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프리스트 2권 ---------------------------------by.엘 작성자:엘 이 글의 저작권은 김원호 작가님께있습니다. ※차례 1장 무기 개조 퀘스트 2장 블린 킹 3장 혜경이 4장 드워프의 도시 데루스 5장 고블린 마을 습격 사건 6장 건방진 피닉스 7장 수학여행 8장 현련의 숲 9장 이상한 마을 10장 섀도 플리자트 11장 유니시스 12장 스토커? 13장 격투가 리치 ------------------------------------------------- [무기 개조 퀘스트] 우리는 일단 무기 개조를 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물론 아이탬 감정도 해야 하지만, 일단 더 강해지기 위해서 는 무기 개조가 필수였다. 지난번 스켈레톤 마스터를 상대한 이후 나는 느꼈다. 상태 이상 계열만으로도 상대하기 어려운 적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무기를 개조해 그 무기의 파괴력을 살 리려는 것이었다. 무기 개조 전문점 우리는 길을 물어 이런 간판이 달려 있는 곳에 도착했다. 무기를 전문적으로 개조하는 곳이었다. 보통 무기 개조는 대장장이들이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게임은 특별히 이렇 게 무기 개조만 직접적으로 해 주는 곳이 있었다. 그만큼 이 게임에서 무기 개조가 무시하지 못할 가치를 가 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근데 오빠, 오빠 메이스는 유니크예여?" 그때 내 옆에서 예은이 물었다. 음, 유니크와는 아주 거리가 멀지. "처음 시작할 때 받았던 무기인데." "에에?" 내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하는 예은. 당연하다. 처음 시작할 때 주는 초보자 무기로 스켈레톤 마스터를 때 려잡았으니 말이다. "내 무기는 좀 특별하거든." "특별이요?" "응. 데미지는 4-6인데, 맹독과 결빙이라는 옵션이 달려 있 거든, 한 마디로, 맞으면 데미지가 그리 많이 나지는 않지만 맹독 데미지랑 결빙 데미지가 꽤 높은 편이야." "그, 그럴 수도 있어요?" "응, 그런가 봐. 나도 그 뱀들 아니었으면 이런 사실은 몰랐 겠지만." 말 그대로다. 그때 그 아나콘다들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초보자 무기에 도 이렇게 강력한 상태 이상의 힘이 담길 줄은 예상하지 못했 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그 사기꾼 작자에게 조금이라도 감사해 하 고 있다. "이제 들어가 볼까?" 나는 그 말과 함께 무기 개조 전문점이라고 크게 적힌 건물 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들려오는 소리! "1,000골드네." "......" "1,000골드 없으면 개조할 생각도 하지 마." "......" 뭐, 뭐야? 이 시추에이션은. 들어가자마자 들려온 음성은 황당하다 못해 왕 황당하다. 확인도 안 해 보고 1,000골드라니. 그리고 무기를 새로 사는 것도 아니고 고작 개조하는 데 이렇게 비싸냔 말이다. 내 앞에는 흰머리가 가득한 할아버지가 의자에 뒤돌아 앉 아 있었다. 한 마디로, 손님이 왔는데도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없으면 가라." "저, 저기. 일단 무기라도 봐 주셔야......" "필요 없어, 어차피. 난 평범한 건 싫다." "......" 뭐 이리 황당한 상황이냐. 예상치도 못할 정도로 정말 황당한 상황이 펄쳐지고 있었 다. 필요 없다니, 어허. "평범한 무기 개조는 지겹다. 꺼져라." "......" 여전히 우리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하는 할아버지. 이렇 게 어처구니없을 수가. 하지만! "제 무기는 평범한 무기가 아닌데요." "유니크냐? 그래도 나한테는 평범하다." "아뇨. 처음 시작할 때 주는 무기인데." "......" 휘익!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린 할아 버지가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말했다. "내밀어라." "네." 난 당황스러웠지만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었기에 허리춤에 매여 있던 그 특별 메이스를 건네주었다. 할아버지가 내 무기 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렇게 약 5분. 할아버지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중얼거렸다. "이 무기에 이런 강력한 인첸트가 들어 있다니......" "......" "내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아! 그래, 바로 내가 원하 는 무기야!!" 이 할아버지, 이상하다! 그것도 많이. "무료다." "네?" "공짜로 무기 개조해 주겠다." "헉!" "하지만 조건이 있다." "조, 조건이라니요?"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해 와라." "......?" "그렇다면 이 무기를 현존하는 어떤 무기보다 강한, 최고의 데미지를 내는 무기로 만들어 주겠다. 뭐? 이 초보자 메이스를 그 어떤 무기보다 강한 데미지를 내는 무기로? 그게 이론상으로 가능한 거야? 절다 불가능할 것 같은데 말이야. "그 대신 오리데오콘을 가져와라."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오리데오콘? 그 인간계 최강 금속이자, 최고의 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그 금속을 말하는 거야? "그, 그런 걸 어떻게 구해 올 수......" 내가 난감하다는 듯 그 할아버지를 향해 말을 묻자, 그는 여전히 내 메이스를 빤히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드워프들에게 가서 달라고 해라." 달라고 하면 주십니까? 어이없다. 나는 드워프들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만약에 찾았다 하더라도 그들 앞에 가서 '오리데오콘이 필요합니다' 라고 말하면 '네,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내준다는 얘긴가? 정말 어이없었다. "준다." "네?" "내가 편지를 써 주겠다. 그걸 내밀어라. 그럼 줄 것이다." "......" -퀘스트- 드워프들을 찾아서 오리데오콘을 받아라. 보상: 무기 개조 그 순간 뜨는 퀘스트창. 한 마디로 말하면, 이번에도 역시 퀘스트라는 거냐?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도대체 어떤 할아버지기에 달랑 이 편지 한 장으로 드워프 들에게서 그 귀하디귀한 오리데오콘을 얻을 수 있는 건지 솔 직히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구라죠?'라고 말하기에는 저 퀘스트창이 걸렸다. "휴, 일단 가 봐야 하나......" 나는 그 말과 함께 괴짜 할아버지가 건네준 지도를 펼쳤다. 이것이 바로 드워프들이 산다는 스타라스 산맥의 지도란 다. 어질어질, 빙글빙글 그려져 있는 그림. 사실 모르겠다. 지 도가 너무 복잡해. "나 알아, 알아!" 그때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데인이 손을 번쩍 들면 서 외쳤다. 그 모습에 나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데인을 바라 보았다. 지난번 보석 사건 이후 신빙성 제로로 하락한 데인의 말이 다.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 "나한테 특별한 능력이 있거든." "특별한 능력?" "응. 지도만 있으면 거기에 표시된 목적지를 단숨에 알 수 있어."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딴 능력은 생전 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다. 그게 진정 이 론상 가능하단 말인가? 어떻게 지도만 보고 거기에 표시된 목 적지를 단숨에...... "그,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형제여, 지도에 표시가 돼 있다면 당연히 목적지를 단숨에 알 수 있죠." "......" 그때 예은과 가르의 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좌절했다. 나는 못한다. 지금처럼 지도가 있어도 목적지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난 최강 길치니까. 이번에 길을 찾기 위해서는 예은의 도움이 필수였다. 물론 가르와 데인이 있기는 하지만, 저 꼬락서니를 봐서는 믿고 싶지 않은 종자들이다. "주여, 주여, 주여. 이 세상의 악의 근원이 제 옆에 있습니 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주여!" "아이. 하아, 하아, 하아." ......변태 자식들. 그런데 잠깐, 가르의 웅얼거림이 상당히 거슬린다. 제 딴에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말한 것 같은데, 내 귀에 는 쏙쏙 잘 들어온다. 악의 근원? "그는 인간의 모습을 했지만, 그 어떤 존재보다 사악합니 다. 아마도 사탄의 후계자 정도로 되어 보이는 존재입니다. 교화를 시키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제게 돌아오는 건 폭력뿐 입니다. 주여!!" 아냐. 저 자식이 바보가 아닌 이상 하필 당사자가 가까이에 있는데 저런 소원은...... 빈다. 왜? 저 자식은 바보니까. 텔레포트 좌표도 제대로 못 읽는 바보 마법사다. 그런 관계로, 내 앞에서도 당당하게 나를 씹을 수 있다. 나는 가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가르가 흠칫 놀라더니 한 발자국 물러섰다. 진짜였나? 지금 나같이 해피 선데이 존재를 사단의 후계자 라고? 난 가르에게 살며시 다가갔다. 그러자 가르가 흠칫거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소용없다. 물론 앞에는 예은이 있었다. 하지만 근처에는 몸을 숨긴 채 응징을 가할 수 있는 풀숲이 무지 많다. "으음!!" 난 주저 없이 가르의 입을 막았다. 그런 다음 앞장서서 열 심히 지도를 보고 있는 예은을 슬쩍 쳐다본 뒤 그대로 근처에 있는 풀숲으로 들어갔다. 절대 이상한 의미로 들어간 건 아니니, 오해 말도록. 그러고 나서 데인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였다. 고자질하면 죽인다는 소리다. 물론 상당한 비겁한 데인으로서는 지 목숨 걸린 일에는 절 대 친구를 안 구해 줄 거다. "오빠, 이쪽에...... 오빠?" 예은은 윤현을 부르러 뒤를 돌아보았지만, 거기에는 아무 렇지도 않은 듯한 모습을 한 데인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저, 저기. 데인 씨! 오빠는요?" "나는 몰라." "......"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데인은 그렇게 말했다. 역시 그에게 친구 사이의 우정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오빠, 어디 갔다 오시는 거예요?" "아, 가르랑 면담 좀 하느라." "......?" 내가 숲 속에서 나오자 예은이 그 예쁜 얼굴로 나를 보면서 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 아, 예뻐. "신경 쓰지 마, 하하하." "그런데 가르 씨는요?" "아, 가르는 기도 좀 한대." "그, 그래요?" "응, 이런 풀숲에서 기도하는 게 취미란다." "도, 독특한 취미네요." "원래 독특한 놈이니까, 하하하." 나는 그렇게 웃으면서 예은 옆으로 다가갔고, 그러는 도중 데인을 흘겨보았다. 그 잠깐의 눈빛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 다. 한 마디로 입을 봉인했냐고 묻는 것이다. 끄덕끄덕. 내 눈빛에 열심히 맹렬히 고개를 끄덕이는 데인. 역시 내 예상대로 의리 따위는 꼬딱지만큼도 없는 녀석이군. "흐흑." 한편 숲 속에 버려진 가르는 흐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 을 바라보면서 외쳤다. "시, 신이시여!! 사탄의 후계자를 상대하기에는 저는 너무 나도 연약합니다. 이런 저에게 지원군을!!" 가르의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기도가 이루어지는 확률 0퍼센트라는 대단한 기록을 가지 고 있는 가르의 기도였다. 그런데! "헉!" 정확히 가르의 앞에 알 하나가 떨어졌다. 진정 알이었다. 물론 무슨 일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알 수도 없는 미지의 알이다. 하지만 가르는 감동한 목소리로 외쳤다. "시, 신의 기적입니다!" 그에게는 모든 일이 신의 기적일 뿐이었다. 가르의 품속에 있는 알, 저건 뭐냐? 저 녀석은 어디서 저런 이상한 알 같은 걸 주워 오는 거냐? "신의 알입니다." "......" 저 자식은 모든 것을 신하고 연관짓네. "신이 제게 내려 주신 축복의 알입니다. 여기서 대단하신 분이 나올 겁니다." 그럼 주몽? 아니면 박혁거세? 그분들도 알에서 튀어나왔다 고 했으니까 말이야. 그것보다 저 자식은 리치 주제에 이제는 알까지 품다니, 진정 존경스럽다. 근데 이상하다. 저 알을 보는 순간, 미묘하게 기분이 더러워진다. 마치 이상한 놈이 혹처럼 달라붙은 듯한 아주 미묘한 느낌 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신경 끄자. 알이다. 그냥 알일 뿐이다. 그래, 그래. 난 그 미묘한 무엇인가를 잊어버리고 드워프의 마을이라는 데루스를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이상하다. 지도에 나온 대로 열심히 가 보았지만, 그 분들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그분들이란 바로 몬스터 님들이다. 거 짓말 안 하고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하디흔한 오 크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왠지 불길한데?" "왜요?" 내 중얼거림에 예은이 묻자, 나는 그 물음에 대답했다. "몬스터들이 안 보여." "그러면 좋은 거 아닌가요?" "아니, 좋기는 한데,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드워프들을 찾기 위해 숲 속 필드 안에 들어왔는데 몬스터 가 하나도 없다니! 지금 우리가 있는 지역은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일반 필드였다. 그런데 그런 일반 필드에 몬스터가 없다는 건...... "......!" 순간 나는 온몸을 강타하는 듯한 불길한 느낌에 서둘러 외쳤다. "피해!" 우르릉! 하지만 내 말이 한 박자 늦었나 보다. 이미 우리 발밑에서는 이상하게 생긴, 엄청난 크기를 자랑 하는 지렁이가 튀어나온 뒤였으니까. 물론 평범하게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나오면서 그대로 우리를 삼켜 버렸다. "으아악!!" "오, 오빠!" "주, 주여!" "젠......장!" 우리는 그 짧은 비명을 마지막으로 그 괴이한 지렁이에게 삼켜지고 말았다. [블린 킹] 나에게는 평범한 바람이 있다. 말 그대로, 정말 평범한 바람이다. 그 바람이란, 그냥 평범 하게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체불명의 직업을 얻은 이후 그런 내 자그마한 소망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이해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왜 지렁이한테 먹혀서 이런 데서 궁상떨고 있어야 하는 거야!" 말 그대로다. 지금 우리는 우리 일행을 삼킨 지렁이 뱃속에서 궁상떨고 있는 중이다. 지렁이의 몸이 얼마나 큰지, 우리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 다. "정말, 젠장."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은데, 막상 할 일도 없다. 도대체 이 런 이상한 상황은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처음일 게 분명 했으니까. 슈우욱. 슈우욱. 그때, 마치 물소리 같으면서도 아닌 듯한 이상야릇한 소리 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위해서 초록색 물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진다. 지독한 산성이라는 것이 말이다. "제길!" 그렇다. 이 지렁이 녀석의 위액이 분명하다. 저기에 스치면 나도 지금 옆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 는 뼈다귀들과 동료가 된다. 그런데 이미 뼈다귀인 가르는 어 떻게 되는 걸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목숨을 담보로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 다. "가르!" "네! 형제여!" "마법!" "알겠습니다! 파이어 볼!" 퍼억! 나는 그대로 가르의 뒤통수를 갈겼다. 그러자 가르가 소리쳤다. "왜, 왜 때리십니까? 형제여." "너 장난치냐?" "......" "지금 내가 마법이라고 했잖아, 자식아!" "그래서 마법 사용했는데요." "지금 상황에서 왜 파이어 볼을 시잔하는 건데!" "......" "아이고, 이 돌대가리 자식! 이 상황에 마법하면 배리어잖 어, 배리어!!" "그, 그렇군요! 다시......배리어!" 가르는 그제야 우리 앞에 거대한 방어막을 쳤다. 젠장, 저 돌대가리 리치 자식. 어떻게 저런 아이큐로 마법 사가 가능한 거냐? 정말 의문이다. 슈우욱! 한편 그 초록색의 위액은 우리를 덮치기 위해 맹렬히 달려 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였다. 푸욱! 가르가 생성해 낸 배리어와 위액이 맞부딪쳤다. 쿠우욱! 정체불명의 소리와 함께, 초록색의 위액이 가르가 시전한 배리어 근처로 교묘하게 빗겨 나갔다. "히, 힘듭니다. 형제여!" "부탁한다! 가르!! 너에게 달려 있어!" "......으아아아아아!" 가르의 이상한 비명 소리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지금의 상황이 더 위급했다. 가르의 배리어 마법이 깨지는 순간, 그대 로 죽음이다. 살 가능성 제로. 그만큼 우리 앞에 있는 위액은 강력해 보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엄청난 양의 위액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 시 후 언제 흘러내렸나는 듯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살았다." 나는 거의 주저앉다시피 그 자리에 앉아 버렸다. 물론 배리어를 시전한 것은 가르였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힘들었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예은과 데인도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이네요, 오빠." 너무나도 긴장한 탓인지, 예은이 내 옆에 털썩 주저앉으면 서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머지않아 또다시 저 위 액의 파도가 들이닥칠 거다. 위액이라는 게 한 번 흘러나오고 끝나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전에 어서 나갈 방법이나 생각해 보자." 지렁이 뱃속에서 나갈 방법을 누군가가 콕 집어서 가르쳐 주면 소원이 없겠다. 하지만, 너무나도 큰 바람이었다. 평소에 그 누가 지렁이 뱃속에서 잘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해 보겠는가? 대부분, 아니 그런 상상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 다. 우리도 그 대부분이라는 범주 아래 들어간 관계로, 결론적 으로 말하자면 모르겠다. "으아악!! 미쳐 버리겠어!"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진짜 이렇게 난감할 수가. 지금까지 제법 난감한 상황에 수없이 부딪쳐 왔지만, 이런 상황은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수로 이 커 다란 지러잉 뱃속을 무사히 빠져나가지? "불로 지지는 거야." "......?!" "발밑을 칼이나 불로 마구 지지면 고통스러워서 죽지 않을 까?" "......" 그것도 그렇다. 지금 데인의 말대로, 내부에서 직접적인 타격이 가해지면 외부에서의 공격보다 훨씬 강하다. 즉, 안에서 공격할 때 훨씬 더 큰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말 이다. 그런데 그 후에는 어떡하지? "죽인 뒤에는 어떡해?" "모르는데." "네 말대로 죽였다 치면, 그 후에는 빠져나갈 수 있는 거 야?" "모르겠는데." 저 자식을 콰악! 지금 내가 원하는 건 이 지렁이 뱃속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그래도 일단 죽이면 위액은 안 나오지 않을까요?" "역시 예은은 똑똑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예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툭 툭 쳐 주었다. 역시 현명하다. 하하하! "내가 말했잖아." "그랬냐" "이, 사람 차별!" "넌 사람도 아니잖아." "......" "불만 있으면 예은이처럼 예쁜 여자 하든가." "우욱!" "오, 오빠." 내 칭찬에 살짝 볼을 물들이는 예은. 정말 귀엽다. 이리 보 고 저리 봐도, 이쪽저쪽 봐도 너무 귀엽고 아름답다. 하아, 저 이상한 놈들과 같이 다니는 건 불행이지만 이렇게 예은이랑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했다. 자, 그나저나 이제 쇼 타임을 한번 즐겨 볼까. "황태자의 삽질 실력을 보여 주지." 아마도 발밑을 죽도록 파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물론 삽이 아니기는 하지만 메이스를 응용해서 사정 봐주 지 않고 갈기는 것이다. 신조차도, 영혼조차도 갈라 버린다는 황태자의 삽질 실력을 보여 주마. 퍽! 퍽! 퍽! 퍽! 내가 메이스로 땅(?)을 가격하는 속도는 진정 빛과 같았다. 그만큼 빛의 속도에 버금갈 정도였다. "하하하하!!" 나는 광적으로 메이스를 놀렸다.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이 알 수 없는 갈믹, 나에게 진 정 삽질의 귀신이 붙은 듯싶다. 그만큼 화려하고 엄청난 속도 로 메이스를 갈기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녀석은 독과 빙결에 괴로워하며, 거의 수 초마다 고 동 어린 비명을 질러 대고 있다. "꾸어억!!" 몸 안에까지 들려올 정도로, 커다란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출 순 없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무, 무서워." 데인은 거의 눈이 반쯤 돌아가서 땅을 후려 갈기는 윤현을 보고 움찔했다. 자신은 맞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지금의 저 윤현에게 맞는 것만은 사절이다. 그의 완벽한 발길질은 마조히스트인 자신도 감당해 내기 힘들 정도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메이스를 갈겨 대는 저 모습, 진정 사탄의 후계자다운 모습이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컥! 24업?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내가 화려한 삽질 실력으로 땅을 갈겨 댄 지 약 10분. 마침 내 지렁이 괴물은 최후를 맞이했다. 그런데 그 최후와 함께 찾아온 광적인 레벨 업...... 총 24업 이다. 이 지렁이, 이렇게 강한 놈이었나?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136 HP/MP: 2,450/2,300 힘: 537(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363(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니 다.) 지능: 104(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159(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탯: 270 헉! 136? 어떻게 레벨이 순식간에...... 아!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쳐 가는 한 가지. 지난번 스켈레 톤 마스터와의 혈전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스켈레톤 마스터를 죽였지만 나 자신도 그대로 죽어 버렸다. 그런 관계로 레벨 업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럼 그때도 레벨이 장난 아니게 올랐다는 소리? 그, 그럼 잠깐. 내 레벨이 100이 넘었다. 그렇다면 분명 스 킬레톤 마스터를 처리하는 순간 100레벨의 스킬이 늘어났을 것이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확인에 들어갔다. -일루전 크레이전- 레벨 1. 순식간에 메이스의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이때 메이스는 총 네 개로 나누어지고, 데미지를 줄 시 4배로 늘어난다. 지속 시간: 40초 마나 소모: 240 헉! 이 말은! 40초 동안 지금 내 데미지의 4배의 속도로 갈겨 댈 수 있다 는 뜻이냐? 그리고 스킬을 펼칠 때 이걸 사용하면, 스킬 데미지도 마찬 가지로, 4배! 정말 멋지다. 역시 레벨 100을 자랑하는 스킬이 분명하다. 아, 정말 감동이야! 난 너무 기뻐서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진짜 너무 좋 다. 뭐 그래도 해야 할 일은 남았으니, 그건 바로 스텟 재분배!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136 HP/MP: 2,450/2,300 힘: 637(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463(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니 다.) 지능: 104(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229(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탯: 0 휴우, 이제 제법 괜찮은 능력치가 되어 버렸다. 그나저나 나 좀 불공평한 것 같기는 하다. 남들 열심히 사냥하는 사이, 열심히 할 짓 안 할 짓 다하면서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레벨 업 시켜 주는 몬스터들만 잡고 다니니까 말이다. 솔직히 약간, 아 주 약간 양심에 찔리기는 한다. 뭐 그래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혀, 형제여. 저, 정말 엄청납니다." 한편, 괴지렁이를 해치운 나를 본 가르가 놀랍다는 듯한 말 투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그 정도야...... 지난번 죽도록 땅 파던 것에 비하면 생각 외로 쉬웠다. 기연이라면 기연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지금 상황이었으니 까. 그런데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가 더 궁금하다. "탈출해야 할 텐데." 이제 녀석이 죽어서 위액이 흘러내리지는 않겠지만, 그렇 다고 지렁이의 뱃속에서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절대로 말 이다. "억지로 피부를 뚫어 버리고 탈출을?"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방법 한 가지가 있었 다. 물로 단순무식하기 그지없는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밖 에 없어 보였다. 말 그대로 발밑의 피부를 갈겨서, 그대로 살 을 완전히 찢어 버리고 탈출하는 방법이다. 제법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다크 스트림- 레벨 1. 어둠의 악령을 소환해서 무기에 담는다. 공격력: 720 추가. 마나 소모: 100 이 스킬에, 방금 발견해 낸 일루전 크레이전을 조합하면? 40초 동안, 1초당 약 데미지 6,000정도는 들어갈 거다. 그러면 엄청난 공격에 피부가 견디지 못하고 찢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번 해 보는 거지, 뭐." 그 말과 함께 나는 웃었다. 살가죽이 제법 두꺼워 보이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삽 질계의 황태자인 내 앞을 막을 수 없다! 진정 삽질계의 황태자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지, 크크크! 나는 있는 힘껏 메이스를 치켜들고 후려갈겼다. 퍼퍼퍼퍼퍼퍽! 퍼퍼퍼퍼퍼퍽! 특히 일루전 크레이젼 탓인지 무기가 네 개로 늘어난 것처 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갈겨 댄 지 약 30초! 찌이익! 진짜 피부가 찢어져 버렸다. 너무나 강한 공격을 견디지 못해 살이 그대로 찢어져 버린 것이다. 이 거대한 지렁이의 두꺼운 살가죽이 말이다. "......살았다!!" 나는 순간 외쳤다. 살아남은 것이다. 아니, 드디어 괴수 지렁이의 뱃속을 탈출 하는 거다. 하하하하! 꾸물꾸물! 우리는 그 찢긴 상처를 통해 꾸역꾸역 힘겹게 밖으로 빠져 나왔다. 빠져나오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것은, 우리가 방금 빠 져나온, 보기만 해도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지렁이 한 마리 였다. 몸길이 200미터 정도에 몸통 두께가 40미터가량 되었다. 가히 엄청난 놈인 것이다. "블린 킹......" 한편 그 모습을 본 예은이 중얼거렸다. 블린......킹? "블린 킹이라니?" "블린이라는 몬스터 아시죠?" "응, 당연하지." 지난번 블린이라는 몬스터를 잡으러 갔다가 그 이상한 단 체의 급습을 당했지. "그들을 총 지휘하는 몬스터가 블린 킹이에요." "총 지휘?" "네, 말 그대로 모든 블린의 어머니예요." 그, 그렇구나. 근데 이 불길한 느낌은 뭐고? 우르르. 순간, 전후 사방에서 몰려오는 10미터 정보 되어 보이는 블 린 무리, 몇백, 아니 몇천 마리?