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조각사 3권 신성국가 레밀라 ...................................by.흡혈성향 §차례§ 1장 유물 네스티안 엘리라이진 2장 공주 납치 사건 3장 예은이가 우리 집에? 4장 소울 도그 5장 제스틴 마을 6장 요리 대회 7장 교황청 지하창고?! 8장 황궁을 털어라! 9장 두 번째 유물 10장 전설의 키메라 11장 일일 매니저? 12장 우리가 암살단? 13장 성주 습격 사건 14장 엘프들의 숲 ................................................ [유물 네스티안 엘리라이진] 내 귀로 방금 들었다. 방금 가르가 한 말을 말이다. '자, 시작해 볼가요?' 왠지 가르 같지 않은 대사. 한마디로 열나게 멋진 대사였다. 그런데, 그런데...... 뭘 시작하자는 거냐?! 저 이상한 리치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의 시작? "크하하하! 가르를 파견하다니. 그 자식들도 돌대가리군." "우어억! 혀, 형제여!" ...... 잠시나마 가르가 혹 히든카드에 멋진 캐릭터가 아닐까 생 각해 보았지만, 절대적으로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보통 만화나 소설을 보면 항상 일부러 어수룩한 척하는 놈들이 보이는데, 저 녀석은 '척'이 아니라 정말 어수룩했 다. 실제로 말이다. 전문용어로 닭대가리라고도 표현하지. "쿠어억!" 그때 그런 나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속절없이 수세에 밀 린 가르. 몇 초 후면 저 무술가 리치의 주먹에 완전 초전박살 나겠 다. 하아아. 바보 같은 놈이지만 그래도 일단은 내 동료다. 가르와 저 이상한 리치의 관계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지금의 상황을 해결하기로 했다. 스으윽! 난 그런 생각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몸을 이동했다. 가르와 무술가 리치 사이로. 다음 순간, 강하게 일격을 지르는 무술가 리치. 난 놈을 보고 강력하게 소리 질렀다. "다크 배리어!!" 우우우웅!! 생전 처음 사용하는 스킬이다. 상대방의 생명력을 끌어당겨 방어막을 치는 일석이조의 배 리어. 상대의 힘을 끌어 쓰는 관계로 깨질 확률도 상당히 적다. 그러니 여러모로 완소 스킬이다. 나의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 내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암흑 의 배리어. 보통 배리어는 저런 색깔 안 나오는데? 다크 배리어라 그런지 저런 구리구리한 색깔이 나오나 보 다. 콰아앙!! 으으윽! 순간, 격투가 리치의 주먹과 나의 다크 배리어가 부딪쳤다. 그런데...... 그런데...... 왜 이리 충격이...... "내 회심의 공격을 막아 내다니, 넌 뭐냐?!" "일단 가르의 동료라고 해 두지." "크하하하! 저 바보 녀석 동료면 너도 바보겠군." 빠직. 가르가 바보라는 건 인정하겠지만, 왜 나까지 옵션처럼 들 어가야 되지? 왜? 왜? "크하하! 바보 놈, 너는 무슨 삽질을 할 거냐?" "미안하지만...... 말야. 난 전투에는 자신 있걸랑!" 나는 그 말과 함께 개조 후 완전 뽀대로 변한 메이스를 꺼 내 들었다. 감히 나를 무시하다니. 파아앗! 그 생각을 하며 나는 그대로 있는 힘껏 내달렸다. 왠지 다크 배리어를 얻은 이후 전투에 더욱 자신이 생겼다 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런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항상 취약점이라 생각했던 방어에 관련한 걱정이 사라졌으 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만. 콰아앙! 내가 있는 힘껏 휘두르자 메이스는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당황한 리치의 손과 부딪쳤다. 그리고...... 빠지직! "크악!! 마, 말도 안 돼!!" 메이스와 부딪친 격투가 리치에 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 무기는 정말 과격하단 말야. "너...... 너 도대체 정체가?!" "프리스트." "......" "다크프리스트다!" 휴우. 생각 외로 어렵지 않았다. 분명 레벨 차이는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거참, 신기하다. "......커억. 괴, 괴물 됐다." "뭐야?" "아, 아니." "새대가리, 방금 나보고 괴물이라고 했냐?" "저, 절대 안 그랬어! 데인 자식이 그랬어!" "무슨 소리야, 이 자식아." "허억, 변명하지 마!" "너나 구라치지 마!" 순간, 마구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하는 변태 천족과 피닉스 한 마리. 정말 한숨만 나온다. 저들에게 정녕 온정이란 없단 말인가? 배반, 핑계, 치사, 이 딴 단어만 난무하다니. 그나저나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방적으로 밀린 가 르나 위로를...... "오, 주여! 사탄의 후계자가 드디어 각성을......" 퍼억! "으아악! 때, 때리지 마, 마세요." "닥쳐, 해골바가지!" "......" "자꾸 나를 사탄의 후계자로 매도하는데 말야. 오늘 죽어 봐라!" "으아아악! 가르 살려요!" "거기 서!" 나는 벌떡 일어나 도망치는 가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위로하겠다는 말, 전적으로 취소다. 아, 상쾌하다. 왠지 모를 이 상쾌함. 가르를 두들겨 패고 나자 느낄 수 있었다. 허억! 두들겨 팼는데 사, 상쾌하다니. 서, 설마? 아니다. 절대 그럴 리 없다. 말도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아 니, 있으면 안 된다. 절대, 절대 말야!! "좋지?" "......" "후후후, 같이 즐기자." "......" "캬캬캬!" 어느새 내게 다가와 넌지시 한마디 던지는 데인. 저 의도는 대충 파악된다. '즐기자'라는 표현도 물론. 간단 히 말해, '아아아아아아' 이걸 같이 하자는 소리다. "솔직히 때리고 기분 좋지 않았어?" "......" "솔직해져 봐~" "......" "하아, 하아, 하아." "나, 난 아냐!!" 나는 소리쳤다. 난 아니다. 절대로 가르를 팬 후 즐거웠다든가 하는 감정 따위는 없었단 말이다. "부정하지 마. 넌 이미 느껴 버렸어." "무, 무슨 소리 하는 거냐? 너는?!" "후후. 차차 알게 되겠지." 그 말을 남긴 채 가 버리는 데인. 나는 좌절했다. 내, 내가 그쪽으로 눈을 떴다고? 마, 말도 안 돼. "오, 주여. 오, 주여." 아니구나. 나는 맞고 일어나서도 여전히 신을 찾아 대는 가르를 보고 안심했다. 즐거워하면 때린 것이 아니라 짜증이 나서 팬 것이니, 녀석 을 때림으로써 기분이 후련해지는 건 당연한 것이다. 하마터면 데인의 말발에 넘어가 금단의 영역에 들어간 줄 알았다. 휴우우. 그러헥 우리는 재정비를 한 후 유물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 다. 그 이상한 격투가 리치가 남겨 준 건틀렛은 이미 주워 담은 후였다. "안내는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때, 자신만만한 어조로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말하는 가 르. ......너한테 맡기라고? "그럼 피 보는데." "아닙니다. 저는 이곳을 잘 압니다." "저, 정말?" "네. 비밀 통로로 추정되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그, 그럴 수가! 아니, 당연한 건가? 이곳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리치 와도 아는 사이니, 길쯤이야 아는 게 당연할지도. "가르, 부탁한다!" "네." "궁댕이 샤바 샤바 샤바. 아리카리 콧구멍 벌렁벌렁. 머리 는 대머리...... 구시렁구시렁." ...... 지금 내 기분을 위에 있는 말줄임표 그대로 해석해 주길 바 란다. 믿을 수 없었다. 내 앞에서 리치가...... 리치가...... 춤을 추고 있다. 그것도 뭔가 모자라 보이는, 이상한 주문을 외우면서 말이 다. 보통 저런 모습을 보면 꼭 생각하게 된다. 저 자식이 드디어 완전히 돌았구나 하고 말이다. 우리 일행은 가르가 안다는 말에 열심히 녀석을 따라왔다. 처음에 가르는 그 말이 사실이었다는 걸 보장하듯 꽤나 복잡 한 동굴을 요리조리 찾아갔다. 그런데...... 그런데...... 막다른 곳에 다다르자 갑자기 저렇게 된 것이다. 설마 길을 잘못 들어와서 그 죄책감으로 인해 미친 거냐? "가르,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그렇다고 미칠 것까지 야." 그렇다. 실수도 할 수 있다. 특히 이런 곳에서 길을 찾는다는 건 실수할 확률이 높다. 그런 일 가지고 미치는 건 좀 곤란하다. "란카나라 용머리는 바보. 대가리는 대머리......" 나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상한 주문을 외우며 춤을 추는 가르. 으윽. "오, 오빠. 가, 가르 씨가......" 순간 그 모습에 놀란 예은이 내 옆에 다가오면서 말했다. 나는 가르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망이 없다." "그, 그 말은......?" "그래, 미쳤어." 그래, 미친 거다. 완전히 돈 거다. 지금 가르의 상태는 영어로 직역하자면 크레이지 모드다. 그렇게 나와 예은, 혜경, 데인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가르를 바라보고 있을 때 오직 단 한 녀석만이 담담했다. "야, 새대가리." "와이?" "난 가르가 불쌍하지도 않냐?" "내가 왜?" "......" "나는 위대한 피닉스걸랑." "......" "쿠헤헤헤." 지금 당장 나에게 피닉스와 인정머리가 없는 성격이 어떤 관계인지 가르쳐 주길 바란다. 안 그러면 넌 이제 바비큐가 될 거야. 아무리 피닉스라고 해도 계속 구우면 언젠간 결판이 날 것이다. 크크크. 드르륵. "에엥?" 순간 막혔던 동굴이 열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해 가르 앞을 막고 있던 돌이 양옆으로 갈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휴우. 힘들군요." "......" "......" "......" "......" "......"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가르를 바라보았다. 진짜, 진짜 열린 거야? 그게 뜻하는 바는 그 이상한 춤과 주문이 이 동굴을 열기 위한 열쇠였다는 거냐?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아! 어찌 됐든 가르가 문을 열었다. 비밀 통로를 말이다. 그 비밀 통로를 여는 방법이 뭔가 상당히 이상했지만 일단 열었으니 그 점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하지만 역시 이해가 안 간다. 그 이상한 춤과 주문을 만든 놈이나 그걸 따라 하는 놈이 나...... 에휴우우. 그래, 기도하는 리치나 무술하는 리치의 생각을 읽으면 오히려 내가 더 이상한 놈이겠지. 난 그렇게 한숨을 내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약 100제곱미터 정도로 보이는 거대한 홀. 그러고 보니 동굴도 좀 이상했다. 동굴 깊이는 채 100미터 가 안 되어 보이는데,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장소가 100제 곱미터라니, 뭔가 이상하긴 하다. 하여튼 그런 거대한 홀 정중앙에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 다. 책이...... 책이! 서, 설마?! 나의 눈이 번쩍 떠졌다. 책이라고 한다면. 그, 그, 그......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이라 고 알려진 스킬북?! 그럴 확률이 높다. 분명 이 동굴에는 다크프리스트의 유물 이 존재하고, 이런 이상한 장소에서 책을 발견했다. 그럼 그 책을 당연히 유물이라는 정답이 나온다. "우어어엉!" 감격의 눈물을 흩날리면서 그곳을 향해 달려가려던 순간. 흠칫. 그러고 보니 이 거대한 홀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니다. 양쪽 벽에 붙어 있는 가고일 형상의 석상. 나 여기서 장담한다. 쟤네들 눈뜬다고 말이다. 번쩍. 번쩍. 번쩍. 역시 난 예언자 해도 되겠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석상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수십 마리의 가고일. 내 이럴 줄 알았어! 제길, 어쩐지 일이 너무 잘 풀린다 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그 시간 안에 저기 있는 스 킬만 획득한다면......! "가르, 데인, 새대가리! 예은이와 혜경이를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형제여." "나만 믿어." "여자는 지켜 주지. 크하하하!" ......아마 새대가리는 전투능력이 없을 테니 제쳐 두고, 데 인과 가르를 믿는 수밖에. 나는 엄청난 속도로 뛰어나갔다. 그런 내 속도에 맞춰 돌을 깨고 나온 가고일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신다. 제길, 제길. 누가 빠르지? 저 책까지의 거리는 앞으로 30미터. 그런데 어느새 다가온 가고일 한 마리, 제길! "다크 블레스!" -모든 능력치가 300 상승했습니다. 퍼억! 나는 달리던 그대로, 내게 달려드는 오우거를 향해 메이스 를 휘둘렀다. 다행히 불멸의 일진이 실행된 덕분에 오우거는 한 방에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내 앞에 보이는 책. 나는 얼른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다크프리스트의 유물 스킬입니다. 배우시겠습니까? "물론!!" 파아아앗!! 순간, 내 주변을 감싸 안는 빛. 그리고 그 빛에 멈춰 버린 가고일들. 다음 순간 내 앞에 창이 떴다. 스킬창이었다. -네스티안 엘리라이진- 일정 지역에 어둠의 마나를 뿌린다. 강력한 힘으로 상대방의 스피드를 100% 감소시킨다. 시전 자의 의지에 따라 폭발이 일어나 3,400의 힘으로 데미지를 준 다. 참고로 그 폭발은 스플래스 데미지이다. 적이 많이 뭉치면 뭉쳐 있을수록. 스플래스 데미지로 인해 더 욱더 강력해진다. 대신, 사용의 힘은 경험치로 계산된다. 또한, 시전자의 마나 전체가 소모된다. 커억!! 미, 미치겠다. 스킬이?! 한마디로 광역 폭발 마법이다. 여기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연쇄 폭발. 물론 한 명에게 사용할 때는 일반 스킬보다 약하지만, 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데미지의 수치가 장난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한 명이면 3,400이지만 열 명은 34,000, 스무 명 이 68,000, 서른 명은 102,000...... 어이없다. 그리고 마지막 말. 너무 기쁜 와중에 약간 거슬리긴 하다. 경험치라니. 내 피 같은 경험치라니! 뭐, 그래도 적이 많이 뭉쳐 있다면 충분히 쓸 만할지도 모 른다. "꾸에에엑!" "꾸에엑!" 그때 가고일 무리가 갑자기 내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 어라? 왜 저러지? 다른 일행을 향해 가던 놈들조차도 갑자기 방향을 틀어 내 게 오다니, 이상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뭐, 내겐 좋았다. 이 스킬을 실험해 보는 것도...... "네스티안 엘리라이진." 파아앗!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에 가득 차는 어둠의 마나. 그러자 맹렬히 다가오던 가고일들의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 다. 이제 남은 건 이 어둠의 마나를 폭발시키는 것! 여기서 중 요한 건 의지로 행해야 한다는 것. 그 말뜻은......? 아무렇게나 해도 터진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냥 터지길 기다리고 서 있으면 유치하고 폼도 안 나니까...... 나는 슬며시 뒤돌아섰다. 그리고 긴장 어린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는 일행을 향해 웃어 보인 뒤, 그대로 오른손을 들고 잠시 후 손가락을 탁 튕 겼다. 따악! 콰아아앙!! 으아아악! 얼마나 강력한 폭발이었는지 직접 시전한 나도 놀랐다. 그 리고 무엇보다 그 강력한 폭발 속에서도 나는 아무 이상 없다 는 것...... 전멸. 단 한 번이었다. 수십 마리의 가고일이 말 그대로 흔적만 남긴 채 완전히 부 서져 버렸다. "오호, 유물을 찾았나?" 세키린은 웃었다. 분명 지금의 그는 웃을 상황이 아니었다. 복면을 뒤집어쓴 수십 명의 암살자가 사방에서 그를 노리 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지금 느껴지 는 감정이 더 중요했다. "이거, 이거. 앞으로 좀 더 재밌어질 것 같은데, 후후." 세키린은 그 말과 함께 섣불리 공격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 는 암살자들을 향해 그대로 내달렸다. [공주 납치 사건] 으갸갸갹! 왠지 모를 이 상쾌함. 기분 좋다. 우리는 모든 볼일을 마친 뒤 그랜드 크룬으로 돌아갔다. 그 것도 그냥 돌아간 게 아니라 무지무지 강해진 채 말이다. 유물과 힘. 정말 엄청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사기라는 단어가 붙어도 이상하지 않 다. 그나저나, 나머지를 모두 찾는다면...... 천하무적? 허억!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아니야." 혼자서 히죽거리는 나를 본 예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는 그 물음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어 보였다. 그래, 지금은 즐기는 거다. 방해물이나 마찬가지인 놈들이 사라진 지금을 말이다. 리치 한 마리와 마조히스트 한 마리, 그리도 새대가리. 나는 그들을 이렇게 부른다. 또라이 삼총사.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제일 중요한 건 그들이 내 곁에 없다는 거다. 이 그랜드 크룬을 구경하기 위해 사라 져 주신 것이다. 그럼...... 남는 건 당연히 예은과 혜경. 그리고 나. 아아아아아앙. 어찌 됐든 베리 베리 굿한 상황이다. 난 정말 이런 상황을 원해 왔다. 거지 같은 놈들의 방해 없 이 이런 미소녀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상황. 그런데 왠지 기분이 꿀꿀하다. 그 또라이 삼총사. 설마 이상한 짓을 저지르고 다니진 않겠지? 한 명만으로도 이상한데, 세 명이 모이면 시너지 효과로 엄 청난...... 아아, 괜한 걱정이다. 설마 무슨 사고를 치겠는가? 설마 말이다. 가르 왈. "신의 딸입니다." 데인 왈. "우아아! 크면 꽤나 잘 밟아 줄 것 같아. 아이이잉." 피닉스 왈. "꽤 귀엽잖아? 키워야지. 히히히히." 그들 삼총사는 골목길을 가던 중 우연찮게 한 소녀를 발견 했다. 대략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소녀로, 엄청 비싸 보이는 화려 한 드레스를 입고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른 몹쓸 놈들에게 걸리지 않고 또라이 삼총사에게 먼저 걸려 화를 면했지만, 그렇다고 다행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상 황이었다. 지금 저 또라이 삼총사의 행동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데려가자." "데려갑시다." "그래, 그래." ......엄연히 납치였다. "......갠 뭐냐?" 나는 겁먹을 눈빛을 한 채 웅크려 있는 소녀를 보고 물었 다. 푸른색의 화려한 드레스, 그리고 그 드레스에 붙어 있는 무 지무지 비싸 보이는 장신구, 꽤나 귀여운 외모, 크면 제법 미 인 소리를 들을 만한 소녀다. 아 참, 이게 아니라. "......어이, 삼총사. 다시 물어보겠는데, 얘는 뭐야?" "신의 딸입니다." "주워 왔어." "우리 착하지?" ...... 데인의 말에 나는 경악했다. 주워 오다니. 애가 무슨 물건이냐? 주워 오게...... 그리고 피닉스 녀석, '착하지?'라니. 정말 할 말 없게 만든다. 착한 게 다 얼어 죽었다. 여기서 잠시 상황 정리. 일단 저 소녀는 길을 잃었다. 그런 소녀를 저 또라이 삼총 사가 발견해 냈다. 그리고 어이없는 생각을 거듭한 뒤 소녀를 데려왔다.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미아가 된 소녀의 집을 찾아 주 기 위해 데려왔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럴 확률은 0%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신의 딸이니 잘 보살펴야 합니다." "크면 잘 밟아 줄 것 같아. 히히히." "키워서...... 키키키." 역시나...... 저게 저것들의 본심이었다. 아아아아, 머리 아파. 나는 말했다. "지금 장난하냐? 소녀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데 집을 찾아 주겠다는 생각은 않고 웬 거지 같은 생각만 하고 앉았냐? 앙?" "......" "......" "......" 나의 말에 입을 다무는 녀석들. 하아, 정말 한심하고 어이없다. 나라도 정신 차리고 저 소녀의 부모를 찾아 주...... "유괴범들이다!!" "공주님!" "큰일 났다!" "공주님이 납치당하셨다!" "어서 구해!" "제길, 잡히면 죽음이다!" "공주님을 절대 안전하게......!" 저기요, 잠깐. 그거 우리한테 하는 말 맞습니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우르르 몰려드는 병사들. 그리고 우 리를 향해 던지는 듯한 한 마디. '납치범' 나는 왜면했다. 절대 우리를 향해 말한 게 아닐 것이다. "후드를 뒤집어쓴 납치범들이다!" "제길! 잡아!" "공주님을 지켜라!" ......우리 맞네. 확실히 맞아. 하지만 절대 오해다. 나는 지금 분명 소녀의 부모를 찾아 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저, 저기...... 여기에는 피치 못할 이유가......" "죽여라!" "공주님을 넘겨라, 이 사악한 놈들!" "공주님, 금방 구해 드리겠습니다!" 나의 말은 저들의 귓등으로는 안 먹히는 모양이다. 아니, 눈만 봐서는 거의 광견 수준이다. 내가 아무리 뭐라 하든 저들은 우리를 유괴범으로 몰 게 분명하다. 이럴 때는...... "튀어!" 나는 그 말과 함께, 예은과 혜경을 양팔로 안은 채 내달렸 다. 으아악! 뭔가 이상해. 그래도 기분이 좋은데? 누가 데려온 거냐? 도대체 누가? 누가? 누가? 저 소녀를 말이다. 우리 앞에 잔뜩 겁먹고 움츠린 채 크고 고운 눈망울을 흔들 고 있는 소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지만, 엄청나게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저 소녀를 도대체 누가...... "내가 가져왔어. 헤헤헤." "......" "잘했지?" "죽여 주마, 데인." "자, 잠깐! 왜 그래?" "닥쳐!" "으아악! 왜! 왜!" 퍼퍼퍼퍽. "크아악!!" 난 그대로 녀석을 밟기 시작했다. 무자비하게. 녀석은 아무리 마조히스트라 해도, 특정 한계 점을 넘기면 충분히 고통스러워한다. 그동안 깨달은 점이라고나 할까? 퍼퍼퍼퍽. "으아악!!" 난 쉴 새 없이 밟아 댔다. 데인 저 녀석은 분명 자신이 왜 맞는지 그 이유조차도 모르 고 있을 게 분명하다. 때문에 나는 친히 밟아 주면서 말했다. "이 개자식아! 애를 데려오면 어쩌자는 거야! 앙? 앙? 앙? 안 그래도 오해 받고 있는데, 애 데려오면 우리는 완전 납치범 이잖아!" "자, 잘못......" "닥쳐!" "으아악!!" 나는 죽도록 밟았다. 오늘로서 너의 생명은 끝이다. "괘, 괜찮니?" "무서운 사람들 아니야. 걱정 마." "으아아앙!" "어, 어떡해요, 오빠." "윤현아......" 나는 나를 바라보는 예은과 혜경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그 소녀. 즉 공주라고 불렸던 소녀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 다. 내가 데인을 밟는 모습이 아직 어린 소녀로서는 거의 문화 적인 충격이었을 것이다. 괜히...... 내가 미안해지네. 어째 됐든 어느새 후드를 벗고 열심히 달래기 시작하는 예 은과 혜경. 그래도 다행이다. 저분들이 아니었다면...... 끼이익. 그 순간 저 멀리서 날아오는 독수리 한 마리. 어라? 저놈은......? 혜경이가 데리고 다니는 란타스인가 뭔가 하는 새 아닌가? 나에게도 새가 있다. 젠장. 그런데 내 새는 정말 건방져서 저런 일 안 한다. 아니, 손 좀 봐 줘야 움직인다고 할까? 곧 죽어도 저는 전설적인 피닉스라고 우기고 있었다. 아하하! 어느새 혜경의 어깨에 내려앉은 란타스가 혜경의 귓가에 부리를 가져다 댔다. 난 동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관계로 패스. "......그래?" 끄덕끄덕. 혜경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란타스. 왜 저러지? 혜경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대체 왜? "저, 저기. 윤현아. 큰일 났어." "큰일?" "응." 불길하다. 불길하다. 불길하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일이라니. 서, 설마...... "우리에게 현상금이 붙었대. 공주 납치......로." "......" 아아아아! 지금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쓰러지고 싶다. 현상금이라니. 너무나도 순수하고 해맑아서 그런 단어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내게 현상금이라니! 그것도 아동 납치범으로 말이다. "맛있어?" 우물우물. 끄덕. "헤에, 귀여워." 나는 울음을 그친 채, 예으닝 건네준 빵을 먹는 공주를 바 라보았다. 다행히 예은과 혜경의 노력으로 공주는 울음을 멈 추었다. 울음을 멈춘 건 좋았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내가 순박하게 미소 지으며, '제 동료가 실수로 납치했는데......' ......라고 말하면 믿어 주겠는가? 나라고 해도 절대 믿어 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즉 결 사형일 테다. 끄아아악! "역시 신의 딸입니다." "어른이 되면 잘 밟겠어. 헤헤." "크크크. 미녀가 될 게야." ...... 나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일을 크게 만들어 놓고 저 어린 소녀를 앞에 둔 채 음침한 대사를 쏟아 붓고 있는 그들, 또라이 삼총사를 보고 말이다. "니들 다 죽었어!" "허억! 왜, 왜요?" "마, 맞아." "난 전설의 피닉스야!" "닥쳐! 니들 다 죽었어!' "으아아악! 살려 주세요!" "나 살리소!" "난 전설의......" 질질질. 나는 소녀들의 정신 건강상, 녀석들을 숲 속으로 끌고 갔 다. 오늘은 기필코 다 죽여 주마, 이것들아. "흐흐흑. 더럽혀졌어요." "뼈, 뼛속까지......" "전설의 피닉스를 이렇게 박대하다니." "더 맞고 싶냐?" "......" "......" "......" 나의 한마디에 조용해지는 또라이 삼총사. 하아. 한숨만 나온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저 또라이 삼총사를 마을에 풀어놓았던 게 잘못이었을까? 아무리 저들이 이상하다 해도 그 누가 공주를 납치해 올 거 라고 생각하겠는가? 말 그대로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그런데 저것들은 해냈다. 하아...... 나오는 건 한숨, 한숨뿐이다. "오빠, 어떡하죠. 에리아......" "......그러게 말이다." 혜경에게 그 꼬마 공주, 에리아를 맡기고 온 예은이 걱정스 러운 어조로 말했다. 나는 어느새 예은, 혜경과 친해져 해맑게 웃고 있는 에리아를 바라보았다. 재를 다시 성안에 돌려놓으면 괜찮으려나? 아무와도 부딪 치지 않고 몰래 말이다. "다시 성으로 돌아가자." "시, 싫어요......" "......?" 그때,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에리아가 처음으로 말문 을 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잔뜩 움츠러진 목소리로 말을 이 었다. "서, 성은 싫어요......" "......" "성에 가면...... 너무 외롭고, 매일매일...... 훌쩍훌쩍." 순간 또다시 울음을 터트리려는 에리아. 혜경이 다급히 안아 다독거렸지만,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 왜 성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거지? 이 나라의 조정에 무슨 문제라고 있는 건가? 아니면 암묵적 인 세력 다툼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오빠, 부탁이 있어요." "응?" "......에리아를 데려가면 안 될까요?" "......" "에리아가 돌아가고 싶어 할 때까지만요. 부탁드려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는 예은. 커어어어억! 미, 미칠 것 같다. 남자라면 절대 거부하지 못한다. 저 예은이의 부탁을. 예은 이의 애절한 눈빛을 쳐다보자 정말 미쳐 버릴 것 같다. "안......될까요?" "아, 안 되긴? 절대 돼. 절대로. 하하." "고마워요, 오빠. 헤헤." 그리고 밝게 웃는 그녀. 난 행복한 남자. "아자!" "아자!" "땡잡았다!" 그때, 어느새 부활한 또라이 삼총사가 제각기 외쳐 댔다. 저것들의 회복력이 나날이 발달하는구나. 이제는 거의 트 롤 수준이다. 그나저나, 아자? 땡잡았다? 그 말의 의미는...... "야, 거기 삼총사." "......?" "......?" "......?" 내 부름에 나를 바라보는 삼총사. 나는 그들을 향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에리아에게 이상한 짓 하는 순간 너희들은 파묻힐 거다. 영원히 말이야. 알겠냐?" "......" "......" "......" "왜 대답이 없지?" "무, 물론입니다." "그런 불순한 의도는 없어." "맞아, 맞아. 난 전설의 피닉스잖아." "부디, 오래 살기를 기도하마. 크하하하." 나는 굳어 버린 삼총사를 보고 마지막으로 한차례 웃어 준 후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나저나 이제 그랜드 크룬에는 못 가게 생겼다. 그랜드 크 룬에 발을 딛는 순간, 나는 대범죄자가 되어 당장 공격을 받을 테니까. 그럼 나머지 세 나라의 수도가 남는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할까? 아직 유물에 대한 힌트도 없었다. "신성국가 레밀라로 갈까?" 