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검황의 죽음 검황이 죽었다. 좋게 말하면 선인지로에 들어 선 것이고, 사실대로 이실 직고 한다면 심장마비로 죽었다. 괴물 같은 무림의 황제가 죽었으니 불로장생은 개소리며 누구든 나이 이길 자 아무도 없다는 것은 사실로 판명났 다. 전날까지만 해도 펄펄 날뛰며 절대 죽을 것 같지 않았던 검황이 그렇게 급살 맞아 죽을 것이라 누가 생각이나 했겠 는가? 전 무림은 애도의 눈물을 흘렸지만, 검황 주변 인물들은 잔치라도 벌리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숨겨야 했다. 아무리 기뻐도 내색할만한 자리가 아니었기때문이었 다. ‘그 지랄 같은 성격의 늙은이가 죽었다니….’ 주변 인물은 둘째 치고자식들조차 그가 제발 고이죽 고, 다시 살아나지 않기를 빌었을 정도였다. 지금의 상황이 결코 꿈이 아니라 믿었다. 전 무림에서 추앙받은 무림의 황제 검황 담소광. 그가 급살 맞은 계절은 가을이었고, 그때 나이 196세를 가리키고 있었다. 1. 잠에서 깨어나다 잠에서 깨어나니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왠지 평소에 느끼던 감각이 무뎌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꺼풀조차 무거워진 기분이다. ‘뭐, 뭐지?’ 눈꺼풀만이 아니었다. 손가락하나 발가락하나 움직이기 힘든 것이 아닌가? ‘그래 우선 내기를 순환하여 보자.’ 순간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속이 모자라다 가득 차있던 기들. 주체 못할 만큼 흘러넘치던 기운들.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 듯 허했기 때문이다. 입 밖으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란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생각일 뿐, 분노의 비명은 공허한 머릿속 에 메아리 칠 뿐이었다. 작금의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잠시 잊고있었 는데, 조금 전꿈속에서 꾸었던 상황이머릿속에 그려졌 다. “늙은이, 거기 줄 이탈하지 말고잘 따라와! 거기서 떨 어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단 말이야!” 한 사내의 날카로운 비명과도 같은 고함이 담소광의고 막을 파고들었다. 그제야 정신이든 담소광은 흐릿한 눈을 뜨고 주변을두 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판자때기 하나가 허름한 기둥의 정 가운데붙어 있는 것을 확인했고,담소광의 눈은 그곳에용의 필체로 휘갈겨있는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閻界(염계)] “크하하하하!” 담소광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유쾌한 일이 어딨겠는가? 염계란다. 염계. 생사경과 반로환동의 경지를 넘어선 자신이 죽을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앞으로 최소 300년은 더 살 수있다 생각하고 있던 중 이다. 그런데 염계라니. 꿈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꿈이다. 어느 정도 현실성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킬킬킬킬!” 그때 조금 전의 목소리와 그것보다 조금 더 굵은 목소리 가 담소광의 귓속으로 다시 들어왔다. “저게 미쳤나? 너 뒤지고 싶어?!” “이미 뒤진 놈이다.” 이어지는 담담한 말투. 순간 담소광은 발끈했다. 그 지랄 같은 성격이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기때문이 다. 그런데 막상 이죽이며 대꾸를 하려 했지만, 뭔가 이질적 인 기분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뭔가 화를 내는 것 같은데,감정이 느껴지지 않 는 목소리였던 것이다. 의아해 곰곰이 생각해보자 그들의 목소리에서높낮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거기다가 온몸을 뒤덮은 듯 검은 복장. 조금씩 정신이 정리되는 담소광이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뭔가 이상해….’ 어디선가 많이 봤던…. 아니, 많이 들어보았던 달갑지 못한 풍경들. 마치 저승에 끌려온 듯한 모습이지 않은가?! “헉!? 설마 저승사자?” 순간 담소광의 머리는 망치에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내, 내가 죽었단 말인가? 허…….” 허탈한 상실감에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 다. 그때 저승사자로 보이는 사내의 입에서 싸늘한 한마디 가 흘러나왔다. “쯥. 그래서 내가 조금 배운 녀석은 데려오기 싫다니까. 폐인이 녀석도 있는데 내가 왜?” “어쩌겠어. 굴리면 굴러야지.” “자연을 조금 느낀 주제에 감각만 좋아서, 혼백주제임에 도 전생을 기억한단 말이야. 참, 신기해.” “그분께서 뭔가를 시험하기 위해뭔가 손을 대신것이 부작용을 일으켰다잖아.” “그런데 왜 안 고치신데?” “귀찮다는 것을 나보고 어쩌라구.” “췟!” 뭔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 보인다. 문제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높낮이 없는말투 였다. 두 번째 문제는 그들의 대화 속에 담긴 내용이다. 담소광은 온 몸에, 아니, 혼백 전체에 소름이 돋아 올랐 다. 혼백이 무슨 소름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말이 되는지 안되는 지는 둘째 치고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니미, 내가 정말 죽었구나.’ 검황의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흘렀다.라고 느껴질 때였다. “야. 너 줄 잘 맞춰라. 거기 구름 밑으로 떨어지면 어떻 게 될지 모르니까.그곳으로 떨어지면 우리조차감당 할 수 없다구. 알겠지? 여기 다른녀석들처럼 조용히 저승이 나 가자.” “쓸데없는 소리는 왜 하는가? 예전에 저렇게 정신차린 녀석 하나가 무슨 생각에선지 뛰어 내린 게 기억 안나는 가?” “아차!” 하는 순간 그들은 구름 밑으로 뛰어내리고 있는담소광 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으아아아악!” 담소광의 비명은 우렁찼다. “늙은이 목소리치곤 우렁차군.” “시끄럽네.” “여하튼 난 모르는 일이네. 염라국에기별은 넣어 놓을 테니 자네 혼자 뒤집어쓰게나.” “젠장, 똥 밟았군.” 저승사자 둘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담소광의 마지막 기억 이었다. ‘그럼 여긴 지옥인가?’ 결코 우습게 넘길 수 없을 것만 같은 생생한 꿈이다. 작금의 상황을 겪고있는 담소광이었기에 더욱마음에 와 닿았다.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공허한 메아리. 아무리 외쳐도 자신 밖에 들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살아있는 건가? ‘욱’해서 구름 아래로 뛰어내렸던 것이 실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은 선명했다. 하지만, 아직도 몸이 죽은 것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손끝과 발끝이 시리다는 느낌이다. 깜짝 놀라 몸의 기를 돌아봤다. 여전히 백지상태나 다름없다. 도깨비에게 홀린 기분이다. 몸에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그 순간이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크게 수축을 하자 온몸에 피가 순환하며 몸을 덥히는 것 이다. 그제야 담소광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 다. 순간 한줄기의 따스한 온기를 머금은 생기(生氣)를 붙잡 을 수 있었다. 태허무령심법(太虛憮靈心法).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기를 순환시킬 이성 만 존재 한다면 생명을연장 시킬 수있는 활생(活生)의 심법. 그러나 완전히 살아나기 위해선 호흡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어야 했고, 외부적인 응급처치가필요하긴 했지만 말 이다. 담소광은 믿었다. 설마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없을 리가 없음을. 자신이 호흡만 한다면 주변에 널려있는 수하와 자식들이 알아차리고 응급처치를 할 것이 분명했다. 태허무령심법을 사용하여 심(心)으로 혼(魂)을다스리며 신(身)을 돌보고자 심력을 쏟아 부었다. 아무리 급하다 하여도 심(心)이 흩어진다면 결코혼(魂) 을 다스릴 수 없고, 혼을 다스리지 못한 상황에서 기를 순 환한다면 신(身)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잡은 온기(溫氣)는 담소광의 초인과도 같은 인 내력을 바탕으로 몸을 순환했다. 단전에서 시작한 바늘구멍만한 기운. 그러나 정말 담소광 본인의 육신이 맞는지 의아 할 정도 였다. 혈맥마다 가득 들어차있는 불순물들.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제길. 이거 마치다른 사람 몸안에라도 들어와 있는 기분이잖아!’ 그 생각을 하자 뒤통수에서 강렬한 충격을 느낄 수 있었 다. ‘서, 설마!’ 갑자기 저승사자가 지껄인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거기 구름 밑으로 떨어지면 어떻게될지 모르니까. 그 곳으로 떨어지면 우리조차 감당 할 수 없다구. 알겠지? 여 기 다른 녀석들처럼 조용히 저승이나 가자.] ‘니…, 니미럴!’ 설마 아니길 빌며 난생처음으로 부처를 찾았다. 가까스로 온기를 온몸에한바퀴 돌리자 심장의박동이 빨라지며 감각이 더 살아남을 느꼈다. 한번 운기에 성공하자 다음번은 수월했다. 감각은 차츰 살아나고 눈꺼풀이 꿈틀거림을 느꼈다. ‘됐다!’ 쾌재를 외친 담소광. 웅웅거리지만 소음이 들린다. 청각이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다. 희끄무리한 빛이 보인다. 시각에도 문제가 없는 것인가? 바로 그때 옆에서 엄청난 비명이 담소광의 귀를따갑게 만들었다. “꺄아아아악!” 여자의 높은 고성. 뉘집 여인네인지는모르겠지만, 참으로방정맞지 못한 목소리다. 그때 한 낮선 사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여보! 무슨 일이야?!”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놀라서 달려온 모양이다. 그러자 비명을 지르던 여자가 울먹였다. “며, 명훈이가. 명훈이가! 아……흠….” 털썩! “여, 여보. 명훈이가 왜? 정신 좀 차려. 여보!” 그때 담소광의 시야가 밝아지며 낮설고 이질적인 질감의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명훈아!” 2. 담소광 학교가다 이명훈. 아니, 담소광. 암울한 감정이 물밀 듯 몰려왔다. 정신이 멍했다. 자신이 죽었었다는 것도 믿기가 어려운 판국이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몸 안에 들어왔다니.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상황을 다시 회상하여 보자. 부모로 보이는 남녀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이는 열 여덞이고, 이름은 이명훈이란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하늘을 향해 외치고 싶었다.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듯 행동했다.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 멀뚱히 두리번거렸다. 그게 이상해 보였나 보다. 솔직히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다. 곁에 있던 사내와 여인이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새치가 가득한 중년인이 근엄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의사님.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사내가 말하자, “기억상실인 것 같군요.” “아이고, 명운이 이 녀석아!” 낮선 여인이었지만, 자신의 가슴에 안겨 통곡 하는 모습 을 보자 어째서인지 코끝이 찡했다. 그때 사내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다시 기억을 찾을 수는 없는 건가요?” “조금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이번 주가 고비라고 생각 되는 군요. 그러나 기억을 찾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마음을 다잡고 계십시오.” 여인의 눈가에 물기가 자옥하게 깔렸다. 담소광의 가슴이 미어진다. 담소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믿기지 않는 상황을 정리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경(銅鏡). 동경 좀….” 다른 세상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듣고 이해하 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그것도 모자란지 자신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타국어가 흘 러나왔지만, 담소광은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을 하듯 했기 때문이다. “동경? …거울말이냐?” 아버지로 보이는 사내가 눈치 빠르게 담소광의 말을 이 해하곤 거울을 가져다주었다. 정신에 문제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 다. 거울을 보고야 정말 자신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왔다 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자 허망함에 한숨만 흘러나왔다. 완성되어진 자신의 완벽한 육체에 대한 그리움만 몽실몽 실 피어날 뿐이었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거 수긍하고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것 이다. 참으로 단념이 빠른 검황이었다. 지랄 같이 단순한 성격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담소광은 과거부터 귀찮은 것을 싫어했다. 자신이 쫓던 색마 녀석도 쫓다가 귀찮아서 포기한 일화 는 뜬 소문이 아닌 사실이었던 것이다. 담소광의 수하들이 그 사실을 무마하기 위해 얼마나 동 분서주 했는지 안 봐도 삼천리다. 담소광은 운기를 해보고자 살며시 눈을 감았다. 텅 빈 단전만이 허허하게 느껴질 뿐이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 줘도 써먹지 못할 몸. 자신의 몸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갑갑함에 한숨을 흘렸 다. 그러나 자신이 누군가? 검황이었다. 검황 담소광이었다. 감히 넘볼 자가 없었던, 유일무이한 경지에 오른 생사경 의 고수였다. 이미 모든 깨달음과 무리가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 다. 늦어도 3년이면 자신의 모든 무리를 소화하여 최소 자 신이 죽기 전에 이뤘던 경지의 1할을 되찾을 수 있을 것 이다. 담소광은 자신이 있었다. 정신이 정리가 되고 앞으로 할 일을 정해놓자 뭔가가 머 릿속으로 치받아 올라왔다. ‘그런데 내가 이 알 수 없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말을 하는 거지?’ 혹시나 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중원의 말을 떠올려보자 막힘이 없었다. ‘설마, 이 소년의 몸에 들어오면서 생긴 현상일까? 그러 고 보니 이 알 수 없는 지식들은 뭐지? 말도 없이 달려가 는 마차라. 상자에서 사람이 나오고…. 뭐, 곧 알게 되겠 지. 여하튼 이 기억에 의하면 내가 학교라는 곳에 가야겠 군.’ 조금 더 기억을 끌어내자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낯설지 만은 않았던 남여가 이 소년의 부모라는 것 또한 알게 되 었다. 잠시 여러 가지 필요한 기억을 더듬어 알아 낼 수 있었 다. 담소광, 아니 이명훈인 된 검황. 천천히 자신의 부모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문을 열었다. “…어머니, 아버지.” 자신의 부러진 다리에 팔에 붙어있는 기부스를 바라보며 훌쩍이던 어머니는 명훈이의 한마디에 번개같이 시선을 돌 렸다. 설마, 설마 하는 눈빛이다. 이명훈은 민망한 기분이 들이 시선을 잠시 내렸다. 그러나 곧 시선을 올리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을 한번 씩 바라봐 주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명훈의 손을 부여잡으며 울부짖으셨다. “이, 이 녀석아!” “흑흑.” “아버지…. 어머니….” 명훈은 그 낮선 이름을 한번씩 되뇌었다. 갑자기 가슴이 멍울진다. 자신이 담소광이었을 때, 부모의 얼굴도 모르던 고아였 다. 악착같이 삶에 힘겨워 고생하여 결국 그 자리에 올랐다. 자신의 약간은 파탄적인 성격. 그 이유 때문이라며 위안 삼았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낮선 그 이름. 부모님. 명훈의 가슴이 따스해 지는 것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자신의 부모가 된 이 두 남자와 여자에게 결코 비탄의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겠노라고…. 명훈은 일주일동안 병실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첫 날 부모를 돌려보낸 명훈. 명상에 잠긴 체 한줄기의 기를 찾아내기 위해 심혈을 기 울였다. 그러나 그 한줄기의 기운이 안 잡혔다. “젠장. 무슨 놈의 기가 이토록 메말라 있단 말인가?” 기가 찼다. 자연의 기라는 것을 느끼기 조차 힘들었다. 주위에 ‘희박하다’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 한줄기만 잡아내면 다음은 수월 할 터인데…. 한번 잡기만 하면 주변에 상응하면 기를 흡수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속성법도 있었다. 그러나 위험성이 컷다. 솔직히 안달할 지경은 아니지 않은가? 시간은 차고도 넘칠 정도로 많았다.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이라지 않은가? 허약하긴 했지만, 그것을 고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차분히 정도를 밟다보면 해결 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바심 나던 것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명훈은 검황 담소광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잠이 라는 것을 경험했다. 참으로 깊고 깊은 꿀 같이 달콤한 단잠이었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난 명훈. 어머니께 부탁해서 창을 활짝 열고 찬 공기를 한 몸에 받았다. 역시나 새벽의 공기는 자연의 기운을 적당히 포용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명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눈을 감아 경혼심법을 운용했다. 경혼심법(倞混心法). 담소광이 만든 하나의 심법으로, 자연의 기를 응축하여 몸에 속독으로 쌓는 효용을 지니고 있다. 조금 더 자연 친화적인 기운을 느끼도록 도움을 준다. 때문에 보통의 심법에 비해 빠른 진전이 있는 것이다. 삼십분 정도 흘렀다. 날숨을 하는 순간이다. 따스한 기운이 단전에 들어선 것을 느꼈다.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항문을 봉하며, 호흡 을 멈추었다. 일종의 편법이다. 기운을 이처럼 가둬서 몸에 친화력을 높이는 방법. “후우….” 조였던 항문과 기공을 펼쳐서 몸에서 나가기 위해 발광 하는 기운을 풀어주었다. 스스스스. 간지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처음의 성공은 다음이라는 단어에 수월하다라는 문장을 붙여 주었다. 따스하게 단전에 차들어 간 기(氣)를 단전 안에서 운행 하며 단전을 율동적으로 변화시켜나갔다. 세상은 박자다. 심장박동을 시작으로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이라는 박자 안에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스무스(smooth)하게. 모든 것은 시간이라는 박자(拍子)의 제약을 받는다. 그 박자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의 성질이 변화 한다. 심법이란 그 박자를 활용하도록 도와주는 것에 불과하 다. 어떻게 박자를 운용하느냐는 개인의 능력인 것이다. 박자가 시작 되는 순간 기의 흐름은 강이고 다른 박자가 시작되기 전은 약이라 할 수 있다. 명훈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 강약의 박자에서 강이 시작 되어질 때, 같은 양의 기 라해도 기의 밀집력에서 크게 차이를 보였다. 이것은 자신이 생사경(生死境)에 넘어가며 깨달은 깨달 음이었다. 그 밀집력의 힘을 이용한다면 조금 더 빠른 진전(進展) 을 보일 수 있으리라. 그 상태로 기를 단전에 끌어 모았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기가 느껴진다. 일주일이 경과하고 나서의 상태였다.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이론 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빠른 진행이 아닌가? 이런 상황으로 진도가 나간다면 3년으로 예상했던 소화 경(小化境)의 경지(境地)를 2년, 아니 1년으로 앞당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예상되었다. 거기에 생각이 머물자 가슴이 뛰었다. 몸이 많이 굳어 있었다. 혈관에 불순물도 많았다. 기도는 사용되지 않아 막혀 있기도 했다. 명훈은 조바심 내지 않았다. 그것을 타통(打通) 시킬 수 있는 편법을 생각해 내었기 때문이다. 막힌 기도와 불순물등이 뭉쳐있는 곳에 내력을 집중하여 급가속을 시도한 것이다. 고오오오! 자칫 혈관(血管)과 기도(氣道)를 다칠 수 있는 위험한 방 법이었다. 하지만, 명훈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집중력은 그것 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 식으로 전신에 자리 잡고 있는 부정한 사기(邪氣) 를 몰아내고 선기(鮮氣)를 충당하였다. 전신에 선기를 체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자주 사용 되고, 완전히 죽어버린 곳을 살리기 위해 부분적으로 진기 를 집중시켰다. 죽어버린 곳에는 부정한 사기가 깃들 위험성이 있기 때 문이다. 진기의 끝없는 운기가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천치 4개월에 달한 중상이 보름도 안 되어 완치되었다. 부러진 뼈가 완전히 붙었고, 타박상과 깊은 상흔은 흉조 차 남지 않고 매끈하게 사라졌다. 의사의 경악에 가까운 표정은 참으로 볼만했다. “의사 경력 29년 동안 이런 현상은 처음입니다.” “안 좋은 건가요?” “아뇨. 완치가 되었습니다. 어디하나 나무라지 않군요. 이 상태로 퇴원을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내일 퇴원 수속 을 밟으십시오.” “정말 감사합니다.” 부모의 말에 의사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정확한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일주일 마나 진찰을 받으러 병원으로 나 와 주셔야 합니다.” 부모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했지만, 어딘지 불안한 심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몸이 완치되었다고 안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심적으로 다친 상처가 있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요양하는 셈 집안에 가두었다. 부모들은 명훈이 어딘가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았 지만, 허락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간간히 이른 새벽에 약수를 뜨러나가거나 산책을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명훈은 그 정도로 만족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부모님들께서 말하기 꺼려 한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부모에게 걱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부모라는 것이 이렇게 따뜻한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자신도 부모의 입장이었지만, 과거 자식들에게 호랑이라 고 불릴 정도였다. 솔직히 사랑스럽긴 했지만, 어떻게 감정을 표현해야 할 줄 몰랐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자신의 실수로 상처를 입으면 어찌할까 걱정된 탓에 엄 하게만 키운 것이다. 여하튼 약간이나마 따스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명훈. 많은 것을 배웠다. 그동안 기운은 충실하게 모았다. 많이 탁해진 기운이 많았으나, 새벽에 인근 산에는 적당 한 기운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저도 이제 학교에 가야 하지 않을까요?” 명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흠칫 놀라며, 들고 있던 약수통을 내렸 다. 그리곤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여기 앉아 보거라.”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치는 아버지. 명훈은 조심스럽게 그 자리에 앉았다. “학교에 …가고 싶으냐?” 목소리에 힘이 없다.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다른 곳을 주시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 다. 어째서인지 면목 없어서 자식을 바라보지 못하겠다는 모 습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사정이 있다는 것을 명훈은 눈 치 차릴 수 있었다. ‘내가, 아니 이 본 육신의 주인이 죽기 전에 무슨 사고 가 있었나 보군.’ 명훈은 검황이었던 전생에 게을렀을 뿐이지 눈치가 빨랐 다. 아버지의 체격은 외소한 편이었다. 하지만, 명훈의 앞에서는 당당한 모습만을 보여주고자 노력 하셨다. 표현은 하지 않으셨지만, 자신의 왜소한 덩치에 상당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계신 듯 했다. 명훈은 자신의 몸을 슬쩍 돌아보았다. 빈약함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운동을 한번이라도 했는지 의심스러운 가느다란 팔과 다 리. 심맥도 부정확하였고, 근력의 양도 적었다. 운동이란 것과 거리가 먼 대표적인 모습이다. 아버지는 그런 명훈의 몸이 자신의 탓이냥 한숨을 내쉬 었다. 그리고 깊은 생각을 했다. ‘명훈이는 자신이 학교에서 당한 일을 아직도 기억 못하 나 보군.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명훈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기억을 읽고나서 총기가 흐르는 맑은 두 눈으로 변했다. 대부분은 기억했지만, 부분적인 기억상실이라는 의사의 말. 아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무의식이 봉인 한 것 같다고 말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결론을 내린 아버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 허락하마. 그러나 바로는 아니다. 다음주까지 요 양해라. 그리고 그때 생각을 마저 듣고 허락해주마.” “아버지!” 명훈은 뛸 듯 기뻤다. 지금 이 세상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았다. 모두 기억할 수는 있지만, 직접 눈으로 보며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억속에서 말하는 친구라는 것도 사궈보고 싶었 다. 과거 전생의 쓸쓸함을 잊고 새 삶을 살고 싶었다.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아버지.” 아버지가 가볍게 미소를 띠우셨다. 나이에 비하지 않아 상당한 동안인 아버지. 결코 명훈과 비교해서 크게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다. 유순하게 생긴 명훈. 명훈은 그런 아버지의 외모를 빼다 박았다. 아버지는 걱정스러웠다. 소극적인 성격이었던 명훈이 변한 것은 좋았다. 그러나 다시 학교를 나감으로 과거의 소극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면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결국 한마디를 더 내 뱉었다. “학교에 가서 힘든 일이 있거든 이 아빠에게 바로 말해 야 한다. 알겠지?” 굳은 다짐이 섞인 말투다. 명훈은 이런류의 말은 결코 그냥 넘어 갈 수 없다는 것 을 잘 알고 있었다. 어째서인지는 잘 몰랐다. 허나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얼굴에 완전한 안심이 그려지진 않았다. 아직도 불안한 그림이 얼굴에 남아 있다. 명훈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 수 있는 나이예요,” 그제야 안색이 약간 돌아옴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명훈이 슬쩍 미소를 흘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것은 변했다. 하지만, 무림에 있을 때 올려다보았던 하늘. 자신의 머리위에 고스라니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부모님과 짧은 대화. 명훈의 대답은 확고했다. “걱정마세요. 제 몸은 제가 지킬 수 있어요.” 아직도 뭔가를 숨기는 부모님. 자신이 어째서 죽어가고 있었는지. 진실은 알 수 없었다. 빠른 눈치 덕분에 학교와 관련된 뭔가를 느끼긴 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거라.” 등 뒤에서 들리는 부모님의 목소리 속에 담긴 걱정. 깨끗하게 씻어 주리라 마음먹었다. 학교라는 곳에 가면서 많은 잡념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혼자 있게 된 탓이다. 홀가분함이 준 선물이리라. 처음으로 나온 익숙치 못한 길. 낮선 풍경. 모든 사물을 남아있는 기억 덕에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지만, 명훈은 솔직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도 운명이라고 봐야 하는가? 저승을 목격한 자신이기에 운명론에 대해 짧은 생각을 해보았다. 자신은 돌발적이라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미 정해진 것이라면? 소름이 돋는다. 예전부터 생각했긴 해봤다. 허나, 이토록 가슴에 와 닿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는 어떤 고인들이 존재할까? 그런 생각은 흥분으로 명훈을 뒤덮었다. 자신이 나름대로 이 세상을 알아본 결과. 자신의 전생(前生)은 이곳에서 천여 년 전의 세상임을 알게 되었다. 중원을 지금은 중국이라 부름도 알았다. 명훈 자신이 있는 이곳은 지금 한국이란다. 과거 자신들이 동이(東夷)라 불렀던 곳. 그렇다면 자신은 정말 먼 미래로 왔단 말이다. 두근거린다. 미래라니. 그 말은 그만큼 무공이 발전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운명이니 뭐니는 기억에서 지워졌다. 생사경을 넘어선 고수. 그때는 자신하나 뿐이었다. 전무후무의 경지라 불리던 생사경. 하지만, 자신은 알 수 있었다. 생사경 위의 경지가 있음을 말이다. 생사경의 경지에 올라서야 알게 된 아득한 그 경지. 자신이 아련히 떠올리던 그 경지. 자연경이라 스스로 이름붙인 경지. 두근거림을 주체 할 수 없다. 정말로 1000여년이 지난 것이 확실하다면, 그 자연경에 도달한 자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봐온 사람들을 보고 실망하긴 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평민들이라는 생각에 희망 을 걸어 보았다. 과거나 미래나 도인이라는 작자들. 깊은 산중에 은거랍시고 삽질하며 겉멋이나 부릴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어느덧 무의식중에 학교라는 곳에 도착했다. 학교에 다가가면 갈수록 와글거리는 애들이 보였다. 참 귀여워 보인다. 여자들의 허벅지가 드러난 치마를 보고 참으로 미래사회 는 좋은 곳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과거 무림에서 무릎위로 올라오는 치마를 상상해 본적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뜩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아, 나도 애였지?’ 명훈은 혼자 하던 생각에 멋쩍음을 느꼈다. 슬쩍 머리를 긁적였다. ‘2학년 9반 이라고 했던가?’ 학교에 들어서서 교문 앞을 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느 껴졌다. 아직 둔감한 몸이지만, 느껴질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아, 내가 아팠던 것을 알았기 때문인 것 같…. 흠…. 아 닌 것 같군. 이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꺼림칙한 기운은 뭐지?’ 교문을 지나는 동안 명훈에겐 그 기분이 지속 되었다. 고개를 꺄웃거리며, 교실을 찾아 한참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명훈의 기분이 드러워졌다. 내기를 슬쩍 운기하여 몸의 감각을 살렸다. 그 순간 뒤통수에 강한 타격감을 느꼈다. 퍼억! “컥!” 눈물이 ‘핑’하고 돌 정도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뭐, 뭐야?’ 기가 막혔다. ‘태어나서 설마 이 담소광…. 아니지, 지금은 명훈이지. 여하튼 본좌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할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명훈은 기가 막혔다. 분노가 이글거리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명훈보다 키가 큰 애새끼가 희쭉거리며 서있었 다. ‘헐, 거구로군.’ 녀석은 상당히 컸다. 대충 6척(尺) 2촌(寸)… 아니, 186정도의 키였다. ‘옷 입은 것을 보니 본좌와 같은 나이인 약관을 막 넘어 섰을 텐데…. 놀랍군. 과거였다면 산적질하기 딱 좋은 체 구로군.’ 잡생각이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그 덕에 분노가 약간 수그러지고 놀람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과거에서는 보기 힘든 거구였던 탓이다. 주변을 보니 어느 세 껄렁거리는 녀석들이 나타나 명훈 을 보며 웃어댄다. 반가움이 묻어 있는 얼굴이었지만, 명훈으로서는 왠지 거림칙하게 느껴졌다. 무의식중에 그 속의 비웃음을 느낀 탓이다. 의식 중에 느꼈다면 죽었으리라. ‘명훈의 친구인가? 그런데 이 녀석들 왜 이렇게 재수 없 는 쌍 판을 하고 있지?’ 본 육신의 주인 명훈의 친구로 보이는 거구. 하지만, 녀석이 이죽거리는 모습을 보니 쌍판을 갈겨주 고 싶은 충동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참았다. 사건을 만들어서 좋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 였다. 정말 성질 많이 죽었다. 과거였다면 저런 녀석은 이미 친구가 뭐냐? 말이고 뭐고 없다. 패고 봤을 테니 말이다. 허나, 세상은 변해 있었다. 때문에 친구끼리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결국 명훈은 같이 피식 웃어줬다. 그러자 녀석이 입을 열었다. “어쭈, 이 자식이 실실 쪼개네? 좋아?” “킥킥킥.” 주변에 명훈을 둘러싸고 반겨주는(?) 녀석들이 웃는다. 명훈은 뭔소린지 몰라서 꺄웃거렸다. 녀석들이 웃기에 반가워서 그러는가했다. 명훈 역시 반갑다는 의사를 표하기 위해 더욱 환하게 웃 어주었다. 그 와중에 계속 거구 녀석이 했던 말을 생각했다. ‘뭔소리야? 쪼개긴 뭘 쪼개? 설마 인사말인가?’ 결국 명훈도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말을 받아 주었 다. “하하. 이 자식 너도 쪼갰구나. 좋다. 녀석아. 하하!” 갑자기 거구 녀석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주변에 건들거리던 녀석이 미친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 다. 명훈은 자신이 뭔가를 실수 한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더욱 환하게 빛날 정도로 웃어줬다. 이상하다. 뭔가 분위기가 더욱더 요상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웃으면 웃을수록 그런 느낌은 강해졌다. 그런 느낌이 왜 생기는가를 이해하기위해 머리를 굴리는 순간이었다. 녀석들이 성큼 명훈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명훈이 설마하며 고개를 꺄웃거렸다. ‘설마 시비 거는 건가?’ 그렇게 느낀 순간 멀리서 한 사내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 왔다. “이 녀석들. 어서 교실에 안 들어가고 뭐하는 거냐!” 그러자 돌변하듯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거구 옆에 있던 얍실하게 웃고 있던 녀석이 명훈의 목에 어깨동무를 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웃으니 약간 반반하게 보였다. 보기에 좋은 미소다. 참고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도덕선생님 안녕하세요.” “9반 반장이군. 거기서 뭐하고 있나? 빨리 안 들어가 고.” “아니, 이 녀석이 학교에 나와서 반가워서 인사하고 있 던 중이예요.” 그 도덕선생이라는 작자가 사각안경을 치켜 올리며 명훈 을 보았다. 알아보는 듯한 눈치다. 그는 약간 놀란 얼굴로 명훈에게 말을 걸어왔다. “명훈이군. 몸은 괜찮으냐?” “네. 특별히 아픈 곳은 없네요.” 명훈이가 대답을 마치자마자 놀란 표정을 지우더니, 무 슨 이유에선지 인상을 구겼다. 나름대로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이미 명훈 나름대로 생각을 하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뭔가 나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나보군.’ “그래. 인사 끝났으면 어서 들어가라. 조회시간 시작한 지 한참 됐다.” 그러자 명훈의 목에 어깨동무 하고 있던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선생님. 지금 들어가겠습니다.” 도덕 선생이란 녀석은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하며 우리와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어떤 교실에 들어갔다. 명훈과 일행들은 그것을 마저 보았다. 명훈이가 교실에 들어가려하자 그 반장인지 뭔지라는 녀 석이 팔에 힘을 준 탓에 꼼짝 못했기 때문이다. 뭐, 피한다면 피할 수 있었지만, 조금 전에 반가움을 표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명훈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처음은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선생 앞에서 보여준 녀석 들의 반가운 목소리. 명훈이가 오해한 듯싶어서 멀뚱히 기다려줬다. 뭔가를 마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잠시 시간 내는 것 정도야 뭐가 어렵겠는가? 멀뚱히 있는데, 선생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반장 녀석이 명훈에게 이를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이 새끼. 정말 존니 웃긴 새끼네.” ‘흠. 내가 과거에 뭇 여인들에게 웃기다는 소릴 많이 들 었었지.’ 스스로의 만족감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그러나 녀석들은 그것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생각한 모양인가 보다. “이제야 눈 깔아서 어쩌자고. 여하튼 방과 후에 보자.” 뭔가 위압적으로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내 눈에는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눈을 깔아?’ 이해 불가능한 말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끝나고 만나서 뭔가를 하자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환영식을 해주려는 것인 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 이상을 생각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설마 이토록 어린 애들이 나쁜 생각으로 이럴 거라 생각 도 못한 탓이다. 여하튼 그 말을 끝으로 녀석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교 실로 들어섰다. 실혼귀검과 소마기행보를 쓰며 덩달아 검황이계정벌하다도 쓰는 한가 입니다. 반응이 좋으면 광참을 할 것이고, 반응이 그저 그러면 그저 그렇게 연재할 생각입니다.^^ 이글 읽고 심심하시면 앞서 밝힌 실혼귀검과 소마기행보도 읽어주세요^^ 헤헤~ 실혼귀검은 고전적인 무협이고, 소마기행보는 코믹물을 가장한 개념없는 무협입니다^^ 여하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 전설의 시작 명훈이가 들어가자 시끄럽던 교실이 잠시 고요해졌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아 서다. ‘응? 이 시대는 친구를 이렇게 반……길 리가 없잖아!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있는거냐고?’ 나이는 괜히 먹은게 아니다. 그때, 선생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교탁을 손바닥으로 쳤다. 탕탕! 대충 20대 후반으로 보인다. 무태안경을 썼으며, 짧은 머리가 단정한 것이 인상적이 다. 선한 얼굴이 보기 좋았다. 그와의 첫 인상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자 조용히.” 다시 조용해진다. 별로 기분이 좋지 못하다. 이러다가 폭발할 것 같았다. 신경이 이곳저곳에 쓰이자 기의 흐름이 빨라졌다. ‘죽이자, 성질을 죽이자.’ 참을 인(忍)자 셋이면…, 훗! 지금 성질을 죽이기에 한참 부족할 것 같다. 알고 있겠지만, 명훈 아니, 검황의 성질은 많이 더러웠 다. 그래서 백만 개 정도의 참을 인을 그렸다. 조금 참을 만 해졌다. 그때 앞에 있는 선생이 입을 열었다. “명훈아, 몸은 괜찮니?” “예, 선생님.” “다행이구나. 많이 걱정했단다.” “감사합니다.” “그럼, 자리에 안거라. 곧 수업시작이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자리가 어딘지….” “아차, 부모님께 전화 받았었다.” 선생이 약간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걱정이 되신 부모님께서 명훈아가 기억을 잃었다 는 이야길 말해준 것 같았다. 그것을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다. “거기 4분단 뒤에서 세 번째 창가 쪽이다. 거기 앉거 라.” 명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곳에 갔다. 책가방을 의자에 걸었다. 그리고 한숨을 돌렸다. 왠지 모르게 짧은 시간 동안 많이 힘들었던 것이다. 선생은 출석부를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애들은 조용히 짝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충 귀를 기울여 보니 대부분이 명훈 자신의 이야기였 다. ‘그런데 난 친구가 없나?’ 텔레비전에서 보니 이럴 때 애들이 다가와서 말도 걸고 하던데. ‘흠….’ 멀뚱히 앉아있으니 졸리다. 새벽까지 축기(畜氣)를 위해 운기(運氣)하느라 잠이 모자 란 탓이었다. 자연지기에 친화력을 높이기 위한 축기였기에 내력이 향 상됨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명훈은 알고 있었다. 친화력이 어느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물밀 듯 내력이 흘 러 들어오게 됨을 말이다. 그런데, 친화력이고 뭐고 졸리기 시작한다. 특히나 명훈의 자리는 햇살이 잘 통하는 위치다. 눈이 부셔서 커튼을 쳐놨지만, 그래도 빛은 뚫고 들어왔 다. 따끈따끈한게 몸이 노곤 거리게 만들어 줬다. 그때 아까 복도에서 만났던 산적하기 적당해 보였던 덩 어리가 다가왔다. ‘나한테 볼일이라도 있나?’ 명훈은 생각했다. 학교 끝나고 보자고 하지 않았었나? 참으로 성질 급한 친구 같아 보였다. “야, 명훈.” “응?” 그 덩어리가 명훈을 부르는 소리에 졸린 명훈은 눈을 게 슴츠래하게 뜨고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녀석이 이를 악물고는 주먹을 들고 외쳤다. “이 세끼가!” 드르륵. 탁! “어어, 거기 뭐야?! 떠들지 말고 자리에 앉지 못해?!” 선생이 들어온 것이다. “씨발.” 씹어 뱉듯이 내뱉은 말의 뜻은 몰랐다. 그래도 욕이라는 것을 느낌상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저 친구, 아니, 저 자식이 명훈 자신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흠….’ 한참을 고민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처음 학교에 나온 날부터 사건을 만들 순 없지 않겠는 가. 수업은 한참 진행 중이었다. 뭐라고 하는지 중얼거리듯 혼자 떠드는 선생. 다른 녀석들은 모두 지들 할 짓 다하며 놀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은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다. 마치, ‘내 수업을 듣지 않으면서 대학에 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라고 말하는 듯한 오라가 느껴졌다. 그럼 뭐하겠는가? 혼잣말 내뱉듯 중얼거리며 칠판에 빽빽이 글자를 써대기 만 하는 선생. 선생의 수업을 듣는 녀석들은 두세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수업인가 교과서를 보니 국사란다. 그때 뒷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드르르륵. 선생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거기 능구렁이처럼 슬그머니 기어오는 녀석 앞으로 튀 어나왓!” 그러자 뒤에서 일어나더니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헤헤. 선생님. 늦잠을 자느라구….” 놀랍게도 여자애였다. 대충 172정도로 명훈정도 키에 예쁘장한 얼굴이다. 분홍입술이 도드라져 보이는 미인형이었다. 다만 약간 중성적으로 보이는 흠이 있었다. 그것도 나름대로 매력적이긴 했다. 선생은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이 한마디 내뱉었다. “그렇다고 다 큰 처녀가 그렇게 기어 다녀서 쓰겠나? 어 서 가서 자리에 앉아라.” “히히, 죄송해요.” 그녀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명훈이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명훈의 옆자리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명훈을 보고는 짐짓 놀란 표정 을 지었다. “어? 명훈아. 몸은 다 나았냐?” “누, 누구?” 당혹감에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되물어 버렸다. “얼래? 기억이라도 잊은 거야?” 명훈이가 잘 모르겠다는 듯 얼떨떨하게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이 희한하게 변했다. “흠, 심각한데?” 그녀는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는 듯 보였다.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난 현민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잊지 말도록 해. 알겠 지?” “어, …응.” 명훈의 어설픈 대답이 마음에 들은 건가? 씨익 웃으며 명훈의 등을 쌔게 두드렸다. 팡! 팡! “윽.” “여하튼 숫기 없는 것은 여전하구나. 그래도 이번엔 대 답이라도 하다니. 마음에 들었다. 하하하!” 그때 앞에서 선생의 목소리가 다시 날아왔다. “시끄럽다! 현민이 이 녀석! 오자마자 잡담이냐?!” “앗!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아~.” “킥킥킥.”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아니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곧 자리에 앉아서는 다시 명훈에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 다. 떠드는 것을 좋아하는 쾌활한 성격으로 보인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생들의 험담이 태반이었다. “어우, 저 선생 저질이야. 수업시간에 누가 떠들던 신경 도 쓰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는 거. 변태라는 소문이야.” 이미 짐작은 했지만, 잠시 선생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말에 왠지 모르게 수긍하고 말았다. “그런데 너 잘 지냈어? 많이 다쳤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내가 말이지….” 주절주절. 혼자 말하고 혼자 웃는 성격인가 보다. 신이 나서 말하다가 갑자기 혼자 낄낄거리며 명훈의 어 깨를 툭툭 쳐댔다. 첫인상과 같이 남자 같은 성격의 그녀였다. 그러고 보니 깨끗한 커트. 화장기 없는 시원한 얼굴. 이름까지도. 얼굴만 이쁘장하기만 한 여장취미의 사내자식이 아닌가, 하고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가진 명훈이었다. 그래도 기분이 신선했다. 등을 노리고 칼질 하는 녀석들은 많았지만 전생엔 누가 감히 명훈, 검황의 등을 칠 수 있었겠는가? 이해하기 힘든 포만감이 느껴졌다. 왠지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 감정, 마음에 드는 군.’ 명훈이가 현민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뭐, 뭐냐? 너 정신 한번 잃고 나더니 상당히 느끼해졌 다?” 그녀의 한마디에 명훈이 자신도 모르게 다시 고개를 돌 렸다. ‘서, 설마. 내가 저런 어린애한테….’ 심장이 두근거렸다. 믿어지지 않았다. 명훈이가 고개를 숙이자 의소침해진 듯 보였었나 보다. 그녀가 다시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캬하하. 장난이야. 그래도 역시나 쑥맥은 쑥맥인가 보 다. 그러니 애들한테 맞고 다니지.” “응?” 명훈이 굳었다. 그리곤,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움직임이 번개와 같았으리라. 그녀가 흠칫 놀라는 눈빛으로 명훈을 마주보았다. ‘내가? 맞아? 누구한테? 설마 명훈이 이 녀석 맞으면서 이곳에 다녔던 거야?’ 명훈은 놀라서 그녀에게 물었다. “뭐, 명훈이 이 녀석이 맞고 다녔다고?!”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올라갔다. 잠시 교실이 잠잠해졌다. 모든 시선이 소리친 명훈에게 쏠렸다. 하지만, 정작 명훈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의 커다랗게 떠진 눈망울이 흔들렸다. 마치 ‘내가 왜 명훈이 녀석 따위에게 쫄은거지?’라는 듯 이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마음속에서 살기라 흘러나왔다. 살기란 육체의 강함과 다른 것이다. 거의 200여년에 삶을 살며 만들어낸 살기. 일반인들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몸 밖으로 분출 될 뻔했다. 명훈은 가까스로 갈무리했다. 현 육신의 전 주인이었던 명훈. 이 녀석이 어떤 생활을 하고 살았는지 약간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너 이 자식 수업시간에 뭐하는 짓이야! 수업을 듣기 싫 으면 안들으면 되지 왜 떠드냔 말이야!” 선생의 얼굴. 울그락 불그락 거린다. 화가 치밀어 올라 참지 못하는 듯 싶었다. 그렇다고 매를 들지는 못했다. 아마도 명훈이가 요양을 마치고 방금 돌아 온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듯 싶었다.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4 회] 날 짜 2004-11-22 조회 / 추천 18644 / 12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전설의 시작 “이번만 넘어가 주마. 조용히 앉아있어!” 한참 한숨을 내쉬던 선생. 아직 분이 안 풀렸는지 교탁을 잡고 기대듯 섰다. 명훈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실수한 것을 깨달았다. ‘아차!’ 살기를 갈무리하기 전에 약간 흘렸던가 보다. 명훈의 마음에 들던 여인. 현민의 얼굴이 경악에 질린 표정이다. ‘이거 실수했군. 어떻게 무마해야 할 텐데.’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면 안된다. 주변에서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 다. 명훈은 진기를 손끝으로 모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현민이를 불렀다. “현민아.” 아직도 넋이 나간 표정이다. 이름을 부르며 자연스럽게 어깨를 만질 수 있었다. 같은 분단의 애들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평소의 명훈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는 짜증이 샘솟는 그런 표정들이다. 여하튼, 명훈은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계획대로 진행했 다. 손끝의 진기를 괜히 모은 것은 아니다. 그녀의 몸 안에 부드럽게 흘려보내며 긴장된 마음을 풀 어주기 위해 운행시켰다. 아직 내력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약간 시간이 지나서야 효과가 나타났다. 파리했던 현민의 안색이 돌아오기 시작한 탓이다. “휴….” 이제 정신이 돌아왔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왜 그래?” 현민이 명훈을 희안하게 쳐다봤다. 한참을 바라보는데 되려 명훈이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무슨 일 있어?” 명훈이가 모르는 척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참 고민하더니 뒤늦게 입을 열었다. “네가 호랑이처럼 보였다면 믿어져?” 명훈이가 무슨 쌩뚱맞은 소리냐는 듯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하듯 말을 꺼냈 다. “그렇지…. 내가 헛 거를 본거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책상에 팔을 포개어 머리를 수그 렸다. “괜찮아?” 명훈의 물음에 한참 대답이 없던 그녀. 갑자기 처음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명훈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명훈 본인이 지니고 있는 살기는 보통사람의 심기에 무 리를 줄 정도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진기로 몸을 다스려 주긴 했지만, 그것은 상처를 약간 보듬어 준거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응, 괜찮아. 내가 오늘 잠을 설쳤더니 헛 걸 봤나봐.” “다행이다. 그런데 물어 볼게 있는데….” “뭔데?” “아니, 우선 내가 밝힐게 있어. 내가 사고가 있고 난 후 에 기억을 잃은 상태야.” 그녀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 버렸다. 혹시나 하고 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인지 많이 놀란 것 같 았다. “그랬구나. 몰랐어. 난 네가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한 게 장난이라 생각했거든.” “이해해. 그런데, 난 내가 거의 죽을 뻔했었음에도 왜 죽을 뻔 했었는지를 알지 못해.”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 갈망이 어림을 확인했다. 뭔가를 알고 있으리라. 명훈은 보체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른 애들에게 물어보려 했던 거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자신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애한테 물 어보는 것이 빠를 거라 생각한 탓이다. “혹시 나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게 없니?” 그녀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도 갈피를 못 정한 것 같았다. “괜찮아. 말해줘.” “…….” “부모님조차 나에게 숨기는 일이 뭔지 알고 싶어서 그 래.” 조금만 더 흔들면 입을 열 것 같다는 느낌이다. 잠시 후 입을 열었는데, 그녀가 나에게 해준 말은 충격 이상의 것이었다. 명훈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이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분노 때문에 온몸의 근육이 심한경련을 일으킨 것이다. “넌 우리학교 왕따였어. 특히 충원이라는 녀석하고 그 패거리가 너를 폭행하고 삥 뜯고 다닌다는 사실을 우리 학 교 학생이면 모두 알고 있어. 넌 그걸 참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거고….” 그녀의 말을 간추리면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필요 없었다. 이 정도만으로 충분했다. 명훈의 분노를 태울 명분은 말이다. 분노를 잠시 안으로 갈무리하며 하나 확실하게 할 것이 있어서 되물어 보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 혹시 충원이라 는 녀석이 저기 2분단 맨 뒷줄에 앉아 있는 돼지새끼니?” 그녀가 명훈의 순한 얼굴에서 흘러나온 험악한 말투에 놀랐는지 다시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개자식. 방과 후에 보자고 했었나? 물론, 좋은 뜻은 아 닐 테지. 좋아. 방과 후는 너무 늦을 거 같으니 곧 내가 겪었던 것들을 모두 되돌려 주마.’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 그때 현민이가 의뭉스러운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정말 명훈이가 맞니?” “응 맞아.” 의문이 가득한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해줬다. “내가 아는 명훈이는 절대 이렇지 않은데….” 그녀가 말을 흐렸다. 명훈은 과거의 자신이 그녀의 눈에 어떻게 보였었는지를 알고 싶어졌다. “내 성격은 어땠는데? 네가 알고 있던 나를 이야기해줄 래?” 그녀는 명훈에게 술술 이야기했다.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명훈이 흘렸던 살기가 그녀의 심령 을 크게 건드린 듯싶었다. 약간의 최면상태에 빠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왕따 당하던 명훈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해줄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처음의 모습은 그냥 불쌍한 녀석이니 나라도 도움을 줘 야지의 마음이었다면, 지금의 모습은 명훈에게 놀라 심령 을 제압당했었기에 무의식중에 명훈이가 묻는 것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하튼 그 덕분에 명훈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주워들을 수 있었다. ~~~~~~~~~~~~~~~~~~~~~~~~` 앞으로 한편당 이 정도 분량으로 올리겠습니다. 너무 적게 올려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정도였거든요... 죄송 ;ㅁ;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5 회] 날 짜 2004-11-22 조회 / 추천 18144 / 116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전설의 시작 학교에서 명훈이가 과거에 당했던 일들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성실하게 아는 대로 말해줬다. “고마워.” “아냐. 그런데 나 피곤하다. 왜 이러지?” 명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유를 짐작했기 때문이다. 심령이 흔들렸는데 멀쩡하면 초인일 것이다. 부작용이 지금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래 좀 자라. 오늘 잠 못 잤다며.” 명훈이가 말하기 전에 이미 현민이는 잠에 빠졌다. 입안이 거칠어지며 씁쓸해졌다. ‘그랬구나. 녀석. 참지 못하고 자살을 한거구나. 죽어서 혼이 이탈한 명훈이 녀석 대신에 내 혼이 자리를 잡은거 고….’ 검황은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육신의 원래 주인인 명훈 이 녀석에게 맹세했다. ‘널 위해서 네가 당했던 그대로 복수해주마.’ 주먹을 쥐었다. 작고 단련이 안 된 주먹이 보인다. 이 주먹으로는 큰 파괴력을 낼 수 없다. 아직 불순물이 가득한 경락들. 기의 흐름역시 원활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교실에서는 무공을 익힌 사람이 보이 지 않는다. 충원이라는 녀석. 허장성세일 뿐이다. 몸만 클 뿐이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그런 녀석들이 세 명 네 명이 되면 지금 상태에 선 위험했다. 현제 검황은 이론만 빠삭할 뿐이다. 아무리 고강한 무공을 알고 있어도, 그것을 사용할 내력 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 해도 보통 사람들보다 유리한 점은 분명 많았다. 내력의 분배를 통한 빠른 움직임과, 모든 사혈의 위치를 알고 있었기에 고통을 약간의 타격만으로도 고통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설마 명색이 검황이 당할리야 있겠는가? 고금제일인이란 이름. 방바닥에 뒹굴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이 허약한 몸을 볼 때면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 다. 깨달음으로 내력을 올릴 수 있다? 뭐, 빈말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막힌 혈도를 타통 시켜 줄 정도의 내력은 필요했다. 처음이 힘들 뿐이지 한 경지만 넘어서면 현경의 경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넘어 설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건 둘째 치고 이 몸뚱이를 쓸모 있게 변화 시켜야 하는데, 허약한 근골이나, 큰 발전을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반응신경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살리기 위해선 환골탈퇴가 필요했다. ‘최소 현경에 들어선 후에야 가능한데, 현경에나 올라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어느 세월에 올린다냐….’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나 수업이 끝났다. 선생이 아무런 인사도 없이 교실 밖을 나가자 애들이 떠 들 썩 해졌다. 명훈은 깊은 명상에 빠져 있었기에 그 사실을 깨닫지 못 했다. 하지만 명상에서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약간의 살기가 느껴진 탓이다. 분명 자신을 향한 것이리라. 평소 검황을 암살하려던 녀석들이 하두 많아서 자연적으 로 살기에 민감해져 버린 지 오래다.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충원이라는 돼지녀석이 명훈에게 다시 걸어오고 있었다. 아침에 명훈에게 위협 아닌 위협을 줬던 반장이라는 녀 석. 저편에서 멀뚱히 명훈을 보며 웃고 있었다. 자신은 상관이 없다는 모습인데, 검황은 성격상 저런 녀 석을 싫어한다. 황궁에 여자도 남자도 아닌 녀석들 같은 녀석. 입만 살아있는 녀석. 돈으로 뭐든 가능하다고 설치는 녀석. 뒤에서 꽁수나 치는 게 사내가 할 짓인가? 사내가 왜 사내인가? 두 주먹이 있기에 사내가 아닌가? 주먹으로 치고 박으며 자신의 것을 지키는 것이 사내가 아닌가. 남자는 주먹인 것이다. 그때 충원이 녀석이 육중한 몸을 쿵쿵거리며 달려왔다. 그리고는 앉아있는 명훈에게 날아차기를 하듯 앞발을 내 밀며 점프하는 것이었다. ‘허참.’ 어설픈 공격이었지만, 난감했다. 책상과 책상이 좌우를 막고 있어서 피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공중으로 신형을 띄우기에도 책상에 의자를 넣은 채로 앉아 있었기에 그것도 여의치 못한 상황이다. 경신술을 사용하고 싶어도 내력이 달리는 상황이라 경신 술을 펼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방어를 했다. 퍽! 우당탕탕! 책상이 뒤집어지며 난 바닥을 구를 수 밖에 없었다. “꺄아아악!” 여자애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와우!” 남자애새끼들의 함성도 들렸다. 난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허, 허….’ 저런 녀석 따위에게 기습이나 당하고, 잠시 동안 검황의 자리를 자신이 잠자다가 얻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바닥을 뒹굴다가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났다. 다행인 것은 녀석이 바로 공격하지 않았다는 거. 낙법을 하긴 했는데, 책상 모서리에 옆구리를 찌였는지 상당히 욱신거렸다. 녀석의 몸집이 컷기 때문에 어설픈 공격이었음에도 파괴 력은 보통 이상이었다. 아니다. 검황은 명훈이 녀석이 너무나도 허약하기 때문이라고 생 각을 바꾸게 되었다. 찌였던 부위의 근육이 놀라서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었 다. 기가 막혔다. 허약해도 정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이죽거리며 충원이 입을 열었다. “이 개자식아. 죽고 싶어? 누가 수업시간에 떠들래! 엉 ?!” 꼭 공부 못하는 놈들이 저런거 따지더라구. 그건 과거나 현재나 다를바가 없는 것 같았다. ‘허허, 이놈 봐라? 누구한테 견자가 어쩌고저쩌고 떠드 는 거야? 그리고 누가 누굴 죽여?’ 명훈은 돼지 녀석이 자신의 기막히게 해서 주화입마로 돌아가게 만들 작정이냥, 신이 나서 떠들어 대는 것을 한 참 멀그러니 바라보았다. 그러자 더 열 받은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치켜들며 달려 왔다. “이 새끼 너 같은 새끼는 방과 후까지 볼 필요 없어.” 그 말에 명훈은 자세를 잡고 피식 웃었다. ‘그거 하난 나와 같은 생각이군.’ ~~~~~~~~~~~~~~~~~~~ ㅎㅎ. 좀 패야겠죠? 뎃글이 30개 이상이면 담편을 오늘 안에.. 올릴까도 캬캬.......(올라올리가 없지 훗!)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6 회] 날 짜 2004-11-23 조회 / 추천 18038 / 106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전설의 시작 그때 뒷문으로 눈에 익은 두 녀석이 들어왔다. 조금 전 복도에서 반장이란 새끼와 돼지 충원이 녀석이 랑 함께 명훈을 반갑게 둘러싸던 놈들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그 녀석들이 주변의 애들한테 묻자, 반 애들이 신난 표 정으로 대답해줬다. “충원이랑 명훈이가 맞짱 떠.” “뭐? 맞짱?” “푸하하하! 일방적인 구타가 아니구?” “킥킥킥킥.” 흠, 저 녀석들 중에 옳은 소리하는 놈도 있었다. 이것은 일방적인 구타가 될거다. 물론 애들이 상상하는 것과 반대로 명훈이 자신이 충원 이 녀석을 잡을 테지만 말이다. 충원이 녀석이 주딩이를 주절거리며 주먹을 휘둘러 왔 다. “이 자식이. 한번 죽다 살아난 게 훈장이야? 또 죽여줄 까? 그럼 훈장이 두개 되겠군.” 충원이 녀석의 말에 주변에서 깔깔거린다. 불안한 눈이나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람은 별로 없어보 였다. ‘이 자식 정말 학교를 어떻게 다닌거야?!’ 열통 터졌다. 지금 내력만 어느 정도 축적되었다면 이반에 있는 모든 녀석들을 가볍게 밟아 줬으리라. 다시 주먹이 얼굴로 날아왔다. 명훈은 슬쩍 다리를 틀어 녀석의 주먹을 가소롭다는 표 정으로 가볍게 피해줬다. ‘느려. 느려.’ 녀석이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린다. 명훈도 같이 씩씩거려줬다. 놀리는 거라 생각했는지 다시 개자식이 어쩌고 하며 달 려들기 시작했다. 놀리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놀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내력을 전신에 흘려보냈다. 무작정 날아오는 주먹. 이제 웃기지도 않는다. 팔이 쭉 뻗어지는 순간 허리를 낮췄다. 녀석의 놀라는 얼굴이 보였다. 쭉 뻗은 팔꿈치 관절을 노렸다. 명훈은 주먹을 위로 올려치며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퍼억! “끄어어어억!” 주변에 모든 녀석들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뚝 하는 소리가 들린 것을 보니 뼈에 금이 갔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녀석이 팔꿈치를 부여 잡는게 보였다. 명훈은 그대로 발끝을 왼쪽으로 틀어서 녀석의 턱을 가 볍게 날려줬다. “케헥!” 녀석이 반대 책상으로 날아갔다. 우당탕탕! 아픈지 바닥에 자빠진 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웃음이 세어 나온다. 이정도 밖에 안 되는 녀석이 자신을 죽여 살려 했다는게 웃기게만 느껴졌다. 솔직히 이것도 살살 때린 것이다. 심하게 치면 턱이 나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적당히 힘을 풀어 갈긴 것이다. 이번 기회가 너무 빨리 사라지기 때문이다. 녀석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아파서 고통스러운 표정과 당혹감에 놀란 표정이 있었는 데, 그 속에 아직 분노가 남아 있었다. ‘씨발 쪽팔려 죽겠네.’ 라고 써있는 것이 읽어질 정도였 다. 그래서 명훈이가 말해줬다. “쪽팔려 죽겠네? 그럼 죽어야지. 킥킥.” “이 개자식이. 운 좋게 한방 먹인 것 하나로 나를 놀 려?” 분노하면 통증이 완화된다. 녀석 역시 고통을 분노 속에 묻어버렸는지 거뜬하게 일 어나 몸을 던졌다. 명훈에겐 고마울 뿐이다. 조금 더 팔팔하게 있어주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조금 더 팰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충원이 패거리 녀석들이 나에게 달려왔다. “너흰 뭐냐?” 명훈이의 물음에 녀석들은 피식거렸다. “너 잡으러온 저승사자다 개새야.” 이미 저승사자를 직접 본 명훈으로서는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녀석 다 키는 고만고만 했다. 그래도 명훈이보다는 컸다. 하나는 빼빼마른 스타일이고, 하나는 건장한 스타일이라 고 할 수 있었다. 명훈은 이름을 아직 몰랐기에 녀석들에게 각각 뼈다구와 호구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호구란 무도에서 대련 할 때 방어구의 이름이다. 여하튼 그 사실을 녀석들이 알았다면 분통이 터졌으리 라. “킥킥. 뼈다귀, 호구라. 난 참 작명쎈쓰가 뛰어나단 말이 야.” 스스로 만족하는 명훈이었다. 그때 뼈다귀가 발을 뻗어 날아 차기를 시도했다. 그래서 가볍게 피해준 후 녀석이 착지 했을 때 종아리를 강하게 걷어차 주었다. 팍! “아악!” 녀석의 비명이 기분 좋게 흘러나왔다. ~~~~~~~~~~~~~~~~~~~~~~~~~~~~~~ 아, 기분 좋아라~ ㅋㅋㅋㅋㅋㅋ 얼마나 패주고 싶었는지 몰라요. ㅎㅎ 독자여러분, 오늘도 찾아서 읽어주신거 정말 감사해요^^ 그럼 모두 어서 다음 화로~ 고고~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7 회] 날 짜 2004-11-23 조회 / 추천 17979 / 97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전설의 시작 명훈으로서는 감상해 주고 싶었지만, 호구녀석이 의자를 들고 집어 던진 상태였기에 아쉬움을 접고 같이 의자를 들 어 호구녀석에게 던져줬다. 의자는 허공에서 서로 부딪힌 후 바닥에 널부러졌다. “이 개자식이!” 녀석은 성급히 교실 뒤쪽의 청소도구함으로 달려가더니 걸레가 떨어진 마대자루를 들고 명훈 앞으로 달려왔다. 슬쩍 뼈다귀를 보았다. 아픈지 아직도 다리를 붙잡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녀석이 지금 아무리 자존심 세워서 일어나고 싶어도 고 통 때문에 한동안은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다. 서야지 공격을 하지 않겠는가. 명훈은 적당히 자리를 잡고 돼지 충원이 녀석과 호구 녀 석을 견제했다. 호구가 먼저 마대자루를 휘둘렀다. 명훈은 의자를 하나 들어 마대자루 공격을 막고 그대로 의자를 녀석에게 던져줬다. 녀석은 그것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로 그때 교실의 앞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일갈을 질렀 다. “이 자식들 지금 뭐하는 짓들이야! 충원이 명호, 성운이 이녀석들! 또 사고를 일으켜?!” 체육복을 입고 있는 건장한 사내다. 아마도 싸운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체육 선생일 것이 다. 그런데 상황이 약간 묘하게 흘러가는 것을 보고 고개를 꺄웃 거렸다. 아마도 이 녀석들이 사고를 쳤으면 상대방이 피해자가 될 것이 분명했는데, 이곳의 분위기가 약간 이상했던 것이 다. 여하튼 호구와 충원이 녀석은 체육선생을 보고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유, 씨발….” “뭐? 씨발? 충원이 이 새끼 지금 뭐라고 했어?!” “아휴….” 충원이가 짧은 한숨을 내쉰다. 그때 명훈이가 체육선생을 담담하게 마주했다. “아저씨는 잠시 저기 계시죠?” “뭐, 뭐? 뭐라고 지껄였냐?!” 그때 명훈이의 얼굴을 처음 본 체육 선생. “어라, 너 명훈이가 아니냐.”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애들 싸움이니 잠시만 피해 주시죠? 선생 어르신.” 교실이 싸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명훈의 정중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체육 선생에게는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쌓여 있었다. 명훈이 녀석이 자살소동을 일으켜 휘둘린 탓이었다. 그런데 명훈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건드린 것이다. 결국 울분이 폭발했다. “네 녀석 때문에 이 학교가, 얼마나 휘둘렸는지 알고 하 는 소리냐! 내가 그걸 무마하기 위해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체육 선생은 몽둥이를 휘두를 자세를 취하며 명훈에게 성큼 다가갔다. 이제 다 나아보였다. 물론 아직은 선생 스스로가 조심해야 할 기간이었지만, 분노로 눈이 뒤집힌 선생은 그런 사소한 것을 생각할 여력 이 부족했다. 그 순간만큼은 충원이 녀석과 호구 녀석이 움찔했다. 저 체육 선생, 아니, 발정난 개차반 새끼가 저렇게 화를 내면 자신들에게 좋은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체육선생이 분을 참지 못하고 명훈에게 몽둥일 휘둘렀 다. 그때, 명훈이가 체육선생의 몽둥일 피하고 그대로 팔꿈 치고 배때지를 쑤셔 박았다. 푸억! 북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체육 선생이 눈을 뒤집고 기절했다. 그것을 본 교실안의 학생들이 경악했다. 설마 선생을 팰 거라 누가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8 회] 날 짜 2004-11-23 조회 / 추천 18040 / 99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전설의 시작 “휴, 이제 시끄러운 게 사라졌군. 그럼 슬슬 다시 시작 해 볼까?” 선생을 때려눕힌 명훈이 태연하게 자세를 잡고 자신들을 바라보자 뭔가 이건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싸우지 않을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명훈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충원과 호구는 당혹감을 표 출했다. 그렇지만, 충원은 자신들이 질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팔을 다친 것도 재수가 없어서지 결코 명훈에게 당해서 그런 아니라고 믿었다. 선생이 기절 한 것도 재수가 없어서 쓰러진거라 생각하 고 다시 생각을 다잡았다. 설마 만년 왕따이며, 자신들의 완벽한 밥인 명훈에게 자 신이 지겠는가? 만약에라도 진다면 쪽팔려서 학교엔 두 번 다시 나오지 도 못할 것이다. 호구 녀석이 마대자루를 명훈에게 던졌다. 명훈은 당연하다는 듯 가볍게 피해줬다. 교탁 앞으로 날아간 마대자루는 벽에 부딪히고 덩그랑거 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씨발 새끼. 넌 뒤졌어!” 호구 녀석이 책상 위를 버팀대 삼아 허공으로 박차고 올 랐다. 그리곤 명훈을 향해 다릴 휘둘었다. 명훈은 그런 호구 녀석에게 가볍게 의자를 던져줬다. 퍽! 콰당! 쿠당탕탕! 호구녀석은 뼈다귀녀석이 있는 자리로 날아가 그대로 바 닥에 자빠진 체 끙끙 앓기 시작했다. 뼈다귀 녀석도 충격이 상당한지 온몸을 부여잡은 체 신 음을 흘렸다. 그런 호구와 뼈다귀를 보며 명훈이 한마디 나직하게 내 뱉어줬다. “큭큭. 너희들은 꼼짝 말고 잠시 기다려. 아직 너희들은 아니니까. 그리고 쥐새끼. 네 녀석도.” 교실 구석에서 애들과 같이 숨을 죽인 체 내 행동을 지 켜보는 반장에게 한 말이다. 반장은 흠칫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상당히 귀여워 보였다. 여기저기 어떻게 패줄까를 생각하며 넘쳐흐르는 기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명훈의 시선이 충원에게 돌아가는 순간 충원의 주먹이 날아오는 중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좀 맞아라!” 미꾸라지처럼 이리 쏙 저리 쏙 피하는 명훈을 보고 충원 은 열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때 명훈이 말했다. “다 휘둘렀냐?” “뭐?” 당혹감에 잠시 멈칫했는데, 어느 순간 눈앞에 명훈이 나 타나서는 충원이의 복부를 주먹으로 후벼쳤다. 선생에게 보여줬던 바로 그 기술이었다. ‘칠절환영보(七絶幻影步)라고 하는 기술이지.’ 내력이 부족하여 펼쳐낸 모습. 명훈 자신이 평가하기엔 상당히 어설펐다. 그러나 이들에게 사용하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커…허어어어억….” 복부에 파고 들어간 것처럼 보일 정도의 강 펀치였다. 비명도 나오지 않을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 내장이 뒤집힌 느낌이다. 아니, 장이 터진 것 같았다. “이제 시작이야 씹새야. 엄살피우지마.” 자연스럽게 욕을 내뱉는 명훈이. 그세 들었던 풍월을 내 뱉은 것이었다. “자, 이건 너에게 맞았던 명훈이의 몫!” 말과 동시에 배를 움켜쥐고 있던 충원이의 안면을 손바 닥으로 후려쳤다. 쫘악! “어어어억!” “이건 너에게 삥 뜯겼던 명훈이의 몫!” “악!” 이번에는 발로 정강이를 걷어 쳤다. “이건 너에게 괴로움을 참다못해 자살을 시도한 명훈이 의 몫!” “크헉!” 반대 정강이를 마저 까니 바닥에 나자빠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구타를 시작 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9 회] 날 짜 2004-11-23 조회 / 추천 18389 / 141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전설의 시작 “이건 너에게 밟혀죽은 개미의 몫. 이건 자다가 네가 실 수로 삼켜 죽은 파리의 몫. 이건 자던 네 뒤척임에 찌부 되어 죽은 바퀴벌레의 몫. 이건… 이건… 이건….” 한대 팰 때마다 이것 저것 나열하던 명훈. 결국엔, “그냥 죽어라. 네 놈이 살아있는 게 가장 큰 죽을 죄다! 죽어라. 죽어!” 퍽! 퍽! 퍽! “커허어어어어어억….” 아픈 곳이란 아픈 곳은 골라서 패기 시작했다. 특히 급소 주위를 공략하며 기절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야 조금 더 팰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내력도 배제했다. 죽이면 안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괴롭힐 생각인데 이렇게 허탈하게 죽어서는 안됐기 때문이다. “자, 이제 마무리로….” “꺼어어어. 사, 사…려어줘어어…….” 명훈은 무슨 시답잖은 소리냐며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줬다. “그게 무슨 섭섭한 말이야. 그래도 마무리는 맞아야지. 안 그래? 아까 달려와서 잘도 걷어차더구만.” “…미…미아안…. 케륵!” 녀석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 했다. 이미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녀석의 모습. 처량 맞다. 녀석이 이제는 입가에 거품까지 물기 시작한 것이 보인 다. 녀석의 얼굴에서 분노는 어느세 사라지고 없었다. 미친 듯이 맞다보니 어느 센가부터 분노가 있을 자리에 공포가 주인행세를 시작한 것이다. 충현은 무서웠다. 이렇게 맞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이다. 이러다 미쳐 버릴 것 같아 겁이 났다. 자신이 과거에 어째서 명훈이를 괴롭혔었는지 과거의 자 신을 만나 패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가 된지 오래였다. “아, 아프로, 아…, 아 그러께에에….” 바람 빠지는 쉰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명훈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기절도 못하게 팬 자신이 아닌가. 지금까지 얼마나 아팠을 까. …의 문제로 가슴이 아픈 것이 아니다. 이제 더 이상 못 팰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시리도록 말이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았다. “여하튼 마무리는 지어야지.” “아…, 아무이…?” “그래. 마무리. 아직 정신이 멀쩡한 것을 보니 한대 정 도는 더 맞아도 될 것 같네.” 녀석이 명훈의 한마디에 눈을 뒤집으로 하고 있었다. 극도의 공포감 때문이었다. “이봐, 이럼 안돼. 네 죄 몫은 듣고 맞아야지. 설마 기절 했다고 안팰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 녀석에게 반응이 없었다. 슬쩍 맥을 짚는 명훈. “흠…. 뭐, 아직 정신을 안 잃었군. 일부러 잃은 척하다 니 비열한거 아냐?” 웃으며 하는 그 한마디에 교실 안에 있던 아이들이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누구도 그런 명훈을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선생도 패서 기절시킨 녀석이다. 거기다가 무지막지한 실력을 본 상태였다. 그것도 모자라 사람을 개처럼 패는 모습까지 봤다. 누가 겁이 나서 말이나 걸 수 있겠는가? 솔직히 반애들 중에는 과거에 명훈이를 괴롭혔던 녀석들 이 태반이었다. 착한 명훈이만 당한 것도 사실이고, 그중 가장 악질적으 로 괴롭혔던 충원이다. 결코 말릴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때 충원이의 몸이 늘어진 것처럼 보였다. “응? 진짜 기절했네. …아쉽군.” 그 한마디에 반 아이들 가슴에 차가운 바람이 스며든 듯 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명훈이의 차가운 목소리가 비수처럼 교실에 있는 아이들의 가슴에 꽂혔다. “아, 그리고 너희들의 죄는 내가 알아보고 그대로 돌려 줄거다. 기대해라. 아직 몰라서 그냥 넘어가는거지, 결코 그냥 넘길 생각없다. 알아둬라.” 그렇게 등을 돌리는 명훈. 애들은 등교거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학교를 때려치면 때려쳤지 저렇게 개맞듯이 맞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바로 그때 다시 애들을 보는 명훈. “아참, 이 말을 못했군. 혹시나 학교에 안나올 생각이면 더 각오해라. 학생기록부를 뒤져서라도 찾아가서 패줄테니 말이다. 알겠지?” 명훈이 방긋 웃는 모습에 애들은 꽁꽁 얼어 붙은체 생각 을 수정해야만 했다. 녀석을 피하는 방법은 해외로 이주하는 방법뿐이라고 말 이다. 그때 애들은 저 멀리서 아련하게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커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 오후에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알 뷔 붹~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20 회] 날 짜 2004-11-23 조회 / 추천 18309 / 164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학교정벌하다 4. 명훈 학교정벌하다 교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자 신을 위한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을 떨쳐 보낼 수가 없었 다. “자 조용히 착석. 너희 둘은 환자를 교실 뒤에 던져 놓 도록 해. 구급요원들이 실어가기 편하도록.” 명훈의 손가락으로 지적받은 두 녀석. 두말없이 명훈의 말대로 충원의 발과 다리를 잡고 질질 끌며 교실 뒤쪽으로 끌고 갔다. 명훈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구급대원들이 들이 닥쳤고, 충원이를 실었다. 하지만, 교실에 있는 사람 중 어느 하나도 미동하지 않 았다. 명훈이만 그런 충원이를 향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때 구급대원중 한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거 완전히 떡이 됐군.” “이게 어쩌다가 이토록…. 살아 날 수나 있을까?” 혼잣말들이었지만, 이곳 교실에 있는 사람 중 그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수가 온몸을 찌르는 듯한 짜릿함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때 명훈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어떤 깡패같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들어와서 제 ‘친.구 충.원’이를 마구 팼어요. 우리는 겁이 나서 꼼짝도 못하고 지켜 볼 수밖에 없었어요. 충원아, 어서 일어나. 충원아!” 명훈이의 애절한 목소리 때문일까? 기절하고 있던 충원이가 경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구급대원이 입을 열었다. “이거 심각하군! 어서 옮기세.” “충원아 꼭 정신 차리고 살아서 돌아와. 아직 나에게 줄 게 남았잖아. 엉엉.” 충원이의 경기가 더욱 심해지자 구급대원들은 그의 몸을 꽁꽁 묶어서 구급차에 실고 다급한 모습으로 떠났다. 바로 그 순간 교실 안 창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명 훈.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씨익. 그 순간 모두들 깨달았다. 자신들은 조금 전 본 것을 보지 못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과 들은 것 역시 듣지 않은 것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모두들 명훈을 바라보았다. 명훈이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들을 마주했다. “수업해야지. 책상 줄도 맞추도록 하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애들은 자신의 책상을 알아서 맞춘 후 자리에 착석했다. “거기랑 거기, 그리고… 너.” 명훈의 손짓에 한 녀석이 의문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가 리켰다. 그러자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까지 셋 말야.” “우린… 왜?” 세 녀석이 쩔쩔매자 명훈은 환히 웃어주며 긴장을 풀어 줬다. “저기 앞에 주무시는 선생님을 엎고 양호실에 눕혀는 놔 야지. 저런 곳에 주무시게 놔둘 수는 없잖아. 안 그래?” 녀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선생을 엎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아직 정리가 안 된 것이 두개 더 있었다. 바로 뼈다귀와 호구였다. 녀석들은 명훈을 경악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믿을 수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 눈으로…. 그래서 명훈은 손가락으로 그들의 눈을 가볍게 찔러줬 다. 콕! “으악!” “크악!” 뼈다귀와 호구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눈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뒹굴기 시작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은 참으로 볼만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명훈의 행동을 본 같은 반 친구들은 전혀 그것이 볼만하게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이 저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저들의 모습이 미래의 자신들처럼 보였다. 한없이 서글픈 그들이었다. 여하튼 명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뼈다귀와 호구를 바 라보고 있었다. 이미 그들은 전의를 상실해 있었기에, 명훈이 무슨 행동 을 하던 나댈 수가 없었다. 실려가기전의 충원이를 봤기 때문이다.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부인하고 싶었다. 왕따 명훈이가 죽었다 살아나더니 괴물이 되서 나타난 것을 꿈이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그것도 개꿈이라고 말이다. “뭔 잡생각들을 하고 있어? 너희도 실려 갈래?” “아냐. 아냐. 전혀 아니야!” 뼈다귀와 호구가 고개를 미친 듯이 가로 저었다. 조금이라도 가로 젓는 속도가 늦어지면 죽기라도 하는지 목이 부러지진 않을 까 싶을 정도로 흔들어댔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패는 것을 직접 목격한 그들이다. 자신들도 그렇게 맞을 각오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들은 맞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꼬봉이 됐으면 됐지 충원이와 같이 개처럼 맞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꼬봉?’ 뼈다귀와 호구, 아니, 명호와 성운이은 동시에 같은 생 각을 할 수 있었다. ~~~~~~~~~~~~~~~~~~~~~~~~~~~~~ 반응이 좋아서 한편 더 올립니다. 역시나 반응이 좋다면 광참도 해볼 생각입니다^^ 선작필수 아시죠? ㅎㅎ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21 회] 날 짜 2004-11-23 조회 / 추천 17805 / 124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학교정벌하다 뼈다귀와 호구, 아니, 명호와 성운이는 동시에 같은 생 각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저 녀석이 다른 녀석들에게 우리가 괴롭힌 것을 물어본다고 했는데, 그 전에 꼬봉이 되면 설마 자기 밑으 로 들어간 애를 패겠어?’ 명호와 성운이는 자신의 생각이 타당성 있다고 생각했 다. 그러나 그들은 예상도 못했다. 그런 생각이 사실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과거 명훈이었다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전생에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치를 떨게 한 더러운 성격의 검황이다. 그것은 가족들도 예외는 없었다. 검황의 자식 중 거시기 달고 태어난 아이 중에 혹사이상 의 고문을 받지 않은 자가 없었으니 말이다. 감히, 명호 따위들이 감당할 만한 성격이 아닌 것이었 다. 하지만, 명호와 성운은 그런 중요한 ‘중심 포인트’를 알 지 못했다. 절벽에 떨어지는 사람처럼. 물에 빠져죽는 사람처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뿐이다. 그래서 버둥거렸다. 쪽팔림? 개나 갔다 줘라. 개처럼 맞아 죽는데 쪽팔림이 문제겠는가? 명호와 성운이는 손이 발이 되고 다시 손이 될 정도로 싹싹 빌었다. “명훈아. 제발 때리진 말아줘. 제발….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께. 하다못해 꼬봉이라도 될 테니 제발 때리진 말아 라? 응? 안될까?” 성운이의 선수에 명호는 발등에 불이 떨어짐을 느꼈다. 그래서 더욱 안정치 못한 모습으로 다급하게 입을 열었 다. “명훈아. 제발…. 이번 한번만 봐줘. 네가 시키는 건 뭐 든지 할게. 네 가방이라도 들고 등하교 할까? 여자라도 소 개 시켜줘? 말만해 다 해줄게. 제발 패지만 말아줘….” 성운이는 명호가 하는 말을 듣고 이를 갈았다. ‘개새끼. 감히 한술 더 떠? 오냐. 두고보자!’ “명호의 말은 물론이고 난 네가 죽으라면 죽을테니 제발 충원이처럼 패진 말아줘! 사람으로 태어나서 충원이, 아니, 개처럼 맞아 죽고 싶진 않아. 제발 부탁이야!” 명훈이는 그런 그들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러!” 그리곤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줬다. 퍽! 퍽! “켁!” “어흑!” 각자의 개성에 맞는 비명. “뭘 잘했다고 어디서 꽥꽥 소리지르고 지랄이야. 지랄 이! 뒈지고 싶어?!” “아! 아냐! 아냐!” 물론 죽고 싶지 않다. 특히 충원이처럼 맞다가 죽고 싶진 않았다. 미친 듯이 고개를 가로저어 부정하는 것이 살길이라 생 각했다. 조금 전에 휘둘렀던 것 보다 빠르게 돌렸다. 휙휙! 바람소리가 날 정도니 얼마나 돌려대는지 눈감아도 알 정도였다. 명훈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교실의 모든 애들은 그런 명훈과 명호, 성훈을 바라보면 서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들 대신의 본보기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녀석들이 아니면 이중 누가 끌려 나가 저 짓을 하고 있었을 지는 하늘만 알거다. 그때 명훈이 입을 열었다. “좋아. 그래 꼬봉으로 받아 주지.” 그 말에 모두가 놀랐고 선운이와 명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불행의 서곡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 상하지 못했다. 차후, 그냥 패고 인연을 끊어줘 라고 외치게 될 것이라 곤 더욱더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다른 반애들 까지 목격한 목격담은 교내 이곳저곳에 퍼 지기 시작했다. 죽었다 살아난 녀석이 자신을 괴롭혔던 녀석들을 반쯤 죽였다는 믿지 못할 소문이었다. 물론 선생들의 귀에도 그 소문이 들어가긴 했지만, 선생 들은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믿지도 않을 뿐더러, 한 달 전 자살소동으로 매스컴 탔 던 것이 피곤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선생 중 유일한 증인인 체육선생. 잘 자고 일어나서 자신이 어째서 양호실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배가 미친 듯이 아픈 것만 알 뿐이었다. 강한 타격감에 이지를 상실했다. 결국 필름이 끊어지듯 9반 교실에서 싸움을 목격했던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기도 했지만,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몇몇 선생들 중 다분히 게쉬타포 같은 정신질환자에 가 까운 성향을 지닌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실을 밝히겠다고 설쳐보았다. 9반 애들을 닦달하기도 했고, 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아 낼 수가 없었다. 하나같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모습이다. 결국 포기하고 나가는 모습에 9반 아이들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명훈의 무지막지한 모습을 곁에서 목격한 그들이다. 묵언의 약속을 깰 정도로 간덩이가 부은 녀석은 이반에 아무도 없었다. ~~~~~~~~~~~~~~~~~~~~~~~~~~~~~~~~~~~~~~~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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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다. 하교 할 때까지 옆에서 잠들고 있던 현민. 그녀는 아무리 심령이 흔들렸다 하더라도 너무 하다 싶 을 정도로 잠만 잤다. 그렇게 소란스럽고 시끄러웠는데도 미동 없이 자더니 집 에 갈 시간이 되니 칼 같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암, 잘 잤다.” “하하, 일어났어?” 명훈조차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희게 웃으며 대답했다. “흐흐, 오랜 만에 단잠을 잤어. 그런데, 지금 몇 시지?” 능청맞은 그녀의 웃음소리는 허울 없이 다가왔다. 명훈도 같이 흐흐 하며 맞 웃음을 쳐주다가 그녀의 물음 에 입을 열었다. “이제 종례시간이야. 그만 정신 차려.” 명훈의 말에 왠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웅~.” “킥킥. 머리가 그게 뭐냐? 정돈 좀해라.” “심해?” “응.” 현민이 얼굴을 한번 팔로 훑더니 머리를 한번 만지고 하 품을 하며 말했다. “하암, 너무 잘 잤나? 학교가 끝나니 아쉬운데?” 명훈이 씁쓸하게 웃었다. 현민이는 마치 학교에 자기 위해 오는 것처럼 행동을 했 던 것이다. 그제야 현민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주변을 두리 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왜 이래?” “분위기가 어떤데?” “아니 애들이 잡담 떠는 애들도 없고, 군기가 확 잡혀 있는게….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것 같잖아.” 현민의 한마디에 몇몇 애들이 움찔거렸다. 애들 역시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나 두려움에 숨쉬기도 곤란했고, 악마로 변한 명훈 에게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 찍소리도 못하고 있던 참이 었다. 그런데 현민이가 그걸 건드린 거다. 금세 자다가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모습을 보이는 현민이었지만, 애들에게는 그러한 현민이 무모하게만 보일 뿐이고, 더욱 이상하게 보여 질 정도였다. “아냐. 아무 일 없었어.” “그래? 그런가? 그런데 충원이 녀석은 벌써 땡땡이 쳤 나?” “응?” “아니, 땡땡이 깔꺼면 같이 까지 의리 없이 혼자 사라져 서…. 히히.” 멋쩍게 웃는 현민이다. 여하튼 그녀의 말에 명훈이는 기가 막혔다. 이 현민이라는 아이가 보통 강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애구, 나도 그냥 가야겠다.” 책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현민을 보고 명훈이 입을 열었다. “이제 종롄데 그냥 가려구?” “야, 내가 언제 그런거 따진거 있냐? 그건 그렇고 너 보 기 좋다. 평소에도 좀 그래라. 내가 말 좀 해보라고 할 때 는 들은 척도 안하더니. 킥킥. 짜식. 다 컸구나?” 그녀는 혼자 할말 다하며 명훈이의 등을 쌔게 두드렸다. 명훈이는 그녀의 속사포 같은 말에 대꾸조차 할 수 없었 다. “아! 그러고 보니 나 꿈속에서 네가 붕붕 날아다니는 거 봤다? 보니까 애들은 구석에서 쫄구 있고, 넌 충원이 녀석 을 신나게 밟더라? 킥킥. 존니 웃겼어. 킥킥.” 현민이의 말에 애들이 경직 되었다. 현민이는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쏘아댔 다. “뭐, 현실에선 그럴 리가 없겠지만, 여하튼 네가 싸우는 모습 보기엔 나쁘지 않았다. 힘내 짜샤. 당하지만 말고. 이 누님께서 학교에 나오면 막아주긴 하지만, 항상 나오는 건 아니잖냐. 알아서 잘 하라구. 알겠어?” 현민이의 말에 명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녀의 맑은 눈을 보니 자연히 끄덕여 진 것을 말이다. “여하튼 난 이만 간다. 담탱이 한테 말 좀 잘 해줘. 네 말이면 껌뻑 죽잖냐. 그럼 수고해.” 현민이는 그 말을 남기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허참, 당돌한 계집일세.’ 명훈이는 속으로 성격 좋은 당찬 계집이라고 생각했다. ~~~~~~~~~~~~~~~~~~~~~~~~~~ 그럼 내일 새벽 4시에 찾아 뵙겠습니다.^^ 검황 이계를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 드립니다^^ 뭐, 이 글이 마음에 드시면 이곳 저곳에 추천도 뿌려주세요~ ㅎㅎ 즐겁게 봐주시니 쓰는 저도 흥이나서 마구 써내려가잖아요^^ 실혼귀검이 인기가 올라가야 하는데.. 쩝.. 아쉽긴 하네요.. 혹시나 괜찮으시면 실혼귀검도 읽어주세요 ㅎㅎ;; 선작까지 해주시면 배리 땡쑤하구요^^ ㅋㅋㅋㅋ;;;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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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가 없어도 삼류문파에서도 무공을 익혔을 텐데…. 앞으로 무한히 괴롭힐 용의가 있는 충원이였지만, 근골 만은 아까워 보였다. 뭐, 근골이 뛰어나니 앞으로 신나게 팬다 해도 쉽게 죽 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편해지는 명훈이 었다. “내력이 너무 부족해. 이런 약골을 조금 움직이려면 내 력이 더 필요해.” 명훈으로서는 정말이지 심각한 문제였다. 바로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세상엔 정말 무공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상상만으로도 허탈한 한숨이 흘러나온다. “모르겠다. 여하튼 내기를 크게 형성하는데 몰입해야 지.”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운기를 시작했다. ‘속성법으로 내력을 키워야겠어.’ 오늘 보니 더 위험한 일이 생겨날 것 같았다. 지금의 상태로 멀뚱히 있다간 맞아죽기 십상일 것 같다 는 불길한 예감이 명훈의 마음을 부추겼다. 그리고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내기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내력을 빨리 형성하는 속성법을 시도하는데 크게 부족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기인 이사가 숨어서 무공을 연마하고 있으리라는 미련을 저버리 진 못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다녀 오거라.” 명훈의 어머니는 아직도 걱정이 태산 같다. 쾌활해 진 것 같긴 한데, 어제도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 자마자 방안에서 뭘 하는지 하루 종일 나오지도 않았기 때 문이다. 혹시나 어제도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온 것은 아닐 까 하고 생각해 보았을 정도였다. 전학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사정상 이곳에서 이사하 기도 힘든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명훈이 혼자 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다시 그 학교로 보내긴 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설마 명훈이가 애들을 패고 왔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 지 못하는 어머니였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24 회] 날 짜 2004-11-24 조회 / 추천 17044 / 110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학교정벌하다 드르르륵! 명훈이가 교실에 들어서자 떠들썩하던 교실이 숙연해졌 다. 싸늘한 냉기가 한바퀴 돈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반응이 그러했지만 정작 명훈이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 는 중이었다. 전생에서도 자신이 회의실에만 나타나면 이런 현상이 펼 쳐졌기 때문에 익숙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런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기운이 달 갑지 않게 느껴졌다. 뭔가 무시당하는 느낌이랄까? 우당탕! 명훈이가 안으로 들어서자 이곳저곳에 분포되어 있던 애 들이 다급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자리에 찾아가 앉 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명훈은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고 눈을 감을 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조용한 분위기하나는 마음에 드는 명훈이었다. ‘아직도 현민이는 안 왔나보군.’ 책가방이 없는 것을 보니 아직도 오지 않은게 확실해 보 였다. 명훈은 그녀에 관련된 것이 의외로 신경이 쓰였다. 애들은 여전히 숨소리조차 나지 않게 조용히 앉아 침묵 을 지켰다. 명훈이 이렇게 하라고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과거에 명훈에게 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했던가? 지금 애들의 상황이 바로 그 꼴이었다. 쾅! 뒷문이 거칠게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명훈이 슬쩍 고개를 돌리는 찰나 거칠게 들어온 누군가 가 목청껏 외쳤다. “2학년 9반 박명훈이 누구야? 어떤 새끼야?!” 갑자기 교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명훈은 자신의 이름을 부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 랐다. 어제 자신에게 개처럼 맞았던 충원이가 뒷문에 서서 애 들을 둘러보고 있던 탓이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최소 3주는 요양해야 될 정도였다. 그런데 멀쩡히 서서 자신을 찾고 있다. 명훈은 혼란스러워 졌다. 잠시 어제를 회상했다. 그러자 자신에게 신명나도록 맞는 충원이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열심히 때렸을 때의 타격감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렇다면 어제 일이 꿈은 아니란 말인데…. 자신의 볼을 살짝 꼬집는 명훈. ‘아야! 쓰읍~.’ 자신이 생각에도 너무 과하게 꼬집었다. 볼에 불이 나는 기분이다. 여하튼 꿈은 아니란 것은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저기 뒤에 서있는 덩어리는 누구란 말인가? ‘복제인간 충원이 투(2)’일리는 없지 않은가? 바로 그때 그 ‘복제인가 충원이 투’로 보이는 녀석이 명 훈의 모든 의문을 풀어주었다. “내 동생을 떡으로 만든 그 새끼 나오란 말이야!” ‘형제였군.’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꼬라지를 보니 복수해주겠다고 온 모양이다. 그렇다면 받아줘야 한다는 것이 명훈의 생각이었다. 아직 몸이 다 안 풀렸다 생각하고 있던 와중이었기에 기 분이 몹시 좋아졌다. 어제 급격한 기의 사용으로 덕을 봤기 때문이다. 기의 통로가 팽창하며 넓어진 것이다. 그런데 저 녀석이 충원이 형이란다. 더 기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했다. 그렇다면 저 녀석도 충원이와 다를 바 하나 없는 녀석이 라는 결론이 나기 때문이다. 애들이나 괴롭히고 다니는 찌질이들과 진배없다는 말이 다. 그것은 정신 개조가 필요한 녀석이란 말과 동일했다. 그렇지 않아도 뭔가 많이 부족하다 생각했는데, 이런 호 박이 넝쿨 체 굴러들어 올 거라고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어제의 짧은 싸움만으로도 명훈은 깨달았다. 아무리 후러배라 하여도 실전이 최고라는 것을 말이다. 그 순간 명훈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이것을 계기로 전국 10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왕따 친구 들을 대신하여 내가 직접 처벌을 내리겠다.’ 시답잖은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한참동안 잡다한 생각을 마친 명훈.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애들은 아직까지도 명훈이가 누군지 알려줘야 할지 말아 야 할지 결정을 못 내리고 허둥거리고 있었던 차였다. 그런데, 명훈이가 직접 일어나는 모습을 보니 안도의 한 숨이 흘러나왔다. 될 수 있으면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고래싸움에 새우가 끼어들어봤자 등 밖에 더 터지겠는 가? 한참 서로 마주 노려보던 중 명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명훈이다. 넌 뭐냐?” 그러자 녀석이 못생긴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 씨익 -ㅍ- <= 이렇게.........(퍼퍽~!) 그냥 무시하시고 담푠으로...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25 회] 날 짜 2004-11-24 조회 / 추천 17325 / 13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학교정벌하다 충원이 녀석과 판박이마냥 똑같이 생긴 모습이 몹시 날 불쾌하게 만들었다. “네가 내 동생을 떡으로 만든 명훈이냐?” ‘보통 자신의 동생이 당했을 때 떡이란 단어를 쓰던가?’ 뭐 어찌되든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짧은 한숨을 내쉰 명훈이 대답했다. “어제 나에게 달려들던 너와 똑같이 생긴 멧돼지 한 마 리를 말하는 거라면 사실이라 말해주마. 어제 떡갈비 재료 로 만들려고 살짝 다져줬지.” “이 개자식이 지금 나랑 장난하나! 따라 나와. 교실에서 죽고 싶지 않으면….” 명훈은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도 교실에서 난동 부려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 음을 생각한 탓이다. 학교 본 건물 뒤쪽에는 창고와 넉넉한 넓이의 공터가 있 었다. 충원이 형, 충열이는 바로 그곳으로 명훈을 끌고 갔다. 그곳에는 많은 녀석들이 건들거리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 었다. ‘하나, 둘…. 여덞이라…. 조금 빡세겠군.’ 그 녀석들은 모두 충열이와 어울리는 양아치들이었다. 충열이는 이 학교의 짱이다. 충열의 싸움 실력과 맷집은 이미 인근 학교까지 소문이 자자할 정도다. 벌써부터 조폭들이 충열의 싸움실력에 눈독을 들이고 스 카웃 제의를 할 정도라고 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 가? 출처가 불확실한 뜬 소문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그만큼 한 실력 한다는 말일 터이다. 충원이는 충열이의 빽을 믿고 학교를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왠만한 사건이라면 아무도 상종하지 않았다. 선생들조차 말이다. 그러나, ‘또라이 개쉬타포’라 불리는 도덕선생과 어제 명 훈에게 맞고 기절한 ‘발정난 개차반’으로 불리는 체육선생 은 달랐다. 그들을 유일하게 견제하는 제대로 된 선생이라 할 수 있 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설치는 충원이나 충열이라 해도 그들 앞에서는 한수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충원이 나름대로 싸움을 잘하는 편이여서 자신의 능력으로 2학년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명훈이는 이런 상황이 몹시 달가웠다. 특히나 충열이가 맷집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면 더욱 기 뻐했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듬직해 보는 몸집을 보며 어제 못 풀었던 울분을 마저 풀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 정도 덩치라면 충분해 보였다. 스트레스를 풀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명훈은 슬쩍 운기를 시도했다. 따스한 기운이 온몸 구석구석을 훑으며 퍼져나갔다.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상쾌한 기분이 온몸을 휩쓸었다. 자세를 가볍게 하고 충열이 녀석을 도발했다. “덤벼봐 돼지새꺄.” 녀석의 코에서 콧김이 나온 것처럼 보인 것은 착시현상 만은 아닌 것 같았다. 녀석이 주먹을 곧게 뻗으며 명훈의 안면을 노렸다. ‘허, 싸움의 기본이 되어 있구만.’ 명훈, 아니, 검황도 청년시절에는 뒷골목에서 주먹 패 놀이도 해보았다. 아무것도 몰랐을 어린 시절의 치기어린 행동이었지만, 그때도 이미 그 동내를 휘어잡았던 검황이다. 그때 나이가 15살이었다. 슬쩍 과거를 떠올렸던 명훈. 왠지 그립다는 생각이 물신 들었다. ‘추억이라는 건가?’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명훈의 그런 웃음을 본 충열. 비웃음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열불이 뻗쳐올랐다. 요리조리 피하는 명훈이 요령을 부리며 미꾸라지처럼 잘 도 피한다며 더욱더 열이 받았다. 더군다나 뒤에는 자신의 패거리 애들이 있지 않던가. 쪽팔렸다. 이런 애새끼 하나 잡지 못하는 자신이 말이다. “이 세끼 한대만 맞아라.” 이를 악물며 내뱉는 목소리에 명훈이 피식거리며 입을 열었다. “싫다. 너 같으면 맞겠냐?” “이, 이익!” 충열이는 자신의 어금니를 악물고 주먹을 있는 힘껏 휘 둘렀다. 왼쪽 다리에 축을 주고 상체를 비틀며 후리는 완벽한 펀 치였다. 명훈이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체계가 잡힌 주먹이었 다. 어디서 운동을 하는 녀석 같았다. 하지만 그것에 맞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 명훈. 가볍게 허리를 숙여 주먹을 피하고, 몸을 숙인 상태에서 그대로 뛰어 올라 공중제비를 돌며 왼발에 힘을 주고 강하 게 턱을 걷어 차주었다. 일명 오버헤드킥이나 썸머쏠트킥이라 명명된 기술이었 다. 퍽! “커흑!” 약간 스치긴 했지만, 적당한 타격감이 왔다. 하지만, 충열이는 자신의 턱을 한번 흔들 뿐이었다. 크게 상한 것 같아보이진 않았다. 명훈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 다음 편은 곧....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26 회] 날 짜 2004-11-24 조회 / 추천 16726 / 114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학교정벌하다 이번 한방으로 기선을 제압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구경하는 녀석들이 언제 자신에게 덤빌지 알 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회심의 일격을 놓친 명훈은 조용히 녀석의 눈을 바라보 았다. “…….” “이 새끼가 감히 잔재주를 부려?!” 충열이는 쿵쿵거리며 명훈에게 달려들었다. 보기에 우스워 보일 정도로 둔해 보이는 몸이었다. 하지만, 덩치가 있어서 둔해 보일 뿐이지 사실 스피드는 빠른 편이었다. 점혈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쓰러트린 후 미친 듯이 패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력이 부족하여 넘길 수 밖에 없었다. 혈도를 봉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내력을 주입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지금 명훈에겐 그 정도까지 사용할 만큼 내력이 있지 못 했다. 하지만, 점혈 형식의 공격은 사용 할 수 있었다. 혈도는 곧 급소다. 급소의 모든 위치를 꾀고 있는 명훈. 최악의 공격법을 사용하고자 마음을 먹고 측은한 표정으 로 충열을 바라보았다. 만약 충열이 혼자였다면 이 공격법은 결코 사용하지 않 았을 것이다. 저 뒤의 녀석들마저 상대해야 할 것 같았기에, 내력을 아끼기 위한 최후의 절초를 공개했다. 그것은 자신이 전생에 거리를 누비던 바로 그 시절 깨우 친 공격법이었다. 모두가 자신에게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던 그 공격 법. 극렬(極烈)! 남탈권(男脫拳)! 유치한 이름 그대로다. 남자의 굴레를 벗는다라는 이름의 권법인 것이다. 유치하여 우스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한다. 검황이 무공을 모를 당시 이 권법 하나로 뒷골목을 평정 하였으니 말 다한 것이다. 설마 내가 이것까지 써야 한단 말인가 하는 침울한 표정 으로 주먹을 움켜쥔 명훈. 미안한 감정에 눈물마저 흐를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자신의 공격을 하나도 빠짐없이 흘리는 명훈 에게 열 받았던 충열이 소리쳤다. “이 개새끼들아! 웃지만 말고 저 새끼 좀 잡아봐!” 뒤에서 버티고 구경하던 애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 다. 다급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오문(下午門) 비기(秘技) 다중남탈권(多衆男 脫券)을 선보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비기 중에 비기로서 검황이 어떤 늙은 거지에게 주먹밥 한 개와 교환한 보법을 익힌 후 깨우친 비기였다. 늙은 거지에게 배운 운신술은 어설프긴 했지만, 내력이 적어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기술이었기에 과거 하오문파 를 정벌할 때 톡톡한 효과를 가져다주었던 기술로서, 지금 은 그 위험성을 검증받아 무림에서조차 봉인되어버린 금지 된 필살기(必殺伎)였다. 그것을 지금 펼치려 한 것이다. 솔직히 명훈도 정공법으로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 자신의 비열함에 분노하면서도 명훈은 주저치 않고 자신 의 주먹에 기를 모았다. 그 사이에 애들이 명훈의 주변을 둘러싸서 운신할 방향 을 모두 막아버렸다. 충열이는 야비한 웃음을 흘리며 명훈에게 한걸음씩 다가 왔다. 어디 그 미꾸라지 같은 움직임으로 또 피해보라는 비웃 음이 담겨 있는 얼굴을 보니, 아직 앞날이 창창한 녀석들 이기에 3할까지만 사용하려 했던 다중남탈권을 5할 이상 으로 끌어올리게 되었다. 끌어올린 명훈은 침울해 졌다. ‘고자가 되어도 원망들 하지 말아라.’ 한줄기 눈물이 흘렀음인가? 눈가에서 뭔가가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순간 명훈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 였다. “뭐, 뭐야? 이자식이 어디로 사라진거야?” 충열이 녀석들이 허둥거리며 사라진 명훈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을 시작으로 녀석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 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꺼어어어어억!” 몇 놈은 이미 기절을 했고, 약간 정신력이 강한 몇 놈은 눈을 까뒤집고 바닥을 때구르르 굴렀다.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면 녀석들 모두가 어떤 특정부위 를 움켜쥐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사라졌던 명훈이 그 자리에 바람처럼 나타났다. ~~~~~~~~~~~~~~~~~~~~~~~~~~~~~~~~~~~~~~~~~ 대충 무슨 기술인지 눈치 차리신 분들이 계시려나.... 약간 잔혹한 기술이죠... 단점이 있는 커다란 기술.... 장난으로라도 절대 사용하지 마세요...... ㅡ////ㅡ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27 회] 날 짜 2004-11-24 조회 / 추천 16712 / 10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학교정벌하다 그 순간 사라졌던 명훈이 그 자리에 바람처럼 나타났다. 주먹에서 왠지 찌릉내가 날 것 같은 기분이다. 명훈은 조금 전에 느꼈던 물컹이던 불쾌한 느낌이 지워 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녀석의 옷에 비비기 시작한 것은 이 이후였다. “아, 기분 참 찝찌름하네….” 그때 창가 쪽 모여서 싸움을 구경하던 애들이 눈에 들어 왔다. 모두가 놀란 표정이다. 아직도 상황 판단이 덜 됐는지 무슨 일이 있었냐고 서로 되물었지만, 명확한 답을 내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 눈에도 명훈이 사라졌다 나타나자 하나같이 나자빠 진 것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명훈은 자신의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가볍 게 손을 흔들어 줬다. 그러자 여자애들의 비명소리가 찢어질 듯 들려왔다. 어떤 애들 중에선 하물며 ‘오빠~’라는 소리까지 들려왔 다. 반응이 마음에 드는 명훈이었다. 여하튼 이제 시작을 해야 했다. 처절한 스트레스 해소를 말이다. 명훈은 끙끙 앓고 있는 충열의 몸을 발로 툭툭 찼다. “야, 엄살 그만 피워.” 엄살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분노한 충열은 고통을 견뎌 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힘줄이 곤두선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이, 개…자시익….” “뭐라구? 잘 안 들려. 다시 말해봐~.” 명훈의 도발에 충열은 다시 입을 열려 했으나 명훈의 시 선과 행동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아대! 아대에!” 너무 성급하게 입을 열었더니 발음이 새어 나왔지만, 충 열은 생각의 겨를이 없었다. 저 괴물 같은 녀석이 같은 사내면서 치사하게 그곳을 공 격했던 것도 모자란 지 자신의 거시기를 바라보며 발을 슬 쩍 치켜 올리고 있던 것이다. 말실수하면 바로 차주겠다는 완벽한 협박이었다. “왜? 마저 말하라니까.” 말하고 싶어도 고통 때문에 바로 말이 안나오자 답답한 충열은 눈물을 흘렸다. 정말 서글프게 울었다. 명훈은 그런 충열을 보고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 다. 어째서인지 마구 분노가 치미는 것이 우는 모습을 그칠 때까지 패주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른 탓이다. 그래서 두말없이 까줬다. “허어업!” 녀석의 눈이 흰자위만 보였다. “살살 깠어. 엄살 좀 그만 부려.” 녀석의 전신이 입대신 꿈틀거리며 대답했다. 엄살이 아니라고 말이다. “짜식. 약한 척 하기는…. 내가 거기서 느껴지는 통증을 다 낳게 해줄게 좋아?” 이게 무슨 소린가? 어떻게 그 끔찍한 통증을 완화 시킬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충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흡조차 쉬기 힘들 정도의 고통. 그 고통 때문에 반쯤 정신이 나간 충열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떻게 통증을 완화 시켜주냐가 관건이데 말이야. 내가 이런 방법을 하나 알고 있지. 이열치열이라는 단어 알아?” “아라…끄응.” “말이 짧긴 하지만, 좋아. 이해가 빠르니 넘어가 주지.” 순간 충열은 뭔가 끔찍한 불안감에 휩싸여 버렸다. 자신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실수한 것 같은 기분이 었다. 명훈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그 불안감은 커져갔 고, 어떤 한마디가 흘러나오자 충열의 눈이 형용할 수 없 을 정도로 커졌다. “반응이 좋군. 그래, 다시 말해줘? 이번에는 잘 들어야 해 알겠지?” “아냐, 아냐….” 안됀다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고통과 공포가 겸비된 다급함에 말이 헛 나오는 충열이었다. 그러나 명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성의를 무시하 지 말라는 의사표시를 보여줬다. “아냐. 괜찮아. 그정도 수고도 못해주고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니?” ‘누가 친구야?!’ 라고 얼굴이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가볍게 묵살해준 명훈은 말을 이었다. “여하튼 이열치열은 더위를 열로 맞서는 거잖아? 내가 말했던 이통치통이란 통증을 다른 곳에 줌으로 그곳의 통 증을 잊게해주는 방법이지. 물론 그러한 효과를 내기 위해 서는 그곳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 강력한 통증이 다른 곳 에서 느껴져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 그래도 효과는 만점이 라구.” 바닥에 쓰러져서 그 말을 듣는 녀석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기절하여 저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애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제바, …바알!” “알았어. 보채지마. 그럼 합의도 했고, 이제 슬슬 시작할 께.” 순간 충열은 명훈의 눈이 빛을 품는 듯한 착시현상을 목 격했다. ~~~~~~~~~~~~~~~~~~~~~~~ 다음편은 두시간 후에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28 회] 날 짜 2004-11-24 조회 / 추천 16727 / 120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명훈, 천적만나다 5. 명훈, 천적만나다 구석에 숨어서 명훈이 맞아 죽기만을 기다리고 지켜보던 뼈다귀와 호구, 아니, 명호와 승운은 호흡이 멎는 느낌을 받았다. 설마 이 학교 짱까지 이길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탓이다. 이미 조폭과 연관이 있다는 충열이었기에 그 놀람은 더 욱컸다. 어떻게 쓰러지는지 보지 못했지만, 왠지 하복부의 어떤 부위가 아려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여하튼 잠시나마 명훈의 뒤통수 칠 생각을 했던 명호와 승운. 이번 일을 계기로 배신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영구히 지워버렸다. 아마 다시는 떠올리지 않으리라. 다짐까지 하는 둘이었다. 왕따 명훈은 운이 아니라 정말 괴물이 되어 나타난 것임 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명훈이가 쓰러진 충열이와 뭔가 정답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주시했다. 그런데 명훈이가 친구 어쩌구 하는 것이 아닌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기울여 보니 갑자기 타격음이 들 려왔다. 황급히 시선을 돌려 명훈을 바라보니 갑자기 발길질을 시작으로 전신 구타를 시작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주먹과 발로 부족한지 옆에 굴러다니던 목각을 들더니 다구발을 새우기 시작한 것이다. 하긴 어제 자신들이 맞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의자와 마대자루가 날아다니던 치열한 격투! …라기 보단 일방적인 구타였지만……. 여하튼 다급히 잡념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구타장면을 주 시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생각 할 수 있었다. ‘인간이 인간을 저렇게 팰 수도 있는거구나….’ ‘어떻게 저렇게 팰 수 있지? 저 새끼는 인간이 아닐꺼 다.’ 멀리서 보이는 명훈은 들고 있던 목각으로 열심히 팼다. 결국 목각이 부러지자 부러진 것을 왼손으로 마저 들고 두들겼다. 일명 북어패기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공격법이었다. 경쾌하다 못해 흥이 날 정도로 울려퍼지는 타악기의 소 음이 공포로 다가오는 둘이었다. 퍽! 퍼, 퍼벅! 퍽퍽! 퍼버버버벅! “윽! 어윽! 윽윽윽! 어어어억!” 난타음과 함께 어우러지는 충열의 비명소리. 결국 두 눈을 감았지만, 자신이 맞는 듯한 묘한 감정에 휩싸인 명호와 승운은 결국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저 새끼 뭘 처먹어서 저렇게 변했다냐?” “씨발 내가 알게 뭐야!” 승운의 짜증 섞인 말투에 명호도 짜증이 났다. “너 지금 나랑 맞짱 뜨자는거냐?” 명호의 화난 목소리에 승운이 한수 접어줬다. 명호자식이 자신보다 싸움을 잘하기 때문이었다. “미쳤냐. 그렇지 않아도 정신없는데, 정신 나간 소리 좀 그만해. 새꺄 내가 너랑 왜 싸워 임마.” “쯥….” “여하튼, 내가 왜 과거에 저 새끼를 왜 건드려서 이렇게 됐냐.” “내가 알게 뭐야. 저 자식이 저렇게 또라이가 되서 나타 날 줄 누가 알았겠냐?” 명호의 말에 승운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아, 정말 엿 같다. 계속 학교에 다녀야 하는건가?” 그 말에 승운이 화들짝 놀랐다. “새까 그럼 너 집 앞에서 맞을래?” “……” “그래도 꼬봉이라도 됐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아다면 저렇게 맞을 뻔 했잖냐.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으휴….” “에휴….” 명호와 승운은 아직도 이어지는 난타소리를 피하고 싶은 지 조용히 귀를 막았다. 벌써 엉거주춤 일어난 녀석들이 있었지만, 악귀처럼 미 친 듯이 충열을 두드리는 명훈은 보며 누구도 선뜻 다가지 못했다. 그들의 시선이 자신들과 명훈 사이에 자빠진 노란머리 녀석과, 그 노란머리 녀석의 머리에 명중한 반이 쪼개진 목각 조가리에 솔려 있었다. 충열이가 열나게 맞는 것을 보고 아픔을 무릅쓰고 먼저 일어난 친구 녀석이 슬금슬금 다가가다 명훈이가 던진 저 쪼개진 목각 조가리에 머리를 정확하게 맞고 기절한 것이 다. 보지도 않고 뒤로 던진 것 같은데, 그렇게 나자빠지자 모두들 어안이 벙벙했다. 그냥 우연이라 생각하고 다시 한 놈이 다가갔지만, 바로 그때 들린 차가운 명훈의 목소리. “이놈 다 맞은 후, 다음 타자는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놈이다.” 그로 인해 저 녀석이 자신들을 보고 있다고 깨닫고 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다시 명훈의 입이 열렸다. “모두 스톱. 도망친 녀석은 이 녀석 두 배로 패준다.” 그 한마디에 모두가 굳어 버린 것이다. ~~~~~~~~~~~~~~~~~~~~~~~~~~~~~~~~~~~ 도망쳐라 이민이라도 가라. 그게 너희 살길이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29 회] 날 짜 2004-11-24 조회 / 추천 16474 / 12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명훈, 천적만나다 결국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저 성질 더러운 명훈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들은 어제의 명호와 승운처럼 고양이 앞의 쥐요, 뱀 앞에 개구리 꼴로 얼어 있었다. 자신들의 친구이자 짱인 충열이를 저 꼴로 만들고 조금 전에 보여준 믿기 힘든 움직임과, 보지도 않고 던진 목각 조각으로 다가가던 녀석을 한번에 기절 시킨 신기. ‘저 자식이라면 정말로 그럴지도 몰라.’ 라고 하나같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 알고 있을까? 명훈이는 한다면 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말로 그렇게 패줄 의향으로 말한 것임을 누가 짐작이 나 했겠는가? 그들은 운이 좋다면 좋고, 나쁘다면 나쁜 아주 애매모호 한 위치에서 떡이 되도록 맞는 충열이를 바라보았다. 충열이의 얼굴은 이미 울긋 불긋 했다. 화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맞아서 부어서 퍼랬고, 부 은 곳은 또 패서 결국 상처가 터지며 붉어진 거다. 전신을 목각으로 패더니 뒤로 휙 집어 던지며 중얼거렸 다. “에이, 이걸론 감질나서 안 되겠네. 역시 남자는 주먹이 지….” 그 중얼거림을 가까이에 있던 양아치들이 듣지 못할 리 가 없었다. 갑자기 온몸에 닭살이 돋고 소름이 쫙 뻗쳤다.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명훈은 그런 녀석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충열이를 질질 끌고 가더니 벽에 등을 붙였다. 충열이가 허우적거리며 반항했지만, 명훈이 한마디했다. “이게 아직도 앙탈부릴 힘이 남아 있나? 덜 맞은 건가?” ‘저게 덜 맞은 거라고오오?!’ 경악했다. 자신들은 정말 잘못 걸렸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곧 뼈가 시리도록 맞을 테지만, 아직은 직접 맞지 않았 으니 뼈가 저린 정도로 그친 것이었다. 허둥 바둥 하며 끌려가는 충열의 모습을 보곤 차마 더 이상 볼수 없다는 생각에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째서인지 돼지 한마리가 도살장 끌려가는 듯한 착시 현상을 목격 한 탓이었다. 명훈은 그런 양아치들의 생각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충열 이를 벽에 걸쳐 놓은 체 주먹으로 패기 시작했다. 퍽! 퍽! 쩍쩍, 살과 살이 달라붙는 소리가 들린다. 현기증이라도 일어날 판국이었다. 명훈이는 뭔가 만족스럽고 뿌듯한 듯 웃음을 머금은 미 소로 입을 열었다. “하하하! 역시 구타는 손맛이지!” ‘구타는 손맛이지, 구타는 손맛이지, 구타는 손맛이지….’ 양아치들의 가슴 깊숙한 곳은 후벼 파는 한마디. 마치 마음의 상처이냥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아니,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실시간 리얼타임으로 들리는 구타음향과 비명소리. 눈을 뜨면 100인치 고화질 HD 텔레비전처럼 선명히 보 이는 구타현장. 저렇게 망가질 순서를 기다리는 자신들은 이곳이 지옥인 것 같았다. “크하하하!” 퍽퍽퍽! “억! 억! 억!” “구타는 손맛이라니까. 구타는 손맛! 크하하!” “그, 그냐앙… 주겨라….” “말이 짧네? 남자는 주먹~ 구타는 손맛~ 룽루룬~.” “아니, 아니아니아니… 주겨주세…요…….” 스르르. 풀썩! 맞다가 지친 충열은 그 말을 끝으로 기절하고 말았다. 맞으면서 생긴 분노와 공포는 맞다보니 결국 모든 고난 과 번뇌를 씻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로 인해 충열은 참 인간이 되어 버렸…을 리가 없다. 다만 앞으로는 명훈, 자신 앞에서는 설치며 까불지는 않 을 것이다. 팰 때는 확실하게 패야 한다는 자신의 지론을 오늘도 어 김없이 지킨 것이다. 그가 죽을 거라는 걱정은 전혀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가 검황 아닌가? 사람이 죽지 않을 지경까지만 정하고 팬거다. 물론 병신이 되는 것은 신경 안썼다. 명훈의 요지는 죽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충열은 참으로 오래 버텨줬다. 보통 녀석들이었다면 벌써 쓰러지고도 남았을 거다. 역시 맷집이 좋아서 그런지 어제 풀지 못했던 분노를 마 저 풀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휴, 다음에 또 한번 붙자. 알겠지?” 명훈의 혼잣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절한 충열이가 그 말이 끝나기 무 섭게 경기를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마치 어제의 충원이가 떠오를 정도였다. 속 후련하게 패고 이제 충열이 다음으로 자신의 못다 풀 린 분노 및 스트레스 해소용 호구를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열의 비장한 최후를 목격한 목격자, 양아치 여덟 명.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명훈을 보니 도망이라도 치고 싶어 졌다. 그러나 도망치자니 후한이 두려웠다. 그렇다고 맞서자니 이미 공포에 찌들은 몸은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 도망쳐봐라 도망치면..... 훗......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30 회] 날 짜 2004-11-25 조회 / 추천 16540 / 108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명훈, 천적만나다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있는데 어떻게 도망을 칠 수 있 겠는가? 어차피 맞을 거라면 조금이라도 덜 맞는 것을 택하고 싶 었다. 그래서 무릎을 꿇었다. 한번만 양해를 봐달라고. 이번 한번만 마지막으로 용서해 달라고…. 저 미친놈에게 걸려서 개처럼 맞다가 쓰러진 충열이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런 것을 인과응보라고 하는 건가? 그 순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의 자신들이 저질렀던 잘못들이 주마등처럼 흐 르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의외의 상황에 명훈은 당황했다. ‘얼래? 내가 벌써 때렸나?’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니 아니었다. ‘이 자식들 내가 아직 패지도 않았는데 왜 질질 짜고 지 랄들이야?!’ 사람 말이라는 것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검황의 쫌생이 같은 머리는 같은 상황도 자유롭게 다른 형식으로 바꿔 상상할 수 있는 뛰어난 상상력을 자랑했다. 물론 그 상상력은 타인에게 무한한 해를 주었다. 과거에 검황이 죽었을 때 어째서 초상집이 잔치 집 분위 기였는지를 알려주는 예라 할 수 있었다. 여하튼 명훈이는 자기 멋대로 생각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여덟 명의 양아치를 그 자리에서 후두려 패버렸다. 다시 신명나는 난타음과 비명소리의 하모니가 허공을 수 놓았다. 차후, 그들의 비명은 사망유희(死亡遊戱)라 불리며 이 고등학교의 전설로 남게 된다. 명훈이는 얼굴이 튄 피를 옷소매로 쓱 닦으며 안으로 들 어갔다. 그러자 좌우로 갈라지며 명훈이가 지나갈 길을 자연스럽 게 만들어 주었다. 명훈은 고맙다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미소를 보여줬다. 명훈은 왕따긴 했지만, 얼굴만은 학교에서조차 인정해주 는 미소년이라 할 수 있었다. 충원이가 명훈이를 더욱 괴롭힌 이유가 명훈이 얼굴 때 문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 말이다. 보기 좋은 미소긴 하지만, 왠지 거림직 하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이 웃는 얼굴로 사람들 팬 것을 보지 않았던 가? 바로 그때 그 미소를 짓는 얼굴로 머리에서 이마로 한줄 기 피가 흘러내렸다. 주륵. 웃고 있는 얼굴을 타고 턱을 끝으로 바닥에 뚝뚝 떨어졌 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명훈이가 맞은 장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피가 흐른다. 명훈이가 자신의 얼굴을 훑었다. 당연히 피가 얼굴에 번진 것은 당연했다. 그것을 태연히 바라보던 명훈. 한마디를 툭 내뱉으며 다시 저쪽으로 달려갔다. “이런 씹새들이! 맞으려면 곱게 맞지 피는 왜 튀기고 지 랄이야! 지랄이!” 퍽! 퍽! 다시 기절해 있는 녀석들을 발로 차며 패기 시작했다. 그건 거의 광기였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는 선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선생들조차 얼어버린 상태였다. 명훈의 잔혹함에 차마 다가 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발정난 개차반과 또라이 개쉬타포역시 마찬가지 였다. 자신들이 손을 댈 수 있는 녀석이 아니라 결정을 내린 표정이다. 다시 노란머리를 구타하던 명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노란머리는 택진이라고 조금 전 다가갔다가 나무에 명중해 기절한 녀석이었다. 정말로 명호는 경고했던 것처럼 그 녀석들 애들 중에서 가장 심하게 팼던 것이다.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31 회] 날 짜 2004-11-25 조회 / 추천 16323 / 9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명훈, 천적만나다 주먹으로 패며 깨우더니 다시, 패서 기절 시키고, 기절 하면 패서 깨우고를 세 번 정도 반복하던 악귀 같은 명훈 의 모습이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지우겠는가? 잠자리에서 조차 꿈속에 나타나 악몽으로 남을 것만 같 은 장면이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명훈이 저 자식은 싸이코다. 건드려봤자 피만 본다. 절 대 건들지 말자. …라고 말이다. 한참 다시 시원하게 팼는지 다시 현관으로 들어서며 멋 쩍은 듯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선생님들 수업 안하시고 여기서 뭣들 하고 계세 요?” “아, 아니 그게 저….” “하하. 저는 약간 씻구 들어갈게요. 먼저 수업을 진행하 셔도 됩니다.” “어, 그, 그래.” 명훈은 한번 허리를 꺾고 인사하더니 수돗가로 달려갔 다. 여자애들이 그런 명훈을 한번이라도 더 보겠다는 듯 우 르르 몰려갔다. 물론 무서워서 더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멋져, 멋져’를 남발하며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하자 끝도 없었다. 큰 사건이 터졌음에도 선생들도 어딘지 기분 나쁘지 않 은 표정이었다. 모든 선생이 명훈의 괴물 같은 모습을 보긴 했지만, 그 냥 건들지만 않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거기다가 조금 전 명훈의 시원시원한 말투. 어디 흠 잡을 곳이 없었다. 명훈이 팬 녀석들도 솔직히 이 학교의 이름난 골치덩어 리들이고, 심심하면 패싸움이다 뭐다해서 자신들의 속을 긁던 녀석들이 아니었던가? 사실 선생들도 명훈이가 왕따 당하는 것도 알고는 있었 다. 그러나 왕따 문제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지 않는 다면 자신들이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몹시도 잘 알 고 있었다. 과거 명훈에게서는 그럴 패기도 못 느껴졌고, 결국에는 자살까지 시도 하지 않았던가? 어떤 계기가 있었기에 이렇게 변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 만, 나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앞으로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때 개쉬타포가 핸드폰으로 119에 전화를 했다. “거기 119죠? 여기 패싸움이 일어나서 애들이 크게 다 쳤습니다. 아, 상대방이요? …상대방은 이미 도망쳤구요. 우선 여기위치가…….” 촤악! 시원한 물이 명훈의 얼굴을 깨끗하게 씻어 내렸다. 여기저기에 묻은 핏자국도 지웠고, 수도꼭지에 대고 머 리도 한번 물로 감아줬다. “아, 속도 후련하고 개운하다. 으쌰!” 장장 두 시간 동안의 일방적인 구타긴 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명훈은 전생에서도 이렇게 개운하도록 싸워본 것이 언제 인지 아득할 정도였다. 이미 자신은 지존의 자리에 있었기에 누구하나 자신에게 덤비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처음 위명을 날렸을 때가 떠올랐다. 검황이라는 칭호를 처음 받았던 그 순간.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이놈 저놈이 물불가리지 않고 덤벼들었던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하오문 때의 삶을 빼고, 그때만큼 신이 났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원하는 만큼 싸웠고, 원치 않을 만큼 덤벼드는 수많은 적들에게 죽을 뻔도 했다. 그러나 행복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무위를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 었다. 사람들은 그때의 싸움에 ‘뭐뭐쟁투다. 뭐뭐대전이다’ 하 며 이름 붙이고 칭송하기 바빴지만, 그때 싸움터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생각했다. 세상에 개싸움도 그런 개싸움이 없었다고 말이다. 다만 전투에 참여했던 그들은 모두 생색을 내느라고 다 들 ‘그땐 그랬지’라며 폼이란 폼들을 다잡아댔지만 말이다. 그때 명훈의 눈에 익숙한 누군가가 손을 흔들며 달려오 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헤이 명후운~.” 현민이었다. 명훈이는 현민이의 표정을 보며 반갑게 맞이했다. 어느 세 다가온 현민이가 명훈이의 목을 휘감더니 헤드 락을 걸며 인사했다. “야! 여기서 뭐해? 수업시간 아냐?” 이미 지쳐있던 명훈. 현민의 등을 탁탁 치며 기브 업을 외쳤다. 그러자 기분 좋게 웃으며 목에 걸었던 팔을 풀어줬다. “어, 현민이 왔구나? 놀랐잖아.” 명훈의 지친 목소리에 현민이가 짐짓 미안한 듯 대답했 다. “히히. 장난이야. 장난. 그런데 여기서 뭐해? 수업시간 일텐데? 설마 이번 교시 취는 거야? 선생이 학교에 안나왔 어?” 다시 시작된 현민이의 속사포 공격. 명훈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잠시 힘들어서 허락받고 밖에 나온 거야. 지금 씻구 들어가려구.”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32 회] 날 짜 2004-11-25 조회 / 추천 16247 / 97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명훈, 천적만나다 그때 현민이 흠칫 놀랐다. “뭐야, 너 코피 흘렸어? 옷에 웬 피야?” “아, 아니 그냥….” 현민이만 만나면 왠지 휘둘리는 기분이었다. 속사포 같은 말뿐만이 아니라 자기 혼자 생각하고 답을 내는 현민이의 장단에 명훈은 맞추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그 이 바보야. 이렇게 약골들이나 하는 짓을 하니 애 들한테 맞고 다니지. 멍충아!” 현민은 주먹을 쥐고 살짝 명훈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아야.”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명훈의 비명에 현민이 지래 놀 라더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어? 정말 아픈가 보네? 야, 그럼 양호실로 가야지. 뭐 해 어서 따라와!” “어, 어….” 명훈은 결국 갈피도 잡기 전에 현민의 질질 끌리듯 양호 실에 가서는 양호선생의 허락을 받고 명훈을 뉘였다. “너 거기서 푹 쉬다 나와. 선생님한테는 내가 말할 테니 까. 알았지? 그리고 운동 좀 해라. 뭘 믿고 그렇게 약골이 야? 그럼 조금 자라 알겠지?” 그 말을 마치고 현민은 교실로 올라갔다. 그러나 밖에서 현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명훈을 졸졸 따라다닌 몇몇 여학생들과 마주친 모양이었 다. 그 여학생들은 나름대로 명훈을 질질 끌고 다니는 현민 이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이름 있는 여자 일진 짱이었 기 때문에 함부로 말도 못하고 쭈물쭈물 거렸다. “너희들 지금 뭐야? 어서 교실에 안가? 이것들이 빠져가 지고…. 어서가!” “네 언니….” “칵! 아참, 너 일학년 아영이지? 이리와 봐. 담배 좀 내 놔봐.” “저 언니 없는데요?” “맞고 내놓을래? 그냥 내놓을래? 너 담배 피는거 다 아 는데 지금 빼는 거야? 뒤질래?” “정말 없어요. 언니. 아침에 담탱이가 압수해 갔단 말예 요. 잉잉.” 아영이란 여학생의 말에 입맛을 다시면 현민. “쩝. 그럼 내꺼 펴야 하나? 돈도 없는데…. 알았다. 가봐 라. 그리고 뭐 볼게 있다고 양호실 앞은 얼쩡거려? 칵! 어 서 꺼져.” “네 언니. 안녕히 계세요….” 아영이라는 애들이 사라지는 것을 마저 본 현민.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몸을 뒤적이더니 담배하나를 꺼내 들었다. “에라, 이왕 생각난 김에 한 모금 꼬실리고 들어가야겠 네. 쯥.” 명훈은 밖에서 현민이가 하는 말을 모두 들을 수 있었 다. 저렇게 대놓고 이야기 하는데 어떻게 듣지 않을 수 있겠 는가? 명훈은 피식 웃으며 팔을 머리 뒤로 모아서 팔베개를 했 다. “훗. 정말 웃기는 애였군. 큭큭.” 명훈은 왠지 현민이라는 여자애의 거침없는 행동이 마음 에 드는 것만 같았다. 여자라고 내숭떠는 것도 나쁘진 않은 명훈이지만, 저렇 게 허울 없이 다가오는 것도 나쁘게 보이진 않았다. 솔직히 지금 현민이가 아니었다면 교실에서 힘겹게 앉아 있었을 것이다. 명훈은 지금 정말 지칠 대로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내력이 충만한 것도 아니고, 심폐기능도 약한 명훈이었 기 때문에 이 정도의 움직임을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것 같았다. 사실 조금 전 운동장 수돗가에서 현민이가 살짝 머리를 때렸을 때 골이 울릴 정도였던 것이다. 녀석들을 너무 인정사정없이 패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기 력을 다 사용한 모양이었다. “역시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해. 조금 더 내력과 근력을 쌓아야 겠어. 어머니께 아령 좀 사다 달라고 부탁해야 지….” 정말 맥없이 자신을 약하다고 말하는 명훈. 조금 전 자신에게 맞았던 녀석들이 들었다면 경기라도 일으킬만한 소리였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33 회] 날 짜 2004-11-25 조회 / 추천 16248 / 111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명훈, 천적만나다 조금 전 자신에게 맞았던 녀석들이 들었다면 경기라도 일으킬만한 소리였다. 그 말은 지쳐서 더 이상 때리는 것을 포기했다는 말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명훈은 한참 직사각형에 물결무늬가 있는 하얀 천장을 올려다보고는 힘없이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휴, 그럼 한숨 자볼까?” 눈을 붙이고 뜨니 두 시간 정도 지난 것 같았다. 몸의 근력도 어느 정도 돌아왔고, 피곤도 많이 사라졌음 을 깨달았다. 명훈은 잠시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해보며 이상이 없음 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명훈. 이미 소진되어진 내력이 모두 돌아왔음을 알 수 있었기 에 아직 남아있는 몸의 피로와 놀라있는 근육을 모두 풀기 위해 운기를 시작했다. 마음 편히 삼십분 정도의 운기를 마치고 눈을 뜨자 깊고 맑은 명훈의 눈망울이 드러났다. “좋은데?” 역시나 였다. 자신이 예상이 옳은 것이다. 이번에도 내력이 늘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전이 정말로 크게 효과가 있음을 알려준 것이었다. 오늘 아침의 두 배 정도크기의 새로운 진기가 단전에 들 어찼음을 확인한 명훈. 펄쩍 뛰고 싶은 만큼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지금이 중요할 때였다. 무공은 무식하게 내력만 쌓는다고 다가 아닌 것이다. 뭐, 급한 녀석들 몇몇은 내력을 올려서 환골탈퇴를 시도 하긴 하지만, 성공하는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본래 무공이란 내력만이 아닌 정신력과 외공이 바탕인 것이었다. 내력이란 본신의 능력을 몇 배 늘려주는 것일 뿐이지, 그것이 본신의 능력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정신력이란 극기에 도전하여 새로운 깨달음을 얻 는 디딤돌이 되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름 있는 명문 정파 애들은 미쳤다고 밤 낯가리지 않고 괜히 칼춤을 춰대는 줄 아는 건가? 정말, 간혹 외공과 내공이 별개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 는데, 이런 놈들은 내력만 모이면 다 되는 줄 알고 속성심 법을 펼치다가 십중팔구 주화입마에 걸리는 녀석들이라 할 수 있었다. 명훈은 전생에 그런 녀석들 치고 잘된 꼴을 본 역사가 없었다. 그놈들 중 대부분이 희대의 악마, 살성, 천살 등등이 이 름의 끝자락에 붙었던 것이다. 대부분 자신이 직접 패죽이긴 했지만, 왠지 그리움이 모 락모락 피어올랐다. 특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혈천마왕이라 불리던 녀 석. 중원을 홀홀단신으로 정벌하겠다며 이놈 저놈에게 깐쭉 거리다가 결국 검황에게 맞아 죽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혈천마황이란 녀석은 검황 자신도 무시 할 수 없 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검황 담소광 자신도 그의 공격에 죽을 뻔 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고강하면 뭐하겠는가? 이미 이지를 상실하고 자신의 몸을 마성에 빼앗겨, 뭐가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별 못하는데 말이다. 그는 이미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미련한 황소에 불과했던 것이다. 명훈은 자신의 가느다란 팔을 내려보며 한숨을 쉬었다. 여하튼 살아남기 위해서 강해져야 한다는 지론. 현세에서도 그 지론이 진실인 것 같았다. 그때 자신이 누워있던 양호실 침대의 커튼이 열리며 누 군가가 들어왔다. “얼래? 일어났네?” “현민이구나? 응, 지금 일어났어.” “큭큭 짜식. 기특하기도 하지. 지금 점심시간이라고 말 해주려 왔지. 너 굶을 까봐 말야. 아, 그렇다고 이 누님의 하해와 같은 마음 씀씀이에 감격할 필욘 없어. 원래 이 누 님은 착하단다. 캬하하하.” 명훈은 정말 기분이 좋은 듯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후후후.” “짜식 웃긴. 여하튼 밥 잘 먹어라. 밥이라도 잘 먹어야 튼튼해지지. 밥이 보약이란다. 아가야. 킥킥. 여하튼 이 누 님은 이만 간다. 알겠지?” 명훈은 현민이가 간다는 말에 고개를 꺄웃거렸다. “응? 간다고? 어딜?” 그러자 현민이가 등에 매고 있던 작은 가죽가방을 보여 줬다. “어딜가긴 피씨방 가지. 얼굴도장 찍었으니 이제 가봐야 지. 교실에 있어봤자 머리만 아프고…. 가서 고스톱이랑 테트리스나 해야지 뭐. 지금 시간에 집에 들어 갈 수도 없 고 말야.” 왠지 약간 침울해 보이는 눈빛을 명훈을 잡아 낼 수 있 었다. 뭔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현민이와 약간 다른 이질감 이라고 해야 하나? 명훈은 뭔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현민이를 부르려는 찰나 현민이가 씨익 웃더니 명 훈의 등을 쌔게 한번 치고 밖으로 나갔다. “여하튼 이 누님은 이만 간다. 밥 잘 먹고, 알았지? 그 럼, 내일 보자.” “이, 이봐….” 이미 밖으로 나간 현민이 대꾸할리 만무했다. 명훈은 뭔가 찝찔한 상태로 교실에 올라갔다. ~~~~~~~~~~~~~~~~~~~~~~~~~~~ 에구.... 글쓰는 자판기라도 된 듯한 기분이네요... ㅡㅡ;; 힘들어라... 그럼 내일 오후에 뵐께요~ 모두 좋은꿈꾸세요^^ 선작필수 > [34 회] 날 짜 2004-11-25 조회 / 추천 16004 / 87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명훈, 천적만나다 드르륵. 명훈이 없었기 때문인지 좋아라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명 훈의 등장으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탁! 문을 닫고 천천히 자신의 자리에 간 명훈. 조용히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어느 세 교실에 있던 애들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입을 다물고 명훈이 밥 먹는 것을 지켜봤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주먹 거리도 되지 않았던 좃밥이 었던 명훈. 한순간에 싸움꾼으로 변해서 돌아온 것이다. 오늘도 명훈의 신기를 봤다. 어제의 일이 꿈이 아님을 새삼 확인 할 수 있었다. 짱을 포함한 아홉 명을 한순간에 바닥을 눕히는 실력. 어떻게 눕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을 떡으로 만들어서 구급차에 실려 가게 한 사실이 중요한 것이었다. 애들은 명훈이 지금 조용히 밥 먹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이제는 명훈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두 관심이 쏠리는 애들 이었다. 명실 공히 이 학교의 짱이 된 탓이었다. 누구하나 명훈에게 짱이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그의 실력을 직접 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잔혹한 손속. 아마도 내일이면 이 동내 전체를 떠들썩하게 할 것이다. 바로 그때 뒷문이 열리며 명호와 승운이가 주춤거리며 반으로 들어 왔다. 애들은 흥미 있는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제부로 명훈의 꼬봉이 된 그들이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분명 이를 갈고 있었을 텐데, 오늘의 싸움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싸울 때는 선생들조차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고, 싸움 후에는 묵인해 줬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저 녀석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궁금 해 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헤헤, 짱. 뭐해?” “짱 이거 먹을래? 매점에서 사왔어.” 녀석들의 행동에 반애들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그러나 숨을 죽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명훈이 딱 버티고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명호와 승운 두 녀석에겐 더욱 신경 쓰였다. ‘푸붓!’ ‘키킥!’하고 웃는 것이 자신들을 비웃는 것 같았 기 때문이었다. ‘저 새끼들이!’ ‘참아, 나중에 손봐주면 되.’ 둘은 소곤거리며 분을 삭일뿐이었다. 그들은 그 와중에도 여전히 과자 봉지를 든 체 명훈에게 건네고 있었다. 명훈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그 과자 봉지를 받으며 말했다. “킥킥. 뭐냐 이건.” “너 주려고 사온 거야.” “맛있는 거야. 먹어봐….” 둘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명훈이 대답했다. “킥킥, 그래 좋다. 잘 먹어주마.” 명호와 승운은 명훈이 과자를 받아 들자 기분이 좋았다. 명훈이 자신들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 다. 그러나 몰라서 하는 생각이었다. 명훈, 아니 검황은 받는 것은 받는 것이고, 주는 것은 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승운과 명호 두 녀석이 명훈에게 했던 일을 이 과자 몇 봉지로 넘어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명훈의 기분이 좋았기에 그냥 넘어가 줬 다. 기회는 많이 있기 때문이다. 두 녀석의 정신을 개조해줄 기회는 말이다. 허나,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반애들은 놀랐다. 저렇게 쉽게 용서해 줄 것이라곤 상상도 못한 탓이었다. 그래서 하나같이 생각했다. ‘뭐가 저렇게 시시해? 정말 저걸로 용서해주는 건가?’ 아마도, 내일 명훈의 자리에는 과자가 수북히 쌓일 것만 같았다. 반 아이들이 친해지자는 명분으로 사올 과자로 말이다. 다음 날. 명훈은 집에서 나오면서 어머니의 걱정스런 얼굴을 다시 한번 목격했다. 어머닌 학교에서 돌아온 명훈의 옷에 묻은 핏자국을 보 며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다. 다시 학교에 나간 명훈이 또 똑같이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명훈은 그런 어머니를 보며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양아치 녀석들에게 화가 치밀어 오르는 명훈이었 다. 그래서 다짐했다. 앞으로는 절대 옷에 피가 튀지 않도록 패주겠다고 말이 다. 교실에 들어가자 명훈은 흠칫 놀랐다. 애들이 자신의 책상에 쪽지를 붙여놓은 과자를 수북이 쌓아 놓은 탓이었다. “이, 이게 뭐야?” 명훈은 당혹스러움에 말까지 더듬었다. 그러자 여자애 하나가 얼굴을 붉히며 초콜릿이 듬뿍 들 어있는 상자를 가져오더니 입을 열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35 회] 날 짜 2004-11-25 조회 / 추천 16015 / 10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명훈, 천적만나다 “애들이 다시 너랑 친해지구 싶다구 가져왔어. 나두 너 랑 친해지구 싶어서…. 이거 받아 줄래?” 조그맣고 귀여운 여자애였다. 머리 이곳저곳에 살짝 염색한 브릿지도 눈에 들어왔다. 거기다가 교복 마이를 줄여 입었는지 날씬해 보이며 가 슴은 크게 부각되었다. 치마는 짧았는데, 허벅지까지 접어 올려 입은 모습이 누 가 말하는 조금 노는 애 같았다. 명훈이 보기에 스타일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조금 더 돋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마음에 드는 명훈이었다. “좋아. 받아주지. 그런데 넌 이름이 뭐지?” 명훈의 말이 끝나자 애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명훈이 자신이 기억을 잃고 있 다는 소문이 은연중 떠돌았던 모양이다. 그것을 명훈 스스로가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니 애들의 놀라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명훈이 입을 열었다. “뭐, 대충 중얼거리는 것들을 들어보니 내가 기억을 잃 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본데, 그렇다고 너희들이 나에게 했던 행동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조심해라.” 다시 숙연해 지는 분위기. 애들이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잠시 들떴던 분위기가 명훈의 한마디에 밑바닥까지 가라 앉은 것이다. 그때 명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하튼 너희가 준 과자는 잘 먹어주마. 고맙다.” 다시 분위기가 웅성이며 애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명훈은 그제야 자신에게 초콜릿 상자를 건넨 여자아이에 게 다시 되물었다. “그런데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미지라고 해.” “미지? 이미지?” “응….” 자신을 미지라고 밝힌 여자애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명훈은 그런 여자애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푸하하하! 그게 뭐냐? 미지의 소녀냐? 아니면 이미지 사진이냐? 푸하하하하!’ 그러나 이 사회에 잘 살아나가기 위해선 겉과 속은 항시 달라야 하는 법. 명훈은 정말이냐는 듯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쁜 이름이네? 고맙다. 잘 먹을게.” 명훈의 속마음도 모른 체 잔잔한 겉모습에 속아 넘어간 미지. 눈에서 하트모양이라도 그려지는 듯 했다. 미지는 조금 더 용기를 내었다.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말과 동시에 가볍게 내미는 손은 악수라도 하자는 것 같 았다. 명훈은 그런 미지의 손을 슬쩍 보곤, 자리에 앉으며 말 했다. “좋아. 잘 지내보자.” 미지는 자신이 힘들게 뻗은 손을 거들떠도 보지 않은 명 훈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동안 자신이 명훈을 무시해왔던 행동은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선 남아 있지 않은 듯 했다. 다만 악수를 무시당하자 애들이 보고 웃는 것같이 느껴 질 뿐이었다. 머쓱하게 손을 수거한 미지는 다시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명훈은 그런 미지에게 오른 손을 들어 알겠다고 수긍해 줬다. 그때 뒷문이 열리면서 현민이가 들어오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우! 이게 다 뭐다냐?” 명훈이의 앞자리에 수북이 쌓여있는 과자를 보며 놀란 목 소리였다. “현민이 왔냐?” “그래. 누님께서 오셨다. 어쩔래. 킥킥. 그런데 명훈아, 다 이거 네꺼냐?” 명훈이가 인사를 나누면서도 현민이의 시선은 과자에 쏠려 있었다. 명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현민이가 입을 열었 다. ~~~~~~~~~~~~~~~~~~~~~~ 뒤늦게 두 편 더 올려봅니다. 뎃글로 응원하여 힘주신 독자분들께 정말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힘이 펄펄나더군요 ;ㅁ; 그 힘으로 놀지 않고 이렇게 글로 보답드립니다^^ 그럼 선작 잊지 말아주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36 회] 날 짜 2004-11-25 조회 / 추천 15950 / 12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명훈, 천적만나다 “와우, 무슨 과자 장사라도 할 생각이냐? 왠 과자를 이 렇게 사왔어? 이 누님에게 헌납 좀 해라.” 명훈이가 수긍하기도 전부터 자신이 먹을 과자를 고르는 현민이었다. 명훈은 그런 현민이를 보고 피식 웃었다. 절반정도를 자신의 자리로 옮긴 현민. 자신의 작은 가죽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하더니 큰 비 닐봉지를 꺼내서는 과자를 싸그리 몰아 담았다. 명훈은 그런 현민이의 모습에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 았다. “푸하하하! 그 봉지는 뭐야? 하하.” 그러자 현민이가 멋쩍은 듯 입을 열었다. “새꺄 뭘 웃어. 누님 뻘쭘해지게….” 뻔뻔한 현민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본 명훈은 눈을 휘둥 그렇게 떴다. 설마 현민이 얼굴이 저토록 여성스럽게 변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한 명훈이었다. 그래서 떠뜸거렸다. “아, 아냐. 장난이야. 괜찮으니 많이 먹어. 그런데 그 봉 지는 정말 뭐야?” “응? 이거?” 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장 볼 때 필요하거든. 이거 없으면 봉지 값으로 50원씩 나가거든.” 약간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현민이었다. 그런 현민이 신선하게만 다가오는 명훈. 다시 되물어보았다. “그런데 장을 본다구?” “그럼 당연하지. 먹고 살려면 장을 봐야지. 안 그래?” “그, 그렇긴 하지….”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얼버무려지자 그제야 현민이의 얼 굴에 다시 장난끼 어린 미소가 그려졌다. “쳇, 여하튼 잘 먹어주마. 고맙다 짜샤.” 현민이는 그 과자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더니 행복한 미소 를 그렸다. 의외로 작은 것에 행복해 하는 현민이었다. 교실에선 애들이 숨을 죽이고 그들 둘의 노닥거림을 지 켜보았다. 현민이도 현민이지만, 저렇게 현민의 푸닥거리를 자연스 럽게 받아주면 명훈이가 신기하게 보였다. 과거 현민이가 명훈이를 챙겨준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 히 저렇게까지 대해줄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았기에 애들로 서는 상당히 배가 아팠다. 이미 명훈은 왕따가 아닌 이 학교의 짱 명훈이었기 때문 이다. 특히나 멀리서 명훈과 현민이를 바라보던 미지의 눈에선 질투의 불길이 타올랐다. 현민이가 무서워서 아무런 말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 이지 속은 바짝바짝 마르고 있었다. 그때 현민이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명훈에게 속삭이 듯이 입을 열었다. “야, 너 그거 알아?” “뭘?” 명훈은 뜬금없는 현민이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돼지새끼 있잖아.” “돼지?” “아휴, 답답하게도 말 못 들어 처먹네. 충원이 말이야. 돼지 충원.” 그제야 명훈은 피식 웃으며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런데 충원이가 왜?” 현민이가 조심스럽게 뒤를 보며 명훈이에게 대답했다. “저기 뒤에 봐. 충원이가 학교에 안나왔지?” 멀건히 현민이의 눈짓을 따라 충원이의 자리를 같이 봐 준 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데 그게 어쨌는데.” “이틀 전에 난 충원이가 학교를 땡땡이 친 줄만 알았는 데, 누구한테 떡이 되도록 맞아서 병원에 실려 간거래.” 순간 교실에서 귀를 기울이며 현민이의 이야기를 듣던 애들은 숨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을 만끽 할 수 있었다. 명훈이는 무슨 이야긴가 한참 긴장을 하다가 현민이의 말을 마저 듣고는 피식 웃었다. “어라어라? 웃어? 충원이가 맞았다는 데 웃어? 하긴 웃 을 만도 하겠다. 널 그렇게 괴롭혔던 녀석이니 말야. 푸하 하. 통쾌하다. 유쾌 상쾌 통쾌! 푸하하하! 내가 그 녀석 설 치고 다닐 때부터 언제 한번 그렇게 될 것 같았다구. 킥킥 킥.” 명훈이가 맞장구를 쳐주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러고 보니 현민이는 학교에 잘 안 나와서 학교 소식에 늦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현민이가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그게 내가 알아봤거든?” “뭘 알아봤는데?” “아, 글쎄 알고 보니 충원이를 팬 녀석이 우리 학교 애 라는 거야. 참나, 난 정말 놀랐다니까? 그런데 우리 학교 에서 충원이랑 붙을 만한 녀석이 있었나?” 현민은 정말 의문스러운 듯 고개를 꺄웃 거렸다. 그러나 정작 애들의 경악어린 표정은 보지 못했다. 만약 봤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으리라. 애들의 경악어린 얼굴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 다. ‘네 옆에 있잖아!’ …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직 현민이의 비밀스런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 다. “그리고 말야. 충원이 형인 충열이 오빠 말야. 우리학교 짱 말야.” “응.” 명훈이 싱글거리며 자신의 말에 호응을 잘해주자 기분이 좋아진 현민은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그 오빠도 누구한테 맞아서 병원에 실려 갔다더라?” “그래?” 명훈이 쌩뚱맞은 표정으로 대꾸를 하자 현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마저 이었다. ~~~~~~~~~~~~~~~~~~~~~~~~~~~~~~~~~~ 참고로 저는 쓰는 족족이 올리기 때문에 언제 다음편이 올라올진 저도 모른답니다^^;;(뻘쭘) 비축분 장난같은거 하지 않거든요. 그냥 즐겨주세요^^ 또 다음편 분량이 되면 바로 올리겠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제가 장담하나 하는데 뎃글이 많으면 많을 수록 선작이 늘면 늘수록 글이 올라오는 속도가 빨라 질겁니다. 실혼귀검의 세권 분량도 한달만에 썼거든요. 그럼 다음글에서 뵙도록해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37 회] 날 짜 2004-11-25 조회 / 추천 16209 / 138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명훈, 천적만나다 “그 오빠 유명하잖아. 조폭에서 스카웃했다 뭐했다 하 며. 타 학교에서도 그 오빠 때문에 우리 애들 못 건드리는 거거든.” 뜻밖의 소식에 명훈이 놀라 눈을 크게 떠서 현민이를 바 라보았다. 그러자 현민이가 팔짝뛰며 강조했다. 명훈이의 눈초리가 ‘설마’하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 다. “정말이야. 그런데 그 오빠를 때려눕힌 사람도 우리 학 교 학생이라는 소문이야. 놀랍지? 그치?” 그때 교실에 있던 애들의 표정이 다시 경악으로 변했다. 이번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사람도 네 옆에 있잖아!’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 하느라 한껏 흥이 난 현민이는 이번에도 그런 애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치? 놀랍지? 놀랍잖아~.” 지금까지 잘 수긍해주던 명훈이가 가만히 있자 자신에게 동조하길 원한 현민이 닦달하기 시작했다.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잘 못 들었던 탓이다. “응, 응. 그래 놀라워. 그런 일이 있었구나.” 현민이가 이번엔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듣진 못했지만, 수긍하지 않는다면 계속이고 들러붙을 것 같았기에 대충 끄덕여준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게 끝이 아니야. 그 오빠랑 같 이 어울리는 일진 오빠들까지 아홉명이 단번에 쓰러졌데. 킥킥.” “어, 그래?” 명훈이 씁쓸하게 웃었지만, 현민이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연신 킥킥 거릴 뿐이었다. “이번 건 뻥이 좀 심하지? 그래도 재밌잖아. 그 오빠들 이 어떤 오빠들인데 한명한테 동시에 아홉명이나 쓰러지겠 어. 킥킥킥킥.” 여전히 신이 난 현민. 명훈은 여전히 씁쓸히 웃었고, 차마 뭐라 말도 못하고 답답한 학급 애들은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네 옆에 있잖아! 좀 알고 오려면 정확히 좀 알고 왓!’ 역시나 관심은 잿밥에 있는 현민이었기에 여전히 그런 애들의 염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에게~. 별로 놀랍지 않은 표정이다. 췟!” 명훈에게 특별한 반응이 없자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삐 짐 모드로 들어섰다. “난 일부러 알려주려고 아침 일찍 왔건만….” 그쯤 되자 곤란해진 것은 명훈이었다. 당혹한 표정으로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요 이틀 동안 냉소적인 모습만 보여줬던 명훈의 모습과 사뭇 이질적으로까지 느껴질 정도였던 것이다. 뭐, 따지고 본다면 왕따에서 짱이 된 것도 상당이 이질 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 아냐. 정말 재밌었어.” “췟! 됐네요.” “아, 아니라니까? 정말로 놀라서 굳은 거였어.” 그쯤 되자 현민의 분위기가 다시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명훈은 나름대로 심각했다.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 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계속 이렇게 해야만 할 것만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 정말이지? 킥킥. 짜식 정말 다 컸네?” “응?” “이제는 누님 위로할 줄도 알고 말야. 아주 기분이 좋은 데? 짜샤 앞으로도 이렇게 웃으면서 지내란 말야. 알겠 어?” “으, 응….” 여전히 명훈은 이해 할 수 없었다. 답답할 정도로 말이다. 현민이만 옆에 있으면 자꾸 그녀의 페이스 휘말려 들어 가는 것이었다. 원치 않음에도 말이다. 기분도 나쁘지 않았기에 묘했다. 그렇다고 그녀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더욱 황당했 다. 명훈은 마치 그녀를 과거부터 알고 지낸 사람인 것 같다 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현민이 조용히 입을 열더니 혼잣말을 했다. ~~~~~~~~~~~~~~~~~~~~~~~~ 열심히 써내려 갔더니 졸리네요... 하암... 조금 자야겠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38 회] 날 짜 2004-11-25 조회 / 추천 16076 / 14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분노하다 6. 명훈, 분노하다 “여하튼 정말 그 녀석이 누굴까? 누가 그 오빠들을 이겼 을까? 정말 궁금하네~.” ‘네 옆에 있다니까?!’ 답답함에 눈알이 충혈 될 정도인 애들이었다. 그냥 소리라도 한번 빽 질러 주고 싶었다. 자신들은 오금이 저려 꼼짝도 못하고 있건만, 마치 그러 한 자신들을 놀리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 분통이 치밀어 올랐다. 옆에 있는 당사자인 명훈도 정신 사납긴 마찬가지였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아직도 갈피 잡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민의 인상이 어찌나 심각해 보이는지 이마에 주름이 다 잡힐 지경이었다. 연유야 알 수 없었지만 상당히 귀여워 보이는 얼굴이었 다. ‘훗!’ 결국 속으로 혼자 생각하게 놔두자고 마음먹었다. 나중에 알게 되도록 놔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수업시간에는 졸고 학교 마치기 전에 깨 어나는 그녀였다. “아함, 잘 잤다.” “킥. 입가에 침흘렀다. 여기.” 명훈은 헝클어진 머리를 한 체 눈을 부비적거리며 일어 난 현민에게 휴지를 건네며 말했다. 현민은 주섬주섬 휴지를 받고 침을 한번 닦아 주곤 다시 털푸덕 책상위에 자빠지며 명훈에게 물었다. “몇 시냐?” “종례 시간 남았어.” “그래? 하암~.” 현민이는 첫날처럼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명훈은 그런 현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또 그냥 가려구?” “어이구? 왜요? 섭해요?” 마치 '우리 애기가 그래쪄?!‘라고 아이들 달랠 때 사용하 는 말투로 명훈이의 머리를 부비적거리는 현민이다. “아니, 그래도 종례시간인데 인사만 하지?” “됐어요~. 일 없네요.” 장난기가 잔뜩 베어있는 말투였다. “여하튼 신경써줘서 고맙다. 쨔샤. 킥킥.” 전혀 여성같이 못한 모습에서 간혹 드러나는 여성스런 모습. 명훈은 그게 현민이의 매력이라 생각했다. “그럼 난 이만 간다. 오늘도 담탱이한테 부탁해~.” “어, 그래.” 바람같이 사라지는 현민의 모습에 명훈이가 피식거렸다. 과자를 한 보따리나 챙겨서 뒤뚱뒤뚱 뛰고, 선생이 오는 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장 난 아니게 웃겼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미지가 득달같이 달려와서 현민이의 자리 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그리고는 명훈에게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명훈아, 너 집에 가면 뭐해?” 명훈이는 뜬금없이 그런 건 왜 묻냐는 식으로 바라봤다. 그런 눈빛을 이해한 미지. 꾸물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아니, 별건 아니구 그냥….” “그냥 뭐?” “아, 아니…. 아니야…. 현민이 외에는 여전히 거침없는 말투의 명훈. 미지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기대가 산산히 부서지는 듯하자 실망과 섭섭함이 섞인 침울한 표 정으로 애꿎은 바닥만 내려보았다. 명훈은 그런 미지를 보며 ‘내가 여자애한테 너무 심하게 대했나?’라고 생각했다. 번개 불에 콩 구워 먹을 시간만큼 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 충분했다. 명훈이가 목소리를 적당히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괜찮아. 장난이었어. 편하게 말해도 좋아.” 개뿔이나 장난일 리가 없었다. 단순히 미지가 무슨 말을 하다 말았는지 자신이 궁금해 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미지는 감격의 눈초리로 명훈을 바 라보았다. 어딜가나 싸움 좀하면 좋다고 따라가는 애가 있는데, 미 지가 바로 그런 꼴 같지도 않은 애들 중 하나인 것 같았 다. 때문에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환하게 웃어주고 있는 명훈은 이미 괴물이었다. 미지가 우물쭈물 거리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바로 그때 명훈은 미지가 너무 우물쭈물 거리기에 언제 말할지 몰랐다. 그래서 애들이 준 과자 무리 중 음료수를 찾아 꺼내 마 시던 중이었다. “저기 있잖아아…. 괜찮으면 너희 집에 놀러가도 될까?” 푸우웃! 갑작스런 말에 사래가 걸린 명훈. 자신도 모르게 입에 들어 있던 음료수를 그대로 품었다. 물론 앞에 앉아 있는 미지가 다 젖었음은 당연한 일이었 다. “켁켁켁!” 열심히 기침을 하면 명훈을 보며 미지는 조신스러운 모 습으로 가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태연히 자신의 얼 굴을 닦고 명훈에게 건네줬다. 바닥을 보며 기침하던 명훈은 그것을 받은 상태에서 가 까스로 기침을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급히 얼굴을 훔친 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행용 티슈를 꺼내 미지의 옷에 묻은 음료수를 닦아 주었다. 생각도 못한 일이었기에 명훈은 당황했다. 미지는 의외로 화도 내지 않고 그냥 웃을 뿐이었다. “괜찮아?” 명훈의 한마디에 환히 웃는 미지였다. “응, 괜찮아.” “아휴, 미안해. 그냥 나는 당황해서….” 그러자 미지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냐, 그럴 수도 있지 뭐, 피하지 못한 내가 잘못 한 걸 수도 있잖아. 그게 아니라고 해도 네가 당황할만한 말 을 한 것이 잘못일 수도 있고…,” 명훈은 그런 미지를 보며 생각했다. ‘의외로 나쁘지 않은 녀석일지도….’ “그런데 우리집은 왜 가려구?”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는 명훈은 아까처럼 싸늘하게 대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드럽게 대우해줬는데, 그것을 눈치 첸 미지는 기분이 몹시 좋았다. “왜 가긴. 당연히 놀러가는 거지.” 약간 목소리에 자신감이 돌아온 미지. “엉? 놀러?” “응. 놀러.” 명훈의 당혹스런 모습이 미지에겐 즐거움처럼 느껴졌다. “왜 그렇게 당혹스러워해?” “아, 아니. 당혹스러운 건 아닌데….” “그럼. 왜?” 명훈은 뻘쭘하게 또박또박 대꾸했다. 명훈은 자신이 한번 상대방을 인정하면 왠지 조심스러워 지는 성격이었다. ~~~~~~~~~~~~~~~~~~~~~~~~~~~~ 그럼 잠시후에 뵙겠습니다^^ 한편 또 쓰면 다시 찾아 뵐게요^^ 선작 필수!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39 회] 날 짜 2004-11-25 조회 / 추천 14947 / 14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분노하다 “흠…. 우리 집에 사람을 데리고 가본 다고 생각해 본적 이 없었거든.” “푸훗. 그게 뭐 대수라구 그래. 놀러가도 돼?” 미지는 자신이 선(先)을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강하게 밀 고 나갔다. 왠지 명훈이는 이런 모습에 약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예상을 적중했다. 명훈이가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래, 까짓거 나쁠거야 없겠지.” “맞아. 우리가 해를 끼칠 것도 아니구 말야.” 부모님이 친구라는 것을 데려가면 좋아할 것 같다는 생 각에 한참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도중 뭔가 미지의 어감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의문을 바로 찔러보았다. “우리?” 그러자 미지는 뭘 새삼스럽게 물어보냐며 대꾸했다. “응 우리.” 미지가 시선을 돌려 누군가를 바라보자 명훈도 함께 시 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미지와 같은 스타일의 여자애들이 셋이나 더 있었는데, 아직 굳어 있는 표정으로 명훈을 향해 가볍게 손을 들었다가 놓았다. 그녀들에겐 아직 명훈이 어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음에도 말이다. 특히나 어제 그 무지막지 하다못해 잔혹하기까지 한 손 속을 보이 않았던가. 그래도 왠지 강한 모습에 끌리는 그녀들이었다. 명훈은 잠시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녀들이 쾌재를 불렀다. “어머니 학교 다녀왔습니다.” 명훈의 목소리에 종종걸음으로 현관까지 마중 나오신 어 머니. 그때 명훈은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보고 씁 쓸하게 웃었다. “뒤에 아가씨들은 누구니?” “어머니 안녕하세요~.” 합창이라도 하듯 허리를 꾸벅 숙이고 인사하는 그녀들이 었다. 명훈은 그런 그녀들을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학교 친구들이예요. 오늘 우리 집에 놀러오고 싶다고 해서 데려 왔어요.” “정말이니?” 어머니는 화색이 만연해진 얼굴로 명훈과 여자애들을 바 라보았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방에 들어가서 놀고 있거라. 곧 다과 좀 다듬어서 들여보내마.” 그때 미지가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아녀요. 어머니. 곧 갈거예요. 잠시 들려 본거예요.” 어머니는 미지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손님의 예가 아니란다. 조금만 기다리려무나. 곧 들여다주마.” 어머니는 그 말을 마치고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그러자 미지랑 윤희라는 여자애가 어머니 뒤로 쪼르르 달려가서 거들겠다고 나섰다. 남은 둘도 같이 들어갔었지만, 복잡하다고 쫓겨나서 내 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나를 포함해 여자 둘, 이렇게 셋이 앉아서 뻘쭘한 표정 으로 두리번거리며 앉아 있었다. 한 참 후, 어머니와 미지, 윤희가 명훈이 방으로 들어왔 다. “어머니 제가 들게요.” 머슥하게 앉아 있던 명훈이가 일어나 다과 접시를 받고 바닥에 내려 놓았다. 뒤에는 음료수를 들고 온 미지가 명훈이 방을 한번 훑어 보며 감탄사를 뱉었다. “와~. 방 좋구나.” “후후.” 어머니는 그런 미지와 여자애들을 한번씩 돌아보고는 흐 뭇한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그런데 이 참한 아가씨들은 누구니? 우리 명훈이랑 어 떤 사인지 물어봐도 될까?” 명훈이는 그런 어머니의 말씀에 쑥쓰러운 나머지 나직한 목소리로 어머닐 불렀다. “어머니. 창피하게 왜 그러세요?” 그러자 짐짓 화난 다는 듯이 입을 여셨다. “친구라곤 하나도 없는 네가 이렇게 곱상한 아가씨들을 데려 온 게 하두 신통해서 그런다.” 명훈은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바닥으로 고 개를 숙였다. ~~~~~~~~~~~~~~~~~~~~~~~~~~~~ 쌀이 떨어져서 쌀도 사고 장 좀 보느라고 글을 못썼습니다. 금방 다음화도 올리겠습니다^^ 게시판에좀 추천올려주세요 ㅎㅎ;;;(부끄부끄) 선작 필수 아시죠?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40 회] 날 짜 2004-11-25 조회 / 추천 14920 / 15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분노하다 명훈은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바닥으로 고 개를 숙였다. 하긴 과거 명훈의 기억이 부분적이나마 남아 있는 검황 이었다. 완전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기억은 자연스럽게 검황에게 소화되지 않았 던가? 검황이 곰곰이 생각해 보자 명훈은 유치원 때 빼고는 한 번도 친구라는 녀석들을 집에 끌고 들어온 역사가 없었던 것이다. 검황은 과거의 일이 자신의 잘못이라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마치 자신의 일 같게만 느껴졌다. “죄송해요.” “그게 뭘 죄송한 일이라구….” 한참 명훈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화들짝 놀 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차, 그러고 보니 나 때문에 어렵겠구나. 나이가 들어 서 주책이지. 그럼 재미나게 놀다 가거라.” “네. 감사합니다. 어머니.” 여자애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셨다. 그때 미지가 명훈에게 입을 열었다. “와, 너희 어머니 되게 젊으시다.” “됐어.” “정말이야. 조금 전에 부엌에서 몇 마디 나눠 봤는데, 생각도 되게 젊으시구….” 명훈이 대꾸가 없자 다시 화재를 돌려서 서로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여자애들의 수다를 듣다가 명훈이 입을 열었다. “이제 많이 늦었다. 너희들 집에 안가?” “조금만 더 놀다 가면 안돼?” “시끄러!” “아잉~.” 명훈의 한마디에 섭섭하다는 듯이 여자애들이 칭얼거렸 다.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이제는 노골적으로 명훈이 에게 말도 걸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화제를 돌려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미지 입을 시작으로 어쩌다보니 현민이의 이야기가 흘러나 왔다. 예전부터 현민에 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미 지였기에 험담부터 시작 되었다. 명훈은 과거부터 여자가 여자 험담하는 것을 많이 들어 왔기 때문에 그 다시 신경쓰지 않았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피 본 게 한두 번이 아닌 탓이었다. 웬수처럼 싸우는 모습에 상대방 비난을 듣던 중 슬쩍 한 마디 거들면 어느 세 자신만 나쁜 놈이 되어있었던 것이 다. 그 둘은 어느 순간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가 되어있었고 말이다. 그런 일을 몇 번 겪다보니 여자들이 하는 험담은 귀담아 듣지 않게 되었다. 알아서 지들이 잘 풀 거라고 생각하는 명훈이었다. 현민의 험담이 끝났는지 한참 말을 늘이다가 갑자기 생 각이 났는지 윤희라는 애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 나왔 다. “그런데 현민이 그 계집에 고아라며?” “고아?” 윤희의 말에 여자애들이 놀란 목소리로 되묻고 명훈의 귀는 쫑긋 섰다. 명훈을 눈치 보듯 슬쩍 바라보던 윤희. 명훈이 눈길로 어서 말하라고 재촉하자 윤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응, 고아라고 들었어. 소녀가장도 고아 맞지?” “당연하지 그것도 몰라?” “여하튼 저번에 벌 청소로 교무실 청소를 했는데, 현민 이 계집애가 선생하고 상담하고 있더라. 집이 찢어지게 가 난하다고 들었어.” “그런데 학교는 어떻게 다니는 거래?” “그래도 그 계집애 날라리치곤 공부 잘하는 편이잖아. 우리 반에서도 10등 안에 들고….” “그게 뭐.” “우리 반 담탱이가 현민이 그 지지배 사정을 알고 등록 금을 내주는 것같더라구.” 그 이후 여자애들은 ‘정말? 진짜?’를 남발하며 떠들기 시작했지만, 더 이상 명훈의 귀에 여자애들의 이야기가 들 어오지 않았다. 처음에 명훈이가 현민이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서 험 담을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세 자신들끼리 이야기에 빠져 버린지 오래 였다. 명훈이는 그런 상황에서 조용히 상념에 빠졌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 애가 그토록 친근하고 친숙하게 느껴졌던 거구나? 그랬던 거구나….’ 명훈은 어느 세 과거를 회상했다. 거지 소굴에서 탈출하여 혼자 이곳저곳에서 빌어먹던 모 습. 어떤 하오배 패거리에 잡혀서 동냥과 소매치기를 하던 모습. 우연히 패싸움에 끼어들었다가 싸움 실력을 인정받아 결 국 그 패거리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했던 모습. 그 와중에 한 고아소녀를 키우게 되었던 모습.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앓아 죽었지만, 마지막으 로 죽기전 고통을 참아가며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과 동시 에 미소를 보여주곤 숨을 거둔 그 어린 아이의 모습. 자신도 고아였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 힘들었던 과거의 모습이 말이다. ‘그랬구나. 그 아이의 그토록 밝은 모습이 시리게 가슴 에 와 닿았던 이유가 그것이었구나.’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감자기 침울해진 명훈. 미지가 그런 명훈의 모습을 눈치 차리고 이야기를 중단 한 상태로 명훈을 바라봤다. 애들 역시 뭔가를 느꼈는지 같이 입을 다물고 명훈을 주 시했다. “명훈아. …괜찮아?” 조심스러운 미지의 말투에 명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애들은 깜짝 놀랐지만, 명훈은 그 덕에 과거의 상념을 어느 정도 희석 시킬 순 있었다. ~~~~~~~~~~~~~~~~~~~~~~~~~~~~~` 이번에는 조금 더 올려봅니다. 그럼 다음 회로 곧 찾아 뵙겠습니다^^ 추천과 선작 잊지 말아주세요^^ 헤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41 회] 날 짜 2004-11-25 조회 / 추천 14888 / 138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분노하다 “응 괜찮아.” 슬쩍 눈치를 보던 미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늦은 거 같아서….” “아, 벌써 가려구?” 잠시 정신을 다른 곳에 팔았기 때문인지, 조금 전 자신 이 가라고 했던 것은 기억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여하튼 명훈의 그 한마디에 주춤거린 여자애들이 자리에 서 일어났다. “응, 많이 늦었잖아. 그런데 다음에 또 놀러와두 되지?” 윤희의 말에 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음에 또 놀러와라. 어머니께서 저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다면 예전에도 데려오는 건데….” 여자애들이 명훈이의 애늙은이 같은 말투에 피식 웃었 다. 자신들은 왠지 많은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다른 애들이 알지 못하는 명훈이의 다른 면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여자애들은 뭐가 신나는지 지들끼리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리곤 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둘러보더니 핸드폰을 꺼 내 지들끼리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한참 그런 여자애들의 모습을 보던 명훈. 속으로 애들은 애들이구나 하며 생각했다. 지금은 자신도 애라는 것을 망각한 것처럼 말이다. 애들이 현관에서 웅성이자 어머니가 곰돌이 부직포가 붙 어 있는 귀여운 앞치마를 입으시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그리고는 놀라시는 목소리로 애들을 부르셨다. “얘들아 벌써 가니?” “네, 어머니. 정말 잘 놀았습니다.” 여자애들이 꾸벅 인사를 하자 어머니는 섭섭한 표정으로 명훈이를 슬쩍 바라보셨다. “그래도 저녁은 먹고 가야 하지 않겠지? 지금 식사준비 도 얼추 끝났는데 말이다.” “아녀요, 어머니.” “아니다. 그래도 애들은 많이 먹어야 한단다. 명훈이 봐 라 밥도 잘 안 먹어서 빼빼 마른 거…. 그러지들 말고 저 녁 먹고들 가요.” 여자애들이 아무 말 없이 명훈이를 바라본다. 어머니도 선택권이 명훈이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덩달아 바라봤다. 약간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허둥대던 명훈.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에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했다. “그래 저녁 먹고 가라.” 여자애들은 허둥지둥 신었던 신발을 벗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그런 여자애들을 보며 명훈이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한지 등을 툭툭 두드려 주셨다. 명훈은 멋쩍게 웃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도 식사하기 전에 오셔서 애들과 한번씩 인사도 하고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결국 애들이 나갈 준비를 하자 명훈이 현관에서 잘 가라 고 손을 흔들어 줬다. 짱들을 때려눕힌 후 무섭게만 생각했던 명훈의 평범한 모습을 봉 여자애들. 여자애들은 자신들이 명훈이와 다른 애들보다 친해졌음 을 굉장히 뿌듯하게 생각했다. 그때 여자애들이 나가려는 찰나 어머니께서 명훈이의 등 을 탁 치셨다. 쩌억! “크앗!” 명훈의 비명에 깜짝 놀란 여자애들이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명훈이 고통에 못 이겨 몸부림치고 있었고, 어머 니는 차가운 눈으로 그런 명훈이를 못미덥다는 듯이 바라 보셨다. “왜 때리세욧!” 명훈이 버럭 비명 섞인 소리를 내지르자 어머니는 더 큰 목소리로 명훈을 위협했다. “넌 어떻게 되먹은 사내자식이냐?!” 어머니가 화내는 모습을 처음 보는 명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에게 구원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아버지는 조용히 헛기침을 하며 신문을 들고 안방에 들어 가셨다. 괜히 중간에 끼어들다가 내일 아침 굶고 회사에 출근하 기 싫으신 아버지셨다. 때문에 어머니가 화났을 때는 아무도 못 말렸다. ‘배신자….’ 여하튼 상황이 어찌 됐든 믿었던 아버지에게 발등 찍힌 명훈은 처량 맞은 눈초리로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여자애들은 그런 명훈의 모습을 흥미있는 눈빛으로 바라 보았다. 이렇게 재미난 장면을 놓칠 수 없다면 여자애들은 은근 슬쩍 핸드폰으로 녹화까지 시도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명훈을 나무랬다. “이 녀석! 이렇게 늦은 저녁에 어떻게 여자 아이들만 달 랑 내보낼 수 있어?! 그렇게 보내고 방에서 잠이 잘 오겠 어!” “아니, 어머니. 저애들이 더 무서운 애들이예요. 누가 쟤 들을 건드려요?” ‘뭐? 누가 무섭다고?!’ 순간 발끈하는 여자애들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명훈이 어머니를 응원했다. “이 녀석이 그래두! 어서 빨리 안나가?” “아이참 어머니두!” “밥 먹기 싫어?!” 명훈은 그 한마디에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여자애들은 그런 명훈이를 보며 통쾌한지 입가에서 웃음 을 지우지 못했다. 킥킥거리며 저장한 핸드폰을 품에 넣는 여자애들을 명훈 은 못 마땅한 듯 쳐다봤다. “내가 당한게 좋냐?” “응, 좋아.” “킥킥.”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어쩌다가 데리고 와서….” 처음으로 여자애들을 데려 온 자신을 책망했다. 이렇게 피곤해 질줄 몰랐던 탓이다. 하지만, 여자애들은 명훈의 심드렁한 말투에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애가 삐져서 칭얼거리는 것 같이 보였던 것이었다. 여자애들이 킥킥거리는 모습에 화도 내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는 명훈. 애꿎은 엘리베이터의 문 닫는 버튼만 꾹꾹 눌러댔다. ~~~~~~~~~~~~~~~~~~~~~~~ 오늘은 이만 올릴게요^^ 조금 힘드네요. 쉬지않고 쓰기만 했더니.. 이제 웃찾사도 봐야하고... ㅎㅎㅎㅎ;;; 신나게 웃은 다음 머리좀 정리하고 다음 글을 끄적여야 겠네요^^ 오늘 독자분들의 뎃글을 보면서 정말 많이 힘을 얻었구요. 글을 써내려가면서 재미도 있었습니다. 신이나서 써내려 갔거든요^^ 이 속도로만 나가면 이번달 안에 무난히 2권 분량까지 진행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ㅎㅎ;;;; 모두모두 감사드려요~ ㅎㅎㅎㅎ 다음 화는 내일 새벽 4시에 올라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42 회] 날 짜 2004-11-26 조회 / 추천 14611 / 85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분노하다 “휴, 조심해서 들어가라.” 다행히도 애들 모두 거의 한 동내에서 살고 있었다. 명훈이 알고 보니 중학교 때부터 어울리던 동창들이란 다. ‘하긴 고등학교를 멀리 다녀 봤자지….’ 오랜만에 밤바람 맞으며 혼자 걸어보았다. 궁상떠는 것 같기도 했지만, 왠지 홀가분한 기분의 명 훈. 시간은 그렇게 많이 흐르지도 않았지만, 주변에 어둠이 무겁게 깔려 있었다. 가을날씨다보니 해가 짧았던 것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빽빽이 들어 찬 아파트들만 보일 뿐이다. 그러나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신선하기까지 했다. 주변의 오색찬란한 네온싸인들. 아파트 단지마다 환하게 켜져 있는 불빛들. 어두운 곳 구석구석 아쉬울 정도의 거리마다 박혀있는 신호등까지. 저녁이 대낮보다 환하다는 말. 달이 밝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보니 정말 저녁이 낮보다 밝게 느껴 졌다. 과거 전생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자신도 모르게 밤길을 걷는 명훈. 한번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었다. 그때 한 포장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지만, 검은 옷을 입은 육중한 체 구를 자랑하는 사내 셋이 그곳으로 들어가자 눈길이 끌린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저런 사내들이 검은 승용차를 타고 와서 바(bar)같은 곳 이 아니라 포장마차에 들어갔을까? 하는 의문이 잠시 들긴 했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여전히, 복잡한 것은 싫어하는 명훈이었다. 자신과 상관없는 것에 신경써봤자 자신만 피곤해 지기 때문이다. 약간 말다툼 하는 것이 들렸지만 신경껐다. 술장사를 하면 시간이 멀다하고 비일비재 일어나는 일들 이다. 그것은 과거도 마찬가지였다. “으, 써늘하네.” 어머니의 보챔 때문에 가벼운 반팔상태로 나온 명훈이 다. 잠시 닭살이 오른 팔뚝을 비비며 성큼성큼 집으로 돌아 갔다. 다음날은 조금 학교에 늦게 갔다. 운기를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깊게 빠져서 시간을 맞추 지 못했던 것이다. 명훈은 요즘 들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내력을 즐겼다. 과거의 기로 충만했던 육체도 좋았었다. 종종 그립기도 했다. 인간으로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육체를 가졌던 자신이 이렇게 빈약한 육체에 있는데 그립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체념이 빨랐기에 망정이지 폐인 되 기 십상이었다. 허나, 이처럼 조금씩 생기는 변화도 나쁘진 않음을 깨달 았다. 변화를 느끼는 즐거움이 결코 적지 않았던 탓이다. 그리고 애들은 명훈이 그렇게 나쁜 녀석만은 아님을 알 게 되었다. 그 후론 조금씩 자신들끼리 소곤거리기도 하고, 선생에 게 걸리지 않도록 책상 밑에 걸쳐놓고 만화책을 보기도 했 다. 그래도 애들은 틈틈이 명훈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명훈은 애들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부터 지들이 쫄아서 한 행동이었지 결코 명훈 자신 이 시켰던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민이가 왜 학교에 안나오지?’ 벌써 2교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어제 애들에게 들은바 학교를 땡땡이치더라도 빠진 적이 없다는 그녀였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늦는 현민. 명훈은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자신의 앞에서 수다 떠는 미지와 여자애 들. 애들과 인사는 해줬지만, 뭐라고 하는지 명훈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지들끼리 놀다가 수업시간 되면 가곤 했던 것이다. 왠지 어제 자신이 뭔가를 놓친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들었 다. 그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3교시 수업이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서였다. 드르륵. 뒷문이 조용히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현민이가 확실했다.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불길한 예감이 이제야 날아간 듯했기 때문이다. 그때 첫날과 마찬가지로 선생에게 걸린 현민. 종종걸음으로 명훈 옆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 덜썩 앉았 다. “이제 왔어?” 명훈이 반기자 현민이는 책상에 팔을 포개고 엎드린 채,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응. 오늘은 많이 힘들다. 잘테니까 깨우지 마라….” “그래.” 명훈은 그제야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43 회] 날 짜 2004-11-26 조회 / 추천 14523 / 87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분노하다 명훈은 그제야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새로운 학문. 이미 전생에 나이 먹을 대로 먹었던 검황. 할 일이 없어서 소일거리로 일기 시작한 책에 빠졌다. 어느 세 돌아보니 현존하는 책이란 책을 거의 대부분 섭 렵 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검의 일가를 이루면서도 학문의 즐거움을 알 게 된 흔치 않은 사람 중에 하나가 검황 담소광이었다. 특히 병법에 관련된 것은 모두 흡수했다 자부하는 검황 인 것이다. 때문에, 현세에 와서 많은 학문이 존재한 것을 보고 담 소광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무인이기에 더욱 뛰어난 무공을 보고 싶긴 했지만, 이미 학문의 즐거움도 알고 있는 검황이었기에 수업시간에 졸지 않고 열중 할 수 있었다. 명훈의 흡수한 기억. 톡톡히 도움이 됐다. 이미 죽은 명훈 역시 공부를 못하는 편이 아니었다. 중상위권 정도로 그저 그런 정도는 하는 편이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검황의 지식은 극 속도로 발전하기 시 작했다. 혁명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지났다. 명훈은 현민이가 와서 안도를 하느라 잠시 눈치체진 못 했었지만, 어느 정도 안정된 4교시 정도가 되자 뭔가 이상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민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 앓고 있던 것이다. 명훈은 화들짝 놀랐다. 자신의 진기를 손끝으로 몰아 현민의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미 정도 이상의 의학지식도 지니고 있는 그였다. 현민의 상황이 어떤지를 금세 알 수 있었다. 잠시 자신이 흘린 진기의 흐름을 확인하던 검황.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며 현민의 어깨를 잡고 상체 를 일으켜 세웠다. 식은땀으로 쪄들은 현민의 모습. 이곳저곳 누구에게 맞았는지 타박상과 상처가 장난이 아 니었다. 지금 이 식은땀과 열은 맞아서 생긴 상태라 할 수 있었 다. “뭐, 뭐야!?” 명훈의 분노에 찬 고함. 저마다 할 일을 하던 애들이 화들짝 놀랐다. 명훈이 저토록 분노하던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어서 구급차를 불러! 어서!” “며, 명후니…. 짜식…. 이 누…님은 괘, 괜차나… 짜 샤….”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떨궜다. 기절한 것이다. 죽은 것도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명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현민이 힘겹게 웃는 모습. 순간 누군가와 겹쳤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이 하오문에서 하오배 생활을 할 때 동생으로 받아드린 꼬마계집. 그 천사같이 한없이 여리고 귀여운 아이가 죽을 때의 모 습과 겹쳐졌던 것이다. “으아아아악! 어떤 새끼야! 다 죽여 버릴거야!” 분노의 일갈. 슬픔이 가득 배어 있는 목소리였다. 몇몇 감성이 풍부한 여자애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이미 명훈의 외침에 미지가 자신의 전화로 119에 전화 를 걸어 놓은 상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 구급차. 명훈이 직접 기절한 현민을 구급차에 옮겨 실었다. 명훈도 그 구급차를 타고 사라졌다. 교실이 술렁이고, 학교전체가 술렁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서로들 의견이 분분했 다. 하지만 아무도 답을 낼 수가 없었다. 상황이 어떻게 된지도 아무도 알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 이다. 다만 하나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알게 된 것은 현민이 빼고는 현민이와 어울리던 여자애들 모두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44 회] 날 짜 2004-11-26 조회 / 추천 14565 / 104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분노하다 명훈은 보호자로 자신의 어머니를 불렀다. 현민이가 고아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열불이 터지긴 했지만, 보호자가 없다면 입원 할 수 없 다는 병원 측의 말에 현민은 발광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가서 가로수 두세 개를 뿌리 체 뽑아 놓은 후에야 진 정한 현민. 다급히 병원으로 달려와 준 명훈의 어머니는 현민이의 보호자를 자청해줬다. 그제야 현민이는 가까스로 병원에 입원할 수 있게 됐다. 저녁이 지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현민.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명훈이의 얼굴을 보자 당혹감과 안도, 고마움이 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순간 현민의 눈에서 터진 눈물. 정말 서럽게 우는 현민이었다. 서글픔과 외로움이 가득 들어있는 눈물이었다. 가슴이 아려 올 정도로 지끈거렸다. 그때 어머니는 명훈이를 밖으로 밀고 나가있으라 명령했 다. 명훈이가 나가지 않겠다고 뻐겼기 때문이다. 어쩔 수없이 강압적으로 병실에서 쫓겨난 명훈. 안절부절 못하고 병실 앞에서 서성거릴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고 싶었다. 왜 착한 현민이가 저렇게 됐는지 알고 싶었다. 그제야 자신이 느꼈던 불안감의 정체를 눈치 차릴 수 있 게 됐다. 아마도 자신은 무의식중에 미리 이 상황을 예견하고 있 던 것이리라. 약 한 시간 가까이가 지났나? 그때 병실 문이 조용히 열리며 어머니가 손짓하셨다. “명훈아 이제는 들어와도 괜찮단다.” 어머니의 말에 명훈은 다급하게 들어갔다. 병실 안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허울 없는 미소로 환하게 웃고 있는 현민이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달랐다. 그녀가 교복이 아닌 병원 복을 입고 있는 것. 그리고 말쑥한 얼굴이 아닌 울어서 부어있는 두 눈. 명훈은 그 점이 화가 났다. 하지만, 분노를 드러낼 순 없었다. 현민의 앞이었고, 어머니의 앞이었기 때문이다. 속으로 분노를 삭인 명훈. 그런 명훈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일까? 현민이는 고맙다는 속뜻이 듬뿍 담긴 눈길로 명훈이를 바라보았다. 명훈이는 그 속에 담긴 슬픔을 읽을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을 감추고 감춰도 애는 애인 것이다. 아무리 능구렁이 같은 아이라 해도 애는 어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명훈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196년 동안의 삶이 배어 있는 눈길이다. 현민으로서는 용을 써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탕한 목소리로 명훈의 등의 탁 쳤다. “짜샤. 정말 고맙다. 이 은혜는 잊지 않으마.” “이게 무슨 은혜냐. 당연한 일이지.” “풋. 지금쯤이라면 다 알겠지만, 휴…. 난 고아다. 거기 다가 남동생이랑 여동생마저 딸려있는 소녀가장이야. 그런 내가 이런 병원에 누워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불가능해. 보호자가 없기 때문이지. 아파도 돌봐줄 사람 없어서 방안 에서 끙끙 앓아야 하지. 그것도 동생들이 눈치 첼까 봐 겁 이 나서 드러내놓고 앓지도 못해. 애들이 알면 슬퍼할 까 봐. 그럼 내가 더욱 슬퍼질까 봐. 그래서 울지도 못해.” 순간 웃음 짓고 있던 현민의 얼굴이 조금씩 흔들리더니 결국 눈물을 떨궜다. 명훈은 다 이해했다. 그런 현민의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었다. 자신도 과거 그녀와 같은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 다음으로.......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45 회] 날 짜 2004-11-26 조회 / 추천 14914 / 146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분노하다 뒤에서 조그맣게 퍼지는 울음소리를 명훈은 들을 수 있 었다. 슬며시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는 티슈에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자신이 밖에 있던 한 시간 동안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모 두 해준 모습이었다. 명훈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이해해. 그 마음 이해해….” “훗. 아냐 그 고마운 마음에게 미안하지만, 이해 할 수 없을 거야. 그것은 직접 겪지 않고서는 이해 할 수 없는 거거든.” ‘아냐. 나는 이해해 줄 수 있어.’ 명훈은 속의 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현민의 마음 역시 이해 할 수 있었기에 차 마 입을 열어 이야기하진 못했다. 저 상황에서는 온 세상의 슬픔이 모두 자신의 것만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 그런 세상 속에 누군가가 끼어들면 그 이질감은 정말로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명훈 자신도 그랬기에 짐작이 가능했다. 이럴 때는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가장 좋은 위안 이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비참함을 남에게 이야기 하고 싶지만, 그 결과가 두려워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대부분의 고아들. 그래서 항상 자신을 마음을 잠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이 복받쳐 있을 때가 아니곤 이야기 할 이유 가 없는 그들인 것이다. 그때 현민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나를 이해해 준건 나와 어울리는 친구들뿐이었 어.” “그래?” 명훈의 되물음에 현민이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물론 그 애들은 부모님들이 모두 계셔. 하지만, 모두…. 슬쩍 명훈의 어머니를 바라보던 현민. 잠시 심호흡을 했다. 명훈의 어머니가 옆에 계시기 때문에 말하기 약간 힘든 것 같았다. “…부, 부모라는 이름을 가지긴 했지만, 부모라 불릴 가 치가 없는 인간들이거든. 그런 애들이었기에 나와 잘 어울 릴 수 있었던 거야.” 명훈과 명훈 어머니가 은연중 고개를 끄덕여줬다. 물론 수긍하기 때문에 끄덕인 것은 아니다. 이미 전생에 자식을 가져봤던 명훈이었고, 현재 자식을 가지고 있는 명훈이 어머니였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든 부모로서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 둘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자신도 잘하고 싶은데, 자식들에게 잘 대해주고 싶은데,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도 않고 사회에서 무시당하기에 집에서도 무시당하는 것 같고…. 자신의 마음을 결국 외곡 되게 표현한 것일 뿐이기 때문 이었다. 물론 인간쓰레기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극소수일 뿐이다. 한참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현민. 그때 명훈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충열이 오빠의 도움으로 힘들게나마 포장마차를 차리 게 됐어.” “포.장.마.차?” “응. 포장마차. 충열이 오빠랑 다른 오빠들이 많이 도와 줬거든. 나한테 무슨 포장마차 차릴 돈이 있겠냐? 오빠들 이 이쁘게 봐줘서 가능했던 일이야.” “…….” “거기다가 매일 내 친구들이 포장마차 일을 도와 줬거 든. 그러다 보니 잠이 모 잘라서 학교에서 잔거구….” 이야길 듣다보니 갑자기 기분이 묘해졌다. 충열이 녀석에게 왠지 모르게 미안한 감정이 생겼던 것 이다. 바로 그 순간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마치 뭔가에 심하게 부딪힌 것처럼 큰 충격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의아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뭔가가 시원하게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 의문을 풀기위해 명훈이가 물었다. “너 지금 포장마차라고 했어?” “응, 포장마차.” “너 그 포장마차가 어디에 있는 거야?” 다급하게 명훈이가 물었다. 그러자 명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는 현민. 말을 안해줄까 하다가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에 힘겹게 입술을 댔다. “A동에 있는 사거리 우측 보면 큰 도로변이 있는데, 거 기 무지개아파트라는 곳이 있거든?” 명훈의 가슴이 떨려왔다. ‘설마, 설마, 설마, 설마….’ “그 아파트 들어가는 첫 번째 입구 근처에 있어. 그런데 그건 왜?” “…….” 명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민이가 지금 말하는 그 장소는 바로 자신이 미지 애들 을 바래다주고 올 때 지나쳤던 바로 그 포장마차였던 것이 다. ~~~~~~~~~~~~~~~~~~~~~~~~~ 이제 대충 어떻게 된 이야긴지 아시겠죠? ^^;;; 참고로 흐지부지 진행한다고 말씀하시던 분들이 계셨던 것 같은데, 저는 생각없이 마구 글을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 짜여진 틀을 생각하고 글을 진행하지요^^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공부도 열심히, 사회일도 열심히들 하세요~ 아자아자 화이팅!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46 회] 날 짜 2004-11-26 조회 / 추천 14136 / 119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분노하다 명훈의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자신이 잡고 있던 병원 침대의 철로 된 부분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꾸우욱. 분통이 터졌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불화를 어디엔가라도 폭발해야만 이 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다만 자신의 잡고 있는 물체에 더욱 힘을 주며 분을 삭 였다.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어쩐지 많이 들어본 듯한 음성 같 았다. 물론 지금이기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한번이 라도 얼굴을 비춰 보기라도 했다면…. 마치 자신이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현민이는 그런 명훈이를 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 낄 수 있었다. 왠지 자신이 알고 있던 명훈이 같지 않다는 생각. 명훈이가 힘겹게 입을 땠다. “현민아 내가 내일 다시 찾아올게. 동생들은 걱정 마. 내가 챙겨 줄 테니까. 아직 몸이 많이 안 좋으니까 푹 쉬 고 있어.” “으, 으응….” 명훈의 강압적인 말투. 그 말에 이끌리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얼굴을 붉 혔다. 자신이 아무리 허울 없이 지내고 왕따는 왕따였다. 얼굴이 붉어진 것은 왕따 명훈의 위압감에 눌린 자신이 쪽팔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뭔가 안심이 됐다. 어쩐지 명훈의 얼굴을 보니 믿음이 갔기 때문이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상황. 그래서 가로세로도 아닌 위아래도 아닌 어정쩡하게 고개 를 흔들었다. 하지만 명훈은 그런 현민을 보고 있지 않았다. 다만 사건의 정황을 알아보고 내일 해야 할 것들을 생각 하고 있었다. 그렇게 병실에 다시 혼자 남게 된 현민. 명훈이 떠나자 다시금 왠지 모를 쓸쓸함이 자신을 찾아 옮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잠시 조금 전의 명훈을 떠올 리게 됐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냥 명훈을 생각하니 미소가 흘러나온 것이다. 바로 그 순간 현민의 얼굴이 굳어졌다. 조금 전 명훈이 힘껏 쥐고 있던 강철 부분이 심하게 구 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학교에 수소문을 하여 현민이와 어울리는 애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현민이 말로는 자신과 어울리는 애들이 포장마차 일을 도와 줬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애들에게 물어 볼 것이 많았다. 현민이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명훈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애들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조바심이 일어났다. 그런데 다행히도 점심시간 쯤 되서야 그 애들을 볼 수 있었다. 크게 다치지 않았는지 학교에 나온 것이다. 명훈은 애들의 물음으로 3층 화장실에 몰려있는 여자애 들이 그들임을 알 수 있었다. 여자 화장실문을 열고 거침없이 들어선 명훈. 담배를 빨고 있는 여자애들 네 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 키가 크고 가장 날카로운 인상을 가지고 있던 여자 애가 명훈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썅! 넌 뭐야? 안 꺼져?” “미친 새끼. 여기가 어딘데 들어와?” 여러 욕이 난무했지만, 명훈은 흡족했다. 변태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사람들을 잘 찾아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희가 현민이 친구들이냐?” 명훈의 한마디에 애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담배를 벽에 비벼 끄곤 명훈의 앞으로 한걸음씩 걸어오 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넷 중 한명은 맨 뒤에서 뭔가를 생각하고 있 는 것 같았다. 그 애는 네 명 중에서 귀여운 얼굴을 지니고 있었으며, 키가 작은 애였다. 그 애는 명훈의 얼굴을 흘깃거리며 연신 불안한 표정으 로 훔쳐봤다. 마치 ‘혹시, 혹시?’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그 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맨 앞에 위치한 여자애. 명훈의 앞에 서서는 침을 탁 뱉으며 입을 열었다. “하, 알고 찾아 왔다는 말이네? 더 용서가 안 되겠는데? 죽고 싶어? 엉?! 이 씨발 넘아!” 165의 큰 편에 속하는 중간정도 키에 긴 생머리가 눈에 띄던 여자애가 명훈의 앞에 있던 여자애의 어깨에 손을 올 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겁주지마. 쫄잖아. 그래도 이유가 있어서 온 것 같은데 한번쯤은 물어 봐야지.” 그러자 키 큰 여자애는 그것도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 덕였다. “칫, 넌 이 언니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어. 알아?! 그런데 넌 뭐하는 새끼냐. 왜 왔어?” 그제야 명훈은 자신이 이야기할 차례라는 것을 알 수 있 었다. 애들이 험하게 나와도 현민의 둘도 없는 친구들이라는 생각에 참고 또 참아줬다. ~~~~~~~~~~~~~~~~~~~~~~~~~ 에구 힘들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47 회] 날 짜 2004-11-26 조회 / 추천 14143 / 121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분노하다 명훈은 힘겹게 웃어주며 말문을 열었다. 만약 전혀 상관없는 여자애들이었다면 벌써 죽었다. 명훈은 남녀평등을 외치는 소수자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미 전생 때부터 말이다. 허나, 지금은 자신이 숙이고 들어갈 때임을 알았기에 입 가의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몇 가지 물어 볼게 있어서 왔어.” “뭔데, 쓰잘때기 없는 거라면 각오는 하고 있어.” 엄포를 놓는 자희라 불리던 여자애를 보며 씁쓸하게 웃 었다. “너희가 현민이 포장마차를 도와준다는 것을 알고 찾아 왔어. 그것에 관련된 거야. 될 수 있다면 협조를 해줘. 부 탁이야.” 하지만, 여자애들은 포장마차 이야기를 듣는 순간 표정 이 싹 변했다. “네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지?” 혜영이라는 애의 차가운 목소리. 바로 옆에서 흥분한 자희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너 이 새끼?! 어디서 주워들었어! 죽고 싶어?! 지금 그 걸로 협박하러 온 거야? 그래, 너 잘 걸렸다. 그렇지 않아 도 기분이 드러웠던 참인데!” 명훈이도 슬슬 한계가 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성질도 보통이 아닌데, 참고 참았더니 벌써 폭발 할 지경까지 온 것이다. 원래 현민이에 대한 동질감 때문에 이렇게 나서는 것이 기도 했지만, 자신이 한 잘못을 책임감도 포함되었기 때문 에 참을 수가 있었다. 자신이 충열이를 반죽음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 였던 탓이다. 그래서 책임을 지려 했는데, 현민이 생각하기에 이 미련 한 계집들이 도움을 안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힘을 보여주는 수밖에. 이런 애들의 유형을 잘 알 수밖에 없는 명훈이었다. 중원에는 이런 계집들이 많았던 탓이다. 하나같이 보통 사람보다 약간 힘이 있다고 설쳐대는 애 들. 그런 애들은 하나같이 맞아야지만 정신을 차렸다. 예전에 남궁가식의 딸을 반 죽였다가 남궁세가와 담소광 의 혈투가 벌어진 적이 있었다. 물론 담소관은 압도적으로 남궁세가를 떡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두 주먹으로 말이다. 검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웬만해서는 검을 뽑 지 않는 그였다. 자신이 검을 들면 무조건 피를 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후 지인들은 그가 혈겁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 이다. 라고 속편한 소리들을 하고 나자빠졌었다. 한동안 남궁세가 문주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내뱉은 잠 꼬대 같은 소리를 무시하는 처사였다. ‘남자는, 남자는 주…, 주먹이다…. 구…, 구타는 손맛 이…지…. 꼴깍.’ 몇날 며칠을 저 말을 내뱉으며 눈을 까집고 기절하고, 다시 정신이 들면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 후로 남궁세가에서는 여식을 결코 밖으로 내보내지 않게 되었다는 풍설이 떠돌았다. 여하튼 그런 성격의 명훈이었다. 지금까지 참은 것만으로도 용케 버틴 것이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뭐야, 이 새꺄. 포장마차건은 어떻게 알았냐구! 어서 지 껄여 보라구!” 그 순간 명훈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를 느꼈다. 명훈의 이마에 혈관이 도드라졌다. “이런 씨발 것들을 봤나!” 퍽! 콰직, 쿵! 결국 참지 못하고 뻗은 주먹. 그 결과는 참혹한 정도라 말하면 우스웠다. 여자애들은 턱이 빠진 듯 입을 벌리고 놀란 눈으로 명훈 이 만들어낸 결과를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주먹 단 한방. 정말 단 한방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한방의 주먹에 화장실의 나무문을 뚫리고 그 뒤의 벽까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이라니…. 무슨 만화책도 아니고 말이다. 자신들이 직접 목격한 것이었지만, 아직도 이 사실을 믿 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을 능동적으로 해석할 만한 머리가 이들에겐 없었던 것이다. 아니, 밖에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 는가? 여하튼 그녀들의 눈에 명훈은 괴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 다. 바로 그 순간 뒤에서 뭔가 생각하고 있던 여자애가 뭔가 를 알아차린 듯 일행들에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 지금 생각났다. 맞아. 저 얼굴이야. 지금 너무 가까 이서 봐서 헛갈렸는데, 쟤였어.” “뭐가 쟤야. 정확히 좀 말해봐.” “충원이랑 충열이 오빠 패거리를 떡으로 만든 녀석 말이 야!” “뭐, 정말이야?” “맞아. 내가 그날 똑똑히 봤다니까?” 명훈이 속을 끓고 있는 상황에 여자애들의 분위기가 심 상치 않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미 분노한 명훈에겐 그들의 속삭임이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여하튼 그 여자애의 말에 자희가 책망하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걸 왜 빨리 말 안했어!” 그러자 그 애는 정말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나도 잘 몰랐지. 혹시나 했거든. 내가 말했잖아. 멀리서 봤다고…. 설마 저렇게 어리게 생긴 줄 상상도 못했다니 까….” 그쯤 되자 여자애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겁에 질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들은 충원이랑 충열이의 병문안을 가서 직접 어떻게 당했는가 목격하고 온 사람들이 아닌가? 자신들이 어떻게 당했다고 겁에 질려있는 충원과 충열을 보며 고개를 가로 저을 정도였었다. 그런데 그 장본인이 자신들의 앞에 서있는 약골 같이 생 긴 애라니! 따 당하기 딱 좋은 케이스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그녀들 이었다. 바로 그 순간 명훈이 발광을 시작했다.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보자기로 보여?! 처음 에 내가 좋게 나왔지?! 이런 씨발!” 쾅! 콰직! 명훈이 움직이는 곳마자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 마대자루건 화장실 문짝이건 모두 아작나기 시작했다. “이런 엿 같은 것들을 봤나! 사람이 사람 말을 하면 알 아들어야 할 것 아냐! 너희들 무슨 외계에서 왔어? 4000 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매다에서 온 안드로매다 성인이냐?! 왜 사람이면 사람 말을 못 알아 쳐드시냐고요오~!” 쾅! 쾅! 우지직! 명훈의 가슴속에 쌓인 분노는 아직 풀리려면 멀었다. 예전부터 쌓인 것이 많았던 탓이다. ~~~~~~~~~~~~~~~~~~~~~~ 한 두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다시 연참을 시작하겠습니다. 잠을 설쳤더니 피곤하네요 ㅡㅡ;;;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48 회] 날 짜 2004-11-26 조회 / 추천 14116 / 134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분노하다 명훈의 가슴속에 쌓인 분노는 아직 풀리려면 멀었다. 예전부터 쌓인 것이 많았던 탓이다. 그렇지만 애들은 팰 수 없었다. 무공을 알고 있는 애들도 아니었고, 솔직히 아무리 막나 가는 자신이라지만 여자애들. 특히, 현민이를 도와주기 위해 같이 일 해주는 친구들을 차마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애꿎은 잡기만 아작나고 있었다. 쾅! 쾅! 벌써 몇몇 호기심 많은 애들. 무슨 화장실 공사를 이렇게 심하게 하나 생각하여 고개 를 들이 내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물론 하나같이 하얗게 질려서 멀리 도망쳤다. 그 속에서 저번에 충열이를 패던 괴물 같은 녀석이 가운 데에 여자 일진 애들을 몰아 놓고는 주변의 온갖 사물을 던지고 박살내며 위협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 일진애들처럼 직접 패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사색 을 한 채 쭈그려 앉아 있는 여자애들을 보자 측은한 생각 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자신들을 괴롭히는 애들이었음에도 말이다. 선생이 오는 듯한 소리에 가까스로 분을 참은 명훈. 잽싸게 굳어있던 현민이 친구들을 남자화장실로 끌고 갔 다. 여자애들은 이미 명훈의 무지막지함을 목격하고 전의를 상실한지 오래전이었기에 순순히 끌려갔다. 소변을 보고 있던 남자애들은 흠칫 놀랐다. 얼마나 놀랐으면 손에 오줌이 튀었겠는가. 하지만, 명훈이 조용히 손가락으로 세워 입을 가리자 알 아서 입을 다무는 애들이었다. 이미 명훈의 얼굴은 웬만한 애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명실 공히 이 학교의 짱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쩌렁쩌렁한 한 사내의 비명 아닌 비명을 들을 수가 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또라이 개쉬타포였다. “어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가 학교 물품을 그것도 화장실을 이렇게 개! 아작을 내놨어어!!” 피를 토하는 비명이 교내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졌다. 학생부를 관리하는 자신이었기에 더욱더 신경을 곤두새 울 수 밖에 없으리라. 거기다가 교내 사물까지 담당하는 담당자까지 겸임하고 있었기에, 화장실 수리비용으로 얼마가 깨질지가 머리의 두통을 유발하는 개쉬타포였다. 이미 범인 잡기란 글렀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 씩씩거리며 사라진 개쉬타포. 명훈은 그것을 마저 확인하고 화장실에 있던 남자애들을 보두 내보내고 문을 걸어 잠궜다. 명훈의 눈치를 보느라 오줌튀긴 손을 씻지 못했던 한 녀 석은 울쌍을 지으며 밑에 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애들은 그런 녀석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때문에 결코 놀릴 수 없었다. 불평하기에 앞서 사내들의 머릿속에 명훈은 이미 두려 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런 사소한 문제로 명훈의 성질을 건들기 위해 입이나 뻥긋 할 수 있는 녀석이 있다면 애들이 거수 박수를 쳐 줄 것이다. 좋은 곳으로 갈수 있도록 추도문과 기도를 겸해서 말이 다. 여하튼 명훈은 이제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는 것을 느 꼈다. 다시 입가에 미소가 돌아온 탓이었다. 여자애들은 그런 명훈의 미소를 보며 흠칫 놀랐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훈은 그런 여자애들의 마음을 아는지 약간 미 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조금 험하게 애들을 대했음을 인정했기 때문이 다. 문제는 조금 많이라는 점이지만…. 명훈은 그 문제에서 많이라는 단어를 무시했기에 다독이 면 말을 잘 들을 거라 생각했다. “흠, 내가 너무 심하게 대했지. 미안하다. 요즘 쌓여 있 던게 좀 많았거든…,” 그 말에 여자애들은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심하 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라는 뜻이었다. 몇 번을 명훈이가 입을 열었지만, 애들은 그런 명훈이의 말을 들을 때 마다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다시 슬쩍 이마에 혈관이 돋는 명훈이었다. 슬며시 벽에 팔을 뻗고 기대고 있던 명훈의 손바닥에 힘 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꾸 그러지마…. 자꾸 그러면 내가 협박하는거 같잖 아….” 이를 악물며 말하는 명훈. 여자애들은 명훈이의 손가락이 벽을 파고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자 여자애들이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를 깨닫고 다 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응! 맞아! 우리야 말로 미안해. 잘못했어!” 여자애들은 맞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여자애들 중 세 명은 어떻게 맞았는지 보지 못했 지만, 맞아서 충열이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보통 맞아서 가능한게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들도 사람을 패봐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복날 개같이 맞아도 그 정도는 아님을 잘 알고 있는 여 자애들이었다. 특히나 직접 목격했던 여자애의 공포는 더욱 뼈에 사무 쳤다. 약간의 실수로 자신들 역시 그 꼴 날 수 있는 상황에 처 해있다 생각하는 여자애들이었다. 사실 그런 생각이 없는 명훈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 며 하나씩 차근차근 묻기 시작했다. 여자애들역시 대답을 하면서 명훈이가 자신들이 생각하 고 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명훈이의 태도로 보건데, 자신들에게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왠지 자신들이 당한 것에 보복을 해줄 것만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여유가 흘렀다. 그것은 포장마차 안에 조폭이 들어왔다는 이야기에서 절 정에 치달았다. 여자애들이 하나같이 치를 떨며 언성을 올리더니 그때 이야기를 해준 탓이었다. ~~~~~~~~~~~~~~~~~~~~~~~~~~~~~~~~~ 에구 힘들다... 다음 편은 언제 올리려나... 최대한 빨리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글 공장 글 공장 하지좀 마세요. 듣는 '글 자동 판매기' 기분 나쁩니다. ㅋㅋㅋㅋㅋㅋ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49 회] 날 짜 2004-11-26 조회 / 추천 14275 / 129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도시정벌하다 7. 명훈, 도시정벌하다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항상 이 고등학교 일진들. 그러니까 일명 충열이파라 불리는 충열이 패거리들이 포 장마차를 지켜줬다고 한다. 그래도 의리는 있는지 자신을 따르는 애들은 보듬어 주 고 최대한 편의를 봐줬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 말에 명훈은 슬쩍 흠칫 놀랐다. 뜨끔거린 탓이다. 물론 조용히 기억에서 지워주는 것을 잊진 않는 명훈이 었다. 그리고 마저 정리하자면 충열이가 조폭과 연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란다. 실제로 몇몇 사무실에서 충열이에게 손을 뻗었다는 것이 다. 그런데 이미 충열이는 자신의 선배가 있는 진성파로 들 어가려고 마음을 굳히고 있었단다. 그에 열 받은 다른 조직에서 충열이를 노렸지만, 진성파 의 견제로 불가능 했다는 것이다. 현민이네 포장마차는 충열이가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진성파였다. 거의 파격적인 제안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쪽 지역을 맡긴다는 말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고등학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 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말은 진성파에서 조차 충열이를 자신들의 식구로 인 정하겠다는 말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사실 타 조직에서 고등학생을 후배로 끌고 들어가면 딱 깔이 밖에 시키지 않는다.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 해도 애는 애일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조폭의 현황 속에서 저런 식의 호의를 배풀었다는 것은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계기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여하튼 그런데 변수가 생긴 것이다. 바로 명훈 자신이라는 변수가 말이다. 자신이 충열을 때려눕힘으로서 그곳 지역을 지킬, 그러 니까 그곳 지역에 있는 포장마차를 지킬 애들이 사라졌다 는 말이 된 것이다. 의외로 현민이 쓰러트린 충열이 패거리들은 다른 조직에 서 전투력을 높이 평가 받았다고 했다. 눈에 가시 같았던 충열들이 사라지자 바로 그쪽 지역에 근접해 있던 명진파에서 수금을 시키겠다는 명목하에 자신 의 애들을 보낸 것이었다. 사실 그 지역은 명진파의 자리도 진성파의 자리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있었다. 그것을 충열이에게 맞긴 것은 파격적인 일이기도 하나 늘어난 머릿수를 이용해 선수를 친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충열이가 없는 지금 녀석들이 수금한다해도 진성 파에서 뭐라 할 수 없었다. 다만 신경은 쓰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그것은 의도적인 시비였기 때문이다. 여하튼 현민이는 안된다고 하다가 녀석들이 포장마차를 건들기 시작하자 앞으로 나서서 막았단다. 그 와중에 건달들의 성질을 건들게 됐고, 몇 대 맞았다 는 다고 했다. 하지만, 현민이는 끈질기게 막았고, 결국 몸이 그 정도 가 될 지경까지 맞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민이 포기하지 않자 결국 물러나긴 했지만, 자신들이 그날 벌었던 매상을 모두 강탈해 갔다는 이야기 까지 했다. 명훈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다시 자신의 과거가 떠오른 탓이다. 손톱이 파고들었음인가.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지만, 명훈은 전혀 개의치 않 았다. 오히려 현민이 친구들이 놀라서 꺄악꺄악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명훈은 다시 처음부터 생각을 해봤다. ‘명진파라고?’ 그들의 행동은 진성파에 싸움을 거는 것이라 볼 수 있었 다. 그 와중에 현민이가 피해를 본 것이다. 명훈은 분노했다. 용서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말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분노가 커지면 커질수록 조직이라 는 쓰레기들에 향한 분노역시 커져갔다. 무슨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것도 아니고 말이다. 명훈은 다짐했다. 명진파를 결코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애들을 데리고 노는 진성파도 좋다고만 볼 수 없는 명훈이었다. 피가 흐르는 주먹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는 명훈. 결국 두 조직을 모조리 쓰러버리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 다. ~~~~~~~~~~~~~~~~~~~~~~~~ 위의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그냥 즐기시며 보시면 됩니다 ㅎㅎ. (....현실에서 일어나는 흔한일이긴 하지요.. 조직의 고등학생 스카웃... 뭐, 위에서 밝힌 그래도 딱갈이를 위해 끌어들이는 것이지만..)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50 회] 날 짜 2004-11-26 조회 / 추천 13845 / 96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도시정벌하다 다시 병원을 찾은 명훈. 현민이가 있는 병실은 독방이었다. 방이 가득 차서 남아 있던 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외롭게 있지 않을까, 걱정스럽게 간 병원. 현민이는 그런 명훈을 반갑게 맞아 줬다. 도착하여 현민이를 보니 지금까지 명훈이 했던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어줄 정도였다. 현민이는 어머니께서 사가지고 오셨던 과자랑 통조림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쇼프로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쉬지 않고 깔깔거리며 웃는 현민. 명훈은 그런 현민을 보며 피식 웃었다. 괜찮아 보였기 때문에 안심한 것이다. 하긴, 어제 현민이가 정신을 잃고 있을 때 경혈을 풀어 줬기에 조금 빨리 나은 것 같았다. “뭐해 안 들어오구? 왔으면 들어와야지.” 현민의 목소리에 명훈 뒤쪽에서 웅성이기 시작했다. 현민이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알 수 있었다. “어라? 밖에 애들 왔어? 명훈아, 네가 데려온 거야?” 명훈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현민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런데 애들 뭐해 밖에서? 들어오지 않고?” 현민의 재촉에 명훈이 옆으로 비켜서자 애들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명훈이가 막고 있어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앞에 있는 명훈이 사이로 들어가기도 뭐했고 말이다. 명훈이가 자신들을 좋게 본다지만 아직 그들에겐 명훈이 가 어렵게만 느껴졌다. 병실에 들어서자 자희가 울먹이더니 현민이에게 안겼다. 왠지 미안해졌기 때문이었다. 현민이는 아무 말 없이 자희를 안아줬다. 한참 울음을 그치지 않자 한마디 하긴 했지만 말이다. “다 큰 지지배가 울고 지랄이야. 왜 울어? 아픈 건 난데 말야. 누가 보면 네가 환잔 줄 알겠다. 뚝 그쳐 지지배야.” 자희가 웃으며 떨어지자 현민이가 두리번거렸다. “얼래? 이것들 봐라? 자세가 안돼 있네?” “무슨 자세?” 병문안 온 네 명 중 정임이가 되묻자 현민이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병문안 오면서 먹을 것도 안사와? 너희들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퍼뜩 안사와?!” 그 한마디에 애들이 피식 웃으며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 기 시작했다. “미친년 지랄을 해요. 아주. 킥킥” “조금 아프다고 저 정도면, 감기 걸리면 가구 사오라고 설쳐대겠네.” “킥킥. 됐어. 요것들아.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내 가 연락도 못했는데 입원한 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냐고?” 편하게 앉아 있던 여자애들이 약간 굳어지며 천천히 명 훈에게 쏠렸다. 신이 난 현민이는 그런 애들의 미세한 부분을 눈치체지 못하고 명훈이를 같이 바라봤다. 현민이는 명훈이가 자신의 친구들을 찾아서 일부러 데려 왔다고 생각했는지 감격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와우, 우리 명훈이가 이 누님을 그렇게 생각해 주는 줄 몰랐네에~. 정말 이쁘네. 이리와 봐.” ‘우리 명훈이? 누님?’ 여자애들은 그런 현민이의 말에 왠지 모르게 허탈했다. 자신들은 그렇게 어렵게 대했는데, 아주 편한 친구처럼 대하는 모습이 어째서인지 이질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거기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명훈이도 그런 현민이 싫지 않은지 킥킥 웃으며 주섬주섬 다가갔던 것이다. 그렇게 손이 뻗으며 닿을 정도까지 도달하자 현민이는 명훈이의 엉덩이를 툭툭쳐줬다. “애구. 아주 예쁜 짓 만 골라서 해요. 이 누님이 다 잘 키운 덕이야. 암 그렇구 말구.” 여자애들이 자신도 모르게 피식거릴 정도로 능청스런 현 민이의 모습에 갑자기 명훈이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순간 여자애들은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수상하다. 수상해….’ 하지만, 그제야 이해가 갔다. 어째서 현민이의 일에 전혀 상관없는 애가 나선건지를 말이다. 애들은 약간 의미심장한 눈길로 둘의 사이를 지켜봤다. 왠지 둔한 현민이는 애들의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 생 각을 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명훈이는 달랐다. 그 눈빛의 정체를 눈치 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헉, 이거 오해 받고 있는 건가?’ 하지만 결국 자신도 수긍하고 말았다. ‘헐,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 자신이 생각해도 충분히 오해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행동 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조금씩 짙은 반월을 그리는 여자애들의 눈빛은 부담스럽 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상황을 돌리기 위해 명훈이이 말을 꺼냈다. “뭐하고 있었어? 밥은 잘 먹었어?” 하지만 그것이 더 여자애들의 염장을 질렀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종국에는 여자애들의 입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우우~.” “염장 커플 물러가라. 물러가라~.” 순간 달아오르는 현민과 명훈. 이제야 자신의 친구들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이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급하게 양손을 휘저으며 현민이 외쳤다. “아,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 그냥 친구일 뿐이라고!” 하지만, 애들은 그런 현민의 과민 반응을 즐겼다. 살짝 옆으로 시선을 돌린 그녀들. 조용한 모습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명훈의 모 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한 명훈의 모습은 그녀들의 짐작을 더욱 확신하게 만들도록 도움을 주었다. 갈수로 흥미진진한 여자애들이었다. 다른 사람 연애사처럼 즐거운 것이 남 뒷 다마 까는 것 말고 뭐가 있겠는가? 특히나 여자애들이었다. 물 만난 물고기마냥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 흠...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한편 더 썼거든요. 힘들었습니다. 헤휴... ;ㅁ; 다음 편이 바로 올라옵니다^^ 어서 클릭하세요. 잇힝~ > [51 회] 날 짜 2004-11-26 조회 / 추천 14086 / 141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도시정벌하다 “에이 이미 명훈씨의 어머니도 뵀다며?” 다시 얼굴이 붉어지는 현민 이런 상황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기에 놀라움은 더 컸다. “아니, 그건 나를 입원시키기 위해서….” “흐흐흐…. 그래도 본건 본거지 왜 자꾸 아니래? 안 그 래 얘들아?” “맞아 맞아!” 이미 작정하고 놀리기 시작한 그들은 죽이 잘 맞았다. 마치 입을 맞춰 놓고 오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명훈씨가 뭐야. 그냥 친구라니까아!” “킥킥. 왜 이러시나 선수들끼리.” “그러게. 네가 항상 하던 말이었잖아.” 친구들의 반격에 현민이 말까지 더듬었다. “뭐, 뭐가 말야!” “그게 뭐였더라? 친구가….” 입을 열었던 자희가 머뭇거리자 지금까지 맞장구만 쳐주 던 혜영이가 나섰다. “친구가 애인 되고, 애인이 남편되는거?” “맞아 맞아! 킥킥킥” “아, 아니 얘들이…!” “아니긴 뭐가 아냐. 네가 항상 했던 말인데.” “그, 그게….” “쉿! 시끄러. 이 언니들이 다 알아서 챙겨 줄께. 계집애. 이런 걸 숨기고 있었구나?” “요즘 들어 약간 이상하게 보였다니까?” “맞아. 어쩐지 약간씩 화장도 하더라구.” “어머 정말이야?” 난리도 아니었다. 항상 당당했던 현민이의 모습은 지금 자리에서 오간데 찾을 수가 없었다. 명훈이 조차 신선한 눈길로 그냥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명훈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현민이었다. 자신과 같이 아니라고 부정해도 모자랄 판국에 구석에서 킥킥거리며 같이 웃고 있는 것이었다. 괜히 심통나는 현민. 명훈을 째려보니 명훈이 슬쩍 눈길을 피했다. 다시 들리는 야유소리. 이미 신바람난 여자애들. 괴물이라고만 생각했던 명훈이가 더 이상 무섭기만 한 존재가 아니었다. 특히나 현민이의 애인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설마, 애인의 친구를 치겠는가? 자신들에게 득이 됐으면 득이 됐지, 결코 실(失)은 되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녀들의 자신감은 거기서 만들어 졌다. “진작에 얘기 했으면 이 언니들이 기념일도 챙겨줬을 텐 데.” “아, 그러고 보니 둘은 언제부터 사귄 거야?” 애들의 장난이 농도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현민이가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입을 열었다. “야! 시끄러. 그게 아니라니까!” “…….” 순간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사라졌다. 적막감마저 흐를 정도였다. 하지만 애들이 누구인가? 결코 보통이라 할 수 없는 애들이었다. 이 기회를 쉽게 놓칠 리가 없었다. 약점 잡힐 일이 거의 없던 현민이다보니 더더욱 그러했 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케헤헤헤.” 괴팍한 웃음마저 흘러나오더니 종국에는 분위기가 다시 원상복귀 됐다. “정말 아니라니까. 내 이상형은 덩치 있고, 날 지켜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남자라구!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하지만, 애들의 귀에는 현민이의 이야기가 더 이상 들어 오지 않았다. 아니, 살짝 들어오긴 했지만, 명훈이를 보니 완전히 명 훈이를 위한 말 같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현민이가 자기애인 자랑하는 것 같은 기분에 배알이 꼴 리는 여자애들이었다. 짱과 일진오빠들까지 아홉 명을 한번에 때려눕힌 명훈이 약하다면 대체 누가 강하단 말인가? 결국 명훈에게 직접 묻는 여자들이었다. “저기 명훈씨에게 물어봐야겠다.” “맞아 맞아.” “명훈씨는 현민이랑 언제부터 사귀기 시작했나요?” 우연히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명훈을 바라보는 여자들의 시선은 반짝거렸다. 현민이마저 명훈이 무슨 소릴 할지 조마조마했다. 명훈이 잠시 여자애들을 바라보고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 문을 텄다. “오늘로서 70일 정도 된 것 같은데요?” “야호!” “저거 봐, 이 지지배야. 저렇게 증거가 명확한데도 발 뺌 땔꺼야?!” 의미심장한 명훈이의 말에 여자애들의 완전히 파티 분위 기였다. “아, 아니 그게 아닌데….” 현민은 울쌍이었다. 설마 명훈이 저렇게 말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애들은 현민이의 변명 따윈 상관없다는 듯이 자신들끼리 현민이와 명훈이의 미래를 설계하는 중이었다. 현민이가 당혹스럽게 바라보는 명훈이는 이미 자신에게 관심을 끊고 여자애들과 이야기 하면서 즐겁게 노는 중이 었다. 하지만 자신이 내뱉은 이 장난 섞인 한마디가 어떻게 변 모될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명훈이었다. 그때 현민이도 나름대로 생각했다. 솔직히 명훈이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던 중이었다. 학교에서 신속하게 자신을 챙겨준 명훈이의 모습은 왠지 믿음감이 생기도록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비록 학교에서는 왕따 당하지만 그 정도야 자신이 손을 써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현민이었다. 거기다가 자꾸 명훈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기까지 했 다. 사실 현민이는 학교소식이 어두웠다. 때문에 아직까지 명훈이가 학교를 장악하고 있는 사실을 알지 못 하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명훈은 힘없이 괴롭힘 당하는 머 저리에 가까웠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민이의 친구들은 이미 명훈의 정체를 현민이 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런 장난을 친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하루해가 저물어갔다. 병원에서 나온 명훈이와 여자애들은 현민이 포장마차로 향했다. 장사하는 법을 모르는 명훈이는 여자애들을 지켜주기 위 해 가는 것이었다. 여자애들은 그런 듬직한 명훈을 보며 다시 포장마차를 열었다. 자신들끼리 열다가 또 다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기에 겁이 나서 손도 못 대고 있었을 뿐이었다. 머릿속에서는 도로에 덩그라니 세워져 있을 포장마차가 걱정되었던 여자애들 이었다. ~~~~~~~~~~~~~~~~~~~~~~~ 다음 편을 하나 더 올릴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만약 못올려도 내일 새벽 4시에 찾아 뵙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52 회] 날 짜 2004-11-27 조회 / 추천 12741 / 67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공지] 인기투표 공지입니다^^ 안 보셔두 되요^^ 아직 케릭이 다 등장하진 않았지만, 우선 인기투표 해보려구요^^ 지금까지 뎃글을 보니 의외로 현민이가 인기 짱이더군요^^ 하실 분은 밑에 투표함에 투표를 해주시고 여기 공지란에 나는 누구를 골랐는데 왜 골랐다 라고 써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나름대로의 추첨을 통해 곧 출간 될 실혼귀검1,2권을 책이 나오는 즉시 보내드리겠습니다^^ (검황은 아직 계약이 안 됐어염 ㅡ///ㅡ;; 검황 받을 생각은 마세염 키엌키엌) ps. 다음 글은 4시에 올라 옵니다 >,. [53 회] 날 짜 2004-11-27 조회 / 추천 14149 / 89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도시 정벌하다 머릿속에서는 도로에 덩그라니 세워져 있을 포장마차가 걱정되었던 여자애들 이었다. 그런데 포장마차를 다시 열자는 명훈. 왠지 그리 크지 않은, 어떻게 보면 외소하기 까지한 명 훈이 그토록 듬직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사실 오늘 명훈이 병원에 찾은 이유는 포장마차를 열기 위해 현민이의 허락을 받는 것이었다. 자신이 무작정 조폭 사무실을 찾아가는 것도 생각해 보 았다. 하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뭐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차피 싸울 싸움. 자신이 무엇 때문에 힘들게 찾아가야 하는가? 어차피 기다리면 지들이 알아서 올 텐데 말이다. 이미 부모님께는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해 놨다. 아버지는 쉽게 허락을 해주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무엇을 하며, 거기가 어디며, 몇 시까 지 할 것이며,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 물으셨다. 명훈은 정신이 어찔어찔 할 정도였다. 결국 허락을 해주시긴 했지만, 새벽에라도 한번 찾아 가 보겠다며 한마디를 하시고 끊으셨다. 옆에서 여자애들이 웃었다. 음식은 이미 오면서 장을 넉넉하게 봐왔기에 모자랄 걱 정은 하지 않았다. 오는 길에 명훈이 여자애들에게 물을 정도였으니 말이 다. “그런데 이 많은 것을 다 팔아?” “그럼, 끝나고 나면 모자라기까지 해.” 명훈이 휘둥그런 눈으로 자신이 들고 있는 묵직한 비닐 봉지를 내려보았다. 남자라고 무거운 것은 다 명훈에게 들게 시키고 자신들 은 가벼운 마른 반찬들을 들고 온 것이다. 명훈은 오면서 투덜거렸지만, 사실 그렇게 무겁게 느껴 지지 않았다. 이미 내력이 충만한 명훈이다. 끊임없는 수련으로 어제 드디어 혈관의 이물질들을 대부 분 제거 할 수 있었다. 호흡은 바라졌으며, 조금이긴 하지만 가슴은 벌어졌다. 뭉쳤던 근육은 부드러워 졌고, 뻣뻣한 골격의 움직임은 처음에 비해 많이 부드러워졌다. 적지만 전신에 골고루 퍼질 정도로 내력은 충만했다. 적어도 처음에 충열이를 팰 때처럼 싸우다가 내력이 소 진 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자애들은 이 음식들의 무게를 알고 있었기에 장난삼아 사내가 이것도 못 드냐고 약 올렸다. 그러자 약올림을 못이긴 명훈이 가볍게 들어 올리자 모 두가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사실 예전에도 충열이에게 들어보라고 시켰는데, 그 큰 덩치로도 잘 들지 못했던 무개였다. 그래서 약간만 놀리고 자신들이 나눠서 들으려 했지만, 의외로 가볍게 드는 명훈에게 놀란 것이다. 그러나 곧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벽도 뚫는 주먹이다. 손끝이 닿는 곳마다 부서기고 깨졌다. 그런 비현실적인 것을 직접 목한 한 자신들이다.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여자애들이었다. 그 사이 짐꾼으로 변모한 명훈은 투덜거렸다. ‘분명 저 계집애들이 나를 놀리려고 더 많이 산개 분명 해. 다 못 팔기만 해봐라. 투덜투덜.’ 무겁진 않아도 불만스러운 명훈. 아직도 설마 이 많은 것을 다 팔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하 지 못하는 명훈이었다. 여자애들은 그런 명훈의 투덜거림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 다. 왠지 귀엽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때 혜영이가 피식 웃으며 명훈에게 말했다. “명훈아. 그렇게 못미더우면 내기할까?” “내기? 무슨 내기.” “우리가 다 파는가 못 파는가를 걸고 말이야. 지는 사람 이 이긴 사람의 원하는 소원 다 들어주기 어때?” “정말이야?” 명훈의 되물음에 이번에는 자희가 바통을 받았다. “재밌겠는데. 난 찬성이야.” “나도 찬성.” 여자애들이 모두 찬성하자 명훈은 왠지 자신이 발을 잘 못 들인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짐짓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 나도 하지. 여하튼 내가 이기면 너희들 각오해. 알았지? 큭큭큭.” 명훈의 으름장이 가소롭다는 듯이 자희가 대꾸했다. ”당연하지. 너나 조심해. 이 근방에서 우리 오공주 포장 마차라고 하면 다 알아 준다구.” “오공주? 오공주 포장마차?” “우리랑 현민이까지 포함에서 그렇게 불린다고! 몰랐지? 각오하고 계셔~. 뺑뺑이 돌릴지도 모르니까.” “췟! 다 못 팔기만 해봐라…. 투덜투덜….” 명훈의 투덜거림도 잠시. 장사를 시작한지 30분도 안 돼서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 했다. 처음으로 자희가 손님을 반겼다. ~~~~~~~~~~~~~~~~~~~~~~~~~~~~~~~~~~~~~~~~~~ 어서~ 언능~ 후딱~ 다음으로 고고~ 잇힝~ >,. [54 회] 날 짜 2004-11-27 조회 / 추천 13970 / 97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도시 정벌하다 “어서오세요. 어머, 오늘은 애인분하고 함께 오셨네요?” “예. 여기 음식이 맛있다고 데리고 온 거예요. 저기 닭 똥집하고 쏘주 한 병만 주세요. 오뎅 국물하구요.” “아 손님, 아직 오뎅 국물이 끓지 않아서요. 조금 전에 문을 열었거든요. 우선 계란 국은 어떠세요? 그건 금방 만 들어 드릴 수 있는데, 오뎅 국물은 잠시 후에 다 끓으면 드릴게요.” “좋아요. 그렇게 하죠. 그런데 계란 국은 얼마죠?” “아녀요. 당골이신데 무슨 돈을 받아요~. 당연히~ 써. 비.쓰~죠. 히히.” “아얏!” 자희의 발랄한 모습에 도취된 남자손님은 여자친구에게 허벅지를 꼬집히는 수모를 당하게 됐다. 그러자 포장마차 안의 사람들이 손님 주인 할 것 없이 웃기 시작했다. “히히, 그러니까 한눈은 금물이라구요~.” 자희가 남자친구를 꼬집은 여자에게 잘했다고 윙크를 하 자 같이 마주보며 그 여자도 윙크를 했다. 아마도 저 여자도 이곳의 당골이 될 것 같은 모습이었 다. 명훈은 애들이 장사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다. 각각 자신이 맞은 손님들이 따로 있던 것이다. 네 명이 돌아가며 자신이 기억하는 손님들을 대접하는 데,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정신없이 혼자 돌지 않고 넉넉하게 손님이 필요한 것을 챙겨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공부는 하지 않지만, 이미 사회의 룰을 깨우치 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몇몇 애들처럼 정신이 나가서 몸 굴리다가 집창촌 같은 곳에 끌려가 인생 버리는 애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 었다. 지금 명훈 자신과 함께 있는 철없이만 보이는 이 애들. 이미 어떤 부분으론 어른인 것이었다. 그제야 명훈은 애들이 사온 음식들이 모자랄 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포장마차에서 중요한 것은 당골을 얼마나 붙잡느냐 이 다. 그중 주인의 후덕한 마음씨도 좋겠지만, 최고로 꼽히는 것은 바로 음식 맛이다. 주인이 아무리 써비스가 좋아도 맛이 없는 음식을 누가 찾겠는가? 주인이 싸가지가 없고 욕을 잘해도 음식이 맛있으면 찾 아가는게 사람이다. 명훈은 그것을 잘 알기에 음식 맛을 궁금해 하고 있었는 데, 시식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어머니가 포장마차에 찾아오신 거였다. 여자 애들은 처음엔 그냥 손님인가 했다가 눈치로 그 여 인이 명훈이 어머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명훈이가 소개를 시켜 줄 때까지 기다렸다. “우리 어머니야 인사들 해.” “명훈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우리 명훈이 친구들인가 보지?” “예, 어머니.” “우리 명훈이 잘 부탁해요. 그리고 함께 어울려 줘서 고 마워요. 나쁜 짓 하지 말고 공부도 열심히들 하구….” 명훈이가 어머니 설교에 팔을 잡고 슬쩍 흔들며 조그맞 게 말했다. “엄마~.” “어이구, 알았다. 말을 마마.” 여자애들이 명훈의 색다른 모습에 놀라며, 의외의 귀여 움에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킥킥. 괜찮아요, 어머니. 여기 앉으세요.” 꾸벅 인사를 하고 자신이 생각한 가장 좋은 자리에 어머 니를 앉혔다. 혜영이가 정리한 자리에 앉은 어머니는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어머니 순대국은 어떠세요? 드셔 보실래요?” “괜찮아요. 잠시 어떻게 장사하나 보러 온 거예요.” “아녀요. 유진아 여기 순대국 하나!”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55 회] 날 짜 2004-11-27 조회 / 추천 14118 / 10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도시 정벌하다 혜영이가 가볍게 소리치자 주방에서 유진이란 애가 ‘오 케이~.’하고 받아쳤다. 곧 순대국을 들고 달려오는 유진. “그럼 조금 드시다 가세요. 그럼 저는 잠시 후에 찾아뵐 게요. 명훈이랑 대화 좀 나누고 계세요.” “수고해요.” 어머니는 인자한 눈길로 여자애들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 셨다. 잠시 눈앞에 있는 순대국과 몇가지 함께 나온 음식들을 집어 드시더니 음미하시기 시작했다. “어머, 맛이 좋구나. 애들 손맛이라고 보기 힘들 정돈 데?” “정말요? 어디?” 명훈이는 자신의 입맛에 음식이 맞는 것을 보곤 그때부 터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상당히 의외였다. 잠시 음식에서 손을 때시고 한참 여자애들을 보던 어머 니. “그런데 누가 네 색시감이니?” “푸웃! 어, 어머니!” 명훈은 마시던 콜라를 바닥에 품으며 놀란 눈으로 어머 니를 바라봤다. 그러자 능글능글한 눈빛으로 명훈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어머니. 하지만 명훈의 묵비권에 결국 항복하셨다. “됐다. 치사해서 안물어 본다.” “물어보지 마세요오~. 자꾸 왜 쓸데없는 것을 물어보고 그러세요? 사람 민망하게….” “설마, 집에 왔던 미지라는 애? 계 참하더라.” “에이 아녀요. 번지수 잘못 짚으셨네요. 그냥 친구들이 라니까요?” “흠, 그럼 그 현민이라는 애?” “푸후훗!” 이번에는 마시던 콜라가 코로 튀어 나왔다. 명훈과 명훈 어머니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던 여자애들. 장사는 잠시 접어두고 귀를 기울이던 도중 명훈의 반응 을 보고 낄낄거리며 웃느라 바뻤다. 여자애들이 본 명훈은 의외로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말 반응이 좋은 녀석이라 생각하게 됐다. 물어보면 하기 싫은 대답을 하지 않아도 이미 표정으로 다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어머닛!” “어이쿠 깜짝이야. 아니면 아니지 왜 그렇게 소리를 지 르고 야단이야? 애 떨어 질 뻔 했잖니!” “떨어질 애가 어디 있다구 그러세욧! 늙은 아줌마가! 자 꾸 쓸데없는 소리 하실거면 집에 돌아가세요!” 하지만, 어머니는 강적이었다. “어쭈~, 뭔가 찔리는 게 있나 본데? 현민이구나? 역시 현민이가 맞나 보구나?” “아니라니까요!” “자꾸 소리 지를랫?!” “아니라는데 자꾸 우기시니까 그렇죠!” “아니면 아니지 왜 큰 소리야?!” 명훈이 결국 입을 다물고 ‘졌습니다’ 하고 양손을 번쩍 들었다. “여하튼 난 현민이가 나쁘진 않더구나. 가정환경은 나쁜 것 같다만 그것이 사람을 가릴 수는 없지 않겠니? 그리고 네가 말 한대로 오늘 현민이네 집에서 현민이 동생들을 집 에 데리고 왔다. 현민이한테도 연락을 줬으니까 크게 신경 쓰지 마라.” “엄마….” 명훈의 감동어린 목소리에 어머니는 흠칫 놀라는 척을 하시며 명훈이의 머리를 살짝 쥐어 박으셨다. “다 큰 녀석이 징그럽게 엄마가 뭐야? 어머니라고 하랬 지?!” “다른 집에서는 다른 엄마라고 부르라고 한다는데, 어째 서 어머니는 어머니라 부르라고 하시는 거죠?” 그러자 어머니는 진지한 모습으로 훈계하듯 입을 여셨 다. “넌 이제 다 컸잖니. 나이를 먹었으면 나이 값이라는 것 을 해야 하는 거란다. 곧 너도 독립을 할테고 금세 나이를 먹을 건데 40넘어서도 엄마라고 할래?” “그거랑 그거랑은 다르죠?” 명훈의 반박에 어머니는 다시 한번 더 머리를 쥐어박으 며 말했다. “시끄럽다. 여하튼 여기는 숙녀분들만 있으니까 사내인 네가 잘들 보살피고. 알겠지? 엄마는 이만 가보마.” “예, 살펴가세요. 엄.마.” “이 녀석이!” 어머니는 한번 화내는 것처럼 하더니 웃으시며 돌아가셨 다. 그런 모습에 여자애들은 우렁차게 인사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명훈이 어머니.” “그래요. 좋은 일 하느라 모두들 수고하네요. 그런데 우 리 명훈이 녀석 잘 좀 부탁해요.” “네, 잘 알겠어요. 살펴가세요.” 그렇게 어머니가 돌아가자 여자애들이 자신들끼리 수다 를 떨었다. 요즘도 저런 어머니가 계신가에 대한 이야기가 태반이었 다. 하나같이 부럽다는 표정이었다. 명훈은 그런 어머니가 자랑스러운지 어깨를 으쓱거렸다. 왠지 자신이 칭찬받는 기분인 탓이었다. 손님들은 여전히 만원이었고, 그제야 명훈은 자신이 내 기를 잘못 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직 새벽도 안됐는데 벌써 음식의 절반이 나간 것이다. ‘젠장 똥 밟았다.’ 여자애들이 자신에게 뭘 부탁할지 벌써부터 불안한 명훈 이었다. 바로 그때 밖에 차 브레이크 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검 은 양복을 걸쳐 입은 네 명의 사내가 포장마차 천막 안으 로 들어왔다. 그 순간 명훈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한눈에도 별로 좋은 분위기로 들어오는 모습은 아니었 고, 어디를 봐도 손님으로 보이지 않았다. 앉아 있는 손님들의 음식에 멋대로 손을 대고 먹으며 위 협을 가하는 모습. 휴지를 마구 뜯어서 코를 풀고는 그 휴지를 손님들 식탁 위에 던지는 모습. 일부러 손님들과 툭툭 부딪히며 눈으로 째려보는 모습. 벌써부터 몇몇 손님들은 계산도 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 다. 물론 모두 단골들이기에 나중에 계산을 해줄 것이니 걱 정하진 않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손님이 도망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깽판 치는 모습이 말이다. 아직도 남아서 신경 끄고 자신들끼리 어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녀석들이 무슨 생각에선지 그들은 건들지 않았 다. 아마도 오늘 깽판 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차후 오지 못하 게 만들 샘인 것 같았다. 명훈은 그런 재미없는 모습에 피식 웃었다. 동내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이었기에 보내는 비웃음이었 다. ~~~~~~~~~~~~~~~~~~~~~~~~~~~~~~~~~~~~~ 네편 올리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금 한편 미친듯이 쓰고 있습니다. 30분 안에 올리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56 회] 날 짜 2004-11-27 조회 / 추천 14206 / 140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도시 정벌하다 여자애들이 비명을 질렀다. “야야. 우리가 여기서 장사하지 말랬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너희들 뒤지고 싶어? 앙?! 뱃가죽을 찢어서 병원에다 팔아야 정신을 차리겠어!” “아, 아뇨….” 여자애들이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서슴없이 십 원짜리 싸구려 욕설을 내뱉는 녀석들. 바로 그 앞에서 말이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명훈. 비웃음이 조금씩 옅어 지더니 사늘하게 변해갔다. 여자애들의 시선이 명훈에게 쏠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 터였다. 가만히 있는 명훈의 속마음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모르겠 지만, 빨리 자신들을 도와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설마 저 덩치들을 보고 쫄은 것은 아니겠지? 라고 책망 하는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제야 십 원짜리 욕을 내뱉던 검은 양복의 덩치들이 뭔 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여자애들의 시선이 누군가에게 쏠려 있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조용히 고개를 돌려 여자애들의 시선 끝을 보더니 피식 하고 웃기 시작했다. “킥킥. 설마 저 성냥개비 같은 새끼 믿고 포장마차 문을 연거야? 이거 상당히 실망인데?” “큭큭큭. 설마…. 우리를 그렇게 까지 무시 했을라고.” “아뇨. 형님. 저년들 눈알 좀 보십쇼. 형님. 저 조막만한 새끼만 보고 있습니다요. 형님. 정말 현철자식 말대로 저 새끼 믿고 문을 연 것 같습니다. 형님.” 덩치들의 대화를 보니 저기서 키가 가장 작고 단단한 체 격을 가진 녀석이 이 무리의 머리 같았다. 순간 명훈이 피식 웃었다. 여자애들은 아직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덩치들이 내뱉었던 협박이 진실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명훈은 잠시 여자애들을 바라보며 살짝 웃어줬다. 비웃음이 아닌 따듯한, 걱정하지 말라는 웃음이었다. “저거 보십쇼. 형님. 웃습니다. 형님.” “참나. 지금 장난하나…. 너희들 나가서 손 좀 보고와. 저 조막만한 새끼를 내가 신경 써야 되겠냐? 어서 끌고 나 가! 난 여기서…. 응?” 순간 포장마차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휘둥그레졌다. 덩치들 말로 멀쩡히 서있던 조막만한 새끼가 한순간에 사라진 탓이었다. 바로 그때. 팟! 명훈의 신형이 뒤에 입구를 지키고 있던 가장 덩치가 큰 녀석 앞에 나타났다. 입구에 있던 녀석은 아마도 입구 쪽으로 도망칠 여자애 들을 막기 위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덕에 아무런 거르낌 없이 명훈의 첫 번째 타 자가 된 것이다. 나자빠져도 포장마차에 가장 피해를 안줄 위치였기 때문 이다. “너희들이 나를 비웃을 위치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보 지?” 그것이 그 덩치가 마지막으로 들은 명훈의 목소리였다. 퍽! “커허헉!” 쾅! 콰직! 엥엥엥엥엥! 대충 130킬로그램 정도 나갈 것 같은 덩치 녀석이 명훈 의 한방에 허공을 붕떴다. 그리고는 약 5M 밖에 주차 돼있던 검은 승용차에 그대 로 들이 박았던 것이다. 그 날아간 덩치로 인해 검은 승용차의 문짝은 그대로 일 그러졌고 창은 깨졌으며 도난방지 벨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한 순간이었다. 덩치들은 어안이벙벙이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긴 했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주먹한방에 사람이 날아갔다. 그것도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던 봉팔이가 붕 떠서 새처 럼 말이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자애들도 그 엄청난 모습에 놀라고 있었지만, 곧 환성 을 지르기 시작했다. “예! 명훈이 짱!” “꺄악! 너무 멋있어요!” 그 시원한 한방의 모습에 여자들은 덩치들의 위협이 줬 던 두려움에서 벗어 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덩치들은 그런 상황임에도 아직 뭐가 뭔지 알 수 없었 다. 사람이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한방에 사람을 날리 고 다시 사라졌다. 이번에도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던 것이다. 그때 천막 쪽에 가까이 붙어 있던 말 많던 덩치 앞에 명 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 찾나?” “으힉!” “두려운가? 두려운 짓은 왜 했는가?” 싸늘한 명훈의 목소리. 응원하던 여자애들조차 두려움에 말을 잊을 정도였다. 덩달아 포장마차 안에 있는 덩치들 까지 말이다. 그것은 살기였다. 하지만, 아직 기가 완전하지 못해 한명에게만 살기를 싫 어 보내는 것이 불가능 했기에 생긴 현상이었다. 다행인 것은 끝까지 버티고 있던 손님들 모두가 사건이 커질 것 같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쳐나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 포장마차 안에는 손님들이 없었다. 명훈은 그렇게 굳어버린 덩치를 향해 싸늘한 미소를 뿌 렸다. “이제 죽어도 나를 원망하지마라.” 그 말을 마치고 바로 명훈의 주먹이 자신 앞에 겁에 질 린 듯 서있는 덩치를 향해 다시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 헥헥... 힘들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조금 시간을 오버한것 같네요.. 그래도 기다려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그럼 다음편은 내일 오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꿈들 꾸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57 회] 날 짜 2004-11-27 조회 / 추천 14168 / 118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도시 정벌하다 명훈은 그렇게 굳어버린 덩치를 향해 싸늘한 미소를 뿌 렸다. “이제 죽어도 나를 원망하지마라.” 그 말을 마치고 바로 명훈의 주먹이 자신 앞에 겁에 질 린 듯 서있는 덩치를 향해 다시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찢어지는 소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명훈은 주먹에 약간의 내력만 주입했다. 그 이상의 힘을 사용하게 되면 녀석이 날아가며 천막이 찢어지기 때문이었다. 명훈의 주먹은 정확하게 녀석의 아구를 갈겼다. 퍼억! “꺼어어어어억!” 명훈의 주먹 한방에 왼쪽 안면이 짜부러지며 그 부분에 있는 이빨이 모두 ‘두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 어졌다. 돈을 주고 이빨을 맞추지 않는 이상 앞으로 절대 왼쪽으 론 음식을 씹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명훈의 주먹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주저앉은 녀석의 멱살을 왼팔로 들어 올리자 약 110킬 로그램 정도 나가 보이는 거구가 번쩍 들어 올려졌다. 모두의 눈이 다시 한번 동그랗게 변했다. “어, 어….” 들어 올려진 녀석. 이미 이빨을 잃은 고통도 공포로 인해 잊었다. 놀란 눈으로 명훈을 바라보며 질질 눈물을 흘렸다. 그의 입이 웅얼거리며 뭔가를 말했다. 발음이 상당히 새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하, 하언안 알어수세어! 사시은 아그얼에어!” “뭐? 한번만 살려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허, 참.” 명훈은 힙겹게 녀석의 말을 끝까지 들어줬다. 사실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었다. 바로 다른 덩치 녀석들이 그것을 보고 공포에 떨도록 만 든 것이다. 그런 명훈의 생각은 효과가 대단했다. 덩치 녀석들이 모두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여자애들도 함께 굳어 버린 것이었다. 거기다가 몇몇은 두려움에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이거 부작용이 심각하군. 빨리 처리해야겠어.’ 명훈은 생각을 마치자마자 말을 이었다. “한번만 살려달라고? 죽을 짓을 왜 했어? 다시는 안 그 런다고? 안 그럴 짓을 왜 한거야?” “…….” 녀석은 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더니 미친 듯이 울부짖 었다. 명훈이 지금 무슨 말을 해도 팰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탓이다. “우아아아아앙!” 마치 곰이 포효하는 듯한 비명이었다. “시끄러!” 퍽! 부직! 주먹은 정확하게 녀석의 코로 향했고, 그댈 코뼈를 아작 냈다. 부러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가루로 만든 것이다. “뭐, 미안한 감정도 있긴 하다. 잘생긴 얼굴도 아닌데 코뼈까지 아작 내서. 그러나 네가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 게 한 것을 생각해라. 네가 왜 당했는가를 말이다.” “…우, 우어어어…….” 명훈의 차가운 한마디. 녀석은 봇물이라도 터진 듯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여자애들도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왠지 자신들의 잘못까지 집어서 말한 것 같은 느낌을 지 울 수가 없는 것이다. 녀석을 바닥에 휙 집어 던진 명훈. 결국 공포와 참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녀석은 결국 기 절하고 말았다. 명훈이 차가운 시선을 아직 남아 있는 덩치 두 명에게 돌렸다. 둘은 반격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미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타났다하는 것을 목격했다. 또, 주먹 한방에 왼쪽에 있는 모든 치아가 무너진 것. 그것도 모자라 110킬로그램이 넘는 녀석을 가볍게 들었 다 놓았다 한 것. 주먹 한방에 130킬로그램짜리 녀석을 5미터가 넘도록 날려버린 것. 더 이상 무슨 짓을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덩치가 두 명이 굳어 있을 만한 이유는 충분했던 것이 다. 이 두 녀석은 사실 조직에서 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대충 돌격대장 정도 된다는 말이다. 각각 미친 재떨이와 돌주먹이라 불렸다. 이름은 보통사람들이 듣기엔 우스웠다. 하지만, 타 조직에서도 이 둘의 이름만대도 인정해 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인간이긴 거부한 것과 같은 신위를 보여준 명훈 의 앞에서는 에프킬러 맞은 바퀴 벌레에 불과했다. 파리약 맞고 앵앵거리며 이리저리 벽에 부딪히는 똥파리 에 불과했다. 명훈의 저 조그마한 몸이 마치 거짓말처럼 보일 정도였 다. 저 조그마한 껍질을 벗기면 외계인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 명훈이 입을 열었다. 살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이다. “이 다음은 누가 좋을까?” 순간 두 녀석은 번개와도 같은 움직임으로 서로를 가리 켰다. 그것을 목격한 두 녀석은 서로의 얼굴이 굳어져 버렸다. 각자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개죽음 앞에서 배신이 무엇이란 말인가? 우선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둘을 머릿속을 지배하더니 종국엔 자신들 이 보여준 행동에 대해서 합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런 둘의 모습에 명훈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누가 먼저 맞느냐 일 뿐이지, 결국 둘 다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훈은 둘을 결코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누가 현민이를 때렸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 알고 있었다. 저 조직원들 중 하나가 현민이를 구타한 녀석이란 것을 말이다. 물어봐서 그 녀석만 패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명훈은 구차하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속편하게 다 패주는 방법도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그냥 다 패다보면 그 사이에 범인도 있지 않겠느 냐 라고 하는 것이었다. ~~~~~~~~~~~~~~~~~~~~~~~~~~~ 잠이 안와서 한편 더 씁니다. 또 모릅니다. 한편 더 쓰게 될지... 뭐, 하나 약속드리는 것은(예전 부터 했던 말이지만^^;;) 제 사전에 비축분은 없습니다. 쓰면 바로 올리는 것이지요.^^ 너무 빨리 올린다고 싫어하는 분들도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말씀하세요. 연재분량을 줄이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58 회] 날 짜 2004-11-27 조회 / 추천 14195 / 110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도시 정벌하다 속편하게 다 패주는 방법도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그냥 다 패다보면 그 사이에 범인도 있지 않겠느 냐 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하나도 놓일 생각일랑 하지도 않았다. 그 놓친 녀석이 현민이를 구타한 범인이라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럼 그 범인 대신 맞은 다른 녀석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길 것이다. 녀석들은 애꿎은 누명 때문에 맞은 것이니 말이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도 한 놈도 남김없이 모 두 패서 반병신을 만들 생각이었다. 명훈이 씨익 웃으며 덩치 한 녀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 며 입을 열었다. “너로 결정했다.” 순간 녀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명훈이 천천히 움직이자 갑자기 도리질을 쳐댔다. “아, 아냐. 아냐. 나 말고 저기 미친 재떨이 녀석을 패달 라니까?!” 갑자기 다가가던 명훈이 멈춰서서 물었다. “왜?” “저 녀석이 나보다 더 나쁜 놈이야. 저 녀석이 나보다 더 사람을 많이 죽였고, 또, 나보다 사람을 많이 팼어. 그 리고 돈도 강탈했어.” “호오….” 덩치 녀석은 당황했는지 횡설수설 말을 내뱉기 시작했 다. 하지만, 명훈의 귀가 솔깃할 정도로 흥미 있는 이야기였 다. 그때 명훈이 그 덩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자, 다 급해지는 것은 미친 재떨이라 불린 덩치였다. 슬쩍 자신을 향해 눈길을 던지는 명훈의 눈길. 소름이 끼쳤다. 도망이라고 치고 싶었다. 하지만, 도망칠 자신이 없었다. 그 눈에 보이지도 않는 스피드.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도 돌주먹 녀석이 택한 물귀신 작전을 사용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 아니라구. 난 아냐. 저 돌주먹 녀석이 더 나쁜 녀석 이라니까?! 강간에 생매장에 마약까지! 안하는 범죄가 없 어. 저 녀석이 진정한 사회악이라고. 난 의외로 선량한 시 민이란 말야.” 돌주먹의 눈길이 차가워졌다. “저, 저 미친 개새끼가!” “뭐? 너 지금 돌았어? 형님한테 개, 개새끼?” “그래 이 씹새꺄. 네가 형님이야? 형님 노릇 한 번 해본 적 있냐고!” “그래 너 잘 걸렸다. 속으로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 단 말이지? 그래 미안하다 네 개 같은 속마음 몰라줘서!” “고마운데? 내 마음 알아줘서? 한번 맞짱 뜨자. 지금까 지 형님이라고 대우해 주긴 했지만, 너란 새끼한테 진다고 생각해 본적 한번도 없었어!” “허, 좋다. 한번 뜨자. 씨발. 뜨고 같이 죽어보자!”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서로 험담한 것 까진 좋았다. 그 험담을 들으면 들을수록 녀석들을 팰 때 죄책감이 사 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만히 놔뒀더니 이상한 형식으로 변모되기 시작 한 것이다. 명훈은 기가 막혔다. 웃음도 안나오는 상황을 보니 어처구니도 없었다. 그러나 왠지 재미는 있었다. 여자애들조차 조금 전의 살기에서 벗어나 지금의 상황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마치 영화라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상하듯 소곤거리기까지 했다. 명훈은 슬쩍 실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때 두 덩치가 명훈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봤 다. “뭐, 뭐냐?” “미안하오. 죽기 전에 내 부탁 하나만 들어 줄 수 없겠 소?” “미안한데 당신에게 맞아 죽기 전에 부작하나만 하고 싶 네.” 동시에 튀어나온 말에 명훈은 약간 이해하기 힘들었지 만,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둘이서 한판 붙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이건가?” “그렇소.” “그렇다네!” 순간 둘의 눈길이 마주치며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 다. 한참 둘의 꼴 같지도 않은 꼴을 지켜보던 명훈.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밤을 세시는 분들이 많아 서둘러 한편 올려봅니다. 3.6k 바이트 정도 내요.. 4k 체우려 했건만 큭! 뭐, 다음 글은 5k로 쓰면 되겠죠?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59 회] 날 짜 2004-11-27 조회 / 추천 14426 / 22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도시 정벌하다 순간 둘의 눈길이 마주치며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 다. 한참 둘의 꼴 같지도 않은 꼴을 지켜보던 명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좋다. 너희들 마지막 소원 들어주마.” 그 말을 던지고 여자애들을 바라보자 명훈의 한마디에 신이 난 표정이었다. 명훈이가 그 말을 하길 기다렸다는 표정들이었다. 자신들도 싸우긴 하지만, 막상 싸움 구경은 하기 힘들었 다. 여자애들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싸움 구경을 공짜로 구경하게 됐으니 명훈에게 고마울 정도였다. 명훈의 행동하나하나를 볼 때면 분명 멋있었지만, 전체 를 보면 결코 멋있다고 단정 짓기 힘들었다. 끔찍한 장면을 빼면 애와 어른의 싸움처럼 시시할 정도 였기 때문이다. 이제야 제대로 된 싸움을 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여자애들이었다. “개새꺄. 좋다. 덤벼라.” “형님 웃기고 자빠졌네. 형님이라는 게 동생을 팔아먹 어? 이 개새끼! 도너츠 먹다가 코 막히는 소리하고 있네.” 둘의 신경전은 길지 않았다. 돌주먹의 선공이 있었다. 그러나 거리가 있었기에 가볍게 피하는 재떨이였다. 돌주먹이 조금 급한 마음에 서둘렀던 탓이다. 재떨이가 그런 좋은 빈틈을 놓칠 이유는 없었다. 돌주먹의 타점이 맞지 않아 무개중심이 흔들리자 들고 있던 재떨이로 머리를 노리고 휘둘렀던 것이다. 그러나 돌주먹은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자신의 허점을 이용해 일부러 재떨이를 끌어들인 것이었 다. 재떨이가 수직으로 자신의 정수리를 노리자 돌주먹은 고 개를 약간 옆으로 틀어서 어깨 부분으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재떨이가 휘둘렀던 재떨이는 정확하게 돌주먹의 어깨 쪽으로 떨어졌고, 재떨이는 당황할 수밖에 없게 됐 다. 이미 떨어지는 재떨이를 회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한 것이다. 살을 주고 뼈를 깎는 수법에 넘어간 것이다. 돌주먹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깨를 강타당하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휘저었으나, 뻗어나가는 주먹의 힘을 결코 빼지 않았다. 퍼억! 정확하게 재떨이의 인중부분에 직격했다. 그 덕에 재떨이는 앞니 두개와 코뼈가 부러지는 수난을 겪게 됐다. 하지만, 고통을 드러내지 않는 재떨이. 아직 승부가 나지 않은 탓이다. 돌주먹도 재떨이가 이 정도로 무너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 않았었는지 벌써부터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참으로 흥미진진한 싸움이었다. 명훈은 눈을 땔 수 없었다. 자신이 보기에는 엉성하지만, 허와 허를 찌르는 기술은 가히 병법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명훈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니 여자애들은 어땠겠는가? 이미 흥분한 상태였다. 자신들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휘두를 정도였으니 말이 다. 명훈이 그런 그녀들을 확인하고 슬쩍 웃은 후 다시 시선 을 돌리자 재떨이의 반격이 시작됐다. 얼굴은 이미 피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눈은 살기(殺氣) 로 범벅된 투기(鬪氣)가 가득했다. 재떨이가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재떨이를 힘껏 집어 던 졌다. 그러자 돌주먹은 피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그 순간을 노린 것이다.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 오르더니 녀석이 피한 방향을 노 리고 발길질을 한 것이었다. 피할 수도 없었다. 돌주먹은 큰 한방을 맞았고, 잠시 휘청였다. 턱에 스쳐서 약간 어찔어찔 했던 것이다. 그 찬스를 놓칠 재떨이가 아니었다. 이미 다른 재떨이를 들고 돌주먹에게 다가간 것이다. 프억! “으악!”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재떨이가 정확하게 휘청이던 돌주먹의 이마에 명중했던 것이다. 붉은 선지가 한순간 크게 튀더니 곧 줄줄 흘러나오기 시 작했다. 그 사이에 명훈은 뒤로 슬쩍 빠져줬다. 혹시나 피가 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예전에 명훈 자신의 옷에 묻은 피를 보고 걱정 했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 두 덩치의 모습. 얼굴이 피 떡이 된 탓인지 서로의 얼굴은 형용할 수 없 을 정도로 끔찍했다. 거기다 이죽거리기까지…. 마치 피로 세수라도 한 악마의 얼굴인 것 같아보였다. 각자 자신의 피로 얼굴을 물들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두 녀석은 그 상태에서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그때 돌주먹 녀석이 재떨이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더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저 새끼 반칙이야!” 순간 돌주먹의 한마디에 다시 요상하게 흐르는 분위기였 다. “뭐, 뭐? 무슨 개소리냐?! 내가 무슨 반칙을 했다는거 냐?!” 돌주먹의 도발에 쉽게 넘어간 재떨이. 그러나 돌주먹의 한마디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너 이 새꺄. 싸우는 도중에 웃지마. 그거 반칙이야!” “또 뭔 개수작이냐?!” “씨, 씨발 존니 웃기잖아! 푸하하하하!” 돌주먹의 말에 명훈이도 같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돌주먹이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 차린 탓이다. “푸훗! 푸후후후훗! 푸하하하하!” 명훈이도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여자애들도 함께 웃기 시작했다. 진짜 정신 나간 것처럼 배 잡고 웃기까지 했다. 그러자 당황스러워진 재떨이. 도무지 자신은 이해 할 수 없었다. 왜 웃는 지를 말이다. 도대체 왜?! 그렇다고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혼자만 모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거울이 없었으니 말이다. 사실은 재떨이의 부러진 앞니 두개 때문이었다. 진지하게 폼을 잡고 싸우는 것까진 좋았다. 피를 흘리는 투혼까지 불 싸지르는 것까진 좋았다 이 말 이다. 그런데 돌주먹이 웃자 함께 따라웃은게 실수였다. 그 잔혹한 얼굴에 앞니 빠진 웃음이라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자신만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결국 재떨이의 알 수 없는 쪽팔림으로 변해갔고, 그것이 쌓이자 분노로 변한 것은 시간 문제였다. 명훈은 그렇다 치고 여자애들까지 가세하여 웃자 한순간 에 분노가 폭발 한 것이다. 그렇다고 여자애들에게 손을 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명훈이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명훈이 움직인다면 자신은 찍소리도 못 내고 뻗을 확률 이 높았다. 그러자 쌓인 분노는 당연히 이 웃음의 시초인 돌주먹에 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미 모든 분노는 돌주먹에게 전향되어 있었다. 전향하지 않았더라도 시간이 지났으면 이렇게 되었을 것 이다. 돌주먹이 아직도 배를 잡곤, 사람 민망할 정도로 미친 듯이 웃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전 이미 탈진했습니다.... 절 찾지 마십시오.. (모든 걸 불태웠어... 새 하얗게.....) 오늘 더 올릴 수 도 있고, 올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 뎃글을 보고 결정하지요... 뎃글을... 큭큭큭............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60 회] 날 짜 2004-11-27 조회 / 추천 14148 / 175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도시 정벌하다 돌주먹이 아직도 배를 잡곤, 사람 민망할 정도로 미친 듯이 웃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주먹이 웃고 있는 모습을 참지 못한 재떨이가 달려들 었다. 전광석화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의 빠르기였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 해도 한순간에 돌주먹 품속을 파고 들어가는 재떨이의 실력은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명훈조차 감탄했으니 말이다. 물론 명훈이 생각하기에는 한없이 둔해 보였다. 다만 그가 싸우는 싸움방식이 마음에 든 탓이었다. 품에 들어간 재떨이의 주먹은 정확하게 돌주먹의 인중을 후려갈겼다. 뿌득! 돌주먹의 앞니가 허공을 날았다. 하지만 뽑힌 것이 아니라 어설프게 절반이 부러졌다. 그것도 왼쪽 앞니 하나만 말이다. 아마도 자신과 같이 만들어줄 생각인 듯 싶었다. “이, 이 새끼가!” 돌주먹이 당황하여 쌍소리를 뱉는 순간. 재떨이가 들고 있던 재떨이가 날아갔다. 휙휙휙휙! 퍼억! “크억!” 돌주먹에게 아직 붙어 있던 앞니를 정확하게 노린 재떨 이. 이번에는 그의 원대로 돌주먹의 앞니를 확실하게 뽑아줬 다. “크아아악! 이 새새기가!” 아마도 버릇처럼 ‘개새끼가’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빨이 뽑인 것은 나쁘지 않았다고 쳐도 나아온 재떨이 로 입술을 부딪힌 것이기에 입술이 너덜너덜 해져 있었다. “크하하하! 십새기! 네가 삼히(감히) 우서?!” 갈수록 발음 세는 소리가 심해졌다. 이빨이 없는 탓이리라. 그 말에 고통을 참기 위해 숨을 몰아쉬는 돌주먹이었다. 서서히 절정으로 치닫는 둘이었다. 어차피 명훈에게 맞아 죽을 거 자신을 열 받게 한 눈앞 의 녀석을 상대로 신나게, 말 그대로 피 터지도록 주먹질 을 시도한 둘이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 아깝지 않다. 너 죽고 나 죽자’라고 몸으로 말하는 것 같은 돌주먹과 재떨이었다. 바닥을 뒹굴며 치고 박는 둘. 그들을 여전히 반짝이는 눈망울로 지켜보는 여자애들. 보통 여자애들이었다면 공포의 비명이라도 질렀을 것이 다. 하지만, 여기 있는 애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여자애들의 관전소감을 말하자면, ‘이종격투기 경기보다 흥미진진하다’였다. 이쪽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고, 그것은 룰이 없다지 만 그래도 경기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참 다독거리던 녀석들. 싸우다 지쳤는지 바닥에 널 부러지는 재떨이와 돌주먹이 었다. 개싸움으로 변하자 더 이상 못 보겠다고 생각하던 명훈. 그 둘을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어? 어? 어?” 순간 당혹감에 의문형 비명을 지르는 두 덩치였다. 끌려가는 순간 계속 설마설마 했다. 나름대로 계산을 충분히 하고 만족에 휩싸여 있던 둘이 었기 때문이다. 명훈이 내지른 가벼운 한방에 맞은 부근의 옥수수가 다 날아간 것을 목격한 그들이다. 이미 저기 기절한 병신은 재기 불능일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그러한 생각한 것이었다. 차라리 자신들끼리 싸우면 병신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저 무지막지한 주먹에 맞는 것 보다 만만한 상대끼리 만 나서 싸우면 약간 심하긴 할 테지만 적당히 피도 터질 테 니 자신들의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이나마 측은한 생 각이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 그들이었던 것이다. 설마 피떡이 되도록 싸웠는데 더 건드리겠는 가? 라는 생각에 적당히 하다 바닥에 드러누운 것이었는데, 자신들 을 질질 끌고 가는 모습. 심상치가 않았다. 그냥 밖에 버리기 위해 가는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어, 어실 가는 서쇼?(어딜 가는 거요?)” 혹시나 모를 두려움에 입을 여는 두 사람이다. 그들의 계산은 나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뛰어나기 까지 했다. 상당한 심리적 요소가 들어간 작전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설마, 똥 싸있는 자리 위에서 다 시 똥 누지 않겠지?’라는 고도의 심리전술을 사용했던 것 이다. 그러나 그 둘은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것을 몰랐다. 정말로 설마 다른 사람이 똥 눈자리 위에 태연하게 앉아 서 똥을 눌 인간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해본 것이다. “서, 설마?!” 갈수록 눈이 커지는 두 덩치. 그런 덩치들의 마음을 아는건지 모르는 건지 명훈이 이 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이를 악 다문 상태에서 흘러나온 싸늘한 목소리. “크흐흐흐흐. 이제 내 차롄가?” 그 한마디에 바짝 얼어버린 그들이었다. 아파트 단지의 어느 한적한 곳까지 질질 끌고 간 명훈. 그곳에 그 둘을 휙 집어 던지고 다시 포장마차로 돌아가 서 기절해 있는 두 녀석마저 끌고 가 같은 장소에 휙 집어 던졌다. “윽!” “컥!” 기절한 상태에서 깨어나기 좋은 충격이었다. “그럼 이제 나만의 쑈 타임을 시작해 볼까?” 명훈의 눈이 어둠 속에서 번쩍 빛을 품은 것은 그들. 덩치 네 명의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 에구... 네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ㅁ; 피곤에 죽겠네요... 다시 조금더 잠을 자야 할 것 같은... 아는 동생들이 너무 많이 올린다고 자신들은 뭐해먹냐며 연재분량을 줄이라더군요 ㅡ,.ㅡ;;;; 하루에 80k씩 쓰는 사람이 어딨냐며 쉬라고 하는데, ㅡㅡ;;; (ㅋㅋ, 여깄다고 해줬죠ㅡㅡ;;) 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전 일요일은 쉰답니다^^;; 내일이죠? 일요일에는 가볍게 오연참만 하고 하루종일 푹 쉬어야 겠습니다. (몸도 추스리구..) 쿨럭... 에구.. 실혼도 소마도 써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다쓰나.... 온 몸이 다 쑤시는 한가입니다.ㅡㅡ;; 누가 파쓰좀 소포로 붙여줘욧!!! 다음 편은 눈좀 붙히고 일어나서 쓰겠습니다....(몇시간 후에 뵈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61 회] 날 짜 2004-11-27 조회 / 추천 13774 / 22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고교 전설되다 8. 명훈, 고교 전설되다 다음 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사실 이야기를 듣고 보면 뒤집힐 만도 했다. 안 뒤집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리라. 어떻게 주워들었는지 전날에 있었던 명훈이 이야기가 떠 돌기 시작한 것이다. 조폭 넷을 한주먹에 떡으로 만든 사건이 퍼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목격한 여자애들이 퍼트렸던 것은 아니 다. 우연히 학원 끝나고 지나가던 학생들이 직접 목격한 것 이란다. 한동안 자유로워졌던 교실. 한순간 꽁꽁 얼어붙은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었다. 숨쉬면 죽기라도 한다고 생각하는지 애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선생들도 이 소문을 결국 알게 됐다. 하지만, 그냥 뜬소문이라는 결론을 내고 쉬쉬 넘어갔다. 그러나 그런 결론을 낸 선생들. 수업시간에 명훈 앞에서 몸이 굳는 것은 어쩔 수 없었 다. 말들은 헛소문이라고 했지만, 명훈이 조폭을 쓰러트렸다 는 이야기가 십중팔구 사실일거라 생각하는 선생들이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몸이 굳는 것은 당연한 생리현상일 텐데…. 목소리도 뻣뻣하고 행동조차 뻣뻣하니 학생들이 비웃을 만도 했다. 그러나 자신들도 비웃을 처지가 아니었다. 선생들보다 더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군인들이 연병장 돌고 기합이라도 받은 듯 군기가 꽉 잡혀 있는 모습이었다. 선생들은 조용한 학생들의 모습에 수업하기 편했지만, 명훈이가 있는 9반을 수업하고 오면 어깨가 뻐근하다며 쉬지 않으며 두드리는 선생들이었다. 너무 긴장한 탓이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하나같이 말이다. 거기다가 여자 수학 선생은 자기 수업시간이 되자 생리 통이라는 핑계로 그 수업시간을 피할 정도였다. 그 덕에 애들은 자습시간을 얻을 수 있었으나, 그게 더 지옥 같았다. 뭐라도 앞에서 얼쩡거리며 주절거리는 것이 있어야 했는 데 아무것도 없자 텅 빈 교탁과 녹색 칠판만 뚫어지게 봐 야 했던 것이다.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다 생각하는 애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용기를 낸 미지와 여자애들이 명훈에 게 다가갔다. 명훈이는 그런 미지들을 반겨주며 지금까지 닫혀 있던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명훈이가 잡담을 나누기 시작하자 교실에 있는 애들은 조금 안심이 됐다. 그러나 바로 그때. “명훈아, 너 사거리 포장마차에서 조폭하고 싸웠다는데 사실이야?” 직설적인 미지의 질문. 명훈은 숨길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실이야.” 단순한 명훈의 한마디. 별말 아니었지만, 교실을 한순간에 얼음바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애들을 한 순간 굳어버리도록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 다. 미지의 궁금증을 저주하는 애들이었다. 짐작과 사실 확인은 그 크기가 달랐다. 가슴에 돌덩이가 앉은 기분이었다. ‘나 내일 학교 나오기 싫은데….’ 오늘 따라 처음으로 일심동체를 이룬 학급이었다. 다음날은 타 학교까지 그 소문이 퍼졌다. 그쯤 되자 난리도 아니었다. 타 학교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명훈이의 얼굴을 보겠 다며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소문만 믿고 온 것이라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학교 애들을 닦달하고 회유도 협박도 해봤다. 하지만, 모두가 외면했다. 협박을 하고 폭력을 휘둘러도 본 애들은 명훈이네 학교 애들의 반응에 경악을 하고 말았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내가 사실을 밝힌 것이 명훈이 귀 에 들어가면 어차피 죽은 목숨이야. 그냥 명훈이한테 죽느 니 너희들한테 몇 대 맞을 란다. 그냥 패라. 패. 죽여!” 한결같은 반응에 원정 나온 타 학교 일진 애들은 기가 질 릴 수밖에 없었다. ~~~~~~~~~~~~~~~~~~~~~~~~~~~~~~~ 흥미진진! 개봉박두!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62 회] 날 짜 2004-11-28 조회 / 추천 13482 / 106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고교 전설되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내가 사실을 밝힌 것이 명훈이 귀 에 들어가면 어차피 죽은 목숨이야. 그냥 명훈이한테 죽느 니 너희들한테 몇 대 맞을 란다. 그냥 패라. 패. 죽여!” 한결같은 반응에 원정 나온 타 학교 일진 애들은 기가 질 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녀석이기에 애들을 이렇게 휘어잡고 있는지 더욱더 궁금해져만 갔다. 자신들이 혹시나 지금 실수 하는 것이 아닌 가, 발을 지 금이라도 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자신들의 우상이나 다름없었던 명진파의 행동대장 재떨 이. 거기다가 돌주먹을 포함한 행동대원들. 그들을 한주먹에 때려눕힌 사람. 누구인지 알고 싶은 것은 당연 할 지도 몰랐다. 명진파에서는 최대한 그 사실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사실이었다. 고등학생에게 떡이 되도록 맞아서 반병신이 된 수하들이 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는 명진파의 명진이다. 그런 상황인데 어떻게 소문을 사실이라고 수긍 할 수 있 겠는가? 아니라고 우길 뿐이었다. 허나, 이미 퍼진 소문이다. 결코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결국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물결처럼 퍼져나갔 다. 결국 타교 일진들이 원정을 오게 된 계기가 됐다.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선 탓이었다. 결국엔 학교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 명훈이라는 자식도 분명 이 학교 일진일 테니 분명 몰려다닐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그보다 일진이기에 학교가 끝나기 전 땡땡이 칠 것이라 생각한 그들이다. 주변에 싸움 잘하기로 위명이 자자한 태을 공고 일진들 과 명천 상고, 그리고 이름 있는 인문계인 화산 고교의 일 진들이 이곳저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틈틈이 타 학교 여학생들도 운동장 이곳저곳에서 보였는 데, 두세 명씩 무리 짓고 구석에 쪼그려 앉아 낄낄거리며 놀고 있었다. 그 타 학교 여학생들 역시 명훈의 실체를 확인하러 온 여자 일진들이 태반이었다. 그때 결국 아슬아슬 견제하던 선이 무너지게 됐다. 태을 공고의 한 녀석이 짜증을 내며 담배를 빨던 도중 명천상고 녀석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아마도 자신들 쪽으로 날아오는 담배연기 신경쓰이는 모 습이었다. 그것을 보며 태을 공고 녀석이 피식 웃더니 그 명천상고 녀석을 향해 담배연기를 길게 품었다. “후~. 뭘 봐? 도그 버드(dog bird)야.” “뭐, 도그 버드?” 명천상고 녀석이 못 알아듣는 것 같자 침을 찍 뱉으며 “씨발 공부 좀 해라. 공부 좀. 그러니 머리에 똥 들었다 는 소리나 듣지. 도그. 버드. 개. 새. 그러니 즉 개새야.” “킥킥킥킥.” “이 개새끼들이!” 순식간에 웃음들을 멈추고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서로 야려보던 그들은 평소에도 견원지간으로 유명했다. 그때 그 학교 짱 들이 직접 주먹질을 하려는 애들을 막 아냈다. “그만둬.” “싸우지들 마라.” 그 말을 끝으로 각 학교를 대표하는 짱 들. 서로를 노려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이럴 때 한마디 해주고 싶겠죠? 니들이 노려보면 어쩔 건데? 어쩔라고? 라고.... 잠시 까불어봤습니다.ㅡㅡ;; 그럼 다음화로^^ (가주실거죠?)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63 회] 날 짜 2004-11-28 조회 / 추천 13381 / 105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고교 전설되다 “오늘은 싸우지 말자.”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신경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늘 같은 날 양패구상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 다. 서로 비슷한 전력이었다. 싸우면 둘 다 피 볼 것을 예상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그때 학교 종례 종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태을 공고에 있던 녀석이 담배를 자신의 침으로 끄며 투 덜거렸다. “니미…. 무슨 놈의 일진이 학교 수업을 다 받고 지랄이 야?! 지랄이!” 그 한마디에 모두가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 긍했다. 명천상고와 화산고교의 애들까지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 다. 자신들도 명훈이라는 녀석이 학교를 마치고 나올 것이라 곤 생각지 않았다. 적당히 땡땡이 칠만한 시간에 맞춰 이곳을 찾은 것이었 다. 때문에 땡볕에서 다섯 시간동안 공 시간을 날린 것이다. “씨발! 일진의 본분을 알기나 하는 녀석이야?!” 그때 다시 똑같은 목소리가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진의 본분?” 타 학교에서도 자신의 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단 걸 깨달 은 녀석. 자신도 모르게 약간 목소리에 힘을 줘서 대꾸했다. “그래, 일진의 본분.” “그게 뭔데?” “씨발, 너도 몰라? 일진의 본분! 학교를 아침 일찍 가지 마라. 중간에 땡땡이는 필수. 피씨방에서 밤새는 것은 일 상다반. 당구장을 빠트리는 녀석은 일진도 아니다. 특히나 학교 수업을 끝까지 받는 녀석은 일진이 될 자격이 없다.”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논리 정연하게 말을 늘어놓는 녀 석의 말재간에 모두가 피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기가 막혔던 것이다. 그중 몇 놈은 완전하게 수긍하는 표정이었기에 더욱 웃 음을 참지 못하는 일진들이었다. 그때만큼은 각자 라이벌들이었지만 분위기가 부드러워 졌다. 그 녀석의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애들 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홍수 때 봇물 터지듯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애들을 보자 긴장하는 일진들이었다. 그 사이에 소문만 무성한 그 괴물 같은 녀석이 있을 지 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일진처럼 보이는 녀석은 하나도 보 이지 않았다. 다 공부하는 범생들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그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괴물 같은 명훈이란 녀석이, 이 이 질감의 주인공임을 인식 못하는 그들이었다. 설마, 이 학교의 일진들을 다 병원신세지게 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들이 나오는 것이 조금씩 줄어들자 욕설을 내뱉기 시 작했다. “씨발. 우리가 설마 너무 늦게 온 건가?” “하긴, 그 정도로 날리는 녀석이라면 우리가 온 3교시 이전에 땡땡이 쳤을 수도 있지.” “젠장.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군.” 이 학교에서 명훈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허탈하기만한 그들이었다. 허탈감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들. 서로 눈치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로를 충분히 견제했다. 이번 일로 각 학교 일진들이 어느 정도 열 받은 상태였 기에 저도 모르게 뒤통수 깔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용히 교문 밖을 벗어나던 중이었다. 그들은 한 여학생의 목소리 때문에 발걸음을 멈추고 뒤 를 돌아보게 됐다. “명훈아~!” ‘명훈?’ 경악어린 눈빛으로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던 그들. 설마 종례시간까지 다 받고 뉘엿뉘엿 나올 것이라곤…. 믿기지가 않았다. 여하튼 그들은 제각기 나름대로 명훈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생각하고 있던 명훈의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답지 않은 험상궂은 얼굴. 사내같이 각진 사각형의 얼굴형. 털이 무성한 턱 주변. 떡 벌어진 어깨. 190이상의 거대한 덩치. 약간 사실과는 핀치가 많이 어긋나긴 했지만, 녀석들은 나름대로 거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민으로 보이는 애는 없었다. 조용히 교과서를 펼치고 공부하는 범생이 밖에 눈에 들 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를 쫓는 귀엽게 생긴 네 명의 여학생 무리가 보였 다. ‘설마….’ ‘내가 잘못 들었나보군.’ 모두들 자신들의 신경이 곤두섰기에 환청을 들었다고 생 각하며 스스로 자위했다. 다시 등을 돌리고 각자 길을 나서려던 찰나. 다시 다른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명훈아!” 이번에는 정확하게 들었다.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잠시 후 연 이어서 몇 번이나 명훈이라고 한 것이다. 이번에는 확실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학교 구석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여학생들이 잽싸게 담 배를 끄고 어딘가를 향해 종종걸음을 옮기고 있던 것이다. 이번에는 확실하다는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 각 학 교 일진들. 날나리로 보이는 여자애들이었다. 그녀들이 가는 곳에 분명 그 소문의 주인공이 있으리 라…. 기대를 하고 한참 운동장 안이나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왠지 명훈이라고 보이는 애는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들이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르다고 결론을 내 리게 됐다. 하지만, 큰 덩치는 보이지 않았다. 농구대 근처에 뚱뚱해 보이는 녀석은 있었지만…. 한참 그 돼지를 보던 일진들.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저렇게 미련 맞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둔감한 녀석이 현 민이일 리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거기다가 여자애들이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던 방황과도 많이 달랐던 것이다.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64 회] 날 짜 2004-11-28 조회 / 추천 13439 / 10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고교 전설되다 그러나 더 이상한 것은 그 여자애들의 방향이란 점이었 다. 그 애들이 가는 방향을 보며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책을 읽으면서 가는 범생이 뿐이었다. 그 옆에 재잘거리며 달라붙은 여자애들도 있었지만, 설 마 저렇게 호리호리할 정도로 마르고 예쁘장하게 생긴 사 내새끼가 명훈이일 리가 없었다. 자신들이 보더라도 영락없이 완벽한 왕따의 표본 형이었 기 때문이었다. 그때 바로 완벽한 결정타를 먹을 수 있었다. 여자애가 그 의심스러운 녀석의 팔짱을 끼며 말을 걸기 시작했던 것이다. “명훈아. 지금 나와?” “응? 너희들 아직 집에 안 갔어? 조금 전에 현민이 병실 에 놀러간다고 했잖아.” 그 말에 자희가 쑥스러운 듯 살짝 혀를 내밀었다. “벌써 갔다 왔지. 그런데 어제 현민이랑 잠깐 이야기 나 눴는데, 뭔가 이상하더라?” “뭐가?” “그 망할 새끼들 네가 때려눕혔다고 하니까 장난하지 말 라며 웃던데?” “맞아. 그래서 사실이라고 말을 해줬는데도, 피식 웃으 면서 됐다고 됐다고 자꾸 이 말만 해서 그냥 넘어가긴 했 지.” “마치 네가 싸우는 것을 모르는 것 같더라?” 자희가 혜영이의 보조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명훈이 자신의 손바닥을 탁치며 자희의 말에 대 답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제야 명훈이는 현민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며칠 전 학교에서 자신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남이야기 하듯 해줬던 것이 기억났던 탓이었다. “그러고 보니 뭔데? 무슨 일이야?” “아무 것도 아니야.” 명훈이 어정쩡하게 대꾸하자 자희, 혜영, 유진, 상미들은 한결같은 눈망울로 눈빛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설명하기 귀찮은 명훈은 조용히 무시해줬다. 명훈이 이렇게 까지 나오자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 렸다. 그제야 명훈 옆에 따라다니는 미지들을 본 자희들은 눈 빛을 날카롭게 하고 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지들은 흠칫했다. 자신들은 그냥 노는 것을 좋아하지 싸움과 그렇게 가까 운 애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앞에 있는 애들은 달랐다. 현민이 패거리라고 불리는 애들이었는데, 하나같이 싸움 실력이 여자들에겐 정평 나 있었던 것이다. 타 학교에서조차 현민이패거리라고 하면 알아줄 정도였 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명훈이를 뺏기고 싶지 않은 미지들이었다. “너희 뭐야?” “우, 우리? 명훈이 친군데….”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약간 움츠리는 미지들의 모습. 유진이가 그런 미지들에게 한마디 했다. “우리는 명훈이랑 갈 곳이 있으니까 어서 집에 가라. 괜 히 다치지 말고.” 하지만, 움직일 생각이 없자 자희가 팔을 살짝 들어 올 리며 한마디 거들었다. “어서 가라고!” 움찔 하긴 했지만, 미지는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며 오 기를 부렸다. 자신들도 명훈이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싫어! 오늘 명훈이랑 같이 놀기로 했단 말이야?!” “이것들 참 말 안 듣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조용히 듣고 있던 명훈이 한마디 내뱉었다. 이런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해. 내 친구들이야.” 미지들의 편을 들어주자 자희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쳇쳇’거렸다. 그러나 미지들은 눈이 다시 하트로 변했다. 설마 자신들의 편을 들어 줄 것이라곤 기대하지도 않았 기 때문이었다. “고, 고마워 명훈아.” “응? 뭐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충 넘어가는 명훈이 더 고마운 미 지였다. 그러나 특별히 미지 편을 든 것도 아니다. 자신이 보기에는 모두 같았다.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단지 명훈의 눈에 힘 있다고 위압적으로 나오는 것이 거 슬렸을 뿐이다. 정리가 되자 다시 걷기 시작하는 명훈이들. 명훈이가 말한 친구라는 한마디 때문에 결코 자희들은 미지에게 험악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명훈의 한마디가 법이 된 그녀들이었던 것이다. 그날의 그 모습을 어떻게 잊겠는가? 꿈보다 더 꿈같았던 그 현실을 직접 확인했던 탓이다. 그 조폭 사내 넷을 죽을 만큼 패고 또 패는 모습. 그때 왠지 충열이와 충원이가 너무 불쌍하다고 느껴졌 다. 충열이와 충원이의 위급했던 상태가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구석에서 열심히 맞고 있던 조폭들과 충열이들이 겹쳐 보 이는 그녀들이었다.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65 회] 날 짜 2004-11-28 조회 / 추천 13573 / 10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고교 전설되다 태을 공고 짱인 정태우. 자신이 끌고 온 여덞 명의 일진 애들을 따라오게 해놓고 이죽거리며 명훈의 앞에서 멈춰섰다. “야,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거든?” 명훈은 그냥 슬쩍 한번 녀석들을 보고는 가볍게 무시했 다. 오히려 명훈보다 자희들과 미지들이 설쳤다. 꼴들을 보아하니 좋은 뜻으로 온 것 같진 않았던 것이 다. “뭐야? 안 꺼져?” “너희들 뭐야? 우리 명훈이한 테 볼일 있어?!” 그런데 우스운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자희들이 미지를 노려봤던 것이다. 뭔가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야, 미지. 너 지금 우리 명훈이라고 했냐?” 순간 당황한 미지. 말을 떠듬었다. “그, 그게 어때서?” “에휴, 그래. 잠시 후에 이야기 하자.” 잠시 그런 여자애들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본 태을 공고의 정태우. 우습지도 않았다. 열불이 ‘확’ 소리를 내며 머리끝까지 번져 오는 듯한 기 분이었다. 참으로 기분이 엿 같았다. 자신이 저기 명훈이라는 녀석에게 말했는데, 녀석이 쌩 깐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여자애들이 나서서 까부는 것 은 더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바로 그때 화산고교와 명천상고 일진 들이 태을공고 정 태우 옆에 늘어서더니 종국에는 명훈이를 둘러쌌다. 다음주가 시험기간이라 교과서를 보던 명훈. 녀석들을 한번 슬쩍 보고 인상을 구겼다. 그리곤 알게 모르게 조용히 책을 덮었다. 명훈 옆에 있던 미지들은 한껏 겁을 먹었다. 이렇게 둘러싼 덩치 큰 남자애들이 위협을 가하고 있던 탓이다. 하지만, 자희들은 달랐다. 분명 보통 같았다면 쫄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들의 곁에 명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도 녀석들의 허풍이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자신들도 모르게 측은한 표정을 한번씩 지어 보여 줬다. 녀석들의 나뒹구는 미래가 보인 탓이다. 그때 명훈이 슬쩍 나서는 것을 느낀 여자애들. 명훈이 나설 수 있게 살짝 몸을 피해줬다. 생각 없이 움직이는 애가 결코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명훈의 나서는 모습을 본 일진 애들은 상황이 달랐다. 지금까지 겁먹은 것처럼 여자애들 품에 숨어 있던 녀석 이 앞으로 나서자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궁금증을 풀기 위해 조금 전 입을 열었던 태을공 고의 정태우가 앞으로 나섰다. “킥킥. 설마 네 이름이 명훈이가 맞냐?” 명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말문을 텄다. “내가 명훈이다.” 명훈의 말에 명천상고의 정치선이 받아졌다. “어쭈 자연스럽게 말 까는거 봐? 씨발. 식용유라도 한 드럼 마셨냐? 존니 매끄럽게 말하는데?” “…….” 별로 웃긴 말은 아니라고 생각 됐지만 일진 녀석들은 미 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 뒤로 명훈이 어떻게 생겼나 구경하러 왔다가 함께 실 망한 다른 학교 여자 날라리 들이 함께 웃었다. 타 학교 여자애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미지들과 자희들 의 얼굴이 굳어졌다. 열이 받은 것이다. 그때 명훈이가 갑자기 가볍게 웃었다. “허, 이 새끼 쪼개는거 봐? 한대 쳐주고 싶은데?” 다시 웃는 녀석들이다. 그런데 명훈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이냐?” 말끝을 슬쩍 이죽거리며 비꼬는 명훈의 말투. 녀석들이 웃음을 멈추고 싸늘하게 명훈을 노려봤다. “큭큭. 개 같은 소문을 듣고 네녀석 얼굴보러 여기까지 찾아 왔다.” “소문? 무슨 소문?” “믿기기 힘든 소문이지. 네가 명진파의 형님들 넷이나 한주먹에 때려 눕혔다는 소문 말이야.” “흠….” 명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런 명훈의 표정을 잘못 오해한 녀석들은 명훈이가 뭔 지는 모르겠지만, 꿀리는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역시…. 야. 이 좃만한 새꺄. 그 개구라 같은 소문 네가 퍼트린 거지?” 명훈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조용히 응시만 했을 뿐이다. “뭘 야려 등신 새꺄. 넌 오늘 죽었어! 뒷산으로 따라와!” 그 말을 시작으로 녀석들은 여자애들을 뒤로 밀치며 명 훈을 뒷산으로 질질 끌고 갔다. 다구리로 발로 밟아 아작을 내주겠다는 심보였다. 여자애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따라갔다. 뒷산에 도착한 일진 애들. 명훈을 밀치며 가운데로 몰아넣었다. “이 새끼 밟아버려!” 지금까지 무표정이었던 명훈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 하더니 입가에 미소가 잡힌 것은 그 순간이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66 회] 날 짜 2004-11-28 조회 / 추천 13973 / 208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고교 전설되다 명훈이는 이곳까지 일부러 끌려 온 것이었다. 마음 편하게 싸울 수 있는 이곳으로 말이다. 학교 안에서는 교사들이 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 다. 바로 그 순간 녀석들의 시야에서 명훈이가 사라졌다. “어, 어라?” 밟으려고 다가갔던 녀석이 사라지자 놀란 표정으로 두리 번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희들 역시 이미 봤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기는 마 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녀석들은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그때 녀석들의 등 뒤에서 명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어딜 봐? 나 여기 있잖아.” 애들은 순간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태연한 표정으로 자신들 뒤에서 웃고 있는 명훈 을 볼 수 있었다. “이, 이런 쥐새끼 같은 놈이?!” 녀석들은 명훈이 어떻게 빠져나갔는지가 중요하지 않았 다.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라서 그런 사소한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다만, 단순하게 요령껏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킥킥. 고맙다. 그렇지 않아도 가볍게 움직이고 싶었는 데.” “뭐, 뭐? 이 새끼가?!” 명훈의 비웃음에 다시 우르르 달려들기 시작했다. 보통 같았으면 견제라고 하며 거리를 뒀을 텐데, 명훈을 너무 무시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바로 명훈을 가운데로 몰고 둘러쌓을 수 있었다. 보는 사람들은 이제 명훈이가 죽겠구나 생각했다. 그때였다. 퍽! 퍼버벅! 퍽! 퍽! 퍼벅! 가운데서 사람이 맞는 듯한 리듬감 있는 유쾌한 타격음 이 들린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명훈이가 맞는다고 생각을 하게 됐다. 자희들조차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그곳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으니 말이다.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신했다. 그 타격음이 하나 울릴 때 마다 동시에 명훈을 노리고온 타학교 일진 녀석들이 하나 둘 허공으로 날아오르기 시작 한 것이다. 그러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비명조자 나오지 않을 만큼 아팠기 때문이다. 하나가 허공을 날면 이미 허공에 있던 녀석은 바닥에 떨 어져서 몸을 꿈틀거렸다.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녀석들은 이런 상황을 예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당황했지 만, 자신들의 쪽수를 믿고 명훈을 잡기 위해 뛰어다녔다. 잡히기만 하면 패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명훈은 잡혀줄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특히나 냄새나는 사내새끼들에겐 더더욱 말이다. 명훈의 몸이 바람과도 같이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며 녀석 들을 유린했다. 한 순간에 거의 서른 명이나 돼는 일진 애들이 바닥을 긴 것이다. 지금 멀쩡히 서있는 사람은 조금 전 명훈에게 가장 많이 이죽거린 태을공고의 짱인 정태우였다. 명훈이 패고 싶은 것을 참느라 힘들었지만, 일부러 가만 히 놔둔 것이었다. 맛있는 것을 마지막에 먹는 성격인 명훈이다. 놀라운 상황을 목격한 정태우. 입이 쩍 벌어져 있었다. 현 상황, 현실이 믿어지지 않아다. 주변에서 자신과 함께 온 친구들. 타 학교의 일진 애들. 그 위풍당당하기만 했던 그들이 2분도 체 지나지 않은 한 순간에 나자빠진 것. 거기다가 지금은 바닥에서 숨조차 쉬지 못하고 꿈틀거리 며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 이미 정태우의 전투의욕은 우주 저편으로 도망 친지 꽤 됐다.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자신 앞에 다가오는 사람을 보 고 화들짝 놀랐다. 물론 그 누군가는 바로 명훈이었다. 정태우는 그런 명훈을 보며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자신 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했다. 조금 전 그렇게 우스워 보였던 녀석이 지금은 귀신같이 보였던 것이다. “흠, 이번에는 내가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 너 애들 많 이 괴롭혔냐?”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맞아도 서글프진 않겠군.” “무, 무슨….” 퍽! 뿌드득. “커, 커어억!” 명훈은 녀석이 조금 전 열심히 이죽거리던 것을 들은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더 이상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녀석이 말을 꺼내자마자 주먹으로 죽빵을 갈겨줬 다. 그러자 녀석의 아래턱이 옆으로 틀어졌다. 안면을 지탱하던 턱뼈가 부러진 탓이었다. “이제 즐겁게 어울려 볼까?” “우어어….” 녀석이 뒷걸음질치다가 뒤로 넘어지더니 엉덩방아를 쪘 다. 그 상태로 기기 시작했다. “어허, 이거 왜이러시나. 이렇게 섭섭하게 하려고 나를 불러 새웠어? 일어나. 이렇게 나오면 큰일 보고 밑 안 훔 친 것 같아서 몹시 나 불쾌하다구. 어서 일어나봐. 어서!” 퍽! 녀석의 다리를 힘차게 걷어찬 명훈. 순간 뚝 하는 소리와 정태우의 종아리뼈가 기울어 질 수 없는 부분으로 돌아갔다. 뼈가 부러진 것이다. “으아아아아!”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 이 정도 가지고 무슨 엄살이 야. 이걸 예상도 못하고 왔나보지? 엉?” 녀석의 머리를 움켜쥐고 늘어진 녀석을 들어 새웠다. 130킬로그램이 넘는 덩치도 가볍게 들었던 명훈이다. 녀석은 종이 장처럼 들어 올려졌다. “이젠 어디를 패줄까? 팔을 하나 부러트려 줄까? 머리를 다 뽑아 줄까? 아니면 이빨을 다 갈아줄까?” “우어어?!” “뭘 원해? 말만해봐. 내가 해달라는 대로 다해줄게.” 씨익. 이번에는 정태우가 아닌 명훈이 이죽거리며 웃었다.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태우가 보기엔 명훈은 귀신보다 괴물보다 더 무섭게 보 였다. 명훈이 하는 말엔 진실성이 짙게 배어 있었기 때문에 오 금이 저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의 불길한 기분의 정체를…. 그때 이 학교 녀석을 족치며 명훈이가 누군지 물어봤을 때 느꼈던 그 불안한 기운을 말이다. 바로 그때 자신의 덜렁거리는 다리가 두 눈에 들어왔다. 순간 공포로 이지를 상실한 태우. “끄아아아악!” 오줌을 지린 체 바로 기절했다. 그런 모습을 두려움이 질려서 얼어붙은 채로 지켜보던 애들이 있었다. 그것도 바닥에서 말이다. 녀석들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오줌을 지린 체 기절한 태우를 버리고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명훈을 봤기 때문이다. 그들은 명훈이 사신과도 같이 보였다. 그때 회복력이 조금 빨랐던 몇 놈이 뒤도 돌아보지 않 고 뛰기 시작했다. ~~~~~~~~~~~~~~~~~~~~~~~~~~~~~~~~~~~~~~~~~~~~~ 오늘은 왠지 조금 글이 늘어지는 듯한 기분이 드네요.. 뭔가 핀트가 맞지 않은 듯.. 뭔가 붕뜬 느낌.... 제가 지금 정신이 없거든요... 너무 죄송합니다. ;ㅁ; 에구... 생각을 정리 못하고 휘갈기다 보니까... 흠, 이번은 용서하시고 그냥 가볍게 넘어가주세요. 앞으로는 주의해서 쓰도록 노력할테니^^;;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알 뷔 빽! ps. 저에게 비축분을 푸시냐고 하는데, 그럼 제가 뭤때문에 밤을 새겠습니까? ㅡㅡ;; 절 죽이시는 말이라니까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67 회] 날 짜 2004-11-28 조회 / 추천 13449 / 24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고교 전설되다 오줌을 지린 체 기절한 태우를 버리고 자신들을 향 해 걸어오는 명훈을 봤기 때문이다. 그들은 명훈이 사신과도 같이 보였다. 그때 회복력이 조금 빨랐던 몇 놈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자신들도 같이 뛰려는 순간. 그것을 지켜보던 명훈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 이질적이며 소름 돋는 미소. 도망치려고 눈치 보며 일어나던 녀석들은 다리에 힘 이 풀린 것을 느끼며 다시 주저앉았다. 물론 이미 도망치던 녀석들은 계속 달렸다. ‘여섯 명….’ 명훈의 몸이 순식간에 도약했다. 팟! 그 순간 마치 바람처럼, 아니, 바람을 가로지르는 활 과 같이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쒜에에…. 궁신탄영에 기초를 둔 사방팔보(四方八步)라는 경신 술인 것이다. 무림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가벼운 경공이었다. 하지만 명훈이 바람을 가로지르는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일진들. 인간이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 했다. 경공이라는 것 자체를 처음 봤기 때문이다. 정말 자신들은 크게 실수했음을 인지했다. 정말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뿌리 체 뽑았음을, 그리 고 이미 늦어버렸음을…. 바로 그것을 느낀 순간 저 멀리서 북이 찢어지는 난 타음이 들렸다. “컥! 켁! 헉! 흑!” 다양한 비명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시원한 박자감 을 느끼다보니 흥보다는 공포에 전신이 흐늘흐늘 녹아 내리는 기분이었다. 두 놈은 정도가 간이 조금 다른 녀석보다 컸는지 기 능이 강했는지는 몰라도, 명훈이 안 보이는 순간 조심 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움직이면 두 배로 맞는다.] 귓가에 어른거리는 환청. 다른 애들은 안 들리는 듯 한 모습이다. 하지만 일어나 있어 던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알 수 있었다. 자신 둘만 그 소리를 들었음을…. 화들짝 놀라 다시 바닥에 주저앉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귓가에 들렸던 정체불명의 소리 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토록 무서운 목소리는 없었던 것 같았다. 한참의 고민 후 이것을 귀신의 농간이라 생각하게 됐고, 명훈을 귀신의 본신 정도라고 생각하게 됐다. 결코 전음이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한 그들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 명훈이 저편에서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양팔에는 두 녀석을 가볍게 들고 근처까지 다가와서 한번 쭉 보고는 바닥에 휙 집어 던졌다. “도망친 녀석들이다. 이 녀석들은 너희들의 세배 정 도 패줄 생각이니 내가 다른 녀석을 들고 올 동안 깨 워라. 못 깨우면 너희가 맞는다.” 흠칫! 귀신의 목소리가 저보다 더 소름이 돋을까? 갑자기 어디서 힘이 솟은 걸일까? 흐늘흐늘하던 일진 녀석들. 미친 듯이 기더니 정신없이 흔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안 일어나자 주먹으로 치기도 했고, 뺨을 때 리기도 했다. 명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또 다시 다른 두 녀석을 들고 왔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는가 보고도 믿기지 않았 다. 약골이라고만 생각했던 왜소한 체격. 그가 들고 오는 둘 중 하나만 봐도 명훈이란 괴물의 두 배 정도의 무게는 가지고 있으리라. 다시 한번 보고 그 두 녀석을 던지더니 뒤를 돌아 남은 두 녀석을 마저 챙기러 가는 명훈. 이제는 알아서 녀석들을 깨우는 일진들이었다. 자신들은 결코 저기 구석에 턱 날아가고 다리가 부 러진 태을 공고의 짱인 정태우처럼 맞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제야 이 학교 애들이 명훈을 찾을 때 거의 발악하 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자리에 와서야 그 학교 애들이 왜 자신들에게 맞 아 죽겠다고 발광 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니 확실하게 알았다. 자신들 같았어도 분명 같은 행동을 보였을 것이다. 각골난망(刻骨難忘)? 우스웠다. 부족했다. 파골난망(破骨難忘) 정도 되는 기분들이다. 후회와 회안의 눈물이 얼굴을 적셨다. ‘내가 어쩌다가 저런 괴물 싸이코 같은 녀석에게 깝 쳤을까?!’ 그러나 때는 늦었다. 어느 세 돌아온 명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오호라. 생각보다 똑똑하군.” 왠지, 어째서인지 명훈의 칭찬에 기뻐하는 일진들이 었다. 이미 뭐가 뭔지 이성을 상실한 녀석들이었기에 가능 한 결과였다. “내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 깨웠군. 너희들에게 일인당 백대씩 때려주려 했는데, 구십구대로 줄여주 마.” ‘백대건 구십구대건! 대체, 뭐가 다르냐?!’ …라고 외 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잠시 후 뿌듯함과 함께 마냥 행복해졌다. 한대라도 덜 맞는 다는 사실이 말이다. 명훈이 정신을 차린 네 녀석을 구타하기 시작한 것 이다. 그것을 목격한 후였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퍽퍽, 퍼걱! 귓가를 자극하는 시원한 타격음. 녀석들은 사람을 패면서 중얼거리는 명훈의 말을 지 울 수가 없었다. 평생의 지침대로 삼을 정도였다. ‘남자는 주먹. 구타는 손맛….’ ~~~~~~~~~~~~~~~~~~~~~~~~~~~~ 자~ 리쓴 엔 리핏~(훗...) '남자는 주먹~ 구타는 손맛~.' 참 잘했어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68 회] 날 짜 2004-11-28 조회 / 추천 12884 / 195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고교 전설되다 구타를 시작한지 한 시간 정도 흘렀다. 뒤에서 명훈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여자애들. 명훈에 대한 걱정이란 기우에 불과 했음을 깨닫기에 충 분하다 못해 넘쳤다. 그 놀라운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잔인하긴 했지만, 왠지 그 모습이 더욱 듬직하게 보이기 까지 했다. 자신에게 기어오르는 사람은 확실하게 조지는 모습. 지금까지 여자애들이 본 명훈은 이러했다.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 가는 사람 막지 않는다. 자신에게 웃는 사람에게는 같이 웃어준다. 장난은 장난으로 받아 드리며 어느 정도의 재치를 소유 하고 있었다. 간혹 애늙은이 같은 말을 하긴 하지만 말이다. 거기다가 자신이 한번 친분을 준 사람은 꼭 뒤를 챙겨 줬다. 대표적으로 현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에게 적의를 보인사람은 두 번 다시 적의를 느낄 수 없도록 철저하게 밟아줬다. 그것은 여자건 남자건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특히나 자희들은 직접 경험하지 않았던가? 만일 현민이 친구가 아니었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어느덧 구타를 당해 실신한 녀석들이 절반을 넘어섰다. 참 지치지도 않고 팼다. 패는 게 지겨워 질만도 했건만,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 이다. 오히려 패면 팰수록 힘이 더 생겨나는 것 같이 보일 정 도였다. 이미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녀석들은 오줌을 지리고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제발 살려달라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만 명훈에게 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입을 여는 녀석에겐 주먹으로 주둥이를 갈겨 이 빨을 뽑아줬다. 결국 입을 여는 녀석들이 사라진 이곳 뒷산은 고요해 졌고, 북 터지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물론 비명과 신음소리를 동반한…. 그날 저녁 가정집 이곳저곳에서 뉴스소리가 흘러나왔다. [-고등학교 한 뒷산에 세 개 학교의 폭력써클에 몸을 담은 30여명의 학생들이 패싸움을 벌였습니다. 이들은 조 폭 영화를 보며 조폭의 꿈을 키웠으며, 그걸 계기로 일진 회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진철 기자. -네, 여기가 바로 그 싸움 현장입니다. 처음 이곳에 왔 을 때는 결코 고등학생들의 싸움으로 보기 힘들 정도였습 니다. 조직폭력배들의 파벌싸움이라도 보는 것 같았습니 다. 여기는 보시면 부러진 이빨들과 아직도 선명하게 남 아있는 핏자국이 널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저 곳에는 싸움에 사용한 도구로 각목과 휘어진 쇠 파이프등 을 볼 수 있습니다. 신고를 한 한 동내주민의 말씀을 들 어 보겠습니다. -어떤 교복을 입은 아가씨들이 저에게 산에서 패싸움이 일어났다고 말해주더구만요. 그래서 가보니 난리가 아니 더라구요. 이미 싸움은 끝나 있었는데, 여기저기 보니 팔 다리가 부러진 것은 다반사였고, 턱이 완전히 부러진 애 들에서부터 머리털이 모조리 뽑힌 애들까지…. 세상 겁나 서 밖에 못 다니겠다니까요. -말씀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병원으로 연결하겠습니다. -어째서 그런 패싸움을 벌인거죠? -……. -어째서 그런 패싸움을 벌인거죠? -…으악! 사람 살려! -이상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학생들이 말을 안 여는 군요. -예, 모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함구 하고 있다고 합 니다. 그 현장의 일을 물어보면 마치 경악어린 눈으로 시 선을 회피한다고 합니다. 아마 어린 나이로 그렇게 심한 싸움을 나갔고, 목격하였기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것이 라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사회가 어떻게 되려고 그러는지 겁 이 나는 군요. 그럼, 다음 뉴스입니다. 정부….] 병원에서 뉴스를 보고 있던 여자애들과 명훈들.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애들 30명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모습이나, 마이크를 일일이 대며 물어보는 기자의 모습이나, 공포어린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나 웃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쌍하기 보다는 속이 후련 하기만 한 그들이었다. 그때까지 조용히 여자애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명 훈. 어느 센가부터 미지들과 현민이들이 친구가 되서는 같 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명훈은 그들의 수다 앞에서 한마디 말조차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뉴스를 보고는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그 다음날 학교가 다시 발칵 뒤집힌 것은 두말 할 필요 가 없었다. 벌써 어떻게 알았는지 그것이 명훈이의 짓이라고 소문 이 퍼진 탓이다. ~~~~~~~~~~~~~~~~~~~~~~~~~~ 에구 일요일에는 왜 쉬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미친듯이 그 동안 못잤던 잠자고, 쇼프로그램을 보며 속편히 웃기 위해서 입니다^^;; 이제 개콘만이 남았군요... 개콘 보고 새벽 4시에 올릴 글을 써야겠네요^^ 독자님들의 응원 정말 감사합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69 회] 날 짜 2004-11-28 조회 / 추천 12420 / 61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공지] 죄송합니다만 공지입니다. 필독바랍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선작을 부탁드리겠습니다. ;ㅁ; 여러분들의 선작이 저를 살리거든요. 약간 번거로우시더라도 선작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ㅁ; 그 대가를 저는 광필을 하여 폭참으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ps. 다음 글은 새벽 1시 30분에 올리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70 회] 날 짜 2004-11-29 조회 / 추천 13412 / 15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고교 전설되다. 그 다음날 학교가 다시 발칵 뒤집힌 것은 두말 할 필 요가 없었다. 벌써 어떻게 알았는지 그것이 명훈이의 짓이라고 소 문이 퍼진 탓이다. 그 덕에 명훈과 같은 학급 애들만 더 죽을 맛이었다. 조금 분위기가 풀어질만하면 터지는 핵폭탄 급 소식 들 때문에 긴장된 나날을 보내다보니 근육경직으로 인 한 근육통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학교의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명훈이 있는 9반을 비 롯한 바로 옆의 8반과 10반은 거의 묵념수준이었다. 약간의 소음이 찾을 수 없었다. 삼일 정도가 흐르자 학교안과 밖에서는 웃긴 현상이 벌어졌다. 자신이 바로 명훈의 친구라고 서슴치 않고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가장 절친한 부랄친구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명훈은 알지도 못하는 녀석들이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 이유도 있었다. 명훈이 너무나 유명인사가 된 탓이다. 길바닥의 양아치들도 명훈의 이름을 알 정도였다. 길가다 양아치들에게 걸렸을 때 명훈이 자신의 친구 라고 말하면 풀려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고 본다. 하지만 명훈은 그런 것을 알 턱이 없었다.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자신에게 다가오는 애들을 거절하지 않는 정도. 항상 그 수준이었다. 그러다보니 명훈을 시기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옹호 하는 사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선생들은 약간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자신들이 보기 엔 행동거지 바른 명훈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이었다. 설마 명훈이 이렇게 까지 눈에 띌 것이라고는…. 사실, 약간 예상했다. 그러나, 이건 거의 폭발적이었다. 명훈의 사물함은 같은 교내는 물론이고 타 학교 여학 생들의 팬레터로 가득했다. 물론 그 속엔 일부긴 했지만, 도전장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명훈은 의외로 그것들을 꼼꼼히 읽어줬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명훈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최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도전장은 모조리 무시했다. 결국 의문을 참지 못한 미지가 물었다. “도전장은 왜 무시해?” 그러자 빙긋 웃어주며 대답했다. “귀찮아.” “…….” 그러나 명훈이만 스타가 된 것은 아니다. 의외로 명훈이 주변의 사람들조차 최고의 대우를 받 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주변에서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는지 사진 한 장만 찍어다 달라며 밥을 사주는 애들이 생겨날 정도였 다. 학급의 애들에게 특히 그런 현상은 두드러졌다. 그냥 같은 학교기 때문에 대접받는 상황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몇몇에게는 명훈에게 선물이나 편지를 직접 전해 달 라며 미팅을 시켜주기 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명훈 반에 있는 애들의 콧대가 자연적으 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들의 몸값이 더 올라가는 계기가 생겼다. 바로 명훈에 의해서 말이다. 같은 학급의 녀석이 양아치 무리에게 붙잡혀서 끌려 가는 것을 미지의 친구들이 목격하고 미지에게 말했던 것이다. 미지는 다급하게 명훈에게 전했고, 명훈은 득달같이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에선 다섯 명의 양아치가 같은 학급의 눈에 익은 녀석을 패고 있던 것이다. 명훈이 천천히 다가갔다. 명훈을 뒤늦게 발견한 한 양아치가 명훈을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넌 뭐고? 같이 죽고 싶나?” 그것이 녀석들의 마지막 대사였다. ~~~~~~~~~~~~~~~ 휴... 감사... 아직 안끝났어요.. 다음으로...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71 회] 날 짜 2004-11-29 조회 / 추천 13634 / 317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고교 전설되다.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들리는 난타음.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과 신음소리 퍽! 퍼벅, 퍽! "으악! 으악! 으아아아악!" "아, 악마다!" "사람 살려줘! 크헉!" 다소 알 수 없는 소음들이 포함되긴 했지만, 그 같 은 반 학급의 녀석은 엄청난 명훈의 싸움실력에 매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명훈의 잔혹함은 녀석에게 동경심과 공포심을 골고루 나눠 줬다. 사방이 녀석들의 피로 흥건했던 탓이다. 