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예은이 그 모습을 보더니, 꽤나 침착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어머니를 죽이면 지구 끝이라도 쫓아가서 보복한다고 알 려져 있어요." "그거 참 신비한 연구 결과네." "......" "하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블린 킹을 죽인 건 좋은데 말이다...... 저 떼거리로 몰려오는 블린의 처리 방법은 도저히 모르겠다. 그럴 때는...... "예은아, 실례!" "꺅!" 나는 그대로 예은을 번쩍 안아 올렸다. 그런 다음 소리쳤 다. "모두 튀어! 알아서 튀어!" "......" "......" 으아아악!! 나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블린떼를 피해 도망가기 시작했 다. 제길! 일이 그냥 풀릴 리는 없단 말이냐? 헉! 헉! 헉! 저 녀석들 엄청나게 끈질기다! 그야말로 진드기 사촌쯤 될 정도다. 추우욱! 추우욱! 괴기한 소리를 내면서 징그러운 모습을 한 채 꿈틀꿈틀 맹 렬한 속도로 다가오는 블린 무리. 나 오늘 처음 알았다. 지렁 이과가 저렇게 속도가 빠른지 말이다. "으아악!" 나는 여전히 예은을 안은 채 지렁이와의 숨바꼭질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이제 느끼는 거지만, 예은한테 서는 향긋한 냄새가 난다. 기분이 좋아질 정도의 향기. 평소에 사용하는 향순가? 그런데 그게 게임에서도 그대로 느껴질 정도라니, 정말 게임을 잘 만들긴 한 것 같다. "오, 오빠 어떡해요?" 내 품에 안겨 있던 예은이 불안하다는 듯 말했다. 그 물음 에 나는 여전히 맹렬히 달리면서 말했다. "도망가야지." "......" "지구 끝까지 쫓아오면 우주 끝까지 가는 거야!" 마음 같아서는 우주 끝까지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 다. 하필 도망가던 끝에 다다른 곳이 절벽이었으니까. 그리고 나와 다를 바 없이 절벽으로 쫓겨 온 가르와 데인, 짐작건대 아마 일부러 몰아넣어진 듯싶다. "우리는 이제 끝난 거냐?" "주의 보살핌......" "지금 기분 안 좋다, 가르." 나는 또다시 주 운운하려는 가르의 입을 애초에 봉쇄해 버 렸다. 지금 상황에서 주의 보살핌을 찾아서 무엇 하겠느냐 말이 다. 저 앞에서 버글거리는 블린들에게, 속된 말로 다구리당해 죽게 생겼는데, 사실 한 100마리만 되어도 한번 해볼 염두라 도 나겠는데, 이건 숫자가 너무 많다. 압도적으로 말이다. "......" "......" "......"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아, 정말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뒈지는 거 냐? 정말 이렇게 자주 뒈지면 하기 싫어진단 말이다. 내가 그렇게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내 눈에 띄는 리치 하나, 그 이름 하여 가르였다. 그래, 가르가 있다. 가르가 있어. 가르가...... "가르." "네?" "텔레포트 가능하지?" "가능은 합니다만, 아시다시피......" 그래, 아시다시피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텔레포트겠지. 하지만 말이다. 블린들에게 다구리다해 죽는 것보다는 차 라리 무작정 텔레포트 해서 아무 데나 떨어지는 게 낫지 않을 까? "가르, 마법 준비." "......알겠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에 맡긴다." 가르의 텔레포트 마법은 말 그대로 하늘에 맡겨야 될 정도 로 암울하다. 그만큼 어디로 떨어질지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 다. 하지만 그냥 뒈지는 것보다는 낫지. "텔레포트." 순간 가르의 외침이 울려 퍼진 순간 우리는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이 번쩍였다. [혜경이] "꺅!!" "꺄아악!!" "치, 치한이야!!" "어, 어떡해!!" "꺄아아악!" 나는 텔레포트 마법이 발동되자마자 굳어 버렸다. 왜냐하 면 텔레포트 해서 떨어진 장소가 하필이면 '여탕' 이었으니 까. 수건 하나만 두른 채 목욕하게 계신 여자 분들이 가득했으 니...... 확실히 여탕이다. "벼, 변태!!' "쳐, 쳐다보지 마!"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난리를 치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그제야 지금 의 상황을 생각해 냈다. 한 마디로 지금의 나는 변태로 오인 받기 딱 좋은 상황이다. 여탕에 침범한 치한, 변태 말이다. 이렇게 되면 현상수배범 으로 몰릴 수도 있다. 그러니 어서 오해를 풀어 줘야 한다. "저, 저는 변태가 아니......" "나가!!' "신고해!!" "어서!!" 우리는 결국 쫓겨났다. "이름이 마에스트로라고요?" "네." "그런데 진짜로 텔레포트 실수로 여탕에 들어간 건가요?" "저, 정말이에요. 믿어 주세요." "흐음......" "사, 사실 목욕탕 같은 곳에는 텔레포트 마법을 방해하는 마법진이 있잖아요?" "그렇긴 하죠." "그런데 실수가 아니었다면 제가 어떻게 들어갔겠어요? 그 리고 치한이면 몰래 보지, 그렇게 당당히 보지도 않는다고 요." "그것도 그렇군요." 나는 열심히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내 앞에 있는 병사에게 말이다. 우리는 여탕 훔쳐본 죄로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 많고 많은 죄 중 여탕 훔쳐본 죄로 끌려오다니, 나도 참...... "흐음, 알겠습니다. 이번 일은 실수로 처리하겠지만, 다음 에도 이런 일이 있을 시 감옥에 들어가야 할 겁니다." "네." 젠장. 가르의 텔레포트 마법을 믿은 내가 잘못이다, 잘못. 우리는 취조실을 빠져나왔다. 말 그대로 범죄자가 되어 취조를 받기 위해 그 안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위로라고 한다면, 이곳이 그랜드 크룬이라는 사실 이었다. 가르가 사용한 텔레포트로 떨어진 곳은 여탕이었지 만, 그게 다행히도 그랜드 크룬에 있는 목욕탕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줄 하나는 그어졌다. 여탕 훔쳐보기 미수범으로...... 흑! 실수였다고는 하지만 들어간 건 사실이었기에 더 이상 발 뺌할 수가 없었다. "오, 오빠. 시, 실수였잖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 실수.....였지." 실수가 아니었더라면 지금 가르의 목은 몸과 분리되었을지 도 모른다. 나는 괜찮다는 듯 위로해 주는 예은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아, 정말 예은을 만난 건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야. "저기요." "......?!" 그때 갑자기 나를 부르는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엄청나게 예쁜 여자였다. 나이는 대략 나랑 동갑 혹은 한 살 위로 보이는 분이다. 그 리고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예은과 상대가 될 만한 미모라는 것이었다.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미모를 가진 예은과 상대 가 되는 분이라니, 너무나도 놀랍도다. 물론 예은은 예쁜 느낌인 반면, 이분은 약간 섹시한 분위기 였다. "왜 그러시죠?" "지금 시간 되세요?" "네?" "시간 되시냐고요.?" "가, 갑자기 그런 걸......" 다가오자마자 시간 되냐고 물으면 당황스럽다. 지나가는 사람 불러 세우더니 다짜고짜 시간 되냐고 묻다니. "헌팅하는 거예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뭐, 뭐? 헌팅? 한 마디로 이성을 낚는 것을 말하는 전문용어? "자, 가죠." "자, 잠깐!" 다음 순간, 여자는 덥석 내 팔짱을 끼더니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그만 굳어 버렸다. 뭐, 뭐야? "어, 어떡해......" 한편 그 모습을 본 예은은 왠지 모르게 초조하기 그지없었 다. 윤현이 이상한 여자에게 갑작스럽게 헌팅이란 걸 당한 뒤부터 계속해서 초조하고 불안하고 심지어는 기분까지 약간 나빠질 정도였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어쨋거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윤현이 다른 여자와 이야기 하는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실례했어요." 갑자기 나를 낚아채 끌고 온 여자는 인적이 드문 곳에 들어 서자마자 방금 전과는 다른 어조로 내게 말했다. 뭐, 뭐지? 나를 끌고 온 여자가 살며시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 많은 데서 말하기 힘든 내용이어서 이렇게 인적 드 문 곳으로 끌고 온 거예요." "아......?" "제 소개를 못했군요. 도둑 길드에서 활동 중인 세리나라고 해요." 도둑 길드! 그럼 그 아저씨가 보내신 길드원? "사실 제가 이렇게 나타난 이유는, 직접 도둑 길드를 찾아 오지 않으셨으면 하는 길드 마스터의 전언을 드리기 위해서 예요." "찾아오지 말라고요?" "아, 오해 마시길. 지금 저희 도둑 길드 근처에 그 단체가 은신해 있어요. 그리고 저희를 주목하고 있죠." "그 단체?" "네, 마에스트로 님을 노리는 그 정체불명의 단체가 저희 쪽을 주시하고 있다는 거죠." 다크프리스트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암습한 그 조직을 말하 는 것 같다. 그들이 도둑 길드를? "저희 쪽과 그쪽은 본래 사이가 안 좋았으니까요." "......" "그래서 제가 직접 파견되었어요. 조금이라도 마에스트로 님에게 도움을 주라는 마스터의 명령이 있었거든요." "그, 그 말은?" "네, 앞으로 동행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헉! 이, 이렇게 아리따운 분이! 나야 당연히 환영이다. 오는 미녀 막지 말라는 내 신념 비 슷한 것에 의거해 절대로 거부할 이유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파티는 리치 한 마리, 천족 한 마리, 초절정 미 소녀 두 분? 멋진데? "안 되나요? 제가 마음에 안 들면......" "아, 아닙니다." "......" "절대로 환영합니다." "휴우, 거부하실까 봐." 그건 남자로서의 자격 상실입니다. 나는 기쁘기 그지없었 다. 정말이다. 그런데 내 앞에 계신 분 NPC인가? NPC라고 하더라도 예은이만큰 예쁜 여자는 오늘 처음 본 다. 내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제 본명도 소개해야겠죠?" "본명?" "NPC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 "헤, 저 NPC 아니에요. 유제예요, 유저." 정말? 유저라고! 그 말은, 현실세계에도 저런 미녀가 존재한다는 거냐? 이, 이럴 수가! 역시 세상은 넓다, 넓어. "유혜경이라고 해요." "김윤현입니다." "18살이시죠? 저랑 동갑이네요." "......" 역시 동갑이구나. 동갑 혹은 1살 연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이 적중했다. "그럼 서로 말 놓도록 해요, 헤." 그녀가 먼저 그렇게 말했다. 이것만으로도 대충 그녀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조용 하고 조심스러운 예은과는 달리 아주 활발하고 친화적인 성 격이라는 걸 말이다. "그러도록 하죠." "응, 그럴게." 그 말에 당장 말을 놓는 그녀. 그런데 너무나 귀엽다. 아, 난 진정 행복한 남자인 거냐? "윤현이는 아이디로 불러 줘?" "아냐, 이름으로 불러." "응! 그나저나 윤현이는 오늘 한 건 했던데? 헤헤." "......" "대담하게 여탕으로 직행하다니 말이야." 헉! 그, 그 사실을 벌써 알다니! 역시나 도둑 길드원답게 엄청난 정보력이다. 정말로 도둑 길드에서 직접 파견된 존재라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윤현이 꽤 밝히잖아?" "아, 아냐. 절대 오해야!" 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말하는 혜경의 말에 질색했다. 절대로 오해다. 난 자칭 타칭 순수남이었다! "농담이야, 농담. 블린에게 쫓겨서 텔레포트를 사용했는데, 텔레포트가 잘못 시전되어서 애먼 곳에 이동되었다는 것도 다 알고 있다고." 정말 억! 하는 정보력이다. 모든 걸 다 알고 계신다. 이 정도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것 같 다. "그나저나 블린들을 건드려 놨으니, 난감하겠다. 헤." "응, 정말 난감해." 혜경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드워프의 도시 데루스로 가기 위한 길목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벌집의 벌을 쑤셔 놓은 관계로, 데루스로 향하는 길목 에는 블린들이 잔뜩 몰려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어." "......?" "그런 것 때문에 내가 파견된 거야. 드워프의 도시 데루스 로 가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거든." "저, 정말?" "응!" 나는 혜경의 말에 눈을 번쩍였다. 그 길 말고 다른 길이 있다니, 정말 천만다행이다. 나는 이내 혜경의 부드러워 보이는 두 손을 꼭 잡으면서 눈 을 빛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나야말로." "하하하." 이렇게 엄청난 도움이 되는 동료가 나타나다니 너무나 기 쁘다. 그런데 혜경의 얼굴이 아주 약간 붉어졌다. "저기, 윤현아." "......?" "기쁜 건 알겠는데, 너무......꽉 잡았어." "헉!" 나는 그제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생각해 냈고, 당 장 혜경의 손에서 두 손을 떼어 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생각해 내고, 당 장 혜경의 손에서 두 손을 떼어 냈다. 잠시지만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큰 실수를 저질렀다. "미, 미안." "아니야, 싫지는 않았으니까. 헤." "......" "그럼 갈까?" 그 말과 함께 혜경은 성큼성큼 걸어 조금 전 처음 만났던 장소로 돌아갔다. 근데 방금 무슨 말이지? "앞으로 우리랑 다니게 될 혜경이라고 해." 나는 동료들 앞에 서서, 내 옆에 있는 혜경을 소개했다. 내 소개에 혜경이 앞으로 한발 나서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유혜경이라고 해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싱긋. 혜경이 그 말과 함께 싱긋 웃었다. 그러자 갑자기...... "신을 믿습니까?" "아, 저 아름다운 발에 밟히면...... 하아, 하아, 하아." ......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 변태 자식들! 그런데 한 명이...... 조용하다? "예은아, 왜 그래?" 예은이었다. 혜경을 데려온 후부터, 이상하게도 기운이 없 는 듯 축 처진 모습으로 고개만 숙이고 있다. 물론 후드 때문에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 만, 겉모습만으로도 그녀가 지금 기운이 없다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아, 아니에요." 내 물음에 그녀가 더듬거리면서 대답했다. 흐음, 어디 아픈가?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예은이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살며시 말을 건넸다. "어디 아파?" "정말 괜찮아요." "근데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그. 그게......" 내 물음에 그녀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늘따라 정말 이상하네. "저, 저분하고는 무, 무슨 사이......세요?" "누구?" "저분." 예은은 그러면서 혜경을 조심스럽게 가리켰다. 무슨 사이긴? 방금 만난 사이지. "그냥, 방금 만난 사이." "트, 특별한 사이는 아닌가요?" "특별한 사이가 될 수 있나?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 데...... 그리고 혜경이는 특별히 우리에게 정보나 도움을 주 기 위해 파견된 길드원이라고. "그, 그래요?" 그제야 목소리에 힘이 들어왔다. 왠지 귀엽다. "물론!" "다, 다행이네요." "뭐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뭐, 아무것도 아니라니 상관없나? 그나저나 예은이 다시 기 운을 차려서 다행이다. 그때 혜경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물었 다. "윤현아, 네 동료들은 전부 다 비밀이 많아 보이네." "......" 비밀이 많을 수밖에, 한 명은 연예인이고 한 명의 해골뼈다 귀니까. 뭐 그래도 동료가 되었는데, 숨기기는 좀 그렇다. "예은아, 후드 벗어." "아, 네." 내 말에 조심스레 머리를 덮고 있던 후드를 벗는 예은. 그 리고...... "......차예은!!" 혜경이 비명을 질렀다. 물론, 예상했다. 그녀의 반응 정도는 말이다. 혜경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자 신의 두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지, 진짜 차예은이야!" "......" 혜경의 과잉 반응에 예은은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혜 경이 예은의 두 손을 붙잡으면서 말했다. "실제로 볼 수 있을 줄이야. 정말 몰랐어요." "아, 안녕하세요." "이렇게 엄청난 아이돌 가수를 내 눈으로 직접 보다니, 믿 어지지가 않아요!" 그녀는 진정 감격해 하고 있었다. 정말로 말이다. 그런데 혜경 정도의 미모라면 아주 가뿐하게 탤런트쯤은 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데, 흐음...... 그때 갑자기 혜경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러더니 불쑥 질문을 던졌다. "네가 어떻게 차예은하고 같이 다니는 거야?" "......글쎄, 좀 사정이 있어서." "헤, 윤현이 능력 좋은데?" "절대 그런 사이는 아니라네." "그래? 뭐 그래도 이렇게 같이 다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거지!" 그녀는 그렇게 재잘거리면서 예은의 머리카락을 만져 보거 나 얼굴도 만져 보는 등 별짓을 다했다. 진짜 그렇게 감격이냐? 나는 잘 모르겠단 말이야. 그나저나 예은은 이미 소개해 주었으니 다른 멤버를...... "혜경아." "응?" "또 한 명 소개해 줄게." "아, 맞다!" 내 말에 혜경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가르 쪽으로 고개 를 돌렸다. 좀 놀라겠군. "가르, 후드 좀 벗어." "알겠습니다, 형제여."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르는 후드를 벗었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혜경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저는 착합니다." 자기 입으로 지가 착하다고 하다니, 뻔뻔하기도 해라. "저처럼 천사 같은 존재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뻔뻔한 녀석이다. 어디 리치랑 천사를 비교하느냔 말이다. 비교가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만이 아 니겠지? 스르륵. 그때 뭔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혜, 혜경아!!" 나는 쓰러져 가는 혜경에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 그녀를 받아 들었다. 그대로 몸이 굳은 채 기절해 버린 것이다. "으윽." "괘, 괜찮아? 혜경아?" 나는 서서히 눈을 뜨는 혜경에게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설마 가르를 보고 기절할 줄이야...... 그만큼 놀랄 줄은 생 각지도 못했다. "유, 윤현아." "......응." "바, 방금 내가 뭘 본 것 같은데." "리치야." "리......치?" "응." "......" 리치라는 말에 입을 다무는 그녀. 그렇게 약 몇 분이 지났 을까? 그녀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리, 리치가 어떻게 동......료......?" "그게...... 아주 심오하고 복잡한 스토리가 숨어 있거든." "그, 그래?" "응." 그리고 그녀는 다시 침묵했다. 많이 놀랐구나. "나 사실 유령 같은 것에는 질색하거든." "......그래서 기절을?" "응." 어떻게 보면 해골뼈다귀도 언데드, 유령 같은 비현실적인 몬스터에 속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가르는 후드를 잘 안 벗어. 그리고 저 녀석, 무섭지 도 않아. 닭대가리거든." "닭대가리?" "응. 내가 여탕에 들어가게 된 것도 다 저 녀석 때문이지." "......?" "텔레포트 마법을 제대로 못 사용해." "에?" "그래서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할 때 랜덤으로 떨어지지. 너 도 알다시피 블린들에게 쫓기다가 어쩔 수 없이 사용했는데, 그게 여탕이었어." "......" 내 말에 그녀는 약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사실이다. 100퍼센트 순수한 진실. "저, 저기 오빠." 그때 나를 부르는 예은의 목소리. 왜 그러지? 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를 부른 예은 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당황해 하는 예은의 모습이 있었다. "예은아, 왜 그래?" "가, 가르. 씨가......" "가르가?" "저...... 심각하게 좌절...... 하고 계세요." 그 말에 나는 가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비스듬히 주저앉은 채 흐느끼고 있는 가 르가 있었다. 재 뭐야? "흐흑! 저처럼 순수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리치를 보고 기절 하시다니, 너무하십니다. 흑흑." "......" "......" "......" 가르의 한 마디에 모두 경직됐다. 앞의 순수하고 착하다는 것까지는 조금 이해할 수 있겠는 데, 아름답다는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 다. 어딜 봐서 해골뼈다귀만 남은 리치가 아름답다고 자부하는 거냐? 그건 아름답다는 말에 대한 모독이자 치욕이다. 한편 흐느끼는 소리를 내면서 절망하는 가르를 본 혜경이 그 모습을 보고 약간 미안했는지 그에게 말했다. "저, 저기......" "흐흑." "제, 제가 초면에 실례를...... 죄송해요." "흐흑." "그러니까 제가, 음......" 사과는 하고 싶어 하는 듯한데, 가르가 너무 무서워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듯싶다. 정말 답답할 것이다. 이럴 때는 내가 나서야지. "야, 가르. 궁상 작작 떨고 일어나." "지금 가엾은 저를...... 핍박하시는 겁니까?" 지금 뭐라고? 핍박? 허어, 어이없다. 남들이 들으면 진짜로 인간이 리치를 핍박 한 줄 알겠네. 나처럼 자상하고(?) 나긋나긋하게(?) 대해 주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난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뒤에 있는 예은과 혜경 몰래 주먹 을 불끈 쥐어 보였다. 추태 그만 보이고 당장 일어나라는 내 친절한 배려였다. 그러자 가르는 즉각 반응을 보였다. "알겠습니다!" 다음 순간 바로 몸을 일으킨 것이다. 하아, 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저, 저기 부탁이 있는데." "네?" 그때 내 귀에, 데인과 혜경의 대화가 들려왔다. 부탁? 나는 얼른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무슨 자기 집이라도 된다고 착각한 건지,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눈을 감고 있는 데인이 있었다. 물론 그런 데인의 행동에 혜경은 무척 당혹에 하는 모습이 었다. 데인의 말이 이어졌다. "밟아 줘." "네에?" "그 곱고 고운 다리로 나를 밟아 줘. 하아, 하아, 하아." "......" 혜경은 더욱 굳어 버렸다. 나는 차마 그녀의 얼굴을 보기 민망했다. 하아, 정말 그랬 다. 난 완전히 굳어 버린 그녀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고, 그런 다음 진심으로 사과했다. "정말 미안, 좀 충격이 클 거야." "......" "할 말 없다." "괘, 괜찮아. 조, 좀 독특한 도, 동료들이네." 너무나도 당황한 탓인지 말까지 더듬었다. 정보를 다루는 조직에 속해 있기에 별별 일을 다 겪어 봤을 테지만, 지금의 상황에 도저히 적응이 안 돼 보였다. "아이잉, 어서 밟아 줘. 힘차게." 그때 또다시 들려오는 데인의 목소리. 그 말에 나는 싱긋 웃었다. 그래, 밟아 주마. "데인." "헉!"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면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데 인이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렇게 원한다면 밟아 주마." "돼, 됐어! 사, 사양할게." "아니, 사양하지 않아도 돼. 하하하. 하하하." "데, 데인 살려!!' "거기 서!!" "으아악!!"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데인과, 그런 그를 잡기 위해 필사적 으로 쫓아가는 나. 뭔가 묘한 느낌이야. "괘, 괜찮으세요?" 예은은 너무나 놀라 굳어 버린 혜경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제야 약간 정신을 차리는 듯한 혜경. 그녀가 예은 을 보고 말했다. "저, 정말 독특한 파티네요." "그렇긴 해요." "최고의 아이돌 연예인에다, 리치에다, 마조히스트까 지...... "그, 그래도 윤현이 오빠가 있으니까." "좋아해요?" "네에?" 혜경에 물음에 너무나도 놀라 저도 모르게 소리치듯 반문 하는 예은. 그런 그녀의 반응에, 혜경이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 다. "헤, 그냥 물어봤어요. 뭘 그렇게 놀라요? 아 참, 내가 한 살 많으니 말 놓아도 될까요?" "무, 물론요." "예은이한테 말을 놓다니, 꿈같은 일이야. 예은아." "네?" "나는 원래 첫눈에 반한다는 걸 절대로 믿지 않았거든." "......" "그런데 그 고정관념이 오늘 완전히 깨져 버렸어." "그, 그걸 왜 저한테......?" "그냥. 너에게만 말해 주고 싶어서." 그 말을 들은 예은은 가슴이 쿵쾅거림을 느꼈다. 분명 그냥 내뱉은 말은 아니다. 뭔가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었다. 그녀 를 불안하게 만드는 어떤 의미가...... "휴우, 미안. 기다렸지?" 정리를 끝낸 나는 다시 해맑은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그런 나를 본 혜경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아, 아까 그분은?" "잠시 땅바닥과 사랑의 대화 중?" "......?" "신경 쓸 필요 없어 자자, 그럼 이제 드워프의 도시 데루스 로 출발해 볼까?" 나는 그 말과 함께 씨익 웃었다. 그런 내 말에 혜경은 갑자 기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라? 갑자기 왜 저런 반 응을? "저기, 윤현아. 깜박하고 말 안 한 게 있는데......" "......?" "돈 좀 있어?" "돈? 빌려 줘?" "아니, 그게 아니라......" [드워프의 도시 데루스] 혜경이 내게 전해 준 정보는 놀랍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지금 우리가 향하는 드워프의 도시 데루스는 스타라스 산 맥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가려면 게이리즈라는 마을을 거 쳐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다. 게이리즈라는 마을로 향 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물론 4대 도시 중 하나인 나케리안 에서 가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랜드 크룬에서 게이리즈로 가는 길은 단 하나뿐이다. 우리가 블린 무리와 마주친 곳은 게이리즈 마을로 가는 길 목. 바로 그곳이었다. 그러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블린들이 조용해지기까지 그 길목은 완전히 막혀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단 한 가 지, 가는 길이 있단다. 그것은 바로 지하. 정확히 말하면 지하철과 비슷한 교통수단이었다. 물론 아직 시공 단계여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혜경은 잘 알고 있었다. 뭐, 도둑 길드원인 그녀로서는 당연한 일인지 도 모르지. 어찌 됐든 미완성 지하철이지만 몇 명 정도는 스타라스 산 맥으로 충분히 갈 수 있단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게 남아 있 다. 그건 바로 돈. 영어로 말하면 머니. 상당히, 아니 더럽게 비싸다. 한 사람당 3골드에 육박하는 비용, 그것이 바로 문제였다. "미안, 미리 말하지 못해서." "......아니야. 나 돈 많아, 하하하."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어 보았지만 말과는 달리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에는 제법 있었는데, 단숨에 전 재산이 파탄 날 지도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렇다고 폼 안 나게 돈 없 다는 걸 내색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찌 됐든 우리는 그 지하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 혜경 의 도움으로 지하에 들어왔다. 