신성국가. 말 그대로 신성한 것들로 가득한 나라다. 바글거리는 프리스트와 성기사, 그리고 각종 신성한 직업 들로 가득한 곳. 그곳이 바로 레밀라다. 그리고 그런 곳이라면 그래도 프리스트인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을 찾을 확률이 다른 곳보다는 훨씬 높을 것이다. 아니, 엄청. "좋아! 이번 목적지는 신성국가 레밀라다!" [예은이가 우리 집에?] 오늘은 게임 캔슬이다. 혜경이가 큰 볼일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하고 싶었지만 가끔은 이렇게 휴식도 취해 줘야 한다. 게임하다가 갑자기 죽어 버리는 사례에 포함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하아아. 그나저나 에리아는 괜찮겠지?" 나와 혜경이 접속하지 않고 심지어 예은조차도 들어가지 않으면 또라이 삼총사와 에리아만 남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불안해지는군. 이상한 짓거리를 하면 영원히 묻어 버리겠다는 나의 협박 의 그들의 뇌에 잘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휴우, 그나저나 오랜만에 게임을 안 하니 뭔가 묘한 느낌이 군. 흐으음. 그렇게 알 수 없는 느낌에 묵묵히 고민에 잠길 때였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갑자기 울리는 목소리. ......손님? 손님이라니. 우리 집에 올 만한 이라고 해 봤자, 거의 한 손 에 꼽힌다. 아니, 한 명이다. 영현이 녀석. 놈을 제외하고는 우리 집에 올 사람은 없었다. "영현이냐?" -아닙니다. "......엥?" 슈퍼컴퓨터의 대답을 들은 나는 당황스러웠다. 영현이 녀석이 아니라고? 그럼 누구냐? "택배 아저씨?" -아닙니다. "그럼 누구냐?" -여성 분입니다. "여자?" -네. 여, 여자라니......? 우리 집에 여자라니?! 생각지도 못한 슈퍼컴퓨터의 대답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여자라니, 그것도 우리 집에 말이다. "모습을 비춰." -알겠습니다. 띠잉. 내 말에 슈퍼컴퓨터는 당장 바깥의 모습을 비추었고, 그곳 에는 모자를 뒤집어쓴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한 여자 분 이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부드러운 저 긴 머리카락이 그녀를 여자임을 짐작케 했다. 설마, 머리를 저만큼 기른 남자 놈은 아니겠지? 난 대문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간 뒤 말했다. "누구세요?" "오빠......" 오빠? 오빠? 오빠? 게다가 사람 완전히 넋 나가게 만드는 목소리. 이 목소 리는......! "예, 예은이?" "네......" "허억! 가, 갑자기 웬일이야?" 나는 너무나 당황스럽고도 꿈같은 이 상황에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내 물음에 예은이 의아한 듯 대꾸했다.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 어, 어라? 그러고 보니...... 어제 혜경이가 게임에 접속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내일은 모두 휴무라고 말했는데 다음 순간 머 뭇거리면서 내게 다가온 예은이, "오빠, 부모님과 따로 살아서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시는 것 같은데, 내일 제가 밥을 해 드려도 될까요?" ...... 그리고 난 그 말에 초흥분을 해 버렸지. 커억! 그런 중요한 일을 까먹다니, 내 머리가...... 내 머리 가 바보가 됐나 봐. "오빠?' "미, 미안! 어, 어서 들어와! 문 열어 줘!" -알겠습니다. 예은이가, 예은이가 우리 집에 오다니. 최고의 아이돌 가수이자.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천사라는 말 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예은이가 우, 우리 집에...... 으아아 악!! 미쳐 버리겠다. "조, 조금 지저분하지?" "아니에요, 헤에." "......" 크아악! 귀, 귀엽다. 예은이 집에 들어오자, 나는 평소 잘 하지 않던 청소도 초 광속으로 끝내 버렸다.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서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하는데, 나 역시 오늘 초인적인 힘을 발 휘할 수 있었다. 물론 청소일 뿐이었지만. 그나저나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오다니. 예, 예은이는 혹시 대담......? 아니다. 예은이는 의외로 너무 순수했다. 보통 연예계의 몸 을 담으면 산전수전 다 겪어 노회해진다고 하지만, 그녀는 예 외였다. 제법 잘사는 집안인 관계로 음흉한 놈들이 쉽게 예은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아버지가 전적으로 관리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녀는 그저 노래 부르는 걸 즐기는 것뿐이다. 그런 순수한 예은이 나를 믿고 있다. 커억! 그 말에 왜 이리 흥분되는 거냐! 왜! 왜! 왜! "오빠, 주방 좀 빌릴게요. 요리를 잘하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할게요." 싱긋. 그 말과 함께 내게 웃어 보이는 예은. 나의 영혼은 당장이라도 승천할 것 같았다. 아, 정말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간다. 이게 현실 이라면...... 난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다. 행복한 남자야! "정말 맛있어!" "저, 정말요?" "응!" 나는 내 앞에 음식을 차려 놓고 긴장 어린 기색으로 묻는 예은에게 활기찬 어조로 말해 주었다. 나의 한마디에 안심한 듯 긴장을 푸는 그녀. 한숨까지 내쉰다. "휴우." "요리 실력 정말 대단한데." "아, 아니에요. 사실...... 요리를 대접하는 건 가족을 제외 하고는 오빠가 처음이어서 많이 긴장했거든요." 허억! 내가 처음이라고?! 그 한마디에 내 심장은 더욱더 두근거렸다. 왜 이러냐. 심장 자식이 미쳤나? 왜 이리 발작해 대는 거 냐!! 사실 예의상 예은의 요리가 맛있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정 말 맛있다. 그런데 가족을 제외하면 이런 음식을 대접 받은 게 내가 처 음이라니! "정말 고마워." "아, 아니에요. 오빠가 항상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서 걱정됐거든요." "......걱정?"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엥? 왜 저리 당황하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래도 걱정해 준다니 너무 기쁘다. 무지무지 말이다. 그나저나...... "이 큰 집에 우리 둘이네." 발그레. 허억! 나의 한마디에 갑자기 얼굴을 붉히는 그녀. 설마 지금까지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던 건가? 케엑, 말 잘못했다. 괜히 이 말을 꺼내서 분위기를 더욱 어 색하게 만들다니. 어색한 건 당연했다. 이 집에는 나랑 예은, 단둘뿐이니까. 사실 나도 떨려 죽겠다. 그렇게 예은이와 내가 한참 침묵에 잠겼을 때였다. "아아아, 이 형님이 오셨다!" ......! 뭐, 뭐야?! 난 기겁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가 프리스트를 선택하게 한 장본 인이자, 나름대로 베스트 프랜드에 속하는 영현이 녀석이었 다. 이 자식이 갑자기 무슨 일로. "야야! 문 열어." 쾅쾅! 어느새 문을 두드리는 영현이 녀석. 그 소리에 예은이는 당황하면서 내게 말했다. "어, 어떡해요, 오빠?" "어떡하지? 그, 그래. 숨어 있을래?" "숨......어요?" "미안. 저기 내 방에 옷장이 있어. 거기에 들어가 있어." "네!" 그 말과 동시에 예은은 다급히 내 방으로 달려갔다. 근데, 내 방 꽤나 더러울 텐데. 아니, 그것보다 지금의 상황을...... "뭐, 뭐냐? 왜 왔어?" "뭐야. 친구가 와 줬더니 왜 왔냐니." "아, 아냐. 가도 돼." "웃기는 자식이네. 문이나 열어." "......" "어서 열어. 안 열면 창문 깨고 들어간다." "......알았다. 열어 줘." -알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은 자동으로 열렸고, 문이 열리자 마자 평범한 사복 차림을 하고 있는 영현이 녀석의 모습이 보 였다. "이 평화로운 주말에 왠일이냐?" "진짜 웃기는 놈이네? 오늘따라 왜 그러냐?" "......" "수상하게 말이야." 그 말과 함께 익숙한 듯 집에 발을 들여놓는 영현이. 자연스럽다. 아니, 당연한 걸지도. 우리 집에 한두 번 오는 것도 아니니까. "킁킁." "......!" 허억! 순간, 갑자기 들어오자마자 개처럼 냄새를 맡기 시작하는 녀석. 난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 상황이 상당히 미묘한 관계로 저런 행동조차도 내 마 음을 뜨끔하게 만든다. "여자 냄새인데?" "......" "이건 분명 여자 냄새야. 그것도 상당히 좋은 냄새." "무, 무슨 소리냐!" "말까지 더듬네, 친구?" "......" 나는 갑자기 탐정처럼 변한 영현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했 다. 저 자식, 들어오자마자 핵심을 찌르다니. 도, 도대체......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게 착각이 아니라 면 저건 여성용 운동화라는 거지." "......!" 그, 그렇다. 현관에는 신발이 있었다. 예은이 신고 온 은색의 운동화였다. 난 다급하게 말했다. "그, 그거 내 거야!" "풋. 여자 신발인데?" "나 사실 여자 신발 신는 게 취미야." "푸하하하! 거짓말도 어이가 없군, 친구." "......" "그래. 그렇다 치자. 하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갑자기 식당으로 들어가는 자식. 난 그 급작스러운 행동을 저지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한편, 한가득 음식이 차려진 식탁을 본 놈은 웃었다. "이제 거짓말은 포기하는 게 좋은 거다." "......" "대담한 녀석이군. 주말에 여자친구를 부르다니 말이야." "무, 무슨 소리냐! 저건 내가 차려 놓은 건데!!" "푸하하하! 네가 저렇게 차려 먹어? 그 누구보다 너를 잘 아는 아니데? 네가 저렇게 차려 먹을 확률은 0%다. 너라면 고 작 컵라면이나 끓여 먹고 있었겠지." "......" 이 자식, 무섭다. 나에 대해 알아도 너무 많이 안다. "후후. 그럼 이제 여자친구 분을 찾아보실까? 보통 이럴 때 는 옷장에 숨기던데 말이야. 크크크." 헉! 이, 이 무슨 족집게 같은 자식이란 말인가. "한번 가 보실까?" 그 말과 함께 곧바로 내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영현. 나는 다급해졌다. 만약에 내 방에 들어가 옷장을 열면 거기에는 예은이가 있 다. 그, 그럼......! "아, 안 돼!" "뭐야?" 나는 얼른 달려들어 영현이 자식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절대 이상한 의미로 껴안은 건 아니고 놈이 가지 못하게 하 려는 의도였다. "절대 안 돼!" "역시 내 예상이...... 오늘 네 여자친구를 내 눈으로 봐야 겠다." "없다니까! 그냥 집에나 가셔." 난 그 말과 함께 강제로 녀석을 번쩍 들어 대문으로 이동했 다. 그런데...... "놔라! 놔라! 오늘 꼭 보고 말겠다!!" "없다니까!" "이런 구라쟁이. 내가 속을 것 같으냐!! 내 이 한 몸 바쳐 네 여자친구를 꼭 보고 만다!" 철컥. 나는 그대로 문을 열어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는 녀석을 거 의 내팽개치다시피 해서 쫓아 버렸다. 그러고 나서, 콰앙! 그대로 강하게 문을 닫아 버렸다. "문 열어! 내 오늘 꼭 정체를 확인하고 만다!" 나는 밖에서 거의 절규하다시피 하는 녀석을 그냥 무시하 기로 했다. 한동안 지랄발광하다가 가겠지, 뭐. 이, 이럴 수가! 나와 예은은 동시에 경악했다. 우리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 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예은이 집에 돌아갈 채비를 했는데, 돌 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우리 집 밖에서 완전히 자리를 깔아 버린 영현이 녀석 때문 이었다. 저 녀석의 집념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저 정도 로 심할 줄은 몰랐다. 침낭까지 깔고 누울 줄이야. 어느새 근처 가게에서 침낭을 사 온 게 분명하다. 저거 꽤 비쌀 텐데...... 오직 친구의 여자친구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비싼 것도 마다않고 사는 저 집념.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나도 놀랍다 못해 기절하겠다. 게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길 한복판에 깔고 누운 대담함. 그 점이 더 존경스럽다. "어, 어떡해요, 오빠." 예은이 곤란하다는 듯 내게 물었지만 나는 그 물음에 대답 을 해 줄 수가 없었다. 내가 저 자식을 잘 알아서 하는 말인데, 침낭을 깔고 누웠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밤을 새는 한이 있 더라도 예은을 보겠다라는 집념이었다. "저기, 예은아." "......?" "저 자식 내가 장담하는데, 저기서 잘 놈이다." "......" "정말 내 친군데도 이해가 불가능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 에 저런 이상한 집착을 보이거든." "그, 그래요?" "응, 미안." "아, 아니에요. 오빠가 미안해 하실 필요는...... 그, 그럼 저는......" "들키지 않으려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수밖 에......" "......" 내 한마디에 완전 홍당무 증조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예은. 그 모습을 본 나는 당황하면서, "이, 이상한 뜻은 절대 절대 없어!! 어차피 이 집에는 방도 많고......" "......" 잘 생각해 보니 여자애한테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자고 가라 고 하다니, 나도 꽤나 생각이 없는 놈일지도. "미, 미안. 내가 생각이 짧았다, 예은아. 무리해서라도 창문 으로 탈출을 하자!" 탈출이라니...... 범죄자도 아니고. "탈출......요?" "응. 물론 저 자식이 좀 이상한 것에 민감해서 들킬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 "......?" "오빠...... 집에서 자고 갈게요." "......" 쿠웅. 마치 머리를 해머로 한 방 맞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그런 느낌이다. 방금 예은이 한 말을 재생하면 '오 빠...... 집에서 자고 갈까요?' 환청을 들은 게 아니라면 확실 했다. 나 역시 너무나도 쑥스러워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숙이 고 있는 예은에게 더듬더듬 물었다. "괘, 괜찮아?" "오, 오빠라면 괜찮아요." "......" 나라면 괜찮다고? 그건 무슨 뜻이지? 그만큼 나를 믿어 준다는 뜻? ......으아아악! 나를 이렇게나 믿어 주다니, 정말 미쳐 버리겠다. 최고의 아이돌 가수이자 절대 미소녀인 예은이가, 예은이가 우리 집 에서 자고 간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네, 엄마. 죄송해요." 예은이는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통화 내용을 심오하게(?) 분석하자면...... 오늘 친구 집에 자고 간다는 것이었다. 분석할 것도 없나. 그나저나 역시 내 예상대로 거짓말을 하는데 목소리가 떨 린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녀는 거짓말하고는 별로 인연이 없 다는 걸 알겠다. 세상에나 이런 천사 같은 청순한 소녀가 존재하다니. 아무 리 봐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신비의 현상이다. "오빠, 저는 어느 방을......" "아! 안내해 줄게." 쭈뻣쭈뻣. 나는 그 말과 함께 경직된 걸음으로 손님이 올 때마다 내주 는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손님이라고 해 봤자 거의 없는 관 계로 예은이 쓰기에는 무리 없을 깨끗한 방이다. 하아...... 그나저나 너무 숨 막힌다. 정말 돌아 버리겠다. 돌아 버리겠어!! "대단한 놈." 난 예은이에게 쉬라고 한 후 방을 나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약간은 선선한 날씨에 개 기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지금은 가을. 물론 약간 선선한 날 씨기는 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추웠다. "뭐, 지쳐서 가겠지. 설마." 나는 그렇게 고개를 저으면서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난 그만 굳어 버렸다. 저 자식...... 진짜 밤샜어. 그것도 우리 집 앞에서 침낭 하나로 말이다. 저건 거의 미친놈 수준이다. 만약 실제로 예은이가 내 여자 친구라고 치자. 아무리 그렇다고 친구의 여자친구를 보기 위 해 남의 집 앞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다니. 그것도 졸고 있지도 않다. 눈을 번쩍 뜨고 있다. 또라이 자식. "오빠, 식사하세요." "......?" 순간, 그 말과 함께 앞치마를 한 채 주방에서 나오는 예은. 그 모습을 본 나는 그만 굳어 버렸다. 너, 너무 귀여워! "왜 그러세요?" 내가 자신을 너무 빤히 바라보자 예은이 당황해서 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답했다. "아, 아무것도 아냐." "그나저나 반찬거리가 별로 없어서...... 어제 남은 재료로 하긴 했는데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당연히 마음에 들지! 예은이가 아니었다면 아침엔 언제나 식빵이라고, 난!" 난 그 말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 꿈만 같다. 아침에 일어나 예은이가 차려 준 식탁에서 밥을 먹다니. 이런 상황은 마치...... 부부?! 크아악!! 그렇게 시간을 흘러 어느새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다. 참고로 오늘은 월요일이다. 월요일이라면...... 학교에 가야 한다. 평소에도 땡땡이가 많은 나는 별로 안 가도 상관없지만, 예은이는 아니다. 그녀는 직업상의 일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학교를 잘 다니 는 소녀였던 것이다. "저, 오빠." "응?" "오빠 친구 분, 아직도 계시네요." "......미안." "아, 아뇨." "학교 가야지?" "그, 그렇긴 한데 교복 갈아입으로 집에도 들러야 하고요. 거의 첫 외박이어서 부모님이 걱정도 많으셔서......" 첫 외박! 허억! 그런데 그런 첫 외박을 남자 집에서 보내다니. 물론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저 이상한 취미를 가진 놈 때 문에 어쩔 수 없이 묵은 거지만 외박은 외박이었다. 아 참, 이게 아니라. 지금 중요한 건 저 침낭 속에서 눈을 번쩍거리고 있는 놈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은아." "네?" "내가 저놈을 싸 들고 딴 데 가 있을게. 그 틈을 타서 집으 로 돌아가." "......" "그럼!" 난 그 말과 함께 그대로 뛰쳐나갔다. 내가 나오자 얼른 침낭에서 나오려는 녀석의 움직임이 보 였지만 내가 더 빨랐다. 나는 그대로 침낭을 안아 들었다. 그러자, "뭐, 뭐야!" "가자!" "놔! 놔! 놔!" "학교로 가는 거다!" "우어어억!!" 나는 침낭 안에서 절규하는 영현이 녀석을 싸 들고 그대로 학교로 돌격했다. 진작 이럴걸...... 어쨌거나 예은이와 한집에서 하룻밤이라니, 너무나도 즐거 운 하루였다. 특히 오늘 아침에 챙겨 준 식사는 영원히 잊지 못할지도...... 후훗! [소울 도그] 다행히 또라이 삼총사는 나의 사랑스러운 부탁을 들어주었 다. 내가 친히 에리아에게 묻자 에리아는 그 삼총사가 자신에 게 잘해 주었다고 내게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왠지 아쉬움(?)이 느껴졌다. 왜 이런 걸까? 크흠. 내가 왠지 모를 아쉬움에 고개를 저을 때였다. "윤현 군." "응?" "어제 주말이었잖아." "응, 근데?" "뭐 했어?" "그, 글쎄." 난 혜경이의 뜬금없는 물음에 말을 흐렸다. 어제 분명......뭐 했더라? 예은이가 우리 집에 왔고, 예은이가 차려 준 밥을 먹었다. 그리고 한집에서 하룻밤을...... 크윽. 마, 말하기가 곤란하군. "그, 그냥 뭐...... 근데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 "......" "나도 왜 이게 물어보고 싶은지 궁금해." 무, 무섭다. 이게 바로 그 무섭다는 여자의 직감? 하지만 너무 뛰어나잖 아! 이건 거의 직감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나저나 신성국가 레밀라로 가려면 여기를 거쳐야 하는 데. 아님 시간이 엄청 걸려." 그때 어느새 한 장의 큰 지도를 꺼내 화제를 돌린 혜경. 다행이다. 더 이상 추궁당하지 않아서 말이다. 그나저나...... 여기라니? 혜경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부분을 짚더니, "이쪽으로 가야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만약에 이곳으로 가지 않는다면 뺑뺑 돌아서 약 한 달 이상의 시간이 더 걸려." 하, 한 달? 말도 안 된다. 한 달이라니! 그렇게 오랫동안 걸어갈 바에 뭐가 뭔지는 몰라도 그냥 저 길로 가겠다. "하지만 역시 위험해." "뭐가? 아까부터 왜 그러는 거야?" "아, 이 길로 가면 그 존재를 만나거든." "그 존재......?" "응. 우리 도둑 길드에 들어온 정본데, 거기에 소울 도그라 는 몬스터가 있다고 해." 소울 도그? 영혼의 개? 그건 뭐냐? "합성 괴물. 저번에 섀도 플리자트 알지?" "......물론." 잊어버리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그 괴물. 게다가 나를 노리는 그 이상한 어쌔신 단체와 깊은 연관이 있는 녀석이다. 그들이 만들었다고 했으니까. "응, 그 합성 괴물의 한 종류야. 본부에서 내려온 정보에 따 르면 새롭게 만들어진 합성 괴물인데, 개에 영혼을 빙의시켜 만들었다고 해." "......" 개한테...... 영혼을 빙의시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간단히 말할게. 위험해." "흐으음." "그들이 만든 합성 괴물이야. 간단히 넘어갈 수 있는 존재 는 절대 아니야." "......" "그래서 내가 말하는 거야. 윤현아, 어떡할래?" 혜경이 내 의견을 물었다. 나는 그런 혜경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어떡하긴. 내 스타일 알잖아?" "그럼......?" "응, 돌파할 거야. 소울 도그인지 뭔지 하는 합성 괴물이 나 오면 없애 버리면 그만이야. 그리고 나를 노리는 놈들에게 조 금이라도 타격을 준다면 난 감사하거든. 그렇다. 도대체 나를 왜 노리는지 이유조차도 불투명한 그 단체. 그 냥 당하고만 있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아서 말이다. 그런 관계로 열심히 집적거려 주겠다. 혜경이 여기라고 말한 그곳은 영혼의 숲. 그 숲을 통과해야 한단다. 영혼의 숲에는 각종 영혼 관련 옵션이 딸린 몬스터가 판을 치고 있다. 특별한 예로 고스트라고 불리는 존재. 얘들은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마법 공격에만 반응을 한다. 물론 물리 공격을 하는 존재도 나름대로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그것은 인첸트. 무기에 속성을 담아 마법적인 힘을 담는 것이다. 그리고 참고로 나는 물리 공격과 마법 공격 모두 자신이 있 었다. 다크프리스트라는 직업 자체가 완전 짬뽕 곱빼기 같은 직 업이어서...... "내 특별히 나같이 완벽하고 깜찍하고 퓨티풀한 존재를 안 을 수 있는 영광을 주마." 이건 또 무슨 개떡 같은 소리냐? 나의 시선이 그 이상한 개떡 같은 발언의 주인공 쪽으로 자 연스레 돌아갔다. 그곳에는 에리아 공주 앞에서 온갖 개폼을 다 잡고 있는 건방진 피닉스 한 마리가 있었다. "자, 나를 안아 봐. 하아하아." 저 변태 피닉스! 아직 열 살밖에 안 된 여자아이한테 집적대다니, 너무나도 어이가 없다. 그 모습을 본 에리아가 잔뜩 움츠러든 채 예은 뒤에 숨었 다. 그걸 본 예은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건방진 피닉스 녀석에게 말했다. "저, 저기 에리아가 무서워하니......" "뭐? 너도 나를 안고 싶다고?" "......" "뭐, 좋아. 그럼 특별한 혜택을 주도록 하지. 크크크." 그러면서 무작정 예은의 품속으로 돌격하는 변태 피닉스.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의 몸놀림으로 돌격하는 피닉스 녀석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 다음 놈의 몸통을 낚아채 면서. "죽고 잡냐?" "아, 아니." 내 한마디에 고개까지 맹렬히 저으면서 대답하는 피니스 녀석. 난 그런 피닉스 녀석에게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살고 싶으면 말야, 얌전히 있어라. 자꾸 집적거리지 말고, 이 변태 자식아." "나, 난 변태 아니야!" "......" "난 전설의 피닉스야!" 변태라는 한 마디에 당당히 반박하는 피닉스 녀석. 빠직. 난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피닉스는 과연 무슨 맛일까?" "......" "궁금하지 않아?" "......" "난 네가 가끔씩 이럴 때마다 그 맛을 보고 싶어. 크크 크...... 하하하!" "......" "우리 조용히 살자." 그 말과 함께 나는 완전히 굳어 버린 피닉스의 머리를 쓰다 듬어 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조용히 살고 싶다. 그러니 제발 나를 건들지 말란 말이다. 영혼의 숲. 바로 내 앞에 있는 이곳이 레밀라로 가기 위한 통로다.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찜찜하기 그지없다. 그만큼 어둡 고 분위기가 가라앉는 느낌이 가득한 숲이다. "이런, 이곳에는 생명의 섭리를 거스르는 존재가 많군요." "어이." "......?" "가르, 네가 할 말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 이해를 못한다. 하아, 답답하다. 사실 생명의 섭리를 거스르는 존재의 대명사라고 하면 누 구라도 이런 대답을 할 것이다. 리치라고 말이다. 그런 그분이 생명의 섭리를 거스른다는 이유로 다른 존재 를 비난(?)하다니. "그나저나 윤현아, 일단 들어가기 전에 정찰을 하는 게 좋 지 않을까?" 내게 조심스럽게 묻는 혜경. 맞는 말이다. 항상 무슨 일이 하기 전에는 정보가 필수다. "그러자." "알았어. 란타스!" 순간 혜경이의 부름에 멋지게 날아오는 독수리 한 마리. 멋 지다. 그래, 나도...... "피닉스!" "와?" "......" "불렀으면 말을 해." "......" "......?" 잠시지만 기대한 내가 잘못이다. 나에게 정찰병 역활을 해 줄 그런 멋진 새는 존재하지 않았다. 잘난 체가 심한 건방진 피닉스만이 내 옆에 있을 뿐이었다. 에휴우우. "란타스, 저 숲을 조사하고 와." 끼이익! 혜경의 한마디에 다시 멋들어지게 날아가는 란타스. 캬아, 충실해 보여. 란타스에게 정찰을 시키는 건 미안하니...... "피닉스, 너도 숲 조사하고 와." "내가 왜?" "......" "내가 저 숲을 조사할 이유하도 있는 거야?" "어, 없긴 한데." "그런데 내가 왜 조사해?"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가 아니라, 이 자식이! 나는 그대로 손을 뻗어 피닉스 자식을 포획했다. "죽어서 갈래, 살아서 갈래" "......" "선택해." "사, 살아서 갈게." "현명한 선택이야." 난 그 말과 함께 피닉스의 몸을 놓아주었다. 그나저나...... 죽어서는 못 가는 거네. 크흠. "아무것도 없다고?" 끄덕끄덕. "그럴 리가. 저기는 분명 고스트가 살 텐데." 란타스의 보고에 혜경은 당황해 하는 표정이었다. 란타스 는 제법 긴 시간 열심히 정찰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 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다. 으으음. "나 왔어!" 순간 저 멀리서 피닉스 녀석이 열심히 날아오고 있었다. 사실 저 녀석에게는 기대를 안 한다. 0%도 말이다. 그냥 가 만있기에 무안해서 예의상 보내 본 것이다. "찾았어!" "......!" 그때 터져 나오는 피닉스의 한마디. 찾았어? 왜 갑자기 여기서 찾았다는 단어가 나오는 거냐?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나의 목적, 정찰을 성공했다는 소리? "아주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어." "흥미로운 장면?" "앙." 흥미롭다니. 저 숲하고 흥미라는 단어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데? "막 개가 위스퍼들을 마구 처먹고 있는 장면!" "......엥?" "사실이야." "자, 잠깐. 피닉스 군, 방금...... 뭐라고 했나?" "방금? 개가 위스퍼들을 막 처먹고 있는 장면이라고 말했 는데." 개가...... 위스퍼를 먹어? 푸헤헤헤. 어이없다. "지금 장난치냐?" "지, 진짜야!" "그런 어이없는 보고를 나보고 믿으라고?" "믿어 줘! 목과 몸체가 분리되는 이상한 개가 위스퍼들을 먹고 있었다고!" "푸하하하! 이제 막 나오네. 목과 몸체가 분리되는 개?" "지, 진짠데......" "장난치면 죽는다." "......" 아니, 구라를 쳐도 정도가 있지, 이런 미친 구라를 까다니.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런 미친 소리를 믿을 것 같으 냐? "......소울 도그." "응?" "윤현아, 소울 도그......가 아닐까?" "소울 도그라니?" "방금 피닉스가 보고 온 이상한 개, 몸과 목이 분리되고 위 스퍼들을 잡아먹는 개." "......어, 어라?"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소울 도그, 영혼의 개. 