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프리스트 4권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 -------------------------------------by.흡혈성향 §차례§ 1장 에스케리시스 2장 먹기 대회 3장 해안 마을 데라스 4장 전설의 물고기, 스케리스 5장 선물 6장 마물의 숲 7장 사랑에 빠진 데인 8장 그랜드 크룬 경매장 9장 습격 10장 레미네아 도적단 급습사건 11장 키메라와의 재회 외전 에리아와 삼인방 ----------------------------------------------- [에스케리시스] 일단 저 자식과 놀아 보기 전에 잠깐 나의 비장의 스킬, 두 번째 유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듯싶다. 마신 벨라스. 그가 만들어 낸 스킬. 그게 바로 지금 내가 찾고 있는 다크 프리스트의 유물이다. 그는 총 여섯 개의 스킬을 만들어 냈고, 그중 두 개는 내 손 안에 있다. 그리고 앞으로 유물을 모두 찾는다면 이 직업의 이상야릇 한 비밀도 덩달아 밝혀질 것이다. 어찌 됐든 그가 만들어 낸 스킬 중 내가 제일 먼저 찾은 건 이거였다. 유물 네스티안 엘리라이진. 소수의 적에게는, 혹 한 한명에게는 유물이라는 이름이 민망 할 정도로 약한 스킬이다. 하지만! 이 스킬의 특성은 상대할 적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상상도 못할 정도로 위력이 급상승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유물 네스티안 엘리라이진은 많은 존재를 겨냥해 서 만든 스킬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사기꾼 작자가 내게 던져 준 두 번째 스킬. 에스케리시스. 네스티안 엘리라이진이 많은 적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 다면 에스케리시스는 단 한 명의 적, 즉 소수도 아닌 단 한 명 의 적에게 최고의 힘을 쏟아 붓기 위해 만들어진 스킬이다. -에스케리시스- 상대방의 몸 안에 어둠의 마나를 집어넣는다. 마나에 감염 시 모든 능력치가 100% 하락한다. 그리고 5초 후, 732,400의 데미지로 몸 안에서 폭발한다. 단, 광역 폭발은 아니다. 오직 한 존재에게만 적용된다. 상대방의 몸 안에 어둠의 마나를 집어넣을 시 5초간 손으로 주입해야 한다. 경험치를 이용해서 사용하는 스킬이다. 또한 모든 마나를 더불어 시전자의 생명력이 전체의 10%만 남는다. 성공만 하면 100% 죽일 수 있는 스킬이다. 솔직히 말해, 내부에 저 정도의 데미지를 입는다면 그 어떤 존재가 살아남겠는가? 내부에서 폭발한다는 건 방어력을 무 시할 뿐만 아니라 추가 데미지 효과를 준다는 것이다. 물론 지상계에서 짱 먹는 드래곤 아저씨들을 죽일 수 있을 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어찌 됐든 저런 키메라 놈은 죽일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문제점. 너무 크다. 어둠의 마나를 5초간 주입......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을 가진 스킬이기도 하지만, 그 스킬을 사용하는 데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솔직히 어떤 적이 '나한테 마나를 주입하시오' 하고 가만 히 앉아 있겠는가? 나라도 가만 안 있는다. 만약 있다면 그건 등신이고, 물론 약한 상대라면 제압한 다음 천천히 집어넣어도 되지 만, 적이 나보다 강한 상대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한 상대가 5초라는 시간을 내게 줄 리는 없으니까. 그리고 내 앞에서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저 키메라 놈은 나보다 강한 상대에 속한다. 크윽. 이렇게 미칠 듯한 데미지를 가진 스킬이지만 이런 심 각한 문제도 가지고 있다. 키메라는 나를 보고 씨익 미소 짓더니, 잠시 후 근처에 살 아 있는 엘프들을 모조리 죽이기 시작했다. 정말 악취미다. 그렇게 나머지 엘프들을 죽인 키메라 녀석이 나를 보고 피 식 웃더니 한마디 내던졌다. "후훗. 겁먹었나?" "아니." "......" "너를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는 소리를 들을지 생각 중 이었어." "크크크. 역시 그놈을 닮았군." "......?" "너의 스승 세키린. 판박이야. 그 자신감 말이다." "미친!" "......" "그 인간은 내 스승 따위가 아니야! 그 인간을 닮았다는 건 나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 모습조차도 흡사해." "......" 빠직. 하필 비교할 인간이 없어서 그 사기꾼 대마왕과 나를 비교 하는 거냐?! 차라리 새대가리 피닉스를 닮았다는 말이 더 듣기 좋겠다. 그만큼 그 작자를 닮았다는 소리는 나의 섬세한 정신을 무너 뜨리는 말이었다. 그래, 그래. 진정하자. 저건 분명 나의 냉정함을 무너뜨리기 위한 술수다. 어딜 봐서 내가 그 사기꾼 대마왕과 비슷하단 말이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근데 잠깐. 뭔가....... 좀 이상하다? 내가 알기로 저 키메라가 탄생한 건 약 300년 전이다. 그런데 어떻게 20대로 보이는 그 사기꾼 작자랑 알고 있는 걸까? "......300년 전, 그 인간만 아니었다면 난 신성국가 레 밀라를 완전히 파멸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인간...... 때문에!" 갑자기 언성이 높아지는 키메라. 많이 혼란스럽다. 저분의 말에 따르면 그 사기꾼 작자가 300년 전에도 살아 있었다는 건데? 난 궁금한 점은 잘 참지 못하는 소년이었기에 아주 당당히 물었다. "그 사기꾼 작자랑 300년 전에 만난 거 확실해?" "내가 그 인간에게 죽었는데 잊을 수가 있겠는가!" "......" 허얼. 그럼 그 작자가 신성국가 레밀라를 구원해 주었다는 얘기? 그런데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무지무지 오래 사는데? 인간 이 300년 이상을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되지 않은 것은 그 사기꾼이 정의감 에 불타울라 신성국가 레밀라를 구하기 위해 직접 나서서 키 메라를 해치웠다라는 스토리. ...... 푸하하하! 그런 일은 죽어도 없다. 도대체 뭐 때문에 그 작자랑 저 키메라랑 싸웠는지도 모르 겠지만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다. 그 사기꾼 작자가 정의감에 불타올라 마을을 구한 건 절대 아니라고 말이다. 둘 사이엔 분명 무언가가 있다. 무언가가. "......어이가 없었다." "......?" "정말 어이가 없었다." "......" 그때 조용히, 황당하다는 듯 똑같은 말을 두 번 내뱉는 키 메라. 어이가 없었다라니? "단지...... 단지...... 자신의 잠을 방해했다는 이유만으로 최고의 힘을 가진 나에게 덤벼 결국 죽여 버린 그 작 자...... 정말 어이가 없었다." "......" 역시다. 빙고! 빙고! 빙고! 그래. 그런 단순한 이유가 어울린다. 그 작자가 정의의 사자의 모습을 하는 건 피닉스 자식이 순 수 피닉스로 변신하는 것보다 훨씬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정확하게 확률상으로 말할 수 있이다. 0%다. 차라리 자기 잠을 방해했다는 이유만으로 내 앞에 있는 키 메라를 해치웠다는 황당한 스토리가 더욱 현실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오늘 복수할 수 있겠군. 비록 그 작자에게 직접 복수를 할 수는 없지만, 녀석이 애지중지하는 제자 놈을 죽 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난 그런 스승 둔 적 없다." "......" "그리고 무엇보다 '애지중지'라는 말이 엄청 거슬리는데. 애지중지? 애지중지하는 존재를 감금해서 이상한 시험이나 치게 만들고 구라를 치면서 이상한 직업을 갖게 하냐?" "......"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 사기꾼 작자는 내 스승도 아니 고, 나를 애지중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 말이야." "......" 나의 설명에 키메라는 할 말을 잃어버린 듯싶었고, 나는 그 런 녀석을 보고 한마디 푸욱 던졌다. "하지만 그 작자가 해치웠는데 내가 못 해치우면 나의 복 수혈전이 성립이 안 되지 않겠어?" "크크. 그 말은 나를 이길 수 있다는 소리냐?" "물론." "하하하하하하! 역시 똑같아." 제발 부탁이니, 그 괴상망측한 작자랑 엮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뭐. 내가 말해 봤자 저 녀석은 계속 말할 게 분명하 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모든 존재의 특징 이라고나 할까. 어찌 됐든 나는 메이스를 터억 하니 앞으로 내밀면서 큰 소 리로 외쳤다. "이제 시작할까?" 제길! 역시 빠르다. 잔상조차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라니, 정말 황당하 다. 나의 시작할까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공격을 시작하는 키메 라. 센스 더럽게 없다. 시작하자 했다고, 금방 시작하냐?! 흐으음. 그렇다고 금방 안 시작해도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하네. 아 참,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금 내 눈앞에서 사라진 놈의 인기척을 잡아내는 것 이다. 그래야지만 피하든가 공격을 하든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흠칫. 그 순간 오른쪽 방향에서 느껴지는 살기. 저번에는 너무 순식간이라 피하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 다. 충분히 피할 만하다. 아니, 오히려 공격할 것이다. 저 녀석은 순간적으로 멈칫거리게만 해야 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다크 블레스!" -모든 능력치가 500 상승했습니다. 블레스 한 방에 거의 두 배 이상 뻥튀기되는 내 능력치. 카아. 어떤 블레스라 하더라도 두 배는 절대 불가능하다. 약 20% 정도? 그 정도 능력치를 올려 주는데, 내 다크 블레스 는 자그마치 두 배다, 두 배. 뭐, 다른 존재에게는 걸어 주지 못한다는 아주 커다란 단점 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이 직업은 다른 사람을 보조하는 것과는 아예 관련이 없다. 솔직히 말해, 프리스트라는 이름을 쓰기도 민망할 정도 다. 뭐 어찌 됐든 내 능력은 그렇게 엄청 상승했고, 당연한 말 이지만 상대방의 기척을 더욱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 다. 그 순간 오른쪽에 느껴지던 살기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러더니, 다시 왼......쪽인가? 분명 오른쪽에서 살기가 느껴졌지만, 그 살기는 어느새 왼 쪽으로 이동해 버렸다. 아마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동한 것일 테다. 정말 억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스피드다. 어쨌거나, 저런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 키메라 녀석을 공격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승리의 시나리오의 초 기 단계를 진행할 수 있으니까. 나는 녀석을 잠시라도 멈칫거리게 하기 위해 나에게로 다 가오기를 기다렸다. 라이프 블리지트나 일루전 크레이젼 등 파괴력이 막강한 기술들이 있지만 이걸로는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성공할 수 없다. 분명 저 무지막지한 스피드로 피해 낼 테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광역 마법. 한 마디로 범위 마법이다. 단 하나의 존재를 공격하기 위한 스킬과는 달리 광범위한 마법이기 때문에 걸려들 확률도 엄 청 높아진다. 물론 단타 계열의 스킬보다는 데미지가 낮지만 말이다. 하지만 데미지는 전혀 상관없다. 어차피 저 녀석을 죽이려면 두 번째 유물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지난번처럼 맥없이 질지도. 그러니 사전 작업(?)을 해야 한다. '그 스킬'을 사용해서 말이다. 파앗. 그 순간, 내 앞에 순식간에 나타나는 키메라. 이번에도 지난번과 같은 공격이다. 키메라가 내 배를 관통하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자 나는 잔 뜩 긴장한 채 그대로 메이스를 휘둘렀다. "마혈천혈!" 콰앙! 일정 반경의 영역에 지진을 일으켜 스턴을 걸어 버리는 스 킬. 한편 나의 공격에 녀석은 순간적으로 뒤로 이동하려고 했 지만 이건 범위 마법이다. 한마디로, 뒤로 물러나도 영향이 간 다는 뜻이다. "젠장!" 그때 키메라의 욕설이 울려 퍼졌다. 저 '젠장'이라는 단어의 뜻을 풀이하자면, 마혈천혈에 당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즉 스턴이다. 물론 상대가 강하면 1, 2초면 파괴 되겠지만 나에게는 그 1,2초면 충분했다. 단 1,2초라도 말이다. 크흐흐. 한편 나의 대각선의 위치에서 굳어 버린 키메라. 나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저 녀석이 스턴을 풀어 버리기 전 에 시전해야 한다. "다크 헤이스트." "......!" 그 순간, 내 몸을 감싸는 헤이스트의 힘. 그리고 얼굴이 일그러지는 키메라. 성공이다! 상대방의 스피드 30%를 가져와서 내 것으로 만드는 나의 '완소 스킬'이다! "제길!" 한편 키메라는 얼굴을 마주 찡그렸다. 왜 저러지? 마치 전에 당한 적이라도 있는 듯...... 아...... 그 사기꾼 작자랑 싸워 봤다고 했지? 그렇다면 그 사기꾼 작자도 이 사기급 스킬, 다크 헤이스트를 가지고 있었을 터다. 다시 말해, 저 녀석은 다크 헤이스트의 위력을 두 번이나 맛본 것. 불쌍한 놈이다. 하지만 내게는 승리의 시나리오 1탄이 성공한 것이었다. 나마 차마 믿기 힘든 스피드를 갖게 된 몸을 가볍게 풀면서 그대로 메이스를 들고 달려 나갔다. "스피드 잘 쓰겠어." "......" "......" "......" "......" "......" "......" "......" 일행은 모두 굳어 버렸다. 보이지가 않는다. 그들의 모습이. 키메라와 윤현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아니, 간 혹 보이는 건 그곳을 지나갔다는 것만을 알 수 있게 하는 흐 릿한 잔상뿐. 그 외에는 보이지가 않는다. "뭐, 뭐야? 두, 둘 다 진짜 괴물이잖아!" 피닉스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부딪치고 있는 그 들을 보고 한마디 내뱉자, 데인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 다. "응. 원래 마에스트로가 괴물인 건 알고 있었는데 오늘 새 삼스럽게 다시 한 번 알았다." "역시 사탄의...... 후계자다운 강력함이군요." 그 순간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마디 던지는 가르. 한편 그런 가르의 말에 데인과 피닉스가 동시에 눈을 부릅 뜬 채 말했다. "사탄의 후계자라고?" "진짜?" 끄덕끄덕. "정말입니다." 가르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했고, 그의 대답에 데인과 피닉스는 완전히 굳어 버리더니 이내 한마디씩 던졌 다. "여, 역시. 예사롭지 않다고는 했는데 사탄의 후계자일 줄 은." "그래, 그래. 성격이 개지랄 같긴 하더니, 사탄의 후계자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그리고 나 같은 전설의 영물 피닉스를 막 대하는 걸 보면 개념도 없지." 그렇게 그들은 필사저긍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윤현을 앞 에 둔 채 열심히 그의 '뒷담화'를 했다. 한편, 그 말을 들은 에리아와 레니아도 동시에 굳어 버렸다. "으아아앙!" "에, 에리아." "에리아." "오, 오빠가 사탄의 후계자......" "저, 정말인가요? 저, 저분이 사탄의 후계자라는 거?" 에리아는 윤현이 사탄의 후계자라는 말에 마구 울음을 터 뜨렸고, 예은과 혜경은 그런 에리아를 달래기 위해 꼭 안아 주 었다. 물론 당황하는 건 에리아뿐만이 아니었다. 레니아도 당황하고 있었다. 최고의 도둑이라는, 꽤나 이름 값 있는 그녀지만 사탄의 후계자라는 이름에 비하면 조족지 혈이었다. "정말입니다." 레니아의 확인 질문에 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가르 의 대답을 들은 예은은 참지 못하고 에리아를 꼭 껴안은 채 말했다. "가르 씨, 오빠가 무슨 사탄의 후계자예요!" "맞아요. 말도 안 돼요!" 그런 예은의 외침에 혜경도 말도 안 된다는 듯 그녀를 거들 었다. 그 모습을 본 가르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세뇌당했군요." "......" "......" "자, 제가 축복을 내려 드리겠습니다." "......" "......" "저를 믿습니까? 믿는다고요? 아, 그래요. 신은 구원해 줄 겁니다. 신은 말입니다!" "......" "......" "자, 외칩시다. 할렐루야!"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아주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말인데, 지 욕하는 소리는 다 들린다는 말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내 귀에는 열나게 내 '뒷담화'를 하고 있는 저 삼인방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린다. 아주 똑똑히 말이다. 사탄의...... 후계자......라. 저 녀석들...... 나를 그렇게 악당으로 만들고 싶었던 거냐?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진정한 악당이 되어 주지. 진정한 악당이 말야...... 물론 지금 당장은 안 되겠군. 이 싸움 끝난 직후에. 크흐흐 흐. 슈우욱. 응원은 못해 줄망정 뒤에서 열심히 씹어 대고 있는 놈들을 향해 그렇게 원한을 불태울 때였다. 어느새 나에게 접근해 온 키메라 녀석이 엄청난 힘이 실린 오른 주먹을 얼굴을 향해 날리자, 나는 그대로 메이스를 치켜 들고 외쳤다. "라이프 블리지트!" 상대방의 생명력을 끌어 와 폭발시키는 나의 주력 스킬 중 하나. 기본적인 데미지가 정해져 있긴 하지만 사용해 본 결과 상 대방의 에너지가 많을수록 데미지는 더욱 상승한다. 한마디로, 강하면 강할수록 플러스 데미지가 있다는 뜻이 다. 콰아앙! 나의 메이스와 그 키메라 녀석이 손이 부딪치자, 당연하게 도 내 메이스가 승리했다. 이래 봬도 전설급 무기에 육박하는 초울트라 초보자 무기. 아무리 오크의 손이라지만, 맞장에서 질 무기는 아니다. "......크윽!" 순간 내 무기와의 충돌에 상처를 입은 키메라. 난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번쩍거렸다. 녀석의 상처는 나의 희망. 상처는 나의 사랑. 상처는 나의 행복. 크크크. 난 엄청난 속도로 '그 스킬'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다크 힐. 다크 힐. 다크 힐. 다크 힐. 다크 힐......!" 나는 사정없이 녀석의 상처에 다크 힐을 쑥쑥 집어넣어 주 었다. 아아, 나는 왜 이리 착한 걸까. 다친 상대에게 힐을 걸어 주 다니...... 나의 천사 같은 마음. 정말 내가 생각해도 정말 아 름답다. ...... 좀 낯 뜨겁군. 어찌 됐든 힐은 힐이다. 속성 자체가 일반 힐하고는 달라서 그렇지. "크아아악!" 그 순간 상처가 난 오른손이 순식간에 썩어 들어갔다. 이거다! 내가 노린 게 바로 이런 거다! 이대로만 가면 손부터 시작해서 전체가 다 썩어 버릴 것이 다. 그렇다면 굳이 두 번째 스킬을 무리하게 사용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녀석이 다이(die)하면, 그 후에는 뒤에서 열심히 나 를 욕하던 놈들을 마구 족친다. 아주 아름다운 스토리가 될 것 같다. 푸직. "......"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녀석이 지 왼손을 그대로 들어 스스로의 오른팔을 뜯어 버 린 것이다. 그리고 곧 살점이 뜯긴 자리에서 이상한 초록색의 피가 터져 나왔다. "하아, 하아, 하아." 자신의 팔을 스스로 뜯어 버린 무식한 녀석이 거친 숨을 몰 아쉬었다. 그리고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다음 순간 비명을 내 질렀다. "으아아아악!" "아......시끄럽네." 너무나도 큰 소리에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 그렇게 잠시간 괴성을 지르던 키메라. 다음 순간, 나는 또다시 믿을 수 없는 걸 봐야 했다. 내 두 눈으로 말이다. 푸득푸득. "......멋진 몸이군." 그렇다. 완전히 뜯겨 버린 오른손이 복구되고 있다. 그것도 완벽하게. "아아아. 난 왜 이리 만나는 놈들마다 이런 괴상망측한 놈 들뿐이야? 나도 좀 평범한 녀석들하고 싸우고 싶다." 나의 진심이다. 제발, 제발 부탁이다. 평범한 오우거나, 평범한 트롤이나, 평범한 와이번이나, 이 런 평범한(?) 몬스터들과 상대하고 싶다. 왜 내가 상대하는 놈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합성 괴물, 그림 자, 이상한 지렁이 기타 등등 근본을 알 수 없는 괴팍한 몬스 터냔 말이다. 흐흐흑. "......제길...... 역시 다크프......리스트." 키메라 놈은 처음과는 달리 긴장 어린 기색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오우거의 얼굴을 가진 키메라가 긴장 어린 모습을 한다는 게 약간 거부감이 들기는 한데, 어찌 됐든 처음처럼 나를 만만 히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사실 지난번 단 한 방에 뻗어 버렸으니, 녀석이 나를 만만 히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손까지 스스로 뜯어야 하는 상황이 되 고 보니 순간적으로 생각이 바뀐 듯하다. 한편, 난 긴장하는 키메라 놈을 향해 상큼한 미소 한 방과 더불어 손가락을 까닥거리면서 말했다. "또 와 봐." "......" "안 와?" "그럼 내가 간다." "......!" 오라는 내 말을 무시하고 꿈쩍 않는 키메라를 본 나는 친절 하게 말해 준 뒤 곧바로 튕겨 나가다시피 앞으로 나아갔다. 평소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속도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저 무지막지한 키메라의 속도를 슬쩍한 상태니까 말이다. "젠장!" 키메라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나를 보고 그렇게 외치면서 더욱더 당황하게 시작했다. 그래, 그 심정 안다. 항상 엄청난 스피드로 상대방을 제압하던 넌데, 어떻게 선 제공격을 받게 되니 네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거다. 하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행운이다. "제길!" 그때 다시 울려 퍼지는 키메라의 외침. 쫘악. 그리고...... 순간적으로 등 뒤에 펼쳐지는 와이번의 날개. 서, 설마?! 펄럭펄럭. ...... 설마가 사람 잡았다. 그냥 그대로 냅다 날아오른 것이다. 내 공격을 피해서. 키메라는 순간적으로 20미터 이상을 떠올랐고, 그 모습을 본 나는 황당해서 하늘에 뜬 키메라 녀석을 바라만 볼 뿐이었 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갑자기 하늘로 올라가면 나보고 어찌하란 말인가? 내게 하늘에 떠 있는 적을 공격하는 기술은 전혀 없다. 전 혀...... 물론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그건 내 손에 쥐어진 메 이스를 하늘로 냅다 던지는 것. 그렇지만 이 기술을 사용하기 에는 약간 좀 그렇다. 녀석이 내가 던진 메이스에 맞아 줄 만큼 만만한 놈도 아니 고, 만약 맞지 않는다면 내 무기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다크프리스트." 하늘을 부유하던 놈이 나를 향해 말하자, 나는 영업용 미소 를 띤 채 그런 녀석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내려올 생각 없니, 키메라 군?" "......" "하늘에서 뭐 하는 거니? 거니? 거니?" "......" ......뭐야. 내 영업용 미소가 안 통하는 거야? 나의 설득에 고민에 빠진 듯한 얼굴로 나를 보는 키메라 자 식. 제발 내려와라, 내려와라, 내려와라! 그 순간. "지금 내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 나중을...... 기약 하겠다." "허억!" "......" 펄럭펄럭. 아, 안 돼! 나는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하지만 이런 절규가 녀석의 귀에 들릴 리는 만무. 녀석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제 갈 길을 갔다. 전문용어로, 튀었다. ...... "으아악! 잡을 수 있었는데!" 나는 절망했다. 그나저나 엘프들의 마을......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구나. 생존자도 없어 보인다. 오직 남은 건 엘프들의 시체뿐이다. ......잔혹하군. 나는 그렇게 날아서 도망가는 키메라를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훨훨 날아가는 그 자식의 뒷모습만을 볼 뿐이었다. "으으윽!" 이 다크프리스트, 확실히 좋다. 사기적인 스킬들이라든가, 화려한 유물 스킬들. 그런데 문 제는 대공 공격이 전혀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날아다니는 존재에게는 아무 힘도 쓸 수 없다는 거다. 이럴 수가! 그렇게 내가 키메라를 놓쳐서 좌절에 빠져 있을 때였다. 투욱. "......?" 그때 내 앞에 떨어지는 편지 한 장. 물론 종이 쪼가리만 있으면 가벼워서 애먼 곳으로 날아갈 것이 분명하니, 쪽지에는 돌맹이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왜 갑자기 쪽지가 등장하는 걸까? 왜...... 하지만 어느새 내 손을 자연스럽게 돌맹이 쪽으로 향했고, 거기에 붙어 있던 쪽지를 떼어 내 읽기 시작했다. 푸헤헤헤.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아니, 안 궁금하다. 절대 말이다. 누군지 대충 알 것 같은 이 기분. 나는 정의의 사나이라고 해. 지랄 염병을 해라. 정의의 사나이? 사기의 사나이겠지. 설마 이 편지를 적은 인간은 내가 진 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래서 이 정의의 사나이가 좋은 정보를 가르쳐 주려고 해. ......또 앞에 붙는 정의라는 단어. 이 단어를 사용하는 그 작자는 분명 정의라는 의미 자체를 잘못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니, 확실하다. 어찌 그런 사기꾼 대마왕과 정의라는 단어 사이에 연결점 을 찾을 수가 있겠는가? 절대, 네버, 네버 없다. 다크프리스트의 세 번째 유물에 대한 정보. ......! 세, 세 번째 유물......에 대한 정보?! 설마 그 사기꾼 대마왕이 알아낸 건가? 참고로 이번 유물을 얻으면 대공 공격이 가능할지도? 허얼...... 대공......공격이 가능할지도? 그런데...... 가능하면 가능한 거지. 가능할지도는 뭔가. 도 무지 이런 쪽지를 보낸 의도 자체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가능 할지도라는 말만으로도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는 충분했다. 해안 마을 데라스로 가기를. 거기에서 덴키라는 남자를 찾아. 해안...... 마을 데라스? 생전 처음 듣는 마을 이름이다. 뭐, 혜경이에게 말하면 당장 알아봐 줄 게 분명하니 신경 끄고, 거기서 덴키라는 남자를 찾으라고? 그 남자가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에 대해 알고 있다는 소리? 그럼 정의의 사나이는 이만 간다. 부디 덴키를 잘 만나도록. 크크크크. 만나면 재미있을지도. 푸헤헤헤. 불길하다. 그것도 엄청. 그 사기꾼 대마왕이 마지막에 써 놓은 내용. 나를 무지 불길하게 만든다. '덴키를 잘 만나도록. 크크크크. 만나면 재미있을지도. 푸 헤헤헤'라니. 분명 저 괴이한 웃음소리에는 덴키라는 남자가 이상한 자라는 의미가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 분명하다. 평범한 존재일 리가 없어. 분명해.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왠지 모르게 일이 상당히 꼬일 것 같은 기분. 이런 기분이 들 때면 항상 무슨 일이 생긴다. 내 감각이 이런 쪽으로는 워 낙 뛰어난 관계로. "걱정했어!" "걱정했습니다!" "맞아!" 그때 저 멀리서 나를 걱정했다는 듯 뻔뻔하게 말하며 다가 오는 데인, 가르, 피닉스 녀석들. 난 웃었다. 그래, 걱정한 놈들이 뒤에서는 사탄의 후계자 어쩌고저쩌 고 하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다니는 거냐? 한편, 나의 그런 웃음을 본 그것들은 달려오다가 그대로 멈 추어 섰고, 난 그들을 향해 양팔을 쫘악 벌리면서 말했다. "어서 내 품으로 오렴." "미, 미쳤습니까?" "돌았다!" "앗! 드디어 미쳤다." 나를 순식간에 미친놈으로 매도하는 삼인방. 순간적으로 내 이마에 혈관 마크가 마구 솟았지만, 참아야 한다. 저들을 이곳까지 오게 하기 위해서. "그래. 난 미쳤으니까 어서 오렴." "허억! 진짜 미쳤습니까?" "완전 갔다." "돌았다." "......" 파직 파직. 더욱 솟아오르는 혈관 마크. 그래, 너희가 안 온다 이거냐. 그렇다면 내가 가 주마. 내 가...... 터벅터벅.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녀석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 런 나의 모습을 본 놈들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왜, 왜 그러시는 겁니까?" "왜, 왜?" "난 잘난 피닉스야!" 진정 모르는 거냐? 너희들의 죄(?)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닉스. 여기서 왜 '잘난'이란 단어가 나와야 하는지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 지금 상황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말이다. 한편 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것들을 향해 살포시 미소를 지어 주면서 말을 이었다. "가르, 사탄의 후계자라고 하는 말 잘 들었다." "헉!" "자, 잠깐! 