광장 근처에 있는 관계로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나저나, 정말 괜찮아?" 혜경이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대 답했다. "그럼, 그럼. 너랑 예은이는 먼저 타고 가. 우리는 먼저 해 야 할 게 있어서. 뒤따라갈게." "으음." "아 참. 그리고 오늘은 우리 기다리지 마. 로그아웃하고 편 안하게 쉬어. 그런 다음 내일 곧바로 드워프의 도시로 출발하 는 거야. 오케이?" "뭐, 그렇다면 우리 먼저 갈게. 너무 비싼 요금 내게 해서 정말 미안해." "아냐, 나 돈 많다니까. 하하하." 나는 미안해 하는 혜경에게 그렇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 고 그녀들을 지하에 있는 교통수단, 미니 지하철에 태웠다. 한 너덧 사람은 들어갈 만 한 크기였지만, 제법 편해 보이 니 뭐. 그렇게 그녀들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지하철을 탄 채 맹렬히 사라졌다. 그녀들이 사라지자 나는 주저앉고 말았 다. "크윽! 내 6골드." 내 전 재산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엄청난 금액이 단 한 번 에 빠져나갔다. 하지만 블린 수천 마리를 상대로 미친 짓 하는 것보다는 이 게 현명하지. "형제여, 그럼 볼일 보시고 뒤따라가도록 하죠." "응, 그러자." 내 뒤에 있던 가르와 데인이 너무나도 천진난만하게 말했 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착각하지 마." "......?" "......?" "나 볼일 없거든." "그, 그럼 왜?" 그르가 내 말에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돈 아껴야 되니까." "서, 설마?!" 내 말의 의도를 눈치 챘는지 데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 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저 빛나는 태양, 아니 여기는 지하니 까 빛나는 불빛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뛰어가는 거야! 저 불빛을 향해!" "마, 말도 안 됩니다!" "그, 그래. 말도 안 돼! 지하철로도 4시간이나 걸리는 거리 를 달려가다니!!" "근데, 돈이 없어." "......" "......" ......나라도 뛰어가고 싶겠냐? 지하철 타고 4시간 거리를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돈 이 없으니까. "자, 체력은 국력이야. 모두 힘내자!" "......" "......" 나는 그 말과 함께 선두로 지하철 레일을 따라 뛰기 시작했 다. 아, 돈 없는 자의 서러움이라고나 할까? "헉, 헉, 헉." "헉, 헉, 헉." "헉, 헉, 헉."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힘들다. 그것도 많이, 아주 끝내 주게 힘들다. 실제로 지하철 타고 4시간 거리를 마라톤으로 뛰어가는 것 자체가 불순한(?) 의도였던 것 같다. 그만큼 지금 우리는 초주검 상태라는 거다. "나, 나 못 달려." "털썩. 데인이 바닥에 쓰러졌다. "저, 저도 한계입니다." 같이 쓰러지는 가르까지...... 하지만 난 그들은 탓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나로서도 저들과 마찬가지로 주저앉고 싶었으니까. 도대체 갑자기 왜 달리기 상황으로 변하는 거냐!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모두 일어서. 저 밝은 태양을 향해 달리는 거야!" 난 오른손을 번쩍 든 채, 만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할 법한 멋진 대사를 외쳤다. 하지만 내 이런 외침에 초를 치는 두 존 재가 있었으니...... "태양이 어디 있어?" "맞습니다." "......" 없기는 하다. 이런 땅굴에서 태양을 찾는 건 좀 그렇군. 그럼 바꿔서 말 해야겠다. "저 밝은 불빛을 향해 달리는 거야!" "싫어!" "그렇습니다. 힘듭니다. 저희도 타고 가요, 형제여." 하지만 이런 내 사랑의 외침은 통하지 않았다. 반응이 영 시큰둥하다. 에잇! 나는 그런 그들의 반으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몰라, 몰라. 일단 쉬고 보자. 아이고, 나 죽네. 드 워프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뒈지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 겠다. 그만큼 장거리 마라톤은 죽도록 힘들다. 헉, 헉. 제길! 돈 없는 게 이렇게 서러울 줄이야. 하지만 우리는 힘을 내서 다시 달려야 했다.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지하철 레일 위에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한 마디로 골인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 진짜 죽겠어." "저, 저 죽습니다! 형제여." "나도 죽겠어!!" 우리는 어기적어기적 걸으면서도 온갖 절규를 해 대고 있 었다. 그만큼 힘들어 돌아가시겠다. 이제 눈앞에는 별이 보이고, 달도 보인다. 으아아악! 그렇게 고통에 찌들아 마라톤을 한 지 약 4시간. 이제 한계 다!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더 이상 못 달리겠다. 털썩. 털썩. 내가 주저앉자 곧바로 가르와 데인도 동시에 주저앉았다. 우리는 그렇게 지하철 레일 위해서 궁상을 떨고 있었다. 아, 돈이 없다는 게 이리도 한이 될 줄은 몰랐다. 도대체 지 하철 레일 위에서 이 무슨 궁상이냐? 솔직히 지금 마음 같아 서는 내 전 재산을 털어 지하철 타고 편하게 가고 싶기는 한 데, 문제는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간단하게 말해, 4시간을 또 뛰어서 돌아가야 된다는 소리다. 암울하다. "......형제여!" "뭐야?" 그때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가르를 보고 난 시큰둥하게 말 했다. 이 자식, 기운도 없어 죽겠는데 왜 그리 소리치는 거냐?! "저, 저기!" "저기 뭐?" "저기를 보십시오!" "......?" 가르는 흥분까지 하면서 말했다. 갑자기 왜 저래?! 난 가르의 말에 따라, 녀석의 앙상한 뼈다귀가 가리키는 방 향으로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저, 저건!!" 나도 가르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니, 같은 반응일 수밖 에!! "심봤다!!" 그렇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적당한 짐을 옮기기 위해 제작된 짐마차였던 것이다. 물론 엄청나게 작다. 성인 남자 세 명이 타기에는 비좁아 보이지만, 그래도 달려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자, 타는 거다! 그리고 노를(?) 저어 가는 거야! "야, 비좁잖아!!" "그, 그래도 자리가......." "헉! 좁아." 아수라장이었다. 크기는 가로세로 6미터 정도인데, 세 명이서 타려니 정말로 좁아터질 지경이었다. 생각 외로 타 보니 더 힘들다. 딱 봤을 때는 힘들긴 해도 들어갈 것 같기는 했는데, 직접 들어가 보니 수월하게 들어가지도 않는다. 한 마디로, 마구 숨이 막힐 정도다. "야, 거기 앉지 마. 자식아!!" 아둥바둥. 우리는 이 말밖에 어울리는 단어가 없을 정도로 발악을 해 댔다. 그렇게 약 몇 분이 지난 후 이런저런 다툼을 끝낸 우리는 드디어 그 비좁아 보이는 짐마차에 탑승을 끝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건 바로...... "출발은 어떻게 하냐?" 레일에 바퀘를 맞춰 끼워 넣기 했지만, 출발시킬 수단이 필 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온 나무 막대기. 내 눈이 번쩍거렸다. "젓자!"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가 아니라 열심히 젓는 거다!! 휘이잉!! 지금 우리가 탄 짐마차는 고속열차용이었다. 정말 빠르다. 왜냐. 수동으로 달리는 마차였으니까. 내가 고안해 낸 방법은 바로 튼튼해 보이는 막대기를 마주 휘저어서 그 힘으로 쭉쭉 뻗어 나가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런 방법이 과연 먹힐까가 의문이었지만, 다행이 아주 잘 먹히고 있었다. 이렇게 쭉쭉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저어라, 저어라!!" 나는 쉴 새 없이 막대기를 휘저으면서 가르와 데인에게 외 쳤다. 그런 내 말에 가르와 데인은 더욱 속도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휘이잉!! 휘이잉!! 엄청난 속도다. 거짓말 안 하고 시속 80킬로미터? 그쯤은 되어 보일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계신다. 이 정도 속도라면 1시간 후면 목적지 도착이다. "헉, 헉! 힘듭니다. 형제여." "그, 그래. 좀 쉬었다 가자." 그때 갑자기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둘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금 쉬고 좀 더 효율적으로 가 는 게 좋은 것이다. "그럼 휴식!"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은 곧바로 막대기를 놓아 버렸 고, 난 경악했다. "이 등신들아, 막대기를 버리면 어떡해!!" "......" "......" 아직 가속도가 붙은 상태로 계속 달리고 있는 짐마차 밑으 로 떨어지는 막대기들...... 으아악!! 다음 순간 내 비명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냐? 65도 각도로 기울어 있는 레일. 왜, 왜, 왜? 하필 왜 이런 상황에서 65도 각도로 기울어 있는 거냐?! 묻고 싶다. 이걸 만든 녀석에게!! "헉!" "헉!" 그때 급하강하는 레일을 본 가르와 데인이 당황해서 비명 을 질렀다. 나는 외쳤다. "죽기 싫으면 짐마차에서 떨어지지 마!!" "아, 알겠습니다!! 형제여." "으아악!" 우리는 그 외침과 함께 짐마차에 매달렸다. 짐마차 타고 가다가 추락사로 뒈지는 건 정말 사양이다. 으아악!! 시속 140킬로미터다. 그만큼 급하강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놀이기구야?!" 갑자기 왜 이런 상황이 되어 버린 거냐! 누가 나한테 설명 좀 해 줘!! "으아아악! 리치 살려!!" "나 살려!!" 마구 덜컹거리면서 지금이라도 엎어질 것같이 불안하게 운 행되는 짐마차. 하지만 우리가 의지할 것은 그 짐마차 하나 다. 만약에 이 짐마차가 속도를 못 이겨 훌라당 뒤집어지면, 우 리는 그대로 저세상으로 간다. "시, 신이시여, 살려 주이소!!" 가르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직 죽기에 난 너무 멋진데." 잠깐! 데인, 여기서 그런 대사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 는데? 그 순간이었다. 휘이익!! "......진짜 으아악!!" 짐마차는 점점 가속도가 붙어 이미 160킬로미터를 돌파했 다. ......제발 살아남았으면! 헉! 헉!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내 옆에는 거의 반 시체처럼 누워 있는 가르와 데임이 있었다. 우리, 살아 있는 거냐? "......다시는 타고 싶지 않아." "동의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 거짓말 안 하고 반나절 만에 우리는 시체가 되었다. 아니, 가르야 원래 시체니까 시체가 되어 버렸다는 말에는 해당되 지 않겠지만 나와 데인은 정말로 시체가 되었다. 그만큼 살벌한 짐마차 여행이었다. "그래도 살았으니 정말 다행이다." 그런 어이없는 짐마차를 타고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걸 보 면, 명이 길기는 긴가 보다. "기도합시다." "......" "......" "이럴 때 기도하는 겁니다." "왜?" "그야 마음의 안정을 위해......" "귀찮아." "믿음이 부족하군요." "혼자 많이 해라." 나는 계속해서 전도하려는 가르의 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저 녀석의 전도는 아무리 맞아도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인 병 이다, 병. 그 순간, 내 눈에 보이는 한 가지...... 물건(?)이 있었으 니...... 그건 바로 알이었다. 가르의 후드 안에서 살짝 모습을 드러 낸 것이다. "어, 어라? 그 알 아직도 가지고 있냐?" "물론요. 신께서 내려 주신 알입니다." "......" "엄청나게 대단하신 분이 태어날 겁니다." 그 말을 듣는 난 왠지 불안해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웬 이상한 녀석이 태어나서 내 일을 훼방 놓지 않기만을 빌 고 또 빌 뿐이다. 그나저나, 저거 부화나 가능한 알이긴 한 거 냐? "저, 저기 오빠. 하, 하루 사이에......" 해골계에 입문한 나를 본 예은은 얼마나 당황했는지 말까 지 더듬고 있었다. 물론 저런 반응, 충분히 이해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단 하루 만에 가르와 같은 해 골이 되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유, 윤현아!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예은에 이어 혜경도 당황한 듯 내게 말을 건넨다. 난 그런 그녀들의 반응에 머쓱해져서 말했다. "어제 약간 문제가 생겨서." "문제요?" "문제?"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완벽하게 일심동체가 되어서 묻는 그녀들에게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좀 심오한 내용이어서 설명 불가야. 미안." "아니에요." "미안하기는, 괜히 물어본 내가 미안하지." 둘 다 내 말에 이렇게 대꾸해 주신다. 아, 너무 감격적이야. 사실 어제의 일을 말하기는 너무나도 난감하다. 돈이 없어서 마라톤을 계획했다. 마라톤 하다가 지쳐 죽을 뻔하던 중 우연찮게 짐마차를 발견했다. 겨우겨우 짐마차에 탑승을 끝내고 이동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급하강하는 바람에 이 꼬락서니가 됐다고 말하기가 정말 난감하다. 드워프들이 산다는 스타라스 산맥에 도착하다, 일사천리였 다. 우리 파티에는 최강의 정보력을 가진 그녀가 계신다. 그런 까닭에 아주 수월하게 드워프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사실 그 짐마차를 타면서 경험한 스펙터클한 기분을 제외 하면 너무나도 평범한 여정이었다. 물론 혜경이 덕택이지만 말이다. 그녀의 정보력은 정말로 대단했다. 단숨에 드워프들을 찾 아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분이 바로 드워프들의 장로다. 땅딸막한 키에 엄청난 포스를 내뿜고 계신 아저씨의 얼굴 에는 수염이 가득했고, 등 뒤에는 거의 자기 몸만 한 도끼가 매여 있었다. "반갑네, 내가 이곳의 장로인 나이투라고 하네." "반갑습니다. 마에스트로라고 합니다." "그래, 지금 자네가 준 편지는 잘 읽어 보았네. 그 영감탱이 가 오리데오콘을 달라고 하는 걸 보니, 아마도 자네에게 무기 를 만들어 줄 것 같은데." "아, 뭐......" "자네는 엄청 축복받은 걸세. 그 영감탱이, 성격은 고약하 지만 실력만으로는 우리 드워프를 뛰어넘는 엄청난 존재니까 말이야." 저도 동감합니다. 성격이 개같이 보이기는 하지만, 실력은 정말 좋아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워프의 장로가 인정을 할 정도니, 정말 예사롭지 않은 실력이긴 한가 보다. "지금 오리데오콘을 주겠네. 잠시만 기다리게. 키안, 오리 데오콘을 가져와라." "네, 장로님." 장로의 말에 그의 등 뒤에 있던 드워프가 고개를 끄덕이면 서 금방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오리데오콘을 받는다! 드디어 목적 달성이다. 이제 이것만 영감탱이에게 갖다 주 면 내 초절정 맹독 빙결 메이스는 무적이 되는 거다. 크하하 하! 내가 그렇게 앞날을 생각하면서 히죽거리고 있을 때, 키안 이라 불린 드워프가 이상한 모양의 무언가를 들고 나타났다. 지금 10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사각형의 물건이었다. 색깔은 검붉다고 해야 하나? "자, 오리데오코이네." 장로가 카안이라는 남자에게서 그 이상한 물건을 받은 뒤 내게 넘겼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생각하던 오리데오콘의 모습이 아닌데? 물론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검붉은 색이라니...... "오리데오콘 맞네. 전혀 다듬지 않은 천연 오리데오콘이라 서 이런 거네." "아." "어차피 그 영감탱이가 다루는 게 더 나을 테니. 그대로 가 져가는 게 좋을 걸세." "네, 감사합니다!" 나는 그 말과 함께 오리데오콘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이것이 오리데오콘의 전혀 가공되지 않은 모습이라니 조금 신기하기도 하다. [고블린 마을 습격 사건] 근데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도 많이 그건 바로 어떻게 다시 그랜드 크룬으로 돌아가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냥 간단히 돌아가지, 뭐'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그 극락 공포 체험을 해 야 했다. 물론 안전하게 돌아가는 방법도 있긴 하다. 돈, 다시 말해 '머니'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금 내 수중에 있는 돈이라고 해 봤자 7골드가 조금 넘는 다. 이 돈으로는 두 명밖에 탑승할 수 없다. 그러면 전과 같이 예은과 혜경만 태워 보내고 우리는 또다 시 정처 없이 길을 나서야 한다. 하지만 절대로 사절하고 싶다. 절대 말이다. 다시 그런 채 험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머니' 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럼 여기서 돈을 얻는 방법을 정리해 보자. 첫 번째, 근처를 배회하면서 혹시 한 분이라도 떨어졌는가 하고 살피고 다닌다. 두 번째, 근처에 있는 몬스터들을 잡는다. 하지만 문제는 몬스터들은 직접 돈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 퀘스트를 해서 돈을 번다! 방법이라고 해 봤자 세 번째 방법밖에는 쓸 만한 게 없었 다. 그래, 퀘스트다. 퀘스트로 돈을 벌자! 일단 퀘스트를 하기 위해서는 대장, 한 마디로 보스를 만나 야 한다. 이곳 보스하고 하면 내게 오리데오콘을 넘겨주신 그 분, 즉 이곳 드워프 마을의 촌장이다. 그런 관계로 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분을 찾았다. "무슨 일인가?" 드워프 장로가 나를 보고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나는 그의 물음에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돈 좀 벌게 해 주십시오!" "......" "제가 사실 좀 가난합니다. 무슨 일이라도 한 테니 돈이 필 요합니다." "돈 말인가?" "네!!" "흐음......" 내 말을 들은 드워프 장로는 자신의 수염을 살짝 쓰다듬었 다. 나는 최대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발 무슨 일이든 시켜 달라고. 한편 이런 내 눈빛이 약간 부담이 되었는지 고개를 살짝 돌 리는 드워프 장로.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눈을 반짝이면서 바 라보았다. "험험. 알겠네만, 자네가 할 수 있을지......" "저, 정말요?" "한 가지 자네가 할 만한 일이 있기는 하네." "무, 무슨 일인데요?" "이 일만 처리해 주면 50골드를 주겠네." "5, 50골드?!" 5골드도 아니고 50골드다. 50골드면 난 진짜 재벌이 된다. 으아악!! 나는 당장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외쳤다. "어떤 일이든 아주 잘 처리해 버리겠습니다. 하하하! 하하 하!" "정말인가?" "물론입니다." "그럼 믿겠네." ...... 그러나 나는 잠시 후 후회해야 했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어야 했다고 말이다. "......" "......" "......" "......" 내 앞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동료들, 할 말 없다. 저들을 저렇게 침묵에 잠기게 한 원인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였으니까. "돈에 눈이 멀어서......" "저, 저는 괜찮아요." "나도 괜찮아, 그,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저는 괜찮지 않습니다, 형제여." "무책임한 인간!" ......저 자식들을!! 미소녀 두 분은 괜찮다면 되레 위로하는데, 저 리치랑 변태 녀석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분명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난 예은과 혜경에게만 미안할 뿐 너희 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하나도 없어서 말이다. 그나저나 내가, 그리고 저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퀘스트- 고블린 마을을 습격해서 모두 부숴 버리십시오. 원래 드워프가 사는 마을을 고블린들이 습격해 보금자리를 뺏은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곳에는 다양한 광석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 관계로 드워프의 장로는 그곳을 꼭 되찾고 싶어 합니다. 보상: 50골드 내가 장로에게서 받은 퀘스트다. 돈이라는 말에 넘어가서 이야기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사실 고블린과 고블린 마을의 포스는 엄연히 다를다. 고블린이라 하면 몇십 마리를 말할 뿐이지만, 고블린 마을 이면 몇백 마리 단위를 말한다. 그런데 내가 받은 퀘스트는 고블린 마을을 부순 후 빼앗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집단 생활하는 애들을, 속된 말로 족쳐야 한다는 말이다. 으아악! "히, 힘내.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고마워, 혜경아." "뭘." 난 혜경의 격려에 그나마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그래, 방법을 있을 거다. 고블린 마을을 습격해서 이기는 방법이...... "없습니다." "절대 없어." "......" 하지만 끼어들어 매운 양념을 뿌리는 자식들. 그들은 바로 가르와 데인이었다. 나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의지적으로 한번 해 보려고 했건 만 저 녀석들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초를 치고 있었다. 크윽. 역시 고블린 마을 습격은 불가능한가? 하지만 보상이, 보싱이, 보상이!! 너무나도 심플하다. 흐흑! "가, 가능할 거예요. 오빠." "정말?" "네." 그때 예은의 한 마디에 나는 눈이 번쩍거렸다. 그래, 미친 녀석들 이야기 들을 바에는 그냥 예은과 혜경의 말만 듣는 게 좋은 것 같다. 작전명-고블린 마을 습격 사건 주목적-고블린들을 쫓아내라. 흐음, 이렇게 적어 놓으니 꽤 멋있는데 말이야. 나는 종이에 직접 써 놓은 문장을 한동안 감상했다. 별다른 의도는 없다. 그저 감상이다. "고블린 전체를 상대하는 건 무리라는 거 알고 있지?" "그건 뭐......" 모르는 일이지. 고블린들은 엄연히 살아 있는 생명체고, 내 상태 이상도 충 분히 걸릴 수 있는 존재다. 게다가 다양해진 스킬과 엄청나게 올라간 레벨. 그것만으로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100퍼센트 장담은 못하지. 혜경의 말이 이어졌다. "고블린은 은근히 부족사회야. 고블린 장로가 그들을 지휘 하고, 그 지휘 아래 협동공격을 하는 거지." 끄덕끄덕. 혜경의 말에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졸고 있는 데인......?! 퍼억! "으아악!" "지금 혜경 님께서 친히 설명해 주시는데, 잠을 자? 이 자 식을 그냥!!" "미, 미안. 너무 피곤해서." "네가 뭘 했는데 피곤해!!" "내가 좀...... 하아, 하아." 물어보기 겁난다. 그냥 안 물어보련다. "저, 저기. 나는 괜찮아. 피곤하면 졸 수도 있는 거지." 그때 나에게 걷어 차여 비운의 주인공처럼 엎어져 있는 데 인 편을 들어주는 혜경 양. 정말 천사구나. 보통 얼굴이 예쁠수록 마음은 못생겼다는 말이 있는데, 예 은과 혜경은 그렇지 않았다. 얼굴은 완전 10점 만점에 100점 인데, 마음도 100점이다. 감격 그 자체야. "이번만은 용서해 주지. 잘 들어, 자식아." "아, 알았어." 나는 데인에게 다시 한 번 윽박지른 뒤 혜경을 바라보았다. 어서 다음으로 넘어가자는 내 표시다. 그런 내 눈빛을 이해한 혜경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런 부족사회를 이루고 있는 그들이기에 단 한 존재만 없애 버린다면 뿔뿔이 흩어질 수 있어." "......단 한 존재?" "응! 그 고블린을 총 지휘하는 고블린 장로, 만약에 그를 없 앤다면 나머지는 패닉 상태, 즉 혼란 상태로 돌입해서 마구 흐 트러질 확률이 높다는 거야." 오! 그럴싸하다. 정말 그랬다. 완벽히 참모의 포스를 풍기는 혜경 양. 정말 감동이야. 우 리 파티에 저런 멋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 다. 지금까지는 웬 미친 녀석들만 있었는데 말이야. "이게 지도야." 그때 혜경이 갑자기 지도 한 장을 꺼내면서 말했다. 지도라고? 거기에는 약간 알 수 없는 그림들이 그러져 있었다. "고블린 마을의 전체 지도야." "헉!" "왜 그래?" "어, 어떻게 구했어?" "헤, 란타스가 구해다 줬어." "란타스?" "아직 소개 안 했어? 란타스!" 끼이익!! 그 순간 위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 내려왔다. 멋지다, 멋져!! 독수리는 아주 우아하게 하강하더니 그대로 혜경의 오른쪽 어깨에 앉았다. 혜경이 독수리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뒤 말 했다. "얘가 란타스야, 헤헤. 보통 이렇게 모르는 곳의 지도를 작 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지." "......" "왜 그래?" "아, 아니 멋져서." "그래?" "으응." 멋지다, 독수리! 저렇게 말도 잘 듣는 데다가 황홀한 정도로 멋진 자태를 가 진 독수리라니, 나도 한 마리 키우고 싶다. 그때 이상하게 갑자기 내 눈에 클로즈업이 되는 한 개의 알. 지난번 가르가 신의 알이라면서 주워 온 그것이었다. 근데 이 느낌은 뭐지? 이 구리구리하고 거지 같은 느낌 말이다. 저 알을 보니...... 그런 느낌이 무지무지 강하게 든다. "왜 그래?" "아, 아니야." 무심코 가르가 성심성의껏 돌보고 있는 알을 보고 흠칫했 다. 내가 왜 이렇지, 정말? "그럼 다시 얘기해도 돼?" "응!" 나는 혜경의 물음에 경쾌한 어조로 대답했다. 내 말에 혜경 은 다시 지도를 이리저리 짚으면서 설명에 들어갔다. "란타스의 말에 따르면, 고블린 장로는 제일 안쪽에 있대." 당연하겠지, 보스니까. 보통 보스 님들치고 앞에 계신 분들 본 적 없다. "우리는 이 고블린 장로를 제가......" "안 됩니다! 암살은! "......" "신의 이름으로!! 아니, 정당하지 못하게 암살이라니요!" 그 순간 발끈하면서 들고 일어나는 가르. 지금 혜경이 하고자 하는 말을 요약하면, 고블린 장로를 암 살하면 나머지 고블린들은 자연히 붕괴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말도 채 끝마치기 전에 가르 녀석이 돌연 암살은 안 된다고 외치고 있다. "암살은 치졸한 것입니다! 신의 이름으로 그런 건 용 납......" 그때 내가 그대로 가르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싱긋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가르를 쳐다보았다. "......하실지도 모릅니다. 아니요, 용납하실 겁니다. 원래 주님도 그런 것 꽤 좋아하십니다, 하하하하." "현명한 선택이야." 나는 급작스럽게 말을 바꾸는 가르의 귀에 대고 살면시 속 삭였다. 만약에 냐가 원하는 대답이 안 나왔으면, 오늘 해골뼈다귀 를 모아 장례식을 치르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럼 일단 우리의 목표는 고블린 장로를 제거하는 거다. 그 놈만 제거하면 나머지 고블린들은 산산조각 날 게 분명하다. 그런데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왜 하나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었지만, 누가 가르쳐 줄 것도 아닌 관계로 패스. 지금 내가 말하는 문제는 한 가지, 너무 단단하는 것이 다. 고블린 장로를 보호하기 위한 전력 배치가 장난이 아니다. 즉, 고블린 장로를 만나기 위해서는 모든 고블린을 처리해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전체와 맞장 뜨는 거랑 다름이 없다. 하아, 어떻하지? 고블린 장로만 제거하면 모든 게 수월해질 텐데, 그 고블린 장로를 제거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배 치다. "아아아이이잉." 그때 심심했는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놀기(?) 시작하는 데인. 저 자식은 어디 도움이......!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가는 기막힌 작전이 있었다. 바로 그거다! 그 작전!! 작전명, 아아! 나 잡아 봐라 미션?! 그래, 그 미션이 가능한 놈은 저 미친 천족 마조히스트밖에 없다. "데인!" "......?" 나의 부름에 데인은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데인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으면서 말했다.