그리고 피닉스 녀석이 본 것도 개다. 그것도 소울 도그가 산다는 영혼의 숲에서 말이다. 만약에 그 말이 사실이라면...... "설마 위스퍼를 먹고 점점 강해지는 이상한 개라는 설정인 게냐?" 우리는 일단 피닉스의 안내를 받으면서 숲 속으로 들어갔 다. 하지만 아무리 들어가도 란타스가 조사해 온 것처럼 숲 속 에는 위스퍼라는 괴생물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게 뜻 하는 바는 피닉스 자식이 본 장면이 사실일 확률이 높다는 것 이다. 목과 몸이 분리되고 위스퍼를 잡아먹는 개라니. 정말 특이한 개다. 아니, 특이한 정도가 아니라 엽기적이 다. 이 정도면 섀도 플리자트와 마찬가지로 그 정체불명의 단 체가 합성해 낸 괴물일 테다. "제길, 괜히 긴장되네." 난 숲 속을 걸으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긴장된다. 그것도 많이. 지난번 섀도 플리자트인가 뭔가 하는 괴물한테도 애를 먹 었는데 이번에는 영혼의 똥개라니. 게다가 목과 몸이 분리되는 똥개. "피닉스." 나는 앞장서서 길을 안내해 주던 피닉스를 불렀다. 그런 나 의 부름에 피닉스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대답했다. "왜?" "네가 본 그 이상한 괴물 있잖아." "응." "목과 몸이 분리되는 것 외에 뭐 이상한 점 더 없었냐?" "흐으음." 나의 물음에 생각에 잠긴 피닉스. 잠시 후, "분리된 목에서 이상한 줄기 같은 게 튀어나왔어." "줄기?" "응. 즐기 같은 게 꾸역꾸역 나왔고, 그걸로 위스퍼들을 포 획해서 한 번에 삼키던데." "......" 지금 피닉스의 말을 아주 간단히 해석하자면, 일단 개다. 그리고 개 주제에 목과 몸이 분리된다. 분리된 목에서는 이상 한 줄기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 줄기를 이용해 위스퍼를 잡 아먹는다? 아주 심플한데? "아 참, 그리고 몸에 이상한 눈알이 잔뜩 달려 있었어." "......" 우욱. 생각만으로도 엽기적이다 못해 속이 안 좋아진다. "......" 한편 그런 설명을 들은 예은과 혜경의 표정이 약간 창백해 졌다. 저 마음 이해한다. 대충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상상 을 해 보면 다 저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아 참, 또 하나!" "......" "등에 날개도 달렸어." 더 이상 상상하기에는 내 여린 심성으로 무리다. "어라?" 피닉스는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물었다. "왜?" "여, 여기에 있었는데." "......" "지, 진짜야." "구라지?" "아, 아니라니까!" "구라친 거지?" "진짜야. 내가 누구야? 전설의 피닉스잖아!" "......" "그런 내가 구라라니! 난 전설의 피닉스야!" 네가 전설의 피닉스인 거랑 구라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가 르쳐 주면 정말 고맙겠다. 도무지 내 머리로는 그 관계가 이 해가 안 가서 말이다. 그나저나...... "네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목과 몸이 분리되고, 목에서 줄 기가 튀어나오고, 몸통에는 이상한 눈알이 달려 있고, 마지막 으로 날개까지 달린 개가 있다는 소리 아니냐?" "바로 그거야!" "......" "미, 믿어 줘!" "마음 같아서는 믿어 주고 싶은데,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 다." 어떤 끔찍한 괴물이 그런 모습이 가능할까? 파앗! "......!" 그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기척! 제길! 기습인가? "다크 배리어!" 난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적의 생명력을 끌어 와 그대로 어 둠의 방어막을 쳤다. 피잉! 나의 어둠의 방어막과 웬 괴상망측한 줄기가 부딪치면서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뭐냐? 왜 줄기와 방어막이 부 딪치는데 저런 괴상망측한 소리가 나는 거지? 크르릉. 그 순간 내 앞에 나타나는 개 한 마리. 나는 그 개를 보고 굳어 버렸다. 진짜다. 100% 진짜다. 피닉스 녀석이 말한 그대로. 머리는 잘려 몸만 있을 뿐만 아니라 목 쪽에서는 방금 나를 공격한 줄기 몇십 가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몸통에는 괴상 망측한 눈알들이 마구 달려 있고, 등에는 특별히 날개까지 달 려 있었다. ...... "봐 봐! 사실이잖아!" 그 모습을 본 피닉스가 말하자, 난 그런 녀석의 반응에 허 리춤에 매달려 있던 메이스를 조용히 꺼내 들었다. "믿어지지 않아서 미안하긴 한데, 저런 괴물이 실재한다는 것 자체는 영 슬픈 일이다." 크르르릉!! 다시 한 번 우리를 향해 울부짖는 소울 도그. 영혼의 개치고는 너무나도 임팩트한 모습이다. 제길! 콰아앙!! "우억!!" 나의 메이스와 소울 도그의 목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부딪 쳤다. 예상대로라면 이런 소리와는 거리가 먼 소리가 나야 정상 인데, 그게 아니다. 마치 강철로 된 무기와 부딪치는 듯한 느 낌이다. 한마디로, 저 꿈틀대는 줄기 자체가 전부 무기라는 소리 다. 크르르릉!! "할 말이 그거밖에 없냐?!" 크르릉. 경계 어린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는, 정말 특이하게 생긴 소 울 도그. 현재 나는 저 소울 도그와 단독 면담 중이었다. 나머지 일 행은 뒤로 빠진 뒤였다. 그 순간, 파아앗! "......젠장!" 날았다. 말 그대로 비상하는 개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사실 저 몸통만 아니라면 저게 개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어 찌 됐든, 날아오른 개는 그대로 등 뒤에 있는 날개를 이용해 맹렬히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추르르륵!! 자신의 목에 매달리 줄기 수십 개를 그대로 쭈욱 펼치면서 나를 공격했다. 젠장, 이건 일반적인 공격보다 훨씬 충격적인 데미지가 들 어온다. 정신적인 데미지 말이다. 상상을 해 봐라. 저런 끔찍한 모습을 한 채 달려드는, 날아다니는 개를 말이 다. 한편 예은과 혜경, 에리아는 저 개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 하고 있었다. 그만큼 저 괴물의 생김새가 주는 정신적인 충격 데미지는 상상 이상이었다. 콰앙! 순간 메이스와 줄기가 부딪치면서 강력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다크프리스트의 기본 스킬, 불멸의 일진이었다. 일정 확률로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는 공격. 아 참,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중요한 건 이 불멸 의 일진에 공격을 당한 저 정체불명 줄기의 상태다. 간단히 말하자면, 저 줄기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평범한 것 이었다면 이번 폭발로 완전히 날아갔겠지만 저건 흠집 하나 입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저건 빌어먹게도 골치 아픈 무기 라는 걸. 크르르릉. 어느새 다시 거리를 벌린 채 울부짖는 소울 도그. 속도도 상당하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저기에 이동한 걸로 봐서는 말이다. "내가 도와줄까?" 그 순간 유유자적 날아와 내게 한마디 던지는 피닉스. 난 그런 피닉스에게 반 농담 삼아 말했다. "그래 줄래? 네 임무는 저 자식에게 먹혀서 저 몸속을 탐험 하는 거다." "마, 말도 안 돼!" "농담......" 순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순식간에 뻗어 나온 줄기가 피 닉스 녀석의 몸통을 휘감았다. 그리고는, 스으윽! 순식간에 자신의 목 쪽으로 끌어당겼다. "끄아악!" "피닉스!" 피닉스의 절규가 들려오고, 녀석은 그대로 줄기에 휘감겨 버렸다. "젠장!" 나는 짧게 내뱉으면서 냅다 내달렸다. 피닉스 녀석이 아무리 목숨이 질기다 못해 바퀴벌레 같다 고 해도 저 이상한 개한테 먹히면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었 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피닉스의 비명은 계속 울려 퍼졌고, 녀석은 어느새 그 개에 게 잡아먹히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난 그대로 소울 도그를 향해 외쳤다. "마혈전혈!" 콰앙! 순식간에 일어나는 지진. 그리고...... 해롱해롱하는 소울 도그. 피닉스를 삼키려 하던 줄기도 당연히 움직임을 멈추었고 나는 그대로 메이스에 강력한 힘을 담았다. "다크 스트림!" 끼이익!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메이스에 깃드는 악령. 나는 스턴에 의해 멈춰 버린 줄기를 향해 악령이 깃든 메이 스를 휘둘렀다. "우어억! 자, 잠깐!" "네 생명력을 믿을게, 피닉스!" "아, 안 돼!" 콰앙! 줄기를 그대로 가격한 순간 대폭발이 일어났다. 다른 일행 이 저런 상황이었다면 이런 과감한 행동은 불가능했지만 그 대상이 피닉스였으므로 상관없었다. 나는 녀석의 바퀴벌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믿었다. 그리고 녀석은 그런 나의 믿음에 부응해 주었다. "주, 죽을 뻔했잖아!" 죽을 뻔하긴. 너의 그 생명력을 잘 아는 나로서는 수긍하기 힘들다. 그 자리에는 다행히도 내 공격에 털만 살짝 타 버린 피닉스 가 있었다. 그 강력한 폭발에서 저 정도만 타다니. 정말 알고 는 있었지만 대단하다, 대단해. 크르릉! 그때 어느새 스턴에 풀려나 또다시 거리를 벌린 소울 도그. 그리고 그런 소울 도그를 보고 내 등 뒤로 숨는 피닉스. 나는 그런 피닉스에게 말했다. "왜? 방금 도와준다는 말은 어디다 갖다 버린 거냐?" "나, 난 전설의 피닉스니까 저런 괴물은 상대 안 해." "그것 참 웃기지도 않은 변명이네." "......" "그냥 솔직히 겁먹은 거잖아, 이 자식아." "아, 아니야!" "근데 왜 말이 떨리는 게냐?" "그, 그건...... 난 전설이니까." "......" "그러니까 절대 겁먹은 거 아니야!" "......그렇다고 해 주마." "아니야!! 진짜 겁 안 먹었다니까?!" "그럼 가 봐." "응?" "저 소울 도그에게 날아가 봐." "......" 그 한마디에 순식간에 벙어리가 된 피닉스 한 마리.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무지무지 겁먹었다는 게 말이다. 크르릉! 그 순간 또다시 울부짖는 소울 도그. "으아악!" 그리고 오두방정을 떨면서 도망가는 피닉스 한 마리. 하아, 정말 한숨만 나온다. 건방진 피닉스 주제에 저렇게 겁쟁이였다니. 이렇게 의지할 곳이 한 군데도 없다니, 내 인생도 참으로 처량하다. 크앙! "뭐, 뭐냐?!" 순간 한숨을 내쉬는 나를 기습 공격하는 개새끼. 아니, 말이 좀 거칠었다. 똥개 자식. 다음 순간, 똥개 자식의 몸통에 더덕더덕 붙어 있던 눈에서 빛이 났다. 그러더니......! "으악! 이런 미친!" 그 눈에서 레이저 광선 같은 게 뻗어 나와 마구 휘어지더니 나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슈우욱. 슈우욱. 레이저가 내 몸을 관통할 듯했다. "다크 배리어!" 나는 다시 한 번 소울 도그의 생명력을 끌어 와 내 앞에 다 크 배리어를 생성해 냈다. 잠시 후 나의 다크 배리어와 눈깔 에서 뻗어 나온 레이저가 마구 부딪치기 시작했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얼마나 강력한 공격이었는지 저절로 발이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 거센 레이저 공격이 멈 추었고 난 다시 시선을 앞으로 고정했다. 그런데, "......없어?" 그렇다. 사라졌다. 이놈의 똥개 녀석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어디 간 게냐! "오빠! 위에요!" 순간 들려오는 예은의 다급한 외침. 나는 그런 예은의 외침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급추락을 하고 있는 똥개가 있었다. 놈은 줄기들을 바짝 세운 채 당장이라도 나를 뚫어 버릴 기세로 추 락하고 있었다. 나는 놈을 보고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런 다음, "라이프 블리지트!" 파지짓! 순식간에 적의 생명력을 끌어 와서 생성하는 힘. 그리고 그 생명력을 매개로 삼아 폭발하는 힘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다크 블레스 스트레션!" 일시적으로 약 3초간 상대방의 전 능력치의 50% 하락과 더 불어 방어력 1,000% 하락이라는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단, 단점이 있다면 이틀에 한 번만 쓸 수 있고, 지속시간이 3초라는 점. 하지만 충분하다. 저 자식에게 한 방 먹이기에는...... 어느새 나와 상당히 근접한 거리까지 떨어져 내린 소울 도 그. 난 있는 힘껏 그대로 메이스를 휘둘렀다. 콰아앙!! 나의 메이스와 소울 도그의 몸뚱이가 부딪치면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스켈레톤 마스터조차 한 방에 보내 버린 무식한 공격이다. 저 이상한 개새끼, 아니 영어로 말하자면 도그 새끼(?)도 한 방에 보낼 수 있을 테다. 꾸에에엑! 도그 새끼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서, 성공인가? 방금 전의 타격감을 봐서는 제대로 들어갔다. 그것도 100% 말이다. 저 도그 새끼의 비명도 제대로 울려 퍼졌고, 풀썩. 어느새 나의 메이스에 맞고 그대로 퉁겨 나가다시피 한 도 그 새끼. 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주, 죽은 건가? 휴우, 다행이다. 나의 회심의 일격이 통......하지 않았구나. 꿈틀꿈틀. 일어나고 계신다. 도그 새끼 님이 말이다. 한국말로 하면 개새끼였다. 정말 이 정도로 생명력이 예술 수준이다. 꿈틀거리면서 일어서는 도그 새끼. 하아, 칭찬해 주마. 크르릉. 그래도 아까보다는 기세가 한층 꺾였다. 그리고 몸에 난 상 처들. 그것만으로도 방금 내가 한 공격이 삽질은 아니었다는 걸 말해 줬다. "하아, 질긴 자식이네." 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메이스를 더욱 단단히 쥐었다. 다크 블레스 스트레션과 라이프 블리지트가 조합된 공격을 맞고도 저렇게 살아 있다니. 사실 좀 막막하다. 그 두 가지 공격의 조합은 내가 생각해도 필살기라 해도 손 색이 없을 정도인데. 물론 진정한 필살기가 남아 있기는 하다. 다크프리스트의 유물 스킬, 네스티안 엘리라이진. 하지만 그걸 사용할 수는 없다. 이 스킬의 장점이자 단점, 그것은 바로 인원수에 있었다. 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천문학적으로 강해지지만 한 명이라 면 약간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는 필살기. 그게 바로 네스티안 엘리라이진이다. 크......르릉! 파앗! "뭐, 뭐냐?!" 순간 나를 보고 울부짖더니 갑자기 날아가 버리는 도그 새 끼. 뭐, 뭐냐? 튀는 거냐! 나는 도망가듯 순식간에 날아오르는 도그 새끼를 보고 굳 었다. 도, 도망이라니. 하늘로 도망가면 도대체 무슨 수로 잡 아야 하지? 슈우웅. 슈우웅. 그 순간 멍해 있던 내 앞에 나타나는 복면을 뒤집어쓴 남자 들. 대략 오십 명 정도 되어 보인다. 여기서 잠깐. 도그 새끼가 도망가는 듯싶자 이때다 나타난 이 복명을 뒤집어쓴 남자들. 왜 도그 새끼가 도망가는 타이밍에 맞춰 나타나는 거지? 왜? 왜? 크르릉. 하늘로 날아갔던 도그 새끼가 어느새 복면 남자들 뒤에서 나타났다. 난 그것만으로도 아주 간단한 공식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바로 저 복면 남자들과 도그 새끼가 뭔가 연관이 있다는 공 식을. "다크프리스트다. 척살해라." "오호?" "무조건 죽여라." 나를 안다. 내가 다크프리스트라는 걸. 그리고 나도 저분들 중 몇을 본 적이 있었다. 시작 당시 다 크프리스트라는 이유만으로 기습을 하던 어쌔신 분들 말이다. 분명 저 도그 새끼와 더불어 나를 노리는 어쌔신 오십 명. 다급한 상태였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고맙기까지 했 다. "나를 위해 이렇게 와 주다니. 무진장 감동 먹었다." "......" 그 한마디에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어쌔신들. 분명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아니, 당연한 건가? 후훗. 사실 라이프 블리지트와 블레스 스트레션의 조합이 실패했을 당시만 해도 막막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충분히 저 도그 새끼와 어쌔신들을 단숨에 정리할 수 있었 다. 네스티안 엘리라이진으로 말이다. "네스티안 엘리라이진!" 내 주위로 흩어지는 어둠의 마나들. 그리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어쌔신들과 도그 새끼. 나는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엄지와 검지를 마주 튕겼다. 따악. 콰아아아아앙!!! 순간 스플래스 데미지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존재들. 아무리 경험치를 이용한 기술이라지만 정말 무지막지하다. 후덜덜.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35업?! 커억! 이번에도 폭렙이다. 사실 이 맛에 이 게임을 하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폭렙 소 리에 말이다. -새로운 스킬이 추가되었습니다. 다크 헤이스트. 엥......? 다크 헤이스트? 이건 뭐냐? -다크 헤이스트- 레벨 1. 상대방의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를 30% 줄인다. 그리고 줄인 속도만큼, 상대방에게서 빼앗은 속도를 자신의 속도로 사용할 수 있다. 허억!! 이, 이 말은?! 한마디로 상대방의 스피드를 빼앗아 나에게 사용한다는 얘 기? 이런 베리 굿 한 스킬이! 그리고 무엇보다 메리트라면, 적 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상대방의 속도는 확 줄어들고 나 의 속도는 확 올라간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느리다 하더라도 아쉬운 점은 전혀 없었다. 이거 이거, 레벨이 올라갈수록 점점 괴물 같은 스킬들이 나 오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스텟창이나 확인해 볼까?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252 HP/MP: 6,410/5,800 힘: 1,130(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420(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 니다.) 지능: 179(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175(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텟: 265 허얼, 어느새 레벨이 50이나 상승해 버렸다. 지난번엔 분명 200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 폭렙과 더불어 간간이 사냥한 결과라고 해야 할까? 자, 그럼 스텟 재분!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252 HP/MP: 6,410/5,800 힘: 1,230(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585(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 니다.) 지능: 179(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175(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텟: 265 휴우, 이번에는 힘보다 민첩성에 상당히 많은 스텟을 줬다. 아무리 무지막지하게 데미지가 좋다고 해도 스피드를 무시할 순 없었다. 진정한 파괴력을 보이려면, 힘과 스피드의 조합이 있어야 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 미묘한 게 있는 것이다. "소울 도그뿐만 아니라 다크프리스트를 제거하러 간 부하 들조차도 손도 써 보지 못한 채 당했다고?" "네...... 흔적도 없이 소멸했습니다." "설마 그 말은......?" "아무래도 유물급 스킬을 하나 찾은 것 같습니다." "......!" 유물급 스킬이라는 말에 남자는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잠시 그렇게 있더니 고개를 맹렬히 저으면서 말했다. "유물급 스킬을 얻었다면 '그 존재'들을 투입할 수밖에." "......그 존재들 말씀이십니까?" '그 존재들'이라는 말에, 무릎을 꿇은 채 보고를 하던 남자 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한 손 으로 턱을 짚으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다. 더 이상 강해지기 전에...... 이 게임을 그만 두게 해야 한다. 더 이상 강해지기 전에......." [제스틴 마을] 제스틴 마을. 신성국가 레밀라와 불과 이틀 거리밖에 되지 않은 중소 마 을이다. 물론 그냥 중소 마을은 아니다. 중소 마을치고는 상당히 큰 중소 마을인 게다. 왠지 상당히 말이 꼬인 것 같은데, 뭐 그냥 넘어가고. 간단히 말해서, 중소 마을이긴 한데 중소 마을치고는 꽤 크 다는 얘기다. "오늘은 여기서 쉬고 가는 건가요?" 제스틴 마을에 들어온 직후, 예은이 꽤나 힘들었는지 나에 게 물었다. 평소 말이 없고 얌전한 그녀가 이렇게 말할 정도 면 꽤나 힘든 여행이었나 보다. "응. 한 이삼 일 정도 쉬고 갈까 하는데?" "이삼 일씩이나요?" "여기에 축제가 있다고 해서 말야, 이틀 뒤에. 그렇지, 혜경 아?" "응!" 나의 질문에 경쾌하게 대답하는 혜경. 그렇다. 지금 이 제스틴 마을에는 이틀 후 마을 축제가 열 릴 예정이었다. 1년에 한 번 열린다는 마을 축제가 말이다. 중소 마을치고는 제법 큰 마을이기에 마을 축제도 상당한 스케일을 자랑한다고 혜경은 말했다. 그리고 지친 예은과 혜경, 그리고 에리아를 위해서라도 약 간의 휴식은 필수였다. "기도합시다." "......" "기도하면 모든 육체의 고통이 사라집니다." "지랄." "......" "염병이다." "저, 정말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기도를 너무 열심히 해 서 육체적 고통이 전혀 없습니다!" "그건 네가 해골뼈다귀여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 "만약에 네 말대로 정말 기도해서 육체의 고통이 사라지면 힐러들은 다 문 닫아야겠다?" "그, 그렇긴 하군요." 이 자식아, 수긍하지 말라고! 그렇게 사람을 맥 빠지게 하다니, 참 그것도 재주긴 재주 다. "저기, 오빠." "응? 왜 그래, 에리아?" "......" 내 말에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는 에리아. 정말 숫기 없다. 여태까지 열 살짜리 소녀가 하기에는 힘든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하지를 못한다. 사실 이 소녀도 또라이 삼총사만 아니었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에리아의 절규 어린 음 성 때문에 나는 납치범이 아닌 납치범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 타셍 이제 그랜드 크룬에 발붙이기는 민망하다. 난 그런 에리아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해. 괜찮아, 에리아." "목욕......하고 싶어요." "......아!" 그러고 보니 에리아의 드레스가 상당히 더러워져 있었다. 장기간의 여행 탓에 제대로 목욕한 적이 없었던 에리아. 당 연한 말이지만 처음 봤을 때 그 빛나던 드레스는 어느새 거지 드레스처럼 후줄근해져 있었다. 흐으음. 그때 갑자기 웃으면서 한마디 내던지는 예은. "언니들이랑 갈까?" "정말요?" "물론! 언니도 괜찮으시죠?" "실은 나도 목욕하고 싶었거든!" 그리고 그런 예은의 말에 당장 고개를 끄덕이는 혜경. 모, 목욕? 목욕!! 그러고 보니 이 게임은 목욕까지도 지원된다. 목욕하고 나 서의 상쾌함을 이 게임에 접속해 목욕탕에 들어가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빠, 갔다 와도 괜찮아요?" "물론!" "헤에. 그럼 언니랑 에리아랑 목욕탕 갔다 올게요." "으응." 예은의 귀여운 물음에 나는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은 과 혜경, 에리아는 마을 안에 있는 목욕탕을 향해 발걸음을 옮 겼다. 그, 그나저나 목욕탕이라면 옷을 다 벗고...... 커어억!! "보자, 동지." "......뭐냐." "보고 싶지 않아?" "......" "난 에리아의 누드를 보고 싶은데 말야." "......" "주인도 예은이와 혜경이의 누드를 보고 싶을 거 아냐?" "......" "부인하지 마. 다 알아." 이 피닉스 자식이! 어느새 내 귓가로 날아와 열심히 유혹한다. "하아, 하아. 죽일 거야. 저 미모의 누드. 정말 미쳐 버릴지 도." "......" "상상해 봐." 크아악!! 나도 모르게 상상해 버렸다. 피닉스 자식의 속삭거림 때문이었다. 잠깐이지만 예은이와 혜경이의 누드를...... "자, 가자! 가는 거야!!" 피닉스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남자인 이상 여탕을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불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게임에서는 여탕이 절대적으로 보호된다." "......" "너의 야망은 물 건너간 거다." "마,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긴. 사실이다." 생각해 봐라. 만약 여탕을 훔쳐볼 수 있는 시스탬이라면 늑 대 같은 남자 녀석들이 모두 목욕탕을 노릴 것이고, 그렇게 되 면 그 누가 목욕탕에 들어가겠는가? 아무리 실제 지향적 게임이라고 하지만 이런 것에는 제한 을 걸어 놓는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신기한 게 있다. 지난번 가르가 한 건 해낸 것. 무작정 텔레포트 했는데 여탕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절대로 침입 불가능한 여탕의 보호막이 가르의 이상한 마 법에 뚫린 거다. "하아, 그나저나 왠지 아쉬운 이 기분은 뭐냐?"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왠지 모를 이 아쉬움, 영 찜찜하단 말이다. "......" "......" "......" "......" 나, 가르, 데인, 피닉스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묘한 침묵, 뭔가 아리까리하다. 결국 나는 이런 묘한 침묵을 견디다 못해 한마디 던졌다. "우리 뭐 하는 거냐?" "글쎄요." "몰라." "내가 알 리가 있어? 난 잘났잖아?" 아, 피닉스 저 자식은 말할 때마다 지 자랑을 안 하면 입에 가시가 돋나 보다. 그나저나 우리 정말 처량하다.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 길거리에 이렇게 쭈그려 앉아 있으 려니...... 쨍그랑. 순간 내 앞에 떨어지는 동전 한 닢. 그리고 불쌍하다는 어투로 누군게 내게 말했다. "힘내게." "......" "......" "......" "......"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저으면 서 우리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서, 설마?! 우리를 거지라고 생각한 거? "아직 젊은이들이니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게야. 힘내게. 난 이만." 그런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지고 사라지는 아저씨. 저, 저기 아저씨. 나는 거지가 아니에요! 이래 봬도 상당히 부유하다구요. 지금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은 자그마치 14골드! 아저씨가 던져 준 1나켄의 14만 배다. 그나저나...... "피닉스." "와?" "우리가 거지 같냐?" "응, 아주 많이." "......" "아주 상거지 같아." 빠직. 똑같은 말이라도 저 녀석이 말하면 왠지 모르게 무지무지 열 받는다. "자, 잠깐! 왜! 네가 물어본 거잖아!" "내가 언제?' "......" "내가 언제 물어봤지, 피닉스 군?" "바, 방금!" "난 그런 기억이 전혀 없는데 말야. 크크크." "악마! 사탄! 괴물!" "울부짖어라! 울부짖어! 흐하하하!" "으아악!!" 재빠르게 날아올라 도망가려는 피닉스 자식. 나는 곧바로 피닉스 녀석을 향해 한 가지 마법을 걸었다. "다크 헤이스트." "......!" 순식간에 날아가는 속도가 줄어드는 피닉스와 반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속도가 상승하는 나. 이, 이건 엄청나다. 크하하하! 그리고 순식간에 포획되는 피닉스 녀석. 나는 웃었다. "상거지한테 한번 죽어 봐라!" "피닉스 살려!!" "하아, 이번 기회에 옷이라도 사 입어야겠다." 지금 우리 꼬락서니를 보면 완전 상거지다. 나와 데인의 옷 은 이미 걸레 삼촌뻘이고, 가르의 후드는 너무 더러워서 차마 보기 민망할 정도다. 그나마 아무 이상이 없는 존재라면 옷을 입을 필요가 없는 피닉스 녀석뿐. 나머지는 전부 상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어라?" 그때 저 멀리서 예은과 혜경, 그리고 에리아가 오는 모습이 보였다. 후드를 뒤집어쓴 두 사람과 공주 차림의 꼬마라고 해 봤자 저분들밖에 안 계셨으니까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내가 '어라?'라고 말한 건 그녀들이 목욕탕에 간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대략 2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오다니.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목욕하는 데 오래 걸린다 고 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오래 걸린단 다. 아무리 빨리 씻는 남자라 해도 대략 3,40분은 걸리는데 지 금 저분들은 단 20분 만에 갔다 오는 것이다. "목욕탕에 못 갔어요." "엥?" 