스신." ...... 키스. 키스. 키스신......!! 키스는 아름다운 것. 키스는 멋진 것. 키스는 날아다니는 것. 키스는...... 우어어억!! 완전 불타오른다. 정말로 이렇게 불타오르기는 처음이다. 키스다, 키스. 그것도 최고의 미소녀이자 최고의 아이돌인 예 은과의 키스다. 게다가 내 첫 키스다. 너무 행복해서 미쳐 버리겠다. 한편, 이런 나와는 달리 긴장 어린 미소가 짙은 예은. 나 혼자 이렇게 발광을 해 대니, 약간 미안하기도 하다. 그리고 고민스럽다. 또 한 번 예은을 생각해, 부담되면 그만하자는 말을 해야 할지 고민된다. 솔직히 말해, 나는 늑대의 피를 이어받은 남자 다. 심히 하고 싶다. 하지만 예은이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대로 진행하면 아주 나쁜 놈이 될 것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런 기분이 마구 든다. 에휴우. 터벅터벅.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는 예은을 향 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 다음, "예은아." "네?!" 내 한 마디에 너무 놀라는 그녀. 심히 긴장했구나. 난 그럼 예은에게 맑고 깨끗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무리하지 마." "......" "힘들게...... 하면 그렇잖아. 하하하." ......바보 같은 놈! 바보 같은 놈! 바보 같은 놈!! 겉과 속이 따로 노는 나. 으아악!! "괜......찮아요." "응?" "상대가...... 오빠니까 괜찮아요." "......" 예은은 얼굴을 붉힌 채 그렇게 말했다. 상대가 나여서...... 괜찮다고? 그 의미를 분석하면...... 허억! 아, 아니다. 너무 깊게 생각하면 안 좋다. 그, 그래. 단순히 내가 편해서 한 말일 거다. 이상한 의미를 담아서 말한 건 아 닐 게다. 난 도끼병 환자가 아니니까...... "자자, 마지막 신이다!" 그때 감독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에게는 천사의 목소리다. 마지막 신! 마지막 신! 크하하하! "아, 참." 그때 감독이 뭔가 생각난 듯 내게 스르르 다가오더니 나의 귀에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의로 NG를 내는 건 곤란하다네." "......" "그럴 생각이었나?" "절대, 전 사심은 없습니다." ......사실 했었다. 솔직히 남자치고 이런 생각 안 하면 그게 비정상이다. 그래, 나는 정상인이다. 그나저나 이런 내 마음을 들킨 이상 고의로 NG 내는 작전 은 실행 불가능하겠구나. 아쉽다. "컷!" 난 예은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예은의 얼굴은 심히 빨개져 있었고, 내 손도 부들부들 떨렸 다. ......사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간다. 만약에 꿈 이라고 하면 끝까지 간 다음 깨고 싶은 게 내 솔직한 마음이 었다. 사실 대본에는 '키스'라고 쓰여 있지만, 정식 용어로는 '뽀 뽀'다. 키스와 뽀뽀를 햇갈려 하는 사람이 있는데, 키스는 혀끼리 만나는 것이고, 뽀뽀는 그냥 입술끼리 부딪치는 것이다. 내 입술이 눈을 질끈 감은 예은의 입술을 향해 서서히 다가 갔다. 우어어. 오늘 하루 종일 이 신만을 위해 기다린 나다. 그리고...... ...... 부......드......럽......다. 으아악! 예은과 입술과 나의 입술이 닿았다. 너무나도 부드럽다. 그뿐 아니라, 달콤한 향기라고나 할까? 예은에게선 그런 향기가 난다. 진짜 전문용어로 나 미쳐 버리 겠다. 그만큼 완전히 미쳐 버릴 것 같은 순간이다. "컷!!" "......" "뭐 해! 컷이야, 컷!" 으으윽. 컷이라는 말을 그냥 무시하려고 했지만 감독의 성화로 무 산됐다. 젠장, 조금 더 느끼고 싶었는데. "어이, 거기 남자주인공! 사심이 가득해, 가득!!"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그런데 부럽다." ......감독님. 당신이 부러워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래도...... 그래도...... 너무 행복하다!! 추신이라고나 할까? 마지막 키스신은 결국 방송되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키스신이 방송될 경우 남자들이 폭주할지도 모른다는 위험 때문이라고나 할까? 그 때문에 키스신 대신 포 옹신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했으니까, 크하하하!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은과 함께 뮤직비디오에 출현한 뒤 나도 인터넷 검색 순위에 올랐으니, 그녀의 인기가 새삼 대단 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인형의 마을] "나 잡아 봐라!" "거기 서, 나의 피앙세!" "하하하." "하하하." ...... 심히 할 말 없게 만든다.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보이는 저 광경. 내 눈이 썩어 들어가는 것 같아. 도대체 저것들이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피닉스 녀석은 도망가고, 그 뒤를 데인이 따르고 있다. 한 마디로, 연인들만 한다는 나 잡아 봐라 놀이를 저것들이 지금 하고 있는 거다. 생물학적으로 수컷이 분명한 저것들이. "참 재미있는 분들이군요." "......글쎄, 저게 재미있어 보이면 네 눈에 이상이 있는 거 다." "흐으음." 나는 감탄하는 세르키스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나저나, 어느새 말을 놓게 되었군. 사실 말을 놓을 생각 은 없었지만 세르키스가 자신에게 말을 놓으란다. 그래서 나는 거절 안 하고 당장 말을 놓아 버렸고, 같이 말 놓자고 해도 저분은 안 하신단다. 자기는 존댓말이 편하다고. "물론 처음 보는 입장에서는 재미있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저것들의 또라이 행동에 피해를 보는 건 나야." "그렇군요." "하아, 그래도 미래는 있어." 이번에 추가된 파티원 세르키스. 그를 보면 약간의 희망이 생긴다. 남자 놈들이라고 항상 이상한 놈들만 벼룩처럼 달라붙었는 데 이번에는 무지무지 정상적이고 멋진 분이시다. 하늘을 날 버리지 않았다. 그나저나...... "세르키스, 여가를 즐기기 위해 괜찮은 곳 없어?" "여가를 즐기기 위해 괜찮은 곳이라......" 내 말에 생각에 잠기는 세르키스. 나는 그런 그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분명 저분이라면 대답해 주실 거다. 분명히 말이다. "플로코스 마을이 괜찮을 듯싶습니다." "플로코스 마을? 처음 들어 보는데." "네. 좀 생소할 겁니다. 하지만 제가 들어 보니 근처에 깨끗한 시내도 있고, 마을 사람들도 친절하고, 음식도 괜 찮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관광지가 좋지 않을 까 싶습니다." "오!" 그거 좋네. 한마디로, 사람들에게 밝혀지지 않은 최고의 휴식처가 플 로코스 마을이란 건가? 거기서 한 며칠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유물과 2차 전직을 위 해 이상한 기생충을 잡으러 가야겠다. "근데 그 마을, 여기서 멀어?" "그렇게 멀지는 않습니다." "얼마 정도?" "걸어서 네다섯 시간이면 도착합니다. 하지만 제가 텔레 포트 좌표를 알고 있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도착할 수 있 죠." 오오오오오! 오오오오! 오오오! 나는 그 한마디에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텔레포트 좌표를 알고 있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도착할 수 있다는 말. 마법사가 있는 파티라면 당연한 대사다. 하지만...... 우리 파티에는 마법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 태껏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 왜냐? 마법 담당인 가르가 텔 레포트를 하면 랜덤으로 마구 떨어지니까. 차라리 안 쓰고 걸어가는 게 더 빠른 게 가르의 텔레포트 다. 어찌 됐든 우리에게 빛이 내린다. 빛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세르키스가 내게 물었다. "흐으음....." 어떻게 해야 할까? 텔레포트 타고 슈웅 하고 날아갈까. 아님 천천히 구경하면 서 갈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나. 드디어 결정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니까 걸어가자. 구경도 할 겸!" "저기 마을이 있습니다, 형제여." "어라?" 약 20분 정도 걸었을 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마을. 가르의 말처럼 마을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마을치고는 조금 임펙트하고 음산하네." 그렇다. 마을치고는 너무나도 음침하다. 당장이라도 귀신들이 마구 뛰어나올 것 같은 음산함. 정말 아리따운 분위기를 가진 마을이시다. "꺄악!" "예, 예은아?" 그때 들려오는 예은의 비명 소리. 나는 황급히 예은을 향해 다가갔다. 거기에는 너무 놀라 후드가 벗겨진 채 주저앉은 예은이 있 었다. 난 그런 예은이에게 무슨 일이냐는 듯 물었다. "왜 그래, 예은아?" "저, 저기......" "......?" 예은이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곳을 향했다. 물론 다른 분 들도 예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이 이동했고, 그와 동시 에...... "꺄아악!" "꺄악!!" "뭐, 뭐야?!" "저게 뭐야!!" "흐으음......" "리치 살려!" 별의별 비명이 들려왔다. 그런데 마지막, '리치 살려'라니. 누가 죽이기라도 하냐, 가르? 그나저나, 정말 음산하다. "보기 힘든 광경이군요." "아예 볼 일이 없지." 나는 다른 존재들과 달리 여유롭게 대답하는 세르키스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일행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건 입구에 붙어 있는 한 개 의 인형 때문이었다. 그냥 인형이라면 이렇게 비명을 지를 리 없다. 하지만 그냥 인형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인간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목만 있는 인형. 그리고 그 인형의 밑으로...... 붉은색 피가 떨어지고 있었 다. ......완전 호러물이다. "세르키스, 가 보자." "네." 우리는 순식간에 패닉 상태가 되어 버린 존재들을 제외하 고 그 인형에게 다가갔다. 도대체 저게 뭐야? 나와 세르키스는 목만 달린 채 피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인형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세르키스가 입을 열었다. "진짜 피군요."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 진짜 피네." "그것도 인간의 피입니다." "......" 이거......뭔가 안 좋은 일에 휘말릴 것 같은 아주 불길한 기분이 든다. 목만 있는 인형에서 인간의 피가 떨어진다고 생각해 봐라. ......개인적으로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도, 도와주세요!" 그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한 명의 여자. 20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허리까지 길게 묶은 초록색 머리 카락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뭐, 외모 면에서는 10점 만점에 5 점? ......보통이다. 뭐,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분...... NPC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여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유저......이신가요?" "그쪽도 유저?" "네." "다, 다행이에요. 여기서 유저를 만날 수 있어서."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제 일행이......" "......?" 나의 질문에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짓는 그녀. 일행이 왜? "제 일행이 저 마을을 조사하러 들어간 뒤 연락이 끊겼어 요. 대화도 안 돼요! 로그아웃도 안 했는데요!" "......" "어, 어떡하죠?" "들어간 지 얼마나 됐어요?" "한...... 2시간?" "......" "제발 도와주세요." 그녀가 애타게 말했다. 아, 역시 이번에도 무슨 일에 휘말릴 것 같다는 나의 예언 은 적중하는구나. 이런 면에서는 지독히도 100% 적중률을 자 랑하는 내 자신이 싫다. 그나저나, 들어간 뒤 2시간이나 지났다? 하지만 로그아웃도 하지 않았고, 연락도 안 된다? 이건 대체 무슨 사태냐? "저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아마도 죽지는 않은 것 같습 니다. 어딘가에 같혀 있는 것 같은데요." "세르키스, 그런 일이 가능해? 게임이잖아.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게 게임이잖아."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 "합성 괴물을 아십니까?" "아!" "그때처럼, 기존에 없던 괴물이라면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면 6시간 뒤 강제로 현실세계로 돌아갈 수는 있겠지만, 그 6시간 동 안은 저 안에서 공포를 느껴야 합니다." "한 마디로......골 때리네." 6시간 동안 반응이 없으면 강제로 로그아웃을 시킨다. 하지만 그 6시간...... 분명 평범한 시간은 아닐 것이다. "가자." "네." 내 말에 나의 뒤를 따라오는 세르키스. 어쩐지 요새 너무 조용하다 했다, 그것들. 그나저나, 이번에는 어떤 놈을 만들었기에 이렇게 시끌벅 적한 거냐? 그렇게 마을 입구 근처까지 갔을 때였다. ......왜 아무도 안 오냐? 그렇다. 세르키스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따라오지 않고 있다. 물론 여자들은 무서워서 그렇다 쳐도, 나머지 남자 녀석 들이 너무 조용하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이 닿는 곳에는 갑자기 딴청을 피우는 가르와 데인, 피닉스가 있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안 오냐?" "무, 무섭습니다." "도, 동감." "난 전설이잖아." ...... 아, 가르. 넌 분명 마신의 대리인이다. 게다가 언데드에 속하는 해골 뼈다귀다. 그런 놈이 공포를 느낀다니. 그리고 피닉스, 지금 이 상황하고 전설이라는 말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가르쳐 주 면 무지무지 고맙겠는데. 어찌 됐든 단 한 놈도 오지 않으려 한다. 하아, 이렇게 암울할 수가. 이렇게 된 이상...... "피닉스, 너는 따라와." "난 왜?!" 내 말에 기겁해서 외치는 피닉스. 난 그 말에 친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넌 전설이잖아." "......" "전설적인 피닉스, 따라와라." "시, 싫어!" "겁먹었냐, 전설이?" "아, 아니야!!" 나의 말에 더듬거리는 피닉스 녀석. 겁먹었다. 확실히 말이다. "훗. 전설이라고 불리는 놈이 인형한테 겁먹다니. 이거 한 심해서, 원." "난 전설이야!" 순간 발끈해서 날아오는 피닉스 녀석. 역시 단순한 녀석이다. 원래 새 머리가 나쁘다고는 하지만, 새들의 신이라 불리는 피닉스가 되게 단순하네. "나 살려!" "야! 지랄 떨지 마!" "인형이잖아!" "......" 하아, 한숨만 나온다.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비명을 지르는 피닉스 녀석 때문에. 우리가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반기는 건 각종 인형들이었 다. 마을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는 인형. 하지만 그냥 인형이 아니다. 가지각색 다양한 얼굴과 옷. 진짜 사람을 인형으로 축소해 놓은 느낌이 들 정도다. "어, 어떡해!!" "야! 좀 조용히 해, 이 자식아! 정신 사나워!!" "난 잘났는데." "여기서 갑자기 왜 그 말이 튀어나와야 하는 거냐?"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빠, 빨리 처리 좀 해봐!!" 나보고 어쩌라고, 이 자식아. 저 인형들은 그냥 순수하게 있을 뿐인데. "흐으음. 발견......이라고 해야 할까요?" "왜 그래, 세르키스......?!" 그때 한 쪽에서 인형 두 개를 가지고 온 세르키스. 그것은 주변의 다른 인형과는 모습이 달랐다. 모험가 복장. 한 마디로, 유저들의 형상이다. "아마도 여기에서 인형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 인형이 된 것 같다고? 인형이? 인형이? 인간이 갑자기 인형으로 변할 확률도 있는 거냐? 그런 거 야? "크크크. 인간들. 환영한다." "......"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상한 음성.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친다. "끄아악! 나타났다!!" 그 순간, 유난스런 비명과 함께 내 몸에 찰싹 달라붙는 피 닉스 녀석. 피닉스야, 피닉스야. 이 무슨 추태냐? "사, 살려 주세요!! 전 맛없어요!" ......도대체 누구한테 말하는 거냐? 하아, 정말 후회스럽다. 내가 왜 이 녀석을 데리고 왔을까.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데려온 건데, 역시 그런 생각은 너무 도 큰 바람일 뿐이었다. "크크크. 하찮은 존재들이군." 저 피닉스 녀석만 보고 하찮은 존재들이라고 단정 짓지는 말기 바란다. 나와 세르키스는 저런 생지랄까지는 하지 않으 니까 말이다. 스르륵. 그때 서서히 내 앞에 검은색 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한 마리의 인형이 나오는 중이다. 대충 내 몸 절반 크기만 한 인형이 말이다. 인형치고는 더럽게 크다. "반갑다. 크크크." "별로, 안 반가운데." 저런 이상하게 생긴 괴물 인형을 보고 반갑다는 생각이 들 면 그게 비정상이다. 한쪽 눈과 한쪽 몸이 갈가리 찢긴 인형. 특히 오른쪽 눈이 갈가리 찢어져서 피가 흘러나오는 모습 은 내가 여태까지 본 호러물 중 최고였다. 갑자기 왜 호러물 특집이 되었는지 심히 궁금하다. "크크크. 저기 있는 인간 두 명은 내가 무섭지 않은가 보군." "당연히. 난 프리스트니까." "프리스트!!" 내 말에 경악하는 인형. 아마도 그럴 거다. 저건 분명 악령에 속하는 존재다. 그런 놈에게 프리스트는 천적 중의 천적인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인형이 공포에 떨고 있다. 인형이 표정까지 지을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신비한 일이긴 하지만. 아 참,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물론 앞에 다크라는 이름이 붙는 프리스트기는 하지만." "다크......프리스트......? 어둠의 성직자? 처음 듣는 이 름인데." "당연하지. 난 희귀하니까." "......" "......" 좀 무안하다. 나도 모르게 피닉스 자식을 따라 해 버렸어. 크윽. 요새 새삼스럽게 느끼지만 점점 피닉스 녀석을 닮아 가는 것 같다. 절대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심히 걱정스러운 나다. "크크크. 어찌 됐든 어둠의 성직자라고 하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신성력은 불가능하겠군." "응. 불가능해." "크크크. 바보 같은 놈. 그걸 인정하다니." "아니, 인정해도 별 상관없거든?" "......?" "프리스트가 성스러운 빛으로 적을 무찌른다면 나는 다 부 숴 버리면 그만이거든. 그게 바로 다크프리스트." "건방진 놈." "글쎄." "당장 인형으로 만들어 주마!" 만들 수 있으면 만들어 봐라. 다 부숴 줄 테니 말이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그때 갑자기 내 귀를 자극하는 괴이한 소리. ......뭐, 뭐냐? "흐으음. 간단히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겠군요. 다. 구. 리." "......세르키스, 참으로 명확한 해석 고맙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인형들이 하늘을 부유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새 손에는 하나같이 피가 잔뜩 묻은 식칼 을 쥐고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니다. 세르키스의 말처럼 우리를 '다구리' 하기 위해 모든 인형 이 일어나셨다. 어림짐작해 보면 한 백 마리 정도? ...... "꺄아악!!" "......" "......" "난 죄 없어!! 나 대신 저 두 사람을 찔러!" ...... 빠직. 내 머리에 혈관 마크가 생성되었다. 방금 피닉스가 한 말. '난 죄 없어!! 나 대신 저 두 사람을 찔러!'라는 말. 한마디 로, 세르키스와 나를 팔아먹겠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말이야. "피닉스." "나, 난 죄 없다니까!! 제물 되기 싫어!" "나중에 보자." "......" 나의 한마디에 굳어 버린 피닉스. 잘난 척이 심하고 심히 건방지기는 하지만, 애써 참았다. 하지만 말이다, 동료를 팔아먹다니. 그것도 인형에게...... 어찌 됐든, 피닉스에 대한 문제는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한 뒤 처리해야 될 듯싶다. 안 그랬다가는 식칼 들고 오시는 저 인형들에게 죽을 것 같 았으니까. "세르키스, 가자." "네." 나는 그 말과 함께 메이스를 꺼내 들었다. 게임 접속 이후 별의별 놈들과 다 싸워 봤지만 식칼 든 인 형하고 싸우게 될 줄이야. 다음에는 뭐가 나올지 심히 걱정되었다. 콰아앙! "익스플로전." 콰아앙!! 완전 폭발 잔치다. 나의 불멸의 일진과 더불어 세르키스의 화려한 마법들. 거 기에 쓸려 나가는 인형들. 정말 멋지다.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인형은 생명력...... 흡수가 안 돼." 그렇다. 저 인형들에게서는 생명력을 흡수할 수가 없다. 라이프 블리지트나 다크 배리어, 다크 헤이스트 등등. 내 스킬은 상대방의 생명력을 역이용하는 스킬들이다. 하지만 저것들은 인형이기에 생명력을 끌어 올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무기를 휘두르는 것뿐. 여기서 세르키스가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힘든 싸움이 됐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 이 상황은 나에게 불리하기 그지없 었다. "꽤 하는군." 그때 보스 인형의 탄성이 들려왔다. 나는 그런 녀석을 도발했다. "너도 서서히 덤벼 보지 그래?" "안 그래도 내가 나서려고 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른손을 휘젓는 보스 인형. 다음 순간, 인형의 손짓에 우리를 공격하던 식칼 인형들은 뒤로 물러섰다. 하아, 드디어 보스냐? 솔직히 말해, 저 자잘한 놈들은 별 필요 없다. 제일 중요한 건 보스. 장난 아니게 강해 보이는 저 보스 인형이다. "잘 싸운 기념으로 선물을 주지." 파앗! 순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녀석의 입에서 검은색의 이상 한 연기가 흘러나왔다. 저건 뭐냐? 난생처음 느껴 보는 기운의 연기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저것에 맞으면 꽤 큰 타격을 입을 거라는 것이. 젠장. 이럴 때 필요한 게 다크 배리어인데, 생명력을 끌어 올...... 번쩍.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존재. ......나는 피닉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왜, 왜 그래?" "비상 배터리." "......" "좀 사용하자." "서, 설마......?" "지난번 사용해 본 결과 네 생명력으로 배리어 만드니까 정말 질기더라." "시, 싫어!! 우어억!!" 녀석이 도망가려고 한다. 하지만 내 손은 이미 피닉스 녀석을 낚아챈 뒤다. 크크크. 좀 사악해 보이긴 하지만, 다 우리 일행을 위해서다. "다크 배리어!!" 콰앙!! 그때 피닉스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만들어 낸 다크 배리어 와 보스 인형이 내뿜은 검은 연기가 부딪쳤다. 그리고 엄청난 폭발. 역시 나의 예상이 맞았다. 저 검은 기운은 예사로운 연기가 절대 아니었다는 것 말이 다. "나의 공격을 막아 내다니...... 제법이군." "뭐, 비상 배터리가 성능이 좋아서 말야." "......?" 보스 인형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당연한 건가. 다크 배리어는 상대방의 생명력이 끈질기면 끈질길수록 효 과가 좋은 기술이다. 그러니 당연히, 불사의 존재라 불리는 피 닉스 녀석의 생명력을 이용하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플레임 스트라이크." 그 순간, 어느새 인형의 뒤로 간 세르키스의 마법이 작열했 다. 역시 세르키스다. 그 잠시의 기회를 놓치지 않다니, 정말 멋져! 하지만...... "크크크......" "곤란하군요." "나는 절대적으로 마법이 통하지 않는 몸이다." "흐으음......" 어느새 블링크를 이용해 다시 내 뒤로 돌아온 세르키스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절대적으로 마법이 통하지 않는 몸이라. 참 인형치고는 다양한 능력을 가지셨다. "마에스트로 님, 죄송합니다.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습 니다." "아냐. 세르키스. 괜찮아. 충분해. 비상 배터리를 이용하겠 어!" "우억!" 그 순간 절규하는 피닉스와 밝게 웃는 나. 피닉스야, 잠시 좀 빌리마. "라이프 블리지트. 다크 헤이스트." 파아앗! 그 순간 내 무기에 깃드는 엄청난 파괴의 힘과 내 몸을 감 싸는 바람의 힘. 역시 질긴 생명력으로 생성한 라이프 블리지트는 정말 환 상적이다. 한편, "나, 난 더럽혀졌어. 흐흐흑." 더럽혀졌다고 질질 짜는 새 한 마리.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걸로 아까 전 우리를 팔아먹으려 했던 건 용서해 주마. 자, 그럼 피닉스 군에게 힘도 받았겠다. 시작하자고, 괴상망 측한 인형 자식아! 