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나만이......?" "그래, 너만 가능할 거야. 엄청난 일이지." "헉!" 내 말에 경악하던 데인은 갑자기 얼굴에 홍조를 띤다. 뭔지는 모르지만 자기만 가능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게 분명하다. 단순한 녀석, 가르보다는 똑똑한 것 같기도 하 지만, 내가 보기에는 마찬가지로 닭대가리다. "그래, 데인 너만이 가능해. 그 누구도 할 수 없어, 해 줄 거 지?" "무, 물론. 난 잘났으니까." 크크크! 나는 속으로 사악하게 웃었다. 걸려들었군, 단세포 자식. "으악! 싫어!!" "크크! 넌 벌써 허락했어!" "이, 이렇게 사악할 수가!!" "크크크크! 하하하하." 나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발악해 봤지 이미 지나간 버스다. "사기꾼!" "훗." "악마." "훗." "사탄의 후계자!" "훗!" 내게 아무리 뭐라고 해 봤자 너로 정해졌어. 미끼 말이야, 크크크! 유인하는 역활, 데인. 말이 유인이지 아주 직설적으로 말하 면 미끼다. 크크크. 간단하게 설명 들어가겠다. 일단 데인이 고블린들 전체를 상대로 깔짝거린다. 그 재수 없는 행동을 본 고블린들을 흥분시키면, 녀석들은 당장에라도 데인을 죽이기 위해 열심히 달려들 것이다. 그때 고블린들이 형성한 벽이 얇아지면 가르와 함께 마을 에 들어가서 고블린 장로를 죽인다. 그리고 유유자적 빠져나 간다. 아주 멋진 작전이다. 물론 데인 녀석의 생명은 보장할 수 없는 약간 위험천만한 작전이기는 하지만, 나는 믿는다. 데인을! 저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이 절대로 그를 살아남게 도와줄 것이다. "나, 난 아직 죽기 싫어." "넌 죽지 않아. 그리고 맞는 것도 즐기잖아?" "아, 아무리 그래도 한꺼번에 수백 명한테 맞으면 아프단 말이야!" "그럼 열심히 도망가." "......" "난 널 믿어!" "......" 나는 못한다는 데인을 향해 그렇게 일축했다. 사실 그가 좀 변태, 아니 많이 변태이기는 하지만 그런 점 만 빼면 제법 괜찮은 놈이다. 단 한 번 싸우는 모습을 보긴 했 지만, 그 한 번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잘 알 수 있었 다. 그런 관계로 난 데인을 믿고 이런 과감한 작전을 구상할 수 있었다. 물론 가르도 있다. 하지만 가르는 마법사이기에, 체력적으로 보나 도망 다니 기에는 데인이 적절하다. 물론 나도 있긴 하지만, 난 허약에서 제외했다. "데인, 믿는다." "......" "후후후." 나는 미소와 함께 데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저, 저건 뭐야?" "저 자식......" "왠지 열 받게 생겼어." "맞아." "죽여 버리겠어." 데인이 나타나자마자 고블린들은 흥분했다. 이상했다. 평소라면 이렇게 흥분하지 않는 녀석들인데, 오 늘따라 유독 흥분한다. 자신들 앞에서 뻔뻔스럽게 개폼을 잡 고 있는 데인을 말이다. ".....저 자식을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고블린들은 그 말만 외쳐 대며 그대로 데인을 향해 돌격하 기 시작했다. 데인의 숨은 능력, 사람이든 몬스터든 가리지 않고 화나게 하는 스킬이 발동된 것이다. 한 마디로, 초고난이도의 도발. "......으아악!!" 데인은 마을 안에서 우르르 몰려 나오는 고블린들을 보고 기겁을 하면서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 마디의 외침만을 남긴 채 말이다. "데인 살려!!" "좋아." 생각 외로 너무나도 격렬한 반응이다. 사실 내가 데인을 선택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데인 녀석에게는 이상하게 사람 열 받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재주가 오늘 처음으로 쓸 만하게 발휘되고 있었다. 우르르! 우르르!! 계속해서 마을을 빠져나가는 고블린 무리. ......더럽게 많다. 한 100명 정도면 해 볼 만도 할 것 같은데, 지금 나온 놈들 만 봐도 최소 300명 이상이다. 그리고 분명 마을을 지키는 고 블린들도 안에 있을 것이다. 그걸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그래도 데인이 저렇게까지 줄여 줬는데, 들어가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지 않겠는가? 고블린 마을 습격 사건, 실행이다! 멋지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일단 예은과 혜경에게 정찰을 부탁한 뒤 그대로 발걸 음도 당당하게 고블린 마을에 입성했다. 처음 들어서자 아무 도 없는 듯한 적막감이 밀려왔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땡잡았다! 하지만 그런 내 행복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 안에 들어가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우리를 포위 하는 고블린 형님들 덕분이다. 그들은 말 그대로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멍청한 인간." 내가 왜 저딴 소리를 들어야 하지? 정말 할 말 없다. 물론 나에게 이런 대담한 대사를 날린 놈은 맨 끝 의자에 앉아 있는 고블린이다. 보나마나 저 녀석이 고블린 장로일 테 다. "생각 외로 동족들이 흥분해서 많이 뛰쳐나가기는 했지만, 이런 웃기지도 않는 작전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나, 인간?" "그거 미안하게 됐네요. 웃기지도 않은 작전이라 말입니 다." "크크크, 넌 죽은 목숨이다." "그건 모르는 겁니다." 나는 그 말고 함께 씨익 웃었다. 나는 서서히, 나를 지금까지 있게 만들어 준 메이스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가르와 나를 포위하고 있는 고블린들을 슬쩍 바라보았다. 총 머릿수 약 200 정도. 최소 못해서 100명씩은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가르는 마법사다. 이렇게 포위된 상태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내가 최소 150마리 정도는 처리해야 된다는 얘기 다. "이길 수 있을까, 가르?" "주의 기적이 일어날 겁니다." "그래, 일어났으면 좋겠다. 정말로."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메이스를 다잡았다. 고블린의 레벨이 대충 20대, 내 레벨은 136. 게다가 엄청나 게 화려한 무기와 스킬들이 존재한다. 못할 것도 없다. 해 보는 거다. "쇼 타임!!" 나는 그 외침을 끝으로 그대로 달려들었다. 퍼억! 나는 고블린이 무릎을 밝고 뛰어올라 그대로 오른발로 걷 어차 버렸다. "꾸엑!" 고블린의 짧은 비명이 들려왔고, 나는 그대로 공중에 떠 있 는 상태에서 메이스를 아래로 향했다. "마혈전혈!" 쿠웅! 메이스가 그대로 바닥을 가격한 순간, 순식간에 지진이 일 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나를 둘러싼 고블린 수십 마리의 스턴! "다크 블레스!" -모든 능력치가 200 상승했습니다. 내 몸에 감도는 힘. 그래, 이거다! "다크 스트림!" 끼이익! 주문이 끝나자마자 내 몸에 어둠의 악령들이 깃들었다. 지금으로서는 유일하게 무기 데미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스킬이다. 데미지가 허접 그 자체인 내 메이스의 기본 데미지 를 끌어올려 주는 건 이것밖에 없다. 물론 그랜드 크룬으로 돌아가 그 영감탱이를 만난다면 이 무기가 최강이 될 테지만 말이다. 퍼억! 퍼억! 나는 다크 스트림을 건 메이스로, 스턴에 걸려 움직이지 못 하는 고블린들의 머리를 인정사정없이 직격했다. 머리를 때리자 찜찜하게도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기는 한데,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파이어 월!" 그 순간 가르의 외침이 들려왔다. 파이어 월! 가르, 네가 드디어 해냈구나. 항상 멍청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 이렇게 적절하게 파 이어 월을 사용해 주다니, 이 파이어 월은 이제 상대방이 공 격을 늦출 것이...... "끄아악!" "앗, 뜨거!!" "뭐, 뭐야?!" "으아악! 고블린 살려!" "저 자식을!!" "죽여라!!" "죽여!!"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인간들(?)을 죽여!!" "우어어!!" 늦추기는커녕 더 흥분시켰다. 나는 좌절했다. 가르 자식을 믿은 내가 잘못이다. 보통 파이어 월은 아군의 주변을 둘러싸 적의 공격을 막는 데 사용하는 기술인데, 가르 녀석은 고블린 무리 한가운데다 파이어 월을 시전해 버린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화염의 벽에 몇몇이 타 죽기는 했지만, 그들 을 더욱 흥분시키는 꼴이 되어 버렸다. "죽여라!!" "죽여!!" 가르의 한 방에 눈이 벌개진 채 무대포로 달려오는 고블린 들. 이런 상황을 속된 말로 엿 됐다고도 풀이한다. 제길, 저 고블린 장로에게 접근말 할 수 있다면 라이프 블 리지트와 일루전 크레이저의 조합으로 단숨에 끝내 버릴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최고의 난문제는 내 앞에 무식하게 몰 려 있는 저 고블린들이다. "제길!!" 어쩔 수 없었다. 선택사항이 하나밖에 없다니 꽤나 슬프기는 하지만, 여기 서 죽을 수는 없다. "일루전 크레이저! 라이프 블리지트!!' 순식간에 네 개의 흐릿한 모습으로 변하는 메이스와, 그 안 에 담긴 라이프 블리지트. 이 메이스가 닿는 순간, 상대방의 목숨을 담보로 엄청난 폭 발을 일으킬 것이다. 지금 내가 노리는 게 그것이다. 다행히 저것들은 한데 뭉쳐 있었다. "죽여라!!" 아까부터 죽여라만 외치는 저 녀석. 아무래도 이 무리에서 제법 서열이 되나 보다. 그만큼 생명력도 꽤나 질길 것 같단 말이야! 나는 그대로 강력한 상태 이상 마법이 걸린 메이스를 들고 돌격했다. 누가 영화로 찍으면 꽤 화려한 장면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고블린들을 향해 달려가는 프리스트라. 멋진데? 퍼억!! 콰앙!! 그나마 우두머리급으로 보이는 놈의 면상을 그대로 갈겨 버리자 주변에서 일어나는 폭발. 데미지가 강한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그 후폭풍이 주는 데미지다. "크아악!" "크아악!!" 그대로 라이프 블리지트의 후폭풍에 휘말리는 고블린들. 바로 이걸 노린 것이다. 하지만 이 기술들을 사용하면 마나가 거의 끝장나는데 걱정이 앞선다. 헉, 헉, 헉. 정말...... 제길! 줄어들지가 않아. 라이프 블리지트를 사용했다. 하지만 앞을 가로막은 고블린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지 금 내 상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절망적이다. 마나는 점점 떨어져 가고 체력과 스태미나는 거의 바닥이 다. 고블린 200마리를 상대로 맞장 뜨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아니, 당연한 건가.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이라면 절반 정도의 고블린들이 죽 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고는 더 이상 위안 삼을 것이 없다. 가르도 지금 힘들어서 해롱해롱하는 지경이니까. "......대단한 인간이군." 그때 들려오는 감탄조의 목소리. 고블린 무리의 맨 뒤에서 지시만 해 대던 그 고블린 장로였 다. 고블린 장로는 천천히 고블린 무리를 가르고 폼은 있는 대 로 잡으면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놈들이야. 감탄했어." "감탄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는데." "크크크! 인간,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을 아냐?" "......" 고블린 장로는 재수 없게 웃어 댔다. 저 자식, 왠지 고블린보다는 무지하게 사악한 인간 같은 느 낌이 든다. 그만큼 싸가지가 없어 보인다. "나는 강한 자를 좋아하지. 하지만 너무나도 강한 자는 싫 어해." "그래서 어쩌라고?" "......" "미친놈." "......!!" 내 한 마디에 고블린 장로는 눈을 부릅떴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씩 웃었다. 왜냐고? 이걸 노렸으니까. "등신 새끼." 휘이익!! 나는 그 말과 함께 메이스를 그대로 고블린 장로에게 던져 버렸다. 설마 메이스를 던질 줄은 예상치도 못했는지 고블린 장로 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순간! 콰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불멸의 일진! 고맙다! "......으아악!!" 그리고 고블린 장로에게 빙결과 중독 표시가 나타났다.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날 버리지 않았다. "자, 장로!" "이, 인간이 무슨 짓을!!" "어, 어떡하지?" "큰일 났다!!" 장로가 맹독에 중독되고 빙결에 걸리자, 고블린들은 당황 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역시 장로가 무너지면 이렇게 되는 구나. "나,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공격하라는 대사를 하고 싶은 거냐? 하지만 미안하다. 그런 말을 하게 내버려 둘 정도로 바보는 아니어서 말이야. 나는 그대로 달려갔다. 그러고 나서 땅에 떨어진 메이스를 주워 들었다. "라이프 블리지트!!" 지금 마나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는 관계로 시전될지 는 미지수다. 제발 시전돼라! 그런데......! -마나가 모자랍니다. 컥! 마나가 모자라대. 제길!! 으아악! 저 자식 거의 다 잡았는데!! 어느새 고블린 장로는 고블린들의 부축을 받으며 다시 뒤 로 이동 중이었고, 난 이 기회를 놓치게 생기자 미칠 것 같았 다. 젠장, 다 잡은 기회를!! -생명력 전환을 배우셨습니다. 응? 뭐지? -생명력 전환- 자신의 생명력을 마나로 전환합니다. ......! 내 앞에 뜨는 창, 생명력을 마나로 전환한다고? 그 말 은...... 나는 웃었다. 이런 행복한 스킬을 이런 상황에서 발견해 낼 줄은 몰랐다. 크크크! "생명력 전환!" 내 외침에, 얼마 남지 않은 생명력이 빠져나가면서 그대로 마나로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난 황급히 퇴각하려는 고블 린 장로는 향해 다시 돌격했다. "마, 막아!!" 고블린 장로가 달려오는 나를 보고 외쳐 댔다. 그런 장로의 말에 반응에 고블린들은 엉성하게 내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소용없다. 나는 내 앞에 있는 고블린의 무릎을 밟고 온 힘을 다해 힘 차게 뛰어올랐다. 그만큼 내 점프력이 좋다는 얘기다! 그리고 열심히 밀집해 준 덕분에 머리를 밟기가 더 좋다. 나는 그렇게 고블린들의 머리를 디딤돌 삼아 밟으면서, 열 심히 후퇴하는 고블린 장로를 추격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 의 잡은 고블린 장로를 향해 라이크 블리지트를 외치면서 메 이스를 휘둘렀다. "라이프 블리지트!" 퍼억!! 콰앙!! 대폭발이 일었다. 여기서 느낀 점인데, 라이프 블리지트는 상대방이 강하면 강할수록 데미지가 더욱 높아지는 것 같다. 일단 라이프 블리지트 자체가 상대방의 생명력을 흡수해 그것을 매개로 폭발을 일으키는 스킬이다 보니, 상대방의 생 명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데미지가 강해진다는 공식은 아마도 맞는 듯싶다. "크악!!" 강력한 폭발과 함께 고블린 장로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내 주변을 살아남은 고블린들이 둘러쌌지만, 그들은 어찌할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고블린 장로 한 마리의 죽음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엄청난 데미지였나 보다. "해, 해내셨군요. 형제여!" "물론!" 가르의 말에 나는 엄지를 치켜세우면서 말했다. 이런 우리 의 반응에도 고블린들은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한 채 우왕좌 왕하기만 했다. 후후! 이걸로 임무 완수? 끼이익!! 순간 저 멀리서 날아오는 독수리 한 마리가 있었다. 독수리? 끼이익! 독수리는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하지만 경계 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저것은 혜경이의 독수리로, 란타 슨가 뭔가 하는 이름을 가진 녀석이니까. 어찌 됐뜬 그 독수리는 그런대로 우아하게 내 어깨에 착륙 했다. ......근데 이 녀석이 왜 갑자기 나한테 달라붙는 게냐? 의아했다. 그 순간 내 눈에 쪽지 한 장이 포착됐다. 그것은 독수리 란타스의 오른쪽 발목에 묶여 있었다. "헉! 이건 그 유명하다던 새로 쪽지 보내기?" 크흠! 약간 무안하군. 그냥 한번 오버해 봤다. 그나저나, 나에게 무슨 말을 전하 려고 이리 급하게 독수리를 이용해서 쪽지를 보낸 거지? 나는 혜경의 의도가 궁금했기에, 발목에 묶여 있던 쪽지를 풀어 그대로 펼쳤다. 아, 글씨도 예쁘네. 큰일 났어! 아까 나갔던 고블린들이 다시 오고 있어!! 어서 도망쳐! 헉! 그, 그 말은 데인이 설마......! 그런 생각이 들자, 새삼 충격적이었다. 데인 녀석이 설마...... 고블린들에게 당할 줄이야...... "으아악! 데인 살려!!" 내 눈이 미친 게 아니라면, 데인 저 녀석 아주 잘 살아 있는 데 말이야. "죽기 싫어!!" 고블린 마을 안쪽을 향해 열심히 달려오는 데인과, 그런 데 인을 쫓는 고블린들. 으아악!! "저 등신 자식, 왜 다시 여기로 끌고 오는 거야!!" "나 살려!!" "......튀어!!" 나는 순간 가르에게 외쳤다. 멍하니 서 있던 가르는 곧 내 말에 반응하듯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장로가 죽어서 멍하니 서 있기만 하는 고블린들을 마구 때려 엎으면서 그대로 뛰기 시작했다. 제길!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어!! 저 데인 닭대가리 자식, 왜 돌아오는 거냐!! 나는 살아 있음에 진정으로 감동했다. 살았어! 그 고블린 무리를 상대로 말이야. ......데인 녀석이 도로 끌고 들어온 고블린들을 피해 도망 다니느라고 정말 죽을 뻔했다. 지난번과 같이 스태미나 과도 사용으로 말이다. 하지만 정말 아슬아슬하게 세이프했다. 휴우...... 그리고, 고블린 마을은 붕괴됐다. 고블린 장로가 죽어 버리자, 나머지 녀석들은 그대로 흩어 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고블린들을 그 장소에서 쫓아 버린 것이다. "이건 보답이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아주 듬직한 주머니를 건네는 드워프를 보고 감동했다. 이 안에 50골드가 들어 있다니! 하하하하! "정말 해낼 줄은 몰랐네." "......" "정말 대단한 자야." "하하." 나는 드워프 장로의 칭찬에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기적이었다. 그 많은 고블린을 상대로 이렇 게 승리를 따 냈으니 말이다. 물론 마지막에는 약간 안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정말 수고했네." "뭘요, 후훗." "이제 그 영감탱이에게 가 보게. 그 영감탱이가 오리데오콘 까지 가져오라고 한 걸 보면 절대로 평범한 무기는 아닐 거 야." 그야 그럴 데죠. 그 할아버지가 자기 입으로 지상 최강의 무기를 만들어 준 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크크! [건방진 피닉스] "구해 왔냐? "네, 여기요." "흐음." 할아버지는 내가 내미는 오리데오콘을 받았다. 그러고는 내게 말했다. "무기도 내놔라." "아, 네." 그 말에 나는 지금까지 나랑 함께해 온 슈퍼 메이스를 건넸 다. 할아버지가 내 메이스를 조심스레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가라." "네?" 역시 괴팍한 영감탱이다. 이곳에 무기 개조하러 오는 사람들, 속 좀 타겠는걸. "윤현아, 유니시스 님의 행방을 찾아냈어." "그, 그래?" "응! 현련의 숲에 계신대." "현련의 숲?" "응.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숲인데, 그곳에 있다는 정보 야." "그건 좋은 정보군." 나는 그 말과 함께 내 앞에 있는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 셨다. 지금 우리는 휴식 중. 말 그대로 휴식 중이다. 어차피 무기 는 내일 완성된다. 그런데...... 그동안 어차피 할 일도 없다. 그래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런데 윤현아, 궁금한 게 있는데." "으응?" 너무나도 눈에 띄는 아름다움 때문에 예은과 마찬가지로 후드를 뒤집어쓴 혜경이 내게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무엇이 든지 물어보라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 무기 개조점에 간 거야?" "왜긴. 무기 개조점이니까." "에? 설마." "......?" "무기 개조점이 여기 한 군데만 있다고 생각한 거야?" ......생각했는데.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혜경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곳 그랜드 크룬에는 총 다섯 개의 무기 개조점이 있어, 그리고 윤현이 네가 간 곳은 괴팍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아 예 없는 곳이야." "......" 컥!! 그, 그런!! 그럼 나 완전 생고생? 아니, 생고생은 아니다. 힘들긴 했지만 어찌 됐든 오리데오 콘을 가져왔고, 그것으로 무기를 개조 중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실력 하나는 엄청나다고 들었으니 행운일지도." 휴우. 그런 혜경의 말에 나는 안심했다. 성격은 개같지만, 역시 실력은 있었던 거야. "저기, 오빠." "왜 그래, 예은아?" "앞으로 어떡하실 거예요?" "앞으로?" "네." 어떡하긴, 앞으로...... "일단 유니시스 님을 찾아서 이 괴상한 글자를 번역한 뒤 유물을 찾는 거야! 그렇게 강해지고 나면, 그 정체불명 단체의 진상을 파헤치는 거지." "아." 내 말에 작게 탄성을 지르는 예은.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정말 귀엽다! 크흠! 나 이 정도면 거의 중증인가? 그렇게 절대 미소녀 두 분과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던 내 눈 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건 바로 알. 지난번 가르가 얻었던, 신이 내려 주었다고 벅벅 우기고 있 는 알이었다. "그거 아직도 갖고 있어? 정말 대단하다." "신의 알입니다." "......이런 말해서 미안한데, 그게 어딜 봐서 신의 알인데?" "저는 보입니다. 마음이 맑고 깨끗하니까요." "그럼 난 마음이 더러워서 안 보이냐?" "......" "그렇게 생각한......거냐?"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내 물음에 가르는 기겁을 하면서 극구 부인했다. 정녕 마음이 더럽다고 생각한 거다. 하지만 잡아 족치기에 는 증거가 불투명하다. 제길! "그나저나 그 알, 부화나 되냐? 난 그게 제일 궁금해." "될 겁니다." "글쎄." 죽은 알인지 부화가 가능한 알인지 궁금하다. "야, 가르. 그 알 좀 줘 봐." "알 말입니까?" "응." "네." 내 말에, 소중히 품고 있던 알을 내게 건네주는 가르. 지금 내가 가르에게 알을 달라고 한 이유는 살아 있는 죽어 있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묵직. 알을 집어 들자 일단 묵직함부터 느껴졌다. 크기는 타조 알 보다 약간 작은 정도니 묵직한 건 당연할지도. 그렇게 요리조리 살펴보던 나. 그 순간!! 찌지직. 알에 금이 갔다. 절대로 내가 프라이가 먹고 싶어서 깬 게 아니라, 지가 알 아서 깨진 거다. 그게 말하는 바는......? 찌지직. 그 순간, 다시 한 번 금이 갔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무 언가가 튀어나왔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저건 뭐냐? 웬 참새같이 생기기도, 매같이 생기기도 한 독특한 놈이다. 온몸이 파란색이까지 하니 신비롭기 그지없다. 다음 순간, 더욱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새의 입에서 인간 의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풋, 내가 나타난 순간 모두 이런 생각했지? 저 잘난 새는 누구일까 하고 말이야." 그딴 생각 한 적 없는데. "소개하지. 난 열라, 열라, 열라 잘난 피닉스라고 해." 이런 미친! 보통 피닉스라고 하면 성스러운 영물로 여겨진다. 아니, 영물 정도가 아니다. 거의 전설적이라고 불린다. 붉 은 날개를 멋지게 펼치면서 붉은빛을 뿌리는 최강의 영물. 또한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리고 그런 피닉스의 깃털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할 정 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어찌 됐든 그런 영물이다 못해 전설이라 말할 수 있는 피닉 스가 미친 것처럼 보이는 이 새라는 게 말이 되나? "내가 좀 잘난 거 알아. 그러니 그만 봐. 내가 무안해지잖 아." "......" "......" "......" "......" 그 또라이 새의 한 마디에 모두 굳어 버렸다. 진짜 보통 또라이가 아니라 완전히 돌은 또라이 새다. 자기 입으로 피닉스라고 하지 않나, 지가 잘났다고 말하지 를 않나. 정말 어이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닉스가 파란색일 줄은 진짜 몰랐는데? "아, 내 몸 색깔에 대한 의문이 많을 거야. 난 변신하면 붉 은색으로 변하거든." "......" "......" "......" "......" 네가 무슨 변신로봇이냐?? 살다 살다 새가 변신을 한다는 어이없는 소리는 처음 듣는 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지금 저 미친 새가 말하는 건 다 구라 다. "못 믿겠다는 눈치군. 그럼 내 장기를 보여 주지. 피닉스 불기!!" ...... 그 순간 자기 장기를 보여 준다면서 갑자기 날개를 퍼덕여 바람을 일으키는 미친 새. 그리고 순간적으로 벗겨지는 후드. 예은과 혜경, 가르의 후드까지 모두 벗겨졌다. "앗." "......!" "......!" "......!" 순간적으로 후드가 벗겨지긴 했지만, 다급히 다시 뒤집어 써서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 취향이야!!" "......" "......" 그대로 미친 새는 곧바로 예은과 혜경의 곁으로 날아갔다. 눈앞에 리치가 있다는 건 전혀 상관없나 보다. 오직 예은과 혜경의 미모만이 눈에 들어온 듯싶다. "어이, 아가씨들. 애인 있어?" "......" "......" "없지?" "......" "......" "아가씨들, 내 타입이야. 하하하." 새가 집적거린다, 그것도 인간 여자에게. 정말 어이 상실이다. 그리고 다시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니, 새가 말을 하고 있 다. 이 무슨 어이없다 못해 황당한 상황인지, 누가 내게 대답 좀 해 줬으면 하는데. "나 피닉스야. 나한테 잘 보이면 내 깃털 줄 수도 있어." "......" "......" 자칭 피닉스라고 우기는 새를 향해, 단 한 마디도 못하고 있는 예은과 혜경, 그만큼 충격적이라는 소리다. 나는 더 이상 그녀들이 고통(?)받는 걸 원치 않았기에, 저 미친 새를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아니, 정확히는 데인에게 눈빛을 보냈다. '데인, 저 미친 새 잡아.' '오케이!' 데인은 내 말에 반응해 슬금슬금 새 뒤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덥석. "으아악! 뭐, 뭐야?! 어디서 남자 놈이 내 귀하디귀한 몸에 손대는 거야!!" "건방진 새." "뭐? 나는 피닉스라고!!" "피닉스든 삼닉스든 내 알 바 아니거든?" "......" "가르, 가자." "저, 저 말입니까?" "그럼 누굴 데려가?" "서, 설마. 그, 그것을......" "할 건데?" "아, 안 됩니다. 신은 폭력을 원치 않습니다!" "너도 당할레?" "저도 가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말에 가르는 급격히 말을 바꿨다. 요새 저 녀석, 꽤나 현명해졌단 말이야. 크크크! 그나저나 이 미친 새를 어떻게 할까? 다른 건 용서해도 예은과 혜경에게 집적거리는 건 절대 용서 못한다. "예은아, 혜경아. 우리 잠깐 어디 좀 갔다 올게." "어, 어디 가세요?" "어디 가?' 궁금한 듯 묻는 그녀들을 향해 나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잠깐, 대화를." "이, 이게 뭐야!! 나, 나 같은 피닉스한테 감히......" "닥쳐! 이 변태 새야." "......" "지금 네 상황을 파악하는 게 좋을 거야, 크크크." "......!" 그렇다. 지금 저 미친 새의 상황을 요약하자면, 나무에 아 주 꽁꽁 묶여 있는 상황이다. 내가 친히 밧줄로 나무에 칭칭 몸을 묶었으니까. 난 그 미친 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야, 미친 새." "난 피, 피닉스다!" 내가 조성하는 공포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지가 피닉스라고 우기는 자식, 그 심지가 대단하다. 그래, 너 피닉스해라. "니가 피닉스건 아니건 상관없어. 너는 아주 중죄를 저질렀 어." "......" "감히 예은이와 혜경이에게 집적거린 죄!" "그, 그건 내가 잘나서......" "네가 잘난 거랑 무슨 상관인데? 그리고 자꾸 피닉스, 피닉 스 하는데, 네가 어떻게 피닉스냐?" "지, 진짜 피닉스야." "그래?" "무, 물론. 변신만 하면......" "변신해 봐." "변신하면 믿어 줄 거야?" "생각해 보고." 나는 거의 반 농담 삼아 말했다. 그런데 우우우웅!! 빛이 나기 시작했다. 곧 붉은빛이 새를 뒤덮었고, 잠시 후 난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피닉스다! 