이곳저곳에 흩어진 이빨들이 보였다. 그러나 명훈의 옷에는 한점의 핏자국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를 생각한 명훈이다. 물론,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명훈이 입을 열고 같은 학급의 친구를 바라봤 다. “어디 안 다쳤냐?” 이미 볼이 퉁퉁 부어 있긴 했지만 녀석이 고개를 끄 덕이자 명훈이 말했다. “가라.” “고, 고마워….” 그 소문은 어김없이 학교에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 줬고, 같은 학급의 애들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생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사실은 지금까지 무료했던 명훈. 싸울 거리가 생겼다면 좋아라 뛰어간 것이었다. 그렇지만, 진실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명훈이 자신만 빼곤 말이다. 여하튼 그렇게 명훈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9반 반장의 위치는 초라해져 갔다. 미지에 의해서 반장의 박쥐같은 행동이 폭로된 것이 다. 설마, 저런 태연한 겉모습 뒤로 호박씨를 깠었다 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뼈다귀와 호구, 그러니까 명 호와 승운 덕에 그것이 사실로 밝혀지게 됐다. 명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선택한 배신이었다. 그것이 명훈에게 눈 밖에 나는 이유가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한 그들이다. 여하튼 그것이 사실이라 밝혀지자 학급의 분위기가 조금씩 변했다. 처음에는 애들은 그 말을 듣고 약간 눈짓만 줬다. 그러나 곧 수군거림으로 바뀌었고, 그 수군거림은 갈 수록 커져갔다. 결국 반장은 얼굴을 들지 못할 지경이 되자 학교를 나오지 않게 됐다. 그가 버팅기기엔 명훈의 위치가 너무도 고강했던 탓 이다. “오늘이 현민이 퇴원 날인가?” “아,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오늘이네?” 여자애들이 한명씩 맞장구를 쳐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녀들의 눈빛. 조금씩 가늘어지며 예사롭지 않게 변해갔다. 가장 친한 친구인 자신들조차 잠시 잊고 있던 퇴원 일. 그런데, 명훈이 그것을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오오~. 역시 여자친구라고 챙기는 것 자체가 다른 데?” “그러게 말이야.” “우우~. 느끼 커플 물러가라. 커플이 웬 말이냐.” 의외로 별것 아니라 생각했었지만, 현민이의 상태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이미 지쳐있던 몸에 당한 구타가 말썽이었다. 여러 합병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 때문에 지금까지 있었다. 그러나 며칠 전 의사로부터 통보를 받았다. 건강하게 됐다는 이야기에 오늘 퇴원날짜가 잡힌 것 이다. “그럼, 오늘 파티 하는 거야?” 그 말에 미지가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오늘 명훈이 어머니께서 퇴원파티 해주신 다고 명훈이 집에서 모이기루 했어.” “어머, 잘됐다.” 이제는 죽죽이 잘 맞는 일곱 명의 여자애들이었다. 설마 이들이 이토록 급속도로 친해 질 줄이야. 어느 순간 애들 말을 들어보니 여덞자매라 불린다는 말에 어처구니를 상실한 명훈. 그런 명훈이 이번엔 다른 일로 두통을 느껴야했다. 이 일곱의 수다가 쉬는 시간 마다 자신의 옆자리에서 끊임없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수업시간이 시작되면 사라졌다가 쉬는 시간만 되면 몰려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힘겹게 웃어주는 얼굴에 혈관과 힘줄이 도드라졌지만…. ‘휴….’ 차마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 된지 오래 됐다. 더더욱 골치인 것은 따로 있었다. 심심하면 자신의 어머니에게 사사건건 고자질하는 그 녀들. 어머니는 그런 그녀들이 마치 자신의 딸이냥 받아들 인 것이다. 그동안 집에서 심심하셨다곤 하지만, 그렇게 입으로 딸 하나만, 딸 하나만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그녀들을 보면, ‘어이구, 우리 딸들 왔어?’ 라고 하는 어머니. 그럼 여자애들은 ‘엄마~. 우리 왔어요~.’ 라고 받아쳤 다. 두통이 안 올레야 안 올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란지 같이 수다로 명훈이 자신을 공격하 는데,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며칠 전에는 같이 쇼핑도 갔다 왔다며 좋아하는 어머 니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머니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정도가 좀 심한 것 같다고 자중해 주길 원하 는 명훈. 그 와중에 어머니와 가장 친한 현민이가 퇴원이란다. ‘현민이가 병원에서 나온다면….’ “으으….” 순간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감히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명훈이었다. 그러나 이미 명훈의 공포어린 신음을 들은 그녀들. 붕어빵의 눈처럼 동그랗게 변해 있었다. 마치 껀수하나 잡은 듯한 미소와 반짝반짝 빛나는 눈 빛. 그런 그녀들이 입을 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동시에 일곱이 말이다. “어머, 명훈아 왜 그래? 어디 아파?” “아프면 양호실에가.” “내가 선생님에게 이야기 해줄까?”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는 명훈. 하지만, 명훈은 감히 그런 여덞자매들에게 뭐라고 말 을 해줄 수 없었다. 저렇게 초롱초롱거리며 걱정이 가득 담겨 있는 눈을 보면서 어떻게 심한 말을 할 수 있겠는 가…. “아, 아냐. 나 혼자 갔다 올게.” “그래? 그럼 잘 갔다와.” “내가 선생님께 너 아프다고 말해 놓을게.”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시작되는 그녀들의 수다. 거의 살인적이라 할 수 있었다. 가까스로 그 자리를 피한 명훈. 불쌍하고 처량 맞아 보일 정도로 비틀거리며 양호실 을 향해 혼자 걷기 시작했다. ~~~~~~~~~~~~~~~~~~~~~~~~ 헥헥. 선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힘이 이만큼이나 솟아나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선작과 뎃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을것 같아요^^ 정말 항상 감사의 마음 뿐입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다가서겠습니다. 정말 기뻐서 눈물이 ;ㅁ; 흠.. 그러고보니 다음글도 써야하는 군요 ㅡㅡ;;;; 헉... 이제 두시간 도 안남았네.... 4시에 올릴 분량;ㅁ; 이제 부터 써야하겠군요.. 저 죽을것 같아요 ;ㅁ; 흑흑 어서 응원의 리플과 선작으로 저를 부추겨주세요 ;ㅁ; 그래야 힘이 날 듯... (아... 하얗게 불태웠어.... 새하얗게...) ps. 저번에 논란이 많았던 저 대사.. 당연히 허리케인 죠의 대사입니다... 맞추신분 추카추카. (참고로 상품은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자여러분들^^ 선작은 필수입니다. >,. [72 회] 날 짜 2004-11-29 조회 / 추천 13872 / 299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9. 현민, 퇴원하다 9. 현민, 퇴원하다 결국 그날은 잠시 어디를 들릴 것이라는 핑계를 대고 애들보다 먼저 학교에 나온 명훈. 그런데 정문 앞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오토바이 헬멧을 뒤집어쓰고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 는 녀석이었다. “죽어랏!” 녀석은 명훈을 보자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명훈을 맞출리 만무했다. “뭐야 이 녀석은?” 녀석의 공격을 피하고 그대로 허리를 발로 걷어찼다. 뚜둑. “허억!” 허리뼈가 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명훈은 유유히 장래 를 벗어났다. 그 순간 녀석이 그대로 입에 거품을 물더니 바닥에 자빠졌다. 그리고는 꿈틀거렸다. 명훈은 눈들이 많아 시끄러워지는 것을 피했지만, 이 미 볼 사람은 다 봤다. “우와와와와!” 어째서인지 학생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환호했다. 마치 자신의 일이냥 기뻐하는 그들이었다. 그제야 나온 여덞자매들은 뒤늦게 학생들이 함성을 지르고 난리를 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명훈이 벌써 한탕 뛰었다는 증거를 목격한 탓이다. “저건 왜 저 지랄이야?” “설마 명훈이를 습격한 건가?” “쯧쯧. 허리를 다쳤군. 금이라도 간 건가?” “부러졌을 지도….” 서로들 측은하게 그 오토바이 헬멧 사내를 내려봤다. “이제 재미는 다 봤겠군.” “그러게 말이야. 킥킥킥.” 그리고는 늦게 나와서 목격하지 못한 자신들에게 한 탄했다. 설마 명훈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종례가 끝나자마 자 부리나케 도망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훈이는 이 상황을 짐작하고 먼저 나온 건 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수업이 끝나자 미친 듯이 교 문으로 뛰더라고. 마치 급한 일이라도 있던 것처럼.” “그래? 무슨 일이지?” 한참 수다를 떨었지만, 결코 자신들의 이 살인적인 수다를 피해 도망쳤다고는 생각도 못하는 그녀들이었 다. 몇 시 후, 병원에서 만난 명훈과 여자애들. 명훈이 어머니가 현민이의 퇴원 소속을 마치고 나오 시는 중이었다. 그러자 먼저 나와 있던 현민이가 명훈이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 말에 어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그러니. 돈은 네 친구들이 벌어서 낸거야. 네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해야지.” 현민이가 희쭉 웃으며 등을 돌리더니, “어이 여덞자매? 킥킥. 이름하곤. 여하튼 고맙다. 너 희들 때문에 이 큰언니 무사히 병원에서 나왔다.” “뭐야. 계집애 성격하고는. 그리고 누가 큰 언니야? 유진이 언니가 너보다 나이만치 않아?” “맞아. 가장 막내 주제에 항상 큰언니래.” “웃겨 증말. 킥킥.” 그러자 현민이가 발끈했다. “너 몇 월생이야?” 그 말에 흠칫 놀란 애들. “난 7월인데?” “나도 7월.” “난 9월이야.” 각자 자신의 생일을 말하자 현민이가 피식 웃으며 말 했다. “…언니. …췟!” 순간 주변이 웃음바다가 됐다. 명훈이와 명훈이 어머니조차 웃기 시작했다. 그때 미지가 물었다. “넌 몇 월 생인데?” “12월인데?” “킥킥. 나이도 어린 녀석이. 칵! 앞으로는 언니라고 불러!” 그 말과 동시에 다시 웃음보가 터지는 일행들이었다. 그때 현민이는 웃다말고 슬금슬금 미지에게 다가가 미지의 목을 팔로 해드락 걸었다. “킥킥. 항복? 안 항복?” “켁켁. 졌어. 졌어!” 그 말에 해드락을 푸는 현민이었다. “그럼 앞으로 날 언니라고 불러라~. 알겠느냐~.” 현민의 너스레에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그 웃음은 명훈이 집까지 이어졌고, 현민이는 그곳에서 새 옷을 입고 자신을 기다리는 자신의 남동생 과 여동생을 볼 수 있었다. “누나아아아~.” “언니이이이~.” 덥썩. 현민의 양쪽 다리에 하나씩 달라붙은 자신의 동생들 을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는 눈빛이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보던 여자애들이 하나씩 입을 열었 다. “칫. 네 퇴원 선물이다. 거한 것은 할 수 없었고, 우 리들이 약간씩 돈을 걷어서 네 동생들 옷 한 벌 맞춰줬 다.” “집에 한번 들려봤는데, 날은 추워지는데 두툼한 겨 울 옷 한 벌 안보이더라. 다행히도 명훈이 어머니께서 동생들을 돌보셨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얼어 죽었겠 더라.” “거기다가 연탄도 하나 없더라? 우리가 연탄 60장정 도 맞춰서 갖다 놨어. 계집애. 어떻게 지금까지 한번도 어떻게 사는지 이야길 안했니?” “맞아. 너무했어.” “난 그때 너희 집 청소하러 갔을 때 연탄불 때우는 집 처음 봤어. 드라마에서나 봤던 거라…. 그래두 신기 하긴 하더라. 히히.” 현민이의 눈물이 글썽거렸다. 여자애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고마웠던 탓이 다. “고, 고마워…. 정말… 고마워….” 현민이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자 여자애들이 몸둘 바 를 몰라했다. 설마 이렇게 감겨할 줄은 몰랐던 탓이다. “아, 아냐. 이정도 가지고 뭘. 친구끼리 당연한거지.” “맞아. 아무것도 아니야. 나중에 그냥 크게~, …떡볶 이나 한 접시 쏴라. 오케?” “오케….” 힘들게 웃긴 했는데, 그게 더 힘들었다. 결국 눈물을 쏟기 시작한 현민. “으…, 으흑. 흑…흑흑…. 흐…흐흐흑….” 콧물까지 흘리며 엉망으로 우는 모습이었지만, 결코 그 모습이 미워 보이지 않았다. “어응. 엉엉엉…. 어헝헝헝….” 그녀가 그동안 그만큼 힘들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 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그녀의 눈물을 막지 않았다. 이럴 때는 속에 숨기고 숨겨서 터질 듯했던 감정이 터져 나오는 것이기에 시원하게 울어야 한다는 것을 잘 들 알았던 탓이다. 유진이 현민이에게 휴지를 가져다주자 코를 한번 팽 하고 풀더니 다시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서러웠고 서글펐던 감정이 눈 녹듯이 녹는 기 분에 현민이는 울고 또 울었다. 자신의 동생들을 꼭 부여안고 울어댔다. 동생들은 자신의 누나, 언니가 울자 같이 울기 시작 했다. “우에엥! 언니 왜우러어. 울지마아~.” “누나, 잉잉. 누나, 잉잉잉.”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여자애들이 덩달아 울었다. 어머니는 이미 현민이의 기분을 이해한다는 지 아버 지 품에 안겨 울고 계셨다. 명훈이는 마지막까지 참았었지만, 결국 자신을 배반 이라도 하듯이 또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을 순 없었 다. 누가 눈물과 웃음은 전염되는 거라 했던가?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현민이가 훌쩍이며 가까스로 눈물을 그쳤다. 더 이상 기쁜 자리를 자신 때문에 망칠 수 없다는 생 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꺽! 꺽! 꺽!” 그러나 억지로 멈추려하자 일어난 딸국질. 순간 눈물의 바다가 웃음바다로 변해버렸다. 한 참 후. 모두들 음식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은 모두 뭐가 좋은지 히히덕거리며 웃었지만, 하 나같이 이미 울어서 붉게 부어 있는 눈은 가릴 수 없었 다. “자, 여하튼 우리 현민이의 퇴원을 축하, 축하!” 팡! 팡! 어머니의 한마디에 애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던 폭죽 을 허공에 터트렸다. “와아아~. 퇴원 축하해. 현민아.” “퇴원 축하해~.” 그때 자희가 한마디 했다. “그런데 왠지 생일 분위긴데, 이거 퇴원빵 맞아야 하 는거 아냐?” 그 한마디에 장난끼가 가득 담긴 여자애들의 목소리 가 하나씩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우선 때리고 볼까?” “캬하하하. 찬성. 찬성.” “나두!” 그러자 현민이가 과감한 표정과 오기에 찬 눈으로 좌 중을 훑어보더니 각오에 찬 한마디를 내 뱉었다. “좋아! 날 패도 좋아.” “오오~.” 애들이 환호하며 우르르 다가서자 순간 현민이가 씨 익 웃었다. “잠깐! 그런데 이왕 때릴 거면 날 입원 시키는 게 좋 을 걸?” 순간 다가갔던 여자애들이 흠칫하고 멈췄다. “응? 그건 왜?” 그러자 현민이가 낄낄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그래야 내 동생들 옷 한 벌 더 사 입고, 이런 상 한 번 더 받아보지.” “이 뇬이!” “꺄악~. 퇴원하자마자 사람들이 날 잡으려고 해요 오~.” 그제야 현민이의 장난을 알아차린 모두가 피식 웃으 며 그대로 쥐었던 주먹을 현민이의 머리에 쥐어박았다. 그중에는 명훈이 어머니의 손도 끼어 있었다. 한대씩 꿀밤을 돌아가며 때린 여자애들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현민이를 바라보았고, 현민이는 아프지만 쑥 스러운 듯 자신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웃었다. 그런데 다시 그 웃음이 슬쩍 울상으로 변하며 잠시 훌쩍였으나, 곧 웃음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그 순간 현민은 감격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자신이 울자 친구들도 울었는 지 모두들 눈가에 이슬을 머금고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왁자지껄 시끄러워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그 파티가 끝난 날 명훈이 어머니는 일주일 후에 다시 애들에게 모이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그러자 애들이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날 뭔가 폭탄선언을 하겠다고만 말하시곤 더 이상 말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명훈이 어머니의 환한 얼굴에는 뭔가 좋을 일 이 있다는 것만 나타내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애들은 혹시나 싶은 생각에 현민과 명훈 을 봤다. 현민이와 명훈이는 같이 히히덕거리며 쑥스럽다는 듯 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여자애들은 그들이 왠지 어색하게 웃는 얼굴에서 현 민이와 명훈이가 뭔가를 알고 있고, 그것을 숨기고 있 다는 것을 추측할 수는 있었다. 다음날 현민이가 학교에 일찍 등교를 했다. 담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선생니임~.” “어라. 현민이구나. 어제 퇴원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 다.” 담임이 현민이를 환한 미소로 반겨줬다. 현민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헤헤.” “그래도 미안하구나, 문병한번 가질 못해서….” “아녀요, 선생님. 걱정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 다. 선생님께서도 바쁘셨잖아요.” 현민이의 그 말에 담임이 감격한 표정으로 현민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래. 마음만이라도 알아주니 고맙구나.” 그러자 현민이가 웃으며 선생님을 바라봤다. “괜찮아요. 그건 그렇고 사모님께서는 지금 어떠신가 요?” 현민이의 한마디에 붉어진 얼굴로 쑥스럽다는 듯이 말문을 열었다. “이주일 후가 예정일이란다.” “와~, 정말 축하드려요. 아기 이름은 지으셨어요?” “지금 생각하고 있단다. 아직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고….” 담임선생님이 기분이 좋은지 들뜬 표정으로 현민이의 기쁨을 받아줬다. 한참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아침 조회시간이 되어가자 현민이가 인사를 하고 먼저 교실로 올라갔다. “선생님 애기 보러 갈게요. 꼭 말해주세요. 애들하고 옷사가지고 갈 테니까요.” “그래. 이제 조회시간이니 먼저 올라가 보거라. 난 몇 개 챙길 것이 있어서 조금 늦을 것 같으니….” 현민이는 방긋 웃고 교실로 들어갔다. 그 교실에서 현민이는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평소와 다른 이질적인 느낌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자신이 반을 잘못 찾은 것이 아닌가 했기 때문 이었다. “뭐지?” 현민의 한마디에 반애들이 약간 움찔했다. 바로 그때 미지들이 화장실이라도 다녀왔는지 물기 가득한 축축한 손으로 현민이의 등을 탁쳤다. ~~~~~~~~~~~~~~~~~~~~~~~~~~~~~~~~~~~~~ 휴... 힘듭니다... 앞으로는 많은 분량 한편씩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지금 공지를 보고 조아라 시스템이 바뀐다는 사실을 늦게 알았네요. 연참하면 손해라고 하네요 ;ㅁ; 여하튼 한번에 많이씩 올리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지요^^ 독자님들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ps. 상황봐서 괜찮다 싶으면 다시 연참하겠습니다. 아직 시스템이 어떻게 변했는지 못봤기에 감을 못잡아서... ps2. 아참, 그리고 아직 선작안하신 분들 ;ㅁ; 저를 살리는 셈치고 선작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곧 좋은 소식을 가지고 여러분들을 찾아 뵙겠습니다. ps3. 그런데 플스3는 언제쯤 나오려나........(퍽!)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73 회] 날 짜 2004-11-29 조회 / 추천 12585 / 204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9. 현민, 퇴원하다 바로 그때 미지들이 화장실이라도 다녀왔는지 물기 가득한 축축한 손으로 현민이의 등을 탁쳤다. “현민이 왔구나? 그런데 뭐해? 자리에 앉지도 않고.” “미지구나?” 현민이가 뒤를 보며 미지를 반겼다. “현민아. 그런데 무슨 일 있어? 마치 뭐 씹은 표정이 다?” “아, 아니. 우리 반 교실 분위기가 좀 이상해져있어 서….” “우리 반 분위기가 뭐?”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는데. 설마,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내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도 그랬던가?” 뭔가 많이 헛갈리는 현민의 모습에 미지가 피식 웃었 다. 마치 장난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풋! 됐어. 장난은 그만 들어가 봐.” 철썩! “아! 아퍼!” 현민이는 자신을 때린 미지에게 보복을 하기 위해 몸 을 틀었다. 그러나 미지는 이미 저리 도망가서는 가볍게 감자를 먹이는 중이었다. “이, 이게?” 현민이 씩씩거리자 미지가 실실 웃으며 손을 싹싹 비 볐다. 그리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언니이~.” “킥!” 애교 섞인 한마디에 결국 피식 웃어버린 현민이. 바로 그 순간 앞문이 열리며 담임이 들어왔다. “자, 조용조용.” 버릇처럼 입을 열긴 했지만, 말을 내뱉고 난 후에야 이 반이 원래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머쓱한 표정 을 지으며 머릴 긁적였다. 그때 자신에 눈에 현민이가 들어오자 무안함을 무마 시켜줄 현민이가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흠흠, 현민아. 조회시간이다. 자리 가서 앉아야지.” “예, 죄송해요.” 둘 다 어딘지 뻘쭘한 표정이다. 선생은 선생대로 맥이 빠졌고, 현민이는 현민이 대로 의문을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자리에 가서 앉자 기다리고 있던 명훈이가 현민이를 반겼다. “왔어?” “응. 오랜만에 새벽이슬 맞으며 학교에 왔더니 삭신 이 쑤신다.” “밥은 잘 챙겨 먹었어?” “응. 어머니께서 주신 반찬으로 먹었쥐. 캬캬. 정말 맛있더라. 나중에 좀 배워야겠어.” 잠시 두런두런 수다를 떠는 두 사람. 그러나 아무도 뭐라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전설을 만드는 명훈. 그와 사귀는 것이라 추정되는 현민. 괜히 신경 건드려서 피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 애들 의 생각이었다. 그때 교탁을 탁탁 두드리던 담임. “오늘, 새 친구를 소개하려고 해요.” 순간 애들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분석하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그 표정들은 시간이 가면서 붕괴가 됐고, 조금씩 불 안과 초조함으로 일그러졌다. 모두의 표정을 마치, ‘설마, 전학은 아니겠지요오~?’ 라고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아무도 입으로 소리 내는 사람이 없었다. 약간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애들이 있긴 했는데, 그 런 애들을 향해 짝들이 꼬집어서 정신을 차리게 해줬 다. 죽고 싶으면 입을 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약간 아쉬운 표정이다. 보통 ‘전학생이다.’라고 하면 함성은 기본이고, 남자냐 여자냐, 잘 났냐 못 났냐를 가지고 떠드는 맛이 있어야 했는데 자신의 반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잠시 명훈을 슬쩍 바라보는 담임이다. “모두 짐작하고 있겠지? 다른 학교에서 온 원 찬이라 는 친구다. 특이하게도 외자지. 친하게 들어오도록 해 라. 원 찬아.” 그제야 열려있던 앞문으로 덩치가 크고 날렵한 눈빛 을 가진 녀석이 들어왔다. 약간 거만한 눈빛을 가진 녀석이었다. “여기 와서 자기소개 해야지.” 선생의 한마디에 녀석이 교탁 앞에 섰다. “나는 원찬이라고 한다. 북풍 고교에서 좀 놀았다면 놀은 녀석이다. 그 미친 여선생만 아니었으면 이 학교 로 쫓겨날 일도 없었겠지. 그리고 시끄러운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여하튼 될 수 있으면 나에게 까불지 마라. 죽을 지도 모른다.” 선생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싸늘하던 교실의 분위기가 더욱 싸늘하게 가라앉았 다. 애들의 눈빛이 살벌했다. 하나같이 뭔가 불만스러운 듯 찌푸려진 얼굴들이었 다. 그렇다고 입을 여는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원찬이란 녀석은 교실의 조용한 분위기가 자신의 몸 에서 품어지는 위압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상당히 뿌듯한 기분에 한마디 더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쫄 필요는 없다. 난 내 꼬봉들에게 관대하니 말이다.” 자신의 주먹을 한번 풀어주더니 씨익 웃었다. “아, 그리고 내가 친히 우리 반 애들을 괴롭히는 녀 석들은 알아서 손 봐 주마. 일종의 서비스지. 그러니 걱 정 말고 말해라. 좋게 잘 지내자.” 하지만 녀석의 말에 아무도 입을 열어 대꾸하지 않았 다. 다만 고개를 숙이고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그것을 본 원찬은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 녀석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했다. “아, 그리고 잠시 후에 이 학교 짱이 누군지 나에게 알려줘라. 몸이 근질근질 하군. 하하.” 애들이 그 말을 듣고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숨일 것이라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원찬이다. ‘그 근질근질한 몸. 계속 근질근질 하길 빌어라.’ ‘주여, 어리 숙한 저 등신 삼발이에게 자비를 배푸소 서….’ 모두가 녀석의 명복을 빌어줬다. ~~~~~~~~~~~~~~~~~~~~~~~~~~~~~~~~~~~~~~~~~~~ 푹 쉬었습니다. 너무 잘자서 기분까지 좋을 정도네요^^;; 그래도 이번주가 시험기간이라... 쩝... 오늘도 시험을 보고 왔는데, 아무것도 눈에 들어 오지 않더라구요 ㅡㅡ; 하얀게 종이긴 한데....쩝... ㅋㅋㅋㅋㅋㅋ 여하튼 시험그 자체가 싫다는..... 쿨럭... 그럼 잠시후에 다음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74 회] 날 짜 2004-11-30 조회 / 추천 12943 / 15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9. 현민, 퇴원하다 모두가 녀석의 명복을 빌어줬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칭 등신 삼발이가 된 원 찬은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 조용한 분위기가 자신을 두려워해서 애들이 만들 어 낸 것이라 착각하는 원찬. ‘후후. 귀여운 녀석들. 우리 반 애들만은 절대 괴롭히 지 않아야겠군.’ 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착각을 하고 있던 사람이 이 반에 또 하 나 있었다. 바로 현민이었던 것이다. 현민은 이미 원찬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자신도 알고 있으니 미지도 알고 있으리란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원찬이라는 녀석은 평택지역의 모든 학교를 1학년 때 이미 휘어잡은 일진의 전설 중 하나였다. 주먹을 한번 휘둘러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번은 들 어 본 이름이리라. 물론 못들은 사람도 있겠지만. 하지만 현민만은 그 위명을 익히 알고 있었다. 미지의 눈빛역시 이름은 낯설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 다. 그런데 왜 그 속에 비웃음이 들어있는지 현민으로서 는 의아하기 그지없었다. 여하튼 자신이 교실에 들어서며 느꼈던 그 이질적인 분위기. 현민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아마도 저 원찬의 소문 때문이 벌써 퍼졌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신조차 녀석을 한번 보고 움찔 할 정도였으니…. 현민이는 결코 자신의 짝인 명훈이 때문에 이러한 분 위기가 되었다곤 상상할 생각조차 없었다. 의외로 둔한 그녀다. 그렇게 점심시간동안 혼자만의 세상에서 뿌듯한 생각 에 놀고 자빠져 있던 원찬. 애들의 굳어 있는 모습을 잔잔히 훑어본다. 지금까지 이처럼 자신의 위압감이 효과 만점이었던 적은 없었다. 적어도 한둘은 반항을 하고 그랬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문을 익히 알고 있는 녀석들이라 생각하며 자 신도 쑥쓰러운지 머리를 긁적였다. 그와 동시에 이 학교를 어떻게 제압할지 망상의 나래 를 펼쳐댔다. 그렇게 반애들을 보는데 약간 신경 쓰이는 애들이 눈 에 들어왔다. 바로 몇몇 여자애들이었다. 자신이 있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떠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자애들은 사정을 봐주는 원찬이었다. 특히나 얼굴이 반반한 애들을 말이다. 하지만, 못생긴 애들은 개뿔 없었다. 그에겐 못생긴 여자는 남자만도 못 하다라는 이상한 자격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자신의 앞에 모여서 떠드는 여자애들.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하고 귀엽거나 예쁜 매력적인 여자애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만족스럽게 웃으며 가벼운 눈빛으로 현민이들 을 바라봤다. 물론 현민이들이 그 눈빛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 다. “씨발, 변태가 쳐다본다.” “기분 나쁘네. 어우, 저 짜증날 정도로 그윽한 눈빛 봐봐. 손가락으로 콕 찔러주고 싶어.” “자신이 뭐라도 되는 거라 생각하는 거 아냐?” “등신 삼발이 같은 게 생긴 대로 놀긴. 풋!” 물론 특별히 배려하여 원찬이가 듣지 못하도록 속삭 이며 말하는 그녀들이었다. 역시나 뒷다마처럼 즐거운 것은 없다 생각하는 그녀 들. 원찬의 험담이 짙어 질수록 비례하듯 웃음소리가 조 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원찬이는 예쁜 애들은 웃는 것도 예쁘다고 생각하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자신을 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저 미소가 어떻게 변할지 상당히 궁금할 정도로 말이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지만, 과거 여자와 관련된 화려 한 전적이 있는 그였다. 원찬은 의외로 항상 자신이 들고 다니는 거울을 보며 자신의 표정관리에 신경을 쓴다. 물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원찬은 자신의 얼굴에 ‘누구도, 아무~도, 알 수 없는’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예전엔 이런 일이 있었다. 친구들을 따라 미팅에 가서 한 여자애가 원찬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문제는 정말 못생긴 여자애였다는 점이다. 조금 예쁜 구석이라도 있으면 기분 좋게 마주보며 웃 어 줬겠지만, 길가다가 만났다면 가볍게 안면을 후려쳐 줬을 지도 모를 정도의 진상이었기에 힘겹게 무시해줬 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신경 쓰지 않았다. 보는 눈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한계가 있는 법. 결국 자신을 향해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며 참지 못 한 원찬.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씨발 존니 못생겼네!” 그런 쓸 대 없이 자격지심 높은 원찬. 가만히 자신의 뒷다마까는 여자애들을 보고 있던 도 중. 순간 흠칫했다. 조그맣던 눈이 휘둥그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바로 현민이와 눈이 마주친 탓이었다. 얼떨결에 원찬과 마주친 현민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웃어 줄 수밖에 없었다. 왠지 그냥 무시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현민의 미소를 오인한 원찬. 그녀의 웃음을 얻음과 동시에 호흡이 멎고, 심장이 심하게 수축하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 었다. 쿵쾅쿵쾅! 진정되지 않는 가슴에 자신의 두터운 손을 올렸다. 진정시키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주체 하지 못하고 결 국 움켜쥐고 말았다. 물론 그런 사정을 모르는 여자애들. “아주 꼴값을 있는대로 떠는 군.” “저거 정말 정신이상자 아냐?” “가까히 가지 말자. 물리면 병 옮을라. 킥킥.” “킥킥킥.”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웃고 있는 여자들의 웃음소리 가 천사의 나팔소리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처음으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던 원찬. 여자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절대 반하지 말아야 할 존재에게 말이다. ~~~~~~~~~~~~~~~~~~~~~~~~~~~~~~ 에구... 이제 다음 화가 1권 마지막 부분이네요... 쩝... 힘들다.. 다음 화에서는 독자 여러분들께서 아마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셨을 케릭이 등장합니다. 한번 맞춰보세요.^^ 그럼 잠시후 뵙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75 회] 날 짜 2004-11-30 조회 / 추천 12456 / 13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9. 현민, 퇴원하다 여자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절대 반하지 말아야 할 존재에게 말이다. 그런 원찬의 눈에 그전부터 거슬렸던 뭔가가 선명하 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세히 그것이 뭔가를 보게 되자 약간 이쁘장하게 생 긴 사내 녀석이란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을 보니 왠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원찬. 다른 애들은 자신의 위압감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데, 녀석은 여자애들 무리에 파묻혀 같이 떠들며 놀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포함되어 있는 무 리였기에 더욱더 참을 수가 없는 원찬이다. 사실, 명훈은 조용히 듣다못해 여자애들 수다에 지쳐 가고 있었다. 조금만 관찰해도 힘들게 웃고 있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질투에 타오르는 원찬. 그런 사소한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때 참다못한 원찬이 결국 소리를 질렀다. “야!” “……!?” 조용한 교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모두들 옷깃이 스치는 소리를 내며 원찬을 돌아봤다. 하나같이 경악에 찬 눈빛이었다. ‘저 자식이 첫날에 오자마자 죽으려고 빽을 쓰는 구 나. 빽을 써.’ ‘미치려면 곱게 미치던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미칠 것이지, 왜 여기에 와서 미치고 지랄이야?! 저게 정말 미쳤나?’ 욕이 입 밖까지 튀어 나올 뻔한 애들이었지만,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병신아 제발 닥쳐라.’라고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애들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원찬은 다시 한번 뿌듯함을 느낄 뿐이었다. 자신의 한마디에 애들이 공포에 절은 눈빛으로 바라 보는 것에 뭔가 우월감을 느낀 탓이다. 물론 공포에 절은 눈빛은 사실이다. 그것이 원찬의 착각과는 다르게 원찬이 아닌 명훈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드러난 눈빛이라는 점에서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점을 모르는 원찬은 콧대를 새우며 그러나 여자애들은 여전히 자신의 말을 무시하며 떠 들 뿐이었다. 거기다가 약골 같아 보이는 명훈조차 무시하자 열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원찬이다. 그럼에도 하나 만족스러운 것은 자신이 첫눈에 반한 여자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안절부절하며 자신을 훔쳐 본다는 점이었다. 이럴 때야 말로 여자애들에게 확실하게 자신의 카리 스마를 박아 줘야 한다는 망상에 빠진 원찬. “저, 개새끼가 내 말을 씹어?!” 그와 동시에 더욱 경악으로 변한 학우들의 눈빛. ‘이 개새꺄! 너나 좀 닥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아, 오늘 또 구급차를 보겠구나….’ 그러나 자신들의 눈빛을 아예 볼 생각도 안하는 모 습. 거기다가 혼자 뭔가 알 수 없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 는 모습. 결국 애들은 학이 질린 듯 고개를 휘저으며 시선을 앞으로 돌리거나 밖으로 나갔다. 혹시나 불똥이 자신들에 튈까봐 내린 결론이었다. 나가는 와중에 자신들은 조용히 학교에 다니고 싶었 다며 허탈한 한숨을 쉬는 애들도 있었다. 바로 그때 지금까지 자신에게 신경도 쓰지 않던 여자 애들이 천천히 시선을 돌리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자 순간 표정관리를 하는 원찬이었다. 그러나 원찬의 표정은 곧 굳어지고 말았다. 여자들이 하는 소리를 듣게 된 후에 곧바로 말이다. “뭐야? 저 등신 삼발이는?” “설마 지가 잘난 줄 알고 설치는 건가?” “에이, 아니겠지. 지, 주제를 알아야지. 그런데 표정이 왜 저래? 식용유라도 한드럼 들이킨 표정이잖아.” “야 김치 없냐?” “왜?” “느끼한 것 좀 가시게 하려고….” “킥킥킥.” 그러자 현민이가 당황했다. “얘, 얘들아 왜 그래?” “뭐가?” “쟤 원찬이라고. 평택 북풍 고교의 원찬.” 현민이의 반응에 여자애들이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장난이 아니라 정말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그래서 여자애들이 현민에게 대답했다. “그게 뭐 어째서?” “흠, 너희들 무섭지 않아? 충열이 오빠도 한수 접는 다는 북풍의 원찬인데?” 그 말을 하고 현민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친구들이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 시 작했기 때문이었다. “너, 뭔가 이상하다? 어디 아프니?” “뭐, 뭐가?” “저런 허풍쟁이가 정말 무서워서 그러는거야?” 그쯤 되자 현민이는 정말 자신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 됐다. 평소라면 먼저 조심했을 애들이 북풍의 원찬을 이렇 게 까지 무시했기 때문이다.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76 회] 날 짜 2004-11-30 조회 / 추천 12682 / 114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9. 현민, 퇴원하다 결국 자신도 조금씩 원찬이라는 녀석이 ‘정말 별것 아닌 건가?’하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심히 원찬을 바라보는 현민. 원찬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모조리 들었다는 듯 씩씩 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원찬이라는 생각을 하게된 현민. 왠지 모를 불안감에 명훈과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친구들은 희미하게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뭔가 감을 잡았다는 표정으로 자신과 현민을 돌 아보기 시작 한 것이다. 여자애들의 천태만상같은 이야기. 그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원찬. 하지만, 여자애들에게는 차마 손을 댈 수 없다고 생 각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신이 때리기에는 너무나 예뻤기 때문이었다. 모두 자신의 할렘을 위해 준비 된 듯 보이는 그녀들. 자신에게 얼마 있지 않아 헌신할 예쁜 시녀들로 보이 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모든 것이 저 쥐꼬리만한 사내새끼 탓이라며 모든 죄 를 명훈에게 돌린 것이다. 원찬은 조용히 여자애들의 반응을 무시하며 명훈에게 손짓을 했다. “너, 이 새끼 여자애들 치마폭에 둘러 싸여 있다고 깝치나 본데 어서 이리 오지 못해?!” 여자애들에게 호리호리한 녀석과 다르게 자신의 위풍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며 회유 하려 했던 것이다. 아직 여자애들이 자신의 매력을 느끼지 못해 일어난 현상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아주 착각의 늪에서 자유형을 하며 혼자 북 치고 장 구 치며 신나게 노는 원찬이었다. 그제야 명훈이 일어나며 물었다. “나?” “그래 너 씹새야. 내가 보는 게 너 밖에 더 있냐?” 그 말에 명훈이 입가를 살짝 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것을 보고 당황한 현민. 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명훈아 너 갑자기 왜 그래? 쥐약이라도 먹었어?!” 명훈이가 걱정 되서 말리기 시작한 현민. 같이 말려달라고 눈으로 신호를 보내며 친구들을 돌 아봤지만, 아무도 자신을 보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원찬이를 보며 코웃음을 치거나 혀를 차고 있 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 시작 서울 시내 상공. 푸르스름한 기운이 두개가 허공에 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조금씩 선명하게 변해갔다. 시간이 조금 소요 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져 있었다. 검은 두릅을 걸친 모습이 마치 저승사자와도 같아 보 였다. 특히나 어디서 본 듯한 형상인데, 마치 검황의 꿈속 에서 보았던 그들과 아주 흡사하게 생겼다. “젠장. 설마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이야.” “이것 봐 그때 네 녀석이 허튼 소리만 안했어도 녀석 이 영계구름 아래로 안 뛰어 내렸을 거라고.” “…….” 대꾸할 말이 없는지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였다. 그러자 그가 자신의 말에 삐졌다고 생각한 “여하튼 대왕님도 그래. 그런 사소한 실수 징계처벌 을 내리시다니….” “아니다. 내가 잘못 한거지. 괜한 걱정으로 한마디 했 다가….” 그의 자책어린 말에 완전히 그의 편을 들어주기로 마 음먹었는지 웃으며 말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화난 모습이나 웃는 모 습이나 구분할 수 없었고, 목소리 톤도 통일 되어 있었 지만 말이다. “아니라네, 친구. 이건 그 담소광이라는 곱지 못하게 늙은 녀석의 잘못도 크다네.” “…….” “죽은 녀석의 몸에 들어가 환생하게 될 것이라고 누 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가 구름에 뛰어 들자마자 동 시에 죽어가던 아이의 념이 설마 사그라져가던 그 늙은 이의 혼을 흡수할 줄이야. 일게 인간의 념이 그렇게 강 할 거라곤 염계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아니지 않은 가?” “그, 그렇지…?” 하지만 자신들끼리는 알아듣는 듯했다. 친구의 거들음이 약간 도움이 되었는지 힘을 찾은 듯 천천히 입을 땠기 때문이다. 그러자 바로 흐름을 타고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가 어차피 이렇게 환생 할 거였다면, 예전에 뛰어 내렸던 녀석처럼 다른 차원으로 날아갔었다면 좀 좋나? 그럼 우리들에게 걸릴 일도 없잖아! 병신 같이 같은 세상의 미래로 올 건 뭐란 말인가?” “그, 그러췌! 자네 말이 맞네. 어째서 뒤 질려면 곱게 뒤 지던가 사라지려면 깨끗하게 사라질 것이지 번거롭 게 영계를 뒤 집냔 말이야.” “맞아 맞아.” “그리고 이 시대를 운영하는 저승사자 녀석들에게나 혼을 회수하는 것을 맡길 일이지, 어째서 다른 시대를 담당하는 우리에게 맡기냐고!” “맞아 맞아!” 이제는 확실하게 기운을 차린 저승사자였다. 사실 그랬다. 이미 죽었어야 할 명훈이 살아 난 것은 영계의 컴퓨 터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가 살아남으로 자신들이 유지해오던 흐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가만히 쥐 죽은 듯이 살고 있어도 심각한 판국에 설 치기까지 한 탓이다. 이미 완벽하게 인간과 동화된 혼을 회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저승사자를 파견하기로 한 저승. 하지만, 이 세상을 맡는 담당 저승사자를 부르지 않 았다. 이번의 일을 만들어낸 저승사자들에게 징계로 면책 부를 조건으로 걸고 사건을 해결하라며 과거의 저승사 자들을 미래로 보낸 것이다. “…….” 지금까지 자신들이 봐왔던 세상과 완전 딴 판인 이 곳. 공기도 좋지 않고 갑갑하다 느끼는 그들이었다. 한참 허공에서 침묵을 지키던 한 저승사자의 입에서 푸념어린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녀석을 어떻게 찾냐….” 그러자 옆에 있는 저승사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러게…….” 휘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그들을 놀리기라도 하는 듯 그들의 얇 고 검은 옷고름을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렇게 몇 시진 동안 허공에서 한숨을 내쉬었 다. -1권 완- ~~~~~~~~~~~~~~~~` 휴, 이렇게 일권분량이 끝났습니다. 곧 2권 분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이제 곧 판타지로 떠날 포석은 모두 갖춰졌습니다. 저승사자들의 대화를 잘 보시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여러분들이 궁금해 했던 검황 이전에 구름으로 뛰어 내렸던 사람의 소식이 어디에 있는지도 나오는 군요 ㅎㅎ ps. 참고로 저는 신 나오는거 별로 안 좋아해요ㅡㅡ;; (옛날엔 좋아했지만....) ps2. 마신 나부랭이는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ps3. 정말 나오자마자 살생각입니다. ps4. 이건 언제쯤 소식이....(가상현실이 가능해 지는 것은 아니겠지요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77 회] 날 짜 2004-11-30 조회 / 추천 12991 / 117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1. 명훈의 선물 -2권 시작 검황 이계정벌하다 2권 1. 명훈의 선물 명훈은 조용히 현민이를 재치고 앞으로 나가며 현민 이 들에게 말했다. “답답하다. 밖이나 나가자.” 그 한마디에 현민의 눈과 원찬이의 눈이 휘둥그레 커 졌다. 완전히 원찬이를 무시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민이를 뺀 여자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현민의 목을 잡아끌더니 재잘거리며 교실 밖 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들의 수다는 모두 원찬이 험담이었다. 명훈이는 천천히 그녀들의 뒤를 따랐는데, 그런 모습 을 현민이는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감히 날 무시해?!” 이마에 핏대가 선 원찬. 살기를 풀풀 날렸다. 지금까지 누가 있어서 자신에게 이토록 무시한 적이 있었던가? 부모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이 아닌가. 열불이 받을 대로 받은 원찬이가 명훈을 향해 달려가 자 바닥이 쿵쾅거리며 울리는 소리가 났다. “넌 죽었어, 이 호로 새꺄!” 말과 동시에 주먹을 휘두르는 원찬. 주먹에서 풍압이 느껴질 정도로 전신의 힘을 다해 질 러 넣었다. 명훈이 죽던 살던 상관 안하겠다는 모습과 진배없었 다. “안돼!”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민이 경악어린 비명을 질렀다. 바로 그 순간. 쾅!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명훈에게 주먹을 휘두르던 원찬이 녀석 이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주먹을 치켜든 그 상태 그대로 말이다. 덜썩! 바닥에 자빠진 녀석은 덩치만큼 자빠지는 소리도 컸 다. 입가에 거품을 물고 있었고, 눈은 뒤집혀서 흰자위만 드러나 보였다. 한 순간 정적이 일어났다. 현민이는 경악과 의문이 어린 눈빛으로 명훈과 원찬 을 돌아보았다. “바, 방금 무슨 일 있었니?” “응? 무슨 일? 지가 나한테 달려오다가 갑자기 고꾸 라진 것 못 봤어?” 봤다. 그래서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훈이는 태연하게 말했다. “나가자. 바람 좀 쐐야지.” 현민이와 친구들은 명훈이 뒤를 따라서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러나 나가는 와중에도 현민이의 의문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커져 만 갔다. 그 의문의 소음이 자꾸 신경 쓰이는 현민. 명훈을 바라보니 별일 아니라는 표정이다. 특히나 자신의 친구들인 여덞자매는 뭔가 알고 있는 표정 같았지만, 왠지 말해줄 것 같이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뭔가 이상한 낌새가 있는 것은 아니 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현민이는 머릿속에서 조금 전 기억을 지워버리게 됐다. “나 화장실 좀.” “응 다녀와.” 현민이가 화장실을 간다고 하니까 자희가 어서 다녀 오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바로 그 순간 화제가 바뀌었다. 어제 텔레비전에 나왔던 누가 멋있더라에서 바로 조 금전 교실의 상황으로 말이다. 눈치를 보던 미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한거야?” 그러자 명훈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녀석의 뒤로 돌아가 주먹으로 뒤통수를 후려 갈겨줬 지.” “응? 넌 자리에 가만히 있었잖아.” 여자애들의 의문에 명훈이 쉽게 설명해줬다. “경신법이라고 몸을 가볍고 빠르게 하는 무술이 있는 데 그걸 사용한거야.” 뭔지는 잘 모르지만 애들은 이미 명훈을 보통사람으 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에 쉽게 받아 드렸다. 앞으로 명훈을 보통 사람 상식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가능했다. “캬하하하! 역시 그랬구나. 난 그 거구가 갑자기 왜 쓰러지나 했어.” “난 녀석이 쓰러지자마자 명훈이가 뭔 짓을 했구나 하며 속이 후련하더라구. 히히히.” 그때 유진이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계속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말야. 현민이는 네가 강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더라?” “그러게 나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여자애들이 자신도 그렇다며 한마디씩 거들고 나섰 다. 명훈은 대답 없이 씨익 웃어줄 뿐이었다. “뭐야? 일부러 숨긴거야?” 그 말에 명훈이 입을 열었다. “설마 일부러 숨겼겠어? 그리고 내가 숨길 이유가 어 디 있겠어? 상황이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지. 시간이 흐르니까 숨길 수밖에 없겠더라고” “그 상황이 뭔데?” 유진의 물음에 명훈이 대답했다. ~~~~~~~~~~~~~~~~~~~~~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이권의 시작입니다. 다음주 수요일까지 3권에 돌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편은 잠시후에 올리겠습니다요 >,. [78 회] 날 짜 2004-11-30 조회 / 추천 13092 / 191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1. 명훈의 선물 -2권 시작 그 말에 명훈이 입을 열었다. “설마 일부러 숨겼겠어? 그리고 내가 숨길 이유가 어디 있겠어? 상황이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 지. 시간이 흐르니까 숨길 수밖에 없겠더라고” “그 상황이 뭔데?” 유진의 물음에 명훈이 대답했다. “그건, …현민이 온다. 다음에 이야기 하자.” 여자애들은 잔뜩 기대했었기에 아쉬움을 저버리지 못 하고 투덜거렸다. “뭐, 무슨 이야기들 하고 있었어?” “응? 어제 본 코미디 프로 이야기 하고 있었어.” “그래?” 딩동댕동. 점심시간이 끝나고 수업 예비종이 울리자 애들은 서 둘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과거였다면 벌써 농땡이 쳤을 시간이다. 그러나 명훈이 그리고 미지들과 어울리면서부터 현민 이들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수업을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매일 같이 쉬는 시간 점심시간이 아쉽다하고 만나느 라 바빴기에 농땡이 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미지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부족했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싸가지 없는 모습을 보여 줄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이다. 얼굴이 귀여웠기에 약간만 튕겨도 더욱 그렇게 느껴 졌다. 그런데 현민이들을 보며 자신감을 표출해 내는 방법 을 배웠던 것이다. 미지들도 현민이의 사정을 알고부터는 포장마차 일을 거들어 주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 동네에선 구자매 포장마차를 모르는 사람 은 간첩이라는 소문까지 퍼졌다. 그것이 불우아동들을 돕기 위해 돈이 쓰여 진다는 소 문은 더 많은 손님들을 끌어 모으기에 부족함이 없었 다. 사실 현민이들은 어느 정도 돈을 모으면 자신들이 필 요한 적당한 돈만 빼고 모두 사회복시센터에 기부를 했 다. 명훈이 어머니께서는 그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헌신 적으로 현민이들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교실에 올라간 명훈이와 현민이들. 아직도 바닥에서 기절하고 있는 그를 보며 혀를 찼 다. “우리는 수업 받고 잠시 후에 올게.” 다른 반에 몸을 두고 있는 다른 자매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나 9반인 애들은 뒷문 입구를 그 육중한 체격으 로 막고 있는 원찬이를 뛰어넘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 다. 이윽고 수업시간. “원찬. 원찬. …원찬이가 누구냐?” 출석을 부르던 선생님의 말에 애들이 손가락으로 뒷 문 쪽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애들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혀 버린 원찬. 아무도 양호실에 데려다 줄 생각조차 하니 않았던 것 이다. 뭔가를 느낀 선생은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그대로 진 도를 나갔다. 왠지 개입 되서 좋을 것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른 수업시간에도 선생들에게 조차 외면당한 원찬. 수업이 끝난 후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애들은 큰 대자로 나자빠져 있는 원찬을 보며 혀를 한번씩 차주고는 곧장 집을 향했다. 결국 녀석은 모두가 학교를 떠나고 늦은 저녁이 되서 야 경비아저씨의 도움으로 깨어 날 수 있었다. “뭐야?!” “…그렇게 됐습니다요. 형님.” [회장 최명진] 명패가 놓여있는 책상에 앉은 체 한 마른 사내가 부 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 명훈인지 뭔지 하는 녀석 때문에 신용이 떨어져서 명진파의 뒤를 봐주던 국회의원이 발을 뺐기 때문이다. 분을 참지 못하고 그 사실을 보고하는 덩치의 면상을 갈겼다. 쫙! “이 개새끼들아! 너희들은 뭐했어!? 그 돈만 받아 처 먹은 돼지새끼가 그렇게 떠날 때 너희들은 뭐했냐고!” “면목 없습니다. 형님.” “면목 없습니다. 형님.” 동생들의 침울한 목소리에 분을 가까스로 삮힌 명진. 그 후로 한참 이를 악물던 명진이 이질적인 미소를 띄우며 이를 악 문 상태로 마치 씹어 뱉듯이 말을 내뱉 었다. “그러시면 안 되지요. 최상익 의원나리. 큭큭큭. 그렇 게 단물만 빼먹고 빠져 나가실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 은 아니겠지요? 설마요…. 크흐흐흐….” 쨍그랑! 명진이 분을 참지 못하고 던진 찻잔이 깨지며 난 소 리다. 안광이 품어지는 눈은 극도의 분노로 충혈 되어 있었 다. 이미 자신은 국회로 출마 했으니 더 이상 명진파가 필요 없어졌기에 걷어낼 건덕지를 찾고 있던 찰나였다. 조금 더 안전한 다른 조직과 손을 잡기 위해서였다. 바로 자신들의 라이벌인 진성파와 말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벌인 더러운 짓들. 꼬리가 길면 잡히기 때문에 명진이라는 꼬리를 자른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던 명진파였기에 비위도 맞춰주며 조 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고등학생 꼬맹이 하나. 자신들이 힘들게 가라앉혀놓은 물을 휘저어 흙탕물을 일으킨 것이다. 설마 진성파를 견제하며 신경을 건드려 전쟁할 목적 으로 보낸 행동대장들이 고등학생하나에게 맞고 반병신 이 될 줄이야…. 그러나 그 소문을 믿지 않는 명진이었다. 누가 그 허황된 소문을 믿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고등학생 하나가 그들을 잡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누군데 말이다. 일당백의 전사라 불리던 재떨이와 돌주먹이 아니던 가? 자신과 함께 명진파를 이 자리까지 키운 일등 공신들 이 아니던가? 아마도 고등학생 10여명의 무리들이 무기를 들고 공 격을 가했을 것이고, 그중 머리가 명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직의 이미지를 생각하여 조용히 참고 넘어 가려 했다. 하지만,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참을 수 없는 것이 다. “그 명훈이라는 자식. 내일아침까지 잡아와라. 면상이 라도 한번 봐줘야쓰것다.” “네, 형님.” 사무실에 있는 검은 양복의 덩치들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나가봐라. 나 혼자 있고 싶다.” “그럼 수고 하십쇼. 형님. 내일까지 꼭 잡아 오겠습니 다요, 형님.” 명진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방안에 있던 사내들이 우 르르 밖으로 몰려 나갔다. “크흐흐. 감히 나를 버리고 진성파와 손을 잡으시겠 다구요? 누가 당신을 그렇게 키워 줬는데? …큭큭. 최 상익 의원나리. 그렇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세상일중에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 습니까?” 명진은 자신의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몸을 부르르 떨 었다. “당신에게 드린 만큼 받아주겠습니다. 으드드득!” ~~~~~~~~~~~~~~~~~~~~~~~~~~~~~~~~~~~~~~~~ 쩝... 피곤하네요.. 곧 시험인데.. ㅡㅡ;;; 내가 미쳤지.. 쿨럭.... 아 쓸 것이 태산같은데 시간이 없네요 ;ㅁ; 에구 슬퍼라.... 몸띵이도 아프고... 어깨랑 허리가 결립니다. ㅎㅎㅎ;;; 빨리 망할넘의 시험이 끝나야 미친듯이 글을 쓸텐데 말이죠 ㅡ////ㅡ(발그래)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다음 글을 오후에나 천천히 올라올 듯 합니다.^^ 검황 이계^^ 계속 사랑해주세요^^ 선작 필수!! 잊지마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79 회] 날 짜 2004-11-30 조회 / 추천 12449 / 151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1. 명훈의 선물 -2권 시작 원찬은 어제 있었던 일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녀석을 치려는 순간 뒤에서 누가 쇠망치나 맥주병을 가지고 풀스윙을 한 듯한 통증을 느낀 탓이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고 저녁 10시나 되서 경비원 덕에 깨어나다니…. 쪽팔려 죽을 것만 같았다. 학교에 나가는 발걸음이 무거운 원찬이다. 이번에는 교실에 가서 조용하게 애들을 노려봤다. ‘대체 어제 내 뒤통수를 갈긴 녀석이 누구냐.’ 마치 숨어있는 배신자를 찾아내는 듯한 눈빛이었다. ‘어제는 그렇게 내 한마디 한마디에 꿈뻑 죽더니….’ 아직도 착각하는 원찬의 눈에 분노는 쉬 가실 것 같 지 않았다. 원찬의 시선이 순간 4분단으로 옮겨졌다. 오늘도 어제처럼 그 싸가지 없지만 예쁜 애들이 모여 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래 내가 너희는 큰맘 먹고 이번만 봐주마. 예쁘면 얼굴값을 해도 되지. 큭큭.’ 순간 불결한 것이 닿은 듯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 는 구자매. 소란스러워졌다. “뭐지? 막 지금 송충이 같은 게 내 몸을 훑은 기분이 야.” “나두.” “나만 그런게 아니야?” 잠시 머쓱해지는 원찬. 그 원찬의 눈에 현민이가 들어왔다. ‘아, 오늘도 정말 예쁘구나. 넌 내가 찜했다.’ 순간 다시 움찔하는 현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원찬의 눈빛이 너무 직설적이다 못해 노골적이기 까 지 하다보니 느끼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의 사랑을 느낀거니? 베이비? 후후후.’ 착각이 정도를 지나치고 있었다. 원찬은 현민의 그런 귀여운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더 니 순간 그 옆에서 뭔가 말을 건네는 명훈의 얼굴을 보 고 치를 떨었다. ‘개자식. 어제 어떤 꿍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나 원찬. 이 이름값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려주마.’ 생각은 그렇게 해도 함부로 움직이진 않았다. 아직 자신을 공격한 녀석이 누군지 알 수 없었기 때 문이다. 아무리 자신이라 해도 정체불명의 적은 상당히 큰 부 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기습엔 장사 없다고. 그래서 원찬은 그러한 불상사를 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명훈이 혼자 있는 시간을 노렸다. 자신만의 현민이와 친하게 어울리는 명훈이 눈꼴시려 웠지만, 지금만 참으면 내일 쯤 현민이는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원찬이었다. 미지가 명훈에게 소곤거렸다. “저 미련한 미친 소가 너를 노리는 것 같은데?” 명훈도 이미 알고 있었다. 미지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나도 보고 있어. 내가 혼자 있길 기대하는 눈치 같 아.” “둘만 있으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왠지 불쌍하다.” “나두…. 괜실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킥킥.” 불쌍하다면서 하는 행동이나 표정은 전혀 그렇게 보 이지 않았다. “그냥 놔둬. 내가 먼저 건들 필요 없지. 물론 싸움을 걸면 피하지는 않겠지만 말야.” 물론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들 주변에는 현민이가 없 었다. 이제는 어째서 현민이에게 명훈이 밝히지 않았는가를 서서히 깨달아 가는 여덟 자매였다. 왠지 속이는 것 같아 미안하긴 했다. 그러나, 현민이의 성격을 예상하는 여덟 자매들. 결국, 명훈이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에 동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현민이의 자존심과 자격지심 사이의 경계를 두고 있는 애매한 문제였다. 자존심 강하기로 이름난 현민이에게, ‘미안하지만 난 지금까지 너를 속였어. 속이려고 한 것은 아닌데….’라 고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중해 질 수 밖에 없는 문제였다. ~~~~~~~~~~~~~~~~~~~~~ 다음 편은 한시간 후에... ps. 저에게 광참과 연참을 말씀하시는데 걱정하시 않으셔도 됩니다. 전 이미 이번년 말까지 3권을 마치고 다음년 1월말까지 5권분량을 마칠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시험기간이라 평소처럼 80k씩은 쓰지 못하더라도 시험기간이 끝나는 다음 주 월요일 부터 공장 가동하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하루에 10편은 기본씩 올릴 듯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다음주 수요일 까지 2권 마치겠습니다. 선작들해주세요~ 선작이 올라가면 더 빨라질 수도 있거든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80 회] 날 짜 2004-11-30 조회 / 추천 13098 / 22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1. 명훈의 선물 -2권 시작 과거 자신을 보호해주며 돌봐줬던 현민. 그렇기에 그 한마디가 위험한 것이다.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고 착각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 다. 물론 좋은 결과가 나와서 더 잘 될 수도 있지만, 이 런 위험부담을 가지고 함부로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냥 처음부터 보였다면 모를까. 자신이 숨기지도 않았는데, 우연인 듯 필연인 듯 현 민이가 없을 때만 실력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차츰 쌓이게 됐고, 이러한 상황까지 오 게 된 것이다. 그러한 사정을 알다보니 자신들도 조심스럽게 입 조 심을 하게 됐다. “아참, 그러고 보니 내일이 명훈이 어머니께서 폭탄 선언 하시기로 한 날이네?” “그렇구나!” 갑자기 화제를 하나 찾아내자 수다들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체 그 선언이 뭘까?” “그러게 말야. 궁금해 죽겠네.” “명훈아, 넌 알고 있지?” “맞아. 알고 있다는 표정이네. 어서 뱉어!” 여자애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는 명훈. 다만 빙글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글세요오~. 킥킥.” “치사하다야~.” “맞아. 존니 치사해. 그거 하나 알려주면 그거라도 사 라지니? 킥킥.” 자희의 한마디에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때 명훈이가 약간 침음성이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기 시작했다. 잠시 명훈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조용하고 나직하게 한마디를 흘렸다. “나 잠시 어디 좀 갔다 올게.” “응? 어디 가려구?” 슬쩍 어디론가 턱짓을 하는 명훈. “저 녀석이 계속 감시하는데.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 네.” 모두가 슬쩍 시선을 돌리자 원찬이가 숨어서 이곳을 훔쳐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목격한 여자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녀올게. 현민이 오면 금방 온다고 전해줘.”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는 명훈에게 모두가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러자 마치 자신이 걸렸을 리 없다고 생각하던 원 찬. 마치 얼굴에 복권이라도 당첨된 표정으로 쾌재를 부 르며 명훈이 뒤를 쫄랑쫄랑 따라갔다. 여자애들은 애써 그런 모습을 무시하기 위해 힘이 들 지경이었다. 뒤뚱거리며 어슬렁어슬렁 명훈의 뒤를 따라가는 모 습. 웃음이 폭탄이라도 터지 듯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 스로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녀석이 자신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폭소를 터트리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살면서 저렇게 눈치 없고 둔한 녀석은 처음 인 탓이었다. “아마, 저 녀석이 평택 욕 다 먹이고 다니는 거 같은 데?” “풋! 정말 저 녀석이 평택을 장악한거 맞아? 혼자 착 각하고 다닌 거 아냐?” “아니면 자신이 퍼트리고 다녔을 지도… 푸하하!” 그때 미지가 약간 정색을 했다. “그래도 싸움 실력은 사실인 것 같더라. 그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충열이 오빠가 한수 접어주는 사람은 내가 본적이 없거든. 그래도 맞짱뜨면 지지 않을 자신 이 있다곤 했지만.” 그 말에 여자애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명훈은 조금 걸음걸이를 천천히 했다. 녀석이 따라오기 편하도록 말이다. 이렇게 까지 하게 된 이유는 녀석에게 어느 정도 맛 을 보여줘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명훈 자신이 천천히 걷자 원찬이 녀석은 좋아라 하며 뒤를 총총 뛰어왔다. 마치 걸리지 않게 뒤에서 다가올 모양인 것 같았다. 그렇게 한 10여 미터 정도 거리를 두었을 때였다. 원찬이 명훈에게 소리쳤다. “야, 이 새꺄 거기 안서?!” 그 말에 명훈은 살짝 놀랐다. 의외로 비겁하지 않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명훈의 가벼운 착각이었다. 착각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명훈 스스로 자신이 강 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탓이다. 그래서 자신의 왜소한 모습이 약해 보인다는 점을 잠 시 머릿속에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녀석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습격을 해 도 했을 것이란 걸 명훈이 몰랐다. 명훈이 자신의 한주먹 거리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정공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여하튼 그 덕에 녀석에게 딱 백대만 팰 생각이었지 만, 특별히 두 대를 빼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번에 타 학교 일진 애들에게 한대 씩를 빼준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특혜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상대방이 알아야 특혜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애매한 특혜였지만 말이다. 명훈이 우뚝 서서 씨익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비릿하게 웃으며 서있는 녀석을 볼 수 있었 다. 그 순간 명훈은 생각했다. ‘생긴 것도 짜증나는 녀석이 짜증나게 웃었으니 다섯 대 추가다.’ 이로서 녀석은 백 세대 맞을 것을 저축할 수 있게 됐 다. 원찬 본인으로서는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닐테지만 말 이다. ~~~~~~~~~~~~~~~~~~~~~~~~~~~~~~ 쩝.. 이제 시험 보러 저는 갑니다. 학교 다녀와서 올릴 수 있으면 올리게요....;ㅁ; 언제 돌아 오려나... 쿨럭... OTL(좌절)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81 회] 날 짜 2004-11-30 조회 / 추천 12136 / 146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1. 명훈의 선물 -2권 시작 이로서 녀석은 백 세대 맞을 것을 저축할 수 있게 됐 다. 원찬 본인으로서는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닐테지만 말 이다. 그렇게 자부심을 느끼는 자신의 얼굴. 그 마가린 버터 3세와 같이 느끼한 얼굴. 그 얼굴 때문에, 한대 맞으면 뼈까지 쑤시는 주먹이 다섯 대나 늘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난 후 어떤 생각 을 할지 사뭇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명훈아~.” 저 뒤쪽에서 현민이가 명훈이를 찾아 달려오고 있었 다. 늦가을임에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정도면 정신없이 뛰어왔다는 말과 동일했다. 아마도 명훈 자신과 원찬이가 이곳으로 오는 것을 목 격하고 걱정이 되어 뛰어 온 듯한 분위기였다. 순간 흠칫 놀라는 두 사내. 명훈이는 속으로 혀를 차며 상황이 좋지 못하게 되었 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원찬이의 생각은 달랐다. ‘흐흐흐, 여기서 저런 허접 쓰레기를 깔끔하게 해치우 는 나의 강함을 보여주면 나에게 반하겠지?’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 그의 빈곤한 상상력을 엿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원찬이는 자신의 말 같지도 않은 상상력이 끝남과 동 시에 현민이가 보는 앞에 주먹을 휘둘렀다. “안돼!” 명훈이가 맞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4층 정도의 높이에서 화분이 떨어지는 소리 가 들렸다. 퍼석! 쿵! 의아감에 눈을 떠서 두리번거리고 보는 현민. 명훈이 앞에 돌부리에 걸린 듯한 포즈로 나자빠져있 는 원찬이가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우르르 여덟 자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민이를 막기 위해 쫓아왔지만, 이미 상황이 끝나있 음을 보고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급살 맞은 듯한 자세로 바닥에 자빠져 있는 원찬이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모두 머리를 긁적이며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까 생 각하던 찰나 명훈이가 천천히 걸어왔다. “명훈아, 이게 어떻게 된거야?” “응? 뭐가?” 명훈이가 현민의 말에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꺄 웃거렸다. “아니 원찬이 말야. 갑자기 왜 쓰러졌지?” “그, 글쎄….” 하지만 거짓말이 서툰 명훈 땀을 뻘뻘 흘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모, 몸이 많이 아픈가 보지. 저번에도 화내다가 갑자 기 쓰러졌잖아.” 명훈의 한마디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그러나 한결같이 현민이가 볼까봐 순식간에 땀을 훔 치는 여덟 자매였다. 애들도 그렇게 나오자 뭔가 아닌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이 수긍 할 수 밖에 없는 현민. 그때 명훈이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고 뛰어 나왔어?” 명훈의 물음에 현민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 다. “화장실에서 담배 한대 피고 있는데 너랑 네 뒤를 따 라가는 원찬이가 보이잖아. 그래서 큰일 날 줄 알고 미 친 듯이 달려왔지. 휴….” “…….” “그래도 큰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에구 내가 늙는 다. 늙어. 동생하나 잘못 둬서….” 명훈이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소매로 현민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줬다. 흠칫! 잠시 놀라는 현민. 그러나 피하진 않았다. 현민이는 자신의 땀을 닦아주는 명훈을 싫지 않은 표 정으로 바라보다가 자신의 이마에서 손을 때자마자 잔 인한 미소를 흘렸다. “흐흐흐. 이 누님이 얼마나 걱정 했는지 알아?! 감히 걱정을 끼쳤단 말이지.” 철썩! “커흑!” 갑자기 명훈의 등짝을 후려치는 현민이었다. ~~~~~~~~~~~~~~~~ 마가린~ 버러~ 3세~ 리마리오 입니다. 윙크. (한가한가 열광하다!) 꺄악! 리마리오 형님!! ps. 너무 짧아서 죄송합니다. 내일 새벽에 많이 올릴게요 ㅡㅡ;;; 약간 두통이 밀려와서 ㅎㅎ;; 손이 안움직이네요. 그리고 현민이를 사랑해주시는 모임의 현사모 회원 여러분...ㅡㅡ;; 저 핍박 좀 그만해 주세요 ;ㅁ; 정말 해피앤딩이라니까요오~ ps2. 참고로 나중에 책이 나온다면 저런 패러디 부분을 삭제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ㅁ;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82 회] 날 짜 2004-12-01 조회 / 추천 12496 / 124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1. 명훈의 선물 -2권 시작 사실 현민이는 요즘 들어 느껴지는 이질감을 이상하 게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생각할 순 없었다. 분명 자신을 위해서 숨기고 있다고 짐작 가능했기 때 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그런 점을 내색하여 지금의 분위기 를 깨트릴 순 없었다. 그렇기에 조용히 웃으며 넘어가고자 마음먹었다. 그때 현민의 눈에 명훈이가 들어왔다. 명훈. 자신보다 약해보이지만 어딘지 듬직한 친구. 그리고 이제는…. 현민이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며 수수하지만 화사한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애들이 알지 못하도록 살포시 말이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글쎄…. 체벌 중에 도움주면 같이 당한다며 토지신 조차 응답을 안 해주는데, 어떻게 녀석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두 저승사자는 한숨을 토했다. “대왕님 참 성격 희안하시네….” “그걸 여태 몰랐단 말인가?” “에휴….” 둘은 허공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한숨을 내쉬었 다. 다시 한 번 그들의 주위에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 쳤 다. 휘이이잉~.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자빠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원찬. “누구야?!” 자신은 거대한 충격에 잠시 바닥에 누웠다가 바로 일 어났다고 생각하곤 자세를 잡고 반격에 대응하는 포즈 를 취했다. 그러나 자신을 반기는 것은 싸늘한 바람과 어둑어둑 해진 하늘뿐이었다. 주변에는 사람 비슷한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응?” 멀뚱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원찬. 아직도 상황이 판별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뭐지?” 정말 녀석의 말대로 이 녀석의 머리는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학교 교문이 잠긴 것을 확인한 한 그림자가 허겁지겁 담을 넘어 밖으로 뛰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 었다. “으아악! 귀신이다!” 그것이 녀석의 머리가 내린 한계였다. 저녁이 오자 포장마차를 열 준비를 하던 구 자매. 문을 완전히 열기도 전에 명진파의 조직원 열명이 순 식간에 이곳 포장마차를 덮쳤다. 당황한 현민이들. 그들의 모습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명훈이란 녀석이 있는 것 알고 있다! 어서 나와!” 각목을 휘두르며 포장마차의 물품을 부시며 횡패를 부리는 명진파의 덩치들. “뭐, 뭐야?” “꺄악!” “시끄러 쌍년들아. 어디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순식간에 구 자매 포장마차는 풍지 박살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명훈은 아직 어머니를 모시고 온다며 이 자리에 없었다. 여자애들의 비명이 아파트 단지를 울렸다. “이 개 같은 것들이 감히 우리의 성질을 건드려?!” 휘익! 퍽! 쨍그랑! 유리컵과 식기들이 모두 부서졌다. “꺄아악!” 그들 열명은 인정사정없이 이곳저곳에 각목을 휘둘렀 다. “시끄러! 명훈이 새끼 어딨어?!” 퍽! 쨍강! 녀석들은 손과 발이 닿는 곳이면 뭐든지 걷어차고 때 려 부쉈다. “네년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큰 피해를 봤는줄 알 아?! 앙?” “형님.” “뭐냐?” “조금 화를 참으십시오. 형님. 그러다 실수하십니다 요. 형님.” “흠….” 그는 바로 명진파의 넘버 투라고 불리는 김경식이라 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독사라는 이름이 더욱 알려져 있었다. 동생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각목을 현민이 들에게 던 지는 그였다. “꺄악!” “오늘은 네년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 명훈이라는 개 자식의 연락처를 불러라.” 으르렁거리듯 이를 악물며 내뱉는 독사의 목소리. 현민이들에게는 두려울 따름이었다. 모두들 공포에 질린 상태에서 쭈그리고 앉은 체 속으 로 누군가를 애타게 찾았다. ‘명훈아….’ 바로 명훈이를 말이다. 그것은 현민이도 마찬가지였다. 왠지 명훈이가 옆에 있으면 듬직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들이 명훈이를 찾는지 모르는 현민. 제발 명훈이가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길 빌었다. ‘명훈. 명훈아…. 위험해 오지마….’ 그런 여자애들을 보던 명진파의 독사. 벌벌 떨기만 할 뿐 입을 열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 아 보이자 분노의 일갈을 질렀다. “어서 명훈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녀석 연락처를 불지 못해? 모두 죽고 싶어?! 앙!” 바로 그때였다. 퍽! “크허어억!” 쿵! 밖에서 비명이 터진 것이다. 명진파의 덩치 모두의 눈이 번뜩여 졌다. 그 비명소리가 바로 망을 보도록 새워뒀던 녀석의 비 명이란 것을 알아들은 탓이다. 하지만 그 비명소리에 덩치들만 반응한 것이 아니었 다. 현민이들의 시선이 그 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 린 것이다. 밖에 누군가가 온 것이 확실했다. 분명 자신들이 알고 있는 그가 십중팔구 맞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제야 얼굴에서 공포의 그림자가 조금씩 거둬지는 현민이들. 현민이의 표정도 다른 여자애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걱정으로 바뀌는 현민. 설마, 설마 생각은 했지만, 지금의 상황도 밖에서 들 이는 소음도 현실감이 없다고 느껴지는 그녀였다. “뭐냐?!” 소음을 듣고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몸을 내민 덩치. 쩌억! 무엇에 맞았는지 녀석의 고개가 거의 목 뒤까지 돌아 가며 이빨을 허공에 분비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허공을 날아 바닥에 털푸덕 나자빠졌다. “커허헉!”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그 순간 다급하게 천막이 열렸다. ~~~~~~~~~~~~~~~~~~~~~~~~~~~~~~~~~~ 결국 독자여러분들의 성화에 현민의 마음을 이렇게 공개하는 군요 ;ㅁ; 잠시후에 어머니께서 뭔가를 공개하실때 더 깊은 감동을 위해 준비하던 건데..... 휴..... 다음 글은 세벽 4시에 올리겠습니다. 10분에서 20분 정도? 조금 늦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83 회] 날 짜 2004-12-01 조회 / 추천 12334 / 105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2. 어머니의 폭탄선언 2. 어머니의 폭탄선언 “명훈아!” 아니나 다를까. 명훈이가 굳은 표정으로 포장마차 안을 살펴보고 있 었다. “뭐, 뭐야?” 의외의 등장에 놀란 덩치들이었다. 독사는 더더욱 놀랐다. 정작 기다렸던 자신들이었지만, 명훈의 등장은 거의 경악에 가까웠다. ‘서, 설마.…’ 독사의 시선이 허공을 날아 바닥으로 나자빠진 체 기 절한 자신의 아우를 봤다. ‘저 녀석이 주먹 한방에 저기까지 날아 간 건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거의 130킬로그램에 가까운 녀석이 종이장처럼 날아 가는 모습. 그것은 자신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까스로 170이나 될까 하는 호리호리한 사내 녀석 의 몸. 그것도 겨우 수염 나기 시작할 고등학생의 몸에서 나 온 힘이라곤 결코 믿어지지 않는 독사였다. 그러나 곧 정신을 추스린 독사. 죽을 고비를 수백 번이나 넘기며 지금의 자리에 있는 독사다. 이럴수록 더욱 냉정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추스를 줄 정도는 아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렇지 못했다면 그 험한 어둠의 세계에서 지금까지 숨을 쉬고 있을 수 없었으리라. “네가 명훈이냐.” 차가운 눈빛으로 명훈을 내려다 봤다. 명훈은 그런 독사를 마주보며 약간의 감탄 섞인 눈빛 을 숨기지 않았다. 왠지 과거 무림의 살수를 보는 듯했던 것이다. 독사의 곧은 살기가 찌릿찌릿 느껴지는 명훈. 하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내가 명훈이다.” “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보이는 군.” “넌 내가 생각했던 녀석보다 더 늙어 보인다.” “훗!” 독사의 눈가에 주름이 지며 웃음이 튀어나왔다. 저 당돌, 아니, 오만함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것이 다.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자신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 는 독사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렇게 먼저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 며 자신을 책망하는 독사였다. 그 믿을 수 없는 소문을 조금이라도 믿었다면 지금처 럼 포장마차를 박살내는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말 이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을 아는 독사다. 명훈이 자신과 마주보던 시선에서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네가 이렇게 했나?” “그렇다. 내가 했다.” “어째서냐?” 명훈의 이가 드러났다. 웃음처럼 보이지만 결코 웃음이 아니었다. 독사 자신도 저런 미소를 지은 적이 있었기에 잘 알 았다. 저것은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던 것이다. “왜 그랬나?” 명훈의 입에서 나직하며 날카로운 일갈이 터져 나왔 다. 독사가 약간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런 사내를 놓친 것이 너무 안타까운 탓이었다. “내가 흥분했었다.” “왜 흥분했나?” 독사가 시선을 들어 명훈에게 쏘았다. “네가 며칠 전 쓰러트려 반병신을 만들었던 애들이 내 동생들이다.” “…….” 명훈이 그제야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 다. 자신 같아도 독사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 탓이다. 과거 무림에서 하오문을 다스릴 때엔 자신도 그러지 않았던가? 이름 모르는 막내가 손가락만 다쳐서 와도 눈에 불을 키고 복수 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자신들이 먼저 잘못했다 해도 말이다. 그곳에서는 누가 잘못하던 약한 녀석이 잘못한 것이 기 때문에 하루라도 싸움이 끊이는 날이 없었다. 현세에서 말하는 조폭이라는 것은 하오문과 같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명훈이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산지 얼마 되진 않지만 많은 것 을 알 수 있었다. 죽은 명훈의 기억을 모두 흡수하지 못했기에 나름대 로 공부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부하며 가장 허탈했던 것이 이곳 사람들은 과거 무 도의 정신을 가진 이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인터넷을 찾아봐도 그런 흔적은 찾지 못했다. 몇몇 경공이나 기공을 사용하는 무술인들이 있다 해 서 알아보면 하나같이 기초적인 능력을 자랑하는 이들 뿐이었다. 결국 이 세상에선 무공이 있다고 해도 상당히 퇴화되 어 버렸다는 것을 깨닫기엔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 다. 모든 것이 편해지고 발달되면서 육체적인 능력이 사 라졌다는 것이 명훈의 결론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 깊은 산속 어딘가. 그 어딘가에는 아직도 어떤 문파의 문맥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84 회] 날 짜 2004-12-01 조회 / 추천 12473 / 148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2. 어머니의 폭탄선언 그러나 자신이 그들을 찾는다 해도 무엇에 쓰겠는가? 나태해진 이들이 생사경 이상의 능력을 지녔을 거라 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무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살수의 살기. 그것을 지닌 사람을 만나니 왠지 기분이 들뜨는 명훈 이다. 무림을 종횡할 때 살수란 족속들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던 검황이었기에 왠지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 정도 였다. 한 참후 명훈이 입을 열었다.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그 일로 인해 많은 사건이 있었다. 분을 풀지 않고 선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애들이고 여자들이다.” “내가 살기도 바쁜 세상이다. 나에겐 이미 남자와 여 자의 구분은 크게 중요치 않다. 내가 여자라고 생각하 는 사람은 2년 전 죽은 나의 부인뿐이다.” 그는 뿌리가 곧고 깊은 잡초와 같다고 명훈은 생각했 다. 저토록 심지가 굳은 이는 무림에서도 만나기 힘들 정 도였다. 그런 사내를 건드는 것은 명훈으로서도 상당히 힘든 일이다. “너를 보낸 사람은 누구냐.” “명진파의 보스 최명진 형님이시다.” “그럼 그자를 족쳐야겠군.” 차가운 살기. 이곳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자에 대한 분노. 명훈은 그 모든 것을 명진파의 최명진에게 쏠아 넣었 다. 차마 마음에 드는 독사를 건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들린 독사의 침울한 목소리. “그는 나의 대형이시다. 그분을 치려면 나를 먼저 눕 혀야 할 것이다.” 명훈은 미리 그가 할 말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더욱 기분이 착잡했다. “안타깝군. 자네 같은 사내와 적이 되다니.” “오히려 내가 그렇군. 이런 사내일줄 진작부터 알았 다면 각목보다는 술을 한잔 들고 왔을 텐데….” 명훈이 독사의 말에 쓰게 웃었다. 명훈은 독사가 수많은 싸움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하 나의 도를 깨우쳤다는 알 수 있었다. 독사의 뒤에서 멀뚱히 서있는 저런 허장성새의 껍데 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다. 평소의 명훈이었다면 분명히 잡아 족쳤을 것이나, 어 째서인지 잠시 잊어버렸던 강호를 떠올려준 그를 용서 할 수밖에 없는 명훈이었다. “내가 죽더라도 할말이 없다. 그러나 내 동생들은 죽 이지 말아다오. 패는 것까진 좋아도 병신으로 만은 만 들지도 말아다오. 앞길이 창창한 애들이다. 내 마지막 부탁이다.” 그때 뒤에 서있는 머리가 없는 덩치들은 씩씩거리며 외치기 시작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저런 녀석 그냥 죽여 버립시다. 형님.” “닥쳐라! 너희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저자가 지금 참고 있어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서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형님. 저런 애송이 따위 에게 겁이라도 먹으셨습니까요? 형님?!” 퍼억! “컥!” 멋모르고 주둥이를 나불거리던 녀석의 턱주가리를 그 대로 날려버린 독사. 그러자 뒤에서 웅성이던 녀석들의 입이 다물어 졌다. 명훈의 눈빛이 이채롭게 변했다. 명훈 자신에 전생의 모습과 겹치는 그의 모습 때문이 리라. 주먹을 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하던 독사를 향해 명훈 이 침음성이 섞인 말을 내뱉었다. “좋다. 너를 봐서 오늘일은 넘어가주마. 내가 아무리 분노했다 하여도 당신 같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오늘일은 불문에 붙이고 용서해주마. 그 만 돌아가라.” 그 말에 독사의 눈이 휘둥그레 변했다. 설마 자신들을 이렇게 쉽게 보낼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던 탓이다. “고, 고맙소.” 독사의 높임말에 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진 않겠다. 일을 이렇게 만든 녀 석에겐 분명 죄 값을 받을 것이다.” 그러자 독사가 다시 씁쓸하게 웃었다. “그날이 내 제삿날이 되겠군. …단단히 준비하고 기 다리겠소.” 독사는 자신의 아우들을 시켜 쓰러진 녀석들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그 와중에 독사는 자신의 등뒤에서 수군거리는 녀석 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쳇 그 무서운 독사도 나이가 드니 이빨이 빠졌나 보 군.” “그러게? 설마 저런 애송이에게 겁을 먹다니.” 저렇게 대놓고 말하는데 듣지 못할 리가 없는 독사였 다. 하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살아서 돌아가는 자신의 기쁨이 받고 있는 모 욕보다 큰 탓이다. 그러나 곧 녀석들의 입이 다물어 졌다. 포장마차 밖으로 나온 후부터였다. 박에서 망을 보던 두 녀석이 나자빠져 있는 것을 보 고 놀란 것이다. 그것도 두 녀석 모두가 반병신이 되서 꿈틀거리며 숨 을 몰아쉬고 있는 모습. 자신들이 보기에도 두 녀석은 앞으로 조직세계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심하게 망가졌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이라고 구급차를 불러야 할 것 같았다. 그제야 독사에게 겁쟁이라며 손가락질을 하던 아우들 의 입이 다물어 졌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독사를 봤다. 역시 연륜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탓이다. 자신들 역시 저런 모습이 될 뻔 했다는 것을 뒤늦게 나마 알게 됐기 때문이다. 독사에게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오는 덩치들이었다. 자신들이 병신이 될 뻔한 것을 구해준 사람이 아닌 가. 그때 독사가 서글픈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녀석들을 보자 가슴이 매 어진 탓이다. “어서가자….” “예, 형님.” 평소보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동생들을 보며 그나 마 힘겹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독사였다. ‘내가 이 세계에 너무 오래 있었나 보구나….’ 독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저 명훈이라는 녀석이 혼자라도 쳐들어온다면…. 흠….’ 생각만으로도 자신의 조직은 한순간에 와해 되는 것 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보지 않아도 눈앞에 선히 보이는 미래. 가슴이 답답한 독사였다. 그래서 독사는 이 순간부터 각오를 다졌다. 죽을 각오를 말이다. ~~~~~~~~~~~~~~~~~~~~~~~~~~~~~~~~~~~~~~~~~~~~~~ 에구 힘듭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약간 무겁죠? 과거란 언제나 사람을 약하게 만들죠. ㅎㅎ 특히나 힘들었을 때의 과거란 말이죠. 말하고보니 제가 마치 한 50정도 먹은 것처럼 느껴지네요 ㅎㅎ 전 그냥 적당히 먹었습니다. 어리지도 않고 많이 먹지도 한고 ㅎㅎ 어중간하죠^^ 이번화에서 박터지게 싸우는 것을 기대하셨던 분들께 죄송하다는.. ㅎㅎ 생각해놓은 줄기를 그대로 글로 옮기는 것이니 테클은 사양해염 ㅡ///ㅡ 에구 그러고보니 오늘도 시험인데.. ㅋㅋ 또 잠을 못 잤네요 ㅡㅡ;; 이러니 괴물 소리 들어도 대꾸할 말이 없지... 피곤해서 그런지 잡담이 길어 졌네요^^ 뎃글로 항상 힘을 주시는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드려요^^ 아참, 아직도 선작하지 않으신 분들.... 미워 ;ㅁ; 미워미워미워~ 잉잉~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85 회] 날 짜 2004-12-01 조회 / 추천 14229 / 250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2. 어머니의 폭탄선언 현민이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질줄 몰랐다. 명훈의 놀라운 모습을 처음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건가? 이런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왠지 회의감이 밀려오는 현민. 그러니 명훈을 바라보는 눈빛이 고울리 만무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친구들은 자신들이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 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부서진 포장마차로 말이다. ‘휴….’ 한숨이 새어 나오는 그녀들이었다. 멀쩡한 것을 찾는 것이 오히려 빠를 정도였다. 웬만한 것들은 전부 박살이 난 것이다. “뭔가 나에게 할 말이 있을텐데?” 현민이의 차가운 목소리에 청소하던 여자애들이 흠칫 했다. 하지만 애써 무시하고 정돈을 시작했다. 괜히 저 고래들의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등터지고 싶 진 않았기 때문이다. 명훈은 씁쓸하게 현민이를 바라봤다. “미안해. 결코 숨기려고 했던 것은 아니야….” “…….” “다만, 네가 그냥….” “그냥 뭐.” “그냥….” 슬쩍 눈을 피하는 명훈. 그런 명훈의 볼을 잡아당기며 현민이가 소리쳤다. “말 제대로 안해?!” “아아아아! 아퍼, 아퍼!” 결국 쭈욱 당기던 볼을 쌔게 한번 비틀어 준 후 손을 놓는 현민이다. “쓰으읍!” “아프냐?”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이는 명훈. “이제 시작이야. 가만 둘 거라 생각하지마!” “에구…. 정말 숨기려고 했던게 아니라니….” “시끄러! 내가 그것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 네가 혹 여나 맞아 죽을 까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넌 더 맞아야해. 이리와. 이리와.” “아야야야야야! 사, 살려줘!” 그러나 현민이는 결코 잡아 당길 볼살을 놔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그 잔인한 모습에 여자애들은 치를 떨었다. 설마 자신들에게도 저러진 않을 거라 믿고 싶은 그녀 들이었다. “너희들도 주욱었어!” 순간 자신들의 믿음이 깨지자 깨갱하고 꼬리를 내렸 다. 약간이라도 잘 보여야 조금이라도 덜 맞을 거라 생각 한 탓이다. “헤헤헤.” “한번만 봐주라. 앞으로 잘할게. 응? 히히” “한번만 봐주라아~. 응? 착한 현민아아~.” “으이그 저것 들을 친구들이라고….” 현민이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아직도 잡고 있는 명훈이의 볼을 슬쩍 비틀 며 박치기 한방을 먹여줬다. 팍! “아야! 이 돌 머리야!” 하지만 아파한 쪽은 오히려 현민이었다. 그러나 화를 내는 쪽 역시 현민이었다. 자신의 앞머리를 차가운 손등으로 부비며 명훈을 바 라봤다. “으이그 등신 삼발아. 그게 무슨 비밀이라고 숨기고 다녔냐?” “그게, 네가 혹시나 자존심 같은 거, 상할까봐….” “내가 애냐? 애야? 그런 걸로 상해하게?” 슬쩍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려 머리에 꿀밤을 먹이려던 현민. 순간 무슨 생각에선지 은근슬쩍 손을 내렸다. “여하튼 고마워. 그렇게 신경써줘서. 사실 뭔가 있다 고 어느 정도는 눈치 차리고 있었는데, 그게 명훈이가 붕붕 날아다니는 것이었다니. 후후후.” 왠지 자조적인 말투였다. 하지만, 그 속에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담겨 있었다. “하긴 그 정도는 돼야 내 오빠가 될 자격이 있겠지. 킥킥.” “응?!” 순간 청소하던 여덟 자매가 멈칫했다.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들이었다. “지금 현민이가 뭐라고 했냐?” “글쎄?” “나도 잘 못 들었어….” “설마 단체 환청을 들었을 리는 없을 테고, 그 오빠 라는게 무슨 뜻이지?” 하나같이 도리질을 치는 여덟 자매들이었다. 정말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현민아 내가 잘못들은 거 맞지?” 미지의 물음에 혜영이가 어깨를 치며 말했다. “뭘 입 아프게 물어보고 그래. 우리가 환청을 들을 수도 있는 거지. 자, 빨리 청소 합시다아~.” “그래. 환청일거야. 하하하! 청소, 청소!” 유진이 조차 얼어서 뻣뻣한 모습으로 정돈을 하기 시 작했다. 그런 여덟 자매의 행동을 보며 명훈과 현민이 마주보 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말 같지도 않은 상황을 대충 얼버무리자는 혜영이의 그런 수고를 무시하기라도 하듯 현민이가 명훈이의 볼 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잔잔한 눈으로 명훈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 다. “미안해 오빠.” 쩌저저적! 순간 여자애들이 얼어붙었다. “응. 괜찮아.” 친근한 명훈의 목소리. 쩌저저저적! 급속도로 마비현상을 보이는 여덟 자매들. 그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현민이가 입가에 웃음 을 머금으며 마지막 결정타를 먹여줬다. “많이 아팠지. 그래도 애교라고 봐주세요. 그리고 앞 으로도 날 지켜줘야 해. 알았지? 킥킥.” “그래. 당연하지. 내 예쁜 여동생. 킥킥킥.” 여동생이란다! 오빠란다!? 정말로 친남매처럼 다정한 둘의 모습. ‘설마, 설마?!’ 여덞 자매들의 이성이 조금씩 붕괴되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적!? 순간 감당 할 수 없는 정적이 이곳 포장마차를 스쳐 지나갔다. ~~~~~~~~~~~~~~~~~~~~~~~~~~~~~~~~~~~~~~~~~~~~ 짐작하셨던 분들 계시겠죠? ㅎㅎ 제가 그렇게 힌트를 드렸었잖아요^^ 이것이 바로 어머니의 폭탄선언이랍니다. 어머니께서 밝히기도 전에 먼저 밝혀지긴 했지만요. 몇몇 독자분들께서는 눈치가 정말 빠르시더군요. 힌트를 주기전에 벌써 맞추셨더라구요. 얼마나 놀랐던지 ㅡㅡ;;; 제 아는 동생들도 제 글을 보는 애들이 있는데, 그중 한 녀석만 맞췄었거든요. ㅎㅎㅎ 그럼 잠시후에 뵙겠습니다. ^^ 바이바이~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86 회] 날 짜 2004-12-02 조회 / 추천 11399 / 110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2. 어머니의 폭탄선언 지금 자신 스스로 우리 어머니라고 한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 “지지배. 얼굴 붉어지는 게 무슨 횃불인 줄 알았네. 킥킥.” “여하튼 우리 어머니가 너희들에게 공개하는 오늘을 얼마나 기다리셨는데…. 다들 알아서 놀라지 않으면 각 오하구 있어?!” “아, 알았어. 알았어. …왁! 이렇게 놀라면 되는거지?” “킥킥. 나도 …왁!” “그, 그래. 그렇게 꼭 해야 해….” 평소의 현민이와 어울리지 않는 저 부끄러운 듯 말투 와 홍조를 띤 얼굴. 그래도 왠지 원래 현민이의 얼굴이 아닐까 싶을 정도 로 잘 어울렸다. 생기와 활기가 함께 드러난 모습은 정말 행복해보였 다. 모두들 말들은 그렇게 했지만, 현민의 둘도 없을 행 복을 축복해줬다. 이미 부서진 물품으로 인해 장사는 글렀기 때문에 그 냥 문을 닫고 명훈이네로 향했다. “그런데 너는 어머니 데리러 간다더니 왜 혼자 왔 어?” 명훈이의 머릿속에 순간 오늘 할 파티를 위해 준비하 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애들을 오히려 애들을 데려 오라 고 성화를 내던 어머니가 그려졌다. 그러다보니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만 명훈. “응?” “왜 혼자 왔냐고오~.” “아, 어머니? 어머니는 원래부터 오실 생각이 없던 모습이던데? 나오기 전에도 나한테 빨리 갔다 오라며 으름장 놓으시더라. 파티 준비 하시느라 바쁘시더라구. 아버지도 오늘은 보통 때보다 먼저 오셔서 같이 거들어 주시기까지 하던데?” 모두들 왠지 수긍이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 다. 뒤늦게 명훈의 집에 도착한 명훈을 포함한 열명의 무 리들. 와글와글 북새통을 이루며 입구에서부터 어머닐 찾았 다. “어머니 저희 왔어요.” “늦게 와서 죄송해요.” 그 소란에 어머니는 문 앞까지 마중을 나오시며 고개 를 끄덕이셨다. “그래, 어서들 들어오려므나.” 여자애들은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하나같이 엄청난 음식들에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헉! 어머니.” “왜 그러니 미지야?” “이것들을 다 어머니 혼자 하셨어요?” 그 말에 명훈이 어머니는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그 입에서는 쌩뚱맞은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현민이들. “그렇지?” “네? 뭐가요?” “아니, 역시 음식이 부족해 보이더라.” “에헥?! 아, 아녀요. 저흰 그 말이 아니라 이 많은 음 식들을 혼자 만드셨냐는 말이었지요.” 그 말에 안심하는 명훈이 어머니. “휴, 난 또…. 음식이 부족해서 그러는가 했지. 후후. 물론 나 혼자 어떻게 이걸 준비했겠니. 가정부 아주머 니가 도와주셔서 같이 했지. 저기 주방에 있는 우리 남 편도 열심히 거들어 줬지. 후후후.”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와~, 그래도 대단해요. 이 많은 음식들을 단 세 분 이서….” 말 그대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음식들을 보며 놀 라움을 금지 못하는 현민이 들이었다. “자 그럼 어서 자리에 앉으렴.” “예~.” 하얀 접시가 곱게 놓여있는 자리에 자신의 명찰이 놓 여 있는 것을 보고 앉는 현민이들. 명찰이 놓여 있는 것이 아직도 생소한 그녀들이었지 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하게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머니는 그녀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미 꿰고 있 었다. 그러다보니 누구 앞에 무엇을 놓을지 정하셨던 것이 다. 명찰의 의미는 그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가까 이 있다는 뜻으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자리기도 했다. 역시나 그런 명훈이 어머니의 세심한 배려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현민이들. “어머니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모두 시끄럽게 한마디씩 하는 것을 뿌듯하게 바라보 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우리 딸들. 많이들 먹어요.” “네, 어머니. 헤헤헤.” 여자애들이라 그런지 음식을 먹으면서도 수다는 그치 지 않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어느 세 자신들의 주변에서 현민이가 스리슬쩍 자리 를 피하듯 사라졌다는 것을 짐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 었다. 한참 후에야 유진이가 한마디 했다. “응? 현민이가 어디갔지?” “그러게?” 그제야 한마디씩 하며 두리번거리는 여덟 자매들. 그런 애들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만족한 표정으로 미소를 머금으셨다. ~~~~~~~~~~~~~~~~~~~~~~~~~~~~~~~~~~~~~~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어서 다음편으로....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87 회] 날 짜 2004-12-02 조회 / 추천 11194 / 126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2. 어머니의 폭탄선언 그런 표정은 아버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잠시 자리를 비우시며 일어나는 어머니. 자연히 여덞자매의 시선이 어머니를 따라가게 됐다. 종종 걸음으로 작은방에 들어가시던 어머니. 잠시 후에 꽃이 만개 한 듯한 미소를 머금으신 표정 으로 밖에 나오셨다. 그와 동시에 마치 자랑스러우신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애들아, 놀라지 마렴~.” 그 말에 뭔가가 있다고 깨달은 애들의 시선이 작은 방 쪽으로 돌려졌다. 그러한 모습들을 확인 후에야 어머니가 나직하게 현 민이를 불렀다. “현민아 나오렴.” 하지만 어째서인지 현민이는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행동을 보면 그 방에 있는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응이 없던 것이다. 그제야 어머니는 방에 들어가시더니 뭔가 실갱이를 벌이시는 것 같았다. “현민아 어서 나가자.” “부끄러워서….” “부끄럽긴 뭐가 부끄러? 이쁘기만 한데.” “그래도….” 대충 이런 식의 말이 흘러나오는 것을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직접 팔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듯 힘 을 쓰시는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마지못해 딸려 나오는 현민이가 눈에 들 어왔다. 그 순간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커짐과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너, 현민이 맞아?” “정말 예쁘다. 무슨 새 색시 같다야.” “와, 잠시만 사진. 사진. 미지야. 디카 어서 꺼내봐.” 혜영의 말을 들을 그제야 다급하게 디카를 가방에서 꺼내는 미지. 번쩍 번쩍 플래시가 터지는 것을 보아하니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진 속과 저 앞에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홍조를 띠고 있는 현민이가 있었다. 아이보리 빛의 파티용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현민 이에게 정말 잘 어울렸다. 여자애들은 하나같이 그런 현민의 모습을 부러운 듯 이 바라보며 쉬지 않고 탄성을 질렀다. 명훈이 역시 먹고 있던 탕수육을 조용히 접시에 내려 놓으며 놀란 눈빛으로 현민을 바라봤다. 정말 벙 져있는 것이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 듯한 표 정이다. 그럴수록 현민이는 머쓱한 표정으로 쥐 소리만큼 조 그맣게 입을 열었다. “부끄러워. 그만해….” “킥킥. 계집애. 부끄러운 건 아나보지?” 자희의 핀잔에 다시 얼굴을 붉히는 현민이었다. 다시 쪼르르르 방안을 향해 들어가려 현민을 순식간 에 낚아 첸 어머니의 민첩성은 모두에게 감탄사를 터트 리도록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우와~. 어머니 멋져요.” “그래? 멋지니? 엣 햄~.” 멋대로 생색내시면서 이런 저런 자세로 포즈를 잡는 어머니의 귀여운 모습에 여자애들은 마치 스타라도 본 듯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어머니 너무 귀여워요~!” 미지는 어머니와 현민이를 번갈아 가며 사진 찍었다. 가까스로 애들이 앉아 있는 식탁 앞까지 현민이를 끌 고 오자 여자애들은 더욱 환호했다. “그런데 어머니 현민이가 입은게 뭐예요?” 그 말에 화사하게 웃으시며 대답해주셨다. “내가 어렸을 적에 입었던 드레슨데, 나랑 체격이 비 슷한 현민이를 보자 갑자기 농 안에 모셔놓았던 것이 생각나 꺼내봤지. 어때? 예쁘니?” “네, 어머니~. 정말 예뻐요!” “정말 잘 어울려요!” “어머니는 지금도 예쁘신데 젊으셨을 때의 모습은 상 상도 안 가는데요?!” “맞아, 맞아!” 유진의 아부성 발언에 어머니도 현민이와 같을 정도 로 얼굴이 붉어 지셨다. 그러나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자신을 예쁘다고 하는데 싫다고 하겠는가? 그럼에도 어머니는 짐짓 고운 눈웃음으로 유진을 나 무라셨다. 마치, ‘어른을 놀리면 안돼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 정이었다. 바로 그때 어머니가 홍조를 띈 얼굴을 가까스로 정돈 하며 애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모으셨다. ~~~~~~~~~~~~~~~~~~~~~~~~~~~~~~~~~~~~~~~~~~~~~~~~~ 휴... 오늘 정말 쥐 죽은 듯이 잤습니다. 알고보니 14시간을 내리 잤더군요. 깨어나니 세벽 2시.... 미친듯이 휘갈기기 시작했습니다... 4시까진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말이죠 ㅡㅡ;; 에구.. 반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니까요 ;ㅁ; 그래도 정말 제가 아프긴 아팠나 봅니다. 10일 동안 잠도 설쳐가며 글만 썼더니.. 역시 독자님들의 충고처럼 골병이 들었었나 봅니다. ㅎㅎ 그래서 연참도 못했고.. 쩝.. 그래도 서둘러 올립니다. 내일 부터 연참모드로 돌입하겠습니다^^ 몸이 정말 개운해 졌거든요.. 땀을 뻘뻘 흘려서 이불이 다 젖긴 했지만.. ;ㅁ;(이불 빨기 귀찮아...) 그럼 곧 다음글을 올리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88 회] 날 짜 2004-12-02 조회 / 추천 11485 / 129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2. 어머니의 폭탄선언 그리고는 손바닥을 드러내시며 조용히 하라는 의사표 시를 보여주셨다. “이제 중대 발표를 하겠어요.” “…….” 그 말에 긴장하는 구자매와 명훈. 이미 그 발표를 알고 있었기에 더욱더 긴장되는 그들 이었다. “아참, 잠시만….” 그제야 뭔가를 깜빡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안방으로 들어가시는 어머니는 한 참 후 현민이의 두 동생을 데 리고 나오셨다. 자고 있었는지 두 눈을 힘겹게 비비며 하품을 했다. 하지만, 전에 미리 옷을 입혀 놨었는지 모두 고운 한 복을 입고 있었다. “동선아, 우리야 정신차리거라. 밥 먹어야지.” “하아암.” 대답대신 다시 하품하는 아이들. 동선이와 우리의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에 모두들 미 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미지의 즐거움은 특히 더 컸다.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는 순간을 사진기로 완벽하게 잡아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발표 할게. 명훈아.” 짐짓 진지하신 표정으로 명훈이를 부르자 명훈이가 쑥스러운 표정을 한체 입으로 뭔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 다. 하지만 그 소리가 작자 어머니는 짐짓 엄한 목소리로 명훈이를 다시 불렀다. “명훈이 밥 먹기 싫어?”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명훈의 입에서 들이는 북소리에 모두 벙진 표정을 짓 다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생각만 해도 웃긴 상황이 그녀들 눈에 직접 그려지고 있으니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들의 폭발적인 웃음에 고개를 숙이는 명훈. 그럼에도 결코 명훈의 입에서 들리는 ‘두두두두’소리 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두두두두두….” “어허, 소리가 작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킥킥킥.” 결국 현민이 조차 가까스로 참고 있었던 웃음을 터트 리자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심정의 명훈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애들의 다른 반응을 기대하신 다는 표정으로 무겁게 다물어진 말문을 여셨다. “중대 발표를 하겠어요. 현민이와 동선, 그리고 우리 를 우리 가족으로 받아드리기로 했답니다. 남남이 아닌 호적상의 완전한 가족을 말하는 거예요.” 말을 마침과 동시에 뭔가 기대에 가득 차있는 어머니의 눈. 순간 정적이 거실을 스치다가 애들이 하나씩 입을 열 며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와아~.” “이야~.” 하지만 기대하고 있던 어머니. 어딘지 어정쩡한 그들의 반응을 모를 리 없는 어머니 였기에 눈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너희들….” 흠칫! 모든 여자애들이 깜짝 놀라며 몸을 바짝 긴장했다. “…누구한테 들었니?” “…….” 정곡을 찌르는 싸늘한 목소리가 방안을 얼어붙게 만 들었다. 애들이 우물쭈물 거리자 확신을 한 어머니는 명훈이 를 바라보셨다. “명훈아….” 이름을 불렀음에도 시선을 회피하자 어머니는 슬그머 니 명훈의 뒤로 가서 볼을 잡아 당겼다. “아아아! 아하요 어어이.” “아프긴 뭐가 아파! 어서 이실직고 하지 못해?!” 환생하여 처음으로 명훈은 식은땀을 흘렸다. 결국 자포자기한 명훈이 입을 열자, 이야기를 다 들 으신 어머니는 씁쓸하고 아쉬운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흠…. 너희들이 놀라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는데….” 그 한마디에 너도 나도 입을 열며 거들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던 것 이상으로 시무 룩해지자 문제의 심각성을 뒤 늦게나마 파악했던 것이 다. “어, 어머니. 저희들은 정말 놀랐다구. 그치 얘들아.” “그, 그럼. 당연하지! 저, 어머니. 우리가 처음 그 이 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놀라서 심장마비라도 걸린 줄 알았다니까요. 정말이예요!” 애들이 그렇게 어순도 맞지 않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 자 어머니는 침울한 표정을 짓고 방긋 웃었다. “그래, 뭐 앞으로도 있으니까 너희들의 반응을 본 셈 치지 뭐….” 어머니는 현민이와 동선, 그리고 우리를 자신의 옆에 나란히 앉히고 음료수 잔을 높이 들었다. “위하여~.” 그런 어머니의 행동에 애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잔을 따라서 들었다. “위하여~. 킥킥.” 모두 잔을 비우고 시선을 돌리자 울고 있는 현민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어머닐 볼 수 있었다. 애들은 현민이가 울자 같이 울었다. 그런 애들은 어머니는 자신의 품에 끌어안고 따스한 한마디를 흘려줬다. “그래. 딸아. 이제는 힘들 때 엄마한테 이렇게 안기 렴. 그리고 동선이랑 우리도 앞으로는 아줌마라고 하지 말고 엄마라고 해야 한다 알겠지?” 동선이와 우리는 뭘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이들을 기특한 표정으로 바라보시며 한번씩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때 현민이의 입에서 힘겹게 흘러나온 한마디에 이 곳은 완전히 울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어, 엄마….” ~~~~~~~~~~~~~~~~~~~~~~~~~~~~~~~~~~~~~~~~ 그럼 잠시 후 다음 글을 또 올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89 회] 날 짜 2004-12-02 조회 / 추천 12124 / 207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명훈, 저승사자와 만나다 3. 명훈, 저승사자와 만나다 “기운이 여기서 잡히는 군.” “그나마 영환경이라도 가져오길 잘했네. 이거라도 없 었다면 일년을 해매도 못 찾았을 걸세.” “그럼 뭐하나. 그냥 이 근처에 있다 정도만 알려주는 녀석인데….” 허탈한 듯 대꾸하자 상대편에 있던 저승사자가 대답 했다.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딘가. 땅 집고 헤엄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세.” “그렇군. 그런데 여기는 대체 어느 부분일까?” “…….” 여전히 방향을 잡지 못하는 두 저승사자였다. 다음 날, 학교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어제 저녁 미친 사람하나가 운동장에서 ‘귀신이 나타 났다!’라고 외치며 번개같이 사라졌다는 희괴한 소문이 었다. 지각하지 않고 일찍 온 명훈이와 현민이가 그 소문을 접할 정도였으니 소문의 위력은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일교시가 흐른 후에는 우리학교가 원래 공동묘지였단 다. 이교시가 흐른 후에는 우리학교 이순신 동상이 운동 장을 뛰어 다닌 단다. 그리고 교장의 초상화의 눈동자가 움직이며, 오른손 이 왼손을 덮고 있다가 나중에 보면 왼손이 오른 손을 덮는다는 소문도 나왔다. 삼교시가 흐른 후에는 우리학교에서 자신도 귀신을 봤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나중에는 고스터 바스터즈를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는 비명을 지르며 복도를 뛰어다니는 정신 나간 녀석들도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명훈과 현민이들은 그 소문의 진위를 가지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바로 귀신은 있다 없다의 문제였다. 하지만 명훈은 이미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알 고 있기에 가만히 있었다. 자신이 떠들어 봤다 본전도 못 찾는 다는 것을 잘 숙 지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를수록 소문은 부풀어만 갔고, 종국에는 어 느 반의 누가 과거에 죽었던 선배의 혼령이라는 소문까 지 터져 나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흐르자 학교에서는 통제하기 시작했다. “누가 그런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닌 건지 모르겠지 만, 세상에 귀신이 어딨냐! 니들이 애들이야?! 그런 희 안한 소문가지고 하루 종일 떠들썩거리기나 하고!” 발정난 개차반의 욕설에 잠시 조용해 진 듯했다. 하지만 폭풍전야의 고요일 뿐이었다. 선생들의 한마디 했던 것은 약간의 진정제 효과만 발 휘 했을 뿐이다. 설마 누가 알았겠는가? 더욱 크게 소문이 커질 것이라고 말이다. 교무실에서 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나섬으로서 애들이 더 큰 오해를 하게 될 것이라곤 말이다. 설마 자신들이 진실을 숨기기 위해 나섰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퍼져 나갈 것이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그런 소문이 들썩일수록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사람이 여기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원찬이가 조용하네?” “그러게? 보통 같으면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었을 텐 데?” 원찬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자신이 어제 늦저녁에 했던 실수. 설마 그것이 소문으로 퍼질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 다. 그때는 저녁 10시가 넘어있었고, 교내에는 아무도 없 었다. 아니, 확인은 하지 않았다. 없다고 확신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문이 퍼졌다. 귀신의 농간이 아니라면 제발 범인이 잡히길 원하는 원찬. 잡아서 묵사발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분명 범인이 있을 것이리라.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자신이 이렇게 고립되면 고립 될수록 명훈을 향한 분노는 더욱 더 커져만 갔다. 이 소문을 원하던 원치 않던 만들도록 개입한 것이 명훈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원찬은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자신이 어째서 자꾸만 쓰러지는지 알 수 없었다.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자신의 몸이 허해진 것 같았다. ‘보약이라도 지어 먹어야 하나?’ 정말 그 장소에서는 현민과 명훈 그리고 자신만이 있 었다. 분명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누가 자신의 뒤통수를 친 것일까? 의문은 갈수록 깊어져만 갔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범인을 잡아내겠다.’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원찬의 망상은 더욱 더 깊은 곳에 빠져 더 이상 해어 날 수 없을 정도가 되어가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원찬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해야 했 다. 명훈이 서둘러 학교를 벗어나자 자신도 따라 나가던 중 희안한 장면을 목격했다. 교문 밖에서 오토바이 헬멧을 뒤집어쓰고 야구방망이 를 든 다섯 명의 사내가 명훈을 보자마자 죽어라 달려 드는 게 아닌가. 저 약해빠지게 생긴 명훈을 노리는 것 같았다.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죽어라 개 새꺄?!” “우리 친구의 복수를 해주마!” 다급한 마음에 주변을 돌아보는 원찬. 하지만, 주변에 서있는 애들은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불안감이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마치 친숙한 분위기였다. 거기다가 더 희한한 점은 그 다섯에게 측은한 시선을 보내는 것에 있었다. 원찬은 그런 학교 애들의 모습에서 뭔가 이질감을 느 꼈다. 자신이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달았 다. 하지만, 그 잘못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 다. 결국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명훈을 돌아보자 방망 이가 사방으로 휘 둘어지며 명훈을 공격하는 것이 보였 다. 순간 왠지 모르게 열이 받은 원찬. 앞뒤도 살피지 않고 그 오토바이 헬멧을 뒤집어 쓴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녀석들은 명훈에게 방망이를 휘두르다 말았다. 곰같이 생긴 녀석이 위압감을 풀풀 풍기며 자신들에 게 달려오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왠지 덩치가 주는 압력은 명훈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는 결론을 내린 헬멧들. 저 자식을 먼저 밟아야 한다는 생각에 명훈을 살짝 돌아보고 곰 같은 원찬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자신들 앞까지 달려온 원찬을 마크하기 란 쉽지 않았다. 원찬이 녀석 하나를 몸통 박치기로 쓰러트리며 외쳤 다. “이 개자식들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새끼들이 누군 줄 알아? 대가리 수 믿는 양아치 새끼들이랑, 기습하는 너희들 같은 새끼들이야!” 퍽! 원찬의 주먹이 헬멧의 얼굴을 보호하는 보호대를 뚫 고 들어가 안에 있는 녀석의 안면을 뭉개버렸다. 안면을 맞은 녀석은 손에 들고 있던 방망이를 놓치며 기절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방망이를 피해 몸을 뒤 로 숙이며 자세를 잡더니 발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방망 이를 들어차기를 해서 받아 들었다. 부웅! 부우웅! 원찬이가 방망이를 휘두르자 바람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에 만족한 표정으로 녀석들을 향해 날카로운 시 선을 날렸다. “퉷. 퉷!” 아직 남아 있는 네 명의 헬멧 눈치를 보며 자신의 손 바닥에 침을 뱉던 원찬. “그리고 최고로 싫어하는 새끼들은 남의 밥을 멋모르 고 건드리는 새끼들이야 알아?!”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방망이를 힘껏 꼬나 쥐었다. “덤벼. 다 죽여주마!” 원찬의 눈에서 불이 품어져 나왔다. ~~~~~~~~~~~~~~~~~~~~~~~~~~~~~~~~~~~~~~ 원찬이 미쳤군..... 곧 다음 글도 올리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90 회] 날 짜 2004-12-02 조회 / 추천 10819 / 16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명훈, 저승사자와 만나다 원찬의 눈에서 불이 품어져 나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4대 1의 난투극이 학교 교문 앞에서 벌어지게 됐다. 원찬의 방망이가 크게 반원을 그렸다. 그 한방에 조금씩 다가오던 녀석들이 놀라며 급하게 뒤로 몸을 뺐다. 저 큰 덩치가 휘두르며 주는 바람을 가르는 소음과 거기서 파생 된 위압감. 거의 공포 수준인 탓이다. 녀석들은 원찬의 주변을 천천히 돌았다. 생긴 것 답지 않게 날렵하고 빠른 몸놀림을 확인한 탓이다. 자신들이 작정을 하고 덤벼도 쓰러트리기 힘들 것 같 았다. 보통 싸움 쎈쓰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방망이로 보지 않는 곳을 견제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모습. 그 하나만으로도 녹록치 않은 녀석의 싸움 경력을 밝 혀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개자식들. 어서 덤벼!” 하지만 원찬의 투기에 성큼 다가서지 못하는 그들이 다. 결국 원찬은 자신이 치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방망이를 앞에서 얼쩡거리는 녀석에게 집어 던졌다. 휙휙휙휙! 바람을 가르며 오토바이 헬멧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고의적이라 보일 정도의 커다란 행동에 고스 라니 맞을 녀석은 없을 것이다. 헬멧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약간 어리버리하게 피하긴 했지만, 그것이 바로 원찬 이 원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방망이를 던질 때부터 맞으면 좋고 안 맞아도 이 대 열이 흐트러지길 원한 원찬이다. 우선 이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지금의 피곤한 상 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녀석은 원찬의 원대로 대열을 흩트리며 피했고, 그 틈 사이로 번개 같은 몸놀림을 활용하여 빠져나갈 수 있었다. 물론 얌전히 빠져 나갈리 만무했다. 이미 방망이를 피하느라 중심이 갈무리 되지 못한 녀 석의 가슴을 날아 뒤차기로 갈겨준 것이다. “크흑!” 충격과 고통을 이기지 못한 녀석. 한참을 뒷걸음치다 결국 엉덩방아를 찧고야 말았다. 그런 녀석에게 달려가 결정타를 먹이려던 원찬. 하지만, 다른 녀석들의 견제를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이럴 때는 바로 몰아쳐서 기세를 잡았어야 했는데, 머리수가 많아서 기선제압을 하지 못한 것이 상당히 아 쉬웠다. 바닥에서 자빠져 있던 녀석이 자신의 방망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바라봤다. 의외의 공격에 상당히 열 받은 모습이다. 어설프게 건드린 것은 건들지 않은 것만 못함을 잘 아는 원찬이기에 분명 이번에는 몰아칠 것을 예상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니었다. 역시나 다름 아닐까 덤벼드는 녀석들을 보며 이를 악 무는 원찬. 도박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살을 주고 뼈를 깎을지 아니면, 계속 피하다가 기회 를 엿볼 것인지…. 하지만, 주변을 상황을 보니 후자의 상황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았다. 너무나 떠들썩 해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경찰들이 언제 들이 닥칠지 모르는 상 황과 진배없었다. 녀석들도 그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이번에 결단을 내겠다는 표정으로 덤벼들기 시작한 것이다. 원찬은 어쩔 수 없이 첫 번째는 선택해야 했고 자신 에게 날아오는 방망이를 상체를 약간 숙임으로 피할 수 있었다. 물론 방망이를 휘두르며 생긴 빈틈을 놓칠 만큼 둔하 지 않았기에 녀석의 여덟 번째 갈비뼈 부근을 강하게 내질렀다. 퍼억! “크흑!” 녀석이 원찬에게 맞은 부근을 움켜잡고 바닥에 웅크 리듯 자빠졌다. 원찬이 노린 곳은 갈비뼈 중 가장 뼈가 나가기 쉬운 부분으로 제대로 맞지 않았다고 해도 통증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원찬은 녀석이 쓰러진 것을 확인하기도 전에 다른 녀석들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이미 자신도 강펀치를 갈기며 자세가 틀어진 상황이 었기에 두 번째 방망인 그런대로 피했지만, 세 번째는 팔을 들어 막는 방법을 택했다. 퍼억! 쩌릿쩌릿! 팔의 모든 신경이 고통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곳에서 쓰러질 정도였으면 평택을 장 악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사상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원찬. 그래서 잇몸을 드러내며 웃은 것인가? 원찬을 때린 녀석이 오히려 흠칫 놀라 몸을 뒤로 뺄 정도였다. 살기등등한 원찬의 미소. 왠지 자신이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닌 듯싶었다. “왜? 더 쳐보시지?” 자신에게 한걸음 다가서는 원찬을 보며 한걸음 뒷걸 음질 쳐버린 녀석은 이를 으득 갈았다. 정체도 아직 알지 못하는 녀석에게 밀린 듯한 기분.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죽어라!” “싫어 개새꺄!” 머리를 노리고 내려찍히는 방망이를 왼팔을 커버하고 발꿈치로 녀석의 명치를 힘껏 걷어찼다. 퍽! “꺼어억!” 녀석은 한동안은 숨조차도 쉬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발에 묵직한 타격감이 남아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때 조금 전 원찬이의 주먹 한방에 바닥을 기었던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새끼가 아직도 상황 판단이 안 되나? 어디서 꾸 물꾸물 기어오르고 있어?!” 녀석의 헬멧을 걷어찬 원찬. 녀석도 고개를 뒤집고 바닥에 드러눕긴 했지만, 원찬 도 인상을 구길 수 밖에 없었다. 두 번 연달아 풀스윙을 한 방망이를 막았기 때문인지 뼈에 금이라도 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인상을 쓰며 시선이 흐트러진 찰나. “……?!” “개자식!” 뒤에서 주춤거리듯 견제만 하고 서있던 다른 헬멧 녀 석이 원찬에게 방망이를 집어 던진 것이다. 그것은 정확하게 원찬의 안면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 고, 아찔함에 눈을 질끈 감는 원찬이었다. 바로 그 순간. 턱! 날아오던 방망이가 누군가의 손에 흡입되듯 빨려 들 어갔다. 반 정도 뜨고 있던 눈으로 그 손의 주인공을 확인하 는 것이란 원찬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 어떻게 네 녀석이?!” 원찬이의 경악 어린 목소리가 크게 학교 앞을 울렸 다. ~~~~~~~~~~~~~~~~~~~~~~~~~~~~~~~ 흠... 지금 연참이 처음과 같지 않다는 뎃글을 몇게 확인했습니다. 제가 시험기간이라고 말씀을 드렸을 텐데ㅡㅡ;;;;; 아파서 앓아 누운것도 말씀을 드렸을 텐데.. ㅡㅡ;;;;;;;;;;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ㅎㅎ;; 다음주 월요일까지가 시험입니다. 이런 속도라면 저도 수요일까지 2권을 끝낼지 장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수요일까지 무슨일이 있어도 2권를 마칠까 합니다. 내일하고 일요일에는 글을 올리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 새벽 4시에는 물론 올리지만 ㅎㅎ;;; 연참은 못할 것 같다는 말씀이지요 ^^;; 내일은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일을 보러 어딜 가야 하기 때문이고, 일요일에는 일본어 능력시험을 치러 원정을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ㅎㅎ;; 물론 붙을 거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ㅡㅡ;; 제가 붙으면 다른 공부하신 학생분들은 얼마나 열이 받겠습니까? ㅋㅋ 여하튼 또 사설이 길어지는 한가입니다 ㅡㅡ; 공부하다가 생각나면 다시 올리겠습니다. ㅡㅡ;; 월요일까지는 독촉을 조금 자중해 주세염 ㅡㅡ;;; 그래도 명색이 시험기간이라.. 쿨럭....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91 회] 날 짜 2004-12-03 조회 / 추천 10227 / 114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명훈, 저승사자와 만나다 원찬의 목소리를 들으며 현민이 씨익 웃는다. 자신의 손에 들린 야구방망이를 강하게 움켜쥔다. 방망이가 움푹 파이며 으스러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 다. “귀엽게 놀더구나.” 명훈의 부드러운 목소리에서 원찬은 뭔가를 깨달았 다.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종사의 무게감을…. 자신이 상대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느낀 원 찬.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제야 뭔가가 이해갔다. ‘서, 설마. 설마….’ 이성은 그 진실을 거부했다. 본능은 어쩔 수 없는가? 마음부터 한 수, 두 수, …깊고 깊게 접어 들어가고 있었다. 원찬의 눈 속에 명훈의 손아귀에서 으스러진 방망이 가 들어왔다. 그제야 조금씩 이성적인 사고에서 지금까지의 일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있던 이상한 현상들. 지금의 상황과 붙이기를 시작하자 어긋났던 톱니가 돌기 시작하며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어째서 몰랐던 것일까?’ 순간 원찬의 눈에서 명훈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빠각! “허어억!” 그와 동시에 들리는 타격음과 비명. 깜짝 놀라 시선을 돌리니 어느 세 멀리 떨어져서 갈 팡질팡하던 녀석의 헬멧을 발로차서 부숴 버린 체, 그 반동을 이용하여 허공에서 몸을 틀곤 그 뒤에서 멍하니 서있는 녀석의 팔을 휘돌려 차는 것이 아닌가. 뿌드드득! 팔이 뒤틀리는 것을 보니 뼈가 부러진 모양이다. 녀석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크아악! 내, 내 팔! 내 파알!” 설마, 발길질 한방에….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다가 이 모든 일이 한 순간에 일어났다. 정말이지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정말로 인간의 능력이란 말인가?’ 갑자기 허탈해지는 원찬. 지금까지 자신이 명훈의 무엇을 봤는지 떠올리며 자 조(自嘲)했다. 겉모습만 보고 속으로 무시했던 자신이 우습게만 느 껴졌다. 여하튼 신기에 가까운 명훈의 움직임을 보며 감탄이 라 하기엔 뭔가 부족한 탄성을 내질렀다. 마치 몽롱한 그런 목소리였다. 한 순간에 명훈의 움직임으로 모두 바닥에 드러누웠 고, 저 멀리서 경찰 사이렌이 울렸다. 명훈이 급히 몸을 빼자 명훈과 같은 학교 학생들이 빨리 피할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줬다. 명훈은 학교에서 자의든 타의든 군림자의 위치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원찬은 그런 애들과 명훈을 바라보며 감탄에 감탄을 터트렸다. 평택에서는 누구든 자신을 두려워하기만 했다. 명훈을 향하는 애들의 시선에는 두려움보다 존경심과 동경어린 시선이 더욱 높아 보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스스로가 명훈이 피하도록 자리를 비키고 신속하게 메우는 이런 모습들을 보여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찬은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녀석들을 보며 자리에 서 일어났다. 경찰들에게 조서를 받기 위해 마음을 미리 정해놓은 탓이다. 경찰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어째서인지 마음이 가벼워지는 원찬이었다. 탕! 형사의 두터운 손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자신의 철제 책상을 내리쳤다. “이 자식 좀 봐라. 너 뭐하는 새끼야?! 어린 새끼가 무슨 전과가 이렇게 많아?!” 형사의 호통에는 이미 진절머리 난다는 듯한 태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배고파요. 짱개나 하나 시켜주시죠.” 원찬을 취조하던 형사는 기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 개를 가로저었다. 한참 때려죽이고 싶다는 표정으로 원찬을 보던 형사. 뒤늦게야 자신의 핸드폰을 들었다. “거기 중화루죠? 여기 형사과로 볶음밥하나좀 빨리 갔다 주슈.” 그 말을 듣던 원찬. “…짬뽕 국물하고 단무지 많이….” 원찬의 말에 기가 찬 표정을 짓더니 결국 한마디 더 했다. “짬뽕 국물하고 단무지도 많이 가져다 주슈.” 거칠게 핸드폰을 닫은 형사. 아무리 수사를 해봐도 원찬이 잘못한 것은 없어 보였 다. 무기를 들고 있던 것도 아니고, 하교 길에 성인 남자 다섯이 오토바이 헬멧을 뒤집어쓰고 야구방망이로 자신 을 습격했다고 하는데 어디서 꼬투리를 잡아야 할지 감 이 안 선 것이다. 거기다가 더 우스운 문제는 그게 사실이라는 점이다. 맞은 녀석들이 합의 안 해 주겠다며 고소를 하겠다고 외쳐댔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원찬의 증인으로 나서 줬기에 그 말은 묵살 되었다. 그러나 녀석에게는 폭력 전과가 있었다. 소년원 생활을 하느라 2년이나 꿇어서 20대였고, 얼 마 전에 사건을 하나 일으켜서 학교를 옮기기까지 한 것이 드러난 탓이다. ~~~~~~~~~~~~~~~~~~~~~~~~~~~~~~~~~ 지금 부터 타이트 하게 연참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일위를 뺏겨서 슬펐어염 ;ㅁ;(ㅋㅋㅋ 장난이예염) 여하튼 오늘은 안뺏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게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오늘 일이 있어서 밖에 외출해야해서 오후 연참은 없을 듯 하네요.... ㅡㅡ;; 개인적인 사정이라.. 저녁 늦게나 되서 돌아올 듯하니... 쩝.. 자세한 이야기는 오늘 올릴 마지막 글에...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92 회] 날 짜 2004-12-03 조회 / 추천 10119 / 97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명훈, 저승사자와 만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잘못된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우선 증거도 명확했고, 증인들의 증언도 한결 같았다. 녀석들은 다섯이 흉기를 소지하였으며, 원찬은 자신 을 방어한 것뿐이다. 녀석들이 다친 상태를 보면 과잉방어라고 할 수도 없 었다. 다치기야 심각하게 다쳤지만, 자신들이 치른 깽 값을 직접 물게 생겼다. 불쌍하다고 하기도 그렇고 불쌍하지 않다고 하기도 그런 애매한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증거가 명확하고 죄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원찬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형사로서 폭행사건에 연류 된, 거기다가 전과가 있는 녀석을 그냥 내보내기는 찜찜했던 것이다. 그 하나가 지금까지 원찬을 이렇게 물고 늘어졌던 것 이다. 결국 목이 터져라 취조를 했고 녀석도 몇 시간동안 설교를 들었으니 배라도 채워줘야겠다는 생각에 짱개를 시켜줄 수밖에 없었다. 형사들로서 범죄자가 괜히 밉지만도 않은 입장이었 다. 물론 개 후래 자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개인적인 이유나 사정들이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눈 물을 흘리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형사들이었던 것이 다. 의외로 터프한 겉과 다르게 속이 여린 그들. 원찬이 약간 싸가지 없게 행동을 하면서도 조금씩 주 의하여 형사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이유도 거기 있 었다. 그들의 속모를 따스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 따스함에 얼마나 많은 위안을 얻었던가. 물론 과격한 형사들도 있지만, 그들은 일부일 뿐이다. 그들 몇몇으로 모두를 나쁘게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형사였다. 여하튼 형사가 아닌 누구라도 자신이 건네는 호의를 무시하면 화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시켰던 음식이 오자 허겁지겁 먹는 원찬. 그런 원찬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며 가볍게 물었 다. “정말 혼자 녀석들을 때려 눕혔냐?” 원찬이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밥을 주억거리며 다 시 입안에 퍼 넣기 시작했다. 거의 쏟아 붙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녀석들이 자꾸 너 말고 다른 사람 이름을 대 던데, 명훈이라나 뭐라나. …정말 상관없냐?” 그 말에 원찬이가 짬뽕 국물을 들이키며 한숨을 돌린 후 입을 열었다. “풋! 그 자식들 나한테 다섯이 당한 것이 쪽팔리니까 그러나 본데, 웃기지들 말라고 하십쇼. 킥킥. 그리고 명 훈이라는 녀석은 몸이 비실비실해서 왕따 당하는 녀석 인데 그런 녀석의 이름을 팔아 먹던가요? 킥킥킥. 병신 쒜리들. 이름 좀 팔아먹으려면 다른 이름을 만들던가 하지. 킥킥. 하필 왕따 이름을 팔아 먹냐. 큭큭큭.” 형사는 원찬의 그 말에서 거짓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약간 뭔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말하는 어투 와 다르게 흘러나오긴 했지만, 크게 이상함을 찾지는 못한 것이다. 하긴, 원찬으로서는 평소 생각하고 있던 모습을 내뱉 은 것이니 사실 크게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곳에 잡혀 오기 전에 괴물 같은 명훈의 모습과 자 신이 생각하던 약골 명훈의 모습이 겹쳐졌기에 약간 혼 란스러운 말투가 튀어나왔지만 말이다. 뭐, 의리니 뭐니 해서 일부러 감춰 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실수했던 일들의 사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내에게 줄 수 있는 처음이 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호의. 자신이 인정한 사람에게 주는 말 그대로 존경어린 선 물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자신역시 발끈해서 싸운 것은 사실이니. “킥킥.” 갑자기 밥을 먹다가 웃는 원찬을 희안한 눈으로 바라 보던 형사. “삽질 말고. 밥이나 빨리 처먹고 집에 기어들어가. 또 밖에서 사고 치다 걸리지 말고.” 가볍게 원찬의 머리에 알밤을 먹이는 형사였다. “이번에 다시 들어오면 그때는 가만 안둔다. 알겠 어?” 으름장을 흘리는 형사. 그 와중에도 원찬은 계속 웃어댔다. 그게 약간 불만스럽긴 했지만, 어디 저런 녀석 한두 번 보았던가? 지금까지 원찬을 취조하던 형사. 어깨를 한번 으쓱한 다음 곧 신경을 끄고 품을 뒤적 이며 화장실로 향하며 투덜거렸다. “젠장. 담배가 벌써 떨어졌네!” 순간 흠칫했다. “응? 느꼈는가?” “…….” 저승사자 동료의 한마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늙은이의 기다.” “우리가 제대로 찾긴 찾았군.” “빨리 가보세.” 저승사자의 신형이 빙판에 미끄러지듯 허공을 타고 날았다. 바로 명훈이 원찬을 방어하고 녀석들을 공격하던 시 간이었다. 원찬이 경찰서를 나서자 이미 밖은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젠장. 혼자 밤바람 맞아가며 집에 또 들어가야 하 나….” 왠지 씁쓸한 목소리다. 교복 마이 안주머니에서 조금 전 나올 때 형사가 주 던 알사탕을 꺼내 물었다. “씨발. 뭐가 이렇게 맛있어….” 별걸 다 트집 잡는 원찬이다. 그 모습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웃고 있는 사내가 하나 있었다. “어이.” 익숙하고 기분 나쁜 목소리. 특히나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애 짝이란 녀석과 목소 리 같아서 더 기분 나빴다. 자신을 부른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치솟는 짜증에 뒤를 돌아보는 원찬. 곧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째서인지 여기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그가 서있었 기 때문이다. ~~~~~~~~~~~~~~~~~~~~~~~~~~~~~~ 누구긴 누구겠어요? 여하튼 다음 편도 곧 올리지요. 조금만 탱자탱자 놀면서 이곳저곳에 검황 추천글 좀 올려주며 기다려주세요 ㅎㅎㅎ 꼭이예요~ 약속해줘~ 빠라밤밤바~ 빠라밤밤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93 회] 날 짜 2004-12-03 조회 / 추천 9385 / 97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공지] 뎃글은 작가의 바르카스. 뭐, 다른 사이트에서도 올려놓은 공지입니다만.. 저는 여러분들의 조횟수만 보고 싶지 않고 직접적인 독자여러분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전 글을 한편 올려놓고 여러 독자분들의 뎃글을 확인하며 그 힘으로 글을 씁니다. 분명 저만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작가분들이 그렇겠지요. 그러나 전 유별나게 그 작은 뎃글 한줄에 힘을 내서 글을 쓰는 스타일입니다. 뎃글이 많고 응원이 많을 수록 힘이나서 더 빨리 글을 쓰지요. 초기부터 저와 호흡을 하며 보신 독자분들은 아마도 제 지금의 말을 이해 하실 겁니다. 지금 다음글 올리고 뎃글이 안올라와 의욕이 많이 상실된 한가입니다. 맥이 빠지니 글이 진행 안되는군요.. 피곤이 몰려오기 까지 합니다 ;ㅁ; 에구...... 말이 길었나염? ㅡ,.ㅡ;; 여하튼 뎃글이 없으면 글도 없다는 글쟁이 생각입니다. ;ㅁ;(뎃글 달아줘잉~)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94 회] 날 짜 2004-12-03 조회 / 추천 10439 / 10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명훈, 저승사자와 만나다 어째서인지 여기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그가 서있었 기 때문이다. “네, 네가 왜?” 명훈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원찬을 반갑게 맞아 줬다. “왜? 내가 오면 안돼는 자리냐?” “그, 그건 아닌데, 아니지만….” 명훈이 그런 원찬의 모습을 보더니 킥킥 웃음을 흘렸 다. “킥킥. 여하튼 수고했다. 가서 밥이나 먹자.” 원찬은 자신에게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다가온 명훈이 왠지 달갑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사실 약간 얼떨떨했다. “밥? 밥은 먹었는데?”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원찬.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하더니 명훈을 바라봤 다. “그런데 넌 뭐냐? 이곳에 온 목적이 뭐야?” 결코 좋은 의도로 왔다고 생각지 못하는 원찬이다. 사실 누가 좋은 의도로 왔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자신을 노리던 녀석에게 말이다. 명훈은 그런 원찬의 반응이 재밌는지 빙글거리듯 입 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별다른 목적은 없어. 다만 네가 마음에 들었을 뿐이 지. 내가 여기 온 이유는 그게 다야.”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미심쩍스런 말이었으나 원 찬은 이를 드리 내밀며 입을 열었다. “큭큭.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내가 얼마나 많 이 뒤통수를 맞았는지 알았다면 그런 말은 피했을 거 다.” 눈의 흰자위가 분노로 충혈 되는 모습에서 결코 원찬 의 말에서 거짓이 없음을 명훈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더욱 담담하게 원찬의 눈을 바라 보는 명훈. 이럴 때는 수 만 가지의 변명보다 이렇게 조용히 바 라보는 것이 효과적임을 잘 알았다. 변명이란 사람을 구차하게 만들 뿐이다. 입은 열면 열수록 기가 빠진다고 하는 말이 바로 그 뜻이다. 특히 사내가 말이 많으면 사람들과 진정한 대화를 나 누기 힘들어 진다. 두터운 친분을 얻어 낼 수 없다는 말과 동일한 것이 다. 명훈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만히 원찬의 눈을 주시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명훈의 눈을 한참 마주보던 원찬. 결국 시선을 돌리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퉷!” 명훈이 그런 원찬을 만족스런 표정으로 바라봤다. 알아듣겠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 이다. 과거 많은 사내들을 만나며 저런 식으로 자신의 쑥스 러움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음을 잘 알았다. “풋. 가자.” 명훈은 원찬을 데리고 포장마차로 갔다. “응? 여긴 포장마차잖아? 이곳엔 왜?” “킥킥. 여기가 내 아지트야. 몰랐어?” 명훈의 장난기 썩인 말투에 그 큰 눈을 껌뻑이는 원 찬. 그 모습이 자신의 집에서 키우는 커다란 붕어를 연상 시켰는지 명훈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뭐야, 기분 나쁘게. 사내새끼가 그딴 식으로 간사하 게 웃다니. 잘봐. 웃음이란 이런거야. 크하하하하!” 갑자기 파안대소를 터트리는 원찬. 명훈은 그런 원찬의 웃음에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킥킥킥킥.” 결국 서로 한번 마주보고 피식 웃었다. 경찰서에서 이곳까지 걸어오며 어느 정도 마음을 연 원찬. 뭔가 한마디의 변명이라도 하겠다며 입을 주절거렸다 면 결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묵묵하게 앞장서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하는 뒷모습 에서 큰 뭔가를 느꼈다. 그냥 보기에는 왜소해 보이는 체격일 뿐인데, 어째서 그렇게 크게 느껴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원찬이었다. 명훈이가 포장마차 안에 들어가자 여자애들이 손님인 줄 알았는지 인사를 했다. “어서오세요. 응? 명훈이야?” 그러나 곧 유진의 맥 빠진 목소리에 웃음을 터트리는 구 자매들이었다. 그때 현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됐어, 됐어. 어서 일들이나 하라구. 킥킥킥.” 현민이도 이제 완치되었고 하여 매일 같이 출근했다. 자신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음에도 주인장 노릇을 톡 톡히 하고 있는 모습에 실 웃음을 흘리는 명훈. 그때 현민이가 명훈을 봤다. “잘 다녀왔어? 왜 이렇게 늦었어?” “당연히 잘 다녀왔지. 거기서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좀 늦었어. 아참, 여기 손님 하나 데려 왔다.” 그때, 원찬은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안에서 들리는 친숙한 목소리들에 의아 한 기분이 들은 원찬. 결국 참지 못하고 포장마차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려 는 순간 명훈에 의해 소매를 붙잡히고 안으로 끌려 들 어왔다. 원찬의 눈이 다시 껌뻑이기 시작했다. 엄청 놀랐다는 듯 입까지 벌어져 있었다. “뭐야? 멍청이 서가지고. 어서 앉어.” 명훈의 말에도 같은 자세로 한참을 서있던 원찬. 멍하니 있던 원찬이 갑자기 입을 열더니 쌩뚱맞은 소 리를 꺼냈다. “어라? 여기 포장마차에서 우리 반 여자애들하고 닮 은 애들이 있네?” “풋!” 명훈이 목마르다며 마시던 물을 코로 내품었다. 그것을 목격한 여자애들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 에구 감사합니다. 역시 뎃글을 보니 힘이 나더군요. ㅎㅎㅎㅎ 저는 독자님들의 사랑을 먹고 자라나는 글쟁이입니다. 열심히 사랑을 주셔야 뿌리도 내리고 열매도 맺죠^^ 여러분들의 사랑이 식는 즉시 말라버리는 난초와도 같으니 항상 아껴주시고 질책해주시며 보듬어주세요^^ 그럼 곧 다음 글도 올리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96 회] 날 짜 2004-12-04 조회 / 추천 11331 / 158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명훈, 저승사자와 만나다 애들은 새벽 2시쯤이 되자 포장마차를 정리했다. 다른 포장마차에 비해서 그렇게 빨리 문을 닫게 된 것은 물론 어머니의 입김이 컷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약속을 했기에 학 교도 빠지지 않는 현민이들이었다. 현민이는 물론이고 애들조차 어머니 말이라면 콩으로 김치를 담군데도 믿고 따를 분위기였다. 명훈은 그런 애들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구 자매가 스터디 그룹으로 변모 할 줄 누가 짐 작이나 했겠나? 물론 강사는 명훈이었다. 원찬은 너무 늦기도 했지만, 명훈의 배려로 그날은 명훈이 집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집이 멀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별로 들어 가고 싶어하는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집에 데려간 것일 뿐인데, 명훈은 얼마 지나 지 않아 자신이 무지하게 한 행동에 저주를 내리기 시 작했다. 원찬이의 눈은 하루 종일 휘둥그레 떠져서 명훈이에 게 같은 것을 약 수백여 번 물어보는 진기를 기록했다. 설마 보통사이는 아니라고 생각 했지만, 설마 가족이 라니…. 아직도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명훈이 어머니에게 포옥 안기며 ‘엄마 다녀왔 어요.’ ‘우리 딸, 앞으로 일찍 다니렴.’하고 애정을 확인 하는 모습에서 조차 믿기지 못해 두 눈 두덩이를 부비 는 원찬이었다. 어머니와 딸의 모습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명훈이 현 민이의 가족이라는 것이, 오빠라는 것이 아직도 걸린 것이다. 학교에서 그 모습을 어떻게 친남매로 볼 수 있단 말인 가? 태어나서 친남매의 사이가 그렇게 좋다는 것을 들어본 역사가 없던 원찬이다. 한 순간 어느 정도 머릿속 회로가 정돈이 된 듯이 보 이는 원찬. 갑자기 명훈에게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응?” “…….” 의미심장하고 다분히 의도적인 그의 행동에 명훈이 고개를 꺄웃 거렸다.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말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거들어 줬다. “뭔데? 그냥 말해봐.” 그 한마디에 힘을 얻은 것인지 어정쩡하게 말문을 여 는 원찬. “저, 정말 말해도 될까?” “그럼 말해도 돼.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친구사 이 아니냐. 편하게 말해도 좋아.” 다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명훈의 입에서 나온 친구라 는 달콤한 말이 엄청난 자신감을 선사해줬다. 그래서 입을 열수 있었다. “처, 처남!” “……?!” 뻐어억! “켁!” 한 순간에 정적과 동시에 명훈이 진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어느 세 꽉 쥐어진 주먹에 연기라도 모락모락 피어나 는 듯 보인다. “이 새끼가 미쳤나!” 바닥에 침을 질질 흘리며 뻗어 있는 원찬을 보며 명 훈이가 이를 악 물었다. “너 날 한번 잡히기만 해봐. 예고했던 103대 그래도 패주마!” 기절한 상태에서조차 오한에 떠는 원찬이었다. 그렇게 원찬은 이불도 없이 다음날 아침까지 그 모습 으로 자빠져 있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 오거라. 차 조심하고….” “어서 들어가서 쉬세요. 조심히 다녀올게요.” “아주머님 정말 푹 쉬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별로 푹 쉰 표정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 이며 반겨줬다. 명훈에게 저렇게 믿음직한 덩치를 가진 친구가 생겼 다니 기분이 좋은 어머니였기에 인자한 미소가 결코 사 라지지 않았다. 의외로 어머니의 그런 계산적인 모습에서 명훈은 슬 쩍 공포마저 느낄 정도였다. 학교 갈 준비를 정신없이 마치고 집밖을 나서는 명훈 과 현민의 표정은 밝은 편이었으나, 그 뒤를 어정쩡하 게 따르는 원찬. 자고 일어나니 자신은 차가운 바닥에서 침을 흘리며 자빠져 있었고, 명훈은 침대에서 고히 자고 있었던 것 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원찬이었다. 뭔가 이상했지만, 옷깃으로 침을 쓸고 두리번거리던 원찬. 왼쪽 후두부에 강한 통증으로 욱신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여기가 아프지? 마치 짱돌에라도 찍힌 것 같네.’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머리를 비비던 원찬. 어제 저녁 뭔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술을 좀 마 시고 필름이 끊어진 듯한 알쏭달쏭한 기억이었다. 명훈이와 관련된 것 같은데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 었다. 특히나 어째서 자신을 보며 이를 드러내듯 웃는지 더 욱 알 수 없는 원찬이었다. 학교 입구에서 명훈의 눈이 크게 빛났다. 교문 위쪽 허공에서 짙은 그림자 두개가 떠있음을 발 견한 탓이다. 문제는 그 두개의 그림자에서 알 수 없는 낮 익음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서, 설마. 설마?’ “어, 어?” 명훈의 이상한 행동에 시선을 맞췄다. 현민이와 원찬은 명훈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같이 봤 다. 하지만, 텅 빈 허공을 보고 있는 명훈. 명훈에게 현민이 입을 열었다. “왜 그래? 뭐 잘못 됐어?” 그 말에 정신을 되돌린 명훈. “아, 아냐.” 그러나 현민의 눈에는 아닌게 아니었다. 이토록 당황해 하는 명훈의 모습을 처음 본 탓이다. 바로 그때 명훈이 반대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더니, 현 민에게 말문을 열었다. “나, 지금 급한 일이 생각나서 잠시 어디 좀 들렸다 갈게. 먼저 들어가서 있어.” “으, 으응….” 명훈은 그 말을 남기고 등교하는 애들의 무리에서 사 라지기 시작했다. ~~~~~~~~~~~~~~~~~~~~~~~~~~~~~~~~~~~~~~` 이렇게 3화가 끝났습니다. 흠.. 뎃글을 보니 너무 빨리 이계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글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잘 보시면 한권 반분량 이상을 진행하게 되면 이 글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냥 현실에 환생하여 적응하다 끝내는 것이 이상적이 되겠죠. 나중에 현실 판타지를 한번 써보도록 할테니ㅡㅡ;;(약간 독특한 ㅎㅎ) 곧 다른 세상으로 넘어갈 명훈이를 응원해 주세요. 아자아자! 아참, 오늘 일이 있어서 8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왔다갔다 해서 지금 속이 뒤집혀 있습니다. 여러분을 만나겠다는 의지로만 글을 쓴거라.. 계속 속이 미식거리는 군요. 몇번이나 쓴물을 삼키며 글을 쓴건지... 좋은 하루되세요^^ 감사합니다^^ 다음 편은 곧 올리겠습니다. 오늘은 될 수 있으면 광참을 해보겠습니다. (내일 못올리니....)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97 회] 날 짜 2004-12-04 조회 / 추천 10383 / 98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좌절하다 4. 명훈, 좌절하다 두근두근. 아직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다. ‘그, 그들이다.’ 아직까지 조금 전에 봤던 그 상황이 믿겨지지 않았 다. 허공에 두둥실 떠서 누군가를 찾고 있는 모습. 십중팔구 그것은 자신이 분명했으리라. 물론 아닐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명훈에겐 그것을 확정지을 수 있는 이유가 있 었다. 바로 저승에서 자신을 이끌던 두 저승사자였기 때문 이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리 초탈한 존재라 할지라도 죽음이란 것은 생소 한 것이며, 두려운 것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초연한 모습을 보여도, 죽음을 가 볍게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매에는 장사가 없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여러 수련을 통해 고통을 참는 녀석들도 있다지만 그 들 역시 그것을 즐기고 싶겠는가? 그냥 인내로 참는 것일 뿐이다. 고행이라고 하여 극한에 상황에 자신이 몰아넣는 이 유는 그 불가능의 한계를 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죽음과 육체적 고통을 초탈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검황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정작 저승의 문턱을 밟았을 때 얼마나 기가 막혔던 가. 그 어처구니없음을 비관하여 미친척하고 구름위로 뛰 어내린 자신이 아닌가. 죽었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은 탓이었다. 자신을 찾을 만도 했다. 명훈도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지 않았던가. 죽어서 명부에 넘어가야할 녀석이, 묻혀있어야 할 육 신에 달라붙어 살아 있는 것. 그들로서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 오 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그래도 살길은 있을 것이다.’ 아직 죽기는 싫었다. 알고 싶은 것도 깨달아야 할 것도 많이 남은 탓이다. 정말 생사경을 넘으면 자연경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 까? 자연경이 무공의 끝이 확실한가? 그 위의 다른 차원의 무학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물론 모든 무림인들이 하는 생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단계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그 말은 얻으면 얻을수록 아직 얻지 못한 갈망은 더 욱 커진다는 말과 동일하다. 검황의 입장에서 본다면 누구도 넘보지 못한 생사경 을 넘어선 장본인중 하나였다. 일 검에 산을 날리고, 기의 흐름을 운용하여 자연의 오묘함까지 건드릴 수 있는 것이 생사경이라는 경지였 다. 이미 마음만 먹는다면 신선경에 오를 수 있는 경지를 뛰어 넘은 것이 바로 생사경이었다. 다른 과거의 무인들과 도인들이 생사경을 넘어 서지 못하자 포기하고 신선이 되었다는 것은 뜬소문만은 아 닌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특출한 무학에 대한 욕심 이 있었기에 신선경에 오를 수 있는 혜택을 포기했다. 더욱 정진하여 검황은 결국 생사경에 다 달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가슴의 불꽃은 거 쌔게 타올랐다. ‘무학의 끝을 보리라.’ 그것은 죽음 전에도, 죽어서도, 다시 환생한 명훈의 시점에서도 변하지 않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난 무학의 끝을 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 무모한 자신과의 약속 때문에 그는 죽음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 지 않았던가. 자신은 200년이 다가오는 아직도 도를 깨우치지 못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을 수 없었다. ‘너희들을, 죽음을 피하고 말리라.’ 명훈, 아니, 검황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98 회] 날 짜 2004-12-04 조회 / 추천 10073 / 91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좌절하다 세부적인 계획을 짜야만 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영락없이 당하고 만다. 생사경의 경지에 있다 해도 아직 그들의 능력을 모르 기에 불안할 판국인데, 보통사람보다 약간 나을 정도의 지금이라면 죽기에 딱 좋았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어떻게 찾았을까?’ 곧 그 생각은 지웠다. 저승사자라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것을 주제로 삼았다. ‘왜 나를 이제야 찾아 왔을까?’로 말이다. 처음부터 찾아와도 늦었다고 생각 할 수 있는 것이 다. 그것을 몇 달이 지난 지금에야 찾으러 왔다니 당연히 이상한 문제리라. 자신이 그동안 안심하고 있었던 것이 바로 그 이유가 아니었던가. 아니, 언젠가부터 자신이 살아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하물며 미생물들마저 자신의 본분을 위해 태어난다. 이유 없이 번식할리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하늘이 자신에게 두 번째 생명을 준 것의 이유. 그 말은 뭔가 아직도 자신이 존재해야할 이유를 완전 히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강한 뭔가가 터졌다. ‘지금까지의 시간은 내가 살기 위해 준비를 마칠 수 있도록 누군가가 억지로 시간을 벌어준 것이 아닐까?’ 정확한 사단은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그것을 느낀 순간 이미 자신의 가슴은 확신을 했다. 물론 문제의 방정식을 알 수는 없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답이라는 점일 뿐이다. 그래서 웃었다. 미친 듯이 웃었다. “크하하하하!” 하늘 역시 자신이 넘어설 경지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웃은 것이다.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하늘. 내가 나를 돕는 이상 하늘마저 나의 편이 된다는 건가?!” 순간 저승사자가 두려워지지 않는 명훈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이미 3교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웃는 낯으로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인사하는 명 훈을 보며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한테 이야기는 들었다. 자리에 앉아라. 163페이 지 할 차례다.” 국어선생의 담백한 말투에 명훈이 씨익 웃었다. 왠지 마음에 드는 선생인 탓도 있지만, 저 국어선생 의 수업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한 마디 한 마디 톡톡 튀는 듯한 말투로 던지는 화술은 웃지 않곤 못 배긴다. 물론 그런 화술이 먹히는 이유는 정작 자신은 웃지 않고 그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기 때문이었다. 명훈이 자리에 앉아 현민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져왔다. “무슨 일 있었어? 갑자기 왜 그래?” “뭐가?” 명훈은 연신 싱글거렸다. “아니, 평소하고 행동이 왠지 달라서….” 그 말에 흠칫했지만, 그 모습이 드러나기보다 빠르게 갈무리 되었기에 현민은 눈치체지 못했다. “내가 뭐. 아무것도 아니야. 수업이나 하자.” “그, 그래.” 현민이는 명훈이 대충 넘어가 달라는 듯한 느낌을 받 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자리를 잡더니 겉잡을 수 없이 부풀기 시작했 다. 그 때문인지 한참 명훈의 얼굴을 바라보면 현민. 명훈의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임에도 왠지 달라 보여 시선을 땔 수 없었다. 마치 멀리 어딘가로 떠나려는 듯한 것을 덤덤하게 넘 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현민 자신의 과대망상일 수도 있었다. 눈을 살며시 감는 현민. 속으로 누군가에게 빌기 시작했다. ‘별다른 일 없게 해주세요. 저만의 착각으로 끝나게 해주세요….’ 바로 그 눈을 감는 순간 명훈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일부러 넘긴 것이지 자신역시 보지 않는 듯 현민을 마주했던 것이다. 현민의 얼굴을 한번 잔잔히 바라봤다. 현민의 긴 속눈썹이, 현민의 분홍빛 입술이, 현민의 윤기 흐르는 긴 생머리가…. 명훈의 가슴속에 들어왔다. 왠지 지워지지 않을 듯처럼 각인되듯이…. 명훈은 착잡한 마음을 숨기며 칠판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즐겁게 들었던 수업이 왜 이렇게 머 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명훈은 자신의 책상에 팔을 베고 엎드렸다. 그냥 이었다. 그냥…. ~~~~~~~~~~~~~~~~~~~~~~~~~~~~~~~~~~~ 이제 모든 사건이 급속도로 진행 됩니다. 곧 다음편을 올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99 회] 날 짜 2004-12-04 조회 / 추천 9973 / 106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좌절하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 마음을 다잡은 명훈이다. 하늘이 정말 도와 준 것이라면. 죽음을 피하도록 여유를 준 것이라면. 조금만. 조금만 더. 그 여유를 늘여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보여주겠 다고 맹약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1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학교에서 가 장 가까운 산에 올라갔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한마디 외쳤다. “시간을 줘! 일주일 아니, 삼일만 더 시간을 줘! 정리 할 것이 필요하단 말이다! 너희가 엮어준 인연을 정리 할 시간이 말이다! 그 시간을 준다면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주겠다. 이 목숨을 버려서라도 말이다!” 자신의 모든 기운을 하늘에 쏘아 버리듯 일갈을 내질 렀다. 하늘을 쩌렁쩌렁 울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응답을 바랬던 것일까? 명훈은 하늘을 향해 귀를 한참 기울여보았다. 하지만, 하늘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다름없이 유유히 구름을 흘리며 쾌청한 하늘을 보여 줄 뿐이었다. 다만 산에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며 나뭇잎들이 부대 끼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때 명훈은 웃었다. 이유 모를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웃었다. 어째서인지 웃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웃고 순간 웃음을 그쳤다. “내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다. 꼭 들어다오.” 명훈의 신형이 학교로 향한 것은 그 후였다. 책상에 앉아서 무엇을 처음부터 정리해야 할지 고민 했다. 분명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하늘이라면 부탁을 들어 줄 거라며 이유 모를 확신을 했다. ‘최대 3일이다. 그 안에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한다.’ 여자애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의 자리에 모여 수 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 새로운 얼굴이 끼어들었는데, 바로 원찬이 었다. 교실의 애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루사이에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거리던 녀석 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화기애애하게 놀고 있기 때문이 었다. 특히나 명훈에게 살살거리며 달려드는 모습은 결코 가만히 봐주기 힘들 정도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명훈은 가볍게 쌩까줬고, 원찬은 계속 달라 붙었다. 그 와중에 어느 정도 사정을 짐작한 여자애들은 깔깔 거렸지만, 결코 말릴 생각은 없어보였다.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남의 연애 사만큼 즐거운 눈요기가 어디 있겠는가? 특히나 자신들 최고의 라이벌이라 생각했던 현민이가 명훈의 가족으로 들어가 가볍게 떨어졌으니 이보다 행 복 할 수 없는 그녀들이었다. 그 와중에도 명훈의 머릿속은 계속 돌아갔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저승사자를 볼 수 있게 된 것일 까? 설마 죽었다가 살아나며 영안(靈眼)이 열린 것인 가? 어찌 되었든 다행이다. 녀석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 를 테니 적당히 피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말이 다.’ 그때 미지가 명훈에게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그러게 표정이 너무 심각한데? 무슨 일 있었어?” 명훈은 ‘아차’했다. 자신이 너무 깊게 생각에 빠지다보니 실수로 감췄던 표정이 겉으로 드러났던 것 같았다. 다급하게 말문을 열었다. “아, 그거? 흠…. 저 원찬이 녀석을 어떻게 패줄까 고 민하고 있었지. 한대라도 더 아프게 패줘야 할 것 같거 든.” 그 말에 원찬이가 발끈했다. “내, 내가 왜?!” 비릿한 미소를 흘리는 명훈. 마치 ‘정녕 네 죄를 모른단 말이더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충 죄를 짐작하고 있던 원찬이 흠칫했다. 물론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뻔뻔한 표정으로 바라보 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기세에서 밀리면 다 끝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 다. “넌 이 새꺄. 나한테 103대 맞을 것이 있어.” “응? 103대?” 명훈의 말이 끝나자 원찬을 비롯하여 현민이들이 명 훈에게 시선을 돌리며 의문을 드러냈다. “무슨 103대?” 뜸을 드리는 명훈에게 현민이 질문을 던지자 하나 둘 이야기를 꺼냈다. 어째서 103대를 맞을 것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말이 다. 순간 원찬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와 동시에 현민이 들이 웃기 시작했고, 옆에서 명 훈이 말을 주워들었던 학급 애들이 폭소를 터트리기 시 작했다. 참으로 자신들이 생각해도 기가 찰 정도로 웃긴 이야 기였기 때문이다. 설마 지금까지 애들을 패왔던 것이 정확하게 100대 씩 때린 것이었으며, 두 배로 패준다고 했던 녀석들은 정확히 200대만 때렸다는 말에서 폭소를 터트리지 않 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는가? 특히나 쌩뚱맞다는 말투로 국어선생처럼 무덤덤한 표 정을 지은 체 이야기 하는 명훈을 보면서 말이다. ~~~~~~~~~~~~~~~~~~~~~~~~~~~` 잠시후에 뵙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00 회] 날 짜 2004-12-04 조회 / 추천 10159 / 110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좌절하다 학교를 마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저승사자의 기척은 어디에도 느껴지지 않았 다. 사실 기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 침에도 볼쾌한 기분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들이 있지 않았던가. 지금은 그런 기분이 없었기에 어느 정도 안심은 했지 만, 그래도 마음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녀석들은 말 그대로 귀신같은 놈들이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독사에게 전화 거는 명훈. 독사가 떠나며 자신에게 남긴 명함을 남겼다. 웃기지 않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독사는 습격하기 전에 연락을 달라는 뜻으로 행한 행동 같았다. 한참 벨이 울리자 독사는 거만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 았다. “독사다.” 명훈은 독사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나다.” “며, 명훈?” 독사는 명훈의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듣고 경직된 목 소리로 되물었다. 명훈은 그런 독사의 의문어린 말투에 답을 주지 않고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오랜 만이군.” “그, 그렇군. 오랜 만이군.” “달갑지 않은 목소린데?” “훗. 너 같으면 쳐들어오겠다고 전화하는 녀석에게 반가운 목소리로 맞이 할 수 있겠는가?” 명훈의 입가에 실웃음이 머금어 졌다. 역시 자신이 인정한 사내란 뜻이 숨어 있었다. “풋. 하긴 그렇군. 그런데 눈치하난 빠르군. 단지 몇 마디 했을 뿐인데.” “너야말로 더욱 대단하다. 정말로 습격하겠다고 전화 를 하다니. 혹시나 해서 준 명함이 나를 살리는 군.” 독사의 말과 다르게 굳어 있는 목소리. 그런 독사의 말을 명훈이 비웃듯 이죽거리며 대답했 다. “글세, 그것이 너를 살렸는지 약간 수명을 연장시켜 줬는지는 대봐야 알겠지.” “후후. 그럴 수도.” “큭큭.” 명훈의 웃음소리에 같이 웃던 독사. “하지만 우리를 우습게보지 마라. 네가 아무리 괴물 이라 해도 우리는 일당백의 전사다.” “난 우습게 본적 없다.” “여하튼 고맙다. 나중에 내가 살아있고 너도 살아 있 다면 술이나 한잔 하자. “그 정도쯤이야…. 명훈은 왠지 씁쓸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술을 할 시간이 있을지 자신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녁에 보마.” “그래. 그때 너를 죽여주마.” 독사의 강한 살기어린 목소리. 명훈은 가볍게 넘겼다. “사람은 꿈을 꾸라고 하지만, 꿈은 꿈일 뿐이지.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미안하지만 그 꿈 역시 이 룰 수 없는 꿈이군.” “큭큭. 그럼….” 독사는 전화를 끊었다. 아마 지금부터 바쁘게 움직일 것이다. 독사의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 자신의 이름을 버리면서 까지 뛰어다닐 독사를 생 각하니 웃음이 흘러나왔다. 명훈은 독사의 명함을 한번 내려다 봤다. 피식 웃고는 명훈. 명함을 찢어 날려 버렸다. 돌풍과 함께 꽃가루처럼 뿌려지는 명함조각들.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사라지는 명함. 그것은 왠지 명진파의 최후를 예고해주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명훈의 신형이 바쁘게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었다. 명훈은 현민이들과 포장마차를 여는 것을 도와주고 원찬이를 불렀다. “왜?” 원찬의 퉁명스런 대꾸에 피식 웃는 명훈. 아직도 학교의 일이 앙금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까 일은 장난이야.” “된장이올시다.” 원찬은 여전히 투덜거렸다. 그렇다고 명훈에게 함부로 덤비지도 못했다. 이길 거란 생각도 없었을 뿐더러 괜히 현민이의 반감 을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명훈의 한마디에 마음을 약간 풀 수 있었다. “사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어서 너를 팔았다. 이해해줘라.” 그쯤 되자 원찬은 계속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화내봤자 자신은 꼼생원밖에 되 지 않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자신이 인정하는 사내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데, 참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훗. 내가 삐졌다고 생각했냐? 나 그렇게 속이 쫍지 않아.” 하지만 아직 머릿속이 정리가 덜 됐는지 표정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명훈은 그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킥. 여하튼 고맙다.” “새끼. 왜? 무슨 일이냐? 이 어르신이 담대하게 네 부탁을 수용해주마.” 그런 원찬의 모습에서 듬직한 모습을 발견한 명훈. 명훈은 약간의 뜸을 들인 후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이제 하나씩 정리 합니다. 곧 다음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100회네요.. 모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을 거예요. 거의 최 단기간에 100회에 다달한것 같네요.. 최단기간에 200회에도 도전하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01 회] 날 짜 2004-12-04 조회 / 추천 10003 / 10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좌절하다 그런 원찬의 모습에서 듬직한 모습을 발견한 명훈. 명훈은 약간의 뜸을 들인 후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여기서 절대 움직이지 말고 여자애들을 부탁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눈빛 으로 명훈을 바라보는 원찬. “응? 그게 뭔 개소리야?” “그냥. 잠시 어디를 갔다 와야 하는데, 혹시나 불안해 서….” 명훈이 말끝을 흐리자 원찬을 뭔가를 느꼈다. “혹시 싸우러 가냐?” 명훈은 원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랑 싸우는데 그런 표정이야? 마치 죽으러 가는 것 같은데?” 그 한마디에 명훈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랑. 나 자신이랑 싸우러 간다.” “…….” 그 한마디에 심각한 표정을 짓는 원찬. 정말 위험한 말이 아닌가. 목숨을 걸고 있다는 말을 종종 저런 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원찬이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겨났음을 원찬은 짐작 할 수 있었다. “죽지마라.” “…….” 그 한마디에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명훈. 이럴 때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 마나 든든한 것인지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다.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애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부탁하지 않아도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켜주마. 이곳은 걱정하지 말고 네 마음껏 싸우다 와라. 웬만한 녀석들 쯤은 나 혼자서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설령 조폭 이 온다고 해도 걱정마라.” “…….” 순간 명훈의 눈을 보던 원찬. 자신이 말을 하고 명훈의 평온한 눈을 확인한 순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서, 설마? 정말로 조폭하고 싸우러 가는 거냐?!” 명훈은 이번에도 대꾸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런 병신. 아주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안 죽는다.” 한참 시선을 주고 받은 둘. 결국 자신이 졌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던 원찬.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가 죽어도 여자애들은 지켜주마. 걱정하지마라.”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는 둘이었다. 원찬은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고, 명훈은 등을 돌려 어둠 속으로 몸을 묻었다. 조직은 긴장했다. 독사가 어디서 들었는지 어떤 조직에서 자신들을 습 격하러 온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는 것이 시작이었다. “이 새끼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해?! 넌 뭐하는 거야. 전쟁하기도 전에 나한테 맞아 죽고 싶어?!” 철썩! 독사의 손바닥을 자신의 뺨으로 고스라니 받은 한 덩 치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할 짓을 왜 한거야! 처음부터 잘하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엉?! 이번에 오는 적은 만만치 않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싸워라. 알아듣겠나!” “예! 형님!” “죽지마라.” “예! 형님!” 어떻게 들으면 별말 아닌 한마디였다. 하지만, 독사의 그 한마디 외침에 모두 감격했다. 탁탁탁탁탁! 구둣발 소리가 동일하게 울려퍼졌다. 마치 군대마냥 말이다. 덩치들은 건물 이곳저곳에 배치됐다. 혹시 모르겠지만, 다른 조직이라면 기습을 할 가능성 이 높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독사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입을 다물었다. 차마 한명이 쳐들어온다고 말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이 다. 그러나 언제까지 침묵할 생각도 없었다. 곧 그 녀석의 힘을 보고난 후엔 이야기 하지 않아도 알아차릴 것이기 때문이다. 애들이 정신을 빨리 차린다면 늦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탓이다. 물론 늦을 수도 있다고 생각안한 것은 아니다. 이 정도 인원을 부르기 위해서 한명이 온다고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생각해봤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리에 사람을 모을 자신은 없었다. 사실 자신도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것 이다. 그래서 포장마차를 부수지 않았던가. 여러 가지 따져보니 굳이 늦는다고 볼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들을 말로 깨우치는 것은 한달을 투자해도 가르 치는 것이 불가능 할지 몰랐다. 하지만, 한번 목격하면 그것은 몇 분 만에 깨우칠 수 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 게 났다는 말이 있는 이유다. 바로 그때. “크아아악!” 챙! 챙! “이 개자식이?!” 퍼버버벅! 푸억! “뭐, 뭐야? 괴물인가? 으악!” 건물 옆쪽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시작 됐군.’ 독사가 소란이 일어나는 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한 것 은 생각하기도 전인 첫 번째 비명이 울리는 그 순간이 었다. ~~~~~~~~~~~~~~~~~~~~~~~~~~~~~~~~ 곧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02 회] 날 짜 2004-12-04 조회 / 추천 10050 / 11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좌절하다 독사가 소란이 일어나는 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한 것 은 생각하기도 전인 첫 번째 비명이 울리는 그 순간이 었다. “뭐해! 저쪽이다. 어서 뛰어!” “예, 형님! 모두 건물 왼쪽으로 뛰어라! 절반은 여기 남아서 혹시 모를 기습에 대기해라!” “예, 형님!” 탁탁탁탁탁! 덩치들은 이런 일을 여러 번 한 것처럼 명령이 하달 됨과 동시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독사는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 거의 다달할 수 있었다. 문을 열려는 순간. 콰앙! “커허헉!” 우지직! 문에 누가 날아와 충돌했는지 철제로 만들어진 문짝 이 크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얼마나 큰 충격을 동반한 것인지 일그러진 그 상태로 무너지고 있었다. 독사와 더불어 달려오던 덩치들은 모두 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놀라서 멍청한 표정으로 그 부서진 철제문을 바라보 며 기가 막힌 표정을 짓고 있던 덩치들.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독사는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며 정신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부하들에 게 외쳤다. “이 새끼들 지금 뭐해?! 어서 튀어 나가지 못해?!” “형님, 여기는 문이 부서져서 도무지 나갈 수 없습니 다. 형님.” “개새꺄! 그럼 반대쪽 문으로 나가서 돌아가면 될 거 아니야?!” “알겠습니다. 형님. 모두 저쪽으로 돌아간다. 따라와!” 바로 그 순간 그들은 차갑게 가라앉은 한 목소리에 모두 멈춰섰다. “모두 돌아올 필요 없다.” 쾅! 콰지직! 갑자기 부서져서 열리지 않던 문짝이 크게 흔들리며 경첩이 떨어져나가더니 더 이상 지지대를 찾지 못한 문 짝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역광이 비춰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단 한번의 발차기 만으로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 정도는 짐 작 할 수 있었다. “괴, 괴물….” 한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모두들 긴장했는지 하나같이 마른침을 삼켜댔다. 그리고 모두들 얼어붙은 표정으로 그곳을 주시했다. 그 녀석이 터벅터벅 안으로 들어서자 곧 시야가 바로 잡히고 얼굴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얼굴을 확인한 순간 모두들 크게 놀랐다. 믿기지 않았지만, 아직 얼굴에 젓 살도 빠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애송이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독사가 앞으로 나서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후후후, 왔군.” “그래 왔다. 환영인파가 대단하던데?” “그래, 조금 신경 좀 썼지. 하지만, 네놈에겐 역시나 그것도 부족한 것 같아 보이는 군.” “과대평가 할 것 없긴 하지만, 대충을 사실 인 것 같 군.” “큭큭….” 서로 웃긴 했지만, 결코 눈은 웃지 않았다. 웃음소리만 흘리는 것뿐이었다. “나는 마음에 드는 너를 결코 패고 싶지 않다. 자리 를 피하는 것은 어떻겠는가? 이 정도라면 네 소신을 지 키고도 넘친다고 생각하는데?” 명훈의 그 말에 독사는 조용히 파이팅 포즈를 잡았 다. “그래. 네 말대로 넘치긴 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난 그렇게 뻔뻔한 놈이 아니다. 여기서 죽는 것이 차라리 나에게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조금 뻔뻔했으면 좋으련만. 하긴, 난 네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이지.” “말이 길어졌군. 내가 먼저가지.” 독사가 달려오자 명훈은 가만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를 바라봤다. 짧은 한숨을 내쉬고 개인적인 감정은 묻기로 마음먹 었다. 하지만 아직 미련이 남은 것인가? 주먹으로 자신의 옆 벽면을 가볍게 쳤다. 아니, 모두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다. 쾅! 와르르르르! 벽면 자체가 허물어진 것이다. 원래는 없었던 구멍이 생기자 덩치들은 전의가 상실 됨을 느꼈다. 조금 전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것처럼 그는 괴 물이 확실 한 것 같았다. 자신들의 형님인 독사조차 한수 접고 들어가는 존재. 생긴 것이 어린 녀석이라 우습게보며 몇 수 접으며 들어가는 독사조차 우습게 보였지만, 실세를 목격하니 덩치들은 하나같이 오금이 저릴 뿐이었다. 그러나 독사는 그런 덩치들과 달랐다. 벽이 무너졌음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표정으로 자 신의 무기인 군용 단검을 움켜쥐고 명훈에게 달려든 것 이다. “역시 이 정도로는 무리인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명훈의 신형이 사라졌다. 퍼어억! “크억!” 풀썩. 순간 쓰러진 독사의 뒤에서 나타는 명훈. 씁쓸한 표정으로 기절한 독사를 바라봤다. 퍼억! 가볍게 그의 어깨를 걷어차자 ‘우둑’거리며 뼈가 부러 지는 소리가 들렸다. 덩치들 역시 선명하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몸을 움츠리며 부들부들 떠는 덩치들이었다. 마치 자신이 당하는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그런데 명훈은 그걸로 모자라다고 생각했는지 허벅지 를 걷어 찼다. 뚜드득! “크아악!” 허벅지 뼈가 부러졌음이다. 생 뼈가 아작 나는 엄청난 고통에 기절했던 독사가 비명을 지르다가 다시 뻗었다. 맨 정신으로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닌 탓이었다. 풀썩. 명훈은 독사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자네 같은 사람은 이정도로도 부족할지도….” 명훈은 이런 사내들은 자신이 죽을지언정 굽히지 않 을 뿐만 아니라 인정을 두고 살려주면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다시 달려들기 때문에 상당히 피곤해 진다. 그것을 애초부터 막기 위해 일부러 뼈를 아작 낸 것 이다. 천천히 명훈의 시선이 공포어린 시선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덩치들을 향했다. ~~~~~~~~~~~~~~~~~~~~~~~~~~~~~~~~~~~~~ 곧 찾아 뵙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03 회] 날 짜 2004-12-04 조회 / 추천 10609 / 181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좌절하다 그것을 애초부터 막기 위해 일부러 뼈를 아작 낸 것 이다. 천천히 명훈의 시선이 공포어린 시선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덩치들을 향했다. “너희들은 뭐냐.” 명훈의 나직한 한마디. 마치 저승사자라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명훈을 봤다. 그 사이에 한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괴물이다아!” 비명과 동시에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작이라도 된 것처럼 줄지어 덩치들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모두 위층으로 향하는 것이 사무실 쪽으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을 데리고 내려온 행동 대장쯤으로 보이 는 사내가 그런 덩치들을 보며 외쳤다. “이, 이 자식들 뭐 하는 거야! 어서 돌아오지 못해?!” “으아아아아~!” 이미 패닉상태에 빠져있는 덩치들에겐 그의 목소리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명훈이 천천히 그에게 걸어가자 그는 비음을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으아악! 사람 살려!” “시끄러운 자식이군.” 퍽! 두두두둑! 명훈의 주먹이 녀석의 입안에 틀어 박혔다가 빠졌다. 주먹을 빼는 순간 녀석의 이빨이 몽땅 부러져 바닥으 로 낙하했다. “크아아아아악!”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다가 녀석은 기절하고 말핬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명훈이 피식 웃었다. “자신은 이 정도로 겁 처먹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괴 롭히고 다닌건가?” 기절한 녀석의 복부를 내력을 실지 않고 있는 힘껏 겉어 찼다. 퍼억! “크어어….” 울컥! 녀석의 입에서 검은 피가 한 움큼이나 흘러나왔다. 명훈의 발길질에 내장이 다친 것 같았다. “아프냐? 아프겠지? 이 아픔을 절대 잊지 마라.” 퍽! 우둑. “크아아아아!” 피로 물든 이빨. 피로 물든 입 주변. 비명과 핏물이 품어져 나오는 입. 명훈이 가볍게 갈비뼈를 걷어차 줬기에 생긴 현상이 었다. 그리고 녀석이 결국 기절하자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내뱉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다른 사람의 고통도 생각할 줄 아는 법을 배워라. …나야 너무 잘 알아서…….” 위층에서 기습에 대기하고 있던 덩치들은 겁에 질린 모습으로 허겁지겁 달려오는 동료들을 보고는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뭐야, 너희들? 어떻게 된 거야? 대체 무슨 일이야?” “으아아….” 덜덜덜덜. 개중에는 오줌을 지린 녀석들도 있었다. 그들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동준이라는 녀석이 기가 막힌 듯 그들의 천태만상을 보며 이렇게 읊조렸 다. “씨발것들. 참 가지가지 하는 군.” 이미 공포의 절은 표정을 보니 전의를 상실한듯했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사뭇 궁금해 지기까지 하는 동준이었다. 그리고 곧 깨닫게 됬다. 계단으로 한 꼬맹이 녀석이 걸어 올라온 탓이다. 그 꼬맹이가 계단으로 올라오는 것을 목격한 녀석들. 바로 조금 전 도망쳐서 올라왔던 녀석들이 혼비백산 하여 다시금 여기저기로 도망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 가? 마치 사람 손을 피해 도망쳐 다니는 올챙이 때를 보 는 것만 같았다. 동준은 기가 막혀서 한마디 쏘아 붙였다. “미친 새끼들. 너희들은 이번일 끝나고 나면 다 죽었 어! 각오들 하고 있어!” 동준이 그렇게 외쳤음에도 이미 혼백이 나갈 정도로 놀라있는 그들에겐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여하튼, 혹시나 그 꼬맹이일리는 없을 것 같은 동준. 그 뒤쪽에 다른 패거리들이 위협하며 올라오나 싶어 멀 그러니 바라보았지만 아무런 소란 없이 조용했다. 뒤에는 사람들이 없다는 말과 진배없었다. 뭔가 허탈한 동준이었다. ‘설마 정말로 저 꼬맹이 때문에 무서워서 겁먹은 송 사리 때처럼 여기저기로 도망치는 것이란 말인가?’ 허탈하기까지 한 그였다. 그러나 곧 생각을 수정해야만 했다. 자신의 수하들 중에서 성질 급한 몇 놈이 앞으로 달 려 나간 탓이었다. 퍼버버벅! “꺼어억!” “꾸엑!” 순식간에 정리되며 바닥을 뒹구는 녀석들. 순간 정적이 흐를 정도로 조용해졌다. 모두의 입에 쩍하고 벌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말이다. 동준은 이해 불가능한 표정으로 명훈을 바라보았다. 명훈은 그런 동준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덤벼라.” ~~~~~~~~~~~~~~~~~~~~~~~~~~~~~~~~~~~~~~~~ 곧 다음글도 올리겠습니다. 미친듯이 쓰느라 힘들어 죽겠습니다. 헥헥.....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04 회] 날 짜 2004-12-05 조회 / 추천 11120 / 18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좌절하다 명훈의 한마디에 정적은 깨졌지만, 누구하나 선 듯 나설 수 없었다.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지도 못했는데, 한 호흡도 안돼 서 덩치 넷을 떡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그것은 목전에서 말이다. 말 같지도 않은 작금의 상황을 누구하나 명쾌하게 해 석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한 덩치의 입에서 의문사가 튀어나왔다. “며, 명훈?” 그 한마디가 주는 파장은 결코 적지 않았다. 순간 모두의 동작이 얼어붙었다. 정신이 나간 체 도망치던 녀석들조차 말이다. “아!” 순간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고, 불안한 눈빛 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덩치도 생겨나기 시작 했다. 마치 어째서 그 이름이 지금에야 생각이 났는지 경악 어린 시선으로 명훈을 바라보는 이들도 생겨났다. “다, 당신이 명훈인가?” 명훈은 차갑게 한번 바라봐주며 수긍했다. “내가 명훈이다. 내 이름을 맞추는 것을 보면 내가 온 이유도 잘 알겠군.” “크윽.” 비음성 신음을 한번 흘리는 동준. 주변을 한번 돌아봤지만, 전의를 상실한 이들이 태반 이다. 예전에는 명훈의 이야기를 웃으며 장난 식으로 이야 기 했었는데, 알고 보니 정말 사실이라는 믿어지지 않 는 현실을 마주하다보니 전의가 살아날리 없었다. 거기다가 현실로 느끼면서 생기는 괴리감은 예전 이 야기에서 뻥튀기가 되어 더욱 싸늘하게 자신들의 심장 을 옳아 매는 것만 같았다. 동준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어린 녀석. 결코 강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동준에겐 더 큰 부담이었다. 이 세계에선 관록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름이 있는 자 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 해도 아직 이름조차 크게 알려 지지 않은 저 명훈이라는 애송이에게 당한다는 것은 수 치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명훈이라는 이름이 뒷 세계에서라도 유명하면 상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닌 밤에 홍두깨라고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 나서 명진파를 아작 내겠다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 가. 동준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명진파의 와해만은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분명 조금만 버텨준다면, 저런 녀석이 이 세계에서 이름 하나 날리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리라. 홀홀 단신으로 조직을 잡겠다며 오는 간 부은 녀석이 저 녀석 말고 세상천지 어디 있겠는가? “모두 쳐라!” “으, 으아아아아아!” 동준의 말에 약간 망설이던 덩치들. 하지만, 고함을 지르며 그 공포심을 접겠다고 명훈에 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 울리던 타작음과 뼈 으스러지는 소리. 거기에 덩치들의 고통과 공포어린 비명이 어우러지기 시작한 것은 몇 분 되지 않아서였다. “으으으으….” 덜덜덜덜. 동준의 몸이 주체 할 수 없을 만큼 떨리기 시작했다. 모두 한 명당 한방에 바닥으로 나자빠졌다. 하나같이 병신이 되서 말이다. 자신역시 달려가려다가 기세에 눌려 자신도 모르게 살짝 멈칫한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바닥에서 기절한 녀석은 다행일지도 몰랐다. 아직 기절도 못하고 비명을 흘리는 녀석들은 하나같 이 동준을 바라봤는데, 마치 자신을 원망하는 눈초리로 바라 보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고막을 뚫고 들어왔다. “뭐냐? 넌 안 덤비나?” “으으으….” 그것은 단순히 고막만 뚫은 것이 아니라 이성마저 장 악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목소리였다. 벌써부터 전의를 상실한 동준. 온몸이 떨렸다. 이도 떨리고 팔과 다리도 후들거리며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뛴다.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동준의 시선과 쓰러져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한 덩치 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눈을 힘껏 감았다. ‘그래, 죽기밖에 더할까?!’ 앞으로 달리기 시작한 동준. 하지만, 그의 젖은 바지가 거추장스럽기 그지없었다.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했지, 공포심에 사로잡힌 순간 그는 오줌을 지렸던 것이다. 질퍽질퍽. 물에 젖은 소리가 들렸다. 찌릉네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주먹을 움켜쥐고 달렸다. 명훈역시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봐줬다. ‘이곳에는 의외로 괜찮은 녀석들이 많군….’ 그러나 그것은 생각일 뿐이었다. 명훈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동준은 후두부에 강한 타격과 동시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자신에게 덤비는 이들이 없자 다시 한번 주변을 훑어 본 명훈. 아직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덩치.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아직은 살아있다고 자신의 생존 을 밝히는 덩치. 죽은 듯 기절하여 쓰러져있는 덩치. 모두들 명훈의 시선이 훑어 질 때마다 기절한 녀석들 마저 자신이 기절한 것도 모르고 흠칫흠칫 떨 정도였 다. “으으….” 명훈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뒷걸음질치다가 엉덩방아 를 찧는 녀석들이 보였다. 그때 저 멀리서 다른 녀석들이 달려오는 것을 명훈은 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당혹감이 서린 그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뭐,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나름대로 일찍 달려온 그들이었지만, 명훈이 이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더욱 빨랐기에 생긴 현상이었다. “저, 적들은?” 그들은 자신의 동료들을 반신불수로 만든 적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애새끼로 보이는 새파란 녀석 하나 빼곤 말이 다. 그러나 곧 쓰러져 있고, 아직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 는 녀석들의 시선을 보고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 다. 그것은 한 덩치의 신음어린 목소리에 경악으로 바뀌 었다. “괴, 괴물….” 덩치는 신음과 동시에 무겁게 자신의 한쪽 팔을 들어 올렸는데 바로 새파란 애새끼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 이다. 그들의 시선이 명훈에게 쏠리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 이 아니었다. 당연하기 까지 했다. 동생들을 몰고 이곳으로 달려온 녀석의 입에서 침음 성이 흘러나왔다. “서, 설마….” ~~~~~~~~~~~~~~~~~~~~~~~~~~~~~~~~~~~~~~~~~~~~~ 저는 지금 일본어 능력시험을 보러 나갑니다. 나가기 전에 미친듯이 써서 한편 올립니다. 혹시나 저녁에 들어오게 된다면 다음편도 곧 올리겠습니다. 못들어 올수도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오늘 시험 때문에 잠을 자다보니 많은 분량을 쓰지 못했습니다. 최소 다섯편은 더 올릴 생각이었는데...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05 회] 날 짜 2004-12-06 조회 / 추천 9255 / 106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좌절하다 “서, 설마….”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행동을 보자면 저 애송이로 보이는 녀석이 이렇 게 만들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때 괴물이라는 신음을 흘린 녀석이 뒤늦게 한마디 더 흘렸다. “며, 명훈….” 그 말에 순간 싸늘하게 얼어붙는 그들이었다. 명훈은 그런 그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위층에 있을 사무실로 올라갔다. 명훈이 올라가자 아직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십여 명의 덩치들이 우왕좌왕 거렸다. 연락이 되기도 전에 명훈의 손에 처리되었으니 이해 가 갈만도 했다. 아자 저들은 이 앞을 지키는 최종 단계일 테니 밖에 서 무슨 일이 생겨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명훈은 그런 그들을 무시하듯 앞으로 나갔고, 뒤 늦 게야 명훈을 발견한 덩치들은 흠칫 놀랐다. 자신들의 눈에는 갑자기 나타난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이성을 찾은 그들. “넌 뭐냐! 여기가 어디라….” 푸버버벅! 퍽! 맨 앞에 나서던 녀석이 입을 열자마자 동시에 타격음 이 터졌고, 하나 둘 정신을 잃은 상태로 변하더니 바닥 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마음껏 표출하기 시작했다. 명훈은 그런 그들을 신경쓰지 않고 문을 열곤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는 [상가관리공단]이라는 아리송한 팻말이 붙 어 있었으나 명훈은 무시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네 명의 사내가 자신의 연장을 들고 명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명훈이 들어서자 놀라는 눈빛이었다. 의외의 상대가 이곳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당황한 것 같았다. 밖 이곳저곳에서 이런 저런 비명과 함성이 들렸다. 그래서 짐작 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몰려 왔나보곤.’ 이를 으득 갈며 어떤 녀석이 흉수일까 생각하며 씹고 있던 찰나였다. 그런데 나타난 것이 명훈이라니 당혹하지 않을 수 없 었다. 그때 한 녀석이 명훈을 보더니 분통을 터트리기 시작 했다. “아니 어떤 자식이 이런 애송이를 안으로 들여보낸 거야?!” 그 말을 외침과 동시에 명훈 옆을 스쳐서 다 싸잡아 죽이겠다는 듯한 포즈로 밖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이해 할 수 없는 듯 몸이 굳었다. 곧, 그 표정은 경악으로 변했다. 그 경악은 이성으로 이어졌고, 명훈을 돌아보게 됐다. 퍽! 우당탕탕! 명훈의 한방에 녀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구석 으로 날아가 기절하고 말았다. 그런 믿기기 어려운 모습을 확인한 건달들은 얼어버 렸다. ‘서 설마. 저 녀석 혼자 이곳에 찾아 온 거란 말인 가?’ 이곳 명진파의 두뇌 최상식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 다. 그리고 곧 그 머리는 이해 불가능한 답을 내렸는데, “서, 설마!” 명훈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명훈이다.” 최상식은 온몸에 기운이 빠져버린 듯한 표정으로 팔 을 늘어트렸다. 명훈은 말이 통할 녀석이 필요 했는지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 “명진은?” 최상식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손짓을 하 며 입을 열었다. “형님은 저 안에 계신다.” 명훈은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곳으로 몸을 옮길 뿐이다. 마치 자신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한 모습이다. 그때 최상식이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명훈이 잠시 멈칫하더니 최상식을 돌아봤다. “왜 우리를 습격했나?” 그 한마디에 잠시 멈칫한 명훈.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 기가 막힌 한마디에 최상식. 왠지 그 짧은 한마디 속에 숨어 있는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마도 자신역시 힘이 있다면 저 명훈이란 사람과 같 은 선택을 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회유하지 못한다면 박살내라는 것 역시 자신들이 해 오던 모습이 아니던가.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내, 내가 세력 확장을 하기 위해 그 포장마차를 건 들자고 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벌써 명훈의 손은 문고리를 잡아아 비틀고 안으로 들 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았다. 최상식의 귀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매타작 소리와 비 명. 서울의 노른자위를 양분하여 나눠먹었던. 그렇게 위풍당당하던 명진파.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것이 명진파의 최후였다. 하지만 그날 최후를 맞이한 것은 명진파만이 아니었 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성파에서도 명진파에서 울려 퍼 지던 비명이 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오늘은 아마 독자님들께서 만족하시는 날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미심장) 오후에 찾아 뵙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06 회] 날 짜 2004-12-06 조회 / 추천 9408 / 119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명훈, 좌절하다 다음날 언론들이 들썩였다. 하루아침에 두개의 거대 조직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흉수는 아직도 드러나지 않았다. 물론 몇 놈이 사실을 밝히긴 했지만, 아무도 믿어주 지 않은 탓이었다. “명훈이라는 녀석 혼자 우리 사무실을 전멸 시켰다구 요!”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경찰들은 새로운 신규 조직이 등장하여 서울을 잠식 한 것이 아닐까 모든 신경을 곧추 세울 뿐이었다. 전교가 긴장했다. 오늘 신문에서 명훈의 이름이 거론되었음을 확인한 몇 놈이 퍼트린 소문 탓이었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었다. 교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조간신문을 읽던 선생들은 하나같이 입에서 차를 품었다. 대책회의가 시급하게 열릴 수 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명훈을 향한 애들의 경외심과 존경심은 더 이상 부풀어 오를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올랐고, 이미 신앙처럼 자칭 명훈교의 교주라며 설치는 또라이 도 생겨났다. 예전에 복도에서 설치던 그 또라이가 분명할 것이다. 여하튼 이미 첫 수업시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인근 타 학교에서 명훈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여자들의 발병율은 거의 치사량 급이었다. 수업시간에 명훈이 학교 학생에게 받은 문자를 확인 하며 단체로 ‘명훈오빠’를 외치며 환호할 정도였으니 무 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가수들의 브로마이드나 사진을 허공에 뿌리며 이미 몇몇 애들이 소지하고 있던 명훈의 사진을 구입하기 시 작했다. 물론 그 사진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여자애들이 미칠 만도 했다. 누가 자신의 여자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서 울의 거대조직 두 곳에 쳐들어가 괴멸 시킬 수 있겠는 가? 진정한 백마 탄 왕자의 초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남자가 자신의 남자라는 사실만 확인한다면 죽 어도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물론 구 자매의 입장은 달랐다. “야! 너 죽을려고 환장했어?!” “너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거야?” “으으, 알았어. 알았어….” 아침부터 그녀들에게 시달리는 명훈. 얼마나 많은 잔소리를 들었는지 골이 다 울릴 지경이 었다. 특히나 어제 저녁 놀란 가슴을 쓰다듬던 현민이는 더 심했다. “정말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무슨 생각으로 조폭사무실을 쳐들어 간거야?!” “아니, 그게….” 땀을 뻘뻘흘리는 명훈. 그 옆에서 측은한 듯 바라보던 원찬. 그때 미지가 입을 열었다. “너 어제 저녁에 현민이만 몰래 불러서 안으로 들어 갔다며? 옷은 피칠 한 체 어머니한테 들킬까봐 옷 좀 가져다 달랬다며? 네 머릿속 좀 해부하고 싶다. 무슨 생각으로 살면 그렇게 무대뽀야?” 그런 미지의 말을 현민이가 이어 받았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 줄 아니? 심장이 입 밖으로 튀 어 나오는 줄 알았어. 옷에서 피가 줄줄 새는 모습 상 상이나 해봤니? 어머니가 그 꼴 보셨으면 혈압으로 쓰 러지셨을 거야!” “아, 미안 미안….” “이게 미안하다고 될 일이니?!” “거기다가 선생님들은 지금 3교시가 지났는데, 교실 에 얼굴조차 비추질 않고 있잖아. 어떻게 책임 질거야!” “너 그것도 모자라서 신문에 네 이름까지 나왔다며? 대체 어쩌려구 그래? 네 주변사람 누가 알기라도 해봐. 어떻게 될지 상상이나 해봤어?” “너 미친거 아니니?!” 그것에 대해서는 할말이 있는 명훈이었다. “그것은 생각했지. 누가 나같이 비리비리한 녀석이 그런 일이 할 수 있을 거라 믿겠어? 대충 호기심에 몇 번 보고 말겠지.” “아하하하! 맞아 맞아. 나도 네 녀석 처음 봤을 때 여 자 치마폭에 말려 있는 등신인줄 알았잖아. 설마 네가 조폭까지 가지고 놀 정도였다니…. 너를 적으로 뒀었다 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구. 킥킥.” “킥킥킥.” 명훈과 원찬이 킥킥거리며 웃자 여자애들의 눈초리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야, 원찬! 너 죽을래?” 뚝! 원찬이 수도꼭지 잠긴 물처럼 웃음을 그쳤다. “이 등신은 또 뭐가 좋다고 따라 웃어?” 뚝! 명훈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자애들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살기가 어려 있던 것 이다. 명훈조자 감당 못할 살기가 말이다. 그런 것을 원찬이 견딜 수나 있었겠는가? 순간 능청떠는 듯 한마디 내뱉고 자리를 피하는 원 찬. “아, 소변이…. 화장실 좀….” 슬쩍 슬쩍 눈치를 보던 원찬. 명훈과 눈을 마주치자 급하게 눈을 깔고 다른 곳을 주시했다. 하지만, 이미 한마디씩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이 배신자!’ ‘쏘리….’ 총총총. 종종걸음으로 한순간에 스리슬쩍 사라지는 원찬을 허 탈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명훈. 다시 여자애들의 잔소리 공격이 시작 됐다. 이 잔소리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기에 명훈은 좌 절했다. 바로 그때 현민이의 목소리가 귓청을 때렸다. “이 등신 삼발아! 그러다가 네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 란 말이야. 내가 어머니 얼굴을 어떻게 보냐구! 이 등신 아!” 명훈이 고개를 살짝 틀어 현민이를 보자 그 큰 눈에 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또그르르륵’ 이라는 효과음이라도 들리는 것 같 을 정도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구 자매가 모두 울기 시작했다. “으윽…. 흑흑.” “흑흑흑.” 아침에 명훈이 소식을 듣고 모두 한결같이 얼마나 놀 랐던가? 그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자신들 때문에 혹시나 죽었다면. 그 정도는 아니지만 불구라도 되었다면. 자신들은 결코 얼굴을 들고 학교에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명훈이 어떻게 고맙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고마움보다 불안감과 아찔함이 더 컸던 그녀들. 그 모든 것이 봇물 터지듯 무너지며 눈물로 드러난 것이었다. 명훈역시 여자애들의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것만 같 았다. 너무나 고마운 그녀들의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찢어 질 것만 같았다. 언제부터 자신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오래 된 것은 아니다. 환생 한 후부터 가지게 된 감정이리라. 그렇지만 나쁘진 않았다. 그 가슴을 꽉 채워주는 충족감. 충만감. 무엇으로 그것을 표현 할 수 있겠는가? 필설로? 구두로? 명훈은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는 여자애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며 나직하게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미안….” 그와 동시에 여자애들의 울음소리가 커진 것이 결코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미안하다 애들아….] ~~~~~~~~~~~~~~~~~~~~~~~~~~~~~~~~~~~~ 흠... 약간 생각하고 있던 설정하고 많이 틀어지긴했지만.. 명훈의 좌절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거든요... 정말 말 그대로 좌절이었다는.. 뭐, 쓰고보니 지금 상태도 나쁘지 않은것 같네요.. 오늘부터 수요일까지는 제가 독자님들과 호흡을 같이 할 것 같습니다. 쉬지 않고 올리는 폭참열차에 모두 탑승해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밥먹을 때와 수면을 취할때는 예외입니다. 퍼하하! 이대로 쉬지 않고 3권까지 고!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07 회] 날 짜 2004-12-06 조회 / 추천 9902 / 136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명훈, 마음의 정리를 마치다 5. 명훈, 마음의 정리를 마치다 “제길. 그놈의 대왕심보하고는….” “쉿, 조용하게. 다 들으시네.” “들으라면 들으라지! 내가 그런 거 무서우면 어떻게 저승사자 짓을 해먹겠나!” …라고 말은 했지만, 목소리는 개미가 깔짝이는 소리 보다 작았다. 옆에서 그런 동료의 모습에 혀를 차던 저승사자. “그런데 왜 우리를 다시 불러서 잡일을 시킨 거지? 따로 놀고 있는 녀석들도 많았잖아.” “젠장. 내가 그 대왕놈의 심보를 어찌 안단 말인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굴러야지! 퉷!” 하지만 역시나 개미소리보다 작은 목소리. 옆에서 동료의 혀 차는 소리를 들으며 먼 산을 바라 보는 저승사자였다. 명훈은 하나하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로서 자신이 하늘에 부탁한 삼 일째 되는 날이었 기에 기분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어머니에게 못 다한 어리광도 부려봤고, 친구들과 놀 이공원도 가봤다. 하지만, 아쉬움은 더욱 컸다.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할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살기위해 도망쳐야 할 시간이 말이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음울한 기분은 저승사자들이 이 근처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 빠르게….’ 현민이의 목소리에 명훈이 자동적으로 고개를 돌렸 다. “명훈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심각하게 해?” “아, 아냐….” “에이,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칠판 앞에서 빽빽이를 하고 있는 국사선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명훈. 뒤에서 탱자탱자 놀고 있는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원찬이란 녀석도 눈에 들어왔다. 저기서 그 필기를 받아 적고 있는 미지와 친구들. 현민이와 미지, 유진, 자희, 혜영. 아버지와 어머니…. 오늘 이후로 그들을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할 수 없는 명훈. 나름대로 정리를 했다 생각한 명훈. 마음을 가다듬었다. “현민아.” “응?” 필기를 받아 적고 있던 현민에게 명훈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잘 지내라. 어머니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순간 놀란 눈으로 명훈을 바라보는 현민. 한참 그런 현민을 마주보면 명훈. 한순간 박장대소를 하며 웃기 시작했다. 모두 흠칫 놀랐지만, 듣지 못한 척 수업을 진행했다. 그 웃음의 주인공이 명훈이라는 것을 알게 된 탓이었 다. “아하하, 장난이야. 뭘 그렇게 정색하고 쳐다보냐? 킥 킥.” “…….” 하지만, 현민이는 같이 웃지 않았다.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바라볼 뿐이었다. 뭔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말하고 싶고 질문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것을 물어보면 바로 떠날 것만 같아서 차마 물어 볼 수가 없 었다. 명훈도 그런 현민이의 마음을 깨달았을까. 조용히 칠판을 바라보았다. “원찬아.” “응? 뭐냐?” 도시락 까먹고 있던 원찬은 명훈의 부름에 슬쩍 고개 를 치켜 들었다. “너한테 줄게 있다.” “…뭔데?” 순간 귀가 솔깃해 지는 원찬. 하긴, 누가 뭘 준다는데 기분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 는가? 그때 명훈이 교실 밖에서 누군가를 질질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각각 한손에 한 놈씩 잡혀서 끌려 들어오는데, 바로 승원이와 명호였다. 허공에 둥실 떠서 멋쩍은 표정으로 명호가 손을 흔들 며 인사했다. “헤헤. 안녕….” 순간 원찬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것들은 뭐야?” 명훈이 장난친다고 생각하는 원찬. 밥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명훈의 얼굴을 주시했다. 무슨 생각으로 이 녀석들을 자신의 눈앞에 데려 왔냐 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그래서 명훈이 입을 열었다. “네 꼬봉으로 쓰라고.” “꼬봉?” 순간 굳어졌던 표정이 슬쩍 변하는 원찬. 아직까진 그 표정의 진위를 알기 힘들었다. 명훈이 마저 대답했다. “내가 쓰려고 했더니 쓸데가 없더라고. 제발 꼬봉이 되겠다면서 받아 달라 부탁해서 받아 줬는데, 그냥 놀 리기 미안해서 말이지….” 그때 명호가 중얼거렸다. “놀려도 상관없는데…. 켁!” 바로 그때 원찬이 명호의 배를 주먹으로 갈겼다. “조용히 해. 어른들 이야기 하는데 어디서 껴들어. 뒤 질려구. 마저 이야기 해봐. 호기심이 마구 치솟아 오르 는데?” “킥킥.” 한참 서로 웃던 명훈과 원찬. “원찬이 네 녀석이 꼬봉하나 두면 잘 부릴 것 같아 서, 나처럼 놀려 먹지 말라는 뜻으로 선물하는 거다.” “하긴, 나도 내 딱갈이 하나 필요하던 참이었지. 큭 큭.” 눈에서 빛이 품어지는 것을 목격한 명호와 승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을 목격한 원한이 입을 열었다. “아아, 그렇게 긴장할 필욘 없어. 그렇게 괴롭힐 생각 은 없으니 말이야. 킥킥.” “그럼 통성명을 해야지. 여기는 뼈다귀 승원, 호구 명 호. 그리고 여기는 원찬이라고 이번에 전학 온 녀석이 지. 잘들 지내봐. 난 간다. 바이 바이.” 그 한마디에 순간 원찬은 이상한 감정을 느낄 수 있 었다. 대충 넘긴다면 넘길 수 있는 말이기도 했지만, 가볍 게 넘어가지 못할 말이기도 했다. 원찬이 등을 돌리고 교실 밖으로 나가는 명훈을 불렀 다. “야!” “응?” “너 지금 어디가? 마치 멀리 떠나는 것처럼 말한거 알아?” “응? 내가 한 말이 그렇게 들렸어?” 원찬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 장난하지마. 이번에 네가 보여준 행동들 어딘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어. 만약 아무런 말없이 이곳을 떠난다면 널 찾아내서 그대로 면상을 갈겨 줄거다.” ‘훗. 지랄을 하고 있네. 네가 날 찾을 수 있을 것 같 냐? 저승사자도 피하는 나를?’ 여하튼 거칠게 걱정하긴 했지만 그런 원찬 때문에 마 음이 안심되는 명훈이었다. 자신이 떠나면 여자애들을 누가 지킬지 걱정했던 탓 이다. 물론 멀리 떠날 생각은 없었지만, 깊은 곳에 숨어 있 을 생각이었기에 걱정이 된 것이다. “시끄러. 네 꼬봉들이나 잘 챙겨.” 그 한마디에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꼬봉으로 전락한 승원과 명호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큭큭.” 흠칫! 이것이 차후에 명훈을 저주하는 계기가 됐다. [그냥 우리를 패! 그냥 패주고 제발 놔줘어어어어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와 복도를 걷던 명훈. 검은 그림자가 저쪽 복도 끝 콘크리트 바닥에서 솟아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순간 엄청나게 놀랐다. 저승사자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빠르게 직접 찾아 나설 것이라 고 생각지 않았던 명훈. ‘젠장. 어머니에게는 인사를 못 드리는 건가?’ 하지만 아직 그들은 자신을 모르는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다행이라 생각한 명 훈. 지금까지 곰곰이 생각해 왔던 것을 지금에야 결론 내 릴 수 있게 됐다. 순간 하나의 자물쇠로 묶여있어 막혔던 연결고리가 작은 열쇠 하나로 열린 탓이었다. ‘그때도 그렇고, 그때도….’ 흠칫! 그러고 보니 자신이 저승사자의 기척을 느꼈을 때는 항상 내력을 소진하던 시간과 겹쳤다. 가볍게 싸우던 상황에도 주변에서 저승사자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죽었다 살아난 것이 이렇게 자신에게 뛰어난 영감을 선물해 줄줄 상상도 못했던 명훈.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족쇄라고 해야 할지…. 아직도 감은 잡지 못했한 명훈. 하지만, 저승사자를 피할 때만큼은 유용하게 사용 할 수 있었기에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 저승사자와 눈으 마주치려는 찰나 시선을 피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저승사자와 눈을 마주치지만 않으면 된다는 소릴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나는 명훈이었다. 이것은 원래 명훈이의 기억인 것 같았다. 아마도 죽기 전의 명훈이 자신의 할머니에게 들었던 옛날이야기 중 한 구절 같았다. 자신의 전생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기 때 문이다. 하지만 그때 명훈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차렸는 지 저승사자의 고개가 꺄우뚱거렸다. 그와 동시에 빙판을 스치듯 저승사자의 신형이 미끄 러지며 명훈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 에구 명훈이가 다급해 지겠군요. 키엌키엌 (남의 불행을 즐기는 성격) 여하튼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까지 못드렸군요. ㅋㅋ 여러 독자님들의 성원에 힘입어서 열심히 일본어능력시험을 친 한가 훗.. 한가하게 시험을 봤기 때문인지.......... 캬캬캬캬캬;; 여하튼 100점만 맞아주길..... (400점 만점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겠지? 두근두근) ㅋㅋ 여하튼 그렇게 공부하지 않았는데 붙을리가 없겠죠. 그래도 저를 응원해주심 여러분께 정말 감사 드릴 뿐입니다^^ 집에와서 뎃글 확인한 저는 얼마나 가슴이 뭉클거렸던지 ;ㅁ; 2권 마지막 부분에 저의 희소식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뭐, 짐작가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럼 잠시후에 뵙지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08 회] 날 짜 2004-12-06 조회 / 추천 9333 / 106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명훈, 마음의 정리를 마치다 그와 동시에 빙판을 스치듯 저승사자의 신형이 미끄 러지며 명훈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명훈은 흠칫 놀랐다. 그렇다고 내색은 하지 않았다. 저승사자는 명훈의 앞에 다가와서 한참 명훈의 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 다. -이상하군. 이상하군. 영안이 열려있어. 죽은 사람처 럼 영안이 열려있어. 이상하군. 이상해. 명훈은 저승사자의 혼잣말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 태연하게 앞으로 걸어갔음에도 전혀 흔들림 없 이 거리는 유지하며 자신의 눈을 바라보는 저승사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무표정에서 공포심을 종종 느낀다고 한다. 저승사자에겐 희노애락의 감정이 없기에 표정이 없다 고 한다. 그래서 저승사자가 무서운 건가? 긴장되는 찰나의 순간 속에서 엉뚱한 생각이 명훈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여하튼 저승사자의 영안이 열려있다는 혼잣말에 이 자리를 박차고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순간에 잡히게 되면….’ 명훈은 태연하게 이 상황이 넘어가길 빌었다. 자신이 아무리 지금 1갑자 이상의 내력을 가지고 있 다고 해도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저승사자라면 말이다. 지금까지 꾸준히 심법을 활용하여 내력을 키워온 명 훈이다. 움직이면서도 하물며 밥을 먹거나 잠을 자면서도 내 력증진을 위해 남모른 노력을 했다. 뭐, 자랑할게 있다고 그 모습을 드러내 놓고 하겠는 가? 자칫 신기하다며, 놀려주겠다며 다가와서 자신을 건 들기라도 하면 주화입마에 걸리기 십상일텐데 말이다. 그래서 내력이 어느 정도 쌓인 후부터는 태허무령심 법에 약간 변화를 준 자연심법이라는 단순한 이름의 심 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역시 자신이 만든 심법이다. 유치한 이름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자연심법이라니. 여기서도 검황의 허접한 작명 센스는 여지없이 드러 났다. 하지만 웃기지도 않은 이름과는 다르게 효능은 탁월 했다. 평소에는 기를 모으는 것 같지도 않다고 느껴질 정도 다. 그 정도로 개갈 안 나게 쥐꼬리만큼 모이지만, 끝없 이 순환하여 자신과 비슷한 성질의 기를 흡수하는 기능 은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었다. 특히나 보통의 삶 속에서 끊어지지 않게 호흡할 수 있는 장점은 이 자연심법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었다. 무공에 대해서는 한 치의 개으름도 피우지 않는 명훈 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수련을 생각했고, 그러한 노력을 수 고롭다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혼자 있을 때는 속성의 심법으로 내력을 향상시켰다. 가방에 자신의 몸무게만큼의 추를 넣어 근력 강화 수 련도 늦추지 않았다. 물론 손목과 팔목에 철가루로 만들어진 운동용 팔찌 를 차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짧은 시간동안 많은 내력과 근력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리고 검은 이미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선 검황에게 는 그다지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다. 내력만 받쳐 준다면 무형검강마저 시전 할 수 있는 검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지닌 모든 것이 검일 진데 검을 들고 하는 수련이 필요 없다고 느껴진지 벌써 100여년 도 훨씬 전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검을 들고 무림에 들어와 상상 못 할 무력을 자랑했기에 그를 검황이라 부르기에 주저하 지 않은 것이고, 담소광은 검황이 됐다. 그런 검황도 지금은 긴장했다. 저승사자가 가지고 있는 사기(邪氣)는 검황의 심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견디기 어려웠다. 뭔가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불안한 법이다. 한참 후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명훈을 주시하는 저승 사자. 그 후로부터 명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명훈역시 허탈했지만, 그들의 놀라운 신법을 직접 확 인했기에 도망칠 겨를이 없다 생각했다. 그래서 방심하는 틈을 노리고자 마음먹었다.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알아서 빠져나가겠지. 그 때를 노리고 튀어야겠군.’ 하지만 명훈의 생각은 곧 수정돼야했다. 오히려 한 녀석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명훈의 이마에는 긴장으로 인한 식은땀이 흐르기 시 작했다. 그때 현민이 명훈을 보며 자신의 손수건을 건냈다. “어디 아픈 것 같아. 괜찮아?” 현민의 걱정스런 말투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요즘 들어 너무 감성적으로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의 모습이 마지막이리라. 많이 지친 시선으로 현민을 바라보는 명훈. 그것을 현민이 모를리 없었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시선에 현민이 다시 질문을 던졌 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니….” “…….” 사실 지금 명훈의 품속에는 세장의 사진이 갈무리 되 어 있었다. 친구들과 찍은 단체사진. 어머니 아버지의 정겨운 사진. 현민이와 동생들 그리고 자신이 같이 찍은 사진. 이렇게 세장은 자신의 가슴부분에 고이 모셔놓았다. 명훈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그런 명훈의 모습을 오인한 현민. 다시 걱정스럽게 되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정말 안 아파? 양호실에 가 서 조금 쉬어. 선생님.” 현민이의 부름에 국사선생은 칠판에 쓰던 글을 멈추 고 뒤를 돌아봤다. 그것을 본 명훈이 아니라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렇게 땀을 흘리면서….” “아프면 양호실로 가봐라.” 국사선생마저 한마디 했지만, 괜찮다는 말만할 뿐 명 훈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민이의 손을 잡으며 무거운 목소리로 나직 하게 입을 열었다. 저승사자가 들을지 듣지 못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전음으로 말이다. ~~~~~~~~~~~~~~~~~~~~~~~~~~~~~~~~~~~`` 으윽... 이런 저런 삽질을 하다보니 이정도 밖에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미친듯이 써야겠네요... 지금까지 올린 분량의 네배는 더 써야 하는데.....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09 회] 날 짜 2004-12-06 조회 / 추천 9813 / 157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명훈, 마음의 정리를 마치다 [현민아.] 현민은 흠칫 놀랐다. 그러나 이미 명훈이의 독특하다 못해 특이한 능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현민. 어깨를 살짝 떨긴 했지만, 그 이상의 내색은 하지 않 았다.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 탓이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필기에 몰두할 뿐이었다. [현민아. 잘 들어. 난 이제 집에 들어가지 못할지도 몰라.] 순간 현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뭔가 이상하다 했지만, 지금의 말은 너무나 이상했다. 무슨 큰일이 생겼기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 인가? 현민이의 고개가 명훈에게 돌아가려는 찰나. [나를 보지마. 사정이 있어. 미안해. 듣기 만해줘.] 대체 무슨 사정이란 말인가? 현민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만 같이 느껴졌 다. 그렇다고 보지 말라는 명훈의 얼굴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보지 않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때 명훈이의 한마디에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저승사자들이 나를 잡으려고 저승에서 찾아왔어. 저 들이 나를 느끼면 아마 죽을지도 몰라.] 장난 같았다. 저승사자라니…. 웃자고 농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웃으려고 했다. 그런데 웃어지지가 않았다. 명훈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의 절박한 목 소리가 말해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명훈을 보며 어느 정도 이상한 애라는 것을 자신도 인정하고 있지 않았던가? [네가 궁금한 게 많을 거라 생각해.] 슬쩍 보이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현민. 명훈은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의문들을 미리 적어서 내 방에 있는 책상 첫 번째 서랍 속에 넣어뒀어. 그곳에 열두 장의 편지가 있 을 거야. 그 편지 봉투마다 애들 이름이 써있으니 모두 나눠주길 바래.] 결국 참을 수 없었는가? 주체하지 못할 눈물이 흐르는 현민. 그 와중에도 명훈을 바라보지 못했다. 자신이 명훈을 보면 명훈이 죽는다지 않은가? [어, 저승사자들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 휴, 다행이군.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흠칫! 현민의 몸이 약간 흔들렸다. 속마음이 복잡했다. 저승사자들이 명훈을 계속 보는 것도 문제가 있었지 만, 보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 저승사자들이 명훈을 보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문 제였고, 보지 않는다는 것은 명훈이 떠난다는 말과 같 았으니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런 현민의 속마음도 모르는 체 명훈의 전음은 이어 졌다. [이번에 너와 친구들을 보는 마지막이 된 것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께 안부전해 줘. 이렇게 떠나야 하는 불초소자를 용서해 달라고…. 만약 우리에게 아직 끝나 지 않은 다른 운명이 있다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명훈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현민이의 가슴이 미어터질 것만 같았다. 한번 보고 싶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자신들을 가족으로 이끌었지만, 어느 센가부터 명훈을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았 다. 자신이 명훈을 좋아한다고 깨달은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다. 깨달은 계기를 바로 자신들을 위해 조직폭력배와 싸 운 직후였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런 과감하다 못해 정신 나간 행동 을 할줄 아는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 가? 그 어떤 여자가 말이다. 그것도 자신을 위해 보여준 그 모습을 말이다. 울고 있는 현민. 사랑을 깨달은 후에야 자신이 예전부터 명훈을 좋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귓가에 명훈의 목소리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안녕. 다음에 꼭 다시 보도록 하자.] 순간 놀라서 명훈이 앉아 있던 자리를 돌아봤다. 지금까지 앉아 있던 명훈이가 사라져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어? 어?”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기 시작한 현민. 한 순간부터 현민이의 훌쩍임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명훈이가 옆에 있는 것 같았는데…. 명훈이가 항상 앉아 있던 의자가 비어있자 그 이질감 은 현민이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흑흑흑.” 그때 미지가 달려와서 현민이를 안아서 눈물을 닦아 주기 시작했다. “현민아 왜 그래? 왜 울어?” 슬쩍 현민이의 시선이 명훈의 자리로 돌아가자 그제 야 미지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 어라? 지금까지 여기 있던 명훈이가 어디 갔 지?” 그 말의 파장은 컸다. 모두의 시선이 명훈이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된거야? 현민아.” “…….” “지금까지 수업 잘 받고 있던 명훈이가 어디로 사라 진 거야?” “흑흑흑.”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염없이 눈물만 흐를 뿐이다. 그래서 현민은 마르지 않는 자신의 눈물을 닦아냈다. -만약 우리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다른 운명이 있다 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명훈의 그 한마디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 았다. 현민의 가슴속에서…. ~~~~~~~~~~~~~~~~~~~~~~~~~~~~~~~~~~~~~~~~~~~~~~~~~ 흠.. 제가 언제 현민이랑 연결 안시킨다고 했었나요? 물론 시킨다고도 하지 않았지만... 그런것을 다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ㅡㅡ;;; 우선 앞으로 현민이가 나올지 안나올지는 독자님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밝힐 생각이었습니다만.... 죄송한 말이지만, 이 글은 1권 중반 연재가 시작 되기도 전, 이미 계약된 글입니다. 북박스라는 출판사와 말이죠. 사실 아직은 밝힐 생각이 없었지만.. 독자님들께서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렇게 밝히게 되네요.. 저도 현민이와 연결시키고 싶습니다. 판타지 편에 가셔서 보시면 원하시는 이야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명훈이조차 현민이에게 관심이 있었으니 현민이를 가족으로 받아 드린 것이지요. 자신이 떠날 것을 무의식중에 인식하고 있던 탓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오면 어떻게 될까요? .................... 뭐, 많이 팔려야 돌아 오겠지요. 많이 못팔면 판타지 편에서 끝나겠지만...... 그러니 여러분들의 성원이 필요합니다. ;ㅁ; 2권 마지막 부분에 밝히려 했는데.. 쩝.... 검황 이계는 빠르면 12월 말에, 늦어도 1월 초에 찾아 뵐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랑과 관심 계속 부탁드리겠습니다. 곧 다음편을 올리겠습니다. ps. 아바트로스 : 헐~~ 작가님~~ 책이 안팔려도 연재는 계속 할수 없는건가요? 책이 안나온다는건 계약이 끝났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쩝.. 그리고 그런식으로 노골적으로 하시면 좀 섭섭하네요. 이제껏 잘쓴게 돈 때문이란거니까요. 한가한가 넹? 오해 하시는 분이 또 생겼넹 ㅡㅡ;;;;;; 12-06/14:42 그게 아니라요. 책이 안팔리면 10권 쓸것을 7권에 접어야 하거든요. 저는 그런 말씀을 드린거예요 언제 연재를 접는다고 했던가용? ㅡㅡ;;; 12-06/14:43 연재는 힘이 닫는 곳까지 할거예요^^ 걱정마세요^^ 12-06/14:43 ps2. ㅎㅎ 아시겠죠...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중간에 커트 당하는 것을 말씀드린거지 제가 연중하겠다는 것은 아니거든요 ㅡㅡ; 앞으로도 이런 속도로 연재할 생각이니 걱정마세요 ㅎㅎㅎㅎㅎ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10 회] 날 짜 2004-12-06 조회 / 추천 10226 / 191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명훈, 마음의 정리를 마치다 “헉, 헉….” 명훈은 저승사자들과의 숨바꼭질을 그만 마치고 싶었 다. 기운을 느낄 수 있어서 멀리부터 피할 수 있다지만, 그럴 때마다 사용하는 경공이 말썽이다. 내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 항상 자신의 기척이 남는 것이다. 그들은 명훈이 내력을 사용할 때마다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명훈 역시 알아낸 것이 많이 있었다. 낯에는 힘을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동굴에서 저녁이 될 때까지 지낸다는 것. 자신들의 주변에 저승과 이승이 연결되는 포탈 같은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은 새벽마다 위치가 변하고 저 승사자들은 그 구멍이 존재하는 곳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번은 들어갔다 나오는 모습. 아마도 저승에 있는 특정한 에너지를 섭취하는 것 같 았다. 지친 모습에서도 그곳에 들어갔다 오면 언제 지쳤었 냐는 듯 팔팔해지는 모습에 명훈은 몇 번이나 경악했던 가. 명훈은 지쳤다. 내력이 모두 소진되고 정신력조차 수면부족과 쫓긴다 는 압박감에 이미 남아나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숨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명훈 자신이 도망쳐 온 곳이 녀석 들의 포탈이 있는 동굴일 줄이야…. 명훈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 많은 동굴 중 하필 이런 곳에 들어오다니…. 저 동굴의 입구 앞에 자신을 기다리고 서있는 저승사 자들. 결국 명훈은 포기한 체 숨을 몰아쉬며 그들을 기다렸 다. “이 개자식들!” “…….” 저승사자들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명훈은 할말이 많았다. “왜냐? 왜냐구!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우린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다.” 명훈은 저승사자의 한마디에 바닥에 뒹굴던 돌을 집 어 던지며 소리쳤다. “그 따위 것을 개그라고 지껄이냐!” “…….” 녀석들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꺄웃거렸다. 명훈은 기가 막혔다. “설마 진담으로 그런 썰렁한 말을 한 것은 아니겠 지?” 그 말에 저승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진담이다. 우리는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다.” “이런 또라이 새끼들!” 명훈은 저승사자들과 말이 안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농담도 진심으로 받아드리는 모습에서 희노애락이 상 실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지만, 그렇 다고 짜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막상 이런 막다른 골목의 쥐가 되고 보니 상실감 탓 일까? 두려움이 사라졌다. “우리에게 욕을 해봤자 소용없다. 우리에겐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부담 없이 신나게 욕하지 또라이들아!” 지쳤기 때문일까? 입이 걸어진 명훈이다. “그럼 마음껏 욕해라.” “걱정하지마라. 아직 나오지 않은 레퍼토리가 조금 남았다.” 명훈은 숨도 쉬지 않고 욕을 퍼붓더니 제풀에 지쳤는 지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됐나?” 저승사자의 물음에 명훈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코웃음 을 쳤다. “이제 시작이다.” “미안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 우리와 같이 가자.” 저승사자의 정중한 한마디. 하지만 명훈은 가차 없었다. “싫다.” “싫어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설령 저 통로 안으로 뛰어들지 마라.” 순간 솔깃해지는 명훈. 하지만 냉소적인 모습으로 질문을 던졌다. “왜지?” 물론 슬쩍 그 안을 넌지시 바라보는 것을 잊지는 않 았다. 그러한 모습이 설마 위협이 될 줄은…. 저승사자가 당혹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던 것이다. “그 안에 들어가면 넌 소멸되기 때문이다.” “소멸?” “그렇다. 그 문은 셀 수 없이 많은 통로의 집합체이 다. 우리의 뒤를 따라오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통로로 빠지게 될 것이고 그러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오호,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 그제야 당혹스런 표정이 짙어지는 저승사자. 동료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겐가?” “혹시나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것이 아닌가.” “이런 답답한 친구. 예전에도 그런 말을 했다가 구름 위로 뛰어 들었던… 어, 어?!” 그 말과 동시에 그들은 명훈이 그 구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저승사자들. 그들은 이미 알 수 없는 공간에 휘말린 명훈을 찾을 수 없었다. “…….” “…….” “…허, 이 일을 어쩐다지?” “다른 차원으로 녀석이 간다면 일이 시끄러워 질지도 모르는데…. 뭐, 이미 다른 차원으로 간다면 우리와 상 관없는 존재가 되니 알바 없지만…” “그런데….” “……?”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글세….” 두 저승사자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명훈이 사라진 그 구멍 속을 한 없이 바라봤다. ~~~~~~~~~~~~~~~~~~~~~~~~~~~~~~~~~~~~~~~~~~` 다음편이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판타지 편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글쟁이인 본인도.......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11 회] 날 짜 2004-12-07 조회 / 추천 10848 / 132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이계에 서다. 6. 명훈, 이계에 서다. “아흠, 잘 잤다아~.” 기지개까지 펴는 명훈이다. 정말 잠 한번 잘 잤다. 이렇게 단잠을 잔 것이 대체 얼마 만일까? 그와 동시에 정신이 들은 명훈. 범과 같은 기세로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저승사자들이 자신을 쫓아 왔나 했기 때문이 다. 하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생각했다. 자신은 그 저승사자들을 완전히 피했다고 말이다. 마음이 안정되자 조금 전 당혹어린 표정을 그린 저승 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감정이 없다는 저승사자들의 벙진 표정을 볼 수 있었 던 명훈. 행복할 정도였다. 그들이 놀랄 정도로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벌인 자신 이 기특한 명훈이다. 앞으로 더욱더 그들을 볼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자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명훈은 그제야 주변을 돌아볼 생각이 들었다. “응? 그런데 여긴?” 정신이 들자 어째서인지 놀라는 명훈이다. 자신의 양팔을 들어올려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시원한 여름의 산바람 같은 공기 스친다. 몸에 다가와서 부서지는 바람.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약간 습진 듯한 공기. 그리고 은근히 포근하며 써늘한 바람의 기운. 명훈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 었다. 문제는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선명하고 농도 짙은 기 의 양이었다. “뭐, 뭐지?” 가볍게 운기를 하자 끝없는 충족감을 줄 정도라니. 명훈은 마치 자신이 이상한 세계에 빠져 든 듯한 기 분이 들었다. 믿어지지 않는 사실 같겠지만, 중원에서 가장 기가 많이 응집되어있다는 태산조차 이 정도는 아니었다. 최소 그곳의 네 배에서 다섯 배 정도에 달하는 기의 농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허, 기가 막히는 군.” 양지바른 흙과 푸르른 풀잎. 높게 일어선 나무들과 상쾌한 나무 향이 배어져 있는 솔바람. 그리고 들이마시면 마실수록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맑 은 공기. 기운을 받아들일수록 머릿속마저 상쾌해지는 기운.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어디기에 이토록 짙은 기의 분포가….” 이 정도의 기라면 1년만 내공 수련을 해도 절정의 고 수 하나 만드는 것은 장난도 아니라 생각이 들 정도였 다. 물론 깨달음이 중요한 것이라 얼마만큼 따라오느냐가 관건이겠지만, 명훈 자신이라면 어느 정도까지의 깨달 음의 벽을 깨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리라. 사실 쓸데없는 생각이긴 했지만…. 그것도 사람이 살고 있어야 가능한 생각이 아니겠는 가? 갑자기 허탈해지는 명훈. 그랬다.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 가?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골이 쑤셔왔기 때문이다. 지친 체력을 내력으로 다스리고 보듬기 위해 진기를 운용했다. 그러나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랐기에 가부 좌를 튼 체 자연심법을 사용했다. 자연심법은 언제든지 회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자연심법은 서서도 할 수 있지만, 앉아서 할 때라면 자신의 본문심법인 태허무령심법에 감히 비교할 정도의 효과를 가져다 줬다. 그러나 이곳의 충만한 기운은 자연심법만으로도 태허 무령심법 이상의 효과를 명훈에게 줄 수 있었다. 깊은 명상에 잠긴 그 이상의 효과를 체험한 명훈의 두 눈에서 깊음이 갈무리 되고 있었다. 더 이상의 운기를 필요 없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 났다. 벌써부터 단전이 든든한 것이 느껴지는 명훈. 큰마음 먹고 이곳에서 한 달간만 수련을 한다면 화경 의 경지에 거뜬히 오를 것만 같았다. 화경(化境)이라하면 무(武)가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뜻으로 삼화취정 오기조원(三化聚頂 五氣造元)의 고수 를 칭함이다. 이것은 인간의 몸에 천지인(天地人)의 삼화(三和)와 오행(五行)의 오기(五氣)를 이루어 냈다는 말과 동일했 다. 대부분 화경의 경지를 말할 때 4갑자를 말하는 것과 동일시했으니 명훈이 생각한 ‘한달의 수련으로 화경에 오른 다’는 것이 얼마나 우습지도 않은 소린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명훈은 자신 있었다. 이렇게 풍족한 자연의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 지 못한다면 나가 죽어야 할거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런 기운이라면 주화입마조차 걱정하지 않고 속성심 법으로 내공을 키워도 될 정도였다. 속성심법의 부작용이 생기는 이유란 주변에 없는 기 운을 마구 끌어 들이다 보니 주변의 기운이 동나는 순 간 정순한 기운 대신해서 사이한 기운이 빨려 들어와 심성을 건드리기 때문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충만한 기운이라면 속성심법으로 생길 부작용 이 적을 것이라는 게 명훈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지금의 상태만으로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이곳의 위치를 알고 싶었다. 아니,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곳은 정말 저승사자들이 말했던 다른 차 원이라는 곳일까? 그렇다면 난 다시 현세로 돌아 갈 수 없음인가…?” 현민의 얼굴이 떠오르자 한숨이 품어져 나오는 명훈. 그 뒤를 이어 어머니를 시작으로 하나씩 머릿속에 그 려지기 시작했다. “제길….” 앞으로 그들을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눈물이 앞 을 가린다. 처음으로 마음을 느낀 그들인데…. 140여 년 전 죽은 자신의 부인이었던 한소연(韓昭 然). 그 후에 알게 된 현민. 이후로 처음 느껴본 편안하고 친숙한 감정인데…. 너무 아쉬웠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며 그리워질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다짐하는 명훈. ‘그래. 다시 돌아가자. 그러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이곳에 어떻게 왔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그곳 이 어딘지도 알지 못하면서 자신에게 다짐했다. 사실 아무것도 정확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명훈이 혼자 이 불안 한 가운데 에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도 가질 않는다는 것 이다. 불안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명훈. 바닥에 널려있는 나뭇잎과 돌을 강하게 걷어찼다. “대체 여기가 어디냐고!” 답답한 마음에 일갈을 내던지는 명훈이었다. 하지만, 걸음은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빨라지기까지 했다. 어느 세 저녁이 왔고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뭐라도 잡아먹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오면서 생명체란 단 하나도 보지 못했을 뿐더러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이거 정말 아무런 생명체도 없는 곳 아니야?!” 그러나 그 생각을 입으로 내뱉었다. 자신이 혼자 있다는 것을 잊기 위해 택한 방법이지 만, 오히려 더욱 적적했다. 맞받아 쳐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지긋지긋하던 구 자매의 수다가 그리워지는 명훈. “제기랄.” 여하튼 명훈이 이곳에 생명이 없다는 그러한 의문을 떠올릴 만도 했다. 지금까지 모든 기척을 찾기 위해 신경을 곤두 새우고 있었다. 하지만, 산짐승의 기척. 하물며 다람쥐 같은 녀석들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 았던 것이다. 명훈은 일부러 터벅터벅 소리가 나도록 걸음을 걸으 며 앞으로 나아갔다. 왠지 허전했기 때문이다. 외롭다는 생각에 일부러 소란을 피우는 것일 수도 있 다. 조금 전 생각을 계속 입으로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 서 파생된 이유일 테니 말이다. 그 와중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명훈.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무수한 나무들이 미로를 형성하는 것처럼 넓게 펼쳐 져 있었다. 정말이지 장관이라는 말이 그대로 어울리는 듯했다. 그리고 주변에 널려 있는 나무들은 보통 나무들이 아 니었다. 적어도 몇 백 년에서 몇 천 년은 살았음직한 그런 멋 들어진 나무들이었다. 그런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겁도 없이 자신의 몸을 뻗어 올린 상태였다. 혼자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명훈. 이럴 때 애들이 함께 있었다면 상당히 즐거웠을 텐 데…. 한참을 걷고 난 명훈. “이 빌어먹을 숲은 끝도 없나?” 하루 종일 경신법을 활용하여 걸었음에도 주변의 풍 경은 변화가 없었다. 혹시나 진법이 아닌가 하여 두리번거려도 보았지만, 진의 흐름을 느낄 수가 없었다. 자신과 같은 고수가 진법 따위에 걸릴 이유도 없었지 만 말이다. “아, 더럽게 힘들군.” 하늘에 빛이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린지 한참 됐으나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명훈은 계속 걸었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제풀에 지친 명훈. 주변을 돌아보다 삭아서 자연적으로 그루터기가 형성 되어져 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무거운 자신의 엉덩이를 내리 깔았다. 털푸덕. 얼마나 거칠게 앉았으면 효과음이 날 정도였다. 그것은 명훈의 자포자기인 심정을 드러내는 단편적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힘들군.” 이제는 말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자신도 원치 않았지만, 아무도 없다는 것을 무의식중 에 인정한 것 같았다. 하늘을 올려다본 명훈. 여전히 풍경은 다를 바가 없다. 정신없이 뻗어 올라간 나무들만 망막 속에 비춰질 뿐 이다. 하늘 속의 풍경 역시 달라진 것이 없다. 무엇보다도 한산해 보이는 모습들은 너무도 완벽하게 명훈의 심금을 건드렸다. ‘아! 토끼모양의 구름이 지나간다. 멋진 걸?’ …이런 쓸 때 없는 생각이나 하는 명훈. 답답할 노릇이다. 그때 누워있던 명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 “응? 달이 두 개?!”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입을 쩍 벌렸다. 이젠 너무나 명확해 진 것이다.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 된 탓이다. “서, 설마 정말 다른 세상이라니….” 사실을 알고 보니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꿈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생생한데, 이렇게 볼을 꼬집으면 아픔에 눈물이 찔끔 날 정돈데 어떻게 꿈이란 말인가? 다시 현세로 돌아간다는 희망이 희석되어져 갈 정도 였으니 그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웃음이 흘러나오는 명훈. “허, 허, 허….” 기력을 소진한 듯한 실 웃음이었지만 명훈의 허탈감 과 상실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변명1 : 저승사자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저승사자들이 감정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관점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승사자들 끼리는 적은 감정을 느끼지만 인간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니 라는 생각으로 명훈이 저승사자를 만났을 때 묘사한 것입니다. 어리둥절 휘둥그레 같은 저승사자의 묘사는 저승사자들끼리만 알아보는 미세한 것이지요. 뭐, 이 부분의 묘사자체가 제 부족한 필력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라 보입니다. 출간 전에는 충분히 수정을 하겠습니다. 변명2 : 저승사자는 바보다? 바보는 아니지만, 명훈이 너무 잔머리가 뛰어나다라는 설정입니다만... 흠.. 그것역시 묘사가 어설프기 그지 없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사람의 심리적인 묘사는 언제나 어렵습니다만, 전혀 다른 이상향을 지닌 두 존제의 만남을 표현하기는.... 쩝..... 그래서 쉽게 진행하고자 표현하다보니 바보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머리아프게 심리게임 시작하면 별내용도 없이 한권 후딱 쓰지요 ㅡㅡ;; [한 독자분의 의견 : 명훈이 잔머리가 뛰어나다는 설정보다는 저승사자들이..영계에 있다보니.. 영악한 영혼들은 못만나 보았다고 하심이 어떤지.. 아니면 저승사자들이 순수하다고 하거나.. 글을 읽어보니 저승사자들이 거짓말을 한 적이 없더군요.. 뭐 작가님의 설정을 비난하는것은 아닙니다..그저 글이 글이 매끄럽지 못한부분을 좀더 매끄럽게 해주시길 바라면서...] <=수용하겠습니다. 변명3 : 명훈이 저승사자들이 오가는 통로로 어떻게 들어갔느냐. 이것은 대답하기 쉽습니다. 저승사자들은 인간의 껍데기를 지닌 반 귀신이라는 이야기를 어렸을 적에 들었습니다. 그 말은 육체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지요. 육체를 지니고 있으니 저승과 연결된 통로로 이동을 한다더군요. 거기서 힌트를 얻고 이런 차원이동을 시도하게 된 것입니다.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ㅎㅎ;; 그런데 명훈을 굳이 죽기고 다시 애기로 환생하여 나라를 흡수하고... ㅡㅡ;; 설마, 또 죽이라구요?! 변명4 : 저승사자라고 혼령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은 없습니다. 죽은 영혼을 이끄는 존재일 뿐이지요. 어떤 서적이나 자료에서도 살아있는 사람의 혼을 끄집어내서 저승으로 끌고 간다는 글은 없습니다. 이 부분은 오해를 많이 불러 일으키는 부분이지요. 그래서 저승사자들이 회유를 하려 했습니다. 죽어서 저승가자라고.... 명훈은 그 전에 구멍으로 뛰어들었지만.... 변명5 : 제글은 가볍에 읽을 수 있는 것을 중점으로 쓰고 있습니다. 머리아프게 어디가 어떻고 뭐가 어쩌구 저쩌구.... 쓰는 사람.. 저는 사실 오히려 그런 것이 쓰기 편하고 즐겁습니다. ㅡㅡ;; 하지만, 이미 편하고 읽는 동안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 의문이 있으시면 다시 뎃글로 달아주세요~ ~~~~~~~~~~~~~~~~~~~~~~~~~~~~~~~~~~~~~ 에구.. 판타지로 겨우 넘어 왔군요.... 30분만 자야지 하고 누웟는데 설마 네시간을 잘줄이야...... 죄송합니다... 그럼 곧 다음화도 올리겠습니다. 누가 봐도 쓸데 없어 보이는 태클은 사절입니다^^ ps. 박군님의 [강철의 마도사] 추천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판타지입니다.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드릴 만한 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재밌더군요 ㅎㅎ;;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12 회] 날 짜 2004-12-07 조회 / 추천 10061 / 104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이계에 서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문제는 뭐라고 지껄이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지만 말이다. 명훈은 너무 기쁜 나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두리번, 두리번. 목소리의 주인공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앉아 있는 나무 뒤편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쪽으로 다가가며 다시 입을 열었다. “누구냐?” “…….” 분명히 사람의 목소리였다. 이곳에 사람이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전히 대꾸하는 것을 보니 더더욱 반갑기 그지없었 다. 역시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큰나무를 돌아 반대쪽에 도착하자 그는 나무에 등을 완전히 기댄 체, 누가 봐도 휴식이란 것을 취하고 있었 다. “…….” 그의 전체적인 모습은 이랬다. 온몸을 감싸는 검은색의 여행자 로브(Robe)를 몸에 칭칭 두르고, 긴 부츠를 신고 있다. 머리에는 이미 태두리가 닳아있는 모자를 눌러썼다. 짙은 검은 색의 모자다. 일부러 얼굴을 가린 것일까? 아니, 아마 눈을 감고 휴식을 청하기 위해서 잠시 덮 은 것일까? “…….” 한참 서로 알 수 없는 대화를 시도했던 둘. 결국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명훈은 허탈했 다. 그래도 만족할 수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에 어떻게든 살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그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명훈에게 가만히 서있으라는 듯 시늉을 했 다. 명훈은 뭔가 자신에게 하려는 것을 알아차리고 원하 는 대로 해줬다. 상황을 보니 크게 해를 주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뭐라고 중얼거리자 그의 손에서 빛이 품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명훈의 눈빛이 반짝였다. 빛과 함께 모여드는 기의 흐름을 느낀 탓이다. 하지만 왠지 공격의 의사는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뭘 하는지 명훈은 가만히 바라봤다. 그의 손이 자신의 머리 위까지 올라왔음에도 말이다. “메모리즈! 이제 내 말이 들리겠군. 휴….” 순간 그의 말이 이해가 가는 명훈. 놀라웠다. 전혀 다른 언어가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떻게 된 거죠?” 말을 꺼내면서 스스로 놀라는 명훈. 그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별건 아니다. 그냥 너에게 이 나라 언어를 새겨준 것일 뿐이니까.” 놀라운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태연스럽게 꺼내는 저 사내는 더 욱 놀라워 보였다. 대체 어떤 기술로…. 그래서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사내를 뚫어지게 바라 봤다. 그러자 뒤집어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자신의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동시에 처녀와 같이 새 하얗고 뽀얀 피부가 드러난다. 오똑한 콧날에 남자라는 것이라 보이지 않는 도톰한 붉은 입술. 블루블랙의 장발 머리와 머리색보다 조금 더 색이 선 명한 동체. 그리고 짙은 눈썹까지. 전체적으로 선이 가는 사내였다. 그것들은 조각 같은 그의 얼굴 위에서 서로 다투듯이 최상의 자리들을 찾아서 자신들을 올려놓은 듯이 보였 다. ‘아름답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웠다. 명훈 자신의 얼굴도 어디 빠지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이 사내와는 전혀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순간, 그의 얼굴에 어울리는 목소리가 피식거리는 소 리와 함께 들려왔다. “왜? 여행자 처음보냐?” “처음 보는 걸요?” “쿨럭!” “……?” 명훈은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대꾸를 해주 었다. 그는 순간 당혹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명훈을 바라 보며 어이없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 그러냐?” “네.” 명훈은 왠지 그 사내가 마음에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준 것도 있지만, 왠지 개성이 뚜렷한 모습이 괜찮아 보인 탓이다. 무엇보다 매력이 있었다. 처음 뒷모습만 봐도 재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쳐지나 가도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명훈이 바라보는 저 사람은 후자에 가까웠 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죠?” 명훈의 물음에 그가 대답했다. “나?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여행자라고.” 그 말에 명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요즘 여행자들은 말 모르는 사람에게 알 수 없는 방 법으로 기억을 전이하는 방법도 아는가 보죠?” 그 말에 헛기침을 하는 사내. “물론 아니지.” “그럼 당신은 누구죠?” 명훈의 질문이 집요하지만 정말 모르는 것 같자 그가 의아한 눈빛으로 명훈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도리어 자신이 명훈에게 의문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흠, 너야말로 누구인지 의아하군.” “네?” “아, 아니다. 그럼, 내 소개를 하지. 난 마법사다.” “마법사?” “그래. 마법사. 기존의 마나를 재배열하여 힘을 발휘 하는 마법사. 이제 좀 알겠지?” 명훈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 봤다. “흠, 정말 이상하군. 마법사를 모른다는 표정이군? 거기다가 덤으로 마나까지 모른다는 표정이군. ” 명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가 자신의 머리를 긁적 였다. “그래.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 뭐, 살다보면 못들을 수도 있는 거지. 그러다보면 마법사도 모를 수 있고.” 상당히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말투였다. “이름이야 어찌 되었든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상당히 반갑다. 내 이름은 에스티마르고, 지금은 마법사생활을 잠시 접고 모험가 흉내를 내고있지.” “모험가?” “그래. 그냥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신기하거나, 진 기한 장관 등을 보곤 하지. 그리고, 가끔 가다 듣는 소 식들을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곤 해. 뭐, 어떻게 보면 음유시인과도 같지만, 분명 다르지. 용병일이 주된 직업이니.” “용병?” 명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내. “뭐, 주 수입원은 그거로 충당하니….” 명훈은 대체 이 사내가 무슨 소리를 아는지 통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다 뜬구름 잡는 말만 꺼내며, 대충 알아듣겠지 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명훈은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아참, 네 이름은 뭐냐? 내 소개만 주절인 것 같군.” “제 이름이요?” ~~~~~~~~~~~~~~~~~~~~~~~~~~~~~~~~~~~~~~~~~~~~~`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뭐, 여기서 자른 이유는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글쟁이의 작명 쎈쓰가 떨어지는 바람에 아직도 판타지쪽의 주인공 이름을 생각하지 못한 탓이랍니다.(퍽퍽!) 거기다가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글을 쓰지도 못한 점도 있지만.... 에휴.... 너무 늦게 쓰는 것같아서 죄송하다는.... 원래. 바로바로 올리려 했는데, 주변에서 도움을 안주네요.... 젠장.... 흑흑 ;ㅁ; 혼자도는 바람개비인생.. 아... 기분 엿스러워라~ 그럼 곧 다음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ps. 그런데 싱하형이 뭐죠?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13 회] 날 짜 2004-12-07 조회 / 추천 9880 / 10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이계에 서다. “제 이름이요?” 갑자기 멈칫했다. 명훈이라는 이름을 델까 아니면, 담소광이라는 이름 을 델까? 하지만, 지금 주입받은 기억을 보니 이런 이름을 사 용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많은 것을 주입받지 않았지만, 언어와 이 지역 사람 들의 습관 정도는 무난하게 떠올릴 정도였다. 그 정도가 어딘가. 혼자 몇 달 동안 삽질할 것을 생각한다면 감지덕지해 야 할 판국이니 말이다. 특히나 사람들이 이곳에 많이 분포되어 살아 있다는 사 실 하나만으로도 뛸듯 기쁜 자신이 아닌가? 순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단어. 아마도 앞에 앉은 사내의 머리카락을 보고 떠오른 것 만은 아닐 것이다. “블루(blue)라고 해요.” “블루? 참으로 슬픈 이름이군.” 명훈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 자넨 어디서 왔나? 설마 이 세계 사람이 아 닌 것은 아니겠지? 하하.” 뜨끔! “아, …아하하하!” 그냥 같이 웃어줬다.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할 말도 없었고 말이다. 에스티마르라는 사내로 크게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 다. 그냥 형식적인 물음인 듯 주머니에서 뭐를 꺼내더니 자기 할일을 하는 것이다. 그 순간 명훈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 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이목을 피해 있었다는 능력이라든 가, 기억을 전이 하는 알 수 없는 기술역시 말이다. 물론 중원에도 기억을 전이하는 술법이 있긴 있다. 많지는 않지만, 대부분 죽은 도인들이 자신의 몸속에 깨달음과 기억을 제자에게 물려주는 경우가 다반사였 다. 자신 역시 육체에 기억을 봉인하고 후임을 기다리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지 않던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마지막 생명을 쥐어짜내서 만드는 기억전이술법(記憶 轉移術法). 그런데 그러한 것을 에스티마르라는 사내는 너무나 쉽게 해결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다보니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 자연스러움 속에 무서움이 담겼음을 명훈은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명훈이 그것을 물어보려는 순간 에스티마르의 분위기 가 바뀌었다. “엇?!” “왜요?” 명훈은 얼떨결에 자신도 모르게 물어봤다. 왠지 물어봐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때문인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꾸 에스티마르라는 기인에게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던거지?” 명훈의 질문에는 안중도 없는 마치 바쁜 일이라도 있 는 듯한 말투였다. “블루라고 했던가? 그럼 이만 헤어져야겠군. 시간이 너무 늦어졌어. 나는 상당히 바쁜 몸이라고. 그런데, 언 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 역시 시간은 빨리 가는 군. 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던 에스티마르. 그의 시선은 멀리 하늘 밖에서 동이 터오는 모습을 바라봤다. 명훈도 같이 그 하늘을 올려다봤다. ‘얼래? 어느 세 동이 텄지? 내가 저 사내를 찾을 때 가 새벽녘이긴 했지만 날이 밝을 시간은 아니었는데? 적어도 동이 트려면 두세 시간은 남았던 것 같았는 데…?’ 명훈은 자신이 두 시간동안 에스티마르에게 지식을 전도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한 순간에 다 배워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명훈이 잠시 잠념을 늘이던 사이, 에스티마르는 벌써 저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명훈조차 그가 떠났다는 것을 느끼지 조차 못했다. 역시나 그의 움직임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탓이리 라. 뒤늦게 그가 떠났다는 것을 깨달은 명훈. 이번에도 에스티마르의 페이스에 휘말린 듯 얼떨결에 그가 떠다는 모습을 바라 봤다. 그때 저 멀리서 에스티마르가 명훈에게 마지막 인사 를 했다. “뭐,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친 구.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자구. 알았지? 아하하하!” 에스티마르는 어울리지 않게 크고 호탕하게 웃으며 명훈에게 즐거웠다는 인사를 건넸다. 아주 멀리서 그가 외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또랑또랑 들렸다. 바로 그 순간 명훈은 뭔가 깨달을 수 있었다. “헉!” 머리에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를 그냥 보내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동시에, 재빠르게 몸을 돌려 그가 사 라진 방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발걸음이 정말 빠른 인간이었나 보다. 경공을 시도하여 그곳으로 달려갔지만, 그림자조차 찾아 볼수가 없었다. “이봐요오~! 여기가 어딘데에~! 날 버려두고 혼자 가 면 어떻게 해에~! 이 망할….” 명훈은 여전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숲 속에서 미 친 듯이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이런, 예엠~ 벼엉~ 하알~!” ~~~~~~~~~~~~~~~~~~~~~~~~~~~~~~ 흠.. 정말 에스티마르는 누굴까요 ㅋㅋㅋ 알수가 없네...ㅋㅋㅋㅋㅋ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14 회] 날 짜 2004-12-07 조회 / 추천 9984 / 124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이계에 서다. 사일 후. 거지꼴이 되서 숲을 벗어난 명훈. 얼마 걷지 않아 화전(火田)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명훈의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졌다. 명훈의 발길이 빨라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화전이 있다는 것은 가까운 위치에 마을이 있다는 것 과 일맥상통했기 때문이다. 명훈에겐 지금 사람이 먹을 만한 음식이 필요했다. 그러고 보니 새나 동물들의 소리도 들려왔다.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명훈은 설마, 설마 했다. ‘저 망할 놈의 숲.’ 으득! ‘정말로 벌래 한 마리도 없다니….’ 명훈은 정말 배가 고픈 나머지 벌레라도 잡아먹겠다 며 찾아다녔던 것이다.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일을 겪어본 명훈. 자신이 에스티마르라는 인간을 만났던 것마저 마치 환상인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나중에 저 거지 같은 숲을 갈아엎어 버리리라.’ 차후 이 결심 때문에 4차 제국 전쟁이 발발 할 것이 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챙! 챙! “으악!” “취르륵 취륵. 쿠헤헤헤!” “이 자식들아 안돼! 여보!” 화르르르! 여기저기 일어나는 방화. 전투할 수 있는 사내들은 40명도 체 되지 못했다. 그중 벌써 10여명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이 개자식들! 다 죽여 버리겠다.” “꾸르륵? 크햐햐햐! 취륵! 덤벼라 인간.” 쏴아아! 썩둑! 까불다가 단칼에 목이 날아간 오크. 피가 분수처럼 품어졌다. 하지만, 약탈을 하기 위해 덤비는 오크들의 수는 100 여 마리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취익 취륵.’이라는 되먹지도 않은 소음을 뿌려대며 그 사내 하나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머리수를 보더라도 애초부터 되먹지 못한 싸움이었 다. 그러나 사내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다치거나 죽은 자신의 가족과 불타 무너지고 있는 집. 동료들이 죽음조차 슬퍼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오 크들은 개 때같이 덤벼들었다. 아직 남아 있는 가정과 친구들. 그리고 자신이 땀 흘려 농사한 곡식들. 그 중 어떤것 하나라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이 쓰레기들아!” “취륵. 취르르륵!” 명훈은 신나서 깽깽이걸음으로 뛰어가던 중 멀리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확인했다. “응?” 명훈의 신형이 바람과 같이 사라진 것은 바로 그 순 간이었다. 뮤엘의 장검이 허공을 가르자 덤벼들던 오크의 팔이 허공을 비산하다 바닥에 툭 떨어졌다. “꾸오오오!” 자신의 팔이 떨어져 나간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통과 분노가 섞인 괴성을 울부 짖었다. “미친 녀석! 이거나 먹고 떨어져!” 푹! 스각! 풀썩! 뮤엘은 호흡을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정통 검술을 익히고 있는 다섯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그였다. 뮤엘의 아버지는 근위대 대장까지 지냈던 분이셨다. 정년퇴임을 하시고 이곳에 와서 자신과 친구들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시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뮤엘은 얼떨결에 이 마을의 경비대장이 됐다.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했고, 가장 실력이 뛰어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까지 오자 자신의 실력에 회의감이 드는 뮤엘이었다. “젠장. 너무 많아. 오크 녀석들이 미쳤나? 마치 고의 적으로 이 마을을 말아 먹겠다는 듯 덤벼들다니….” “뮤엘!” 쓰컹! “꾸에엑!” 저쪽에서 자신의 친구 로이가 검을 휘두르며 자신에 게 달려오는 중이었다. “그쪽은 어때?” 로이의 물음에 뮤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의 손에 벌써 열 마리도 넘는 오크를 배었지만, 줄어든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것인지 오히려 더 늘어난 것처럼 보이다니…. 뮤엘 자신이 지쳤다는 증거였다. “로이, 애들은?” “몰라. 모두 뿔뿔이 흩어졌어. 아마 이곳저곳에서 싸 우고들 있을 거야.” “사상자는?” “내가 파악한 바로는 약 20명 가까이 되는 것 같아.” 로이의 침통한 목소리에 침음성을 삼켰다. “애들을 모으자. 이렇게 해서는 끝도 없겠어.” “그래!” 뮤엘은 자신이 보기에 오크 녀석들이 가장 많은 곳으 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로이가 비장한 표정으로 따랐다. ~~~~~~~~~~~~~~~~~~~~~~~~~~~~~~~~~~~~~~~` 이렇게 새로운 인연이 시작 되려나 봅니다. 그럼 곧 찾아 뵙지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15 회] 날 짜 2004-12-07 조회 / 추천 9470 / 134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이계에 서다. “응? 뭐지?” 명훈은 흠칫 놀랐다. 뭔가 희한하게 생긴 것들과 사람이 싸우고 있었던 것 이다. 두발로 직립보행을 하는 별 거지 깽깽이 같은 녀석들 이 뒤뚱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우습고 신기했던 명훈. 그래서 호기심 충족을 위해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 한 녀석이 아이를 안고 도망치던 여자의 등을 몽둥이로 후려치는 모습에서 명훈의 호기심은 끝이 났다. “저런 썩을 자식을 봤나!” 눈에서 불똥이 튀는 명훈. 칠절환영보(七絶幻影步)를 극성으로 시전 하여 그 오 크 녀석의 뒤통수를 있는 힘껏 갈켜줬다. 터엉! 희안한 소리와 함께 앞으로 꼬꾸라지며 바닥에 대가 리를 갔다 박았다. ‘응?’ 명훈조차 의아할 만한 소리나 났다. 주먹으로 머리치면 저린 소리도 난다는 것을 처음 알 았다. 패는 명훈조차 말이다. 뭐, 맞은 녀석은 아마도 십중팔구 뇌진탕으로 죽었으 리라. 그 소음으로 오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명훈. 왠지 쑥쓰러워 졌다. “하하, 그만들 쳐다봐. 눈깔들을 다 뽑아 버리고 싶어 지잖냐….” “취르륵. 케륵?” 무슨 소리냐는 듯 명훈을 바라봤다. 눈곱 가득 낀 왕방울만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기 분이 나빠지는 명훈이다. “아, 짜증난다.” “크뤼뤽? 인간 뭔 소리냐.” “너 매 맞는 소리다. 이 등신 삼발아!” 퍽! 푸바바바박! “꾸에에에에에에엑!” 처절한 오크의 비명소리. 속이 후련해 질정도로 북 두들 소리가 마을광장을 울 리자 오크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명훈에게 쏠렸다. “헉! 뭐야?” “사람이 오크를 패는거야?” 사람들조차 맞느라고 허공에 떠있는 오크를 바라보며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맞은 반탄력으로 살짝 뜬 몸을 무한으로 패서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안배하여 패는 모습. 말이 안배일 뿐이지 사실 누가 저렇게 팰 수 있겠는 가? 거의 신의 무공이라 볼 수 있었다. 어떻게 패면 저렇게 팰 수 있는지 기가 막혔다. 얼마나 통쾌할 정도로 무식하게 패는지 그 부근에서 전투하던 이들은 적아 가릴 것 없이 패는 명훈과 맞고 있는 오크를 바라봤다. 오크들은 명훈을 공격하기위해 녹 쓴 검이나 도끼들 을 꼬나 쥐고 있었지만 선뜻 덤벼들진 못했다. 저 무지막지한 일방적인 폭행에 마치 자신이 맞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5분정도 더 패고 난 후 손을 거둔 명훈. 풀썩. 맞으며 비명을 지르다 지친 오크가 바닥에서 꿈틀거 렸다. “취이익…. 앞으로는 취익… 그냥 죽여라 인가안….” 그 말을 마지막으로 녀석은 비명을 달리했다. 명훈의 시선이 다른 오크들을 향했다. 순간 오크들은 서로 눈치만 볼뿐 앞으로 나서지 못했 다. 저런 모습을 보고 누가 나서겠는가? 동지애가 거의 없는 오크지만, 이번만큼은 명훈의 발 밑에서 비명에 간 녀석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깝게 보 일 정도였다. 그때 명훈의 차가운 목소리가 오크들의 심장을 써늘 하게 했다. “다음은 누구냐.” 흠칫! 단체로 몸을 떠는 오크들의 모습은 우습다 못해 처량 하기 까지 했다. 명훈의 앞으로 한발 갈 때마다 주춤주춤 뒤로 이동하 는 모습은 거의 코미디 수준이었다. “취, 취이익.” 바로 그때 오크 중 한 녀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일갈 을 질렀다. “저 괴물 인간은 하나다! 취르륵. 돌진하자! 크륵크르 륵.” “우와아아아! 취륵! 돌겨억!” 오크의 함성이 하늘을 흔들 정도로 거쌔졌다. 그래서 그 함성을 믿고 앞으로 자신있게 달려 나간 선동오크. 하지만, 중간쯤 가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소리만 울리지 아무도 자신을 따라 나서는 것이 아니 었다. 돌아보니 모두 소리만 지르고 발만 구를 뿐 미동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취, 취이익?!” 그래서 혼자 돌진하다 두 번째로 맞으며 허공으로 몸 을 띄운 녀석이 됐다. 퍼버버버벅! 다시 울리는 속까지 후련한 난타음. 그 속에는 미묘한 박자까지 있어 없던 흥도 생겨날 지경이었다. 미련한 오크 몇 마리는 어깨춤을 덩실덩실 출 정도였 다. 한참 후 바닥으로 떨어져 꿈틀거리는 오크. “추, 취이익…. 오, 오크만도 못한 녀석들… 취익….” 그렇게 두 번째로 맞으며 공중에 뜬 오크 녀석은 그 비장한 한마디를 남겨 놓고 비명에 갔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줄은 몰 랐다. 오크들이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다. “취취익. 뭐? 취르륵. 오크만도 못한 취리릭 이라고 ?!” “취륵? 추이익!?” 오크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하나같이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죽으려면 곱게 죽지 너무나 심한 욕을 한 동료에게 분노가 치민 탓이다. ~~~~~~~~~~~~~~~~~~~~~~~~~~~~~ 하하.. 계념 없는 글쟁이의 계념없는 소설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ㅁ; 함께 무계념 세상을 이룩하여 보세~ 얼쑤~(덩실 덩실) 반주: 오크를 패는 명훈. ps. 그냥 즐겁게 봐주세요. 뭐가 어떻고 뭐가 이렇고 복잡할 필요 없잖아요. 잠시동안 즐거움을 생각해주시고 즐겨주시면 되요. 설정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 그냥 그 소설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포장이일 뿐이지 그 이상은 아니거든요. 너무 글이 안써져서 우선 적당한 분량만 먼저 올려봅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16 회] 날 짜 2004-12-07 조회 / 추천 8967 / 117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이계에 서다. 그러나 그것이 오크들의 상실 된 전투욕구를 불러 일 으킬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우아아아! 취익! 모두 나가자!” “추에에에엑!” 그 말과 동시에 모든 오크들이 명훈을 향해 달려들… 어 바닥에 자빠져 죽어 있는 오크의 시체를 밟고 또 밟 았다. “엥?” 명훈은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바라보며 어처구니를 상 실한 표정으로 계념 없는 오크들을 바라봤다. 그때 모두 한번씩 명훈에게 맞아 죽은 오크를 밟았는 지 상쾌해진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중 유난히 덩치가 큰 오크 하나가 명훈에게 다가왔 다. “취익. 취릭!” “응? 뭐냐? 볼일 있냐?” “볼일 없다. 인가. 취익. 우리를 그냥 보내 달라. 약탈 한 것은 취리릭, 모두 돌려놓겠다.” 오크들의 그 말에 마을 사람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뭐야?! 우리 집과 창고를 태우고 동료들을 죽여 놓 고 한다는 소리가 살려달라는 거냐?!” “취익 취리릭.” 오크들은 주민들과 명훈을 번갈아 돌아보기 시작했 다. 그러자 주민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 명훈의 가공할 능력에 한수 꿇은 것이지 인간 따위가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듯 각자의 무기를 꼬나 쥐는 녀석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오크 녀석들이 이렇게까지 나올 이유는 없다. 동료라는 것의 계념은 약탈을 위해 힘을 합하는 것일 뿐이지 큰 이상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당히 전투적인 녀석들이라 죽더라도 덤비는 것이 바로 오크라는 무리다. 그러나 명훈의 무지막지한 손속을 목격하자 처음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는 그들이었다. 차라리 깨끗하게 죽이면 모를까, 저렇게 맞아 죽고 싶지만은 않다는 것이 오크들 공통의 생각이었다. “어쩌겠는가? 인간. 취리릭!” 그때 명훈에게 작은 호기심이 생겼다. “어이? 괴물. 그런데 자꾸 왜 말끝마다 취이익 취릭 따위를 붙이는 거냐?”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오크들은 무 슨 말이냐며 진지하게 대꾸했다. “인간 취익. 그게 무슨 말이다. 취리릭. 우리가 언제 취익 취리릭 따위를 했다는 건가. 취익.” 녀석들은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소곤소곤, 아니, 취익 취익 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들이 취익 거린다는 명훈의 말을 믿지 못하 겠다는 모습들이었다. “장난하지 마라. 취익. 우리들 중 그러는 오크는 아무 도 취익. 없다. 취릭.”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괴물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병신들이라는 점을 말이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취익. 빨리 말하라 인간. 취리릭.” “흠, 그래 좋다. 너희들의 말을 수락하겠다.” 오크들이 조금 더 크게 취익취익 거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은 소곤소곤 거린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하 는데 콧물이 나올 정도로 웃길 뿐이었다. 하지만 크게 내색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한마디에 너무나 좋아하는 오크들을 보자 왠 지 가슴이 찔리는 명훈이었다. 왜 찔리는지는 명훈만 알리라. “그럼 우리들은 취익. 이만 떠나겠다. 취리리릭!” “그래. 하지만, 딱 백 만 부르겠다. 그 사이에 모두 떠나라.” “백(100)말인가?” “그래. 숫자 일백 말이다.” “조, 좋다. 취이익. 그 정도라면….” 오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빠져 나갈 수 있으리라 계산 한 것이다.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약탈한 물건은 모두 가운데에 놔둬라.” “알았다. 취익.” 오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그의 손짓에 모두들 숨겨 놨던 것 하나까지 끄집어 내놓았다.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순수하기까지 한 그들이었다. “그럼 이제 가마. 취익.” “그래. 그럼 지금부터 숫자를 부르겠다. 잘 들어라.” “좋다. 인간. 취이익.” 명훈의 입이 열림과 동시에 녀석들은 미친 듯이 마을 을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하는 순간. “백.” 명훈의 낭랑한 목소리가 마을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명훈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지며 오크들 의 앞을 막았다. “헉! 저렇게 빠를 수가?!” “취익?” 그러자 주민들과 더불어 오크들의 눈에 의문이 떠올 랐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탓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오크들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명훈에 게 향했다. 그러자 오크들을 마주보던 명훈. 혀를 차기 시작했다. “쯧쯧. 기회를 줬음에도 아직도 못 벗어났군.” “크리릭? 그게 무슨 소리냐 인간. 취익.” 오크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꺄웃거 리자 명훈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같은 편이라 생각되는 인간들도 마찬 가지였다. 명훈이 답답하다는 듯이 손가락을 치켜들고는 좌우로 흔들며 입을 열었다. “이런 답답한 친구들. 분명 내가 말하지 않았나?” “그래. 추익. 백까지 새겠다고 하지 않았나? 취익.” “아니지, 아니지. 난, 백을 부르겠다고 했지, 절대로 1 부터 100까지 새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 “취릭?! 그, 그런게 어딨나 인간!” “어딨긴 어딨어. 여기에 있지!” “취릭. 취릭!” 당혹감에 횡설수설하던 오크들. 순간 명훈의 신형이 그 오크들이 우왕좌왕거리는 그 틈 속으로 빨려 들어가 듯 사라졌다. ~~~~~~~~~~~~~~~~~~~~~~~~~~~~~~~~~~~~~~~~~~~~~~~~` 정말이지 명훈... 아니, 검황..... 쓰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썩었다........ 글쟁이와 주인공과 성격을 동일시 하시면 곤란합니다... 정말입니다. 진짜입니다아~ (사실이야~ 진짜야~~~~~~~~~~) 다음 글은 최대한 빨리 올리겠습니다. 약간 안풀려서 ㅡㅡ;;;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17 회] 날 짜 2004-12-07 조회 / 추천 9196 / 10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명훈, 이계에 서다. 순간 명훈의 신형이 그 오크들이 우왕좌왕거리는 그 틈 속으로 빨려 들어가 듯 사라졌다. 팟! “자, 그럼 약속을 지키지 못한 친구들. 놀아 볼까?” “취, 취익?!” 퍼버벅! 퍼벅! “꾸에엑!” “오, 오크 살려 취이익!” “그 놈의 취이익 듣기 싫어!” “취이익! 취이익!”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그 난 투극을 지켜봐야 했다. 꿈이 아닌가 자신의 눈을 비비는 사람도 있었다. 100대 1이라는 그것도 오크 100대 인간 하나라는 앞 으로도 유일무이한 난투극. 검으로 휘둘러 잡는 것도 아니고 두 주먹으로 개 패 듯 잡는 무력에 턱이 빠져라 지켜볼 뿐이었다. 세상 어디서 이런 구경을 해보겠는가? 돈 주고도 구경하지 못할 진기한 풍경이었다. 세상에 오크가 사람 잡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일방적 이 오크구타 사건이라니. 앞으로 100여년이 흐른 후까지 전해질 검황의 에피 소드. 차후 소드엠페러라 불릴 사나이의 전설이 여기서 처 음으로 시작 되었다. 몇몇은 그래플 엠페러라 부르기도 했지만…. 오크 시체를 모두 불태운 마을 사람들. 정리가 끝나자 하나둘 명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눈빛은 낮선 이방인을 향한 적개심의 눈빛이 아닌, 친인척보다 더욱 반기는, 마치 우러러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눈빛을 받는 장본인이 보면 부담스러워 할 눈빛. 하지만 명훈은 그들의 눈빛을 보지 못했다. 지친 모습으로 장작더미에 앉아서 주린 배를 부여잡 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정이 이런데 어떻게 밥 달라고 손을 벌리겠는 가? 눈물을 머금고 보수작업등을 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사흘을 넘게 굶은 상태에서 움직이기까지 한 명훈. ‘어윽! 속 쓰려….’ 위장이 위장을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위벽에 구멍 뚫릴 일만 남았다. 조금만 있으면 위궤양과 곧 만날 것만 같았다. ‘위궤양은 여자일까? 남자는 군이라고 하잖아….’ 배고파서 인지 헛생각을 하는 명훈이었다. 그때 한 늙은 노인하나가 명훈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이 마을의 촌장인 게쉬타포라고 하네.” ‘응? 게쉬타포? 뭔 놈의 이름이 그래?’ 명훈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긴 했지만, 고개를 살짝 꺄웃거릴 뿐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친숙한 이름이라 반가울 뿐이었다. “아, 저는 명훈이라고….” “맹후르? 무슨 이름이 그러한가?” 습관처럼 자신의 이름을 댔으나, 곧 에스티마르와 만 나서 지었던 이름으로 바꿔 입을 열었다. “아니, 잘못 말했군요. 블루라고 합니다.” 그 말에 개쉬타포라는 노인이 대답했다. “다크라거나 블랙으로 하지 왜 블루인가? 후후….” “하하….” 명훈이 노인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가 락으로 잡아끌며 슬쩍 색을 확인했다. 친분을 보이기 위해 자신의 머리색과 눈동자를 보며 농을 던지는 것을 깨달은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에스티마르의 머리색을 보고 블 루라고 이름을 짓지 않았던가. 하지만, 분위기가 약간 이상하게 흐르자 곧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노인. “아, 내가 실례를 했군. 마을의 은인을 이렇게 푸대접 하고 있었다니. 자, 따라 오시게.” 주변에 자신을 둘러싼 마을의 주민들은 모두가 고맙 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다. 순간 얼굴이 붉어지는 명훈. 자신이 한 일이 이렇게 환영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 각지 못했던 것이다. 과거 무림에서도 항상 사고만 치고 다녔던 명훈. 이렇게 환영 기억이 드문 탓이리라. 여하튼 사람들의 환영 속에 명훈은 촌장 노인의 집으 로 걸어갔다. ~~~~~~~~~~~~~~~~~~~~~~~~~~~~~~~~~~~~~~~~ 에구.. 이번 분량이 적은 이유는 이번화가 끝났기 때문이죠.. 후후후.. 왜요? 재수없어요?(폭소클X) 다음화 제목은 뭐로 정해야 하나.... 출간되면 다 바뀔 것 같은 편 제목들... ㅡㅡ;; 마치 팔이 아플때 먹는 약이 파리약이라고 하는 것 같은 억지제목... 나도 이런 내가 싫다구요 ;ㅁ; 아아.. 어쩜 이렇게 작명 쎈쓰가 '후멍'(마사루 독자라면..)이란 말인가!! 기분 참 후멍스러워라... 이럴때 피리를 불어야 울지말고 일어날 텐데.. 삘리리~ 삘리리~ 삘리리리~ 무우지게~ 여언못에~........... (지금 마감이 코앞이라 정신이 나간 한가)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18 회] 날 짜 2004-12-07 조회 / 추천 9336 / 128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보디가드 되다. 7. 명훈, 보디가드 되다. 노인의 집에는 이미 식사준비가 한창이었다. 여인 네 다섯이 왔다 갔다 분주한 모습들. 아마도 명훈을 위해 마을 여인들이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인 듯싶었다. 식탁에는 개쉬타포라는 노인. 그리고 뮤엘과 로이라는 친구가 앉아 있었다. 개쉬타포 노인과 다르게 뮤엘과 로이의 눈 속에는 경 외감과 질투가 적당히 섞여 있었다. ‘흠, 저런 눈빛은 부담스러운데….’ 명훈은 저런 눈빛을 가지고 있는 녀석 중에서 자신에 게 귀찮게 굴지 않은 녀석이 없었음을 회상했다. “그런데 자네는 어디서 온건가?” 명훈은 물을 마시다가 노인의 말을 듣고 대충 방향을 어림짐작하더니 팔을 뻗었다. “응? 정말인가? 다크 엘프의 숲에서 왔단 말인가?” ‘다크 엘프의 숲?’ 명훈의 표정을 한참 보던 노인. “쯧쯧. 전혀 모르는 모양이군. 그러니 그곳에 들어갈 생각을 했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곳에서 살아 나온 것이 용하군. 그들이 자네를 죽 이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네.” “자세히 좀….” 한참 명훈의 눈을 바라보던 노인. 그 속에 뭔가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호되게 당한 눈빛이군. 하긴 자 신들의 영역에 침범한 인간을 가만히 뒀을 리가 없지. 침입자가 드래곤이 아닌 이상 말이네. 하하.” “드래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약간 굳어졌다. 노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 것은 한참 후였다. “설마 드래곤을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겠지. 자네 …?” “정말 몰라서 묻는 건데요? 뭔가 이상한가요? 알지 못하면 이상하게 되기라도 하는 건가요?” 명훈의 말이 그쯤 되자 헛기침을 하는 노인.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한참 후 심각하게 뭔가를 생각하던 노인.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곧 걱정스런 눈빛으로 명훈을 바라보았다. “그랬군. 그런 것이었어….” “예? 뭐가요?” 명훈만이 아니라 뮤엘과 로이마저 궁금하다는 표정으 로 노인을 바라봤다. 이미 뮤엘과 로이는 노인의 박식한 지식을 알고 있었 기에 의문은 더욱 깊었다. 노인이 내린 결론은 거의 정확했기 때문이다. 그때 노인이 명훈에게 하나 더 물어봤다. “자네 집은 기억하나?” “네?” 명훈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되 던졌다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집이 있다고 하기도 없다고 하기도 뭐한 입장에 놓인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아, 아니요….” “아아, 이럴 수가. 기억을 잃은게로구만.” “그, 그렇게 되는 건가요?” 명훈이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자 한없이 측은한 눈빛 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가….” “그, 글세요….” 명훈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맺혔다. 노인의 혼자 생각하며 혼자 결론을 수긍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이 미웠다. 그런데 더 웃긴 것은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했던가? 두 청년은 노인의 추리에 수긍하며 존경어린 눈빛으 로 노인을 바라보는데, 명훈은 입이 간지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미 뱉은 거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 아 닌가. 거기다가 호의를 배 푸는 노인에게 쓸데없이 민망함 을 안겨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참고 또 참았다. 그냥 속편하게 자신을 기억상실이라고 생각하기로 마 음먹었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이 이 마을에서 사는 것은 어떠 한가?” 그 말에 명훈이 고민하는 척 거절의 의사를 밝히려는 순간 두 청년이 펄쩍 뛰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할아버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명훈.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아무리 우리를 도와 줬다고는 하지만, 처음 본 이방 인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그렇습니다. 할아버지. 아니, 촌장어른. 그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흠….” 노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명훈은 거절하려 했던 자신의 의사를 약간 유 보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다. 난 결정했다. 저 청년만 좋다면 난 마을에 받아들여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촌장어르….” “로이 아니다. 촌장어르신께서 무슨 생각이 있으신 것이겠지. 우리가 함부로 나설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언제 틀린 말씀 하신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나?” “…그렇기야 하지만…….” “우리는 촌장어르신의 결정에 따르는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해.” “그, 그래….” 뮤엘이라는 청년의 말에 불만어린 표정을 죽여가면서 까지 수긍하는 로이를 명훈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 봤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하자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 블루군.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그 말에 명훈이 최상의 답을 선택했다. “어르신의 호의는 감사드립니다.” 명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 노인.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명훈의 말에 살짝 미소가 옅어 졌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 할 것 같습니다.” 아직 뭐가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은 그런 명훈의 대답이 아주 마음에 들은 표정이다. “허허, 그렇군. 자네 말이 옳네. 내가 너무 다짜고짜 밀고 나간 것 같군. 미안하네.” “아닙니다. 그 호의의 깊음을 알기에 오히려 감사드 릴 뿐입니다.” 순간 촌장 노인의 눈빛이 번쩍였다. 아무도 노인의 눈빛을 눈치체지 못했지만 말이다. ‘허, 귀족의 어투를 사용하는 것이 뿌리가 있는 젊은 이군. 뭔가 사정이 있어서 자신을 숨기는 것인가? 지금 은 힘들겠지만 곧 알 수 있겠지.’ 노인은 잠시 자신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무도 노인의 그런 생각을 짐작조차 하지 못 했다. 지금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모습이었기 때 문이다. ~~~~~~~~~~~~~~~~~~~~~~~~~~~~~~~~~~~~~~~~~~~~~ 귀족의 어투라.. 왜 명훈의 어투가 고급스러운지 짐작가시나요? 그리고 이제 숲에서 왜 벌래 조차 찾을 수 없었는지 아시겠죠? ㅎㅎ 문제는 명훈이 왜 그들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았느냐로 좁혀지는군요. 퍼하하하! 쩝.. 사탕을 너무 먹었더니 머리가 아프네... 에구, 두통이야.. 거기다가 지금 여친님께서 게임하자고 조르는 판국이라.. 다음글은 조금 더 늦어질듯.. 그래도 최대한 빨리 올리겠습니다. 조금 있다가 뵈염~ >,.<;;; 그리구 선작하신 분들... 제발 저를 버리지마세염 ;ㅁ;(엉엉) 열심히 쓰는 한가 되겠습니다. 키엌키엌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19 회] 날 짜 2004-12-07 조회 / 추천 10228 / 211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보디가드 되다. 명훈이 나중에 알고 보니 노인이 자신에게 배 푼 호 의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완벽하 게 신뢰하지 않으면 마을에 받아 드릴 수 없다는 이야 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죽음의 숲이라는 다크 엘프의 숲. 자신들 이외에 다른 생명체 자체를 거부한다하여, 곤 충들조차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침입자는 두말없이 살해 한다고 했다. 그리고 드래곤. ‘흠….’ 명훈은 머리가 아팠다. 설마 에스티마르라는 인간이 드래곤은 아니겠지 라며 생각에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직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다크 엘프의 숲에서 자신이 공격당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 밖에 없었다. 드래곤이라는 위험한 생물과 함께 있음으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명훈 자신을 건들지 않았다는 해석 밖 에는 말이다. ‘대체 드래곤이 뭐길래?’ 호기심이 부쩍 피어올랐다.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는 한마디에 전신이 긴장되던 명훈이다. 자신이 아는 것은 일부분에 불과 했지만, 그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기척조차 일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아무리 자신이 많이 약해(?)져 있다고는 하지만, 전혀 감조차 잡지 못했다니…. 그것도 바로 뒤에 있는 사람을 말이다. 정말 드래곤이라는 존재일까? 의문은 꼬리를 물어 또 다른 의문을 만들어 냈다. 여하튼 신만큼 강하다는 드래곤이라는 존재에 명훈은 뛰는 가슴을 주체 할 수 없었다. 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신을 이야기 하는지 알고 싶었 다. 명훈은 자신의 몸의 기를 운기해봤다. 이미 3갑자에 넘어서고 있는 기운. 오기 전에는 1갑자를 가까스로 넘겼었는데…. 경이적이기까지 했다. ‘설마 이렇게 빨리 내공을 모을 수 있을 줄이야.’ 상상 이상이었다. 이곳은 정말이지 공기대신 기로 이뤄진 세상이 아닐 까 싶을 정도였다. 명훈이 원한다면 한 달간 수련을 한다면 화경을 넘어 서 현경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일 것 같았다. 이미 생사경을 훌쩍 뛰어넘은 자신이었다. 이런 곳에서라면 그 정도는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유도 없이 넘치는 힘을 가지고 있어봤자, 귀찮은 일만 생길 뿐이다. 그것은 이미 예전에 깨달은 것이다. 힘이란 것은 그냥 지니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 다. 힘은 있으면 쓰게 돼있다. 자의든 타의든. 그래서 굳이 힘을 모으지 않았던 것이다. 생활하기에 너무 넘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을 정 도의 기운만 모은 것이 바로 그 탓이다. 아무리 무공도 좋다지만, 이곳의 새로운 삶을 충분히 즐긴 후에 익혀도 상관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무공이란 작은 깨달음이 중요한 것이기에, 힘만 넘쳐봤자 역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울 것 같았다. 명훈은 가볍게 운기를 함으로 몸을 유연하게 풀어줬 다. 전신에 기운이 가득 차있는 이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떤 고수들이 숨어 있을까?’ 이렇게 기가 충만한 곳에서는 어떤 독특한 무공이 존 재하고 얼마나 강한 이들이 있을지 궁금했다. 신 급이라는 힘을 지는 존재조차 존재하는 세상이니 그만큼 강한 존재들이 있을 것 같았다. 생각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분비될 정도로 흥분하는 명훈. 어서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싸워보고 싶었다. 가볍게 허공을 잡았다.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움켜쥐는 모습을 취했다. 그리고 태산압정의 초식으로 무겁게 내리그었다. 부웅! 착각인가? 정말로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태산압정의 초식에서 흘러나온 압력이 느껴지는 듯했다. 무형검강(無形劍剛) 바로 검강의 최종단계라 할 수 있는 무형검강의 묘리 였다. 내력이 부족하여 완전한 모습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 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검황은 역시 검황인 것이다. 명훈의 진지한 표정 속에 가득 담겨 있는 묘한 흥분 감.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볍게 누르며 이 세상의 호기심 을 조금씩 죽여나갔다. 이렇게 계속 두근거리다간 심장이 터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서, 이곳의 무공이 보고 싶다.’ 다음날 게쉬타포라는 독특한 이름을 지닌 이 마을의 촌장이 명훈을 찾았다. “블루군. 자리에 있는가?” “예, 어르신 들어오시죠.” 촌장은 명훈이 있는 곳에 들어가서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창고를 급하게 방으로 만들었다네. 손님방이 없어서 미안하구먼.”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르신.” “흠, 이곳이 너무 외진 곳이라 우리들 이외의 사람 얼굴을 보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네. 그러다보니 여관 같은 것도 없지.”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안색이 어둡군요.” “…….” 명훈의 정중한 모습. 촌장은 그런 명훈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다른 인면수심의 녀석들과 다르게 겉과 속이 같은 사 내임을 촌장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약간, 잔혹한 손속을 가지긴 했지만…. 사실 조금 많이…. 여하튼 믿을만한 사내라는 것이 촌장의 평가였다. 촌장은 명훈을 볼 때마다 이미 옛날에 사라진 순수함 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의 뜸을 뒤로 천천히 입을 여는 촌장. 명훈은 귀를 기울였다. ~~~~~~~~~~~~~~~~~~~~~~~~~~~~~~~~~~~~~~~~~~ 에구 피곤하네염 ㅡ///ㅡ 내일까지 2권을 마치지 못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아아.... 내일 이사짐 옮겨야 하는데... (이사하는 날에는 본가에 인터넷이 연결 될 동안 연재가 불가능 합니다.) 큰일입니다. 2권정도는 마쳐야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다음 편을 곧 올리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20 회] 날 짜 2004-12-09 조회 / 추천 7673 / 111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보디가드 되다. 촌장이 자신에게 뭔가 어려운 부탁하기 위해 왔다 는 것을 짐작한 명훈. 그가 보여준 호의를 생각하곤 웬만한 부탁정도는 받아 줄 생각을 했다. “내 부탁이 하나 있네.” “무슨 일이죠?” 명훈이 담담하게 받아드리자 촌장은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말문을 열었다. “사실 우리 마을에 내 친딸 같은 아이들 둘이 살 고 있네. 예전에 오크들과의 접전에서 숨을 거둔 가 일이라는 친구의 자식들이지. 그런데 인근에 있는 영 주가 가일의 큰 딸인 에그잔티아에게 자꾸만 집적거 린다네.” “에그잔티아?” 촌장이 끄덕였다. “우리 마을에서 만이 아니라 영지에서도 최고 미 인이라 손꼽힐 정도로 예쁜 아이라네. 쓰레기 같은 영주 녀석이 어떻게 그런 소문을 접했는지 두 달 전 에 에그잔티아의 얼굴을 보기 위하여 직접 방문했다 네.” “묵사발을 만들면 안됐나요?” 그 말에 촌장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라고 그러고 싶지 않았겠나? 어쩔 수 없는 신분의 차이가 있어서 불가능 했다네. 다만 우리들은 농노가 아닌 평민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을 휘하의 시 민들이 아니기에 크게 난동을 피우지는 못했네.” “신분? 휘하의 시민?” “…자네, 너무 많은 기억을 잃었구먼. 좋네. 그럼 설명해주겠네.” 촌장은 짧은 시간동안 명훈이 이해 할 수 있을 정 도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이름만 촌장이 아닌 이 마을의 실질적 수장임을 이 런 부분에서 새삼스럽게 깨닫기 시작했다. 논리정연하게 사건을 정리하는 모습. 나이 먹은 값을 톡톡히 하는 늙은이였다. 자신도 나이를 먹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곳 세 상에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애나 다름없었다. 아직은 나설 수가 없는 입장인 것이다. 아는 것이 있어야 나서지 않겠는가? 똥개로 제 집에서는 한수 먹고 들어간다고 한다. 집이 아닌 새로운 세상이라면 한수가 아니라 열수 를 먹고 들어가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이곳에는 계급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대충 귀족, 평민, 농민, 노예로 나뉜단다. 그나마 인간의 흉내를 낼 수 있는 것은 평민이란 다. 농민은 노예는 아니지만 영지의 주인인 영주의 밑 을 벗어나지 못하고 학대를 받으며, 노예는 가축이하 의 취급을 받는단다. 명훈은 기가 막혔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명훈은 입안이 꺼끌어졌 다. 허탈감마저 느껴졌다. 자신이 살던 무림에서도 특권층은 있었지만, 이야 기를 듣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허탈함에 빠졌던 힘이 분노로 돌아와서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쥘 정도 였다. 설마 사람이 사람 같지 않은 세상이라니…. “…흠, 그렇군요.” “왠지 이런 이야기를 하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 네.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겠지만, 잊었다고 하니 혹시 나 하여 다시 알려 준거네. 자네를 보니 언어만 아는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에서였네.” “아, 하하….” 뜨끔한 명훈이다. 촌장은 눈썰미도 장난이 아니었다. “여하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평민이라 이 거죠?” 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그렇다면 이곳을 처음 개척하신 분이 촌장님이신 가요? 이곳저곳 화전이 많이 보이더군요.” 촌장의 깊은 눈이 명훈을 바라봤다. 그러나 더 깊은 명훈의 눈. 그 촌장의 빛을 흡수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그 깊음을 눈치 차리지 못한 촌장. 단순히 ‘맑은 눈을 가진 청년이군.’이라 생각했 을 뿐이다. “모두가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다크 엘프의 숲 근 처로 도망쳐 온 거나 마찬가지지.” “평민이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도 망이라는 말씀을….” 명훈의 물음이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촌장이 입을 열었다.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아가며 살고 싶지 않았다 네.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나가는 사람들. 노예든 농 민이든 평민이든 그들의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죽음 조차 귀족들에게는 유흥거리에 불과했지.” 명훈은 다시 뭔가를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촌장의 회한어린 눈빛. 그것이 명훈의 입을 봉한 것이다. “우리는 그게 싫었다네. 그래서 살 곳을 찾았지. 하지만, 모든 영토는 귀족들의 땅.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었다네. 어디에서 살던 세금이라는 명목하게 착취는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네.” 명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 잔을 찾았다. 갈증 때문이었다. 물 잔에 물을 가득 부어 한숨에 마시고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다시 한잔 들이키고 촌장을 바라보았다. 한잔 마시겠냐는 뜻이었다. 촌장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려 괜찮다는 거절의 의 사를 밝혔다. “그럼 계속 이야기 하겠네.” “예.” “…그래서 결국 누구의 영토도 아닌 죽음의 땅이 라 불리는 다크 엘프의 숲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것 이지. 그들은 자신들이 정한 경계선만 넘어서지 않으 면 어느 정도의 수준은 그냥 넘어가 줬다네. 특히나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몬스터가 적기 때문이라 네.” “몬스터요?” 촌장은 명훈의 질문에 별 의심 없이 이야길 해줬 다. “그렇다네. 며칠 전 자네가 본 희한하게 생긴 녹 색의 괴물이 바로 오크라는 몬스터지.” “흠…. 몬스터라는 것이 뭔가를 총칭하는 뜻 같군 요.” “그렇다네. 오크말고 트롤이나 오거라는 괴물들도 있지. 그들은 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라네. 자 네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네. 여하튼 다시 다른 곳으로 이야기가 샜군.” “…….” “이곳에는 저 다크 엘프의 숲의 영향인지 몬스터 들이 거의 없다네. 며칠 전의 오크들의 행패는 이곳 에 자리 잡은지 40년 만에 처음 일어난 일이라네. 아 직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라네.” “뭔가 이유가 있나보죠.” “짐작이 가는 것이 몇 개 있지만, 짐작일 뿐이지. 그럼에도 그들이 그렇게 전멸을 각오하고 약탈하러 올 만한 이유가 될지는 의문이네.” “흠….” “여하튼, 이제 어느 정도 설명을 했으니 본론을 말하겠네.” 명훈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으나, 곧 정리가 끝났는지 촌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에그잔티아를 구해주게.” “구하다니요?” “어감이 이상했나?” 명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조금 많이요.” “그런가? 하지만 진심이라네.” 명훈이 꺄웃거리며 촌장에게 되물었다. “귀족이 청혼한다면 오히려 좋은 것이 아닌가 요?” 촌장이 명훈의 눈을 깊이 바라봤다. “아직 이해가 덜 된 모양이군.” “그렇군요. 아직 제가 이해를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군요.” 명훈은 귀를 기울였다. 지금은 하나라도 들어야 할 때였다. “그 귀족은 이미 에그잔티아만한 자식도 있는 돼 지 같은 녀석이라네. 배에 가득 찬 기름만큼 욕심이 쌓여 있지. 그런 녀석이 올바른 생각으로 에그잔티아 에게 접근한다 생각하나?” “그건 모를 일이지요.” 촌장은 명훈의 눈을 약간 이질적인 느낌으로 바라 봤다. 지금에야 촌장은 자신이 명훈의 어떤 부분을 봤는 지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촌장은 명훈의 맑기만 한 눈이 오히 려 깊고 깊어서 생긴 심안(心眼)임을 깨달을 수 있게 됐다. 자신은 명훈을 잘 안다고 느끼기만 했을 뿐 그 속 에 무엇이 있음을 알지는 못했던 것이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어째서 모를 일인가?” 명훈은 가볍게 웃어줬다. “나이가 들어 개과천선 하였을 수도 있고, 아직 에그잔티아가 누군지는 직접 보지 못하여 잘 모르겠 지만, 그 늙은 귀족이 한눈에 반한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촌장은 거부감에 고개를 가로 저어보려 했지만, 조 금 더 듣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죠. 킥킥. 사람의 성품이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 니거든요. 저 역시 말이죠….” ‘저 역시 말이죠.’ 뭔가 의미심장한 말이었지만, 촌장은 그 뜻을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나이에 맞지 않게 명훈의 심계가 깊고, 어려 보이지만 저 깊은 심안은 결코…. ‘흠…. 대체 저 청년은 누굴까?’ 하지만, 속과 다르게 입은 이미 움직이고 있는 촌 장이다. “그런가? 그 말은 내 부탁을 들어 주겠다는 말인 가?” “네, 원래부터 받아줄 생각이었습니다. 다만, 모르 는 것이 너무 많아서 배우고자 여쭤본 것이지요. 하 지만.” “하지만?” “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 습니다.” 그 말에 기가 차는 촌장이다. 하지만, 곧 이마의 주름이 모였다. 뭔가 그 말 속에서 이질적인 요소를 발견한 탓이 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 그게 무슨 말인가?” “…….” 씨익. 명훈은 아무런 대답 없이 환한 미소를 지어줬다. 다음 날, 아침. 명훈은 식탁에 한 낮선 여인? ‘응?!’ 순간 깜짝 놀란 명훈.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헉!”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비명에 사람들은 모두 놀란 눈빛으로 명훈을 바라보았다. “혀, 현민이?!” ~~~~~~~~~~~~~~~~~~~~~~~~~~~~~~~~~~~~~~~~~~~~~~~~~~ 아, 정말 욕나옵니다.... 어제 택배로 붙인 제 컴퓨터.... 아작이 나서 도착했습니다. 제가 이불로 싸겠다고 하는데 제가 싸면 믿음이 안간다며 스치로폴로 두런두런 싸더군요.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맞기긴 했지만, 제가 싸서 고장나면 환불을 안해주겠다는 말에..... 전화로 싸웠지만, 이번에는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 삽질하네요.. 사실 손해배상을 받아도 안에 있는 프로그램과 상관 없이 부서진 기계 가격만 받는다는군요... 안에 있는 수 많은 자료가 한순간에 날아갔습니다. 허탈해서 미칠 것같지만, 마감이라 지금 피씨방에 와서 글을 씁니다... 미치고 팔딱 뛰고 싶습니다... 집에와서 작업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제 마음.. 부서진 컴퓨터를 보는 순간 돌아 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우선 당장이라도 내일 허접한 컴퓨터라도 장만하여 글을쓸 생각입니다. 오늘은 피씨방에서 밤새며 나름대로 휘갈겨볼 생각입니다. 얼마나 쓸 수 있을지 장담은 할수 없지만... 기다려 주신 독자님들께 정말 너무나 죄송할 따름입니다. 열심히 쓰도록 할테니 계속 사랑해주시는 마음 변치 말아주세요.... 돌겠습니다...... 약간 내용이 이상해도 봐주세요. 정리가 안되서 그렇습니다. 화도 나고... 수정작업을 할때는 충분히 수정을 마칠테니 양해 바랍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21 회] 날 짜 2004-12-09 조회 / 추천 7554 / 125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보디가드 되다. “혀, 현민이?!” 손가락을 편 체 팔을 쭉 뻗으며 소리치자 모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눈앞에 여인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 었다. “네? 저, 저요? 저는 에그잔티아라고 하는데요?” “아! 아? 아….” 순식간에 세 가지 표정을 번갈아짓던 명훈. 그런 명훈의 모습에 자신을 에그잔티아라고 밝힌 여인이 가볍게 미소를 머금었다. “후훗. 정말 엉뚱하시군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예. 블루라고 합니다.”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의 명훈. 곧 정신을 차린 명훈. 에그잔티아의 말에서 뭔가를 느끼고 되물었다. “네? 제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다고요?” “네. 푸훗.” 순간 웃음을 터트리는 에그잔티아. 명훈의 시선이 촌장과 뮤엘, 로이를 향했다. 그들은 슬그머니 명훈의 시선을 피했다. “하.하.하.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들으셨나요?” 살짝 이를 악문 체 에그잔티아에게 질문을 던진 명 훈. 그런 명훈의 질문에 에그잔티아는 스스럼없이 입을 열었다. “음…. 약간 독특한 분이라고 들었어요.” “독.특.이요?” 다시 한번 촌장들을 향했지만, 그들은 수저를 들어 스프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요?” “흠, 그리고 이해가 불가능 할 정도로 강하고.” “강하고.” 여기까진 들어 줄만 했다. “약간 바보 같아 보이지만….” “……바보라. 그리고요?” “알고 보면 정말 바보라구요. 킥킥.” 이제야 이 얌체 같은 세 남자의 속마음을 알 수 있 을 것 같은 명훈이었다. “오호라아~. 그렇게들 말씀들을 하셨었다구요오 ~?” 처음으로 명훈의 말이 늘어지는 것을 접한 그들. 약간 불안해진 촌장을 포함한 두 사내들은 변명을 시작했다. “아, 아?하?하?하? 에그잔티아가 장난이 많?이? 늘 었구나.” “그?러?게?요 촌장님. 며칠 전에도 제가 얼마나 ….” “시끄럽습니다아.” “…….” 후르릅. 후릅. 변명을 포기하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잖은 사람이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고 있었다. 명훈은 모르겠지만, 에그잔티아의 아버지인 가일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명훈이 얌전하게 있지 않았던가. 약간 어리버리 했던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그런 모습이 즐거운지 에그잔티아는 킥킥거리며 자 신의 옆에 있는 여자아이와 함께 웃어댔다. 여자아이는 대충 12살 정도로 보였다. 아마도 현민, 아니, 에그잔티아의 여동생 같다고 명훈은 생각했다. 그런데 에그잔티아라는 그녀는 현민이와 닮아도 너 무 닮아 보였다. 명훈조차 보자마자 현민이가 자신을 따라 이곳으로 온 것인가, 하고 착각 할만 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에그잔티아는 분명 현민이와 달랐다. 다른 점을 찾으라고 한다면 우선 분위기가 약간 미 묘하게 달랐다. 어딘지 고풍스러워 보이는 분위기가 말이다. 명훈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현민이가 아님을 깨달았 다. 그리고 짙은 갈색머리와 갈색 빛을 머금은 홍체. 마지막으로 길게 늘어진 생머리. 정말이지 약간의 변화만 있을 뿐인데, 같은 현민의 얼굴이 천지차이로 느껴졌다. 정말 말 그대로 미인이라는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 여도 부족 할 것만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명훈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기란 부족했다. 그 속에서 현민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러한 감정이 더욱 커지는 것이었다. 슬그머니 자신의 한쪽 입가를 차지하는 미소는 무 엇을 뜻하는 것인지…. 아마, 명훈 본인도 알지 못할 것이리라. 그때 현민, 아니, 에그잔티아의 입에서 고운 목소 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마무리 짓겠다는 듯한 모습 같 았다. “에그잔티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사?님.” 순간 당혹스런 명훈의 얼굴. 아무리 다른 사람이라 해도 명훈에게 그런 말을 들 을 거라 상상도 못해봤기 때문이다. 명훈은 한참 후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알겠습니다. 제가 죽기전에는 아무도 에그잔티아 님께 손끝하나 건들 수 없을 것입니다.” “어머….” 설마 기사의 맹세를 받을 것이라 생각조차 하지 못 했던 에그잔티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른 사람들역시 당혹감을 표현했다. 명훈은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의 반응에 놀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한말이 설마 기사의 맹세일 것이 라곤 상상도 못하는 명훈이다. 나중에 기사의 맹세와 그 뜻을 우연히 알게된 명훈. 손살같이 밖으로 뛰어나가 하늘을 바라보며 일갈을 내 질렀다. “이 개스티마르! 다 네탓이야아!” 애꿎은 에스티마르만 개스티마르로 불리며 욕을 바 가지로 먹었다. ~~~~~~~~~~~~~~~~~~~~~~~~~~~~~~~~~~~~~~~~ 에휴.. 분노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여하튼 다음편에서 뵙지요.... ;ㅁ; 피씨방이 너무 싫어 ;ㅁ;(어정쩡한 모니터 빛이 맘에 안들어요.. 눈 아파...)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22 회] 날 짜 2004-12-10 조회 / 추천 7419 / 105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보디가드 되다. 명훈이 에그잔티아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게 된 것 은, 에그잔티아의 여동생인 루티시아가 명훈의 곁에 달라 붙은 것과 같은 시간이었다. “루티. 그렇게 블루님을 괴롭히면 안돼.” “우웅….” 한참 명훈의 옷자락을 붙잡고 놀자며 노래를 부르 던 루티시아. 에그잔티아의 따끔한 한마디에 찔끔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아아, 괜찮습니다. 에그잔티아님.” 한참 괴롭힘에 힘들었던 명훈이지만, 아이의 기죽 은 모습은 차마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수였다. 명훈의 옹호에 순간 기가 살아난 루티시아. 다시 명훈의 팔을 잡고 매달리며 놀아달라며 조르 기 시작했다. ‘으윽…. 내가 말 실수를 했나?’ 그런 루티시아와 명훈의 상반된 표정을 보며 미소 를 짓는 에그잔티아였다.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까운 동산으로 놀러갔 다. 명훈은 탁트인 전망에 속이 후련해 지는 듯한 기분 을 만끽했다. 왠지 자유라는 감정이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였다. 그것은 에그잔티아나 루티시아. 같이 따라온 뮤엘과, 로이도 같은 표정이었다. 하긴, 사람들중 노는 것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 자리가 명훈을 배려하기 위한 자리라는 것을 모 르는 사람은 없었다. “오랜만에 나오니까 좋네요.” “그렇군요. 이런 시원한 기분 정말 오랜 만이예 요.” 산들바람이 분다. 에그잔티아의 머릿결이 휘날렸다. 사사사사…. 가볍게 눈을 감으며 바람을 맞는 모습을 보니 슬쩍 가슴이 뛰며 나오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런 단체 피크닉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 후로 처음이예요.” “…….” “자 여기와서 식사들 좀 하세요.” 에그잔티아의 손짓에 사람들이 돗자리 위에 걸터 앉기 시작했다. 에그잔티아의 목소리에 저 멀리서 뛰어다니며 놀던 루티시아는 땀을 뻘뻘흘리며 되돌아 오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하나같이 미소를 품었다. “자 여기 제 기사님 꺼.” “어라? 벌써부터 사람차별인가?” 에그잔티아가 명훈을 챙기자 로이가 야유를 부리며 낚아채듯 샌드위치를 입안으로 꿀꺽삼켰다. 에그잔티아는 곱게 눈을 흘기며 로이의 팔뚝을 꼬 집었다. “아야!” 둘의 장난에 뮤엘이 웃으며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 들며 먹었다. “와우. 역시 에그잔티아 솜씨는 알아 줘야 한다니 까.” “킥킥. 아부는 됐어요. 아?저?씨.” “헉! 아저씨라니….” 뮤엘은 울상을 지었지만, 아무도 신경써주는 사람 이 없자 침울하게 음식을 집어 먹었다. 루티시아가 놀아주기 전까지 말이다. “이번에는 방해 할 사람이 없겠죠?” 명훈은 에그잔티아가 건네주는 샌드위치를 받아 들 고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정말 맛있군요.” “다행이네요.” 가벼운 감탄사지만 그 속에 진심을 읽은 에그잔티 아. 얼굴이 불그스름 해졌다. “우우~. 못 봐주겠네에~.” “나도 기사나 해야지 원. 논꼴시려 죽겠네에~.” 명훈이 피식 웃었다. 저들이 저렇게 나올수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 다. 그들은 어제 명훈과 이야기하던중 명훈이 나이를 밝혔다. 그러자 모두 놀랐다. 명훈의 입에서 튀어나온 28살이라는 말 때문이었 다. 결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명훈 잘봐줘도 10대 후반 아니면 20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명훈의 무력을 떠올린 탓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명훈의 무력은 반칙 같았다. 하지만 나이가 저 정도 된다고 하니 어느정도 수긍 이 가는 그들이었다. 그들은 명훈에게 형이라는 칭호를 주저하지 않았 다.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의 힘을 소유한 사람이다. 전혀 꺼릴 것이 없었다. 특히나 기사 수련생인 둘이었으니 존경심마저 들었 다. 뮤엘이 27이고, 로이가 26이었다. 사실 명훈의 실제 나이는 18살이긴 했지만, 검황의 기억이 있으니 196살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너무 어리게 부르면 피곤해지고, 너무 많 이 부르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테니 적당한 나이를 부른 것이다. 나이라는 것이 의외로 사람에게 힘을 주거나 주눅 을 들게 한다. 연륜 따위를 따지는 사람들이 어딜가나 있기 때문 이다. 너무 어리면 번거러운 점같은 것도 있다. 여하튼 지금 저들은 명훈 자신에게 일종의 애교를 부리는거였다. 하지만, 명훈은 그런 그들을 패주고 싶었다. 사내 따위의 애교를 받으며 행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저쪽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소리의 방향을 보이 정확하게 이곳으로 오는 것 같 았다. ~~~~~~~~~~~~~~~~~~~~~~~~~~~~~~~~~~~~~~~~~~~~ 오늘에라도 어떻게든 컴퓨터를 구해야 할텐데... ;ㅁ;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23 회] 날 짜 2004-12-10 조회 / 추천 6960 / 101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보디가드 되다. “워워워.” 푸르륵! 푸륵. 말 투레질 소리. 명훈들은 자신들 코앞까지 다가온 그들이 누군지 알수 있었다. 사실 모른다면 바보일 것이다. “여, 영주가 어떠게 여길….” 에그잔티아가 경악어린 표정을 지었다. 공포에 질린 표정. 명훈이 시선을 돌려 그 영주라는 인간을 바라보았 다. 휘황찬란하기 그지 없는 옷. 그 뒤로 따라 온 네명의 기사가 보였다. 영주를 호위하기라도 하듯 방위를 잡고 서있는 모 습이 체계적으로 훈련이 되었다는 알려줬다. 거기다가 번쩍번쩍한 갑옷은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 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뮤엘이나 로이가 이를 악문표정은 밀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말은 심적으로 위압감을 느낀다는 말과 동일했 다. 하지만, 명훈은 처음에만 약간 신선한 눈으로 바라 봤지, 그들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확인하고 실망 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때 그 영주의 입에서 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오우~ 마이 프레셔스~.” “…….” 이곳저곳에 박힌 금덩이를 자랑이라도 하듯 손가락 과 팔목을 드러내고, 누런 이마저 드리 내밀었다. 명훈은 그 금붙이들이 자신을 유혹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참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그 유혹을 받아 드려도 될 것 같 았다. 손가락과 팔목은 부러트리고, 이는 모조리 뽑아 버 리고 싶은 참을수 없는 욕망. 그것은 차라리 행복이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 엔돌핀이 상승하는 명 훈. 어서 그 상황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자기 잘 지냈어?” “……?!” 에그잔티아의 표정이 싹 굳어 버렸다. 아니, 굳다 못해 파랗게 질려버렸다. 마치 파충류라도 보는 듯한 눈길로 그 귀족을 바라 봤다. 하지만, 그는 화조차 내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눈 빛을 즐기는 것 같았다. 마치 변태처럼 말이다. ‘내 주먹에 맞으며 그 고통도 즐기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군….’ 명훈의 다짐을 아는지 모르는지 희번뜩 웃고 있는 영주. 한걸음씩 다가오며 명훈이들만의 피크닉 장소를 오 염시키고 있었다. 명훈은 그것이 너무나 마음에 안들었다. 한걸음씩 뒷 걸음질을 치던 에그잔티아. 영주의 보폭을 넘어서지 못해 결국 그 영주의 끈적 한 손길에 팔목을 잡히고야 말았다. 덥썩! “꺄악!” 에그잔티아가 비명을 지르자 영주가 느글느글하게 입을 열었다. “워워, 이러는거 아니야. 우리 사이에….” ‘뭐가 우리사이라는 거죠?!’ 에그잔티아의 눈빛일 그렇게 말했지만, 영주는 그 런 눈빛을 계속 즐기는 듯 입을 열었다. “자꾸 이러지마. 내가 흥분되잖아.” “…으, 으흑…….” 에그잔티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려고 글썽였 다. 도움을 요청하는 듯 자꾸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크게 시야를 돌릴 수 없던 에그잔티아. 그냥 아니라고 가로 젓는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 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눈치차리지 못할 로이와 뮤엘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을 보고 참지 못한 로이와 뮤엘. 손에 검을 대자마자 영주를 호위하기 위해 온 기사 들이 짝을 지어 로이와 뮤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명훈에게는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했는 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검도 없다. 호리호리한 체격. 나이도 어려보인다. 