난 예은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유저들이......있어요." "아." 그렇다. 가끔씩 잊어버리지만 예은은 톱스타, 울트라 미소녀 아이 들인 것이다. 목욕을 하려면 옷을 벗어야 하고, 그러려면 당연히 후드도 벗어야 한다. 그럼 예은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렇게 되면 난리가 날지도 모른다. 참으로 간단한 공식이자, 아름다운 공식이다. "어떡하죠?" "흐으음. 여관에 가는 수밖에." "여......관요?" "응. 조금 고급 여관이라면 목욕 시설도 왠만한 목욕탕보다 좋을 테고, 일단 너희끼리만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도 목욕하려고." "아." 내 말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예은. 그래, 이 기회에 한번 씻어 보자. 그리고 옷을 갈아입어야 지. 다시는 거지 취급 받고 싶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우리가 여관에 들어서자 누군가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를 반겼다. 뭐, 대충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안다. 아마도 이곳에서 일하는 종업원이겠지. "몇 분이십니까?" 1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내게 다가와 싹싹하게 말했다. 흐으음, 완전 장사 체질이다. 능숙해, 능숙해. "으음. 나랑 가르 데인, 그리고 예은이, 혜경이, 에리아까지 여섯 명요." "여섯 명이십니까?" "네." "방은 몇 개로 드릴까요?" "두 개요." "식사는?" "식사 준비해 주시고, 목욕물도 준비해 주십시오. 그리고 입을 만한 옷도." "알겠습니다!" 종업원은 경쾌하게 대답한 뒤 잠시 어디로 가는 듯싶었다. 그 순간, "뭐, 뭐야? 왜 나는 없는 셈 쳐?" "응? 뭐가?" "왜 나는 취급 안 해! 나까지 포함하면 분명 일곱 명이잖 아!" "......너는 새잖아, 이 자식아." "지금 새라고 차별하는 거야? 그리고 내가 평범하고는 거 리가 먼 거 알잖아? 슈퍼 울트라 피닉스잖아!" 염병을 해라. 지금 저 녀석이 말인즉슨, 왜 자신을 인원수에 포함하지 않 았냐는 것이다. 꼭 쓸데없는 데 집착한단 말야. 그때 잠시 기다렸던 종업원이 다시 나왔고, 나느 별로 내키 지는 않았지만 조종 차별한다고 할까 봐 특별히 말해 주기로 했다. "여섯 명이 아니라 일곱 명이라고 합니다." "......?" "아니에요. 그냥 대충 넘어가요." 내 말을 이해하기는 분명 무리였을 것이다. 일단 예의상으로나마 말해 줬으면 된 거 아닌가? 그나저나 저 종업원은 어디 갔다 온 거지? "총 70주리입니다." "......?!"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70주리?! "여기는 이 마을 최고의 여관입니다. 신성국가 레밀라에 가 셔도 이만한 여관을 찾기는 힘드실 거예요. 그리고 축제 기간 이다 보니 가격이 더 올라갔고요." 아, 아무리 그래도 70주리라니! 거의 1골드에 육박하는 돈이 아닌가! 음식, 식사, 옷, 목욕이라는 옵션이 붙기는 했지만 하루에 쓰는 액수치고는 엄청나다. 어쩐지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은 다 돈 있어 보이는 자들이네. "안 묵으실 건가요?" "......묵겠습니다." "네, 여기는 선금입니다." 그 말에 나는 가슴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1골드를 꺼냈다. 크윽. 내 돈! 내 돈! 내 돈!! [요리 대회] 채워 넣어야 돼! 나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70주리. 거의 1골드에 육박하는 거금. 그 돈이 단 하루 만에 날아갔다. 단 하루 만에 말이다. 물론 아직 내 수중에는 꽤나 많은 돈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돈이라는 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나는 중얼거렸다. "흐으음, 지금은 축제 기간이다. 그렇다면 이벤트성 대회가 난무하겠지." 그렇다. 마을 축제. 그것은 바로 이벤트와 직결된다. 이벤트 하면 바로 돈! 돈이다. 후후후. 지금 나는 피닉스를 쥐어 패서 정보를 물어 오라고 시킨 후 기다리는 중이었다. 녀석은 안 맞으면 절대로 안 움직인다. 곧 죽어도 전설의 피닉스라니까. 하아...... 내가 생각하던 전설의 피닉스하고는 많이 다르다. 피닉스라 하면 정말 '멋지다'는 말부터 나와야 하는데, 놈 과 '멋지다'의 단어 사이에는 절대 연관 관계가 성립되지 않 는다. "나 왔어!" 그때, 호랑이가 제 말 하면 온다는 말처럼 피닉스 녀석이 열심히 날아왔다. 그나저나 목소리가 미묘하게 밝다? 그게 뜻하는 바는...... 물어 온(?) 건가? "요리 대회를 한데." "요......리 대회?" "응. 남성부와 여성부로 나눠서 하고 우승하면 5골드나 준 대." "허억!" 5골드! 게다가 요리 대회?! 자, 잠깐 생각해 보자. 요리라고 하면 떠오르는 두 분, 예은과 혜경. 예은이의 요리 솜씨는 무조건 보장이다. 직접 먹어 본 나는 일류 요리사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혜경. 혜경이의 요리는 먹어 보지 못했지만 그녀 어 머니의 요리는 먹어 봤다. 그게 뜻하는 바는 혜경도 요리에 상당히 내공이 깊다는 것이다. "그, 그렇다면 여성부는 우승인 게냐?!" 그렇다. 혜경과 예은만 참가한다면 여성부 요리 대회는 단연코 우 승이다. 하지만...... 남성부는? 난 데인과 가르, 피닉스 녀석을 훑어보면서 말했다. "여기서 요리 할 줄 아는 사람?" "......" "......" 말이 없다. 아니, 당연한 건가? 내가 이들에게 요리를 기대하다니, 잠 깐이지만 미쳤나 보다. "저는 잘합니다." "엥?" "취미가 요리거든요." "저, 정말이냐?" "물론입니다." "......" 그때 자신 있게 손을 드는 가르. 취미가 요리라고? 리치가 기도를 하는 것도 모자라 요리라니, 조금 리치다운 포스를 보여 달란 말이다! "제가 한 요리를 먹으면 모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릴 정도 니 말 다했습니다." "......"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저, 저기, 가르." "네?" "......그 요리라는 거 먼저 구경해 봐도 될까?" "물론입니다." 묘하게 불길한 느낌이 든 나는 그렇게 말했고, 그런 내 말 을 가르는 흔쾌히 들어주었다. 그만큼 요리에 자신이 있다는 뜻? 똑똑.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빠, 들어가도 돼요?" "응, 들어와." 스르륵. 내 말에 살며시 열리는 문.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예은과 혜경, 에리아. 그런데...... 그런데......! 머리가 젖어 있다. 방금 목욕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촉촉히 젖은 머리 카락. 정말 사람 미치게 만든다. 그 누가 말했던가? 뉴턴이 말하지 않았던가. 여자는 머리 감고 나왔을 때가 제일 예쁘다고. ......뉴턴 아저씨가 그런 얘기를 했던가? 크허허험. 뭐, 어쨌든 그냥 넘어가고. 안 그래도 초절정 미소녀인 두 분이다. 그런데 그 두 분이 저렇게 머리카락까지 촉촉히 젖어 있으니 보는 입장에서는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매우 더러웠던 로브는 새 로브들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에리아. 상당히 귀엽다. 엄청 값비싸 보이던 드레스에서 평범한 원피스로 갈아입기 는 했지만, 원판불변의 법칙이란 말처럼 여전히 귀여웠다. "오, 마이 베이비." "......" "오빠가 과자 사 줄까?" "네놈이 왜 오빠냐?" "그럼 동생 해도 되는데." "하아...... 저 미친 새 자식."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피닉스 녀석은 아무리 패고 패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에리아에게 집적거리는 저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아, 그나저나 언제부터 로리타가 되어 버린 거 냐? "이제는 키워 먹는 게 땡기는 시대라고 할까?" "......"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대답해 주는 피닉스 군. 난 짐승 같은 피닉스 녀석을 보고 싱긋 웃어 주었다. 그리 고...... "에리아에게 이상한 짓을 할 경우 네 목숨은 영원히 사라 질 것이다." "......" "네가 아무리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을 가졌다고 해도, 나 역시 바퀴벌레 퇴치하는 걸 꽤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 "한번 경험해 보고 싶으면 기꺼이 해 주마. 크크크." "아, 아냐. 저, 절대 흑심 없어." "난 널 믿는다." "......" "크크크." 난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피닉스의 몸통을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절대 귀여워서 쓰다듬어 주는 건 아니다. 무언의 경고였다. 쓸데없는 짓을 할 경우를 대비한 경고 말이다. "형제여, 전 요리를 해 갖고 오겠습니다." "아, 가르. 맞다, 요리 할 줄 안다고 했지?" "네." "기대할게." "기대 많이 하셔도 좋습니다. 저의 요리는 전설적이니까 요." 흐음?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가르, 처음 보는 모습이다. 그만큼 요리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1시간 30분 후. 가르가 돌아왔다. 그 시간 동안 어딜 가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가 의아하기는 했지만 나는 일단 믿기로 했다. 가르가 우리 남성부의 희망이라는 것을. 가르를 기다리는 동안 예은과 혜꼉에게 참가 의사를 묻자 그녀들은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주었다. 여자부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잠시 후드를 벗고 맨얼굴을 공개해야 했지만 그 정도야, 뭐. 이벤트를 관리하는 존재가 이 마을 관리자라면 분명 NPC 다. 그녀들의 미모에 감탄을 하겠지만 예은이 현실 세계에서 최고의 아이돌이라는 사실은 절대 모른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가르...... 오래 걸리네. 그렇게 30분의 시간이 더 지났을까? 끼이익. 조심스레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르냐?" 문 여는 소리에 나는 당장 반응을 보였다. 그런 나의 물음 에 문을 연 주인공이 내게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형제여." "그래, 잘 왔어. 근데 무슨 요리를 하기에 이리 오래 걸렸 냐?" "가르표 특제 요리라고 할까요?" 그러면서 제법 큰 냄비를 내게 내밀었다. 이게 가르표 특제 요리냐? 뚜껑이 덮여 있는 관계로 안의 내용물은 보이지 않았다. 하 지만 기대 만빵이다. 이름부터 가르표 특제 요리라고 하지 않 은가? "열어 봐도 되냐?" "물론입니다. 기절하실 겁니다." 두근두근. 가르의 말에 나는 내심 엄청난 기대를 한 채 조금씩 그 베 일을 열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나타나는 하얀색의 무언가...... ...... ...... ...... 하얀색이었다. 근데 분명 본 적이 있는 무언가다. 그것도 아주 자주자주 보는 무언가다. 하얀색에 밥풀이 희멀겋게 떠 있고, 먹으면 아주아주 소화 가 잘될 것 같은 음식. 그건...... "혹시 죽......은 아니겠찌?" "맞습니다. 가르 특제 죽입니다." "......" "왜 그러십니까?" 이, 이럴 수가! 전복죽도 아니고, 호박죽도 아니고, 단순히 흰죽이라니! 이 게 뭐란 말이냐! 아니다. 잘 생각해 보니 보통 이런 경우네는 반전이 있기도 하다. 보통 만화의 법칙이라는 반전. 요리 만화에 자주 등장한다. 겉모양은 무지무지 평범하지 만 먹으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미묘한 맛이 담긴 음식. 수수한 모습일수록 더욱 충격적이다. 그런데 수수한 것도 정도가 있지. 흰죽이라니. 너무나도 수수하시다, 이건. 그래,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보기에는 저 래 봬도 사실은 황궁 요리보다 100배는 뛰어난 맛일 것이다. "가르, 먹어 봐도 되지?" "물론입니다, 형제여." 스윽.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숟가락 하나를 내미는 가르. 가르는 웃고 있었다. 아니, 해골일 뿐만 아니라 후드를 깊게 뒤집어쓴 탓에 웃는 지 안 웃는지도 알 수 없지만 분위기가 꼭 웃는 듯싶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냐? 이 희멀건 죽에? 푸욱. 나는 가르가 건네준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흰죽을 한 수저 떴다. 그런데......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그냥 흰죽이다. 만화에서처럼 흰죽 밑에 뭔가가 감춰져 있다든가 그런 걸 기대한 나로서는 약간 실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맛, 바로 맛이다. 요리라고 하면 겉모습도 중요하지만, 나는 맛이라고 생각 한다. 물론 겉모양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겉만 예쁘 면 뭐 하는가? 어차피 내 입속에 들어갈 건데 말이다. 덥석.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그 정체불명의 죽을 한 입 떠먹었 다. 묘한 기대를 갖고. 그런데...... "......" 털썩. "오, 오빠!" "윤현아!" 돌연 무릎을 꿇는 나를 부르며 황급히 다가오는 예은과 혜 경. 하지만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내 눈은 곧 감겨졌으니까. 번쩍. "기절한 정도로 맛있었나요, 형제여?" 눈을 뜨자마자 들려온 한마디. 나는 벌떡 일어나, 그 한마디를 던진 녀석의 멱살을 잡았 다. "가르! 너, 날 죽이려는 거냐!" "무, 무슨 소린지......" "다 알아, 이 자식아! 음식으로 나를 암살하려고 했잖아! 누 구 시주요?! 피닉스 자식이야? 데인? 아님 너의 자유의지? "아,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오해 좋아하네!" "저, 정말입니다.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지금 흥분 가라앉히게 생겼냐?! 음식 먹고 기절하다니. 세 계를 뒤져 봐도 나밖에 없을 거다!!" "그, 그만큼 맛있었던 건가요?" "그만큼 맛이 없었다, 빌어먹을 자식아!" "......" 내가 지금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한 가지. 가르가 만든 죽 때문이다. 나는 그 죽 때문에 사경을 해맸다. 죽을 한 입 떠먹는 순간, 짠맛에 신맛, 단맛 기타 등등 별 거지 같은 맛이 다 느껴졌다. 감히 형언할 수 없는 맛이었다. 나는 가르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면서, "이 자식이! 감히 암살 요리(?)를 만들다니!" "저, 절대로 오해입니다. 제, 제가 엄청 신경 써서 만든 가 르표 특제 죽입니다!" "구라치지 마, 이 자식아! 특별 요리? 이딴 게 특별 요리면 개밥도 황궁 요리겠다!!" "오, 오빠. 진정하세요." "윤현아, 진정해." 당황한 채 마구 흥분해 대는 나를 만류하는 예은과 혜경. 나는 그녀들의 말에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노가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생각해 보라. 음식을 먹고 그 맛에 기절한 사람이 과연 있 을지 말이다. 전 세계, 아니 범위를 넓혀 전 차원을 뒤져 봐도 이런 어이없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래, 그래. 진정하자. 여기서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한다. 예은과 혜경 앞에서 자애로운 이미지를 보여야 했다. "가르......용서해 주마." 순간 나의 자애로운 한마디에 반문하는 가르. "미친 겁니까, 형제여?" "......" 빠득. 절대 평범하게 반문하지는 않는다. 순식간에 나를 미친놈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아님 죽을 때가 된 건......?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하면 뒈 질 조짐이라더군요." 빠득빠득. 더욱더 늘어나는 혈관 마크. 하지만 나의 미소 또한 더욱 짙어졌다. 나는 가르를 향해 말했다. "무, 무슨 소리냐? 누구나 실수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지, 뭐." "정말 안 어울린다. 푸헤헤헤!" 그때 끼어드는 피닉스 녀석. "......" "어이없어." 그래, 그래. 너희가 드디어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하는구나. 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가 죽여 주마. 크하하하! 예은과 혜경, 에리아가 사라지는 순간에 말야. 퍽퍽퍽! 퍼퍼퍼퍽! 퍼퍼퍼퍼퍽! "으아악! 피, 피닉스 살려!" "그, 그만......" "나는 왜 때리는 거야!" 나는 예은과 혜경이 나가자마자 돌변했다. 미소를 짓던 입가는 악마의 그것으로 돌변했고 나의 발길 질은 흉폭해졌다. "자, 잠깐! 지, 진짜 난 아무 짓도 안 했다고!!" 한참을 두들겨 맞던 데인이 이의를 제기했다. 나는 그런 녀 석의 말에 잠시 발길질을 멈추었다. 그리고 데인을 보면서, "동지애라는 걸 모르냐?" "응, 몰라. 전혀 몰라." "......" "배신자!!" "배신은 안 됩니다!" 데인의 한마디에 웅성거리는 녀석들. 하지만 데인은 그런 웅성거림을 단 한마디로 일축했다. "너희는 누구냐!" "......" "......" "난 저런 이상한 애들 정말 몰라!" 누가 들어면 넌 무지 정상인 줄 알겠다, 데인? "어쨌든 난 상관없으니 제외해 줘." "흐으음." 데인의 말에 나는 살짝 신음을 흘렸다. 그것도 그렇다. 데인은 왜 맞아야 했을까?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흐음, 그것도 그렇다. 데인, 빠져." "응!" 내 말에 데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경쾌한 어조로 대답 했다. 데인의 배신(?)에 피닉스와 가르는 원망의 눈빛으로 그 를 바라보았다. 물론 가르는 후드 탓에 무슨 눈빛인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분위기상 그럴 듯싶었다. 번쩍. 그때 다시 한 번 손을 번쩍 드는 데인. 왜 저러지? "뭐냐?" "내가 밟게 해 줘." "......" "즐기고 싶어." ......뭘 말이냐?! 설마 내가 이렇게 밟는 게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 난 절대로 그런 거지 같은 취미는 없다. 절대로 말이다. "그럼, 네가 좀 밟아라." "고마워!" 더 이상의 오해는 곤란했기에 나는 데인과 바통 터치를 했 다. 그런 우리의 거래를 본 가르와 피닉스는 데인을 향해 울 부짖었다. "데, 데인! 네가 어떻게!" "혀, 형제여! 우린 친구인데 어떻게!" "언제부터?" "......" "......" "난 니들 몰라. 알 수가 없어∼." "......" "......" "흐하하하하!" 퍼퍼퍽! "크아악!" "크아악!!" 방 안에 울려 퍼지는 타격음과 비명. 여린 나로서는 차마 볼 수 없는 광경이기었기에 고개가 저절 로 창문 쪽으로 돌아갔다. "흐흐흑. 더럽혀졌어요." "마, 맞아. 훌쩍훌쩍." ......데인. 정말 잔인하구나. 어느새 만신창이가 된 채 훌쩍거리고 있는 가르와 피닉스 를 본 나의 생각이다. "내가 아직 수련 중이야. 이해해 줘, 사부." "누가 네놈의 사부냐?" "응? 당연히 너지." "내가 왜 네 사부야, 임마!" "허억! 방금 전의 타법은 다 너한테 배운 건데!" "......" 내가 애들을 그딴 식으로 팼다고? 그럴 리가 없다! 연약하고 순수하고 청렴결백한 내가 저렇게 야만적이다니. 인정할 수 없다. 절대 말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야! 나는 저렇게 잔인하지 않아!" "무슨 소리야! 못 믿겠으면 가르와 피닉스에게 물어봐." "......" "그럼 내가 물어봐 줄게. 가르, 피닉스. 지금 내가 때린 거 랑 내 사부가 때린 것 중 어느 쪽이 더 아파?" "......" "......" 그런 데인의 물음에 가르와 피닉스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 아왔다. 서, 설마 나라는 뜻이냐? 끄덕끄덕. 끄덕끄덕. 마치 내 생각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건 아니다. 내가 저렇게 야만적이라니, 인정할 수 없다. 으아악!! "인정해, 사부. 앞으로 더욱더 정진할게." "......" "잘 부탁해." 데인, 잘 부탁하지 마라. 난 이 계열에서 손을 때겠다.(과연 이 다짐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이제 타협과 평화를 되찾 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나저나 앞으로의 요리 대회, 이걸로 분명해졌다. 요리 대회에서 우승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는 걸. 저딴 음식을 내놓는다면 살인미수로 현상 수배가 붙을 것 이다. 안 그래도 에리아를 납치해서 그랜드 크룬에서는 현상 수배에 올랐는데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은 절대 사절이다. "독창적인걸로...... 그나마...... 가능......성이 있으려나?" 맛이 달리면 다른 부분으로 보완하면 된다. 예를 들어 독창 성.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귀한 재료로...... 순간 무언가가 내 머리를 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이게 바로 필 받았다는 거야! "데인." "응?" "이 세상에 피닉스 구이만큼 독창적인 요리는 없겠지?" "당연히 없지!" "무,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야!" 나와 데인의 대화에 흥분하는 피닉스. 나는 그런 피닉스를 보면서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피닉스 구이의 희귀성만으로 우승할지도......" "......!" "에이, 그래도 겨우 5골드에 피닉스를 사용하긴 좀 그렇다. 팔면 엄청 나올 텐데." "......" "네 몸값이 비싸다는 사실에 감사하도록." "......" 나의 말에 완전히 굳어 버린 피닉스 녀석. 농담이다. 진짜 농담이다. 크흐흠. 그나저나 이 멤버로 요리 대회 우승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 그래! 내 몸을 달구는 이 뜨거운 열정. 왜 이럴까? 왜? "돈이 걸렸으니까." "빙고!" 데인의 한마디에 무심코 대답한 나. 다음 순간 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정열적인, 뭐라고 해아 하나...... 어쨌든 그런 거 야." "돈 같은 정열?" "......어, 어찌 됐든 난 이 시련을 극복할 거야!" "무슨 수로?" 데인의 물음에 나는 녀석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씨익 미소 지었다. "특별 훈련이다!" "네?" "에?" 나의 한마디에 놀라는 예은과 혜경. 난 그런 그녀들을 향해 재차 말해 주었다. "우리는 떠날 거야. 요리를 위해서 말이야." "......" "......" "특별 요리를 개발할 거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한 특별 요리를 말이야." "그, 그건 저랑 언니가 미력하지만 도움을 드릴 수가......" "아니야, 예은아. 우리끼리 해 보겠어! 그 누구도 상상 못 할, 상상을 초월한 요리 말이야." "......" "그러니까 우린 신경 쓰지 말고 예은이와 혜경이는 꼭 여 자부 우승을 부탁해. 그리고 에리아도 많은 도움을 주고." 끄덕. 내 말에 귀엽게 고개를 끄덕이는 에리아. 캬아. 귀여워, 귀여워. 절대로 이상한 의미는 아니니 오해 말도록...... 나는 걱정스러운 듯 우리를 바라보는 예은과 혜경에게 밝 게 미소 지어 주었다. 그녀들의 심정도 대략 이해가 간다. 솔직히 별로 믿음직스럽지 않은 멤버인 우리가 요리라니, 정말 불안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자고로 남자란 꼭 가야 할 길이 있는 거다. 꼬옥! "우리는 간다." "......" "......" "......" "니들은 왜 거지 같은 표정들이야? 불만이냐?" "아, 아닙니다." "아니야!" "응! 절대 아니야!" 나의 물음에 가르, 데인, 피닉스가 차례로 대답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싱그러운 미소를 지은 채 손가락을 치켜올리면 서 말했다. "자, 가자! 태양을 향해!" 일단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말이지만 요리 기구와 재료가 필요하다. 그런 까닭에 나는 1골드라는 거금을 들여 요리 기구와 재료를 구입했다. 특히 재료의 양은 엄청나서 한 사람씩 들고 가야 할 분량도 어마어마했다. 왜 이렇게 많은 양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특별 훈련을 위 해서다. "자, 그럼 밧줄을 사러 가 볼까?" "밧줄은 왜 필요한 겁니까, 형제여?" "밧줄?" "웬 밧줄?" 내 말에 모두 의아한 듯 한마디 했다. 그들의 의문에 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이번 특별 훈련을 위해서는 밧줄이 필수거든." "......?" "......?" "......?" "으아아악!" "뭐야! 이, 이게 특별 훈련이야? 으아악!!" "죄, 죄송합니다. 형제들." "가르, 외로우면 같이 매달아 줄까?" "아닙......니다." "당장 풀어!!" "어서 풀어!!" 나무에 묶인 채 발광을 해 대는 데인과 피닉스. 하지만 애써 묶어 놨는데 풀어 줄 필요성은 못 느끼겠다. 지금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내 앞에는 냄비와 식칼, 불 을 피우기 위한 기구 등 각종 요리 기구와 배낭 여섯 개에 꽉 꽉 채운 요리 재료가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나무에 묶인 데인과 피닉스. 그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여기서 잠깐. 내가 왜 저들을 묶어 놔야 하는지 의아할 것 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요리 실력으로 우리 멤버가 우승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 다. 그렇다면 남는 건 독창성과 개발성. 한마디로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요리. 사람들이 보통 사용하 는 공식이 아닌 다른 공식으로 만든 요리. 일단 한 가지 예를 들어, 계란으로 만든 요리에는 소금이 보통이다. 하지만 계란 과 간장 혹은 설탕, 된장, 고추장을 조합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조합해서 만든 뒤 그걸 저것들에게 강제로 먹이고 실패하면 다른 것을......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정말 원시 적인 특별 훈련이었다. "푸, 풀어 줘!" "제발!" 이제는 애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안 된다. 너희는 말 그대로 내가 만든 음식 맛을 봐야 하는 실험체들 이니 말이다. 크크크.. 그나저나 가르는 운이 좋았다. 사실 녀석이 해골바가지만 아니었다면 저들과 같은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리치기에, 특별히 나의 조수로 임명해 주었다. 뭐, 실험을 위해서는 두 명이면 족할 거야. 크크크. "흐으음." "우우욱." "살......려 줘." "실패인가?" 또 실패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이번에 만든 건 생선과 된장의 조합. 분명 새로운 시도다. 하지만 맛은 영 아닌 것 같다. 사실 수많은 실험을 하는 도중 저들은 엄청 맛없는 것도 맛 있다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내가 누군 가? 그럴 경우 내가 직접 아주 살짝 맛을 본다. 그렇게 되면 당장 저들의 거짓이 들통 나고, 나는 손수 나 의 스폐셜 요리를 마구 입에 넣어 주었다. 왠지 모르게 상당히 사악한 요리사 이미지가 돼 버린 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승을 하기 위해 이 정도 희생은 당연한 거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뒤에 대기하고 있던 가르에게 말했다. "가르." "네......" "청국장하고 계란." "......" "어서." "......네." 내 말에 조심스레 청국장과 계란을 내미는 가르. 난 그걸 집어 들면서 묶인 채 울부짖는 그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이번 요리는 청국장 계란이야." "......!" "......!" "언니, 오빠가 안 오시네요." "그러게.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요리 대회 개최 시간은 점심때가 갓 지난 오후 1시. 그런데 지금 시간은 이미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특별 요리 훈련을 간 윤현 일행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것보다, 언니." "응?" "......정말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올까요?" "글쎄......" 예은의 질문에 혜경은 말끝을 흐렸다. 가장 어려운 요리가 바로 새로운 요리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리 실력도 없는 그 멤버가 새로운 요리를 만들려면 더욱 힘들 게 분명하다. 요리의 달인조차도 힘든 일이었으니. 똑똑. 순간 누군가 그녀들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돌아왔어!" "오빠?" "윤현이?" 덜컥. 문이 열리자마자 시체가 되어 끌려온 데인과 피닉스, 그리 고 폐인이 되어 버린 가르까지...... 도대체 뭘 하고 왔기에 이틀 만에 저 모양이 됐는지, 그녀들로서는 궁금하기 그지없 었다. 