전설의 영물, 그 피닉스가 내 앞에서 나무에 묶인 채 웅장 하게(?) 있는 것이었다. "이제 내 말 믿지?" "......" "약속 지켜!" 나에게 자기 말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새. 하지만 내게도 방법은 있다. "난 생각한다고만 했는데." "사, 사기꾼!!" "크크크." "악마!!" "크크크." "마족!!" "크크크." 피닉스가 뭐라고 말하든 난 그저 웃기만 했다. 그리고 천천 히 진짜 피닉스로 변한 그 녀석에게 다가갔다. 이 녀석이 진짜 피닉스라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지만, 그 렇다고 환영식을 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진짜 피닉스라면 아무리 패도 안 죽겠네?" "서, 설마?!" "크크크." 난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흐흑! 난 더럽혀졌어." 더럽혀지긴. 누가 들으면 이상한 짓이라도 한 줄 알겠네. 땅에 드러누워 흐느끼는 피닉스 한 마리. 이런 모습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전설적인 나를 이런 식으로 대우하다니! 뭐 이딴 파티가 있어!" 피닉스가 불만을 토해 냈다. 하지만 저 녀석이 피닉스건 아니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 주위에는 기도하는 리치라든가 마조히스트 천족 검사라든가 별 이상한 애들이 미리 와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로 사람의 말을 하는 데다가, 왕자병까지 걸린 불 사조 피닉스 정도야 별로 신기하지도 않다. "악마들!" "혀, 형제여. 저는 강제로......" 순간 악마라는 말에 가르가 쩔쩔매면서 변명하려 하자, 나 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런 가르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 게 아닙니다. 자발적이었습니다." "근데, 맞는 것도 좋은데 때리는 것도 행복해!" 데인이 너무나도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는 맞는 것뿐만 아니라 때리는 것도 즐기는 거냐? 그런 단계라면 좀 슬픈데 말이야. "그런데 가르." "네." "피닉스는 비쌀까?" "......" "네 생각은 어때?" "물론, 피닉스 형제는 전설적인 존재니까." "그래?!" 가르의 한 마디에 내 표정은 너무나도 해맑아졌다. 그리고 피닉스는 새 주제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렀다. "저게 진짜 전설적인 놈이 맞긴 하구나." "......" 터벅터벅. "오, 오지 마!"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나를 보고 엉거주춤 물러나는 피닉 스 군. 하지만 오지 말란다고 진짜 안 갈 내가 아니었다. 덥석. "으아악!! 파, 팔지만 말아 줘! 뭐든 다 할게!" "뭐든?" 끄덕끄덕! 피닉스 군은 내 손에 잡힌 채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피닉스를 보고 씨익 웃었다. "그럼 나도 펫이나 키워 볼까?" "......" 피닉스가 펫이라니, 꽤나 멋질지도 모른다. "앞으로 우리의 동료가 될 피닉스 군이라고 해." "......지, 진짜 피닉스예요, 오빠?" "피닉스?" 내가 피닉스를 소개하자 예은과 혜경이 내게 그리 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꾸했다. "진짜 피닉스더라고." "......" "마, 말도 안 돼!" 진짜 피닉스라는 말에 혜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굳어 버 렸다. 그만큼 놀랐다는 의미겠지. "지금은 파란색이지만, 진짜 변신하던데." "......" "......" "물론 피닉스가 변신한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지만." 말 그대로다. 피닉스가 변신하다니. 어느 만화책이나 소설책에서도 보지 못한 사실이었다. 그만큼 생전 처음 알게 된 신기한 사실이다. 사실 난 혜경의 란타스인지 뭔가 하는 독수리가 부러웠다. 그런 내 앞에 등장한 피닉스 한 마리. 물론 잘난 척이 심하고 건방진 피닉스지만, 그래도 혜경의 독수리가 부러웠던 나이기에 이런 놈이라도 일단 참기로 했 다. 그리고 무엇보다 곧 죽어도 피닉스니까, 뭔가 특별한 기술 이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되었다. 그나저나, 내 무기가 완성되려면 앞으로 3일이 남았다. 그동안 뭐 하지? [수학여행] 아, 내가 왜 여기 있는 걸까......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여고다. 물론 좋은 곳이다. 여고라는 데는 말이다. 불법으로 들어온 건 아니므로 오해는 절대 사절이다. 불법은커녕 나는 정당한 이유로 들어왔다. 삼촌의 부탁을 받고 말이다. 삼촌이 내게 던진 한 가지의 제안. 그것은 꽤 파격적이었 다. 자기 수학여행에 따라가기만 하면 50만 원을 주겠다는 파 격적인 제안이었다. 그 누가 수학여행에 따라가기만 하면 50 만 원을 주겠는가? 그만큼 이번 일은 내게는 횡재였다. 그런데...... "......" 꼴을 보니 그냥 주는 건 아닌 듯싶다. "윤현아." "네, 삼촌." "내가 50만 원을 그냥 줄 리는 없다는 걸 알겠지? 라는 말을 내뱉으셨으니까. 이 말에는 아마 심오한 뜻이 들어 있으리라. "난 너의 엄청난 운동신경과 싸움 실력을 잘 알아." "......" "그걸 바로 오늘 써먹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 순간 저 멀리서 우르르 몰려 나오는 여학생들. 모두 교 복 차림이다. 당연한 건가? 어차피 내일이 수학여행이니, 오 늘은 수업을 일찍 마치고 나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는 미리 삼촌에게 설명을 듣기 위해 수학여행 전날, 하루 일찍 도착했다. 여기서 잠깐, 나의 삼촌이라는 분을 아주 짧게 설명하려고 한다. 나이 32살에 노총각, 여교 교사. 끝. 그리고 보니 별로 소개할 것도 없었다. "사실 우리 학교에는 보물이 있어." "......보물이요?" "그래, 보물이지. 너에게도 말하지 않은 보물. 날 귀찮게 할 까 봐 말이야." "......?" 도대체 뭐 때문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너무나도 의아하다. 그 순간이었다. "꺅! 예은아! 역시 아무리 봐도 네 머리카락은 부드럽다니 까." "예은이랑 친구라니 난 복 받았어!!" "귀여워!!" "너무 예뻐." "......" ......예은? 나랑 같이 다니는 차예은? 톱스타 가수이자 최 고의 아이돌 미소녀 가수인 차예은을 말하고 싶은 건가? "그래, 우리 학교에는 차예은이 다니지." "......" "놀라울 거다. 실제로는 처음 보지?" 아뇨, 거의 매일 보고 삽니다만. 예은이가 보물? 물론 보물이 맞기는 한 것 같은데 나에게는 별로 해당되는 상황이 아닌 듯싶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예은 이랑 꽤 친한 사이거든. "그래,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이거다. 우리 여학생들의 보 호. 특히 차예은. 어디서 늑대 같은 놈들이 예은이가 수학여 행을 간다는 정보를 미치 빼냈을 게 틀림없거든. 놈들의 공작 을 사전에 차단하는 거다. 네 싸움 실력으로 말이야!" 어쩐지, 50만 원을 그냥 줄 리 없지. 그래도 예은이 일이니 뭐 상관없나? 다음 날. "꺄악!!" "멋진 남자 만날 거야!!" "아, 나의 마돈나라고 하면서 날 차자하려는 꽃미남들!" "미쳐!!" "생각만으로도 황홀해!!" ......보통 수학여행에 가면 저런 망상에 빠진다. 남자든 여자든 말이다. 수학여행에서 아주 멋진 왕자님 혹은 공주님을 만난다. 정 말 우연치 않게 인연이 되어 둘이 사랑해 빠진다. 그리고 결 국 슬픈 이별의 날에 찾아온다. 하지만 자신들의 왕자님과 공주님은 며칠 뒤 꼭 전학을 온 다. 그리고 해피엔딩. 하지만 실천 가능성은 무지 희박한데 말이야. "어이, 윤현이." "왜요? 삼촌." "너도 혹시 예은이한테 눈독 들인 건 아니겠지?" "......" "노리지 마라. 어차피 저분하고 우리는 격이 다르니까 말이 다." 그것 참 감사한 충고입니다. "그리고 이거." "......?" 삼촌이 내게 견장을 하나 내밀었다. 웬 견장이니? "그걸 어깨에 메라." "......이거요?" "그래, 아르바이트긴 하지만 너도 엄연히 일일교사야." "그런데 촌스럽게 이런 건 왜 하는 건데요." "초, 촌스럽다니!!" "그럼 안 촌스러워요? 이게 뭐예요? '늑대 같은 놈들 오기 만 해 봐라, 다 죽여 버리겠다'라니!" "......" 정말 유치해서 못해 먹겠다. 견장에 써 있는 문장. 그것은 내가 앞에서 말한 그대로다. 왜 이딴 것을 차고 돌아다니라는 거예요? 삼촌? "......전 안 합니다." "......" "그럼 서서히 소개나 시켜 주시죠?" "꺅!! 누, 누구?" "미, 미남이다!!" "탤런트 아니야?" "혹시 예은이 땜에 온 탤런트 지망생?" 내가 소개를 할 겸 여고생들이 가득 찬 버스에 탑승하자 들 려오는 소리들이다. 칭찬이 감사하기는 한데, 무안하다. 이런 여자들만 가득한 곳에서 있으니 말이다. "오, 오빠......?" 그 순간, 중간 자리쯤에 있던 예은의 입이 열렸다. 물론 잔뜩 굳은 채로 말이다. 나는 그런 예은을 향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이따가 설명해 주겠다는 제스처를 해 보였다. 그나저나 이 아르바이 트, 정말 괜찮을까? "오, 오빠가 어떻게......?" 휴게소에 내리자마자 예은이 나를 찾아와 물었다. 평소 별로 당황하지 않은 그녀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학교 수학여행에 갑자기 동참한 나를 보고 엄청 놀란 듯싶다. "아,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요?" "날 지크는 아르바이트." 발그레. 왠일인지, 내 한 마디에 불이 붉게 물든 예은. 귀엽다. 너무나 귀여워! 그때였다. "저, 저기다! 역시 여기 휴게소에 내린다는 정보는 확실했 어!!" "차예은이야!!" "사인 받자!!" "손이라도 잡자!!" 그때, 휴게소 근처 한적한 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예은 과 나를 보고 고함을 지르는 남자 녀석들이 나타났다. 누군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듯하다. 삼촌이 나를 고용한 이유라고나 할까? "......" 우르르 몰려오는 남자 놈들을 본 예은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날 믿으라고!" "아이고." "보, 보디가드가 팬을......" "이, 이럴 수가!!" 땅바닥에 널브러진 남자 열 명. 전부 나에게 한 대씩 맞아서 저렇게 된 거다. 물론 세개 때리지는 않았다. 다리만 살짝살짝 가격해서 주 저앉게 만든 것이다. 물론 저것들이 신고를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엄연히 정당방위다. 무작정 달려드는 남자 녀석들에게서, 가녀린 예은을 보호 하기 위한 정당방위다. "자, 그럼 갈까?" 끄덕. 나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는 예은의 손을 잡고 다시 버스 로 돌아갔다. 다시 생각해 봤지만 정말 괜찮은 아르바이트네, 이거. 경주 파크랜드 1년 전, 즉 2,324년에 완공된 놀이동산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새로 지은 만큼 시설과 놀이기구가 최신 식이다. 수리를 해서 명맥을 이어 가던 에버랜드라든가 롯데 월드를 단숨에 치고 올라설 정도로 시설, 설비가 엄청난 놀이 동산이다. 그만큼 황홀한 곳이기도 했다. 근데 이런 곳에 죽치고 앉아 외롭게 혼자 보내야 하다니, 흐흑. "미, 미안." "왜?"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나기로 했거든." "나, 남자친구?" "......" "진짜야?" 단짝 친구인 지수의 물음에 예은은 말 그대로 벙어리가 되 어 버렸다. 얼굴은 귀까지 빨개졌다. "......이거 완전 톱뉴스인데? 헤헤, 예은이는 사랑이라는 걸 하는구나." "그, 그런 거 아니야." "맞는데." "......" "헤헤, 농담이야. 어서 가 봐, 그분에게." "지, 지수야."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다른 애랑 놀면 되거든." "미안." "괜찮다니까." 그 말에 예은은 지수에게 살며시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의 표시를 했다. 자신이 지수에게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윤 현과 같이 있고 싶은 마음.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스스로도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은 예은이였다. "아이고, 심심해." 정말 심심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자 혼자 칙칙하게 놀이기구 타기에는 뭔가 아니다. 보통 이런 곳에서는 여자들과 데이트를 해야 하 느데 말이야. "그나저나 예은이는 뭐 하려나?" 아마도 지금쯤 친구들과 놀이기구를 타고 있겠지, 그리고 선생님들도 있으니 남자 놈들이 제대로 집적거리지도 못할 테고 말이야. "저, 저기......" "......!"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너무나도 청아한 목소리.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빠, 시간 괜찮으......세요?" "예은아!" 그렇다. 예은이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어 야 할 예은이 여기에 있다니! "시, 실례가 안 된다면 오빠랑 같이 다니고 싶은데......" "......실례라니!!" 나는 그 말에 눈을 번쩍였다. 실례가 되기는커녕 영광이다. 예은이와 놀이동산에서 놀 수 있다니, 이건 너무나도 감격 적이야! "다, 다행이에요." 그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예은. 설마 내가 거절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한숨을 쉴 리 없는데 말이야. 너무나도 순진한 예은의 반응에, 나는 그녀의 오른손에 들 려 있는 모자를 들어 씌워 주면서 말했다. "남자랑 같이 있는 모습 보이면 안 되잖아. 넌 연예인이니 까." "......저, 저는 괜찮은데." "아마도 소속사에서 난리칠걸?" 그걸 위해서라도 일단 예은의 모습은 감추는 게 나을 듯싶 다. 분명 예은은 스캔들 같은 것에 별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그건 그녀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소속사에서는 분명 난리를 칠 것이다. 심지어는 나를 갈아 버리려고 할지도 모른다. 뭐 좀 오버인가? "예은아, 오늘은 정말 재미있게 해 줄게!" "네!" 예은과의 데이트는 너무너무너무 즐거웠다. 너무나 행복하다. 아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니 말이다. "오빠, 정말 즐거웠어요!" 싱긋. 나에게 미소 지으면서 말하는 예은. 나는 그런 예은에게 오히여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천만의 말씀. 내가 더 즐거웠어. 예은이랑 이렇게 같이 시 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 "고마워." "아, 아니에요." 그 말에 고개를 숙이는 예은. 어떻게 사람이 이리 귀여울 수가 있는 건지 누가 내게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근데 궁금한 건, 예은이는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데 가르나 데인, 그리고 그 미친 새 같은 놈들은 어떻게 그렇게 미칠 수 가 있는 거냐? 그게 더 궁금하다. 두근두근. 윤현의 말 한마디에 예은의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윤현의 고맙다는 말 한 마디에 이상하게 너무나도 가슴이 설레는 그녀. 그녀는 이 생소한 감정을 이제는 확신할 수 있 었다. [현련의 숲] "아,아,아! 나는 왜 이렇게 잘난 걸까?" "......" "......" "......" "......" "나는야 완벽하고 뷰티풀한 피닉스!" 저 미친 녀석.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들려온 괴이한 음악. 정말 노래 더럽게 못한다. 어찌 이리 못 부르냐. 그리고 그 것보다...... "그 노래는 뭐냐?" "나를 칭송하는 노래." "......" "나같이 잘난 놈에게 이런 노래도 하나 없다는 건 말도 안 되잖아?" "글쎄다....." 자기 자신을 칭송하는 노래 따위를 만들어 부르다니, 이 황 당하다 못해 기가 막히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 금할 뿐이다. 예은이는 정말 천상의 목소리인데, 저 녀석은 새인 주제에 거의 악마의 목소리를 가졌다. "나는 잘난 피닉스야! 후훗!" "......" "참고로 작사, 작곡 다 내가 했어. 흐음, 나를 존중해 준다 고 약속하면 이 노래 줄 수도 있어." "됐다. 갖다 버려라." "갖다 버리라니! 12년 동안 연구해서 만든 노래인데!!" 미쳤냐? 그딴 거지 같은 노래 만드는 데 12년이라니 무슨, 허어! 어 이없다. 그나저나 오늘은 드디어 내 무기가 재탄생하는 날, 그와 더 불어 지난번에 먹은 아이탬 감정까지! 매일매일 감정한다는 것이, 매번 깜빡 잊어버리게 된다. "이거라네." "......우어어엉!!" 빛이 난다. 내 무기에서 말이다. 진짜 빛난다. 마구마구 빛이 나!! 이게 진정 내 무기라는 건가?! "확인해 봐라. 최강의 무기일 게다." 성질 고약한 영감탱이의 한 마디를 들은 나를 당장 눈을 빛 냈다. 안 그래도 확인해 보려고 왔습니다. -초보의 초절정 맹독 메이스- 공격력: 3,203-3,450 적을 일정 확률로 중독시킨다. 중독될 시 초당 2,992만큼의 추가 데미지를 준다. 적을 일정 확률로 빙결시킨다. 빙결될 시 초당 1,700만큼의 추가 데미지를 준다. 초보의 메이스다. 사용하다가 버리면 눈물 날 게다. 말도 안 돼!! 고, 공격력이 3,203-3,450?? 저 정도면 거의 전설급? 신급 바로 밑에 존재한다는 최강의 무기, 그 무기 데미지다! "만족하냐?" "무, 물론요!!" 절대적으로 만족이다. 사실 이 무기를 개조하기 위해 드워프 마을로 가려다가 이 상한 놈한테 잡아먹히기도 하고, 여탕에 떨어지기도 하고, 노 젓듯이 열심히 전차를 젓기도 했다. 그리고 고블린 마을도 습격했다. 그만큼 힘들게 얻은 아이탬이다. 그런데 그 아이탬의 효능 이 장난이 아니다. 특히 마지막, 독과 빙결. 그게 제일 좋아!! "1골드네." 비, 비싸다 난 무기를 받아 들고 곧바로 아이탬 감정사에게로 이동했 다. 이번에야말로 잊어버리지 않고 확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하에. 그런데 아이탬 감정비가 생각 외로 비싸다. 겨우 두 개 했 을 뿐인데 1골드라니. "그나저나 상당히 좋은 아이탬을 구했군." "......!" 하지만 저 한 마디에 더 이상 돈이 아깝지 않았다. 좋은 아이탬이라니, 뭐지? 어서 확인 들어가야겠다. -영결의 반지- 전설. 3일에 한 번 영혼을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경우 모든 방어를 뚫고 직접 데미지를 줄 수 있다. 주문은 '영혼 타격'이다. 컥! 그, 그 말은?! 한 마디로 지존, 지존, 지존? 물론 하찮은 몬스터들에게는 소용없는 기술이다. 하지만 대장급이나 강력한 몬스터에게는 장난 아닌 기술이라는 말이 었다. 보통 대장급은 방어력이 엄청나게 강하다. 그런 까닭에, 공격을 해도 미세한 데미지만 가해질 뿐이다. 그런데 이런 한계가 사라진다면? 방어력이 10,000이든 100,000이든 직접적인 데미지를 줄 수 있다니, 엄청난 아이탬이었다. ......겨우 하나만 봤을 뿐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흥분되다 니. 자, 다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빙결의 방어- 에픽. 빙계 관련의 공격력을 모두 감소시킨다. 상대방이 얼음 관련된 공격을 당할 시 40% 감소. 이것도 괜찮다. 한 마디로 얼음 계열에 대한 면역력이 절반 이상 생기는 거 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영결의 반지다. 전설급에 달하 는 어마어마한 아이탬. 이렇게 되면 전설급 무기에 육박하는 메이스 하나와 전설 급의 반지 하나인가? 그리고 에픽인 목걸이까지...... 갑자기 나, 너무 강해진 것 같은데? "현련의 숲에 가려면 일단 레이진 마을을 거쳐야 해." 끄덕끄덕. 난 지도를 펼친 채 설명에 들어가는 혜경의 말에 맹렬히 고 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럴 때 그녀에게선 빛이 난다. 정말 이런 일에는 그 녀만큼 완벽한 이도 드물 거다. "아아아." "......" 그때 미친 새 소리가 들려온다. 저 자식, 또 왜 저래? "가성 연습." "......" "사실 나는 노래 부르는 게 취미거든." "그건 민폐라고 생각하는데?" "민폐라니? 이 꾀꼬리 같은 음성으로 노래하는데 민폐라니, 말도 안 되지." "......" 저 미친 피닉스 자식, 지가 진정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거냐? 예은이 노래 한번 들으면 기겁하겠다. 그렇다 예은이! "예은아!" "네?" 내가 갑자기 부르자 사람이 없어 후드를 벗고 있던 예은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난 그런 예은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부탁해." "......?" "노래 한 번만 불러 줄래?" "노래요?" "응, 싫어?" "저는...... 괜찮아요." "고마워!" "아니에요." 예은은 오히려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뭔 변태 녀석들만 붙지 않았다면 지금쯤 난 무지 행복했을 것 같기도 한데...... 아니, 행복하다. 예은이와 혜경이가 있 으니까. "그럼 부를게요." "응! 야, 새대가리." "새대가리?" "너 말이야, 너." "누구?" "너, 임마." "미?" "그럼 너밖에 더 있냐? 여기에 새대가리는 너밖에 없잖아!" "조격모독이야!" 조격모독은 뭐냐? 인격모독은 사람을 모독하는 뜻이다. 그럼 조격모독은 새 를 모독한다는 뜻이냐? 참 잘도 지어 낸다. "어찌 됐든 예은이가 노래 한 곡 불러 준다니까, 잘 듣고 너 와 예은이와의 차이점을 되새겨 두라고." "......저 미소녀 아가씨가?" "그래." 예은이 노래한다는 말에 살짝 빛내는 피닉스. 엄청 기 대하는 모습이다. 아니, 진정 기대해도 좋다. 세계대회에서 3위 안에 들 정도로 뛰어난 노래를 들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기대돼!" "그렇군요." "노래, 얼마나 잘해?" 내 옆에 있던 혜경과 가르, 데인까지 덩달아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르와 데인은 예은이의 노래 실력을 모 르는구나. 한 번 들으면 평생 잊히지 않을 음색일 거다. "......부를게요." "응!" 어차피 지금은 여관방 안이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아무 도 없다. 원하는 대로 불러도 상관없다. 사랑이라는 건 왜 이리 달콤한 걸까요. 영혼이 되더라도 저는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그게 저니까 요. 사랑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제 마음을 이렇게나 아프게 하 는 걸까요? 나는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언제까지나, 그게 제가 이룰 수 없는 바람이라도요. "여, 역시 차예은!!" "머, 멋져요!! 형제님!" "헉! 어, 엄청나다!" 예은의 노래를 들은 반응들이었다. 뭐 당연한 걸지도. 그녀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는 아무리 들 어도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니까. 왠지 모르게 내가 뿌듯해지는 이 기분은 뭔지는 모르겠지 만. "잘 들었어, 새대가리?" 나는 피닉스 녀석을 보면서 물었다. 한편 녀석은 그대로 굳 어 있었다. 훗! 경악했겠지. 어디서 최강 음치 새가 노래한다고 발광을 해, 하기는. 너 무나도 아름다운 노래에 저도 모르게 넋이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보다 못하긴 하지만 정말 환상적이야." 나는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나보다? 나보다? ......그 말뜻은 지가 더 잘났다는 거냐? "좋아. 미소녀 아가씨, 내 제자 해." "......" "내가 더 가르쳐 주지, 하하하." 퍼억! "크악! 왜 때려!" 나는 그대로 새대가리를 후려갈겼다. 왜 때리느냐고? "너처럼 거지같이 노래 못하는 놈에게 예은이가 노래를 배 우면 괜히 잘 나가는 인생 망가져." "질투하는 거야?" "염병." "질투 같은데?" "구워지고 싶냐?" "아니." "그럼 닥쳐." "......" 아, 저 피닉스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 일행이 된 이후 괜히 더 피곤해졌어. "다시 설명할게." "응!" 혜경은 피닉스 녀석의 방해 때문에 하지 못했던 설명에 들 어갔다. "레이진 마을, 그곳을 통과하면 현련의 숲이 나와." "곧바로?" "응. 한 30분이면 도착해." "30분이라. 그럼 현련의 숲에 서식하는 몬스터는?" "없어." "......없다고?" "응. 현련의 숲은 이상하게 몬스터들이 서식하지 않는 곳이 아. 그래서 학자들이나, 자연을 벗 삼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인 기가 좋은 숲이지. "......" 그럴 수가! 몬스터가 없는 숲이라니.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왠지 아이러니컬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레이진 마을을 가는 길목에 있는 몬스터는?" "아마도 없을걸. 그곳까지는 워낙 치안이 잘되어 있어서." "그, 그래?" "응!" 나는 그 말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게 왠 떡이냐. 왠일로 일이 척척 풀려 간다. 단숨에 유니 시스 님을 찾은 뒤 책을 번역한다. 그리고 유물을 찾으러 간 다! 정말 멋져! [이상한 마을] 한 2시간 전에 했던, 정말 멋지다는 말은 지금 취소하겠다. 왜 갑자기 취소하느냐 하면, 레이진 마을을 봤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오, 오빠." "신기한 현상입니다." "허얼." 아니, 이건 신기한 정도가 아니다. 정말 완전 미스터리 수준이다. 혜경의 말대로 우리는 레이진 마을로 오는 내내 그 흔한 오 크 한 마리조차 보지 못했다. 그게 말하는 바는 그만큼 치안 이 잘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정말 편하게 이곳 레이진 마을에 도착했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문제가 생겼다. 바로...... 사람이 없다.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무언가가 습격당한 표시라든가 파괴된 물건 따위 도 없다. 오직 사람만이 없을 뿐이었다. 그리고 더욱 기괴한 것은 사람들이 사라진 지 오래돼 봤자 하루도 안 되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마을 곳곳, 집 안에 보이는 음식들이 상해 있지 않았다. 오늘 아침이나 혹은 어제 저녁쯤에 만든 음식 같았다. "이거 또 재미없는 일에 휘말릴 것 같은데?" 나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항상 그랬다. 이런 상황이면 말이다. "란타스! 정찰하고 와!" 끼이익! 순간 혜경의 한 마디에 멋지게 날아올라 정찰을 나가는 독 수리.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 나도 따라 해야지. "야, 새대가리. 정찰해." "내가 왜?" "......" "나같이 잘난 피닉스가 정찰이라니 웃긴다." 빠지직! 내 머리에 불끈 솟아나는 혈관 마크, 저 자식을 그냥!! "난 싫어. 그런 하찮은 일은 하지 않는 주의라서." "피닉스." "왜?" "오늘 묻어 줄까?" "......" "아니, 묻어 줄게. 크크크." "아, 아니야. 저, 정찰하면 되잖아! 정찰한다. 해!!" 그제야 피닉스는 황급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아, 젠장. 왠지 멋진 상황이랑은 아주 거리가 멀다. 아주 말이다. "없어." 건방진 피닉스 같으니. 그는 내 앞에서 자신의 깃털을 한번 쓸어 넘기면서 말했다. 왠지, 아니 열라 재수 없다. 그나저나 없다는 얘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응, 없어. 한 명도. 한 마디로 말하면 제로!" 영어 쓰지 마, 자식아. "윤현아, 없대." 그때 독수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혜경이 내게 말하자, 나는 그 말에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저 건방진 피닉스 녀 석이 말하면 거짓말 같은데, 혜경이 말하면 진실처럼 느껴진 다. "지, 지금 내 말 안 믿었지?" 순간 피닉스가 예리한 한 마디를 던졌다. 하지만 그 정도의 질문은 예상했다. "믿었다." "뻥쟁이." "뻥 아니야, 임마." "......" "정 못 믿겠으면 내가 네 말을 안 믿었다는 증거를 34,234 개만 대 봐. 그럼 수용하도록 노력은 해 보마." "......" 내 말에 침묵에 들어가는 피닉스 군. 감히 어디서 덤벼! 아 참, 그게 아니라 왜 사람들이 사라진 거지? "혜경아,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없는 거야?" "잠깐만." 내 말에, 독수리와 대화를 시작하는 혜경. 그것 참 신기하 단 말이야. 동물과 대화라니...... 나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듣겠다. 끄덕끄덕. 잠깐 독수리와 대화를 나누던 혜경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후 내게 말했다. "역시 없대." "......흐음." "이 마을에는 생명체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대." "생명체가 하나도 없더라......" 정말 더럽게 난감하군. "기도하는 겁니다." "......" "기도하면 신이 그들을 구원해 줄 것입니다!" "......" "자, 모두 두 손 모아 기도합시다!" 순간의 기회를 틈타 포교 활동에 나선 가르. 