무시할만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훈을 무시한 그것이 그들의 가장 큰 실 수 였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됐다. 물론, 막아 봤자 크게 도움됐을 지는 잘 모르겠지 만 말이다. ~~~~~~~~~~~~~~~~~~~~~~~~~~~~~~~~~~~~~~~ 에휴.. 컴퓨터....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24 회] 날 짜 2004-12-10 조회 / 추천 8167 / 318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명훈, 보디가드 되다. “우리 베이베 이리와. 이 오빠의 따스한 품으로.” “시, 싫어요.” “어허, 이러는거 아니야. 오빠한테만 와. 그럼 먹고 싶은거 입고 싶은거 뭐든지 사주지. 흐흐.” “저, 저는 그런거 다 필요 없어요!” 에그잔티아가 악을 지르자 그 영주의 작은 눈이 크 게 떠졌다. 물론 처음부터 눈이라곤 보이지 않았으니, 눈동자 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 수준이면 많이 떠진 것이리 라. “이 천한 년이. 감히 죽으려고… 크흐흐흐. 더 이 상 봐줄 필요가 없겠군. 네 년을 내 노리게로 삼다가 버려야 겠다. 지금까지 네년이 튕긴 것을 봐준것에서 도 화가 나던 참인데. 흐흐. 후회하게 해주마! 어서 따라와!” “으흑….” 에그잔티아의 봉목에서 흐른 눈물이 바닥으로 떨궈 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생각한 명훈.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돼지. 그 더러운 손 때라.” 순간 늙은 영주의 편협하게 생긴 눈썹이 꿈틀거렸 다. “감히 누구한테….” 영주가 시선을 돌리는 순간 명훈과 눈을 마주쳤다. 순간 영주는 자신의 심장이 얼어 붙는 다는 듯한 착각에 빠져버렸다. “…흡!” “죽고 싶나?” 명훈의 싸늘한 목소리. 하지만 곧 자신의 위치를 기억한 영주. 감히 평민 따위가 자신에게 이런 위압감을 줬을리 없다고 자위했다. 자신만의 착각이라며 말이다. 그래도 기분이 나빴다. 그러한 기분을 들게한 저 평민을 가만히 놔둘 생각 이 없었다. “알프레도! 저 녀석을 죽여라!” 뮤엘을 위협하고 있던 기사중 하나가 비릿한 웃음 을 지으며 천천히 명훈에게 다가갔다. 뮤엘 앞에서는 검도 뽑지 않았던 녀석이 아무런 무 기도 없는 명훈 앞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 검의 날을 슬쩍 바라봤다. “흐흐. 오랜 만에 피맛을 보는 것을 기대하는지 내 검이 보체는 군. 큭큭. 그러게 상대를 잘봐가며 까불 어야지.” 알프레도라는 사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 동료들과 늙은 영주는 알프레도가 하는 말이 마음 에 드는지 함께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누구도 알프레도가 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 문이다. 물론 뮤엘과 로이의 얼굴은 환해졌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어서 도와주지 않으려나 하여 배신감마저 느끼던 찰나였다. 그들은 직접 명훈의 엄청난 무위의 목격자였다. 세상 천지 어떤 인간이 오크와 100대 1로 맞짱을 떠서 패죽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슬쩍 뮤엘과 로이의 입가에 미소가 올라갈 무렵. 퍼억! 까앙!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명훈의 주먹이 두툼 한 중갑의 복부를 가격했다. " 누가 사람을 잘못 봤는지는 맞어봐야 알겠어?" “커허헛!! 크헉!” 알프레도라는 녀석의 이죽거리던 표정은 비명과 동 시에 사라졌다. 텅! 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뒹구는 알프레도. 마치 찌그러진 깡통이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아싸!” “나이쓰!” 단 한방의 주먹으로 복부쪽이 깊이 찌그러진 갑옷 을 보며 뮤엘과 로이가 환호했다. 그런 명훈의 모습을 처음 보는 에그잔티아의 얼굴 에 환희가 가득 찼다. 쓰레기 기사들은 경악했다. 마지막으로 늙은 영주의 표정은 ‘대빵 놀랐소이다!’ 라고 말하듯 그 뱁세보다 작은 눈이 1센티나 떠졌다. 눈이 찢어지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스러울 정도였 다. 명훈이 그런 그들을 향해 씨익 웃어줬다. 그리고 한마디를 내뱉자 다시 로이와 뮤엘은 환호 했다. “이 정도로 놀라면 안되지. 이제 시작인데…. 이런 사소한 것으로 놀라면 잠시 후 본 파티 타임에서는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다고.” “휘익~! 형님 멋쟁이!” “다 쓸어 버려욧!” 명훈은 로이와 뮤엘의 든든한 응원을 들으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쓰러져서 아직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알 프레도에게 다가갔다. 그것을 본 알프레도. “으, 으…. 오지마. 오지마아!” “시끄러. 새꺄!” 바닥에 모래를 움켜쥐고 녀석의 입에 우겨넣었다. 그리고 가볍게 짱돌을 들어 녀석이 비릿한 미소를 짓던 아구를 그대로 갈겨버렸다. 퍽! “……?!” 입에 가득찬 모래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알프레 도. 환호하며 응원하던 뮤엘과 로이조차 경악어린 표정 을 지우지 못했다. 설마 설마, 사람이 저렇게까지 악독할수 있다는 것 을 처음 봤다는 표정이었다. 가장 옹호하던 그 둘이 그 정도였는데 나머지는 어 떻겠는가? 세명의 기사는 끔찍한 모습에 몸이 굳어버렸고, 늙 은 영주는 그대로 오줌을 지렸다. 에그잔티아는…. “흐으으음….” “에그야!” 혼절하는 에그잔티아를 향하 뮤엘과 로이가 달려가 서 부축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아무도 그들을 저지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명훈의 비릿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크흐흐흐.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퍽! 퍽! 퍽! 깡! 깡! 깡! 아니, 사실은 그의 무지막지함 때문이었다. 어떻게 주먹 한방마다 저 두꺼운 중갑이 움푹움푹 파이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기가 막힐 따름이다. 거기다가 이미 혼절한 알프레도를 지금 계속 패고 있지 않은가? 충격과 반동에 의해 알프레도는 계속 꿈틀거리며 기절한 상태라 비명은 없었다. 간혹 맞던중 고통을 못이겨 정신을 차렸는지 ‘으 악! 크악!’하고 비명은 질렀지만, 곧 고통 때문에 다 시 혼절하는 모습. 그들의 눈에 명훈은 이미 악마였다. ~~~~~~~~~~~~~~~~~~~~~~~~~~~~~~~~~~~~~~~~~ 어흑... 내 컴퓨터어어어~ ps. 여러분의 선작 한표가 저를 살립니다. ;ㅁ; 열심히 노력하는 글쟁이가 되겠다고~ 이 연사 힘차게! 힘차게 외칩니다아아!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25 회] 날 짜 2004-12-11 조회 / 추천 5641 / 110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그래플 마스터로 이름을 떨치다 8. 명훈, 그래플 마스터로 이름을 떨치다 의외로 남작은 가볍게 죄 값을 물었다. 물론 그 대가로 인하여 두 번 다시 왼쪽으로는 음식 물을 씹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명훈은 나름대로 가볍게 뺨을 날렸을 뿐이다. 물론 사람마다 개성이 틀리 듯 그 나름대로 라는 기 준점은 저마다 달랐다. 특히나 명훈의 기준점은 매일 바뀌기에 종잡기 어렵 다. 여하튼 뺨을 맞은 늙은 영주. 몸이 정 반대로 틀어지며 날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가 관이었다. 우수수수 떨어지는 누런 이는 두 번 다시 주인과 상 봉하지 못하리라. “커허허헉!” 구당탕! 바닥에 그대로 자빠지며 기절했다. 남은 기사 셋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들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 는 명훈을 보며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퍼버버버벅! 알프레도 아쉽지 않게 두드려 맞은 기사들. 알프레도도 그 장면을 봤다면 편하게 눈을 감았을 것 이다. 자신 혼자가 아닌 동병상련의 동지가 생겼음을 확인 한 후일 테니 말이다. 가볍게 떡이 된 그들을 보며 명훈은 상큼한 미소를 머금었다. “휴, 속이다 후련하네….” 그런 명훈의 모습을 지켜보면 뮤엘과 로이. 공포어린 눈빛보단 감격어린 눈빛으로 명훈을 바라보 며 생각했다. 조금 전 명훈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충격적인 한마 디. 차후, 소드마스터 계열에 들어가는 깨달음의 길목을 뚫어주는 결정적 한마디. ‘남자는 주먹. 구타는 손맛.’ 그들은 평생의 지침대로 그 명언을 가슴에 새겼다. 다른 기사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늙은 영주는 겁에 질려 도망쳤다. 명훈은 무슨 생각에선지 절대 그런 그를 막지 않았 다. 마치 뭔가를 원하는 것처럼 회심의 미소만 지을 뿐이 었다. 하지만, 뮤엘과 로이는 그런 명훈을 막으려고 애썼다. “아니, 저 자를 그냥 보내시면 어떡합니까?” “저자가 돌아가면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구요.” “그렇다면 그 피해가 그대로 우리에게 돌아올지 몰라 요.” 명훈은 가타부타하지 않고 한마디, 한마디 질문을 던 졌다. “영지라는 것이 저 늙은이 같은 녀석들이 가지고 있 는 땅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지?” “네.” “성과 이름의 가운데에 황제는 덴, 공작은 론, 후작은 드, 백작은 폰, 남작은 디. 그런 단어가 들어간다 했 지?” “네.” “그리고 저 늙은이는 루이스 디 세바스찬이라 했고, 이름 사이에 디 자가 들어갔으니 남작이겠군?” “네. …서, 설마?!” 그제야 명훈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짐작이 가는 뮤 엘. 경악어린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 “후후.” “말도 안 됩니다. 자살하려고 하십니까?!” 명훈은 뮤엘의 말에 대꾸해줄 생각이 없었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봐줄 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남작이라는 지휘가 가장 낮 은 것이고.” 결국 뮤엘은 포기 한 듯 그냥 대답해 줬다. 자신이 뭐라고 해서 들을 사람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 다. “네.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80여개 의 남작가 중에서 중상위의 세력을 지니고 있는 그 입 니다. 아니, 막말로 가장 세력이 적은 다른 남작가가 우 리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눈감고 코 배어 가는 시간보다 빠를 겁니다.” 그러나 이성과 본능은 다른 것이다. 뮤엘은 아직도 걱정이 되는지 발을 동동 굴렸다. 그런 뮤엘의 눈에는 저 멀리 절뚝거리며 ‘히이이이 익!’이라는 비명을 쉬지 않고 지르며 뛰어가는 늙은 영 주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이라도 당장 잡아서 족쳤으면 하고 원할 정도였 다. 그렇다고 자신이 형님으로 인정한 명훈을 닦달할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사내는 어딘지 나사가 하나 풀려 보였다. 지금까지 마을에서 있었던 점잖은 모습들은 환상으로 치부될 정도였다. 그래도 마음 한편이 안정 되는 것은, 명훈의 짐작가 지 않는 실력 때문이다. 아직 정확한 실력은 모르지만 그래플 마스터 급은 되 어 보였다. 지금까지 주먹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명훈의 모습. 그래플 마스터. 그 정도 착각쯤은 애교에 불과할 것이다. 여기에 와서 검 한번 손에 들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 다. 하지만, 나름대로 명훈도 변명거리가 있었다. 마음에 드는 검이 없다는 변명이 말이다. “기대가 되는 군. 후후.” “저는 별로 기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 영주는 개인 사병을 300명이나 대리고 있다구요. 아아….” 씨알도 들어 처먹지 않는 명훈의 모습에 자포자기한 심정의 뮤엘이었다. 로이는 그냥 창백해진 표정으로 그 둘의 이야기를 듣 기만 할 뿐이었다. ~~~~~~~~~~~~~~~~~~~~~~~~~~~~~~~~ 흠.... 오해를 하시나 본데 제 글은 언제나 진지 모드 입니다. 다만 케릭 몇몇이 눈에 띌 뿐이지요 ㅡㅡ;;;;(퍽!)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26 회] 날 짜 2004-12-11 조회 / 추천 4780 / 68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그래플 마스터로 이름을 떨치다 “헥…헥….” 거의 기다시피하여 거지꼴로 자신의 성에 도착한 영 주. 루이스 영지가 발칵 뒤집힌 것은 두 말이 필요 없었 다. 소식을 듣고 기겁한 표정으로 허겁지겁 뛰쳐나온 영 주의 아들. “아버님!” 늙은 영주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난 후에야 기절할 수 있었다. 신전에서 사람을 불러 치료마법을 시전한 후에야 늙 은 영주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으…, 으음.” “아, 아버님 정신이 드십니까?” “…….” 순간 멀뚱히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던 영주. “으아아아악!” 다급하게 몸을 뒤로 숨기며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가 더니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항상 강한 모습만 보이던 아버지가 처음 보이는 모습 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아들. “크아악! 괴물! 괴물! 앞으로 안 그럴 테니 제발….” 부들부들. 놀라는 모습은 아들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경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 왜 그러십니까?” “저기 괴물이 나를 잡으러 오려하고 있어! 어서 저 괴물을 내 쫓아줘!” 거의 발작수준이라 볼 수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변했는지 걱정보다 이 정도가 되자 대 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아버지 무슨 일이냐고요!” “저기 괴물이 있잖아! 어서 내 쫓아줘!” 말이 통하지 않는 수준이다. 그래서 한참의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아버지 괴물이 물러났어요. 사라졌어요.” 그 말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흠칫 놀라더니 이불 밖으로 시선을 뺐다. 조금씩, 조금씩 주변을 살피는 모습. 그러한 모습에 기가 찼지만, 얼마나 끔찍한 일을 당 했으면 이러할까 걱정이 일기까지 했다. 특히나 함께 갔던 기사 넷은 이미 행방불명 상태였 다. 소드 익스퍼트 급의 기사들이 말이다. 이곳에는 숙련도의 단계를 측정한다. 소드 어웨어(sword aware). 소드 익스퍼트(sword expert). 소드 마스터(sword master). 기본적 이렇게 나눈다. 이 곳에는 전쟁의 신전이라는 곳이 있는데, 검을 사 용하는 사람이라면 그곳에 등록하여 자신의 능력을 측 정하기도 한다. 물론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병의 경우라면 그곳에서 받은 증명서가 그 들의 몸값을 좌우하는 역할을 하기에 꼭 등록한다. 대부분 영지의 크기를 따질 때 능력자의 수를 가장 높이 산다. 웬만한 영지에는 소드 마스터가 하나씩은 있다. 하지만, 사실 소드 마스터라는 것 자체가 사기다. 소드 마스터와 소드 익스퍼트의 사이에는 고급 소드 익스퍼트라는 칭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색내거나 번거로운 것을 넘기기 위해 그냥 고급 소드 익스퍼트 계열마저 소드 마스터 급이라며 넘 긴 것이다. 마스터 급과 마스터는 엄연한 차이가 있음에도 말이 다. 여하튼 그러한 마스터 급이라 하여도 아예 없는 영지 가 있었다. 그렇기에 남작령에서 둘이나 있다면 엄청나다는 표현 이 가능했다. 힘이 약한 백작령은 둘 이상도 소유하기 힘들었기 때 문이다. 후작령이나 공작령에는 상당수의 마스터가 존재했지 만, 그들의 수치는 정확하지 않다. 공개되기 꺼려지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대충 최소 열명씩은 있다고 짐작하고 있다. 물론 마스터가 최고의 경지는 아니다. 무림으로 치면 화경에 인접한 경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검강을 사용하는 경지도 마스터에 포함되지만, 대부 분은 검강의 전단계인 검사(劍絲)의 경지에 오르면 마 스터란 칭호를 받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밝혔지만, 사실은 그 검사를 사용하는 자가 고급 소드 익스퍼트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보통 익스퍼트만 되도 대단한 것이다. 검사의 전단계인 검기상인의 경지가 바로 익스퍼트이 기 때문이다. 이곳 루이스 영지에도 20명도 채 안되는 소드 익스퍼 트급의 기사들. 그런 익스퍼트급의 기사 넷이 실종되었다. 어찌 큰 일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 휴... 정리 하기 힘드네... 곧 다음 글을 올리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27 회] 날 짜 2004-12-11 조회 / 추천 4579 / 65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그래플 마스터로 이름을 떨치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아버지가 먼저 인 탓이다. “아버지 없죠? 괜찮습니다.” “으으….” 덜덜덜. 아직도 불안에 찬 시선이다. 그러나 명훈이 자신의 시선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영 주. 그제야 안도의 숨을 몰아쉰다. “휴….”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 아구에 통증이 느껴지자 가볍게 손을 들어 그곳 으로 가져가보았다. 움푹파인다. 이빨이 모두 나간 탓이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우우우….” 억지로 그 눈물을 참아 보았지만, 흐르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결국 흘러내렸다. 너무나 억울했다. 자신이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그런 치욕을 당해야 했는지 아직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님….” 너무나 서럽게 우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가슴이 답 답해지는 아들. 한참 후 빠진 이빨 때문에 옹알이는 말투로 하나하나 이야기를 시작하는 영주. 아들은 그의 말을 들으며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지쳤는지 다시 잠에 빠지는 영주. 씁쓸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 하지만,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 들은 많은 의문으로 인해 약간이나마 분노가 희석됨을 느꼈다. 특히나 주먹으로 중갑을 찌그러트리며…. ‘응?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신의 친우이며 이곳 남작령에 단 둘 있는 소드 마스터 클레인을 불렀다. 그리곤 모든 자초지정을 이야기 했다. “…그렇다고 하네. 아버지께서 방탕하시고 허풍이 심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들인 나에겐 거짓부렁 한번 하 신 적이 없으시다네.” “그럼, 그것은 나도 잘 알지.” 클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다운 얼굴에 약간 태양에 적당히 탄 듯 보이는 검은 피부. 고무공처럼 탄력이 붙어있는 근육이 매력적인 30대 후반의 검사였다. 콧수염을 맵시 있게 다듬은 것을 보니 자신의 멋을 살릴 줄 아는 사내이기도 한 것 같았다. “내 생각으로는 흔치 않은 그래플 마스터가 아닌가 싶네.” “흠…. 직접보지는 못했으나 이야기 들은 것만으로도 분명 그래플 마스터가 확실 한 것 같군.” 순간 영주의 아들 세바스찬 2세의 표정이 환해졌다. 아버지야 치매로 몰아 버리면 상관없지만, 마스터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소드마스터 보다 귀한 그래플 마스터라면 말 이다. “자네도 짐작을 했으니 나를 부른 것이 아닌가.” “하지만 자네의 견문이 나보다 높지 않은가?”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자네의 능력과 비슷하겠 군.” 세바스찬 2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영지의 두 번째 마스터가 바로 자신인 탓이었다. “아마도 그러겠지. 하지만, 그래플 마스터네. 저 크로 타니안 제국의 아이린 공작밖에 없다고 하는 그래플 마 스터.” “하하, 농이 짙어 졌군. 단순히 마스터와 그랜드 마스 터를 비교하다니…. 아하하하!” “농이라 하기 힘드네. 그래플 마스터는 아이린 공작 의 세명의 아들뿐이니 말이네.” “흠….” 순간 뭔가를 깨달았는지 이마가 구겨지는 클레인. 이제 이해를 했냐는 시선으로 세바스찬 2세가 바라보 았다. “그렇군. 아이린 공작이 자신의 무술은 아들에게만 알려주었지. 그렇다면 설마 그 자가?” 클레인의 말에 세바스찬 2세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아닐 것이네.” “뭔가 짐작 가는 것이 있으니 하는 말 같군.” “그렇다네.” “그게 뭔가?” “이미 그 아들들을 예전에 왕궁에서 본적이 있는 아 버지라네.” “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한번 본적이 있는 그들의 얼굴을 모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의아 하군.” “뭐가 말인가?” 클레인의 말에 세바스찬 2세가 되물었다. “아니, 너와 나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영주님이 어째서 그래플 마스터 한명 봤다고 저렇게 두려움에 떠 시는 것인지….” “흠…, 그러고 보니 그렇군.” 세바스찬 2세는 친구 클레인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여하튼 그렇다면 대단하군. 아이린 공작의 아들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그래플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 다니. 경이롭기 그지 없군.” “그래서 내가 그자와 만나보려 하네.” “복수는?” “글세. 그래플 마스터가 내 수하가 된다면 복수보다 더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 ~~~~~~~~~~~~~~~~~~~~~~~~~~~~~~~~~~~~~~~~~~~~~~~ 휴... 컴퓨터.... 여하튼 잠시후에 뵙겠습니다. ps. 전편 분량을 약간 손봤습니다. (하지만 출간본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출간본 수정 할때 번잡해 보이면 삭제 될수도 있습니다.) ps2. 이글은 독자님들을 위한 글이기도 하지만, 제 자신의 글이기도 합니다. 독자님들이 생각하고 있는 설정을 저에게 붙이지 말아주세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읽어주세요. 제 설정을 더 이상 간섭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심각한 부분은 저 나름대로 생각하고 수정하겠지만, 마스터든 뭐든 그것은 글쟁이의 취향 아닌가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28 회] 날 짜 2004-12-11 조회 / 추천 4507 / 70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그래플 마스터로 이름을 떨치다 클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하지만, 마스터라곤 하지만 무엇 하나 알지 못하는 그를 받아드릴 필요가 있겠는가? 얼마나 실력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일세.” 그 말에 세바스찬 2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네. 이미 아이린 공작을 통해 그래플 마스터가 어떤지 저번 2, 3차 제국 대전에서 드러나지 않았는 가?” “하긴…. 근접전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했지. 같은 급 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발렌시아 공작조차 밀릴 정도 였으니….” 세바스찬 2세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를 우리 영지로 끌어드릴 수만 있다면 우리 영 지가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특히나 이렇게 어수선한 시기를 잘만타고 오르면 후작이 우습 지.” “하지만, 그의 실력이 그에 못 미친다면?” “크흐흐. 당연히 죽여야지. 아버지께서 당한 것은 수 백 배 수천 배로 갚아서 말이네. 세상에 태어난 것을 저주하며 죽게 만들어 줄 것이네.” “흐흐. 역시. 내가 잠시 자네의 깊은 속을 헤아리지 못했군. 큭큭. 지금까지 전쟁이 발발하길 기다린 거 군.” 그 말에 세바스찬 2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클레인 을 바라봤다. “자네는 아닌가?” 순간 광소를 터트리는 클레인. “크하하하! 당연하지.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거리고 있었다네.” 그 둘의 웃음소리가 밤새 그치지 않고 영지를 울렸 다. “에취!” “어라? 감기라도 드셨습니까?” “아니 갑자기 기분 나쁜 오한과 함께 재채기가 나오 는 군. 에취!” 명훈은 자신의 맹맹한 코를 비비며 로이에게 대답했 다. 로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빵을 먹었다. “그런데 에그잔티아는….” “자고 있네. 쳇. 여자들은 담이 너무 약하다니까.” 명훈의 투덜거림에 어느 정도 그의 성격을 짐작한 뮤 엘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지금까지의 얌전함은 모두 거짓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렇게 끔찍한 모습을 보고 누가 멀쩡히 서있 을 수 있었겠습니까? 저희도 다리에 힘이 풀렸는데?” “응? 끔찍이라니? 그냥 가볍게 손을 봐줬을 뿐인 데….” “허업!” 명훈의 솔직 담백한 말투에서 전혀 거짓을 찾을 수 없었던 로이와 뮤엘. 자신도 모르게 호흡을 들이켰다. 한참 후, 이성적으로 돌아온 뮤엘에 다시 입을 열었 다. 마치 혼잣말이라도 하듯 말이다. “그래도 그때 쓰러진 게 다행이지요. 그 후에 맞은 나머지 세 명의 기사를 봤으면 그냥 단순 기절로 끝나 지 않았을 테니….” 뮤엘의 말에 로이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고개를 끄덕 였다.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였다. 여하튼 그런 뮤엘의 말을 듣지 못할 명훈이 아니었 다. 슬쩍 뮤엘을 바라보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여는 명훈. 마치 변명하는 듯 보인다. “흠흠, 그게…. 오랫동안 쌓인 게 조금 많다보니 나도 모르게…. 큼큼!” 명훈이 수긍할 정도였다. 더욱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천하의 명훈이 수긍할 정도라니…. 여하튼 명훈이 변명하는 그때 뮤엘과 로이는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생각했다. ‘젠장. 그게 약간 쌓여서 그런 것이라면 많이 쌓이면 어떻단 말이야? 일주일 전에 오크들을 그렇게 개 아작 을 내놓고도 부족했단 말인가?’ 그때 뭔가가 떠올랐다. ‘…어라? 잠깐. 그렇다면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그렇 게 쌓였다는 말인데?’ 흠칫! ‘서, 설마?’ 로이와 뮤엘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오한에 부들부들 떨었다. ‘설마, 그 자식들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바로 우리들이 그 꼴 날뻔 했단 말인가?!’ 둘은 깨닫지 말아야 할 것을 깨달았다. 몸의 떨림이 더욱 심각해 졌다. 명훈이 그것을 보고 놀란 눈으로 그들을 불렀다. “어라? 뮤엘, 로이 왜 그래?” 더욱더 심각해지는 그들의 상태. 명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로이는 눈이 뒤집히기까지 했다. 절대로 자신들은 그 기사들처럼 맞을 수는 없었다. 죽지도 못하고 헥헥거리며 맞다가 기절해도 고통으로 일어나서 다시 고통으로 기절하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 았다. 이빨이 모조리 나가거나 팔다리가 꺾이는 것도 사절 이다. 특히 안면이 함몰되거나 병신중의 병신인 상병신이 되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명훈에게 맞는 다는 상상만으로 이렇게 변한 그들. 그냥 차라리 죽는 게 났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정신 을 잃었다. “로이, 뮤엘. 왜 그래?!” 마지막으로 기절한 상태에서 들은 명훈의 목소리에 마지막 남아 있던 기운이 사라지며 축 늘어지는 그들이 었다. 그들이 깨어난 것은 에그잔티아가 일어난 것과 동일 한 3일이 지난 후였다. 물론 자신들을 반기는 명훈을 보며 거품을 물더니 다 시 혼절하긴 했지만…. 그 덕에 촌장의 얼굴을 보기 난감한 입장이 된 명훈 이다. ‘저 자식들 깨어나기만 나봐라.’ 빠득. 명훈을 피하려고 기절한 그들. 그것이 오히려 명훈의 성질을 건드렸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며칠일 지나고 마을 밖이 어수선해졌다. 누군가가 찾아 왔음이다. “뭐야?” 마을사람들은 고풍스런 마차가 자신의 마을 안으로 들 어오자 흠칫 떨었다. 이미 명훈이 일으킨 사건이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어느 정도 퍼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적대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마차 두 대와 몇몇 호위 기사들만 대동하고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했 다. 그쪽에서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면 대응을 했겠지만, 이렇게 신사적으로 나오자 어쩔 수 없이 받아 드린 것이 다. ~~~~~~~~~~~~~~~~~~~~~~~~~~~~~~~~~~~~ 다음 편도 곧 올리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29 회] 날 짜 2004-12-11 조회 / 추천 3712 / 8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그래플 마스터로 이름을 떨치다 정말 저 밖에 기사단을 숨기거나 따위의 유치한 모습 은 보이지 않았다. 저번 일을 사과하기 위해 왔다는데, 어떻게 문을 열 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아무런 적의 없는 그들의 모습은 영주가 병신이 되었 다는 소문이 무색할 정도였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 거짓으로 느껴질 정도였 다. 사실 목격한 사람은 뮤엘과 로이 뿐이니. 그들이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여긴가?” 마차에서 세바스찬 2세가 내리며 입을 열었다. “휴,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나보군. 하하.” 뒤따라 내린 클레인의 빈정거리는 말투. 세바스찬 2세도 따라 웃었으나, 사람들의 시선을 의 식하여 크게 웃지는 않았다. 우선 명목상은 화해를 하기 위하여 온 것이기 때문이 다. 그때 저쪽에서 촌장이 세바스찬 2세의 앞에 다가서더 니 허리를 굽히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남작님.” 남작은 자신의 아버지였지만, 촌장의 아부성이 깃든 말투가 마음에 들은 세바스찬 2세.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반갑소.” “저를 따라오시지요.”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은 촌장의 집으로 천천히 걸음 을 옮겼다. 촌장의 집에 들어서자 세바스찬 2세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이곳에 그래플 마스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 를 보고 싶소.” 순간 표정이 굳는 촌장. 이제야 이들의 우호적인 모습의 이면을 이해한 것이 다. 사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으나, 설마 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다. “그래플 마스터… 라뇨?” “훗. 숨기려고 하는 군.” “아뇨. 정말 몰라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세바스찬 2세는 조용히 촌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힘들었던 삶을 나타내는 주름들. 강직한 눈빛. 왠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흠….” 고민에 빠지는 세바스찬 2세.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온 것은 아니지만, 뭔가 우회할 꺼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촌장역시 생각을 했다. 사실 짐작 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영주를 패서 반병신 만든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촌장은 지금 이들이 그를 찾기 위해 왔다는 말과 같았다. 그 말은 그가 그래플 마스터라고도 해석을 할 수 있 었다. 하지만, 촌장은 일부러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조건 몰라야 했다. 알아도 몰라야 할 판국이다. 정확하지도 않은 것을 알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까딱하다간 이 마을 전체. 불바다 될 것은 안 봐도 보인다. “정말인가? 내가 이 곳의 사람들을 모두 죽여도 모르 겠는가?” 역시나 자신이 생각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자 긴장하는 촌장이다. “저, 정말입니다. 어찌 나으리 앞에서 그런 거짓을 나 부리겠습니까?” “흠…. 그래, 좋다. 네 말을 믿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이 마을에 새로 들어온 사내를 내 앞에 데 려와라.” “…….” 흠칫! 촌장은 이 사내가 모든 것을 알고 왔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 사내의 생각을 따라 갈 수 없음도 말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런 꼴이 되었음에도 이렇게 늦게 찾아 왔다는 뜻. 그만큼 신중을 기했다는 말과 동일했다. 물론, 그 속에는 이곳의 모든 상황을 알아봤다는 말 도 포함될 것이다. 촌장은 포기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말을 돌린다는 것은 죽겠다는 말 과 동일했으니 말이다. 저들이 이렇게 돌려서 온 것은 아마도 블루라는 사내 의 힘을 얻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만약…. 만약, 그 블루라는 사내의 입에서 그들이 원하는 답 이 나올진 미지수다.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피했던 것인데…. 그러나 이 정도라면 더 이상 피할 순 없었다. 그 블루라는 친구가 좋은 쪽으로 해결 할 수만 있기 를 바랄 뿐이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이곳에 없단 말인가? 세바스찬 2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자 촌장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것이 아닙니다. 잠시 외출을 나갔으니 저녁이 되 기 전엔 돌아 올 것입니다.” “그래?” “조금만 기다리시지요.” “큭큭. 기다리라고…. 그래 좋다. 열흘도 넘게 기다렸 다. 몇 시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나? 기다려주 지.” 촌장은 세바스찬 2세의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변 했다. 자신의 예상이 맞은 탓이다.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30 회] 날 짜 2004-12-12 조회 / 추천 1450 / 14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그래플 마스터로 이름을 떨치다 자신의 예상이 맞은 탓이다. 저렇게 심기가 깊은 사람은 어렵다. 촌장은 그것을 잘 알았다. 어떻게 그런 쓰레기 같은 영주 밑에서 이런 용이 난것인가…. ‘제발, 제발….’ 촌장은 무교였지만, 누군가를 향해 빌고 또 빌었 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들어왔다. “촌장어른 다녀왔습니다.” 사람들이 하나씩 들어오는 것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나하나 체크했다. 모두 알아보는 듯한 표정. 아마도 이곳에서 명훈과 어울리는 사람들의 특징까 지 완벽하게 외워 둔 듯 싶었다. 알면 알 수록 질리는 인간이다. 촌장은 진땀을 흘리며 침을 삼켰다. 그때 뮤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세바스찬 2세와 클 레인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촌장님 저희들은 왜 부르셨습니까?” 촌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뮤엘을 바라보았다. “난 아직….” 슬쩍 세바스찬 2세를 바라보는 촌장. 세바스찬 2세의 득의찬 표정에서 뭔가를 읽을수 있었다. ‘저자로군.’ 실제로 촌장의 예상과 같았다. 세바스찬은 이미 이곳에 오면서 수하들을 시켜 촌 장의 명이라며 이들을 부른 것이다. 정말 적으로서 최악의 상대였다. 이미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수를 두고 있었던 것이 다. 마치 촌장은 체스의 몇수를 앞서 예상하는 고수와 게임이라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촌장. “이분들이 자네들을 찾아뵙고 싶어하여 불렀다.” 촌장은 노련하게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아직 상황판단이 되지 못한 일행들. 로이가 물었다. “누구신데요?” 밖에서 오자마자 사람들의 말을 듣고 급하게 들어 온 탓이다. 다만 뮤엘은 밖의 마차와 문장을 보고 어느 정도 짐작했다. 명훈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눈빛을 빛내며 그들을 바 라봤다. 하지만, 뮤엘과는 달리 그런 것없이도 알 수 있었 다. 세바스찬 2세와 눈이 맞추치며 서로 알아본 탓이 다. 세바스찬 2세는 자료로, 명훈은 감으로…. “루이스 영지의 주인이신 세바스찬 남작 2세 시라 네.” “아…!” 촌장이 말한 뜻을 이해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 다. 드디어 올것이 왔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특히나 에그잔티아의 표정은 참담했다. 마치 울먹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에그잔티아의 마음을 이해하기라도 했 는지 세바스찬 2세가 친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아, 아가씨가 바로 아버지께서 목을 매던 에그 잔티아라는 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 과연, 아버지께 서 죽자 살자 할만 한 외모십니다. 첫눈에 바로 이 아가씨라다라는 감을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하하.” 너스레가 보통이 아니었다. 불안에 떨던 에그잔티아의 얼굴에 홍조가 앉을 정 도였으니 말이다. 명훈조차 혀를 찰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잘 흔들었 다. “아, 아녀요….” 에그잔티아는 손사래를 쳤지만, 내심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에그잔티아도 여자인 탓이다. 세상 어떤 여자가 자신을 예쁘다고 하는데 싫어하 겠는가? 특히나 잘생긴 외모에 호감어린 말투를 지닌 남자 를 말이다. 하지만, 그 기쁨조차 한 가운데 숨어있는 일말의 불안감마저 완전히 감추진 못했다. 그것마저 한마디의 말로 걱정을 덜어줬다. “아하하. 걱정 마세요. 오늘은 오히려 저희가 사과 를 하러 온 것이니 말입니다. 아버님의 일은 죄송하 게 됐습니다.” ~~~~~~~~~~~~~~~~~~~~~~~~~~~~~~~~~~~~~~~~~~~~ 다음 화로 넘어가주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31 회] 날 짜 2004-12-12 조회 / 추천 1430 / 1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그래플 마스터로 이름을 떨치다 세상에 이런 귀족이 있단 말인가?! 촌장과 명훈 빼고는 모두가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 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모두들 때가 덜 탄…. 어떻게 보면 너무나 순진한 것이다. 물론 좋게 말한다면 이라는 수식이 붙지만 말이다. “가, 감사합니다.” 에그잔티아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하하, 감사라뇨. 오히려 제가 부담되는 군요.” “흐흐흐….” 명훈이 음침하게 웃었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 다. 신경 쓰일 만큼 큰 웃음이 아닌 탓이다. 하지만, 신경이 곤두 서있는 촌장이나 세바스찬 2 세, 클레인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비웃음을. 물론 모두가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촌장은 그 웃음을 무시하는 비웃음으로 해석했다. 세바스찬 2세는 그것을 강자의 여유로 해석했다. 클레인은 그 웃음에서 거부할 수 없는 승부욕을 느 꼈다. “아, 오늘 이곳에 온 것은 겸사 겸사라 할 수 있지 요. 사과도 할 겸 누구도 만날 겸.” 세바스찬 2세의 말에 뮤엘이 물었다. “누구를 만나시려고….” “큭큭.” 명훈이 뮤엘의 말을 끊듯 가볍게 웃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 귀족들이 보여준 친절의 뜻을 말이다. 로이만 약간 분위기가 변했다고 생각 할 뿐 왜 그 러는지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한 표정이었다. 루티시아도 짐작하는 상황인데 말이다. 의외로 상당히 둔한 로이다. 그때 세바스찬 2세가 입을 열었다. “저희 아버지를 때려눕히신 블루라는 분과 이야기 를 나눠보고 싶군요.” 모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오해들은 마세요. 손해청구 따위를 할 생각은 없 으니까요.” 명훈은 약간 씁쓸해짐을 느꼈다. 저런 녀석들을 오히려 더 패줘야 한다는 것은 알았 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 그것이 불가능해진다는 것 또한 잘 알았다. 그래서 평소에 말 많을 것 같은 녀석들을 먼저 팬 것이다. 녀석들이 입을 열면 왠지 이야기를 들어야 하 것 같고, 듣다보면 녀석들 페이스에 휘말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이 장날인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편한 주먹 놔두고 복잡하고 머리 아픈 말로 승부를 봐야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나가지.” 명훈의 말에 촌장이 입을 열었다. “아니라네. 우리가 나가지. 이 안에서 이야기를 하 고 나오게나. 자리를 피해 주겠네.” 촌장의 눈짓을 읽은 일행들은 순식간에 자리를 빠 져나갔다. 뭔가 피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그들의 나서는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만들어 줬다. 사라지는 일행들을 보며 이죽거리는 미소를 머금은 명훈. 맞은편 자리에 의자를 빼곤 거칠게 앉았다. “뭐지? 할 이야기란 것이?” “당신의 본명을 알고 싶소.”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당황하진 않았지만, 그가 물 은 질문에 당황했다. “내 본명?” “그렇소.” “내 본명은 알아서 뭐에 쓰려고? 너희들 따위가 감 히 내 이름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명훈이 자신의 질문에 수긍하자 질문한 자신이 오 히려 놀란 세바스찬 2세다. 그러나 표정은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당신의 진정한 정체를 알고 싶소.” “진정한 정체?” 명훈은 피식 웃었다. 뭐, 숨긴 것이 있어야 정체를 밝히든 말든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다. 우선 좋은 감정도 있는 이들도 아니었고 말이다. “드래곤이다.” ~~~~~~~~~~~~~~~~~~~~~~~~~~~~~~~~~~~~~~~~~~ 다음 화로 넘어가주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32 회] 날 짜 2004-12-12 조회 / 추천 1475 / 33 선작수 474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8. 명훈, 그래플 마스터로 이름을 떨치다 “허억!” 마주 앉아 있던 둘이 경악스런 표정으로 명훈을 바 라봤다. 마치 눈알이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특히나 클레인은 전투의욕이 상실됨을 느꼈다. 오히려 명훈이 놀랄 지경이었다. 왠지 실수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장난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둘의 표정은 심 각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이 재미있다 생각한 명훈. 시침 뚝 때고 가만히 바라봤다. 그런 명훈의 모습은 그들의 오해를 더욱 부추겼다. ‘이런, 설마 내가 그 가정을 놓쳤다니…. 이 자가 다크 엘프의 숲에서 나왔다는 말을 넘겨들은 것이 실 수였군. 설마 그곳에서 살아 나왔다는 말이 진실일 줄이야…. 그런 존재라면 뻔하지 않은가? 드래곤….’ 이제야 모든 수수깨끼가 풀리는 세바스찬 2세였다. 자신과 클레인이 명훈을 그래플 마스터라고 오해 할만도 했다. 드래곤이라면 그 정도야 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바스찬 2세의 표정은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냉정함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라는 말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알긴 해도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건만…. 명훈은 그들의 표정을 즐겁게 감상했다. 그리고 세바스찬 2세라는 녀석을 보며 감탄했다. ‘어떻게 그런 변견에게서 호랑이새끼가….’ 자신이 알고 있던 그 늙은 영주와 지금 눈앞에 있 는 녀석이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명훈이다. ‘그래서 세상이 즐거울 지도. 후후.’ 그때 세바스찬 2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위대하신 존재시여.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이 까?” 조금 전까지의 이죽거림이나 건방짐은 눈 씻고 찾 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명훈은 그런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의 모습을 보 며 놀랐다. 그냥 입에서 튀어 나온 대로 지껄였을 뿐인데, 그 들의 모습은 경건하기 까지 하지 않은가? 그런 모습을 볼수록 명훈의 의문은 깊어졌다. ‘대체 드래곤이란 어떤 존재지? 마법이라는 것을 써서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고 몬스터로 변하기도하 며, 산을 날리고 대륙을 날린다는 존재? 도무지 믿겨 져야 말이지…. 그런데 저런 모습을 보면서 믿지 않 을 수도 없고….’ 정말 드래곤이 어떻게 생겼는지 만나보고 싶을 정 도였다. 로이가 바닥에 대충 그림을 그려준 것을 보며 명훈 이 입을 열지 않았던가? [“이게 뭐야?” “드래곤이요.” “그 드래곤이라는 것이 이따구로 생겼어?” “그렇다니까요!” 로이는 바락바락 우겨댔다. 명훈이 그것을 가만히 넘어 갈 리가 없었다. “이 자식아! 우선 한대 맞고 시작하자.” 퍽! “아야! 왜 때려요! 잘 가르쳐 줘도 뭐래….”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앵 앵거렸다. 다시 주먹을 조용히 들어 올리자 입을 다물었지 만…. “뭐? 잘 가르쳐줘? 애들이 발로 그려도 이것보단 잘 그리겠다.” “이거랑 정말 똑같이 생겼다니까요?!” 하지만, 로이는 의외로 오기가 있었다. “이게 그래도 바락바락 우겨?” “네! 그렇다구요!” 그 정도 한두 대는 우습다는 듯 다시 언성을 높였 다. 그래서 다시 한대 맞았다. 정확하게 조금 전의 맞았던 두배의 파워로 akfd다. 퍼억! “꾸엑!” 눈물을 찔끔 흘리는 로이. 원망과 분함이 얼굴에 가득 그려졌다. “정말 드래곤이라는 녀석이 이 도롱뇽 같이 생긴거 에 날개 달린게 확실해?!” 그제야 입을 다문 로이. 자신의 실력 때문에 생긴 오해임을 깨달은 탓이다. 하지만, 그림을 발로 쓱쓱 문대 지우기 전까지 투 덜거림은 계속 됐다. “그 정도면 잘 그렸지…. 췟. 췟….” “시끄러!”] 바로 몇 시간 전의 이야기였다. 여하튼 로이가 개갈안나게 그려준 그림만으로는 호 기심이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궁금증은 깊어졌다. “위대하신 분의 꿈을 방해 드려 죄송합니다. 저희 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순간 마치 똥 밟은 표정으로 변하는 세바스찬 2세. 이제 복수는커녕 이 마을을 향해 시선조차 돌리는 것이 불가능 해졌기 때문이다. 똥도 이런 개똥도 없었다. 특이 이렇게 질어서 신발에 눌어붙는 똥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표정도 고개를 드는 순간에는 이미 경견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지만 말이다. 자기 관리 하나는 철저한 녀석이었다. 갑자기 자신은 뭔지도 모르는 드래곤 놀이가 시시 해진 명훈. 세바스찬 2세의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물러나겠다고?” “어떤 보상을 원하시나이까?” 그러자 명훈이 입을 열었다. “보상 따위는 필요없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명훈의 시선이 클레인을 향해 돌아갔다. “네 옆에 있는 녀석이 몸이 근질거리는 모양인가 본데 나랑 한판 떠야겠다.” 그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는 세바스찬 2 세. 드래곤, 아니, 명훈을 바라보며 불가능 하다는 표 정을 지었다. 하지만, 명훈은 자신이 멋없이 내뱉은 말이 스스로 의 마음에 들었는지 씨익 웃었다. 그것을 보며 세바스찬 2세는 속으로 생각했다. ~~~~~~~~~~~~~~~~~~~~~~~~~~~~~~~~~~~~~~~~~~~~~~~~~~~ 에휴... 너무 피곤합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모두 좋은 꿈 꾸세요오~ 그럼 모두 좋은하루 되세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33 회] 날 짜 2004-12-12 조회 / 추천 6742 / 78 선작수 505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그래플 마스터로 이름을 떨치다 ‘젠장 할 도마뱀 녀석. 곱게 나올 때 곱게 가주면 어디가 덧나나…. 도마뱀 녀석이 쉽게 넘어갈 생각이 아닌가 보구나. 아마 최소 반병신을 만들겠지…. 그것 만은 피해야 한다. 클레인은 우리 영지의 기둥이다. 그런 기둥을 날로 먹으려 하다니. 그것만은 절대로 막아야 한다.’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세바스찬 2세다. 생각에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피해야 할 자리인 탓이다. 하지만 특별히 피할 수 있는 자리가 생각나지 않았 다. “그것만은…. 다른 방법으로 위대하신 존재의 노화 를 삭힐 수는 없겠습니까?” 클레인을 잃는다면 자신의 꿈에서 몇 걸음 뒤쳐지 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세바스찬 2세는 클레인을 아꼈다. 친구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능력을 누구보 다 아꼈다. 하지만 명훈은 그런 세바스찬 2세의 생각을 비웃 기라도 하는 듯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시끄럽다.” “죄송합니다.” 바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세바스찬 2세. “아, 알겠습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상태로 계속 심기를 건드렸다간 가볍게 자신의 영지를 날릴 분위기였다.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억울했다. 하필 성질이 엿 같은 드래곤을 건들다니…. 그것도 드래곤 중에서 가장 성질이 지랄 같다는 다 크 드래곤을 말이다. 명훈의 검은 머리색을 보고 지례 짐작하는 세바스 찬 2세였다.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세바스찬 2세를 보며 경 악어린 표정을 지었던 클레인. 하지만, 세바스찬 2세의 심정을 이해했다는 듯이 함께 고개를 끄더였다. 누구보다 세바스찬 2세를 잘 아는 자신이었기에 이해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뼈를 깎는 고통과도 다름없 었으리라. 클레인이 이를 악물었다. 명훈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꼴값들을 떠네.’ 저런 친우어린 모습을 보니 배알이 꼴리는 명훈이 었다. 과거 자신도 그랬던가 회상 해보았지만, 자신에겐 저런 친구가 없었다. 독불장군이었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었던 자신 이다. 물론 자신은 인정하지 않지만, 그 더러운 성질이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자신과 잘 어울린 친구 하나를 가까스로 발 견하고 환히 미소를 짓던 중 한숨을 내쉬며 곧 지워 버렸다. ‘장삼봉….’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무당파인지 무당벌레파인지…. 세상천지 태어나 그렇게 악날하고 비열한 녀석은 처음 봤다고 생각하는 명훈, 아니 검황이다. 과거 마음이 맞아 어울려 다니긴 했다. 그의 괴벽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탓이다. ~~~~~~~~~~~~~~~~~~~~~~~~~~~~~~~~~~~~~~~ 다음 화로 가주실거죠? (한석규 버젼) 다음 화로 가는 버튼을 누르고 싶지? 으음~ 본능에 충실해~(리마리오버젼)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34 회] 날 짜 2004-12-12 조회 / 추천 7650 / 157 선작수 505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명훈, 그래플 마스터로 이름을 떨치다 하지만, 몇 년 사귀다보니 알면 알수록 도무지 알 수 없는 녀석이었던 것이다. 그의 행동은 대충대충 되는 대로 사는 것 같아 보 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모두 계산된 행동이었다. 전 날은 무림의 고수를 한방에 때려눕히다가 다음 날은 동내 애들 사탕을 뺏어먹다 걸려 동내 건달들에 게 몰매를 맞기도 했다. 다 다음날은 목이 터져라 후학들에게 설교하며 정 작 자신은 자신이 했던 설교를 모두 어기며 노는 모 습까진 좋았다. 특히나 설교 중에 고량주 마시던 모습은 귀엽기 까 지 했으니 말이다. 친구니까 말이다. 그때 설교를 듣던 후학들이 진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웃었던가? 그런데 같이 어울렸던 장삼봉의 모습 하나하나에는 알게 모르게 자신을 끌어 들이는 것도 모자라, 비열 할 정도로 노골적인 암시가 숨어 있던 것을 차후에 알게 된 검황. 그게 화가 났다. 감히 검황 자신을 훈계 하려했던 점이 말이다. 한때 억울할 정도로 당했던 사연들. 단순히 친구의 괴벽으로 넘기며 웃어갔던 것들. 장삼봉의 잘못으로 마누라에게 구박받던 자신의 모 습. 그것이 모두 자신을 훈계하기 위한 장삼봉의 계획 된 연출이었다. 나중에 보복하기 위해 찾았건만 자신을 실컷 약 올 린 후 비웃듯 우화등선해버린 것이 아닌가! 우화등선한 그 자리에 놓인 두장의 편지. 하나는 무당파의 안녕을 기한 편지였고, 하나는 검 황 자신의 것이었는데…. [이보게, 나 먼저 가네. 세상에서 잘 놀다 오게나. 그리고 이곳으로 오기 전에 그 더러운 성격 좀 고치 게 껄껄~.] “이, 이런 우라질!” 무당산의 현현봉의 봉우리를 단칼에 날려 버린 것 은 바로 그 이유에서였다. 바로 분풀이 말이다. 검황은 친구의 본질을 잘 알지 못했다. 마음으로 느끼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사실을 말 이다. 검황에겐 친구란 훈계가 아닌 그냥 즐겁게 놀아 주 는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느끼던 감정도 가볍게 지웠던 검황. 아직도 친구의 정의를 그렇게 생각하니 무슨 뒷말 이 필요하겠는가! 훈계는 마누라만으로도 충분했던 검황인 탓이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며 씩씩거리던 명훈. 저런 친구를 둔 세바스찬 2세가 부러…, 아니, 친 구 따위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 마음에 안 들었다. 자신은 친구라고 ‘그따구’ 녀석밖에 없었는데 말이 다. ‘응? 뭐가 이상한데?’ 순간 자신의 생각에 오류를 발견한 명훈. 생각하다보니 자신이 장삼봉에게 화낼 이유가 없는 것 같다는 알 듯 모를 듯한 기분 탓이었다. 하나하나 따져보니 정말 최고의 친구가 아닌가?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로 깊게 파고들던 검 황. 하지만, 어느 순간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넘겼다. 언제 검황이 자신에게 진정한 친구가 있었다는 사 실을 알게 될지는 앞으로도 미지수였다. 여하튼 심술로 가득한 검황의 눈에 예뻐 보일 리가 없는 세바스찬 2세. 그래서 계속 노려봤다. 물론 세바스찬 2세는 어째서 자신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지 알 수 없었기에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따라 나와라.” 명훈은 마을 밖에 있는 공터로 자리를 옮겼다.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은 당연히 뒤를 따랐다. 다만 밖으로 나가자 뒤바뀐 분위기가 마을 사람들 과 세바스찬 2세를 따라온 기사들을 아리송하게 만들 었다. 한참 후 도착한 공터. 마을 사람들과 기사들은 아무런 제제가 없자 그들 의 뒤를 따랐다. 곧 서로 마주보는 형태가 되는 것을 의아한 표정으 로 바라보던 주민들과 호위기사들.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반면에 명훈은 건들거리는 포즈로 피식거리며 그들 을 내려봤다. 하지만, 그런 어설픈 겉모습과 다르게 명훈의 속마 음. 신중하고 진중한 모습으로 그들을 주시했다. 싸움이 시작 되려 하자 클레인은 자신의 창백한 안 색을 가다듬고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던 것이다. 순간 분위기가 틀려진 클레인. ‘오호….’ 지금까지 자신이 봐왔던 어중이떠중이는 결코 아니 었다. 분위기와 녀석의 기세를 봐서 제대로 된 검술을 익 힌 무사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제대로 해줘야겠군.’ 오랜 만에 개싸움이 아닌 정식 대결을 한다 생각하 니 가슴이 뛰는 검황이다. 하지만 하수에게까지 본신의 실력을 과시 할 수는 없는 법. 어느 정도 양보를 생각하며 두 주먹을 가볍게 움켜 쥐는 검황의 모습. 순간 엄청난 기세가 검황의 몸에서 품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처음으로 진지한 모습을 보이는 명훈인듯 싶네요 ㅡㅡ;;; 그러고 보니 처음 부터 지금까지 폼나는 싸움은 없고 거의 개싸움만 있었던 것 같다는... 쿨럭... ㅡㅡ;;; 곧 다음 글을 올리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35 회] 날 짜 2004-12-12 조회 / 추천 5484 / 88 선작수 505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9. 명훈, 검을 쥐다 9. 명훈, 검을 쥐다 “으으윽!” 이곳 공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짧은 비명을 지으며 오한에 떨었다. 그것은 클레인이나 세바스찬 2세도 마찬가지. 평범하기 그지없던 명훈을 보며 짧은 순간이나마 ‘설 마’하고 생각했던 세바스찬 2세. 하지만, 갑작스럽게 변한 엄청난 기세에 무릎이 후들 거렸다. 약간의 의심조차 사라지는 순간이다. ‘여, 역시 드래곤인가….’ 절망이다. 설마가 사실로 들어나는 순간 절망은 극대화 됐다. 그때 클레인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을 본 명훈의 입 이 움직였다. “아, 내가 너무 흥분했나? 미안하군.” 순식간에 줄어드는 기운. 어느 정도 긴장을 완화 할 수 있게 된 클레인.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조금 전 그 충격이 적지 않다. 클레인은 자신의 검을 꼬나 쥐고는 있지만, 검은 잡 았다는 감각조차 들지 않았다. 지금 들고 있는 것조차 본능일 뿐이다. 그 기세를 접하는 순간 검을 놓치지 않을 것만 해도 칭찬받아 마땅했다. 수많은 접전 속에 얻은 살기와 또 다른 기세. 그것은 견딘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명훈은 일부러 클레인의 자질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 러 기세를 뿌린 것이다. 기세를 뿌리는 것. 자신의 후학들도 전투의 감을 키워주기 위해 사용하 던 방법이다. 검을 움켜쥐고 있으면 합격이고, 놓치거나 주저앉으 면 처음부터 기초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런 점을 생각 할 때 클레인은 합격이다. 명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검을 제대로 배웠군.’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명훈이 양팔을 뻗으며 자세를 낮췄다. 검술의 하단세와 같은 포즈였다. 문제는 명훈의 손에 검이 들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검을 한번이라도 들어봤던 사람들이라면 무슨 생각인 지 모르겠다는 듯 명훈을 바라보기에 충분했다. 주먹은 쥔 것도 계란을 쥔 것처럼 가벼운 모습이다. 하나하나 트집을 잡다가 전체적인 모습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마치 검을 쥐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던 것이다. ‘뭐, 뭐지?’ 자신의 눈을 수십 번 비비며 다시 확인해보았지만,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환상도 아니었다. 정말 그의 손에는 잘 벼려진 검이 한 자루 서있는 것 이 보였다. ‘말도 안돼.’ ‘대체 어떤 사기를 치고 있는 거야?!’ 이것이 심검의 초입인 무형검강의 한 부분임을 아는 사람은 이들 중 아무도 없었다. 검을 들지 않은 검사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을 테 니 말이다. 명훈이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내력이 충분하지 못하더라도 깨달음을 넘어선 검황. 어느 정도의 실력을 발휘하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내가 자네에게 선수를 양보하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입술을 질끈 깨문 클레인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파바밧! 달림과 동시에 검 날에 새겨지는 검사. 검사 몇 가닥이 바람에 휘날리듯 현모한 움직임으로 흔들렸다. 전신의 내력을 끌어 쓰고 있단 말과 동일했다. ‘저 녀석이 아무리 드래곤이라 해도 지금은 폴리모프 한 인간형태이다. 인간으로 변해 있을 때는 완벽한 인 간이 되기 때문에 약점도 인간과 동일하다. 이렇게 방 심하고 있을 때 끝내야 한다. 나에겐 한번의 기회뿐이 다.’ 명훈의 앞에 득달같이 날아온 클레인. 피슁! 눈에 보이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팟! 명훈의 몸이 배인 것이 보였다. ‘돼, 됐다!’ 순간의 환희. 문제는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허, 허상? 서, 설마!’ “후후후후. 좋아. 아주 좋아.” 흠칫! 그와 동시에 등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 아니, 바로 귀 옆이다. 순식간에 몸을 틀어 반대편으로 피했다. 맞은편에 서서 웃고 있는 명훈의 모습. 클레인은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듯한 표정이다. 그것은 클레인 뿐만 아니었다. 세바스찬 2세의 표정은 경악이다. 인간의 움직임이라 할 수 없었다. 분명 검에 배어지는 것을 확인 했건만, 그것이 잔상 이라니….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였단 말인가! 설마 그세 순간이동을 했다는 말인가! ‘그래, 용언이라면 가능 한 것일 수도….’ 세바스찬 2세가 침착하기 시작하자 클레인도 같은 생 각을 했는지 호흡을 가다 듬었다. 그러나 클레인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회심의 일격이 농락당한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 ㅡㅡ;;; 어련히 알아서 검을 쥐려구요... 쿨럭... 이제 다섯편만 더 올리면 2권이 끝나는 군요.. 휴... 하지만, 3권 원고도 독촉하실 줄을 ㅡㅡ;;;; 책도 안나왔건만... 쿨럭... 3권도 지금처럼 달려야 할 것 같네요ㅡㅡ;; 아낌없는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36 회] 날 짜 2004-12-13 조회 / 추천 5400 / 73 선작수 505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9. 명훈, 검을 쥐다 회심의 일격이 농락당한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침울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더라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야 한다. 쓸데없이 어설프게 상처를 입혀서 분노하게 되면 자 신들의 영지가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을 쥐고 다시 기운을 몰아넣었다. 처음과 같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검사들. 명훈은 그런 모습을 보며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 었다. 신이 났다. 현세에서는 이렇게 검을 들 줄 아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독사라 불리는 마음에 드는 녀석 하나 빼고는 말이 다. 그러다 보니 검이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이런 녀석들이 많이 있다면 얼마 지 나지 않아 검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흥이 절로 일었다. 상대가 될만한 녀석의 등장은 명훈의 가슴을 다시 뜨 겁게 타오르도록 해줬다. “다시 와라.” 명훈의 한마디. 빠득. 클레인이 다시 검을 꼬나 쥐고 달려들었다. 횡으로 내리 긋자 살짝 몸을 틀며 가볍게 피하는 명 훈. 클레인은 약이 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그가 드래곤임을 잊고 폭풍 같은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명훈은 환하게 웃으며 검을 피했다. 특히나 명훈의 손동작.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미세하게 움직이는 데, 그것이 검으로 검의 힘을 흘리는 동작임을 아는 사 람은 없었다. 명훈은 나름대로 이곳의 검술을 견식 하는 셈이었다. ‘체계적으로 배운 것 같지만, 뿌리가 없군. 굳은 심지 가 보이지 않아. 힘으로 밀어 붙이며 자연스럽게 이곳 의 풍족한 기가 흡수가 된 모습이야. 그렇지 않다면 이 런 실력으로 검사의 경지에 오를 순 없지. 그래도 상당 한 노력을 했군. 이것은 실전 검술이라고 볼 수 있겠 어.’ 그때, 명훈의 팔을 노리고 날아오는 검. 명훈은 날아오던 검의 옆면을 가볍게 두드려줬다. 텅! 챙! “끄허헉!” 엄청난 충격!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두 바퀴나 몸을 돌리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바닥에 나자빠지는 참상은 모면할 수 있었다. 클레인은 이 믿어지지 않는 상황을 꿈이라고 생각할 정도에 이르렀다. 아니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어떻게 날아가는 검의 옆면을 손가락으로 튕길 수 있 단 말인가. 그것도 모자라 이 어마어마한 충격은 무엇인가? 팔이 쩌릿쩌릿 울렸다. 마치 쥐라도 난 것처럼 말이다. 근육이 놀랐는지 꿈틀거리며 경련이 일어났다. “마, 말도 안돼.” “큭큭. 왜 말이 안돼?” 클레인이 충혈된 눈으로 명훈을 바라봤다. 거대한 산이 눈앞에 들어왔다. 한 눈에 다 담을 수 없는 거대한 태산이 말이다.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검의 면을 쳤으며, 이렇게 큰 충격을….” 혼잣말과 비슷한 클레인. 자신의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은 것 같았다. 하지만 명훈은 그런 클레인에게 대답해줬다. “모든 물체에는 혈(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생물만이 아닌 무생물까지 하나 못해 돌이나 흐르는 물 조차 혈이 존재 한다. 혈이란 하나의 점과 같은 것이다. 내 경지에 이르면 그 혈을 보고 점할 수 있게 된다.” “혈? 혈이라고?”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클레인은 명훈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를 결 코 허사로 듣지 않았다. 몇 번이고 되뇌면서 외울 정도였다. 명훈의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진중함을 읽은 탓이다. ~~~~~~~~~~~~~~~~~~~~~~~~~~~~~~~~~~~~~~~~~~~~~ 곧 올리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37 회] 날 짜 2004-12-13 조회 / 추천 5123 / 68 선작수 505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9. 명훈, 검을 쥐다 “그렇다. 혈이다. 인간의 몸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혈이 존재한다.” “혈이 무엇이오?” 명훈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클레인이 마음에 들 었다. 사내라면 저 정도 담력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혈이 무엇이냐고? 혈이란 생명의 근원이다.” “생명의 근원?” “내가 물의 혈을 짚어서 흐름을 막는다는 것을 믿겠 는가?” “말도 안되오. 당연히 불가능 하오. 하지만….” “하지만?” “…당신이라면 가능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오.” “큭큭큭.” 명훈은 정말 클레인이 마음에 들었다. 클레인이 예뻐 보이자 세바스찬 2세마저 덩달아 예뻐 보였다. “그래. 혈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명훈의 발이 바닥의 한 부분을 밟았다. 터엉! 콰과과과광! 순간 명훈의 발이 디뎌진 부분을 중심으로 거대한 진 동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허억! 크흐흑!” 땅이 흔들리자 사람들은 지진이 일어났다 생각하며 경악했다.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미 마나를 받아 들여 오감이 민감해진 기사들과 세 바스찬 2세는 멀리서 명훈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 었다. 그와 동시에 일어난 현상. 이것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 다. 어디서부터 어디가 거짓이고 사실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가까스로 땅의 진동이 멈췄다. 터질 듯 뛰는 심장을 주체 할 수 없었다. 드래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뜩 드는 세바스 찬 2세. ‘하지만, 드래곤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세바스찬 2세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생물이 드래곤 외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떤 드래곤도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듣지 못했다. 마법이 아닌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이들. 공포는 서서히 경의와 존경으로 변하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 충격을 받은 클레인.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명훈은 바닥에 주저앉은 클레인을 바라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혈이다.” “흐음….” 침음성을 흘리는 클레인. 자신이 바닥에 자빠져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듯 했다. 하지만 곧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움켜잡았다. “이것이 마법이 아니라 단정 할 수 있는 것이오?” “큭큭. 마법?” 명훈의 웃음에서 뭔가 이질 적인 것을 느낀 클레인. 마치 마법이라는 말 자체를 비웃는 듯한 기분이 들었 다. 사실 마법이 뭔지 잘 모르는 명훈이었기에 가능 한 일이었다. 만일 마법을 한번이라도 봤다면 이렇게 비웃지는 못 했을 지도 몰랐다.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검을 수련하여 자연을 깨 닫게 되면 누구나 사용 할 수 있는 것이지.” “누구나? 그렇다면 나도 그것을 배워서 사용할 수 있 단 말이요?!” 그것은 질문을 던지지 않았지, 저편에서 명훈과 클레 인의 대화를 듣고 있는 모두의 심정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친 듯 펄떡이기 시작했 다. 명훈은 그의 한마디에 차가운 시선으로 클레인의 몸 을 훑었다. 그리고는 곧 웃음을 터트렸다. “맞다. 누구나 사용 할 수 있지.” “오오!” “하지만, 착각하지마라. 그렇다고 아무나 사용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순간 클레인과 세바스찬 2세는 뭔가 깨달았다. 그 말 속에 고차원적인 무리(武理)가 숨어 있다는 것 을 말이다. 자신들이 사용 할 수 있는 것은 가능성일 뿐이지, 결 코 죽기 전에 사용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른 다는 말이었 다. 엄청난 경지의 한부분임을 깨달은 그들. 크다 생각했던 산 저 뒤쪽에 거대한 산맥을 숨기고 있었음을 클레인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더욱 거대한 것을 숨기고 있었다. “위대한 존재. 당신의 말을 가슴에 묻겠소.” “내가 자네를 땅에 묻을 텐데?” “그래도 좋소. 나로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으니 말 이오. 지금 상태라면 죽어도 좋소. 이런 큰 것을 받았으 니 그 정도의 대가는 당연한 것이겠지…. 하지만,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오!” “그래, 어서 와라.” 명훈은 이 녀석의 성정(性情)이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이야앗!” 처음으로 기합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부우웅! 명훈은 그의 검이 자신을 맞출 수 없음을 알면서도 결코 기운을 굽히지 않았음을 느꼈다. 이 녀석은 정말 물건이었다. 이제는 휘둘어지는 검에서 평온함 마저 읽을 수 있었 다. 깨달음의 기쁨이 그를 죽음의 공포에서 초탈하게 해 준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무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란 뜻과 동일했다. 명훈은 이제 슬슬 이 즐거움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했 다. 클레인이 검을 휘두르며 생긴 거대한 틈 사이로 권풍 을 날렸다. 추우웅! 펑! “커허헉!” 클레인의 신형이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아니었다. 고개를 숙여 가슴팍을 내려보니 자신의 갑옷에 살짝 흠이 생긴 것 이상은 없었다. 어째서인지 명훈은 적당히 힘을 조절하여 뒤로 물러 나게만 한 것 같았다. 클레인이 곧 시선을 들어 명훈을 봤다. 명훈은 클레인이 지켜보길 기다리는 듯한 모습으로 씨익 웃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명훈의 웃음. 클레인의 두근거림이 멈췄다. 오히려 죽음을 목전에 두자 편안해 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클레인. “잘 봐라. 내가 너에게 주는 두 번째 선물이다.” “선물?” “눈을 때지 말아라!” 명훈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쥐었다. 순간 바람이 일었다. 그것은 곧 폭풍이 되는 듯 휘몰아 쳤다. 바로 명훈의 두 손 위에서 말이다. 마치 한 자루의 검이라도 된 듯…. “뭐, 뭐지?!” 당혹하기 시작한 클레인. 바로 그때 명훈의 호통이 들려왔다. “눈을 때지 마라!” ~~~~~~~~~~~~~~~~~~~~~~~~~~~~~~~~~~~~~~~~ 휴... 어서 다음 편을 쓰러 저는......(풀썩...)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38 회] 날 짜 2004-12-13 조회 / 추천 5078 / 92 선작수 505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9. 명훈, 검을 쥐다 그 한마디에 정신을 차린 클레인. 그와 동시에 자신은 거대한 폭풍이 자신을 향해 휘몰 아치며 날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휘이이잉! 퍼펑! 카가가강! “으아아아악!” 클레인은 비명과 함께 허공을 날았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는 클레인의 갑옷이 폭발했다. 명훈의 파괴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진 것이다. 잘게 부서진 갑옷이 이곳저곳으로 비산했다. 결국 바닥에 널브러진 클레인. 어디선가 나타난 명훈이 그 클레인을 향해 한걸음씩 옮겼다. 그리고 신음하는 클레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봤는가?” “…크흑.”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말조차 꺼낼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눈동자는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감히 넘보지 못한 몇 단계 위의 경지를 약간이나마 훔쳐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군.”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는 클레인. 하지만, 손가락하나 꿈쩍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무 리를 한 탓일까? 입에서 끔찍한 고통어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태연하게 바라보면 명훈. “죽지는 않을 것이다. 쉬어라.” 클레인은 명훈을 보며 감동어린 눈빛으로 인사를 하 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명훈은 그런 클레인에게 등을 돌리며 세바스찬 2세에 게 시선을 보냈다. “데려가라.” 기사들은 명훈의 엄청난 능력을 본 후였기에 세바스 찬 2세의 허락이 없음에도 움직여서 쓰러진 클레인을 부축했다. 하지만, 세바스찬 2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검을 든 자라면 강한 자의 밑에 무릎을 꿇는 것을 부 끄러워 할 수 없다. 살기위해 꿇는 것은 죽어 마땅하나 마음으로 꿇는 것 은 이야기가 달랐다. 세바스찬 2세, 자신이 보기에도 명훈은 적아를 넘어 서서 존경받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그는 드래곤이기 앞서 엄청난 검사(劍士)였기 때문이 다. 감히 자신들이 넘보지 못할 경지의 검사. 그때 명훈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호의 어린 말투가 아닌 위협적인 말투. 세바스찬 2세는 그 싸늘한 목소리를 듣고 흠칫 떨 정 도였다. “돌아가라.” “…알겠습니다. 약조하건데 두 번 다시 이곳을 넘보 지 않겠습니다. 오늘 배 풀어 주신 호의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깍듯한 인사. 명훈은 그런 세바스찬 2세의 당찬 모습을 내려보며 웃었다. “후후, 호의라고?” “그, 그럼?” 뭔가 이질 적인 분위기를 느낀 세바스찬 2세와 기사 들. “내가 주는 것이 호의가 될지 화가 될지는 곧 네 놈 들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명훈은 피식 웃었다.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나를 막아라. 내가 찾아 가는 날이 너희 들 영지의 최후가 될 수도 있다.” 흠칫! 지금까지 좋게 흘러가던 분위기가 갑자기 최악의 상 황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세바스찬 2세는 돌아 버릴 것 만 같았다. 갑자기 저 드래곤이 미쳤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 다. 역시 드래곤의 뭐 같은 성격. 자신이 이해하려 했다니…. 세바스찬 2세는 가슴이 답답하게 메어 오는 것을 느 낄 수 있었다. ~~~~~~~~~~~~~~~~~~~~~~~~~~~~~~~~~~~~~~~~~~~ 이제 새벽 4시에 올릴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잠시 잠수합니다. 새벽 4시에 다음 글로 찾아 오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39 회] 날 짜 2004-12-13 조회 / 추천 4657 / 55 선작수 505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9. 명훈, 검을 쥐다 역시 드래곤의 뭐 같은 성격. 자신이 이해하려 했다니…. 세바스찬 2세는 가슴이 답답하게 메어 오는 것을 느 낄 수 있었다. “어서 꺼져라.” 비웃음이 가득한 한마디. 하지만 그것을 느낄 세도 없이 자리를 황급하게 피했 다. 세바스찬 2세의 머릿속에는 온통 병사들을 소집하는 것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 드래곤을 자신의 영지로 들이지 못하게 막기 위해 말이다. ‘제길….’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기절하고 있는 클레인 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은 어째서인지 부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세바스찬 2세 조차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명훈이 발걸음을 돌려 마을 사람들 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말조차 못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드래곤 어쩌고 한 것을 들은 탓이다. 명훈은 불안한 모습으로 자신을 보는 마을사람들의 시선을 쓰게 받아 들였다. 이런 상황을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순간에 이 상황이 역전 됐다. 뮤엘과 로이, 그리고 에그잔티아와 루티시아의 환호 성 때문이었다. “와아아! 형님 멋져요!” “휘이익! 멋지십니다요!” “대단해! 블루. 블루가 드래곤이야? 정말? 그럼 날수 도 있어?!” 루티시아의 깜찍한 한마디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 다. 그때 마을 사람중 한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래, 드래곤이면 어때! 우리를 도와주신 분인데! 몇 번이나 목숨을 건져주신 분인데 마왕이면 또 어떻겠 어!” “우와아아!” “맞아! 최고다! 와아아아!” 갑자기 사람들의 함성이 이곳 공터를 쩌렁쩌렁 울리 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루티시아가 명훈에게 덥썩 달라붙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한 채 말이다. 루티시아가 결국 작은 입술을 열었다. “블루. 날아봐. 어서. 날아봐아~.” 모두가 벙진 표정으로 한참동안 루티시아의 그 모습 을 주시했다. “날아봐. 어서어~. 드래곤은 날 수 있잖아아~. 날아 봐. 훠이 훠이~.” 순간 폭소가 터져나왔다. “푸하하하하하!” “최, 최고다! 루티시아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다. 푸하 하하!” 루티시아는 왜 사람들이 웃는지 알지도 못한 체 팔을 뻗어 V자를 그렸다. 에그잔티아만 부끄러운지 붉어진 얼굴을 숨기지 못한 체 울 듯한 표정으로 루티시아를 바라봤다. 명훈역시 크게 웃었다. 그날 저녁은 마을의 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떠들썩한 밤이 됐다. 그리고 그 후로 매년 그 날이 오면 명훈의 일화를 이 야기하며 술을 마시며 기념하게 됐다. “일어나셨나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똑똑. “흐음…. 으윽.” 문 두들기는 소리에 잠에서 깨자 끔찍한 두통이 밀려 왔다. 숙취였다. 전날 상당히 과음한 탓이다. 이곳은 술은 상당히 독했는데, 맛도 좋았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건네는 술 멋모르고 주는 대로 받아 마시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들어갈게요. 아, 일어나 계셨군요?” “물, 물….” 문을 두드린 사람은 에그잔티아였다. 어제 너무 과하게 마신 것 같다는 생각에 걱정되어 온 것이다. 오자마자 물을 찾는 명훈의 모습을 보고 탁자위에 올 려져 있는 주전자를 기울여 물을 따라 줬다. 벌컥벌컥. “휴…, 살 것 같군.” 명훈의 모습을 보며 살포시 미소를 짓는 에그잔티아. 보는 즉시 한번 꽉 안아주지 않고는 못 배길 매력적 인 미소였다. “어때요? 좀 괜찮아요?” “아, 에그잔티아 양.” “편하게 에그라고 부르세요. 저를 아는 모든 분들은 절 그렇게 부르거든요.” “에그?” “애칭이예요.” 명훈이 편하게 웃었다. “하하. 에그라. 참 걸작이네요. 하긴 달걀처럼 귀엽긴 해요.” 순간 에그잔티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자, 장난치지 마세요.” “알았어요. 알았어. 후후후….” 한참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던 두 사람. 명훈이 아차 하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쩐 일로….” “아, 깜빡했네요. 후후. 식사하시라고요. 촌장님께서 식사하러 내려오시라고 부르세요.” “아! 알겠어요. 곧 내려가죠. 에그잔티아, 아니, 에그 양은 먼저 내려가 있으세요. 저는 잠시 옷 좀 갈아입 고….” ~~~~~~~~~~~~~~~~~~~~~~~~~~~~~~~~~~~~~~~~~~~~~~ 어서 담푠으로 고고~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40 회] 날 짜 2004-12-13 조회 / 추천 4660 / 68 선작수 505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9. 명훈, 검을 쥐다 에그잔티아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명훈이 옷을 갈아입는다고 해서인지, 애칭을 불러서 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마도 둘 모두가 아닐까 싶다. 명훈은 그런 에그잔티아를 보며 피식 웃었다. 현민이와 같은 외모이면서 전혀 상반되는 성격. 어쩐지 우습다는 느낌과 귀엽다는 느낌을 동시에 받 았다. “쩝. 모르겠다. 밥이나 먹으러 내려가자.” 식탁에는 명훈 빼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앉아 있었 다. 명훈 자신과 같이 속이 쓰린 듯한 표정을 지은 체 앉 아 있는 뮤엘과 로이에게 큰 동질감을 느꼈다. 다들 자신과 같이 죽어라 술을 목뒤로 퍼 넣었던 동 지들이었기 때문이다. “어, 형님. 잘 주무셨어요?” “그래. 잘 들 잤냐? 촌장님 잘 주무셨나요?” “어서 오시게.” 다들 정감어린 인사를 하며 서로를 반겼다. 촌장은 모두의 얼굴을 보더니 웃음을 머금은 상태로 한마디 던졌다. “후후, 다들 마실 만큼 마셨나 보군. 얼굴들이 다들 반쪽이야.” 그러자 뮤엘이 변명했다. “그, 그게. 형님이 마시다보니 나도 엉겹결에….” “저, 저도….” 로이마저 가세하고 나섰다. 하지만, 명훈도 할말은 있었다. “뮤엘이 자꾸 마시라고 권해서 저도 모르게….” “큭큭큭. 알았네. 누가 마시는 것 가지고 뭐라고 했 나? 그냥 적당히들 마시란 말이지. …하긴, 지금 아니면 언제 그렇게 마시겠나. 젊을 때 즐겨야지.” 촌장의 걱정 어린 덕담 한마디에 분위기는 훈훈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이야기 거리가 떨어지자 서먹해졌다. 바로 명훈의 정체 때문이었다. 그것을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 아 니었다. 명훈역시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입을 열지 않았다. 사실, 숨기고 지지고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뭐 할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그것은 명훈의 생각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단 말이다. 그때 모두의 가려운 부분은 루티시아가 긁어줬다. “블루~. 블루우~.” “응?” 명훈이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먼저 나온 스프를 들 이키듯 마시고 있을 때 루티시아가 자신을 불렀다. 루티시아는 자신에게 반응을 보이자 기쁜 듯 헤헤 웃 어보였다. “블루, 있잖아. 정말 드래곤이야?” “으르렁~ 그렇다아~.” “꺄아~. 무셔~.” 명훈의 장난에 루티시아는 자신의 작은 얼굴을 더 작 은 손바닥으로 가렸다. 정말 무섭다는 모습은 아니었다. 잠시 조용하자 히히덕거리며 다시 명훈을 봤고, 눈이 마주치면 명훈은 다시 으르렁거리기를 반복하며 놀았기 때문이다. 몇 번 그렇게 놀자 촌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정말 묻고 싶네.” “물어보십쇼.” “드래곤이 정말 아닌가?” 명훈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그러나 곧 웃음을 멈추고 되려 질문을 던졌다. “제가 드래곤으로 보이십니까?” 촌장과 일행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드래곤이 아닙니다. 드래곤이 어떻 게 생겼는지도 모르지요.” “허허….” 너털웃음을 흘리는 촌장. 하지만, 그 속에는 큰 기쁨이 있었다. 명훈의 진심어린 목소리가 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왠지 모를 안도감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 더 이상 묻지 않겠네. 여하튼 고맙구먼.” 명훈의 끄덕임으로 모두들 조용한 분위기로 식사를 시작했다. 클레인이 정신을 차린 것은 쓰러지고 이틀이 지난 후 였다. “크으으윽.” “이제 정신이 드는가?” 세바스찬 2세는 반가운 얼굴로 클레인을 맞았다. 클레인은 그런 세바스찬 2세를 보며 신음어린 목소리 로 질문을 던졌다. “…내가, 내가 쓰러진지 얼마나 됐는가?” “오늘로 이틀이 지났네.” “그, 그렇군…. 크으윽.” 클레인은 대답과 동시에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그것을 보고 놀란 세바스찬 2세는 그의 몸을 다시 눕 혔다. “조금 눕게. 무리해서 일어날 필요 없네.” “…….” 세바스찬 2세가 힘줘 누르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 시 눕는 클레인. 클레인은 잠시 무슨 생각을 하다 슬쩍 눈을 감았다. 꿈속에서 보고 또 봤던 그 마지막 한수. 명훈이 선물이라며 보여줬던 그 한수가 다시 그려졌 다. “크윽!” 순간 고통이 밀려오는 클레인. 상상한 것만으로도 받았던 충격이 그대로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 드래곤이 손속은 낮추지 않았다면 자신의 몸은 그 폭풍 같은 검술에 휘말려 부서진 갑옷처럼 되었을 것이 었다. 아니,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클래인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괜찮은가 자네?” “괘, 괜찮네. 아, 아무것도 아닐세.” “그래도 조심하게. 아직 상처들이 아물지 않았네. 신 전에서 성직자를 불러와서 곧바로 치료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죽었을 걸세.” 세바스찬 2세의 걱정어린 목소리. 하지만 클레인은 전혀 다른 소릴 했다. “아니, 안 죽었을 걸세.” “응? 그게 무슨 소린가?” “후후, 아니네….” 클레인의 머릿속에 메아리가 울리듯 마지막 한마디가 울려퍼졌다. [죽지는 않을 것이다. 쉬어라.] 그 한마디. 그가 죽지 않는다고 했으니 자신은 안 죽었을 것이 다. 정말 그렇게 믿어졌다. 그의 목소리 하나에 확고한 믿음이 가슴에 새겨졌다. 이미 그의 존재가 자신의 전부가 되어 버린 것만 같 은 클레인 이었다. 그러한 클레인의 모습을 보고 세바스찬 2세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 시간이 촉박해서 먼저 올립니다.ㅡㅡ;; 약속한 시간도 있고... 한편 더 써야 했는데, 개으름 떨다보니 늦어졌네요..(열심히 하긴 했습니다만..퍽!) 30분 안에 한편 더 올리겠습니다. 조금 늦어져도 욕하진 마세용 홍홍홍~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41 회] 날 짜 2004-12-13 조회 / 추천 4848 / 110 선작수 505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9. 명훈, 검을 쥐다 그러한 클레인의 모습을 보고 세바스찬 2세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클레인의 표정을 통해 마음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입장이 달랐다. 자신은 그 드래곤을 막아야 했다. 영지를 지키기 위해 말이다. 영지민들을 지키기 위해 말이다. 자신도 클레인과 같은 입장과 위치였다면 마음 편하 게 그자의 뒤를 따르고 싶었을 것이다. 세바스찬 2세. 자신도 검사였다. 자신의 검을 들고 있는 소드마스터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영주라는 점이다. 아직 자리를 정식으로 물려받지는 않았다. 허나, 이미 정신이 나간 아버지대신 모두가 자신을 영주라 불렀다. 늙은 영주는 명훈에게 맞은 후로 정신이 나갔던 것이 다. 횡설수설하며 보여주는 미친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 만, 불쌍하게 보이지만도 않았다. 충분히 누릴 홍복을 다 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자신은 영주의 입장. 영지민들을 책임져야 했다. 결코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말이다. 그게 영주가 해야 할 책임인 것이다. 무능력하게 자신의 영지민들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들 은 영주가 아니라고 생각하던 세바스찬 2세다. 자신의 아버지 같은 사람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이기 때문에 용서를 했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결코 자신의 아버지를 진정한 영주라고 생각 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괜히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세바스찬 2세. 어째서인지 억울했다. 지금까지 만족해 오던 생활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족 쇄로 느껴지기 시작한 탓이다. 하지만 그것을 벗어 던질 생각은 없다.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족쇄든 뭐든 모두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것은 자신이 해결하지 않거나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세바스찬 2세의 신념이었다. 그때 세바스찬 2세는 흠칫 놀란다. 자신의 어깨에 누구가의 강직한 손아귀 힘이 느껴진 탓이다. 너무도 친숙한 손. 바로 고통을 자리에서 이기고 일어난 클레인의 손이 었다. “크, 클레인….” “아직도 어리군. 하나도 안 컸어.” “클레인….” “훗. 내가 언제 네 곁은 떠나기라도 한다고 했어? 난 언제나 어디까지나 네 편이야. 설령 신이 적이라 할지 라도 말이야.” 순간 가슴이 뭉클하며 눈가에 눈물이 자리 잡기 시작 한 세바스찬 2세. 자신은 너무 몰랐다. 자신의 친구를 말이다. 그리고 자신도 말이다. “고, 고맙네. 자네….” “훗. 누가 나한테 그랬었지? 친구에겐 고맙다는 말이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말일세.” 순간 다시 가슴이 메어오는 세바스찬 2세. 20여 년 전. 클레인의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져 있는 것을 자신이 발견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털어 그녀의 병을 치료해 준 적이 있었다. 클레인은 울며불며 고맙다고 말을 했지만, 세바스찬 2세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했던 말이 바로 그거였다. 클레인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 일을 말이다. 자신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일을 말이다. “으흑….”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막지 않았다. 사실은 막지 못했다. 너무나 빠르게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성이 막지 못 한 탓이다. 클레인이 그런 세바스찬 2세의 손을 잡아줬다. 거친 손이다. 굳은살이 박이고, 이곳저곳에 남아 있는 흉터. 험한 손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 어떤 것보다 자신에게 위안이 되고 믿음이 됐다. 무엇보다 듬직했다. “울지 마라. 이렇게 쉽게 눈물을 보이는 녀석을 난 친구로 삼은 기억이 없다.” “크흐흑….” “…….” 클레인의 강한 눈빛은 자신의 친구 세바스찬 2세의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주는 진정한 친구. 그가 바로 세바스찬 2세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그 일이 있기 전에도 몇 번 어울렸지만, 그 일이 있고 난 후로 한시코 떨러진 적이 없었다. 세바스찬 2세가 철이 들고 귀족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면서부터 자신과 멀어지자 자신이 다가서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밤 낯으로 검술을 연마했다. 기사가 되면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세바스찬 2세가 없는 자신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역시나 자신이 없는 세바스찬 2세를 생각해 본적 없 었다. 둘은 항상 함께였다. 앞으로도 함께일 것이다. “이 영지를 우리 둘이 함께 지키자. 나에게 짐을 덜 어도 좋다. 이곳은 결코 너 혼자만의 영지가 아니니 말 이다. 나의 영지도 된다. 내가 처음 태어나고 자란 이곳 은 말이다.” 클레인의 말을 어느 세 눈물을 그친 세바스찬 2세가 받았다. “알겠네. 자네의 마음을 받겠네. 나의 짐을 덜어주게. 우리의 영지를 같이 지켜보세.” 둘이 손을 맞잡은, 바로 그 시각. 명훈이 클레인과 세바스찬 2세가 있는 루이스 영지로 다가서고 있었다. ~~~~~~~~~~~~~~~~~~~~~~~~~~~~~~~~~~~~~~~~~~~~~~~~~~~ 아아! 드디어 2권이 끝났습니다. 정말 지랄 같은 마감이 ;ㅁ;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흑흑... 며칠 푹 쉬고 3권을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긴 한데, 벌써부터 3권 독촉이 오고 있습니다. 징징.... 어서 3권을 마치고 쉬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3권 나오기 전에 4권도 쓰라더군요 ㅡㅡ;;;; 아아.. 이러다간 끝도 없겠습니다. 앞으로 날을 잘 짜서 며칠 쉬어야 겠어용.... 물론 연휴는 쉴거예요~ 연휴에도 절 찾지마세용~ ㅎㅎㅎ 에구... 오늘 오후부터 3권 연재를 시작하겠습니다... 1,2권 수정을 하고 출판사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못 올릴 수도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오후에 뵙도록해요~ 시험 보시는 분들은 모두 잘들 보시구요. ㅎㅎ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42 회] 날 짜 2004-12-13 조회 / 추천 3313 / 53 선작수 505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필독 공지] 출가안~ 이벤투 입니다아아아아!!! 물론 검황 이계 정벌하다의 책이 걸린 이벤트 입니다아!! 마감 기념이라고 생각해주세요오~. 선작 하신 분들만 참여해 주세요(음흉....) 무려 10질이나 걸고 이벤트를 할 생각입니다^^ ~~~~~~~~~~~` 1등 하신 분께는 책이 나올 때마다 소포로 완결까지 붙일 생각이고, 2등 하신 분께는 4권까지. 3등 하신 분께는 3권까지. 4~10등 하신 분께는 1, 2권 싸인북을 보내 드립니다아~ ~~~~~~~~~~~ 정말이예용. 구라가 아닙니다아~. 그림에 자신이 있으신 분은 더 확률이 높겠죠 ㅎㅎ (1등이 되고 싶으시면 그림을 그리세요 ㅎㅎㅎㅎ) 그림과 팔행시가 이벤트의 내용이 되겠네요. (힘드시면 '검황 이계'만 가지고 하셔도 됩니다. 내용이 많으시면 저에게 검황이벤트 라는 제목으로 쪽지를 보내주셔도 무관합니다.) 그림은 마음에 드는 케릭을 골라서 제 메일 eastemar@hanmail.net 로 보내주시면 되구요, 팔행시는 뎃글로 달아 주시면 됩니다^^ 책이 나옴과 동시에 추첨을 하여 뽑히신 분들께 바로 책을 배송하겠습니다. 많은 참여 바라겠습니다^^ 물론 선작 필수예염 캬캬캬 <<<<<<<<<<<<<<<< 3권 연재는 내일 부터 하겠습니다. >>>>>>>>>>>>>>>>>>>>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43 회] 날 짜 2004-12-13 조회 / 추천 9854 / 235 선작수 553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1. 검황, 결정하다 -3권 시작 검황 이계정벌하다 3권 1. 검황, 결정하다 명훈은 멀리 보이는 영지를 바라봤다. 이번 시험을 가볍게 끝낼 생각이 없었다. 좋은 부하 얻는 것이 그렇게 쉬울 리 없다. 마음에 드는 두 녀석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응할지를 보고 싶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영지로 몸을 옮기는 명훈. 두근거렸다. 그 녀석들이 제발 자신에게 끝까지 맞서주길 바랬다. 한 병사가 허겁지겁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헉헉.” 그가 방에 들어감과 동시에 영지가 들썩였다. “그게 정말인가?!”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요.” “어서 병사들과 기사들을 모아라. 절대로 그자를 영 지에 들여 보내서는 안 된다. 목숨을 걸고라도 막아야 한다!” 세바스찬 2세의 표정이 굳었다. 올 것이 왔다는 모습이다. 영지 이곳저곳에 뿌려둔 초상화가 제 역할을 한 것은 천만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도착하기 전에 군사 정비를 할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분명 마법 한방에 날아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드래곤은 왠지 그러지 않을 것 같다는 생 각이 드는 세바스찬 2세였다. 그러한 생각은 클레인도 같았다. 그때 세바스찬 2세가 입을 열었다. “그가 했던 말이 자꾸 걸리는 군.” “뭐가 말인가?” “이것이 화가 될지 호의가 될지는 우리의 결정에 달 린 것이라는 그 말…. 우리의 결정이라는 것이 대체 무 엇일까?” “흠….” 클레인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다시 그려지는 폭풍과도 같은 무형의 검식. 대체 그 드래곤은 무슨 생각으로 자신에게 그것을 보 여준 것일까? 의문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으면서, 보여주 는 난폭한 모습. 여하튼 정확한 것은 별로 좋지 못한 상황이 지금 눈 앞에 닥쳤다는 것이다. “우리도 나가야겠군.” 세바스찬 2세의 말에 클레인이 몸을 일으켰다. “크윽….” 일어나던 와중 가슴을 부여잡는 클레인.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 괜찮다면 쉬어도 좋네.” “훗, 날 무시하는 건가? 오른 팔과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트롤과 싸워 이긴 몸이네. 이 따위 상처 따윈 침 바르면 나아.” “…그럼, 나가세. 하지만, 조심하게.” “당연하지. 흐흐흐…….” 다시 일어나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세바스찬 2세에게 보일까 재빠르게 숨겼다. “그럼 가보자구. 몸이 근질근질 하군. 큭큭큭.” 실컷 너스래를 떨며 자신의 검을 움켜쥐고 밖으로 나 서는 클레인. 세바스찬 2세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넘어 갈 수 밖에 없었다. 클레인이 원했기 때문이다. 고마웠다. 가슴이 아파왔다. 그럴수록 자신의 검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는 세바스 찬 2세였다. 이 영지를 지키는 것만이 클레인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임을 깨달은 탓이다. 명훈은 멀리서 병사들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아무리 돌아봐도 왠지 클레인과 세바스찬 2세의 모습 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실망하던 찰나 저 멀리서 달려오는 두필의 말 이 보였다.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이었다. 그 둘은 말을 타고 병사들 앞으로 나서더니 자신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흐흐. 그래. 그 정도는 돼야지. 내가 인정한 녀석이 라면 말이야. 하지만, 나를 막기 위해서는 한참 모자라 는군. 오늘만은 철저히 악역을 맡아 줄 테니 각오하는 것이 좋을 거다. 크하하하!” 명훈은 기쁨의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이제 가볼까?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하하하!” 팟! 그와 동시에 앞으로 날아가듯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칠절환영보를 극성으로 전개한 것이다. ~~~~~~~~~~~~~~~~~~~~~~~~~~~~~~~~~~~~~~~~~~~~ 우선 맛뵈기로 3권 초입을 올립니다. 그럼 새벽 4시에 뵙죠. ps. 흠.. 이벤트를 건 것이 활발하게 움직여서 기쁘네요 ㅎㅎ 아무도 안하시면 어쩌나 했는데ㅡㅡ;; 1위나 2위나 3위는 그림을 보고서 뽑을 생각이었는데, 흠.. 문제는 직접 그리신 그림이여야 해용;; 전달이 잘 안됐나 봐요 ㅡㅡ;; 몇분께서는 소장하시고 계신 그림을 보내 주셨네요 ㅎㅎ;;; 직접 그리신 그림을 보내주세요^^ 그리고 메일은 팬레터 아니면 그림을 그리신 분들만 보내주세요 ;ㅁ; 흑흑....팔행시로 꽉찼어요... 흑흑.... ps2. 이번에 이벤트를 하자마자 쪽지가 수십장 정도 날아 왔는데, 제가 연재를 접는 줄 아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글쟁이의 변(지금 이부분)을 읽지 않으시는 분들이 많나봐요. 연재는 계속 할것입니다. 걱정마세요 ㅎㅎ 선작 취소는 작가의 가슴을 애리게 한답니다. ;ㅁ; 하나하나 줄어갈때 그 고통 정말... 흑흑 ps3.(가지고 싶다.. psp도...) 4권까지는 거의 광참모드로 갈생각이고 5권부터는 조금씩 쉬어가며 할 생각입니다. 쉬어봤자 한달에 한권씩 뽑아 내라는 출판사의 엄명이 있습니다ㅡㅡ;;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죠ㅡㅡ;;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ps4.(이건 언제 나온데요? 2009년에나 나오려나?) 그리고 제글은 보시는 분들은 많은데 추천이 하나도 없더라구요ㅡㅡ;; 게시판 추천란에 다른 글들은 많이 오는데, 항상 배가 아프다는 ;ㅁ; ㅎㅎ;; 저도 추천 받두 싶어용.. 추천좀 때려주세요 ;ㅁ; ps5.(이거 나오면 유레카라는 만화처럼 가상현실로 게임 할 수 있겠죠? ㅎㅎ) 그러고보니 연재 글보다 잡담이 더 많군요ㅡㅡ;; 케케케..... 이제 3권 광참모드 돌입이니 애교로 봐주세요 ㅎㅎ 그럼 전 글지옥으로....ㅡㅡ;;(글 쓰러 간다는 말이지요;;)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44 회] 날 짜 2004-12-14 조회 / 추천 9562 / 101 선작수 553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1. 검황, 결정하다 -3권 시작 칠절환영보를 극성으로 전개한 것이다. 파바바바밧! 흙먼지가 자욱하게 구름이 되어 퍼져나갔다. 멀리서도 지켜 볼 수 있을 정도의 먼지였다. “저, 저기!” 병사들이 혼비백산 놀라는 것을 세바스찬 2세가 막았 다. “겁먹지 마라. 아무것도 아니다.” 명훈은 이것을 노렸다. 일부러 답설무흔의 경공을 사용 할 수 있음에도 칠절 환영보를 사용함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킨 것이 다. 이미 화경에 거의 도달한 명훈이라지만, 깨달음의 경 지는 생사경 이상이기에 자연의 기를 자신의 내공과 함 께 사용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자연의 기가 풍부한 이곳이다. 내력은 화경이지만,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힘은 화경 과 현경 중간 사이의 힘이라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충분히 심검의 묘리를 사용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클레인에게 사용한 것은 심검을 이루는 일부분 중 하나일 뿐이지 완벽한 심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순간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던 명훈이 기사들 앞에 멈춰 섰다. 먼지구름은 기사들을 덮쳤다. 그럼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자세한 일은 몰랐다. 하지만, 저 자가 영지 안으로 들어서면 자신의 가족 들이 몰살당한다고 한다. 그래서 버텼다. 모두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조차 모른 체 말이다. 누구의 입에서 시작 된지는 모르지만 벌써 영지 안은 그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의외로 세바스찬 2세의 공작은 아니었다. 자신도 그 소문을 들은 장본인 중 하나니까. 아마도 그때 함께 갔던 기사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소문 같았다. 그러나 그것의 진위를 밝히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그것이 약이 될 거라 생각한 탓이다. 상대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뿔뿔이 흩어질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가족을 생각하고 있으면 드래곤이 두렵겠는 가? 그때 먼지 구름이 옅어지더니 명훈의 실루엣이 드러 나기 시작했다. “큭큭, 모두 반갑군.” “미안하지만 저희는 별로 반갑지 않군요.” 세바스찬 2세의 극존칭은 이곳에 있는 모든 병사들을 놀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세바스찬 2세가 누군가? 바로 자신들의 영주며, 남작이 아닌가. 그렇다면 더 높은 신분의 사람이란 말인데…. 기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바스찬 2세는 그 작은 소란을 무시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네. 내가 내뱉은 말이기도 하니.” “우리가 못들은 것으로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명훈은 세바스찬 2세의 진중한 말투를 들으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후후후….” “…….” 한 호흡도 안되는 침묵이 흘렀다. 그것이 왜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는지…. 한없이 무겁게 닫혀 있는 듯 보이던 명훈의 입에 열 렸다. “그럼 시작해 보지.” 순간 명훈의 신형이 사라졌다. 당혹감에 긴장하고 있던 클레인과 세바스찬 2세의 시 선이 이곳저곳으로 움직여졌다. 그러나 도무지 사라진 명훈을 찾을 수 없었다. “어, 어디?!” 바로 그순간. 퍼펑! “으아악!” 가장 뒤쪽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며 수명이 바닥을 나 뒹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이 슬쩍 명훈의 신형이 눈에 들어왔다. 클레인과 세바스찬 2세는 말을 몰아 그곳을 향해 미 친 듯이 달려갔다. 하지만, 도착한 순간 이미 늦었다. 자신들이 달려온 반대쪽에 명훈의 신형이 나타난 것 이다. 깡! 깡! 깡! 갑옷이 찌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비상하는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크헉!” “이,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비음을 흘린 세바 스찬 2세.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여덟 명이 넘는 병사가 쓰러 졌다. 어금니를 강하게 물었다. “제길!” 명훈의 움직임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병사들을 지휘해야 하는데, 적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 는 상황에서 어떻게 지휘를 한단 말인가? 미칠 지경이었다. 어쩔 수 없이 클레인과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 둘이서 상대해도 상처 하나 입힐지 장담 못할 괴물이다. 그런데 그를 견제하기 위해 둘로 나누다니…. 미친 짓이라 할 수 있었다. 약간의 확률조차 완전히 포기한 것과 같았다. ~~~~~~~~~~~~~~~~~~~~~~~~~~~~~~~`` 곧 다음 편을 올리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45 회] 날 짜 2004-12-14 조회 / 추천 9765 / 151 선작수 553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1. 검황, 결정하다 -3권 시작 그에게 상처라도 남길 확률을 말이다. 콰광! “끄아악!” 다시 울리는 비명소리.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 부분, 부분 나타나 마 치 게릴라 전법이냥 공격하는데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들이 싸워도 이길 확률이 없는데, 어째서 이러는 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세바스찬 2세였다. 마치 자신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기 위해 온 듯한 악마 로 보였다. 단순히 정신 나간 드래곤으로 보긴 힘들었다. 뭔가 목적을 가지고 온 듯한 모습을 보인 탓이다. 다시 울리는 폭음과 병사들의 비명소리. 이제는 겁에 질린 병사들이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귀신과 싸우는 기분일 것이다. 병사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장난 하듯 하나 씩, 하나 씩 병사들을 무너트리며 마 치 장난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 ‘정말 장난인가? 뭔가 목적이 있어서 왔다는 것은 나 만의 착각이었나? 단순히 자신의 성질을 건드려서 보복 하기 위해 온 것인가?’ 어느 세 서른 명 이상의 사상자가 속출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이 망할 드래곤 녀석아! 나를 죽여라! 제발 나의 병사들은 건들지 마라! 나와 붙자! 더 이상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마라!” “드, 드래곤?!” 순간 병사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들이 드래곤과 싸운 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 다. 그제야 지금의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 이해가기 시작 했다. “히익! 드, 드래곤이었어?!” “마, 말도 안돼.” 창백하게 굳은 표정들. 전의를 상실했는지 몇몇 병사들은 자신의 무기를 바 닥에 떨어트리기까지 했다. 바로 그때 명훈의 모습이 바람처럼 세바스찬 2세의 앞에 나타났다. “오호, 그래? 그럼 나와 붙자 이거지?” “그렇다. 드래곤! 더 이상의 장난은 불허하겠다. 만약 하고 싶다면 내 시체를 밟고 넘어선 후에 해라! 내가 숨이 남아 있는 한 네 녀석의 장난에 불과한 그 더러운 짓을 막을 것이다.” 순간 명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와 동시에 이가 드러났다. “오호. 나와 싸우면 마치 이길 수 있는 것처럼 말하 는 군. 흐흐흐.” 음침한 웃음소리. 담대한 모습을 억지로 보여주는 세바스찬 2세였지만, 그 속의 살기를 읽고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신을 보고 아직 서있는 기사들과, 자신만을 바라보는 병사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는 없었다. “아니다. 난 자신이 없다.” “호오?” 의외의 대답이 명훈의 호기심을 잡아 당겼다. “그런데 왜 날 불렀지?” “너의 비열한 행위를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비열한 행위?” “지금의 넌 단지 너의 즐거움을 위해 약한 이들을 괴 롭히고 있다. 난 기사로서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일 뿐 이다. 특히나 나의 영지민들의 고통을 난 볼 수 없다. 그 말에 명훈의 눈이 작아졌다. 곧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바스찬 2세를 훑어보았다. “호오…. 그래? 자신 있게 말을 하는데, 나도 몇 가지 물어보지. 그렇다면 너는 네 영지민들을 괴롭힌 적이 없는가?” “…있다.” “그런데 무슨 명분으로 영지민들을 팔아먹는 거지?” “난 내 이득을 위해 영지민들을 괴롭힌 적이 없다. 모두 이곳 영지의 평안을 위하다 보니….” 명훈은 그의 말을 중간에 잘랐다. “큭큭. 지금 장난하나? 그렇다면 모두의 평화라는 명 분으로 고통당하는 소수는 뭐지? 그런 정신 상태로 이 곳 영지의 안녕을 바란단 말인가?” 마치 훈계 하는 듯한 명훈의 말투. 하지만 자신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다른 변명을 꺼내지 않았다. 변명은 자신을 구차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저 망할 드래곤은 왠지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받아 칠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것 같았다. 차라리 입을 열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명훈의 계속 되는 추긍은 그의 입을 결코 닫 지 못하게 만들었다. “영지의 평안은 네 자신의 배를 체우기 위함이 아닌 가?” “그것은 아니다! 난 결코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이 없 었다!” “그럼? 왜 영지민들을 괴롭혔는가? 모르면서 하는 일 보다 알면서 행하는 것이 더 나쁜 일임을 모르는가?” 세바스찬 2세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한 것이 모두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업. 자신의 것이다. 결코 무시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구차한 변명을 마치기로 했다. “그래, 나도 아버지의 그런 횡포를 막고 싶었다. 아니 막았어야 했다. 막을 힘이 없어도 막았어야 했다. 막지 못한 것. 그것이 나의 실수다. 나의 잘못이다.” 그리곤 이를 악문 세바스찬 2세. 자신의 병사들을 보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모두들 …미안하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사기가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 에구 에구 피곤합니다아~ ;ㅁ; 수마가 나를 자꾸 잠의 세계로 인도하네요오~ ;ㅁ; 자고 일어나서 연참을 시도해야 겠네요.. 지금까지 탱자탱자 놀다보니 글을 하나도 못썼거든요... 졸려 죽겠습니다아아아아~~~~~. 그리고 이쁜 그림이 많이 날아와서 넘 행복해염 캬캬캬. 그리느라 모두들 수고하신것 같아염^^ 이벤트는 계속 받을 생각이예요. 출간 날까지요. 출간 일정이 잡히는 순간 바로 추첨을 하여 공지를 올리겠습니다. 그분이 어떤 그림과 글을 남기셨는가, 왜 이렇게 뽑았는가까지 적어서 올리겠습니다. 아는 사람이라고 부당 추첨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 조금 많이 졸린지 글 흐름이 슬쩍 변한것 같지만 ㅎㅎ 다음 화부터 다시 글 스타일이 돌아 올 것 입니다. 아마도 ㅡㅡ;;;;; 그럼 오전중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46 회] 날 짜 2004-12-14 조회 / 추천 10130 / 219 선작수 553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1. 검황, 결정하다 -3권 시작 검을 놓쳤던 사람들마저 검을 들어 올리며 함성을 질 렀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세바스찬 2세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전 늙은 영주가 미쳐서 세바스찬 2세가 영주의 자리 에 오른 것을 누구보다 환영했던 자신들이다. 누구보다 자신들을 챙겨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들 따위에게 사과할 짓을 한 사람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배 풀면 배 풀었지, 결코 뺏은 사람이 아 니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드래곤이라는 한마디에 전의를 상실한 자신들에게 말 이다. “우아아아!” “이야아아아!” 사기가 터져 오르며 병사들의 눈에서 전의가 되살아 났다. 그것은 믿음이었다. 세바스찬 2세에 대한 두터운 믿음이 그들의 가슴에 불을 당겨준 것이다. 명훈은 그것을 보며 감탄의 눈빛을 흘렸다. 세바스찬 2세의 인간됨됨이를 확인한 탓이다. ‘이 정도였나? 갈수록 마음에 드는 군. 하지만 아직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견뎌봐라.’ 명훈은 가슴에서 일어나는 뿌듯함을 누르고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으흐흐흐.” 명훈의 몸에서 품어지는 써늘한 살기. 병사들의 기세가 슬쩍 흔들렸다. 그러나 곧 함성으로 지름으로서 명훈의 살기를 지웠 다. “큭큭. 그래. 그럼 다시 놀아 볼까?!” “으윽!” 클레인과 세바스찬 2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긴장한 탓이다. 아마, 이번에는 진짜로 공격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파밧! 그 순간 다시 사라진 명훈. 퍼버버벅! “이 개자식!” 병사들의 검이 무의식중에 자신들이 공격당하는 곳으 로 휘둘러졌다. 공격을 받아서 검을 놓친 녀석은 주먹을 휘두르거나 발버둥을 치며 한대라도 치겠다는 각오로 공격을 했다. 명훈은 놀랐다. 세삼 세바스찬 2세를 더욱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어 졌다. 과거 자신의 문파를 세울 때, 무림대전 때 가장 큰 공을 세운 혁장로가 생각났다. 수하들에게 끝없는 믿음으로 밑바닥의 공포마저 이기 고 질 싸움을 이기도록 한. 검황은 자신에게 없는 인덕을 그가 가지고 있음을 부 러워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때 혁장로가 이렇게 말했다. “검황이시여. 당신에게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제 영 혼까지 이미 당신이 소유 하셨는데, 무엇을 더 바라십 니까? 이 모든 것은 당신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들입니다. 당신 이 질투하시는 저의 인덕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곳 검 지(劍地)의 모든 것은 당신의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망각하셔서 화를 일으키지 마시옵소 서. 하지만, 결코 잊지 마십시오. 이곳의 후학들과 식솔 들의 모든 허물도 당신의 것임을 말입니다.” 어째서 혁장로의 모습과 세바스찬 2세의 모습이 겹치 는 것일까? 명훈은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힘없는 주먹과 발길질 에 한대씩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훗! 내가 안으려는 것이 생각보다 더 큰 녀석이었군. 그렇다면 더 크게 팔을 벌리는 수 밖에....’ 순간 명훈의 몸에서 살기가 품어져 나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심장이 멎을 정도의 살기다. 고오오오! “허억!” “히이익!” 다시 전의가 사라지는 병사들. 자신들의 무기를 바닥에 떨구기 시작했다. ~~~~~~~~~~~~~~~~~~~~~~~~~~~~~~~~~~~~~~~~~~~~~~~~~~~~~ 약속시간을 늦어서 적은 분량이나마 허겁지겁 올립니다. 곧 다음글도 올리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47 회] 날 짜 2004-12-15 조회 / 추천 10217 / 201 선작수 553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1. 검황, 결정하다 -3권 시작 이 살기는 투기로 밀어낼 만한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위압감으로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이 다. “드, 드래곤 피어?!” 클레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 하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작은 혼잣말을 들을 만한 정신을 지닌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땅에 발을 붙이고 서있는 사람은 고작 16명. 300여명 아니 대략 400여명의 병사들 중에서 말이 다. 그들은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을 포함한 14명의 기 사였다. 모두 소드 어웨어 급 이상의 능력을 지닌 자들이었 다. 명훈은 아직도 서서 자신에게 검을 들이대고 있는 사 람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살기에서 검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 그 뜻은 어느 정도 해도 죽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명훈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가볍게 손 좀 봐줄 생각으로 말이다. 긴장하는 16명의 기사들. 팟! 다시 사라진 명훈의 신형. 서 있는 기사들은 거의 동시에 명훈의 웃는 얼굴을 봤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순간 정신을 잃었다. 강한 충격과 함께 말이다. 한 순간에 14명의 기사를 때려눕힌 명훈.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 만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 으로 쓰러진 병사들을 돌아봤다.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명훈이 자신에게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침을 삼켰다. 그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릴 정도였다. 심장이 뛰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세바스찬 2세과 클레인은 긴장했다. 절망이다. 이제는 죽음뿐인가? 영지를 슬쩍 돌아봤다.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병사들과 자신의 영지민들에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 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의 검을 꼬나 쥐었다. 그리고 달렸다. 클레인과 동시에 말이다. “이야아아아앗!” 하지만, 검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명훈이 가볍게 몸을 틀었을 뿐인데, 고급 소드 익스 퍼트의 능력을 지닌 자신들 두 사람의 합공을 물처럼 흘리자 맥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마치 실체가 보이는 허공하고 싸우는 듯한 기분이었 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다그쳤다. 더욱 집중을 했고, 더욱 힘을 줬다. 지쳐서 쓰러져도 좋았다. 이미 목적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어느덧 왜 자신들이 검을 휘두르고 있는지조차 망각 했다. 그냥 앞에 있는 것을 배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다. 그들의 검이 날카로워 지고 있었다. 후웅! 부우웅! 명훈은 공격을 한번도 하지 않고 그 둘의 집념을 보 았다. 결코 죽음의 목전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그들. 이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결단을 내릴 때가 온 것이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이제, 그만 하지.” 팅! 명훈의 손끝이 두 검극을 튕기며 나는 소리였다. 명훈이 튕긴 검극은 타원을 그리며 자신의 주인들과 함께 반 바퀴를 돌고 멈춰 섰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 그들의 입에서 한모금의 시꺼먼 피가 튀어나왔다. “울컥!” “커헉!” 그제야 둘은 숨을 몰아쉬며 명훈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자신들이 날고 기어도 명훈에게는 당할 수 없 음을 깨달은 것이다. 헉헉거리며 세바스찬 2세가 분노 가득한 얼굴로 명훈 에게 물었다. “대체, 대체 왜?!” 명훈은 그 짧은 말 한마디 속에 많은 것이 담겨 있음 을 알 수 있었다. 이해함에 있어서 부족함도 없었다. “글쎄 왜일까?” 명훈의 능글거리는 미소. 세바스찬 2세나 클레인이 알 리가 없었다. “우리를 그만 괴롭혀라! 드래곤! 더 이상 비참하게 만 들지 말고 그냥 죽여라!” 바로 그 순간 명훈이 입을 열었다.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너희를 죽일 거라 생각한 모양이지?” 순간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은 의아한 눈빛으로 명훈 을 올려보았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그 말은 우리를 죽일 생각이 없단 말인가?” “후후….” “어서 말을 해라! 왜 이렇게 우리를 극한으로 몰아넣 었는지? 왜 이렇게 괴롭히는 건지 말이다. 그때의 일을 말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미 사과를 하지 않았는가?!” 세바스찬 2세의 악에 바친 목소리. 그 말 한마디에 명훈의 눈이 빛을 뿜었다. “그 정도 사과로 나를 만족 시켰다 생각하나?” 움찔. 물론 아니었다. 그렇게 쉽게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너무했다. 이렇게 자신들을 농락하다니. 철저하게 말이다. 기사로서의 자긍심을 산산이 부셔 놓을 것까진 없지 않은가? 그냥 깨끗하게 죽이면 될 것을 말이다. 죽음보다 비굴한 삶이 더 치욕이라는 것을 아무리 드 래곤이라 해도 모를 리 없었다. 물론 드래곤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당한 장본인은 그렇지 못했다. 아무리 남들이 이해를 해줘도 그것마저 수치스럽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모든 무인이라면 공통적인 생각이리라. 그런데 세바스찬 2세는 생각을 바꿨다. 자신만의 치욕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영지민들이 더 큰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기사의 치욕. 그것이 영지민 수백가구의 목숨보다 중요할까? 세바스찬 2세는 이미 앞에서도 밝혔지만 야심가다. 그 속의 깊이를 짐작하기 힘든 사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뭐든지 한다. 자신을 막아서는 것들을 철저하게 무너트린다. 그런 점에서 어떻게 보면 비열하게 보일 수도 있다. 악랄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품안에 있는 것과 품안으로 들어온 것은 누구보다 아끼는 사내다. 그 품에 있는 것이 자신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 생명이 자신을 외면하면 그게 죽음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품안에 있는 영지민들. 그들은 자신이 지켜줘야 했다. 그래서 과감한 눈빛으로 명훈을 바라봤다. 그리고 무겁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나의 성의가 부족했다면….” “했다면?” 명훈의 눈이 빛났다. 세바스찬 2세의 눈빛에서 뭔가를 발견한 탓이다. “…나의 목숨을 그 부족한 성의로 받아주시오. 결코 부족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클레인이 경악어린 눈빛으 로 세바스찬 2세를 봤다. 하지만 곧 뭔가 생각에 잠겼다. 그 생각은 그리 길지 않았다. 눈을 뜬 클레인의 눈빛도 세바스찬 2세의 눈빛처럼 변했다. 순간 자신의 검을 바닥에 깊이 꽂더니 결의에 찬 목 소리로 입을 열었다. “좋아! 만일 부족하다면 나의 목숨까지 거둬도 좋다. 내 이 한목숨 바쳐서 우리 영지만 무사하다면 아깝지 않다.” 명훈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광천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은 갑자기 웃어대는 명훈을 놀 란 눈빛으로 바라봤다. 순간 뚝 멈추는 명훈의 웃음. 동시에 싸늘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너희들의 언변. 재미는 있었다. 하지만, 너희 따위의 목숨이 그렇게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순간 경직되는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의 표정. ~~~~~~~~~~~~~~~~~~~~~~~~~~~~~~~~~~~~~~~~~ 오늘은 정말 글이 안써지는 날이었습니다. 외출하고 오느라 몸의 진도 다 빠지고... 몸이 늘어집니다. 다음 글은 오후에나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쓴게 고작 이거라니....orz........... 아아... 힘들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글을 올리기 위해 졸린 눈을 부비며 ;ㅁ; 2권 출간본 수정할 생각때문에 정말 안써지는거 억지로 썼어요오오~ 에효효효효~ ps. 오늘도 역시 여러가지 이야기 하려 합니다. 제가 엔터를 많이 치신다고 하시는데, 엔터는 친적 없습니다. 이건 제 나름대로의 편집 방식입니다. 출판본 편집방식을 약간 보기 편하게 만든 것입니다. 저도 여러번 연재를 하면서 이 방법이 가장 읽기 좋다는 것을 깨닫고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냥 풀어서 올려도 상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지저분해 보인다고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한마디로 제 취향이라는 말이죠. 분량은 이곳 조아라에서 연재하는 분들과 거의 같다고 생각합니다. ps2. 아, 그리고 설정에 대해 크게 수정을 하려 합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소드 마스터라고 불렀던 것을 고급 소드 익스퍼트 라는 형식으로 낮추려 합니다. 이름만 변화를 줄뿐 다른 것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마스터라는 이름이 조금더 높게 평가 받는 정도겠지요. 마스터는 검강을 사용하는 경지 즉, 화경이라는 설정입니다. 그 위의 경지는 나중에 나올 것입니다. (고급은 영어로 좋은거 골라서 수정할거예요. 아직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ps3. 그림에 관련되어 문의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림은 제가 출간일정이 잡히는 날까지 받을 것입니다. 더이상 받지 않겠다고 공지를 올리면 그때가 마감이라 생각해주세요^^ 대충 팔행시가 350여개 정도 ㅡㅡ;;; 생각보다 많이 응모를 해주셔서.. 쿨럭.. ㅎㅎ 기쁘긴합니다^^ 헤헤~ 감사감사^^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48 회] 날 짜 2004-12-16 조회 / 추천 8044 / 86 선작수 553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2. 검황, 길을 떠나다 2. 검황, 길을 떠나다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의 표정이 경직되자 명훈은 가 볍게 이를 들이 밀었다. 잔혹한 미소의 태마를 보는 듯했다. “너무나 큰 오해를 하더군. 여하튼 유쾌했다.” “으, 으윽!” 비열했다. 드래곤이 아니라 악마나 마왕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이해 불가능한 성격. 세상의 그 어떤 욕도 명훈에게는 부족할 것만 같았 다. “그럼 마무리를 지어야지. 크흐흐….” “마, 마무리?” “크흐흐. 보면서 절망해라. 자신의 약함을 저주해라.” “그, 그게 무슨 말이냐?!” “…큭큭.” 순간 등을 돌리며 쓰러져 있는 병사들에게 걸어가는 명훈. 그 모습을 보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이상할 정도로 불쾌한 기분 탓이었다. 이런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하나…. 유쾌한 살기? 그것이 말이 될까? 하지만 이미 경악어린 눈빛으로 명훈의 등을 바라보 는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이었다. 어느덧 병사들 앞에 멈춰선 명훈. 그의 얼굴이 슬쩍 측면으로 돌아선 순간 눈에 경악이 그려졌다. 명훈의 얼굴에 그려진 것은 살인을 즐기는 살인마의 얼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명훈의 발이 들어 올려지며 한 병사의 얼굴을 노리듯 밟아 내리기 시작했다. “아, 안돼!” 이미 지쳐 앉아있기도 힘든 그들의 몸에서 어떤 힘이 솟아난 것일까? 명훈을 향해 몸통 박치기를 하듯 돌진하는 것이었다. “으아아아앗! 이 개자식아 안돼! 우리는 죽이라고!” 한과 저주가 가득 담긴 그들의 목소리. 순간 명훈의 살기 어린 살인마의 눈빛이 평온한 평소 명훈의 눈빛으로 돌아왔다. 이제 시험이 끝난 것이다. 그들의 몸통이 부딪히려는 찰나 가볍게 유운보를 시 전 하여 평지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그들의 등 뒤로 돌아갔다. 명훈의 믿어지기 힘든 움직임을 보며 멈추려던 세바 스찬 2세와 클레인. 하지만, 모든 힘을 짜낸 마지막 공격이었다. 멈출 힘이 남아 있을 리 만무했다. 쿠당탕! “으, 으윽!” “크흑!”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태양을 등지고 서있는 명훈을 올려다보는 클레인과 세바스찬 2세. 강렬한 태양빛에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팔을 들어 빛을 막았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따가운 햇살은 밉살맞게 도 너무나 강렬했다. 결코 가을의 초입이라는 생각을 못하게 만들 정도였 다. 한여름의 태양도 이렇게 강렬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세바스찬 2세였다. 세상이 불만스러운데 무엇이 눈에 거슬리지 않겠는 가? 바로 그 순간 명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는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 “후후. 미안하게 됐군.” “……?!” “아아, 그렇게 놀랄 표정 지을 필요는 없네. 다른 꿍 꿍이속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 순간 명훈이 슬쩍 앞으로 움직이는가 싶더니 뒤에 서 계속 아른거리던 태양이 그의 몸에 의해 가려졌다. 그와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명훈의 덤덤한 미소. 조금 전까지의 살기는 눈일 씻고 찾아 봐도 찾을 수 가 없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일이 꿈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 순간에 변한 명훈의 표정. 이해하기 힘든 엄청난 이질감에 둘의 마음은 크게 흔 들리고 있었다. “무, 무슨….” “무슨 말이냐고?” 아직도 믿기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둘. 명훈은 그 둘을 인자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 다. “너희 둘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나와 함께하지 않겠는가?” 쿠궁! ~~~~~~~~~~~~~~~~~~~~~~~~~~~~~~~~~~~~~~ ㅡㅡ;; 오늘 끊이지 않고 오는 연락에 연락... 푹 쉬고 싶었지만, 제대로 쉬지도 못했습니다. 묵향도 지금 50p 밖에 못읽었고.. 설봉님의 사자후도 1권 겨우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냥 맘편히 책에 파묻히고 싶었는데....;ㅁ; 에휴... 오늘에야 1,2권 출간본을 출판사에 넘겼습니다. 몇 번의 수정이 오가겠지만 그래도 마음은 한갓지네요... 그동안 출간본 수정 때문에 광참을 못해서 ㅡㅡ;;; 다시 광참모드로 돌입할 생각입니다. 연휴는 쉬겠지만, 평일에는 화려한 광참으로 29일까지 3권원고를 마감할 생각입니다. 연휴가 며칠있는거 아시죠? 그래서 좀 길게 잡았습니다. 신년 인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4권 연재에 돌입하여 1월 12일까지 4권 원고를 마감할 예정이구요. 에휴.. 여하튼 계획은 이렇습니다. 거의 지켜질 거예요. 3권 부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진행 될겁니다. 본편의 시작이니까요. 그럼 4시에 찾아 뵙겠습니다. 쪽지로 독촉이 심해서 한편 짧게 올려봤습니다.... 잠시후에 뵙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49 회] 날 짜 2004-12-16 조회 / 추천 7606 / 76 선작수 553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2. 검황, 길을 떠나다 “너희 둘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나와 함께하지 않겠는가?” 쿠궁! 순간 둘의 심장이 크게 수축했다. 그 한마디에 가슴이 터질 듯한 통증을 느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동? 아니다. 이것은 분노였다. 배신감과 같은 동일한 분노. 지금까지의 알 수 없는 믿음을 저버린 듯한 느낌에서 일어나는 분노. “그렇다면 어째서!?” 클레인이 고함을 지르듯 톤을 높여 입을 열었다. 그를 은연중 마음속으로 동경하고 있었기에 생겨난 현 상인 것 같았다. 그래서 책망하는 듯한 말투가 흘러나온 것이리라. 명훈은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째서 이렇게 까지 했냐고?” 고개를 끄덕이는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 “후후후. 난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특히나 내 옆에 둘 존재를 두려하는데 보통의 시험으로는 만족 할 수 없었다.” 으득. 옆에 둔다는 말과 시험이라는 말에 이를 가는 둘. 명훈은 그것을 봤지만 가볍게 넘겼다. “너희들을 극한으로 몰아넣어 진정한 마음을 엿보고 싶었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본연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너희들의 모습은 합격이라 할 수 있었다. 겉과 속이 같은 존재는 믿을 수 있기 때문이지.” 순간 모든 긴장이 풀린 둘은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은 몽롱한 상황에 빠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정신으로 돌아온 둘. 그 공허함 속에 분노가 담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당신의 손을 들어 줄 거라 생각하는가?” 명훈은 한 치의 의심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의아 감을 느낀 세바스찬 2세. 의문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째서지?” “어째서냐고? 그것은 너와 클레인의 야망 때문이다.” 흠칫! 하지만 태연한 표정의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 야망이 너와 어떤 상관점이 있단 말인가?” “물론 상관있지.” 명훈의 단호한 말투. 그 속에서 뭔가 어떤 결심을 느낄 수 있었다. 명훈의 말이 이어졌다. “세바스찬 2세. 너는 세상을 손아귀에 쥘 생각이 있 는가?” 다시 흠칫 몸을 떠는 세바스찬 2세. 당연한 말이다. 누가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하겠는가? 다만 힘이 없어서…. 능력이 되지 못한다고는 생각해 본적 없었다. 지금의 왕권. 자신이 보기에는 불면 날아갈 종이장과 같다고 생각 했다. 파도 한방에 무너지는 모래성과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왕권을 잡는다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 확신했다. “후후.” 명훈은 그런 세바스찬 2세의 복잡한 속마음이 모두 들여다보였다. 갈등과 갈망. 하다못해 더러울 정도의 욕망까지. 그러나 그 욕망마저 명훈은 자신에게 필요한 요소라 생각했다.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을 욕망을 겉으로 드러낸 다는 점만 다르다 할 수 있을 뿐이었다. “힘이 없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나?” 세바스찬 2세의 경악어린 시선이 명훈을 얼굴을 올려 다봤다. 그러자 명훈의 입에서 믿기기 어려운 한마디가 흘러 나왔다. “그렇다면 힘을 주겠다.” “…정말인가?!” “나를 보좌하라. 그러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줄 수 있다. 나를 위해 너의 모든 것을 걸 수 있겠는 가?” 광오한 말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드래곤이 아닌가? 그런데 나의 힘이 왜 필요 하지?” “큭큭. 내가 드래곤? 크하하하하!” 명훈이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 클레인과 세바스찬 2세. “설마 그렇다면 드래곤이 아니라는…?” 믿기 힘들다는 듯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의 표정이 변해있었다. “드래곤? 너희들이 말하는 파충류 말인가?” 그 말을 듣는 그제야 확신이 서는 둘이었다. 광오하다 못해 자존심 덩어리라 할 수 있는 드래곤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특히 자신들을 파충류에 비교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과거 왕국을 날릴 정도의 존재다. 그런데 설마 자신에게 파충류라 할리 있겠는가? 그 순간 떠오르는 의문. ‘드래곤도 아닌데 그런 엄청난 강함을 보였단 말인 가? 대체 정체가…?!’ “당신은 누구요! 아니, 누구 십니까?!” 명훈은 그 질문을 던진 클레인을 바라봤다. ~~~~~~~~~~~~~~~~~~~~~~~~~~~~~~~~~~~~~~~~~~~~~~~~~~ 난 마왕이다. ㅡㅡ;;;; 썰렁하군요.. 다음 화로 후딱 넘어가주세요.. 케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웃음으로 무마하기) 민망... (ㅡ///ㅡ) 발그래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50 회] 날 짜 2004-12-16 조회 / 추천 7658 / 73 선작수 553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2. 검황, 길을 떠나다 “난,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아니,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묻혀갈지 모르는 사람이었지. 하 지만, 너희들을 만남으로서 이 세상에 흥미가 생겼다.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솔직히 너희 들의 야망이 나를 움직였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말을 하는 것 같군 요.” 어느 세 존대로 바뀐 둘이었다. 명훈은 그런 둘의 의문을 너무나 가볍게 풀어줬다. “맞다. 난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다른 차원에서 넘어왔지.” “음?!” 둘의 표정에서 순간 믿음이 사라졌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을게 아닌가. 다른 차원? 풋! 하고 웃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설명이 불가능한 강함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다면 미 친놈 소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훈의 얼굴에 그려진 아득한 아련함을 엿본 둘. 진정으로 명훈이 헛소리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인가? 믿을 수가 없군.’ “뭐, 믿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난 이 세상에 흥미를 느꼈어. 내가 있던 곳에서는 나 이상의 존재가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대해들은 바로는 산과 대지를 한방에 날 리는 마법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또 신이라는 존 재와 필적하는 강함을 지닌 너희들이 말하는 드래곤이 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마왕이라고 했던가? 악마? 몬스터? 여하튼 이곳이 마음에 든다. 이곳의 강함을 보 고 싶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세바스찬 2세 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것은 클레인도 마찬가지였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떤 무지막지하게 강한 미친 녀석이 지껄이는 헛소 리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던 명훈의 말은 계속 이어졌 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곳을 정벌하기로.” 쿵! 광오한 말이다. 하지만 왠지 믿음이 갔다. 아니, 정말로 가능 할 것 같았다.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의 헛소리 같은 말이 말이 다. 명훈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이 정도 시험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부족할 지도 몰랐다.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거의 드래곤 급의 강함. 대충 소드 마스터 하이 레벨 정도. 아니, 그 이상이 될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여하튼 끝이 보이지 않는 측정이 불가능한 강함. 그 강함이 믿음을 주었다. 하지만, 저 정체불명의 사내 말을 따른다고 치면 험 난한 길이 무한정 펼쳐 질 것이라 생각했다. 분명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얻는 일이다. 그 정도의 험난함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세바스찬 2세의 고개가 들어졌다. 그의 얼굴에 각오가 들어섰다. “정말입니까? 정말 세상을 정벌하실 생각이십니까?” 명훈이 세바스찬 2세의 눈을 강하게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속에 확신을 얻은 세바스찬 2세. “지금까지의 모든 과거는 잊겠습니다. 당신이 누구든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영혼이 사라져도 당신의 곁에 서 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그날까지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제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그 말에 명훈이 클레인을 돌아봤다. 마치 ‘너는?’ 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훗, 난 이미 마음을 정했죠. 저 친구가 가는 길이라 면 가시밭길이라도 갈 준비가 되어 있소.” 명훈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만족스럽다는 미소 를 입가에 머금었다. 이것이 검황의 이계 정벌이라는 대장정의 첫 발걸음 될 것임을 짐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세 사람만 빼고는….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여러 생각을 갈무리한 둘. 세바스찬 2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주군.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 겁니까?” 명훈이 먼산을 보며 입을 열었다. “계획도 없이 막무가내로 세상을 얻겠다며 수하를 거 느리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세바스찬 2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그런 사내라 느꼈다면 죽더라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을 것이다.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병사를 양성해라.” ~~~~~~~~~~~~~~~~~~~~~~~~~~~~~~~~~~~~~~~~~~~~~~~~ 흠.. 곧 다음글도 올리겠습니다. 약간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는데(약간 억지를 부린 듯한..) 그것은 앞으로 내용을 진행하면서 출간본 수정으로 넘기겠습니다. 저는 수정본을 올릴 생각이 절대 없거든요^^;; 약간 억지스럽게 느껴져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아아아아... 민망해라.... 갈등 상태를 어떻게 정리하려 했는데, 자꾸 아직도 읽지 못한 묵향이 머릿속에서 맴돌아서 도무지 글이 안써지더라구요.. 빨리 이 폐해를 막으려면 후딱 읽어야 할 것 같은데... 쯥.. ;ㅁ; 곧 다음글을 올리겠습니다. 죄송죄송 ;ㅁ;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51 회] 날 짜 2004-12-16 조회 / 추천 7610 / 73 선작수 553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2. 검황, 길을 떠나다 “병사를 양성해라.” 순간 클레인의 시선이 쓰러져서 일어날 생각도 보이 지 않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투덜거리듯 입을 열었다. “쳇! 말은 잘하십니다. 주군.” “뭐가 불만이지?” “이렇게 자신의 수하들이 될 녀석들을 걸레로 만들어 놓으시고 쉽게도 내뱉으시는 군요.” 명훈이 피식 웃었다. “죽은 녀석은 아무도 없다. 병신이 된 녀석도 없다. 내 살기를 이기지 못해 심령이 흔들렸을 뿐이다. 늦어 도 내일 저녁이면 모두 정신을 차릴 것이다.” 그 말에 약간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그런 치열한 전투 와중에 이미 그런 것까지 계산 할 정도의 여유를 부렸다는 말과 동일한 탓이다. 사실 일방적인 싸움이긴 했지만 그래도 놀랍긴 매한 가지였다. “그럼 주군은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난 떠날 것이다.” 명훈의 한마디에 둘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해서 되 물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 떠난 다는 말이다.” “정말 무책임한 주군도 다 보겠군. 허허. 수하를 거느 리자마자 떠나시겠다.” 클레인이 다시 투덜거렸다. 그런 클레인의 모습을 보며 명훈이 가볍게 웃었다. “너희들이 병사를 모두 양성할 기간동안 난 내가 할 일을 찾아 떠날 생각이다. 아직 이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뭐가 우선인지 아닌지조차 말이다.” 순간 발끈한 클래인이 다짜고짜 입을 열려고 하자 명 훈이 재빠르게 그의 행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다만 너희를 본 순간 이 녀석들은 놓치면 안 되겠다 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을 수정 했지. 다른 것은 몰라도 너희들을 먼저 잡고 시작하자 고 말이다.” 클래인과 세바스찬 2세의 눈 속에 확고한 믿음이 들 어섰다. 그리고 자부심을 느꼈다. 자신들을 인정하고 있다는 말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희를 수하로 받은 이상 그냥 떠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난 이미 너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 속에서 얼마나 깨닫는지는 네가 하기에 달려있다.” 클레인은 자신을 바라보며 하는 명훈의 말을 듣자 뜨 끔했다. “물론 그것은 추상적인 형상이다. 네가 한참 후 어떤 벽을 깨고 넘어섰을 때 큰 벽이 다가 올 것이다. 그제 야 너는 내가 가르쳐준 것에서 도움을 얻을 것이다. 하 지만, 그것은 미래의 일이다. 너희들에게 직접적인 무공 을 전수해 주겠다.” “무공? 검술을 말씀이십니까?” 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가르침을 따르면 너희 정도의 자질이면 이곳에 서 말하는 마스터의 경지에 최소 2, 3년 안에 넘어 설 수 있을 것이다.” 순간 클래인과 세바스찬 2세의 눈이 빛을 뿜었다. 자신들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들은 믿었다. 이미 상식을 초월한 존재가 자신의 눈앞에 있지 않은 가? “어떻게 말입니까?” “그것이 정말 가능합니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드 마스터라면 평생에 걸쳐 오르지 못하는 경지다. 그 하나의 벽을 평생 넘지 못하는 사람이 부기지수였 다. 그런데 자신들의 주군이 된 자의 입에서 3년 안에 소 드 마스터가 될 것이라는 확신어린 말이 흘러나왔다. 믿을 수 없었지만, 믿고 싶었다. 그 벽을 넘어서 보고 싶었다. 그들도 무인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에게 무공을 전수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너희의 수하들을 가르치라는 말과 동일하다.”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그런 비법을 전수하는가? 라는 생각에 망설 이는 듯 했지만, 곧 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 덕였다. “최소한 내가 돌아 올 동안 너희들은 어웨어 급의 기 사들을 익스퍼트 하이 레벨로 만들고, 병사들은 어웨어 급으로 올려놓아라. 너희라면 가능 할 것이다.” 그때 성질 급한 클레인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주군. 그것이 정말 가능한 겁니까? 그런 비 법이 숨어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마스터들은 모 두 그 비법으로 수련한 것입니까?” 명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보기엔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던 세상은 이곳에 비해 기가 적은 곳이다.” “기라뇨?” “아, 이곳에서는 마나라고 하더군.”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둘. “그곳에서는 이곳에서 마나라 부르는 것을 호흡으로 인체에 쌓는 수련을 한다.” “헉!” 세바스찬 2세과 클레인은 해머로 뒤통수를 가격 당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것이 정말 가능한 겁니까?” ~~~~~~~~~~~~~~~~~~~~~~~~~~~~~~~~~~~~~~ 곧 다음 글도 올리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52 회] 날 짜 2004-12-16 조회 / 추천 7696 / 79 선작수 553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2. 검황, 길을 떠나다 도무지 주군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믿음이 갈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들이 상식 밖의 이야기가 아닌가. 그때 명훈이 입을 열었다. “가능하다.” “어, 어떻게 그런…. 마나는 검을 휘두르며 수련해야 조금씩 쌓이는 것인데, 단순한 호흡만으로 그것이 가능 하다니….” “그렇다. 내가 이곳에 와서 생각한 것이 바로 그것이 었다. 이곳의 풍족한 마나를 나는 이곳의 사람들이 어 떻게 사용하는지 너무도 궁금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을 만나 본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너희 들을 보고 확 신했다.” “설마 나와 대련을 하자고 했던 것은 내 검술을 보기 위한….” “부정하지 않겠다. 분명 그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너 희들은 마나를 체내에 쌓는 방법을 아예 생각조차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다만 막무가내로 검을 휘두르며 쌓인 내력을 가지고 하나의 경지에 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한계가 있는 방법이다. 내가 있던 곳에 서라면 불가능 한 일이다. 아마도 이곳에 무한히 널려 있는 이 마나 때문에 그런 상식 밖의 일이 가능 한 것 같았다.” 그 말에 클레인이 다시 투덜거렸다. “주군이 말하는 것이 바로 상식 밖의 이야기네요.” 명훈이 슬쩍 미소를 지어줬다. 자신의 수하가 귀엽다고 느낀 탓이다. 하지만 클레인은 알까? 지금 기분이 좋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죽도 록 맞았을 거란 것을…. 여하튼 명훈은 말을 이었다. “그런 무식한 방법으로 검사의 경지까지 오른 것을 보고 확신을 가진 것이다. 너희들이 검을 휘두르며 내 력을 가다듬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도 나의 의문에 확신을 줬지.” “그런데 그 내력이라는 것이 대체….” 명훈은 클레인의 말을 끊었다. 천천히 자신의 팔을 들어 주먹을 움켜쥐었다. 화르륵! 거대한 불길이 일어났다. 그것을 보며 다시 한번 경악하는 세바스찬 2세와 클 레인이었다. “그, 그것은 마법이 아닌가요?” “아니다. 내가 마법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단언하건 데 이것은 마법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정말 내력….” “그렇다. 바로 이것이 내력이다. 내가 있던 세상에서 는 삼매진화라고 부르는 무공이지.” “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둘이다. 주군으로 정한 인간이 상식 밖의 인간이라 상식을 무 시하려 했건만, 그 밖의 밖에 것을 보여주니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은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러니까 주군께서 말씀하시는 내력인가 뭔가를 쌓 으면 우리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말이죠?” “그렇다.” 그 확언에 화색이 도는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이다. 클레인이 신이 나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뭐하쇼? 어서 귀여운 수하들에게 전수하지 않고!” 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것을 모두 외우도록해 라. 지금까지 너희들이 알고 있던 검술은 잊어 버려라. 아니 모든 것을 잊어라. 그래야 빠른 습득을 할 수 있 을 것이다. 너희는 사실 내공 수련을 하기에 나이를 너 무 많이 먹었다. 그 말은 근골이 굳어져 있다는 말과 동일하지. 하지만 이곳의 상식 밖의 거대한 기운은 그 런 단점을 보완하기에 충분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곳에 나와 같은 자세로 앉아봐라.” 명훈이 가부좌를 틀자 둘이 어정쩡한 자세로 따라했 다. “힘듭니다.” “물론 힘들 것이다. 이곳에는 자리에 앉는 습관이 아 닌 의자에 앉는 습관을 가지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너 희는 이미 운동으로 유연성을 지니고 있으니 조금만 하 면 숙달 될 거다. 처음에만 근육이 당길 뿐이지, 나중에 는 익숙해 질 것이다.” 명훈의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묵묵히 앉는 둘 이었다. 자신들이 얻을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 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불편함이 귀찮다고 포기할 거였다 면 무공을 수련하지 않고 접시 물에 코 박아 죽었을 것 이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 명훈. 그들의 가부좌 자세가 잡히기 시작하자 세바스찬 2세 와 클레인의 머리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흠칫 놀란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 설마 자신의 머리위에 손을 올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 다. 명백히 자신들을 무시하는 행위였으나, 명훈의 얼굴 을 보니 결코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전혀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입을 닫았다. 하지만 알아도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것임을 아직도 깨 닫지 못한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이었다. 명훈이 찬찬히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치려는 호흡법은 무한승환지기 라는 이름의 호흡법인데, 몸속에 숨어 있는 기운을 깨 워서 강한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효용이 있는 것이다. 잘 기억하도록 해라.” “무한승환지기….” 명훈은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의 몸 이곳저곳을 만지 며 자세교정을 해줬다. “그 상태에서 눈을 감아 보거라. 옳지.” 허리를 곧게 펴고 자세를 흩트리지 않자 명훈은 다시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의 머리위에 손을 올리고 차분한 말투로 말문을 열었다. “처음 호흡은 강하고 깊게 들이쉬고 가늘게 내쉬거 라.”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 명훈의 말대로 숨을 고르며 내쉬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렇게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고 잡념은 버리도록 해라. 지금부터 네 몸에 어떤 기운이 들어 갈 것인데, 그 기운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몸으 로 기억하도록 해라.” 순간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은 명훈의 손바닥이 닿아 있는 머리 부분에서부터 따스하고 보드라운 뭔가가 몸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머리를 통해 들어온 따스한 기운이 온몸을 따라 흐르 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 가르쳐 주었던 호흡법을 사용해 보거 라. 특히 몸속에 고루 퍼지는 것을 신경 써야 한다. 아 직은 자유자제로 마나(氣)를 사용 할 수 없겠지만 지금 몸속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을 유념하여 기억해 두도록 해라.”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이 알아들었을 것이라 생각했 는지 명훈이는 다시 한번 처음부터 기를 일주천 시켜주 었다.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는 자신의 몸속에서 꿈틀거리 는 미세한 몸의 느낌을 기억하려 애써야 했다. 간질간질 했지만 결코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잠시 후,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이 무아지경에서 기 를 순환시키자 명훈은 그들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만족 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은 지금 아주 작지만 따스한 무엇인가가 온몸을 이곳저곳 헤집고 다니는 것을 느끼 며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 눈을 떴다. 마치 단잠을 자고 일어난 듯 머리가 맑음을 느꼈다. 또한 어째서인지 몸에서 힘이 넘치는 기분이 드는 둘 이었다. 명훈은 그런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의 모습을 보더니 만족스런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아침 먹고 30분, 자기 전에 1시간 정도 꾸준히 수련 을 해라. 그러면 너희들의 몸속에 내력이라는 것이 쌓 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곧 다음 편을 올리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53 회] 날 짜 2004-12-16 조회 / 추천 7998 / 169 선작수 5533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2. 검황, 길을 떠나다 이제야 둘은 명훈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 사실임을 확 신했다. 자신들의 몸속에서 아직도 꿈틀거리는 기운들. 그것이 확신을 줬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그 기운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 직이며 몸속에 아무렇게나 퍼져있던 자신의 마나를 끄 집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마치 바닥에 널 부러진 책들을 책장에 질서정연하게 꽂아 넣는다는 표현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왠지 신선한 기분이다. 단 한번의 호흡으로 이런 기분을 느끼다니…. 이 엄청난 것을 배운 기쁨을 어떻게 분출해야 될지 몰랐다. “모두 기억했는가?” 기억하고 자시고가 어디 있겠는가? 어떻게 이것을 잊겠는가? 그들의 눈은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검술을 전수하마.” 그 말과 동시에 이제는 믿음이 주는 기대에 찬 표정 으로 명훈을 봤다. 그러나 얼굴의 한 부분에서는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호흡법이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전수하는 방법이 있다 고는 하지만, 검술이라는 것은 곁에서 체계적으로 가르 치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떠나겠다고 하는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가르치겠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 의문은 금세 풀어졌다. 명훈은 자신의 품속에서 얇은 책자 하나를 꺼낸 것이 다. 그것을 받아든 세바스찬 2세. “헉, 이것은!” 그 속을 펼쳐보자 한 사내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호쾌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가 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검식이다. 검을 이렇게 다루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면서 느꼈 다. “어, 어떻게 이런 검술이?!” 자신이 사용하는 1미터가 넘는 클레이모어 소드. 다른 검에 비해 상당히 긴 편이라 다루기가 워낙 까 탈스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단점마저 장점으로 소화하는 장면이 그 대로 담겨 있었다. 역동적이라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의 움직임. 그 속에 담겨있는 잔잔한 검식의 흐름. 자신의 가슴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세바스찬 2세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 다. 그것은 클레인도 다를 것이 없었다. 명훈이의 품에서는 한권의 책이 더 나왔던 것이다. 자신의 바스터드 소드와 어울리는 검식이 그려진 책 이 말이다. 발동작 하나하나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는 그림. 감동이었다. 이것을 보니 자신들이 선택한 주군이 자신들을 얼마 나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마음으로 깨닫게 됐다.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이 자신을 바라보자 명훈이 입 을 열었다. “내가 있던 곳과는 다른 검을 사용하는 이곳에 어울 리는 검식을 생각했다. 특히 너희들의 검을 보고 그것 의 행동방위를 생각하여 하나의 검식을 만들었지. 다급 하게 만들어졌기에 완벽한 초식으로 나뉘어 진 검술은 아니지만, 너희들이 사용하기에 부족이 없는 검식은 될 거라 생각한다.” 이게 어디가 부족한가? 말도 안 된다. 이건 엄청난 것이다. 자신들은 감히 상상도 못해본 새로운 움직임이었다. 세상천지 어떤 검술가가 이렇게 화려한 듯 날카로운 검식을 사용한단 말인가? 눈속임이 아닌 실전 검식으로 말이다. 세삼 명훈이 존경스러워지는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 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해 이것을 만들어준 명훈에게 감 사 이상의 것을 느꼈다. 이제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은 명훈이 하는 말이라면 모래로 성벽을 지어도 된다고 해도 믿을 것이다. 자신들을 수하로 삼기 위해 했던 일들은 모두 기억에 서 지워진 그들이었다. 이런 성의를 보이는 주군에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원한이 한없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자신들이 익힌 것도 어느 정도 틀을 가지고 있는 검 술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랐겠는 가? 하지만, 명훈이 건넨 검술은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 었다. 아무리 자신들 것이 실전 검술이라 우겨도 그것은 실 전 이상의 검술이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세바스찬 2세의 눈에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모든 일들.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다고 느껴질 만큼 가슴이 뻑차 올랐다. “설령 원하신다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은근히 툴툴거리던 클레인마저 무릎을 굽혔다. 확고하게 명훈에게 빠진 것이다. 아니, 그들은 뼈속까지 무인이었다. 명훈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이곳에 언제 돌아올지 나도 알지 못한다. 그동 안 너희들은 수련을 개을리 하고 있으면 안 된다. 너희 들이 바로 내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강해 지면 그것은 곧 내가 강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은 명훈의 한마디 한마디를 전 부 가슴에 담았다. ~~~~~~~~~~~~~~~~~~~~~~~~~~~~~~~~~~~~~~~~ 에휴.. 이제 약간 정리가 되는 군ㅡㅡ;; 곧 다음편을 올리겠습니다. 바로 안올라오면 오후에 올린단 말이예염 ㅡㅡ;; 재촉은 하지 말아주세요 >,.<;;;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54 회] 날 짜 2004-12-16 조회 / 추천 6553 / 99 선작수 5533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2. 검황, 길을 떠나다 명훈의 목소리는 그들을 압도하는 뭔가를 가지고 있 었다. 과거 수만의 무림인들 위에서 군림했던 그때의 그 기 개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 정도의 위압감이었다. 명훈이가 떠나고 난 자리는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친 다고 느껴질 정도로 공허하게 느껴졌다. 클레인이 그가 마지막으로 건네준 세 번째 책을 내려 다보았다. 병사들은 이것으로 수련하도록 하면 된다고 했다. 속성검법이라 깊이는 부족하지만, 이것을 익히면 병 사들이 검기상인의 경지 그리니까 소드 어웨어 급 까지 는 무난하게 올라갈 거라 했다. 하지만, 보통의 병사들은 그 이상 올라가기 힘들 것 이라는 말도 전해줬다. 그 나이가 되도록 이렇게 마나가 풍족한 곳에서 조차 마나를 느끼지 못했다면 진전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 말에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자신들 역시 짐작하고 있던 이야기이기 때 문이다. 자신들은 예민하다고 할 수 있는 어렸을 적부터 검을 휘둘러 마나와 친화력을 높인 상태였고, 이미 둔해진 어른의 몸으로 마나를 받아 드린다고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은 저 멀리 사라지고 있는 명 훈의 등을 보며 자신의 각오를 다잡았다. 이곳의 영지를 황궁수비대와 맞먹는 곳으로 만들어 놓겠다고. 그리고 자신들이 인정한 주군이 다시 돌아오는 그날, 새로운 역사의 반전을 시작하겠다고 말이다. 명훈은 다크 엘프의 숲 앞에 있는 마을로 다시 돌아 갔다. 아직 바로 출발할 생각이 없었던 탓이다. 정리할 것도 남았고…. 그리고 곳 일어날 신체변화가 일어날 시점이라 더욱 조심하는 명훈이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로이의 살가운 모습이 나쁘지 않은 명훈은 달갑게 맞 아줬다. “잠시 산책 좀 하고 왔다. 아, 너희들에게 할말이 있 는데…. 이곳에 있는 병사들을 모두 이 자리로 소집할 수 있겠는가?” “그게 뭐 어렵나요? 그런데 왜요?” “우선 부탁하네.” 평소와 약간 다르게 느껴지는 명훈의 진지한 목소리 에 고개를 꺄웃거리던 로이. “예, 알았어요. 불러 오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 말을 남기고 마을의 광장 쪽으로 달려가서 크게 한번 외치자 사람들이 두런두런 몰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하품까지 하며 모여 들었다. 하지만, 한사람도 빠지지 않는 것을 보니 기강은 잘 잡은 듯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들은 명훈의 앞에 모였다. 그 순간 지금까지의 어영부영했던 모습들이 사라지고 군기가 잡히기 시작했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죽기라도 하듯 말이다. 명훈을 향한 존경심과 경외감이 그렇게 표현 된 것이 리라. 명훈은 슬쩍 웃었다. “형님, 모두 불렀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명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 부른 이유는….”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갔다. 명훈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말이다. 이야기가 끝나자 뮤엘이 딱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 다. “그 말씀은 우리보고 루이스 영지의 기사로 들어가라 는 말씀이신가요?” 명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못 본 것을 봤다는 듯 시선 을 땅으로 돌리는 뮤엘이다. 귀족들이 싫어 목숨을 걸고 이곳으로 도망쳐 온 자신 들을 무시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마음을 잘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것은 나 혼자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명훈에게 집중됐다. 그때 저편에서 헛기침과 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그 후는 내가 말해도 되겠네. 자네는 수고 했 어.” 명훈이 슬쩍 끄덕이며 자신이 서있던 자리를 촌장에 게 물려줬다. ~~~~~~~~~~~~~~~~~~~~~~~~~~~~~~~~~~~~~~~ 검황 이계 독자분들은 다 독심술을 익히고 있나봐요 ㅡㅡ;; 지금까지 몇번이나 놀랐는지 모를 정도라니까요ㅡㅡ;; 다음 화에 밝히려는 내용을 어떻게 쪽집개 처럼 집어내서 물어보는지..... 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하튼 모두들 대단하세요^^ 저 한가는 감탄 뿐이랍니다. 감탄~ 감탄~ 이제는 한가는 한갓지게 책 좀 읽으면서 휴식을... 글을 더 써도 상관은 없지만 마저 읽던 책을 다 읽어야지만이.... >,.< / 조아라에서 연재하시는 박군님의 강철의 마도사라는 글도 읽어야 하고... 여하튼 요즘들어 읽을 글들이 많아서져 행복해요.(뿌듯뿌듯) 흠.... 그럼 저녁에 뵈요~ 모두 바이~ 독촉하셔도 읽는 책 다 읽고 올겁니다아~ 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56 회] 날 짜 2004-12-17 조회 / 추천 5365 / 67 선작수 5533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2. 검황, 길을 떠나다 “촌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뮤엘이 물었다. 촌장이 뮤엘을 조심스럽게 내려다 봤다. 마치 누구보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표정이 다. “흠…. 어디부터 말해야 할까.” “저희가 납득 갈 수 있는 곳부터 말씀을 주세요.” “그래, 그렇다면….” 촌장이 무슨 말을 할지 모두 긴장하는 낯빛이 역력했다. “…이번에 오크들의 약탈에 맥없이 쓰러지는 주민들을 보고 생각하고 있었다.”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는 뮤엘 들. 하지만 묵묵히 촌장의 말을 들었다. “과거에는 기사단장까지 올라갔던 가일도 있었고, 몬스 터도 거의 없었기에 상관이 없었지만. …흠, 몇 년째 들어 가는 흉년이다. 풍작은 볼 수 없고, 겨우 끼니를 때우기 부 족하지 않은 양만 수확을 했지. 우리야 상관없지만, 영지 쪽은 심각하다고 들었다.” “…….” “그들을 약탈하는 오크들도 굶주릴 테니 더욱 난폭해 질 만도 했지.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 다크 엘프의 숲 근처인 이곳까지 온 걸 거야. 앞으로 언제까지 이런 흉작 이 올지는 모르지. 그 말은 언제까지 이 위험이 지속 될 수도 있다는 말이야.” 촌장이 슬그머니 뮤엘들을 봤다. 모두들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들이다. 그때 로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막지 못해도 블루 형님이 계시잖아요.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 가볍게 촌장이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끊었다. “블루 군은 이제 떠난다.” “예?!” 순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렇게 마을 사람으로 받는 것을 불만했던 그들. 이제는 명훈이 떠난 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그만큼 명훈이 이곳에서 인정받았다는 말이기도 했고, 존재감 또한 크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시선이 명훈을 향했다. “더 이상 이곳에 내가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 는 이방인이기 때문이야.” “에그잔티아는? 에그잔티아는 형님에게….” “후후, …난 이미 부인이 있던 몸이다.” “헉!” 모두 놀랐다.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명훈의 깊은 눈은 장난하는 것이 아니다. 침묵이 이어졌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로이의 침울한 표정을 보며 명훈이 어깨를 움켜쥐었다. “이제 곧 결혼한다고 들었다.” “아….” 로이의 시선이 슬쩍 들어올려지며 명훈과 마주쳤다. 하지만 다시 바닥으로 꽂히는 시선. 자신의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상기된 로이의 얼굴. 명훈이 로이의 어깨를 더욱 강하게 쥐었다. “미안하다. 네 결혼식까지는 축하해준 후에 가고 싶었는 데…. 하지만 설마 네 짝이 꽃집의 로사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후후후.” “그렇다면 제 결혼식을 보고 가세요. 왜 이렇게 서두르 시나요?” 명훈이 담담하게 로이의 말을 받았다. “이미 결심이 섰기에 어쩔 수 없다.” “며칠, 며칠도 안 되나요?” “남자는 결심이 섰을 때 움직여야 한다. 결심이 서고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는 사내가 아니다. 마음을 먹었을 때 바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바로 네가 로사에게 결국 고 백한 것처럼….”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로이. 이제 이해를 하겠다는 듯한 모습이다. 그것은 모두가 같았다. “그럼 형님. 에그잔티아나 루티시아에게는 밝히지 않고 떠나실 생각이세요?” 명훈이 끄덕였다. “그럴 생각이다. 괜히 심란하게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 명훈의 모습에서 뭔가 발견한 뮤엘. 명훈도 에그잔티아를 보며 뭔가를 느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을 꺼내진 않았다. “그럼 밖으로 나가시면 무엇을 하실 생각이세요?” “글쎄…. 우선은 떠돌 생각이다. 떠돌며 이곳이 어떤 곳 인지를 알고 싶다.” 알쏭달쏭한 말이었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뭐가 깊은 뜻이 있다고만 생각할 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들은 형님과 촌장님의 의견을 따 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돌아오시는 거죠?” “그래. 다시 돌아오기 위해 너희들을 그곳에 보내는 거 다. 다시 만나서 얼굴을 보기 위해 말이야. 내가 이곳에 돌 아 왔을 때 너희들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보지 못한다면 난 나를 용서하지 못 할거다.” 뮤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속에 신뢰가 들어 있었다. “알았어요.” “그동안 고마웠다.” 로이와 뮤엘, 그리고 친숙한 얼굴의 사람들의 어깨를 한 번씩 쳐준 명훈 그들의 곧 자신들의 눈에서 사라져가는 명훈의 등을 바 라봤다. 그렇게 크게만 느껴지던 명훈. 어째서 외소하게 느껴지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 너무 죄송합니다. 곧 다음편을 올리겠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올라옵니다. ps. 아차! 다음화 부터는 명훈이 블루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출판사에서 블루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니 그냥 블루로 나가기로 했어요. 다음 화부터 헛갈리지 마세요~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57 회] 날 짜 2004-12-17 조회 / 추천 5508 / 156 선작수 5533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3. 검황, 용병되다. 3. 검황, 용병되다. 붉은 빛이 허공을 수놓는다. 동이 터 오르는 것이다. 그때 세상의 아침을 알리는 아침이슬이 차가운 기운을 가득 안고 블루의 얼굴로 떨어졌다. 톡. “윽, 차가워.” 숲 속에서 처음 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달갑진 않은 블루다. 어제 새벽까지만 해도 블루는 썩어서 옴폭 파인 나무 구 멍에 몸을 기대어 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엉뚱한 곳까지 굴러 와서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약간의 명상만으로도 수면이 필요 없는 블루다. 이곳에 와서 떠돌며 잠자는 취미가 생긴 것이다. 거기다 넉넉한 마음으로 떠도는 중이라 이제는 아무 곳 에서나 잠을 잤다.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굵은 성격이 한 몫을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몰랐던 잠버릇이 드러났다. 그것이 얼굴에 찬이슬을 맞게 된 이유다. 블루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이슬을 옷깃으로 훔쳤다. 갑자기 밀려오는 외로움.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간사하고 나약한 것일까? 그토록 매몰차게 마을을 떠난 것은 자신이 아닌가. 그런데 막상 다시 혼자가 되자 느껴지는 감정이라니. 블루는 잠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때 자신의 친구 장삼봉과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하. 즐겁군.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이 하나 들 더군. 자네는 언제까지 이렇게 세상을 배회하며 살 것인 가? 언젠가 정착하여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와 같이 검 지(劍地)로 가지 않겠는가?” 검황의 질문에 장삼봉이 웃더니 입을 열었다. “친구, 내가 배회하는 것처럼 보이던가?” “무슨 말인가?” “흐흐, 자네는 아직도 멀었군. 잘 보게나. 내가 이렇게 누우면 걷고 뛰던 땅은 침상이 되고, 하늘은 이불이 되어 나를 포근하게 감싸지. 그리고 내가 다 쉬고 자리에서 일 어나면 나를 감싸주었던 침상과 이불은 다시 땅과 하늘이 되어 나의 길동무가 되어 세상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다녀 준다네.” “…….” “내 침상이 이곳에 있고, 저곳에도 있는데 어찌 배회라 는 말이 옳은가?” “…아! 생각해 보니 그렇군. 내 생각이 아직도 많이 부족 한가 보이. 그러니 우둔한 나를 자네가 많이 깨우쳐 주게 나.” “예끼. 시끄러우니 배배꼬지 말고 이 큰 형님이 하시는 말씀이나 잘 들어보라구. 그렇게 건방떨며 말 자르지 말 고.” “세이경청하겠네.” “세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들으려는 자세는 되었군. 흠 흠. …사람들은 집을 짓고 그곳은 자신의 것이라 하지만, 이 세상 만물 무엇 하나도 개인이 소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네. 단지 잠시 빌려 쓰고 있을 뿐이지. 집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만든 틀일뿐이라네. 내가 이 넓은 땅을 집이라고 생각하면 이 세상이 모두 내 집이 아니겠는가?”] 블루가 피식 웃었다. ‘네놈의 말이 맞다. 이 세상 모든 곳이 내 안방이 더구 나.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왜 이리 절실하게 그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와 닫는 것일까?’ 순간 블루는 장삼봉이 느꼈던 평온함이라는 것이 외로움 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솔직히 명훈은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일이 현실이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마치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는 것이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알기에 더욱 부정한 것일 수도 있었다. 블루는 힘겹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기지개를 키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막상 몸을 움직이니 아까의 센티멘털했던 기분이 사라졌 다. 마지 조금 전까지 했던 생각들을 정말 자신이 했나 의아 해질 정도로 말이다. “큭큭. 나랑 어울리지 않는 짓을 했군. 여하튼 장삼봉. 그 자식이 날 너무 물들였다니까. 흐흐흐.” 블루는 가볍게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럼 슬슬 다시 걷기 시작해 볼까?” 터벅. 터벅. 한참을 걷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머리를 긁적 이던 블루. “그런데 여긴 어디지? 어제 내가 이쪽으로 왔던가?” 은근히 방향치인 블루였다. 그리고 한참을 멍하니 서서 허공만 바라봤다. 블루의 귀가 멀리서 싸우는 소리를 잡아내지 못했다면 하루 종일 그렇게 서있었을지도 모른다. 챙챙! “이 개자식들! 어디서 나타난 거야?!” “젠장! 클루토, 뭐해! 어서 불 한방 갈기지 못하고!” “크르르…. 쿠와루!” 대낮에 늑대인간의 공격을 받는 별로 즐겁지 못한 희귀 한 체험을 하고 있는 한 검사가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는 마른 사내에게 보체는 말투로 계속 고함을 질렀다. ~~~~~~~~~~~~~~~~~~~~~~~~~~~~~~~~~~~~~~ 곧 올리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58 회] 날 짜 2004-12-18 조회 / 추천 8573 / 73 선작수 5728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검황, 용병되다. “어서!” “조금만, 조금만 더. …돼, 됐다! 파이어 볼!” 화르르르르! 순간 거대한 불덩어리가 거친 소음을 뿌리며 늑대인간 다섯 마리가 몰려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뒤늦게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지 의아한 한 듯한 표정으로 늑대인간들이 뒤를 돌아봤다. “크루…?” 순간 자신들의 눈앞까지 날아온 불덩이를 보고 눈을 동 그랗게 뜨고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퍼엉! 화르르르르륵! “깨갱! 깨갱깽!” “꾸오오오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음과 단백질이 연소하며 풍기는 구수한 냄새가 숲 구석구석을 파고 들어갔다. “나이스! 잘했어!” “수고했어! 클루토” “헤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오히려 역효과였나 싶을 정도로 녀석들의 발광하기 시작 했다. “꾸워워워워!” “아우!” 다섯 마리가 타죽자 남은 여섯 마리의 늑대인간이 눈에 불을 키고 덤벼들었다. “베르니스 조심해!” “헙!” 창! 은발 머리를 한 검을 든 사내의 외침에 베르니스라 불린 푸른 빛의 산발한 머리를 한 사내가 검을 들어 막았다. 하지만, 늑대인간의 날카롭고 강인한 발톱은 꿈쩍없었다. 오히려 더욱 거침없이 반대 팔을 휘둘러 베르니스의 목 을 노리듯 날아왔다. “이런 니미럴!” 베르니스는 쌍소리를 내뱉었다. 검을 빼서 막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자신의 왼쪽 팔에 두텁게 둘러 있는 팔목 보호대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양손으로 쥐고 있던 검에서 손을 때고 그 날 카로운 발톱을 막았다. 하지만…. 푸욱! “크흑!” 완벽하게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생각보다 늑대인간의 발톱은 날카로웠던 것이다. 잘리지는 않았지만, 깊은 상처가 생긴 듯 했다. 피가 배어 나온다. 팔목 보호대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늑대인간이 이를 드러내며 자신의 공격이 막힌 것에 분 노를 터트리듯 이를 드러내며 목을 울렸다. “크르르르르….” “이런 미친 개새끼가!” 베르니스는 그런 늑대인간의 후끈 달아오른 듯한 입김을 느끼며 분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발을 높게 들어 늑대인가의 배를 후 려 깠다. 퍼억! “깽!” 짧은 비명과 동시에 뒤쪽으로 나가떨어진 늑대인간. 그와 동시에 허공을 붕 떠서 검을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바닥을 뒹구는 늑대인간의 몸을 강하게 밟아 준 후 검극 을 그대로 녀석의 목에 틀어박았다. 푸욱! 그와 동시에 슬쩍 비틀었다. 뚜둑. 손끝으로 완전히 목뼈가 부러진 것을 확인하고 검을 뽑 음과 동시에 몸을 피했다. 다른 늑대인간이 덤벼온 탓이다. 푸솨솨솨솨! 목이 절반 이상 잘린 늑대인간의 목에서 피분수가 품어 지며 그 다른 늑대인간의 몸을 적셨다. “으윽.” 다른 늑대인간과 맞서기 위해 검을 곧추세운 베르니스. 그와 동시에 인상을 구겼다. 아니,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왼팔에 입은 상처. 상상이상으로 너무나 큰 탓이다. 하지만 늑대인간의 공격을 막아야만 했다. 그래서 팔에 힘을 주자 품어지는 피와 함께 경악할 만한 고통이 따라 올라왔다. 등골이 오싹 소름이 끼칠 정도의 통증이다. 으득! 통증을 이기기 위해 이를 악문 베르니스. 자신의 샘으로 아직 남아 있을 늑대인간은 다섯 마리. 주변을 슬쩍 돌아보니 텐시가 눈에 들어왔다. 텐시는 물의 정령술사로 자신의 정령을 활용하여 늑대인 간 한 마리를 상대하는데 지장이 없어 보였다. 자신과 같은 검사인 스콜. 어웨어 급의 실력을 폼 내듯 두 마리의 늑대인간과 견제 를 하며 싸우는 중이었다. 조금 전 파이어 볼을 날린 클루토. 어느 세 큰 나무 뒤에 숨어서 걱정스런 눈빛으로 이곳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베르니스 로서는 한숨이 나왔지만 원래 그런 녀석인 것 을 어쩌란 말인가.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이다. 바로 그 순간 베르니스의 머릿속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 왔다. ‘한마리가 빈다?!’ 소름과 동시에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숨어있던 한 마리 의 기척. “크르르르르….” ~~~~~~~~~~~~~~~~~~~~~~~~~~~~~~~~~~~~~~~~~~~~~~~~~~ 설마 벌써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죠? ㅎㅎ 명색이 주인공을 보좌할 녀석들일텐데 말이죠^^ 다음 화로 곧장 달려가주세요오~ >,.< / 1분후 올라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59 회] 날 짜 2004-12-18 조회 / 추천 8229 / 81 선작수 5728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검황, 용병되다. 마치 너 잘 걸렸다라고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다. 진땀이 흐르는 베르니스. 녀석은 지금의 상황을 노리고 기다린 것이다. 피할 곳은 없었다. 뒤로 빠진다면 동시에 덤빌 두 마리를 어떻게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할 수만도 없는 입장이 아닌가. 어느 세 일행들도 그런 베르니스의 위험을 감지했는지 비명을 질렀다. “이런 제길!” “베르니스 피해!” 스콜과 텐시의 목소리가 베르니스의 귓가에 들린다. 그와 동시에 몸을 뒤로 날렸지만, 두 마리의 늑대인간이 그 큰 빈틈을 놓칠 이유가 없다. 눈앞까지 다가 온 두 마리의 늑대인간을 보고 절망한 베 르니스. 결국 자신의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곧 다가올 고통과 죽음을 맞이했다. ‘제길! 난 이런 곳에서 죽어선 안돼!’ “안돼!” “베르니스!” 그때 들린 동료들이 처절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외 침. 마치 베르니스 자신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만 같 았다. 그런데, 퍼벅! 퍼억! 그와 동시에 들린 엄청난 타격음과 북 터지는 소리. “깨갱 깽깽깽!” “깽깽깽깽깽!” 개가 늙은 거지 몽둥이로 맞는 듯한 비명소리도 들려왔 다. 베르니스는 그 소음에 질끈 감았던 자신의 눈을 번쩍 떴 다. 뭔가 눈에 잡히자 베르니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니,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아났는지는 모르겠지 만, 갑자기 나타난 한 사내의 등이 보였다. 그것까진 좋았다. 거침없는 손속으로 주먹질 하는 것까진 이해를 할만했 다. 하지만, 그 주먹질에 얻어터지고 있는 것을 보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그 사내는 늑대인간을 패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자신을 공격하던 그 두 마리의 늑대인간을 말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두 마리의 늑대인간을 패면서 내뱉는 말들이었다. “이 자식이 사람 새끼야? 개새끼야?” “으르르….” “어쭈? 어디서 앙앙대? 뒤 질라고!” 이를 들어 내민 늑대인간을 보고 마음에 안든 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팔을 힘껏 뒤로 쭉 빼내며 턱 부분을 있는 힘껏 후려 갈겼다. 퍼어억! “깨갱! 깨개개개개개갱!” 얼마나 강한 타격인지는 소리만 들어도 알 정도였다. 늑대인간의 주둥이로 하얀 뭔가가 우수수 떨어졌다. 보는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늑대인간의 치아라는 것을 모 를 리 없었다. 철판도 뚫는다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강하고 날카로운 이. 이가 빠진 늑대인간이라…. 왠지 너무나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때리는 사내는 전혀 그렇지 못한지 주먹으로 안면 을 계속 내리팼다. “사람이면 주둥이가 들어가야지….” 라고 하며 주둥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말이다. 퍽! 퍽! 퍽! 녀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스콜과 상대하던 두 마리의 늑대인간 중 한 녀석이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그리곤 정체불명의 사내 등 뒤로 다가갔다. 잠시 정신을 팔았던 사람들은 바로 알아차리진 못했다. 녀석이 기척을 숨긴 탓이다. 하지만, 곧 눈치 차린 베르니스들. 은혜를 갚기 위해 고통을 참고 검을 꼬나 든 베르니스. 그러나 손을 쓰기엔 이미 너무나 늦었다. 녀석의 움직임이 더욱 빠른 탓이다. “이, 이런!” 베르니스의 짧은 탄성. 순간 모두들 자신의 눈을 다시 한번 의심하게 됐다. ~~~~~~~~~~~~~~~~~~~~~~~~~~~~~~~~~~~~~~ 놀랄 만도 하지 케케케! ㅡㅡ;;;; 흠..... 오늘은 고XX의 송년의 밤에 가게 되는 날이네요~ ㅎㅎ 그래서 많이 올리지 못합니다. 다음화로 어서 넘어가주세요~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60 회] 날 짜 2004-12-18 조회 / 추천 9928 / 225 선작수 5728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검황, 용병되다. 팟! 바닥에 눕힌 두 마리의 늑대 인간을 열심히 구타하던 사 내의 모습이 갑자기 자신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탓이다. 동시에 들린 뼈 으스러지는 소음. 푸컥! “깽깽!” 자신이 기습하려던 사람이 사라진 것을 멀뚱히 바라보며 두리번거리던 늑대인간의 비명이었다. 녀석은 이미 자빠져 있는 동료들의 위로 고스라니 날아 갔다. 물론 엄청난 속도로 말이다. 털푸덕! 동시에 밑에 깔린 두 마리와 더불어 위로 덮친 녀석의 입에서 다시 한번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그냥 비명이 아닌 숨이 넘어 갈 것 같은 비명. “커허허헉!” “켁!” 엄청난 관경에 턱이 빠져라 보고 있던 베르니스들. 이미 늑대와 싸우고 있던 스콜과 텐시 조차 넋을 잃고 그 장면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전의를 상실한 늑대들이 손톱을 숨긴 탓이다. 그때 흘러나오는 비웃음.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정체불명의 사내는 비릿한 웃음과 동시에 세 마리의 늑 대인간에게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 위에 엎어져 있는 녀석의 멱을 움켜잡더니 가 볍게 들어 올렸다. “크흐흐흐. 감히 이런 허접 쓰레기 같은 녀석이 본좌의 등을 노렸단 말이지? 큭큭큭….” “깨앵….” 왠지 저 거대한 늑대 인간이 불쌍하게 보였다. 그런데 그 장면이 뭔가 언벌런스하게 보이는 베르니스 들. 사내의 왜소한 덩치 탓이리라. 자신의 몸무게의 세배는 됨직한 늑대인간을 들어 올리다 니…. 그것도 가뿐하게 말이다. 베르니스들은 놀라다 못해 질리는 표정을 지었다. 곧 그들은 놀라서 턱이 빠지는 생소한 경험을 하게 됐 다. 사내의 입이 움직이며 가볍게 한마디가 튀어 나왔다. “본좌의 등을 노렸으니 가볍게 죄 값을 치러야겠지.” “깽?” “그렇게 불쌍한 눈으로 바라봐도 소용없어. 큭큭큭.” 그와 동시에 손가락 두개로 주저 없이 눈을 찌를 사내였 다. “깨갱깽!” 녀석이 고통에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녀석을 들고 있는 사내는 한 치의 미동조차 없 었다. “훗! 그렇게 좋아하지 마. 본좌가 흥분 되잖아. 곧 다가 올 본능에 충실해야지. 큭큭큭.” 뭔가 느끼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혼자 즐기는 듯한 모습 이다. 하지만, 느끼함을 느낄 세도 없이 시작되는 폭풍 같은 난타. 퍼버버버버버버버벅! 소리는 들리지만 사내의 팔이 사라지기라도 한 것이냥 주먹이 보이지 않았다. “오오, 이 손맛…. 그래. 이거야. 내가 원하던 바로 그것! 크하하하!” 퍼벅! 퍼벅! 퍼퍼퍼벅! “켁켁켁켁켁켁켁켁!” 이미 기절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 는지 더욱 강하게 몰아치는 사내. 그 속에는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묘한 박자가 숨어 있었 다. 구경하는 자신들의 속이 후련해지는 통쾌함마저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패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늑대인간 녀석이 맞는 반동으로 허공에 떠있는 것이다. 사내가 다시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켁켁켁! 꾸에에에에에엑! …켁켁.” 그때 늑대인간은 기절한 상태에서도 맞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다시 정신을 차렸는지 눈을 부릅뜨더니 단말마의 비 명을 지르고 다시 기절했다. 이게 조금 전에 말했던 가벼운 죄 값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대체 무거운 죄 값이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아니, 상상 그 자체가 불가능했다. 지금 직접 보는 것조차도 상상 해본 적 없는 그들이다. 믿어지지 않는 관경을 보게 된 베르니스와 동료들. ‘혹시, 정말로 꿈은 아닐까? 엄청나게 리얼한 꿈을 꾸고 있는 걸거야.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하는 생각에 자신들의 볼을 잡아 당겼다. 그러나 고통은 지금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가르쳐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진짜 꿈이라 생각하여 있는 힘껏 꼬집은 탓이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통증에 다시 시선을 그곳으로 돌 렸다. ~~~~~~~~~~~~~~~~~~~~~~~~~~~~~~~~~~~~~~~~~~~~~~ 앞에 화에서 밝혔던 것처럼 오늘 송년의 밤 때문에 외출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ㅡㅡ;;; (신나게 놀다오겠습니다아~ 아자아자!) 아참 광참을 기대하시는 분들.... 예고를 하나 할까 합니다. 대충 화요일이나 수요일.... 과거이상의 광참을 보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말이죠 ㅎㅎㅎ 놀라서 심장마비 일으키시면 안되요오오~ 그런데 평소에는 저도 놉니다 ㅡㅡ;; 계속 앉아서 글만 쓰는 것이 아니예요~ 그리고 분량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아~ 제발 분량 적단 말만은 ;ㅁ; 저 죽어요오오오오~ 곧 다음 편을 올리겠습니다. ps. 참고로 연재분에서는 재미를 위해 넣은 말장난들. 출간본에서는 적당히 자르도록 하겠습니다. 제 글은 언제나 연재분과 출간본이 항상 다를 겁니다. ㅎㅎㅎ 제 책을 사주시고 빌려봐주시는 분들의 예의라 생각하며.....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61 회] 날 짜 2004-12-20 조회 / 추천 5766 / 94 선작수 5728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검황, 용병되다. 블루는 정말 신이 났다. 오랜 만에 만나는 사람들도 그렇고, 이렇게 팰 것들이 널려 있는 것도 그랬다. 검을 드는 것 역시 좋다. 말하기 힘들 정도로 느껴지는 뿌듯함과 충실함이 좋다. 하지만, 이렇게 몸이 찌뿌둥 할 때는 직접적인 타격감이 최고였다. 팔을 타고 올라오는 타격감에 온몸에서 전율이 흘렀다. 상큼한 이 기분을 누가 알까. 충분히 녀석을 팼다고 생각한 블루. 마지막으로 아구창을 먹이며 산뜻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경악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멀쩡한 늑대 인간 두 마리를 스쳐지나가며 처음에 패던 녀석들을 향해 다가갔다. 녀석들은 바닥을 기며 뒷걸음질을 시도했다. 그러나 너무 다급하게 비했던 것일까? 바닥에 자빠지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다시 주둥이를 맞아서 이가 모두 녀석 역시 열심히 뒤로 도망쳤지만, 블루의 손길을 벗어나기엔 부족했다. “이게 어딜 가시나…. 마무리는 지고 가야 할 것이 아닌 가?” 늑대인간이 되기 전에는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블루의 말 을 모두 알아들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빨이 모두 빠진 녀석의 몸짓이 애처롭게까지 보이는 베르니스와 동료들. 문제는 블루에게 용서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감히 변종동물 따위가! 인간에게 달려들었다는 것에서 화가 났다. 아니, 사실은 그냥 답답한 속을 풀어줄만한 뭔가가 필요 했을 지도…. 여하튼 구실하나는 잘 잡았다. 하나하나 적당히 잘 다져줬다. 속이 후련하다는 듯 상큼한 미소를 지은 블루. 그럼에도 아직 약간 부족하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고 서있는 두 마리의 늑대인간에게 시선을 돌렸다. “케, 켕!” 두 마리의 늑대인간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미친 듯 숲 속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블루가 아니었다. “훗!” 가볍게 입가에 미소를 지은 블루. 자신의 주먹만한 짱돌 두개를 바닥에서 쉽게 찾을 수 있 었다. 가볍게 툭툭 던졌다 받았다하며 무게를 측정했다. 블루의 표정에 만족스러움일 배였다. “이렇게 끝내선 내가 너무 섭하지이!” 있는 힘껏 돌을 집어 던진 블루. 쒜엥! 초음속 비행기라도 날아가는 듯한 소음이 들린다. 퍼퍼퍼펑! 동시에 주변에 회오리가 몰아치며 앞을 가로 막던 집체 만한 나무 세 그루를 가볍게 뚫어줬다. 그리고 그 앞에 달려가던 한 마리의 늑대인간의 뒤통수 에 직격으로 명중했다. 빠악! 두개골 함몰하는 소음과 동시에 늑대인간은 달리던 포즈 로 바닥에 나자빠졌다.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함께 달리다가 동료의 비명을 지켜본 늑대인간.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경악어린 표정을 지었다. “키힉!” 엄청난 속도로 그 뒤를 이어서 날아오는 짱돌이 눈에 들 어온 탓이다. 퍼어억! 숲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블루가 자신의 팔을 안으로 끌 어당기며 외쳤다. “나이스!” 자신의 명중률에 만족한 표정이다. 두 마리를 한 순간에 비명에 보낸 블루. 하지만 곧 자신에게 다가오는 따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 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구해준 사람들의 경계어린 눈빛이었 다. ~~~~~~~~~~~~~~~~~~~~~~~~~~~~~~~~~~~~~~~~~~~~` 어제 쉬어서....;ㅁ; 짧지만 먼저 올려봅니다. 왠지 허전해서.... 다음 글은 4시에 올리겠습니다아~ ;ㅁ;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62 회] 날 짜 2004-12-20 조회 / 추천 5440 / 157 선작수 5728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3. 검황, 용병되다. 한참 후,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 되자 사람들은 자신들 을 구해준 블루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저는 베르니스라고 하고, 이쪽은 저와 같은 검사인 스 콜. 여기 아름다운 숙녀 분은 물의 정령사인 텐시. 그리고 여기 소심한 겁쟁이는 저희의 든든한 전력이 되어주는 클 루토라고 합니다.” “저는 블루라고 합니다.” 블루가 인정 넘치는 미소로 마주 웃었다. 하지만 베르니스들의 얼굴에서 블루에 대한 경계심이 완 전히 풀린 것은 아니었다. 블루의 상식을 넘어선 뭔가를 본 탓이다. 인간으로 생각이 되지 않는 상식 밖의 행위를 말이다. 순간 나타나서 늑대인간을 때려눕히기도 하고, 돌을 집 어 던져 집체만한 나무의 구멍을 뻥뻥 뚫어가게 날아가게 하는 모습. 결국 늑대인간을 명중시키기까지 했다. 물론 머리가 날아간 두 마리의 늑대인간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런 것들을 목격한 상황인데 어떻게 믿음이 생길 수 있 겠는가? 거기다가 자신들과 다르게 이름만 달랑 밝히는 모습에서 자신의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베르 니스들이었다. 그때 텐시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블루님. 이곳에는 어떻게 오시게 되셨나요?” 너무나 절묘한 질문이다. 정체를 밝히라는 말을 교묘하게 돌려 말하는 그녀의 말 투 속에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노련미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블루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길을 잃어서 헤매던 중이었습니다.” 블루의 말을 들은 베르니스들. 역시 블루라는 사내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 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만약 그들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블루는 억울했을 것이 다. 정말로 사실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서 길을 잃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평범한 사람이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험하기로 소문난 베르나의 숲이다. 간혹 자신 같은 용병들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몬스터를 잡는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돈이 떨어진 자신들은 급히 늑대인간의 송곳니 30여개 를 의뢰받아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늑대인간은 강하고 잡기 까다롭지만 개인 활동을 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던 터였다. 그런데 이놈의 늑대인간들이 미쳤는지 열 한마리가 단체 로 덤빈 것이다. 마치 덧을 놔두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보통 행동양식을 생각하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스스로들도 확정짓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의문조차 떠오를 정신이 없었다. 그때 블루가 나타난 것이다. 그토록 위급한 상황에 블루가 목숨을 건저 준 것이 아니 었다면 이렇게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을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자와 함께 자리를 한다는 것은 죽음을 감 수하겠다는 말과 동일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용병이란 특성상 원한이 쌓일 수밖에 없는 직업인 탓이 다. 원하던 원치 않던 돈을 받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받았다 면 그가 남의 목숨을 가져와 달라 해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쌓인 원한. 복수라는 이름으로 어느 순간 다가올지 모르는 것이다. 그때 블루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마을로 가시는 겁니까?” 점잖은 지금의 모습과 조금 전 악귀와도 같은 모습이 매 치 되지 않는 베르니스들이다. 클루토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 이제, 일도 마쳤으니, 마을로, 가려고 해요….” 한자 한자 끊어서 말하는 말투는 답답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블루는 크게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늑대인간의 송곳니 30개를 넘게 모은 베르니스들. 모두 블루의 덕이었다. 블루가 모두 때려죽여준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오늘은 저쪽에 봐둔 공터에 야영을 치죠.” 스콜의 한마디에 블루를 포함한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 다. 불을 밝히고 사람들이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눠먹었다. 블루는 음식이 없었기에 베르니스들의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음식을 먹고 허기를 면한 일행들은 하나 둘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블루가 함께 있는 것이 익숙해진 덕이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던 것. 바로 블루의 눈치를 봤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블루님은 어쩌다가 이런 곳에서 길을 잃으셨나 요?”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믿어주겠다는 말투로 입을 여는 텐 시. 모두가 동감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블루가 입을 열었다. “흠, 제가 약간 길치라 헤매다보니 이곳까지 오게 됐죠. 아마 텐시님들께서 싸우는 소릴 듣지 못했다면, 정말 언제 까지 헤맸을지 알 수가 없네요.” “킥!” 블루의 덤덤한 목소리와 다르게 소탈한 말투에 텐시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걸쳐졌다. “그런데 저는 그렇다치고 텐시님들은 이곳에서 저 변종 동물들과 어울리신 이유는 뭡니까?” “후후. 변종동물이요?” “하긴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기도 하군요. 하하하!” “우리는 용병입니다.” “용병이요?” 스콜의 자조적인 듯한 웃음과 자신들의 직업을 밝혔다. 짐작하는 것과 실제 듣는 것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 다. 용병이라는 한마디면 지금의 모든 상황을 이해 할 수 있 을거라 생각했던 스콜. 하지만, 블루라는 사내는 용병이 뭔지를 모르겠다는 듯 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보는 것이다. 그것이 스콜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설마 정말 용병이 뭔지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시겠죠?” “그 설마가 아마 사실일 걸요?” “어떻게 용병을 모를 수가….” “아, 저는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다면 혹시 저쪽 해르마티아 대륙 구석에 있는 곳의 카르매센 부족의 사람이신가요? 머리카락과 눈동자의 색이 검은 것도 그렇고…. 흠….” 텐시의 질문에 블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미리 답을 정해놓 고 있던 블루. “아니요. 저는 저쪽 다크 엘프의 숲 구석에 화전마을에 서 기억을 잃은 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어머, 저런…. 그렇다면 지금은?” 블루가 씁쓸하게 웃었다. 텐시의 표정에서 정말 걱정 어린 모습을 발견한 탓이다. “지금은 그곳에서 나와서 기억을 되찾기 위해 길을 떠나 왔죠. 하지만, 어디서부턴가 길을 잃고 여기까지 들어오게 된 거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그 속에서 진심을 발견한 탓이다. ‘뭐, 반은 사실이지.’ 분명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는 블루다. 그때 베르니스가 입을 열어 블루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우선 용병이란 돈을 받고 싸우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 니다. 필요에 의해 전쟁에 나가기도 하고, 몬스터를….” “아!” 그 한마디로 블루는 용병이 무엇인지 약간이나마 짐작이 갔다. 전생에 있던 무림의 낭인무사와 같은 것 같았다. “응? 설명이 끝나지 않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정중한 베르니스의 말투에 블루가 손을 가볍게 흔들었 다. “지금 용병이 뭔지가 생각났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베르니스는 블루에게 깍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일종에 경외의 마음을 그렇게 드러내는 것 같았다. 검을 들던 들지 않던 한명의 무인으로서 블루는 대우를 받아도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최소한 그 정도 경지라면 익스퍼트 하이 레벨로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늑대인간 다섯을 그렇게 때려눕힐 수 있겠는가. 블루는 이미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검으로 싸운 것도 아니고 말이다. 주먹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은 그래플러, 격투가라는 뜻 과 동일했다. “그런데 설마 그래플 익스퍼트신가요?” 블루는 베르니스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이 정도 지식은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했 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아마 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군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야기로 정말 블루가 기억을 상실했다는 것을 완전 히 믿게 된 탓이다. 블루역시 이점을 노렸고, 그것은 완벽하게 적중했다. 모두들 어느 정도 적개심을 낮추었던 것이다. 블루의 말에서 신뢰를 얻은 탓이다. “여하튼, 오늘은, 이곳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마을 로 내려가도록, 하죠…. 이곳, 베르나의 숲은, 너무나 위험 하거든요….” 모두들 클루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잠을 청했다. 불침번을 서게 된 베르니스는 칭얼거렸다. “나두 졸린데….” 다음날 여덟 시간정도 걸어 나서자 오후 3시쯤에 마을로 도착 할 수 있었다. 의외로 상당히 큰 마을이었다. 블루는 이곳에 와서 이렇게 큰 마을을 처음 봤기에 한참 을 두리번거렸다. “어휴~, 배고파라. 강행군을 했더니 배 속에서 밥달라고 울어대네. 헤헤. 모두들 우선 식사부터 하죠.” 텐시의 넉살좋은 한마디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먹을 만한 곳이 있나?” 베르니스의 한마디에, “왜? 저번에 클루토가 소개시켜줬던 그 음식점 있잖아. 거기 생맥주도 먹을 만하고 음식도 맛있던 것 기억 안나?” “아아, 기억난다. 거기가 이곳이었나?” “킥킥. 으이그, 이 웬수야. 좀 생각이란 것 좀 하며 살아 라.” “아야! 왜 때리구 그래. 그런 것 좀 기억 못할 수도 있 지. 그건 그렇고 이 지지배는 틈만 나면 손이 올라온다니 까.” “킥킥킥.” 베르니스가 슬쩍 잡는 시늉을 하자 텐시는 방긋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그의 손길을 피했다. 마치 잡히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한 표정이다. 블루는 그런 둘을 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후후, 그러고 보니 커플인가? 참으로 보기 좋게, 자꾸만 염장을 지르는군. 뒤지고 싶은건가...’ 하지만 누구도 그러한 블루의 속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만 블루가 웃자 함께 웃는 일행들이다. ~~~~~~~~~~~~~~~~~~~~~~~~~~~~~~~~~~~~~~~~~~~~~~~~~~~~ 훗... 정말 한 일주일 만에 글을 올리는 기분이네요 ㅡㅡ;; ㅎㅎㅎ;; 단지 하루 쉬었을 뿐인데 ㅡㅡ;; 여하튼 ㅎㅎ 어제 술먹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쿨럭... 오늘도 이 정도 분량이라 죄송하다는.... 오전 중에 외출을 해야 할 것 같거든요^^;;; 전 이만 자러.. ZZZZZZZZZZZZZZZ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64 회] 날 짜 2004-12-22 조회 / 추천 6378 / 94 선작수 585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검황, 용병되다 한참을 걷던 베르니스의 발걸음이 멈췄다. 허름한 간판에 포크와 나이프 그림이 그려진 것을 보아 하니 식당인 것 같았다. 벌써부터 코를 벌름이며 음식냄새를 맡는 블루. 하긴, 음식다운 음식을 먹지 못한지 꽤 됐으니…. “음식을 먹고 움직이죠.” “대 찬성. 지금 굶어 죽을 것 같아.” “나도.” 텐시의 말에 베르니스와 스콜이 찬성하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클루토. 식당 안은 허름한 외관과 다르게 꽤나 넓고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특히나 몇 십 년은 묵은 듯 오래된 듯 보이는 식탁과 의 자들. 그리고 벽면에 대충 붙어있는 정체불명의 그림들. 그럼에도 너저분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돈되어 있는 듯 하다. 언밸런스함 속에 밸런스가 맞춰진 것인가. 그 모든 것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마치 과거 어떤 그림에서 봤던 초상화 한 폭이 연상 된 블루다. “뭐해요? 블루. 어서 들어가요.” “아…, 네.” 깜짝 놀라 안으로 들어서자 큰 덩치에 험악한 인상의 노 인이 시거를 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 노인의 시선은 블루들을 향해 있 었다. 노인은 자신의 주걱턱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동시에 뻐끔거리며 연기를 뿌리는 모습. 마치 시비라도 거는 듯한 모습 같았다. “뭐 자실라구 왔수.” “아, 여기 오트밀과 맥주를 좀….” 일행을 한번 쭉 바라보던 노인. ‘끙차’하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몇 번 두드리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접시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차, 오트밀 다섯인가? 늙었더니 정신이 없군.” “예, 다섯 개 부탁합니다.” “…….” 다시 잠잠해진 노인. 한참 안에서 지지고 볶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일행들은 그제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 뭐야, 저 노인?” 스콜이 당혹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자 텐시가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존재감이 대단하지? 그치?” “저걸 존재감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뭔가 엄청난 압 박을 느꼈다니까…. 무슨 노인이….” 스콜의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클루토가 조용히 킥킥거렸 다. “뭐야? 왜 웃어?” 약간 기분 나쁘다는 듯 말을 내뱉는 스콜. 이번에는 베르니스와 텐시가 웃었다. “하긴, 우리도 처음에 이곳에 와서 엄청 놀랐으니까. 히 히.” “맞아, 저 클루토 녀석이 골탕 먹인 게 아닌 가 했다니 까?” “하지만, 베르니스랑 함께 음식을 먹어보고 엄청 놀랐 지.” 베르니스와 텐시의 말에 스콜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왜?” “후후, 먹어보면 알아.”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블루조차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오트밀을 담은 접시 다섯 개를 교묘하게 겹쳐서 들고 온 노인. 음식을 하나 둘 세팅하여 올리기 시작했다. 맥주는 큰 잔에 가득 담아 올려주는데, 보통 술집에서 마시는 맥주보다 배는 커보였다. “많이 먹게. 부족하면 말하라고.” 노인은 그렇게 두 마디 툭 던지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 다. “잘 먹을게요. 자, 먹자아.” 스콜과 블루는 의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곧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오오!” 다시 한 숟가락. 그렇게 게 눈 감추듯 음식 한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고 1000cc도 넘어 보이는 맥주를 원 샷으로 입가심하였다. 그리곤, “크아!” “이거 정말 죽이는 군!” 스콜과 블루의 행동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한 미소로 바라보던 베르니스와 텐시, 그리고 클루토. “킥킥. 내가 말했잖아. 정말 후회 안한다고.” “여기 음식 맛은 정말 경악 그 자체라니까?” 베르니스와 텐시의 말에 스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군. 정말 최고라는 말이 아깝지 않아.” 블루도 동감했다. 스콜은 맥주를 하나 더 시켰다. 한참의 잡담이 이어지고 하나같이 수저를 내려놓자 베르 니스가 입을 열었다. “여하튼 식사를 다 했으면 모두 일어나지. 어서 용병길 드로 가야지.” 모두들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 시간이 흘렀다. “야….” “…….” “너 지금 장난 하냐?” “…이, 이상하다…. 부, 분명 이 근방이었는데….” 베르니스가 일행들의 살기를 온몸에 받으며 식은땀을 뻘 뻘 흘렸다. ~~~~~~~~~~~~~~~~~~~~~~~~~~~~~~~ 주, 죽을 죄를... 설마 인터넷마저 저의 일일연참을 깨는 마왕의 사주를 받았을 거라곤.. 라스베거스에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ㅁ; 11만원이라는 연채금을 내고 이렇게 풀렸습니다;ㅁ; 오늘 새벽에 뵙겠습니다. 죄송... 맛뵈기만 봐주세요 ;ㅁ;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65 회] 날 짜 2004-12-22 조회 / 추천 6298 / 119 선작수 585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검황, 용병되다 베르니스가 일행들의 살기를 온몸에 받으며 식은땀을 뻘 뻘 흘렸다. “네가 혼자 다녀오겠다며 나갈 때부터 내가 알아 봤어! 으이그 이 화상아!” 텐시에게 귀 볼을 잡힌 베르니스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 다. “아, 아니 그게 아니구….” “아니긴 뭐가 아니얏!” “아야야야야!” 블루는 그런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얼떨결에 이 일행에 끼어서 같이 행 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가라는 사람도 없고, 기분도 별로 나쁘지 않아서 그냥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놈의 용병길드는 어디 있는 거야?” “…….” 스콜의 물음에 모두 입을 굳게 닫은 채 두리번거리며 앞 으로 나가갔다. 걷고 또 걸었다. 마을을 한바퀴나 돌았다. 그럼에도 이놈의 길드라는 것은 보이지가 않았다. ‘우리들이 간다는 것을 알고 간판을 내렸나?’ …하며 생각도 해봤지만 그다지 신빙성은 없는 이야기 고…. 그렇게 한동안 헤매다가 찾은 곳은 상점가 2층 건물의 조그마한 구석이었다. 그곳에는 심각하게 부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과는 다르게 커다란 간판이 세워져 있 었다. 그 간판은 정말 간단명료한 필체를 몸에 새긴 체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이곳이 그곳이다. 라는…. -용병길드- “여, 여기였어! 맞아! 캬하하하! 역시 난 천재…컥!” 퍽 하는 소리와 베르니스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스콜의 모습이 블루의 눈에 들어왔다. “누, 누구야! 스콜 이자식이!” 주먹을 불끈 쥐고 스콜에게 달려드는 베르니스. 하지만, 스콜은 조용히 무시했다. “지랄은 그만하고 어서 들어가자.”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고 있긴 한 듯 조용히 주먹을 내 리며 궁시렁거리는 베르니스. “글씨한번 휘황찬란하군.” “그러게….” 그러면서들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거지? 우리 들은 모두 동태 눈알이었단 말인가….’ 베르니스가 한번 왔던 길이 떠오르는 듯 앞장을 섰다. 일행들은 다가가면 갈수록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길드의 입구에 수북이 쌓인 먼지. 쩍하고 갈라진 첫 번째 계단. “…….” ‘설마…. 그래도 명색이 길드라는 곳인데.’ 모두의 마음속에서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다. 다만 베르니스만이 뭘 이정도 가지고 하는 듯한 모습으 로 앞장서서 걸었다. 끼이이익. 문을 열자 한동안 문이 움직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소음 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니 만들고 나서 기름칠은 해본 적이 있기라도 한 것일 까? 먼지들과 쇠 부스러기들이 경첩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 니, 만들고 그냥 방치한 듯싶을 정도였다. 우선적으로 그 안에 사람이 있기나 하는 건지 의아스러 웠다. 일행은 약간 걱정스런 마음을 안고 그 안에 들어갔다. 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블루만 자기 혼자 생각하고 수긍 했다. ‘길드란 원래 이런 곳인가?’ 모두들 그의 마음을 알았다면 하나같이 아니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을 것이다. 여하튼 안에 들어서자 일행들의 우려와 다르게 실내는 깔끔했고, 밖에서 본 것처럼 결코 좁지 않았다. 30여명이 들어와도 충분 할 정도로 넓은 공간이 드러났 다. 벽면에는 검과 방패를 중심으로 여러 무기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 중앙에는 한 노인이 쇼파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 었다. 그 노인은 블루와 일행들 모두가 들어갈 때까지 뒤도 돌 아보지 않았다. 그 노인의 모습. 강단이 있어 보였다. 얼굴은 늙었지만 옷으로 드러난 몸은 울퉁불퉁한 근육질 로 범접하기 힘든 거친 모습을 보여줬다. 일행들 모두가 안으로 들어서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 자 그제야 고개를 돌리는 노인. 동시에 노인의 입이 열렸다. “호, 그때 늑대인가 송곳니를 가지러갔던 젊은이군. 설마 벌써 다 잡아 온 것인가?” 그 노인이 입을 열자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듣는 일행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어줬 다. 마치 칠판에 그어지는 손톱과의 마찰음…. 정말이지, 그 노인의 목소리가 블루에게는 ‘키이이익! 키 익!’으로 들릴 정도였다. 여하튼 베르니스는 그 노인의 말에 머쓱한 표정으로 고 개를 끄덕였다. “예, 길드장님. 여기….” “오호, 생각보다 대단하군. 모습만 봐서는 초짜들의 모임 일거라 생각했건만…. 그래서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릴 거 라 생각했지. 아니면 다 뒤지거나.” “아하하! 잘못 보셨군요! 저만 봐도 아시겠지 않습니까?! 제가 좀 대단하긴 합니다!” 지 잘났다며 큰소리치는 베르니스의 웃음에 노인이 피식 웃었다. ~~~~~~~~~~~~~~~~~~~~~~~~~~~~~~~~~~~~~~~~~~~~~~ 한편만 더 올려봅니다... 전편이 너무 허무하게 끝난듯 해서.. 그럼 내일 새벽에 뵙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66 회] 날 짜 2004-12-23 조회 / 추천 5390 / 58 선작수 585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검황, 용병되다 “여하튼 수고 했군.” 그 노인은 인심 좋게 웃어 보였다. 아니 그렇게 웃으려고 하는 듯이 보였다. 블루와 일행에게 그의 웃음은 인상 제일 더러운 산적이 억지로 ‘세상은 아름다워’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려는 듯이 보였다. 그때 텐시가 궁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늑대인간의 송곳니는 어째서 모아오라 하셨나 요? 그것도 금화 10개씩이나…. “킥킥킥. 그것은 내가 어찌 알겠나? 마법사 놈들이 다 그렇지 뭐….” “아.” 그제야 이해가 갔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텐시와 일행들이었다. 마법사들의 재료로 사용 된다는 말 하나로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이다. 이해를 못하는 사람은 블루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마법사를 구경해보지 못한 탓이 다. 사실, 바로 옆에 클루토가 마법사이긴 했지만, 블루는 클 루토의 쑥맥처럼 조용한 모습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클루토가 파이어볼을 썼던 모습을 봤다면 이야기 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새로운 힘을 원하는 블루다. 당연히 관심이 안갈 수 없다. 그런 강대한 힘을 보고 “그렇다면 이제 계산을 해야겠지? 여기 완수 금이네. 다 음에도 부탁하지. 그런데 자네들의 이름을 들을 수 있을 까?” 길드장이 어떠한 명부를 꺼내 들더니 팬을 들어 올렸다. “이름이요?” “그래 자네들 용병단의 이름.” 그 노인의 말에 기분이 좋은 베르니스들이었다. 한 용병단의 길드장이 이름을 묻는 다는 것은 자신들을 인정한다는 말과 동일했던 것이다. 하지만 노인의 말은 끝이 아니었다. “자네들 정도의 용병이라면 이름을 들어 보고 싶군. 마 스터급이 있는 용병단이라….” 순간 베르니스 일행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블루의 눈 역시 크게 떠졌지만, 베르니스들과 다른 의미 를 담고 있었다. 하나 둘 베르니스들의 시선이 블루에게 쏠렸고, 블루의 시선은 차갑게 변해 노인을 향했다. “당신은 누군가?” 노인이 이죽이듯 입을 열었다. “척보면 모르겠나? 용병길드장일 뿐일세.” “정말인가?” “정말이지. 킥킥.” 길드장이 웃었다. 하지만 인상이 끔찍하게 일그러질 뿐이다. 목소리만 웃음을 흉내 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나를 의심한건가? 큭큭. 그렇게 기세를 내 뿜고 다니는데 어느 누가 모를 수 있단 말인가?”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블루. 알아볼 사람이 있다면 다가오라는 뜻으로 흘리던 기세 다. 이제야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자네도 마스터로군.” 블루의 싸늘한 한마디에 모두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대체 이곳이 뭐하는 곳이기에 평생에 한번 보기도 힘들 다는 마스터를 둘이나 만난단 말인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두리번거리는 베르니스들이었다. “큭큭….” 그 한마디에 블루는 기세를 낮췄다. 자신을 알고서 이곳에 있는 존재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 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에게 해를 가할 이유를 지닌 이가 없다는 것도…. 자신은 다른 세상으로 넘어 온 것을 떠올린 탓이다. 이곳은 무림이 아닌 것이다. 블루가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마스터라면 자신이 원하는 직위도 얻 을 수 있다 들었다.” “내가 왜 이곳에 있냐는 말로 들리는 군.” “그렇게 들렸는가?” “내가 착각한 것은 아닐 텐데? 그럼 자네는 어째서 정체 도 숨기고 그 자리에 있는가?” 블루는 변명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앞에 있는 사내(노인)에게 쓸데없는 말을 할 필 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다. 되묻는 질문 속에서 답을 찾은 탓이다. “큭큭. 뭐, 하긴 그렇군. 큭큭큭.” “큭큭. 블루와 노인의 웃음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 는 베르니스들. “그러면 계속 그들과 다닐 생각인가?” 블루가 고개를 돌려 베르니스와 텐시, 스콜, 클루토의 얼 굴을 한번씩 돌아봤다. 그러자 베르니스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고개를 끄덕였 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 그것도 어느 왕국에서나 한자리를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마스터란다. 누가 싫겠는가? 블루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그렇게 될 것 같군.” “큭큭. 좋아, 좋아. 곧 자네들의 이름이 세상에 떨쳐지는 것은 시간문제겠군. 그럼 자네들의 이름을 먼저 들을 영광 을 줄 수 있겠는가?” 그때 베르니스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클라우드 용병단 입니다.” ~~~~~~~~~~~~~~~~~~~~~~~~~~~~~~~~~~~~~~~~~~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67 회] 날 짜 2004-12-23 조회 / 추천 5349 / 54 선작수 585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검황, 용병되다 “아냐! 실프라니까?!” “웃기지마, 썬더 용병단이야!” 베르니스와 텐시, 스콜이 서로 이름을 내뱉으며 싸우기 시작했다. 자신이 정한 이름이 용병단 이름이란 것이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길드장과 블루의 시선이 베르니스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 음을 느낀 탓이다. “크흐흐흐흐.” 길드장이 낮게 웃으며 베르니스들의 얼굴을 잔잔히 바라 봤다. 그 눈빛이 마치 ‘내 그럴 줄 알았지.’하는 듯 보였다. 약간 억울한 감이 들기는 하였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억울할 것은 없었다. 사실 이름도 정하지 않은 초짜 용병단들인 것은 사실이 니 말이다. 서로의 의견을 수렴하지 못한 탓이다. 이것은 처음 용병단을 새울 때 생기는 일중 하나였다. 그러므로 ‘애송이들’이라는 길드장의 눈빛에 의의를 재기 할 사람은 베르니스들 중 아무도 없었다. 멋쩍은 듯 입맛을 다시거나 뒤통수를 긁적일 뿐이었다. 그때 길드장이 입을 열었다. “됐네, 됐어. 다 알아봤네.” “쩝….” “큭큭. 그럼 이 자리에서 이름을 정하는 것은 어떻겠는 가? 내 도움을 줌세. 곧 대륙에 퍼질 자네들의 이름을 짓 는 장소에 내가 있는 영광을 준 셈이니 기분이 나쁘진 않 군. 큭큭큭.” 얼굴을 붉히는 베르니스들. 블루는 그런 일행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왠지 귀여워 보인 탓이다. “그리고 앞으로 평생 따라다닐 이름이네. 대충 생각하지 말고 신중하게 생각하게나.” 베르니스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길드장의 말은 사실이다. 평생을 따라다닐 팀명이다. 함부로 생각해서 대충 만들 수도 없는 것이다. 다른 것보다 우선 폼이 나질 않기 때문이었다. 일행들의 얼굴에 인상이 새겨지며 각자 그 이름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듯이 보인다. 클루토 마저 인상을 구기며 생각하는 듯이 보였으니, 다 른 사람이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블루가 바로 그 예외였다. 뭐가 되도 좋다는 블루다. 사실 아직도 지금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름이야 대충 지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아무리 촌스럽다고 해도 유명해지고 그 이름이 높게 퍼 지면 고풍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허접한 이들이 아무리 멋진 이름을 사용해도 무시를 당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허울이 무슨 소용 있는 가?’ 이것이 바로 블루의 생각이다. 하지만, 블루를 제외한 모두의 생각은 달랐다. 이름이 바로 얼굴인 것이다. 베르니스의 머릿속은 다시 돌이 된 것처럼 아무런 생각 이 나지 않았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이름을 짓는 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진작부터 알긴 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생각 이 들 정도였다. 그것은 텐시나 스콜, 클루토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답답한 속내를 드러내 듯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마땅히 정할만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가끔가다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는 것을 베르니스를 보니 이름은 생각나지만 어떤 반응이 나올지 눈에 보이는 모양 이었다. 길드장은 짐작했다. 분명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고 유치찬란한 접속어를 구사 하여 만든 이름일 것이라고 말이다. “쯧쯧! 내 그럴 줄 알았지.” “…….” “큭큭.” 길드장은 즐겁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론 일행들에게는 괴물이 포효하는 괴성으로 들렸지만 말이다. 결국 클루토가 눈치를 보여 길드장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요?” “어떻게 하긴. 빨리 상의를 해서 이름을 만들어야지 않 겠나?” 길드장이 한 말은 누구나 생각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발단이 되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한마디씩 끌어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텐시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 “블러드(blood) 핸드(hand).” “응? 블러드 핸드?” 일행들의 입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흘러나왔다. 모두의 표정이 약간 희한하게 변해가는 것을 블루는 확 인 할 수 있었다. 어쩐지 경외감어린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길드장의 웃고 있는 표정이(별로 웃고 있어 보 이지는 않지만) 싸늘하게 굳어갔지만 그것은 미처 확인하 지 못한 블루와 일행들. 곧 텐시가 자신이 커다란 한 것처럼 손사래를 치며 다시 입을 열었다. ~~~~~~~~~~~~~~~~~~~~~~~~~~~~~~~~~~~~~~~~~~~~~~~~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68 회] 날 짜 2004-12-23 조회 / 추천 5319 / 51 선작수 5853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검황, 용병되다 “아냐. 아냐. 내가 잘못한 것 같아.” 일행들의 시선이 텐시에게 옮겨진 것은 당연했다. 블루는 의아한 눈빛으로 텐시를 봤다. 자신이 듣기에 나쁘지 않은 이름이었는데, 아니, 이름 하 나 때문에 저런 모습을 보인 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 다. “나는 마음에 드는데….” “아녀요. 그것은 이미 있는 이름이예요. 제가 실수로 입 밖에 낸 것일 뿐이죠.” 그제야 블루는 웃으며 편안한 목소리로 위로해줬다.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렇게 까지 호들갑을 떨 것까지 야.” ‘…응? 그게 아닌가?’ 텐시 그녀의 얼굴은 당혹감 이상의 것이었다. 그때 블루 뒤에서 길드장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 다. “그 이름은 전설의 용병단 이름이지.” “전설의 용병단?” 블루의 의문스런 말투에 길드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벌써 20년? 아니, 30년도 훨씬 전 이지. 그때는 제국들의 전쟁 역시 땅덩어리의 싸움으로 치 열하기도 하였고, 마침 세상에 등장한 새로운 마족들과의 인간들의 싸움 역시 치열하게 되던 시기가 있었지. 지금은 마족의 수가 많이 줄었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대단했어. 우선 마족의 덕을 보기도 했지. 마족들과의 치밀한 싸움 으로 그 동안 만은 수 백년 만에 처음으로 인간들의 마음 이 합해져 마족을 치기 위해 들고일어났었거든. 그때 일곱 명의 젊은 용사들이 블러드 핸드 용병단이라는 이름으로 갑자기 등장하여, 역사를 개척하는 것에 일견을 더했다고 전해지지. 불과 오십년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용병들에게 는 신화와도 같은 이야기라 할 수 있다네. 모두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자신들도 같은 사람이 되겠다지만…. 여하튼. 물론, 그 후에도 상당히 많은 에피소드를 남기고 ‘어느 기점’을 계기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기에 전설의 용병단이라 불리고 있다네. 수많은 수하들을 거 늘이고 커 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처음부터 사라지던 날까 지 일곱이서만 활동을 하였다고 전해지기도해.” 길드장의 시선이 허공을 바라보며, 깊은 심연의 어딘가 를 해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블루의 눈빛이 반짝여졌다. ‘마족? 마족이라고?’ 드래곤과 함께 막강한 힘을 지닌 존재들이라 들은 블루 다.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동맹이라뇨?” 텐시의 질문이다. 길드장은 텐시를 슬며시 바라보며 마치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라도 해주는 듯한 모습으로 말문을 열었다. “마족들이 나오기 그 전에는 타르나토스 신성제국과 크 로타니안 대국은 서로를 부추기며 자신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기 앞섰단다. 그렇지만 헤르마틴 제국 만은 그렇지 않았었지. 자신들의 땅 중 하나인 비옥한 자 코니스 지방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많은 백성들과 이방인들 마저 보호를 하며 마족을 견제하였으니까.” “제국? 지방?” 블루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블루가 제국이니 지방이니 알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의문을 제기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텐시가 입을 열었다. 처음에 블루가 기억을 상실했다는 말이 떠오른 탓이었 다. “이 대륙에는 크게 네 곳 나라로 나눠져 있어요. 가장 거대한 타르나토스 신성제국과 크로타니안 대국. 그리고 카르만 대국. 마지막으로 헤르마틴 제국. 그 중 가장 강대 한 나라는 크로타니안이죠. 네 명의 소드 마스터를 지닌 곳이기도 하며,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예요. 그리고 이 세상에는 두개의 거대한 대륙이 있어요. 하나 는 지금 우리가 있는 헤르마티아 대륙이죠. 지금 서적에는 마왕이라 불리우는 흉포한 드래곤 ‘갈라마이시’를 잡은 용 자 ‘헤르마티아 대왕’의 이름을 받들어 먼 과거의 이름을 지우고 ‘헤르마티아 대륙’이라 부르죠.” “흠, 헤르마티아와 헤르마틴과 관계가 있는 것 같군.” “네. 정확해요. 헤르마티아 대왕이 만든 나라가 바로 헤 르마틴 이기 때문이죠. 물론 과거에는 해르마티아 황제의 통치아래 살았지만 하나둘 갈라져 결국에는 완전히 다른 제국들로 성장하게 되었어요. 그것이 바로 현재의 모습이 죠. 그리고 반대편 멀리에는 ‘유라키마리온 대륙’이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의 사정은 솔직히 알 필요는 없으니, 다음에 때가되면 천천히 알려줄게요.” “그렇군.” ‘명나라나 금나라 같은 것 같군. 왕국이나 지방이라 함은 속국과 같은 형태인가?’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간 탓이다. “뭐, 이름이야 어찌 되었든 나중에 생각하지. 머리가 다 아프군.” 블루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의 다음 행보는 어디로?” 그때 클루토가 입을 열었다. “크로타니안 대국으로 가는 것은 어떨까요?” “왜?” 블루의 질문에 눈빛을 빛내며 입을 여는 클루토. 지금까지의 더듬거리던 모습과 완전히 180도 다른 모습 을 보여줬다. “강대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치안이 좋다 는 이야기이기도 하거든? 아냐? 그렇다면 사건이 그렇게 많을 것은 아니지 않을까? 큰 사건은 드물 것이란 말이야. 먼저 안전이 보장되었다 싶은 정도의 자잘한 사건을 맡으 면서 서서히 용병이란 어떤 것인가를 익히면 어떨까?” “흠, 그도 그렇군.” ~~~~~~~~~~~~~~~~~~~~~~~~~~~~~~~~~~~~~~~~~~~~~~~~~~~~` 이글 쓰면서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한 한가입니다.... 설정을 한부분에 몰아서 정리하다보니 ㅡㅡ;;; 아아... 곧 이 머리에서 쥐날 복잡한 장면이 다음화로 끝난다는 것이 천행이라는..... 하지만, 이 모든 주절거림이 주인공들의 용병 이름을 얻기 위해 필요한 절차라서.... 앞으로의 내용도 그렇고... 그럼 다음 화로...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69 회] 날 짜 2004-12-23 조회 / 추천 5323 / 44 선작수 585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3. 검황, 용병되다 “그렇다면 막강한 자본력과 만만치 않은 군사력으로 아 이린 공국과 세레니안 공국을 가지고 있는 크로타니안 대 국이 가장 순위고. 그리고 가장 약하다는 평을 듣고는 있 는 카르만 제국. 그곳은 군사정치가 안정되었기에 의외로 괜찮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곳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런데?” 스콜이 모두를 대신하여 입을 열은 듯 했다. 평소에는 무시하던 클루토의 말을 끝까지 들을 생각인 듯싶었다. 그래서 블루가 의아한 눈빛으로 스콜과 일행들을 돌아봤 다. 블루는 알지 못했지만, 클루토가 더듬지 않고 말을 한다 는 것은 생각의 정리가 끝났고, 이미 결론도 내린 상태였 다는 뜻과 동일했다. 마법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처럼 클 루토가 저렇게 단호히 말을 할 때면 일행들은 그의 말을 그대로 진행했다. 지금까지 진지한 클루토의 말을 들어서 잘못 된 것이 하 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크로타니안 대국과 타르나토스 신성제국간 의 심전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어. 까닥하다가는 전쟁이 터지면 빼도 박도 못할 것 아냐? 차라리 조금이라도 안전 한 헤르마틴 제국으로….” 그때 텐시가 꺄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클루토. 지금 헤르마틴은 정말 위험해. 내가 알 아본 정보로는 헤르마틴의 정권이 흔들리고 있다고 해. 물 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이지만, 귀족파와 황제파로 나눠져…. 아니다….” 텐시는 무엇인가 말을 하고는 깊게 생각을 하는 듯한 모 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슬쩍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가로젓고 자신의 입을 봉했다.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듯한 모습이다. 바로 그 순간.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마치 폭탄이 터지는 듯한 목소리와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는 비명을 동시에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을 한사람에게서 세어 나오는 것이었다. 길드장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입을 벌리는 것이었다. “지금 헤르마틴의 정권이 흔들린다고?! 어디서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는 겐가?!” 그는 숨을 씩씩 내 뱉으며 고함을 질렀다. 함부로 망발을 하지 말라는 그런 길드장의 말뜻. 짐작을 할 수 있었지만 이해는 가지 않았다. 그의 모습에서 기사도를 외치는 기사의 풍모라고는 보이 지 않은 탓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소리를 칠 일이란 말인가? 블루는 의아한 시선으로 길드장을 보았다. “헤르마틴이 쓰러진다고?!” 황제파와 귀족파로 갈라진다 했던 텐시의 말은 어느 세 부풀어 올라 나라가 쓰러진다로 변해 있었다. 하긴 그 말이 그 말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쓰러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다름 아닌 길드장 본인이었다. 그는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분노를 표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흘러나온 한마디. “우리 블러디 핸드 용병들이 어떻게! 흡!” ‘우리 블러디 핸드 용…’ 블루의 머릿속에 길드장의 말이 떠오를 때, 그게 마치 무슨 소리냐는 듯 텐시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 로 동그랗게 떠져있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텐시의 질문에 길드장이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 내가 그만 큰 실수를 했군. 그렇다 내가 블러디 핸드 용병단의 다섯째인 라이그네스다.” 바로 그 순간 스콜의 입에서 당혹스런 한마디가 튀어나 왔다. “그,그,무,무,무식하다던….” “쿨럭!” 스콜의 실수로 튀어나온 말에 블루는 사래가 걸려 기침 을 뱉어내었다. 그 결과, 누구보다 먼저 웃음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가 까스로 참을 수 있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더러운 길드장의 얼굴. 더욱 구겨지는 모습은 그가 바로 마족이 아닐까 하는 착 각을 일으키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길드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분을 가 라앉힐 뿐이었다. 스콜이 실수로 내뱉긴 했지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길드장이 곧 입을 열었다. 블루와 일행들은 곧 길드장 라이그네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60년도 지난 훨씬 오래 전이었지. 우리들의 리더였던 레니카를 만났을 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되니까 말이야….” “레니카?” 어감이 이상했다. 리더의 이름이 너무 약하게 보였다. 레니카라면 누구라도 남자의 이름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마?” 블루의 한마디에 길드장이 입을 열었다. “설마라고 할 필요는 없다네. 그 이름 그대로 여자가 맞 네.” “예? 여자가 블러디 핸드의 리더였다구요?” 텐시의 목소리가 경악처럼 울려 퍼졌다. 길드장의 말은 일행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베르니스들은 블러디 핸드의 전설 중에서 몇몇 사건만 알 뿐이었다. 그들이 누구였는지는 완전히 알지 못했다. 누구 누가 이러해서 저러했더라 정도만 알 뿐이었다. 하지만, 전설이라고 까지 불린다는 용병단의 대장이 여 자였다니…. 설마, 설마 했던 것이 사실로 밝혀지자 놀라움이 적지 않은 베르니스 들이었다. “하긴 너희들이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블러디 핸드의 모든 이야기는 서류상에서 완전히 지워졌으니….” “어째서….” 텐시의 질문에 길드장이 눈을 감았다. “모두 이유가 있기 때문이야.” “괜찮으시다면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을 까요?” 길드장이 아니, 블러디 핸드의 라이그네스의 고개가 끄 덕여졌다. “그래. 정확하게 73년 전 막 늦박이 겨울이 시작되던 어 느 날이었어.” 라이그네스의 이야기는 상당히 길었다. ~~~~~~~~~~~~~~~~~~~~~~~~~~~~~~~~~~~~~~~~~~~~~~ 다른 때라면 최소 20k분량은 더 썼을 겁니다.. 너무 어려운 부분이라.... 에효효효~ 앞으로 싸울 내용들이 많으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ㅎㅎ 설정편은 이번화로 끝입니다. 캬캬캬 나중에 지도라도 그려서 올려야 겠다는 ㅡ,.ㅡ;;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70 회] 날 짜 2004-12-23 조회 / 추천 5238 / 35 선작수 585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번외편] 출간본에는 안나오는 연재분만의 묘미 [번외편입니다. 174화부터 보셔도 무관합니다. 어차피 책에는 안들어갈 내용이기 때문에....] [한 젊은이가 낮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우리 이쁜 셀에게 주정을 피우더군. 물론 평소에도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었지. 셀은 우리 마을에서 가장 미모가 뛰어났으니까. 매일은 아니지만 종종 그런 무뢰한들에게 변을 당하곤 했어. 하지만 그리 오래 당하진 않았지. 모두 중간정도 쯤에는 항상 우리들에게 가로막혔으니깐 말야. 내가 일어나서 손을 쓰기도 전에 성질 급한 마르코라는 친구에게 한방 맞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 그는 나보다 성질이 더 개차반이라 할 수 있어. 설마라고? 어떤 자식이야?! 감히 설마 따위 같은 소리를 하는 자식이! 못 믿겠으면 저기 앞에서 오트밀 만들어서 파는 식당에 가서 물어보라고! 그 늙은이가 마르코니까 말이야! 퍼어어억! “일어나 자식아!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를 부리는 거야? 행패 따위를!” “…컥컥! 쿨럭!” 여하튼 그 젊은이는 마르코에게 그렇게 맞았음에도 불구 하고 정신을 차리더군. 좀 놀라웠어. 분명히 나는 기절 따위를 할 줄 알았었는데 말야. 마르코와 내 주먹을 맞아서 정신을 잃지 않은 주정뱅이 는 없었으니까 말야. 마르코 또한 다소 놀란 듯한 표정이었어. 자신의 주먹이 약해졌나 확인하려는 듯이 자신의 주먹을 멀뚱히 보고는, 옆에 멀쩡히 서있는 나무 기둥을 한데 갈 기더군. 물론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아작이 난 것은 당연한 일 이었지. 그 덕에 마르코는 셀에게 한소리 들었지만, 그녀의 한소 리조차 빈정거리며 흘리더군. 하지만 내 눈에는 그것이 기뻐하는 듯이 보였지. 마르코는 아마도 셀에게 관심을 끌었다고 생각을 하던 모양이었던가 봐. 셀역시 그것을 알았는지 혀를 차면서도 그렇게 나쁜 기 분은 아니었을껄? 자신을 이쁘다고 하는 데 어느 누가 싫겠어? “마르코. 너무 심하게 하지 말아요.” “응. 알았어.” “그래도 손님이니까 가만히 있겠다면 자리에 앉혀요.” “그러지. 하지만 여전히 까불면 밖으로 집어 던지겠어.” “…….” 셀은 마르코의 답변을 듣고는 뭐가 불만인지 투덜거리 며, 조용히 주의를 주고 자신의 자리로 찾아가더군. “툇!” 그렇게 바닥에서 뒹굴며 있는 젊은이는. …아니, 사내자 식은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내듯이 입을 오물거리더니 걸쭉 한 피를 바닥에 뱉어내더군. 기절은 하지 않았지만 입안은 상당히 찢어진 듯 보였지. 상당히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에 얼굴은 잘 보 이지 않더군. 약간 지저분해 보였지만 그래도 어딘지 무게를 느낄 수 있었어. “이 자식이 지저분하게 빨리 닦지 못해?!” 마르코는 눈을 부라리며 그 사내를 노려보았지. 그 소리를 듣던 홀 안의 모든 주정꾼들은 정말 재밋다는 듯이 소리 높여 웃더군. 분명히 마르코의 말 때문이었을 것이야. 그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마르코가 환경정 화원이라든가, 태어나서 침이라고는 한번도 뱉지 않았던 것처럼 들릴 오해의 소지가 충분하며 다분한 말투였으니깐 말야. “어이, 마르코. 너무 심하게는 행동하지마.” 나는 술잔에 반 정도 차있는 술을 쭉 들이키며 입을 열 었지. 마르코는 아무런 말 없이 한동안 나를 보더군. 그리고는 그 사내를 더 이상 건들지 않고 자신의 앞자리 에 앉히는 것이었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말이야. 의아한 기분이 들더군. 나는 그 사내를 마르코가 분명히 밖으로 집어 던질 것이 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분명히 그의 행동으로 볼 때 우리 의 기대를 충족시킬 것이라 알고 있었지.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어. 그 사내는 마르코가 팔을 잡고 들어 올린 후, 억지로 앉 게 된 마르코의 앞자리가 마음에 드는 듯이 보였어. 하긴. 분명 바닥보다는 그곳이 편하고 좋을 테니깐 말야. 하지만 마르코를 아는 사람이라 하여도 그의 앞에서 편 하게 앉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 그의 인상이 약간 더럽거니와 그 얼굴에 비례하듯 성격 역시 볼만했으니까. 모르겠으면 정말 앞에 오트밀 파는 늙은이한테 가보라니 까! 어이? 자네 이름이 스콜이라고 했던가? 그 표정은 마치 ‘당신의 얼굴이나 보시지?’라고 하는 듯 이 보이는데. 혹시,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니겠지? 으득! 여하튼 마르코에게 무슨 생각이 있는 것인지는 몰랐지 만, 앉힌 후 무슨 일을 할지 짐작도 가질 않더군. 유심히 그들을 보던 순간, 그 사내의 얼굴을 살짝 볼 수 있었어. 어째서인지 그의 머리카락사이로 얼굴이 보이더군. 하얗다 못해 유난히도 뽀얀 피부와 오똑한 콧날이 보였 어. 뺨이 부어도 보였었지만 그렇게 외상으로는 크게 부어 보이지 않더군. 조금 전에 뱉어낸 침을 보면 상당히 부어올라야 당연한 것일 텐데 말야. “자네 이름이 뭔가?” “…크리스.” 약간의 이름은 뜸을 들이더군. 하지만 곧 자신의 이름을 말하던 것이었어. “크리스라. …귀족인가?” “…….” 살짝 고개를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난 볼 수 있었지.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을 귀족이 아니다를 강조하려는 듯 이 보였어. 물론 나나 마르코는 그를 귀족으로 알 수 있게 하는 행 동이었지. 다른 술꾼들은 이곳에서 그렇게 큰 일이 생기지 않는 것 을 보고는 흥이 다했는지, 고개를 돌리곤 자신들끼리 이야 기를 시작하더군. “자, 한잔 받게.” 꼴꼴꼴. 마르코는 자신의 술잔에 가득 차있는 술을 반정도 비워 서, 옆에 놓여 있었던 빈 술잔에 담기 시작했어. 그리곤 그것을 그 크리스라는 사내에게 넘기더군. 크리스라는 사내는 그 술잔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 들어서는 쭉 들이키더군. 나는 나도 모르게 마르코라는 친구에게 다가갔지. 의자를 하나 챙겨서 그들이 마시는 술자리에 꼈다는 말 이야. 나는 셀에게 소리쳤어. “셀! 여기 술잔 세 개만 꾹꾹 눌러서 가져와!” “알았어요! 아참, 라이그네스. 오늘은 외상 안돼요! 결산 하는 날이니까!” “알았어! 아참 거 말 많네. 자 여기. 이거면 됐어?” 짤그랑. 나는 바지춤 어딘가에 있었던 돈을 꺼내서 탁자 위에 던 지듯이 올려놓았지. 젠장 더러워서…. 그러자 어느 세 술잔을 들고 온 셀이, 탁자 위를 굴러다 니는 동전을 낚아 체 듯이 올리며 말을 하더군. “오케이! 웬 일이래? 돈을 다 내고?” “시끄러. 가서 안주 좀 챙겨서 가져와 봐.” “알았어요. 꼭 돈만 내면 성질부리더라?” “칵!” “옴마.” 셀은 웃으면서 ‘도도도도’소리를 내며 부엌으로 들어가더 군.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지. 처음으로 그 크리스라는 친구가 입을 열었는데 하는 말 은 상당히 의외였어. “당신이 라이그네스?” “으,응?” 마치 나를 알고서 찾아온 듯한 말투였어. 하지만 그의 행동은 억지로 그것을 숨기는 듯이 보였지. 흥미가 일더군. 가만히 그의 행동을 지켜볼까 했지만 그냥 궁금한 것을 질문했어. “나를 알고 있는가?” 그는 나의 질문에 술잔을 입에서 때고 말문을 열더군. “당신이 맞았군. 찾기 애매했는데 말이지.” “애매? 나를 찾으러 이곳에 온 것인가?” 마르코와 나는 상당히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았 어. 그러자 그는 목이 탄다는 듯이 다시 한 모금 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더군. “어째서?” “어째서긴. 당신이 필요하니까 찾아 온 것이 아니겠는 가?”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억지로 굵은 목소리를 내려는 듯 이 들리더군. 그렇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콤플렉스정도로 생각을 했기에 관심을 끊었어. 아니 우선, 나를 찾아온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이지. 하지만 그는 이야기를 뜸들이더군. 약간 답답한 기분이 들었지.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평소와는 다르게 보채거나 그런 행 동을 보이지 않았지. 아마도, 그때 나는 느낌으로 알았던 것 일거야. 운명이라는 것을 말이야. 난 그가 아직은 말을 하지 않을 듯한 기분에 다른 것으 로 화제를 돌렸지. 이 행동 역시 평소에는 한번도 보인 적이 없었고, 해볼 생각도 없었던 것이었지. 마르코가 이상하게 보는 것이 참 기분 뭐 같더군. 하지만 마르코 역시 이상했지. 그의 행동의 하나 하나가 모두 의아했어. 뭐가 이상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의 행동이 눈에 익어서였을까? 왜 그런지 그의 행동이 다른 사람으로 오인하기 좋은 행 동을 하더라구. 그리고 내가 자신의 술자리에 끼자 오히려 반기는 듯한 눈빛과 이해 할 수 없는 이체 따위. 분명히 볼 수 있었지. 자꾸만 마르코가 그 크리스라는 젊은 사내를 자신의 앞 에 앉힌 것이 연상되며,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었어. “그런데 어째서 나를 찾는다며 셀에게 얼쩡거린 것이었 지?” 그러자 나의 질문에 크리스라는 사내는 씩 웃으며 이렇 게 입을 열었지. ~~~~~~~~~~~~~~~~~~~~~~~~~~~~~~~~~~~ 이번화에서 부터 이어지는 늙은이의 주절거림은 연재분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출간본에서는 삭제 합니다. 이 부분에서 173화까지는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71 회] 날 짜 2004-12-23 조회 / 추천 4377 / 34 선작수 5856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번외편] 출간본에는 안나오는 연재분만의 묘미 “아. 마을 밖에서 라이그네스를 찾아달라 도움을 요청하 니깐, 병사하나가 실실 웃으며 가르쳐 주던 군.” “뭘? 어떻게 말인가?” “저기로 쭉 가다 보면 간판 없는 술집이 있을꺼야라고 하기에 나는 물었지. 물론 간판 없는 곳을 어떻게 찾아가 냐고 말야. 그러자 그가 말하길. 무조건 가면 안다는 거 야.” 벌컥벌컥! 여전히 목이 타는 것인지 맥주를 들이키더군. 아마 찢어진 상처에서 나오는 피를 삼키다 보니 갈증이 나는 모양인 듯 했어. 그제야 그의 얼굴에 부기가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지. 그것을 보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물론 마르코 역시 가만히 있었지.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다는 듯이 말야. “정말로 와보니 술집이라고 눈에 딱 그려지더군. 이곳을 이름 없는 술집이라 부른다고 저기 있는 주정뱅이가 가르 쳐 주더군.” 그가 손을 뻗어서 누군가를 가리키자 붉은 코 베거스영 감이 손을 높게 들었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용케도 알아차리고는 아는 척 을 하는 것이었지. “배거스 영감이군. 그런데 말이지 이야기는 마저 하라구. 뭔 서론이 그렇게 기나?” “아. 미안하군. 병사가 말했던 것을 깜빡하고 지나칠 뻔 했군. 그 병사가 하는 말이 이 술집을 찾았으면 라이그네 스는 90%찾은 것이라고 하더라구.” “응? 그건 무슨 말이지?” 정말 무슨 말인지 궁금했어. 별로 좋은 말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어보았지. “분명히 술집에 있는 이쁘장한 여인에게 추파를 던지면 라이그네스나 마르코라는 사람이 튀어나올 것이라더군. 하 지만 마르코보다 라이그네스가 튀어나올 확률이 90%이상 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야.”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어. “이봐. 그 말은 꼭 내가 성질이 드러워서 라는 듯한 말 투인걸? 약간 기분이 나….” “푸헤헤헤헤! 그렇지! 그럼 그렇지! 푸헤헤헤헤헤!” “빠드드드득!” 마르코의 경박스런 웃음에 이를 악 물 수밖에 없었어. 만약 그의 웃음을 보고 화를 냈다가는 정말 그가 말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말야. 하지만 참긴 왜 참냐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어. 그의 웃음이 끊어지지 않았거든. 그냥 확 뒤집어엎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분위기는 그런 데로 좋아지더군. 화기애애는 아니라도 나쁜 분위기는 아니었으니까 말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크리스라는 친구가 상 당히 마음에 들더라고. 마르코 역시 나와 비슷한 마음인 것 같았어. 크리스라는 친구를 챙겨주는 것을 보니 말이야. “혹시 말야. 아까 전에 말한 그 병사라는 것이 이마에 점이 유난히 크게 나 있던 사람 아니었나?” 크리스는 고개를 가로 저으더니 입을 열었다. “그랬던가? 잘 기억이 나질 않는걸? 아! 맞아. 그러고 보 니 소갈머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어. 머리가 빠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걸?” “망할 녀석. 프리드 자식 아냐?! 지는 공짜 밝혀서 머리 까지는 주제에 지금 나를 가지고 논거야? 나 성질 더럽다 고? 나중에 두고보자. 으득!” “푸하하하하! 프리드자식 갈수록 멋진 모습을 보이는 걸? 푸하하하!” “…….” 여하튼 나중에 알고 보니 마르코가 그를 더 이상 건들지 않은 이유를 들어보니 사정은 이러했어. 크리스가 마르코에게 속삭이듯이 혹시 당신이 라이그네 스? 하며 물었다는 것이야. 마르코는 그것에 혹해서 그를 건들지 않고 다음 행동을 지켜보았다는 것이지. 물론 그 행동 역시 보통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임 에 분명하지만. …여하튼 조금전의 마르코의 눈에서 나온 이체의 이유를 알 수 있는 말이었어. 분명히 나와 크리스 사이에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을 하 고는 그런 행동을 보였을 것이니 말이다. 그조차도 내 일이라 하니 신중한 모습을 보였던 것 같았 어. 하긴 마르코는 상당히 나를 따르는 친구니 말야. “그런데 크리스.” “응? 왜 그러지?” “나를 찾는 이유가 뭔가?” “…….” 또 다시 잠시 뜸을 들이더군. 하지만 참았네. 물론 익숙해 질 수도 있겠지만, 전혀 아니라 할 수 있었 네. 기다리는 것 만큼 짜증나고 답답한 것은 없으니깐 말야. “자네가 옛날에 혼자서 드래곤 피어 용병단을 단신으로 박살낸 친구가 맞지?” “드래곤 피어?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마을에서 깝쭉거리 던 그 친구들을 말하는 것이라면 사실일 걸세. 그런데 그 런 것은 왜 묻는 것이지?” 또 다시 맥주 잔을 들어 올리는 크리스. 하지만 들고 보니 맥주잔이 빈 것을 알게 되었지. 크리스는 손을 들어 셀을 부르려는 듯 했지만, 내가 대 신 셀을 불러 술을 더 시켰지. “번번히 미안하군.” 분명히 나와 마르코에 비하는 어린아이 같은 체격을 지 니고 있었어. 그리고 보통 건장한 사내들의 신장에 비해 약간 작은 편 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 그래도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보통을 넘었어. 아마 그런 기운 때문에 내가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것일 지도 몰랐지. “여하튼 미안할 것까지야. 나를 찾는 이유가 뭐지? 혹시, 설마…. 그들의 복수인가?” 나의 진지한 물음에 마르코가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 지. 마치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말야. 어떻게 저 조그마한 사내가 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왔 다는 것인지 기가 막힌다는 듯한 웃음이었어. “형님. 가당치도 않는 말씀을 하시는 구려. 지금 저 몸집 을 지닌 사내를 말씀하시는 게요? 푸하하하. 유머가 많이 느셨군요. 형님. 푸하하하.” 하지만 나는 진지하게 물었고, 또 신중히 답변을 기다렸 지. 분명히 그는 보통이 넘는 것을 난 본능적으로 알 수 있 었거든. 마르코의 주먹에도 멀쩡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보면 서, 충분히 보통은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그리고 언뜻 언뜻 보이는 그의 눈빛은 살아 있었지. 오랜 시간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볼수록 남자라는 생각 이 들지 않았어.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의 이목구비는 정말이지 남자라고 생각하기 힘든 모습 을 가지고 있었지. 하지만 만약 나를 공격하기 위해 왔다면, 여자든 꼬마든 상관없다는 것이 내 주의였지. 그들이나 어떤 자들이건 간에 나에게 살기를 내 품는 다 면 절대 사정을 볼 생각이 없어. 그가 죽던지 내가 죽던지 둘 중에 하나의 결과가 나와야 만 하지. 아무리 절친한 친구라 하여도 그가 나에게 이빨 을 들이밀었다면…. …그때부터는 친구가 아닌 적이 되는 것이지. “만약 내가 그러한 목적으로 왔다면?” “죽여야지.” 나의 말문은 바로 터졌어. 그리곤 품어져 나오는 힘이 터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옆 의 의자를 주먹으로 내리쳤어. 그 의자는 몹시 나 당연한 듯이 파편을 이곳저곳으로 파 하며, 장작 쪼가리가 되어 사방에 날렸어. 벌컥. 벌컥. 나의 분노의 표출을 무시하듯이 조금 전처럼 맥주를 들 어 마시더군. 그 천진한 듯한 모습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 당연히 나는 보통사람들과 같은, 그러니까 나의 예상처 럼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랬지. 그는 그렇지 않았어. 오히려 내가 그의 그런 모습에 놀랐으니 말야…. 아마 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기에 더욱 화가 났을 수 도 있었어. 그가 진실을 말하지 않고, 돌려서 말하거나 딴청을 피우 는 것보다 말야. 그가 흠칫하며 놀라는 모습이라도 보였다면 그렇게까지 씩씩거리지는 않았었을 것이야. 그가 눈을 술잔을 식탁에 시원하게 내려놓으면서, 입가 를 슬쩍 닦더니 말문을 열더군.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보았지. 그 머리카락 속에 가려진 빛나는 눈을 말일세. 순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시원한 눈망울을 말일세. “그럴까?” “……?” “한번 붙어 봐야겠지?” “흐흐흐.” 나와 크리스라는 사내. 그리고 구경꾼들은 술집 밖으로 우르르 몰려 나아갔지. 술집 옆에는 집을 하나 지으려는 듯한 넓은 공터가 있었 기에 우리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지. 물론 다른 작자들 역시 쫄랑쫄랑 술잔을 들고 따라 나왔 어. 흥겨운 흥밋거리가 생긴 듯이 말야. 물론 지루한 시간이었기에 싸움이라는 것은 상당히 유쾌 한 유흥이 될 수 있었으니 가만히 있었지. 물론 나는 내가 이길 것을 장담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 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감상은 없었어. 다만 어떻게 죽일까 생각을 했으니까 말야. 말이 죽인다는 것이지 반은 살릴 생각이었으니…. 분명 살아서 숨을 쉴태니 죽인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 군. 그들은 이렇게 외쳐댔어. “어이! 라이그네스. 죽이지는 말라고!” “살살해 살살. 저번에도 몇 명을 실수로 죽이는 바람에 고생한 것을 기억하라고!” “그냥 팔 한마디 정도 부러트리고 그만 하게. 저렇게 조 그마해서 어딜 건드릴 곳이 있다고 그러는 겐가? 참 말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런 말들은 모두 신경을 끊었지. 크리스의 몸놀림이 달라졌기 때문이었지. 그때 등 뒤에 다른 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지. 살기등등한 기운 세 가지가 나의 육감에 포착되었던 것 이었어. 그렇다 한들 그것에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어. 바로 크리스의 날카로운 움직임이 내 품을 파고들어 왔 기 때문이었어. 날카로운 발차기가 순간 내 턱을 노리고 파고들었었지. 그것을 피하는 것은 정말이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그렇지만 찰나의 순간에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지. 아니, 완전히 피하지는 못하고 스쳤어. 작은 스침이었지만 뇌까지 충격이 가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 너무 강한 일격이었기 때문이었어. 부웅하는 바람소리가 허공에 울릴 때, 나의 주먹은 그가 공중에 떠있는 체공시간에 보다 빠르게 움직였어. 그가 맞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던 것일까? 분명히 나의 계산대로라면 당연하게 맞아야 하는 것이었 어. 하지만 그는 연체 동물 같은 움직임으로 내 주먹을 피하 는 것이었어. ~~~~~~~~~~~~~~~~~~~~~~~~~~~~~~~~~~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72 회] 날 짜 2004-12-23 조회 / 추천 4075 / 34 선작수 5856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번외편] 출간본에는 안나오는 연재분만의 묘미 그는 나의 주먹이 날아오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반대 방향에서 놀고 있는 발을 활용해서 충격을 모두 멀리 빠지 는 것에 소모했던 것이야.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 그렇게 넋을 빼고 있을 시간은 없었어. 어느 사이엔가 나를 향해 단걸음에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말야. 방향과 상황을 보니 조금 전과 같은 공격을 하려는 듯이 보였지. 참으로 어의가 없었다고 할 수 있었어. 같은 방법은 웬만해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 말야. 난 왠 떡이냐 하며 회심의 일격을 기다리고 있었지. 하지만 그것은 나의 커다란 오산이었어. 그는 나의 다리를 감아올리고 내 뒤로 빠진 것이었어. 그리고는 또 다시 다리를 활용하여, 달려왔던 탄력과 무 게를 실어서는 내 뒷통수를 강하게 내리치는 것이었지. 정말이지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어. 허탈하다고 해야 하나? 이번에는 정타로 맞은 것이었으니 말야. 머리가 띵하더군. 이번에는 제대로 맞았던 것이야. 그의 공격법을 알아차릴 수 있었지. 자신의 체격이나 힘이 딸렸기 때문에 빠름과 중요 급소 공격을 노리는 것이었지. 물론 보통 파이터라고 불릴 정도의 싸움꾼은 당연한 것 이겠지만, 그는 특히 심했어. 마치 이것으로 인해 나의 약점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 는 듯이 보일 정도였으니깐 말야. 물론 일대일이라면 그의 그런 움직이나가 무게를 실어 올리는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패배를 부를 것이겠지. 하지만 나 같은 존재가 세 명 정도만 그를 덮친다면 꼼 짝 못하고 패배를 외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나는 내 무릎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잠시 비틀거렸어. 그 사이에 그는 벌써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중이었지. 아마 전문적으로 치고 빠지는 파이터 기술을 배운 듯한 움직임이었어. 주위의 패거리들의 입이 벌어진 것이 보였어. 아무런 소리하나 없이 조용한 것을 볼 수 있었어. 내가 이렇게 밀릴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을 하지 못하 고 있었던 것이야.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집중을 하는 것에 도움이 되더군. 다음 공격이 오는 것을 본 순간 난 오른쪽으로 몸을 꺾 어서, 그의 공격을 흘렸지.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흠칫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어. 나 역시 닳고 닳은 싸움꾼이었지. 그런 틈을 놓칠 생각은 전혀 없었어. 다시 한번 허리를 꺾어서 체중을 아래로 실어 옮긴 다 음, 팔목에 회전을 가해 그에게 쏘았지. 그는 아차하는 순간 나의 주먹에 맞아떨어졌어. 물론 생각처럼 완벽하게 맞지는 않았어. 주먹을 뻗는 사이 잠시 내 다리가 풀렸었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내가 보통 쓸 때의 주먹보다는 파괴력은 있었을 것이야. 내가 이겼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야. 속마음말인가? 당연히 속으로는 일어나지 말라고 외었지. 정말이지 그는 끔찍한 상대였으니깐 말야. 내 다리가 다시금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아까 맞았던 것의 충격이 아직까지 가시지 않았던 것이 었지. 생각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더군. 그것은 심장 떨릴 정도로 당혹스러운 감정이 피어오르기 에 적당한 상황이었어.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 다는 것에 감정을 처음이다 시피 느낀 것이었으니. 이렇게 다급한 상황이라 생각되어지는 데, 몸이 움직이 지 않는다니. 믿을 수 없었어. 그때였지. 조금 전 나의 주먹에 맞아서 쓰러진 크리스의 몸이 꿈틀 거리는 것이었어. “우웨에에엑!” 크리스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조금 전에 마신 술 따위와 음식 따위를 모두 게워내는 것이었어.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지. 내 주먹의 파괴력으로 장이 놀란 상태에서 충격을 먹었 을 태니 말이다. 그가 일어나자 조급해지는 내 마음은 더해만 갔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몸이 원상복귀 되어지지는 않았어. 휘청거리는 다리를 한동안 추스른 다음 방어 자세를 잡 았지. 그의 입에서는 상당한 양의 음식물이 쏟아져 나왔어. 저 조그마한 몸으로 받아드리기에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 도의 양이었지. 그는 자신의 속을 모두 게워내자 몸을 흔들며 풀기 시작 했어. 마치 자신의 몸이 가벼워 졌으니 한번 붙자는 모습이었 지. 기가 차기는 했지만 어쩌겠는가? 그의 행동을 받아 드리는 수밖에. 나의 몸 역시 어느 정도 회복을 하였지. 더 이상의 실수는 없을 것이다 라며 암시를 걸었어. 그의 강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깐 말야. 우리 둘은 아무런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지. 물론 주위의 모든 구경꾼들조차 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어. 우리들은 서로의 틈을 조심스레 찾았어. 물론 내 몸이 크기에 무거워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오산일 뿐이라는 것을 그는 몸으로 느꼈을 거야. 그의 조심스러운 한 걸음 한 걸음이 느껴졌으니 말야. 순간 누군가가 던진 돌이 우리들의 눈앞을 지나 반대편 벽에 맞을 때, 우리들은 동시에 몸을 띄었지. 그렇지 않아도 극도로 긴장의 상태였는데, 그 돌 덕에 몸의 긴장의 끈이 순간 더욱 팽창해 버렸기 때문이었어. 나의 주먹은 순식간에 허공을 가르며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지. 그는 내 주먹을 자신의 몸을 뒤로 뺌으로서 솜털 하나의 차이로 빠져나갔어. 나는 커다란 움직임 뒤였기에 그의 반격에 준비를 취하 지 못하고 맞을 수밖에 없었지. 퍼억! “크흑!” 나의 얼굴을 또 다시 내주는 실수를 하게 되었어. 물론 나의 분노는 극을 달았어.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몸 을 움직였어.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움직임이 더욱더 날카로워졌어. 나의 흥분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 그는 그제야 본연의 실력을 보이려는 것 같았어. “이야아압!” 나는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철저히 경계를 그었지. 내가 팔을 휘두르자 공기가 진동하며 우는 소리를 내었 지. 부우우웅! 나의 몸이 다시 다가갔지. 그러자 이번에는 그의 선방이 기다리고 있었어. 그의 주먹이 내 목옆을 스쳐지나갔어. 난 그것을 느끼자마자 내 목을 이용해서 그의 팔을 밀쳐 냈어. 그의 중심이 흔들리며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였지. 나는 이제 마지막이다 하며 회심의 한방을 날렸어. 그렇지만 그것이 나의 오산이었을 줄이야.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했지. 나는 나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으니 말야. 퍼어어어억! 나의 주먹은 허전했어. 하지만 분명히 무엇인가가 강타 당한 소리였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뒤를 돌아보았어. “수고했군.” “…큭!” 나는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보고서 그만 정신이 아 득해 져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 그는 지금까지 나를 속이고 있었던 것이야. 그는 스피드를 앞세우는 철저한 아웃 파이터(Out Fighter)였던 것이야. 그때 마지막으로 나직하게 나의 귓가에 들리는 한마디. 그것은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말이었어. 그것을 끝으로 정신의 끈을 놓쳤지. “쉐도우 파핑(Shadow Popping).” “…….” 한참 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누워 있던 곳은 다 인용 침실이었어. “…우으윽!” 일어나자 무엇보다 커다란 두통이 밀려오더군. 어렸을 때 처음 접한 술에 숙취가 일어나는 듯한 기분이 었어. 참 기분 더럽더군. 그때 바로 옆에서 인기척을 느꼈지. 곧 몸을 돌려 방어를 하려 하였지만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더군. 다시금 입에서는 침음성을 가장한 비명이 쏟아져 나왔으 니 말야. “어, 친구 일어났군. 보스. 이리와 봐. 이 친구 정신 차 렸어.” “내가 보스라고 부르지 말랬지!” 퍼벅! “…윽! 우씨! 그렇다고 왜 때려!” “맞을 소리 하니까 맞지. 누가 보스야?! 무슨 내가 도적 단 이끌고 다니냐?” “그렇다고 맨날 나만 때리는 이유는 뭐야! 켄 형도 좀 말해봐. 보스가 맨날 나만 때리잖아.” “시끄럽다.” 굵직한 목소리가 들리자 모두 조용해지는 것을 알 수 있 었어. 아마 그가 켄인 모양이었지. 하지만 보스라고 불린 자는 상당히 목소리가 가늘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명히 들어본 목소리였어. 아마 보스라고 불린 것을 보니 이 조직? 팀? 여하튼 대 장 격 인 것 같은데, 내가 이 목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지. 그런데 곧 알 수 있게 되었지. 그는 바로 나랑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싸우던 크리스 라는 친구였어. 그가 지금 이 방안에서 보스라 불리 웠던 인물이었지. 물론 나와 싸웠기에 난 그의 힘을 알 수 있었지. 그 덕에 보스라 불릴 만한 이유를 알 수 있었지. 그래도 전혀 매치가 되질 않았어. 저렇게 외소한 자가 대장이라니 말야. 웃음이 세어 나온다 하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 야. 다른 사람들도 같이 들었다면 함께 웃었을 테니 말야. 웃겨서 웃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웃는 것이 다 반수겠 지만…. “어이 친구 일어났어?” 그는 나에게다가 와서는 내 몸을 일으켜 세우더군. 어느 정도 완력은 있는 것인지 내 상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에 주저함이라고는 없었어. 하긴 그 정도의 완력도 없다면 분명히 나를 쓰러트릴 수 없었을 테니 말야. 아무리 싸움에 능숙하다 하더라도 말이지.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아 주었어. “그래. 덕분에 잘 잔 것 같군.” “오해는 풀렸는가?” “오해? 오해라니?” “내가 복수하러 왔다는 것 말일세.” 그의 말을 마저 듣고 일부러 몰랐다는 듯이 입을 열었 지. 분명히 그가 무엇을 가지고 오해라 했는지 알고 있었지 만 말야. “아아, 그거. 무슨 오해씩이나. 단순히 싸가지없는 자식 버릇이나 고쳐줄 생각이었지. 물론 입장은 바뀐 듯 하지만 말야.” 내 말이 끝나자 옆에서 큰소리로 뒤집어 지는 듯한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 “푸하하하하. 푸하하하! 싸가지없는 자식이래. 푸하하하 하!” 분명히 조금 전에 보스라고 하다가 한 대 맞은 자식의 웃음소리 같았지. 약간 기가 차더군. 그가 웃는 것을 보니 말야. 옆을 돌아보니 크리스의 얼굴이 붉어져 있더군. 그제야 알 수 있었지. 내가 무슨 실언을 했는지 말야. 솔직히 실언이고 뭐고 간에 평상시에 쓰는 말인데도, 그 는 뭐가 그렇게 재미 난지 웃어대는 것이었어. 그런데 그를 보니 왠지 낮이 익더군. 어디선가 한번쯤 본 얼굴이었지. 분명했어. 적어도 요 근래에 한번쯤 마주본 얼굴임이 분명했지. 내가 머리가 나쁘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야. 여하튼 그런데 싸가지 없는 자식이라는 것이 그렇게 우 스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지. 그러던 중 문뜩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되었지. 그것이 사실일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어. 그 말은 곧 내가 ‘여자’에게 패했다는 말이 되니까 말야. “서…, 설마? 크리스가 여자?” “…….” “푸하하하하! 푸헤헤헤헤!” 퍼억! 크리스에게 뒤통수를 한 대 맞았지만, 그는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려는 듯이 쉬지 않고 웃더군. “푸하하하하! 아파아하하하하하!” “핏!” “풋!” “…….” 나의 놀란 듯한 탄성에 웃음소리가 더 커진 것과 웃음소 리를 내는 곳이 늘어 난 것을 깨닫게 되었지. ~~~~~~~~~~~~~~~~~~~~~~~~~~~~~~~~~~~~~~~~~~~~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73 회] 날 짜 2004-12-23 조회 / 추천 4378 / 88 선작수 5856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번외편] 출간본에는 안나오는 연재분만의 묘미 물론 나머지들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웃음을 참기 힘 들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 그 때문에 내 반대쪽 창에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어. 황급히 그쪽을 보니 그곳에 손대면 배일 듯한 눈빛을 가 지고 있는 여자가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것을 알고 소름이 돋았어. 저 반대편에 있는 거대한 덩치의 우직하게 생긴 사내를 보고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강하면 강하지 약 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저렇게 머저리 같이 웃고 있는 사람조차 말이지. 그 순간 알게 되었어. 그를 어디서 보았었는지 말야. 나는 곧 그를 지칭하며 그를 불렀어. “드래곤피어?!” “나? 푸후후후후후. 자, 잠시만…. 조, 조금만 더 웃고…. 푸후후후후!” 그는 알아들었어. 그리고 나에게 자신을 말하는 것인지 대답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불안한 생각이 들었지. 정말 이들이 나를 보복하러 온 것이다라는 생각이 말이 야. 나는 방어 자세를 취하고 그들을 노려보기 시작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나를 공격하 겠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그럴 의사가 없어 보였다고 해야겠지? 그렇다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지. ‘혹시나’ 하는 세상이 이 곳이니 말야. “아아. 긴장 풀어요.” 그 말은 크리스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지. 말투가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지. 그의 입에서 나온 말투가 확 달라졌다는 것을 말야. 그의 말투는 여자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는 말투였 고, 조금 전처럼 억지로 남자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 않 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 “나를 어떻게 할 샘인가?” 나의 입에서 나온 말투는 거칠기 그지없었어. 당연하지. 지금 내 앞에서 미친 듯이 웃음을 내 품고 있는 자는 분 명히, 수십 일 전에 나에게 무너진 드래곤 피어의 대장이 었으니 말야. 나와 호적수를 보이다가 결국에 무너지기는 했지만, 그 것은 어떻게 보면 요령으로 이겼다고 할 수 있으니 말야. 물론 그들이 먼저 실수를 하였기에 싸웠지만. …그가 나 를 처리하기 위해 강한 동료들을 불러왔다고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어. 내가 아니라 해도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모두 같은 생각 을 했을 것이 분명해. 내가 장담하지. 그렇게 분위기가 삭막해 지자 모두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어. 그렇지만 크리스라는 여인의 얼굴은 화사하다시피 웃고 있었지. 그의 얼굴은 세안도 끝나고, 남자 옷이기는 했지만 깨끗 이 옷까지 갈아입은 상태였었거든.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정말 아름다웠지. 뭔가 다른 고풍스런 기운이 흘러나오는 듯싶었고 말야. “자자. 그게 아니라니까요.” “그럼 뭐지?” 나의 질문에 그녀는 뜸을 들이며 입을 열었어. 아마도 그것이 그녀의 버릇인 것 같았지. 다른 사람의 질문을 받으면 잠시 뜸을 들이는 것 말야. “그게 아니라 저 친구는 요 몇 일 전에 저희 일행이 되 었지요. 물론 일행이 된 이유는 저에게 집적거리다가 두들 겨 맞고서 된 것이지만….” 순간 뒤에서 계속 들리던 웃음소리가 뚝 끊어 진 것을 알 수 있었지. 하지만 반대편 창가와 저쪽 구석의자에서는 웃음소리가 한결 커진 것을 알 수 있었어. 그때 그 드래곤피어 용병단 대장이었던 사람이 소리치듯 이 외쳤다. “그 말은 너희들이 괴물이란 소리야!” “…뭐라고?” 그러자 나직한 목소리가 창가에서 들려왔어. 싸늘한 죽음의 기운이 몰아져 있는 듯한 목소리였지. 의자에 앉아 있던 사내는 조용히 책을 읽더군. 크리스라는 여인은 딴청을 하듯이 엉뚱한 곳을 돌아보고 말이지. 그 용병단 대장. 이름은 라이 샐로베이라고 했었지. 그는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를 듣고 상당히 쫄은 듯한 모 습을 보여주었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아….” “뭐.” 라이 셀로베이라는 사람과는 다르게 짧막짧막하게 외마 디로 대꾸하는 그녀였지. “에잇! 나도 어디 나가면 일등급 용병. 아니 특급까지 올 라가는 사람이야! 에스테르. 너는 여자가 그게 뭐야! 그러 다간 평생 결혼도 하지 못할 꺼야! 내가 무슨 동내 북이 냐?! 그렇게 북처럼 나를 가지고 노는 너희들이 괴물이 아 니면 뭐……냐…요…….” 처음에는 죽더라도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죽겠다는 듯한 절호한 의지를 보이던 그였지. 어째서인지 갈수록 톤은 낮아 졌어. 크큭. 결국에는 처량한 모습까지 보여주었지. 하긴 자신이 말하면 말할수록 끔찍한 살기를 느꼈을 테 니 말야. 나에게 직접적인 살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한이 일었 으니까 말야. “계속 말해봐.” “…….” 그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문은 잠겨버린 듯 싶었 어. 그의 말이 나오지 않자 그녀가 말문을 열었지. 지금까지 그녀의 말투에 비하면 상당히 길은 대꾸라 할 수 있었어. 아마 과거에도 이렇게 길게 말한 적이 없었을 것이라 난 생각이 들었지. 물론 그들과 함께 행동하면서 그것은 직감이 아닌 신념 으로까지 굳어 졌었지.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여자임을 버린 것은 이 미 태어났을 때부터지. 그리고 나머지 할 말은 없나?” “…있…다면……요…?” “마지막 유언으로 받아 주지.” 갑자기 그 라이라는 자가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이었지. 내가 그에게 적의를 가졌었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어. 아니 오히려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을 정도였지. 그것은 그가 그 에스테르라는 여인에게 채찍으로 감겨서 끌려나가자 곧 사라졌어. 곧바로 마음을 들뜨게 할 정도의 통쾌한 난타작 음이 들 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지. 밖에서는 사람이 죽어간다는 소리들이 웅성웅성거리는 소리에 밀려들어 왔지만, 그들 중에 나서는 사람은 없었지. 자신들도 죽을 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야. 물론 이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 는 다는 듯이 조용히 밖의 소리를 무시하고 있었어. 순간 끔찍한 이 집단이 무슨 집단인지는 모르겠지만 끔 찍한 집단이란 것은 짐작이 아닌 확신으로 다가오더라고. 나의 질문의 대답으로 그것이 확신에서 또 다시 신념으 로 굳어졌지. “저…, 저기 저 밖에 말리지 않아도….” “예? 뭐가요?” “저기, 밖에 동료….” “뭘요? 무슨 일 있어요? 켄?” “…….” 고개를 좌우로 살짝 돌리며 아니라고 말을 대신했지. 아마 내가 보기에는 에스테르라는 저 채찍을 휘두르는 여인보다 저 켄이라는 사람이 말을 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여하튼 크리스는 상큼하게 웃으며 나의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고, 정말로 그녀의 행동이나 말투를 들어보면 진 심으로 안 들리고 보이지 않는 다고 생각을 할 듯싶었지. 내가 환청을 듣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어. “그런데 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던 에스테르와 라이 가 어디간지 알아요? 밥 먹을 시간이 다 됐는데 둘이 대체 어디 간거야? 확 굶겨버릴라.” “…….”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여하튼 제가 용병단을 하나 만들려고 해요. 그런데 저 희 일행이 되어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사근사근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목소리. 내가 녹아버리는 줄 알았지. 바로 대답이 나갈 뻔했어. 그 소리만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지. “아아아아악! 사! 람! 살려줘! 크아아아악! 켄 형! 어이! 크리스! 사람 살려! 꾸엑! 살려줘! 꾸에에에엑! 꾸우엑!” “…….” 그러자 난감한 얼굴 표정으로 열려 있던 창문을 조용히 닫는 크리스를 볼 수 있었지. 문고리까지 잠그고 햇빛 가리게 까지 내렸지. 지금이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달깡. 달깡 철컥! “요즘. 밖이 왜 이렇게 시끄럽지? 밖에다가 어떤 정신나 간 사람이 미친개를 풀어놨나? 위험한 동내군 이 동내 는…. 조심해야 겠어. 그렇죠? 라이그네스?” 저 말도 진심으로 들렸어. 정말 모르고서 하는 듯이 말해서 또 다시 말려 들을 뻔 했지. 나는 이 여인이 궁정 연극단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을 정도였어. “그런데 복수가 아니라면….” 나의 질문에 그녀가 다소곳하게 말문을 열었지.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잖아요. 지금 용병단 일행을 구 하려는 중이예요. 그런데 라이라는 친구가 중간에 들어 왔 죠. 처음에는 저로 시작하여 저기 책을 보고 계시는 켄. 그 리고 에스테르 언니가 들어 왔죠. 라이라는 치가 저에게 깝쭉거리던 중 실력이 있어 보여서 우리 팀에 영입을 했 죠. 다음 일행을 찾으려던 중이 었는데 라이가 말하더군요. 자신이 드래곤피어의 용병단 대장이었다면서 말이죠. 그런 말을 들었기에 어째서 그곳에서 나왔냐고 물었죠. 그러자 라이그네스님을 말하더군요. 혹하는 마음에 이곳에 온 것 이지요.” “……그래서?” “실력도 제가 직접 보았으니 합격이예요. 오빠께서 방심 만 하시지 않으셨다면 제가 졌겠죠. 하지만 제가 오빠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오빠를 쓰러트려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질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쓰러트린 것이라고?” “예.”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귀엽게 웃었지. 오빠 오빠하며 애교를 떠는 것을 보니 아무런 생각도 들 지 않더군. 하지만 신중히 생각을 해야 했어. 그 말은 내가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말과도 같았으니 까 말야. “혹시 정해놓은 이름은 있나?” “블러디 핸드.” ………. …….] ~~~~~~~~~~~~~~~~~~~~~~~~~~~~~~~~~~~~~~~~~~~ 이 블러디 핸드라는 이름 하나 얻기 참으로 힘들군요 ㅡ,.ㅡ;; 진땀이 다나네요.. 휴.... ㅡㅡ;; 이 이름 하나 얻으려고 한가를 이렇게 고생시키다니.. 쿨럭... 힘들어 죽겠습니다아~ ㅎㅎ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는 한가가 되겠습니다아~ 계속 사랑해주실거죠? ㅎㅎㅎ ps. 여하튼 인터넷이 끊어져서 많이 힘들었다는... 제가 연재를 하지 않으면 글을 안쓰시는거 다들 아시죠? ㅡ,.ㅡ;; 어제 올린 연재분도 그때 쓰고 올린거라서.. 쿨럭... (이 말을 이해 하시는 분이 몇이나 되려나..) 에구 힘들다아~ ㅎㅎㅎ ps2. 이제 내일부터 연휴네요.. 크리스마스 이브.. 캬하~ 저는 어머니 일 도와드리러 갑니다. 가장 바쁜 때라 일손이 딸리거든요... ㅡㅡ;; 연재라.. 훗... 어쩔 수 없이 비축분으로 지금부터 몇화 분량 더 쓰고 내일 하고 내일 모래 연재분을 올리는 수 밖에 없겠네요 ㅡㅡ;; ps3. 곧 이벤트 마감도 끝나고 당첨자를 올려야 할시간이 왔네요. 그림 이벤트 당첨자... 와우! 모두 감사하다는... 명훈이만 그려져서 날아 왔지만 그래도 행복했다는 ㅎㅎㅎ 여하튼 28일쯤에 당첨자 발표를 하겠습니다. 블러디 핸드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뭐, 사실 이번화의 반응을 보고 싶었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ㅎㅎㅎ 늙은이의 주절거림은 연재분에서만 있을 것이고 출간소설에서는 빠질 것이니 그냥 읽어만 봐주세요. 이런 이야기도 있다라고~ 아깝다고 생각하여 올린 것이라 생각해주시구요 ㅎㅎ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아, 그리고 눈썰미가 좋은신 분들이 계시던데, 제가 과거에 썼던 글의 한부분이 맞습니다. 다음화부터 보시면 크게 손상가는 부분 없이 읽으셔도 될것입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74 회] 날 짜 2004-12-23 조회 / 추천 3489 / 88 선작수 5856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4. 검황, 블러디 핸드의 일원이 되다 4. 검황, 블러디 핸드의 일원이 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가 끝인 것 같군. 여기까지가 블러디 핸드의 시작이라 할 수 있지.” 블루와 일행들은 모두 짧은 한숨을 쉬었다. 참으로 긴 이야기였지만, 누구하나 입을 지루하다 입을 연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 이야기 속에 빠져 들어갔다. 막힘없이 흐르는 그의 이야기는 베르니스들을 끌어들이 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라이그네스가 지금까지 한 말이 바로 전설의 시작 아니 던가? 그리고 설마 레니카라는 그 전설의 용병단 단장. 헤르마틴의 공주. 아니, 지금 황제의 어머니라니…! 아직도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일행들. 라이그네스가 헤르마틴의 정권이 흔들린다는 사실에 놀 랄 이유는 충분했다. 그때 텐시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희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신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 말에 라이그네스가 깊은 눈으로 텐시를 바라봤다. “훗, 역시 도둑길드의 정보력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군.” 흠칫! 텐시가 몸을 슬쩍 떨었다. 일행들조차 놀란 눈으로 텐시를 바라봤다. ‘텐시가 도둑길드?’ 텐시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아니, 도둑길드라는 것만 숨겼다. 별로 좋은 직업은 아니니 말이다. 쓸데없는 편견과 오해를 살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텐시는 담담하게 받아 넘겼다. 그러자 일행들도 담담하게 넘기기 시작했다. 자신들도 굳이 밝힐만한 신분들이 아닌 탓이다.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길?드?장?님.” “뭐, 나이 먹다보니 그런 것만 늘더군.” “여하튼 이유나 밝혀주시죠?” 라이그네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유라….”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던 라이그네스. 블루와 일행들은 그의 그런 얼굴을 바라봤다. 마치 기력을 모두 소진한 듯한 맥없는 모습을. “미안한데 내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게.” 블루와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기에 블루가 대답했 다. “뭔가?” “아, 우선 내 부탁을 들어주기 전에 할말이 있군. 자네 들, 아직 이름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 블러디 핸드 의 이름을 사용하여 주는 것은 어떻겠는가?” 쿠궁! 모두들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전설의 용병단 이름을 사용해 달라고?’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콜이 ‘누가 우리를 블러디 핸드라고 믿어 주겠느냐’며 입을 열려는 찰나 라이그네스가 지긋이 스콜을 바라보며 입을 막았다. “누가 뭐라고 하면 이 증표를 보여주게. 그러면 모든 용 병길드에서 자네들을 인정해 줄 것이네.” 그리곤 자신의 안쪽 가슴 주머니에서 경건한 표정으로 뭔가를 끄집어냈다. 그것은 금으로 만들어진 매달이었다. 그 속에 일곱 개의 손이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그림이 음각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그것은 훌륭한 장인의 솜씨다. 드워프중에서도 장로급의 작품이 확실했다. 그 말은 진품이란 뜻과 동일했다. 베르니스의 일행 중 보물에 일가견이 없는 사람은 없었 다. 블루는 길드장 라이그네스가 건네주는 그 증표를 받아 들었다. “내 욕심일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들이라면 그 증표를 받 기에 충분 할 것이라 생각이 되네.” 베르니스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그냥 증표만 들고 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 으시나요?” “후후, 이 늙은이의 눈썰미를 무시하지 말게. 지금까지 용병생활을 하며 키워온 것이야.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피 하게 해준 것이 바로 이 두 눈이지. 난 내 눈을 믿는다네.” 라이그네스의 확신에 찬 두 눈. 베르니스는 라이그네스의 눈 속에서 깊은 신뢰를 읽을 수 있었다. 베르니스가 시선을 아래로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듣겠다는 뜻이다. 블루는 그 매달을 받아 들고 음각되어진 그림을 보며 연 신 감탄사를 흘렸다. “멋지군. 이런 것을 사람이 만들었단 말인가?” “사람? 후후. 드워프라는 종족이 만들어 준 것이지.” “아아.” 블루도 드워프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작지만 누구보다 강인한 힘을 가진 전사이며, 최고의 예 술가라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그러나 드워프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달 랐다. ‘이런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그 이야기들이 전혀 허황되지 않았다는 말이군.’ 블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다 준 듯 하군.” “그런데 아직까지 부탁과 이유를 말씀하지는 않으셨군 요.” 텐시의 이야기에 라이그네스가 입을 열었다. “큭큭. 부탁이란 내가 자네들에게 하는 의뢰를 받아 달 라는 말이지.” “의뢰?” 일행들의 물음에 라이그네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가서 헤르마틴을 도와주게나….” ~~~~~~~~~~~~~~~~~~~~~~~~~~~~~~~~~~~~~~~~~~~~~~~~~~ 이유는 다음화에 올라오겠죠? 지금 바로 막 나가봐야 해서 막구 휘갈겼더니 정리가 좀 안되네요... 3권은 유난히 수정이 많이 필요 할 것 같네요. ㅎㅎ 이제 이번 장면만 지나면 곧 어느정도 신나는 활극이... 블루의 힘도 여지없이 드러날테고... 그럼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26일날 찾아 뵙겠습니다. 좋은 연휴보내세요^^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75 회] 날 짜 2004-12-24 조회 / 추천 6469 / 178 선작수 5930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4. 검황, 블러디 핸드의 일원이 되다 “흠…?” 블루의 의뭉스러운 말투에 라이그네스가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에서 무엇인가를 느낀 블루. “사랑인가?” “아니라고 말 하지 않겠네.” “풋….” 블루의 입가에 미소가 잡혔다. “유치한 놀이를 즐기는 군. 그래 좋다. 이렇게 멋진 선물 을 받았고, 이름도 받았으니 그 값을 해줘야지. 네가 원하 는 대로 해주겠다.” “고맙군.” “그런데 저희들은….” 베르니스가 입을 열며 블루를 응시했다. 순간 흠칫 놀랐다. 블루가 처음처럼 고분고분한 모습이 아닌 거만한, 아니 오만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그 모습은 거대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블루의 몸에서는 일대종사의 기개가 흘러나 오고 있었다. 블루가 그런 거대한 모습으로 베르니스에게 입을 열었 다. “나와 함께 세상을 가져보지 않겠는가?” 순간 베르니스는 가슴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가? 떠나고 싶은가?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얻겠 는가?” 다시 흘러나온 블루의 음성. 그들은 순간 움찔했다. 웬만한 부탁이라면 들어줄 생각이었던 베르니스들. 하지만, 순간 목숨이 걸린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주 춤했다. 이름이야 다른 것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위안하며 말이다. 분명 블러디 핸드의 이름이 욕심나긴 했다. 사실 그 위대한 이름을 가질만한 위치가 아닌 자신들이 다. 겨우 이름 지으려하는 풋내기 용병단이 아니던가. 그런데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란다. 그 이름 때문에. 뭔가 특별한 특전도 없이 말이다. 그러한 상황에 블루가 입을 연 것이다. 세상을 자신과 나눠 갖자고. 순간, 상황이 달라졌다. 블루의 그 한마디로 인하여. 아무런 이득도 없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세상을 얻자는 말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던가. 베르니스들의 눈에서 빛이 뿜어졌다. ‘세상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다.’ 멋지다. 자신들이 용병을 한 이유가 그것이 아닌가. 뭔가 색다른 모험.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무언가를 위해 목숨을 건 용병이 된 것이 아닌가. 블루의 한마디에 자신들의 몸값이 그렇게 오를 것이라 생각도 못했다. 옆에서 그런 베르니스들과 블루를 바라보던 라이그네스 가 감탄했다. ‘호오…. 역시, 내가 사람을 잘 선택한 것 같군.’ 라이그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의 기개도 그렇지만, 사람들의 심령까지 제압하는 그 한마디. 그것은 믿음이라는 것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아무리 같은 말을 하더라도 말만 떠드는 것과 무개감속 에 어린 믿음을 주는 목소리는 다른 것이다. “같이 가겠는가?” 그 말을 끝으로 베르니스와 텐시, 스콜 그리고 클루토. 그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블루를 향했다. 그 눈이 말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사람과 함께라면 세상을 얻는 그 것이 꿈만이 아니라고. 몇 푼의 돈 때문에 죽는 거보다, 세상을 얻기 위해 싸우 다 죽는 것은 그 무개감이 틀리다. 죽어도 부끄럽지가 않은 것이다. 하물며 블루의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가능성이 느껴진 다. “같이 가고 싶습니다.” “저도, 가고 싶어요. 항상 도망쳐왔던 삶과 다르게 누군 가를 움켜쥐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저, 저도…. 이 나약한, 흠, 저도 같이, 강해지고, 싶어 요….” 하지만 스콜은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스콜을 향했다. 그러자 스콜이 감고 있던 눈을 뜨며 힘이 가득담긴 목소 리로 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 뭘, 당연한 것을 물어보시나? 이렇게 흥미로운 일에 내가 빠질 수야 없지! 내가 빠지면 너희들을 누가 돌 본다고 생각해? 엉?” 블루와 일행들이 피식 웃었다. 라이그네스도 함께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그때 블루가 라이그네스를 향해 질문했다. “그런데 자네는 어떡할 생각인가?”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자꾸 말을 놓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라이그네스는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처럼 편하게 말을 받았다. 라이그네스는 저 경지의 사내라면 아무리 젊어 보여도 최소 자신의 나이는 되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신체적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라이그네스다. 자신은 완전한 마스터가 아니지만 말이다. “나 말인가? 나의 마음역시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서 모두 쳐부수고 싶다네. 하지만, 난 늙었어. 마음과 다르네. 이미 늙어버린 몸과 마음을 지닌 늙은이일 뿐이라네. 과거 성질 급하고 난폭한 라이그네스는 죽었지.”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이 갔다. “그렇군.” “미안하군.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자네들에게 부탁 하네.” “미안할 것은 없네.” 그 순간 무엇인가가 블루의 눈 속으로 들어왔다. 지금까지 흐릿하던 어떤 영상. 라이그네스의 위압적인 모습 때문에 의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저승사자.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그들과는 다르게 생겼다. 때문에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이 뭔가 영적인 존재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과거 자신이 만났던 그 저승사자들과 같은 일을 하는 존 재임을 말이다. -그렇군. 자네는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군. 블루의 전음과 그 속에 담긴 말뜻에 약간 놀란 눈빛을 머금은 라이그네스. 하지만 부정하지 않았다. “자넨 정말 대단하네. 설마 내 근처에 머물고 있는 죽음 의 사자들을 본 것인가?” -느끼고 있었나 보군. “후후, 나도 나이를 먹다보니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는 있게 되었다네.”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이제 모두 이해가 가네. 사랑. 나도 한때 그것 에 목숨을 건 적이 있지. 아직도 내 가슴속에 그녀가 남아 있고 말일세.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지. “고맙군.” 블루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용병 길드를 나섰다. 베르니스들은 블루와 라이그네스가 마지막으로 뭔가 독 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눈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 이상은 상 상하지 못했다. 라이그네스는 그렇게 사라져가는 블루들을 보며 믿음직 한 눈빛으로 나직하게 속삭였다. “잘 가게. 블러디 핸드 용병단들이여.” 그 말속에는 뭔가 애매모호한 뜻이 숨어 있었다. 바로 자신의 과거를 보내는 뜻과, 꼭 해결해 주리라는 커다란 믿음이…. ~~~~~~~~~~~~~~~~~~~~~~~~~~~~~~~~~~~~~~~~~ 늘어지는 듯한 기분은 무거운 분위기와 설정을 나열하며 생긴 것이라 생각되네요. 곧 다시 타이트하고 스피디한 전개가 시작 될 것이니 기대해주세요^^ 좋은 하루 되시고~ 메리 크리스마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76 회] 날 짜 2004-12-28 조회 / 추천 4779 / 144 선작수 6011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4. 검황, 블러디 핸드의 일원이 되다 블루와 함께 나선 일행들. 우선 목적지가 정해졌기 때문인가. 블루는 무작정 길을 나섰다. 헤르마틴이 어딘지도 모르며 앞서가는 블루를 막아 세운 것은 의외로 스콜이었다. 생긴 것과 다르게 꼼꼼한 성격의 스콜. 시시콜콜한 것까지 챙겨들었다. 일행들에게 어울리지 않게 시어머니 소리를 듣는 이유가 있었다. 스콜은 그 말이 상당히 듣기 싫었다. 그렇다고 그 성격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헤르마틴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블루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던 베르니스가 대답했다. “대충 한 3개월 정도 걸릴 걸요? 여기서 헤르마틴 수도까지를 말하는 거라면 그 정도의 시간은 예상하셔야 할 듯하네요.” 베르니스들은 모두 블루에게 존대를 했다. 은근슬쩍 팀의 리더였던 베르니스조차 블루를 리더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블루도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흠, 그렇군.” “무슨 생각이라도 있으신지….” “우선 목적지가 잡혀 있으니 헤르마틴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 “아직 정확한 사안이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먼저 가서 생각하자.” 모두 벙진 표정을 지었다. 말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한마디로 아무런 생각이 없단 말과 동일했던 것이다. 결국 피식 웃으며 블루의 뒤를 따르는 일행들. 블루의 그런 모습조차 듬직하게 보이는 베르니스 들이다. 앞서 걸어가는 블루의 등은 정말이지 거대하게 보였다. 자신들을 감싸 안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을 수정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보름이 넘도록 마을 한번 들리지 않고 강행군을 시도한 블루. 특히나 지름길로 가자며 산속을 그대로 돌파를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별의 별 몬스터들과 조우를 한 일행들. 몇몇은 몬스터 도감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녀석들도 나타났다. 다행이 블루가 나서서 물리치긴 했지만, 자신들도 논적은 없었다. 아니 놀 수가 없었다. 떼거지로 덤벼드는데, 누가 죽고 싶다고 구경이나 하겠는가. 결국 지친 베르니스가 목소리를 높여 따졌다. “이렇게 무작정 가는 것도 좋지만, 제발…. 밥! 밥 좀 먹고 살자구요! 최소한의 휴식이라도 줘야 하는 건 아닙니까!” 그것은 베르니스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이곳저곳에서 짹짹거리며 동의의 의견을 표하는 일행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블루의 입장으로는 워낙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가장 칭얼거리는 베르니스의 뒤통수를 후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 퍽! “커헉!” 지행일치라 했던가.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블루의 주먹은 베르니스의 뒤통수를 갈겼다. “시끄럽다. 조금 전에 밥은 먹지 않았나.” 글썽이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은 베르니스. “그까짓 육포 몇 조각 먹은 거 가지고 기별이나 갈 것이라 생각합니까? 그것도 딱딱해서 돌 같은 육포 조각을 말입니다!” “난 충분하다.” “대장이 괴물일 뿐이라구요. 제발 우리의 시선으로 생각을 해줘요오~.” 얼마나 억울한지 이제는 울먹이는 베르니스. 그쯤 되자 베르니스가 맞음과 동시에 입을 다물었던 동료들이 하나 둘 입을 열었다. “저희도 베르니스와 같은 생각이에요. 대장. 제발 마을에서 편하게 잠 좀…. 아니 그것도 안 바라니 밥이라도 먹죠.” “저도 같은 생각인데….” “저도….” 조심스럽게 말을 흘리는 일행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블루. 약간 뜨끔한 표정으로 시선을 회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약간 마음이 흔들렸다. 동시에 자신과 다르게 온몸이 피와 땀으로 절어 있는 동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특히나 텐시의 상태도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기에 결심했다. “…마을로 가자.” 순간 눈이 동그래진 일행들. 자신들이 잘못 들었는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블루를 주시했다. “가기 싫으면 안가도 좋다.” “이얏호!” 그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도를 펼쳐 가장 가까운 마을을 찾아보았다. 얼마 후 퀭해진 눈으로 지도를 응시하는 일행들. 이상한 분위기에 블루가 의문을 흘렸다. “무슨 일이야?” “마, 마을이….” “마을이?” 베르니스가 손가락으로 지도를 가리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블루에게 입을 열었다. “가장 가까운 곳이 사, 삼일 거리라니! 우워어어어!” 그 목소리는 처절할 정도로 구슬프게 숲속 안으로 울려 퍼졌다. 결정적으로 어딘가에 있었던 고블린들이 몰려나오도록 큰 도움을 줬다. “이, 이건 뭔가가 잘못 된 거야!” 베르니스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그래서 스콜이 한마디 했다. “닥치고 싸웟!” “…….” “헉헉!” “헥…. 헥….” 거의 인간 폐인들이 되어 숲을 탈출하다 시피 뛰어나온 일행들. 클루토는 거지꼴을 면하지 못했고, 베르니스와 스콜은 몸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와 꼬질꼬질한 몸에 수염마저 수북하게 자라서 산적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으며, 그나마 양호한 텐시는 쓰러져서 블루의 등에 업혀 내려오고 있었다. 눈앞에 마을이 들어오자 환호성을 내지른 베르니스와 스콜. 놀라서 정신을 차린 텐시가 블루의 등에서 뛰어내려와 클루토의 손을 맞잡고 덩실덩실 춤을 출 정도였다. 블루가 입 안이 쓰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자신이 정말 너무한 것인가 하고 생각한 탓이다. “그만 흥분하고 마을로 가자.” “나, 나는 우선 목욕부터 할래.” “난 식사.” “나는 시원한 맥주. 클루토 너도 같이 마실거지?” “으, 으응….” 클루토도 지금의 상황이 나쁘지 않은지 머쓱하게 웃음을 흘리며 스콜의 말을 받아줬다. 마을 안은 상당히 번화했다. 이곳저곳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물론 자신들이 더 눈에 띌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블루들. 사람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하고 수상하다는 기운을 뿌리기 시작하자 그제야 자신들의 꼬락서니를 볼 수 있었다. 자신들 같아도 충분히 오해할 만한 패션이었다. 서둘러 사람들을 피해 가장 큰 여관을 찾았다. “어서오슈.” 주인으로 보이는 외소한 덩치를 가진 중년의 사내가 블루들을 반겼다. 곧 그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변했다. “그런데 몬스터랑 함께 살다가 왔수?” “조금 비슷해요. 흐흐.” 스콜의 한마디에 피식 웃으며 주인이 물었다. “뭘 먼저 시킬라우? 목욕, 식사?” “화장실과 식사.” 일행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이 손짓으로 화장실을 가리키며 주방에 외쳤다. “세트 메뉴 다섯 개!” “네에~.” 안에서 젊은 청년의 힘 있는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 어머니의 일을 봐주고 오랜 만에 돌아온 집.... 컴퓨터가 먹통이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포멧을 하고 윈도우즈를 깔았더니 나를 반기는 반가운 손님. 바로 웜 바이러스.... 눈이 뒤집히더군요. 유틸하고 한글 다 깔고 이제 슬슬 글을 써볼까 했던 시간이 어제 저녁 10시20분경. 잊고 있던 웜바이러스의 반가운 방문에 컴터 집어 던질뻔 했습니다... 그렇게 세번을 포맷한 내 귀여운 컴퓨터... 발로 몇번을 걷어 찼는지..... 정말 돌아 버릴 뻔 했습니다. 오늘 글 못올린다고 공지를 올릴 생각까지 했습니다. 피곤에 쩔어 머리도 무겁고 아픈데다가.... 휴....... 2시 30분 만에 모든 웜 바이러스의 방문을 막아 내는데 성공하여 미친듯이 글을 써서 지금 올립니다. 인간 승리라 할 수 있을 듯... ;ㅁ; 아아..... 그럼 제가 잠에서 깨어나는 오후에나 찾아 뵙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내일부터 무한 연참에 돌입하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77 회] 날 짜 2004-12-29 조회 / 추천 6467 / 166 선작수 6053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4. 검황, 블러디 핸드의 일원이 되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블루와 일행들. 텐시와 클루토는 만족한 표정으로 배를 쓰다듬었고, 스콜과 베르니스는 양이 부족했다며 애꿎은 주방장을 욕했다. 블루는 언제 얼마를 먹든 양의 차이에 구에를 받지 않았고, 음식도 적당히 먹을 만하였기에 별말 없었다. 그때 맥주를 들고 오던 주인의 입에서 귀가 솔깃할만한 이야기 하나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자네들도 무술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가는 길인가?” “예?” “나라에서 주최하는 무술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가는 길이냐고!” 주인의 말에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 귀를 후비던 베르니스. 아직도 식사양이 적은 것이 불만인 탓이었다. 그런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던 주인. 베르니스의 귓가에서 고함을 치듯 입을 열었다. “히익!” 쿠당탕. 놀라서 의자와 함께 뒤로 나자빠지는 베르니스의 모습을 보던 일행들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괜히 머쓱해진 베르니스는 화도 내지 못하고 툴툴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췟! 그게 뭔 소리요? 그냥 말해보슈. 감질나게 하지 말고.” 기분이 나쁜 베르니스가 거친 말투로 말하자 텐시가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퍽! “켁!” “뭘 잘했다고. 눈알을 부라려 부라리긴? 처음부터 네가 잘못했잖아.” “네, 네.” 한숨을 내쉬는 베르니스의 모습을 보니 둘의 차후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블루들이었다. “큭큭. 참 재미난 젊은이들이군.” “난 별로 재미없는 젊은이라우.” 계속 딴지 거는 베르니스의 모습에 일행들이 히히덕거렸다. 물론, 주인의 기분이 크게 상하지 않은 듯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흠…. 나에게 이렇게까지 되물어 보는 것을 보니 모르고 지나가는 길이었나 보군.” “참말로 못 알아들으시네. 알면 왜 물어 봤겠수?” “아저씨한테 함부로 하지 말랬지!” 텐시의 한마디에 뜨끔한 베르니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이 베르니스의 기분을 상승시켜줬다. “주인아저씨. 얘가 배가 고파서 그러나 보니 식사 하나 추가 할게요. 조금 양을 많이 해서 이 입 좀 막아주세요.” “그러시구랴. 어이, 들었지? 일인분 추가다!” “일인분 추가 접수 오케이!” 안에서 다시 들리는 유쾌한 청년의 목소리. 블루는 그 목소리를 잔잔히 듣더니 고개를 꺄웃거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 같았기 때문이다. 슬쩍 시선을 주방 안으로 던져보았지만 곧 피식 웃고 주인의 말을 경청했다. 이곳에서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뭐, 이곳 유슬라니안 제국에서 3년에 한 번씩 벌어지는 무투대회가 열리는 것은 알테지?” “헉!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그렇군. 이제 슬슬 열릴 때였군.” 텐시와 스콜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듣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황을 모르는 블루는 알아듣지 못했다. “텐시, 무투대회라니?” 블루의 의문에 텐시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블루의 행동을 봐온 텐시로서는 블루가 말한 기억상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용병단 대장이 되다보니 블루가 의문을 던지면 자연스럽게 자세한 설명을 해줬다. “아, 무투대회요? 유슬라니안 제국에서는 3년 추수를 마친 시기에 항상 무투대회를 열어요. 나라 안에 숨어 있는 실력자를 찾아내기 위한 대회죠.” “호, 좋군.” 텐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나라에도 물론 무투대회는 존재하지만 유슬라니안의 무투대회를 배낀 것이나 다름없죠. 사실 취지도 좋고, 운영방식도 뛰어나 유슬라니안의 무투대회는 다른 나라에까지 이름이 알려져있으니 당연한 것일 수밖에요.” “그렇군. 그런데 그 대회엔 이름이 알려진 고수들도 참여하나?” “아, 처음에는 모두 통합하여 토너먼트 형식으로 대회를 열었지만, 나중에는 처음의 취지와 약간 어긋난다고 생각을 했는지 대회장이 두 개로 건설되었죠. 하나는 이름을 날리고 있는 기사들과 기사 후보생들이 참여하는 골드 플레어(gold flare)경기장과 또 다른 하나는 실버 플레어(silver flare)라고 하여 일반 용병들이 참가를 하죠.” “호, 머리를 잘 굴렸군.” “사실 원하면 누구든지 골드 플레어든 실버 플레어든 참여해도 상관은 없어요. 하지만 기사수련생이나 기사 이상의 실력자들은 실버 플레어에 참여가 불가능하죠. 그러다보니 자연히 일반 용병이나 기사 지망생들은 골드 플레어에 참여를 꺼리게 되었죠. 사실 1회전에서 탈락할 텐데 누가 출전하겠어요? 모두 상금과 명예를 노리고 덤벼드는데, 하나라도 더 올라가려 생각하는데 말이죠. 후후후.” “흠….” “하지만 사실 매 대회마다 출전하는 사람들도 몇몇 있어요. 물론, 중도 탈락하긴 하지만. 후후. 그렇다고는 해도 기사들과 손속을 섞어서 3회전 이상까지 가는 사람도 종종 있고, 그들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죠.” 모두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블루. 이야기를 듣다보니 흥미가 일었다. 이곳의 무공수위와 어떠한 강자가 있는가를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강함에 대한 갈망과 욕망은 블루의 가슴에서 아직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럼 우리도 그곳에 출전해볼까?” “네에?” 블루의 돌발적인 말에 일행들이 놀람을 감추지 않고 되물었다. 그렇게 죽어라 헤르마틴으로 향하던 블루가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꺼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블루가 무슨 말을 할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때 할 일이 없었는지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인이 입을 열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구먼. 보아하니 초보 용병단 같은데 우선 견문을 넓히는 것도 좋은 생각이지.” 일행들이 쓰게 웃었다. 주인의 말이 자신들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의 상황에서 블루가 빠진다면 어디 크게 내 새울 실력을 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떨어지는 용병단도 아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입맛이 써지는 그들이다. 그때 등 뒤에서 빼빼마른 사내가 입을 열었다. “험험, 여보게들.” 자연스럽게 일행들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40대 후반으로 콧수염이 멋지게 양 옆으로 말아 올려진 귀족풍의 사내였다. “무슨 일이오?” 스콜의 질문에 자신의 말라 올라있는 콧수염을 슬쩍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용병단이오?” “그렇소만.” “사실 이번에 이곳 하웨드 영지에서 대대적으로 몬스터 토벌을 하려하는데 생각이 있나 물어보려 했소.” “아아, 그렇군요.” 스콜도 용병티를 내는 것인지 의뢰인을 만나자 목소리 톤이 부드러워졌다. “그래서 지금 용병들을 모집하는 중인데 생각이 있다면….” 블루가 피식 웃으며 사내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입을 열었다. “텐시, 무투대회가 언제 열리지?” “뭐, 이제 추수철이니 대략 한 달 정도 안에 열릴 것 같네요.” “흠, 한 달이라….” 블루의 그런 거침없는 행동을 본 사내는 블루가 이 허접스럽기 짝이 없어 보이는 용병단의 대장이라 생각했다. 우선 자신은 머리수를 체우면 된다 생각하고 있었기에 부드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그 점을 노리고 이곳 음식점에서 죽치고 앉아 있지 않았던가. “아, 무투대회에 출전하실 생각이신가 보군요. 시간은 넉넉 할테니 생각이 있으면 용병길드로 찾아가보십쇼. 그곳에서 나머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생각이 있으면 가보겠소.” 블루가 약간 부정적인 듯 입을 열자 사내가 약간 초조하게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대대적인 몬스터 토벌을 하는데 약 300명 정도의 용병을 모집하니 천천히 오셔도 좋습니다. 이곳 영지의 병사들과 기사들도 참전하니 안전한 것은 보장하지요.” 그 말에 블루와 일행들이 고개를 꺄웃 거렸다. 한참을 생각하던 스콜이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몬스터의 씨를 완전히 말릴 작정인가?” “거의 전쟁수준이네?” “그런데 정말로 그렇게 몰려간다면 안전하고 돈도 많이 받을거 아니야?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맞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가 아니라 아주 좋지.” 하나씩 자신의 생각을 꺼내 말하자 사내는 콧수염을 튕기며 씨익 웃었다.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텐시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왠지 꺼림칙하네.” “왜?” 스콜의 질문에 텐시가 답했다. “아니, 귀족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가서.” “몬스터 토벌 말이야?” “응. 자주 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크게 대대적으로 하는 곳은 본적이 없거든.” “흠….” “그리고 그다지 큰 영지도 아닌데,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돈을 쏟아 붙는지 이해가 안가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내가 땀을 삐질 흘리며 변명했다. “우리 하웨드 남작께서는 추수철을 맞이하여 항상 이맘때쯤 자신의 백성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항상 가슴 아프게 생각하셨기에 이번에 크게 소탕작전을 벌이는 것뿐입니다.” 뭔가 미심쩍긴 했지만 그 말대로라면 정말 좋은 귀족이라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곳에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생각을 1/5로 나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이곳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테니 말이다. “뭐, 나쁘진 않겠군요.” 블루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생각도 같다는 의미였다. “휴, 저희 남작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꼈다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는 군요.” 그렇게 말하고 사내는 밖으로 나갔다. 텐시들의 말을 듣고 뭔가 찔리는 게 많은 모양인지 진땀 흘리는 모습을 꽤나 유쾌하게 감상한 블루 일행들. “그런데 몬스터 토벌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정도지?” 블루의 질문에 스콜이 입을 열었다. “대충 1주일에서 2주일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요.” “흠…, 그럼 이곳에서 그 무투대회를 여는 곳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그 말에 일행들이 버벅이자 식당 주인이 대답해줬다. “대충 2주 정도 걸린다네.”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의사표시였다. “그럼 시간은 충분하겠군. 한번 그 몬스터 토벌인지 뭔지에 참여해 볼까? 왠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블루의 말에 모두 수긍했다. 분명 대단위 전투는 많은 경험을 쌓게 해주니까 말이다. 물론 음식도 사람이 먹을 만한 음식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말이다. 블루의 뒤를 따라다니며 쉬지 않고 싸우거나 육포를 뜯지 않아도 알아서 전투 준비를 하고, 쉴 때 쉬며, 적당한 음식과 술도 마실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기 때문이다. “저희는 찬성입니다.” “그럼 좋군. 오늘은 쉬고 내일 아침에 용병길드로 가보지. 자세한 이야기와 보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테니 말이야.”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침실로 몸을 옮겼다. 다음날 블루와 일행들은 용병길드를 찾았다. 그곳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때 턱수염을 멋스럽게 기른 거구가 블루일행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자네들도 몬스터 토벌에 참여하기 위해 왔는가?”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랑 같이 동행하겠나?” 블루와 일행들이 시선을 올려 그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바쁜 하루였습니다...쩝... 더 올리고 싶었지만, 최종원고 수정하느랴 일하느랴...... 출간일정이 1월 10일경으로 잡혔습니다. 흠.. 이제 이벤트 발표도 해야 하는데... 예정과 다르게 그림을 그리신 분을 여섯분으로 뽑고 팔행시를 남기신 분을 네분을 뽑기로 정했습니다. 팔행시를 남겨주신 분들도 수고하셨지만, 그림을 그려주신 분들의 수고를 생각해주세요 ㅎㅎ 그럼 이번 연말 안에 당첨자 공지를 올리겠습니다. 1~6위는 벌써 정해졌고, 팔행시를 쓰신 분들을 뽑아야겠죠. 그럼 기대해주세요~ 쓔웅~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78 회] 날 짜 2004-12-31 조회 / 추천 3651 / 49 선작수 6053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검황, 블러디 핸드의 일원이 되다 블루와 일행들이 시선을 올려 그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친 목소리와 다르게 푸근한 아저씨 같은 인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 사내의 얼굴을 보던 블루의 눈빛이 빛난다. “누구요?” “아, 소개를 먼저 했어야 했는데, 미안하군. 우리는 니콜라스 용병단이네. 내가 니콜라스 용병단의 단장인 니콜라스지.” “헉!” 베르니스와 일행들이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니콜라스 용병단이라니. 대륙에서 10위안에 들어 있는 니콜라스 용병단의 단장이 무엇 때문에 자신들에게 다가왔단 말인가? 믿어지지 않았다. 특히나 피의 향기라고 까지 불리는 니콜라스가 저렇게 온순한 표정의 사내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블루는 니콜라스를 보며 잠시 놀라며 곧 혀를 찼다. 그의 갈무리된 내력이 화경, 즉 마스터 경지에 다 달아 있음을 확인한 탓이다. 하지만 그들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에서 10위권 안에 들어 있는 거대 용병단의 단장이라면 그 힘을 가지기에 부족함이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블루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것은 블루가 완벽하게 자신의 기운을 숨겼기 때문이다. 그냥 용병의 뒤치다꺼리를 맡는 애송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긴, 블루가 어려 보인데다가 마나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데 신경 쓸 이유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겨우 어웨어급에 도달하고 있는 베르니스에게 다가올 이유가 무엇일까? 강자가 목적이라 해도 베르니스보다 강한 스콜이 어웨어의 중수에 속해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익스퍼트 최상위레벨의 사내가 자신들에게 다가올 이유는 없는 것이다. 서서히 의문을 품어가는 블루 일행들이다. 다만 블루 혼자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 한발 빼고 베르니스의 판단을 지켜봤다. 뭔가 흥미 있는 사건이 진행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연히 지나치던 10대 용병단 중 하나가 몬스터 토벌에 참가하는 이유가 궁금해진 탓이었다. 그 정도의 세력을 가진 자들이라면 전쟁에나 투입되던가 아니면 수하들의 실력을 향상시켜주기 위해서나 투입될 몬스터 토벌. 베르니스를 포함한 일행들도 블루가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을 깨닫고 블루에게 눈길조차 흘리지 않았다. 블루의 실력을 숨기면 숨길수록 자신들이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 어떤 최악의 상황이 왔을 때 블루의 숨겨진 실력만이 자신들을 살려줄 유일한 빛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문이 커져갈 때 웃음을 잃지 않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아, 오해 하실 필요 없다네. 용병단은 살기위해 뭉쳐진 것이 아닌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조금이라도 뭉치면 안전하기 때문이지. 의심 할 것은 없다네.” “그런데 당신의 실력이라면 대륙에서도 손에 꼽아 줄 정도일텐데요…….” 텐시의 말에 여전히 푸근한 미소를 잃지 않은 니콜라스가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사람이라네. 분명히 실수를 하겠지. 동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단점은 보완되지 않을까? 물론 자네들도 그만큼 안전할 테고 말이네.” “흠…….” 뭔가 아닌 것 같은데, 말 하나하나 뜯어보면 틀린 것은 없었다. 아니 갈수록 흡입되는 뭔가를 느낄 정도였다. 베르니스와 일행들의 입장으로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봉을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블루가 걸렸다. 블루를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하게 가르친 것은 없다. 하지만, 막강한 자의 든든한 존재감은 자신들에게 한번 생각할 것을 두세 번 생각하게 만들어 줬다. 그만큼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의심을 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니콜라스 단장님의 수하들은…….” “아, 아하하!” 텐시의 질문에 니콜라스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모두 외각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참여를 하지 않을 것이죠. 무투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을 경위하여 지나가던 중 대대적인 몬스터 토벌을 한다는 말에 몸 좀 풀어볼 생각으로 이곳에 오게 된 것이죠. 그러던 중에 당신들을 만나게 된 것이구요.”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말에 할 말을 잃은 베르니스들. 블루만이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그 상황을 주시했다. “그렇군요. 아, 저는 베르니스라고 합니다. 이곳은 저와 같은 검을 사용하는 스콜, 여긴 물의 정령사 텐시, 여기 어리숙하게 보이는 이 친구는 마법사 클루토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기서 우리를 지켜보며 서있는…….” 슬쩍 어떻게 해야 소개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베르니스의 시선이 블루와 맞닿았다. 바로 그때 귓가에서 블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음이었다. 슬쩍 놀라긴 했지만, 그 이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전음을 사용했다는 것은 뭔가 좋지 못한 낌새를 블루가 파악했다는 말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이곳까지 오면서 몬스터와의 전투 중에 들었던 기술이었지만, 여전히 놀랍고 신기했다. 배우고 싶었지만, 뭐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지……. -될 수 있다면 나는 짐꾼정도로 이야기를 해라. 블루의 말에 슬쩍 끄덕였다. 하지만 상대가 눈치 차리지 못하게 바로 목을 흔들며 뼈 소리를 냈다. 상대방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 갔다. 자신과 함께 있다는 긴장감에 몸이 굳었으니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 저쪽은 우리에게 검술을 배우고 싶다면서 따라나선 블루라는 친구죠.” “허! 그렇군.” 왠지 반가운 눈빛으로 블루를 슬쩍 보던 니콜라스. 그 반가움이란 눈빛 아주 깊은 곳에 비웃음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블루만 빼고 말이다. 블루는 그들의 대화를 듣자마자 풋내기처럼 이곳저곳을 신기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니콜라스의 시선이 블루에게 벗어난 것은 한 순간이었다. “그럼 어디 가서 이야기 좀 하지 않겠는가?” 니콜라스의 웃음을 보며 마음이 흔들린 베르니스. 그때 텐시가 입을 열었다. “저희는 아직 출전 신청서도 작성하지 못했는데….” “아, 텐시양. 그렇군요. 제가 잠시 깜빡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보십쇼.” 니콜라스가 뒤를 슬쩍 바라보자 뒤에서 정렬하고 서있던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신청서를 작성하는 곳에 가서 뭐라고 한마디 하자 용병 길드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알아듣겠다는 눈빛으로 베르니스와 일행들을 한번 씩 보더니 어딘가에 기재하기 시작했다. 슬쩍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사내. 일을 마쳤다는 듯 니콜라스의 앞에서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다시 자신의 원래 위치에 정렬했다. 니콜라스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베르니스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베르니스 용병단 맞으시죠?” “아니, 우리는 블…….” 퍼억! 말을 꺼내던 베르니스의 뒤통수를 강하게 강타하는 텐시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 거기 파리가 붙어 있어서…….” 니콜라스는 텐시의 변명을 들으며 가만히 웃어줄 뿐이었다. 민망함을 감추지 못한 텐시. 앞에서는 씩씩거리며 내가 뭘 잘못했냐는 눈빛으로 베르니스가 노려봤지만 그것은 가볍게 무시됐다. “죄송합니다. 여하튼 베르니스 용병단이 맞아요.” “역시. 후후. 이미 등록은 마쳤습니다.” 베르니스와 텐시의 시선이 계약을 하기 위해 빽빽하게 줄서있는 용병들에게서 떠나질 못했다. 최소 저녁이나 돼야 끝날 일을 한 순간에 마쳤으니 어안이 벙벙한 탓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베르니스들. “그럼 저희랑 가시겠습니까?”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다. 단순하게 편한 사람이라고 밖에 생각이 불가능한 그런 미소. 블루도 그 미소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짓을 하고 있으면서도 니콜라스의 얼굴에서 시선을 땐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잘 부탁드릴게요.” 텐시의 화사한 웃음에 니콜라스가 웃음으로 대응해줬다. “그럼 가시죠.”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리는 니콜라스. 문을 지나 밖으로 나감과 동시에 찰나의 순간보다 빠르게 드러난 이질적인 표정. 블루는 그것을 감지했다. 그것은 철저한 무시였다. 블루는 고개를 꺄웃거리며 베르니스들의 뒤를 따라나섰다. ~~~~~~~~~~~~~~~~~~~~~~~~~~~~~~~~~~~~~~~~~~~~ 1,2권 최종 원고를 넘기느라 어제 연재를 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죄송;ㅁ; 앞으로는 열심히 할게요.. 하지만 연휴라서 어머니 일이 바쁘다보니 도와드리러 가야 해서... ;ㅁ; 오늘 올릴 만큼 올려보고 2일 부터 다시 연재를 시작 해애 할것 같아요 ;ㅁ; 모두 좋은 연휴 되시고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79 회] 날 짜 2004-12-31 조회 / 추천 3475 / 40 선작수 605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4. 검황, 블러디 핸드의 일원이 되다 “그런데 나는 왜 때린거야?” 아직도 꽁해있는지 궁시렁거리는 베르니스. 그것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텐시는 결국 가볍게 베르니스의 귀를 잡아 당겼다. “아야야야야!” “시끄러 이 등신아. 