콰아앙!! "젠장!!" "크크크."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크크크. 아무리 공격해 봤자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다. 마법뿐만 아니라 물리 공격에도 난 무적이니까." 거참, 재미없는 능력을 가졌다. 무적이라니. 물리 공격 무적에 마법 공격 무적. 나보고 어쩌라고!! 저 보스 인형은 말 그대로 완전 무적이다. 내가 공격한 물 리 공격이든 다크프리스트의 스킬을 이용한 공격이든 모두 흡수한다.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미치겠다. "블카란." ...... 순간 이상한 주문과 함께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 다. 도, 도대체 무슨 짓......을!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장면. 조금 전 상대하던 인형들이 어느새 내 온몸에 달라붙어 나 를 결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크크. 약속대로 인형으로 만들어 주지." "......!" "플루하." "......우어억!!" 순간, 막 어지러어지기 시작했다. ...... 내 살다 살다 인형이 되는 희귀한 체험을 하게 될 줄은 몰 랐다. "이런, 곤란합니다. 곤란해." "세르키스. 너도 인형이 되어 버렸구나." "정말 곤란한 상대더군요." "으아악!! 나 같은 전설이 인형이 되다니!!" ......우리는 결국 사이좋게, 모두 인형이 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박제 인형이라고 할까? 참고로,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인형의 눈으로 보는 탓에 상당히 크다. 어차피 나야 6시간 후면 사망 처리가 되고 강제로 로그아웃 되겠지만, 세르키스와 피닉스는 아니다. 이곳 게임 속에 존재 하는 이들이니 시간이 지나도 자동적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게다. 그것이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점이라고나 할까? "살려 줘." "살려 줘." "제발 구해 줘." "제발......" "시, 싫어." "이게......싫어." 그때 울리는 목소리들. 대략 누구인지 알겠다. 처음에 식칼 들고 우리를 공격했던 인형들, 그들이 울부짖 고 있었다. 인형으로 변하니 인형들의 말까지 알아들을 수 있 고, 새롭네. 하지만 나한테 그래 봤자 떡고물도 안 나온다. 나 자신도 인형이 됐는데 구해 주기는 뭘 구해 준단 말인 가. 나도 지금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이제 어떡해야 할까요?" "글쎄." 나는 세르키스의 말에 그렇게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어떡해야 할까. 인형이 되어 보기는 처음이라 다음 일을 생각해 내기가 쉽 지 않다. 아니, 생각할 것도 없지. 그냥 여기서 인형이 된 채 구조를 기다리는 수밖에. 그런데, 여기서 잠깐. 구조를 기다린다? 누구의 구조를? 가르? 데인? 누구에게 구원의 손길을 기다린단 말인가!! "암울해." 피닉스의 한 마디. "그러게......" 암울하다. 가르와 데인의 구조를 기다리는 건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여자들의 구조를 기다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괴팍한 인형은 그녀들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강력했으니 까. 물론 가르와 데인이라 하더라도 무리겠지만. "인형 체험은 별로 재미없다." 나는 그 말과 함께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은 움직이지 않고 앞만 바라보는 인형. ......정말 재미없다. "오빠...... 왜 이리 안 오시죠?" 마을에 들어간 지도 어느새 1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연락이 없다. 귓속말도 되지 않고, 로그아웃도 안 한 상태다. 아까 만난 그 여자의 일행과 똑같은 상황이 된 것 이다. "그러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걱정하는 건 예은뿐만이 아니다. 혜경 또한 시간이 갈수록 극도로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 다. 만약 무슨 일이 있다 하더라도 1시간이면 충분히 끝내고 돌아올 시간이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도 없다. "내가 란타스를 보내 볼게. 란타스, 부탁해!" 끼이익! 혜경이의 부탁에 란타스는 알았다는 듯 힘껏 울었고, 그와 동시에 인형의 마을로 힘차게 날아올라 갔다. "......저건 혜경이의 란타스 아니냐?" "어, 어서 SOS를 보내자!" "피닉스 군. 지금 이 꼬라지에 무슨 수로 SOS를 보내 니?" "......" "아, 암울하다." 그 순간...... 끼이익!! 란타스의 비명의 들려왔다. 그리고 우리 앞에 등장한 한 마리의 새 인형. ......인형이 되어 버렸구나. "......" "......" "......" "......" "......" "......" 일행은 모두 침묵을 지켰다. 정찰을 보낸 란타스까지 연락이 두절된 것이다. 란타스가 저 마을을 출발한 지 30분. 보통 정찰을 하더라도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란타스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 다. 그게 뜻하는 바는 분명 저 마을에 뭔가가 있다는 거다. "......제가 들어갔다 와 볼게요." "저, 저도요." "저도." 레니아의 말에 예은과 혜경은 쫓아 말했고, 그런 그녀들의 반응에 레니아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모두 조심하세요." "네." "네." 레니아의 말에 긴장 어린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이는 예 은과 혜경. 그런데, 여기서 잠깐. 보통, 미소녀 세 명이 저런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 들어간 다면 남자들이 당연히 자신들도 가겠다고 나선다. 특히 저런 절대 미소녀들이라면. 아니, 미소녀가 아니더라 도 최소한 여자들에 대한 에티켓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레니아, 예은, 혜경이 안에 들어간다는 말에도 가르 와 데인 군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니, 가르는 입을 열었다. "저, 전 어린 에리아 님을 보살피겠습니다." "나, 나도!" ......궁색한 변명이다. 에리아는 분명 이곳에 남아야 하고, 보호자가 있어야 하기 는 하지만 그건 한 명이면 족했다. 굳이 두 명이나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저, 저기. 데인 씨. 같이 가 주시면 안 돼요?" "내가?" "데인 씨는 천족이잖아요." "......" "안 될까요?" 예은의 부탁은 데인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예은이 천사 같은 목소리로 부탁하고 있다. 아무리 이상한 성격을 갖고 있는 데인이라 해도 거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그냥 허락해 줄 데인이 아니다. "그럼 끝나고 밟아 주는 거야?" "......" 데인의 말에 굳어 버린 예은. 하지만 데인도 양보할 수가 없었다. "밟아 줘, 밟아 줘." "그, 그건......" "난 너 같은 미소녀한테 밟혀 보는 게 소원이란 말야." "......" "밟아 줘, 밟아 줘." 너무나도 애타게 애원하는 데인. 하지만 예은은 차마 허락할 수 없었다. "저, 정말 죄송해요." "쳇......" 더 이상 떼를 써도 안 될 것 같자, 데인은 혀를 차고 포기해 야만 했다. 그들은 그렇게 인형의 마을로 들어갔다. 에리아와 가르만 제외한 채. "오빠!!" "윤현아!!" "마에스트로 님!" "다들 어디 계셈?" ......! 이 반가운 목소리!! 분명 나를 찾는 목소리다. 하지만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저들도 여기 까지 들어왔다가 우리처럼 인혀잉 되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오지 말라고 외치고 싶다. 젠장, 이 인형 모습 누가 풀어 주기만 해 봐라. 당장 유물급 스킬로 저 인형 자식을 박살 내 버릴 테다!! 잠시 방심한 탓인지, 녀석이 아무리 무적이라 해도 내 두 번째 스킬 에스케리시스에 직방으로 당한다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놈이 물리적 방어능력이 뛰어나서 자신이 무적이라고 외치 는지 모르겠지만, 에스케리시스는 상대방의 몸 안에서 폭발하 는 스킬이다. 간단히 말해, 겉보기에는 제아무리 무적처럼 보여도 간단 히 부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내 자신이 인형의 모습이라는 사실이었다. "아, 저 인형......" "예은아, 왜 그래?" "저기 좀 보세요, 언니." 그러면서 예은이가 그 고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래, 나야!! 나!! 아임 유월 헬프 미!! 제발 인간이 되게만 만들어 줘! 나는 절규했다. 하지만 저들이 나의 절규를 들을 수 있는 확률은 제로로 보 인다. 크으윽. "진짜...... 윤현이랑 옷하고, 얼굴이 똑같네." 그때 나를 들어 올리는 혜경. 허억. 그, 근데. 혜경의 손에 들리니까 촉감이 장난 아니다. 아, 안 돼. 난 변태가 아니야!! 그, 그래. 정신 차리자. "신기하다." 그러면서 나를 자세히 만지는 그녀. 그리고 또다시 흥분하는 나! 으아아악!! 이건 아냐!! 인형인데 왜 이렇게 느낌이 촉촉하냔 말이다!! 그렇게 천국과 죄책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나는 결국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그나저나...... 인형이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는 것 같 군. "으아악!! 뭐, 뭐야! 나도 만져 줘!" 그때 들려오는 피닉스의 외침. 저 자식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저딴 소리를 해 대는 건 지. 덥석. 그대 피닉스 녀석을 집어 드는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어라? 여기 피닉스랑 똑같은 인형도 있네." "뭐, 뭐야!! 이 자식아, 왜 네가 잡어!!" "신기하다." "놔! 놔!! 나도 여자한테 잡히고 싶어!!" "정말 똑같아." "남자의 더러운 손은 거부한다!" 그렇다. 데인이었다. 피닉스 녀석을 잡은 건 네 명 중 유일한 남자였던 데인이었 던 것이다. 쯧쯧. 불행한 놈. 그때, 하아...... 허억!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 버렸다. 혜경의 손이 너무나도 부드러운 까닭에. 으아악! 안 돼! 난 지성인이야!! 더 이상 짐승이 될 수 는...... 아아. ...... 내가 이렇게 변태였단 말인가. 인형이 되어서도 혜경의 손길에 흥분하는 나. ......좀 그렇다. 이건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그 어떤 남자라 하더 라도 굴복하고 말 것이다. 혜경이 같은 초미소녀가 부드러운 손길로 만져 주는데 흥분 안 하면 그게 오히려 비정상인 거 다. 그래, 그런 거야. 그렇게 나 자신을 다독거리는 나. ......무지 미안하다. "그런데 왜 여기에 오빠와 피닉스, 그리고 심지어는 세르키 스 님의 모습을 닮은 인형이 있는 거죠?" 그때 들려온 예은의 한마디. 그리고 그 한마디에 모두 굳어 버렸다. 생각해 보니 이상할 것이다. 이곳에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인형이 있으니 말이다. "설마 이 인형들이......" 그때 레니아가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가 인형으로 변신한 거다! 제발 눈치를 채 줘! "마, 말도 안 돼. 인......형으로 변신했다고?" 혜경이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믿어야 한다. 진짜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기는 한데, 실제로 인형으로 변했 단 말이다. 그것도 게임 안에서. "하지만 너무 이상해요. 만약에 제 추측이 사실이 아니라면 왜 이 인형들이 마에스트로 님과 피닉스 님, 그리고 세르키스 님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 "......" 그 말에 그녀들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그럼 이 인형이 진짜 윤현이라고?!" 그러면서 나를 보고 외치는 혜경. ......나, 윤현이 맞아. "그, 그럼 이건 피닉스?!" 데인이 피닉스 인형을 내밀면서 말하자, 그와 동시에 레니 아가 바닥에 놓인 세르키스를 집어 들며 말했다. "모두 인형으로 변해 버린......것 같아요." ......같아요가 아니야, 예은아. 변했어. 제발 다시 나를 인간으로 되돌려 줘!! 그렇게 절규하던 나. 그런데 어떻게 해야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지? ......심히 답답하다. 그리고 저 보스 인형은 왜 움직이지 않고 있지? 의아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쯤이면 분명 저 보스 인형이 움직이고도 남을 시간이 었다. 하지만 저분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왜? 그때 들려오는 보스 인형의 말. "제길. 천족이 있다." 아하...... 데인 때문이었구나. 저 보스 인형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데인 때문 이었던 것이다. 사실 데인이 미친 마조히스트이긴 하지만 종 족은 천족이다. 성스럽고 성스럽다 못해 성스러우면서 성스러운 눈물이 나 는 그 천족 말이다. 물론 믿고 싶지 않은 게 내 마음이긴 하다. 하지만 사실이다. 제 입으로 천족이라고 했고, 그리고 지금 무엇보다 저 보스 인형이 천족이라 하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 데인 왈. "흐으음. 신성력을 집어넣어 볼까?" "신성......력요?" "응. 만약에 마에스트로가 인형으로 변한 거라면 나의 신성 력으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 "아!" 혜경은 데인의 말에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나 궁금하게 있다. 너, 신성력 사용할 줄 아냐? 지금 말만 할 수 있다면 제일 묻고 싶은 말이다. "미소녀 아가씨. 그 인형 들고 있어 봐." 데인이 혜경에게 나를 들고 있을 걸 요구하자 그런 그의 말 에 혜경은 나를 들었다. 과연 신성력을 주입하면 원래대로 돌아갈까? 근데 나, 신성력을 주입당해도 되는 거야?! 다크프리스트인데. 크흐흠. 심히 걱정된다, 걱정돼. "잘 참고 있어." "네." 데인의 말에 나를 더욱더 꼬옥 붙잡는 혜경. 아아, 혜, 혜경아. 조금만...... 흥분돼. 아, 안 된다. 나 왜 이렇게 됐지? 지성인 중에서도 지성인이 라 불리던 내가 왜 이리 변태스러워졌단 말인가. 이건 분명 인형이 된 후유증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 같은 지성인이 이런 변태스러운 대사 를 칠 리 없다. "사바사바, 신이시여. 알리알리 까라까라." 저, 저기...... 그때 들려오는 데인의 주문. 분명 신성력을 끌어 오는 주문 같아 보이기는 한데 심히 이 상하다. 보통 신성력을 끌어 올 때는 아무 말 없이, 과묵하고 멋지게 사용하는데 지금 녀석은 이상한 주문을 외우고 계신 다. 원래 천족들은 신성력을 끌어 올 때 저런 근원도 알 수 없 는 괴팍한 주문을 외우는 거야? 그런 거야? 아님 데인이 이상한 거야? ......아마도 후자 쪽이 아닐까 싶다. "아아아, 신성력 발사!" ...... 이건 아니다. 내가 꿈꾸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조 금 다르면 그나마 이해해 주겠는데 이건 아니다. 정말. 신성력 발사라니!! 그것도 앞에 '아아아'는 왜 들어가는 건 데?! ......이건 아냐! 그 순간 데인의 손에서 신성력이 내뿜어졌고, 이내 그 이상 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거짓말 안 하고 열나게 찜찜한 신성력이다. "어, 어라?!" 그때 갑자기 내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분명 인형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꺄악!" 그때 혜경의 짧은 비명이 들려왔고, 잠시 후...... 나는 눈을 떴다. 그러자 상당히 묘했다. 내가 어느새 혜경을 덮치고 있는 자세였던 것이다. "미, 미안!" "아니야." 나는 빨리 그 자세에서 벗어나면서 혜경에게 사과했다. 분명 실수라고는 하지만 약간 민망한 자세이긴 했으니까. 그리고 인형이었을 때 느꼈던 변태적인 기분을 사과하는 의 미도 담겨 있다. "오, 오빠. 진짜로 인형으로 변신한 거예요?" "그렇게 됐다, 예은아." 나는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온 나를 보고 놀란 얼굴을 하는 예은을 향해 그렇게 말해 주었다. 그나저나 다시 인간이 되었다. 인간이...... 크흐흐흐. "야. 짝퉁 인형 튀어나와!" "......" "숨어 있는 거 다 알아, 바보 인형아." "......" "겁쟁이냐?" "......빌어먹을 인간!" 나의 도발에 결국 모습을 드러내는 인형. 그리고...... "꺄아악!!" "끄악!!" "꺄악!!" 한쪽 얼굴과 몸 한쪽이 갈기리 찢기고, 한쪽 눈이 갈가리 찢긴 채 피를 흘리는 모습은 여자들을 기겁하게 만들기 충분 했다. "천족 살려!!" 순간, 부리나케 마을 밖으로 도망가는 데인. ......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가냐? "크크크. 저 천족, 병신이군." "......그 말에는 동의해 주마." "그리고 너도 병신이다. 당해 놓고도 나를 도발하다니. 이번에는 전부 다 인형으로 만들어 주지." "글쎄, 네 생각대로 될까?" 파앗! 나는 그 말과 함께 순식간에 인형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그 인형의 가슴팍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러자,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나는 무적이다." "바보." "......" "겉은 무적이라 해도 안에서 폭발하면 어떨까?" "......?!"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아?" "서, 설마?!" "인형으로 만들어 줘서 재미있게 놀았다고 일단 예의상으 로 말해 줄게. 그럼 잘 가라. 에스케리시스!!" 파아앗!! 나의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 인형의 몸에 주입되는 어둠의 마나...... 그리고 잠시 후...... 콰아아아아앙!! 소멸해 버렸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역시 무지막지한 스킬이다. 일 인을 향해 사용하는 스 킬 중에서는 이 게임을 통틀어 최고일 것이다. 어라? 그런데 이상하다. 왜 이번에는 폭랩을 안 하지? 이상한 괴물을 잡은 뒤에는 항상 레벨 업 소리가 엄청나게 들려왔는데. "......왜 자꾸 내게 이런 소식이 들려오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우리가 공들여 만든 인형이 파괴되었다고?" "그, 그게 또 다크프리스트가......" "이런 빌어먹을 다크프리스트!!" 콰앙!! 그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앞에 있는 탁자를 손으로 산산조 각 내 버렸다. 그만큼 그에게는 화가 나게 만드는 이름이다. "매일 매일!! 그놈의 다크프리스트!! 다크프리스트!! 젠장!!" 그는 주먹을 꼬옥 쥔 채 불같이 화를 냈다. 그만큼 다크프리스트라는 놈은 자신들의 일을 계속해서 방 해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자신들의 이루려는 궁극의 목표는 물 건너가는 거다. "상대방은 다크프리스트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상대방은 다크프리스트. 그러 니 그 프리스트에게 대항할 만한 존재를 보내면 됩니다." "다크프리스트에게...... 대항할 만한 존재? 직업?" "그렇습니다. 또 다른 히든 클래스, 하이프리스트 말입니 다." "......하이프리스트." 프리스트 중에서도 성스러운 힘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존 재. 그의 보조능력은 어마어마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뿐 아니 라 하이프리스트는 자신의 반대되는 힘을 가진 존재에게 더 욱더 강한 면모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하이......프리스트라...... 고용할 수 있겠는가?" "많은 액수를 제시하면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래. 다크프리스트에게 하이프리스트라...... 크하하하! 좋은 생각이군." [호스트?] 바글바글. ......상당히 많다. 세르키스의 말과는 달리 플로코스라는 마을에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왠만한 크기의 관광지보다 더욱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난 세르키스에게 말했다. "세르키스...... 분명 한가하다고 하지 않았어?" "흐으음. 분명 지난번 제가 들렀을 때는 한가했는데 말 입니다." "언제 들렀는데?" "200년 전요." "......"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근데 200년이라니. 그리고 이곳은 NPC들만 사는 세상이 아 니다. 유저들도 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유저들 사이에서는 인터넷이라는 연결 매체가 있어서 이렇게 좋은 곳이 있으면 금세 퍼져 나가곤 했다. 그 예로, 저 어마어마한 유저들. 그랜드 크룬 이후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유저들이 었다. 아니, 여태까지 돌아다니면서 유저들이라고는 잘 보지 못 한 게 사실이지만. 그나저나...... "이곳에서 휴가를 즐길 수나 있을까?" "물론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만큼 큰 관광지라서 더욱 발달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흐으음. 그것도 그렇네." 나는 세르키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마을의 가게 들은 서비스가 높아진다. 왜냐하면 많은 장사꾼들이 몰려오 고, 그렇게 되면 서비스의 질 면에서 경쟁체제로 돌입하기 때 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꽤나 짭짤한 아르바이트가 많을 걸로 생 각됩니다. 사람이 이렇게 몰리니, 가게에는 일손이 부족할 테니까요." "아르바이트라......"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단어다. 이 게임에 접속한 후 아르바이트만 열심히 하는 유저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그 아르바이트가 현실세계의 일자리였다. 왜냐하면 이 게임의 현금 거래는 충분히 짭짤했으니까. 그러니 죽도록 아르바이트하고 그 번 돈을 현금 거래로 판 다. 그리고 현금이 생긴다. 이런 공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어 떻게 보면,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까지 구원해 주는 게 이 게임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는 별 관계 없는 소리. 왜냐하면 나는 아르바이트 할 시간에 다른 걸 하는 쪽이 더 잘 벌 수 있는 단계에 돌입했으니까. 덥석. "인재다!!" "......" "......" "......" 그때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심히 난감하다. 갑자기 나타나서 왜 남의 손을 잡느냔 말이다. 그것도 남자 가. "인재야!!" "저, 저기. 이 손부터 놓으시고......" "인재가 두 명이다!!" ...... 이 아저씨, 뭐지? 심히 난감하다. 나를 보고 인재라니. 어디에 같다 붙이는 인재냐? 어느 인 재냐에 따라 그 의미가 180도 달라지니까. "자네도!!" 덥석. 순간 나에게서 곧바로 세르키스 쪽으로 이동하는 남자. 이 남자, 호모인가? "이런 인재를 두 명이다 보다니. 감동이야." "난감하군요." 세르키스도 남자의 이상한 행동에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 다. 그나저나 도대체 인재라니요, 아저씨?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 그 순간, "자네들, 아르바이트 해 보지 않겠나?" "아르......바이트요?" "그래!! 아르바이트." "......별 관심 없는데요. 그리고 여기에는 휴식을 취하러 온 거라." "......100골드." "......" "자네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100골드도 벌 수 있네." "......" "어떤가?" 100골드!! 내 손이 떨리고 있다. 100골드. 100골드란다. 아르바이트로 100골드를 번다니. 이 말도 안 되는 액수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만큼 아저씨가 나와 세르키스에게 제시한 금액은 나를 불태우기 충분했다. "정말......인가요?" "그래!! 물론 자네들이 열심히 해 줘야 하네." "......전 좋습니다. 세르키스, 넌 어때?" "저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그래? 그럼 가자!! 우어어억!!" 나는 굉음을 질렀다. 100골드짜리 아르바이트라니. 무슨 아르바이트인지는 모르겠다만, 상관없다. 어떤 아르 바이트든 다 해 줄 테니까!! 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 휴가를 즐기고 있어. 나랑 세르키스 가 돈 잔뜩 벌어 올 테니까." "저희만요?" 그런 내 말에 조심스럽게 묻는 예은. 난 그런 예은에게 웃으며 말했다. "금방 올게. 돈 잔뜩 벌어서 즐겁게 써야지. 크크크. 아 참, 그리고 이거." 그러면서 난 30골드 정도 되는 금액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 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이, 이게 뭐예요?" "돈." "아, 아니요. 이 엄청난 액수는......" "아, 너랑 혜경이, 레니아, 에리아까지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대로 사라고." "저는요?" "그래, 나는?!" "나 같은 전설적인 피닉스는?" 