미리 말해 두는데 우리는 그런 말 안 했어." "맞아, 맞아!" 그때 순식간에 배반을 때리는 데인과 피닉스. 몰아넣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 재물은 당연히 가르고. 그런 둘의 반응에 가르는 황당한 듯 굳어 버렸고, 난 그런 녀석을 향해 안심하라는 듯 말해 주었다. "걱정 마, 가르. 너만 맞지 않을 테니까." "......" "......" "......" "난 다 들었어. 가르뿐만 아니라 너희도 나를 씹는 걸 말 야." "헉!" "난 안 씹었어! 절대!" 데인은 놀랐고, 피닉스는 끝까지 부인했다. 나는 그런 피닉스를 위해 읊어 대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성격이 개지랄 같긴 하더니, 사탄의 후계자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그리고 나 같은 전설의 영물 피닉스를 막 대하는 걸 보면 개념도 없지......라는 대사를 치지 않았 냐?" "허억!" 내가 생각해도 대단하다. 저 긴 대사를 한 번 듣는 것만으로 다 외워 버리다니. 공부 와는 상당히 인연이 없던 내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뭐, 어찌 됐든 나의 이 한마디에 더 이상 부인을 하지 못하 는 새대가리 녀석. 나는 더욱더 활기차게 웃었다. "다 죽었어!" "으아악! 튀십시오!" "튀자!" "튀어!" 다음 순간 흩어져서 튀는 삼인방. 하지만 난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그 스킬을 말이다. "다크 헤이스트." "......저, 저기. 에리아." 움찔. 나의 부름에 움찔거리면서 예은의 등 뒤로 숨는 에리아. 난감하다, 난감해. 난 최대한 화사하게 웃으며 저쪽에서 땅바닥과 키스 중인 삼인방을 가리키면서 절대 오해라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저 녀석들이 날 놀리려고...... 오해야." "......" "난 절대 사탄의 후계자가 아니야. 절대." "......" "......믿어 주라, 에리아." "......" 하지만 에리아는 공포에 질린 눈빌으로 계속 나를 바라봤 다. 이렇게 난감할 수가. 그래, 어쩔 수 없다. 저것들을 동원할 수밖에. "야, 니들이 아까 한 얘기 농담이었지?" "......" "......" "......" "왜 대답이 없어?" "아, 아니! 노, 농담." "그래요! 농담입니다!" "마, 맞아!" 내가 에리아 몰래 주먹을 쥐어 보이자 그제야 바른대로 토 하는 놈들. 꼭 이렇게 주먹을 동원해야 된다 말인가? 난 평화주의자(?) 인데. 꽤나 슬픈 일이다. "저, 정말......인......가요?" 저 삼인방의 말에 에리아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런 에리아에게 더욱 화사하게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그럼, 정말이지. 이 오빠가 어딜 봐서 사탄의 후계자니." "......" "자. 이제 겁먹지 마렴." 그렇게 모든 게 잘 마무리 될 때였다. "믿지 마. 믿지 마." "......" "믿으면 안 돼. 절대......" "......" 나는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어느새 날아와 이상 한 소리를 지껄이는 새대가리 한 마리가 있었다. "......피닉스, 너 진짜 죽고 싶었나 보구나." "나, 난 폭력에 굴하는 비굴한 새가 아냐!" "흐으음." "저, 정의는 승리한다!" "......" 나의 한마디에 덜덜 떨면서 주춤거리는 피닉스. 너의 용기는 가상하다고 칭찬을 해 주마. 하지만 말이다. 그런 용기는 목숨을 재촉하지. 크크크. "가르, 데인." "네!" "응!" 나의 부름에 맹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가오는 두 친구. 난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피닉스 자식의 몸통을 낚아챘다. 그런 다음 녀석을 가르와 데인에게 들이밀면서 외쳤다. "가자!" "오늘은 무엇을 먹어 볼까요∼." "......" "......" "표정이 왜 그러냐? 불만?" "아, 아닙니다!" "저, 절대 없어. 불만." "그러냐? 그럼 어서 불이나 때라." "네." "응." 나의 말에 열심히 나무 조각을 집어넣으면서 화력을 높이 는 가르와 데인. 난 그 모습에 공포로 인해 얼어 버린 피닉스 자식을 보고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은 피닉스 샤브샤브를 먹어야지." "......" "어떤 맛일까? 쿠헤헤." "......" "아무리 불새라 해도 칼로 스삭스삭 하면 죽겠지? 크크크." 나는 그 말과 함께 식칼을 꺼낸 뒤 스윽 하고 핥아 보였다. 꼭 내가 변태가 된 기분이기는 한데, 공포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후후후." "자, 잘못했어!" 그 순간 들려오는 피닉스의 절규 어린 음성. 하지만 난 무시했다. 아니, 오히려 녀석을 편평한 돌 위에 눕히고 머리 근처를 식칼로 내리찍었다. 투웅. 돌과 식칼이 부딪치자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일 부러 그렇게 내리쳤다는 걸 감추고 마치 실수했다는 듯. "어라? 실수했네. 손이 미끄러졌어." "자, 잘못했어. 사, 살려 줘!" 투웅! 다시 한 번 내리찍었다. 녀석의 머리 위를 또 한 번 내리친 채 화사하게 웃으면서, "또 미끄러졌다." "지, 진짜 잘못했어! 앞으로는 말 잘 듣는 피닉스가 될게!" "정말?" "저, 정말이야! 하, 한 번만 기회를!" "흐으음." "제발!" 나는 애절하게 사정하는 피닉스를 보고 고민에 잠기는 척 했다. 사실 지금의 행동은 속된 말로 '생쇼'다. 아무리 나라도 정말 피닉스 녀석을 샤브샤브 해 먹겠는가? 그래도 함께 다닌 지 꽤 된 동료를 말이다. 하지만 요새 이 자식이 너무 기어오른다. 삼인방 중 유난히 기어오르는 횟수가 많은 게 녀석이 관계 로 요즘 들어 이렇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야 될 것 같은 기 분을 느꼈고, 마침 오늘 실행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나의 작전은 잘 먹혀들어서 우리 피닉스 군은 거의 맛이 가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에 잠긴 표정을 짓던 나. 잠시 후...... "착한 내가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 "뭐냐, 그 표정은?" "아, 아냐!" '착한' 이라는 말에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피닉스를 한 번 지그시 바라봐 주자 녀석은 금방 꼬리를 내렸다. 역시 원만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폭력은 필수다. "어찌 됐든 천사 같은 고운 마음씨를 가진 내가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거니까, 앞으로 잘하도록." "응! 응!" 대답은 잘하는군. 무조건 고개를 흔드는 새대가리. 이제 이 정도면 알아들었나? 이제 마지막 경고로, "다음에는 정말 샤브샤브용 고기가 될지도 모르니 조심하 도록." "......" [먹기 대회] 해안 마을 데라스. 지금 우리 일행이 있는 지점에서 약 30킬로미터 정도 떨어 진 중소 마을이다. 이 마을의 특징이라면 신선한 생선을 싼값 에 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곳의 회는 천국의 맛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회 마니아들의 궁극적인 지향점. 그곳이 바로 해안 마을 데라스 다. 그런데......! 혜경의 정보에 따르면 이 마을은 생선이 싱싱하다는 걸 제 외하면 별 특별할 게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에 대해 아는 존재 가 있다니. 너무 의심스럽다. 워낙 과거의 행적이 아름다우신 사기꾼 아저씨가 준 정보 여서 그런지 더욱더 그렇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별로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세 번째 유물에 대한 단서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사기꾼 대마왕의 정보를 믿을 수밖에 없는 슬픈 상황인 것이다. "또 사기일 것 같아." 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인간이 말하면 뭐든 사기로 보인다. 만약에 진실일 수도 있지만 사기일 가능성이 더 높다. 하아......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정말 고민스럽지만, 그래 도 유일한 단서라고는 이것밖에 없으니 여행하는 셈치고 갈 수밖에. "근데 윤현아, 아주 재미있는 이벤트가 있어." "응?" 그때 한숨을 내쉬던 나에게 혜경이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너, 너무 눈부시다. 거짓말 안 하고 가히 태양권이야! 미소의 태양권. 크흐음. 조금 오버가 심했던 거 안다. 자중...... 한편 혜경은 그런 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해안 마을 데라스로 가는 길목에 나렌이라는 마을이 있거 든." "응." "근데 그 나렌에서 이벤트를 한다는 거야." "......이벤트?" "응. 상금으로 50골드가 걸린 초거대 이벤트." 허억! 50골드?! 0.5골드도 아니고, 5골드도 아닌 50골드! 그, 그 돈만 있으면 당장 재벌이다. 그것도 초재벌! 난 다급히 혜경에게 물었다. "무슨 이벤튼데?" "먹기 대회." "......" "제일 많이 먹은 사람이 우승하는 이벤트야." "......" 먹기 대회라. 암울하다. 나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잘 먹는 편이긴 한데, 전문적으 로(?) 먹는 분들에 비하면 상대가 안 된다. 아니, 비교할 수가 없지. 나 같은 경우 최대한 먹을 수 있는 햄버거의 개수는 열 개 정도? 하지만 먹기 고수들은 적어도 사오십 개는 그냥 먹어 주신 다. 참고로, 진정한 고수들은 살이 찌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도 날씬하시다. 그런 분들이 진짜 고수. 살이 많은 고수들보다 살이 없는 고수가 더 무서운 법이다. 아 참,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중요한 건 이 이벤트에서 우승할 희망이 없다는 것이 다. 으아악! 50골드! "나 먹는 거 잘하는데." "엥?" 그때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 던지는 피닉스. 엥? 피닉스 네놈이 잘 처먹는다고? 말도 안 된다. 저 자그마한 체구. 보통 참새 수준의 몸통을 가진 놈이다. 근데 그런 네가 많이 먹어 봤자 얼마나 먹니? "나 진짜 잘 먹어!" 내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바라보자 피닉스 녀석이 발끈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차라리 뼈다귀만 있는 가르가 잘 먹는다는 말을 믿겠다." "지, 진짜야." "구라도 너무 까면 재미없단다." "아씨, 안 믿네! 그럼 테스트 해 봐!" "......테스트?" "응! 보여 주면 되잖아!" "......" 어, 어라? 저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은 뭐지? 그리고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테스트까지 받겠다니, 그 럼...... 거짓말이...... 아니라는 얘긴가? 하지만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도 참새 몸통만 한 녀 석이 먹어 봤자 얼마나 들어갈까? 뭐, 실험한다고 돈 드는 건 아니니 한번 해 보자. "그럼 기다려라. 통돼지 한 마리는 기본으로 먹어야겠지?" 지글지글. 우리 앞에서 열심이 구어지고 있는 돼지 한 마리. 내가 친히 숲 속을 뒤져서 찾아온 돼지다. 물론 내장 같은 것은 내가 다 제거했고, 요리는 예은과 혜경이 하고 있다. 아무리 요리 대회에서 우승한 나라 해도, 평범한 요리에는 예은과 혜경이 이런 나보다 백 배는 나으니까. 솔직히 말해, 내가 우승한 건 기적에 가까웠다. 도무지 그 런 요리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아직도 신비롭다. "저, 오빠. 저 된 것 같은데요." "아, 그래? 수고했어, 예은아. 혜경이도." 난 바비큐 요리를 완성한 예은과 혜경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돼지 바비큐를 보고 피닉 스에게 말했다. "자, 그럼 먹어 봐라." "놀랄 거야. 전설의 피닉스의 기술을 보여 주지." ......저기요. 전설의 피닉스랑 먹는 거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죠? 제 머리로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렇게 내가 녀석의 대사에 어이없어 할 때였다. "비기. 엄청 빨리 먹기!" "......" "......" "......" "......" "......" "......" "......" 우린 모두 굳었다. 진짜 비기였다. 피닉스 녀석이 돼지 옆을 한 번 스쳐 지나가자 순식간에 뼈 만 남은 돼지...... 진짜 엄청난 비기다. 이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 별로 쓸모라고는 찾을 수 없었던 피닉스 녀석에게 이런 엄청난(?) 비기가 있을 줄이야......! 물론 비기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한 재주였지만 어느 의미 에서는 비기였다. "우헤헤. 봤지? 봤지?" 피닉스는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고, 난 그런 녀석의 말에 살 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봤다. 저 정도라면...... 저 정도라면......! "좋았어. 네가 나가라!" 히죽히죽. 이길 가능성이 없었던 먹기 대회. 하지만 고작 새 한 마리가 이렇게 잘 먹을 줄은 몰랐다. 이건 정말 행운이야! 근데...... "혜경아." "응!" "......새가 참가해도 되는 걸까?" "그, 글쎄." 나의 말에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한 혜경. 여기서 문제가 있다. 과연 새도 먹기 대회인지 뭔지에 참가가 가능할 것인 가...... 사실 이 대회 자체가 사람을 위해 열리는 거지, 새를 위해 열리는 건 아닐 테다. 정말 난감한데...... "일단 가 보자. 잘하면 참가할 수도 있을 테니까." "왜 안 되는데요!" "그, 그게. 새는 곤란......" "왜요? 왜요? 새는 왜 안 되다는 거예요! 안 된다는 룰이 있 어요?" "아, 아뇨. 안 된다는 룰은 없지만......" "그럼 왜 안 된다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새를 참가시킬 수는......" "이건 조격 모독이라고요!" "......" 나는 내 앞에 있는 20대 후반의 남자에게 마구 따졌다. 왜 내가 이렇게 흥분한 채 떠들고 있냐 하면, 피닉스의 출 전이 불가하다는 한 마디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나렌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보통이라면 조 금 있다가 해안 마을 데라스로 이동했을 테지만 지금 이곳에 서는 아주 특별한 이벤트를 하고 있다. 그건 바로 먹기 대회. 가장 많이 먹은 자에게 50골드라는 상금을 주는 어마어마 한 이벤트였다. 그리고 우리 일행 중, 그 먹기 대회에 유력한 우승 후보로 피닉스가 당첨되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참가 자체가 안 된다는 거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접수처로 맹렬히 달려간 나를 기다리 고 있던 허무한 한마디. "이거 참 곤란하네요." "제가 더 곤란하다고요!" "......"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접수처에 서 있는 남자를 향해 그 렇게 외쳤다. 그런 나의 격렬한 반응에 그 남자는 내게 희망 어린 한마디를 던졌다. "그럼 케레인 님께 가 보세요." "......케레인?" "이곳 먹기 대회를 주최하시는 분입니다." 케레인. 혜경의 정보에 따르면 이 마을 나렌의 성주 아내라는 분이 시다. 대략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이고, 꽤나 화려한 얼굴과 몸매 를 가지고 계신 분이란다. 뭐 그래 봤자 '일반인' 기준이겠 지. 내 주변에는 신이 내린 분들이 세 명이나 계신다. 그중 두 명은 현존하는 인물이고. 그러고 보면 이상한 놈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은근히 운이 좋은 건지도? "윤현아!" "......" "윤현아!" "......응?" 난 나를 강하게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새침한 표정을 지은 혜경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 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니......" "......" "저, 정말 아무것도 아냐! 하하하." 솔직히 '너희들을 만나서 행복해서'라는 말은 낯 뜨거워서 못하겠으니까. 그나저나...... "왜 부른 거야?" "도착했어." "응?" "성에." "......" 어, 어라? 언제 도착했지? 나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커다란 성을 바라보았다. 역시, 크다. 지난번 그 변태 호모 녀석이 있던 곳보다 약 1.5배가량 크 다. 그걸로 보아, 이곳의 영주라는 사람은 꽤나 많은 돈을 성 에 투자한 듯싶다. 대충 한 400평 정도 되려나? 아니, 더 될 수도 있겠다. 그만큼 내 앞에 펼쳐진 성은 더럽게 멋지고 컸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오는 두 명의 경비병. 그들은 웅정한 성 입구를. 창을 든 채 묵묵히 지키고 있었 다. 저분들도 노고가 많은 분들이다. 하루 종이 저렇게 석상처 럼 서 있을 테니 말이다. 뭐, 내 알 바 아니지만 난 그렇게 정자세를 유지한 채 앞만 바라보고 계신 경비병 의 노고를 마음속으로 칭송한(?) 뒤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자동응답기처럼 나오는 말. "무슨 용건으로 오셨습니까?" "먹기 대회에 대해 건의할 게 있어서요." "건의 말입니까."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한 명의 경비병이 동료에게 뭐라고 쑥덕거린 뒤 성안으로 돌아가 버렸고, 우리는 그가 나올 때까지 앞에서 얼짱거려야만 했다. ......심심해.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약 10분 후, 다시 돌아온 경비병이 내게 던진 말. 흐으음. 생각 외로 쉽게 허락이 떨어졌네? 보통 이런 귀족들은 건의라는 걸 잘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 이다. 그런데 이분은 아닌가 보다. 이렇게나 쉽게 받아 주는 걸 보니. "케레인 님은 이번 대회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계십니다. 건의하실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라고 하십니다." "아......네." 그 정도로 먹기 대회에 신경을 쓰다니. 그나저나, 과연 새도 출전을 하게 해 줄까? 해 주겠지? 해 줘야 될 텐데. 좀 무리인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점점 부정적이 되어 버리는 나. 이러면 안 된다. 시작하기도 전에 이러면!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 "귀엽네." "......" "......" "......" "......" "......" "......" 우리 일행은 그 한 마디에 모두 굳어 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가장 굳었다. 내 앞에 있는 한 여인. 20대 중반으로 보이며, 대단한 미녀 다. 한마디로 미녀 중에서도 꽤나 상위급 미녀에 속하는 분이 시다. 그리고 약간 과도하게 노출한 드레스. 분명 드레스인데 허벅지까지밖에 오지 않는다. 바로 이게 그 유명하다던(?) 초미니 드레스라는 건가? 그리고 푸른색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신 분. 키는 대략 170센티미터 정도로, 여자치고는 제법 컸다. 물론 여인의 겉모습 때문에 굳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굳은 건 '귀엽네'라는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 대상이 바로 나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무턱대고 귀엽다니. 당황스럽다. "그런 표정조차도 귀여워." 찡긋. "......" 그 말과 함께 한쪽 눈을 살짝 감고 내게 윙크를 날린다. 뭐지? 이, 이 기분은...... 터벅터벅. 어느새 그분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계셨고, 잠시 후 갑자 기 나를 힘껏 껴안았다. 뭉클뭉클. 그, 글래머다. "휴우." "으윽." 그 순간 갑자기 나를 껴안은 채 내 귓가에 입김을 부는 그 분.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은근히 기분도 좋아지는 이 괴이 한 현상에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그때, "무, 무슨 짓이에요!" 혜경이 갑자기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소리쳤다. 그와 더불어, "초, 초면에! 그런 건 안 돼요!" 예은조차도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다. 그런 그녀들의 반응에 그녀는 나에게서 약간 떨어지더니, "여자들이었어?" "......" "......" "뭐 상관없나?" "......" "......" 상관없기는요. 정서적으로 안 좋습니다. 여기에는 10살짜리 어린 여자 아이도 있다. 이런 이상한 장면을 보이면 장차 자라날 아이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이상한 짓만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런 행동은 엄연히 불륜이다. 불륜! "저, 저기 남편 분도 계신다던데 이런 건......" "아, 그 영감탱이? 상관없어. 우리는 서로 불륜 저지르는 게 취미거든." "......" "그러니까, 난 영계를 좋아한다는 사실! 그것도 너같이 잘 생긴 영계를 말야." "......" 뭐야, 이 집안은? ......되게 황당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서로의 합의 하에 불륜을 저지른다는 것이냐! 무지무지 당황스러운 내 마음. 누가 알아주리오. "그나저나, 건의라고......?" 그제야 내가 온 본래 목적을 상기해 낸 그녀. 난 그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네!" "응, 좋아. 어떤 건의든 받아들일게." "저, 정말입니까?" "그래." "......!" 이, 이럴 수가. 일이 너무 잘 풀린다. 너무나도 말이다. 아, 오늘 일진이 좋은 날인가? 왜 이렇게 이야기가 스펙터 클하게 전개되는지 너무 감동스럽다. "단. 조건이 있어." "조......건?" 조건이라는 말에 나는 갑자기 불길함을 느꼈다. 너무나도 일이 잘 풀린다. 영어로 번역하자면 아임 유월 순탄 라이프! ......대충 넘어가고, 어찌 됐든 항상 재수가 없었는데, 일이 너무 잘 풀리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그러면 항상 마지막에 뭔가 이상해져! "응, 간단해. 침실로 가자." "......" 난 그만 굳어 버렸다. 허억! 그 말은 완전 진짜 슈퍼 불륜? "아,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그 순간 거세게 반발하는 두 여인. 한 명은 예은이고, 다른 한 명은 혜경이다. 근데 레니아 씨는 한 마디도 안 해 주네. 좀 섭섭하다. ...... 어찌 됐든 그런 격렬한 반응에 그분은 후드를 뒤집어쓴 예 은과 혜경을 보더니 대뜸 물었다. "같이 잤어?" "......" "......" "......" 우리 세명은 동시에 굳었다. 특이 예은은 완전 경직이다. 숙멕인 그녀가 듣기에는 정신적 데미지가 상상을 초월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흐으음. 분위기를 봐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사이...... 아닙니다." "어머. 남자. 눈치 없네." "......?" "여자들의 저 격렬한 반응을 봐.'그런 사이' 같은데?" 저기요...... 그런 사이가 뭔데요?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그녀는 이렇게 내 호기심만 잔뜩 키워 놓은 채,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뭐, 불륜도 안 되겠네. 그나저나 건의하고 싶은 게 뭐지?" 그제야 이야기의 흐름이 제대로 돌아간다. 그래. 어서 말하고 가자. 여기 계속 있기에는 에리아의 정 서 교육상, 모든 여자들의 정신 교육상 좋지 않다. 저분, 섹기가 가득해. "새도 참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새?" "네. 지금 날아다니는 저 새요." "흐음?" 내가 피닉스를 손을 가리키자 그쪽을 바라보는 그녀. 그녀 는 잠시 고민에 잠기는 듯싶더니...... "좋아." "......저, 정말요?" "응. 좋아." "침실로......가자는 건 아니죠?" 약간 불신이 들었기에 나는 그렇게 물었고, 그런 내 물음에 그녀는 웃으면서. "침실로 가도 좋고." "......" "아니면 우리 지하창고에 있는 쥐를 잡아 주면 돼." "......" "그 둘 중에 한 가지를 해 주면 그 건의를 받아들일게." 난 그녀의 말에 단 한숨도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 "쥐를 잡겠습니다." "언제든지 침실은 열려 있어. 후훗. 쥐...... 잡을 수 있으려 나. 후훗." "......" "불가능하다 느끼면 침실로∼ 랄랄랄." 그 말과 함께 접대실로 나가는 그녀. 뭐냐. 이 불길한 느낌은. 왠지 평범한 쥐가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보통 이런 예상은 더 맞더라. 왜 맞을까? 왜 맞아야만 하는 거지? 왜! 왜! 왜! "......꺄아악!" "꺄아악!" "꺄아악!" "우에엥!" "......!" 여자들의 비명 소리와 에리아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비 명 따위는 안 지를 것 같은 레니아까지 소리를 지르다니...... 하지만 나 저 마음 이해한다. 나도 비명 지르고 싶다. 하지만 남자 체면상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저게 쥐냐? 뭔 짓거리를 하면 저런 쥐가 나올 수 있는 거냐? 약 10미터 이상 되는 몸을 가진 빅 마우스. 생김새와 기타 등등은 일반 쥐와 완전히 똑같다. 크기만 확 대해 놓은 듯하다. 솔직히 말해, 귀여운 햄스터 종류라면 이러지도 않겠는데, 저 쥐는 그런 귀여운 종류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신 분이다. 찍찍찍. 이 자식아, 고막 터지겠다. 크기만큼이나 소리도 정말 '빅'이다. 차라리 침실로 갈 걸 그랬나? 흐으음...... 그러기에는 일행에 여자가 너무 많아서 눈치가 보이 고...... 뭐, 얼른 처리하면 되겠지. 나는 뒤에서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과 리치...... 리치? "사, 살려 주세요!" "......" "제, 제발 쥐 님! 살려 주세요!" "......" "죽기 싫어요!" 여기서 한마디. 넌 이미 뒈졌잖아. 가르 군. 그리고 도대체 뭐냐? 리치 주제에 왜 쥐한테 비굴하게 비는 거냐? 뼈만 남은 손을 열심히 빌어 대는 가르. 그런 그의 모습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비명을 지르던 여자들은 더 이상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저기, 가르." "혀, 형제여. 제발 저 쥐를!" "너 설마......" "제, 제발요! 저 쥐 공포징입니다!" 꼴값을 떨어라, 떨어. 리치인 주제에 기도를 하는 것도 모자라서, 요리가 취미인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쥐 공포증까지...... 정말 가지가지 하는 리치 님이다. 하아앙. 찍찍찍. 한편 난 소음 공해로 내 귀를 더럽히고 있는 쥐를 보고 살 짝 웃으면서 메이스를 움켜 쥐었다. 그런 다음, "끝내자고." "......" "왜요?" "지, 진짜로 잡은 거야?" "확인해 보세요." "......" "뭐, 별로 강하지도 않던데." 진짜 별로 강하지 않았다. 아니, 너무 약했다. 내 라이프 블리지트 한 방에 그대로 하늘나라로 떠났으니 까. 그 커다란 몸매에 비하면 너무 허약하다. 솔직히 말해, 아무리 크면 뭐 하냐. 쥐일 뿐인데. "너...... 엄청 강하잖아." "그. 글쎄요. 하하하." 강한 편에 속할 거다. 레벨로 따져도 비공식랭킹 10위 안에 들어갈 게 분명하고, 나의 화려한 스킬들을 더하면 1:1로 맞장 떠서 어떤 유저에게 도 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내 적이라는 놈들이 워낙 괴상망측한 놈들이라서 문 제긴 하지만. "침실에서도 잘하겠는데?" "......" "정말 아쉬워." "......" 다행히도 지금은 1:1 면담 중이라서 다른 일행은 자리에 없 었지만, 만약 또 여자들이 있는 데서 저런 말을 했다면 얼굴이 화끈해졌을 것이다. 그 순간. 스으으윽. "왜, 왜 이러세요!" "흐으음...... 탄탄해." "......" 가히 빛의 속도라고 할 정도로 빠르게 내게 다가온 그녀. 그녀는 어느새 한 손으로 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솔직히, 피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몸이 안 움직여지는 이 마음. 누가 분석 좀 해 주세요. 스윽 스윽. "안 잘래?" "저, 저는 순수합니다." "즐거울 거야." "......" "가자." "저, 전 순수해요!" 그래, 순수남 여태까지 나의 장점이랄 수 있는 순수함을 파괴할 수는 없 었다. 물론 솔직히 말하면 밖에 있는 여자 분들 때문에 양심이 찔 렸기 때문이지만. 그때 갑자기 그녀의 손이 내 옷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허억! 이, 이건 아냐! 이 게임은 19금이 아냐! 지금 거절해야 한다. 안 된다. 난 순수해. 불륜은 안 돼! 하지만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허얼. 벌컥. 그 순간, 문이 노크도 없이 열렸다. 