하지만 그런 가르의 말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이제 대충 적응되었다 고나 할까? 그나저나 갑자기 유령 마을이라니, 기분 좀 괴상한데? 마을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물론 지금 이 상황과 내가 현련의 숲에 가는 건 아무 상관 도 없다. 말 그대로 그냥 이 마을만 지나 현련의 숲에 가 버리면 되 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나 찜찜하다. 말 그대로, 완벽하게 사라져 버린 마을 사람들. 그것도 분 명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왜냐하면 집 곳곳에 사람 사는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 다. 그리고 몬스터가 난입해 도망친 흔적도 전혀 없다. 오히려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가정집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제일 걸리는 건, 식탁 한가득 식사가 차려진 모습 이었다. 식탁 위에는 빵과,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 다 식어 흐릿해 보이기까지 한 수프. ......근데 왠지 이러고 있으니까 내가 탐정만화 주인공이라 도 된 기분인데? 킥킥! 아 참, 이게 아니라...... 다시 정신을 차리고, 어찌 됐든 지금 상황이 그렇다는 거다. "오늘은 이만 로그아웃하자. 이 이상한 마을 바깥에서 말이 야." 다음 날. 우리는 다시 그 마을에 들렀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하하하." ......아주 재미있어졌다. "오, 오빠." "유, 윤현아." "혀, 형제여." "이게 뭐야?!" "잘난 나도 미치겠네." 모두 한 마디씩 했다. 하지만 난 그들의 기분에 100퍼센트 공감한다. 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까. 분명 어제 우리가 들렀던 마을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갑 자기 사라지기라도 한 듯이.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마을 가득...... 바글거리는 사람들. 어제와는 정반대의 상 황이었다. "이거,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오오! 외지인 아닌가?" "환영하네!!" "어서 오게!!" "푹 쉬다 가게!!" "하하하." 우리가 마을에 들어서자 열렬히 맞아 주는 마을 사람들. 하 지만 난 그런 그들의 반응에 마냥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 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곳은 말 그대로 유령도시였다. 그런데 단 하루 만에 이렇게...... 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 "아...... 마을 사람 전체가 이곳을 비운 적 있습니까?" "허허! 그건 무슨 소리인가?" "아, 아닙니다." "이상한 걸 묻는 젊은이군." 아니, 이상한 질문이 아니다. 분명 어제 봤다. 내 눈으로 직 접 말이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일행 모두가 봤다. 이거 별로 재미없는 상황인데? 우리는 제법 융숭한 대접을 받은 뒤 다시 마을에서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아무리 봐도 어제 들렀던, 살아 있는 것이라 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그 마을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다. 사람들은 외지인인 우리에게 한마을 사람처럼 너무나도 잘 해 주었다. 자고 가라는 마을 사람들의 부탁을 뿌리친 것도 왠지 찜찜 했다. 다음 날. 정말 환장해 버리겠다. 똑같다. 그저께와 같은 상황이다. 그때와 아무것도 달라지 지 않았다. 곧 먹기 위해 차려진, 한 상 가득한 음식과 아무 이상도 없 어 보이는 건물들도 그대로였다. 완벽하게 똑같았다는 말이 다. 이틀 전의 상황과 아주 똑같았다. 물론 몇 군데 다른 점이 보이기는 한다. 음식의 종류, 그걸 제외하고는 전부 똑같다. "재미있는데." 그때 왠지 모르게 건방지게 말하는 새 한 마리. 놈이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이 수수께끼, 내가 전부 샅샅이 아주 버터풀하게 잔잔히 그랑상스하게, 라쿠라하게 버티퍼티한 느낌으로 모두 풀어 주 겠어!" 뭔 말이냐? 해석이 하나도 안 된다. 이 자식아. 난 도무지 저 정체불명 새대가리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 다. 정상인의 범위 안에 드는 나로서는 불가능한 해석이다. "한 마디로 멋지게 풀겠다는 뜻이 아닐까요, 형제여?" "몰라." "저에게는 그렇게 들렸습니다." 그럼 네놈도 저 미친 새대가리랑 같은 파겠지. 그 심오하다 못해 어이를 상실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는 말이니까. "나한테 맡겨 둬!" 그 한마디를 던지고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는 피닉스. 저 녀 석 무슨 속셈이지? 20분 후. "모든 진실은 풀렸어." "......?" 피닉스는 돌아오자마자 대뜸 그 말부터 던진다. 모든 진실이 풀렸어? 정말? "모두모두 풀렸어. 이 트릭 말이야!" "정말이냐?" "그럼, 아주 간단한 트릭이야." "간단한 트릭이라니?" "그건 마리야. 후훗." 두근두근. 왠지 기대된다. 물론 저 녀석 말을 들어 봤자 인생에 도움이 전혀 안 된다 는 건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지만, 녀석이 너무나도 자신 있게 말하는 까닭에 저절로 기대가 되어 버린다. "한 마디로, 버린 거야." "......?" "이 마을이 지겨워져서 떠난 거지." "......" "어때? 완벽한 추리지?" "......어딜 봐서?" "어딜 봐도 완벽한 추리인데?" "......하아." 입에서는 한숨만 나온다. 도대체 저 어이를 상실한 추리는 뭐냐? 그럼, 이틀 전에 지겨워져서 떠났던 마을에 다시 돌아왔는 데 또 금방 질려서 오늘 또다시 마을을 떠났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그것도 단 하루 만에? 미친 자식. "어때, 어때?" "됐다. 치워라." "질투하는 거야? 그런 거야?" "......" "그런 거야? 그런 거야? "그 뾰족한 주둥아리 닥치는 게 신상에 좋을 거다." "......" "하아......" 정말 한숨만 나온다. 미래가 없어. 이 파티에 그나마 미소녀 두 분이 없었더라면 난 벌써 이 게임에서 도망쳤을 확률이 99.9퍼센트다. 다음 날. "오오! 외지인 아닌가?" "환영하네!!" "어서 오게!!" "푹 쉬다 가게!!" "하하하." 이틀 전과 한 마디도 달라지지 않은, 똑같은 말은 건네는 마을 사람들. 어째 토씨 하나 안 다르고 환영 멘트가 다 똑같다. 내 착각인가? 도리도리. 순간 내 생각을 읽은 듯한 예은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분명 이틀 전에도 저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렇구나." 그럼 나만의 착각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저들과 우리는 분명 이틀 전에 만난 사이다. 그런데 왜 생전 처음 보 는 사람들처럼 인사를, 그것도 지난번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 게 다시 건네느냔 말이다. "저, 저기......" "왜 그러나, 젊은이?" "우리 이틀 전에 만나지 않았나요?" "허허, 젊은이가 무슨 이상한 소리인가?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난 사이 아닌가?" "......" "하하. 피곤한가. 젊은이?" "......" 제가 피곤해서 이상한 게 보이는 걸까요, 아님 이 마음이 이상한 걸까요? 알고 싶습니다만. "그리고 우리 마을에 들어온 건 자네들이 처음이네." "저희가 처음이라고요?" "그렇다네. 외지인은 자네들이 처음이야." 하아, 이거 정말 골 때리는데? 그런데 이상한 게 한 가지 있다. 마을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이틀 전에 본 것보다 훨씬 힘 이 없는 듯 느껴진다. 마치 뭔가가 쭉 빨려 나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찌 됐든, 이 사건을 해결하려면 오늘 볼일을 봐야 할 것 같다. 이 마을 안에서 말이다. 그날 밤. 저녁 늦은 시간이 되자 에슬리를 이용해 마을에서 좀 덜어 진 곳에 텐트를 쳤고, 예은과 혜경은 로그아웃을 했다. 결국 이 늦은 시간까지 한 지붕 안에 남은 존재는, 신을 찬 양하는 리치와 맞으면 희열을 느끼는 천족 검사, 왕자병 걸린 건방진 피닉스였다. 한 마디로, 약간 맛이 간 애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아아, 가르. 좀 더, 좀 더." "이렇게 말입니까?" "그래, 그래. 아, 아, 아." "오, 형제여." 그때 내 눈에 보이는 한 광경, 그건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 는 광경이었다. 그건 바로...... 바로......!! 가르가 데인을 밟고 있었다. 가르는 데인의 말에 반응하듯, 열심히 누워 있는 녀석을 성 심성의껏(?) 밟아 주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본 나는 차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경악하고 있었으니까. "아, 아, 아. 이 느낌이야." 무슨 느낌인데? 도대체 왜 맞으면서 저런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냐? 진짜 궁금하다. 마조히스트인 데인에게 진정 물어보고 싶 다. 그나저나 이 자식들, 다같이 사용하는 방 안 분위기를 이 렇게 이상하게 만드는 이유는 뭐냐? "아아아앙." "힘내겠습니다! 형제여." "그래, 힘내." "어이, 거기 두 분." "......?" "......?" 내 부름에 일제히 내게로 고개를 돌리는 가르와 데인. 그리 고 다음 순간, 내 머리 위에 달린 혈관 마크를 보고 움찔하신 다. "지금 정말 정신 사나우니, 제발 조용히 해 주지 않겠니?" 끄덕끄덕. 끄덕끄덕. 내 자상한 한 마디를 금방 수긍하는 가르와 데인. 그래도 이렇게 말이 통하니 다행이다. 말이 안 통했으 면...... 크크크! 그나저나 도대체 이 마을에는 무슨 비밀이 있는 거지? 벌써 시간은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창문을 통해 밖을 보고, 집 안을 이리저리 살 펴보아도 이상한 점은 발견해 낼 수 없었다. "설마 우리가 단체로 헛것을 보는 건 아닐 테고." "물론!!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난 그렇지 않아. 전설의 피닉 스잖아." "......" 그 순간 스스로가 피닉스라고 우기면서 지금까지의 일이 헛것이라는 걸 전면 부인하는 새 한 마리.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 존경스럽다. 저 거만함, 저 건방짐. 도대체 근원이 어디냐? 그리고 꿈과 희망, 생명을 책임지는 피닉스가 저딴 녀석이라니 통곡하겠 다. 휘이익! 휘이익! 그 순간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뭐, 뭐지? "무, 무슨 소립니까, 형제여?" "무슨 소리?!" "뭐야?!" 하지만 그 소리에 반응한 건 나뿐만이 아니다. 이 집에 있는 모든 존재가 반응했다. 그 말은...... "뭔가 일어날 분위긴데." 나는 그 말과 함께 메이스를 집어 들었다. 슈퍼 개조를 끝 낸 내 최강의 메이스다. 전설급 무기에 달하는 메이스라니, 왠 지 감동적이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모두 전투 준비!" "알겠습니다, 형제여!" "알겠어." "오케바리!" 어이, 거기 새대가리, 이상한 영어 쓰지 마. 이상하잖아. 뭐 지금은 화를 내거나 구박할 상황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 도록 하자. 슈우욱! 순간, 내 앞에 이상한 검은 물체가 바닥을 뚫고 불쏙 솟아 났다. 뭐, 뭐냐?!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일단 공격이다. 휘이잉!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검은 물체를 향해 있는 힘껏 메이스 를 휘둘렀다. 가차 없다. 그냥 때려 갈기는 거다. 퍼억! "꾸아악!" 순간 경쾌한 타격음과 더불어 그 검은 물체의 비명이 들려 왔다. 나는 잠시 후 그만 굳어 버렸다. 왜냐하면 압도적이었으니까. "......" 내 한 방에 바닥에 없어져 죽어 버린 검은 물체. 한 방에 그 냥 보내 버린 것이다. 헉! "그, 그 무식한 파괴력은 뭡니까? 형제여." "괴, 괴물이다." "으윽!" 나를 보고 공포에 떠는 리치 한 마리와 마조히스트, 새대가 리. 나도 모르겠어. 아무리 무기를 개조했다지만, 이건 상상 초 월이다. 아니, 이제야 전설급 파괴력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 온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전설급 파괴력이라지만, 역시 상상 이상이다." 물론 저 앞에 널브러진 검은 물체가 원래 체력이 약하거나 방어력 면에서 약간 괴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맞을 때의 그 둔탁한 소리와 완전히 찌그러진 모습 은 저 검은 물체의 방어력과 체력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무기 자체의 데미지가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게 했다. "휴우, 모르겠다." 무기 하나 바꿨다고 이 정도로 달라지다니, 쩝! 그나저나 일단 저 이상한 물체를 확인해야겠지? 아무래도 이 이상한 마을이 가지고 있는 의문의 열쇠는 저 검은 물체가 쥐고 있을 테니 말이야. 터벅터벅. 나는 내 메이스에 한 방 맞고 그대로 가 버린 그 검은 물체 를 향해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혹시 모를 일 아닌가? 죽은 척했다가 갑자기 일어날지. 나는 언제든지 메이스를 다시 휘두를 태세로 조심조심 다 가갔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다? ......진짜 죽은 거냐? 바로 곁에까지 다가가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걸 봐서는 완전히 죽은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뭐냐? "......" "......" "......" "......" 나를 따라온 가르와 데인, 피닉스도 그 이상한 생물체를 보 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뭐냐? 도대체 무슨 생물체냐, 이건? 아까도 말했듯, 검은색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굳이 말한다면 형체도 없다. 그냥 검은색이다. 마치 그림자 와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으아악! "뭐 이런 이상한 괴물이 다 있어!!" 정말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정체가 불투명한 녀석이다. 내가 이 게임에 대 해 모든 걸 안다고 자부하지는 않지만 이런 괴물이 있다는 애 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마도 혜경이 온다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녀가 뭐든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그녀가 소속돼 있는 곳, 최강의 정보력을 가진 도둑 길드라면 이 이상 한 괴물을 알지도? [섀도 플리자트]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사라졌다. 아주 감쪽같이 말이다. 혜경은 즉석에서 도둑 길드 일원으로 보이는 다섯 명 정도 를 부르더니, 곧바로 내가 해치운 그 이상한 괴물을 회수해 갔 다. 빠르면 오늘 안에 저 괴물의 정체가 밝혀진다고 하니 좀 기 다려야겠다. "정말 놀랐어. 접속하자마자 나를 찾기에." "그, 그래?" "응. 그나저나 정말 이상한 괴물을 잡았네." "그러게 말이야. 너, 저 괴물 본 적 있어?" 도리도리. "없어. 저런 괴물에 대해서는 들어 보지도 못한걸? 내가 알 았다면 도둑 길드에 요청도 하지 않았을 거야." 그건 그렇다. 혜경이 저 이상한 괴물의 정체를 알았다면 도 둑 길드에 이리 번거롭게 연락을 할 리는 없겠지. "저기, 오빠." "응? 왜 그래, 예은아?" "마을...... 사람들은요?" "사라졌어." "......" "아침에 나와 보니 다 사라졌더라고." "그, 그럼......" "아마도...... 분명 저 이상한 괴물과 연관이 있을 거야. 아 니, 100퍼센트 확실해." "섀도 플리자트." "섀도 플리자트?" "응. 그 괴물의 명칭이야." 섀도 플리자트라니? 그럼 그림자 뭐라는 거지? 뒤에 플리자트라는 단어는 생소 하기 그지없으므로 해석 불가. 내가 그나마 알아듣는 단어는 섀도뿐이다. "그 괴물은 대체 어떤 놈이야? 이 게임에 그런 이상한 괴물 이 있었던가?" 내가 자연스럽게 혜경에게 묻자, 그런 내 물음에 혜경의 표 정이 약간 굳어졌다. 어, 어라? 왜 표정이 굳어지지? "없어." "......" "섀도 플리자트란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아, 이 게임에는." "......?!" 그,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이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 몬스터가 게임 속 내 눈앞에 보이 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 혜경아, 농담이 많이 늘었구나. "농담이 아니야. 실제로 이 게임의 기획자는 섀도 플리자트 라는 괴물은 만들지도 않았대. 길드 마스터의 정보니 확실할 거야." "그, 그럼 도대체......?" "그들이 만들었을 거야." "그들......?!" "응. 너를 노리는 그들." "......!" 그 칙칙한 어쌔신들을 말하는 건가? 아무 이유도 없어, 내가 다크프리스트라는 이유로 나를 죽 이려 한 놈들, 분명 그놈들을 지칭하는 말인 것 같은데? "길드 마스터가 그랬으니, 확실할 거야." "혜경아." "으응?" 나는 진한 눈빛으로 혜경을 바라보았다. "혜경아." "으응?" 나는 진한 눈빛으로 혜경을 바라보았다. 물론,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 나의 모습에 혜경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지만, 그것 보다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하다. 덥석! "혜경아!" "왜, 왜 그래? 가, 갑자기 왜 손은......!" 내가 두 손으로 덥석 자신의 두 손을 잡아 버리자 당황하는 그녀, 귀엽다. "혜경아!!" "처, 천천히 가. 갑자기 키스는......" "엥? 뭔 소리......?" "......" "안 돼요!" ......?! 그 순간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목소리다. 이런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 진 분은 세상에 둘도 없지. 그렇다. 예은이었다. 그녀는 얼굴을 완전히 붉힌 채 나와 혜경을 바라보며 울먹 이고 있었다. "......예, 예은아?!" 나는 살짝 눈물을 맺은 채 울먹이는 예은을 향해 다가갔다. 너무나도 당황스럽다. 보통 남자들은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지 만, 특히 예은 같은 초미소녀의 눈물에 내 마음은 찢어질 것 같았다. "고, 고백은 아, 안 돼요." "무슨 소리?" "......" "고백이라니?" "저, 저기...... 오빠가 혜경이 언니에게 고, 고백을......" "무슨 소리야? 내가 혜경이한테 웬 고백이야." "하지만 방금 손을 잡고......"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런 건데?" "......" "......" 무, 무슨 오해를 한 거야. 예은이는? 그나저나 예은이의 저 반응은 뭐지? 호, 혹시 질투? 꿈 깨자. 예은이 같은 톱스타가 나한테 질투라니, 웃기지도 않아. 그 순간이었다. "호오, 그냥 질문?" "......말이 날카로워졌어. 혜경아."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 "어서 물어봐." 내 말에 이상하게 날카로워진 그녀. 정말 왜 이러는 걸까? 아, 여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수련 부족이다. "......미안." "왜 사과를......" "전혀 모르겠어." 헉! 나는 혜경에게, 나를 노리는 단체의 정체에 대해 물었다. 왜 내가 다크프리스트라는 이유만으로도 척살 대상이 되었 는지, 그뿐 아니라 이런 괴생물체를 왜 만들어 내는 건지도 궁 금했다. 정말이다. 물론 여섯 개의 유물만 찾는다면 알게 되 겠지만 그것을 찾아내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길드 마스터와 몇 명을 제외하고는 그 단체에 대한 정보 를 아는 이가 없어. 그냥 그런 단체가 존재한다는 것만 알 뿐 이지." "그렇구나." 그 말은 그 이상한 단체의 정보력이 초절정의 수준에 달했 다는 거군? 이거 왠지 평범하게 게임하러 들어왔다가 이상한 일에 휘 말린 것 같다. 아니, 그 사기꾼 작자를 만난 이후 모든 게 엇나 가는 듯한 느낌이다. "그나저나, 일단 섀도 플리자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게." "응!" 그렇다. 일단 궁금한 게 가득하지만 눈앞의 일부터 해결해 야지? "섀도 플리자트. 일명 '그림자 영혼'이라고 불리는 괴물이 야.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그 이상한 단체에서 직접 개발한 거지." "잠깐 질문!" "......?" "게임인데, 새로운 생물체의 창조가 가능해?" "......이 게임은 가능해." "......" "너무나도 완벽한 현실감. 모든 걸 창조할 수 있어." 정말 대단한 게임이다. 실제로 새로운 생물체의 탄생이 가능한 걸 보니, 이렇게 보 면 게임이라기보다는 현실에 가깝다. "다시 이어 갈게. 섀도 플리자트, 즉 영혼의 그림자는 한 가 지 특성이 있어. 일단 사람들을 모두 삼킨다. 그리고 다시 원 래대로 만든다." "엥? 무슨 뜻이야, 그건?" "인간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마나와 생명력이 필요해." "그렇지." "하지만 섀도 플리자트는 마나와 생명력을 좋아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간다. 혜경 양, 풀어서 이야기해 줘. 내 이런 표정을 봤는지, 혜경이 배시시 웃으면서 말을 이었 다. "간단하게 설명할게. 여기 껌이 있어. 근데 이 껌을 한 몇 분간 씹으면 단물이 다 빠져나가 맛이 없어지지?" "그렇지." "하지만 그 껌을 어떤 방법을 이용해 원래대로 복구한다면 또 단물을 빨 수 있겠지?" "......!" "그래, 그런 거야. 섀도 플리자트는 한 번 흡수한 뒤 그것을 다시 되돌려 놔. 모든 걸 처음으로, 리셋 지점으로 맞춰 놓은 곳으로, 그러니 달라지지 않는 거야. 물론 음식 같은 건 그날 기분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다른 건 다 똑같아. 우리를 기 억하지 못한다는 점 같은 것 말이야." "......" "그리고 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느냐 하면, 인간의 생명 력과 마나는 활동을 하면 할수록 회복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 이야. 그러니 회복시키기 위해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는 거 지." 모두 이해됐다. 하하하. 어이없다.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혜경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섀도 플리자트라는 괴물이 있다. 이 괴물은 인간을 흡수한다. 그리고 흡수한 인간들을 단물만 쏙 빼먹은 뒤 리셋, 즉 복원지점이라고 해야 하나, 그 쪽으로 되돌려 버린다. 그러면 인간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회복을 거듭하 고, 회복하고 나면 그런 그들을 먹는다는 소리인가? 그래서 그런 거였다. 다시 보면 볼수록 약간식 지쳐 가는 얼굴을 하는 이유 말이 다. "아주 재미있는 몬스터네." "나도 길드 마스터의 정보를 듣고 믿을 수가 없었어." "그렇겠지." 나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데, 그녀라고 나랑 별반 다르게 없을 것이다. 한편 이 이야기를 들은 예은은 너무나 놀라 입 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것은 엄청나게 놀라운 정보였다. "기도합시다." "아, 아, 아." "나는 왜 이리 잘났지?!" 하지만 이런 엄청나게 놀랄 만한 일도 저 녀석들에게는 그 냥 지나가는 소리에 불과했다. 지금도 남은 이 중요한 이야기 를 하는데 저것들은 이상한 짓거리나 해 대고 있다니...... 정말 도움 하나 안 되는 놈들이다. 하아...... 그나저나 어떻게 해결하지? "해결 방법은?" 그렇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해결 방 법이다. 그 이상한 섀도 블리자트인가 뭔가 하는 놈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많이 찜찜했다. 특히 그 이상한 놈들하고 관련이 있다는 말이 더욱 나를 불 태우고 있다. "있어." "정말?" "응! 길드 마스터 님이 가르쳐 주셨어. 이걸 너에게 주라고 했는걸." 그러면서 나에게 내밀어지는 쪽지 한 장. 나에게? 왜 굳이 나한테 쪽지를 주는 거지? 나는 혜경이가 내게 내민 쪽지를 펼쳐 들었다. 그녀에게 마나석을 주었습니다. 그 마나석으로 억지로 부순다 면 그 안에 담긴 마나가 빠져나온 섀도 플리자트를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오호? "혜경아, 혹시 길드 마스터가 마나석을 주지 않았어?" "아, 받았어." "그거 나 줘." "응!" 혜경이는 그 말과 함께 나에게 내 엄지 세 배 정도 크기를 가진 푸른색의 마나석을 건네주었다. 이 마나석을 강제로 부순다면 마나가 퍼져 나가면서 섀도 플리자트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건가?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마나석을 바닥에 놓고, 잠시 후 일 행을 보면서 말했다. "모두 조심해. 이제 시작하자." "......?" "......?" 하지만 하나같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들이다. 뭐, 그렇긴 하지만 이제 금세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방금 전 에 내가 한 말의 의미를 말이다. 콰앙!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메이스를 힘껏 뒤로 젖혔다가 그 대로 마나석을 가격했다. 쨍그랑. 마나석의 파편이 흩어지면서 순간적으로 엄청난 양의 마나 가 퍼져 나갔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웃었다. 어서 오라고!! 슈우욱! 슈우욱! 슈우욱! 그런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팔방에서 모여드는 이상한 검은 물체. 저것들은 분명 어제 본 그놈들이다. 섀도 플리자트라고 불 리는 이상한 괴물 말이다. "자자, 한 마리씩 처리해 주마!" 나는 그 말과 함께 전투태세를 취했다. 갑자기 몰려든 섀도 플리자트는 대기하고 있던 우리를 보더니 그대로 멈췄다. 어, 어라? 저것들이 왜 오다가 갑자기 멈추는 거지? "카어리어니!" 그때 섀도 플리자트가 갑자기 이상한 비명을 질렀다. 아무 이유도 없이 비명을 질렀다면 그냥 넘어가 줄 수도 있 는 상황인데,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비명을 지르지는 않는다. 그들은 합체하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니들이 무슨 로봇들도 아니고 웬 합체냐!! 지금의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 다. 그렇게 약 1분 후 섀도 플리자트는 합체를 완성했다. 신선한데, 이거.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4미터 정도의 키를 가진 섀도 플리 자트. 크다. 그뿐만 아니라 왠지 흐물흐물한 게 내 물리공격이 제대로 들어갈지 그것도 의문이다. "카어리어니!!" 그 순간 또다시 안드로메다의 언어를 구사하면서 다가오 는, 합체하는 섀도 플리자트.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버프 마법 을 걸기 시작했다. "다크 블레스." -모든 능력치가 250 상승했습니다. "다크 스트림!" 끼이익! 어둠의 악령들이 나타나 내 무기에 깃든다. 그럼 이제 상대방의 힘을 약화시키는 주문을 외치자! "다크 블레스! 다크 큐어!" 그런데...... -상대방은 어떤 상태 이상도 걸리지 않습니다. 아주 그랑상스(?)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한 마디로 눈앞에 적은 상태 이상에는 절대로 걸리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뭐 그렇다면...... 돌격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뛰쳐나갔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 섀도 플리자트를 향해. 휘이익! 나는 다가가자마자 메이스의 힘을 믿고 그대로 섀도 플리 자트의 무릎 부위로 보이는 곳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그런데...... 타격음이 없다. 보통 때리면 콰앙! 쿵! 하는 소리가 분명 나야 하는데, 타격 음이 없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한 가지다. "물리 공격 흡수인 게냐?" "카어리어니!!" 하지만 섀도 플리자트는 내 질문에 대답해 줄 마음이 없었 는지 그대로 거대한 손을 들어 휘둘렀다. 나는 그 모습을 보 고 당장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제길. 그래도 프리스트인데 방어 마법 능력이 하나도 없다 니, 정말 이름만 프리스트이다. 흑! "위기군. 내가 도와주지!" 