그때 태글 들어오는 삼인방. 저것들은 꼭 그냥 넘어가지는 않는다. "너희는 세 명 합쳐서 1골드어치 써." "차, 차별입니다!" "그래! 차별이야!!" "전설적인 차별이야!" ......저 피닉스 녀석은 말끝마다 전설이래. 근데 내 이해력으로는 '전설적인 차별'이라는 단어의 뜻이 전혀 짐작이 안 가는데 말이다. 좀 이해가 가능한 말을 해야 받아 주든가 하지. 이거야, 원. 하지만 좀 차별이 심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럼 한 명당 1골드." "너무 적습니다!!" "그래! 단식 투쟁할 거야!!" "전설인데?" "......" 이것들이...... 나는 또 금액에 불만을 토로하는 그 자식들을 보고 이마에 혈관 마크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사 주지 않으려다가 여린 마음으로 사 준다고 하니까 계속 액수에 토를 달다니. "그럼 때려 치워." "......" "......" "......" "예은아, 절대 저것들한테는 돈 쓰지 마." "자, 잘못했습니다. 그냥 만족할게요." "만......족할게." "쳇......" 내 말에 금세 불만이 잦아드는 삼인방. 내가 네놈들한테 1골드나 쓰는 걸 감사해라. 사실 이번에 100골드짜리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다. 자자, 100골드짜리 아르바이트라...... 왠지 기대되는걸? ...... 여기는 어딥니까? 난 정체불명의 아저시가 데려온 아르바이트 장소를 본 순 간 그대로 굳어 버렸다. 도대체 여긴 어디란 말인가?! 여기가 진정 아르바이트를 할 장소가 맞긴 맞는 거냐? 난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물었다. "저, 저기...... 여긴 어디죠?" "어디긴? 자네가 일할 곳이지." "......" "표정이 왜 그러나?" "아뇨. 좀 심오하다고 해야 할까, 여기서 100골드를......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가서요." "벌 수 있네." ......뭘 해서요? 라고 묻고 싶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다 무너져 가는 가게 때문이었다. 대략 20평 정도 되는 넓이, 하지만 허름한 문과 더불어 금 방이라도 부서져 무너질 것 같은 건물 안. 거의 폐가 수준이었다. "비슷한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만, 여기서 뭘 해서 돈을 벌죠?"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하자면, 여기선 어떤 일을 하든 일단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잘 생각해 보라. 이곳 마을에는 유난히 많은 가게가 있다. 그 가게들의 대부분은 인테리어부터 시작해, 화려하다 못 해 날아갈 지경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그런 인테리어나 디 자인 따위의 단어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공포 체험하기에 괜찮은 가게 정도? 그 이상은 생각해 내기 어렵다. 한편, 내 이런 질문에 아저씨는 방긋 웃더니 대답했다. "호스트." "......" "호스트지." "호스트라 한다면?" "그래. 돈 받고 여자들을 만족시켜 주는 말이야." "......" "어떤가?" "실례했습니다." 나는 그 말과 함께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괜히 시간만 버린 셈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이상한 폐가에서 호스트 아르바 이트라니. 끔직하다...... "150골드!!" "......" "그래, 200골드!!" "......" "좋다! 250!!" 그 말에 눈을 번쩍이는 나. 250골드. 총 500골드. 그 돈이면.....!! "우리 함께해 봐요!" 안 되는 게 어디 있냐? 돈이다, 돈!! 그것도 500골드!! 전설급 아이탬, 혹은 신급 아 이탬도 구입 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그 돈이면...... 그 돈이면......! 얼마든지 해 주겠어. 호스트. 여자들을 즐겁게 해 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직업이다. 물론 이 직업, 사람들에게 보이기에는 약간 그런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건 불법이 아닌 순수한(?) 행위다. 제비 같은 경우는 사기 범죄에 속하지만 이건 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는 일이다. ......그러니 결론을 말하면, 난 당당하다. 뭐, 이건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이고, 호스트라니. 정말 암울하다. 돈 250골드에 눈이 멀어 뒷일은 생각지도 않고 무조건 한다 고 했다. 사실 난 연애도 제대로 못해 본 초짜다. 그런 내가 호스트라니. 지나가던 피닉스가 웃을 소리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런 허름한 가게에서 도대체 무슨 호스 트를 하란 말인가. 그렇다고 250골드를 포기하기도 너무 눈물이 나고...... 참 고민스럽다 못해 고민스러운 지금 상황. "자자, 모두 힘내자고, 흐하하하!" "......" 힘이 안 납니다. 도대체 저 아저씨는 어디서 저런 자신감이 샘솟는단 말인가. 나는 도무지 이 폐허를 보고 저런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연애 초짜라지만 단 한 가지는 안다. 여자들은 상당히 분위기를 중시한다는 것. 물론 그렇지 않은 여자도 있 지만, 일반적으로 남자보다는 분위기를 중시하는 게 여자다. 그런데 이런 폐허 같은 가게에서 누가 접대 받고 싶을까? 내가 여자라고 해도 절대 안 온다. 난 조심스레 물었다. "일단 가게부터 어떻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가게가 어때서 그러냐?" "......" "멋지지 않냐?" "......" 지금 당장 안과로 직행하기를 권유하고 싶다. 하지만 여기는 판타지 세계. 안타깝지만 안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크윽. "이렇게 멋진 곳도 드물지." "......정녕 그렇게 생각하세요?" "정말이지, 농담이겠나?" "저기......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게 있는데." "응? 뭔가?" "......이 상태면 손님 절대 안 옵니다." "그, 그럴 리가!" 내 말에 당황하는 아저씨.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이 폐가가 아름답다고? "그쪽 눈에는 아름다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사람의 기준으로는 절대 아름답지 않고, 오히려 끔찍합니다." "그런가? 역시 내 수준이 너무 높았던 거군." "......" "사실 친구들한테 이런 말 자주 들었네. 네 취향은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이야." ......그런 말 듣기 충분할 것 같다. 폐허 보고 아름답다는 감각. 웬만해서는, 아니 전국 각지를 뒤져 봐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저분의 정신상태는 심히 심오하다. 아 참, 이게 아 니라...... "그럼 가게를 뜯어 고치실 건가요?" "자네가 그렇다면 그래야지. 자네는 우리 가게의 유망주 아 닌가!" "......" 별로, 호스트 유망주라는 소리는 그리 듣기 좋은 말 같지는 않다. "이 가게를 어떻게 해야 대박 나게 하려나." 난 고민에 잠겼다. 이 폐허를 도대체 어떻게 뜯어고쳐야 한단 말인가. 솔직히 감이 안 잡힌다. 과연 공사를 한다고 사람들이 올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리고 인테리어와는 내가 좀 거리가 먼데. 무엇보다, 자금이 얼마나 확보되었나가 중요했다. "저......" "왜 그러나?" "자금은 얼마 정도 쓸 수 있습니까?" "꽤 많네." "얼만데요?" "1,000골드." "......" "왜 그러나?" "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난 귀족이네." "......" "표정이 왜 그래?" "아, 아뇨." 귀족......이라고? 절대 믿어지지 않는다. 일단 저 아저씨 간략히 설명하자면, 거지 같다. 다른 말 로, 되게 빈티 난다. 옷은 너덜너덜하고 얼굴은 얼마나 안 씻었는지 정체불명의 윤기로 반질거린다. 나이는 대략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데, 그의 외형적인 모습 때문에 더 늙어 보일 정도다. 저런 사람이...... 귀족? "훗. 자네도 내 패션을 이해 못했나 보군." "......패션요?" "그래. 이름 하여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다 패션."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다. 아니, 이해하면 내가 더 이상한 놈이다. 그딴 패션은 너무 나도 충격적이야. "자네도 훗날 이해할 날이 올 거네." "......별로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날이 바로 내가 맛이 가 버리는 날이 될 테니까. 그나저나...... 1,000골드라니. 제법, 아니 엄청 큰 금액이 다. 웬만한 성 하나는 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저 남자가 우리에게 제시한 금액이 거짓은 아니라는 소리 다. 그런데...... "며칠 일해야 250골드예요?" "5일." "......" "5일이면 되네. 일단 이 가게를 부흥만 시키는 게 내 목적 이니까." 5일이라......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하루에 50골드 정도? 아르바이트 역사상 없을 것이다. 그만큼 엄청난 금액이라 는 뜻이다. 하지만 걱정부터 앞선다. 이 폐가를 과연 무슨 수로 사람들 이 올 만한 장소로 바꾸느냐 하는 것과 내가 호스트로서 과연 얼마나 잘해 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 말이다. "하아, 앞날이 걱정된다." 그렇게 한숨을 내쉬던 나에게 들려온 한 마디. "제가 한번 해 볼까요?" "세르키스가?" "네. 저번에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있거든요." 싱긋. 그러면서 방긋 웃는 세르키스.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있다라. 간단히 말해, 호스트 유경험자라는 소리? 이거 꽤나 좋은(?) 소식인데? "그럼 인테리어 같은 거 가능해?" "물론입니다." "오오!" 이럴 수가......! 생각지도 못한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다. 그 이름 하여, 세르키스. 우리 남자 멤버 중 제일 믿음직스럽고 멋진 분, 세르키스. 역시나 이번에도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그럼 세르키스, 뒷일을 부탁할게!" "맡겨만 주십시오. 마에스트로 님은 공사하는 동안 잠시 주변이라도 돌아보고 오세요." "......그럴까?" 그럼 여기는 세르키스에게 맡기고 난 구경이나 해야겠다. 바글바글. 역시네 폐가를 나오자마자 나를 반기는 것은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었다. 관광지답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이 많아지고 있 다. 도대체 이곳에 무엇을 관광할 게 있다는 건지. "우아아! 저 사람, 그 사람 아냐?" "뭐?" "저기, 저기!! 공식 랭킹 4위 게른." "진짜?" "맞는 것 같은데." 그때 내 귓가에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 공식 랭킹 4위 게른? ......누구지?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등 뒤에 엄청난 대검을 매단 채 서 있었다. 180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과하게 운동한 듯 엄청난 근육으로 이루어진 몸, 그리고 푸른색의 머 리카락이 꽤나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화, 확실해!! 게른이야!!" "우아아! 게른!!" "레벨 280에 달한다는 그 게른!!" ......280이라. 꽤나 높은 레벨이네. 그나저나 4위가 280이라면 1위는 못해도 최소 300은 넘어 가겠군. 지금 제 레벨이 309니까 4위가 280이면 랭킹 1위는 나보다 훨씬 고랩일 가능성이 있다. 크윽. 예전에는 내가 랭킹 1위보다 레벨이 높았는데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동안 어느새 레벨이 낮아져 버렸다. 그리고 랭킹에 등록하지 않은 비공식 랭킹들. 그분들은 못 해도 공식 랭킹 1위보다 레벨이 높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난 은근히 저렙(?)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분들한테 진다는 얘기는 아니 다. 레벨은 달릴지 몰라도 그렇게 호락호락 질 내가 아니니까. "나를 이기는 자에게 50골드를 주겠다!" 그 순간 갑자기 사람들에게 외치는 게른. 이기면 50골드? "단, 참가비로 1골드를 받겠다. 하지만 나를 이긴다면 그 오십 배에 달하는 50골드를 주겠다!" "......" "......" "......" 그 말에 주위는 정적에 휩싸였다. 흐으음. 1골드 내고 참가해서 이기면 50골드라? 한 마디로 장사네. 저런 방식으로 돈을 벌 줄이야. 예상치도 못한 방법이다. 그나저나 랭킹 4위한테 누가 과감히 덤비려나? "한번...... 나가 볼까?" "게른하고 한번 싸워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도움이 되겠 지." "그리고 혹시라도 이기면 50골드." "이름값이 있으니 거짓말은 아닐 테니까." 웅성웅성.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잘못되었나 보다. 사람들은 오히려 랭킹 4위랑 붙는 걸 더욱 흥미로워 하고 있었다. "내가 나가겠어!" 그때 1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의 등 뒤에는 두 개의 검이 교차되어 있는 걸로 보아 쌍 검술을 단련한 걸로 짐작된다. "지킨! 힘내라고!" "이겨서 한턱 쏴!" "넌 이길 수 있어." "파이팅!" 그때 도전한 남자의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이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응원의 외침에 도전자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러더니, "여기 1골드입니다." "도전에 응한다." 남자가 돈을 건네자 게른은 그 돈을 받으면서 묵직하게 한 마디 했다. 흐으음. 대결이라. 왠지 모르게 흥미로운데?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저 도전자가 이길 확률은 제로다. 느 낌이라고 해야 하나? 확실히 저 도전자와 저 게른이라는 남자 와의 격차는 너무 컸다. 쨍그랑!! "내, 내 검이!!" "내 승리다." "......" "우아아! 역시 게른!!" "검을 부러뜨려 버렸어!!" "대단해!!" "역시 랭킹 4위 게른!!" "우어억!!" "역시 멋지다."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흐으음. 역시 내 느낌이 맞았다. 도전을 시작한 지 단 1분 만이었다. 1분 만에 그 쌍검을 사 용한 도전자는 무참히 패배하고 말았다. 쌍검이 완전히 부서 진 채 말이다. 단 일격이었다. 그 쌍검과 대검이 만나는 순간, 쌍검은 완전히 산산조각 반 쪽 나 버렸다. 마치 칼로 무를 자른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다. 그것만으로 저 대검의 날카로움이 거의 예술에 달했다는 소리! "자, 나에게 도전할 자 없는가? 50골드다!! 나를 이기면 주 겠다." "......나가 볼까?" "못 이길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라도 이기면 50골드야!" "그 돈이면......" "힘들 것 같은데." 사람들은 약간 주춤해진 상태로 그렇게 말했다. 게른의 실력을 보기 전에는 혹시라도 이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그의 압도적인 실력에 자신들의 생각이 망 상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좋다. 나를 이기면 70골드를 주겠다. 그리고 나를 이 긴다면 당신들은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70골드!!" "70......골드!!" "도전해 보겠어!!" "그래, 이기기만 하면 70골드와 엄청난 명예가!!" "그래!! 도전하자!" 머뭇거리던 사람들이 70골드라는 돈과 명예라는 이름에 다 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흐으음. 저 게른이라는 남자, 은근히 장사 수완이 좋다. 이 렇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걸 보니. "제길!!" "하하하." "졌어!!" "역시 게른!!" "무패의 게른이라는 말은 역시 진실이었어." 11전 11승 0패. 현재 게른의 성적이다. 게른에게 덤빈 도전자 중 단 한 명도 그에게서 승리를 따내 지 못했다. 아니, 한 번 이상 공격을 주고받는 것도 흔치 않다. 저 대검 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부딪쳤다 하면 거의 다 갈라졌으니까. "자! 나에게 도전할 사람!!" "......" "......" "......" "......" "......" "......" 게른의 한마디에 정적만이 흘렀다. 그의 실력에 압도당해, 이제 더 이상 당당히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그의 무력은 압도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좋다!! 100골드를 주겠다!!" 웅성웅성. "100골드?" "그, 그 돈이면 유니크 아이탬을......" "100골드......" "꿀꺽." "100골드래." ......또 저 장사 수법의 넘어가다니, 사람들 꽤나 단순하다. 아니, 단순해지도록 만드는 건가? 솔직히 100골드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말로 듣는 것만 으로도 침이 넘어갈 정도로, 그런 돈을 자신을 이기면 준다는 것이다. "아무도 없나? 나의 명성과 나의 돈을 가져갈 영웅 말이 다!!" "......좋아!! 내가 간다!!" "힘내!!" "넌 할 수 있어!!" "이겨 버려!!" "그래, 그래!!" 또 한 남자가 걸려들었다. ......뭐, 분명 질 게 뻔하지만. 그나저나 100골드라고? 나도 한번 참가해 볼까? 물론 이대 로 그냥 나가기는 그러니, 후드로 얼굴을 가린 채 나가 볼까 생각 중이다. 후다닥!! 나는 잡화점에서 몸과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기다란 후드를 사서 후다닥 게른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역시나 게른은 아직도 있었다. "나를 이길 자 없는가!!" "......" "......" "......" "......" 없나 보다. 사실 100골드에 혹해서 도전하긴 했지만 돌아온 건 날카롭 게 잘려 버린 자신들의 무기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생돈 1골드가 나가고 무리를 수리하는 값도 나가게 됐다는 뜻. 100골드라는 돈과 명예라는 타이틀이 탐이 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패배를 모두 지켜본 사람들은 더 이상 덤빌 수 없 을 것이다. "한심하군. 그런 용자가 없다니." "......" "......" "......" "......" 침묵을 지키는 유저들. 그리고 조소를 짓는 게른. 상당히 건방지다. 아니, 건방지다기보다 장사 수완이 좋다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이럴 때 한 번 나가 주는 센스를 보여 줘야겠군. "더 이상 없는 건가?! 그럼 난 이 자리를 떠나겠다." "잠깐!" "흐으음?" 나는 가볍게 손을 들고 당당히 앞으로 나섰다. 그런 나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게른. 당연하다. 온몸을 후드로 가리고 있는 수상한 남자의 등장 이었으니까. 게른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유저들도 이상한 듯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복면 남자는 뭐지?!" "설마 비공식 랭킹 이런 애들 아냐?" "그럴 수도......" "우아, 기대된다." "왠지 모르게 신비로워." 크큭, 왠지 멋진데? 신비롭다는 말을 듣다니, 하지만 비공식 랭킹 순위에 들 정 도는 아니다. 안타깝지만 유물을 찾고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사이에 공식 랭킹 1위보다 레벨이 낮아졌으니까. 그렇다고 그보다 약하지는 않다고 자부한다. 나에게는 다크프리스트의 무지막지한 유물 스킬 세 개와 더불어 엄청난 효능을 자랑하는 스킬들이 대기 중이었으니까. "마법사인가?" 한편 나를 보고 묻는 게른.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정체가 뭐지?" "글쎄." 그러면서 나는 후드 안에 감추고 있었던 메이스를 꺼내 들 었다. 그러자 눈이 휘둥그레지는 게른. "......프리스트인가?" "뭐, 대충 비슷한가?" "......전투프리스트인가 보군. 꽤나 특이한 직업이군." 남의 직업에 대해 마음대로 단정 짓지 말아 주길. 난 전투프리스트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투프리스트란 남을 보조하는 역활 위주가 아니라, 스스로를 보조하고 힘이나 민첩성에 투자해서 전투에 최적화한 프리스트를 말한다. 하지만 전투프리스트라 하더라도 일단 배울 건 다 배운다. 그러므로 보조적인 능력도 갖추고 있는 이가 전투프리스트 다. 하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내게 그런 보조 능력을 없다. 암울한 정도로 말이다. "시작하지. 뭐, 간단히 끝나겠지만." 그러면서 자신의 대검을 뽑아 드는 게른. 그리고 대검의 손 잡이를 두 손으로 꽈악 잡는다. 확실히 저 무기, 전설급 무기일 것이다. 부딪치는 족족 어 떤 무기든 잘려 나가는 걸 보면 저 칼날이 상상을 초월할 정 도로 날카롭다는 뜻. 그리고 그렇게 날카로운 칼날을 가질 수 있는 무기는 전설 급이거나, 내 것처럼 완전 특수 제작된 경우밖에는 없다. 물론 내 것 같은 경우는 흔치 않으므로, 게른의 저 무기는 전설급일 것이다. "간다!" 그런 친절한 한 마디를 내지르며 내게 달려드는 게른.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검을 내게 휘둘렀다. 그의 입가에는 자그마한 미소가 걸려 있다. 한마디로, 내 초 보자 울트라 맹독 슈퍼 메이스가 100% 박살 날 거라는 의미. 하지만 미안하게도 이 무기는 예사로운 무기가 아니어서 말이다. 전설과 신급 중간, 혹은 신급 무기에 달하는 엄청난 무기 다. 고작 전설급 무기에 파괴되는 일은 없다. 콰앙! 나는 그대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게른의 대검을 향해 내 메이스를 휘둘렀다. 그러자 강력히 일어나는 폭발. 불멸의 일진...... 그리고 그 폭발과 함께 경악에 찬 표정을 짓는 게른. "잘리지가......않았다?" "보다시피." "전설급 무기." "노노." "그, 그럼 신급?" "노노." "그, 그럼 대체 무슨 무기냐!! 어떻게 내 드래곤 블레이드를 견뎌 내는 거지!" 호오, 저것 이름이 드래곤 블레이드인가? 드래곤 검이라. 한마디로 드래곤의 뼈로 만들어진 검일 테다. 전설급 아이 탬이면 그 정도에 달하겠지. 그리고 드래곤 블레이드니까 부 딪치는 무기마다 모두 싹둑싹둑 잘렸던 것이다. "무, 무슨 무기냐!" 그때 다시 한 번 묻는 게른. 나는 특별히 말해 주기로 했다. "초보자 무기." "......지, 지금 나랑 장난치는 거냐!" "장난 아닌데." "......이런 빌어먹을!!" 내 말을 장난으로 알았는지 게른은 잔뜩 흥분했다. 억울하다. 장난 아닌데. 이건 진짜 초보자 무기다. 그 무기 가 조금, 아니 많이 개조해서 지금의 이 무기가 되었지만 말이 다. 뭐, 그것까지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겠지. "파워 클라이전!!" 순간, 과감하게 스킬명을 외치며 대검을 일자로 내리찍는 게른. 오호? 상당히 파괴력이 담긴 기술이다. 하지만 막을 만하다. 아무런 스킬을 쓰지 않아도...... 쿠우웅! "크으윽." 다크 블레스라도 사용할걸. 손목에서 느껴지는 충격이 제법 심했다. 물론 죽을 정도는 아니고 아주 살짝 아픈 정도? 다크 블레스를 건 상태라면 손 쉽게 막을 수 있는 공격이었다. "어, 어떻게 파워 클라이전을 메이스만으로!!" 뭘 그렇게 놀라시나. 내가 이래 봬도 힘이 1,400대다. 그 정도의 공격은 충분히 막을 만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계신다. 여기서 다크 블레 스를 사용하면 2,000대에 달할 것이고. "도, 도대체 네놈 정체가 뭐냐!!" 이제는 내 정체까지 물으신다. 당황스럽기는 당황스럽나 보군. 그나저나, 내 정체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말해 주는 게 인 지상정. 파앗! 나는 그대로 힘차게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손에 쥔 메 이스에 조용히 스킬을 하나 실었다. "라이프 블리지트!" 순식간에 메이스에 엄청난 힘이 몰리기 시작했고, 난 내 공 격에 당황하는 게른을 향해 그대로 메이스를 휘두르면서 외 쳤다. "내 정체? 다크프리스트 님이시다!" 콰아앙! 끝이었다. "......" "약속대로 100골드 주세요." "......" "약속을 어기는 건 아니지?" "주겠다. 젠장......" 그러면서 가죽주머니에 100골드를 집어넣어 내게 던져 주 었다. 크크크. 1골드 내고, 100골드 벌었다. 이 얼마나 짭짤한 수 입이란 말인가! "내...... 무기가." 흐으음. 살짝 미안해지기도 했다. 현재, 모든 유저의 무기를 잘라 버린 드래곤 블레이드는 금 이 나 금방이라도 깨질 태세다. 저걸 수리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 거라는 소 리. 하지만 뭐 저놈도 다른 유저들의 무기를 박살 냈으니 피차 일반이다. "니, 님아!!" "대단하세요!!" "우아아!!" "게른을 이겼다!!" "게다가 게른의 저 무지막지한 무기를 깨부쉈어!!" "말도 안 돼!!"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어!!" 우르르. 그 순간 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크으윽. 역시 예상대로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뭐, 그런 까 닭에 이렇게 후드를 뒤집어쓰고 전투에 임한 거지만. "저, 전투프리스트세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강해져요?" "그 무기 신급?" "제발 그 무기에 대한 정보 좀......" 