완성했다! 드디어! 나의 특별 요리, 생선 소고기 돼지갈비찜! 생선과 소고기의 화려한 조합. 한마디로 표현 자체가 불가능한 새로운 요리다. 물론 맛도 보장한다. 그것도 평범한 맛이 아닌 절대적인 맛을 말이다. "크하하하!" "......" "......" 크흐흠. 이미지 관리를...... 호탕하게 웃던 나는 예은과 혜경의 시선을 느끼고 입을 굳 게 다물었다. 그리고 궁금해 하는 그녀들을 향해 한껏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우승은 우리의 것이다!" "저기......" 그때 갑자기 나를 부르는 예은의 목소리. "응?" 왜 저러지? "데인 씨와 피닉스 씨는......" "아아, 저 녀석들?" 끄덕. 나의 말에 예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시선도자 연스레 이미 시체가 되어 버린 듯한 그들 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나의 실험 요리를 너무 많이 먹고 얼굴이 새파랗 게 질려서 슈퍼 폐인이 된 그들이 있었다. "너무 맛있는 걸 먹어서 저래." "......" "......" 여자부 우승. 역시나였다. 예은과 혜경, 그리고 에리아까지. 그녀들은 역시 우승이었 다. 이번 대회에는 NPC뿐만 아니라, 유저들까지 참가했다. 물 론 후드를 뒤집어써야 하는 엽기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는 했 지만 그 정도야 뭐, 별거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남자부. 나는 반드시 우승할 것이다. 우승해서 상금 5골드를 꼭 챙기고야 말겠다. 그걸 위해 이틀 동안 울트라 슈퍼 특별 요리를 개발한 것이 니까 말이다. 바글바글. 그런데 생각 외로 라이벌이 많다. 그것도 한 요리 하는 사람들. 솔직히 말해 여성부보다 더욱 경쟁이 심할 것 같은 예감 이......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요리를 더 잘한다고 알려져 있 지만 진짜 엄청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남자라는 말이 있다. 남자라고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뜻이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에 엄청난 실력자가 숨어 있을지도...... 하지만 걱정 없다! 내게는 데인과 피닉스의 협조(?)로 만들어 낸 요리가 있으 니까. 크하하! 내가 만든 요리는 생선 소고기 돼지갈비찜. 일단 잘 발라 낸 생선살과 더불어 돼지갈비, 그리고 소고기 까지 총 3가지의 고기가 들어간다. 그뿐 아니라 미각을 자극하는 각종 향신료가 잔뜩 들어갔 다. 솔직히 이걸 개발해 낸 건 기적이다. 짜증이 치밀어서 재료를 마구 집어넣은 끝에 개발한 요리. 그걸 먹은 데인과 피닉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자 나는 얼른 먹어 보았다. 그런데, 그런데...... 진짜 맛 죽인다. 거짓말 안 하고 음식점을 차려서 내놔도 대박 날 정도다. 내가 개발한 요리였지만 정말 전설에 남을 만한 맛이었다. 두근두근. 난 음식 평론가들의 평가를 기다렸다. 그들은 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음식들의 맛을 조금씩 음미 하면서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시선이 내 요리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요리, 누가 만들었습니까?" 3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깐깐한 여성이 묻자 나는 손을 번쩍 들면서 대답했다. "제가요." "흐으음. 처음 보는 음식인데...... 뭔가요?" "제가 직접 개발한 것으로, 생선 소고기 돼지갈비찜입니 다!" "......생선......하고 소고기, 그리고 돼지갈비를 조합한 찜 인가요?" "네!" "흐으음......" 내 말에 살짝 얼굴을 찌푸리는 평론가. 직접 맛을 보기 전에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냥 듣기에는 너무 괴팍하게 만든 음식이니까 말이다. "한번...... 먹어 보겠어요." 그녀는 썩 내키지는 않겠다는 듯, 소고기 한 점을 살짝 집 어 들었다. 그리고는 곧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 마구 먹기 시작한다. 하하하. 그녀가 내 요리를 마구 퍼먹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본 다 른 평론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조금씩 집어먹던 그들은 잠시 후 모두 그 여자 평론가의 모습처럼 변해 버렸다. 한 마디로, 허겁지겁 마구 퍼먹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크하하하! 그 순간 들려오는 한마디. "우, 우승이에요! 이 음식을 만든 요리사가 우승이에요!" 크하하하! 우승이다! 내가 만들긴 했지만 정말 환상적이다. 뭐, 사실 데인과 피 닉스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음식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너희한테 아주 조금 감사해 주마. [교황청 지하 창고?!] "마법사는 출입 금지입니다." "저, 저기, 마법사가 아닌데......" "그런데 왜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습니까?" "그, 그건......" '워낙 미모가 뛰어나서요'라고 말하기도 좀 그러네. 우리는 요리 대회 우승 상금 10골드를 챙기고 곧바로 신성 국가 레밀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건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 예은과 혜경, 가르까지 후드를 뒤집어써서 마법사인 줄 알 고 출입 금지를 시키는 것이다. "마법사가 아니라면 후드를 벗으시고 확인 후 입국을 허용 합니다." "......" 크악! 이렇게 곤란할 때가! 예은과 혜경은 미모를 감추기 위해 그랬다고 변명을 하면 되지만 제일 문제가 되는 건 가르였다. 가끔씩 망각하기는 하는데, 가르의 정체는 리치다. 악의 대명사 리치. 그런 리치가 신성국가에 들어간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의도로는 보이지 않는다. 내부 공작을 하기 위해 잠입하는 악당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아, 어쩔 수 없군. 나의 비장의 무기를...... 나는 찢어질 것 같은 마음을 다잡은 뒤 주머니에서 1골드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슬며시 내밀면서, "제 성의입니다." "......" "어서 받아 주세요." "......수상한 자다! 붙잡아라!" "으엑?!" 경비병이 소리친 순간 다른 경비병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 이건 뭐냐? 돈을 내미는데 수상한 자라니! ......수상하기는 하네. 매수하려고 했으니. 역시나 신성국가라서 그런지 매수가 안 통한다. 오히려 독 이 됐을 뿐. 제길! "모두 튀어!" 내 말에 모두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나는 우르르 몰려오는 경비병들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나 건들지 말라고!" "......" 또 사고쳤다. 으아악!! 그냥 시간만 끌려고 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상당한 수 의 경비병들을 박살 내 버렸다. 그 덕분에 나는 저 신성국가 레밀라에서도 현상금이 붙어 버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도망간 다른 일행들에게는 영향이 없다 는 것. 그게 위로할 만한 일인 걸까. 흐윽. "역시 성질 더러운 건 어쩔 수 없나?" 찌릿. "아, 아냐." "피닉스 군. 닥치고 조용히 해라. 안 그래도 심심하니 말이 다." "......" 나는 깐죽거리는 피닉스 녀석을 한마디로 조용히 시킨 뒤 생각에 잠겼다. 이제 어떡한단 말인가. 저 신성국가 레밀라에 들어가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런 나의 희망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으아악! 내가 그렇게 절규하며 허우적거릴 때, 끼이익! 저 멀리서 혜경의 독수리 란타스가 열심히 날갯짓을 하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혜경의 어깨에 내려앉아 그녀 의 귓가에 부리를 대고 뭔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독수리의 말을 들은 혜경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기 시작 했다. 급기야 당황스러운 표정까지 짓는다. 그런 모습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기에 나는 당연히 그녀에 게 물었다. "혜경아, 왜 그래?" "윤현아, 어떡해." "......?" "큰일 났어." "큰......일?" "응."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었다.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이 있는 장소를 알아냈대, 길드 마스 터가." "허억!" 그, 그건 엄청 좋은 소식이 아닌가? 그런데 왜 큰일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거지? 하지만 난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큰일이라고 한 이유를 말이다.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은 신성국가 레밀라의 교황청 지하 창고에 봉인되어 있대." 보통, 왕이 있고 교황이 있다. 뭐, 당연한 건가. 어찌 됐든 교황의 권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거의 왕에 맞먹 는 권위. 특히 종교가 중시되는 나라일수록 교황의 힘은 강력 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왕의 힘이 더욱 강 하다. 그렇지만 단 한 곳, 그렇지 않은 나라가 있었다. 교황이 압도적인 힘을 가진 곳. 그곳이 바로 신성국가 레밀라다. 한마디로, 황궁보다 더욱 강한 힘과 인물들이 모인 곳이 교황청이라는 얘기다. 지금 상황엣어는 레밀라 안에 들어가는 것도 무지 난감한 지경인데, 교황청 안에 봉인되어 있다니. 차라리 죽으라는 말과 같았다. "......큰일 났네." 나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사실 나 혼자라면 어떻게든 레밀라 안에까지는 침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예은도 있고 혜경도 있고, 뿐만 아니라 에리아까지. 그러므로 절대 불가다. "오빠, 어떡해요?" "글쎄." 나는 예은의 물음에 흔쾌히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답답하다. 이런 문제가 생길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마을에 들어가고 싶어요?" "......!" 그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열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한 소녀가 웃 으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키는 대략 172센티미터 정도 에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을 가진 엄청난 미인이다. 예은과 혜경을 제외하면 최고의 미모라고나 할까? 그것도 그녀들의 미모에 그리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 려 약간 아래라는 소릴다. 뭐 그런 것보다, 지금 내가 놀란 건 그녀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느끼지 못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너 무 희미해서 그냥 무시했는데 그것이 사람의 기척일 줄은 전 혀 몰랐다는 얘기다. "딱 보니 마법사 분들 같은데 레밀라에서 무슨 볼일이세 요?" "글쎄." 나는 그 말과 함께 메이스를 집어 들었다. 아무리 여자라고 하지만 수상해 보이는 사람을 앞에 두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난 여자를 존중하는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적까지 존중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어머, 싸우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어치피 싸워 봤자 내 가 질 건 뻔하고요." "......" "사실 힘을 빌리고 싶거든요." "힘?" "네. 이래 봬도 눈치는 장난 아니거든요. 지금 그쪽 분들이 상당한 실력자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제 계획에 도움을 주기 를 원해요." "......" "어때요? 그럼 지금 그쪽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것. 그건 교황청 지하 창고에 잠입해서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을 가져오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자 일행의 목적인데. "말해 보세요." 그녀가 그 말과 함께 웃자 나 역시 덩달아 웃으면서 말했 다. "교황청 지하 창고." "......" 그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자신만만한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는 걸로 봐서는 내가 원 하는 바가 다른 것과는 아주 스케일이 다르다는 뜻이다. 나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걸 들어주면 나도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태 줄게." "......" "어때?" 갑자기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쪽은 내가 되어 버렸다. 크흐음. 한편 한 손을 턱에 댄 채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아윽고 손 바닥을 강하게 마주 쳤다. 짜악. "좋아요." "......" "거기까지 안내는 해 드릴게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네. 제가 원하는 것부터 먼저 들어주세요." "뭘 믿고?" "흐으음." 사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만약 내가 도와줬는데, 저쪽은 자신의 일만 끝내고 사라지 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한마디로 삽질을 한다는 것이다. "하룻밤 같이 자 줄까요?" "쿠, 쿨럭!" 뜬금없는 한마디에 나는 그만 사레가 들려 버렸다. 그리 고...... "안 돼요!" "아, 안 돼!" 그와 동시에 예은과 혜경의 외침도 들려왔다. 그녀들의 외침에 소녀는 묘한 미소를 짓더니, "여자 분들이셨네요." "......" "......"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방금 전에는 농담이었어요. 플 레이진 켓이라고 들어 보셨지요?" "아니." "......" 휘청. 나의 한마디에 휘청거리는 그녀. 왜 저러지? 그런 그녀의 말에 반응하는 건 오히려 내 뒤에 있는 일행이 었다. "플레이진 캣!!" "......" "다, 당신이......그, 그 존재인가요?" "뭐?" "......" 뭐, 뭐냐? 플레이진 캣은 뭐하는 고양이? 난 너무나도 놀란 듯한 기색의 혜경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플레이진 캣인지 뭔지 하는 고양이가 뭐기에 저런 격렬한 반응을 보이지? "이 게임에 존재하는 도둑들 중 최고라고 불리는 도둑이 야." "허억!"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실패 확률은 제로. 말 그대로 0% 단 한 번의 실패도 기록하지 않은 도둑. 그게 바로 플레이진 캣이라고 불리는 존재야." 우억. 그럼 한마디로 도둑 중에서도 엄청난 도둑이라는 거네? 근데 애가 사칭하는 건지 아닌지 어찌 알아? 난 왜 이리 의심이 많은 걸까. 쨍그랑. 그 순간 갑자기 이상한 팔찌 하나를 던져 주는 그녀. 무지무지 비싸 보인다. 도금이 된 팔찌에는 각종 화려한 문 양이 새겨져 있었고, 번쩍번쩍 빛까지 난다. "그랜드 크룬 황실에 있던 티루스라는 팔찌. 알아보시겠나 요?" "잠......깐만요." 혜경이 떨어진 팔찌를 집어 들어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흐으음. 그러고 보니 혜경이는 아이탬 감정에도 소질이 있 나 보다. 뭐 그녀도 도적 계열에 가까운 직업이다 보니 기본 적인 건 알 수 있겠지. 그렇게 약 2,3분 동안 팔찌를 살펴보던 혜경이 믿을 수 없 다는 어조로 말했다. "진......품." "제가 훔쳤다는 건 알고 계시죠?" "......네" "그걸 그쪽에 맡기겠어요. 이 정도면 제가 먼저 도움을 받 아도 되는 걸까요?" 뭐, 그렇다면...... 일단 도망가더라도 저 비싸 보이는 것을 팔아먹으면 그만 이니. 그리고 왠지 도망가지는 않을 것 같다. 원래 큰 도둑일수록 자존심 하나는 정말 강하니까. "그나저나 목적이 뭐기에 내 힘이 필요하다는 거야?" "간단해요." "......?" "황궁 털기." "......" [황궁을 털어라!] 나는 그랜드 크룬에서 어린 공주를 납치했다. 물론 내가 한 건 아니고 또라이 삼총사가 불순한 의도로 납 치했는데, 그 소녀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지금 같이 다 니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그랜드 크룬에서 대문짝만 하게 현상 수배 용지가 붙어 버렸다. 그런데 이제는 신성국가 레밀라에서도 그 절차를 밟게 될 것 같았다. 황궁과 교황청을 동시에 턴(?) 인물로 말이다. 아아아, 어느새 범죄자가 되어 가는 이 기분. 상당히 구리 디. 크흠. "그나저나 내가 할 일은 뭐야?" "간단해요. 황궁 창고를 지키고 있는 수호의 늑대를 상대해 주는 거요." "......수호의 늑대?" "네. 황궁 창고는 상당히 강한 수호의 늑대가 지키고 있거 든요. 물론 해치우라는 건 아니에요. 제가 일을 마칠 때까지 상대해 주면 되는 거죠." 흐으음. 왠지 모르게 강할 것 같다. 그 수호의 늑대인지 뭔가 하는 놈 말이다. 황궁 창고를 지키는 놈이 약하다면 그게 더 웃기는 말이긴 한데, 도대체 얼마나 강한 녀석이기에 이렇게까지 부탁하는 걸까? "자, 여기에요." 우리를 안내해 주던 플레이진 캣이 말했다. 이, 이건 설마......? "신성국가 레밀라 안으로 통하는 지하 동굴이에요." "허얼." 그렇다. 그녀가 안내한 곳에는 땅 밑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계단을 내려가면 곧바로 동굴이 나온다. 한마디로 저 동굴을 통과하면 신성국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도대체 이런 건 언제 만들었을까? "제 직업을 생각해 보세요. 이런 건 기본이라고요." 싱긋. 그때 마치 내 생각이라도 읽었는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 무슨 점쟁이 같아. 내 생각을 이리 간단히 알아맞히다니.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상대방의 심리 정도는 금세 파악하 게 되거든요." 허억! 또, 또 읽혔다! 내 마음을 이리도 간단히 읽어 내다니, 이제는 무섭기까지 하다. "아뇨, 그쪽 얼굴 표정이 읽기 쉽거든요." 허억! 내, 내가 그렇게 쉬운(?) 얼굴이라고? 왠지 충격적이다. "그나저나......" "......?" "애인 있어요?" "갑자기 그건 왜......?" 난 뜬금없이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 버리는 플레이진 캣을 보고 당황했다. 방금 전까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 는데 갑자기 왜...... "대답해 주세요." "없는데......" "왜?" "......" 그리고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왜, 왜 그러는 거냐?! 플레이진 캣은 미녀다. 분명 미녀에 속한다. 예은과 혜경이 가 비정상적으로 예쁜 것일 뿐, 플레이진 캣의 미모도 누구나 인정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나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이건 무 슨 의미냐? "그럼 노려도 되겠네요?" "......"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거든요." "......" "농담 같아요?" ......응. 농담 같아. 갑자기 이런 식으로 말하면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 들이 농담으로 알아들을걸? "진담이에요." 싱긋. 그 말과 함께 싱긋 웃는 그녀. 크윽. 미소가 아름다워. "아, 안 돼요!" "그래! 절대 안 돼요!" "......?" 그 순간 후드까지 벗으면서 외치는 예은과 혜경. 응? 그녀들은 얼굴이 약간 벌게진 채 플레이진 캣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안 된다는 거지? "헤에?" 그런 그녀들의 본모습을 본 플레이진 캣이 의미심장한 눈 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왜 그런 눈빛으로......?" "정말 아름다운 분들이네요." "......" "저도 꽤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고 자부하지만 저 정도 미 모를 가진 분들이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걸요." "......" "그래서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구나. 아아, 이제 모든 게 이해가 돼요. 그나저나, 안 되겠네요." "뭐......가?" "그쪽을 노리는 거요." "......" "이렇게 엄청난 라이벌이 있으면 불가능할 게 뻔하잖아 요?" "응? 라이벌? 그게 무슨 소리......?" "꽤나 둔하네요."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여자 마음도 몰라주는 사람에게는 이 정도도 별 상관없을 것 같네요." "......뭔 말이래?" "에휴우." 갑자기 한숨을 내쉬는 그녀. 도대체 무슨 말이냐! 그리고는 후드를 벗은 예은과 혜경을 향해 안타까운 표정 을 지어 보였다.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 "......" "허억! 예은아! 혜경아! 고생스러워? 이런 제길!" "......" "......" "역시 그렇군. 야! 또라이 삼총사. 니들 또 이상한 짓 했지!" "저, 저는 아닙니다." "나도 아냐!" "난 전설의 피닉스다! 절대 아냐!!" "닥쳐! 이것들이! 내가 그렇게 경고했는데!" "저, 정말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진짜야!" "알잖아? 나 피닉스야!" "다 죽어 봐라!" "으아악!!" "으아악!!" "으아악!!" 나는 순식간에 흩어져서 도망가려는 녀석들을 추격했다. 감히 여자들을 괴롭히다니! 절대 못 참는다! 추격에 나선 윤현을 플레이진 캣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 으면서 예은과 혜경을 향해 말했다. "저 정도면...... 거의 국보급인데요?" "......" "그렇긴 해요." 예은은 말이 없었고, 혜경이 대표로 말했다. 그렇다. 연애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꼬딱지만큼도 없는 윤현은 플레 이진 캣이 말한 대로 국보급이었다. 그것도 초절정 국보급! "여기서 조언 하나 해도 될까요?" "......?" "......?" 플레이진 캣의 한마디에 예은과 혜경은 의아해 하는 표정 을 지어 보였다. 플레이진 캣은 머리를 한번 매만지면서 말했 다. "저런 스타일은 눈치로 알아채는 건 절대 불가능해요. 직접 적인 대시야말로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나 할까요?" "......" "......" "그냥 말해 두는 거예요∼. 참고하시라고요." 그 말과 함께 플레이진 캣은 다시 한 번 웃어 보였다. "휴우." 나는 볼일을 끝낸 뒤 그녀들 쪽으로 돌아왔다. 저것들이 달리는 속도가 예전에 비해 확실히 향상되었다. 솔직히 말해 100미터 경주 대회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 도로 엄청난 스피드다. 만약 다크 헤이스트가 없었더라면 저 들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저들의 튀는 경지가 나날이 발달하고 있다는 증거 다. "여기에요." 마침내 동굴 끝에 도착한 일행. 동굴의 끝에는 위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저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신성국가 레밀라가 나오는 것이 다. "나머지 분들은 여기에 묵고 계세요. 여기라면 안전할 테니 까요." 동굴을 나오자마자 우리를 반긴 건 집이었다. 그것도 꽤나 큰 집. 대궐 같은 규모를 보니 상당한 금액을 투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집과 저 밖의 공간을 연결하는 동굴까 지. 꽤나 철저한 준비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뭐 당연한 건가? 황궁을 털려는데 말이다. "저와 마에스트로 씨는 황궁에서 볼일을 마친 후 곧바로 교황청으로 가겠어요." "곧바로?" "네. 황궁에서 한 건 하면 분명 시끄러워져요. 당연한 말이 지만 이곳이 초경계 태세에 돌입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다 면 교황청도 마찬가지, 지금도 황궁보다 더욱 위험한 곳이 교 황청이에요. 그런 곳의 경비가 강화된다면 침입하기란 절대 불가능해요." "흐으음." 그것도 그렇네. 황궁보다 더욱 살벌한 곳. 그 이름 하여 교황청. 그런 곳의 경비가 더욱 삼엄해지면 나의 야망(?)은 이룰 수 없게 된다. "자, 시작해 볼까요? 잘 부탁드려요." 그 말과 함께 활짝 웃어 보이는 캣. 나 역시 그녀를 보면서 함께 웃었다. "나야말로." 이걸로 협상 타결이다. 이번 작전에 동원되는 존재는 나와 플래이진 캣, 그리고 피 닉스다. 굳이 피닉스 녀석을 데려온 이유는 정찰을 위해서라고 해 야 하나? 사람보다는 새가 정찰하기는 훨씬 쉬울 테니까. 물론 녀석이 약간 모자라서 제대로 된 임무를 해 줄지는 미 지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일단 황궁 지하까지는 안전하게 갈 수 있어요." "응? 그래도 일단 황궁인데. 뭐 트랩이라든가 경비병 같은 건 없는 거야?" "아뇨. 당연히 있어요." "그런데 안전하게 갈 수 있다니......?" "안전한 길을 알고 있으니까요." "......"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준비도 없이 왔을 리 없잖아요." 흐으음...... 되게 철저하시네. 평소 뭐든 대충대충 하는 나로서는 그녀의 행동 자체가 큰 충격이었다. 이렇게 꼼꼼하다니......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하 창고에 있는 게르스는 피할 수 없어요." "게르스?" "네. 그쪽이 상대해 줄 늑대 이름이에요. 늑대들의 왕." "......" "많이 강해요. 그러니 시간만 끌어 주면 돼요. 약 5분만 말 이에요." "저기......" "......?" "보통 늑대 같은 동물에게 보초를 시키지는 않잖아? 특히 중요한 곳일수록 경비병을 많이 배치한다든가......" "게르스는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이곳에 서 제일 강하기도 하고요." "......" 허얼. 늑대가? 늑대가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가졌고 싸움 실력은 최강? 뭐, 그딴 늑대가 다 있냐! "어찌 됐든 이번 임무에서 제일 중요한 건 그쪽이 게르스 를 상대하는 거예요. 다른 건 문제없어요." "알았어." 게르스인가 뭔가 하는 놈이 여기서 제일 강하다. 하지만 나도 물릴 것이 없었다. 이래 봬도 과거의 경력들이 너무나도 화려한 나다. 고작 늑 대들의 왕에 겁낼 정도로 허약하지는 않다. 허얼, 이건 너무 심하다. 너무너무 말이다. 어떻게 황궁을 자기 집처럼 이렇게 돌아 다닐 수 있지? 아니, 자기 집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는 불가능 하다. 거짓말 안 하고 황궁 창고까지 오는 도중 단 한 번도 기사 들이라든가 함정 같은 것에 걸리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여기에요." "......" "왜 그런 표정을 지어요?" 내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자 그녀가 내게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너무 놀라워서." "네?" "어떻게 황궁에 잠입한 주제에 이렇게 퍼펙트하게, 요리조 리 잘 피해 갈 수 있는지 말야." "거듭 말하지만 난 플레이진 캣이라고요. 실패율 제로. 그 런 제가 이 정도도 못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네....... 그나저나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실패율 제로라니. 정말 탄 성이 절로 나오게 만드시는 분이다. 그럼 이제까지 노린 물건은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는 얘 기? 저 가녀린 체구에서 그런 포스를 내다니, 거참 신기하단 말 야. 솔직히 말해 겉모습만으로 말하자면 그냥 아름다운 미녀 정도? 이런 직업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자요." "으응?" 그때 갑자기 검은색 복면을 내게 내미는 그녀. 복면? "이제는 이걸 착용해야죠." "이걸?" "네.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 "어서 받으세요." "......알았어." 나는 플레이진 캣의 재촉에 그녀가 내민 검은색 복면을 받 아 들었다. 이건 딱 그거다. 도둑들의 필수 품목 말이다. 내가 이걸 뒤집어쓸 날이 올 줄은 전혀 몰랐지만...... 이제야 지금 나의 상황이 실감난다. 난 엄연히 범죄자(?)의 길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가 건네준 복면을 착용한 뒤 말했다. "가죠." "잘 부탁드려요." "저게 게르스예요." "좀...... 