그 순간 내 등 뒤에서 피닉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 도와준다고?! 왠지 감동적이야! 어느새 피닉스는 날아올라 섀도 플리자트와 얼굴을 마주하 고 있었다. 그러더니 건방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장 이 몸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목숨만은......" 퍼억! "깨울!" "......" 철퍼덕. 뭐냐? 뭐냐?!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피닉스 녀석은 그대로 바닥에 팽개쳐져서 빈대떡이 되어 버렸다. 섀도 플리 자트의 가벼운 휘두름 한 방에 말이다. 그리고...... "아이고! 나 살려!!" 쿵! ......그대로 엎어진 피닉스를 그대로 밟아 버리는 섀도 플 리자트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기어서 우리 쪽으로 재빠르게 다 가오는 피닉스 군. 만약에 저 녀석이 불사신 피닉스가 아니었 다면, 벌서 하늘나라로 올라갔을 것이다. "사, 살려 줘." "나에게 맡기라며." "가, 강하단 말이야!!" "......하아." 난 내 앞에 다가와 살려 달라고 절규하는 피닉스를 보고 고 개를 저었다. 잠깐이지만 기대한 내가 바보지. "제가 해 보겠습니다!" 그때 앞으로 나서는 가르. 심히 불안한데? "당신은 악에 물들어 있습니다." "......"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곱고 고운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 다면 당신의 악은 사라질 겁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만, 제 뒤에 계신 형제는 사탄의 후계자여서 도저히 저만의 힘으로 는 부족합니다. 그러니 저와 힘을 합쳐서......" ......잠깐, 뭐가 이상하다? 서, 설마 나보고 하는 소리? 나같이 천사 같은 존재를 사탄 의 후계자로 매도하는 건가? 설마? "마에스트로 형제의 악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니 저와......" 퍼억! "꺄울!" 나는 그대로 가르의 대가리를 갈겨 버렸다. 이 자식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나서더니 오히려 적한테 내 험담을 하다니!! "왜, 왜 그러십니까? 혀, 형제여." "지금 나 욕했지?" "아, 안 했습니다." "다 들렸는데?" "헉!" "......" 이 자식, 진짜 바보다. 그 정도 목소리로 떠들면 당연히 다 들린다. 귀가 약간 좋 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가르가 우렁차게 외치는 큰 목소 리를 다 들은 텐데, 청각이 상당히 좋은 내게 안 들린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자, 잘못했습니다." 가르는 재빨리 용서를 구했다. 난 그런 가르를 향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나중에 보자." "......" 아, 이 녀석들. 괜히 머리만 아프게 만든다. 제발 그냥 조용 히 있어 줬으면 좋겠는데...... "밟아 줘." "......" "나도 피닉스 군처럼 밟아 줘!" "이 미친 자식아!!" "헉!!" "너 돌대가리야?! 저놈한테 밟히면 넌 죽어!!" "헉!" "......" 아아, 나 쓰러질 것 같다. 어느새 섀도 플리자트에게 다가 가 밟아 달라고 누워 버린 데인을 보니까 말이다. 물론 데인은 죽는다는 나의 말에 황급히 대피했지만, 그것 과는 별개로 난 이미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어떻게, 어떻게...... "괘, 괜찮으세요?" "괜찮아?"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을 본 두 미소녀 분이 걱정해 주고 계 신다. 그래, 저분들을 보고 참자. 참는 거다. 하아...... 그렇게 난 속으로 다짐하면서 섀도 플리자트를 바라보았 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하자고, 우리 둘이 말이야. 휘이익! "크윽!" 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그림자의 손을 보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빠르다, 정말. 저 커다란 몸집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나를 공격하고 있다. 휘이익! 반면 나의 공격은 금방 흡수당할 뿐이다. 이건 정말 불공평하다고! "다 덤벼! 맞장 떠!" "형제여, 저와 함께 신을!" "아아아!!" 그렇다고 저것들의 행동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말 그대로 방해물들이다. 하아. 쿵! 그 순간 섀도 플리자트가 격렬히 소리를 내면서 달려왔다. 제길! 저 녀석에게 물리 공격과 상태 이상 마법은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는 건 직접 타격 기술들. 사실 마혈전혈이나 다크 블레스 스트레션, 이것도 상태 이 상을 일으키는 기술이다. 그나마 소울 스트라이크와 지금 내 최강의 스킬로 자리 잡은 라이프 블리지트, 이 두 가지 기술만 이 저 그림자 놈에게 효과를 줄 수 있을 듯했다. 정말 이렇게 난감할 수가...... "에잇!" 하지만 달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가만히 멍하니 있다가 한 대 맞고 죽을 바에야 멋지게 달려들어서 전사하리라. 물론 전사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지만 말이다. "라이프 블리지트!!" 내 최강의 스킬이자 밥줄 스킬이 펼쳐졌다. 상대방의 생명력을 매개로 폭발을 일으키는 어마어마하게 좋은 스킬이다. 적의 체력을 감소시키면서 그 체력을 이용해 데미지를 주 니, 이게 바로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니겠는가? 콰앙!! 그제야 내가 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이 소리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모른다. 이 임펙트한 소리를 말이다. "구라아아아!" 그 순간 그 섀도 플리자트의 비명으로 추정되는 소리가 울 려 퍼졌다. 그런데 심히 이상하다. '구라아아아'라니! 좀 난감하기 그지없는 비명이다. 그렇지만 일단 데미지를 주었다는 데 큰 의미를 두었다. "푸라라라랄!!" 그 순간 또다시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섀도 플리자트. 그런 데 그냥 소리만 지른 건 아니었다. 파아앗! 파아앗! "제길!" 어느새 그림자의 창들이 순식간에 내 발밑을 점거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순식간에 솟구쳐 올랐다. 내 몸을 관통하기 위해서 말이다. 푸지직!! 순간, 내 몸을 관통한 그림자 창. 미처 피하지 못했다. 너무 나도 갑작스럽고 변칙적인 공격이라 예상도 하지 못했던 것 이다. "쿠, 쿨럭." "오, 오빠!" "윤현아!!" "헉!" "혀, 형제여!!" "괘, 괜찮아?" 괜찮아 보이냐? 온몸을 그대로 관통한 후 다시 돌아간 그림자들. 더럽게 아프다. 저번 일 이후로 민감도를 조금 떨어뜨린다고 한 걸 깜빡 잊어버렸다. 내 몸 곳곳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왠지 섬뜩한 장 면이야. "푸라라라랄!!" 그 순간 다시 한 번 내 몸을 관통하기 위해 이상한 소리를 내는 섀도 플리자트. 하지만...... 당했던 걸 또 당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말이다. "영혼 타격!!" 전설급 아이탬의 스킬, 영혼 타격. 상대방의 방어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스킬이다. 이 한 방에 모든 걸 건다! 순간 영혼 타격이라는 스킬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놈의 몸 색깔이 푸른색으로 변해 버렸다. "라이프 블리지트!!" 나는 내 밑을 점령한 그림자의 창을 무시한 채 그대로 메이 스에 라이프 블리지트를 건 다음 그대로 달려들었다. 푸직!! 아, 아파...... 제길. 또다시 그림자의 창이 내 몸을 관통하고 사라졌다. 제길, 더럽게 아프잖아!! 하지만 난 이를 꽉 악문 채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한 번의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다. 이게 실패한다면 난 뒈진다. "......!!" 나는 그대로 날았다. 말 그대로 온 힘을 다해서, 정말로 날았다. 슈우웅! 나는 거의 박는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그 섀도 플리자 트를 향해 달려들었고, 거의 접근한 순간 일채의 망설임도 없 이 그대로 메이스를 휘둘렀다. 콰아앙!! 대폭발이 일어났다. 방어를 완전히 무시한 공격 탓인지 엄청난 폭발이었다. 그 순간, "꾸앙아아아아아!!" 섀도 플리자트가 이상한 비명을 지르면서 그대로 쓰러졌 다. 성공인가?!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이건 뭐냐?! 도대체 이 괴물의 레벨이 얼마기에?! -새로운 스킬을 얻었습니다. 다크 배리어. 다크 배리어!! 배리어라고 하면,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하는 프리스트의 로망 스킬이 아닌가! 나는 눈이 휘둘그레졌다. 이 엄청난 레벨 업보다 '다크 배리어'라는 스킬에 필이 꽂 혀 버렸다. 당장 확인! -다크 배리어- 레벨 1. 상대방의 마나와 생명력을 이용해 방어막을 형성합니다. 자 신의 마나는 소모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마나와 생명력이 많 을수록 더욱 강한 배리어가 생성됩니다. 이, 이럴 수가! 멋지다, 멋져. 너무 멋져!! 라이프 블리지트와 비슷한 기능이지만, 능력은 정반대다. 라이프 블리지트는 파괴적이지만 이건 방어를 위한 스킬이 다. 하아!! 정말 멋져. 점점 이 다크프리스트라는 직업이 감동 스러워진다. 그런데 보통 스킬이 이러면 도대체 유물급 스킬들은 어떻 다는 거지? 정말 궁금하군. 그나저나, 오랜만에 스텟 분배나 해 볼까.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206 HP/MP: 5,320/4,900 힘: 740(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393(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 니다.) 지능: 154(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149(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텟: 240 헉! 어느새 레벨이 200이 넘어 버렸다. 아마도 지난번 고블 린 장로를 잡은 게 이 레벨에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때 레벨 업 소리를 꺼 놓지만 않았어도 오늘 같이 엄청난 레벨 업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을지도 모른다. 아이디: 마에스트로 성별: 남 직업: 다크프리스트 레벨: 206 HP/MP: 5,320/4,900 힘: 1,000(힘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힘이 상승합니다.) 민첩성: 393(민첩성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민첩성이 상승합 니다.) 지능: 154(지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지능이 상승합니다.) 체력: 149(체력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체력이 상승합니다.) 행운: 5(행운에 관련된 일을 하시면 행운이 상승합니다.) 남은 스텟: 0 모든 스탯을 힘에 줘 버렸다. 그 이유라고 한다면 1,000자리를 보고 싶은 내 조그마한(?) 소망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죽......었다고?" "네." "우리가 만들어 낸 섀도 플리자트......가 소멸?" "그렇습니다." "그것도 다크프리스트에게?" "네." 콰앙!! 얼굴에 복면을 뒤집어쓴 남자가 그대로 자신의 앞에 있는 탁자를 강하게 손으로 내리쳤다. 그 누가 뭐래도 냉정이라는 단어와 제일 잘 어울리는 남자가 바로 그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그 냉정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 주고 있 었다. "지금 장난치는 거냐! 우리의 척살 대상 1호인 다크프리스 트에게 섀도 플리자트가 소멸하다니!!" "죄, 죄송합니다!" "미쳐 버리겠군!" "하, 하지만 다크프리스트를 함부로 건들 수가......" "......?" "강해졌습니다. 너무나 말입니다. 함부로 건드리기가 힘들 정도로......"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자는 거냐?" "아,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크프리스트만은 이 게임을 그만두게 해야 한다.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말이야!!" "......"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다크프리스트만은, 다크프리스트만은......" [유니시스] 유니시스라는 번역가를 찾는 일은 정말 쉬웠다. 말 그대로, 너무나도 쉽다 못해 눈물이 나올 지경이라는 표 현을 해도 될 정도다. 이상한 마을을 빠져나오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오두막 한 채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오두막 입구에 붙어 있는 간판에는...... 나 유니시스야 참 간단히 알아볼 수 있게 해 놓으셨다. 어찌 됐든 이렇게 최고의 번역가라는 유니시스를 찾아내다 니 왠지 감개무량하다. 유니시스라는 사람을 찾기 위해 그 얼 마나 생고생을 했단 말인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다. 하지만 이게 이 책만 번역하고 나면 곧바로 유물을 찾으러 가는 거다. 똑똑! 나는 오두막 입구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그 리고 잠시 후 오두막 문이 벌컥 열렸다. "누구야?" "저, 저기. 유니시스 님 계신가요?" "난데." "네?" "나라고." "저, 정말요?" "정말이지, 농담이겠어?" 헉! 그럴 수가!! 내 앞에 있는 여인, 말 그대로 여인이었다. 대충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누님인 데다 엄청 예쁘시다. 물론 예은과 혜경의 비교대상은 못 됐지만,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 충분이 미녀라는 소리를 들을 만했다. 그런데 좀...... 그녀는 지금 와이셔츠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허름한 와이셔츠 하나에 아슬아슬하게 팬티가 보일락 말락 하는 길이...... 컥! "어이, 아가씨. 좋은데?" "새가 말하네?" "내가 말이야, 전설적인 피닉스야." "특이한 새다." "나를 찬양해. 하하하." 여자만 보면 집적거리는 피닉스라. 절대로 존경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저 근원을 알 수 없는 건방짐은 어디서 흘러나오는 건지 심히 궁금하다. 아 참, 그게 아니라 용건을 말해야지. "저, 저기......" "번역할 것 있어?" "......네." "해 줄게." "저, 정말요?" "응." 뭐, 뭐야?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다니, 너무나 행복하다. 이 게 바로 고생 끝에 행운이라는 건가? "하지만 조건이 있어." "조, 조건요?" "응!" 그럼 그렇지. 어쩐지 일이 너무나도 잘 풀린다 했다. 그런 데 설마 그 조건이란 게 너무나도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한 미션인 건 아니겠지? 예를 들어 오우거 1,000마리를 잡아 오 라든가 하는 것 말이야. "난 잘생긴 남자를 좋아해." "납치...... 해 오는 일입니까?" 이제는 퀘스트가 잘생긴 남자를 납치해 오는 거냐? 참으로 어이없다. "아니, 아니." "......" "네가 마음에 들어." "......" "누나랑 좀 놀아 주면 해석해 줄게." "......" 헉! 노, 놀아 주면......?! 저 단어에는 분명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그냥 진짜 순수 하게 논다는 의미는 아니다. 절대 말이다. "그건 안 돼!" "마, 맞아요!" 돌연 혜경과 예은이 나서서 소리쳤다. 그런 그녀들을 본 유니시스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애인들이야?" "그, 그건 아니지만......" "......" "그럼 내가 이 남자랑 놀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 "......" 그 한 마디에 예은과 혜경은 순식간에 벙어리가 되어 버렸 다. 다음 순간, 유니시스가 갑자기 내 팔을 끌어당기더니 자신 의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러고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재밌게 놀자." ......되게 난감하네. 그래서 나는 지금 유니시스의 집에 혼자 들어와 있었다. 나머지 일행은 들어올 수 없단다. 그런 까닭에 나 혼자 이 곳에 있는 곳이다. 그나저나 여자 혼자 사는 방 치고는 상당 히 어지럽고 지저분하다. 주변에 마구 흩뿌려진 책과 그릇들, 그리고 쓰레기까 지...... 안 치운 지 한 몇 달은 되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번역은 가능한 거야? "저, 저기......" "왜 그래?" "제가 번역할 문자가 어려운데, 번역 가능해요?" "줘 봐." "네?" "그거, 번역할 거 말이야." "네." 그녀의 말에 나는 지난번 스켈레톤 마스터를 죽이고 얻은, 그 이상한 문자로 가득한 책을 내밀었다. 그녀는 내가 건네준 책을 보더니 그대로 책장을 넘기기 시 작했고, 잠시 후 책을 덮었다. 헉! 저 반응은? 모른다는...... 뜻?! 그럼 안 되는데...... "번역 끝." "네?" "번역 끝났어." "지, 진짜요?" "난 농담 안 해." "......" 말도 안 된다. 그냥 책을 후르르 넘기고 번역 끝이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 하다 못해 어이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그게 가히 인간이 가능한 범위인지 심히 궁금하다. "쓸데없는 말만 되게 많아." "쓸데없는 말이요?" "응. 첫 페이지를 보니 '유물을 찾고 싶으면 뒤페이지를 봐 라.' 이렇게 적혀 있던데." "......" "그리고 중간 페이지들은 뭐 좀 이상한 내용들." 도대체 저 책의 저자가 누구냐?! "몇 장만 있으면 폼 안 난다고 이렇게 책으로 만들었다네. 참으로 특이한 작자야." "그러게 말입니다." 단순히 폼이 안 난다는 이유로 아무 내용도 없이 책을 만든 그 작자, 진짜 어이없다. 달랑 두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이 렇게 사기처럼 끼워 넣다, 정말 어이없다. "그나저나 이제는 놀아야지. 네가 하는 행동에 따라 내용을 가르쳐 줄게." "헉!" 그 말과 함께 유니시스는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순간 긴장했다. 안 돼, 안 돼. 난 아직 순결한데. 하, 하지만 저런 미녀라면? 헉! 이런 불건전한 상상은...... "치워 줘." "네?" "번역해 준 대가로 치워 줘." "......뭘요?" "뭐긴? 내 집이지." "......" "난 잘생긴 남자가 내 방 치워 주는 걸 좋아하거든." 한편, 예은과 혜경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채 윤현이 들어 간 오두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곁에서 그녀들의 모습을 본 피 닉스가 즐겁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한창 진행 중이겠군." "......?" "......?" "누님, 왜 이러세요? 알면서...... 아, 안 돼요! 그만 앙탈부 려......!" "......" "......"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중이겠지. 크하하!" 피닉스는 그렇게 혼자 일인이역을 하면서 예은과 혜경을 향해 말했다. 그에 예은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오, 오빠는 그런 분이 아니에요!" "맞아! 윤현이는 그런 애가 아니야!" "크크크! 과연 그럴가?" "......" "......" 물론 그들의 대화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지금 윤현은 저 안에서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으니까. 헉, 헉, 헉! 더, 더럽게 힘들어. 도대체 이게 인간의 집이란 말인가? 어떻게 인간의 집이 이리 더러울 수가!! 나는 진심으로 경악했다. 아무리 정리해도 끝없이 널브러 져 있는 책들과, 바닥에 마구 흐트러진 쓰레기들까지. 하아,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청소가 이리 힘들다는 것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비정 상적으로 더럽혀진 방이 원인이겠지만. 그렇게 나는 속으로 열심히 투덜거리면서 방을 치워 나갔 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훨씬 낫다. 처음에는 미래가 불투명해 보였는데, 지금은 그래도 끝이 조금 보인다. 물론 오버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그만큼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렇게 약 1시간이 흘렀다. 정말 뼈가 부서지게 집을 치웠다. 평소 내 방도 치우지 않는 나로서는 엄청난 일이었다. 하지 만 유물을 찾기 위한 이 집념, 나도 감탄스럽다. "하아, 끝났어!!" 그래, 끝난 거다. 쓰레기와의 사투 끝에 내가 승리한 것이다. 크하하하! "에헤? 끝났어?" 그 순간 어느새 나타난 이상한 번역가 누님 유니시스가 매 혹적인 미소를 짓고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헉!! 왜, 왜 그러시는 겁니까?! "귀여워." "......" "이리 와." ......!! 아, 안 됩니다. 저란 인간은 청결하고 순수함의 대명사인데, 이런 건 올바르지 못해요!! 하지만 이미 내 몸은 제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 다. 아, 안 돼! 천천히 다가오던 누님이 고혹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 다. 헉, 헉, 헉. 그러자 내 심장은 더욱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이런 불건전한 시추에이션은...... "치워 줘." "오, 옷을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 "내 방도 치워 줘야지." "......?" "무슨 이상한 상상을 한 거야?" "아닙니다." "한 것 같은데?' "안 했어요." "원한다면 해 줄 수도 있어." "아닙니다. 청소할게요." 난 왠지 모르게 맥이 빠져 버렸다. 끼이익. 나는 거의 반 시체가 된 상태로 오두막에서 빠져나왔다. 총 청소 시간 4시간 40분. 미칠 정도로 고달픈 시간이었다. 차라리 몬스터와 맞장 뜨는 게 낫지. 이런 건 절대적으로 사양이다. "즐거웠나?" 덥석. "컥!" 나오자마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태클을 거는 피닉스 녀석을 그대로 잡아 버렸다. 그리고...... "즐거웠냐고?" "왜, 왜 그래?" "너는 내가 즐거워 보이냐?" "......" "앙? 말해 봐, 자식아." "......" "난 4시간 40분 동안 죽도록 청소만 했다. 그런데 즐겁냐 고? 앙? 피닉스 구이로 만들어 줄까?" "......" "오, 오빠 처, 청소하시다 온 거예요?" "응?" 그때 예은이 등 뒤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난 그런 그녀의 물음에 여전히 피닉스의 몸통을 잡은 채 말 했다. "응, 들어가고 나서 지금까지 청소했어." "다, 다행이에요." "다, 다행이다." "뭐, 뭐가?" "아, 아니에요." "아니야." 난 그녀들의 반응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뭐 그것보다 지금은 피닉스를 응징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이 자식이!! 지금 나 놀리는 거냐!!" "켁켁. 자, 잠깐 노, 놓고!!" "닥쳐, 이 새 자식!! 감히 나를 능욕하다니!!" "피, 피닉스 살려!" "닥쳐, 닥쳐!!" 감히 열심히 청소만 하고 온 나를 이렇게 놀리다니, 죽여 버리겠어!! 헉헉. 난 흥분을 가라앉히기로 했다. 착한 내가 참아야지, 누가 참겠는가? "흐흑! 피, 피닉스인데......"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은 채 흐느끼는 피닉스 한 마리를 눈 을 가늘게 뜬 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어쩌라고." "......" "피닉스인데 어쩌라고." "그. 그래도 정말 완벽한 피닉스인데 조금은 대접을......" "대접? 새 구이로 안 만드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해." "......" "그리고 나를 놀리고 그 정도로 끝난 거면 다행인 줄 알아 라." "......" 나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피닉스를 슬쩍 본 뒤 다시 오두 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어느새 나와 있던 유니시스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수고했어." "......" "느낌 좋았어!" "......네?" "네!" 유니시스의 한 마디에 예은과 혜경이 엄청난 반응을 보였 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만한 대사는 사절입니다." "쳇! 재밌는데." "뭐가요?" "둔하네. 정말 많이." "......" 도무지 이해 불가능한 말이다. 아, 여자라는 분들은 너무 심오하시다. "현제의 동굴이야." "......?" "이 번역본에 적힌 곳은 현제의 동굴이라는 장소야." "그, 그래요?" "응. 확실해." 현제의 동굴이라.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동굴인데? "그랜드 크로스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있어. 가다 가 나타나는 마을에서 길을 물어보면 가르쳐 줄 거야." "가, 감사합니다." 날 청소시키느라 부려먹기는 했지만, 이렇게 자상하게 가 르쳐 주다니 정말 고마웠다. "아 참! 그리고 말이야, 주의할 게 있어." "주의요?" "응. 현제의 동굴에는 아주 골치 아픈 존재가 살고 있거 든?" "서, 설마?! 드래곤!" "아니, 그건 너무 스케일이 크고...... 아니, 이 존재도 스케 일이 크지. 들어 봤지? 리치." "하하! 리치요? 리치라면...... 리치?" "응, 그래. 현제의 동굴에는 리치가 살고 있어!" 우리 파티에도 리치가 있기는 있다. 거듭 말하지만, 리치라 는 존재는 엄청나게 악하고 나쁘고 강하다. 그런데 우리 파티 에 있는 리치 녀석은 조금, 아니 상당히 이상하다. 한 마디로 정상이 아니었다. 리치 주제에 신을 찬양하지 않나, 마법도 어설프다. 물론 강한 것 같기도 하고 약한 것 같기도 해서 그 점에 대해서는 약간 애매하지만 말이다. 어째 됐든 현제의 동굴이라는 곳,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그곳에는 리치가 있다. 100퍼센트 자연산 리치가 말이다. [스토커?] 아아, 왠지 기대된다. 오늘은 혜경을 실물로는 처음 보는 날이다. 물론 게임도 워낙 실제 같아서 별다를 것은 없지만, 그 미 묘한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며칠 전부터 우리는 다크프리스트의 유물이 숨겨져 있는 현제의 동굴로 향하기 시작했다. 뭐 가는 길이 멀기는 했지만 살벌한 여행이 아닌, 아주 지극히 평범한 여행이었다. 그렇게 여행 3일째가 되었을까? 갑자기 혜경이 곤란한 듯 내게 말했다. "저, 저기 내일 시간 좀 될까?" 그 말에 난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하자면 남는 게 시간이다. 그리고 혜경이 시간이 되냐고 묻는다면 당장 오 케이다. 그래서 지금 난 혜경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오늘은 예은도 바쁜 일 때문에 게임 접속 불가. 시 간은 넉넉하다. "우와, 쟤 뭐야?" "연예인 아냐?" "차예은하고 맞먹을 미모잖아!!" "주, 죽인다." "카!!" "미치겠다." "저런 미소녀가 우리 동네에 살았어?" 그 순간 내 귓가에 들려오는 탄성 어린 음성. 흐음, 이 말만으로도 추측할 수 있다. 지금 어느 분이 오시 는지 말이다. 예은과 비교할 만한 대상은 아무리 봐도 그분밖 에 없었으니까. 키 168센티미터에 몸매는 완전 쭉쭉빵빵. 검은색의 블라우스에,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치마를 입은 소녀. 그리고 붉은색의 리본으로 포니테일을 한 분. 보통 저런 검은색 옷은 소화하기 힘들지만, 이분은 아니다. 절대적으로 소화하신다. 아, 감동이야. "윤현아!" 그 순간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나는 그런 그녀의 말에 다급히 손을 흔들었다. "혜경아!" "쳇, 뭐야?" "남자 있었어?" "제길." "당연한 건가?" "완전 짜증." "젠장." ......별별 말이 다 들려온다. 휴우, 그래도 이해는 간다. 이게 바로 미소녀 분을 만나기 위한 장애물이라면 말이다. "오래 기달렸어?" "아니, 아니. 방금 왔어." "다행이다. 오래 기다린 줄 알고 걱정했어." "별 걱정을...... 하하하." 나는 괜한 걱정을 하는 혜경에게 그렇게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기다렸다 하더라도 나는 행복했을 것이다. 물론 나뿐 만 아니라 모든 남자들이 그렇게 생각할 터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할 게 있었다. 왜 갑자기 현실에서 만 나자고 한 거지? "커피숍이나 들어갈까?" "응, 그러자." 그때 웃으면서 내게 말하는 혜경. 