시끌시끌. 크윽. 정말 시끄럽다. 이래서 유저 많은 곳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니까. 그나저 나, 지금쯤이면 인테리어 공사가 모두 끝났으려나? 다다닥. 그 생각을 떠올리자 동시에 바람과 같이 내달리는 나. 등 뒤에서 유저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도망간다!!" "우어어! 따라가자!" "정체를 밝히자!!" "그래!" 제발 그냥 가 주세요, 네? ...... "......여긴 어디냐?!" "어디긴요. 아까 거기랍니다." "진짜?" "네." ......엄청 변해 버렸다. 여기가 아까와 똑같은 그 폐가라고? 내 두 눈으로 봐도 믿어지지 않는다. 아니, 세르키스에게 새삼 놀랐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이렇게 뒤바꿀 수 있는 그의 능력에. 역시 드래곤 로드라는 이름은 그냥 붙는 건 아닌가 보다. "흐흐흑. 내 가게가 더럽혀졌어." "......" "꿈과 희망이었던 나의 가게가!!" 저, 저기...... 어딜 봐서 그 폐가가 꿈과 희망이 있었습니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꿈과 희 망은커녕 꿈과 악몽의 가게라는 말이 더 맞을 정도였으니까. 그나저나...... "정말 수고했어. 세르키스." "별말씀을요." "크크크, 딱 5일만 열심히 일하자." 여기서 250골드를 번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120골드와 아까 번 100골드, 총 470 골드로...... 신급 아이탬을 구입한다!! 우어억!! 생각만 해도 불타오른다. 신급 아이탬이라니!!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470골드 정도라면 신급 아이탬을 살 수 있을 만한 금액이다. 물론 그 물건을 가진 사 람이 내놓아야 하는 조건이 있어야 하지만.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엥?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 쪽지? "누구?" -예은 님에게 왔습니다. 대화를 하시겠습니까? 예은이라...... 당연히 오케이다. "지금 연결해 줘." 지지직.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귓가에 예은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오빠, 아르바이트 아직도 하세요?" "아...... 사정이 있어서 이제부터 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한 5일 동안 해야 해." "5일이나요?" "응." "도대체 무슨 아르바이트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 아니......" "......?" 도와준다는 예은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이 일은 그녀가 도와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가능은 하다. 예은 정도의 미소녀라면 백합 모드도 꽤나 창출 가능할 테 니. 많은 여자들이 찾을 테고 완전 초대박이 날 테다. 하지만...... 이런 야리무리한 일을 예은에게 시킬 순 없다. 절대로. "그, 그냥 쉬고 있어!!" "저희끼리만요?" "아. 뭐......" "전 오빠랑 같이 시간 보내고 싶은데......" "......!" 허억! 나, 나랑 같이 보내고 싶대......!! 물론 그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해석이 불가능하 지만 어찌 됐든 듣기에는 기분 좋은 말이다. 최고의 아이돌 가수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데, 이런 영광이...... 하지만 그럴 순 없다. 벌써 약속이라는 걸 해 버린 데다가 250골드나 걸려 있는, 사상 최고의 아르바이트이기 때문에 쉽사리 포기는 불가능했 다. "미안." "아, 아니에요. 그럼...... 오빠, 무리하지 마시고 쉬엄쉬엄 하세요." "응. 예은이도 재미있게 놀아." 캬아. 저 천사 같은 마음씨. 기쁘도다. 그나저나, 이제부터 장사를 개시해야겠군. 열심히 해야지. 돈을 준다고 했으니까. 그나저나 나...... 호스트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전문가로 보이는 세르키스에게 살짝 묻혀 가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수상한 냄새가 나." "......?" "......?" "뭔가 나지 않아?" "안 나는데." "아무 냄새도 안 납니다." 피닉스의 말에 데인과 가르는 그렇게 대답했다. 한편 그런 그들의 대답에 피닉스는 한심한 표정을 짓더니, "바보들." "......" "......" "이러니까 너희가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 거야. 나 봐? 전설 적으로 냄새 맡잖아?" "도, 도대체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피닉스의 말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대꾸하는 데인 과 가르. 그 모습을 본 피닉스가 다시 말했다. "훗. 역시 전설적인 나밖에 없군. 나중에 증거를 잡으면 특 별히 보여 주지. 쿠케케케." ......그렇게 피닉스는 정체불명의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 "어머, 오빠." "......" "몸도 탄탄하네." "이, 이러지 마세요." "튕기기는." "......" 이건 아니다. 이건 아냐!! 호스트. 평범한 직업이 아닌 줄은 대충 알고 있었다. 액수가 큰 만 큼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게 나의 의지였다. 하지만 막상 해 보니 그게 아니다.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아주머니가 오빠라고 부르면서 가 슴을 더듬거리는데 소름이 쫙 끼친다. 지난번처럼 미인이었다면 그나마 좋겠는데, 이건 미인이라 는 단어랑은 거리가 멀다. "얼마면 돼?" "저, 전 순진해요." "귀여워." "......" "후훗." 후르륵. 그러면서 입맛을 다시는 아주머니. 크아악! 도저히 못 봐주겠다. 250골드고 자시고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제가 상대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머? 그쪽도 괜찮네." "다행이군요." "......!" 나, 감동 먹었다. 곤란해서 어지할 줄 모르던 내게 내려진 구원의 손길. 그건 세르키스였다. 전직 호스트 출신의 드래곤 로드로서 지금까지 거의 모든 여자들을 녹여 버렸다. 사실 난 그 옆에서 보조적인 일만 할 뿐 지금 이 엄청난 매상의 중점에는 세르키스가 있었다. "이리 와 봐, 베이비." "알겠습니다, 사모님." "후훗." 정말 호스트의 신이다. 내가 세르키스를 보고 느낀 사실이었다. 처음 봤을 때 미소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 전문가였다. "......" ......? 순간,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손님들이 나를 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미묘 하게 다르다. 이 익숙한 시선...... 많이 느껴 본 것이다. 난 설마 설마 하면서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해맑게 웃고 있는 새 한 마리가 있었다. "크크크......" "......피닉......스." "이거 우연치 않게 봐 버린걸. 호스트를 하면 장면을 말이 야." "......" "모두 말해 버릴까나?" "......" "케케케." 저 자식, 지금 나를 공갈 협박하는 거냐? "아아아, 내 입은 좀 무거운데. 돈 좀 주면 말이야." 확실히 알았다. 저 녀석은 지금 내게 공갈 협박 중인 거다. 감히 내게...... "피닉스 님, 일단 단둘이 얘기를......" "10골드." "......" "그것만 주면 입 다물어 주지. 케케케." "......" "여자들 귀에 호스트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소리가 들어가 게 하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뱉는 게 좋을 거야." "저기, 피닉스 님." "왜 그래?" "제가 왜 돈을 드려야 하나요?" "그, 그거야 당연하잖아! 돈 안 주면 불어 버릴 테니까." "아하, 그러시군요." 싱긋. 나는 그 말과 함께 웃었다. 그러자 위기감을 느꼈는지 도망가려는 피닉스. 하지만 내 손이 더 빨랐다. 덥석. "뭐, 뭐야?!" "굳이 돈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지, 진짜 불 거야!!" "훗. 공갈 협박도, 이런 어설픈 공갈 협박이 있다니......" "......" "그 말 아니?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허억!" "간단하지. 여기서 살인멸구, 아니 살조멸구(?)를 하면 되는 거야." "허억!" 그제야 자신의 협박이 내게 먹혀 들어갈 리가 없다는 걸 깨 달은 피닉스. 역시나 새대가리란 말인가? "요, 용서해 줘!! 내 입은 영원히 봉인될 거야." "훗." "지, 진짜야!" "훗." "제발 믿어 줘! 나 알잖아? 전설적인 피닉스! 거짓말 못하잖 아." "......지랄." "......" "네가 거짓말 못한다는 말보다, 지나가던 똥개가 헤드스핀 한다는 말을 더 믿겠다." "사, 사실 가끔 거짓말은 하지만 지, 지금은 진심이야!" "그걸 무슨 수로 믿지?" "......" "그게 진심인지 거짓말인지 어떻게 아냔 말이다." "나, 나의 선량한 눈을 보고?" "......" 어딜 봐서 선량한데. 내가 보기에는 타락에 젖은 새의 눈일 뿐인데. 아무리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그 눈망울에 순수라는 단어는 없다. 그리고...... "난 바보가 아니거든." "무, 무슨 소리......?" "일부러 인정에 끌려 증거를 남길 내가 아니라는 거지." "아, 악마." "뭐라고 불러도 좋아. 크크크." "지, 진짜 가르의 말대로 사탄의 후계자였어!" "사탄의 후계자든 아니든 난 상관없어. 흐하하하!" "피, 피닉스 살려!!" "오늘 경험시켜 주지. 뉴턴 님이 말씀하신 이론을 말이야." 옛말에 뉴턴 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물론, 불확실한 정보). 인간이 한계점까지 맞으면 그 기억이 지워진다는 엄청난 말. 그 말을 실험할 때가 온 거다. 뭐 인간이 아니라 새라는 점이 좀 그렇긴 하지만. "자. 너와 나. 뉴턴의 '얼마나 맞으면 기억이 지워지나 실 험'을 해 보자꾸나." "으아악!!" "사랑해!" "어디 갔다 오십니까?" "응? 아, 실험 좀 하고 왔어." "실험요?" "응. 옛말에 정말 죽도록 맞으면 기억이 지워진다라는 명언 (?)이 있어서 한번 실험해 보고 오는 중." "......그건 너무 맞으면 뇌진탕을 일으켜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는 의미입니까?" "그런 거라고 해야 할까나?" 뭐, 그리 궁금하지 않으니 패스. 그렇게 난 호스트 아르바이트를 아주아주 무사히 끝냈다. 참고로 난 한 거 별로 없고, 세르키스 님이 정말 끝내 주게 활약해 주셨다. 그 덕분에 250골드 겟! 그뿐만이 아니라, 세르키스는 자신이 번 돈까지 내게 주었 다. 정말 감동적이다 못해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내 주변에는 항상 날파리 같은 놈들만 꼬였는데 세르키스 는 아니다. 그는 내게 빛이었다. 흐엉! 그럼 현재 내 전 재산이 620골드? 후우. 신급 아이탬...... 사고 말겠다. 우어억! [데린계] "네 번째 유물에 대한 단서를 찾았습니다." "오, 역시 나의 빛 세르키스!" 진짜 빛이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네 번째 유물에 대한 단서를 찾아올 정도로, 세르키스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버렸 다. 정말 이렇게 정상적인 데다가 멋지고 아름다운 멤버를 만 난 건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다. 흐흐흑! 그나저나, 드디어 네 번째 유물인가? 나는 물었다. "네 번째 유물은 어디 있대?" "데린계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아니......" "데린계에 있다고 합니다. 100% 확실한 정보입니다. 그 가 전해 줬으니까요." "......그라고 하면?" "네. 세키린 님이 제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기꾼 작자. 뭐 하고 다니나 했더니 유물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던 건가? ......나에게 사기 쳐서 본의 아니게 전직을 시킨 데다가 갑 자기 1,000골드를 빌려서 내 앞에 달아 놓아 엄청난 원망과 분 노에 휩싸이긴 했지만 잘 생각해 보니 그 1,000골드 혹시 유물 을 찾기 위해 빌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기, 세르키스." "네?" "세키린 그 작자 있잖아." "네." "......어때?" "뭐가 말씀이십니까?" "아니, 사실 겉보기에는 사기꾼에다 항상 문제만 일으키는 것 같지만 은근히 이렇게 노력해서 정보를 물어다 주잖아. 그 정보를 얻기 위해 내 앞으로 1,000골드를 빌린 거고." "흐으음, 마에스트로 님한테 1,000골드를 빌리셨나요?" "아니. 빌렸다기보다는 이상한 남자한테 돈을 빌리고 내가 돈을 갚게 만드는 잔머리를 굴렀거든. 그때는 원망스러웠는데 지금 그 돈을 이렇게 유용하게 쓸 수 있게 될 줄은 몰랐거든." "아하, 그렇지. 유흥......" 자, 잠깐. 유흥비? 술 먹고 여자 만나고 돈 펑펑 써 대는 그 유흥? "세키린 님은 돈만 있으면 술 마시고 여자를 만나는 게 취미니까요. 그 탓에 빛에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왜 그러십니까?"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서." "......?" 잠시지만 그 작자를 좋게 생각한 내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 스럽다. 그나저나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데린계라니? "데린계라니 거기는 뭐 하는 곳?" "인간계를 제외하고 몇 개의 차원이 존재하는지 아십니 까?" "물론. 일단 인간계랑 마계, 천계, 정령계 정도?" "네. 보통 알려진 내용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네 개의 차원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가 플러스된 다섯 개의 차 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 허얼. 난생처음 안 사실이다. 다섯 번째 차원이 존재하다니. 세르키스의 말이 이어졌다. "데린계는 네 개의 차원을 합쳐 놓은 곳입니다." "흐으음. 그렇구나......가 아니라! 네 개의 차원을 합쳐 놓 은 곳?" "네. 신계, 마계, 정령계, 인간계, 이렇게 총 네 개의 차원을 합쳐 놓은 곳이 데린계입니다." 한 마디로 짬뽕을 했다는 소리냐? 거참, 신기하네. "그럼 그 데린계에 지금 네 번째 유물이 있다는 거야?" "세키린 님의 말씀대로라면요." "흐으음......" 그 작자가 사기꾼 기질이 심하게 뛰어난 작자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잘못된 정보는 준 적이 없으니 이번에도 아마 확실 한 정보일 테다. 그나저나, 문제는 데린계...... 네 개의 차원이 짬뽕된 차원이라는 게 도무지 실감나지 않 는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세르키스, 데린계로 가는 방법은?" "그게, 흐으음......" 내 말에 표정이 굳어지는 세르키스. 불길하게 왜 표정이 굳어지는 거냐!! 앙?! "단 한 가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 "네. 물론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소문에 의하 면......" "소문에 의하면?" "피닉스라는 전설의 영물이 다섯 개의 차원을 열 수 있 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닉스는 전설의 영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저, 저기. 세르키스." "네?" "있잖아." "뭐가 말씀이십니까?" "피닉스." "......?" 그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다시 또박또박 말해 주었다. "내가 만날 피닉스라고 부르는 새. 그리고 제 입으로 항상 전설이라고 지껄이는 새." "서, 설마......?" 그 말에 처음으로 경악 어린 표정을 짓는 세르키스. 설마 몰랐던 거냐? "그놈이 피닉스인데." "그, 그럴 리가. 전 마에스트로 님이 장난으로 그 새를 피닉스라고 부르는 줄......" "농담이 아니라 그놈 정말 피닉스 맞아." "......" "지금은 변신하지 않은 상태여서 그렇지, 변신도 하더라 고." "믿기 힘들군요." "응. 네 마음 이해해. 피닉스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박살 나는 순간일 테니까." 드래곤 로드조차도 피닉스가 저렇게 또라이인지는 예상 못 했을 것이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같은 반응을 보이는 거겠 지. "그럼 지금까지 저는 전설의 피닉스라 불리는 영물과 같 이 다녔던 거군요." "그렇게 되겠지." "왜 이렇게 믿어지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쉽게 수긍하기는 불가능할 거야." 세르키스조차도 놀란 엄청난 사실. '그' 피닉스는 진짜 피닉스다. 한마디로, 세르키스는 내가 지금까지 장난으로 피닉스라고 부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솔직히 그런 또라이 새가 피닉스라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걸 테지만. "조금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어쨌든 방법이 있었군요." "그러게 말이다." "그럼 마에스트로 님이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세르키스." "네?" "별 기대는 하지 마." "......?" "피닉스에게 기대하면 피 보거든." "......" "야, 피닉스." "왜?" "문 열 수 있냐?" "무슨 문?" "세르키스의 말대로라면, 전설의 영물인 너라면 다섯 개 차 원의 문을 열 수 있다는데." "그게 무슨 소리?" "......" 역시 기대 안 한 게 다행이다. 저 자식에게 기대하면 피 본다는 명언, 확실히 맞아떨어지 는구나. 한편 피닉스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데." 난 그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의 말에 따르면 전설의 새 피닉스가 다섯 개의 차원을 열 수 있다 했다고." "흐으음......" 내 말에 고민에 잠기는 피닉스. 그리고 잠시 후 뭔가 생각났다는 듯! "아, 기억났다." "허억!" 그 말에 나는 기겁했다. 새, 생각났다? 그 말인즉? "차원의 문을 여는 걸 말하는 거지?" "어어엉!!" 피닉스의 말에 나는 너무 흥분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소 리쳤다. 피닉스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안 배웠어." "......" "그 양반이 가르쳐 주긴 했는데 귀찮아서 안 배웠거든." "......" "난 전설이니까." "......" 아아, 머리가 쪼개질 것 같다. 잠시지만 기대한 내 자신이 이렇게 원망스럽기도 처음이 다. 그렇게 좌절 속에 주저앉은 나. 그런데...... '그 양반이 가르쳐 주긴 했는데 귀찮아서 안 배웠거든.' ......라는 말이 문뜩 스쳐 지나간다. 그 양반? 한마디로, 피닉스에게 그 기술을 전수하려 했던 존재가 있 다는 말이 아닌가? "피닉스." "왜?" "그 양반이라는 존재가 누구냐?" "페린이라고 있어. 나 같은 전설의 피닉스에게 기술을 가르 쳐 주는 존재." "......살아 있냐?" "응. 목숨 되게 질기거든." 너보다는 안 질기겠지. 네놈의 바퀴벌레 1억 배 이상의 생명력. 그것 하나만은 인 정할 정도로 피닉스의 생명력은 가히 경악적이다. 아 참, 이게 아니라...... "가자." "어딜?" "그 페린이라는 작자 만나러." "왜?" "당연히 네놈이 차원의 문을 열기 위해서지." "풋, 내가? 전설적인 내가 차원의 문 따위를 열어?" ...... 마구 비웃어 대는 피닉스 녀석. 차원의 문 따위라니. 그게 얼마나 엄청난 능력인데 '따위'로 치부하다니. 정말 할 말 없게 만드는 놈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나온다면 방법은 있다. "살아서 갈래, 죽어서 갈래?" "준비 완료!" "훗." "가자! 가자! 하하하하!" 내 말에 순식간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어색하게 웃어 대는 피닉스 녀석. 역시 저 녀석에게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분명 저 녀석은 내가 갖고 있던 알에서 태어났다. 근데 언제 페린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거지? "피닉스." "왜?" "......너 저번에 알에서 태어나지 않았냐?" "그렇긴 한데." "알에서 태어난 놈이 어떻게 페린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는 지 궁금한데." "그거야, 당연히 알에 들어가기 전에 알고 있었으니까." "......" "그때 알을 만든 이유는 잠 좀 자기 위해서 였거든. 그런 나를 가르가 데려온 거고." "알을 만들어?" "응. 내게는 알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 허억! 하, 한 마디로 창조적인 능력? 만든다고 했다. 알을...... 그리고 그 알에 들어갈 수 있다. 그게 뜻하는 바는 피닉스 에게 창조적인 능력이 있다는 말! 난 기대 가득한 얼굴을 한 채 물었다. "알 말고 또 뭐 만들 수 있니?" "없는데." "......" "알만 만들 줄 알아." "......" "왜?" "아니......됐다." 잠깐이지만 피닉스에게 감춰진 능력을 기대한 내가 잘못이 다. 분명 알을 만드는 건 창조적이며 어마어마한 능력에 속한 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하나도 멋있진 않다. ...... "아, 참!" 그 순간 피닉스가 기억났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페린은 다른 존재는 안 만나는데." "......" "나만 만나." "그, 그러냐?" "응. 그냥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봐. 금방 배워 올 테니." 그 말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피닉스. ......차원의 문을 여는 게 절대 쉽지 않을 텐데 너무나도 가 볍게 말한 뒤 날아가 버렸다. 무척이나 오래 걸릴 것 같은데. 10분 후. "나 왔어!" "왜 가다가 돌아와?" 나는 10분 뒤 다시 모습을 드러낸 피닉스에게 그렇게 물었 다. 그런 나의 말에 피닉스는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가다가 돌아오다니?" "지금 페린이라는 작자에게 가다가 중간에 되돌아온 것 아 니야?" "갔다 왔는데." "......" "그리고 배워 왔어." "......" "표정이 왜 그래?" 지금 내 표정은 한 마디로 경악, 그 자체였다. 그 10분 동안 페린이라는 작자를 만나 차원의 문을 여는 방 법을 배웠다고? 단 10분 만에? "아하, 내가 좀 빨리 배워. 전설이잖아." "그러......냐?" "응." 어떤 의미에서는 진짜 전설일지도 모르겠다. 차원의 문을 여는 엄청난 방법을 단 10분 만에 배우는 능 력. 절대로 평범한 능력은 아니다. 그런데 왠지 저 녀석이 저 러면 하나도 멋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시작한다." 두근두근. 피닉스의 한 마디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뭔가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일단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것이 다. 그것도 우리에게 보통 알려진 신계나 마계, 정령계, 인간계 가 아닌 네 개의 차원이 짬뽕된 데인계라는 곳으로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나로서는 긴장되기 그지없었다. "우어어억!!" 그 순간, 피닉스의 이상한 외침이 들려왔다. 녀석의 몸이 순간 하얀빛으로 둘러싸이더니, 아주 오랜만 에 피닉스의 본모습으로 변했다. "......" "......" "......" "......"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본 나머지 일행은 놀란 나머지 눈이 휘 둥그레진 상태! 그리고 수 초 후, 피닉스가 조용히 눈을 뜨더니 입을 열었 다. "감동하기는, 풋." "......" "......" 역시 변신한다고 저 성격까지 변하지는 않는가 보다. 그런데 상당히 어색하다. 전에는 상당히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잘난 척을 해도 별 위 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겉모습만은 누구보다 멋진 불새의 모습을 한 채 잘난 척을 하니 상당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깜짝 놀라 소리치는 피닉스. "앗!" "왜 그래?" 내가 묻자, 피닉스는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너무 멋져서." "......" "나, 왜 이렇게 멋진 건지 누가 설명 좀 해 줬으면 하는데." "넌 전설이잖아." "그치? 그치?" 끄덕끄덕. 썩 내키지는 않지만 일단 데린계로 가는 열쇠는 저 자식이 쥐고 있으므로 칭찬을 해 줄 수밖에 없다. "자자, 그럼 문을 열게." "그러렴." "그럼 연다. 아아아아아." 뭐, 뭐냐? 그 신음 소리는...... 지금 피닉스가 지르는 소리, 분명 이상한 신음이었다. 한 마디로 19금 신음 소리. ...... 심히 당황스럽다. "아 아 아 아." "......" "......" "......" 그 이상한 신음 소리에 당황하는 예은과 혜경, 그리고 에리 아까지 모두 얼굴이 붉어졌다. ......도대체 차원의 문을 여는데 왜 저런 괴상한 19금 신음 소리가 들어가는 거지? 왜? 왜? 왜? "휴우, 하아, 코오, 제오, 베이비." "......" 진짜 저게 차원의 문을 여는 주문......? 믿고 싶지 않다. 저게 차원의 문을 여는 주문이라고? 하지만 그게 주문이라는 걸 확인해 주듯, 피닉스 앞에 서서 히 열리는 공간. 그것만으로도 저 괴상망측한 주문이 진짜라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오, 베이비. 