저 사람들 꼴을 보니 별로 좋은 생각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것 같지 않은데 쓸데없이 경각심줄 말을 꺼낼 필요가 있어?” “그럴수록 딴 생각 못하도록 우리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줘야지!” “에휴…. 지금까지 이 바보를 대장으로 놔두고 살아 있었다니 정말 우리는 운도 좋았군.” 텐시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르는 베르니스였다. “뭐야! 누가 바보란 거야!” “너 말이야. 너.” “이 바보야! 저 사람들이 우리가 블러드 핸드라고 해봤다 콧방귀나 뀔 것 같아?” “누가 바보야! 그리고 우리한텐 블러드 핸드의 표식이 있잖아!” “정말, 너를 대장으로 뽑았던 우리가 등신이였다. 에휴…. 너 니콜라스랑 싸워서 이길 수 있어?” 그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베르니스. “그, 그래도 표식이….” “그래? 그럼 그거 보여주고 같이 죽던가.” 그제야 텐시가 하는 말이 이해가는 베르니스였다. 자신들이 용병이라는 것을 이제야 떠올린 탓이다. “그 표식을 우리 때문에 준거라고 생각해? 블루가 있으니까 우리에게 맡긴 거란 것을 잊으면 안 돼. 그리고 그 표식을 쓸데없이 남발하다가 그 표식에 눈독들인 다른 무리가 생기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만 있어서 잠시 망각했다. 하지만, 거친 용병이란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을 텐시의 충고로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말 한마디에 목숨이 좌지우지 되는 곳에 서있는 자신이 보이기 시작한 베르니스. 표정이 굳어졌다. 뒤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베르니스들의 모습을 보던 니콜라스가 앞에서 피식 웃으며 수하에게 말문을 열었다. 수하의 오른쪽 뺨에 기다란 검상이 남아 있지만, 그것을 배제하고도 상당한 미중년이었다. “베르힐.” “예.” “우선 우리들이 앞에서 싸우다가 서서히 뒤로 빠져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내가 수하들에게 가기 전에 먼저 각인시켜둬라. 목숨을 헛되이 버리지 못하도록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 능구렁이 자식이 그것을 우리와 균등하게 분배할 이유가 없어. 분명히 함정에 몰아넣고 그것과 같이 죽이려 들겠지.” 수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수하의 모습을 듬직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니콜라스. 가볍게 등을 툭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정확한 그들의 속내를 알기 어려우니 계속 떠보며 그들의 반응을 나에게 계속 보내와라.” “예.” “난 저 어리버리한 방패 녀석들을 구워삶아 놓을 테니 먼저 용병단에 돌아가 있어라.” “예.” 베르힐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서서히 발걸음을 늦추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니콜라스와 들어간 곳은 자신들이 묵고 있는 숙소였다. 알고서 들어 간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블루들은 왠지 반갑기도 했고 니콜라스들에게 더욱더 경각심이 일기도 했다. 그때 니콜라스가 입을 열었다. “식사들은 했나?” 그러고 보니 벌써 정오가 훨씬 지나있었다. 베르니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하긴, 식사할 시간이 없었지.” 니콜라스가 인자한 목소리와 미소로 블루들을 바라보곤 가볍게 손을 들어 주인을 불렀다. “여기 사람 수대로 음식을 가져와주시오.”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눈치가 있어서인지 블루일행에게 아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연륜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때 니콜라스가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가장 음식과 가격이 맞아 떨어지는 곳이라 자주 애용하는 식당입니다. 아마 음식 맛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군요. 후후.” 텐시가 대꾸했다. “그런데 이곳을 왠지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은 모습이네요.” 주인장이 니콜라스를 알아보는 눈치만 가지고한 짐작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잠시 동안 오면서 느껴진 직감이었다. 왠지 모르게 이곳을 자연스럽게 걸어 다니는 니콜라스의 모습에서 자연스러움을 느낀 탓이다. 그 자연스러움은 이곳에서 오래 살지 않았다면 나오기 힘든 것이다. 니콜라스는 텐시의 빠른 눈치에 슬쩍 감탄했다. “물론 잘 알 수밖에요. 이곳이 바로 제 고향입니다.” “헉!” 가볍게 놀라는 텐시와 일행들. 뭔가 의문을 수정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몬스터 토벌에 지원하신 이유가….” “하하, 당연히 고향에서 힘든 일을 겪고 있다는데 제가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레이디.” 레이디라는 말에 가볍게 얼굴을 붉히는 텐시. 그런 텐시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 한 사내가 투덜거렸다. 물론 그 사내란 다름 아닌 베르니스였다. “남자가 레이디라는 소리에 얼굴 붉어지긴……. 췟!” 텐시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동시에 베르니스는 다리에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텐시의 손가락이 베르니스의 허벅지를 힘껏 꼬집은 탓이다. “크학!” 베르니스가 의자에 앉아 있던 상태에서 펄쩍 뛰더니 뒤로 나자빠졌다. 쿠당탕! 베르니스의 경탄스러울만한 행동에 블루들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애써 무시했다. 하나같이 베르니스를 모르는 사람 취급하듯 시선마저 회피한 것이다. 그리곤 두통이 일어나는 듯 한 표정들로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휴…….” 가볍게 한숨을 내쉬는 텐시를 보며 니콜라스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하! 참으로 재미난 친구들이군. 좋아. 더욱더 마음에 드는 군.”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하, 텐시양. 부끄럽긴요. 저로서는 오히려 가족과 같은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군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처음 용병을 시작 했을 때는…….” 왠지 모를 쓸쓸한 분위기. 그 속에 슬쩍 진심이 비췄다. 그때 식사가 나왔다. “그럼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 하도록 하죠.”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행들은 식사를 시작했다. 여전히 블루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직까지 입도 열지 않고 니콜라스를 주시할 따름이었다. 물론 흔적이나 기척 없이 조용히. 식사를 마친 니콜라스와 블루들.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저희에게 이렇게까지 호의를 베푸시는 이유가 뭐죠?” “하하. 그냥이라고 말씀드리면 이해가 부족하시겠죠?” 베르니스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사실, 이곳 용병단에 들어오기 전부터 베르니스 용병단의 모습을 봤습니다.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티격태격 떠드는 모습이 제 과거의 모습과 겹쳐지더군요.” 잠시 이야기 흐름을 멈춘 니콜라스. 베르니스와 텐시, 스콜과 클루토.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간다는 뜻이었다. “그래서요?” 블루의 난데없는 질문에 슬쩍 인상이 구겨진 니콜라스. 하지만, 다시 웃음으로 매워진 그의 얼굴. 그로인해 니콜라스의 구겨진 표정을 본 사람은 블루외엔 아무도 없었다. 슬쩍 니콜라스의 시선이 블루에게 쏟아졌다. ‘씹어 먹을 새끼. 감히 내가 하는 일을 말아 먹다니.’ 그러나 눈웃음으로 치장되어진 그의 시선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블루가 은근슬쩍 하나씩 자신이 하는 일에 테클을 걸고 있음을 깨달은 탓이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당하는 자신조차 깨닫지 못 하게 하나씩 보이는 행동들. 지금에야 깨달은 니콜라스. 지금도 약간 뜸을 주며 마음의 동요를 일으켜보려 했는데, 그것을 블루라는 애송이자식이 망친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블루가 알고서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니콜라스는 확실한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러나 블루라는 사내가 확실한 고문관이라는 것이라고 깨닫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경계를 해야 할 상대라는 것도 말이다. 블루는 그런 니콜라스의 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흥에 겨운 표정을 가볍게 지어줬다. 니콜라스의 반응을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 아아~ 누가 블루를 이길 쏘냐.. 몬스터 토벌에 나서는 블루. 엽기행각은 피자 치즈처럼 이어집니다. 쭈욱~~~~~~~~~~~~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80 회] 날 짜 2004-12-31 조회 / 추천 3345 / 52 선작수 605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연재는 계속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검황 이계정벌의 한가입니다. 흠.... 새해인사겸 공지겸 이렇게 글을 끄적여 봅니다. 이제 슬슬 책이 나올 때도 되었고... 추첨을 하여 당첨자를 뽑아야하는데, 요즘 바빠서 못했다는 사과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신중하게 글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이미 그림 당첨자는 모두 뽑혔습니다. 하지만 8행시 참가하신 인원이 거의 400여분에 육박하여 고르기가 쉽지 않네요 ㅎㅎ;; 그분들중 세분 뽑아야 한다니 ;ㅁ;(엉엉)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쪽지나 메일로 저에게 연재를 접지 말아 달라고 계속 날아 오더라구요ㅡㅡ;; 예전에 이미 밝혔는데 계속 의심하시나봐요^^;; 출판사에서 막지 않는 이상 연재는 꾸준히 할 생각입니다. 물론 마지막 완결 권은 연재하지 않는거 이해해하시죠? ㅎㅎㅎ 현재의 저로서는 연재를 접을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으니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연재를 접으면 글을 안써서 ㅎㅎㅎㅎ 그리고 지금 연말이라 술 마시자고 불려다니고 어머니께서 하시는 일 도와드리느라 글을 못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동안이라도 열심히 끄적이니 연참못한다고 뭐라하지 말아주세염 ;ㅁ; 저도 지금 글쓰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린다구염 흑흑 ;ㅠ; 아! 이번에 추천하나 드릴 글이 있네요. 요즘들어 제가 재미나게 보는 건데, 조아라 연재란에 <<<<<강철의 마도사>>>>> 라는 글이 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하는 글인데, 작가의 개성이 맛깔나게 살아 있더군요. 먼치킨을 좋아하시는 독자분들이라면 글의 흡입력을 무시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곧 출간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음 주 정도에 나온다고 한 것 같더군요. 하지만, 장점속에 약간의 단점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치 영화의 한장면이 떠오를 정도의 깔끔한 묘사와 전개로 시선을 압도하더니, 판타지로 넘어서는 순간에서 한동안 주인공의 성격묘사가 약간 허공에 붕뜨더군요. 마치 아무런 생각이 없는듯 멍한 모습이 보입니다. 후반에 가면 갈수록 독특한 주인공의 성격이 드러나며 재미를 살리긴 하지만, 그점이 약간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강추를 드리고 싶네요. 다음 추천글은 죽지않는 무림지존과 능력복제술사라는 글을 올리려합니다. 우선 추천올리기 전에 보셔도 좋을 듯 하네요 ㅎㅎ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도 무한 연참과 광참은 계속 이어집니다~ 쭈욱~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81 회] 날 짜 2004-12-31 조회 / 추천 1707 / 41 선작수 605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4장 물론 누구도 눈치 차리지 못했다. 블루가 마음먹고 감정을 숨기는데 누가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니콜라스가 다시 미소 띤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자내들의 모습을 보니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르더군. 어째서인지 겹쳐지는 행동들까지. 그래서 자내들과의 동행을 생각하게 된 것이야.” “그렇군요.” 베르니스가 주억이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가 생각이 있는가?” 그때 귓가를 파고드는 블루의 전음. -수락해라. 블루의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좋습니다. 저희에게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셨을 텐데, 그만큼 과거의 모습이 저희에게 많이 남아 있나 보군요. 그 말씀 기쁘네요. 차후 우리들도 니콜라스 용병단처럼 커질 수 있다는 말로 들리니까요.” “후후…. 잘 부탁하겠네.” “저희들이야 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일정을 듣지 못했는데 몬스터 토벌은 언제쯤 떠나죠?” 텐시의 질문에 니콜라스가 깜빡했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일 모래 정오에 토벌을 시작한다고 하더군요.” “흠, 왠지 빡빡하게 하는 거 같네요. 개개인이 준비할 시간도 많을 텐데….” “아, 그런 것은 이곳 영주가 챙겨 준다고 했으니 우리는 몸만 가면 될 겁니다.” “그렇군요.” 고개를 한번 끄덕인 텐시. 그런 텐시를 내려 보던 니콜라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저녁에 다시 한 번 보도록 하지. 레이디 텐시도 그때 다시 뵙겠습니다.” 다시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깊숙이 숙인 체 머리를 끄덕였다. 역시나 레이디라는 단어가 친숙하지 못한 탓이다. 그렇게 니콜라스는 밖으로 나갔다. 니콜라스가 완전히 사라지고 주변의 기척이 완전히 소멸된 것을 느낀 블루. 그제야 가볍게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멍했던 표정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후후.” 모두의 시선이 블루에게 향했다. “무슨 일이 있는거죠?”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나도 자네들과 함께 계속 같이 있지 않았나?”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클루토가 무겁게 한마디 던졌다. “뭔가, 짐작, 하신 일이, 있, 있는 거 같은데요…….” 블루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클루토를 바라봤다. 클루토가 간혹 내뱉는 한마디는 결코 무시 할 수 없는 날카로운 비수와도 같았다. 정말로 숫기가 없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마치 자신을 숨기기 위한 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 너희들에게 할 말이 따로 있다. 위로 올라가자.” 블루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하나 둘 뒤를 따랐다. “이번에 유슬라니안 공작 녀석과 이야기 상황은?” “아직도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몬스터 토벌에 뭔가가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뭔지를 말하지 않더군요. 제 나름대로의 생각은 던전이라도 발견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던전이라고?” 니콜라스의 질문에 베르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숨겨진 대 마법사의 던전정도가 아니라면 유슬라니안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아이린 공작이 직접 움직일 이유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흠…….” 니콜라스도 사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슬쩍 눈을 감고 눈동자를 굴려보았다. 많은 생각 때문에 쌓인 피로가 축적 된 탓이다. 곧 눈을 뜬 니콜라스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니콜라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유슬라니안의 개들에게 물리지 않도록 수하들에게 완전무장을 시켜 놔라. 언제 등 뒤를 덮쳐서 우리의 목줄을 물어뜯으려 달려올지 알 수 없으니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예.” “너는 다시 돌아가서 계속 상황을 보고해 와라.” “…….” 니콜라스가 구석에 자리 잡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젊은 사내에게 명을 내렸다. 사내가 명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람같이 사라졌다. 그가 바로 니콜라스가 유슬라니안 쪽에 심어 놓은 첩자라는 것은 느낌만으로도 짐작이 가능했다. “여하튼 그 보물이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놓쳐서는 안 된다.” “물론입니다.” “최대한 전장에서 후방을 맡으며 기사단 녀석들의 눈치를 봐야 할 것 같다. 첩자로 넣은 녀석이 아무리 일을 잘 맡아서 해낸다 해도 그 이상의 상황 판독은 불가능 할테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니콜라스 대장.” “뭐냐?” “그 방패막이 녀석들은….” “후후, 그 녀석들 말이냐? 평소와 같은 대우를 해줘라. 우리들을 대신해서 죽어줄 녀석들인데 최대한의 예의는 보여야지. 확실하게 대우해 주도록.” “예!” ~~~~~~~~~~~~~~~~~~~~~~~~~~~~~~~~~~~~~~` 오늘은 이게 마지막이 될 듯.. 그럼 지금 비축분 두화를 써놓고 저는 일하러 가야할 것 같습니다. 그곳에 가면 집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두화분량을 미리 써놓고 하나씩 올리려 합니다. 저도 연참을 하고 싶지만, 꾸준하게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제가 조금 한가해지고 바쁜 연휴가 모두 끝나면 다시 광필모드로 돌아가겠습니다. 1월 5일 안에 3권이 끝나고 바로 4권에 돌입할 것 같습니다. 그럼 좋은 연휴보내시고 내년에도 아낌없는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 드리는 인사입니다만 새배돈도 많이 받으시고 복도 많이받으세요^^ 회사원분들은 월급과 보너스도 두둑하게 들어오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고, 저와 같은 백사모(백수를 사랑하는 모임)의 회원분들은 모두 취직되었으면 좋겠네요. 많은 일이 있던 2004년. 이제 곧 2005년입니다. 모든 과거를 마무리 하시고 좋은 일들이 가득한 새해 맞이하시길....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내일 1,2권 삭제 [182 회] 날 짜 2005-01-01 조회 / 추천 6890 / 107 선작수 6046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몬스터 토벌하다 5. 몬스터 토벌하다 블루와 일행들이 나설 채비를 했다. 하루라는 시간을 쉬는데 보내고 몸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맞췄다. 앞으로 언제 얼마나 쉴 수 있을지 장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갔다. “아저씨 그 동안 고마웠수.” 베르니스의 장난어린 목소리에 주인이 슬쩍 웃으며 대꾸해줬다. “큭큭, 여하튼 조심해서 다녀오라구. 이곳 몬스터들이 조금 난폭한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아니까 특별히 신경쓰게.” “고마워요. 아저씨.” “칫. 몬스터 중에 순한 놈이 있던가?” 결국 이죽거리던 베르니스는 다시 한 번 텐시에게 뒤통수를 내줘야 했다. 퍽! “켁!” “여하튼 그럼 이만 가볼게요.” 주인은 블루들을 마지막까지 마중했다. 그들이 이곳 여관에 머문 마지막 식객인 탓이었다. 이미 다른 용병들은 다 떠났는데, 블루들만 뭐를 한다고 늦게 나온 것이다. 블루일행들이 하나같이 사라지자 여관 안으로 들어선 주인.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뒷정리를 시도했다. 그때 주방에서 한 사내가 이마의 땀을 쓸어 내며 밖으로 나왔다. “주인 아저씨.” “마무리 정리는 마쳤는가?” 블루 블랙의 머리를 가지런히 쓸어 올린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한 미청년이다. 여하튼 그들의 말뜻은 지금까지 주방에서 이 사내가 음식을 만들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동안 감사했어요.” “이제 떠나려는가?”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굶어 죽을 번 한 것을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니, 바쁜 와중에 일손을 도와줬으니 나야 말로 고맙지.” “후후후.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유슬라니안으로 떠날 건가?”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투대회를 보러가는 거니까요.” “그렇군. 그런데 자내 혼자 가겠다고 하는 것을 보니 사실 불안하군. 그렇게 삐적 말라서 무슨 힘을 쓰겠다고 그러는지. 쯧쯧.” “하하. 고마워요. 아저씨.” 주인이 자신의 품을 뒤지더니 가죽 주머니를 끄집어냈다. 두툼한 것이 적지 않은 돈이 들어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그동안 수고 많았네. 여기 수고료네.” “헉! 이런 것 까지는 필요 없는데…….” “그런가? 그럼 그냥 가게.” “에헤헤.” 사내가 화사하게 웃으며 블루블랙의 머릿결을 뒤로 쓸어 올리더니 번개와 같은 손놀림으로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는 가죽 주머니를 낚아챘다. 덥썩. 주인이 놓아 주지 않고 눈에서 불을 뿜었다. “껄껄. 가져가기 싫다더니?” “하하, 아저씨는 거절의 미덕을 모르시나 보군요.” “뭔 놈의 미덕. 여하튼 손놀림을 보니 소매치기해도 먹고 살겠군.” 다시 머리를 긁적이는 블루 블랙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내. 슬쩍 챙긴 주머니를 자신의 품안에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하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도 자내가 간다니 조금 시원섭섭하군.” “아저씨도 저의 매력에 넘어 오셨군요.” “아니, 바지런히 부려먹기 좋은 녀석이 간다니 이제부터 나 혼자 일해야 한다는 거 아닌가?” “킥킥.” 사내가 웃자 마주 웃던 주인. “그동안 수고 했네. 나중에도 갈 곳이 없다면 우리 집으로 오게나.” “고마워요.”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자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군. 어떻게 보름 넘게 이곳에 머물면서 이름도 밝히지 않나?” 그 말에 블루블랙의 사내가 미려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웃어주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께서 지금까지 묻지 않으셨잖아요. 계속 호보(hobo:거지)라고 부르기만 하시고.” “큭큭. 난 잘생긴 녀석들 보면 기분이 나빠져서.” “제가 사실 좀 잘생기긴 했죠.” “막 짜증이 일어나려 하는 구먼.” 주인이 웃으며 주먹을 움켜쥐자 사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에스티마르라고 합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블루 블랙의 머리카락을 가진 미청년은 유슬라니안 제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니콜라스 대장. 그들이 왔습니다.” “들여보내라.” “어서 들어가시지요.” 블루일행들이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니콜라스가 그 특유의 푸근한 미소로 일행들을 반겼다. “조금 늦었군.” “죄송합니다.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다보니.” “아, 아닐세. 용병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챙기는 것이 무에 흠이 되겠는가.” 니콜라스가 이해 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곧 정오가 되겠군. 우선 이곳 영지의 외각 지역에 정비를 위해 모이기로 했다고 하니, 지금부터 슬슬 떠나면 될 것이네. 나도 지금 나가려 했으니, 함께 떠나도록 하세.” 니콜라스의 말에 베르니스를 선두로 블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나가있게나. 곧 채비를 마치고 나가도록 하지.” 먼저 천막밖에 나가자 니콜라스 용병단들이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이며 마무리 정돈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니콜라스 용병단원들. 마치 제국군을 보기라도 하는 듯 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내일 찾아 뵙겠습니다.^^ 피씨방에서 올리고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ㅁ;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내일 1,2권 삭제 [183 회] 날 짜 2005-01-01 조회 / 추천 5837 / 89 선작수 6046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몬스터 토벌하다 자유분방한 용병들을 이렇게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니콜라스의 장악력과 매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증거라 볼 수 있었다. 모두 놀라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의 10대 용병단이라 불리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천막에서 나온 니콜라스. 그는 뿌듯한 표정으로 놀라고 있는 블루 일행들을 바라봤다. 그 와중에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을 봤다. 짐꾼으로 알고 있는 블루라는 녀석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딴 짓을 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 삭힐 뿐 겉으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나중에도 그런 표정으로 서있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는 생각을 했다. “모두 준비를 마쳤는가?” 베르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지.” 모임장소로 도착한 그곳은 작은 구릉지대였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숲을 밀어낸 듯한 그곳은 숲과 경계를 이룬 지역으로 암석지대가 띠처럼 이어졌고, 그 중심으로는 수십 개의 높고 낮은 구릉들이 파도치듯이 누워 있었다. 거기다가 멀리 탁 트인 그곳은 지평선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시야를 넓힐 수 있어서 가슴속이 시원해 질 정도다. 블루는 오랜만에 느껴지는 호연지기를 한 몸에 받아 드리며 짧은 명상에 잠겼다. 요즘 들어 너무 급하게 살아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탓이다. 그때였다. 흠칫! 알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블루의 전신을 급습했다. ‘뭐지?!’ 그 기운이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블루의 심장이 뛰었다. 쿵! 쿵! 그것은……. 그 기운은……. 블루의 시야에 저 멀리 다가오는 가면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 따라오는 은색 갑옷의 기사들도 있었지만 블루의 시선은 그곳까지 보지 않았다. 인품이 두둑하게 나온 영주의 옆에 나란히 서서 오는 가면의 사내. 지금 블루가 느끼는 기운은 그 사내의 전신에 뿜어지는 위압감이었다. 상상 할 수 없는 고강한 기운. 갈무리 하지 않고 거침없이 흘리는 그것은 그의 자신감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마치, 자신의 기운을 알아차리는 자가 있다면 나에게 오라는 거만함의 표시이기도 했다. ‘대체 누구기에…….’ 블루의 의문이 깊어졌다. 지금 자신의 상태로는 저 자의 정확한 경지를 유추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말은 최소 지금의 자신보다 강하다는 말과 동일했다. 그것도 월등하게 말이다. 그리고 그제야 가면의 사내 바로 뒤에 정렬해 있는 사내 둘과 계집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아보였다. 최소 익스퍼트 상위 레벨에 올라 있는 것으로 보였다. 금발머리의 사내 하나는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의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수준인 것이다. 다만 기운을 완전히 제어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블루처럼 완전히 숨기는 방법을 모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여하튼 그쯤 되자 이곳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블루라지만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지금이 몬스터 토벌에 뭔가 큰 비밀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리 조심에 조심을 기하자라고 생각한다 해도 마스터급의 고수들이 대거포진 할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대체 무슨 이윤가?’ 하지만 블루는 그 이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블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곳에는 자신의 호승심을 충족시켜줄 존재가 있다는 것이 그 무엇 보다 중요했다. 바로 지금 자신의 눈앞에! 그때 집합을 외치는 뿔피리 소리와 함께 한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지금 어머니 일을 돕다 말고 내일 올릴 글을 쓰기 위해 피씨방에 왔습니다. 에휴.. 많이 힘드네요.. 곧 다시 돌아가서 일을 봐야해서... 온김에 지금까지 쓴거 올려봅니다. 곧 한편 완성해서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겠네요 ;ㅁ; 날이 찹니다.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내일 새벽에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연재를 위해 피씨방에서 글쓰?이 귀염둥이 한가를 잊지 말아주세요 ;ㅁ;)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내일 1,2권 삭제 [184 회] 날 짜 2005-01-02 조회 / 추천 6346 / 111 선작수 6046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몬스터 토벌하다 “하웨드 남작각하께서 친히 이 자리를 빛내기 위해 납시셨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순간 용병들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자신들에게 거저 돈을 주는 고마운 사람이라는 생각인지 함성은 예상보다 거쌨다. 사실, 보통 몬스터 토벌의 두 배의 계약금을 건네받았기에 그들의 투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거기다가 이 정도의 머리수에 기사들까지. 그들 모두가 몬스터 토벌에 참여한다면 죽을 확률이 현저하게 낮아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죽으면 병신소리를 들을 정도일 테니 당연히 함성이 거 쌜 수밖에. “모두 조용!” 한 사내의 외침에 용병들은 곧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만족한 표정으로 마저 입을 열었다. “하웨드 남작각하의 주옥같은 말씀이 이어지겠습니다. 마법사.” 사내의 눈짓에 옆에 있던 마법사가 하웨드 남작에게 다가갔다. “본인이 하웨드 남작이다.” 순간 마나의 흐름이 변하더니 확성기 역할을 했다. 블루의 눈에 이체가 띄었다. 내력을 실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적은 마나의 기운으로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것이 신기했던 것이다. 블루의 시선이 클루토를 찾았다. 클루토가 마법사라고 했으니 그도 가능하다는 말이 아니가. 그러고 보니 전투 때도 항상 자신이 모두 처리했기에 클루토의 실력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몇 번 일행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마법사라는게 그냥 머리 좋은 녀석을 뜻하는 것인가 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만큼 블루의 편견이 심했던 탓이다. 인간의 본신의 힘이 아닌 어떠한 능력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하게 되다보니 나중에 마법이라는 것은 견식 해야겠다고 블루는 생각했다. “이렇게 몬스터들을 잡아 영지의 평안을 도모하기 위해 참전해준 용병단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나는 바쁜 일이 있어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여기 내 옆에 가면을 쓴 친구가 내 역할을 해줄 것이다. 과거 황실의 기사단장까지 맡았던 친구지만 사정이 있어서 내 옆에서 함께 지냈던 이다. 실력은 믿어도 좋을 것이다.” 황실 기사단장이라니! 용병들이 들떴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함성을 질렀다. “우와!” 자신들을 지휘하는 사람이 유능 할수록 사고의 발생률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모두 몬스터 토벌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와 다같이 축배를 들자.” “우와아아아아!” 함성이 더욱더 커져갔다. 기사들마저 가세하여 함성을 지른 탓이다. 남작과 가면의 사내가 가볍게 고개 인사를 하고 남작은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 가면의 사내가 외쳤다. “출발한다!” 힘이 넘치는 사내의 목소리. 블루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그 속에 담긴 내력을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법이 아닌 자신의 본신 내력으로 지른 일갈이었던 것이다. 싸워보고 싶었다. 그와 검을 맞대보고 싶었다. 얼마나 강할지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블루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조금만 기다리자. 때가 올 것이다.’ 그 순간 가면의 사내의 뒤를 따르던 기사들은 짧은 함성을 지르며 위압적인 모습으로 산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니콜라스는 뭔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가면의 사내 뒤를 따르기 시작했고, 그 뒤를 줄줄이 다른 용병단들이 따랐다. 블루 일행은 니콜라스의 바로 뒤에 정렬하여 걸을 수 있었다. 니콜라스의 배려 탓이었다. 베르니스들은 흥분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이렇게 앞자리에서 걷다보니 마치 자신들이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 이런 자리에 서서 걸어 보겠는가. 자신들의 위치가 원래대로라면 저 뒤쪽임을 알고 있는 베르니스 들이다. 니콜라스는 그런 베르니스들의 표정을 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이 경멸어린 표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블루만 조용히 그런 니콜라스의 웃음의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챙! “꾸오오!” “꾸웩!” “조심해!” “으악!” 고블린과 오크들을 수도 없이 배어 넘겼다. 그 사이에 용병들도 셀 수 없이 죽었다. 뭔가 이것은 아니다 싶었다. 전면에 나서 전투를 지도해야할 기사단은 뒤에서 대충 싸우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용병들은 삼일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뭔가가 생각과 어긋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처음에 거침없이 앞에서 싸우던 기사단.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뒤로 빠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가장 의지하고 있던 니콜라스 용병단도 같은 태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전방에는 그들의 방향을 지시하는 기사 한둘만 나서서 전진을 외치고 있을 뿐이지, 모든 것은 말단에 빠져있던 용병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상황에 오게 된 것이다. 늑대인간이나 트롤 같은 몬스터가 나와야 기사들이 물리쳐줄 뿐이지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연휴는 잘 쉬셨나요?^^ 그럼 내일 찾아 뵙겠습니다. 지금 어머니 일을 도와드리고 있는 중이라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는 ;ㅁ; 정말 빨리 노트북을 하나 구해서 집필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주말마다 일을 봐드리러 금토일을 어머니 일터에 발이 묶이기 때문에 크흑..... 좋은 하루 되시고~ 주일도 편하게 쉬세요~ 케케~ 정말 황금 휴일이다. ;ㅁ; 그런데 난 놀지도 못하고.. 크흑......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내일 1,2권 삭제 [185 회] 날 짜 2005-01-03 조회 / 추천 4421 / 44 선작수 6046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몬스터 토벌하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 어디에도 도망 칠 곳은 보이지 않았다. 살기위해 검을 휘두르고 앞으로 나갈 뿐이었다. 뒤로 빠져나가 도망 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혼자서 이 깊은 산맥을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지 하지 않았다. 베르니스들은 그런 상황을 주시하며 치를 떨었다. 그들도 지금의 상황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니콜라스의 보호 아닌 보호로 인해 자신들이 저 속에 끼어있지 않을 뿐이지, 언제 어떤 상황이 연출될지 모르는 입장이었다. 바로 그때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용병하나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산맥 아래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순간 화려한 검광이 일렁였다. “…커헉!” 한 기사의 검이 피를 머금자 그는 가슴에서 피를 뿜어댔다. 푸슈슈슈슛! 그리고 원한에 찬 눈빛으로 기사들을 쏘아보곤 그 육중한 몸을 바닥에 뉘었다. 털썩. “모두 잘 봤느냐! 돈을 받고도 자신의 본분을 지키지 못한 녀석들은 이렇게 즉결처형을 실시한다! 너희들 중에 낙오자가 없기를 바란다!” “히익!” 챙! 챙! 앞서 몬스터무리와 싸우던 용병들의 손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이제는 돌아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어차피 혼자서 이곳을 빠져나간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베르니스들. 오한에 떨었다. 앞에서 검을 휘두르며 죽어가는 용병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니콜라스의 미소를 보았기 때문이다. 니콜라스의 입가가 이죽이며 타인의 죽음을 즐기는 듯 보였다. 그제야 베르니스들은 지금의 자신들이 범의 아가리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 입을 다물고 자신들을 씹어 먹을지 모르는 입장이었다. 블루가 뒤에서 지켜주겠지만, 이 많은 악마들에게 자신들 모두를 지켜주길 원하는 것은 너무도 큰 욕심임을 알았다. 지금 이들은 어떤 속마음을 숨기고 자신들에게 잘 대해 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편하게 서있는 이 장소가 바로 가시방석이었다. 시체들이 굴러다니는 가운데 클루토의 안색이 가장 창백하게 변해있었다. “우웨엑!” 주르륵! 속의 모든 것을 게워 내기라도 하듯 쓴물이 흘러나와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음에도 구역질을 계속한 것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끔찍한 장면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스콜들에게 억지로 술을 마셔 과음 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은 베르니스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나마 버티고 설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마음이 흔들리면 자신들도 저들과 같은 꼴이 될 수 있음을 짐작한 탓이다. 그때 블루가 다가왔다. 일행들의 등에 가볍게 손을 댔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등에 닿은 블루의 손에서 뭔가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옴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기운은 자신들의 긴장된 마음을 풀어줬다. 조금씩 안정되어갔다. 뭔지 알 수 없었지만, 평온함이 자신의 전신을 가득 채워 줬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제야 시야가 바로 잡혔다. 그로인해 어느 정도 공포에서 멀어 질 수 있었다. 블루의 신기한 능력. 그들은 모두 블루를 만났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직도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굳이 블루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어째서인지 블루의 그 자체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블루이상이 아닐 것이라는 알쏭달쏭한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람들의 죽음과 짙은 피 비린내가 역겨웠다. 그럼에도 대책 없는 공포에 부들부들 떨던 조금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마음이 평온해지자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두리번거리며 기사단과 니콜라스 용병단의 흐릿한 비웃음도 감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블루의 목소리가 자신들의 귓가에 환청처럼 다가왔다. -조금만 참아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번에 말 했던 것처럼 다른 목적이 있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 목적지에 도달하고 있음도 알아냈다. “어떤 상황인지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베르니스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블루는 어떤 상황이 와도 자신들의 작은 숨소리마저 잡아 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참 대꾸가 없자 베르니스는 블루의 얼굴을 돌아봤다. 그와 동시에 베르니스는 딱딱하게 굳어 있는 블루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언제나 여유 넘치던 블루의 표정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평온함은 사라졌고 긴장감으로 뒤 덥힌 불길한 표정이었다. 그런 블루를 처음 본 베르니스. 베르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블루의 시선을 따라 앞을 내다봤다. ~~~~~~~~~~~~~~~~~~~~~~~~~~~~~~~~~~~~~~~ 내일부터 정상적인 연재가 가능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며 한가는 물러나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내일 1,2권 삭제 [186 회] 날 짜 2005-01-03 조회 / 추천 4258 / 22 선작수 6046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삭제공지] 내일 새벽 4시 정각에 1,2권 분량 출간 삭제를 합니다. 10일 경에 1,2권이 나옴으로 인해 불가피한 결정이 되었네요^^;; 모두 기대해주세요. 얼마나 변했는가 얼마나 이쁜 책으로 둔갑되서 나오는가를요^^ 오타를 찾아서 뎃글로 달기 이벤트를 해도 될 정도일거예요. 연재분과 다른 출간본이 곧 여러분들께 다가갈 것입니다. 그럼 어서어서 읽어주세요~ 이벤트 당첨 공지는 내일 새벽에 올라옵니다. 자신의 아이디를 확인해주세요~ 내일 이후에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올라 올 검황 이계정벌하다의 출간 정보를 모두 확인해주세요^^ http://www.bookbox21.com/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내일 1,2권 삭제 [187 회] 날 짜 2005-01-03 조회 / 추천 4660 / 92 선작수 6046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몬스터 토벌하다 자신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블루는 그곳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경직되어있는 표정. 다시 한 번 돌아봤지만, 여전히 깊은 숲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몬스터들을 모두 물리치고 땀과 피에 절은 용병들.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돈을 많이 줄때부터 짐작했어야 했다. 설마 그것이 자신들의 목숨 값이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자신들의 목숨이 금화 두 개에 불과했다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피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삶이 후회되는 용병들이었다. 그제야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일들.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그래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세상천지 어떤 곳에서 몬스터 토벌을 위해 황실 기사단이 등장하고 선착금으로 금화 두 개를 선뜻 내주겠는가. 자신들의 어리석음. 그것은 죽음의 그림자가 되어 다가오고 있었다. 기사들은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들을 어딘가로 몰아넣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용병 몇몇이 눈치를 보며 기사단을 치고 빠져나갈 길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이미 숲에 늘어져 있는 기사단의 위용에 전의를 상실한 다른 용병들 때문에 검을 들 기회를 노릴 수가 없어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한참을 걸어 나간 용병과 기사들. 얼마 걷지 않아 넓은 공터가 나왔다. 그 앞에 트롤 한 마리가 자신들을 마중이라도 나온 듯 서있었는데, 피에 절은 용병들을 보고는 고함을 질러댔다. “크오오오오오!” 쩌렁쩌렁! 트롤 한 마리를 보고 비웃던 용병들이었다. 하지만, 트롤이 내뱉는 그 괴음에 못 이기고 그 자리에 하나 둘 바닥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니콜라스 대장 기사단 들이 뒤로 빠지고 있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뭔가 대책을…….”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 차린 니콜라스. “대체 어떤 상황이 벌어진 것이냐.” 그때 뒤쪽에서 경계하고 있던 기사단 중 한 사내가 다가오더니 니콜라스에게 입을 열었다. “니콜라스 용병들은 다른 용병들과 같이 저 공터로 나가시오.” 명령조의 말투였다. 하지만 니콜라스는 그런 그의 말투에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애써 신경을 끄도록 노력했다. “무슨 일인거냐.” “알 필요 없소. 당신은 계약대로 우리의 명에 따라만 주면 되오.” “으득.” 차마 검을 뽑아 들지 못했다. 자신을 노려보는 가면의 사내, 바로 아이린 공작의 시선 때문이었다. 더 이상의 뒤로 빠지며 꼼수를 피우는 얌체 짓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아이린 공작 뒤에서 자신을 비웃듯 바라보고 있는 어린 놈 년들. 그러나 하나하나 자신과 맞먹을 실력의 소유자들이다. 결코 자신이 그들에게 따질 상황이 아닌 것이다. 계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러웠다. “칫! 모두 전진한?” 결국 결정을 내린 니콜라스. 용병들은 니콜라스의 말을 듣고 앞으로 나아갔다. ‘젠장 할 나라의 개들. 그러나 결코 네놈 들이 원하는 대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니콜라스의 결심과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천에 달하는 고블린 때가 나타났다. 아마도 저 트롤의 함성을 듣고 나타난 듯 싶었다. 그와 동시에 용병들의 눈에 형용할 수 없는 짙은 공포가 서리기 시작했다. ~~~~~~~~~~~~~~~~~~~~~~~~~~~~~~~~~~~~~` 내일 최소 10연참을 하겠습니다. 정말이예요~ 믿어주세요^^;;;; 5일까지 3권 분량을 마감할 생각이거든요. 4권 분량이 끝나고 5권이 시작되면 4권 분량까지 삭제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내일 1,2권 삭제 [188 회] 날 짜 2005-01-03 조회 / 추천 3305 / 94 선작수 6046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5. 몬스터 토벌하다 한눈에 모두 들어오지 않는 고블린 때들. 그것은 경악이었다. 용병들의 발걸음이 조금씩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포효하던 트롤의 광기어린 눈빛이 빛을 품기 시작했다. 한참 용병들을 돌아보던 트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크르르르. 쓰레기 자식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그렇게 방종을 떠느냐! 너희들의 죽음으로 그 죄 값을 물겠다. 크워어어엉!” 그와 동시에 고블린 때들이 앞을 다투어 ‘케켁!’거리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용병들에게 달려들었다. 스강! 챙! 이곳저곳에서 살이 배리고 뼈가 깎이며 원통과 고통어린 신음이 울려 퍼지기 한 것은 1분도 되지 않아서였다. 니콜라스가 이를 갈았다. 빠드득. 자신의 수하들의 죽음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크악!” “이 개자식들아! 으아악!” 그럼에도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자신이 흔들리면 아직 남아 있는 수하와 동료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대장. 아니, 니콜라스.” 옆에서 나직하게 읊조리듯 말하는 친구 베레토의 목소리에 니콜라스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저 뒤에서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기사 녀석들을 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우선은 이 앞에 쌓인 적들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돌격하라! 마법사들은 뒤에서 마법으로 보조하라!” 앞으로 달려 나가며 외치는 니콜라스의 한마디에 죽어가고 있던 용병들의 사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용병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한번이라도 검을 휘두르기 위해 그립을 꼬나 쥐며 고블린 때를 노려보았다. 뒤에서 마나를 모으며 고블린 때 사이로 마법을 준비하는 마법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베르니스들도 마찬가지였다. “클루토 부탁해!” “알았어!” 그와 동시에 앞으로 몸을 날리려 했지만,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멈칫했다. 바로 블루 때문이었다. 아직까지 멍하니 서서 어딘가를 주시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블루?” 휘이이이잉! “으윽!”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번개같이 나타난 고블린의 단검이 베르니스의 심장을 노리고 파고 들어온 탓이다. “이 새끼가!” 퍼억! 그립을 강하게 꼬나 잡고 칼을 비스듬하게 치켜든 상태에서 풀스윙으로 고블린의 머리를 갈겼다. 터엉! “끼해핵!” 희한한 비명을 내지르며 고블린은 그대로 즉사했다. 그렇게 네 마리의 고블린을 더 처치하고 나서야 한숨을 내쉴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어딘가를 주시하며 아직도 멍한 표정으로 있는 블루를 지키기 위해 몸을 과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호흡이 보통 때보다 배는 거칠어 졌다. 그런 상황인데도 블루의 시선은 앞만 주시했다. 마치 주변의 고블린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다는 모습이다. 고블린이 때로 와도 자신에게 어떠한 해도 줄 수 없다는 자신감이 비춰 보이는 모습이었다. 베르니스가 블루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 블루의 시선의 끝에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게 되었다. ‘트롤? 어째서?’ 베르니스는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주변의 상황이 더 이상의 잡념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고블린 때가 있는 곳마다 강렬한 섬광과 폭발이 일며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펑! 퍼버버버벙! 콰르르릉! “꾸에에에!” “끼에엑!” 용병단에 있던 마법사들의 파이어볼이 고블린 때를 습격한 것이다. 그 폭발력은 대단했다. 직격으로 맞은 고블린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근처에 있던 고블린들마저 모두 숫이 되었던 것이다. 파이어볼 한방 한방에 최소 30마리이상씩 쓰러트린 것 같았다. 그것은 고블린들이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야아아!” 용병들은 통쾌하게 쓰러지는 고블린들을 보며 환호했다. 그 이후의 일은 자신들에게 맞기라는 듯 난장판이 된 그곳으로 몸을 날리는 용병들도 볼 수 있었다. 마법사들은 첫 마법의 시동이 끝나자마자 두 번째 마법을 시동했다. 연이어 틈을 노리겠다는 모습이다. 고블린들도 머리는 있는지 작금의 상황을 이해한 모습이다. 마법사들이 마나를 모으는 것을 발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자식 어딜 가려고!” “가고 싶다면 내 손에 죽고가라!” 그럼에도 고블린들은 용병들의 비릿한 웃음과 분노어린 검을 피하지 못했다. 마법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치밀하게 움직이는 용병들 때문에 고블린들은 마법사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러나 몇몇의 틈이 풀린 것은 어떻게 막을 수 없었다. 네 마리 정도의 고블린이 마법사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 것을 보고 용병들이 몸을 빼보려 했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의 자리를 벗어나면 더 큰일이 생길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치잇!” “그래, 너희들만이라도 완벽하게 막아주겠다! 절대 뒤를 넘보지 못하게 말이다!” 한 용병의 목소리에 다시 한 번 일어나는 함성. “거기 뒤에 있는 녀석들. 제발 마법사들을 보호해라!” 갈라진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키케케케케!” 단검을 들고 조그마한 몸을 앞으로 던지며 가래 끓는 목소리로 웃어대는 고블린. 자신들의 앞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지 펄쩍 뛰기까지 하는 녀석도 있었다. 마법사들이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모습이다. 그때 고블린들이 가장 앞에 나와 있는 마법사의 목을 노리고 공격에 들어갔다. 그 마법사는 다름 아닌 클루토였다. ~~~~~~~~~~~~~~~~~~~~~~~~~~~~~~~~~~ 오늘 분량은 여기까지 입니다. 그럼 내일 찾아 뵙겠습니다^^ 좋은 하루되시고~ 계속 응원 부탁드릴게요^^ 헤헤~ 지금 상태라면 6일에 4권 분량에 돌입할 수 있을것 같네요^^ 아자아자! 힘을 내서 완결까지 ㅎㅎ 그런데 삭제 공지 올렸다고 왜 선작이 주는거지 ㅡㅡ;; 설마 연중공지랑 착각하신 건가.. 쿨럭..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189 회] 날 짜 2005-01-04 조회 / 추천 4431 / 59 선작수 595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몬스터 토벌하다 “안돼!” 스콜과 텐시의 비명이 동시에 울려퍼졌다. 그 비명에 베르니스가 전투 중에 시선을 돌리다가 왼쪽 팔에 깊은 검상을 입게 되었다. 푸욱! “으윽! 이 자식이!” 우으득! 자신을 공격한 고블린의 허파 쪽에 있는 힘껏 찔러 넣은 검을 한 바퀴 돌려서 속을 휘저어줬다. 녀석의 죽음을 보고 돌린 시선엔 자신의 위험을 무시하고 주문을 외우고 있는 클루토와 그를 노리고 달려가는 고블린 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가까이 있던 베르니스다. 자신의 피가 줄줄 흐르는 팔을 신경 쓰지 않고 클루토를 향해 달려 나갔다. ‘전사란 마법사를 보호해야 한다!’ 생각은 그렇게 하며 책임감을 부여했지만, 어리버리한 클루토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자신들의 관계를 그따위로 낮추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힘이 없는 친구를 힘이 있는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친구!’ “클루토오!” 베르니스는 고블린 단검에 찔리기 직전의 클루토의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퍼어엉! “블루!” 클루토를 노리고 달려오던 고블린의 머리가 폭죽처럼 터져나간다. 블루의 가벼운 주먹 한방에 말이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지금까지 뭐하고 있다가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의 거만한 표정으로 웃으며 클루토 앞에 서있는 블루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꾸께께?” 함께 달려오던 고블린들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곧 자신들의 앞을 막고 있는 블루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블루의 주먹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질러졌다. 동시에 희한한 기합소리를 내지르는 블루. “아다다다닷 아토오!” “꾸워워워워워워웍!” 퍽! 퍼벅! 뚝! 뚜두두둑! “넌 이미 죽어있다.” “켁!” 블루의 한마디에 고블린들은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블루의 장난어린 목소리. 다시 원래의 블루로 돌아왔음을 깨닫고 베르니스와 스콜, 텐시가 환호했다. 그와 동시에 들리는 마법의 발호음. 콰과과과광! “꾸웨엑!” 고블린들의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졌다. 고블린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마법의 효과는 탁월했다. 1000여마리가 넘었던 고블린 떼였다. 그런데 지금은 200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50여명도 되지 않는 마법의 힘으로 최소 절반 이상 죽어나갔기 때문이다. 그 기세를 몰아 결국 하나 남은 고블린마저 죽인 용병들. 적들이 사라졌음을 확인하고 결국 지친 몸을 가누지 못해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고블린들의 진득한 피가 가득했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이성을 찾기엔 너무 지친 그들이다. “헉! 헉!” “허억, 허억!” 그들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뜨거운 열기가 후끈 느껴질 정도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모두 괜찮은가?” 블루의 목소리에 일행들은 고개 끄덕였다. 천행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다친 부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으윽!” 그때 베르니스가 깊은 검상을 참지 못하고 무릎 꿇고 말았다. 블루가 급히 다가가 베르니스의 상처를 보고 혀를 찼다. “미련하게도 다쳤군.” “대장 미안하우.” “큭큭. 기다려봐라.” 스스스스스. 블루의 손이 스치자 베르니스는 자신의 팔에서 통증이 완화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상처의 부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어떠냐.” “역시 대장은 괴물이오.” “후후.” “큭큭.” 팔의 부기가 가라앉자 흡의 기운을 응용하여 상처에 생긴 독기를 뽑아냈다. 얼마지나지 않아 검은 피가 모두 뽑혔는지 선명한 붉은 피가 흐르지 베르니스의 품을 뒤져 헝겊과 붕대를 끄집어냈다. 그것으로 피를 닦고 붕대로 상처부위를 감아주자 베르니스는 놀란 표정으로 블루를 보았다. “감쪽같군. 신성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뭡니까?” “아직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응급처치에 불과하다. 함부로 움직이면 상처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알았수. 고맙구려 대장.” 그 말에 블루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오래 가지 않았다. 굳어진 표정으로 일행들을 한번 보던 블루. “위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모두 각오 단단히 하고 정신 바짝 차려라. 될 수 있으면 최대한 뒤로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희들을 지켜 줄 수 있을지 장담 하지 못하겠다.” “응?” “지금까지는 시작이었다. 내가 견제하고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움직일 것 같다. 나로서는 감히 바라 볼 수 없는 힘을 지닌 그가…….” “그게 무슨 말….” ~~~~~~~~~~~~~~~~~~~~~~~~~~~~~~~~~~~~~~~~~ 다음 편으로 어서 넘어가주세요^^ 헤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190 회] 날 짜 2005-01-04 조회 / 추천 4445 / 55 선작수 595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몬스터 토벌하다 블루가 씹어 내뱉듯 말하는 자조적인 말투에 스콜등이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던 괴물이 다른 괴물을 이야기하니 우스웠던 탓이다. 하지만, 곧 그들의 입가에서도 웃음이 사라지게 되었다. 바로 전장 한가운데 서서 자신들을 바라고보 있던 트롤의 울부짖음 탓이었다. 쓰러져서 지쳐있던 용병들을 지켜보고 있던 트롤. 그가 다시 한 번 포효하며 일갈을 질렀다. “우워워워워워!” 숲속을 쩌렁쩌렁 울리는 트롤의 괴성에 지친 용병들은 자신의 귀를 막고 괴로워했다. “감히 인간들 따위가!” 트롤이 용병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걸음씩 바닥을 딛을 때 마다 쿵쿵거리며 바닥이 움푹움푹 파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히익!” 바닥에 자빠져 있던 용병들이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 자신의 검을 꼬나 쥐었다. 어째서인지 트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트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롤 따위가 사람 말을 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뭐, 뭐지?” “무슨 트롤이…….” 트롤의 몸에서 품어지는 위압감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마치 거대 골램이라도 움직이는 듯 푹푹 파이는 땅을 봐도 그랬다. “감히 신성한 이곳에 더러운 인간들이 발을 들인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피 냄새까지 뿌리며 살육을 자행하다니! 참을 수 없다!” 그때 저 뒤쪽에서 한 기사의 야유가 들려왔다. “참아서 어쩔 건데! 푸하하하!” 트롤의 눈에서 불이 품어 졌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짙은 살기에 혈향이 잊혀 질 정도였다. “크오오오! 다 죽여 버리겠다! 인간!” 트롤이 미친 듯이 달려들더니 앞을 막아서는 용병들을 자신이 들고 있던 글레이브로 후려쳤다. 부우웅! 퍼버버버벅! 그러자 그 반경에 닿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종이장처럼 날아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겁에 질린 용병들이 뒤로 몸을 빼기 시작했다. 저 괴물은 트롤이 아니었던 탓이다. 세상천지 어떤 트롤이 저렇게 빠르고 날렵하며 강하단 말인가? 쉬이익! 펑! 퍼억! 트롤이 움직이는 곳마다 피바람이 몰아쳤다. 용병들의 뇌수와 피가 사방에 뿌려졌다. 바로 트롤이 직선으로 나가다가 니콜라스와 부딪히게 되었다. 까강! 니콜라스의 검이 트롤의 글레이브와 부딪혔다. “크흣!” “우워어!” 니콜라스의 이마에 핏줄이 솟아올랐다. 힘에서 달리는지 이를 악물고 있는데 잇몸에서 피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결국 감당하지 못한 니콜라스. 자신의 검을 뒤로 슬쩍 흘리며 맞대결을 피하고자 마음먹었다. 스르릉. 팟! 그러나 검이 떨어지자 득달같이 밀어 붙이며 트롤의 목을 노렸다. “헛!” 하지만 헛바람을 삼킨 것은 니콜라스였다. 트롤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목을 글레이브를 들어 올려 방어한 탓이다. 믿어지기 힘들 정도로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니콜라스는 자신의 흥분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은 절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트롤 본연의 실력임을 확신 할 수 있었다. “이야아압!” 니콜라스는는 트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철저히 경계를 그었다. 트롤이 글레이브를 휘두르자 공기가 진동하며 우는 소리를 냈다. 부우우웅! 니콜라스가 가까스로 피하며 그 틈을 노리고 검을 찔러 넣었으나, 그 속에 트롤의 선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흠칫! 트롤의 주먹이 니콜라스의 목옆을 스쳐지나갔다. 니콜라스는 그것을 느끼자마자 자신의 어깨를 이용해서 트롤의 팔을 밀쳐 냈다. 트롤의 중심이 흔들렸다. 마치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트롤. 니콜라스는 이제 마지막이다 하며 단검을 꺼내 트롤의 목을 향해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검기를 가득 담은 단검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트롤의 목을 정확하게 노렸고, 한 수에 잘릴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니콜라스의 오산이었다.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이 연출 되었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기에 당혹감은 배가 되었다. 퍼어어어억! 니콜라스는 자신의 일격이 허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무엇인가가 강타 당한 소리. 설마 하는 심정으로 뒤를 돌아본 니콜라스. 트롤이 불가능한 위치에서 주먹을 날린 것이 니콜라스의 등을 정확하게 후려친 것이다. 완전히 구겨진 갑옷. 필히 벗어야 하는 상황이다. 갑옷 때문에 척추를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쿨럭!” 내장이 상했는지 기침과 동시에 입으로 내장 조각이 튀어 나왔다. 그러나 트롤의 다음 공격을 염두하고 내상에 연연치 않고 뒤로 몸을 피한 니콜라스. 이를 악문 상태에서 말을 흘렸다. “넌 뭐냐!” “크흐흐. 인간 따위가 알 필요 없다!” ~~~~~~~~~~~~~~~~~~~~~~~~~~~~~~~~~~~~~~~~~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191 회] 날 짜 2005-01-04 조회 / 추천 4407 / 55 선작수 595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몬스터 토벌하다 “흡! 넌 트롤이 아니군!” “시끄럽다. 그냥 뒤져라!” 니콜라스의 검에서 검기가 일었지만, 트롤이 내지른 무지막지한 힘을 견디기엔 불가능했다. 마치 오우거와 싸우는 듯 한 기분이 드는 니콜라스였다. 퍼엉! 트롤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니콜라스의 검이 산산이 부서졌다. 부서진 검날이 허공에 비산했다. 그와 동시에 니콜라스가 검날 조각들과 함께 허공을 뒤로한 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한참 후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널부러졌다. “커허헉!” 심각한 내상을 입었는지 검붉은 피를 내뱉으며 바닥에 자빠진 니콜라스. 그대로 정신을 잃어 버렸다. 조금 전에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다시 한 번 내장이 흔들릴 듯 한 강한 충격을 받았으니 기절할 만도 했다. 하지만, 보통의 상태였다면 이렇게 빨리 당하지 않았으리라. 말 등위에 올라타 있는 상태라 피할 수 있는 반경이 좁아 어쩔 수 없이 무식한 트롤의 힘을 전부 받아 내어 생긴 일이었다. 아무리 마음이 맞는 인마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수족을 사용하는 것과 같을 리가 없었다. 니콜라스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트롤이 웃었다. “크크크큭. 넌 잠시 후에 밟아 죽여주마. 조금만 기다려라.” 그 말와 동시에 트롤의 시선이 겁에 질린 용병들을 무시하고 조금 전 자신에게 야유했던 기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기사들이 지례 겁을 삼켰다. 예상을 했다 치더라도 조금 전에 보여줬던 트롤의 가공할 만한 신위.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궁수대 사격!” 사사사사삿! 파바바바박! 미리 활을 겨누고 있던 궁수대의 활이 트롤의 전신에 틀어 박혔다. 하지만, 트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약간 인상을 찡그리긴 했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트롤의 신경만 건드린 꼴이 되고 만 것이다. “크흐흐흐흐…….” 웃음을 흘리며 트롤이 자신의 몸에 박혀 있는 화살을 한손에 뽑아냈다. 살덩이가 화살촉에 뭉쳐진 체 함께 빠져나왔다. 약간의 피가 흐르긴 했다. 그러나 트롤의 엄청난 재생력은 눈 깜짝 할 사이에 모든 상처를 아물게 만들었다. 동시에 기사들의 틈으로 파고 들어가 주먹과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기사들은 나름대로 막아보려 했지만, 그들로서도 트롤의 힘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으허헉!” 허공에 비산하는 기사들을 한눈에 보기에도 즉사를 한 듯 보였다. 그만큼 트롤이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참 기사의 무리를 휘젓고 다니던 트롤이 비웃음을 흘리며 광소하기 시작했다. “이따위 장난감으로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쓰레기들. 크큭큭큭.” 바로 그때 가면의 사내가 앞으로 나타났다. 트롤이 그 사내의 몸에서 품어지는 기운을 느꼈는지 웃음을 멈추고 가면의 사내를 내려 보았다. 그러자 가면의 사내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물론 아니지. 위대한 존재.” “흠?” 트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입가에 비웃음이 사라졌다. 가면의 사내가 한 말의 뜻의 진위 때문이다. “서, 설마 나의 정체를 알고 찾아 왔단 말이냐?” 트롤의 당혹스런 말투. 가면의 사내 입가가 이질적으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뒤쪽에 있던 금발의 청년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는 가관이었다. “큭큭. 그 정체가 얼마나 대수기에 그딴 식으로 말하는지 모르겠구만. 도마뱀 양반.” 그 말을 듣는 순간. 트롤, 아니, 트롤로 폴리모프하고 있는 드래곤의 눈이 뒤집어 졌다. “너희들이었구나! 이번에 사라진 갓 성년이 된 드래곤 두 마리를 죽인 드래곤 슬레이어가!” “큭큭. 너무 정곡을 찔러서 그런지 가슴이 아픈 걸?” “이 창조주의 실패작 들이! 이곳에 있는 녀석들을 모두 싸그리 죽여 버리겠다. 크허허어엉!” 트롤이 다시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동시에 하늘이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위압감. 만물들을 무릎 꿇게 만드는 위대한 존재의 증표라고까지 하는 그것. 바로 드래곤 피어였다. “으으으윽!” 기가 약간 기사들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용병들은 이미 전투 불능의 상태란 말과 동일했다. 그렇지만 니콜라스 용병단은 니콜라스가 정신을 잃은 상황임에도 정렬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단결력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보여주는 한 예였다. 그만큼 니콜라스를 믿고 있다는 말과 동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포에 질려 다리가 풀린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조금 전에 지르던 포효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분노가 가득 담겨 있는 것은 둘째치고 자신의 정체를 알고 찾아 온 이들이었기 때문에 본신의 위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귓가를 파고 들어온 사내의 목소리. ~~~~~~~~~~~~~~~~~~~~~~~~~~~~~~~~~~~~~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192 회] 날 짜 2005-01-04 조회 / 추천 4430 / 60 선작수 595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5. 몬스터 토벌하다 트롤로 폴리모프 하고 있는 드래곤의 성질을 건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도마뱀이 개처럼 짖어 대는 모습이라. 참으로 가관이군.” “도, 도마뱀?! 으득.” 드래곤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자신의 글레이브를 휘두르며 가면의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후우우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거침없이 들려왔다. “큭큭, 그 정도 가지곤 안통하지.” “충분하다. 강한 인간.” 드래곤의 말에 비릿한 미소를 짓던 가면의 사내. “후후. 지금 폴리모프한 상태로 나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러나 풋 스텝을 이용하여 드래곤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다. 드래곤의 몸놀림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가면의 사내 몸놀림은 그보다 더욱 빨랐다. 익스퍼트급의 기사들이 아니고서야 정확한 전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드래곤의 분노는 극을 달았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몸을 움직였다. 주변에 있는 기사들에게 화풀이를 하려는지 자연의 기운을 무한대로 삼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기사들이 이곳저곳으로 피하며 난리도 아니었다. 바로 한 사내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브레스다!” 그 한마디의 파장은 걷잡을 수 없었다. 그토록 질서정연하던 기사들은 어디로 가고 모두 뿔뿔히 흩어졌기 때문이다. 가면의 사내조차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와 동시에 트롤의 입에서 품어지는 화염의 브레스. 화르르르르르! 그것이 그 트롤이 레드드레곤임을 확인시켜줬다. 본신의 힘의 절반도 되지 못하는 브레스다. 하지만, 한순간에 눈앞에 있던 기사 100여명이 비명조차 남기지 못하고 녹아버렸다. 가면의 사내가 처음으로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1000살이나 먹은 드래곤은 아직 무리였나?’ 지금까지 500살을 갓 넘어선 해즐링급 드래곤만 노렸는데 드래곤들이 눈치를 차렸는지 그들의 흔적이 사라진 것이다. 한순간에 말이다. 그래도 1000살 이상의 드래곤들은 자신에게 피해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피하지 않았다. 그들은 충분히 강했기 때문이다. 갓 해즐링에서 벗어난 드래곤과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미 두 마리의 드래곤을 잡은 그들은 자만에 빠지기 시작했다. 충분히 1000살 정도 먹은 성룡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노린 것이 지금 눈앞에 트롤이다. 이미 모든 고증을 거쳐 트롤로 유희를 즐기고 있는 드래곤 추적에 성공한 탓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예상이 틀렸음을 시인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이 드래곤은 전투에 능했다. 싸우는 법을 알고 있었으며, 전술도 활용할 줄 알았다. 나이는 괜히 먹은 것이 아니라는 듯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본신의 능력이 아닌 트롤로 폴리모프 된 상태에서 말이다. 익스퍼트 상위 레벨인 니콜라스와 싸우는 모습만 봐도 짐작이 가능했다. 처음의 예상대로 용병들과 싸우고 있을 때 터트릴 폭탄과 드래곤 킬러라는 거대한 공성용 병기를 준비하던 찰나였다. 하지만 트롤을 바로 죽일 수는 없었다. 드래곤들의 폴리모프는 너무나 완벽하여, 만에 하나 폴리모프한 상태에서 죽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다시 변신이 풀리며 드래곤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고생이 말짱 도루묵 되는 것이다. 드래곤의 신경을 건드릴 필요가 있었고, 그것은 드래곤 레어 주변의 몬스터 대량 학살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소란이었다. 드래곤이라는 녀석은 약간의 성질만 건드린다면 지 스스로 유희고 뭐고를 떠나 본신의 몸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만도 않은 이야기다. 말이 그렇다는 말이지, 한번 유희에 빠진 드래곤은 될 수 있으면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은 이상 본신의 몸을 소환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본신으로 변하는 짧은 시간동안 완전 무방비 상태이다.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적 앞에서의 변신을 피하는 편이다. 그 말은 엄청난 분노를 터트리게 만들어 줘야 이번 작전이 성공 한다는 말과 동일했다. 처음의 어린 두 마리의 드래곤들은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앞에 있는 녀석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녀석이다. 쉽지 않다는 말이다. 공간이동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최대한 약 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가 어워어급 기사 100여명이 먼지로 사라지는 결과로 다가왔지만 말이다. “제길.” 가면의 사내 입에서 처음으로 후회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이 브레스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가면의 사내는 도박을 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모든 기운을 주먹에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은은한 빛이 품어지며 주먹을 감싸기 시작했다. 멀리서 그 관경을 지켜보고 있던 블루의 눈이 크게 떠졌다. “권강?!” ~~~~~~~~~~~~~~~~~~~~~~~~~~~~~~~~~` 5시에 다음 편들을 올리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193 회] 날 짜 2005-01-04 조회 / 추천 4453 / 61 선작수 595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반격을 도모하다 6. 반격을 도모하다 푸르스름한 빛으로 쌓여 있는 두 주먹. 분명 권강이다. 예전에 세바스찬 2세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른 블루. 텐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플 마스터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그래플 마스터요? 저희가 알고 있는 그래플 마스터로는 이곳 유슬라니안의 아이린 공작과 그의 세 명의 아들뿐이죠. 소문으로 들어본 바에 의하면 아이린 공작은 마스터의 단계를 넘어선 그랜드 마스터 급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 말은 현경에 능력을 지녔단 말과 동일한 것인가?” “현경이라뇨?” “아니다.” 블루가 텐시의 질문을 끊고 가면의 사내를 주시했다. 그러자 한참을 뭔가 생각하던 텐시. 블루의 질문이 던진 수수깨끼를 풀기라도 하는 듯 ‘음, 음.’거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를 떠올리는 듯 했다. 그리고 한참 후. 화들짝 놀란 텐시의 시선이 기사들을 향해 브래스를 내품는 독특한 트롤과 주먹에 은은한 기운을 뿌리고 있는 가면의 사내. 정확히는 중년인의 얼굴을 향해 있었다. “서, 설마!” 경악스런 텐시의 질문에 블루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하얗게 질린 텐시의 얼굴. 블루가 결코 가볍지 않은 대사를 가볍게 내뱉었다.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한 함정이지. 저들의 대화를 들어보고 나의 짐작이 옳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저들의 대화를 들으셨단 말인가요?”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스콜과 니콜라스가 다가와서 블루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블루는 그 둘의 싸움을 주시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뭐야? 대체 무슨 말이야?”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된거라고?” 베르니스와 스콜이 입을 다문 블루를 포기하고 텐시를 닦달했다. 텐시가 지금의 상황에 대해 뭔가 알 고 있음을 짐작한 탓이다. “이곳이 무덤이래.” “뭐?” “누구의 무덤?” “바로 우리의 무덤이래.” 흠칫! 텐시의 덤덤한 말투 속에 담긴 엄청난 말에 베르니스와 스콜이 말문을 닫았다. 텐시의 눈을 봤기 때문이다. 텐시의 눈 속에 담긴 거대한 공포를 말이다. 클루토는 원래부터 말이 없었지만, 그는 나름대로 작금의 상황속에서 뭔가를 유추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이곳이 드래곤 레어…….” 클루토의 한마디. 그것의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주변에 있던 용병 몇이 그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동료에게 하는 말이 옆의 파티원들에게 들리고 듣게 된 그들이 이야기 한 것이 다시 옆의 파티원들에게 퍼지는 식으로 이야기는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었다. 순식간에 웅성임이 번지더니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용병들 가운데 드래곤 레어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둘 자신들이 추리한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는데, 결론은 하나였다. 자신들의 죽음. 이곳에서 절대로 벗어 날 수 없음을 말이다. 저들은 드래곤을 잡기 위해 온 제국군들이 확실했다. 저 휘황찬란한 은빛 갑옷. 가문과 직위를 가리키는 그림은 지워져 있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곳 유슬라니안 제국의 기사들인 것이다. 그들이 용병길드에 손쓰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그 말은 지금 자신들의 명단이 모두 제국군에 손에 넘어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뜻은 이곳에서 살아 돌아간다고 해도 죄인으로 몰려 죽을 수밖에 없단 말이 된다. 그렇다고 이곳에 가만히 있으면 살 수 있는가? 아니다.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드래곤 하나를 잡기 위해 수많은 용병들을 대량 학살을 한 자신들의 죄를 숨기기 위해 손쉬운 살인멸구를 택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함정으로 몰아넣어 드래곤을 끌어내기 위해 자신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던 그들이다. 결과, 답은 죽음 하나로 함축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준 횡포를 예상하면 당연한 결과이리라. 자신들을 죽기 싫었다. 그래서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닌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는 자신의 검이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이것 역시 가면의 사내. 즉, 아이린 공작이 예견하지 못한 변수였다. 아이린 공작은 자신의 주먹에 충만한 기운이 느껴지자 드래곤을 향해 보이지 않는 스피드로 접근했다. ‘훗! 짐작했다. 내 뜨거운 브래스로 시건방진 네 녀석을 녹여주마!’ 그러나 결코 드래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 10편이 될 동안 쉬지않고 이런 식의 연재가 진행 될 것입니다. 비축을 하려 했더니 몸이 아파서 자고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12시 ㅡㅡ;;; 쿨럭.. 약속은 지켜야 겠구요 ㅎㅎ 지금 올린 분량이 4k로 나오는데, 책 페이지로 4.5p 정도거든요? 과거의 편집대로라면 4.5k라는 ㅡㅡ;; 분량이 결코 적지 않아요.. 그럼 곧 다음편을 올리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194 회] 날 짜 2005-01-04 조회 / 추천 4379 / 53 선작수 595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반격을 도모하다 팟! 드래곤은 그런 아이린 공작의 공격을 예견했음에도 막아낼 수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린 공작이 한 순간에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흡?!” 놀람을 감추지 못한 드래곤은 자신의 브래스를 멈췄다. 스스로 멈춘 것이 아닌 타의에 의해서 멈춰진 것이다. 동시에 바로 자신의 시각이 잡지 못하는 사각지대. 바로 왼팔 바로 뒤쪽에 기운을 느낌과 동시에 갈비뼈가 부러지는 듯 한 강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입 냄새나니 그만 아가리 좀 다물지. 친구?” “으으으….” 내력이 가득 담겨 있는 주먹은 드래곤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아무리 재생력이 강한 트롤이라 해도, 이렇게 내장이 흔들려 파열이 될 정도의 충격이라면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보통 트롤이었다면 말이다. “그럼 이제 2라운드를 즐겨볼까?” 아이린 공작의 이죽거림에 드래곤은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위험도 느끼지 못하고 연신 덤벼들었다. 경각심이 일어서 공간이동 할 정도의 이성을 엄청난 분노 때문에 상실한 탓이다. “이, 인간 따위가!” 드래곤의 울부짖음을 보고 아이린 공작은 쾌재를 외쳤다. 자신의 계산이 맞아 떨어진 탓이다. 녀석은 자만심이 불러일으킨 분노에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몰아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 조금 전에 그 민첩하게 반응하던 드래곤의 공격이 단순해 진 것이다. 아마 녀석이 드래곤의 본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정도까지 이성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폴리모프를 하며 지니게 되는 완벽성이 그의 이성을 트롤 수준으로 깍아 내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의 상태라면 아마도 완벽한 존재. 드래곤으로 현신한다쳐도 이성을 되찾기란 힘들 것이다. 이성과 본능은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아이린 공작이 원하던 상황이 아니었던가. 드래곤과의 혈투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이곳저곳을 치밀하게 바라보고 계산하고 있었다. 어떤 지형에 무기를 놔두고 지금 이 광기어린 드래곤을 어느 부근까지 몰아가야 하는지를 차분차분 계산해나갔다. 슬슬 피하며 약 올리듯이 가볍게 한 대씩 치며 빠지는 아이린 공작. 가장 많은 고통을 유발하는 부위만 공략했다. 그래플 마스터가 괜히 된 것이 아니다. 어떤 부근을 때리면 더욱 큰 고통을 느끼는지 정도는 인간과 신체구조가 다른 몬스터라 해도 짐작이 갔으니 말이다. 그래도 죽지 않도로 최대한 배려를 했다. 이렇게 이성 잃은 몬스터하나 잡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폴리모프 했다고 해도 드래곤은 아니다. 트롤보다 약간 강한 몬스터일 뿐인 것이다. 조금씩 용병단과 고블린의 살육이 일어났던 중앙으로 드래곤을 몰아갔다. 이미 자신의 지시대로 움직인 수하들과 자신의 제자들로 인하여 모든 함정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미끼. 드래곤만 그곳으로 끌고가서 현신시키면 모든 일은 상황종료다. 하지만, 아이린 공작이 하나 놓친 것이 있었다. 바로 용병들의 심리상태를 말이다. 어차피 드래곤을 죽일 때 터트릴 폭약으로 같이 사장될 녀석들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들이 이를 갈고 자신이 노리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을 노리고 있을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드래곤이 현신하는 그 순간을…. 블루는 드래곤을 보며 최강의 존재라고 칭하기에는 너무나 약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조금 전에 보여줬던 열강지기를 이용한 공격(브레스). 그것 하나는 대단했다. 주변의 돌마저 녹일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 정도라면 지금의 자신으로 막기 힘들 정도였다. 억지로 막는다면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피해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브레스를 피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정도로 최강의 존재라고 말하기엔 터무니없다 생각한 블루다. 막강한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너무나 많았다. 공격의 사각지대로 몸을 피신하기만 하면 적은 힘으로도 방어가 가능했으니 말이다. 더불어 지금 가면의 사내. 아이린 공작이 보여주는 공략법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거기다가 평정심을 잃은 드래곤의 모습. 지금의 자신이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을 정도였다. 드래곤의 양강지기의 힘만을 본다면 최소 화경의 끝 단계라 볼 수 있었다. 과거 양강지기의 극성을 익힌 마교의 운금철 교주의 능력이 바로 저 정도의 단계였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젊었던 검황. 운금철 교주와 비슷한 경지에 있었기에 애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지금 드래곤의 상태를 무적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음을 단호하게 답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텐시의 보충 설명을 듣게된 블루. 놀란 눈을 꿈뻑였다. “그러니까 폴리모프를 하게 되면 그 생명체를 완전하게 복사한다 이거지?” ~~~~~~~~~~~~~~~~~~~~~~~~~~~ 다음편도 곧 올리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195 회] 날 짜 2005-01-04 조회 / 추천 4346 / 51 선작수 595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반격을 도모하다 “예, 생리적인 부분에서 행동양식까지 완벽하게요.” 놀라운 이야기였다.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예를 들어서 드래곤이 인간으로 폴리모프해서 인간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면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말이죠.” “허허…….” 블루의 상식으로는 거의 엽기 수준이었다. “거기다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수준도 비슷해지고 말이지.” “물론, 그 종족들 중에서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기야 하겠지만, 비교를 하자면 그런 답이 나오지요.” “그래서 저런 개념 없는 공격을 하는 것인가? 무식하게.” “여하튼 저들의 목적은 바로 드래곤의 시체를 얻는데 있는 것 같아요.” “드래곤의 시체?” “예.” “그것을 뭐에 쓰려고?” 텐시가 자세히 설명했다. 우선 뭔가 정확한 상황을 알아야지만 지금의 상황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블루의 말 때문이었다. 텐시는 그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며 급한 상황임에도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며 블루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드래곤 본이라고 하는게 있어요.” “뼈다귀를 말하는 건가?” 블루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텐시. “그 드래곤 본의 제질이 바로 금속이라고 볼 수 있죠.” “금속?” “네. 우선 인간들은 그 금속을 다루지 못하지만, 드워프라는 종족은 그 금속을 자유자제로 다스릴 수 있죠. 여하튼, 그 금속은 현존하는 어떠한 금속보다 가볍고 강하다고 볼 수 있어요. 신의 피부라 불리는 오리하르콘 만큼은 아니지만, 지금 현존하는 금속중 단연 최고라 볼 수 있죠.” “그렇군. 그게 드래곤이라는 생명체의 전신에 있다는 말이겠군.” 텐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 본 1Kg당 황금 20Kg과 같은 가격이라고 생각하시면 그 값어치가 얼마나 대단할지 생각해보세요.” “드래곤의 크기가 대략 30M정도라 했으니 와우…. 대충 계산해 봐도 엄청나겠군.” “맞아요. 거기다가 드래곤의 피과 고기는 마법사들의 최고의 마법 재료로 사용되죠.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말예요.” “한마디로 돈 덩어리다 이거지?” 텐시의 끄덕임을 확인한 블루. 한참을 생각하더니 다시 텐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저 가면을 뒤집어쓴 녀석이 드래곤을 어째서 죽이지 않는거지? 그의 실력이면 충분히 죽일 수 있을 텐데?” “글세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후후. 크흑!” 그때 정신을 차렸는지 블루 주변에 있던 니콜라스가 신음을 흘리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블루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블루의 시선을 기다리던 니콜라스.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니콜라스는 흠칫 놀랐다. 블루의 눈 속에서 미증유의 힘을 발견 한 탓이다. 그러고보니 니콜라스와 블루의 시선이 마주친 것은 그 순간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후후. 지금까지 내 눈을 피했던 이유가 있었군.” “그다지 피하진 않았네.” “이 자식이!” 블루의 거침없는 대꾸에 니콜라스의 수하들이 분노했다. 하지만, 니콜라스는 자신의 손을 들어 수하들을 막았다. “너희들의 상대가 아니다.” “대장! 저희를 못 믿으십니까?!” 수하의 분노어린 목소리에 니콜라스가 피식 웃으며 대답해줬다. “내가 누구보다 너희들의 능력을 잘 아는 것을 모르는가? 저 사내는 나보다 강하다.” 쿠쿵! “대, 대장!” “쿨럭! 후, 후후후후…….” 수하들의 경악어린 목소리를 듣고 니콜라스가 비릿하게 웃었다. “자네들을 이용하기 위해 끌어 들인 것인데, 오히려 내가 이용당하고 있었던 것이로군.” “우린 자네를 이용한 적 없네. 다만 속아줬을 뿐이지.” “그게 다른가?” “다르네.” “그렇군……. 다른 것이로군. 후후후…….” 블루의 단호한 한마디에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는 니콜라스. 다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심한지 그 속에 폐조각도 섞여 나왔다. 그것을 본 블루. 니콜라스에게 천천히 다가가서는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런 블루의 모습에 용병들이 경악했다. 상식을 벗어난 블루의 행동 때문이다. 그러나 경악과 분노를 동시에 한 무리도 있었다. 바로 니콜라스 용병단이 그들이었다. “이 자식 죽여버리겠다!” 몇 놈이 블루의 행동에 분을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저 튕겨지듯 날아갔다. 무영각이라는 블루의 발차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그림자가 없는 발차기였기에 수많은 사람들은 블루가 무슨 사술을 쓴 것을 착각했다. “다가오지마라 실수하면 너희들의 대장이 죽을지도 모른다.” 니콜라스 용병들은 침음을 삼켰다. 블루의 말이 완벽한 협박으로 들린 탓이었다. “크흑!” 그와 동시에 분을 참지 못한 몇몇이 자신의 부족한 힘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 이제 3화 남았군요 ㅡㅡ;; 힘들다... 그럼 다음 화도 곧 올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쿨럭..... 전 글쓰러...(후다닥!)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196 회] 날 짜 2005-01-04 조회 / 추천 4342 / 61 선작수 595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반격을 도모하다 니콜라스가 포기했다는 듯 자신의 머리위로 올라온 블루의 손을 치우지 않고 눈을 감은체로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억울했다. 비참했다. 차라리 이 장면을 보지 않고 자신이 죽었으면……. 니콜라스 용병단의 용병들이 동시에 떠올린 생각이다. 바로 그때 블루가 심호흡을 흘리며 니콜라스의 머리에서 손을 땠다. 그리고 니콜라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떤가.” “흠…….” 곧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난 니콜라스. “좋군.” 조금 전에 피를 토하던 니콜라스의 모습은 간대 없고, 평소의 거칠고 강인한 모습을 보이자 니콜라스 용병단의 용병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 대장!” 수하들의 반가운 외침에 니콜라스가 그 특유의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손을 들어 입을 봉했다. “이게 무슨 마법인가?” “뭐, 말해도 모를 걸세.” “그런가? 그래도 신기하군. 내 머리에서 시작된 뜨거운 열기가 내상을 감싸던 그 느낌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네.” “그래도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되네.” “그럼 날보고 죽으란 말인가?” 블루가 피식 미소를 흘렸다. 너무나 매력적인 그 미소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것은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니콜라스와 베르니스, 스콜, 텐시등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텐시의 눈에 하트가 그려지자 베르니스가 가볍게 툭 치며 질투를 보일 정도였다. “뭐, 지금의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같겠군.” “후후.” “그럼 말을 정정하지. 죽을 정도로 움직이진 말게.” “그 말 명심하지.” 약간의 뜸을 들이고 본론으로 들어간 블루. “그런데 조금 전 자네가 한 말 중에 의문이 남는 군.” “뭔가. 내가 아는 대로 모든 것을 이야기 해주지. 내 사생활만 빼고.” “후후. 그런데 취미 없네.” 주변의 용병들이 약간 긴장감이 풀렸는지 피식 웃으며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상황이 급하니 본론을 이야기 하지. 자네는 지금 저 가면의 사내가 어째서 드래곤을 죽이지 않는지 아는가? 어째서인지 그 속에 해답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네.” “훗. 당연히 죽일 수 없겠지.” “왠가?”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상태에서 죽으면 허공에 대고 삽질한 것과 같기 때문이지.” “그게 무슨 말이지?” 블루의 질문에 니콜라스가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로 폴리모프한 상태에서 죽으면 그냥 트롤 하나 잡은 것과 같은 것이 되기 때문이지.” “아!” 순간 주변에서 이제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복수는 녀석들에게 물을 먹이는 방법 밖에 없단 말이군요!” “쉿! 목소리를 낮추게.” 나이가 있는 용병하나가 젊은 용병의 입단속을 시켰다. 그러나 모두 같은 생각인지 니콜라스와 블루를 시작으로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가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바로 죽여야 하는가?” “아닐세. 녀석이 지금 노리는 것은 드래곤이 폴리모프를 풀로 본신으로 현신 할 때를 기다리는 거라네.” “그러니까 그 전에 죽여야 하지 않겠는가?” 블루의 질문에 니콜라스가 피식 웃었다. “지금 상태에서 가능해 보이는가? 저들이 지금 이곳저곳에 폭약을 설치하고 궁수들을 숨겨 놓은 후, 아마도 드래곤 킬러라는 공성전 무기를 어딘가에 배치시켜 놓고 상황을 주시하는 중일 걸세. 거기다가 자네의 눈에는 지금 저 가면의 사내. 아니, 아이린 공작이 그것을 저지하지 못할 사내로 보이는가?” 니콜라스의 한마디에 모든 용병들이 다시 한번 경악했다. “아, 아이린 공작?!” “설마 그 유슬라니안의 아이린 공작은 아니겠지? 그 그랜드 마스터 어쩌고 하는?” “이 사람아! 어째서 아니겠는가? 자네는 저 드래곤과 싸워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사람과 아이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작이 수천 명 정도 된다고 생각하는 겐가?” 주변의 웅성거림. 블루는 그들의 모든 대화를 듣고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뭔가 쓸 만한 대화가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니콜라스가 입을 열었다. “분명히 우리가 움직이면 낌새를 차리고 어떻게든 저지할 것이 분명하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저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개자식 물 먹이기 계획이 무산 되겠지.” “그렇겠군.”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도 저 엿 같은 제국의 아이린 공작을 개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이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니 신중하게 계획을 짜야하네.” “어떻게 말인가?” 블루의 질문에 니콜라스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 다음 편도 곧 올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197 회] 날 짜 2005-01-04 조회 / 추천 4339 / 58 선작수 595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6. 반격을 도모하다 “지금은 신경이 곤두서 있지만, 드래곤이 폴리모프를 푸는 당시엔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되네. 변신을 마침과 동시에 총공격을 할 심상인게지. 원래의 작전은 아마도 우리들을 몰아넣고 적당히 흥분시켜 드래곤으로 만들면 자신들은 멀리서 손안대고 코풀 생각이었을 것이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드래곤 녀석이 자신들이 숨어있는 곳으로 와서 깽판을 칠 것이라곤 계산하지 못했을 것이네. 그리고 그 드래곤이라는 녀석이 생각 외로 지성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예상 밖이었겠지. 용병들과 단체로 죽이려 했는데, 그런 드래곤의 돌발행동에 의해서 계획이 무산 된 것이 분명하네.” 블루와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의 눈빛을 보냈다. “니콜라스 자네의 말을 정리하면, 녀석들이 지금 하는 것이 거의 도박이란 말이군. 이미 수가 틀어졌으니 말이네.” “그렇지.” “그 도박에 가장 거대한 미끼인 아이린 공작이 들어가게 된 것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말이네.” “그런 거네.” “그리고 폴리모프를 푸는 시간을 활용하여 자신은 최대한 뒤로 빠지고 처음의 계획대로 우리와 함께 드래곤을 잡겠다는 말인가 보군.” 니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생각했다. ‘이해가 빠른 친구군.’ 우스운 이야기지만, 자신이 입이 아파라 이야기한 보람을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결론은?” 니콜라스의 질문에 블루가 씨익 대답했다. 다시 한 번 뿜어진 블루의 매력적인 미소에 모두가 호흡을 멈추었다. “녀석들이 그렇게 기다리는 드래곤의 폴리모프가 시작되면 녀석들의 긴장이 풀어지며 방심하게 될 것이고, 자연히 드래곤에게 시선이 쏠리겠지. 그 말은 우리에게 관심을 거의 같지 않는 다는 말이 되는 것이고, 그 사이에 우리는 드래곤으로 완전히 폴리모프를 마치기 전에 죽이면 된다는 말이 되겠군.” “내 생각과 한치도 틀림이 없군. 자네의 말이 옳네.” “거기다가 덤으로.” “덤?” “우리도 살아나야 할 것이 아닌가?” 순간 웅성거림이 커졌다. 하지만, 그것을 스스로들 막아냈다. 자신의 실수가 모두의 죽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장의 두근거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살길을 찾을 수 있다니……. 생각은 해봤지만, 불가능 한 일로 치부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지금 니콜라스와 블루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생존. 생존의 가능성! 그것은 용병들에게 희망을 불러 일으켜 줬다. 니콜라스역시 다른 용병들과 다를 바가 없는 표정으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흘러나올지 기대하는 눈빛으로 말이다. “드래곤이 죽으면 녀석들은 망연자실하게 될 것이네. 지금까지 꾸민 일들이 한순간에 도로아미타불 되기 때문이지.” “도로아미타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냥 망한다고 생각하게. 별 뜻 없네.” “그렇군.” “드래곤을 죽인 우리에게 분노의 불똥이 튈 때 그때 바로 우리가 이 지옥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지.” 블루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도무지 그가 말하고자하는 의도를 눈치 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공부하지 않았던 것이 이렇게 억울하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바로 그때 클루토가 입을 열었다. “설마, 블루대장은 역공을 생각하고 계시는 건가요?” 흠칫! 사람들이 경악어린 표정으로 클루토와 블루를 돌아봤다. 블루가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클루토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닫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때 니콜라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사실 나도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네. 그런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니콜라스의 질문을 클루토가 받았다. “마법을 활용하면 가능 할 것 같네요.” 흠칫! 모두의 시선이 클루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블루가 입을 열었다. “바로 그것이네. 우리가 그냥 도망을 친다면 분명 십중팔구 죽을 확률이 크네.” “당연한 이야기군.” “그런데 우리가 역공을 하면 살아날 확률이 5:5로 커진다는 것을 생각이나 해봤는가?” “미안하군. 자세한 설명을 부탁해도 되겠는가?” “물론이지.” 블루의 설명이 시작 되었다. “우선 그 상황이 만들어 지면 머리수 싸움이 될 것이라 짐작하네.” “어째서인가?” 니콜라스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 자신들은 약 280여명 정도였고, 기사단은 아직도 멀쩡한 모습으로 300여명이 넘어서고 있었다. 거기다가 질적으로 차이까지 나는 기사단이다. 자신의 생각을 블루에게 말한 니콜라스. 블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기사단은 200도 안되네.” ~~~~~~~~~~~~~~~~~~~~~~~~~~~~~~~~~~~~~ 휴... 이제 오늘 약속드린 10연참까지 한화 남았네요 ㅡㅡ;;;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최후의 10연참. 곧 찾아 뵙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198 회] 날 짜 2005-01-04 조회 / 추천 4638 / 136 선작수 5955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6. 반격을 도모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드래곤이 조금 전 기사단을 몰살시켰다네.” “헉!” 그 순간 기절하고 있었던 니콜라스. 그래서 전후 사정을 완벽하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눈치를 보던 니콜라스의 수하가 짤막하게 이야기해줬다. “그랬군. 내가 기절하고 있던 사이에 그런 유쾌한 일이 있었군. 푸하하하! 못본 것이 한이 될 정도야. 하하하!” 모두들 그 일을 회상하며 피식 웃었다. 사실 그 순간 얼마나 통쾌했던가. 공포에 질려 이곳저곳으로 드래곤을 피해 달아나던 기사단들. 그렇게 거만하던 녀석들이 드래곤의 브래스 한방에 녹아들어가는 모습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기억 될 것 같았다. 저승에서 가서조차 잊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마법사가 50명이나 있네.” “그렇군…….” 그 한마디가 니콜라스의 입안을 씁쓸하게 만들어 줬다. ‘기사가 230명에 마법사가 50이라…….’ 얼마나 많은 용병들이 죽었다는 말인가? 300여명을 모으겠다던 처음의 목적과 다르게 되는대로 용병을 닥치는대로 끌어 모았다. 그 결과 최소 630여명의 용병들이 출발했었다. 그 말은 거의 350여명이 죽었다는 말과 동일했다. 니콜라스 자신도 타인의 목숨을 거두며 먹고사는 용병이긴 했지만,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 않았다. 죽기 직전의 상대에게 최대한의 예우를 해주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블루가 정리를 시작했다. “드래곤이 죽는 순간 허탈감에 빠지는 이들을 노리는 거네. 물론, 그전에 마법을 준비하면 마나가 모이는 것을 그들이 느낄 수도 있으니, 우리가 드래곤을 죽이는 순간과 동시에 마법사들은 자신이 가장 빠르게 케스팅 할 수 있는 마법을 발동시켜 저쪽 언덕너머와 저기 반대쪽의 숲으로 마법을 날리도록 하게.” “어째서 그쪽으로 마법을 쏘아야 하는가?” “그들이 그곳에 몸을 움츠리고 숨어 있기 때문이네.” 블루의 말에 니콜라스가 깜짝 놀랐다. “자내는 저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기척도 느낀단 말인가?” 블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니코라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믿어지지 않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군.” “고맙네. 여하튼 우리의 작전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이네. 그리고 이곳에서 탈출한다면 모두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살거나 다른 나라로 떠나야 할 걸세.” “훗. 그 걱정은 하지 말게. 용병에게 고향은 없다네.” 씁쓸한 말투에 용병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잊고 있던 그곳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눈에 광기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제 자신들의 반격할 시간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개 같은 제국군들에게 보복 할 수 있는 그 시간이 말이다. ~~~~~~~~~~~~~~~~~~~~~~~~~~~~~~~~~~~~~~~~~~~~ 분량이 적어서 죄송합니다. 6화가 이곳에서 끝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네요. 그대신 오후나 저녁에 한화 분량을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벤트 당첨자를 발표합니다. -이벤트 당첨자 안내. (그림을 올리는 법을 몰라서 올리지 못하는 점을 양해 바랍니다. 기회가 되면 가까운 시일에 올려서 보여드리겠습니다.) 1등 - 사계님 artist4001@hanmail.net 검황 이계 전질 2등 - 갈매기님 xcv6963@hanmail.net 검황 이계 1-4권 공동 3등 - 다크님 skalsid@hanmail.net 검황 이계 1-3권 공동 3등 - 제시아님 aksksrud@hanmail.net 검황 이계 1-3권 5등 - 김정민님 jm9252@hanmail.net 검황 이계 1-2권 6등 - 이오스님 eoschoi@hanmail.net 검황 이계 1-2권 7등 - xodnjssama님 xodnjs14@hanmail.net 검황 이계 1-2권 위는 그림을 그려주신 분들입니다.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안타깝게 떨어지신 분들께는 정말 죄송한 마음을 금치 못하는.....;ㅁ; 8등 - secretsy2176 ( 治毒 ) 고무판 검 : 검 한자루에 맡긴 이내 몸. 황 : 황야를 질주하는 한 마리 표범처럼, 이 : 이 모든 열정을 다 바쳐서 살아가리라. 계 : 계속되는 열정의 거친 숨소리. 정 : 정신없이 달리리라, 벌 : 벌판을, 사막을, 저 넓은 대지를! 하 : 하늘 끝, 푸른 지평선에 서서, 다 : 다시 한 번 세상을 굽어보리라! 9등 - silpid ( 류준서 ) 고무판 [검] = 검황 명훈의 검명은 이계의 창천을 가르고, [황] = 황혼이 노을지는 서천 하늘 가 맴돈다. [이] = 이계를 떠도는 마침표 없는 사랑. [계] = 계속되어야 할 그 사랑. 끝내 지켜야 할 사랑, 현민. [정] = 정은 다함이 없으나, 현민은 언제나 저만치서 날 어루만지니. [벌] = 벌써 멀리와버린 뒤안길, 다시 돌아갈 길 멀기만 하노라. [하] = 하루인들 잊지 못할 그 정분, 그 사랑. 그녀에 대한 마음이련데. [다] = 다시 한 번 맺어보길, 꿈엔들 다시 한 번 맺어볼 수 있기를... 10등 - 淸雨 유조아 [검(劍)] 한 자루의 녹이, 홀로 거닐고 있는 외로운 [황]무지에 스며드는구나. [이] 마음 둘 곳 없어, 산청을 유람하니 [계]류의 청아함이 듣기에도 좋아라. [정]들구나. 저 구름아. [벌]써부터 취하구나. 들자꾸나. 저 [하]늘아. [다]시금 눈물이 흐르구나. 당첨자 분들. 모두모두 축하드립니다^^ eastemar@hanmail.net 쪽지 말고 제 메일로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당첨자 본인이 맞는지 확인전화를 위해서), 그리고 우편번호를 포함한 집 주소를 적어서 보내 주세요^^ 제목은 //"검황 이벤트 당첨자 입니다."//로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출간일정으로 잡혀있는 12일 안에 연락이 오지 않으시면 상품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상품을 한번에 붙일 생각이거든요^^;;) 그럼 오늘 오후에 뵙겠습니다. 모두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199 회] 날 짜 2005-01-05 조회 / 추천 5808 / 142 선작수 578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위기에 처하다 7. 위기에 처하다 아이린 공작의 도발은 극에 치닫고 있었다. “후후. 드래곤으로 변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감히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드래곤이 이를 갈았다. “크르륵! 웃기지마라. 내가 네 녀석 따위가 겁이 나서 이러는 줄 아느냐! 지금의 상태로도 내 녀석을 때려잡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는거다!” 퍽! “커헉!” 드래곤은 지금 죽을 맛이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드래곤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디텍티브(detective) 마법으로 자신의 상대방을 검색했다. 또라이 드래곤 하나가 자신에게 엿 먹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던 와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 냈다. 드래곤과 같이 마나로 충만한 육체를 소유하고 있는 인간이라니…….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아니, 그런 것이 있어서도 안됐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말을 헛 뱉었다. “너, 넌 드래곤이 아니냐!” “훗. 내가 너 따위 파충류랑 비교를 당해야 하겠느냐? 소름이 돋는 군. 큭큭.” “끄으응.” 역시 드래곤은 아니었다. 고지식하고 자기중심적인 드래곤이 저따위 말을 지껄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상대인 인간이 강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도 지금의 육체로는 턱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자신이 본신으로만 현신한다면 이기지 못할 이유도 없을 텐데……. 슬쩍 눈치를 보던 드래곤.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자신이 변신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 부담되는 드래곤이었다. 그 순간은 완전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때 드래곤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듯 말하는 사내의 한마디에 귀가 번쩍 뜨였다. “큭큭. 드래곤이 이렇게 시시하다면 할 말 다했군.” “아니다! 내가 폴리모프 상태만 아니었다면 넌 죽은 목숨이다.” “오호라. 변명을 하시는가?” “변명이 아니다!” “큭큭. 웃기지마라 난 두 눈으로 보기 전에는 그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좋다! 그럼 3분만 기다려줘라.” 그 말에 아이린 공작이 쾌재를 불렀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이 중요했다. 눈치 빠른 저 도마뱀새끼가 의심을 품지 못하도록 최대한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주는 것이 중요했다. “3분 따위 기다린다고 달라질 것도 없어 보이는구만.” “아, 아니다. 달라진다. 확실하게 달라진다. 내가 변신만 하면 너 따위…….” ‘아, 너무 과격한 표현을 쓰면 겁먹을지도 모르니까…….’ 순간 적인 생각 때문에 너 따위는 한발에 밟아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을 뺀 드래곤이었다. 그런 드래곤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아이린 공작이 질문을 던졌다. “너 따위…… 그 다음은 뭐냐?” “아니다. 엄청나게 강해진다는 말이다.” “그 말을 내가 믿어야 하는가?” “겁이 나는가? 내가 본신을 찾는 것이 겁이 나는 모양이군. 큭큭.” “웃기고 있군.” “하긴 두려울 만도 할 것이다.” 그러게 드래곤과 신경전 아닌 신경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구경하는 측에서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치졸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양측에서는 얼마나 절박한지 말로 표현이 불가능 할 정도였다. 아이린 공작측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드래곤이 본신을 찾아와야 했고, 드래곤으로서는 녀석들을 싸그리 밟아 죽이기 위해서는 변신을 해야만 했다. 목적은 같지만 반대되는 상황이었기에 연출 된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타협점을 찾은 드래곤과 인간. 이제부터 심각한 일들이 진행 될 것이다. 그 타이밍을 기다리는 용병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는 상태로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럼 변신해봐라. 내 기사의 명예를 걸고 네가 변신을 마칠 동안 기다려주마.” “크크크. 좋다.” ‘그 병신 같은 약속한 것을 곧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크아!’ '어서 변신해라. 병신아. 곧 죽여주마. 흐흐흐.' “크오오오오!”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온 빛 무리. 번쩍! 거대한 섬광이 트롤의 몸을 둘러쌈과 동시에 조금씩 그 빛 무리가 부풀어 오르듯 커져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회심을 미소를 짓던 아이린 공작. 순식간에 자신의 본신의 힘을 다해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생물인 드래곤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선 직접적인 충격을 줘야 했기에 이곳에 가득 심어 놓은 폭약과 드래곤 킬러가 소나기처럼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후후후. 미련한 도마뱀 녀석.” 아이린 공작은 순식간에 안전선이라고 생각한 곳까지 곧 다다를 상황이었다. 물론 변신하고 있는 드래곤에게 기척조차 남기지 않을 만큼 신중한 움직임으로 말이다. 수하들은 안전선 밖으로 사라지고 있는 아이린 공작을 보면서 녀석의 변신이 끝남과 동시에 공격을 시도할 준빌 하고 있었다. 숨조차 최대한 죽인 체 상황을 응시했다. 녀석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죽여야 한다는 압박감. 모두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변신을 하고 있는 지금 녀석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변신하는 도중에도 생각을 할 것이다. 그 말은 녀석이 불안하다 느끼면 변신을 마침과 동시에 순간이동을 할 수 있음을 염두 해 둔 것이다. 최대한 경각심을 없앤 상태에서 변신이 완료되기 바로 직전 드래곤 킬러를 쏴야했다. 그런데 그 순간 괴변이 일어났다. 용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변신하고 있는 드래곤을 향해 달려 들고 있었던 것이다. “우아아아!” “드래곤을 죽여라!” 그런 돌발적인 용병들의 행동에 기사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것은 아이린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직도 상황판별이 안 되었는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수군거리기 시작한 수하들. 아이린 공작은 분노를 터트렸다. “뭣들 하는가! 어서 용병나부랭이들을 막아라!” ~~~~~~~~~~~~~~~~~~~~~~~~~~~~~~~~~~~~~~~~~~~~~~ 오늘 외출을 했는데 조금 힘들었나 봅니다. 아픈 몸을 억지로 컴퓨터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긴 했는데, 많은 분량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내일 최소 6연참을 시도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모래까지 3권을 마치고 4권에 돌입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고 내일 찾아 뵙겠습니다. 사실 더 쓸 수 있지만, 오늘 몸이 악화된 상황을 느끼고 이만 줄이겠습니다. 아침에 약속이 있어서......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200 회] 날 짜 2005-01-06 조회 / 추천 4224 / 64 선작수 578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위기에 처하다 아이린 공작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기사단. 하지만, 어떻게 함부로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드래곤 때문이다. 혹시나 작은 실수로 일을 그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이 그들의 발을 묶는 족쇄가 된 것이다. 블루와 니콜라스의 예상은 정확했다. 용병들은 승승장구한 표정으로 드래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이린을 포함한 기사도 블루를 포함한 기사들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챙! 파칭! “헉! 뭐지?” “이럴 수가!” 변신을 하고 있는 드래곤에게 어떤 투명한 막이 형성되어 있어서 그 어떤 공격도 무효화 시켰던 것이다. 어웨어급의 용병들의 공격이 힘겹게 막을 뚫고 간지럽지도 못한 상처를 만들어 낼 뿐이었다. 드래곤이 변신할 때 약점이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드래곤은 드래곤이었다. 조금 전까지 아이린 공작과의 싸움을 보며 어쩌면 드래곤이 생각보다 약할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던 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던 것이다. 드래곤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린 공작이 터무니없이 강했던 것이다. 아이린 공작의 그래플오러(권강) 정도라면 자신의 보호막을 뚫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일 뿐이었다. 만약 일개 기사들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변신해도 상관이 없어을 것이다. 어떤 공격도 자신의 보호막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으득! 아이린 공작이 눈에서 불을 키고 외쳤다. “뭐하는가! 반격하라!” 용병단의 기습에 기사단이 입은 피해는 결코 적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기습이었기에 특히 더 심했다. 30명 이상의 기사들이 목숨을 잃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린 공작의 한마디는 피해상황을 넘어선 그 이상의 것이었다. 기사단에게 있어 아이린 공작의 명령은 신의 부름과 같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콰아아앙! 콰과과과쾅! 연쇄적인 폭발과 거대한 굉음! 산이 울리며 이곳저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날 정도였다. 우르르르릉!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소음이 울리는 그 순간 드래곤의 눈이 떠졌다. 번뜩! 그 두 눈에서 거대한 섬광이 뿜어 지는 듯 한 착각이 일었다. “히이익!” 용병들은 저마다 견딜 수 없는 공포감에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모두가 경악어린 모습을 지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드래곤의 입가가 슬쩍 올라가는 착각을 느낌과 동시에 그의 머리위에서 생겨난 작은 빛. 순식간에 원형의 퍼져나갔다. “궁수들을 앞으로 내세워 용병들을 저격하라!” 그 명령은 신속하게 전달되었다. 어느 세 하늘을 화살이 뒤 덮은 것이 그 증거였다. 파바바바! 쉬리리리릭! 수많은 파공음을 뿌리며 하늘을 날던 화살들.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용병들을 향해 날카로운 이를 들이밀었다. 푹! “크흐흑!” 실력이 부족한 용병들은 날아온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하나같이 자신의 몸에 맞은 박힌 화살을 보며 이를 악 물 수밖에 없었다. 고통을 참기 위해 말이다. 그러나 그 고통을 느끼면서도 검을 휘두르는 것을 늦추지 않았다. 연신 드래곤의 몸에 맞추지도 못하고 투명한 막에 막혀 튕겨났지만, 드래곤이 경각심을 가지고 도망이라도 치길 원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죽더라도 그들에게 복수를 원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웃기지도 않은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아이린이다. 아이린 공작이다.” “아이린 공작이다. 저 가면의 사내는 유슬라니안의 아이린 공작이다.”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중얼거리는 용병의 모습. 그 모습은 경건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웃을 수 없었다. 그 속에 그들의 절실한 마음에 담겨 있던 탓이다. 드래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들 중에선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숨을 몰아쉬며 검을 집어 던지듯 휘두르는 이들도 있었다. 자신들이 죽더라도 드래곤이 복수를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린 공작의 이름을 되뇌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잔잔한 호수위에 일어난 잔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그 소리를 듣지 못할 아이린 공작이 아니었다. “개자식들. 으득!” 어째서인지 상황이 역전된 듯 한 기분이었다. 동시에 드래곤이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찾아 가고 있었다. “드래곤이고 용병이고 다 죽여주마! 모두 드래곤을 저격하라!” 아이린 공작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용병들의 마법사들 쪽에서 파이어 볼과 아이스 에로우가 언덕과 숲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펑! 펑! 펑! 거대한 굉음과 동시에 숲속은 불길이 타올랐고, 절벽은 얼음으로 뒤 덮였다. ~~~~~~~~~~~~~~~~~~~~~~~~~~~~~~~~~~` 어찌 저찌하다보니 200회까지 오게 되었네요 ㅡ///ㅡ 엄청나게 부끄럽다는 ^^;; 앞으로도 열심히 하는 한가 되겠습니다. 이 후에도 사랑해주실거죠? ^^ 헤헤~ 그럼 어서 담푠으로~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201 회] 날 짜 2005-01-06 조회 / 추천 4228 / 57 선작수 578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위기에 처하다 쿠구구구궁! 폭약의 폭발음과 맞먹는 굉음이 터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타원형의 막이 형성되었다. 그 막은 놀랍게도 산이 날아갈 정도로 터지던 폭약의 폭발력을 감싸 안더니 가볍게 제압했다. “저, 저럴 수가!”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꿈같은 현상. 그런 드래곤의 능력에 용병들은 감탄과 경악 그리고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크르르르르……. 분명히 웃음일 것이다. 그것도 비웃음. 이정도 가지고 자신을 잡으려고 했던 것이냐는 그런 비웃음. 그와 동시에 용병들의 뒷걸음질 치며 내지르는 공포어린 비명을 즐겼다. 하지만, 용병들이 뒤로 도망을 쳐도 건들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때 드래곤은 거만한 시선으로 저 멀리 서있는 아이린 공작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자신의 힘을 봤느냐고 말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아이린 공작의 굳어진 표정이 드래곤의 두 눈 속에 들어왔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듯 이를 힘껏 다물고 있는 아이린 공작. 그렇게 통쾌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쾌감도 잠시. 이제 자신이 당한 그 이상의 것을 돌려줄 시간이 왔다는 생각에 하늘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포효했다. -크오오오오오! 완전한 드래곤 피어. 아이린 공작의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그 위압감은 대단했다. 너의 힘은 이정도 밖에 안 된다는 시선으로 다시 아이린 공작을 내려 보던 드래곤. 이죽거리는 말투로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너희들을 모두 죽여주겠다! 그러자 하늘에서 천둥이라도 치는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동시에 아이린 공작을 한 발에 밟아 죽이기 위해 이동하려던 드래곤. 그런데 아이린 공작의 표정에서 뭔가 이질적인 느낌을 받게 되었다. ‘뭐, 뭐지?’ 뭔가 이건 아니다 라는 느낌이 전율처럼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불안한 표정으로 굳어 있던 안면이 서서히 풀리며 되려 자신을 비웃는 표정으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씨익. 그 표정이 완전한 비웃음으로 변모된 바로 그때. 쓔우우웅! ‘뭐, 뭐지? 무슨 소린가.’ 의문도 잠시. 화살처럼 날카로운 촉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통나무가 드래곤의 등 뒤로 날아가 거침없이 틀어 박혔다. 퍼억!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전신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끄오오오오! 아이린을 잡기 위해 허공에 날아오르던 드래곤이 바닥에 떨어지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 몸부림에 십여 명의 용병이 깔려 죽었다. 드래곤의 푸른 피가 사방으로 퍼지며 둔지를 물들였다. -비, 비겁한. 드래곤이 나직하게 외는 소리에 아이린 공작이 대꾸해줬다. “훗. 그 미련할 정도로 거대한 덩치가 더 비겁한거라구.” -이, 인간 따위가……. 인간 따위에게……. “그 인간 따위에게 당해서 기쁜 모양이지. 큭큭.” 다시 날아온 드래곤 킬러. 퍼어어억! 푸우우우욱! -끄오오오오오오! 정확도가 확실하지 않은지 이번에는 드래곤의 왼쪽 허벅지 쪽에 강하게 틀어 박혔다. 그때 고통의 공포에 경악하는 드래곤의 귓가에 들리는 아이린 공작의 침착한 목소리. “아픈가?” 정말로 몰라서 묻는 듯 천연덕스러웠다. -너, 널 씹어 삼켜주겠……. 쓔우웅! 푸어억! -끄아아악! 이번에는 등에 박힌 드래곤 킬러. 드래곤이 발버둥치던 것을 멈추고 이를 악문 상태에서 모든 힘을 끌어 모아 입을 열었다. -내가 죽기 전에 네 놈을 죽이고 죽을 것이다아! “큭큭큭. 아주 쇼를 하는 군. 어디 해볼 수 있으면 해보라구.” -두고봐라. 기필코…. 그와 동시에 드래곤의 몸에서 투명한 빛이 흘러나오려 했다. “훗. 순간이동? 내가 허용 할 것 같은가? 발사!” 쓔우우웅! 드래곤은 그런 상황이 두 번 더 진행 되자 이곳을 도무지 빠져 나갈 수 가 없었다. 주문이 완성되기도 전에 날아오는 공격과 잇따른 고통에 마법에 깨진 탓이었다. -쓰레기 같은 자식……. “후후후. 시끄러우니 어서 뒤져라.” 바로 그 순간. 파바바바바바바밧! 엄청난 흙먼지와 함께 뭔가가 아이린 공작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다. 퓻! 흠칫! 공기를 가르는 파성음에 아이린 공작이 표정을 굳히며 가까스로 뭔가를 피할 수 있었다. 자신의 감각을 믿지 않았다면 결코 피하지 못할 정도의 스피드였다. ‘뭐, 뭐지?’ 아이린 공작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다시 연이어진 날카로운 살기. 파팟! 힘겹게 몸을 돌려 공격을 무마하자 보이는 상대방. ‘설마 그것이 사람의 공격이었단 말인가!?’ 아이린 공작은 작금의 상황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자신의 감각을 뛰어 넘는 속도감을 지닌 공격이 누군가의 발차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정체불명의 인간은 바로 블루였던 것이다. ~~~~~~~~~~~~~~~~~~~~~~~~~~~~~~~~~~~~~~~~~~~ 아아~ 블루~ 블루~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202 회] 날 짜 2005-01-06 조회 / 추천 4287 / 77 선작수 578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7. 위기에 처하다 “넌, 뭐냐!” “글쎄?” 아이린 공작의 질문에 블루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그의 안면을 향해 강하게 내질렀다. 핏! 감각을 초월하는 스피드. 아이린 공작은 블루의 기습을 피할 수 있었지만, 쾌속에 의해 생겨난 바람의 칼날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 퓨슛!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듯 생겨난 안면의 상처. 통증이 아려왔다. 하지만, 블루의 다음 공격을 피하기 위해 고통을 느낄 세도 없이 상체를 틀어야만 했다. “넌 용병이 아니구나.” “글쎄. 네가 가면의 사내가 아니라 아이린 공작인 것보다는 그다지 큰 비밀이 아닐 거다.” 블루의 회심의 미소에 아이린 공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알아서 안 되는 것을 알고 있는 용병들. 이 자리에서 모두 살인멸구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유슬라니안 제국은 큰 타격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린 공작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다. “후후, 내가 아이린 공작이라니. 정말이지 터무니없군.” “큭큭.”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반박했지만, 블루는 말대답 대신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 안면이 너무도 보기 싫어 자신의 권강을 블루의 안면에 내질렀다. 가볍게 피하며 웃음 짓는 블루의 쌍판이 더욱 보기 싫은 아이린 공작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팟! 작은 섬광이 일었다. 무슨 일인가 빛의 시발점을 찾아 슬쩍 시선을 돌려본 아이린 공작. 동시에 아이린 공작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두 눈을 비벼댔다. 하지만……. “으아악! 안 돼!” 드래곤이 사라진 것이었다. 자신의 시선이 돌아가 있는 상태에서 드래곤이 공간이동을 한 것이었다. 놀라서 절벽 위쪽을 올려다보니 기사들과 용병들이 거의 호각지세로 싸우고 있었다. 바로 드래곤 킬러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선 것이다. “이, 이런 개자식!” 블루를 바라보는 아이린 공작. 공작의 눈에서 천 번을 찢어 죽여도 모자랄 것 같은 짙은 살기가 품어져 나왔다. “우리의 위업을 방해하다니!” “무슨 위업? 아, 도마뱀 잡는 일 말하는가? 그게 위업이라는 단어를 쓸 만큼 거창한 일이었는가? 큭큭.” 그제야 블루가 갑자기 자신에게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이린 공작, 자신의 시선을 돌리고 드래곤이 피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위한 것임을 말이다. “너를 잡아서 생으로 가죽을 벗겨주겠다!” “큭큭. 그래보시던가.” 하지만, 블루의 등줄기는 식은땀으로 인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아이린 공작의 살기가 진짜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블루의 지금 능력으론 아이린 공작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제 겨우 화경급인 마스터 경지에 다다른 블루. 아무리 전생에 생사경의 고수였다곤 하지만, 지금의 불완전한 몸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전투력을 모두 드러내기엔 터무니없을 정도로 빈약했다. 그에 반에 아이린 공작의 경지는 대충 어림짐작만으로도 현경의 초입을 바라보고 있을 초 극강의 고수였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애와 어른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과거의 전투방식을 회상하며 요령을 피워 잠시 대등한 싸움을 펼칠 수 있었지만, 결코 자신이 아이린 공작을 이기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자신이 약하다는 것이 아쉬운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블루의 굳게 쥐어진 주먹이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사실. 그냥 피한다면 동료들만 데리고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 이 자리. 아이린 공작의 앞에 마주선 이유는 다름 아니다. 분명 호승심 때문일 것이다. 고수와 싸워 보고 싶다는, 이겨보고 싶다는 그 호승심. 부족한 실력을 알면서도 무작정 부딪히고 싶었던 것이다. 꾸욱. 공간이 없을 정도로 힘껏 말아 쥔 주먹. 아이린 공작이 움직이기 전에 블루의 주먹이 먼저였다. 선풍권(?風拳)! 강한 회전력이 가미된 블루의 주먹이 바람을 가로지르며 공작의 슬쩍 벌려져 잇는 겨드랑이를 노리고 파고 들어갔다. 후웅! 아이린 공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마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한 듯 했다. 아이린 공작이 블루의 주먹을 자신의 주먹으로 빗겨 치며 튕겨냈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블루의 몸이 반탄력을 흘리기 위해 몸을 한바퀴 돌림과 동시에 그 회전력을 이용해 발길질을 했다. 하지만, 아이린 공작은 예견하고 있어다는 듯 몸을 뒤로 빼고 발길질을 흘린 후 민첩하게 달라붙어 블루의 무방비한 왼쪽 팔을 노렸다. 빠각! “크흑!” 급소를 노릴 것이라 생각하던 블루. 허를 찔린 것이다. 완전히 부러진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며 이를 다물었다. 고통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한번 고통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칠절환영보의 추광보(追光步)를 사용하여 아이린 공작의 공격권에서 벗어난 블루. 아이린 공작은 이미 뒤로 빠질 블루를 직감하고 다가붙어 결정타를 노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블루의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스피드를 본 아아린 공작. 가볍게 혀를 차고 공격권 내에서 사라져 가는 블루를 지켜 바라봐야만 했다. 블루의 투지는 대단했다. 뼈가 으스러진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호승심을 감추지 못한 눈빛으로 아이린 공작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블루의 눈빛을 아이린 공작도 분노에서 흥미 있는 시선으로 바꾸게 된 것은 그 직후였다. 그 눈빛으로 인해 아이린 공작의 심경이 변화했다. 아이린 공작의 식어있던 무인의 피. 블루의 눈빛으로 인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슴에서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호승심이라는 불이 당겨졌기 때문이다. ~~~~~~~~~~~~~~~~~~~~~~~~~~~~~~~~~~~~~ 휴... 힘드네염 ㅡ////ㅡ 정말 힘차게 달려 온것 같아요 ;ㅁ; 이제 블루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요? 블루의 행보가 시작 되면서 만난 사상 최악의 상황. 계속 봐주실 거죠? ㅎㅎㅎㅎ ㅡ///ㅡ 그럼 뭐하세요? 선작 추천 때리지 않구 케케케케~ 다음 화는 4시에 올리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203 회] 날 짜 2005-01-06 조회 / 추천 4187 / 63 선작수 578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패배하다 8. ……패배하다 블루는 자신의 옷을 찢어 덜렁거리는 팔을 몸에 최대한 부착시킨 후 감아서 고정시켰다. 싸우는 와중에 덜렁거리며 자신의 싸움을 방해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아이린 공작은 드래곤의 일을 잊어버렸다. 이미 떠난 일이라며 가슴에 두지 않은 탓이다. 물론 제국으로 돌아가면 돼지 새끼들이 짖어 되리란 것은 안 봐도 뻔했지만, 어쩌겠는가. 아이린 공작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더욱 중요했다. 그러나 평소에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고 끝을 보는 고지시한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검 하나만 믿고 떠돌던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다. 목숨만 붙어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었던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바로 그때. 블러드 핸드의 일원이었을 때…….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 자신의 두 주먹을. 그것을 깨우쳐 준 것이 바로 블루였다. 아이린 공작이 전신에 기운을 흘렸다. 최상의 상태로 맞서 주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라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덤벼라.” 수하들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감상은 이미 머릿속에서 떠났다. 자신의 눈앞에서 호승심을 자극하는 적에게 모든 신경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갈 생각이다.” “입만 살았군.” 순간 칠절환영보의 뇌둔보를 사용하여 득달같이 아이린 공작에게 도달한 블루.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공격이 필요하다 판단하자마자 어깨에 모든 기운을 모아 힘껏 몸통 밀어치기를 시도했다. 아이린 공작은 의외의 공격에 방어하지 못하고 고스라니 받을 수밖에 없었다. 쿵! 강렬한 충격에 머리가 울리는 것을 느낀 아이린 공작. 그러나 그대로 당하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쓰러짐과 동시에 자신의 양 주먹을 휘둘러 블루의 명치를 노렸다. 하지만, 블루는 이미 그 공격을 짐작했다는 듯 땅을 박차고 아이린이 쓰러지는 방향으로 같이 날아가고 있었다. 주먹이 다가오자 무릎으로 곧게 펴진 팔꿈치를 올려 차고 발끝에 느껴지는 타격감을 믿고 그대로 공중회전하여 착지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왠지 아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질감. 분명 블루의 발끝은 아이린 공작의 곧게 펴진 팔꿈치를 걷어찼다. 그 말은 아이린 공작은 쓰러져서 자신의 부서진 팔꿈치를 잡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과 동일했다. 그런데 자신의 발에서 느껴지는 아련한 통증은 무엇이란 말인가. 저 앞에서 블루가 바닥에 발을 딛기도 전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아이린 공작의 모습은 무엇이란 말인가. “강기? 제길…….” 블루는 아이린 공작의 팔을 뒤덮고 있는 강기 막에 혀를 찼다. 자신의 발끝을 보니 신발 앞부분이 너덜너덜하게 터져 있는 것이 보였다. 유운보와 뇌둔보를 섞어 운영하여 가까스로 아이린 공작의 공격을 피했지만……. “헉, 헉…….”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씩 끝이 보였다. 내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아이린 공작과 싸우며 한 방 한 방 내지를 공격이 모두 천근의 무게를 싣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한계를 넘어선 움직임. 그만큼 내력의 소모가 컸음을 뜻했다. 어찌어찌 요령으로 버텼지만, 아직 쌩쌩한 아이린 공작과 자신의 상태는 누가 보더라도 답을 내릴 수 있을 정도였다. 블루가 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블루가 느낀 바로는 지금 아이린 공작은 자신의 본신의 실력을 모두 드러내지도 않았다. 아니, 드러내기도 전에 블루 자신이 지쳤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답이겠지만 말이다. ‘젠장. 기분 더럽군. 몇 분을 싸우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력이 쇠할 줄이야.’ 슬쩍 반대상황을 보니 용병들이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처음 목적대로 드래곤도 사라지게 하여 망할 기사들 물도 먹였겠다……. 자신의 일을 마쳤으니 살길을 찾아 삼삼오오 떠나는 것이리라. 그러고보니 니콜라스와 베르니스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들 도망친 건가. 후…….’ 약간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떠나라고 했음에도 말이다. 그때 아이린 공작도 블루의 시선이 말하는 뜻을 이해했는지 내뱉듯 말을 던졌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해야 겠군.” 그러자 블루가 피식 웃더니 받아쳐주었다. “무슨 말인가. 이제 시작인데. 벌써 지친건가?” “킥킥.” 블루의 말에 아이린 공작이 웃었다. 자신의 땀에 흠뻑 젖어 있는 블루. 지쳐서 숨을 몰아쉬고 있다. 한눈에 봐도 피곤에 절은 모습이 눈에 들어올 정도다. 그럼에도 말을 꺼낼 때는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적인 자신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기 위한 모습이리라. 아이린은 그런 블루의 근성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에게도 적에게도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블루의 투기어린 모습 하나하나가 너무나 마음에 들기 시작한 아이린 공작. 그쯤 되자 블루를 회유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드래곤을 잃었지만, 자신과 상대하고 있는 눈앞의 청년을 얻는다면 백배이상의 이득이라는 계산이 나온 탓이었다. 그러나 지금 주먹을 내릴 수 없었다. 저런 사내들은 자신이 확실하게 패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서야 결코 남의 밑에 들어가지 않는 다는 것을 아이린 공작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의 성격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블러드 핸드에 처음 들어가게 된 계기가……. ‘크리스, 아니 레니카…….’ ~~~~~~~~~~~~~~~~~~~~~~~~~~~~~~~~~~~~~~~~~~~~~ 서서히 밝혀지는 이야기들. ㅎㅎ;; 볼만 하신가요? 블루의 패배가 믿어지지 않으신다구요? 어쩌겠어요. 약한놈이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문제는 블루가 아이린 공작에게 진다 해도 아이린 공작을 섬기느냐겠죠? 뭐, 문제가 아니라구요? 블루가 아이린공작에게 넘어갈리가 없다구요? ㅋㅋ 당연하죠. 화려한 복수의 화신이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는 블루가 넘어갈리가 없겠죠. 그럼 3시10분쯤에 다음 화를 올리겠습니다.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204 회] 날 짜 2005-01-06 조회 / 추천 4111 / 64 선작수 578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이후 >>> 8. ……패배하다 레니카라면 헤르마틴 제국의 국모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바로 블러디 핸드의 보스의 이름이기도 했다. 블러디 핸드 당시에는 크리스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말이다. 설마 가출한 공주가 뭘 잘났다고 자신의 이름을 딱 걸고 용병단을 창설하겠는가. 그런데 레니카라는 이름을 나직하게 만한 아이린 공작. 그 속에 담긴 뜻이 아련하게 전해져왔다. “그럼 간다!” 블루의 습격에 잠시 딴 생각하고 있던 아이린 공작이 놀람과 동시에 자신의 방어를 위해 실수로 힘 조절을 실패하고 가장 강력한 권기류를 흘리고야 말았다. 쿠오오오오! 권기류는 날카로운 자신의 이빨을 드러내며 블루에게 날아갔다. “아, 아차!” 아이린 공작이 깜짝놀라 기운을 회수하려 했지만, 이미 뿌리 기운을 회수하기란 거의 불가능 했다. 블루역시 자신에게 쏜살같이 날아오는 권기류의 기운을 느끼고 이를 악물었다.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권기류에 당하면 십중팔구 사망이 분명했다. 그 말은 한마디로 죽음이 불가피 하게 되었다는 뜻과 동일한 것이었다. 쿠와와와와! 다가올수록 큰 굉음을 내뱉는 기류의 습격을 피할 길이 없었다. 그만큼 몸체가 확장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권기류가 블루를 가루로 만들기 위해 습격하려는 바로 그 순간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서 블루의 몸을 강타했다. 퍼억! 어정쩡하게 권기류의 기운 앞에서 방어를 하고 있던 블루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15M 밖으로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의 끔찍한 비명이 블루의 고막을 때렸다. “끄아아아아악!” 블루가 성급히 쓰러진 상체를 일으켜 돌아보니 왼쪽 팔과 다리를 왼쪽 다리를 잃은 니콜라스가 바닥에 쓰러져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니콜라스!” 블루가 외마디를 내뱉으며 쓰러져 있는 니콜라스를 향해 달려가서 부축하자 니콜라스가 입가로 한줄기의 피를 흘리면서 피식 웃었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한 모습이었다. “괜찮은가.” “킥. 네 눈에는 이게 괜찮아 보이는가? 젠장. 내가 이래서 영웅놀이는 하기 싫었다니까.” 순간 블루의 가슴속에서 울컥이며 슬픔? 분노? 알 수 없는 감정이 치솟고 올라왔다. 지금까지 푸근했던 미소를 담고 있던 니콜라스의 얼굴이 이죽거리며 능청스러운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 미소가 가식이었다는 것을 마지막에는 알려주고 싶었었나 보다. 자신에게 말이다. 블루는 가슴이 매어왔다. “젠장. 이렇게 넝마가 된 몸으로 미인들의 애무를 어떻게 받으란 말이냐. 제길…….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오기 전에 회포나 풀고 오는 건데……. 킥킥.” “…….” 니콜라스의 긴장을 풀어주겠다면 내뱉는 이야기들. 블루는 웃을 수가 없었다. 혈도를 점하며 출혈을 막느라 바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거대한 슬픔 때문이기도 했다. 블루는 니콜라스가 무슨 말을 하던지간에 자신의 옷을 찢느라 바빴다. 길게 찢은 자신의 옷을 니콜라스의 상처를 압박하는데 사용했다. 혈도를 점하여도 출혈의 양을 줄이는 것뿐이지 완전히 봉할 수 없기 때문에 보조 작업은 필수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차갑게 굳은 얼굴로 블루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째서 왔는가.” “큭큭. 내 부하들을 살려준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거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려 준 것이 아니다. 그들이 살아난 것이다.” “자네가 아무리 그렇게 지껄인다 해도 누가 그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리고 사실이라 해도 난 빛지곤 못사는 성격이라서 말이지…….” 니콜라스가 입가에 푸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제길.” 블루가 차마 니콜라스의 미소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수하들은 모두 어디 있는가.” “나만 남겠다고 하고 모두 밑으로 피신시켰다.” “이렇게 될 것을 모르고 있었나!” “훗, 몰랐으니 온 거 아닌가. 난 살줄 알았다.” “만약 알았다면.” “알았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당연히 왔겠지. 난 빛 지고는 못산다고 하지 않았는가. 큭큭, 우욱… 쿨럭, 쿨럭! …쿨럭!” 각혈을 하는 니콜라스. 자신의 팔소매로 니콜라스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니콜라스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블루. 지금의 상황에서 니콜라스의 진심을 모른다면 그가 바로 병신일 것이다. “제길 용병인생이 이렇지.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지랄 같은 끝을 마치게 될 줄이야.” “넌 안 죽어!” “큭큭. 당연히 안 죽지. 그런데 몸이 좀 추운데?” 니콜라스가 창백한 안색으로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조금만 버텨봐!” 하지만 블루의 말을 무시하는 투로 니콜라스는 자신이 할 말만 내뱉기 시작했다. “킥킥. 그래도 내가 인정한 사내의, 쿨럭…. 옆에서 죽을 수 있어서 쿠울럭! …다, 다행이군. 큭큭.” 덜덜덜덜. 니콜라스의 기침이 잦아지고 몸이 더욱 크게 떨기 시작했다. “킥. 이렇게 만나기 전에, 정말… 그 전에 만, 만났다면… 훨씬 좋았을 것, 것을……. 어이 친구….” 블루가 자신에게 친구라는 호칭을 사용했음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받아드렸다. 그리곤 자신의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담담하게 되물었다. “왜 그런가?” “큭큭. 우리를 살리기 위, 위해… 아이린 공작에게 무모하게 다, 달려가는… 자, 자네를 보며 생각한 게 하나 있지…….” “뭔가.” “내, 내가 살아나거든… 자네의 수, 수하로 바, 바, 받아 줄 수 있겠는… 쿨럭! 쿨럭! ……가?” 블루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킥킥. 고맙군. 난 거절 할 줄 알았지……. 피곤하군. 이만 자야겠네. 젠장…….” 니콜라스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그 눈 옆으로 작은 물방울이 또그르르하고 흘러 내렸다. 그 속에 지금까지 삶의 모든 회한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리는 블루. 블루의 시선은 아이린 공작을 찾고 있었다. 그제야 아이린 공작에 맞서서 자신의 앞을 보호하듯 가로 막고 서있는 베르니스와 스콜, 텐시 그리고 클루토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 그럼 4시경에 오늘 6연참의 마지막 연참을 올리도록하겠습니다... 에구 힘들다.. ㅡㅡ;;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205 회] 날 짜 2005-01-06 조회 / 추천 4338 / 138 선작수 5782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8. ……패배하다 그러나 얼마나 두려운지 자신들의 두 다리를 주체 하지 못할 정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것을 본 블루는 아무런 말도하지 않았다. 구차하게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남자는 가슴으로 느끼면 되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바닥에 니콜라스를 내려놓는 블루의 손길. 바로 그때 블루는 니콜라스의 몸에서 미세한 맥을 느낄 수가 있었다. “흠!?” 슬쩍 맥을 짚어보던 블루. 얼굴에 조금씩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좋았어.’ 니콜라스는 아직 죽지 않았던 것이다. 피를 많이 흘려 가사상태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지금 조심만 한다면 살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블루는 자신의 앞을 막고 서있는 베르니스들을 보며 약간 감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니콜라스를 맡겼다. 그리고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최대한 뒤로 빠져 있어라. 도망 칠 수 있으면 있는 능력껏 멀리 도망쳐라.” “블루!” “단체로 자살할 생각이냐!” 블루의 단호한 말투에 텐시가 흐느끼며 가장 먼저 발을 뒤로 뺐다. 그리고 멀리 뛰기 시작했다. 블루는 그들의 기척이 하나 둘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주먹을 다시 한 번 말아 쥐었다. 꾸우우욱. “덤벼라.” “큭큭. 큭큭큭. 큭큭큭큭큭…….” 블루의 한마디가 끝나자마자 순간 아이린 공작이 실 웃음을 흘리더니 결국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 “…….” “하하. …이렇게 웃어 본 것이 얼마만인가. 멋진 신파극이었다. 그 대가로 조용히 보내주마.” 블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치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못 믿겠다는 표정이군.” 그 말과 동시에 기사들이 우르르 달려와 질서정연하게 아이린 공작의 뒤로 정렬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한 청년이 비참한 표정으로 아이린 공작의 앞으로 오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 청년의 눈초리가 블루를 슬쩍 향했다. 그 속에 짙은 살기가 들어차 있음을 블루가 모를 리 없었다. “기사 78명 생존, 궁수대 24명 생존, 마법사 둘은 경상을 약간 입었을 뿐 무사합니다.” “흠, 최악의 보고로군.” “죄송합니다.” 아이린 공작이 슬쩍 고개를 끄덕이자 청년은 자신의 위치를 찾아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아이린 공작의 시선이 다시 마주서서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블루를 향했다. “어떤가. 자네들이 이룬 전과가. …마음에 드는가?” 아이린 공작의 씁쓸한 말을 받은 블루는 이죽거리며 대꾸했다. “훗. 그런 것을 인과응보라고 하지.” “저 자식이!” “뒤로 물러나라.” “크흑!” 청년 기사하나가 발끈하여 몸을 앞으로 슬쩍 드러내자 아이린 공작이 막아섰다. 그리곤 약간의 뜸을 들인 아이린 공작이 블루를 향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자네.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는가.” “…….” “자네가 만약 내 밑으로 들어온다면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겠네. 자네는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해.” 엄청난 발언에 수하들이 웅성였다. “헉!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수하들의 웅성임을 가볍게 무시한 아이린. 조용히 블루의 시선을 바라본다. 그때 슬쩍 입가가 올라간 블루. “훗!” 그것은 두 말이 필요 없는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역시……. 너무나 아쉽군.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 믿었건만…….” “후후, 뭐가 현명한 선택이란 말이지?” “잘 알텐데.” “자네의 밑에 들어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란 말인가?” “부인하지 않겠네.” “큭큭큭. 그럼 이제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한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죽는 건가?” 블루의 의미심장한 말에 아이린 공작이 가만히 주시했다. 그러자 뒤에 정렬해 했던 기사들이 분노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과분한 복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천둥벌거숭이처럼 까불다니. 네 놈이 정녕 죽고 싶단 말이냐!” “시끄럽다.” “아버지!” “어서!” 아이린 공작의 호통에 사내답게 떡 벌어진 어깨에 두꺼운 짙은 검미가 인상적인 커트 형식의 갈색머리를 가진 사내가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분을 참지 못하겠는지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어 뜯고 있었다. 그것을 잠시 보던 블루의 시선이 아이린에게 돌아갔다. “큭큭. 어차피 죽을 목숨 마지막으로 한판 떠야겠지?” “후후, 네가 도망칠 것이라면 벌써 도망쳤겠지. 지금 발이 느린 네 동료들이 피신시키기 위해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은 벌써 눈치차리고 있었네.” 뜨끔. 블루는 정곡을 찌르는 아이린 공작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사실 마음만 먹었다면 벌써 이들이 잡지 못할 정도로 도망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지금이라도 당장 가능했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는 독특한 무술을 익히고 있는 것 같더군. 마스터 급의 능력으로 나와 비등한 싸움 실력을 보일 정도의 무술이라니…….” “헉!” 아이린 공작의 말에 수하들이 자신의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감정이 매말랐다고까지 이야기를 듣는 아이린 공작이 누군가를 칭찬하는 모습을 처음 본데다가 허언을 하지로 않기로 유명한 그가 대놓고 자신과 비등한 싸움을 했다고 했다. 그런 아이린 공작이 저렇게 까지 말했다고 한다면 사실일 것이다. 순간 기사들의 시선이 적대감에서 호기심으로 변해갔다. 역시 검을 든 무인으로서 강한 자에 대한 존중심을 무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선 약속한데로 너희들을 놔주겠다. 뭐, 살아 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은 내가 장담하지 못한다. 나중에 또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군.” “큭큭. 당연히 다시 봐야겠지.” “그래. 그때는 못 다한 승부를 겨뤄보자.” “마지막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군.” 블루가 씹어 뱉듯이 말을 내뱉으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동료들이 뛰어간 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팟! 순식간에 사라진 블루를 보며 모든 기사들이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인간의 속도라고 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끝까지 보던 아이린 공작. 조금 전의 모든 것을 포용하겠다는 표정이 슬쩍 변하더니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그 얼굴 표정에 어울리는 싸늘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모두 죽여라. 한 놈도 빠짐없이. 지금의 일이 흘러나가서는 안 된다.” “…….” 모든 기사들이 아이린 공작의 말이 끝나자마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숨어 있는 용병들을 찾아 사살하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저 자들의 뒤를 쫓아라. 그리고 죽여라. 그러나 돌발 상황에 조심하도록. 저 자도 많이 지쳤으니 너희들 실력으로 충분히 제압이 가능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수하들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아이린 공작이 씹어 뱉듯이 말을 내뱉었다. “개자식. 감히 나의 호의를 무시하다니……. 죽음으로 그 죄를 사하게 해주마. 크큭. 큭큭큭큭큭…….” 혼자 남은 아이린 공작의 주변에 스산한 바람이 일더니 웃음소리와 동시에 강하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잉! ~~~~~~~~~~~~~~~~~~~~~~~~~~ 쓰다보니 마무리로 생각하고 있던 끝 부분이 이제야 끝나게 되었습니다. 조금 늦게 올리게 되었지만, 휴... 분량이 많으니 용서해주실거죠? ㅎㅎㅎ 그럼 내일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이제 삼화 정도만 더 진행되면 3권이 끝나네요 피휴휴휴휴,,,,,(힘들당...)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206 회] 날 짜 2005-01-07 조회 / 추천 486 / 12 선작수 5718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8. ……패배하다 “헉, 헉!” “젠장. 저 자식들은 지치지도 않나?!” 베르니스의 투덜거림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 공작들의 수하가 자신들의 흔적을 따라 뒤쫓아 오고 있음을 느낀 탓이다. 지금은 거리가 조금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언제 잡힐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부상자도 있고, 거기다가 블루의 몸 상태도 그렇게 좋지 못했다. 베르니스들은 조금 전 블루의 각혈을 보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저렇게 웃는 표정을 짓고 자신들을 위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 질 듯 아팠다. 자신들에게 감정이 없다는 표정으로 행동했음에도, 막상 위험한 상황이 닥치자 자신의 두 팔을 걷어붙이고 시간을 벌기 위해 몸을 던지지 않았던가. 그것도 전장의 공포라 칭해지는 무적의 아이린 공작에게 말이다. 그 사람의 마음은 위급 할수록 진실이 드러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블루의 마음은 억지로 점수를 먹여 따진다면 합격이상의 것이었다. 그들이 지쳐서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블루에게 불평없이 달리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니콜라스를 등에 업고 가장 앞서서 달리던 블루가 순간 움찔 거렸다. 그리고는 가볍게 투덜거리며 일행들에게 무거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따라잡혔다.” “흠?!” 스콜이 두리번거리더니 바닥에 귀를 대었다. 기사단의 말발굽 소리가 크게 전달되는 것을 보니 정말 몇 분 가지 못해 따라잡힐 것 같았다. “큰일이군.”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서로의 얼굴을 보며 횡설수설하는 동료들에게 블루가 먼저 몸을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따라와라.” 블루의 몸이 지금까지 도망쳐 왔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더니 그 부근에 있는 숲으로 몸을 숨겼다. 일행들도 블루에게 무슨 생각이 있다고 여기곤 허겁지겁 몸을 숨겼다. 높은 산악지대였기에 나무도 거의 없는 평야나 다름없는 부근이어서 몸을 숨기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물론 블루가 몸을 숨긴 곳도 아슬아슬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블루는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자연지기를 사용할 줄 아는 자신의 능력. 아이린 공작과 싸우며 느낀 것은, 그들에게 내력을 사용하여 운영하는 고급 무술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하다못해 경신법도 없는 듯 했다. 내력이 올라가며 몸이 완벽해지며 자연적으로 강해지며 몸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정도이지, 경신법 같은 무공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동체시력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잡는 것 같았지만, 대응이 아닌 감각에 의해 방어를 했던 점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블루의 의문은 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현경 급의 초 극강의 고수가 경신법도 모른다니 우스울 법도 했지만, 곰곰이 이곳의 삶을 생각해 보니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로 그들의 생활양식 때문인 것 같았다. 중갑을 걸치고 기마 상태에서 전투를 벌이는 그들의 전투 방법은 체계적인 체술을 발전시키기엔 부족함이 없으나, 눈을 현혹시킬 정도의 빠르기를 만들어낼 이유를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갑옷 없이 검 하나만 들고 자신의 몸을 보호해야 하는 중원인들에 비해서 그 다시 위급함을 느끼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웬만한 공격은 갑옷을 믿고 튕겨내면 그만일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나마 아이린 공작이 그래플러였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를 민첩하게 만들 요령으로 체신법을 독창적으로 만들어 내어 자신의 경신법에 반응이라도 한 듯 보였다. 리치가 짧은 자신의 주먹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검을 피해 몸 안으로 파고들어가기 위해 빠른 스피드가 필수요소였기 때문이다. ~~~~~~~~~~~~~~~~~~~~~~~~~~~~~~~~~~~~~~~~~~ 오늘 올리지 못한 이유를 대자면, 몸이 아파서 지금 일어났다고 말씀을 드리는 수 밖에 없겠네요. 개인적인 약속이 있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어디를 다녀왔습니다. 그러다보니 힘든 몸이 조금 악화 되었는지 꼼짝도 못하겠더라구요 ㅡㅡ;; 거의 20시간을 내리자고 지금에 일어났습니다. 거기다가 오늘은 어머니 일을 도와드리러 가야 하는 날이라서 ㅡㅡ;; 황급히 짧게라도 한편을 쓰고 나가려 합니다. 원래는 오늘 3권을 마무리하고 내일 부터 4권에 들어가려 했었는데 ;ㅁ; 흑흑.... 또 글 한편 쓰기 위해 피씨방에 가야 하다니 ;ㅁ; (비축 좀 해 볼까 했는데.. 크흑...) 그럼 다음 편으로 내일 오후 쯤에나 찾아 뵙겠습니다. ps. 드래곤이 약하다, 검황이 약하다 등등의 말들이 많으신데, 대답해 드리면 끝이 없기에, 깔끔하게 검황 3권이 나오면 그때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흐흐흐흐... 드래곤이 용언을 사용못하는 이유. 검황이 검을 들지 않고 높은 수준의 강기도 사용하지 못한 이유. 뭐,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아이린 공작이 더럽게 쌔다로 함축되지만, 이 부분이 많은 설명이 필요하겠지요 ㅡㅡ;;; 의문은 출간본에서 풀어 주시고, 그럼 내일 찾아 뵙겠습니다. 오늘은 무엇보다 연재분이 적어서 엄청 죄송하다는 ;ㅁ; (일일연재를 지키기 위해 이거라도 올린거예염.... ㅡㅡ;;;) 그럼 모두 좋은 주말 되시구~ 빠요~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207 회] 날 짜 2005-01-08 조회 / 추천 800 / 15 선작수 5666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8. ……패배하다 그렇다고 해도 몇 천년간 체술의 부분에만 발전의 발전을 해온 것을 스스로의 몸에 맞게 변형하여 인간의 능력을 거의 최고조로 사용하는 블루를 따라가기엔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다. 블루가 아이린 공작에 비해 한참이나 부족한 상태에서 그와 잠시마나 그럴싸한 대결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스피드 때문이었다. 결국 제 풀에 지친 블루. 그 짧은 틈을 정확하게 집어낸 아이린 공작. 찰나지간에 당한 역습. 그것만 보더라도 그의 신중함과 집요함의 수준을 예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도 그들의 모습은 블루의 불완전한 지금의 몸으로 보더라도 어딘가 어색하게 보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몇 수 위의 상대와 그렇게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니 말이다. 그들은 마나를 중원인들처럼 체계적으로 쌓은 것이 아니라 검을 휘두르며 주먹을 휘두르며 쌓이는 것만으로 경지에 오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곳에 상식이상으로 분포되어 있는 마나. 그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가능하도록 도와 준 것이다. 심법도 없는 마스터의 경지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귀족가에는 자신들의 독특한 수련법과 어색하나마 심법이 존재 하겠지만, 크게 발전된 양상을 찾아보기 어려 울 것 같았다. 아이린 공작은 자연지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블루 자신이 보기에는 분명히 그러했다. 여하튼 자연의 기운을 사용하여 자신의 주변을 은신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블루. 지금의 일행을 충분히 숨길 수 있으리라. 진법을 그리고 싶었지만, 아무리 허술한 진법이라도 1,2분 안에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그만큼 촉박한 상황이었기에 자연지기를 운용할 생각을 한 것이다. 물론 지금 블루의 몸으로 펼친다면 심각한 부작용이 따르겠지만……. 그러나 그들의 가까워진 기척이 블루의 그런 잡념을 떨치게 도와줬다. 정신을 집중하여 자연의 기운을 보듬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 동시에 블루가 숨어 있는 곳이 동조하듯 잔잔하게 흔들리며 숨어 있는 블루와 동료들의 몸을 완전히 가려주었다. 그것을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베르니스들이 순간 고개를 푹 숙였다. 어느 세 이곳까지 온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온 탓이다. “뭐지? 갑자기 그들의 흔적과 기척이 사라졌다.” “흠.” 금발의 사내가 말에서 뛰어 내려 주변을 돌아보는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평야에 숨을 곳이 어디 있다는 거야!” “제길. 놓친 건가.”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급하게 움직이던 그들의 기척을 느꼈는데…….” 검은 머리카락의 사내가 입을 열자 금발의 사내가 의뭉스러운 말투로 되물었다. “안스. 정말 느껴진 거 맞아?” “시끄러. 내가 언제 허튼 소리 하는 거 봤어?!” “제길.” 땅을 걷어차며 분풀이를 하는 금발의 사내. “우선 둘로 나눠서 찾아보고 1시간 안에도 발견하지 못하면 돌아가도록 해야 겠네. 우선 자네들은 저곳으로 가보게. 우리들은 이곳으로 가서 찾아보겠네.” “알겠네.” 안스의 손짓에 두 패로 나뉜 기사단은 그와 동시에 블루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일행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휴…….” “다행이군.”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기 시작한 일행들. 바로 그 순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구구구구구구! “어? 어라?” 거대한 진동음과 동시에 땅이 안으로 갈라지더니 블루와 일행들의 몸을 순식간에 집어 삼킨 것이다. “뭐, 뭐야!” “어떻게 된거야!” 모두의 시선이 블루에게 향했으나, 블루역시 작금의 상황을 설명 할 수 없없다. 자신조차 짐작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으, 으아아아아아!” 그리고 순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입을 다문 대지. 그 위로 조금 전과 같은 평온이 흘렀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새침이라도 떠는 듯 말이다. “으으으…….” “뭐, 뭐야. 여긴…….” 끝없어 보이던 암굴은 그렇게 깊지 않았다. 니콜라스를 등에 업은 블루가 허공에서 중심을 잡고 바닥에 안전히 착지 했다. 그 후로 나머지 동료들이 바닥에 털푸덕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두 괜찮은가?” “젠장. 블루 대장 눈에는 괜찮아 보이우!” 베르니스가 투덜거리는 것을 보며 블루가 피식 웃었다.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블루를 뺀 일행들 모두가 바닥에 나자빠졌지만, 하나같이 약간의 타박상만 입었을 뿐 큰 상처를 입진 않았다. 은은한 빛이 품어지는 동굴이다. 시력을 돋아서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기력이 빠진 블루의 시선은 주변을 정확하게 식별하기 힘들었다. 조금 전 무리하게 운용한 자연지기 탓이었다. ‘윽! 젠장. 심 맥이 약간 뒤틀렸군.’ 바로 그때 클루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이팅!” 그와 동시에 횃불 정도의 빛이 일렁이며 일행의 머리위로 떠올랐다. 잠시 눈이 부셨지만, 곧 그 빛에 익숙해 졌다. 그리 강한 빛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주변 사물이 일행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하나 자신의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텐시의 목소리가 갈라지며 공포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 설마!” ~~~~~~~~~~~~~~~~~~~~~~~~~~~~~~~~~~~~~~~~~~~~~~~ 흠.. 피곤하네요.... 일하다 말고 피씨방에 와서 겨우 한편을 써서 올립니다.... 정말 이게 뭐하는 짓인지 ㅡㅡ;; 몸이 조금 많이 쑤시고 눈이 피로해서 사실 문장도 문맥도 정리가 안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손을 쓸수가 없네요.. 정리하고 싶어서 몇번 훝어 보았지만, 머리가 아파서.. ㅡㅡ;; 죄송.. 많은 수정이 필요한 3권이 되겠네요.. 쿨럭.. 에구.. 그래도 계속 꾸준히 글쓰는 글쟁이가 되겠습니다. 그런 각오를 보여주기 위해 피씨방에 와서까지 글을 써서 올리는 것이니 분량이 적다고 욕하지 말아주셈 ;ㅁ; 선작 취소는 가슴이 찢어진답니다. ;ㅁ; 여하튼 다음화가 3권 마지막이 될 것 같네요. 월요일 부터 4권 연재를 시작하겠습니다. 다음 글은 내일 오후에 찾아 뵙겠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제 목: 검황 이계정벌하다 <[한가]> 1월13일 출간!! [208 회] 날 짜 2005-01-11 조회 / 추천 2171 / 74 선작수 5566 공지 흠.. 우기시는 몇 분을 위한 공지 입니다. 2004-12-01 more... 옵 션 글자 크기 8 9 10 11 12 13 14 15 <<< 이전 8. ……패배하다 산과 같이 쌓여있는 금은보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누구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보물들이 뜻하는 바가 어떤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드래곤 래어. 자신들이 어떻게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바로 자신들의 무덤이 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죽게 될지는 아직 감도 잡히지 않지만……. 그때 자신들의 귓가에 블루의 감탄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호. 이건…….” 스르릉. 매끄러운 검명. 모두의 시선이 블루의 목소리를 찾아 획! 하고 돌아갔다. 두두둑! 목뼈 나가는 듯 한 소음이 들렸다. 경악어린 표정을 하고 있는 일행들의 눈빛. 목뼈가 어긋나며 생긴 통증을 느끼기에는 블루의 상식을 초월한 행동에 일어난 공포감이 더욱 거대하게 느껴졌다. 자신들은 이렇게 긴장하여 숨도 못쉬고 있는 와중에 니콜라스는 한눈에 봐도 포근해 보이는 침상위에 뉘이고 블루 자신은 홀가분한 몸짓으로 무기가 나열 되어 있는 곳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이었다. 블루의 반짝이는 눈빛은 생일 선물 기다리는 아이의 눈처럼 초롱초롱 빛을 품으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검을 하나씩 들어서 바라보던 블루. 하지만, 곧 시들해진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분명 명검이라 칭 할 수 있는 것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루의 마음을 충족시켜주진 못했다. 그때 구석에 놓인 아무런 장식 없는 검에 시선이 쏠렸다.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그 검을 움켜잡은 블루. 어째서일까? 검의 손잡이를 쥠과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이 가슴에서 일어났다. “무용(無用)?” 자신이 중원을 누비며 사용하던 검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러보았다. 그것은 약 70여 년 전 혈교의 십대 장로와 싸우는 와중에 부러진 자신의 애검의 이름이기도 했다. “서, 설마!” 검신을 한 번에 뽑아서 검의 선을 바라보았다. “이, 이럴 수가!” 자신의 애검이었던 무용. 바로 그것이 아닌가! 혈교와 십대장로와의 혈투에서 무용을 잃은 검황은 그 후로 검에 손을 대지 않았었다. 그것이 자신과 평생을 지내줬던 검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 것이다. 이미 마음에 들어서 있는 검의 형상은 무용 그 자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정도로 자신의 검에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던 검황. 어찌하여 자신이 검에 욕심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자신에게 이미 검은 필요가 없었다. 마음이 검이었고, 검이 마음인 경지를 뛰어 넘어, 검황 자신이 들고 다녔던 검의 이름과 같은 무용(無用)의 경지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이 검이 되는 경지. 하다못해 하늘에 떠도는 무형의 공기조차 검황에게는 검이 되어줬다. 그러나 그것은 옛날이야기. 지금은 자신의 검이 절실히 필요했다. 마음에 검이 있어도 그 검을 꺼내어 사용하지 못하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공교롭게도 자신의 사라진 애검이 나타났다? 의문 속에서 서서히 냉정을 찾아가는 눈빛. 곧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은 무용이 아닌 다른 검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약간 실망으로 물들었지만, 그것은 과거와의 연관성에서의 감상적인 면이고 검의 효용성은 만족이상이었다. 과거의 무용보다 지금 들고 있는 검이 더욱 뛰어났던 것이다. 완벽하게 잡혀 있는 무게의 중심. 날렵하게 뻗어있는 검날. 그리고 시원한 검명. 팅! 손톱으로 검신을 튕기자 검이 시원하게 외쳤다. ‘당신이 나의 주인이신가요?’ 라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그립을 움켜쥐는 순간 지금까지 잠시간 잊고 있었던 그것이 되살아났다. 처음 검을 쥐고 최고의 무사를 꿈꾸던 그때. 순수했던 감정이 말이다. 그 순간. 쾅! 뭔가 부딪히는 듯한 거대한 굉음이 울리더니 벽이 허물어졌다. 우르르르르……. “뭐, 뭐야!” 벽이 무너지며 흙먼지가 일었지만,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마치 공기가 불순물들을 걸러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을 본 텐시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되뇌었다. “우리가 환풍구 같은 곳에 빠져 이곳에 들어왔단 말인가?” 먼지가 사라진 벽면에는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 “드, 드래곤…….” 모두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예상하는 것과 진실을 목격하는 것은 큰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블루조차 검의 그립을 힘껏 움켜쥐며 긴장을 할 정도였다. -인간들이군……. 이곳에 어떻게 들어온 거냐?! 조금 전 아이린 공작을 피해 달아났던 레드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빛은 광폭에 가까운 빛을 뿌리고 있었다. “저, 저희들은……. 꿀꺽!” 베르니스가 용기를 내어 말을 내뱉어 보았지만, 입안에서 맴돌 뿐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고동소리가 요란하게 귓가를 울렸다. 마치 터질 것 같다.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크크크크. 어찌 되었든 좋다. 네 녀석들이 죽는 것은 변함없으니까. 바로 그때 블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혜도 모르는 도마뱀 녀석.” -뭐, 뭣이라! 드래곤이 눈을 부릅뜨며 블루를 흘겨보았다. 그러나 블루는 드래곤의 눈빛을 가볍게 받아서 흘려보냈다. 드래곤의 눈빛에 이체가 흘렀다. -네 녀석이로군. 내가 도망치도록 도움을 준 녀석이. “큭큭.” -하지만, 네놈도 인간이다. “무슨 말뜻인 줄 알 것 같군.” 블루가 전투를 앞둔 기사의 모습처럼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며 드래곤을 노려보았다. 드래곤이 목을 울리더니 한마디 더 던졌다. -네 녀석들이 고맙긴하지만, 같은 인간일 뿐. 나에게는 모두 같은 기생충으로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네 녀석들은 특별히 고통 없이 죽여주마. “그 배려 고맙지만 별로 받고 싶지 않군.” 그 말을 내뱉으며 무용과 닮은 검을 자신있게 치켜든 블루. 그와 동시에 드래곤의 눈빛이 놀람으로 물들어 갔다. -허, 헉! 그 그것은! 드래곤의 시선이 검에 쏠리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 -네, 네 녀석은 그것을 만지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냐! “무슨 말이냐.” -서, 설마 네 녀석이! 크와아아앙! 우웅! 블루들이 들어와 있는 동굴 안은 드래곤이 운신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투를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넓었다. 아마 산 바로 아래가 드래곤의 래어 그 자체인 것 같았다. 동굴이 무너지는 듯 한 굉음이 울리자 베르니스들은 모두 주저앉았다. 동시에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은 드래곤이 이를 들이민 체 블루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블루가 지친 몸을 한번 슬쩍 운기함과 동시에 다리에 내력을 모아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마치 드래곤의 공격권을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블루가 도망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표정의 드래곤. 자신의 거대한 앞발을 치켜들더니 섬광과 같은 속도로 휘두르며 외쳤다. -죽어라! “훗!” 하지만, 허공에 몸을 띄고 있던 블루. 가벼운 비웃음과 동시에 몸을 허공에서 틀며 드래곤의 선방을 피했다. 마치 예견이라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한 몸짓이다. 곧, 오러 블레이드를 머금은 검을 치켜들곤 드래곤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죽는 것은 네가 될 것이다!” 블루가 입가를 이죽이며 미소를 머금기 시작했다. -3권 종- ~~~~~~~~~~~~~~~~~~~~~~~~~~~~~~~~~~~~~~~~~~~~~~~~~~~~ 책이 나왔습니다. 아마 내일이나 배본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ㅁ; 3권 마지막부분이 약간 엉성하게 끝을 맺었는데, 지금 부터 수정작업에 들어 갑니다. 수정의 중심은 엉성한 부분을 모두 매꾸는 작업이 될 것 같네요 ㅡㅡ;;;(땀땀) 3권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기에 4권은 금요일부터 연재에 들어 갈까 합니다. 금토일은 어머니 일을 도와줘야 하기에 연재하기 힘들겠지만, 우선 조금씩 올리며 약간 몸을 보할 생각입니다. 본격적인 연재는 월요일부터가 될 것 같습니다. 요즘 어머니 일을 돕느라 글을 쓰느라 하다보니 몸이 많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권은 이달 27일을 마감날자로 잡고 있기때문에, 아마 광참이 이뤄질 것 같습니다. 이번달 말에 5권 초입을 쓰려하다보니 ㅎㅎㅎ;; 출간소설보다 한권을 먼저 연재하는 턴을 가질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3권이 나오면 4권을 삭제하고 5권을 연재하는 방식의 턴을 말이죠. 흠... 그럼 모두 감사드리구요. 금요일에 다음화로 찾아 뵙겠습니다. 뭐, 원고 수정이 빨리 끝나면 내일도 올릴수 있습니다.(사실 약속이 많아서 힘들겠지만...) 그럼 정말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아~ 너무 행복해서 ;ㅁ; 좋은 하루 되시구요. ^^ 전 이만..... ps. 연재는 계속 됩니다~ 쭈욱~ 제 1장 마검 아스타로트와 싸우다 부우웅! 바람을 가르는 거대한 중량감. 묵직한 그 소음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거기다 드래곤의 앞발이 그리는 궤적이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변화무쌍한 것이었다. “크훗!” 팡! 기공파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블루의 옷이 터져나갔다. 드래곤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 천근의 무게감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등줄기로 흐르는 식은땀이 서늘한 느낌으로 정신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젠장, 자칫하면 이대로 골로 가겠군.’ 육중한 드래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섬세한 움직임이라니! 그것은 차라리 예술이었다. 거기다 급격히 방향을 전환시키며 허를 찌르는 눈부신 공격! 그것이 가능한 것은 한계를 모르는 무지막지한 근력 때문이었음에도 그런 근력조차 아름답게 느껴졌다. -쥐새끼 같은 인간 녀석! “미친 도마뱀 새끼!” 진심에서 물씬 우러나는 친근한 대화(?)가 이어졌다. 온화한 말투, 그러나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살벌한 대화는 급기야 눈에 불을 켠 드래곤의 일갈로 이어졌다. -끄아악, 제발 한 대만 맞아라! “아니 그냥 네가 죽어라!” 드래곤의 전신에 꽤 많은 생채기를 선사했음에도 금세 씻은 듯이 아물고 마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블루는 차츰 짜증이 솟구쳤다. 본디 오러 블레이드에 생긴 검상은 쉽게 낫지 않는다. 아무는 것 역시 매한가지. 그런데 역시 드래곤이었다. 이제껏 만난 그 어떤 괴물보다도 대단했다. 드래곤 킬러한테 당한 상처까지도 말끔히 완치되어버렸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 블루로서는 자못 궁금했지만, 분노는 그 궁금증을 압도해버렸다. ‘정말 미칠 것 같군, 헉헉!’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머지 않아 자신의 마지막을 볼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민첩함만 믿고 상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저렇듯 무지막지한 괴물한테는 더욱. 만약에 드래곤이 분노해서 마구잡이로 공격해오지 않았다면 빈틈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제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무슨 수를 내지 않으면 끝장이다! 어떻게든 허점을 만들고 일격필살로 결판 짓지 않으면 승산이 없었다. 블루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꼬나 쥔 무용과 닮은 검을 내려다보았다. ‘제발 부탁한다!’ 검 손잡이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느끼려는 것일까?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좋아.......’ 서서히 아귀에 힘을 가했다. 손에 착 달라붙는 듯한 그 느낌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흡사 팔의 일부처럼 느껴진 지경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태에서 무리하게 무형의 기운을 끌어들인다면?’ 문득 한숨이 흘러나왔다.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망가진 몸으로는...... 단 일격으로 끝낼 게 아니라면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나을지 몰랐다. 자칫하면 주화입마에 빠져 황천길로 직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 블루는 놈의 허점이 드러나는 순간, 놈의 몸뚱이에 무형의 기운을 박아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동귀어진(同歸御眞)! 그것마저도 놈이 허점을 보였을 때만 가능한데, 전혀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블루는 한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줄기차게 이어지는 드래곤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계속 틈을 엿보았으나 끝내 허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놈이 너무 영리한 탓이다. 그토록 분노했음에도 결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읽고 있는 듯이 보이는 광포한 드래곤의 눈동자. 블루의 망설임을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정녕 그 수밖에 없는 것인가?’ 블루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곧장 몸을 날렸다. 두 번 생각하면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알 수 없는 감정. 바로 공포심이었다. 그러한 믿기 힘든 감정을 부인하기 위해서인 듯 블루의 검이 날을 번뜩였다. -크오오! 드래곤이 괴성을 지르며 공격을 퍼부었다. 블루는 드래곤의 공격을 가볍게 피함과 동시에 검에다 내력을 쏟아 부었다. 우웅 검이 울었다. 그와 함께 푸르스름한 기운을 머금었다. 그리고 뱀의 혓바닥처럼 요사스럽게 꿈틀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드래곤이 주춤거렸다. 제아무리 드래곤이라 하여도 검기에 당한 상처를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실로 그 고통은 끔찍스러운 것이었다. ‘드디어 통했다!’ 블루는 드래곤이 멈칫하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과감히 검로의 틀을 깨고 방어를 배제한 육탄돌격을 감행했다. 파팟! 동귀어진 노림수로, 거기엔 크게 한 방을 노리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뭐, 뭐냐? 블루의 돌발적인 공격에 터져 나온 드래곤의 당혹스러운 외침! 그때 드래곤 품 안으로 파고 들어간 블루는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카각! 들고 있던 검을 두터운 비늘로 뒤덮인 가슴에 틀어박았다. 푸르스름한 오러 블레이드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칼날이 드래곤의 두꺼운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푸욱! -꾸오오! 끔찍한 드래곤의 비명소리가 동굴 안을 가득 메웠다. 마나가 실려있는 그 외침. 바로 드래곤 피어였다. “크헉!” “아악!” 몸을 움츠린 채 구석에 숨어서 그들 전투를 지켜보던 베르니스들은 엄청난 굉음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블루는 입가에 이죽거리는 듯한 미소를 매단 채 고통에 몸부림치는 드래곤의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멈칫함과 동시에 표정이 싸늘히 굳어버렸다. 머리 위에서 터지는 강렬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블루는 재빨리 몸을 뒤로 피했다. 파앗! 후웅!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드래곤의 오른팔에서 뿜어지는 거대한 광체! 그것은 오러의 빛이었다. “제길!” 녀석의 두터운 팔에 머금어진 마나가 블루의 천령개를 노리고 매섭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허탈하게 허공만 갈랐다. 그렇다고 피해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콰광! 바닥이 움푹 파이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돌가루와 흙먼지가 품어지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블루는 멀찌감치 떨어져 상황을 주시했다. 비록 먼지로 가득한 동공 속이었지만, 블루 정도의 고수 에게 큰 시야 장해를 가져오진 못했다. 한참동안 짙은 먼 지속을 주시하던 블루.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목숨까지 걸었던 최후의 일격이 저 도마뱀한테 아무 타격도 입히지 못했단 말인가? 최악이군.’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기운을 무리하게 끌어올린 탓인지 근육이 너덜거리는 느낌이다. 손이 떨렸다. 자꾸 무릎이 꺾였다. 이때 드래곤이 공격해오면 피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무슨 일일까? 드래곤은 반격해오지 않았다. 드래곤이 미동조차 하지 않는 가운데 시간이 흘러갔다. 침묵이 길게만 느껴졌다. 블루는 궁금했다. 그는 지쳤다고 하지만 드래곤은 왜....... ‘설마!’ 퍼뜩 스치는 것이 있었다. 씩 블루의 입술 끝이 비틀리며 가볍게 말려 올라갔다. 그것은 회심의 미소였다. ‘검기에 장기가 뒤흔들린 게 분명해. 하긴 그러고도 멀쩡하다면 신일 터.’ 그 예상은 정확했다. 검을 꽂자마자 그는 무리하게 자연지기를 끌어올렸다. 그 기운을 이용하여 강기를 방출해 드래곤의 속을 진탕시키고자 한 작전이 적중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직 살아 있다니! 놀라운 뿐이다. 푸른빛이 감도는 피부, 호흡에 따라 들썩거리는 비늘들이 물결치는 파도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숨결 속에 맺힌 대자연의 기운! 그것이 블루에게는 또렷이 느껴졌다. 그래서 드래곤의 작은 움직임들까지도 큰 위압감이 되어 돌아왔다. 그때 들리는 분노한 드래곤의 음성. -쥐새끼 같은 노옴! “저 미친 놈의 도마뱀 새끼가!” 블루도 지지 않고 악을 썼다. 동시에 그는 드래곤의 음성에서 떨림을 감지했다. ‘저놈도 지쳤구나!’ 블루의 입가에 미소가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차츰 그 미소가 짙어져갔으나 그뿐이었다. 몸을 움직여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으나 끝내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전신이 탈진된 탓이리라. 그리고 그 때 드래곤 주변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강맹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블루는 주변으로 달갑지 않은 기운이 몰려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 화염구 열두 개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우우우웅! 거대한 하울링에 블루는 인상을 구겼다. ‘아차차!’ 너무 많은 시간을 준 것이 실수였다. 미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화염구들. 지금이 아니면 늦다! 그가 황급히 몸을 날리려는 찰라 드래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쿠하하하! 좋다. 이 헬파이어의 지옥에서 살아남으면 네놈을 인정해주마! 드래곤이 광오한 눈빛으로 말을 마치자 허공에서 빛을 발했다. 그리고 화염구 크기가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크게 부풀어 올랐다. 화르륵! 엄청난 열기를 느끼며 블루는 몸을 움츠렸다. 솔직히 그 열기만으로도 블루를 압박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저 지옥의 불길을 감당하기 벅찼다. 이미 지친 탓이다. 블루는 벌게진 얼굴로 주변을 슬쩍 돌아보았다. 드래곤 레어의 구석진 곳에 쓰러져 있는 일행들이 눈에 들어왔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위험하다!’ 그러나 마음만 급했다. 뾰족한 수단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화염구만 빠르게 몸집을 불려가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하는 수 없이 블루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 즉시 블루는 생명의 기운을 단전으로 끌어들였다. 단전을 순식간에 그 기운으로 가득 찼다. “으으!” 엄청난 고통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 화염구의 포위망을 벗어나 기필코 드래곤에게 마지막 일격을 먹여야만 하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하나 정도는 막아낼 수 있겠지. 그래, 죽기를 각오하고 빠져나가서 마지막 일격을......응?’ 블루의 생각을 거기서 끊겼다. 불길 탓이다. 열기가 생각보다 강렬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금껏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동안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다. 블루는 그러한 자신의 삶에 자긍심을 느꼈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저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라면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괴물이라도 쉽지 않으리라. 저처럼 대단한 양강지기를, 그것도 한꺼번에 열두 개나 운용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블루의 고개가 크게 도리질 쳤다. ‘분명 어딘가 허점이 있다.’ 블루의 예상은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평소라면 드래곤에게서 허점을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지금은 상당히 지쳐 있는 상황. 특히나 헬파이어는 고급기술이다. 결국 몸을 지탱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부족한 마나를 억지로 끌어다 쓴 셈이다. 당연히 힘겨운 상황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은 이미 블루의 공격에 걸레가 되어 있는 상황이 아닌가. 용언 마법이 아니라 주문을 외워가며 마법을 시전한 것이 바로 그가 지쳤다는 증거였다. 결국 드래곤으로서도 마지막 도박일 수 밖에 없었다. -죽어라! 드래곤의 이를 악문 듯한 외마디 외침. 동시에 블루를 향해 거대한 불길이 쏟아졌다. 단단히 버티고 선 블루가 검을 치켜세웠다. 순간, 푸른 검광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 반격을 위한 최후의 초식이었다. 그것을 위해 내력을 쥐어짜는 바람에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 수반되었다. “크윽!” 블루는 신음을 흘리며 전신의 진기를 모아 맨 먼저 날아드는 헬파이어를 향해 힘껏 검을 휘둘렀다. 퍼억! 충돌의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커헉!” 그는 검붉은 피를 게웠다.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미처 상상도 못했다. 모든 전력을 소진해 겨우 하나를, 그것도 가까스로 막아낼 정도라니! 그것을 막고 반격까지 염두에 두었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이것으로 끝인가?’ 왠지 허무했다. 하지만 어차피 적자생존이다. 강자만이 살아남을 뿐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계속해 날아드는 열한 개의 헬파이어를 막아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옛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찰나! 손끝에서 청량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을 빠르게 전신으로 파고들어 손상된 심맥을 어루만져주기 시작했다. 뿐이랴. 한 호흡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전신에 진기가 가득 들어차는 것이었다. ‘뭐, 뭐지?’ 블루는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손끝에서 일어나는 이질적인 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치 춤이라도 추듯 갑자기 몸이 흔들리더니, 급기야 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검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블루는 자신이 검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검이 그의 몸을 빌려 쓰는 듯한, 기묘한 이질감에 치를 떨었다. 말 그대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갑자기 검에서 다섯 자를 웃도는 검기가 솟구친 것이다. “허걱!”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지금 자연지기를 극성으로 이끌어내 강기로 만든다면...... 모르긴 몰라도 한 자도 버거울 것이다. 그런데 다섯 자라니! 그것은 화경의 최고수가 경력을 쏟아 부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다. 청청 간단히 터져버리는 헬파이어! 그랬다. 터무니없이 강한 힘 앞에서 헬파이어는 간단히 소멸되어버렸다. 드래곤의 거대한 눈이 찢어질 듯 벌어진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경악에 가까운 목소리가 뒤따랐다. -보,봉인이 풀린 것인가! ‘봉인?’ 블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막아야해! 기필코 막아야해. 죽어, 죽어라. 이 미꾸라지 같은 새꺄! 제발 죽어라, 죽어, 죽어! 고오오오오! 다시금 쏘아진 헬파이어. 이번엔 더 많았다. 나중에 생겨난 것까지 대략 이십여 개가 그물망처럼 촘촘히 날아들었다. 하지만 블루의 대응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깃털 같은 손놀림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헬파이어가 검끝에 닿는 족족 거짓말처럼 튕겨나갔고 더러는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다. 그때 발생한 엄청난 충격파와 대단한 열기! 퍼펑!콰과과광! 그마저 블루의 검막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텅 빈 내력이 순식간에 들어찬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검이 사람을 조종한 것은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괴사는 오랜 무림의 역사를 통틀어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게다가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불변의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할 터. 하지만 검에서 생성되는 무한대의 기운. 참으로 매력적인 것이었다. 블루는 잠시 미간을 좁히며 갈등했다. 이윽고 그는 힘으로 검을 장악해보고자 했다. 그가 누군가? 검황이다. 결코 신외지물 따위에게 휘둘릴 만큼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하지만 그는 지금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힘들다!’ 블루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주인의 자리를 위협하는 검과 맞서 싸웠다. 그 와중에도 검을 휘둘러 드래곤의 공격 마법을 무력화시켜 나갔음은 물론이다. 그러면서 그는 어쩌면 드래곤보다 검이 더 강적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뭔가 있었다. 그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검 안에 내재되어 있음이 분명했다. 대체 그것이 뭘까? 일단 확실한 것이 하나 있었다. 상상조차 힘든 거대한 공포가 그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 점차 의문의 골이 깊어지려는 찰나, 드래곤의 침음성이 들려왔다. -으으윽, 그놈의 괴물이 눈을 뜨게 될 줄이야! 블루가 검을 휘두르며 물었다. “괴물? 그게 무슨 소리지?” -응? 블루의 검을 힘겹게 방어해낸 드래곤의 입에서 기묘한 외마디가 흘러나왔다. -아니 아직까지......아직까지 멀쩡한 거냐? “보고도 몰라?” 블루가 검을 휘두르며 가볍게 응수했다. -애송이가 제법이구나. 아직도 이성을 잠식당하지 않았다니! “이성을 잠식당한다고?” -그렇다. 몸을 비틀어 블루의 검을 피한 드래곤이 말했다. -그러니 이성이 붙어 있을 때 어서 그 검을 내려놓아라! “무슨 개소리냐?” 생뚱맞은 드래곤의 요구에 블루는 일갈을 내질렀다. 드래곤이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그것은 마물이다. 악마의 저주...... 크흑! 서걱! 날카로운 검기가 드래곤 왼쪽 다리의 두꺼운 비늘을 종잇장처럼 벴다. -크흑! 드래곤이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그 검속에 마물이 있다. 놈은 검을 든 주인, 아니 숙주를 완벽하게 마신으로 둔갑시킨다. 그리고 쾌감을 위해, 숙주가 지쳐 죽든지 말든지 끊임없는 살생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워나가는 것이다. 빨리 그 검을 이리 던져라. “개소리!”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힘들어질 뿐이다. 피를 흡수할수록 힘이 강해지기 때문이지. 피를 더 많이 흡수하기 위해 놈은 숙주에게 끊임없이 힘을 준다. 지치지 않는 강한 힘을 준다. “듣기 싫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뭔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의 몸속을 헤집고 다니는 이 청량한 기운! 블루는 드래곤의 광기 어린 눈동자를 주시했다. -그 마물의 이름은 아스타로트. 힘의 매력에 빠져 아름다운 여신에서 괴물로 변신한 악마의 이름을 본뜬 것이지. 미의 여신에서 추악한 괴물로 변한 아스타로트! 검이 주는 청량한 기운은 곧 짙은 마기로 변해 네 몸을 흡수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혈겁이 시작될 터. “.......” -솔직히 말하겠다. 그것은 신의 힘을 지닌 우리 드래곤까지 능가한다. 더욱 무서운 점은 드래곤의 힘마저 흡수해 자신의 능력을 키운다는......크흑! 블루의 검이 드래곤 오른쪽 어깨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아스타로트! 블루는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검이 소리를 내며 피를 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물을 마실 때 목젖이 움직이듯 꿈틀거리는 간지러운 느낌이 손끝을 자극했다. 그리고 웃음소리. [키하하학!] ‘흐읏!’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해할 수 없지만 블루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아니, 그랬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으로 검이 소름끼칠 만큼 음충맞은 요물임이 확실해진 느낌이었다. 드래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확실할 수 있었다. 그러나 블루는 검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때 드래곤이 팔을 크게 휘둘러 블루는 내리치려고 했다. 그 순간 이게 웬일인가. “헛!” 검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응수해나가는 것이었다. 블루는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검이 부르르 떠는데 마치 그를 향해 씨익 웃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검을 던져버리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크흑, 저 망할 놈의 검! 드래곤이 크게 으르렁거렸다. 찰나의 순간에 상당량의 피를 빼앗기고 만 것이다. -시간이 없다. 이성이 아직도 남아 있거든 어서 검을 버려! 쿠오오오! 드래곤 피어가 뿜어졌다. 블루는 결심을 굳히고 재빨리 검을 버렸다. 그러나 아뿔싸! “아, 안 떨어진다!” 검을 쥔 손가락들이 펴지지 않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몸을 휩싸고 도는 청량감 속에서 이질적인 기운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서,설마!’ 손끝에서부터 시작해 팔꿈치를 경유해 어느새 척추로 접어들고 있는 그 기운은, 서서히 중추신경을 타고 뇌천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헉!” 블루는 난생 처음으로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느꼈다. 지금 알 수 없는 그 어떤 존재가 그를 장악하려고 하고 있음이었다. 자신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낯선 기운이 중추신경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일단 청량한 기운을 주입시킨 다음, 숙주가 안심할 때 낯선 기운을 심어 넣는 식이었다. 결국 청량한 기운의 주된 역할은 이질적인 기운이 활동할 수 있게 포석을 까는 것일 터. 녀석은 상상 이상으로 치밀했다. ‘이 지랄 같은 검한테 놀아날 줄이야!’ 블루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분노했다. 이 지격이 되도록 눈치 채지 못한 것은 그만큼 그의 심기가 크게 흔들렸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평상시라면 단박에 알아차렸을 테지만, 지금은 너무 늦었다. 그 기운이 꿈틀거리며 움직일 때마다 팔다리 옥죄어드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고, 동시에 마비가 왔다. 물론 그가 검의 기운과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검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드래곤의 피를 노리고 있음이었다. 서걱! -쿠오오오오! 아스타로트의 날카로운 검날을 피하던 도중 드래곤은 그만 다리가 잘리고 말았다. 쿵! 굉음과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드래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잘린 단면에서 전혀 피를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검날에 묻은 핏물이 스미듯 흡수되는 것이었다. 녀석이 다시 웃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블루의 전신에 다시 소름이 돋을 때, 푸확! 뒤늦게 절단면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이로써 아스타로트가 드래곤 다리를 자르면서 피를 듬뿍 흡수했음을 알 수 있었다. 피가 뒤늦게 품어질 정도로 지독하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팔을 자르자!’ 바로 그때 검의 반짝거림과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전신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악!” 마물이 그의 생각을 읽은 것이다. 통증은 실로 엄청났다. 블루의 머릿속에서 모든 생각이 증발되어버렸다. 그리고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러자 마검은 블루의 몸을 장악한 다음 쓰러진 드래곤을 향해 나아갔다. -안 돼! 드래곤이 마법으로 블루의 신형을 멈춰 세우려 했다. 그러나 마검음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비웃기라도 하듯 더 빠르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파바밧! 순식간에 사라진 블루의 신형. 그리고 다시 블루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드래곤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목을 향해 내려오는 한 줄기 몽롱한 빛을! 그것은 차라리 매혹적이기까지 했다. 죽음 직전에 정신을 차린 드래곤은 눈을 치켜떴다. -헉, 믿을 수 없다! 끄아악! 서걱! 그의 비명은 그렇게 허공에 흩어졌다. 아직 동굴 안에 비명이 남아 있음에도 드래곤 목은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듯 생뚱한 모습으로 땅에 떨어졌다. 신의 능력을 지닌 존재 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최후가 아닐 수 없었다. 그처럼 어처구니없는 최후를 맞게 되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블루는 드래곤의 목에 마검을 틀어박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로, 고개를 깊게 떨구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도 줄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꿀꺽꿀꺽 마검 아스타로트는 드래곤의 뜨거운 피를 하염없이 빨아들였다. 그때마다 흡사 맥박이 뛰듯 출렁거렸다. 그렇듯 피를 빨아들이며 검이 꿈틀거린 탓일까? 블루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런데도 아스타로트는 피를 마시느라 정신이 없었다. 모르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블루가 정신을 차린다 해도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방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드래곤의 피 속에 담긴 기운 탓일까? 아니면 단지 착각일까? 신경을 타고 올라와 뇌관을 향해 치닫는 기운이 한층 빨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거대한 뱀이 등줄기를 타고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블루는 꾹 참았다. 아니, 참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마검이 그의 생각까지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본능으로, 온몸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잠자코 때를 기다렸다. 몰아지경의 상태에서 그는 끈기있게 기다렸다. 이윽고 아스타로트의 기운이 모든 경락을 경위해 뇌관에 막 도착했다. 그리고 뇌관을 두드리기 위함인지 잠시 주춤하는 듯 싶더니, 갑자기 빠르게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슈우웃! 그때였다. 번쩍! 흐리멍텅하던 블루의 눈에서 강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아스타로트는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또한 깨달았다. 이미 블루라는 인간의 심신을 확고히 장악했다고 굳게 믿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조차 깜빡 속아 넘어갈 만큼 깊은 심계라니! 실책이 뼈아팠다. 성급하게 판단하고 방심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에 화가 났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 마검인 자신이 어찌하여 이런 실책을 범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그가 만난 존재들은 하나같이 전의를 상실하는 순간,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에게 넘어왔다. 당연히 이놈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아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전혀 다른 종족같았다. 자연스레 드래곤이나 하이엘프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다. 보통은 이렇듯 까다롭지 않았다. 일찌감치 이성을 잠식하고 몸을 차지했을 것이다. 비록 이번 숙주한테 자신의 사념이 더디게 전달되었지만,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드래곤이라는 음식 앞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뒤늦게 후회하면서 그는 확실히 깨달았다. 이번에 그가 숙주로 택한 이 인간은 아주 특별하다! 위기감을 느낀 찰나의 순간 일사천리로 머릿속을 정리한 마검 아스타로트. 그는 황급히 기운을 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쏘아진 사념 덩어리를 어쩔 수는 없었다. 이미 이성을 잠식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뇌관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쾅! 블루는 머릿속에서 전해지는 거대한 울림을 느꼈다. 그것은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강한 울립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끝장이다. 더 이상 그의 세상은 없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그 기운을 나름대로 분석해본 바, 놈은 뱀의 형상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결국 이 말은, 그가 느끼는 낯선 기운을 조종하는 것이 뇌관을 치려는 대가리일 공산이 컸다. 그렇다면 해법은 간단했다. 대가리를 잘라버리는 것. 그럼 그 머리를 장악할 수 있게 되고, 그가 지닌 기운들을 모두 흡수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과연 누가 먼저 상대를 잠식할 것인가? 관건을 의지력. 어느 쪽이 보다 강한 의지력을 지녔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것이다. 물론 피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한판승부였다. 블루는 곧장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한편 블루의 생각을 읽은 아스타로트는 고민에 휩싸였다. 능히 드래곤을 제압할 힘이 있으면서도, 그가 굳이 인간만 고집해온 것은 그들이 손쉬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랬다. 인간은 대부분 욕망이 의지보다 강했고, 욕망을 부추겨 이성을 제압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쉬웠다. 반면에 그를 능가하는 강한 정신력을 지닌 드래곤은 여간 까다롭지가 않았다. 도리어 잡아먹히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설마 그가 뇌관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 슬며시 문을 열어 받아들이는 척하다 고개를 들이미는 즉시 사념의 머리를 잘라버릴 정도의 능력을 소유한 인간이 존재할 줄이야! 그 말은 스스로 의기(意氣)를 조절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정신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과 동일했다. 어쨌거나 블루의 꾀임에 빠져 사념의 머리를 읽어버린 마검 아스타로트는, 예상치 못한 상황전개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드래곤도 아닌 숙주로 택한 일개 인간에게 잡히다니! 이럴 수는 없었다. 아니, 이건 아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속에서 사념의 의식 한자리에 불안감이라는 녀석이 싹트기 시작했다. 대가리가 잘린 사념이 발버둥치며 블루의 몸 속을 마구 흔들며 발광했다. “크윽!” 블루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전신의 혈도가 마구 꼬이며 뒤틀리고, 팽팽하게 당겨지고 끝내 터질 것만 같았다. 참혹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블루는 간신히 입술을 달싹거렸다.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시무시일석삼극무 진본천일일지일이인 일삼일적십거무궤화 정화의 묘리가 숨어 있다는 천부경의 한 구절이었다. 뇌관에 파고든 녀석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릉! 뇌관이 흔들렸다. 동시에 벼락 맞은 것 이상의 고통이 엄습해왔다. 삼천이삼지이삼인이 삼대삼합육생칠팔구 블루는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다시 중얼거렸다. 다시 머릿속을 강타하는 굉음! 그것이 아스타로트의 비명처럼 들리는 것은 그만의 착각일까 만약 지금의 저 발악만 막을 수 있다면....... 운삼사성환오칠일묘 행만왕만래용변부동 씨익! 고통스런 표정 속에 자리잡은 그 미소. 그것은 승리를 예감하는 회심의 미소였다. 하지만 그 예감이 틀린 것일까? 블루는 금새 한계점에 다다랐다.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었다. 육체적인 고통이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고 자부해온 블루였음에도 지금 흔들리고 있었다. 정신까지 뒤흔드는 고통을 참지 못한 블루, 살며시 눈을 감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아스타로트가 마지막 발악을 시작했다. 그렇듯 놈의 폭주가 극으로 치닫는 순간, 펑펑 폭죽처럼 혈관이 터져나갔다. 울컥 블루는 피를 한 사발쯤 토해냈다. 출혈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입은 물론 코와 눈, 심지어 귀에서도 흘러나왔다. 혈인! 지금의 블루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보다 어울리는 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온몸이 단풍나무처럼 붉었다. 그 상태로 물 먹은 솜처럼 늘어져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본본심본태양앙명인 중천지일일종무종일 그 주문을 마지막으로 아스타로트의 폭주는 잠잠해졌다. 마검이 사념 덩어리라는 그의 생각은 옳았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니! 꽤나 끔찍한 사념이었다. 그래서 녀석과 싸울 방법이 떠오른 것도 사실이지만. 자신이 욕망과 욕구의 사념을 이기지 못하고 생사경의 길목에서 헤매고 있을 때 길을 일러준 천부경의 묘리들. 그때 그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생사경은커녕 주화입마에 빠져 그대로 절명했을지도 몰랐다. 그 깨달음이 또다시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것이다. 운이 좋았다. 마검 아스타로트의 기운이 사념이 확실하다면 정화의 효용을 지닌 천부경의 묘리로 싸움이 가능할 거라는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블루의 입가가 치켜 올라갔다. 지옥훈련을 통한 엄청난 정신력을 바탕으로 놈과 싸워 당당히 이긴 것이다. 그러나 그 승리감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그는 의식의 끈을 놓고 말았다. 맥박이 뛸 때마다 뿜어지는 붉은 피! 엄청난 출혈 탓이었다. 제 2장 환골탈태하다 블루가 바닥에 쓰러진 지 삼 분가량 지났다. 여전히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처음보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호흡만큼은 고양이 숨 쉬듯 얕고 거칠었다. 이 상태라면 머지 않아 숨이 멎고 말 것 같았다. 불규칙적인 숨소리와 엇박자로 레어 안을 공명하는 물방울소리! 그리고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 블루의 손가락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리고 긴 숨소리를 끝으로 숨이 끊어지려는 찰나. 웅웅웅웅웅 느닷없이 마검 아스타로트가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차츰 커져갔다. 누군가 애타게 외치는 것 같았다. 그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레어 안을 가득 떠도는 사이, 마검의 하얀 검신에서 밝은 빛이 쏟아졌다. 번쩍! 블루의 몸이 검에서 나온 무형의 기운에 이끌리듯 천천히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어나!] ‘.......’ [어서 일어나라니까!] ‘......으,응?’ 꿈결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으면 안 돼!] ‘뭐, 뭐야?’ [휴, 다행이 늦지 않았군.] ‘누구냐, 넌?’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녀석이 다시 깨어나서 내가 다시 봉인당하기 전에 어서 정신을 차려라. 그럼 내가 도와주겠다.] 말과 함께 미증유의 힘이 검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기운은 블루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블루는 당혹스러움을 급히 갈무리하고 그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었다. 기운이 쇠하여 육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앞뒤 생각 없이 육체의 흐름이 끊어지는 순간 파고든 거대한 기운을, 활생의 심법인 태허무령심법(太虛憮靈心法)을 운용하여 일단 뭉그러진 기도를 재생시켰다. 동시에 선계의 무공인 운체풍신의 묘리를 활용하여 그 기운을 전신으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무서운 속도로 몸이 회복되어갔다. 깊게 파이고 터진 상처가 아물고, 전신의 기력이 충만해져갔다. 그것은 누군가 기를 주입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변화였다. 태허무령심법! 그것은 누군가 다가와 도와줄 때까지 생명을 연장하는 수법이었다. 따라서 누군가 다가오지 ㅇ낳으면 거의 무용지물이나 진배없었다. 대신 효율성은 가히 최고라 할 만했다. 최소한의 기로 생명을 유지시켜나갈 수 있다는 말로, 한마디로 낭비가 적다는 얘기. 그러나 그가 태허무령심법을 쓴 시점은, 거의 한 발을 죽음 문턱에 올려놓은 순간이었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 주입해준 기를 운용해 회생한다는 것은 하늘의 도움이 없고서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운체풍신의 묘리를 사용할 힘이 어디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는 털끝만한 기 한 올까지 소홀히 하지 않고 흡수했다. 그리고 자신의 기로 만들었다. 일단 온몸에 기가 충만해지자 그의 고민을 하나도 압축되었다. 태허무령심법과 운체풍신을 동시에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러면 회생이 가능했다. 운체풍신! 그것의 묘리는 생명력을 증폭시켜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데 있었다. 하지만 순수한 진원지기를 소모하는 지라, 극한의 위기상황이 아니라면 기가 썩어나가는 한이 있어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기의 소모가 너무나 극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못지않은 장점도 있다. 예컨대 그것을 쓸 경우, 한 순간 생명력이 증폭됨과 동시에 생체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치명적인 상처까지도 단숨에 아물었다. 아무튼 블루는 다시 한 번 기적처럼 생환의 기적을 경험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그랬다. 전신에 가득 찬 기운을 느끼며 그는 형언할 수 없는 쾌감까지 맛보았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죽음 직전에서 몸을 재생시키며 불필요한 찌꺼기들을 모두 태워버린 터라, 아이린 공작을 상대로 격전을 벌이기 전과 비교해 혈도가 거의 두 배가 넓어졌다. 정말이지 엄청난 기연까지 얻어낸 셈이었다. “이제 그.......” 이제 그만 되었다고 말하려던 블루는 멈칫하며 말끝을 흐렸다.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깨끗이 해치웠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마검의 사기가 슬며시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기의 이성이 블루의 정신력에 짓눌려 사라진 탓인지, 무작정 폭주를 시작한 것이다. 울컥! 블루는 또다시 피를 토했다. 마검 아스타로트의 사기가 겨우 완치시킨 혈관에서 발광을 시작한 탓이다. 맑은 피가 앞섶을 적셨다. 쾅쾅! 전신이 크게 울렸지만, 예전보다 한층 강력해진 경락은 쉽게 파손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충격이나 고통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민감해진 신체는 오히려 그 충격을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젠장, 이런 개 같은 상황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블루는 이를 악물었다. 실체도 없는 기운 따위한테 질 수는 없었다. 그런 경우는 생각조차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고통을 감내했다. 그리고 계속 머리를 굴렸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반드시 길은 있다. 있을 수밖에 없다. 아니, 기필코 있어야 한다. 있다. 있다. 반드시 있다!’ 주문을 외듯 뇌까리고 있을 때, 퍼뜩 뇌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선기를 양이라 하고 사리를 음이라 하지만, 그것은 늘 공존해 있는 것이다. “아!”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그것은 첫 번째 스승인 만무선생 박현의 가르침이었다. 순간 그는 쾌재를 불렀다. ‘그렇지! 내 몸속에서 요동치는 사기를 잠재울 방법이 있다!’ 환골탈태! 블루는 그가 검황이었을 때, 처음으로 환골탈태하던 순간이 지금과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물의 기운이 모두 다른데 어찌하여 하나의 기운만을 받아들이겠는가! 스승은 그것을 자연지기라 했다. 자연지기! 그것은 개개의 기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이 소생하고 소멸하는 기운을 포괄하는 기의 총칭이었다. 깨달음이 깊어질수록 모든 기운을 하나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하여 얻는 것이 바로 자연의 기운으로, 그것은 숲이 우거진 곳에 많다. 그 이유는 늘 삶과 죽음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넘치는 것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스승은 이 말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와 좀 달리 해석했다. 예컨대 좋은 것이라고 하여 그것만 배우고 그것만 채우는 것은 올바른 무도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했다. 기운을 모을 때도 서로 다른 두 기운을 함께 흡수해야 몸에 무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사기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생기가 좋다고 그것만 따로 받아들여 육신 안에서 생기가 사기보다 강해지면 그것이 바로 육신의 붕괴를 꾀하는 사기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기라는 것은 스스로가 감당하지 못하는 기운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지금 블루의 몸 속에 있는 사기가 바로 그랬다. 블루의 몸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기로 변한 경우다. 그 말은 그것을 포용할 만큼 블루의 그릇이 커지면 생기가 될 것이다. 그릇에 담을 수 있는 물은 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물이 너무 많아도 안 좋고, 적어도 좋지 않다. 가장 좋은 것은 물의 양과 그릇의 크기가 거의 일치하는 것. 특정한 무공을 위하여 거기에 필요한 기운만 빨아들여 익히는 무공도 있으나, 그런 무공이 빠르게 고수를 만들어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으로 올라서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탓이다. 지금 블루의 불균형은 그릇이 작은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선 그릇을 키울 수 밖에 없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러나 블루는 가능하다고 믿었다. 온몸에 가득한 미중유의 기운을 믿었고, 재생으로 깨끗해진 몸을 믿었다. 그리고 강해진 경혈과 경락을 믿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처럼 당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이처럼 그가 망가진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아니, 그게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 당하고 싶지 않았다. 늘 분위기를 장악하고 사람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군림하던 그가 이처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상황에 빠질 줄이야! 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신의 장난이라며 좋아! 얼마든지 그 장난 받아주겠어.’ 그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결심했다. 현재 그의 경지는 화경을 약간 밑도는 정도. 그러나 물론 화경고수와 싸운다고 해도 백전노장의 임기웅변과 깨달음으로 충분히 그 이상의 능력을 선보일 수 있겠으나, 그는 분명 화경 초입에 살짝 발을 디디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현경의 경지에 들어선 다음에야 환골탈태가 가능하다는 것. 일단 화경의 경지를 넘어서면 근골과 근육 그리고 경혈과 경락이 이상적으로 발달되는데,현경으로 넘어서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환골탈태를 위해서는 불필요한 전신의 불순물들을 모두 태우는 게 중요한데, 그 정도 열을 내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에너지를 일순간에 일주천시키기 위해선 강력한 근골과 근육 그리고 경혈과 경락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화경을 먼저 밟지 않고 현경으로 직행하는 일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현경에 오르는 사람이 전무한 실정이니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블루는 특별 케이스인 셈이었다. 정신력만이라면 언제든지 환골탙태가 가능하겠으나, 최대관건은 몸이 견딜 수 있느냐.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그랬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블루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외부에서 주입되는 정체불명의 기운을 더욱 강하게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몰이 덜덜덜 떨렸다. 몸에서 증기가 피어올랐다. 그렇듯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 오르더니, 급기야 블루의 몸에서 역겨운 분비물들이 빠져나왔다. 혈도와 여러 기간에 쌓여 있던 불순물들로, 밖으로 배출되기가 무섭게 타들어갔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블루는 몰아지경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마음과 몸은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한 자아를 완성시키기 위해선 영육쌍전(靈肉雙全)을 위한 심신단련(心身鍛鍊)이 필수적인데. 이것을 성명쌍수(性命雙修)라 한다. 인간을 이루는 삼대 요소는 심기신(心氣身)이다. 그 심기신은 본디 참(眞)인 성명정(性命精)에서 비롯했다. 그러나 참이 가려지면서 망령된 감식촉(感息觸)을 일으키므로, 지감(止感)하고 조식(?息)하여 금촉(禁觸)하는 생활로 심기신을 바루어, 빛나는 참의 본래자리인 성명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하면 단전에 새기가 쌓인다. 그 단에 쌓인 생기를 소주천에서 대주천으로 운기해야 하는데,그 방법은 숨을 가늘고 부드럽게 고르고 깊이 해야 고요함에 이르게 되고, 모태 안의 태아가 숨 쉬듯 태식(胎息)을 해야 한다. “하후!” 블루의 몸에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눈을 뜰 수조차 없을 만큼 강렬한 빛이었다. 인체는 소우주다. 사람의 머리가 둥근 것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이요, 몸이 네모난 것은 땅의 상징이다. 사물을 밝게 보는 두 눈은 하늘의 해와 달리요, 골격은 쇠와 돌이고 핏줄은 바다와 하천이며, 털과 머리카락은 산과 초목을 닮았고, 피부는 옥토를 각각 상징하게 된다. 하늘과 땅은 각각 남녀의 차이를 낳고, 땅에 다섯 흐름이 있으니 인체에 다섯 장이 있고, 하늘에 여섯 기후가 있으니 사람에게 여섯 부가 있는 것이다. 일 년에 이십사절후가 있으니 스물네 개의 척추마디(경추7, 흉추12, 요추5)가 있고, 십이 개월 삼백육십오 일이 있으니 열두 개의 대관절과 삼백육십오 개의 주요 혈이 있게 된다. 눈부신 빛이 얼마쯤이나 뿜어졌을까? 블루는 몸이 바짝바짝 타들어감을 느꼈다. 머리카락과 눈썹은 둘째 치고 전신의 피부가 타들어가면서 화상을 입은 것처럼 일그러지는 것을 시작으로, 이가 모조리 빠지고 손톱과 발톱이 떨어져 나갔다. 소우주는 하나가 되어 곧 천지기운을 받아들이고, 나라는 인체 속에 존재하는 우주천지의 모든 형질조건(形質條件)과 오행기운(五行氣運)들이 조화롭게 연결되도록 천지정음(天地正音)의 소리와 산택통기(山澤通氣)의 숨결로 삐뚤어진 신체를 바로잡아 하나의 완벽한 신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곧 새 살이 도는데, 마치 시간을 빠르게 돌리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재생하는 것이었다. 금세 윤기를 발하는 두발이 찰랑거리고 어느덧 치아는 고르게 제자리를 잡았으며, 피부는 백옥이 부럽지 않은, 갓난아이의 그것처럼 보드라웠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은색이었다.ㄷ. 동굴 안의 열기가 차츰 제자리를 찾아갈 무렵, 블루의 신체적 변화도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블루는 눈을 떴다. 번쩍! 순간적으로 엄청난 안광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것은 빠르게 갈무리되며 블루의 두 눈 안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는데, 블루의 두 눈이 깊어졌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블루가 의도기도(意倒氣倒), 이의영기(以意領氣)로써 기를 마음대로 전화하고 기화하여 바르게 쓸 수 있는 단계에 오른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환골탈태를 통해서. 블루는 가부좌를 튼 채 눈을 지그시 감고 휴식을 취했다. 환골탈태를 위해 많은 심력을 소모한 탓이다. 그 모든 현상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그것은 사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가 이미 한번 가본 길이었기에 가능했다. 그 경험과 주변의 풍부한 기운의 합작품이었다. 환골탈태하며 소진한 기를 그는 주변의 흘러넘칠 만큼 풍부한 기를 흡수함으로써 채워넣을 수 있었다. 그렇듯 일주천을 마친 블루. 그는 자신의 몸을 괴롭히던 사기조차 몸에서 녹아 흡수되어버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충만감! 발끝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흐르는 이 엄청난 희열! 블루는 감동했다. 예전 자신의 몸을 되찾은 탓이다. 물론 생사경에 넘어섰던 예전의 몸과는 아직 하늘과 땅의 차이였으나, 이 정도만 해도 자신의 모든 기술을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고, 아이린 공작을 이기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는 이제 십초지적도 되지 못할 게 뻔했다. 무형검강은 물론이거니와 심검을 사용함에도 전혀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블루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눈빛속에는 깊은 의문이 담겨져 있었다. 자신을 도와주긴 했지만 상식적으로 불가능할 정도의 기운을 자신에게 넘겨준 존재가 누구인지 궁금했던 탓이다. “헉!” 블루는 순간 숨이 넘어갈 정도로 놀랐다. 검이 두둥실 허공에 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검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다. [괴, 괴물!] 검이 겁에 질린 듯한 말투로 말을 건넨 탓이다. 그러나 블루는 금세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가 물었다. “누가 괴물이냐?” [인간 주제에 어떻게 그토록 많은 마나를 폭식할 수가 있지? 마치 탐욕스러운 드래곤을 보는 것 같았다니까.] 블루는 잠깐 검이 건데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검이 빠르게 덧붙였다. [네 녀석한테 마나를 정제해서 보내주느라 내 검신의 예쁜 날이 상하는 줄 알았단 말이야. 휴, 이렇게 끔찍한 일인 줄 알았으면 시도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다.] 블루는 일단 그 말을 들었다. 녀석이 쉬지 않고 속사포처럼 떠벌리는 통에 말할 틈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들으면서 그는 여러 가지를 유추해 낼 수 있었다. 그 첫 번째로 마검은 수다쟁이. 그리고 정체불명의 마나를 공급해준 것도 마검이라는 사실. 문제는 어떻게 주었느냐인데 그 의문도 쉽게 풀렸다. 죽은 블루 드래곤의 몸에서 흘러나온 뇌전의 기운을 빠르게 흡수한 다음 정제해서 블루에게 주입시켜 준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정제된 그 기운이 완전치 못했던 것 같았다. 바람이 불어왔다. 사르륵 자신의 긴 머리카락이 눈앞에서 흩날리는 것을 본 블루는 눈을 크게 떴다. “은발?” 블루는 자기 머리색을 확인하기 위해 매끈하게 자신의 자태를 뽐내던 마검의 검면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마검이 순식간에 동경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럴 수가!” 그는 죽은 블루 드래곤 쪽으로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널브러진 블루 드래곤의 거대한 몸뚱이! 저 드래곤의 기운이 분명하다. 그 기운을 완전하게 정제하지 못한 채 받아들인 데 대한 부작용이다. 하지만 그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름대로 지금의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찰나. 마검이 말했다. [머야, 지금 내 이야기 듣고 있는거야?] 실컷 떠들어댔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듯한, 아니 전혀 듣지 않는 것 같은 블루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불쾌했다. 자신이 누군가? 한때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드래곤조차도 두려워하던 마검이 아니었던가! 그때 마검을 향해 시선을 치켜든 블루가 불쑥 물었다. “넌 뭐냐?” 아주 생뚱맞았지만,그 물음의 진의를 마검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입을 봉했다. 말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마검의 전혀 엉뚱하면서도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건 그렇고 네 동료들은?] “아차!” 이마를 치며 블루는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베르니스들은 둘째 치고 중태에 빠진 니콜라스가 떠오른 것이다. 그는 급히 니콜라스를 찾았다. 곧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니콜라스를 찾아낼 수 있었다. 블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이 고마웠다. ‘살려낼 수 있다. 아니 살려내고 말겠어!’ 지금의 그라면 얼마든지 소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최대관건은 시간. 빠르게 주위를 살피던 블루는 블루 드래곤의 사체를 보는 순간 멈칫했다. 거기서 뿜어지는 거대한 마나의 소용돌이가 그의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은 것이다. 주인을 잃은 기운들이 드래곤 몸 밖으로 빠져나오며 발생한 현상이었다. ‘그래, 저 정도의 기운이라면.’ 블루는 서둘러 드래곤의 상체로 오른손을 뻗었다. 그리고 즉시 흡자결의 내력을 운용했다. 스스슷! 허공으로 날리던 기운들이 방향을 바꿔 블루의 손끝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환골탈태하기 이전과 비교해 다섯 배가 커진 단전. 거기다 기경팔맥의 모든 혈도에도 기를 축적할 수 있으니, 블루의 전신은 마치 물을 흡수하는 스펀지처럼 드래곤의 기운을 가득 머금어나갔다. 동시에 블루는 왼손을 니콜라스 머리에 얹었다. 니콜라스 몸속을 탐색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그 정도는 본신의 내력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를 위해 드래곤의 기운으로 대신한 것이다. 니콜라스의 백회혈을 기점으로 후정, 간강, 뇌호를 지나 명문혈과 장강혈을 다이렉트로 장악하며 전신의 혈을 훑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전, 그 속에서 혼합되지 못한 마나의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것으로 블루는 어떤 가능성을 엿보았다. 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드래곤의 거대한 기운이 블루의 몸을 경유해 니콜라스에게 흘러간 것은 거의 동시였다. 니콜라스 몸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증기! 탈피한 듯 그의 주변으로 바짝 마른 각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니콜라스의 잘려진 팔! 그것이 거짓말처럼 붙어 있었다. 니콜랄스 앞에는 블루가 서 있었다. 그런데 탈진해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모습이다. “헉헉.” 블루는 벅찬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러나 거친 숨결은 쉬 진정되지 않았다.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조금 전까지 찰랑거리던 은색 머리카락이 얼굴에 착 달라붙어 몹시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성, 성공인가?” 입에서 단내가 났다. 드래곤의 기운은 거의 바닥을 드러내다시피 하고 있었다. 블루는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짙고 강한 선이 인상적이던 블루의 눈썹! 어느새 그것은 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것은 기운의 탓이 아니었다. 그만큼 많은 심기를 소모했다는 증거였다. “으으.” 니콜라스가 신음을 흘리며 힘겹게 눈꺼풀을 치켜 올렸다. 순간 짙은 안광이 뿜어졌다. “.......” 니콜라스는 한동안 멍한 눈으로 앞으로 응시했다.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오자 그는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이윽고 블루가 눈에 띄었다. 그는 가부좌를 튼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니콜라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주르륵 ‘오, 나의 주군이시여!’ 블루가 눈을 뜬 것은 그리고도 한참이 지난 다음이었다. 눈을 뜬 블루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인 사내가 있었다. 그러나 사내에게서는 비굴하지 않은, 당당하고 강인한 기백이 흘러넘쳤다. “니콜라스!” 블루의 입이 나직이 열렸다. 순간 니콜라스의 몸이 움찔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급기야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입술을 굳게 다문 탓에 소리는 간헐적으로 끊겼다. 블루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니콜라스!” 니콜라스는 고개를 들었다. 입 언저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뭔가 말을 꺼내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차마 입이 열리지 않는 듯 했다. 블루는 말없이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것의 진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니콜라스는 잠자코 기다렸다. ‘주군께서 나를 받아주시지 않으면 어찌하나?’ 그 불안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갔다. 그 짧은 시간이 수십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지금껏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그 중에서도 특히 블루를 향했던 불온한 생각들이 화살이 되어 되돌아왔다. 아팠다. 마치 속마음이 모두 들킨 것처럼 불안했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천근만근으로 불어난 불안감에 가슴 졸일 때, 블루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물론 시선은 니콜라스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튀어나온 한마디. “고맙다.” 순간 니콜라스 눈에서 뜨거운 눈물 한줄기가 기다란 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주, 주군!” 니콜라스의 감격에 겨운, 그러나 나직한 음성. 장차 대륙을 뒤흔들 두 남자는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났다. “응?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기절이 그대로 잠으로 이어진 것일까? 깊은 잠에 빠진 상태에서 화들짝 놀라 깨어난 베르니스의 외침이었다. 그리고 한참 두리번거리던 그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아하하하! 드래곤이 죽어서 나뒹굴고 있다니! 내가 아직도 잠이 덜 깬게 분명하다. 어서 일어나야지.’ 그리고 그는 눈을 떴다. 하지만 눈을 크게 떴다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길 수십 번. 어느덧 간덩이가 부어버린 베르니스는 일어나 겁 없이 드래곤의 사체를 만지는 데까지 발전했다. 비늘의 감촉은 금속처럼 차갑고 단단하고 날카로웠다. 자신이 입고 있는 하더 메일보다 드래곤의 비늘이 더 강하게 여겨졌다. “하하하, 꿈 한번 참 리얼하......흡!” 뒤끝을 흐리며 베르니스는 화들짝 놀랐다. 드래곤이 살짝 움직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름이 오싹 돋았다. “뭐, 뭐지?” 갑자기 꿈이 아니라 현실처럼 느껴졌다. 아가리를 벌린 채 죽은 드래곤이 눈을 번쩍 뜰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신을 낚아채 집어삼켜버릴 것만 같은 망상에 사로잡혀 그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그래, 꿈인데 어떠랴! 드래곤 레어나 실컷 구경해보자! 이렇게 리얼한 꿈이면......’ 베르니스는 재빨리 뒤돌아보았다. 드래곤이 다가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래곤은 처음 본 그 자리에 그 자세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순간 바닥에 다리를 꼬고 앉은 두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블루와 니콜라스였다. 한동안 니콜라스를 유심히 바라본 베르니스는 역시 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니콜라스 팔이 잘린 것이 분명한데, 멀쩡하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꿈이야, 꿈.’ 꿈이라도 기분은 좋았다. 더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그는 모든 근심걱정불안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혀를 한번 차고는 보물이 쌓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오오, 이 보물들!”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거기다가 팔자에도 없는 각종 공예품 눈요기에 기절초풍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꿈이라도 좋았다. 그는 주머니에 보물들을 쑤셔 담았다. 부피가 작고 비싼, 아니 비싸 보이는 것들로 가득 채웠다. 그렇듯 한참을 쑤셔 넣다 그는 멈칫했다. 우수수수 돌가루 떨어지는 소리. “응?” 천장으로 눈길을 돌리던 베르니스는 황급히 몸을 던져 그것을 피했다. 촤르르륵 금은보화 위로 돌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뭐야?” 그는 벌떡 일어나 천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뻬에에에엑!” “저게 뭐지?” 천장에 까맣게 붙은 괴물들! “히이익! 가, 가고일?” “뻬에에에엑!” 가고일들이 떼를 지어 천장에서 바닥으로 쏟아졌다. “젠장!” 베르니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서, 설마 보석 좀 슬쩍 했다고 저 돌덩리들이 풀려난 건가?” “뻬엑!” 괴성과 함께 창을 내지르며 가고일 두 마리가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이거 꿈이 너무 리얼하잖아, 히익!” 바닥에 털퍼덕 엉덩방아를 찧는 통에 가까스로 창을 피한 베르니스. 슈웅! 가고일들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리저리 바닥을 굴러다니며 피했다. 그러나 곧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 놈들이 갑자기 투창할 태세를 갖춘 것이다. “제, 제길!” 베르니스는 바닥에 드러누운 채 검을 뽑았다. 땀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창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슈슈슈슛! 눈앞에 컴컴했다. “으아아악!”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비명을 지르는 것밖에 없었다. ‘꿈이라면 어서 누가 날 좀 깨워줘!“ 그는 끝까지 검을 휘두르며 창을 막기위해 버둥거렸다. 그런데 그때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두두두둑 날아들던 창이 갑자기 허공에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것이다. 삼십여 개의 창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 순간 잔뜩 겁에 질려 있던 베르니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하, 이제야 꿈이 제대로 돌아가는구나!움홧홧홧!” 그는 신이 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공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움홧홧홧! 이 개 같은 가고일 새끼들! 감히 이 시대의 대영웅이신 베르니스 님을 놀렸단 말이더냐! 내 용서치 않겠다. 자, 질풍과도 같은 내 검을 받아라! 오러 소드여, 솟구쳐라! 얍얍!” 베르니스는 미친 듯 허공에다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엥? 뭐야? 약발이 떨어졌나?”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온 웃음 소리. “풋!” 그것은 비웃음이었다. 게다가 귀에 거슬리는 텐시의 음색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자신의 연인인 텐시에게 은근히 불만이 많았다. 자기보다 좀 세다고......사실, 조금 많이 센 것도 사실이다. 여하튼 허약한 자신을 밥 먹듯이 구타하지 않나, 툭하면 괴롭히고 무시하고...... 정말 눈물겨운 나날들이 아닐 수 없었다. 한마디로 사는 게 지옥이었다. ‘으드득!’ 지금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제 발로 그의 꿈 속에 찾아온 이때가 아니면 언제 복수를 해보겠는가! 베르니스는 웃음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매서운 일갈을 내질렀다. “텐시, 네 이년! 감히 현세의 대영웅이신 베르니스 님을 무시해? 그러고도 무사하기를 바라느냐? 그리고 저번에는 또 뭐라고 했지? ‘이 토끼야?’ 누가 토끼야? 조랑말같은 토끼 봤냐,봤어! 그리고 꿈이라서가 아니라 예전부터 당해온 복수를 천 배 만 배로 곱하기해서 앙갚음 해주겠..... 응?” 어느사이에 자리에서 일어난 것일까? 니콜라스와 블루 그리고 클루토, 스콜이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중에서도 텐시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가관이었다. 화간 난 정도가 아니라 살기조차 엿보였다. 야, 베르니스!“ 순간 천장에 붙은 가고일들이 움찔했다. 그러나 기대에 찬 얼굴로 두리번거리며 곧 벌어질 일을 예의주시했다. “거기 꼼짝 말고 서 있어!” 텐시가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베르니스를 향해 돌격했다. 다다다닥! 도움닫기를 끝마친 텐시가 허공으로 붕 날아오르더니, 거침없이 이단옆차기로 베르니스의 면상을 가격했다. 퍽! “꾸엑! 반칙이다. 이, 이것은 내 꿈인 데에.......” 그 말을 끝으로 베르니스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흐음.”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로 텐시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때 스콜이 말했다. “후, 베르니스가 밤일에 충실하지 못한 모양이지?” “.......” 퍼억! “꾸엑!” 철퍼덕 줄초상이 나듯 베르니스와 엇비슷한 포즈에 바닥에 널브러진 채 몸을 부들부들 떠는 스콜! 뒤늦게 스콜의 말을 이해한 클루토가 얼굴을 붉히자, 그것을 목격한 니콜라스가 그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큭큭, 순진하긴.” “죄, 죄송!” “뭘 그런걸 가지고 죄송까지......큭큭!” 니콜라스는 웃으며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블루는 말없이 검날을 주시하고 있었다. 거기에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니콜라스는, 입을 다물고 숨소리까지 죽였다. 그때 고개를 든 블루가 천장에 붙은 몬스터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끼에엑! 블루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가고일들이 흠칙 몸을 떨었다. 뭔가 수상쩍은 기운을 느낀 것 같았다. 블루가 말했다. “잘 봐라.” 솔직히 누구한테 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는 다짜고짜 마검 아스타로트를 바닥에 꽂아놓고 허공을 움켜잡았다. 순간 니콜라스는 흠칫 놀랐다. 블루가 허공을 쥐자마자 정체불명의 강렬한 기운이 폭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장에 매달려 있던 수십의 가고일들이 추풍낙엽처럼 어지럽게 흩어졌다. “갈!” 그 외마디 외침으로 가고일들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정수리부터 쩍 갈라져 완벽하게 이등분된 상태로 하나둘씩 죽어 나자빠졌다. 비명소리도 없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흙먼지로 변해버려,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심지어 그들이 죽자마자 베르니스에게 던진 창까지도 모래도 변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블루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봤는가?” 니콜라스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블루의 표정이 환해졌다. “축하한다.” “가, 감사합니다.” 니콜라스는 떨리는 가슴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자신한테 이렇게까지 배려를 아끼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그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 초입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도움이 컸다. 아니, 큰 정도가 아니라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도 감히 상상ㅎ도 못한 은혜를 입은 셈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지금 그릇에 가장 적합한 무리까지 선물로 준 넉넉한 가슴의 진짜사나이! “주, 주군!”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베르니스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또다시 주접을 떨기 시작했다. “으악, 아직도 꿈인가!” 퍼억! “꾸엑!” “정신차려, 이 인간말종아!” 텐시가 풀스윙으로 뒤통수를 후려갈기자 베르니스는 통증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댔다. “꿈인데도 참 아프다!” “으휴, 저런 것을 남자친구라고.” “풉! 푸하하하하하하!” 블루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유쾌한 폭소한마당을 거치고도 한참이 지나, 드디어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깨달은 베르니스. 모든 상황을 주워듣고 나름대로 정리해낸 그는 한동안 얼굴을 들지 못했다. 빨개진 얼굴로 그가 중얼거렸다. “어, 얼레......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추태를 부린 순간들을 싹둑싹둑 잘라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계속 뻔뻔스럽게 밀고나가는 것이다. 금세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 찼다. “하하하하하, 이게 뭐야? 니콜라스가 우리 쫄따구야, 그런거야?” “쫄따구?” “쉽게 말해서 부하 말이다, 흐흐.” 그 말에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면서도 베르니스를 뺀 나머지들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때마침 블루와 함께 베르니스들이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들은 니콜라스. 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기가 막혔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베르니스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리고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어이, 쫄다구! 신고식을 해야지?” “.......” 니콜라스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다만 이마에 힘줄을 살짝 돋웠을 뿐이다. 물론 베르니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신참이 왔으면 선배님들한테 인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니셔?” 뿌득 이 갈리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그러나 베르니스는 자신에게 불리한 소리를 적당히 회피해버리는 능력을 지닌 듯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늘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블루였다. 설마 대장 앞인데 죽이기야 하겠어? 그것을 믿고 들이댄 것인데 웬걸, 스릉 시원스러운 검명과 동시에 베르니스는 목젖으로 파고드는 싸늘한 검날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니콜라스의 묵직한 저음이 고막 속으로 파고들었다. “난 너희를 동료라 생각하지 않는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컸다. 슬쩍 블루의 눈치를 살피는 베르니스와 일행들. 그러나 블루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그들에게 무심했다. 무언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검을 노려보며 중얼거리는 것이 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도 같았다. 미친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인정한 것은 너희들이 아니다. 주군일 뿐이다. 나와 동료가 되고 싶거든 너희들 능력을 증명해라. 그렇지 못하고 계속 내 눈에 쓰레기로 비칠 경우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가 욕을 먹는 한이 있을지언정 주군의 앞날을 위해 내 손으로 네놈들 목을 잘라 버리고 말 테니까!” 치기어리 장난이 목숨을 위협받는 결정적 순간으로 돌변한 탓일까.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이러다 니콜라스 검에 죽기도 전에 심장이 터져서 죽고 말 것 같았다. 정신이 멍했다. 끊임없이 이성을 갉아대는 공포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니콜라스 눈 속에서 무언가를 읽어낸 탓이다. 맹목적인 충정과......믿음! 블루는 니콜라스의 신앙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블루의 명이라면 능히 지옥의 왕과도 맞붙을 기세였다. 눈치 빠른 텐시가 나섰다. “저, 저기 아무리 그래도 동료는 동료인데 어느 정도 장난은.......” “장난?” “그, 그러니까 그것이.......” 늘 당차게 굴던 텐시마저도 니콜라스의 기세에 눌려 말을 더듬었다. “지금 장난이라고 했는가?” “.......” “그러나 전쟁에선 장난이 없다. 위아래가 있고, 삶과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 말꼬리를 잡듯 텐시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이 전.......”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전쟁이냐는 말인가?” 텐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쟁이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너희들이 기절했을 때, 벌써 수십 번의 전쟁이 있었고, 앞으로도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충고하겠다. 살아서 계속 숨 쉬고 싶거든 강해져라. 그것이 유일하게 살아남는 길이다.” “저어......힉!” 클루토가 입을 떼는 순간 니콜라스의 안광이 무섭게 번뜩였다. “너희들 핑곗거리는 내 죄 알고 있다. 왜냐? 네놈들이 하는 이야기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아직은, 지금은, 운운하며 순간을 모면하려는 변명의 말들! 그 말이라면 네 목에 있는 이 칼을 피하고 나서 해라.” “.......” “하늘이 너희들에게 준 행운은 이미 아이린 공작의 검을 피함으로써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니..... 아이린 공작이 죽기 전에는 너희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라. 이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충고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니콜라스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모두들 느끼는 바가 있었다. 다들 그것을 곱씹고 있는 것이다. 제 3장 드래곤 하트, 폭주하다 블루는 마검 아스타로트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자신이 깨어났을 때 이미 어느 인간의 손에 쥐어져 있었고, 그 인간은 너무도 사악한 존재였다는 것이었다. “그 존재가 누군가?” [.......] “좋다. 묻지 않으마.” 블루의 확언을 듣고서야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인간은 나를 이용해 힘을 키웠다. 드래곤조차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을 말이지. 그리고는 신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는데, 내가 보기엔 일부러 신의 저주를 기다리는 것 같았지. 그 이유가 무너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쨋거나 보다 못한 드래곤들이 나섰지. 그 일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깨닫고 그를 막기 위해 덤벼든 것이지. 그러나 드래곤들조차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지금 드래곤들이라고 했나?” [그래, 날 이용해 키운 힘은 드래곤들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 로드조차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강했다.] “믿어지지가 않는군.” 블루는 직접 경험한 드래곤의 힘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그가 생사경을 넘어선, 그러니까 심장마비로 죽기 직전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하여도 그 지긋지긋한 괴물을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 드래곤들의 왕조차 어찌할 수 없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흐음.” 블루는 마검 아스타로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래를 끄덕였다. 그는 마검 아스타로트의 경천동지할 능력을 직접 체험해보았다. 그것은 신비하고 놀라운 것이었다. 오로지 그 검의 힘만으로 괴물같은 드래곤을 묵사발 내놓지 않았던가. 드래곤이 이미 지쳐 있었다고 해도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검을 쥐는 것만으로 전신에 스며들면 그 미중유의 힘! 잠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검이 말했다. [결국 나 하나를 봉인하기 위해서 각 드래곤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에이션트급 드래곤 열다섯 마리가 뭉쳤지. 싸움은 대단했다. 여덟마리 드래곤이 목숨을 잃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 위기에 봉착한 내 소유주가 스스로를 봉인해 버렸다.] “.......” [드래곤들은 어쩔 줄 몰랐다. 자신들한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주적을 죽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지. 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오랫동안 한탄을 금치 못했다.] 블루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대단한 그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결국 난 드래곤들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랜 논의 끝에 그들은 날 남겨두기로 합의했다. 이유는 간단해. 그가 봉인을 해제하고 다시 세상에 나타날 경우,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올 거라는 이유가 하나였고.......] “그게 하나였다면 또 다른 이유도 있단 말이야?” [그래, 내게 어떤 전조가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지. 그가 다시 부활하려는 움직임을 먼저 간파하고 대체할 수 있도록 나를 남겨둔 것이다.] “흐음.” 블루의 신음소리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덕에 팔자에 없이 드래곤 레어를 털러 온 도둑놈들 손에 두어번 들려지기도 했지. 물론 그때마다 드래곤이 잘 막아내긴 했지만, 피해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널 부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군. 아니 부수지 않으려면 보관이라도 잘 하든가. 이게 뭐야? 누군가 집어가도 신경쓰지 않겠다는 듯이 아무렇게나 집어던져 놓다니.” [.......] 자존심이 상한 것일까? 마검은 다시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 이후로도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가 나오면 묵비권을 행사하듯 함구해버렸다. 거짓말을 하거나 부정 같은 것은 일체 하지 않았다. “지금껏 봉인을 당했다고는 해도 생각은 계속 할 수 있었나 보지?” [그건 그래. 그 주인의 사념에 잠식되어버린 통에 의사표명이 불가능했을 뿐,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롭다. 그러다 네가 그 사념을 물리친 통에 말까지 가능하게 된 것이고.] 블루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곧 대면하게 될 강자들이 떠오른 탓이다. 호승심을 느끼며 그는 주먹을 지그시 움켜쥐었다. ‘누구든지 와라!’ 마검과 대화를 끝마치고 블루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찌된 노릇인지 분위기가 싸늘했다. “무슨 일이지?” 블루의 물음에 니콜라스가 다가왔다. “별 일 아닙니다, 주군.” “그래.” 블루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짐작이 갔던 것이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곰곰이 생각에 잠기려는 찰나, [설마 그냥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은 아니겠지?] 마검 아스타로트가 불쑥 물었다. “그럼 또 무슨 일이 남았나?” [지금 제정신이야?] “제정신이 아닐 것은 또 뭔데?” [드래곤 하트를 그냥 두고 갈 생각이라면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지.] “드래곤 하트?” “허걱!” “드래곤 하트!” 블루의 나직한 중얼거림에 난리가 났다. 당연히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었다. [어찌 미쳐 모르고 있었다는 투로군.] “그게 뭔데?”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거냐?] “정말 모르니까 묻지.” [쯧쯧.] 대뜸 혀 차는 소리를 발한 아스타로트는 하나하나 세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블루의 눈빛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겨났다. “내단인가?” [내단? 그건 무엇이냐?] “오래된 영물들 몸에는 기운을 갈무리하는 구슬이 생긴다.” [처음 듣는 이야기군.] “비슷한 듯 싶지만 내단은 아닌 것 같군. 내단은 만들어지는 것이고, 드래곤 하트는 태생적인 것 같으니까. 흐음, 드래곤한테 무한대의 힘을 공급해주는, 말그대로 단전과 같은 역할을 하는 심장이라.......”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피식 마검 아스타로트의 천진한 말투에 블루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하여튼 도움이 될 것 같긴 하군.” [도움뿐이냐?] “암튼 좋아. 어디 있지?” [여덟 번째 척추 부근에 있을 거다.] “저런 괴물의 척추 따위가 알 바가 아니지.” 그러면서 블루는 마검을 휘둘러 드래곤의 척추를 모조리 드러내버렸다. 그러자 붉은 기운을 띤 수박 크기의 부정형 젤과 같은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가?” [그렇다. 그게 바로 드래곤 하트다.] 꿀꺽 니콜라스와 베르니스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위대한 유품을 처음 목격한 탓이다. 블루가 손을 뻗어 드래곤 하트를 만지려고 하자,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몸이 부풀기 시작했다. [헉, 이런 큰일이다!] “무슨 일인데?” [드래곤 하트를 그런 식으로 섣불리 만지면 안된다.] “그것은 또 왜지?” [폭발할 지도 모르니까.] “그런 중요한 것을 왜 이제야 말해주는 거지?” [미안, 깜빡했다.] 마검 아스타로트의 말에 블루는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이런 쓰벌!” 솔직히 손이 닿는 순간 그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예감했다. 무서운 속도로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한 탓이다. 그런데 사정을 듣고 보니 더욱 급박한 상황이었다. 저 덩어리가 이대로 폭발한다면, 최소한 반경 사십 킬로미터 안에 있는 모든 게 소멸하고 말 것이다. 니콜라스와 베르니스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주, 주군?” 블루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했다. “드래곤 하트가 터질 것 같다.” “허걱!” 일행들이 창백한 안색으로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는 순간에도, 드래곤 하트는 계속 몸집을 부풀리고 있었다. 블루는 요즘 들어 운수가 사납다는 생각을 했다. 되는 일이 없었다. 하나같이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또 건들면.......] “나에게도 다 생각이 있다!” 블루는 전신의 기를 팔에 모은 다음, 드래곤 하트를 향해 뻗었다. 드래곤 하트는 거리낌 없이 블루의 손을 받아들였다. 여기까지는 그의 예상과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윽!” 블루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마검 아스타로트가 말한 ‘탐욕스러운 드래곤이 마나를 빨아들인다’는 표현에 걸맞게 블루가 미끼로 내건 마나의 삼분의 일이 단숨에 빨려 들어갔다. ‘너무하는군, 크흑!’ 블루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어서 빨리 핵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불안했다. 손을 살짝 밀어 넣은 것뿐인데, 엄청난 속도로 기운을 빨아들인 것을 감안할 때 찾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두 호흡 정도. 아닌게 아니라 벌써 마나가 딸렸다. 땀에 젖은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어지러웠다. 문득, 블루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그는 쉬지 않고 손을 저었다. 그리고 마침내 손아귀에 잡힌 따스한 기운! 드래곤 하트의 핵이 확실했다. 그것을 확신한 블루는 그 즉시 마나의 공급을 중단했다. 그리고 더 이상 마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철통같은 방어에 나섰다. 그러자 드래곤 하트가 발광하기 시작했다. 마나 공급이 끊기자 블루의 팔을 이물질로 인식한 것이다. 그 즉시 블루의 팔을 밀어내려고 했으나 블루는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그러면서 핵을 움켜쥔 팔에 다시금 기를 끌어올리며 핵주변에 마나를 잠식해나갔다.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핵의 눈물겨운 몸부림! 그것은 주변에 마나의 벽을 쌓아나갔다. 블루는 그때마다 자리를 양보하며 물러서는 척 했다. 그러다 한 순간 자연지기를 융합해내는 심법의 묘리를 이용해 드래곤 하트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리고 강하게 압축했다. 고오오오오! 거세게 반발하는 드래곤 하트! 거대한 기의 폭풍이 만들어졌다. 휘우우웅! “크흑!” 일행은 그 폭풍에 날리지 않도록 몸을 최대한 숙이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까악!” 그 폭풍을 이기지 못한 텐시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녀가 바닥에 나뒹굴 뻔한 순간, 덥석 누군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괜찮나?” 중후한 목소리. “누, 누구?” “.......” 니콜라스였다. “조심해라.” 사무적으로 들리는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 그런데도 텐시는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때 폭풍이 잠잠해졌다. 니콜라스는 텐시를 떼어내고 블루에게 다가갔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블루는 말없이 빙긋 웃을 뿐이었다. 니콜라스의 눈길이 블루의 오른팔 쪽으로 향했다. 그 손에 붉은 색 돌이 쥐어져 있었다. “주, 주군!” 블루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가 쥐고 있는 그 주먹막한 돌이 바로 위대한 유물이라 불리는 드래곤 하트였던 것이다. [운이 좋았군.] “아니, 실력이었다.” 블루가 어깨를 으쓱이며 정정해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아참, 생각난 김에 네 이름부터 지어야겠다.” [내 이름?] “야, 마검! 계속 이딴 식으로 부를 수는 없잖아.” [흠.......] “아스타로트라고 했지? 흠...... 그럼 아슈가 좋겠군.” [아슈?] “나쁘지 않지?” [나쁘진 않군. 솔직히 이름 따위는 뭐가 되어도 상관없다.] “다행이군.” 그러면서 블루는 손에 들린 드래곤 하트를 내려다보았다. “아름다워. 이렇게 아름다운 구슬 안에 있는 미증유의 힘이라.......” [훗! 강한 힘이 들어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사실을 모르나?] 아슈의 말에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럴지도 모르지.” 블루가 가슴 안주머니에가 드래곤 하트를 갈무리하는 순간, 베르니스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대장.” “왜?” 베르니스는 잠시 머뭇거리다 작게 물었다. “자꾸 중얼거리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블루는 피식 웃었다. “난 미치지 않았다.” 정곡을 찌르자 크게 당황한 베르니스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제 말은.......” 그리고 블루는 검을 꺼내 보여주었다. “이 검은 왜요?” “아슈라는 녀석이다.” “아슈?” “흔히 이쪽 세상에서 말하는 마법검 같다.” “마법검?” 니콜라스를 뺀 나머지 일행들은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블루가 말했다. “본인한테 직접 물어봐라.” 말을 마치자마자 블루는 검을 던져주었다. 베르니스가 엉겁결에 그 검을 받아든 순간, [까악! 뭐야? 그 더러운 손 어서 치우지 못해. 어딜 만져!] “히익!” [내려놓지 못해, 어서!] 앙칼진 비명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검을 집어던진 베르니스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챙그랑! 바닥에 떨어진 아슈가 웅웅거리며 울었다. 그런 아슈를 보고 블루는 미소를 머금은 채 손수 허리를 굽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동시에 쏟아지는 잔소리. [까악! 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어떻게 저 더러운 녀석한테 날 맡길 수가 있느냐고? 나참 기가 막혀서! 이것 좀 봐, 저 막돼먹은 돼지새끼가 집어던져서 멍든 것 좀 보란 말이야.] 블루는 검을 들어 찬찬히 살피며 대꾸했다. “검날이 상하기는커녕 스크래치조차 없으니까 안심해.” [앙앙! 주인이 되자마자 이렇게 함부로 나를 굴리다니......흑흑. 너무해, 앙앙앙!] 블루는 그 잔소리를 참지 못하고 허리에 척 걸쳤다. 그러자 억울하다는 듯 웅웅거리는 소음을 뿜어대는데, 그 하울링은 차츰차츰 커져만 가고 있었다.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한 블루가 살기 땐 목소리로 나직이 한마디했다. “녹여버리기 전에 조용히 해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잠잠해졌다. 그 상황을 진땀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베르니스가 이마를 훔치며 블루 쪽으로 다가왔다. “검 주제에 상당히 건방지군요.” “후후, 수다가 좀 심하긴 하지.” “피곤하시겠어요.” “글쎄.” 그 말에 베르니스가 피식 웃었다. 블루가 덩달아 웃자 둘의 대화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일행들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따라 웃었다. 블루 일행은 보물을 양껏 챙겨 레어를 벗어났다. 블루나 니콜라스가 꼭 필요한 몇 가지 보물만 챙긴 데 반해 베르니스들은 주머니가 터지도록 챙겼다. 단촐하게 마법서만 챙긴 클루토만 제외하고. 특히, 텐시는 보석 중에서 가장 비싼 것만 골라 주머니를 모두 채우고, 가죽가장 다섯 개까지 가득 채우고도 아쉬운 듯 레어 안의 보석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블루가 말했다. “이제 그만하고 밖으로 나가자.” 다들 입맛을 다시며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듯 자꾸 머뭇거렸다. “저 보석들이 움직일 리도 없으니까 나중에 와서 몽땅 챙기자.” 블루의 그 한마디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레어 밖으로 나섰다. 레어 밖으로 나서는 순간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와우, 멋지군.” “대단하지? 이런 곳에 저런식으로 있는데 눈에 띌 까닭이 없지.” “그런데 좀 낯익지 않아.” “그러게 왠지 그렇지?” 사실이었다. 레어 밖 풍경들이 왠지 눈에 익었다. “저봐, 우리가 싸우던 데야!” “진짜로!” 그들이 정신없이 싸우던 그 장소가 틀림없었다. 드래곤이 트롤로 폴리모프하고 나타난 그 조그마한 동굴이 레어와 연결되 입구인 셈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레어를 벗어나자마자 입구가 닫히면서 그거 그렇고 그런, 어찌 보면 초라하기까지 한 동굴로 변해버렸다. “마법인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클루토가 중얼거렸다. 마법 같기는 한데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마법 서클이 너무나 고차원적이라 그가 알지 못하는 경우거나 정령마법이거나. 그러나 정령술사인 텐시마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짖는 것으로 미루어, 정령 마법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전자라는 얘기인데...... 그는 자신이 들고 나온 마법서를 내려다보았다. “응?” 클루토의 눈에서 광채가 났다. 그렇듯 클루토가 불타오르는 학습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마법서를 탐독하고 있을 때, 블루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이린 공작!“ 으득! 자신에게 생애 최고의 비참함을 안겨준 그에게 어서 빨리 어떤 식으로든 보은해주고 싶었다. 그가 받은 것의 수천 배쯤으로. ‘결코 쉽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흐흐.’ “이제 어떻게 하지?” 스콜이 낮게 투덜거렸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다들 그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었지만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아는 것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천양지차라는 사실이었다. “가장 상식적인 해법은 일단 변장을 하고 최대한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로 향하는 것인데, 지리를 통 알수가 없으니.” 그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텐시가 물었다. “하지만 실종된 우리를 찾는다면 이곳에도 감시자들이 남아 있을 게 뻔한데......괜찮을까?” 그 불안감을 해소시켜 준 것은 니콜라스였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텐시가 아니라 블루를 향하고 있었다. “유슬라니안이 제아무리 최강국이라 할지라도 이곳은 엄연히 카르만 왕국의 국경지대입니다. 전쟁까지도 불사하겠다는 뜻이 아니라면, 기사들이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지요. 사실 그 많은 기사들을 이곳에 소리 소문없이 불러들인 것만 해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 말입니다.”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많던 시체들은.......” “몬스터의 먹이가 되지 않았을까요?” 스콜의 대답이었다. 그 말에 텐시가 반문했다. “그렇다면 흔적이 남아 있어야할 텐데 전혀 전투가 없었던 것처럼 깨끗한걸?” “흐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 장차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니콜라스의 물음에 블루가 대답할려는 찰나, 텐시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유슬라니안에서 개최하는 무투대회에 출전해야죠, 그 후에는.......” 텐시가 신이 나 말을 이어나가려고 할 때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니콜라스가 외쳤다. “주군, 안됩니다. 그것은 위험합니다! 적의 앞마당에 들어가신다니요!” 니콜라스의 말에 블루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가는 겁니다.” 순간 니콜라스는 움찔했다. 블루의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니콜라스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히유.” 감정이 치우친 나머지 기름을 짊어지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주군이 심히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속으로 답답함을 삭인 니콜라스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블루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보는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왠지 모르게 믿음직스러웠고, 그것으로 안심이 되었다. ‘그래, 주군이라면 얼마든지.......’ 니콜라스 얼굴에 살짝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심계가 깊은 분이 분노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이유가 없다. 그럴 분이 아니다.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을 터.’ 니콜라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저를 따라오십시오. 유슬라니안 케르벤 남작의 영토 안에 속해 있는 작은 마을로 모시겠습니다.” “고맙군.” 블루 일행은 니콜라스의 안내를 받아가며 드래곤 레어를 벗어났다. 그리고 유슬라니안 무투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저 얼마나 더 가야 하죠?” 텐시의 물음에 니콜라스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짧게 대꾸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텐시. 베르니스는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수상쩍었던 것이다. 체력이라면 누구보다 강한 텐시가 자꾸 지리를 묻는 것이...... 갑자기 베르니스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리고 누구한테 말하는 것인지 모를 알쏭달쏭한 말을 툭 던졌다. “꼬리를 치는 여우 꼬리를 잡아야 하나, 유혹하는 늑대의 눈을 뽑아버려야 하나?” 순간 다들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 베르니스를 바라보았다. “.......” 그 말을 민감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있었다. 갑자기 텐시의 안색이 창백해진 것이다. 둔한 베르니스에게 속을 들여다보이고 말았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걸었다. 솔직히 니콜라스에게 호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다. 남자다운 선 굵은 얼굴과 다듬지 않아 거칠게 자란 수염. 중후한 듯하면서도 호쾌한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강한 몸. 이제껏 베르니스 하나만 알고 있던 그녀에게 그것은 충격이었다. 남자다움, 남성적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러나 관심을 끌기 위한 시도는 번번이 빗나갔다. 니콜라스는 전혀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무너진 자존심 탓일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좀 더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졌다. 오죽 했으면 둔하기로 소문난 베르니스가 눈치 챘을까. 하지만 실은 그 전에 이미 눈치 챈 베르니스였다. 다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고, 그 사실을 텐시가 몰랐을 뿐이다. 자신이 내뱉은 한마디에 죄 지은 사람처럼 주눅이 든 텐시를 보며 베르니스는 다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잘못을 깨우쳐주고 싶었을 뿐이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베르니스가 애써 텐시를 외면하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해가 서산에 걸렸다. 그런데도 마을까지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듯, 인가는커녕 좁은 길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베르니스가 불안한 듯 돌아보며 말했다. “어두어지기전에 자리를 잡는 게 어때요?” 블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베르니스가 덧붙였다. “그럼 모닥불 피울 장작을 구해오겠습니다.” 베르니스의 눈짓에 따라 일행들은 주변을 돌며 나뭇가지를 주워 모았다. 어둠이 깔렸을 때는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일행은 서둘러 간단한 육포로 끼니를 때우고 싸늘해진 공기를 등진 채 불가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오늘은 특히 해가 짧군.” 블루의 말에 니콜라스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게 드리운 나뭇가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는 가운데 울창한 숲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들이 한데 어우러져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었다. 클루토는 불안한 듯 자꾸 주변을 살폈다. 겁이 많은 그로서는 좀 체 익숙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에 나름대로 멋을 아는 스콜은 신이 났다. 불 위에 올려놓은 주전자가 끓기 시작하자 그는 품안에서 차를 꺼내 끓이기 시작했다. 청아한 차향이 진동했다. 그 차를 음미하여 블루가 말했다. “좋군.” “레어에서 챙겨왔어요.” “으흠.” 스콜 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번 끄덕여준 블루는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베르니스 역시 통 말이 없었다. 그는 스콜이 따라준 차를 음미하며 불꽃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콜은 둘을 번갈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 모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을 잠을 수가 없었다. 텐시까지도 입을 다문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서 말을 건네 보려다 그는 곧 생각을 바꿨다. 그녀가 서글픈 표정으로 베르니스의 안색을 훔쳐보는 것을 본 탓이다. 날이 밝자마자 다시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레어를 출발한 지 육 일째. 다들 지쳤다. 앞서가는 니콜라스가 어찌나 빠른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계속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니 일찌감치 체력의 한계가 왔다. 그 다음부터는 정신력으로 달렸다. 그러나 이제 그것도 거의 바닥이 났다. 발을 뗄 때마다 이대로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다. 클루토는 특히 죽을 맛이었다. 솔직히 마법사로서, 이와 같은 강행군을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으로 칭찬받아 마땅했다. 기사 출신인 베르니스나 스콜까지도 파김치가 된 마당이었으니 말이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클루토가 힘겹게 물었다. “헉헉, 조그만 쉬, 쉬었다 가면 안 될까요?” “그러지.” 그 즉시 일행들은 근처 바위에 주저앉았다. 숨을 고르며 그들은 블루와 니콜라스를 바라보았다. 그저 놀라운 따름이었다. 지치지 않는 괴물! 그들은 대체 자신들과 어디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그것을 찾기 위해 저마다 눈을 굴렸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들이 케르벤 남작의 영지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하늘을 발갛게 수놓은 채 저물어가는 황혼을 바라보며 작은 언덕을 넘어설 때, “어! 저기 마을이 있네요.” 클루토가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니콜라스가 짧게 화답했다. “도착한 모양이군.” “어서가죠.” “그러지.” 블루나 니콜라스로서도 푹신푹신한 침대와 따뜻한 음식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괴물 같아 보여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제4장 에스티마르와 재회하다 “이번 무투대회의 우승자는 누가 될까?” “아이린 공작의 둘째아들인 클라우드 경이겠지! 그러게 뻔히 답이 나와 있는 것을 입 아프게 왜 물어? 두 말하면 잔소리, 세 말하면 헛소리, 네 말하면 개소리지.” “하지만 여보게, 그건 너무 심한 비약 아닌가? 내가 보기에 우승은 떠오르는 신성 우클리 경께서 따 놓은 당상인 것 같은데.” 친구 셋이 노닥거리며 길을 걷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키가 크고 깡마른 체격의 사내가 뚱뚱한 친구가 과장되게 떠벌리는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정정하고 나섰다. 떠벌이 뚱뚱이도 고집을 꺽지 않았다. 한차례 혀를 차댄 그가 말했다. “쯧쯧쯧, 이 사람 보게. 자네는 그래서 아직도 마누라가 없는 거야. 눈치가 있어야지, 눈치가!” “무슨 눈치?” “세력 말이네, 세력.” “어허, 이 사람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구먼, 쉿! 끌려가 목이 잘리고 싶은 것인가?” “솔직히 누가 우승하면 어떤가? 자자, 기분도 꿀꿀한데 어서 가서 술이나 마시자고!” “좋지.” “그래, 가서 마시고 죽자!” 왁자지껄 떠들며 그들은 우르르 술집으로 몰려갔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블루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았다. 요즘은 어딜가나 무투대회 이야기뿐이었다.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입에 달고 살았다. 니콜라스가 물었다. “주군, 어디로 갈까요?” “알아서 해.” 니콜라스는 한 블록쯤 지나서 어느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쾅! 거의 동시에 웅성웅성 거리는 소음과 함께 은백색 플레이트메일을 입은 기사들이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혈기로 똘똘 뭉친 젊은이들로 시종 거만하고 당당했다. “풋!”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간 그들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겁 없이 무림을 주유하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블루는 절대로 개입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버릇처럼 기사들 면면을 살펴보았다. 기사들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분노로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것도 모자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유일한 중년이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슬슬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주인은 그들을 잡지 않았다. 음식값은 포기한 듯 그는 기사들 쪽으로 눈을 고정시켜놓고 있었다. ‘젠장 또 한동안 장사를 쉬어야겠구나.’ 여간 못마땅하지 않았으나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차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들한테 우리 평민은 사람도 아닐 것이다. 괜히 신경이라도 거스르면, 아니 그쪽에서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는 행동은 금물이었다. 그것은 목 잃은 시체가 되는 지름길이었으니까. 그때. “어떤 녀석이냐?‘ 불현듯 중년 기사가 분노의 일갈을 터뜨렸다. 식당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옆에 있던 젊은 기사가 한 사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저자입니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서는 정갈한 이목구비와 차가운 표정의 미남자가 묵묵히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아니, 여자인가? 차가운 표정과 블루 블랙의 긴 머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그 남자는, 만약에 옷만 아니었다면 여자로 착각했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얼굴선과 이목구비가 부드러웠다. 여자한테는 통 관심이 없는 블루조차 가슴이 뛰었을 정도이니, 어찌 남자의 얼굴이라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는 점이었다. 블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자네가 내 수하들을 죽였나?” 그에게 바짝 다가선 중년 기사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블루블랙의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식사를 계속할 분이다. “다시 묻겠다. 너냐? 네가 내 수하들을 죽인 것이냐?” 역시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르렁! 중년 기사는 가차없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내 수하들을 죽인 게 너냐?” 블루블랙의 미청년은 냅킨으로 천천히 입술을 닦았다. 그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수하들? 그런건 모르겠지만 조금 전 백주대낮에 대로에서 여인을 농락하려던 녀석들 몇을 저승으로 보낸 것은 확실하다.” “뭣이라?” 중년 기사의 고개가 빠르게 젊은 기사들 쪽으로 돌아갔다. 잠시 움찔한 젊은 기사가 이내 핏대를 세웠다. “우, 우리가 길을 가는데 네놈이 시비를 걸고 검을 휘두른 것이 아닌가!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돼먹지도 않은 거짓부렁을 나불대느냐!” 중년 기사는 잠시 그 기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가 물었다. “그 말이 사실이냐?” 그때 미청년이 대답을 가로챘다. “훗! 그따위 시답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고도 네가 사내냐? 네가 기사냐?” 비웃음을 매단 채 그는 찻잔을 들어 입가심을 했다. “누가 변명을 한단 말이냐?” “누군 누구냐? 너희들이지. 술이 취해 검을 휘두르며 행패를 부렸던 것을 그 사이 잊은 것이냐, 큭큭큭.” 순간 말없이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중년 기사의 눈에서 분노의 기운이 약간 걷혔다. 그러나 그뿐, 그는 설사 저 청년의 말이 옳다고 해도 변호해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중년 기사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자네가 그들을 벨 수 있는지 자격을 시험 할 수 밖에 없네.” 그 말은 자신과 싸워서 질 경우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의미였다. “좋소, 받아들이리다.” 팟! 샤넬처럼 얄팍한 검이 탁자 밑에서부터 사선으로 긴 곡선을 그렸다. “흡!” 챙! 검과 검이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중년기사는 밑에서 치고 올라온 미청년의 갑작스런 공격에 눈을 부릅뜨며 가까스로 막아냈다. 그러나 공기의 막을 뚫고 날아든, 검에서 뿜어낸 기운에 안면부 살갗이 베어지는 것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파팟! 얼굴에서 피가 튀었다. 그리고 그때, 블루와 미청년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순간 미청년의 싸늘한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지금의 급박한 처지를 잊은 것인가? 대뜸 그는 의구심이 가득한 눈빛을 블루 쪽으로 돌렸다. 그 틈을 노리고 다가서는 중년기사! 그의 검술은 보통이 아니었다. 미청년은 얼른 고개를 거두고 그와 맞섰다. 챙챙챙 세 차례 공방이 두 호흡만에 이루어졌다. “좋은 검이군.” “만만치 않아.” 검극을 서로 마주한 두 사내가 한마디씩 주고 받았다. 중년기사가 덧붙여 말했다. “죽은 자는 말이 ㅇ벗고 산 자는 거짓말을 하지만, 검은 진실만을 말하지. 자네의 말이 옳았네. 내 수하들이 잘못했어. 그러나 내가 자네 편을 들어줄 수 없단 것만 알아주게. 미안하군.” “사설이 길군.” “내가 그랬나?” 미청년의 말에 중년의 기사는 이미 수하의 일을 잊어버린 듯,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검을 재차 가볍게 말아 쥐었다. 필살기를 사용하겠다는 뜻이었다. “자네가 케르벤 영토의 기사단장인 나 클로빈 홉킨스의 검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 특별히 내 모든 것을 보여줄 생각이네. 그러니 부디 날 실망시키지 않길 바라네, 핫!” 미청년이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왠지 그 이름이 귀에 익은 탓이다. 게다가 사내에게서는 어중이 떠중이들과는 사뭇 다른 존재감이 또렷이 느껴졌다. 실제로 케르벤 영토의 기사단장 클로빈 홉킨스의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십 년 전, 클라우드라는 도적단이 발호했다. 그들이 잔혹한 손속과 추악한 행동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을 때, 단독으로 그들을 찾아가 단칼에 그들 두목의 목을 베어 세상에 이름을 떨친 사내가 클로빈 홉킨스였다. 물론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그의 검은 여전히 녹록치 않았다. 미청년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했다. 검을 가슴선 바로 아래에서 치켜드는 검식이었다. 옅게 깔리는 푸른 기운! 그것을 본 수하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서, 설마 오러 소드?” “믿을 수 없어!” 오러 소드는 선택받은 자들이라 불리는 마스터들만의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고리타분함의 대명사로 그들에게 놀림을 받던 클로빈 홉킨스가 소드 마스터급이라니! 농도가 옅은 것으로 보아 이제 겨우 소드 마스터 단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지만 그것이 어딘가! 그때 클로빈 홉킨스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죄가 없으나 이 사건에 휘말려든 것이 죄라면 죄. 내 그것을 정상 참작해서 고통 없이 단칼에 죽여주마!” 환각처럼 싸늘한 검신! 역시 빨랐다. 게다가 검식은 전혀 사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말 그대로 혼을 베겠다는 필살의 검법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미청년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홉킨스의 검극이 그의 몸을 꿰뚫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야 미끄러지듯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빠르게 빙글 돌며 중년인에게 바짝 다가가 그의 목에다 검을 들이댔다. “으윽!” 눈으로 확인하기도 힘들 정도로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 둘에게선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더하겠나?” 미청년이 싸늘한 눈빛으로 물었다. 비틀거리던 중년기사가 힘없이 흘러내렸다. “아니오, 내가 졌소. 이만 물러나리다.” “대장!” “대장님!” 수하들이 소리치며 달려들어 그를 부축했다. 그는 수하들의 손길을 떨쳐내고 힘겹게 일어났다. 그가 말했다. “그만 가자.” 우르르 밀물처럼 몰려왔던 그들은 분한 듯 검을 움켜쥔 채 미청년을 노려보며 클로빈 홉킨스를 따라 나갔다. 조용히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그들의 모습에 식당주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경우는 식당을 운영한 지 삼십여 년만에 처음이었다. 백이면 백 기사들이 맞붙으면 어김없이 난장판이 되었다. 공사가 끝나기까지 대략 일주일쯤 걸렸다. 물론 보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흐음.” 블루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그러다 니콜라스에게 불쑥 물었다. “저 청년의 검식을 보았는가?” 니콜라스가 말없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번 싸움에서 그는 많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오, 아름다워라! 극에 달한 검이 움직일 때 만들어지는 선의 아름다움을 그는 똑똑히 보았다. 그는 눈을 감고 그들이 보여준 매혹적인 움직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검에 대한 무리와 비교해보았다. 쉽게 결론이 났다. “지금의 저로서는 막아내기 힘든 검식이었습니다.” 블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저 청년의 검식은 아주 고차원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저 사내는 누구지? 누군데 날 알아보는 거지? 문제는 나 역시 저 사내가 전혀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블루의 그 의문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블루블랙의 청년이 그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 역시 형씨였군요. 그간 잘 지냈소?” ‘응? 저 거만한 말투는.......’ “아!” 그제야 그 청년이 누구인지 떠올랐다. “에스티마르!” “기억력 한번 끝내주는군, 하하! 하긴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어디 흔하겠어?” 반가운 나머지 블루는 그 말을 귀담아 듣지 못했다. 그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잘 지냈습니까?” “나야 늘 똑같지 뭐, 핫핫핫!” 순간 니콜라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주군에게 저렇듯 안하무인의 말투라니! 그러나 블루에게서 흘러나온 존칭이 그 분노에 제동을 걸었다. “그동안 뭐하고 다니셨습니까?” “흠, 여기저기 풍물 좀 구경하고 다녔지. 그런데 자네는 많이 변한 듯 하군.” 순간적으로 에스티마르의 눈이 빛을 발했지만 블루는 가볍게 웃어 넘겼다. “누군가에게 갚아야할 빚이 생겼거든요.” “오호, 그렇군. 빚은 빨리빨리 갚아야지. 안그러면 이자가 붙어서 나중에는 감당하기 힘들어지거든.”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후후.” “핫핫핫, 그나저나 자네들은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가?” “유슬라니안에서 무투대회가 열린다기에 찾아가는 겁니다. 에스티마르님께선?” “오호, 이렇게 공교로울 데가 있나. 나도 마침 구경하러 그곳에 가는 중이네.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가는 것은 어떻겠나?” “저야 나쁘지 않습니다만.” “그럼 같이 가세, 핫핫핫핫!” 구렁이 담 넘듯 은근슬쩍 일행에 합류하게 된 에스티마르. 왠지 모를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즐거워하는 블루 때문에 일행들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니콜라스도 일단 돌아가는 상황을 살핀 후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돌렸다. “에스티마르라는 저자는 누구입니까?” 베르니스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블루는 등 뒤에서 들리는 니콜라스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내 은인이라도 볼 수 있네.” “아무리 은인이라 해도 안하무인의 성격은...... 그 사람 정체를 혹시 알고 계십니까?” 순간 블루는 고민에 빠졌다. “여행자라고 했다가 마법사라고 했는데...... 정말 뭐하는 사람일까?” “그건 제가 여쭤본 질문 아닙니까?” “그렇군, 하하.” “그렇게 웃고 넘길 게 아닙니다. 적의 본거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을 만났으니, 마땅히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지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는 척하던 블루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대충 넘어가면 정말로 안 되는 건가?” 순간 니콜라스의 이마에 혈관이 불거졌다. “죽고 나서도 ‘그때 실수했군’ 하고 웃으실 생각이십니까?” 그 말에 일행들이 저마다 수군거렸다. 그리고 그 여파로 블루는 얼마간 진지한 모습을 되찾았다. 슬쩍 클루토에게 눈길을 준 블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긴 마법사치고는 검술이 꽤 뛰어난 편이네.” “치고가 아닙니다! 거의 일대종사의 실력이었습니다” 니콜라스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러면서도 왜 자신이 그러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사내! 블루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가 말했다. “에스티마르의 정체가 확실해질 때까지는 너무 가까이하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블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블루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에스티마르와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니콜라스는 못마땅한 듯 바라보았다. 블루와 그의 일행은 케르벤 영지를 떠난 지 십삼 일 만에 무투대회가 열리는 우드남 백작령에 도착했다. 대회가 열리기 이틀 전이었다. 백작령은 사람들로 붐볐다. 본국과 가까운 터라 상당히 번화한 곳일 거라고 짐작은 했으나 길을 걷기도 힘들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휴, 어마어마하군.” “삼 년마다 열리는 무투대회가 곧 시작될 테니 당연하지. 전국에서 모여든 것은 물론이고, 타국의 기사들까지 출전하는 명실상부한 대륙최고의 무투대회인 만큼 볼거리도 풍성한 탓이지.” “그렇다 해도 엄청 나군요.” 에스티마르와 블루의 대화를 들으며 일행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왠지 모르게 한숨이 났다. 그들 관계를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특히 에스티마르는 평소엔 차갑기 짝이 없었는데, 블루와 이야기를 나눌 때만큼은 격의 없이 굴었다. 더러는 수다쟁이로 오해할 만큼 말을 많이 늘어놓기도 했다. ‘대체 둘의 관계는 뭘까?’ 그러나 곡 그 의문을 접고 주변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장사치들과 흥정하는 사람들의 떠도는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계속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인파는 대단했다. “여기는 관청들이 모여 있어서 보통 때 같으면 사람들 발길이 뜸할 텐데 역시 사람들이 많군요.” 텐시의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일 때, 에스티마르가 식당 쪽으로 발을 옮겼다. “우선 먹고 움직이도록 하지. 그리고 이곳에서 묵으려면 짐도 풀어야 하니까 이 근처에서 숙식 가능한 펍(pub)을 찾아보자고.” 음색냄새에 갑자기 식욕이 동한 모양이었다. 베르니스들과 니콜라스는 앞서가는 블루와 에스티마르를 보고 배를 쓰다듬었다. 꼬르륵거렸다. 점심을 건너뛴 탓이다. “어서옵쇼!”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사내가 블루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그러나 표정이 밝지가 못했다. 아마도 식당 안이 시끌벅적한 탓인 성싶었다. 그때 블루의 눈에 여인, 아니 여인이라기에는 어린 소녀와 동료로 보이는 젊은 사내 그리고 그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턱수염이 인상적인 주정꾼 세 명이 눈에 들어왔다. “이놈의 자식! 감히 누구 엉덩이를 훔쳐보는 거야!” “내가 무얼 훔쳐봤다고 지랄이야. 이 발육부진의 지진아 주제에!” “뭐라고, 이 망할 자식이!” “유리, 이제 그만하는 게 어때?” “뭐라구욧! 저 산적 부두목같이 음탕하게 생긴 자식이 내 가슴하고 엉덩이를 징그러운 눈빛으로 훔쳐본 것 못봤어욧?” “체, 그것도 가슴이라고 가슴가슴하기는...... 우리 마누라가 사용하는 빨래판하고 다를 바가 없는 절벽이 무슨 가슴이라고!” “뭐? 빨래판? 절벽?” 유리라 불린 소녀는 노발대발이었다. 눈에 불을 켜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것이 당ㅈ아이라도 산적 부두목같이 생긴 녀석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그 모습을 본 텐시가 혀를 찼다. 저 중 누군가를 알고 있다는 투였는데, 일행은 텐시의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주인이 씁쓸하게 웃으며 블루 일행을 구석진 자리로 안내했다. 다소 시끄러운 것이 흠이었지만 지금 이 시간에 자리 잡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들은 군소리 없이 따라갔다. “손님 식사는 무엇을 드릴까요?” 주인의 말에 니콜라스가 대답했다. “점심 메뉴로 갖다주게. 그리고 혹시 흑맥주 있나?” “있습니다. 가져다드릴까요?”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그때 텐시가 물었다. “그런데 방은 있습니까?” “죄송합니다만 빈 방이 없군요.” “아직 빈 방이 있을 만한 데가 있을까요?” “글쎄요. 무투대회가 열리기 전이라 아마 방을 구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주인이 돌아가자 다들 축 늘어졌다. 강행군에 지친 탓이다. 거기다 빈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또 얼마나 헤매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그때, 와장창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이어지는 사내의 비명! 처절하기조차 한 비명에 텐시는 얼른 식탁에 고개를 박도 못 들은 척했다. 그것을 본 일행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 후, “썩 꺼지지 못해!” “으드득, 두고 보자!” “조금만 기다려......크윽!” 사내들이 전형적인 엑스트라 대사를 읊자, 유리가 손을 털며 응수했다. “얼마든지!” 그리고 잠깐의 사이를 두고 터져 나온 외침. “어머 언니!” 텐시는 머리를 감싸며 식탁에 고개를 박았다. “거기 언니 맞지? 그렇지?” “.......” “오면 온다고 연락이라도 하지.” 유리는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 텐시에게 아는 척을 했다. 식탁에 머리를 박고 있던 텐시는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어머, 언니!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니 그냥 두통이.......” “저런, 언니는 몸이 약해서 탈이라니까. 항상 만날 때마다 머리가 아프다고 하니, 유리는 속상해요.” 공기를 가득 채워 넣은 듯 볼을 부풀린 채, 소녀가 속상하다는 얼굴로 말하자 텐시는 오른손을 번쩍 들며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유리라는 소녀가 방긋 웃었다. “아참, 그나저나 지금 오셨다면 언니들, 아직 방을 잡지 못하셨겠네요?” 그 말에 귀가 솔깃해진 텐시와 일행들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유리를 올려다보았다. 텐시가 물었다.“혹시 남는 방이라도 있는 거니?” “물론이죠, 언니! 제 우상인 언니를 위해서라면 없는 방도 훔쳐드릴 수 있어요. 이미 우리 길드에서 언니는 영우이니까요. 일 년 전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것을 훔친 후로 말이죠. 우드남 백작의 가보인 펜던...... 으윽!”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텐시는 재빨리 계속 나불거리는 유리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읍?” 유기가 눈을 크게 뜬 채 발버둥거렸다. 그러나 텐시는 그런 유리의 눈빛을 가볍게 모아모아서 앞에 보이는 쓰레기통에 여지없이 처박아버렸다. 그리고 진땀 흐르는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혹시 누가 듣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다들 음식을 먹거나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동안 별다른 눈치가 보이지 않자 텐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누군가 들었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눈에 불을 켜고 그녀를 찾고 있을 우드님 백작. 오면서도 벽에 붙어 있는 현상 수배 전단지를 보지 않았던가. 얼굴을 모르니 몽타주는 형편없었고, 그녀에 대한 설명도 추론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말이다. 텐시는 유리의 입에서 손을 떼고 은근슬쩍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유리도 의구심을 지웠다. 실책을 깨달은 것이다. “죄송해요, 언니.” “됐어.” 텐시가 다시 식탁에 머리를 박고 엎드리자 유리가 울먹이지 시작했다. 자신이 실수한 것 때문에 텐시가 화가 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화 많이 나셨죠?” “으휴.” “정말정말 죄송해요. 흑흑, 난 항상 왜 이모양인지 몰라.” “아냐, 정말 괜찮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을 마주쳐주지 않자 유리는 침통한 표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계속 울먹거렸다. 그러자 난처해진 것은 블루 일행들이었다. 그래서 결국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었다. 베르니스가 말했다. “텐시, 그만 용서해주지 그래? 저렇듯 반성하고 있잖아.” “나 화 안 났다니까!” “알아 , 화나지 않은 거. 그러니까 내 말은 조금 보듬어 주란 말이야.” 유리가 울먹이며 베르니스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오빠. 신경 써주셔서 고맙지만 다 제가 잘못해서 생긴 일인걸요, 흑흑.” “으휴.” 텐시는 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독이기 시작했다. “난 괜찮아. 그러니까 그만해. 알았지?” “언니, 고마워요! 미안해서 그러는데 오늘은 제가 쏠게요. 괜찮죠?” “아, 아니 별로 안 괜찮은.......” “에이, 걱정 마세요. 저 돈 많아요, 헤헤헤.” 유리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본 텐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그게 아니라......” “잠깐만요, 저기 앉아 있는 친구들을 좀 데려올게요.” “.......” 유리는 텐시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제멋대로 행동했다. 유리가 자리에서 사라지자 일행들이 입을 열었다. “왜 그래? 애가 덜렁거리는 거 빼곤 괜찮은거 같은데.” “맞아.” 그때 텐시가 반문했다.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거야?” 그제야 일행들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스콜이 물었다. “왜? 뭐 다른 문제라도 있어?” “문제? 그래, 있지. 저 아이가 가는 곳에는 반드시 사건이 터져. 게다가 정작 본인은 자신이 저지른 사고를 인지하지 못하거든. 결국 근처에 있는 동료가 그 사건을 모두 해결 할 수 밖에.” “그게 무슨 소리야?” 스콜의 되물음에 텐시가 다시 손을 휘저었다. “나도 모르겠다. 너희 잘못으로 이번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으니까...... 솔직히 나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러니까 알아서들 잘해봐.” 정말로 사건이 터질 거라고 확실하는 듯한 텐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같이 설마 사건이 터지겠냐는 반응들이었다. 그때 유리가 한 사내를 끌고 와 식탁에 나란히 앉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스콜이 나섰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을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유리는 마음에 드는 사내가 웃는 낯으로 입을 열자 마주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스콜은 속으로 감탄했다. ‘아, 정말 예쁘다!’ 스콜이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스콜이라 하고 이쪽은 견습 마법사인 클루토, 여기는 나와 같은 검사 출신의 베르니스 그리고 저기 은발의 친구는 우리 짐꾼인 블루, 그 옆에 계신 분은 니콜라스라는 분이죠.” 순간 니콜라스가 발끈했다. 블루를 짐꾼으로 소개한 탓이다. 물론 블루 스스로 자신을 소개할 기회가 있으면 그리하라고 시켰지만, 듣고 보니 기분이 영 아니었다. 그렇다고 주군의 명을 받은 입장에서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으휴.’ 이래저래 한숨만 늘어났다. 그때 유리가 에스티마르를 올려다보면서 눈방울을 반짝였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시죠?” “아, 지금 유리님 옆에 계신 분은 여행가이신 에스티마르님이십니다.” “아, 에스티마르 언니!” 순간 물을 마시던 일행들은 단체로 사레가 들고 말았다. “푸훗!” 몇몇은 코나 입으로 다시 물을 내뿜기까지 했다. 그러나 눈치 없는 유리는 계속 말을 걸었다. “정말 예쁘시네요. 그런데 평소에 피부 관리는 어디서 하시나요?” 에스티마르가 살짝 인상을 썼다. 그러나 유리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떠들었다. 결국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에스티마르. “피부 관리 같은 건 안 한다.” “그렇군요. 그런데 언니 목소리가 중성적이라 더욱 멋진 것 같아요.” “푸훗!” 결국 에스티마르도 마시던 차를 내뿜고 말았다. 일행들은 더 이상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최대한 소리를 죽였기에 킥킥거리는 수준일 따름이었지만. 그리고 유리는 에스티마르의 반응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입방아를 찧어댔다. “머리결도 참 좋다. 아, 부러워라.” “.......” “여하튼 정말 반가워요. 저는 유리라 하고, 여기 이 친구는 프랭크.” “안녕하세요. 프랭크라고 합니다.” 호리호리하게 마른 것이 꽤 날렵하게 생겼지만 그다지 호감이 가는 얼굴은 아니었다. 인사가 끝나자 블루가 말했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때 블루가 니콜라스의 다리에 손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가해지는 약간의 압력. ‘응?’ 금세 분노는 수그러들었다. 그가 분노하는 것을 미리 눈치 챈 블루가 제재를 가한 것이다. ‘아, 내가 너무 속이 좁았구나.’ 니콜라스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블루가 그릇이 크다는 것을 재삼 확인하며 역시 자신의 주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알지 못했다. 엄청난 분노로 인해 블루가 손을 헛디뎠다는 것을 말이다. “아, 그게 저.......” 블루가 당혹스러운 듯 말을 더듬었다. 순간 유리의 곱게 빚은 초승달 같은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흥! 언니는 어째서 저런 것들과 어울리는지 모르겠어. 언니가 너무 착한 거 아냐? 여하튼 좋아. 지금이 아니면 언제 장차 대 도둑길드의 마스터가 되실 분을 만날 수 있겠어? 오홋홋홋!” 뭔가 휘황찬란하게 자신에게 금칠을 했으나. 알고 보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과 진배없었다. 그러나 블루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진심으로 몰라봐서 미안하다는 투로 얼른 사과했다. “본인의 견문이 짧아 미래의 대 도둑님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으니, 그저 너그럽게 용서해주십쇼.” 그럼에도 유리는 여전히 뭔가 부족한 듯 몸을 틀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언제까지 그 꼬락서니를 이어갈지 지켜보겠다는 블루의 생각을 허영심 많은 유리가 알 리가 없었다. 다만 블루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동료들, 특히 베르니스들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들이 블루에게 맞은 부위나 블루를 통해 다친 부위가 욱신거리며 쑤셔왔기 때문이다. 순간 그들의 머릿속을 동시에 강타하는 한 문장. ‘대, 대형사고닷!’ 피 보기 싫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피해야 했다. 그러나 가슴속에서 치솟는 공포심으로 그대로 얼어붙었다. 과연 블루의 저 천연덕스러운 연기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감히 짐작도 되지 않아 일행들이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졸이는 가운데, 여전히 유리는 블루 옆에 바짝 붙어 뻔뻔스러운 표정으로 할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텐시는 지금의 상황을 미리 예견한 것일까? 니콜라스, 베르니스, 클루토, 스콜은 새삼 텐시가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텐시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젓고 있었다. 유리가 말했다. “늦게나마 알아봤으니 용서해주죠.” 순간, “푸푸푸 하하하하하하하하!” 블루의 입에서 참고 있던 웃음이 튀어나와 결국 박장대소로 이어졌다. “응?” 유리의 얼굴이 싸늘히 굳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프랭크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유리의 성질머리를 자극했으니 이제 무슨 사단이 날지 걱정이었던 것이다. 과연, “너, 너 뭐야!” 앙칼진 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대꾸하려던 블루의 고개가 빠르게 입구 쪽으로 돌아갔다. 문밖이 소란스러웠다. “기, 기사 나으리님! 어, 어서 오십쇼.” “시끄러! 아까 그 년놈들 아직 안에 있지?” “예?” “어딨어, 지금?” “저, 저기 있습니다요.” “그래?” 곧 쿵쾅거리며 기사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대략 삼십 명쯤 되었는데, 좀 전에 유리한테 얻어터진 사내가 앞으로 나와 두리번거리더니 유리를 지목했다. 블루는 그들이 거침없이 다가오는 것을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들은 블루 일행들까지 싸잡아 포위했다. 그리고 한 사내가 나섰다. “이 년놈들이 틀림없지?” 조금 전에 유리에게 맞고 사라진 녀석이 불안한 얼굴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예.” “그래? 이따위 녀석들한테 당하고도 그런 소리가 나온단 말이지?” 기사단장이 자신의 검을 뽑아들더니, 그 사내의 목을 거침없이 베어버렸다. 푸슈슈슈슈! 털썩 목 없는 시체는 바닥에 자빠져서도 한동안 꿈틀거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기사단장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블루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놈들이 내 수하를 건드렸는가?” “건들긴? 지들이 와서 맞은 거지. 칫.” 유리는 자신이 말을 하고도 흠칫 놀라 스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네년이었구나!” 순간 유리의 얼굴에 퍼지는 후회의 물결. 평소 같았으면 일찌감치 도망치거나 용서를 빌었을 일이나, 지금은 블루 탓에 악에 받칠 대로 받쳐 있었기 때문에 그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녀는 빠르게 텐시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른바 구조요청이었다. 이제 믿을 것이라곤 블루를 제외한 그들 일행들이라 판단한 것이다. 블루도 칼받이 정도로는 쓸모가 있겠다 싶기도 했지만, 그녀가 도망칠 만큼 시간을 벌어줄 것 같지 않아 제외시켰다. 일단 그녀는 언성을 높였다. “수하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거지발싸개 같은 놈의 대를 끊어준 것은 사실이다. 왜? 네 녀석의 불알도 터뜨려줄까?” ‘헉! 내가 왜 이러지?’ 계속되는 말실수. 그러나 이미 주워 담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무마시켜야만 했다. 그녀는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가관이었다. 베르니스는 경악에 겨워 계속 고개를 젓고 있었고, 텐시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기사단장이 비릿하게 웃었다. “네년이 그 모가지가 잘린 후에도 그렇게 값싸게 주절대는지 어디 한번 볼까?” “왜? 치려고? 꼭 머리가 나쁜 녀석들이 말발이 딸리면 손으로 해결하려고 들더라. 왜? 꼬와, 꼬우면 쳐봐! 쳐보라니까!”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사단장이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물러났다. “으윽!” 난생 처음 겪는 그 상황에 어찌 대처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목을 치면 자신이 무식하다고 광고하는 꼴이 아닌가. 그래서 열심히 머리를 굴리느라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튀어나온 유리의 독설과도 같은 말 한마디. “등신! 꼭 치라면 못 쳐요.” 순간 베르니스는 파랗게 질리다 못해 창백하게 변해버렸다. 기사단장의 얼굴은 더욱 가관이었다. 심한 분노로 꿈틀거리는 안면근육! 그 분노가 얼마다 대단했는지, 분노한 마왕의 얼굴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강항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유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후로 어록에 담을 만큼 화려한 욕설와 입담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때마다 베르니스들은 아직도 제자리에 붙어 있는지 확인하듯 목을 만지곤 했다. 그러나 정반대로 그녀의 다재다능한 욕설과 걸쭉한 입담 하나하나는 식당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 심금을 울리며, 맺힌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유언처럼, 혹은 정신이 온전치 못해 마구 내뱉는 듯한 그 한마디 한마디는 그대로 카타르시스였다. 누가 감히 저 기사라는 이름의 개망나니들을 이렇듯 속 시원히 질타할 수 있단 말인가. 기사단장의 원판은 그리 못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유리의 몇 마디 말에 원판 불변의 법칙(?)이 깨지며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져서는, 오우거가 서너 번 밟고 지나간 얼굴로 전락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데, 계속해서 유리의 말을 듣고 있다보니 정말 싹수가 없어보인 탓이다. 사람 셋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데, 그것을 지금 유리 혼자서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었다. 실로 대단한 능력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 녀석 참 인내심 하나는 끝내주게 좋군.’ 공포와 경악을 넘어서자 오히려 편안해져, 제삼자 입장에서 관찰하게 된 일행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었다. 수하를 단칼에 죽인 놈이, 아직까지 죽일지 말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우유부단한 놈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나 실은, 이런저런 말들을 조합해 사람 하나를 바보로 만들어 나가는 유리의 탁월한 언어적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텐시는 그것 보라는 듯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주, 죽일...... 쫙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자존심으로 뭐고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기사단장이 검을 뽑으려는 찰나, 니콜라스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큭큭, 무섭군. 참으로 무서워, 큭큭큭.” 그 말에 기사단장은 다시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 손잡이를 힘껏 움켜쥔 것까지는 좋았으나, 검을 조금도 뽑지 못한 채 그는 얼어붙어버렸다. 지금껏 견제만 하고 있던 녀석이 입을 연 탓이다. “시끄럽다! 네놈들이 날 무시하는 것도 여기까지다! 모두 죽여주마!” 순간 니콜라스의 표정이 싸늘히 변했고, 기사단장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후회하게 되었다. 아무리 낮게 잡아봐도 니콜라스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 거의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낸 유리의 입이 잠시도 쉴 수 없다는 듯 다시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이 개자식아, 죽이지도 못할 거면 함부로 그 더러운 주둥이를 나불대지 말고, 죽이겠다고 했으니까 죽여라, 어서 죽여! 지금 당장 죽이지 못하면 오늘부터 게이 바에서 ‘오빠’소리 듣게 만들어줄테다!” 순간 니콜라스까지도 얼어붙고 말았다. 이것은 누가 봐도 최악이었다. 옆에 있던 프랭크가 화들짝 놀라 말했다. “유, 유리!” 그러나 그 말은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말의 홍수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유리는 눈을 부라리며 계속 자극적이 말을 쏘아붙였다. “이 구슬 세 쪽 다린 개놈의 자식이.......” 입이 상당히 걸쭉하고 미모가 뛰어난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식탁 위로 쓰러졌다. 니콜라스가 그녀의 목덜미를 가격해 기절시킨 탓이다. 그리고 니콜라스는 자신의 이마를 엄지와 검지로 지압하며,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이것 좀 어서 치워.” 그리고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지압하던 니콜라스는 프랭크가 미적거리자 대뜸 언성을 높였다. “어서 못 치워!” “네, 네네!” 프랭크가 기절한 유리를 질질 끌고 자리를 피했다. 그것을 본 기사단장이 비릿한 웃음을 빼물었다. 드디어 골칫거리가 사라졌으니, 어서 빨리 상황을 정리하고 저 입만 살아 나불거리는 년을 죽여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죽여라!” 기사단장의 그 한마디에 기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제길!” 니콜라스를 필두로 베르니스와 스콜이 검을 뽑았다. 순식간에 음식점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으악!” “살려줘!”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에스티마르와 블루는 텐시와 클루토 등을 데리고 다른 손님들과 함께 구석으로 피신했다. 그러자 다들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까봐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개중에는 싸움을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시선은 식당 한복판을 향해 있었다. 제5장 그러나 아직도 이 프로 부족하다 “쯧쯧.” 기사들의 인정사정없는 손속에 혀를 차던 스콜. 후웅! 그때 옆에서 검이 날아왔다. ‘헛!’ 그는 바삐 몸을 비틀어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검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잠시잠깐 방심하는 사이, 검이 너무 깊숙이 파고든 것이다. ‘늦었다!’ 퍼뜩 그런 생각이 스치는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아?” 베르니스가 물었다. 위기의 순간, 베르니스가 검집 채 휘둘러 스콜을 노리고 덤벼들던 기사의 손목을 후려친 것이다. 정말 찰나지간의 일이었다. “아악!” 검의 주인은 손목이 부러지는 고통에 비명을 토했다. 그가 검을 놓치자 베르니스는 그대로 자신의 검집을 일자로 뻗어 기사의 명치를 가격했다. “커흑!” 기사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베르니스가 차갑게 말했다. “위험했어. 정신 바짝 차려야지!” “고맙다.” 스콜의 말에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무섭게 말문을 열었다. 삼십 대 삼. 이미 쪽수에서 밀리는 싸움이었음에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우세했다. 니콜라스의 압도적인 무위 탓이었다. 스콜과 베르니스가 이 대 일로 싸워 하나씩 물리치는 전술을 택할 수 있게 된 것도 니콜라스 덕이었다. 그가 완벽하게 견제해준 덕에 가능했다. 그 외에 다른 떨거지들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한 것이다. 블루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지만. 솔직히 블루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죽든지 살든지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기회에 귀찮은 것들을 잘라버리자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얼마나 싸웠을까?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상당히 소모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기사들의 실력이 뛰어난 탓이다. 당연했다. 황궁 근처에 배치된 관록있는 기사들이 아닌가. 