크군." 사실, 좀이 아니라 엄청 크다. 뭐냐? 저게 늑대의 피를 이어받기는 한 거야? 창고 앞을 지키는 늑대 한 마리. 늑대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다. 대충 4미터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오는 몸통. 두 발로 세운다면 키가 한 10미터 정도는 될 듯싶다. 저게 늑대라는 동물이라니, 믿고 싶지 않다. "강하니까 조심하세요." "그런 말 굳이 안 해도 강해 보이네." "5분만 견뎌 주세요. 5분이면 돼요." "알았어." 나는 그러헥 대답한 뒤 메이스를 꺼내 들었다. 지난번 도그 새끼 이후 치르는 오랜만의 전투다. 준비 를...... "이 늑대 자식아! 덤벼! 덤벼!" "......" "하찮은 것. 크헤헤헤!" "......" 으아악!! 나는 절망했다. 어느새 튀어 나가 건방진 말투로 늑대에게 깐죽거리는 피 닉스 녀석을 보고. 당연히 가르스는 녀석의 깐죽거림에 마구 흥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이마를 짚으면서 그대로 튀어 나갔다. "아, 피닉스 자식! 죽여 버리겠어!" 가르스와 나는 마주 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피닉스의 깐죽거림에 용케 흥분을 가라앉혔구나. 그것만으로도 저 늑대들의 왕의 지능지수가 상당하다는 점 을 알 수 있었다. "침입자." "......엥?" "죽인다." 마, 말도 하네......? 허얼, 이럴 수가. 너무나도 놀랍다. 인간 이상의 지능지수라고 하지만 인간 의 말까지 저렇게 능숙하게 하다니. 아니, 당연한 건가. 그 정 도의 머리라면 인간의 언어 정도는 간단히 습득할 테니. "푸헤헤, 등신 새끼." "......" 그때 또다시 깐죽거리는 피닉스. 저 녀석, 정말 대담하다. 싸움은 지지리도 못하는 놈이 말이다. 지난번 섀도 플리자 트와의 전투 이후 나는 피닉스의 싸움 실력을 알 수 있었다. 불사조라고 불리는 피닉스가 아니라면 저 녀석은 한 수천 번은 죽었을 게다. 어떤 의미에서 저 녀석이 피닉스로 태어난 건 하늘의 배려 일지도. "시작하지." 그때 늑대가 중후한 음성으로 한마디 내던졌다. 나는 웃으 면서 대답했다. "그래, 시작해 보자고!" 나는 그 말과 함께 버프 마법을 걸었다. "다크 블레스!" -모든 능력치가 400 상승했습니다. "다크 스트림!" 끼이익!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무기에는 어둠의 악령이 깃들었다. 이제는 상대방 약화 버프다! "다크 블레스! 다크 큐어! 다크 헤이스트!" 흠칫! 나의 외침에 움찔거리는 가르스. 느꼈을 것이다. 순식간에 약해지는 자신을 말이다. 일단 다크 블레스. 시전자의 힘을 강하게 하는 스킬이기도 하지만 상대바으이 전 능력치를 다운시키는 기능도 했다. 그리고 다크 큐어. 이건 랜덤으로 질병을 걸리게 하는 스킬 인데, 지금 저 상태를 봐서는 그리 강한 것이 걸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크 헤이스트. 이것이 바로 희망이다. 늑대 하면 보통 스피드다. 스피드로 먹고사는 늑대가 스피 드가 줄어들면? 그리고 그 스피드가 나의 것이 되면 한마디로 대박이다. "인간...... 무슨 짓을 한 거지?" "글쎄." "......" "맞혀 보면 재밌겠지?" 나는 그 말과 함께 씨익 웃어 보이고는 엄청난 스피드로 가 르스에게 달려들었다. 허억! 근데......! 내 속도가 아니다. 너무 빠르다. 다크 헤이스트, 심각한 사기 스킬이다. "......!" 한편 그런 나의 모습을 본 가르스는 흠칫 놀라면서 방어 태 세에 돌입했다. 인간이 이 정도의 속도를 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다. 슈우욱. 나는 그대로 메이스를 치켜들고 가르스의 몸통을 노리고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가르스는 그 자리에서 훌쩍 뛰어 버 렸다. 이런! 제자리에서 5미터 이상 점프하다니, 역시 예사로운 놈은 아 니다. "죽어라! 인간!" 그리고 추락하면서 그대로 커다란 앞발을 휘두르는 가르 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곧바로 방어막을 생성했다. "다크 배리어!" 콰앙! "......!" 그, 그런데 무슨 폭발이냐, 이건......? 분명 가르스의 앞발과 나의 다크 배리어가 부딪쳤다. 그런 데 폭발이 일어났다? 그건 설마...... "발톱에 익스플로젼 마법이라도 걸었나?" "잘 아는군." "......" 허얼. 이런 말도 안 되는! 발톱 자체에 익스플로젼 마법이 걸리다니. 그 말인즉슨, 저 발에 스치면 뒈질 수도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나저나 이상하군. 내 스피드와 생명력이 줄어든 느낌이 다." 그거야 뭐, 내가 빼앗았으니까. 뭐, 굳이 가르쳐 줄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난 늑대들의 왕 인간한테 질 정도는 아 니다." "......" 건방진 자식이군. 저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의 출처가 궁금한데 말이야. "푸헤헤! 고작 늑대들의 왕이라니! 난 피닉스의 왕이다!" "......" "......" 그때 튀어나와 가르스의 말을 비웃는 피닉스. 뭐시라? 피닉스의 왕? 네가? "......야, 피닉스." "응?" "네가 피닉스의 왕이라고?" "물론." "......" "나밖에 없거든." "......" "전국 조류 센터(?)에 문의한 결과 피닉스는 나 혼자래. 그 러니 내가 왕이지, 뭐!" 자, 잠깐. 그렇게 해석되는 건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에도 뭔가 미묘한 느낌. 상당히 아 리꾸리하네. "잡담은 그만 하지." 그때 피닉스와 나의 대화는 무시한 채 그대로 내게 달려드 는 가르스. 나도 그런 녀석을 보고 외쳤다. "원하던 바다." 난 단 한 방에 끝나 버린 가르스를 보고 허무한 표정을 지 어 보였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가르스가 몸으로 부딪치기 위해 용감하게 달려들자, 나는 그런 녀석의 노고에 답하기 위해 곧바로 라이프 블리지트를 걸었다. 녀석의 앞 발톱과 나의 공격이 부딪쳤다. 그런데...... 죽어 버렸다. 가르스가 말이다. 늑대들의 왕이라는 녀석이 단 한 방에 끝나 버린 것이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24업. 정말 미치겠다. 이건 뭔 일이래? "스텟창 오픈."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276 HP/MP: 7,410/6,920 힘: 1,242(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593(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 니다.) 지능: 220(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180(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텟: 120 허얼. 어느새 레벨이 280이 다 되어 간다. 죽어라 사냥하는 것도 아닌데 레벨 업 속도가 상상초월이 다. 사실, 한 가지는 인정한다. 이 직업 자체가 완전 사기라는 것 말이다. 물론 이상한 놈들에게 이유 없이 공격당한다는 점 은 좀 그렇지만...... 그나저나 스텟을......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276 HP/MP: 7,410/6,920 힘: 1,362(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593(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 니다.) 지능: 220(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180(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텟: 120 이번에는 모두 힘에 쏟아 부었다. 왜냐하면, 늑대들의 왕을 원샷 원킬 해 버리는 이 마셍 끌 렸다고나 할까? "마, 말도 안 돼!" 그때 볼일을 다 마치고 돌아온 플레이진 캣이 경악 어린 표 정으로 외쳤다. 그녀는 쓰러져 있는 가르스를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서, 설마 해치운 거예요?" "그렇긴 한데......" "마, 마, 말도 안 돼! 가, 가르스를......!" "말이 안 되긴? 한 방에 가 버리던걸." "한......방?" "응." "다, 당신 정체가 뭐죠?" 나의 대답에 순식가네 경계 태세로 들어가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에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 게 묻는다면 대답해 주는 게 인지상정. "난 프리스트야." "......" "물론 앞에 다크라는 단어가 붙는 다크프리스트." "......" "여전히 믿을 수가 없네요." 그녀는 황궁을 벗어나는 내내 나를 괴물 보듯 쳐다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심오한 눈빛을 보니 슬퍼지는데, 흐윽. "가르스를...... 한 방에 해치우다니. 그게 이론상 가능한가 요?" "나한테 물어도 답은 안 나오는데." "......" "그리고 가능하니까 죽이지 않았겠어?" "저기......" "응?" 그때 그녀의 시선이 내 허리춤에 매달린 메이스를 향해 돌 아갔다. 그리고는 약간 침착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 메이스, 신급...... 아이탬인가요?" "아니." "그럼......전설?" "아닌데." "유니......크?" "그것도 아닌데." "매......직?" "그것도 아냐." "......노멀?" "노멀도 아닌데." "그, 그럼 뭐예요?!" 흥분하며 묻는 그녀. 왜 저러는 걸까?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무 기는 노멀급에도 들지 못하는, 처음 시작할 때 받은 기본 무기 였다. "기본 무긴데." "기, 기본 무기로 가르스를 한 방에?" "아, 개조했어." "......개조?" "응. 이게 좀 특별한 메이스야. 상태 이상, 중독, 빙결에 오 리데오콘을 합성해서 엽기 영감탱이가 만들어 준 메이스거 든." "......" "뭐, 굳이 말하자면 전설급이나 신급에 달하는 데미지인 건 맞겠지." "그, 그렇군요......" 그제야 내 말에 수긍하는 그녀. 하지만 여전히 메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기본 무기가 그 정도로 개조 가능하다니. 오늘 처음 알았 어요." "흐으음. 꽤나 힘든 여정이었지." 쉽게 개조한 것은 아니다. 그 얼마나 힘든 여정 끝에 얻은 결과물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자, 그나저나 다음에 할 일은...... "교황청인가?" "당장 힐러들을!" "제길!!" "으아악!!" "으악! 내, 내 팔이!!" "우욱!" "힐러 불러!!" "젠장, 이런!!" ......이건 뭐냐? 우리는 곧바로 교황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완전히 산산조각 나 버린 교황청. 지금 그 자리에는 예전 교황청을 이루고 있었다고 추정되는 건물의 잔재만이 남아 있었다. 한마디로, 그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던 교황처잉 박살 이 난 것이다. "이, 이럴 수가......" 플래이진 캣도 자신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믿을 수 없다 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제일 강력하다던 교황청, 그런 곳이 거의 흔적도 찾을 수 없이 파괴되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야, 피닉스." "응." "혜경이한테 가 봐라." "왜?" "혜경이에게 무슨 정보라도 들어왔나 가 보라고. 교황청이 이 꼬락서니가 된 이유 말이야." "잘......나지 않았어! 하하하! 갔다 올게!" 금방 '잘난'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의 살벌한 표정 을 보고는 금방 말을 바꾸는 녀석. 역시 영악하긴 하군. "나 왔어!" 약 10분 후 저 멀리서 날아오는 피닉스 군. 나는 그런 녀석에게 곧바로 물었다. "혜경이가 뭐라고 하디?" "그들이라고 하던데." "그들?" "응. 그 뭐더라? 너를 급습했던 그 단체." "나를...... 급습했던 단체......?" "응. 그렇게만 말하던걸." 설마 그 말은...... 제길! 그 자식들인가? 내가 다크프리스트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를 갈고 있는 그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그들에게 대적하기 위해서는 강한 힘과 유물이 필수였다. 솔직히 내가 공격당하는 이유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 유물을 모으고 다니는 건데...... 그 유물을 저쪽에서 먼저 손을 댄 거다. 그것도 교황청을 저 꼬락서니로 만들고 말이다. 한 나라의 무력을 압도할 정도의 힘이라니. 이건 상상 초월이다. "이제 어떡하지?" 내 유물! 내 유물! 그걸 찾지 못한다면 나는 강해질 수도 없 고, 나를 공격하는 이유조차도 알 수 없게 된다. "아 참, 그리고 혜경이가 얼른 오라고 하던데. 어서 되찾으 러 가야 한다고!" "......그딴 건 일찍 말하라고, 이 바보 피닉스야!" "저, 저기." "네" "왜 따라오는 거야?" "그야 당연히 당신이 원하는 물건을 찾기 위해 도와주려는 거죠." "......" "이래 봬도 신세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서요. 분명 내 일 은 교황청 지하 창고까지 안내해 주는 거지만 그게 무산되었 잖아요. 그렇다면 그 대신 당신이 찾는 그 물건을 찾는 걸 도 와줘야 하겠죠?" "흐으음......" "그리고 제가 가면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이래 봬도 모든 열쇠나 트랩을 해제하는 방법을 다 알고 있으니까." ......그렇긴 하다. 눈앞에 저분은 전설적인 도둑. 실패율 제로라는 플레이진 캣이다. 그런 그녀가 도움을 준다면 일이 훨씬 수월할 게 분 명하다. "그리고 그쪽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요." "......" "진심이에요." "......" 쿠, 쿨럭. 자꾸 그런 말을 하면 당황하게 되잖아!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정말 미녀였다. 예은이와 혜경을 제 외하고는 저 정도로 예쁜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들과도 그리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그녀가 자꾸 날 마음에 든다 하면 어찌하란 말인가! 나는 엄연히 남자거늘, 그런 소리를 하면...... "어찌 됐든 신세지는 건 사양이니, 같이 가게 해 주실 거 죠?" ......내 신념이라고 해야 하나? 오는 여자 절대 안 막는다. 그것도 미소녀라면 말이다. "그런데, 이름이 뭐야?" "레니아, 그게 제 이름이에요." [두 번째 유물] "제경의 탑. 이곳이야. 지금 파악된 바로는 여기로 다크프 리스트의 유물을 운반했다고 해." 다급히 지도 한 장을 펼치면서 말하는 혜경. 역시 뛰어난 정보력이다. 그나저나 왜 남의 물건을 건드리냔 말이다. 꼭 피를 봐야 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럼 그곳을 부숴 버리면 그만 아닌가?" "응, 그렇지만 빨리 해야 해.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더욱 보 안이 철저한 곳으로 옮겨지고, 심지어는 우리가 파악이 불가 능한 곳으로 옮겨 갈 거야. 지금 이곳 제경의 탑 안에 옮겼다 는 정보도 힘들게 얻었어." "알았어. 나도 시간 끄는 건 원치 않거든. 자, 가 볼까, 제경 의 탑인가 뭔가로?" 제경의 탑. 이곳은 버려진 성이었다. 300년 전 고대 흑마법사들이 키메라를 연구하던 곳이다. 그들은 키메라를 만들던 도중 뭔가 실수를 저질렀다. 그 결 과 너무나도 강하고 흉폭한 데다 이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괴물이 탄생했고, 그 키메라는 제경의 탑에 있는 모든 흑마법사들을 죽였다. 그리고 곧바로 근처에 있는 신성국가 레밀라를 공격했는 데, 당시 레밀라는 그들이 자랑하는 성기사를 3분의 1이나 희 생시키고 놈을 죽일 수 있었다. 어찌 됐든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성. 그곳이 바로 내 앞에 있는 제경의 탑이다. 사실 300년이나 버려진 성이다 보니 성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곳곳에 있는 거미줄과 거의 다 허물어진 벽, 그리고 보는 것만으로도 음침하기 그지없는 분위기까지...... 성이라고 부 르기에는 조금 뭐한 곳이긴 하다. "란타스, 정찰 좀 부탁해." 끼익! 혜경의 한마디에 곧바로 탑을 향해 날아가는 충직한 란타스. ......솔직히 부럽다. 나에게도 새가 한 마리 있기는 한데 지가 피닉스라고 엄청 건방을 떠는, 저렇게 충직한 건과는 전혀 거리가 먼 미친 새다. 하아, 나도 평범함 펫을 갖고 싶었어. "기도합시다." "갑자기 뜬급없이 뭔 개소리냐?" "오새 한동안 기도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거랑 지금 상황하고 뭔 상관있냐?" "없는데요.' "너 죽을래?" "아, 아닙니다!" "안 그래도 지금 정신 사나우니까 조용히 하자." "......" 나의 협박이 가르를 침묵시켰을 때 란타스가 다시 날아왔다. 그러더니 혜경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햇다. 잠시 후 혜 경이 표정을 굳힌 채 나를 바라보았다. "......왜?" 내가 혜경에게 묻자 그녀가 나의 물음에 답했다. "저 제경의 탑에 복면을 한 남자들이 수백 명 정도 있대." "수백......명?" "응." 수십 명도 아니고 수백 명? 허얼, 이러면 곤란하다. 내가 조금(?) 강하다고 하지만 수백 명을 상대하는 건 좀...... "저기요." "......?" "......?" 그때 갑자기 입을 여는 레니아. 그녀가 활짝 웃으면서 혜경을 향해 물었다. "그 원하는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나요" "가, 가능은 한데요." "그럼 그 장소만 가르쳐 주세요." "네?" 갑작스러운 레니아의 말에 당황하는 혜경. 그나마 레니아 는 오히려 웃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저곳의 구조를 좀 알거든요." "아......" "있는 곳만 안다면 굳이 부딪치지 않고 갈 수 있어요." "......" 저 300년이나 버려진 성을 안다고? 믿어지지가 않는다. "헤헤. 실패율 제로라는 명성은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 요." 그때 그런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친절하게 말해 주는 그녀. 아, 그렇구나. 저분은 도둑이긴 하지만 그중 최고라고 불리는 도둑. 역시 최고라는 명성은 그냥 붙어진 게 아닌가 보다. 역 시나 최고라는 이름을 가질 만한 분이다. 레니아의 말에 혜경은 란타스에게 다시 한 번 부탁했다. 그러자 아무 말없이 또다시 정찰을 떠나는 란타스. 그렇게 다시 한 10분의 시간이 더 지났을까. 저 멀리서 란 타스가 다시 멋지게 비행하며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란타스가 또다시 자신의 귀에 대고 뭔가를 말하자 혜경은 고개를 끄덕인 뒤, "제일 위층에 있다고 하네요." "꼭대기 층이요?" "네." "레니아, 꼭대기까지 몰래 가는 방법이 있어?" 내가 레니아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묻자 그녀는 한껏 웃으 면서 말했다. "물론!" 허얼.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저게 전부다. 아무리 최고의 도둑이라고 하지만 300년 전 키메라에게 완 전히 박살 나 버린 탑의 비밀 통로를 이렇게 잘 알다니! 레니아가 안내해 준 길. 그곳은 제경의 탑 비밀 통로였다. 제경의 탑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숨겨져 있는 비 밀 통로. 설마 이런 곳이 떡하니 있을 줄은 몰랐다. "여기를 통하면 제경의 탑 최상층에 도착할 수 있어요." "으으음, 근데 이건 직선 통로잖아? 분명 최상층에 올라간 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요." "......?" "이 길 맨 끝에 최상층으로 우리를 끌어올려 줄 기구가 있 어요." "......" 그, 그건 엘리베이터? 뭐, 여기는 판타지 세계니 그렇게 불리지는 않겠지만 분명 엘리베이터와 비슷한 원리를 가진 뭔가가 있는 듯했다. 그런 나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내 앞에 보이는 엘리베이 터. 아니,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엘리베이터와 비슷한 원리를 가진 기계였다. 상당히 허름에 보이는 철통이 하나 있고, 거기에는 줄이 묶 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줄은 위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수동식. 간단히 말해, 저 줄을 잡아당기면 도르레의 원리로 철통이 올라가는 방식이다. 나는 뒤에 있는 일행을 향해 말했다. "모두 여기서 대기해 줘. 얼른 유물을 찾고 나서 다시 올 테니 말야." "네." "응." "알겠습니다." "알았어." "난 잘났으니까." "잘 다녀와요." 꾸벅. 내 말에 모두 인사를 했지만 유독 한 명만은 꾸벅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건 에리아였다. 말을 건네는 것조차도 쑥스러운지 인사로 대신하니 할 말 다했다. "아, 참." "......?" "......?" 내 말에 모두 나를 바라보는 일행. 크흐흠. 그런 눈빛은 부담스러운데...... 어찌 됐든 꼭 해야 할 말이 있었기에 나는 입을 열었다. "데인, 너는 따라와." "나?" "응. 네가 좀 변태 끼가 있지만 일행 중 그나마 싸움 실력 은 되니, 혹시라도 내가 유물을 찾는 동안 공격을 받으면 엄호 해 줘." "알았어." 그런 내 말에 데인은 순순히 응해 주었다. 그런데! "뭐, 뭐야?" "뭐긴?" 그때 반란이라도 일으킬 듯 눈을 부릅뜨면서 나서는 새 한 마리. 굳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듯싶다. "내가 제일 잘하잖아!" "뭘?" "싸움!" "푸하하하! 거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 "싸움 잘하는 놈이 만날 밟히고 사냐?" "그, 그건 그냥 예의상 밟혀 준 거야!" "어이없다." "지, 진짜야!" 요즘은 예의상 목숨까지 걸고 밟혀 주는 시대냐? 아니, 저 녀석은 죽지 않는 불사조이니 목숨까지는 안 걸어 도 되는 건가? 어찌 됐든 피닉스의 헛소리는 나를 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헛소리는 사절이다." "......" "그럼 가자, 데인." "응." "나, 나같이 잘난 피닉......" 나는 뒤에서 여전히 발광을 해 대는 피닉스에게 신경을 끄고 발걸음을 옮겼다. 저 자식에게 맞춰 주는 것은 정상적인 (?) 나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힘드네, 이거." "그러네." 나와 데인은 말없이 줄을 당겼다. 처음에는 할 만했다. 아니, 오히려 힘이 불끈불끈 솟았는데 한 10분 정도 계속 줄을 당기다 보니 그게 아니다. 열나게 힘든 것이다/ "근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뭐가?" 데인의 말에 나는 약간 힘겨웠기에 대충 대꾸해 보았다. 데인 왈. "우리 여기서 둘 다 손 놓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간단하잖아. 뒈지는 거지. 뭐."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가 아니라...... 우어억!" 그러고 보니 미처 생각 못했는데 지금 이 줄을 놓아 버리면 우리는 그대로 추락한다. 그러면 간단하게 추락사...... 우어억! "야! 멈추면 안 돼! 안 돼!" 밧줄 끌어당기는 걸 멈춰도 추락사하고 말 것이다. 이거 생각해 보니 거의 목숨을 건 작업이다. "이건 아냐! 이건 아냐!" 방금 전까지 먹었던 느긋한 마음으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추락사하지 않도록 열심히 밧줄을 당기는 것밖에 없었다. 떨어져 죽고 싶지는 않아! "헉헉헉!"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데인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힘들었다. 생각해 보라. 정확히 25분 동안 그 묵직한 줄을 당 겨야 했다. 무려 25분 동안이나! 특히 잠시도 쉬지 못하고 당겨야 한다는 상황이 우리를 더 욱 압박했다. 왜냐하면 밧줄을 당기는 걸 멈추는 순간, 그대로 세상과는 바이바이였으니까. 뭐, 어찌 됐든 일단 올라오기는 했다. 제경의 탑 최상층까 지. 그렇다면 여기에 바로 나의 유물이 고이 모셔져 있다는 말. 이제 그 유물만 찾으면 될...... "......" "......" ......뻔했는데.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어. 난 그만 굳어 버렸다. 내 앞에 서 있는 두 존재를 보고 말이다. 한 명은 너무 자주 뵙는 검은색 복면을 한 남자다. 솔직히 그자를 보고 굳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저 옆에 있는 괴상 망측한 괴물을 보면 나도 모르게 굳고 싶어진다. 오우거의 얼굴과 몸통에 오크의 굵직한 팔다리, 그리고 등 에는 와이번의 날개. 마지막으로 저 머리에 뿔까지. 저건 말 그대로 합성 괴물이라 불리는 키메라가 아닌가? "오호. 그런 쪽에 비밀 통로가 있었다니 놀랍군." 복면을 뒤집어쓴 남자가 우리가 비밀 통로에서 나오는 걸 보 고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나 역시 마주 입을 열었다. "오호, 이런 곳에 그런 무지막지한 괴물이 있었더니 놀랍 군." "하하하, 웃기는 놈이군. 그나저나 이곳에 볼일이 있다는 그 유명한 다크프리스트 님 아닌가?" "빙고다." "오호. 흥미로운데, 이거. 우리 최고의 적 다크프리스트와 300년 전 이곳 제경의 탑과 신성국가 레밀라를 완전히 박살 내 버린 우리 비밀 병기와의 싸움이라. 크크크." 자, 잠깐. 300년 전 이 제경의 탑을 박살 내고 신성국가 레밀라를 완 전히 박살 내 버린 키메라? 그건 설마...... "이곳을 파멸에 빠뜨린 존재지. 우리가 다시 부활시켰다.' "이런 미친......" 제길이다! 저런 미친 괴물하고 싸워야 하는 거냐, 나? 아, 머리 아파진다. [전설의 키메라] 으아악!! 정말 저주받은 인생이다. 아니, 이건 누군가의 음모가 분명 하다. 어디서 이런 거지 같은 상황만 만들어 내는 거지? 이 정도면 기네스북 감이잖아! 세계 최고로 재수가 없는 사람으로 말이다. "크라카티." 뭐, 뭐냐? 이 거지 같은 개소리는? 분명 저 이상한 키메라 놈이 내는 소리 같았다. "크라카티......" "뭔 언어냐?" 확실해졌다. 저 미친 키메라 자식이 내는 소리라는 게 말이다. 요새는 키메라도 개성이 넘쳐흐르는군. "자, 저것들을 죽여라!" 그때 복면을 뒤집어쓴 남자의 명령이 떨어졌다. 근데...... 푸직. "......!" 갑자기 방향을 휙 돌리더니, 그 복면 뒤집어쓴 남자의 배를 그대로 파고 들어가는 키메라의 손. 그와 더불어...... 파앗. 피가 튄다. 키메라는 손힘으로 그 복면 쓴 남자의 허리를 부러뜨렸다. 남자의 몸이 이등분되었다. 그와 더불어, "나에게 명령을 하다니, 죽고 싶었나 보군." "......" 말도 한다.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크라캬티' 라는 등 이상한 소리 를 내더니 이제는 인간의 언어로 말한다. 이건 도대체 뭐냐? 그때 튀어나온 데인의 한마디. "신기한 놈이네." "글쎄올시다." "......?" 다른 존재가 그런 말을 했다면 이해하겠는데, 맞으면 기뻐 하는 마조히스트 천족 검사가 그런 말을 하니 좀 그렇단 말이 다. "다 죽이겠다." 그때 갑작스럽게 한 마디 툭 던지는 키메라. 그러더니 곧...... "우억!"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뭐, 뭐냐? "여기다!" "......!" 그 순간 바로 내 옆에 달라붙어 친절하게 말해 주는 키메라 님. 개인적으로 그런 친절함은 거절하고 싶은데 말이다. 나는 근처에 다가온 키메라를 향해 다크 헤이스트를 걸기 위해 주문을 외웠다. "다크 헤이......" 퍼억! "크억!" 하지만 나의 주문은 끝나지 못했다. 내가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키메라의 주먹이 내 배를 강하 게 쳐 버린 것이다. "쿨럭!"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저 키메라의 손을 전혀 보지 못했다. "왠지 재미없군." "쿨럭." 저 건방진 한 마디에도 대꾸할 여력이 없었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입에서 줄줄 흐르는 피 때문이라고나 할까? "허억! 괜찮아?" 데인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 눈에는 이게 괜찮은 걸로 보이나? 퍼억! 그 순간 또다시 들려오는 타격음. 근데 이번에는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쿨럭!" "데......인.' 데인이었다. 키메라 녀석이 어느새 이동해 데인의 배를 한 방 친 것이 다. 너무 빠르다. 보이지가 않는다. 이렇게 스스로가 무력해지는 느낌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게임을 해 왔지만 이렇게 맥없이 당하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저것이 진정 전설이라 불리는 괴물, 키메라의 힘 인가......? "시시하군." "......" "이제 그만 둘 다 죽어 주길. 크크크. 나는 인간이나 사냥하러 나서야겠군." 젠장! 만약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일 행도 전멸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성국가 레밀라도 또다시 박살 날 것이고, 심지어 다른 마을이나 나라까지 피해를 입을 지도 모른다. "끝내지." 그 말과 함께 사라지는 키메라. 이제 끝난 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저 키메라는 정말 괴 물이다. 제길! 어떻게든 피해 내고 싶었지만 어디 있는지 기척조차 느껴 지지 않는다. 그 말인즉 피할 수 없다는 뜻.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음을 예상하면서. 그런데...... "다크......배리어." "......!" 콰앙! 다크 배......리어? 