마이 베이비. 문 열려. 오, 베이비. 아이 러브 베이비 컴 온 컴 온. 이리 와. 사랑해. 하하하하하하!" 파지짓!!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주문에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차원의 게이트. 진짜다. 진짜 문이 열리고 있어. 그렇게 몇십 초 후, 정체불명의 차원의 문은 열렸다. 일단 열려도 심히 난감한 이 마음 누가 알아주리오. "자, 가자!!" 그러면서 앞장서는 피닉스 녀석. 그래, 가야지. 데린계인가 뭔가로 말이다. [마계] 내 앞에 펼쳐진 검은 기운으로 가득 찬 동네. 주변에는 온갖 어둠의 기운이 가득하다. 그뿐만 아니라 태 양도 붉은색이다. ...... 난 피닉스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가...... 데린계냐?" "......실수한 것 같아." "......" "마계?" "......" "하하하하." 난 어색하게 웃어 대는 피닉스 녀석을 눈을 가늘게 뜬 채 바라보았다. 데린계로 가는 문을 열라니까 갑자기 생뚱맞게 마계라니, 어이 상실이다. 아니, 애초에 성공할 거라 생각한 내가 바보스 러웠을 걸지도. 난 고개를 저으면서 한심한 어조로 말했다. "다시 문 열어, 자식아." 그 괴상망측한 주문을 또다시 듣는 건 거북했지만 어쩌겠 는가? 데린계로 향하려면 들을 수밖에. 그 순간, "못 여는데." "......" "차원을 여는 주문은 힘이 많이 들어서 한 달간 사용 못 해." "......" 한 달간 사용하지 못한다라...... 못한다라...... 못한다 라...... 간단히 말해, 이곳 마계에서 한 달간은 죽치고 있으라는 소 리냐? 빠직빠직. 내 머리 위로 생겨나는 혈관 마크. 그리고 이어지는 피닉스의 말. "진정하고 말로 해. 시, 실수할 수도 있잖아."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실수라고 생각지 않니?" "......" "네 말을 요약하면, 지금 이곳 마계에서 한 달간을 아무 이 유도 없이 갇혀 지내야 한다는 거잖아?" "......" "이 새대가리 자식아!" "우아악! 피닉스 살려!!" "죽어!!" "지, 진정하세요, 오빠!!" "진정해, 윤현아!" "우어억!!" ......그날 난 잠시 동안 헐크가 되었다. 이런 암울하다 못해 눈물이 나올 상황이라니. 심히 당황스럽다. 어떻게 아무 일도 없이 마계에서 한 달간 죽치고 있어야 된 단 말인가? 하루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닌 한 달을...... 상황을 이렇게 만든 원인 제공자는 저 새대가리, 피닉스다. "헤헤." 내가 째려보자 해맑게 웃는 그놈.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웃는 놈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만 난 뱉을 거다! "이 개자식!!" "사, 살려 줘!!" "진정하세요." "유, 윤현아." "......" 나를 말리는 예은과 혜경이 아니었다면 녀석은 지금쯤 새 꼬치구이가 되었을 것이다. 하아. 진정하자, 진정해. 나 같은 지성인(?)을 이렇게 폭력적으로 만들다니. 이미지 관리도 해야 한다. "휴우, 휴우." 그렇게 숨을 몰아쉬자 흥분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런데...... "꺄아악!! 사, 살려 주세요!" ...... 뭐냐? 이 아름다운(?) 비명 소리는? "저쪽입니다." 세르키스가 오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어둠침침한 동네에서 여자의 비명 소리라니, 심히 수상 하다. 허얼...... 나는 굳어 버렸다. 왜 굳었냐고? 그건 내 바로 앞에 있는 한 소녀 때문이다. 나이는 대충 16살 정도? 그만큼 풋풋한 느낌이 강한 소녀였 다. 아 참, 이게 아니라 내가 그녀를 보고 놀란 이유는...... 예은과 혜경 못지않게 100점 만점에 100점을 당당히 줄 수 있는 미모 때문이었다. 물론 예쁘다는 느낌보다는 귀엽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어찌 됐든 엄청난 미소녀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보다 더욱 흥미를 끄는 건 소녀의 주변에 가득한 사람들, 아니 사람이 아니다. 여기는 마계니까 마족이 겠지. 인간과는 미묘하게 다른 모습이다. 인간과 흡사하지만 확 실히 다르다. 그런 점에서 저분들이 마족이라는 사실이 확실시되는 순간 이다. 어찌 됐든 그런 마족들이 엄청난 귀여움을 자랑하는 소녀 를 포위하고 있었다. 한 삼십 명 정도 되는 마족이 말이다. 보통 이런 상황은 저 미소녀가 남자들에게 이상한 짓거리 를 당하는 장면으로 오해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닌 듯하다. 왜냐고? "......제거해라." "네." "네." 내 귀에는 분명 제거하라는 말이 들려왔으니까. 한 마디로, 죽이겠다는 소리. 왜 죽이지? 심심해서? 그건 아닐 테고. 솔직히 저런 소녀가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저 음산한 마족 들에게 제거당해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대국적 차원에서도 저런 칙칙한 마족들 보다는 귀여운 아가씨가 환영받는 시대니 저분은 꼭 살아남 아야 한다. "어이, 거기 칙칙한 아저씨들." "......" "......" "......" 나의 명대사(?)에 그 마족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아이이잉, 쑥스럽게. 커허엄. 자중하겠다. 어찌 됐든 마족들의 시선은 귀여운 미소녀 아가씨에서 나 에게로 옮겨 졌다. 잠시 후,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마족이 나 를 쭉 훑어보더니 놀랍다는 듯 말했다. "인간인가?" "빙고!" "......인간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한 새대가리 덕분에." "......?" "자세한 내용은 설명하기가 너무 가슴 아파서." 그렇다. 그 내용을 다시 상기하면 나 고혈압으로 쓰러질지도 모른 다. 그런 나를 본 마족이 피식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어차피 모두 죽이면 된다." "꿈도 야무지셔." "......?" "시간, 오래 끌지 않겠어." 파앗. 나는 그 말과 함께 그대로 엄청난 속도로 마족들을 향해 돌 격했다. 그런 나의 움직임에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마족들. 하지만 당황하든 하지 않든 별 상관없다. 너희들의 앞날은 정해졌으니까. "네스티안 엘리라이진." 파아앗! 순식간에 뿌려지는 어둠의 마나. 그리고 그에 따라 자신들의 속도가 엄청 느려지자 더욱더 당황하는 마족들. 끝이다! 타악. 나는 그대로 손가락을 팅겼다. 그러자, 콰아아아아앙!! "으아악!!" "크아악!!" "으악!!" 단 한 방이었다. 단 한 방에 삼십이나 되는 마족들을 정리 완료한 것이다. 물론 경험치와 마나가 모두 소진되기는 했지만...... "......" 그런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미소녀 님. 내가 무리해서 이렇게 한 방을 노린 건 다 이것 때문이었 다. 전문용어로, 개폼을 잡기 위해서인 것이다. 훗, 내가 생각해도 좀 멋지긴 했다. 스르륵. 그때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마족들. 뭐, 뭐냐? 설마 2차도 있었냐?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방금 개폼 잡는다고 유물 스킬을 사용하는 바람에 내 마나 는 바닥을 드러냈다. 물론 생명력을 마나로 전환하는 기술이 있긴 하지만, 어찌 됐든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 내가 새롭게 나타난 마족들을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바라 보았을 때였다.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마족이 미소녀 아가씨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마왕님......" "엘린 경." "괜찮으십니까?" "네, 다행히도. 저분이 구해 주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엘린이라고 불린 마족이 갑자기 내게 고개를 푸욱 숙이더 니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난 그런 마족의 행동에 너무나도 당 황해서 굳어 버렸다.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마왕......님? "오빠는 유저시죠?" 허억! 오, 오빠......?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그 마왕님. 오, 오빠래. 그런데, 저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여기서는 세리스라고 불리고, 현실에서는 은경이라고 해 요." ...... 이름, 나은경. 나이, 16살. 즉, 중학교 3학년. 키는 대략 164센티미터 정도 다. 그리고 발육 상태는...... 환상적이다. 전문용어로, 뷰티풀 하다. 분명 중학생인데 아주 아주 글래머시다. 나이에 맞지 않게 말이다. 어찌 됐든 은경이라고 불리는 소녀, 그녀의 정체는 바로 마 왕이었다. 그것도 유저 마왕. 그녀는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특이하게 이곳 마계에서 마왕 후계자로 지목이 되었단다. 물론 그녀뿐만 아니라 꽤 많은 유 저가 이곳 마계에서 생활한다고 전해진다. 한마디로, 오고 싶 다고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선택 받은 자들만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그 선택 받은 자들 중에서도 또 선택 받은 존재 가 바로 은경인 것이다. "오빠는 어떻게 온 거야?" "좀...... 심오해." "에?" "하아." "왜 한숨을?" "암울해서." "......?" "아니야. 신경 쓰지 마." "헤에. 오빠, 말해 줘." 덥석. 그러면서 팔에 매달리는 은경. 허억. 거듭 말하지만 그녀는 글래머다. 글래머라면, 내 팔꿈치에 그녀의 가숨이...... 쿠, 쿨럭! 그나저나 정말 친근감이 예술이다. 말을 놓으라고 했더니 금세 놓는다. 정말 사람 사귀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듯했다. 그때 약간 떨떠름해진 혜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떨어져서 이야기하지 그래?" "헤에. 언니, 질투?" "무, 무슨 질투야!" 은경의 말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혜경. 혜경 양, 그 말이 그렇게 과민반응을 보일 만한 말이야? 슬 프게. 흐흐흑. "저, 절대 질투 아니야!" "헤에?" "지, 진짜야!" 더듬거리는 그녀를 수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은경. 흐으음. 사이가 좋구나(?). 사실 그녀가 우리 일행과 만난 지는 3시간도 채 되지 않았 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편한 느낌이었기에, 모든 일행이 그녀 를 동생처럼 대하게 된 것이다. "오, 베이비." "......" "이리 와. 베이비." "오빠, 저 새 정말 신기해." "신기의 차원을 넘어섰지." 은경은 저 변태 피닉스 녀석이 신기하기만 한가 보다. 하지만 저놈은 신기라기보다는 아예 엽기 쪽에 가까운 새 다. 한 마디로, 미친 새. 하아......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이 목소리는 그 때 엘린인가 뭔가 하는 마족? "네, 들어오세요." 끼익. 은경의 허락이 떨어지자,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면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번에는 경황이 없어서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지만 지금 보니 상당히 멋지다. 허리까지 기른 검은색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보기만 해도 탄탄해 보이는 저 근육, 그리고 180센티미터의 키에 여자들깨 나 울린 것 같은 얼굴까지. "무슨 일이신가요, 엘린 경?" 은경이 엘린이라 불린 마족에게 그렇게 묻자, 그가 고개를 숙이면서 답했다. "회의가 있습니다, 마왕님." "회의 말인가요?" "네." ......어, 어라? 회의라는 말에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해맑았던 그녀가 말이다. "또 전쟁 이야기죠?"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냥 중립을...... 선언하면 안 될까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마왕 간의 싸움에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적만이 존재할 뿐, 방금 전에도 목숨을 위협당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아...... 그렇군요." 엥? 도대체 무슨 말이지? 마왕 간의 싸움? 중립? 목숨을 위협당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아 참!" 그때 갑자기 은경이 나를 보더니 외쳤다. "오빠도 같이 가자." "으응?" "회의에! 오빠가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 "나?" "응!" 내 말에 귀엽게 고개를 끄덕이는 은경. ......나보고 회의에 가자고? 난 그쪽 계열에 별 취미가 없는데. 하지만 은경의 부탁이 다. 뭐, 따분할 게 분명하지만 그녀와 함께라면 참아 주마. 콰앙!! "지금 당장이라도 마왕님을 노린 그 자식을 죽여 버려야 합니다!" 허얼. 박력 넘치는 할아버지시다. 60대 정도로 보이는 할아버지 마족. 지금 엄청나게 흥분한 채 탁자를 두드리고 계신다. 한 마디 로, 무지무지 흥분하신 상태라는 거지. "지론 경, 흥분을 가라앉히십시오." "지금 흥분을 가라앉히겠소, 엘린 경!! 마왕님이 암살을 당 할 뻔한 상황이오!!" "......하지만 흥분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크으윽." 엘린의 차근차근한 말에 할아버지 마족은 금세 기가 죽어 버렸다. 호오, 엘린 경 멋진데? 엘린의 말이 이어졌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간탄을 죽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희 쪽과 간탄 쪽의 병력 차이는 약 네 배."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는 거요?" 또 흥분하시는 할아버지. ......고혈압으로 쓰러지시겠네. "방금 말했다시피 섣불리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론 경." "크으윽." "진정하십시오." "......젠장!!" 엘린의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푹 숙였고, 그 모습을 본 나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니까. 그때 엘린이 은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왕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 저는......"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싸움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불가능합니다. 저희가 하지 않는다고 그쪽도 안 할 리는 없을 테니까요. 거듭 말하지만 저희에게는 적밖에 없습 니다. 아군은 될 수 없습니다." 푸욱. 그 말에 깊이 고개를 숙이는 은경. 왠지 안타깝다.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은경이는 내 키지 않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 "엘린 경." 그때, 묵묵히 앉아 있던 한 마족이 입을 열었다. 40대 초반으로 침착한 태도가 유난히 인상적인 마족이었 다. "네, 말씀하세요, 빌렌 경." "네 배의 병력 차이가 납니다. 뭔가 방법이 있습니까?" "......" 빌렌이라고 불린 마족의 물음에 엘린은 아무런 대답도 하 지 않았다. 대답이 없는 게 당연하다. 두 배도 아니고 네 배다. 네 배 면, 이쪽이 1만이면 저쪽은 4만이란 뜻. 방법이 있을 리가 없 다. "역시 없군요." "죄송합니다." "엘린 경이 죄송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휴우." 순식간에 암울 모드로 들어가는 회의장. 여, 여기 왜 이래? 조금 재미없을 줄 알았건만 많이 재미없다. "......마신의 전설이라 불리는 '그분'만 우리 곁에 있었더 라면." 그때 할아버지 마족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엘린은 고개를 저었다. "전설일 뿐입니다. 그분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군요, 이 늙은이가 노망이 났나 봅니다." "아닙니다, 지론 경. 저도...... 한 번이라도 그분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전설이라고 불리는 다크프리스트를 말입니다." "휴우." 흐으음. 다크프리스트라는 분(?)이 참 대단...... 자, 잠깐! 다크프리스트? "저, 저기......" "......?" "......?" "......?" 내 한 마디에 세 마족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졌다. 왜 끼어드느냐는 듯한 눈빛이다. 내가 마왕을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기는 하지만 이런 자리 에 끼어들 권리는 없었으므로. 하지만 조금 전에 들었던 말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 었다. "다크프리스트라니요?" "......저희 마족에게 전설적인 존재가 있습니다." 내 말에 엘린이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그 다크프리스트인데 무슨 전설적인 존재......" "......!!" "......!!" "......!!" "부탁드립니다!!" "이, 이러시면 많이 곤란한데요." "도와주십시오!" 으으윽...... 난 무릎까지 꿇은 채 내게 도와 달라고 말하는 엘린을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다크프리스트라는 말을 듣고 계속 저러신다.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무슨 내가 신도 아니고 구원이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 다. 그리고 내게는 할 일이 많다. 마왕들 싸움에 끼어들 여유는 없단 말이다. "만약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신다면...... 마신이 직접 만드신 보물을 드리겠습니다." "......" 마신이...... 직접 만든 보물? 한 마디로, 신급 아이탬?! 나는 당장 눈을 반짝거리면서 말했다. "남 도와주는 게 제 취미입니다." "......" "제 별명이 '남 도와주지 않으면 온몸에 닭살이 돋아요'예 요." "......" 내 말에 엘린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신급 아이탬이다, 신급!! "구라쟁이." "......" "완전 초구라쟁이." 빠직빠직. 순간, 내게 태클을 거는 천족 한 마리가 있었으니...... "데인, 쳐 맞고 싶구나?" "폭력 금지!" "훗." "모, 모든 걸 폭력으로 해결하지 마!" "훗." "......" "많이 컸다, 데인?" "......" "요새 많이 맞고 싶었구나?" 주춤주춤. 내 말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데인. 나는 웃었다. 그런데...... "혀, 형제여. 마, 말로 합시다." "......" "포, 폭력은 좋지 않습니다." "오호라?" 갑자기 끼어드는 가르. 그는 떨고 있었다. 떨면서 내게 폭력은 좋지 않다고 설교를 하는 것이다. 이것 들이 지금 단체로 미쳤나? 앙? 왜 이래? 그 순간! "마, 맞아!! 폭력은 나쁘다, 나빠!!" "......" 이때다 싶었는지 피닉스도 끼어들었다. 허어, 기가 막힌다. 기가 막혀. 꼭 내가 아주 나쁜 놈인 것처럼 몰아대는 삼인방. 솔직히 말해, 저것들이 내 성질만 건들지 않는다면 내가 주 먹을 쓸 일은 없다. 왜냐고? 난 평화주의자(?)니까. ......왜 이렇게 무안한지 모르겠네. 어찌 됐든, 난 폭력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다. 이런 나를 난폭하게 만드는 건 오직 저 세 명뿐. 난 죄 없다. "타도하자!" "폭력맨(?)! 반성하라!!" "신의 이름으로! 반성하십시오!!" 삼인방은 시위를 시작했다. 훗. 어처구니가 없다. 순간 나의 피식 웃음을 본 삼인방은 움찔했다. 분명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예감한 것이다. 난 시위를 해 대는 녀석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런 데...... "또 폭력이다!!" "포, 폭력으로 진압하려 한다!!" "신의 이름을 걸고, 야만적으로 놀면 안 됩니다!!" 신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데. 그것보다, 저것들 나를 완전 나쁜 놈으로 몰기 시작했다. 나같이 순진한 존재를 말이다. "훗." "절대 폭력 반대!!" "지적으로 놀아라!!" "그렇습니다!!" 데인, 피닉스, 가르, 이렇게 차례대로 외치고 계신다. 지적이라...... 분명 좋은 말이다. 나도 참으로 지적이고 싶 다. 그런데 나를 폭력적으로 만드는 게 누군데? "오, 오지 마!!" "그래!!" "오지 마세요!" 천천히 다가서는 나를 거부하는 삼인방. 그렇다고 안 갈 내가 아니다. 더욱더 가고 싶어지는 게 내 마음. 난 싱긋 웃으면서. "이리 오렴, 베이비들." 진압 완료. 1분 걸렸다. 놈들의 반항을 잠재우는 데 걸린 시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이 타격법, 예술적이다 못해 환상적 이 된다. 그만큼 이쪽 계열에서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소리. 그다지 좋은 느낌의 계열은 아니어서 약간 씁쓸하긴 하지 만. 어찌 됐든 이제 시끄러운 놈들 진압했으니 어서 이 싸움에 서 승리하기 위한 작전을 구상해야겠다. 사실 나는 머릿수 많은 패싸움에는 별로 자신이 없다. 차라 리 혼자서 단체랑 싸우는 게 낫지, 패싸움은 영...... 그렇다고 나 혼자 그 많은 마족들을 처리하는 것도 불가능. 하아, 머리 아프다. 일단 숫자부터가 너무 차이가 난다. 이쪽의 마족 수는 5천 명. 하지만 저쪽은 네 배에 달하는 2 만명. 두 배라 해도 힘든 싸움이 될 텐데, 네 배라니......너무 차이가 많이 난다. 신급 아이탬에 혹해 덥석 받아들이기는 했는데 왠지 걱정 스럽다. 아주 많이...... "세르키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글쎄요." 옆에 있던 세르키스를 향해 나직이 묻자, 그가 곤란하다는 어조로 대꾸했다. 하아. 정말 무슨 방법이 없나? 그렇게 한숨을 내쉬던 나. 번쩍! 순간, 엄청난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진짜 엄청난 아이디어!! "그래, 마왕이야. 마왕이라면 유독 자존심이 세겠지? 크크 크." 난 옆에 있던 종이와 볼펜을 이용해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맞장 뜨자. 캬아, 멋지다. 이걸 이제 저쪽으로 보내면? 내 도발에 넘어간 마왕과의 1:1싸움이 될 것이다. 이래 봬도 1:1싸움에서는 자신이 있어서 말이다. 그놈이 마왕이든 뭐든. 크캬캬캬. 미친놈. 내가 왜 그런 병신 짓을 하지? 우리 쪽 병력이 훨씬 많은데. ......내게 도착한 한 장의 편지. 이 편지의 발신처는 내가 상대할 마왕에게서 온 것이다. 미, 미친놈이라니!! 우어어억! 이 마왕 개자식을!! "마에스트로 님, 진정하십시오." "세르키스! 그 자식이 지금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흥분하게 만들려는 술수입니다.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이런!!" 으윽. 열 받는다. 열 받아. 미친놈이라니. 으아악!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뒤도 안 돌아보고 그 마왕이라는 놈을 잡아 족치고 싶다. "제길. 이번 전쟁, 승리로 이끌어 주겠어. 빌어먹을 마왕 자 식!"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난 적을 알기 위해 정찰을 보냈다. 피닉스를 시켜 서. 사실...... 정찰을 보낸 내내 불안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정찰이 가능한 놈은 우리 일행 중 그 녀석밖에 없으니 눈물을 머금고 보내야만 했다. 그때 들려오는 소리. "전설적인 나 왔어!!" ......온 건가? 이렇게 요란하기 오는 놈은 전 차원을 뒤져 봐도 또 없을 것이다. 바로 피닉스 녀석이다. 그 누구보다 시끄럽고 요란한 녀석. 꼭 앞에 전설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놈이다. "어때? 저쪽 상황은 어떠냐?" "열나게 많아." "흐으음?" "2만도 넘는 것 같은데." "엥?" "대략 3만?" "그, 그럴 리가......" 분명 2만이라고 했다. 그런데 3만이라니? "피닉스, 잘못 센 거 아니야?" "아니야. 나에게는 비장의 스킬이 있잖아." "비장의 스킬?" "응. 한눈에 보면 척 알지 스킬." ......별 희한한 스킬도 다 있네. 한눈에 보면 척 알지 스킬......이라. 진짜일까? 아마도 정말 이겠지? 저 피닉스 녀석이 약간 머리가 돈 새이기는 하지만 별 희한한 재주를 다 갖고 있다. 그러므로 저런 정체불명의 기술도 실제로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나저나...... "3만 명이라......" 제길이다. 3만 명이면 총 6배. 네 배라는 숫자와 여섯 배라는 숫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 마왕 쟁탈전이 점점 힘들어지겠는걸." 솔직한 심정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3만 대 5천이라니. 내가 무슨 제갈공명도 아니고. 아니, 사실 저쪽 분들이 조금이라도 약하다면 할 만하다. 하지만 한 명 한 명이 이쪽보다 더 강하다. 대략 힘 차이로 놓고 보면 열 배 차이. 그리고 저분들이 돌대가리가 아닌 이상 어설픈 작전 따위 에는 걸리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한 마디로 3만 명 전체가 정예 중에 정예다. 그런 상대를 무슨 수로......? "긋자." "......엥?" "목을 긋는 거야." "무슨 말이냐, 피닉스?" "암살!" "......" "한마디로, 마왕을 암살해 버리면 승리한다는 아름다운 스 토리!" "허얼." 생각해 보니 그렇다. 