문밖에는 데인 녀석이 문 손잡이를 잡고 있었고, 그 등 뒤 에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본 여자들이 굳어 버린 채 서 있었다. "절대 오해야!" 나는 다급히 여자의 손을 잡아 옷 속에서 빼냈다. 그때, 내 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실망이야." "오......빠." "이렇게 밝힐 줄이야." "아, 아냐!" 나에게 차례대로 한 마디씩 던지는 혜경과 예은, 레니아.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내뱉은 말은 직격타였다. "변......태 오빠." ......열 살짜리한테 변태 소리 듣는 건 정말 상상을 초월한 정신적 타격이다. 들은 자만이 내 기분을 알 것이다. 결국 나는 그 오해를 풀기 위해 무려 1시간을 설명해야 했 다. 다시 순결함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내 명예를 되돌려 놓 기 위해서다. "하아. 다시는...... 그런 유혹에 안 넘어가." 내가 아무리 신체 건강한 사춘기의 소년이라지만 저런 유 혹에 넘어갈 뻔하다니, 조금 한심하다. 그것도 주변에 초절정 미소녀를 세 명이나 놔두고 말이다. 이왕 할 거 저분들과...... ...... ...... ...... 크아악! 나 진짜 변태가 되어 가는 것 같아! "동지." "내가 왜 네놈의 동지냐?" "알면서." "......" "그러면서 나한테는 여자 밝히지 말라고 했잖아." "......" "같이 잘 놀아 보자고." 크윽. 이 자괴감. 난 피닉스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명백히 증거를 포박당한 상황. 도무지 반박할 말이 떠오르 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사건이 많았지만 일단 피닉스 녀석의 출전 허락을 받아 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연습이 절실히 필요하다. 피닉스가 제법 잘 먹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저곳에는 유저들 부터 NPC까지 먹는 것에 자신 있는 사람들은 다 모일 테다. 지금 실력으로 우승은 힘들 수도 있다. "결전의 날은 사흘 뒤다." "흐으음. 난 전설이니까. 이길 게 분명한데." "근데, 피닉스." "응?" "네 입으로 네가 전설이라고 말하면 무안하지 않냐?" "안 무안한데." "......" "난 내가 자랑스러워." "......" "전설의 피닉스니까." 그래, 혼자 자랑스러워 해라. 그런 자신감이 나쁜 건 아니 니까 말이다. 물론 자뻑 증세가 심하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네가 잘났다고 가정을 하면......" "가정이라니! 난 원래 잘났어."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고 치자가 아니라, 나 누군지 몰라? 전설의 피닉스 야!" "......" 저 피닉스라는 전설적인 영물의 이미지가 완전히 박살 나 고 있다. 환상적이고 멋지고 우아한 피닉스의 이미지를 생각 하던 순진한(?) 나. 내가 가지고 있던 그런 이미지가 완전 박살 나고 있다. 하아아. "어찌 됐든 난 무지무지 엄청나게 잘 났으니 우승할 게 분 명해." "글쎄다." 지금 녀석은 이 대회를 무시하고 있다. 이 무시무시한 대화를 말이다. 각종 식신들이 모이는 자리다. 네가 좀 특이한 능력, 즉 먹는 쪽으로는 뛰어난 능력을 가 졌다고는 하지만 내 생각에 우승은 보장 못한다. 어떤 복병이 숨어 있을지 모르니까. "그래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연습이다!" "연습?" "응. 많이 먹기 연습." "......" "예은아, 혜경아." "네?" "응?" "도와줘. "......?" "......?" "수고스럽겠지만 무제한으로 요리 부탁해." "아, 네." "뭐, 그 정도야." 나의 말에 금방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들. 한편 그런 나의 말을 들은 피닉스 군은 설마 하는 어조 로...... "무식하게 많이 먹이려는 건 아니지?" "무식기는...... 그게 정석이야." "......" "많이 많이 먹다 보면 배는 늘어나는 법!" "체, 체계적인 훈련을 시켜 줘!" 내게 체계적인 훈련을 요구하는 새 한 마리. 나는 피식 웃었다. "그딴 게 어딨냐?" "......" "많이 처먹다 보면 연마되는 게 바로 이 세계야." "......" "자, 그럼 오늘 죽도록 먹어 보자꾸나." "......" "후후후." "피, 피닉스 살료!" "자자, 더 먹어. 하하하하!" "우우욱...... 더, 더 이상은!" "위장을 늘려라! 배를 늘려라!" "먹여서 죽이려고 하다니!" "닥쵸! 먹어! 먹어!" "우욱." ...... 일행은 피닉스를 밧줄로 나무에 묶어 놓은 채 강제로 마구 먹이는 윤현을 보고 모두 굳어 버렸다. 보통 먹는 연습을 해도 저럴 정도로 과격하게 하지 않는다. 체계적으로, 규칙적으로 위장과 배를 늘려 나가는 게 정석 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 상황! 그리고...... 피닉스는 불새였다. 그게 뜻하는 바는, 절대 죽지 않으니 마음 놓고 스파르타식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순간 자신이 불새라는 게 원망스럽다는 생각하는 피닉스였 다. 식신병기. 피닉스. 드디어 완성됐다. 단 3일 만에 말이다. 내 옆에 어느새 거대 뚱뚱이 새로 변한 피닉스. 단 3일 만에 식신병기가 된 부작용이다. 뭐, 이런 사소한(?) 점은 넘어가고, 난 약간(?) 모습이 변한 피닉스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말했 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10%를 떼 주겠다." "오케바리." "그걸로 헌팅을 하든 말든 네 자유야." "오키!" 난 상금의 10%를 준다는 약속을 걸었다. 나도 양심이 있는지라 무일푼으로 부려 먹기에는 좀 찔려 서 말이다. 그리고 우승을 향한 열정을 위해서라도 이런 서비 스는 필수다. "피닉스, 넌 전설적인 영물이야." "잘 알고 있어." "......" 되게 무안하다. 보통 이렇게 칭찬하면 조금이라도 겸손해 해야 칭찬하는 입장에서 더 칭찬하고 싶어지는데, 나의 한마디에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을 보니 앞으로 다시는 칭찬해 주고 싶 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다 사기를 위해서다. 참고 칭찬을 해야 한다. "넌 되게 되게 잘났어." "응. 무지 잘 알고 있어." "......" "걱정 마. 나 잘난 건 세상이 다 아니까." "......" "푸헤헤헤." 정말 저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의 출처가 진심으로 궁금 하다. "어찌 됐든 넌 잘났으니까 우승 부탁한다." "당연히 우승한다니까. 걱정 마!" 걱정되니 이러는 거잖아. 50골드를...... 과연 탈 수 있을까? 대회 시작. 상당한 고수들이 보인다. 대략 몸무게가 200킬로는 넘어 보일 듯한 남자도 있고, 50 킬로도 나가지 않을 정도로 비쩍 마른 남자도 있다. 그리고 예상외로 여자들도 많이 참가했다. 보통 먹기 대회라면 남자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야 하 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의 수도 꽤나 많았다. 나는 일단 일렬로 쭈욱 늘어선 100명의 사람들을 훑어보았 다. 요주의 인물을 살피기 위해서라고 할까? 그렇게 한참을 살펴보던 나. 잠시 후, 나는 어떤 사람을 보고 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설마......" 나는 설마 하면서 눈을 비빈 다음 다시 한 번 그 인물을 확 인했다. 하지만 확실하다. 키 170센티미터 정도에 약 45킬로 정도로 보이는 비쩍 마 른 몸매. 그리고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외모. 실제 나이보다 약간 동안이다. 그렇다. 저 남자는...... "김성현." "......응." 내 옆에 있던 혜경이 내 대신 말을 해 주었다. 김성현. 먹기 대회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원래는 30대인데, 동안인 관계로 보통 20대 중반으로 착각 한다. 뭐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유명한 이유는 텔레비전을 타고 있다고 해야 하나? 외국에서 열린 모든 먹기 대회에서 우승한 우리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설마...... 저 사람이 참가할 줄이야." "힘든...... 싸움이 될 것 같다." 아무리 피닉스를 식신병기로 개조했다지만, 저 김성현이라 는 사람은 식신에서 한 단계 위 수준으로 평가될 정도로 엄청 나게 먹어 댄다. 저런 왜소한 체격에 맞지 않게. 최고 기록이 햄버거 98개......였던가? 한 마디로, 무지막지한 남자다. "오늘의 도전 종목은 스테이크입니다!" 그때 들려온 사회자의 목소리. 스테......이크? 이런 먹기 대회에서 스테이크라니. 스테이크가 얼마나 비싼 음식인데...... 나는 황당하기 그 지없었다. 웅성웅성. 사람들도 이런 대회의 요리가 스테이크로 나올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지 마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심정 이해한다. 보통 이런 먹기 대회에는 싸고 배가 금방 부르는 음식을 내 놓는 게 일반적인데 스테이크라니...... "부럽기도 하네." 스테이크, 맛있겠다. 오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말야. "오늘 피닉스 호강한다." 크윽. 나도 그냥 살짝 참가라도 할까 하고 후회가 되기도 한다. 사실 도전 종목이 스테이크라면 거짓말 안 하고 지금 참가 한 인원이 수십 배 이상은 뻥튀기 되었을 것이다. 물론 우승을 하겠다고 몰리는 분들이라기보다 스테이크 한 접시라도 얻어먹고 가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나저나. "예은아, 저 새대가리가 우승할 수 있을까?" "......네?" 나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깜짝 놀라 대답하는 예은. 왠지 이런 반응조차도 귀여워. 푸헤헤. "피닉스가 우승할 수 있을까 하고 물어본 거야." "피닉스 씨가요?" "응." "음......" 나의 말에 고민에 잠긴 그녀. 그나저나 '피닉스 씨'라니, 새한테는 그런 존칭 안 해도 되 는데 말이다. 저분은 이런 쪽으로는 너무나 예의바르시니 감히 태클을 걸지 못하겠다. 그렇게 약 1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예은의 말문이 열렸다. "아마도......불가능할 것 같아요." "그래?" "네. 저분......대단하세요." "누구? 누구?" "김성현이라는 분요." "허얼? 아는 사이?" "아, 아뇨. 아는 사이는 아니고, 지난번에 한 번 쇼 프로그 램에서 뵈었는데 진짜 잘 드세요. 피닉스 씨가 잘 먹는다 하 더라도 무리일 것 같아요." "흐으음." 그러니까 예은이는 실제로 봤단 말이지? 난 가끔씩 예은이가 최고의 아이돌 미소녀 가수라는 사실 을 망각한다. 워낙 친숙해서 이런 걸까나. 뭐 그것보다. 그렇게 예은이 인정할 정도라니...... 걱정된 다. 과연 피닉스 녀석이 기적을 만들어 낼지 말이다. "기적은 일어납니다." "......" "할렐루야." "뭐냐, 가르? 갑자기." "피닉스 님은 기적을 창조하실 겁니다." "피닉스가 무슨 신이냐? 기적을 창조하게." "형제여, 모르셨습니까?" "뭘?" 대뜸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모르지. "피닉스 님은 신입니다." "푸헤헤헤헤." "......" "그걸 구라라고 까냐?" "......" "지금 나랑 장난쳐? 저 자식이 신이면 난 창조신이다." "......" "어디서 구라를 까도 거지 같은 구라를 까냐." "지, 진짜인데요." "하하하하!" 난 한참을 그렇게 웃었다. 정말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막힌다. 신? 저 자식이......? 꼴값 떤다. 그 순간 가르의 한마디. "피닉스 님은 새들에게서 신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 "확실합니다." "......" "좀 이상하시긴 해도 저분은 새들의 신입니다." 미친 거 아냐? 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다. 얼추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저게 좀 약간 미친 새대가리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피닉스 다. 전설의 영물이라고 불리는 피닉스. 절대 죽지 않는 불사조라 불리는 존재. 어떻게 보면, 새들의 신이라고 해도 부족한 점은 없다. 근데 저딴 놈이 새의 신이라면 나머지 새들의 삶은? 무지 암울한데. 경기가 시작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구 인상을 구기면서 스테이크 먹는 모 습이 가히 인상적이다. 아니, 인상적이지 않으면 더 이상할 것 이다.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으니까. "우엑! 더 못 먹어!" "기권!" "기권!" "포기!" "졌어." "더 못 넣어!" 각양각색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엄청난 속도로 꾸역꾸역 먹어 대던 참가자들이 하나 둘 지쳐 갔다. 사실 내가 이 세계에 대해 잘 아는 건 없 는데 저렇게 초반에 속도를 내면 나중에 많이 못 먹는다고 한 다. 차라리 일정한 속도를 계속해서 먹는 게 훨씬 낫다나? 우걱우걱. 우걱우걱. 그때, 내 눈에 유독 들어오는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 람과 새 한 마리. 그들은 초반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우와, 저 새 봐. 장난 아냐!" "진짜네?" "신기하다." "새가 대회에 나온 것도 신기한데. 저 정도면 선전할 줄이 야." "맞아, 맞아." "근데 저건 무슨 새지?" "글쎄,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인데." "잡종인가?" "그런가 봐." 그때 피닉스를 보고 웅성거리는 관객들. 저기, 한 가지 말해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사실 저 새가 잡종같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새들의 신이 라고 불리는 피닉스랍니다. 물론 피닉스의 근엄함이나 멋진 건 죽어도 발견해 낼 수 없 겠지만 말입니다. "으악! 포기!" "우엑!" "포기! 포기!" "더 이상 안 돼!" 그 순간 들려온 2차 탈락자들의 절규. 또다시 우르르 떨어지는 탈락자들. 하지마나 두 존재는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내 손바닥 크기만 한 스테이크를 한 입에 꾸깃꾸깃 집어 넣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모든 시선은 먹기 대회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김성현이 라는 사람과 새 주제에 여기까지 살아남은 피닉스 녀석에게 몰려 있었다. 아니, 당연한 건가? 남은 존재들이라고 해 봤자 그 둘이 다였으니까. "믿을 수가 없습니다! 둘 다 70접시! 넘었습니다!" "우와아!" "대단하다!" "저 새 정말 대단해!" "잡종 주제에 정말 대단하다!" "이겨라, 새야!" "이겨! 이겨!" "새의 힘을 보여 줘!" 사람들은 김성현이라는 사람보다 피닉스 자식의 손을 들어 주고 있었다. 그 이유를 굳이 들자면, 원래 신기한 것에 관심이 쏠리는 게 사람의 심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기하게 여기까지 올라 온 피닉스에게 엄청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포기해." 그 순간 처음으로 말문은 연 김성현. 그는 옆에서 말없이 먹고 있는 피닉스에게 한 마디 던졌다. 그 말에 피닉스는 피식 웃으면서, "닥쵸." "......" "너나 포기해. 나 같은 전설적인 존재는 우승해야 해." "......" 역시 건방지다. 개념도 없다. 그래, 저게 피닉스다. 오만방자하고 개념이 심각하게 부족 한 자뻑 증세. 그렇게 둘은 다시 말없이 스테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표정이 이상해지는 피닉스와 김성현. 지금 내가 보기에 저 김성현이라는 먹보계의 황태자는 한 계에 다다랐다. 하지만 그로서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항상 전 세계를 휩쓸던 그가 고작 새에게 진다는 건 엄청난 치욕일 테니까. 그리고 피닉스. 저 자식도 약간 맛이 가 보인다. 그만큼 힘들어 보인다는 뜻. 정말 예상할 수가 없다. 그렇게 84접시가 넘어갔다. 김성현이라는 남자는 애써 웃고는 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그의 표정은 완전히 구겨져 있었다. 그리고 피닉스도 마찬가지. 드디어 85접시째. 김성현은 그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를 그냥 바라만 보고 있 었다. 드디어 온 것이다. 마의 벽. 이게 닥친다면 정말 못 먹는다. 완전 끝까지 먹어 본 자만이 알 것이다. 그 마의 벽이라는 걸 말이다. "......" 그렇게 한참을 잠시만 바라보던 김성현. 포크를 잡은 그의 손이 점차 떨리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포크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푸욱. 김성현은 스테이크의 중심부를 포크로 찌른 다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눈을 확 감더니 그냥 입으로 집어넣어 버렸다. 정말 대단하다. 엄청나다.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우엑." 하지만 그 순간 방금 전에 먹었던 걸 뱉어 내는 김성현. 그리고 그런 그를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는 새 한 마 리. 새 주제에 비웃음을 지을 수 있다니. 이것도 참 신기하군. 어찌 됐든 피닉스는 피식 웃은 뒤 그대로 주둥이를 열었다. 그러더니...... 덥석. 단번에...... 스테이크를 삼켜 버렸다. "아아아아!" "새가 이겼어!" "진짜다!" "저 새 주인 누구야?!" "말도 안 돼!" "새가 우승이야!"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마구 흥분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나는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항상 이상한 짓만 하고, 지가 피닉스라는 걸 자랑하면서 싸 가지 없게 굴던 놈이다. 이 파티에서의 기여도 0%. 오히려 피해만 주는 존재였던 그가...... 그가...... 드디어 한 건 해낸 거다. 이 파티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말이다. "난 잘났어!" 마지막으로 비명을 지르는 피닉스를 본 난 고개를 끄덕였 다. 정말 감동이다. [해안 마을 데라스] 우후후. 편하다. 너무 편해! 난 지금 아주 편안하게 해안 마을 데라스로 향하는 중이다. 한마디로, 마차를 타고 가고 있다는 소리! 물론 해안 마을 데라스까지 가는 돈이 거의 2골드에 육박할 정도로 비싼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문제없다. 피닉스의 기적적인 우승에 난 슈퍼 재벌로 등극했으니까. 지금 있는 돈만 해도 110골드 정도. 지난번 요리 대회에서 탄 상금과 더불어 이번 먹기 대회의 우승 상금, 그리고 틈틈이 모은 돈이 저만큼 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요악하면...... 아이 엠 재벌. 푸하하하! "근데 너무 비싼 거 아냐?" 그 순간 마차를 빌리는 가격이 내내 걸렸는지 혜경이 내게 그렇게 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웃으면서, "뭐 2골드밖에 안 하는걸." "헤에? 윤현이 재벌이야?" "뭐, 그렇지. 하하하." 이래 봬도 재벌에 속한다. 물론 외장에 신경을 안 써서 쪼들려 보이지만 말이다. 사실 이 레벨까지 키우면서 장비 하나 안 산 건 기적이다. 당연히 무기는 초보자 무기. 하지만 주제에 전설급 데미지에 달하니까 패스. 그리고 방어구는 사실...... 입을 게 없다. 난 프리스트다. 내 입으로 내가 프리스트라고 하는데 왜 이리 무안하지 모 르겠다. 어찌 됐든 프리스트다. 그러니까 천으로 만든 옷을 주로 입 어야 하는데, 차라리 안 입는 게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실제 지향적 게임이라 그런지 프리스트 주제에 판금 갑옷도 입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럴 경우 완전히 기어 다녀야 했다. 그러므로 패스. 판금은 힘을 많이 올린 디펜 기사들이나 가능하다. 물론 나는 가능하다. 힘이라고 하면 웬만한 유저들보다 강하다고 자부하니까. 하지만 몸이 둔해지는 건 사양이다. "저......" "응?" 그때 조심스렇게 내게 입을 여는 예은. 무슨 할 말이 있는 건가? "피닉스 씨는 어디 가신 거예요?" "아, 걔. 다이어트 하러 갔어." "에......?" "저번에 어떤 여자한테 헌팅......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집적거렸는데 그 여자가 뚱뚱한 새는 귀엽 지도 않다나? 그래서 그 말 듣고 충격 받고 살 빼러 갔어." "아." "그나저나 그 녀석, 사라진 지 3일이나 됐는데 잘 빼고 있 으려나?" 그런 생각이 들 때였다. "우어억! 모든 살을 뺐다!" 저 멀리서 파닥파닥 날아오는 새 한 마리. 거기에는 예전과 똑같은 모습을 되찾은 피닉스가 보였다. 흐으음. 다이어트를 성공했구나. 그나저나...... "너 여기 어떻게 찾아왔냐?" "난 전설이니까." "......"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일행이 있는 곳을 잘도 알아서 찾 아온 피닉스가 신기해서 물었건만 피닉스의 대답은 저거다. '난 전설이니까.' 대략 난감. "장난치지 말고 어떻게 찾아온 거냐." "그러니까 전설이라니까." "저기, 피닉스 군. 전설하고 길 찾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건데." "미묘한 관계." "죽고 잡냐?" "아, 아니......" "어서 진실을 말해." "휴우. 어쩔 수 없군. 사실 나에게는 엄청난 능력이 있어." "엄청난......능력?" "응." 허얼, 엄청난 능력이라니. 저 피닉스가? ...... 미, 믿을 수 없다. 물론 먹기 대회에서 엄청난 포스를 발휘해 우승한 건 인정 해 주겠는데, 그것 말고도 엄청난 능력이 있다니! "진짜냐?" "물론." "......" "가르쳐 줄까?" "뭔데?" 난 솔깃했다. 도대체 어떤 엄청난 능력이기에 이렇게 손쉽게 우리를 찾 아온 걸까? 설마 무슨 레이더망처럼 먼 곳까지 살펴볼 수 있는 그런 어 마어마한 능력? 만약에 그렇다면 대박이다. 정찰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될 건 분명하고, 그러면 당연히 나의 정보력도 대폭 상승한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정찰을 보낼 때마다 다른 놈들보다 정찰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느끼 긴 했다. "훗. 가르쳐 주지." 두근두근. 나는 괜히 시간을 끄는 피닉스의 행동에 약간 짜증나기도 했지만 참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 뜸을 들이는 피닉스. 잠시 후 그놈은 피식 웃으면서, "사실 난 미소녀들의 냄새는 잊지 못하거든." "......" "후후후." "저, 저기 피닉스 군,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간단해. 여기에 있는 예은이와 혜경이, 그리고 레니아, 에 리아까지 모든 냄새를 기억했지. 그 냄새로 역추적한 거야." "......" "크크. 엄청난 능력이지?" 엄청난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보면 엄청난 능력일 수도 있다. 그 먼 거리에서 단지 냄새만으로 여기를 찾아올 수 있다는 건 다른 존재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저 피닉스는 해냈다. 분명 엄청난 능력에 속한다. 근데 뭔가 이상한 능력이다. "하하하. 역시 난 전설이야. 찬양하라!" "......"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지만 기대한 내가 미쳤지. 그렇게 피닉스가 다시 합류한 후 우리는 열심히 달렸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말 네 마리가 달린 거지만. "앞으로 30분만 더 가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때 말을 몰던 마부 아저씨가 내게 말했다. "아, 수고하십니다." 30분이라. 이제 얼추 다 도착했군. 해안 마을 데라스에 도 착해서 그 사기꾼 작자가 말한 남자를 만나기만 하면...... 그런데 진짜 제대로 된 정보 맞을까?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나의 불안감은 더 심해지고 있었다. 차라리 다른 존재가 그 정보를 가르쳐 주었다면 이리 불안 하지도 않았을 터. 하지만 이 정보를 제공한 작자가 그 작자 라는 사실 때문에 무지무지 불안하다.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을 가진 채 가던 나는 잠시 후 어색 한 웃음을 지었다. 그 사기꾼 작자가 준 정보는 100% 진짜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건...... 스르륵. 스르륵. 스르륵. 순식간에 마차를 둘러싸는 복면의 남자들. 저분들 덕택이다. "다크프리스트다. 그의 일행도 남김없이 처리해라." "네!" "네!" "네!" 복면을 뒤집어쓴 어쌔신들의 대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안 보인다 했다. "마차 안에 들어가 계세요." 난 당황해서 마차를 세운 채 벌벌 떨고 있는 마부 아저씨를 향해 말한 후 그대로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메이스를 꺼내 드는 나. 오랜만의 전투인데, 이거. 그런데...... "너희는 왜 안 내리니?" "저도 내려야 합니까?" "나도?" "난 전설의 피닉스인데?" "나중에 죽고 싶으면 내리지 말든가." "내, 내리겠습니다!" "내릴게!" "특별히 내려 줄게." 그제야 후다닥 뛰어내리는 가르와 데인, 피닉스 자식. 꼭 한 번에 넘어가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항상 이렇게 공갈협박 을 해야만 말을 듣는 저것들. 왠지 모르게 내 신세가 불쌍하다. "저기, 저도 도와드려요?" 그때 넌지시 한마디 던지는 레니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기서 구경만 해." 나는 그 말과 함께 앞을 바라보았다. 복면의 남자들은 대략 백 명 정도. 꽤 많은 숫자다. 하지만 저것들한테 질 레벨은 아니다. 이래 봬도 좀 험하게 살아서 말이다. 콰앙! "끄악!" 내 라이프 블리지트에 폭발하면서 날아가는 어쌔신들. 확실히 쉽다. 처음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해진 탓인지 저 어 쌔신들의 공격 패턴이 다 읽힌다. "파이어 볼!" 스겅스겅. 마법을 시전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건 분명 가르가 한 것 이고, 검이 살을 베는 소리는 분명 데인. 그리고, ......아무 소리도 안 들려오네. "알아서 굴복해. 난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주의여서." "......" "......" "......" "나 누군지 몰라? 피닉스야, 피닉스!" "......" "......" "......" "전설이라고 불리는 피닉스!" 어쌔신들과 대화를 나누고 계신 피닉스 녀석. 그래. 내가 저 녀석에게 뭘 기대하겠는가? 기대하면 내가 바보지. 하아아. 정리 끝. 백 명. 많은 인원이다. 하지만 머릿수만 많을 뿐 질로 따지면 별가 아니다. 한마디 로 시간 때우기용...... ......! 설마! 그 순간 내 머리를 지나가는 한 가지. 이것들은 단순히 시간 끌기용일 수도 있다. 물론 저들은 내 목숨 노리고 있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도록 유물도 노리고 있다. 그 말은......! "젠장! 어서 데라스로!" 다그닥! 다그닥! 어마어마한 속도다. 나의 재촉에 마차가 낼 수 없는 최대한의 속도를 보여 주듯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마차. 지금 다급하다. 그것도 엄청. "오빠, 왜 그러세요?" "시간 끌기용." "네?" "우리를 습격한 어쌔신들은 시간 끌기용이고 본대는 이미 데라스를 공격하고 있을지도......" "설마......" "그래. 이미 내 쪽에도 내 유물에 대한 정보가 들어갔다는 거지." 나는 예은의 질문에 그렇게 답변해 주었다. 왜 이렇게 생각이 짧았을까. 그 사기꾼 작자가 알 정도의 정보라면 그 괴상망측한 정체 불명의 집단도 분명 알 게 분명했을 텐데 말이다. 괜히 돈에 혹해서 먹기 대회에 참가한 게 후회스럽기만 하 다. 그렇게 약 10분 후. 30분이나 걸린다는 거리를 단 10분 만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 이상이 없네?" 그렇다. 해안 마을 데라스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만약에 습격이라도 당했다면 지금 저 마을은 불타오르거나 아비규환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럴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유저들이 최고의 회를 맛보기 위해 모여들 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좀 오버했나?"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럼 나를 습격한 어쌔신들은? 그리 강한 애들이 아니었는데. 흐으음. 분명 교황청을 습격했던 멤버가 나를 급습했더라 면 고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좀 전에 나를 공격한 어쌔신들은 상당히 실력이 떨 어지는 존재들. 뭔가 좀 이상하다. 슈우욱! 그 순간 나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 그것을 본 나는 피닉스를 한 번 본 뒤 다급하게 외쳤다. "다크 배리어!" "우억! 뭐, 뭐 하는 짓이야!" 채앵! 그 순간 내 배리어와 화살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피닉스의 비명. "실수." "왜 남의 생명력으로 방어막을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실수라니까." "아니야! 고의야!" "실수야, 실수. 그리고 넌 생명력이 바퀴벌레의 1억 배만큼 질기니까 별 상관없잖아. 