그들이 트러블메이커에다 난봉꾼 기질까지 다분한 데는 그만한 무력이 뒷받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의 얼굴이 차츰 파랗게 질려갔다. “너, 너무 강하다!” “도저히 승산이 없어!” 기사들의 입에서 단내가 풍겼다. 지친 것이다. 사실 이렇듯 시간을 끌 수 있었던 이유도, 니콜라스 측에서 기사들을 죽이지 않고 기절시키느라 세심한 신경을 쓴 탓이었지, 만약에 그냥 죽였다면 이미 모든 상황은 종료되고 말았을 것이다. 블루가 무혈쟁투를 명령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미 싸움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사단장의 눈치를 살피느라 검을 회수하지 못한 기사들이 마지못해 휘둘러댈 뿐이었다. 그 중 몇몇은 뒤늦게나마 눈치를 차렸는지 슬금슬금 뒤로 빠지는 중이었다. 순간 그들을 예의주시하던 기사단장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이런 머저리들! 저리 비켜랏!” 그 외침과 함께 그가 몸을 날렸다. 기사단장의 검은 정확하게 니콜라스의 빈틈, 그의 수하가 내지른 검을 피하면서 생긴 빈틈을 노리고 파고 들었다. ‘큭큭, 가장 골치 아픈 녀석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군.’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는 일도양단의 기세로 검을 내리그었다. 퍽! 미처 피하지 못한 니콜라스가 그대로 절단되었다. “아악!” 지켜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피가 튀길 것을 염려한 듯했는데, 웬걸 말끔했다. ‘뭐, 뭐지?’ 기사단장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당혹스러웠다. 분명히 니콜라스를 정확히 벴다. 그런데 전혀 감각이 없었다. 게다가 믿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었다. 반으로 갈라진 니콜라스의 모습이 사라진 것. “저게 뭐야?” “말도 안돼!” 사람들 얼굴에 경악과 의문부호가 교차했다. 그리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기사단장. 그는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서, 설마 일루전 마법?’ 미처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등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나를 찾고 있는가?” “헉!” 기사단장은 기겁을 했다.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댄 채 비릿한 미소를 뿌리는 니콜라스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때 기사단장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 “비겁한.......” 검으로 목을 그어버리려던 니콜라스는 순간 흠칫했다. “비겁?” 그 한마디가 니콜라스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그래, 비겁하지. 일루전 마법 따위로 눈속임을 하고 뒤를 노리는 것이 어찌 비겁하지 않단 말이냐? 그게 기사로서 할 짓이냐?” 그 말에 니콜라스는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음이었다. “그렇다면 넌 어때?” “내가 무엇을 말이냐?” “네 수하와 싸우는 사이 들을 노린 네 수법은 정정당당한 것이냐?” 기사단장은 뜨끔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난 내 수하들의 위험을 보고 앞으로 나선 것뿐이다.” “훗, 빨리도 나서더군.” “으익!” “그것은 그렇고 내가 일루전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그. 그럼 아니냐? 이 비겁한 놈!” “그래, 기습하는 너는 정당하고 나는 비겁하다고 치자. 그래서 수하의 목을 무 썰 듯 벤 것은 무슨 경우냐?” “그, 그것은 녀석들이 내 명예를 실추시켰기 때문이다.” 그 한마디에 니콜라스의 이마가 꿈틀거렸다. “명예?” “그래!” “그것이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가?” “그럼 아니냐? 기사의 생명은 첫째도 둘째도 명예다!” 니콜라스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용병으로 잔뼈가 굵은 니콜라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일뿐더러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말이기도 했다. 용병들도 상하체계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가족보다도 가까웠다. 목숨을 담보로 한배를 탔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따라서 수하의 허울은 곧 그의 허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싫다고 목을 베어버리는 것이 기사의 명예라면, 같은 종끼리는 죽이지 않는 개돼지보다도 못한 게 아닌가. 그것이 니콜라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당장 검을 휘둘러 녀석의 뻔뻔스러운 낯짝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지엄한 블루의 명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마검사냐?” “말을 돌리지 마라. 그냥 기회를 한번 달라고 빌어라.” “크윽!” 순간 기사단장의 몸이 움찔했다. 니콜라스는 그의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변해 할 말을 잃고 주억거리는 모습을 보며 냉소를 흘렸다. “좋다. 기회를 한 번 더 주마. 그 후에도 네 녀석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흘러나올지 기대하마.” 그리고는 등을 쳐 반대편으로 밀쳤다. 기사단장은 비틀거리다 자리를 잡고 섰다. 부끄러움으로 물든 얼굴. 그러나 실력으로 지금의 창피함을 만회하겠다는 듯 검을 꼬나 쥐었다. 기사단장의 검이 니콜라스의 어깨를 노렸다. 챙챙! 검이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우웃!” 기사단장의 손이 찌릿찌릿했다. 그러나 상대는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 무덤덤한 얼굴로 달려들었다. 그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가 보여준 실력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다시 덤볐다. 기사단장은 자신의 검에 마나를 듬뿍 실었다. 상대의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채앵! “커헉!” 순간적으로 그는 검을 놓칠 뻔했다. 니콜라스의 검과 맞부딪치는 순간 강한 전기에 감전된 듯 저릿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감싸고 흘러드는 니콜라스의 마나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경악성을 내질렀다. “마, 마스터!” “.......” 결코 중금 소드 익스퍼트인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니콜라스는 마스터 중에서도 최상에 속하는 고급 소드 마스터가 분명했다. “너, 너는......아니, 당신 마스터요?” 기사단장의 그 한마디에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스터인지 아닌지 그 진의를 파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터져나온 사람들의 탄성! 검에 수많은 백색 강기가 회오리치듯 검신을 타고 올라가더니, 순간 검에서 품어지는 푸른 오러. 고오오오오! 완벽한 오러 소드의 형상이 그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탓이다. 사람들의 탄성이 한동안 이어졌다. 말로만 듣던 마스터 오러 소드를 처음 목도한 탓이다. 놀란 것은 비단 그들만이 아니었다. “서, 설마!” “그게 사실이란 말인가?” 텐시를 포함한 스콜과 베르니스, 클루토의 입이 쩍 벌어졌다. “고급 소드 익스퍼트가 아니었나?” 스콜의 한마디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수긍의 표시는 아니었다. 단지 누군가의 해명을 요구한 것뿐이다. 그들의 눈길이 하나둘 블루에게로 모아졌다. 블루는 그 진의를 알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저 믿기지 않는 현상에 대한 해명은 블루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대장! 아, 아니 블루! 대체 어떻게 된 거죠?” 그러나 블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가에 미소만 머금을 뿐. “저, 저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감정이 북받친 니콜라스가 울먹거렸다. 지쳐 운기조식에 취해 있던 블루. 그는 일주천을 끝으로 눈을 떴다. “후후, 자네의 그 삶에 대한 치열한 의지와 생명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네. 그러니까 그렇게 감격할 필요는 없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니콜라스는 어느 정도 진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잘린 팔을 움직여보았다. 주변에 널린 껍질, 꿈속에서 보고 들었던 알 수 있었다. 몸 안에 가득 차 있는 기운이 말해준 탓이다. 예전에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거대한 기운! 그것이 몸 안에서 용트림하듯 회오리치고 있었다. 블루가 아니고선 불가능했음은 물론이요, 자칫 자신의 목숨마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생환시킨 것이다. 부모가 그에게 생명을 주었다면, 블루는 자신에게 삶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주었다. 그래서 니콜라스는 맹세했다. 오늘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자신의 주군이 블루만을 위해 살겠노라고. 처음 자신의 선택은 옳았던 것이다. 그때 블루가 지친 목소리가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네. 억지로 그릇의 크기를 늘려놓기는 했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물의 양이 터무니없이 작아서 그것을 맞춰야하네. 그런 불균형이 계속 유지될 경우, 머지 않아 육신의 붕괴를 초래 할 수도 있으니까. 물이 담겨야할 컵에 엉뚱하게 독이 들어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니콜라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것으로 어떤 고통도 참을 준비가 끝났다. 자기 생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주군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었다. “어려운 건 아니야. 자네에게 부족한 몇 가지를 가르치려고 하는 것뿐이니까. 그것만 착실하게 수행하면 더 이상 균형이 붕괴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네.” “그게 뭔가요?” “호흡이다.” “호흡이......다구요?” “그래.” 니콜라스는 생뚱맞은 표정을 지었다. “왜? 호흡이라니까 우습나?” 블루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순간 니콜라스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붉게 변했다. 블루가 말했다. “하긴 지금까지 자네가 해온 수련법과는 많이 다를 것이니, 믿기 힘들 수도 있겠지.” 니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선 무작정 몸으로 배우는 것밖에 없는 것 같지만,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지. 몸을 움직이며 마나를 쌓는 것과 호흡하며 마나를 쌓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효율적인 것 같나?” 흠칫! 의구심과 동시에 니콜라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설마 호흡만으로 그게 가능하다는 말씀이신가요?” 블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정확하게 숨 쉬는 법을 배워야할 것이다.” “그런데 숨 쉬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하긴 의심이 들만도 하겠지.” “부끄럽습니다.” 니콜라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믿는다 믿는다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솔직히 네 나이가 많아 가르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특별한 인연으로 새 육체를 지니게 되어 몸속의 불순물이 없기 때문에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열려 있는 마나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곳의 문이 닫히게 되니 , 최대한 빠르게 설명하겠다. 우선 기본적으로 마나라는 것을 설명하기에 앞서 경락과 경혈에 대해 풀어주마. 기본적으로 인간의 몸은 우주의 근원을 지닌 오체를 중신으로 오행와 일통하는 오장과 육부가 있다. 그 오장과 육부를 다스리는...... 그러니까 경락과 경혈은.......“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그 이야기는 끝에 다다랐다. “......인간의 몸은 천기의 이치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기의 흐름에 따라 생성된 것들이지.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니콜라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나같이 생경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들이 낯선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블루는 통해 자신의 육체가 재구성될 때 얻은 깨달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무의식 속에서 멋모르고 블루의 지시를 따랐던 그 이유가, 지금의 이야기를 듣고 어느 정도 해석된 탓도 있을 것이다.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 우선 그런 것이 있다는 정도만 이해하면 되니까.” 니콜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블루는 다음 주제로 이야기를 넘겼다. “그렇다면 마나란 무엇인가? 마나라는 것은 물과 같은 것이어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지. 하지만 자연스레 흐르는 기를 우리 같은 기사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그 흐름을 조정하는 것을 배운다. 그 마나라는 것을 자유자래로 사용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대자연을 활용할 줄 안다는 것을 뜻한다.” “너무 난해해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니콜라스의 멋쩍은 그 한마디에 블루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생각해봐라. 마나라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다. 그냥 물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인간은 그 물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 생각하면 되고. 그 물의 흐름이 깨진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니콜라스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쉽게 생각해라. 유유히 흐르는 물의 강이 막혀 물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면 물은 어떻게 될까?” “썩게 됩니다.” “그렇다. 흐르지 않고 고이면 물은 썩는다. 마찬가지다. 인간의 몸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정도로 정교하기 때문에, 평소와 달리 마나의 흐름이 바뀌면 너무나 쉽게 고장이 나는 것이다. 그것을 주화입마에 빠진다고 말한다.” 니콜라스가 단 한번이라도 마나에 대하여 생각해본 일이 있었겠는가? 당연히 없었다. 다만 고리타분한 마법사들 몫이라고 생가하며 살았을 뿐. 그런데 이렇듯 이야기를 듣고보니,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 것이 한둘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 말씀대로라면 마나는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흐르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운기조식을 해서 억지로 마나를 순환시켜야 하는거죠?” “좋은 질문이다. 마나가 흐르는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 몸에 있는 모든 마나가 통하는 길, 그것을 기도라 부르는데 그것이 처음부터 뚫려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자주 사용하는 부분만 개통되어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을 뿐이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신체의 일부 능력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처럼 기사들은 흔히 사용하지 않는 기도를 개통함으로써, 보통사람들보다 민감하고 강인한 육체를 단련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인체의 모든 기도, 경락과 경혈이 뚫리면 인간의 몸은 더욱 단단하게 완성되는 것이고, 그것이 대성하게 되면 육체가 변호하는데, 이를 환골탈태라고 한다.“ “환골탈태?” “그래, 그리되면 몸속의 장기들이 더욱 활발히 활동하고 피는 맑아지며 눈과 정신을 또렷해진다. 결국 하나의 완성되어진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는 셈이지. 이미 경험해보았을 테니, 긴말은 하지 않겠다.” 니콜라스는 그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 속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주군, 처음 호흡법을 말씀하셨는데 호흡과 마나는 어떤 관계인가요?“ “흠, 호흡말이냐? 우선 호흡이란 것은 기의 흐름을 통제하고 이끌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 아니 어쩌면 호흡하며 들이마시는 공기, 그 자체가 이미 기라고 볼 수도 있다. 대자연의 기인셈이지. 원활한 호흡법에 따라 호흡을 하면 기는 전신을 따라 돌게 된다. 그것을 일주천이라 하지. 그 공기 속에 숨어 있는 기운이 몸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나가며 몸을 운기시키는 거란다. 인간의 모든 구조는 천기의 이행에 따라 만들어졌고, 인간은 그 기를 받아들여 생체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몸 속에서 기를 회전시키기 위하여 혈도를 뚫었는데 기의 흐름이 일정치 않다면 어찌되겠느냐?“ 순간 니콜라스는 몸을 부르르 떨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은 마나가 헝클어져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호흡은 마나요, 마나는 물과 같이 흐른다. 그래서 보통 기도가 막히면 큰 병이 나는 것이다. 그것을 증거로 병자들은 숨을 잘 못쉬지? 이유는 마나가 순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호흡을 통해 늘 최소한의 마나를 흡입하고 내뱉는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내가 지금부터 가르치려는 호흡법은 보통 때처럼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기운을 정제해 보통 때보다 마나를 수십 배 가까이 끌어 올려 몸에 축적하는 기술로써, 이름은 경혼심법이다.” 니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 앞에서 나와 같은 자세로 앉도록 해라. 그리고 내가 지시하는 대로 숨을 쉬어라.” 그러기를 수 시간 후. 니콜라스의 빈 그릇에 마나가 홍수처럼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가 그처럼 마나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블루가 만들어낸 경혼심법과 고차원의 무학 탓이기도 했지만,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니콜라스의 순수한 학습욕구와 뛰어난 이해력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증거가 이것이었다. 바로 오러소드! 고오오오오! 니콜라스는 처음 접하는 오러 소드를 보며 그 강력한 힘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그러나 놀라지 않았다.이미 자신의 능력치를 짐작하고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탓이다. 특히, 놀라지 않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오러 소드 이상의 것을 직접 목도했기 때문이다. 블루가 시연해서 보여준 마인드 소드.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이미 니콜라스에게는 오러 소드는 더 이상 최고가 아니었다. ‘이 정도로는 주군을 보필할 수 없다!’ 동시에 검에서 오러소드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을 본 블루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미 니콜라스가 마음의 움직임만으로도 기를 거둘 수 있는 이기제동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주변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나의 단어로 가득 채워진 탓이다. ‘마인드 소드!’ 쿠르르릉! 천둥 번개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고, 멀리 성 밖에 깃발이 비바람에 찢어질 듯 펄럭거렸다. “갑자기 웬 먹구름이.......” “이러다 문짝이 날라갈까 겁나는군.” 권커니 잣거니 술을 마시던 주정꾼들의 투덜거림에 식당 주인이 대꾸했다. “걱정말고 술이나 쳐드셔. 그렇게 쉽게 날아갈 문짝이었으면 십년 전에 떨어져 나갔을 테니까.”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주인도 은근히 걱정스러운 눈초리가 역력했다. 이틀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폭우! 폭풍과도 같은 바람을 동반한 어지러운 빗발에 걷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그 때문에 무투대회마저 무기한 연기되었다. 폭우가 멎을 때까지. 그 바람에 숙박시설과 술집만 성황을 이루게 되었으니, 주인들의 입이 귀에 걸렸다. “여기 레드 드래곤 한 병.” “예, 알겠습니다.” 에스티마르가 주문하자 주인이 고풍스런 모양의 술병을 들고 달려왔다. 에스티마르는 안주머니에서 5골드짜리 동정을 꺼내 손가락으로 튕겼다. “잔돈은 필요없네.” “감사합니다, 대인.” 허리까지 고개를 숙인 주인이 실실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5골드면 레드 드래곤 세병을 사고도 남았으니 당연했다. “자, 한잔 받게.” 쪼르르 블루는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쩌릿쩌릿한 느낌이 식도를 타고 단숨에 복부까지 침범했다. “크, 정말 독하군요.” “그래, 일종의 특산품인데 유슬라니안에서만 구매가 가능한 술이지. 수출을 최소화 시킨 탓에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구할 수 없기 때문이야. 두배가 넘는 웃돈을 얹어줘도 구하지 못할걸세.” 블루가 미소를 머금었다. “배속까지 찌릿찌릿한 게 아주 좋군요.” “그래서 난 이 술을 즐겨 마시지.” “한 잔 더 주십시오.” “이 친구 정말 주도를 아는군.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다니까.” 둘은 은연중에 죽이 잘 맞았다. 니콜라스는 그 옆 테이블에서 조촐한 음식들을 차려놓고 끄적거리면서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여 취객이 주군께 불경스러운 언행을 일삼을지 알 수 없는지라 감시를 게을리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니콜라스 형님도 한잔 하시죠?” “.......” “아니 누가 저런 괴물...... 아니, 대장에게 해를 입힐 수 있겠습니까? 우리 한잔 합시다.” 베르니스의 말에 니콜라스는 꿀꺽 소리나게 침을 삼켰다. 사실 그 역시 술 생각이 간절하던 참이었다. 다만 자중하고 있었을 뿐. 그런데 거기다 대고 메르니스가 갖은 감언이설로 자꾸 유혹의 손길을 뻗쳐오고 있음이었다. 꿀꺽 베르니스가 한잔 가득 부은 잔에서 짙은 붉은색을 띤 술이 출렁이는데, 그것은 마치 ‘마셔줘’하고 외치는 혀처럼 강렬한 유혹으로 다가왔다. 에스티마르가 5골드짜리 동전으로 레드 드래곤을 시키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은 것을 본 베르니스가 주인에게서 받고 남은 돈으로 이곳에도 한 병 가져오라고 주문한 것이다. 주인은 뒤로는 투덜거렸지만, 앞에서는 환히 웃으며 곧장 술병을 대령했다. 그리고 슬쩍 니콜라스에게 시선을 돌리는 주인의 눈빛에서는 존경과 공포가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란 그런 것이다. 그때였다. 쾅!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한 사내가 갑자기 멀쩡한 식탁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이런 씨브랄!” 그는 거친 욕설과 함께 인상을 최대한 찌푸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위압감이 느껴지는 엄청난 몸짱, 험상궂은 얼짱, 특히 이마와 왼쪽 볼에 길게 나 있는 검상이 인상적인 거한이었다. “내가 무투대회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계속 뒤로 미루는 거야, 썅!” 그는 같은 식탁에 앉아 있는 사내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연신 소리쳐댔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독수리 문장의 수가 박혀있는 고풍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귀족 같아보였다. 이 거한의 이름은 러크. 우드남 백작의 충실한 기사로 이름을 드날리고 있긴 하지만 성격이 괴팍한 탓에 일반 백성들은 그들을 조심스럽게 피해 다녔다. 혹여 걸리면 참변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런 그가 이렇듯 화를 내는 이유는 분명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위용을 한껏 뽐내며 화끈하게 한판 붙어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것. “어서 싸우고 싶다! 화끈하게 이기고 싶단 말이다. 이렇듯 무료한 생활을 난 견딜 수가 없어! 살을 베고 피가 튀는 전투! 그것만이 내 세상이고 내 삶이다!” 수하들은 끽소리도 못한 채 고개만 푹 꺾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비웃음. “풋, 미친 전쟁 마니아가 여기도 한 놈 있군.” 순간 러크의 얼굴은 분노로 잔뜩 일그러졌다. “어떤 새끼야!” 러크는 대뜸 옆 테이블을 발로 걷어찼다. 쾅! “이크!” 겁에 질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떤 자식이 그 잘난 주둥이를 놀린 것이냐, 너냐?” “아, 아닙니다.” 퍼억! “커억!” “그럼 너냐?” 순간 또다시 들려온 비아냥거림. “병신! 약자를 괴롭히면서 우쭐해하는 바보, 겁쟁이 같은 놈.” 스르릉! 러크가 검을 뽑아드는 순간, 수하들이 잔뜩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천천히 돌아가는 러크의 시선! 한 식탁에 두 사람이 앉아 태연히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블루블랙의 긴 머리가 매혹적이기까지 한 미인인데. 남성인지 여성인지 헷갈릴 정도로 중성적이었다. 또 다른 자는 은발의 젊은 사내. 그들만이 다른 사람들처럼 숨지도, 움츠리지도, 수선을 피우지도 않고 여유작작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치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듯 ‘짖어라, 똥개야’ 하는 식이다. 그들을 본 순간 그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네 놈들이냐?” “큭큭” “웃어?” “미안합니다.“ “평민이군, 그렇다면 그 죄가 얼마나 큰지도 잘 알겠군. 즉결 처형한다!” 동시에 은발의 사내 입에서 흘러나온 싸늘한 목소리. “미친 것.” 당연히 그 말을 놓쳤을 리 없는 러크의 이마가 무섭게 꿈틀거렸다. “미리 저승행 마차표를 끊어놓고 있었던 게로군.” 검을 들어 크게 휘두르려는 찰나, “윽......뭐, 뭐냐?” 목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 동시에 자신의 목에 닿아 있는 싸늘한 검날에서 뿜어지는 냉기를 느낄 수 있었다. “죽고 싶으냐?” 그 검날보다 싸늘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어찌나 놀랐던지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서, 설마!’ 꿀꺽 마른 침이 목 뒤로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욱 크게 느껴졌다. ‘이, 이럴 수가! 내가 그 기척을 잡아내지 못다하니!’ 경악스러웠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리자 턱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선이 굵은 얼굴의 사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게 아닌가. 그런데 그의 무게감이라니! ‘이, 이런 사내가 있었던가?’ 러크는 모르고 있었다. 어찌나 놀랐던지 들고 있던 검을 천천히 아래로 내리고 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 알았다고 해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었다. 제아무리 호승심으로 똘똘 뭉친 자신이라 해도 빤히 눈에 보이는, 전혀 승산없는 싸움을 할 이유는 없었다. 일찌감치 꼬리를 내리는 러크의 모습에 블루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러 도발한 것이 니콜라스의 개입으로 무산되어버린 탓이다. 블루가 약간 무뚝뚝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니콜라스, 검을 치워라!” “.......” 니콜라스가 군소리 없이 검을 자신의 검집에 넣었다. 그제야 러크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동시에 그의 고막을 강타하는 익숙한 음성. “등신 새끼! 휘두르지도 못할 검을 뽑아들고 설쳐대기는.” 바삐 나가려던 러크의 발걸음을 멈췄다. “어떤 새끼야?” 러크의 고개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곳에 은발의 사내가 서 있었다. 러크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팔에 힘이 들어간 것도 그와 동시였으나 차마 집어넣은 검을 다시 뽑기가 쉽지 않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 탓이었다. 니콜라스라는 자는 자신이 먼저 검을 뽑기도 전에 자신의 목을 베고도 남을 것 같았다. “제길!” 러크는 가볍게 한마디 내뱉고 자리를 피하기 위해 등을 돌렸다. 그러자 등 뒤에 들리는 블루의 목소리. “큭큭, 저런 겁쟁이 녀석들이 전쟁 따위를 일으키니...... 쯧쯧, 멋모르고 충정이다 뭐다하며 죽어가는 인간들만 불쌍하지.” “으윽!”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었다. 그것도 수하들 앞이 아닌가. 그러나 러크에겐 치욕보다 죽음의 공포가 더 컸다. 명예를 중시하다 죽은 녀석들을 병신이라고 생각해온 그였다. 죽고 나서 명예고 나발이고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더러운 자식! 수하의 힘을 믿고 까불기나 할 줄 아는 녀석! 기필코, 어떤 일이 있어도 네놈을 철저히 응징해주겠다.’ 으득 블루는 살짝 노려본 후 그가 수하들을 이끌고 막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조그맣지만 또렷이 그의 고막을 때린 한마디. “주군, 아니 대장! 이 폭우 속을 뚫고 어디를 다녀오시겠단 말씀입니까?” 니콜라스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블루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잠시 들를 곳이 있으니, 절대 따라오지 마라.” “대장!” “......” 순간, 러크의 입가에 가득 그려진 잔혹한 미소! ‘크흐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그리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더니...... 큭큭!’ 문이 닫히기 전에 들려온 은발의 사내 목소리. 그것은 천상의 멜로디보다 환상적으로 귓가에서 아른거렸다. 그런데 하나 걸리는 점이 있었다. 블루가 있는 곳에서 입구까지 제법 거리가 있는 데다 시끄럽기까지 한데, 이처럼 선명하게 귓가에 메아리친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복수심에 눈이 먼 러크. 그런 자잘한 이유 때문에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특히 병신 같은 귀족 놈이 이름 모를 초고수의 감시조차 뿌리친 절호의 상황이 아닌가. 무엇하는 놈들인지 알 수 없지만, 이름 있는 귀족이라면 이렇게 허름한 숙소에서 묵지 않을 터. 뒤처리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쏴아아아아! 밖에는 폭우가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럼 다녀오지.” 블루는 니콜라스와 베르니스들에게 회심의 미소를 짓고 밖으로 나갔다. 의미심장한 미소에 하나같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뭔가 꿍꿍이속이 있음을 짐작했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블루는 이때껏 작정한 것을 포기한 역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자, 술이나 마시자고.” 베르니스의 말에 모두들 자리에 앉았다. 니콜라스만이 블루가 나간 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니콜라스 형님, 그렇게 볼 필요 없소. 우리 대장이 보통 괴물이유? 대장이 잠시 자리 비운 사이 우리끼리 술이나 한잔 합시다.” 니콜라스는 베르니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의 자리로 돌아간 니콜라스는 베르니스가 건네주는 술잔을 받아들었다. 블루는 식당에서 나서자마자 기척부터 찾았다. ‘저곳이군.’ 익숙한 누군가의 기척이 건물 뒤쪽에서 느껴졌다. 그런데 마치 자신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것 같았다. 위치를 확인한 블루는 그곳을 향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딛었다. 첨벙첨벙 비를 맞으며 숨어 있던 러크에게 다가가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어이, 친구!” “누, 누가 친구야?” 러크가 당혹스런 표정으로 블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가 이렇게 찾아올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서, 설마?’ 문득 러크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겠지.’ 잠깐이었지만, 이 상황을 저 블루라는 녀석이 일부러 만들어낸 것 같다는 느낌이 든 탓이다. 하지만 블루를 위아래로 훑어본 러크는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그럴 리 없다! 저자가 어디를 봐서 강해 보인단 말인가. 우선 호리호리한 몸에선 근육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검도 깨끗하고 고풍스러워 보이는 것이 거의 사용한 적이 없는 장식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블루에게도 근육은 있었다. 환골탈태를 거치면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최적화된 신체를 얻는 과정에서 빠르고 활동적이며 순간적인 파워를 드러내기에 아주 적합한 근육을 지녔으나, 러크처럼 단순히 몸으로만 때우는 녀석들에게는 그것이 근육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 러크는 위협적으로 이를 드러냈다. “어이쿠, 치석이 잔뜩 낀 누런 이빨 좀 봐라. 이를 닦긴 닦고 다니는 거냐?” “으윽, 저 새끼가!” 이빨을 드러내고 본전도 못 찾은 러크는 대뜸 고함을 질렀다. 나름대로 분노의 표현 같은데 블루에게는 포효하는 킹콩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인간이 화가 나거나 극도의 긴장 상태가 되면 가장 원시적인 상태로 돌아가고자 한다는 말이 절실하게 와 닿는 순간이었다. 그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가? 입가에 머금어지는 미소! 블루는 큰 의미없이 지은 웃음일 뿐인데, 자기 멋대로 오해한 듯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는 것이었다. ‘저놈 앞에서 웃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겠구나.’ 블루는 내심 혀를 찼다. 문제는 러크 옆에 숨어 있던 수하들까지도 러크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을 본 블루가 다소 걱정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속이 안 좋으면 어서 화장실로 가야지, 참으면 병 된다. 하긴 화장실까지 갈 필요도 없겠다. 비가 오니까 소변 정도는 적당한 데다 뿌리면 감쪽같겠어.” “주, 죽여버리겠다!” 러크가 이를 갈며 돌발적으로 팔을 뻗었다. 마치 블루의 멱살을 움켜잡으려는 듯. 그러나 블루가 호락호락 당할 리 없었다. 가볍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나가 헛손질한 러크가 휘청거렸다. “오냐, 적어도 한수는 있다 이거구나, 크흐흐. 그래, 그래야 재미있지. 그렇지 않으면 너무 시시하고 재미가 없지.” “무슨 개소리야?” “무슨 소리긴,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패서 죽이겠다는 얘기지!” 그리고 러크는 다짜고짜 검집째 뽑아 휘둘렀다. 부웅! 묵직한 소음이 폭우를 뚫고 허공으로 울려퍼졌다. 블루는 이번에도 역시 예상했다는 듯이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가 이죽거렸다. “어허, 왜 이러나? 친구, 이러다 친구 잡겠어.” “대체 누가 친구냔 말이다!” “누구는 누구, 바로 나지.” 으드득! “친구, 그러지 마라. 그러다 이빨 나간다.” “닥쳐! 감히 날 능멸했겠다!” “말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친구.” “닥치지 못해. 난 너같이 얼빠진 친구를 둔 적이 없다니까!” 그 사이 수십 차례의 공격이 블루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 제법 체계적인 수련을 거친 모양이군. 하긴 이 정도 실력이라도 있으니까 매를 벌었겠지만. 그러고 보니 이렇게 대단한 공격을 피하는 나는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블루는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졌다. 그때 러크의 검에서 하얀 검기가 피어올랐다. “이제 장난은 끝이다. 패죽이고 뭐고 단칼에 목을 따주마!” “오호?” 블루는 녀석의 마지막 한수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슬슬 파티타임인가, 흐흐흐.’ 전신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에 블루는 살짝 웃었다. ‘이럴 수가?’ 여러 차례 헛손질을 하고난 러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자신의 기습적인 손놀림을 이토록 쉽게 피하고, 이처럼 가볍게 응수할 줄이야! 정말이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수하만 믿고 큰소리 뻥뻥치는 허접한 귀족 나부랭이인 줄 알았더니 최소한 그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바짝바짝 약이 올랐다. 떡이 되게 두들겨 패도 시원치 않을 놈에게 이렇듯 번번이 당하게 되자, 자존심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한마디로 기분이 더러웠다. 그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러나 여전히 허사였다. 놈은 여유를 과시하기 위함인지 이리저리 피하면서 계속 주둥아리를 쉬지 않고 놀려댔다. “어허, 이봐 다시 생각할 수 없어? 최소한 왜 이런지 이유는 말해줘야지. 이러다 정말 친구 잡겠어.”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웬만하면 참아줄 생각인데도 계속 속을 뒤집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제발 딱 한번만 걸려라. 딱 한번만!“ 공격할 때마다 그 주문을 몇 번이나 외웠는지 모른다. “닥쳐! 감히 날 능멸했겠다!” 속이 뒤집어지고 있었기에 러크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좋아! 놀아보겠다면 얼마든지 장단은 맞춰줄 용의가 있다.’ 러크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현란하게 휘둘렀다. 왼손은 미끼였다. 그것을 블루의 중심을 잡아채기 위해 움직인 것이고, 결정타는 오른 주먹이었다. 주먹을 내지르면서도 그는 손에 잔뜩 힘을 모은 채 블루의 돌발적인 움직임에 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러크의 주먹은 보통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현란했다. 그러나 스치기조차 할 수 없었다. 다시 블루의 말이 이어졌다. “말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친구.” 정말이지 러크는 울고 싶었다. 아니, 그 정도로 억울했다. “난 너같은 친구를 둔 적이 없다니까!” 답답한 마음에 분노로 얼룩진 일갈을 내질러보지만, 여전히 속은 답답할 뿐이었다. 분명 단매에 때려눕혀 무릎을 꿇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그 반대상황이 초래될지도 몰랐다. 그러자 차츰 조급함만 심해졌다. 그리고 인정할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서운 실력의 소유자다! 젠장, 된통 걸렸구나!’ 그것을 끝으로 러크는 잡념을 떨쳐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뽑아 마나를 검극으로 이동시켰다. 그런 다음 버럭 소리쳤다. “이제 장난은 정말 끝이다! 패죽이고 뭐고 단칼에 멱을 따주마!” “호오!”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자신이 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탓이다. 가볍게 미소 짓는 블루를 본 러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기술을 마지막으로 기운이 다한 것인지 다리가 연신 휘청거렸다. “크, 크흑! 어, 어떻게?” 블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속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비웃을 수 있는 단어를 나열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그 생각을 접고, 우선 패주고 나서 약을 올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러크의 수하들이 앞으로 나섰다. “뭐냐? 난 잠시 저 녀석에게 볼일이 있다!” “뭐라고! 네놈이 감히 지금 누구를 위협하는 것이냐? 우연히 러크님의 초식을 피한 주제에 기고만장을 지나쳐 이제 발광까지 하는구나!” 기사의 그 말에 러크의 눈빛이, 당혹스러움에서 무언가 이해했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 눈빛이 왠지 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참 고심 끝에 대소를 터뜨린 러크가 말했다. “하하! 맞아, 그랬군. 당연하지, 네녀석 따위가 감히 내 필살기를 피할 리가 만무하잖아? 아하하하, 역시 내가 잠깐 큰 실수를 했거나 네 녀석이 운 좋게 다리가 걸려 넘어지는 것을 피한 것으로 착각한 게 분명해. 분명히 그럴 거야. 암, 그렇고 말고!” 러크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나팔까지 불며 한동안 원맨쇼를 했다. 그것을 본 블루는 문득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착각을 넘어선 환각은 뇌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할 텐데.” 그러나 그의 말은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조금 전의 발언으로 러크에게 좋은 점수를 땄다고 생각했는지 아까 그 녀석의 검을 뽑아들며 설치기 시작했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인 녀석이 감히 우리를 위협해? 가만두지 않겠다!” 순간 블루는 놈의 머리가 퇴화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원숭이보다 지능이 떨어질 줄이야! 그러나 원숭이라도 조금 전에 싸우는 모습을 봤다면 도망치지 않았을까? 태산이 높을 줄 모르고 깝죽대는 꼴이라니! 참으로 어리석은 친구로다.‘ 그는 녀석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나름대로 주인을 위해 열심히 매를 버는 모습이 너무도 가슴 아팠던 것이다. 그래서 이 불쌍한 친구를 위해 다신 한 번 현실을 깨우쳐주고자 밀을 아끼지 않았다. “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그래도 저 자식이!” 블루의 질책어린 그 한마디에 주위에 널려 있던 수많은 자기최면 환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이를 갈면서 한 놈이 첫 번째 제물을 자청하듯 블루 앞으로 달려왔다. “난 사실 많은 피를 보고 싶지 않다. 그러니 제발 이제 그만 꺼져라. 너희들에게 볼일이 없으니까.” 블루는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그러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흥, 이제 죽어라!” 녀석이 콧방귀를 뀌며 대뜸 검을 휘둘렀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가오는 자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블루는 이리저리 피하며 통탄을 금치 못했다. “말을 못 알아들어 처먹다니. 오호 통제라, 그 죄로 인해 가볍게 전신마사지를 시작으로 흐흐, 하늘나라 여행 티켓을 선물, 흐흐흐, 해주마. 큭큭큭, 슬픈 이야긴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거지? 큭큭큭큭큭.” 블루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빼물며 검이 날아드는 곳과 정반대로 몸을 틀자마자 놈의 품 안으로 파고 들었다. 그때 두 녀석이 동시에 달려오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건방진! 네 녀석이 정녕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나!” 녀석들의 도발적인 언사에 블루는 눈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퍼퍽! 녀석들의 빈틈을 노리고 파고들어가 발경으로 두 녀석의 복부를 동시에 가격하자, 쌍으로 허공에 붕 떠오르며 뒤따라오는 다른 녀석들 시야를 가렸다. 순간 몸을 허공에 띄운 그는 뒤따라오던 놈들의 사각에 몸을 숨기고 있다 회심의 양발차기로 두 녀석 면상을 차며 외쳤다. “유성각!” 퍼버벅! “커헉!” 양발차기에 당한 두 녀석의 상체가 허공에서 두 바퀴 정도 돌다 바닥에 처박혔다. 그러나 충격은 크지 않았다. 맞았을 때 이미 정신을 잃었기 때문인데, 그 모두가 블루의 배려였다. 그러나 블루의 그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남겨진 두 녀석이 걸레처럼 널브러진 동료를 대신해 복수해주겠다는 식의 말도 안되는 대사를 지껄이며 덤벼들었다. 동시에 검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두 기사. 앞에 있던 자가 몸을 낮추며 하단 쓰는 것을 본 블루는 적당히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그리고 녀석의 검 위에 사뿐히 올라섰다. 녀석이 크게 당황한 듯 허둥거렸다. 마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블루는 씨익 웃었다. “으힉!” 블루의 미소에 공포를 느낀 녀석이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순간 다른 녀석의 검이 날아드는 것을 느낀 블루는 몸을 틀어 공중제비를 돈 후, 검을 들고 허둥거리는 녀석의 면상을 강하게 내질렀다. “초전박살” 퍼어억! “꾸어억!” 녀석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맞은 편 공중변소 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첨벙! 예기치 못한 소리에 블루가 몸을 흠칫 떨었다. 그제야 러크는 블루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주춤주춤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블루는 천천히 다가가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블루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본 러크는 사태가 심각하게 꼬여 있음을 깨달았다. 러크는 공포에 젖은 눈빛으로 블루를 바라봤다. 쏴아아아아! 비는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마음 놓고 팰 수가 있겠군,흐흐흐흐흐.” 블루는 비의 장막이 어느 정도 소음을 차단시켜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만끽할 기쁨이 짧아질 수도 있다. 치안이 잘 되어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블루는 널브러진 녀석들에게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던져서 깨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어나지 않는 녀석들이 있었다. “새끼들 잔머리 좀 봐. 어서 못 일어나?” 녀석들은 간신히 일어나 무릎을 꿇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것을 본 블루는 온몸에 흐르는 쾌감을 만끽했다. ‘이게야 나를 위한 시간이 온 것인가, 아아!’ 지금까지 쌓였던 스트레스를 모두 단숨에 날려버리겠다고 마음먹은 블루. “사, 살려주십쇼.” “흐흐흐흐, 남자는 ...... 주먹!” “하늘을 못 알아 봤습니다. 살, 살려주, 주십쇼!” “흐흐흐흐흐, 구타는.......” “살, 살.......” “손맛!” 블루의 눈빛이 번쩍거렸다. 우르릉 쾅쾅! 순간 러크가 비명을 질렀다. “살려줘!” 동시에 블루의 주먹이 수십 개로 변화했다. 퍼버버버벅! “으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소리. 그리고 뒤를 잇는 다양한 음향의 비명소리. “꾸웨에에엑! 사람 살려!” “커허헉!” “케헤헤헤헤!”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벅!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그 속에서 누군가의 광기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폭우라는 장벽이 확실하게 그들의 비명을 삼켜버렸다. 하지만 북이 터져나가는 듯한 소음은 멀리멀리 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신명나는 북소리에 춤을 추는 사람이 있으면 있었지, 그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단지 이 늦은 시간에 누가 북을 치느냐 의아해할 뿐. “.......” “.......” 쏴아아!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났다. 주변에 넝마가 되어 널브러져 있는 일곱 명의 중상자들. 당장이라도 응급처치를 받지 않는다면 그들의 앞날이 어찌될 것인가. 하지만 바닥에 떡이 된 채 누워서 연신 꿈틀거리며 아직 살아 있음을 강하게 어필했다. 블루는 자신의 주먹에 듬뿍 묻어 있는 피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회한에 젖은 눈망울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서일까? 하늘에서는 더욱 강렬한 물방울로 지면을 때렸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 블루는 아직 이 프로 부족하다는 표정으로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순간, 붉은 피의 웅덩이가 바닥을 넓게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후에 알았다. 역시 비의 장막은 만족스러울 정도로 소리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잘 막아주었다는 것을. 아침까지 아무도 그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을 보면 확실했다. 제6장 무투대회에 가다 “어제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로 꼽히던 러크가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했다며?” 한 주정꾼의 말을 마주 앉아 있던 늙은이가 받아주었다. “거의 반신불수가 돼서 지금은 말도 못한다더군.” “수하들은 어떻게 됐어?” 주정꾼의 말에 노인이 자신만 아는 이야기인 것처럼 목소리를 낮췄다. “녀석들은 반신불수는 아닌데, 상상할 수도 없는 무언가를 본 모양이야.” “그게 무슨 말이죠?” “녀석들이 쉬지 않고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는 ‘남자는 주먹, 구타는 손맛’ 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소리만 중얼거린다지 뭐야.” 순간 베르니스들은 옆에서 식사하는 블루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무언가를 느낀 니콜라스도 블루에게 시선을 돌렸다. “뭘 그렇게 바라봐?” 블루의 물음에 베르니스들은 바삐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잘 알아 모시겠다는 뜻 같았다. “뭐야, 그 짜증나는 표정들은?” “아니에요. 그런데 대장, 우리에게 뭔가 해줄 말이 있지 않나요?” “무슨 말?” “아, 아니 그냥.” “시끄러우니까 어서 밥이나 먹어. 싸우기 전에 배를 채워둬야 힘도 나고 잡념도 사라질 테니까.” 그때 함께 식사하던 유리가 텐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언니, 정말 누가 그랬을까요?” “뭘?” “그거 있잖아요. 강력한 우승후보인 카르가 습격당해 중상에 처하다!” 텐시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언니는 그게 궁금하지도 않아요? 벌써 이곳 우드남 백작령에서는 그 사건으로 떠들썩한데 말이에요.” 그러자 텐시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는데, 흡사 범인을 다 알고 있는데 궁금할 게 뭐가 있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유리가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하는 행동은 늘 둔하지만 이득이 될 만한 일에는 눈치가 빠른 그녀였다. “어머, 혹시 언니는 범인을 알아요?” 그 목소리는 식당 안을 크게 울렸다. 그 바람에 텐시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얼른 유리의 입을 음식으로 틀어막았다. “헛소리 말고 밥이나 쳐드셔! 내가 범인을 어떻게 알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텐시가 씩씩거리며 화를 내자 귀를 기울이던 식객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고 자기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웠다. 물론 최고의 화제는 단연 러크 습격사건의 범인은 누구인가였다. “아참 언니! 이번에 유리도 출전해요!” “진짜?” 유리가 방실방실 웃었다. “보스가 허락했어?” “네에, 안 보내주면 혀 깨물고 죽겠다고 협박했더니...... 헤헤.” 텐시가 짐작이 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보스도 너 같은 딸을 낳아서 참 힘드시겠다.” “어머, 언니는 무슨 말을 그렇게 섭하게 해요? 부우.” 순간 텐시가 흠칫 놀랐다. 생각만 하고 마다는 것이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나온 탓이다. 유리의 볼이 볼록한 것이 벌써 삐짐모드로 돌입한 것 같다. “아, 아냐! 언니가 장난한 거야. 그러니까 비지지 마.” 텐시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여기서 밉보여 좋을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 말이다. “저, 정말이죠?” “그러엄, 우리 유리처럼 예쁘고 착한 사람이 어디 있어? 사실 너무 예뻐서 걱정이 많으시겠다는 말이었어.” 그러자 유리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헤헤, 그렇지 않아도 예쁘다는 소리 많이 들어요.” ‘바보라서 정말 다행이다, 휴우.’ “그래그래, 그러니까 어서 식사나 하자.” “네, 언니” “출전자 대기실은 저쪽입니다.” 블루는 아쉬운 얼굴로 니콜라스와 베르니스 그리고 스콜이 사라진 방향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 속에는 ‘나도 대전하고 싶은데’ 하는 욕망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러나 사실 니콜라스한테 눈치가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출전 신청서를 쓰려던 삼 일 전에 들은 잔소리 때문이다. “어찌 고귀한 몸을 그리도 함부로 대하십니까! 저희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자중해주십시오.” 따끔한 일침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그는 출전을 포기했다. 그러고 보니까 그 전에도 그랬고 그 전전 에도 그랬던 것 같았다. 몬스터와의 소규모 전투에서조차 그를 위한 일이라면 바득바득 니콜라스 혼자서 모두 해결했다. 솔직히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쌓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어제 터지고 만 것이다. 물론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한참 부족했다. ‘제길 수하 하나 잘못 둔 바람에 이 무슨 가슴앓이람!’ 그래서 결심했다. ‘이렇게 질질 끌려만 다니다가 내 명대로 못 산다. 어떻게든 떼어놓고 다녀야할 것 같아.’ 그래서 결정했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군, 흐흐.’ 블루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니콜라스가 곁에 붙어 있다면 어떤 면에서는 편할지 몰라도 마치 검지에서의 ‘혁장로’처럼 끊임없이 참견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그를 미치게 만들 것만 같았다. 문제는 니콜라스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야말로 바른생활 교과서 같아서 반박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블루와 클루토 그리고 텐시와 에스티마르는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분주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늦게 온 탓에 목이 좋은 자리는 이미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사실 블루와 같은 고수는 어디 앉든 상관없지만, 클루토와 텐시가 문제였다. “없어.” 텐시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좋은 자리는커녕 어마어마한 인파 때문에 자리를 잡는 것마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구석자리를 차지한 것도 운이 좋았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요.” 텐시가 금세 헤헤거리며 말했다. 그들이 그렇게 자리를 잡고 앉을 무렵, 저쪽에서 유리가 텐시를 발견하곤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텐시 언니?” “유리, 네가 왜 거기 있지?” “응? 나도 출전한다고 밥 먹으면서 얘기했잖아.” “아아, 그랬지.” 뒤늦게 기억이 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텐시를 보며 유리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극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 점이 유리의 매력 중 하나라고 느낀 것이다. 그러자 더욱 유리에게 끌렸다. “그런데 왜 거기 앉아 있어?” “자리가 없어서.” “자리가 왜 없어? 프랭크가 자리 안 잡아줬어?” “프랭크? 네 옆에 붙어 다니던 그 남자?” “응.” 유리는 한동안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텐시와 일행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럼 날 따라와, 저기 우리 전용 자리가 있거든. 거기다 자리를 만들어줄께.” 텐시와 클루토, 에스티마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진 한마디에 에스티마르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해버렸다. “에스티마르 언니도요.” “윽, 언니가 아니라니까!” 그러나 말을 들어야할 장본인은 이미 저 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에스티마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언니면 어떻고 엄마면 또 어떠냐, 에휴.’ 그는 고개를 저으며 일행들을 뒤따랐다. “여기 앉아. 나도 같이 있고 싶지만, 대기실로 가야하거든.” 알고 보니 그곳은 도둑 길드에서 잡아놓은 자리였다. 언제 잡아놓은 거인지 몰라도 무대가 비교적 잘 보이는 중앙쪽이었다. 텐시와 일행들이 감사의 뜻으로 인사를 하자, 유리는 자신의 근처에 서 있던 한 청년을 불렀다. “이 친구는 클라크야.” 그리고 유리는 클라크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클라크, 여기 친구 분들 편의를 최대한 봐드려.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실례되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마,알지? 특히 텐시 언니랑 에스티마르 언니한테 밉보이면 죽을 줄 알아!” “알겠습니다, 아가씨.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클라크라 불린 청년은 말쑥하고 뼈대가 있어보였는데, 아가씨라 하는 것을 보니 도둑길드 일원인 것 같았다. “반갑습니다.” 호의적인 눈빛으로 그가 싹싹하게 말했다. 그때 유리가 말했다. “그럼 갔다 올 테니까 아버지한테 잘 말씀드려. 아직까지 안 오시다니...... 쳇, 대회장에 올라가기 전에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잘 말씀드릴 테니 꼭, 우승하세요.” “응, 고마워. 텐시 언니 나 다녀올께.”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텐시의 그 한마디에 유리는 불그스름해진 두 볼을 손바닥으로 감싼 채 서서히 멀어져갔다. “뭔가 불안하군.” “뭐가?” “아니다.” 무심코 혼잣말을 하던 에스티마르는 텐시의 질문을 받자마자 얼른 말꼬리를 내렸다. 유리가 사라지자 클라크라 부린 청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음료를 가져다 드릴까요?” “괜찮아요.” 클루토가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자 클라크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가씨 친구 분이라면 도둑 길드 전체의 친구나 마찬가지니까요. 특히 아가씨의 들쭉날쭉한 성정을 맞추실 수 있는 분들이라는 우리에게는 귀빈이지요.” “하하하.” “호호호.” 클라크의 능청스런 한마디에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많이 풀어졌다. “특히나 텐시 누님의 친구 분이시라면.......” “흠흠!” 텐시의 헛기침에 말끝을 흐렸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호의가 느껴졌다. 그것을 본 에스티마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한 잔 부탁하네.” 그 말에 에스티마르 쪽으로 고개를 돌린 클라크는 얼굴이 붉어졌다.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긴 했으나 에스티마르가 이마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뭔가 찝찝해.” 순간 일행들이 소리를 죽인 채 쿡쿡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하는군요.” 클루토의 그 말에 블루와 에스티마르, 텐시의 시선이 무대로 옮겨졌다. 동시에 주변에서 벼락같은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와아아아! 삐이이익! 원초적인 함성과 비명, 그리고 휘파람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비무장은 열기로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때 타원형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낸 노인이 말했다. “자자, 조용히 해주십시오!” 마법인가? 노인의 목소리는 넓은 비무장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다. 그것으로 웅성거림까지는 잠재울 수가 없었으나, 노인은 개의치 않고 또박또박 자신을 소개해나갔다. “본인은 이번 무투대회 사회를 맡은 미르코나엘이라 하오.” 순간 객석의 웅성거림이 다시금 커졌다. “미르코나엘?” “왜 아는 사람이에요?” 창백하게 질린 클루토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신을 우러러보듯 멍청한 얼굴로 무대 한가운데를 바라볼 뿐이었다. 블루도 온갖 소리가 뒤죽박죽 뒤섞인 웅성거림에 유심히 귀를 기울였다. “미르코나엘! 설마 대륙에 단둘밖에 없다는 7서클 궁중 마법사 미르코나엘!” 마치 자신의 식견을 주변사람들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큰 목소리로 떠드는 사내. 그 옆에서 친구가 맞장구를 쳤다. “유슬라니안에 미르코나엘이 두 명 있지 않다면 그가 맞겠지!” “오오!” 입소문을 바람에 실린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 사람들 귀속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홀씨가 날아올랐다. 급기야 ‘대마법사’라는 소리까지 간혹 들려왔다. 그리고 함성은 점점 커져만 갔다. “자자, 조용히 좀 해주십시오!” 자신의 이름과 대마법사라는 칭호가 허공에 떠돌자,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처음보다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본 무투대회는 많은 기사들이 실력을 재평가 받는 장이 될 것이오. 실버플레어에 출전한 선수가 너무 많은지라 빠른 진행을 위해 부득이하게 총 네 개의 경기장에서 진행됩니다.” “와와!” “이로써 모든 무사들이 평가받을 수 있는 실버플레어를 시작으로 본 무투대회의 개최를 선언하겠소!” “우와아아아아아!” 블루가 잠시 딴 데 정신을 판 사이, 주의사항이 전달되고 무대 위로 두 청년이 올라섰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웅성거리는 소리로 미루어 꽤나 이름 있는 기사 같았다. 독수리 두 마리 문양이 새겨진 풀플레이트를 갖춰 입은 청년과, 고풍스럽지만 가벼운 경장 갑옷을 차려입은, 날카로운 검미가 매력적인 청년의 등장이었다. 그런데 가벼운 경장 갑옷을 입은 청년이 왠지 낯이 익었다. 그때 텐시가 말했다. “그리플 백작가의 첫째 아들 웨스턴 경과.......” 으득 “아이린 공작의 둘째아들인 클라우드 경이군요.” 중간에 텐시의 이가는 소리가 끼어들었지만 블루는 신경쓰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클라우드라는 사내를 주시할 뿐이었다. 이윽고 그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클라우드는 주먹을 힘 있게 움켜쥐었다. 그것을 본 웨스턴은 중단세 자세로 검을 들고 거리를 확보한 상태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오늘 네놈과 맞붙게 되는군.” “시끄럽다. 지겨운 놈!” “마음대로.” 클라우드가 움직인 것은 대꾸하기도 전이었으나, 그 움직임이 너무나 빨리 움직이면서 말을 한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둘이 막 격돌하려는 찰나, “와우,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시합을 맨 처음 보게 될 줄이야!” 텐시가 소리 높여 외쳤다. 순간 블루는 이채를 발했다. 적인데도 실력을 높이 사주는 텐시의 말투 때문이었다. 아울러 얼마나 실력이 뛰어나면 저런 찬사를 받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무대로 고개를 돌린 블루의 눈에 빠르게 이동하는 두 가닥의 빛이 보였다. 카강! 검과 주먹이 맞부딪치는데 쇳소리가 났다. 게다가 번쩍이는 불꽃마저 피어올랐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오호!’ 둘 다 나이에 비해 뛰어난 경지를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었다. 무림의 차세대 기둥이라 일컬어지던 후기지수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무림에 비해 심법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신법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거의 본능에 의존한 싸움이거늘 이처럼 빠른 스피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저들에게서는 극한의 수련을 거듭한 흔적이 묻어난다. 저토록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그때 텐시가 물었다. “누가 이길 것 같아요?” 고개를 돌린 채 블루는 잠시 말이 없었다. 에스티마르는 대답을 촉구하듯 블루에게 눈길을 주었다. 블루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물론 누가 이기든 관심 없었다. 다만 블루의 실력을 가늠해보고 싶었을 뿐. 솔직히 그는 출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블루가 출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 꿈을 접었다. 그리고 관람석에 앉아 블루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에스티마르는 자신이 하는 행동에 의문을 가졌다. 어찌하여 블루를 관찰하고 있는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에스티마르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갑작스럽게 허가 찔린 에스티마르는 당황해 헛기침을 내뱉었다. 왠지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 무대에서는 횡으로 그어지던 웨스턴의 검이 크게 꺾이며 파고들던 클라우드의 경추부분을 노리는 순간이었다. “앗!” 클라우드가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해 빠져나갔다. 그리고 거리를 벌렸다. 숨을 고르기 위해 멀찌감치 피했다는 것은 그만큼 심력이 소진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웨스턴 역시 무리를 했음인가? 조금 전에 매섭게 몰아붙이던 모습과 달리 더 이상 클라우드를 압박하지 않고 있었다. 거기까지 보고 텐시가 말했다. “웨스턴 경이 이길 것 같은데요. 감정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거리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는 클라우드 경에게는 승산이 없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 성실한 추론이었다. 그러나 잠자코 듣고 있던 에스티마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네의 말대로 웨스턴의 검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검극이 흔들리기 시작했네. 그 반면 클라우드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체력을 보충한 것이 차츰 효과를 드러내기 시작했어.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고 상체가 곧은 게 처음과 다름없지 않은가.” “아!” 텐시와 클루토가 탄성을 내지르며 앞을 주시했다. 이윽고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웨스턴의 검극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때 블루가 입을 열었다. “무제는 처음부터 클라우드는 이 대결의 승패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추론은 간단해. 무슨 이유인지 본 실력을 모두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마치 보여주기 위해 출전한 것 같다고나 할까?” “그 이유는 뭘까요?” “.......” 그들 싸움은 그 후로도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허무하다 싶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클라우드의 기권으로 웨스턴이 승리한 것이다. 와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터졌으나 웨스턴의 얼굴에서는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 이 더러운 놈, 내 검이 그렇게 무서운가! 왜 피하지? 어서 이리 올라와!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웨스턴은 이를 갈았다. 이긴 것이 분명한데도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이어 진행되어진 시합들. 의외로 스콜과 베르니스는 다른 용병이나 기사들에 비해 월등한 실력을 뽐내며 삼백이십육 명으로 시작된 실버플레어에서 십육 강까지 올랐다. 운 좋게 약한 상대만 만났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 블루와 다니면서 전투에 대한 감각을 키운 것이 크게 주효했다는 분석은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베르니스와 스콜은 자신들이 이렇듯 승승장구할 줄은 미처 몰랐다는 표정으로 무대에서 내려와 블루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첫 상태한테 패한 유리는 텐시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모두가 짐작한 일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본인은 꽤나 억울했던 모양이다. 첫 상대가 너무 강했다는 식으로 변명을 늘어놓으며 울먹이던 그녀는, 그 상대가 다음 경기에서 떨어지자 더욱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실버플레이 16강과 8강 그리고 4강전은 내일, 결승전은 모레로 결정되었다. 골드 플레어는 일흔두 명의 기사와 용병이 출전했는데, 하나같이 소문으로만 듣던 존재들이었다. 이미 마스터 경지에 도달했거나 근접한 마스터급 기사들로서, 후자는 사실 마스터급이라기보다 소드 익스퍼트라 불러야 마땅했다. 그런데 검기를 사용할 줄 아는 그들까지 마스터로 대우하여 마스터급이라 불렀다. 예컨대, 환골탈태하기 전의 블루가 마스터급이었다. 어쨌거나 쟁쟁한 영지의 기사단장들이 골드플에어에 출전했다. 실력이 노축되어서 좋을 건 하나도 없지만, 엄청난 상금과 특전은 그런 것을 충분히 상쇄시킬 만큼 대단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주들은 자기 기사들을 출전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한동안의 휴식이 지난 후, 본 무대로 골드플레어에 출전하는 기사들이 올라왔다. 골드프레어를 관람하기 위해선 실버플레어 입장권보다 다섯 배나 비싼 돈을 지불해야 했음에도 빈 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경기를 보기 위하여 꼬박 일 년치 소작료를 쏟아 부은 사람까지 있다고 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아닌 게 아니라 백이면 백 진짜배기는 골드플레어에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옳았다. 골드플레어에는 실버플레어와는 비교할 수 조차 없는 박진감과 화려함이 있었다. 거기다 자신들이 예상한 우승후보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지켜보는 즐거움까지. 그런데 돌풍의 핵이라 불리는 변수까지 등장했다. 바로 니콜라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니콜라스 용병단의 단장이었다. “저, 저건 뭐냐?” “글쎄요.” 각 영주들은 애가장이 타들어갔다. 출전하는 기사들은 그들 영지의 얼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자신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기사들이 맥없이 쓰러지는 식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참담한데 알고 보니 상대는 이름 있는 기사도 아니었다. 철설같이 믿던 마스터급 기사가 이름도 없는 겨우 마스터급쯤 되는 용병대장한테 썩은 짚단처럼 줄줄이 무너지니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들 눈에는 대륙의 오대 용병단이든 백대 용병단이든 똑같은 쓰레기일 뿐이다. 그런데 그 쓰레기한테 기사들이 맥없이 나자빠지니, 창피해서 얼굴도 들 수가 없었다. 아무리 운이 없었다 하더라도 마스터급에게 마스터가 연거푸 깨질 수 있단 말인가. 앞으로 당할 수모를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그들이 암담해 하고 있을 때, 우와와아! 관중들의 열광했다. “니콜라스!” “니콜라스!” 세 명의 마스터를 때려눕힌 니콜라스는 어느새 영웅이 되어 있었다. 이름 있는 용병들이 몇 차례 골드플레어에 출전했지만, 열이면 열 그 높은 벽을 실감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시합이 시작되기도 전에 기권한 것만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면서 출전 제한이 없는 골드플레어는, 차츰 웬만한 기사들은 명함조차 내밀 수 없는 마스터들의 경연장으로 전락해갔다. 그런데 지금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골드플레어에 출전한 용병이 연거푸 마스터 셋을 꺾으며 우승을 예약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평민들에게 엄청난 꿈을 심어주었다. “이야, 정말 신나던걸!” “이토록 속이 후련할 줄이야.” “직접 보고도 이렇게 믿기 힘든데 보지 않았다면 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봤나?” “뭘?” “뭐긴 뭔가, 귀족들이 푸르죽죽한 얼굴로 꽁지 빠지게 도망치던 그 꼬락서니지.” “푸하하하하, 당연히 봤지! 어떻게 그 장면을 못 볼 수가 있겠나. 모르긴 몰라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명장면일걸.” “정말로 돈이 아깝지 않더군. 내 마누라는 감격해서 울기까지 하더라니까, 크하하하!” 술집에서 최고의 안주는 단연 니콜라스의 승전보였다. 니콜라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미화되더니, 급기야 니콜라스를 찬양하는 무리까지 생겨났다. 그냥 특별한 것도 없는, 걷는 모습까지 회자되었다. 보지 못한 여인들까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감탄사를 터뜨리며 감격을 금치 못했다. 멀찌감치에서 얼굴만이라도 한번 볼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듯ㅇ. 그러니 직접 본 여인들은 어떻겠는가? 니콜라스와 비교당한 남편들은 기가 죽었고, 더러는 남몰래 검술을 익히기까지 했다. 한편 유리의 도움으로 변장을 한 채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니콜라스는, 베르니스들의 놀림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지만, 홍당무보다 벌게진 귀를 숨길 수가 없었다.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칭송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를 기쁘게 한 것은 자신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블루가 가르쳐 준 검식의 효율성을 확실히 깨닫고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날밤은 비단 니콜라스뿐만 아니라 유슬라니안 전 국민이 먹고 마시며 떠들고 즐기는 축제의 밤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이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이틀 후, 드디어 실버플레어의 16강전이 열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베르니스와 스콜이 맞붙게 되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라지만, 검사인 이상 어쩔 수 없는 라이벌 관계였던 것이다. 둘이 대련한 적이 언제였던가. 가물가물했다. 그 후로 블루를 따라다니며 생존을 위해 검을 휘둘렀다. 그 속에서 얻은 가볍지 않은 깨달음들. 그것은 상급 어웨어에 불과했던 베르니스를 중금 익스퍼트로 탈바꿈시켜놓았다. 물론 스콜도 놀고 있지 않았다. 중하급 익스퍼트였던 스콜은 현재 상급을 상회하는 고급 익스퍼트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무위의 단계는 언제든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간단하다. 몸속에 있는 마나의 흐름을 어떻게 제어하느냐로 쉽게 판별이 가능한 것이다) 베르니스와 스콜! 둘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장단점은 물론 버릇과 주특기까지 훤히 꿰고 있어서 사실 고급 익스퍼트와 중급 익스퍼트의 차이는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물론 스콜이 얼마간 유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어쨋거나 그들에게는 오늘의 승부가 단지 작은 이벤트로만 끝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과연 마주 바라보는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때, “후후.” 베르니스가 웃었다. “......” 스콜은 왠지 불안했다. 그는 검을 하단으로 내렸다. 그것은 필살기 준비 자세였다. 불안감 때문에 속전속결을 택한 것이다. 베르니스가 하단을 향하고 있는 스콜의 검을 보며 침을 삼키는 순간,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마법 폭죽이 하늘로 쏘아졌다. 펑! 동시에 둘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휘익 바람소리가 나고, 챙챙챙챙챙 순식간에 수합이 오고갔다. “와와!” 숨 막히는 가운데 관중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엄청난 공방전이었다. 이제껏 이처럼 시원스러운 시합은 없었다. 왜 그리 숨겨야할 게 많은지 눈치만 살피던 선수들. 그리고 피하기에 급급하던 맥 풀린 시합들.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고 기세부터 틀렸다. 베르니스는 시종 진지했다. 어찌나 진지한지 잘 벼려놓은 한 자루 검 같았다. 그처럼 날카롭고 민첩했다. 시선은 상대에게서 잠시도 떼지 않았으며, 자세는 전혀 미동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주 좋군!” “너야말로!” “나 몰래 죽어라고 수련한 모양이지?” “너도!” 둘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다. 대치하고 있는 적이었다. 상대를 쓰러뜨리지 안으면 자신이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살기가 느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은 장내를 압도하고 있었다. “둘의 사이가 좋지 못했던가? 난 절친한 친구인 줄로만 알았는데?” 에스티마르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텐시가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러게요, 둘이 뭘 잘못 먹었나?” 그 순간 변화가 생겼다. 스콜이 빠른 몸놀림으로 베르니스의 왼쪽다리를 깊숙이 베어간 탓이었다. “이크!” 베르니스가 급히 뒷걸음치며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집요한 스콜의 검은 결코 그를 놔두지 않았다. 바짝 압박하며 빠르게 상단을 찔러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베르니스가 스콜의 왼팔을 겨냥하고 검을 날린 것이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몸을 뒤로 뺐다. 쌍둥이처럼 같은 포즈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그때, “크하하하하!” “아하하하하!” 둘은 배를 잡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둘은 배를 잡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관중들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클루토와 텐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여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의 발단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었기 때문이다. 한참 웃어대던 베르니스와 스콜은 동시에 입을 열어 기권을 선언했다. 그것은 이제껏 전례가 없었떤 기이한 경우였다. 순간적으로 야유가 쏟아졌지만 이내 어찌된 사정인지 알려지게 되면서 야유는 박수갈채로 변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와와! 관중들의 환호에 화답하듯 베르니스와 스콜은 밝게 웃었다. 둘은 슬쩍 유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리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보였다. 관중석으로 야유가 쏟아지자, 그녀는 수하를 불러 구석구석에 배치된 소매치기들을 동원하여 둘의 관계를 까발리되 사실을 최대한 미화시키도록 지시했다. 경기운영자 측에서는 이 초유의 사태를 어찌할까 고심하다 결국 무승부 결정을 내렸다. 관중들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실버플레어의 16강전은 전 경기가 볼 만 했지만 그 중에서도 베르니스와 스콜의 경기가 단연 돋보였다. 아무튼 실버플레어의 경기가 끝나고 골드플레어의 8강전이 시작되었다. 제7장 탈출하다 니콜라스가 경기장에 오르자 관중석에서 미친 듯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이미 거부할 수 없을 만큼의 인기를 구가하는 니콜라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그와 동시에 관객들은 니콜라스의 팬인 것처럼 작은 손짓에 열광하며 니콜라스의 이름을 외쳐댔다. “우와아아아아!” 그것을 지켜보던 니콜라스의 상대편 기사가 이죽거리며 조용하게 한마디 흘렸다. “미친 새끼! 좋아하는 꼴이라니...... 큭큭, 곧 뒈질 것도 모르고.” 순간 니콜라스의 눈이 번뜩였다. 니콜라스는 이미 상급 소드 마스터를 넘어섰다. 그가 아무리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듣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저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그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용병 노릇을 하며 키워온 육감이 위험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블루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퍼엉! 그러나 그때 시작을 알리는 마법 폭죽이 터졌다. 잠시 시합을 중단하고 신호를 보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다지 좋지 않은 방법임을 깨닫고 생각을 전환했다. 상대와 수합을 겨누면서 떠오르는 수만 가지 잡생각. 그 안에는 상당히 타당성 있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특히 아이린 공장, 혹시 그 미친 늙은이가 어떤 수작을 부렸을지 모른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그려지기까지 했다. 자연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검의 출수가 생각보다 늦어졌다. “이, 이런!” 급기야 녀석의 별것 아닌 공격에도 중심이 흔들렸다.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가슴을 노리며 검을 날렸다. 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관중들도 그것을 알아챈 듯 웅성거렸다. “아, 아니 저런!” “설마 진짜 찌르지는 않겠지?” 그러나 녀석은 정말 찌를 생각이었다. 온몸으로 진짜 죽이겠다는 의사표시를 계속하고 있었다. 친선을 통한 실력의 재평가! 녀석에게 이미 그것은 유명무실했다. 아니, 처음부터 작정하고 올라온 성 싶었다. 그이 검이 숨 돌릴 틈도 없이 니콜라스의 갑옷을 꿰뚫고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니콜라스는 모든 기술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이 상황을 절대 넘어설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봉인하고 있던 나머지 사십 퍼센트의 힘을 개방했다. 순간, 전신으로 무한에 가까운 기가 퍼져나갔다. 엄청난 쾌감이 엄습해왔다. 갑자기 이대로 힘을 풀어내고 폭주상태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흐흐흐흐’ 번쩍! “아, 아니!” 힘껏 검을 찌르는 순간 니콜라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기사가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 번 거렸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눈앞에 멀쩡히 서 있던 녀석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관중들의 놀라움도 컸다. “어이, 저기!” “니콜라스가 언제 저기까지 이동한 거지? 누구 본 사람 없어?” “봤으면 이렇게 놀라고 있겠는가!” 그러나 기사는 극도로 긴장한 탓에 관중들의 말소리를 듣지 못했다.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크흐흐” 기사가 번개처럼 고개를 돌려 니콜라스와 마주한 순간, 서걱! “끄, 끄아아아악!” 오른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오른팔은 검을 진 채 펄떡이고 있었다. “까아아아아악!” “으악, 저 기사 팔이 잘린거야?” “까아악!” 연쇄적으로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니콜라스는 말없이 땅에 떨어진 기사의 오른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치 않았음에도 피를 보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폭주한 탓이다. 신체와 정신이 순간적으로 붕괴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니콜라스가 전신의 힘을 개방할 때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그릇 이상의 힘이 흘러나오는 순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가진 힘에 비해 그릇이 너무 작아서 생긴 육체적 붕괴. 그 첫 번째 증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피를 보는 순간, 보통 광기에 물드는 다른 존재들과 달리 냉정하게 이성을 되찾았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주군, 즉 블루 덕이었다. 쾌감 따위에 굴복할 정도로 자신의 수양이 결코 얕지 않다는 믿음으로 이를 악물로 버틴 것이다. 솔직히 존재 이유가 쾌락의 한순간을 만끽하기 위함이라는, 아니 고지식한 니콜라스로서는 쾌락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다는 걸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흐음.” 니콜라스는 침음을 발하며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그의 입가에 혈선이 그어져 있었다. 입안이 터진 것이다. 아니, 그가 일부러 터뜨린 것이다. 온전히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스스로 입안의 살점을 물어뜯은 것이다. 그 통증에 힘입어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그에게 한 팔을 잃은 기사는 맥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다 정신을 잃고 무대 위에 쓰러졌다. 충격이 컸을 것이다. 기사가 팔을 잃는다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십 명의 병사와 기사들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왔다.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갖췄다. 한발 늦었군! 그들의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사전에 약속된 상황임을 능히 짐작케 했다. 니콜라스의 짐작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니콜라스는 두리번거리며 블루를 찾았다. 블루 역시 포위당한 상황이었다. 베르니스와 스콜 그리고 클루토와 텐시...... 거기다 덤으로 에스티마르까지 함께 있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물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다들 간단한 호신술이나 여차하면 내뺄 수 있는 실력 정도는 갖추고 있으니까. 그가 우려하는 것은 블루였다.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솔직히 블루가 최강자라는 것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그도 알았다. 그런데도 블루가 걱정스러운 것은, 그가 바로 자신의 주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위험천만의 상황에서도 블루는 여유만만이었다. 마치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아니, 오히려 너무 늦게 터져서 지루했다는 인상까지 팍팍 풍겼다. 그때였다. “잡아라!” 그 외침과 함께 기사와 병사들이 물결처럼 몰려들었다. ‘제, 제길! 주군을 지켜드려야 하건만!“ 인정을 배제한 거침없는 손놀림! 니콜라스의 검이 피어오르는 푸른 오러! “으악!” 적은 비명을 지르며 피하기에 급급했다. “말도 안돼!” “한낱 용병따위가....... 고, 고급 소드 마스터!” 니콜라스의 검은 무적이었다. 닿는 족족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검이든 갑옷이든 사람이든 갈지 않고 베어 넘겼다. 공간까지도 베어버릴 듯한 전광석화 같은 그의 몸놀림! 자신들을 죽이려는 적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매혹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잔상들이 스치는 곳마다 붉은 안개와 피분수가 솟구쳤다. ‘주군!’ 니콜라스의 가슴속 외침이 피안개로 물든 허공을 수놓았다. “사망유희(死亡遊戱: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블루가 사망유희라 명명한 강권이 한 기사의 안면에 거침없이 꽂혔다. 퍼걱! “......”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붕 떠서 허공을 날았다. “이히힉!” 풀플레이트를 갖춰 입은 기사가 자신들을 향해 날아들자 다들 기겁을 했다. 그리고 이러다 자신들까지 곤죽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위기감에 사로잡혀 호들갑스럽게 흩어졌다. 일순간에 무너져버린 방어벽을 보며 블루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곳을 뚫고 빠져나갈 생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천진난만한 얼굴로, 다가오라는 듯 손을 까닥거리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기사들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크게 뭔가 잘못되었다! 본디 철벽방어진을 공고히 한 다음 차츰차츰 좁혀들어가 간단히 사로잡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뜻하지 않은 전개였다. 마치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랄까. 왠지 모르게 자신들이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했다. 그리고 개미지옥에 빠진 듯한 이 불안감은 또 뭐지? 그러나 물러설 수 없었다. “큭큭큭, 다 죽여라!” “이야앗...... 커헉!” “죽어라아.....억!” 섬광같은 블루의 주먹이 입을 여는 족족 녀석들의 주둥이 꽂혔다. “동병상련(同病相憐:너도 똑같이 패주마! 사실 좀 더 아플지도 몰라).” 달려들기 무섭게 바닥에 나뒹구는 기사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투지는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리고 블루를 바라보는 일행들은 겁에 질려갔다. ‘아무래도 우리가 대장을 잘못 고른 것 같은데.’ ‘나도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였다. “으아악!” 촤아아아악! 피보라와 비명이 교차하는 순간, 블루 앞에 서 있던 기사가 나자빠지면서 그 사이로 니콜라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다급히 물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순간 블루의 인상이 잔뜩 구겨졌다. 니콜라스를 보니 피로 전신이 물들어 있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얼마나 열심히 이곳까지 달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를 위해서! 솔직히 이쯤 되면 감격할 법도 하건만, 어찌된 노릇인지 블루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빌어먹을 자식! 한창 신나게 불붙고 있는 참인데 이렇게 초를 치나, 초를.’ 그러나 블루는 그런 속내를 차마 드러낼 수 없었다. 니콜라스의 진심을 잘 아는 탓이다. 의외로 사람들 진심에 약한 블루. 니콜라스가 말했다. “주군, 제가 길을 뚫겠습니다. 그 사이 이곳을 피하십시오!” 니콜라스는 주변을 견제하며 블루와 그 일행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텄다. “놓치지 마라!” 뒤쪽에서 관록 있게 생긴 기사가 떠들어댔으나 기사들은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멋지게 싸우다 장렬히 죽는 것을 상관없었다. 하지만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일부러 검에 몸을 꽂아주는 행위는 절대 사양이다. 은발의 사내나 니콜라스라는 녀석까지 죄다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주먹 한 방으로 중갑을 걸친 기사들을 허공에 날려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거기다 저 니콜라스라는 녀석은 처음 보인 고급 익스퍼트 수준이 아니라 최소 마스터, 그거도 상급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맨투맨으로 그를 누를 자가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는 말과 동일했다. 그랜드 그래플 마스터라 불리는 아이린 공작이라면 막을 수 있을까? 검을 휘두를 때마나 생기는 오러의 잔상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거기에 걸리는 족족 팔다리가 중갑째 피를 뿌리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런데 누가 선뜻 덤비겠는가? 인해전술? 말이 좋아 인해전술이었다. 진짜 고수에게 인해전술은 통하지 않는 법. 그가 지칠 때까지 무한정으로 투입할 수 있는 병사가 없는 이상은 말이다. 기사들은 그냥 가서 죽이기만 하면 된다고 들었다. 그러나 놈은 무적이었다. 따라서 뒤에서 들려오는 상관의 지랄같은 육성은 니콜라스한테 어서 가서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을 꼬라박으라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그들 마음은 이미 엉뚱한 곳으로 떠나 있었다. 더 이상 주둥이만 놀리는 상관의 명령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사표시였다. “저, 저, 저놈이 도망간다!”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니콜라스들의 뒷모습을 보며 상관이 외쳤다. “아니, 저 새끼들이!” 쫓을 생각을 하지 않는 부하들을 본 상관이 눈에 불을 켰다. “어서 뒤쫓아! 어서 쫓지 못해!” 그러나 기사들은 느릿느릿 움직였다. 솔직히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 숨어 부하들만 나가서 죽으라고 악을 쓰는 상관의 면상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었다. “정녕 네놈들이 명령불복종으로 죽고 싶은 것이냐!” 그제야 현실을 간파한 기사들이 정신없이 뛰었다. 그러나 이미 니콜라스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벌써 멀리 도망친 탓이다. 그것을 본 귀족들은 저마다 이를 악물었다. 으드득! “내 저놈을 잡아 뼈째로 갈아 마시고 말 것이다!” 어느 귀족의 울부짖음에 다른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들도 같은 심정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이번 일로 그들이 입은 피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것이었다. 일련의 사태를 주도한 것은 그들이었다.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나마 니콜라스가 우려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없었다. 아이린 공작이 개입하지 않은 것이다. 그날 저녁. 우드남 백작령 이곳저곳에 수배전단이 덕지덕지 붙었다. 특히, 니콜라스의 얼굴이 크게 붙어 있었는데,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현상금 500골드 범인은 공정한 무투대회에서 상대편 선수의 식사에 약을 타는 부정행위를 사용했으며, 그것을 알고 출동한 기사를 잔혹하게 살인, 도주했다. 그들의 행적을 아는 자는 신고 바란다. 우드남 백작 백 “푸하하하, 아주 걸작이군.”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진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그곳에 가서 직접 그 상황을 목격한 눈이 어디 한둘인가? 당연히 장안의 화제는 니콜라스 이야기였다. “아니, 가짜 실력이라면 그 기사들을 그렇게 뿌리치고 도망칠 수나 있었겠어?” “맞아 맞아. 어림도 없이. 귀족 나으리들께서 자신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괜한 사람을 잡는게 확실해!” “으휴, 불쌍한 사람 또 하나 생겼군.” 그 반대편 테이블에서는 여자들이 통곡하고 있었다. “말도 안돼! 이런 억기 거짓으로 우리 니콜라스님을 욕보이다니, 흑흑.” “엉엉, 니콜라스니임!” 그렇듯 울부짓는 여인네들의 모습을 어디를 가나 흔히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들 손에는 어김없이 깨끗한 수배지가 한 장씩 들려 있었다. 솔직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범인을 잡겠다고 수배지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러나 그녀들은 좀 달랐다. 니콜라스를 잡을 생각이 추호도 없을 뿐더러, 그 수배지 또한 용도가 달랐다. 연인의 초상화처럼 보물처럼 품고 다니는 식이었다. 그 바람에 대륙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니, 현상범 수배 전단지 앞에 병사들이 보초를 서를 해프닝이 그것이었다. 붙이자마자 떼어가는 수배전단지 도둑들 때문이었다. “형님들 이쪽으로 몸을 피하십시오.” 야밤을 틈타 우드남 성 외곽에서 수 명의 그림자가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산기슭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곳입니다. 이곳에서 이쪽으로 쭉 가시면 아무도 모르는 샛길이 나옵니다.” “프랭크 고마워. 나중에 이 은혜는 꼭 보답할게” 텐시의 말에 프랭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아닙니다, 누님. 당연히 해야할 일인걸요.” “아무튼 이것은 수고료.” 텐시가 눈을 찡긋하며 자신의 품안에서 작은 보석 두개를 꺼내 프랭크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본 프랭크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도둑길드 일원답게 그 보석의 진가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헉! 이것은.......” “쉬잇, 수고하고 보스랑 유리한테 고맙다고 잘 좀 전해줘.” 프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살펴가십쇼.” 그것을 끝으로 프랭크는 돌아섰다. 그때 에스티마르가 일행들을 보며 가볍게 일을 열었다. “블루 동생.” “예, 에스티마르 형님.” “여기서 헤어져야겠네.” “옛?” “난 이길로 가야겠어.” “바쁘신 것 같군요.” “그냥 약간 사정이 생겨서 말이야.” “아쉽습니다.” “하하, 곧 다시 보게 될 텐데 뭘.” 순간 블루와 에스티마르가 가벼운 미소를 교환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래, 이번 여행은 정말이지 재밌었네.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에스티마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곁에 서 있던 니콜라스가 말했다. “그럼 우리도 떠나죠. 곧 추격대가 올 겁니다.” “그러지.” 제8장 헤르마틴으로 향하다 다들 말이 없었다. 그들은 일주일동안 밤낮없이 뛰었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깊은 산중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누구할 것 없이 지친 모습들이 역력했다. “이제 어디로 가죠?” 블루의 질문에 텐시가 입을 열었다. “지금 위클러 자작 영지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니까...... 아마 가장 가까운 마을은 대략 사십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칼슨 백작의 영지일 겁니다. 일단 그곳으로 가서 짐을 꾸린 후, 마을을 통과해 서쪽 방향으로 큰 산을 두 개쯤 넘으며 헤르마틴 제국의 수도 입구에 도착할 수 있을 거에요. 그렇게 간다면 그 지긋지긋할 정도로 넓은 자코니스 지방을 돌아서 갈 필요가 없으니, 시간도 많이 절약될 테고.” “그렇군.” 블루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바로 그때, 챙! “이게 무슨 소리지?” “뭐가?” 베르니스가 묻고 스콜이 대답했는데. 힘들어 죽을 맛인데 무슨 헛소리냐는 투였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이 귀를 기울리는 것을 확인하고 그 역시 귀를 쫑긋 세웠다. 그때 들려온 니콜라스의 두껍고 허스키한 목소리. “저곳이군.” 그러자 베르니스가 이것 보라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스콜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때 다시 소음이 들려왔는데, 이렇듯 깊은 산중에서 들려올 만한 소리가 절대 아니었다. 이 근처에 무슨 연무장이라도 있지 않는 한 어림도 없는, 금속과 금속이 강하게 맞부딪치는 소리였던 것이다. “무슨 소리지?” 텐시의 질문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블루가 입을 열었다. “피냄새로군.” 그 즉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블루와 니콜라스가 동시에 뛰쳐 나갔다. 스콜은 힘들어 죽겠는데 왜 또 뛰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코를 킁킁거렸다. ‘대체 무슨 냄새가 난단 말이지? 아휴!’ 다들 뛰쳐나가자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같이 가자!” 챙챙! “으악!” 가까이 다가갈수록 소음은 커졌다. 그리고 사람들 비명소리까지 섞이고 있었다. 다들 신속하게 몸을 낮추고 자세를 잡았다. 텐시는 개인적으로 이런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서둘러 일행을 따라 자세를 다잡고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나갔다. “망할 자식들아! 이제 그만 포기해라!” “미쳤냐? 이거나 처먹어라, 라이트닝 볼트! 도련님, 어서 이쪽으로!” 콰광! 텐시가 샐쭉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나 무슨 저주에 걸렸나봐.” “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죽어나자빠지잖아.” 다들 침묵을 지켰다. 슬그머니 블루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블루가 당황한 듯 외쳤다. “뭐,뭐야, 그 눈초리는?” 그러자 다들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떨궜다. 텐시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니콜라스까지도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뭘?” 블루의 목소리 톤이 한층 올라갔다. 그 사이에도 기척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 소년의 다급한 목소리. “죠셉, 위험해!” “저는 괜찮습니다. 도련님, 어서 저 숲을 거슬러.......” ‘조셉?’ 클루토는 알쏭달쏭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이름이 어디서 들어본 듯 귀에 익은 탓이다. 그때였다. 콰앙! 강한 폭음과 동시에 숲이 울렸다. 어느덧 그들 목소리는 물론 숨소리까지 확연히 들렸다. 일행은 블루와 니콜라스가 앞장서고, 베르니스와 스콜이 후방으로 빠져 클루토와 텐시를 보호하는 진형을 짰다. 장거리 공격이 가능한 클루토와 텐시에게 앞으로 닥칠 기습을 미연에 차단시켜 효율적인 공격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귀를 쫑긋 세웠다. 일단 발자국 소리로 예상해볼 수 있는 것은, 쫓기는 사람은 둘인데 반해 쫓는 쪽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대다수라는 사실. 블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인을 보냈다. 자신을 앞쪽으로 도망쳐올 둘을 보호하라는 뜻이다. 그때, 바스락 수풀이 흔들리며 한 소년이 튀어나왔다. “헉!” 블루가 슬쩍 일어서자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설마 이곳까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으리라곤 꿈도 꾸지 못한 탓이다. 소년은 불안한 눈으로 블루와 니콜라스를 번갈아 보며 몸을 떨었다. 블루들을 쫓아오는 놈들과 한패거리라고 생각한 듯, 분주히 눈을 굴리며 도망치 구멍을 찾고 있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상당히 영악하고 눈치가 빨라보였다. “도련님!” 뒤쪽에서 중년인이 튀어나와 바닥에 쓰러진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도련님, 이곳에서 뭐하시는 겁니까?” 다급한 나머지 아직 블루들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곧 아이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던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누구냐, 너희들은?” 당찬 물음이었으나 낙담한 표정이 역력했다. 소년을 뒤로 숨기며 그가 외쳤다. “우리는......” “비켜라!” 그러나 비켜서지 않았다. 어느덧 얼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이 떠올랐다. “우리는......” “비켜!” 중년인이 다시 악을 썼다. 발자국소리는 이미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얼빠진 얼굴로 힐끔 뒤돌아보는 중년인의 눈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슬픔의 흔적인가, 억울함의 표현일까? 그가 말했다. “크흑, 이렇게 허무하게 붙잡히고 말다니! 에이, 재수없는 자식들! 이거나 먹고 죽어라, 파이어 애로우!” 순간 다섯갈래로 화살모양의 불꽃들이 쏘아졌다. 앞 뒤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내갈기고 보는 저 멋진 모습! 본받을 만한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다지 달가운 상황이라고 할 수 없었다. “꽤나 성격이 급하고 더럽기까지 한 친구군.” “하지만 캐스팅도 없이 곧장 마법을 날리다니! 대단해요.” “보통의 마법사는 아닌 것 같지?” 그사이, 니콜라스가 오러소드로 간단히 불화살을 무력화시켜버렸다. 펑펑펑펑펑 폭죽처럼 터지는 소음들. “소, 소드 마스터!” 나직이 한마디 내뱉은 중년인의 얼굴에 참혹한 기운이 담겼다. “헉, 너희들은 누구냐?” “조, 죠셉!” “도, 도련님. 죄송합니다, 크흑!” 소년은 불안한 듯 눈을 굴리며 죠셉이라는 중년마법사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크흐흑, 이것으로 끝이란 말인가?” 철거덕 쇳소리를 내며 수십의 기사들이 등장했다. 하나같이 검을 뽑아들고 있는데, 그들의 검에서는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블루와 그 일행은 구토증세를 느꼈다. ‘이젠 저 풀플레이트만 봐도 토할 것 같아.’ 블루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맨 앞의 푸른 갑옷을 입은 자가 앞으로 나섰다. 키가 백구십쯤 되는 거구로, 나름대로 예의를 차리려고 애쓰는 것 같긴 한데 영 어설펐다. 큰 키 탓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블루는 그의 상판이 싸가지가 없게 생긴 탓이라고 생각했다. 잡은 쥐새끼를 놓고 희롱하는 고양이 같은 눈빛이 특히나 눈에 거슬렸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칠 데가 없는 모양이군요. 후후후, 이제 그만 하시죠.” “빠득!” 소년이 야무지게 이를 갈았다. 거의 동시에 중년마법사 죠셉이 씹어뱉듯 ‘같이 죽자!’를 외치는 것으로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기사는 능글거리는 미소로 받아넘겼다. “미안하지만 같이 죽어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을 것 같군요.” 재수 없는 말투를 저렇듯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꼭 한수 배워두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으나,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꾹 참았다. 그때 죠셉이 피를 토하듯 입을 열었다. “데미안, 난 널 지옥에서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아아, 죠셉. 정말 다행이네요. 대견하게도 갈 곳이 지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니.” “데미안, 네놈이 감히 내 이름을.......” 피식 “그럼 뭐라고 불러줄까? 도망쳐 나온 개?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난 처음부터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큭큭큭. 그런데 그 짜증나는 눈동자를 함부로 그렇게 부라리시니까 참으로 귀엽네요, 큭큭. 아참, 이제 죽어가는 마당인데 마지막으로 예의는 지켜드려야겠지, 큭큭큭.” 그렇듯 비릿한 웃음을 흘린 그는 목청을 한번 가다듬고 느끼한 말투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눈빛으로 자꾸 도발하시면, 더 이상 저로서도 제 검을 제어할 방법이 없습니다. 잠시잠깐, 아차 하는 순간이면 죠셉님의 머리가 바닥을 굴러다닐지 모르니...... 아 물론, 제가 더욱 조심하면 될일이겠지요. 물론 도련님 역시 마찬가지지요, 아하하!” “데미안!” 소년의 두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서슬 퍼런 그 눈을 돌려 그는 한 사람씩 눈을 마주쳤다. 흡사 무슨 의식을 진행하듯,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들을 눈에 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들을 절대 잊지 않겠다! 차가움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가 말했다. “하긴 그것이 내 이름을 부를 마지막 기회일 테지. 그렇게 이를 악무신다 해도, 그 눈빛은 이제 곧 썩어 없어질 것이니 그런 쓸데없는 정력낭비는 과소비라고 볼 수 있겠지요.” “망할 자식!” 죽일 듯이 서로 노려보는 둘은 진정한 살기가 무엇인가를 증명해보이려는 사람들 같았다. 순간 블루는 왠지 기분이 더러웠다. 왜지,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럽지? 그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알았다. ‘이것들이 지금 우리를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알고 있잖은가!’ 블루는 자신들이 깨끗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실은 그게 아니었다. 데미안의 입에서 블루들을 찾는 말이 흘러나온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도 그의 시선은 소년과 죠셉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너희들이 이들을 막아준 것은 고마운 일이나,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보고만 운명을 저주해라. 고맙고 미안한 마음은 최소한의 고통으로 죽여주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순간 입가에 살포시 떠오른 미소. 동시에 데미안 뒤에 정렬해 있던 병사들이 불규칙한 쇳소리를 내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블루와 그 일행들을 둘러쌌다. 순간 베르니스의 입에서 허탈한 일성이 흘러나왔다. “이것 보라니까! 난 또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어젯밤 꿈에서 본 것처럼 너무 친숙하다니까!” “내 말이 그말이야!” 베르니스와 스콜이 투덜거리자 텐시가 킥킥거렸다. 위급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장난스럽기 짝이 없었으나 그러면서도 맡은 바 본분을 잊지 않고 민첩하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때 소년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네 녀석은 기필코 내가 죽이고 말것이다!” “하하, 무서운 말 그만하시고 편히 가시오. 더 이상의 말은 들을 가치도 느끼지 못하겠으니 말입니다. 이제 이곳에 있는 인물만 깨끗이 처리하면 더 이상의 증인도 없을 테니...... 당신이 누구 손에 죽었는지 누가 알겠소. 이것이 바로 완전 범죄라는 것이지.” “개소리 집어치워! 그 더러운 입으로 도련님께 감히......” 죠셉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살아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지라, 그의 분노는 더욱 강렬할 수 밖에 없었다. 잔잔하게 떨리는 목소리는 그의 분노를 잘 대변해주고 있었다. “당신들이 누구든지 이곳 ‘늑대의 숲’에서 늑대 밥이 되겠지. 이제 당신들이 사라짐으로써 그분은 한발 더 앞으로 나가시는 계기가 생길 것이고. 그렇지 않나요, 후훗!” 능글맞은 그 목소리에 블루들은 짜증이 솟구쳤다. 정말 선량한 배역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재수없는 목소리였다. “그 더러운 아가리 닥치지 못해! 만약 한 번만 더 그 더러운 입을 나불거리면...... 빠득!” 죠셉은 원통해서 말도 안나왔다. 데미안이 기사들에게 가볍게 턱짓을 했다. 모두 죽이라는 뜻이었다. 차캉! 그들의 발걸음이 블루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순간 니콜라스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네놈들이 우리를 죽이겠다고, 큭큭큭.” 그는 검에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대충 싸워 이길 만한 상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주먹을 움켜쥔 블루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곧 느껴질 팔의 진동이 벌써부터 그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었다. 드디어 싸움이 시작되었다. ‘좋아!’ 슬쩍 블루를 바라본 니콜라스가 먼저 검을 움직였다. 서걱!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이은 비명 그리고 혈향! 완벽한 삼박자였다. 그리고 사람이 쓰러질 때 나는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 그가 흡족한 얼굴로 다시 몸을 날리는 찰나, 블루가 끼어들었다. 사실 그는 지금 상황이 매우 못마땅했다. 특히, 니콜라스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것은 명백한 월권이요, 침해였으며 파렴치하게 그의 몫을 빼앗는 도둑행위였다. 왜 자기 몫을 빼앗느냐 말이다. 그래서 그는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퍼벅! “으윽!” “오오 이 손맛!” 블루의 주먹이 허공에서 흔들리듯 움직일 때마다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앞으로 가로막은 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흩날렸다. 더 이상 막아서는 놈들이 없자 그는 입맛을 다시며 이미 맞고 기절한 녀석들을 찾아가서 일일이 깨운 후에 다시 패는 잔혹한 모습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게다가 일부러 중갑을 입은 놈들을 골라 바디만 치는 것으로 손맛(?)을 열심히 즐겼다. 베르니스와 스콜도 싸워보고 싶었으나 그들은 본분에 충실했다. 자칫하면 클루토와 텐시가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죠셉은 블루들이 자기들과 같은 입장이라는 것을 깨닫고 가장 기본적인 마법으로 뒤쪽 병사들의 움직임을 봉쇄해나갔다. 그러면서 틈틈이 강력한 마법을 써서 상대방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년을 보호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 자식들이!”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데미안은 노발대발하며 니콜라스에게 달려들었다. 턱수염을 기른 놈과 은발머리한테 그의 수하가 무려 열다섯이나 쓰러졌기 때문이다. 주먹을 휘두르는 은발머리는 별 볼일 없어 보였지만, 턱수염의 기사는 한눈에 그와 비슷한 실력임을 알 수 있었다. “어라, 마스터였군.” “훗, 이거 재미나겠는데.” 데미안과 니콜라스는 마주보며 이를 드러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니콜라스였다. 그의 몸이 춤을 추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데미안도 가만있지 않았다. 니콜라스의 부드러운 궤적을 뒤따르며 계속 빈틈을 노릴 만큼 그도 능숙한 재주를 선보였다. 하지만 역시 니콜라스는 노련했다. 전혀 당황하지 않고 번번이 위기의 순간을 빠져 나가는 것이었다. 줄기차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니콜라스 때문에 짜증이 난 데미안이 울화통을 터뜨렸다. “에잇, 죽어라!” “너나 뒈져라!” 어느새 데미안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이마는 땀으로 번들거렸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전혀 흐트러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데미안은 그것이 또 불만이었다. 크게 한 방을 노리듯 웅크린 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해 보였다. 사실 다급해져 쓸데없이 움직임만 커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니콜라스의 검에 압도당한 데미안에게 선택은 많지 않았다. 유리한 상황에서도 니콜라스는 데미안을 강하게 몰아붙이지 않았다. 궁지로 몰아넣었다가 풀어주고 풀어주었다가 조이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데미안을 통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데미안도 곧 그것을 깨달았다. 으득! “지금 날 농락하는 것이냐?” 그때 옆에서 그 싸움을 구경하던 블루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맞아, 지금 널 가지고 노는 거야.” 흠칫! “뭐, 뭐야?” 그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통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데미안. 그는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도 않은 광경앞에서 아연해지고 말았다. 맥이 풀렸다. “미, 믿을 수 없어!” 수하가 하나도 남김없이 죄 온몸에 피를 칠한 채 바닥에 드러누워 헐떡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 중 몇몇에는 두툼한 갑옷에 움푹 파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주먹자국이 선명했다. ‘서, 설마 저 은발머리한테?’ “믿을 수 없어, 믿을 수가 없어!” 데미안의 검이 크게 반원을 그리며 니콜라스 허리 부분을 정확히 갈랐다. 니콜라스는 피하기 귀찮은 듯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몸을 말았다. 그것을 똑똑히 보고도 데미안은 착각처럼 느꼈다. 모개시계가 갑자기 슬로우 모션으로 거꾸로 흐르듯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졌다. 빙글 몸을 돌린 니콜라스는 검이 휘둘러지는 방향을 따라 거슬러 오르듯 움직였다. 어찌 보면 정말 아슬아슬한 장면 같았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화려했다. 크게 휘두른 데미안은 그 힘을 거두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무의식적으로 니콜라스에게 눈길을 주었다. 자신의 어깨를 향해 찔러 들어오는 니콜라스의 중검! 도저히 피할 길이 없었다. 데미안은 이를 악물고 검을 한 바퀴 크게 돌렸다. 그러면서 그 반동으로 자신의 몸을 뒤로 날렸다. 스각! 피하기는 피했으되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어깨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그러나 데미안은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아마도 분노가 통증을 잊도록 만들어준 것이리라. 데미안의 눈을 독을 품은 독사처럼 날카롭게 빛을 발했다. 자신의 자존심을 뭉갠 니콜라스와 함께 죽겠다는 비장함이 엿보였다. 일행은 숨을 죽인 채 니콜라스와 데미안의 마지막 공방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블루한테 얻어맞고 바닥에 뻗어버린 녀석들 중 몇몇이 힘겹게 고개를 치켜들고 대장의 마지막 한 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니콜라스가 가장 안정된 자세를 취하기 위해 지대면을 최대한 높인 반면, 데미안은 검끝에 모든 힘을 몰아넣은 채 앞으로 쏟아지는 듯한 자세로 대조를 이루었다. 한 마디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동귀어진 수법이었다. 타다다다닷! 드디어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데미안이 빨랐다. 그의 검이 바람을 가르며 정확하게 니콜라스의 심장을 향해 파고들었다. 이번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가 엿보이는 일격이었다. 니콜라스는 데미안의 검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이윽고 그가 검을 세로로 치켜들었다가 탄력을 이용해 데미안의 검을 튕겨냈다. 챙그랑! 데미안은 멍한 눈으로 자신의 빈손을 내려다보았다. 허탈한 표정이었다. 과연 그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흐흐흐흐흐흐흐!” 갑자기 웃음을 흘러나왔다. 한동안 그는 몸을 들썩거리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러다 별안간 멈췄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눈물이 볼을 지나 바닥에 떨어지는 찰나, 그의 신형이 힘없이 무너졌다. 모든 힘을 잃어버린 듯, 허탈하면서도 허전하고 왠지 애처롭기까지 한 그 모습. 작아보였다. 왜소해 보이는 등이 한동안 들썩였다. 바로 그때, 번쩍! 강렬한 불빛과 함께 귀가 멍멍할 정도의 외침! “파이어 볼!” 퍼벅! “크아아악!” 눈 깜짝 할 사이에 데미안의 온몸이 불길에 뒤덮였다. 이게 대체 어찌된 노릇일까? 블루는 얼른 주변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이어 볼을 영창할 때의 모습 그대로 죠셉은 붉은 불꽃 속에서 재가 되어 사라져가는 데미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차갑게 굳은 얼굴로. 그 옆에 서 있는 소년의 표정도 더욱 차가웠으면 차가웠지 덜하지 않았다. 데미안의 비명소리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베르니스가 죠셉을 노려보며 역정을 냈다. “저희를 이렇듯 살려주신 것은 감사드립니다만, 결코 이자만큼은 살려둘 수가 없습니다.” “그...... 흐음.” 베르니스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순간, 스콜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그때 블루가 덤덤하게 말했다. “마무리나 짓자.” 그들은 일단 살아남은 사람들을 포박했다. 대부분 앞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할 것 같았다. 블루에게 얻어맞아 반병신이 된 것이다. 니콜라스나 베르니스들은 살기 위해서 무조건 상대를 죽였따. 그러나 굳이 죽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블루는 가볍게(?) 두들겨 패기만 했다. “어떻게 이렇게 맞고도 살아 있지?” 다들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쨋거나 살아남은 이는 총 열셋. 그들은 사지가 묶인 채 보릿자루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기절한 상태였다. 잠시 전에 잠깐 깨어난 자들도 있었는데, 대장이 당한 것을 보고 다시 의식의 끈을 놓치고 말았다. “끌고 가다 가까운 마을에 던져놓고 가자.” 텐시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갑자기 니콜라스가 그들을 모두 참살해버렸다. “니, 니콜라스...... 왜 갑자기.......” 니콜라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도 살려두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이러다 우리만 위험해질 뿐이다. 만약 녀석들이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신상을 불어버리면 어떤 상황이 야기될지 누가 알겠는가?”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 다른 누구의 목숨보다 자기 자신의 목숨이 더소중했기 때문이다. 니콜라스들은 곧 자신들이 싸운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죠셉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누구한테나 위험한 상황이었으니까요.” 텐시의 그 한마디에 죠셉을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사과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텐시가 침묵을 지키자 니콜라스가 나섰다. “자, 이제 어찌된 연유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그의 묵직한 무게감이 중인들을 압도했다. 일단 그들이 개입된 이상 어느 정도 사정을 알아야 한다는 게 니콜라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끝내 죠셉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말하기 힘들다면 더 이상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니콜라스가 그렇듯 간단히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마음의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죠셉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로 가시나요?” “우리는 헤르마틴 제국으로 갑니다.” “아!” 그 외마디에는 아쉬움이 잔뜩 묻어났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별건 아니고 누굴 좀 만나서 도와줘야 하니까요.” “큰일인가 보죠?” “아뇨, 집안에 문제가 생겨서 도와주러 가는 것뿐입니다.” 텐시의 말에 수긍하듯 죠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다 다시 물었다. “용병입니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상에 어떤 용병단에 마스터급 기사들을 둘씩이나 보유하고 있겠는가? 듣지 않아도 대답은 뻔했다. 니콜라스가 용병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찰나, 베르니스가 생각 없이 냉큼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왜 묻죠?” 순간 죠셉의 눈이 번뜩였다. ‘이 정도 파티라면.......’ 꿀꺽 죠셉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렇다면 의뢰를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빠르게 눈길을 주고받았다. 이미 용병이라고 밝힌 이상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땅히 거절할 말을 찾고 있는데 죠셉이 먼저 자기 의사를 밝혔다. “체면불구하고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십시오. 지금 도련님을 호위해줄 기사들이 하나도 남지 않은 마담에...... 저 혼자는 어림도 없습니다. 도련님을 안전하게 자택까지 모시기란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 “제발 의뢰를.......” “.......” 자신을 바라보자 베르니스는 얼른 외면해버렸다. “간곡히 부탁.......” 텐시도 고개를 틀어버렸다. “목숨이 걸린.......” 니콜라스는 피하지 않았다. 그를 마주보며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히 도와주고 싶지만 지금은 내 코가 석자였다. 결코 남에게 인정을 베풀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들도 도망치는 입장이 아닌가. 딱 잘라 거절하려는 찰나, “돈이라면 원하는 대로.......” 베르니스의 귀가 먼저 꿈틀거렸다. 사삭! 죠셉의 앞으로 번개같이 날아간 베르니스는 그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그리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아, 잘 생각하셨습니다. 탁월하시며, 탁월하다 못해, 아주 정말 탁월하신 굿 초이스입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모든 의뢰를 신속하고 정확히 완수했으며, 아마도 자타가 공인하는 뉴 클래스 파티 용병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으로, 원하시는 의뢰를 정확하고 알차게 정말이지 확실하게 이뤄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리고도 한동안 베르니스는 자아도치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니콜라스는 할 말을 잃었고, 동료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나 블루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 그때 베르니스의 손을 부여잡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죠셉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울먹거리며 감사를 표하던 그는 급기야 눈물을 빠뜨렸다. 그것을 본 베르니스가 감격하고 말았다. 늘 일자리를 찾아만 다녀봤지, 언제 이렇듯 제대로 일을 청탁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거기다 돈도 부르는 대로 준다지 않은가! 드디어 용병으로서 성공한 것이다. ‘가라, 껍데기 같은 과거는 가라! 눈물 젖은 빵으로 점철된 세상이여, 안녕.’ 과거 자신이 용병단 단장을 맡고 있을 때의 처절함이 떠오르며 눈물이 샘솟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 아버지 기뻐해주십시오.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청탁을 받는다는 것은 소규모 용병단에게는 꿈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베르니스가 하나 망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드래곤 레어에서 가져온 천문학적인 보석들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돈에, 그 다음에는 일거리를 잡았다는 기쁨에, 나아가서는 성공했다는 식의 단계적인 의식의 확장에 그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우리 용병단을 성공으로 이끈 나의 이 민첩함을 스콜이나 클루토, 텐시가 보면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길까?’ 그래서 그는 고개를 돌렸다. 예상대로 다들 그를 보고 있었다. 거기다 얼마나 기뻤으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겠는가! 두두 두두두! 베르니스가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감격해라. 마음껏 감격하고 내 품에 안겨라.’ 퍽! ‘퍽?’ 의문과 동시에 아릿하게 퍼져가는 통증. “꾸엑!” 스콜이 태클을 걸어 한순간에 그를 자빠뜨린 것이다. 그러자 텐시가 밟기 시작했고, 얌전하던 클루토까지 가세해 발길질을 해댔다. 뿐이랴. 스콜까지 바람처럼 달려와 텐시와 클루토가 하는 일에 동참했다. 퍼버버버버벅! “으아아아악! 망할 것들아, 왜 날 밟는 거야!” “몰라서 물어?” “모르니까 묻지!” “그럼, 알 때까지 맞아!” 퍼버버버버버버벅! 블루는 숨이 넘어갈 듯 웃을 뿐,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니콜라스는 그런 블루와 베르니스들을 바라보며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고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날 밤하늘에는 밤이 새도록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비명이 하늘을 뒤덮었다. “으아아아악! 대체 내가 뭐, 뭘 잘못했다구우우우! 난 그저 우리 용병단 성공시킨 죄밖에 없어!” “아직도 덜 맞았군.” 퍽! “케엑!” 제9장 수상쩍은 의뢰인 “이 맹추야! 돈이라면 썩어 나자빠지는 판에 또 무슨 돈을 벌겠다고 그 난리를 치고 지랄이야, 지랄이!”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내가 알고 그랬나 뭐? ...... 구시렁구시렁, 투덜투덜...... 아야야 아파, 아프니까 제발 약 좀 살살 발라. 너 내가 밉지? 미워서 일부러 아프라고 꾹꾹 누르는 거지!” 순간 표독스러운 텐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라고!”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심란했던 텐시는 눈을 흘기며 일부러 더욱 꾹꾹 눌렀다. “으아아아악!” 자의든 타의든 의뢰인이 생겼고, 그것은 결국 행선지가 결정되었다는 말이었다. 꼼짝없이 죠셉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얼마쯤 가자 죠셉은 어디 잠시 들를 곳이 있다며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어정쩡하게 걸으며, 자꾸 주변을 살피는 그들. 어느 것 하나 의미심장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지를 대충은 짐작했다. 도망쳐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숲길을 따라 얼마쯤 갔을까. 갑자기 텐시가 인상을 찌푸렸다. 혈향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그것은 강렬해지고 있었다. 블루는 진지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급기야 붉은 핏자국들의 나타났다. 순간 텐시는 멈칫했다. “우웃!” 텐시는 나름대로 비위가 강하다고 자부해왔다. 살면서 볼 것 못 볼 것 실컷 봤다. 그러나, “우웨에에엑!” 좌르르륵! 속에 있는 모든 걸 토해냈는데도 계속 속이 울렁거렸다. 자꾸 신물이 넘어왔다. 지금껏 많은 시체를 봐왔으나 이렇게까지 처참한 시체는 처음이었다. 여기저기 낭자한 시체의 내장들. 팔다리와 몸뚱이가 제각각 따로 나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한둘이 아니라 최소 수십여 명은 너끈해보였다. 거기에는 여인까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과연 이들이 사람처럼 움직이고, 말을 했을까? 문득 그런 의구심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분노! 그것을 정체불명의 ‘그들에게’ 향해 있었다. 목구멍이 터질 정도로 한없이 쏟아질 것만 같은 이 느낌! 멈추고는 싶지만 그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텐시, 괜찮아?” “괘, 괜찮...... 우웨애액!” 텐시는 베르니스가 건네주는 손수건을 받아서 입을 막은 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잔뜩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돌아보는 사이, 죠셉과 소년은 슬픈 표정으로 마차 쪽을 향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망할 자식들!” 텐시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르륵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토미, 크라젤, 미쉘 아줌마...... 으흑!” 텐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말없는 마차 위에서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목 없는 마부에서부터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며 슬프게 쪼아 내리는 그의 아픔. 분명 자신을 힐책하는 듯 보였다. “도련님.” “아냐, 죠셉. 나는 괜찮아. 어서 물건이나 챙기자꾸나.” “예, 도련님.” 그것으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단순히 옛일을 회상하며 회포를 풀고자 온 게 아님이 분명해졌다. 죠셉은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만에 나왔다. 블루는 그들이 잽싸게 상자를 숨기는 것을 봤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했다면 의뢰를 요청할 때 말하겠거니 생각하며 구차하게 묻지 않았다. 하지만 니콜라스는 또 달랐다. 그 상자를 보자마자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 석들은 저 상자를 노린게 아니다. 그렇다면 단순하게 소년의 생명을 노렸단 말인가? 무성 때문이지?‘ 아마도 저들이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는, 저 물건을 찾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함이 아닐까? 예컨대 저 물건 때문에 쫓긴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혹이 배어 있었다. ‘물건을 챙기자’는 말을 하고, 버젓이 마차에서 챙겨 나와서는 몰래 갈무리하는 척하며 슬쩍 보여주는 것도 그렇거니와, 슬며시 눈치를 살피는 것까지도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 같았다. 물론 그 물건이 정말로 아주 중요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럼 출발하죠.” 마법사가 나서서 하늘 말에 블루와 일행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 소년이 입을 열었다. “죠셉, 동료들이 짐승의 밥이 되게 놔두고 싶지는 않아.” 슬픔이 잔뜩 배인 소년의 목소리.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니스들은 죠셉과 소년을 도와 시체들을 마차 위에 모았다. 조각조각 난 시체를 옮기는 일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파이어 볼!” 화르르 시체가 쌓인 마차가 불탔다. 타닥타닥 하늘로 올라가는 검은 연기! 그리고 코를 진동하는 역한 냄새! 그것이 아니더라도 모두 탈 때까지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이제 곧 해가 저물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노숙할 장소를 정해야 했다. 그들은 곧 그곳을 떠났다. 소년은 자꾸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하늘 높이 솟아오른 불기둥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좀 전에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곳을 통과한 다음 반대편으로 나아가는 것이 헤르마틴 제국으로 통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원치 않았지만 그 시체들을 다시 한 번 봐야한다는 말이었다. 썩 내키지 않는 길을 얼마쯤 재촉하자 조금 전의 격전지가 나타났다. “헉!” 시체 중에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블루는 대충 짐작했다는 듯 담담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늑대인간들이 먹어치운 것이다. 참혹한 몰골로 이곳저곳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보고 있자니, 자꾸 조금 전 상황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니콜라스가 잠시 주변을 보더니 무겁게 열었다. “스무 마리가 넘는다.” “헐!” “조금 많군.” 니콜라스의 말에 베르니스와 스콜이 차례로 한마디씩 했다. 스콜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왜 이렇게 친숙하게 느껴지지? 이런 상황을 예전에도 경험한 것 같은데.” “나두나두!” 그러자 텐시가 그 둘의 머리를 가볍게 때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것은 우리가 대장 만나기 전이잖아.” “아, 그렇구나!” 그때 늑대인간 한 마리 블루 앞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오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놈이 이를 드러내며 블루를 위협했다. 블루가 피식 웃었다. “저번에 봤던 녀석보다 큰 거 같은데.” 블루의 말에 클루토가 경악한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 “서, 설마, 실버 웨어울프?” “뭐, 실버 웨어울프?” 순간 지금껏 웃고 떠들던 베르니스들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소년과 마법사 죠셉의 얼굴에도 핏기가 가셨다. 그때 일행들한테서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블루가 물었다. “실버 웨어울프? 그게 뭔데?” “실버 웨어울프란 늑대 인간의 일종으로.......” “변종?” “예.” “한마디로 개로 변한 인간잡종 중에서도 잡종으로 태어난 잡종 개새끼들이란 말이네, 큭큭큭.” 그때 늑대인간이 블루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갖다댔다. 그런데도 블루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적당히 얼었구나 생각하고 단숨에 죽이려고 들었다. 하지만 그때, 피식 웃으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블루를 보고 멈칫했다. 그러나 곧 과시하듯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바짝 다가섰다. 그 경악스러운 장면에 일행들은 할 말을 잃었다. 특히,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린 니콜라스의 얼굴은 참으로 볼만했다. 그때, 크르르르르! 실버 웨어울프 몇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 힘입은 것일까. 우우우우우! 지금껏 조심스럽게 굴던 실버 웨어울프가 입을 쩍 벌렸다. “이 잡종똥개야! 너, 지금 나한테 까부는 거냐?” 블루가 피식 웃으며 슬쩍 시선을 돌리자 실버 웨어울프가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팔을 휘둘러 공격해왔다. 후우웅! 블루의 주먹이 바람을 갈랐다. 그런데 어찌된 노릇인지 잠시 한눈을 팔던 블루의 주먹이 늑대인간의 주먹보다 훨씬 빨랐다. 그리고 정확히 늑대인간의 턱에 격증되었다. 퍼억! “깨갱깽!” “아주 매를 버는군. 사실 말 안 듣는 개한테는 매보다 좋은 약도 없지, 큭큭.” 보통 늑대인간에 비해 몸통이 한 배 이상 큰 실버 웨어울프. 대충 어림잡아 코끼리 새끼만한 녀석이 사 미터 남짓 허공에 붕 떠올랐다. 열심히 팔다리를 저으며 비명을 지르는 변종 늑대인간 모습은, 블루에게 참으로 신선한 눈요깃거리였다. 그러나 일행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가 막혔던 것이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블루는 인간 같지 않은 구석이 많았다. 드래곤을 잡았다고는 해도 그것은 자신들이 직접 본 게 아니었기에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나 하나씩 드러나는 블루의 실력. 그때마다 그들은 쾌감 그 이상의 것을 느꼈다. 게다가 놀랄 일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날아가던 실버 웨어울프의 허리가 두꺼운 나무등걸에 부딪히자마자 ‘두두두둑“ 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축 늘어졌는데 아무래도 죽은 것 같았다. 거의 불사의 능력을 지녔다고 알려진 실버 웨어울프. 그러나 척추가 부러졌다면 죽지 않았다 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죠셉과 소년은 경악 또 경악했다. 동시에 희망을 느꼈다. 소년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떠오르는 순간, 실버 웨어울프라는 잡종 똥개 한 마리가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가장 약해보인 탓이다. “으아아악!” 소년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죠셉은 좌절했다. 주문을 외울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설사 주문을 외운다 해도 마법 방어력이 강하기로 소문난 실버 웨어울프에게 얼마나 먹힐지도 미지수였지만. 녀석은 어느새 소년의 코 앞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살려줘!” “아아악!” 죠셉이 부둥켜안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그때, 퍽! “깨갱깽깽깽!” 그 소음을 듣고 힘겹게 눈을 뜬 조셉과 소년은 알 수 있었다. 블루가 그 똥개를 처리해버렸다는 것을 확인한 죠셉과 소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솔직히 어떻게 저 멀리서 단숨에 날아와 녀석을 물리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을 살려준 존재가 바로 블루라는 점이었다. 크르르르르! 일제히 눈을 돌린 실버 웨어울프의 왕방울만한 눈에서 불이 품어져 나왔다. 그러자 도깨비불이 단체로 허공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블루에게 얻어맞고 깨갱거리던 녀석이 일어나더니, 슬금슬금 블루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이거 아주 유쾌한데?” 블루가 씨익 웃었다. 자기 주먹을 맞고도 일어나다니!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힘들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훌륭한 맷집을 지닌 그들이 고마웠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위험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조심해라.” 블루의 입에서 처음으로 흘러나온 경고였다. “대, 대장!” 꿀꺽 다들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서서히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눈 한번 깜박일 때마다 시야가 서서히 흐려지는 것이 확연히 느껴질 정도였다. 조금 전에 한 차례 다운되었던 늑대인간은 자신의 몸을 잔뜩 낮추고 일행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블루보다 약한 상대를 물색하고 있음이었다. 그때 그 녀석보다 대가리 하나 정도 더 큰 놈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다들 약간 비켜서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녀석이 이 무리의 대장인 성싶었다. 크르르! 몸을 낮추소 막 공격하려던 녀석이 목울대를 울렸다. 순간 앞으로 다가온 늑대가 갑자기 녀석의 목을 살짝 물었다. 무슨 훈계라도 하는 것 같았다. “온다!” 니콜라스가 짧게 말했다. 그로서도 변종 늑대인간인 실버 웨어울프가 영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크와왕!” 대장 한 마리로 촉발된 늑대인간의 공격! 그 대장의 공격대상은 당연히 블루였다. 마법사들과 텐시 그리고 소년은 늑대인간의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뒤로 멀찌감치 물러났다. 베르니스와 스콜은 한 마리씩 각개격파를 시도했고, 클루토와 죠셉은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불 공격을 준비했다. 물론 놈들한테 마법 방어력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강공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그 바람에 주문영창이 길어지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니콜라스는 허리를 꺾으며 실버 웨어울프의 공격을 피했다. 그때 마주 서 있던 녀석이 노련하게 팔을 뻗어, 슬쩍 허리를 트는 니콜라스를 낚아채려고 했다. 그것을 본 니콜라스는 혀를 내둘렀다. 놈의 움직임이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그 정도 공격은 이미 짐작했기에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즉시 또 한 마리가 몸통박치기를 시도해오는 것이었다. 다급히 몸을 빼낼 수 있었으나 그만 늑대의 팔에 등을 내주고 말았다. 스각!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길게 찢긴 상흔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일단 거리를 벌린 니콜라스는 이를 갈았다. “다 죽었어!” 순간, 니콜라스의 검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고오오오오오! 오러 소드가 분명한데 모양이 좀 달랐다. 보통의 오러 소드는 한줄기 섬광 같은데, 지금 니콜라스의 오러소드는 불꽃처럼 일렁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무식하게 많은 마나를 주입해 생겨난 기현상이었다. 다시 말해 니콜라스가 또다시 폭주하고 만 것이다. 그렇듯 니콜라스의 폭주가 시작되었을 때, 다른 늑대들이 단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 아르르르르! “화이어 실드!” 죠셉의 입에서 시동어가 흘러나왔다. 화르르 실버 웨어울프 떼 사이로 불의 막이 퍼지더니, 마치 그림처럼 허공에 붉은 그림자를 수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책 없이 그 불의 막을 뚫고 덤벼드는 늑대 인간이 있었으니. 과연 늑대인간은 뇌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생각이 없는 것일까? 어둠에 잠식당한 숲은 화이어 실드 효과와 바보 같은 실버 웨어울프 몇 마리로 인해 환하게 밝아졌다. “깨개개개갱!” 늑대인간은 비명을 내지르며 불이 붙은 부분을 땅에다 비볐다. 비명은 불 속에 들어간 개새끼가 내지르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을 본 죠셉과 클루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니콜라스가 폭주를 시작한 후 그의 검이 춤을 출 때마다 변종 늑대인간인 실버 웨어울프의 잘린 다리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곳저곳에 뿌려지는 피와 육편들. 그 틈바구니에서 벌써 상당수의 늑대인간이 쓰러져 바닥에서 낑낑거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블루는 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최대한 상황을 즐겼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이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블루일 터. 그의 주먹에 스며 있는 푸른 기운은 분명 오러 글러브. 예컨대 그래플 마스터의 오러 글러브였다. 오러 소드가 날카로움을 자랑한다면, 오러 글러브는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자랑했다. 그들이 쓰러뜨린 늑대인간을 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니콜라스가 쓰러뜨린 녀석은 태반이 몸이 잘리거나 팔다리가 없었고, 블루가 쓰러뜨린 녀석은 얼마나 맞았는지 이가 부러지거나 팔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그때 블루와 실버 웨어울프들의 우두머리 보이는 녀석과 눈이 맞았다. 눈을 빛내며 끈질지게 공격할 기회를 엿보던 우두머리. 크르르렁! 설마 수하들이 이토록 빨리 당할 줄은 미처 몰랐다는 듯 놀라움이 가득 깃든 눈빛으로 놈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 블루에게 달려들었다. “크와왕!” 블루는 기꺼이 그를 반겼다. “오너라, 북두신권의 진면목을 보여주마!” 푸른 주먹이 일렁이는가 싶었다. 흠칫! 녀석의 눈빛이 푸른빛을 강렬하게 쏘아냈다. 그와 동시에 거침없이 포효했다. “크와아앙!” 놈은 대장답게 정말 대단했다. 무엇보다 다른 녀석들에 비해 탁월한 맷집을 지녔다. 맞고 쓰러지면 또 일어나고, 또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는 칠전팔기의 근성을 보여줬던 것이다. “아다다다다닷, 아토옷!” “케케케케케켁, 깨아깽!” 우당탕! 수플 깊숙이 처박힌 실버 웨어울프 대장. 그런데 이번엔 쉽사리 일어나지 않았다. 죠셉과 소년은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웨어울프보다 더 괴, 괴물이다!’ 그때 들려온 목소리가 상념을 깨뜨렸다. “지금 괴물이라고 생각했죠?” 흠칫 놀라 뒤돌아본 죠셉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뜻밖에 목소리의 주인이 베르니스였기 때문이다. 베르니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볼 것 없어요. 저도 간간히 생각하는 문제니까.” “쿨럭!” 그때, 수풀이 들썩였다. 크르렁! 그것을 본 블루가 흐릿하게 웃었다. 정말 끈질긴 놈이다. 난생 처음으로 패다가 지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해준 녀석. 퍽! 깨아앵! ‘제발 그냥 죽어라. 이 미친 변종 똥개야!’ 일행은 솔직히 안쓰러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실버 웨어울프의 비명이, 몸짓이 처량하게까지 느껴졌다. ‘대체 뭘 얻어먹을 게 있다고 일어나는 건지, 쯧쯧’ 죠셉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쿵! 녀석이 무너졌다. 몸집이 큰 만큼 쓰러지는 소리 역시 엄청났다. 저 멀리서 대장이 쓰러진 것을 본 것인가? “아우우우우우!”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가슴 아픈 늑대 울음소리. 왠지 처량맞기까지 한 그 소리에 쓰러져 있던 실버 웨어울프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블루들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조금 전의 그 처절한 외침이 아마도 후퇴하자는 소리 같았다.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꽁지 빠지게 내빼는 늑대인간들. 블루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지친 탓이다. “휴우.” “수고 많았어요.” “모두 다친 데 없나?” 녀석들이 모두 꼬리를 감추자 니콜라스를 포함한 베르니스들은 모두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장시간 싸운 것이 아님에도 오랫동안 싸운 기분이었다. 아니, 일찌감치 싸움을 접고 블루와 실버 웨어울프 대장과의 싸움을 지켜봤을 뿐인데도 지쳤다. “상처는 어때요?” 텐시의 질문에 니콜라스가 짧게 대꾸했다. “별 것 아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결코 작은 상처가 아니었다. 등을 적시며 계속되는 출혈이 만만치 않았다. 걱정스러운 듯 니콜라스를 바라보는 텐시를 뒤에서 베르니스가 조용히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슨 생각에서인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앞서가는 니콜라스를 따라 일행들은 야영지를 찾아 이동했다. 시체가 굴러다니는 곳에서 야영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일행들은 상처를 치료했다. 다행스럽게 죠셉은 치료 마법에도 정통해 있었다. 그 마법으로 죠셉은 일행들을 일일이 치료해주었다. 의외였다. 일반적으로 마법사들은 치료 마법을 배우지 않는다. 그리고 알아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이다. 그러나 죠셉은 전혀 망설임 없이 치료해주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실버 웨어울프와 싸웠다. 그것도 한두마리가 아닌 패거리와 말이다. 죠셉은 가장 먼저 니콜라스를 치료했다. 피는 금세 멎었으나 늑대인간에게 긁힌 그 상흔만큼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상처가 깊었기 때문이다. 니콜라스를 제외한 다른 일행들은 비교적 말짱했다. 기껏 작은 상처 뿐이었다. 그들은 모닥불을 쬐면서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하는 죠셉을 지켜봤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지도상으로 대략 거리를 재보면 내일 새벽 여섯 시쯤에 일어나서 걷는다 해도, 저녁 먹을 쯤에나 빠듯하게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늦어진다면 밥을 먹지도 못하고 잠자리에 들게 될 겁니다. 만약 야참을 드시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그것도 숙소를 정했을 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럼 좀 더 일찍 일어나...... 기 힘들까? 아하하!” 베르니스의 말장난에 돌아보던 모두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특히, 텐시의 눈초리는 거의 아이스 스톰급 마력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찔끔한 베르니스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또 맞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어디를 가려는 거요?” 스콜의 질문에 죠셉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들...... 이들이라면 믿을 수 있다!’ 한참 고심 끝에 무거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의 목적지는 엘프의 숲입니다.” “그곳에는 왜?” 클루토의 질문에 죠셉이 대답했다. “누군가를 찾으러 가는 중입니다.” “엘프의 숲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죽음뿐인 것을 모르세요?” “아, 압니다.” 죠셉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그것이 걱정이었던 탓이다. “엘프의 숲?” 내내 딴전을 부리던 블루가 아는 척을 했다. 조금 전의 전투를 끝내고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계속 하늘만 바라보던 블루였다. 그런데 갑자기 활기찬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자 모두들 의아한 눈길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죠셉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혹시 블루가 엘프의 숲과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그것이 의심스러웠다. 블루 정도의 기인이라면 얼마든지 그럴 가능성도 염두에 둘 만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블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죠셉의 기대감을 산산이 무너뜨렸다. “그게 다크 엘프의 숲과는 다른 거야?” 일행들은 입을 쩍 벌렸다. 기가 막혔던 것이다. 하지만 베르니스들은 이미 어느 정도 짐작했다는 듯 신경을 끊었다. 텐시가 해결해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다크 엘프의 숲이랑 엘프의 숲은 전혀 틀리다고 보시면 돼요. 다크 엘프족과 엘프족은 적대적인 관계니까요.” “아, 그렇군.” 블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죠셉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사정이 있나보지.’ 하고 넘겼다. 자신이 이들에게서 본 것은 실력일 뿐, 그들 속사정이 궁금해서 신변을 청탁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무 마리가 넘는 실버 웨어울프 떼들을 두 주먹으로 패죽이는 정도의 실력자. 특히 그토록 격렬한 싸움 뒤에도 이마에는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그 정도면 중상위 마스터 클래스 정도는 충분했다. 그리고 어느 왕국에 가더라도 백작 정도의 칭호는 쉽게 부여받을 수 있는 실력이다. 죠셉은 슬쩍 니콜라스를 바라보다 블루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용병단에서 마스터가 있는 것도 기가 막힌데 중상급 마스터라니.’ 무슨 사정이 있는 게 확실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상위 레벨의 고급 인력들이 용병 따위나 하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용병으로 돈을 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귀족의 작위와 영토를 얻는 것이 부를 이룩하기에 더욱 쉬울 터. ‘그런데 저 은발머리 사내는 그래플 마스터면서 허리에 검은 왜 차고 있는 것일까?’ 사실 처음부터 계속 눈에 거슬렸지만, 쓸 데 없는 것을 물어서 감정을 건드릴 필요는 없었기에 쉬쉬하던 중이었다. 그때, 검이 웅웅거리며 울어대자 깜짝 놀랐다. “마력검?” 죠셉의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맞아요.” “어떻게 저런 귀한 아티펙트를.......” “드래곤 레어에서 구했죠.” “드, 드레곤의 레어!” 죠셉의 얼굴에 경악이 일었다. 마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때 검의 손잡이를 잡던 블루가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혹시 마력검에 대해서 많이 아시오?” “그냥 조금 아는 편입니다.” 죠셉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혹여 당혹스런 질문을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제길, 그럼 이 녀석 주둥이 봉하는 방법 좀 아시오?” 그러자 죠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 말도 합니까?” 블루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쩌억!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죠셉의 모습. “쩝, 모르는 모양이군.” 그때 죠셉이 당혹스런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 압니다. 알아요.” “정말이오?” 블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때 검이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울기 시작했다. ‘너 말하면 죽여버린다!’ 그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 잠시 머뭇거렸으나 그는 곧 입을 열었다. “현자의 탑에 가시면 아마도 녀석을 잠재우는 검집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겁니다.” 블루의 안색이 환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시도 때도 없이 놀아달라고 울어대는 녀석을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었던 탓이다. “다행이군,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정말 고맙소.” “별 말씀을.......” 죠셉이 송구스럽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의뢰자이긴 하지만 블루의 낮춤말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블루가 너무 자연스럽게 구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은연중에 ‘이자하렴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죠셉이 잠시 깜빡했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러고 보니 경황이 없어서......” “무슨 말입니까?” 베르니스가 장단을 맞추듯 물었다. “계약은 했지만 아직도 이 용병만의 이름을 듣지 못해서 말입니다.” “아, 그런가?” 베르니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려는 찰나, 블루가 냉큼 대답했다. “블러드 핸드요.” 흠칫! 죠셉의 눈빛이 일변했다. 검을 들고 날을 살피는 시늉을 하는 블루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베르니스들. 특히 블루가 말하는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블루를 바라보는 니콜라스는 그런 죠셉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뭐,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블러드 핸드 2기라고 해야 하려나? 아무튼 그렇소.” 순간 죠셉과 소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화려한 방이다. 드워프 장인이 만들어낸 간결하며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탁자와 의자, 깔끔하게 정리된 책장 그리고 벽에 걸린 부드러운 분위기의 풍경화, 넓은 창과 금색 수실로 장식된 커튼과 바닥에 깔린 크로마티우산 양탄자. 그리고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베란다. 천장에 붙어 있는 샹들리에서 뿜어지는 은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빛이 고풍스러운 방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만약 방 안을 울리는 거친 목소리만 아니라면 흠잡을 데가 없었을 것이다. “뭐시라! 이런 병신 같은 놈들을 봤나!” 두툼한 근육을 자랑하듯 꿈틀거리던 노인의 서릿발 같은 호령에 소식을 전하던 전령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자 사내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장차 이 일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고!” 그때, “무엇을 말인가?” 나지막하면서도 힘 있고 여린 듯 하면서도 근엄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노인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거대한 문이 열리며 수려한 용모의 청년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근육질의 노인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미신이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청년이 부담스러운 듯 서둘러 말했다. “됐네, 아직 즉위식도 진행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렇다 하여 잊으시면 안됩니다. 이미 군신들의 마음과 백성들의 마음이 주군께로 쏠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주군께서 이 나라 황제라는 뜻입니다.” “황제라는 뜻이라...... 하하.” “폐하, 꼭 황상에 오른다고 하여 황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황상에만 오른다는 황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청년의 혼잣말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즉위식은 단지 겉치레에 불과할 뿐입니다.” “흐음.” “마음을 얻으십시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군주이자 황제의 자리에 오르시는 방법이옵니다.” “마음을 얻으라? 아무튼 고맙소, 수상.” “황송하오나 폐하, 지고한 위치에 계시는 동안 쉽게 마음을 드러내시거나 받아들여서는 아니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물론 그렇다고 귀를 굳게 닫으셔도 아니 되지만, 누구한테나 듣기 좋은 말만이 아니라 쓴소리도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순간 청년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카른 수상은 다른 것은 다 좋은데 그놈의 잔소리가.......”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아, 아니 뭐, 그게 죽을죄씩이나...... 다 날 위해서 하는 말인데 겸허히 달게 받아들여야지.” 그러자 다시 반짝이는 카른의 눈빛. “폐하, 황상의 자리는 곧 하늘이십니다. 명을 내리시면 내리시는 것이지, 함부로 미안하다고 말씀을 하셔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신들은 그저 하늘에 간언할 수 있을 뿐이지, 하늘에 명을 내릴수도, 그것을 거스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판단을 하늘의 몫이오니 말입니다.” 노인의 말에 한동안 쓴웃음을 짓고 있던 청년이 입을 열었다. “큭큭, 도무지 말릴 수가 없군. 하긴 그러니까 카른 수상이지만. 그래서 내 그대를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하하하!” 그제서야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렸음인가. 카른은 식은땀이 흐르는 이마를 훔치며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소, 송구스럽습니다. 늙을수록 시간만 많이 남고 상념만 늘다보니.......” “하하, 내 카른 수상의 다른 말은 다 믿겠네만 늙었다는 말은 도무지 믿을 수 없어. 수상의 그 근육에 기사장들조차 겁을 집어먹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풋...... 흠흠!” 주변에 정렬한 채 서 있던 기사들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들이 서둘러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카른 수상의 얼굴은 벌게진 다음이었다. 청년이 짓궂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보군.” “흠흠!” 그때 다시 기사들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카른의 신음소리가 뒤따랐다. “끄응!” 순간적으로 기사들의 몸이 경직되었다. 무슨 불호령이 떨어질지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탓이다. 그러자 청년이 진화에 나섰다. “아니네, 여하튼 좋은 이야기 잘 들었네. 문제는 그 좋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졸려서 자네에게 미안할 따름이지만, 하하하.” “.......” “설마 화났는가?” “아, 아니옵니다.” “아하하, 농담일세. 늘 자네 말은 이 가슴 안에 잘 담아두고 있으니 걱정 말게.” “송구스럽습니다, 폐하.” 그러자 청년은 처음으로 돌아가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다시 카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노, 놓쳤다고 합니다.” “허!” “그리고 그들을 쫓던 마스터 데미안을 포함한 일개 부대가 전멸했다고 합니다.” “.......” 지금까지 미소를 짓고 있던 청년의 표정이 가볍게 굳어졌다. “그렇군.” “소신,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충정어린 그 목소리에 청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말했다. “아니네, 사실 그렇게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네.” “.......” 그런데 그 중에 데미안을 죽일 만한 능력자가 있었던가?“ “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사옵니다.” “흠, 마스터를 누를 수 있는 실력자라.......” 청년의 이마에서 굵은 주름이 꿈뜰거리는 것이 복잡한 심증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문제는 데미안을 포함한 기사들의 시체 중에서 온전한 게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늑대의 숲에서 멀쩡한 시신을 찾을거란 생각 자체가 무리지.” 카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을 할지 말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한 얼굴이었다. “뭔가? 뭐든 집히는 게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게.” 그 독촉이 있고나서도 한참 만에야 카른의 입이 열렸다. “이건 저의 괜한 잡념일 수도 있습니다만.......” “허, 그대답지 않게 웬 서론이 그리도 길단 말이오.”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해? 무슨 이해?” “전투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청년의 표정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전투의 흔적이 없다?” 카른이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칫 주군의 심중을 어지럽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데미안 같은 고수를 잡고, 일개 부대의 기사들과 전투를 벌였음에도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 말에 청년도 미심쩍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듣고 보니 뭔가 이상하군.” 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의문덩어리입니다.” “의문덩어리라?” “폐하께옵서도 전투를 경험한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인 자신에게 전투의 경험이 있지 않느냐고?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카른이 말했다. “폐하께서 데미안과 대련하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기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흠, 이길 수야 있겠지만 쉽지는 않겠지. 최소 수십 합은 겨뤄야...... 아!”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렇군!” 청년의 안색이 싸늘히 변하는 것이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정녕 아무런 흔적도 없었단 말인가?” “없었다고 합니다.” “정확한가?” “바브로가 직접 다녀왔습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브로라면 카른 수상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인물로, 여러모로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브로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떠한 상황에서조차 냉철하게 관찰하고 철저히 사실에 의거한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바브로가 다녀왔다면 믿을 수밖에 없겠군.” “여하튼 녀석들의 그 흔적을.......” 청년이 말꼬리를 물었다. “녀석들?” “그렇습니다. 다수의 집단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들을 누를 수 있었겠습니까?” “하긴.......”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의 눈빛을 보내자 카른이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아마도 그 흔적을 깨끗이 지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그 방면에 경험이 많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전 황제가 비밀리 키운 친위세력일 가능성까지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추론입니다.” “역시 카른 수상이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무거운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따. “잡을 수 있겠는가?” 카른이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아마 쉽지는 않을 겁니다. 우선 그들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곳에서부터 마지막 황자...... 죄송합니다. 도망친 개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도망치면서 흔적을 지워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그들이 전 황제의 비밀세력임을 입증하는.......” “알겠네.” 더 이상 듣기 싫다는 것인지, 아니면 생각할 여유를 갖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카른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주군을 믿었다. 그가 아는 주군은 결코 심계가 그리 얕지 않았다. 왜 자신이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그를 왕좌에 앉히려고 했겠는가? 단순히 그의 인간성? 아니다. 개인적인 친분이나 무위? 그것도 아니다. 그가 주군을 택한 것은 그의 매력 때문이었다. 선뜻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그만이 풍기는 독특한 매력에 반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매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한순간에 좌중을 압도하는 장악력! 상식을 초월하는 깊은 심계에 그는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청년에게서 짧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음.” 그리고 다시 침묵. 이윽고 뭔가 결심한 듯 청년이 말했다. “너희는 물러나라.” 기사와 수행원들이 군소리 없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쿵! 문이 닫히자 청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수상!” “폐하, 말씀하십시오.” “그들은 분명.......” 주변에 사람이 없는데도 자꾸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목소리를 낮추는 청년의 표정을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의 입에서 한마디 한마디가 흘러나올 때마다 카른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경악과 환희가 교차했다. “......알겠는가?” “그,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폐하의 심계는 하늘조차 헤아리지 못할 것이옵니다.” 카른의 말에 크게 웃으며 부정했으나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 듯 푸근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수상, 수상도 시간만 충분했다면 분명 이 생각을 했을 것이오.” “아니옵니다. 소신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옵니다.” “하하, 수상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부하는 나오. 특히 나를 가르친 수상이 아니오. 내가 어찌 수상의 능력을 의심하겠소? 이번 사건으로 일어난 일련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잠조차 설치고 있음을 왜 내가 모르겠소? 나로서는 항상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오.” “송구하옵니다, 폐하.” 순간 카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주군이 늘 자신을 주시하며 걱정하고 있음을 깨닫자 감정이 북받쳤다. “또, 또 우시는구려. 허, 겁이 나서 내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이오.” “주, 죽을 죄를.......” “또!” “.......” 청년이 목소리 톤을 한층 높였다. “앞으로 짐의 앞에서 ‘죽을죄’라는 말을 한번만 더 꺼내면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오!” 진심이 담긴 그 말에 카른은 말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때 카른은 자신의 어깨를 힘껏 움켜쥐는 강인한 힘을 느끼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올렸다. 청년이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카른 수상, 그대는 내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꼭 필요한 인재요. 그런 중요한 인재가, 그리도 쉽게 죽음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어찌하자는 것이오. 말이 씨가 된다고 하였소. 본인은 수상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소. 만에 하나 수상이 짐의 허락도 없이 죽는다면 지은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오!“ 카른이 흠칫 몸을 떨었다. 청년의 진심에서 공포를 느낀 것이다. “짐은 앞으로도 수상의 도움이 필요하오. 짐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본인의 곁에서 백 년만 보좌해주시오. 이것은 명령이 아닌 부탁이오.” “폐, 폐하!” 급기야 감격에 젖은 카른의 눈물이 바닥을 적시고 말았다. 제1장 소년, 정체가 들통나다. “우선 이 이야기부터 들어야겠소. 지금 대체 어디를 가고 있소?” 니콜라스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죠셉은 소년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엘프의 숲으로 갑니다.” “누가 그것을 몰라서 묻소? 이 길이 엘프의 숲과 정반대 방향이니 하는 말이 아니오.” 니콜라스가 정확히 요점을 잡아 이야기하자 죠셉은 흠칫 놀랐다. 그러자 블루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니콜라스는 블루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이곳으로 가면 헤르마틴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때 소년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니콜라스의 말을 가로챘다. “그런데?” 그 짧은 한마디에 니콜라스는 블루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엘프의 숲이 헤르마틴 북동쪽에 위치한 영원의 숲 안에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귀족 나리께서는 일단 늑대의 숲을 가로질러 헤르마틴을 통과한 다음, 곧장 직진하는 것이 빠른 지름길인 것을 모르고 있단 말입니까?” “...” 소년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뭔가 고민하더니, 죠셉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해명을 요하는 눈빛 같았다. 죠셉이 흠칫 놀랐다. “정말 별것 아닙니다,도련님.” 그러자 소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눈빛을 거두며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블루는 그제야 모든 전후사정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뭐야? 말을 배배 꼬긴 했지만 한마디로 지금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대장.” 니콜라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블루는 죠셉에게 눈길을 주었다. 해명을 요구하는 블루의 눈빛에 죠셉이 멈칫거렸다. 블루가 넌지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흠,죠셉 경.” “그, 그게...... 그러니까 그게......” “그게 사실입니까? 이유가 뭐죠?” 한동안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던 죠셉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우리가 지금 엘프의 숲으로 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야 당연하잖소.” 본론만을 이야기하라는 듯 블루가 죠셉의 말을 자르고 나섰다. 어찌 보면 건방져 보일 수도 있었으나 죠셉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몇 번 헛기침으로 목청을 가다듬은 그가 조신하게 입을 열었다. 작은 말실수로도 이들 기분을 상하게 할 숭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좋을 게 없다는 건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었다. 충분히 오만하게 굴 만한 실력자들이 아니던가! “진심입니다. 문제는 단지 저희가 왜 질러가지 않고 돌아가야 하는지를 밝힐 수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조금 전 도련님께도 말씀을 드렸다시피 정말 별일이 아닙니다. 밝힐 수 있는 부분까지만 말하자면,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선 반드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쇼.”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니콜라스와 베르니스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의뢰자는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 신분을 감추는 게 보통이었다. 그리고 의뢰를 맡은 용병들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 게 관례였다. 정히 의심스럽다면 높은 수입을 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어차피 그들 자체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었다. 그래서 위험부담이 클수록 요금도 비싸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싫다면, 정체가 불분명한 의뢰자한테는 의뢰를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의뢰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관례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변수는 있었다. 블루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솔직히 알았다 해도 개의치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하여 그 변수가 어떤 식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될지 짐작조차 못했다.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여기서 발걸음을 돌리겠소. 안전을 위해 고용한 우리를 신용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관계 속에서 어찌 신뢰가 싹틀 수 있겠소. 그리고 그런 신뢰도 없이 당신들을 위해 우리가 목숨 걸고 싸울 이유가 어디 있겠소?” 말을 마친 블루는 결연한 얼굴로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듣고 보니 옳다는 반응일까? 하나둘 고개를 끄덕인 일행등은 압박하듯 죠셉에게 눈길을 돌리는 것이였다. 정체를 숨기는 것은 그렇다 쳐도, 살려주기까지 했는데 목적지를 비트는 이유조차 말해주지 않는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기분이 언짢아진 탓이다. 그때, 옆에 조용히 서 있던 소년이 이를 악물며 언성을 높였다. “더럽구나!” “뭐라?” “더럽다고 했다!” “허참, 방귀 뀌고 오히려 성내는 놈도 있다더니...... 내 기가 막혀서.” 소년이 상스러운 소리를 입에 담으며 언성을 높이는 순간, 베르니스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이 그런 대접을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적반하장도 유만부동이었다. “너 죽고 싶어!” 베르니스는 눈썹을 치켜뜨며 버럭 소리쳤다. 보통의 소년들이라면 겁을 집어먹을 만한 상황이었으나, 소년은 담담했다. 전혀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베르니스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도리어 위축된 것은 베르니스였다. ‘뭐,뭐지?’ 그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저 따위 풋내기한테 위압감을 느끼다니!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상대는 한낱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소년의 눈 속엔 뭔가 알 수 없는 깊이가 숨겨진 듯했다. 감히 범접치 못할 그런 깊이였다! 닫혀 있던 그 아이의 입이 열렸다. “약간의 힘을 가졌다 하여 어찌 이처럼 핍박을 가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러고도 검을 든 남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정녕 힘 있는 자의 도리란 말이더냐!” 어찌 들으면 간이 부은 녀셕의 건방진 말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블루는 그 속에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약간의 힘, 핍박? 도리?’ ‘검을 든 남자의 도리’를 언급할 때 반짝거리는 눈빛에서, 그 말이 기사를 가리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귀족들이 기사도를 지칭할 때 쓰는 언어였기 때문이다. 에스티마르가 심어준 기억을 의외로 유용한 점이 많았다. 여하튼 그 사실을 깨달은 블루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블루의 그 눈빛을 의식했음인가. 무언가 밝히기를 꺼려하던 죠셉이 여전히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서둘러 입을 열었다. “마르 말하겠소. 우리 사정을......” 그 말은 블루가 막 질문을 던지려던 절묘한 시점에서 터져 나왔다. “죠셉!” “어차피 밝혀질 일입니다, 도련님. 우리사정과 이유를 밝혀 저들의 의심을 풀어주는 것이 순서 같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숨기려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괜찮습니다,도련님.” “으윽!” 죠셉의 말에 소년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동시에 블루를 바라보며 죠셉의 눈치를 살폈다. 뜻 모를 한숨과 함께 죠셉은 소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린 주인은 끄때까지도 뭐가 그토록 억울하고 분한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눈가엔 이슬까지 맺혔다. 하지만 곧 스스로 무언가를 깨달았음인가? 눈물을 숨기고 호흡을 가다듬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죠셉은 마음이 짠했다. ‘전하, 지금은 마음을 강하게 가지셔야 합니다. 이토록 가벼운 일에 그렇게 흔들려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 둘의 모습을 기척만으로 지켜보던 블루는 자신의 짐작을 추혼하기 시작했다. 일단 수상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전혀 꺼림직하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의심을 풀 수도 없었다. 소년의 목소리에 담긴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올곧은 정신’을 느꼈기 때문이다. 거기다 죠셉의 눈빛,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충심과 그 충정 어린 모습에 믿음이 갔다. 소년의 올곧은 정신과 충심의 교집합! 거기에 숨겨진 비밀은 무얼까? 사실은 바로 그겄 때문에 둘의 정체에 대한 의심의 골이 깊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다 소년이 처음 내뱉은 목소리는 누구나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였다. 그것은 위에 군림해본 자만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자부심이 깃든 목소리였다. 결국 톤이나 억양은 흉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위풍당당한 품격과 거침없는 태도까지는 감히 흉내 낼 수 없었다. 블루의 눈빛이 반짝일 때, 죠셉의 입이 열렸다. “우리를 뒤쫒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건 알고 있소.” “어,어떻게......” “우리가 구해줬다는 사실을 벌써 잊어버렸나 보지?” “아!” “그것이 그렇게 말하기 힘든 일이었소?” “그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정체를 밝히기 어렵겠군.” 블루의 날카로운 한마디 블루를 보기위해 고개를 돌린 순간, 죠셉은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의외로 별 생각이 없어보이던 사내였기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가 가장 위험한 인물인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의 이 발언으로 이렇게까지 생각하게 된 건 아니다. 사실 그 말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우연히 흘러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심장까지 뚫어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은...... 결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증명해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꿀꺽 목울대가 움직이며 마른침이 넘어갔다. 블루가 다시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누군지 말해줄 수 있소?” “죄송합니다만 그것까지는 말씀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우리를 쫒고 있는 자들이 아주 강하다는 사실과, 웬만해서 그들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는 겁니다.” 죠셉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로도 위험수위를 넘긴 발언을 한 셈인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텐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말했다. “마치 무슨 스무고개를 하는 것 같네.” 텐시의 비아냥거림에 죠셉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자로 잰 듯 정중한 모습이었다. “이렇듯 호의를 베풀어주셨음에도 이 정도까지밖에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정말 머리 숙여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말에 텐시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던 것이다. 귀족들이 어떤 족속들인가? 그가 알기로는 터무니없이 자존심만 센 자들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아랫사람은 취급도 하지 않고, 웬만해서는 그들과 말을 섞으려고도 하지 않았다.섞는다 해도 예의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자기가 잘못하고도 인정하지 않는 파렴치한들이었다. 여기가지가 그녀가 생각하는 귀족이라는 족속들이었다. 그렇듯 자만심이 하늘을 찌른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귀족이, 아니 그렇다고 추정되는 위인이 뜻밖에 자기 앞에서 스스로를 낮춘 것이다. 뿐이랴. 평민인 자신한테 허리를 숙이면서도 망설임이나 조금의 부끄러운 기색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모습은 귀족경멸주의를 외치던 텐시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곧 죽어도 ‘우리는 귀족이다’고 외치는 속빈 강정들을 숱하게 봐온 탓이다. 그런데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가 보기에 저자는 좀 달라보였다. 그랬다.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소년의 신변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허물도 뒤집어쓸 수 있다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한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조금 전의 이죽거림은 찾아볼 길이 없었다. 오히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까지 허리를 굽힌 채 용서를 구하는 죠셉의 모습에 압도당한 탓이다. 블루가 피식 웃었다. “그만 됐소! 더 이상 같은 말을 왈가왈부할 필요 없지. 아는 게 병이란 말도 있듯이, 모르는 것이 속편할 수도 있겠지. 거기다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될 수도 있는 일이고.” “......” 그 순간 죠셉은 놀란 얼굴로 블루를 올려다보았다,. 말 속에 담긴 블루의 속 깊음을 읽은 탓이다.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저렇듯 심계가 깊다니! 정말 이들이 단순한 용병이란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용병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잇던 죠셉에게는 이변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블루는 죠셉의 복잡한 눈빛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 이만 가지. 어서 의뢰받은 일을 마쳐야할 게 아닌가.” 그 말에 니콜라스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대장!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슬슬 출발해도 될 것 같습니다.” “에휴, 이제 맘 잡고 좀 쉬나 햇떠니.” 베르니스가 인상을 쓰며 작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죠셉이 감사를 표했다. “블루 경! 제마을을 헤아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뭐,헤아릴 것까지야... 그냥 번거로운 게 싫을 뿐이지.” 이어지는 블루의 하대. 순간 소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앙다. 아니, 취하지 못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기도 했거니와, 자신의 작은 행동이 가져올 파장을 걱정한 탓이기도 했다. 이미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그의 작은 손짓 하나가, 작은 방심이 그에게 가져다준 끔찍한 결과를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분노로 인해 몸이 부르르 떨렸다. “도련님.” 죠셉이 부르는데도 소년은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서 걸을 뿐이었다. 죠셉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천천히 뒤따랐다. 블루는 여전히 그 둘의 관계를 추론해보있다. 그러던 중 소년의 행동을 복 씩 웃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저 녀석 고집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왜 그런지 밉지가 않아.’ “큭!” 블루가 갑자기 웃음을 흘리자 일행들 시선이 블루에게 쏠렸다. 동시에 그들은 생각했다. ‘대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불안하다!’ ‘불길하다, 아주 불길해.’ 그러나 니콜라스는 생각이 달랐다. ‘뭔지 모르겠지만 기분 좋은 모양이군. 그건 그렇고 가만 보면 저들도 참 운이 좋아. 세상세 누가 있어 그런 헐값에 그랜드 마스터급 기사 둘에다 익스퍼트 기사 둘을 포함한 용벙들의 호위를 받을수 있을꼬?’ 어느덧 블루를 제외한 일행들 입가에서는 불안과 씁쓸함이 배인 웃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이 늑대의 숲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그로부터 삼 일이 지난 후였다.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운 밤이었다. 얼마 만에 보는 하늘인가? 휴우! 이유 모를 한숨이 흘러나왔다. 막연한 그 무엇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다.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는 다시 어둠을 머금고 있는 무성한 수풀 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늑대의 숲. 무성히 자란 나무가 하늘을 가로막고 있어, 밤낮의 구분마저 쉽지 않았다. 특히나 수색대한테 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험한 길로만 가다보니, 툭 트인 하늘보기가 쉽지 않았다. “얼마 만에 보는 하늘이지?” “흐흐흐,이제 그 지긋지긋하던 놈들과도 롱 굿바이다.” “그래, 이제 늘어지게 잘 수 있다.” “내 꿈은 죽은 듯이 자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털퍼덕 베르니스와 소클이 투덜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것을 본 블루가 한마디 했다. “누가 자지 잘라고 한 적 있나? 지들이 무섭다고 자지 못했으면서 이제와 투덜거리긴.” “윽!” 구겨지는 베르니스의 표정. 하지만 블루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난 잠만 잘 오더라, 큭큭.” 그 말에 베르니스가 발끈했다. “그런 곳에서 코를 골며 자는 대장이나 니콜라스가 이상하죠!” “그럼, 텐시는? 텐시도 잘 자던걸.” 그때 저만치서 텐시가 고함을 질렀다. “뭐? 베르니스! 너 지금 나보고 이상하다고 말했지? 죽고 싶어,앙!” “크윽!” 또다시 베르니스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즉시 그는 미끄러지듯 눈길을 하늘로 향했다. 여기까지다. 더 이상 말을 했다간 무슨 꼬투리가 되어 먹이 날아들지 몰랐다. 자신이 아무리 막나가도 텐시 앞에서만은 예외였기 때문이다. 하늘을 향한 베르니스의 얼굴이 달빛에 젖어 희게 빛이 났다. 지금까지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는지 베르니스 눈 밑엔 어느덧 짙은 다크서클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 놓고 잘 수 있겠는가! 흉악한 몬스터가 언제 어디서 눈을 번뜩이며 이빨을 들이댈지 모르는 판에 태평하게 잠을 잘 숭 있다는 게 더 이상했다. 잠들만 하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늑대울음소리! 입맛 다시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울러 소리로 미루어 예상하건대, 족히 수백 마리는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늑대 녀석들은 대체 무슨 생각에선 지 선뜻 덤벼들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이 신경쇠약으로 미쳐 죽는 꼴을 꼭 보고 말겠다는 듯, 집요하게 따라다니기만 할 뿐이다. 정말로 늑대들이 그런 생각으로 따라다녔다, 극서은 정말 탁원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스콜과 베르니스는 지금 미치기 일보직전이었으니까. 차라리 덤벼들었다면 속 시원하게 물리친 다음 속편하게 숙면을 취했을 게 아닌가. 그런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애매한 상황은 베르니스들을 신경과민으로 몰아가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반면 니콜라스나 블루는 그 상황에서도 무신경한 모습으로 잠을 청했다. 대체 그들은 어떤 신경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어떤 정신적 세계를 가지고 있기에 그처럼 태연하게 잘 수 있단 말인가? 베르니스로서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간이 부어야 그런 행동이 가능한지, 대체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순수한 해부학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둘은 인간적으로 너무 강했다. 사실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욕구를 얌전히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잠시 요 며칠 동안의 일들을 회상하던 베르니스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 여하튼 어서 폭식폭신한 침대 위에 눕고 싶다. 푹 자고 싶어.” 베르니스의 푸념 섞인 말에 옆에 있던 죠셉과 소년이 동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두 사람도 베르니스와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블루가 죠셉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새벽에 떠나겠소.” 그 말에 죠셉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마움을 느꼈다. 블루가 일부러 그에게 말을 건넸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블루는 죠셉이 소녀능ㄹ 챙기느 것을 훔쳐보았다. 상당히 지쳤음에도 소년은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블루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입술을 굳게 다문것으로도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 수 있었다. 후들거리는 무릎을 억지로 펴고 미소를 머금은 채 죠셉을 바라보는 소년의 모습은 블루로라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 중에서 가장 또렷이 떠오르는 두 글자. “현민!” 나지막이 내뱉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찌하여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 것일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충분히 짐작이 갔다. 그녀가 그리워진 것이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을 듬뿍 주고받았던 그 얼굴! 블루는 다시금 소년에게 눈길을 주었다. 순가 현민의 얼굴이 겹쳐졌다. ‘현민...... 어떻게 지내는지 정말 궁금하다. 잘 지내고 있갰지?’ 그리움이 돌풍처럼 휘몰아쳤다. 휘이잉! 그것은 가슴 안에서 부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이 벌어져 있던 감정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스며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것을 관조하다 블루는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나약함을 발견한 탓이다. 그 즉시 블루는 강한 바람으로 맞서, 나약한 감정의 편린들을 떨쳐냈다. 그러나 온전치 않았다. 왜 여전히 못난 감정의 찌꺼기가 남는 것일까? 그것에 덜미가 잡혀 약해지는 건 아닐까? 왠지 불안했다. 그때 차갑게 변해가는 블루의 표정을 지켜본 니콜라스가 나직이 입을 열어 그를 불렀다. “주군!” 블루는 고개를 돌려 니콜라스를 바라보았다. 니콜라스의 근심어린 눈빛! ‘이 나약한 감정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블루는 피식 웃으며 니콜라스를 외면했다. 자신도 모르게 피하고 만 것이다. 그러자 어쩐지 가슴이 더욱 시려왔다. 그러나 브루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옛일이 떠올라서.” 그 말을 내뱉으면서도 블루는 자신이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니콜라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의 상념을 건드릴 생각잉 jqtdjTrl 때문이다. 블루는 다시 소년을 바라보았다. ‘왜지? 왜 저모습에 현민이 겹쳐지는 걸까?’ 상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죠셉이 입을 연 탓이다. “블루 경.” “무슨 일이오?” “저기......” 슬쩍 흐르는 그 눈빛! 블루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숭 ltDjT다. 그 시선 끝에 소년이 있었다. 사람들 시선을 피해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소년. 그것을 보는 순간 블루는 소년의 심리를 파악해냈다. 소년은 ‘아직도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블루 자신도 먼 과거에 그런 적이 있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틀렸다. 그 말은 틀린 것이다. 그는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사실 조그만 남에게 기대는 법을 배워써라면 한결 편했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소년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다만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을 뿐. 죠셉 역시 소년의 그 마음을 헤아렸을 것이다. 그리고 블루에게 어린 주인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한 것이리라. “후후, 알겠소.” 그 말에 죠셉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처 자신이 본론을 끄집어내기도 전에 불루가 먼저 대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대로 이해하고 잇는 모습이 아닌가. 문득,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생성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블루의눈빛 탓이다.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저 눈빛! 조금 전에는 그토록 두렵게 느껴지던 그 눈빛이 지금은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자신의 스승인 존 라이튼 앞에서 거짓말을 할 때 본 그 눈빛이 지금 블루의 눈 속에서 거울처럼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미, 믿을 수 없다!’ 죠셉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블루는 일행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모닥불을 지펴놓고 둘러앉은 베르니스들에게 편안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늘은 푹 쉬어라. 내가 불침번을 설 테니까.” 그 말에 하나같이 반색했다. “오오, 대장! 그게 정말이슈?” “오늘은 안심하고 잘 수 있겠군.” “하암, 그럼 또 한 숨 자볼까.” 베르니스들은 안도한 얼굴로 한마디씩 나불거렸다. 그 속에 깃든 진심은 베르니스들이 블루를 얼마나 믿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성질 급한 스콜은 벌써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블루가 딴소리할지도 모른다는 듯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그것을 본 죠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들의 신뢰는 실력과 연륜에서 나온다고 하더니만, 저 젊은이를 대하는 저들의 표정은 마치 신앙처럼 돈독해 보이는구나.’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그때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장? 제가 지키겠습니다.” 니콜라스였다. 블루가 미소를 띤 얼굴로 말했다. “괜찮다. 지금까지 그대 덕에 잘 쉬지 않았는가!”흠칫! 그 말뜻을 이해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이해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을 뿐, “......” 모두 놀란 눈으로 블루와 니콜라스를 돌아보았다. 그들을 대표하듯 죠셉이 한마디 던졌다. “그 말은 다가오는 늑대들을 니콜라스 경이 모두 막아냈다는 말입니까?” 솔직히 믿을 수 없었다. 니콜라스는 태평하게 잠만 자지 않았던가! 블루는 미심쩍은 미소만 던질 뿐, 답변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모두는 확신할 수 있었다. 늑대의 공격으로부터 니콜라스가 자신들을 지켜주었음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니콜라스가 묻자 블루가 웃으며 화답했다. “볼일을 너무 자주 보러 가더군.” “큭큭큭!” “킥킥킥!” 블루의 장난 섞인 말투에 다들 소리죽여 웃었다. 한편 니콜라스는 슬쩍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주군께서 나를 보살피고 계셨구나!’ 동시에 늑대인간들과의 전투 중에 느낀 의문점이 해소되었다. 그도 모르는 사이 죽어 나자빠진 늑대인간들! 특히, 처음 기습을 당했을 때 맨 앞에서 치고 나오던 녀석이 갑자기 미끄러지듯 휘청거리는 탓에 시간을 벌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것이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블루가 도움을 준 것이다. 문득, 코끝이 찡해졌다.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럼 감사히 쉬겠습니다.” “......” 블루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일행들은 자리를 잡고 누웠다. 그리고 다들 눈을 붙였으나 소년만은 계속 뒤척거릴 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는 능력을 습득하지 못한 탓에 잠들기가 쉽지 않았을 뿐. 선뜻 잠들지 못하고 계속 몸을 뒤척이는 소년을 본 블루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것을 본 죠셉이 흠칫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블루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걱정말고 편히 쉬라는 사인 같았다. 하지만 죠셉은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불안한 마음을 쉽게 떨처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블루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지금 뭐하는 것......” “쉿!” 블루의 말에 죠셉은 말끝을 흐린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블루는 그런 죠셉을 무시하며 평소에 보여주는 막무가내의 행동과 어울리지 않는 인자한 표정으로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죠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바로 마나의 파동을 느낀 탓이다. 스스스스스 특히 그는 마법사인지라 그 마나의 흐름은 결코 가볍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나는 결코 이유 없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 지금 무슨 짓을...... 당장 그 손을 놓지 못하겠는가!” 죠셉은 분노했다. 그의 얼굴에 짙게 깔린 당혹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분노로 변해갔다 죠셉의 얼굴에 살기가 깔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죠셉에게 블루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잠이 들었소.” “응?” 블루의 팔에 안긴 채 고개를 떨군 소년. 어느새 가볍게 코까지 골고 있었다. 죠셉은 잠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다 블루를 올려다보았다. 무언가 해명을 요구하는 듯한 눈이었다. “잠을 잘 수 있도록 약간 도움을 준 것뿐이오.” 그제야 소년의 신변에 이상이 없음을 깨달은 것일까? 자신의 조급한 심정에 당혹감을 느끼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죠셉이 말끝을 흐렸지만, 블루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 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을 하고자 했다 해도 먼저 귀띔해주지도 않고 움직인 사실에 의심을 떨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죠셉 경도 그만 쉬시죠.” 죠셉은 고개를 끄덕이고 겉옷을 벗어 소년의 몸을 감싸준 후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헤르마틴 국경지대에 위치한 블로어 마을. 모두 합쳐봐야 열두 가구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그곳은 사실 말이 블로어 마을이지, 지도에조차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작은 화전 마을에 불과했다. 산짐승을 사냥하거나 산나물을 캐며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 그런 마을. 그 마을에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끔찍한 비명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어서 말해! 어디다 숨겼는지 말하면 곱게 풀어준다고 하지 않느냐!” “저, 정말 모, 모릅...... 니......” “큭큭, 아직도 버틸 기운이 남았나보군.” 말을 마친 금발과 금색 수실이 화려하게 치장된 미안의 사내 입가에 잔혹한 웃음이 머금어졌다. 동시에 사내는 자기 옆에 놓여 있던 단검을 들어 고문당하는 사내의 다리에 힘껏 박아 넣었다. 푹! 푸줏간 고기 썰리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끄아아아악!” 단검이 꽂힌 다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금발의 사내가 단검을 힘껏 박아 크게 내저은 다음 뽑아낸 탓이다. 동맥이라도 건드린 모양인지, 피가 분출되는 기세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고문당하던 사내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자, 지루한 표정으로 그것을 지켜보던 금발의 사내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대기하던 사내 둘이 사내에게 달라붙어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중년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사내의 보좌관이엇다. “바르크 자작 각하!” “뭐냐, 클라온?” “저자들은 정말 알지 못하는 듯싶습니다.” 긴장한 표정으로 조아리듯 입을 여는 클라온을 보며 바르크 드뤼센 자작은 비웃음을 지었다. “큭큭, 내가 몰라서 이러는 줄 아는가?” “그, 그럼?” “없으면 만들어내면 되지 않느냐?” 클라온이 조심스럽게 반문하자 바르크 자작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큭, 자넨 아직도 머렁Trns." "SP?" "아버지와 그토록 오랜 시간을 함께 했으면서도 이런 기본적인 상식조차 알지 못하다니, 쯧쯧.“ “......” 클라온의 의심쩍은 표정을 뒤로 한 채 바르크 자작은 등을 돌려 고문실로 사용하는 촌장의 집을 나섰다. 그러자, 클라온이 주춤거리며 따라나섰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르크 자작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슬슬 불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인가? 큭큭.” 바르크 자작의 아버지는 정보수집이 취미였다. 말이 그럴듯해 정보수집이지 사실은 고문전문가로, 타인의 비명을 듣고 즐기는 변태 중에 상 변태였다. 지금은 죽었으나, 과거 바르크 자작의 아버지 손에 걸리면 누구든 입을 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 누구라도 일단 그가 끌고 고문실로 들어가면 오래 전부터 꾸머오던 역모를 자백하고, 수십 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라고 고백했으니 말이다. “흐음, 그렇군. 난 아직 멀었군. 조금 더 분발해야겠어!” 촌장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몇몇 사내들이 고문을 당해 토하는 친구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살기를 가까스로 누른 채 제국군들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개자식들!” “이봐, 존스! 참아, 참으라고. 아직은 우리가 나설 때가 아니야.” “그래, 존스! 자네의 젊은 혈기를 십분 이해하지만, 분을 삭이게.” “으윽!” 존스라 불린 청년이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참으란 말을 꺼내긴 했으나, 감히 그 누가 이 상황을 가벼이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존스에게 하는 말은 자신들한테 하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참을 수밖에 없었다. 참지 못하는 순간 죽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기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었다. 모두가 죽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사내들은 누구나 그 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혈기가 왕성한 존스를 억지로 뜯어말린 것이다. 물론 존스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으득! “참게.” 그 한마디에 가슴에 쌓인 울분을, 눈물을 머금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으아아아아악!” 고문실처럼 사용되는 촌장집에서 흘러나오는 처절한 비명을 애써 무시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비명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존스의 감겨 있던 두 눈이 번쩍 뜨이며 분노로 인해 붉게 충혈된 눈자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으드득! 존스는 어금니가 나갈 정도로 힘껏 이를 악물고 촌장집을 노려보았다. 아니, 그가 노려본 것은 그 속에 있는 제국군이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벌서 친구들과 어른들이 얼마나 죽어나갔는지 몰랐다, 하나같이 남이라 볼 수 없는 친인들이었다. 피가 섞이지 않았다 뿐이지, 혈육들이나 다름없는 이들이었다. 저벅저벅 존스는 조심스럽게 촌장 집으로 발걸음을 떼기 TLWKRGOPt다. 동료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다스리느라 존스의 행동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뭐가 이상함을 느낀 사내가 시선을 둘러 주변을 살피던 중, 사람이 하나 비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존스라는 것도 깨달았다. “존스?” 그 한마디에 다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사내의 목소리에 정체불명의 긴박감이 느껴진 탓이다. “......음?” “......존스?” 조금 전까지 함께 있던 녀석이 돌연 모습을 감추자,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사무쳐왔다. 조금 전 그가 보여준 광기 어린 눈빛이 자신들의 뇌리 속에 떠오른 탓이다. 그런 감정을 조금이라도 감춰보고자 목소리를 높여 그의 이름을 불렀다. “존스, 어디 있느냐?” “이보게, 존슨!” 그때였다. “허걱!” “무슨 일인가?” 한 사내의 다급한 신음성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사내가 마른 침을 삼키며 앞쪽을 가리켰다. “저, 저기 존스가......” 사내의 손끝을 바라보던 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존스로 보이는 사내, 아니 존스가 녹이 잔뜩 쓴 부지깽이를 들고 촌장의 집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스, 안 돼!” “거기 서!” 사람들이 달려가며 언성을 높이자 병사들은 그 소리를 듣고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자신들을 향해 소리 없이 달려들던 한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누, 누구냐?” “알 필요 없다, 죽어라!” 촌장의 집 앞에서 보초를 서던 병사가 검을 잡아들기도 전에 존스의 몸이 붕 떠올랐다. 퍽! “크헉!:" 부지꺵이에 머리를 정확히 가격당한 병사가 그대로 나자빠졌다. 있는 힘껏 내리친 탓에 아마도 쉽게 일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재수가 없으면 영원히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몸을 푸들푸들 ejF고 있는 모습은 죽기직전에 일어나는 근육정련과 흡사했다. 챙! 옆에서 보초를 서던 병사가 검을 qhQ아 번개같이 날아드는 존스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크흣!" 존스가 괴성을 질렀다. “개자식들 죽어버려!” 연이은 존스의 공격은 성난 짐승의 움직임과 같았다. 첫 공격을 간신히 막아낸 병사들은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존스의 부지ROd이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요소요소에 집요하게 파고드는지라, 속수무책이었다. “크웃!" 잠깐 방심했다. 잠시 흐트러진 마음을 얼른 추스르지 못한 결과는 참혹했다. 짧은 단말마와 함께 강타당한 정강이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뚝! “으아아아아악“ 길게 울려 퍼지는 비명성! 그 즉시 존스는 병사의 머리에 일격을 날렸다. 빠직! 머리뼈 으스러지는 소음에 존스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헉헉......헉.” 척척 묵직한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살기등등하던 존스의 눈빛이 돌변했다. 창을 빼어든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그의 주변을 포위하듯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 이다. 제아무리 그가 이 마을에서 가장 강한 무투 실력을 자랑한다고 하지만, 이들 단체와 싸울 수 있는 무모함은 없었다. 개개의 실력은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한데 뭉치면, 그 단점이 충분히 커버되고도 남기 때문이다. 저들은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제국의 병사들이 아닌가! 존스를 둘러싼 병사들 눈빛에는 심한 모멸감과 함께 짙은 살의가 가득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찔러죽이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뿜어내고 있음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동료 둘이 머리가 깨진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친구이자 동료라 할 수 있는 그들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자신들 모습과 겹쳐 보인 탓이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죽일 수도 없었다. 뒤쪽에서 현사태를 즐기듯 유유자적하고 있는 바르크 자작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위협 이상의 행동은 할 수 없었다. 물론 녀석이 반항한다면 이야기는 얼마든지 달라진다. 그런데 놈은 무기마저 바닥에 떨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바르크 자작이 병사들을 해치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큭큭큭큭. 역시 기어 나오셨군.” “......응?” 고개를 숙이고 있던 존스가 고개를 들며 의문을 표출했다. “큭큭, 모르는 척하기로 한 것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판을 크게 벌였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냐! 차라리 날 죽여라!” “아니지, 아니지. 이 상황을 얼마나 학수고대 하고 있었는데...... 그냥 널 죽일 수는 없지.” “음?” “그렇게 궁금해할 필요 없어! 황태자 끄나폴! 큭큭, 이렇게 쉽게 꼬리가 잡히다니! 더 이상 고문할 필요도 없겠군. 본토로 잡아가면 어차피 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순간, 존스의 얼굴에 당혹감이 새겨졌다.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바르크 자작이 일부러 지금의 상황을 유도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지금까지 고문해온 이유는 바로 자신 같은 사람이 나서길 바란 탓이었던 것이다. ‘당했다!’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클라온을 바라보니, 그 역시 웃고 있었다. “큭, 마을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포박하라! 불응하면 죽여도 좋다!” 참담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던 중, 하나하나 잡혀 나온 사람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떨꾸었다. 한줄기 눈물이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그쯤, 블루와 일행들은 블로어 마을 근처에 도착하고 있었다. “화전이 보이는 군요.” 블루의 말이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쪽이지?” “저쪽 샛길이 아마 마을과 이어진 길 같습니다.” 니콜라스의 말에 블루와 일행들은 발길을 돌렸다. “휴, 이제야 사람 음식 먹으면서 한숨 돌릴 수 있겠군.” “아, 어서 목욕하고 싶다.” “텐시한테 부탁하지 그랬어?” 잠자코 베르니스와 스콜의 말을 듣고 있던 텐시가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웃기지 마. 내 정령들이 너희들 몸이나 씻으라고 있는 줄 아니?” “치사하게 그딴 식으로 나오겠다 이거지?” “치사?” “그러는 넌?” “내가 뭘?” “나한테 마나 한번 보내준 적 있어?” “아주 웃기셔. 내가 왜 마나를 보태줘야 하지?” “너 죽어 볼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텐시의 손에 물의 정령이 방울져 모습을 드러내자, 스콜이 검을 뽑아들기 위해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꾸엑!” “이 자식이 미쳤나! 어딜 감히 형수 앞에서 검을 뽑아 들고 지랄이야!” 그러자 스콜이 고통 어러니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형님이 큰마음 잡수시고 편을 들어줬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을......” 퍼억! “으윽......, 뒤통수야.” “누가 형님이냐!” “베르..... 더 패!” “탠시, 오케!” 그들의 모습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죠셉과 소년, 그리고 이제 그만 자중하라는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바라보던 클루토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 블루가 걸음을 멈추자 다들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 의아한 눈초리를 숨기지 않으며 블루를 돌아본 클루토는 그의 표정이 희한하게 변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다지 심각한 표정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흥미진진한 표정 같기도 했다. 그때 니콜라스 입에서 다소 긴장한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위험합니다!” 위험하다고 말하는 니콜라스의 표정은 말과 달리 차분했다.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재미있겠군” “발걸음을 돌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째서?” “지금은 몸을 사리시는 것이 좋을 때라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니콜라스의 시선이 죠셉과 소년에게 돌아가자, 블루의 시선 역시 그들을 향했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한참 자신들 얼굴을 바라보던 의미를 알 수 없는 블루의 웃음에 죠셉과 소년은 흠칫 떨었다. “괜찮다.” “”...... 물론 본인이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지만. 죠셉과 소년은 블루의 알 수 없는 눈빛이 신경 쓰였기에 무엇이 괜찮다는 것인지 물어 보고 싶었다. 그때, 니콜라스가 입을 열었다.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자네가 나를 지켜줄 텐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니콜라스는 블루의 말에 감동하는 한편, 다시 시작된 블루의 호기심에 걱정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혹시나 싶어 충고한 것뿐이다. “알겠습니다.” 수긍하는 듯한 니콜라스의 음성에 블루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상황을 알지 못하는 다른 일행들은 의아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요즘 둘만 알아듣는 듯한 알쏭달쏭한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처럼 생뚱맞지는 않았다. 블루가 자신들을 위험에 내던져두고 나 몰라라 할 위인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기에 일행들은 걱정 없이 성큼성큼 뒤따랐다. 분명한 것은 그 길 끝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 알았다면 절대 따라가지 않았을 거라는 점이었다. 바로 그 순간 옆쪽 숲에서 일단의 무리가 튀어나왔다. “모두 꼼짝 마라!” 블루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린 것과, 숲에서 모습을 드러낸 장창의 날카로운 끝이 일행들을 위협하듯 에워싼 것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일행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재빠르게 블루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치를 떨며 고개를 숙였다. 블루의 회심어린 미소를 목격한 탓이다. “으휴, 떠......” 퍽! 베르니스가 푸념하듯 한숨을 내쉬는 순간, 성급한 사내가 창을 흘리며 하늘을 날아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그때, 죠셉과 소년의 표정이 싸늘히 굳었다. 자신들에게 장창을 겨눈 사내들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이다. ‘제, 제국군!’ 죠셉의 표정이 복잡하게 얽혔다. “바르크 자작 각하!” “뭐냐?” 본국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책상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던 바르크 자작 앞에 한 병사가 다가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기 시작했다. “블로어 마을 입구 근처에서 서성이던 자들을 붙잡아왔습니다.” “호오, 그래?” 바르크 자작의 눈 꼬리가 슬쩍 올라가며 흥미 있다는 표정으로 병사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병사가 신이 난 듯 말을 이어갔다. 그렇듯 한참 자기 공로를 늘어놓던 병사는 서서히 지루해하는 바르크 자작의 눈빛을 의식했는지 중간에 급히 말을 마무리 지었다. “직접 보시겠습니까?” “지금 어디 있지?” “마을 중앙에 포박해놨습니다.” “그럼 가지.” 바르크 자작이 앞장서자, 기사와 벼앗들이 호위하듯 그를 뒤따랐다. 마을 중앙 공터가 크게 술렁거리고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잡힌 거예요, 대장.”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옳은 생각 같지는 않군요.” 일행들의 불평불만에 블루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재밌잖아.” 순간 가슴에서 치미는 분노. 그러나 그 분노는 이내 한숨으로 변해버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베르니스의 투덜거림에 클루토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다. “대장 말만 믿고 따라다니다간 제명에 못 죽지, 에휴.” “누가 아니라니.” 텐시가 블루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들 목소리는 결코 절망에 빠진 목소리가 아니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블ㄹ루가 생각 없이 행동할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볍게 넘길 수만도 없었다. 하나같이 조마조마하고 심장이 떨리는 공포와 서스펜스 가득한 상황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블루를 잘 알지 못하는 죠셉과, 소년의 표정은 창백하기만 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도망칠 구멍이 보이지 않은 탓이다. 급기야 참담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어깨를 쭉 늘어뜨렸다. 결국 체념한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형수 표정이 저렇지 않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와 흡사할 듯 싶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조금의 틈만 생겨도 빠져나가고 말겠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은밀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문득, 죠셉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저 용병들이 어찌하여 순순히 포박을 당한 것일까? 저들시력이라면 충분히 벗어나고도 남았을 게 아닌가.’ 하지만 그 의문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지금 눈앞이 깜깜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어서 탈출한 구멍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그는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던, 아니 감히 상상하기 꺼리던 최악의 상황전개였다. 이미 붙잡혔고, 도망칠 곳도 없다! ‘아아, 신이시여! 불쌍한 우리 왕자님을 버리시려고 하시나이까! 부디 신의 가호를......“ 죠셉과 소년은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 그들 눈가에 눈물이 비치고 있었다. 블루는 둘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블루의 심중을 눈치 채고 있는 니콜라스나 텐시 역시 마찬가지엿다. 그때, 죠셉과 소년의 표정을 감시하던 텐시가 답답한 듯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잠시 한눈을 팔았다. ‘대장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정말 궁금하군. 정 알고 싶으면 그냥 물어보거나 조금 알아보면 되는 것을 꼭 이런 식으로 사건을 진행해야 속이 풀리는 것일까? 정말 대장의 사상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휴우.’ 니콜라스의 눈은 정확했다. 결국 결론은 하나. ‘......기다리면 어떻게든 되겠지, 에휴.’ 내심 체념하듯 한숨을 내쉰 일행들은 지휘관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 지휘관이 와서 블루가 원하는 무언가를 발설하거나 터뜨리기 전까지는 도망칠 꿈도 구지 않았다. 함께 포박당한 마을사람들은 애환이 가득한 눈빛으로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자신들 처지나 붙잡혀온 용병들 처지가 서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필시 끔찍한 고문을 당하다 죽거나 어디론가 끌려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을 중앙 공터로 바르크 자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공터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들인가?” “예, 바르크 자작 각하!” 바르크 자작은 가볍게 코웃음 치며 포박된 채 서 있는 블루들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 그는 조사하듯 위아래로 훑어보며 블루들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어디서 왔는가?” 재차 질문이 던져졌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바르크 자작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러다 흠칫 놀라 비명에 가까운 외마디를 토했다. “서, 설마!”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경악에 가까운 감동의 표출이었다. 곧이어 터져 나온 웃음이 그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여기서 만나게 되는군요, 황태자저하. 크하하하하하!” “화, 황태자?” “누가!” 마을사람들이 크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제2장 실수하다 마을 주민들로부터 시작되어진 웅성거림은 빠르게 병사들에게까지 퍼져갔고, 곧바로 블루들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바르크 자작......” 부득! 소년, 아니 황태자의 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르크 자작은 그 소리를 들으며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자작이라뇨. 이제 곧 백작, 아니 후작이 되실 몸인데 말이죠. 물론 이 모두가 바로 황태자 전하 덕에 이루어질 수 있게 된 것이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크하하하!” “개 같은 자식!” 황태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욕설에 바르크 자작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입 조심해라. 이렇듯 대우해줄 때는 특히! 도망쳐 나온 개가 설쳐봤자 얻을 것은 몽둥이찜질밖에 없다. ...... 알, 겠, 습니까? 황태자 저하, 큭큭큭.” “으윽!” 상상 못할 분노에 황태자는 차마 입을 열 수도 없었다. 그것을 지켜본 죠셉이 순간 분노로 충혈된 눈을 찢어지게 뜨고 바르크를 노려보았다. “그게 무슨 망발이냐, 더러운 반역자 놈!” 그제야 바르크 자작의 시선이 죠셉에게 향했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황실 최연소 수석 마법사라는 휘황찬란한 과거의 소유자이신 죠셉 경이 아니신가? 반갑구먼. 이곳에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그런데 뭔가? 휘황찬란한 과거의 전적과 달리 시궁창의 쥐새끼처럼 초라한 지금의 모습은? 그러게 줄을 잘 서보지 그랬나. 큭큭큭큭큭.” 그때 구석에서 클루토의 탄성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죠셉! 어쩐지 귀에 익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 이름이 친숙하게 들려왔던 것이구나. 그 이름을 어째서 기억하지 못한 거지? 이렇게 돌 머리니 아직도 마법의 진도가 이 정도밖에 못 나가지.’ 클루토는 자기 머리를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학대했다. ‘그 사실만 내가 빨리 알아차렸더라도......’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아니 거의 우상에 가까운 수석마법사 죠셉이 저렇듯 무시당하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자책했다. 하지만 그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 해도 눈앞에 서있는 죠셉을 황실의 수석 마법사 죠셉과 동일하게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죠셉이 입을 열었다. “결코 가만히 죽지 않을 것이다.” “크흐흐, 정말 무섭군. 무서워.” “이익!” 바르크 자작의 비아냥거림에 죠셉은 분통이 터질 것 같았다. 이를 악무는 소리가 나자 바르크가 피식 웃으며 죠셉의 신념어린 목소리를 비꼬았다. “결코 가만히 죽지 않겠다고? 킥킥, 그래. 그럼, 어디 어떻게 죽나 한번 확인해볼까?” 그러면서 바르크가 자신의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매끄러운 검명과 함께 목에 와닿는 차가운 검의 감촉에 죠셉은 흠칫 몸을 떨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바르크 자작은 위협적으로 죠셉의 목을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더 이상 죠셉은 놀라지 않았다. 두렵지 않은 듯 표정도 담담해다. 그런데 바로 그 표정이 바르크 자작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서서히 바르크 자작의 미소가 짙어져갔다. “천재 마법사는 일반 평민과 어떻게 다를까? 놀리는 혓바닥 움직임처럼 목을 베는 느낌도 다르겠지? 어디가 어떻게 다른가 한번 느껴볼까?” 스윽 바르크가 검에 살짝 힘을 가하자, 얕고 기다란 상처가 생겨나며 그 작은 틈 사이로 붉은 피가 맺혔다. “헉!” 그것을 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공포에 휩싸여 굳은 얼굴로 시선을 돌리는 마을사람들. 마치 목이 잘리는 것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치를 떠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였다. “그만!” 더 이상 참을 수없다는 듯 황태자가 일갈을 터뜨렸다. 날카로운 그 소리에 바르크 자작은 흠칫 놀란 얼굴로 동작을 멈추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이 누가 보더라도 단순히 놀라 경직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굳어 있던 바르크 자작의 표정이 풀어지면서 다소 억지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흐흐흐...... 흐흐흐......” 그는 자신이 황태자 목소리에 경직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스스로 눈앞에 있는 소년을 황태자로 인정한 것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주군으로 인정하고 따르는 황태자는 현재 헤르마틴 궁전에서 황제 즉위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서 이 뜻하지 않은 상황은 그를 당황스럽게 만들었을 뿐더러, 그 자신의 이성을 무너뜨리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 때문일까? 바르크 자작의 입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돌발적인 발언이 흘러나왔다. “흐흐, 너, 널 죽이리라. 가짜인 네놈을 죽이고 말리라!” 공포에 짓눌린 듯한 얼굴로 살기 어린 말을 쏟아내기가 무섭게 그는 검을 치켜들고 황태자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크하하하, 죽어라!” 쉬이익! 바람이 갈리는 소리! 검에서 뿌려지는 검과이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는 마을사람들과 소마 일행들 그러나 검은 황태자의 털끝 하나 건들지 못했다. 퍼억! “으악!” 챙그랑! 갑자기 바르크 자작의 팔목관절 사이로 자갈이 날아든 탓이다. 그 자갈은 단순히 팔목에 명중한 정도로 그치지 않고, 팔목 뼈를 박살내버렸다. “누, 누구냐?” 바르크 옆에 서 있던 노련한 눈빛의 기사가 언성을 높이며 위압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가 정체불명의 적을 향해 살기를 뿌릴 때, 병사들은 저마다 숨을 죽이며 검을 꼬나 잡았다. 병사들의 굳은 얼굴과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은 그들이 초긴장상태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솔직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르크 자작은 마스터급을 목전에 둔 하이 익스퍼트였다. 그런 그가 기척도 느끼지 못한 채 기습을 당한 것이다. “크윽, 웬 놈이냐!” 잠시 오른 손목을 부여잡은 채 고통을 호소하던 바르크가 일갈을 내질렀다. “후후.”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 소리의 진원지는 포박된 용병들 틈바구니였다. 척척척! “어서 정체를 밝혀라...... 크윽!” “......” “그래? 계속 숨어있겠다 이거지? 그렇다면, 좋다! 저들을 모두 죽여라!” “옛!” 기사들이 앞으로 나서며 검을 휘두르려고 하는 찰나, 포박되어 있던 사람들 중에서 한 인영이 앞으로 가볍게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다. 블루였다. “킥, 나왔다. 어쩔래?” 블루를 포박하고 있던 죄수용 밧줄이 투두둑 끊어지며 흘러내렸다. “흐흐흐!” 입가에 빼문 웃음은 누가 봐도 비웃음이 분명했다. 그것을 본 바르크 자작의 두 눈빛이 분노로 충혈되었다. 극에 치달은 분노는 팔목 뼈가 부러진 통증마저 잊게 해줄 정도였다. 동시에 말을 내뱉는 것도 잊게 만들었다. 그것을 귀신처럼 알아차린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바르크 옆에 서 있었던 클라온이라는 이름의 보좌관이었다. 날카로운 비명처럼 클라온이 언성을 높였다. “뭣들 하는가! 저 발칙한 녀석을 처리하지 않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블루를 향해 찔러 들어오는 날카로운 창날들. 그러나 블루는 여전히 비웃음을 머금은 채 빤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찔한 상황이었다. 죠셉이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블루가 죽는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 탓이다. 창날이 한치 앞까지 다가간 것을 보고 감은 눈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찌된 것일까? 블루를 막 찌르려던 찰나, 두두두두둥! “끄아아악!” “크허허헉!” 창을 들고 있던 병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창이 부러지기 일보직전 각도까지 낭창낭창 휘었다. 그 반동이 동반한 파괴력을 이기지 못한 몇몇 병사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뭐, 뭐야?” “뭐지?” 병사들과 기사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편으로 날아가는 동료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물론 그것은 그들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와우, 저거 사람들이 날아가는 것 좀 봐!” “정말 장관이군!” 역시 대단해!“ 스콜의 말을 필두로 베르니스들은 저마다 뒤질세라 한마디씩 내뱉었다. 보면 볼수록 경탄스러웠던 것이다. 주변에 있던 황태자와 어느새 다시 눈을 뜬 죠셉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표시했다. “대장이 정말 사람인 거 확실해?” 짖궂은 베르니스의 물음에 황태자를 포함한 일행 모두가 심각하게 표정을 굳히더니,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때, 클루토가 불쑥 한마디 했다. “혹시 하프 오거 같은 게 아닐까?” 평소라면 우스갯소리로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클루토의 말을 장난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니콜라스까지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말을 되새기자, 당황한 클루토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자, 장난이야!”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어.” “맞아! 하프 오거나 하프 드래곤이 아니라면 저런 괴물 같은 능력을 어찌 설명할 수 있겠어?” “듣고 보니 그렇군.” 급기야 니콜라스까지 한마디 거들었다. 다만 죠셉과 황태자는 조소를 머금었다. 일찌감치 허황된 이야기쯤으로 치부해버린 것인데, 그러나 곧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베르니스들과 니콜라스 표정이 너무도 진지했기 때문이다. “무엇들 하느냐! 어떤 속임수를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사술은 사술일 뿐! 어서 죽여라!” 바르크 자작의 외침에 기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순간, 블루는 발을 들어 바닥에 굴렸다. 쿵 지진이라도 난 듯 지면이 흔들렸다. 블루가 손을 뻗는 순간, 바닥에 나뒹굴던 창 하나가 빨려들 듯 날아올랐다. 그때였다. “죽어라!” 기사가 블루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팟! 창을 꼬나들고 있던 블루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온 바람을 가르는 소음에 이은, 퍽! “컥!” 기사는 뒤통수에 가해지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뛰어들다 그것을 본 기사들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뿐, 블루가 손발을 움직일 때마다 추풍낙엽처럼 바닥에 곤두박질치기에 급급했다. 희한한 일은, 득달같이 달려들던 기사들이 웬일인지 블루 근처에만 갔다 하면 허둥거리다 나자빠진다는 점인데, 두 눈 뜨고 옆에서 지켜보고도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당연했다. 시각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블루가 뇌둔보를 사용해 슬쩍 몸을 옆으로 틀어 피하면 상대방에게는 마치 그가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때 소리까지도 끔찍한, 바람을 가르다 못해 짓뭉개듯 날카로운 파공성을 울리며 날아드는 블루의 창대! 그것이 개구리처럼 패대기쳐진 이유였다. 그러나 보다 극적인 건 검을 휘두른 자에게만 블루가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로서는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겠는가. “병신 같은 놈! 어찌 두 눈 뻔히 뜨고 당한단 말이냐?” 그 소리를 들으며 쓰러질 수 밖에 없는 병사나 기사들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과연 누가 그들의 심정을 알아주겠는가. 상대할 기사들이 많아지자 블루는 전술을 바꿨다. 퍼버버벅! 보이는 족족 무조건 주먹을 휘두르며 패는 식이었다. 물론 가끔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창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등 뒤를 노리는 녀석들의 안면부를 후려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으아아아악!” “커허헉!” 주먹을 둘째 치고 신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쪽수가 많아지자, 블루는 겨드랑이에 끼었던 창대를 뽑아 적이 몰려드는 쪽으로 길게 뻗었다. 그리고 좌우로 힘차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창대가 버드나무가지처럼 휘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으니, 스치듯 맞은 병사들이 영화라도 찍듯 좌우로 붕붕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쿵쿵쿵쿵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병사들은 버르적거릴 뿐, 일어나지 못했다. 뼈가 부러진 것이다. “대장이 인간이 아니란 건 이미 증명된 것 같고, 하프 오거랑 하프 드래곤이 유력한 것 같은데......” “흐음.” “으라차차!” 니콜라스가 기합을 내지르자 손목과 상체에 친친 감겨 있던 밧줄이 풀려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어 텐시와 스콜, 베르니스가 기합을 내질렀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밧줄이 흘러내렸다. “이얍!” 클루토는 낑낑거리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으이구, 이 밥팅아! 가르쳐준 지가 언젠데 아직도 이렇게 서투르냐?” “헤헤, 미안.” 텐시가 밧줄을 풀어주자 클루토가 손을 털며 멋쩍게 웃었다. 살짝 눈을 흘긴 텐시가 죠셉과 황태자 밧줄을 풀었다. “괜찮아요?” 텐시의 물음에 황태자와 죠셉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고맙소.” “고맙습니다.” 텐시가 그런 그들을 보며 방긋 웃어줬다. “별말씀을요.” 그 사이 싸우는 블루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베르니스가 손마디를 꺾으며 말했다.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일행들은 저마다 주머니에서 보석을 꺼내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프 오거에 20캐럿 다이아 다섯 개.” “나 역시 하프 오거에다 20캐럿 다이아 다섯 개 그리고 블루 사파이어 스무 개까지.” “난 하프 드래곤에다 여기 주먹에 쥔 보석 전부.” “오오, 스콜 너무 세게 나오는데?” “흐흐, 나중에 주머니 털리고 울지나 마셔.” 그때 조용히 베르니스들 틈으로 주먹이 파고들더니, 은근 슬쩍 주먹을 뒤집어 손바닥을 폈다. 그 손바닥에는 보석 몇 개가 올려져 있었는데 문제는...... “하프오거에...... 큼큼!” 바로 그 주먹의 주인공이 니콜라스라는 점이었다. “어라, 니콜라스 너까지? 수입이 제법 짭짤하겠군, 케케케.” 베르니스가 낄낄거리며 니콜라스의 보석을 바아들고 명부에 적기 시작했다. “니콜라스! 레드 사파이어, 루비 15개에 25캐럿 다이아 두 개, 오케이, 다 적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죠셉의 두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졌다. 시중에서 상상을 초월할 만큼 고가에 거래되는, 아니 눈요기마저 힘들 만큼 귀한 보석들이 장난감처럼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한 탓이다. 참고로, 저기 저 다이아몬드 하나만 해도 웬만한 부대의 일 년 운영비가 빠질 정도로 고가였다. 따라서 지금 자기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한 보석만으로도 작은 국가의 일 년 예산과 맞먹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가짜도 아니다. 어디서 났는지는 모르지만 결코 가짜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저 영롱한 빛이 그 증거였다. 놀라운 순간이 지나자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저들이 지닌 실력과 재력...... 그 교집합이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수중에 저렇듯 엄청난 재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우리의 제의를 받아준 거지?’ 일단 하나의 의문이 생기자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도와줘서 고마운 건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의문을 상쇄시킬 수는 없었다. 결국 의문은 일파만파 커져갔고, 그것이 의혹으로 변하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그러자 평범한 행동까지 수상쩍게 보이고, 그 행동 하나하나에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가 부여되었다. 조심스럽고 호의적이던 죠셉의 눈 속에 경계심이 싹튼 것은 이때부터였다. 뿌연 먼지가 구름처럼 허공을 뒤덮었다. 블루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대지가 움푹 파이고 손놀림 하나하나에 맞서던 병사와 기사들이 바닥에 나자빠졌다. “크허헉!” “괴, 괴물이다!” “시끄러, 누가 괴물이란 말이냐!” 분노에 찬 함성과 동시에 창끝에서 뿜어지는 우윳빛 기운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더니, 블루를 괴물이라 칭한 병사 근처로 가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빛을 뿌리며 터져나갔다. 콰과광! “으악!”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명! 이제 육십에 달하던 기사와 병사들 중 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은 불과 셋뿐이었다. 블루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채 검을 바닥에 떨어뜨린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의외였다. 블루의 성격을 잘 아는 베르니스들로서는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 셋이 단순한 병사가 아니라 기사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랬다. 일행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블루는 등을 돌리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블루가 무책임하다 싶을 정도로 검기를 남발한 덕에 뿌옇게 피어나 시야를 가리던 먼저는 스쳐가는 바람에 힘입어 말끔히 걷혔다. 그로 인해 형체만 보이던 블루의 얼굴 윤곽이 모습을 드러내며 사람들 눈 속에 들어왔다. 씨익 웃고 있었다. 그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통쾌한 웃음이 아니라 뭔가 이질적인 그런 웃음이었다.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악당의 미소가 저러할까? 블루는 그렇듯 얄궂은 미소를 머금은 채 바르크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바르크 자작은 이미 도망쳐버린 보좌관 클라온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크,큭...... 이, 이익!” 그는 다시 두리번거렸다. 이번엔 도망칠 곳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밖에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저런 괴물 같은 사내 앞에서 기사의 자존심 따위를 내세우는 건 사망의 지름길이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눈 씻고 노골적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틀며 눈까지 돌렸으나 그가 도망칠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수하들은 하나같이 바닥에서 널브러져 일어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가장 믿었던 심복인 클라온은 혼자 살겠다고 자신을 남겨두고 도망쳐버렸다. 설상가상으로 검을 드는 것은 고사하고 잡는 시늉조차 불가능해진 부러진 오른팔...... ‘으윽.’ 갑자기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약간만 움직여도 그 통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괴물 같은 존재가 다가오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춤주춤 그는 부리나케 뒤걸음질쳤다. 하지만 얼마 못 갔다. 벽에 가로막히고 만 것이다. “헉헉!” 갑자기 숨이 가빴다. 뿐이랴. 팔의 통증에서 시작된 열기가 머리까지 치고 올라와 어느새 두통을 유발하고 이었다, 그 바람에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블루의 목소리가 고막을 두드려다. “흐흐, 이제 마땅히 도망칠 곳이 없는 모양이군.” 블루는 악당처럼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런데 의외로 그 모습이 잘 어울려다. 악당에 급이 있다면 블루는 최소한 특급 악당은 따 놓은 당상 같았다. 그렇듯 훌륭히 악당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블루의 모습에 니콜라스와 베르니스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름 끼치도록 잘 어울리는군.” “지금까지 봐온 대장의 모습 중에서 가장 잘 부합되는 모습이 아닌가 싶은데?” 끄덕끄덕 “우리가 같은 편이라서 잘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사실 악당이 아니었을까?” “그, 그런가?” “하긴, 그럴 수도.” 일행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죠셉의 눈빛에 불신의 기운이 더 짙어졌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블루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바르크 자작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더니, 급기야 파랗게 질려갔다. “워, 원하는 게 뭔가?”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바르크 자작의 그 한마디에 블루는 솔깃했다. 그는 즉각 걸음을 멈췄다. “원하는 거?” 블루의 물음에 바르크 자작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말만 잘하면 손쉽게 이 지옥 같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아니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블루의 질문을 유도해나갔다. “그, 그래. 말만 해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주겠다.” 블루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주 좋군, 후후.” “흐, 흐흐.” 힘겹게 블루를 따라 웃는 바르크. “먼저 너희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뭐지?” “응?” 바르크로서는 다소 의외였다. 그것을 묻는 저의가 뭐지? 이미 다 알고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작금의 상황을 어찌 해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을 곰곰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블루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잡생각이 길다. 오, 사, 삼, 이......”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도망친 역적을......” “역적?” 블루는 슬쩍 죠셉과 황태자로 밝혀진 소년을 바라보았다. 물론 바로 앞에서 마주보고 있는 바르크조차 감지하기 힘들 만큼 민첩GOIt다. “황태자가 어째서 도망쳤지?” “......”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 해도, 그것을 어떻게 입밖에 꺼낸단 말인가. 바르크가 황태자 눈치를 살피던 사이, 블루의 속사포와도 같은 카운트를 다시 듣고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생각 참 많이 하는 친구군. 오사삼이일.” “그, 그게 그러니까 헤르마틴 제국에 황제가 바뀌었기 때문에......” 순간 텐시의 맥이 풀린 듯한 목소리와 죠셉의 분노가 한데 어울린 이색적인 불협화음에 블루의 시선이 그들에게 돌아갔다. “아니! 서, 설마 그 사소한 정권다툼이 황권찬탈까지 이어졌단 말이야?” “씹어 삼켜도 속이 풀리지 않을 이 역적! 황제가 바뀌긴 누가 바뀌었단 말이냐! 네놈들이 작당하여 황제전하를 시해하였다 해도 여기 명백히 황태자저하께서 두 눈 뜨고 뻔히 숨쉬고 살아 계시는데, 어느 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단 말이냐!” 블루는 그제야 돌아가는 사정을 어느 정도 눈치 챌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진실이라면, 보통 피곤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가슴 주머니에 들어 있는 메달을 머리에 떠올린 블루. ‘괜히 받아군.’ 피곤한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황태자를 잡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이거지?” “그, 그렇소!” “그런데 황태자를 잡지 못하자, 이곳에서 애꿎은 평민들을 괴롭혀 튀는 녀석들을 잡아낸 후에 황태자와 연관되었다는 허위 자백을 받아내 네 전과를 올리려고 했다 이거지?” 흠칫! 바르크 자작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가 밝히지 않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말했기 때문이다. “그, 그것을 어떻게?” “놀랄 것 없어. 뻔한 이야기 아닌가? 매 앞에 장사 없다고 패고 협박하면 없는 죄라도 있다고 실토하는 게 인지상정! 이건 병법도 뭐도 아니야. 전쟁에서 이용하는 술수일 뿐이지.” “그것만으로 어떻게 그런 답이 나올 수 있지? 정말 알고 온 것이 아닌가?” “뭐, 대충 말하자면 지나가다 들른 김에 너희들을 만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군. 일종에 호기심이라고 할 수 있지. 빈말이 아니라 이런 상황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질 못하고 있었어.” “마, 말도 안 돼!” 억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경악에 찬 바르크 자작의 표저은 하늘을 원망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블루는 별것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사실 이곳에 잡혀온 이유는 알거 싶은 사실이 있어서지. 그것을 알기 위해선 조용히 잡혀올 필요가 있었어. 때문에 잡혀 들어올 때 이곳저곳을 주의 깊게 관찰했지. 마을사람들이 어딘가 수감되어 있다는 것은 약간의 관찰과 추리만으로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었지. 그리고 지금 네 녀석이 지껄인 말이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을 풀어줬고, 여러 가지 가설 중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것을 이야기 했을 뿐이다.” “그, 그게 단순한 짐작이었다고?”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실 말하지 않은 것이 있긴 하지만......” 블루가 다시 황태자를 슬쩍 흘겨보았다. 그리고 덧붙였다. “......굳이 네 녀석 따위에게 그것까지 밝힐 필요는 없겠지?” 블루가 이를 드러내며 씩 웃는데, 여간 잔혹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꿀꺽 “어째서 대장이 나쁜 놈 같고, 저 녀석이 착한 놈처럼 보인다. 내 눈이 잘못 됐나?” “글세, 나도 그렇게 보여서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너도냐?” “그, 그래도 아니겠지. 난 대장을 믿어.” 그때 텐시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대장이 원래 저렇게 똑똑했나?”“......” 수다를 떨며 수군거리는 베르니스들과 다르게 니콜라스는 깊은 눈으로 블루를 빤히 지켜보았다. “여하튼 도움을 줘서 고맙다.” “그, 그럼...... 푸, 풀어주는 거야?” 바르크 자작의 조심스런 질문에 블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왜 풀어주는데?” 블루의 생뚱맞은 그 한마디에 바르크 자작은 크게 당황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당연하다니? 난 통 이해가 안 가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르크 자작은 뭔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딱딱한 말투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자, 장난 그만하고 그만 풀어주게.” “정말로 왜 풀어줘야 되는지 몰라서 묻는 건데, 왜지?” 블루의 되물음에 바르크 자작은 미칠 것만 같았다. 말만 들으면 장난하고 있는 게 확실한데, 의심을 품고 있는 그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알면 내가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없지. 내 눈을 봐. 난 아주 진지하다고. 만일 내가 너를 풀어줘야 하는 합당한 이유를 대면 풀어주지.“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항의할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의 두 눈을 슬쩍 바라보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차분하게 말을 내뱉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약속하지 않았는가?” “약속? 무슨 약속?” 블루는 바르크 자작의 말을 곧장 맞받아쳤다. 으득 “원하는 것을 해주면 날 풀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그 말에 블루는 피식 웃으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귀를 새끼손가락으로 후비며 말문을 열었다.“ 네 녀석이 지껄이는 말이 무슨 말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네 녀석이 뭔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절대로 풀어주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착각하지 마라.” “뭐, 뭣이?” 바르크 자작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약간의 고민 끝에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리고 보니 블루가 그를 풀어주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 혼자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물었고, 그 질문에 대답했을 뿐이다. 그것은 그가 즐겨 사용하던 회유책 중 하나가 아닌가. 설마 자신의 주특기에 자신이 당할 줄이야!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다 "이, 이익!“ “훗!” 바르크 자작은 결국 제 분을 참지 못하고 왼손으로 검을 뽑아든 채 블루를 향해 덤벼들었다. “이, 더러운 자식! 쉬이익! 왼손으로 휘둘렀기에 힘이나 정교한 맛은 그래도 상위 익스퍼트의 실력을 길 가다 우연히 주운 게 아님을 증명하듯, 블루의 목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그러나 거기까지뿐이였다. 멀쩡한 상태에서도 블루의 옷깃을 스칠까 말까한데, 이렇듯 어설픈 무용가처럼 휘청거리면서 블루의 목을 벤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였다. 가뿐히 공격을 피한 블루는 왼 주먹을 불끈 쥔 채 바르크 자작의 복부를 있는 힘껏 쑤셔 박았다. 푸욱! “커, 커허어어억!” 바르크 자작은 처절한 비명을 토하며 주저앉았다. “이 자식 봐라. 엄살 한번 끝내 주는군.” “꺼어어억!” 블루는 놈이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멱살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바르크 자작의 두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블루의 일격이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덜덜덜덜 “어라, 이젠 떨기까지 하셔? 큭, 아주 꼴값을 하는군.” 바르크 자작은 태어나 처음으로 맞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죽음의 공포! 뭐든 하고 싶은 건 할 수 있고 원하는 건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그는 고통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늘 가해하는 입장이었지, 당하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러니 자신에게 이런 상황이 닥칠 거라고 감히 생각이나 해봤겠는가. “걱정하지 마라. 딱 백 대만 팰 테니까. 그 이상은 패라고 해도 안 팰 거다.” 블루의 그 한마디에, 마을사람들은 냉혹하게 고문하고 구타하며 그들의 고통을 즐기던 바르크 자작의 두 눈에서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을 본 블루는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살다 살다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녀석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블루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블루 일행과 함께 지켜보던 황태자나 죠셉까지도 같은 생각이었다. ‘쓰레기!’ 죠셉과 황태자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저런 쓰레기로 가득 차 있으니, 황실이 썩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과 함께 전쟁이 없어 평화롭다고만 생각해온 현실 또한 저자와 같은 이들의 입에서 만들어진 거짓된 눈속임에 불과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된 탓이었다. 황태자는 자신이 다시 황성에 입성하게 된다면 저런 녀석들부터 모조리 숙청하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 생각 끝머리에서 당장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떳떳이 두 발로 황성에 입성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녕 그는 약한 바람에도 꺼질 수 밖에 없는 미약한 불꽃에 지나지 않는가! 저런 녀석 따위에게 붙들려 힘없이 흔들리는 자신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불현듯 그의 눈에 회한의 눈물이 맺혔다. 그것을 본 죠셉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와, 왕자님......“ 그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그때 문득 그들의 귓가를 울리는 블루의 살기 어린 목소리! “사내새끼가 아주 지랄발광을 하는군.” 블루는 정말이지 놈이 하는 꼬락서니를 지켜볼 수가 없었다 솔직히 주먹이 더러워질 것 같아 손대는 것마저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아니면 누가 저런 쓰레기를 청소할 것인가! 그의 역사적 사명과 대의를 위해 깨끗이 그 한 몸 희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퍽! “컥!” 턱이 빠르게 돌아갔다. 이가 부러짐과 동시에 치아 여남은 개가 허공으로 비산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란 듯 녀석은 집 앞에 쌓아놓은 장작더미 위로 날아갔다. “데, 데발!(제, 제발!)” “너 같은 새끼는 일단 말이 필요 없이 맞아야만 해! 그러니 우선 맞고 보자.” 논리가 다소 이상했으나 그것을 트집 잡는 사람은 없었다. 블루는 녀석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마구 두들겨 팼다. 그 바람에 그의 생각과 일치하는 언어(?)는 오로지 비명뿐이었다. 당연히 내력은 사용하지 않았다. 녀석이 한 방에 죽기라도 하면 낭패였기 때문이다. 썩 내키지 않으면서도 굳이 손을 댄 이상, shsa에게 극한의 고통을 선사해줄 요량이었다. 퍼버버벅 푸어억! “커허허헉 꾸에엑!” “크헤헤헤, 이 손맛!” 꾸준히 운동으로 단련된 듯한 놈은 몸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신나게 두들겨도 웬만해서는 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간만에 원 없이 기분을 냈다. 보다 강하고 보다 집요하며 보다 신명나게 두들겼다. 조금 전의 엄살이 단지 녀석의 헤이해진 정신상태에서 비롯된 것일 뿐, 신체적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탓이다. “아도오오옷!” 푸파퍼버벅! “케케케게켁!” “으하하하, 이 손맛! 칠수록 감칠맛이 나는구나!” 블루는 진정 부담 없이 두들겼다.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눈빛마저 살짝 풀렸다. 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일순 블루가 흠칫 놀라는 듯하더니, 패는 것을 그쳤다. 그리고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헉! 미안!” “......” 이미 정신이 혼미해질 대로 혼미해진 바르크로서는 지금 블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무턱대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끝으로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내가 실수로 백 대를 넘겨버렸다. 이런..... 지금까지 이런 실수는 한 적이 없었거늘..... 진심이었다. 그는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으로정신을 잃은 바르크를 보며 다시금 조심스럽게 입을 열렀다. “내가 정말 미안해서 용서를 구하고 싶은데, 넓은 아량으로 용서 해줄 수 있지? 대답이 없으면 용서해주는 것ㅇ,로 간주한다?“ “‘’‘’‘.” “정말 고맙다. 용서해줘서. 넌 역시 가슴이 넓은 친구야!” 그렇게 말하는 블루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는 듯 안도하는 표 정이었다. 그러나 멀리서 그것을 지켜보던 일행들 표정이 조금씩 굳어져 갔다. 블루의 결정적인 한마디가 추가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테니..... 그리고 미안한데 말이야, 조금만 더 패면 안 돌까? 이런 손맛은 정말이지 너무 오랜 만이거든. 정말이야. 딱 오십 대만 더 패면 안 될까? 역시 이번에도 넓은 가슴으로 이해해줄 거지? 이번엔 기필코 오십 대 이상 넘기지 않을 테니까 허락 바란다. 이번에도 역시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허락하는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지?“ “ ‘’‘’‘ " "아, 아니지. 이번엔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딱 다섯까지만 셀까? 좋아, 그럼 그간 잘 생각하고 대답해줘, 알겠지? 자, 그럼 센다. 오사삼이일!“ “‘’‘’‘” “그래, 결정이 쉽지 않을 테지. 물론 나한테도 그 정도 이해심은 있어. 그래서 한번만 더 셀게. 이번엔 정말 잘 생각하고 대답해.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자, 오사삼이일! 오사삼이일! 오사삼이일!“ “ ‘’‘’‘” “역시 넌 일관성 있게 과묵하구나! 좋아, 그럼 과묵한 몸짓을 허락한 것으로 생각하고 패도록 할게. 너의 넓은 가슴 정말 잊지 못 할거야, 흑흑.“ 그말이 진심인 듯 블루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자, 그럼 간다!아다다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닷!”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벅!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블루의 기합성과 구타소리. 그리고 두들겨 맞자 기절에서 깨어나 자신도 모르게 내지르는 바르크 자작의 비명! 이것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이 절묘한 박자감은, 어찌나 흥겨운지 절로 어깨 춤이 날 것 같았다. “쿠헤헤헤헤! 역시 이 맛이야! 내가 원하던 것이....... 크하하하! 오라!“ 딱딱하게 굳어버린 베르니스,스콜,텐시,클루토,죠셉,황태자, 니콜라스의 안면근육에 푸른빛이 감돌았다. 블루의 광기 어린 모 습에 봉인된 입을 열고 간신히 한마디씩 내뱉었다. “인간이 저렇게 비열할 줄이야!” “비겁하다 비열하다 하지만 저렇듯 악랄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저 사람 대체 누구야?“ “나도 몰라.” “나도!” “난 쭈욱 알고 싶지 않아!” 베르니스들이 경악한 얼굴로 한마디씩 내뱉고, 하나둘 등을 돌리 며 그 자리를 서둘러 벗어나기 시작하자, 멍한 얼굴로 서 있던 죠셉과 황태자도 조심스럽게 자리를 피했다. 이곳에 남아 있다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끝까지 굳건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대장!· 그는 혼자 남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러나 곧 그도 모두 내뺀 것을 확인하고 슬그머니 등을 돌려 그 자리를 피했다. 제 3 장 우리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일행은 갇혀 있던 마을주민들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촌장 집에서 고문을 견디다 못해 죽은 시체들을 한곳에 모아 마을 밖에 매장했다. 빠짐없이 묘석까지 세우고 나자 주민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으흑흑흑, 여보!” “밥, 이 친구야! 먼저 떠나면 어쩌는가!” “형님, 흑흑흑.” 아, 이 죄책감! 황태자 케산베르트 헤르마틴 2세는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죄책감 에 차마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눈물이 눈썹과 볼을 타고 흘러 마른 바닥을 적셨지만, 그는 그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젠 차디찬 주검으로 변해버린 친인들의 이름이 하나둘 주민들 입에서 흘러나올 때마다, 비수가 되어 그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게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었다. 아바마마께서 정체불명의 세력에게 암살당한 것도 모른 채 병환 으로 돌아가신 줄만 알고, 손꼽아 황제 즉위식만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어리다 해도, 그것이 책임회피의 수단이 될 수는 없었다. 어리석음으로 얼마나 많은 충신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가. 그는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저 자신이 편한 만큼 다른 백성들도 모두가 편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황좌에 앉아 직무를 처리 하는 것을 배울 때도 자신을 칭송하는 백성들의 함성이 끊이지 않 는다는 간신배들의 말만 믿고, 자신이 성군이라도 된 듯 우쭐했다. 그랬다. 눈멀고 귀가 닫힌 채 그는 스스로 인덕이 넘치는 황제가 될 거라 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즉위식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 황궁의 중심세력들이 반란을 일으 켰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가 가장 신뢰하던 ·그녀석·을 전면에 내 세웠다. 그러나 그것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부랴부랴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렇게 세상에 나서는 순간,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벗을 수 있 ]게 되었다. 또한 세상은 결코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쉽지도, 아름답 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백성들이 자신을 칭송한다는 말도 거짓말이었다. 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한목소리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꼬집고 비아냥거리기에 바빴다. 칭송은커녕 욕설이 난무하고 원성이 자자했다. 그가 간신들의 감언이설에 눈이 멀어, 달콤한 그 몇 마디에 정신 을 차리지 못하고 만족감에 몸부림칠 때, 백성들은 고통 속에서 허 우적거리고 있었다. 그 고통을 호소하며 그에게 손가락질을 해대 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의 가슴속에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간신들을 향해 그리고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백성들을 향 해서. 그러나 그는 곧 그 모든 분노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부족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 을테니 말이다. 자신이 눈 가리고 아웅할 때, 체계와 관리가 엉망이 된 나라는 백 성이 아니라 탐관오리들의 나라가 되어 있었다.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그들만 살이 찌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가 그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두가 그의 잘못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언행에 조신함을 기했다 무슨 일이든 실행하기 전에 꼭 두 번씩 생각했다. 그리고 깊게 생 각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것이 황태자 케산베르트가 말을 아끼는 이유였다. 블루들과 함께 있을 때, 그가 쓸데없는 말을 한번이라도 한일이 있는가? 없었다. 하지만 그 바람에 죠셉의 가슴앓이는 말도 못했다. 늘 활] 기차고 귀엽던 황태자가 자책과 고통으로 말수가 줄어들었기 때문 이다. 그것 때문에 가슴이 아렸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흐흑!” 나지막이 자책하던 황태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죠셉은 가슴이 철렁했다. ·왕자님!· 그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황태자에게서 잠시도 시선을 떼지 않 았다. “대장! 이 녀석들은 어떻게 처분하시려고요?” 베르니스의 질문에 블루가 말했다. “흠,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주위를 둘러보던 블루가 주먹을 움켜쥐는 순간, 정렬한 상태로 묶여 있던 기사 셋은 파랗다 못해 하얗게 질려버렸다. 블루가 바르크 자작을 어떤 식으로 병신을 만들었는지 이미 목격 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말이다. 사방에서 난무하던 피바람! 그것은 치가 떨리는 광경이었다. 사람을 패 죽인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말이 쉽지 정말로 사람을 패 죽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둔기로 후려치거나 칼로 베는 것 과 달리 많은 체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특히 바르크 자작은 잘 단련되어진 신체를 지닌 존재인데, 그런 그가 찍소리도 못하고 병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딱, 죽지 않을 만큼 만 적당히 다듬은 듯했다. 그 결과, 앞으로 인간답게 살기는 힘들 것 같았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바르크 자작처럼 병신이 되느니, 차라리 단칼에 죽는 게 백번 나 았다. 한 마음 한 뜻으로 그렇게 생각한 세 기사들은 블루와 시선이 마 주칠 때마다 흠칫흠칫 떨어야만 했다. 놀라운 것은 자신이 다른 곳 에 시선을 두고 있어도, 블루의 시선이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사실 이었다. 하긴 살기 가득한 그 눈빛을 어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어찌 잡아먹을까 궁리하며 입맛을 다시는 포식자의 정감 어린 그 눈빛을 말이다. 오싹! “일단 알아낼 건 다 알아냈고.....” 사실이었다. 모두들 블루가 묻기도 전에 군소리 없이 모두 이실직고했다. 궁금하지도 않은 대목까지 부연설명해주는 친절까지 선보였다. 마치 이러지 않으면 내일이 없다는 듯, 혼신의 힘을 다해 침을 튀며 끝까지 경쟁적으로 말발을 세웠던 것이었다. 평소 자신들이 지향하던 기사의 중후함과 과묵함은 벗어던진 지 오래였다.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낫고, 개똥철학도 목이 붙어 있어야 떠 들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어떻게든 살고 볼일이었다. 어제 그토 록 떠들고도 얻어맞아 병신으로 전락한 바르크 자작을 교훈으로 삼아 성심성의껏 불었다. 온몸을 전율시키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관통하는 공포감 때문 에 도저히 입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이 틀어진다 해도 단칼 에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디테일하게 털어 놓았다. 없으면 살을 붙여 불었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의 주군들은 어느새 세상에 있으면 안 되는 천 하의 후레자식들이 되어 있었다. “흠..... 어찌한다?” 블루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그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움찔! 기사들이 화들짝 몸을 떨었다. 그것을 본 블루라는 소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풀어줘라.” “네.....네?” 베르니스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기사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살겠다는 일념으로 버둥 거렸지만, 분명히 죽을 것이라 생각한 탓이다. 입장을 바꿔 그들이 브루라 해도 자신들을 죽였을 것이다. 황태자를 죽이기 위해 파견 된 그들을 살려준들 득될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아무리 눈앞에서 철석같이 맹약을 일삼는다 해도 본거지로 돌아 가자마자 살기 위해 또 모든 것을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 이다. 그런 탓에 황태자나 죠셉의 표정도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함부로 나서지 못한 것은 블루의 속을 정확히 알수 없 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종잡을 수 없었다. 아무 대책 없이 행동하 는 듯한데, 알고 보면 그 행동 하나하나에 이유와 뜻이 분명했다. 한마디로 말해 고도의 계산된 행동일 때가 많았다. 그런 일을 몇 차례 경험하자 블루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의혹의 눈길 또한 짙어져 갔다. 어쨌거나 기사들을 살려준 이유가 뭘까? 사실 그 이유가 밝혀지면 다들 기가 찰 것이다. 죠셉은 물론 황태 자 그리고 베르니스들과 기사들 본인까지도. 구타전용 단지 그 이유 때문이었다. 설마 그래서 살려뒀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바르크를 구타하며 지금껏 쌓여 있던 모든 스트레스를 깨끗이 풀어버린 블루로서는 그들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이 다. 게다가 죽인다 한들 겨우 하루 이틀밖에 시간을 벌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아무도 몰랐지만, 보좌관이 도망치게 내버려둔 장본인은 바로 블 루였다. 사실 때릴 맘이 동하지 않을 만큼 비리비리해 보여 신경 쓰 지 않았을 뿐. 지금 따라가도 늦지 않겠지만..... 귀찮았다. 그런 녀석 하나 때문에 심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너무 비리비리해 때릴 맛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가 가장 컸 다. 니콜라스가 물었다. “대장! 어째서?” “궁금한가?” “......” “굳이 죽일 이유가 뭐냐?” 사실 이유야 많았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행보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 것만으로도 깨끗이 처리할 충분한 명분이 되었다. 그러나 블루는 니콜라스가 다른 말을 하기 전에 얼른 말을 이었다. 걱정 한다고 하지? 만약 저들이 떠들어 우리의 행보에 걸림돌이 된 다고 가정해보자. 그게 무슨 상관이지?“ “상관이 없는 건가요?” 니콜라스가 우직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당연하지! 우리가 누구냐?” “예?” “남자 아니냐! 남자가 어찌 시비 없고 육두문자 없는 세상에서만 살 수 있겠느냐? 그게 불가능 하다면 시시비비는 가리고 함부로 육 두문자를 남발하는 놈은 지그시 눌러놓는 것이 진짜 남자지. 어찌 승부를 피하려고 한다 말인가!“ 말도 안 되는 논리요, 순 억지가 분명했다. 저랬다가는 남자는 목숨이 열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데 블루의 열변을 들은 니콜라스는,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대 오각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아!” 베르니스들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아?· “그래, 그것이 남자다!” “지금까지 잊고 있었습니다.” “괜찮다. 이제부터라도 잊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남자!” “그래, 우리는 진짜 남자다! 우하하하.” “맞습니다, 진짜 남자!크하하하하” “움홧홧홧홧!” 둘은 한동안 미친 듯이 괴상한 웃음소리를 터떠려 베르니스들을 심히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베르니스가 통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왠지 일부러 다른 상대가 추격하길 원하는 듯한 말투 같은데? 나만의 착각인가?” “대장이 잠시 정신이 나가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 깊게 고민할 것 없어!” 하지만 베르니스에게는 스콜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으으! 그렇지만 저렇게 진지한 모습들을 보면 마치 우리가 정신이 나가서 저게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사실 저들이 정상이 아닐까? 아, 모르겠다. 모르겠다아아아!” 베르니스는 자괴감에 빠져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베르니스의 어깨를 스콜이 지그시 움켜쥐며 말했다. “우리가 정상이야.” “그런데 어째서 저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설득력 있게 가슴에 와닿는 거지? 으흑흑.” “그러게.” 스콜이 중얼거리듯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을 보며 텐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반대편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는 황태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황태자를 설득하는 죠셉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텐시는 갑작스레 두통을 느끼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후우, 남자란 동물은 어쩜 이렇게 단순하지. 바보들...... 하지만 우선......”말을 멈춘 텐시는 슬쩍 바르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반쯤 시체가 된 녀석이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사려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생명존중이니 뭐니 다 관두고라도 저 녀석은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할 것 같으니.’ “정말 마을을 떠날 생각이 없으신가요?” “아무리 저들이 이곳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마을에서 하루 묵은 일행들은 떠날 채비 서둘렀다. 그러나 막상 떠나려고 하니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마을사람들 탓이다. 그들을 남겨두고 가기가 망설여졌다. 하여 스콜과 텐시가 걱정스런 얼굴로 설득에 나섰지만,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걱정해주는 마음은 고맙지만, 우리는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정든 고향을 떠날 수 없다는 뜻 같았다. 하지만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란 말인가. 곧 제국군이 들이닥칠 게 뻔한 노릇이거늘, 불구덩이 속에 남아 있겠다니! 그럴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재고해보세요.” 벌써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들 마음을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이해하기에 더욱 가슴이 미어졌으나, 이해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목숨이 걸린 중대사가 아닌가. 이곳에 남으면 제국군들에게 죽음을 당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여기에 남으면......” 텐시가 어떻게든 설득해보려고 입을 여는 순간, 존스라는 사내가 앞으로 나서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저희 생각대로 하고 싶습니다. 마을을 구해주신 은혜는 죽는 날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부드럽기 한랴엉ㅂㅅ는 목소리였으나 거기에는 불굴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잠시 눈길을 주고받은 일행은 더 이상의 설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등을 돌렸다. 그때 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태자 저하의 앞길에 영광과 헤르마티아의 축복이!” 마을사람들이 합창하듯 반복했다. “황태자 저하의 앞길에 영광과 헤르마티아의 축복이!” 그 순간, 블루와 니콜라스 사이에서 걷고 있던 황태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적셨다. 감동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깨달음의 눈물이었다. 그 눈물이 백성과 그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앞으로 걸어 나갈 뿐이었다. 그것이 지금 뒤에 남겨진 백성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눈물을 숨기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그가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베르니스 일행들은 알고 있었다. 단지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은 것뿐이다. 죠셉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문득, 그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블루가 왜 그곳에 잡혀 있었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그와 같은 실력자가 왜? 만약 블루가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일부러 잡혔다는 것을 알았다면, 죠셉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발정 난 망아지처럼 미쳐 날뛰지 않았을까? 아닌 게 아니라 그따위 호기심에 어찌 목숨을 걸 수 있느냐고 따지듯 외쳤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도 블루의 속내를 알았을 때의 이야기일 뿐. 지금 그는 풀지 못한 의문에 사로잡힌 채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바람을 따라 황금물결이 치는 드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지평선까지 펼쳐져 잇는 황금빛 벌판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경건한 마을이 절로 이름났다. 대지의 여신한테 가장 돈독한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는 마고나엘 평야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빼어난 풍경이었다. 흰 구름 몇 점을 띄워 잔잔히 흐르게 하는 저 푸른 하늘과 한데 어우러진 황금들판은 한 폭의 풍경화를 방불케 했다. 거기에 저녁노을까지 깔리면 넋을 잃고 탄성을 쏟아내지 않을 수 없을 터. 어디 그뿐이랴. 저 멀리 보이는 넓은 호반은, 그 대지와 하늘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적어도 고성(古城)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내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졌다. “이얍!” “허업!” 멀리서 울려 퍼지는 병사들의 기합소리가 아련히 사내의 귓가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드르륵 발자국소리에 사내는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서둘러 커튼을 내렸다. 그러자 빠르게 어둠이 깃들었다. 치익! 촛대에 불을 붙이자, 주변이 살짝 밝아지며 사물을 인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일렁이는 불꽃에 생기는 그림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어둠의 잔상인 것처럼 시야를 어지럽혔다. 마치 사내의 지금 심정을 대변하듯. 그러고 보니 병사들의 기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두터운 커튼의 방음효과가 뛰어난 탓이다. 당연히 안에서 나는 소리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수고 많았소.” “고맙군, 당신이 아니었다면 이번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야.” “큭큭, 별말씀을.” “하지만, 이것도 이번일로 마지막일 걸세.” 패기 넘치는 젊은 사내의 목소리.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유슬라니안의 크로와키 후작은 그 목소리에 담긴 묵직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우리가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니겠지?’ 지금 그 눈앞에 있는 사내는 단순히 자신들 꼭두각시로 만들기 위해 택한 존재였다. 수백 가지 자료를 꼼꼼히 분석해, 자기들이 가장 쉽게 움직일 만한 존재를 가려낸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한순간 그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일을 성공하기 전부터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던 것도 같다. 허술하게만 보이던 그가 갑자기 철갑을 두른 기사처럼 작은 헞버조차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 바람에 오히려 자신들이 목을 움츠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자신들 목을 치려고 달려들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그들은 목적한 바를 거머쥐었고, 눈앞의 저 사내가 마음을 바꾸지 않고 약속을 계속 이행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그 상황까지 흘러온 탓이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얼굴로 크로와키 후작이 입을 열었다. “섭섭하군요. 저희를 단지 그 정도로만 생각하셨다니요.” 섭섭하다는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크로와키 후작과 마주 앉아 있던 사내의 표정은 냉담할 뿐이었다. “섭섭할 것 없소. 이미 서로 상대방을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음을 모른다고 하지 않을 테니 말이오.” 순간 크로와키 후작은 뜨끔했다. 그러나 가까스로 속내를 감추고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사내를 주시했다. “농이 짙으시군요.” “하하, 그렇소?” “저는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습니다.” “그런데 짐이 언제 농담했는지 모르겠군.” “허허.” “후후후.“ 사내의 입에서는 정겨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한참 그렇게 쓸모없는 이야기가 떠들썩하게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속에는 수많은 칼이 숨어 있었다. 처음 공격하던 크로와키 후작은 어느 순간부터는 방어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사소한 차이 같지만, 자신의 목을 따기 위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전혀 가볍지 못한 뜻을 가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로와키 후작은 손등으로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깜짝 놀랐다. 자신도 모르게 이마가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기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대놓고 자신의 목줄을 향해 이빨을 들이대는데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저런 식으로 사소한 말을 꺼내 꼬투리가 잡힌다면 계약이 물 건너가거니와 자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잘려 첩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죽어나갈지도 몰랐다. 더 이상 질질 끌어봤자 좋을 것은 없어 보였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여전히 속과 다르게 미소를 잃지 않는 크로와키 후작. 그런 크로와키 후작의 능청스러운 웃음을 보면서 사내는 속에서 끌어 오르는 분노를 가누질 못했다. 크로와키 후작의 보좌관한테서 건네진 서류! 보지 않아도 그 안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으득! 이렇게 십이성을 날로 빼앗겨야 한단 말인가.’ 떨리는 손으로 억지로 사인을 마친 사내를 향해, 크로와키 후작은 방긋 웃으며 서률르 빼앗듯이 낚아채 얼른 자기 품안에 갈무리했다. “후후, 감사합니다. 전하.” “그리 감사할 필요는 없소.” “아니옵니다. 이렇게 약속을 지켜주신 것만으로도 저희로서는 더할 나위없는 영광이옵니다. 만일 황제폐하께서 모른 척하셨다면 단순히 이것은 종이쪼가리에 불가했을 테니 말입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러시오. 더 이상 당신의 얼굴을 보고 참아낼 용기가 나질 않는구려.”“송구하옵나이다. 그럼 옥체를 보존하옵소서.” 그때, “이제 일개 왕국이 아니라 대국이나 제국이라 불러도 되겠구려.” 황제의 가시 돋친 말에 크로와키 후작이 달갑게 말을 받았다. “감사하옵니다. 황제폐하의 축언을 들었으니, 그 뜻이 이뤄지겠지요.” “......" “헤르마틴 제국의 영광을 빌겠습니다.” 으득! 크로와키 후작이 기꺼운 모습으로 퇴장을 하자, 황제라 불린 사내가 이를 갈았다. “기필코 잃어버린 내 땅을 다시 찾아낼 것이다.” 그 말과 도시에 황제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로 인해 조금 전 서류에 사인하기 위해 뽑아 들었던 고풍스러운 파피아산 펜이 황제의 주먹 안에서 으스러졌다. 빠각! “기필코......” 며칠 전 즉위식을 마친 현 헤르마틴의 황제 케이아스 폰 헤르마틴. 그의 붉은 눈동자가 분노에 이글거리며 불타올랐다. 제4장 블루 효과(Blue Effect) 아이린 드 크리센도르 그랜드 마스터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초인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이름이다. 참고로 이곳 헤르마티아 대륙에는 마스터의 단계를 뛰어넘었다고 알려진 두 명의 그랜드 마스터가 존재했다.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쟈크 공자과 유슬라니안 왕국의 속국이라 할 수 있는 크리센도르 공국의 아이린 드 크리센도르 공작이다. 물론 숨겨진 다른 누군가 더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아무튼 현재 헤르마티아 대륙의 최강자로 손꼽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그래플 그랜드 마스터라 불리는 아이린 공작이었다. 짧은 역사를 지닌, 소국에 지나지 않았던 유슬라니안. 늘 주변국한테 침범당하고 무시당하던 그 소국이 어느 순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대국의 위상을 갖게 된 데는 아이린 공작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다. 막말로 이야기해, 지금의 유슬라니안은 아이린 공작의 손에서 일구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였다. 그의 숨겨진 실력은 십사 년 전에 발발한 제2차 제국대전에서 유감없이 드러났다. 그의 주먹은 폭풍이었고, 폭탄이었다. 그가 지나가는 곳엔 끊임없이 피와 살이 튀었고, 전설이 하나 둘 만들어졌다. 경천동지할 그의 능력에 대한 소문과, 그에 대한 진상이 전 대륙을 뜨겁게 달구는가 싶더니, 전쟁이 끝났을 때 그의 이름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래플 그랜드 마스터란 칭호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 그 앞에 대륙 최강자라는 수식어까지 붙어있었다. 그렇듯 누구보다 강한 힘을 소유한 아이린 드 크리센도르 공작은, 어느 순간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개인 수련실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모두가 우려하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 수를 내보았으나, 끝내 그의 마을을 되돌릴 수 없었다. 식사문제가 가장 컸다. 며칠마다 한번씩 밖으로 나와 소량의 식사를 마치고 다시 들어가 버리니, 곁에서 보좌하는 측근들만 애가 닳았다. 공작이 제아무리 초인에 가깝다 해도 저러다 몸을 버리는 것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밖으로 날올 때마다 야위어가는 그의 모습은 더욱 걱정을 부챌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안광은 더 심후한 빛을 더해가는 것이었다. “저러다 탈나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그러네 말이야.” “자네들 눈을 보지 못했나?” 갑자기 끼어든 것은 동료인 미카엘이었다. 평소 과묵하기로 소문 난 녀석이라, 그가 한 말보다 입을 열었다는 것에 더욱 의미를 두는 분위기였다. 다들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 때, 미카엘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 눈빛을 보지 못한 게로군. 다들 뭔가 무시당한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고 언짢은 표정으로 미카엘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미카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미 그분은 인간의 단계를 넘어버리셨어.” “무슨 바보 같은 소린가? 이미 아이린 대공계선 충분히 초인이지 않은가?” “그런 말이 아니네. 대공의 눈빛을 보았다면 아마 그런 말은 하지 않았겠지.” “아까부터 눈빛눈빛 하는데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 대공께선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단계를 올려다 보고 계시다는 말일세.” “참으로 시답지도 않은 소리를 자꾸 지껄이는군.” 동료들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미카엘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취한 듯 몽롱한 얼굴을 보고 동료들이 이죽거리며 멀어져갔다. 홀로 남은 미카엘은 조금 전 수련실 안으로 들어서던 아이린 공작의 잔상을 떠올렸다. 아이린 공작의 강렬한 그 눈빛을 회상하기 위함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미카엘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자기 자신조차 듣기 힘들 정도의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분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전무후무한 경지에 들어설지도 모르네.” 적막감이 지나쳐 오히려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 중앙에 아이린 공작이 정좌하고 앉아 있었다. 그곳은 바로 공작의 개인 수련실. “후우." 아이린 공작은 긴 호흐을 내뱉었다. 그런데 심호흡인지 한숨인지 딱히 구분 짓기 어려울 만큼 모호했다. 아마도 반반이 아니었을까. 사실 지금의 아이린 공작은 가슴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깨달음이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면서 그를 계속 농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블루’를 물리칠 해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그 움직임!‘ ‘그 민첩함!’ ‘그 정확성!’ 눈만 감으면 그것들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엉킨 그 실타래를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깨달음이 있고, 그의 발전이 있음이 분명했다. 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자꾸 마음만 앞섰다. 그의 한계를 느꼈다. 스스로 발전에 제동이 걸린 것을 깨달은 지 얼마나 지났던가. 아마 제2차 젝구대전 직후였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조급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해답을 줄 거라 믿으며 넘겼다. 그러다, 말년에 와서 그는 조심스럽게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지금의 한계를 벗어날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몸에 쌓이는 마나까지 한계에 다다른 듯 더 이상 쌓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 자시보다 강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어느 순간, 지금 자신의 상태가 무공의 끝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막연히 아쉬웠고, 또 무언가 그립기도 했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저 벽! 살짝 건들기만 해도 그대로 찢겨지거나 뚫릴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저 철벽! 그 앞에 서면 그는 늘 한없이 허무하고, 허탈하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공허했다. 동시에 그는 체념의 단맛을 느꼈다. 나는 여기까지다! 그런 믿음이 차츰 강해지고 있는 와중에 정체모를 그 사내를 만났다. ‘블루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와 정신없이 싸우다보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던, 가슴속에서 휘몰아치듯 격동하는 기운이 생생히 살아났다. 그리고 그때 가슴 한켠에서 들려온 소음. 지지직 미미했지만 아주 자극적인 그것은 늘 막막해 보이기만 하던 철벽에 금이 가는 소리였다. 아주 미세한 금이. 눈을 감자, 블루의 주먹이 나아왔다. 아이린 공작은 상체를 숙이며 그것을 피함과 동시에, 곧장 블루의 겨드랑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 그 주먹이 녀석의 급소를 강타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것으로 놈이 축 늘어져 바닥에 처박힐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허공을 가를 수밖에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 서둘러 공격을 회수하며 몸을 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선제공격을 가볍게 피한 다음, 성공적으로 공략해낼 만큼 블루는 결코 허술하지 않았다. 그는 매우 치밀했다. 짧은 리치의 주먹을 보완하기 위해 손가락을 곧게 펴 인중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팟! 가까스로 피해내긴 했지만, 이마에 가늘고 긴 상혼이 생겨났다. “흡!” 눈을 감고 잇는 아이린 공작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머릿속에 그린 블루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가슴에 와닿은 탓이다. 한 시간 정도의 명상을 마친 아이린 공작. 흘러내리는 식은땀에 전신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흠.” 그가 간발의 차로 이겼다. 하지만 과연 그것을 이겼다고 말할 수 잇을까? 자신과 싸우던 그 블루라는 청년이 정말로 마스터일 뿐이라는 사 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상식을 초월한 공격과 기술, 적절한 상황판단능력과 변칙적인 수 법, 거기다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마나를 효율적으로 다루던 모습 까지! 그는 마스터급 이상이었다. 공작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술만으로 붙는다면 자신이 이기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그냥 힘든 정도가 아니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마나를 다루는 능력만 보더라도 그는 이미 자신의 경지를 넘어섰 을 가능성이 높았다. 블루가 사용한 기술로도 알 수 있었다. 그가 기술을 쓸 때 허덕이던 모습은, 흡사 당연히 사용할 수 있어야할 마 나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당혹감처럼 보였다. 그 덕에 그는 힘으로 밀어붙여 블루를 꺾을수 있었다 그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몹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그때 그 상황으 로 돌아간다면, 블루와 제대로 겨뤄보고 싶었다. 물론 거개에 거창한 의미 같은 것은 없었다. 단지 기사의 본능과 도 같은, 강자와 겨뤄보고 싶은 순수한 욕망이었다. 따라서 블루는 무조건 강해야만 했다. 그가 강해야 자신의 현재 상태가 무공의 끝 이 아님을 확인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래가 있] 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이미 그는 블루와의 전투 를 통해 자신의 한계에 대해 많은 고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룰러 그는 블루의 전투능력을 배우기로 마음 먹었다. 그속에 길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머릿속에 남아 있는 블루의 기술을 하나하나 분석하 고,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하나둘 보완해나간 결과, 상상조차 못하 던 엄청난 무공을 만들어 낼수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마나를 이용해 그토록 빠른 움직임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수련을 통해 몸에 마나가 자연스 럽게 쌓여가는 것만으로도 몸의 민첩성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갑옷으로 무장하고 마상전투를 즐기는 기사들이 두 발로 이동하 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빠른 움직임이 큰 미덕 일수 없었다. 말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빠르게 다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격투가인 아이린 공작은 말에 익숙하지 못한 편이었고, 그로 인해 다른 기사들에 비하여 몸놀림이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블루만큼 대책 없이 빠를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아이린 공작은 블루의 대책없이 빠름에 의심을 품었다. 어떻게 하면 저렇듯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오랜 고심 끝에 결국 그는 그럴듯한 가설을 추론해낼 수 있었다. 그것은 마나를 배출하여 그 힘으로 자신의 추진력을 얻어내는 방 법이었다. 블루의 무공을 본떠 만든 그 기술이라면 어떤 수련을 하더라도 몸의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격투가인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지금껏 가로막혀 있던 큰 벽이 뚫린 것이다. 게다가 격투가로서 가장 큰 단점인 짧은 리치를 빠른 스피드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 게 되었다. 마나 사용법을 깨닫는 순간, 하나의 상식이 무너졌고 그러자 또 다른 세상의 무궁무진한 진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지금까 지 잔잔하게 흐르던 몸속의 마나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정체되어 있던 마나 속으로 새로운 마나가 쌓여갔기 때문이다. 깨달음도 얻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허울을 벗어던진 것이다. 지금껏 최고하고 떠받들어주는 중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은연중 그들의 칭송을 즐기며 스스로 그 안 에서 안주해온 것이다. 돌아보니 무공을 처음 배울 때 품었던 그 열 정과 욕망은, 싸늘하게 식은 잿더미처럼 불타던 과거의 흔적만 남 긴 채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때, 블루라는 불똥이 날아들어 싸늘하 게 식은 장작더미에 불꽃을 되살려 주었다. 아이린 공작의 신형이 뒤로 물러나며 공기를 흘리듯 상체를 가볍 게 흔들었다. 순간, 블루의 모습이 아이린 공작과 겹쳐보였다. 착시현상일까? 어느새 반대편으로 신형을 옮기며 빠르게 방위를 짚어나가던 아이린 공작이, 긴 호흡과 함께 주먹을 앞으로 곧게 뻗으며 발을 굴렸다. 쿠웅! 바닥이 움푹 파이며 거대한 기류가 소용돌이 쳤다. 동시에 그것은 공작의 주먹 끝에서 뿜어졌다. 파콰콰콰콰콰콰! 기운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퍼벙 퍼버버벙! 가로막는 장애물을 모조리 가루로 만들며 뻗어나간 기운은, 급기 야 수련실의 벽을 뚫고 빠져나가 긴 꼬리를 남기며 해가 저물어가 고 있는 서쪽을 향해 날아갔다. “후우‘’‘’‘’” 바닥은 나선형으로 골을 그리며 움푹 파여 있었다. “이, 이것인가? 이것이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다른 세상의 힘인 가?“ 행복했다. 깨달음은 곧 세상을 얻은 기쁨과 다를 게 없었다. 가슴이 벅차올 랐다. 잠시 공허하던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쾌감이 흘러나와 전신을 감싸고돌았다. 움찔거리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주먹에 닿았다고 느끼는 찰나, 풍선 이 터지듯 터져나가며 공기 중에서 그대로 산화되어버렸다. 그 순간 아이린 공작의 눈에서 형용할 수 없는 광채가 뿜어졌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미카엘은 공작의 수련실에서 온유한 표정의 한 사내가 밖으로 나 서는 것을 보았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악에 겨운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대, 대공?” 눈앞에 서 있는 사내는 바로 십여 년 전, 먼발치에서 처음으로 본 아이린 공작의 젊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서늘하다.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으나 조금씩 땅거미가 지는 저녁. 산새들 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듯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아침에 우는 새 는 배가 고파 울고, 저녁에 우는 새는 임 그리워 운다고 하던가. 그래서일까. 새소리가 괜히 심금을 울렸다. “휴, 힘들다.” “오늘은 여기서 쉬죠?” 베르니스의 물음에 블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둘 적당한 그루 터기에 엉덩이를 붙이며 짐을 풀었다. 텐시가 말했다. “베르니스랑 스콜은 가서 땔감을 구해오고, 클루토는 불쏘시개 할 나뭇가지를 좀 주워와.“ 베르니스 이하 일행들이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숙준비가 얼추 끝날 즈음 해가 넘어갔다. 그러자 빠르게 어두어졌다. 타닥타닥 모닥불이 긴 불꽃을 뽐내며 어둠을 핥을 때, 붉고 진한 노을이 서 편 하늘을 수놓았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듯이 작은 새들의 지저귐 이 줄어든 대신, 부엉이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리고 수줍은 듯이 달이 떴다. “배고프다.” “난 졸려.” “대장, 앞으로 오늘처럼 강행군은 제발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한마디씩 투덜대자 블루가 씩웃으며 말했다. “맞고 잘래? 그냥 잘래?” “‘’‘’‘’‘’.”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감. 일행은 요즘 뭐든지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블루의 행태에 대해 구 시렁거리며 대충 자리를 잡고 누었다. 불침번은 니콜라스였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일행들과 적당 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닌가. 한눈에 모두를 가늠할 수 있을 만큼 거릴를 벌린 그는 적당한 나무를 물색해 들 을 기댔다. 그리고 검을 뽑았다. 스릉! 차가운 검날이 달빛을 받아 푸른빛을 반사했다. 가슴이 시리도록 섬뜩한 빛이지만, 니콜라스에게는 그 무엇보다 친숙한 존재였다. 그 검이 자신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주었던가. 붕붕붕 그는 잠시 검 손잡이를 잡고 가볍게 돌리며 검명과 바람을 가르 는 감각을 즐겼다. 그렇듯 기분 좋게 대여섯 바퀴쯤 돌렸을까. “흠.” 그는 안주머니에서 천을 꺼내 검을 닦기 시작했다. 한참 공들여 닦던 그는 검면을 달빛에 살짝 비춰보고 꼼꼼히 살 폈다. 그러더니 별안간 허공에 검을 찔러 넣었다. 츠팟! 파공성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는 검무를 추듯 한동안 검을 계속 휘둘렀다. 사실 그가 오늘 불침번을 자청한 데는 다 이우가 있었다. 조용히 생각해 불게 있었기 때문이다. 블루의 마인드 소드를 본 이후 계속 머릿속에 맴돌다 조금 전에 스치듯 떠오른 그 검식!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이게 아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신이 펼친 검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리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러길 수차례. 무언가 핀치가 어긋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번뜩이듯 머릿속에 떠오른 그 검식은 거기서 조금 더‘’‘’‘ 감겨져 있던 니콜라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순간,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짙은 섬광이 그의 눈에 머금어져 있었다. 그것은 깨달음의 빛이었다. 니콜라스는 지체 없이 검을 쥔 손을 앞으로 쭉 뻗었고, 춤을 추듯 손목과 어깨가 부드럽게 요동쳤다. 추추추추춧 달빛이 이슬처럼 내리고 있는 탓일까! 검이 스칠 때마다 깊고 화려한 빛줄기가 생성되고 있었다. 그 빛은 곧 섬광처럼 변했다. 나아가 결국 빛의 파도를 만들어냈 고 급기야 거침없는 빛의 폭풍으로 이어졌다. 파팟 파바밧! 강맹한 소음과 달리 빛의 파도는 춤을 추듯 부드럽기 그지없는 파동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후웅! 니콜라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검날 끝부분이 허공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린 탓이다. 뜨거운 대지 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가뭇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니콜라스는 얼른 검을 회수했다. 그리고 생뚱맞은 얼굴로 검을 살폈다. 폭풍처럼 거칠게 흐르며 검결 사이로 휘몰아치던 바람도 그가 멈 추자 깨끗이 사라졌다. 그래서 그의 아리송함은 도를 더했다. “설마!” 불현듯 흘러나온 의문성! 니콜라스는 기억을 더듬었다. 조금 전까지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아련하기만 하던‘’‘’‘ 그러다 상념을 비운 순간 손님 처럼 찾아든 그 기운! 얼른 믿기지가 않았다. 세상에 그런 게 존재하다니! 그는 그 상황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 벅차 올랐다. 그것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 내다니! 선뜻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목이 말랐다. 침을 삼키고자 했으나 입안이 건조했다. 그것조차 느끼지 못했 을 정도로 검극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을 깜박이는 순간, 그 기분이 꿈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면..... ’ 조금전 그 상황을 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면.....’ 거기까지 생각한 니콜라스는 눈을 부릅뜬 채 머리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슈숫! 검이 번개처럼 허공을 가로질렀다. 순간, 보이지 않는 적이 나타나 그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 적은 곧 실체를 드러냈다. ‘.....’ 그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순간 그는 멈칫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니콜라스는 자기 자신, 아니 또 하나의 자 기를 향해 거침없는 출수를 감행했다. 그러자 또 하나의 자신이 그를 조롱하듯 오리조리 빠져나가며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는 게 아닌가. 그것을 본 니콜라스의 입가에 앙다문 이가 드러났다. 일단 눈앞 의 자신부터 잡아야 아까 그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잇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련한 그 기분이 손끝에서 완전히 사라 지고 말았음을. 그것도 허공에 흩어진 공기처럼 말끔히 사라졋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처음엔 손끝을 간질이는 그 느낌이 있었다! 당장이라도 다시 그 경지를 맛볼수 잇을 것 같았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바람처럼 사라진 것이다. 언제 사라진 것일까? 또 하나의 자신을 죽이기 위해 검을 휘두르 기 시작한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다시 그 경지를 맛볼수 없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 언제 다시 느낄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허무하게 보낼순 없는 노 릇 이었다. ‘안돼, 절대 안 돼!’ 그는 악에 받쳐 수차레 검을 종횡으로 휘둘렀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몰려드는 자괴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침중한 얼굴로 검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왜지?” 나직한 그 물음은 잠시 어둠 속에 깃들다, 메아리처럼 그의 귓전 으로 돌아왔다. 그는 명확한 답을 몰랐다. 알았다면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후우‘’‘’‘’.” 상당한 심력을 소모한 니콜라스는 긴 한숨과 함께 일행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약해진 모닥불과 그 주위에 곯아 떨어진 동료들이 한눈에 들어 왔다. ‘동료?’ 잠시 멈칫하던 그는 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무의식중에 그들을 동료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 변화는 결코 가볍 지 않았다. 블루의 어느 한 부분을 닮아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 었기 때문이다. 하긴 지금 이모든 건 블루의 영향 하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그가 익힌 무공에서부터 심리적인 요인까지 모두가 그랬다. “내가 너무 과분한 인연을 얻게 된 건 아닐까? 풋, 엄청나긴 엄청 나군. 주군으로 삼은 사람이 거의 괴물에 가깝다 보니, 사건의 스케 일도 그만큼 킅 것인가? 큭큭.“ 자문자답하며 웃음을 터뜨린 니콜라스. 그 미소는 깨끗한 물에 헹군 듯 천진하기 짝이 없었다. 니콜라스 본인으로서도 믿지 못할 정도로 히맑은 웃음이었다. 이토록 사심 없이 웃어본 게 얼마 만이던가? 늘 속고 속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자신이, 이처럼 속마 음을 드러내놓고 생활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타의에 가깝긴 하지만‘’‘’‘ 그 타의란 물론 블루의 절대적인 힘을 일컫는다. 문제는 타의에 이끌려 행동하면서도 이처럼 편안할 수 있다는 점 이다. 왠지 그 절대적인 힘 안에서 자신의 진실까지 보호받을 수 있 을 것 같은 이 마음은 그만의 착각일까? 착각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는 어느새 그 모든 것을 진심으로 받 아 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에 걸린 듯 자신을 가감 없이 보여주 었다. ‘내 자신이 이렇게 나약할 줄이야, 후후.’ 그러다 문득 그의 입에서 예기치 못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불안해‘’‘’‘’‘” 휘이이이잉! 그의 중얼거림은 돌풍에 휘말려 가뭇없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저 멀리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하늘을 보는 것도 얼마 만인가! 드넓게 펼쳐진 은하수! 그것을 보는 순간, 그는 마치 자신이 걸어갈 길처럼 느껴졌다. 그 것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고 험난한 길이었다. 그러나 불안감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고난! 그것은 늘 자신의 삶 그 자체가 아니었던가. 니콜라스가 떨어지는 별똥별을 지켜보며 한숨처럼 나지막이 중 얼거렸다. “너무 행복해서.....” 제5장 교황, 신탁을 받다 대체 이 상황을 어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케이아스 폰 헤르마틴.] 현 헤르마틴의 황제인 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소인,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닥치시오, 백작! 이미 뻔히 예측되었던 일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주제에, 무슨 주둥이를 놀리려 한단 말이오! 무능력함에 대한 반성이나 하시오!“ 황제는 평소와 달리 격앙된 목소릴를 숨기지 않았다. 은은한 살기마저 느껴졌다. 그 바람에 거침없는 말투와 특유의 거만한 표정을 자랑하던 프랭크 백작은 자라목이 되어 얼른 입을 다물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카른이 슬그머니 눈 을 감는 순간, 황제의 시선은 그에게 향했다. “수상은 무슨 할 말이 없소?” 그말에 카른은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떴다. 어찌 할 말이 없겠는가. 그는 조심스럽게 황제를 주시했다. 지금은 보는 눈들이 너무 많다. 거기다 갈망하듯 자신을 바라보 는 황제를 보니, 강하게 다잡았던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카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쓴소리는 뒤로 미루고 당장 직면한 현안부터 처리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다. 결심이 서자 더 이상 망설일 이우가 없었다. “폐하! 저들이 작정하고 나선 이상, 덮어버리기는 이미 늦었다고 사료됩니다.“ “그것을 알기에 이렇듯 회의를 하는 것이 아니겠소? 무슨 묘수라 도 있소?“ “......” 그라고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실 임시방편 으로 땜질해 내는 것만도 쉽지 않은 판국이었다. 헤르마틴의 황권변화로 인해 초래된 시장경제의 불황이 주요원인 이었기 때문이다. 황권이 변하는데, 시장경제에 영향이 없을 수 없었다. 귀족 중에 는 개혁을 원하는 세력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세력도 있기 마련이다. 그들 모두를 장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고, 모두 장악할 수 있다 해 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하여, 그러니까 외교정책부재와 혼선으로 말미암은 경제 대란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특히 제조업기반이 아니라 수탁가 공에 의존해온 크로타니안 왕국은 걷잡을 수 없는 가격폭등과 폭 락에 기초생활마저 위협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틈을 노려 우슬라 니안 왕국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수입상들이었다. 그들이 혼란을 틈타 수익을 놓이려고 서로 담합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 커진 것이다. 게다가 손을 쓰기도 이미 늦었다. 유슬라니안에서 지금의 상황 을 미리 예측하고 수입상들을 직간접적으로 원조해준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것은 앉아서 콩고물을 주워 먹는 격이었다. 짐작했지만 이토록 일이 커질 줄은 몰랐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는 것은 불가능 하니, 앞으로 더 악화 되는 것을 막는데 힘을 모아야할 줄 압니다.“ “으흠‘’‘’‘’” “길게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결정이 늦 어질수록 그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날 뿐입니다.“ “그럼 어찌 해야겠소?” “귀족들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시 일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조국의 붕괴를 보고 싶 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합니다. “ “흐음 계속하시오.” “우선 황권 이양 과정에서 발생한 권력투쟁을 불문에 붙이자는 식으로 선수를 친 다음, 유슬라니안의 몸집이 커지면 얼마나 많은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지를 인지시키고 경제대란부터 막아내자는 쪽으로.....“ “그 말에 그들이 귀를 기울이겠소?” “물론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들도 있겠지요.” “그럼 그들을 어찌하자는 말이오?” 젊은 황제의 질문에 카른이 슬쩍 주변을 둘러본 다음 입을 열었다.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울이도록 만드는 수밖에요.” “어떤 수로?” “간단합니다. 직접 그 상황을 경험하게 하는 겁니다.” 카른의말은 갈수록 애매모호해져만 갔다. 동시에 비릿해져 가는 카른의 미소 속에는 잔혹함마저 엿보였다. 그 시각 타르타토스 신성제국. 신성제국의 대도시인 타르니안과, 그 안에 위치한 신전은 놓은 산맥으로 형성된 타르나시아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푸스타키 봉에 위치해 있었다. 상당히 비효율적인, 말도 안 되는 대륙 최대의 그 건축물이 만들 어진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삼백여 년 전, 산이 맣아 과일과 꽃이 풍성하기로 유명한 푸스카 니안에서 자란 여덟 번째 교황인 미타루 교황은, 평지가 많고 강수 량이 적은 타르나토스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늘 아름다운 고향의 푸른 언덕을 그리워했다. 그러다 결국, 푸스카니안에 있는 어떤 정원보다도 아름다운 정원 을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에 만들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교황의 명을 받은 재주가 뛰어난 건축가, 기술자, 미장이들은 곧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당연히 마법사도 끼어 있었다.] 그들은 힘을 모아 신전 중앙에 가로 세로가 각각 사백오십 미터, 높이 십구 미터에 달하는 토대를 세우고 그 위에 계단식 건물을 세 워나갔다. 맨 위층의 평면 면적은 칠십 평방미터에 불과했지만, 총 높이가 백오십오 미터나 되는 어마어마한 건축물이었다. 한 층이 만들어지면 그 위에 수천 톤의 기름진 흙을 옮겨놓고 넓 은 발코니에 잘 다듬은 화단을 꾸며 꽃이랑 넝쿨식물이랑 과일나 무들을 심은 이 피라미드형 정원은 마치 아름다운 녹색의 깔개를 걸어놓은 듯 장관이었다. 그런데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곳에서, 이토록 큰 정원에 물을 대는 것만도 여간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황은 정원의 맨 위에 커다란 물탱크를 만들어 무스란 강의 물을 마력펌프로 길어 올려 각 층에 공급했다. 그리고 물뿌리개를 이용 해 적당한 습기를 유지토록 했다. 정원 아랫부분에는 방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곳에서 창 너머로 바라보는 꽃과 나무의 모습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 름다웠다. 그로 인하여 그곳은 역대 이름 있는 신관과 교황들의 휴 식처로 사용되어왔다. 그 거대건축물 옆에 이름도 찬란한 교황 전이 있고, 그 앞에는 신 성제국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타르나토스신의 신전이 위치해 있 었다. 대지 위에 우뚝 선 신전 양옆으로는 각각 열세 개씩, 양끝에 여섯 개 씩 장엄하고 무거운 도리아식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완만하게 기울어진 지붕이 덮여 있다. 이 신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타르나토스상은 높이 백이십 센티미터, 폭 칠점팔 미터에 달하는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높이가 십팔 미터에 가까워 머리가 거의 천장에 닿을락 말락했다. 그 무시무시할 저도로 거대한 타르나토스상은 헤르마티아 대륙 최고의 예술가라 칭송되고 있는 쿠테무스가 팔 년의 작어 끝에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손끝에서 신들의 왕인 크로타니아의 신성한 위엄과 함께 너그러움이 거의 완벽하게 표현되었으며, 드워프들조차 한수 접어주는 인간이라는 뜻의 ‘신의 손’ 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 조각상 앞에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그러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엄숙했다.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신전 안을 가득 메우며, 경건하게 사람들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침묵을 깨며 들려온 누군가의 외침. “오오, 교황께서 나오신다!” “오오!”교인들로 가득 차 있던 신전 안이 떠나갈 듯 소란스러워 졌다. 비단 신전만이 아니었다. 신전 밖까지 이어진 교인들의 대열은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는데, 그들까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오늘이 일 년에 단 두 번밖에 없다는,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첫 번째 여교황으로 등극한 아티나 3세의 교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날이었다. 