대장이 죽으면, 당연한 말이지만 그 밑의 애들은 패닉 상태 가 되고 그럼 해피 엔딩? 오오! "피닉스, 너 머리 좋은데." "당연하잖아. 난 전설이니까. 크캬캬." "......" 뭐, 저놈의 잘난 척은 그냥 넘어가고. 암살이라...... 왠지 뭔가 찜찜한 단어다. 하지만 승리를 위해서라면!! "좋아. 지금부터 마왕 암살 계획이다." [암살] 마왕을 암살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마왕의 성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수없이 많은 마족을 거쳐야 한다. 여기서 약간 난감한 문제가 생긴다.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마 왕이라는 자식은 상당히 조심스럽단다. 한마디로 제 주변에 마족이란 마족은 다 깔아 놓은 상태. 사실 암살 자체가 힘든 구조였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아, 정말 미치겠다.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 "오?" 그때 갑자기 한마디 던지는 피닉스. 좋은 생각이 있다고? 나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로 피닉스를 바라보았다. 얼 른 말해 보라는 눈빛이다. 나의 이런 눈빛을 받은 피닉스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나 잡아 봐라 작전." "......" "표정이 왜 그래?" "......저기, 피닉스 군. 그건 뭐 하는 작전이니?" "전설적인 내가 굳이 설명해 줘야 하는 거야?" "무슨 작전인지 이해가 안 되는 데." "이해력이 떨어지는구나. 내가 친히 설명해 줄게." 저기, 피닉스 군. 그건 이해력이 아무리 좋은 천재라 해도 알아듣지 못할 거 다. 대뜸 나 잡아 봐라 작전이라고 하면 그 누가 알아들을까? 아니, 오히려 알아듣는 놈이 더 미친 거지. 어찌 됐든 설명해 준다니 들어는 봐 주마. "나 잡아 봐라 작전. 간단해. 적들에게 가는 거야." "......" 뭔가 좀 이상한데? 그래, 일단 다 들어 보고. "그런 다음 밝게 웃으면서 나 잡아 봐라라고 하면 마족들 이 마구 달려오겠지? 마왕이 혼자 남게 되면 그때 암살을 한 다는 작전." "......" ...... 미친 거냐? 돈 거냐? 아님 장난치는 거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정말? 이렇게 마족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나 잡아 봐라 한다고 진짜 잡으러 쫓아오겠 냐? 아니, 쫓아올 수도 있겠다. 한 몇 명? "어때, 어때? 완벽하지?" "완벽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도록 해." "왜! 멋진 작전인데!" "어딜 봐서?!" "아무렇게나 봐도 너무나도 멋진 작전이잖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냐?" "응!" "완전 돌았구나." "......?" 머리가 이상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미친 새일 줄은. 나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미쳤다. 이렇게 안타까울 수 가. 하아, 그리고 이런 미친 새의 말을 귀담아들은 나 자신도 씁쓸하다. 똑똑. 순간 내 귀에 들려오는 노크 소리. "누구?" "나야." "아, 혜경이." "들어가도 돼?" "응." 끼이익. 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방문이 열리면서 혜경의 모습이 나 타났다. 하아, 후드를 벗고 있는 탓에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를 계속 해서 감상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하다. "윤현아." "......" "윤현 씨!" "아!" "......뭘 그렇게 넋이 나갔어?" "아, 아니." 네 얼굴 보느라고......라고는 도저히 민망해서 말할 수가 없다. 혜경은 그런 나를 보더니 천천히 다가오면서 말했다. "네가 말한 거 조사해 왔어." "오?"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왔어." "땡큐." 혜경은 나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휴우. 이게 내가 상대할 작자의 프로필인가? 이름: 간탄 나이: 1,200살 정도로 추정 취미: 특이한 것 모으기 싸움 실력: 엄청나게 강하지는 않음 특이사항: 경계심이 상당히 강하다. 자신의 심복 몇 명을 제외 하고는 아무도 믿지 않으며, 스스로의 안전에 엄청나게 신경 쓴 다. 허얼...... 이런. 골치 아프네. 자신의 심복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 리고 자신의 안전에 엄청나게 신경을 쓴다는 건 암살하기에 제일 까다로운 놈이라는 거다. "그것 말고는 그 성에는 엄청난 함정이 깔려 있대." "엄청난 함정?" "응. 거의 수천 개에 달하는 함정이라고." 이런 미친...... 수천 개의 함정이라니. 무슨 코미디 찍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성에 수천 개의 함정 을 설치해 놓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지독히도 암살을 무서워하나 보다. 아예 암살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나 같은 외부인은 그 근처에 가 지도 못하겠다. "아 참, 한 가지 방법은 있대." "응?" "그 마왕을 직접 볼 수 있는 방법." "진짜?" "응." "뭔데?!" 혜경이의 한 마디에 급격히 떨리는 나. 방법이 있단다. 그 병적으로 경계심 강한 마왕을 직접 볼 수 있는 방법이. "프로필에도 적혀 있다시피, 마왕은 특이한 걸 좋아해." "......특이한 거?" "응. 세상에서 단 한 개밖에 없는 것. 물건이든 동물이든 어떤 것이든 단 한 가지밖에 없는 특이한 걸 좋아한대." "흐으음." "그 특이한 걸 바친 존재는 특별히 직접 만나 준다고 알려 져 있어." "......" 특이한 걸 갖다 바치면 만나 준다는 거냐? 하지만 특이한 거라니, 갑자기 그런 걸 어디서...... "......" "뭐, 뭐야? 그 눈빛은." "......" "이상한 생각하지 마!" 나는 진한 시선으로 피닉스를 바라보았다. 특이하고 신기한 것.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 "멋지다." "서, 설마......" "피닉스, 잠깐 선물로 변해라!" "시, 싫어! 나 같은 전설이!" "훗. 반항해 봤자다." "우어억!!" 선물로 피닉스 당첨이다. 이번 작전, 간단하다. 내가 피닉스를 선물한 후 마왕을 만난다. 그런 다음 암습. 물론 주변에 엄청나게 강한 마족들이 있겠지만 모 아니면 도다. 이 엄청난 병력 차이를 이길 방법이라고는 이 방법밖에 없다. 내가 암습에 성공하면 상대방 마족들은 나를 죽이려 몰려 들 것이고 마왕이 죽음으로써 지휘체계가 혼란스러워질 것이 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 애들을 푸는 거다. 한마디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놈들에게 기습공격 을 가한다는 소리. 물론 힘으로는 달릴지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마왕이 죽었 다는 사실이 그 차이를 충분히 커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이건 아니야." "뭐가?" "전설적인 내가 선물이라니!" "그냥 위장이잖아." "위, 위장이어도!" "그냥 네가 희생하렴. 전설적인 피닉스야." "......" "넌 전설이잖아." "......" "초전설 피닉스." "......" "멋지고 아름답고 완벽한 데다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전설 피닉스 군." "그, 그런가?" "응." "케케케. 그렇긴 하지." 등신 같은 놈. 새들이 아이큐가 떨어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새들 의 신이라 불리는 피닉스마저 이런 돌대가리라니. 뭐, 나야 단순하니 좋지만. "그, 그 대신 실패하면 안 돼!" "물론 실패하면......" 다 뒈지는 거니까. 실패란 용납되지 않는다. 이번 작전은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나는 엘린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쪽이 시끄러워지면 그대로 급습해 주세요."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 "걱정 마세요." "아무리 그래도 3만이나 되는 마족이 있는 마왕궁입니다. 조금만 실수해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신급 아이탬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죠." "......" "그리고 엘린 씨를 믿을게요. 제가 암살을 성공한 뒤 타이 밍만 잘 맞춰서 급습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상황입니다." "꽤나 부담되는군요." 내 말에 약간 부담된다는 듯 말하는 엘린. 나는 그런 엘린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솔직히 이 상황에서 부담을 갖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한 거겠죠." "그런가요?" 한 번이다. 이런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단 한 번의 기회르 승자가 가려지는 일인 것이다. "오빠, 너무 위험해." 그때 나를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며 말하는 은경. 나는 그런 은경에게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충분히 할 만해." "그, 그래도......" "걱정 마. 이래 봬도 내가 좀 험하게 살아온 인간이거든." "인간......인가?" 나를 보자 대뜸 그렇게 말하는 간탄의 부하 마족. 그래, 인간이다. 어쩔래? 아 참, 이게 아니라. "저, 저기 위대하신 간탄 님을 뵙고 싶어서......" "인간 놈이 미친 건가?" "......" "어떻게 이곳 마계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간탄 님 을 뵙고 싶어 하다니. 미친 인간 자식." 빠직. 미친 인간 자식? 그냥 인간 자식도 아니고 미친 인간 자식이라고? 혈압 마구 마구 상승 중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엎어 버리고 싶은 내 마음. 하지만 참 아야 한다. 암살의 기본 조건인 인내심으로 버텨야 한다. "무, 물론 그냥 뵙겠다는 건 아닙니다. 간탄 님께서 아주 좋 은 물건을 모으시는 취미가 있다기에." "좋은......물건?" "네. 전설의 영물 피닉스입니다." "피닉스!!" 나는 그 말과 함께 변신을 완료한 피닉스를 내밀었다. 그러자 피닉스 왈, "난 전설적인 피닉스야!" "......" 허억! 이, 이 자식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꼭 제 입으로 전설적이라고 말 하다니. 저 의심의 눈길을 봐라. 많이 수상해 한다는 뜻이다. "조, 좀 특이한 피닉스입니다. 하하하." 난 어색하게 웃음 지으면서 무마하려고 했다. 입구를 지키 던 마족은 피닉스 녀석을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말했다. "진짜 피닉스 같군." "그, 그렇습니다." "알겠다. 내가 전해 주겠다." "저, 저기, 잠깐...... 뵙게 해 주시는 거 아니에요?" "푸하하! 하찮은 인간 자식이 마왕님을 뵙겠다고? 내 특별 히 피닉스를 봐서 네놈의 하찮은 목숨은 살려 주겠다." "......" "어서 그 피닉스를 놓고 꺼져라." "......" "아니면 죽이겠다." "허억! 넌 죽었다!" 그때, 피닉스가 마족 경비병을 향해 외쳤다. 그래, 피닉스. 잘 맞혔다. 넌 죽었어. 퍼억! "크아악!" 그대로 난 메이스를 집어 들어 마족 녀석을 날려 버렸다. 단 한 방에 죽어 버리는 마족 분. 나는 웃었다. "머리 쓰는 건 내 취미가 아니라니까." "저, 적이다!!" "미친 인간 한 놈이 난동을 피운다!" 마족들의 외침이 들렸다. 그래, 미친 인간 한 놈이 난동을 피워서 죄송할 따름이네 요. 사실 내가 생각해도 간 하나만은 큰 것 같다. 마족 3만 명이 포진해 있는 곳에서 이렇게 난동을 피우다 니. 하지만 녀석이 자꾸 하찮은 인간이라고 했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이거야. "세르키스." "네에." 나의 부름에 순식간에 내 뒤에 나타나는 드래곤 로드 세르 키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좀 골치 아파졌다." "그렇겠군요." "어떡하지?" "지금 상황해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 봤자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렇겠지?" "네." 여기서 말하는 한 가지 선택사항. 그건 바로...... "튀자." [비밀통로] 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의 뷰티풀하다 못해 왕 뷰티풀한 작전이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만큼 좋은 작전은 없었다. 그런데 그 작전 이 너무나도 손쉽게 무너져 버렸다. 하찮은 인간이라고 아예 마왕도 못 보게 할 줄이야. 생각지 도 못한 복병이 있었던 것이다. "하아, 이길 수 없는 싸움인가?" 솔직히 말해, 정공법으로 싸운다면 100% 패배다. 내가 아무리 유물 스킬들을 난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승리 할 가능성은 희박한데, 유물 스킬은 난사할 수 있는 스킬이 아 니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쪽수로 무작정 들이닥치면 무기력하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 하더라도 쪽수로 밀어붙이 면 곤란할 것이다. 똑똑. "누구세요?" 그때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곧 들려오는 대답. "레니아예요." "아, 들어와." 끼익. 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가 방으로 들어왔다. 흐으음. 한동안 안 보이더니 뭐 하고 다닌 거지? 레니아가 침대에 누워 있던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허억. 치, 침대에 있는 나에게 천천히...... 터벅터벅. "이, 이러면 안 돼." "......?" "나, 난 순진하단 말야."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 "이상한 생각 했군요." "......" "욕구불만?" "요, 욕구불만이라니! 아, 아냐." "그럼 방금 한 말은 뭐예요?" "그, 그냥 심심해서." "헤에?" "진짜야. 알잖아, 내 별명?" "......?" "순수계의 별." "처음 듣는 별명인데요." "......그, 그런 별명을 갖고 있어. 하하하." 나는 그렇게 대충 얼버무렸다. 레니아의 말대로 나 정말 욕 구불민인가 봐. 그냥 단순히 침대에 누워 있는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레니아를 보고 자연스럽게 이상한 생각이 들어 버 렸으니. 크흐음...... "근데 무슨 일이야?" "마왕성에 들어가서 마왕을 보고 싶죠?" "당연하지. 지금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마왕을 암살하는 것뿐." "헤에. 그럼 제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 "알아냈거든요. 비.밀.통.로." "지, 진짜?" "내." 벌떡! 그 말에 나는 침대에서 튕기다시피 일어났다. 그리고 레니 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꼬옥 안았다. "고마워!!" "......" "아 참,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나는 지금 나의 행동을 생각해 내고 약간 어색하게 웃으면 서 얼른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런데 다음 순간, "저는 별로 상관없는데요......" "......?" "저분은 상관있을 것 같아요." 엥? 무슨 말? 이해가 가지 않는데. 그때, 파짓. 허억! 이 근원을 알 수 없는 눈빛.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 다. 게데가 그냥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약간 구리구리한 눈빛이다. 난 설마설마 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양팔을 교차해서 팔짱을 끼고 있는 한 미 소녀 분이 계셨다. 웃고는 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혜경아......" "내가 못 본 걸 본 걸까나?" 말투에 엄청난 가시가 돋혀 있다. 그, 그래. 일단 오해는 풀어야 한다. "여, 여기에는 아주 깊디깊은 심오한 이유가 있어." "흐으음. 나는 포옹과 깊디깊은 심오한 이유의 연관성을 못 찾겠는데." "......" "일단 변명은 들어줄게." "진짜 오해야." "응. 믿어." ...... 절대 믿는 기색이 아니시다. 분명 웃고는 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웃고 있다고 그 사람의 기분이 무조건 좋다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엄청 화났을 때 웃는 분들도 계시니까. 그게 바로 혜경 같은 분. 난 심호흡을 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서, 설명해 줄게." "응. 설명해 줘." 무, 무섭다. 웃으면서 말하는데 이렇게 무섭기는 처음이다. "흐으음." 내 설명을 들은 혜경이 나와 레니아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눈빛의 어색하게 웃을 뿐이다. "그러니까, 레니아 님이 마왕성의 비밀통로를 알아냈고, 그 말을 들은 너는 너무 기뻐서 그녀를 껴안았다?" "그, 그런 거야. 하하하." "근데 왜 굳이 껴안아야 돼?" "......" "그게 궁금해." "......" ......그렇긴 하다. 굳이 껴안을 필요는 없다. 근데 왜 껴안았지?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냥 단순히 껴안고 싶어서? 사 실 상대가 남자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여자. 그것도 엄청난 미소녀라는 점에서 껴안고 싶어졌다고나 할까? ...... 그런데 왜 내가 추궁받아야 하는 거지? 애인한테 추궁 받는 남자처럼 말이다. 크으음. 이상하도다. 어찌 됐든 혜경의 심오한 표정은 사라졌다. 다행 중의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미소는 정말 무섭다. 그나저나, 레니아가 알아낸 비밀통로라...... "자, 여기에요." 어느새 지도 한 장을 펼치는 레니아. 무슨 성의 구조를 그려 놓은 지도였다. "간탄의 성이에요." "오호?" "좀 힘들게 입수했어요." "어떻게?" "그거 알아요? 마족이든 인간이든 좋아하는 것 한 가지." "아, 설마......" "네. 보석이에요. 물론 값진 보석이어야 하겠지만요. 헤헤." "고마워." "아뇨.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동료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 라고요." 크윽. 왠지 감동이다. 동료라. 멋진 단어다. 그러고 보면 우리 파티에도 꽤나 아름다운 분 들이 많이 계신다. 웬 미친 것들도 많긴 하지만. "여길 보세요." 그때 레니아가 성의 입구 쪽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걸 본 난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여기가 왜?" "이상하지 않아요?" "별로......" "입구가 있어요. 그리고 그 입구 옆에 미세하게 난 표시." "어라? 그러네? 근데 그냥 잘못 표기한 거 아니야?" "아뇨. 그건 아니에요. 잘못 표기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뚜 렷하니까요." 레니아 말대로 입구 근처에는 아주 이상한 모형의 도형이 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너무 작아서 지도를 자세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보 이지도 않겠다. "이 지도는 그 어떤 것보다 사실적으로 축소해 놓은 지도 예요. 한마디로, 마왕성의 지도 중에서도 엄청 구하기 어려운 거죠. 저런 미세한 표시가 되어 있을 만큼 귀중한 자료예요." 흐으음.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레니아가 가진 지도가 엄청 비싸다는 것? "그리고 보통 이런 마왕성에는 항상 비밀통로가 있기 마련 이에요. 그런 비밀통로가 있을 만한 장소는...... 중얼중얼." ......그 다음부터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다. 전문용어로 이해불가라고 하지. 그렇게 열심히 설명해주는 레니아. 대략 20분이 지났을까? 하지만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대충 느낌상 이곳에 비밀통로가 존재해야 할 이유 같은 것을 설명 해 주는 것 같기는 한데, 자세한 내용은 정말이지 모르겠다. 그냥 간단히, 저기가 비밀통로다라는 정도만 이해한 나. 크윽. "이해되셨죠?" "......응, 아주 잘됐어." 이해하기는 개뿔. 그냥 만들면 되지. 뭐 그렇게 복잡하게 만드느냔 말이다. 머리 아프게. 쳇. 머리가 안 좋으면 비밀통로도 못 만들겠군. ...... 심히 난감하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걸. 괜히 건드려 놔서...... 현재 마왕성은 초비상사태다. 왜냐고? 그건...... 내가 살짝, 아니 좀 과격하게 인사했기 때문이라 고 할까. 난 원래 그렇게 과격한 걸 좋아하지 않는 몸이다. 그런데 저쪽에서 나를 도발하기에 그만...... "이래서 성질이 개 같으면 고생한다지." "......지금 누구한테 하는 말이지, 피닉스?" "호, 혼잣말이야!" "......" "지, 진짜 완전 혼잣말." "근데 왜 나 들으라고 소리 같을까?" "왜? 찔리는 거 있어?" "......" 저 자식을 그냥...... 내가 여기서 녀석의 말에 반응하면 내 성격은 그대로 개 같 은 것이 되어 버린다. 근데 저 녀석 언제부터 저렇게 잔머리를 굴리게 된 거지? 젠장. "어떡하죠?" 삼엄한 경계태세를 본 레니아가 내게 물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제거한 뒤 들어갈 수밖에." 난 그 말과 함께 메이스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주변을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 마족들에게 다가가려던 순간, 털썩. 털썩. 털썩. ......엥?! ...... 뭐, 뭐냐? 이 황당한 상황은!! 너무나도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갑작스럽게 쓰러진 마족들. 분명 비밀통로 근처를 탐색하 던 마족들이다. 그것도 한 번에 열 명 정도 되는 마족들이 일 시에 쓰러지다니. "무, 무슨 마술을 사용한 거예요?!" 레니아가 놀랍다는 듯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물음에 나는 당황하면서 말했다. "나,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 "......" 이번 작전에 참여한 피닉스와 레니아는 내 말에 완전히 굳 어 버렸다. ......사실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한 걸 굳이 따지라면 메이스 들어 올린 것뿐. 설마 메이스를 들어 올리자마자 쓰러지라는 지시를 받은 건 아닐 테고. 재네들 왜 갑자기 쓰러졌지? ...... "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비밀통로로 가요." "그, 그럴까?" "네." 레니아의 말대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 지만 일단 제거해야 할 마족들이 알아서 쓰러져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레니아가 말한 비 밀통로로 가면 된다는 거다. 그나저나 갑자기 쓰러지다니, 정말 이상하다. 한 남자가 하늘에서 웃고 있었다. 검은색의 멋들어진 날개를 양쪽에 단 채 웃고 있는 흑발의 미남자가 있었다. 그는 다급히 비밀통로를 찾으려는 윤현 일행을 보더니 중 얼거렸다. "이제 뵙겠군요. 제 마스터를 말입니다." 그 말과 함께 남자는 사라졌다. 드르륵. 오오오오오. 이, 이게 바로 그 유명하다던 비밀통로? 내 앞에 천천히 열리는 공간. 대충 두세 사람 정도가 한 번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 의 공간이었다. 레니아가 성벽 근처를 배회하면서 몇 번 만져 주니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은 공간이 생겨 버린 것이다. 참으로 신기하다. "뭐 해요?' "아니, 신기해서." "......?" "몇 번 만지니까 문이 열려서 말야." "별로 신기한 거 아니에요. 대부분의 비밀통로는 그 근처에 작동하는 버튼이 있거든요." 흐으음. 그런가? 난 처음 알았다. 하지만 만약 내 앞에 비밀통로가 있다면 레니아처럼 꼼꼼 히 살펴보는 스타일이기에, 버튼을 찾기보다는 차라리 메이스 로 벽을 부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허얼, 앞이 안 보인다. 뭐 이렇게 어둡냐? 비밀통로여서? 흐으음. 하지만 걱정 없다. 혹시나 이럴 상황에 대비해서 지난번 라 이트 마법이 걸린 스크롤을 구입한 거니까. 그리고 지금 내 손에 쥐어져 있기도 하다. 이걸 그냥 쫘악 찢어 주면 이 어둠은 사라진다. 크케케케. "꺄아악!" "무, 무슨 일이야. 레니아!" 그때 들려오는 레니아의 비명 소리. 나는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들려온 그녀의 비명은 나를 당혹스럽게 하기에 충 분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손에 쥔 라이트 마 법 스크롤을 찢었다. 지지직. 스크롤이 찢어짐과 동시에 내 앞에 나타나는 밝은 빛의 구. 순식간에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이 사라졌다. 나는 다급히 레니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레니아, 무슨 일이야!!" "가, 갑자기 뭔가 저한테......" "......" ...... 나는 굳어 버렸다. 완전히 말이다. 내 눈앞에 보이는 광경. 그건 경압스럽다 못해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피닉스가, 피닉스 자식이 어느새 레니아의 품속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앗, 실수다." "......" "미안, 실수였어." "괘, 괜찮아요." "히히히." 