쩨쩨하기는......" "내가 쩨쩨한 게 아니라, 동료의 생명력으로 방어막을 만드 는 사람이 어딨어!" "네가 이해해라. 이 직업이 원래 그래." "......" "자체적인 방어막 생성 불가." "......" "그나저나 네 질긴 생명력으로 하니까 더럽게 강하다." "......" 그렇다. 피닉스의 생명력을 끌어 와 배리어를 치니까 위력이 장난 아니다. 거의 무적의 방어막이라고 할 정도다. 그만큼 단단하다. 가 끔씩 써먹는 것도 좋을지도? 그나저나, 잔뜩 화가 난 피닉스 녀석의 흥분을 가라앉혀야 겠지? "넌 전설이잖아." "그, 그렇긴 한데."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 줘." "......" "전설적인 피닉스야." "뭐...... 난 전설적이니까 이해해 줄게." 단순한 녀석. 은근히 단순하다. 피닉스라는 놈 말이다. 그나저나, 기습인가? 주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데. "형제여, 편지입니다!" "응?" "화살촉에 편지가!" "편지......?" 나는 가르의 그 말에 다급히 배리어를 걷은 뒤, 내 배리어 와 부딪쳐 땅에 떨어진 화살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가르의 말처럼 화살촉에 편지 한 장이 묶 여 있었다. 뭐지, 이건? 난 궁금증을 잘 참지 못한 성격이기에 곧바로 그 화살에 묶 여 있던 편지를 풀어 버렸다. 쿠헤헤헤. 왜 이리 느려? 이 글씨체는! 그 망할 인간 글씨체다. 다시 말해, 구라의 대명사 세키린 말이다. 그런데 화살을 뭐 그딴 식으로 날리느냔 말이다! 누굴 죽일 생각인 거야? 정의의 용사 두 번째 등장. 아직도 정의의 용사 놀이 안 끝난 거야? 그런 거야? 참 유치하게 논다. 네가 도착하지 않는 바람에 내가 특별히 저 마을을 구해 줬어. 설마......! 마을을 급습한 어쌔신들을 그 작자가 미리 처지했다는 말 아냐? 난 왜 이렇게 멋진 정의의 사나이지? 왜? 왜? 왜? 가르쳐 주 면 좋겠는데 말야. 크하하하하! 나는 왜 이리 정의감이 불타오르 는지 말야. 미친 인간 같으니. 보통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미쳤을 줄은 몰랐다. 완전 상태 뱅뱅이야. 한마디로 말해 완전히 돌아 버 렸다. 어찌 됐든 감사의 인사는 됐어. 그럼 어서 마을에 들어가서 내 가 말한 덴키라는 남자를 찾아. 후후후후후후후후. 그럼 이만. 편지는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마지막 웃음, 무지하게 거슬린다. 뭔가 있다. 확실히 그 덴키라는 남자에게 무언가가...... "또 실패했다는 건가." "죄송합니다." "빌어먹을! 키메라 자식도 도망가 버리고!" "죄송합니다." "제길!" 어쌔신들을 총 관리하는 남자로 보이는 남자는 그 말만 연 신 내뱉을 뿐이었다. 계속해서 실패다. 지난번 키메라가 자신들을 배반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세키린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세키린 그 작자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해안 마을을 공격해 서 덴키라는 남자를 데려올 수 있었는데 말이다. "세키린 후계자의 성장 속도는......" "그게...... 벌써 두 번째 유물까지 찾았을 뿐만 아니라 상 당히 강한 걸로 판단됩니다. 그자를 처리하러 간 백 명의 어 쌔신이 너무도 쉽게 몰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못해도 최소 세 키린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미친! 지금 얼마나 됐다고 세키린 정도의 힘을 가졌 단 말이냐! 그 말은 조금만 더 지나면 놈의 힘을 뛰어넘는다는 얘기 아닌가!" "......그렇습니다." "빌어먹을!" 남자는 황당하다는 듯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다크프리스트가 이 게임을 하지 못하기 위해 도둑 길드의 방해 공작에도 굴하지 않고 최대한 그를 공격했다. 심지어는 유물을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병력을 들여서 교 황청까지 공격해서 전설의 키메라까지 부활시켰다. 하지만 그를 죽이지 못했다. 오히려 그를 강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세키린......과 동급의 힘이라...... 제길, 다크프리스트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계획 자체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결국엔 저지당할 수가 있는데." 그렇다. 그들이 '그 작전'을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힘을 직접 이어 받은 다크프리스트라면 '그것을' 파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준비해 온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모든 것이...... 남자가 말했다. "모든 병력을 다크프리스트의 제거에 돌려라." "그, 그 말은......?" "그렇다. 세키린과 다크프리스트의 후계자 놈들의 제거에 모든 힘을 쏟는다. 지금 '그 작전'을 늦추는 일이 있더라 도......" "......" "알겠냐?" "네, 알겠습니다." [전설의 물고기, 스케리스] "내 돈 내놔!" "저, 저기......!" "이 자식! 세키린 자식이 가져간 내 돈 내놔!" "저, 전 세키린이 아닌데요......" "어찌 됐든 그 자식하고 연관된 거 아냐?! 그리고 다크프리 스트의 유물? 그걸 찾는 거 보면 확실하잖아! 이 자식아, 돈 내 놔!" "......" 도대체 그 인간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나는 해안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덴키라는 남자를 찾았다. 그는 이 마을에서 인맥이 좋은 탓인지, 생각 외로 많은 사 람이 알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이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를 만나고 난 이후가 중요한 것이다. 나는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를 만나자마자, 세키린의 소개를 받고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에 대한 정보를 얻으러 왔 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두 눈을 붉히더니 나보고 돈을 내놓으라고 하신다. 열나게, 아니 순화해서 무지무지 당황스럽다. 나를 보자마자 돈을 내놓으라니...... 도대체 그 작자는 무 슨 짓을 하고 다닌 거란 말인가! "돈 내놔! 내 돈!" "저, 저기, 일단 진정하시고......"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 마구마구 흥분하는 그분. 도대체 얼마를 가져갔기에 저러는 걸까? 한 10골드 정도 되 려나? 그냥 딱 눈감고 내가 갚아 준 뒤 다크프리스트의 정보를 들 어야 되나? 내 머리가 마구 굴러가기 시작한다.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타계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던 나. 결국 한 가지 선택을 해 야 했다. 아니,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깨끗하게 돈 갚고 다크프리스트의 대한 정보를 듣는 수밖 에...... "......얼만데요?" "오호라? 갚는다고? 좋아. 이자는 안 받겠어. 원금만 갚아." "그러니까 그게 얼마냐구요?" "1,000골드." "......"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1,000골......드? "저, 저기 방금...... 한 번만 더......" "1,000골드 내놔." "......" "자!" 그 순간 종이 한 장을 내미는 덴키. 그것은 계약서였다. 세키린의 필체로 추정되는 글씨와 사인이 적혀 있는 계약 서. 대충 그 계약서의 내용을 보아하니, -계약서- 나 세키린은 돈 빌린다. 1,000골드. 오케바리? ...... 계약서치고는 참으로 이상하다. 하지만 확실하다. 그 작자의 필체를 제법 많이 본 나로서는 확실할 수 있었다. 그 인간의 글씨라고. ...... "알겠어? 그 자식이 1,000골드를 빌려 갔단 말이다!" "......" 나 미치겠다. 완전 돌아 버리겠다. 그제야 나는 그 편지에 적혀 있던 기괴한 웃음소리의 의미 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 나에게 자기 대신 돈을 갚게 만 들려는 수작이다. 그런데 설마......? "저,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뭐지?" "그 세키린이라는 작자가 그쪽한테 무슨 정보 같은 거 주 지 않았습니까?" "응. 그런데? 뭐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에 대한 단서인가 뭔 가 그거 알려 주면서, 그것만 알고 있으면 어느 착실한 청년이 와서 자신의 돈을 대신 갚아 줄 거라고 했지." 완전...... 당했다. 으아아악! 그 거지 같은 자식! 나는 절규했다. 그러니까 그 작자는 처음부터 세 번째 유물에 대한 단서를 알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자신이 빚진 금액을 내게 대신 갚 게 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동원한 것. 참으로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비상하다 못해 천재다. "자, 어서 1,000골드 내놔!" "저, 저에게 그런 큰 돈은......" "그럼 뭐야? 나도 그 자식이 가르쳐 준 정보 못 준다!" "......" 이, 이럴 수가. 이때까지 게임을 하면서 최고의 고비를 만났다. 한마디로 1,000골드를 안 내놓으면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에 대한 정보는 물 건너간다는 거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이건 아냐! 이건 아냐! 이건 아냐! 그렇게 절규하던 나. 그런 내가 약간은 안타까웠는지 덴키라는 자가 약간 수그 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뭐, 그럼 돈 대신 딴 걸 받아도 되지." "뭐, 뭔데요?!" 그 말에 눈을 번쩍거리는 나. 지금 다른 거라고 했다. 1,000골드가 아닌 다른 것! "전설의 물고기, 스케리스를 잡아 와. 그럼 그걸로 1,000골 드는 갚은 걸로 해 주지." "......" 전설. 예를 들어 우리는 희귀하거나 엄청 귀한 물건이나 존재를 전설이라고 부른다. 흐으음. 왜 그런지는 모른다. 일단 패스하고. 하여튼 전설이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은 무겁다. 예를 들어, 내 초보자 무기. 전설급에 달하는 무기 데미지다. 그래서 무 섭다. 뭔가 좀 설명이 허술하긴 한데, 어찌 됐든 전설이라는 이름 을 달려면 웬만해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 전설이어야 되니까. 물론 전설이라고 불리는 놈들 중에도 약간 미친놈들도 있 을 것으로 사료된다. 아니, 있다. 일단 새들의 전설, 혹은 신이라고 불리는 피닉스. 붉은색의 날개를 멋들어지게 펼치면서 우아한 자태와 함께 날아다니는 전설 속의 새다. 게다가 절대 죽지 않는다는 부가 옵션도 있어서 모든 사람이 이 피닉스를 한번 보기를 원한다. 그만큼 피닉스라는 이름은 고귀하고 멋지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지금 내 옆에서 마을 여자들에게 집적거리는 저 미친 새. 저놈이 바로 피닉스다. 차마 피닉스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 지만, 바퀴벌레의 1억 배 이상 되는 끈질긴 생명력과 변신한 모습을 본 나로서는 인정해야만 했다. 어찌 됐든 저놈을 보면 전설적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별거 아닌 것 같긴 하지만 그건 저놈이 약간 이상하기 때문이니 패 스. 어찌 됐든 전설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은 정말로 보기 힘들 다. 그런데 저 아저씨가 내게 준 시련(?). 그건 바로, 전설의 물고기 스케리스를 잡아 오라는 것. 앞에 '전설'이란 이름이 붙는 물고기를 말이다. 그 말에 나는 물었다. '어디 사는데요?' 그러자 덴키 왈. '그걸 알면 내가 잡지.' '......' '힌트는 주겠어.' '힌트?' '저 바다에 산다고 전해지고 있다.' '......' '1,000골드를 내놓든가, 전설의 물고기 스케리스를 잡아오 든가 둘 중에 선택해.' 대화 종료다. 그래, 해안 마을이어서 그런지 조금만 나가면 바다다. 그리 고 스케리스는 바닷속에 있단다. ......물고기니까 당연하지! "힘내세요, 오빠." "......고맙다, 예은아." "꼭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글쎄." "......" "어찌 됐든 위로해 줘서 고마워." 축 쳐저 있던 나를 걱정스럽다는 듯 위로해 주는 예은. 역시 천사다. 그래, 희망을 버리지 말자. 저 광활한 바닷속에서 찾을 수 도 있으니까! "못 찾습니다." "못 찾지." "그래요, 절대 못 찾습니다." "가르 말에 동의." "......" 그때, 희망을 찾아가던 내 마음에 초를 치는 두 작자. 한 명은 가르고, 한 명은 데인이다. ......그런데 반문할 수가 없어. 저 보이지도 않는 바닷속에서 전설이라고 불리는 스케리스 를 어찌 찾아. 흐흐흑. "저기, 윤현아." "응?" 그때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보는 혜경. 왜 그러지? "지금 상황에 이런 말 하기는 그런데......" "괜찮아. 말해." "......" "신경 쓰지 말고 말해. 괜찮다니까." "진짜 미안한 정보야." ...... 미안한 정보? 그건 뭐 하는 정보? "전설의 물고기 스케리스는 단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물 고기래." "......" "말 그대로 완전 전설이야. 단 한 번도 모습을 본 존재도 없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대. 오직 전설로만 전해져 오는 물고기. 그게 바로 스케리스......라고." "진......짜?" "응." 이런 미친! 그런 물고기를 무슨 수로 찾느냔 말이다! 저 작자, 지금 보니 그냥 1,000골드를 내놓으라는 무언의 압 박이다! 선심 쓰는 척하더니 모습조차 어찌 생겼는지도 모르는 전 설 속의 물고기를 잡아 오라고 하다니. 한 마디로 그냥 '돈 내놔라'다. 아 놔...... "세 번째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에 단서는 이리 떠나는 거 냐?" 나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엄청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좌절하다니. 흐흐흑. "어이, 미소녀 아가씨. 그 무슨 허황된 정보야?" "예?" 그때 어느새 여자들한테 집적거리다가 차였는지, 돌아온 피닉스가 건들거리는 말투로 혜경에게 말했다. 저 자식은 차 이고 오더니 미친 거냐? "그 정보 잘못됐어." "......" "저, 저기 피닉스 군. 잘못된 정보라니?" "훗. 방금 말한 물고기, 단 한 번도 모습을 본 존재가 없다 는 말. 그거 구라야." "그. 그럴 리가. 확실히 아무도 본 적이 없다고......" "난 봤어." "......!" "나는 봤어. 그러니까. 구라 정보지. 푸헤헤헤." "......" 자, 잠깐. 봤다고? 네가? 그 전설이라고 불리는 물고기, 스케리스인가 뭔가를 피닉 스 네가 봤다고 지금 말하는 거냐? 진짜? "훗. 모두 몰라? 난 전설적인 존재야. 원래 전설적인 애들 끼리는 커뮤니케이션이 형성되어 있지." "......" 허얼? 저 말이 진짜?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절망에 가득 찬 내게 던져진 피닉스의 말이다. 지금 녀석의 말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자기는 본 적이 있 다. 전설적인 존재끼리는 커뮤니케이션이 되기 때문에? 이런 말이다. 난 다급히 개폼을 잡고 있는 피닉스의 몸통을 낚아채면서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어디 있어? 그 물고기! 1,000골드짜리 물고기!" "허억! 자, 잠깐! 놓고 말해!" "아, 미안." ......너무 흥분했다. 진정하자, 진정해. 이렇게 흥분할 필요는 없잖아?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심호흡을 했다. "휴우. 휴우." 그러자 조금씩 진정되는 내 가슴. 나는 피닉스의 몸통을 꽉 잡았던 손도 풀었다. 그런 다음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그래, 피닉스 군. 걔 어디 사니?" "몰라." "......" "내가 어찌 알아?" "잠깐...... 무슨 전설끼리의 커뮤니케이션 어쩌고저쩌고 한 지 별로 안 된 것 같은데?" "응. 400년 전 잠시 연결됐었어. 근데 잘 생각해 보니, 그런 하급 전설하고 퍼펙트한 전설인 나와는 수준이 안 맞는 것 같 아서 교류를 끊었지." "......" "나와 맞는 전설적인 존재는 없더라. 씁쓸해." "......" "왜 그래, 표정이?" 그때 마구 표정이 굳어진 나를 본 피닉스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 자식아! 지금 나랑 장난 치냐!" "흐흐흑. 죄, 죄 없는 나에게 화풀이를......" "죄 없긴, 이 자식아. 꼭 안다는 것처럼 굴더니 하는 말이, 뭐? 지는 퍼펙트한 전설이어서 하급 전설하고는 교류를 끊어? 하아, 나......" "......" "어이없다." 정말 어이없다. 보통 자뻑 증세가 아닌 녀석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 은 몰랐다. 솔직히 말해, 전설도 수준이 있냐? 오늘 난생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하아. 잠깐이지만 피닉스 녀석의 말에 흥분해서 귀를 기울인 내가 바보다, 바보. "그, 그래도 일단은...... 있는 거잖아요. 힘내세요." "그게 과연 힘낼 수 있는 상황인 걸까, 레니아?" "......" "말해 줘." "음...... 그러니까, 힘을 내야지......" "하아......" "아, 맞다. 제가 드릴까요?" "엥?" "저 돈 많아요." "......돈이 많다고?" "제 직업을 잊어버리신 거예요?" "아." 잊어버렸다. 잠시지만 그녀의 직업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녀는 세계 최고의 도둑. 다시 말해, 돈이 엄청 많다. 솔직 히 말해 1,000골드 정도는 그녀에게 큰 액수도 아니다. 하지만 내 성격상 남에게 신세를 지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말이다. "그 마음만 받아 둘게. 고마워, 레니아." "제가 드릴게요." "아니야. 괜찮아. 찾을 거야, 내 힘으로. 그 전설의 물고기 인지 뭔지 하는 스케리스를." 나는 불타올랐다. 그래, 찾는 거다. 못 찾을 이유 따위는 없다. 그래, 찾는 거야! ......더럽게 비싸군. 나는 배를 빌렸다. 5골드나 되는 거금을 주고 말이다. 그 전설인가 뭔가 하는 스케리스를 잡으려면 바다로 나가 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배! 그래서 배를 빌렸다. 물론 엄청 좋은 배도 있긴 하지만 그건 너무 비싸서 빌릴 엄두도 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빌린 꽤나 후들거리 는 배로 만족해야 했다. 근데 가다가 부서지는 건 아니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나는 이 후들거리는 배가 절대 괜찮을 거라는 긍정적인 생 각을 하며 노를 저었다. 물론 나 혼자가 아닌 가르와 데인도 동원됐다. "아, 힘듭니다." "나 힘들어." "조용히 하고 노나 저어." "주여, 저는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나 무일푼으로 일하는 거 정말 안 좋아하는데." 저 자식들을! 녀석들은 노를 저으면서 내내 구시렁거리고 있다. 어째 그 냥 넘어가는 꼴을 못 본다. 그나저나, 그 스케리스라는 놈은 대체 어떻게 생긴 물고기 지? "야, 피닉스." "응?" 유유자적 날아서 오는 피닉스를 부르자 녀석이 대답했다. 나는 피닉스에게 물었다. "그 스케리스라는 놈, 어떻게 생겼냐?" "저렇게." "......?" "똑같이 생겼는데." "......?" 그게 무슨 소리냐? 나는 피닉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라니? 어디, 어디? 나는 그런 의문과 함께 피닉스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곳 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웬 이상한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1미터 정도 크기에 고등어 플러스, 참치 플러스, 굴비 플러 스 갈치를 플러스한 정말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였다. "쟤랑 똑같애." "저기, 피닉스." "응?" "스케리스라는 놈과 닮은 물고기가 또 있냐?" "당연히 없지!" "그러냐?" "응." "...........잡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외쳤다. 저거다. 저 물고기가 스케리스인가 뭔가 하는, 1,000골드짜 리 전설적인 물고기다. 한편 그런 나의 비명을 들은 스케리스는...... 비웃었다. 비웃어? 피식. 분명하다. 내게 물고기 표정을 읽는 재주는 없지만 저건 느 낌상 확실하다. 나를 비웃었다. 저 물고기 자식이......! "나 잡아 보든가. 바보들." "......" 말도 한다. 물고기 주제에 말도 한다. 아니, 이건 중요한 게 아니다. 쟤도 전설에 속하니 그 정도 야 할 수 있다. 하지만 말이다. 마지막 말. '나 잡아 보든가. 바보들'이라니...... 저 물고기 자식을! 슈우욱! "......!" 그 순간, 거의 시속 100킬로미터로 추정되는 속도로 휘이잉 사 라져 버리는 스케리스. 뭐냐...... 제트기냐? "아 참, 스케리스는 최고 속도 140킬로로 헤엄쳐." "그것 참 좋은 정보군, 피닉스 군." "뭘, 나는 잘났잖아." 칭찬 아니다, 이 등신아. 그나저나, 시속 140킬로미터로 헤엄치는 물고기라. 엄청 멋 진데......? 허억허억.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힘들어 죽겠다. 거짓말 안 하고, 이런 중노동 처음이다. "바보 자식들. 크크크." "으아악! 저 자식을 화악!" 금세 사라졌다가 금세 나타나고 또 한 번 깔짝거린 뒤 최고 속도로 사라지는 스케리스. 거짓말 안 하고 사람 스팀 돌게 만든다. 그것도 많이 말이 다. "나 잡아 봐라. 크하하하!" "......" ......죽이고 싶다. 진짜 죽이고 싶다. 사실, 거짓말 안 하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저 정도 물고기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저 자식이 1,000골 드짜리라는 것이다. 생포해야만 한다. 내가 저 자식을 공격하면 곱게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소멸이거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게 분명하다. 그런 거 가지고 잡았어요라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 니 저 자식을 생포해야 한다. 생포...... 번쩍. 그 순간, 내 앞의 엄청나게 긴 밧줄을 보고 눈을 번쩍이는 나. 크크크...... 그래, 좋아. "모두 잘 보도록. 수상비(水上飛)라는 걸 보여 주지. 크크 크. 데인, 가르. 이 줄 꽉 잡아라." "......?" "......?" 나는 밧줄의 끝 부분을 가르와 데인에게 건네주었고, 나도 반대쪽 끝 부분을 잡은 뒤 녀석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왜 못 잡냐. 등신 새끼들아~." 그때 다시 나타난 스케리스. 나는 웃었다. "다크 헤이스트." "허억!" 그 순간 내 몸을 감싸는 엄청난 스피드. 하지만 이것만으로 역부족이다. 내가 바다 위를 활보하기 위해서는 이게 필수다. 바로 밧 줄. 슈우욱. 그때 엄청난 속도로 도망가는 녀석. 나는 녀석을 보고 그대 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밧줄을 물에 뜨게 한 뒤 그대 로 움직이면서 몸에 묶여 있는 밧줄을 풀기 시작했다. 자, 이게 전설의 수상비다. "넌 죽었어!" "......" "잡아 왔습니다. 후후후." "이게...... 스케리스인가?" "확실합니다. 이런 물고기는 다 뒤져 봐도 없어요." "놔! 놔! 이 등신들아! 내가 누군지 않아? 나 스케리스 야!" 그 순간 지가 스케리스라고 떠드는 물고기. 그 말을 들은 덴키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더니. "실제로 존재할 줄이야." ......저 말을 해석하면, 아까 전에는 자비를 베푼 척했다는 얘기다. 그냥 1,000골드를 내놓으라는 소리였다는 결론이 나 온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 돈은 못 주겠다. 크크크. "그럼 계약은 성립됐습니다." "......알았네." 안타깝다는 얼굴을 하는 덴키. 휴우. 나도 몰랐다. 실제로 저놈을 잡을 수 있을지 말이다. 그나저나...... "이제 그 작자가 해 준 얘기를 들려주세요." "응? 아, 세키린 그 인간이 이 단 한 마디만 했네." "뭐요?" "마물의 숲으로 가라고 말야." "......마물의 숲!" 순간, 마물의 숲이라는 말에 경악에 찬 외침을 터뜨리는 혜 경.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그녀가 저런 반응을? "마물의 숲...... 이 세계 모든 몬스터가 모여 있는 숲이야. 하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거기에 있는 모든 몬스터가 비 정상적으로 강해. 어떤 특정한 힘을 받았기 때문에." "그, 그럴 수가." 지금 나보고 그런 곳에 가라는 거냐? 이 사기꾼 작자! "아직 말 안 끝났네." 그 순간 다시 들려오는 덴키의 한마디. 안 끝났다고? "그 마물의 숲에서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를 찾으라 하더라 고." 드래곤......로드 세르키스? 미치겠다. 이제 드래곤 로드까지 등장하는 거냐? 하아, 골 때린다. 마물의 숲에 가야 할 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를 만나라니. 도대체 이 빌어먹을 사기꾼 작자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조차 불가능 하다. [선물] 드래곤 로드라. 이 무슨 개뼈다귀 하이킥 하는 소리란 말인가. 세 번째 유물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고 흥분하던 내게, 그 흥분을 단숨에 잠재우는 한마디. 마물의 숲에 가서 드래곤 로드를 찾아라. ......정말 할 말 없게 만든다. "야. 무슨 얼굴이 그러냐?" 그때 한숨을 내쉬던 나의 얼굴을 봤는지 영현이 녀석이 다 가오더니 대뜸 그렇게 물었다. 난 그런 영현에게 힘없는 목소 리로 말했다. "드래곤은 멋진 생물일까?" "미쳤냐?" "......." "갑자기 웬 드래곤 타령이야." "그러게 말이다." "......?" 나의 이상한 반응에 얼굴에 물음표를 띠는 영현이 녀석. 네가 이 심정을 이해하기는 무리다. 이 심오한 마음을 말이다. "그나저나, 언제 만날 거냐? 네가 프리스트 됐다고 한 자는 꽤 된 것 같은데 언제 보여 줄 건데?" "......" "설마 구라?" "아니다. 프리스트는 맞아." "......?" "그래, 프리스트는 맞지." 말 그대로, 프리스트인 건 맞다. 앞에 다크라는 글자가 달렸을 뿐. "네놈이 주는 힐 한번 받아 봤으면 좋겠다." "내 힐을 받는다고?" "응. 프리스트라며? 그럼 당연히 파티 사냥하다가 힐 받는 게 당연하잖아." "뒈질 텐데." "응?" "아니다." "......?" 내 힐 받으면 넌 죽는다. 상처 회복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게 바로 내 힐이었으니까, 방과 후. 나는 기운이 빠진 모습으로 터벅터벅 교문을 향하고 있었 다. 걱정이 태산 같다. 오늘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마물의 숲인가 뭔가에 가서 드 래곤 로드를 만나야 한다. 그냥 드래곤도 아니라 드래곤 로드. 한마디로 드래곤 중 최고의 힘을 가진 드래곤이다. 하아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드래곤 로드와 다크프리스트의 연관성이라니. 이 직업이 평범이란 단어와는 안드로메다만큼이나 거리가 먼 직업인지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드래곤 로드라는 이름까 지 거론될 줄을 몰랐다. 도대체 이 직업......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거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의문만 증폭된다. 하아아. 그렇게 깊게 한숨을 내쉬면서 집에 가려던 나의 시선이 갑 자기 한쪽으로 쏠렸다. 왜 그러냐 하면......, 웅성웅성. 웅성웅성. "쟤 누구야?" "뭐야. 연예인 차예은이랑 맞먹을 정도로 예쁜 애가 존재했어?" "진짜 죽인다." "하아아. 미치겠네." "정말 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감사한다." 뭐지...... 이 이상한 대사들은? 교문에는 약간 오버해서 전교생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학 생들이 왕창 몰린 상태다. 다시 말하면, 사람으로 막혀서 교문을 나가기고 곤란하다 는 소리! "나, 나랑 사귀어 줘!" "첫눈에 반했어!" "제발." 별 거지 같은 소리들도 들려온다. 본 지 얼마나 됐다고 고백이냐? 뭐, 남학교에 미녀 한 명이 등장하면 이런 경우도...... 자, 잠깐. 예은이와 동급의 미소녀? 허억! 서, 설마. 나는 재빨리 법석을 떠는 남자 녀석들의 틈을 강제로 비집 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설마...... 그렇게 한참을 남자들의 숲을 헤치고 나간 나. 이윽고, 수 많은 남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장본인이 내 눈에 클로즈 업 된다. "혜......경아?" "유, 윤현아." 그곳에는 너무나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모 습이 있었다. 아마도 잔뜩 몰려들어 별짓을 다 해 대는 남자 녀석들 때문 일 것이다. 물론 그런 그녀를 검은색의 양복을 입고 선글라스 를 낀 여자 보디가드가 보호하고 있었지만. "뭐, 뭐야? 유현이 애인이야?" "제길. 잘못 건드리면 우리 죽어." "튀어, 튀어!" "제길, 능력도 좋은 자식. 차예은하고 비교해도 손색이 없 을 정도의 궁극의 초미소녀와 사귀다니." "......부럽다." "젠장!" 