지금까지의 교황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성력을 자랑하는 그녀의 설교는, 심금을 울릴 뿐만이 아니라 회개의 눈물과 함께 부족한 믿을을 채워준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그녀의 교리를 한번이라도 들은 사람은 타르나토스교를 믿지 않을 수 없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신성제국의 전 국민 중 구십칠 프로가 타르나토스교를 열광적으로 믿고 있었다. 그 중 신성력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이십칠 프로에 육박했는데, 그들을 모아 수련기간을 거쳐 성기사단으로 발탁한 후 전투력을 증강시켰다. 그 대부분이 아직은 어웨어급에 불과했으나, 신앙심이 깊어질수록 전투능력은 향상되는 만큼, 강해지기 위해 미친 듯이 찬양하고 찬송했다. 그러다 보니 전대미문의 광신도 집단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전쟁에 나가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달려들어 적을 압도하는 식이었다. 그렇듯 명실공이 대륙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전투부대가 완성됭T다. 알 만한 사람들은 설사 이길 수 있다 해도 그들과 시비 붙는 것 자체를 꺼렸다. 명분을 앞세운 피의 복수가 시작되는 순간, 살아 있어도 산목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성력은 국력이요, 여교황의 말은 곧 법이었다. 그 법이 나타나자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교인들은 숨을 죽였다. 그때 교황 옆에 서 있던 추기경 하나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모든 신도들이여, 경배하라! 드디어 타르나토스신의 신탁이 내려왔다!” 그 한마디에 다들 열광했다. “오오! 타르나토스시여!” “믿습니다!” “따르겠습니다, 타르나토스여!” 갸날프지만 힘찬 목소리에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조용하라!” 교황 아티나 3세의 몸에서 휘황찬란한 빛 무리가 뿜어지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오오, 신탁이다!” “신탁이 내려오신다!” 신도들의 목소리를 누를 정도의 거대한 하울링이 교황 아티나 3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을 지배하는 자! 빛에 이끌려 내려와 세상을 어둠으로 감싸리라 그가 강림하는 순간, 세상의 생명들은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게 되고, 어둠속을 영겁의 시간동안 배회하며, 자신을 저주하게 되리라 그때 하늘이 열리며 작은 별에서 뿜어지는 한줄기 빛이 어둠을 깨우니 어둠은 새벽과 함께 물러가리라! 다들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아티나 3세의 목소리는 인간의 음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존재의 목소리였다. 아니, 돌이켜 생각하니 그것이 목소리였었는지조차 헛갈릴 지경이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말 속에 담긴 내용들이었다. 마왕이 강림한다지 않은가.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신도들은 물론 교황청 직원들까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솔직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티나 3세가 내뱉은 신탁에 자신도 놀라 기절할 정도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 것인가! 이내 정신을 수습한 아티나 3세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진정들 하십시오!” 웅성웅성 소란은 쉽게 지정되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다 여교황이 말을 이어나갔다. “마왕이 강림한다 해도 우리가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웅성 여교황의 그 한마디에 웅성거림이 눈에 띄게 줄었다. “마지막 신탁의 말에 ‘작은 별에서 뿜어지는 한줄기 빛이 어둠을 깨우니, 어둠은 새벽과 함께 물러가리라!’ 하는 부분을 상기해주십시오.” 그 아름다운 목소리는 신도들의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주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적막이 감돌 정도로 조용해지자 여교황은 쐐기를 박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께서는 곧 닥쳐올 난리에 한줄기 빛, 즉 우리 타르나토스교가 마왕을 물리친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럴싸했다. 신도들은 자신들에게는 ‘타르나토스신이 있다!’ 고 외치며 찬송과 기도를 시작했다.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워지긴 했지만, 교황 아티나 3세의 센스 있는 한마디에 폭동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 신앙 안에서 갈무리된 셈이었다. 추기경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숨 돌린 추기경들은 물론 교황 아티나 3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뒤엉켜갔다. ‘신은 무슨 생각으로 이 많은 신도와 교도들 앞에서 그토록 경악스러운 신탁을 내리신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즉시 의회를 소집하겠습니다!” 여교황의 그 말에 추기경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당으로 가기 위해 앞 다투어 성전을 빠져나갔다. 제6장 대장을 믿지 마라 “휴, 그래도 도착하기는 했군.” “그러게.” “그런데 숲에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가도 되는지 모르겠네. 난 아직 죽을 생각 없거든.” 스콜이 죠셉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엘프의 숲에 들어가는 건 스스로 자기 무덤 파는 자살해위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엘프의 숲을 찾아 왔을 때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돌다리를 두들겨보는 심정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죠셉의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하게 굳어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대책 없이 이끈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죠셉 경!” “아아...... 예.” 당혹스러운 눈빛의 죠세을 바라보며 일행들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니콜라스가 묵직한 중저음으로 한마디 했다. “우선 가까운 마을로 가볼까? 그나마 엘프의 숲에 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좋은 생각이에요.” “그래요, 마을에서 잠시 쉬었다가 가요.” “그럽시다. 대장.” “......” “그만 얼쩡거리고 어서......” “......” “대장!” “아, 그래, 그러자.” 왠지 떨떠름하긴 했지만 블루의 허락이 떨어지자 일행은 곧 마을이 있을 법한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신만 남겨놓고 다들 미끄러지듯 내려가버리자 블루는 투덜거리며 마지못한 듯 일행들을 뒤따랐다. 몸이 근질근질하고, 호기심이 목까지 치솟아 올라오던 참이었다. 엘프라는 종족이 어찌 생겼는지도 궁금했고, 얼마나 강한지 붙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아름답다고들 하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직접 견식해보고도 싶었다. 그때였다. “저기 마을이 있다!” 누군가의 외침에 앞을 바라보니 멀리 마을이 보였다. 큰 상점들도 보이고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흥정하는 모습도 눈에 띄는, 꽤나 번화한 마을이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일행들은 먼저 식당을 찾았다. 배도 고팠지만 정보를 얻어듣기 위해선 식당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앙에 앉자마자 쪼르르 종업원이 다가왔다. “난 스테이크.” “나는 미트소스 스파게티.” “나도.”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한 일행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정보를 je을 만한 사람을 찾기 위함이다. 그러나 식당 안은 한산했다. 구석진 테이블과 창 쪽에 각각 커플로 보이는 두 쌍의 남녀가 머리를 맞댄 채 키득거리고 있긴 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 우연찮게 창 쪽 커플들이 입을 맞추는 장면을 목격한 클루토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스콜은 좀 달랐으니, 이미 베르니스, 텐시라는 젠장맞을 커플들 덕에 염장질을 당할 대로 당한 탓이었다. 그는 거침 없이 말했다. “아주 놀고 자빠져 계시는군!” 대놓고 시비조였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커서 다 들었을 텐데도 커플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쓰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스콜의 덩치가 보통사람들의 신경을 꺼주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베르니스가 나섰다. “킥! 뭐 어때서 그래? 보기만 좋은데.” “맞아 맞아, 오랜만에 우리도 복습을 좀 할까?” “그럼, 그럴까? 자기 쪽.” “자기도 쪽.” “이런 젠장맞을!” 베르니스와 텐시가 부창부수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며, 열정어린 염장질 공세를 펴자 솔로부대의 분노가 극에 달한 스콜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투덜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번 한번만 내가 참는다.” “왜 참아? 참지 마, 킥킥!” “킥킥킥!” “......” 둘이 부둥켜안고 계속 몸을 비비며 입술을 탐하자 스콜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차라리 보지를 말자!“ 결국 니콜라스나 블루처럼 뒤늦게 무시하자는 쪽으로 선회한 스콜은 자신의 앞에 올려진 음식을 보자마자 덥석 집어 씹기 시작하는데, 씹는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입에 넣기가 무섭게 꿀꺽꿀꺽 삼켜 위장을 채워나가는 식이었다. 눈앞에 적, 아니 음식을 이렇듯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빠르게 처리하는 이유는 저 꼴같잖은 연인들로부터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이곳에 더 있다가는 미쳐 날뛰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러면 정신 차리게 도와준다는 명분 하에 휘두른 블루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뻗을 것이고, 최소 사흘쯤 혼수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할 게 뻔했다. 그 꼴을 당하기 전에 선수를 친 것이다. 꿀꺽 꾸울꺽 꾸우울꺽! 스콜의 묘기 아닌 묘기에 다들 입을 쩍 벌렸다. 보는 자신들이 체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우욱!” 겨국 텐시가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텐시에게 쏠렸다. “웬 헛구역질?” “혹시......” “혹시 뭐?” “임신한 거 아냐?” “뭐, 임신?” 일행들의 앞서가는 상상력에 베르니스와 텐시는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베르니스는 기쁨과 불안감이 반반씩 섞인 눈으로 텐시를 바라보았고, 텐시는 잠시 무언가 계산하고는 얼토당토하지 않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언성을 높이는 그녀의 표정이 어째서인지 약간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무슨 헛소리!” “으이씨, 깜짝이야. 아니면 아니지, 왜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그러게 말입니다, 대장. 우물우물.” 블루의 말에 잠시 음식을 목 뒤로 넘기는 작업을 멈추었던 스콜이 입안에 남아 있는 음식을 우물거리며 말을 받았다. 텐시는 그런 스콜에게 짜증을 냈다. “말할 땐 입 안에 음식부터 다 삼키고 말해. 보기 흉해!” “왜 애꿏은 나한테...... 우걱우걱, 난리셔. 우물...... 제발 신경 끄셔, 우물우물.” “익! 너 죽고 싶어!” 텐시가 스테이크를 자르던 나이프를 치켜들자, 스콜은 맥주를 들이켬으로 그간의 식사묘기를 마무리 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내빼버렸다. “걸음아, 날 살려라! 히히.” 그때, 쉬익 푹! “......허걱!” 나이프가 정확히 스콜의 오른쪽 목 부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나무기둥에 절반쯤 박혔다. 분명 조금 전에 텐시가 치켜들었던 그 나이프가 확실했다. 크게 치켜뜬 스콜의 두 눈이 잠시 나이프를 경유해 텐시 쪽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나이프가 스쳐지나간 목을 쓰다듬어보았다. 끈적끈적한 것이 만져졌다. 만약에 피하지 않았다면? “꿀꺽!” 치를 떨며 상상조차 하기 싫은 장면을 떠올리는 스콜. 어느새 식은땀으로 윗도리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잠시 사이를 두고 정신 차린 스콜이 뻣뻣해진 목을 움직여 텐시를 바라보았다. “야, 정말로 날 죽일 작정이...... 으헉!” 쉐엑! 대답 대신 또다시 나이프가 날아왔다. 전봐 정확하고 빨랐다. 그리고 강하기까지 했다. 퍽! 조금 전에 나무기둥에 박힌 나이프보다 더 깊숙이 박혔다. “이게......” 스콜은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웬걸, 블루를 포함한 모든 일행들은 고개를 숙인 채 식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들 기계처럼 경직된 모습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것으로 미루어 억지로 그와 텐시를 무시하고 있는 듯했다. 괜히 상관했다가 피 보기 싫다는 뜻 같았다. 갑자기 억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당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눈이 돌아간 텐시를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띠잉! 이번엔 독특한 효과음이다. 알고 보니 포크다. 아슬아슬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가까스로 피해낸 포크가 등뒤에 이쓰는 문짝에 박혀 떨고 있었다. 등골을 휘감는 식은땀, 더 이상 사고능력이 마비된 뇌! 결론은 하나. 살길이라곤 도망치는 길뿐이었다. 스콜은 그것을 깨달은 순간 부리나케 밖으로 튀어나갔다. 타다다다당! 동시에 등 뒤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효과음! 그것은 나이프며 포크가 나무문에 박히는 소리였다. “이힉, 걸음아, 제발 날 좀 살려라!” 스콜은 모깅 턱 끝까지 차올라 더 이상 뛸 수 없을 때까지 달렸다. 겨우 걸음을 멈춘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헉헉, 그런데 여기...... 여기가...... 헉헉 어디지?” 그 시각, 스콜이 사라진 식당 안에서는 식기와 스푼이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음을 발산하고 있었다. 텐시의 시선이 스콜에게서 일행들에게로 돌아서는 순간,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스푼 등을 놓쳐버린 것이다. 결국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일행은 텐시가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벗어날 때까지 죄 지은 사람들처럼 고개를 숙인 채 식탁 바닥만 하염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아무 죄도 없는 죠셉이나 황태자는 물론, 지은 죄가 있고 그것을 잘 아는 블루나 니콜라스도 마찬가지였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이 말이 이때처럼 블루의 가슴에 절실히 와닿은 적은 없었다. “헥헥, 망할 계집!” 스콜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투덜거렸다. 그는 한동안 헉헉거리며 부족한 산소를 보충하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왕 나온 김에 한 바퀴 돌아보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길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 맞아 죽기 싫었기 때문이다. 화가 좀 풀어진 다음에 들어가자는 심산이었다. “그나저나 왜 화가 난 거야?” “내가 왜 이렇듯 당해야 하지?” “하암, 모르겠다.” 하품이 나왔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그렇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칼침에 맞아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되는 것보다 프곤한 것이 백 배 천 배 나았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지 않던가! “좀 둘러볼까, 으차!”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난 스콜은 자시 서서 어디로 갈지를 결정했다. 특별히 갈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노인이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이보게, 젊은이.” 스콜은 말없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노인이 다시 한 번 스콜을 불렀다. “이보시게나, 젊은 양반.”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스콜이 말했다. “많은데요?” 노인이 피식 웃었다. “이런 싱겁긴.” “싱거우면 소금을 좀 치시든가 하시고...... 왜 절 부른 거죠?” 스콜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꾸하자 노인이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엘프의 숲에 가기 위해 가이드를 찿고 있는 거 아닌가?” “네에.” 순간 스콜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판 처음 보는 노인이 다가와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을 거는 모습에 놀란 것이다. 서둘러 식당 옆에 붙어 있는 여관으로 들어가 일행들을 찾아낸 스콜은, 텐시가 손을 쓰기 전에 자초지조응ㄹ 설명하고 노인을 소개했다. 베르니스가 입을 열었다. “노인장께서 정말, 정말로...... 엘프의 숲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고 계신다고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껏 내가 하는 말을 물로 들었나?” “아,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이렇게 사람 말을 못 믿어서야...... 이만 가봐야겠다. “아이쿠, 영감님!” “왜? 바쁜 사람은 왜 자꾸 불러?” “믿습니다, 믿는다니까요!” 베르니스는 일행에게 몰매를 맞을 것이 두려운 나머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노인의 다리를 덥석 붙들고 매달렸다. 그의 말을 꼬투리삼아 노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 일행들의 살기어린 시선이 뒤통수를 강타한 탓이다. 특히 스콜이 깐죽거리면서 ‘저 자식,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내가 얼마나 힘들게 찿아온 분인데 그걸 그냥 내쫒아......’ 등등의 말을 주절거리는데 일행들의 살기도 덩달아 짙어졌다. 스콜의 저 치졸한 행위는 복수심에서 우러나온 것일 터, 텐시는 무서우니 만만한 자신을 걸고 넘어져보자는 심보가 분명했다. 게다가 그는 스콜에게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잘못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정사정에 애걸복걸까지 하며 매달린 결과, 일단 노인을 의자에 앉히는 데는 성공했다. 노인은 거만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일행들을 돌아봤다. “그래, 무엇이 궁금한고?” 베르니스는 그 거만한 노인의 면상이 통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최대한 노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엘프의 숲에 들어가는 법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영감님?” “맨입으로?” 보통 깐깐한 노인네가 아니다. 아니, 사실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일행들이 노인에게 얼마를 쥐어줘야 하나 고심하고 있을 때, 베르니스가 바스락거리며 주머니에서 사탕을 하나 꺼냈다. 순간 노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나랑 농담 따먹기 하자는 건가?”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바보라서......” 당황한 텐시가 얼른 사과조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노인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런데 미안할 짓을 왜 한 거지? 처음부터 하지 않으면 안 돼?” 그때 베르니스가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몹시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사탕 두 개를 더 꺼내 손바닥위에 올리는 게 아닌가. 그것을 본 일행이 단체로 주먹을 움켜쥐고 베르니스의 뒤통수를 후려치려는 찰나, “오오, 이 정도는 되어야지. 후회하기 없기다!” 노인은 베르니스 손바닥에 올려져 있던 사탕을 빼앗듯 가로채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빨아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일행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자기들의 상식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득의양양한 노인의 표정이나 정말 아까워 죽겠다는 베르니스의 표정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일행들이 평소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상식이라는 것에 큰 혼란과 혼동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만만한 노인이 아니군.’ 베르니스랑 동급으로 비견될 만큼 바보가 또 있을 줄이야. 아무튼 일이 의외로 쉽게 풀리자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엘프의 숲에 관한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한참 왈가왈부 떠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죠셉이 입을 열었다. “거두절미하고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노인의 시선이 죠셉을 향했다. 사실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뭔가 교묘하게 핀트가 어긋나는 이야기들뿐이었고, 노인조차 말을 돌리거나 딴청을 피우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노인이 정말 에프의 숲에 관해 알고 있는 건지 모르고 있는 건지 헛갈릴 지경이었다. “물론, 알지.” “그렇다면 속 시원하게 알려주쇼.” 노인의 확언에 스콜이 거친 말투로 대꾸했다. 그러나 노인은 죠셉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엘프의 숲에 꼭 들어가야하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 누군가가 엘프의 숲에 있다는 건가? 아니면 그곳에 그의 흔적이 있다는 말인가?” “......” “내가 힘든 질문을 한 건가?”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 것까지야...... 내가 괜한 질문을 한 것이지. 그럼 원하는 질문이란 것이 엘프들과 만나는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하긴, 들어가는 것보다 엘프들을 만나는 것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일이긴 하지. 무작정 들어가면 죽기밖에 더하겠어? 클클클.” 노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체로도 공감이 가는 말이긴 했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만나서 대화를 나눠볼 방법이 있는 겁니까? 가능하다면 엘프의 숲을 방문하면 좋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 “저, 정말입니까?” “속고만 살았나?” “그런 건 아니지만 너무 기뻐서......” 그러는 죠셉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지금은 엘프를 만나기 힘들어도 과거에는 자주 볼 수가 있었지.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간간히 엘프들이 도시로 나왔으니 말이야.” 그런 사설을 듣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가는지 본론만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말에 노인이 기분이 상해 입을 다물어버리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가 좋았지. 예전에 엘프들이 마을에 나온 이유는 인간들의 생필품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물물교환하기 위해서였지. 그런데 십사 년 전 제2차제국대전이 발발하고 나서부터 그들이 두문불출하기 시작한 거야.” “그렇군요. 그런데 그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 건가요?” “가만히 있어봐.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잖아! 쯧, 젊은 것이 성질만 급해가지고.” “죄송합니다.” 죠셉이 즉각 고개를 숙였다. “여하튼 저쪽 엘프의 숲 남부로 가면 큰집이 한 채 서 있을 거야. 엘프들은 거래를 항상 엘프의 숲 어느 지점에서 했다고 하는데, 그 약속 장소를 알리는 연락망이 바로 그 집이라고 하더군.“ “십사 년 전부터 나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내가 그랬나? 나이를 많이 먹어선지 헛갈리는군, 클클클.” 상당히 미덥지 않은 노인의 말투였다. “그럼 그곳으로 가보면 답이 나올까요?” “어디를?” “엘프의 숲 남부에 집이 있다면서요?” “집? 우리 집은 저기 베니스 빵집 옆에 있는데?” “엥? 누가 영감님 댁이 어디냐고 물었습니까? 엘프의 숲과 연락한다는 그 집을 말한 거죠.” “아아, 그렇지. 맞아, 그럴 거야. 히히.” 그 후로도 몇 차례 질문을 던져보았으나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전혀 엉뚱한 동문서답이었다. 그렇듯 노인이 자꾸 엉뚱한 말을 늘어놓자, 그 책임은 고스란히 스콜이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일행들은 스콜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러다 노인이 더 이상 아는 것이 없어 저렇게 딴소리를 늘어놓는 거라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감님 고마웠습니다. 나중에 일이 잘되면 인사 한번 드리러오겠습니다.” “그래, 가봐.” “늦었으니 어서 들어가 쉬세요.” 스콜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블루들과 헤어진 노인은 한동안 멀뚱 멀뚱 허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마치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때마침 앞으로 예쁘장하게 단장한 여성이 도도한 걸음으로 지나 가자 뒤뚱거리며 다가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이보게, 혹시 엘프의 숲에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을 찾는 거 아닌가?” “뭐야, 이 늙은이는 ‘’‘’‘’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까. 흥! “아닌가? 아님 말구 ..... 거기, 이보게! 혹시 엘프의 숲에 가기 위해서 길잡이를 찾고 있지 않은가? 노인의 그 말에 푸근한 인상의 중년여인은 자리에 멈춰서 노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어머나 조나단 할아버님! 여기까지 무슨 일이세요?” “엘프의 숲으로 가려면.....” “이제 정의의 용사 놀이는 끝난 모양이죠? 오늘은 또 엘프의 숲 안내자 놀이인 것 같네요? 후훗, 여하튼 어서 집으로 가세요. 아저 씨랑 아주머니께서 걱정하시겠어요.“ 그러자 노인은 바닥에 주저않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잉잉잉잉.” “할아버님, 그렇게 주저앉으시면 어떻게 해요?” “좀 더 놀고 싶어! 난 집에 가기 싫다고, 잉잉잉.” 하는 짓이 치매 걸린 노인과 흡사했다. 노인이 징징거리자 중년여인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집에 가시면 제가 함께 놀아드릴게요. 그럼 됐죠?” “정말?” “그럼요, 후훗.” “약속!” “도장도 꾹!” “헤헤헤헤헤, 됐다. 이제 집에 가자. 집으로..... 히히.” 노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앞으로 뛰어 나가자, 여인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뒤따랐다. ‘저렇듯 체계적으로 미치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텐데..... 놀 때는 정상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으니 함부로 대하는 것도 어렵 고..... 어휴! 예전처럼 또 , 누군가 속아 당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네.‘ 여인의 그 걱정은 그대로 적중했다. 블루 일행은 노인의 말대로 엘프의 숲 남쪽으로 계속 걸어 나갔다. 얼마쯤 가자 노인이 말한 대로 집 한 채가 나타났다. “저 집인가?” “맞겠지?” “그런데 사람이 살긴 사는 거야? 난 개인적으로 저렇게 생긴 집 은 딱 질색인데.“ 일행들이 소감을 한마디씩 밝히고 마지막으로 겁에 질린 표정의 텐시가 의문을 제기 했는데, 그녀의 표현은 절대 과한 게 아니었다. 사람이 사는 집이 맞는지 절로 의문이 들 정도로 폐허였던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처럼 말하지 않았어?” 텐시가 묻자 베르니스가 대꾸했다. “아니면 또 어때? 아닐 수도 있는 거지. 말 그대로 거래할 때만 연락을 주고받던 곳일 수도 있잖아.“ “하긴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말이 다소 질서정연하지가 못하긴 해도, 멀쑥하게 생긴 노인이 농담 따먹기를 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말하는 폼이 약간 미심쩍긴 했어.” “혹시 멀쩡하게 미친 사람을 본 적 있어?” “본 적은 없지만, 횡설수설하는 게 꼭 치매 걸린 노인하고 비슷하 긴 했잖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에, 에이! 설마..... 그렇게 멀쩡하게 치매 걸린 사람이 어디 있 을라고.“ “하긴, 큭큭큭.” 둘이 두런거리며 떠들고 있을 때 죠셉이 나섰다. “여하튼 일단 들어가면 알 수 있겠죠. 들어가 봅시다.” “그럴까요?”일행은 줄지어 폐가처럼 허름한 집안으로 들어갔다. 끼익끼익 발을 뗄 때마다 나무로 된 바닥이 기분 나쁜 소음을 토하더니, 으지지직 쿵! 간간히 정체불명의 굉음까지 끼어들었다. 그때마다 텐시는 몸을 떨었다. 그 소음들이 베르니스나 스콜에 게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백만 비쯤 끔찍하게 다가온 탓이 다 외관은 또 어떤가? 누가 봐도 귀신이 나올법했다. 그런데 안쪽은 더 심했다. 집이라 말하기 힘들 만큼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이것을 집이 라 말하면 세상의 모든 집을 모독하는 것이 될 지경이었다. “정말 여기가 맞아?” “글쎄....” “그래도 집 비슷하게 생긴 것을 보면, 노인이 한말이 아주 허튼 소리는 아닌 것 같잖아? 안 그래?“ “무섭다, 그냥 나가자.” “텐시야, 무섭니? 왜 그렇게 떨어? 뭐가 무섭다고.” 그러자 스콜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평소에 사람이나 몬스터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잘도 베더니, 꼴에 어울리지 않게 귀신 타령이냐, 킥킥.“ ”스콜, 너 자다 칼침 맞고 싶지?“ “아니 전혀!” “그럼 입단속 잘해라.” 으득! 텐시의 이가는 소리에 스콜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한다면 하는 성격인 그녀의 눈빛이 살기를 머금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두두둑 “으악!” “꺄아아아아악..... 뭐,뭐야아아?” 갑자기 죠셉이 비명을 지르자 텐시가 덩달아 외쳤다. “박쥐야, 박쥐. 놀랄 거 없어!” 베르니스가 다독거리는 사이 앞서 비명을 지른 죠셉이 미안한 마음에 얼른 사과했다. “미안하오, 많이 놀랐소?” “아, 아녀요.” “어?텐시야, 시방 너 울고 있냐?” “아, 안 울어! 누가 운다고 그래?” 베르니스의 질문에 텐시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등을 돌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참지 못했다. 평소에 그토록 당찬 그녀의 전혀 다른 모습을 목격한 탓이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연락했다는 흔적조차 없는 것이..... 아무래도 너무 오래 돼서 남아 있지 않은 듯합니다.“ “어쩌면 연락한 적이 한번도 없었을 수도 있겠지.” 니콜라스의 말에 블루가 한마디 던지자, 니콜라스는 그 말에 동의 한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죠셉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이제 어쩌죠?” “한번 생각해보시구려.” 블루가 웃으며 대꾸하자, 죠셉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난 모르겠소!” “뭐, 그리 어렵게 생각하시오. 노인이 장난을 쳤거나 사실을 말 했지만 너무 오래된 일이라 연락망이 사라졌던지 둘 중 하나아니 겠소?“ “아니, 그건 아니오!” “무슨 말이오.” “그냥 포기할 수없다는 뜻이오.” “그럼 다른 대책이라도 있고?” “당장은 없지만 찾으면 있지 않겠소?” “그럼 찾아봅시다.” 블루의 말에 죠셉과 황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씀해 보시오.” “.....” “없는 것 같은데 내 생각을 들어보시겠소?” “이, 있소?” “물론 있습니다.” 죠셉이 묻자 블루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요?” “일단 가장 빠른 길로 엞의 숲까지 가는 거요?” “그 다음에는요?” “숲으로 들어가는 거지.” 순간 죠셉과 황태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정녕 그 수밖에 없는 것인가!’ 황태자는 속으로 거기에 따른 위험성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그가 엘프들에 대해서 들은 소문이나 이야기는 그다지 좋은 것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뭐가 걱정인가! 어차피 나라도 빼앗긴 내가 목숨하나에 연연하면서도 황태자란 말인가? 만일 지금 엘프의 숲에 들어가자 마자 죽는다면 그것도 나의 운명일 터. 내가 황태자로서 운명을 아직도 지니고 있다면 그리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나의 운명을 시험해보자!‘ 번쩍 블루는 황태자의 눈빛이 변하는 것에 예의주시했다. 황태자가 다시 한번 다짐을 마친 듯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블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결심을 한다는 건 좋은 것이다. 늘 자기 자신을 가두고 있던 허물을 벗는다는 말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들어가겠습니다.” “태,태자저하!” “좋은 자세야.” 황태자 입에서 말이 나옴과 동시에 죠셉과 블루의 입에서 동시에 말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뜻은 정반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죠셉은 불안과 분노가 반반씩 섞인 눈으로 블루를 쏘아보았다. 블루의 칭찬을 황태자가 반색하며 받아들인 탓이다. 블루는 죠셉의 매서운 눈빛에도 의연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죠셉이 말했다.] “위험하옵나이다, 전하. 늦더라도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하시는 것이 어떠하옵나이까?“ 그러나 황태자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경의 말은 이해하겠으나, 지금은 이 한 몸 보중할 때가 아니지 않소. 나는 블루 경의 말대로 직접 몸으로 부딪쳐야 할 때라 생각하 오만.“ “전하, 다시 한 번 생각하시는.....” “허허, 설마 나를 아직도 어린아이로 보는 게요?” 황태자가 노한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자 죠셉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옵니다.” “그럼 나를 어찌 생각하고 있단 말이오?” “소인은 다만.....” “시끄럽소! 아직 무슨 할말이 남아 있단 말이오.” “송구하옵나이다.” 죠셉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황태자는 죄책감이 앞섰다. 충심으로 걱정해준 것인데, 그것을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겉으로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이보다 더한 일도 많을 터. 예컨대, 훗날 비정하다 욕을 먹을 각오로 결단을 내려야할 때가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그때, 블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들어가시죠.” 끄덕 황태자 케산베르트는 망설임 없이 엘프의 숲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터벅터벅 바스락 인기척이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다. 그들이 누구냐 묻는다면 바보일 것이다. 이곳이 어디인가. 엘프의 숲이다. 그렇다면 그 안에 누가 살겟는가? 발록이 살겠는가, 드래곤이 살겠는가? 오크가 살겠는가 오거가 살겠는가? 만약 그들이 떼를 지어 산다면 이숲의 이름이 달라졌을 것이다. 잡것들의 숲! 만약 순수 발록들만이 산다면 발록의 숲이 되었을 것이고, 오크 들이 산다면 오크의 숲으로 불리었을 것이다. 각설하고, 블루가 엘프로 짐작되는 기척을 느낀 것은 사실 이 숲에 들어서기 전부터 였다. 하지만 저들이 공격의 의사를 보이지 않았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기분 좋게 적당히 들뜬 이 상태를 쓸데없는 걱정으로 잡치고 싶지 않앗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냥 유유히 넘어갈 수 있다면 그것을 택하고 싶었다. 저들이 저렇듯 감시하는 데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 적이든 아니든 어차피 때가 되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 분명한데 먼저 나설 이우가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들 수가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츰 포위망이 조금씩 좁혀오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었다. “대장!” 니콜라스의 저음에 블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신경한 블루의 표정에 니콜라스는 알아들었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굳이 블루가 나서지 않는데 그가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자신이 눈치 챈 것을 블루가 모르겠는가? 그럴 리는 없고 다만 블루가 지금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바스락 흠짓! 니콜라스는 살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호감도 아니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블루에게서는 그 어떤 표정변화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갈피를 잡기가 힘들었다. ‘대체 저들은 얼마나 따라올 생각이란 말인가? 우리가 자신들의 기척을 모fms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러나 사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어찌 모를 수가 있다는 말인가! 혹시..... 일부러 틈을 보이고 있는 건 아닐까?‘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오만 생각이 다 들었지만 내색할 수도 없었다. 블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스콜과 베르니스의 대화가 들려왔다. “대체 엘프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글세.” “손님이 왔으면 코빼기라도 내보여야 하는 거 아냐?” “그러게.” “검이나 활을 들고 설쳐댈 거라면 안 나오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게.” “혹시 지금 어디선가 활을 겨누고 있는 거 아냐?” “그러면 엘프 얼굴은 못 보더라도 가슴에 박힌 활 꼬리는 확인할 수 있겟군, 하하하.“ “에이, 설마.....푸하하하하!” “하하.....하.” “.....”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일행들 표정이 차츰 굳어갔다. 둘은 곧 입을 다물어버렸다. 자신들 대화가 주제에서 상당히 벗어 났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아니면 눈을 부라리는 텐시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쨌거나 블루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은 엘프들이 따라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그것으로 니콜라스는 저들과 자신의 능력 차이를 실감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들이 지금 엘프들의 사정거리 안에 놓여있음도 깨달았다. 결국 그들에게 공격할 마음이 있었다면 공격하고도 남았다는 뜻이고, 동시에 저들이 자신들을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 침입자라고 생각했다면.... 죽이려고 덤벼들었을 게 뻔한데 아직까지 별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럼 뭔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블루는.....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역시 알길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블루에 대해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겉으로는 늘 빈틈투성이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짜임새 있는 그물망이 처져 있는 사람. 그가 아는 블루는 그런 사람이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블루가 입술을 뒤틀며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배가 고프니 짜증이 나는군.” 그리고 침묵. “이거 모른 척해주는 것도 슬슬 지치는데? 슬슬 인내력에 한계가 온 건가?“ 다시 잠시 침묵. “그렇지 않나, 니콜라스?” “.....예? 아예!” 갑작스러운 블루의 물음에 그렇지 않아도 잔뜩 긴장하고 있던 니콜라스는 말을 더듬었다. 이처럼 돌발적으로 공격의사를 피력할 줄 몰랐던 탓이다. 게다가 왠지 무모해보였다. 제 아무리 이길 자신이 있다 해도, 적의 사정거리 안에서, 특히 활 처럼 장거리 무기를 겨누고 있을지 모르는 적들의 심기를 건드리다니! 불현듯 니콜라스는 블루의 머릿속을 해부해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에 사로잡혔다. 뇌를 꺼내 그 속에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블루의 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그 속을 파헤쳐보고 싶었다. 그러나 당장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만 했다. 스륵! 여차하면 뽑을 수 있게 니콜라스는 검 자루를 힘껏 감아쥔 채 약간 앞으로 당겼다. 순간, 검이 빛을 반사했다. 준비를 마친 니콜라스와 달리 아직 현재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일행들은, 블루가 내뱉은 말을 열심히 되뇌고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무슨 단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인데, 거기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결국 의구심이 담긴 눈을 블루와 니콜라스 쪽으로 돌렸다. 곧 의문은 풀렸다. 전신으로 느껴지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헉! 이게 뭐지?” “혹시 살기?” 살기도 보통 살기가 아니었다. 전신이 저릿저릿 저려울 정도였다. 일순 일행들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황태자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타닷타다닷! 척척! 위풍당당한 발자국소리가 귓바퀴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블루들을 향해 달려드는 수십의 엘프들! 그들이 블루들을 포위하듯 에워싸기까지는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였다. “뭐,뭐야?” 잠시 한눈팔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코앞에 반짝거리는 화살촉을 보게 된다면 그 기분은 어떠할까? 입술을 움찔거리던 베르니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젠장!대장하고 같이 다니면서 하루라도 멀쩡한 날을 바란 내가 잘못이지. 아주 엿 같구먼.“ 다들 그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불만스러운 듯 입가를 실룩거리는 블루. 그것도 잠시, 블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것은 주로 자신이 예상한 대로 일이 흘러갈 대 짓는 미소였다. 제7장 음모가 시작되다 “으음!” 클루토는 신음성을 발했다. 지금 그는 혼절한 상태에서 깨어나는 중이였다. “우웃!”정신을 차리자마자 엄청난 두통이 밀려왔다. 정수리보다 뒤통수 쪽에서 집중적으로 통증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머리를 강하게 가격당한 후유증 같았다. 통증은 끔찍했다. 혹시나 하고 더듬어 보니 역시 커다란 혹까지 나 있었다. 그런데 누가 응급조치를 해준 것일까? 혹 주변을 천이 감싸고 있었다. 뒤통수를 슬슬 문지르며 주변을 둘러보니, 일행들도 기절한 채 자신처럼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고개를 돌리던 클루토는 강렬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여염집인가?’ 얼굴을 찡그리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찌보면 고급 여관 같기도 했다. ㄴ 자형 구조에 군데군데 창이 있고, 양쪽으로 출입문이 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천천히 창가로 갔다. 걸음을 떼자 골이 울렸으나 걷는 데 크게 지장은 없었다. 창밖은 정원이었다. 향기로운 기화요초들이 오색찬란한 빛을 뽐내고 있는, 잘 손질된 정원 너머로 넓은 공터가 있었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던 그가 갑자기 코를 큼큼거렸다. 어디 방향제라도 놓아둔 것일까? 상큼하고 시원한 향기가 코끝에서 진동을 하고 있었다. 얼 그레이 향 같았다. 지그시 눈을 감고 그는 그 향기를 만끽했다. 그러다 목이 말라 무심코 침을 삼키다가 그만 사레가 걸리고 말았다. “쿨럭쿨럭!” 한차례 밭은기침을 쏟아낸 그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막 훔치려는데, “아, 클루토? 벌써 일어났는가?” 한 사내가 반갑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흠짓 놀란 클루토는 즉시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블루였다. 구석에 앉아 있었던 탓에 미처 그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구석진 창가에 앉아 이름 모를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가 얼 그레이 향이라고 생각한 것은 블루가 마시는 차에서 흘러나온 것 같았다. 니콜라스가 옆에 서서 찻잔이 빌 때마다 주전자를 기울여 차를 채워주고 있었다. 쪼르르르륵 블루의 차 수발을 드는 것 외에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니콜라스는 클루토를 보고도 어떤 반응도 내비치지 않았다. “흐흠.” 니콜라스가 따라준 차를 음미하며 블루는 창밖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때 클루토가 물었다. “대장, 여기가..... 어, 어디죠?‘ “여기? 훗, 어디일 것 같나?” 순간 클루토의 눈이 커졌다. “설마” “맞네. 엘프의 숲 안일세.” 블루의 눈길을 따라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클루토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그림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츄츄츄츄! 파다다닥! 맑은 소리로 긴 울음을 토한 파랑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수평선 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나무 위에 자리 잡은 집들이 숙과 한껏 어 우러져, 한 푝의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집은 이미 그 자체로 자연 이었다. 배경처럼 그 너머에서는 붉은 석양이 지고 있었다. 푸르른 나뭇잎 들은 석양과어울려 눈이 시린 색을 가슴에 남기고 있었다. “아아!” 클루토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어때, 멋지지? 나도 이런 풍경은, 이백 년을 살아왔음에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네.“ 블루의 말에 니콜라스와 클루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근심걱정이 부질없어 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뭔가 이상했다. ‘이백 년?’ 공교롭게 니콜라스와 클루토의 머릿속에 동시에 떠오른 그 의문. 그리고 블루를 다시 보니, 왠지 평소와는 좀 달라보였다. 뭔가 초탈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것이 평소에 본 블루가 아닌 것만 같았다. 그러나 클루토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일 수도 ] 있고, 뭔가 사정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그보다 하나를 더 생각했다. 블루의 힘! 웃기는 가설이지만, 만약에 블루가 정말로 이백 년을 산게 확실하다면 그가 지닌 상상을 초월하는 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아니, 이백 년을 산다고 모두가 그처럼 강해질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모르겠군.‘ 니콜라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빠르게 결론으로 접근해갔다. ‘그래, 인간이면 어떻고 다른 무엇이면 또 어떠한가?’ 블루가 스스로 말하기 전까지 의문을 품을 필요도 없고, 뒤를 캘 이유도 없었다. 블루의 정체가 뭐든, 그가 상실을 벗어난 해괴한 행동을 하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블루라는 사실이었다. 그가 섬기기로 한 주군이라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니콜라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한 늙은이가 안으로 들어섰다. 젊은 사내 둘이 뒤따르고 있었는데, 눈매가 매서운 것이 전사처럼 보였다. 이질적인 느낌이 신경에 거슬렸다. 단지 유독 큰 귀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말로만 듣던 엘프족이라는 사실이 색안경을 끼게 만드는 것 같았다. 꿀꺽! 클루토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어때, 쉴 만 한가?” 차를 마시는 블루에게 천천히 다가서며 노인이 물었다. 늙은이가 들어서는 순간 니콜라스와 클루토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고정되었지만, 블루는 여전히 차를 음미하며 창밖을 내 다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질문까지 무시하지는 않았다. “좋군.” “큭큭, 단지 그 한마디뿐인가?”“실은 아주 많이 좋아.” “큭,다행이군.” “별말씀을.” 블루의 반토막짜리 말투에 늙은이 뒤에 서 있던 젊은 엘프들이 두 주먹을 불끝 움켜쥐며 살기를 드러냈다. “아니, 저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딴 식으로 행동하는가!” 참지 못한 엘프가 허리에 매고 있던 검의 그립을 움켜잡았다. 스릉! 목상처럼 서 있던 니콜라스의 검이 뽑혀 나왔다. “큭큭큭! 아서게, 아서. 자네들은 뒤로 물러나 있게. 거기 자네, 어서 그 훙물스러운 녀석을 치우게. 개인적으로 별로 달갑지 않은 녀석이라서 말일세.“ 늙은 엘프의 말에 젊은 엘프들은 고개를 숙인채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검을 집어넣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검날을 더욱 치켜세웠다. 그러자 늙은 엘프는 니콜라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순간 니콜라스는 검을 고쳐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찬 탓이다. ‘내가 긴장을!’ 니몰라스는 도무지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그 앞에 서 있는 것은 그저 평범한, 늙은 엘프일 뿐이었다. 그가 말했다. “큭큭,그녀석 참.....날 아주 유쾌하게 만들어 주는군.” 그때 블루가 손을 슬쩍 치켜들었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 니콜라스는 긴장이 완화되는 것을 느꼈고, 동시에 검을 집어넣을수 있었다. “장난은 이제 그만하지.” “큭큭,그러지.” 블루는 그제야 늙은 엘프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늙은 엘프가 피식 웃으며 블루 앞자리에 앉았다. “넌 누구지?” “그것은 내가 먼저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야.” “그러나 내가 먼저 물었다!” 블루의 딱딱한 말투에도 늙은 엘프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미사메르티! 이곳의 장로다. 이제 됐냐? 자, 이제 내 차례다. 넌 누구냐?” “블루!” “이름을 물은 게 아님을 잘 알지 않느냐? 정녕 인간이냐?” “후후후.” 블루가 웃기 시작했다. “왜 웃지?” “크흐흐흐, 그럼 내가 뭘로 보인단 말이지?” “혹시 위대한 존재가 아닐까 잠시 의심해 보았네.” “그런데?” “결론을 내렸지.” “그래? 그 결론이 어떤 것인지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군.” “어려운 일도 아니네. 아니라고 생각을 굳혔으니까 말이네.” “하지만 내가 정말 드래곤일 수도 있지 않은가/” 블루의 말에 미사메르티 장로는 상대방의 눈을 지긋한 눈빛으로 주시했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실수하고 있는 것일 테지만, 아니라고 확신하네.” “어째서?” “드래곤이라는 도마뱀 녀석들은.....너처럼 선한 눈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지.” 뭔가 많은 감정이 담긴 말투였다. 블루는 그 감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자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건가?그렇군,푸흐흐흐흐.” “그런 거지, 큭큭큭.” 한참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짓던 블루와 미사메르티 장로. 한순간 웃음이 뚝 그쳤다. 블루가 물었다. “그래,용건이 뭔가?” “용건?“ 블루의 질문에 미사메르티 장로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것은 내가 물어야할 것 같은데?” “그래?” “뭔가 중요한 용건이 있었으니까 우리 아이들을 그토록 넝마로 만들었을 게 아닌가.“ “죽이지는 않았네.” “하지만 살았다고 말하기도 힘들지” 서로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나저나 차향이 참 좋군.” “내가 직접 재배했지.” “대댠하군.” “그리 대단할 것도 없네. 자네의 주먹질에 쓰러진 엘프가 사십 명에 육박한다는 사실보다 놀랄 만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한순간에 말이지.“ “그리 대단할 것도 없네. 잔뜩 기대하고 있던 엘프들이 그렇게 약골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 방에 뻗어버릴 줄이야. 놀라 그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네.“ ”큭큭큭.“ 미사메르티가 웃음을 흘리긴 했으나,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말장난을 꽤나 좋아하는 군.” “아니, 자네를 좋아하네.” “이런 늙은이가 뭐가 좋다고 그러나? 젊고 쌩쌩한 놈을 찾아보시게.” “취향 탓인데 어쩌겠는가? “크크크, 아직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가 아닌 모양이군. 내 다음에 오지.” “나한테 말할 필요 없네.” “음?” “난 상관이 없거든.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부탁” 때문이었어.“ “부탁?” “내 직업을 말하지 않았나?” “용병?” “그래, 난 용병이지.” “흐음.” 미사메르티의 눈 꼬리가 가늘게 좁혀졌다. 블루의 속을 속 시원히 들여다보고 싶은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은 탓이다. “그래, 용병이라..... 한 제국의 재상급 능력을 지닌 자네가 용병 이라고? 좋아, 그것은 그렇다 치고.... 그럼 자네를 사주한 그 씹어 먹을 자식은 누구지?“ “저기 입구 쪽에 누워 있네.” “그게 누군데?” “입구 쪽 침대에 누워 단잠을 자고 있는 소년과 죠셉이라고 겉늙어 보이는 녀석이라네.“ “저기 저 둘인가?” “맞네.” “흠, 눈에 익은 얼굴이군.” “죠셉?” “아니, 늙은이는 모르겠고, 저 소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어디서 말인가?” “글쎄, 딱히 장소가 기억나지 않는군. 하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서 말이야.“ “그럼, 그게 언제지?” “대략 삼백여 년 전쯤?” “이제 보니 상당히 재미없는 개그를 좋아하는....” 비아냥거리던 블루가 말끝을 흐렸다. 미사메르티의 눈에서 진실을 읽어낸 탓이다. 미사메르티가 말했다. “뭐, 그렇다고 치고..... 녀석이 깨어날 때쯤 다시 오지.” 블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확인한 미사메르티는 곧 니콜라스에게 눈길을 돌렸다. “수하인가?” 끄덕 “잘 키웠군. 마스터의 능력을 지닌 수하라..... 큭큭, 자네는 정 말 보면 볼수록 재미있어. 자 가네. 내일 아침에 보세.“ 블루의 시선은 이미 창밖을 향해 있었다. 유슬라니안 제국과 크로타니안 왕국의 국경지대.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며칠간 하늘은 폭풍 전야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토록 맑기만 하던 하늘에 먹장구름이 가득했다. 얼마 전 실종사건이 발발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유슬라니안 제국의 케르나 백장령이었기에 그 불안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해가 지기가 무섭게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다니지 않았다. 자신이 실종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탓이다. 석양이 지는 그 시각. 그 케르나 백작령에서 얼마간 떨어진 이름 없는 산맥에서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커흑! 뭐, 뭐냐? 어찌하여 나를....” “곧 죽을 놈이 궁금한 것도 참 많군. 굳이 알고 싶다면 못 알려줄 이유도 없지. 간단해. 넌 봐서는 안 될 것을 봤거든.“ “그게 전부인가?” 퍽! “커흑!”“그래, 그것이 네가 죽어야할 이유다.” 고통을 호소하던 사내의 복부를 냅다 걷어찬 흑의인의 입가에 잔 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피를 토하는 것으로 보아, 사내는 내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그런데 피가 붉은색이 아니라 검은색이다! 독이라도 흡입한 것인가? “흐흐흐, 벌레같이 꿐틀거리는 모습이란.” “그만하고 어서 죽여버려. 시간을 더 끌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 쩌려고 그래?“ ”조금만 기다려. 재밌잖아, 흐흐흐.“ 흑의인은 모두 여섯. 그들 발아래서 배를 움켜쥔 채 나뒹구는 사내는 몹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런데 숨을 내쉴 때마다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큭륵!크르르륵.....켁!” “큭큭, 나를 재미있게 해준 대가로 최대한 고통 없이 죽여주마.” 그렇게 말하며 흑의인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순간 바닥을 뒹굴던 사내가 한 움큼의 검은 피를 토해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피로 얼룩진 바닥이 검은 연기를 내며 타 들어가는 게 아닌가. ‘젠장, 아주 지독한 독이군!’ 아이린 공작의 셋째 아들 슈리오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현재 모종의 임무를 띠고 큰누나인 유나를 만나기 위해, 유슬라니안 제국의 국경지대인 케르나 백작령을 향하던 중이었다. 그러다......마스터급이라 독에 쉽게 당할 리가 없는데 공기 중에 사용되는 미분에 당하고 말았다. 미분은 보통 강한 독성을 지니기 어려운데 이처럼 지독한 독이라니! 필시 새로 개량된 독일 것이다. 마나를 운용하여 독과 죽어 있는 피를 토해낸 덕에 마나의 흐름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러자 고통은 현저히 감소했다. “이, 이 녀석 뭐지? 설마 독을 토해낸 건가?” “설마!” “아무튼 기분 나쁜 녀석..... 죽어라!” 흑의인은 치켜든 검을 힘껏 내리쳤다. 슈리오는 상체를 틀어 가까스로 그것을 피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상의를 자르며 스쳐간 검! 헛손질을 한 흑의인이 씩씩거리며 달려 나가 슈리오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찼다. 퍼억! “크흑!” 가슴을 제대로 얻어맞은 슈리오가 비명을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팟! 그러나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날린 다음 교묘하게 상체를 틀어 도망치기 시작 했다. “아니 저것이 잔꾀를 부려?” “미친놈아, 이게 다 살기 위한 절략이다! 입은 삐뚤어졌을망정 말은 제대로 해라!“ ” 저 새끼가 도망치면서도 이빨을 까?“ “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빨리 잡아!” “아, 그렇지!” 그 말과 동시에 흑의인들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 푸른 피부의 각질이 터지면서 속살이 삐져나왔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옷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그 안에 푸른 각질, 아니 날카로운 비닐을 뒤덮고 있는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르!” ‘크르르르르?’ 슈리오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괴성에 흠칫 몸을 떨었다. ‘뭐, 뭐지?’ 절대 사람이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거기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사릴 만큼 강맹한 저 기운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독에 당해 어느 정도 내상을 입긴 했지만, 그는 저들과 싸워 자신이 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었던 터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번거로운 일을 피하고자 등을 돌린 것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등 뒤에서 느껴지는 저 기운은..... 그가 본 실력을 드러낸다 해도 만만치 않아보였다. 어웨어급도 안 되던 녀석들이 어떻게 순식간에 상급 익스퍼트의 기운을 뿜어낼 수 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실 그는 체술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다. 당연히 형제 중에서 가장 민첩하고 빨랐다. 그런데 뒤에서 쫓아오는....저것은? “헉! 괴물이다아아!”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한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생긴 몰골을 보는 순간 맥이 풀린 탓이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녹색 괴물한테 덜미를 잡힐 뻔했다. “히힉!” 그는 앞만 보고 미친 듯 달렸다. 괴물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크르르르륵.....변신만은.....크르.....쓰지 않으려 했는데.... .잘생긴 얼굴이.....크를.....망가지는 것이 싫어서..... 그런데 나를 이렇게 만들.....크륵, 다니.....죽어랏!“ “변신?그리고 잘 생겼다고?” 슈와와와와! 등 뒤에서 날아오는 날카로운 기운. “으윽!” 가까스로 피했다. 퍼버벙! 슈리오는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을 스치고 지나간 기운에 바닥이 폭탄이라도 맞은 듯 터져나갔기 때문이다. 물론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여섯 괴물의 공격이 하나로 연결되어 그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 괴물들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들이란 말인가!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든 알려야만 할 텐데.‘ 날카로운 권풍이 날아드는 순간, 죽음의 예감을 느끼고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순간 측면에서 날아오는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콰광! 기운과 기운이 맞부딪치며 발생한 엄청난 폭발에 정신을 차린 슈리오는 눈을 번쩍 떴다. ‘누구지?’ 누군가 그를 도와준 게 분명했다. 시선을 돌려 뒤를 바라보니, 괴물이 비명, 아니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꾸에에에에에에엑!” 그런데 녀석의 팔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주먹이 있어야할 자리에 주먹이 없었다. 그 대신 깨끗이 잘린 날카로운 단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곳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자, 괴물이 펄쩍펄쩍 뛰며 고통을 호소했다. 슈리오는 빠르게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익숙한 기운과 눈에 익은 용모를 지닌 사람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찰나, 괴물이 덤벼들었다. 슈리오는 괴물을 걷어찬 후, 얼른 놈의 공격방위에서 멀찌감치 벗어났다. 그때 누군가 날아와 그 옆에 나란히 섰다. “슈리오, 저것들은 뭐냐!” “헛! 유나 누님! 이곳에는 어떻게?” “네가 너무 늦게 와서 마중을 나오는데 이곳에서 파공음이 들리지 뭐냐? 그래서 혹시나 하고 달려와 봤지.“ 감미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의 누나, 유나였다. 지금 슈리오에게는 그녀가 천상의 선녀보다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 평소에 마녀라 놀렸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유나! 아이린 공작의 큰 딸로, 가냘픈 여인의 몸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마스터를 넘어 중급을 바라보는 극강의 고수. 그러나 그녀의 가느 다란 팔다리와 허리를 보면 그녀 몸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그저 사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부단히 연습하는 노력파였다. 그러나 체질적으로 근육이 만들어지지않았다. 어떤 여인네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지만, 그뿐이었다. 힘은 근육에서 나온다.] 마나는 힘을 지원해줄 뿐, 무시무시한 근력을 선사해주지는 않 는다. 하지만 우나는, 그녀의 천재적인 인성과 노력을 통해 자신 의 핸디캡을 극복해냈다. 예건대, 근육을 최대한 압축해 한 번에 터뜨려 순간적인 타격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자신의 단점을 커버 한 것이다. 좀 전에 괴물한테 사용한 것도 바로 그 기술이었다. “위험해요, 어서 피해요!” “훗! 이미 늦은 것 같은데.”. “젠장!” 괴물은 앞뒤 상황을 가리지 않고 몸을 던져왔다. 유나는 그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 움켜쥐고 있던 누먹을 일직선으로 뻗었다. 순간 유나의 주먹이 황금빛 광채를 머금었다. ‘헉, 유나 누님이 어떻게 저 기술을.....’ 피스톨 봄버! 그것은 아이린 공작의 절기라고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고, 나중에는 왠지 억울했다.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질투할 때가 아니라 전투에 집중할 때! 유나의 주먹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순간, 손끝에서 강맹한 기운이 터져나가 순식간에 괴물의 몸을 강타함과 동시에 폭발했다. 콰과광!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결코 공성전용 대포알에 뒤지지 않았다. 유나의 기술에 당한 괴물이 날아가 반대편 부러진 나뭇가지에 꽂혔다. 푸욱! 한참 꿈틀거리던 괴물은 이내 알몸의 사내로 변했다. 순간 유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머!어머!어머!어머!” 유나의 손끝은 축 늘어진 사내의 사타구니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이 부끄러워할 상황이야? 어서 튀어!” “어머머머.” “에잇,젠장!” 괴물들이 동료의 죽음에 광분한 듯 포효했다. 순간 슈리오는 유나의 손목을 덥석 잡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어머머!” “젠장, 그놈의 ‘어머머’ 좀 그만해!” “어머나,어머나.” “정신 사나워 죽겠구먼! 남자 거시기 처음 봐?” “응.” “젠장, 그 나이가 되도록 그것도 한 번 못보고 뭐했어? 나중에 많이 보여줄 테니 지금은 어서 달리기나 해!“ 다급함에 내뱉은 소리는 엄청난 충격이 되어 되돌아왔다. 퍼억!“ “커헉?” 뒤통수가 화끈했다. “이게 할 소리가 있고, 못할 소리가 있지.....뭐라고?” 유나의 부릅뜬 눈을 보고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슈리오가 투덜거렸다. “알았으니까 어서 뛰기나 해. 저 녀석들 건드려봤자 긁어 부스럼 이라니까?“ “너, 나중에 봐!” 그제야 슈리오는 조금 편해졌다. 유나가 스스로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면서 그녀는 자신이 왜 도망쳐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왜지? 솔직히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왜 도망치는 거지?” “몰라서 묻수? 헥헥, 지금 저 녀석들하고 싸우면.....헥헥, 어찌 될지 모르고 하는 소리요?“ “모르니까 묻지!” “그놈의 고함은.....헥헥. 제발 그만 좀 빽빽거리쇼, 헥헥. 남은 숨쉬기도 힘들어 죽겠는데....아무튼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는 알 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저놈들 실력이 마스터급이란 사실. 뭔가 모종의 사건을 벌이는 것 같은데, 저놈들만 있을 것 같소? 저놈들뿐이라면 이길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다른 동료들이 몰려오면 어찌 되겠소, 헥헥헥헥헥!“ 화가 난 나머지 말을 몰아서 내뱉었고, 그러자 순간적으로 호흡 관란 증상이 나타나 숨을 헐떡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슈리오의 말은 그럴듯했다. 이기는 건 둘째치고 만일 일이 틀어질 경우, 그들의 정체까지 밝혀 지게 될지도 몰랐다. 비밀임무를 띠고 있는 자신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적의 첩보망에 걸려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잠시 ‘싸울까 말까?’ 고민하던 유나는 싸우지 않기로 마을을 정하고 달리기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녀석들이 쏘아대는 강기 공격을 피하면서 달리다 보니, 그냥 달리는 것보다 체력소모가 엄청났다. 그 반면 놈들은 어찌된 노릇인지 그렇게 강기를 남발하고도 여전히 지친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마치, 무한정 마나를 몸에 지니고 있는 것처럼. 도망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이렇듯 도망치는 것보다 죽어라 싸우는 것이 자신한테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유나는 망설임 없이 다가서서는, 달리면서 조금씩 모은 기를 날렸다. 퍼버버벙! 유나조차 강력한 폭발에 몸이 잠시 뒤쳐졌다. ‘이제 죽었거나 적어도 큰 부상을 입었겠지?’ 그러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괴물들이 폭발로 일어난 먼지구름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크르르르르르.....크와앙! “모두.....크르륵! 죽여.....버리겠.....다!” 그 말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달빛에 드러난 괴물을 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부르르 전신에 오한이 일었다. 별의별 괴물을 다 겪어봤지만, 저렇듯 흉물 스러운 녀석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싸운다면 모를까. 저렇듯 흉물스러운 녀석을 마주보면서 싸우기엔 그의 담력이 너무 약했다. 게다가 회심의 기습공격에서조차 유유히 빠져나오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결국 그녀는 비겁하게 자신만 남겨두고 ‘옳다구나’ 내빼고 있는 슈리오를 향해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꽁무니 빠지게 도망쳤다. “야! 누님 같으면 멈추고 싶겠수!” “나도 다 잘되자고 한 거잖아....헉!” “하지만 잘됐으면 모르지만 잘되지가 않았잖수?” “이런 쓰벌.” 놈들이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며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거기다 강기다발도 한층 늘어났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으악! 저것들이 왜 저래? 미쳤나, 헉헉헉!” “누님이 건들였잖수.” “난 뭐 이렇게.....헉헉....될줄 알았나?” “신경 끄고 미친 듯이 뛰어요, 헥헥.” “알아! 젠장.....이게 무슨 생고생이냐, 헉헉헉.” 어느덧 눈앞에 마을이 나타났다. 아직은 멀긴 했지만, 그래도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마을경비초소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과연 예상대로 금세 경비초소가 나왔다. 초소 앞에서 서성거리던 경비들을 향해 유나와 슈리오는 고함을 질렀다. “여보세요. 헬프 미!” “살려주세요오오!” “응?” 경비와 지휘관 하나가 멀리서 달려오는 유나와 슈리오를 발견하고 목을 길게 뺐다. 상황이 아직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찰대원은 모두 네 명인데, 모두 보통 이상은 되어보였다. 근래 좋지 못한 소문들 때문에 영지 안팎의 공기가 뒤숭숭한 터라 특별히 경비를 강화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어서 도와 달라고요오!” “크와아아앙!” 도와달라는 비명과 함께 들려온 몬스터의 괴성에 순찰대원들은 저마다 검을 뽑아들었다. 그때, 강기다발의 굵은 줄기가 그들이 서 있는 땅에 내리꽂혔다. 콰광! 먼지가 걷히자 깊게 파인 땅이 보였다. 순찰대원들은 놀란 눈으로 강기다발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인간 형상을 한 괴물 다섯이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경비대원들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자신들을 공격한 괴물들한테 몸을 돌리고 방어태세를 갖췄다. “뭐야, 저 빌어먹게 생긴 것들은?” 지휘관이 슈리오와 유나를 슬쩍 보고 물었다. “이번 사건의 자세한 경위는 잠시 후에 묻겠다. 자, 한 명씩 맡아라! 저놈은 내가 맡겠다.“ “옛!” 지휘관은 가장 강해 보이는 녀석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쿠긍! 기운이 맞부딪친 듯 공기가 진동했다. 그 사이 다른 대원들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하나씩 상대를 찾아 몸을 날렸다. 물론 유나와 슈리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숫자가 동등하군. 한번 재미나게 놀아볼까, 으득!”쌓인 것이 많은 유나였다. 쉬쉿 퍼억! 파바밧! 녀석들이 징그럽다는 생각은 분노로 인해 이미 우주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자 말 그대로 여유 있게 괴물을 가지고 놀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힘은 상위 익스퍼트를 상회할 정도로 고강한데, 움직임이 너무 둔했다. 둔하다는 말은 느리다는 것이 아니다. 손속을 나눠보니 공격 속도는 그런대로 빨랐다. 하지만 체게적이지가 못했다. 자신의 빠른 속도에 스스로 당황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였다. ‘이상하군. 이것은 어웨어급의 실력도 안 되는 녀석이 마스터의 힘을 지닌 것 같잖아. 어떻게 된 거지? 강맹한 공격을 가볍게 흘려주는 것만으로도 허점이 뻔히 드러났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곳까지 도망친 이유를 찾지 못할 만큼 녀석들은 허접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맷집이 아니었다면 벌써 바닥을 기었을 것이다. 잠시 후, 녀석은 처음 자신이 죽인 녀석처럼 알몸의 사내로 변해 숨이 끝ㅎ겼다. 자신의 상대를 처리하고 주변을 돌아보는데, 슈리오도 전투를 마친 뒤 뭔가를 고심하는 눈치였다. 기사단들도 거의 상황을 종료하는 분위기였다. 대장으로 보이는 기사는 중급 익스퍼트, 수하들 셋은 상급 어웨어를 상회하는 실력 을 보였다. 솔직히 이런 작은 영지에 있기에는 아까운 실력들이었다. 괴물들의 겉모습이 주는 위압감과 상급 익스퍼트에 가까운 파괴력을 무시하고, 본신의 실력을 알아내 차분하게 대응하는 모습은 유나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전투가 끝나는 즉시, 저들의 대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을 정도었다. 수하들을 저 정도로 길러낸 숨은 공신이 누구인지도 궁금했고, 그 정도의 사내라고 한다면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을 테니 가능하다면 손속도 나눠보고 싶기도 했다. 회의실로 보이는 곳에 넓은 탁자를 중심으로 열네 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침음을 삼키고 있었다. 그때 상석에 앉아 있던 중년인이 윤기가 흐르는 갈색 머리 위에 올려져 있는 왕관을 깔끔하게 갈무리하고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가 바로 헤르마티아 대륙의 신성으로 떠오르는 유슬라니안 제국의 황제인 라스넬 폰 하트레스였다. “귀공들을 다시 보니 반갑구려. 아이린 공작은 바쁘신가 봅니다. 상당히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주 뵐 수 있겠지요? 하하.“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아이린이 고개르? 숙이며 말했다. 그러자 황제는 신기한 듯 아이린 공작을 바라보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아이린 공작의 젊어진 모습을 오늘에야 처음 목격한 탓이다.] 하루아침에 이십여 년씩이나 젊어졌다는 소문이 이곳 유슬라니안 대륙을 떠들썩하게 달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던 차에 이렇듯 직접 목도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한동안 아이린을 훔쳐보던 황제는 짐짓 헛기침을 하며 좌중을 둘러봤다. 그가 말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요즘 들어 크로타니안 왕국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소문을 들었소. 그리고 유슬라니안 국경지대의 우리 백성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도 들리더군요. 별로 좋지 못한 예감이 듭니다.“ 금발의 푸근한 인상을 지닌 노인이 나섰다. 현 유슬라니안의 정보부를 운영하고 있는 카르몽 후작이었다. 워낙 유명해 헤르마티아 대륙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의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폐하의 그 예감이 맞을 것입니다. 크로타니안 왕국은 과거부터 반인륜적인 행위를 행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말을 돌릴 필요 없소. 옳습니다. 카르몽 후작 말은 그들이 대륙볍으로 금지한 인체실험을 위해 우리 백성들을 납치했을거란 말입니까?“ 황제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카르몽이 고개를 숙이며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우리 정보원들이 밝혀낸 바로는 크로타니안 왕국에 이번에 신설도어진 생체기갑부대라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집단이 있다고 합니다. 스스로 생체조직을 변화해 변신한다는데,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어웨어급 기사들이 변신하면 마스터급에 가까운 힘을 낸다는 겁니다.“ 그 말에 짧은 수염을 기르고, 얼굴에 훙터를 자랑하는 근육질의 벨리어스 장군이 대뜸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그러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전투력은 익스퍼트급이라 하더이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지 않소. 뭔가 대책이 시급하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보부는 아직도 그 소문으로 들리는 생체기갑부댄지 뭔지의 증거를 잡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카르몽 후작, 이 일이 대체 어떻게 된 거요? 정말이지 답 답하구려!“ 그 말을 카르몽 후작이 받았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밖에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구려. 벨리어스 장군, 정말 미안하오.“ “젠장!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으니.” “조금만 참아봅시다. 충분한 증거가 잡힐 때를.....조만간 긴장이 풀릴 겁니다. 그러면 틈이 생기겠지요.“ 카르몽 후작의 말에 벨리어스 장군이 투덜거리듯 거칠게 말문을 열었다. “젠장 크로타니안 왕국 따윈 그냥 확 밀어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답답해 미치겠습니다!“ “아마도 크로타니안은 그것을 원하고 있을 겁니다.” 카르몽 후작의 말에 황제가 질문을 던졌다. “그건 무슨 말이오?”“지금 저희가 치고 들어가면 헤르마틴 제국과 타르나토스 제국의 미친 광신도 새끼들에게 ‘우리를 잡아 잡수’ 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실 크로타니안 왕국이 저렇듯 더러운 술수를 쓰는 것도 세계정복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복숩니다.” “복수?”“예, 지금으로선 그 이유가 자장 큰다고 사료됩니다.”“설마! 육십 여년 전의 그 일로 아직까지 앙심을 품고 있단 말인가?”“확언할 수 없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는?”“지금까지 그들이 우리한테 보여준 행위들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해도 확실한 증거가 없지 않소?”“그래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크로타니안 왕국에서 심증이 있음에도 그 어떤 흔적도 찾아내지 못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 가정해본 것입니다. 그러자 가능성이 있는 답안이 몇 개 만들어지더군요.“”답안이라.....뭐지?“”우선 크로타니안 왕국에서 일부러 헛소문을 흘렸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헛소문을 흘렸다?” “예, 그러니까 우리가 노발대발하도록 일부러 납치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명분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전쟁을 일으킨다면, 나라를 빼앗기 위한 침략전쟁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 경우 대륙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막는다는 명분을 제공해 줌으로써 헤르마틴 제국과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개입을 정당화 시켜주는 셈이죠. 개미집 앞에 설탕가루를 뿌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흐음.” “크로타니안 왕국의 노림수가 거기에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자기들 힘만으로는 우리에게 복수할 수 없으니, 타국의 힘을 빌려보자는 의도일 가능성이 아주 농후합니다.“ 순간 회의장의 분위기가 싸늘해지며 모두가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각자 깨달은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벨리어스 장군이 침묵을 깨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카르몽 후작이 웃으며 대꾸했다. “지금으로서는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기다리자니! 어찌 그런 소인배 같은 행동을 우리 대유슬라니안 제국이 할 수 있단 말이오!“ “아직 마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화를 내시더라도 마저 들으시고 내십시오. 사실 우리 정보조원들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린 공작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의아한 눈으로 아이린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이린은 과묵한 표정으로 계속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뿐 이었다. 벨리어스 장군이 물었다. “무슨 도움을 말이오?” 아이린을 보며 던진 질문이었으나 아이린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벨리어스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 지휘력과 무위에서 아이린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탓이다. 그러나 불괘한 기색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아이린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이곳에서 황제 말고 아이린에게 좋은 감정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황제의 신임은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그렇듯 황제의 마음을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린은 더 왕따 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 자기 세력을 구축하지 않는 영원한 아웃사이더! 그것이 아이린의 초상이었다. 야심도 없고 대의도 없이 엄청난 파워를 지닌 탓에 우군은 생기지 않고 모두가 적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적이니 불평불만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야심이 있으면 줄을 잘 서기 위해 애쓸 텐데, 애초에 그런 생각을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행동을 보면 조국 유슬라니안을 위해 한목숨 내놓겠다는 듯한 모습이니, 그들의 편협한 눈에는 아이린 공작이 권력을 독식 하기 위한 위선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조보조의 조원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졋습니다. 그것도 어느 지점을 중심으로 말이죠. 그곳에 뭔가 잇는 게 확실한데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린 대공에게 부탁한 것이지요.“ 솔직히 말이 정보부일 뿐, 유슬라니안 제국 내에서 정보부의 힘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이다. 과거 정보부 가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을 때, 자칫 황권이 붕괴될 뻔한 사건 이 발생한 이후 내려진 조치였다. 정보의 중요성 때문에 여전히 지원은 아끼지 않았지만, 그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전횡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해놓았다. 그 바람에 직접 뛰어다니며 구걸 아닌 구걸로 힘을 지원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래, 아이린 대공께서 어떤 도움을 주셨는지 몹시도 궁금하구려.“ ‘아이린이 도와줘봤자’라는 듯 비꼬는 말투엿으나, 카르몽 후작은 특유의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기꺼이 대답해주었다. “기대 이상으로 엄청난 지원을 해주셨지요. 바로 슈리오님과 유나님을 지원해 주셨으니까요.“ 순간, 황제를 뺀 나머지 귀족들은 하나같이 경악 어린 눈으로 아이린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 중에 슈리오와 유나를 지원해 주었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동시에 일급으로 분류될 만큼 중요한 비밀을 카르몽 후작이 선뜻 자신들에게 밝힌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순간, 좌중을 쭉 훑어보던 아이린 공작의 눈길이 딱 멈췄다. 동시에 그의 눈빛이 반짝였는데,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제8장 환광술사 존 라이튼 그가 잠에서 끼어난 것은 불과 몇 분전이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부엉이가 자장가를 부르듯 조용히 노래하고 있고, 반주라도 하듯 울어대는 개구리 때문에 가까스로 뜬 눈이 다시 스르르 잠길 지경이었다. 자욱이 깔린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가 어지럽게 춤을 추고 있고, 집안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지고 있었기에 그다지 어두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여긴 어디지? 설마 저승은 아니겠지?’ 황태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자신의 옆에서 자고 있는 죠셉을 발견하고든 반가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낯선 곳에 혼자 내버려진다는 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죠셉을 내려다보았다. ‘죠셉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가슴으로 무릎을 끌어안은 채 그 사이에 고개를 묻었다. 부엉부엉 ‘시간이 흐르는가? 정말 흐르고 있는가? 차라리, 차라리 시간이 이대로 멈추어버렸으면..... 황태자가 느끼는 시간은 너무 느렸다. 그것은 슬로우 모드로 지나가는 화면 속의 시계추 같았다. 고개를 들고 창밖을 보니 달빛을 머금은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잎들조차 느리게 보였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자신이 시간이 되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덧없이 그는 흘러갔다. 그사이 그의 망막에 맺힌 세상은.....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그림 같은 세상 속에 그는 없었다. 그는 다소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언제 이렇듯 사객에 빠져본 적이 있는가? 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물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많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많았지만 시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생각한다 해서 달라지지도 않거니와, 태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늘 뭔가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 미래를 말해주는 것! 비록 오늘은 없지만 내일은 있을 거라며,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 주는 무엇이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밝아오는, 지극히 평범한 현상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로 둔갑한다. 바로 그 밤과 아침 사이에는 시간이 있다. 현재라는 이름의 시간. 그는 지금 밤과 아침 사이에서, 현재라는 시간을 떠올리고 있다. 아니, 그가 떠올리는 것은 미래였다.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갖고 있던 것을 빼앗겼다. 그것을 다시 되찾아야만 아침이 밝아올 것이기 때문에, 그는 지금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가 황제에게 물었다. “아바마마, 사람은 어째서 죽는 거죠?” 황제는 인자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지.” “마법으로 시간을 막을 수는 없나요?” “글쎄다.....그런데 왜 막으려는 거지?”“영원히 사는 것이 좋은 거 아닌가요?” 그 말에 황제가 미소를 머금었다. “그건 그렇지가 않단다.” “어째서죠?” “태자, 아니 케산아, 지금부터 이아비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려무나.” “예, 아바마마.” “우선 사는 것을 이야기 하자면 시간이라는 것부터 설명해야 하는데, 그 시간은 시발이 언제인지 또 마지막이 언제인지 우리 인간 으로서는 알지도 못하고 설명할 수도 없단다. 다만 우리가 임의적으로 어떤 시점을 기준삼아 ‘그것이 최초다’ 또는‘ 마지막이다’ 편의상 구분 지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흐르는 강물에 점을 찍는 것과 같다. 그렇듯 우리 인간에게 시간이란, 기껏 과거 몇 천년 안팎과 현재, 그리고 얼마간의 미래에 해당하는 협소한 개념일 뿐이지. 우리의 한평생이라고 해봤자 손바닥으로 강물을 한 움큼 떠올렸 을 때, 그 물이 새어나가 바닥이 나는 정도겠지. 그러나 시간은 무한하다. 우리는 그 무한한 시간 속에서 한 번 반짝하고 사라지는 존재다. 아무리 다투고 왈가왈부해봤자 시간이란 거대한 존재의 앞에서 인간은 티끌조차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시간을 막아내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그렇다면 오래 사는 것보다 그 한정되어진 시간동안 얼마나 가치 있게 살았는가가 중요하지 않겠니?“ 오래 전 일인데도, 그 기억은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문득 황태자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황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해준 말을 이해할 수 있어서라기보다, 그 말이 막막하기 짝이 없는 현 상황에 얼마간 숨통을 트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걸터앉았다.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질 듯이 반짝였다. 반짝이며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있었다. ‘내가 여기 있어! 나를 봐줘.’ ‘나도 봐줘! 내가 여기서 이렇게 빛을 밝히고 있잖아.’ ‘너희보다 내가 더 밝아!’ ‘아냐, 내가 더 밝아!’ 피식 황태자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름답다. 하늘이 이렇게 넓었던가? 너무 넓어 그의 좁은 가슴으로는 모두 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창문 안쪽에서 보는 하늘과 창밖에서 보는 하늘의 차이점이었다. 늘 명령하기만 하던 자신의 자리에서는 세상이 한주먹에 쥐어질 정도로 좁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했던가? ‘아바마마! 태자는.....태자는.....흐흑.’ 눈물이 손등으로 떨어졌다. 자신의 미약한 힘이 너무도 애처롭게 느껴졌다. 얼마 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황궁을 다시 찾는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나약한 생각을 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것이 현실일지도 몰랐다. “하아.” 억지로 뜬 피로한 눈을 살며시 감아 내리는 순간, 황태자의 입에 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 가슴 깊은 곳에서 들리는 음성이 있었다. 생각했으면 움직여라! 마음을 먹었으면 그것을 쟁취하라! 그것은 전 헤르마틴의 황제인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되뇌던 말이 었다. 두런두런 황태자는 시끄러운 소음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다시 잠이 들었나 보다. 억겁처럼 무겁게 짓누르던 시간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진 것을 깨닫는 순간 어찌된 노릇인지 마음이 씁쓸했다. 그때 베르니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태자저하께서도 일어났네? 잘 잤어?” ‘응?’ 고개를 돌리니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혼자 늦잠을 잔 것인가?’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텐시가 베르니스를 툭툭 치며 눈치를 줬다. “왜?” “휴, 눈치를 기대한 내가 바보지. 야야, 너 태자저하께 무슨 말버릇이 그래?“ “내가 뭘 어쨌는데? 어이, 태자저하! 내가 뭐 잘못했어?”“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듯 뻔뻔하게 대꾸하는 베르니스를 향해 눈을 흘기는 것으로 텐시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죠셉이 베르니스를 향해 호통을 쳤다. “저, 저 발칙한 녀석 같으니라고! 지금 어느 안전에서 망발이냐, 망발이!“ “쳇!죠셉, 제발 속 좁게 굴지 말라고. 친하게 지내보자는데, 너무 하는 거 아냐?“ ”소, 속 좁게 굴지 말라고? 커,커헉!“ 얼마나 분노했으면 얼굴에 있는 핏대가 죄 일어섰다. 붉다 못해 푸르게 변한 얼굴로 그가 소리쳤다. “네 이 녀석!오늘 너 죽고 나 죽자!” 그러나 죠셉과 다른 일행들의 답답한 심정과 달리 황태자는 꾸밈없는 베르니스의 모습에서 불안감이 씻은 듯 사라지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는 죠셉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오자, 호들갑스럽게 손을 내저었다. “하하, 괜찮습니다. 어차피 생명의 은인들이시잖아요. 그리고 지금의 전 황태자라는 직위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굳이 군신의 예를 차릴 필요가 없지요.“ “하오나 태자저하!” 순간, 죠셉의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토록 나약한 말씀을....크흑!“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그런데 그때, 죠셉의 입장에서는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녀석이 다시 나서는 것이었다. 물론 그 찢어 죽일 녀석이란 베르니스를 지칭하는 전용인칭대명사였다. “하하하하, 맞아 맞아! 세상 딱딱하게 살 필요 없지. 태자저하, 아주 마음에 들어. 늘 그렇게 오픈 마인드로 살라고. 그럼 풀어지지 않는 일이 없을 거야.“ ”으이그, 이 웬수!“ “아얏 !왜 때려?” “태자저하, 이 미친놈을 용서하세요. 애가 착하긴 한데, 약간 맛이 가서 저러는 것이니.....“”스콜, 네 녀석은 얼마나 잘났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너보다 백만 배쯤 잘났다, 왜?” “저 자식이 정말......억!” 퍽퍽!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구타음이 울려 퍼졌다. 참다못해 텐시가 나선 것이다. “둘 다 조용히 못해! 아침부터 떠들고 지랄들이야? 죽고 싶어? 앙?” 텐시한테 한 방씩 얻어맞은 베르니스와 스콜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 버릇 개 못준다고 결국 투덜거리다 한 대 더 얻어맞고 결국 밖으로 끌려 나갔다. 황당한 얼굴로 그것을 지켜보는 황태자와 죠셉. 곧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구타음과 비명의 절묘한 이중주가 시작되었다. 퍽퍽! “윽! 사, 살려줘! 다시는 안 그럴게!” “나도 잘못했어! 제발 자비를......컥!” “시끄러, 이 잡것들아! 그렇지 않아도 이런 날을 기다렸는데, 오늘 어디 한번 죽어봐라!” “여보, 마누라! 나야, 나 당신 남편...... 컥!” “너 같은 마편 둔 적 없어!” “나, 나 모르겠어? 나야, 스콜! 네 친구...... 꾸어어어얶!” “너 같은 친구 둔 기억 없어.” “에이 나도 모르겠다!” “베르니스! 너 이리 못 와? 감히 어딜 도망가!” 다다다닷! 퍼억! “꾸에엑!” 쿠다당탕! 그리고도 한동안 떠들썩한 소음은 끊이지 않았다. 죠셉은 혀를 차며 둘의 명복을 빌었고, 클루토는 그리될 줄 알았다는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며 오늘 사용해야할 것 같은 마법들을 골라 미리 메모라이즈하기 시작했다. 그때, 황태자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 ‘아아, 태자저화의 저 시원한 웃음을 얼마 만에 들어 보는가. 제발 앞으로도 지금처럼 늘 행복한 웃음만 지으시기를.......’ 죠셉은 황태자의 웃음을 되찿아준, 밖에서는 여전히 맞고 있는 두 사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아하하하하하하!” “다들 일어났나 보군.” 노인의 목소리에 다들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스콜과 베르니스는 나무를 뒤져 겨우 발견한 새 집에서 꺼낸 새알로, 얻어맞아 퍼렇게 멍든 부위를 열심히 문지르며 텐시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지금 나서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묻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텐시느 그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스콜과 베르니스가 눈치를 살피다 제풀에 지쳐 고개 숙이는 모습을 목격한 황태자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슬쩍 내뱉고 말았다. “푸웃!” 그러나 곧 그는 헛기침을 하며 상황을 무마하기에 이르렀다. “흠흠!” 그때 베르니스가 기어이 한마디 했다. “노인장은 뉘슈?” “허어, 노인장이라...... 저자도 자네 수한가?” 그 물음에 블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같이 개성이 넘치는군, 후후. 지루하진 않겠어.” “지루할 겨를이 없지.” 피식 “하긴, 그럴 것 같군.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숲 전체를 울리던 돼지 먹따는 비명의 주범이 저 녀석이었나? 톤이 비슷하군.” “바로 맞췄네. 역시 큰 퀴를 폼으로 달고 다니지는 않나보군.” “큭큭, 자네 실력이 조금만 낮았더라도 그 오만방자함 때문에 벌써 짐승의 먹이로 전략했을 걸세.” “그러나 뭐 실력이 되니까 상관없지. 그런데 무슨 볼일인가?” “오늘 아침에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 그랬나?” “이런, 쯧쯧. 아직 한창인 것 같은데 벌써부터 치매증세라니, 안타깝구먼.” “역시 나이 처먹은 만큼 혓바닥 돌리는 솜씨도 일품이라니까.” “자네 역시 젊은 나이에 대단해. 벌써 불에 타죽어도 주둥이는 안 타고 계속 나불거릴 경지에 오르다니.” 둘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악담을 퍼부으며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친분을 과시했다. “잘 때 조심하게.” “등이 과녁이 되지 않기를 빌겠네.” 더 이상의 설전은 없었다. 블루가 시선을 창밖으로 돌림과 동시에 장로가 시선을 일행들에게 돌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소개가 늦었군. 나는 이곳 엘프의 숲 열두 장로중 다섯 번째 자리에 있는 미사메르티라고 하네.” 정중한 말투에 근엄한 표정이었다. 그 얼굴과 눈에 담긴 유현한 깊이에 매혹되어버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보여준 경망스럽기 짝이 없는 행동이 겹쳐지면서 혼란스러웠다. 이미 보여줄 거 다 보여주곤 이제 와서 무게라니욧! 백만 광년은 늦었다구욧! 그렇다고 그것을 내색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블루도 나서지 않았다. 단지 조용히 마시던 차를 ‘후르르르륵’ 소리 내며 들이켰을 뿐이었다. ‘으윽, 저 녀석이!“ 별 뜻 없는 듯 보였지만 과연 그럴까? 그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말로 떠드는 것보다 기분이 더 상한 미사메르티였다. 그래서 한마디 하고 싶었으나 꾹 참고 근엄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황태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것을 본 미사메르티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자네로군.” 황태자는 깜짝 놀랐다. 마치 자신을 알고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기 때문이다. “저, 저를 아십니까?” 미사메르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블루와 니콜라스, 클루토의 눈가에 의혹의 빛이 어렸다. “인간이 이곳까지 찿아올 이유가 있다면, 나의 벗 존 라이튼과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가볍게 떠보는 그 말에 모두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블루만은 돌변한 상황 속에서 멀뚱멀뚱 미사메르티를 바라 볼 뿐이었다. 존 라이튼! 대륙에서 그 이름이 주는 파장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대마법사, 존 라이튼! 마법사 서열을 나누는 것은 쉽다. 몇 서클까지 마스터했는지만 알면 된다. 기본적으로 황궁마법사는 5서클이고, 7서클 마스터 정도면 어느 나라를 가든 공작의 직위를 얻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제는 7서클을 마스터한 마법사가 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하다는 점이다. 결국 6서클 마스터 정도가 되면 대마법사 반열에 오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존 라이튼은 달랐다. 그는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그는 평범한 대마법사가 아니었다. 그에겐 그를 위한 위대한 수식어가 따로 존재했다. 환광술사(煥光術士)! 환광술사, 존 라이튼! 그가 그 수식어를 얻게 된 것은 그가 헤르마틴 대강당에 모인 마법사들 앞에서 마법을 시전하며 했던 말 때문이었다. 나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마법의 근원인 환광술이다. 존 라이튼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그는 헤르마틴 제국의 황실마법사 보조에 불과했다. 아니,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행적은 모호하다. 언제부터 그가 황실마법사 보조노릇을 했는지, 아니 그가 정말 황실에 있었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미친 드래곤 한 마리가 헤르마틴을 침범한 것이 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계기가 되었다.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든 레드 드래곤이 헤르마틴시 상공을 배회하며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을 때, 하늘로 유유히 날아오르는 마법사가 있었으니..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황실마법사 보조로 시약이나 만들던 존라이튼이라는 중년인 이었다. 마법사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능력이 출중하지 않으면 보조조차 맡지 못하니, 나이 환갑인 늙은이가 보조노릇을 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하늘을 날아 드래곤 코앞까지 날아간 황실마법사 보조 존 라이튼! 그는 드래곤과 몇 마디 나누는 것 같더니, 생사대적을 만난 듯 전 투를 시작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어찌 서클의 개념을 넘어버린 드래곤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했다. 고정관념을 깨버리고 나아가 드래곤과 싸워 당당히 물리쳤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니 안 믿을 수도 없었다. 그 후 존 라이튼은 공작에 올라섰고, 동시에 헤르마틴의 황실수석 마법사로 임명되었다. 그로 인해 헤르마틴은 물론 인접한 타국에서 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대단위 조직을 투입했음에도 끝내 그의 과거지사를 어느 것 하나 밝혀내지 못했다. 그는 말 그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간이었다. “조,존 라이튼!” 클루토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서, 설마 십여 년 전에 죽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환광술사 존 라이튼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경악에 가까운, 아니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미사메르티에게 질문을 던지는 클루토. “그럼 그 말고 존 라이튼이 또 있단 말인가?” 다소 애매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존 라이튼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환광술사라 불리는 대마법사 존 라이튼밖에 없었다. 존 라이튼을 경외한 나머지 그와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을 본떠 자식 에게 물려주는 일이 비일비재한 평민들에게 지극히 예외적인 일 이었다. “그런데 죽어? 누가 죽었단 말이냐?” 미사메르티의 생뚱맞은 질문에 텐시가 혼잣말로 지껄이듯 대꾸했다. “환광술사 존 라이튼님.....” 그러자 미사메르티는 혀를 차며 구시렁거렸다. “거참, 존 라이튼이라는 사람이 또 있나? 환광술사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친구 같은데, 죽었다면 다른 사람 같기도 하고.“ 정말 헛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사메르티를 보던 황태자가 무거운 입을 열었는데, 떨리는 음성이었다. “존 라이튼님이 정말 이곳에 계시는군요?”이 감격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황태자의 눈가에서 눈물이 맺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얼빠진 얼굴로 황태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죠셉조차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 황태자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은 용암처럼 꿇고 있었다. ‘감축드립니다, 감축드립니다! 선황이시여, 저희 태자저하를 돌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눈물이 흘러 옷섶을 축축히 적시고 있었지만 죠셉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니, 그치지 못했다고 하는 게 옳았다. 돌아가셨다고 알려진 전 대륙 마법사의 영원한 스승 존 라이튼님이 살아 계시다는 말을 선황께 직접 전해 듣고도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죽으려 하시던 태자저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에 내색하지 않았다. 설사 존 라이튼님이 살아 계시지 않는다 해도 그를 찾아가는 동안은 희망이 남아 있을 테니, 함부로 자해하지 않을 거라 믿으며 선황의 뜻도 그러하리라 짐작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것이 진실이었다니! 이제야 신하된 자로서 선황의 말을 믿지 못한 불충을 깨닫고 죠셉은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그 때, 태자가 손을 뻗어 자신의 손을 움켜쥐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사실 그가 황태자를 따라나선 이유는 황가에 대한 충성보다 측은지심에 가까웠다. 물론 지금의 슬픔만 익Usof 수 있다면, 언젠가 재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이 손은 뭔가? 자신이 지금까지 태자를 돌봐왔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손을 움켜쥔 저 작은 손은.....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이지 않는가! “흠흠!” 그때 들려온 헛기침소리에 죠셉은 눈물을 거두었다. “......" 죠셉이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그 헛기침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미사메르티였다. 그렇게 침묵이 깨지고 블루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데 존 라이튼이 누구야?” 궁금해 미치겠다는 듯한 말투. “에엑?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과민반응에 블루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미 블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텐시가 입을 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분이라고 말씀드리면 이해하시겠어요?” 텐시의 대답에 블루의 표정이 희한하게 변해갔다. 마치 기쁜 표정과 난처한 표정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가장 강하다고?” “네.” “세상에서?” “네에!” “그것을 너희가 어떻게 알지?” “.......” 그쯤 되자 그들 표정에 답답함이 어렸다. 어찌 설명할지 막막했던 탓이다. 그 사이 죠셉과 황태자의 모습은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빠르게 감정을 갈무리한 죠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분이 드래곤과 단독으로 싸워 이기셨다면 이해하시겠습니까?” “흠!” 블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것을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죠셉과 황태자, 미사메르티 장로가 거의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인간이 드래곤을 이겼다는 말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니콜라스나 베르니스들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질 블루의 반응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호, 대단하군. 그렇게 강하다 이 말이지!” 잠시 굳어졌던 블루의 얼굴에 어느새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후우,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그것은 호승심이었다. 잠시 상기되었던 블루의 얼굴에는 그 절대강자 존 라이튼과 싸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용솟음쳤다. 존 라이튼이 드래곤과 싸워 이겼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그의 가슴은 뛰고 있었던 것이다. 블루의 호승심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이미 자신들이 직접 목격하지 않았던가. 블루 역시 이미 드래곤과 맞붙은 적이 있었다. 드래곤의 힘을 직접 체험한 것과 이야기만으로 들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베르니스들과 달리 죠셉이나 황태자의 반응은 분노에 가까웠다. 블루의 한마디 때문이다. “그 늙은이는 지금 어디 있는가? 어서 한번 보고 싶다!” 그의 표정에 드러난 순수한 투기! 순간 죠셉과 황태자는 움찔했다. 블루 일행과 죠셉과 황태자의 마음을 두루 이해하고 있는 클루토로서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참을 수 없었다. 블루의 입장에서 블루의 지금 행동은 죽어 마땅한 것이었다. “저희가 아무리 블루 경에게 도움을 얻은 처지이긴 하지만, 존 라이튼님께 함부로 발언하시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죠셉의 단호한 목소리에 블루가 돌아봤다. “그래?” 피식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으윽“ “얼울하면 나를 이겨. 그럼 무릎끓고 빌 수도 있으니까.” 죠셉은 이를 갈았다. 황태자도 분노했으나 블루들에게 자존심 강한 어린아이 취급밖에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나서지 않았다. 나서 봤자 본전도 찾지 못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때 미사메르티가 입을 열었다. “뭐, 태우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네, 인간들의 호승심은 익히 알고 있으니 말일세, 하지만 우선 급한 볼일부터 먼저 마친 다음에 해야 하지 않겠나?” 블루는 그 말에 순순히 수긍했다. “그런데 문제는 말이지. 지금 존 라이튼 그 친구가 볼일이 있다고 잠시 엘프의 숲 밖에 나갔다는 사실이지.” “그럼 언제 돌아오시죠?” “이틀 전에 나갔으니 오후쯤에는 돌아올 거네, 그럼 그때까지 기다려보게나. 돌아오면 연락해주지.” 제9장 존라이튼, 오해하다 일행은 존 라이튼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젊은 엘프를 따라 어딘가로 향했다. 사박사박 낙엽 밟히는 소음이 기분 좋게 고막을 자극했다. 얼마쯤 걷자 어느 집 앞에 미사메프티 장로와 한 늙은이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순가, 어째서일까? 황태자와 죠셉이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일행들이 의문을 품기도 전에 미사메르티 장로 옆에 서 있던 늙은이가 뒤뚱뒤뚱 다가왔다. 다가와 황태자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노인의 목소리가 엘프의 숲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태자저하, 소신을 용서하소서.” 노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탓일까? 황태자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저, 정말로 살아 있었군요, 존 라이튼 경.” “저하!” “그만 일어나시구려. 본인은 라이튼 경의 예를 받을 만한 처지가 아니오.” 그러나 존 라이튼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호통치듯 덧붙였다. “저하께서는 그런 말씀 마소서! 장차 이 대륙의 패자가 되어 대륙을 호령해야할 분이 어찌 그처럼 나약한 발언을 입에 담으십니까? 그래서는 아니 됩니다!” “미안하오. 다신 그런 말을 입에 담지 않을 터이니, 경도 어서 일어나시오. 몸 둘 바를 모르겠소다,” “망극하여이다.” 깊숙이 머리를 조아린 존 라이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행은 그제야 그를 볼 수 있었는데, 그는 마법사라 생각하기 힘들 만큼 기골이 장대했다. 이 미터 남짓 되어 보이는 키에 횐 수염과 긴 머리가 어우러져 흡사 동화 속에 나오는 인물처럼 보였다, 거기에 엘프들과 달리 흰 로브를 걸치고 있는데, 그것이 신비롭게 어우러져 그의 품격을 더욱 올려주는 것 같았다. “오, 죠셉이군. 하하, 자네가 이렇게 늙다니 세월이 무상하구먼.” “라이튼님께선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군요.” “ 변하지 않았겠나? 요즘은 온몸이 안 쑤신 곳이 없는데...... 아무튼 반갑네. 그리고 고마워. 저하를 이렇듯 모시고 와줘서 정말 고맙네.”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하나도 안 변했군.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여전하이.”“.......” “그런데 이들은 누구이옵니까, 전하?” “아차, 이쪽은 우리를 이곳까지 안전하게 호위해준 기가들이네.” 홯태자는 블루 일행을 용병이라 하지 않고 기사라 밝혔다. 그런 식으로 은연중에 느끼고 있던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다. 물론 존 라이튼도 어렵지 않게 그것을 알았다. 그들의 행색이 기사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근히 신경쓰이는 인물이 있긴 했다. 그리고 너무 엉뚱해서 눈이 가는 사람도 있었다. ‘황태자저하 안전인데도 불구하고, 나무에 기댄 채 뺀질거리는 저 녀석은 대체 뭐지?’ “태자저하를 안전하게 호위해준 점 감사하오.”“아,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전실적인 인물을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클루토가 말을 차분하게 말했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미 죽었다고 알려진 전설적인 존재를 직접 만나게 되었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있으랴! 가문의 영광이었다. 깍듯한 반응에 존라이튼은 웃음으로 회답했다. 순간, 잔뜩 긴장하고 있던 베르니스들의 입가에도 웃음이 매달렸다. 전설과의 만남!그들에게만 주어진 그 특혜에 우쫄해진 것이다. “그동안 다들 수고가 많았소.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이제부터 이곳에서 편히 쉬길 바라겠소.”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린 존 라이튼이 태자를 자기 집 쪽으로 이끌려는 찰나, 후우우웅! 엄청난 기세가 등 귀에서 몰려왔다. ‘우웃!’ 난폭하지만 질서정연한 마나의 흐름! ‘서,설마!’ 재빨리 등을 도린 존 라이튼은 서둘러 서둘러 그 기세의 중심부를 바라보았다, 굵은 타프레 나무에 기대 피식 웃고 있는 사내! 바로 그였다, 존 라이튼은 다소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떳다. 가장 형편 없어보이던 사내가 내뿜은 기운치고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설마 지금까지 자신을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놀라운 일이었다. 솔직히 및을 수 없었다. 숨긴 것을 둘째치고, 그가 뿜어낸 고강한 기운이 문제였다. 그것은 결코 인간이 뿜어낼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미사메르티 장로도 같은 생각이었다. 설마 설마 했지만, 저 정도였다니!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와 언쟁을 계속해오면서도 은근히 깔보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을 깨끗이 버려야할 것만 같았다. ‘인간 중에 강한 정도가 아니라, 중간계를 통틀어 드래곤을 제외하고 저처럼 강한 기운을 가진 존재가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나나 존 라이튼보다 강할지도...... 아니, 아직은 너무 성급하고 섣부른 판단일 수도 이어.’ “넌 누구냐?” 존 라이튼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긴장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인간이 아닐 거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무슨 목적으로 태자저하의 신변에 다가선 것이냐?” 존 라이튼의 차가운 목소리에 블부 일행은 크게 당황했다. 그러나 블루는 웃고 있었다. 비웃음이었다. “목적이라니? 난 돈을 받고 일하는 용병이다. 참고로, 의뢰를 무사히 마치고 할 일을 또 하나 만들어볼까 궁리하는 중이다.” “일을 만들 궁리를 하고 있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 존 라이튼의 표정을 보니, 그가 십분 오해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간 간지러운 입을 간신히 참고 있던 베르니스가 나서 해명하려고 했으나, 블루의 기세에 짓눌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블루가 일부러 못하게 막은 것이다. “별 건 아니다! 단지 너와 한번 물어보고 싶은 것뿐이니까,” "나와 붙겠다고?" "그래!" "어째서?""듣자니까, 네가 드래곤과 싸워 이겼다며? 나도 마찬가지였거든...... 솔직히 거저먹기여서 너무 싱거웠지만." 흠칫!! 거저먹기였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이 드래곤을 상대로 거져 먹기 였다는 말을 할 수가 없기 떄문이다. “드래곤을 이겼다고?” “왜? 못 믿겠어? 아, 이걸 보면 믿으려나?” 블루는 품에서 뭔가 꺼내 보여주었다. “서, 설마 그것은!” “역시 알아보는군. 드래곤 몸속에서 나온 내단인데, 너희들은 이것을...... 어떻게 부르더라? 드래곤......드래곤.......” “드래곤 하트!” 입을 모아 외친 엘프들이 수군거렸다. 눈앞의 저 사내가 바로 며칠 전에 자신들 동료들을 모조리 때려눕힌 자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대 그것도 모자라 드래곤 슬래이어라니! 그것은 경악이었다 그 반응을 즐기듯 블루가 이죽거렸다. “맞다, 드래곤 하트! 큭큭큭, 그렇게 부른다고 했지.” “......” “이제 믿겠지? 그럼 한판 붙어볼까?” 명백한 시비문자요, 결투신정이었다. 그리고 저렇게 대놓고 덤비는데 피할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싸움이 익숙지 않아서 웬만하면 피하는 사람이지만, 이번만은 어쩔 수가 없겠군.” “잘 생각했어, 흐흐.” “자네가 무슨 생각으로 태자저하 옆에 붙어 있었는지 해명을 들으려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인 셈이자.“ “그건 이미 말한 것으로 아는데 믿지 않는군. 흐흐, 그것은 알아서 생각하시고. 자, 그럼 시작해볼까? 그래도 나보단 선배 드래곤 슬레이어이신데 예의상 검이라도 들어줘야겠지?” 그러면서 블루는 드래곤과의 격전 이후 처음으로 아슈의 그립을 움켜줘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뽑았다. 팟! 순간 차가운 검날이 매혹적인 검광을 흩뿌렸다. 그것을 본 존 라이튼의 눈이 찢어질 즉 커졌다. 믿을 수 없는 것 , 아니 보지 말았어야할 석,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말았다는 감정이 뒤섞인 복합적인 표정이었다. 그러나 블루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거의 동시에 아슈의 목소리가 귓전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휴우, 이게 얼마만이야. 난 나를 잊은 줄 알았잖아. “인사는 나중에 하지.” -젠장! 주인 잘못 만난 게 죄지. 하지만 한마디만 할게. 제발 앞으로 자조 좀 꺼내다오. 이안에 있으면 얼마나 답답하고 심심한 줄 알아? “알았다.” 그제야 아슈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난 준비가 되었는데 슬슬 시작해볼까?” "그, 그것은......혹시!" “혹시 뭐?” “네가 들고 있는 것이.......” “내가 들고 있는 이게 뭐?” “뭐야? 신경전이야?” “그것이 아니라.......” “신경정도 아니라면서 자꾸 이렇게 번거롭게 할 것 없잖아.” 존 라이튼은 입 안에서 뱅뱅 도는 단어를 내뱉지 못하고 자꾸 주춤거렸다. 두려웠던 것이다.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 진실이라면.......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검신! 그 검신에 새겨진 저 눈에 익은 문양! 그리고 그립하단에 있는 불꽃의 음영! 그 모든 것에 딱 부합되는 검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었다. 그가 아는 한 그것은, 마검 아스타로트! ‘그 저주 받은 물건이 정녕 세상에 다시 나왔단 말인가!’ 믿고 싶지 않았다.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가 드래곤 레어에서 발견한 마법서적에서 본 그것과 너무나 흡사했다. ‘아냐, 아닐 것이다. 아니, 절대 아니어야 한다! 아니다. 아니다. 저것은 마검 아스타로트가 아니다. 저주받은 검이 아니다, 아니다.’ 몇 차례에 걸친 자기최면 끝에 그는 겨우 용기를 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그 검.......” “뭐야, 또야? 그냥 속 시원하게 물어라. 다 말해줄게.” “아니지?” “젠장, 이게 그렇게까지 신경 쓰이는 거야?” “.......” "별거 아냐. 내가 잡은 드래곤 레어에서 발견한 건데 꽤 쓸만하더라고. 말까지 하는데, 들고 다니면 심심하진 않겠더라니까." "설마 그 검의 이름이 아......스타로트?" "어라, 아슈를 알아?" 순간 전신에 소름이 확 돋았다. "그런데 이 검이 그렇게 유명한가?" 블루의 마지막 말은 존 라이튼에게서 살기를 이끌어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가 말했다. “네가 가진 힘의 정체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 미무의 힘이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너의 기세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에게 걸린 이상 내 몸이 박살나는 한이 있다 해도 더 이상 그것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만들겠다!” 동시에, 우오오오옹! 존라이튼의 몸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쏯아져 나왔다. “응?“ 존 라이튼의 발언과 동시에 블루의 입에서 흘러나온 당혹스러운 외침은, 곷 T늘한 미소로 탈바꿈했다. 씨익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검을 곧추 세운 블루는 가볍게 발을 들어 바닥을 굴렀다.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존 라이튼을 향해 날아갔다. 슈우욱!존 라이튼은 훌쩍 뛰어 그 공격을 가볍게 피한 다음 손끝을 블루에게 행한다. “크림슨 파이어!” 존 라이튼의 외침과 함께 도마뱀 혓바닥처럼 불꽃이 날름 거리는 둥근 불의 공이 블루에게 날아왔다. “헷, 이정도야......” 드레곤의 헬 파이어 공격도 막아낸 그가 아닌가.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읍!” 콰과과광! 한순간 거대한 폭발이 블루의 몸을 휘감았다. 한 템포 빨랐다. 미처 무슨 수를 쓰기도 전에, 무방비상태에서 터지고 만 것이다. 게다가 헬파이어보다 몇 배나 강한 위력이었다. 그로 인해 반경 삼십 미터 안에 있는 타프레 나무 윗대가리가 모두 사라졌으며, 동시에 거대한 빛기둥이 만들어졌다. 고오오오오! 파슝! 빛기둥은 순식간에 구름을 뚫고 우주 저 멀리로 꼬리를 감췄다. 만약에 대지를 향해 쏘았다면 웬만한 섬 하난는 지도에서 꺠끗이 지워버릴 수 있을 만큼 지독한 파괴력이었다. “하아하아......죽은 건가?” 존 라이튼이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면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꽤 지치긴 했지만 만족스러웠다. 기습이 성공한 탓이다. 만약에 탐색전을 거쳐, 회심의 일격을 교환하며 치고받는 고전적인 수순을 그대로 답습했다면 아직도 승패가 갈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된다면 체력적인 부담이 큼 그가 당하고 말았을지도 몰랐다. 따라서, 흑자들은 그가 비겁했다고 손가락질할지라도 모르겠지만, 탐색하듯 눈을 속인 다음 회심의 일격으로 승부를 결정지은 그의 판단이 옳았다. 그가 흡족한 웃음을 짓고 있을 때, 누군가 그의 목을 노리고 날아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전에 그가 해치운 마검 아스타로트의 주인에 앞서 주목했던 사내였다. 막을 수 없었다. ‘저 사내를 생각하지 못하다니! 그러나 난 내 할일을 다했다. 악마가 세상에 혈겁을 일으키기 전에 막았으니, 황태자저하께는 불충스러운 말이겠으나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눈을 돌리자 경악한 눈으로 살기를 내뿜고 있는 블루 일행이 한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는 오해라고 외치고 싶었다. 단지 단신들 일행인 척 행세하고 있던 악마를 죽인 것뿐이라고 소리 높여 말하고 싶은 강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것은 입안에서 맴돌 뿐.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바람 가르는 소리 때문이었다. 검이 날아드는 소리!그것을 느끼는 순간, 전신의 힘이 빠져나갔다. 잠시 방어막을 사용할까도 생각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무리하게 기술을 쓴 탓에 마나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심한 결과였다. ‘애환이 많은 삶이었으나, 미련은 없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슈우우! 바로 그때, “니콜라스!” 하늘에서 들려오는 친숙한 목소리에 니콜라스의 신형이 멈췄다. “서,설마!” “그녀석의 상대는 나다.” “주군, 살아 계셨군요!” “블루대장!” “대장!”니콜라스의 감격적인 음성에 이어 베르니스들의 목소리가 차례로 엘프의 숲에 메아리쳤다. 연기에 가려 아직 보이지 않지만 블루는 분명 살아 있었다. 그 사실을 안 존 라이튼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가 모든 지식을 집대성해서 만든 최고의 공격력을 지닌 환광술이었다. 그런데, 살아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귓가에 들린 것이 환청이기를 빌었다. 그러면서 자욱한 멎지 속을 뚫어질 듯이 바라보았다. 돌풍에 먼지구름이 걷혔다. 그리고 일렁이는 흐릿한 인간형태 그림자..... 블루가 틀림없었다. 주변에 방어벽처럼 푸른 막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검에서 흘러나온 오러 블레이드의 변형처럼 보였다. 그 기운이 블루를 보호해준 것 같았다. “큭큭큭큭.” 음산한 블루의 웃음소리. “역시 드래곤을 잡을 만큼 강했어. 아주 짜릿하더군. 본좌의 검막으로 간신히 막았으니 말 다했지.” 먼지와 연기가 완전히 걷힌 허공에 비릿한 웃음을 빼물고 서 있는 블루. “어, 어떻게?”‘마검아스타로트의 힘을 나로서도 누를 수 없단 말인가!“ 암담한 현실에 현기증이 났다. “그렇게 놀랄 필요 없어! 이번 공격은 상당히 아팠으니까. 그럼 선공은 네가 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가마. 슬슬 본게임을 즐겨봐야지?“ 팟! 블루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시공을 초월한 듯 눈 깜짝할 사이에 존 라이튼의 코앞으로 이동한 블루는 말없이 웃고 있었다. 그러나 존 라이튼은 니콜라스의 공격을 받을 때처럼 어영부영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충분히 대비한 탓이다. “레이 윙!” 그가 허공에 떠오른 순간, 그가 있던 자리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광! 바닥이 움푹 파이며 조금 전까지 수풀이 우거졌던 작은 숲이 먼지로 변해 흩어졌다. 그것을 본 존 라이튼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블루가 일부러 그가 피할 시간을 주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블루의 얼굴에 떠오른 비릿한 미소가 그것을 증명했다. “큭큭, 너무 쉽게 당하면 안 되지. 날 너무 실망시키지 말게. 최소한 내가 당한 만큼은 갚을 수 있도록 해줘야할 게 아닌가! 그렇지 않나?“ 순간 존 라이튼은 발끈했다. 고양이가 자아먹기 전에 쥐를 가지고 노는 것과 같은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으드득! 존 라이튼이 이빨을 갈 때, 블루는 거머쥔 이슈에 강기를 불어넣었다. 우웅웅! 괴이한 진동음과 함께 검에 푸른 오러 블레이드가 맺혔다. “이번엔 기대해도 좋다!” “치잇!” 존 라이튼은 주위에 수백 개의 불공을 만들어 응수했다. “나도 이제 요령은 그만두지.” “큭큭, 진즉에 그렇게 나왔어야지.” 팟! 콰과과과쾅! 스팟! 퍼버버펑! 누가 마법사들이 검사보다 약하다고 했던가? 존 라이튼의 순간이동과 연이어 터지는 환광술의 오묘한 조화는 블루의 빠른 움직임을 충분히 봉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의 전투! 그 앞에서 니콜라스를 포함한 베르니스들은 입을 크게 벌린 채, 이지를 상실한 표정으로 전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블루와 존 라이튼은 보이지 않은 채, 번쩍! 콰콰쾅! 온통 빛과 폭발뿐이었다. 그나마 니콜라스는 베르니스들과 달리 블루와 존 라이튼의 신형을 따라잡고는 있었으나, 여기다 싶으면 어느새 저쪽에 가 있고 저 쪽이다 싶으면 이쪽에서 싸우는 식으로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하는 통에 정신이 사납긴 마찬가지였다. 이미 그들의 움직임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초인, 아니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들의 전투였다. 어느 덧 그 전투도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헉헉.” “헉헉.”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며 숨을 몰아쉬던 두 사람. 블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늙은이. 나이를 헛먹은 건 아닌가봐, 큭큭.” 진심이었다. 솔직히 자신과 이렇듯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존재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아직도 전성기 때 힘을 모두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생사경에 다다른 나와 대등한 존재라니! 큭큭, 즐겁군. 이곳이 자꾸 마음에 들어‘ 솔직히 무림은 너무 심심했다. 생사경을 넘어 거의 신선의 경지에 오른 그를 누가 감히 넘보겠는가!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그와 비등한 능력을 지닌 인간도 있고,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괴물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그 드래곤이라는 존재.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마계라는 곳이 있고, 그곳에 마왕이라는 이름의 괴수가 도사리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호흡이 점점 가팔라지고, 전신은 땀과 먼지로 얼룩진 지 오래다. 그런데 어찌 가슴이 뛰지 않겠는가! 그는 오랜만에 존 라이튼이나 아이린 공작과 같은 강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꼈다. 온몸 구석구석에서 역동적으로 용솟음치는 이 환희의 물결! 이 느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그러나 존 라이튼에게는 블루의 감탄사가 비아냥거리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크윽, 억울하다. 악마의 준동을 막아내지 못하고.....이렇듯 죽음 직전에 인간세상의 파멸을 봐야만 하다니!“ ”응?“ 블루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누가 악마란 말이냐?” “누구긴? 여기 악마가 너 말고 누가 또 있다고!” “내가 악마라고?” “그럼 아니나?” “당연하지. 난 신선이라는 말까지 들은 사람이다! 그런 본좌가 악마라고?” 블루는 정말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으로 존 라이튼을 잔뜩 노려 보았다. 존 라이튼은 그 살기등등한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네가 악마가 아니라면 다시 묻겠다! 그것이 마검 아스타로트가 아닌가?“ 그제야 블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이슈에게 들은 말이 떠오른 것이다. “마검 아스타로트가 맞다!” “그렇다면, 네가 바로 아스타로트의 주인이란 애기 아니냐? 그런데도 네가 악마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느냐?“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수긍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존 라이튼이 하는 말을 이해 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오해다.” “오해?” “이슈의 현재 주인은 내가 맞지만, 과거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거지?”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과거의 주인은 뭐고 또 현재의 주인은 뭔가? 도대체 그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보니 좀 이상하긴 했다. 마검 아스타로트의 주인이 되면 인성을 빼앗긴 채 살인을 일삼는 악귀로 변한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말하기에 눈앞의 저 사내는 이성적이지 않은가. 블루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털어놓았다. “흠.....그런 일이.....” 존 라이튼은 블루의 말이 과연 사실인지 의구심을 갖는 한편, 그게 사실이라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안도하기에 이르렀다. 드래곤 로드조차 어쩌지 못하고 봉인되고 만 악마라니! 거기다 마검 아스타로트가 다시 깨어나면 그 악마도 깨어날 것이라는 예언은..... 블루는 존 라이튼이 계속 의심을 떨치지 못하는 듯하자 들고 있던 아슈를 건네주었다. 존 라이튼은 의심쩍은 눈으로 조심스럽게 그 검을 받아들었다. 동시에 그는 깜짝 놀랐다. 귀청이 떨어질 만큼 시끄러운 비명소리 탓이었다. 뭐야뭐야뭐야뭐야뭐야아! 이번에는 웬 늙은.....어머, 안녕하세요. 저는 아슈라고 해요. 금세 나긋나긋해진 목소리에,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잠시 후. “허허, 그래그래. 그렇단 말이지.” .......... “그래, 착하구나.” 한동안 알콩달콩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마치 노인과 말괄량이 손녀딸 같아 보는 이들은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다시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럼 다음에 또 보자.” 인사말을 끝으로 존 라이튼은 블루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던 존 라이튼은 이내 미안한 표정으로 블루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디 내 실수를 용서해주게.” 블루에게 고개를 숙이는 존 라이튼을 보며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베르니스들의 가슴속에 어느새 존 라이튼에 대한 좋지 않은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전설이 고개를 숙여 사과할 줄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블루는 피식 웃었다. “난 즐거웠네. 그럼 된 거 아닌가?” 존 라이튼이 감탄스러운 눈빛으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보통사람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죽음의 위협마저 너그럽게 용서해줄 만큼 넓은 가슴의 소유자일 줄이야!‘ “고맙소.” “고마울 필욘 없어. 정 미안하거든 나중에 다시 한 번 붙어보자.” 그 말에 존 라이튼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그의 어려운 상황을 무마시켜주기 위해, 그러니까 그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일부러 거칠게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오해였다. ‘저런 사내라면.....’ 거기까지 생각하고 슬쩍 태자 쪽으로 돌아보니, 자신이 블루에게 허리를 숙이며 사과하는 모습에서 당황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나이가 어려 아직 블루라는 사내의 속 깊은 내면을 읽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 사내는 어리신 태자저하께 꼭 필요한 인재다. 저 사내 하나만 얻을 수 있다면, 헤르마틴의 앞날은 과거 헤르마티아 대륙의 패자 헤르마티아 대왕의 전성기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곧 어떻게 하면 블루를 황태자에게 종속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염두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서둘지 말자.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겠지.’ 그는 황태자를 집안에 모신 다음 블루를 초대했다. “같이 식사나 할 텐가?”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군.” “그렇게 뛰어다니고 배가 안 고프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거지. 어때, 초대에 응하겠나?“ “그러지.” 블루가 안으로 들어가자 존 라이튼은 뒤에서 멀뚱히 서 있는 베르니스 일행들까지 엘프들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준 집으로 초대했다. “거기, 뭣들 하나? 어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존 라이튼의 집은 겉에서 봤던 것보다 넓고 깔끔했다. 하지만 마법사는 마법사인지 모든 벽면이 책장으로 이뤄져 있었고, 그 책장 가득히 책이 꽂혀 있었다. “거기 식탁에 앉게.” 넓은 식탁은 블루 일행들과 황태자 일행들이 앉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자리에 앉은 존 라이튼이 손을 비비며 말했다. “태자저하를 지켜준 점 정말 고맙네.” “돈 받고 한 일이니까, 너무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 없지.” “하지만 아직 받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럼, 지금 계산해주겠나?” 블루의 말에 존 라이튼이 피식 웃으며 블루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흠, 지금 줘도 상관없지만, 혹시 이번 기회에 한 밑천 벌어볼 생각은 없나?“ ”난 돈은 별로 필요가 없는데.“ 블루의 담담한 목소리에 존 라이튼이 당황했다. “돈이 필요없다고?” 그러나 곧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라면 돈은 물론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것은 뭐든지 얻을 수 있을 터. 게다가 그와 마찬가지로 권력이나 돈에 큰 관심이 없는 부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것을 역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이사람 못하는 소리가 없군. 돈이 얼마나 중요한 줄 아는가? 돈이 없으면 집도 못 사고 밥도 먹지 못하고 결혼도 못하네. 이제 알겠나? 돈으로 못하는 것은 거의 없지. 돈이.....그러니까 돈은..... 돈과....돈으로.....“ 돈돈돈으로 시작해 돈돈돈으로 끝났다. 그리고 돈타령은 다시 이어졌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세상을 살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바로 돈이라는 것이지. 돈은 정말이지 없으면 안 된다는 거지. 이제 잘 알겠는가, 헉헉헉헉헉!“ 숨도 쉬지 않고 남발한 돈에 관련된 말말말. 그리고 존 라이튼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들 그를 속물로 생각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적만 이루면 됐지, 그것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일단 블루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았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그가 나직이 한마디 했다. “그런가?” “ 물론이지!“ 존 라이튼이 다시 열변을 토하자 블루는 베르니스한테 눈길을 주며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돈?” “응.” “당연히! 존 라이튼님 말씀이 옳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너 남자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네 이름이 블루 맞지?” “야, 그만해.” “당연한 걸 자꾸 물으니까 화나지?” “......” “나도 마찬가지다. 당연한 걸 자꾸 물으니까 화가 나려고 해.” “그 정도야?” “한번 생각해봐. 너 돈이 없으면 어떻게 xxx{삐리릭}를xxx{삐리릭}할 수 있겠어. xxx{삐리릭}도 못해! 여하튼 돈이란 무조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야.“ 존 라이튼이 열 올리는 것이 듣기 싫어 물어본 것인데, 오히려 베르니스가 더 열을 올리고 있었다. 블루는 내친 김에 텐시와 스콜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블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모두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때 클루토를 포함한 몇몇이 내심 피 끓는 심정으로 외쳤다. ‘아니야!’ 그러나 존 라이튼의 살기에 짓눌려 찍소리도 못했다. “그래, 돈이 정말로 중요한가 보군. 그런데 그 이야기는 왜 꺼낸 거지?“ 블루가 수긍을 표시하자 존 라이튼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 났다. 황태자나 죠셉, 미사메르티가 경악에 겨운 얼굴로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 큰 돈을 만질 생각 없나?‘ “응? 난 이미 보석이 아주 많은데?” 좌르르륵 반짝반짝 ‘허억!’ 블루가 허리춤에 있던 보석주머니를 까뒤집는 순간, 황홀하기 이를 데 없는 보석들이 식탁 위를 가득 채웠다. 그것을 본 황태자와 죠셉, 존 라이튼은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곧 존 라이튼은 정색한 얼굴로 열변을 토했다. “아니, 아니야! 이건 돈이 아니잖아! 돈은 바로 이게 돈이라고. 이렇게 동그랗고 금으로 된 이런 동전이 돈이란 말이야! 이런 보석같은 것은 전혀 쓸모가 없어!“ ”어째서?“ “돈이 아니기 때문이지!” 블루는 슬쩍 고민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그런가?” “물론이지!” 아니야아아아! 등 위에서 베르니스들이 경악에 가까운 표정과 발광에 가까운 몸짓으로 외침을 토해냈지만, 어느 것도 블루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물론 그것도 있으면 때로 유용하긴 하네. 그러나 앞서도 말하지 않았는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돈이라고.“ 블루는 눈을 끔벅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어때, 그 좋은 돈을 더 벌고 싶지 않나?” 순간 블루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 그러지 뭐. 그러고 보니 더 벌고 싶기도 한 것 같고 아닌 것 같기도.....“”아니긴 뭐가 아니란 말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당연히 벌고 싶은 마음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그게 바로 자네 욕망이란 말이네! 그렇다면 벌어야지 않겠나? 그렇지 않은가?“ “그,그렇겠지.”그제야 존 라이튼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흥분해 열변을 토하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 있었던 것이다. “그럼 돈을 벌어야겠지?” 끄덕끄덕 “그럼 돈을 벌도록 도와주겠네.” 끄덕끄덕 “어떻게 돈을 버냐면 말이지, 황태자 저하가 앞으로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을 도와주면 되네. 그럼 자네가 원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을거야. 아니, 더 많을 수도 있네.“ ”그래?“ 블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니까! 어때, 황태자저하를 도와주겠는가?” 순간 죠셉과 황태자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존 라이튼이 어째서 지금까지 저런 모습을 보였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존 라이튼은 지금 불루를 장차 일어날 전쟁에 끌어 들이려 하고 있었다. 블루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흠“ “고민할 것 없다니까!” “흐음, 그래. 까짓 거 도와주지.” “우하하하하하! 잘 생각했네! 존 라이튼은 신이 난 얼굴로 블루의 등을 소리나게 두들겼다. “그런데 언제까지 도와주면 되지?” 블루의 물음에 존 라이튼의 눈이 빛을 발했다. 이윽고 그가 힘주어 말했다. “제국을 되찾을 때까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블루. 뒤늦게야 정신을 차린 이유는 존 라이튼이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정신없이 몰아붙인 탓이다. 그 정신 공격에 꼼짝없이 당하고 만 것이다. 피식 한동안 계속 고개를 끄덕이던 블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존 라이튼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가 안 하겠다고 말을 번복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좋아, 도와주지. 네 녀석이 얍삽하게 군것이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도와주겠다, 단!“ ”단?“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순간 터져 나온 블루의 나직한 음성이 천둥처럼 들려왔다. “친구로서!” 히쭉 “그리고 태자저하, 우선 해줄 말이 있다.” 반말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황태자 본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데, 누가 감히 나설 수 있겠는가. 그때 블루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식탁을 강하게 내리쳤다. 딱! 모두 놀라 블루의 손바닥이 놓인 식탁 위에 시선을 집중했다. 블루의 손바닥 아래 뭔가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블루가 슬그머니 손을 떼자 그곳에는 금으로 만들어진 원형 메달이 놓여져 있었다. “서,설마 이것은.....” 존 라이튼과 황태자 그리고 죠셉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친숙하다 못해 익숙한 문양이 그 메달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블러드 핸드!” “그렇소!” “서, 설마 그대가?” 끄덕 고개를 끄덕인 블루는 황태자의 앞으로 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말했다. “블러드 핸드 제 2기단장 블루, 대 헤르마틴 제국의 케산베르트 헤르마틴 2세 황태자 전하를 배알합니다.“ 동시에 니콜라스와 베르니스, 스콜, 텐시, 클루토가 무릎을 굽히며 합창하듯 입을 열었다. “대 헤르마틴 제국의 황태자 전하를 배알합니다!”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호흡이 멈춰졌다. 블루와 그의 일행들의 갑작스런 발언과 행동에 놀란 탓이다. 존 라이튼의 두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그 상태로 그는 블루의 옆에 한 쪽 무릎을 굽힌 채 입을 열었다. “태자저하, 이처럼 충직한 신하들을 얻으심을 진심으로 감축 드리옵나이다.” “.....” 잠시 할 말을 잃은 케산베르트 헤르마틴 2세가 흐느끼듯 입을 열었다 눈가가 눈물로 젖어 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지금 이 자리를 결코 잊지 않을, 아니 못할 것이오. 존 라이튼 경, 죠셉 경, 블루 경, 니콜라스 경, 베르니스 경, 스콜 경, 텐시 경 그리고 끝으로 클루토 경! 죽는 날까지 그대들 이름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않을 것이며, 짐이 얻은 만큼 그대들도 얻을 것임을 헤르마티아 대제 앞에 굳게 맹세하겠소!“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검황 이계정벌하다 6권에서 계속 외전 내가 사용하는 것이 바로 환광술이라오 “내가 사용하는 것은 마법이 아니오.” “그럼 뭡니까?” 젊은 마법사의 물음에 존 라이튼이 대답했다. “그것을 밝히기 전에 먼저 설명해야할 게 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끄덕끄덕 강당에 모인 마법사들은 저러다 목이 떨어져 나가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스러울 정도로 힘차게 고개를 흔들어댔다. 대마법사의 한마디는 억만금을 가져다주고도 쉽게 들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존 라이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존 라이튼은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좌중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였다. “세상은 마나로 뒤덮여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에서부터 숨 쉬는 공기까지 모든 것이 마나라 할 수 있지요.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인간은 마나 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모든 마법사들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이 생겨났다. 몇몇 성질 급한 마법사들은 욕설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저렇게 비싸게 굴 줄 알았어!“ ’하긴 평생을 노력해 얻은 결과일 텐데, 그렇게 쉽게 가르쳐주겠어?”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다더니, 괜히 기대만 컸군.’ 금세 강당은 시끌시끌해졌다. 그러나 존 라이튼은 그런 사람들의 말을 귓가로 흘리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제가 알아본 바로는 마나는 하나가 아니었습니다.”웅성웅성 그 발언의 파장이 엄청났다. 당연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배워온 것을 모조리 무시하는 발언 이었으니까. 감히 저런 생각을 해본 사람도 거의 없었거니와, 있다 해도 섣불리 입밖에 꺼낼 만한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튀고 싶다고 해도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해라!“’우리를 핫바지로 아나?‘ 마법사들은 내심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차마 대놓고 나서지도 못했다. 존 라이튼이 보여준 능력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그가 세운 공적이 없었다면, 존 라이튼은 당장 이도교로 몰려 마녀사냥을 당했을지도 몰랐다. 노마법사가 흥분한 얼굴로 일어섰다. 그리고 따지듯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질문을 던진 마법사 또한 현자의 탑 장로 중 하나였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존 라이튼의 입에서 나올 답변에 더욱 촉가을 곤두세웠다. 그러면서도 눈초리는 살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만에 하나 허튼소리를 늘어놓으면 결코 그냥 넘기지 않겠다는 투가 역력했다. “제가 사용하는 환광술은 다섯 가지 마나의 기운을 사용합니다. 물의 마나, 불의 마나, 흙의 마나, 나무의 마나, 금속의 마나죠.“”그게 말이 됩니까?“”하하, 이곳에 계신 분들 중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번쯤은 가져보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요?“”흠흠.“ 모두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존라이튼은 그들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빼물었다. 그때 젊은 마법사가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 마나를 어찌 구분한단 말이오?”존라이튼은 기다렸다는 듯 논스톱으로 답변했다. “물론 구분하지 못합니다.”“못하다니요?”“사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결국 당신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섰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너무 오만한 발언 아닌가요?“”하지만 실력이 받쳐주기만 한다면 오만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요?“ 존 라이튼이 당당하게 반문하자, 어디 한번 당해보라는 듯 시비조로 몰아 붙이던 사내가 도리어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존 라이튼이 짐짓 화가 난 듯 무뚝뚝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더 이상 듣기 싫다면 이쯤에서 그만두겠소!” 순간 투덜거리거나 구시렁대던 사람들이 얼른 입을 다물어버렸다. 두 번 다시 끽소리도 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처럼. “사실 마나를 제대로 느끼는 것조차 힘이 드는 판에, 물 불 흙 나무 금속을 분류한다는 건 상상이나 이론상으로나 가능한 거겠지요. 그러나 이곳에 오신 분들도 아한의 마나로 파이어볼이나 라이트닝 볼, 아이스 애로우 같은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한번쯤 의문을 품어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존 라이튼의 설명을 듣는 순간 의문 하나가 풀리는 것과 동시에, 또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그 침묵을 깨고 존 라이튼의 말이 이어졌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마나만이 지니고 있는 특우의 성질 탓 입니다. 우선 우리 생활에 비교적 가까이 있는 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물은 시원하게 하면 시원해지고, 얼리면 물 본연의 성질을 잃고 딱딱해집니다. 열을 가하면 끓고 그것을 식히면 미지근해지는데, 계속 온도를 낮춰가다 보면 얼고, 그것을 끓이면 녹아 물이 되었다가 증기로 변합니다. 마나도 이와 흡사합니다.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불길이 솟구치기도 하고, 얼음이 쏟아져 나오기도 하며 번개가 치기도 하는 겁니다. 결국 문제는 마나를 가공하는 방식인데,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마나를 사용할 때 쓰는 주문이 다르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 주문은 바로 마나를 다루는 방법을 공식으로 풀어놓은 것이지요. 그럼, 혹시 어째서 그렇듯 공식으로 풀어져 있는지 아는 분 안 계십니까?“ 순간 강당에 모인 마법사들은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오르가즘보다 더한 쾌락이었다. 평생에 한번 깨칠까 말까 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쾌감에 마법사들은 사정을 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어찌하여 그렇듯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금세 깨달았다. 사실 단순했다. 너무 친숙하고 마법을 배우면 공식을 익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 탓에 의문을 떠올리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마나의 공식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계신 분은 있으십니까?” 존 라이튼의 말이 이어지자 조심스러운 말투로 은발의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드래곤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마법의 원류는 드래곤에서 흘러나온 것이지요. 드래곤이 인간들을 위해 자신들의 용언 마법이 아닌 주문 마법을 만들었습니다. 용언 마법을 인간이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용언 마법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드래곤 하트가 인간에게는 없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요. 아무튼 그래서 세상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 바로 주문영창 마법과 마법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지만, 인간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주문영창은 드래곤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현 차원계 최고의 발명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엔 상상도 할 수 없는 마나 재배열의 공식이 숨어 있으니 말이죠.“ “오오!” “저는 그것을 활용하여 서로에 어울리는 속성을 혼합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초기의 환광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오!“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우후죽순으로 터져 나왔다. 그렇듯 한동안 달아오르던 열기가 가라앉자, 구석에서 질문이 나왔다. “마법주문을 드래곤이 만들어낸 게 확실한가요? 용언 마법의 틀을 분석해 주문영창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만, 마법주문과 용언 마법은 성질부터가 다릅니다. 잘 아시다시피 용언은 바로 천지만물을 만들어내신 신께서 그들에게 준 선물입니다. 그 선물로 드래곤은 신과 필적할 만한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신처럼 창조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결국 신과 근접할 수는 있어도 그들을 이길 수는 없는 거죠. 그것이 순리입니다. 하지만 드래곤들은 그 순리에 따르는 한편, 거부하려고 했습니다. 신이 준 힘보다 강해지기 위해 꾸준히 마나를 가공하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얻은 뜻하지 않은 그 결실이 바로 마법주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한계가 뚜렷합니다. 우리 인간이 마법을 사용하면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덧셈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모른 채 공식만 사용하다보면 그 이상의 것을 찾기 힘들죠. 그리고 평생 공식의 틀 속에서 헤맬 뿐이고.“ “신이 정말 존재한다는 겁니까? 물론 교단이 있고, 마왕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자의 말은 모든 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의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문을 가진 마법사들에게 신의 창세설을 주장한 존 라이튼 으로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주어야만 했다. 존 라이튼은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생뚱맞게 내뱉었다. “글쎄요?” 그 한마디의 파장은 다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졌다. 존라이튼이 그 신에 대한 문제를 그들의 앞에서 해결하지 못한 다는 것은, 바로 지금까지 그가 떠들었던 모든 말들이 거짓이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지금까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입증해 보시오!” 그때 존 라이튼이 입을 얼었다. “조용히들 하시죠.” 존라이튼의 묵직한 목소리가 다시 강당 안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모두 다시 입을 다물었다. “신이 있느냐고 물으셨습니까?” 그 목소리에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신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제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우우!” “그런 식으로 회피하려 할 줄 알았소!”별의별 욕설이 다 쏟아졌으나, 존 라이튼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제가 함부로 입을 열게 되면 세상에 종말이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순간, 다시금 달아오르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존 라이튼의 말이 왠지 사실처럼 다가온 탓이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용기가 있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는 법. “그럼 그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단 말이오?”그 사내의 질문에 존 라이튼은 힘든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어째서일까? 존 라이튼은 십 년쯤 늙어버린 듯 보였다. 주름하나 없던 이마에 굵은 지렁이 같은 주름이 생김과 동시에 아직은 검은 숱이 많았던 머리카락에도 새치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의 착각이라 생각하고 넘어갔으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것하나는 말해줄 수 있습니다. 신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지요. 신을 믿는 자의 가슴속에는 신이 살고 있고, 없다고 믿는 자의 가슴속 에는 신이 없을 뿐입니다.“ ”.....“ “다만 하나만 더 충고해준다면 신을 믿고 계신 분은 절대 의심하지 마십시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보지 않고 믿는 믿음과 보고 믿는 믿음이 있는데,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바로 자신의 선택이니 신중하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1. 오제를 모으리라 "끄응, 그럼 괜한 짓을 하며 속을 보인 거군." 존 라이튼의 말에 다들 키득거렸다. 물론 존 라이튼의 얼굴이 붉어진 것은 두말 할 필요 없었다. 그는 상황을 반전하기 위해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럼 어떻게 태자저하를 만나게 된 건가?" "자네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뭔가 목적이 있어 만난 게 아니라, 우연히 그 부근을 지나가는데 비명소리가 들리더군."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구해주기 위해 갔다가 우연히 태자저하를 만나게 된 것인가?" 그렇게 물은 존 라이튼은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군. 기사에게 가장 필요한 무용은 이미 뛰어난 무공으로 입증했고, 성실성 또한 믿음이 간다. 성실하지 않다면 저렇듯 무공이 뛰어날 리 없으니까. 하는 행동은 예를 중시하는 것 같지만, 예의나 경건, 겸양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러나 약자를 보호하는 영웅심만큼은 높이 사지 않을 수 없군. 태자저하를 만나 뵙게 된 계기가 그러하니 말이야. 정말 대단한 친구야. 주군에게 저처럼 인재가 모이는 것은 아직 헤르마틴이 건재하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것이겠지.' 존 라이튼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블루가 마무리했다. "재밌겠다 싶어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죠셉하고 태자저하께서 뛰어 들어오시더군." 순간 베르니스들의 턱이 쩍 벌어졌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한 탓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최대한 오해해달라는 식으로 거침없이 말하는 블루를 바라보며, '역시 우리 대장이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들에게 회의감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에휴!' 그들이 이제 될대로 되라며 한숨을 내쉬는 찰나, 잠자코 있던 존 라이튼이 갑자기 미친 듯 웃어대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존 라이튼의 그런 모습을 보며 베르니스들이 혀를 찼다. '조금 전 싸우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쳤나보군. 그렇지 않고서야.......' 그러나 존 라이튼은 그런 그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역시 자네가 아주 마음에 드네, 큭큭." '자신을 포장하기 바쁜 녀석들이 널린 세상에서, 저처럼 거친 말투를 사용해 일부러 자신의 성품을 숨기고 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다니! 성격이 꼬였다 하더라도 믿지 않을 수가 없지, 큭크큭.' 하나가 좋게 보이니, 모든 게 좋게 보였다. 반면 블루는 상대가 너무 즐거운 듯 웃어대자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고 말았다. 자신이 기대하던 반응이 아닌 탓이다. "뭔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네, 큭큭. 여하튼 자네에 관해서는 전혀 걱정할 게 없겠어. 자네 같은 사내는 배신을 모르니까." 블루의 인상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과거 무림에서 똑같이 말했던 사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젠장, 그 미친 황족 나부랭이 같은 녀석이 여기 또 하나 있다니!" "지금 자네 그 표정은 나와 똑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 떠올라 기분 나쁘다는 표정이군." 뜨끔 "시끄러! 자네 같은 인간이 두 명이나 있으면 짜증나서 어떻게 세상을 살라고?" 블루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니면 아니지, 웬 성질인가, 큭큭." 존 라이튼의 따뜻한 눈빛이 블루에게 향했다. 순간 블루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투덜거렸다. 어찌 눈빛마저 같단 말인가. "그런데 식사는 어찌된 거야?" "아아, 식사 말인가? 조금만 기다리게. 곧 준비될 걸세. 갑자기 인원이 늘어나는 통에 준비가 조금 늦나보군." "제길! 그렇게 눈치를 줄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부르질 말든가, 난 밥 가지고 장난치는 녀석이 제일 싫어." "하하! 장난일세, 장난." 블루가 계속 투덜거려도 존 라이튼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자, 죠셈을 포함한 일행들은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흔들었다. '에휴, 대장만큼 괴짜가 또 있었군.' '끔찍하다. 대장 하나로도 모자라 하나가 더 생기다니! 벌써부터 머리가 다 지끈거리는군.' '존 라이튼님께서 저토록 망가지시다니! 오호, 통재로다.' 그 와중에 황태자만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존 라이튼과 블루를 번갈아보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달아오르는 자신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감춰보기 위해셔였다. '선황이시여, 하늘에서조차 굽어 살피시어 아들의 모자람을 이렇게 믿음직한 수하들로 채워주신 은혜 무엇으로 보답하오리까? 부덕한 자식이지만, 선황의 그 크신 사랑으로 잃어버린 왕국을 되찾아 후세를 빛내는 존재가 되겠습니다.' 황태자는 눈에 맺힌 이슬을 아무도 모르게 훔쳐내며 미소를 지었다. 식사를 마치고 얼마 후, 존 라이튼은 황태자를 찾아갔다. 황태자는 자기 옆집 손님방에서 묵고 있었다. 그는 그게 마음에 걸렸다. 똑똑. 옆집에 도착한 존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 나서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황태자의 말에 존 라이튼은 정중히 문을 밀고 들어갔다. "오오, 존 라이튼 경이군요. 이리 앉으세요." 태자는 반가운 얼굴로 존 라이튼을 손수 반겼다. 그에 존 라이튼은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망극하옵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존 라이튼은 그 즉시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어나갔다. "전하,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아주 편합니다. 지금껏 이렇듯 편한 적이 없음이라 할 만큼 평안 그 자체입니다. 마치 지금까지의 근심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아리송할 정도입니다. 으하하하." 존 라이튼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살아 있더면 할아버지 미소가 저러할까? 황태자는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폭풍전야와도 같이 피가 말릴 정도로 고요하던 황궁에서 찾지 못했던 그 무언가를 이곳에서 찾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계셨군요?" 존 라이튼이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바라보며 물었다. 황태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기까지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존 라이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변한 게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황태자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자신의 변화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잠시눈이 피로해 눈을 슬쩍 감았다가 떴다. "다행이군요. 혹시나 불편하실까봐 걱정했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무엇이 말이옵니까?" 존의 정중한 질문에 황태자는 한숨을 내쉬곤 말을 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렇듯 평온하다 보니, 자꾸 불안감이 머리를 치켜드는군요. 어째서 그런 것일까요?" "어찌 그런 약한 모습을?" "글쎄요, 전 약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황태자는 존을 주시하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모든게 너무 급격하게 바뀌어버렸습니다. 어리광을 피울 시간이 며칠 전후로 말끔히 사라져버린 겁니다." "저..저하" "괜찮아요. 저도 잘 알아요. 지금 이것도 어리광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라이튼 경께 그저 미안할 따름입니다. 예." 힘주어 말하며 억지로 눈물을 참는 어린 황태자! 그 모습에서 가슴에 맺힌 한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리광을 부려도 모자란 나이에....... 얼마나 고통스러우시면 울지도 못하시는 것을까. 존 라이튼의 주름진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곧 가슴 시리도록 차가운 눈물이 얼굴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괜찮습니다. 태자저하." 태자는 무슨 생각에선지 담담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존의 모습을 주시하며 빙긋 웃었다. 그럴수록 존은 가슴이 찢어지고 멍울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 어린 소년의 가슴에 얼마나 많은 슬픔이 담겨 있기에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가슴에 안아 그의 눈물을 받아 주고 싶었으나, 차마 손을 뻗을 수 없었다. 황태자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지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길에 흔들릴까 두려웠던 탓이리라. 황태자가 입을 열었다. "지금의 모든 순간이 마치 꿈결처럼 느껴집니다. 저에게 충성을 맹세해준 블루 경들을 포함해 이처럼 죽은 줄만 알았던 라이튼 경이 제 눈앞에 있으니 말입니다. 행복하지만, 불안한 이유는 어쩌면 어느 순간 눈 녹듯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잡념 때문인 것 같아요." "걱정 마십시오.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끄덕끄덕 "예, 저도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아바마마의 명을 따를 때인 것 같습니다." "명이라니요?" 존 라이튼이 의혹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자 황태자가 피식 웃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저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설마?" "예. 맞습니다. 평소에도 자주 말씀하시던 오제에 관련된 것이었지요." "그렇군요." 그제야 존 라이튼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선황 역시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다. 일순 존 라이튼의 표정이 변했다. 황태자가 이런 말을 꺼낸 진의를 파악한 탓이다. 그런 존 라이튼의 눈빛을 읽었는지 황태자는 고개를 다시 한번 끄덕였다. "저는 이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 약한 모습을 완전히 버리고 전 대륙을 통일할 생각입니다." "저..저하!" "피를 불렀으니......." 황태자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리고 비장한 목소리르 외쳤다. "반드시 피로 갚아줘야겠지요." 존이 눈을 질끈 감았다. 가장 우려했던 현실이 눈앞에 닥친 탓이다. 하지만 운명이었다. 정해진 운명! 황태자의 선택을 이미 짐작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늘 가장 밝은 빛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던 미혹성이 붉게 변하며 그 주변의 별들이 빛을 잃지 않았던가! 이윽고 피로에 찌든 듯 붉게 충혈된 존 라이튼의 눈이 조심스럽게 떠졌다. "존 라이튼경, 도와주실 거죠?"" 한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희비가 엇갈리듯 반짝거렸다. "존 라이튼 경!" 흔들리는 눈빛을 급히 갈무리한 존 라이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친 나무 바닥에 무릎을 꿇어 예를 갖추며 입을 열었다. "저하의 뜻이라면." 그 한마디에 황태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전 라이튼 경이 저를 도와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스니다." 존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됐습니다. 경 덕분에 저의 짐이 덜어지는군요." 황태자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존 라이튼은 그런 황태자의 빛나는 눈동자를 측면에서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자기 생각에 빠진 황태자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선황이시여!' 내심 중얼거리며 눈을 감자, 선황의 묵직한 목소리가 귄가에 울리는 듯 했다. "태자여, 내가 이루지 못한 대륙 패자의 길을 태자가 이루길 바란다." "아바마마, 어찌 부족한 제가 그것을......." 황제의 후덕한 미소가 그려진다. "가능하다." "하오나." "오제를 모으라! 오제를!" "오제라 하심은......." "그렇다. 용지인신충의 오제를 뜻함이다." "......." "짐은 천운이 없어 오제를 만나지 못했느니라. 하지만 태자라면 가능할 것이다. 누구보다 헤르마티아 대제의 혼이 깃들어 있으니까." "소자는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모르겠지만, 언젠가 하늘이 답을 줄 것이다. 아직도 눈앞에 선하구나. 짐이 태자를 얻을 때, 하늘에서 들리던 헤르마티아 대제의 음성이 말이다." 황제의 시선이 하늘을 향한다. 반대로 태자의 고개는 아래로 떨어졌다. 믿지 못함은 둘째치고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 다시 들리는 황제의 음성! 그 음성은 꿈결에 들리는 자장가처럼 부드러웠다. "용이 있으면 두려움이 없으므로 남에게 굴욕 당할 일이 없다. 지가 있으면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으므로 쉽게 교란되지 않는다. 인이 있으면 따스한 배려로 많은 심복을 거느릴 수 있다. 신이 있으면 남을 속이지 않으므로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충이 있으면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 "......." "태자자여, 오제를 모으라!" "아바마마." "대륙의 패자! 그것이 태자 너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황태자와 존 라이튼은 동시에 눈을 떳다. '선황이시여' 그때 황태자의 목소리가 존 라이튼에게 들려왔다. "들으셨습니까? 들으셨습니까? 선황의 음성을?" 황태자의 말에 존 라이튼이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자신이 들은 건 결코 환청이 아니었다. 그래서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곧 황태자 말이 자신의 생각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단순히 은유적 비유에 불과했을 뿐이다. "저는 늘 듣습니다. 잠을 잘 때, 잠에서 깨어날 때, 세수할 때, 책을 읽으 f때도 선황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것은 꿈이 아닙니다. 꿈이라면, 환청이라면 그토록 선명하게 들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 "그래서 전 오제를 모아야 합니다." 뭔가 핀트가 어긋난 말 같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황태자의 마음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 그 어떤 행동도, 대답도 할 수 없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존 라이튼은 자기 가슴에 무겁게 와 닿는 무언가를 느끼며 나직하게 내뱉었다. "정녕 운명이라면......." 물론 그 말은 아무도 듣지 못했다. 말을 꺼낸 자신 조차도. 하늘이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또 하루가 끝나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창문이 들썩이며 서늘한 밤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방안을 맴돌며 춤을 추었다. 촛불이 일렁거렸다. 동시에 방안에 있던 사람들 얼굴에 드리워진 음영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순간 어디선가 '꺄르르륵' 하고 웃는 실프의 웃음소리가 들리는듯했다. 그러나 딱딱하게 굳은 엘프 장로들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제 1 장로 마르카데시아를 향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흘러나왔다. 제 3 장로 유라도르 쪽이었다.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합니까? 무슨 수를 쓰든 우리들이 잃어버린 바이너리 트위스더를 찾아야지요! 그것은 신이 내린 약속의 증표! 그것을 잃어버린 것은 약속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7 장로님 말씀처럼 인간들과 함께 어우러진다고 해봤자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입니다. 과연 숲을 버리고도 엘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모름지기 인간과 어울려 지내다 보면 결국 우리 엘프들은 인간과 동화되어 사라져버릴 겁니다." "그것이 바로 신의 조화지요." "웃기는 소리 마십시오! 신께서 한낱 인간으로 살라고 우리 엘프들을 만드셨다고 생각하시는 겝니까?" "그건 아니지만......." "아니면 뭡니까?" "엘프의 숲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서 합당한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유라도르 장로! 당신이나 그렇게 입만 나불대지 말고 근본적인 대책을 꺼내보시오!" "나는......." 그때까지 잠자코 상황을 주시하던 제 1 장로 마르카데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만들 하시오. 이렇게 서로들 다투자고 모인 자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다들 잘못을 시안하듯 고개를 숙이자, 제 1 장로는 한숨을 내쉬며 제 4 장로 미사메르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눈빛이 한결 여유롭게 풀어지는 것이, 마치 그라면 뭔가 해답을 내놓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았다. 그가 말했다. "미사메르티 장로, 뭔가 해줄 말이 없습니까?" 오랜 침묵을 깨고 미사메르티가 입을 열었다. "우선 조금 전, 이왕 이렇게 된 것 인간들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 어떠냐고 말씀하신 7 장로님."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7 장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사메르티가 말했다. "저 역시 그 의견에 찬동할 수 없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도 엘프는 엘프들과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계속하세요." "인간과 동화된다는 발상 자체부터가 문제입니다. 분명한 것은 설사 엘프가 인간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인간이 엘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째서입니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나 우월주의 탓이죠." "하하, 그게 말이나 됩니까? 인간 따위가 수백년을 사는 데다 마법에서도 한 수 위에 존재하는 엘프를 자신들보다 낮게 생각한다는 게?" "그건 사상의 차이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그들과 우리를 비교해보면, 우리들은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폐쇄적으로 타 종족을 거부할 뿐이지만, 인간들은 자신들만의 우월주의 잣대로 타 종족을 경시합니다. 우리 엘프들처럼 자연친화적인 삶이 아닌, 짧은 일생 때문에 순간적인 쾌락을 위하여 급속한 변화, 지배, 종속 등에 따른 환경들이 만들어낸 환영 같은 현실 때문에 생긴 현상이지요." "미사메르티 장로님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엘프 장로들의 대꾸에 미사메르티 장로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결론지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이해하셔야 합니다." "왜죠?" "사실이니까요.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다고도 볼 수도 있습니다만, 그들은 자신 외의 타 종족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말이 좀 심하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만, 우리가 인간들의 사회에 나가게 된다면 노리개 정도밖에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말에 엘프 장로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 어떻게 엘프 장로라는 자의 입에서 그런 불결한 말이 나올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인간을 누르면 되는 게 아닙니까?" "인간을 누른다고요?" "그렇소." "어떻게?" "당연히 무력으로 눌러야지요." "힘으로 말입니까......풋," 미사메르티 장로가 피식 웃었다. "우리가 인간 개개인보다 뛰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바로 그들의 엄청난 개체수를 동원한 집단의식은 우리의 뛰어남을 넘어서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 엘프와 인간이 충돌하면 둘 중 하나는 필멸이라는 말과 동일합니다. 아마도 그 필멸에 해당되는 쪽은 우리 엘프들일 가능성이 높겠지만요." "그게 무슨 망발이오!" "지금 망발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그렇다면 좋습니다. 내가 망발을 했다는 것을 인정할 테니, 인간을 누르겠다는 그 감상적인 생각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인간세상으로 나가보시지요!" "끙." 미사메르티 장로의 열변에 꼬박꼬박 토를 달던 장로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반발심으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긴 했지만, 미사메르티 장로가 한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엘프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었다. 모든 엘프 장로들이 입을 다물자, 미사메르티 장로가 다시 입을 열어 한마디 했다. "지금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현실을 직시할 줄 모르는 그런 눈으로 대체 무슨 엘프의 운명을 논한단 말입니까? 제가 적극 추천하는 것은 우리 엘프들의 순수성과 평화 그리고 장수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바이너리 트위스터를 찾아오는 겁니다. 그것만이 최악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니까요!" 미사메르티 장로의 열변에 좌중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역시나 모두 사실이었다. "그럼 어찌 해야겠소?" 그 물음에 미사메르티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에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로지 바이너리 트위스터를 찾아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엘프족에게 신이 내린 영생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보물을 잃어버렸으니, 머지않아 우리도 타락해 이곳에서 쫒겨난 다크 엘프들과 다를 바 없이 되고 말 겁니다." "다크 엘프" "듣자듣자 하니까 말이 너무 심하지 않소! 다크 엘프와 우리를 비교하다니요!" 미사메르티는 거센 항변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피식 "차라리 그들이 우리보다 낫지요. 그들은 자신들의 보물인 사이드와인더를 분실하지 않았으니까." "큭!" 그 또한 사실이었다. 엘프들은 타락해 쫒겨난 엘프들을 다크 엘프라고 불렀다. 그러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름처럼 몸 자체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다들 그것을 신의 저주라고 믿었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단적인 예로 다크 엘프는 엘프들로서도 경시하지 못할 강력한 공격마볍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신의 저주로 몸이 검게 변했다면. 어찌 능력은 그대로 남겨두었을 것인가! 거기다 무슨 이유인지 신은 그들에게 엘프들이 가진 바이너리 트위스터와 유사한 보물인 사이드 와인더를 내려주었다. 엘프들로서는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그러나 신의 선택을 두고 왈가왈부할 처지도 아니어서 속만 끓이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그들 역시 신의 자식임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이너리 트위스터를 찾아올 원정대를 조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죠." "그럼 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흠.." 미사메르티 장로의 말뜻을 이해핸 장로들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나 함부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단순히 리스크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 또한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었다. 미사메르티 장로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둔 게 있습니다." "생각해둔 것이라뇨?" 미사메르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을 꺼내기 전에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일 년 전. 정령의 딸로 불리는 앤 잇셀프가 자신이 수호하던 바이너리 트위스터와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도 관계자들 모두가 쉬쉬했다. 젊은 엘프들이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바이너리 트위스터가 사라진 사실이 알려지면, 지금의 질서가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 때문일까? 아니면,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서일까? 몇몇 장로들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과 연관시키며 대수롭지 않은 도난 사건으로 치부하고 있었고 나아가 젊은 엘프가 부주의로 수호물을 분실한 다음 죄책감을 느끼고 말없이 그것을 찾으러 떠났다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시나리오까지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바이너리 트위스터가 사라진 것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예언을 결부시키는 장로도 없지 않았다. 다른 엘프들은 잘 모르겠지만 미사메르티는 적어도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그 전설은 오랫동안 부정한 것으로 치부되고 금기시되어 장로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바이너리 트위스터가 사라졌다는 사실도 그들 외에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원정대를 만들어 밖으로 보낸다고? 어찌 설득한단 말인가? 무슨 명분을 내세워 원정대를 만들며 또 그 원정대들에게는 무엇을 찾아오라고 말할 것인가? 어찌어찌하여 원정대를 꾸렸다고 치자. 무작정 등을 떠민다면 그들이 물을 것이다. 왜? 바로 그 점이 문제였던 것이다. 진실을 알고 그들이 엉뚱한 일을 일삼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다고 자신들이 직접 움직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면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무리들한테서 어떤 괴소문이 흘러나올지 짐작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예언과 관계된 이야기는 확실히 숨길 필요가 있었다. 마왕이 강림하는 시기에 바이너리 트위스터가 사라질 것이다. 이 문장은 마검 아스타로트가 세상에 나타날 때 마왕이 강림할 것이라고 은근히 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설마했다. 그 두 눈으로 직접 마검 아스타로트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다. 그 외에도 여러 장로들이 직접 목격했지만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마왕의 위력을 몸소 체험했음에도 나아가 그들 친구인 존 라이튼이 생사지경에 빠졌음에도 그들이 꼼짝도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차적으로는 마검 아스타로트에 대한 엄청난 공포 탓이였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무리 정신적 타격감이 크다고 할 지라도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움직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못한 것은 블루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이해할 수 없는 기운 때문이었다. 그것이 온몸을 옭아매는 바람에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던......유쾌한 살기! 부적절한 조함 같지만 가장 솔직한 심정이었다. 달리 그 끔찍한 기분을 어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존 라이튼이 직접 나서서 그가 악마가 아님을 밝혔다는 사실. 그러나 그것을 완전히 믿을 수도 없었다. 악마의 연기가 훌륭했거나 존 라이튼이 속았을 수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존 라이튼의 안목을 믿기로 했다. 존 라이튼은 예언에 대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존재 중 하나였다. 따라서 섣불리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블루라는 그 사내가 마지막 희망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아닐지 모르지만 예언대로라면 악마가 이미 부활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악마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무슨 수를 쓰든 바이너리 트위스터를 반드시 찾아내야만 했다. 예언에 따르면 그것이만이 그 악마로부터 엘프족의 안위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인간들에게 맡겨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한참 만에 미사메르티의 입이 열렸다. 물론 반발이 심했다.. "뭣이라고요! 인간들에게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 엘프 장로들은 기가 막혔다. 고심 끝에 한다는 소리가 인간들에게 바이너리 트위스터를 되찾아 달라고 의뢰하자고? 다들 신성한 수호물을 대체 어떻게 보고, 인간들 따위에게 맡길 수 있겠냐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어떤 생각들을 하시는지 압니다." "그럼 되었지 않소이까?" "아니지요. 다른 해결책을 제시해주셔야지요." 그 한마디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은 탓이다. 미사메르티 장로는 그것 보라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지금 상태에서는 그것이 최우선 책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하지만" 서둘러 말문을 연 제 1 장로는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곧 체념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니요. 그럼 누구에게 그것을 부탁할 생각입니까? 인간들을 만나러 인간세상으로 나갈 것입니까?" 그 말에 미사메르티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아닙니다. 적임자가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적임자? 설마......" "맞습니다. 어제 엘프의 숲을 뒤 엎어버린 괴물 같은 그 블루라는 용병단 대장 입니다." 미사메르티의 대답에 제1장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그자가 정말 인간이 확실하오?" "그렇다고 합니다." 그때 다른 장로가 끼어들었다. "아니라면......" "아니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무슨 그런 말장난을 그딴 식으로 하는 거요!" "말장난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속일 수 있는 악마를 무슨 수로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믿어보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끄응" 다시 제1장로가 입을 열었다. "그자를 정말 믿을 수 있겠소?" 미덥지 못한 말투였지만, 미사메르티는 성의를 다해 대답했다. "제 친우 존 라이튼이 인정한 사내입니다." 힘을 주고 대답했지만, 미사메르티 장로 본인도 자신의 눈 깊은 곳에서 일어난 불안함의 작은 파동은 숨길 수 없었다. "흠!" 미사메르티는 문 앞에서 헛기침을 흘렸다. "들어오세요." 텐시의 목소리에 미사메르티 장로가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 장로님 웬일이세요?" "볼일이 있어서 왔네." "그러시군요. 그런데 무슨 일 인가요?" "그게......" 미사메르티 장로의 눈길이 차를 마시고 있는 블루를 향하자 모두들 눈치를 차릴 수 있었다. 둘만이 대화하고 싶은 것이 있음을 깨달은 탓이다. 모두들 알겠다는 듯 주섬거리며 밖으로 나가려했다. 그때 블루가 입을 열었다. "내 동료들은 나와 같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차를 마시며 창밖을 보고 있는 블루를 향했다. 모두의 눈빛 속에 감동이 머물러 있었다. 블루의 말뜻을 이해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미사메르티 장로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알겠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 그 즉시 일행들은 미사메르티와 블루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 같아서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흠, 사정이 있네." 잠시 블루의 시선을 살피는 미사메르티 장로. 아직까지 저들에게 말해야 하는지 망설여진 탓이었다. 모두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블루가 믿어준 자신들을 믿어준 만큼 블루의 신의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다짐했기 때문이다.그 어떤 상황이 닥쳐도 그 어떤 말을 듣게 된다 해도 말이다. 그들의 마음이 와 닿은 탓일까. 미사메르티 장로도 결국 체념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의뢰를 하고 싶네." "뭘 말인가?" 블루의 반말이 여전히 귀에 거슬리긴 했지만, 처음보다는 덜했다. 블루의 실력을 보고난 후였기 때문이다. 그 정도 실력을 지니려면 최소한 친우 존 라이튼 이상의 나이를 먹었다는 말과 동일하다 볼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인간이 한계 이상의 마나를 몸에 담을 수 있겠는가! 마치 드래곤이나 엘프 그리고 자신들처럼. 마나를 한계치 이상 몸 안에 저장하면 노화가 멈춘다는 것쯤 은 그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비근한 예로 엘프의 수명이 길고 노화가 더디게 찾아오는 것도 몸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 마나 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인간으로서 노화가 멈출 만큼 마나를 몸 안에 채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물론 방법이 있긴 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것이었다. 먼저 자연과 더불어 살며 조금씩 쌓는 것이다. 그전에 늙어 죽지만 않는다면 회춘이 가능했다. 또 하나는 무공을 연마하며 마나를 몸 안에 쌓는 방법이다. 이 역시 조금씩 쌓이는 정도지만, 간혹 인간 중에 한계를 넘어서는 괴물이 있으니 눈앞에 저 블루라는 인간도 그런 괴물 중 하나일지 몰랐다. 미사메르티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뭔가를 찾아 줬으면 좋겠네." "음?" 블루는 미사메르티 장로의 어감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미사메르티 장로의 목소리가 슬쩍 떨린 탓이었다. "상당히 중요한 것인가 보군." 미사메르티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를 줄 텐가?" "얼마를 원하는가?" 블루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듣지도 않고 바로 흥정에 들어가 버렸다. 마치 알만큼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다보니 니콜라스를 포함한 베르니스들은 호기심이 동하기 시작했다. '대체 무엇이기에…….' 일행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둘은 치열한 흥정을 계속해나갔다. "인간의 돈으로 계산을 해야겠지? 300만 골드면 족하겠는가?" 순간 모두 경악했다. 가볍게 내 뱉은 말과 다르게 그가 부른 금액은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1골드는 100실버로 그 정도만으로도 사인기준 평민가족이 두 달 동안 손도 까딱 안하며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런데 300골드라니! 천문학적인 금액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블루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아니." 순간 베르니스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사실 자신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보석들만 따로 계산해 보아도 그 이상은 나오겠지만 돈이란 다다익선. 즉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그런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블루가 뭔가 다른 것을 노리고 있음을 깨달은 탓이다. "그럼 무얼 원하는가? 돈을 더 많이 원하는가?" 미사메르티가 비장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는 블루가 더 큰 것을 원해도 들어줄 각오가 되어있었다. 블루만한 실력자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 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엘프를 통틀어서도 블루만큼 강한 존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니 실은 전무했다. 그나마 자신이 강한 축에 속하지만 블루나 존 라이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 면에서 둘은 이미 인간으로 보기 힘들었다. 존 라이튼이 엘프의 숲에서 무난히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나 실력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리라. "돈? 그딴 것 필요 없다." "그럼? 어떤 것을?" 블루의 눈빛을 보는 순간 불안해졌다. 엄청난 것을 요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블루가 다독이듯 입을 열었다. "아아,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리 어려운 요구는 하지 않을 테니까. 물론 자네의 바람대로 의뢰는 받아주지." "...고맙군." "별말씀을." 블루의 가벼운 말투에 은근히 긴장하고 있던 미사메르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다시 물었다. "어떤 요구인가?" "별건 아니야. 내가 필요할 때 엘프들이 한번 도와줬으면 좋겠어." "응?" 순간 미사메르티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 가 했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주지 않겠나?" "엘프들이 나의 부탁을 한번 들어주길 바란다고 했네." "흠......" 엘프들이 인간의 부탁을 들어준다? 작은 일은 아니었다. 가볍게 내릴 판단이 아닌 것이다. 그가 어떤 부탁을 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떤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지금 자신이 의뢰하려는 일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종족의 멸망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으니. 바이너리 트위스터! 다른 장로들이 추론해낸 것과 달리 그는 그것의 실종이 어둠의 세력과 밀접한 관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미사메르티 장로는 한참의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것을 원한다면야.: “그럼 계약은 성립되었군. 좋아. 무엇을 찾아주면 되는 거지?” “엘프의 수호물이라네.” 그 말에 베르니스들 표정이 일순 하얗게 질려버렸다. 니콜라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에 엘프들의 수호물이라면?” “서 설마!” “바이너리 트위스터?” 베르니스들 반응에 놀란 블루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도 다 아는거야?” 블루의 질문에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한마디씩 했다. “물론이죠!” “당연하죠.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요. 중간계 사대신기 중 하나라고 불리는 바이너리 트위스터를.” “사대신기?” “예. 사대신기요. 각 종족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신의 무기를 사대신기라고 총칭하고 있어요.” “호. 그래?” “설마 그것도 모르고 의뢰를 받아들인 거예요!” “난 단지 뭔가 중요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아이쿠. 두야!” 텐시가 머리를 짚으며 인중을 마사지했다. 그러면서 미사메르티에게 직접 질문을 던졌다. 블루랑 이야기 해봤자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누가 훔쳤단 말입니까?” “쉿! 목소리가 너무 크네.” 미사메르티의 말에 블루가 걱정할 필요 없다는 투로 말했다. “괜찮네. 이곳에서 하는 말은 우리 외엔 아무도 듣지 못할 테니까.” 그제야 미사메르티는 이 집을 둘러싸고 있는 두꺼운 마나의 벽을 깨달았다. “마법도 아닌 것 같은데. 마나를 저토록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다니! 드래곤이라면 모를까 이것은.......” 미사메르티는 잠시 경외의 눈빛으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빛을 흘리는 것도 잠시. 텐시의 말에 전적으로 수긍한다는 듯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다시 텐시가 질문했다. “어떤...... 아니. 그 누가 엘프의 숲에 들어와 그것을 훔쳤다는 말인가요? 그게 말이나 되나요? 모든 엘프들의 이목을 피해서 그것을 훔쳐갈 수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흠.”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어찌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요? 거의 국가적인 세력일 텐데 우릴 보고 그냥 죽으라는 건가요?” 그쯤 되자 블루도 다소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뿐. 크게 신경 쓰는 눈치도 아니었다. 살짝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린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미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니 해야 했다. 일수불퇴(一手不退)! 자신의 인생에서 한번 결정한 것에 대해 무르기란 없는 법이다. 블루의 그런 모습에 베르니스들은 기가 찼다. 블루의 뻔뻔하기 짝이 없을 만큼 유유자적한 태도를 보며 이제는 그러려니 하면서도.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블루의 안면철판신공에 기가 질린 것이다. 첩첩산중이란 말이 아깝지가 않을 정도로. 거의 뻔뻔함도 예술이라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수준이었다. “대장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거지? 그냥 이 참에 우리를 죽일 생각인가?” “어쩐지. 금액이 좀 세다 싶더니. 아니 솔직히 말해 그 정도 일이라면 센 것도 아냐. 엘프 입에서 의뢰란 말이 나왔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하고 각오했지만 이토록 얼토당토 않는 일일 줄이야...... 휴.” 그때 미사메르티 장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실은 그 수호물을 단순히 도난당했다고 말하기 힘들다네.” “예. 그게 무슨?” “그 수호물을 지키던 엘프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녀를 정령의 딸이라고 불렀다네.” 힘겹게 그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하지만 눈치 빠른 텐시가 그 즉시 말을 받았다. “그런데......그녀가 사라졌군요? 바이너리 트위스터와 함께.” “맞네.” “그녀가 어디로 사라졌죠?” “그것을 알면 의뢰를 하지도 않았겠지.” 끄덕끄덕 모두가 고개를 흔들며 수긍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단독범행인 것 같다는 사실. “휴. 그나마 다행이군요. 도난당한 사실이 아닌 것만 해도 말이죠.” 텐시의 말은 우발적인 단독범행일 경우. 그 어떤 배후 세력도 없다는 점을 지적한 말이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미사메르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고 결코 가벼운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네. 상당한 위험이 따를 것이 분명하니 말이야.” “그렇겠지.” 블루가 맞장구를 쳤다. 왠지 블루는 신이 난 것 같아 보였다. “어쩜 저렇게 밉살맞아 보일까?” 일행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사메르티 장로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녀의 단독소행이 아닐지 모르네.” “그것은 또 무슨?” “뒤에 배후가 있을 거야.” “그게 정말입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네.” “그렇군요.” “휴우. 역시 쉬운 일은 아니란 말이군.” 맥 빠지는 목소리로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고 곧장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이내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로 앞 다투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니콜라스가 말을 꺼냈다. “최대한 빠르게 해결하겠습니다.” “그래요. 아무 걱정 마세요” “맞수, 장로는 영감이니 집에 가서 푹 쉬어야지. 킥킥. 그런 것은 젊은 우리가 냉큼 찾아 가져올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고 잠이나 자슈.” “크크. 당연하지. 이 스콜 형님이 나서는 일에 불가능이 어디 있겠어?” “너 때문에 걱정이 들긴 하지만. 이 형님의 넓은 가슴으로 감싸 안아주마.” “이 자식이 정말. 어디가 또 근질근질하냐?” “아니!” “그럼 입 닥쳐!” 니콜라스의 말을 시작으로 하나둘 출사표를 던지는 블러디 핸드 용병들 모습 그 어디에서도 불안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블루 혼자 제멋대로 결정한 것에 대한 불만도 없었다. 늘 투덜거리긴 해도 블루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블루가 수긍한 만큼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목숨이 오락가락할 수도 있다. 그런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사메르티 장로가 고개를 끄떡였다. 믿음직스러웠던 것이다. 베르니스가 쐐기를 박듯 말했다. “걱정하지 마슈. 맡은 일은 확실하게 책임지는 것이 바로 우리 블러디 핸드 용병단이니까.” 그 말에 미사메르티 장로는 환하게 웃었다. “잘 부탁하네.” 2.운명이라면 피한다 해도 다가온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거지?” 클루토의 질문을 시작으로 토론이 벌어졌다. “그 정도 보물이라면 우선 작은 소동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그 보물을 운반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크게 흔들릴 테니. 사소한 것에도 시비가 붙을 가능성이 있잖아.” “그럼 사건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보면 되는 건가?” “문제는 그런 시시비비가 한둘이냐는 점이지.” 모두 침음을 삼키며 머리를 긁적였다. “난 도둑길드를 통해 수상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지부터 알아볼게.” 텐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긁어 부스럼이라고 괜히 사건만 커지는 것 아냐?” “그래. 혹시 길드 녀석들이 눈치 채면 더 피곤해질지도 몰라.” 스콜의 말에 조용히 있던 니콜라스가 맞장구를 쳤다. 그 말에 텐시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그런 생각도 안 했겠어?” “그럼 무슨 대안이라도 있단 말인가?” "물론이죠. 니콜라스는 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 니콜라스의 안색이 침중해지며 심각하게 고민에 빠지는 눈치를 보이자. 당황한 텐시가 손울 내저었다. “으휴! 말을 말아야지. 별말 아닌 말에 저렇게 신중해지니.” 사실 그것은 블루의 수하를 자처하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블루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두 번 세 번 돌다리를 두들겨도 부족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좀 정도가 지나쳐 보였다. “여하튼 내가 그들에게 의뢰하면 그들은 분명 그 사건을 조사 할 거예요. 물론 다른 조사도 곁들이며 독자적으로 사건을 알아보기도 하겠죠. 그래서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것 같으면 우리들 뒤통수를 칠 것이고. 되지 않겠다 싶으면 돈만 받고 끝내겠죠.” “그렇게 되겠지.” “그렇다면 후자의 경우가 된다고 봤을 때. 다른 문제를 생각할 필요 없이 편해지긴 하겠지만. 전자의 경우라면 어떻게든 자신들이 이용하기 위해 빼돌리려 하겠죠? 물론 그런 큰 물건을 꿀꺽하기 위해선 자신들도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하겠지만 말이에요.” “흠. 아마도 그렇겠지.” 텐시의 말에 일행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옳은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그 틈을 이용해 그들이 그것을 입수했는지 안 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지요. 저도 길드에서 그 정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위치는 되니까요.”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지?” 니콜라스가 질문을 던지자. 텐시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 입을 열었다. “왜 상관이 없겠어요?” “상관있어?” “생각해보세요. 전자라면 우리를 도와 정보를 줄 테고. 길드가 꿀꺽한다면 우리가 찾을 물건이 어디 있는지 명확하게 알려지는데...... 손 안 대고 코를 푼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우리는 그곳에 가서 찾아오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텐시의 결론은 그렇게 끝났다. 잠시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그제야 모두들 감탄사를 터트렸다. 도둑길드의 정보망을 어떻게든 이용해보자는 그녀의 속뜻을 이해한 탓이다. 어떻게 보면 치졸하고 얍삽해 보이지만. 그보다 좋은 방법은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우선은 그 방법을 선택하기로 하지. 녀석들이 알아서 찾아줬음 좋겠군. 찾기 쉽게 말이지. 후후.” 블루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큭큭큭.” “흐흐흐.” 블루를 따라 베르니스와 스콜이 음침하게 따라 웃었다. 하지만 곧 그들의 입에서 비명을 흘러나왔다. 탁탁! “아얏!” “왜 때려?” “그렇게 웃지 마. 재수 없어!” 텐시였다. 이번작전은 베르니스들만 있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도둑길드에서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수를 써도 빼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텐시는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어디 한두 살 먹은 어린애들인가? 하지만 니콜라스와 블루 덕에 그것이 가능해진 지금. 그 계획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었다. 이제 그들이 흘린 정보를 가지고 도둑길드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주기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거저먹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세상에 거저먹기가 어디 흔한가. 말이 쉬울 뿐. 길드의 경계망을 뚫고 들어가 들키지 않고 그것을 들고 나오는 데는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움이 따랐다. 제아무리 신출귀몰하는 블루와 니콜라스라 할지라도 말이다.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순간. 베르니스는 불현듯 미사메르티 장로의 당부를 떠올렸다. “그런데 어찌하여 존 라이튼님에게까지도 우리가 바이너리 트위스터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려선 안 된다고 한 것일까?” 베르니스는 한참 고심했다. 그러나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근육처럼 딱딱하게 굳은 자신의 머리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휴. 괜히 머리 아프게 생각할 이유가 없지 난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잠이나 자자.” 그 생각을 끝으로 그는 침대 위에 벌렁 누웠다. 존 라이튼은 밤하늘의 별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별점을 보다 자신도 모르게 감상에 빠져든 탓이다. “흠.” 반짝 그 순간 눈이 침울하게 변해버렸다. “우려했던 일이.......” 스러져가는 그 별은 바로 자신의 것이었다. 너무도 많은 천기누설을 한 결과였다. “아직도 해야할 일이 많건만 .......” 또르륵 눈가에 맺힌 이슬이 눈물의 되어 흘렀다. 그러나 그순간 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직 자신이 해야할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명이 거의 끝나가고 있지만. 당장 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니 다소나마 위안이 되었다. 힘을 내자! 힘을 내 황태자를 보필해서 헤르마틴의 영광을 재현하자! 그는 사명감에 불타 바삐 태자가 있는 숙소로 찾아가자. 존 라이튼은 태자를 보필해 블루를 찾아 나섰다. 죠셉이 그림자처럼 태자를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회의를 마치고 잠시 휴식 중이었던 블루 일행에게 그들의 출현은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있는 머리. 없는 머리 쥐어짜다 지친 탓이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황태자를 위해 수고하고 있는 것인데. 정작 황태자를 무시한다면 어찌되겠는가! “내일 떠나기에 앞서 한 가지 상의드릴 말이 있어 왔소. 태자저하께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특별히 블러디 핸드 용병단원들이 모두 들어줬으면 싶기에 이렇게 늦은 저녁 염치불구하고 찾아왔소.” 더군다나 이토록 정중한 인사에 누가 인상을 구길 수 있겠는가. 지치긴 했으나 최대한 살가운 모습으로 자리를 마련했다. “여기 앉으세요.” “고맙소. 텐시 경.” 모두 자리에 앉자 존 라이튼이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입을 열어JT다. “내가 온 까닭은 내일 함께 떠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황태자였다. 죠셉 역시 당장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존 라이튼을 올려다보았다. 상황을 보니 태자와 죠셉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했다. “죄송합니다. 사정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대체 무슨 사정입니까? 그것이 그리 중요하다면 나도 함께 기다려줄 수 있습니다.” “태자저하. 저하께서는 하실 일이 있지 않습니까? 하루라도 아니 일 분이라도 빨리 황좌를 되찾으셔야 하지 않사옵니까?” “흐흑.” 황태자는 애환이 가득 담긴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옆에 있던 죠셉이 속으로 생각했다. “라이튼 공작만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나보구나.” 존 라이튼이 함께 떠나지 못한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만 믿고 이 먼 실을 마다않고 달려와KT다. 그런데 함께할 수 없다니! 허탈했다. 머릿속이 공허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장차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죠셉과 황태자의 뇌리를 휘감을 때. 존 라이튼이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하.” “어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라이튼 경께서 함께해주실 거라 굳게 믿고 있었는데. 저와 함께하지 못하신다니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합니다. 지금부터 무엇을 어찌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니...... 흐음.” 황태자의 슬픈 표정이 비수처럼 존 라이튼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되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본다면 정말로 영혼을 파는 일일지도 몰라KT다. “헤르마틴을 위해 줄을 각오가 되어 있는 소인입니다. 그런 제 자신이 태자저하를 저버릴 이유가 있겠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존 라이튼 쪽으로 향했다. “지금 제가 해야할 일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만. 헤르마틴을 찾기 위한 일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존 라이튼의 힘 있는 목소리에 황태자의 눈빛이 다시 일렁거렸다. 눈물 때문이었다 조금 전엔 슬픔 때문이라면 이번엔 감격한 탓이다. 그러나 착잡함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존 라이튼 자신이었다. 힘찬 겉모습과 달리 속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저도 지금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헤르마틴을 위한 것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로서도 지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도박은 시작된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최후의 도박. 그때. 황태자의 나직한 목소리가 존 라이튼의 귓가를 울렸다. “어린 나는 라이튼 공작의 말만 믿겠소.” 존 라이튼이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존 라이튼 눈빛 속에 깃든 오묘함을 눈치 챈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바로 블루였다. 그 오묘함 속에서 뭔가 좋지 못한 기운을 느끼고는 그는 살짝 인상을 썼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주시할 뿐이었다. 자신이 관여해야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제가 합류하기 전에 태자저하를 보필하며 여러분들께서 하셔야할 것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선 죠셉이 모든 일을 도맡아야하겠지만. 그래도 미리 알아두시라는 생각으로 드리는 말씀이니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베르니스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는데. 머리 굴리는 것만 아니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눈빛들이었다. “우선 크라만시로 가시길 바랍니다. 그곳의 여주는 두 군주를 섬길 수 없다고 말하는 진정한 기사 중 하나로 올곧은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지금 일어난 반역행위에 상담한 반감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는 분명 황태자님을 도와줄 겁니다.” “그것을 어찌 믿소?” 황태자의 걱정스런 말투에 존 라이튼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자는 믿을 만한 자이옵니다.” 그 말 외엔 다른 부연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불안하기만 했던 가슴에 확실하게 믿음이 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만약 존 라이튼이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덧붙였다면 불안감은 쉬 사라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존 라이튼의 목소리는 그자를 확실하게 믿고 있다는 듯 신뢰에 차 있었다. 그것이 자신감을 불러다주었다. “알겠소. 경의 말만 믿겠소.” “감사합니다. 전하.” “아니오. 오히려 내가 감사하오.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아주었으니 말이오.” “망극하옵나이다.” “그럼 계속해주시오.” “예. 전하!” 존 라이튼은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옮기기 시작했다. “ 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크라만시의 크라만 후작은 자신의 성을 기점으로 하여 태자저하의 세력을 형성해 나가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겁니다. 가장 먼저 태자저하를 확실히 보필할 배후 세력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 차츰 힘을 키우겠지요. 태자저하께옵서는 그들의 충성을 믿고 군사와 군병들을 키워나가는 데 주력하시면 됩니다.” “알았소.” “하지만 우선은 자본금이 많이 부족할 겁니다.” “흐음.” “그러나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책임질 것이니. 너무 심려치 마시고 계속 병사들을 보충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장황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낸 존 라이튼은 블루와 베르니스들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말했던 것들을 명심하고 태자저하의 안위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베르니스가 그 말을 받았다. “걱정 마시오. 라이튼 경. 그게 바로 우리 블러디 핸드 용병단의 일이니까.” “어쭈. 이 자식 똥 폼 잡는 것 좀 봐라. 임마. 네가 가장 걱정이야. 알아?” “이 녀석은 내가 잘 되는 꼴을 못봐요! 어디 오늘 너 한번 죽어봐라.” “이 새끼가...... 오냐! 너 죽고 나살자!” 퍽퍽! “으악! 감히 거기가 어디라고 때리는...... 크억! 이 잡놈. 이제는 말하고 있는데 때리는..커헉! 오냐.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아아아...... 무는 건 반칙!” “그래?” “계집처럼 꼬집는 것도 반칙이다!” “너나 할퀴지 마. 이 씹새야!” “아야야야야. 아프다!” “그래봤자 간지럽다. 임마.” 둘이 티격태격하는 꼴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던 텐시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베르니스와 스콜의 엉덩이를 뻥뻥 걷어찼다. 그러자 둘은 거침없이 구석까지 데굴데굴 굴러가 축 늘어져버렸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렸는지 머리를 좌우로 흔들더니 악다구니를 써가며 다시 달라붙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저 화상들!” 텐시는 그 중 한 명이 자기 애인이라는 사실에 착잡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힘차게 고개를 저은 그녀가 말했다. “아무튼 열심히 할게요.” “텐시 경만 믿겠소. 하하.” 존 라이튼의 말에 텐시는 쑥스러운 듯 두 볼을 붉혔다. 그때 존 라이튼의 시선이 슬그머니 블루와 니콜라스를 향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둘은 아무걱정 말라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믿음이 가는 두 사람이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존 라이튼은 황태자의 안위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태자저하. 다시금 머리 숙여 당부드리오니. 제가 드린 말씀을 기억해주십시오. 저 역시 이곳 일이 마무리되는 즉시 태자저하를 따라나설 것이니. 아무 걱정 마옵소서.” “알겠소. 라이튼 경이 뒤따라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리다.” 존 라이튼이 결의에 찬 눈으로 태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아직 죽을 수 없다! 제발 하늘이여. 헤르마티아 대제시여. 선황이시여. 조금만......조금만 더 시간은 주십시오.” 날이 밝자마자 일행은 부랴부랴 아침을 해결하고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미사메르티 장로가 말했다. “그럼 잘 부탁하네.”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하지만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블루. 그것을 확인한 미사메르티는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처음엔 고민이 많았다. 정녕 친구에게까지 숨겨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결국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직감 때문이다. 왠지 모르지만 존 라이튼이 알아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친구보다 그 직감을 믿기로 했다. 마침 황태자와 인사를 나누는 중이라. 존 라이튼은 미사메르티와 블루 사이에서 오간 교감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옥체를 보전하십시오.” “라이튼 경도 몸 성히 내 곁으로 돌아오시오.” 황태자는 존 라이튼의 손을 꽉 잡고 한동안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순 없는 노릇. 아쉬운 듯 마지막 인사말과 함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막 돌아서려는 찰나. “블루 경!” 존 라이튼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블루를 호명했다. “뭐지?” “흐음.” 존 라이튼은 잠시 뜸을 들였다. 일행들을 슬쩍 바라본 블루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태자저하 신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아니네.” “그럼?” 존 라이튼의 표정이 진중했다. 결심한 듯 그가 말했다. “자네한테 궁금한 게 하나 있네.” “뭐지?” 블루가 묻자 존 라이튼은 나직한 목소리로 의문을 제기했다. “자꾸 자네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 흠칫! 일행들 귀가 솔깃해졌다. 얼마쯤 떨어져 있었으나 목소리가 커 모두 들은 탓이다. 특히나 자신들도 궁금해 마지않던 사인이 아닌가. 그렇다고 함부로 물을 수도 없어 답답하던 차에. 가려운 곳을 속 시원히 긁어줄 물음에 귀가 번쩍 뜨인 것이다. 블루는 시큰둥한 어조로 반문했다. “어째서지?” 눈빛을 번뜩이며 존 라이튼을 노려보는 블루. 그는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결연한 얼굴로 주먹을 움켜쥐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주먹을 쓴 지도 꽤 되었다. 그래서일까? 주먹을 말아쥐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의 물결이 전신을 흐르며 전율을 일으켰다. 그 쾌감...... 그것은 황홀 그 자체였다. 눈앞에 상대만 있다면 금상천화겠으나....... “맞아. 저 친구가 제법 세지? 눈 딱 감고 깽찬 한번 벌엽ㄹ까?” 머릿속으로 이fswj런 생각을 굴리는 블루의 속도 모른 태 존 라이튼이 말했다. “후후. 자네에게서 색다른 운명이 느껴지는 탓이지.” “색다른 운명?” 무슨 생뚱맞은 말이냐는 듯 블루는 존 라이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존 라이튼은 시종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렇다네. 색다른 운명일세. 난 환광술을 깨우친 후 인간의 생을 관통하는 어떤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네. 그 흐름이란 시간과 관계된 것으로. 본디 시간이 흘러가야 미래를 알 수 있겠지만 난 환광술을 통해 그 시간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지.” “그 말은 원한다면 미래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존 라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다들 놀랐다. 그 중에서 황태자나 죠셉의 눈은 거의 찢어질 듯 커져 있었다. 흡사 그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어찌하여 속 시원히 미래를 점쳐주지 않았느냐고 항의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존 라이튼은 아랑곳하지 않고 블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사실인 것 같군.” 존 라이튼의 두 눈을 빤히 주시하던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좋아좋아. 믿어주지.” “고맙네.” “그런데 어찌하여 그것을 나한테 말하는 거지?” “.......” 존 라이튼은 말문이 막혔다. 그로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나온 것뿐이다. 헤어지기 전에 이것만은 꼭 짚고 넘어가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운명을 알고 싶지 않은가?” “.......” 이번엔 블루가 침묵을 지켰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다들 블루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블루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그런 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 “정말인가?” “그래. 정말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피한다 해도 다가올 터인데 미리 알아서 좋을 게 없지 않은가.” 그 말과 함께 주변 분위기는 맥이 풀려버렸다. 블루의 말이 이어졌다. “거기다 지금 내가 내 운명의 중심에서 서 있다면. 내가 용병 길드장을 만나 블러드 핸드의 맥을 이은 것도. 그리고 우연찮게 태자저하를 만나게 된 것도 다 그럴싸하지 않은가?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각본처럼 말이지. 솔직히 말해 이 블러드 핸드의 메달이...... 이렇듯 골치 아프고 복잡한 일들의 시발이란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받지도 않았을 거야. 하하하하!” 그러자 존 라이튼이 따라 웃었다. “후후후. 역시...... 어째서 내가 자네한테 이런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야 알겠군. 결국 내가 불필요한 말을 한 셈인가.” “글세. 꼭 불필요한 말을 한 것은 아닌 듯하군. 내가 깨달은 바가 적지 않으니 말일세.” 존 라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왠지 우리 운명이 가볍게 끝나지 않을 것 같군.” “큭큭.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리겠네.” 블루는 그 말을 끝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젊은 엘프들의 안내를 받으며 엘프의 숲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존 라이튼은 그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미사메르티 장로가 다가와 물었다. “자네도 떠날 건가?” “.......” 존 라이튼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마도.” “아무튼 인간의 수명이 너무 짧아.” 푸념하듯 무심코 내뱉은 미사메르티의 말에 존 라이튼은 흠칫 놀라KT다. 미사메르티가 등을 툭 치며 말했다. “후후. 놀랄 것은 없네. 자네처럼 천기를 읽을 줄은 몰라도 자네 표정을 읽는 것은 가능하니까.” 존 라이튼은 다소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미사메르티가 위로하듯 말했다. “괜찮네. 자네가 무슨 일을 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믿네.” “고맙네. 친구.” “고맙긴...... 그럼 다음에 보자고.” “그래. 꼭!” 말을 마친 존 라이튼은 굳은 얼굴로 블루들이 떠난 반대편으로 걸어 나갔다. “그래. 꼭 살아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겠네.' 멀어지는 친구를 보며 미사메르티는 애써 눈물을 삼켰다. 3.누가 우리 앞길을 막을쏘냐! “꺄악! 살려줘요!” 어디선가 들려온 비명소리에 니콜라스가 진저리난다는 듯 머리를 내저었다.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린다는 듯 베르니스가 말했다. “아아. 또야?” “이젠 정말 징글징글하다.” 스콜까지 장단을 맞췄다. 결국 태자가 나섰다. “여인이 위험에 처한 듯한데.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자저하 말씀이 옳습니다. 불의를 보고 이렇듯 미적거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군요.” 죠셉이 태자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도 시큰둥한 얼굴로 귓밥을 파는 시늉을 하던 베르니스가 뒤늦게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죠셉 영감! 지금 가고 있잖소. 그러니 그만 좀 떠들어 대시구려. 아주 귀에 딱지가 앉겠네.” “어허. 무엄하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무례한 행태란 말이오! 신하된 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 부족하다 해도 이것은 너무하지 않소!” “네. 네네...... 그럼 한번 알아보겠습니다아.” 베르니스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말투를 배배 꼬았다. 그 바람에 죠셉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고 판단한 탓이다. 과연 비명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이동하는 베르니스와 스콜의 대화는 엉뚱했다. “아. 어떻게 하면 연기를 저렇게 밖에 못할 수가 있지?” “그러게. 비명소리가 무슨 바퀴벌레 보고 놀란 것만도 못하냐? 좀 리얼하게 못하나? 그래야 우리도 흥이 좀 날 것 아니냐!” “그러게나 말이다...... 휴.” 블루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고. 뒤따르는 니콜라스와 텐시 그리고 클루토는 베르니스와 스콜의 이야기를 들으며 피식거렸다. 그것을 본 죠셉과 황태자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자꾸 미적거리는 움직임이 여간 답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비명소리를 듣고 도착한 곳에서는 산적으로 추정되는 녀석들이 아직도 칼부림을 일으키며 바닥에 주저앉은 여인을 위협하고 있었다. “꺄아악. 제발 살려주세요!” “꼼. 짝 마라. 돈을. 내놓으면. 살려. 주겠다.” “돈이 한 푼도 없단 말이에요. 흑흑” “도. 돈이 없어? 그러면 너를. 잡아가서. 몸이라도. 팔아야겠다. 으. 하. 하. 하!” “아주 책을 읽어라. 책을!” 사실이었다. 거의 책 읽는 수준이었다. 아니. 그보다 심했다. 대본을 들고 소리내 읽어도 저 정도는 아닐 것이다. 매 음절마다 스타카토를 빼놓지 않는. 저 센스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부자연스러운 대사의 남발이라니! 오히려 산적이 애걸복걸하는 것 같은 어설픈 코미디 활극을 찍고 있었다. 그마나 여자는 좀 나은 편이었다. 표정연기가 제법인 것이 조금만 더 갈고닦으면 믿고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던 여인과. 위협을 하던 녀석들은 베르니스들을 보는 순간 그들의 연기는 극에 달했다. 그런데도 눈치를 채지 못한 죠셉과 황태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어서 살려야 한다. 도와줘야 한다는” 말을 쉴 새 없이 나불거리고 있었다. 참으로 둔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었다. “어서 도와주지 않고 뭘 하는 겁니까?” “맞소. 저기 힘없는 여인이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단 말이오?” 황태자와 조셉의 다그침에 베르니스가 마지못한 듯 말했다. “아니. 아직도 이 상황을 모르신단 말입니까?” “저기 여인이 당하고 있지 않소?” “당하긴 누가 당한단 말입니까?” “베르니스 경. 혹시 장님이오?” “제가요?” “그런데 어찌 눈앞에서 위협을 당하고 있는 여인을 보지 못한단 말이오?” “아니. 그게 아니라...... 으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답답함에 응수를 해보았으나 아니나 다를까. 역시 씨도 안 먹혔다. 오히려 이상한 눈초리만 가중될 뿐이었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금세 들통 나고 말 형편없는 연기력에 속아 넘어가다니!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주변에 도와달라고 눈짓을 보내보았으나. 모드들 번거롭고 귀찮다는 눈빛으로 시선을 회피하며 자신의 애절한 눈짓을 외면해 버렸다. “너흴 믿은 내가 병신이지.” 베르니스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했다. 결국 방법은 하나. 직접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신하된 자의 도리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베르니스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 실랑이를 벌이는 여인과 산적 사이로 끼어들었다. “저. 저런!” 찰나 간이었으나. 황태자와 죠셉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가셨다가 화색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황태자를 위한 라스트신을 멋지게 소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옆으로 다가오는 스콜을 일별한 다음. 연극배우처럼 한껏 성량을 높여 입을 열었다. “여인이여. 걱정 마오! 주군을 모시고 길을 지나가던 중 공포에 떠는 아리따운 그대의 비명을 듣고 내 냉큼 달려왔소! 악당들의 손에서 나와 동료가 당신을 지켜주겠소!” 그러자 스콜이 장단을 맞추듯. 손가락을 곧게 펴고 산적들로 보이는 사내들을 가르키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아리따운 여인을 괴롭히던 불한당들은 들어라! 내 애검 아우라도크라이프델레테가 너희의 심장에 구멍을 내놓기 전에 도망칠 기회를 줄 것이다!” 낯 뜨거운 대사를 읊으면서도 스콜은 낯빛하나 변하지 않았다. 연기에 푹 빠진 듯했다. 그 바람에 옆에 있던 베르니스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판을 깨지 않기 위해 그는 검을 뽑아 치켜들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냉큼 물러가지 않으면 내 푸르트푸르토코라스테이라도 내 친구의 검인 아우...... 어쩌고저쩌고 검과 함께 악독한 네 녀석들의 심장과 목을 베어버리리라!” 둘은 장단이 척척 맞았다. “우오오!” “쿠오오!” 둘은 검을 허공에서 흔들며 괴성을 질렀다. 그렇게 미쳐가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그들 모습을 보며 블루는 파안대소했고. 니콜라스는 머리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텐시와 클루토는 일찌감치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죠셉과 황태자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거렸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둘의 영웅적인 면모와 힘찬 기상에 반한 것 같아 보였다. “죠셉 경. 나는 베르니스 경과 스콜 경이 저토록 기사도에 충실한 사람들인 줄 몰랐습니다. 마치 황실에서 보여준 황실극단의 헤르마티아 대제의 영움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아니될 것 같습니다.” 끄덕끄덕 황태자는 고개를 주억이듯 끄덕였다. 황태자와 죠셉의 눈에는 산뜻한 웃음과 함RP 우렁찬 기합성을 토하는 베르니스와 스콜의 유난히도 반짝이는 하얀 이빨이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여인이여. 내가 지켜주리다!” 번차레로 이어지는 스콜과 베르니스의 용맹한 목소리가 산기슭을 울리고 있었다. “검은 마왕의 하수인들아. 내 검을 받아라!: 황태자가 놀란 눈을 크게 뜨며 중얼거렸다. “서. 설마 정말 마왕의 세력이란 말인가? 그럼 큰일이지 않은 가! 죠셉경. 어서 도와줘야 하지 않겠소이까?” 느닷없는 황태자의 과민반응에 베르니스의 연인인 텐시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타는 목마름을 느끼며 다급히 외쳤다. “저. 저기 태자저하! 저것은 사실이 아니라.......” 그러나 흥분한 황태자에게 텐시의 목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다. 죠셉까지 동참해 한목소리로 마법 주문을 영창하는 그들! 결국 텐시는 더 이상 설명하기를 포기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그리곤 베르니스들을 향해 슬쩍 시선을 돌렸다. 너희들이 일을 만들었으니. 알아서들 해결하라는 눈빛으로 말이다. 그때 들려오는 블루의 웃음소리. 블루의 파안대소는 그칠 줄을 몰랐다. 심지어 배를 움켜잡고 바닥을 데구루루 구르기까지 했다. 아무리 봐도 쉽게 웃음이 멈출 것 같지 않았다. 때 이른 석양이라도 내려앉은 것일까? 텐시의 얼굴은 더 이상 붉어질 수 없을 만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저놈의 인간들. 돌아오기만 해봐라!” 그냥 무시하며 넘어갈 것을 결국 블루로 인해 매 맞을 것이 확정된 베르니스와 스콜이었다. 그러니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본의 아니게 졸지에 마왕의 수하로 전락한 산적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하나같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런 미친 새끼들!” 왠지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전신을 엄습해온 탓이다. 사정은 피해자 연기를 하던 여인도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여인은 곧 뭔가 깨달은 듯 언성을 높여 베르니스와 스콜의 미친 연기에 동조했다. 나름대로 이런 돌아dll(?)를 요리하는 쪽이 좀 더 수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여인의 눈빛 연기로 모든 상황을 간파한 산적들도 스스로 마왕의 하수인 연기를 시도했다. “큭. 큭. 큭. 걸려. 버렸군. 하지만. 세상에 나온. 첫 . 날이니. 만큼. 그. 여인과. 너희 수중의. 돈을. 모두. 내놓는다면. 순순히. 보내. 주겠다.” 산적의 말에 여인이 외쳤다. “용사님들. 제발 수중에 가진 돈이 있다면 저 악마들에게 줘버리고 한번만 살려주세요.” 블루는 그 꼴을 보며 또 한바탄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참으로 놀고들 있었던 것이다. 블루는 웃으며 베르니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저놈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뭇 그것이 궁금했다. “오오. 아리따운 아가씨! 걱정 마시오. 우리는 수중에 돈이 아주 많소이다!” “그렇다면 어서 돈을 저들에게 몽땅. 던져버리시고 저를 좀 구해주시와요.” “하하. 돈은 있지만 내 황제폐하를 친히 모시는 황실기사로서. 어찌 저런 무리를 두려워한단 말이오!” “예? 황실기사요?” “그렇소. 앞을 가로막은 자의 목을 딴 일은 있었어도. 비굴하게 무릎을 꿇거나 던져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소!” 스콜의 단호한 한마디에 여인과 산적들이 뜨끔했다. 거의 동시에 허공에서 유영하던 스콜의 검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지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촤앙! 꿀꺽! 설마 진짜 황실기사는 아니겠지? 진짜일 리 없다. 하는 짓이 영락없는 돌아이(?)들이 아닌가? 저들이 황제를 모신다면...... 생각만 해도 우스웠다. 그러나 하나하나 곰곰이 따져보면. 왠지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귀족 나부랭이들 대부분이 저자들처럼 야간 맛이 간 놈들이 아닌가. 답이 안 나오는 참으로 알쏭달쏭한 문제였다. 미친놈들이 계속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순간적으로 등줄기가 오싹했다. 식은땀이 났다. 만에 하나 저들이 진짜로 황실기사들이라면. 자신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 아니겠는가. 지나가다 똥을 밟은 것이다. 산적과 여인은 이성과 본능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경고음에 귀를 기울였다. 살고 싶으면 더 늦기 전에 도망쳐라! 하지만 어떻게? 산적들이 현실적인 문제에 가로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여인이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알았을까? 고개를 튼 베르니스가 웃으며 말했다. “여인이여. 아무 걱정 마시오. 당신에게 두려움을 준 악마의 수하들 목을 내 단칼에 베어 그대에게 바치겠소.” 미친놈들의 말에 여인은 아연실색했다. 사람 목을 따서 바친다는데. 질리지 않을 여인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미친놈(스콜)은 자신이 뭔가 멋진 말을 했다고 착각한 듯. 하얀 치아를 반짝이며 환하게 웃고 있지 않은가. 여인은 힘겹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놈은 자신의 검을 거머쥐는 모습을 보여주며 검을 들고 등을 돌린 채 산적들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목을 따다줄 심산인 것 같았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자신이 도망치려고 했다는 걸 아직 모르는 듯 했다. 만약 자신이 저 산적들과 한패라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 사실이 발각되기 전에 이 자리를 벗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슈우우욱! 콰과과광! 거대한 불길이 날아들었다. “히익!” “이. 이게 뭐야?” 놀란 것은 비단 산적들만이 아니었다. 여인과 도망치려는 여인을 붙잡아놓고 반응을 즐기던 베르니스와 스콜까지 심장이 콩알만해지고 말았다. 설마 뒤에서 파이어 볼을 날릴 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누. 누구야?” “어떤 자식이야?”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위기를 느낀 탓일까? 베르니스와 스콜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나 잘했지?” 하듯 씨익 웃는 죠셉이 눈에 들어왔다. “저. 저런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베르니스가 이를 갈았다. 그러나 멀찍이 떨어진 죠셉에게 그 중얼거림이 들릴 리 만무 했다. “저 새끼 저거 왜 지랄이야? 가만히 지켜보고나 있을 일이지! 우릴 바비큐 만들려고 작정했나!“ 그때 당황한 산적이 입을 열었다. “대. 대체 저 녀석들은 뭐냐?” 그러자 죠셉은 회심의 미소를 띠며 산적들을 바라보았다. 순간. 산적들은 적이 당황했다. 베르니스는 놀라는 가운데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상황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아직 연극은 끝나지 않았다. 하여 그는 포커페이스로 뺑카를 날렸다. 아직까지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고 판단한 탓이다. 아니. 무엇보다 황태자에게 아직 보여줄 게 남아있었다. 그러나 아직 떳떳하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줄 때라는. 출처불명의 사명감으로 당당히 어깨를 펴며 입을 열었다. “아하하하. 너희 같은 마왕 조무래기들을 처치하기 위해 우리 황실의 대마법사님께서 마법을 날리신 것이다.” 그냥 나오는 대로 지껄인 것뿐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말을 한 베르니스나 그 말을 들은 죠셉이나 흠칫 놀라고 말아다. “서.설마?“ 죠셉은 서둘러 베르니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베르니스도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를 깨달은 것이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만약에 사실이라면 세상에 저런 바보도 없을 것이다. 그때 다시 날아드는 파이어 볼! 아니...... 파이어 볼들! 슈슈슈슈슛! “히이이이익!” 불시에 망령이 든 미친 마법사 죠셉의 제2차 마법난사가 개시 되었다. 대략 삼십여 개쯤 될까? 누가 황궁 수석마법사 아니라고 할까봐 오라지게 많이도 쏘아 부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눈이 튀어나오는 듯한 아찔함과 함께 극심한 안구통증을 경험해야 했다. 동시에 갈팡질팡 오락가락 어찌할 바를 몰랐다. “튀어어엇!” “여어억시 설어얼마가아 사시일이었어어어어! 저 노망난 미친 마법사 새끼!” 콰과과과광! 퍼버버버벙! “으아아아악!" “사. 사람 살려!” “꽥!”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폭염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갑작스런 연쇄폭발로 짙은 먼지구름이 버섯모양으로 솟구치며 산중턱을 가득 메웠다. 한참이 지나서야 먼지는 가라앉고 시야가 트였다. 그리고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베르니스와 스콜이 비틀거리며 블루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옷이 여기저기 찢기고 온통 먼지투성이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장 반긴 것은 죠셉과 황태자였다. “오오. 스콜경 살아 있었구려!” 죠셉의 목소리에 기절할 것 같던 베르니스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눈을 치켜뜬 베르니스. 옆에 다가오는 죠셉을 보며 이를 갈았다. “왜 죽길 원했나?” 으르렁거리는 야수의 포효소리를 듣지 못한 듯. 죠셉은 계속 싱글벙글이었다. 그가 말했다. 그가 말했다. “하하. 내가 왜 스콜 경과 베르니스 경이 죽길 바라겠습니까?” “그럼 그 파이어 볼은 누구를 겨냥해 쏜 거지?” “그야 마왕의 하수인들을 향해서.......” 자신 있게 입을 연 죠셉은 엄청난 살기에 얼른 입을 다물었다. “으드득! 그 마왕 하수인들이 어디 있는데?” “저기 있잖소?” 죠셉이 가리키는 곳엔 반쯤 구워진 산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고 항변하듯 간헐적으로 몸을 비틀며 움직일 뿐. 사실상 이미 초주검상태였다. 그러나 위협당하던 여인은 그 사이 도망친 것인지 찾을 길이 없었다. 눈에 불을 켜고 죠셉을 노려보던 스콜과 베르니스가 다시 한 번 살디 등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마왕의 수하들이 대체 어디 있냐고오오요?” 없었다. 사방팔방 둘러보아도 마왕의 수하는 보이지 않았다. 만약에 마왕의 수하라면 파이어볼 몇 방(?)에 저렇게 나가 떨어질 리 있겠는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죠셉은 눈을 돌리며 베르니스와 스콜의 시선을 피했다. “그. 글쎄요.” 피하는 죠셉의 시선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스콜이 물었다. “내 눈을 똑. 똑. 히. 보면서 말씀. 하시죠?” “흐흐흐.” 우두둑 두둑! 엄포를 놓으며 관절이 부러질 듯 손가락 마디를 꺾는 스콜과 베르니스. 궁색해진 죠셉이 말을 더듬었다. “나. 나는 그냥.......” 힐끔 눈치를 살피던 죠셉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떽!” 베르니스들이 갑작스런 역공에 찔끔하자. 죠셉은 강공을 퍼부었다. “자네들 뭔가?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 도움을 주기 위해 마법을 사용한 나에게 이거 너무한 무례한 것 아닌가!” 어이없다는 듯 눈길을 교환한 베르니스와 스콜이 반격에 나섰다. “오호ㄹ. 누가 위기에 처했다구요?” 자네들이 위기에 처하지 않았었나?“ “그래요?” “클림없네!” “그으러시어써요?” 붉게 충혈된 안구를 죠셉의 얼굴 가까이 들이대며 계속 “그래요?”를 남발하는 스콜과 베르니스. 마계 최고의 괴물이라는 발록의 면사도 저렇듯 끔찍하지는 않으리라. 죠셉은 응원군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도와줄 누군가가 절실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황태자에게 시선을 돌렸는데. 스윽 소리 소문 없이 먼 산으로 고개를 돌리는 매정한 주군. 처음부터 황태자를 보고 있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그가 고의적으로 딴청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 만큼 능청만점의 일품연기였다. “태. 태자 저하!” 황태자의 말만 믿고 이 모든 일을 자행한 죠셉으로서는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흘러넘친 스프인걸. “자. 자네들이...... 저들이 마왕의 수하라고...... 그래서 자네들이 위험할까봐서.......” “그러시었써요오오?” 죠셉은 둘의 뜨거운 입김을 받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들려오는 블루의 웃음소리. “크하하하하하!”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블루는 여전히 바닥을 뒹굴며 웃고 있었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죠셉. 베르니스와 스콜은 쉽게 끝내지 않을 생각인지 여전히 얼굴을 들이 밀며 입을 열고 있었다. “그러시었써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렇군요.” 황태자가 수긍하자. 죠셉 덕에 불에 그슬린 베르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식으로 연기해서 여행자들을 끌어들이는 수법이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습니다. 저 여인을 보호할 때 여인이 등 뒤에서 기습해 금품을 털어가는 거죠.” “그렇구려. 정말 몰랐습니다.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만으로 사정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알려 주십시오.” 황태자가 자신을 보며 정중하게 예를 갖춰 말하자. 베르니스는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더욱 깊이 숙였다. 자신이 이제껏 아무리 막 살아왔다고 하지만. 자신의 주군이 예를 갖춰 응수하는 상대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성심성의껏 알려드리겠습니다.” “베르니스 경. 고맙소.” “망극하옵니다.” 주워들은 풍문은 있는지라 베르니스는 나름대로 예를 갖췄다. 사실은 상당히 엉성한 모습이었다. 황태자는 인자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베르니스의 예를 받아들였다. 지금껏 험한 삶을 살아왔을 용병이 깍듯이 예를 갖추려고 애쓰는 모습이 든든하게 느껴진 것이다. 한때 그는 풍전등화와 같은 목숨이었다. 죠셉 외에는 믿을 사람도. 비빌 언덕도 없었다. 그래서 반쯤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다시 황태자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전혀 뜻하지 않던 기회가 찾아왔다. 블러드 핸드 제2기! 그들은 그의 어머니를 후원하는 사람들이었다. 감동이었다. 문득 몇 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여왕답지 않은 활달함 속에서도 왠지 늘 힘겨워하시던 모습!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이제 좀 알 것도 같았다. 바로 자신 때문이었던 것이다. “어머니!” 죽어서까지도 자신을 굽어 살피고 있는 그녀 모습이 환한 미소와 함께 떠오르자, 가슴이 북받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때였다. “크라만시는 여기서 얼마나 가야 하지?” 뒤쪽에서 죠셉에게 질문을 던지는 블루의 음성에 황태자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이미 블루에 대한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은 황태자 눈 속에는 존경의 빛이 깃들어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무위를 뽐내며 환광술사 존 라이튼과 대등하게 자웅을 겨루던 대결! 뿐이랴. 드래곤을 죽인 슬레이어의 명성을 넘어 이미 그랜드 마스터급이라는 사실까지. 어느 것 하나 감탄 없이 지나칠 수가 없었다. 신화 속의 인물이 살아 숨쉰다면 바로 블루의 모습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보지 않았지만, 블루가 드래곤을 때려잡았을 때의 모습이 머릿속에 또렷이 그려졌다. 위풍당당한 그의 뒷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황태자는 가슴이 벅찼다. 그라고 어찌 꿈이 없겠는가. 일국의 중심축이 될 황태자이기 이전에 그는 꿈 많은 어린 소년이었다. 동화 속 주인공을 꿈꾸며 공주를 구하러 떠나는 자신을 상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 자신이 가야할 길과 그 길을 가야만 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속마음을 쉽게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꿈까지 잊은 건 아니다. 그런데 지금 그가 그토록 꿈꾸던 용사가 눈앞에 있다! 그 이름도 찬란한 드래곤 슬레이어! 그런데 어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황태자의 짧은 상념이 끝나는 순간, 죠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라만시는 이쪽 산맥을 타고 쭉 북동쪽으로 빠지면 됩니다. 그곳까지 도착하는 데는 이 주일 정도 소요됩니다.” “상당히 멀군.” “그게 다 크라만 후작께서 너무 올곧으신 탓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귀족들의 반발을 사서 외곽지역으로 쫓겨나신 거죠.” “그렇군.”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정도나 되니까 존 라이튼이 그곳을 추천한 거겠지. 그러나 사람 마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올곧으면 좋으련만....... 문득 루이스 영지의 클레이와 세바스찬 2세 그리고 로이와 뮤엘이 떠올랐다. 비록 헤르마틴과는 무관한 타국사람들이지만. 그들이라면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자신을 따라줄 것이 확실했다. 기왕 황태자로 인정했으니 확실히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블루는 그들을 끌어들일 계획까지 생각을 이어나갔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상당한 군사력을 충당해놓았을 터. 크라만 후작의 진심을 읽고 여차하면 최후의 보루로 그곳을 택할 생각을 여투며 그는 궁리를 계속해나갔다.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제3의 시나리오인 셈이었다. 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크라만 영지에 거의 다다를 때까지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일전에 만난 산적 패거리 중에 끼어 있다 슬그머니 도망친 여자가 다른 산적들과 짜고 치는 도박놀음을 계속하고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헀겠는가. “꺄아아악! 도와주세요!” 비멸소리는 꽤나 다급했다. “정말 큰일인가 봅니다.” 황태자가 다급히 말하며 블루들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서두르지는 않았다. 며칠 전의 그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역시 블루 일행은 먼 산을 주시하며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일찌감치 감을 잡은 것이다. 황태자는 죠셉과 눈길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갈 사기단이 분명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모두들 외면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빠르게 그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블루였다. 왠일일까? 뜻밖에도 그가 여인의 목소리에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저...... 대장?” 블루를 따르며 불러 세우려던 텐시는 블루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텐시의 얼굴에 드러난 긴장감과 당혹감! 일행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야. 텐시! 왜그래?” “무슨 일이야?” 일행들의 독촉에 그녀는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대. 대장이...... 대장이.......” 더듬더듬 “대장이”란 소리만 되뇌는 텐시. 답답한 듯 베르니스가 큰소리로 물었다. “대장이 뭐?” 순간 니콜라스도 텐시를 주목했다. 뜸을 들이던 텐시가 더듬거렸다. “대. 대장이...... 우. 웃고 있어!” “.......” 그 한마디에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하게 변했다. 그때 갑자기 베르니스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하...... 대장이 웃고 있다고? 정말이야?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털썩 베르니스는 웃다 무릎을 꿇었다. 그 옆으로 반쯕 넋이 빠진 스콜이 보였다. 텐시는 잔뜩 얼어 있고. 클루토는 귀를 막은 채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현기증이 나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는 니콜라스. 이번에는 또 어떤 상상도 못할 사건이 터질지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했다. 블루의 저 미소! 그것은 염화미소였다. 상상도 못할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나타나는 신호탄이었다. “어휴!” “에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그들. 지금의 시추에이션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죠셉과 황태자만이 멀뚱히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왜들 저러지? 한편 블루는 부하들을 뒤로 한 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일전의 그 사건은 그에게 흥미만점이었다. 그는 그때 바닥을 뒹굴며 원 없이 웃었다. 체면상(사실 체면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하들이 먼저 나선 일에 끼어들 수는 없었던 블루. 그러나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쾌하고 통쾌했다. 그러나 이번엔 베르니스와 스콜의 역할을 직접 해보고 싶었다.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했는데. 실제로 하면 얼마나 흥겨울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깨춤이 절로 났다. 솔직히 요사이 온몸이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용한 날이 너무 오래 계속된 탓이다. 제발 사건이 터져주기를 학수고대했으나. 세상은 너무 평화로웠다. 그런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거기다 귀에 익은 목소리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흥미를 유발시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비명은 계속되고 있었다. “꺄아아악. 제발 누가 절 좀 도와주세요!” “흐흐흐. 고년...... 아주 귀엽게 구는구나.” “흑흑. 돈도 다 드렸잖아요?” “넌 밥만 먹고 사냐?” “으. 하. 하. 하. 하!” 동료의 의미심장한 입담에 패거리들이 죽는다고 웃어젖혔다. 하지만 어딘지 어색했다. 앞에서 설치는 녀석이나 뒤에 버티고 있는 나머지 패거리들이나 대사의 흐름에 막힘이 없는 것 보니. 이번엔 비교적 연기파(?) 산적 같았다. 웃음소리가 매끄럽지 못한 게 흠이었다. “여보시오!” 블루가 다가가자 여인은 냉큼 그의 등 뒤로 달라붙었다. “기. 기사님! 제발 절 좀 살려주세요. 흑흑.” 여인은 블루의 윗도리를 잡고 흔들며 눈물도 흐르지 않는 눈가를 훔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것은 실수였다. 등 뒤에 있으니.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지 흘리지 않는지 알 수 없을 거라는 판단부터가 오산이었다. 블루는 알면서도 모른 척 시치미를 뗀 채.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가 예상한 대로. 며칠 전에 바람과 함께 사라진 그 여인이 확실했다. 보라색 머리. 계란형 얼굴. 다른 여인들보다 좀 넓어 보이는 어깨.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만큼 살짝 굽어진 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 밑에 그린 듯 찍힌 작은 점까지/왕사랑 블루의 예상은 곧 확신으로 굳어졌다(물론 위의 것은 무인의 눈으로 특징을 따진 것 일 뿐이지. 그녀는 충분히 미인이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블루가 짜고 있던 유쾌한 시나리오를 보다 완벽하게 다듬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떠올린 블루는 얼른 표정관리에 돌입했다. 그때 산적 하나가 바스타드 소드를 바닥에 내리꽂으며 거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큭큭. 녀석...... 그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를 순순히 내놓아라. 그러면 살려 보내주겠다.“ “무슨 이유로 말이오?” “정말 몰라서 묻느냐? 남자와 여자가 만났는데. 다른 이유가 무에 있단 말이냐. 크하하하!” “멍청한 놈. 크하하하하!” 산적들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으음.” 짧은 침음과 함께 블루는 비장한 얼굴로 여인을 바라보아KT다. 그가 말했다. “내가 이 여인을 정말 내줘야 하는 것이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선택이다.” “어떤?” “지금부터 네 목숨이 중요한지. 기사도인지 개뼉다구인지가 중요한지 잘 생각해라.” “.......” “생각했느냐?” “이놈. 할 일은 많고 하루는 짧다는 말도 모르느냐? 어서 생각해라.” 잠시 후 산적이 다시 물었다. “결정했느냐?” “조금만 더.......” “안 되겠구나. 이놈.” 그 즉시 산적들이 검을 휘두르며 다가왔다. 그러나 블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인을 지켜주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얼마 있으면 여인을 지키기 위해 허리에 매달고 있는 검을 뽑아들 것이다. 하지만 그뿐. 사진들에게 두둘겨 맞고 목숨을 구걸하다 결국. 속옷차림으로 산을 내려갈 터. 거기까지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산적들은 즐거운 생각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간만에 물건이었다. 옷이 고풍스럽고 검은 비싸 보였다. 그를 벗겨먹을 생각으로 한걸음씩 다가가는 그들 발걸음은 경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곧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블루의 돌발행동 때문이었다. 갑자기 여인의 어깨를 붙잡고 앞으로 끌어내 그들 쪽으로 떠밀어버릴 줄 누가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블루가 꺼낸 말은 더욱 환상이었다. “자. 여기 있소. 데려가시오.” “어머?” “엥?” 일순 여인과 산적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뜻밖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껏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설마 넘기란다고 정말 여인을 넘기다니! 그들이 원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때. 맨 앞에 서 있던 산적 하나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억지 웃음을 터트렸다. “아. 하하하하하...... 큼큼. 네. 네가 사는 법을 좀 알긴 아는 구나. 하하.” 그러자 브루가 잔뜩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물었다. “그럼 약속대로 보내주시는 건가요?” 블루의 질문에 산적 중 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 그래야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블루는 산적들 옆을 가로질렀다. 그런 블루를 보며 산적들은 하나같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화가 치밀었다. 산적들은 저 만큼 멀어지고 있는 블루를 잡기 위해 허둥지둥 달렸다. 그리고 블루 앞을 가로막고 숨을 헉헉대며 노려보았다. “이. 이 새끼가...... 누가 너한테 진짜로 가라고 했어?“ “예?” “단칼에 죽고 싶은 게냐?” 산적의 협박에 블루가 이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응? 나한테 가도 된다고 하지 않았나?” 조금 전 겁을 집어먹었던 표정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산적들은 그 차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 “않았나?” “그래.” “그 사이 혀가 몰라보게 짧아졌구나. 너?” “그래서?” “수고스럽겠지만 싸가지를 상실한 네 녀석을 위해 이 몸께서 몸소 그 짧아진 혀를 뽑아주겠다! 그리고 이 새꺄! 사내새끼면 사내새끼처럼 굴어야할 거 아냐? 여자를 보호해주는 맛이 있어야지 자기만 혼자 살겠다고 여자를 내팽개치고 도망을 쳐? 뭐.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가 다 있어?” 여인을 겁탈하려고 했던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 놈이 열변을 토했다. 블루가 피식 웃으며 뒤쪽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산적들 틈에서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블루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저 여인은 지금 내가 구해주기를 바라는 얼굴이 아닌 것 같은데? 레이지 제가 구해드리길 원하시나요?” 반짝 블루의 눈에서 안광이 쏟아졌다. 순간 철벽과도 같던 여인의 마음이 흔들렸다. 처음엔 경황이 없어 잘 몰랐다. 그런데 블루의 조각 같은 얼굴과 깊은 눈빛을 마주 대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상념이 하수구로 빠지는 물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실로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뒤통수를 치려고 했던 생각은 까맣게 잊은 채. 블루가 산적들에게 자신을 넘기는 순간부터 노려보며 내심 갖은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그런데 설레는 이 감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블루를 주변으로 형성되고 있는 밝은 파스텔 톤의 기운. 두근두근 뛰는 가슴은 머릿속을 하얗게 물들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 옆집오빠를 보며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이었다. 알고 보니 첫사랑의 유치한. 그러나 병적인 집착을 보였던 그 감정! 왜 그 감정이?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었다. 이런 경우를 한눈에 반했다고 하는 것일까? 여인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한 것은 다 블루의 술수라는 사실을 말이다.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블루의 입가에 떠어른 비웃음마저 천상의 미소로 보였으니까. 블루가 부드럽고 정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레이디. 그대 이름은?” “죠슈아.” “죠슈아? 오. 너무 아름다운 이름이군요. 그래. 죠슈아께선 저의 도움을 원하십니까?“ 끄덕끄덕 정중하고 부드러우며 유들유들하기까지 한 블루의 말투에. 죠슈아는 보랏빛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올리며 홍조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풀린 눈빛이 그것을 똑똑 말해주었다. “너 바보지?” 하고 물어도 고개를 끄덕일 것 같았다. 그 모든 변화는 블루의 손끝에서 시작되었다. 과거 무림에서. 환술로 유명한 아수라교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멸문지화시키고 몰래 챙겨 나온 아수라섭혼술(阿修羅攝魂術)의 힘이었다. 극성으로 사용하면 심령을 장악해 백치로 만들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술법이었다. 피할 길은 딱 두 가지뿐이다. 정종심법을 익혔거나 그 섭혼술을 사용하는 술사보다 고강한 내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러나 중원 천지에서 그보다 강한 내력을 가진 존재는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그와 맞먹을 강한 내력을 지닌 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블루는 가볍게 아수라섭혼술을 사용해 죠슈아라는 여인의 심령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 결과 죠슈아는 백지처럼 변타소 말았다, 사랑에 빠진 사랑스러운 백치로. 당연히 산적들은 갑자기 돌변한 그녀가마음에 들 리 없었다. 자신들이 그토록 매달려도 매몰차게 거절하던 콧대 높은 그녀가 저 호랑말코 같은 녀석에게는 대번에 넘어가다니!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눈앞에서 빼앗기는 것만큼 기분 나쁜 경우가 또 있을까? 좋아하면서도. 그리고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저 육감적인 몸매를 볼 때마다 견물생심이었지만 꾹 참았다. 배경이 상당한 탓이다. 특히. 그녀가 예뻐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 덕에 고수익을 톡톡히 보장받으면서도 미미한 찰과상 하나. 사소한 말썽 하나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무사히! 모든 건 탁월한 그녀의 연기력 덕이었다. 그녀가 처음 이 사업을 제안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아름다운 여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치고 상당히 치졸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업얘기는 뒷전이었고. 어떻게 하면 엎어뜨릴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그러나 그녀의 든든한 배경을 아는 순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길목마다 초소를 세우고 행인들이 그곳을 지나칠 때 비명소리와 외모로 행인들을 끌어들이고. 그들 시선이 산적에게 쏠려 있을 때 뒤 쪽에서 갑자기 인질이 인질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며 강탈하는데 견뎌낼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이처럼 안전하면서도 고수익이 보장된 사업은 산적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모든 게 그녀 덕분이다. 그러니 무엇을 해도 귀여울 수밖에. 이해득실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데.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튕기는 모습조차 귀여워 보이는 그녀에게 산적들이 하나둘 순정을 다 바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웬 기름덩어리같이 생긴 녀석이 한순간에 낚아채니. 마음이 오죽하였으랴! 블루를 노려보며 산적들은 대뜸 이를 드러냈다. “이 새끼가 염병지랄에다 발광까지 하고 있네. 어디 한번 죽어 봐라!” “맞다. 미친 개는 매가 약이라더라!” “내 친히 이 두 주먹으로 네놈 정신병을 고쳐주마!” “이야아아아!” 산적들은 분기탱천한 모습으로 블루를 향해 달려들었다. 열 명이 넘는 거굴들이 우르르 달려들자 제법 살벌한 그림이 되었다. 블루는 잠시잠깐 감상의 시간을 거친 뒤 날아드는 묵직한 베틀엑스를 일별하고 가볍게 앞발을 내밀었다. 그리고 물 흐르듯 움직여 간단히 공격범위를 벗어났다. 부웅 묵직한 소음을 내며 허공을 가르던 베틀엑스는 상대를 잃어버린 탓에 맥없이 바닥에 꽂혀버렸다. “엥?” “뭐야?” 산적들은 크게 당황했다.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블루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산적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가 죠슈아 앞에서 환히 웃고 있었다. 뿐이랴. 죠슈아한테 손을 내밀어 손등에 키스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표현하는 중이었다. 그 다음이 중요했다. 죠슈아가...... 상기된 얼굴로 블루 손에 자기 오른손을 맡기는 것이 아닌가. 블루는 수줍어하는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입술을 갖다 댔다. 산적들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 철벽을 뚫고 죠슈아에게 다가가 그녀 손등에 키스까지 날리고 있는 블루를 보며 분통을 터트렸다. 블루의 행동이 그들 염장을 제대로 질러준 것이다. 더 이상 그가 눈앞에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패는 것이 급했다. 그리고 또 패야했다. 덤으로 더 패준 다음. 때린 곳을 다시 한 번 때리고 때리지 않은 곳까지 적당히 매만져주어야만 분이 풀릴 것 같았다. 그들은 충분히 그럴 용의가 있었고. 실력 또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달려들었다. 제4장. 마이 아파 많이 아팠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너무 아팠다. 이렇게 아플 줄 미처 몰랐다. 온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죽을 것처럼 아팠으나 웬일인지 죽지는 않았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바닥에 널브러졌는데. 바닥과 맞닿은 지점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통증이 전해지고 있었다.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놈은 괴물이었다. 자신들은 건드리지 말았어야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만 것이다. 하얀 머리를 휘날리며 허공에 서 있는 사내! 놈은 악마가 확실했다. 광기어린 미소를 머금은 채 인정사정없이 까고 후려치고 들이 박았다. 저런 자가 악마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악마란 말인가. “후. 후. 후.” 악마가 호흡을 가다듬는다. “키키키키키.” 악마가 웃는다. 끔찍했다. 악마는 웃으면서 계속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구타는.......” 문득 주먹이 들어 올려졌다. 그것은 분명 누군가를 후려치기 위한 예비동작이었다. “제발!” 그 주먹으로 누군가를 후려치는 것은 상관없었다. 다들 자신만 아니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신에게 빌기까지 했다. 그런 그들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악마의 무쇠주먹은 그들을 피해갔다. 그들은 안도하며 신께 감사했다. 하지만 곧 그 감사는 저주로 바뀌고 말았다. 악마가 나직이 지껄인 한마디 때문이었다. “큭큭큭. 걱정 마라! 후후우. 모두 한 대도 틀리지 않게 골고루 패줄 테니까. 하늘에 걸고 맹세코 계산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큭큭큭.” 그런 맹세는 하지 않아도 돼! 안 해도 돼. 돼. 돼. 돼. 돼. 차마 발설하지 못한 말이 뇌리 속에서 메아리를 일으켰다. 혀를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곤 신음과 피 묻은 타액뿐이었다. 솔직히 비명을 지를 기운도 없었는데. 놈의 주먹이 한번 오갈 때마다 비명이 용케 튀어나왔다. “꾸에에에에엑!” 이보다 아픈 순 없었다. 이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의 고통으로. 산고에 맞먹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계속 수정을 거듭해야 했다. 과연 고통의 한계란 없는 것인가! 온몸으로 느끼는 통증의 가파른 상승곡선은 악마의 주먹질이 그치는 그 순간까지 계속될 것만 같았다. 통증과 비명의 상호관계 속에서 블루만 신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일부러라도 사건을 만들어 난리를 치고 싶었다. 그 와중에 기회가 제 발로 찾아왔으니.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그에게 언 없이 몸 보시(?)를 해주는 산적들에게 고마움을 아로새겨주기 위해 더욱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들을 향한 그 고마움은 뼈아픈 통증으로 전이되어 산적들의 뼛속 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우헤헤헤 킬킬킬킬.” 퍼버버버버버버버벅! 찰싹찰싹 정체불명 소음과 살과 살이 맞닿을 때 나는 신성한 소음의 이중주. 평소의 블루는 이 자리에 없었다. 다만 한층 강력히 업그레이드된 블루가 존재할 따름이었다. 아니. 그는 블루가 아니었다. 그는 블러드 핸드 용병단장 이었다. 그 사실을 입증하듯 블루의 주먹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산기슭에 숨어 지켜보던 베르니스들은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묘사하자면. 피가 튀고 살이 된다는 단어로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 지옥도의 참상 앞에서 죠셉은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재빨리 황태자의 눈을 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황태자는 보겠다고 버둥거렸다. “죠셉 경. 왜 그럽니까? 손을 치워주세요.” 하지만 죠셉은 끝까지 용납하지 않았다. “보시면 안 됩니다.” “어째서죠?” “저런 것을 보시면 태자저하의 비단결 같은 심성에 상처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고도 황태자는 여전히 불만이었다. 그러나 베르니스와 니콜라스 등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죠셉의 손을 들어주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대장이 저렇게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나?” 베르니스의 물음에 텐시가 동문서답을 했다. “어쩐지 미소가 평소보다 짙더라니......아아!” “이번엔 또 무슨 일을 꾸미려는 걸까?” 스콜은 정신이 나간 것인지 맞잡은 두 손을 턱 끝에 대고 감명 어린 눈빛으로 블루를 주시한 채. 죠슈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그러게?” “어찌되었건 별로 좋은 일은 아닐 것 같지?” 베르니스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끄덕 니콜라스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주군인 블루의 마음을 알다가도 모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핏물이 난무하는 가운데 블루는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죠슈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죠슈아는 아수라섭혼술 탓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멀거니 블루를 바라보며 황홀한 눈빛을 더해가고 있었다. 역시 확실했다. 그녀는 미친 것이다. 섭혼술의 부작용 탓인지 어쩐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완전 무결하게 미친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주먹으로 사람을 패며 미소를 짓는 남자를 향해 저렇듯 황홀안 눈빛을 보 낼 수가 있단 말인가. “아디오스(Adios)!" 블루가 마지막 인사와 함께 한 녀석을 강타했다. 퍽! “꽤엑!” 오랜만에 몸을 풀었더니 속이 다 후련했다. 감히 자기 앞에서 설치다니! 맞아도 쌌다. 아니. 맞아야 했다. 블루는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녀석들을 뒤로 한 채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쳤다. 주먹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블루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피가 아니라 그한테 맞은 녀석들이 흘린 피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자신에게 까분 대가였다. 물론 이미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녀석들을 향해 일부러 시비를 걸었던 모습은 지워진 지 오래였다. 그렇다고 일행들까지도 블루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같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블루의 거침없는 행동. 특히 주먹질은 가끔 두렵기까지 했다. “우리 용병단 이름이 가슴에 절실히 와 닿는 이유가 뭐지?” 베르니스의 한마디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블러드 핸드! 그리고 피로 얼룩진 주먹! 지금 블루의 저 주먹이 바로 우리 용병단이다! 그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블루는 동료들의 그러한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닥을 구르는 녀석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고 번쩍 들어 올리더니. 씨익 웃으며 그의 옷깃에 자신의 피 묻은 손을 닦아내고는 다시 바닥에 던져버렸다. 순간 니콜라스를 포함한 일행들은 다들 심한 오한을 느끼며 몸서리를 쳤다. 지금 블루의 모습은 이야기 속에서나 들어본 완벽한 악당. 그 자체였다. 하지만 죠슈아는 웃고 있었다. 하긴 이미 콩깍지를 뒤집어쓴 그녀에게 뭐는 안 멋있겠는가? 블루는 자신을 몽롱한 눈빛으로 바로보고 있는 죠슈아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레이디. 당신을 괴롭히던 악의 무리들을 모두 처치했습니다.” “아아. 왕자님!” “오오. 레이디!” “왕자니이이임!” 언제부터 블루가 왕자님이 되었던 것일까? 그것의 진위여부는 어둠 저편에 던져두고. 조금 전까지 동료였던 산적들은 머릿속에 지우개라도 있듯 말끔히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 죠슈아. 지금 그녀 머릿속에 진실로 남아 있는 것은. 바닥을 꿈틀거리며 간헐적으로 신음과 비음을 섞어 흘리는 저 산적들이 자신을 겁탈하려던 나쁜 놈들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어느 사이에 설정이 진실로 바뀌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만약 그런 죠슈아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산적들은 억울함을 금치 못하고 아마도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사실 죠슈아만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이런 수모를 당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그들은 처음부터 죠슈아가 짠 시나리오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행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바닥을 누비고 있는 산적들은 그 정도 판단력도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악마가 주먹을 휘두르며 나직하게 내뱉은 한마디가 뇌리에 각인되다시피 남아 메아리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타는 손맛. 남자는 주먹! 그들 뇌리엔 그 말이 생생히 파도치고 있었다. 아마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기억상실에 걸리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살아남으리라. 의연 중에 블루의 얼굴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고. 전신의 근육이 빳빳하게 굳어지며 파르르 떨렸다. 복수는 꿈도 꾸지 못할 게 분명했다. 복수는 커녕 두 번 다시 우연이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산적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가볍게 포옹하는 블루와 죠슈아. “아아. 나의 왕자님!” “오오. 죠슈아!” 그러면서 블루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씨익 유난히 밝은 태양이 블루의 하얀 치아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여기가 확실해?” 슈리오의 질문에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해.” 확신에 찬 목소리이긴 했으나. 슈리오로서는 불만이었다. 벌써 저 말에 몇 번이나 속았던가. 유나는 동생인 슈리오가 들까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지은 죄도 있고 해서 꾹 참았는데. 계속 그 상황이 이어지자 더 이상 참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주먹을 불끈 쥐고 응징하려는 찰나. “저. 저기!” 슈리오가 급히 상체를 숙이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지목했다. “응?” 유나는 허리를 숙이고 슈리오의 손가락 끝이 가르키는 곳을 유심히 살폈다. 척척 수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복장이 낯익었다. 처음 보는데 낯이 익은 건 한 번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말일 터. “어디서 봤더라?” 그녀는 이마로 흘러내린 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곧 무릎을 쳤다. “예스!” 제대로 찾아온 게 확실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보자.” “그건 위험해.” “그러니까 조금만.” 유나는 슈리오 말은 듣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유나를 보며 슈리오가 투덜거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제길!” 그리고 한참 고민 끝에 유나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씨발. 정말 지랄 같군!” 크로타니안 왕국의 최극단에 위치한 회송지역 1097호 안에서 병사들의 떠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을 마시고 있는지 혀가 꼬인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자욱한 담배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환기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곳은 왕국에서조차 고위층만 알고 있는 비밀기지로. 기갑 병사들의 훈련장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무슨 이유인지 상부에서는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처음 배치되었을 때만 약간 어색해 했을 뿐. 이제 그럭저럭 적응해가고 있었다. 훈련시간만 잘 지키면 체벌은 없었다. 심지어 다소 문란하다 싶은 행동을 해도 일체 문책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다들 간덩이가 부을 대로 부어갔다. 덩치가 큰 트레오라는 병사가 양말을 벗고 발가락을 후비며 투덜거렸다. “하여튼 윗대가리 새끼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동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는 테이블 앞으로 가서 동료 담배를 빼앗아 피우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크으...... 왜 또?” 동료인 맥 클라인이 술을 털어 넣고 빈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트레오는 말없이 빈 잔을 들이댈 뿐이었다. 소매로 입술을 닦던 맥 클라인이 술을 부어주자. 한 모금 마신 뒤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그가 말했다. “대체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가 뭐냔 말이야?” “훈련 때문에 온 거 아냐?” “글쎄. 이런 외지에서 무슨 훈련? 솔직히 지금까지 팔 개월 동안 우리가 한 게 뭐가 있어?” “에휴...... 또냐? 이제는 그만 좀 투덜거릴 때도 되지 않았냐? 돈도 많이 주겠다. 온갖 편의까지 돌봐주겠다 대체 불만이 뭐야?” 맥 클라인의 말에 주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길. 내가 그걸 모르냐? 다른 건 둘째치고 가장 중요한 여자가 없잖아. 여자가!” “킥킥킥. 그건 그렇다.” “하긴 나도 지난 팔 개월 동안 그 짓을 못했더니. 아주 죽을 맛이다.” “여자들 백 명만 대령시켜봐. 밤낮없이 풀가동해줄 테니.” 그러면서 허리띠를 풀어 젖히는 시늉을 하며 허리를 앞뒤로 들썩이자. 동료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 “아서라 아서. 그만 웃기고 어서 자리에 앉아. 정신 사나우니까.” 그러나 트레오의 튀어나온 입은 들어갈 줄 몰랐다. “한동안 이놈을 훈련시키지 않았더니. 좀이 쑤시는군.” “하하하. 이제 그만해.” “근데 이번 훈련은 언제지?” 트레오가 어깨를 주무르며 묻자 맥 클라인이 대답했다. “내일 아침.” “내일 아침이라고? 휴우...... 그럼 한숨 자둬야겠군.” 그러면서 단숨에 술잔을 비운 트레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고 할 때. 동료가 불러 세웠다. “어이. 트레오! 그렇게 아쉬워할 것 없잖아. 돈만 있으면 여자는 나중에 얼마든지 살 수 있잖아. 그러니까 돈이나 열심히 모아. 좀 지루한 것은 사실이지만. 돈은 착실하게 나오니까 말이야.” 트레오는 동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난 어차피 휴가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거든.” “잘 생각했다.” 맥 클라인이 웃으며 트레오 등을 토닥여주었다. 바로 그때. 삐익삑! 복도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천장의 조명등이 붉게 변했다. “씨발!” “뭐야. 또 긴급훈련인가?” 다들 인상을 구기며 한마디씩 하는 가운데. 트레오가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킥킥. 왜? 아까는 좀이 쑤신다며?” “말이 그렇지!” “여하튼 어서 준비하자.” 병사들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으면서 계속 쉬지 않고 욕설을 내뱉었다. “말이 씨가 된 건가. 젠장!” “서둘러.” “니미럴.” 갑옷을 입은 트레오는 마지막으로 검을 챙겨들고 미리 준비를 마친 채 기다리고 있던 맥 클라인과 함께 밖으로 뛰어나???다. 비상! 긴급체제 비상! 음성 마법이 귀청 따갑게 들려오고 있었다. “뭐야?” 평소보다 요란한 소리에 갑자기 짜증이 솟구쳤다. 그러나 움직임 또한 한층 신속해졌다. 긴급훈련 때 점수를 많이 따놓는 것이 여러 모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완전무장한 병사들은 줄지어 화살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평소와 사뭇 달랐다. 혹시나 하는 기분에 맥 클라인은 트레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트레오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아. 기분이.” 순간 마법으로 유지되던 라이트가 꺼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맥 클라인은 그들의 리더라 할 수 있는 마이클을 찾았다. “마이클? 거기 있어?” “.......” “말해봐. 무슨 일이야? 마이클! 마이클?” “.......” 크르르르! 기대했던 마이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다가온 것은 습하고 역겨운 냄새였다. 맥 클라인은 정체불명의 온기로 인해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둠속에서 뭔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샥! 뜨끈하고 끈적끈적한 뭔가가 얼굴을 덮쳤다. 그 바람에 숨이 턱 막혔다. 그리고 그때. 팟 라이트가 켜졌다. “아아아!” 무엇을 본 것일까? 표정이 딱딱해지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아아아아!” 크르르르르! “아아!” 의미 불명의 신음과 목 울림 같은 괴성이 번갈아 이어졌다. 아작아작 바지가 축축하게 젖었다. 눈앞의 괴물 때문이다. 실로 끔찍했다. 전신에 가시 같은 것이 삐죽삐죽 솟아 있고. 연체동물의 그것처럼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손. 팔목에서 뭔가 긴 것이 솟아나와 있는데. 강철 검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실은 발톱이었다. 입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씹어대는 소음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삭아삭아삭아삭아삭! 믿어지지가 않았다. 세상에 이런 괴물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그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괴물은 지금 그가 조금 전 애타게 찾던 마이클 복부를 발톱으로 유린하고 있었다. 이미 마이클은 안면부가 반쯤 날아가고 없었다. 벌건 핏물과 뒤섞여 흘러나오는 허연 뇌수! 명찰이 아니었다면 그 시체가 마이클인지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크르르르! 괴물이 마이클을 번쩍 들었다. 순간 잔뜩 주름진 가슴에 숨겨져 있던 빽빽이 박힌 날카로운 이빨들이 드러났다. 그리고 마이클의 나머지 머리 반쪽을 덥석 베어 물었다. 아삭아삭아삭! 꿀꺽 먹이를 삼키는 순간. 괴물은 마치 웃는 것처럼 보였다. 소름이 끼쳤다. 어서 도망쳐야 해!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어디로? 어디로 가는지는 둘째치고 다리가 움직여줄지가 걱정이었다. 크르르르! 마이클을 구석에 내팽개친 괴물이 맥 클라인에게 다가왔다. 녀석의 뜨거운 입김이 안면에 느껴졌다. “어어...... 악!” 뒤늦게 도망치려고 등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비명을 지를 때 이미 그는 괴물 속으로 반쯤 들어가 으깨지고 있었다. 마치 맥 클라인의 처절했던 비명이 메아리치듯 괴물의 복부가 크게 출렁거렸다. “으아아악!” 으적으적 맥 클라인을 반쯤 먹고 내던진 괴물은 느릿느릿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우지직! 구석에서 떨고 있던 병사의 뇌수가 터지는 소리. 갑자기 붉은 마법 등이 어지럽게 반짝거렸다. 삑삑삑삑! 비상벨은 정신없이 울었다. 어느새 모든 병사들은 광장에 모여 있었다.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그들. 눈앞에 보이는 다섯 마리의 괴물 때문이었다. 다섯 마리는 제 각각 생김새가 달랐다. 하지만 끔찍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벌써 그 다섯 괴물한테 희생당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도 타르나토스 왕국의 기갑 병사들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왠지 꿈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과연 꿈일까? 이렇듯 리얼한 꿈을 꾼 적이 있나? 꿈이라면 어서 빨리 깨고 싶었다. 아무리 꿈이라도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는 건 싫었다. 저 괴물들을 이끈 것은 소수의 용기 있는 자들이었다. 기갑 병사로 변신해도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몸을 미끼로 녀석들을 이곳 광장으로 유인한 것이다. 좁은 통로에서 한꺼번에 덤빌 수 없지만. 넓은 광장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괴물을 광장 한가운데까지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동료들이 반드시 복수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초개처럼 목숨을 바친 것이다. 그러나 설마 괴물이 다섯 마리나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으아아” “크악!” 비명과 함께 병사들이 하나둘 촉수나 발톱에 걸레처럼 찢겨 나갔다. 그 충격이 너무 큰 탓일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소수의 병사들 입에서는 태평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들은 자랑스러운 기갑 병사가 아닌가! 그렇다. 그들은 변신하면 마스터급과 맞먹는 실력을 지니게 되는 공포의 외인부태였다. 그런데 그들을 가볍게 베고 마음껏 유린하는 괴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뭐 저런 게 다있어?” “한 병사의 횡설수설한 외침 탓일까. 정신을 차린 몇몇의 병사들이 소리쳤다. “모두 변신하도록!” 두두두두둑 그 말과 함께 인간의 피부 위로 두꺼운 각질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육백여 명에 달하는 기갑 병사가 괴물들을 포위하듯 에워싸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어느 누가 봤다면 귀물이 괴물을 압박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둘은 명백히 달랐다. 포위한 자들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크르르르! 크륵? 괴물도 생각할 줄 아는 것일까? 변신한 기갑병사들이 토하는 괴성에 소름끼치는 웃음을 흘려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양팔에 매달린 시체를 으적으적 씹었다. 지극히 태평스러운 그 모습! 그것을 본 기갑병사들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머리수가 많은데도. 여전히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포위망을 흐트러뜨리지는 않았다. 그 상태로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렇듯 괴물들 신경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은 채.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저 괴물들을 무찔러줄 그 누군가가 상부에서 오기만을.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헛된 소망인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병사들을 먹어치울수록 기갑 병사들을 노려보는 괴물의 눈빛에는 살기를 더해갔다. 크르륵! “저. 저것들을 뭐지?” “모. 몰라. 정말 뭐지?” 슈리오와 유나는 입을 벌린 채 상황을 주시했다. 가까이 다가갔다가 들키기 전에 멀찌감치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아니. 도망쳤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저 괴물들과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지 마저 심히 의심스러웠다. 괴물은 거대한 덩치 때문에 둔해 보였으나. 실은 바람처럼 날렵했다. 그들이 막 비밀기지로 잠입하려는 찰나. 갑자기 이상한 기운이 하늘을 맴돌아KT다. 곧 비상식적으로 마나가 몰리면서 거대한 스파크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섯 괴물이 나타났다. “분명히...... 소환된 걸 거야.” “소환?” 유나가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내뱉은 말에 슈리오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분명해.” “소환이라면 혹시.......” “그래. 마계의 괴물이라는 뜻이지.” “헐.” 좀체 믿어지지가 않았다. 마계의 괴물이라니! 슈리오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숨기지 않고 시체를 씹어 먹고 있는 괴물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나도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어. 하지만 저 정도면 상위 마족일 가능성이 커. 특히 비정상적으로 뭉쳤던 그 마나는.......” “마나는?” “아냐.” “뭔데 그래?” “어떤 고위 마법사가 그들을 소환했을까? 마나로 보아 최소한 8서클쯤 되는 것 같았는데...... 인간 중에 그런 존재는 없을 텐데. 8서클이라니. 말도 안 돼! 혹시 비공식적인 문서에 적혀 있던 마왕이라는 존재가 나타난 것은 아닐까? 어느 쪽이든 간단치가 않았다. 어서 빨리 상부에 보고해야만 했다. 슈리오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사이. 유나는 몸서리를 치며 그 괴물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던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괴물 중 하나가 완전한 모습이 갖춰지자마자 길게 숨을 들이쉬며 주변 마나를 끌어 모으더니. 이내 거대한 브레스를 뿜어내 산 중턱을 날려버렸다. 처음엔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곧 먼지가 걷히고. 산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기지가 백일하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으로 하나의 의문이 풀리자. 또 하나의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자신들이 찾던 바로 그 비밀기지가 분명했다. 그런데 괴물들이 지체 없이 뚫린 구멍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니. 놈들도 일부러 찾아온 것 같았다. “놈들도 저 기지를 노리고 있었던 것 같지?” “그런 것 같아.” “왜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다만 확실한 것은.......” “확실한 것은?” “저들이 절대 우리 편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걸 누가 몰라?” “그럼 이것은 어때?” “또 뭔데?” “소환되었다면 소환사가 이 근처에 있다는 말이 아니겠어?” “하긴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 그 말을 끝으로 슈리오와 유나는 입을 다물고 기지안팎의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너무 포식을 한 탓인지 괴물들은 기우뚱거리며 걸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발톱을 허공에 털자. 쫘악! 바닥에 붉은 선이 나타났다. 크르르르! “왜지? 어째서 상부에선 아무 연락이 없는 거야? 지금껏 우리를 부려먹던 단장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거야!” 한 병사의 외침에 다들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했다. 단장들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 그러고 보니.......” 그들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괴물들이 다섯 방위로 갈라져 움직였기 때문이다. 기갑병사로 변신한 상태였지만 도무지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아KT다. 기갑병사로 변신한 동료들이 어떻게 죽어나갔는지 똑똑히 보았지 않았는가. 날카롭게 번뜩이는 저 발톱! 인간을 종이처럼 베어버리는 칼날 같은 저 발톱 앞에서 그들은 무력하기만 했다. 두려움에 떠는 그들 눈에 다가오는 괴물들의 모습이 잡혔다. 그런데 워낙 존재감이 크다보니 움직임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이곳 광장으로 모인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그때 도망쳤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 생각을 못했다. 주저 없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이곳으로 왔다.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지금껏 그들이 받아온 훈련들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당연했다. 누구도 귀띔해주지 않았으니까. 물론 귀띔해줄 사람도 없었다. 일급비밀이었기 때문이다. 쿵! 수증기처럼 뜨거운 콧김이 전신을 휘감았다. 알면서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불쾌함을 토로할 틈도 없었다. 어느새 괴물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매캐하고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괴물의 콧김 탓인지. 앞에 있던 병사는 자신도 모르게 검을 휘둘렀다. 팅! 검이 튕겨졌다. 크르르! 웃고 있음인가? 분명히 그렇게 느꼈다. 검을 휘두른 기갑병사를 빤히 쳐다보던 놈이 갑자기 가슴께에 숨겨져 있던 입을 크게 벌렸다. 쩌어어억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듯한 소음! 그것에 이어 날카로운 이빨이 빼곡히 자리 잡은 살벌하기 짝이 없는 입안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바로 기갑병사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었다. 푸욱! “커. 커헉!” 복부를 깊숙이 찌른 발톱이 거침없이 좌로 그어지며 옆에 서 있던 기갑병사까지 베어 넘겼다. 그리고 그것이 학살의 신호탄이었다. 눈이 번쩍 떠짐과 동시에 괴물들의 바람처럼 움직였다. 휘익! 스각! 괴물들 팔이 길어지는가 싶더니. 앞에 서 있던 병사들 목과 상체에서 둔탁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썩은 짚단처럼 무너져 내렸다. 크르륵! 웃음처럼 들리는 괴물의 괴성! 괴물들은 길어진 팔. 아니 기다란 발톱을 혀로 핥았다. 이어 풍선처럼 거칠게 입김을 쏟아냈다. 곧 시체 썩는 냄새와 짙은 혈향이 혼령처럼 허공을 떠돌았다. 그 사이에도 괴물들은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기갑병사들을 잔인하게 학살해나갔다. "으아악!" "크아악!" 아비규환의 지옥이 따로 없었다. 스각! 기갑병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놈들은 빨랐다. 얼마나 빠른지 어떤 병사는 자기 몸이 반쪽이 났다는 것도 모르고 괴물을 공격하다 몸이 갈라지기 일쑤였다. "으악! 이 빌어먹을 괴물아. 제발 한 대라도 맞아라!" "씨빠. 내 친구 살려내라! 크악!" 서걱! "빌어먹을! 재수 없는 말이지만...... 어머니. 좀 빨리 뵙게 될것 같습...... 커헉! 서걱! "살려줘. 살려줘!" "너희들과 같이 죽을 것이다. 크악!" 서걱서걱! 온갖 말말말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단 한명의 도망자도 없었다. 끝까지 괴물과 맞서 싸운 그들은 진짜 전사라는 이름을 달아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용감했다. 그러나 그들의 최후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허무하다!'였다. 마지막 일인까지 가차없이 베는 괴물들! 병사들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내처럼 흐르며 거대한 홀을 적시고 있었다. 잠시 후. 육백여 병사들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자 심심해진 탓일까? 괴물들은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시체들을 시해하기 시작했다. 크륵륵륵륵륵! 그리고 한바탕 크게 웃고는 허공으로 몸을 띄움과 동시에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감쪽같았다. 그 장면을 끝까지 지켜본 유나와 슈리오. 그들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며 보고할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한시가 급했다. 사태가 크로타니안 왕국에만 국한 된 게 아닐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보고하고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괴물이 사라진 이상. 도망치듯 빠져나올 이유는 없었다. 보통 때 같았다면. 현장으로 가서 증거를 수집하고 상황을 재검토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도 그러니?” 유나의 질문에 슈리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가 말했다. “그렇다면 내 착각이 아니었구나.” 꿀꺽! 침을 삼키자 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머릿속에 생생한 괴물들 눈빛! 놈들이 사라지는 순간 마주친 그 눈빛이 생생했다. “정말로 눈을 마주쳤다니! 그렇다면 우리가 숨어서 지켜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단 말이잖아!” “그렇지.” “그럼 어째서?” 거기서 멈췄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둘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제5장. 자신이 있어야할 곳 어둠이 짙게 깔렸다. 비라도 내릴 것처럼 먹구름까지 잔뜩 끼었다. 쿠루루룽 천둥이 쳤다. 그리고 이내 차가운 빗방울이 에스티마르의 이마를 때렸다. “음?” 그는 이마를 가볍게 쓸어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뒤로 넘겼다. 하지만 때마침 몰아닥친 돌풍에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거칠게 출렁거렸다. “비가 제법 오려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서웠다. 투두두두둑! 무서운 장대비가 줄기차게 쏟아졌다. 에스티마르는 동굴을 찾아 걸음을 서둘렀다. 곧 그는 근처에 사냥꾼 휴식터를 찾아낼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동안 사람들 발길이 뜸했는지 매캐한 곰팡내가 그를 반겼다. 공기도 습하고 서늘했다. 문득 따스한 온기가 그리웠다. 그는 화로에 장작을 던져넣고 마법으로 불을 붙였다. 잘 마른 장작은 금세 불이 붙었다. 그리고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따듯해지자 그간 여행하며 쌓인 피로가 몰려왔다. 그리고 졸렸다. “그나마 다행이군.” 그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가? 무겁고 낮은 울림이었다. 에스티마르는 타오르는 불꽃을 주시하며 대꾸했다. “걱정 따위는 없다!” 그는 분명 대화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상대가 대체 누구냐는 것. -네가 이렇듯 자유롭게 떠돌 수 있는 게 누구 덕이지? “흥!” -잘난 척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네놈 힘만으로 이런 여행은 상상도 못할 테니까. 그 말에 에스티마르는 다시 피식 웃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아무것도. “아니!” -그럼 절대라고 말할 수 있는가? “.......” 에스티마르는 한마디 하고 싶었다. 그러나 본드가 붙은 것처럼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딱 달라붙어 좀체 떨어지지가 않았다. 이 침묵이 부정을 뜻하는가. 긍정을 뜻하는가? 심정이 복잡했다. 뭔가 알고 있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고 싶었다. -네가 원하는 걸 난 알고 있다. “웃기지 마!” 에스티마르는 애써 무담담한 척 부지깽이로 불타오르는 장작을 두들겼다. 그러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톡톡 불씨가 날렸다. -이렇게 숨어살면 진실까지 숨겨질 줄 아는가! 나직이 속삭이던 음성은 어느새 호통처럼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그 역시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꼭 그것만도 아닐세." -아니라면 어서 각성해라. 그리고 나를 깨워라! "시끄러!" -각성해! "시끄럽다고 했다!" -각성! "시끄러. 시끄러. 시끄러!" -각성! "네 살기 가득한 음성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난 미치고 싶지 않단 말이다! 난 악마가 아니니까! -.......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깨우라니!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에스티마르와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계속 언쟁을 벌였다. 그러나 문득, 결정적인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나는 너 같은 허약한 인간 따위가 가두어둘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에스티마르가 가볍게 반문했다. 목소리는 갑자기 사근사근하게 말을 이어갔다. -어서 각성해라. 세상은 네 손아귀에 달려 있다. “세상은 내 것이 아니다.” -그래. 지금은 아니지. 하지만 마음먹기에 달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네 것이 될 수 있어. “난 싫다.” -벌써 그 치욕적인 과거를 잊었단 말이냐? 네가 사랑한 인간들이 널 어찌했지? 순간 에스티마르는 흠칫 몸을 떨었다. 잊고 싶었던 기억이 떠오른 탓이다. 뒤늦게 그가 말했다. “다 잊었다.” -거짓말! 그것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이냐? 네겐 인간들한테 복수할 이유가 있다! 너에게는 인간을 파괴할 권리가 있어! 에스티마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훗! 날 선동할 생각 마라. 결코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 -나 파괴신(破壞信)을 영원히 가두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파괴신? 이것이 뜻하는 게 뭘까? 혹시 각성(覺醒)이 이미 끝났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결국 남은 건 파멸(破滅)뿐인가? 에스티마르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유심히 바라보자 흐릿한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왔다. 고리처럼 생겼다. 외침과 동시에 불어난 그 고리가 일순 붉은빛을 뿜었다. “크윽!” -어서 날 인정해라! “우...... 웃기지 마! 넌 내 망상이 만들어낸 망념일 뿐이다! 내 실수로 태어난 잘못된 관념의 사생아일 뿐이란 말이다! 그런 주제에 감히 나를 넘보려고 하다니! 어림도 없다!” -정녕 네가 죽고 싶은 것이냐! 고오오오오! 에스티마르 몸에서 붉은빛이 피어올랐다. 그 빛이 강해질수록 에스티마르의 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크윽!” -독한 놈! 울컥! 에스티마르가 몸을 들썩이며 피를 한 사발쯤 토했다. 그러자 정말 에스티마르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목소리가 이를 악다문 음성으로 뇌까렸다. -빌어먹을 놈. 어디 두고 보자! 그 말을 마지막으로 고리는 어둠 속으로 묻혀져갔다. 에스티마르는 거친 숨결을 골랐다. “허억. 헉헉헉!” 안색이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창백했다. 그런데도 그의 입술 끝이 슬며시 올라갔다. 그것은 승자의 미소였다. “병신...... 같은 놈!”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사라진 고리. 그게 아니면 자기 자신? 에스티마르는 슬픈 눈빛으로 잠시 허공을 주시했다. “정말 언제까지 내가 버틸 수 있을까? 갑자기 그 녀석이 보고 싶다. 이름이 블루라고 했던 그 녀석이.” “크흐흐흐흐흐 크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 사냥꾼 휴식공간에서 불현듯 애처로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리는 비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쏴아아아아아아 “아하하하하!” “호호호호호” 블루와 죠슈아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호호호호!” 누가 먼저요. 나중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대결을 펼치듯 그들은 경쟁적으로 웃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는지 전혀 웃기지 않는데도 일주일 내내 웃음을 터뜨리는 그들. “언제까지 저 꼴을 봐야 하는 거지?” “글쎄다. 정 알고 싶거든 목숨 걸고 대장에게 직접 물어보든지.” “내가 머리에 구멍 뚫렸냐? 그랬다가는 목숨이 두 개 있어도 부족할 텐데?” “다 아는 놈이 뭘 투덜거려? 그냥 이제는 그러려니 신경 끄고 밥이나 처먹어.” “제길!” 신경을 끄는 것이 가장 이득이라는 스콜의 해결책이 마음에 들진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좋은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베르니스와 스콜의 이야기를 듣던 나머지 일행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그때 죠셉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내가 저 여자를 어디서 봤지?” “그러게.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봤더라. 굉장히 눈에 익은 얼굴인데 말이야?” 끄덕끄덕 “맞아. 저 정도 미인이라면 내가 잊을 리 없는데...... 아얏! 아파. 왜 꼬집고 그래?” 베르니스는 갑작스런 고통에 텐시를 노려보며 발끈해 소리쳤다. 그러나 곧 눈을 내리깔지 않을 수 없었다. 불문곡직하고 텐시의 눈빛에 살기가 등등했기 때문이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닌데?” “에잇! 세상천지에 너보다 미인이 어디 있다고 그래?” 그 한마디에 상황은 금세 반전되었다. 텐시가 불어진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임으로써 가볍게 일단락된 것이다. 나름대로 생각해둔 대처법이 크게 효과를 보자 베르니스는 기쁨에 겨워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여하튼 나한테 텐시가 최고야. 텐시밖에 없어. 내 눈에 흙이 들어왔으면 들어왔지 텐시밖에 안 들어오는데 날보고 어쩌라고? 솔직히 그래서 난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 마치 스치듯이 본 것처럼...... 응? 스치듯이?” “스치듯이?” 스콜과 베르니스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단서가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곧 기억을 완벽하게 재생해냈는데. 실로 남부럽지 않은 돌 머리로 이룩해낸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블루 앞에 앉아 시도 때도 없이 웃고 있는 저 여자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한번 본 여자였던 것이다. 죠슈아! 산적과 짜고 엄살연기를 그럴듯하게 하다. 수가 뒤틀리자 슬그머니 내빼 버린 그때 그 여자. 사실을 알고 나자 속에서 천불이 났다. 찰랑찰랑하던 자신의 머리카락이 파마를 한 것처럼 꼽슬꼽슬 구부러진 게 누구 때문인가? 그들은 지체없이 동료들에게 진상을 밝혔다. 순간 하나같이 자신들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베르니스와 스콜의 말이 거짓이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블루가 어찌하여 움직인 것인지 대충 감이 잡힌 탓이다. 문제는 그 예감이 들어맞을 확률이 적지 않다는 것. 블루는 목소리만으로 그녀가 일전에 그녀임을 알고 고의적으로 접근했을 것이다. 뭔가 꿍꿍이속이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쉴 새 없이 헤픈 웃음을 흘리며 저 절도 있는 신사 예절도 의심해봐야 한다. 아니. 평소와 다른 모든 행동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눈앞에 있는 저 사내는 겉만 대장과 닮았을 뿐. 결코 그들이 아는 블루가 아니었다. 블루라면 저런 모습을 보여줄 이유가 없었다. 블루하면 단순무식! 그것은 거의 변함없는 공식이었다. 그것이 변했다면 이유는 딱 두 가지. 죽을 때가 임박했거나 무슨 술수를 준비할 때뿐이다. 결국 닭살이 돋고 머리털이 솟구치는 저런 모습이라면.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음모가 도사라고 있을 터. “대체 그게 뭘까?” “그러게. 대체 뭐지?” 빨리 알아내야 했다. 그래야 처신을 올바로 할 수 있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하여 그들은 기를 쓰고 머리를 싸맸다. 사소한 꼬투리로도 생사를 오락가락하게 만드는 블루의 능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했다. 한마디로 입신의 경지. 한두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면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다. 벌써 대여섯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이번이 예닐곱 번째로 기록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첫 번째는 몬스터한테 죽을 뻔했고, 그 다음은 드래곤. 세 번째는 멋모르고 무투대회에 나갔다가 기사들한테 칼 맞아 죽을 뻔했다. 가장 최근에는 이름 모를 산골짜기 작은 촌 동네로 일당 일을 나갔다가 제국군한테 포위당해 죽을 뻔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는 곳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순간을 떠올리자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다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기 목숨은 스스로 챙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 중에는 생사가 오가는 사선에서 짜릿한 스릴을 즐길 사람은 없었다. 그건 니콜라스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같이 동병상련으로 머리를 맞댈 수 있었다. 예외라곤 동떨어져 멍하니 그들을 지켜보는 죠셉과 황태자뿐이었다. “그런데 여인의 몸으로 혼자서 이런 곳까지 어쩐 일로?” 블루의 질문에 죠슈아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택한 것은 우는 것이었다. “꼭 말해야 하나요. 흑흑.” “무슨 말 못할 사정이라도?” “흑흑흑.” 겉으로는 울고 있지만 속으론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말 못할 사정이요? 솔직히 저는 사정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밝힐 수 없는 사정이 있긴 있죠. 사업상 비밀이라서...... 아니. 원하시면 몽땅 불 수도 있어요! 말씀만 하세요오오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부드럽고 착착 감기는 블루의 다정담한 목소리. 그것만으로도 죠슈아는 온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인간의 목소리와 표정이 어쩌면 저토록 따스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이제껏 그녀가 만나온 속이 시커먼 사내들과는 판이 했다. 물론 옆에서 지켜보던 일행들 눈에는 심히 느끼할 따름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자한테 국한된 이야기로. 블러드 핸드 용병단의 홍일점인 텐시는 또 달랐다. 블루의 진상을 낱낱이 알고 있으면서도 설레는 가슴과 붉어지는 두 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녀도 여자였던 것이다. 사실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블루는 정말 잘생긴 얼굴이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환골탈태로 완성된 탄탄한 몸매.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는 독특한 머리색깔조차 매력을 한층 더해줄 뿐이었다. 블루는 딱딱한 표정이나, 차가운 얼굴로 사람들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두었다. 번거롭고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천성 탓이었다. 결국 대부분 블루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초장에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간혹 그가 친근한 미소를 지어보일 때가 있는데. 십중팔구 위험신호였다. 이제껏 그 웃음을 받은 사람치고 온전한 경우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웃지 마오.” 위로의 말을 던진 블루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미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내숭은 즐거웠다. 동시에 일행들 걱정에 부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물론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사실 여인도 산적들과 매한가지로 처리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었다. 산적과 무관한 어떤 무리들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탓이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죠슈아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확신한 이후 그는 부랴부랴 작전을 변경했다. 나름대로 산적을 팬 것보다 짜릿한 즐거움을 느낀 탓이다. 그래서 산적들을 모조리 기절시킨 다음 블루는 곧장 죠슈아에게 다가가 환심을 사기 시작했다. 이른바 작전개시였다. 일단 예감은 옳았다. 놈들이 촉각을 곤두세운 채 죠슈아를 감시하듯 따라오고 있음이었다. 그는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저 여인의 정체가 뭘까? 뭔가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없었다. 그가 미소 지을 때마다 은연중에 많은 것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물론 무의식에 가까운 행동이라 그녀 스스로 깨닫긴 무리였다. 그리고 그녀 몸에서 흘러나오는 위험한 냄새를 아무리 잘 숨기고 감쪽같이 희석시켰다 해도. 민감한 블루의 코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간혹 드러나는 눈빛이나 손짓 그리고 어투와 작은 버릇까지...... 그 하나하나는 훌륭한 단서가 되었다. 블루의 눈은 그 모든 정보를 쉴 새 없이 받아들이며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물론 죠슈아의 뜨거운 눈빛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진실을 유추하기란 불가능했다. 특히 뒤따르는 놈들은 동료들이 죽어 나자빠지는데도 호흡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끝까지 거리를 유지하던 놈들이다. 그런 녀석들이 아무것도 아닐 리 없었다. 궁금했다. 대체 그런 녀석들이 은밀히 호위하는 저 여자의 정체는 뭔가? 많은 궁리를 거듭했다. 그 결과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그 정체불명의 감시자들을 잡아 족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것도 오늘밤에.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객실부터 잡고 기다리다. 새벽녘에 그는 슬그머니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두웠지만. 녀석들이 어디 숨어있는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오호. 그래도 구색은 갖췄군. 마나로 자신의 기척을 죽이다니 말이야. 이 방면에 전문가들인 모양이군.” 호기심이 더욱 깊어졌다. 블루는 죠슈아의 눈을 피해 그녀와 자신을 감시하던 녀석들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멱살을 움켜잡아 패대기 쳤다. 그리고 무작정 구타를 시작했다. 퍽퍽퍽퍽! 녀석들은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유도 묻지 않고 일단 팼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한참 후 숨을 고르고 다시 팼다. 이유도 모르고 맞아야만 하는 사내들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 득달같이 달려온 블루가 자신들을 패대기치는 순간. 그들은 걸렸구나 싶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았다. 뭔가 물으면 죽음을 각오하고 발설치 않으리라! 그래서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강인함을 드러내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무조건 패기만 했다.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얼마쯤 패고 나면 무슨 질문이든 던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 꾹 참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과연 녀석이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자신들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이제 질문을 던지려고 하는구나. 그러나 어림도 없다!” 그러면서 이를 지그시 깨물었는데. 잠시 호흡을 고르던 녀석은 말없이 다시 주먹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때부터 사내들은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다 이유도 모른 채 맞아죽어 이슬처럼 가는 게 아닌가? 그럴 수 없었다. 구름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임무수행에 최선을 다하다 죽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눈물을 머금고 맞았다. 블루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한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내가 이 녀석들을 왜 패고 있는 거지?” 잠시 사이를 두고 블루가 덧붙였다. “에라. 모르겠다. 나한테 맞는 것을 보니 뭔가 잘못했겠지 뭐. 이왕 패기 시작한 것 일단 마저 패고보자.” “허흡!”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저 무식한 놈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 평소에 죽음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이들이었으나. 단칼에 죽는 것도 아니고 정보를 알아내고자 하는 고문도 아니며 이유 없이 무지막지한 주먹에 맞아 죽는 것은 싫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개죽으미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가 물으면 모조리 다 불기로 말이다. 아무 명분도 없이 이대로 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려도 놈은 결코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슨 장이라도 된다는 듯 묵묵히 주먹을 날리는 놈은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결국 개죽음을 당하기 전에 먼저 질문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대. 대인! 대대대대대체 무. 무슨 일로 저희들을...... 패. 시는 거거거겁니까?” 그제야 블루의 발길질이 멈췄다. 블루도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게 왜지?” “헙!” 블루의 말에 다들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용기를 내 묻지 않았다면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줄초상을 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블루가 물었다. “왜 나한테 맞고 있었지?” “어에?” 사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히 화도 났다. 