여기서 난 묻고 싶다. 진정 실수였을까? 진짜? 진짜? 진짜? "헤에. 실수는 아름다운 것!" 확실하다. 저 자식 고의다. 100% 고의다. 그런데 이 어둔 곳에서 어떻게 레니아의 품속으로 쏙 들어 간 거지? 어떻게......? 게다가 심증은 있어도 물증은 없다. 레니아의 품속으로 들 어간 게 고의인지 아님 실수인지 알 수가 없다. 제길. "쿠케케케." 크윽...... 제길. 이런 면에서는 엄청나게 영악한 놈이다. 이럴 때만 전설이 라는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똑똑하다. 이쪽 방면에서는 말이다. "룰루랄라." 흥겨운 듯 흥얼거리면서 날아가는 피닉스 녀석. 으으윽. 왠지 이 굴욕적인 느낌. 당했다. 그렇게 우리는 비밀통로를 천천히 걸어 나갔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면서. 분명 마왕성 비밀통로라고 하면 예사롭지 않은 기분이 팍 든다. 그러므로 조심 또 조심은 필수다. "꺄악!" "레니아, 왜?!" 그때 또 다시 들려오는 레니아의 비명 소리. 나는 다급히 피닉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예상외로 피닉스는 얌전히 있다? "나, 난 아니야!!" 그럼 누구? "바, 발목에 뭔가가?!" "발목?!" 레니아의 말에 나는 곧바로 그녀의 발 쪽으로 시선을 돌렸 다. 그러자 거기에는 이상한 모양의 줄기가 레니아의 발목을 감싸고 있었다. 이, 이건 뭐냐? "어, 어서 어떻게 좀 해 주세요!" "아, 알았어!" 레니아의 다급한 외침에 나는 그렇게 대답한 뒤 곧바로 메 이스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크 블레스." -모든 능력치가 620 상승했습니다. 순식간에 솟아오르는 힘. 나는 레니아의 발목을 감싸고 있는 이상한 줄기를 향해 그 힘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퍼억! 동시에 괴상망측한 소리와 함께 이상한 줄기가 잘려 나갔 고, 그와 함께...... 끼이이이이익!! 으으윽. 털썩.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뭐, 뭐냐? 이 비명은. 온몸을 산산조각 낼 듯한 비명이다. 털썩. 그때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누군 가 쓰러져 있었다. "레니아!" "......" "레니아!" 그녀는 그 이상한 비명 소리에 그대로 쓰러져 버린 것이다. 뭐, 뭐지? 이 상황은? "나, 나 죽네!!" 그래도 저 녀석은 역시 끈질기다. 생명력 말이다. 용케 이 이상한 비명 소리를 듣고도 날갯짓을 멈추지 않고 날고 있었으니까. 나와 레니아는 그대로 주저앉았는데. 그나저나,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드르륵. 그 순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 ......이상한 식물이었다. 내 몸만 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데다가 상당히 괴상망 측하게 생긴 괴물이다. 차마 내 입으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오묘함을 자랑하는 식 물. 입에는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을 통해 이상한 줄기 수십 개 가 보였다. 참으로 신비하게 생기셨네. "헤어어얼." ......헤어어얼? 무슨 이런 거지 같은 소리도 다 있냐. 살다 살다 이런 괴상망측한 소리를 내는 식물은 처음이다. "헤투루루." 뭐, 뭐냐? 이번에는? 소리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헤어어얼이라는 소리를 내더니 이제는 헤투루루라는 괴음을 내지른다. 정말 저 자식 뭐야? "마계 식물 베르코스라고 합니다." 흠칫.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 등 뒤에 있다. 누군가가. 난 재빨리 지금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거리를 벌렸다. 뒤를 돌아보자 한 남자가 미소 짓고 있다. 대략 20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미남자. 상당히 잘생겼다. 드래곤 로드보다 한 수 위다. 아니, 외모 면에서는 동급인데,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에게는 없는 무언가 의 매력이 있었다. 무언가가...... "넌 누구지?" 나는 경계태세를 풀지 않은 채, 갑자기 나타난 흑발의 미남 자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내 물음에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크라스라고 합니다." 저기, 이름 물어본 거 아닌데요? 뭔가 미묘한 느낌이 드는 남자다. "아, 이름 말고 저에 대한 소개를 해야겠죠? 처음 뵙겠습니 다. 저 크라스의 마스터시여." ......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마스터? 마스터? 마스터......라니?! 무슨 피닉스가 개뼈다귀 씹어 먹는 소리 냐? "일단 저 마계 식물 베르코스부터 제거한 뒤 이야기를 나 누도록 하죠." 스으윽. ......! 순간 내 앞에서 사라지는 남자. 나는 그 기척을 아주 미세하게밖에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그의 움직임 자체가 심상치 않았다는 뜻! 푸지직. 푸지직. 그때 무언가 잘리는 소리가 두어 번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마계 식물인가 뭔가는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해 서 아주 깨끗하게 사 등분되었다. "휴우, 참 귀찮게 하는 생물이죠?" 싱긋. 내게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정체불명의 흑발의 미남자. 나는 그를 보고 더욱 긴장한 채 물었다. "너 정말...... 정체가 뭐지?" "방금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말하기는 했지. 웬 황당한 말을 말이다. 나보고 마스터라니. 난 너 같은 부하 둔 적 없다. 절대. "다크프리스트." 흠칫. 순간 미남자의 입에서 들려온 한 마디에 흠칫하는 나. 다크......프리스트라니!! 그건 설마! "저는 다크프리스트 님께 미흡하나마 도움을 드릴 존재입 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미친. 이름, 크라스. 나이, 모름. 특이사항, 마족.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난 이유, 그건 내게 미흡하나마(?) 도움 을 주기 위해서란다. 도대체 이상한 마계 식물을 일격에 네 조각 내시는 분이 미 흡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뭔가 좀 미묘한 느낌이 든다. 방글방글. 저 인간, 아니 저 마족은 나타난 이후 계속해서 방글방글이 시다. 세르키스도 제법 미소맨(?)이었지만, 이분에게는 상대가 안 된다. 정말 완전 미소맨이다. "이런 우연이 있다니." "글쎄올시다."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된 만남인지는 나로서는 잘 알 수 없 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아냐고? 그냥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느낌만 믿다가 죽 쑤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래 봬도 난 꽤나 날카로운 느낌의 소유자다. "저, 한 가지 질문해도 될까요?" 그때 크라스가 물었다. 갑자기 질문이라니? 뭐,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지. "무슨 일인데?" "이곳에는 왜 들어오신 거죠?" "그, 그야 뭐......" 마족에게 대놓고 마왕을 암살하러 왔다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그렇다. 한편, 이런 내 생각을 알았다는 듯. "전 마족이긴 하지만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할 일 은 오직 다크프리스트를 모시는 거니까요." 그, 그런가? 왠지 너무 멋지다. 크윽...... 이런 멋진 캐릭터, 왠지 모르게 부담된다. "마왕을 암살하기 위해 비밀통로로 가는 길이다." "비밀통로라니요?" "......요기잖아." "여기가 비밀통로?' "왜 네가 들어와 놓고 모르는 척?" "전 여기가 비밀통로라고 생각한 적이 없거든요." "......" "......" 나와 크라스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자, 잠깐. 방금 전의 그 말을 잘 생각해 보자. 난 분명 여기가 마왕을 암살하러 가기 위한 비밀통로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크라스는 여기가 비밀통로가 아니란다. 그럼 도대체 뭐냐? 크라스가 말했다. "혹시 여길 비밀통로로 착각하신 건가요?" "......크라스, 네 말인즉, 여기가 비밀통로라는 단어와 별 상관이 없다는 뜻?" "흐으음. 어떻게 보면 비밀통로일 수도 있겠죠." "어떻게 보면?" "네. 끝까지 도달하면 마왕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긴 하니 까요." 그럼 비밀통로잖아!! 저 녀석은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 햇갈리게 해! 그 순간, "하지만 가기는 조금 힘들 거예요." "......?" "아까 보신 베르코스 기억하시죠?" 당연히. 내가 피닉스도 아니고 몇 분 전에 본 걸 잊어버릴 정도로 나쁜 머리는 아니어서 말이다. 크라스의 말이 이어졌다. "베르코스 같은 게 한 수백 마리 정도 있죠." ......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도 아니고, 수백 마리?! "이곳은 다크프리스트 님이 생각하시는 비밀통로라기보다 마계 식물 베르코스가 서식하기 위한 장소예요." "......" "그래서 마족들 사이에서도 절대 출입금지 구역이랍니다." 아, 쓰러질 것 같아. 나는 고민을 거듭했다. 그 이상한 데다가 약간 미친 식물이 몇백 마리를 상대할 것 이냐, 마왕성에 있는 마족 3만을 상대할 것이냐. 하지만 그 고 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3만 명보다는 몇백 마리의 식물이 나을 테니 까. "크라스." "네에." "이곳, 통과할 수 있을까?" "글쎄요." "그럼 질문 하나 더." "......?" "마족 3만이 나을까, 마계 식물 몇백 마리가 나을까?" "물론 마계 식물 베르코스가 낫겠죠." "그렇지?" "네." 역시 크라스도 나와 같은 생각이다. 마족 3만 명보다는 차 라리 이상한 식물 몇백 마리를 상대하는 게 기운이 날 듯싶 다. 자자, 그럼 일단 레니아가 기절한 사이에 처리해야 될 듯싶 다. "크라스, 그 괴상망측한 비명을 처리하는 방법은?" "단 한 방에......" "흐으음?" "즉사시키면 됩니다." 한마디로, 무조건 한 방이라는 거냐? 그것 참 화끈한 생물 이군. "라이프 블리지트!!" 콰앙! 단 한 방에 몸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베르코스. 헉헉! 힘들다. 도대체 얼마나 죽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전투한 지 약 1시간이 넘어갔다는 것! 그런데...... 그런데...... "왜 줄어들지 않는 거냐?" "글쎄 말입니다." 푸직. 베르코스의 몸통에 찔러 넣은 검을 단숨에 뽑으면서 크라 스가 대답했다. 왠지 저 작자가 저러니 되게 멋져 보인다. 부럽다...... 크윽. "크라스, 분명 몇백 마리라고 한 건 같은데 벌써 우리가 잡 은 것들만 해도 200-300마리는 될 것 같은데?" "흐으음. 여기는 400년 정도 닫혀 있는 곳입니다." "......" "한마디로, 400년 동안 더 늘어났을 수도 있다는 얘기죠." 더 늘어났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더 늘어났을 게 분명하잖 아. 400년이라면! "요약하면, 참으로 아름다운 상황?"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사절이다." 지금 이 상황이 어딜 봐서 아름답다는 건지 심히 궁금하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나저나 앞으로 얼마나 잡아야 이 기나긴 비밀통로를 벗 어날 수 있을까? 흑. "유물 스킬을 사용하죠." "......아는 거냐?" "물론요. 지금 상황에서는 네스티안 엘리라이진이 제일 적 절하겠죠?" "적절하기는 하지만 몰리지 않으면......" "흐으음. 그건 제가 한번 해 보죠." "......?" "베르코스를 몰아오겠습니다." "얼마나?" "전체요. 베르코스가 싫어하는 게 뭔지 아세요?" "내가 알 리 있겠수?" "바로 이거랍니다." 그러면서 이상한 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꺼내는 크라스. 그가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네덴이라는 가루죠. 이 가루는 네덴이라는 식물에서 채취 할 수 있는데. 베르코스가 죽도록 싫어하는 냄새를 풍깁니다. 얼마나 싫어하면 그 가루를 뿌린 존재를 증오한 나머지 무슨 일이 일어도 끝가지 쫓아오죠." "그렇다면 그 가루를 베르코스에게 뿌린 뒤 내 쪽으로 도 망 온다?" "그렇습니다." "......" "왜 그러시죠?" "실패하면?" "죽는 거죠. 깔려서 말입니다." "......" 저분, 죽는 거죠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오신다. 그리고 그 냥 죽는 것도 아니고 식물에게 깔려 죽다니 별로 생각하기도 싫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먼저 체력이 바닥나서 죽을 테니까. "크라스, 부탁한다." "네에. 현명한 선택입니다." 두근두근. 나는 통로 깊숙이 들어간 크라스를 기다렸다.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 내가 실패하면 전멸이다, 전멸. 그것도 식물에게 깔려서 말 이다. 그렇게 한참 긴장한 채 앞만 바라보던 나. 순간 무슨 소리가 들렸다. 쿠우우웅! 쿠우우우웅!! 쿠우우우우웅!! ......엄청난 소리였다. 마치 땅이 꺼질 듯한 소리. 하나의 존재가 만들어 내는 소 리는 아니다. 못해도 최소 몇백 마리 이상의 존재가 만들어 내는 소리다. 그 순간...... "요오오." 크라스가 미소를 지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긴 한데, 지금 미소 지을 상황 은 아닌 것 같은데? 크라스의 등 뒤로 줄줄이 비엔나처럼 낚여 오는 이상한 식 물. 그들은 분명 달리기 힘든 구조를 가진 분들이시다. 미칠 정도로 극도로 흥분했다는 소리!! 크라스의 말대로, 실패하면 정말 깔려 죽겠다. "준비해 주세요!" 크라스의 말이 들려왔다. 그래, 준비해야지. 준비 말이다. 단숨에 끝낸다. "네스티안 엘리라이진." 그 말과 함께 내 주변에 깔리는 어둠의 마나. 선두에서 달려오던 마계 식물의 움직임이 어둠의 마나에 반응해 순식간에 느려졌다. 하지만 여기서 터트리면 일부밖에 죽이지 못한다.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해서는 내가 저 식물의 중간에 들어 가야 된다. 그렇게 되면 내 몸에 펼쳐진 연기가 같이 따라올 테니까. "간다!" 나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보기만 해도 역겨워질 정도 로 많은 마계 식물의 안쪽으로 냅다 달려 들어갔다. 아니, 정확히는 식물의 머리로 추정되는 걸 마구 밟아 대면 서 날다시피 들어갔다. 나는 나를 삼키려고 입을 열었다 다무는 식물들과 아슬아 슬한 쇼를 벌이면서 뛰어 들어갔다. 네스티안 엘리라이진의 부가 옵션인 100%의 스피드 감소 가 없었더라면 난 잡아먹혔을 것이다. 자자, 이제 서론은 끝내고 본론으로 들어가야지. 나는 그대로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와 함께 검지와 중지 를 튕겼다. 타악. 콰아앙! 콰아아앙!! 그 순간 일어나는 엄청난 폭발. 그와 동시에, 그 엄청난 폭발에 휩쓸려 녹다시피 사라져 가 는 베르코스. 정말이지 내가 사용한 기술이지만 무지막지하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47......업?! 커어어억! 도, 도대체 얼마나 많았으면 단 한방에 47업이라니! -새로운 스킬이 추가되었습니다. 프로코스. 새로운 스킬도 추가되었다. 나 정말 미쳐 버리겠다. 크아악!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379 HP/MP: 8,340/7,600 힘: 1,562(실제 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1,022(실제 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니다.) 지능: 351(실제 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 다.) 체력: 364(실제 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 다.) 행운: 5(실제 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탯: 350 ......멋지다, 멋져. 드디어 민첩성도 1,000이 넘었다. 후후훗! 그리고 남은 스탯 은!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379 HP/MP: 8,340/7,600 힘: 1,912(실제 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1,022(실제 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니다.) 지능: 351(실제 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 다.) 체력: 364(실제 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 다.) 행운: 5(실제 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탯: 0 힘에 올인이다! 이제 머지않았다. 2,000이라는 무지막지한 스텟까지 말이 다. 그럼 마지막으로 새롭게 추가된 스킬! -프로코스- 레벨 1. 적이 가진 힘과 체력, 지능의 40%\를 가져올 수 있다. 적과 접 촉해야만 가능한 기술이다. 지속 시간은 20분이다. 마나 소모: 3,200 한마디로, 다크 헤이스트의 업그레이드 판?! 자, 잠깐! 잘 생각해 보자. 다크 헤이스트는 상대방의 스피드를 가져오는 기술. 하지 만 지금 이 프로코스라는 기술은 상대방의 힘과 체력, 지능을 가져오는 기술이다. 다크 헤이스트와 프로코스를 동시에 건다면, 상대방의 스 피드와 더불어 모든 능력치를 빼앗아 올 수 있다는 소리! "감격이다!"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감격에 젖은 나를 축하해 주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 이름 하여 크라스. 고마워, 고마워! "땡큐."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전진. 레니아와 피닉스는 뒤에 놔두고 우리 둘이 가자고." "그러죠." 괜히 레니아랑 피닉스를 데려갔다가는 더 귀찮아질 수도 있다. 피닉스 녀석이 분명 깝죽거릴 게 분명하기에 괜히 데려 갔다가 피 보는 상황은 절대 사양이다. 자자, 그럼 기다리시라, 마왕. 내가 아주 깔끔하게 죽여 줄 테니 말이다! 크크크. 드르륵. 드디어 열리고 있다. 비밀통로가 말이다. 아니, 비밀통로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봉인된 통로라는 말이 정확하려나?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패스. 어찌 됐든 마왕성 내부로 들어온 건 확실하다. 그런데...... "왜 이리 적적하지?" 우리가 나온 것은 어느 복도였다. 아마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마왕성에 있는 복도의 일부일 게 분명하다. 그런데 복도가 너무 적적하다. 물론 적이 있는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이런 나의 생각을 알았다는 듯 크라스가 손가락 한 개를 치 켜들면서 말했다.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이곳은 금지구역입니다." "아." "마계 식물 베르코스가 있는, 비밀통로로 가는 길이 있는 이곳은 완전히 출입이 금지되었죠. 그만큼 베르코스라는 식물 이 그들에게 경계 대상이라는 겁니다." 허얼. 그만큼 대단한 식물이었나? 그리고 그런 대단한 식물을 내가 전멸시켰고 말이다. 물론 크라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지만. "아 참, 참고로 여기와 마왕이 거주하는 곳은 엄청 가깝답 니다." "......!" 그, 그 말은!! 허억! 그런데 저분은 어떻게 마왕이 있는 곳을 아는 거지? 평범하 고는 거리가 먼 분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놀랍다. 크라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제가 안내해도 될까요?" "물론!" [마왕] 그렇게 나는 마궁 분위기가 나는 듯한 마왕성 안을 돌아다 녔다. 물론 크라스의 안내를 받으며 말이다. 그렇게 물 흐르듯 걸어가던 크라스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 추었다. 여기서 문제. 왜 크라스는 멈췄을까요? 난 알고 있다. 왜냐하면...... 스르륵. 스르륵. 우리 주변을 포위하는 수십 명의 마족 분들 덕분이다. "이런, 이런. 당해 버렸네요." 크라스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 걸로 보아 그다지 신경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 정말로 곤란하다면 저런 미소는 불가능할 테니까. 나는 말했다. "그나저나, 분위기를 봐서는 우리를 기다린 것 같은데?" "그런가 보네요." "언제부터 눈치 챘을까?" "아마도 400년 동안 열리지 않던 비밀통로가 열리면서 눈 치를 챈 것 같습니다." "이런." 꽤나 골치 아파졌다. 딱 보기만 해도 정예 중의 정예로 보이는 수십 명의 마족. 과연 우리가 저들을 이길 수 있을까? 끼이익. 그 순간 마왕의 방으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방문 이 살며시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는 대략 150센티미터 정도의 난쟁이. 얼마나 운동을 많이 했는지 우락부락하게 나온 근육. 심히 난감하다. 키라도 크면 분명 멋있어 보이는 근육이다. 하지만 너무나 도 키가 작은 탓인지, 멋지기는커녕 내 눈이 썩어 들어갈 것 같다. "마왕님!" "마왕님!" "마왕님!" 그 순간 그 난쟁이 근육맨을 보고 고개를 숙이는 마족들. 마왕......님이라. 참으로 듣기 미묘한 단어네. 내가 생각하던 마왕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아, 원 래 마왕이라고 하면 다 이런가? 우리 쪽 마왕은 너무나도 아 름다운 초미소녀고, 이쪽 마왕 분은 차마 보기 힘든 근육 난쟁 이 마왕이시다. 너무 개성이 독특하시다. 난쟁이 마왕이 나와 크라스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마계 식물 베르코스를 다 죽이고 올 줄이야. 전혀 예상도 못했다." "......" "너희가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눈치도 못 챘을 것이다." 크윽. 역시 네스티안 엘리라이진이 문제였다. 수가 수다 보니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아마도 그렇기 때 문에 이 마왕성 내부에까지 직접 그 폭발음이 전달된 게 틀림 없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네스티안 엘리라이진밖에 없었으니. 후회는 없다. 단지 지금의 상황이 조금 미묘하다고나 할까? 한편 난쟁이 마왕의 시선이 나에게서 크라스 쪽으로 올라 갔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말 그대로 얼음 땡? 마왕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크, 크라스!!" "오랜만입니다." "네, 네놈이 어떻게......!" "저의 마스터가 여기에 계시니까요." "소멸의 크라스...... 네놈의 마스터라니!!" "바로 이분이죠." 그 말과 함께 나를 가리키는 크라스. 허억! 순식간에 마족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이, 이런 "네, 네놈. 평범한 인간이 아니구나!!" ...... 전 나름대로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닌가? 난 지금가지 내 자신이 평범함의 극치라고 생각해 왔는데 말이지. "소멸의 크라스의 마스터라니, 도대체 어떻게......" 저도 모르죠. 저분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저를 마스터라고 부르는데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저도 저렇게 살벌한 별명(소멸의 크라스)으 로 불리는 마족 님의 정체가 심히 궁금합니다요. "제길......" 한편 난쟁이 마왕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때다. 도대체 크라스가 얼마나 악독한 짓을 많이 저질렀으면 저 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게는 기회다! "크라스, 얼마 정도 상대 가능?" "마왕을 제외한 모든 마족을 상대 가능합니다." 허억! 그, 그 정도로 강했던 거냐? 왠지 너무 멋지잖아. 나랑 어울리지 않는 이 느낌...... 슬프기도 하고 이상하다. 항상 내 주위의 캐릭터라고는 가르나 데인, 피닉스 같은 이상 한 애들이었는데, 세르키스나 크라스가 등장한 뒤로는 나란 존재는 영 묻히는 느낌? "참고로 저분은 지금 제가 상대할 어떤 마족보다 강하다는 걸 아셔야 할 겁니다." "......" 서른 정도 되는, 정예 중의 정예로 보이는 마족들보다 저 난쟁이 마왕이 더 강하다고? 쉽게 믿기 힘들다. 하지만 크라스의 말이니 믿기 힘들어도 믿어야지. 사실, 내가 저 마왕을 이기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전문 용어로, 네버네버네버네버 불가능......이라고나 할가? 하지만 그런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힘. 그건 바로 다크프리스트의 스킬들이다. 상대방의 능력을 가져오는 다크 헤이스트와 이번에 새롭게 얻은 스킬 프로코스. 이 두 가지 스킬이 있었다. 상대방의 힘을 빼앗아 와 상대방의 격차를 크게 줄이거나, 혹은 상대방의 힘을 뛰어넘게 해 준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기적인 스킬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 다. 그만큼 엄청난 위력을 가진 스킬이다. 그 까닭에 이렇게 과감하게, 마왕이라는 엄청난 적을 상대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지만. "자자, 시작해 보자고." 