그러면서 우르르 사라지는 남학생들. 내가 뭐 되게 불량한 놈인지 알겠다? 나같이 순수한 애가 말이다. "휴우우." 남학생들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한숨을 내쉬는 그녀. 나는 혜경에게 천천히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 "응......" "아무래도 남학교다 보니 너 같은 미소녀가 오면 이 모양 이니 이해해 줘." "유, 윤현아." "응?" "치, 칭찬하지 마. 쑥스러워." "칭찬이긴. 사실이잖아." "......"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칭찬 아니다. 완벽한 사실일 뿐이다. 그나저나 그녀가 갑자기 우리 학교를 찾아오다니 무슨 일 이지? 1시간 뒤면 게임에서 만날 텐데 말이다. 한편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혜경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어제 가기 전에 말하려고 했는데, 마물의 숲 얘기랑 드래 곤 로드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잊어버렸어. 헤헤." "......" 귀, 귀여워. 나는 쑥스러운 듯 웃는 그녀를 보고 그냥 굳어 버렸다. 혜경의 미소 속에 이런 슈퍼 스킬이 있었다니, 대단하군. 그나저나, 무슨 얘기지? "사실 내일 아빠 생신이시거든. 근데 아빠가 뭘 받으시면 좋아하실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윤현이 네 도움 좀 받으려 고...... 안 될까?" "아, 안 되긴! 절대 돼!" 그렇다. 안 될 리가 없다. 한마디로, 아버지 생일 선물을 고르기 위해 나를 고용해 준 다는 소린가? 기쁘다. 그런데...... "전화 한 통만 했으면 내가 갔을 텐데 굳이 힘들게 올 필요 없었잖아." "응? 윤현이 헨드폰 꺼져 있던걸." "엥?" 나는 그 말에 당장 오른쪽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고, 거기에는 액정 이 검게 변한 내 휴대폰이 계셨다. "......배터리 다 나갔다. "......" 배터리가 하나도 없어서 자동으로 꺼진 상태였던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캔디폰(연락이 자주 없는 휴대폰)이다 보니 신경을 잘 쓰지 않는 주의였고, 이렇게 휴대폰 배터리가 나간 줄도 모르는 일은 자주 일어났다. "......미안." "미, 미안할 것까지야......" "아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앞으로는 휴대폰 관리도 해야겠다. 혹, 예은이나 혜경에게 연락이 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때 혜경이 고민 어린 얼굴을 하더니 말했다. "윤현아, 아버지 생일에 뭘 선물하면 좋을까?" "글쎄." 나는 혜경이의 물음에 선뜻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내가 중년 아저씨들의 취향을 알 리는 없으니까. 아, 참......! "술 어때, 술?" "안 돼." "......응?" "아빠. 너무 술 좋아하셔서 지금 좀 끊으셔야 돼." 그 말과 함께 새침한 표정을 짓는 혜경. 아버지의 건강까지 생각하다니, 너무 착하다. "그런데 윤현이 너, 술 마셔?" "아, 아니. 절대 안 마셔." "진짜?" "응!" "난 개인적으로 술하고 담배 안 하는 남자가 좋거든. 뭐, 윤 현이가 한다고 해도...... 변함은 없지만." 불그레. 무슨 말인지 해석이 불가능하다. 내가 술과 담배를 해도 변함이 없다니, 뭐가? 그리고 얼굴은 왜 살짝 붉어지는 거지? 이해가 안 되는구나. 하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절대 술 담배는 안 할 것이다. 방금 혜경의 한마디 때문이라 도. 개인적으로 술하고 담배 안 하는 남자가 좋거든...... 이 말 이 내 마음을 강타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크크크. "음, 몸에도 좋고 좀 기억에 남는 선물이 없을까? 윤현아, 부탁해!" 나를 간절히 바라보면서 말하는 혜경.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면 심히 부담된다. 하지만 그 누구의 부탁도 아니고 혜경의 부탁이다. 당연히 들어줘야 한다. 중년 남성이 좋아하는 선물이라...... 빨간 내복?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양말? 그것도 좀 그렇네. 흐으음...... 회와 한 잔의 소주? 소주는 술이니까 안 되고, 정말 곤란하다. 하아, 중년 남성에게 줄 선 물을 정하는 게 이리 힘들 줄이야......! "없을까?" "일단 근처 커피숍으라도 들어가서 같이 생각하자." "응!" 우리는 아직 교문 앞이었기 때문에 학교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져서 부담됐기에 근처 커피숍을 권했다. 그나저나, 혜경이 교복...... 상당히 예쁘네. 푸른색으로 이루어진 교복과 블라우스. 물론 혜경이 워낙 본바탕이 되니 어떤 교복을 읽어도 완벽해 보이겠지만, 특히 교복 자체가 예쁜 것 같다. 그에 반해 우리 학교 교복은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폼 따위 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디자인이다. 정말 우리 학교 교복이 제일 구리다. 이건 내 생각만이 아니라 인터넷 순위에서도 확인된 사실 이다. 전국에서 교복이 제일 구려 보이는 학교는? 그건 바로 우리 학교. 제길...... 헤벌레. "......" "......" 우리는 심히 부담스러웠다. 왜냐하면 커피숍에 들어와도 시선이 몰리는 건 여전했으니 까. 아니, 오히려 남자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사람이 두세 명 있었던 커피숍은 어느새 자리조차도 없어 질 정도로 붐비고 있었다. 물론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우리에게, 아니 정확히는 혜경에게 집중 되고 있었다. "혜경아, 넌 참 밖에 나오기 힘들겠어." "응?" "지금처럼 시선이 몰리니까." "......" "예쁜 것도 죄라니까." "유, 윤현아. 자꾸 그러지 마. 진짜 쑥스러워." "사실인데, 뭐." "......" "솔직히 예은이랑 네가 전 세계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 는걸." "......" 내 칭찬에 얼굴이 붉어지는 그녀. 하지만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 국 어느 사람들에게 물어봐라. 예은이와 혜경이만큼 예쁜 애 들이 있느냐 이 말이다. 그나저나, 신기한 건...... "저분 석상 같으시다." "아, 저 언니...... 좀 말이 없어." "아예 없는 것 같아." 마치 유령처럼 혜경 옆에만 가만히 붙어 계시는 보디가드 분. 정말 석상 같다. 말 한 마디 안 하고 가만히 없는 것처럼 그냥 있을 뿐이다. "그래도 언니 엄청 싸움 잘해. 전국 보디가들 중 10위 안에 들 정도래." "흐으음?" 그럴 것 같기는 하다. 묵묵히 있는 듯싶지만 주위 남자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 었다. 난리 치는 것까지는 봐주는 것 같은데, 혜경에게 스킨십을 한다든가 가까이 접근하려는 놈들은 저분에 손에 다 날아갈 것 같다. "그나저나, 정말 무슨 선물을 사지?" 그 말과 함께 고민에 빠진 얼굴을 하는 혜경. 그런데...... 너무 귀엽다! 크아악! 왜 저런 모습조차도 귀엽단 말이야?! 왜! 왜! 왜! 누가 나에게 이유를 가르쳐 주란 말이다. "윤현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 "윤현아?" "아." "무슨 생각을 그렇기 하기에 불러도 반응이 없어." "아, 아무것도 아냐. 하하하." 네가 너무 귀여운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무안해서 말이다. "혜경이 아버지 선물로 뭐가 좋을까." "그러게. 몸에 좋은 건 엄청 비쌀 텐데." "흐으음." 그렇긴 하다. 지금 혜경이 원하는 건 아마도 아버지의 몸에 좋은 건강식 품 같은 것인 듯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액수가 좀 크다. 학생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부담되는 가격이다. 그렇게 고민에 잠긴 나와 혜경. 한참을 그렇게 있었을까. 난 눈을 번쩍였다. 왜 그런 반응을 보였냐 하면, 커피숍 한구석에 붙은 광고지 때문이랄까? -파이터 스트레션- 파이터 스트레션에 도전할 용감한 용사들을 구합니다. 토너먼트로 진행되며, 우승자에게는 엄청난 상금이 지금됩니 다. 1등: 산삼 2등: 64인치 텔레비전 3등: 최고급 컴퓨터 산삼! 산삼이다. 홍삼도 아니고, 산삼이다. 최고 못해도 약 1,000만 원 정도를 상회하는 엄청 비싼 건 강식품 산삼이다. "저거다!" "응?" "파이터 스트레션." "엥?" 내 말에 내 시선이 머문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혜경. 그리고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저, 저기는 최고 고수들만 나오는 대화라고......!" "걱정 마. 해볼 만할 테니까." "......" "그래서 우승해서 산삼을 타 줄게." "윤현아, 혹 산삼을 타더라도 그걸 나한테 주면 나 무지 부 담돼." 곤란하다는 듯 말하는 혜경. 난 그런 그녀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넌 나의 희망이잖아." "......" 맞다. 나의 희망. 게임 안에서 왠 날파리 같은 놈들이 설치는 가운데 묵묵히 피어 있는 꽃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그 외에도 그녀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있었다. 이 정도로 못해 줄 건 없다. 오랜만에 몸 푸는 것도 좋고 말이다. 혜경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윤현의 말 한마디 때문에. '넌 나의 희망이잖아.' 이 말 한마디에 말이다. 물론 윤현이 별다른 의미를 담아 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녀 는 그 말에 좀처럼 침착을 되찾을 수 없었다. 아니, 그녀뿐만 아니라 어떤 여자라 하더라도 저런 말을 들 었다면 혜경과 같은 생각을 할 게 분명했다. '고백......해 볼까?' 혜경은 마음속으로 조심스레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만약에 거절당하면 지금처럼 지낼 수 없을 게 분명했기 때 문이다. 파이터 스트레션. 가상 격투 온라인 게임이다. 이 게임이 나오기 전까지는 K1이나 프라이드가 대세였다. 하지만 이 게임이 출시된 이후 K1이나 프라이드는 말 그대 로 잠수를 해 버렸다. 한 마디로, 망했다. 온라인 게임이니만큼 안전성 면에서는 고려할 필요도 없었 고, K1이나 프라이드보다 더욱 강렬한 액션을 느낄 수 있었 다. 그리고 안전성이 보장되는 만큼 무기도 다양해졌다. 예를 들어, 너클. 이런 걸 현실에서 사용할 경우 심각한 부상을 당한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상관없다. 물론, 현실보다는 약하긴 하지만 맞을 때의 고통은 좀 더 리얼한 액션을 느끼게 하기 위해 롤플레잉 게임보다는 강도 가 강하다. 그리고 또한 현실세계에서의 싸움 실력을 모두 끌어 올 수 있었다. 뭐, 그건 당연한 건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결승전에 진출한 선수 중에 학생이 있습니다! 18살!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합니다! 이름은 김윤현. 정말 대단합니다!" 그때 들려온 사회자의 목소리. 그 말에 나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미 게임에 접속 중이다. 그리고 아주 스피드하게 결승까 지 고고. 사실 실력자가 무척 많았다. 하지만 지난번에도 말했다시 피 나는 남들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운동 실력을 가지고 있다 고 해야 하나? 그 덕분에 순간 스피드나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어 내는 등, 상당히 싸움에 필요한 능력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오만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패배라는 단어를 맛본 적이 없는 나다. "자, 그럼 이 학생의 대적 상대는......! 오오오. 나이가 이 학생과 동갑입니다. 하지만 중국인입니다. 이름은 린 하오, 중 국 소림사에서 직접 무술의 대단함을 선보이기 위해 출현했 다는군요." 뭐, 뭐냐? 소림사?! 그 순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빡빡이. 한 마디로, 머리카락이 없었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소림무승의 복장을 하고 계신다. 그뿐만이 아니다. 양손으로 봉을 들고 있다. 봉 말이다. 한 마디로 무기...... 소림사라는 말만 들어도 위축되는데 무기까지 들고 있다 니. "린 하오는 지금 소림사 안에서도 상당한 실력자로 소문이 나 있다고 합니다. 지난번 저희 한국 방송에도 출연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자입니다. 이런 실력자를 만난 김윤 현 군.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희망은 버리지 마시 길 바랍니다!" 지금 저 아저씨 나를 응원하는 건가? 아닌 것 같다. 꼭 질 거라는 듯한 말투다. 기분 나쁘게. 물론 상대방은 강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포스가 확확 느껴 질 정도로. 키는 180센티미터 정도에 제법 잘생긴 얼굴. 스님만 아니라 면 연예인 해도 되겠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저 두 손에 쥐어진 봉. 맞으면 무지 아플 것 같다. "그나저나, 윤현 군은 아무런 무기 없이 주먹인가요?" 그때 들려오는 사회자의 물음. 난 그 물음에 사회자를 보면서 물었다. "메이스 없어요?" "......메, 메이스라니요." 당황한 듯 더듬거리는 사회자 아저씨. 좀 무리한 요구였나? 사실 무기라고 해 봤자 쓸 줄 아는 건 메이스뿐. 다른 무기는 줘도 못 쓴다.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신경 끄세요." 나는 그 말과 함께 자세를 다 잡았다. 내 앞에 있는 저 소림 사 유망주와 싸우기 위해서. 이길 수 있을까? 분명 내 앞에 있는 존재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엄청난 훈련 을 받은 소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 반해 나는 운동신경이 남보다 많이 좋을 뿐, 격투 훈련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국민 격투기인 태권도 하나도 할 줄 모른다. 나의 싸움법은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그 틈을 노려 최소한 의 힘으로 최대한의 데미지를 주는 방법이다. "잘......부탁드립......니다." 두 손을 모으더니 어눌한 한국어로 말하는 소림사 소년. 나 역시 긴장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저도 잘 부탁합니다." "어, 언니, 이길 수 있을까요?" "무리입니다." 혜경의 초조한 질문에 그녀의 보디가드 가연이 딱 잘라서 말했다. 그녀가 보기에는 절대 불가능했다. 윤현이 제법 괜찮은 싸 움 실력을 가진 건 알고 있다. 지난번 혜경에게 스토커 이야 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말이다. 하지만 윤현의 앞에 있는 상대는 격이 다르다. 건달이나 스 토커와는 차원이 달랐다. 자신조차도 단 몇 분도 견디지 못할 것 같을 정도로 엄청난 고수였다. 휘익 제길! 빠르다! 나의 배를 찔러 오는 봉. 너무 빠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본 스피드 중 최고다. 아니, 물론 게임 안에서 본 것은 제외하고. 난 배를 향해 찔러 들어오는 봉을 보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당연히 그 봉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봉은 허무하게 나를 스쳐 지나갔고, 순간 자연스럽 게 찌르기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허점이 보였다. 확실히 찌르기는 공격력 면에서는 좋다. 속도도 엄청 빠르 고, 하지만 실패하면 다른 공격보다 허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리고 이제...... "......!"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찌르기 직후 드러난 허점을 보여 상대방의 얼굴을 가격하 려던 나. 하지만 이미 상대는 방어태세가 끝난 상태다. 그 말은...... 찌르기 직후 곧바로 자세를 취했다는 것! "장난 아닌데......" "꽤...... 재......미있겠군요." "......글쎄."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강한 자는 좋아하 지. 옛날 같았으면 100% 졌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 안에서 기 른 시각이라든가 스피드 같은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 랐다. "갑......니다." 소년의 어눌한 한국어가 들려오자 그 말에 나는 그대로 달 려들었다. 이렇게 되면 공격뿐이다. 공격만이 살길이다. 퍼억! 크윽. 내 복부에 꽂힌 봉. 아프다. 역시 더럽게 아프다. 예상한 대로 상대바으이 봉은 무지무지, 쌈박하게 아팠다. 한 마디로, 많이 아프다는 뜻이다. "이......런." 그때, 그 소림사 소년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 그렇다. 지금 내 오른팔이 소년의 배에 정확히 꽂혀 들어갔 던 것이다. 근데 무슨 강철을 때리는 기분이다. 지금 웃고는 있지만 발 이 마비되는 것 같은 이 기분. 사람 배 때리고 이런 기분 느끼는 건 별로 흔치 않은 경험 이다. "대......단하군요." "내......가 할 말이야. 쿨럭." 우리는 사이좋게 배에 한 방씩 먹여 줬다. 그 소년은 봉으로, 난 발로 말이다. 근데 데미지로 봤을 때는 내가 맞은 데미지가 더 컸다. 한 대 맞은 것만으로도, 거짓말 안 보태고 정말 죽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잠깐의 대화 후, 우리는 서로에게서 서서히 거리를 벌렸다. 정말 강하다. 벌써 싸운 지 20분이 다 되어 간다. 시간이 더 지나면 내가 불리하다.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따져도 저분이 더 강한 것 같 으니까. "하아압!" 그 순간 또다시 봉으로 찌르기를 시도하는 그분. 나는 눈을 번쩍거렸다. 왜 번쩍거리냐고? 이걸 기다렸으니까. 봉은 이번에는 내 가슴팍을 노리고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봉에서 눈을 한시도 떼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성공해야 한다. '그걸' 말이다. 내 가슴과 봉과의 거리가 약 4, 50센티미터로 가까워졌을 때, 나는 있는 힘껏 그 자리에서 하늘로 도약했다. 거의 2미터 가까이 점프하자, 그런 나의 행동에 저 소림사 소년은 당황했다. 하지만 내 알 바 아니다. 당황하면 나야 좋지. 그렇게 난 곧바로 소년의 봉 위에 올라탔다. 거의 서커스 수준이다. 하지만 봉 위에 탄 것만으로 끝나면 안 된다. 그대 로 달려야 한다. 봉 위를...... 스스슥! "......!" 자신의 봉을 타고 달리는 나를 보고 너무나도 당황해서 굳 어 버린 소림승. 나는 그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날다시피 해서 560도 발차기로 그의 머리를 가격했 다. 퍼억!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겼나? 잠시 후, 나는 땅에 착륙해서 앞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녹다운되어 땅에 쓰러진 소림승의 모습이 있었다. "......이, 이겼습니다! 소림사 유망주로 불리는 린 하오를 우리 한국인이 꺾었습니다! 대단합니다!" 사회자의 경악에 찬 외침. 이겼다. 꿈만 같다. 사실 이번 공격을 실패했다면 내가 졌을 것이다. 서서히 체 력이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녀석이 찌르 기를 해 주었고 그걸 기다렸던 나는 지금의 공격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연은 믿을 수가 없었다. 진짜 이겼다. 저 고수를 말이다. "윤현이...... 엄청나게 싸움...... 잘한다." 혜경조차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그 말에 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군요. 정말 엄청난 실력자입니다. 체계적으로 무술을 배운 흔적은 없지만 싸움의 응용법이 엄청나네요." "게임에서도 정말 엄청나요." "......?" "게임에서는 다크프리스트를 하고 있거든요. 엄청난 신체 반응과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던걸요." "다크......프리스트라니요? 프리스트는 들어 봤어도 그런 직업은 처음이군요." "헤헤. 그게 좀 심오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직업이에요. 간단히 말해, 프리스트의 반대?" "......" 가연은 혜경의 말이 알쏭달송하기만 했다. 다크프리스트라니, 생전 처음 듣는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혜, 혜경아, 이게 뭐냐?" "산삼이요." "산......삼!" 그 말에 혜경의 아버지는 경악했다. 산삼이라니, 그 비싸고 비싼 산삼? 이 비싼 산삼을 어떻게...... 혜경의 아버지는 설마 했다. 하지만...... 산삼을 살 정도의 돈을 모으는 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바로 원조교제! 자기 딸과 같은 절대 미소녀라면 어떤 재벌가 남자가 몇 억 이라도 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혜경이는 단 한 번도 부모의 속을 썩인 적이 없던 딸이다. 그런데...... 그런데...... "너 설마 원조교제를......!" "아빠!" "......?" "무슨 이상한 소리예요!" "......" "제가 무슨 원조교제예요! 하아." 기가 막히다는 듯 소리치는 혜경. 남자의 손도 제대로 잡아 본 적 없는 그녀다. 아니, 윤현의 손은 몇 번 잡아 본 적이 있지만 그 외 남자와 는 손도 잡아 본 적 없다. 그런데 원조교제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 그럼 어떻게 산삼을......?" "윤현이가 상품으로 타 줬어요." "윤현이? 아, 사위?" "사, 사위라니요......" 사위라는 말에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이는 혜경. 하지만 듣기 싫은 말은 아니었나 보다. "근데 사위가 무슨 일로 상품을?" "파이터 스트레션에서 우승했어요." "거기에서?!" 그 말에 혜경의 아버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 다. 격투기를 좋아하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파이터 스트레션 에 대해서 말이다. 아니,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유명 한 격투 게임 대회다. 그런 데서 우승을? "오늘 윤현인가 소림사의 유명한 린 하오인가라는 남자를 이기고 따 낸 거예요." "린 하오!" 그 말에 더욱더 놀라는 혜경이 아버지. 그를 텔레비젼에서 본 적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실력자인 린 하오를 이기다니, 정 말 놀라울 뿐이다. "우리 사위, 능력 좋군." "아빠, 자꾸 그러지 마요." "싫지는 않은가 보지?" "......" "어찌 됐든 정말 우리 사위, 능력이 좋아. 크크크." 윤현이 꽤나 마음에 들던 차이기에 그가 선물을 타 줬다는 말에 더욱더 호감이 상승했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혜경의 아버지가 딸을 반히 쳐다보더 니 문득 입을 열었다. "그래, 결혼은 언제쯤?" "겨, 결혼이라니요. 유, 윤현이랑은 아무 사이도 아닌걸 요......" 왠지 기운 없이 말하는 그녀. 혜경의 아버지는 그런 딸을 보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쯧쯧. 내 딸이지만, 정말 완벽한 외모를 가지고도 남자 한 명 제대로 못 꼬시다니." "......" "안타깝도다. 라이벌도 없을 텐데." "......있어요." "응?" "윤현이 옆에...... 예은이라는 예쁜 애가 붙어 있어요." "예은이? 그게 누구야?" "차......예은이요." "뭐?!" 차예은이라는 말에 혜경의 아버지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차예은. 자신조차도 아는 유명 아이돌이다. 그만큼 그녀가 유명하 다는 뜻이다. "게임 속에서 저랑 같이 다니는걸요." "......" "그리고...... 제 생각에, 예은이도 윤현이를 좋아하는 것 같단 말이에요." 그 말과 함께 울상을 짓는 그녀. 그 모습을 본 혜경의 아버지가 턱을 짚더니 입을 열었다. "흐으음. 그렇군. 우리 사위, 정말 능력도 좋아. 그래그래. 하지만 이 아버지가 비법을 전수해 주마." "비법......이라니요?" "남자의 희망이 뭔지 아나, 딸?" "남자의 희망이라니요? 그게 뭐예요?" "쯧쯧. 그것도 모르면서 남자를 좋아하다니." "......" "내 친히 가르쳐 줄 테니 잘 실행하도록." "......네." 그 말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아버지는 자신이 윤현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 굳이 감출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알몸 에어프런." "......" "알몸에 앞치마를 두르는 거지." "......" "그럼 다 넘...... 끄아악!" 그 순간 집이 부서질 정도로 비명을 지르는 혜경 아버지. 그 옆에는 어느새 왔는지 그의 옆구리를 확 꼬집고 있는 어 머니가 있었다. "여보...... 딸한테 그런 이상한 정보 주지 말래요?" "이, 이상한 정보라니. 이건 100%...... 끄아악!" 다시 한 번 손톱이 돌아가자 또 한 차례 비명을 지르는 혜 경 아버지. 그리고 혜경이 아버지는 귀가 잡힌 채 혜경이 어머니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딸에게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 았다. "이상한 아버지 말은 다 무시하고, 엄마가 생각하기에는 네 진심이 전해져야 할 것 같아.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거든." 나의 진심...... 그 말에 그녀는 고민에 잠겼다. [마물의 숲] "저......혜경아." "으응?"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아, 아니야! 저, 절대 그런 거 없어." "근데 왜 내 시선을 피해?" "......"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할게." "아, 아니라니까." ......이상하다. 어제 이후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지 못한다. 아니, 바라보면 얼굴을 붉힌 채 그대로 외면하신다. 왜? 왜? 왜?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진짜 아무것도 아냐. 신경 쓰지 마." "진짜?" "응." "......" 근데 말을 하면서도 역시 눈은 안 마주친다. 왜지? 왜지? 왜?! 하지만 화난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왜 나랑 눈을 맞추지 못하는 걸까? 그것 참 심히 궁금할 뿐이다. "저, 오빠." "응. 왜 그래, 예은아?" "아, 아뇨." ......오늘 왜 이러지? 여자들이. 예은은 자신도 모르게 불안했다. 여자의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어제와 오늘...... 혜경 언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윤현을 대하는 분위기 말이다. 그런 탓에 자신도 모르게 윤현을 부른 것이다. 이 이상한 분위기가 더욱 진행되기 전에. 그나저나, 마물의 숲이라. 골치 아프다. 사실 드래곤 로드를 찾는 것보다 더 골치 아픈 게 마물의 숲이다. 혜경의 정보에 따르면, 한 발자국에 몬스터 한 마리란 다. 그만큼 엄청나게 많은 숫자와 더불어 엄청나게 강한 힘을 가진 몬스터들이 모인 곳이 마물의 숲이다. 하아아. "골치 아프군." 일단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를 찾으려면 저 안에 들어가야 하는 건 필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들어가는 건 불가능. 몬스터가 개떼 처럼 모여 있는 곳에 스스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다. "야, 피닉스." "왜?" "저 마물의 숲, 대충 정찰하고 와 봐." "내가 왜? 내가 왜 정찰을 해야 되는지 그 이유를 1억4천 가지만 대 봐. 그럼 친히 정찰 다녀와 줄게." "죽고 잡냐?" "......" "간단히 말하지. 샤브샤브가 되려면 가만히 있고, 안 되려 면 정찰하고 오도록." "쳇......" 샤브샤브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마물의 숲으로 들어가는 피닉스. 꼭 이런 다정다감(?)한 언어를 사용해야만 말을 듣는 새라 니까. "큰일 났어!" "......?" 정찰하러 간 지 20분. 피닉스는 돌아왔다. 하지만 그냥 돌아오지는 않았다. 엄청난 비명을 지르면서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큰일 났다니? "비상! 비상! 비상!" "도대체 왜 그러냐?" 내가 다급해 하는 피닉스를 향해 묻자, 그런 나의 물음에 녀석은, "그놈이 있어!" "그놈?" "지난번 그 키메라!" "그 키메라라니? 그게...... 아." 설마...... 그때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한 키메라. 아니, 내가 이 게 임 접속한 이후 지금까지 본 키메라라고는 그 자식밖에 없다. "그때 날아서 도망간 키메라를 말하는 거냐?" "응, 응! 저기서 짱 먹었나 봐." "......" "그 키메라의 말에 복종하는 몬스터들을 내가 봤다고!" "......" 미치겠다. 