그런데 그 웃음 속의 미소가 약간 어둡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저는 레모네이드요. 윤현아, 뭐 먹을래?" "난 커피." "저기, 레모네이드 한 잔 하고 커피요." "네, 알겠습니다." 꾸벅. 우리의 주문에 살포시 인사를 한 뒤 가 버리는 여자 종업 원. 그것보다, 난 궁금했다. 지금 웃고 있긴 하지만 약간 표정 이 어두운 이유를 말이다. "저기, 혜경아." "응?" "할 말 있지?" "......" "지금 곤란한 일이라도 있는 거야?" "그, 그게......" "괜찮아. 나한테 말해 봐. 내가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내 말에 오히려 곤란해 하는 그녀.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 거지? 심히 궁금하다. "안 돼, 안 돼. 너한테 피해가 갈 수도......" "무슨 소리야. 그런 일 없어. 절대 말이야!" "......" 나는 그 말과 함께 강렬한 눈으로 혜경을 바라보았다. 오늘 분명 그녀는 좋지 않은 일 때문에 기분이라도 풀기 위해 내게 만나자고 했을 것이다. 물론 여자 친구들도 있겠지만 남자인 나를 부른 걸로 봐서는 뭔가에 의지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 서였을 게다. 이렇게 말하니, 왠지 거창하지만 뭐 별 뜻은 없다. "말해. 정말 괜찮다니까." "......무서워." "......?" "너무 무서워." "앵?" 갑자기 무섭다면서 울상을 짓는 그녀. 무, 무섭다니? 내가? 헉! 어느새 내가 표정이 험악해진 거야?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당장 표정관리를 시작했지만, 아무 래도 그녀의 근심은 내 표정과는 일체 상관이 없었나 보다. "스토커 같아." "스토커?" "응." 스토커? 그 여자들 따라다니면서 '오! 마이 베이비. 하아, 하아, 하아!' 이런 대사 치는 애들? -너는 너무 예뻐. 너만을 가지고 싶어. -난 너만을 원해. 하아, 하아. -사랑해. 너의 모든 걸. 그 어떤 것도. -하아, 하아. 너는 너무 귀여워. 내가 가질 거야. -꼭, 꼭 너만을!! -너는 나만을 바라봐야 돼! 난 혜경의 휴대폰을 보는 순간 경악했다. 그녀의 휴대폰 안 에는 이런 문자들로 가득했다. 익명의 문자들, 0000000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휴대폰 번호는 가르쳐 주기 싫은가 보군. "나, 나 어떡해......" "걱정 마, 혜경아. 지켜 줄 테니까." 말 그대로다. 지켜 준다. 혜경이 정도는 지킬 수 있다. 이래 봬도 운동신 경 하나만큼은 그 어떤 이들보다 자신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싸움에도 자신 있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 부모님한테는 말을 못하겠어. 걱 정하실까 봐. 나를 경호해 주는 여자 보디가드가 있는데, 지금 은 집에 무슨 일이 생겨 고향에 내려갔어." 흐음, 보디가드라? 혜경이네 집이 좀 사나 보다. 아니, 보디가드는 필수다. 혜경이 정도의 미모라면 모든 남 자들을 늑대로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할 테니. 그나저나 언제부터 이런 일이 있었지? "언제부터 그랬어?" "이, 이틀 전부터." "이틀 전이라. 그때 혹시 너를 지킨다는 보디가드 분이 고 향에 돌아간 날?" "어, 어떻게 알았어?" "그냥 감." 그 말과 함께 나는 웃었다. 대충 알겠다, 이 스토커 자식의 성격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겁쟁이다. 보디가드가 붙어 있을 땐 아 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보디가드가 사라지자마자 이런 유피한 짓을 해 대는 것이다. "혜경아." "......?" "경찰에 신고하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도 있어. 나한테 맡겨 줘." "......응." 원래 겁쟁이 녀석들이 가끔씩 미친 짓도 잘한다. 경찰에 신고했다는 걸 알면, 극단적으로 변해 버릴지도 모 른다. 그러니 내가 잡아야겠다. 이 변태 스토커를 말이다. 띠링. -그, 그 옆에 있는 남자 놈은 뭐야!! 다시 혜경의 휴대폰에 문자 오는 소리가 울렸다. 그 문자에는 분명히 나를 지칭하는 단어가 들어 있다. 그럼 아주 간단히 추리할 수 있다. 놈이 지금 나와 혜경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거다. 자신의 휴대폰을 내가 들고 있었기 때문에 혜경은 궁금하 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난 그런 혜경을 곁으로 끌어당겼다. "앗! 유, 윤현아." 그리고 곧바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물론 내 이런 행동에 혜경은 너무나도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순간, 띠링. -당장 떨어져!! 또다시 문자가 왔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놈은 확실히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혜경의 어깨를 감싼 채 입을 열었다. 물론 음 흉한 마음이 아예 없다는 것에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이것도 엄연히 작전이다. "혜경아." "으응?" 내가 갑자기 어깨를 껴안은 탓인지 혜경이는 당황한 목소 리로 말했다. 귀여워. 아 참, 이게 아니고. "미안, 잠깐 스토커의 반응 좀 살펴보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너를 이렇게 끌어당기자마자 문자가 왔어." "......" "한 마디로 내가 너와 같이 있는 장면을 보고 곧바로 문자 를 날린 거지." "아!" "그래. 이 근처에 있단 얘기야." 우리 옆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 중 한 명일 수도 있고, 아님 혜경의 미모에 감탄 해 그녀를 바라보는 숱한 남자들 중의 한 명일 수도 있다. 이 것 참 곤란하다. 너무 예쁜 탓에 이렇게 주목을 받으니 더욱 찾아내기가 힘 들다는 말이다. 일단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이동했다. 아마도 감시하기 위해 따라올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런데...... "어이, 죽이는데?" "그냥 돈 안 받고 저 여자 가지련다." "아하! 진짜 죽여. 시팔, 열라 예뻐. 차예은인가 뭔가 하는 연예인하고 거의 동급이잖아?" "나 죽네." "돈 안 받고 저 여자 가질레." 그 순간 내 앞에 나타난 깡패 다섯 명. 좋은 말로 하면 주먹 쓸 줄 알고, 나쁜 말로 하면 날라리다. 그나저나 돈을 안 받는 다니? "저 여자 옆에 있는 남자 놈만 처리하면 되는 거 아니야?" 어차피 저 여자를 건들지 않는다는 계약 조건은 없었잖아." "그것도 그러네? 저 남자 새끼만 처리하라고 했잖아, 그 자 식이." "어라, 그러네. 이게 바로 일석이조?" "유, 윤현아." 그 순간 깡패들의 모습을 보고 잔뜩 움츠러든 혜경. 난 그런 혜경이의 앞을 막아서면서 말했다. "걱정 마. 저딴 놈들한테 질 생각 없거든." "푸하하, 개폼 잡네." "네가 우리 다섯 명을 이긴다고?" "여자 앞에서 폼 잡고 싶어?" "킥킥, 거지 같은 놈." 미안하지만 폼 따위가 아니다. 이래 봬도 과거에 몇 번 화 려한 전적이 있던 나다. 깡패 다섯 명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 다. 그것보다 저 깡패를 고용한 자식, 아마도 혜경의 스토커 같 다. 바보 같은 자식. 만약에 내가 여기서 무릎을 꿇는다면 혜경 에게 모든 피해가 돌아간다는 걸 전혀 모르는 거냐? 정말 할 말 없게 만든다. "어이, 용사님! 힘 좀 써 봐!!" 그때 제일 앞에 서 있던 놈, 깡패 1로 요약하자. 깡패 1이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내게 달려왔다. 즐거우신가 보다. 그렇게 미소를 짓는 걸 보니. 한편 난 열심히 달려오는 깡패 1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그때, 어느새 도착했는지 깡패 1이 그대로 오른 주먹 을 내 얼굴로 날렸다. 난 그 모습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 싸움의 '싸' 자도 모르는 녀석이다. 보통 싸움을 하면 선방이 중요하다고 한다. 물론 중요하다. 선방을 날릴 경우 좀 더 유리하게 싸움을 이끌 수 있으니까. 하지만 선방도 선방 나름이다. 저렇게 허름하게 공격해 들어오는 선방은 오히려 독이 된 다. 난 놈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고개를 숙였고, 순식간에 놈 의 품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물론 남자의 품에 안기려는 의도는 아니니 오해 말도록. 나는 그렇게 그 깡패 1의 품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깡패 1 은 내 이런 행동에 당황하면서 주먹을 얼른 회수해 다시 휘두 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바이, 바이." 퍼억! 나는 그대로 손바닥으로 놈의 배를 가격했다. 단 한 방이었다. "컥!!" 그대로 배를 맞고 나뒹구는 깡패 1. 이미 전투 불능이다. 주먹이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손바닥도 은근히 강하다. "무, 무슨 짓을?!" "저, 저 자식 죽여!!" "갈아 버려!!" "개자식!" 아이고, 무서워라! 그 순간 떼거리로 몰려오는 깡패들. 그 모습을 본 혜경은 기겁을 했지만 난 오히려 웃었다. 시작할까? 3분 뒤. 깡패들은 모두 널브러져 있었다. 정말 모두 무대포 정신만 강하지, 다른 건 별 볼일 없다. 이 런 식으로 싸워서는 고수를 상대로 단 한 방도 먹일 수가 없 다. "으윽." "으윽." "크으윽." 한편 바닥에 널브러진 채 신음을 흘리는 깡패들. 나는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때, "유, 윤현이 너, 너 이렇게 싸움 잘했어?" "글쎄. 내가 잘한다기보다는 애들이 못하는 거지." "......" 싱긋. 나는 혜경이에게 살짝 웃어 준 뒤 다시 녀석들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런 다음 아주 싱그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너를 고용한 고용주 좀 볼 수 있을까?" 저 자식인가? 키는 대략 160센티미터 정도 되었을까? 게다가 보기만 해 도 한숨이 쉬어지는 엄청난 몸집...... 대충 몸무게가 130킬로그램 정도는 되어 보였다. 거기에 하얀색 티셔츠와 너무나도 헐렁한 청바지, 그리고 다듬어지지도 않은 머리. 완전 오타쿠의 전형 같은 모습이었 다. "저 자식이냐?" "네, 네!!" 내 물음에 깡패 리더로 보이는 자가 얼른 대답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오케이! 그럼 가 볼까?" "실례합니다." "......?" 내가 갑자기 말을 걸자, 그 오타쿠 녀석은 경계 어린 눈빛 을 띠었다. 그는 분명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내가 혜경의 어깨를 감싸는 모습을 몰래 지켜봤을 테니까. "시간 좀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이죠?" 그 남자는 역시나 외모에 걸맞게 후텁지근한 목소리로 대 답했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혹시 혜경이라는 여자, 아시죠?" "죽어!!" "......!" 순간, 내 입에서 혜경이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갑자기 품 속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고 나를 찌르려 두는 오타쿠 자식. 순간적이지만 엄청 놀랐다. 이렇게 순식간에 극단적으로 변할 줄은 예상치도 못했기 때문이다. "유, 윤현아!!" 곁에서 그 모습을 본 혜경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난 칼침에 맞아 뒈지고 싶지는 않았다. 휘이익! 나는 그대로 옆으로 살짝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그 단순 한 찌르기를 피했고, 그대로 주먹을 내뻗어 있는 힘껏 칼을 쥔 손을 가격했다. 퍼억! "끄악!!" 최소 못해도 뼈마디 하나는 부서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혜경에게 피해 준 것과 나를 죽이려고 한 것. 그 만행들을 생각하라고! 퍼억!! "끄악!" 나는 그대로 날다시피 해서 몸을 360도로 돌렸다. 그런 다음, 그 녀석의 얼굴에 정확히 한 방 먹여 주었다. 털썩! 오타쿠 놈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손을 가볍게 털면서 말했다. "해결 완료!" 그 오타쿠 녀석은 경찰서에 직접 집어넣었다. 칼까지 쓰는 걸 봐서는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 다. 오히려 이런 놈을 용서해 주면 더 위험하다. "고마워." 집까지 바래다 준 나를 본 혜경이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닌걸." "그래도 윤현이가 아니었다면......" "하하, 신경 쓰지 마," "윤현아." "응?" "너무 듬직해." "......?" 듬직해? 치, 칭찬이야? 오오! 기분 엄청 좋아진다. 속된 말로 기분 째진다고 표현해야 되나? 그만큼 혜경이의 한마디는 내 마음을 불태우기에 충분했 다. "집에 들어갈래?" "......!" "지금 부모님이 안 계시거든. 경찰서에 가셔서, 차라도 한 잔 마시지 않을래?" "......!!" "싫어?" "아니. 절대 좋아!!" 이, 이게 바로 만화책에서나 등장한다는 아름다운 초미소 녀 분과 집에서의 "썸씽' 스토리인 게냐? 그런 게냐?! 으아악!! 허허허허. 지금의 내 심정을 글로 표현한다면 초긴장 상태다. 말 그대로 완전 초긴장. 이런 큰 집에 아름다운 미소녀 분 과 단둘이 있는 상상은 어떤 남자든 한 번쯤 해 보았을 테다. 그, 그게 지금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어!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말하자면, 50평쯤 되는 집에 나와 혜 경, 단둘이었다. 말 그대로 둘, 그 어떤 잡놈도 없는 멋진 상황 이다. 그나저나 역시 내 예상대로 잘사는군. 뭐 이 정도는 되어야 보디가드를 고용할 수 있을 테니까. "차라도 마실레?" "......" "윤현아?"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무것도 아냐, 하하하." 난 어색하게 웃었다. 약간 불순한 상상을 하기는 했으니까. "차 안 마실 거야?" "마, 마셔야지." "어떤 걸로 줄까?" "아, 아무거나." "그럼 홍차 마셔. 그게 몸에 좋잖아, 헤헤." "응." "그럼 난 주방에 잠시." 그 말과 함께 뒷모습을 보이면서 사라지는 혜경. 컥! 피가 역류한다. 이런 급작스러운 상황은 너무 행복하기도 하고, 당 황스럽기도 하다. 난 생전 여자 집이라고는 한 번도 못 가 본 순수남이다. 그런 내가 갑자기 미소녀의 집에, 그것도 단둘이 있게 되었 으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주방에서 혜경이 찾 잔 두 개를 들고 왔다. 그런데 그 모습조차도 아찔하다. 나 왜 이래! "윤현아, 여기." "으응." 나는 혜경이 건네주는 찻잔을 받아 들었다. 두근두근. 그런데 계속해서 요동치는 가슴. 으아악! 완전 돌아 버리겠 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 단순히 여자 집에 단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리 흥분해 버리다니. 내가 이리 지조가 없었던 게냐?! "오늘 너무 고마웠어." "하하하." "윤현이 덕택에 살았어." "시, 신경 쓰지 마. 그 정도는 언제든지 해 줄 수 있으니 까." 내가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는 혜경을 향해 난 그렇게 말했다. 말 그대로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을 지킬 수 있는 것 만 해도 영광이야. "저, 저기......" "응?" 혜경이 갑자기 머뭇거리면서 내게 말을 건넸다. 무슨 곤란한 말이라도 할 예정인지 얼굴까지 살짝 붉어졌 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윤현아, 그러니까 나는 너......" 콰앙! 그 순간 갑자기 엄청난 파워로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을 통해 보이는 야수? 헉! 야, 야수라니...... 아니, 인간이기는 한테 순간적으로 야수로 보였다. 왜냐하 면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이 그를 야수로 보이게 만들었으니 까. "아, 아빠." "......이, 이럴 수가!!" 저, 방금 대사는 제가 치고 싶습니다만. 이럴 수가라니!! 저, 저 야수가 혜경이 아빠?! 의부인 거야? 그런 거야? 그때였다. "나, 남자라고는 전혀 관심도 없던 네가 저 얼굴만 뺀질뺀 질하게 생긴 남자에게 넘어가다니!!" "오, 오해에요. 아빠, 윤현이는 친구......" "내가 모를 줄 알아? 네 나이 18살, 이때까지 난 네가 남자 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는 걸 보지 못했다. 그런데 남자를 집까지 데려오다니......" "그, 그건......" "으아악!" 좀 특이하신 아버지군. 그런데, 진짜 친아버지 맞나? 유전적으로 봤을 때, 어떻게 저 야수 아버지 밑에서 혜경이 같은 초미소녀가 태어날 수 있 는 거지? 무슨 유전자 조작을 했기에?! "여보, 추태는 그만 부리시죠." "......" "실례했어요." 그때 그런 야수의 뒤에서 한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대략 3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다. 그런데 너무나도 아름다우시다. 컥! 내가 30대 여인에게 이런 칭찬을 하다니! 이건 혁명이다. 아니, 그만큼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엄마." "......" 역시 그랬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완전히 말이다. 다행이다. 혜경의 미모는 유전적으로 완벽히 어머니를 닮 았던 것이다. 그런데 저 야수 아버지는 무슨 수로 저런 미녀 와 결혼을 한 거지? 난 이 점이 더 궁금했다. "그래도 혜경이 남자를 데려오다니, 대. 담. 해." "어, 엄마. 지, 진짜 유, 윤현이는 게임에서 안 친구예요. 오 늘 스토커 잡아 준 은인이야." "정말 그것밖에 없는 거야?" "......" "왜 말을 못해? 우리 예쁜 딸." "으아악!! 딸 키워 봤자 다 이래!! 딸이 남자를, 남자를!!" 좀 재미있는 집이긴 하다. "많이 들어요." "네, 감사합니다." 난 갑작스럽게 식사 초대를 받았다. 혜경의 스토커를 퇴치해 준 보상이라고나 할까? 난 내 앞에 펼쳐진 음식의 물결에 정말 감동했다. 물론 나 를 노려보는 한 분의 시선이 그 음식을 음미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여보, 혜경이 애인 얼굴 뚫어지겠어요." "어, 엄마. 애, 애인 아니라니까요!" 엄마의 말에 얼굴을 붉힌 채 말하는 혜경. 귀엽다. 그리고 참고로 난 부정하지 않는다. 애인 취급해 주면 정말 감사다. "으윽! 늑대 같은 놈, 악마 같은 놈. 내, 내 딸을......!! 흑!" 그러면서 그 야수 아버지는 그대로 식탁을 벗어나 뛰어나 갔고, 그걸 난 본 순간 굳었다. 한편 혜경이 그런 나를 보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미, 미안해. 아버지가 좀 특이해." "괘, 괜찮아. 하하하." "어서 식사해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젓가락을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차려 주셨으니 맛있게 먹어야지. 우후후. 너무나도 맛있었다. 혼자 산다고 항상 부실한 식사를 한 탓도 있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혜경이 어머니의 요리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먹을 만했어?" 그때, 조심스럽게 내게 묻는 혜경. 먹을 만한 정도가 아니라 엄청 맛있었는데! "정말 엄청 장난 아니게 베리 굿으로 맛있었어." "다행이야."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런데 윤현아." "응?" "나중에 도시락 싸들고 나랑 어디 가지 않을래?" "......!" "엄마한테 요리를 배워서 조금 자신 있거든, 헤헤. 싫어?" "시, 싫기는! 절대적으로 환영, 환영!!" "고마워." 그 말과 함께 배시시 웃는 그녀. 정말 난 행운남인가 봐, 흐 흑. 너무나도 행복해. 그나저나 혜경이가 싼 도시락이라, 무지 기대되는데? [격투가 리치] "신을 믿습니까?" "네?" "신을 믿습니까? 아니, 믿으셔야 합니다. 신은 너무나도 아 름다우신 분입니다." "......" "자, 저와 함께 신세계를 경험......" 퍼억! "꾸엑!!" 난 지나가던 여자 한 명을 붙잡고 전도를 해 대던 가르의 뒤통수를 그대로 날아차기로 한 방 먹였다. 아, 정말 한숨만 나온다. 들어오자마자 이런 광경이라니!! "......" "죄송합니다. 가던 길 가세요." "아, 네." 내 말에 설교를 듣던 여자는 당황해 하면서 얼른 가 버렸 다. 나는 발차기에 맞아 엎어진 가르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우린 앞으로 리치를 만나야 한다. 물론 우리 파티에도 리치가 있긴 하지만, 이 녀석은 돌대 가리에다가 바보여서 순수한 리치에게는 상대가 안 될 게 분 명하다. 그리고 태평하게 신이나 찾고 있을 게 분명하고. 사실 걱정이 앞선다. 리치의 레벨은 최소 못해도 400 이상이다. 반면 나는 200대다. 물론 너무나도 화려한 스킬과 무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승리를 보장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리치라는 존재가 엄청나기 때문일까? 하지만 왠지 가르를 보면 도무지 엄청난 존재라는 단어와 는 연계가 안 되는데. 흐음...... "어이, 아가씨! 나 시간 많아." "새, 새가 말을!" "나 말이야? 전설의 피닉......" 퍼억! "꾸엑!!" "......죄송합니다. 가세요." "......네." 난 또다시 사과해야 했다. 이번에는 자칭 전설의 피닉스라고 불리는 새대가리 한 마 리 때문이다. 가르 때문에 신경을 쓰지 못했더니, 어느새 지나가던 여자 한테 집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들은 도무지 관리가 안 된다. "하아, 하아. 밟아 줘. 아이이이잉." "......" 으아악!! 이 자식들이 지금 누굴 놀리나!! 돌아가면서 왜 지랄이야!! 퍽! 퍽! 퍽! "아, 아니. 그, 그만!!" "닥쳐!" "으아악!!" 분노 폭발이다. "지, 진정해.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해." "오, 오빠 진정하세요." "흐흑. 너무나도 괴로워." 나는 나를 위로해 주는 혜경과 예은을 보고 그나마 조금씩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만약 그녀들이 아니었다면 이미 난 저것들 때문에 성격이 파탄 났을 게 분명하다. 난 순진하게 살고 싶은데, 저것들이 나를 툭툭 건든다. 흐흑. "폭력 금지!!" "맞습니다! 폭력 금지입니다!!" "폭력은 악이다!" 이제는 아예 시위 모드로 들어간 리치 한 마리와 변태 천족 한 마리. 그리고 새대가리 한 마리. 정말 가지가지 한다. 그리고 누가 들으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이다. 내가 아주 착하고 착한 애들을 핍박하는 줄 알 테니 말이 다. 거듭 말하지만 난 절대로 폭력을 싫어한다(?). 그런데 저것들이 자꾸 그런 나를 건드리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 오해 없도록. 그나저나 정말 답답하다. 이 멤버로 리치를 잡을 수 있을 까? 이미 현제의 동굴까지 남은 거리는 3킬로미터. 오늘 안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내가 걱정스러운 건 과연 이 멤버로 리치를 잡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일단 전설의 피닉스라고 우기는 웃기는 새대가리는 제외한 다. 저번에 그 그림자 괴물을 상대하는 꼬락서니로 봐서는 정 말 약했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그냥 한 방 맞고 끝났으니까. 그리고 가르. 애가 참 판단하기 애매하다. 일단 마법을 쓰는 거 봐서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게, 전술 부족이라고 해야 하나? 머리가 달리다 보니 적절하게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 러니 당연히 전투력 400퍼센트 하락.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인. 이 녀석은 좀 미스터리한 놈이다. 일단 검술 실력은 좋은 것 같은데, 취미가 취미 나름이 라...... 상대방에게 맞는 걸 즐기는 취미를 가진 놈에게 공격을 하 라는 건 차마...... 그러고 보니 완전히 좌절스러운 상황이다. 이렇게 암울할 수가! 어찌 됐든 가긴 가야 했다. 그곳에 내가 찾는 유물급 스킬이 있을 테니. 사실 난 정말 기대 중이다. 일반 스킬도 사기급에 달하는데, 유물급 스킬이면 얼마나 대단할까 하고 말이다. 그런 관계로, 어찌 됐든 현제의 동굴은 반드시 들러야 했 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동굴, 저기가 바로 현제의 동굴이다. 우리는 별탈 없이 현제의 동굴 입구까지 도착했다. 여기까 지 오는 데 특별히 힘들었던 점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저 미친 삼형제의 행동은 너무 참기 힘들었지만 말이 다. "오빠, 여기인가요?" "응." 예은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여기다. 정말 찾기 힘들다. 하지만 힘들 게 찾은 만큼 보람이 있다 는 건가? 분명 그런 게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 동굴 안에서는 과연 어떤 몬스터들이 나를 반 기고 있으려나? "헉!" "뭐, 뭐냐, 데인?" 그때 갑자기 놀라는 데인의 행동에 나는 황급히 주변을 돌 아보았다. 그런 내 반응에 데인이 말했다. "심심해서." "......." "후후후." "죽고 싶냐?" "아니." "......조용히 해라. 안 그래도 긴장 상태니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느라 초긴장 상태인 나를 이런 식으 로 능욕(?)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밟아 주고 싶었지만 힘을 아 껴야 했다. 리치와 싸우기 위해서. "저기......" "응?" 그때 갑자기 혜경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을 건넸 다. 무슨 일이지? "아, 아니야." "......?"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거지? 혜경은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된다. 내가 들은 정보는 말이다. 아무리 수없이 상식을 깨는 게임 이라지만, 그것만은...... "여기인가?"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동굴이다. 크윽! 엄청난 악취였다. 내가 여태까지 가 본 동굴 중 최고 의 악취다. 베스트상을 줘도 충분하겠어. "킁킁! 향기롭습니다, 형제여." "......" 어딜 봐서 이 냄새가 향기롭다는 거냐? 네 코는...... 잠깐! 리치는 코가 없잖아? "야, 가르." "네?" "너 냄새도 맡을 수 있냐?"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게 당연한 거냐? 해골뼈다귀가 냄새를 맡는다는 게 어떻게 당연해!!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 되잖아? "정겨운 냄새. 행복합니다." "......" 그래, 사람이 리치의 생각과 행동을 다 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냥 간단히 신경 쓰고 가던 길이나 가자. 그렇게 내가 가르의 행동을 무시하고 앞장서서 갈 때였다. "크크크! 인간이라니 좋은데?" "......!!" 제길! 콰앙! "피해!" 나는 그 말과 동시에 그대로 예은과 혜경을 품에 안고 뒤로 물러섰다. 가르와 데인도 다행히 내 말에 반응해 뒤로 물러섰는 데...... "......꾸에엑!!" ......피닉스 녀석은 피하지 못했다. 갑자기 터진 폭발에 그대로 휘말린 것이다. "......쿨럭쿨럭." 잠시 후, 피닉스가 새까맣게 탄 모습으로 천천히 기어 나왔 다. 역시 진정 불사조 피닉스다. 내가 예견하는데, 저 녀석이 피닉스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벌써 죽고도 남았다. "우후! 몸놀림이 좋은데?" 그때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해골뼈다귀가 모습을 드러냈 다. 서, 설마! "마, 말도 안 돼!" 그 순간 혜경이 경악의 외침을 질렀다. 응? "......진짜 격투사 리치라니." "겨, 격투사 리치?" 그 말에 나는 리치 쪽으로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 니 저 리치는 겉에 아무것도 걸치치 않았다. 그리고 주먹에 붕대 같은 것을 감고 있었다. 서, 설마...... "나를 잘 아는군." 파앗! 순식간에 쇄도해 오는 리치 자식, 정말 엄청나다!! 이, 이게 리치의 속도냐? 마법의 언데드라는 리치가 이런 엄청난 속도를 낸다는 공식은 누가 도입한 거냐! 그때였다. 파징! 가르가...... 막아 냈다. 그 공격을 말이다. 가르는 저 이상한 리치가 내지른 주먹을, 어느새 처음 보는 지팡이를 꺼내 들어 배리어를 친 채 막아 내고 있었다. 가, 가르......? "오랜만이군요, 세룬." "......서, 설마!" "반갑습니다." "가, 가르!!" "아직도 저를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이군요. 물론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해야겠지만, 오늘이야말로 당신의 목숨을 가져 가겠습니다, 세룬." 뭐, 뭐냐!! 이 상황은? 그리고 가르, 너 왜 그래?! 진짜 미친 거냐? "그럼 서서히 시작해 볼까요?" 가르의 한마디였다. <『다크프리스트』제3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