나는 분명 저 주문을 외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 귀에는 다크 배리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 다. 그것도 선명하게. 그와 동시에 내 앞에 펼쳐지는 수상한 검은색 배리어. 다크 배리어다. 확실하다. 이런 이상한 색깔의 배리어는 다크 배리어밖에 없다. "뭐지......?" 그때 키메라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한 사람. 왠지 친숙하다. 어디 서 많이 보던 분 같은데? 그 누군가가 나를 보며 웃었다. "아직 저 정도의 괴물은 무리일 거야." "......!" 그의 모습이 내 눈에 클로즈업 되었다. 저 작자는! "사기꾼!" "사기꾼이라니. 너의 스승이노라!" "염병!" "흐흐흐. 그렇게 소리치면 더 아플 텐데." "......" "자자, 정의의 스승 등장이오!" 그렇다. 순수한 프리스트를 하려던 순진한(?) 나를 꼬셔 내 이상한 동굴에 집어넣고 강제로 다크프리스트로 만든 그 작 자, 아니 그 사기꾼. 이름 하여 세키린인가 뭔가 하는 그 작자다. 그 작자가 내 앞에서 웃고 있었다. "......너, 넌!" 키메라 역시 그 사기꾼을 보고 굳어 버렸다. 그 강력하던 키메라가 말이다. "오랜만이지?" "......" "왜 대답이 없어. 사람 무안하게." "......세......키린." 키메라와 저 사기꾼 작자는 분명 아는 사이 같았다. 예전에 사랑하던 사이? ......자중하겠다. 어찌 됐든 둘은 깊은 사이인 듯싶다. 어느 의미에서는 말이 다. "좀 웃으라고." 저기요, 저 오우거 얼굴을 웃으면 많이 이상할 것 같은데 요? 차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저 얼굴로 웃는 모습을 말이다. "제길!" 그 순간 짧게 욕설을 내뱉은 키메라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 다. 허억? "역시 예전에나 지금이나 저 스피드는 죽지 않았나 보네." 도망...... 친 건가? 기습 공격이라면 지금쯤 나타나야 하는데 완전히 모습을 감춘 듯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바로 도망이다. 한마디로 세키린을 보고 튀었다는 소리. 뭐, 뭐야? 저 정도로 강한 전설의 키메라가 도망가다니! 그 렇다면 저 사기꾼 작자가 키메라보다 강하다는 소리? "후유. 부딪치기 난감했는데. 다행이군." ......그건 아닌가 보다. 저 사기꾼 작자가 한숨을 내쉬는 걸로 보아 엄청 긴장했다 는 뜻이었다. 그 작자는 나를 보더니 너무나도 해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오랜만이지, 제자?" "......누가 당신 제자야?" "우리는 뜨거운 끈으로 이어져 있지 않은가?" "염병." "아, 하나밖에 없는 제자가 이리 난폭하다니. 슬프도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이 작자야! 도대체 다크프리스트 가 뭔데 이상한 애들한테 이렇게 습격을 당해야 하는 거야!" "그렇게 궁금한가?" "물론." "흐으음." 잠시 고민에 빠진 사기꾼 작자. 설마...... 가르쳐 줄 건가? 굳이 유물을 찾지 않아도 이 직업의 비밀을 알 수 있다! 물 론 강해지기 위해서는 유물이 필수였지만 그래도 다크프리스 트의 비밀을 먼저 알 수 있다면! "여기서 한 가지 묻지." "......?" "내가 가르쳐 줄까, 안 가르쳐 줄까?" "......" "맞혀 봐. 푸헤헤." "......" 당연히, 절대 가르쳐 주지 않을 것 같다. 네버, 네버 절대 말이다. "네 생각대로 안 가르쳐 주지롱." "......" "푸헤헤헤." ......저 자식을! 으으윽! 나는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키메라에게 얻어 맞은 상처가 너무 컸다. 간단히 말해, 아파 죽겠다. 그래서 못 일어나겠어. "아직 더욱더 정진해야 한다. 후후후후. 그리고 이건 선 물." 투욱. 세키린은 그 말과 함께 책자를 하나 던졌다. 나는 그 책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건......? "다크프리스트의 두 번째 유물. 사랑스러운 제자를 위해 넘 겨주지." "......사랑하지 마." "역시 사랑스러워." 저 미친 자식. "그걸 익히면 방금 전 그 키메라 자식을 이길 수 있을지 도." "허어......" "좋지?" "......" 좋기는 하다. 저 강한 키메라를 이길 수 있다니. 사실 내 성격상 절대 지고는 못 산다. 진다 해도 복수하러 간다. 그게 바로 내 신념이다. "한번 잘해 보라고. 뭐, 그 자식의 행방은 도둑 길드 마스터 에게 물어보고. 아, 그 아름다운 소녀가 길드 소속이니 그 소 녀에게 물어보면 되겠군." "그것 참 신경 써 주셔서 고맙군요." "뭘." "......" 정말 뻔뻔한 인간이다. 저 정도면 번데기 아버지뻘이다. 그만큼 저자의 뻔뻔함에 는 손을 들 정도였다. "키메라 군과 잘해 보라고. 그럼 이만!" "자, 잠깐!!" 하지만 나의 이런 외침은 부질없었다. 내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속된 말로 튀어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말이다. 크으윽. 크아악! 궁금해! 궁금해! 궁금해!! 왜 내가 습격당하는 이유 를 가르쳐 주지 않는 거지? 왜? 왜! 무슨 비밀이야!! 우에엑!! -다크프리스트의 유물 스킬입니다. 배우시겠습니까? 그때 들려오는 음성. 지난번과 같다. 그리고 대답도 같았다. "네." 그 순간 내 앞에 펼쳐지는 스킬에 대한 설명. 난 그걸 보고 그만 굳어 버렸다. 이건...... 이건?! ......가능하다. 그 사기꾼 작자의 말대로 가능하다. 뭐가 가능하냐 하면, 내가 그 키메라를 이기는 것이 말이 다. 그만큼 내 앞에 설명된 그 스킬은 상상 밖이었다. 그래, 기다려라. 엽기 키메라 자식아. 참고로 난 절대 그냥 넘어가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말이다. 크크크. [일일 매니저?] "오빠. 부탁이 있어요." "응? 무슨 부탁?" "응...... 그러니까......" "......?" 갑자기 우리 집을 방문한 예은. 그녀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대뜸 저 말부터 꺼냈다. 부탁이 라니? "......며칠만 제 매니저를 해 주세요." "엥?" "지금 휴가 기간인데 갑자기 스케줄이 잡혀서......" "어라? 그럼 진짜 매니저는?" "진영 언니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 "안...... 되나요?" "아니, 안 될 건 없는데. 매, 매니저라니. 하하하......" 예은의 부탁인데 안 될 게 어디 있냐? 그리고 어차피 나는 시간이 남아돈다. 왜냐? 게임을 안 하니까. 지금 난 총력을 다해 나에게 한 방 먹인 뒤 도망가 버린 키 메라 님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내가 찾는 건 아니 고 도둑 길드가 찾는 것이었지만. 어찌 됐든 꽤나 한가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저렇게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초미소녀의 부탁 을 거절하는 담력을 가진 남자는 없을 것이다. 물론 금단의 계열의 속하는 남자들은 제외겠지만, 나는 절 대 그딴 계열에 속하지 않는 순수남이다. 100% 자연산 순수남. 크흠...... 왜 이리 무안하지? 그나저나 이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냐? 다 되는 거지. 매니저? 해 준다. 예은이의 부탁인데 내 몸이 부서지는 한 이 있더라도 열혈 매니저로 변신하고 말겠다! 시작은 분명 좋았다. 저 강렬한 느낌까지는...... 그런데 이건 뭐냐? "......제 스케줄이에요." "그, 그래?" "네." "......" 수첩 한가득 적혀 있는 스케줄. 설마...... 이걸 다? 난 그런 의미를 담은 눈빛으로 예은을 쳐다보았다. 그런 나 의 눈빛에 예은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 "예은아." "네?" "다시 한 번 확인하겠는데, 이걸 하루에 다 하는 거야?" "네. 오늘만 하면 되거든요." "그, 그렇구나. 하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말도 안 돼. 이게 어찌 인간이 할 수 있는 양이란 말인가? 수첩에 빼곡 히 적인 스케줄.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라디오, 텔레비전, 그 밖의 행사, 기타 등등. 거의 열두 건에 달하는 스케줄이다. 이건 미친 짓이다. 열두 개라니! 예은이를 죽일 작정이냐? "예은아, 이건 무리 아닐까?" "하지만 오늘 일을 다 끝내야 다시 게임을 할 수 있어요. 헤 에." "그렇......구나." 하아, 정말 연예인이라는 직업, 무섭다. 물론 톱스타였기에 오랜만에 등장에 이렇게 스케줄이 밀린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섭다. 이 살인적인 스케줄. 남자도 견디기 힘들 것 같다. 그런데 저 연약해 보이는 소 녀가 이걸 다 해야 한다니. 왠지 모르게 슬프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 "......?" "예은아, 내가 매니저가 된 이상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아. 고마워요, 오빠." "아니, 고맙긴!" 나는 다시 불타올랐다. 그래. 내가 할 일은 예은이를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하기. 철저한 시간 관리다. 그게 바로 매니저의 일이니까. 자, 그럼 첫 번째 일은 뭐냐? 나는 그런 의문과 함께 수첩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이 런 글이 쓰여 있었다. 오전 9시 50분. 뮤직 쇼타임. 흐음. 가요 프로그램인가? 난 우리 앞에 앉은 운전사 아저씨를 보고 말했다. "아저씨, 뮤직 쇼타임 촬영장으로 가 주세요." "알겠습니다!" 내 말에 기사 아저씨가 차를 출발시켰다. 나는 예은을 보며 말했다. "예은아." "네?" "옷은 안 갈아입어도 돼?" "아, 저기서 갈아입어도 돼요. 잠시만요." 예은이는 그 말과 함께 차 뒤쪽으로 가더니 커튼을 닫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스르륵. 스르륵. 아, 안 된다! 이건 아니다! 난 매니저라고! 이런 이상한(?) 소 리에 반응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하지만...... ......너무 자극적이다. 지금 들려오는 스르륵 하는 소리. 내 귀가 이상한 게 아니 라면 분명 그거다. 옷 벗는 소리. 그것도 예은이가 옷을 벗는 소리다. 다른 여자도 아니고 예 은이가 말이다. 그런 소리가 귀를 마구 자극하는데 정말 미쳐 버리겠다. 으아악! 아냐! 이건 아냐! 그렇게 나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마구 괴로워했 다. 이건 정말...... "오빠?" "......" "오빠?" "아." 그때 나를 부르는 쇨에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곳에 는 옷을 갈아입은 예은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릎까지 오는 푸른색 치마와 보라색의 셔츠. 그리고 긴 머 리를 포니테일로 질끈 묶은 것까지. 특히 각선미가...... 죽인 다, 죽여! 으아악! 안 돼! 난 짐승이 아냐! 매니저라고, 매니저! 나는 또다시 괴로워했다. 정말 이 고통, 당해 보지 않은 자는 모른다. "괜찮으세요?" 그런 나를 보고 당황해 하는 예은. 난 그런 그녀를 안심시키고자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어디 아프신 거 아니에요?" "아, 아냐." "근데 계속......" "자, 잠깐 생각 좀 하느라고." "아." 내가 머리를 자꾸 감싸 쥐는 게 이상했나 보다. 아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당연할지도...... 나는 이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고자 다급히 말했다. "그, 그런데 예은아." "......?" "코디네이터는?" "아." "코디네이터가 안 보이네." "코디네이터 언니도 바쁜 일이 있어서...... 아버지가 갑작 스럽게 스케줄을 잡으시는 바람에 그렇게 됐어요." "......그렇구나." 한마디로 너무 갑작스럽게 잡은 일정이라 매니저와 코디네 이터도 없다는 얘기다. 물론 방송 대기실에 가면 화장을 해 주는 코디네이터가 있 기는 하지만 내가 알기로 예은은 화장을 하지 않는다. 아니, 살짝 얼굴에 분을 찍는 정도? 오히려 화장을 안 하는 게 더 예쁜 예은이였으니까. "도착했습니다." 그때 운전사 아저씨의 말이 들려오자, 그 말에 나는 예은을 향해 나가자는 눈빛을 보낸 뒤 그대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꺄아악!" "예은 언니다!" "누나아아!" "언니, 사랑해요!" "예은이 언니!" "꺄악!!" "미쳐!" "언니! 사랑해요!" "누나! 저는 누나 거예요!!" "예은아!" "아이 러브 유!" "......' 내 앞에는 어마어마한 대군이 포진해 있었다. 조금이 아니 다. 어마어마하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아무리 일요일이라지만 너무 많은 숫자다. 근데 저것들이 예은이 이 시간에 올 거라는 걸 어떻게 안 거지? 분명 비공개 스케줄인데? 저 알 수 없는 집념, 무섭기까지 하다. 우르를. "언니!!" "누나아!!" "사랑해요!" "저랑 사귀어요!!" "허억!" 그 순간 차 안으로 밀어닥치려는 대군. 콰앙! 나는 다급히 문을 닫았다. 너무 놀란 탓인지 그냥 닫아 버렸다. 한마디로, 저 알 수 없 는 포스에 밀린 느낌? 쿠웅! 쿠웅! 이런 미친!! 차가 흔들린다. 이 거대한 차가 말이다. 예은이 타고 있는 차는 상당한 크기를 자랑한다. 연예인들 은 차 안에서 거의 모든 걸 해결하기에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차가 흔들거린다. 우엑! "꺄아악!!" "예은아!!" "사랑해!!" "아이 러브 유!" "오 마이 베이비!" 그리고 밖에서는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비명. 어찌 인간의 목소리로 저런 과음(?)을 낼 수 있는지 심히 궁 금하다. 그만큼 그들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 순간, 갑자기 나타나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들. 그리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모두 뒤로 물러나 주세요." "비켜, 이 자식아!!" "언니! 언니!!" "예은아!!" "비켜 주십시오!" "싫어!!" 그렇다. 검은색의 양복맨들은 바로 보디가드였다. 다른 연예인의 한 네다섯 배는 되어 보이는 보디가드. 엄청 난 숫자다. 그만큼 예은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보디가드들과 이미 나사가 풀려 버린 팬들의 실랑 이가 시작되었다. 열심히 투닥거리는 그들. 난 그들의 명복을 빌어 주고 살짝 틈이 난 공간을 보고 예 은을 향해 말했다. "예은아, 가자." "네." 휴우. 힘들다, 힘들어. 방송국에 들어오기가 이리 힘들 줄이야. 다행히도 보디가드들의 목숨 건 사투로 우리는 방송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보디가드, 정말 힘든 직업 같 아 보인다. 저렇게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팬들을 저지해야 하니까. "오빠, 괜찮아요?" "응?" 그때 갑자기 걱정스러운 듯 묻는 예은. 괜찮냐니, 갑자기 왜 그런...... "지쳐 보여서요." "지쳐 보인다고?" "네." 엥? 그, 그럴 리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지쳤단 말인가. 아니, 사실 조금 지친 것 같기는 하다. 개떼들처럼 모여드 는 팬들을 보고 말이다. "......죄송해요." "무, 무슨 소리야." "제가 무리한 부탁을 해서 오빠가 힘들잖아요." "아니야! 절대 안 힘들어! 절대!" "저, 정말요?" "응!" 난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 예은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사실 좀 지치기는 했지만 이 정도야 별거 아니다. 예은이와 함께할 수 있는 것만으로, 그 정도의 페널티는 감 수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건 왜 이리 달콤한 걸까요. 영혼이 되더라도 저는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그게 저니까 요. 사랑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제 마음을 이렇게나 아프게 하 는 걸까요? 나는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언제까지나. 그게 제가 이룰 수 없는 바람이라도요. "꺄악!" 아무리 들어도, 들어도 천사의 목소리다. 내가 오버하는 것 같겠지만 절대 아니다. 정말 완전 천사의 목소리. 듣는 자만이 알 수 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때 녹음을 끝낸 PD가 예은에게 말했다. 그 말에 예은이 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 무대를 내려왔다. "꺄아악!!" "한 번만 더요!!" "누나!!" "으아악! 사귀어 줘요!" 근데 노래가 끝나자마자 방청석에서 난리가 났다. 물론 아 까 고생하셨던 보디가드들이 또 동원돼서 막은 탓에 난입하 지는 못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예은이의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구나. 솔직히 말해 한 며칠 붙어 있으면 고막 터질 정도겠다. 어쨌거나 나는 녹화를 끝낸 예은을 다시 차로 데려가기 위 해 움직였다. 그렇게 차를 타기 위해 방송국 복도를 걸어갈 때였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두 명의 남자. 한 명은 검은색 양복에 검은색의 선글라스를 낀 보디가드, 다른 한 명은 상당히 잘생긴 남자였다. 약간 긴 머리에 검은색 정장을 멋들어지게 입은 남자. 대략 나이는 20대 초반? 그리고 키는 180센티미터 정도 되 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저 남자 안다. 꽤 유명하니까 말야. 차경현. 내가 아릭로 여자 가수 중 탑이 예은이라면 남자 가수 중 탑은 차경현이라고 불리는 저 남자였다. 물론 가창력은 그럭저럭. 가수라기보다는 얼굴로 살아남는 연예인이라고나 할까? "예은이, 오랜만이네. 후훗." "아, 안......녕하세요." "오빠야. 편하게 해." "......" 그런데 예은이 표정이 이상하다? 그녀는 저 차경현이라는 남자를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있 었다. 심지어는 내 뒤로 살짝 숨을 정도다. "그나저나 이 여자나 등쳐 먹을 것같이 생긴 이 사람은 누 구야?" "......" 뭐, 뭐라고?! 내가 왜 너한테 그딴 말을 들어야 하는 게냐! 게다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 저따위 매너라니. 이 자식, 정 말 싸가지 없다. 마음 같아서는 한 방 갈기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나는 예은의 매니저니까. 난 최대한 꾹 참으면서 스마일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예은이의 일일 매니저입니다." "아, 매니저였어?" "......" "근데 매니저 주제에 꽤 잘생겼네." "......" "꼭 여자 흘려 먹는 제비처럼 말야. 하하하." 빠직빠직. 내 이마에 솟아 올라오는 혈관 마크. 저 자식......! 우어억!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외침. 약간 흥분한 목소리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예은이였다. 그런 예은의 반응에 녀석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비 웃 듯 말했다. "나한테는 오빠라고 한 번도 안 하더니 이딴 자식은 왜 오 빠라고 부르지?" "......" "뭐, 얼굴은 인정해 주지. 하지만 돈이라면 내가 저런 하급 매니저랑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데." "......" 하아, 하아. 차, 참아야 한다. 그, 그래. 공자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지. 참으면 장땡이라고. 그래, 참는 거야. 참는 거야! 그렇게 내가 한참을 공자 타령하면서 화를 식히고 있을 때 였다. 돌연 놈이 나에게서 예은이에게로 시선을 옮기더니 다 시 웃으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내 여자친구 될 마음은 생겼나?" "저, 저기...... 정말 죄송하지만...... 거절할게요." "하아. 도대체 나같이 잘난 놈을 거절하다니, 너 어떻게 된 거 아냐?" "......" "생각을 해 봐라. 원래 잘난 놈은 잘난 놈끼리 놀아야 된다 고. 그러니 당연히 넌 내 여친을 해야 한다는 말이지. 알겠 어?" "......" "뭐, 네가 정 그렇게 나온다면 강제로 가져 버릴까? 크크 크." "......" 내 몸이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말이다. 그러자 순식간에 내 앞을 막아서는 보디가드 녀석과 놀란 얼굴을 한 그놈. 하지만 나를 막은 보디가드는 나의 움직임을 방해할 수 없 었다. 왜냐하면...... 퍼억! 그대로 내가 내지른 오른 주먹에 복부를 맞고 그대로 쓰러 져 버렸으니까. 한편 보디가드가 단 한 방에 쓰러지자 너무나 도 당황하는 녀석.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 주었고, 잠시 후 옆벽을 밟고 540도 발차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퍼억. "크아악!" 단 한 방에 이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 잠시 후, 쓰러진 녀석이 나를 보더니 위협하듯, 그러나 겁벅 은 얼굴로 말했다. "나, 나를 때렸어? 내, 내 이빨!! 너! 너 죽었어!" "......오, 오빠." 예은도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당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뭐, 네가 정 그렇게 나온다면 강제로 가져 버릴까? 크크 크. "재미있는 대사지?" "......" 난 방금 전에 말한 내용을 들려주었다. 물론 내 휴대폰으로 저장한 것이다. "......" "경고하는데 말야, 너 다시 한 번 예은이한테 이상한 소리 하거나 집적거리면 진짜 죽는다." "......" "그리고 덤으로 네 연예인 인생도 완전히 박살 내 주고." "......" "예은아, 가자." 나는 그 말과 함께, 당황하는 예은의 손을 붙잡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이제 저 녀석, 함부로 못하겠지? 그날, 내 예상이 맞았다는 것이 증명했다. 녀석은 언론에 아무런 발표 없이 잠수를 해 버렸다. 사실 지금 활동하는 건 무리였다. 내 주먹에 맞아 이가 다 없어진 상태였으니 말이다. "오빠, 오늘 저 때문에......" "아냐. 신경 쓰지 마. 그리고 저런 자식이 있었으면 당장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그, 그래도 오빠가 오해하실까 봐......" "응? 무슨 오해?" "아, 아니에요." "......" "그나저나 저런 자식 또 있어?" "아, 아뇨. 없어요. 저분밖에." "저분이라니, 하아." 곧 죽어도 예의를 지키려는 예은의 순진함에 나는 설레설 레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이런 천사 소녀가 다 있다니. 그것도 내 옆에 말이다. 새근새근.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내 어깨에 기대고 자는 예은. 힘들었겠지. 오늘 열두 개의 스케줄을 끝냈으니 말이다. 나는 내 어깨에 기댄 예은의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해 주고 근처에 있는 담요를 덮어 주었다. "잘 자, 예은아." "......" 두근두근. 예은은 집에 돌아온 뒤에도 한참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윤현 오빠의 어깨에 기댄 채 잠이 들다니...... 물론 사소한 스킨십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윤현이라는 사 실에 너무나도 순진한 그녀의 성격상 얼굴을 붉히기에는 충 분했다. [우리가 암살단?] 흐으음. 무안......하군. 그것도 많이.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신성국가 레밀라에서 약 10킬로미 터 정도 떨어진 중소 마을 페르틴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큰 도시에 들어가서 더욱 편하게 쉬면서 키 메라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싶지만 그건 불가 능했다. 왜냐하면 우리 멤버 중에는 후드맨이 많았으니까. 아니, 거의 다 후드맨이다. 나와 데인, 피닉스 녀석만 빼고 말이다. 그리고 어느새 일행에 붙은 최고의 도둑 레니아, 그녀 때문 에 우리 멤버의 후드 숫자는 다섯이 되어 버렸다. "저, 레니아." "......?" "갑자기...... 왜 따라온다고 한 거야?"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요." "......" "왠지 이 파티 무지 재미있어요." "......" 글쎄. 이 파티가 재미있는 파티인가? 내가 보기에는 구성원으로 따져 봤을 때 여자들을 제외하 고는 그리 아름다운 구성은 아닌 듯싶은데 말이야. "제가 있는 게 피해가 되나요?" "아니......" 피해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도움이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녀는 최고의 도둑이다. 게다가 혜경 이 정보를 담당하니, 말 그대로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트릭이나 함정 같은 건 그녀 손에 철저히 파괴될 것이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느껴지는 시선들. 좀 낯 뜨겁다. 우리가 이 식당에 들어온 지 1시간이 지났건만 사람들은 계 속 우리를 힐끔 쳐다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물론 저분들 마음, 이해한다. 우리는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수상해 보이는 파티임에 분명 했으니까. 예를 들어. "나는야 잘난 피닉스!! 나를 찬양하라!" "......" "우헤헤헤." "......" "피닉스! 피닉스! 짱!" 미친 새가 저렇게 발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것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는 충분 하다. 그런데 거기에...... "저기, 레니아." "네?" "잘 밟아?" "......" "잘 밟을 것 같아." "무, 무슨 말이에요?" "알면서." "......" "우리 느끼자." "저기, 데인 씨. 무, 무슨 말씀이신지." "후훗, 귀여운 것. 다 알면서 시치미네." "......" "뭐, 정 말하기 그렇다면 내가 얘기해 줄게. 그 발로 나를 밟아 줘. 임펙트하게." "......" 저 미친 마조히스트 변태 검사가 저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 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녀석의 말에 레니아는 너무나도 당 황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데인을 향해 친절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내가 해 줄게." "아, 아냐!" "굳이 거부하지 않아도 되는데." "돼, 됐어!" "흐으음......" "이제 안 할 테니까 제발 때리지만 말아 줘!!" 내 한마디에 벌벌 떠는 데인. 이러니 내가 꼭 나쁜 놈 같잖아. 어찌 됐든 나 자신도 수상한 파티라고 느끼기에 다른 사람 들의 저런 시선에도 100% 공감할 수 있었다. 아니, 100%는 좀 안 될 것 같고, 99%? 크흐음. "수상한 아저씨들." "......" 나는 방금 내 귀를 의심했다. 수상한 아저씨들? 나는 설마 설마 하면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12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꼬마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바, 방금 네가 그랬니?" "네." "......" "부탁이 있어요." "저, 저기 잠깐만. 뭔가 스토리 진행이 조금 거시기한 데......" "들었어요! 수상한 아저씨들한테 돈만 주면 어떤 일도 들어 준다고요!" "......" "부탁드려요. 돈은 있어요!" 그러면서 돈을 꺼내 드는 소년. 소년이 꺼내 든 돈은 1골드였다. "저희 집의 전 재산이에요. 제발, 제발......" "그러니까...... 우리는 뭐 그런 이상한 파티가 아닌데." "제발요......" 울먹이기까지 한다. 안 된다. 불길하다. 느낌이 불길하다. 여기서 소년의 이야 기를 들으면 분명 괴상망측한 일에 휩쓸릴 것 같은 이 불길 함. 들으면 안 된다! "저기, 오빠. 이야기라도 들어 보면 안 될까요?" "윤현아, 안 돼?" "이야기 들어 봐요." 그때 조심스런 어조로 내게 말하는 예은과 혜경, 레니아. 크아악! 저, 저렇게 말하면 거절할 수가......! "귀찮은데." "그래, 그래. 이야기 들어서 뭐하게?" "......" 하지만 데인과 피닉스는 반대했다. 허얼, 왠지 모를 이 동질감. 사실은 나도 저 녀석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싶지만 이렇게 아리따운 미소녀 분들이 내게 부탁하고 있다. 그런데 거절은...... "이야기......라도 들어 줄게." 이런 이야기는 보통 있다. 아니, 흔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마을에는 보통 성주가 있다. 간단히 말해, 마을을 다스리는 아저씨. 그리고 그런 성주의 아들. 보통 더럽게 건방지다. 아버지만 믿고 별짓을 다하는 망나니다. 그런데 이런 망나 니의 눈에 한 아리따운 여성이 들어오고 만다. 당연하게도 망나니는 그 아름다운 여인을 가지고 싶어 하 고, 그래서 강제로 여자를 데려온다. 한편 여인의 남동생은 슬 피 울던 끝에, 우리같이 이상한 파티를 발견하고 부탁을 하게 된다. 그럼 그 파티는 소년의 누나를 구하기 위해 성으로 향하 고...... 보통 이런 스토리가 대부분, 아니 절대적이다. 그런데...... 그런데...... "......제 형을 구해 주세요. 