피닉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 마물의 숲에는 이 세계 모든 몬스터들이 모여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전설 속의 키메라도 있다 는 것이다.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몬스터들에게 대장 취급을 받고 계신단다. 이건 내가 상상한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훨씬 심하다. 사실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던 일. 정말 머리 아파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아아. 순간, 그렇게 고민에 잠긴 내 머릿속을 번쩍 스치고 지나가 는 한 분의 모습! 난 곧바로 혜경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움찔거리는 그녀. 절대 이상한 의미는 아니다. "혜경아." "으응?" "......부탁해." "......" "너희 길드 마스터 있지?" "......?" "그분에게 물어봐 줘. 그분이라면 알 수도 있어. 마물의 숲 에서 몬스터와 부딪치지 않는 방법을 말야." 도둑 길드 마스터. 내가 아는 존재 중 최고의 정보력을 가진 자다. 아니, 내가 아는 존재라는 말이 아닌 전체라는 말을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다. 그만큼 그분을 두드리면 정보가 잘도 나온다. 무슨 도깨비방망이도 아니고, 어떤 정보라도 이렇게 잘도 알아내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끼이익! 그 순간 저 멀리서 나타나는 혜경의 독수리 란타스. 아마도 도둑 길드 마스터에게 정보를 듣고 오는 길일 테다. 그렇게 란타스가 혜경의 어깨에 착륙하려고 할 때였다. 퍼억! "라, 란타스!" 누군가에게 맞고 그대로 튕겨져 나가는 란타스. 그 모습을 본 혜경은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한 놈의 새대가리 쪽으로 돌 아갔다. "시, 실수야!" "......" "지, 진짜! 절대! 저 자식이 자꾸 내 여자한테 집적거리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친 건 아냐!" "......" "미, 믿어 달라니까." "너, 바보냐?" "......" "방금 네 입으로 말해 놓고 믿어 달라니." "무, 무슨 소리?" "저 자식이 자꾸 내 여자한테 집적거리는 게 마음에 안 들 어서라고 말했잖아. 이 새대가리야." "......" "그리고 혜경이가 왜 네놈의 여자냐?" "그, 그야 난 전설이니까......" 말을 흐리는 피닉스. 그리고 싱긋 웃는 나. "오랜만에 맞아 죽고 싶었나 보구나. 그 소원 접수할게." "시, 실수라니까." "넌 실수로 새 치냐?" "......" "엄연히 '고의'로 판정되었다." "어, 억울해!" "지랄." "......" "크하하하!" "나 살려!" 파닥파닥. 열심히 날갯짓하면서 도망가려는 피닉스. 난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스킬 한 방을 갈겼다. "다크 헤이스트." "우에엑!" 현저히 속도가 떨어지는 피닉스와는 반대로 현저하게 속도 가 상승하는 나. "천국을 구경시켜 주지." "혜경아, 진심으로 사과할게." "아, 아냐. 사과까지야......" "동물 관리를 못한 건 주인의 죄, 정말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아, 아니라니까. 그리고 그냥 살짝 다친 건데. 란타스, 괜 찮지?" 끄덕끄덕. 역시 동물은 주인의 성격을 닮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저 독수리조차도 저렇게 착하니 말야. 자, 잠깐......! 방금 전 나는 이런 말을 했다. 동물은 주인의 성격을 닮는다고. 그렇다면 내가 저 피닉스 녀석의 주인이니까, 나 역시 저딴 식으로 건방지고 개념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 그, 그건 절대 아니다. 절대! "풋. 나 같은 전설이 때려 준 걸 영광으로 알라고, 독수리 군." 퍼억! "왜 때려!" "너 진짜 샤브샤브 되고 싶냐?" "......" "하아. 정말 어이없는 놈. 자, 어서 사과해!" "내가?" "......" "새들의 신이라고 불리는 내가 새한테 사과를 해?" "......" "어이 상실이다. 푸헤헤헤." "알겠다." "......" "오늘은 진짜 샤브샤브로 만들어 주마." "미, 미안해. 독수리 군! 조생(?)이 다 그렇지. 뭐." "......" 샤브샤브라는 말에 금세 말을 바꾸는 피닉스 자식. 그나저 나, 마지막 말이 상당히 건방지다. 사과를 해도 그냥은 안 하 는 놈이다, 정말. 하지만 일단 사과한 것에 의미를 두자. 더 이상 요구하기에 는 무리니까. 그나저나, "혜경아, 길드 마스터가 뭐래?" "아, 가능하대." "......!" "저 마물의 숲에서도 몬스터에게 공격당하지 않는 방법." "그, 그게 뭔데?" 난 혜경이의 말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그럴 수도 있단 말인가?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그 도깨비방망이 아 저씨는 용케 잘도 찾아내셨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엘리퀴시진." "......그게 뭐야?" "목걸이야. 그리고 그 목걸이를 착용하면 반경 30미터는 몬 스터가 진입할 수 없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전설급 목걸 이......" "......!" 허얼. 저, 전설급 목걸이라니. 그래도 분명 구할 방법이 있을 거다. 그 도깨비 아저씨라 면...... "뭐 잡아야지 나온대?" "아니, 잡는 게 아냐. 네크리 던전을 클리어하면 비밀창고 에 숨겨져 있었대." 자, 잠깐. 있었대? 과거형? 분명 혜경은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다. 네크리 던전을 클리하고 비밀창고에 숨겨져 있었다는 말 이다. 완벽한 과거형. 그게 뜻하는 바는...... "응. 다른 랭킹 유저가 찾았어." "젠장......"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란 말인가? 엘리퀴시진이라는 목걸 이는 정녕 얻을 수가 없단 말인가? 그렇게 거의 절망하던 나. 하지만 혜경의 한마디에 금세 눈 을 번쩍였다. "4대 도시 그랜드 크룬. 거기 경매장에서 엘리퀴시진이 경 매에 붙여졌다고 해." "......!" 너무나도 반가운 정보. 그렇다면 그 경매에서 돈을 가장 많이 내면 얻을 수 있다는 거다. 어서 빨리 그랜드 크룬으로...... 자, 잠깐! "저기......혜경아." "응?" "방금 그랜드 크룬......이라고 했어?" "응." "......그랜드 크룬이면 그 그랜드 크룬?" "응." "너와 만난 장소이자, 도둑 길드 본진이 있는 곳이자, 우리 파티의 에리아의 고향, 즉 에리아가 공주가 되는 그 그랜드 크 룬?" "응." 크아악! 이, 이럴 수가. 나 그랜드 크룬 가면 당장 잡힌다. 덜떨어진 삼인방 덕분에 공주 납치범으로 현상금이 붙었으 니까. 이럴 수는 없어! 다시 그랜드 크룬으로......?! "왜 그러세요?" 좌절하는 나를 본 레니아가 물었다. 당연하다. 그녀는 그때 없었기에 우리가 저지른 중대한 범죄 따위에 알 리가 없다. 에리아도 그냥 누군가의 동생이라고만 알 뿐이다. "사실...... 우리가 그랜드 크룬에서 살짝 범죄를 저질렀거 든." "......" "그래서 현상금이 대문짝만 하게 붙어 있지." "꽤나 큰 거 한 건 하셨나 보네요? 뭐 훔쳤나요?" 도둑답게 뭘 훔쳤냐고 묻는 그녀. 나는 그 물음에...... "......여자 아이." "......" "납치......했어. 물론 내가 납치한 건 아니고 저 미친 세 명 이 저지른 범죄야. 나는 절대 관련 없는데 오해가 오해를 낳 아서 지금 이 모양이 됐어!" 나는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아니, 사실이다. 나는 절대 유아 납치범이라는 이름을 달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다. 오직 저 미친 삼인방 때문에 그런 명칭을 달게 됐을 뿐이다. "설마 에리아......?" "응, 뭐......" "자, 잠깐. 에리아......라고 하면,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는 데 그랜드 크룬의 공주?" "뭐, 그렇지." "한마디로 공주를 납치한 거네요." "그러니까, 내가 한 게 아니고 저것들이 한 거야!" 나는 그 말과 함께 가르와 데인, 피닉스 녀석을 손가락질했 다. 그런 나의 행동에 녀석들은 양심이 있는지 움찔거렸다. "흐으음. 그래도 저들이 납치했다 해도 마에스트로 님이 돌 려놔 주었으면 되잖아요." "그게...... 에리아가 돌아가기 싫어하는 바람에......" "황궁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울먹울먹. 그 말과 함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에리아. 그 모습에 레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한 듯 말했다. "그렇게 된 거네요." "설마 날 유아 납치범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잠시 그렇게 생각했어요." "......" "뭐, 그래도 오해는 풀렸잖아요? 그리고 그랜드 크룬에 들 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고요." "그, 그렇긴 하지." "그럼 저한테 맡겨요." "엥?" "제 직업 잊어버리셨어요? 전 도둑이라고요, 남들 눈에 띄 면 안 되는 도둑. 그런 존재가 가져야 할 필수 능력이 뭘까요?" "아." "분장술!" ...... 분장까지는 좋은데...... 내가 왜 여자로 분장해야 되는 거 냐? "원래 이렇게 해야 들킬 확률이 적어지거든요." "......" "그리고 무엇보다, 예뻐요!" "그거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레니아?" "물론요!" "......"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칭찬이다. 여장한 남자한테 예쁘다니. 크흐음. 그렇게 우리는 그랜드 크룬으로 진입했다. 우리...... 상당히 수상하다. 일단 후드맨만 해도 엄청난 숫자! 예은, 혜경, 에리아, 가르......까지 총 네 명의 후드맨이 있 다. 그리고 후드맨뿐만 아니라, 척 봐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데인과 새대가리, 그리고 여장남자...... 마지막으로, 엄청난 미소녀인 레니아까지...... 사실 예은과 혜경을 보지 못했더라면 지금까지 본 여자 중 레니아가 최고 미인으로 꼽혔을 것이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렇게 엄청나게 수 상한 파티다. 이 파티가 그랜드 크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까닭은 도 둑 길드 마스터, 즉 도깨비방망이 아저씨 덕분이다. 그 아저씨의 힘이라면 이렇게 무지무지 수상한 파티라도 그랜드 크룬에 입성은 시켜 줄 수 있다. "앗, 저기......" 순간 피닉스가 갑자기 한곳을 바라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피닉스의 반응에 녀석의 눈길이 간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굳었다. -현상금- 이자(위의 그림)는 엄청난 중죄를 저질렀다. 우리 그랜드 크룬의 공주님이신 에리아 님을 납치해서 도주한 죄를 저질렀다. 이자를 신고하거나 잡아 온 자에게는 1,000골드 의 포상금을 지급하겠다. 떡하니 붙여져 있는 나를 그린 그림. ......잘 그렸군. 이게 아니라......! "이건 아니야!" 나는 절규했다. 나같이 순진한 남자가 이런 중범죄자가 되다니! 이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아, 마에스트로 씨, 생각 외로 엄청나네요." "레니아, 저게 어딜 봐서 대단하단 거야." "그래도 현상금 1,000골드 걸린 사람은 처음 봤어요. 저도 한 700골드밖에 안 되는데요." "그것 참......" 그럼 내가 현상금 랭킹 1위냐? 그것 참 멋지군. ......공주 납치라는 건 생각 외로 엄청나게 중대한 범죄라 는 걸 이제야 깨닫는 나였다. 흐흐흑. [사랑에 빠진 데인] 그렇게 경매장을 가기 위해 그랜드 크룬에 들른 우리들. 그런데 유독 한 존재만이 멍하니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한 존재라고 하면...... "데인, 무슨 일이냐?" "......내, 내 이상형." "엥?" "너, 너무 내 취향이야." "......" 뭐, 뭐냐? 주변에 초특급 미소녀 3명이나 두고도 그런 소리를 하지 않 던 데인이 이상형이라니? 당연하지만 나의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그와 더불어 지금 데인 군의 시선이 꽂힌 곳으로 내 시선이 돌아갔다. 그러자 거기에는 한 소녀가 있었다. 대략 나이는 17살 정도? 외모는 꽤나 예쁘장하다. 내가 예은이와 혜경이 덕택에 눈이 높아지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엄청난 미소녀라고 자신 있게 말할 레벨이다. 그와 더불어 키는 대략 168 정도. 그리고 초록색의 원피스를 입고 길고 긴 보라색의 머리카 락을 질끈 묶은 여인이었다. 그와 더불어 여기서 맹점. 되게 청초해 보인다. 예은이와 쌍박을 이룰 정도로 모든 남성을 자극하는 청초 함. 그와 더불어 그녀의 손에는 꽃바구니가 들려 있어 그 점 을 더욱더 부각시킨다. "......머, 멋져." 그때 데인의 한 마디. 난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가망성이 없다. 변태 천족에다 맞으면 아아아거리는 네놈과 저렇게 보기만 해도 청초해 보이는 여성과 이루어질 가능성은 피닉스가 천 사 같은 새가 된다는 확률보다 더 낮다. 요약하면 절대 불가능. "아아, 바, 밟히고 싶어." "......" 역시 순수한 의도 따위는 없었다. 아니, 데인에게 순수한 의도를 기대한 내가 미친놈이겠지. 한편 데인은 황홀한 듯 바라보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도, 돈 좀 줘." "왜?" "저 꽃 내가 다 사 버릴 거야!" "......" "제, 제발 부탁이야!" 나에게 애처롭게 말하는 데인. 크윽! 차마 외면할 수는 없다. 그래. 1골드 정도면 저 꽃을 다 사고 남을 테니...... "자." "고마워!" 내가 건네준 1골드에 감격하는 데인. 여기서 말해 주고 싶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너의 바람은. "다 사 왔어." ......바구니 통째로 사 온 데인. 과감하군. 그나저나...... "사 오면서 한번 이야기라도 해 봤냐?" "아니." "......" "그냥 사 오기만 했는데." "바보야! 사오기만 하면 의미가 없잖아! 꽃을 사면서 이야 기라도 해 봐야지......!" "허억!" "......" 아, 머리 아프다. 이런 돌대가리 자식을 봤나. 대뜸 꽃만 사 오면 어떻게 하자는 거냐? 그 꽃을 사면서 은근히 접근하는 게 주목적이잖아! 꽃만 달 랑 사 오면 어쩌자는 건지! 으으윽! "어, 어떡하지?" "1골드 날려먹은 거지." "......" "아." 그때 데인이 꽃을 다 사서 그런지 발걸음을 옮기는 데인의 이상형. 난 다급하게 일행에게 말했다. "일단 저 여자를 쫓아가자." 그 여자를 쫓아가자 나온 건 엄청 허름한 집이었다. 전문용어로 다 무너져 가기 일 보 직전인 집. 그만큼 어렵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어, 어떡하지." 그때 초조한 기색이 가득한 데인. 솔직히 말해 난 포기하라고 하고 싶다. 저런 청초한 여자랑 너랑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 지만 데인이 너무나도 애타게 바라보고 있다. 으윽...... "어, 어떡하지, 마에스트로?" 나에게 의견을 묻는 데인. 차마 내가 너에게 해 줄 말은 없다. 사실적으로 말해 내 연애 경험도 없는데 다른 존재의 연애 경험을 충고하기에는 좀 그랬으니까. 그리고 사실적으로 말해서 포기하라고 하고 싶다.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봐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마 조히스트 변태 천족 검사랑 꽃 파는 아름다운 청초한 소녀라 는 이미지랑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조합이다. 절대 말이다. "훗! 이럴 때는 간단하지." "......?" "......?" 그때 한마디 내던지는 피닉스. 간단하다고? 피닉스의 말이 이어졌다. "간단하게 우연을 이용하는 거지." "무슨 말이냐?" "간단해. 아까 꽃을 다 샀기 때문에 저 여자에게는 데인의 모습이 각인이 되어 있지. 그런 상태에서 우연치 않게 마주치 는 거야. 운명처럼 말야." 허억! 어, 엄청 박식해 보인다, 피닉스! "크하하하. 난 전설이잖아?" 아무도 그런 말 안 했는데 자기 혼자 감동하고 칭찬하다니. 차마...... 못 봐 주겠다. 하아, 뭐 이런 모습은 약간은 적응 완료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피닉스 자식 말대로 그렇게 한다면? "자, 가라, 데인! 우연을 가장하는 거야!" "응!" 내 말에 당당히 걸어가는 데인.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 "......어떡해. "......" "크윽."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하리오. "나를 기억 못해." "그러게......말이다." 아무리 데인 자체가 약간 존재감이 없는 놈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꽃을 다 사 준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심히 난감 하다. 여기서 한 가지. 저 여자는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결론이다. 이렇게 되면 작전이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망성 없는 거야?" "데인." "......?" "내 말 잘 들어라." "......?" "남자는 과감해야 돼." "그, 그 말은?!" "과감히 고백해라!" 두근두근. 나는 몰래 숨어서 데인이 그 여자에게 다가가는 장면을 바 라보았다. 한편 그 여자에게 다가가는 데인. "저, 저기." "네?" 데인의 말에 그 꽃을 팔던 소녀는 의아한 듯 물었고, 그 물 음에 데인은 상큼한 미소와 함께. "나를 밟아 주지 않겠어?" ......당연하지만 고백 실패였다. 아니, 고백이라고 하기에는 미묘하다. 밟아 달라니. [그랜드 크룬 경매장] 그렇게 우리는 이곳에 들른 목적을 상기해 내고 그랜드 크 룬 경매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4대 도시 중 하나인 그랜드 크룬. 그곳의 경매장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압도적으로 크고 별의별 물건이 다 나온다. 돈만 있다면 이곳 그랜드 크룬 경 매장에서 물 쓰듯 쓰고 나면 엄청나게 강해질 거라는 말이 있 을 정도로 정말 별의별 아이탬이 다 나온다. 뭐, 그만큼 경쟁자가 많이 붙기는 하지만. 한 가지 좋은 물건이 떴다 하면 돈 좀 있다 하는 분들이 마 구 달라붙는다. 그런 아이탬은 이 게임의 세계에서 단 한 개만 있을 뿐이 니, 그걸 가지려고 혈안이 되는 건 당연한 일. 경쟁이 조금, 아 니 무지 심한 편이다. 그나저나 내 돈으로 엘리퀴시진을 살 수 있으려나? 내가 지금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은 총 110골드. 일반 유저 치고는 재벌이다. 하지만 장사를 전문으로 하거나 직접적으로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진 존재에 비교해서는 그저 그런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사려는 아이탬이 전투에 엄청나게 도움 을 주는 아이탬은 아니다. 트레저헌터들이나 애용하는 물건이 지, 직접적인 전투를 즐겨 하는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문제가 되는 건 트레저헌터. 돈 많은 애들이 정말 많다. 솔직히 말해, 한탕만 잘 쳐도 들어오는 돈은 적게는 몇 골 드에서 많게는 수십 골드일 테다. 물론 그 한탕 치기가 어렵긴 하지만 트레저헌터 중에는 실 력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최소 못해도 엄청나게 쳤을 터! 결론적으로 말하면, 머니가 많다는 거다. 그런 분들을 상대로 과연 엘리퀴시진을 가져올 수 있을까? 도착하기 전부터 걱정이 되다니. 에휴우우. 그렇게 내가 한숨을 내쉴 때였다. "오, 죽이는데?" "허어. 하나는 작살나게 죽이고, 한 년은 그런대로 괜찮 네." "카아아." "흐으으." "진짜 죽인다." "좋은 경험 하게 해 주지." "......" 그 순간 나의 귓가를 자극하는 왜 건달틱한 목소리들. 한 여섯 명 정도로 추정된다. 사실 추정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내 앞에 나타나셨으니까. 진짜 건달 여섯 명이군. 그나저나...... 설마 우리한테 집적거리려는 건 아니겠지? "거기, 언니들. 우리랑 놀아 보자고, 크크크." "......" 이런 어이없는...... 우리가 맞다. 아무리 실제 지향적인 게임이라고 하지만 저렇게 막말하는 건달을 출현시키다니. 물론 이런 건달 정도에게 질 정도로 약 한 여성 유저는 없었고, 만약 있다 하더라도 그냥 로그아웃하 면 그만이다. 물론 NPC들은 안 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우리한테 한 소리냐?" "어라? 이 자식 남자 아냐?" "목소리가 그런데?" "남자네!" "봐 봐! 목이 굵잖아." 나를 손가락으로 마구 가리키는 건달 자식들. 나는 그걸 보고 마구 마구 혈압 상승 중이시다. "완전 변태 자식 아냐." "미친놈." "허어, 별놈을 다 보네." "얼굴 좀 반반하나 했더니 남자 새끼고 지랄이여." "그냥 저 옆에 있는 엄청난 미녀나 데리고 놀자. 그러자. 크크크크." 그러면서 나를 무시하고 레니아에게 다가가는 건달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말했다. "데인, 저 자식들 한적한 곳으로 다 데려와." "쯧쯧. 나같이 잘난 피닉스가 명복은 빌어 줄게." "혀, 형제여, 자비를......" "이번에는 내가 좀 더 잘 밟을게. 아이이잉." 우리는 한적한 곳으로 들어왔다. 물론 나와 가르, 데인, 피닉스 이렇게 네 명만. 왜 나머지 일행과 조금 거리를 벌렸냐 하면, 앞으로 펼쳐질 판타스틱한 세계를 보여 주고 싶지 않는 내 마음 때문이다. "지, 지금 더 덤비겠다는 거냐!" "죽을래?!" "이 개자식들이." 그러면서 허리춤에서 나이프를 꺼내 드는 건달들. 웃음밖에 안 나온다. 그리고 감히 무기를 꺼내? "많이 죽고 싶었나 보구나. 아니, 죽이지는 않을게. 차라리 죽고 싶어지게만 만들어 줄게." "우, 우리가 숫자가 더 많아!" "당장 용서를 빌면 살려 줄 수도!" "맞아!" "우, 우리는 자비로우니까." "어서 용서를 빌어!" "그, 그래." 건달들은 나의 무언의 분위기 압박에 마구 횡설수설하기 시작했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나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 했다. "다 족쳐." "혀, 형제여, 제발......" "가르, 너도 저기에 포함되고 싶은 거냐?" "열심히 족치겠습니다." 내 말에 맹렬히 달려가는 가르와 데인, 피닉스. 난 근처 벽에 몸을 기댄 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면서 중얼 거렸다. "꽤나 씁쓸한 하루가 될 것 같군." ......멋지다. "제, 제발...... 사, 살려 주세요." "그, 그만......" 퍼억! "으아악!" "사, 살......" "크악!" "아, 아파요. 그, 그만!" "이, 이제 안 할게요." 퍼억퍼억. 크아악! 참으로 흥겨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인정사정없었다. 가르와 데인과 피닉스, 그들은 인정사정없이 밟아 댔다. 후 환이 없으려면 저 정도는 해 줘야 한다. 그나저나, 피닉스...... 꽤나 소질 있다. 그 짧은 발로 날아 차기를 하지 않나, 360도 돌려 차기를 하 지 않나, 2단 연속 차기 등등. 새가 할 수 있는 범위의 무술은 다하고 있었다. 근데 맞는 녀석들은 상당히 아파 보인다. 아니, 아파한다. 엄청난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니까. 저 녀석, 은근히 구타에 소질 있다. 내 후계자로 키워도 괜찮겠어. 흐으음. 난 세 명 중 특히 소질을 보이는 피닉스를 계속 쳐다보았 다. 그런데...... 역시나다. 기술적이다. 피닉스는 그 작은 체격으로 건달들을 가격하면서 엄청난 데미지를 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고 있다고 해야 하나? 때리는 경지의 최고의 단계에 이른 듯했다. 그 단계를 저 새가 몸소 보여 주고 있었다. "멋진 새군." 왠지 모르게 뿌듯해졌다. 역시 곧 죽어도 전설의 새는 맞나 보다. 저런 환상적인 구 타법을 익히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뭔가 좀 이상한데? 잘 때린다고 칭찬하는 나...... 뭔가 미묘한 느낌이다. 그렇게 약속대로, 죽고 싶어질 만큼만 두들겨 팼다. 그게 과연 어느 강도인지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고, 직접 체험한 자와 직접 체험시켜 준 자만 알 수 있는 미묘한 정도? 크흐음...... 어찌 됐든, 갑자기 나타난 건달들도 해결 완료! 우리는 다시 그랜드 크룬에 있는 경매장으로 향했다. 제란 경매장. 그랜드 크룬에 잇는 경매장에 있는 정식 명칭이다. 제란 경매장은 4대 도시의 경매장 중에서도 1, 2위를 다툴 만큼 그 규모가 엄청난다. 약간 오버해서 가로세로 3,000미터 정도라고 해야 할까? 몇십만 명이라도 가뿐히 수용할 수 있을 정도라니 할 말 다 했다. 그리고 이만한 크기에 걸맞게 각종 이상한 아이탬들이 다 나온다. 노멀부터 시작해서 전설까지. 물론 신급 아이탬은 경매장에 나온 적이 없다. 과연 무슨 옵션이 달려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리고 이 경매장에 나오는 노멀. 노멀이지만 노멀 같지 않은 노멀이라고나 할까? 아이탬 등급은 노멀이다. 하지만 그 파괴력이나 옵 같은 건 노멀을 뛰어넘는 옵션들이 나온다. 뭐, 그 정도는 돼야 경매할 가치가 있겠지만. "와아. 정말 크네요." 제란 경매장을 본 예은이 감탄 어린 말투로 말했다. 나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입을 열었다. "응, 정말 크다. 역시...... 그랜드 크룬 경매장답구나." 나 역시 예은과 마찬가지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실 되게 크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직접 본 건 오늘 이 처음이다. 그나저나 이런 우리와는 달리 혜경은 담담하다. 뭐, 그녀는 여기 와 본 경험이 있을 테니까. 그 순간 혜경이가 꺼내 드는 종이 한 장. 그리고 그걸 내게 내민다. "이게 뭐야?" "길드 마스터가 뽑아 줬어." "......뭘." "이번에 엘리퀴시진을 노리는 사람 명단이라고나 할까?" "허얼......" 굳이 그런 것까지 준비 안 해 주셔도 되는데. 정말 철저하신 분이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뭐, 일단 공짜로 준 정보. 안 보면 그것도 바보짓이니까 열 심히 봐 줘야겠지? 난 그런 생각과 함께 혜경이 내민 종이를 펼쳤다. 거기에는 반듯한 글씨체로 적혀 있는 이름들이 있었다. 타르페. 나루진. 스타리안. 캐루스. 파리안. 루푸리안. 젠느. 캐티핀. 뭐, 뭐야, 이 엄청난 인원은?! "일단 별로 돈이 없는 사람들은 제외한 숫자야. 거기에 적 혀 있는 사람들이 돈깨나 가지고 있나 봐. 그리고 엘리퀴시진 을 무지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래. 일단 전부 다 트레저헌 터니까." "이게 전부 트레저헌터?" "응." "이거 곤란한데......" 두세 명이라면 모를까, 여덟 명이라니. 경쟁자가 여덟 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 미치겠다. 엘리퀴시진은 꼭 내가 사야 되는데. 몇 번 사 용하고 되팔면 원금을 찾을 수 있으니, 그건 걱정이 없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지금 사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물의 숲에 들어가서 그 키메라 녀석을 족치고 드래곤 로드 세르키 스를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아 참, 그리고 이거 너한테 전해 주래." "......?" 그러면서 주머니를 하나 꺼내 내게 건네는 혜경. 이게 뭐지? 그런 나의 표정을 읽었다는 듯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나도 뭔지는 잘 모르겠어. 길드 마스터가 너한테 전해 주 면 알 거라고 하던걸." "......" "느낌상 돈 같던데." "......돈?" 돈이라는 말에 나는 눈을 번쩍였다. 갑자기 돈이라니. 왠 돈? 무슨 돈이란 말이냐! 나는 돈이라는 말에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지성인(?) 인 내가 말이다. 그나저나, 이게 만약 돈이라 해도 나한테 주 면 알 거라니? 난 길드 마스터에게 돈을 빌려 준 적도, 돈 받을 일도 한 적 도 없었다. 뭐, 일단 이게 돈인지 아닌지 확인해 볼까?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주머니를 천천히 열었고 잠시 후 굳었 다. 진짜 돈이다. 돈! "이, 이게 몇 개냐?" 나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돈을 세기 시작했다. 전부 다 금 화다, 금화! 이곳 화폐단위 중 가장 큰 액수라는 금화가 주머 니 한가득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돈을 세던 나. 잠시 후, 나는 함박웃음을 지 었다. "40......골드!" 그렇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돈은 40골드였던 것이다. 4골드도 아닌 40골드. 그런 엄청난 거금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 돈을 왜 나한테 주는 거지? 나는 그런 의미를 담은 채 혜경을 바라보았다. 예상외로 큰 액수에 놀란 얼굴을 하던 그녀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도리도리.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 혜경. 도대체 이 돈을 왜 주는 거지...... "앗, 쪽지다!" "......!" 그 순간 피닉스의 한 마디. 쪽지? 그렇다. 피닉스의 말대로 주머니 안에는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잠시 돈에 완전히 맛이 가 버린 나는 보지 못했다. 뭐, 어쨌든 발견했으면 됐지. 난 쪽지를 주머니에서 꺼낸 뒤 읽기 시작했다. 안뇽. ...... 빌어먹을! '안뇽'이라는 한 마디에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 하다. 그 작자다. 그 빌어먹을 작자. 