나는 그 말과 함께 메이스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 간, 순식간에 마왕과의 거리를 좁혔다. 왜냐고? 당연히 상대의 능력을 흡수하기 위해서지! 한편, 나의 이런 움직임에도 오히려 가만히 있어 주는 난쟁 이 마왕. 한 마디로, 자진 납세? 그렇게 마왕과의 접촉이 끝난 나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다크 헤이스트. 프로코스." 순식간에 나를 감싸 안는 엄청난 힘. 스피드뿐만이 아니다. 힘, 체력, 지능 등 모든 부분의 능력이 대폭 상향되고 있었 다. 역시 마왕의 힘을 흡수하니 장난이 아니다. 그때 갑자기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마왕. 그는 나를 보더니 살벌한 말투로 말했다. "인간......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지?" "헌혈 좀 하는 게 어때" "......" "힘은 나눠 써야 제 맛 아니겠어?" "서, 설마?" "좀 빌렸어." "......!" 나의 말에 경악하는 마왕. 그러게 누가 가만히 있으래? 아마도 엄청난 자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 같은 인간이 공격해 봤자 가볍게 반격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는 공격하지 않고 일단 상대의 능력을 흡수하는 쪽을 선 택했다. 자, 그럼 두 번째로...... "다크 블레스." -모든 능력치가 820 상승했습니다. 오, 멋진데? 820이라니. 이 꿈의 능력치, 멋지다. 크하하! 스킬 세 개로, 단숨에 내 평소 능력치의 네 배 이상의 힘을 끌어내는 나. 내가 생각해도 좀 많이 사기스럽다. 크흠. 한편, 변신(?)한 나를 본 마왕의 표정이 더욱더 굳어지기 시 작했다. 아마도 내게서 느껴지는 힘이 처음에 비해 네 배 이 상 증폭했기 때문이겠지. "......평범한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도대체 무슨 괴 이한 힘을 사용한 거지?" "글세." "......" "궁금해?" "......" 궁금한가 보다. 그럼 친절하게 대답해 주지. "프리스트의 힘." "미친......" 미쳤다니. 말도 험하셔라. 그리고 난 정상이다. "물론 앞에 '다크'라는 이름이 붙는 다크프리스트지만 말 야." "다크......프리스트? 어둠의 성직자? 서, 설마!!" "어라? 너도 나 알아?" "전설이라 불리는 다크프리스트." 에헤......? 마족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가 보다. 다크프리스트라고 하면 모르는 분들이 거의 없을 정도니 까. 난쟁이 마왕이 더욱더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전설이라고 불리는 네가...... 나를 죽이러 온 이유가 뭐 지?" 그, 그거야 뭐...... 아름다운 미소녀를 도움과 동시에 신급 아이탬을 갖고 싶 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건 좀 그러니...... "정의를 위해서." "......" "......" "......" "......" "......" "......" 순식간에 가라앉는 분위기. 어, 어라? 좀 이상한 대사인가? 아 참, 어둠의 성직자가 정의를 위해서라고 했으니, 조금 이 상하기는 하다. 다시 그럼 말을 바꿔서...... "사랑을 위해서?" "......" "......" "......" "......" "......" "......" 이 2차 침묵은 뭐지? 뭐지? 뭐지? 심지어는 나와 같은 편인 크라스까지도 난감하다는 표정이 다. ......사실 이유가 멋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 다. 나처럼 아주 아주 평범한(?) 이유를 가질 수도 있는 것이 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수긍을 안 해주니 진실을 말할 수밖 에. "신급 아이탬을 위해서. 훗." "......" "......" "......" "......" "......" "......" 왜 모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데!! 왜 다들 굳어 버리느냔 말이다. 그리고 저 황당하다는 표정 을 짓는 마족 님들. 도대체 왜? 이해 불가능이다. 난쟁이 마왕이 나를 보고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고작 아이탬을 가지고 싶어 여기 3만 명이 밀집한 마족의 성으로 몰래 들어온 거냐?" "......" 그러고 보니 그렇네? ......나도 꽤 미쳤구나. 아이탬 하나 얻겠다고 3만 명이나 되는 마족들이 우글거리 는 마왕서엥 들어와 마왕을 암살하겠다고 설쳐 대고 있으니. 물론 아이탬 때문이 아니라, 은경이가 난쟁이 마왕에게 습 격당하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붙여야겠다. "또, 네놈이 치졸하게 암습을 했으니 말야." "......" 나의 말에 마왕은 아무 말도 없었다. 긍정이다. 역시나...... 은경을 암살하려던 놈들은 이놈들이었어. 아니,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이놈들을 제외하고는 은경 을 노릴 존재는 없겠지. "크하하하! 크하하하!" ......엥? 그때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하는 난쟁이 마왕. 저 자식 미친 거냐? 그런 거야? 한동안 미친 듯이 웃던 마왕이 갑자기 나를 보더니 어울리 지 않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히려 잘했다." "뭐가?" "전설이라 불리는 다크프리스트를 내 손으로 죽인다면 내 이름은 엄청나게 알려질 터!" "......" "오늘이 너의 마지막 날이 될 거다." 꿈도 야무지셔. 내가 그렇게 쉽게 뒈질 놈은 아니어서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나는 다크 헤이스트와 프로코스로 저 난쟁이 마왕에게서 힘을 가져온 상태. 지고 싶어도 쉽게 질 수 없는 상황이다. "자자, 잡담은 그만두고 슬슬 시작해야지?" "내가 원하던 바다." 그 말에 나는 서서히 메이스를 치켜들었다. 능력치는 엇비슷할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전투를 잘할 수 있느냐 하는 것. 똑같은 힘을 가진 두 명이 있다고 치자. 한 사람은 엄청난 실전경험으로 순간판단력이 엄청나다. 그에 비해 또 한 사람은 실전경험이 부족해 순간판단력 같은 것은 별로 기대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실전경험이 많은 자가 아주 손쉽게 승리 를 따낼 수 있다. 힘만 있다고 만사오케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 힘을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난 자신 있다. 이래 봬도 심심하면 별별 이상한 상황에 부딪쳐 온 나다. 한 마디로, 경험 풍부? "자, 해 보자고!" 나는 그 말과 함께 그대로 전진했다. 그리고 외쳤다. "라이프 블리지트!!" 순식간에 상대방의 생명력을 이용해 시전하는 기술. 마왕이 또다시 흠칫 놀란다. 당연한 건가? 자기 생명력이 저절로 빠져나가는 걸 느꼈을 테니까. 콰앙! 순간, 내가 휘두른 메이스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물 론 상대방의 몸에 맞아 생긴 폭발은 아니다. 상대방이 순식간에 꺼내 든 붉은색 장검과 부딪쳐 일어난 폭발이었다. "......" 조금......빠르네. 사실 조금은 아니고 더럽게 빠르다. 거의 0.5초 정도 되는 시간에 검을 뽑았다. 발도술은 아니 다. 발도술을 하려면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저 난쟁이 마왕은 특별한 자세도 취하지 않고 그대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발도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발도술 자세를 취하지 않고도 그만큼의 속도를 내 다니. 왠지 모르게 급긴장 상태가 되어 버린다. 역시 곧 죽어도 마왕은 마왕인가 벼. "......무슨 기술이지?" 나의 라이프 블리지트에 한 방 먹은 마왕이 물었다. 그 물 음에 나는 웃으면서 답했다. "흡혈 기술." "......"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상대방의 생명력을 이용해 사용하는 기술이니 넓게 생각하 면 흡혈 기술이기는 하지. "뭐 상관없나? 네놈을 죽이면 되는 거다." "글쎄올시다." "플라케스트." 파앗! 허억! 순간, 갑자기 한 마디 주문을 내뱉는 난쟁이 마왕. 그와 동시에, 그의 검에 요상한 검은색의 기 같은 게 둘러 싸이고 있다. 뭐, 뭐냐, 저건......? "악령들이 모인 거지." "......" 악령들이라. 악령이라 하면 나도! "다크 스트림!!" 끼이익!! 순간, 악령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걸로 둘 다 무기에 악령이 깃든 상황. 참으로 미묘한 상 황이군. "......악령인가?" "빙고!" "다양한 기술을 쓰는군, 다크프리스트." "칭찬 고맙게 들을게!" "......" 나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마왕. 왜? 칭찬해 주니까 고맙다고 한 것뿐인데 말이다. "가지!!" 파앗!!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마왕 자식. 빠, 빠르다!! 제길! 스피드를 30%나 가져왔는데도 저 정도라니! 물론 나 도 저만큼의 속도를 낼 수는 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건 녀 석의 움직임이 안 보인다는 것! 몸을 따라가는데 눈이 따라가지 못하는 미묘한 상황이다! 흠칫. 순간, 나의 오른쪽 옆으로 나타나는 마왕. 나는 그대로 메이스를 치켜들어 휘둘렀다. 콰아앙!! 콰아앙!! 끼이익!! 끼이익!! 어둠의 악령들이 부딪쳐서 내는 괴이한 비명 소리가 들렸 다. 귀 터지겠다. 퍼억! "......커억!" 그 순간 악령들의 비명 소리에 잠시 흠칫한 내게 고통이 찾 아들었다. 한 대 맞았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마왕이 주먹으로 내 배를 가겨했던 것 이다. 키가 너무 작다 보니 못 봤어. "......허술하군." "젠장." 휘이익! 나는 짧게 욕설을 내뱉고 마왕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곧바 로 메이스를 휘둘렀다. 그런데...... 또 사라졌다. 으아악!! 젠장! 스피드가 너무 빨라 내 눈이 따라가지 못한다. 몸을 따라가는데!! 그래. 이럴 때는...... "마혈천혈!" 콰앙! 순식간에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지진. 범위 공격이다. "......제길!" 그때 마침 내 주변에 있었는지, 잠시 스턴에 걸려 버린 난 쟁이 마왕. 나는 웃었다. "일루전 크레이전!!" 퍼퍼퍼퍽! "크아아악!!" 그리고 갈겨 댔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말이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메이스의 그림자 네 개가 무지막지한 힘으로 난쟁이 마왕을 갈겨 댔다. 마왕은 순간적으로 걸려든 스턴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맞고 계신다. 크하하하! ......좀 자중하자. "......크아악!!" 또다시 마왕의 비명이 들려왔다. 넌 끝났어. 악령이 깃든 나의 무기에 일루전 크레이전가지 걸린 상태. 뿐만 아니라 신급과 전설의 중간에 달하는 나의 아름다운 메이스까지...... 크크크. 넌 끝났다. "크아악!!" 얼씨구, 좋다! 마왕의 비명 소리가 나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를 띠게 했다. 그런데...... 푸직. ...... "하아, 하아." 무, 무슨 짓을 한 거지? 어느새 내 배를 관통한 붉은색의 장검. 어, 언제......? 푸직. "크악!" 그때 붉은색 장검이 또다시 내 팔목을 관통했다. "......" 뭐, 뭐지? "제길, 감히 나에게 공간 기술을 사용하게 만들다니." 공간...... 기술......? 한 마디로, 공간의 문을 열고 의지에 따라 이동하는 그 전 설의 특급 기술? "휴우." 나의 메이스에 두들겨 맞은 마왕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재수 없어. "넌 나를 이길 수 없다." "......지랄." "나의 공간 기술을 파훼하는 존재는 없다." 저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 멋진걸? 그래, 네놈이 필살기를 쓴다면 나도 필살기를 써 주는 게 도리겠지. "파훼하는 방법이 있지." "......?" 나의 말에 굳어진 난쟁이 마왕님. 그래, 파훼하는 방법은 있다. 그건 바로 나의 유물급 스킬. 본래 사기에 가까운 다크프리스트의 스킬이지만, 이 유물 급 스킬들은 그중에서도 초특급 사기 스킬이다. 한 마디로, 미 칠 듯한 스킬? 쉽게 말해, 엄청 좋다는 뜻! 솔직히 지금 내 배와 팔목에 난 상처 때문에 오랜 전투는 무리다. 그렇다면......! "루비언!" -모든 능력치가 8,200 상승했습니다. 8,200!! 저, 정말 미치겠다. 8,200이라니! 그와 동시에 내 몸을 감싸 안는 무지막지한 힘. 나 자신조차도 짐작되지 않을 정도의 힘이다. "......마, 말도 안 돼!!" 나의 능력치가 갑작스레 증폭되고, 자신의 능력치가 대폭 하향되자 마왕은 당황했다. "크윽." 그 순간 갑자기 마왕이 쓰러졌다. 살까지 썩어 들어갔다. 어, 어라? 설마. 다크 큐어랑 다크 힐? ......그런 것 같다. 다크 큐어가 일정 확률로 출혈을 일으켰고, 상처가 난 상태 에서 열 배나 증폭된 다크 힐이 먹힌 상태. 정말 고통스러워 한다. "크아아악!!" 그 순간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죽어 버리는 마왕. 어, 어라? ...... "유후. 무섭군요." 그때 어느새 모든 마족을 정리했는지 크라스가 내게 나타 나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 었다. 사실 엄청난 패널티를 각오하고 루비언을 사용한 뒤 멋지 게 죽여야 정상이다. 그런데 제멋대로 다크 큐어에 걸리더니 출혈을 일으키고, 그 상태에서 상태 악화 마법인 다크 힐에 걸려 죽어 버리다 니. 심히 당황스럽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머리가 살짝 어지럽다? "한 가지 물어도 될까요?" "갑자기 뭘 물어?" "괜찮습니까?" "뭐가?" "배랑 팔목이요." "......" 크라스의 말에 나는 서서히 내 복부와 팔 쪽으로 시선을 옮 겼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방금 전 나는 마왕의 공간 기술로 인 해 배와 팔목이 검에 관통된 상태다. 그리고 그 대가로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에서 엄청난 피가 점점 더 흘러내렸 다. 나는 크라스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안......괜찮다." 털썩. 그게 기절하기 전 마지막 대사였다. 으으윽. 나 또 기절한 건가? 왜 이리 자주 기절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생명력 하나만은 질기구나. 잘 안 죽는 걸로 봐서는 그랬다. "아싸, 고!!" "안 돼! 나 피박인데!!" "전 광박......" "야. 피닉스. 너무 잘하잖아!!" "맞습니다. 너무 잘하십니다!!" "쿠케케케! 나는 전설이니까." 그때 내 귓가에 들려오는 이상한 외침들. ...... 어디서 많이 듣던 구수한(?) 단어들이다? "투 고!" "제길!!" "큰일 났습니다!" "쓰리 고!" "우어억!!" "그, 그만 하세요!!" "포 고! 파이브 고! 으하하하!" "......" "......" 나는 설마 했다. 지금 내가 듣는 외침들이 다 착각이기를. 나는 그 괴상망측한 외침들이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 린 뒤 살며시 눈을 떴다. 그러자 내 앞에 펼쳐져 있는 뭔가의 판. ......고스톱 판이었다. 가르와 데인 피닉스가 나란히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고 있 는 것이었다. 그것도 환자가 누워 있는 방에서 말이다. "그, 그나저나, 갑자기 깨어나시면......" "절대 쉽게 깨어나지 못할 상처니 걱정 마, 가르." "흐으음." "난 전설이잖아?" "그, 그런가요?" "물론." 가르가 내가 언제 깨어날지 몰라 걱정되다고 말하자, 피닉 스는 절대 쉽게 깨어나지 못할 거라고 장담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 지금 깨어났는데? 그리고 생각해 봐라. 기절에서 깨어나자마자 나를 반겨 주는 것이, 걱정스러운 기색의 동료들이 아닌 고스톱 판을 벌린 채 희희낙락하는 동 료들이라면......? "그나저나, 이 아가씨들은 죽 만드는 데 왜 이리 오래 걸리 지?" "마에스트로에게 좋은 걸 먹이려는 거겠지. 크크크. 뭐 어 차피 우리 뱃속으로 들어가겠지만 말야." "그, 그래도......" "가르, 너는 못 먹으니 제외." "......" "나와 피닉스만 먹을게. 그치, 피닉스?" "응! 응!" ...... 난 들으면 안 될 걸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여자 멤버드링 나를 위해 준비해 온 죽을 저것들 이 처먹겠다는 걸 말이다. 솔직히, 고스톱? 참아 준다. 그런데...... 내가 먹을 음식을 대신 먹겠다고? 크크크. 이거 깨어나자마자 정말 신선한 기분이다. "자, 피박에 광박, 파이브 고에 고도리, 오광 총 320점." "우에엑!" "너, 너무하십니다." "돈 내놔!" "좀 봐줘, 피닉스." "어림없는 소리!" "......" "......" 그때, 피닉스가 수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스르륵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공포영화처럼. "헉!" "헉!" 나와 마주 보고 있던 가르와 데인은 너무 놀라서 굳어 버렸 고, 나를 등지고 있던 피닉스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즐거 워하고 있다. "왜 그래?" 피닉스가 갑자기 굳어 버린 가르와 데인을 보고 의아한 듯 물었다. 가르와 데인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자동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피닉스의 잔머리. 다음 순간, 피닉스가 외쳤다. "나, 난 하기 싫다고 했어!! 근데 저 둘이 안 하면 연약한 나 를 팬다고 해서!!" "언제!" "저, 저희가 언제 그랬습니까! 저희는 고스톱이 뭔지도 몰 랐습니다!!" "그, 그래!!" "와, 완전 나쁜 놈들이네!!" 네가 더 나쁜 놈이다. 이 피닉스 놈아. 보나마나 재들을 선동한 건 너다. 안 봐도 비디오다. "이...... 이 사악한 자식들. 나같이 전설인 데다 순진하기 까지 한 피닉스를 유혹하다니!" "......" "......" 피닉스가 날개로 삿대질을 하자 가르와 데인은 너무도 기 가 막힌지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누가 주도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 "......" "......" "어차피 다같이 죽을 테니 말야." "우어억!!" "사, 살려!!" "살려 주세요!!" 금방 일어나서 다리가 조금 후들거리지만 애써 참고 상큼 한 미소를 지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해피 버스데이(?)" [유물] 빌어먹을 자식들. 누군 열심히 싸운 대가로 침대 신세를 지고 있는데, 저것들 은 고스톱이나 치고 있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하다. "가, 같이 하자." 분노에 떨고 있는 나에게 데인이 다가와 살며시 속삭였다. 그 말에 나는 데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움찔거리는 녀석. 그런 의미로 쳐다본 거 아닌데...... 그나저나, 같이 하자고? "나 같은 전설에게 쫀 거야?" 그때 나를 도발하는 새 한 마리. 나는 피식 웃었다. 지금 저걸 도발이라고 하는 거냐? "솔직히 내가 넘 잘해서 나 스스로도 난감해. 흐으음." 나는 그것보다, 네놈이 날개로 고스톱을 치는 장면이 더 난 감한데 말이다. 어떻게 새의 신체 구조상 그게 가능한 거지? 정말 미스터리다 못해 공포다, 공포. "솔직히 자신 없지? 키키키." 피식. 그때 녀석이 또다시 나를 도발한다. 하지만 그 도발조차도 왠지 귀엽게 느껴진다. 왜냐고? 고스톱계의 신동. 고스톱계의 황태자. 고스톱계의 신이라고 불리는 나다. 그런 나를 도발하다니. "자신 없지? 자신 없지? 키키키." 계속해서 도발하신다. 나는 그런 피닉스를 향해 미소 지었 다. 그런 다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그 도전을 받아 주지." "맞고?" 하하핫! 맞고란다. 감히 본좌에게 맞고를 요청하다니 드디어 저 새가 미쳤구 나. "그래, 좋다. 맞고다." "키키키키. 오늘 마에스트로 전 재산을 갖고 되겠군." 꿈도 야무지다. 그럴 일은 절대 없다. 물론 가르, 데인과 하는 걸 보니 조금 솜씨가 있어 보인다 만 그래 봤자다. 너와 나의 격차는 분명히 있다. 분명히 말이다. "시작하지." "좋아!!" "점당 얼마?" "1골드." 훗. 간도 크다. 1골드라니...... 분명 비상금을 숨겨 두고 있으니 이런 과 감한 액수를 부르는 거겠지. 한편 미스터리한 날개로 패를 섞는 새 한 마리. 뿐만 아니 라, 현란한 손놀림으로 화투짝을 마구 흩뿌린다. 흐으음. 적이기는 하지만, 인정한다. 멋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현란하게 패를 섞은 뒤 화투짝을 판 위에 얹어 놓는 피닉스. 나는 슬며시 나에게 주어진 패를 열었다. 나의 눈이 빛난다. 크크크크. 이건 완전 나를 위한 패다. "피닉스." "응?" "아마도 네놈의 깃털까지 다 상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크 크크." "......" "감히 본좌의 고스톱 본능을 일깨우다니. 그 용기는 칭찬할 만하나 너무 오만방자했도다." "......" "너에게 고스톱의 진정한 묘미를 보여 주지. 흐하하!" 잠시 후. "......" "크크크." "마, 말도 안 돼!!" 절망하는 새 한 마리. 그리고 그 새를 보고 피식 웃는 나. 절망해 봤자다. 이미 게임 오버다. 단 한 판에 말이다. "그럼 점수를 계산해 볼가?" "사, 사기야!!" "무슨 사기?" "......" "증거 있냐? 그리고 나 사기는 치지 않았다고. '정당하게' 했을 뿐이야." "......" "일단 점수를 계산하지. 가볍게 오광부터 시작해서 고도리, 광박, 피박에다 씩스 고에다......" 줄줄줄. 내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점수. 나는 최종 점수를 말해 주었다. "2,482점." "......" "점당 1골드니까 2,482골드다." "......마 말도 안 돼!!" "네놈이 제시한 금액이야." "......" "얼마 있냐?" "200골드......" 흐으음. 비상금이 제법 많네? 저 녀석, 언제 저런 거금을 모은 건지 원. 그나저나 200골드라. 그럼...... "2,282골드 남았다." "......" "네놈의 깃털을 팔아서 갚아도 된다. 불사조의 깃털이잖 아?" "......" "크하하!" 그렇게 승리자인 나는 웃었다. 감히 본좌인 나의 본능을 일깨우다니. 하찮은 새 같으니. 고스톱계의 자라나는 꿈나무인 나를 말이다. 내깃돈 문제는 앞으로 말 잘 듣는 걸로 용서해 주기로 했 다. 말 잘 듣는다고 해 봤자 별로 믿지도 않지만, 괜히 갚은 능 력도 없는 애 족치는 것도 취미는 아니니까. "아아아, 아름답습니다." 그때 가만히 있다가 웬 헛소리를 해 대는 가르. "......뭐가?" "전부 다 말입니다." "......" 저 녀석은 왜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다. "이 새 울음소리...... 자연의 향기......" "가르, 드디어 미쳤구나?" "......" "여기는 방 안인데, 어디서 새 울음소리랑 자연의 향기가 난다는 거냐?" "나지 않습니까?" "어디?" "바로 앞에서요." "흐으음?" 난 가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디서 새 울음소리가...... ......나는구나. 나는 피닉스를 바라보았다. 가끔씩 망각하는데 저 녀석은 새다. 한마디로, 녀석이 하는 말은 모두 새 울음소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새는 그렇다 치고 자연의 향기는?" "저 말입니다." "......" "저에게서 자연의 향기가 나지 않습니까?" "......" "저는 제게서 나는 자연의 향기에 감동했습니다." 정말...... 얼마나 정신이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 같 다. 아무리 살펴봐도 해골에게서 자연의 향기가 나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냥 헛소리다. 씹자. 그게 내 정신 건강에 좋을 테다. 그렇게 내가 가르의 행동에 고개를 젓고 있을 때, 절대 그 냥 조용히 넘어갈 리가 없는 모 분의 입이 열렸다. 그는...... "에리아......" 라고, 연인을 부르듯 부른다. ......저 변태 자식! 나는 데인에게 터벅터벅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 뒤, "내가 전에 말한 것 같은데?" "......" "에리아에게 집적거리면 네놈의 목숨은 없다고 말야." "지, 집적거리다니! 난 그런 적 없어!" "하지만 방금 전의 그 에타는 목소리는?" "그,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불렀을 뿐이야!" "진짜?" "응!" 구라 치지 마, 이 삐리리 같은 자식아!! 어디서 구라를 쳐도, 그런 상상할 수 없는 범위의 구라를 치냐? 네놈이 순수한 마음으로 에리아를 불렀다고? 차라리 피닉스가 사실은 성자였다는 말이 더욱더 믿음직스 럽다. ......아니, 그것도 좀 아닌 것 같네. 하여튼 절대 믿을 수 없다! "알잖아, 내 별명?" "......그런 것 들은 적 없는데." "순수계의 마조히스트." ...... 순수계의 마조히스트? 그건 뭐 하는 마조히스트냐?! 이미 마조히스트라는 단어에서 순수라는 의미는 찾을 수 없는 듯 보이는데. 고통을 쾌락으로 승화하는 미친 변태들에게 순수라는 단어 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순수계의 마조히스트? 어이없다. "기도합시다!" "에리아!" ......그냥 신경 끄자. 저 녀석들에게 신경 썼다간 내 주름살만 늘어날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내게는 할 일이 있으니까 말야. 크크크.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약속했던 물건입니다." 그 말과 함께 내게 물건 하나를 건네는 엘린. 이, 이게 그 전설의 신급 아이탬!! 부들부들. 감동으로 내 손이 떨린다. 흐흐흑. 그 순간, -다크프리스트의 유물 아이탬입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 엥? 이건 무슨 개뼈다귀 하이킥 하는 소리냐? <『다크프리스트』제6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