그래서 말투가 다소 거칠었다. “아니. 그것을 왜 저희들한테 묻습니까...... 요?” “흠. 그것도 그렇군.” 건성으로 대답하고 다시 고민에 빠진 블루. “여하튼 네놈들이 맞았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그걸 모르겠군. 우선 계속 패다가 생각나면 말해주마.” “에엑?” 사내들은 이구동성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블루가 주먹을 들자 다급하게 소리쳤다. “대인. 잠깐만요!” 멈칫 블루가 짜증스럽게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째려보자. 사내들은 급하게 입을 놀렸다. “아니 그래도 말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맞아야 하는 이유라는 걸 모르시겠습니까? 대충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어떤 식인데?” 블루가 묻자 곧장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대충...... 아. 맞다! 우리가 아가씨를 어째서 따라다녔느냐. 혹은 산적 나부랭이 녀석들이 쓰러졌는데 왜 같은 편으로 보이는 네놈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었느냐?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들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식이지요!” “아가씨?” 블루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런 속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 도 답해진 것은 그들이었다. 블루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좋은 징조라고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블루가 말했다. “호오...... 이제야 다소 호기심이 동하는군.” “물론이겠죠! 호기심이 안 들면 그게 어디 인간입니까? 병신이나 신이지.” 블루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일행들은 말을 마친 동료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제야 사내는 자신이 뭔가 말을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래. 너희들 말마따나 어째서 우리를 쫒아오고 있는 거냐? 어설프게 대답하거나 멈칫거리면 각오해라.” “각오해라. 각오해라. 각오해.......” 블루의 마지막 한마디가 가슴 속 깊은 곳에 아로새겨지듯 진한 하울링을 형성하며 울려 퍼지고 있었다. 거기서 공포를 느낀 사내들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조금만 늦어도 주먹이 날아들 터. “자. 잠깐만요!” 사실 목숨을 걸고 숨길 만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띠고 파견된 그들이지만. 실은 감시하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 잠시 동안 맞고 싶다고?” “그. 그게 아니고...... 말하겠습니다. 궁금하신 게 뭔지 말씀해주시면 죄다 불겠습니다. 흑흑.” 다급히 입을 여는 사내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블루는 그런 녀석을 슬쩍 주시하며 입으 열었다. “너희들은 정체가 뭐냐?” “저희는 그린 기사단 정보부원들입니다.” “헉!” 수풀 쪽에서 들려온 놀란 목소리에 블루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아마도 텐시 같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밖으로 나올 때 몇몇이 숨어 뒤따라 나왔다는 것을. 나아가 그들이 누구누구인지도 훤히 꿰고 있었다. “야. 조용하랬자나.” “알게 뭐야!” 조그만 목소리로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니. 소리를 낸 텐시에게 불만을 터뜨리는 중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걸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소란에 지금까지 신나게 맞고 있던 녀석들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스스로 밝힌 어둠의 기사단이라는 이름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는 듯한 분위기였다. 텐시와 니콜라스 그리고 스콜과 베르니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블루는 텐시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린 기사단이 뭐지?” 쑥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던 텐시는 즉각 답변했다. “아주 악명 놓죠. 말이 좋아 그린 기사단이지. 실은 산적길드에 가까워요. 어차피 산적우두머리 집단인L까요. 게다가 구성방식은 도둑길드와 흡사하죠. 은밀함을 추구하는 것이나. 뒤처리 방식을 생각한다면 말이에요. 하지만 확연히 서로 다른 점이 있는데. 우리는 은밀하면서도 깔끔한 것을 추구하지만 저들은 난폭하다는 거죠.” 블루는 눈을 감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림의 녹림과 같은 것인가 보군.”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 “한마디로 산저패거리란 말이네.” 끄덕끄덕 블루의 간단명료한 정리에 텐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곧 다소 불편한 표정이 스쳤다. 그녀가 놀라 신음을 흘린 것은 저들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블루는 한술 더 떴다. 텐시는 슬쩍 시선을 돌려 블루를 바라보았다. 마침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입 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가고 있었다. 여인을 끄어들인 이유가 이제야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여인의 정체는 잘 모르겠으나. 저들이 감시할 여자라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은 물구나무를 선 채 걸으면서도 생각할 수 있는 문제다. 블루가 물었다. “죠슈아는 누구지?” 스스로 어둠의 기사단이라고 밝힌 사내들은 흠칫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저. 저희 보스 따님입니다.” 다들 놀란 눈으로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블루는 계속 빙글거리고 있었다. “산적길드의 보스 딸이라...... 저 아가씨 의외로 거물이군.” 끄덕끄덕 “너희들은 대장의 따님을 지키는 수호대냐?” 끄덕끄덕 “말로 해라.” “그렇습니다!” 사내들은 블루가 무슨 말만하면 자동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 다시 블루한테 얻어맞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표현 같았다. “저 여자 성격을 보니 보통은 넘을 것 같은데. 많이 힘들겠군. 애환이 보통이 아니겠어.” 그러자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눈물을 흘렸다. “보통만 넘겠습니까? 희귀 공주암 말기에 걸려 틈틈이 발광하고 정신 나간 짓을 일삼는데. 저희로선 말릴 재간이 없습니다.” “늘 사고다발에. 우범지역인데 그 뒤처리는 늘 저희 몫입니다. 솔직히 이젠 지쳤습니다.” “그냥 미친년이라고 생각해주시면 편하실 겁니다.” “저희끼리는 그냥 미친년이라고 부르죠.” 끝도 없이 이어지는 푸념들. 그들 중 몇몇은 정말 눈물까지 흘렸다. “그 정도인가?” “그뿐이면 말도 안 합니다. 크흑!” 도깨비같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녀석의 왕방울만한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별로 권장할 만한 풍경은 아니었다. 블루는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가까스로 구타욕구를 참았다. 자신이 아무리 막 나간다 해도 우는 녀석들 때리는 건 마음에 걸렸다. 물론 맞고 우는 건 아무 상관없었다. “그런데 감시하는 것뿐이라면 열다섯은 조금 많은 편이 아닌가요?” 텐시의 질문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에휴. 단순하게 감시하는 것이라면 많은 편이지만 저 미친니연...... 아니. 아가씨는 꼭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사라져 경을 칠일을 만들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들 당해봤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열다섯 명이 고개를 주억이며 끄덕이는 모습은 코미디에 가까웠다. 블루는 그 사이 많은 것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웃었다. 웃으면서 주먹을 힘껏 말아 쥐었다. 그리고 사정없이 내질렀다. 물론 그린 기사단이라는 녀석들을 향해서. 퍽! 퍼퍼퍼퍼퍽! “켁! 케케케케켁!” 녀석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쓰러졌다. “텐시!” “옙. 대장!” “이 녀석들을 처리해.” 어딘가에 감금해놓으라는 말이었다. 블루의 말뜻을 이해한 텐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뭔가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대장. 이번엔 조금 힘들 것 같은데요.” 블루는 텐시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도둑길드를 통해 뭔가 일을 추진하는 중이었는데. 괜히 꼬리를 남겨봤자 피곤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렇겠군. 녀석들은 지금 우리 뒷조사하랴. 그것을 찾으랴 바쁠 테니까.” “그렇습니다.” 텐시가 대답을 하자. 블루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일을 벌이기 전엔 반드시 녀석들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을 봉인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죽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감금하기로 하고. 장소는 도둑길드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때 니콜라스가 입을 열었다. “주군!” “뭐지?” “용병길드에 이야기해 녀석들을 묶어놓을 수도 있습니다만.......” “용병길드?” 그러자 일행들은 저마다 감탄사를 터뜨렸다. 늘 함께 다니다보니. 니콜라스가 대륙 최강의 용병단 중 하나로 손꼽히는 니콜라스 용병단 단장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군. 그런 방법이 있었군. 그런데 우리말을 들어줄까?” “길드 도움을 받지 않고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부탁하지.” 그 말을 남기고 블루가 자리를 떠나자. 니콜라스는 먼 산을 바라보며 긴 휘파람을 불었다. 잠시 후.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바로 니콜라스의 수하들이었다. 언제 어떻게 연락을 취해 모여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했다. 그들은 불러주기만 기다렸다는 듯 니콜라스의 앞에 무릎을 꿇고 명을 기다렸다. “치워라!” 니콜라스의 그 한마디에 녀석들은 기절해 있는 그린 기사단을 등에 걸치고 바람과 함께 자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한 녀석이 남아 니콜라스를 올려다보았다. 오른쪽 뺨에 긴 검상이 난 자로. 상당히 눈에 익었다. 그가 바로 니콜라스의 오른팔이라 불리던 베르힐이었다. “대장. 어쩔 생각이십니까?” “글쎄. 주군의 명을 기다릴 생각이다.” “아무리 은인이라 해도 그런 어린 녀석을 주군이라고 하시기에는.......” 니콜라스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제야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베르힐이 입을 봉했다. “베르힐. 말조심해라.” “죄. 죄송.......” 베르힐이 허리를 깊이 숙이며 반성의 빛을 보이자 니콜라스가 잠시 하늘을 보고는 깊은 한숨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흠...... 하긴 네가 그분의 실체를 보지 못하였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실체라 하심은?” “후후. 머지않아 곧 알게 될 것이다. 여하튼 고맙구나. 자리를 비운 나를 대신해 용병단을 이끌어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전 단지 대장님께서 하시던 것을 따라했을 뿐. 만약 미안하시면 어서 빨리 자리로 돌아와주시면 됩니다. 그것은 저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원하는 일입니다.” “내가 했던 것을 따라할 뿐이라고?” 그 말에 니콜라스가 힘겹게 웃었다.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큭큭. 알았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그 말을 끝으로 베르힐은 바람같이 어둠 속에 몸을 감췄다. “내 자리라...... 후후.” 하늘에 떠 있는 반달이 환하다. 제6장. 누구는 성질이 없는 줄 알아! 자신들이 충성을 맹세한 보스의 금지옥엽이 사라졌다. 큰일이다. 어서 찾아야만 했다. 찾지 못하면 목이 뎅강 떨어져 바닥을 굴러다닐 판이다. 누군가 말했다. “미친년! 내가 결국 그년 때문에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세 부두목 중 하나인 프랭크였다. 그러자 두 번째 부두목이 애꾸눈 팽크가 대꾸했다. “그년 심심하다고 꼴같잖은 짓을 하면서 돌아다닐 때부터 알아봤어! 그년하고 어울려 놀던 뮤켄 산맥의 똘마니 새끼들은 뭐하고 있었던 거야?” “미친년이 사라진 주변에서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았는지 반쯤 시체가 되어서 나뒹굴고 있더구먼.” “어떤 새끼가 그랬는데?” “그걸 알면 내가 여기 있겠냐?” “니기미...... 그럼. 그년 감시하라고 붙여놨던 정보부 녀석들은?” “그 새끼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어.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몽땅 몰살당한 것 같아.” “그게 말이나 돼?” “그게 아니라면 연락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겠지.” “그 녀석들이 어떤 놈들인데...... 열다섯이 모조리 잡힌다거나 몰살당한다는 게 가당키나 해? 가당키나 하냐고?” “젠장. 내가 알게 뭐냐?” “알게 뭐냐가 아니지. 어서 알아내야해!” 삐쩍 마르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녀석이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까지 잠자코 듣고만 있던 세 번째 부두목인 카푸였다. “보스는 이 사실을 아셔?” “젠장! 알았으면 우리 목이 여기 붙어 있겠냐?” “하긴.” “썅놈의 새끼들!” 썅놈이란 블루에게 얻어맞고 감금당한 녀석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썅년!” 물론 이번엔 정신 나간 죠슈아를 지칭하는 말이다. 억울하게 얻어터지고 감금등한 상태에서 억울하게 욕까지 먹어야 하는 녀석들은 지금 어딘지조차 알 수 없는 골방에서 어떻게든 연락을 취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를 중시하는 고위층들이 그것을 알 리 없었다. 카푸가 펜을 들고 자신들의 의견(사실은 욕설)만 듣고 있던 수하들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우선 꼬리가 사라진 지점을 시작으로.......” 부우욱 그는 펜이 지도 밖으로 나갈 정도로 힘차게 넓은 원을 그렸다. “연락이 끊어진 지 오늘로 삼 일이 지났으니. 아무리 빠르다 해도 이원을 벗어나진 못했을 것이다. 발이 빠르고 눈썰미가 좋은 수하들을 풀어서 미친년을 찾는다.: “.......” “어서!” “옛!” “오호. 이 자식들 빠진 것 봐라! 빠릿빠릿하게 못해! 정신수양을 다시 한 번 받아야만 쓰겠어?” 수하들은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 나가면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그리고 낮게 구시렁거렸다. 그 넓은 지역에서 어떻게 찾으라는 건지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해야만 했다. 하라면 하는 것이 수하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란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자신들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사랑스러운 가족들까지 어떤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부두목들에게 정확한 지시사항은 받지 못했으나. 자신들이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그들은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떠올리며 보다 효과적인 수행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죠슈아를 포함한 블루 일행은 드디어 크라만 영지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더뎠다. 이 주면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삼 주나 걸렸다. 이렇듯 늦은 데는 그 누구보다 죠슈아의 공이 컸다. 지금껏 행인들 등쳐먹고 강도짓을 일삼던 사악한 모습들과 전혀 다르게 죠수아는 보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 꿈 많은 소녀였다. “저는 꿈이 있었어요.” “꿈? 어떤 꿈이죠?” 블루의 입에서 느끼한 음성이 다시 흘러나오자 일행들은 몸서리를 쳤다.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낭군님과 함께 세상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거예요.” “참 아름다운 꿈이군요.” 블루의 맞장구에 죠슈아는 눈빛을 반짝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으며 오순도순 여행하고 집에 돌아가면 우리를 닮은 아이가 반기는 그런 꿈.” 더 이상 빛날 수 없을 정도로 초롱초롱 빛을 발하는 죠슈아의 눈빛이 향하는 목적지는 시종 블루의 두 눈이었다. 블루가 자신의 낭군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블루는 잠자코 그 눈빛을 받아주었다. “우웩!” 좌악! 그 순간 시원스럽게 토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콩깍지가 덮인 죠슈아의 고막을 건드리긴 역부족이었다. 물론 블루의 민감한 고막은 달랐다. 감히 자신의 귀를 더럽히다니! 비명으로 정화하리라! 그는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돌렸다. 리얼한 효과음은 블루를 뒤좇던 일행들 사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스콜과 베르니스가 유력한 용의자로 뽑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범인이었다. 어떻게 응징할까? 가볍게 쥐어박아줄까? 이런저런 생각을 여투며 주변을 돌아보니 그들만이 아니라 니콜라스와 텐시. 클루토와 죠셉 그리고 황태자까지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내가 좀 심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중에 조용히 손을 봐주리라. “죠슈아. 분명히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아아. 당신과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오오. 죠슈아!” “블루!” 반짝반짝반짝 핑크빛 무드가 아름답게 깔리려는 찰나. “우웨에엑!” 좌아아악! 이번엔 내장이라도 게워내듯 힘겨은 소음이었다. “꺄악. 이게 무슨 짓이야?” 텐시의 비명과 시원하게 뺨을 올려치는 소음이 들려왔다. 스콜의 그것(?)이 약간 튄 것이다. 덤으로 옆에서 함께 토하던 베르니스까지 얻어맞았다. “꾸억!” 철푸덕 둘은 자신들이 게워낸 지점에 정확하게 얼굴을 처박았다. 그것을 본 일행들이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구토했다. 물론 그 일행에는 텐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블루와 죠슈아는 자신들과 아무 상관없다는 듯 멀찍이 걸어가고 있었다. 목욕을 마친 일행은 곧 식당으로 내려갔다. 모두 볼이 홀쭉한 것이 지친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스콜과 베르니스는 살아 있는 것이 용할 정도로 퀭했다. 눈빛은 거의 썩은 동태눈깔과 흡사했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만큼 처량해 보이는 둘의 모습에 일행들은 피식 웃었다. 크게 웃을 기운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블루가 니콜라스를 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JT다. “알아봤나?” “예. 그런데 그곳에 찾아가는 것을 잠시 뒤로 미뤄야할 것 같습니다.” 니콜라스의 말에 죠셉과 황태자의 눈빛이 변했다. 좋지 못한 말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째서죠?” 황태자의 질문에 고개를 깊이 숙이며 답변했다. “수상쩍은 소문이 계속 들려옵니다.” “무슨 소문이지?” 블루의 질문에 니콜라스가 대답했다. “처녀들과 아이들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거야 어디를 가나 비일비재한 일이 아닌가.” 끄덕 “하지만 지금까지 조사된 것만 해도 벌써 삼백여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삼백이라...... 그건 좀 과하군.” “그렇습니다.” “그래서? 뭔가 눈에 띄는 단서라도 있나?” “혹시나 싶어 마을 주변을 돌아보았는데. 길거리에서는 거의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거기다 그토록 많은 아이들과 여인들이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이곳 크라만 영지의 병사들은 대충 수사를 덮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구심은 소문입니다.” “소문?” “예. 납치범 뒤에 이곳 크라만 영지의 영주가 개입되어 있다는 소문입니다.” “흠.” “뭔가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그렇군. 아니 뗀 굴뚝에서 연기가 날 리 없지. 분명 뭔가가 있으니 그런 소문이 난 것일 거야. 좀 더 알아보도록 하게.” 블루의 지시에 니콜라스가 고개를 숙였다. 그때 죠셉이 반문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모두의 시선이 죠셉을 향했다. “그. 그분은 제가 잘 압니다.” 그러나 죠셉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사람이 십 년 동안 일관된 마음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탓이다. 하지만 변했다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믿는 순간 황태자의 처지가 너무도 기구하게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블루나 일행들도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마음이 간다고 무작정 몸이 따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죽을 작정이라면 상관이고 뭐고 아무 상관도 없겠지만. 살고자 이곳에 온 자신들이 아니던가. 거기다 단순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대업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닌가. 블루가 말을 끊었다. “니콜라스. 수고해.” 니콜라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향했다. 어두운 하늘에 붉은 달이 떠 있었다. 어제의 밝은 빛은 어딘가로 사라졌는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음산한 그 빛이 닿는 곳은 크라만 영주가 살고 있는 크라만 영지에 비밀리 만들어진 어느 처소. 고문실인 듯 벽면 이곳저곳에는 여러 고문기구들이 정돈되어 있는데. 거기에 핏자국과 고문 도중 떨어져 나온 듯 보이는 살점이 말라붙어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크흐흐흐흐.” 음침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철썩! “아흑!” 채찍이 휘둘러지는 파공음과 낯선 여인의 비명소리! 하지만 영지 안에 있는 마을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이곳에 그 비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내가 여인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감질 나는구나. 큭큭큭.” 철썩철썩! “아악. 그냥 죽여라 썩은 쓰레기 같은 녀석...... 퉤!” 여인의 독기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있는 힘을 다해 침을 뱉었다. 그러자 채찍질하던 사내의 얼굴에 붉은 피가 썩인 타액이 달라붙었다. 사내의 눈빛이 살기를 띄기 시작했다. “큭큭. 그렇지 않아도 네년을 오늘 죽여줄 참이었다.” 그리 말하며 그늘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사내. 그는 혀를 길게 내밀어 볼에 묻은 타액을 가볍게 핥았다. 그리고 사내 모습이 달빛 아래 완전히 들어났는데. 놀랍게도 그는 영주민들이 떠받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크라만 영주였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겉과 속이 다르다곤 하지만 어찌 크라만 영주가...... 인자한 모습은 어디가고 악귀가 따로 없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크라만 영주는 한 걸음 한 걸음 여인에게 다가섰다. 퍽! 여인의 복부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커어어어억!”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여인이 눈자위를 뒤집으며 신음을 쏟아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여인은 기절한 듯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끌고 와.” 영주의 말에 사내 둘이 다각 여인의 양팔을 잡고 질질 끄며 영주를 따라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넓은 방이었다. 그런데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제단 같은 게 눈에 띄고. 그 앞으로 방 한복판에 넓은 침대가 위치해 있었다. 두 장정은 축 늘어진 여인을 그 위에 올렸다. 그리고 익숙한 몸놀림으로 추에 불을 붙이고 제단을 정리했다. 사내들은 웃통을 벗고 있었는데. 이곳저곳 심한 자상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풀려 있는 눈은...... 뭔가에 취한 모습이었다. 백치 같았다. 잠시 후 모습을 감추었던 영주가 독특한 옷을 입고 제단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기형적으로 생긴 단검이 하나 쥐어져 있었는데. 검 날이 검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사내들이 먼저 제단 앞으로 가서 기도문을 외웠다. 영주도 그들을 따라했다. 십 분쯤 지났을까. 매캐한 연기를 내며 타오르던 백여 개 남짓의 양초가 갑자기 폭음을 발하며 거대한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오오. 마신이여! 제물을 바치오니 저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화르르륵 마치 영주의 말에 응수하듯 불꽃이 더욱 거칠게 뿜어졌다. 동시에 영주의 양손이 높게 치솟아 올라갔다가 거침없이 아래로 내려졌다. 퍽 “아악!” 찢어지는 여인의 비명소리! 잠시 기절해 있던 여인은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끔찍한 고통에 눈을 치켜떴으나. 보이는 건 온통 붉은빛 뿐이었다. 그녀는 그 붉은 빛이 자기 가슴에서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 전에 목숨을 잃은 탓이다. “크흐흐흐흐.” 영주의 입에서는 계속 비릿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검이 붉은빛을 뿜어내는 것을 보니. 마신께서 이번 제물이 마음에 드신 모양이구나. 큭큭큭. 하긴 끝까지 독기를 품고 나를 저주했는데. 마신께서 마음에 들지 않을 리 없지. 요즘 들어 최고의 수확이군, 큭큭큭큭.” 조금 전보다 달빛이 더욱ㄷ 붉게 보이는 건 결코 착시는 아닐 것이다. 블루 일행은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못했다. 아직 크라만 영주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연락했는데 영주가 만나주지 않은 게 아니라. 애초에 연락을 취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냥 쳐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지 십 년이 훨씬 넘었다고 했다. 십 년! 그 정도면 강산도 변한다지 않는가. 경망스러운 생각일지 모르지만. 그 사이 권력이나 돈을 택할 수도 있다. 특히 그들은 도망자 신세가 아닌가. 신중을 기할 생각으로 영주에 대해 조사하던 중 그들은 좋지 못한 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문 때문에 영주만 믿고 이곳까지 달려온 죠셉과 황태자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도 한 가지 괴소문이 추가되었다. 어젯밤 누군가 저 머리서 들려오는 한 여인의 비명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비명이 영주가 거주하는 성 뒤편에서 들려왔다는 점이었다. “정말로 잘못 찾아온 것이란 말인가!” 황태자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죠셉이 말했다. “아닐 겁니다. 그저 소문일 뿐. 아직 확인된 사실도 아니지 않습니까? 진상이 확인될 때까지 크라만 영주를 믿는 것이.......” “당장 영주를 만나라는 말입니까?” 황태자의 말에 죠셉이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물론 그것은 아닙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시가 급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게 뭐지요?” “바로 태자저하의 마음가짐입니다.” “마음가짐?” “예. 지금 태자저하께선 마음을 평온하게 보존하시며 상황을 냉정히 주시하셔야 합니다. 다급한 마음은 평온을 위협하고 생각의 깊이를 낮추기 때문에 자연히 시야가 좁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실수를 유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저한테 어쩌라는 말입니까?” “블루 경을 믿으십시오.” “블루 경을?” “예. 당장 태자저하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그를 믿으십시오.” “경의 말대로 하겠소.” “망극하옵니다.” 한차례 고개를 조아린 죠셉이 덧붙였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십시오.” 죠셉의 말에 문이 열리며 텐시가 들어섰다. “태자저. 아니...... 저기 식사하세요.” 죠셉은 말을 더듬는 텐시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알겠소.” “그럼 좀 있다 내려오십시오.” “고맙소.” 텐시가 문을 닫고 나가자 죠셉은 다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저하.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직접 내려가 일행들과 먹을 것인지. 아니면 이곳으로 가져오게 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내려가겠습니다.” 황태자의 말에 죠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으로 내려가자 이미 일행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중 단연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구석에서 희희낙락하는 죠슈아와 블루였다. “날이 갈수록 아름다움이 번져가는군요.” “블루님 미소에 석양조차 붉어지던 걸요.” “하하하하.” “호호호호.” 그 모습을 보며 베르니스가 입을 열었다. “으휴...... 밥이나 먹자.” 스콜이 아랫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나 소화불량 걸렸나봐. 이제는 두 그릇 먹기도 벅차.” “잘났다. 인간아.” 일행들은 언제까지 저런 꼴을 봐야하는지 내심 걱정된다는 듯한 얼굴로 블루와 죠슈아를 바라보며 수저를 들었다. 한동안 블루와 죠슈아를 지켜보던 태자도 소화불량에 걸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직이 입을 열어 죠셉에게 물었다. “정말 블루 경을 믿어도 되는 겁니까?” 죠셉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산적. 아니 그린 기사단은 오랜 추적 끝에 몇 가지 증거와 거기서 나온 심증으로 많은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결론은 그들이 지금 크라만 영지에 있다는 것. “그나마 다행이군.” 카푸가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애꾸는 팽크가 말했다. “다행 같은 소리하네. 그 미친년이 어떤 미친 짓을 할 줄 알고 다행이라는 거냐? 멱살이라도 잡아끌어 이곳에 앉히지 않는 이상. 다행 같은 소리는 마. 내가 그년 때문에 보스에게 얼마나 시달린 줄 알아?” “개새야. 누가 들으면 너만 시달린 줄 알겠다.” “그래. 어쩔래? 나만 시달렸다!' “이 새끼가 한동안 오냐오냐 해줬더니 이제 아주 기어오르네? 너 남은 눈알 하나마저 뽑히고 싶어?” “이런 미친 새끼! 너야말로 죽고 싶어 환장했냐?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왔어? 내가 직접 배를 찢어 간이 얼마나 부었는지 확인해줄까?” “넌 뇌가 있는지 없는지 머리를 갈라 확인할까?” 카푸와 애꾸는 팽크는 별것도 아닌 것을 시발점으로 하여 온갖 해부학적 욕구를 자극하는 말과 함께 비속어를 유감없이 남발했다. 결국 잠자코 듣던 프랭크가 한마디 했다. “시끄러. 어서 그년이나 몸 성히 찾아올 준비나 해. 그년 손톱하나 다쳐도 발광할 광견이 실종된 사실을 눈치 채기 전에.” “누가 뭐래?” “그러게.” 프랭크의 한마디로 어수선한 분위기는 정돈 되었다. 지금 눈앞에 저놈 배를 가르는 것보다 시급한 것이 죠슈아를 찾는 것이었다. 사실 자신이 살아 있어야 배를 가르든 머리를 쪼개든 할 게 아닌가. “우선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녀석들 중 실력이 괜찮은 녀석들을 뽑아 열 명을 우선적으로 보내서.......” 카푸가 입을 열자 애꾸는 팽크가 대뜸 딴죽을 걸고 나섰다. “웃기고 자빠졌네. 열다섯 명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는데. 열 명으로 씨알이나 먹히겠다. 퍽이나!” “이 자식은 내가 무슨 말만하면 시비야!” “틀린 부분을 바로잡아주는데 그것도 시비냐? 너야말로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지? 보스에게 죽기 전에 나한테 먼저 죽어볼래. 앙?” “이제 그만 좀 해!” 프랭크가 다시금 중재에 나섰다. 그 즉시 둘은 입을 다물었다. 같은 부두목이지만. 프랭크가 실질적인 이인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이인자였다면 이렇게까지 기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뛰어난 실려이었다. “팽크 말이 옳은 것 같으니까 선발대로 삼십 명 정도를 뽑아 감시시키고. 그년이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넉넉하게 오십 명 정도를 후발대로 투입시킨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 “내가 생각하던 게 바로 저거라니까.” 카푸와 팽크가 한마디씩 거들었다. 자신의 얼굴에 금칠해주는 것이었으니. 프랭크로서도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었다. “여하튼 당장 보내!” “그런데 프랭크!” “왜?” 프랭크가 거만한 눈으로 카푸를 내려다보았다. “그년이 왜 그리 갔을까?” “꼴리니까 갔겠지. 들어가 보지도 않은 그년 속을 내가 어떻게 알아?” 프랭크가 짜증난다는 투로 말하자. 카푸는 자라목이 되어 어깨를 움츠렸다. 그럼에도 끝까지 할 말은 다했다. “혹시 납치당한 것은 아닐까?” “납치?” 프랭크의 귀가 솔깃해졌다. 사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식은땀이 났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누. 누가 그년을 납치해? 누. 누가 무슨 이유로...... 그런 것은 우리들처럼 선택받은 사람들의 고유 특권 아냐? 그런데 감히 누가 누굴 납치한단 말이지? 내장을 끄집어내 줄넘기를 할 놈들이 어디 있어?” 프랭크가 씩씩 거리자 위축된 카푸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야 모르지.” “그런데 웬 헛소리야? 사람 심장 떨리게!” “그냥 혹시나 해서...... 조심한다고 해서 나쁠 거 없잖아.” 사실이었다. 프랭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만약 납치당한 게 사실이라면 누굴까? 납치했단 말은 그 미친년 정체를 알고서 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말이야.” “어째서?” “이 등신아~ 어굴 반반한 것만 보고 돈 푼깨나 만져보겠다고 납치하는 집단이 그렇게 강할 성싶으냐? 말단이긴 하지만. 그린 기사단을 쓰러뜨리고 정보부 녀석들까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게 만들 정도로? 결코 만만한 놈들이 아닐 것이다! 뭔가 목적을 가지고 그년을 잡아간 것이 확실해.” 그 말에 카푸와 팽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랭크의 말이 백번 옳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란 말이야?” “어. 말이 그렇게 되나? 그렇군. 맞아! 그래. 내 말이야!” “어. 엉.” 프랭크는 뭔가 미심쩍은 듯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팽크가 나섰다.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긴 인원수를 더 늘려야지.” “어느 정도로?” 팽크의 질문에 프랭크는 다시 고문에 빠졌다. “보스가 신경 쓰지 않을 정도 수준으로 인원을 몇까지 뽑아낼 수 있지?” “흠...... 대충 백오십까지는 가능할 것도 같은데.......” 상당한 숫자였다. 프랭크가 화색을 띤 얼굴로 말했다. “그래? 그럼 우선 뽑을 수 있을 만큼 뽑아. 보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 정도쯤이야.” 팽크가 자신했다. “그리고 카푸! 넌 우리한테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낼 만한 곳을 찾아봐.” “한도 끝도 없을 텐데.......” “이 등신아! 우리와 맞먹을 만큼 세력을 가진 곳을 알아보면 되잖아. 설마 우리보다 약한 곳에서 일을 벌였겠냐?” “아하!” “아하는 무슨...... 어서 찾아봐!” “오케이! 그리고 그만 소리쳐. 누군 성질이 없는 줄 알아! 나도 너랑 같은 부두목의 입장이라고. 알아?” 열 받은 카푸가 기어이 한마디 했다. 아무리 실력이 떨어진다 해도 같은 부두목이 아닌가. 프랭크가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오호. 맞아. 누군 성질이 없냐고? 큭큭.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지. 그리고 같은 부두목이란 말...... 거 설득력 있다. 맞아. 우린 같은 부두목이지. 그런 상황인데 우리 주제에 참는다는 게 말이나 되겠어? 자. 계급장 떼고 어디 한번 붙어보자. 흐흐흐.” 그 말을 듣는 순간 카푸의 얼굴에 사색이 돌았다. 뒤늦게 잠자는 사자를 잘못 건드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슬쩍 곁눈질을 해보니. 팽크 녀석은 말릴 생각은커녕 흥미진진한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자식!”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니었다. 참고 성질을 죽였어야 했다. 이제 겨우 익스퍼트 중급이 마스터를 넘보는 녀석을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아. 알았어. 알았다고. 최대한 빨리 정리해서 돌아오면 되는 거지?” “.......” 대답이 없었다. “난 간다.” “.......” 여전히 대꾸하지 않고 이죽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핥는 프랭크. 그런 프랭크를 뒤로 한 채 팽크는 부랴부랴 밖으로 튀어나갔다. 프랭크가 낮게 투덜거렸다. “한동안 가만히 있었더니 이제 아주 꿔다 논 보릿자루 취급을 하는군. 쩝.” “.......” “넌 뭐하고 있어? 나랑 붙고 싶냐?” “서. 설마! 그럴 리가. 지. 지금 나가려고 했다고. 배. 백오십이라고 했지. 내가 대령할게. 나도 간다.” 후다다닥 프랭크의 살기등등한 목소리에 팽크는 잔뜩 위축된 얼굴로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 나갔다. 카푸도 도망치는데 자신이라고 용빼는 재주 있겠는가. “저 자식들이 빠져가지고...... 그럼 한숨 자볼까?” 털퍼덕 끼이익 프랭크는 자신의 육중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의자에 몸을 깊게 파묻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녀석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지는 적어도 몇 시간쯤 걸릴 텐데. 그동안 그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물론 있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제7장. 죠슈아. 납치당하다. “룰루랄라.” 요즘은 하루하루가 꿈만 같고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꿈꾸던 왕자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완벽한 자신의 이상형이었다. 오죽했으면 자신을 위해 맞춰놓은 존재가 아닐까 샆을 정도로. 아아. 인생은 아름다워라. 신혼의 단꿈이란 것이 이럴까? 룰라랄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노래를 멈췄다. 그리고 발걸음 까지도. “혹시나 내가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태산처럼 부풀어 올랐다. “에이 몰라! 정 안되면 아빠한테 납치해달라고 부탁하면 되겠지. 내 부탁이라면 뭐든지 다 들어주시니까. 분명히 납치해줄 거야. 그런데 그가 싸우는 것을 보니 상당히 강하던데...... 하지만 설마 아빠보다 강하겠어? 우리 아빠가 얼마나 센데...... 괜한 걱정이지. 후후.” 사랑 탓일까? 어느새 그녀는 본능에 충실한 종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고 말거야!” 그녀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지금 블루를 놓치면 평생을 가도 그만한 남자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만큼 퍼펙트한 남자가 세상에 있기나 할까? 툭툭 누군가가 그녀 어깨를 두드렸다. 그녀는 무심코 뒤돌아보았다. 하지만 무심코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강인한 팔이 코와 입을 틀어막아버린 탓이다. “읍읍!”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누. 누구?” 뭔가 달콤한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낯익은 냄새였다. 그러나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 향이 뭔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클로로포름. 자신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납치할 때 주로 사용하던 약품 이름이다. “어. 어째서...... 누가?” “흐으음.” 전신의 근육이 이완되며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이었다.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으나...... 곧 정신을 잃고 전신이 축 늘어졌다. “.......” “.......” 사내들은 그녀가 정신을 잃자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모르는 목격자를 경계하는 것이었다. 다행이 목격자는 없는 것 같았다. 인심하고 막 돌아서려는 찰나. 십수 명의 사내들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한두 명이라면 어떻게 살인멸구라고 해볼 텐데. 이건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놈들이 목숨을 걸고 다려든 탁이었다. 그제야 그들은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다 잡은 먹이를 놓치고 십지도 않았다. 요즘 젊은 여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특히나 이만한 물건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냅다 뛰었다. 다다다다닥 등 뒤에서 들리는 발자국소리와 고함소리에 등골이 오싹했다. 하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렸다.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되자 납치범 중 하나가 품에서 뭔가를 끄집어냈다. 납치범을 쫓던 사내들은 그것이 뭔지 단박에 알 수 있어다. “헉. 스크롤!” “찢지 못하세 막아!” “어떻게요?” “그냥 막으라면 무조건 막아. 새꺄!" 그러나. 부욱 스크롤이 찢기는 것을 맞지 못했다. 번쩍! 눈이 시릴 만큼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두 납치범이 죠슈아를 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순간이동 스크롤이었던 것이다. 몸을 날리고도 한 끗발 차이로 놓친 사내가 투덜거렸다. “제길. 이제 어떡하죠?” 바닥을 구른 녀석이 벌떡 일어나 당혹스런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보여주었다. 대장은 그 수하를 패대기쳐 짓밟아주고 싶었다. 행동이 조금만 더 빠릿빠릿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주워 담을 수가 없으니. 부두목들한테 짓밟힐 일만 남은 샘이었다. 특히나 이곳에는 보는 눈들이 많다. 거리 한복판에서 스무 명의 복면인들한테 쫓기며 여인을 껴안고 도망치던 두 사내가 스크롤을 찢고 사라졌다면. 이는 보통 사건이 아닌 것이다. “어서 가자!” 복면을 뒤집어쓴 사내들은 바람처럼 흩어져갔다. 상부에 급하게 전갈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지붕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사내가 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이내 그도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흰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은 그로서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블루를 납치해서라도 옆에 두고 싶어 하던 죠슈아. 그녀는 설마 자신이 납치당할 줄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늘 이변투성이였다. 특히 블루 주변에선 이변이 잦았다. -죠슈아가 납치당하기 삼십 분쯤 전 “대장. 찾았습니다.” “어디냐?” “목표물은 지금 세시 방향으로 꽃집을 지나고 있습니다.” 복면을 뒤집어쓴 스무 명의 사내들 시선이 기계처럼 한 방향으로 돌아갔다. 대장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오. 잘했다. 4호. 어서 목표물을 찾았다는 연락을 띄워라.” “옛썰.” 4호는 어디론가 빠르게 떠났다. 이들이 바로 그린 기사단에서 보낸 삼십 명의 선발대로. 넓은 크라만 영지에 투입되자마자 구역을 정해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 지 채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목표물을 찾아낸 것이다. 웅이 좋았다. 자칫 일주일 넘게 이 짓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거기다 조기에 찾아낸 만큼 포상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목표를 찾았다고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다. 상부의 명령 없이 함부로 움직였다가 나중에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 미친년이 설치고 다니면 막을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도망치는 데도 선수라. 잡을 수 있을지 마저 미지수였다. 카푸 부두목이 후발대를 이끌고 도착할 때까지 예상되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 그때까지만 저년을 놓치지 않으면 임무완수였다. 그 다음은 카푸 부두목이 알아서할 터. 그런데 바로 그때. 얘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 둘이 눈 깜짝할 사이에 미친년한테 접근해 납치해버린 것이다. 대장은 잠시 갈등했다. 미친년을 구할까. 아니면 그냥 지켜보며 상황보고만 할 것인가? 쉽지 않았다. 특히 미친년이 눈앞에서 납치당했다는 말을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까딱하다가는 몽땅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물론 사안이 사안인 만큼 짧다고도 할 수 없었다. 대장은 결단을 내렸다. “막아랏! 저 녀석들을 놓쳐선 안 된닷!” “옙!” 숨어있던 복면인들이 우르르 납치범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러나 녀석들은 큰 몸집에 비해 의외로 날렵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누군가? 전문요원들이다. 특히 납치라면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자신들이다. 그런 그득 앞에서 납치라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것도 유분수였다. 코웃음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저 엉성한 폼이라니! 피식 그러나 한순간 방심한 탓인가. 녀석들이 품을 뒤지더니 뭔가를 끄집어냈다. 설마 그것이 순간이동 스크롤일 줄이야! 갑자기 마음이 다급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음인가? 빛이 번쩍하고 놈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그들은 작금의 사태를 어찌 정리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아니 보고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찾았다고 보고를 마친 상태가 아닌가. 이제 곧 카푸 부두목이 달려올 텐데. 그 전에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생각해두지 않으면...... 목이 댕강 잘려 아이들이 차고 노는 공처럼 바닥을 굴러다닐지도 몰랐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머리에 쥐가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여기서 허비할 시간이 없다. 우선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았다. 따라서 자리를 옮기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 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죠슈아가 납치당하기 두 시간 전 블루는 니콜라스로부터 정체불명의 집단이 포착되었다는 것을 보고받았다. 니콜라스는 그들의 움직임이 산적들과 비슷하다는 것과. 그들이 누군가를 찾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그밖에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블루에겐 지나가듯 귀띔해준 이야기가 정식보고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블루는 드디어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죠슈아한테 외출하겠다고 밝히고 그 즉시 밖으로 나갔다. 다분히 뭔가 노림수가 있는 고의적인 행동이었다. 예컨대. 죠슈아가 무료함을 느끼고 외출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가 죠슈아와 딱 달라붙어 다닌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가 혼자 다니면 십중팔구 납치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상황이 좀 달랐다. 변경된 계획에 따라 이제 그녀는 납치당해야만 했다. 거기서부터 크라만 영주가 납치사건에 깊이 연류되어 있음을 밝혀낼 생각이었다. 이미 심증을 굳혔다. 단순히 추축이나 감이 아니라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가 직접 확인한 사실이었다. 감히 누가 블루의 은둔술을 눈치 챌 수 있으랴! 무림에 있을 때. 그는 마음만 먹으면 용담호혈이라 불리는 황궁 안에 숨어들어가 황제의 목을 딸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이런 허접스러운 성에 들어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거침없이 소문의 진원지를 향해 걸어갔다. 병사 몇몇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왜 그곳을 지켜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알았다면 벌써 큰 사단이 났을지 몰랐다. 아니 사단이 나기 전에 찍소리 못하고 죽었을 지도 모른다. 블루가 정문으로 들어서는데도 그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안으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얼마쯤 들어가자 굳게 잠긴 방이 나왔다. 블루에게 잠긴 문을 따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마교에서 훔쳐낸 천마잠영술. 그것은 바늘구멍만한 틈만 있어도 자유자재로 잠입할 수 있는 신묘한 술법이었다. 물론 부수고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 못지않게 들키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안은 정말 가관이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시체들이 즐비했는데.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그간 실종된 자들일 게 뻔했다. 고문실인 만큼 죄를 짓고 치죄를 당하는 과정에서 죽은 범죄자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시체 사이즈가 너무 작거나 유약해 보이는 여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찍찍 시체를 파먹는 쥐새끼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쥐들은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왔는지 블루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고 시체를 갉아먹었다. 새로운 먹잇감인 양 그 흉측하기 그지없는 불그스름한 눈알을 때굴때굴 굴리며 블루를 노려보기까지 했다. 그 중 몇 놈은 발톱을 세운 채 슬금슬금 다가왔다. 보통 봐온 쥐보다 덩치가 두 배쯤 컸다. 그것을 본 블루의 가슴속에서 불덩이가 치솟았다. “이런 미친 쥐새끼들을 봤나!” 블루는 발에 걸리는 쥐새끼들을 잇는 힘껏 걷어찼다. 퍽퍽! “찌이!” “찌찍!” 퍽퍽 벽에 부딪히자마자 물 풍선처럼 터졌다. 순식간에 수심마리가 죽어나가자. 위험을 감지한 쥐새끼들이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블루는 참람한 광경에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물론 그도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그는 늘 예우를 해주었다. 적이든 동료든 반드시 땅에 묻어준 것이다. 그런데. 결혼 적령기 안팎의 처녀들이나 그보다 어린 아이들을 죽여서 이렇듯 방치한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놈을 찾아내 당장 패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그보다 더 처절하게 복수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처리하는 건 너무 쉽다. 게다가 이 진실이 은폐될 수도 있었다. 황태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는 크라만을 확실히 매장시키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독제독! 그가 구상한 작전은 독으로 독을 처리하는 것. 그는 사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약간 맛이 간 죠슈아의 정신을 치료해줌 동시에 스트레스를 좀 풀어볼 요량으로. 죠슈아 친위부대원들을 끌어들여 조용히 박살내준다는 계획이었다. 어차피 산적은 나쁜 일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닌가! 블루가 보기엔 다른 게 아니라 그게 악이다. 사람한테 피해를 주기 위해 모인 것 자체가 이미 악이었다. 한 번도 일을 도모하지 않았다 해도 그런 생각으로 모였다면. 이미 죽어도 쌌다. 그런데 더 큰 악의 축이 눈에 들어왔다. 놈은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아무 죄 없는 아이들까지 이유를 불문하고 학살했고. 시체유기까지 했다. 뿐이랴. 겉으로는 성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두 악이 싸우게 하는 것이었다. 큰 악과 작은 악이 맞붙어 싸우면. 손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었다. 더구나 크라만 영주의 저 가증스러운 가면을 벗길 수 있었다. 물론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두 악이 서로 싸운다는 점이다. 싸움구경처럼 재미난 게 또 어디 있으랴. 벌써부터 마음이 들떴다. 산적들 앞에서 보기 좋게 죠슈아가 납치당함으로써. 산적과 이중인격자인 영주의 대결 제1라운드의 공이 울렸다. “나이스!” 블루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죠슈아가 산적들 눈앞에서 납치당하도록 한 것은 그의 작품이었다. 모든 게 뜻대로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이제 나머지는 그들이 하기 나름이었다. 물론 그가 해야 할 몫도 적지 않았다. 일단 산적들에게 어느 정도 정보를 흘려야하고. 납치범인 크라만 영주가 인질인 죠슈아를 쉽게 죽이지 못하도록 방해공작도 펴야 했다. 산적들이 머리가 좀 있다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테고. 그러면 목적을 이루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생각은 말괄량이 딸한테 고수 열다섯을 붙여줄 만큼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더 큰 이유는 그 아버지가 산적두목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자기세력을 보존하기 위해 딸을 포기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산적두목은 딸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블루는 그간 죠슈아한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그런 결론을 내렸다.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아버지가 포기한 딸을 내가 어떻게 해?” 그런 생각으로 그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도 합리화시켰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산적들. 아니 그린 기사단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것이다. “아니. 뭐라고?” “주. 죽을죄를…….” 머리를 조아리는 선발대 대장의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카푸는 돌아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이를 악물며 호통을 쳤다. “이 미련한 새꺄! 그딴 년 하나 간수를 못해 눈앞에서 분실해!”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 말이 더 귀에 거슬렸다. “오냐.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스릉 카푸는 도를 끄집어냈다. 눈앞에서 차가운 날이 번뜩이자 선발대 대장은 사색이 되었다. “주. 죽을죄는 아니고…….” “뭐. 뭐. 뭐. 뭐? 죽을죄가 아니면 뭔데? 말해봐!” “죽을죄는 아니지만. 분명 아니지만…….” “못 말하겠지. 새꺄! 그럼 죽어!” 카푸는 거침없이 대장의 목을 그어버렸다. 스각! 텅 피분수와 함께 선발대 대장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성이 안 풀렸다. 성질 같아서는 나머지 스물아홉 명도 깨끗이 정리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기적에 가까운 인내력으로 겨우 참았다. 분을 이기지 못해 한둘을 벴다면 모르지만. 서른 명을 몽땅 죽여 놓고는 무사히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납치당한 그 미친년을 찾자면, 고양이 눈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 “야. 마법사.” “예엣!”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놀라 반쯤 넋이 나간 채 서 있던 늙은 마법사가 카푸의 부름에 허둥지둥 뛰어왔다. “어서 프랭크랑 연결해.” “옛!” 노인이 바삐 수정 구슬을 꺼냈다. 카푸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래도 보스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프랭크를 선택했으나. 뭐라고 말을 전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에구. 내 팔자야.” “부두목님. 설치가 끝났습니다. 여기 수정 구슬을 보시면서 말씀하시면 됩니다.” “수고했다. 여여 들려? 들리냐고.” 카푸가 수정 구슬을 톡톡 두드리며 말을 걸자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랭크는 자고 있었는지 무료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뭐냐, 그년은 찾았어? 카푸는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프랭크가 버럭 소리쳤다. -뭐! 찾았다고? 그래. 지금 어딨어? 내 그년 두 번 다시 가출 같은 걸 못하도록 다리몽둥이를…… 뭐라고?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환하게 밝아졌던 프랭크 표정이 서서히 굳어져갔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는 보스 다음으로 친딸처럼 죠슈아를 아꼈다. 표현이 다른 사람들보다 상당히 난폭했지만. 속정은 깊었다. -무슨 일인지 빨리 말해! 묵직한 프랭크의 목소리에 카푸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년이 우리가 보는 앞에서 납치를 당했다.” -뭐. 뭐야! 카푸는 드래곤이 포효를 한다 해도 이렇게까지 떨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정 구슬에 드러난 프랭크 얼굴은 악귀와 다름없어 보였다. -이 등신 똘마니 같은 새끼야! 그걸 가만히 보고 있었단 말이냐? 너 정말 내 손에 죽고 싶냐? 당황한 카푸가 양손을 가로저으며 변명을 시도했다. “아니. 아니…… 내가 아니라 선발대 대장이 놓쳤다고.” -그. 그 새끼 지금 어디 있어! 내가 씹어죽이리라. “그렇지 않아도 내가 죽여 버렸어. 그러니 진정해.” 답답한 것은 카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수정구슬 안에서 프랭크가 날뛰자 진땀이 났다. 뭐가 부서지고 박살나는 소음에 괜히 옆에 잇다가 날벼락을 맞는 수하들이 뻔히 보이는데. 거기다 대고 한마디라도 실수하면…… 아찔한 순간이었다. 한참 날뛰던 프랭크가 수정구슬 앞에서 거친 숨을 가다듬었다. 그가 말했다. -우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연락하마. 우선 그곳 상황과. 누가 우리 미친년을 잡아 갔는지 확실하게 알아내라. 최대한 빨리! “그. 그래.” 그러나 미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수정구슬에 비친 거대한 손바닥과, 곧 이은 화이트 노이즈로 프랭크가 수정 구슬을 집어 던져버렸음을 알 수 있었다. “쳇. 성질머리하고는…….” 카푸는 자신도 한 성질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랭크와 비교하면 그는 양반이었다. “흐음.” 짧은 한숨과 함께 그는 그린 기사단을 풀었다. 수하들이 수소문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의 소득을 얻었다. 그것을 접한 대장은 평소라면 이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의심에 의심을 거듭했겠으나.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급한 마음에 의심을 거둬버리고 그 소식을 그대로 정리했다. 그리고 서둘러 카푸에게 보고했다. 설마 어떤 무리가 자신들에게 일부러 정보를 흘렸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우연히 알게 된 것처럼 상황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블루의 연출과 부하들의 발품으로 합작해낸 쾌거였다. 배우는 니콜라스를 포함한 스콜. 베르니스. 텐시. 클루토. 거기다 뭔지도 모르고 끼어든 죠셉과 황태자. 그들의 피와 땀이 녹아든 한판승이었다. “그게 정말이냐?” 엄청난 사실 앞에서 카푸는 치를 떨었다. “그. 그렇다고 합니다.” “니기미. 설마 귀족이랑 관련이 되어 잇을 줄이야!” 짜증이 솟구쳤다. 그리고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정보는 어디서 알아냈어?” 카푸의 질문에 정보를 모아 보고한 대장은 자신의 고을 살리기 위해 있는 말 없는 말을 동원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러니까 물론…… 결론은 저의 탁월한 정보수집 능력의 결과라는 말이지요.” “씹새. 정말 말 많다.” “…….” 카푸가 수하를 노려보자 수하는 찍소리도 못하고 찌그러들었다. “여하튼 너 수고한 것은 알았으니까 가서 마법사나 불러와.” “옙!” 수하는 충분히 어필이 되었다고 생각한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뒷걸음 치며 물러갔다. 혼자 남은 카푸는 생각에 골몰했다. 수하의 말을 듣고도 별 내색하지 않고 수긍한 것처럼 돌려보낸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수하들은 굴릴 때 자신도 함께 구른 탓이다. 짧은 시간이나마 정보를 수집해본 결과. 수하가 보고한 것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놀랐다. 정보를 담당하는 도둑길드 친구를 통해 알아낸 것을 발로 뛴 수하들이 이토록 발리 수집해올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친구 녀석이 분명 고급 정보라고 했는데…… 그래서 푼돈까지 쥐어주지 않았던가. 왠지 속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화가 났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뭔가 수상쩍었다. 하지만 뭐가? 거기서 막혔다. 한동안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그가 버럭 소리쳤다. “이 병신 같은 새끼는 마법사를 불러오라고 했더냐. 마법사를 양성하고 있나?” 그때 문이 열리고 늙은 마법사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불렀다. 불렀으니까 왔겠지! 어서 연락망 연결해!” “네!” 마법사는 수정구슬을 꺼내놓고 중얼거리며 그 위에 그림을 그리다. 이마의 담을 닦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카푸를 바라보았다. “다 됐습니다.” 하지만 카푸에겐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프랭크. 프랭크!” -카푸냐? “헉!” 카푸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수정구슬에서 흘러나온 것은 프랭크의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프랭크가 아닌 건 상관이 없었다. “보. 보스?” 카푸의 반 토막짜리 의문문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보스. 왼쪽 뺨에 긴 검상을 지닌 살기등등한 호안의 사내는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자신의 눈을 마주보는 것이 아닌가. -보고해라. “네? 뭐. 뭘요?” 카푸는 시선을 회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설마 프랭크가 불지 않았을 거라고 믿으면서. -내 딸……. “헉!” -사랑스런 내 딸. 죠슈아! “조. 좆 됐구나!” -내 딸. 죠슈아가 어찌 되었다고? 수정구슬 뒤쪽에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시야에 잡혔다. 안력을 돋구고 자세히 보니 기절한 프랭크가 확실했다. “아아. 걸렸구나!” -왜 말이 없지?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 그러나 수정구슬에 비친 사내 얼굴에 길게 난 검상이 붉게 물든 채 무섭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극도로 분노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아아. 난 이제 죽었다!” 카푸는 체념한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죄다 이실직고 했다. 그나마 한 대라도 덜 맞으려면. 속이거나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뼛속 깊이 새기고 있었다. 물론 그 결과가 기껏해야 저 뒤에 기절한 프랭크의 모습일 테지만. 화질이 좋지 못해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얼굴이 퉁퉁 부어있을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괜히 보스를 미친개라고 부르겠는가? -크라만 영주라……. 잠자코 모든 이야기를 들은 보스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순간 카푸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탓이다. “예. 크라만 영주가 원흉이랍니다.” -정확한 사실이겠지? “물론입죠. 보스! 제가 정보길드 녀석들을 족쳐 알아낸 사실이니. 틀림없을 겁니다. 그 새끼 하는 꼴을 보면 겉으로 지가 무슨 성인군자라도 되는 것처럼 지랄하고 다니지만. 속으로는 없는 호박씨까지 톡톡히 까는 새끼였습니다. 우리보다 더 악질 같은 녀석이라니까요!” 말하면서 카푸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서. 설마 녀석을 치실 생…… 각…… 은 아니시겠죠? 하하. 서. 설마?” -물론! “아하하하. 잘 생각하셨어요. 보스. 녀석은 귀족입니다. 까딱하면 우리 조직이 쑥대밭이 될 수도 있습니다.” -……. “그럼 저희는 이만 본부로 돌아갈까요?” -왜? “보스께서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난 칠 생각이라고 말한 것이다. “헉. 보스! 알 만한 양반이 왜…… 딸내미 하나 때문에 우리 모두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생각이세요?” -딸내미 하나? 으득! 보스가 이가는 모습이 생생히 보였다. 동시에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지금 딸내미 하나라고 했나? “아. 아닙니다! 물론 그 딸내미를 구해야 한다고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네네. 이왕 이렇게 된 거 저희가 그냥 먼저 쳐들어갈 깝쇼?” 미친년으로 통하는 죠슈아. 그녀가 보스에겐 어떤 존재인지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 존재 이유를 깨달은 카푸는 전신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그. 그러면…….” -내가 가겠다. 내가 가서……. “꿀꺽!” -오늘 크라만의 목을 벤다. 죠슈아는 보스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아니. 그보다 더 중했다.. 제8장 크라만 영주를 구출하라 보스와 카푸가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각. 크라만 영주가 사는 성의 담을 타고 물 찬 제비처럼 하늘을 날아오른 그림자가 있었다. 슈슛! 그 그림자는 달빛이 구름 뒤에 숨어.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저쪽인가?” 타닷! 칠흑 같은 어둠도 그에게는 그 어떤 장애물도 되지 못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별빛만 있어도 사물을 분간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는 블루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든 사건을 마무리한 블루가 이곳에 찾아올 이유는 없었다. 오직 한 가지. 인질의 안전을 확인하고. 놈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함이었다. 이번으로 벌써 다섯 번째다. 네 번째 왔을 때. 그는 크라만 영주의 특이한 행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돌아가 그 상황을 떠올리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앞섰다. 분명 놓쳐서는 안 될…… 그 무엇이었다. 성 안으로 들어간 블루는 복도를 따라 당당히 걸어갔다. 카펫이 깔려 소음은 없었다. 얼마쯤 갔을까?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빛줄기가 새어나왔다. 눈에 익은 그곳은 바로 크라만 영주의 침실이었다. 블루는 재빨리 어둠 속에 몸을 감추었다. “…….” 끼익 크라만 영주는 손수 등불을 들고 한동안 두리번거리더니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블루는 크라만 영주의 뒤를 따랐다. 대체 어디를 가는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주는 열심히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작은 기척이라도 들리면 멈춰서 두리번거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저택 구석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하녀들이 창고로 쓰는 방으로. 영주가 들어갈 만한 곳은 절대 아니었다. 블루는 천마잠영술을 사용해 문틈으로 따라 들어갔다. 영주는 들고 있던 등불은 등불걸이에 걸고 입구 왼쪽 구석에 튀어나와 있는 돌을 가볍게 끌어 당겼다. 츠츠츠츠츠 마찰음이 일어나며 비밀통로가 드러났다. 영주가 등불을 들고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비밀통로 안쪽 벽에 튀어나온 부분을 눌렀다. 그러자 문이 닫혔다. 소음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정교한 기관이었다. “오호!” 블루의 호기심은 더욱 깊어졌다. 나름대로 기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이 사라지면 한번 확인해보기 위해 한발 늦추기로 마음먹었다. 이 분쯤 지나 블루는 귀를 기울여 비밀통로 안의 기척이 완전히 지워졌음을 확인하고 영주가 했던 것처럼 입구 왼쪽 구석에 튀어나와 잇는 돌을 가볍게 당겼다. 츠츠츠츠츠 다시 비밀통로가 드러났다. “기관진식인가? 참 신기하군.” 기관진식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해왔는데. 그가 아는 것보다 복잡하고 수준이 있어 보였다. 벽이 열리고 닫히는 모습을 보면 이 저택이 얼마나 섬세하게 만들어졌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블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물론 문을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쿵! 그가 발을 구르는 찰나 신형이 앞으로 쏘아지듯 날아갔다. 마치 블루 몸이 어둠에 침식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서두를 이유가 없었지만, 영주를 따라잡기 위해 경공을 사용한 것이었다. 자신이 안 보는 사이에 뭔가를 시도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호기심 충족을 위하여 기관진식 앞에서 시간을 버린 것은 후회하지 않았다. “나중에 분해를 해서라도 꼭 한번 해봐야겠군.” 비밀통로와 연결된 굴은 그리 깊지도, 길지도 않았다. 금세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바람처럼 신형을 이동시킨 블루는 검은 로브를 걸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영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귀를 쫑긋 세웠다. “크흐흐…… 수고가 많군. 2407호. 아니. 이젠 크라만 후작인가? 큭큭큭.” “흐흐. 크라만 후작이라뇨? 그 병신 같은 놈보다 2407호가 더 듣기 편합니다. 그리고 수고는 무슨 수곱니까? 크로타니안 왕국의 안녕을 위한 일인데 말입니다.” “2407호? 크로타니안 왕국?” 블루는 그들 대화에서 뭔가 수상쩍은 낌새를 느꼈다. “한동안 못 봤다고 살이 붙은 것을 보니. 먹고 살만한 것 같아 보이는군. 큭큭큭.” “모두 각하 덕이지요.” “흐음. 자네가 모아준 분노와 공포는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네.” “다행입니다.” 크라만 영주의 탈을 쓴 사내의 말에 후드의 사내가 말했다. “그렇게 순도 높은 분노와 공포를 모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크흐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한두 번 겁을 주면 알아서 발광들을 하거든요.” “역시 자네한테 이 일을 맡기길 잘했어.” “감사합니다.” “그래. 이번의 수확물은?” “여기 있습니다.” 가짜 크라만 영주가 살인할 때 쓰던 기형적인 단검을 건네며 말했다. 후드의 사내를 그것을 받아들고 확인해보더니. 감탄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짙은 농도의 공포라니! 대체 얼마나 많은 여인들을 죽였는가? 그 짧은 사이에 이처럼 많은…… 이러다 위험해지는 것 아닌가?” “걱정 마십시오. 모두 알아서 잘 처리했으니까요.” “큭큭. 하긴 거기까지는 내 소관이 아니지. 어련히 알아서 잘 했을라고. 흐흐. 그럼 또 수고하도록.” “다음에 뵙지요.” 가짜 크라만 영주가 후드의 사내에게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후드의 사내는 바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블루가 잇는 반대쪽 방향으로 걸어 나갔는데. 저곳으로 또 다른 통로가 잇는 듯했다. 과연 곧 그곳에서 불어오는 미풍이 감지되었다. 가짜 크라만은 한참 멍한 얼굴로 서 있다 갑자기 발길을 돌려 걸어 나갔다. 블루는 즉시 그를 따랐다. 그런데 웬걸. 가짜 크라만은 침실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블루는 볼일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리려고 했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저 녀석이 가짜라고? 그렇다면 혹시...... 진짜가 살아 있을 수도 있을까?” 확률은 적지만 가능성은 있었다.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만약 진짜 크라만 영주가 살아 있다면? 블루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았다. 그를 어디다 숨겼을까? 중요한 물건일수록 가까이 두어야 안심이 되는 법이다. 예컨대. 자기 베개 밑이나 침대 및. 혹은 책상서랍이나 일기장 안에 놓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가깝고 늘 시야에 둘 수 있는 곳을 선호하는 것이다. 문득 블루의 눈이 번쩍 떠졌다. 스스슷! 그는 급히 영주의 침실로 들어갔다. 천마잠영술을 사용해 감쪽같이 기척을 죽이고 접근한 것이다, 만사불여튼튼이라지 않던가! 방 안은 넑고 쾌적했다. 그리고 깨끗했다. 블루의 짐작이 옳았음이다. 가짜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짝퉁이 어딨지?” 블루는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 들어간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 어디에도 없었다. 혹시 또 다른 비밀통로? 그는 눈을 크게 뜨고 구석구석 유심히 살폈다. 곧 약간 삐뚤어진 액자가 눈에 띄었다. 평소였다면 별 생각 없이 넘겼을 테지만. 수상하다고 생각하니 별개 다 수상했다. 그는 삐뚤어진 액자를 슬쩍 밀어보았다. 순간 볼록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눌렀다. 끼이끼이이 침대가 올려지며 계단이 나타났다. 상당히 깊었다. 영주 방이 삼 층인데. 지하까지 곧장 내려간 것 같았다. 영주 방에서만 통할 수 있는 구조였다. “멀쩡한 집에다 별짓을 다해놨군.” 블루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얼마쯤 가자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으으으.” “큭큭. 오랜만에 듣는 기분 좋은 음악이군. 후작. 계속 연주하시게. “으으으으으으.” “그렇지.” “크으으으으으.” “내가 보고 싶지 않던가?” “주.... 나. 나를...... 주. 죽여......라!” “오호. 내가 널 왜 죽여야 하는데? 난 널 죽일 만큼 모질지가 못해. 물론 죽일 생각도 없고. 큭큭. 아직 써먹어야할 때가 얼마나 많은데. 흐흐. 그렇게 자제를 하니까 팔다리를 묶어 놓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죽여...... 라!” 블루는 신음소리를 따라갔다. 곧 가짜 영주가 철장으로 된 감옥 앞에 서 있었다. 뚱뚱한 가짜 크라만 영주와 달리 바짝 말라 있는 늙은이가 똥오줌 사이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망할 늙은이! 먹은 것도 없으면서 많이도 싸대는군. 똥독이 오르기 전에 치워야겠군. 귀찮지만 누구에게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봐. 늙은이! 당신은 아직 죽으면 안 돼! 알겠지? 일부러 죽으려고 계속 지랄발광을 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난 죽일 생각이 전혀 없으니 그리 알라고.” 듣고 보니 비쩍 마른 저 늙은이가 진짜 크라만 영지의 영주인 크라만 후작 같았다. 블루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저 가짜 녀석이 진짜를 잘 챙겨준 덕분인지 야위고 기력이 많이 쇠한 것 외에 크게 잘못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저 정도라면...... 블루 자신이 약간 손을 쓰면 기력을 되찾고 얼마간 요양을 하면 정상생활을 하는 데 무리가 없었을 것 같았다. “오늘은 그냥 놀러온 게 아냐. 특별히 전할 말이 있어 왔네. 마음 단단히 먹고 있게. 나도 슬슬 떠나야 할 것 같아. 오랫동안 버텨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 슬슬 수하들 눈초리가 의심스러워. 하긴 몇 달 사이에 삼백여 명이나 실족 됐는데. 꼬리가 밟히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 크라만 영주는 무반응이었다. 화가 난 듯 가짜 영주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가 말했다. “아. 잠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군.” “.......” “마지막 제물로 자네 부인과 큰 딸과 둘째 EKf 그리고 막내아들을 선택했네. 기쁘지 않은가?” “......!” “표정을 보니 기쁜 모양이군. 마음이 흡족하네. 흐흐흐.” “아아 안 돼! 그것은 절대 안 돼! 우우웃!” 어디서 그런 기력이 솟아난 것일까? 지금껏 무슨 말을 해도 시큰둥하던 크라만 영주가 비명과 함께 고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가짜는 흡족한 얼굴이었다. “그래. 기쁜가? 기쁘겠지. 그들 모두가 우리 크로타니안 왕국의 부흥에 밑거름이 되어줄 테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잊어도 나는 결코 그들을 잊지 않았네. 큭큭큭.” “안 돼! 안 돼에에에! 흐흑!” 크라만 영주의 마른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 순간 블루는 마음이 짠했다. 그러나 나설 수 없었다. 너구리도 자기가 빠져나갈 구멍을 세 개 이상을 판다고 하지 않던가. 그 구멍을 모두 알아낼 때까지 참아야 했다. 거사는 오늘 저녁! 진짜 영주를 일별한 블루는 가짜 영주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어디가 비밀통로이고 어떻게 들어오고 빠지는지 배웠으니. 그로서는 아쉬울 게 없었다. 이제 돌아가 산적 패거리들한테 결정적인 정보를 찔러주고. 일행들한테도 모두 털어놓는 일만 남았다. 블루의 이야기와 계획을 모두 듣고 난 일행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처음 모이라고 할 때만 해도 또 무슨 대형사고가 터졌구나 싶었다. 아찔했다. 하지만 블루가 전해준 정보는 경악 그 자체였다. 크라만 영주와 관련된 소문이 모두 사실이었다. 그가 이상한 세력과 거래하고 있다는 말 까지도 진실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그 세력이 크로타니안이라니! 다들 한동안 말을 잃었다. 게다가 현재 크라만 영주는 가짜고 진짜는 감옥에 갇혀 있다지 않은가! 믿을 수 없었다. 오히려 블루가 어떤 꿍꿍이속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속이 편했다. 그러나 블루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게다가 이제껏 블루는 은닉을 한 적은 있을지 몰라도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다. 거짓말 같은 말도 언제나 사실로 드러났다. 사실 너무 진실만을 말해 곤란할 지경이었다. 말을 뱉으면 반드시 실행하려고 하니 거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황태자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블루 경! 그. 그게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블루의 정중한 답변에 잠시 안도하던 황태자는 곧 노랗게 질려갔다. “대장. 그럼 그때 우리가 한 연극이.......” 일행들은 이제야 자신들이 했던 연극을 떠올렸다. 그때 그들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시켜서 했을 뿐이다. “대장이 하는 말은 그러니까...... 음. 정리하자면 대충은.......” 베르니스가 정리를 못하고 어물거리자 텐시가 뒤통수를 후려치며 나섰다. “에이. 바보야 뭘 그렇게 정리를 못해! 그러니까 죠슈아를 데려온 이유가 산적들을 손보기 위해서였는데. 이곳에 와서 크라만 영주를 보니 마음에 안 들더라. 그래서 적전을 다시 짰는데. 그것이 바로 크라만 영주와 산적을 붙여 공멸시키고자 했다. 그 미끼는 산적 보스의 딸인 죠슈아. 그래서 죠슈아를 일부러 납치하도록 유인했다. 그러던 중에 크라만 영주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진짜는 굴속 어딘가에 갇혀 있었다. 원래는 가짜를 그대로 패 죽이려고 했으나. 숨어 있는 그의 패거리가 사건을 은닉할 수도 있다고 판단. 크라만 영주와 그의 가족이 위험했기 때문에 그냥 나왔다. 이 말씀이죠?” 다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눈을 동그랗게 따고 박수를 쳤다. 속사포 같은 말발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정리는 더욱 훌륭한 것이었다. 블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베르니스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블루의 능력이면 영주의 가족과 영주를 구할 수 있지 않아?” 그말에 블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렇게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단번에 구출할 수는 없지.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상당히 큰 위험부담을 떠안게 될 테고.” “무슨 말이죠?” 스콜의 질문을 텐시가 답했다. “크라만 영주를 구하면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고. 가족을 구하면 크라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거야. 크라만 영주는 우리 황태자저하의 초석이 될 존잰데 죽으면 안 되고. 그렇다고 가족의 애착이 큰 크라만 영주가 무사히 구출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 “아아. 그렇구나!” 거기에 생각이 미친 황태자가 입을 열었다. “아아. 백성을 다스려야할 태자로서 다른 나라가 침범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내 배가 불러 백성들의 궁핍함과 억울함을 보지 못했구나...... 아아.” “저하.” 황태자의 슬픈 눈빛에 죠셉이 침음을 삼켰다. 그때 황태자가 뭔가 각오한 눈빛으로 블루를 바라봤다. “크라만 경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제가 혼자 나서지 않고 이 자리에 온 겁니다.” “그 말뜻은 설마? 무슨 방도라도 생각하신 것이 있습니까?” 블루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씨익 블루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그 미소를 보고도 일행들이 불안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 미소가 그렇게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초승달이 걸려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짙은 금발의 사내였다. 눈빛이 한없이 서글퍼 보였다. 저 어두운 하늘에서 누군가를 찾는 것일까? 바람이 불었다. 사내가 금발을 날리며 애써 감춰 놓은 듯 보이는 자신의 깊은 검상을 드러냈다. 그때 사내가 입을 열었다. “모두 모였는가?” 작지만 힘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나직했으나 산 귀퉁이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목소리를 옆에서 듣는 것처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보스”의 목소리를 말이다. “옙!” 오백 명쯤 될까. 아무튼 엄청났는데. 그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그들이 내뿐는 기운만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참고로 그 기운은 투기였다. 전투를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모두 모였는가.” “모두 모였습니다!” 산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부두목들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그들의 마음이 느껴진 탓이다. 하긴 그들도 늘 접하는 “보스”를 향한 존경의 마음을 지울 숭가 없었는데. 수하들이라고 다르겠는가. 뿌듯한 마음에 슬쩍 보스를 돌아보았으나. 거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평소에도 웃는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는 그인 만큼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부두목들은 알 수 있었다. 늘 붙어 있었던 탓일까?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서도 감정을 읽어낼 수가 있었다. 지금. 그는 수하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늘 무뚝뚝한 보스이지만 그도 예외는 있었다. 딸 죠슈아 앞에서는 차가운 얼굴도 언제 그랬냐는 듯. 봄눈 녹듯 사르르 풀리고. 마술처럼 환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정도가 지나쳐 거의 팔불출 수준이었다. “우리가 누구냐?” “그린 기사단입니다!” “왜 왔느냐?” “적을 무찌르기 위해섭니다!” “그렇다! 우리는 적을 무찌르기 위해서 여기 모였다! 우리가 비록 악당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지만. 우리가 싸울 상대는 더욱 더럽고 치졸한 위선자다! 그런데 그가 살아 있어야 하겠는가?” “아닙니다. 단칼에 베어야 하니다!” “찢어 죽여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럼 놈 때문에 우리까지 욕을 먹는 거 아닙니까!” 수하들 외침에 보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 녀석이 저 밑에 있다. 누가 목을 베겠느냐?” “제가 베겠습니다!” 모두 입을 모아 외치자 우렁찬 기합소리가 깊은 산기슭에 울려 퍼졌다. 보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좋다. 가자!” “옛!” 짧은 기합성과 함께 오백에 달하는 신형은 어둠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그 순간부터 그림자가 된 것처럼 발자국 소리 하나 들리지는 않았다. 목적지는 당연히 크라만 성! 니콜라스와 베르니스. 텐시와 스콜 그리고 클루토와 죠셉은 블루가 발견한 비밀통로를 따라 성 안으로 숨어들었다. 성 뒤쪽 우물과 연결된 비밀통로를 타고 온 것이다. “이곳은 어떻게 알았죠?” 베르니스가 물었다. “가짜 녀석이 접선장소로 이용하던 곳이다.” 그렇게 대답한 블루가 슬쩍 기관 장치를 건드리자 문이 열렸다. 그리고 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들은 약속대로 행동해라. 그리고 베르니스. 스콜! 너희는 미리 말해둔 것처럼 크라만 영주 부인과 영애들을 구출해라. 죠셉 경은 수면 마법으로 병사를 잠재우도록 하시오.” 클루토 대신 수면 마법을 담당하게 된 죠셉이 투덜거렸다. “어째서 수면 마법을?” 블루는 역시나 하는 얼굴로 미리 준비해둔 대답을 꺼냈다. “그들 역시 헤르마틴. 아니 태하저하의 수하가 아닌가.” “그래서?” “그런 그들 목을 베고 싶은가?” 그제야 자기 임무의 중요성을 깨달은 죠셉이 끄덕였다. “클로토는 지붕으로 올라가 우리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클루토가 고개를 끄덕이자 블루가 확인 차 물었다. “모두 메시지 매개채는 챙겼지?” 일행들은 저마다 자기 주머니를 두들겨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니콜라스는 이곳의 하인과 하녀들을 떠들지 못하게 제압해 밖으로 피신시켜라! 곧 전투가 진행될 테니까 서둘러. 그리고 일이 모두 끝나면 다시 돌아와 혹시 모를 지원사격 부탁하겠다.” “알겠습니다. 대장.”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가장 큰 목적은 크라만 영주와 그의 식솔을 안전하게 탈출시키는 것이다. 알겠나?” “걱정 마십쇼.” 그들의 답변에 블루는 믿음직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모두 위치로!” 블루의 그 말에 모두들 뿔뿔이 흩어졌다. 블ㄹ루는 멀어지는 부하들을 보고 있다가 영주의 방으로 빠르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진짜 크라만 영주를 구출하기 위함이었다. “우와아앗!” “크학!” “저. 적이다!” 비명과 함성이 터지며 성 곳곳에 불이 켜졌다. 검을 든 기사와 병사들이 뛰어나왔다. “누. 누구냐?” 한 병사의 당혹스런 외침에 어둠 속의 상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알면 뭐하게? 어차피 죽을 거.” 스각! 텅텅텅 질문을 던진 병사의 목이 바닥에 떨어져 떼구루루 굴렀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카푸였다. “큭큭큭.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피 맛이로군.” 쓰읍 검에 묻은 피를 혀끝으로 핥으며 음미하득 눈을 감은 카푸는 곧 눈앞에 보이는 기사와 병사들을 노려보았다. 기사와 병사들이 흠칫 몸을 떨어다. 소름끼치는 살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또 누구를 죽여줄까. 큭큭큭.” 순간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곧 자신의 추태를 느끼고 얼굴을 붉혔다. 기사들은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이유는 분노! 수하들이 보여준 행동으로 인하여 기사도에 손상이 갔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하들을 달초할 수 없었다. 전투 중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은 수하들에게 두려움을 준 자에게 분노를 폭출했다. “싸우고 싶으냐?” “얼마든지!” “좋다. 죽여주마!” “재밌겠구나. 와라!” 타다다닷! “이약!” 그것을 시발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챙챙! “으악!”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가짜 크라만은 잠에서 깨어났다. “뭐. 뭐냐?” 당혹감에 그는 냉큼 소리부터 질렀다. “영주님. 누군가가 침입했습니다! 어서 피하십쇼!” 밖에 있던 하인의 다급한 목소리.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누가 침입했다는 말이냐?”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알 리가 없었다. “제길. 기사단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더냐?” 단잠을 잃은 억울함에 그는 호통을 쳤다. 하지만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들리는 비명소리와 함성으로 보아. 아군이 밀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투덜거리며 서둘러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왜. 어떻게...... 자신이 꼬리를 잡혔단 말인가? 정말 들켰다면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진짜 크라만을 끄집어낸 다음. 도망쳐야할 것이다. 그래야 안전을 기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는 갈팡질팡했다. 옷은 다 입었으나. 어찌 처신하는 것이 옳은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예컨대. 도망쳤다가 일이 해결된 다음에 다시 돌아오는 게 좋을지. 진짜 영주를 이곳으로 옮겨놓는 게 좋을지. 그도 저도 아니면 다른 녀석들이 찾아내기 전에 죽여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그의 선택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는데.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지 않은가. 가장 좋은 수는 진짜를 죽이는 것일 테지만. 거기도 문제가 있었다. 현사태가 별 게 아니라면 건너지 말아야할 강을 건넌 셈이 될수도 있었다. 그러면 후회막급일 터. 그가 훈련한 첩보 일을 병행하며 힘겹게 살아온 세월이 자그마치 이십 년. 반면 영주로 산 얼마 되지 않는 세월은 꿈만 같았다. 먹고 자면 돈도 들어오고. 계집도 들어오고 그 어떤 망나니짓을 해도 누구 하나 뭐라는 사람도 없었다. 그것을 포기하자니 너무 아까웠다. 태어나 이처럼 편했던 적이 언제 또 있었던가! 말로는 쉽게 버릴 수 있다고 했지만. 이미 자기 것이라고 생각 하고 있었기에 막상 그렇게 행동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덜컹!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섰다. “느. 늦은 건가? 설마!” “누. 누구냐?” 가짜가 놀란 목소리로 질문했다. “글쎄. 내가 누굴까?” 블루였다. 블루는 가짜 영주를 몇 번 보았지만 가짜 크라만은 오늘 블루를 처음 보았다. 당연했다. 늘 숨어서 감시하는 블루를 무슨 용빼는 재주로 볼 수 있었겠는가. 저승사자조차 찾지 못한 블루를 말이다. 낯선 얼굴을 보는 것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이렇듯 어수선한 상황이라면 더욱. “누. 누구냐고 묻지 않는냐!” “너 같은 개새끼를 잡으러온 사신이다. 이 씨발놈아!” “저. 저런 미친 새끼!” 가짜 크라만은 블루가 단신으로 이곳까지 왔음을 간파했다.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어수선한 틈을 타 운 좋게 들어온 것 같았다. 스릉! “큭큭. 주둥이처럼 실력도 좋은지 어디 보자.” 가짜 크라만은 자신 있었다. 이십 년 동안 첩보 일을 하고도 살아남았다는 건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실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들고 있는 검의 흔들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둔해보이는 몸집과 달리 나름대로 실력을 갖춘 듯 보였다. 블루는 그의 실력을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오호. 익스퍼트 급이라니.......” 생각을 마친 블루는 그의 말을 듣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같잖다는 비웃음이었다. “과연 볼 수나 있을까?” “뭐. 뭣이라?” 가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블루가 사라졌다. 거의 동시에 가짜 크라만의 눈에서 한순간 불똥이 튀었다. 퍽! “컥!” 창졸지간의 일이었다. 이제껏 그 어떤 고문도 그의 입을 열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워낙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토하고 만 것이다.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어JT다. “보이냐?” 퍼억! “어때?” 퍼억! “이번에는 잘 봐라.” 퍼억! “안 보이지? 안 보이지? 안 보이지? 안보이지? 보이려나? 안 보일걸?” 말보다 주먹이 더 빨랐다. 퍼퍼퍼퍼퍼퍼퍽! “커거거거거거걱!” 어김없이 가짜 크라만의 안면부로 날아드는 블루의 손길은 어찌나 정확하고 빠른지 보이지가 않았다. 통증만 아니라면 진짜로 맞고 있는지마저 의심이 갔을 것이다. 쉴 새 없이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죽는다고 비며을 질러EOT다. “뭐하는 놈이냐?” 블루가 음성으로 물었다. 블루가 차가운 음성으로 물었다. 순간. 가짜 크라만은 산전수전 해전. 공중전. 시가전까지 겪은 백전노장답지 않게 오한을 느끼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그는 역시 프로였다. 구타든 전기든 물이든 불이든 고문이란 고문은 당해보지 않은 게 없었다.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분 적이 없었다. 살기? 우스웠다. 이미 죽음의 문턱을 몇 번씩이나 넘어든 그에게 그 따위는 어린애 장난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느낌은....... 분명 살기였다. 늘 웃으며 무시해온 살기가 확실했다. 그런데 웃을 수가 없었다. 눈앞의 사내가 뿌리는 것은 살기로되. 이미 그 이상이었다. 죽음보다 더한 공포는 없다고 믿었다. 죽으면 고통이건 슬픔이건 공포건 모두 올 스톱이다. 그래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게 어찌된 노릇일까? 지금 그는. 공포를 공포로.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고 있었다! “언제부터 크로타니안이 헤르마틴을 우습게 여겼지?” “.......”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그것을 가동시키기 전에 먼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부터 알아내야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살아 있을까? “뭐. 말하지 않아도 좋아. 굳이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말하지 않을 거지. 그렇지 않은가? 부탁하겠다. 될 수 있으면 계속 말하지 마라. 네놈을 두들겨 팬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거든. 혹시 들어나 봤는지 모르겠네. 남자는 주먹. 구타는 손맛이라는...... 흐흐.” “남자는 주먹. 구타는 손맛?” 그러면서도 그는 설마 했다. 그는 중대한 참고인이었으니까. 그러나 그의 말은 절대 허풍이 아니었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었다. 퍼버버버버버버벅! “커허허허허허허헉! 케케케케엑!” 비명이 절로 흘러나왔다. 뼈와 살이 분리되는 느낌이 이럴까? 그는 자신이 그간 맛본 고문이 살갗에다 고무줄 튕기는 수준에 불과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가짜 크라만을 바라보던 블루가 음흉하게 웃었다. “흐흐흐. 몸집이 좋으니까 그런지 타격감이 정말 좋구나! 오라오라!” 퍼벅 퍽퍽퍽! “꾸어어어어어억!” 밖에서 들려오던 비명소리가 서서히 잦아드는 가운데. 저택에서 흘러나오는 정체불명의 북 터지는 소리는 요란스럽게 계속되었다. 괴상한 비명소리와 함께. 제9장 블루. 보스와 붙다 니콜라스는 힘 없는 하인과 하녀들을 모두 밖으로 피신시켰다. 처음엔 다들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밖의 상황이 알려지자. 두말없이 니콜라스를 뒤따라 비밀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불타오르는 저택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에 사내의 말을 듣지 않고 뻗댔더라면 저 불구덩이 속에서 통구이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저희 목숨을 구해주신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존함이라도?” “.......” 니콜라스는 딴생각에 빠져 있었다. 블루의 안위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전까지 개별행동은 금물이었다. 그리고 니콜라스는 블루의 명령을 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가 말했다. “곧 돌아올 테니. 이곳에서 꼼짝 말고 기다리십시오.” 그러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나. 나으리!” “저희들을 버리지 마십시오. 나으리.” 노인과 여인들이 앞 다투어 니콜라스를 붙들고 늘어졌다.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을 이대로 놔두면 안전할까? 영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곳에 남아 있자니. 다른 일행들 안위가 걱정이었다. 무엇보다 영주의 자식과 부인을 구하러간 베르니스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사단이 났음이 분명하다. 그는 하인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아직 구할 사람이 안에 남았습니다. 그들을 모두 구해 와야 합니다. “하. 하지만.......” “저희를 어찌 끝까지 지켜주시지 않으십니까. 나으리.” “맞습니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저희들이 습격을 당하면 어찌합니까?” “제발 저희를 지켜주십시오.” “지켜주세요. 아저씨. 아니 기사님!” “아니. 그게...... 그러니까 그게.......” 아이들까지 합세하자.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때. 바스락거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인들은 바짝 긴장했지만. 기척을 읽은 니콜라스는 그들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베르니스들이 분명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늦었군.” “여. 니콜라스! 벌써 와 있었네? 역시 빠르다니까. 쳇.” “왜 이렇게 늦었어?” 베르니스가 투덜거렸다. “에고에고에고. 힘들어 죽을 것 같다니까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마. 나도 늦고 싶어서 늦은 게 아니니까. 죠셉 영감이 어찌나 잘난 척하며 나서는지...... 그 바람에 하마터면 일이 아주 복잡하게 꼬일 뻔했다니까.” “그래?” “갑자기 병사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간 떨어지는 줄 알아다니까. 영주부인의 방 앞에 웬 병사들이 그리 많은지.......” “다른 일행은?” “지금 오고 있어. 혹시나 해서 내가 먼저 온 거야.” 니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잠시 후. 일행들이 도착했다. 몰골이 말이 아닌 부인과. 아들. 딸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을 보니 가짜 크라만이 이들을 어찌 대했는지 능히 짐작이가고도 남았다. “크라만 영주부인 되십니까?” “그런데 당신은 누구죠?” “저는 얼마 전 기사 작위를 받은 니콜라스라고 합니다. 이번사태를 미리 짐작하고 계셨던 주군의 명을 받고 부인과 영애들을 구출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아. 니콜라스 경이셨군요. 저희들을 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꺼덕이며 오른 손등을 니콜라스에게 허락했다. 니콜라스는 이런 상황에서도 절도와 절개를 잃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부인을 보니. 크라만 후작에게도 믿음이 갔다. 아울러 위험을 무릅쓰고 구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니콜라스는 영주부인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안내했다. “마님 빠져나오셨군요!” “걱정했습니다.” 부인과 영애들을 확인한 하인들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나는 괜찮습니다. 다들 다친 데는 없습니까?” 진심이 담긴 그녀의 음성에 다들 흐느꼈다. 그녀가 하인들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뒤늦게 합류한 일행들도 훈훈한 그 광경을 보고 뿌듯한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한고비를 넘긴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한 고비가 끝났을 뿐이다. 언제 또다시 위기가 닥칠지 몰랐다. 하여 잠시도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니콜라스와 스콜. 텐시. 베르니스가 검을 들고 사주경계를 거는 사이. 죠셉과 클루토는 바쁘게 돌아다니며 트랩을 설치했다. 블루는 축 늘어진 가짜 영주를 일별하고 침실의 비밀통로를 통해 진짜 영주를 구하러 계단을 내려갔다. 숨은 붙어 있었지만 거의 반사(半死: 반죽음) 상태인지라. 별 걱정하지 않고 내려간 것이다. 만에 하나 도망친다 해도 멀리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크라만 후작은 거의 초주검상태로 벽에 매달려 있었다. 가짜 영주가 청소를 한 듯 철장 안은 깨끗했다. 후작은 블루가 가까이 다가가도록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흠흠.” 블루가 헛기침을 하자 고개가 반쯤 들렸다. “누. 누구.......” 실눈을 뜨며 그가 물었다. “헤르마틴 제국의 황태자저하 명을 받고 당신을 구하기 위해 오 사람이오.” “화. 황태자...... 저하? 오오!” 순간 메마른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저. 저하!” 후작은 소리죽여 흐느꼈다.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저. 정녕 저. 저하께서 그대를 보냈소?” 울먹이며 후작은 고개를 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황태자가 보내온 사자의 얼굴을 보기 위함이었다. 블루는 두 손으로 철장을 엿가락처럼 휘어버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후작의 정수리에 손을 대고 마나를 주입했다. 대략 이 분 정도 지났을까? 후작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눈에 힘이 들어갔다. 곧 호목이 위풍당당한 자태를 드러냈다. 고난의 시간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음에도 변하지 않은 그의 올곧은 성품이 전해졌다. “당신인가?” 블루는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군.” “난 그저 명을 따랐을 뿐이오.” “그런데 태자저하께서 이 사실을 어찌 알고? “여기를 나가면 모든 진실을 알게 될 것이오. 그러니 어서 이곳을 빠져나갑시다. 질문은 그 다음에 원 없이 하시오. 끄덕 의연한 그의 모습에 블루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자기보다 가족을 먼저 챙기던 그가 어찌하여 그들의 안위가 궁금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황태자 안위부터 챙기는 것도 그러거니와. 질문은 나중에 하라는 말에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도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름지기 황태자의 명으로 자신을 구하러온 블루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기 위함이리라. 블루는 그런 후작이 마음에 쏙 들었다. 후작은 심지가 매우 곧은 사람 같았다. 사실 블루는 조셉과 황태자 그리고 존 라이튼이 차례로 그의 이름을 들먹거렸을 때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렸다. 남의 말은 그저 참고가 될 뿐. 실감의 원천이 될 수 없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지론 탓이었다. 블루는 영주를 옭아매고 있던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그를 등에 업었다.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벼웠다. 그저 앙상한 뼈만 만져질 뿐이었다. 순간 코끝이 찡했다. 그래서 한마디 하지 않은 수 없었다. 작은 마음이나마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당신의 가족들은 물론 하인들까지 무사히 구출되었소.” “아아!” 크라만의 감동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블루는 그것으로 모든 신경을 껐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다니! 왠지 낯설고 낯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는 크라만 영주를 업고 바람처럼 달렸다. 한달음에 영주 방으로 올라선 그는 가짜 영주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는 가짜 영주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는 처음과 동일한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가 놈의 한쪽 다리를 번쩍들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쾅! 문이열렸다. 아니. 열렸다기보다 부서졌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우당탕탕! 문짝이 날아간 것이다. “어떤 자식이 우리 귀여운 조카를 납치했나 면상 좀 보자!” 카푸였다. 그 뒤로 애꾸눈 프랭크가 들어섰다. 블루는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한쪽다리를 잡고 가짜를 번쩍 들어올린 채 말했다. “아마 이놈일 거다.” “헐.” 카푸는 블루를 보며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뭐냐? 아니지...... 그 녀석부터 순순히 우리 쪽으로 넘겨라! 그럼 고통스럽지 않게 단칼에 죽여주마.” 카푸가 피가 진득하게 묻은 검을 핥으며 말했다. 그러나 블루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흠. 그럼 난 고통스럽게 여러 번 패 죽여주마.” “이. 이런 개새끼가! 하해와 같이 넓은 아량을 이해 못하고! 에잇. 다 필요 없다! 토막을 내주마!” “뼈와 살을 분쇄해 죽여주마!” “젠장! 언제까지 말장난이 통하나 보자!” 카푸가 날아갔다. “으아아아아악!” 블루에게 달려든 게 아니라 뒤로 날아갔다. 콰지직! 구석에 처박힌 카푸는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 팽크와 프랭크는 잇달아 눈을 끔쩍거렸다. 모든 게 한순간에 일어난 탓이다. 솔직히 카푸가 공격당하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팽크와 프랭크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들 상대가 아님을 확인한 것이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무기를 꺼냈다. 작은 마찰음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손놀림은 섬새했다. 그만큼 긴장한 탓이리라. 그러나 블루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 뒤에서 거대한 기운이 느껴진 탓이다. “그만둬라!” “보. 보스!” “보스. 오셨군요!” 그들은 반갑게 보스를 맏이했다. 보스가 딱딱하게 말했다. “너희들 상대가 아니다!” 보스의 어깨에는 만신창이가 된 죠슈아가 걸쳐 있었다. 그는 일단 딸을 크라만 침대 위에 곱게 눕혔다. 그가 짧게 말했다. “물러서!” 그것이 팽크와 프랭크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일까? 그들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아니. 보스! 우리들을 대체 어떻게 보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너무 무시하시는 것 아난가요! 저따위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은 제 도끼로 단숨에 머리를 쪼개버릴 수도 있다고요!” 그러나 블루가 보기에는 그들 목소리에 흥과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니. 저 보스란 사람을 믿고 큰소리치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제법 흥분이 되었다. 강자와의 만남은 늘 가슴 떨리는 일이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쾌감이었다. 그때 보스가 부두목들. 아니 자기 동생들에게 말했다. “내가 붙어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 “에에에엥?” “서. 설마!” 팽크와 프랭크로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스가 농담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보스가 농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그는 인생의 즐거움을 통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말했으니. 농담일 리 없으며 거짓일 리도 없었다. 그제야 팽크와 프랭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가서 구석에 처박힌 카푸나 신경 써라.” 그리고 보스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두둑 두두둑 그것을 본 블루는 미소를 지으며 죠슈아가 누워 있는 침대 밑에 크라만 영주를 눕혔다. 그리고 가짜 영주는 구석에 대충 처박았다. 그때 주먹을 움켜쥐며 보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난 싸우고 싶지 않다!” 진심이었다. “그 녀석만 건네준다면 순순히 돌아가겠다. 보스의 말에 블루는 그더 웃을 뿐이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이 녀석이 필요해서 말이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그렇지?” 꾸욱 보스가 주먹을 말아 쥐는 순간 흘러나온 소음이었다. 얼마나 강력히 움켜쥐었는지 그 소리만으로도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블루도 히쭉 웃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순간 블루의 주먹을 중심으로 거대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팟! 그것은 마나의 폭풍이었다. “우웃!” 뒤에서 구경하던 팽크와 프랭크는 그 기세에 놀라 저도 모르게 몇 걸음씩 뒷걸음질쳤다. 그러다 화들짝 놀랐다. 단지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을 치다니! 하지만 얼굴을 붉히지는 않았다. 블루가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엄청난 고수임을 인정한 탓이다. 팟! 블루의 신형이 사라졌다. 동시에 보스의 신형도 지워졌다. 퍼억! 침실 벽이 무너지며 무언가 빠르게 튀어나가는 것이 확인되었다. 블루와 보스였다. 괴물에 가까운 그들이 이렇듯 협소한 장소에서. 특히 보호해야할 인물이 있는 곳에서 싸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간것이다. 팽크와 프랭크로서는 다시없는 기회였다. 그들이 노리던 녀석을 들고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가짜 크라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보스는 그런 치사한 짓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행동은 보스가 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생각해서도 안 되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보스가 이기면 당당히 끌고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그들은 열심히 보스를 응원했다. 펑펑펑펑펑! “뭐. 뭐지?” 밑에서 전투하던 사람들은 위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폭음에 잠시 전투를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치고 박는 소리 같았다. 혹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들은 다시금 귀를 기울였다. 잘못 들은게 아니었다. 번쩍! 갑자기 빛이 터지면서 싸우는 사람들 모습이 잠깐 드러났다. “어어? 보. 보스다!” “어디어디?” “저기 분명 보스가 확실해!” “정말이야?” “내 시력이 얼마나 좋은지 잊었어?” “상대는 누구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데 보스가 하늘을 날기도 했던가?” “글세?” 그들이 수군거리는 사이에도. 블루와 보스는 허공에서 맞붙어 싸우고 있었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공중에 몸을 띄운 건 아니었다. 단지 충격을 감소시키는 동시에. 상대방의 주먹과 발차기로 인해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뿐이었다. 그렇더라도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어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퍼벅! 파파파파팍! 주먹과 주먹이 부딪힐 때마다 어김없이 엄청난 폭음과 함께 빛이 터져 나왔다. 극성의 마나가 맞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충격파 탓이다. 그 바람에 밑에서 구경하는 구경꾼들로서는 폭죽놀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실력이 있고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입이 찢어지고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일권 일권에 기가급 마나가 터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십 분이 훌쩍 지났다. 그런데 지치지도 않는 것일까? 아니. 어느 순간부터 움직임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리고 잠시 후. 완전히 움직임이 멈췄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것일 테지만. 어째서일까? 그들 주위에는 시간마저 멈춘 듯했다. 둘은 땅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둘 모두 그것을 느꼈다. 그리고 즐거움을 만끽했다. “어때. 본격적으로 놀아볼까?” “재밌겠군.” 블루가 허리에 차고 있던 아슈를 뽑아들자 보스도 자신의 애검을 뽑았다. 요즘은 틈틈이 놀아준 덕인지 아슈가 그렇게 떠들지 않았다. -주인 또 싸워? “그래. 오늘 한바탕 놀아보자.” -나야 좋지. 히히. 아슈와 몇 마디 이야길 나눈 블루는. 보스의 검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호오. 상당한 검이군.” 보스도 말했다. “자네 검이야말로.” “그럼 갈까?” “좋지.” 스팟! 동시에 블루와 보스의 신형이 사라졌다. 아니.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한줄기 빛이 길게 늘어지면서 서로 희롱하듯 부딪히고 튕겨나가는 것이 눈에 보였으니까. 촹! 한줄기 빛! 그것은 그들 검에서 흘러나온 빛이었다. 어두운 탓인지 아니면 이동속도가 너무 빠른 탓인지 그들의 신형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둘의 검은 화려한 곡선을 그리며 어두운 하늘에 아름다운 빛의 잔상을 수놓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 속에서 생사를 건 치열한 대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신의 견정혈을 노리고 날아오는 검극을 가볍게 피한 블루는 잽싸게 몸을 틀었다. 연환되는 보스의 검날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뒤로 흘린 게 분명한데. 어느새 자신의 정수리를 향해 매섭게 내리꽂히고 있음이었다. 보법을 약간 비틀고 상체를 낮춘 블루. “짧다!” 안타까웠다. 보스가 아쉬움을 느끼는 순간. 아슬아슬하게 블루의 코끝을 스쳐지나가는 검극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이다.” “큭큭. 이젠 내가 공격할 차롄가?” 블루는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휘리릭! 블루는 몸을 비틀며 검극을 앞으로 힘차게 쏘아냈다. 상상을 초월한 검의 흐름에 보스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흠칫! “우웃!” 처음부터 상체를 꺾어 피할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다. 그래서 보스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꺾었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검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피하면서 생긴 반동으로 앞으로 날아간 보스의 머리카락이 잘려진 채 나풀거리며 바람결에 흩날렸다. 챙! 창졸지간의 일이었다. 운이라고 해야 할지. 실력이라 해야 할지 애매했다. 단검으로 블루의 검을 튕겨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워낙 좋지 못한 제세에서 마나가 실린 블루의 검을 억지로 막아내다 보니.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균형을 잃고 만 것이다. 블루의 입 꼬리가 슬쩍 치켜 올라갔다. 재미있었다. 정말로 재미있었다. 이렇게 흥이 나 싸워본 것이 대체 얼마 만인가! 생사간을 오락가락하는 이 감각! 블루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 순간 그는 뒤로 슬쩍 몸을 뺐다. 이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사소한 문제였다. 하지만 자꾸 신경이 쓰였다. “보스라고 했던가?” 다시 중심을 잡고 블루가 뒬 물러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 순간. 보스는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네 진짜 정체는 뭐지? 어떻게 중원에서 쓰는 무공을 사용하지?” “주. 중원?” 보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서. 설마!” 경악을 금치 못하는 보스. 블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나도 중원에서 왔다.” “미. 믿을 수 없어!” 보스의 얼굴이 경악과 환희로 물들어갔다. 보스의 수하들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계속 둘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적으로 만났지만. 같은 곳에서 온 사람임을 깨닫는 순간 묘한 눈빛이 오고갔다. 블루가 정중하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중원의 무림명을 말해달라는 뜻이었다. “추세흔이라 하오.” “허. 혹시 혈검마룡 추세흔?” “나를 아시오?” “당연하지. 이야기를 들었소. 마교에 등장한 불세출의 기재에 관한 이야기였지. 현경급의 고수로 불리는 신성으로 무림이 떠들썩했는데. 모를 수가 있나. 급서했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움을 그치 못했는데.” “후후. 안타까움이라.......” 자신을 추세흔이라 밝힌 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입가에 매달았다. 그러자 블루가 피식거리며 입을 열었다. “허. 그게 당신이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저승사자들한테 들었소. 나보다 앞에 구름아래로 뛰어내린 사람이 있었다고.” 순간 보스. 아니 추세흔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설마. 당신도?” 끄덕 둘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파안대소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 둘은 한참동안 큰소리로 웃었다. 주변에서는. 특히 부두목들로서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때 블루가 입을 열었다. “난 담소광이라 하오.” “헉!” 추세흔의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서. 설마 검황 담소광?” 블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의 뜻이었다. “정말로 생사경의 고수라 불리던 검황 담소광이란 말이오?” 끄덕 “하하하하! 이런이런. 어떻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허허허.” “무슨 소리요?” 블루는 추세흔의 어투 속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사실 내가 현경의 경지를 넘기 전부터 당신의 이름을 들었소. 천하제일인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더이다. 하지만 나는 믿을 수 없었소. 생사경의 고수란 것을.” 블루는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경의 벽은 우둔한 나로서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철벽이었소.” 이것은 잘못된 말이었다. 우둔하다면 결코 현경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림 역사상 현경의 경지를 넘어선 사람은 채 다섯 명도 되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담소광이고. 또 하나가 바로 눈앞에 있는 추세흔이었다. “현경의 고수를 추앙하기 위해 만든 허풍이라 생각했는데. 그 소문이 진실이었구려.” 그리고 한숨을 내쉬는 추세흔. 그것은 흡사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투정을 부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블루가 말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러자 추세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약간 이야기가 옆으로 샜군.” 추세흔이 눈을 빛내며 블루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어떻게 죽었소?” “음?” 블루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다. 어떻게 죽었냐고?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사실 편안히 죽은 것을 보면 자연사한 것 같기는 했다. “글쎄올시다. 자연사가 아닐까 싶은데...... 수명이 다되었으니 죽은 것이 아니겠소?” 이백 년을 살았으니. 솔직히 언제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추세흔이 피식 웃었다. “큭큭. 정말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오?” 블루는 추세흔의 그 어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단 말이군.” 추세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되지 않았소. 우리 같은 절정고수들이 소리 소문 없이 죽어나간다는 소문! 거기다 하나같이 급살이었지. 전날까지만 해도 생생하던 사람들이 말이오.” “.......” “정말이냐는 눈치군. 후후. 내가 거짓말할 이유가 뭐가 있겠소? 모두 사실이오. 그때까지만 해도 모두 늙어서 죽었구나 싶었는데. 설마 내가 그 중하나가 될 줄은 몰랐소. 아마 꼴을 보니 검황 당신도 같은 처지인 모양이구려.” “설마!” 블루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영 석연치 않았다. 멀쩡하던 자신이 자고 일어나니. 하루아침에 저승의 문턱을 밟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듣고 보니 수상쩍었다. 한순간 블루의 머릿속에 뭔가 스쳐지나 갔던 것이 떠올랐다. 그가 떨어지기 직전 저승사자들이 지나가는 말처럼 했던. 지금까지 잊고 있던 그 한마디가 지금 머릿속을 강타하듯 떠오른 것이다. 그것도 아주 생생히. “니기미. 내가 정말 죽었구나!”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니 그렇다고 느껴지는 찰나. “야! 너 줄 좀 잘 맞추지 못해. 거기 구름 밑으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겁주는 게 아니라 그곳으로 떨어지면 우리조차 감당할 수 없단 말이야. 알겠어? 그러니까 저기 다른 녀석들처럼 얌전히 저승으로 가자.” “쓸데없는 소리는 왜 해? 예전에 저렇게 정신 차린 녀석 하나가 무슨 생각에선지 뛰어내린 거 기억 안 나?” 바로 그때였다. “으아아아악!” 저승사자가 아차 하는 순간. 담소광은 구름 밑으로 뛰어내렸다. 담소광의 비명은 길고 우렁찼다. “독을 마시고 죽은 늙은이치곤 목소리 한번 우렁차다.” “독을 마시고 죽은. 독을 마시고 죽은. 독을 마시고 죽은.......” 블루의 머릿속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풀린 탓이다. 하긴 그가 그렇게 쉽게 죽을 이유가 없다. 바로 그때. 추세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소! 우리들은 독살당한 것이오.” 도서명: 검황 이계 정벌하다 8 지은이: 한가 출판사: (주)랜덤하우스중앙.북박스 출판년도: 2006년 6월 30일 제1장 그가 우리를 찾지 않으면 “지금부터 정확히 백을 세겠다!” “취익?” “의문을 제기할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더 맞고 싶어?” 그 말에 오크대장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침을 흘렸다. “아, 아니다! 물건을 놓고 치익, 떠나겠다, 취이익!” 오크들이 부산을 떨었다. 지금 당장 도망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작용한 탓이다. 저기 널브러져 있는 동료들처럼 맞아 죽고 싶지 않았다. 동료들이 개처럼 두들겨 맞던 모습이 눈을 뜨고 있어도 잔상처럼 남았다. 오크는 오한이 걸린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들은 백을 셀 동안이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들은 백을 세려면 한나절쯤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눈앞의 인간이 강하긴 하지만 바보라고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물건은 취익, 모두 한곳에 넣었다. 취이익!” “그래, 그럼 지금부터 백을 세겠다!” “그래 알았다, 취익!” 오크들은 뛰기 시작했다. “일, 이, 삼, 사...... 육십팔, 육십구” 뒤에서 들려오는 숫자 헤아리는 목소리에 오크들은 저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것은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숫자를 저렇듯 빨리 셀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잘못 세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뭘 알아야 따지든지 하지. 그래서 생각했다. 저 괴물 같은 인간이 마법을 사용하고 있구나! 순간, 아찔했다. ‘바, 반칙이다! 반칙, 취익!’ 외치려는 순간 어느새 백이 목전이었다. “구십팔, 구십구, 백!” 스윽 백까지 센 뮤엘은 버릇처럼 손을 털며 도망치는 오크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오크들을 찬찬히 훑었다. 천천히 비릿한 미소가 입가에 머금어졌다. “큭큭, 이제부터가 파티타임이다!” 씩 웃는 뮤엘의 치아가 햇빛에 반사되어 빛을 뿜었다. 반짝 유난히 하얀 치아가 더욱 광채를 발했다. 만지면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았다. 그 순간, 슈웃! “퀘엑?”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오크 한 마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이 왜 쌍코피를 흘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의심하지 마라. 맞았으니 아프고 피가 나는 거지.” 퍼억! 쿠당탕 “꾸엑?” 이번엔 자신이 왜 쓰러져있는지, 복부는 왜 이토록 아픈지 모르겠다는 눈빛을 한 채 오크는 뮤엘은 올려다보았다. “왜 쓰러지긴...... 맞았으니까 쓰러졌지.” 퍼억! “케엑!” 화려한 발차기에 짧은 비명을 내지른 오크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짚은 잠이었다. 뿌우우우우! 두두두두두! 그때, 행군의 뿔피리 소리와 함께 언덕에서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다. 몰이를 마친 별사들이 돌아오고 있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갑을 번쩍이며 감을 휘두르는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검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오크, 오크들. “내 몫은 남겨두란 말이야!” 뮤엘이 크게 외치며 도망치는 오크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수고 많았다.” “흰소리 마!” 로이가 웃으며 물수건을 건네자 뮤엘이 그것을 받아 얼굴을 닦으면 퉁명스럽게 응수했다. 그가 나서기도 전에 오크들이 몰살당한 탓이다. “이 자식들 정말 오크 맞아? 완전 물이잖아.” “킥킥, 계집애처럼 조잘거리기는.” “뭐야?” 뮤엘이 언성이 가파른 상승곡성을 그릴 즈음, 저 멀리서 말발굽소리와 함께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게 친구들!” 둘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사내가 말을 탄 채 다가오고 있었다. 루이스 디 세바스찬 2세! 아버지로부터 루이스 영지와 작위를 상속받고 긍지 높은 기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사내. “어찌되었습니까?” 뮤엘이 묻자 사내가 말을 탄 채 천천히 다가오며 대답했다. “아쉽게 몇 마리 놓치긴 했지만, 거의 다 잡았네. 다 자네들 덕이야.” “저희가 한일이 뭐가 있다고......” “큭큭, 자네들이 한일이 없다면 우리는? 접시 물에 코라도 박고 죽으란 말인가?” 세바스찬 2세 뒤에서 강직한 얼굴의 사내가 피식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클레인, 거기서 뭐하십니까?” 뮤엘이 생뚱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자, 클레인이 궁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큭큭, 믿어지지 않겠지만 기습을 당했네.” “네에?” 뮤엘과 로이는 클레인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클레인이 누군가? 비공식적 이긴 하지만 자신들과 함께 마스터 경지에 오른 사내다. 그것도 그냥 마스터가 아니다. 마스터 경지를 한 단계 뛰어 넘은 중급 마스터다. 그런 그가 기습을 당하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마스터도 드문 세상에서 중급 마스터라는 등급자체가 웃기는 이야기지만, 과거에 이미 그랜드 마스터가 존재했지 때문에 등급을 매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 말이 쉽지, 이는 실로 모의 궁극이라 할 수 있었다. 예컨대, 마계의 불꽃 안에서 살고 있는 불의 왕의 수하인 발록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경지라 했다. 흔히들 말하길, 발록 두 마리면 성체 드래곤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 다고 하니 그랜드 마스터의 함을 설명하기위해서는 긴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굳이 사족을 붙이자면, 이야기 속, 혹은 각종 자료 속에 인간으로서는 유일무이하게 초인으로 기록된 헤르마틴 대제, 헤르마티아 대륙을 일군 그가 바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인물로 칭송받고 있었다. 그러니 마스터를 ‘마스터, 중급 마스터, 상급 마스터, 고급 마스터’ 이렇듯 네 등급으로 나눈 것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등급만 나누어 놓으면 무엇하겠는가. 지금 헤르마티아 대륙에서 눈은 씻고 찾아도 고급마스터는커녕 상급마스터는 쉽게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현재 상급마스터로 이름은 떨치고 있는 사람도 딱 한 사람 뿐이었다. 유슬라니안 제국의 아이린 공작, 그가 그랜드 마스터 경지를 목정에 둑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지만, 각설하기로 하고 지금 이들 세바스찬 2세를 뺀 뮤엘, 로이, 클레인이 마스터라는 사실은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마스터 칭호를 받은 사람은 세바스찬뿐이다. 자신의 실력을 숨겨야 한다는 블루의 가르침(사실 직접적으로 가르친 것은 그리 많지 않지만)에 따라서 마스터급처럼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중급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로이뿐이었다. 그들이면 나라 하나쯤 손에 넣고 주물럭거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루이스 영지에서는 일반병사들까지도 지금 당장 수련기사 칭호를 받아 마땅했다. 적어도 어웨어급 이상은 되었으니까. “기습이라면 대체......?” “오우거였네.” “네에?” 클레인의 그 한마디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뮤엘과 로이. 말 그대로 뜬금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오우거라니요?” “이곳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요?”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네만 어쩌겠나? 사실인걸.” 그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뭔가 질질 끌며 이동하는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우거!” 사실이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고 또 다시 봐도 오우거가 확실했다. “아니 이럴 수가!” 다른 곳도 아닌 다크 엘프 숲에 인근의 마수급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내다니!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뭐, 우리로서도 믿어지지 않기는 매일반이네만......” 우스갯소리처럼 가볍게 말을 꺼낸 세바스찬 2세는 굳은 얼굴로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 정색하며 덧붙였다. “무슨 일인지 요즘 들어 상위 몬스터들이 부쩍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로이가 묻자 클레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 역시 답답한 눈치다. 로이는 그런 클레인을 보며 그도 자신만큼이나 아는 것이 없음을 알았다.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네만......” 잠시 말을 끊고 주변을 둘러본 다음 그는 아주 은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들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일세. 아직은 수하나 친구한테도 이야기 하지 말게나.” 끄덕 마음속에 하나의 주군을 둔 탓에, 신분을 넘어 이미 친형제나 다름없다고 자부해온 그들이 아니던가. “아직은 짐작일 뿐이네만, 몬스터의 등장에 뭔가 이유가 있는 듯하네.” “이유? 무슨......?” “글쎄, 떠오르는 것은 있지만 아니길 바랄뿐이네.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답답한 마음에 로이가 언성을 높였다. “과거에도 이런 적이 몇 번 있었거든. 비록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일 뿐이었지만.” “흠?” “서, 설마!” 뮤엘과 로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맞네. 바로 그 거야!” 잠시 생각에 잠긴 로이가 피식 웃었다. 그러나 억지웃음이었다. “마왕이라니! 하하, 우습지도 않군요.” “그러게, 우습지도 않지? 하지만 말이지...... 공기가 심상치 않아.” “킁킁.” 퍼억! “컥, 왜 때려!” “저 바보 로이는 무시하고 말씀계속하세요.” 뮤엘의 말에 로이가 발끈했다. 하지만 곧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클레인이 그를 무시하며 말을 이었기 때문이다. “크로타니안 내부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관측되었네.” “어떤......?” “나도 아직 정확히 모르네.” “설마 마황과 황실이?” 뮤엘이 스스로 말하면서도 우스웠는지 피식 웃었다. “글쎄.” 그러나 잠자코 듣기만 하던 세바스찬 2세가 나섰다. “분명한 것은 크로타니안이 붕괴되고 있다는 거야. 그 이유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마왕에 관한 것이라면 현실감이 없으니 그저 웃고 넘길 수 있는 사안이지만, 한 황실의 붕괴라면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크로타니안이 붕괴하고 있다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뮤엘과 로이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부자가 망해도 삼년은 간다는데, 한나라가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고 망해가고 있다니! 어느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남 이야기처럼 말문을 연 세바스찬 2세는 크로타니안의 귀족이 아닌가. “쉿! 조용히들 하게.” 클레인의 나직한 경고성. 로이와 뮤엘은 얼른 입을 다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다들 뒷정리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뭐 그렇게 까지 두리번거릴 필요가지는 없네. 소리 높여 동네방네 소문을 낼 필요도 없지만, 굳이 숨길 이유도 없으니까. 그 마왕 문제만 빼면 말일세.” 로이와 뮤엘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왕이야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이니 신경 쓸 이유가 없지만, 황실 문제를 굳이 쉬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클레인의 속뜻은 무란 말인가. 아마도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자신들만 눈치 채지 못했을 뿐,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거나, 알려져도 상관없을 만큼 사건이 진척되어버린 경우. 눈치를 보아하니 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았다.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벌써 그렇게까지 진행되었단 말인가? 흐음, 심각한 일이군.’ 길게 한숨을 내쉰 로이는 땅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침을 뱉고 머리를 긁적였다. 새삼 깨달은 탓이다. 그래, 나는 역시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체질이 아냐! 그때, 뮤엘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하겠나? 어차피 우린 그들 시선밖에 있는, 이름 없는 자그마한 영지의 영지민일 뿐인데, 아마 그들은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을걸.” “킥킥킥.” 클레인의 말에 세바스찬 2세는 얼굴을 구겼고, 로이는 웃었다. 뮤엘이 반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지금 세바스찬 영주님께서는 자랑스러운 소드 마스터 검사로서 위명을 널리 떨치고 계신데, 이름 없는 영지라뇨? 말씀이 조금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 순간, 물 만난 물고기처럼 세바스찬 2세의 입이 열렸다. “맞네, 말이 심했네. 아무리 친구라도 지킬 것은 지키고 예우할 것은 예우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찌하여...... 구시렁구시렁.” “그래서? 지금이라도 이름을 날려 크로타니안 황실에 투신이라도 하시겠다?” “그, 그건 아니지만......” 클레인의 물음에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뮤엘과 세바스찬 2세. 클레인이 피식 웃으면 말했다. “장난일세, 단순히 앞으로의 마음가짐에 대해 말한 것뿐이니, 너무 기분 상하지 말게.” “염려 말게. 자네의 마음을 내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다만 작금의 상황이 반박할 상황도 아니고 반박해봤자 원론적인 이야기만 나오다가 당할 상황인데...... 후, 이리 당하나 저리 당하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씁쓸할 따름이네.” 세바스찬 2세는 어딘지 모르게 횡설수설이었다. 그러나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허탈한 마음에 뒷말이 살짝 꼬이긴 했지만, 그의 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부패한 나라라 해도, 그래서 언젠가 뒤집어엎고 말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해도, 나고 자란 조국이 붕괴되는 것을 비켜보는 것이 유쾌한 경험일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는 ‘나름대로’ 귀족이 아닌가. 그러니 감정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클레인은 위로하듯 세바스찬 2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로이가 불쑥 물었다. “그런데 앞으로의 마음가짐이라뇨?” “지금 우리한테는 따로 할일이 있으니까, 엉뚱한 곳에 시선을 돌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대답한 것이 클레인이 아니라 세바스찬 2세였다. 로이가 다시 끄덕이며 다시 질문했다. “엉뚱한 곳이 뭔지는 알겠는데, 우리가 할 일이라뇨? 그게 여전히 감이 안 오는데요?” 순간, 세바스찬 2세, 클레인, 뮤엘은 저마다 미소를 머금었다. 어찌 보면 씁쓸한 듯 보였으나, 한편으로는 기대에 차있는 표정 같기도 했다. 그래서 더 이유를 짐작할 수 없게 된 로이는 의뭉스런 시선으로 세 남자를 돌아봤다. 클레인이 선심 쓰듯 말했다. “그분을 기다리는 일이지.” “아!” 짧은 감탄사. 어째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그를 떠올리지 못한 이유가 월까? 아니, 생각을 못했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오히려 그를 늘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그랬다. 그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못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 대입을 시키지 못한 것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로이는 바라보는 세 남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찼다.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두렵지가 않았다. 늘 자신들을 뒤에서 지켜주고 있는 것처럼 든든했다. 그때, 로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 “그런데 지금 어디서 뭘 하고 계시는지?” 세 남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들 역시 늘 그게 궁금했다. 블루가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지도 어언 사년이 지났다. 길다고 할 수도 없지만, 이들 네 사내에게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 기다림은 즐겁기도 하지만 길수록 힘겨웠다. 특히, 답이 나와 있는 기다림일수록 기대감으로 인하여 더욱 힘겹다. 시간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더디게 흐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약 없는 기다림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오늘 게슈타포 촌장님 댁에 모이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뿔뿔이 흩어졌다. 다들 정리한 일들이 많은 탓이었다. 늦은 저녁. 황혼의 석양이 지평선을 그리는 시각. 멀리 작은 집에 하나 보이는데, 식사를 준비하는지 굴뚝에서는 희뿌연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 나오고 있다. 바로 게슈타포 촌장집이다. 집안에 온갖 향기로운 냄새가 가득 찰 무렵, 좁은 식탁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프가 놓였다. “맛있게 드세요. 나머지 음식도 곧 나올 거예요.” “오늘도 또 민폐를 끼치는군요.” “별 말씀을요, 후후.” 에그잔티아의 미소는 갈수록 아름답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그녀에게 들킬까 터질듯 두방망이질치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세바스찬 2세는 스프를 떠 입안에 넣고 음미했다. 에그잔티아의 음식 레퍼토리는 단순하지만,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 비결은 모른다. 이런 게 바로 손맛이 아닐까? ‘아아, 당신은 어째서 몸에 들러붙은 먼지마저 사랑스럽게 만드는 거요?’ 흠뻑 취한 얼굴로 에그잔티아를 바라보던 세바스찬 2세는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클레인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만 좀 봐라. 눈알 튀어나오겠다.” “음?” “너 말이야, 너!” “어? 엉! 내, 내가...... 뭐, 뭘?” 당황한 세바스찬 2세가 말을 더듬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돌아보던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게슈타포를 비롯한 모두의 게슴츠레한 시선이 그에게 고정되어있음 깨달은 것이다. 둔한 로이까지 음침하게 웃으면 자신을 보고 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아, 아냐! 오해야.” 당황한 세바스찬 2세가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음? 누가 뭐라고 했어?” 능청스런 클레인의 대꾸에 다시금 크게 당황한 세바스찬 2세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큭큭큭!” “허허허!” 사람들이 웃기 시작하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남 연애사만큼 즐거운 입방아꺼리도 없지만, 당사자에게는 그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었다. 특히, 짝사랑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짝사랑! “......” 입안이 씁쓸한 세바스찬 2세였다. 그냐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면...... 두 번 죽어도 좋고 물구나무를 선채 세상을 돌아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자연히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을 읽게 된다. 상대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녀의 시선은 자신에게 향하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과연 그가 사람일까? “......” 아직 제대로 된 답안은 나오지 않았다. 한 때 드래곤이라고 착각한, 지금은 자신의 모든 것인 그분. 주! 군! 그러나 그가 아무리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해도 사랑은 다른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다 바칠 사람을 만나도 누구나 가슴 한 켠에 조그마한 방 한 칸을 남겨두는 법이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세바스찬 2세도 그랬다. 그 역시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사람이었다. 넘을 수 없는 산을 올려다보는 이유. 절벽 위의 꽃이 아름다운 이유. 가로막힌 장벽이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열정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갈망은 더 깊어져만 갔다. 늘 사랑에 목이 마르고 목이 탄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가슴속 이야기요, 가슴 속 풍경일 뿐이다. “하하하.” 그는 크게 웃었다. 웃음 뒤에 사랑을 감추고, 사랑 뒤에 슬픔을 묻어둔다. 아직 드러내기엔 너무 이르다. 그를 넘어서는 그날,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말할 것이다. 자신을 봐달라고! 순간, 묻어둔 슬픔이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가슴을 활활 태우는 불꽃으로 피어나, 그녀를 녹이리라. 그날까지 숨기고 숨길 것이다. 얼마나 더 숨길 수 있을지 자신 할 수 없지만, 어쩌다 숨기다 보면 끝이 나고 말지도 모르지만...... “하하하.” 세바스찬 2세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럴수록 사람들의 웃음은 시들어갔다. 달콤한 초콜릿이 남기는 씁쓸한 여운처럼 그렇게 지고 있었다. 그들 저편에서 그들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있음을 알았다면, 과연 그들은 어떤 표정은 지었을까? 언니, 뭐해?“ “아, 아냐 아무것도. 저리로 가자, 루티야.” “응, 언니.” “정녕 그게 사실이란 말이지?” 게슈타포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렇습니다.” 세바스찬 2세가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어느새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게슈타포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기 위해 다들 숨소리조차 죽였다. 언젠가부터 게슈타포는 강력한 발언권을 지닌 존재로 급부상해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지도 몰랐다. 그의 많은 지식과 경험들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것들이었으니까. 현자를 만나본 적이 없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게슈타포의 깊은 생각과 해안이 만들어낸 답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게슈타포의 주름이 더 깊어지고 사람들이 더욱 숨소리를 죽일 때, 그의 입이 열렸다. “그래.” 그 말과 동시에 두 눈이 떠졌다. “자네들 판단이 옳다고 보네. 내 짧은 생각으로 함부로 평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건 자네들 모두의 생각이 그럴진대, 오판을 했을 리 없다는 걸세. 자네들 깊은 속을 내가 모를까?” “어르신!” 갑자기 로이의 입에서 탄성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그는 당황한 듯 얼른 고개를 숙여 버렸다, 게슈타포는 말없이 로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천천히 끄덕여지는 고개. 그보다 천천히 말문이 열렸다. 하지만 그 일련의 과정들이 전혀 느리다거나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어찌 자네들 마름을 모르겠는가, 나도 같은 것을. 솔직히 자네들 걸음을 막고 싶네만, 사내란 한번 생각을 품고 결심을 했으면 우선 걸어야 한다네. 이처럼 나에게 들러 이야길 들을 필요도 없이 말일세.” 모두의 눈에 감동이 어렸다. 게슈타포의 한마지 한마디가 그들 가슴을 열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떳떳함과 자부심! 게다가 사내의 자존심을 세워줄 줄 알았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영주님께 감사하실 만한 말씀을 해드린 기억이 없습니다만, 주신다면 고맙게 받겠습니다.” 작게만 느껴지던 게슈타포의 어깨가 무척 넓어보였다. 지금껏 그들이 보지 못한 그의 세상을 조금이나마 견식 할 수 있었던 탓이다. ‘블루! 조금만 기다리십쇼. 당신이 우리를 찾지 않는다면 우리가 당신을 찾을 겁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는 당신의 힘이 될 겁니다. 어떻게든 말입니다.’ 세바스찬 2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동시에 다른 사내들도 주먹을 움켜쥐었다. 제 2장 어디 한번 붙어보자! 시장의 흐름이 급변했다. 눈치 빠른 상인들이 움직인 탓이다. 한 무리는 전쟁을 피해, 또한 무리는 전쟁 속으로. 각국 수장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새삼스레 깨달았다.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서 큰 환란을 알고 또한 짐작했다. 이번 전쟁이 과거 제1차 제국대전과 제2차 제국대전과 비교해 보아 결코 작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 그래서 일까? 벌써부터 호사가들은 제3차 제국대전이 일어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제3차 제국전쟁의 전운! 언제부터였을까? 유슬라니안과 크로타니안의 악감정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답은 없다.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이십 년 전으로 올라갈 수도, 하물며 오십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명분이야 만들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명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의 악감정은 까마득히 오래 전부터 만들어진 것인데 말이다. 언제 전쟁을 일삼아도 전혀 이상한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야 터졌다는 것이 이상한 지경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저 물결만 일렁일 뿐, 당사자들은 정작 조용하기만 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물밑에선 이미 식량이며 무기며 물자를 모르고 예비군을 징집하고 상대 전력을 비교분석하는 등 초읽기에 돌입해 있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아직 잔잔하다는 것은 서로에게 여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아니만, 아직까지 상대 전력분석이 끝나지 않았거나. 가끔은 사는 것이 명쾌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냥 생각한 대로 치고나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앞뒤 생각 없이 그냥 밀어 붙인다면 간명한 일인데, 일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사람들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쉽게 일을 해결하고 마무리 잣는 것이 좋아하지 않지도 모를 일이다. 재고 대보고 다시 재고...... 어쩌면 그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큭큭큭!” 블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왜 웃어요?” 베르니스가 물었다. 그래서 블루는 생각했다.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베르니스의 머릿속이 궁금해진 탓이다. 왜냐고? 글쎄, 그냥 웃기지 않은가? “큭큭!” 블루는 계속 웃었다. “에휴, 됐수다. 대장의 복잡한 속을 이해해보겠다고 말을 건 내가 등신이지.” 투덜거리며 그가 떠났다. 그것이 또 웃겨서 웃었다. 하늘 높이 새가 날아간다. 저 새는 무슨 생각으로 나는 걸까? “큭큭큭!” 이번에는 멀리서부터 블루의 웃음소리를 듣고 다가온 텐시가 묻는다. “뭐, 즐거운 일 있어요?” 블루는 생각했다. “즐거운 일?” “네, 즐거운 일, 그래서 웃는 거 아닌가요?” 내가 그래서 웃는 거였다? 그 때문에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다지 즐거운 일이라곤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다. “아니!” 피식. “엉터리, 킥킥!” 텐시의 입가에 고운 미소가 걸렸다. 조금 전 기분 나쁘게 웃던 베르니스와 달리 상큼한 미소가 걸린 것이다. 왠지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요, 대장. 난 할 일이 있어서......” 총총 멀어지는 텐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른 생각. ‘참 곱구나...... 음?’ 블루는 화들짝 놀랐다. 다 늙어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다시 곰곰이 생각을 이어갔다. 늙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뿐, 아무도 그가 늙었다고 보지 않았다(다만 생긴 것답지 않게 고리타분하게 보일 뿐이다. 블루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그때, 베르니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비웃듯 이죽거리며(블루 혼자만의 생각이다) 떠나간(이 역시 블루 혼자만의 생각이다) 베르니스 면상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현실보다 더 자세하다(각색이 상당히 많이 되고, 없던 부분도 부각되었다. 이죽거리며 피식거리고 깐죽거리는 표정 등등). 으득! 모질게 이를 간 블루의 얼굴에선 어느새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그의 기운이 느껴지는 탓이다. ‘그래, 저기 있군. 황실기사 연무장이라...... 좋지! 오랜만에 대련이나 한번 해봐야겠어.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도 할 겸.’ 거기까지만 생각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꼭 하나를 덧붙이는 것을 좋아했다. 늘 그래야 직성이 풀렸다. ‘얼마나 실력이 붙었으면 내 앞에서 깐죽거렸을꼬? 이참에 제대로, 한번 제대로 실력을 살펴야겠어.’ 블루의 입가에 다시금 미소가 떠올랐다. 사실은 그의 실력이란 그냥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음에도 블루는 애써 그 현실을 부정했다. 진정한 실력은 주먹으로 느껴야 한다는 지론 탓이다. 그리고 얼마 후, 연무장에서 들려온 대 아닌 비명소리! “꾸웨웩 꿱! 사, 사람 살류우우우!” “누가 죽인다고 하더냐? 실력 좀 보자고 했지, 흐흐흐.” “그 ‘흐흐’가 문제란 말입니다요! 그 흐흐가! 사람 살...... 꾸꿰웨웨웨웩!” “이리와. 검을 들고 그렇게 뒷걸음질치라고 누가 가르치더냐?” 퍼버버버버벅! 우득 ‘우득?’ 뜻밖의 소리에 잠시 의아했으나 결코 주먹을 멈추지 않는 블루. 파바바바바바박! “꿔워워워워워웍!” 사람이 돼지처럼 멱따는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덤으로 사람이 사람을 저렇게 팰 수도 있다는 사실과, 저렇게 맞고도 죽지 않을 만큼 사람의 질긴 생명력도 깨닫게 되었다. 구석에서 치를 떨며 구경하던 한 병사는 생각했다. ‘저렇게 맞을 바 엔 차라리 확 혀를 깨물고 죽는 게 낫지!’ “꾸, 꿰웨웨웨웩!” “그러게 조심하랬지?” “어버버버?” 뒤늦게 정신을 차렸으나 너무 억울해 말도 안 나왔다. 대체 자신이 뭘 잘못했단 말인가! 호소하고 싶어도 말이 안 나왔다. 이미 신관한테 전신의 타박상화 상흔은 모두 치료받았다. 하지만 심한 정신적 압박감과 피해의식은 치료가 불가능했다. 아마도 지금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쯤이면, 아픔만큼 한 단계 성숙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될지도 몰랐다. “어버버버버!” 물론 지금 상황에서 빠른 시일안에 완치는 기대하지 힘들것같았다. 정신적인 충격도 있다보니...... 텐시는 한숨을 내쉬며 창밖으로 눈을 돌랴T다,. 이미 깊은 새벽.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보니, 새벽 세시쯤 된 것 같다. 일에 치여 늘 자던 시간이 그때쯤이었기 때문이다. “에고, 난 아제 자러 가야겠다. 베르베르, 내일 다시 올게.” 텐시는 둘만이 사용하는 베르니스의 애칭과 함께 이마에 키스를 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베르니스는 두 눈을 껌뻑이며 텐시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다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많이 피곤했다. 하지만 아직 자긴 일렀다. 평소라면 지금쯤 잠자리에 들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전쟁의 불똥이 발등에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그 불똥을 피하든, 걷어차든 해야 할 때였다. 과연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업무량이 평소보다 다섯 배쯤 폭주했다. 수없이 많은 정보들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그녀가 맡은 일은 그 중에서 옥석을 가리고, 진위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골라낸 알짜배기 정보를 분석해서 유리한 선택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정보전! 정보가 전쟁의 승패를 가르거나 손익을 결정하고 이익의 많고 적음을 좌우한다. 그라나 거짓정보는 패망의 지름길이요, 손해로 귀결되었다. 그만큼 텐시가 하고 있는 일은 중요했다. 그래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전쟁이 일어나면 한시름 놓을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전쟁이 시작되지 전은 피 말리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온갖 잡념이 각다귀처럼 날아드는 그때. 타닥타닥 구둣발 소리가 정적을 깼다. 다급한 소리였다. 황실 안이다 보니 차마 뛰지 못하고 저렇게 어설피 뛰는 것이리라. 누구인가 싶어 텐시는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곧 저 멀리서 뛰어오는 친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밑에서 일을 봐주고 있는 길드원줄 하나였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텐시는 적잖게 당황했다. 그는 늘 좋지 않은 소식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여기 계시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왔습니다.” “죄송해요. 사정이 생겨 잠시 자리를 비웠었거든요.” 끄덕 이해한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인 사내가 서류뭉치를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텐시는 사내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었이죠? 눈빛으로 그렇게 묻고 있었다. 사내는 필요이상으로 친절했다. 머뭇거림 없이 바로 의문을 풀어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었다. “전쟁이 터졌습니다.” “전쟁?” 사내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은 여러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더 이상 물을 필요도, 의문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타다다다닥닥! 텐시는 냅다 뛰기 시작했다. 집무실로 뛰어든 텐시는 바쁘게 뛰어다니며 뭔가를 작성하는 부하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모두 퇴근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텐시는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그때, 텐시를 발견한 부하들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서 처리해 주세요. 밀려오는 정보들로 인해 정리하고 분류하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입니다.” 한 부하의 투덜거림에 텐시는 힘겹게 웃어주었다 자다 뛰쳐나온 듯 잠옷 바람에 부스스한 머리까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평소 유난히 깔끔을 떨던 사람이라 더욱 눈에 띄었다. 자기 자기로 가기위해 시선을 돌리는 찰나, 그녀는 경악을 금할 수가 없았다. 잔뜩 쌓여 있는 문서 때문이었다. “서, 설마!” “예, 바로 그 설맙니다.” 조금 전 그 부하가 볼일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텐시의 의문을 해소시켜 주었다 깐죽거리는 면상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눈치 채고 벌써 저만치 달아나는 그의 뒷모습을 얄미운 시선으로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텐시는 자기 책상으로 눈길을 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얼마나 자리를 비웠다고! 그 사이에도 왔다 갔다 하는 부하들 손에 들려있건 문서들이 책상 위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아아......!’ 아찔했다. ‘아닌 밤중에 이 무슨 노가다란 말인가......후!’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긴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않은 그녀는 습관적으로 서류를 집어 들고 검토를 시작했다. 헤르마틴이 발칵 뒤집혔다. 갑작스러운 전쟁통보 때문이다. 아무리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해도, 어떤 징후도 없이 하루아침에 터지는데 어떻게 제때 대처 할 수 있으랴. 사실 정생은 절대로 한순간에 터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예상한 크로타니안과 유슬라니안의 대결이 아니었다는 검이다. 어처구니없게, 전쟁과 아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한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이 주축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것도 기습이었다. 그것도 초강국에서 자신보다 한 단계 낮게 평가되는 유슬라니안에 기습을?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유가 뭔데?” 한 귀족의 투덜거림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유슬라니안과의 협상불가로 인한 강압적 조치라는 것이 타르나토스측의 설명이에요.” “무엇이 의한 협상불가란 말이지?” “그것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더군요.” “뒷이야기는 ?” “아직 들어온 것 없습니다.” 텐시의 말에 위문만 눈덩이처럼 커질 뿐이었다. 듣고 있던 죠셉의 이마에 굵직한 주름이 잡혔다. 대체 뭐가 부족해 일으킨 전쟁이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어느 귀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이제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거지?” 그랬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바로 그 점이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전쟁에서 손 놓고 넋 놓고 있으면 피해를 보기 십상이었다. 어떤 식으로는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가장 유리한 쪽에 줄을 서야만 했다. 문제는 어느 쪽이 유리하냐는 것. 모두의 시선이 텐시에게 고정되었다. 조셉 역시 마찬가지였다. 뭔가 힌트가 될 만한 정보가 주어진다면...... 그러나 텐시의 작은 입술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입술이 하얗게 일어나는 것으로, 얼마나 고생이 심하고 고민이 많은지 알 수 있었다. “그건......” 꿀꺽 서두를 떼다 말을 멈추고 마른침을 삼키는 텐시. 그러나 침은 목뒤로 넘어가지 않았다. 사실 문제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귀족들은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혀를 차며 외면의 눈초리를 드러냈다. 그것은 명백히 무시였다. 텐시는 죠셉을 바라보았다. 죠셉이 멋쩍게 웃었다. 미안하다는 모습이다. ‘휴우!’ 사실 이 자리에는 마땅히 죠셉이 서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냐가 가장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자이에 서게 된 것이다. 텐시는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콧바람을 뿜어대는 잘난 귀족들 탓이다. 뿌드득! 너희들끼리 알아서 잘해봐!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참지 않으면 또 어쩌겠는가? 지금은 그저 꾹 참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순간, 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정보였다! 진위가 가려지지 않아 뒤로 미뤄두었다. 그러나 지금은 뭔가 한마디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들의 눈과 귀를 자신에게 잡아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하나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모두의 시선이 다시 텐시에게 쏠렸다 기대감에 부푼 그들의 눈빛. 사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고래싸움을 구경하다 자칫 등이 터질 판이었다. “크로타니안에서 뭔가 수를 쓴 것 같습니다.” “크로타니안에서?” “그렇습니다.” “흠......”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 좌중. 다들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석연치 않기는 텐시도 마찬가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내뱉은 말이지, 뭔가 기대를 하면서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약소국 크로타니안이 위험부담을 안고 그럼 꼼수를 썼을 리도 만무하거니와, 그것으로 얻어지는 것 또한 얼른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반응이 영 시답지 않자 속에서 욱하고 치밀어 올랐다. 하는 것 없이 주워듣기만 하는 주제에, 힘겹게 모아온 정보를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는데 기분이 좋을 리 있겠는가. 그때,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황제가 말문을 열었다. 텐시의 기분은 눈치 챈 탓이다. “정확한 정보가 들어올 때까지 이번회의 사안은 잠시 뒤로 미루는 것이 좋겠구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텐시는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하마터면 성질이 나올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 참자, 참아. 하해와 같이 넓은 마음을 가진 내가 참는다, 후!” 그러나 이마에 힘겹게 새겨진 주름은 쉬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걸음을 서둘렀다. 조금이라도 정보를 더 수집하고 모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일념으로 집무실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던 그녀는 일순, 멈칫하더니 갑자기 몰을 틀었다. ‘베르니스......!’ 그 와중에 베르니스가 걱정이 되었단 말인가? 굳어 있던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메꽃처럼 화사한 미소! 잠시 후, 베르니스의 침실로 들어간 그녀의 뒷모습은 천사의 그것과 흡사했다. 왠지 날개가 검은 빛은 뛸 것만 같다는 것이 유일한 문제였지만...... 그녀가 들어가고 얼마 후, “테, 텐시? 왜, 왜, 왜 그래? 으아악!” 베르니스의 비명은 한동안 황성이 무너질 듯 계속되었다. 베르니스는 정말 이유도 모르고 마장T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떠올리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한강에서 빰 맞고 남산한테 화풀이라는 식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알았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대, 대체 왜에에에에에?” 아침의 이슬처럼 서글픈 베르니스의 비명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베르니스의 수난시대였다. 근심어린 주름이 마투스 공작의 이마를 뒤덮고 있었다. 유슬라니안을 급습한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당하고 있을 자신들이 아니었지만, 벌써부터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움직임을 전혀 눈여겨보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당했기 때문이다. 서둘러 전쟁을 위해 물자와 병사들을 빼 크로타니안 국경지대에 주둔시키고 있는데, 그로인해 약해진 국경을 치고 넘어서 벌써 다섯 개의 성을 무너뜨린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생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뒤늦게나마 크로타니안 국경에 주둔해 있던 병력을 마법진으로 급파해 막아내지 않았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했다. 아마도 아이린 공작이 없었다면, 여기 유슬라니안은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지도 몰랐다. 모든 마법사를 동원해 텔레포트시킨 병사들 수는 오만에 불과했다. 정확히 오만 삼천이었다. 하지만...... 칠십오만으로 치고 내려온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기사들을 오만여 병력만으로, 후발대 삼십만이 도착하기까지 삼일간 제동을 걸고 있었다는 것은 칭송받아 마땅했다. 그것도 별다른 피해도 없었다. 그 모든 건 아이린 공작의 무위가 뒷받침이 외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껏 숨겨온 무위를 개방한 것이다.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기사들의 경악어린 표정, 공포에 얼어붙은 모습과 사기충천한 유슬라니안 병사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아니, 아니지! 이렇게 뿌듯해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미투스 공작을 얼른 웃음을 거두며 이마를 짚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 같아선 크로타니안 국경지대에 위치한 벨리어스 장군을 빼 타르나토스와 대립하고 있는 아이린 공작한테 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벨리어스 장군을 빼면 크로타니안이 침입해올 가능성이 컸다. 해서 함부로 건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벨리어스와 아이린이 함께 타르나토스를 견제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미투스 공작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은 크로타니안을 견제하는 것보다 타르나토스가 더 심각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최악의 수로 헤르마틴과......’ 그때, 앞에서 걷던 사내가 절도 있는 모습으로 말을 걸어왔다. “이곳이 카르몽 후작님의 집무실입니다.” “고맙네.” 문 앞에 서 있던 하인이 살짝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서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미투스 공작저하님께서 오셨습니다.” 미투스 공작이 안으로 들어서자 카르몽 후작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몸소 미투스 공작을 맞았다. “어찌 이런 누추한 곳까지?” “하하, 카르몽 후작과 오랜만에 한잔할까 하고 찾아왔지.” 마주 웃는 미투스 공작의 미소엔 아무 사심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카르몽 후작은 진심어린 그 표정에서 뭔가를 발견해낼 수가 있었다. 물론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한잔이 절실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가? 허허, 내가 때를 아주 잘 맞춘 것 같군.” 마주 웃어주고 가볍게 손짓을 하자 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하녀가 다가왔다. “유즈몽 36년산으로” “알겠습니다.” 하녀가 쪼르르 사라지자, 미투스 공작이 감탄어린 목소리로 말문은 열었다. “유즈몽 36산이라면......” “그렇습니다.” “허, 입이 호강을 하는군.” 입맛을 쩝 다시는 것이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미투스 공작은 기분이 좋았다. 이런 접대라니!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카르몽 후작도 흐뭇한 얼굴을 굳이 감추려하지 않았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별말씀이라니! 황제폐하께서도 손을 떠시며 마신다는 유즈몽 36산이 아닌가! 선뜻 그것을 내줄 사람은 아마도 카르몽 후작밖에는 없을 거요.” “그렇습니까, 하하하하하.” “허허허.”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던 카르몽이 어느새 유즈몽 36년산을 받아들고 술잔에 따랐다. “자, 드시지요. 사실 저도 오늘 처음 시음하는 겁니다.” “허, 영광이군.”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영광이지요. 종경하옵는 미투스 공작님과 함께 마시고 싶어 놔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허허, 날 그렇게 까지 높이 평가해주다니 정말 고맙네.” 술잔 가득 차오르는 레드와인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기에 저녀 부족함이 없었다. “유즈몽산 와인이 아름다운 빛깔로 유명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몽롱한 빛을 품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구려.” 술잔을 들고 안에서 출렁이는 와인을 가볍게 흔들어 원을 그리는 순간, 술잔에 스며드는 보랏빛이 미투스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버렸다. 잠시 눈을 감고 코로 향을 음미한 미투스는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풍부한 과일향이 느껴지는데, 그 느낌이 전혀 자극적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런 맛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빛과 향은 물론 맛까지 뛰어났다. 미투스 공작은 마치 홀린 듯한 눈으로 술잔에 입술을 대고 향을 음미했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향과 혀끝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과일 맛의 조화란! 신맛과 떫은맛(탄닌)의 절묘한 황금비율 또한 빼놓을 수 없었다. 단지 단맛만 강하다면 이런 향을 느낄 겨를이 없을 테니, 이것을 만든 장인이 얼마나 많은 배려와 공을 아끼지 않았는지 쉬 알 수 있었다. “정말 좋군!”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나름대로 와인을 즐긴다고 생각하는 미투스 공작이었기에 그 감상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렇군요. 정말 좋습니다.” “이 사람아! 이 정도라면 괜찮은 정도가 아니네. 태어나 처음 접하는......” 그때 앞에서 들리는 소리. 후르릅 ‘후르릅?’ 이 경박한 소리는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설마 했는데, 그것은 카르몽 후작이 와인을 마시는 소리였다. “헐!” “왜 그러십니까?” 후작이 선수 치듯 능청스러운 얼굴로 질문하는 통에, 미투스 공작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당혹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아닐세.” 하지만 결코 아닌 표정이 아니었다. “......” 잠시 알쏭달쏭한 얼굴에 미소를 매달고 공작을 바라보던 후장이 다시 후릅거리며 와인을 마시는 것이었다. ‘별것 아니다. 별것 아니다. 신경을 끄자!’ 그러나 끝까지 별것 아닌 게 아니었다. 신의 축복이요, 선물이 귀한 음료를 앞에 두고 저런 경박스러움이라니!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자네는 술을 왜 마시는가?” 그제야 후작은 미투스 공작이 자신을 왜 그런 눈빛으로 봤는지 깨달았다. “아아, 이거 말씀이시군요.” 빙글 와인 잔을 가볍게 돌리는 카르몽. “후후, 저도 예법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만 이 자리에 있다 보니 딱딱한 예법에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미투스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카르몽의 시선은 와인이 만들어내는 형용할 수 없는 빛깔에 흠뻑 취해 있었다. 와인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저런 눈빛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기분이 상한 미투스 공작의 눈에 그런 모습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항상 빨리 움직이며 계속 바뀌는 정보를 수집하다보니, 느긋하게 차를 마실 시간도 없지요. 맛과 향을 음미할 시간에 서류 하나를 더 보는 것이 더 큰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미투스 공작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굳은 안색이 풀어진 것은 아니었다. 완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그 최고급 와인은 냉수 마시듯 마셔서야 되겠는가?” 잔뜩 찌푸러진 공작의 표정을 보며 카르몽이 해맑게 웃었다. 그가 말했다. “아하하하,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미투스 공작님께서도 상당히 격식을 따지시는군요. 과정보다 결과를 따지시는 분이 나이셨던가요?” 신랄하고 날카로웠다. 흡사 기습을 당한 얼굴로 미투스 공작은 카르몽 후작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느새 눈빛이 변해있었다. 그리고 웃는 얼굴도 남달라 보였다. 그리고 웃는 얼굴도 남달라 보였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도 그렇습니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죠. 음식도 마찬가집니다. 그 많은걸 언제 따져보고 먹겠습니까? 그냥 입맛에 맞고 안 맞고만 생각할 뿐이죠. 음식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맛만 있으면 되고 그 맛이 나한테 맞으면 금상첨화지요. 어차피 뱃속에서 소화되어 나오는 결과물은 같지 않습니까?”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니었다. 자신을 나무라고 있었다. 따끔한 일침에 공작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민고 싶지 않았지만, 카르몽 후작이 치밀하게 계산해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그 말은 그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문득, 소름이 돋았다. 카르몽 후작의 미소 속에,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초리 속에 차가운 눈동자가 숨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려보고 있었다. 알고 있었구나! 그랬다. 오늘 자신이 찾아온다는 것까지 모두 알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저자는......’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카르몽은 껍데기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그는......안에 감출 수 없는 무언가가 꿈틀 거리는 효웅과도 같은 사내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저런 사내가 눈에 들어오는 이유를. 간단했다. 지금이 난세인 것이다. 잠시 후, 카르몽 후작이 눈이 날카롭게 떠졌다. 그리고 가볍게 들어 올려지는 그의 손. 순간, 하인과 호위 기사들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자, 이제 괜찮습니다. 주변 백 미터 이내엔 도청 마법도, 저희 이야기를 들을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대마법사 미투스 공작님이시라면 그 정도는 쉽게 아실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무슨 연유로 찾아오셨습니까?” “알고 있었는가?”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다. 크게 한 방 먹은 탓이다. 서로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카르몽 후작이 고개를 움직였다. 끄덕 수긍의 표시였다. “그렇다면 혹시 내가 왜 찾아왔는지도 알고 있는가?” 여전히 당차고 시원시원한 목소리였다. 놀라 다소 맥이 풀어질 수도 있었건만, 그렇지 않았다. 카르몽 후작은 그것으로 미투스 공작이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카르몽 후작이 한숨을 내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것은 아닙니다.” “그런가, 후후후.” 공작은 허허롭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알아보기 위한 시험이었던 것 같은데, 시험치곤 너무 지나치군.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감이 어떤가?”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무슨 실례까지.” “당신 속마음을 알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를 해코지하러 온 것인지, 아니면 이용하러 온 것인지, 순수하게 부탁을 하러온 것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해는 하네.” “감사합니다. 그저 얄팍한 장난쯤으로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장난? 장난이라고? 이게 말인가? 허허, 이런 장난 두 번만 당하면 심장마비로 죽겠네 그려.” “하하하하.” “농담 아닐세.” 순간, 카르몽의 웃음리 뚝 끊겼다. 그가 정색하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사실 전 공작께서 이곳으로 발걸음할 줄 알고 있었습니다.” 짐작했던 일이다. “어떤 일로 오느냐 까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습니다만, 확실하게 깨닫게 된 것은 웃는 얼굴 때문이었습니다.” “내 웃는 얼굴 때문이라......” “그렇습니다,.” “내가 웃는 게 어쨌다는 거지:? 통 모르겠군.”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카르몽 후작이 대답했다. “공작께서 웃으셨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어째서 그렇지?” “모르시나 본데 공작께서 웃으시는 것은 가족 분들밖에 보지 못하신 탓입니다. 오늘로서 그게 무너졌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아!” 그제야 깨달았다. “물론 몇몇 분들께 웃음 을 보이시긴 하지만, 정말 절친한 친구분들이 아니면 웃음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군.” 미투스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한테 오시자마자 미소를 보이시더군요. 마치 친구에게 보이는 푸근한 미소를 말이죠. 그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뭔가 부탁하실 게 있구나 하고 말이죠. 그래서 시험을 한 겁니다. 제 답변을 들을 위인인지 아닌지를.” “그래? 어떤가. 난 합격인가?”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모습으로 질문을 던지는 미투스의 모습을 매우 인상 깊었다. “그렇습니다.” “다행이로군.” “이제 물으실 차례입니다. 제가 아는 한도라면 무엇이든 답변을 해드리겠습니다.” “고맙군.” “별말씀을요. 제가 인정한 사람에게 합당한 대우라고 생각합니다.” “허허허,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럼 질문하겠네. 먼저 자네는 지금의 정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니, 단도직입적으로 자네는 어느 쪽에 마름을 두고 있지?” 상당히 위험한 질문이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반역으로 해석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진심이네.” “어려운 질문이군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한다면 그리 어려운 질문만도 아닐걸세.” “그렇군요.” 후작은 순순히 수긍했다. 미투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답변을 촉구하는 무언의 시위랄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마음을 두고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만, 이제 둘 곳이 생겼습니다.” “오호, 그래?” “바로 황제페하께 말입니다.” “허허 그거 위험한 발언이군. 그 말은 지금까지는 아니었단 말이 아닌가?” “지금까지는 신하였을 따름이죠.”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러나 미투스 공작은 쉽게 받아들였다. “그렇군. 그래, 여하튼 어째서 마음을 바꿨는지 질문해도 되겠는가?” “얼마든지요.” “전 스스로 사업가라고 생각해온 사람입니다. 이윤이 남는 곳으로 눈길이 돌아가고 발길이 절로 움직이죠.” 미투스 공작으로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정보부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힘없는 정보부가 살아남기 위해 힘 있는 곳에 붙어야 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황제폐하는 힘이 없어보였는가?” “그렇습니다.” “왜지?” “기사도를 숭상하시는 완전무결한 기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지나치게 기사도를 추구하다보니, 주변을 두루 살피지 못하고 한곳만 보시기 때문입니다. 한곳으로만 달려가는 사람이 성공한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황제의 위치는 단순히 한 방향만 봐서는 안 되는 위치가 아닙니까? 수십 수백 방향을 보고 깨달으며 판단해야 하는 자리죠.” 끄덕 “그런데 그런 황제에게 붙겠다? 승산 없는 게임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귀족들과의 싸움에서 이미 진 것이나 진배없죠. 고지식한 기사도에 얽매여 듣기 싫은 말을 배제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죠. 귀족파로선 그처럼 쉽다 못해 시시한 존재도 없습니다. 약간만 추켜 세우면 옳다구나 하고 따라올 테니 너무 싱겁죠.” 거기까지 들은 미투스 공작이 두 눈에 분노가 어렸다. “그 말로 반역자로 몰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그런 말을 내뱉고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서슬 퍼런 미투스 공작의 일갈에 후작을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를 죽이실 생각이신가요? 그럼 큰 실수를 했군요. 사람을 잘 못 본 죄가 크니, 죽이고 싶으시면 죽이십시오. 당신의 능력이라면 저를 죽이는 것을 일도 아닐 테니 말입니다, 후후후.” 후작은 똑바로 마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미투스 공작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가 물었다. “그래, 그럼 죽이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묻기로 하지. 왜 황제폐하께로 마음을 돌린 거지?” “후후,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란 인간은 확률없는 도박은 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황제폐하께서 이길 확률이 올라갔다는 말인가? 그건 어째서지?” “후후, 듣기 좋으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니 참고하십쇼. 바로 미투스 공작님과 아이린 공작님 때문입니다. 바로 두 분이 황제 폐하 곁에서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단조롭기만 하던 황제폐하의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아울러 그 자체로 황제폐하께 뭔가 있다는 말이죠. 단지 황제폐하라는 이유만으로 충성을 다할 당신들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순간, 미투스 공작은 살기를 거두고 웃기 시작했다. “큭큭큭!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것을 알고 있군.” “방금 전에 유추해낸 것일 뿐입니다. 아니라고 해도 할 수 없지요.” 빙긋 “크하하하, 좋아. 아주 걸작이었네.” “다행이군요. 마음에 드셨다니, 후후후.” 미투스 공작이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한 말중 반은 맞고 반은 플렸네, 지금 황제폐하께서는 연기를 하시는 중이시네. 같이 연기를 하고 있는 우리조차 속을 정도로 감쪽같이 말일세.” “그렇군요. 그런데 왜죠?” 순간, 미투스 공작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자네한테는 말해도 되겠지.” 침음과 함께 한숨을 내쉰 미투스 공작은 잠시 사이를 두고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바로 간자 때문일세.” 흠칫! 후작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미투스 공작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간자라니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니! 믿을 수 없었다. “모를 수밖에! 나와 아이린 공작 그리고 황제폐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미, 믿을 수가 없습니다.” “믿을 수가 없겠지. 나 역시 아직까지도 믿을 수가 없으니까 말일세.” “지금도 누군가 적국과 내통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미투스 공작이 차가운 표정으로 싸늘한 미소를 흘리며 짧게 대답했다. “그 정도라면 일도 아니지.” “그러면......?” “바로 회의석상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귀족 중에 간자가 있다네. 아니, 그 간자가 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귀족의 흉내를 내고 있다는 것이 정확하겠지!” 쿠궁! 대체 이게 무슨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란 말인가! 나라 안팎의 정보를 두 손에 쥐고, 인접국 수도를 제집 드나들듯하는 자신조차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어떻게...... 감히 어떻게?” “사실 나도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거짓이었으면 좋겠네. 하지만 이미 증거가 수중에 들어와 있네. 문제라면 누가 그 간자인지 모른다는 것뿐.”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후작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도리질을 계속했다. 충격, 충격이었다. “그럼 그 배후가 누군지는 알고 계십니까?” 끄덕 “대체 어떤 나랍니까?” “크로타니안!” “크로타니안?” “우리도 아주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네.” “어떻게......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공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카르몽 후작의 모습을 바라보던 공작이 와인을 음미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정확한 정보는 아니네. 이것 역시 우연히 알게 된 것으로, 이 일은 우리만 당하고 있는 게 아니네.” 정말 우연일까? 우연히 이런 정보를 알 수 있단 말인가? 그 의문은 제기하지 않거 후작은 질문을 던졌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헤르마틴에서 지금 우리가 추적하는 간자와 같은 자를 잡았다면 믿겠는가? 그 간자가 귀족을 가두고 스스로 귀족 노릇을 하며 살다 걸려서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 역할이 바뀌었던 공작의 이름이 지금 헤르마틴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크라만 공작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쿠궁! “그게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그렇지 우리도 무시할 수 없단 말이지. 누가 간자인지 오리무중이니 말일세. 빈말이 아니라 자네가 그 간자일 수도 있도, 내가 그 간자일 수도 있지.” 답답한 노릇이었다. 말단 귀족이 아니라 정치판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실세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어떤 지옥도가 그려질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뭔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이제 상황이 변했다. 질문을 던지는 쪽이 바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뒤바뀐 탓이다. “본론을 말하겠네.” “......” “바로 자네 정체를 캐기 위해서 왔네.” 충분히 분노할 수도 있는 말이었으나 카르몽 후작은 침묵을 지켰다. 이것을 결코 반역을 꾀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신중을 표한 것이다. “그러나 자네는 아닌 것 같군.” “어떻게 확신을 하시는 거죠?” “난 내 느낌을 믿네.” “그 느낌에 당한 적 없으셨습니까?” “물론있지.” “그런데, 어떤 중차대한 사안에 확신을 하시는 겁니까?” 미투스 공작이 되물었다. “확신?” “아닌가요?” “난 확신한 적 없네. 다만 믿을 뿐이지.” “그 믿음에 큰코다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글쎄, 굳이 그런 생각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네가 그 간자여도 상관이 없다네.” “그건 또 무슨......?” “난 자네에게 간자를 찾아달라고 부탁할 생각이거든.” 끄덕 짐작하고 있었다. “어차피 자네가 정말 우리 편이라면 내게 들려줄 정보는 확실하겠지. 하지만 자네가 간자라 하더라도 나에게 들려줄 정보는 변하지 않을 거야. 어째서일까?” “어째서입니까?” 정말 궁금했다. 어떻게 저렇듯 확신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간자라면 간자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지.” 쿵! 그 말 속엔 수십 가지의 뜻이 내포되어있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이상, 자신이 간자라 해도 정보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 바로 그것이었다. 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간자라면 간자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마법사인 미투스 공작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가 왜 희대의 대천재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있는지 새삼 실감이 갔다 그때 미투스 공작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문을 열었다. “별다른 힌트도 없이 내 말뜻을 이해한 모양이군. 나야말로 개안했네. 그렇게 가까운 곳에 몸을 움츠리고 자신을 숨기는 효웅이 있을 줄이야. 간자라면 상당히 아까운 인재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네.” “효웅이라구요? 하하,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난 놈이 아닙니다. 하지만 숨어 있었던 건 사실이죠. 그리고 믿지 않으셔도 상관은 없지만, 전 간자가 아닙니다. 제가 숨어 있던 이유는 단지 제 편이 누군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슬슬 모습을 드러낼 생각입니다.” “어째서 말인가?” “공작님 말씀대로 지금은 편을 갈라서야 할 때이기 때문이지요.” “편?” “예, 나와 너 그리고 내편과 적.” 미투스 공작의 눈빛이 반짝였다. 동시에 카르몽 후작의 눈에서도 빛을 뿜었다. 제 3장 내가 악마가 되어주지 지평선 너머로 적들이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나 자신들은 더 많았다. 대략 저들이 세 배쯤 되었다. 그럼에도 물러날 수밖에 사실이 부끄러운 따름이다. 아이린 공작! 그 한사람한테 밀려, 거침없이 자신들의 진격에 급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에서 성기사 중 수위로 이름을 날리는 소드 마스터 라크는 이번 공격에 선두를 자청했다. 첫 전투의 패배가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성기사임을 자부하는 그의 자존심에 큰 상처로 남은 탓이다.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이름은 결코 단 한 사람에게 무시당할 만큼 가볍지 않았다. 제아무리 그가 전설이며 신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바로잡겠다고 결심하며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고개를 들자, 저 멀리 굳건한 산과 같은 모습으로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는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자신에게 위압감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저자가 아이린 공작인가?” 혹시나 싶어 던진 질문에 수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듣던 것보다 젊어 보였다. 그냥 젊은 정도가 아니라 기껏 자기또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이린 공작의 무명이나 전설과도 같은 무용담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으나, 무슨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하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저번의 패인도 능히 짐작이 갔다. 지레 겁을 먹은 총사령관이 아이린 공작이 나타났다는 이야길 듣고 머뭇거리다 당한 것이 분명했다. “훗, 별것도 아니군. 역시 소문을 믿을 것이 못 돼.” 비웃음이 더 짙어졌다. 자신 있었다. 혹시 하는 마음은 아이린 공작을 직접 본 순간, 모두 머릿속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자리에서 자심감이 가득 찼다. ‘아이린 공작의 목을 따서 돌아가 늙은이들을 모두 갈아치워 버리고 그 자리를 젊은 피로 채워야겠어. 늙은 장로들은 너무 고리타분하게 원론만 따지고 들거든. 그러니 이길 싸움도 지는 거 아니겠어? 이래서야 발전이 없지. 우리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으로 대륙을 통일하는 거다! 이것이 그 첫 발걸음으로 칭송받겠지, 크하하하하하!’ 착각이 자가당착을 지나 망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망상이 머릿속에서 소설 한편 완성해갈 무렵, 거친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정의는 우리에게 있다! 타르나토스 주신의 명예를 높이자. 모두 검을 뽑아라!” “와아!” 차차차차창! 여기저기서 검이 뽑히면서 반사광이 어지럽게 비산했다. 그때 다시 한 번 그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 돌격하라!” 그 말과 동시에 라크가 재빨리 선두로 나서며 진격을 유도했다. “우와아아아아아!” 회색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대지를 뒤덮어갔다. 지평선을 넘어 끝이 보이지 않는 병사들이 달리자,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렸다. 보병이 달리며 만들어낸 길을 따라 성질 급한 기마대가 달려 나갔다. 기마대가 착용한 플레이트 갑옷이 태양빛에 반짝거렸다. 하얀빛이 감도는 그 플레이트 갑옷은 그들의 자부심이었다. 자신들의 주신인 타르나토스가 인정한 성기사임을 증명하는 증표였기 때문이다. 랜스를 휘두르며 달리는 성기사 모습은, 마치 아이들이 잠자리에서 할머니에게 듣는 동화 속 용사 같았다. “아이린, 목을 내밀고 기다려라. 네 허명을 물리치고 내가 전설의 주인공이 되어주마. 크하하하핫!” 라크의 음침한 목소리는 대군의 이동소음에 묻혀버렸다. 한순간 아이린 공작의 두 눈이 반짝였다. “아주 동화를 쓰는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다.” 말은 아니라고 했지만 어느새 공작의 입매에 짙은 주름이 잡혔다. 비웃음이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타르나토스 대군이 눈에 들어왔다. 쿠르르르릉! 수십만 대군이 달려오는 소리는 천둥소리와도 같았다. 그것을 담담한 표정으로 주시하던 수하가 불쑥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엇을 말인가?” 수하의 시선이 다시 밀려오는 타르나토스의 대군에 향했다. “저들 말입니다.” “후후, 당연한 것을 묻는군.” “……?” 아이린이 허리에서 애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이번 기회에 단단히 겁을 줘라. 두 번 다시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알겠습니다. 전군 돌격하라!” “돌격하라!” “돌격하라!” “우아아아!” 메아리치듯 울려 퍼지고 아이린 공작의 돌격명령을 시작으로 진군이 시작되었다. 두두두두두두두! 순식간에 맞닥뜨린 두 진영. 여기저기 검광이 뿜어지며 사람들이 비명과 신음소리를 흘리며 쓰러졌다. 피가 뿜어지고 그 피를 대지를 적셨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벌어질 피의 장막 중 서막에 불과할 뿐이었다. 차차차차창! 콰과과과광! 쉴 새 없이 마법의 폭발음과 쇠붙이의 격타음이 들려왔다, 비명은 끝이 없고,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그런 식으로 벌써 열 시간이 지났음에도 격돌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퍼퍼펑! “으아악!” 아이린 공작 진영에서 쏟아진 마법 공격에 타르나토스 보병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신성력을 앞세워 마력을 거부하는 식인지라 특정한 방어수단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신성력만으로도 일반 보병은 익스퍼트급의 기사 정도 위력을 갖추고 있으니, 그리 억울한 상황도 아니었다. 문제는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선 기필코 거리를 좁혀야 하는데, 멀리서 공격하는 마법사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 사실 방어수단이 전혀 없지도 않았다. 다만, 그것은 성기사들을 위한 방어도구였다. 보병들한테까지 나눠줄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가격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보병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고, 더 이상 참지 못한 성기사들이 앞으로 나서 마법사들의 공격을 원천 봉쇄했다. 바로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린 공작이 치고 들어왔다. 츠츠츠츠층! 거침없이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아이린 공작의 검에 서슬 퍼런 오러가 형체를 드러내 자, 움찔한 성기사들이 주춤거렸다. 자신들이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검에 맺힌 거대한 마나를 느낀 탓이다. 타르나토스에서는 오러 소드를 신에게 선택받은 자만이 지닐 수 있는 신성함 힘이라고 믿었다. 검에 오러 소드를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신성력이 필요한데, 그 정도 기사라면 뒤에서 지휘하고 있는 라크와 그의 친위대 정도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당하고 있을 수만도 없었기에 몇몇 용기 있는 성기사가 앞으로 나섰다가 그만 검과 함께 몸이 양분되고 말았다. 속된 말로 아이린 공작의 검에는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린 공작의 거침없이 치고 들어가자, 아이린 공작의 정예부대 역시 공력에 나섰다. 그들의 모습은 양떼 사이에 뛰어든 늑대 무리와 같았다. 거침없는 행동은 공포 그 자체였다. 양으로 전락한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병사들. 한순간에 늑대가 된 아이린 공작의 병사들. 그들의 피도 눈물도 없이 잔혹하고 냉정한 검을 보고 누가 겁에 질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겁 없이 나선 라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앞으로 나서려했으나 나가봤자 필패라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 전설은 괜히 전설이 아니었다. 거침없이 베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는 아이린 공작을 바라보며 라크가 소리쳤다. “마, 막아랏!” 라크의 당혹스런 외침에 병사들과 성기사들이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우선적으로 그를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라크를 보호하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 병사들의 빈자리는 금세 다른 병사들로 채워졌다. 그럴수록 더욱 난폭하게 날뛰는 아이린 공작.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칠 거리고 믿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아이린 공작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가 지쳤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벌렁거렸다. 자기 잣대로만 생각하던 사람은, 치명적인 판단미스를 했을 때 전혀 다른 생각을 못하는 경향이 많다. 라크가 그랬다.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그는 지금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린 공작의 움직임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경쾌해져만 가는데, 그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츠층! 오러를 품은 검이 거침없이 병사의 목을 벴다. 방패를 들어 막는 병사는 방패와 함께 양분되었고, 검을 들어 막는 기사는 검과 함께 양분되었다. 무엇으로도 아이린 공작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었다. 인해전술? 아이린 공작에게는 그마저 통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에게만 통하는 전술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사람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사설을 붙이자면, 아이린 공작은 사람이 아니었다. 츠층! “커헉!”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른 성기사가 뒤늦게 절반으로 갈라진 머리와 함께 상체가 옆으로 꼬꾸라졌다. 털썩 그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이미 아이린 공작의 손에 네 사람의 목이 허공을 배회하고 있었다. 푸솨솨솨솨! 피분수가 터지며 사람들에게 뿜어졌다. “으히익!” “사, 살려줘!” 경악과 공포! 어찌 필설로 다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아이린 공작은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듯 뛰어다니며 군진을 이끌고 학살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랬다.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도륙이었다. 사람 하나가 수많은 송사리 떼를 몰아가듯, 공작이 움직이는 쪽에는 병사들이 도망치느라 바빴다. 그렇듯 공작을 피해 도망치는 병사들은 여지없이 공작 수하들 손에 목이 잘렸다. 도망치는 자는 이미 적이 아니다. 등을 보인 순간, 반쯤 죽은 목숨이었다, 스각! 두툼한 고기가 베어지는 소리! 공작 수하들은 무신경한 표정으로 살육의 대상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써걱! 대다수 사람들이 소수를 공격하는 것을 학살아라고 하는 아이기는 들어봤지만, 소수가 몇 배가 되는 대군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학살을 자행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은 학살이 분명했다. 푸른빛이 허공을 휘저을 때마다 어김없이 한두 생명이 빛을 잃었다. 심지어 열댓 명까지도 쓰러져갔다. 그들에게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이 어째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지, 왜 몸이 움직이지 않는지 모르고 죽는다는 것. 가능할 것 같지 않지만 사실이었다. 몸통이 잘렸으니 당연히 움직일 수 없음에도 자신이 어떻게 죽는 지도 모르고 죽어갔다. 죽은지도 모르고 죽어간 것이다. 그렇게 수백에 달하는 타르타노스 병사들이 모두 동일한 사람, 동일한 벙법, 동일한 표정으로 죽어갔다. 저자는 마신이다! 모두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그림이었다. 절대적인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마음으로 자신들의 신인 타르나토스 신을 부르기 시작했다. ‘오! 신이시여!’ ‘주신이시여!’ 신앙은 전염성이 강하다. 하나가 넷이 되고 열여섯이 되는 식으로 그들은 입을 모아 타르나토스의 이름을 외쳤다. “타르나토스시여!” “주신이시여! 저 악독한 마신을 누를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주신 타르나토스시여!”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신앙의 힘은 모두의 마음을 움직였고, 공포에 흔들리던 마음은 평온을 되찾아갔다. 그것을 눈치껏 살피던 라크. 그가 목청껏 외쳤다. “우리에겐 타르나토스 신께서 함께 하신다. 우리는 죽는 것이 아니다. 그분에게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모두 나가라! 우리의 신앙의 힘을 저 악마에게 보여주자!” “우와아아아!” 광신도적인 반응을 보이며 타르나토스 병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들었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유슬라니안의 병사들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적처럼 무서운 상대는 없다. 자신이 죽으면 다음 신도가 자신의 복수를 해줄 것이라며 달려드는 적은 이미 적이 아니었다. 특히, 이렇듯 머리부터 들이미는 육탄 돌격과 함께 다시 쪽수 싸움이었다. 그러면 수가 적은 유슬라니안이 불리했다. 그래서 공포감을 심어주어 도망치게 한 다음 상대한 것인데, 상대방이 공포심을 망각했다면 이처럼 피곤한 것이 없다. 싸움은 끝이 없었다. 제아무리 일당백이라 할지라도 이미 병사들은 지쳐 있었다. 사기가 오른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잠시 검의 손속을 늦추며 냉철하게 주변을 돌아보던 아이린 공작이 외쳤다. “전군 후퇴하라!” “후퇴하라!” “우와아아!” 아이린 공작의 한마디에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유슬라니안 병사들. 그들은 안전한 퇴로를 따라 신속하게 빠져나갔다. 적진에 침투하기에 앞서 빠져나갈 퇴로부터 만들어놓은 상태였던 것. 하지만 지친 병사들까지 모두 무사할 수는 없었다. 아이린 공작으로서도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의 성과를 만들어내면 되었다. 뒤쳐서 짖겨죽는 병사들한테는 미안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병사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검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적을 견제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퇴각하는 유슬라니안 병사들. 타르나토스 병사들은 그들을 보며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앗!” “우리가 이겼다!” 병사들의 외침이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지휘관으로 나온 라크의 표정은 잔뜩 굳어져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승자인지 패자인지. 그가 침울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한마디 했다. “진지로 돌아간다.” 곧 병사들은 진지가 구축되어 있는 성으로 돌아왔다. 전투에서 승리한 자리에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는 평소의 방식과 달랐지만, 아무도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모두 이겼다고 외쳤지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는 자신들이 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린 공작은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이 든 것은 아니었다. “대승을 축하드립니다.” 미투스 공작의 목소리에 살며시 눈을 뜬 그는 전방을 주시했다. “무엇하러 이곳까지 왔는가?” “하하, 그렇게 딱딱하게 대하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우선 오늘의 대승을 축하드립니다.” 아이린 공작이 술을 한 입에 털어 넣고 빈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만에 가까운 병사가 죽었네. 대승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적들은 삼십만이 죽었습니다.” 미투스 공작이 빙글거리며 아이린 공작 맞은편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그리고 하녀를 불렀다. “여기 술잔을 하나 가져와라!” “예.” 잠시 후, 하녀로부터 술잔을 받아든 미투스는 잔을 가득 채워 아이린 공작처럼 단숨에 들이켰다. “쿨럭!” 목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열기에 깜짝 놀라 사례가 걸리고 만 것이다. 정신 없이 기침을 하자 머리까지 띵했다. “큭큭, 술이 아깝군.” “케엑! 케익!” 어이린 공작은 다시 술을 따랐다. 미쿠스 공작은 술병을 낚아채듯 알코올 도수를 확인했다. 70퍼센트였다. 미투스 공작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아니, 이게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술이 맞습니까? 콜록, 콜록.” “글쎄.” 쪼르륵 아이린 공작은 다시금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온 이유나 말하게.” 그러나 미투스 공작은 아직 말할 생각이 없는지 계속 핀잔을 늘어놓았다. “이런 건 술이 아니라 독입니다. 술은 감음하며 미시고 기분 좋게 취하는 거란 말입니다. 아 갑자기 어제 마신 유즈몽 36년산이 그리워지는군.” 미투스 공작이 투덜거리는 사이에도 아이린 공작은 벌써 두 잔을 더 들이 켰다. 벌써 화끈 달아올라 시뻘게진 얼굴로 미투스 공작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렇게 마시고도 괜찮습니까?” “그냥.” “정말입니까?” 미투스 공작의 집요한 질문에 가벼운 한숨과 함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취하질 않는군. 오히려 정신이 말짱해져.” 그 한마디에 아이린 공작의 모든 애환이 담겨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갑자기 그 사내가 생각나는군.” “누구 말입니까?” “있네. 날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사내가.” “허 인간 같지 않은 사람을 더욱 인간답지 않게 만들어준 사람이라고요? 그런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큭, 흰소리는...... 자네답지 않군.” “그가 누굽니까?” 미투스가 계속 답변을 촉구하자 아이린 공작은 마지못한 듯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자세까지 바로하고 말하는 것을 보니, 그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실은 나도 잘 모르겠네. 다시 한 번 붙어보고 싶어. 그럼 지금의 이 답답한 속이 시원하게 뻥 뚫어질 것 같은데......” “이기셨습니까? 지셨습니까?” “물론!” “물론?” “......이겼네.” 그러나 왠지 씁쓸해 보였다. “역시! 공작께서 지실 이유가 없지요, 하하...... 그런데 어째 이긴 사람의 표정이 아니군요. 제가 잘못 본 건가요?” “아니, 아마도 제대로 본 것 같네.” 아이린 공작의 뜻밖의 말에 미투스 공작은 머리를 긁적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한참 후, 아이린 공작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처음엔 신경도 쓰지 않았네, 그런 자야 널렸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 아이린 공작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자가 불쑥 내 머릿속에 떠올랐네. 떠올라 마구 뛰어다니기 시작했지.” “머릿속에서 마구 뛰어다녔다고요?” 미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 아이린 공작이 말을 쏟아냈다. 둑 터진 봇물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그자의 움직임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네. 그자의 움직임은 내가 상상한 적도 없는 형식이었어. 아니, 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돌발적인 행위? 답을 내리기 힘들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게 다 사실일지도 모르지. 마스터도 아니고 기껏 마스터급이 나와 맞붙어 맞대응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네.” “허!” “그 움직임은 나한테 전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 같았어. 마치 교육을 위한 것처럼 나한테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듯싶었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아니, 현실도 그랬네. 순간 깨달았지. 그자의 실력은, 뭔가의 가로막혀 본신의 힘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 대단했네. 그 정도 깨달음을 지니고 있는 존재가 마스터도 아니고 마스터 급이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거든. 여하튼 그게 도움이 된 것 같네. 그자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나와 겨뤄준 것이, 그것이 나한테 생사지경의 경지를 보여주었거든. 다만 마나가 유통되지 않았을 뿐, 그 덕에 나는 그랜드 마스터급에 올라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목전에 두게 되었지.” “허, 그 말뜻은 그자의 능력이 그랜드 마스터라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들리는가?” 끄덕 미투스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아이린 공작은 다시 술잔을 들었다. 그러나 조금 전 그 술잔이 막잔이었던 모양이다. 술병이 비어 있었다. 그것을 본 미투스 공작이 한마디 했다. “그만 드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런가?” “그렇습니다.” 깊게 한숨을 내쉬는 아이린 공작. 창밖을 내다보는 그의 눈빛이 왠지 서글퍼 보였다. 그가 말했다. “아마도......” “네?” “자네의 말이 맞는 것 같군.” 순간 미투스 공작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자가 살아있군요? 그렇다면 혹시 그자의 행방도 알고 계십니까?” “글쎄, 그자를 처음 본 곳은 자네의 부탁으로 블루 드래곤을 잡으러 가던 길이었네. 그자를 죽이려고 했으나, 블루 드래곤 레어 근처에서 놓쳤지. 하지만 죽었을 것 같네.” “휴...... 다행이군요. 그자가 적으로 나타난다면 그보다 심각한 일이 없을 테니 말입니다.” 끄덕 미투스 공작의 말에 아이린 공작이 버릇처럼 술잔을 쓰다듬으며 수긍을 표시했다. “그자가 살아 있다면 지금쯤 분명히 본신의 힘을 찾았을 수도 있겠지.” “그거 참 끔찍할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군요.” 얼굴은 웃고 있지만,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렀다. 아이린 공작급, 아니 그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는 사내가 적의를 품고 있다니! 사람 한명이 얼마나 무섭겠느냐마는, 어디 아이린 공작을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혼자서도 능히 군대를 소화할 수 있는 위인을 어찌 사람이라 칭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상대 쪽에 아이린 공작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생각만으로 끔찍했다. 아이린 공작이 넌지시 눈길을 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제 본론을 이야기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그제야 미투스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문을 열었다. “헤르마틴과 손을 잡으려 합니다.” 아이린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게 결론인가?” “그렇습니다.” “위험하지 않을까?” “너무 늦게 손을 써서 위협당하는 것보다는 좋은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그들은 분명 15성을 요구하겠군.” 미투스 공작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상황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듯하면서도 모르는 것이 없는 아이린 공작의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러겠지요.” “그 이상을 요구한다면?” “어느 단계까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가만히 있다가는 그 이상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헤르마틴 전력은 누가 봐도 최강대국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 두각을 드러내는 헤르마틴의 기사들은 위험수위를 넘어섰지요. 우리 편이 되어준다면 누구와 만나도 두렵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 정돈가?” “그렇습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어쩌면 좋겠는가?” 아이린 공작의 나직한 목소리에 미투스 공작은 말없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밀봉된 봉투였다. 무엇인가? 눈으로 묻던 아이린 공작은 조심스레 그것을 받아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저희 작전입니다. 가능하시면 일고 외운 후 처리해주십시오.” “그러지.”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는 없네. 그럼, 이만 돌아가게. 자네가 온 이유는 이 안에 있는 듯하니. 피로가 몰려오는군.” “편히 쉬십시오.” 미투스 공작은 고개를 가볍게 숙인 뒤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아이린 공작의 목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아참,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네.” “무엇이든지요.” “자네의 식견으로 볼 때 이 전쟁이 언제 끝날 것 같은가?” “......” 잠시 생각을 정리한 미투스 공작이 천천히 대답했다. “사람들이 악마가 되었을 때쯤 끝나겠지요.” 사람들이 악마가 되었을 때! 그 말뜻은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오랜 전쟁에 인성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간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적아의 개념은 모호해지고 오로지 공포 때문에 죽일 뿐 명분마저 망각될 때를 일컫는 것 같기도 했다. “인간들이 악마가 되었을 때라......” 끄덕 “그래, 그럼 내가 악마가 되어주지.” 가벼운 혼잣말이었다. 그러나 내용은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미투스 공작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을 흘리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 잠시 뒤돌아보았으나, 아이린 공작은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다. 아이린 공작의 방에서 불빛이 꺼진 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흘러 어둠조차 잠이 들 정도로 깊은 새벽이었다. 제 4장 친구의 행방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이름의 광기에 미쳐가는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때부터였다. 지금의 전쟁을 제2차 제국대전이라 부르게 된 것은 말이다. 그리고 그 즈음, 헤르마틴성 접대실 하나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그게 말이나 될 성싶으오?” 두툼하다 못해 출렁이기까지 하는 턱살을 흔들며 소리치는 사람은 유슬라니안의 차이레 백작이었다. 그를 보며 빼빼마른 헤르마틴의 모이렌 후작이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큭큭, 싫으면 돌아가시오. 우리는 댁들과 동맹하는 것보다 직접 공략해 땅 따먹는 것이 더욱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외다.” “마, 말도 안 되오!” 하지만 모이렌 후작은 말이 된다는 듯 빙긋 웃으며 차이렌 백작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말이 안 되긴 개뿔이나...... 흥!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번거롭게 당신들과 이렇게 입씨름하는 시간도 아깝지. 이 시간에 전력을 재정비하는 게 이득이니 말이야.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소.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겠소.” 끼이익 의자 끌리는 소리와 함께 모이렌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다급해진 것은 차이레 백작이었다. 헤르마틴 따위를 상대로 저자세로 나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초지일관 고자세로 나간 것이 실책이었다. 뒤늦게 그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막아서기엔 너무 늦은 것이다. 목마른 것은 헤르마틴이 아니라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탓에 생긴 일이었다. 그래서 일을 그르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동맹을 반드시 성사해야 했다. 성사시키지 못한 채 돌아가면 그 즉시 목이 떨어질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어떻게든 상대방을 다시 의자에 앉히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다시 앉힌단 말인가. 다급해진 차이레 백작이 앞뒤 생각 없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린 점 사죄드리겠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려던 모이렌 후작이 멈칫했다. 그가 물었다. “어떻게 말이오?” 냉랭한 목소리. 그러나 어떻게든 다시 앉혀야만 했다. “무조건 사죄드리겠습니다.” 순간 후작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이 말을 기다렸다. 억지로 자리에 앉는 듯한 모양새로 모리렌 후작은 잔뜩 거드름을 피웠다. 겉으로 그 미소를 드러낼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어떻게 잡은 승기란 말인가. 본 게임은 지금부터였다. 포커페이스가 필요한 시점. “그럼 다시 이야기해봅시다.” “예......” 차이레 백작은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손수건이 금방 축축하게 젖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우리 쪽 조건을 말하자면......” 다시금 똑같은 내용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차이레 백작은 어떻게든 반론을 제기해 조금이라도 손해를 막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이미 승기는 헤르마틴의 모이렌 후작에게 넘어 간 지 오래였다. 결국,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고맙다는 소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유슬라니안의 손을 들어주기로 결정했소.” 황제의 말에 군신들이 술렁거렸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죠셉이 앞으로 나서며 한마디 하자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기는 했지만 완전히 진화된 것은 아니었다. 불만 가득한 얼굴로 여전히 수군거리는 사람들. 그때, 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백발이 성성한 늙은 귀족이었다. “폐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셔야 할 줄로 아옵니다.” 나이 지긋한 귀족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건의하자 분위기는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가기에 힘입은 듯 노인은 언성을 높였다. “과거에 우리 헤르마틴이 유슬라니안으로부터 받은 온갖 수모와 무시의 눈길을 생각하셔야 하옵니다. 아직 그들의 힘에 못 이겨 불평등조약을 체결한 잉크가 미처 마르지도 않았사옵니다. 그런데 어찌 그들의 손을 들어주신다 하오이까?” 가래 끓는 음성이지만 논리가 있고 힘이 있었다. 특히, 불평등조약을 발음하는 순간엔 정말 노한 듯 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그 진심어린 모습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피를 토하듯 한마디씩 했다. 늙은 귀족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그렇습니다. 뭐가 부족해서 우리 헤르마틴이 유슬라니안 따위한테 손을 들어준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밀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유슬라니안의 횡포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까? 그런데 그들 부탁을 들어준다니요. 그것도 고작 과거에 우리가 빼앗긴 15성에 10성을 더 얹어 받는 정도라니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목에 핏대를 세울 만도 했다. 빼앗긴 15성을 돌려받는 것은 당연하고,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지고 있는 전쟁에 힘을 보태주는 데, 겨우 10성을 받기로 했다니! 아무리 기를 쓰고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수긍할 수가 없었다. 분통이 터졌다. 50성을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이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거기엔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 그래서 억장이 무너지고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지만, 지금의 달아오른 분위기부터 가라앉혀야 했다. “여러분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도 땅을 빼앗는 것만이 대수일까요? 그 후에 생길 일에 대한 대책은 생각해보셨습니까?” 죠셉의 말에 다시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웅성거리는 대소신료들. 다소 수그러드는 분위기였다. 뭔가 이유가 있음을 깨달은 탓이다. 그러나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었다. 그들이 기세를 누그러뜨린 것은 전후사정을 들어보고 판단하겠다는 뜻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죠셉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아직 숨겨야 할 사안이 많았다. 그것을 ㅁ두 숨기고, 이를 테면 녹용 빼고 웅담 빼고 저들을 설득해야 할 판이었다. 약발이 설지 심히 의심스럽고 골치가 지끈거렸다. 그때, 뇌리를 그치는 것이 있었다. 옭거니! 죠셉은 타는 목마름을 눈앞의 포도주로 진정시킨 후,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평화시기는 유슬라니안과 타르나토스 신성제국 그리고 우리 헤르마틴 제국...... 이렇게 삼대 강국의 힘에 의해 유지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주변의 약소국들 역시 이 균등한 힘의 분배로 강대국의 침입을 받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거지요.”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왜 상관이 없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유슬라니안을 밀어제치고 그 힘을 흡수해버린다 해도 타르나토스 신성제국과 그 힘을 양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 말을 잘랐다. “그건 좋은 일 아닙니까? 결과적으로 우리늬 힘이 늘어나는 것이니까?” “동의하오!” “옳소!” 다들 한마디씩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죠셉이 다시 말을 시작하자 조용해졌다. “정말 그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럼 아니란 말이오?” “단기적으로 볼 때는 좋게 보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결코 좋다고만 할 수가 없지요. 만일 여러분의 의견대로 될 경우, 두 강대국으로 집중된 힘에 의해 대륙의 질서는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이해할 수 없어도 하셔야 합니다. 사실이니까요. 세 강국이 힘을 고루 분배한 상태는, 상대를 견제하기 쉽고 아슬아슬하지만 그 자체로 평화유지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둘이 될 경우 한 순간에 그 균형은 무너지고, 평화 역시 붕괴되고 말 겁니다. 둘의 균형은 어느 한쪽이 조금만 힘이 약해져도 금세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강한 쪽으로 흡수되게 마련이지요. 그야말로 혼란기로 치닫게 되는 겁니다.” 끄덕끄덕 죠셉은 잠시 말을 멈추고 사람들의 시선을 살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리 헤르마틴이 그 강국이 될 수도 있겠지만, 타르나토스의 광신도들이 그 강국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확률을 알 수 없는 너무 위험한 도박입니다. 운이 좋아 우리가 힘을 쥔다면 모르겠지만, 저 광신도들이 힘을 쥔 후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리된다면 우리는 온갖 탄압에 시달리게 될 것이며 매일매일 광신도가 되기를 종용받게 될 겁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마법사들은 모두 처형당하게 될 겁니다. 신이 주신 신성력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귀를 모신다는 누명을 뒤집어쓴 채 마녀사냥이 재현될지도 모릅니다.” 몇몇 귀족들이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마법사 같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표정들. 그만큼 설득력은 충분했다. 과거에 일어날 일이 다시 터지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죠셉은 쐐기를 박듯 덧붙였다. “여기 계신 분 중에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 위험부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문제는 단순하게 거기서만 끝날 것 인가입니다. 특히......” “특히?” 긴장한 사람들이 죠셉의 말을 따라했다.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것인데, 순간 죠셉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자기 페이스에 완전히 말려들었다고 생각한 탓이다. “특히 그렇게 되면 헤르마티아 대륙에 있는 수많은 왕국들은 혼란기에 돌입하게 되어 이곳저곳에서 생존을 위한 전쟁님 발발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그 피해가 우리한테는 오지 않을 것 같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특산품이나 기타 여러 물품들의 공급이 끊어지고 우리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제가 무너지는 계기가 될 겁니다. 최초의 피해자는 작은 성의 성주가 될 것이고, 하나둘 그 피해의 부피가 커져 경국 잔체가 도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다. 극단으로 치닫는 애들조차 꺼내지 않을, 어설프기 짝이 없는 언변. 하나하나 뜯어보면 구닥다리 코미디로도 쓸 수 없는 얄팍한 이야기들이다. 얕은 지식을 적당히 얼버무려 뚝딱 만든, 조금만 식견이 있어도 금세 눈살을 찌푸렸을 허황된 그 이야기가, 얼토당토않은 그 언론플레이에 효과적으로 먹히고 있었다. 의외성 때문이다. 그렇다. 평소 쉽게 무시해버렸을 이야기도 누가 어떤 생황에서 말을 하느냐에 따라 무게중심이 바뀌는 실수를 곧잘 범한다. 이번 케이스도 그랬다. 죠셉이 누군가? 막강 권력을 한손에 거머쥐고 헤르마틴을 흔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권력자다. 그럼 죠셉이 허튼소리를 할까? 그럴 리 없다고 믿었다. 허튼소리조차 진실로 만드는 힘! 그것이 권력이다. 죠셉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누구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도 알았다. 그 뻔한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는 머릿속으로 설득력있는 또 다른 시나리오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아무리 바보라 해도 이처럼 뻔한 거짓말에 속을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 반응들은 뭐란 말인가. ‘허......!’ 바삐 또 다른 시나리오를 물색하던 것이 무색하게 단번에 속아 넘어가주다니! 그들의 단순함에 죠셉은 안도감을 느끼는 한편, 씁쓸함과 허탈함을 동시에 맛보았다. 믿어주기를 바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뻔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저런 바보들이 무슨 나라는 지키고, 민생을 위한다는 것인지 답답할 노릇이었다. 물론 이 와중에도 이미 눈치 채고 있거나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그들이 누군지도 알고 있다. 초창기부터 황제를 보좌한 일등공신과 몇몇 중신들이다. 그들이 말문을 걸어 잠그고 이 웃긴 이야기에 토를 달지 않은 채 들어주기만 하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었을까? 가슴 한편에서 누구든 딴죽을 걸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일었다. 그때, 분위기가 충분히 가라앉자 황제가 말문을 열었다. “선발대로 오만을 보내고 후발대로 십만을 추가하여 보내기로 했소. 하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좋다는 서약을 하였으니, 우리 측의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오.” 헤르마틴 황제 케산베르트 헤르마틴 2세의 발언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지원군이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면 헤르마틴의 실질적 피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말에 많은 귀족들이 지금까지의 불편한 얼굴을 지우고 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경청했다. “선발대를 뽑아놓으셨습니까?” “이미 생각해놓았습니다. 준비도 마무리단계고요.” 죠셉이 말을 받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던 귀족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누구를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니콜라스 총사령관을 보낼 생각이오.” 순간, 분위기가 경직되었다. 니콜라스라면 요즘 승승장구하는 신흥 귀족이 아닌가. 특히 검술과 지휘능력이 탁월해 자국의 자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를 보낸다니. 다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들을 좌우로 흔들었다. 용병대장인 그를 총사령관에 앉히겠다고 선언했을 때 반발하던 모습과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평소엔 미운오리 새끼 같은 존재지만, 이렇듯 전운이 흐를 땐 니콜라스만큼 듬직한 이도 드물었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표정이 니콜라스에게서 모아졌다. 니콜라스는 덤덤한 얼굴이었다. 느긋한 표정으로 쿨을 마시며 옆에 앉아있는 은발의 사내와 이야길 나누고 있는 니콜라스. 은발의 사내가 눈에 거슬리긴 했으나, 황제와 절친한 사이라 하니 크게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문제는 니콜라스가 은발의 사내에게 지나치게 공손하다는 것.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냉소적인 모습으로 일관하던 철혈 사내가 은발의 사내 앞에서는 유독 밝고 더러 미소까지 보이는 것이다 대체 저 은발의 사내는 누군가? 그 의문을 떠올릴 때 한 젊은 귀족이 일어섰다. 그가 말했다. “그럼 이 본국은 누가 지킨단 말입니까?” “마침 이곳에 배석하신 로런 부사령관이 남을 것이오.” 웅성거림이 커졌다. 수긍하는 사람과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이 교차하며 의견이 둘로 양분되는 듯했다. 그때 또 다른 귀족이 나섰다. “사실 이 결정을 전적으로 납득할 수는 없지만, 로런 부사령관이라면 믿음이 가오.” 어딜 가나 첫 발언이 중요한 법이다. 사람들 마을을 성동하거나 반대로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적으로 납득할 수는 없지만’ 이라는 수식어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부터 슬쩍 긁어준 후, 긍정적인 말을 꺼낸 것이 주효했다. 효과는 탁월했다. 이견을 앞서서 차단해버리는 형식의 화술이라, 누구든 쉽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로런 부사령관으로서도 찬사어린 말인지라 불만이 없었다. 사실 그는 재신이 니콜라스 총사령관과 비교가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고무된 상태였다. 니콜라스 총사령관을 존경해 그의 오른팔이 되기만 바라고 있는데, 동등 비교라니! 입이 절로 벌어졌다. “니콜라스 총사령관님을 대신하여, 타국의 위협으로부터 황제폐하와 여기계신 대소신료들과 백성들의 안전을 지키겠습니다.” 그의 믿음직스런 발언에 다들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바라보던 황제가 웃으며 니콜라스를 불렀다. “니콜라스 경!” “예, 폐하.” “잘 부탁드리겠소.” “심려치 마옵소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물론 그래야지요.” 젊은 황제의 푸근한 미소에 니콜라스의 허리가 더욱 깊숙이 숙여졌다. 바로 그때였다. 은발의 사내가 불쑥 물었다. “전쟁이라고?” “그렇습니다. 블루님께서도 관심이 있으십니까?” 죠셉의 말에 그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다시 물었다. “적은 어떤가? 강한가?” “아마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대륙 최강국 중 하나이니, 약하진 않을 겁니다.” “그래?” 입맛을 다시며 고민하는 블루. 귀족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황제를 눈앞에 두고도 저렇듯 안하무인이라니! 그러나 황제는 웃으며 그를 예의주시할 뿐이었다. 뭔가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귀족들은, 블루의 무례한 행동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면서도 뭐라 말하지 못했다. 황제가 그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하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흥미든 뭐든 황제가 좋은 감정을 자기고 있는 자한테 적개심을 드러낼 이유는 없었다. 적어도 남보다 먼저 나서서 자충수를 줄 필요는 없었다. 분명 누군가 나설 것이고, 그가 나서면 분위기는 만들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때 말해도 늦지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 불만을 꾹 눌러 삭였다. 혹여 아무도 나서지 않는 다면 저 사내에게는 분명 뭔가가 있다는 말이니, 그때는 오히려 저 사내한테 좋은 인산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뭔가 있어 보인다는 것! 아니, 뭔가 있다는 것! 거기다 나쁜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사실 떠도는 정보 중에 저 은발의 사내와 관련된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저 사내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였다. 그것은 그가 지금 자신들과 동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입증되고도 남았다. 아무 능력도 없이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확인된 정보 중에는 니콜라스가 저자 앞아서 무릎을 꿇었다는 얘기도 있었으니...... 그때 황제가 말문을 열었다. “블루 경도 혹시 생각이 있소?” “흠, 흥미가 동하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별로일 것 같군요.” 뚱한 불루의 표정에, 죠셉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아니 왜요? 심심해 보이시는데 나들이라도 잠깐 나갔다 오시지요?” 순간, 귀족들은 깜짝 놀랐다. 죠셉의 미소 속에서, 그 정도의 값어치를 느낀 것이다. 늘 변함없이 사무적인 모습만 보이는 죠셉이 웃었다. 이 중 누가 죠셉의 미소를 본 적이 있던가? 혹시 착시 현상이 아닐까? 눈을 비비는 사람까지 있었다. 헤르마틴을 되찾은 일등공신이며, 권력의 핵심에 위치한 죠셉의 행동 하나하나는 귀족들의 표정과 생각, 나아가 행동의 지침까지 바꿔놓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데 미소라니! 그것도 신뢰가 가득 담긴 미소였다. 그 즉시 다들 블루에 대한 적개심을 폐기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지만, 저자의 무위가 니콜라스보다 높다는 소문도 있지 않던가. 믿을 수 없지만, 이 지경이 되고 보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적개심을 버리자, 오만하게만 보이던 블루의 행동이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장수의 그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블루가 말했다. “그냥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도 있고, 니콜라스 총사령관이 간다면 굳이 제가 갈 필요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조금 전이라면 이 말을 듣는 즉시 오만방자하다고 말이 빗발쳤겠지만, 지금은 조금 전과 상황이 많이 달랐다. 실제로 용맹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러고 보니 죠셉의 어휘가 좀 이상했다. 나들이라고? 전장 한복판으로 나들이! 모두의 머릿속에서 의구심이 일어서는 찰나, 황제가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입니까? 같이 알면 안 되겠습니까?” 황제의 물음에 블루가 말했다. “흠...... 뭐, 굳이 숨길 이유도 없지만 함부로 따들 단계의 것이 아니라서요.” “그럼 나중에는 꼭 알려주시는 겁니다.” “그러지요.” 블루가 정중히 대답하자 황제는 뿌듯한 얼굴로 주변을 졸아보았다. 마치 많은 것을 얻은 듯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 그것을 본 신하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못 볼것을 보았다는 얼굴들이다. 그때, 하단에 앉아 있던 한 사내가 혼잣말처럼 낮게 중얼거렸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들을 수 있을 만큼 컸다. “유슬라니안 아이린 공작도 나오겠군.” 베르니스였다. 순간, 딴청을 부리다 멈칫한 블루의 고개가 천천히 그에게 돌아갔다. 그 사이,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에 형용할 수 없는 갖가지 표정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시선이 베르니스에게 고정됨과 동시에 하나로 귀결되었다. 터질 듯한 미소! 그리고 번쩍이는 눈빛! 무미건조한 표정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뭐, 아이린?” 그 목소리와 함께 회의실 안은 터질 듯한 열기로 가득 찼다. 휘이이!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폭풍? 그러나 어디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들 두리번거렸다. 열린 창문은 없었다, 귀족들이 당혹스런 얼굴로 웅성거릴 때, 기사와 마나를 볼 줄 하는 마법사들은 블루는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람이 아니라, 마나의 폭풍이었다. 그것도 폭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려지고 있는 질서정연한 기의 흐름이었다. 인간이 이 정도로 마나를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지금은 그나마 마나의 흐름이 정연한 탓에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폭주하는 순간, 회의실은 쑥대밭이 되고 말 게 불을 보듯 뻔했다. 휘이이이잉! 점점 거세지는 마나의 폭풍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뒤늦게 바람의 정체가 뭔지 깨달은 황제가 다급히 블루를 불렀다. “블루 경!” 동시에 폭풍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후, 힘겹게 열린 블루의 말문. “아이린이라고?” 죠셉이 다소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이린 공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공작? 그건 모르겠다. 단지 그 이름이 아이린이라는 것만 알뿐. 그가 어떤 자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블루의 말투가 변했다. 높임말에서 갑자기 하대로 바뀐 것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 하지만 어찌나 자연스러웠는지 아무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죠셉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린 공작은 유슬라니안의 귀족으로, 검 한 자루로 일가를 이룬 사람입니다. 장중한 검식으로 유명한 그의 검술은 현존하는 검객 중 최고라고 칭송받고 있습니다.” “최고라고?” “예.” “최고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지?” “이번 전쟁에서 드러난 무위는 최소 상급 소드 마스터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숨기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고급 소드 마스터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믿을 수 없소!” “말도 안 되오!” 여기저기서 경악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충분히 대경할 만도 했다. 고급 소드 마스터라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죠셉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더구나 예전에 비해 더 젊어졌다고 하는데, 이는 과거 헤르마티아 대륙을 만드신 헤르마틴 대제의 전설을 떠올리게 하지요. 대제께서 남기신 말 중에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면 젊어진다는 알쏭달쏭한 말이 있는데, 아마도 아이린 공작은 그 경지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젊어졌다는 말은......” 힐끗 블루의 시선이 니콜라스에게로 향했다. 니콜라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골탈태를 경험했다는 말이군. 그렇다면 고급 소드 마스터가 현경의 수준인가?” 블루의 나지막한 한마디. 그러나 그 뜻을 헤아린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알아들은 이들은 오히려 안색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지금 니콜라스 경지가 상급 소드 마스터. 그것도 환골탈태 이후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얻어낸 것일 뿐, 그 전에는 중급에도 미치지 못했다. 환골탈태를 하고도 니콜라스가 높은 경지에 오르지 못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예컨대, 블루가 죽어가는 니콜라스에게 정화된 마나를 불어넣어 인위적으로 환골탈태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보니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마나가 들었음에도 그의 몸이 충분히 그 마나를 소화하지 못했다. 그렇게 여차저차해서 몸은 완성이 되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가는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다. 스스로 깨우쳐 형성된 몸이 아닌 탓이다. 그것을 깨달은 블루가 자신의 깨달음을 조금씩 니콜라스에게 전수했다. 몸이 완성되었다 하나, 모든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다면 불완전한 완성일 뿐이다. 문제는 빠른 시간 안에 완성된 몸에 걸맞은 힘을 얻지 못하면, 언제 몸이 붕괴될지 알 수 없다는 것. 한마디로 몸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들어있는 셈이었다. 그 힘을 얻기 위해선 깨달음이 필요했다. 심검의 묘리를 보여줌으로써 깨달음의 경지를 넓혀준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깨달음이란 억지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억지로 가르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결국,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니콜라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기 몸이니 더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쉬지 않고 수련을 거듭했고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 지금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사실 억지를 좀 부린다면 지금이라도 고급 소드 마스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힘을 사용하는 순간 마나와 몸의 균형이 어긋나면서 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아무튼 니콜라스는 이런 숱한 기연으로 인해, 아이린 공작과 맞붙어도 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린 공작이 더 강하다고?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자기 손으로 복수하고 싶었다. 자신의 수하와 동료들 그리고 자신의 오른팔을 자른 그 악귀를 찾아 놈의 오른팔을 잘라버릴 생각이었다. 사실 그는 유슬라니안의 동맹을 누구보다 원치 않았다. 그러나 동맹은 이루어졌다. 동맹이 체결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는 참을 수 없는 살기를 안으로 갈무리하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대업을 위해 자신의 복수심을 가슴 깊이 잠시 묻어두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무슨 수로도 막을 수 없는 블루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대형사고가 예고되는 순간이었다. “재미있겠군.” 순간, 블루의 동료들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 가슴이 뜨끔거렸다. 죠셉마저도 뭔가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나도 가지, 유슬라니안.” 왠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죠셉이 물었다. “굳이 가시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무슨 일 있습니까?” “큭큭, 꼭 만나볼 친구가 있는데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해 찾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하늘이 도와주지 뭔가. 소식을 알았으니 문안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 아니겠어? 겸사겸사 한번 찾아가볼 생각이네.” 블루가 환하게 웃었다. 제 5장 최악의 현실 우연이었다. 그를 보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을 뿐이었다. “지원군이다! 지원군이 도착했다!” “와아아아아!” 누군가의 외침에 슬쩍 뒤돌아보았을 뿐이다. 멀리서 달려오는 수많은 인마들이 보였다. 너무 멀어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흙먼지로 대부분이 가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시선을 돌려 진격을 외치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한 감각이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 흠칫! 다시 뒤돌아 그 감각을 좇았다. 친숙한 감각이다. 동시에 그의 눈을 사로잡는 무엇이 있었다. ‘놈이다!’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적셨다. 그의 군대보다 수십 배가 넘는 대군을 마주하고도,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도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이다. 꿈에서도 그리던 인물이었다. 늘 그의 머릿속에서 뛰어다니며 생명을 위협하던 그가 오고 있었다. 생생한 그의 얼굴. 그도 자신을 알아본 듯 웃고 있었다. 보통사람한테는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인간의 감각과 경지를 초월했다. 그의 얼굴에서부터 발끝까지...... 심시에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절대로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있을 수 없는, 그러나 눈앞에 닥친 최악의 현실이었다. 전날. 유슬라니안 진영에 타르나토스군의 야습이 있었다. 하지만...... 서걱! 기습을 노린 타르나토스 병사의 목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르더니 ‘텅!’하는 소리와 함께 떼구루루 굴러 구석에 처박혔다. 갑작스레 목을 잃는 몸은 자신이 죽었음을 깨닫지 못한 듯 한동안 서 있다 목 위로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피가 뿜어지는 압력 탓이었을까? 몸을 질질 끌려 사지가 볼썽사납게 버둥거렸다.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닫고 주변을 돌아보았으나, 조용하지만 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뭐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어떤 방법으로 당한 것 같았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뛰었다. 보이는 적보다 보이지 않는 적이 더 무서운 법이다. 어느새 사냥하러 온 자신들이 사냥을 당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순간, 타르나토스 병사들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실패! 그 즉시 몸을 돌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유슬라니안 기사들이 갑옷을 착용한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마치 습격해올 것을 알고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대체 어떻게......? 그 의문을 떠올릴 시간조차 아까웠다. 무슨 수를 쓰든 빠져나가야 했다. 빠져나가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간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상부에 알려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지금 도망치면 추격해올 것이다. 얼마 못 가 붙잡힐 테고, 그럼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야아아아!” 한 성기사의 피 끓는 외침과 육탄돌격에 정신을 차렸음인가. 덩달아 돌격했다. 퇴로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앞을 뚫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지워버렸다. 검과 검이, 창과 방패가 맞부딪히며 생기는 불꽃과 소음...... 그 리듬감에 몸을 맡기고 마음을 실었을 뿐이다. 스스로 만든 최면 속에서 그들은 자신이 죽었는지도 모르고 죽어갔으며 누구를 죽이는지도 모르고 검을 휘둘렀다. 모르긴 몰라도 아군의 검에 등이 찔려죽은 병사가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그 와중에 몇몇은 도망을 생각했으나, 퇴로는 이미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이는 단지 우연이 아니라 완전히 그들의 정보를 꿰뚫고 있음을 뜻했다. 기사들을 이끌고 야습에 나선 성기사 미카엘의 두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씹어 삼켜도 분이 안 풀릴 것 같은 첩자가 누구인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분명히 첩자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몰릴 이유가 없었다. 작전은 극비리에 진행되었고, 모든 건 완벽했다. ‘아, 첩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그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빠져나가 타르나토스군에 첩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가 있지? 암담한 노릇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외쳤다. “신이시여!” 순간,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화한 빛! 그것은 흡사 금가루를 묻힌 듯 유난히 반짝거렸다. 성기사 미카엘은 자기 몸에서 힘이 솟구침을 느끼며 사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를 에워싼 적들을 섬멸하기 위함이었다. 신이 함께한 탓인가. 후우웅! 마나가 잔뜩 실린 검이 허공을 가르자 자연스럽게 검의 막이 만들어졌다.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상대의 검이며 방패가 부딪힐 때마다 검막은 모든 것을 가뿐히 두 동강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에워싼 유슬라니안 병사들이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멀찍이서 견제만 했다. 자신들로서는 역부족임을 실감한 것이다. 지휘관들도 병사들을 나무라지 않고 묵인했다. 단지,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때, 한 병사가 소리쳤다. “어이, 저 자식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지 않아?”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동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몇몇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성기사 미카엘도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순간, 흠칫했다. 탱탱하던 피부는 어디가고 힘없이 축 늘어진…… 오십대 늙은이 피부 같았다. 눈가에서도 주름이 잡혔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미친 듯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신은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그래서 성기사나 사제로 관록이 붙으면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게 된다. 물론 후천적인 것이다. 마법에 의한 것이니까. 그것도 신성력이 유지되는 한 절대 풀어질 리 없는 마법이었다. 그런데 지금…… 추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혹시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더럭 겁이 났다. 그러자 판단력이 흐려졌다. 자신한테서 신이 떠났다는 것은, 목표가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신의 기사가 되기 위해 매일같이 정진해왔다. 뿐이랴. 신이 싫어할 것을 우려해 더러운 평민들과는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늘 아름다운 것만 보고 듣고 생각하고 추구하며 신을 섬겼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버리다니. 죽음보다 그것이 더 두려웠다. 그는 신의 축복을 받는 명예스러운 죽음을 원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으아아아아!” 미카엘의 폭주가 시작되었다.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비롯된 폭주이다 보니, 이성적인 검식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휘두른 검에서 나온 마나는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조각내버렸다. 신한테 버림받은 이유가 자신이 악마들 틈에 끼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그는 닥치는 대로 사람들, 아니 악마들을 죽였다. 그러나 어찌된 노릇인지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타르나토스를 섬기지 않는 악마를 죽이면 죽일수록, 몸에서 일어나는 노화는 더욱 빨라지는 것 같았다. “안 돼! 안 돼!” 후우우우! 서걱! 서걱! “미, 미쳤다!” “도, 도망쳐!”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며 뒤로 빠지는 그 순간, 미카엘은 자리에서 멈춰 섰다. 검을 내린 채 그는 그렇게 서 있었다. 검을 타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아무도 덤비지 않았다. 그저 구경하듯 멀리서 지켜볼 뿐이었다. 미카엘은 문득,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것이 기분 나빠 다시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러나 검을 들 수가 없었다. 너무 무거웠다. 검을 들려고 낑낑거리다 그는 움찔했다. 이것은 또 뭔가? 숨쉬기도 힘들었다. 목에선 쇳소리가 났다. “쌕 쌔액…… 케엑!” 목이 답답해 크게 기침을 하는 순간 목에서 누런 가래가 튀어나왔다. 그제야 자신이 갑자기 멈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노쇠해진 것이다. 깜짝 놀라 혹시나 하고 검을 쥔 손등을 내려다보니, 쭈글쭈글한데다 검버섯까지 피어 있었다. ‘으아악!’ 그는 힘껏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웬걸, 가래 끓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서걱! “어리석군.” 스치듯 지나가며 미카엘의 목을 벤 아이린 공작이 내뱉은 한마디. 사실 신의 저주도, 신이 그를 버린 것도 아니었다. 단지 마나의 폭주가 가져다준 폐해일 뿐. 무림에서 흔히 말하는 주화입마 같은 것이었다. 굴러다니는 미카엘의 목을 힐끔 바라본 아이린은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발길을 돌려 멀어져갔다. 그것이 자긍심 높은 성기사 미카엘의 최후였다. 어쩌면 정말 신이 내린 저주가 아니었을까? 전날의 습격은 전초전(前哨戰)이었던가. 칠십 오만에서 백오십 오만으로 늘어난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병력이 보무도 당당히 유슬라니안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국지전의 종막을 고함과 함께 본격적인 전쟁의 돌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백오십오만의 대군 앞에서 목이 탈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은 겨우 백만이다. 주변국의 도움을 얻는다 해도 기껏 이십만이나 추가될까. 그것도 상당히 시일이 걸릴 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 헤르마틴에서 선발로 오만이 오고 후발로 도합 삼십만이 더 온다고 해도 넉넉잡아 백삽십오만. 늘어나고 있는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병력과는 수십만의 차이가 있었다. 미투스 공작이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열세긴 하지만, 실질적 실력의 차이는 크게 없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기사의 등급에서 우리 군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유슬라니안의 라스넬 폰 하트레스 황제가 자신의 안구를 지압하며 대답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 말의 뜻은 어떻게 보면 확인하고 싶은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책망하는 말투로 들리기도 했다. “우선 우리 아이린 공작님의 용병술과 능력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수적인 일뿐이기 때문이지요.” 하크레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주먹과 주먹이 맞닿기 전이라면 모를까. 맞닿고 있는 상황에서 법이나 법칙을 아무리 외쳐도 효과가 없다. 싸움이 끝나고 나 잘했네, 너 잘했네, 떠들 수 있겠지만 그것 역시 승자의 몫이다. 그렇기에 목숨을 걸고 승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때 밖에서 경비병이 고개를 숙인 채 말문을 열었다. “헤르마틴에서 병사들이 도착했다 하옵니다.” “허, 벌써?” 미투스 공작과 황제가 기쁜 낯으로 전령을 대면했다. 대단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지원병의 힘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타국의 지원병이었고, 더구나 최강이라 불리는 헤르마틴 제국의 지원병이다. 한동안 뜸을 들이다 온갖 생색을 내며 들어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른 출병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장시간 행군해온 저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전황이 급박하니 곧장 전쟁터로 향할 수 있도록 마법진을 열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마법진 사용이 가능하겠는가?” 황제의 질문에 미투스 공작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간 마법사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했으니, 가능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첫 지원병이 오만이라고 했는데, 가능한가?” “가능하도록 만들겠습니다.” 끄덕 “미안하네, 자꾸 무리한 밀만 시켜서.” “아니옵나이다. 그럼 전 명을 받들겠습니다.” 미투스 공작의 말에 환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투스 공작은 황제대신 헤르마틴 병사들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마법사들이 진을 발동시키기 전에 그들을 한번 봐야했기 때문이다. 헤르마틴에서 계약을 무시한 채 허접한 용병들을 보내놓고 생색을 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황당한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곳인가?” “그렇습니다. 바로 저들입니다.” 순간, 그는 자신의 생각이 클렸음을 알았다. 눈앞에 있는 병사들은 결코 허접한 용병 따위가 아니었다. 상위 등급의 기사가 확실했다. 그것도 하나같이 알짜배기뿐이다. 그들 눈빛과 절도된 동작이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마나. “헤르마틴 제국의 총사령관 니콜라스다.” “먼 곳에서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끄덕 차갑게 가라앉은 니콜라스의 눈빛! 그것은 아이린 공작에게 단련된 미투스 공작으로서도 적잖게 부담스러웠다. “헤르마틴 제국의 황제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지.” 미투스 공작은 니콜라스의 하대에도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이 정도 실력과 힘을 지닌 사람이라면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미투스 공작의 시선이 은근 슬쩍 니콜라스 뒤쪽에 있는 한 사내에게 쏠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사람인데, 어째서 인지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은발이라는 것. 그것도 독특한 빛의 은발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결론은 내렸다. 평범하지 못한 사람 사이에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끼어 있어 신경이 쓰이는 것뿐이라고. 이렇듯 막강 군사사이에 저런 평범한 사람이 어째서 끼어 있을까? 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전력가나 보조 마법사가 아닐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그의 몸에서 미약하지만 마법사처럼 자유로운 마나가 감지된 탓이다. 그때, 그 은발의 사내가 미투스 공작을 마주보고 씩 웃었다. ‘아, 내가 너무 눈치 없이 굴었나 보군.’ 미투스 공작은 아차하며 멋쩍게 웃었다. 스스로 내린 결론에 만족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투스 공작이 말했다. “그런데 죄송합니다만......” “뭔가?” “이미 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면서 이야기를 들은 듯하군. 그럼, 우리는 군장으 ㄹ그곳에 풀어야 되겠군.” 미투스 공작은 눈치 빠른 니콜라스 총사령관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런 사내가 전직 용병이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깝군. 이런 사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우리 측에서 먼저 손을 뻗었을 것을...... 헤르마튼 제국은 복도 많군.’ 아쉬움에 가볍게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는 없소. 그렇잖아도 무료하던 차였으니까.” 니콜라스의 묵직한 한마디에 나열해 있던 기사들은 자신도 모르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어찌보면 상당히 우스운 모양새였으나, 그들이 니콜라스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보여주는 단젹이 예이기도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믿음직스러웠다. 하지만 저들이 적이라면 상당히 껄끄러운 상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 조금 가슴 아팠다. “그럼 어디로 가면 되는가?” “바로 출발하시겠습니까?” “물론!” “그럼 저 병사를 따라가시면 됩니다. 이동 마법진을 오픈 시켜놓았습니다.” “그러지.” 니콜라스가 움직이자 기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두두두두두두! 치열한 전장에서나 들려온 법한 거대한 말발굽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순간, 유슬라니안 병사들 얼굴에 회색이 돌았다. 지원군이었다. 문제는 어디의 지원군이냐는 것. 방향을 보아하니 유슬라니안 쪽 같았다. “와와! 지원군이 왔다!” “오오오! 레드 드래곤의 깃발!” “정예다! 정예군의 깃발이다!” 유슬라니안 진영에서 떠들썩한 함성이 울렸다. 그들은 힘차게 검을 휘두르며 생존을 알렸다. 저들로 인해 그들의 생존율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저들이 올 때까지만 견디면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젖먹던 힘까지 다 끄집어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전장 한복판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우던 기사 하나가 검을 아래로 내린 채 멈춰서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다가가지 못했다. 검을 내리고 있는 그 기사는 바로 아이린 공작이었다. 그리고 적이 다가서지 못한 이유는, 그의 몸에서 마귀처럼 날뛰며 잔혹하게 전장을 누비던 때보다 더욱 강력한 투기와 살기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대체 어째서? 통 모를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철천지원수를 눈앞에 둔 사람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의문의 골은 점점 깊어져만 갔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눈앞의 사내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는 사실. 그 때문일까? 아이린 공작의 주변을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아이린의 기운이 그 부군의 공기흐름을 바꿔놓은 탓이다. 뒤늦게 사람들은 알아챘다. 아이린 공작의 시선은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검극을 바닥으로 향한 채 버티고 서서 한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이린의 시선을 따라 다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지원병이 달려오며 일어나는 흙먼지뿐이었다. 아이린은 이를 악물었다. 으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무엇들 하는가! 전군 공격하라!” 아이린 공작이 멍하니 서 있는 적의 목을 날리며 소리쳤다. 그 한마디에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다시 검을 들고 싸웠다. 아이린은 미친 소처럼 이곳저곳을 종횡무진하며 적들을 베어 넘겼다. 평소보다 더 차가운 그의 눈빛 그리고 광기어린 춤사위와도 같은 검의 난폭한 움직임. 그것은 마치...... 원가를 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다. 동시에 유슬라니안을 지원하러 온 헤르마틴 제국군들을 공략하기 위해 무리수인 줄 알면서도 옆을 치고 들어가는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병사들. 지원병은 하나같이 병사라기보다 용병 같았다. 제국의 병사들이 저처럼 어수선하고 경박할 리 없으니 말이다. “크하하! 이런 허접한 녀석들을 지원군이라고 보냈단 말이지! 방패막이로 쓸 모양이지?” “그런 모양이로군, 크헤헤헤헤!” 타르나토스 병사들이 비아냥거리며 소리 높여 비웃었다. 직접적인 공격 목표라기보다는 도발을 해서 헤르마틴 병사들의 발걸음을 늦출 생각인 듯했다. 그들의 도발은 계속되었다. “왜? 화도안 나? 배알도 없나보지?” “병신들!” “하하하!” 화가 날 만도 하건만, 헤르마틴의 병사들은 그저 광대놀음이라도 구경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말이다. 그때였다. 앞에 었던 니콜라스가 짤게 한 마디 했다. “밟아라.”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뒤에 있던 기사들이 쏜살같이 달려 나오더니, 말 그대로 타르나코스 용병들을 밟기 시작했다. 베르니스가 선두로 나서며 이죽거렸다. “싸움을 주둥이로 하라고 배웠냐?” 스각! 베르니스의 검이 타르나토스 용병들을 냉정하고 거침없이 벴다.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심기를 다스린 탓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스스로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최면을 건 상태였다. 인간의 마음으로 인간을 벨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장이란 집단광기의 현장이나 마찬가지. 인간이 인간을 베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곳이 바로 전장이다. 하지만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가 있단 말인가. 받아들을 수 없다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 죄책감을 가슴에 쌓아두되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쌓아둔 죄책감을 전쟁이 끝나고 찾으면 되는 것이다. 니콜라스를 필두로 종횡무진 상대방을 압도하며 적을 물리쳤다. 니콜라스의 검에 그려진 오러 소드! “허억! 저 빛깔은...... 마스터다! 그것도 중급 마스터!” 누군가 경악하여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다음 순간 니콜라스가 그의 정수리에 검을 박았다 뽑았기 때문이다. “시끄럽군.” 동시에 쏘아지듯 달려나가는 니콜라스의 애마. 말은 니콜라스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 적군이 몰려 있는 곳이나 아군이 위험에 처한 곳만 골라 파고들었다. 그 즉시 니콜라스의 검은 가차없이 상대방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이윽고 그는 뒤쪽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용병대장과 맞닥뜨렸다. 니콜라스의 검이 바람을 갈랐다. 챙! 용병대장이 바스타드 소드를 들어 니콜라스의 검을 튕겨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엄청난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더니 결국 검을 놓치고 만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한손검한테 바스타드 소드가 밀리다니! 그것도 무게감에서 말이다. 다시 검을 들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순간, 니콜라스는 담담한 얼굴로 녀석의 등에 검을 꽂았다. “크억!” 적에게 등을 보인자는 이미 살 가치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서, 설마...... 니콜라스?” 누군가 그를 알아본 것이다. 한 때 용병이었으나 지금은 한 제국의 총사령관까지 올라간 사내. 특히, 그가 일궈낸 수많은 무용담. 그는 용병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통했다. 그러니 못 알아보는 것이 더 우스운 일이었다. 니콜라스의 무심한 눈길이 목소리 주인에게 향했다. 순간, 웅성임이 들불처럼 번져갔다. 용병들이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정말 니콜라스일 줄이야! 헤르마틴 제국의 핵심세력 중 하나인 니콜라스가 지원군으로 등장하디니!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니콜라스가 이곳에 있다는 말은, 헤르마틴 제국의 손을 들어준다는 말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강 중 두 나라가 손을 잡았다는 뜻으로, 결국 전혀 승산없는 싸움에 끼어들었다는 얘기였다. 특히, 니콜라스의 날개처럼 양옆에서 거침없이 검을 휘두르는 저 두 기사. “설마 베르니스와 스콜은 아니겠지?” 입술이 덜덜 떨렸다. 자신들 이야기들 들은 것일까? 양옆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왜 아니겠느냐? 내가 바로 헤르마틴 제국의 수호기사인 베르니스 경이시다!” “또 왜 아니겠느냐? 내가 바로 헤르마틴 제국의 수호기사인 스콜 경이시다!” “우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푸르르르르! 웃음소리와 함께 말들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발을 하늘 높이 번쩍 치켜들었다. 흡사 전설 속에 나오는 기사를 방불케 하는 장면이었다. 순간 무표정하던 니콜라스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베르니스와 스콜의 행동에 자신도모르게 부끄러움을 느낀 탓이다. 게다가 자신들 이름 뒤에 경이라는 호칭까지 갖다 붙이다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었다. ‘후우......’ 내심 길게 한숨을 내쉰 니콜라스. 그러나 나의 사선은 전방에 고정된 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 위풍당당한 위용에 겁을 집어먹은 적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뒷걸을질쳤다. “저, 저들까지 오다니!” 헤르마틴의 반란군을 내쫓던 당시의 위용에 대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저들에게 걸려 살아남은 자가 없다는 다소 허황된 소문 때문에 두려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저들이 데려왔을 수십만 군대가 어딘가 숨어 이곳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었다. “후, 후퇴하라!” 누군가 외쳤다. 한번 무너진 마음은 축대 무너진 성벽처럼 쉽게 허물어지기 마련. 그것도 혼자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벽에 파장이 미친다. 군 전체의 사기저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도망치는 타르나코스 진영 용병과 병사들. 끝까지 쫓아가 도살하는 헤르마틴 병사들. 추풍낙엽이었다. 진법과 전열이 흔들리면서 일단 싸움의 균형이 무너지자 더 이상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끝까지 기를 쓰고 버텼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죽어나가는 병사들을 보며 타르나토스 측 총사령관은 눈물을 머금고 퇴각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현명했다. “모, 모두 후퇴하라!” 뿔피리가 길게 울었다. 뿌우우우우 퇴각신호였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뒤돌아 뛰었다, 하나같이 공포에 질린 얼굴이다. 신앙의 위대한 힘이 죽음의 공포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사, 살려...... 커헉!” 푸욱! 어느 병사는 자신의 가슴에서 튀어나온 칼날을 보고 의아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다 그대로 무너졌다. 그때였다. 아이린 공작의 우렁찬 목소리라 전장을 뒤흔들었다. “진격하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둥둥둥 진군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도망치는 타르나토스 진열은 이미 흐트러진 상태로, 오합지졸에 가까웠다. 잠시 후, 핏물이 강물을 이루고 시체가 산을 이루는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압승이었다. “이, 이겼다!” “우아아아아!” “우와와와와!” 병사들의 가슴 벅찬 함성소리에 뿌듯한 표정을 잣는 기사와 가령관들. 대혈전은 그렇게 막이 내려가고 있었다. 제 6장 단지 얼굴이 보고 싶었을 뿐. 대승 기념으로 사령관급 파티가 열린다는 통보에, 군장을 풀고 다음 전투를 위해 전력을 검토하던 니콜라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대체 어떤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길래, 전쟁 중에 연회를 열 생각을 하 수가 있단 말인가! 비일비재한 일이건만 니콜라스로서는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유슬라니안 황제가 직접 치하한다는 말을 듣고도 불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개인 자격이 아니라 지원군 총사령관으로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황실에서 직접 보내준, 황금실로 화려하게 수가 놓은 연회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옷을 입자 몸이 근질거렸다. 몸에 들러붙은 핏물이 가시지 않은 것처럼 영 불쾌했다. 그러나 몸은 깨끗했다. 얼마나 공들여 깨끗하게 씻었던가. 그런데도 몸이 가렵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였다. 예컨대, 죄책감이 만들어낸 가려움증이었다. 연회복의 무게가 그가 죽인 사람들 목숨의 무게처럼 느껴진 탓이다. 어쩌면 그들을 죽인 공로를 인정받아 파티에 초대를 받은 것하며, 이렇듯 화려한 옷을 입고 파티에 나가 춤을 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차라리 전장에 나가, 죽음의 사신이 되어 피의 향연을 즐기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는 그렇게 춤을 추었다. 하늘과 땅을 붉게 물들이며 사람들은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아비규환이 이런 것일까? 강한 자만이 인간으로 남고, 약한 자는 악귀가 되어 서로 칼을 들이대며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인간이나 악귀나 한통속 같았다. 솔직히 지금 내가 죽어있는 시체와 다른 게 무엇이란 말인가? 숨 쉬는 것? 배가 고프고 밥을 먹는 것? 피곤해 잠드는 것? 이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까? 그렇다면 숨은 쉬되 악취를 풍기는, 알 수 없는 배고픔에 쉼 없이 먹이를 찾아다니는 좀비는 뭔가? 그들도 인간인가?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썩어 문드러질 그들과 자신이 다른 점이 뭔가? 니콜라는 한참을 고민했다. 자신이 정말 이 옷을 입을 자격이 되는지. 차라리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자들에게 입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적이든 아군이든 누구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때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시녀의 부드러운 목소리. “미투스 공작이십니다.” 니콜라스는 상념을 접고 정중히 미투스 공작을 맞았다. “내가 실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아니오.” 말은 아니라고 했지만, 표정은 밝지 않았다. 미투스 공작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라니 다행이군요. 감사와 함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앉으시죠.” “고맙군요. 나이는 속이지 못한다더니, 허리가 쑤셔서 말이지요. 이렇게 계속 서서 이야기해야 하나 사실 걱정했습니다. 허허.” 딱딱한 분위기를 바꿔볼 요량으로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분위기는 더욱 싸늘하게 가라앉고 말았다. 그러나 미투스 공작은 전혀 개의치 앉는다는 얼굴로 니콜라스를 바라보았다. 강적이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니콜라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찾아온 용건이 뭐요?” “별거 아닙니다. 그냥 단순히 얼굴이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저번 전투에서 크나큰 활략을 펼친 니콜라스 경께 감사의 뜻을 먼저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미투스 공작. 순간, 니콜라스는 큰 산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의외였다.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그는 큰 사내였다. 스스로를 낮추고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들이 세상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거만하고 오만한 사람들은 스스로 늘 남보다 앞서나간다고 생각하지만, 저런 사람들이 깔아놓은 길을 가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니콜라스는 미투스 공작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정말 그뿐이오?” “그렇......” 그렇다고 말하려던 공작은 니콜라스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고 얼른 뒷말을 삼켰다. 갑자기 등 뒤가 서늘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진면목을 알아본 사람은 단둘뿐이었다. 바로 유슬라니안의 황제인 라스넬 톤 하트레스와 아이린 공국의 아이린 공작.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는 또 한사람이 나타났음을 직감했다. 니콜라스는 결코 만만하게 볼 위인이 아니었다. 할 말이 많았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야 할 것 같았다. 지금 자신의 속을 더 들켜봤자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밖에서 천사의 나팔소리와도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 미투스 공작은 웃음으로 마무리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해야겠습니다.” 끄덕 니콜라스는 쉽게 수긍했다. 서로 상대에 개해 이 정도 수준까지 안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기 때문이다. 시녀의 안내를 받아 가는 연회장은 그리 가깝다고 할 수 없었다. 마차를 타자고 했을 때 걸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자신이 한심스러워질 정도였다. “저깁니다. 저기 보이시는 곳이 우리 유슬라니안의 전쟁기념관이며, 연회장으로 쓰이는 피의 궁전이라는 곳이지요.” “그렇군.” 여기서 저렇듯 작게 보일 정도라면...... 한숨이 나왔다. 마차를 거절한 것이 미련한 짓임을 새삼 깨달은 탓이다. 그 후 삼십 분쯤 더 걷고 나서야 겨우 연회장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감탄했다. 세상에 이처럼 화려한 궁이 또 있을까. 니콜라스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는 감추기 힘들었다. 시녀가 그것을 보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곳입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끄덕 니콜라스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여준 후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근위대가 신원을 확인하자 하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동시에 서기관이 크게 외쳤다. “헤르마틴 제국의 총사령관 니콜라스 경이십니다.” 순간, 사람들 시선이 니콜라스한테 쏠렸다. 경외와 존경 그리고 질시의 눈길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리고 수근거림. 그에 대한 찬사도 있고 욕설도 있었으며 음탕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오감이 발달한 탓인지 그 모든 것이 다 청취되었지만, 워낙 신경이 굵은 니콜라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필 뿐이었다. 혼자 있을 만한 장소를 물색하는 중이었다. 작은 연회라더니 결코 작은 연회 같지 않았다. 단순히 전공을 치하하기 위한 자리로 보기엔 너무 화려했다. 게다가 사령관들을 위한 연회라더니, 화려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여인과 그 여인들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내들이 더 많았다. 잘못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사실 그는 연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아직 연회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이번 연회는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았다. 수백에 가까운 사람들이 연회장을 가득 메우고 있지만, 워낙 넓어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한쪽 구석에서는 관현악단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창문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함을 뽐내고, 유려한 대리석벽과 크고 작은 보석들로 모자이크된 바닥, 천장에 매달린 금으로 만든 수십 개의 샹들리에에서 흘러나오는 갖가지 불빛이 실내를 밝혀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즐거운 듯 계속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말 그대로 놀고들 있었다. 니콜라스는 한심스러운 마음으로 지배인이 따라준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때 스몰과 베르니스가 다가왔다. “어라, 언제 왔다요?” “조금 전에.” “그야 물론 그렇겠지만,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해야죠.” 베르니스가 섭섭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니콜라스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아까부터 네놈들 하는 꼴을 모두 보고 있었는데 무슨 헛소리야? 전혀 섭섭한 것하고는 아주 멀어 보이던데?” 순간 뜨끔한 표정으로 스콜과 베르니스가 서로를 슬쩍 마주보더니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우...... 우리가 뭘......?” “흠, 정말 무슨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하긴 나라도 여자들에게 그렇게 파묻혀 있으면 정신을 잃었을 거야. 그것도 꽃다운 처녀들의 유혹은 거절하기 힘들었겠지.” “어버버버버버!” 스콜은 고개를 숙였고, 베르니스는 발광을 시작했다. 말도 안 된다고 반론을 제기하려했으나 왠일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버버버버버! “뭐, 아니라고?” 끄덕 “정말?” 끄덕 “정말 그렇단 말이지......?” 여기서 잠깐 생각에 잠기는 니콜라스. 잠시 후 이어진 뒷말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자네의 말을 믿지만...... 텐시도 그렇게 생각할지가 걱정이군.” 뜨아! 베르니스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스콜은 차마 그런 베르니스를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런데 니콜라스가 언제부터 저렇게 비열해졌지? 비열해진 것이 아니라 지금 그는 꿀꿀한 기분을 베르니스에게 풀고 있었다. 베르니스는 계속 쩔쩔, 니콜라스는 계속 껄껄대고 있을 때,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서 뭣들 해?” 블루였다. 그가 건들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어라, 베르니스! 너 또 왜 거기서 우거지를 삶고 있냐?” “별일 아닙니다.” “별일이 아니기는......” 투덜투덜 원망섞인 눈빛으로 니콜라스를 노려보는 베르니스. 그러나 드러내놓고 노려보진 못했다. 그랬다가 정말 텐시한테 고자질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디 계셨습니까?” 니콜라스의 물음에 블루가 건성으로 답했다. “친구를 좀 찾고 있었어.” “친구요?” 그때였다. “유슬라니안 제국의 아이린 드 크리센도르 공작이십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자 블루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저기 왔군.” 친구가 누군지 깨달은 니콜라스와 베르니스, 스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블루가 그곳을 향해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팡파르와 힘찬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유슬라니안 제국의 황제이신 라스넬 폰 하트레스 폐하께서 나오십니다. 앉아계신 분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주시기 바랍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황제가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오만하지만 거만하지 않은 모습. 니콜라스가 유슬라니안의 황제를 보며 받은 첫인상은 상당히 젊고 패기 넘치는 힘의 소유자라는 것이었다. 물론 헤르마틴 제국의 황제보다 젊겠는가마는. 아니, 헤르마틴 제국의 황제는 젊다기 보다 어리다는 말이 어울렸다. “모두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고. 오늘 경들의 수고를 치하하지 위해 이 자리를 만들었으니 마음껏 먹고 마십시오. 특히,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우리 동맹군과 기사들은 마음껏 회포를 풀기 바라오.” 호탕한 목소리. 거기선 흔들리지 않는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지금은 동맹국이지만,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유슬라니안의 황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첫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근위병이 다가와 정중한 예를 갖추며 말했다. “황제폐하께서 니콜라스 경과 수하 분들을 직접 뵙고자 하십니다.” 니콜라스와 베르니스, 스콜 그리고 블루는 근위병을 따라 황제 앞으로 갔다. 그러자 귀족이 자리를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근위병이 말했다. “헤르마틴의 니콜라스 경과 베르니스 경, 스콜 경 그리고 블루 경입니다.” “오오, 반갑소.” “폐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이번 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영웅에게 칭송을 듣다니, 얼굴이 다 붉어지는구먼.” 황제가 너스레를 떨었다. 유슬라니안의 황제가 고지식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왠지 낯설었다. 하지만 말만 듣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니콜라스는 황제의 첫인상에 한 가지 항목을 더 추가했다. 유슬라니안의 황제는 웃음을 아는 사람이다. 그것은 묘한 여운을 주었다. 모르긴 몰라도 귀족들의 가식적인 웃음을 많이 본 탓 같았다. “내 경들을 청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얼굴을 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귀공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였소.” 순간, 니콜라스는 이 비슷한 말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불과 얼마 전이다. 하지만 깊게 생각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혹, 실수로 유슬라니안 황제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낭패였기 때문이다. “망극하옵니다” 황제의 칭찬에 니콜라스는 깍듯이 응수했다. 이렇듯 심기가 곧아 보이는 절대자들에게는 그가 비록 다른 나라의 왕이라 할지라도, 설사 적국의 왕이라 해도 고개를 숙이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라고 그는 믿었다. 황제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니콜라스의 마음이 느껴진 탓이다. “우선 큰 상을 내려야 마땅하지만, 타국의 기사이기에 짐이 함부로 상을 내릴 수가 없고, 더욱이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지라 다음을 기약하겠소.” “그리 생각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아니, 그저 기분이 상하지 않는 것 같으니 마음이 놓이는구려.” “망극할 따름입니다.” 황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깔렸다. “고맙소. 앞으로 우리 유슬라아니아군 총사령관과 함께 활동할 일이 많을 테니, 서로 인사를 시킬까 해서 불렀네. 물론 작전을 논의해야 할 테니, 따로 만날 수 있겠지만, 짐이 직접 소개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하여 이런 자리를 만들었네.” 니콜라스는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좀 전에 만났던 미투스 공작과 유슬라니안 황제의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그냥 보고 싶었다는 그 말을 어디서 들었나 했더니 바로 미투스 공작이 했던 말이었어. 설마......’ 뭔가를 알고 이런 모습들을 보이는 건 아닐까? 그 뭔가가 뭐지? 잠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신 아이린이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니콜라스와 블루들은 흠칫 놀랐다. 그때 황제의 목소리라 끼어들었다. “그래, 마침 잘 오셨소. 그대를 부른 이유는 짐이 직접 소개시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끄덕 아이린이 수긍하는 눈빛을 보이자 황제가 말을 이었다. “여기있는 헤르마틴의 총사령관인 니콜라스 경이라 하오. 이쪽은 우리 유슬라니안의 자랑인 아이린 공작이지.” 순간 눈이 마주친 두 사람. 불꽃이 튀었다. 드디어 만난 것이다. 덤덤한 표정으로 니콜라스가 먼저 인사를 청했다. 하지만 담담함을 가장한 눈빛에서 ‘내가 왔다. 네놈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제야 도착했다’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니콜라스라 합니다.” 아이린 공작은 니콜라스의 눈빛을 슬쩍 바라보고는 별 감흥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이린이라고 하오.” 순간 속에서 뭔가 울컥했다. 그러나 바보처럼 내색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때 누군가 앞으로 나서며 니콜라스에게 인사를 했다. “오오, 당신이 니콜라스 경이시군요.” 니콜라스가 감정을 접고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젊고 기운이 넘치는 사내와 차가운 표정으로 일관하는 한 여인이 서있었다. “귀가 닳도록 경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뵙게 되니 정말 영광입니다.” 사내가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당황한 니콜라스가 물었다. “누군......?” 황제가 나섰다. “아, 그렇군. 이들도 내가 직접 소개해도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폐하.” “영광이옵니다, 폐하.” 젊은 사내와 여인의 발언에 만족한 듯 황제가 말문을 열었다. “여기있는 아리따운 아가씨는 아이린 공작의 삼남이녀 중 장녀인 유나라고 하네. 아름다운 얼굴에 혹하지 말게. 냉정하고 유능한 검사니까.” “유나라고 합니다.” “니콜라스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아이린 공작의 막내아들 슈리오. 어린나이임에도 벌써 마스터의 경지를 넘어 우리 유슬라니안에서 가장 기대가 큰 시가 중 한명이지.” “슈리오라고 합니다.” “니콜라스라고 하네.” 그렇게 베르니스와 스콜가지 인사를 아우른 후에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슈리오가 물었다. “그런데 저분은 소개시켜주지 않으시는 건가요? 하인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흠, 저분...... 아니 저......” 베르니스가 버벅거렸다. 어떻게 소개를 해야 할지 감이 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분 이라고도, 저 사람이라고도 못하고 눈치만 보다 입을 닫았다. 그게 슈리오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대체 누구시기에?”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눈빛을 반짝이는 슈리오. 그때 등 뒤에서 아이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없이 낮은,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그 사람의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는 나한테 볼일이 있는 사람이다.” 순간, 다들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에? 볼...... 일 있는 사......람?” 슈리오가 중얼거리자 지금껏 딴청을 피우고 있던 블루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씩 웃었다. “오랜만이군, 친구.” 폭격이라도 맞은 듯 어수선해졌다. “정말 보고 싶었지.” “미안하군.” “뭐가 말이지?” “난 별로 보고 싶지 않았거든.” “큭큭큭!” 아이린 공작 특유의 딱딱한 목소리에 웃음을 흘리는 블루. 늦은 저녁이었다. 달이 유난히 밝았다. 그 달빛이 그리는 달무리에 홀려 충동적으로 살인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달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달빛 때문인지 조각 같은 아이린 공작의 얼굴에서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허리에 매달린 나크 세이버의 검은 묵광이, 그런 주인을 위로하는 듯 보였다.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걸세.” 블루가 말했다. “난 아니었네. 자네가 죽어 이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랐지. 분명 최악의 상황이 될 테니까.” “큭큭큭큭큭!” 블루의 웃음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는 아이린 공작의 발걸음을 무거우면서도 가벼웠다. 왠지 그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이린 공작은 금발머리를 쓸어 올리며 블루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다크 세이버를 뽑아들었다. 스르릉 소름끼치도록 매끄러운 검의 울음소리. 블루가 이를 드러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블루의 손엔 어느새 아슈가 들려 있었다. 그러나 오늘따라 조용했다. 마치 중요한 순간임을 눈치 채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좋아!” 챙! 갑자기 둘의 몸이 사라지고 중간지점에서 푸른 불꽃이 일어났다. 동시에 수십 합의 검격이 오갔다. 물론 그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곤 불꽃놀이처럼 현란한 불꽃뿐이었다. 파바바팡! 얼마나 빠르면 압축된 대기가 터지는 소리가 날 수 있을까?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튕겨나가듯 뒤로 물러서는 아이린과 블루. 둘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상대를 살폈다. 꽈드드드득! 블루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주먹관절이 부딧히면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났다. 강렬한 그 소음만큼이나 주먹에 응축되어진 마나 역시 상식을 초월했다. “추광보!” 팟! 어느새 블루의 주먹은 아이린 공작 코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동시에 고개를 꺽은 아이린. 맞은 것일까? 블루의 표정이 구겨졌다. 곧 블루의 주먹을 밀어내는 아이린의 손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막은 것이다. 블루는 그 즉시 다음 공격을 선보였다. 파바바바밧! 검과 주먹 그리고 발, 몸통은 물론 어깨에서 머리까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부위를 이용하여, 가격 가능한 모든 신체부위를 공략하는 전방위적 공격! 거기엔 놀라운 신비가 감춰져있었다. 아무리 자기 몸이라지만, 어떻게 저렇듯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가 있단 말인가. 권과 각은 전혀 맞물림이 없이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어떤 것이 허초고, 어떤 것이 실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허점을 두드리고, 그래서 또 허점을 만들고 두드리는 전혀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유기적인 공격과 수비. 한순간 아슈가 허공을 가르며 아이린 공작을 향했다. 아이린은 본능적으로 허리를 뒤로 들고 자신의 다크 세이버를 일직선으로 밀어냈다. 창! 블루의 아슈와 아이린의 나크세이버의 극과 극이 맞부딪히며 반동으로 다시 튕겨져 나갔다. “과연 저들이 인간이란 말인가?” 니콜라스의 나직한 한마디. 베르니스와 스콜은 물론 그 옆에 적이면서 아군으로 서 있는 유나나 슈리오도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아버지가 아닌 것 같았다. 그만큼 놀라웠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아버지와 맞붙어 한 치도 밀리지 않은 사내였다.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퍼억! “크윽!” 파박! “어걱!” 서로 펀치를 맞교환했다. 검은 오히려 불편할 뿐이다. 상대방이 피해버리면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 검을 뒤로 집어던졌다. 촹! 아슈와 다크 세이버는 땅에 박혔다. 다시 시작된 본격적인 공방. 그들의 싸움은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육탄전에서 저토록 완벽한 공수를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파앗! 잠시 휴식을 위한 것일까? 서로 주먹을 튕겨냄과 동시에, 그 반탄력으로 그들은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리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헉헉.” 아이린 공작이 거친 호흡을 삼키듯 내뱉었다. 블루는 그런 아이린 공작을 보며 씩 웃었다. 아이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상대에게서 전혀 지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호흡을 억지로 숨긴다? 그것은 아니다. 지쳤다면 억지로 숨긴다 해도 표가 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블루에게선 전혀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허세가 아니라 얘기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아이린은 암울해졌다. 자기보다 한 단계, 아니 상상할 수도 없는 높이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니. 솔직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실례가 많았네.” “지금도 실례가 많아 보이는 군, 후우후우.” 블루가 어깨를 으씩이며 대답했다. “칭찬으로 듣지.” “난 치욕으로 받아들이겠네.” “마음대로.” 히쭉 그들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화내용도 내용이었지만, 아이린 공자그이 이죽거리는 말토라니. 유나와 슈리오의 놀라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아이린의 기도는 어느새 처음처럼 매섭게 날이 서 있었다. 체력을 모두 회복했다는 뜻이다. 그것을 본 블루가 말했다. “그럼.” 슈욱! 이번엔 아이린 공작의 선공이었다. 니콜라스와 베르니스, 스콜 그리고 유나와 슈리오는 그 전토를 보며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긴장한 탓이다. 여전히 그들 머릿속에 따나지 않는 의문. 저들이 과연 인간인가? 아까부터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문이었다. 펏! 빠르게 움직이던 아이린 공자그이 신형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감쪽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블루도 마찬가지. 파팟! 그 후, 허공에 수놓아지는 불꽃의 잔영들. 퍼버버버벅! “으......욱!”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맞붙어 있었다. 근접전이었다. 그런데 과연 누구의 비명이었을까? 블루? 그의 신형이 약간이지만 앞쪽으로 수그러지고 있었다. 아이린의 오른 주먹이 블루의 복부에 맞닿아 있었다. 제 7장 애들 싸움에 이유가 있나? 아이린 공작의 주먹이 제대로 들어간 것일까? 블루는 잇달아 밭은 기침을 토하며 아이린 공작 근처를 벗어나지 못한 채 비틀거렸다. 아이린 공작도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끄으으!” 블루의 심음이 커질수록 아이린 공작은 자괴감에 물들어갔다. 그러다 버럭 고함을 질렀다. “장난치지 마라!” 장난이라니? 아이린 공작의 외침과 동시에 신음소리가 멎었다. 고개를 든 블루의 얼굴은 간헐적으로 신음이 흘러나오는 것과 무관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아이린 공작을 뚫어지듯 쳐다보며 그가 말했다. “흠, 내 연기가 너무 어설펐나? 개중에는 잘했다고 한 건데, 후후훗!” 퍼억!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날아간 블루의 주먹. 멀뚱히 서 있던 아이린 공작은 가까스로 그것을 막았다. 막았으나, 아이린 공작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아니,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으윽! 이런 파워를 지니고 있었으면서......!’ 흠칫! ‘설마 지금까지 장난이었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때 블루가 말문을 열었다. “예전처럼 또 기고만장해보시지. 그때는 잘만 패더니만...... 어때? 입장이 바뀐 기분이 말이야, 큭큭큭.”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실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크흑!” 아이린 공작의 입에서 새어나온 한줄기 신음소리. 순간, 블루가 미친 듯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하하하! 크흑이라고? 나를 정말 즐겁게 해주는구나. 아이린 공작이라 했던가? 큭큭, 그까짓 한방에 설설기는 모습을 보여주다니! 이런 개그가 어디 있겠는가? 아주 걸작이구나, 우후후후훗. 정말 너무 웃겨! 후훗...... 웃기다고!” 슈욱! 퍼버버버버벅! 또 블루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러나 아이린 공작은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그는 지금 블루에게 놀아나고 있었다. 가까스로 블루의 공격을 막아낸 아이린 공작. 퍼버버버버벅! 더욱 엄청난 기운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한 방, 한 방에 실린 기세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파워만 강한 게 아니었다. 전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변칙공격에 아이린 공작은 가까스로 몸의 급소만 피하거나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블루는 계속 웃으며 입을 놀렸다. “크하하하하하하하! 어때? 크흐흐흐흐, 즐겁지 않은가? 응?” “......!” “뭐라고? 그렇지 않다고? 그런데 어쩌나? 나는 무지무지 즐거운데, 크흐흐흐흐. 어떻게 된 건가? 너무 약한 것 아닌가 봐주지 않아도 된다니까. 그냥 싸우자니까. 내 말이 장난같이 들리는 거야, 그런 거야? 후흐흐흐, 즐거워, 아주 즐거워!” 그 말을 끝으로 블루는 아이린 공작에게 발길질을 가했다. 퍼억! “몹시 흥분되는군.” 아이린 공작은 충격과 반동을 이용해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의 얼굴을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막아낸 발차기의 파괴력은 실로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참기 힘든 통증이 전류처럼 팔을 통해 전신을 따라 흘렀다. 괴물이다! “왜? 그렇게 인상을 찌푸리는가? 설마...... 아픈가? 우후후후훗.” 아이린 공작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니, 이를 악물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자신이 이처럼 추태를 보일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순간 그의 신형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바닥이 파이기 시작했다. 블루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긴장한 것인가? 아니, 오히려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그는 아이린 공작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꾸욱 두 주먹 불끈 쥐고 그는 고개를 살짝 좌로 비틀었다. 동시에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그를 덮쳤다. “우웃!” 신음소리? 빙글거리는 블루한테서 나왔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가 내뱉은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꿈틀 거렸다. 언뜻 보면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것도 반격이라고 봐야하나?”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린 공작의 잔영이 일어났다. 문득 블루의 신형이 사라졌다. 아이린 공작도 사라졌다. “우웃!” “뭐, 뭐지?” 그들 결투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신음을 흘렸다. 순식간에 펼쳐진 빛의 무리! 그리고 굉음! 쾅쾅쾅! 충격파에서 형성된 그 소리는, 고막을 찢어놓을 듯 날카로웠다. 그만큼 그들이 일으키는 파장은 엄청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더욱 빨라진 것일까? 속도라는 개념이 무색해지는 그들의 움직임. 빛의 반응이 점점 더 많아지고 빨라졌다. 빛을 뿜어내는 하나의 거대한 구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니콜라스들과 아이린 공작의 자식들은 그 모습을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 눈에 블루와 아이린 공작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괴물이란 말이 더 잘 어울렸다. 서서히 형성되어가는 관원들...... 결국 완벽한 원이 하나 완성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빛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아니, 튕겨져 나옸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몰랐다. 무엇이 튕겨져 나온 것일까? 아직까지는 그 형체가 완벽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파파바바바바박 팟! 바닥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니, 수상스키를 할 때 물보라가 치듯 흙이 양옆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그 끝에서 드러난 인영. 그는 두 다리고 굳건히 버티고 서 있었다. 누구...... 블루! 그가 밀렸단 말인가? 블루는 잔득 찌푸린 얼굴로 수그러드는 빛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거대한 마나의 기류가 뿜어지고 있었다. 파팟! 팟! 팟! 우스스스스스! 블루의 옷이 터지듯 솟구치면서 면도날에 베인 듯한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넝마처럼 너덜거리는 옷! 그것은 옷이라 부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빛 무리가 모두 사라지고 그 안에 있던 아이린 공작의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제길, 너무 방심을 했어.” 블루 입에서 흘러나온 나직한 한마디. 하지만 그 욕설은 금세 광기어린 웃음으로 변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줘야지. 그럼 다시 한 번 가볼까, 큭큭!” 블루는 넝마가 된 옷을 찢어 바닥에 내팽개치자, 부드러운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답다. 저것이 진정 모든 사람들의 꿈이라 할 수 있는, ‘완벽하다’는 게 아닐까? 같은 남자라도 그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만큼 블루의 몸은 아름다웠다. 아이린 공작의 신형이 움직였다. 찰나의 순간, 선공을 감행한 것이다. “좋아! 그렇게 나와야지!” 파팟! 또다시 일어나는 빛의 무리! 그때 믿을 수 없는 두 초인의 싸움을 바라보며 유나는 생각했다. ‘과연 내가 저들과 싸우면 몇 번이나 검을 보낼 수 있을까? 한번 막는 것도 벅차지 않을까? 그럼 내가 숨겨놓은 모든 힘을 개방하면...... 흠, 그것도 힘들겠군. 그럼 슈리오와, 아니 옆에 있는 니콜라스와 베르니스, 스콜이라는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는 유나. 경악스런 얼굴로 결론을 내렸다. “정말 사람 맞아?” 앞뒤 없는 말이지만, 다들 공감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무지 상상주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저곳. 자기 자신들이 서 있는 이곳과 전혀 다른 차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두려움의 결과란 말인가? 엄청난 공방이 허공에서 일어난 결과를 등지고, 이번에는 두 명의 신형이 빛 무리 속에서 같이 튀어나왔다. “후우!” “헉헉!” 그들의 서로의 호흡이 흐트러진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린 공작이 보다 정도가 심했다. 하지만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호흡이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는 찰나, 블루가 애검 아슈를 상단으로 높이 치켜들었다. 엄청난 마나가 아슈의 검신에 뭉치기 시작했다. “우웃!” 멀리서 구경하던 사람들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감히 상상도 못할 마나가 아슈의 검심에서 그 날카로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린 공작도 놀고 있지 않았다. 그랬다. 그의 다크 세이버에도 가공할 마나가 응축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블루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슬슬 마무리해볼까?” 흠칫! 아이린 공작의 몸이 움찔했다. 지금 상황에서 말을 하다니! 믿을 수 없었다. 지금 눈앞의 저 사내는 여전히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 아닌가! 아이린은 이를 악다물고 자신이 짜낼 수 있는 모든 마나의 기운을 다트 세이버에 몰아넣었다. 파흥! 순간, 다트 세이버 검 날이 살짝 깨져 바닥으로 튀었다. 아이린 공작의 전력을 감당해지지 못한 탓이었다. 그런데 조그마한 검 조각이 바닥에 닿는 순간! 퍼벙! 거대한 폭발음이 터졌다. 흠사 대포알이 터진 것만큼 엄청난 소음과 대단한 불꽃이었다. 아이린 공작과 블루의 자리가 뒤바뀌었다. 그것을 확인하기도 전에 니콜라스가 외쳤다. “전부 도망쳐라, 빨리! 번쩍!” 태양과도 같은 거대한 빛이 폭발했다. 파콰과과과광! 쿠르르 콰광! 강렬한 빛과 함께 사방으로 뿜어지는 엄청난 압력. 마치 절대 마법인 메테오가 떨어진 것 같았다. 구름? 그 구름이 땅바닥에서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먼지였다. 그것은 바람이 불든 말든 상관없이 저절로 흘러가고 있었다. “끄아아아아!” 니콜라스들의 비명소리였다. 거대한 두 마나의 충돌이 가져온 후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내지른 것이다. 최대한 멀리 물러서야만 했다. “뭐,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누군가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다행히 거대한 폭발 속에서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들의 순발력이 목숨을 구했다고 봐야했다. “휴, 어찌되었든 살았군.” “그래, 살긴 살았어.” 그리고 다들 구시렁거리며 푸념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자신들이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우리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조금 위치 좀 옮기자고. 이거 뭐 보이는 게 있어야지, 콜록콜록.” 손을 휘휘저어도 먼지구름이 가시지를 않았다. “저쪽으로 가자.” 그들은 먼지구름을 피해 바람이 부는 반대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은 궁금했다. 과연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거대한 섬광과 함께 뭔가 엄청난 일이 있었건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뭔지는 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대장은 어디 있는 거야?” “그러게 공작도 안보여.” “설마 죽지는 않았겠지?” 스콜의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의문토성이 눈빛들이었다. 그들이 정말 죽었을까? 그러나 곳 웃기 시작했다. “캬하하하, 그들이 누군데 죽어?” “하긴 인간이 아니지, 푸헤헤헤!” “맞습니다. 저 역시 아버지를 인간으로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니까요. 아니, ㄱ지금 저게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거라고 보십니까?” 슈리오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큰 크레이터가 형성되어 있었다. “하긴...... 둘 다 인간이 아니죠, 케케케케!” 죽이 척척 맞는 베르니스와 스콜, 슈리오였다. 유나와 니콜라스는 한심하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다가 주변으로 눈길을 돌렸다. 블루와 아이린 공작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먼지구름 안에 있나? 그곳만 빼고는 다 찾아보았다. 엄청난 먼지구름은 엄두가 안 났다. 그들 싸움은 거의 자연재해 수준이었다.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까지 떠들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침묵이 이어졌다. 그들은 먼지구름을 보고 있었다. 그것이 걷히길 기다리는 것이다. 바람 따라 조금씩 흩어지는 것 같긴 했지만, 워낙 광범위해 표시도 안 났다.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는 것도 단지 느낌뿐일지 몰랐다. 아니 느낌뿐이었다. 실제로 그 먼지들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답답할 정도로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니콜라스였다. 예민해진 오감 덕에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던 갓이다. 뭔가 낌새를 챈 나머지 일행들도 먼지구름 속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팍팍! 치고받는 소리?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자 소리가 들렸다. 잘못들은 것도 아니고 환정도 아니었다. 탁탁! 그렇다면 저 먼지구름 속에서 아직도 둘이 싸우고 있다는 말일까? 그렇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정말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게다가 싸우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 먼지구름 사이로 그들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회색의 그림자! 그들이었다. 그리고 짐작한 대로 맞붙어 싸우고 있었다. 먼지구름 속에서 위아래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인위적으로 공중에 몸을 띄우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충격을 감소시키는 동시에. 상대의 주먹과 발차기 충격에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니콜라스들은 그 싸움을 지켜보면서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을 느꼈다. 퍼벅! 퍼벅! 파파파파팍! 지치지도 않은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것일까? 한순간, 블루의 발차기가 완벽하게 아이린 공작의 안면부를 강타했다. “으윽!” 아이린 공작의 신형이 하염없이 밑으로 떨어졌다. 쿠웅! 저것이 사람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인가? “휴우!” 블루는 낙하하는 아이린 공작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숨 돌릴 틈을 찾은 탓이다. 그는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아이린 공작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죽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힘들었다. 그가 하늘을 주시하며 허탈한 음성으로 말했다. “날 죽여라!” 블루가 물었다. “왜?” 아이린 공작은 어렵게 블루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왜라니?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닌가?” 끄덕 “당연하지. 복수하러 왔다.” “그럼 어서 죽여라!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은 생각 없다.” 그런 아이린을 블루는 주시하면서 씩 웃을 뿐이었다. “구차하게 구걸하지마라. 나도 구걸을 받아줄 생각이 없으니까. 물론 죽일 생각도 없다.” “뭐?” 아이린이 의문어린 표정으로 블루를 올려보았다. “굳이 죽고 싶다면 자살이나 해라. 그건 말리지 않으마.” “그럼 어째서......?” “그럼 어째서 싸웠냐고?” 끄덕 아이린이 수긍을 표시하자 블루가 다시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애들 싸움이 이유가 필요한가?” “......!” “즐거웠네. 다음에 또 놀도록 하지.” 블루는 그 말을 남긴 채 휘적휘적 걸어가버렸다. 그의 말처럼 마치 신나게 논 아이가 집에 돌아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블루의 일행인 니콜라스와 베르니스, 스콜 등은 너무나도 블루다운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이게 얘들 싸움이었다고?” “헐, 이게 애들 싸움이라니! 애들 싸움 두 번만 하면 대륙이 침몰하겠군.” 베르니스와 스콜이 투덜거리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사라져갔고 있는 블루는 주시했다. 순간, 거대한 폭소가 터졌다. 그 폭소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아이린 공작이었다. “크하하하하하!” 미치지 않고서야 저렇게 웃을 수 있겠나 싶어 베르니스와 스콜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누구는 생사를 걸고 싸웠는데, 누구는 놀았단 말이지! 크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무색하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허탈감과 분노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알았기에 누구도 아이린 공작 옆으로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다만 광소를 터뜨리는 아이린 공작을 조용히 주시할 뿐이었다. “내가 졌군, 확실하게 졌어. 큭큭큭.” “.......” “그래, 나도 잘 놀았다. 다음에 다시 한 번 놀아주마. 이 치욕을 그때 꼭 돌려주마, 기필코!” 으득! 아이린의 가시 돋친 목소리가 어둠을 수놓았다. 길드 마스터 켄 페커드가 말했다. “오랜만이군.” “그렇군요.” 텐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도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게 된지 일 년이 다된 탓이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러자 자신의 허리를 토닥거리며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잘 지내긴...... 요즘 아주 삭신이 쑤셔. 늙으면 죽어야한다는 말을 새삼 깨닫고 있지. 아이구......!” 켄 페커드의 너스레에 텐시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잘 지내신 것 같네요. 그런데 급히 저를 찾으신 이유가 뭐죠? 혹시 계약문제가 생겼나요?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계약이 마음에 들지 않나요?” 텐시의 질문에 켄 페커드가 콧잔등을 긁으면서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나? 나로서는 아주 대만족일세. 지금 받고 있는 대우도 그렇고, 큰 중범죄가 아닌 이상 사형제도를 완화시켜준다던 약속도 그렇고...... 실은 처음 말했을 때만 해도 지켜질 만한 약속이 아니라고 생각했지.” “그렇군요. 그런 어째서......?” “자네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네.” 그리고 켄 페커드는 텐시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텐시는 말없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 결과 자네 덕에 내가 얻게 된 이득은 정말 만족 그 이상이라네. 내 정보를 그렇게 비싼 가격으로 팔아주는데 나로선 나쁠 게 뭐가 있겠나? 거기다 생각지도 않았던 황실이 비공식 지위까지 생겼으니 말일세. 그 덕에 더욱 좋은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고, 또 그 정보를 더 비싼 값에 팔게 되었으니 말일세. 난 자네와의 계약에 전혀 불만이 없다네.” 켄 페커드가 말하는 황실의 비공식 지위는 텐시가 운영하는 정보부를 말하는 것이다. “만족스러우시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저를 굳이 보자고 하신 이유가......?” 