요새 심심하면 나타나서 사람 열 받게 만들거나 황당하게 만드는 그 작자 말이다. 무지 반가울 거라고 생각해. 지랄 염병 삽질을 해라! ......난 사실 입이 이렇게 거칠지 않다. 참고로 욕을 별로 안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 인간 과 연관된 것만 보면 스팀이 막 돈다.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욕까지 나오게 만드는 기이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신비한 작자다. 보고 싶어도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크아아악! 세 줄 읽었는데 벌써 뇌졸중으로 쓰러지겠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해! 편지 읽다가 뇌졸중으로 사망하면...... 무슨 개떡같은 일이냔 말이다. 아 참, 이게 아니라. 그 돈 궁금할 거야. 출처가...... "......" 혹시...... 중대한 범죄...... 허억! 그리고 그 죄를 나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엄청난 계략! 젠장! 나는 아차 했다. 분명 이 작자, 무슨 이상한 짓거리를 한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나에게 범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계략이다. 그런 거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어떤 중범죄를! 편지를 읽어 가면서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내 머리. 정말 미쳐 버리겠다. 걱정 마. 깨끗한(?) 돈이야. 그때, 마치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 깨끗한 돈이라고 말하는 (?) 쪽지. 근데 정말 깨끗한 돈일까? 정말? 정말? 정말? 절대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도 않은 사실이다. 그 돈. 그거야. 내가 지난번 덴키에게 1,000골드 빌리고 남은 돈. ......! 그, 그렇다면 나름대로 깨끗한(?) 돈이다. 아니, 내가 깨끗 한 돈으로 만들어 놓은 거다. 원래라면 범죄성 짙은 돈이지만, 내가 전설의 물고기 스케리스를 잡는 바람에 단숨에 1,000골 드를 갚아 버렸으니까. 고맙게 잘 써. 그럼 바바.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황당하다. 분명 지가 빌린 돈을 억지로 갚은 건 나다. 그런데 이게 뭐 란 말인가? 마치 자비를 베푸는 듯 써 놓은 쪽지. 정말 미치겠 다. 그리고 나머지 960골드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어디 로? 어디로? "오, 오빠, 진정하세요." "그래. 윤현아, 진정해." 그때 다급히 내 곁에 와 나를 진정시키는 두 명의 미소녀 님. 예은과 혜경이다. 그녀들은 그런 나를 걱정스러운 듯 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들의 시선에 의아해서 물었다. "왜 그래?" "오빠 얼굴이 창백해졌어요." "도대체 뭐라고 써 있기에 갑자기 그렇게 창백해지는 거 야?" "......" 내 얼굴이 창백해졌구나. 하하하하. 하하하. 하하. ......정말 어이없다. 내 이 작자, 잡히기만 해 봐라. 백드롭으로 360도 회전해서 머리부터 찍어 버릴 테다. 으아악! 다행히도 내 정신은 예은과 혜경의 도움으로 원상복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원상복귀된 건 아니다. 그 사기꾼 대마왕 을 향한 증오심은 더욱더 커져 가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래그래, 일단은 진정하자. 우선 해야 할 일은 세 번째 유물을 찾는 것이다. 그러기 위 해서는 그 사기꾼 작자가 준 40골드와 내가 가지고 있는 120 골드, 즉 160골드로 엘리퀴시진을 입수해야 했다. 가능하다. 이 정도의 액수라면 충분히 가능할 테다. "자, 경매장으로 가 볼까?" "당첨! 가르 님! 155골드에 엘리퀴시진이 낙찰되셨습니다!" 나이스! 이겼다. 하마터면 나루진이라는 트레저헌터에게 빼앗길 뻔한 위기 의 상황. 하지만 내가 10골드가 더 많았다. 나루진이라는 트레저헌터는 대략 150골드가 전 재산으로 보이고, 나는 160골드. 그러니까 내가 이기는 건 당연하다. 괜히 물건 값만 비싸져서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모든 경매가 끝나면 돈을 가지고 관리실로 찾아오시기 바 랍니다!" 사회자의 음성. 그 말에 나는 살포시 웃어 주었다. 흐흐흐. 이제 마물의 숲? 그거 그냥 들어가 준다. 엘리퀴시 진을 이용해서 말이다. 그나저나, 여기서 내가 가르의 이름을 도용했으니 가르가 직접 가야 되나? 아님 내가 나가도 되나? 모르겠네. 사실 내 이름을 쓰기에는 좀 그렇다. 나는 엄연히 이 도시에서 중범죄자였으니까. 그것도 어린 공주를 납치한 엄청난 범죄자. ......생각하면 할수록 암울하다. 흐흐흑. 어찌 됐든 이런 나였기에 내 이름을 쓰기가 껄끄러워서 가 르의 이름을 빌려 쓴 것이다. 뭐, 내가 나가도 되겠지. 내가 가른지, 다른지, 마른지 저쪽 에서 알 리는 없으니까. "나 사고 싶은 거 있어!" 그때 갑자기 손을 번쩍 드는 데인. 갑자기 잘 가다가 무슨 개소리? "나 그것 좀 사 줘." "......나 거지다." "별로 안 비싸." "뭔데?" "나를 아름답게 밟아 줄 여자." "......" 별로 안 비싸긴. 가격 측정 불가다. 그런 여성 구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하고, 사는 것은 더욱 불 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건 파는 물건이 아니잖아! "나, 나도! 난 열나게 예쁜 여자." "......" "사 줘." "......염병을 해라. 염병을." 여자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데인과 피닉스 녀석, 황당 하다. 역시 저 두 놈 말에 귀를 기울인 내가 잘못이다. 그냥 무시하는 게 건강에 좋을 거야. "저, 저는......" "......넌 뭐?" 그때 가르가 입을 열었다. 넌 뭘 원하는데? 들어 봐 주기만 하지. "......400년 숙성시킨 성수를 가지고 싶습니다." "저기...... 성수도 숙성시키니?" "모르셨습니까?" "......" "400년 된 성수는 아름답습니다!" "......" "그걸 뿌리면 모든 악은 물러간다고 전해지는 환상적인 성 수입니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 성수를 숙성시킨다는 어이없는 말은 오늘 처음 들었다. 무슨 와인도 아니고, 성수를 숙성시키 다니. 그럼 효과가 증폭되는 건가?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습격] 우린 모든 경매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제 경매가 끝나고 관리실에 내려가서 돈만 주면 저건 내 물건이 된다. 흐흐흐. 왠지 일이 척척 풀리는 느낌, 좋아! 그렇게 경매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우리. 그런데 기어 이...... 한 건 터졌다. "꺄아악!" "레미네아 도적단이다!" "이 자식들이!" "미쳤나!" "경매장을 급습하다니!" "사수해라!" "막아라!" "꺄아악!" 갑자기 경매장으로 난입하는 수백 명의 복면을 쓴 사람들. 그들의 오른쪽 어깨에는 웬 독수리 모양의 그림이 그러져 있었다. 아마도 지들만 쓰는 특별한 표식이라는 거겠지. 그나저나, 레미네아 도적단? 그건 뭐하는 도적단이냐? "어, 어떡해. 레미네아 도적단이야!" "왜 그래, 혜경아?" "지, 진짜 위험해. 도적단 중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도적단 이야! 한 사람 한 사람이 웬만한 기사들을 가볍게 이길 정도의 실력자들을 모아 놓은 도적단!" "그런 것 같기는 하네." 레미네아 도적단을 막겠다고 나타난 기사들. 그들이 낙엽 쓸리듯 쓸려 나가는 것만으로도 혜경의 말이 틀린 게 없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그나저나, 쟤네들은 갑자기 왜 경매장 을 급습하냐? "경매에 나온 모든 물건을 가지고 갈 생각인가 봐!" "......!" 뭐, 뭐시라?! 그, 그 말은......?! 내가 얻어 낸 엘리퀴시진도 저것들이? 벌떡. 나는 그런 생각이 들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이 습 격하고 있는 곳을 향해 무작정 뛰어갔다. 그리고 외쳤다. "내 거 건들면 다 죽어!" 늦......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이미 퇴각 명령이 떨어졌는지 다 사라 져 버린 레미네아 도적단. 그뿐만 아니라 모든 물건이 도난당 했다. 가슴 아프겠다. 저 물건을 경매에 부친 유저들 말이다. 그리고 경매에 당첨 된 나 같은 유저들도...... "유, 윤현아. 괜찮아?" 어느새 따라온 혜경이 걱정스럽다는 듯 묻자 나는 그런 그 녀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빠." 그런 나를 본 예은도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걸었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 힘들게...... 힘들게 낙찰된 엘리퀴시진이다. 그게...... 예상치도 못한 도적들의 습격에 도난당했다. 물론 그 물건을 경매에 내놓은 당사자보다는 가슴 아프지 않겠지만, 난 지금 무지 가슴 아프다. 왜냐하면, 그게 없으면 지금 아무것도 진행이 안 되기 때문이다. "윤현아." "오빠." "괜찮아요?" 혜경, 예은, 레니아가 순서대로 나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상큼한 미소를 지은 채 혜경 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혜경아." "으응?" "부탁이 있어." "뭐, 뭔데?" "레미네아 도적단 본거지를 가르쳐 줘." "설마 쳐들어가려고?!" "물론." "아, 안 돼! 거기는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곳이야. 엄청나 게 강한 도적들로 넘쳐흐르는 데가 레미네아 도적단이야!" "맞아요. 저도 유일하게 건드리지 않는 도적단이라고요." 혜경의 말에 레니아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말이다, 내 성격상 내 걸 건들면 가만히는 절대 못 있는다. 절대애......! "걱정......마. 오랜만에 즐겨 보지. 으흐흐흐...... 으하하 하!" "......" "......" "......" "......" "......" "......" "......" 나의 기괴한 웃음소리에 일제히 굳어 버린 일행. 하지만 상관없다. 그것보다는 감히 내 물건을 가로챈 그 개떡 같은 도적단을 족치는 게 중요하다. 엄청나게 후회하도록 말이다. 크크크. [레미네아 도적단 급습사건] "총 인원 이백스물네 명. 대부분이 실력자로, 도적 한 명당 기사 여섯 명 정도는 상대할 능력을 가지고 있대." "흐으음......" "윤현아, 정말...... 할 거야?" "물론!" "그, 그래도 이백 명이 넘는다고! 그것도 약한 자들이 아니 고 정예 중의 정예. 그런 도적단을 상대하는 건 무리야." "물론 무리지. 1:1로 싸우면 말야. 하지만 이길 방법도 있 어." "......?" "네스티안 엘리라이진." "그게 뭐예요?" 레니아는 모르는 건가? 설명 들어가야 되나? "내가 찾은 첫 번째 유물 스킬." "아......" 그제야 알았다는 듯 탄성을 내뱉는 그녀. 하지만 옆에 있던 혜경이 납득이 안 된다는 듯, "아무리...... 그럼 유물급 스킬이 있다고 하지만 그들을 이 길 확률은 거의...... 없을 것 같아." "맞아요. 저도 레미네아 도적단만큼은 건들지 않는다고 요." 혜경의 말을 레니아가 거들었고,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었 다. 왜 웃냐고? 그건, "이 유물 스킬은 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을 주는 해피 라이프거든?" "......?" "......?" 내 말을 이해 못하는 듯한 혜경과 레니아. 난 그런 그녀들 을 향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간단히 설명해 줄게. 그 자식들이 뭉쳐 있으면 내 승리, 떨 어져 있으면 나의 패배. 그러니까 전문용어로 몹몰이를 잘하 면 되는 거야." 그렇다. 적이 얼마나 많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적을 얼마나 한자리에 뭉쳐 놓느냐다. 그게 바로 나의 유물급 스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법! "그러기 위해 지금 내가 고민해야 하는 건 적이 얼마나 강 하냐가 아니라, 적이 얼마나 잘 뭉치느냐다!" 사실 지난번 고블린을 몹몰이 한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때는 고블린들의 지능 수준이 좀 떨어져서 가능 한 일이었고, 지금 상대해야 하는 건 엄연히 지능이 있는 사람 이다. 지난번처럼 쉽게 걸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적들이 뭉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 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무지무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아주 중요한 문제다. 그게 뭐냐 하면...... "그 작전을 누가 짜냐?" 그렇다. 제일 중요한 건, 바로 그 도적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할 묘 책을 짤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파티에는...... 일단 혜경은 정보 담당이고, 예은은 나의 타락한 눈을 맑게 해 주는 역활, 그리고 레니아는 물건을 슬쩍하는 담당, 에리아 는 귀염둥이 담다엥 나머지 삼인방은....... 도움은 하나도 안 되는 그들이다. 아니, 도움은커녕 방해나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있잖아." "......" "전설의 참모. 나 몰라?" "......" "내가 머리가 좀 비상하잖아. 작전 같은 거 열나게 잘 짜."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개소리냐? 허어, 어이없다. 차라리 데인이 저런 말을 했으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는데, 피닉스 네가 말하니 절대로 믿음이 안 간 다. "믿어 줘." "믿을 걸 믿어야지." "그럼 내 작전이라도 들어 봐 줘. 듣고 나면 '오, 너무 감동 이야' 이럴 게 분명해." "......" "들어 줘, 들어 줘." 나를 애타게 바라보면서 부탁하는 피닉스. 그래, 일단 들어는 봐 주마. 듣는다고 손해 볼 건 없으니까. "그래, 말해 봐라." "간단해. 일단 내가 그 자식들의 대장을 찾아가서 '너희 몰 아넣고 그냥 죽일 테니까 몰려 있어' 이러는 거야." "......" "그럼 대장은 '전설 속의 피닉스가 하는 말이니 들어야겠 군' 하면서 몰려 있을 테고, 그 때 네가 가서 처리하면 된다는 간단한 스토리." "저기, 피닉스 군." "응?" "그게 작전이냐?" "응. 전설 속의 작전." 전설 속의 작전이라...... 얼어 죽었다. 전설은커녕 완전 미친 작전이다. 뭐? 한꺼번에 죽여 줄 테 니 몰려 있으라고 말하면 전설의 피닉스가 하는 말이니 들어 야겠군, 이래서 몰려 있다? 100% 장담한다. 새 꼬치구이 될 거라고 말이다. 역시 쓸데없는 시간만 낭비했다. 오늘의 깨달은 점. 역시 피닉스는 바보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해 잠기던 나. 내가 생각해 내야 한다. 도적들을 단숨에 한 곳에 몰아넣을 묘책을 말이다. 번쩍.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 나는 다급히 혜경에게 물었다. "혜경아, 저기 도적들의 본진 입구가 몇 개지?" "한 개로 알고 있는데." "한 개라......" 그 말은 나올 데가 한 군데밖에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화계." "화계라니?" 내 말에 궁금하다는 듯 묻는 혜경. 나는 그런 그녀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간단해. 마을을 불태우는 거지. 도적들의 마을을 말이야. 그럼 전부 입구를 통해 몰려 나올 거야. 그럼 간단히 해결할 수 있지." "하, 하지만 마을을 불태우기 위해서는 곳곳에 기름도 부어 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불을 붙여야 하는데....... 마을 안으 로 들어가기는 불가능한잖아." "걱정 마, 그 점은. 우리한테는 새가 두 마리 있잖아." "아." "그래. 너의 란타스랑 나의 피닉스. 그 둘이 기름을 나르고 불을 붙이는 거지." "뭐, 뭐야? 나 같은 전설 속의 새가 고작 기름 나르는 데 부 려 먹겠다는 거야?" 그때 불쑥 끼어들어 성난 어조로 말하는 피닉스. 나는 그런 피닉스를 보고 싱긋 웃어 주엇다. 그러자, "열심히 기름 나를게. 어디에 부을까? 가르쳐만 줘. 의욕 만발!" "참 현명해졌네." "......" 스윽, 스윽. 난 그 말과 함께 피닉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만약에 또 개소리 했으면 오늘은 생매장당했을 거다. 그러 기 전에 깨닫고 이렇게 고분고분해지니 참으로 피닉스의 입 장에서는 다행이었다. "자, 그럼 아름다운 작전을 실행해 볼까?" "허억, 허억." 피닉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조금 미안해진다. 무보수로 계속해서 곳곳에 기름을 갖다 붓는 모습을 보고 말이다. "야, 좀 쉬었다 해." "아, 알았어." 나의 말에 마침 기다렸다는 듯 금방 그 자리에 주저앉은 피 닉스. 난 그런 피닉스를 뒤로하고, 혜경이 구해 온 도적 마을의 지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금 이 마을에 기름을 부은 곳은 총 40군데. 그중 한 군데 에만 불씨를 떨어뜨려도 모두 연계되어 불이 활활 타오르게 된다. 물론 진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이런 작전을 펼 치는 의미가 없으니까. 처음 불이 나면 도적들은 일단 불을 끄기 위해 난리를 치겠 지만 끄는 건 불가능하다. 만약에 현실이었다면 쉽게 진화를 하겠지만 여기는 현실이 아니다. 불이 난다면 오직 양동이에 물을 받아 손수 물을 나르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속도로는 기름발(?) 받은 불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냥 불도 아니고 기름을 한 번 빨아들인 불이다. 그만큼 힘이 강하다는 뜻이다. "앞으로 4군데인가." 피닉스와 란타스의 활약으로 총 36군데는 불을 붙였다. 이 제 남은 건 4군데. 4군데인 거다! "저, 오빠." "응? 왜 그래, 예은아?" "아까부터 계속 걸리는 게 있는데요." "뭐가?" "그러니까...... 화계를 사용하시잖아요." "응!" "그럼 그 안에 있는 보석과 엘리퀴시진은......" ...... 으아악! 마, 맞다! 지금 난 망각하고 있었다. 내 목적을 말이다. 내 목적은 분명 도적들이 아니라 녀석들이 훔쳐 간 엘리퀴시진 이다. 그런데 그것은 망각한 채, 그 인간들을 몰살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게 뜻하는 바는....... 지금 이 작전은 사용 못한다는 것. "뭐, 뭐야? 설마 이 작전 못하는 거야?!" 그때 눈치 빠른 피닉스 자식이 뭔가 미묘한 상황을 알아차 렸는지 황당하다는 듯 말했고, 나는 그 말에 솔직하게 답해 주 기로 했다. "그런 것 같다, 피닉스." "......" "속된 말로, 지금 너와 란타스는 삽질한 거야." "......" "미안하다." "으아악! 나, 나 같은 영물이...... 우어어억!" 절규하는 피닉스 녀석. 그리고 할 말을 잃어버린 나. ...... 할 말이 없다. 그나저나, 어떡하나? 화계도 통하지 않는다면 무슨 방법으 로 저것들을 족치고 엘리퀴시진을 찾지? "안녕하세요∼." "제핀......" 그 순간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남자. 도둑 길드의 마스터이자, 지금까지 나에게 꾸준한 정보를 준 남자다. 그뿐 아니라 사기꾼 대마왕과도 꽤나 인연이 깊은 듯? "어떻게 알고 나타나신 거예요?" "저 정도 위치에 있으면 금방이죠." "......" 그렇긴 하다. 정보에 관해서는 도깨비방망이와 같은 저 아저씨다. 우리같이 눈에 잘 띄는 파티 정도야 금방 찾아낼 것이다. 그나저나...... 혜경을 통하지 않고 직접 나타난 걸 보면 꽤 나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생각하신 대로입니다." "저기,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데요?" "직접 나타난 걸 보니 꽤나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 "아닌가요?" "맞아요." 놀랍다, 놀라워! 이 정도면 기인 수준이다. 어떻게 하나도 안 틀리고 맞힐 수가 있지? "저는 기인이 아닙니다. 그냥 이 바닥에서 일하다 보니 자 연스럽게 알게 되는 거라고나 할까요." "......" 뭐, 뭐야?! 이번에도 읽었어? 황당하다. 분명 또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하는 저 남자. 이제 무섭기까지 한다. "하하. 무서워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마에스트로 님은 다른 분들보다 얼굴 표정이 다양해 읽기 편하다고 할까요?" ......그거 칭찬입니까, 욕입니까? 정말 난감하게 하는 남자다. 그나저나, 지금 내가 알고 싶은 건 당신이 나타난 이유다. "협동체제를 펼칠까 하고 말입니다." ......이번에도 미리 말해 준다. 참 말을 안 해도 돼서 편하 긴 하네. 그런데 협동체제? "협동체제라니요?" "흐으음. 간단히 말해, 저희도 노리고 있었거든요." "뭘요?" "오늘 경매장의 물건." "......" "물론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 그랜드 크룬이라는 나라에 이 마지 관리를 해 온 게 소용이 없어져서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습니다만, 오늘 저분들이 힘껏 털어 준 덕분에 꽤 나 상황이 좋아졌습니다." "무슨 말이에요?" "흐으음. 간단히 말씀드리죠. 지금 그랜드 크룬에서는 누가 훔쳐 간 걸로 생각할까요?" "......당연히 레미네아 도적단이요." "그렇습니다. 지금 국가는 그렇게 생각하죠. 그런데 우리가 그 물건들을 슬쩍하면?" "아......" "그래요. 물건은 저희 것이 되고 죄는 레미네아 도적단이 뒤집어쓰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도둑질? "아뇨. 도둑질은 아닙니다. 이런 말이 있죠. 훔친 물건을 훔 치는 건 도둑질이 아니다." "......" 그런 말 처음 들어 봅니다만...... "어찌 됐든, 지금 저희는 자원 부족으로 많이 허덕이고 있 습니다. 돈이 많이 필요하죠. 그래서 이번 작전은 꼭 성공하 고 싶어서 마에스트로 님과 협동체제를 원하고 있습니다." "왜 굳이 저랑?" "그야 강한 분이 저희를 도와주면 저희 쪽 피해가 줄어드 는 건 당연하니까요." ......나를 인정해 주는 건가? 왠지 뿌듯한데. 그나저나 그것보다...... "저에게는 뭐가 돌아오는데요?" "엘리퀴시진과 더불어 전설급 아이탬 한 개." "......" "어떻습니까? 꽤나 좋은 조건 아닌가요?" "......" "지금 혼자서 고민에 잠기신 것 같은데 수락만 하신다면, 제가 지원해 드리는 부하들과 함께 저쪽을 난장판으로 만 들면 뒷일은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 난 고민에 잠겼다. 과연 이게 수지가 맞는 타산일까? 왠지 모르게 손해 보는 느낌이다. 한마디로, 내가 몸빵 하 는 사이 슬쩍하겠다는 건데 그 정도면 레니아도 가능하다. 내 가 난동 피울 때 슬쩍하는 건 말이다. "물론 레니아 님이 엄청난 도둑이라는 건 저희도 인정합니 다. 저희 업계에서는 전설이니까요. 하지만 마에스트로 님 파 티 단독으로 실행하신다면 오래 견디지 못할 겁니다. 마에스 트로 님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떼로 몰려드는 도적들을 다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 대신 저와 손을 잡으시면 부 하들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아...... 이 엄청난 유혹. 그렇지만 그냥 예스는 싫다. "전설급 아이탬 세 개." "좋습니다." 엥?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하는 제핀. 설마?! "원래 세 개 드리려고 했거든요." "......" "원래 낮게 불러야 이렇게 되는 겁니다. 후후훗." 당했다. ......역시 머리가 비상하다. 이걸로 도둑 길드 마스터는 아 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요? 일단 저희가 필요한 시간은 10 분입니다. 10분 안에 모든 상황을 정리할 겁니다." "10분? 좀 촉박하지 않아요?" "아뇨. 작전을 위해서라면 10분입니다." "작전......이라니요?" "당연히 레미네아 도적단에 죄를 뒤집어씌울 작전이죠." "......?" "지금 제가 그랜드 크룬에 정보를 찔렀습니다. 이곳에 대한 정보 말입니다. 지금 그 덕분에 일반 유저들이나 NPC 등 용병 들을 고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이곳에 도착 할 겁니다." ......무, 무섭다. 정말 무서운 작자다. 한 마디로, 단물은 이쪽에서 다 빼먹겠다는 뜻이다. "어찌 됐든, 잘 부탁드립니다. 일단 150명을 지원해 드리겠 습니다." "자, 피닉스. 네가 깐죽거리고 와." "오케바리!" 우리도 기세도 당당히 레미네아 도적단 입구에 서 있었다. 물론 우리 파티만은 아니다. 제핀이 지원해 준 150명의 도둑 길드원과 함게 말이다. "에헤헤헤. 다 덤벼! 나 같은 전설의 새는 정말 멋쟁이." "......" "그러고 보니, 나 왜 이리 멋있지?" "......" "흐음. 나 꽤 많이 잘났잖아?" "......" "아니, 완벽하다고 해야 할까?" "야, 피닉스." "앙?" "......내가 도적들 화나게 하라고 했지, 누가 자화자찬하라 고 했니?" "아, 실수. 생각해 보니까 내가 너무 잘나서 나도 모르게 그 만." "진짜......아무렇지도 않냐?" "뭐가?" "네 자신을 네가 칭찬하는 것 말이다." "응, 아무렇지도 않아. 난 내가 제일 자랑스럽거든." ......정말 분해하고 싶다. 아무리 봐도 저 피닉스, 신기하다. 정신상태가 말이다. 그 누가 피닉스의 정신세계를 파악하는 존재가 있다면 내가 가 진 160골드를 다 줄 용의도 있다. 물론, 그 어떤 존재라 하더라도 저 자식의 정신상태를 분석 하기란 무리일 테지만. "적이다!" "적이 몰려온다!" "모두 전투 준비!" "다 죽어라!" 드르륵. 순간, 들려오는 당황하는 음성과 문 열리는 소리. 도적들의 마을 입구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그곳을 통해 각 종 무기를 들고 나타나는 레미네아 도적단. 후훗. 1차 작전인가? 난 이곳에 오기 전 제핀이 내게 말한 내용을 상기해 내었 다. '최대한 난동을 피워 주십시오. 최대한......' 그래. 최대한 말이지. 좋아. 이런 건 꽤나 전문적이라고.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메이스를 치켜들었다. 왠지 오랜만에 느끼는 감촉. 너무 좋다. 후후훗. "다크 블레스." -모든 능력치가 520 상승했습니다. "다크 스트림." 끼이익! 그 순간 어둠의 악령이 내 무기에 깃들었다. 그나저나 이제 남은 건 다크프리스트의 히든 스킬이라고 할 수 있는 다크 헤이스트. 근데 빠른 놈들이 안 보인다. 그놈들에게 다크 헤이스트를 시전해야 효과가 좋은데 말이다. 한마디로 내 헤이스트는 상대방이 느림보라면 전혀 효과가 없는 헤이스트다. 스으윽! 그 순간 두 손에 단검을 쥐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 들어오는 도적 한 명. 나는 그 도적을 보고 양팔을 활짝 벌리면서 말했다. "어서 오게." "......" "하하하." 그래, 어서 와라. 내 재물이 되어라! 크하하하! ......왠지 악마틱하다. 뭐, 그래도 할 건 해야 하니까. "다크 헤이스트." "뭐, 뭐야?!" 그 순간,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던 도적의 당황하는 음성과 동시에 내 몸을 감싸는 바람의 힘. 한마디로 다크프리스트 실 행이다! 게다가 나는 당황하는 상대를 놓칠 바보도 아니다. 스으윽. 보통 기본적인 스피드에 더해 속도가 두 배로 뻥튀기되었 고, 거기다 다크 헤이스트까지...... 한마디로 지금 내 속도는 엄청나다. 그러니, 절대 못 피한다! 퍼억. "크아악!" 메이스에 한 대 맞고 거의 20미터 이상 날아가는 도적. 볼 것도 없다. 즉사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오오오오...... 이런! 저것들 레벨이 상당히 높나 보네? 이건 나를 위한 레벨 업 장소다. 한동안 레벨 업을 못하던 나. 아름다운 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저, 저놈을 죽여라!" "예사로운 놈이 아니다!" "저 자식을 먼저 죽여!" "어서!" 그때 나를 향하는 외침들. 나는 그 소리에 웃었다. 그리고...... "다 덤벼!" "마혈천혈!" "으아악!" "크아악!" "으악!" "제길!" "젠장!" 내 마혈천혈에 열 명 정도의 도적들이 단숨에 쓸려 나간다. 나 예상보다 너무 강해졌다. 분명 이 도적들은 상당히 강하다고 알려진 애들이다. 그런 데 그런 애들을 상대로 여유로움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게 있다. "죽어라!" 그 순간 내 등 뒤로 단검이 강하게 찔러 들어온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여유롭다. 여유롭다고! "라이프 블리지트!" 콰아앙! "끄아악!" 나는 내 뒤에서 기습공격을 가한 놈의 생명력을 이용해 라 이프 블리지트를 시전했다. 그리고 그 생성된 것을 그대로 곱 빼기에 곱빼기를 해서 돌려주었다. 흠칫. 그 모습을 본 도적들이 흠칫거리면서 뒤로 물러선다. 하지만 놓아줄 내가 아니다. "으하하하! 어서 오렴, 베이비들." "......" "......" "......" "......" "......" "크하하하!" 왠지 나 좀 악마틱해진 것 같은데? 흐으음. "너무...... 심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전멸시켜 버리시다니." "왜 그랬을까요?" "저한테 물으셔도......" "......에휴우." "정말 대단한 무력이시군요. 이 정도면 제가 상상했던 범위 를 훨씬 뛰어넘는데요." 그 말과 함께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제핀. 아이이잉. 그렇게 보면 쑥스럽잖아. ......크흐흠. 자중하겠다. 그나저나, 큰일 났다. 놈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야 하는데 내가 전멸을 시키는 바람에......