흐흐흑." "......" "그 성주 아들이 게이여서 우리 형을......" "......" 그렇다...... 예쁜 여자도 아니고, 남자다. 남자가...... 남자가...... 남자 가...... 으아악!!! 쉽게 말해, 게이인 성주가 내 앞에서 부탁하고 있는 저 소 년의 형을 강제로 데려갔다는 스토리다. "상당한 변태 자식이군." 순간 데인의 한마디. 나는 그런 데인의 말에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네가...... "왜?" 한편 나의 이런 눈빛에 전혀 모르겠다는 듯 나를 마주 바라 보는 데인. 난 그런 데인의 양어깨를 붙잡으면서 말했다. "네가 그런 소리 할 군번이냐?" "......" "맞으면 희열을 느끼는 변태 자식이 게이를 변태라고 하다 니." "나, 난 변태 아냐!" "......" "그리고 내가 변태라고 가정한다 해도 게이가 더 변태야!" "......" "게이는 남자와 여자의 아름다운 사랑을 방해하는 악질 중 의 악질! 그런 악질과 우리같이 맞으면서 좋아하는 순수한 존 재를 비교하지 말아 줬으면 해." 허어......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마조히스트들은 순수하고 게이들은 악질 이다? 뭐, 그런 거지 같은 공식이 다 있냐? "어찌 됐든 그건 나를 모욕하는 거야!!" "......알았다." 대화 포기다. 지 생각이 저렇다는데 어찌하겠는가? "불쌍해." 소년의 말을 들은 예은이 안타까운 어조로 말하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현재 여관 안에 들어왔기에 여자들은 모두 후드를 벗은 상 태였다. 물론 저 소년이 그녀들의 미모를 본 순간 잠깐 맛이 갈 뻔도 했지만, 자신의 형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빠 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맞아." "그러네요......" 그런 예은의 말에 혜경과 레니아도 동조했다. 그녀들의 반 응에 나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다. "안 불쌍한데." "응!" 그래. 나도 너희와 같은 생각이다. 내가 저렇게 인정머리 없는 놈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왠지 게이에게 납치된 남자를 구하는 미션은 내키지가 않아서 말 이다. 아름다운 여자라면 불타오르기도 하겠는데, 이거야 원. "저, 오빠. 정말 죄송한데 이 아이의 부탁......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될까?" "안 돼요?" "들......어주세요." 마지막으로 에리아의 부탁. 그러니까 예은과 혜경, 레니아, 에리아까지 모든 숙녀 분이 내게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거절하면......? 안 된다. 난 파렴치한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그, 그래. 드, 들어주자......" 게이에게서 남자를 구한다는 것은 정말 달갑지 않은 미션 이다. 하지만 어차피 지금은 그 키메라 녀석에 대한 정보가 없으 니, 시간 때우기 용으로 생각하자. 그게 속 편할 듯싶었다. [성주 습격 사건] "흐으음." 레니아는 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쉽게 성안에 들어가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 같은 데......? 그녀는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며 한참을 성 주변을 돌아다 니더니 잠시 후, 그 아름다운 얼굴로 나를 향해 미소 짓고는 말했다. "저녁에 들어갈까요?" 설마 저 성에 들어가는 방법을 벌써 알아낸 거야? 놀라운데, 정말. 그날 저녁. 이번 성 습격 미션에 동원된 인원은 간단하다. 일단 나와 가르, 그리고 데인, 건방진 피닉스 녀석과 레니 아. 이렇게 총 다섯 명(?)이다. ......명이라 하기에는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대충 넘어가 기로 하고, 어찌 됐든 이번 작전의 핵심 인물은 레니아다. 그녀가 과연 무슨 방법으로 저 성안에 들키지 않고 잠입할 수 있을까. "근데 성이 상당히 허술하네요." "......" 그, 그럴 리가? 내 눈에는 상당히 견고해 보이는데? 성 입구에는 몇십 명의 보초병이 모여서 눈을 부릅뜨고 침 입자를 찾고 있었고, 주위를 관찰할 수 있는 망루도 세 개나 설치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꽤나 실력 있는 도둑들도 뚫기 힘들 정도의 감시 망이다. 그런데 그녀는 허술하다고 한다.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 야 할지 좀 고민스럽다. "자, 일단 저 정문에 있는 보초병들부터 제거할까요?" 싱긋. 그렇게 말하면 미소 짓는 그녀.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무섭기까지 하다. "치, 침입자......!" 퍼억! "......" 털썩. 나는 침입자라고 외치려던 보초병을 사정없이 때려눕혔다. 사실 애들을 죽일 필요는 느끼지 못했기에 그냥 주먹으로 때 렸다. 근데...... 내 파괴력이 보통 파괴력이여야지. 그냥 살짝 때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헤롱헤롱이다. 그나저나 난 왜 이렇게 착한 거지? 누가 좀 가르쳐 주면 고 맙겠다. "이걸로 문 근처에 있는 보초병들은 다 사라졌어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성에 침입하면 될 거예요." "근데 레니아, 무슨 수로?" "이걸로요." "......?" 그때 손톱만 한 병을 꺼내 드는 그녀. 병에는 푸른색 액체가 담겨 있었다. "그게 뭐야?" "마비향요." "......마비향?" "네. 저렇게 몰려 있으면 오히려 쓰기 더 편해요. 이 마비 향을 공기 중에 퍼뜨리면 만 하루 정도 마비가 되어 버려요." "......" 그, 그런 게 존재했었나? 나는 사실 오늘 처음 알았다. 마비향이라니. 그런 마니아틱 한 아이탬이 존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럼 시작할게요." 경악스럽군. 내가 지금 할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레니아가 꺼낸 마비 향. 정말 작살이다. 마비향이 바람을 타고, 모여 있는 보초병들을 강타한 순간 모두 마비가 온 듯 풀썩 쓰러졌다. 조금이라도 버티는 이는 없었다. 그냥 단 한 방이었다. 전문용어로. 한 탕(?). 그렇게 보초병들은 끽 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다 쓰러져 버 렸고, 그걸 본 레니아가 나에게 말했다. "이제 가볍게 입성!" 왠지 무섭다, 이분. 크흐음.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성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너무나도 쉽게 말이다. 새삼스럽지만, 저분 정말 대단하다. 이 말밖에 떠오르는 말이 없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일단 성안에 들어온 건 좋았다. 문제는 성주의 아 들이라는 놈의 방을 찾아야 한다는 것. 나는 이런 일에 절대 적인(?) 존재를 써먹기로 했다. "야, 피닉스." "와?" "......" 저 자식은 대답을 해도 와가 뭐니, 와가? 그래, 참자. 착한 내가 참는 거야. "정찰, 고고고고!" "내가?" "그럼 내가 하리?" "응." "죽을래?" "아, 아니......" "얼른 갔다 오렴." "쳇." 내 말에 한 차례 혀를 차고는 유유히 날아가는 피닉스. 저놈이 정신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찰에서는 뛰 어난 능력을 보인다. 혜경의 란타스보다 훨 정찰을 잘한다. 어쨌거나, 곧 죽어도 피닉스니까. 근데 저 녀석은 항상 저 모습이네. 어째 피닉스로 변신한 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를 제외하고 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자자, 어서 물어 오렴. "알아 왔어!" "빙고!" 역시나 내 기대를 버리지 않고 정보를 물어 오는 피닉스 녀 석. 저 녀석 은근히 쓸 만하잖아? 처음에는 건방지고 잘난 체만 잘하고 비실비실한 줄만 알 았는데 역시 이런 방면에서는 뛰어나다. 정말 감동이야! "침입자다!" "저 이상한 새의 주인으로 보인다!!" "침입자!!" "잡아라!!" "침입자다!" 저기, 근데 뭔가 아주 이상한데. 피닉스 뒤로 우르르 몰려오는 병사들은 뭐냐? "정찰을 하는데 숨어 다닐 공간이 없어서 그냥 당당히 드 러내 놓고 돌아다녔어." "......" "......" "......" "......" 날아오면서 당당히 한마디 던지는 피닉스의 말에 우리 일 행은 모두 굳어 버렸다. 에......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정찰을 하는데 피할 공간이 없어서 병사들이 몰려 있는 곳을 마구 돌 아다녔다는 거냐? "이 자식아! 그게 정찰이냐!!" "......응?" "아, 내 머리. 아, 쓰러질 것 같아." "왜 그래?" "아, 이건 아냐! 이건 아냐!" 정말 이건 아니다. 이럴 수는 없다. 그래도 조금 똑똑한 줄 알았건만 저 피닉스 녀석도 가르와 마찬가지로 돌대가리였다. 아니, 새니까 새대가리인가?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순식간에 어두웠던 복도에 환히 불이 켜지 고, 저 멀리서 수백 명의 병사가 복도를 가득 매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도 또한, "무슨 소동이냐!" "도, 도련님." 순간 그런 병사들을 휘저으면서 유유히 나타나는 두 명의 남자. 한 명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조교 복장...... 자, 잠깐. 조, 조교 복장? 난 내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열심히 비볐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계속해서 조교 복장만 비치고 있었다. 타이트한 검은색 여성용 조교 복장이었다. 그리고 손에는 굵고 검은 채찍까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고개를 푹 숙인 한 남자가 있었다. "도, 도련님. 저희가 금방 잡을 테니 진정하시고......" "이 시간에 침입자라니! 너희도 당하고 싶냐?" "아, 아닙니다. 무, 무조건 처리하겠습니다." 저 남자가 입고 있는 타이트한 여자 옷도 충격이긴 한데 지 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바로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저 남자. 이 성에서 도련님이라고 불릴 존재라면 아무리 생각 해 봐도 단 하나밖에 없다. 그건 바로 우리의 목표인 변태 성주 아들놈이었다. 흐으음. 그렇다면 저 옆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남자가 내게 부탁한 꼬맹이의 형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사실 지금 저 복장이 내 눈을 부숴 버리는 느낌이 강력하지 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했다. 그건 바로 소년의 형으로 보이는 저 남자를 구하는 것. 그렇다면! "그나저나 너 꽤 마음에 드는데?" "......" "오호, 내 옆에 있는 놈보다 더 잘생겼잖아? 크크. 밤일도 잘할 것 같고 말야." "......" "저 자식은 죽이지 말고 생포해라. 가지고 놀 것이다." "네, 도련님!" 빠직. 지금 나를 도매금으로 넘기는 거냐? 저 변태 자식에게? 내 혈압이 마구마구 상승할 때였다. "오, 동지! 나와......!" 퍼억. "꾸엑!"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데인의 짧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데인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왜, 왜 때려!" "지금 네가 동지 찾을 처지냐?" "......" "가만히 있어라. 정신 사납다." "......" "왜 말이 없어?" "......알았어. 쳇." 불만 어린 말투로 대답했지만 상관없다. 그것보다는 내 앞 에 열심히 알짱거리는 저 병사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다크 블레스." -모든 능력치가 430 상승했습니다. "다크 스트림!" 끼이익! 나의 무기에 깃드는 악령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다. 앞으로 시전할 무시무시한 파괴력 을 자랑하는 버프 마법이 두 가지나 더 있다. 그건...... "라이프 블리지트." 이제 이것에 걸리면 그대로 폭발이다. 그리고, "일루전 크레이전." 단 40초간이었지만 메이스의 그림자를 만들어 공격하는 스 킬. 그 공격력도 네 배가 된다. 그것이 스킬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단체로 몰려다니면 절대로 환영이 다. 절대적으로...... 네스티안 엘리라이진. 상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천문학적인 데미지를 입힐 수 있 는 나의 유물 스킬이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적이 버글버 글하다. 그게 뜻하는 바는...... 다 죽었어! 가, 감히 나를 이상한 변태의 재물로 취급하다니! "네스티안 엘리라이진." 주문이 끝나자마자 적들의 주위로 어둠의 마나가 뿌려졌 다. 병사들은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잘 가." 나는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두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그대로 전멸이었다. 단 한 방에, 아니 몇 명은 운 좋게 살아 남았지만 그 정도는 지금 내 무기에 걸린 버프의 힘으로 단숨 에 제거할 수 있었다. "어, 어떻게......!" 단 하나 방에 자신들의 병사가 쓸려 나가자 당황하는 영주 아 들놈. 나는 웃었다. 그런 나의 미소를 본 녀석이 더욱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 다. "저, 정체가 뭐냐?!" "나?" "......" "프리스트 님이시다." 또 저질렀어. 또! 또! 또!!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난 왜 이럴까. 정말 왜 이런 걸까. 으아악! 그냥 그 꼬맹이 말을 씹었더라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일은 말이다. "대단한데. 그랜드 크룬에 이어서 레밀라, 페르틴에까지 현 상금이 붙다니. 푸헤헤헤." "......" "정말 대단해." "피닉......스, 얌전히 닥치는 게 네 몸에 좋을 거다." "......" "지금 나 저기압이다. 건들지 마라." "......" 난 마구 비웃어 대는 피닉스를 그 한마디로 잠재워 버렸다. 아 참,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조금(?) 과격하게 성에서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또 현상금이 걸려 버 렸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내 얼굴을 본 자가 없어서 익명 처리됐지만 언제 들 킬지 모른다. 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앞으로 이 마을과도 바이바이인가." 그나마 페르틴이 그랜드 크룬 같은 초대형 마을이 아니어 서 다행이긴 한데, 이렇게 가지 못하는 마을이 조금씩이라도 늘어난다는 건 가슴 아프다. 이러다가 나중에 아주 갈 데 없어져서 필드나 떠돌아다니 는 신세가 될지도 모르겠다. 에휴우우우. [엘프들의 숲] "에스파니아 마을이야." "에스파니아 마을?" "응. 지금 정보가 들어왔는데 그 마을이 모두 부서져 버렸 대. 산산조각으로." "흐으음. 그 범인이 키메라로 추정된다는 거야?" "응. 그런 것 같아. 우리 쪽에서는 그렇게 추정하고 있어." 에스파니아 마을이라. 나한테 한 방 먹인 그 키메라 녀석이 한탕 했나 보다. 그것 도 거하게 마을을 다 부수는 방식으로 말이다. 거참, 스케일 크시네. 그나저나...... "혜경아. 에스파니아 마을로 가는 방법은?" "여기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자연의 숲을 통과하는 길." "자연의 숲?" 거기는 뭐 하는 숲? 어디 붙어 있는 숲이니? "엘프들의 마을이...... 있다는 곳인가요?" "잘 아시네요." 레니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혜경. 엘프들의 숲? 엘프...... 라고? 하나하나가 얼짱에다 활 더럽게 잘 쏘고, 마법에도 능통한 그 엘프 님들? 물론 외모 면에서는 예은과 혜경과 레니아가 그들보다 더욱 앞설 게 분명하지만. 그나저나 엘프라니...... "얼마나 떨어져 있어?" "여기서 걸어서 한 3시간?" "꽤 머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숲 속을 3시간 동안 걸어야 한다 면 말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그 엘프들의 마을을 거쳐야지만 에스파니아 마을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한 방 먹힌 키메라 님에 대한 복수에 달성할 수 있고 말이다. "아, 미쳐 버리겠어." "......" "......" "......" "......" "......" 그때 조용히 따라오던 데인의 한마디. 뭐가 미쳐 버리겠다는 거냐? "아, 아냐!" 내가 자신을 쳐다보자 데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두 손 을 맹렬히 흔들었다. "......" 수상한......데? 도대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왜? 왜? 왜? "데인." "으응?" "나 감추는 거 안 좋아해." "......" "그리고 내가 안 좋아하는 일을 하면 내 성격상 어떻게 나 오는지도 알지?" "무, 물론." "그렇다면 방금 전 미쳐 버리겠다라는 말의 의미를 말해 줬으면 하는데 말야." "지, 진짜 아무 의미도 없어!!" "훗." 어디서 가르의 뼈가 개뼈다귀라는 말보다 더 어이없는 거 짓말을 하는 건지. 내가 그딴 어색한 거짓말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가르." "네, 형제여." "데인 붙잡아." "허억!" "싫어?" "아, 아닙니다." 내키지 않아 하기에 상큼한 미소를 한 번 날려주자 금방 고 개를 끄덕이는 가르. 너, 나의 미소가 그렇게 좋았던 게냐? 뭐. 그것보다...... "야, 새대가리." "응?" "넌 여자들 앞에 가서 장기자랑으로 눈 돌려." "......난 피닉스인데." "피닉스는 장기자랑 하면 안 되냐?" "응, 안 돼. 난 전설이잖아." "그......래?" 싱긋.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 주는 나. 그러자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새 한 마리. 새 녀석이 다급히 말했다. "아, 아냐. 나 그런 거 잘해. 피닉스잖아! 어서 볼일 봐!" 그러면서 여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날아가는 피닉스. 그 틈에 나는 가르와 합심해 데인 녀석의 입을 막고 근처 수풀로 들어갔다. 데인, 나를 궁금하게 만들면 피의 보복이 돌아간다. "흐흐흑."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진짜로 말이다. 지금 흐느끼는 데인, 저 녀석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녀석의 말을 듣고 경악했다. 그 말인즉슨, '에리아에게 살짝 밟히고 싶......어." 에리아. 우리 파티의 약간 존재감 없는 꼬마 공주님. 나이는 대략 10살로, 상당히 어리시다. 게다가 상당한 숙맥으로 우리 파티 의 순수함을 담당하고 계신다. 이건 괴상망측한 파티에서 순수를 담당하고 계신 분은 예 은과 에리아, 이 두 분이시다. 그런데 그런 우리 순수함을 담 당하고 있는 에리아에게 밟히고 싶다고? 나이도 10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한데? "안 될......까?" "허어......" 어이가 없어서 기가 막힌다. 안 된다고 묻다니. 저 자식 정말...... 이럴 수는 없다. 지가 밟히는 걸 즐기는 변태라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하지만 에리아에게 밟히고 싶다니, 그건 아니잖아? 그런데...... "너 언제는 키워 놓은 다음 밟......히겠다고 안 했냐?" "그랬는데 요새는 땡겨." "뭐가?" "어린 여자 아이한테 밟히는 거." "......" "허락해 주는 거야?"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데인 녀석. 나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허락? 내 입에서 허락이 라는 말이 떨어질 거라 생각하고 지금 그런 눈빛을 보내는 거 냐? 나는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에리아 대신 내가 밟아 주마." "너, 너는 싫어!" "나를 거절하는 거냐?" "절대 싫어!" "후후훗." "오, 오지 마." "후후훗." "이, 이러면 안 돼." "후후훗." "제, 제발......" "후후훗." "으아악!!" 퍼퍼퍽! "하하하하하하하!" "우에에엑!" "다시는 그런 생각 못하게 해 주지. 다시는 못하게 말야.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으아악!!" 근데 방금 전 오갔던 말. 조금 심오한 대사 같았는데. 뭐, 신경 쓰고 지금 할 일만 다 하자.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어디 갔다 왔어?" "......?" 내가 오자 예은과 혜경, 레니아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게거품을 문 채 내 손에 끌려온 데인을 바닥에 내려놓으 면서 말했다. "그냥 잠시 원만한 커뮤니케이션?" "......" "......" "......" "자, 가자고. 엘프들의 숲으로 말야!" 그렇게 외친 나! 그런데...... "피닉스 자식은?" "에?" "어, 어라?" 피닉스가 안 보인다. 한 마디로 말해 실종?! 한편 나의 질문에 당황해 하는 예은이와 혜경이. 그녀들도 갑자기 사라진 피닉스를 알아차리지 못한 게 분 명했다. 그러니까 저렇게 놀란 표정이겠지. "야, 피닉스!" "......" 애타게 찾아보지만 피닉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피닉스는 내가 데인을 끌고 가기 전 여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라는 엄청나게 중대한 임무를 받은 직후였다. 그리고 그 임무를 완벽히 소화해 내었다. 하지만 그 임무 후 갑자기 사라진 거다. 정말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황당했다. "이 자식, 또 어디 간 거야!" 한 놈 끝내면 또 한 놈이 말썽을 피운다. 정말 그냥 넘어가 는 법이 없다. 아, 머리가 괜스레 아파진다. "일단 모두들 흩어져서 찾아보자." "네." "응."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오케 바리!" 끄덕. 나의 말에 모두 동의해 주었다. 제발 이 자식, 또 이상한 짓이나 하지 않으면 좋으려 만...... "야, 새대가리!" "......" "야, 새대가리야!" "......" "이 자식, 정말 어디 갔어!" 아무리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불러도 피닉스의 대답은 없었 다. 진짜 이 자식, 어디로 새어 버린 거냐! 물론 한 가지 추리는 가능하다. 그 추리라고 하면...... "어디, 여자가 보였던 거냐?!" 그렇다. 피닉스 자식이 갑자기 사라질 확률, 그건 바로 여 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확률이 무지막지하게 높다. 새 주제에 일단 여자만 보면 완전 맛이 가 버리는 게 그 자 식이었으니까. "어이, 아가씨." "......" "나한테 반했지?" "......" "그렇구나. 크헤헤헤." "......" 수연이는 황당해서 완전히 굳어 버렸다. 새가 말을 한다. 물론 게임이니까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하지만...... 집적거리는 새라니...... "나한테 몇 초 만에 반한 거냐?" "무, 무슨......" "1초?" "......" "조금 오래 걸렸네. 나를 본 모든 여자들은 0.1초면 반하거 든." "......" 수연이는 도무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황당해서 말이다. 잘 생각해 보라. 걸어가던 자신에게 갑자기 이상한 새가 날아왔다. 그리고 그 새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자신에게 몇 초 만에 반했냐는 등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는 거다. 조금이라도 말이 되는 소리를 했다면 수연의 입장에서 이 렇게 당황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 아가씨. 어디 가 볼까?" "도, 도대체 이 새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수연이는 미친 새의 반응에 참지 못하고 그렇게 한마디 내 뱉었다. 그러자 피닉스 왈! "튕기는 거야? 그런 거야?" "......" "참고로 그런 것도 꽤나 흥미롭지. 후훗." "갈 거야!" 수연이는 저 미친 새를 무시하기로 했다. 도무지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미친 새다. 차라리 이럴 때 는 무시하는 게 최고다. 하지만...... "어디 가, 내 베이비." "......" "너무 튕기지 말라고. 그럼 재미없어." "......" 피닉스의 눈에는 튕기는 걸로 보였나 보다. 하지만 그런 피닉스의 말에 기가 막힌 건 수연이었다. 튕기기는 뭘 팅긴단 말인가. 자기가 미쳤다고 새한테 튕기겠는가? "자, 자. 놀아 보자고, 크크크." "오, 오지 마!" "이리 오라니까. 쿠헤헤헤." 피닉스는 그 대사와 함께 살짝 겁먹은 수연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물론 수연이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퍼억! "꾸에엑!" "......" 그대로 그 미친 새가 갑자기 날다가 추락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등장하는 한 미남자. 그는 그 미친 새를 순식간에 포획하더니. "정말 죄송합니다." "아, 아뇨." "엄청난 충격을 받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미친 새의 발작으로 인해 받은 충격에 대해 제가 이렇게 사죄드립니다." "괘, 괜찮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크윽......" 그 말과 함께 비통한 표정으로 사라지는 그 미남자. 수연의 입장으로서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퍼퍼퍽. "꾸에엑!" "이 자식이!" "마, 말로 해!" "니가 말로 해서 들을 놈이면 내가 이러지도 않아!" "저 전설적인 피닉스 살료!" "닥쵸!!" "으아악!!" 진짜 진짜 머리 아프게 하는 놈이다. 잠시라도 얌전히 있어 달라는 건 너무나도 과한 부탁인가?! 우리는 다시 모였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진짜 엘프들의 마을로 향할 것이다. "자, 자. 모두 엘프들의 마을로 출발하자고!" 제발 이번에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으면 하는 자그마한 바람이 있다. 불타오른다. 그리고 처참하게 갈기리 찢겨 버린 엘프들. 그리고...... "꺄아악!!" "으악!!" "막아!!" "저 괴물을!!" "크아악!!" "으아악!!" 아비규환의 현장. 물론 그 비명의 주인공은 엘프들이었다. 한마디로, 도륙당하고 있었다. 단 한 존재에게 말이다. 오우거의 얼굴과 몸통과 오크의 굵직한 팔다리, 그리고 등 에는 와이번의 날개. 게다가 저 머리에 달린 뿔...... 나를 단 한 방에 묵사발 내 버린 그놈. 전설의 키메라한테 말이다. "하하하. 모두 죽어라!" 파직. 푸직! 살이 찢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엘프들의 사기는 이미 떨어질 데까지 떨어졌고, 이제는 죽 기만을 기다리는 존재들 같았다. 어느새 수십 명밖에 남아 있 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내가 여기서 머뭇거린다면 저 나머지 엘프들도 저놈의 손 에 다 죽어 나갈 테니까. "모두 뒤로 물러서서 숨어 있어." "오, 오빠......" "윤현아." "괜찮으시겠어요?" 나를 걱정해 주는 예은과 혜경, 그리고 레니아까지. 난 그런 그녀들에게 괜찮다는 듯 씨익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런데...... 왜 나머지 애들한테는 그런 대사가 들려오지 않는 거냐? 꼬마 공주 에리아는 그렇다 치더라도 가르와 데인, 새대가 리의 대사가 들려오지 않았다. "해, 해 줘야 하는 겁니까?" "해 줄게, 쳇." "그래, 그래." "......" 나는 그들의 반응에 기가 막혔다. 그래. 두고 보자, 이것들. 이번 전투에서 무사히 살아남는 다면 너희부터 손봐 주마. 어찌 됐든 지금은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일단 제쳐 두고, 모 든 일행을 뒤로 물렸다. 일행이 확실히 물러나자, 나는 학살을 계속하고 있는 키메라 녀석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오랜만이지?!" "......" 그런 나의 외침에 반응하는 키메라. 그 징그러운 얼굴로 웃어 보인다. 그러더니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세키린도 없이 나를 만나러 오다니, 죽고 싶었나 보 군." "글쎄올시다. "크크크. 넌 날 이길 수 없다." "물론 지난번에는 압도적으로 졌지말 말야, 이번에는 아 냐." "......?" "내게 주어진 이 두번째 유물의 성공 확률의 따라 너를 해 치울 수도 있을 것 같거든." 싱긋. 나는 그 말과 함께 미소를 지었고, 서서히 긴장하며 메이스 를 집어 들었다. 내가 만난 적 중 최고의 힘을 가진 존재다. 현재 내게 두 번 째 유물 스킬이 있다고 하지만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힘든 존재다. 하지만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할 정도로 나약한 인간은 아 니어서 말이다. "보통 이런 경우 쇼타임이라고 하지?" 그래, 즐겨 보자고! <『다크프리스트』제4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