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럴 때 필요한 게 정보 조작 아 닐까요?" "정보 조작......?" "그렇습니다. 지금 죽어 버린 시체 중 수십을 없애는 겁니 다. 한 마흔이면 되겠군요. 그리고 레미네아 간부 중 몇 명을 없애는 겁니다." "이해가 잘......" "흐으음. 간단히 말해, 돈에 눈이 먼 간부가 도적들을 유혹 해 서로 싸우다가 이렇게 전멸한 스토리라고 할까요? 그리고 없어진 경매품들은 이곳에 없는 자들이 가져간 걸로 하고 말 입니다." "허얼."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정말 무서운 작자다. 그렇게 금방 정리해 버리다니. 하아아. 이런 무서운 사내를 적으로 만들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고, 오늘 새삼스 럽게 느낀다. "그럼 저희가 숙소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오오오오...... 제일 좋은 거 세 개? 역시 통도 크셔! 그나저나, 오랜만에 상당한 레벨 업을 한 것 같다. 여기서 한번 점검(?)을.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294 HP/MP: 6,410/5,800 힘: 1,364(실제 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됩니다.) 민첩성: 660(실제 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승됩니다.) 지능: 212(실제 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됩니 다.) 체력: 210(실제 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됩니 다.) 행운: 5(실제 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됩니다.) 남은 스탯: 110 ......꽤나 많이 올랐다. 이제 300레벨이 눈앞이다. 그리고 분명 300이면 스킬 하나 는 던져 줄 것 같다. 그 정도 레벨에 스킬을 자주 던져 주니까 말이다.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294 HP/MP: 6,410/5,800 힘: 1,364(실제 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됩니다.) 민첩성: 770(실제 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승됩니다.) 지능: 212(실제 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됩니 다.) 체력: 210(실제 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됩니 다.) 행운: 5(실제 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됩니다.) 남은 스탯: 0 모든 스탯을 민첩성에 줘 버렸다. 요새 다크 헤이스트 덕분에 스피드에 필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 한 방 한 방의 파괴력도 좋지만 빠른 스피드도 꽤나 마 음에 든다. 휴우. 이렇게 오늘도 상쾌한(?)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키메라와의 재회] -바람의 반지- 전설. 세트 아이탬. 공격 속도를 20% 상승시켜 준다. -바람의 부츠- 전설. 세트 아이탬. 이동 속도를 40% 상승시켜 준다. -바람의 팔찌- 전설. 세트 아이탬. 공격 속도, 이동 속도를 10% 상승시켜 준다. ...... 허얼. 내, 내가 원하던 아이탬이다! 제핀이 내게 건네 준 세 개의 아이탬. 내가 진정 원하던 아 이탬이다. 요새 다크 헤이스트에 필을 받아 스피드에 은근히 집착하던 나. 그런 나에게 내려진 전설급 아이탬 세 개. 그것 도 세트다, 세트. -세트 아이탬 옵션-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면 이동 속도 100% 상승. 공격 속도 70%의 상승 효과를 가진다. 무기로 적을 공격할 시 일정 확률로 상대방의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를 80% 감소시킨다. ......세트 아이탬 옵션이 대박이다. 분명 세 가지 아이탬의 옵션을 합치면 이동 속도 50%에 공 격 속도 30% 상승한다. 하지만 세트 아이탬이 되는 순간 거의 두 배가 되어, 이동 속도 100%에 공격 속도 80% 상승한다. 한 마디로, %로 계산되다 보니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가 빠 른 사람에게는 무지무지 귀한 아이탬이다. 특히, 나. 스피드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나였기에 이 아이탬은 그 어떤 아이탬보다 값지고 멋졌다. 그리고 추가 옵션으로, 일정 확률로 상대방의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를 80% 감소시킨다. 이게 또 예술이다. 만약 이게 발동된다면 적은 거의 샌드백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버린다. 솔직히 말해 평소 스피드의 20%만 남게 되면...... 거의 기 어간다고 하는 말이 어울릴 정도가 될 테니까. 크하하하하! 그리고, 내가 엄청 힘들게 찾은 목걸이! -엘리퀴시진- 전설. 몬스터들의 접근을 막는 신비한 힘이 담겨 있는 목걸이. 이 목걸이를 착용한 자의 반경 30미터는 알 수 없는 힘으로 인해 몬스터가 침입할 수 없다. 단, 보스 급 몬스터나 특별 몬스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크크크. 바로 이거다. 마지막에 보스급 몬스터나 특별 몬스터에게도 해당된다고 적혀 있었으면 대략 난감할 뻔했다. 만약에 그런 상황이라면 그 키메라 자식의 접근마저 막을 테니, 녀석과의 기나긴 악연을 끝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저 말대로라면 키메라는 아주 특별한 몬스터니까 엘리퀴시진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기나긴 악연을 끊어 보자고. 그리고 덤으로 드래곤 로드 세르키스를 만나러 가 보자고. 이 정체불명 직업 의 감춰진 비밀을 찾아서!" 마물의 숲. 이걸로 두 번째다. 아니, 직접 안으로 들어온 건 처음인가? 저번에는 입구에서 깔짝거리다가 갔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정말 신기하다. 엘리퀴시진. 난 혹시나 했다. 혹시 얘가 불량품이면 어쩌나 하고 말이 다. 하지만 그런 나의 걱정은 부질없었다. 불량품이기는커녕 아주 성능 죽인다. 근방 30미터 안에서는 몬스터, 아니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인다. 그리고 30미터 밖에는 우리를 보고 못 잡아먹어 안달 난 몬 스터들이 보인다. "무슨 막 같은 게 생성된 것 같네요." "그런 것 같네." 나는 레니아의 말에 가볍게 대답해 주었다. 일행의 주위 30미터에 뭔가 막 같은 게 생성된 듯싶다. 어떤 사물이든 근처에 있다가도 내가 지나가면 마치 뭔가 에 부딪친 듯 뒤로 튕겨 나가 버리니까. 한 마디로 여기서 하하하 웃으며 미친 짓 좀 하고 뛰어다녀 주면 저것들 마구 튕겨 나갈 것 같다. ......꽤 재미있을지도. "야, 덤벼." "......" "푸헤헤. 근처도 못 오는 하찮은 것들?" "......" "꼽냐? 꼽냐? 그럼 오든가?" ......저런 놈 꼭 있다. 뒤에 숨어서 깐죽거리는 자식. 그리고 우리 파티에는 그 담당은 피닉스다. 자 자식, 정말 심하게 깐죽거린다. 지금 이상한 막에 둘러 싸여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러다가 갑자기 막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럴까? 뭐, 그런 경우는 없겠지만......이라고 생각했는데! 크르릉. "크으응!" "......" "......" "......" "......" "......" 우리는 모두 굳었다. 왜냐고? 저분들이 갑자기 막이라도 없어진 듯 우리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30미터? 그딴 게 어디 있겠는가. 이미 10미터 안으로 들어 왔는데. "오, 오빠." "윤현아!" "무슨 일이야?" "이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시나리오?" "주, 주여!" ......왜 나한테 그래. 내가 뭔지 어떻게 알아. 설마 이 아이탬...... 망가진 거냐? 이런 건 A/S도 안 되잖 아?!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 나는 얼른 목걸이를 확인해 들어갔다. -엘리퀴시진- 전설. 몬스터들의 접근을 막는 신비한 힘이 담겨 있는 목걸이. 이 목걸이를 착용한 자의 반경 30미터는 알 수 없는 힘으로 인해 몬스터가 침입할 수 없다. 단, 보스 급 몬스터나 특별 몬스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제한 시간은 하루 30분이다. ...... ...... ...... 으아악!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루 제한 시간이 있다는 걸 못 본 것이다. ......난 무제한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데...... 무제 한이 아니다! 30분이 지나면 땡땡땡이라는 거다. "나 살려!" "......" "으아악!" "나 살려 줘!" ......그 순간 안전한 곳에서 제일 깐죽거리던 피닉스가 모 든 몬스터의 표적이 된 채 마구 쫓겨 다니기 시작했다. ......저럴 줄 알았다. 안전하다고 깐죽거릴 때 알아봤지. 아 참, 그게 아니라...... 지금의 상황에서 탈출해야 한다. 젠장!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아주 암울한 상황이다. 마물의 숲 에, 그것도 깊숙이 들어온 한복판에서 몬스터들 개떼한테 둘 러싸인 상황. ......으아악! "다크 블레스." -모든 능력치가 630 상승했습니다. "다크 스트림." 끼이익! 나는 거의 습관적으로 다크 블레스와 다크 스트림을 걸고, 몬스터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피닉스를 구하기 위해 열 심히 움직였다. 저 자식이 좀 재수 없고 얄밉기는 하지만 그래도 죽게 내버 려 둘 수는 없다. 그동안의 정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나 정말 빨라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아이탬에 목숨을 거는구나 하고 이해가 갈 정도다. 그만큼 전설급 아이탬 세 개를 착용하자 나의 스 피드는, 거짓말 안 하고 약 두 배 이상 상승했다. 한마디로, 아탬빨이 빛난다는 거다. 아 참, 이런 생각을 할 시간은 없다. 계속해서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어서 처리해야 한다. "라이프 블리지트!" 콰앙! "꾸에엑!" "꾸에엑!" 내가 시전한 라이프 블리지트 한 방에 열 마리 정도가 충격 파와 함께 단숨에 휩쓸려 간다. 몬스터가 너무 많다 보니 스 플래시 데미지도 상당히 많이 들어간다. "마혈천혈!" 콰앙! "일루전 크레이전!" 퍼퍼퍽!" 스킬을 쓰는 대로 펑펑 날아가니, 왠지 상쾌한 기분이다. 근데 분명 저 자리는 내가 방금 족친 자리인데 어떻게 몬스 터들이 있을까? ......간단한 공식이다. 그 빈자리를 어느새 다른 몬스터가 채웠기 때문. 여기가 마물의 숲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빌어먹을! 다크 힐! 다크 힐! 다크 힐!" 나는 상처를 조금 입은 몬스터들을 향해 친히 힐을 걸면서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지만......! .......왜 몹들이 더 늘어나 보이는 게냐? "거참, 신기한 현상이다." "혀, 형제여!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몰려옵니다!" "가르, 말 안 해도 알거든?" "......" "굳이 기분 우울하게 상기시켜 주지 말아 줬으면 하는 바 람이 있다네." 내 눈이 병신도 아니고 그것도 모르겠냐? 사방팔방 각지에서 꾸역꾸역 나타나는 각종 몬스터 아저씨 들. 게임 정보란에서 몬스터 정보 안 봐도 되겠다. 여기 한 번 만 들른다면 이 세계에 어떤 몬스터들이 있는지 몸소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아!" 순간 내 머리를 번쩍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 "가르, 텔레포트!" "네!" 그렇다. 가르의 텔레포트가 어디 제대로 한번 떨어진 적은 없지만 이대로 몬스터의 밥이 될 바에는 텔레포트로 일단 탈출하고 보는 거다. 그렇게 나는 텔레포트라고 외치는 가르의 음성이 들려오기 를 기다렸다. 그런데...... "크, 큰일 났습니다!" "뭐가?" "이곳에 텔레포트 마법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럼 간단히 말해, 못 쓴다는 얘기?" "그런 말인데요." "......" 그것 참 우울한 소식이군. 한 마디로 마물의 숲에서는 텔레포트도 안 된다는 소리. 한 마디로 뒈지라는 얘기다, 그냥...... "이대로 뒈지기는 싫어! 살 거야!" 나는 절규했다. 내 얼마나 열심히 목숨을 연명해 왔는데 이런 곳에서 좌절 할 수는 없다. 절대 말이다! 네스티안 엘리라이진. 나의 첫 번째 유물이자 적이 많을수록 미친 듯한 위력을 내 는 스킬. 물론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그 한 번을 최대한 기회로 살려서 앞으로 달려야 한다. 어차피 퇴로는 없다. 앞으로 가는 길만이 있을 뿐이다. "어둠 속에 어둠. 영혼조차도 소멸시키는 어둠. 내 앞을 가 로막는 그 어떤 존재라도 파괴할 것을 명한다. 나의 이름 벨 라스의 힘으로." "......" "......" "......" "......" "......" 우리의 시선은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그 대상은 가르! 왜냐하면 갑자기 생뚱맞게 멋진 주문을 외웠기 때문이다. 나는 가르에게 말했다. "지금 폼 잡을 장면은 아닌데?" "아닙니다! 폼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마법?" "다크프리스트의 유물 증폭 마법이랄까요?" 뭐, 뭐라고?!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믿을 수가 없다. "가르...... 방금 뭐라고......?" "다크프리스트의 유물들의 증폭 마법입니다." "......" "믿기 힘드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말도 안 돼!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도 그걸 네가 어떻 게 아는 거야!" "......" 나에 윽박지름에 입을 다무는 가르. ......뭔가 있다. 저 자식에게 뭔가 비밀이 있다. 지난번에도 이상한 리치한테 뭐라 할 때는 그냥 잠시 미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저 자식에게 분명 뭔가가 있다. 정말 이 주문이 다크프리스트의 증폭 주문이라면...... 머리 아파진다. 크르릉! 크르릉! 하지만 이런 나의 두통을 저것들이 이해해 줄 리는 만무. 녀석들은 천천히, 천천히 우리를 죽이기 위해 좁혀 오고 있 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었지만 일 단 이 상황부터 넘어간 뒤 생각하기로 하자. "어둠 속에 어둠. 영혼조차도 소멸시키는 어둠. 내 앞을 가 로막는 그 어떤 존재라도 파괴할 것을 명한다. 나의 이름 벨 라스의 힘으로." ......! 나는 가르가 가르쳐 준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다음 순간 너무나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내 몸 안에서 마구 증폭되는 힘. 분명하다. 확실히 증폭 마법이다. 지금 이 상태에서 네스티안 엘리라 이진을 사용하면 최소 서너 배 이상의 데미지를 낼 것이다. "젠장. 가르...... 이 주문의 출처는 나중에 묻겠어! 네스티 안 엘리라이진!" 파아앗! 나의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 엄청난 속도로 방대한 영역을 덮어 버리는 어둠의 마나. 몬스터들은 이 어둠의 마나가 자신들에게 죽음을 선사하리 라는 것을 모른 채 계속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굳이 가르쳐 줄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거의 반경 100미터 정도를 어둠의 마나로 뒤덮자 난 오른손을 치켜들면서, 타악. 그대로 두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조금 오버해서 핵폭발에 어울릴 법한 파괴력으로 모든 몬 스터들을 말 그대로 소멸시켜 버렸다. 흔적도 없이. ......역시 강하다. 증폭된 게 맞다. 그것도 세 배나 네 배 이상. 도대체 가르가 다크프리스트의 증폭 마법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어떻게?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내 머리. 순간 데인이 말했다. "빨리 앞으로 달리자. 몬스터가 다시 몰려들기 전에!" ......그래야 할 것 같다. 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이미 뒤로 돌아가기는 너 무 늦었다. 어떻게 해서든 여기서 드래곤 로드만 만난다면 살 수 있다! "이런, 이런." 세키린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방금 그 파동은 분명하다. 다크프리스트의 유물 스킬 증폭 마법. 그 힘이다. "이런, 가르 군. 참으로 성질도 급하네." 그는 가르를 마치 잘 알고 있다는 듯 중얼거렸고, 잠시 후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뭐, 어차피 머지않아 내가 가르쳐 주려고 하긴 했지만 가 르가 먼저 가르쳐 줘 버렸군. 지금쯤이면 상관없으려나?" 그 말과 함께 세키린은 웃었다. "반갑군." "그, 글쎄." "지난번 치욕, 잊지 않았다." "잊어 줘도 굳이 뭐라 안 하는데." "......" "그리고 지금 나타나면 좀 그렇잖아? 나 네 졸병들 많이 조 지고 와서 힘이 없거든." "크크크.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 "......그렇긴 하네." 우리가 계속 전진하던 끝에 발견한 건...... 다름 아닌 전설 의 키메라였다. 지난번 자기가 불리할 것 같으니 속된 말로 그대로 튀어 버 린 키메라. 하필 네스티안 엘리라이진의 사용으로 힘들어 죽 겠는 내 앞에 등장하신다. 이런 개뼈다귀 하이킥 하는 상황은 어떻게 해야 만들어지 는 걸까?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아주 거지 같은 상황이다. "크크크. 이거 손쉽게 죽일 수 있어서 잘됐군." "글쎄. 네 생각대로는 되지 않아. 아무리 후들거려도 쉽게 당하지는 않는다고." 그 말과 함께 나는 그 스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마나는 모두 소진되었지만 피는 많이 남았다. 그렇 다면...... "생명력 전환." 그렇다. 생명력을 마나로 전환하는 스킬. 네크로멘서들과 쓰는 스킬과 흡사, 아니 똑같아 보이지만 그건 살포시 무시해 주자. 한편 그 스킬을 그렇게 사용하자 순식간에 피는 확확 줄어 들고 마나는 확확 올라온다. 역시 성능이 예술이다. 이길 수 있다. 다행히 저놈 근처에는 다른 몬스터가 없다. 저 혼자 떡하니 개폼 잡으면서 있다. 그게 뜻하는 바는, 저 자식만 상대하면 된다는 것. 간단히 말해 1:1 싸움이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그리고 저번에 분명 이겼다. 물론 지금은 지난번과는 상황 자체가 매우 다르고 안 좋지 만, 나도 그동안 업그레이드를 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허덕이는 놈이 나를 이길 수 있을까?" "응." "......건방진 자식." "너한테 그딴 소리 들을 이유는 없다, 이 이상한 괴물아." 내가 왜 너한테 건방진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되느냔 말이다! 나같이 지적인 인간이. "어쨌거나, 시작해 볼까?" 콰앙! "......제길!" "크크. 내가 또 다크 헤이스트에 걸릴 것 같으냐?" "......빌어먹을." 나는 또다시 녀석의 스피드를 슬쩍하려고 했다. 그런데...... 녀석은 계속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다크 헤이스트. 분명 엄청나게 좋은 스킬이다. 남의 스피드를 빼앗아 오는 직업이니까. 하지만 다크 헤이스트를 시전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건 바로 상대방과의 접촉. 접촉을 해야지만 그 스피드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새끼손가락 끝만 접촉해도 상관없다. 접촉만 하면 된 다. 근데 녀석이 그걸 눈치 채고 갑자기 나타나 한 번 공격하고 튀고, 또 한 번 공격하고 튀고 이런 방법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마혈천혈로 낚아서 스피드를 빼앗았는데 그것 도 용이치 않다. 내가 스킬을 쓸 모션을 취하면 가까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있냐?" "크크크. 내 마음이다." "......" 으으윽. 짜증난다. 저 자식. 정말 얄미워서 미쳐 버리겠다. 생각해 봐라. 갑자기 불쑥 나타나 한 번 공격하고 도망가 고, 또 사라졌다가 또 불쑥 나타나서 한 번 공격하고. 하아아. 한숨만 나온다. 스으윽! 그 순간 또다시 나의 왼쪽에 나타나는 녀석. 나는 속으로는 제길을 연신 외치면서도 피할 수밖에 없었 다. 안 피하면 뒈지니까. "크크크. 쥐새끼 같은 놈." "네놈이겠지." "네놈이다." "네놈이라니까." "도망가는 건 너다." "도망치면서 공격하는 건 너다." "......" 난 말싸움도 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나저나, 시간이 지나면 100% 나의 패배다. 무슨 방법으로 저 자식을 족쳐야 하나...... 그렇게 고민에 잠긴 나. 순간 내 머리를 번쩍 스치고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 었다. 옛 말에 이런 말이 있다. 뼈 주고 살 깎자. ......아니, 살 주고 뼈 깎자인가? 그게 그거니까 패스하고, 어찌 됐든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 고 상대방을 일격으로 부숴 버리는 공격법이다. 그리고 내게는 그런 공격법이 있다. 아직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두 번째 유물 스킬. 에스케리시스. 단 한 존재에게만 사용 가능한 스킬. 하지만...... 이 스킬에 당하는 존재는 100% 소멸이다. 그건 장담할 수 있다. 내부에서 732,400의 데미지가 폭발하는데 그 누가 살아남 을까? 한 마디로, 완벽한 방어 무시라는 건 이 스킬을 두고 말하 는 거다. 스으윽. 그 순간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나서 손톱을 강하게 찔러 오는 키메라 녀석. 이제 그 방법은 지긋지긋하다. 푸욱! "......크크!" 오른쪽 어깨를 내밀자 그 오른쪽 어깨에 키메라의 손톱이 강하게 박혔다. 아, 아프다. 민감도를 너무 높게 책정한 까닭에 이렇게 살을 파고 들어 오면 진짜 눈물 나게 아프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덥석. "......뭐, 뭐냐?" 내가 갑자기 자신을 껴안자 당황하는 키메라. ......원래 이상한 괴물을 껴안는 취미 따위는 절대 없다. 내가 껴안은 이유는 바로 고육지책. 즉, 살을 주고 뼈를 취 하는 방법이다. "그거 알아? 5초 지났어." "......?" "에스키리시스." "......!" 나는 그대로 오른손을 이용해 상대방의 몸속에 어둠의 마 나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놈은 갑자기 자신의 몸 안에 이상한 기운이 들어오자 순간 당황했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오른쪽 어깨에 강하게 박힌 녀석의 손톱을 강제로 빼 버렸다. 푸직. "크으윽." 제법 깊은 상처가 났다. 하지만 이 상처 하나로 좋은 선물을 되돌려 줬으니 그나마 만족한다. "잘 가!" "......" "크크크." "으아아악!" 녀석이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갑자기 주위가 어둠으로 짙 게 물든다. 그와 동시에 놈의 몸이 산산조각 부서진다. 말 그대로 어둠과 함께. 털썩. 그리고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는 나. 젠장. 너무 무리했나...... 그렇게 중력의 법칙에 철저히 따르는 나의 몸. 그때, 덥석. 누군가가 나를 붙잡았다. 누구지? 누가 나를 붙잡은 거야? ......궁금하다. 하지만 눈을 뜰 수가 없다. "그레이트 힐." 분명 가만히 놔두었다면 윤현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나 그를 부축한 남자. 20대 초반 정도에 시원시원하게 생긴 남자였다. 그뿐만 아 니라 웬만한 여성들을 설레게 만들 정도의 외모와 키, 그리고 몸을 가진 남자였다. 간단히 말해, 조각 같은 느낌? 그 미청년은 곤란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런. 손님 대접을 제대로 못해 버렸네요." "누, 누구시죠?" 갑자기 나타난 미청년을 본 혜경이 경계 어린 눈빛을 하고 물었다. 그에 남자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 다. "이분의 동료 분들이시군요. 제대로 접대를 해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 "흐으음. 제 정체를 물으셨죠? 저는 드래곤 로드 세르 키스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드래곤 로드!" "......!" "......!" "......!" 드래곤 로드라는 말에 모든 일행은 놀라서 굳어 버렸다. 자신들 앞에 드래곤 로드가 미소 짓고 있다. 놀라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곧 이어진 드래곤 로드의 한 마디에, 모든 일행은 더욱더 패닉 상태로 돌 입해 버렸다. "오래간만입니다, 가르 님." [외전: 에리에와 삼인방] 윤현이 접속하지 않을 때 에리아는 안타깝게도 레니아와 미친 삼형제가 돌봐 줘야 했다. 특히 돌봐 줄 존재는 레니아 밖에 없었으니,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남는 건 미친 삼형 제와 그녀뿐이었다. "이런...... 잠깐 볼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에리아 좀 부탁 드려요." 갑작스러운 일 때문에 에리아를 돌볼 수 없게 되자, 레니아 는 자연히 남은 가르, 데인, 피닉스에게 그녀를 부탁했다. 그런 레니아의 부탁에. "절 믿으세요." "잘 갔다 와." "나 알잖아? 전설이야." ......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삼인방. 하지만 그들에게는 흑심이 있었다. 커다란 흑심이. "신을 믿습니까?" "......" "신은 아름다운 분입니다. 신의 그랑상스한 느낌은 말로 표 현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라고나 할까요. 신을 믿으면......" 주절주절. 벌써 2시간째다. 가르는 2시간 동안 1분도 쉬지 않고 에리아에게 신의 아름 다움이라는 주제로 열심히 떠들어 대고 있었다. 물론 다른 존재였다면, '이 미친 자식아!' 이러면서 내팽개 쳤겠지만 상대방은 에리아다. 소극적이고 존재감이 별로 없는 그녀가 그런 말을 할 수 있 을 리는 없다. "그렇습니다. 신은 위대합니다. 신은......" "내 차례야." "......아." 그때 갑자기 끼어드는 피닉스. 그 말에 가르는 안타깝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욱더 신의 아름다움을 전파하고 싶었지 만, 자신에게 할당된 시간은 모두 소진됐다. 이제는 데인과 피닉스의 시간이 남았다. 피닉스는 가르의 설교에 울상이 되어 버린 에리아에게 다 가가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난 어린 것보다 큰 게 좋아. 전설이잖아." "......" "그리고 너 크면 나 배신하면 안 된다. 나만을 사랑할 거 지?" "......" "그렇다고? 배신하면 피닉스고." "......" ......거의 스토커처럼, 나중에 커서도 자신을 사랑하라고 세뇌를 시키는 피닉스 군. 그렇게 2시간이 지났다. "이제 내 차례야!" 데인이 외쳤다. 드디어 데인의 차례가 온 것이다. 이미 에리아는 거의 평소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 다. 그만큼 엄청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데인은 그것에 여의치 않고, "에리아, 내가 좋은 걸 가르쳐 줄게." "......" "자, 내가 누울게." 그러면서 바닥에 철퍼덕 누워 버리는 데인. 그리고는 홍조를 띠면서, "밟아 줘." "......" "밟는 연습은 어렸을 때부터 하면 좋아." "......" "자, 어서." "......시, 싫어요." 에리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싫다고 했다. 그녀의 그런 반응에 데인은 성화하기 시작했다. "뭐? 이 신성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어서 해!" "......" "어서!" "우아아앙!" "울어 봤자 구원자는 없지롱!" 데인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뭐 하는 짓거리냐?" "......" "......" "......" 그 단 한 마디에 기세등등하던 삼인방은 단숨에 굳어 버렸 다. 왜냐하면 그들의 유일한 천적이 어느새 와 있었기 때문이 다. ".....내가 저번에 말했을 텐데. 에리아에게 이상한 짓 하 면 곱게 죽지는 않을 거라고." "저, 저는 이상한 짓 안 했습니다." "나도 그랬어! 데인이 이상한 걸 시켰어!" "어, 억울해!" 피닉스가 자신을 몰아세우자 데인은 당황하면서 자신은 절 대 아니라는 듯 부인했다. 그 말에 윤현은 웃으면서, "다 봤걸랑?" "......" "그리고 나머지는 에리아에게 들어 보면 알겠지. 후훗." "......" "......" "......" "으아악! 주, 주여!" "나 살려!" "피닉스 죽네!" 퍼퍼퍽. "이 새끼들이 나 없는 사이에 생지랄을 해?" "으아악! 잘못했습니다! 저, 전 단지 신의 아름다움을......" "그렇다고 애한테 2시간 동안이나 설교를 해? 이 자식이." "나, 나는 그냥 나를 사랑해 달라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이 새대가리야!" "난 신성한 일을......" "나는 신성한 일이 애한테 마조히스트 교육 시키는 거냐?" 윤현은 쉴 새 없이 밟았다. ......역시 이들에게 원만한 대화는 곧 주먹이었다. <『다크프리스트』제5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