불만이 없다면 굳이 자신을 부를 이유가 없었다. 둘은 영원히 안 볼 사이도 아니지만, 자주 만나서 좋을 것도 없는 관계였다. 그런데 굳이 그녀를 만나겠다고 찾아왔다. 이유가 뭘까? 오는 도중에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자신을 왜 만나고 싶어하는지 진위를 파악해야 혹시 생길지 모르는 돌발 사태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니까. 몇 가지 가설 중 이미 몇 가지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 남은 두세 가지 가설 중 하나라는 얘기였다. 그녀는 긴장한 표정으로 앞에 놓인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켄 페커드의 입을 주시했다. “나란 사람은 원한은 아무리 사소한 것도 잊지는 않지만, 받은 것은 쉽게 잊는 다네. 하지만 자네에게는 받은 게 너무 많다보니, 아무리 나라고 해도 미안한 감이 있더군. 그래서 나름대로 선물을 주려고 불렀다네.” “설마!” 감탄사를 터뜨리자 켄 페커드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그 설마일 것 같네. 자네가 예전부터 부탁해왔던 물건을 찾은 듯하네.” “정말인가요?” “내가 흰소리할 사람으로 보이나? 이미 진위여부에 대한 파악도 끝난 상태라네.” “고맙습니다!” 텐시는 환희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텐시의 표정을 보고 켄 페커드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찾았다는 것은 위치만 알아냈다는 말이네. 그러니 너무 앞서가지 말게.” “그렇군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텤ㄴ시는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던졌다. “그 물건은 어디 있나요?” “크로타니안에서 발견되었다네.” “크로타니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크로타니안의 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크로타니안과 관련된 특급비밀 도장이 찍힌 서류만 해도 책장을 하나 가득 메우고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진 것은 업다. 뭔가 있는 것이 확실한데, 그 물건까지 그것에서 발견되었다니 두동이 밀려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럼 크로아티안으로 우리들이 가야할 텐데, 어떤 구실로 가지?’ 그렇게 생각하다가 자신이 이야기를 보두 듣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크로타니안이란 말만 들었지 정확한 지명을 듣지 못한 것이다. 질문을 하려는데 켄 페커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큰 뭄ㄴ제가 있네.” “무슨 문제죠?”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크로카니안의 황실과 관련이 있는 듯 보였네.” “황실?” 끄덕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진위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죽은 길드원이......” 그는 말꼬리를 흐렸다, 수수료를 원한다는 뜻이다. 사실 수수료를 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대답하지는 못했다, 머릿속이 터질 듯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아니, 나도 모르게 생각하기 싫었던 것이라 일부러 피한 것이었을까? 대체 무슨 짓을 벌이여고 그 물건을......’ 그녀는 이번 사건이 결코 쉽게 해결할 수 있느 ㄴ문제가 아님을 실감했다. 유슬라니안과 타르나토스의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 대전투로부터 한 달. 겁에 질려있는 타르나토스군이 스스로 빌리고 있음을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먼저 전투를 건 입장에서 먼저 백기를 들 구도 없는 일. 그러다보니 전투는 지지부진했지만, 전쟁은 쉽사리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사실 소규모 전투만 몇 번 일어났을 뿐, 대규모 전투는 그 후로 딱 한번밖에 없었다. 그것도 전투라기보다는 대학살에 가까웠지만. 어떻게 그 병력을 가지고도 전쟁에서 질 수 있냐는 상부의 분노와 질책 때문에 병사들 마음을 헤아려주지도 못한 채 무리하게 전장에 투입한 탓에 생긴 일이었다. 탈영병이 속출하고 있었다. 대부분 다른 왕국의 동맹군이거나 용병들이었지만 우습게만 볼 사안도 아니었다. 그 수가 이미 십만명에 넘어선 것이다, 미덥지 못한 지휘관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길 수 없다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그러다보니 이제 쪽수에서도 밀리는 상황이었다. 유슬라니안이 병력은 다른 동맹군의 보충으로 더욱 위용을 자랑했다. “어떻게 좋은 수가 없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까? 생각 좀 하면서 삽시다!” 웅성웅성 타르나코스 사령부는 골치가 지끈거렸다. 이미 투지에서 진 전쟁이었다. 그렇듯 답이 나오지 않는 전쟁을 질질 끌어봤자 손해만 늘어날 뿐이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박을 했지만, 뒤늦게ㅁ나마 상황을 인식하게이 이르렀기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 중이었다. 최대한 손해를 줄이면서 이 전쟁에서 발을 빼는 것이다. “생각이 있으면 전쟁도 벌이지 않았지.”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에 회의실 분위기가 흉험해졌다. 하지만 누구도 뭐라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타르나토스 제국의 야당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유드로 백작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처럼 전쟁을 반대했던 사람이 또 있던가. 그랬다. 그는 뭔가 의심스럽고 이해가 안 된다며 강하게 반전 운동을 폈다. 그때 들은 웃기지 말라며 그를 무시하고, 전쟁을 진행해 최악의 시나리오는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런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럼 생각이 있는 사람이 한마디 해보시죠.” “내가 생각이 있기에 입을 다물고 있는 건 생각 못하셨나봅니다. 하긴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했을 리 있겠는가마는, 큭큭큭.” 유드로 백작의 말장난으로 가득한 비꼼에 늙은 귀족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싸울 명분도 없고, 말발에서부터 밀리는데 무슨 싸움이 되겠는가. “우선 그렇게 원하니 한마디 하지요.” “......”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겁니다.” 그 한마디에 파장은 대단했다. 지금까지 죽은 듯이 입을 다물었던 사람들이 폭발한 탓이다. “그게 무슨 개소리요!” “입에서 내뱉는다고 다 말인 줄 아시오?” 이 정돈 양호한 편이었다. 차마 듣기 껄끄러운 심한 욕설까지 오갔다. 하지만 당사자인 유드로 백작의 표정을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할 뿐이었다. “아, 미안합니다. 너무 지루해서 나도 모르게......” 말과 달리 전혀 미안한 기색이 아니었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분노가 극에 달한 탓이다. 마치 폭풍전야의 잔잔함 같았다. 그리고 폭풍이 일어나려는 찰나, 유드로 백작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문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말을 조심해야 했다. 채찍은 이미 충분했고, 이제는 당근을 내밀 차례였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 타르나토스를 주겠다고 했습니까?” “그런 무슨 말이오?” 사람들이 분노를 ㅂ조금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질문을 던졌다. “난 유슬라니안의 야만인들 따위에게 성스러운 우리 타르나토스의 모래 한알 넘기기 싫소. 그것은 우리를 돌봐주시는 타르나토스 신에게 하는 배신과도 같은 행위니 말이오.” “허, 바른 말도 할 줄 아는군.” 붉게 달아오르던 안색을 가라앉히며 한 귀족이 말을 받았다. “바른 말이라니요? 저는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태어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 정도니 말이죠.” “그런데 그 오해를 살 만한 말을 꺼낸 저의가 대체 뭐란 말이오?” “오해라니요? 난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게요?” 귀족들이 들불처럼 일어나자, 유드로 백작이 차분하게 말문을 열었다. “아아, 먼가 오해를 하고 계신 듯하구뇽. 저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고 했지, 타르나토스를 떼어주겠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타르나토스의 모래알 하나 주고 싶지 않으니까요.” 귀족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근거렸다. 그제야 유드로 백작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모두를 자기 페이스로 끌어드렸다고 생각한 탓이다. “무슨 뜻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한 신관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글쎄......” 사람들이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결국 얼굴을 붉혔다. 유슬라니안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선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미안하네. 그들이 원하는 게 뭔가?” “미안하실 필요는 없습니가. 모를 수도 있죠.” 유드로 백작이 빙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신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유드로 백작은 모두들 숨을 죽이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크로타니안을 주는 겁니다.” “허!” 사람들이 저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들이 치고 내려간 명분이, 바로 약한 나라를 핍박한다는 것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리고...... 뭐였더라? 뭔가 전쟁을 할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유가 있었음인데, 얼른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때는 그렇게 들고 일어났는데도 말이다. ‘뭐지? 뭐였지?’ 떠오르는 것이 몇가지 있긴 했다. 그런데 그게 전쟁을 할 명분이 되기는 하는 건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들이 내세운 명분들의 허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엔, 맞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때 어째서 그토록 전쟁을 하려고 날뛰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한테 조종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정말 무슨 명분이었지?’ 정말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을 힘겹게 털어낸 귀족들은 유드로 백작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때 유드로가 말문을 열었다. “크로타니안이 악의 축이라는 명분을 살려주는 대신, 휴전하자고 말하는 겁니다. 그쪽과 이쪽이 계속 대립해봤자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줘야겠죠. 전쟁으로 나가는 전쟁물자로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 그들도 함의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때 조용히 입을 다물고 경청만 하고 있던 대신관 하나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그들이 과연 순순히 응해줄까? 나 같으면 상황이 그렇다 하더라도 응하지 않겠네마는.” “정확히 보셨습니다. 역시 소문대로 카엘 대신관님의 식견은 존경받을 만하군요.” 대신관을 우쭐해졌다. 거짓말이라도 칭찬은 기분이 좋은 것이다. 아무리 수양을 쌓은 사람이라도 사람인 이상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신관은 유드로의 칭찬으로 인해 사람들 시선이 자신한테 쏠리자, 억지로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제가 드릴 말씀을 카엘 대신관님께서 대신해주셨으니 조금 쉽게 말씀을 드릴 수 있겠군요. 그들은 물론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납득을 시켜야지요.” “어떻게 말인가?” “......” 씨익 유드로 백작이 다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제 8장 우리의 진정한 적은 헤르마틴 제국이다. “허허” 카르몰 후작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유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전보. “허허허.” 그때 옆에 서 있던 보좌관이 물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그러자 잠시 보좌관에게 눈길을 준 카르몽 후작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그냥 우스운 일이 생겼네. 어처구니가 없군.” “무슨 일인지 여쭈어 봐도 되는 일입니까?” “뭐, 숨길 필요 있겠나?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인데.” “심각한 일이군요.” 흠칫 카르몽은 보좌관의 한마디에 놀랐다.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말투 때문이었다. 하지만 짐짓 모른 척 물었다. “자네 내 밑에서 얼마나 있었지?” “올해로 팔 년입니다.” “그래?” 카르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자네는 이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카르몽의 눈빛이 싸늘한 빛을 뿜어냈다. “정말 몰라서 묻는가?” 그제야 보좌관이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사, 살려주십시오.” “아는군.” 차가운 한마디. “......!” 보좌관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목숨이 다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구차한 변명이 통하지 않을 상대다. 카르몽!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다. 조금전가지 허허실실 웃던 카르몽은 더 이상 이곳에 없었다. “죽여라!” 카르몽 후작의 나직한 한마디에 허공에서 검광이 반짝였다. 가만히 죽으며 그 만큼 고통의 시간도 짧지 않겠는가. 헛된 반항은 고통만 가증할 뿐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통증이 없었다. 고통도 느끼지 못한 만큼 빨리 죽은 것일까? 아니, 죽었다면 어떻게 생각을 할 수가 있지? 혹시나 해서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그제야 시야에 날카로운 검 한 자루가 들어왔다. 목 한 치 앞에서 한기를 내뿜고 있는 한 자루의 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날카로운 검의 기운리 신경을 건드린 탓이다. ‘사, 산건가?’ 꿀꺽 침을 삼키자 목젖이 움직이며 검날을 건드렸다. ‘읏!’ 가볍게 목에 그려진 혈선! 검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첩자는 아닌가 보군.”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황해 목소리가 크게 흘러나온 보좌관을 보며 카르몽 후작이 웃었다. “다행이군. 마음에 드는 인간을 잃기란 참으로 속상한 일이거든.” 그제야 자신의 목에서 검날이 사라졌다. 동시에 검으로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던 복면의 사내도 모습을 감추었다. “뭐, 자네라면 내가 이처럼 민감하게 구는 이유를 잘 알거라고 생각하네, 사과는 하지 않겠네.” “살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릴 뿐입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 보좌관은 자신의 옷소매로 이마를 훔쳤다. “그럼 자내가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들어봐도 될까?” “무슨, 아......!” 보좌관은 잠시 고민에 바졌다. “큰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단지 후작님의 습관 중 하나 때문에 그리 짐작했을 뿐이지요.” “습관이라고?” “심각하거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실 때는 늘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행동을 하시지 때문이지요.” “내가 그랬었나?” “우선 제가 팔 년간 모시면서 봐온 후작님은 늘 그러셨습니다. 후작님께서 그런 모습을 보이실 때는 큰 사건이 터졌죠.” “그렇군. 고맙네. 주의할 점을 깨우쳐줘서.” “아닙니다.” “아니긴, 혹시 다른 사람도 내 습관을 알고 있는가?” 순간 보좌관이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뭔가 일이 끝나지 않았음을 깨달은 탓이다. 잠시 망설이던 그. “제, 제가 알기엔 우선 저뿐입니다.” “......” 잠시 보좌관의 행동을 주시하던 카르몽 후작. “자네는 진정 눈치가 빠르군. 정말이지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군.” “......!” 스팟! 순간 조금저의 검광이 다시 빛을 발했다.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보좌관의 목. 툭! 바닥에 구르던 목이 한곳에 멈췄다. 그런데 어찌된 연유인가. 보좌관의 시선이 카르몽 후작을 향하고 있지 않은가. 카르몽 후작은 덤덤하게 보좌관의 시선을 받아들였다. “욕을 해도 좋네. 저주해도 좋네. 난 나름대로 자네는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해 주겠네. 편안하게 가게. 아마 가까운 시일에 만나게 될듯하니 말일세.” 그 즉시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가는 카르몽 후작의 뒷모습을 주시하듯 눈을 치켜뜨고 있던 보좌관의 눈이 후작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신기하게도 스르르 감겼다. “이 정보가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미투스 공작의 질문에 카르몽 후작은 아주 덤덤하게 대답했다. 미투스 공작은 혀를 찼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그들의 행동 때문이었다. “무슨 이득을 얻겠다고......” 이미 졌다고 보이는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에서 전쟁물자를 다시 축적하고 있다는 전보였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그들의 항복을 받고 피해보상을 요구할 준비 중이던 유슬라니안의 입장에서 기가 막힐 누릇이었다. 이렇게 질질 끌어봤자 이미 진 전쟁을 이길 방도가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소모전. 불필요한 소모전이 연장될 뿐이었다. “젠장! 무슨 장난을 치는 거야?” 미투스 공작이 자신도 모르게 분노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분명히 뭔가가 있었다. 뭔가 있지 않다면 이런 무리한 일을 감행할 이유가 없었다. 반전의 기회를 노리는 것일까? 그것은 말도 안 된다. 빤히 보이는 전력이다. 타르나토스가 하나 더 있어 서로 동맹을 하지 않는 한 그들에게 승산이 없는 전쟁이다. 막말로 헤르마틴이 마음을 바꿔 뒤통수를 치지 않는 한 패색이 짙다. 헤르마틴에서 그런 유치한 짓을 할 이유도 없거니와, 다 이긴 전쟁에서 손해 볼 짓을 할 정도로 바보도 아니었다. 이제는 전리품만 챙기면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크로타니안과 맞닿은 지역에서 몬스터들이 들끓고 있어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이런 일까지 겹치니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몬스터 정벌대를 보내 쓸어버릴 생각으로, 군대를 그곳으로 보낼 준비까지 얼추 마친 상태였다. 그들의 준동이 보통 때보다 좀 이르지만, 몬스터들 마음까지 헤아릴 필요는 없었으니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이번엔 조금 심각하다는 소식이 날아들고 있었다. 어서 빨리 좀 보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는 가운데, 타르나토스에서 다시 전쟁물자를 모으는 중이라니. 얼른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움을 요청한 귀족들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군대를 보내긴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군대를 차출한다는 것은...... 머리가 아프다. 미투스 공작이 이마를 지압하며 한숨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혹시 이유가 뭔지 아시오?” “알았다면 먼저 말씀을 드렸겠지요.” “그렇다면 정말 뭔가 있다는 말인가 보군요.” 끄덕 미투스 공작의 말에 카르몽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으로 정보를 모아오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우리 정보망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 전쟁 물자를 끌어들이는 것도 특급정보에 해당되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수고 많았소.” “당연한 일을요.” “지금의 일은 결코 헤르마틴을 포함한 주변국이 알아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물론이지요. 그 정도는 인지하고 있습니다.” 카르몽 후작의 말에 미투스 공작은 든든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카르몽 후작이 잠시 생각을 하고 말문을 열었다. “우선 우리 군대에서 병력을 물리도록 하지요.” “그건 무슨 말이오?” “지금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인데, 우리가 굳이 그들을 전쟁물자를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없는 상황이 아닐까 싶군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정보인데, 굳이 알 필요가 없다니! 그렇다고 헛소리를 할 후작도 아니다. “그들이 특급비밀로 숨기는 일입니다. 우리가 알지 않길 원하는 것일 테지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일부러 우리에게 알릴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허.” 그럴싸했다. 아니, 듣고 보니 그랬다. 다시 생각에 잠기는 미투스 공작이었다. “이 정보를 어떻게 얻었소?” “황실에 주둔시킨 첩자를 통해 빼낸 정보입니다. 어떻게 구한 것인지까지는 알 수가 없지요. 원하면 알아볼 수도 있을 겁니다. 다소 시일은 걸리겠지만.” “그럼 부탁하겠소.” “알겠습니다.” “그런데 하나 질문을 해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왜 우리한테 일부러 흘렸다고 생각하게 된 거요?” 웃음을 머금은 카르몽 후작이 말문을 열었다. “이처럼 공교롭게 들어온 큰 정보는 함정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사실일 가능성도 높지요.” “오호, 처음 듣는 이야기군.” 미투스 공작이 감탄하며 자신도 모르게 혀 차는 소리를 냈다. 듣고 있던 카르몽 후작은 입 꼬리를 올렸다. 우스운 얘기지만 감탄하는 미투스 공작의 모습이 귀엽게 보인 탓이었다. “이런 정도는 십중팔구는 진실입니다.” “그렇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구려.” “그래서 저희는 늘 이런 큰 정보는 반대로 생각하지요. 이번 건도, 내가 그들 입장이라면 어떤 상황에서 전쟁 물자에 대한 정보를 흘렸을까 생각해 보았지요.” “그런가? 그렇다면 후작이라면 어떤 상황이겠소?” “미투스 공작께서도 아시다시피 그들의 전력과 우리 측의 전력은 비등합니다.” “알고 있소.” “그렇다면 우리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상황이라도 이기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간헐적인 소모전만 벌인다면 이 전쟁의 끝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것이지요. 그 말은 우리 유슬라니안의 국체가 낭비된다는 말과도 동일합니다.” “그 말은 타르나토스도 같은 상황이란 말이 아닙니까?” “물론 그렇지요. 문제는 타르나토스는 우리의 경제양식과 판이하게 틀리다는 점이 있습니다.” “허, 짐작은 가오만 굳이 그들의 경제상황까지 들을 필요가 있겠소?” “아, 죄송합니다. 자세하게 설명하려다 보니.” “뭐, 죄송할 것까지야.” 머쓱한 표정으로 자신의 짧은 수염을 쓸어보는 미투스 공작이었다. 면도를 안 하 지 며칠 되다보니 꺼칠꺼칠했다. “그렇다면 대충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 미투스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유슬라니안 제국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일정량의 세금을 걷지만, 타르나토스에서는 자발적으로 헌금을 합니다. 특히 종교적으로 뭉쳐진 광신도적인 신앙심은 타의추종을 불허하죠.”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는군.” “여하튼 우리 유슬라니안 제국에서는 국체가 떨어지면 세금을 올릴 수 밖에없습니다. 그로인해 억압적 강탈이라며 백성들의 원한을 얻게 되지요. 하지만 타르나토스는 우리 유슬라니안과 다르게 그들은 신자들로서 헌금을 하여 힘들어도 신에게 자신의 깊은 믿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기에 국민들의 신뢰는 더욱 강한 결속력을 형성시키지요.” 겨우겨우 고개는 끄덕이지만 표정엔 불만이 가득한 미투스 공작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구조로군.” “이해하지 마십시오.” “어째서지?” “광신도들은 말 그래도 미쳤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정상적인 정신으로 미친 사람들의 머릿속을 이해하기란 상당히 무리가 가기 때문이지요.” “크큭!” “후후후.” 카르몽 후작의 말장난과도 같은 발언에 미투스 공작은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카르몽 후작의 말로써 뭔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그들이 우리에게 보상을 하지 않기 위해 하는 시위와도 같은 것이겠군.” 끄덕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그런 것이라면 이들은 바보가 확실하겠군.” “미투스 공작님 말씀대로라면 이들은 정말 바보겠지요. 그러나 제가 아는 크로타니안의 인간들은 결코 바보가 아닙니다.” “흠,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미투스 공작은 쉽게 수긍했다. 그들이 바보라면 이처럼 골머리를 썩고있는 자신들도 바보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나올지, 지금의 손해를 어떤 방식으로 보상할지를 생각해봐야겠군. 전쟁에서 패하고도 손해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역사에서 최고의 바보로 평가받을 테니 말이오.” “그것만은 피해야겠지요.” “우선은 후작의 말대로 군병들을 물리는 모습을 보여줘야겠군. 그래야 그들이 행동에 나설 테니 말이오.” “몰론입니다.” “원상복귀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군병들은 따로 모아서 몬스터토벌단으로 보내도록 해야겠소.” “그것은 당연한 말씀이지요.” “이런 일들은 내가 추진할 테니, 카르몽 후작은 다른 일을 맡아주시오.” “무슨 일 말씀입니까?” “다른 나라의 군대를 붙잡고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주시오. 전리품을 챙기겠다며 떠나려 하는 군대가 있을 테니 말이오.” “알겠습니다.” 그때 물러나려는 카르몽 후작을 불러 세웠다. “잠시 헤르마틴은......” “예?” “아, 아니오. 잠시 더 생각을 해봐야겠소.” 그러면서 미투스 공작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헤르마틴은 껄끄러운 가시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전력이기도 했다. 없어선 안 되지만 있으면 피곤한...... 특히, 소수만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아이린 공작과 연류된 이상 계속 잡고 있기가 껄끄러웠다. “우선은 가보시오. 그냥 내가 해결을 봐야겠소.” “알겠습니다. 그럼......” 헤르마틴의 의회실.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상당수가 귀찮지만 힘겹게 나와 준 듯한 모습으로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죠셉의 말에 한 귀족이 투덜거리듯 반문했다. “흥, 그까짓 몬스터 따위에게 쩔쩔매 우리한테 사정을 하다니, 모자란 것들!” 죠셉은 그의 거만한 말투에 반감이 일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귀족들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임무는 그들을 최대한 구슬려 군대를 그곳으로 파견시키는 것. 특히 국경근처의 문제라 예민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자신과 몇몇뿐, 다른 귀족들은 자신과 관계없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것기 아니기 때문이다. 황제는 가만히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요 근래 크게 성장한 그는 죠셉에게조차 마음을 들키지 않을 정도로 심기가 굳어 있었다. 죠셉은 그런 황제가 대견했다. 물론 섭섭한 감정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과 같은 것일 터. 언제나 품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느새 훌쩍 커 품을 떠나버리는 자식의 뒷모습을 보는 부모의 아련한 마음이랄까? 그때 황제가 말문을 열었다. “죠셉 경, 상황을 조금 자세히 말해주시오.” “예, 전하.” 죠셉은 자신이 간략하게 정리해온 서류를 황제에게 넘겨주었다. 다섯 장 정도의 상당한 분량이었다. “심각하군.” 죠셉이 말했다. “텐시 경께서 모아온 정보입니다. 저 혼자였다면 이러한 사실까지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텐시 경 수고가 많았고.” 황제의 인사에 텐시가 조용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럼 계속하시오.” “네, 전하! 우선 서류에서 보신 바와 같이 몬스터 군단은 우리 헤르마틴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흠......” “우선 이해하시기 쉽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처음 이런 이상한 징조가 보인 것은 여섯 달 전이라고 합니다.” “의외로 상당한 시일이 지났군.” 그때 조금 전 그 귀족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역시 머저리들이 확실하군. 여섯 달이 넘도록 몬스터 따위를 처리하지못하고 지금에 와서 지원을 요청하다니!” 죠셉은 저 귀족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함부로 나설 수도 없었다. 황제 앞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죠셉의 마음을 알았던가. 황제가 인상을 구기고 짧게 한마디 던졌다. “시끄럽소!” 그 한마디에 의회실 분위기는 더욱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죠셉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을 표시했다. “그때는 그렇게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영지에서 토벌하는 정도로 해결이 가능했기 때문이지요. 평소와 다르게 뭔가 낌새가 이상했음에도 매년 연례행사처럼 있는 일이다 보니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합니다. 저도 몇 달 전 이 정보를 처음 접했을 당시만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겼었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아 상황이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갑자기 밀려나오는 몬스터들의 수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오크만으로 이루어졌던 습격에 다른 몬스터들이 끼어들기 시작한 겁니다.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심해졌다고 합니다. 트롤에서 웨워 울프, 거기다 미노타우르스까지 상급 몬스터가 모습을 그러낸 거죠.” 그제야 귀족들이 귀를 기울였다. 단순한 몬스터라면 모를까, 미노타우르스까지 포함되어 있다면 쉽게 볼 문제가 아니었다. 거기다 몬스터들의 연합이라니! 이런 이야기는 평생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제가 다급하게 의회를 소환한 이유는 지금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국경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몬스터들의 수가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그 크로아티안 국경지대만이 아니라 지금은 이곳저곳에서 들불처럼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움직임을 보건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헤르마틴 황궁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사료되옵니다.” “흠?” “그게 무슨 말이오?” 순간 의회실이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의 행동양식을 분석해본 결과 뭔가 목적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 말은 몬스터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이오? 몬스터가? 하아, 말도 안 돼! 녀석들이 머리를 굴려 왕국이라도 하나 건설하겠다는 거요, 뭐요? 몬스터라는 녀석들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존재가 아니었소?” 마치 죠셉이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따지고 드는 귀족들이었다. 죠셉은 그런 귀족을 똑바로 주시하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간혹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듯 말하는 모습은 상당히 위압적일 수가 있다. “그렇죠. 그게 몬스터들의 정의였죠. 하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그 정의가 통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충분히 전략적입니다. 마치 누군가의 지시를, 아니 조종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장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뭘?” 블루가 질문을 던진 스콜을 힐끔 바라봤다. “아이린 공작과 있었던 일 말이에요. 사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지금 이 자리가 가시방석이라니까요?” 슬쩍 편을 들어달라는 듯 니콜라스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든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스콜은 그가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에효.” 늘어나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복수도 좋지만, 조금 상황을 보고 저지를 것이지.’ 계속 투덜거리는 스콜이었다, 그 당시엔 정말 통쾌했다. 사실 자신도 유슬라니안의 술책에 당한 피해자가 아니던가. 특히 유슬라니안 군대한테 목숨을 잃을 뻔하지 않았던가. 그때는 그때고...... 지금 베르니스와 스콜로서는 불편하다는 생각뿐이다. 블루가 아이린을 그때 죽였다면 더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었겠지만, 나름대로 죽이지 않은 것도 문제가 심각했다. 아이린 공작 자식들의 표독스러운 눈빛! 그 중에서도 유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가슴이 싸늘해질 지경이었다. 마치 텐시가 그 자리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공포감과 맞먹을 정도였다. 하지만 누가 봐도 정정당당한 결투였다. 아이린 공작의 자존심이 무너지기는 했지만, 목숨을 잃은 것보다는 나았다. 그래서 덤벼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눈빛까지 감사를 표했으면 좋았으련만, 복수하겠다는 듯 이글거리는 살벌한 눈빛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니콜라스.” 블루의 부름에 니콜라스가 눈을 떴다. “예, 주군.”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헤르마틴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는 이곳에서 시간을 버릴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죠셉 경의 연락을 받았는데, 몬스터들의 침략으로 나라가 어수선하다고 합니다. 군대를 돌려서 국경을 지켜야 할 듯합니다.” “그렇군.” 블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마음먹었던 복수도 끝났겠다, 아이린 자식들이라는 녀석들의 도전적인 눈빛도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알아서들 찾아올 것 같았다. 이제는 떠나도 될 듯했다. 충분하다 못해 과할 정도로 즐긴 탯이다. 여러 모로 만족스러웠다. 특히, 아이린 공작과의 결투로 인해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심득을 얻기까지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블루는 아이린 공작의 자신의 무공을 가지고 만들어낸 무공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럼 돌아가지.” “알겠습니다.” 헤르마틴에서 온 주둔군의 행보는 블루의 한마디에 결정되었다. 혜르마틴이 떠난다는 갑작스런 통보에 미투스 공작은 난색을 표했다. 아직은 이들이 있어줘야 했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달려온 미투스 공작은 니콜라스를 찾았다. “어째서입니까?” “우리가 이속에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오.” 니콜라스의 말은 단호했다. 이미 짐작한 말이긴 했지만, 뭔가 답을 내기도 전에 행동하는 이들의 갑작스런 움직임에 당혹스런 미투스 공작이었다. 어떻게든 이들은 잡아야 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보기엔 끝나소.” 니콜라스는 뒤도 보지 않고 답했다. 미투스 공작이 문노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디 전쟁이 끝났단 말이오! 지금 계속 들어오는 저들이 보이지 않는단 말이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우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우리로서는 할 도리를 다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소. 우리는 계약한 대가를 받아가겠소.” 미투스 공작은 이를 갈았다. “우리는 줄 수 없소! 계약을 완전히 이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오!” 순간 니콜라스가 뒤를 돌아 미투스 공작의 두 눈을 주시했다. “진담이오?” 묵직한 저음은 단순한 위압이 아닌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미투스 공작 역시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소!” “......” 씨익 니콜라스는 비릭한 미소를 흘릴 뿐이었다. 순간 불안해지는 미투스 공작이었다. 한참 후, 니콜라스가 가볍게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린 이제부터 적이군.” “......!” 니콜라스의 비릿한 미소가 잔혹하게 변했다. 미투스 공작은 상상도 하지 못한 답변에 놀라 호흡을 멈추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이해를 못하나? 동맹은 깨졌다는 말이지.” 스캉! 흠칫! 장상조차 보지 못했다. 어느새 미투스 공작의 목 아래 검날이 닿아 있었다. “허억허억.” 미투스 공작이 굼을 몰아쉬었다. 놀란 탓이다. “죽어주겠는가?” 니콜라스의 얼굴에 비릿한 살기가 걸려있었다. 장난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이게 뭐하는 짓인가?” 미투스 공작은 정신을 가다듬고 호통을 치듯 말문을 열었다. 그 다급한 목소리에 미투스 공작을 따라오다 문밖에서 기다리던 병사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쾅! “무슨 일입니까? 헉, 공작저하!”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병사들이 자신의 병장기를 뽑아들고 살기를 뿜어댄 탓이다. 지금의 소리를 듣고 또 다른 병력이 들어올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니콜라스와 블루, 베르니스, 스콜등은 그들이 오건 말건 전혀 신경쓰는 모습이 아니었다. “괜찮으십니까?” 한 병사의 질문에 미투스 공작이 조심그럽게 대답했다. “침착해라, 침착.” 그것을 본 니콜라스가 말문을 열었다. “역시 최고의 복병은 당신이군.” 미투스 공작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공황상태로 보이지는 않았다. 뭔가 치밀하게 계산하는 눈빛이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당신을 죽이면 전쟁이 편해질 것 같다는 말이지. 어디, 적이된 기념으로 자네의 목을 따볼까?” 우웅 검이 울었다. 니콜라스가 검에 마나를 주입한 탓이다. “그, 그런 협박이 통할 것 같소!” 다시 마른침을 삼키는 미투스 공작이었다. “협박이 아니다. 우리와 자네측이 영원한 우방이라고 생각하나? 난 그렇지 않아. 아마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 “......” “설마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꿀꺽 그때, 기사 하나가 눈치 없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이 개 같은 자식! 어서 공작저하를 풀어주지 못할까?” “크큭, 실력이 있으면 데려가 보시지?” 가만히 있던 블루가 한마디 내뱉었다. 도발하는 말투다. 블루로서는 이런 재미날 것 같은 싸움에서 빠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일부터 싸움을 만들어 해오지 않았던가. 기사는 너무나도 단순히 도발에 넘어왔다. “이 자식이!” 블루는 그런 기사를 보면서 손목을 풀고 있었다. 마치 어서 덤비라는 듯이 말이다. 그때 미투스 공작이 큰소리로 다급히 외쳤다. “모두 가만히 있어라!” “하, 하지만!” “항명할 셈이냐?” “......으득!” “큭큭큭!” 블루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비릿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왜? 이 늙은이가 무섭나 보지?” 블루는 즐겁다는 듯이 열심히 도발했다. 그럴수록 미투스 공작은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낄 수 있었다. ‘절대로 싸우게 해서는 안 된다.’ 아이린 공작을 쓰러뜨린 자! 인간이 아닌 것이다. 그런 자와 싸움이라니! 필패다. 문제는 단순한 필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형사고가 터질지 모른다는 것. 특히 그는 개인적으로 유슬라니안과 악연이 있는 사내였다. “절대로 도발에 응하면 안 된다! 내가 죽더라도 말이다!” 미투스 공작의 처절한 목소리에 기사들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블루는 그런 그들을 보면서 도발을 계속했다. 확실하게 즐기고 있는 것이다. ‘역시 대장은 변태야.’ 스콜과 베르니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곤 서로를 의식한 나머지 흠칫했다. 너도 그런 생각이냐 라고 표정에 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블루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때 니콜라스가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죽여줄까?” 흠칫 모두의 시선이 니콜라스에게 쏠린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말해라. 마지막 소원이니 네가 원하는 대로 죽여주마.” 니콜라스가 검으로 목 줄기를 가볍게 쓸었다. 스윽 미투스 공작이 목에 가벼운 상처가 입을 벌렸다. 미투스 공작이 두 눈을 질끈 감고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정말로 자신의 목을 벨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 알겠소.” “무엇을 말이지?” “다,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소. 그러니......” “그러니?” 얄밉게 말꼬리를 따라 늘어지는 니콜라스였다. “빨리 이곳을 떠나주시오!” 씨익 니콜라스는 언제 미투스 공작을 위협했냐는 듯 능청스러운 모습으로 검을 검집에 넣었다. “원래 그럴 생각이었네.” “......이익!” 미투스 공작은 분노에 몸을 떨었다.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이자들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일 초라도 있고 싶지 않았다. 저자들은 겉치레가 없었다. 기분에 따라 속마음을 그대로 보여줬다. 저토록 감정적이며 돌발적인 모습을 보이는 자들에겐 심리싸움이 통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좋다 나쁘다만 따지니까. 사실 그것도 말을 들어야 따지기라도 할 텐데, 자신들의 기분에 따리 귀를 닫아버리는 자들에게 무슨 말이 통하겠는가. 차라리 이런 자들은 없는 게 좋았다. 기강이 흔들리고, 강권에 구멍이 뚫리기 때문이다. ‘내 오늘 이 빚을 꼭 받아내고 말리라!’ 으드득! 지금은 분노를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미투스 공작의 속마음이야 어찌되는 원하는 답을 얻어낸 니콜라스와 블루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남아있는 미투스 공작의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 떨림은 조금씩 강렬해졌다. 미투스 공작의 움켜쥔 주먹에서 피가 맺혔다.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분노는 주변의 모슨 것을 잊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단 하나만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모두들 잘 참아주었다.” “......” 블루들에게 당한 모욕 탓일까. 분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기사들까지 눈에 띄었다. 사진의 명을 이행하기 위해 애써 참은 분노를 참은 대가였다. 그것을 보고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눈물은 값진 것이었다, 미투스 공작은 그들의 눈물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히는 통증을 느꼈다. “이제부터 우리의 적은 타르나토스 따위가 아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강직하게 서 있던 한 기사가 물었다. “헤르마틴이다!” 미투스 공작의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헤르마틴이요?” “그래, 지금 거들이 한 소리는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진정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저들은 분명 우리의 목을 조이기 위해 다가올 것이다. 적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쾅! 결국, 스스로도 분노를 참지 못한 미투스 공작의 주먹이 탁자를 내리쳤다. 제 9장 남자는 주먹, 구타는 손맛 유슬라니안에서 헤르마틴 황궁으로 돌아가던 니콜라스의 군대는 크로타니안과 맞닿은 남쪽 국경지대로 향했다. 몬스터를 토벌하라는 황제의 명이 내려진 탓이었다, 명이 떨어진 지 사흘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명령을 하달받은 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보이는 것은 페허뿐이었다.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이곳저곳 널려있는 죽은 시체들뿐. 그 시체를 먹이이 양 먹고 있던 까마귀들이 갑작스런 불청객에 놀라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푸드덕 그 이후로 하늘 위에는 까마귀들이 자신이 그럼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사실 퍼음엔 하늘 가득히 날아다니는 까마위 떼를 보고 먹구름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젠장, 늦은 건가?” 베르니스가 바닥에 있던 애꿋은 돌을 걷어찼다. 퍽!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 오늘 돌은 선회하며 날고 있는 까마귀들 사이를 뚫고 멀리 사라졌다. 까악! 까아악! 놀랐음인지 비명을 지르는 까마귀들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몬스터 토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뒤늦게 이곳의 상황을 듣고 다급하게 달려왔다. 열흘거리를 사흘로 단축한 것은 대단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르니스의 말이 아니다고 모두들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마치 자신들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진 탓이다. “진군한다.” 니콜라스의 묵직한 한마디에 기사와 병사들은 다시 걸을음 재촉했다. 자신들의 할 일이 생각난 탓이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사명이 가슴에 새겨졌다. 그때 블루가 잠시 멈췄다. “저곳이다!” 블루가 손끝으로 멀리 지평선을 가리볐다. 그러자 니콜라스가 흠칫하며 잠시 주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곳은 자신이 보고받은 곳과 상당히 동떨어진 위치였다. 하지만 분명 그곳에서 대단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난잡한 마나의 흐름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아마 자신이 받은 정보네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지시받은 방향에서는 인간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블루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말이 달리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기엔 날아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니콜라스는 그런 블루를 보고 기사와 병사들에게 외쳤다. “저곳이다! 우리의 동료들이 저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기사단은 병사들을 독려하여 진군한다” “와아아아아!” 니콜라스는 그들의 함성을 뒤로하고 블루의 뒤를 좇아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점으로 화하는 니콜라스. 그것을 보고 당황한 스콜과 베르니스는 투덜거리면서 뒤따라 뛰었다. “젠장, 저 괴물들! 이젠 아득하네.” “뭐해? 어서 뛰어!” “내가 기어가고 있는 걸로 보이내?” 경공을 하면서조차 티격태격하는 둘이었다. 헤르마틴의 남쪽 국경. “밀린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대체 나라에서 오고 있다는 군대는 지금 무엇을 하는 거야?” “몰라! 그 자식들 지금 우리가 죽어간다는 것도 모르고 있을 거야! 개자식들! 빨리 막아! 저쪽에 구멍이 생기고 있잖아!” “젠장! 보충인원들을 투입시켜라! 어서!” 소란스러웠다. 창과 칼 그리고 화살과 마법이 난무하고 있었다. 전쟁 중이란 말인가? 전쟁은 전쟁이었다. 다만 상대가 달랐을 뿐이다. 달라도 아주 많이 달랐다. 인간과 인간의 전투가 아니라 인간과 몬스터군단의 전투였다. 밀려오는 몬스터를 막기 위해 주변 영지의 모든 병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열여섯 살 이상의 소년이라면 노인까지 모기를 들고 전투에 참여해야 했다. 다급하게 만들어진 네 번째 방어구역. 긁어모은 병력은 팔만이나 되었으나, 그것을 일곱으로 나눠 병력을 분산하여 몬스터들이 올 만할 길목을 막고서 방어벽을 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유슬라니안의 국경지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함게 크로타니안을 마주하고 있는 헤르마틴의 국경지대도 같은 상황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말은 크로타니안이 몬스터를 부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게 만들었지만, 알아본 바로는 크로타니안도 자신들과 같은 입장이라는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침공해온 몬스터들. 아니, 몬스터 군단이라는 말이 어울리겠다. 보통의 몬스터들처럼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민첩한 움직임과 체계적인 모습으로 빠른 돌파력을 구사했다. 마치 인간의 군대처럼 말이다. 마법과 강궁으로 멀리서부터 공격해 수백을 곤죽으로 만들었음에도 그들의 피해는 거의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우글거리다시피 밀려오는 몬스터들의 수가 너무 많은 탓이었다. “대체 뭐야?” 처음에는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꾸워어어! 트롤이 숲 뒤에서 기습적으로 나타났다. 순간, 당혹감에 병사들은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짧은 사이, 트롤은 앞에 있던 한 병사를 들어 척추를 접어버렸다. 우드득! “으아아아아아악!”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비명이 허공을 메웠다. 트롤의 기습을 받은 곳이 이곳 한 곳이 아니란 뜻이다. 처음에 몬스터들이 출몰할 때만 해도 조금 많다고 생각한 정도였다. 충분히 밀어보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긴다는 생각보다 어떻게든 방어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살고 싶은 원초적인 욕망을 누르고 자신이 막지 못하면, 가족들이 죽는 다는 생각에 버틸 뿐이었다. ‘도, 도대체...... 도대체 이것들이 어디서 기어 나오는 것일까? 누군가 이것들을 찍어내기라도 하는 걸까? 이 좁아터진 산맥 어디에서 괴물들이 이렇게 몰려 있을 수 있었단 말인가!’ 누군가 제발 이 의문을 풀어줬으면 싶었다. 특히나 더 큰 의문이 있었다. 이 몬스터들은 어째서인지 정해진 시간에 약 여섯 시간 정도만 밀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외의 시간은 마치 언제 그랬냐는 것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것이 그나마 병사들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만큼 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이 없었다.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이 이 산맥 안에 포진해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거기에 반해 인간들은 하나씩 죽어갔다. 병력은 추가되지 않고, 사람하나가 죽으면 그 자리가 그래도 빈다. 그 심리적 압박은 엄청났다. “어서! 어서 군대를 보내달란 말이야! 누가 우릴 구해줘!” 푸욱! 공포의 비명을 지른 병사는 자신의 복부에 낡은 검을 쑤셔 박으며 좋아하는 오크의 얼굴이 생에 마지막 영상이었다. “빌어먹을! 황실에서는 아직도 연락이 없소?” “이미 오고 있다는 전갈입니다.” “흥! 이미 오고 있다면 도착했어야 하지 않은가! 제길, 도착하려면 십 년은 걸리겠군. 느림보 새끼들!” 독기를 머금은 한 영주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영주의 말에 동조했다. “미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황실은 몬스터 따위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저건 이미 몬스터 따위가 아니야. 군대라고! 인간들처럼 훈련을 받은 정예라고!” “그걸 누가 인정하겠소.” 모두 침묵했다. 엄연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지금의 상황이 오기 점까지는 인정을 못하지 않았던가. “이런 빌어먹을! 대체 이런 빌어먹을 것들이 어떻게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것이지요?” 한 기사가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변은 없었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누가 알겠는가, 지금의 상황을 말이다. 정작 달하고 있는 자신들도 몰랐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몬스터들은 뭔가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전혀 우습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우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몬스터의 전략전술은 인간의 그것과 꼭 빼닮았다. 기습과 유인 등 전략을 구사하는 몬스터들에게 당한 것을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려왔다. “대체 어떤 목적일까요?” “우리가 그것을 알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오.” “답답합니다. 어떻게 손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이들의 정체와 목적을 모르는 지금 우리는 지원군밖에 없습니다. 우리로서는 이 상태로 일주일만 더 있으면 전별입니다. 아니 일주일도 느리군. 삼 일이나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나이든 노장이 소리를 치며 자신의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황실에 충성하고 세금을 내는 대가가 이런 것이라면 검을 몬스터에서 황실로 돌릴 것이오!” 순간, 야단법석이었다. 반반으로 갈린 탓이다. 그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반이고, 아직 기다려 보자고 말하는 사람이 반이었다. 누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하루라도 더 있고 싶겠는가. 그러나 가족들이 걸렸다. “으득! 이 모든 일이 우리의 의심대로 크로타니안에서 벌리고 있는 일이라면 그곳에 살고 있는 것들은 모조리 갈아서 마셔버릴 것이오.” 다시 그 노장의 한마디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도 같은 생각이었기 떄문이다. “그건 당연한 것이오.” “맞소!” 사람들의 분노가 헤르마틴 황실에서 크로타니안으로 넘어간 듯 보이자, 중재자 입장에서 관망하고 있던 한 귀족이 입을 열었다. “곧 올 것이어. 하루만 더 기다려 봅시다.” 모두들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 년보다 긴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한다니! 병사들에게 뭐라고 전해야 할지 막막했다. 무거운 어깨를 늘어뜨리고 막사를 벗어나는 기사와 가족들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날이 밝았다. 다시 지옥 같은 시간이 자신들을 반길 것이다. 자신들은 결코 반갑지 않음에도 피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그림자가 등을 떠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었다. 살육의 시간! 퍼억! 쩌억! 피떡이 된 것은 한순간이었다. 오우거의 주먹에 사람은 고기 덩어리도 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비명조차 지를 시간이라도 있었다면...... “오, 오우거라니!” 병사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버텼다. 버틸 만해서 버틴 게 아니다. 겨우 버틴 것이다. 그런데 그마저 어려운 상황이 왔다. 오우거의 등장이 바로 그 신호탄처럼 보였다. 우워어어어! 오우거가 몸을 휘두르면서 괴성을 질렀다. 크롤까지는 어떻게 하겠는데, 오우거는 불가능이었다. 오우게 다섯이면 드래곤과 힘으로 겨뤄도 밀리지 않는 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그들의 파괴력과 힘이 대단하다는 뜻이다. 그들 손에 잡히는 것은 모조리 흉기였다. 나무에서 바위 그리고 사람들조차. 이미 피떡이 된 사람의 다리를 잡고 휘두르며 방사들을 위협했다. “으악! 살려줘!” “아직은 죽기 싫단 말이야, 으흐흑!” 눈물과 콧물이 엉킨 얼굴로 검을 휘두른다. 하지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오크들은 그런 병사들을 보며 놀리듯 천천히 다가섰다. “취익, 취이익” “키키키키키.” 아비규환! 이곳이 진정한 지옥이었다. 수많은 괴물들이 인간을 짓밟고 괴성을 지른다. 병사나 기사들은 자신들이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죽어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으아아! 감히 내 친구를, 이 자식아아아!” 젊은 병사 하나가 검날을 앞으로 뻗으며 트롤에게 달려들었다. 막무가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동료들이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멀어져 버린 후였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발을 동동 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테 트롤이 멀뚱히 자신을 공격하는 병사를 바라보기만 했다. 정신 없이 뛰어가던 병사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음인가. 잠시 멈칫했다. 바로 그때였다. 두두두두두두 뭔가 지진이 일어난 듯 땅이 울렸다. 그러나 지진은 아니었다. 젊은 병사의 시선이 옆을 향하자 지켜보던 자들의 시선도 옆으로 향했다. 그리고 입을 쩍 벌렸다. 젊은 병사를 향해 오우거가 한 마리다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말이다. “으, 으, 으아아아아아아악!” 파직! 달리던 오우거 발 아래 처참히 짓밝혀 죽은 젊은 병사. 그 장면을 구경하고 있던 트롤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다른 희생양을 찾아 달려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도, 도망쳐!” 속수무책이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젠 지쳤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쳤다. 트롤의 거대한 주먹이 자신들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자 눈을 질끈 감았다. 피할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 이젠 죽는 건가!” “이곳이 정말 헤르마틴이 맞단 말인가?” “도무지 믿을 수 없군.” 몬스터들과 치르는 전쟁 한복판. 이 아비규환의 장소에서 들리는 천하태평한 목소리. “큭큭, 아주 재미있겠어.” “아니, 대장! 대장은 재미밖에 몰라요?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나가는 거 안 보여요?” 두두두두 그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던 오우거가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퍼억! 순식간에 머리가 터지며 허공으로 붕 떠서 날아가는 오우거를 볼 수 있었다. “그걸 막으려고 우리가 온 거 아니겠어?” 블루가 씩 웃었다. 그것을 본 병사들이 입을 쩍 벌렸다. 눈앞에서 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다. 사람의 주먹 한 방에 오우거가 즉사하다니! 그것도 머리가 터진 채로 말이다. “좋아, 가자!” “우워워워!” 블루의 한마디에 흥이 났는지 스콜이 고함을 내질렀다. 마치 자신이 오우거라도 된다는 듯이. “아주 꼴깝을 떨어요. 삽질은 그만하고 칼질이나 잘하셔.” “뭐야!” 베르니스는 자신의 말 때문에 발광하는 스콜의 어깨를 툭 치고 달려 나갔다. “아자자자자자자!” “너! 거기 못서!” 검을 뽑아 들고 메르니스의 뒤를 쫒는 스콜. 베르니스를 잡아서 죽을 것처럼 달려 나가던 스콜을 눈앞에 몬스터가 보이자, 날아가던 몸을 직각으로 꺽어 검을 휘둘렀다. “오라오라, 이 개자식들! 다 죽여 버리겠다!” 스걱! “꾸엑!” 오크 두 마리의 목을 단숨에 날린 스콜은 베르니스를 보고 외쳤다. “앗싸! 두 마리!” 그러자 화답이 들려왔다. “앗싸! 네 마리!” “으윽!” 스콜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번개처럼 달려 나가 트롤 한 마리를 오러 소드로 잡고 뒤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던 오크 세 마리를 단숨에 제압했다. “앗싸! 여섯 마리!” 다시 들려오는 정겨운 베르니스의 한마디. “앗싸! 일곱 마리! 스콜! 그것밖에 안 되냐, 큭큭.” “으득!” 스콜은 분노로 눈이 충혈되기 시작했다. 베르니스에게 밀리다니! 머리에서 수증기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특히 먼저 건 싸움이기에 기필코 이겨야만 했다. 이것은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우워워워워워!” 충혈 된 눈에 핏기가 일 정도였다. “그래, 좋다. 제대로 해보자!” “뭐, 받아주지.” 빈정거리는 베르니스의 말투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검의 그립을 꼬나 쥐는 스콜이었다. 까득! 검의 그립을 얼마나 강하게 움켜잡았으면 이런 소리가 날까 싶었다. 그 순간. 콰과과과과과광! 거대한 마나의 뒤틀림에 대지가 비명을 질렀다. 막 결투를 하려던 스콜과 베르니스는 경악으로 굳어진 목을 힘겹게 돌려 이 사태의 범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범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바로 하늘에서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블루?” 스콜의 입에서 한마디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블루의 검 아슈 전신에서 선명한 오러가 스며들듯 흐르고 있었다. 블루가 검을 횡으로 휘두르자 무식할 정도로 거대한 마나의 푹풍이 휘몰아치며 대지를 향해 날아갔다. 태양과 버금가는 강렬한 섬광이 번쩍인 그 순간. 쿠구구구구! 콰과과과과광! 콰광! 블루의 일검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형성되었다. 쑥대밭 정도가 아니라 작은 동산 하나가 사라졌다. 그때, 블루의 시선이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던 베르니스와 스콜에게 향했다. “사백 칠십팔 마리다! 누가 나를 이길쏘냐, 크하하하하!” 베르니스와 스콜이 하던 놀이(?)가 어지간히 재미있어 보인 모양이다. 블루의 그 말을 들은 베르니스와 스콜은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네...... 잘 나셨수다.” “어련하시려고!” 갑자기 흥이 사라지는 베르니스와 스콜이었다. 정말이지 꾸역꾸역 잘도 나타났다. 베르니스는 순간 숨을 가늘게 내뿜으며 긴장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거 흥분되는걸? 헉헉.” 하지만 말과 다르게 표정은 일그러지고 있었다. 벌써 세 시간이 넘는 전투다. 자신 혼자만으로도 족히 수백은 잡은 것 같은데, 몬스터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우거 한 마리가 바위를 들고 멀리서 투척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크어엉! 콰광! “히익!” 정신이 확 깼다.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스쳐 옆에 처박힌 탓이다. “야! 정신 차려!” 놀란 스콜의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지만,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더 놀란 탓이다. “뭐, 뭐야?”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번째 바위가 날아오고 있었다. “이런 제길!” 이번에는 정확히 베르니스를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두 번이나 당할 그가 아니었다. 지친 상태에서 힘겹게 마나를 일으켜 오러를 세웠다. 그리고 땅에 발을 굴려 앞으로 튕기듯 날아갔다. 퉁! 화살처럼 쏘아진 선형을 세 번째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오우거를 향했고, 바위를 던지기 전 녀석의 목에 검을 쑤셔 박을 수 있었다. 푸욱! “쿠억?” 놈이 자기 목을 뚫고나온 푸른빛을 품고 있는 검을 봤다. 그리곤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깨달은 듯 분노어린 표정으로 들고 있던 바위를 내리치듯 집어던졌다. 베르니스는 이미 죽었다 생각한 녀석이 괴력을 발휘하자 검을 뽑은 채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오우거의 목 절반이 떨어져 나가며 덜렁거렸다. 바위가 땅으로 떨어지기 전, 베르니스는 몸을 쉽게 빼낼 수 있었다. 블루에게 배운 운용보를 운용한 탓이었따. 사람들이 보기엔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피한 듯 보였지만 말이다. 오우거 녀석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징글징글하군. 저 친구들이 이런 끔찍한 곳에서 여섯 달을 버텼다는 말이지? 정말 저 친구들이 존경스러워지는군. 미치지 않았다는 것에 찬사를 할 만해.” 베르니스가 투덜거리자 스콜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방어전선을 구축한 것은 열흘 정도 되지. 몬스터들과의 전쟁을 시작한 것이 여섯달이란 말이지.” “그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나도 너와 같은 생각이다.” 밀려오는 몬스터를 상대하며 대화를 나누는 둘이었다. 이제는 몬스터들이 자신들을 피하기 시작하자, 직접 몬스터들이 몰리는 곳으로 파고 들어가 검을 휘둘렀다. 이곳에서 지원 병력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병사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기만 할 뿐이었다.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몬스터를 잡아 죽이는 덕에 자신들이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하하하하!” 고개를 살짝 돌리면 정말 인간 같지 않은 존재가 활개를 치고 다녔다. 저곳은 뭔가 딴 세상 같다. 대화하며 검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그나마 현실감이라도 있는데, 자신들이 단체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금 전에는 하늘에서 검을 휘둘러 크레이터를 형성하더니, 이번엔 조금 전 뽑아 들었던 검을 집어넣고 일일이 주먹으로 몬스터를 때려잡고 있었다. 믿기 힘들지만 주먹에 진득하게 묻은 피는...... 몬스터 피였다. 결코 한 방에 죽이지 않았다. 주먹으로 최소 십수대는 때리는 방식으로 하나씩 처리해나갔다. 문제는 그렇게 몬스터를 처리하는 속도가 저기 베르니스와 스콜이라는 사내가 검으로 죽이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 누군지 알 수 없지만 결코 인산이 아닐 거라고 믿었다. 사실 지금 이 순간,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이 상황을 누가 현실로 받아들을 수 있겠는가! 몬스터를 주먹으로 때려잡다니! “남자는 주먹! 구타는 손맛, 크하하하하하!” 너무 리얼한 환상과 환청이었지만, 그 뜻이 주는 강한 임팩트는 이미 중독이었다. 자신들도 모르게 되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주먹!” “구타는 손......맛!” “남자는 주먹! 구타는 손......맛!” 스스로 최면에 빠지는 사람들이 하나씩 생겨났다. 이것이 꿈이라고 생각하다보니 검을 버리고 주먹을 움켜쥐는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당한 것을 그대로 갚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실행되지 못했다. 마나가 잔뜩 실린 니콜라스의 일갈이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전군은 들으라! “으음! 뭐, 뭐지?”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경외심이 일어날 정도였다. -전군을 몬스터를 섬멸하고, 지쳐 있는 동료들을 구하라! -몬스터를 섬멸하자! -우와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뒤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헤르마틴의 군대가 지금에야 도착한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병사들도 함께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아!” 모두들 이 지긋지긋한 몬스터 전쟁이 당장이라도 종결될 것 같았다. 드디어 지원군이 온 탓이다. 그것도 황실의 정예부대가 오지 않았는가. 자신들과 같은 일반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짐작조차 못했다. 종결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피의 역사 중 수위를 차지하게 될 몬스터 전쟁! 지금 피의 서막이 오르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뮤엘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차, 찾았어.” “응?”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뮤엘을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냐며 로이가 의문사를 터뜨리자, 뮤엘이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주군을 찾았다고!” 갑작스러운 발언 때문일까? 세바스찬 2세, 클레인 로이 모두 한동안 뮤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탄성이 터져 나왔다. “뭐라고!” “그, 그게 사실인가!” 클레인이 되물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뮤엘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클레인의 질문을 중간에 자르고 세바스찬 2세가 질문했다. “어떻게 알게 되었냐는 중요한 게 아니지. 그분께선 어디에 계시던가?” “헤르마틴인 것 같습니다.” “헤르마틴? 용병들의 신화라고 불리는 니콜라스 총사령관이 있는 곳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주군이라면 분명히 모습을 숨겨도 드러났을 텐데, 우리는 주군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지 않나?” “스스로를 숨기지는 않겠지만, 주변에서 숨겼을 주도 있지요.” 뮤엘의 한마디를 잠시 생각해보자 충분히 수긍이 갔다. 아마 자신들이라도 숨겼을 테니 말이다. “여하튼 행보를 추적하던 중 헤르마틴에 계실 것이라는 정보가 가장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사실이야?” 로이가 다시 되물었다. “분명해.” “네가 그렇게 확신하는 것을 보니 믿을 만한 정보는 손에 넣은 게로군.” 끄덕 뮤엘은 자신의 가슴에서 서류 한 뭉치를 끄집어냈다. “믿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딱, 그분밖에 없다니까? 이렇게 평지풍파를 일으킬 사람은 그리 흔치않아.” 뮤엘이 가져온 서류를 받아들고 돌아가며 읽기 시작했다. 순간, 감이 탁 왔다. 그리고 수긍했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확실했다. 이런 사람은 자신들이 찾고 있는 그분밖에 없었다. 머리색이 은발이라는 것만 빼면 성격에서부터 행동까지 완전 판박이었다. 특히 한복판에 써 있는 한 문장. 남자는 주먹, 구타는 손맛! 더 이상 볼 필요도 없었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가 뇌리 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분명하군.” 세바스찬 2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어딜 가나 행적이 남는군.” “어찌 남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큭큭큭.” 얼마 만에 웃는 웃음인가. 지금까지의 조급한 마음은 모두 사라지고 탁 트인 기분이었다. 마치 잃어버린 부모님을 찾은 기분이었다. 이들에게 그, 아니 블루는 그런 존재였다. “그럼 떠날 채비를 서둘러야겠군.” 로이가 풀어놨던 검을 허리에 착용하며 대답했다. “당연한 말씀이지요.” “떠날 준비를 전권으로 위임하겠네.” “그럼 저는 준비를 하겠습니다.” “가능하면 빠른 시일 안에 맞춰주게.” “넉넉하게 사흘 정도의 시간을 주신다면 영지도 옮겨드리지요.” 로이의 허풍에 세바스찬 2세가 피식 웃었다. “그럴 필요까진 없으니, 이틀 안에 맞춰주게.” “조금 빠듯하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에 게슈타포 촌장님 댁에서 뵙겠습니다.” “그러지.” 모두의 표정에 하나같이 깊은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블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흥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블루가 한 약속의 때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찾아뵙겠습니다.’ 주군! 모두의 가슴속에서 정체불명의 아련함이 하울링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검황 이계정벌하다] 9권에서 계속) 외전 이십여년 전. 어느 겨울, 헤르마틴 제국이다. 어느 곳이나 그렇듯 이곳도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다들 배부르고 등 따습게 사는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그것은 선택받은 소수의 이야기일 뿐이다.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것은 불행 축에도 끼지 못했다. 어느 골목 안. 한 소년이 얇은 옷을 양팔로 부여잡는다. 조금이라도 바람을 막아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아......!” 춥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서서히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자꾸 졸렸다. 몸을 억지로 흔들며 추위를 벗어나보고자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물 오른 동장군의 한기를 의지만으로 이겨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나은 편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보라가 휘날렸다. 퍼붓듯 쏟아지는 폭살이 그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그렇다고 나아진 것도 없었다. 솔직히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무엇보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바람이 문제였다. “하아!” 소년은 손가락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손가락 사이를 지나 허공으로 퍼지는 하얀 입김. 안타까웠다. 그렇게 날아가 버리는 온기가 너무 아까웠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등을 기댄 벽에서 흘러나오는 온기, 따스하다. 아궁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그것이 꺼진다면...... 그는 이 밤을 무사히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허기에 다른 공복감, 매서운 추위 속에도 뭔가를 찾듯 그는 계속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문득,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쿵!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은 소년의 몸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충격이 상당했을 텐데 소년은 깨어나지 않았다. 휘이잉 소년이 쓰러지고 얼마 후, 반대편 기둥 모퉁이에서 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소년이 쓰러지기라도 기다렸다는 듯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그는 절뚝거리며 소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본 다음 측은한 눈으로 소년을 내려 보았다. “이런, 이런...... 이런 곳에서 자면 큰일 나는지 모르니? 이 할애비와 가자꾸나.”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그는 소년을 들쳐 업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람이 잠잠해지고 하늘에서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년이 있던 자리에도 눈이 쌓였다. 마치 조금 전까지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을 지워버리듯. ‘어?’ 소년은 눈을 뜨자마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따스한 온기 탓이다. 몸을 감싸고 있는 보드라운 이불, 넓은 침대 그리고 귀족들이나 입을 만틈 화려한 옷.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때 문이 열리며 중년인이 들어왔다. “정신을 차렸구나.” 인자한 목소리에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뭐냐?” 소년은 그 즉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아? 아!”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당혹스러웠다. 계속 말하려 했으나, 역시 의미를 알 수 없는 분절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중년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소년이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음을 깨달은 탓이다. 그러나, 소년은 중년인의 표정변화를 다른 의미로 해석했다. 자신이 대답하지 않아 화가 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소년은 공포에 질려 몸을 움츠린 채 두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 사람을 많이 봐왔다. 동전 한 닢을 던져주며 으스대던 귀족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거나 어눌하게 답변하면 버럭 화를 냈다.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다. 눈앞에 있는 저 사람도 귀족 같았다. 아니, 귀족이 확실했다. 문제는 귀족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 아니, 귀족한테 자신은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 길을 가다 쓰러진 그를 보고 순간적으로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앞뒤 생각 없이 이곳까지 데려왔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변태일 수도 있었다. 소년을 노리개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저 중년인도 그 중 하나일지 모른다. 중년인이 다가오자 소년은 몸을 움츠렸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중년인의 손은 머리 위도 올라왔다. 두터운 손이었다. 따스했다. 몸속으로 따스한 무언가가 스며들고 있었다. 정신이 맑아지며 몸이 상쾌하게 변했다. “이제 말해보아라.” 부드러운 목소리에 슬며시 눈을 뜨고 눈치를 살피던 소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아.” 과연, 목소리가 나왔다. 억눌린 소리가 아니었다. 소년의 얼굴에 기쁨이 찼다. “다행이구나.” 중년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름이 뭐냐?” “바......” 사내는 회상을 접었다. 아니, 접을 수밖에 없었다. 통증 때문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긴 비명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 물었다. “이름이 뭐냐?” “헉헉......” 사내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단지 거칠게 숨을 몰아쉴 뿐이다. 어느새 뇌리엔 그분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원망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러나 원망할 수도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분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이 길은 그가 스스로 택한 길이 아니던가! 그는 이를 악다물었다. 그가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분 덕이다. 그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뿐이랴, 그분은 행복한 삶도 알게 해주었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밥도 먹지 못했을 것이고, 공부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마법을 배워 지금처럼 될 수 없었다. 그분에게 받은 이 생명, 그분을 위해 바치리라. 그에게서 받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지금 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정말?’ 정말일까? 정말 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닐 것일까? 그런데 왜 나는 이 고통을 받고 있는 거지? 퍼억! “끄아아아아악!” 그의 입에서 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자, 다시 한 번 묻겠다. 이름이 뭐지?” 그는 이들이 자신에게 가한 고문과 실험으로 이미 만신창이였다. 자벽을 받아내기 위한 정신계 마법 탓이다. 아직도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무조건 참았다. 입을 다무는 것! 그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최소한의 저항이었다. “......” 퍼억! 니콜라스의 주먹이 청년의 복부를 강타했다. “크헉!” 아팠다. 아파도 너무 아팠다. 그가 가진 마나도, 착용하고 있던 팔찌도 모두 빼앗긴 상태, 간련된 몸은 눈앞의 저 사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그는 무지막지했다! 설사 복부에 두꺼운 철판을 대고 있어도 꿰뚫어버릴 것 같았다. 몇 번을 토했던가. 더 이상 나올 것도 없었다. 담즙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내장이 뒤집어지는 느낌은 여전했다. “이름?” 차가운 니콜라스의 질문에 그는 선심 쓰듯 입을 열었다. “바브로.” “누가 보냈지?” “큭, 그걸 말할 것 같으냐?” 퍼억! 니콜라스의 발길질에 신음성을 흘린 바브로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크윽...... 킥킥킥! 간지럽군. 약해! 그 정도로 되겠어? 더 강하게! 날 죽이란 말이야, 크하하하하!” 그 웃음소리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오싹한 공포체험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블루조차 인상을 찌푸렸다. “스스로 밝힌 것처럼 저자는 이미 인간이 아닌 듯합니다.” 바브로의 귓가로 덤덤한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저놈이었다. 저놈이 그의 놈을 마구 난도질했다. 죠셉이라고 했던가. 으득! 황태자가 물었다. “인간이 아니라니요?” “흠......!” 사람들 반응을 살핀 죠셉은, 탁자위에 있던 양피지를 넓게 펼쳤다. 그 안에는 여러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뭡니까?” “이자 몸에서 발견된 마법진입니다.” “마법진?” “예.” 다들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인지라, 죠셉은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이자 몸에 이 마법진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마법진의 효과입니다.” 힘겹게 버텨왔음인가.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는 바브로. ‘마법진......’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이 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바브로는 열여섯 살이 되었다. “주인님의 힘이 되고싶습니다.” “내 힘?” 중년인, 아니 카른이 피식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웃음보다 더 기분 나빴다. 더 이상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그는 자신을 피했다. 바브로는 자신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뭔가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연무장으로 갔다. 그리고 무조건 검을 휘두르고 몸을 굴렸다, 그럼 강해질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오로지 은혜에 보답하고자 자신을 혹독하게 담금질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카른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었다. 다시 삼년이 흘렀다. 그는 스스로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덩치도 커졌고, 운동으로 단련딘 근육들도 만족스러웠다. 그는 다시 카른의 앞으로 나아갔다.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은혜라......” 책을 보며 잠자코 듣던 카른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바브로를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바브로를 살피던 카른이 피식 웃었다. 그것은 명박한 비웃음이었다. “그 실력으로 말이냐?” 바브로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인단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이렇듯 대화가 길어진 것이다.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과시하듯 근육질의 강인한 몸매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카른의 비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그가 말했다. “좋다!” 카른은 자신을 호위하던 근위병 한 명을 불렀다. 그리고 명령했다. “맛을 보여줘라!” “예!” “적당히 정신을 차리게 해줘라!” “알겠습니다.” 카른의 말에 바브로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다시없는 기회였다. 저 근위병을 멋지게 이기면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는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근위병이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된다는 듯 맹렬한 기세로 달려 나갔다. “이야아아앗!” 마음속으로는 그가 달려나가기 전에 이미, 근위병은 그의 칼에 두 동강이 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였다. 퍼억! “크헉!” 어처구니 없게도 근위병의 가벼운 발길질에 나가떨어진 것은 그였다, 바브로. 그는 크게 당황했다. 이렇듯 가볍게 제압당할 줄을 몰랐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근위병은 카른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퍼퍼퍼퍼퍽! 바브로는 정신없이 두들겨 맞았다. “이제 그만!” 카른의 말에 피도 눈물도 없고 인정사정 볼 것도 없이 구타하던 근위병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카른이 바닥에 주자앉아 숨을 헐떡이는 바브로를 보며 말했다. “이제 알겠나? 네가 나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실력의 정체를?” 바브로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카른을 올려다볼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던 것. 그때 카른이 조용히 어깨를 잡으며 말문을 열었다. “정말로 나를 돕고 싶은 것이냐?” 지금까지의 말과 다르게 인자한 목소리.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으흑, 흑흑.” 예! 딱 부러지게 외치고 싶은데, 눈물만 흐를 뿐이었다. 카른은 말없이 그 눈물을 닦아주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보여준 인자한 모습이었다. 바브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휴우, 너도 참 바보다. 왜 쉬운 길을 놔두고 자꾸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느냐?” “어려운 길이라도 좋습니다. 지옥이라도 좋습니다. 저를 버리지만 말아주십시오.” 바브로의 말에 카른이 말했다. “누가 너를 버린단 말이냐?” 안타까움이 배인 목소리. 자신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누리게 해 주고 싶었을 뿐이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내버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바브로는 굳이 힘든 일을 고집했다. 그게 안쓰러워 피한 것뿐인데, 녀석은 또 그것을 오인한 모양이었다. “정녕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 게냐?” “물론입니다.” 조금 전 눈물을 흘리던 나약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카른은 한참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틀 후. 바브로는 카른의 호출을 받았다. 바브로는 기쁨에 겨워 근위병이 열어주는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소개시켜드릴 분이 있다. 여기, 인사드려라.” 그제야 그는 카른 옆에 서 있는 노인을 보았다. 낯이 익었다. 어렸을 적 먼발치에서 몇 번 본일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뿐, 더 이상 그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바브로라 합니다.” 그러자 노인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잘 부탁하네. 나는 존 라이튼이네.” 순간, 당황했다. 아무리 모른다 해도 존 라이튼이란 이름을 모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멋쩍게 웃었다. 단숨에 알아보지 못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이 미터 남짓한 키를 자랑하는 마법사가 몇이나 되겠는가. “인사는 그쯤하면 된 것 같고, 우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부특을 드려야지요.” 카른과 존 라이튼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구태여 쓸데없는 말을 주절거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른이 바브로 앞으로 다가가 다시 한 번 다짐을 받듯 물었다. “정녕 힘을 원하느냐?”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습니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후회따윈 없습니다.” 잠시 바브로를 바라보던 카른의 시선이 존 라이튼에게로 향했다. “저분을 따라가라. 그리고 그가 행하는 일에 한 치의 의심을 가져서도 아니 될 일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거기서부터 잘못되었다. 의심했어야 했다. 딱 한번만이라도 의심했어야 했다. 그래봤자 크게 달라질 게 없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엔 거저 얻는 것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힘을 얻는 대신 버려야 하는 것이 인간의 굴레였음 줄이야! “누가 보냈지?” “......” “어서 말 못해?” “나 돌아가래!” “뭐?” “나 돌아갈래!” “무슨 소리야?” “돌아가고 싶다고!” 단지 인간답게 살고 싶었기 때문에 인간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한 사내의 절규어린 외침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제1장 보스의 결단 어느 틈에 봄기운이 완연했다. 점점이 보이던 푸른 봉우리에선 어느덧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 나고 있었다. 쾌청한 하늘에 떠 있는 햇살이 따사롭게 지상을 보듬어 준 탓일까? 초소 앞에 서 잇던 사내 둘은 늘어지게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그러다 눈가에 깊은 검상이 있는 사내가 놀란 눈으로 먼 곳을 주시했다. “설마,설마!” 제발 아니길 빌었다. 그러나 그 바람이 하늘에 닿지 못한 듯했다.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쌍소리! “니기미!” “뭐가 또 불만이야? 하긴 날씨가 이렇게 죽이니 짜증이 날 만도 하...... 하암!” 늘어지는 하품에 온몸을 길게 늘이며 기지개를 켰다. 그래도 날밤을 샌 피로는 쉽게 가실 줄을 몰랐다. 그는 눈 꼬리에 붙은 눈물을 훔치며 검상의 사내한테 슬쩍 눈길을 주었다. 검상의 사내는 굳은 얼굴로 말없이 먼발치 산맥 저편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표정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 동료가 뒤늦게 시선을 돌렸다. “뭔데.....?” 동시에 튀어나오는 검상 사내의 외침! “빨리 가서 알려!” 검상의 사내는 저 멀리서 일어나는 먼지구름과 괴성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타종을 치기 시작했다. 탕탕탕탕! 분명했다. 저 덩어리는 몬스터들이었다. 두두두두! 쿠오오오! 케르르륵! 물러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몬스터들이 침공해온 것이다. 그것도 저번보다 배는 더 많아 보였다. “젠장!” 정신없이 타종을 치던 검상의 사내와 동료는 상상을 초월하는 몬스터 군단의 숫자에 오금이 저려왔다. 셋째 부두목인 카푸는 부리나케 집무실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그리고 애타게 보스를 찾았다. “보스!” “이미 들었다!” 인상을 팍 쓰며 카푸를 돌아보는 추세흔. “죄송합니다.” 카푸는 당혹스런 얼굴로 급히 뒤로 물러섰다. 왠지 건드려선 안 될 것 같은 오려가 풍겼던 것이다. “젠장!” 추세흔은 이를 갈았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일로 인해 발생한 손해와 부족한 물품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골이 쑤실 지경이었다. 얼마나 큰 손해를 입었던가! 아니, 식솔들 피해가 미처 복구되기는커녕 정리도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쳐들어오다니! 그보다 계속 반복되는 몬스터들의 기습은 어떻게 된 노릇이란 말인가. 게다가 떼를 지어 습격해오다니. 뿐인가. 인간들이 공성전을 펼칠 때 쓰는 계획적인 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몬스터들 지능이 저렇듯 높았던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누군가 몬스터들을 뒤에서 지휘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배후가 있음이 분명했다. “으득! 대체 어떤 새끼들이....!” 자신과 동료 그리고 말을 죽어라 안 듣지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예쁜 딸래미 보금자리를 넘보는 놈이 어떤 놈인지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잠시 머뭇거리던 카푸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보스! 어서 밖으로 나가보시는....” “안다고 했지!” 그 말과 함께 추세흔은 상념을 접고 자신의 무기를 허리에 찼다. 그리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주변의 상황을 보고 끽겁했다. 저번보다 강하고 두텁게 막아놓은 수문을 부수고 몬스터들이 쳐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무로 대충 보수를 했다곤 하지만 예상보다 너무 빨랐다. 저 멀리 보이는 몬스터들! 한두 마리가 아니다. 밀려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개Ep처럼’ 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랬다. 개떼처럼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야아앗! 죽어! 죽어!" 꾸이익! 꾸익! 푸욱! “이 자식이 감히 내 친구를!” 서걱! “으악!” 검을 뽑아들고 싸우는 수하들. 오거 하나가 싸우던 수하를 낚아채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향해 냅다 패대기쳤다. 미리 알아채고 재빨리 피하는 바람에 피해는 줄일 수 있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은 수하는 피떡이 되어 즉사하고 말았다. 물론, 받아주겠다고 나섰다가는 함께 피떡이 되었을 것이다. “저런 쳐 죽일 놈!” “죽어랏!” 싸움은 국가의 존망을 짊어지고 싸우는 결사대와 결사대처럼 치열했다. 도무지 그들이 산적인지, 몬스터 군단과 싸우기 위해 편성된 의용군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젠장!” 추세흔으로선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재빨리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파팟! 한줄기 바람과도 같은 질주! 거의 동시에 섬광이 번뜩였다. 스걱! 반쯤잘린 오거의 목에서 피 분수가 뿜어졌다. 좌아아아아! 꾸에에에엑! 오거가 발광했다. 벌어진 목에서 콸콸 피가 쏟아지는데도 죽지 않고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자신이 오거라는 사실을 똑똑히 확인시켜주겠다는 듯 거대한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쿠오오오오! 사람들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몬스터들은 그들이 왜 물러나는지 몰랐다. 모르고 의아한 얼굴로 서 있다. 미친 듯이 팔을 휘두르는 오거한테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오거는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죽였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뒷걸음질 치던 몬스터들은 외곽에서 전제하고 있던 수하들한테 몰살당했다. 그리고 잠시 후. 쿵! 오거가 무너졌다. 소리만으로도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오거 피로 뒤범범이 된 대지에는 몬스터들 잔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다른 곳도 상황은 엇비슷했다. 오거가 보이는 족족 추세흔이 같은 행위를 반복한 탓이다. 그때마다 수하들은 기다렸다는 듯 뒤로 물러났고, 멍청히 서 있던 몬스터들은 오거한테 맞아 피떡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추세흔의 공격은 아주 효율적이었다. 좌우에서 부두목 프랭크와 애꾸눈 팽크, 카푸가 수하들은 진두지취하며 몬스터가 몰려 있는 곳이 눈에 띄면 거침없이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오러가 뿜어졌다. 놀랍게 그들 역시 보스처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마스터급 고수였던 것이다. “으하핫! 죽어라!” 그들이 휘두르는 검에 몬스터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추풍낙엽! 그 말이 딱 어울렸다. “어딜!” 뒤에서 접근한 미노타우로스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팽크가 이를 악문 채 검을 종횡으로 휘저었다. 슈슉! 스걱! 우오오오오! 팔목이 잘린 미노타우로스가 비명을 지르며 날뛰었다. 몸을 피하며 휘두르는 검격이었다. 정확성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팽크는 재빨리 몸을 백팔십도 틀며 바닥을 박찼고, 그 즉시 검을 앞으로 쭈욱 뻗었다. 푸욱! 꾸오오오옥! 팽크의 검을 피하지 못한 미노타우로스가 목을 부여잡은 채 뒤로 나자빠졌다. 쿠웅! 마침표를 찍듯 둔중한 굉음이 들려왔다. 잠시 몸을 떨던 미노타우로스의 손이 축 늘어졌다. 팽크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변에서 얼쩡거리던 오크 다섯의 멱을 딴 후에야 그는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돌아다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에 허탈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의 손에 목숨을 잃은 녀석만 해도 백여 마리는 족히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몬스터는 도통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젠장!” 싸움은 꼬박 하루 동안 계속되었다. 길고긴 싸움이었다. 뿌에에에에! 기괴한 소음과 함께 갑자기 몬스터 대군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퇴해버린 것이다. 승기를 잡은 자칭 그린 기사단 단원, 타칭 산적들은 놈들을 뒤 쫒으려 했다.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그들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퇴각하는 놈들을 빤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꼬박 하루 동안 전투가 계속되었음에도 그린 기사단은 예상보다 사상자가 많지 않았다. 대략 팔백여 명 수준. 그 중 이백사십 명이 중상자였고, 실종자 열셋, 나머지 오백오십 명 남짓이 목숨을 잃었다. 전멸까지도 생각한 그들로서는 그 정도면 선방이었다. 사실 난공불락의 요새 덕이 컸다. 웬만한 영지를 방불케 하는 대규모 산채(사천의 기사단원을 포함한 총인구 삼만사천, 거의 작은 성과 맞먹었다)를 감싸고 있는 내성과 그것을 싸고도는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천의 기사들은 삼만의 가족을 내성 안에 몰아넣고 외성에서 배수진을 쳤다. 문제는 그곳이 좁은 호리병 모양이라 한꺼번에 많은 수가 몰려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거기다 몬스터들이 미련하게 돌격일변도로 나온 덕도 보았다. 몬스터들이 꾸역꾸역 밀려와 밀집하는 순간, 마스터들이 헤집고 다니며 효율적으로 공략하자 결국 자멸하고 만 것이다. 그 덕에 그린 기사단은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팔백의 사상자 중 7할에 가까운 오백여 명이 목숨을 잃긴 했지만, 대부분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몬스터들을 보고 우왕좌왕 하다 죽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징글징글한 전투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눈앞에 그려진 한 폭의 지옥도! 그 끔찍한 광경을 바라보는 추세흔은 담담하기만 했다. 그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니, 왠지 좀 서글퍼 보였다. 시종 무표정한 얼굴이었는데,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추세흔은 눈과 코로 전장의 모습을 느꼈다. 비릿한 혈향(血香)에서 잔혹하게 난자되어 있는 사체까지 그리고 피로 물든 땅. 어느 것 하나 낯설지 않았다. 잠시 훈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붉게 물든 땅을 바라보며 과거의 전생을 회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스!” “뭐냐?” 씁씁한 상념의 끝자락을 보여주듯 착 가라앉은 목소리. 흠칫 놀란 프랭크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여기..... 피해와 관련된 사항입니다.” 프랭크는 서류를 건넸다. 수하한테 건네받아 그가 먼저 꼼꼼히 검토한 사하이었다. “흠......” 스륵 한동안 서류 넘기는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이 방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자그마치 열다섯 명이나 있었다. 단지 긴장한 얼굴로 다들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추세흔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여느 때와 달랐기 때문이다. 한참 피해사항을 검토한 추세흔이 입을 열었다. “그래, 형제들 안식은 마쳤는가?” “예.” "그 형제들 가족은?“ “생각처럼 큰 소란은 없었습니다.” “......” “그들이 공이 있었기에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던 탓일까? 추세흔은 말없이 서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것을 프랭크에게 건내준 다음 자리에 앉아있는 수하들한테 눈길을 주었다. 추세흔의 눈길이 닿을 때마다 수하들은 흠칫흠칫 몸을 떨었다. “다들 수고 많았소! 이상!”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방을 빠져나갔다. 순간, 다들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눈길을 주고받던 수하들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건 아니었다. 추세흔은 절대 저런 위인이 아닌 것이다. 다 뒤집어엎을 줄 알고 가슴 졸이며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저렇듯 맥 빠진 반응이라니! 사람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면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법이다. 그것도 상사가 그러면 파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부두목들은 괜히 머리가 아파왔다. 그때 한 사내의 입에서 의문이 터져 나왔다. “두목이 왜 저러지?” “그러게.....” “무슨 일이 있나? 왠지 넋이 나간 것 같잖아.” 그 말에 애꾸눈 팽크가 눈치를 살피다가 추세흔이 정말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는 피식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무슨 일은 개뿔! 그냥 미친 거지. 벌써 미쳤어야 하는데 안 미치고 있다가 이제야 광기로 드러난 거야.” “광기?” “미쳤다면 평소보다 더 발광해야 하는 게 아닌가?” 동료들의 질문에 팽크가 대꾸했다. “반미치광이가 거기서 더 미치면 어떻게 되겠나? 오히려 정상인처럼 굴지 않겠어? 그런 상황에서 터지면 발광이 발광할아비가 되는 거야, 크하하하!” “......” 순간 갑자기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말에 반응하며 웃고 떠들던 동료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꿀 먹은 벙어리들이 아닌가. 안색이 창백한 것이 마친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라도 본 듯한 모습이었다. 프랭크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팽크는 굳이 보지 않고도 좋지 못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음을 알았다. 프랭크가 밖으로 나가기가 무섭게 회의석상에 앉아 있던 동료들이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갔기 때문이다. 어떤 성질 급한 어떤 녀석은 그곳이 삼 층이란 사실마저 망각한 듯 차문으로 뚫고 뛰쳐나갔다. 챙그랑! “으아아아악!” 유리가 깨지는 소음과 함께 긴 비명소리가 들려왔는데, 비명소리는 지옥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한 사람이 내질렀을 법한, 쾌감어린 환호성처럼 들려왔다. 부지런히 애꾸눈을 껌뻑이는 팽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뽀족한 암기 수천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등을 찌르고 있는 이 느낌! 문제는 지금 그 사실을 깨달아봤자 소용없다는 것. 이미 늦어 있었다. 그는 한쪽 눈만 없는 게 아니라 눈치까지 없었던 것이다. 뒤늦게 상황을 직시한 팽크는 숨이 턱 막히고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뒷목이 뻐근할 정도로 느껴지는 누군가의 살기 어린 시선! 눈을 감은 채 팽크는 애써 무시하려는,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는, 가당치도 않은 노력을 계속했다. “아, 하!하!하!하! 이제, 나도, 슬슬, 가볼, 꺼나.” 뻣뻣하고 뻔뻔한 팽크의 혼잣말. 등 뒤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이 자신의 착각일 뿐이라고 애써 자위하며 그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리고 휘청거리며 문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문과 자신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이었다. 한 발만 뻗으면 넘어설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영 그게 쉽지가 않았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불호령! 그리고 정적. 팽크는 뻔뻔하게 크게 웃으며 발검음을 옮겼다. “아. 하. 하. 하! 이, 이제는 환청까지 들리는군.”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덥석 움켜쥐었다. “이 자식이!” “......” 동시에, ‘주인님 안녕’ 심장이 팔딱거리며 자기 혼자 살겠다고 입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것이 아닌가! 그럴 수는 없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했다. 심장과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한 몸이 아니던가! 그런 깊이 있는(?) 사색으로 힘겹게 심장의 탈주를 막은 팽크. 심장이 조금 전보다 두배로 팔딱거렸다. 마치 원망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팽크는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더 큰일이 자신의 등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장의 원망을 뒤로 한 채 그는 뻣뻣한 목놀림으로 뒤돌아 보았다. 씨익 보스가 등 뒤에 서서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게 아닌가! ‘끄억!’ 믿고 싶지 않았던 최악의 현실이 눈앞에 닥친 것이었다. 팽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추세흔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미친...... 뭐?” 묵직한 저음. 그리고 쏘아지는 그의 살기 짙은 눈빛. 흠칫! 수백 년 전에 사라졌다는 마왕을 직접 목도했다 해도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미친놈 밑에서 수고가 많았군” “......!” “그런데 아직 진정한 광기가 뭔지 보지를 못한 모양이로군.” 꼴깍꼴깍 침도 잘 안 넘어간다. 억지로 침을 삼키는 팽크의 모습을 보며 추세흔이 다시 씩 웃었다. “그래, 바로 그렇게 침 넘어가듯 숨 넘어가는 방법도 있지. 내 지금부터 그것을 성심성의껏 알려주지.” “아, 아니 별로......” “아냐, 사양하면 내가 섭하지. 네가 진정한 광기를 모르는 게 나로선 너무 가슴이 아파서 말이야, 크흐흐흐흐!” “벼, 별로 가슴이 아파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물론 입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고 목 아래에서 맴돌 뿐이었다. “자, 그럼 미친놈의 광기어린 행동을 보여주지.” 그 말을 들은 순간, 팽크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바로 지금!” “아, 아니! 전 벼, 별로.....” 퍼억! “커어억!”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에 ‘번쩍’하며 불똥이 튀었다. “사, 살려주.....” “크르르르!” 시끄럽다고 말을 대신하는 웃음 같았다. 그런데 저게 사람의 웃음소리였단 말인가! 한껏 이를 드러내는 추세흔을 보며 생명의 위협을 느낀 팽크가 비명을 지르며 전신을 웅크렸다. “히이익!” 동시에 해성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하는 주먹, 주먹! 퍼버버버버벅1 “꾸에에에에엑!” 처절하기까지 했다. 살려달라고 외치는 외마디 비명처럼 신랄했다. 하지만 탈출에 성공한 부두목들은 그 소리를 듣고는 아무도 달려와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소리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눈치 없는 팽크 덕에 자신들은 저 마수의 손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명소리가 처절해지면 처절해질수록 팽크에게 감사하는 그들의 마음도 깊어갔다. “모두 좌석!” 평소와는 백팔십도 다르게 질서정연하게 자리에 좌석하는 부두목들. 그들의 시선이 빈자리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바로 애꾸눈 팽크의 자리였다. 사흘 전에 된통 당한 팽크가 아직까지 숨을 헐떡거리며 침대에 누워 있다는 소문이었다. 남아 있던 한쪽 눈을 실명할 뻔햇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그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결코 남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게 언제 자신의 일이 될지 몰랐다. 꿀꺽 재수가 없어 그가 걸렸듯, 이 중 누가 또 팽크 대신 두들겨 맞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둔하기 짝이 없는 팽크의 눈치가 이토록 고마울 줄이야! 그의 눈치 없음 때문에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인가! 그래도 사경을 헤맨다는 소문을 듣고 보니 다소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부두목들이 모두 착석한 것을 확인한 보스가 물었다. "수리는?“ 앞뒤가 잘린 짧은 말이었지만,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추세흔의 시선이 닿아 있던 프랭크가 대답했다. “몬스터들의 사체를 처리함과 동시에 시작된 수문의 수리는 조금 전에 마감되었습니다. 이제 보수와 보충작업이 남았을 뿐입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 수고들 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조금 전 내가 한 이야기. 다들 생각해봤는가?” “그, 그게 저......” 구석에 있던 민머리의 사내가 우물거리며 말문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생각은 해보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산적이 산을 버리겠다는 말씀은......” 짧은 침묵 끝에 누군가 말끝을 흐리자 다들 고개를 떨궜다. 그들도 같은 의견이었다. 반평생을 산에서 살아온 자신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산을 떠나자는 말은 쉽게 받아들일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갑자기 회의실로 부르더니, ‘이제 우리가 산을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모두들 어떻게 생각하는가? 삼십 분 후에 다시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하고 말한 후 나가더니 정확히 삼십 분 후에 들어와 답을 내놓으란다. 다들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그런 부두목들을 보며 추세흔이 아무런 감정 없는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그럼 삼십 분 후에 다시 오지” 두 말 없이 다시 밖으로 나가는 추세흔. 그런 추세흔을 부두목들은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쩌지?” 힘겹게 열린 한 부두목의 목소리. 피를 말리는 추세흔의 자리 비움이 다섯 번째에 접어들자 처음으로 흘러나온 말이었다. 지금까지는 추세흔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뭘 그리 걱정하지?” 프랭크가 뒤늦게 말문을 열었다. 자연스럽게 다른 부두목들의 시선을 받게 된 프랭크. 사실 자신들이 말이 좋아 부두목이지, 프랭크가 보스의 후임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같은 부두목의 입장이라지만 프랭크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구석에 있던 부두목의 질문에 프랭크의 시선이 그리 향했다. 아니, 그것은 날아드는 화살보다 날카롭고 깊게 박혔다. 그런 프랭크의 시선을 받은 사내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한 채 잠시 숨을 죽였다. “자네는 지금 이곳에 왜 있는가?” “왜 있다니요? 살기 위해.....” “살기 위해?” 그 말에 프랭크는 피식 웃었다. 그 미소의 뜻을 이해 못한 사내는 더욱 바짝 긴장했다. 자신이 깨닫지 못한 뭔가가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누가 목숨을 주었지?” “누가? 물론 부모님들이....” 그때 대답한 사내 뒤에 있던 그 누군가가 흘린 감탄사. “아!” 프랭크의 말뜻을 이해한 것이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는 그의 얼굴은 숙연해보이기까지 했다. 여전히 이해 못한 자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감탄사를 흘린 주인공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프랭크의 시선은 좀 전의 대화를 나누던 부두목한테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물었다. “자네는 이곳에 오기 전에 뭘 하고 있었나?” 순간, 자신과 대화하는 상대가 프랭크라는 것을 잠시 잊은 탓일까? 그의 언성이 가볍게 올라갔다. 떠올리기 싫은 과거가 머릿속에 그려지자 자기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었던 것이다. 지금도 간혹 악몽으로 꾸는 과거의 잔상들. 아직도 쓰라린 흉터들의 외침 유산처럼 부모로부터 대물림된 그 고통이, 시간이 지난다고 어찌 쉽게 잊혀지겠는가! “그걸 몰라서 묻습니까? 그 돼지 새끼들한테 혹사.....”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으려는 찰나, 프랭크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다시 질문함으로써 그 말을 잘랐다. “그래, 그 돼지 새기들 밑에 있을 때 자네는 살아 있었던가?” “그, 그건.....” “숨 쉰다고, 밥을 먹는다고, 잠을 잔다고 그것이 살아 있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아!” 사내와 동시에 다른 부두목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야 프랭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는 부두목들. 자신의 미련함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한테 분노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그 사실을, 자신들한테 새로운 삶과 터전을 찾아준 존재의 무게를 잊고 있었더란 말인가! 자유라는 삶의 이름을 말이다! 스스로의 죄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자기 머리를 두들기는 이도 있었다. “자네들만이 아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의 삶을 살았으니까.” 프랭크의 발언에 부두목들은 조용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프랭크는 눈을 감고 있었다. “하아, 하아.” 털썩 결국 휘청거리던 다리가 풀리며 바닥에 쓰러진다. 그리고 그 상태로 한참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 그대로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못했다. 아니, 신경 쓸 수 없었다. 자신들 입장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들도 그처럼 죽을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미 논바닥엔 깊은 주름이 파이고 심어 놓은 작물은 말라서 풀뿌리조차 삭아 내리는 흉년이었다. 마을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어딜 가나 시체들이 즐비했다. 죽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느덧 누가 죽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아니,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말 그대로 방치였다. 풀뿌리 죽조차 먹지 못해, 아니 마실 물조차 구하지 못해 시체를 옮길 기운마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시체에서 꾸물거리며 기어 나오는 구더기를 잡아먹을 지경이 이르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주민들 사정일 뿐이었다. 성 밖과 성 안의 차이는 확연했다. 영주는 성 안에서는 늘 호화로운 파티가 열렸다. 화려한 마차행렬이 끓어지지 않고 음악소리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곳은 딴 세상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곳에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닫힌 채 떠드는 그들 웃음소리를 듣기 싫어 귀를 막을지언정 넘겨다보지도 않았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는 것이 무서웠다. 영주의 성이 열리는 이유는 두 경우뿐이었다. 파티의 손님을 받아들일 때와 영주민들을 괴롭힐 때. 영주민을 괴롭히는 방법은 많았지만, 그 중 가장 흔한 것은 세금징수였다. “어서 세금을 내놓으란 말이다!” 퍼억! 법보다 가까운 주먹은 늘 말보다 빨랐다. 병사들은 일단 발길질부터 날리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가차 없이 발길질이었다. “어디 숨긴 거야! 아직도 아이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니 뭔가 숨겨놓고 먹는다는 말이잖아! 우리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 퍼억!퍼억! “하악....... 하......!”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 거친 숨을 몰아쉬다 숨이 멎었다.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정도로 배고픔에 지쳐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구석에서 텅 빈 시선으로 자기 할아버지가 죽어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눈에선 아무런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감정을 드러낼 힘조차 없고, 눈물조차 메말라버린 탓이다. “더러운 늙은이, 퉤!” 노인의 숨이 멎자 병사는 짜증난다는 듯 노인의 시체를 향해 침을 뱉었다. 그때 동료병사가 불렀다. “야, 이리와 봐.” “왜?” “이 녀석들 뭔가 먹고 있어.” 순간, 노인을 죽인 녀석이 이죽거리는 눈빛으로 죽어나자빠진 노인을 쏘아보았다. 그곳엔 경멸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망할 늙은이! 진즉 내놓으면 죽이진 않았을 것 아냐?” 병사는 거침없이 발걸음을 내딛으며 아이들한테 다가갔다. 과연 아이들은 멍한 얼굴로 뭔가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병사는 아이들 양손을 보고 짜증을 냈다.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자식들 순식간에 다 먹은 거 아냐?” 아이들의 턱을 잡고 억지로 입을 열었다. 무엇을 먹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인상이 구겨졌다. “이게 뭐야?” 힘없이 벌어진 입에서 머리카락이 잔뜩 나왔던 것이다. 왠지 속았다는 기분에 분노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후려쳤다. 쿠당탕! 아이들은 비명도 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리고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표정으로 멀뚱하게 입을 우물거릴 뿐이었다. “천한 것들!” “가자!” “캬악..... 퉤!” 병사들은 마치 더러운 오물이라도 본 듯 침을 뱉고 밖으로 나서려고 했다. 바로 그때 대문이 열렸다. 끼이익 낡은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역광이 일었다. “......!” 병사들은 눈부신 태양광에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역광을 등지고 누군가 들어서고 있었다. “뭐야?” “누구냐?” 병사들의 호통이 끝나고 문이 닫혔다. 쿵 묵직한 소음과 함께 먼지가 일었다. 하지만 역광이 사라지고 시야가 확보되자, 병사들은 들어온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젊은 사내였다. 많이 봐줘야 이십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행을 하는지 허름한 복장. 아무리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녀석이 아니었다. 내심 긴장하던 병사들이 안도의 표정으로 피식 웃더니 사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뭐하는 녀석이냐?” “......!” 그러나 사내는 병사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그러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아이들을 안아들었다. 입안에 우물거리던 불순물까지 손수 치우고 주머니를 뒤져 뭔가를 넣어주는 것이었다. 힘없이 앞을 주시하던 아이들이 시선을 돌려 자신들을 안아 든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입을 오물거리며,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아이들이었지만, 아직 먹는 힘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닌 듯 입안에 있는 것을 열심히 씹어대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다 먹은 듯 보이자 사내는 다시 품에 손을 넣어 뭔가를 다시 아이들의 입속에 넣어주었다. 사내의 행동을 본 병사들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 마을사람인가?” “뭐냐? 역시 숨겨놓고 세금을 내지 않았던 것인가? 더러운 녀석들, 퉤! 역시 족쳐야 말을 듣는다니까. 진즉 내놓았으면 저 늙은이도 죽지 않았을 거 아냐?” “그러게.” 서로의 장단을 맞장구치는 녀석들. 사내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아이들의 아버지 같은데, 그럼 세금을 내야지. 이런 새끼들까지 우리가 힘들게 적들에게서 지켜주는 이유가 뭔 줄 알아! 꼴을 보니 숨겨둔 게 있는 모양인데. 다 내놓으면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주지. 물론 다음번까지 모자란 세금을 내놓아야 할 테지만 말이야.” “킥킥킥!” 녀석들은 사내가 여행객임을 알면서도 뻔뻔한 얼굴로 뻔뻔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그것도 동네 양아치들이나 할 짓거리를 보이면서 말이다. 녀석들한테서는 더 이상 이곳을 지키고 수호하는 병사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미 기본적인 인간의 양심마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사내는 녀석들의 시비를 무시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뭐야, 저 자식은?” 병사 중 하나가 사내의 어깨를 붙잡았다.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대놓고 무시하지 않았는가! “놔라!” 흠칫! 어깨를 잡은 병사는 사내의 어깨에서 얼른 손을 떼고 싶었다. 하지만 뒤에서 지켜보는 동료들 시선 때문에 차마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언성을 한층 높였다. “이 자식이!” “내 경고는 단 한번뿐이다!” “뭐...... 커헉!” 털썩!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경갑을 입은 병사의 신형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둔기에 얻어맞은 듯 안면이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즉사였다.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죽은 것이다. 꿀꺽 병사는 뭉개진 동료의 얼굴을 보며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눈앞에 있는 정체불명의 사내는 그들 따위가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웨어급인 자신이 상대가 공격하는 것을 보기는커녕 느끼지도 못했다. 결국 익스퍼트, 아니 그 이상이라는 얘기였다. 익스퍼트급이라도 저런 실력을 선보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내는 시선이 멍하게 서 있는 병사한테 향했다. “히익!” 경악한 병사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지만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도망쳤다. 사내는 그런 병사를 놔두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굶주린 사람들로 가득했다. 죽어버린 눈동자! 가축처럼 착취당하고 폭행에 시달린 탓에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 사내는 아이들을 앞에 내려놓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사람들 시선이 느껴졌다. 뭔가 열망의 눈초리가 느껴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아는 사내는 거침없이 등을 돌렸다. 순간, 사내의 눈 속에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영주의 성이 자리했다. 제2장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누구냥?” 퍼억! “커헉!” 경비병은 부러진 창대를 움켜쥔 채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기절한 것이다. 사내는 질문을 던지는 족족 말없이 그들을 두들겨 팼다. “누구냥?” “참 시끄럽네.” 퍼억! 이번에도 사내의 주먹은 거침없이 질문을 던진 경비병의 안면에 박혔다. 그렇듯 영주의 성 안까지 거침없이 쳐들어간 사내 그가 지나온 길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점점이 쓰러져 있는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서 나오는 헨젤이 떨어뜨린 빵조각처럼. 여전히 사내 주변엔 수십의 병사들이 칼과 창을 겨누고 있었다. 하나같이 입을 봉한 모습이었다. 아니, 말을 하고 싶어도 공포로 말문이 잠긴 것이다. 이 사내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쓰러진 동료들을 본 탓이다. 안면몰수(顔面沒收)! 완벽하게 함몰된 동료들 얼굴은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들의 머리수가 많긴 하지만, 사내의 실력을 보건대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봐도 상대는 마스터급 고수로 보였기 때문이다. 제발 자신들의 착각이기를 빌었다. 마스터라니! 전장에서도 보기 힘든 마스터급 고수라니! 눈앞의 사내가 마스터라면 자신들 미래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성에 있는 모든 인력이 덤벼들어도 옷깃 하나 건 들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층 난간에 후덕하게 생긴 돼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사람인 것 같았다. 사람 옷을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엔 돼지한테도 사람 옷을 입혀놓고 사육하는 모양이군.” 피식 “킥!” 병사들이 사내의 한마디에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아무리 경직된 상황이라 해도 웃긴 것은 웃긴 것이었다. 사실 그들도 생각하던 사실이 아닌가. 그 돼지는 다름 아닌 이곳의 영주였던 것이다. 영주는 사내의 말을 듣고 분을 참지 못하겠는지 턱살이 부르르 떨려왔다. “네놈은 누구냐?” “도둑이다!” 거침없는 사내의 한마디. 영주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세상천지 저처럼 뻔뻔한 녀석이 있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야기를 듣고보니 저 사내가 도둑이라면 곤란했다. 이곳에 저 사내를 막을 수 있는 자가 없다고 하지 않던가. 좋게 좋게 말해서 끝내려 했지만, 어찔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아직 인내심이 남아 있었다. 상대가 마스터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아하하, 장난이 심하시군.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쯤에서 그만두시구려. 그럼 우리도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그만두겠소.” 영주의 발언에 사내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도무지 사람 말을 믿지 않는군.” “무슨 말을 말이오?” 영주가 되묻자 사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둑이라고 했는데도 못 알아듣다니! 아, 하긴 가축하고 대화를 시도하려는 내가 바보였군. 무슨 의사소통을 어떻게 한다고. 쯧!” 순간, 영주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무례하군! 내 인내심도 바닥이다. 모두 쳐라!” 영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병사들의 기합이 울려 펴졌다. “이야아아압!‘ 문제는 단지 기합만 지를 뿐 아무도 덤비지 않는다는 것 사실 이곳의 병사들은 대다수가 용병들이었다. 아무리 돈을 받고 일을 한다고 하지만, 시킨다고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에게 목숨을 바친 기사가 아닌 이상 말이다. 눈앞의 사내에게 달려가면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죽는 게 기정사실이 될 텐데, 누가 덤벼들겠는가. 고함만 지르다 눈치껏 빠질 생각이었는데, 다들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약간이라도 이길 기미가 보여야 덤비지, 아무리 봐도 철벽인데 어딜 공격하란 말인가. 여하튼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는 없었다. 기합만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달려가는 병사는 하나도 없다니! 더구나 사내가 한 걸은 다가서면 병사들은 단체로 한걸은 뒤로 물러서는데, 혼자 보기 아까운 장면이라 할 수 있었다. 으드득! 영주의 분노가 극에 치달았다. “내, 저런 것들을 믿고 돈을 줬다니!: 치가 떨려왔다. 물론 그건 영주의 생각이고 실제론 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영주가 분을 참지 못하고 손짓하자 영주의 뒤에서 플fp이트 갑옷을 걸친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익스퍼트를 올려다보는 어웨어 상급의 기사들로 꼼짝도 하지 않던 병사들이 흠칫 떨었다. 이들이야말로 이곳 영주의 정예라 할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그 기사들은 병사들 뒤에 진을 치듯이 자리했다. 그때 맨 앞에 있던 기사가 검을 뽑아들며 외쳤다. “앞으로 전진하라! 내 검의 방위에 닿는 자들은 그대로 벨 것이다! 내 오러에 걸로 맹세한다!” 순간, 그 기사의 검에서 오러가 일렁거렸다. 안개 같은 기운이 일렁이는 것을 보니, 상급 익스퍼트 실력자가 분명했다. 병사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영주는 만족스러운 듯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역시 기사단에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그 푸른빛 오러에 반해서 얼마를 주고 사온 자들이던가. “좋아, 좋아. 크흐흐흐, 모두 죽여 버려라!” 영주의 말이 끝나자 기사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동시에 기사의 검이 자신의 앞에서 얼쩡거리던 병사의 들을 그대로 벴다. 스걱! “커헉!” “돌격하라!” 동료의 죽음에 당황한 병사들이 앞으로 돌격했다. 기사가 한발 앞으로 다가서며 다른 병사들에게 검을 들이댔기 때문이다. “이야아압!” 병사들 눈동자에 두려움이 드리워졌다. 눈을 질끈 감고 검을 앞으로 내민 채 달려드는 이도 있었다. 그동안 가만히 서 있던 사내의 신형이 움직였다. 자신의 목을 향해 찔려오는 검을 튕겨냄과 동시에. 파팟1 일순 사내의 신형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헛손질한 병사들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를 찾나?” 어느새 병사들의 틈에 끼어 있는 사내. 놀란 병사들이 다짜고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사내는 이미 그곳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휘두르던 검을 급히 끌어당겼지만, 이미 손끝에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다. 푸북! “으헉!” “끄허헉! 네, 네놈이 나를.......!” “미, 미안......” 황급히 검을 뽑았으나 상대방은 원망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찌른 동료를 노려보며 그대로 숨졌다. 사내는 또다시 병사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며 약 올리듯 말문을 열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난 여기 있는데.” 으득! 병사들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다시 검을 휘두르는 병사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사내는 그곳에 없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동료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있었다. 그들 뒤에 서 있던 기사들이 외쳤다. “함부로 검을 휘두르지 마라! 녀석의 움직임을 잘 보고 행동하라!” 말은 쉬웠다. 뒤에서 입만 나불거리는 저 기사들한테 검을 겨누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뭐야 보여야 잘 행동하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닌가! 이쪽이다 싶으면 저쪽에 있고, 저쪽이다 싶으면 어느새 이쪽이었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듣기 싫지만 기사들 말에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좁은 공간에서 검을 휘두르다보니, 동료들 피해만 속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상대가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며 장난치듯 자신들의 동료를 목에 베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걱! “커억!” 눈 깜짝할 사이에 또 하나가 쓰러졌다. 거침없고, 잔혹했다! 그의 손은 쓰러지는 동료의 피로 범벅이 된 자신들과 다르게 정작 한 방울의 피도 허용치 않았다. 분노로 인해 둔해졌던 두려움이 다시 피어올랐다. 한번 꺽인 자신감을 다시 끌어올리기란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했다. 시간이 지나면 평상심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전에 죽을 것이 뻔했다. “으악!” “크헉!” 병사들 비명소리가 끓이지 않았다. 기사들 역시 속수무책이었다. 비명이 사방에서 동시다발로 들려온 탓이다. 그들로서도 사내의 속도를 따라잡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서걱! 병사들 후방에 서 있던 기사의 목이 허공에 날아올랐다. 그리고 뿜어지는 피분수! 퓨슈슈슈!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혈우가 쏟아졌다. 후두두둑 비명조차 일체 없었다. 아니, 비명을 내지를 시간조차 없었다는 말이 옳았다. 텅,터덩! 바닥을 떼구루루 구르던 기사의 얼굴이 바닥에 똑바로 섰다. 얼굴표정으로 보건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으힉!” 머리가 자기 앞에 멈춰 서자 한 병사가 기겁해 뒤로 몸을 날렸다. 눈동자가 움직이며 자신을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색이 된 병사들과 주춤하는 기사들을 보며 사내가 피식거렸다. “도둑 하나 잡지 못해 쩔쩔매면서 영주민들을 보호한다고?” 발끈한 영주 아직도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큰소리를 쳤다. “기사단은 뭐하는가? 바, 빨리 저 녀석을 죽이란 말이다!” 그 말에 기사단장은 이를 악물었다. 꽥꽥 거리는 영주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린 탓이다. 그러나 그래도 자신의 주군이 아닌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포위하라!” 압박하여 누르자! 상대가 제아무리 마스터급 실력자라 할지라도 자신들 머릿수면 충분히 누를 것이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린 결론이었다. 사실 말로만 들었지 기사들은 오늘 마스터란 존재를 처음 접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막연히 자신들이 들었던 것처럼 천지개벽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도 생각했다. 소문의 무상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 숫자면 충분히 누를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상급 익스퍼트인 단장 역시 자신들 열 명이 똘똘 뭉치면 맞수를 이룰 거라고 믿었다. 그까지 힘을 합하면 절대 질 것 같지 않았다. 못해도 평수는 이룰 것 같았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더러 일 더하기 일이 이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법. 오히려 오합지졸들로 인해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제야 슬슬 놀 준비가 끝난 건가?” 순간 사내의 신형이 사라졌다. “헉!” 믿을 수 없었다. 눈으로도 따라갈 수 없는 움직임이라니! 그때 들리는 둔탁한 파열음. 스거걱! “크허어억!” 세 기사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 손을 뚫고 뿜어지는 진득한 핏줄기! 그것이 살육의 시작이었다. 챙! 차창! “뭐야? 조금 더 힘을 내보라고, 큭큭!” 검과 검이 부딪히며 시원한 쇠의 울음이 고막을 자극한다. ‘괴, 괴물......!“ 상식적으로 이해를 할 수 없는...... 괴물이었던 것이다. 구석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병사 몇을 제외하고는, 수하 대부분이 목 없는 시체로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기사단장은 이것이 눈을 뜨면 깨고 마는 악몽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 악몽 같은 참혹한 현장은 그것이 꿈이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좀 더 날 즐겁게 해달라니까!” 사내가 비아냥거렷다. 사내는 자신과 수하들을 상대로 놀고 있었던 것이다. 사내 표정에 드러난 짖궂은 미소! 기사단장은 자신마져 노리개로 전략하고 만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누군가? 명예스러운 상급 익스퍼트 실력자다. 그런 자신이 노리개라니! “이거 영 흥이 나지 않는군. 이제 슬슬 접어야겠어.”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까지 하며 검을 휘두르는 사내. “이얍!” 기사단장은 이를 악물었다. 촹! 분노의 일격이었다. 그러나 거기도 한계는 있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이해 불가능한 사내와 그의 실력차이는 들끓는 분노나 거기에서 촉발된 초인적인 힘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오호?” “크윽!” 쨍그랑! 기사단장의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손바닥에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에 파인 상처 탓이었다. 단지 맞부딪친 것뿐인데! 사내가 말했다. “뭐, 나름대로 재밌었다.” 씨익 웃으며 등을 돌리는 사내. 기사단장이 급히 입을 열었다. “나, 나를 죽여라! 기사로서 명예롭게 죽고 싶다!” 발길을 돌리던 사내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것은 역겨움이었다. 하지만 기사단장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명예.........롭게?” “그렇다! 당신도 기사라면 기사인 날 정당히 예우하라!” “크윽!” “..........!”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사내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예우라..........?” “그렇다!” 기사단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은빛 섬광이 번뜩였다. 서걱! 푸슛! “크아아아악!” 두 팔에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오른팔 왼팔이 잘린 것이었다. 그가 고통에 몸부림을 칠수록 피는 사방에 흩뿌려졌다. 사내가 시원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아주 재미나군. 네 녀석이 그토록 좋아하던 기사의 생명을 명예롭게 끓어주었으니, 알아서 잘 살아라.” “나, 나를 주........겨........” “시꺼!” 과다출혈 탓일까 기사단장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사내는 그 즉시 고개를 들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찔끔한 얼굴로 영주가 재빨리 몸을 숨겼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성급하게 피했다할지라도 둔한 몸이 어딜 가겠는가? 사내는 피식 웃고는 단숨에 위로 날아올랐다. “허걱!” 갑자기 자기 앞에 나타난 사내의 모습에 영주는 기겁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시나?” “워, 원하는 게 뭐냐?” 영주의 물음에 사내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둑이 원하는 게 뭐가 있겠어?” “정말 도, 도둑이라는 말......?” “하, 답답한 양반 얼마나 거짓말만 하고 살았으면 사람 말을 그렇게 못 믿어? 그래도 우선 본좌는 의적이다 보니 훔친 것을 고스란히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한테 베풀 셈이거든. 그런데 네가 나중에 영지민들한테 해코지 할 것을 생각하니 그냥 둘 수도 없고.......흠.” 말을 마친 사내는 슬쩍 영주를 돌아보았다. 영주가 흠칫 놀랄 때, 퍼억! 사내의 주먹이 영주의 얼굴에 적중했다. “커억!” 다시 주먹을 들자 영주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사내는 주먹을 내리곤 짜증어린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어이 어이! 잘 보라고.” “뭐, 뭘 말이지?” “나 말이야.” “.........?” 느닷없이 한방 얻어맞고 끔찍한 고통에 몸서리를 치던 영주는 의아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가 자신의 목숨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주는 힘겹게 시선을 돌리고 두려운 눈으로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왜, 왜 그러느냐?” 사내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왜는? 네놈이 살아생전에 마지막으로 보게 될 사람이니 그렇지.” 씨익 퍼억! 그 말은 사실이 되었다. “성문이 열렸지. 영지민은 초조한 눈으로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 역시 그중 하나였어. 우리한테 희망을 보여주겠다고 하던 사내를 믿고 말이야. 사실 현실을 알았기에 그것이 헛된 망상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믿고 싶었어.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지. 누구라도 그랬을 거야. 보스의 깊은 눈동자를 보고 믿지 않을 수가 없었을 거야. 그를 믿지 못하면 누구를 믿겠는가 하는 의아심이 생겼어. 그때 내 나이가 열다섯. 난 결심을 했어. 저자라면, 저자가 저 안에서 살아서 나온다면 난 저자를 따르겠다고 말이야.“ “......” “그런데 그, 아니 보스는 살아서 나왔지. 그것도 모자라 스스로 성문을 열고 우리한테 음식과 재물을 풀어주었지. 약속을 지킨 거지. 그리고 난 그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그와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아니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 프랭크는 말이 끝나자 조심스럽게 두 눈을 떴다. 그리고 좌중을 돌아보았다. 부두목들은 눈을 감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프랭크의 이야기는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 이야기였다. 그런데, 프랭크의 말마따나 그들에게 제2의 삶을 살게 해준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검술까지 가르쳐준 그를. 보스! 그는 이곳 산채에 있는 모든 사람의 부모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의 결정을 믿지 못하고 반대하다니! 철없는 아이의 투정 같았다. 부끄러웠다. 아니, 자신들이 경멸스럽기까지 했다. 등 따시고 배부르게 되자 힘겹던 과거를 그렇듯 쉽게 입어버리다니!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난 보스를 따라 내려갈 생각이다. 그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도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산을 버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죄송합니다!” “죄송.....!”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 프랭크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이로써 모든 상황이 정리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이군.”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 몰랐는데.” 추세흔의 인사에 블루가 대꾸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야. 그런데 워냑 동물들의 극성이 심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렸지.” 끄덕 이미 수정구를 통해 대략적인 사정 이야기를 주고받은 둘이었다. 블루는 추세흔과 더 이상 나눌 말이 없었다. 사실 급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황제폐하께서 드십니다.” 시종의 발언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모습을 드러넨 헤르마틴의 황제 케산베르트 헤르마틴2세. 그 옆에는 대마법사인 죠셉 공작이 자리하고 있었다. 헤르마틴 2세가 착석하자 대소신료들이 뒤이어 자리에 앉았다. 헤르마틴 2세는 블루를 바라보며 물었다. “짐에게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분이 누구지요?” 그렇게 물었지만 헤르마틴 2세의 시선은 이미 추세흔을 향하고 있었다. 대소신료들도 추세흔을 주목했다. 하지만 그들은 헤르마틴 2세의 친근한 눈빛과 다르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넌 또 뭐냐?’ 하듯이. 당연했다. 그들에게 블루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려고 하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블루는 찻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그러자 다들 텐시한테 시선을 돌렸다. 어느덧 그녀가 블루의 대변인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텐시는 웃으며 무슨 말인가 말하려는 찰나, “호, 혹시?” 의혹어린 시선으로 추세흔을 바라보던 크라만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음?” 모두의 시선은 다시 크라만에게 쏠렸다. 블루도 찻잔을 든 채 그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크라만과 추세흔이 초면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크라만 후작을 쿠출하던 당시 추세흔과 수하가 크라만의 방으로 쳐들어오지 않았던가. 고문의 후유증으로 제정신이 아니었으나 기억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추세흔이 그린기사단이라 불리는 산적들 수장이란 사실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크라만 후작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혹시 당신은 그린기사단의........?” “뭣! 그린기사단!” 순간, 회의실이 발칵 뒤집혔다. 상상도 못한 말이 흘러나온 탓이다. 귀족들은 두려움에 떨며 창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으로 피했다. 그들에게 그린 기사단은 악마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린 기사단의 피해를 입은 곳은 대부분 영지의 성주들이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폐허가 되었다. 자칭 의적인 그린기사단은 영주는 반죽음을 만들고 재산은 싹 쓸어가 버렸다. 물론 부패한 귀족에 한해서라는 단서가 붙지만. 그러나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한 귀족의 다급한 외침이 뒤따랐다. “어, 어서 황제폐하를 모시고 자리를.....!” 그때 헤르마틴 2세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하하!” 시원한 웃음이었다. 가식이 섞였다면 저렇듯 유쾌한 웃음이 흘러나올 수 없다. 회의장 안에 짙은 적막감이 깔렸다. 우왕좌왕 난리법석을 부리던 귀족들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황제를 돌아보았다. 그린기사단이 앞에 있는데, 저렇듯 태평한 황제가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혼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를 마시던 추세흔까지도 의혹이 짙게 배인 얼굴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웃음을 그친 황제가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바로 당신이 그린기사단의 수장이었구려.” “그렇습니다.” 추세흔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황제에게서 가식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번 보고 싶었소. 신료들 태도를 보고 눈치 챘겠지만, 우리에게 그린기사단은 상당히 유명인이오.” “저, 전하! 유명인이라니요? 저자는 약적이옵.......” 한 귀족이 용기를 내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살기가 엄습해왔기 때문이다. 그때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후후! 다벤 경, 괜찮소? 익히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겠지만, 그린기사단은 부패한 귀족만 턴다고 하지 않았소. 자신에게 떳떳하다면 그렇게 떠실 필요 없어요.” 웃으며 지나가는 투로 내뱉은 말이지만, 그 속엔 뼈가 있었다. 그 뼈를 찾아낸 추세흔은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리고 블루를 바라보았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하지만 블루는 추세흔의 시선을 모르는 척 차만 마실 뿐이었다. 결국 추세흔은 다시 황제한테 시선을 돌렸다. “평소에 똑똑한 친구들인데, 경이 왔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 나머지 이런 경황없는 자리가 되었소, 이해해주시오.” “물론입니다, 황제폐하: “블루 경과 연이 있다니! 그것도 놀랍지만 우리 제국으로 찾아오신 이유가 있을 것 같군요?“ 추세흔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즉에 인사드리지 못하고 늦었습니다. 저는 그린기사단의 수장입니다.” 추세흔은 그것으로 인사를 마쳤다. 다들 어리둥절했다. 뒷말이 더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귀를 기울였건만 뻔뻔스러운 얼굴로 황제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인사말이 모두 끝났다는 듯이. 헤르마틴2세 역시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가 물었다. “그게..... 끝이오?” “그렇습니다.” “하하, 역시 재밌구려! 그래, 이름은 없다는 뜻 같은데...... 뭐, 좋소!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다시 추세흔의 눈빛이 일렁였다. 귀족들이 나섰다. “폐하! 그게 무슨 말씁이시........” “경들은 시끄럽소!” 헤르마틴 2세의 말에 귀족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럴 순 없었다. 어디나 법도와 예의가 있는 마련이었다. 젊은 귀족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시끄럽다지 않소!” 황제가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더 이상 입을 여는 귀족은 없었다. 황권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었다. 황실을 떠나 여행을 하는 동안 해르마틴2세는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버젓이 이름을 가지고 있고 사람 얼굴을 하고도 전혀 사람 같지 않게 행동하는 자도 만났고, 반대로 인격자이면서도 이름을 갖지 못한 사람도 만났다. 이름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은을 지니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했다. 누가 뭐래도 사람이 그린 세상이고 그가 제아무리 높은 직위에 민인지상의 권력을 쥐고 있다 해도 그 역시 사람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름 없는 거리도 사람다우면 사람이고, 사람답지 못하면 고귀한 혈통을 가진 귀족도 사람일 수 없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었다. 그런데 어찌 사람이 사람을 핍박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구는 가난하게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겠는가? 귀하게 태어나고 싶어서 그렇게 태어났는가? 처음 황궁에 있을 때는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황태자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래 있는 사람의 고충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짓이 잘못된 생각임을 곧 깨닫게 되었다. 황국 밖으로 나서는 순간 그 사실이 눈에 들어왔고, 피부로 느껴졌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황태자 열지만 그는 황실을 벗어난 순간 거지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황궁에서는 황태자였지만, 바깥세상에서는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에 불과했다. 노예나 거지보다 나을 게 없었다. 그들보다 세상을 몰랐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황태자라고 우겨봤자 소용없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때 가장 기뻤다. 그는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가슴에 묻어두었다. 귀족들 반대를 무릅쓰고 실력에 따라 인재를 골고루 등용했다. 평민이든 노예든 상관없었다. 제국이 그만의 영화를 위한, 혹은 귀족의 영화만을 위한 곳이 아님을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없는데 그 혼자 왕이 될 수 없으며, 사람이 있다 해도 인재가 없으면 제국은 빈껍데기일 뿐이었다. 권력으로 백성을 억압하는 것이 황제가 아니라, 이해와 애정으로 설득하는 것이 진정한 황제였다. 그리고 사람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존재이유가 분명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는 백성들이 행복하고 평안하게 사는 제국을 꿈꿨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 황제가 되자마자 그는 먼저 부패한 귀족부터 골라냈다. 뼈대나 이름을 들먹이며 밥그릇만 축내는, 무능하면서 입만 살아 있는 귀족들은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그가 꿈꾸는 제국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추세흔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지금까지의 의문이 모두 풀리고, 개안한 느낌이었다, 황제 밑에 붙어 있는 블루의 마을을 이해하지 못해 머리를 싸매던 자신이 바보처럼 여겨졌다. 검황이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 옛날, 중원에 군림한 담소광은 황제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주겠다며 회유했을 때, 콧방귀만 뀌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황제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변한 것처럼 검황도 변했다고 생각하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나 블루에겐 황제든 걸인이든 같은 사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고 아니었다. 무엇을 해도 혼자 먹고 사는 것은 물론 친구나 가족까지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는데, 그 이상 뭘 바랄 것이며 또 무엇이 불만이겠는가. 하지만 그들 역시 사람인지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나쁜 사람이었다. 눈앞의 저 청년은.........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들다 뿐인가? 옆에 있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이제야 블루의 심정을 이해한 것이다. 자기 혼자서 머리 굴리고 의적 흉내를 내봤자 산적소리밖에 듣지 못했다. 하지만 저 청년과 함께라면 자신이 원하던 세상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만인이 평등한 세상! 전쟁과 피로 물든 권토중래(捲土重來)는 과거, 그것도 전생의 일일 뿐이다. 지금 그가 절실히 원하는 것은 가족과 형제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었다. 저 청년이라면, 저 청년과 함께라면 그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자신의 이상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앞의 저 청년 말고는 그 누구도 황제라는 칭호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을 정리한 추세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황제가 말했다. “그래서 호칭은 필요할 것 같은데 혹시 그린기사단에서 불리는 호칭 같은 것도 없소?” 황태자의 질문에 추세흔은 고개를 들었다. 그가 말했다. “보스라고 불립니다.” “보스라..... 하하, 나쁘진 않지만 짐이 직접 그렇게 부르긴 조금 뭐하고.......” “아무렇게 부르십시오.” 추세흔의 말에 턱을 어루만지며 잠시 생각하던 황제가 말했다. “흠, 그럼 그린기사단의 수장이니 그린 경이라 부르겠소, 어떻소?” “뭐, 편하실 대로.......” 추세흔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만약 그 어설픈 작명이 후세에 길이 남을 이름이 될 줄 알았다 해도, 그가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호칭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그래, 블루 경을 통해 짐을 만나려 했던 이유가 무엇이오?” 추세흔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말문을 열었다. “근자에.......” 그의 이야기는 길었다. 그린기사단이 만들어진 배경부터 최근 몬스터들의 수상한 움직임까지, 나아가 자신이 돌보고 있는 가족 이야기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들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식솔이 삼만사천 명이라니! 엄청났다. 작은 영지에 딸린 영지민이 오천여명 남짓이다. 삼만 사천이면 거의 공국 수준이었다. 거기다 정예 병력이 사천이라니! 거기다 그치지 않았다. 비상이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팔천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그 엄청난 병력을 가지고 산에 둥지를 튼 채 산적 질을 일삼다니! 별의별 수를 다 쓰고도 잡지 못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헤르마틴 2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 말이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허.........!” 귀족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추세흔이 말했다. “우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하시오!”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곧장 입을 열었다. “우리를 받아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이오” 흠칫! 황제는 생각 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다이렉트로 대답했다. 다소 의외였는지 추세흔은 당황한 얼굴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자신이 이렇듯 수차례 놀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황제 앞에서 이상할 정도로 페이스가 흔들리는 자신이 우스웠던 것이다.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난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오. 백성이 없다면 어찌 내가 있을 수 있겠소? 그런데 스스로 나의 백성이 되겠다는 사람을 어찌 막겠소?” 황제의 말에는 신념이 담겨 있었다. 추세흔의 눈동자가 한순간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말문이 열렸다. “그린기사단과 헤르마틴의 동맹의 선물로 정보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정보?“ 추세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결심을 굳힌 듯 말문을 열었다. 제3장 광명 “흠........” 모두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버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이다. “전 선물이라 생각했는데, 이미 알고 계셨던 모양이군요.: 수긍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다만 구석에서 크라만 영주만이 주먹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 뿐이었다. “그런데 그린기사단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흠, 사실 처음에는 짐작에 가까웠지요.” “짐작?” 추세흔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뜬금없이 물었다. “제가 누굽니까?” 순간, 회의실 안은 크게 술렁거렸다.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질문이 잘못되었군요. 저희가 누굽니까?” 텐시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린기사단?” 추세흔은 그 말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던 답변은 아닙니다.” “그럼?” “나는 우리가 하는 행위를 말한 겁니다.” “.......!” “큭큭, 눈치 보지 마시고 쉽게 도둑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사실이니까요. 그 어떠한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해도 저희가 도둑인건 사실이지요.” 추세흔의 설명에 귀족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뭔가 노림수가 있지 않고서야 저토록 자신들을 노골적으로 비하하지는 않을 게 아닌가! 당혹스러워 하는 귀족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추세흔은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사실 도둑질이 나쁜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더 도둑 같은, 합법적으로 도둑질을 하는 귀족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이 제 손을 더럽힌 것뿐이지요.” 순간 발끈한 귀족들. “아니, 그런 망발이 어디 있소? 스스로 노력해 변화를 꽤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나쁜 짓인 것을 뻔히 알면서 도둑질을 하다니!” 추세흔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냉랭한 표정에선 분노가 생생히 느껴졌다. “노력?” 흠칫! 귀족들이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내 노력은 당신들 횡포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사람들을 독려해 일을 열심히 하면 열심히 인한 만큼 열심히 빼앗아갔죠. 거기가지도 좋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지요. 흉년임에도 풍년에 걷어간 만큼 가져가는 파렴치한...... 큭큭! 노력이 부족했다면서 빚더미에 앉혀놓더군요. 그래서 뒤늦게 난 깨달았지요. 이들이 있는 한 내가 원하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평등? 훗! 평등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의 취급은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웃는 것 정도는 놔둬야 할 것이 아닙니까?“ 낮지만 단호한 어투. 눈치만 살필 뿐, 누구 하나 감히 나서지 못할 때 한 귀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 누가 자네들한테 우, 웃지 말라고 했던.........가?” 추세흔은 그 귀족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이죽거리는 미소. 확언하건대 블루가 없었다면 그자는 더 이상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질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웃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말로만 하지 않았을 뿐, 행동으로 웃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그게 무슨........?” “저는 새로운 삶을 살면서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행복이 뭔지, 사랑이란 감정도 느껴보았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부모를 부모로 공경하고, 형제까지 힘을 더하고 서로를 감싸주는 모습에서.......... 나를 부로처럼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 그것을 느꼈습니다. 웃기지도 않고 나답지도 않지만......... 그들 품안에서 나는 감상주의자처럼 변해갔습니다. 예전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충만함까지 느꼈죠. 그래서 평민으로 살아보고자 했던 겁니다. 절대자의 삶은 너무나 외로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엔 그것이 외로움이란 것을 몰랐었지만...... 큭큭!“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아TEk. 나설 분위기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블루만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내 마누라가 벽에 기댄 듯 서 있더군요. 가슴에 검을 박은 채! 큭큭, 그리고 구석에서 다섯 살배기 딸의 옷을 벗기고 있는 친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내가 있던 영지의 영주 아들이었습니다. 주변에선 그의 수하들이 웃으며 즐기고 있고....... 나를 슬쩍 돌아보며 히쭉 웃더군요. 어처구니없게도 너무나 자랑스러운 표정이었지요. 누가 보더라도 강간하려는 것을 반항하다가 이런 사태가 왔음을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요.“ 히쭉 말을 끊은 추세흔은 웃었다. 그게 분노를 터뜨리는 것보다 더욱 공포스러웠다. 꿀꺽 사람들은 저마다 침을 삼켰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더군요. 저런 자식의 배를 불리기 위해 악물고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지요. 물론 동시에 그놈은 자신의 갈라진 배속에서 흘러나온 내장을 움켜쥔 채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죽어갔지만요. 크흐흐!”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종잡을 수 없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바로 귀족을 향한 뼛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분노! 블루마저 숨을 죽이며 천천히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추세흔은 말을 이어갔다. 귀족들한테 머물던 그의 시선은 어느새 황제를 향하고 있었다. 물론 눈에 띄게 드러나던 적대감이 많이 수그러들었다. “그 일을 나 혼자만 겪는 게 아니더군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다 보니, 마을리 생겨났죠. 물론 안전을 고려해 깊은 산속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흠..........” “마을이 만들어지자 식량이 문제더군요. 산속이라 먹을 게 한정되어 있고, 우리끼리 자급자족하며 살기에 땅은 너무 척박해 농사짓기도 수월치 않았죠. 자연스럽게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든 귀족들한테 시선을 돌렸죠. 그땐 이미 힘이 충분했고, 아니 모자랐지만 그것은 그들을 향한 분노가 충당시켜주었습니다.” “미안하군.” 황제의 입에서 흘러나온 침음성이었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황제를 향했다. 황제의 시선에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본 추세흔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하던 황제가 물었다. “본론이 몬가?” 기다렸다는 듯 추세흔은 곧장 대답했다. “도둑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둑질?” 황제와 귀족들 시선이 텐시한테 쏠렸다. 그녀가 도둑길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텐시는 말이 없었다. 추세흔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추세흔이 힌트를 주었다. “도둑에게 가장 필요한 것!” “아!” 순간, 텐시는 추세흔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 그녀가 말했다. “정보로군요.” “훗! 맞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둑한테 가장 필요한 건 정보입니다. 목표로 삼은 사람이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털어도 안전한지 등등 여러 정보가 필요한 법이지요.” “아!” 그제야 다들 감탄사를 터트렸다. 황제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그 정보를 어디서 얻느냐는 거죠.” 흠칫! 순간 몇몇이 어깨를 움츠렸다. 황제는 그것을 보지 못한 것 같았지만, 실은 놓치지 않았다. 황제가 말했다. “귀족이군.” “맞습니다.” 황제의 말에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리 조직은 모든 나라에 존재합니다. 산맥이 연결되어진 곳은 몬스터가 있든 없든 우리들의 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황제가 무릎을 치며 외쳤다. “그거 멋지군!” “감사합니다.” 가면 갈수록 추세흔은 황제에게 끌리고 있었다. “저희는 주로 귀족들에게 정보를 받지요.” “거짓말마라!” “저, 저런 쳐 죽일!” 귀족들이 분개하여 언성을 높였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추세흔의 말대로라면 귀족이 귀족을 팔았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만…” 번뜩 “훗!아닙니다.” 이유모를 침묵. 갑작스러운 적막감에 사람들 목젖이 움직였다. 추세흔의 말을 이해 못한 사람은 없었다. 이중에도 자신과 교류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말은 그들과 친분이 있는 귀족 중 누군가가 입을 열면 자신들이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없었지 때문이다. 황제는 은영중에 반응하는 사람들 모습을 머릿속에 담았다. “계속해보시오.” 황제의 말에 추세흔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타국의 귀족 중에는 우리와의 연락을 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정보를 기초로 그 곳에 ‘관찰자’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결과를 뽑아 그곳을 급습하지요. 물론 개중엔 자기 이득을 위해 거짓된 정보를 보내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 곳 역시 우리의 관찰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다음 범행대상자란 말이겠지?” “그렇습니다, 폐하.” 추세흔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표정이었다. 거기에 대고 황제가 참 잘했다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무슨 일이 생긴 게로군?” “그렇습니다. 우리한테 정보를 주고 거래하던 귀족 중 몇몇이 우리와의 사인을 잊어버린겁니다.” 그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요? 중요한 거요?” “그 사인인가 뭔가가 하는 것이 어려워 헛갈린 것 일수도 있지 않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사실 그 사인이라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다지 중요하다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관계가 정리되기 때문입니다.” “흐음.” “문제는 그들이 우리의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겁니다. 오랫동안 거래를 계속해왔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억지로 친한 척하더라 그 말입니다. 전혀 모르면서 아는 척해야 하는 억지스러운 분위기라고 할까요?” “지금 ‘그들’이라했소?” 끄덕 “그래서 이상하다는 겁니다. 한 명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모두한테 그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결국 이해할 수 없는, 무슨 사단이 났다는 말 밖에 되지 않지요.” “그렇군.” 그제야 귀족들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이미 자신들 중에서도 그런 일을 겪은 장본인이 있지 않던가! 일부 귀족의 시선이 크라만에게 향했다. 그러나 싸늘한 크라만의 표정을 오래 지켜 볼 간 큰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확실한 건 그렇듯 몸이 바뀐 귀족이 타국에도 한 둘이 아니란 말이군. 더구나 하나같이 중요한 요직에 자리한 사람들이고......” “그렇습니다.” 그 때, 조셉이 물었다. “혹시 그들 명단을 가지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보여줄 수 있겠소?” “그건 따로 챙겨드리겠습니다.” “고맙군.” “조셉은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리스트야말로 곧 터지게 될 전쟁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크나큰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만 물어도 되겠소?” “뭡니까?” “혹시 우리 헤르마틴 제국 귀족도 그 명단에 있소?” 죠셉의 질문에 추세흔은 고개를 슬쩍 가로저었다. “그 명단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모든 걸 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을 잠시 끊은 추세흔이 잠시 눈을 감았다. 꿀꺽 귀족들의 눈길은 추세흔한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무슨 말이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가 가지고 있는 명단에는 헤르마틴 제국의 귀족이 없다는 겁니다.” “그게 정말이오?” “그렇습니다. 수년 전 황제께서 황상에 오르실 때 정리된 게 아닌 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순간 뭔가 집히는 것이 있다는 듯 귀족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죽은 귀족이 몇이나 되었던가! “분류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수고했군.” 카르몽 후작의 보고에 유슬라니안 제국의 황제 라스넬 폰 하트레스의 입에서 치하의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물증까지 확보된 존재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카르몽 후작의 말에 황제가 물었다. “그게 그 명단인가?” “그렇습니다,” 황제의 반응을 주시하던 카르몽이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황제는 눈으로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나직하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설마 카미르 백작도......!” 끄덕 카르몽 후작의 수긍에 하트레스 황제의 이마에 깊은 골이 파였다.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라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힘 있는 권력가 대부분이 정체불명의 세력들한테 잠식당한 것 이었다. “의회를 구성하는 백 이십여 가문 중 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는 열일곱 가문의 거두가 하나같이 잠식당한 겁니다.” “생각보다 심각하군.” “그렇습니다.” 카르몽 후작 역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으로 하트레스 황제의 근심을 받아주었다. 그들은 가장 강한 표결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움직이면 휘하의 귀족들까지 덩달아 따르므로 표결의 의미가 크게 퇴색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다. 전쟁 중에 물자를 보내는 것까지도 의회의 의견을 수립해야 하는데, 다수가 보내지 말라면 보낼 수 없다. 그렇다고 그 절차를 무시해 버릴 수도 없었다. 오랜 전통이기 때문이다. 어디나 절대불변의 법칙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깨지면 다른 것까지 흔들리기 마련이다. 예외를 인정하는 순간, 더 이상 절대불변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도 마찬가지다. 일단 하나가 깨지만, 예측불허의 복잡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아이린 공작이 물었다. “그들 뒷 배경에 대해서는 알아봤나?” “크로타니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크로타니안?” “아직 정확한 증거가 없어 그 이상은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심증은 백 프로입니다.” “아무리 심증이라지만 백 프로라고 말 할 정도면 뭔가 있겠지?” “그렇습니다.” “크로타니안이라......” 아이린 공작이 나직하게 내뱉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배후를 없앤다고 해결될 만큼 간단치 않은 것 같군.” 공작의 말에 미투스 공작이 수긍을 표했다. “그렇습니다. 그들을 죽인다면 강권체제의 발로라며 극심한 반발이 일어나게 될지 모릅니다.” “증거를 보여줘도?” 그 물음에 카르몽 후작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증거가 있다 해도 큰 효용은 없을 것 같습니다.” 공작이 짧게 물었다. “왜지?” 카르몽 후작은 기다렸다는 듯 지체 없이 대답했다. “익히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그들은 핵심귀족입니다. 황제파와......죄송합니다, 폐하!” “아닐세. 계속하게.” 황제의 격려에 카르몽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황제파와 귀족파로 나눠져 있는 핵심 수뇌들인 것입니다. 이는 사실 폐하께서 원하시던 바였지요.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두 세력이 밀고 다기며 서로를 견제하면서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 말입니다.” 끄덕 하트레스 황제가 말없이 수긍했다. “하지만 거기엔 큰 맹점이 하나 있습니다.” “뭐지?” “두 세력이 서로를 견제한다는 것! 그것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입니다.” 황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얼굴로 카르몽을 바라보았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보게.” 꽤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가 고심 끝에 만든 체제에 흠이 있다는데 어찌 기분이 좋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열려있는 사람이었다. 일례로 그는 질책과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을 줄 알았다. 대신 근거 없는 비방이나 쓸데없는 쓴 소리는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짓을 일삼는 자는 단칼에 목을 뱄다. 그렇듯 그는 과단성지도 겸비하고 있었다. “두 그룹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안정과 발전을 꾀하는 체제의 효과는 탁월합니다. 하지만 그 효과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늘 두 세력의 힘이 균등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게 단점입니다.” “어째서인가?” “힘의 균형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져버리기 때문입니다.” 황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이어진 카르몽 후작의 말에 인상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우리 제국은 전혀 그럴 염려는 없겠더군요.” “흠?” “황제폐하께서 장난을 쳐놓으셨기 때문이지요.” 순간 황제는 무릎을 치며 탄성을 내질렀다. 탁! “날 자주 놀라게 만드는군.”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있나? 난 능력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네.” “감사합니다.” 카르몽 후작의 인사에 하트레스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떻게 알아차렸나?” “이번에도 역시 우연이었습니다.” “하하, 우연이 아닌 게 없군.” “죄송합니다. 제 화법이 이런지라......여하튼 제가 지금까지 봐온 핵심권력 구조는 황제파가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경향이 짙어보였습니다. 그런데도 귀족파의 도발이 정도를 넘어서지 않더군요. 아니, 일부러 피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어딘가 단점이 보이던가?” “아닙니다.” “그럼?”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대립구조가 저를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순간 미투스 공작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카르몽 후작을 떠보러갔다가 자신도 저 한마디에 넘어가고 말지 않았던가. “너무나 완벽? 그게 의심이 되었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제 성격이 약간 모나다 보니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주 사소한 그 무엇도 이유가 있으니 그런 결과가 있기 마련이지요.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가 폐하께 오기 전에는 늘 의문이었습니다. 황권이 약함에도 귀족들과 팽팽히 맞설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완벽한 균형과 조화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습니다.“ “허허.” 황제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카르몽의 말이 이어졌다. “제 나름대로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귀족 파 역시 둘로 나뉘어 있더군요. 매파와 비둘기파인데......” 말이 길어지자 하트레스 황제가 손을 내저었다. “됐네. 자네한테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네. 더 이상 계속할 필요 없네. 공들여 세운 탑이 이렇듯 쉽게 파헤쳐지다니! 맥 빠지는군.” “죄송합니다, 폐하!” “죄송할 것까지 없고.” 기회를 엿보던 미투스 공작이 나섰다. “그런 내막을 알면서도 증거를 찾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카르몽이 말했다. “우선 황제께서 의도하셨든 의도하지 않으셨든, 지금의 양분체제는 너무 완벽합니다. 황제파 사람들은 나라의 안정을 원하고, 귀족 파는 전쟁을 통한 개혁을 원합니다. 지금까지 전쟁이 없었던 것은 균형이 흐트러져도 금세 균형이 갖춰졌기 때문입니다. 마치 수평저울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황제폐하께서 만들어낸 장난이었던 겁니다.” “무엇이 장난이란 말이지?” “바로 황제파와 귀족파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흠......” “사실 우리 유슬라니안 제국엔 황제파와 귀족파가 따로 없더군요. 정치적 야망이 다른 제1황제파와 제2황제파가 있을 뿐.” 흠칫 “황제파와 귀족파로 불리는 것은 황제폐하께서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그렇게 보이기를 원하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황제는 부정하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인 카르몽 후작이 말을 이었다. “이것이 너무 완벽한 탓에 문제가 된 겁니다. 황제폐하께서 무슨 일을 추진하시려 해도 이들의 팽팽한 대립이 그것을 원천봉쇄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거지요.” 황제의 이마에 깊은 골이 파였다. 정곡을 찔린 탓이다. “하지만 완벽한 체제에도 틈인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의 룰이 있으면 그것을 상쇄하는 룰도 있기 때문이죠.” “상쇄하는 룰?” “예, 균형을 갖추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견제할 시간이 말이죠. 그런데 균형이 잡히기 전에 공략하면 저울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지탱하지 못할 만큼 무거운 것을 올려버린다면 말입니다.” “설마!” “맞습니다. 지금 침투해온 이들은 이 나라의 정권붕괴를 원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무거운 추를 양쪽 저울대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잡지 못하도록 저울을 향해 집어던지고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중심을 잡을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다들 심각한 얼굴로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사람들의 시선은 하나둘 카르몽한테 향했다. 카르몽 후작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결국 황제가 나섰다. “계속해보게.” 카르몽 후작은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나의 체제 아래 두 세력이 적절히 서로를 견제하는 독특한 구조가 정말로 귀족파와 황제파로 분할될 수도 있는 상황으로 전개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전쟁이라는 추가 모든 룰을 뒤엎기에 충분한 파급효과를 가져온 탓입니다. 우리가 ‘조사한 자’들은 하나같이 전쟁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천하를 일통하기를 바라는 개혁의 물결로 비쳐질 수도 있는 귀족파의 건의로 결국 전쟁이 발발했고, 그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 결과 그런 양상은 더욱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 때 그들을 죽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실종으로 처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실이 개입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될 겁니다.“ “황실의 개입이라니?” 하트레스 황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제기했다. 카르몽 후작이 말했다. “황제폐하께서 전쟁을 원치 않는단 사실을 귀족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귀족파들이 강력히 주장해도 전쟁의 불씨는 터지지 않았습니다. 힘의 균형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들의 갑작스런 난입으로 균형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발발했죠. 황제 파나 귀족 파나 서로 상대방을 너무 믿었기 때문에 갑작스런 움직임에 중심을 조율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 탓이죠.” “그렇군.” “그러니 그들은 생각할 겁니다. 황제폐하의 분노를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중심에서 활약한 귀족들이 사라지거나 죽는다면 귀족들은 불안에 휩싸이게 될 겁니다. 자신들도 죽을 수 있다고 생각 할 테니까요. 죽음에 대한 불안감은 충성심의 근간을 뒤흔들 수 밖에 없습니다 권력의 맛을 아는 자일수록 자신들이 이룩한 것을 잃을까봐 두려워할 테니까요. 그리되면 지금까지 이름만 있을 뿐, 실질적으로 존재치 않았던 황제의 반발세력이 생기게 되겠지요. 어쩌면 지금 그들은 이런 결과를 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잠자코 듣기만 하던 미투스 공작의 입에서 질문이 흘러나왔다. “미투스 공작께서도 짐작하고 계신 것처럼 우리가 그들을 이용해야합니다.” “이용?” “전쟁 중에는 그들을 처단할 수가 없습니다. 전쟁이 끝난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녀석들을 옭아맬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지요. 만약 증거만 확실하다면 속 시원하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지만, 어설프게 드러난 놈 몇을 처리하다 타초경사하는 우를 범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몸체가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여하튼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은 지금 우리가 자신들 정체를 까맣게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아니, 안다 해도 자신들 정체가 완벽하게 드러났다는 것은 모를 겁니다. 그러니 화가 나는 일이긴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철저히 당해주면 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하트레스 황제의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미투스 공작이었다. “겉으로 당하는 것처럼 하면서 뒤로 다른 준비를 하자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전혀 모르고 당하는 것과 알면서 당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기회를 엿보는 겁니다. 녀석들의 확고한 믿음에서 나올 방심을 노리자는 것이지요.” 카르몽의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몬스터들의 난동이 극에 달한 것 같습니다. 우선 몬스터들을 막아서 피해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일 듯 싶습니다.” 정보부 부장인 텐시의 발언에 귀족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토벌대가 몬스터들을 쓸어버리지 않았던가?” “잠시 시간을 번 정도였습니다.” “말도 안돼! 그 때 잡은 몬스터의 수만 해도 5만여 마리에 달한다고 들었소, 그게 시간을 번 정도라니!” 텐시는 사내의 말을 뒤로 한 채 말을 이었다. “이번에 대대적으로 병사를 동원해 북쪽 산맥을 공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타국의 국경지대와 겹치는 곳은 그곳의 도움을 얻어 함께 처단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국경지대는 군대가 지키고 있으니 그렇다 해도, 지금 우리들한테 북부산맥으로 보내 따로 몬스터를 저지할 만큼 남는 군사력이 있단 말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전쟁의 시운이 감도는 현재 군사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용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텐시가 하는 토벌작전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현실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귀족들의 눈에 나라가 침범 당하게 생겼는데, 몬스터로 인한 자잘한 피해가 들어오겠는가? 귀족의 질문에 텐시가 사무적인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유슬라니안에 간 니콜라스 지휘관과 병사들을 뺄 생각입니다.” “흠......” 사람들의 이마에 깊은 갈매기 주름이 자리 잡았다. “그 정도로 심각한가?” “상상 이상입니다.” “상상 이상이라? 이해가 안 가는군.” 텐시가 싸늘한 표정으로 빈정거리는 귀족을 향해 눈길을 쏘아 던졌다. “이미 전쟁에서 시작 되었어요! 사람과의 전쟁이 아닌 몬스터 전쟁 말예요!” 한 달 후, “또 다른 몬스터 대군이 북부산맥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 관측되었습니다.” 지원 사령부에서 흘러나온 말에 북부귀족들은 낙담할 수 밖에 없었다. 텐시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때 그 말을 우습게 넘겨선 안 되었던 것이다. 북부귀족들은 그 사실을 피부에 와 닿게, 아니 실지로 뼈가 저리게 깨달았다. 몬스터들은 그들이 생각하던 것과 사뭇 달랐다. 대군이었던 것이다. 체계적이며 전략적인 그들의 움직임은 인간의 군대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처음에 반박하던 귀족들도 친분이 있던 귀족들이 몬스터한테 피해를 당하자, 입장표명을 달리했다. 이미 북부에 속해있는 삼십여 귀족들이 피난을 내려왔으니 더 이상 무슨말 이 필요하겠는가! 임시로 황실에서 제공한 숙소는 그들의 가족과 하인들로 가득 들어차있어 더 이상 수용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어서 몬스터들을 밀어주시오!” “군대를 보내시오!” 피난 온 귀족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시끄럽군.” 남부에 속한 귀족들이 귀를 후비며 인상을 구겼다. 자신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피해를 입지 않은 북부귀족들이 자신들이 뚫리기 전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으면 남부도 안전할 수 없다고 협박했는데, 그것은 단순한 위협으로만 넘기기에는 서글퍼했다. “니콜라스 사령관이 이끄는 군대만으로는 몬스터들을 퇴치하기는커녕 막는데 만도 역부족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이곳까지 오는데 국경선에 위치한 포탈을 이용한다 해도 앞으로 일주일은 더 걸린다는데, 그럼 너무 늦습니다! 우리 사병들은 지금 저지선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입니다! 남부 귀족들의 사병들이 절실합니다!” “뭣이!” “웃기는 소리 마시오! 그깟 몬스터들 따위에게 훈련된 기사와 병사들이 한 달도 견디지 못한단 말이오! 전쟁으로 인해 우리 영지를 관리하는 병사수가 모자란데, 어디에서 뺀단 말이오? 농노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누가 막는단말이오!” “흥! 농노들의 반란? 반란이 일어날 짓을 하긴 했나보지?” “뭐라고!” 발끈! 주먹이 오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 때 낮게 깔리는 목소리. 헤르마틴 황제였다. “조용!” 순간 의회장이 조용해졌다. 그 목소리에 거부할 수 없는 무게감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황제는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블루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선 경들의 의견이 중요한 것 같군. 니콜라스 경이 이곳에 와 몬스터 토벌에 투입되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네만 어떻게 생각하나?” 그 말에 베르니스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황실기사단을 뺄 수는 없는 일입니다. 흠, 우선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라 하면 저와 스콜이 담당하고 있는 오백명 남짓한 은의기사단이 전부인데, 그들을 끌고 나간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하니 아니 간만 못할테고......” 말끝을 흐리며 베르니스는 넌지시 남부귀족들을 바라보았다. 순간 남부귀족들이 흠칫했다. 그의 눈빛이 너무 부담스러웠던 탓이다. 그 반응을 본 베르니스가 입술을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해갈은 커녕 목을 축이기밖에 안 됩니다.” 그 때 밖에서 누군가가 허겁지겁 달려들어왔다. 그리고 황제한테 예를 취한 후 죠셉한테 서찰을 건네곤 자리에서 물러갔다. 굳어진 표정으로 서찰을 읽는 죠셉. 모두의 시선은 죠셉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했던 것이다. “무슨 내용인가?” 황제의 질문에 죠셉이 나직한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남부 유슬라니안 왕국 외곽의 국경선 지역에서 완전무장한 정체불명의 병력이 움직이는 것을 파악했다고 합니다.” “흠?” 모두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했다. 그 때 한 귀족이 질문을 던졌다. “우슬라니안의 국경선 쪽에서 말입니까?” “그렇다는군요.” “혹시 크로타니안과 헛갈린 것은 아닙니까?” 다시 한 번 서찰을 살핀 죠셉이 말문을 열었다.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군요. 확실하게 유슬라니안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사람들 표정에 당혹감이 어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신성제국과의 전쟁과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이 헤르마틴 쪽으로 병력을 돌릴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제4장 진실 혹은 거짓 철그렁 철그렁 검과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 계속되는 강행군에도 누구 하나 신음하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지도 않았다. 군소리도 없었다. 비명이라도 지를 법도 한데, 이를 악문 채 행군을 계속할 뿐이었다. 그 결과 물집이 수십 개 잡히고 발이 다 까졌다. 덥고 몸은 무겁고 이마에선 비 오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지만, 그들의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명확한 목적이 있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철혈의 눈빛이었다. 그때, 앞에 있던 사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힘든가?” 묵직한 저음의 그 목소리. 사람들의 가슴에서 뭔가 꿈틀거리게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 꿈틀거림에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아닙니다!” 쩌렁쩌렁 숲을 울렸다. 주변에서 감지되는 몬스터들의 기척이 그 외침소리 하나에 떨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전혀 지친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최고의 컨디션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이 넘치는 기합과도 같았다. 이마에서 쏟아지듯 흐르는 땀방울이 마치 거짓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은 정신력이었다. 극한의 정신력! 체력이 소진된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 같은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독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듯 굳세게 나아가고 있음이었다. 질문을 던진 사내는 여전히 걸어 나가며 뒤에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높은 목소리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런 기합은 적들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밝히는 것이라 화를 낼 만도 했건만, 그런 기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몰라서 화를 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자심감 이었다. 끝없는 자신감! 그들이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는 자들이 없다는,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자신감 탓이었다. 자신들은 걸어야만 했다. 자신들이 멈춰서는 경우는 두 가지 이유밖에 존재치 않을 것이다. 하나는 죽음, 또 하나는 그와 재회한 순간. ‘주군!’ 결연한 의지에 찬 세바스찬 2세의 표정을 우연찮게 보게 된 로이와 뮤엘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충직한 수하인 클레인. 로이와 뮤엘은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고, 클레인은 자신의 멋들어진 콧수염을 가볍게 말아 올렸다. 세바스찬 2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들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지 착각만은 아니었다. “음?” 블루는 자신을 따라나온 베르니스를 돌아보았다. “대장! 정말 같이 가실 생각이 없으세요?”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블루의 반응에 베르니스가 따지듯 물었다. “왜요?” 그러자 블루가 잠시 베르니스를 주시했다. 어째서인지 눈빛이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식, 날이 갈수록 반항심이 풍부해지는군.‘ 흠칫 베르니스는 왠지 모를 살기에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블루는 피식 웃으며 등을 돌릴 뿐이었다. 베르니스는 평소와 다른 블루의 반응에 왠지 기가 죽었다. 오히려 자신을 두들겨 팼다면 언성을 높여보겠는데(물론 더 얻어맞겠지만), 조용한 뒷모습을 보니 더 이상 말을 걸어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베르니스는 괜히 무안해져 투덜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뒤돌아보며 블루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블루는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대체 뭐야?’ 베르니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감정! 이미 여러 차례 느껴본 것이었다. 어느 시가가 되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이 녀석! ‘정체성의 혼란’이란 이름의 녀석! 지금이 또 그 시점인 것 같았다. 그 바람에 블루는 지금 혼란이 극에 달해 있었다. 누가 보면 우울증이라 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다. 정신적인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경지가 올라갈 때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존재적 가치를 깨달았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하나의 경지를 이루고 더욱 강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문제는 완전하게 깨달았다 싶으면 또다시 찾아오곤 했다. 과거의 깨달음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과거의 그와 현재의 자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그럼 그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알 수 없다. 지금 자신은 어떤 해답을 원하는 것일까? 무엇을 깨달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의문으로 촉발된 긴 고찰 끝에 그는 초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는 검황으로 우뚝 섰다. 검황 담소광! 그것은 자신의 지난한 고찰 끝에 만들어진 인간이었다. 다들 그를 신이라 했다. 스스로도, 완벽하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 왔다 해도, 정신이 주가되는 자신의 깨달음 만으로 이미 화경을 넘어 과거의 경지인 현경에 다다라야만 했다. 그런데 왜 화경을 넘어서기 전에 또 이런 의문이 찾아온단 말인가! 현경은 커녕 그 손앞에 잡히는 화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혹시나 스스로조차 완벽한 초인이라 믿었던 검황 담소광이란 존재는 거짓이었던 것일까? 지금 자신이 거짓인 것일까? 기억을 되돌려 보았다. 언제부터 자신을 거짓이라 느꼈던 것일까? 시간을 역행해 돌이켜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우습게도 자신이 환생했을 때부터였다. 바로 이 작은 소년! 명훈이라는 녀석의 몸에 들어섰을 때부터였다. 물론 그때는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뭔가가 있었을 뿐이다. 그것이 의문이라는 녀석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초정밀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이 녀석이 그 녀석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던 녀석이 어느새 손톱만큼 자리나 있었다. 그것이 급속도로 커진 것은 명훈이의 몸으로 다시 무공을 익히면서라기보다는 현민과 친구들을 만나면서부터라고 생각된다. 이유는 모르겠다. 우선 하나 확실한 것은 그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의 존재가 허공에 붕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는 소소했기에 가슴속에 묻어둘 수 있었다. 그 소소한 감정을 떠올리기 무섭게 다른 사건들이 터져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사건이 당시의 소소한 의문보다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큰 의문으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의문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얼마 후 명훈의 몸으로 이곳 차원에 넘어오면서 부터였다. 화경의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왠일인지 더 이상 벽을 넘어설 수가 없었다. 과거의 깨달음이 생생하고, 그로 인해 만들어낸 무공을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화경의 벽은 여전히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때 아이린이란 사내를 만났다. 일방적이라 할 만큼 크게 당했지만, 그로 인해 작은 깨달음을 얻어 화경에 넘어설 수 있었다. 의문이 약간이나마 풀렸던 것이다. 아니, 풀렸다기보다 자신이 자신한테 무엇을 요구하는지 감을 잡은 정도였다. 그런데 그것은 놀랍게도 처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과 다른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그뿐, 더 이상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듯 쉽게 해답을 찾아낸 문제였다면 이리 고민할 이유도 없었을 터였다. 그렇다고 쉽게 떨쳐버릴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 의문이 머릿속을 잠식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탓이다. ‘나는 누군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살아가고 있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 ‘하아........!’ 근원적인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해 생긴 무력감! 그것이 지금 블루의 모습이었다. 뭔가를 하고 싶고 억지로 하려고 해도 의욕이 나지 않았다. ‘블루, 블루!’ 흠칫!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어느새 다가온 헤르마틴 황제가 장난기 섞인 웃음을 띤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인이 자신의 등 뒤에 와 있음에도 눈치 채지 못하다니! 블루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해이해져 있음을 깨닫고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는 황제 쪽으로 돌아섰다. 처음 봤을 때 황제는 작은 소년이었다. 그러나 소년이던 황제는 어느덧 어른 티가 완연했다. 역시 자리가 사람을 바꾼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사람이 자리에 맞춰가는 걸까? “그냥, 이거저거.” “그렇군요.” 휘잉! 가벼운 바람이 두 사내의 전신을 가볍게 보듬었다. 황제가 깊이 들이마신 숨을 내뱉으로 말했다. “어째서인지 블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난데없는 말에 블루는 황제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가 말했다. “그렇게 의아한 눈으로 보실 것까진 없습니다. 저도 역시 사람이니까요.” “사람이라?” 블루는 나직한 말에 황제가 말없이 뒤따르던 하인과 하녀 그리고 기사들을 물렸다. 그들이 멀어져 간 것을 확인한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요, 사람이죠. 과거 제가 황궁에 왕자로 있을 때는 세상엔 귀족과 평민 노예가 있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모두 사람이더군요. 세상엔 사람이 살고 있더라고요. 귀족도 평민도 아닌 사람이, 성이 있든 없든, 집이 있든 없든 나이가 많든 적든 사람이 살고 있더란 말입니다. “처음 블루를 만났을 때가 생각이 나요. 그때는 정말이지 철이 없었어요. 물론 지금도 철이 없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그땐 막연하게 존 라이튼 경만만나면 다시 황위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황위에 올라서기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럼 아닌가?” 블루의 대답에 황제가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하하, 블루도 농담을 할 줄 아는군요.” “..........!” “설마 진담이었나요?” 황제는 블루의 눈치를 살피며 진땀을 흘렸다. 그가 말했다. “여하튼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블루와 함께 다니며 제가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누군가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자신의 삶이거든요.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어떠한 요구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요구라........” 말끝을 흐리며 블루는 눈을 감았다. 내가 세상에 바라는 것은 뭘까? 황제는 블루가 눈을 감고 있는 동안 할 말을 가슴 속으로 삼켰다. 블루를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중천에 떠 있던 해는 점점 서산으로 기울어갔다. 블루는 황혼 무렵에야 눈을 떴다. 사위가 어둠에 잠긴 가운데, 웃음을 머금은 채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황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뿐, 황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블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요구 따위나 하는 사람으로 보이나?” 몇 시간 만에 꺼낸 첫마디였다. 황제는 당화하지 않고 짧게 화답했다. “그렇습니다.” 거침없는 황제의 대답에 블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던 답변이 아니었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사실 반드시 자신의 생각이 옳은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그랬다. 그는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타인만의 시선이 있다는 사실을 긍정했다. 그리고 믿었다. “그런가?” 블루의 납득은 황제에게서 의문으로 들렸다. 황제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유를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듣고 싶군.” “블루는 정이 많습니다.” “정? 내가 정이 많다고?”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 정이란 것이 요구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요구란 별게 아닙니다. 자신이 준 만큼 돌려받고 싶고,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거죠.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요구! 그것이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람을 한없이 치사하고 구차하게 만든다고 하더군요. 그 속내를 알고 싶다는 생각에 불안해지고 조급해지기 때문이라면서.” “누가 그랬지?” “존 라이튼 경입니다.” “그가........?” 블루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존 라이튼의 말이라면 괜한 허튼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자의 깨달음이 자신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어떤 면에 서는 자신보다 더 뛰어났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황제가 전처럼 기다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블루는 외로움을 타는 사람입니다.” “내가 외로움을? 하하하하!” 블루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황제는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내가 외롭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지?” “지금의 그 모습도 제 눈엔 외로움의 표시로 보입니다. 외로움에 웃는 것으로 말이죠.” “........!” “블루는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외로움과 공허함을, 둘은 분명히 다른 것인데,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황제가 된 다음 복잡한 사건을 정신없이 하나둘 정리하다 주위로 시야를 돌리다 알게 된 것이니까요. 블루의 그 눈빛! 처음부터 어디서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황궁에 머물고 있을 때 거울 속에서 본 제 눈빛인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생기 없이 죽어 있던 공허한 눈빛! 얼굴은 웃고 있지만, 감정 없는 눈빛! 과격하게 언성을 높이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게 자기 스스로가 죽어 있음을 감추기 위한 방어막이 뿐이죠.” 블루는 담담했다. 마치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 점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반대로 생각 해보면 오히려 그게 정상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더군요.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타인이 없는데 자신이 있다니 웃기잖아요. 그 자신은 누가 알려준 자신입니가? 정말 자신의 존재하는 것인가요?” “......!” 정색한 얼굴로 말하던 황제가 피식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후후, 제가 이런 말을 하니 우습네요, 라이튼 경한테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무슨 말인지 통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가슴에 와 닿습니다.” 블루 역시 이와 비슷한 말을 알고 있었다. 사명창조명운(?命創造命運)! 사명이 있기 때문에 운명이 만들어진다는 뜻으로, 사람이 태어난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거기에 따르면 그가 이곳에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뭔가 이유가 있음이었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군.”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는 블루의 눈빛이 빛을 뿜었다. 깨달은 것이다! 무엇을 하던 자신은 자신이란 사실을 말이다. 쉬운 답이다. 하지만 그 쉬운 답도 어떻게 산출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어려운 답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아는 것은 아는 것으로 끝나지만 깨달음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너무나 간단한 답을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바보가 따로 없었다. 자신이 그토록 어리석게 생각하던 우둔한 현자들의 뒤꽁무니를 그대로 담습하고 있었다니!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깨달음 때문에 자신이 바뀔 이유도, 자신을 버릴 이유도 없었다. 자신은 자신일 뿐이었다. 순간 개안을 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무언가가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기분이다. 무겁게 짓눌려 있던 가슴이 들뜨기라도 한 듯이 가벼웠다. 고정된 생각의 틀이 깨진 것이다. 그것은 작은 균열에서 비롯되었다. 균열이 생긴 생각의 틀이 붕괴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블루가 다시 눈을 감자 황제가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왠지 모르지만 그를 혼자 놔둬야만 할 것 같았다. 자리를 피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블루로부터 반경 1킬로미터 내에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블루는 눈을 번쩍 떴다. 순간, 금비치 안광이 사위로 뿜어졌다. “........!” 한동안 빛을 발하던 블루의 눈에서 안광이 걷히자 어둠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유롭다. 지금까지 복잡하게 가슴을 옭아매던 정체불명의 그 무엇이 전부 사라진 기분이었다. 암흑보다 깊어진 두 눈동자는 블루의 변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분노로 표출되던 난폭함과 잔혹성이 사라졌다. 마음은 한없이 차분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기운! 그는 잠시 내려 보고 있던 자신의 손바닥에 기를 가했다. 화르르르륵! 손끝에서 푸른 불꽃이 이글거렸다. 강철이다고 단숨에 녹일 듯 강대한 화력이었다. 내공이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강해졌다. 전신에서 강한 힘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낯설지 않았다. 예전부터 그가 지니고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껏 정체되어 몸속에 있는 듯 없는 듯하던 기가 폭풍 같은 기세로 회오리치기 시작했다는 것뿐. 그리고 그것은 블루의 느낌만이 아니었다. 블루가 한걸음 떼어놓자 아슈가 진동을 했다. 그것을 느낀 블루는 손바닥을 펼쳐 하늘을 마주했다. 동시에 거대한 무형의 기운이 땅에서 하늘로 뿜어지면서 손바닥 위에 무언가가 형상화되었다. 그것은 검이었다. 거대한 검!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이 정도 기운이라면 태산을 일도양단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 두둥실 떠오른 심검이 아슈의 모양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검집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아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심검이 아슈의 형상을 띤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웅! 우우웅! 검이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빛이 주변에 흩뿌려졌다. 그 빛은 밤하늘을 은하수처럼 신비로웠다. 하지만 낯설지 않았다. 그가 검황이었을 때 사용하던 심검이었기 때문이다. 니톨라스에게 보여준 적 있는 단편적인 심검의 무리가 아니라 완벽한 심검! 드디어 과거의 힘을 모두 되찾은 것이다. 블루는 주먹을 쥐고 심검을 파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하하하!” 스왕! 거대한 팬타그램에서 뿜어지는 눈이 부신 광채! 빛 무리가 서서히 사라지며 그 안에 수십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십시오!” 죠셉이 환한 미소로 그들을 맞았다. 그러자 빛 무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 중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쏘아보았다. 그 오연한 모습에 죠셉은 가슴이 가볍게 뛰었다. ‘뛰어난 자다! 니콜라스 총사령관과 동급 아니면 그 이상이다!’ 뿐이랴. 함께 온 몇몇 기사들의 기도 역시 최강의 반열에 놓일 만한 자들이었다. 하나같이 마스터가 아닌 자가 없었다. 외곽에서 호위하는 기사들조차 황실기사급인 익스퍼트 정도는 충분했다. ‘어디서 이런 자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이런 실력자가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고 숨어 있었다면, 좋은 뜻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었다. 막말로 이들이 난동을 피우기라도하면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 그들의 수장이라 밝힌 사내는 조용히 그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이곳인가?” 짧은 말이었지만, 죠셉은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루이스 경이십니까?” 끄덕 죠셉의 물음에 세바스찬 2세는 수긍을 표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분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중하게 예를 갖춘 죠셉은 그 즉시 앞장을 섰다. 그러자 뒤에 있던 병사들이 술렁거렸다. “뭐요? 그럼 우리들은 뭐하고 있으라고? 설마 영주님 혼자 그분을 뵈러 가실 생각이우? 어이, 뮤엘!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로이의 발언에 뮤엘이 이마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기분이 찝찌름한 게 아주 상큼하고 더러운데? 안 그래, 클레인?” “흠, 그렇군” 순간 죠셉은 크게 당황했다. 세바스찬 2세의 수하들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뭔가 복잡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았다. 한낱 수하가 주군한테 이렇듯 함부로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슬쩍 세바스찬 2세의 눈치를 살피던 죠셉은 순간,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태연하게 웃고 있지 않은가.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며 말장난이라도 하듯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죠셉은 혹시나 싶어 그들 뒤쪽의 병사들한테 눈길을 주었다. 하나같이 석상처럼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휴부가 들숨과 날숨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밀랍인형으로 착각했을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다. 그만큼 기합이 들어 있다는 뜻이었다. “루이스 경?” 죠셉의 부름에 세바스찬 2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함께 가지 못한다면 나 역시 가지 않겠소!” 죠셉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었다. 이들이 찾아온 것이 바로 다름 아닌 블루인 탓이었다. 헤르마틴 제국의 일급비밀이라 할 수 있는 블루의 정체를 알고 찾아온 고수들. 그들의 만남을 막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막고 싶지만, 이미 황제가 알아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죠셉은 블루를 완전히 믿지 않았다. 아니, 믿지 못하는 것은 블루만이 아니었다. 사람이란 존재 자체를 믿지 않았다고 말해야 정답일 것이다. 블루가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시 사람인지라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알수 없었다. 지금은 비록 관심 없는 척하지만, 권력의 맛을 들이면 또 몰랐다. 그는 그렇게 변한 사람들을 숱하게 봐왔다. 블루는 아니라고 믿고싶지만, 황제의 안전을 위해 제2, 제3의 생각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어야, 그 상황이 닥쳤을 때 조금이나마 냉정하게 주위를 둘러볼 수 있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다른 분은 더 없으십니까?” “없소.” “그럼 따라오십시오. 황제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 뮤엘 그리고 로이가 죠셉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끼이익 조셉을 본 기사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 넓은 집무실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안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두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중 하나는 헤르마틴 황제고, 또 하나는 바로..........블루였다. 정말 그였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미친 듯이 심장이 뛰고 입술이 탔다. 머릿속에 질문이 가득했지만 어느 것도 선뜻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렇게 우물 쭈물할 때 블루와 황제의 시선이 천천히 그들에게 돌아갔다. 순간 세바스찬 2세의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퓨엘이나 로이, 클레인도 마찬가지였다. 블루는 가볍게 한손을 들어 입을 열었다. 과연 무슨 말이 흘러나올까? 괜히 긴장이 되었다. “여!” “여?” 순간, 세파스찬들은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제 헤어진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가. 세바스찬 2세와 일행들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블루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들 주군은 원래 저런 사람이었다. 대체 저런 사람을 뭘 믿고 따르는 것인지 스스로도 의아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지금까지 가슴에 담아두고 있던 모든 짐이 샤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주군!‘ “주군!” 헤르마틴 제국의 황제 앞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음인가. 블루를 향해 한쪽 무릎을 굽혔다. 감히 황제 앞에서 다른 사람한테 무릎을 꿇다니! 죠셉은 울화가 치밀었으나 태연한 황제를 못 본 척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화를 식이려 애를 썼다. 그때 블루가 말문이 열렸다. “왔군.” 순간, 세바스찬 2세들은 화가 날 뻔했다. 갖은 고생 끝에 몇 년 만에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왔군’ 한마디뿐이라니! 그것도 ‘왜 이제야 찾아왔느냐?’ 질색하는 듯한 어투가 아닌가. 동시다발로 고개를 치켜든 세바스찬 2세들. 그러나 웃을 수밖에 없었다. 블루가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변했군.” 블루의 말에 하나같이 자부심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의 가르침 덕에 가능했습니다.: 클레인의 말에 블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자에겐 있을 수 없는 변화다. 너희들을 보니 얼마나 혹독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했는지 알 것 같다. 그 경지는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오만해져도 좋다. 스스로 노력하여 성과를 이루었다면, 그 힘이 가져다주는 다른 힘 또한 누릴 권리가 있다!” “또 다른 힘?” 다른 고개를 갸웃거렸다. 블루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순간 그들은 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블루 또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달라져 있었다. 잘 별러진 칼날처럼 날카롭던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랬지만, 뭔가 달랐다. 조바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 그렇다! 조바심이 사라졌다. 세상을 오시하듯 날카롭기만 하던 것이 세상을 오연하게 바라보는 눈빛으로 바뀐 것이다. 오히려 검보다 더 날카롭고 강철보다 강인하게 느껴졌다. 중심이 확실히 잡힌 것이다. 그가 변한 이유가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세바스찬 2세의 고개가 다시 한 번 깊게 숙여졌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세바스찬 2세의 말을 동료들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함께 생과 사를 넘나들며 서로 오감을 공유할 수 있게 된 탓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블루가 강해졌다.! 괴물이라고 생각하던 블루가 이제 더 확실하게 괴물이 된 것이다. 대체 얼마나 더 강해졌단 말인가! 그들로선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제야 그가 비로소 본신의 힘을 되찾았을 뿐이란 사실을 말이다. 잠자코 눈치를 살피던 죠셉이 흥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블루 경! 혹시나 해서 드리는 질문인데, 설마 기사를 마스터로 둔갑시키는 비법이라도 있는 겁니까?” 자신이 말하면서도 기가 막혔다. 이런 질문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바로 같은 이 질문이 전혀 바보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피식거렸다. 누가 봐도 확실한 비웃음이었다. 그럼에도 블루만 뚫어져라 응시할 뿐, 죠셉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블루의 입이 열렸다. “노력 없는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순간 죠셉의 얼굴은 불게 물들었다.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만 죠셉.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 주위사람들은 왜 그렇게 강한 겁니까?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블루한테 모아졌다. 예외가 있다만 황제만이 조용히 차를 음미할 뿐이었다. 슬쩍 황제를 돌아본 블루가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다?” 끄덕 블루는 웃으며 말했다. “나와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기 때문이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힘이란 생사를 넘나들었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죠셉이 여전히 알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릴 때, 황제가 한마디 했다. “블루 경은 마음가짐을 말하는 겁니다.” 죠셉은 느긋하게 찾잔을 기울이는 황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음가짐이라구요?” “그렇습니다, 마음가짐! 과거 짐의 모습 어디에 황제의 모습이 있었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후후, 죠셉 경한테는 아직도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으시군요. 블루 경에 관해서도 말이지요.” “믿음이라고요?” 갈수록 태산이었다. 황제가 하는 말은 현자의 선문답처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블루 경과 함께 있는 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들은 하나같이 강하고 용맹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가 빠졌군요.: "..........?" 죠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하나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결국 고개를 가로저었다. “빠졌다는 그 하나가 무엇인지요?” “조금 전에 말했던 바로 믿음이라는 겁니다. 그것이야말로 강하고 용맹하다는 것의 앞에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 믿음으로 인해 강해지고 용맹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우월한 자 강한 자를 알게 되거나 만나면 의심부터 하게 됩니다. 정말 강한다, 정말 뛰어난지를 말이죠. 아니면 자신과 친해질 수 있는지, 혹은 자신에게 나쁜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의심은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짐 또한 과거에 그랬습니다. 선황이신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셨는지, 어머니나 형제.......... 심지어 하인들까지 모두 의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혼자였소. 남들이 짐에게 주는 관심과 시선이 모두 동정으로밖에 해석되지 않았기 때문이오. 아니면 짐이 차후 물려받을 황좌를 노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소.: 황제가 쓴웃음을 지었다. “선황께서 돌아가시고 죽음을 넘나들다 보니 그 의심은 더더욱 짙어졌소. 짐을 따르던 기사들에게 배신까지 당하자 더더욱, 정말이지 누구 하나 믿을 수 없었소. 죠셉 경조차 짐을 버리고 도망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할 정도였소.” “폐하........!” 순간 숙연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표정 없는 얼굴들! “바로 그때 블루 경이 내 앞에 나타났소. 그리고 함께 죽음의 사지를 넘나들었죠.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있음을.” “그 두 가지가 무었이었습니까?” “억지로라도 믿는가, 혹은 믿지 않는가?” “.......” “당신 짐은 실망에 쌓여 일어나는 회의감의 무게로 인해 걷기 힘들 지경이었소. 이대로 있다가는 꼼짝도 못하고 죽을 것만 같았지요. 그래서 짐은 믿는 쪽을 선택했소. 그래야 멈춰버린 내 두 다리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오.: “무엇을 말입니까?” “무엇이든 말이오. 처음에는 짐 또한 죠셉 경과 마찬가지로 블루 경이 의심스러웠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우리를 구해준 것도 하나같이 의문투성이였지요. 어째서 아무런 바람 없이 우리를 도와주는가 하고 말이죠. 아무리 어머니의 증표를 지니고 있다 한들 말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열자 블루 경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보였다고요?” “그러게 말이오. 그동안 짐은 블루 경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글쎄요.” 황제가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으며 블루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죠셉에게 다시 돌렸다. “확실한 것은 블루를 믿음으로 지켜보자. 그가 보는 것들이 짐에게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시선은 높이 있더군요. 짐이 보는 곳이 사람의 무릎 아래였다면 그의 시선은 창공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짐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잇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짐의 위치가 보이더군요. 저 끝에서 꿈틀거리며 스스로의 자만에 빠져 허우적거기리던 모습이 말입니다. 남들의 달콤한 말에 흘려 자신이 사람이라고 믿는 허수아비 같은 모습이.: “폐하....!” “뭐, 여하튼 그러한 것을 깨달음이라고 해야 할까요?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혼자만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된 것도? 후후. 하지만 그것도 짐을 황제로 만드는 밑바탕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었소. 사람들을 믿자 그들도 짐을 믿기 시작했으니 말이오. 물론 그들에게 나를 믿게 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소. 그래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믿어야만 했소.” “스스로를 믿는다?” 끄덕 “짐은 무인은 아니지만, 저들이 강해진 이유를 알 것 같소. 의심하지 않았던 거지. 자신의 한계에 대해 전혀. 블루라는 사람에게 감염되어 이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한계다라는 생각을 버리게 된 것이지. 그래서 자신을 더욱 몰아세울 수 있었던 것이고. ‘인간’인 그가 보여준 천지개벽할 능력. 자신들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로인해 자신들이 알고 있던 지식의 틀을 벗어나게 된 것이죠. 바로 블루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짐 또한 그런 그를 보고 힘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죠.“ “믿음.......” “하지만 믿음은 누군가를 통해 키우면 안 되더군요. 짐과 같은 경우엔 말입니다. 마음의 스승은 지니되, 그를 숭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 누구보다 자신을 믿어야 된다는 것이었지요. 스승이란 존재는 자기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뜻도 됩니다. 스스로를 의문시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믿지 못하는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어째서 자신을 이해시키려 하는 겁니까? 얼마나 죄를 저질렀고, 얼마나 자신을 믿지 못하면 스스로의 행동에 납득하려고 하는 것이죠? 강함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까? 저들이 어째서 강한지 물의셨죠? 저들은 이미 자신을 믿고 있기에 용맹할 수 있고, 강할 수 있는 겁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자신이란 존재의 가슴 안에는 정신적인 지주라 할 수 있는 블루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황제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어린 모습을 보이는 세바스찬 2세들이었다. 지금까지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블루를 믿었기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신적인 지주라는 것도 사실이었고, 자신의 능력에 믿음이 있음도 사실이었다. 그때 죠셉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말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블루 경에게도 정신적인 지주가 있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블루를 향했다. 하지만 블루는 그런 시선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창밖을 내다 볼 뿐이었다. 푸드드득! 비둘기 때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감상에 빠져 있는 듯했다. 전혀 이쪽의 이야기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왠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는 죠셉이었다. 그때 황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 자신을 믿는 겁니다.” “........!” “자신의 막강한 힘을 말이죠.” 죠셉은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블루를 볼 때마다 느껴지던 불안감의 정체를 말이다. 제5장 전쟁 발발 유슬라니안 제국과 타르나토스 신성제국. 이들은 동시에 이뤄진 색출작업을 통해 크로타니안 일당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헤르마틴의 도움이 컸다. 헤르마틴에서 보내온 자료가 아니었다면 완전히 색출해내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녀석들을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그 전략은 그들을 모두 알아내지 못할 때에 한 것이었다. 녀석들 정체가 모두 드러난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었다. 이용이고 뭐고 모조리 잡아다 족치면 그 이상의 효과까지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헤르마틴에서 보내준 증거는 그만큼 완벽했다. 이 일로 불거질지 모르는 모든 분란과 논란을 일시에 잠식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증거도 없이 심증으로 몇 놈 예상하고 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절반 이상은 눈치를 채고 이미 잠적한 상태였습니다.” 꿈틀 유슬라니안의 하트레스 황제의 이마에 작은 경련이 일어났다. “그렇게 비밀스럽게 행동했는데도 말인가?” “죄송합니다. 설마 기사들이 밀고를 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한 탓에............” “밀고를 한 놈들이 누구냐?” 하트레스 황제의 분기탱천한 목소리에 카르몽이 말문을 열었다. “그자들을 들여보내라!” 카르몽 후작의 싸늘한 어투. 하트레스 황제 앞이라 자중하는 것 같지만, 이미 전신에서 드러난 분노를 감추기 힘들었다. 쿵! “으으윽!” 털썩! 그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의회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십수명의 기사들이 끌려 들어왔다. “저들인가?” 하트레스 황제의 물음에 핏대가 올라 잇는 카르몽의 시선이 무릎을 꿇고 있는 기사들을 향했다. “그렇습니다.” “사, 살려주십쇼!” “저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퍼억! “커헉!” 슈리오의 발길질이 거침없이 녀석들의 명치에 내리꽂혔다. 인정사정 없는 발길질이었다. “개자식들!” 살기등등한 호통에 찔끔한 기사들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그것을 본 하트레스 황제의 인상이 크게 일그러졌다. 찔끔한 슈리오가 다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지금 짐은 그대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다.” 붙잡힌 기사들을 찬찬히 돌아보던 하트레스 황제가 물었다. “이들을 어떻게 잡았지?” “몇몇 기사들 증언으로 붙잡았습니다.” “그래?” 기사들한테 시선을 돌린 하트레스 황제가 몸을 앞으로 빼며 나직이 물었다. “너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가?” “주, 죽을죄를 지었.........” “아는군.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모두 끌고나가 목을 베라!” “예!” 하트레스 황제의 거침없는 발언에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가 녀석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 고개를 바닥에 쳐박고 있던 녀석들이 고개를 치켜들며 다급히 외쳤다. “폐, 폐하! 폐하!” “누가 네놈들 폐하란 말이냐? 너희는 짐의 여명을 어겼다. 비밀리에 처리해야 할 사건을 망친 것이다. 짐을 진정 섬기고 있었다면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을 테지. 그들이 누구이건간에 말이다!” 그 말에 더 이상 변명하지 못하고 버둥거리던 몸을 늘어뜨리고 말았다. 이제야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고 하지 않던가! 변명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들을 바라보던 황제가 불현듯 이를 갈았다. 으득! “여봐라! 어서 저놈들을 끌고나가 목을 쳐라!” “.........!” 의회실에 순간 적막감이 흘렀다. 죄인들을 끌고 나가면서 생기는 자잘한 소음 외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황제가 저렇듯 분노한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 어떤 일에도 언성을 높이지 않던 황제였다. 지금의 모습은 파격이라 할 수 있었다. 슈리오가 죄인을 끌고 나가자 황제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미투스 공작!” “예, 폐하.” “헤르마틴한테 생각지도 못한 큰 선물을 받은 셈이군. 그렇지?” “........!” “우리가 짐작하던 것과 달리 완벽한 자료라니! 후후, 타국에서 우리나라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잇다니1 정말이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군, 젠장!” “..........!”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하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웬일인지 표정은 원수를 목전에 둔 복수심에 불타는 전사에 가까웠다. “헤르마틴 황제에게 연락하시오. 그리고 타르나토스 교황 아티나 3세한테도 연락을 취해 면담할 시간을 정하시오. 그녀도 지금쯤이면 모든 사건을 마무리 지었을 테니 말이오.: “알겠습니다, 폐하.” 미투스 공작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자리를 벗어났다. “치욕이군, 타국에서, 그것도 헤르마틴 따위한테.......!” 황제의 나직한 중얼거림에 다들 다시 고개를 깊이 숙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하지만 마무리하던 중에 우리 측 첩자들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흐음.......” 크로타니안 왕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걱정이었다. 그러나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으로선 어쩔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 크로니안 왕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가능하다면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왕이라는 것이 이처럼 저주스럽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전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힘이 없는 저희로서는 그렇게라도 유슬라니안한테 복수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순간 크로타니안 왕은 싸늘한 눈빛으로 군사를 쏘아보았다. “.......!” 뜨끔한 군사가 시선을 애써 회피했다. 그런 군사를 바라보며 크로타니안 왕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하여 내 옆엔 유슬라니안의 아이린 공작이나 헤르마틴의 니콜라스 같은 신하가 없단 말인가!’ 하늘이 원망스럽고 선왕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이제 와 어찌할 것인가! 싫지만 그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 손에 죽은 사람이 한둘인가? 백성들조차 생체실험으로 사용한 그가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바로 지옥이었다. 이 모든 게 이미 정해진 수순이 아니던가! 알고서 행한 일이 아니었던가! 예측불허의 변수도, 불가항력적인 상황까지도 이미 각오하지 않았던가! 한참 고민 끝에 그는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그에게 모든 준비가 끝났다 전하라1” “크로타니안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소.” “드디어 마수를 드러낸 것인가?” 베르니스의 질문에 죠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짐작대로 그들이 움직임과 동시에 헤르마틴 북부산맥의 몬스터들이 더욱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그들이 몬스터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입니다.” “아직은 짐작인 뿐이지 않소?” “그렇습니다. 아직은 짐작일 뿐입니다. 아직은........ 하지만 곧 기정사실로 확인될 것입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으니까요.” 죠셉의 말에 브라든 남작이 입을 다물었다. “브라든 남작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저 역시 짐작일 뿐이길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들이 몬스터를 부릴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뿐 아니라 인접국 역시 마찬가지로 크로타니안 공격권 안에 있다는 것과 동일한 뜻이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분명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악몽과 같은 것이 될 겁니다.” 끄덕 “우선 과거 부패한 귀족들을 처단하며 많은 병력손실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로 인해 사실 지금 전쟁은 무리라 할 수 있지요. 일당백의 기사들이라 할지라도 소수로는 헤르마틴 제국 모두를 지킬 수 없으니 말이지요.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는 일당백 기사 백보다 일반 병사 천 명이 더 필요한 법이니까요. 사실 크로타니안이 노리는 것은 그 점일 것 같습니다. 전쟁을 위해서 대규모 병력이 필요합니다만 앞으로 밀고 나갈 수만은 없지요. 뒤를 지키는 병력도 필요하니까요. 이번 몬스터들과의 전투는 위험하다기보다 우리의 신경을 자극해 더 많은 병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묶는 용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군요.” “다행히 그린기사단 기사들이 헤르마틴 북부의 몬스터 토벌 겸 견제를 맡아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홍복이라 아니할 수 없지요.” “오오!” 브리핑실의 모든 귀족들은 구석에 껄렁한 자세로 앉아 있는 그린기사단을 주목했다. 그러자 그린기사단원들은 자마다 자세를 바로 하며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귀족이 건의했다. “그렇다면 유슬라니안 제국과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견제는 어찌해야 합니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쪽에서 전혀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보조만 하고 있던 텐시가 말문을 열었다. “이 전쟁은 우리 헤르마틴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연합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연합전?” 귀족들의 의구심이 담긴 얼굴에 텐시가 화사한 미소를 지의며 대답했다. “바로 헤르마틴과 유슬라니안 그리고 타르나 토스의 전무후무할 연합작전이죠.”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이동을 시작한 상태였다. 몬스터 공격을 견제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전력이 빠져나갈 수는 없지만, 그럭저럭 6만에 달했다. 그 중 사천오백은 세바스찬 2세가 끌고 온 병력이었다. 특히 사천이 어웨어급이고, 오백은 익스펕트급 기사들이었다. 이 정도면 능히 공국과 전면전을 편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왕국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사용하는 몬스터 군단과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병력을 생각하면 많다고 할 수 없었다. 물론 적다고 할 수도 없었는데, 이유는 타르나토스에서 12만, 유슬라니안에서 9만의 병력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견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각자 다른 루트로 공략하게 될 테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볼 수 있었다. 퍼버버버벅! “꾸에에에엑!” 상대가 인간이 아닐 뿐 전쟁이었다. 몬스터와의 전쟁! 몬스터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북 터지는 소리가 귓가에 이명으로 남을 정도로 거침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아토토토톳!” 푸다다다다! “꿔웨웨웨웩!” 몬스터가 보이는 족족 주먹과 발을 휘두르던 베르니스는 상큼한 표정으로 전장을 돌아보았다. 이곳저곳에서 동료를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병사들이 싸우는 곳과 달리 그들은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널브러진 몬스터들! 그때였다. “78!” 으득! 베르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그리고 눈에 불을 켜고 주위를 살피더니, 옆에서 다가오는 오크한테 이단옆차기를 날리고, 그 맞은편에 있던 녀석을 이마로 내려찍으며 외쳤다. “80!” 동시에 멀리서 들려오는 뮤엘의 외침! “뭐야? 어째서 78다음에 80이야!” “젠장! 두놈 동시에 잡았다! 어쩔 거야?” 둘의 고함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미 전쟁으로 보기 힘든 난투극이었다. 베르니스와 스콜 그리고 로이와 뮤엘의 자존심 대결 탓이었다. “꾸케케케!” “으힉!” 오크와 맞서 싸우던 병사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오크의 쇠방망이가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미풍이 스치는 것 같았다. 스걱! 푸촤촤촤촤! 방망이 대신 뜨끈한 무언가를 뒤집어쓴 병사는 놀라 눈을 떴다. 앞에 클레인이 검을 들고 서 있었다. “방심하지 마라! 주위를 살펴라!” “예예! 알겠습니다!” 병사는 바짝 군기가 든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하지만 클레인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베르니스와 스콜, 뮤엘과 로이를 찾고 있었다. 병사들이 이를 악물고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지만, 그들을 지취 해야 할 기사들이 자기들끼리 희희낙락하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밀집된 몬스터들 사이로 뛰어 들어가 뿔뿔이 흩어놓은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었지만, 이번 전투가 처음인 신병들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번 몬스터 토벌이 신병양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자신의 눈에 위기에 처한 병사가 들어왔다. 파밧! 클레인은 바람처럼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한마디 해야겠군.” 일방적인 전투였다. 몬스터 개체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정예군과의 전투는 사실상 전투 측에도 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피해가 아주 없을 수는 없었다. 간간히 등장하는 미노타우르스나 오거들 위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럴 때는 기사들이 병사들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희생은 불가피했다. “밀켄 요새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니콜라스의 질문에 텐시가 답했다. “오 일쯤이요.” “흠.” “이 상태로 가면 큰일이에요. 몬스터들의 종류와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습격에서 기습까지 전략과 전술이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가면 갈수록 이들의 움직임이 치밀해진다는 이야기죠. 죠셉 경의 말대로 크로타니안에서 몬스터들을 조종한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멀리 있는 녀석들은 대충 공격하는 수준이지만, 이곳에서는 누군가 지켜보면서 공격을 지휘하는 느낌이에요.“ 니콜라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역시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간 같지만 인간은 아니야. 대체 어떤 존재일까?’ “이곳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이동해야겠군. 모두가 지쳤어.”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그런데 주군께선 어디 가셨지?” “글쎄요.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던데요. 왜요?” “아니 걱정이 돼서.........” 순간 텐시가 피식 웃었다. “풋! 대장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 이미 인간이길 포기한 존재인걸요. 거의 괴물이라 할 수 있죠. 드래곤까지 때려잡는 인간인데......... 걱정 마세요. 뭔가 일이 있겠죠.” “하긴........” 니콜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럼 수고하게.” “걱정 말아요.” 텐시는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다음날에도 강행군이 이어졌다. 하지만 누구 하나 투덜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투덜거릴 정신조차 없었다. 그리고 탈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얼마 못 가 몬스터한테 잡혀 죽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곳이 더 안전했다 .결국 살기 위해서 계속 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다들 긴장한 얼굴로 앞을 주시하며 행군을 하는데, 순간 숲 속에서 고블린 한 마리가 튀어 나왔다. 파팟! “끼릭!” 흠칫! 기습을 당한 병사가 움찔했으나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검을 휘둘렀다. “이얏!” 스걱! “꺼에엑!” 고블린은 병사의 검에 상반신이 대각선으로 잘린 채 푸른 피를 토하며 무너졌다 병사도 온전치 못했다. “으윽!” “뭐야? 무슨 일이야?” 동료가 쓰러지자 한 병사가 달려들어 부축했다. 가슴에 작은 독침이 박혀 있었다. 재빨리 뽑아 바닥에 던지며 그가 외쳤다 “위생병!” 앞서가던 텐시가 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이지?” “몬스터한테 기습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주변정황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몬스터의 기습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아마도 심리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리라. 거기까지 생각한 텐시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빠른 행군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것이 가능해야 더 많은 전략을 세우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틈을 보이면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몬스터한테 유리한 싸움이라는 얘기였다. 적진으로 파고들수록 병사들 어깨는 점점 더 움츠러들 것이다. 어떤 식으로 또 기습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번엔 동료가 당했지만 다음 번 에는 자신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이 문제였다.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행군을 시작한다!” “이건가?” 블루는 텐시가 들고 온 독침을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인상을 썼다. 자신의 본신이 독으로 죽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짜증이 솟구친 것이다. “고블린들 의 독은 근육을 마비시키는 계열의 신격독이니, 목숨과는 크게 상관이 없어요.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이 일로 파생될 일이죠.” “파생될 일?” “병사들이 가지게 될 두려움. 차라리 치고받는 전투라면 모르지만, 이렇듯 저격을 당한다면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 없을 거예요.” “그렇군.” “최대한 빨리 밀켄 요새로 가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좀 전의 사건으로 많이 지체되고 말았어요. 흐름을 끓기 위해 일부러 앞의 병사를 노렸다는 말이죠. 전쟁에서 활용되는 전략중 하나죠. 그렇지 않아도 몬스터들과의 혈전으로 많이 위축된 상황인데........” “너무 확대해석하는 거 아닙니까? 몬스터들이 뭘 안다고......?” 클레인의 질문에 텐시의 눈초리가 가늘게 바뀌었다. “더 이상 몬스터로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럼?” “한 명의 병사로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몬스터를 병사로?” “더 무서운 것은......?” “무서운 것은?” “몬스터들이 몸을 사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인간이나 동물이나 최면에 걸려도 자신의 목숨에 해가 될 것 같은 명령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보토이죠. 지능이 높을수록 생존본능이 강하거든요. 그런데 동물보다 지능이 있는 몬스터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덤벼들고 있어요. 본능보다 강한 뭔가가 있는 것이 분명해요.” “더욱 강한 것?” “그게 뭐지?” 텐시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어요.: “뭐, 그것은 그렇다 치고........ 대장은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겁니까?” 스콜의 질문에 블루가 피식 웃었다. “그냥 좀 생각할 게 있어서.” “무슨 생각인데 그렇게 시도 때도 없습니까?” 니콜라스가 말했다. “혹시......” “혹시?” 모두의 시선이 니콜라스한테 쏠렸다. “신경 쓰이는 일이 있더군요. 몬스터들이 공격할 때 그 뒤에 있는 어떤 존재가 느껴졌소.” “.......!” 사람들은 무슨 쌩뚱맞은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텐시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떤 존재라는 말에 놀란 듯 니콜라스를 바라보았다. 그 존재 여부가 이 싸움의 승패와 명암을 가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어떤 존재라고요?” 스콜의 물음에 블루가 한마디 했다. “사람과 비슷한테 사람은 아니더군.” 니콜라스를 포함함 사람들은 블루한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존재를 봤습니까?” 끄덕 “주변을 멤돌며 계속 얼씬거리는 녀석이 신경 쓰이지 뭐야. 우리가 가는 길목마다 모습을 드러냈거든.”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다. 니콜라스도 이틀 전 접전을 치르는 와중에야 겨우 그 존재를 어렴풋이 느꼈다. 그것도 착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희미한 존재감이었다. 그런데 블루는 이미 그 존재를 목격하기까지 한 것이다. 니콜라스는 그것에 대해 물으려고 할 때, 블루가 주변에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는 그때 몬스터들 뒤에서 그들을 감시하는 듯한 그 존재를 쫒아갔던 것이다. “잡았습니까?” “아니.” 니콜라스의 눈빛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비단 그뿐 아니라 블루를 아는 사람들은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블루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놓쳤다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못 잡은 게 아니라........ 사정이 있어 그냥 놔줬지.” ‘그럼 그렇지’ ‘휴...... 깜짝이야.’ 다들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블루가 놓칠 정도로 뛰어난 존재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블루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텐시가 물었다. “뭐죠?” “엘프 족장이 우리한테 부탁했던 그 물건 기억하지?” “엘프 족장이 아니라 장로겠죠.” “하여튼.” “물로닝죠.” 텐시는 주변사람들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이들이 바이너리 트위스터의 존재를 알아봤자 좋을 일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블루는 거침없이 물었다. “그리고 실종된 사람도 찾아달라고 했지?” 끄덕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텐시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서, 설마!”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자네가 생각하는 설마는 아닌것 같아.” 블루의 대답에 텐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그것을 물었죠?” “그게 말이지........” “잠깐만요!: 텐시가 중간에 잘랐다. 더 이상 사람들이 들어선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블루가 입을 다물자 텐시는 지휘관들을 향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오늘회의는 이것으로 마치죠. 그만들 물러가 쉬세요.” 하지만 아무도 나가려 하지 않았다. 블루의 말을 더 듣고 싶다는 얼굴들로 귀를 쫑긋 세울 뿐이었다. 하지만 텐시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제 말 못 들으셨어요? 다시 말씀드려요?” 그제야 느릿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니콜라스 총사령관님은 남으세요.” “그러지.” 그러자 베르니스가 나섰다. “우리는?” “너희도 나가. 잠시 후에 이야기해줄게.” “쳇!” 베르니스가 투덜거리며 어슬렁거리자, 텐시가 발끈해 소리쳤다. “쳇이라니? 어서 못나가?” “알았다요, 나가겠다요.” 베르니스가 오리주둥이처럼 입술을 내민 채 터덜터덜 걸어 나가자 텐시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친구라고 하나 있는 것이.......... 대체 언제 철이 들려고 저러는지.” 골이 지끈거리는지 텐시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베르니스한테 눈총을 날린 그녀가 말했다. “이제 말씀해보세요.” 블루는 짧게 한마디 했다. “움직임이야.” “움직임?” 끄덕 “사실 잡으려다 멈춰선 이유가 이었지. 그 움직임이 마음에 걸리더라고.” “어떤 부분이 말이죠?” “그날 기억나지? 엘프의 숲인지 뭔지에 들어갔던 날.” “물론이죠.” 어떻게 그 일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블루나 니콜라스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죽다 살아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니콜라스도 모르겠다는 듯 텐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러자 블루가 나직하게 덧붙였다. “그때 본 그 엘프들 움직임이었어.” “예?” 텐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면 니콜라스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모든게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불가사의한 그 이질감의 정체가 말이다. 확실치 않던 그 존재감......... 그것이 엘프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숲이다. 모든 아귀가 잘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말이지.” 블루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검은 피부를 가진 엘프도 잇던가? 난 엘프의 숲이란 곳에서 흰 녀석들밖에 못 본 것 같은데.” 순간 머릿속에 빛살처럼 떠오르는 한 단어. 니콜라스와 텐시의 표정은 싸늘히 굳어버렸다. 블루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상도 못한 최악의 상황이었다. 제6장 밀켄 요세를 공략하라! 크로타니안 산맥은 헤르마틴과 달리 이미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상태였다. 그다지 높지 않음에도 해가 비치지 않는 곳마다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하얀 눈은 병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세바스찬 2세가 지휘를 하는 루이스 영지의 군병들 눈빛은 투기로 가득 차 있었다. 세바스찬 2세는 멀리서 요새를 관찰하는 블루와 추세흔을 슬쩍 돌아보고 집결해 있는 군사들을 시찰했다. 사람도 말도 사기 충전한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길이 쉽진 않았지만, 루이스 영지 기사와 병사들은 굳건한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에 있는 병사들은 기진맥진한 표정들이었다. 기사들이 계속 다독이고 있었으나, 그 효과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물론 이해는 간다. 이곳까지 오는 길이 평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이처럼 쉴 때 몸의 피로를 풀도록 해라. 하지만 긴장까지 풀어선 안 된다!” “옛썰!” 니콜라스는 임시막사 처마 밑에서 손을 이마에 얹은 채 적군의 성을 바라보았다. 숲으로 울창하게 둘러싸인 그곳은 대규모 전투를 벌이긴 힘든 구조처럼 보였다. 대로를 만들지 않고 울창한 삼림을 그대로 둔 것도 그것을 염두에 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수백 킬로를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보급로를 확충하기 위해선 공략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말 그대로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것. 좁은 길과 높은 성벽은 조금도 틈을 허락하지 않는 요조숙녀처럼 굳건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다. 거기다 공성전 무기를 쓸 수조차 없다. 위에선 시야가 잡히지만 밑에서는 시야확보가 힘든 구조였기 때문이다. “밀켄 요새가 대단하다는 소린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텐시가 허탈함에 피식 웃으며 니콜라스한테 말을 건넸다. 이곳에서 지체할 시간이 없는 그들로서는 난감한 노릇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블루를 선봉으로 하고 자신들이 후방을 맡아 그대로 밀어붙여 붕괴시키고 싶지만, 후방의 몬스터들 역습으로 인해 그마저 여의치가 않았다. 그들이 자리를 비우는 순간 뒤쪽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몬스터들이 습격해올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젠장! 팔백 명도 안 되는 작은 요새가 이렇게 골치 아플 줄이야!” 텐시의 분기탱천한 외침에 주변에 있던 지휘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미 우습게보고 덤볐다가 큰코다치지 않았던가! 반격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말이 조금도 아깝지가 않군.” 잠자코 따라오던 추세흔까지 혀를 내둘렀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텐시의 물음에 추세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나 완벽하오, 도통 틈을 찾을 수가 없어. 길이라곤 요새로 통하는 입구뿐인 것 같소. 돌격한다면 승산은 있겠지만, 우리 측 피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오. 뒤쪽에서 몬스터 부대가 샌드위치처럼 합공해올 테니 말이오.” 그것이 문제였다. 피해를 최소화할 방도를 찾아내야만 했다. 피해를 감수하고 공략하는 것이 지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계속 시간을 질질 끌 수도 없고........” 도무지 뽀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추세흔이 말했다. “야습을 하면 어떨까?” “야습이라고요?” “그렇고, 밤에 몰래 잠입해 목을 따는 거지.” “목을 딴다고요?” “녀석들도 잠은 자지 않겠소.?” “하지만 망을 서겠지요.” “하지만 본좌나 검황이라면 들키지 않고 들어갈 능력이 충분하오. 물론 먹을 따도 들키지 않을 테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추세흔과 블루를 번갈아보았다. 추세흔의 말속에 걸리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검황이라고?’ 다들 흠칫 놀라는 중에 몇몇 지휘관과 귀족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황(皇)이란 단어를 아무한테나 쓸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황은 황제한테만 허용되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황제가 인정하는 사람이라 해도, 제멋대로 황이란 단어를 쓸 수는 없었다. 반역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물로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바로 세바스찬 2세와 니콜라스들이었다. 블루가 아니며 누가 그 칭호를 지닐 수 있겠는가? 검황! 얼마나 잘 어울리는 단어인가! 이 자리에 헤르마틴 황제가 있었다면 그 역시 블루를 검황으로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당장 중요한 것은 밀켄 요새를 어떻게 하면 뚫고 나갈 수 있느냐였다. 주변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추세흔은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다시 모두의 시선이 추세흔에게 모아졌다. “본좌나 검황이 그런 전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요. 왕국을 점령하는 것도 아니고 작은 성 하나 먹으려고 그런 것 까지 할 수는 없지. 자존심 문제니까. 게다가 저 성 주위에서 알 수 없는 기척들이 느껴지고 있소.” 끄덕 추세흔의 말에 동조하듯 블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 수 있는 기척이라니요?” “상당히 기분 나쁜 기척이 느껴지오.” 블루가 말을 보탰다. “다크 엘픈가 뭔가 하는 것들이 주위에 잔뜩 포진해 있더군. 거기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생물들까지 잔뜩 있고, 기분 나쁜 기척은 그 생물들한테서 뿜어지고 있는 것 같더군.” 순간, 모두의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설마 다크 엘프가 대놓고 크로타니안 진지의 모습을 드러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장차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었다. 무엇보다 다크 엘프가 크로타니안을 돕는다면? 그것은 엄청난 변수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친구가 야습을 입에 담은 것은 저들이 우리를 야습해올지 모르기 때문이야.” “야습이라고요? 그자들이 우리를?” “그래!”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수성을 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야습이라니! 굳건한 수성으로 적의 진군을 막는 것이 목적인 요새에서 밤중에 기습을 해온다고? 얼토당토않았다. ‘성주가 바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거나.’ 그런데 낯선 생물이라니? 뒤늦게 텐시는 블루가 말한 ‘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생물’ 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특히 몬스터란 단어를 모르지도 않으면서 굳이 블루가 생물이라고 밝힌 이유에 주목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생물이란 게 뭐죠?” “나도 몰라. 여기저기서 살기를 뿌리는데, 몸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흐름이 인간의 그것과 흡사한데 겉모양은 괴수처럼 느껴지더군.: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분명히 뭔가 있고, 그것이 뿜어내는 기운이 블루와 추세흔의 기분을 나쁘게 하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대체 그게 뭐지?’ 민켄 요세 사령관 아드래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자신들을 돕고 있는 다크 엘프 미젤라의 훈수 때문이다. “아드래, 녀석들 방어와 경비가 아주 삼엄하다. 저번 몬스터 기습이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 같다. 이대로 야습을 강행한다면 발각될 공산이 크다.” “그럼 어쩌자는 거냐?” “야습을 취소하자.” “그리고?” “그분 말씀대로 끝까지 방비하는 거지.” 으득! 그분이라는 말에 아드래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자꾸 그분 그분 하면서 말을 자르고 무시하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자신의 주군은 그분이 아니라 크로타니안 황제였다! 자신을 인정해주고 흔쾌히 이곳 성주자리까지 내준 것은 황제였지, 그 녀석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도 황제가 아닌 그 녀석을 입버릇처럼 들먹이며 계속 딴죽을 걸고 있지 않은가! “시끄럽다! 난 내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다!” 미젤라의 말이 옳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분노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다. 그는 오기가 발동했다. “후회할 것이다, 인가!” “흥!” 아드래는 콧방귀를 날리며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미젤라는 그런 그를 감정이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찌르르 찌르르 이름 모를 벌레소리가 적막감을 더하는 깊은 밤. 파팟! 우둑! 보초를 서던 병사들이 목이 꺾인 채 혀를 길게 빼물고 바닥에 쓰러졌다. 표정을 보니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사정은 반대편에서 보초를 서던 동료병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슷! 목을 비틀어 그들의 숨통을 끓은 검은 그림자가 허공을 향해 손짓을 하는 순간, 수풀이 흔들리더니 육중한 무언가가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둘이 아니라 많았다. 족히 삼백 가까지 될 것 같았다. 그런데도 미세한 소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검은 그림자의 손짓에 그들은 절반으로 갈리며 일사불란하게 헤르마틴군 막사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곯아떨어진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크흐흐흐흐!” 정체불명의 존재는 괴기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순간 그의 팔에서 뭔가 날카로운 것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검 같았다. 불규칙한 모양이었지만 분명 날카로운 검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존재는 말없이 단잠에 빠진 병사를 내려다보다 갑자기 검을 들어 심장을 꿰뚫었다. 푸욱! 뭔가 이상했다. 흠칫! 그는 당혹스런 얼굴로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병사들이 숨을 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빨리 침낭을 벗겼다. 사람이 누워 있어야 할 자리에 갑옷만이 덩그마니 놓여 있지 않는가. 그때였다. “꾸위이이익!” 이곳저곳에서 괴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막사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역시 키메라였구나!” “키키키킥!” 슈와악! 스걱1 “으힉!”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키메라 손등에 삐죽이 솟아 있던 검이 휘둘러지며 길게 늘어난 탓이다. 가까스로 피했지만, 완전히 피해내진 못한 듯 찢긴 옷자락을 팔랑거리며 바닥에 사뿐 내려서는 사내. 꿀꺽 긴장한 얼굴로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던 사내가 이를 드러내며 검을 뽑았다. 순간 검에서 뿜어지는 검광에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스콜이었다. “대장이 사람 기운을 풍기는 괴물이라 했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키메라라니! 이거 아주 상큼하군!” 밖이 소란스러웠다. “우리도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네 동료들은 다 죽어 나자빠지고 있는데, 너만 살아 있으면 미안하잖아 같이 사이좋게 손잡고 저승으로 가야지. 나중에 혼자가면 심심할 거 아냐.” “크륵, 개소리!” “어라? 사람 말도 할 줄 아네.” “쿠케케켁, 죽여주마.” “쿠헬헬헬, 죽어 주마겠지.” 말을 마친 스콜의 신형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졌다. 동시에 키메라 옆에 작지 않은 섬광이 반짝였다. 창! 키메라의 검과 스콜의 검이 맞부딪히며 발생한 빛이었다. “오호 제법인데?” 스콜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키메라가 그를 향해 거칠게 발길질을 했다. 슈캉! 발바닥에서 날카로운 검이 튀어나왔다. 예상한 듯 키메라의 검면을 가볍게 발로 걷어내며 스콜이 이죽거렸다. “느려!” 스콜의 신형이 어둠속으로 스며듬과 동시에 다시 작은 섬광이 있었다. 번쩍! 스각! “커, 커..........!” 퓨슈슈슈 “커허허억!” 쿠당탕탕! 키메라가 목이 절반쯤 잘린 채 몸부림치다 바닥에 나자빠졌다. “재밌었다. 킥!” 스콜은 유쾌한 표정으로 막사를 벗어났다. 밖은 난리도 아니었다. 만만치 않은 키메라들이었으나, 헤르마틴군의 계략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예견한 텐시가 익스퍼트급 기사들만 기용해 기습작전을 펼친 탓에 장내는 비교적 빠르게 정리되어갔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불리한 상황에서도 키메라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놈들이었나?” 구석에 모여 반격을 도모하는 키메라들을 바라보며 블루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느끼던 낯선 기운의 주인공은 바로 이들이었다. 블루에게서 저들은 인간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강하다는 것!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강하다고 할 수조차 없지만, 그간 깨달은 심득을 시험해보기에는 제격이었다. 그래서 모두 물리고 혼자 격파하기로 마음먹었다. 불현듯 블루의 손이 허공을 가리켰다. 번쩍! 주변에서 자색 오러가 뿜어지며 거대한 빛 무리를 발현했다. 동시에 주변이 환해지며 사람들 시선이 그에게 모아졌다. 슈슈슈슈슈! 빛! 그것은 실은 작은 알갱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저렇듯 아름다운 빛 무리라니!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 안으로 뛰어들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꾹 참았다. 저 화려한 빛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키메라는 아니었다. 두려움을 느끼며 사람들이 주춤주춤 물러난 것과 달리 키메라들은 촛불에 덤벼드는 불나방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그것을 본 블루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손바닥이 주먹으로 변하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빛이 빠르게 뭉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파밧! 파바밧! 그것은 곧 작은 구슬 크기로 변했다. 대충 만여 개가 넘는 것 같았다. “..........!” 갑자기 키메라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이제야 위험을 느낀 것 같았다. 스슷 블루의 손가락이 허공을 스치는 순간, 구슬들이 거대한 속도로 회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미풍이 돌풍으로, 돌풍이 다시 회오리바람으로 변해 위로 솟구쳤다. “무, 물러서라!” 니콜라스의 외침에 병사들이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추세흔은 그 자리에 남아 블루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는데, 차분하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서, 설마.........!”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폭풍의 중심에서 있던 블루의 움직임이 흐릿하게 보였다. 휘오오오오오! 빛의 폭풍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설마!” 추세흔의 눈이 경악으로 치켜떠졌다. 키메라들이 뒷걸음질치기 시작했으니 이미 늦어 있었다. 쿠오오오오! “으아아아아악!” “쿠케케케켁!” 몇 마리가 간신히 폭풍의 방위를 벗어났을 뿐, 대부분 폭풍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빨려 들어갔다. “꾸에에에에엑!” “사, 살려줘어어어!” 일순 하늘로 치솟는 폭풍이 붉은빛을 띠었다. 파사삿! 폭풍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때 키메라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분쇄되어 미세먼지처럼 허공에 흩뿌려진 것이다. 모두가 그 사실을 깨달을 때쯤 폭풍이 서서히 걷히며 블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주변엔 아직도 아름다운 빛으로 반짝이는 만여 개의 구슬이 맴돌고 있었다. 블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저, 정말인 것인가!” 추세흔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직접 목도하지 않았는가, 무형강기가 뭉쳐져 형태를 지니고 그 힘으로 자연의 검을 만들어내는 장명을 말이다. 형상은 회오리바람을 표방하였으나 추세흔은 그것이 검날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랬다. 그것은 자연의 검이었다. 무형의 검을 넘어 구체적인 형상을 띤 자연지기! 그것은 자연검이었고, 이론으로만 회자되던 생사경의 무공이었다. 게다가 아직 끝난 게 아닌 것 같았다. 구슬들이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타다다닷! 금세 거대한 구로 변했는데, 그 크기가 거의 작은 집체만 했다. 블루가 밀켄 요새를 향해 손짓을 하자, 거대한 구가 날아가 밀켄 요새의 성벽을 무너뜨렸다. 콰과과과광!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밤하늘을 환하게 밝혔다. 우르르르릉! 지면이 흔드리고 엄청난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처절한 비명성! “으아아아악!” 후회와 공포와 경악이 뒤범벅되어 있는 단말마의 외침이었다. 사람들은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직접 보고 느끼기까지 했지만 믿을 수 없었다. 거대한 구와 성벽이 부딪힐 때 전신에 느껴지던 엄청난 진동. 아직도 찌릿찌릿했다. 어찍 저것을 인간의 힘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마법이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마법이 아니었다. 폭풍을 일으키는 것이나 성을 날리는 마법은 드래곤한테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세바스찬 2세나 클레인의 표정은 놀라움과 환희로 가득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블루의 강함이 그들마져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사로잡힌 것이다. 니콜라스의 외침이 들려왔다. “진군, 진군하라!” 텐시는 그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뻣뻣하게 굳은 몸을 힘겹게 움직이며 목청껏 외쳤다. “진군하라!” “우와아아!” 무기를 앞세우고 달려 나가는 병사들. 그들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조금 전 자신들을 수호하던 존재의 신위를 직접 목격한 탓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블루는 혼사서도 얼마든지 성을 공략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추세흔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나서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동료들과 병사들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한 탓이다. 전투에 나서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다크 엘프 때문이었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분노가 치민 것이다. 처음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자신이 분노한 이유를 유추해낼 수 있었다. 바로 다크 엘프의 숲! 그곳에서 굶어 죽을 뻔한 과거가 무의식중에 떠오른 탓이었다. 그리고 다크 엘프가 강하다는 것도 크게 한몫했다. 이대로 공격을 강행했다간 대다수 병사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쟁에서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곤 하지만, 황제가 직접 부탁한 만큼 이번 전쟁에서는 피해를 줄여야 했다. 아니, 인간 대 인간의 전쟁이라면 방관했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인간들의 전쟁이 아니었다. 마족이란 존재가 전면에 등장하면서부터 인간의 전쟁은 사라진 것이다. 거기다 하나 덧붙이자면, 이번 깨달음으로 자신의 존재이유를 깨닫게 된 탓도 컸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찾게 된 것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다. 블루는 자신이 무너뜨린 밀켄 요새를 바라보았다. 그때 추세흔이 다가왔다. “이것이........?” 끄덕 블루는 추세흔이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연검이오.” “자연검........!” 추세흔은 블루를 다시 보았다. 무림에서 들었던 그 소문이 자실이었던 것이다. 그랬다. 그는 정녕 생사경의 고수였다. 그는 자신이 익히고 있는 구음 진경으로는 블루한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생사경이란 어떤 경지요?” 추세흔의 뻔뻔한 질문에 블루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추세흔의 시선과 블루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서 얽혔다. 블루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말을 아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다. 모든 게 인연이었다. 자신을 만난 것도 인연이고, 만나지 못한 것 또한 인연이다. 그가 자신의 말을 듣고 깨닫는 것도 인연이요, 그렇지 못한 것 또한 인연이었다. 그가 말해준다고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인연이 닿아야만 깨달을 수 있었다. 게다가 배움을 요구하는 자한테 블루는 인색한 편이 아니었다. 적이라 할 수 아이린 공작한테조차 심득을 전하지 않았던가. 그는 혼자만 지니고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속 좁음을 그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그것을 숨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가 가르친 자가 자기 위치에 오르는 사이, 그 역시 발전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베푸는 것이다. 그것이 검황 담소광, 아니 블루의 자신감이었다. 게다가 가문이나 문파의 비전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추세흔이 원하는 것은 검술이 아니라 깨달음이다. “자연을 느낄 수 있겠소?” 끄덕 물론이었다. 자연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검기를 쓰고 검강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검기나 검강 역시 검이라는 이름의 자연을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힘을 끌어내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초적인 내공심법조차 자연의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자연을 느끼지 못한다면 무엇이 아닌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해 삼류로 남거나 일류가 되지 못한 무인들이 부지기수였지만. “그 말을 꺼낸 저의를 모르겠소.” “후후, 그럼 내공과 무공이 뭔지 아시오?” 수간, 추세흔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분노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분노할 이유가 없었다. 블루가 실언으로 남을 농락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르겠소.” 추세흔은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무공과 내공으로 자신은 고수가 되었고, 화경을 넘겨 현경의 고수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간 자신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배웠는지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블루는 미소를 거둔 채 멀리 전투가 벌어지는 밀켄 요새를 따라 보았다. 그리고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자연경이란 그러한 것이오, 알 수 없는 것이지. 어떤 득도한 선사가 그러더이다. 득도가 지나쳐 스스로 자연이 되겠다며 땅속으로 들어갔지만 말이오. 지금쯤이면 진짜 자연이 되어있겠군, 후후후.” 블루는 잠시 장삼봉을 떠올렸다. “그가 뭐라고 했소?” “자신을 버리니 세상이 내 것이라 햇소.” “자신을 버리라고?” “자신을 버리자 삼라만상이 자신의 일부가 되고 세상이 자신이 되니 무엇을 바라느냐고 하더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곧 나이고 내가 곧 물이며, 구름이며 나무며 풀이며 바위가 제각각의 모습과 몸짓으로 서로를 소리쳐 부르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그 이유는 그 모든 것이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이 되니 그 모든 게 나인데, 어지 더 바랄 것이 있겠느냐? 늘 배부른 소리만 하던 친구였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옆에서 추세흔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리고 불쑥 물었다. “정말 자신을 버리는 것이 자연이라 할 수 있겠소?” 잠시 사이를 두고 블루가 말했다. “모두가 그렇게 착각을 하더이다. 사실 그 친구가 보여준 무위는 경천동지할 만한 것이긴 했지. 스스로 자연이 되니 감정에 의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며 눈이 내리고 더웠다 추웠다 했으니 말이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소.” “어떻게 말이오?” “스스로를 포기하여 자연이 되면 그것이 살아 있음인가 죽어있음인가?” “어렵구려.” “후후. 어차피 사람이란 태어나서 죽으면 용쓰지 않아도 자연이 된다오.” “아!” 순간 추세흔의 입에서 외마디 탄성이 흘러나왔다. 뭔가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난 다르게 생각했지. 스스로가 포기하고 자연이 되느니보다, 자연이 되어서 그 속의 나를 찾는 것이 진정한 생사경이 아닌가 하고 말이오.” “..........!” “어차피 내공이라는 것은 인간의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원래 자연히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우리는 억지스럽게 자연의 것을 끌어들여 1갑자니 2갑자니 떠들어 대지. 어찌보면 우리가 무공을 익히는 것 자체가 자연을 역행한 것일 수도 있소. 어차피 부엌에서 일하는 아낙조차 같은 일을 십여년 하면 무공을 공부하는 무인처럼 내력이 생기기 마련이오. 좀 더 일을 수월하게 하는 것을 익숙해졌다고 말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익숙해진다는 말이 무공에서 밝히는 무리와 다를 바가 무엇이오? 무리 역시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두르며 익숙한 검의 길을 찾지 않소?“ 추세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가 현경에 올라선 계기도 바로 그 평범함에 있지 않았던가! “여하튼 내력이 몸에 쌓이는 것은 그렇다 할 수 있소. 그렇지만 인간의 몸은 한정되어 있소. 소우주도 우주는 우주지만, 얼마나 작으면 소우주라 불리겠소? 안 그러오?” “그렇구려. 어째서 그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소.” “여하튼 우리의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기운이란 것은 한계가 있소.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우리는 화경이라고 하오. 하지만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했소.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그 그릇을 키우기 위해 환골탈태를 하게 되는 것이고. 하지만 그릇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릇은 그릇일 뿐. 한번 찬 그릇이 다시 못 찰 이유는 없을 것이오. 그래서 그릇을 버리고 스스로의 몸을 그릇으로 만들어버리지. 그것이 현경이라 할 수 있소.“ 추세흔이 고개를 끄덕이자 블루가 물었다. “그럼 생사경은 무엇이겠소?” “몸이란 그릇을 버리고 세상의 기운을 자기 것처럼 쓰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소.” 그 말에 블루가 미소 지었다. “하하, 이 세상에 자신의 것이란 없소. 알고 보면 이 육신이란 껍데기조차 내 것이 아니니.” “.........!” “뭐 지금에 와서야 깨달을 수 있었소. 그 친구가 스스로를 포기했다는 말의 뜻을 말이오. 그것은 자실을 버렸다는 것이 아니었소.” “그럼?” “스스로를 찾았다는 말이더이다. 나 혼자만의 편협한 생각으로 내가 최고라 생각하며 남의 말을 부정하여 만들어낸 오해였을 뿐. 그 친구는 내게 이미 진실을 말했던 것이오.” 산에 있음에 내가 있고, 물에 있음에 내가 있네. 내가 있음에 산이 있고, 내가 있음에 물이 있네.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곧 나이니 자연과 나는 하나로세. 너는 곧 나이니, 네가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너 또한 없으니, 너는 나이고 나는 너이로구나. 내가 곧 산이고 물이니, 너 또한 산이고 물이로구나. “자신을 버렸다는 말은 자신을 찾았다는 말이었소. 그것을 나는 순수하게 자신을 버렸다고 믿어버린 것이지.” “역시 어렵구려.” “그게 인생이오. 그냥 밥만 먹고 사는 것도 어려운데, 쉬운 게 어디 있겠소? 생사경이란 그런 것이더이다. 자신을 찾는 공부.” “자신을 찾는 공부.......” “그렇소. 자신을 찾으면 내가 한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오.” “........!” 대답이 없다. 이미 대답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블루는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의 깨달음에 방해가 될 것이 주변에서 계속 얼쩡거리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제7장 바이너리 트위스터의 비밀 밀켄 요새의 성주 아드레는 블루의 마신과도 같은 신위에 놀라 뒤로 자빠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어찌 인간이 저런 힘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무너진 성벽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아드레에게 어느새 곁에 다가온 미젤라가 말을 건넸다. “인간!” “으득, 나를 농락하려고 다시 돌아온 것인가?” 미젤라가 다크 엘프 특유의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는가?” “그럼 무슨 일이지?” -모두 사로잡아라! 저항하는 놈은 죽여도 좋다! -사, 살려줘! -으악!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함성과 비명소리는 계속되었다. 아드레는 자꾸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켈튼 요새가 무너지다니! 주군의 명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다니! 능히 녀석들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대마법사가 버티고 있을 줄이야!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수 없다! 왕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내가 살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훗, 인간들이란 정말 쓸데없는 데다 목숨 바치는 것을 좋아하는군.” 아드래의 눈썹이 무섭게 꿈틀거렸다. “쓸데없는 것?” “아무튼 죽고 싶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아드래한테 그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무엇이 쓸데없다는 거지?”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미젤라는 발끈한 아드래를 바라보며 같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나도 인간한테 물든 것인가. 이런 쓸데없는 대화에 대꾸나 해주고, 큭큭! 그래, 좋다! 뭐가 쓸데없는 짓인지 말해주지. 네 녀석 따위가 죽는다고 왕이 알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그것은.......” “왕이 알아준다고 해도 네가 정녕 왕을 위한다면 살아남아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물론 네 녀석 따위가 살아남아 봤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마는........” 그제야 아드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동시에 인상이 구겨졌다. 자신이 다크 엘프 따위의 말에 수긍한 것이 화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드래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하나만 묻자!” “뭐지?” 싸늘한 그녀의 목소리 뒤로 들리는 비명소리! 그러나 조금씩 수그러드는 느낌이다. 자신 아니, 왕의 병사들이 죽거나 사로잡히고 있다는 증거였다. 으득! “성벽을 무너뜨린 마법사가 누구지? 그에게 복수하려면 이름이라도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흐음.” 흠칫한 미젤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드래는 그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저 정도 파괴력을 지닌 마법사라면 상당히 유명한 사람일 게 뻔했다. 그런데도 즉각 대답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뭐란 말인가! 여간 답답하지가 않았다. 그가 뭐라 말하려는 찰나, 미젤라가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마법사가 아니다!” “뭐라?” 아드래의 눈 꼬리가 날카롭게 치켜 올라갔다. 지금 그것을 말이라고 하느냐고 따지는 듯한 표정이었다. “성벽이 날아갔는데, 무슨 근거로 마법이 아니라는 거지?” “그서에 대해선 해줄 말이 없다.” “왜지?”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마법사가 아니라면 어떻게 한 방에 성벽을 무너뜨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럼 누가.......?” “젊은 남자다.” 너무나 단편적인 정보다. 하지만 저렇듯 단호히 말을 자르는 것을 보니, 이름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는 것처럼 말했다. “분명 블루라는 인간일 것이다.” “블루?”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은 눈빛으로 대신했다. “그분이 요주의 인물로 일러주신 인상착의와 비슷하다. 분명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하셨다.” “제길, 또 그분! 그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미젤라는 등을 돌리고 액자를 슬쩍 비틀었다. 동시에 열리는 어두운 통로. 아드래는 짜증스럽게 그를 뒤따랐다. 거의 무혈입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완벽한 요새의 하나로 평가를 받고 있는 밀켄 요새를 이처럼 손쉽게 함락할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그 공은 블루한테 있었다. 니콜라스는 뒤늦게 블루를 찾아 나섰지만 그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뒤에 있으리라 확신했다. 몬스터들이 잠잠했기 때문이다. 조용한 것을 보면 전투가 일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그가 그곳에 있음으로 인해 몬스터들이 공격 기회를 잡지 못한 것 같았다. 블루의 깊은 배려에 감동한 니콜라스는 서둘러 주변을 정리했다. “적의 시체를 불태우고 포로는 감옥에 가둬라!” “예!”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식사를 준비해라!” “예!” “내일 이곳에 남길 병사들을 선발하고 행군할 준비도 차질 없이 진행하라!”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기사는 경례를 하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홀로 남은 니콜라스는 성주가 앉았을 의자에 앉았다. 이해를 따지고 득실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으로 펜을 들었으나 자꾸 딴생각이 났다. 조금 전에 확인한 블루의 신위! 아직도 그것이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정녕 그는 인간인 것일까? 여전히 의심스러웠다. “후...........!” 짧은 한숨과 함께 그는 서류를 작성해나갔다. 지금 정리해두지 않으면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추세흔은 슬며시 눈을 떴다. 어두운 밤이었다. 하늘에 별이 총총했지만, 사위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깜깜했다. 물론 그 정도면 충분했다. 별빛만으로도 주위를 살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주위에 많은 몬스터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뿐, 저항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주 깨끗했다. 싸늘히 식은 몬스터들 표정을 보니, 어떻게 죽는지조차 모르고 생을 마감한 것처럼 평온하다. 금세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블루가 자신의 깨달음의 순간을 지켜주기 위해 힘을 썼음이 분명했다. 그때 블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축하하네.” 블루의 인사에 시선을 돌린 추세흔은 갑자기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스승에게 올리는 구배지례(九?之禮)가 이어졌다. “..........!” 블루는 약간 당황했다. 추세흔이 구배지례를 올리리라곤 생각도 못한 것이다. “저의 속 좁음을 용서하십시오. 진정한 거인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 편협한 시선을 용서하십시오.” “교주........!” 블루가 입을 열자 그는 그 즉시 말을 잘랐다. “저는 교주가 아닙니다. 이곳은 중원 무림이 아니지 않습니까? 단지 기억의 끈이 이어졌을 뿐, 나는 분명 다른 존재입니다.” 블루가 하려던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추세흔은 깨달은 것이다. 그것을 본 블루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사실 자신은 그 답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가! “단신께 많은 걸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오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한 제 마음일 뿐입니다. 존장을 모시는 마음으로 당신을 대하겠습니다. 그것만은 막지 말아주십시오.” “좋소! 당신의 마음 받아들이겠소!: 블루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같은 남자조차 반하게 할 만큼 매력적인 미소였다. 블루블랙 머리의 사내가 왕궁 문을 거침없이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기사들이 몰려나와 그의 발걸음을 막으려 했으나, 그의 가벼운 손짓에 하나같이 벽으로 날아갔다. 텅! 터텅! 그 충격으로 인해 움품 파인 벽에 박힌 채 신음하는 기사들. “커헉!” “크흑!” 더 이상 아무도 그를 막아서지 않았다.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칠 뿐이었다. 사내의 표정은 지옥의 사자와 같았다. 분노가 가득 담긴 그의 목소리가 성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존!” 하지만 대답이 없다. 거침없이 왕실 문 앞까지 걸어간 블루블랙 머리의 사내가 양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콰광! 두툼한 왕실 문이 폭격이라도 당한 듯 찌그러지며 내동댕이쳐졌다. 사내는 거침없이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안에 있던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덤벼들었다. “누구냐?” “잔챙이 새끼들!” 사내가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흡사 춤사위 같았으나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터엉! 어마어마한 압력이 들이닥쳤다. “커허헉!” 기사들마다 입으로 피 화살을 뿜으며 고꾸라졌다. 즉사였다. 압력을 이기지 못한 플레이트 갑옷과 함께 몸이 절반으로 꺾인 것이다. 근육 경련으로 부들거리며 쓰러지는 기사를 본 동료들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자신들이 어떻게 할 자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주춤거리며 나름대로 견제를 계속한 채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사내는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사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탓이다. 사내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노인의 뒷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날카로운 눈빛의 다크 엘프 둘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서 있었다. “존?” “왔는가?” 블루블랙의 머리의 사내가 묘한 대비를 이루는, 느긋하기까지 한 노인의 대답.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한 어투다. “존!” 블루블랙 머리 사내가 다시 외쳤다.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픔이 배인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흐를 것 같다. “어째서.........?” 블루블랙 머리의 사내, 에스티마르의 물음에 노인이 천천히 돌아섰다. 노인의 정체는 믿을 수 없게도 엘프이 숲에서 블루와 헤어진 환광술사 존 라이튼이었다! 실종된 그가 이곳 크로타니안 왕국에 있는 것이다. 납치되거나 잡혀 억류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구석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크로타니안 왕이 인질 같았다. 에스티마르를 돌아본 존 라이튼은 냉정하게 시선을 거두며 대답했다. “어째서라는 질문이 필요한가? 자네도 이미 보지 않았던가? 세상을.........” “하지말 세상에 대한 증오를 버리라고 가르쳐준 당신이 이런 짓을 도모하다니!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세상을 사랑하니까.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가?” “........!” 존 라이튼의 대답에 에스티마르는 거대한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아..... 아아......!” “세상은 이미 썩었어. 그냥 둬도 알아서 파멸의 길을 걷겠지. 하지만 난 선황과 약속했네. 세상을 정화시켜 헤르마틴을 세상의 중심으로 만들겠다고.” “그게 무슨1” “썩은 사과는 서둘러 상자에서 골라내 버려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주변의 싱싱한 사과도 함께 곪거든. 지금은 정화가 필요하네. 사과가 썩은 정도가 아니다. 세상이 썩었다. 곪아서 썩은 냄새가 진동할 정도.” “존!” 에스티마르가 목 놓아 존 라이튼을 불렀다. 그러나 존 라이튼은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나도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했네. 하지만 이것이 내 선택이네. 아직도 나를 존중한다면 내 선택도 존중해주게.” 으득! 에스티마르는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주먹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뚝뚝 꽃잎처럼 바닥에 떨어져 고이는 핏물! “그렇듯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해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다고!” 에스티마르는 더 이상 존대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역시 당신도 인간이었다. 그것도 가장 쓰레기! 최하의 인간!” “어떻게 부르든 그것은 자네 맘이네만 가슴이 아프군. 자네라면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믿었거든.” “훗, 이해?” 에스티마르의 싸늘한 웃음. 그 웃음 뒤에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노인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존 라이튼은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양 옆을 자리하고 있는 다크 엘프 둘. 그가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는 순간, 그들도 먼저 움직일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들은 보통 다크 엘프가 아니라는 것. 자신한테 이처럼 무형의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을 눈치 챈 듯 존 라이튼이 말했다. “그렇게 의아해할 필욘 없네. 인간도 개조했는데, 다크 엘프라고 못할까?” 순간 에스티마르의 턱이 부르르 떨렸다. 분노를 넘어 경악이었다. 더 이상 이성을 통제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생각보다 쉽네. 키메라 제조가 의외로 쉽거든. 생명의 원동력만 알아내면 어떤 것도 만들 수 있지. 결과도 흡족하게 나왔고, 그렇지 않은가?” 존 라이튼의 질문에 다크 엘프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라이튼님.”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져버리는 것 같았다. 존 라이튼의 이비에서 저런 말이 나오리라곤 감히 상상도 못했다. 믿어지지, 아니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설사 꿈이라 해도 온몸으로 부정하고 싶었다. 악몽이라면 어서 깨고 싶었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우웩! 우웩1” 그는 허리를 숙인 채 토했다. 더러웠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이 더럽고 더러웠다.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토하지 않고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썩은 냄새! 눈을 뜨고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주위가 온통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마늠 더러웠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 눈까지 썩어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소리! 고막이 파열될 것만 같다. 들어선 안 되는 것이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말이었다. 한참 토하고 입가를 훔친 에스티마르는 살기어린 눈으로 존 라이튼을 노려보았다. “개자식!” “후후, 언젠가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네. 그것을 내가 한 것뿐.” “너는 내 스승이 될 자격이 없어!” “흠, 그 이야기 또한 상당히 가슴이 아프군.” “쳇!” 에스티마르는 귀걸이에 손을 올렸다. “귀걸이를 떼시겠다?” “네놈을 죽일 방법은 이것뿐이니까.” “뭐, 자발적으로 봉인을 풀어주니 고맙긴 한데,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군.” “개소리 마라!” 에스티마르는 귀걸이의 링에 손가락을 걸고 거침없이 당겼다. 귀가 찢어지며 피가 흩뿌려졌다. 동시에 에스티마르를 중심으로 거대한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휘몰아쳤다. 휘오오오오! 쿠콰콰콰콰! 엄청난 압력이었다. 마나의 폭주로 형성된 강력한 바람이 주변을 휩쓸었다. 그 바람에 구석에서 몸을 떨고 있던 크로타니안 왕이 의자에 앉은 채 뒤집혀 날아갔다. 그 주변에서 에스티마르를 견제하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당탕탕! “뭐, 뭐야!” “으아아악!” 다크 엘프는 버텨내는 것 같았지만 그들 역시 더 이상 여유로운 얼굴이 아니었다. 잔뜩 일그러진 채 애써 신음을 참고 있었다. 멀쩡한 것은 환광술사 존 라이튼뿐이었다. 그가 허탈한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귀걸이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쯧, 힘들게 만들어줬더니만..........” 에스티마르가 붉게 변한 눈자위를 번뜩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큭큭! 아직 괜찮잖.......아! 귀걸이 하나와 네 개의 목걸이가 남았으니까!” “별로! 과거 그걸 만드는데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안다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걸세.” “크큭!” 이죽거리는 에스티마르의 입술 사이로 비죽이 솟아오른 송곳니가 드러났다. 이차 봉인이 완벽히 풀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의외군. 아직까지 이성을 잃지 않고 있다니!” “다 네놈 덕이지. 크큭1” 입술을 살짝 비트는 에스티마르! 어느새 완벽하게 붉은 흉광이 안구를 감싸고 있었다. 반대쪽 귀걸이를 향해 다시 손이 올라갔다. 그때 존 라이튼이 충고하듯 한마디 했다. “이제라도 그만두기를 바라네.” “왜지? 두려운가?” “그 전에 마왕이 깨어나면 자네나 나나 피곤해지기 때문이지.” “크흐흐흐! 그것은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렇지 않아도 네놈을 죽이고 그 즉시 자살할 생각이니까.” “그렇게 모험할 필요가 있을까?” “두 번째, 보, 봉인 정도론 네놈의, 며 멱을 잡기도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지. 최소한 네 개는 풀어야 하지만, 그, 그러면 내가 견딜 수가 없어서 말이지, 큭큭! 세 개 정도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어? 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네놈이 마왕보다 더 위험하단 거야!” 말을 마친 에스티마르는 거침없이 링 귀걸이를 당겼다. 동시에 존 라이튼의 손바닥이 에스티마르를 향했다. 그리고 외쳤다. “잠들어라!” 순간 오색이 환광체가 에스티마르를 감쌌다. 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에스티마르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실패햇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동시에 눈을 감은 채 축 늘어져, 마치 실이 끓긴 마리오네트처럼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존 라이튼의 이마에 작은 땀방울이 맺혔다. 긴장한 것이다. 에스티마르가 저렇듯 무모하게 굴 거라곤 상상도 못한 탓이다. 그때 금속성이 들려왔다. 찰, 찰그랑! 존 라이튼은 무의식중에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에스티마르의 반대쪽 귀걸이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에스티마르 양쪽 귀가 붉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세 번째 봉인까지 풀리고 만 것이다. 존 라이튼은 한동안 무심한 눈으로 쓰러져 있는 에스티마르를 내려다보았다. “4장로님.” 젊은 엘프의 부름에 4장로 미사메르티는 뒤돌아보았다. “무슨 일인가?” “블루님의 연락입니다.” “흠?” 순간 인상이 구겨졌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마르카데시아 장로가 급하게 자리를 일어났다. “어딘가?” “안녕하십니까?” “당신은?” “죠셉입니다.” 물론 죠셉인 것은 금세 알아보았다. 문제는......... “아, 블루 경께서 바쁘셔서 제가 대신 연락을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둥그런 수정구슬로 선명하게 보이는 죠셉의 얼굴은 어딘지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혹시.......?” 끄덕 미사메르티가 무슨 질문을 던질지 짐작하고 있던 죠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습니다.” “오오! 그래, 그것은 어디에 있소?” 순간 길게 이어진 침묵. 뭔가 좋지 못한 상황임을 짐작할 필요도 없었다. “그게.......” 죠셉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미사메르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헤르마틴군의 크로타니안을 향한 진군은 멈추질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발길이 막혔다. 두 개의 성을 흡수하고 밀어붙이는데, 기습적인 공격을 당했다. 그것은 인간의 병사가 아니었다. 몬스터와 인간으로 구성된 키메라 연합부대였다. 지금까지 숨겨온 몬스터 부대를 대대적으로 자신의 병사처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몰래 사용하는 것과 이렇게 대놓고 사용하는 것은 그 파장부터 달랐다. 그것이 자신들이 그토록 열변을 토하던 모든 변명을 거짓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 한번 물어보기라도 하자는 심산으로 드러낸 것일 수도 있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몬스터를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인데, 몬스터를 조종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론 불가능했다. 마왕의 힘을 빌리지 않고선 말이다. 거기다 참전한 키메라들은 인간을 괴물로 만들었다는 증거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인간을 괴물로 만들다니.......!“ 그것으로 헤르마틴군의 움직임에서 망설임은 사라졌다. 그들이 마왕을 불러내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탓이다. 죄 없는 왕국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뜻으로 받아들인 탓이다. 죄 없는 왕국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도덕적으로 타락한 존재라고 인식하자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사라졌던 것이다. 그때, 블루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 같지만, 블루는 그 뒤쪽 상황까지 보고 있었다. 거기선 다크 엘프로 보이는 존재가 화려하게 생긴 무기를 마구 휘두르는 중이었다. 블루는 그 무기의 정체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바이너리 트위스터(binary twister)! 그렇게 찾던 엘프들의 신기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더 이상 감출 이유가 없다는 뜻과 같았다. 블루가 확신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 검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기운! 그런데, 우연찮은 기회에 몬스터들의 움직임과 다크 엘프의 움직임에서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있었다. 몬스터들은 다크 엘프의 행동에 반응하듯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블루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혹시.......!“ 블루의 눈빛이 반짝였다. 드러난 몬스터 군대의 힘은 막강했다. 헤르마틴 대군의 진격을 멈춰 세울 정도였다. 물론 블루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몬스터로 부족한 병력을 메운 것만으로 충분해보였기 때문이다. 만만치 않겠지만, 굳이 자기까지 직접 나설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자신이 할 일은 다로 있었다. 주변에서 그다지 상큼하지 못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감은 불과하지만 블루는 자신의 느낌을 믿었다. 그래서 주변을 예의주시하며 병사들의 전투에 눈을 떼지 않았다. 니콜라스를 필두로 세바스찬2세와의 합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너지 효과를 불러왔다. 블루한테 무공을 배운 덕에 서로 오감이 통해, 둥은 말 없이도 기감(氣感)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신속한 움직임으로 이어졌고, 적들을 수세로 몰아넣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자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게르........ 르르륵! 크륵! -크륵, 크륵! 각각 초록색과 파란색의 오러를 뿜어내고 있는 괴물 둘! 누가 봐도 현세의 존재하는 생물이 아니었다. 배의 주름이 갈라지며 거대한 입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흡사 하품이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마수........!” 이미 모든 나라가 유슬라니안을 통해 마수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다. 놈들은 그 영상에서 본 마계의 생물체인 마수가 분명했다. 그로써 크로타니안의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었다. 역시 마왕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왕의 파수꾼이라는 죽음의 다섯별이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았다. 그런데 왜 둘만 나타났지? 나머지 셋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이 에스티마르 손에 죽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 블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괴물들도 블루의 존재감을 느꼈음인지, 한동안 병사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러다 별안간 둘 중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헤르마틴군으로 파고 들어가 거대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버벅! 병사들이 낙엽처럼 흩날렸다. “으아아아아악!” “이, 이건 뭐야?” 순식간에 질서정연하던 진영이 무너지고 말았다. -크으 푸후........! 놈이 웃었다. 순간 블루의 인상이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말았다. 마치 어쩔거냐는 듯 도전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우두두둑 우둑 아득! 가볍게 움켜진 병사의 상체가 갑자기 사라졌다. 녀석이 씹어 먹어버린 것이다. 놈은 하반신을 던져 입으로 받았다. 아득 아드득! 꿀꺽 삼킨 놈이 다른 식사거리를 찾듯 어슬렁거렸다. 죽은 건 모르지만, 저런 녀석의 식사가 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겁에 질려 뒷걸음질치다 도미노처럼 우르르 넘어지는 병사들. -쿠케케케케! 놈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블루는 더 이상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그때 마수가 설치고 다니는 곳에 친숙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냇다. “뭐, 뭐야........ 이자식은?” 베르니스는 급히 자신의 모든 기운을 검 끝에 모았다. 동료를 부를 이유조차 없었다. 눈앞의 존재가 자신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탓이다. 후웅! 검에서 뿜어진 오라가 주변 공기를 진동시켰다. 마수는 베르니스를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오물거리던 뭔가를 툭 뱉었다. 조금 전에 먹힌 병사의 갑옷조각이었다. 그것은 베르니스를 분노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개자식!” 베르니스는 앞뒤 생각 없이 즉각 신형을 날렸다. 오러를 머금은 검이 바람을 가르며 마수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마수는 이미 거기 없었다. 푸싯! 눈 깜짝할 사이에 베르니스 등 뒤로 날아간 것이다. 놈은 즉시 환하게 웃으며 양손을 맞잡은 채 내려찍기를 시도했다. 베르니스는 그 공격을 눈치 챘지만 이미 늦었다. “제, 제길!” 설마 마스터인 자신이 제대로 된 공격도 못해보고 이렇게 당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탓에 자괴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베르니스에게 주먹이 닿으려는 순간, 마수의 몸이 저편으로 날아갔다. 우당탕탕! -꾸위? 녀석은 자신이 어째서 당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조금 전 자신이 있던 자리에 낯선 누군가가 있음을 알고 이를 드러냈다. 그것은 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분명 화를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녀석의 시선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짐승의 것처럼 날카로웠다. 그제야 한숨을 돌린 베르니스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을 보고 인사했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끄덕 클레인은 고개를 슬쩍 까닥여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기는 힘들었다. 마수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베르니스와 힘을 합친다 해도 이기기 어려울 것 같았다. 좀 전의 공격도 운이 좋아서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클레인은 슬쩍 눈동자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자신들 외엔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결국 자신들 둘이서 놈을 상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엇다. 이를 악물었다. “온다!” 베르니스 역시 놈을 눈여겨보는 중이었다. 녀석이 지척까지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들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한줄기 화염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헙!” 급히 몸을 피했으나, 거친 소음과 함께 화염이 베르니스와 클레인을 덮쳤다. 클레인은 마나를 검 끝에 모아 길게 찔러 넣었다. 미처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지만, 지금의 위기상황을 벗어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불길과 검극이 맞닿은 순간, 쾅! 콰과과과과광!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주변 삼십여 미터가 쑥대밭으로 변하고 말았다. 다행이라면 병사들은 이미 멀찍이 피해 있었다는 것. 클레인의 기술을 본 추세흔이 흠칫 놀랐다. “저것은 질룡음풍검(秩龍陰風劍)!”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했다. 중원무림에서 과거 악명을 떨쳤던 음유마도의 필살검법! 그것을 보니 감흥이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매끄럽지 못한 움직임을 보니 아직 미완인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위력이었다. 그 덕에 베르니스까지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클레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응하다 보니, 마나를 너무 급하게 돌린 탓에 신체에 무리가 온 것 같았다. “클레인, 괜찮아요?” “제길!” 괜찮지 않다는 뜻이었다. 잠시 놀란 듯 멍청히 서 있던 괴수가 다시 서서히 다가왔다. 의외의 그 한수는 마수조차 놀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것이 최후의 한수였다는 것을 녀석이 알면 별로 좋지 못한 장면이 연출될 터. “뭐, 저딴 게 다 있어!” 마수는 다시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재차 공격을 개시했다. 베르니스는 거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클레인이 오러가 뿜어지는 검을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빠르게 뻗어가는 원형의 검기! 슈고고! 그러나 역시나! 파삭! 마수는 가뿐하게 검기를 파훼했다. 그러나 그것은 베르니스가 녀석한테 다가갈 틈을 만들기 위한 꼼수에 불과했다. 어느새 녀식의 등 뒤를 점한 베르니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꾸오오오오! 동시에 마수의 입에서 기친 비명소리가 튀어 나왔다. 베르니스는 그런 마수의 등에 박힌 검을 비틈과 동시에 발로 녀석의 등을 발판삼아 뛰어올랐다. 마수의 비명이 더욱 거칠어졌다. 설마 인간한테 이렇게 당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는 얼굴로 베르니스를 빤히 노려보았다. -쿠워어어! 너, 주기........ 겠다. “헐, 이제 말까지!” 베르니스는 기가 질렸다. 뭐 이딴 녀석이 다 있는가 하는 표정이었다. 마수 녀석이 양손에 마기를 머금었다. 그러자 푸른색의 둥그런 오러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거라! 마수의 양손에서 오러가 튕겨지듯 아픙로 쏘아져 나갔다. 베르니스는 피하려 했지만, 뒤쪽에 헤르마틴의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길!” 그 즉시 다시 검에 마나를 가득 담은 베르니스. 마수가 던지 오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순간, 그는 몸을 비틀며 검면으로 오러를 강하게 후려쳤다. 터엉! 오러의 날아가는 각도가 틀어져 한창 전투 중이던 몬스터 무리 쪽에 떨어졌다. 콰광! 콰르르르르르릉! 정말 대단한 폭발이 아닐 수 없었다. 천기를 갈기갈기 찢는 듯한 굉음. 그 사이로 들려오는 몬스터들의 비명! “꾸에엑!” “꿰엑!” 몬스터들에게는 아닌 밤중의 홍두깨나 다를 바 없었다. 그곳에 있던 몬스터들 수십여 마리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엄청난 후폭풍이 휘몰아치며 거대한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베르니스는 눈이 튀어 나올 뻔했다. 저렇듯 어마어마한 것을 자신한테 던지다니!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검으로 쳐냈다니! 꿀꺽 혹시 닿는 순간 터지는 오러였다면........? 부르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떨렸다. 저 정도인 것을 알았다면, 조금 전의 그런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다시 날아오는 또 하나의 오러 덩어리! 이번엔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병사들이 미친 듯이 물러났다. 그들도 조금 전의 파괴력을 목격했기 때문에 젖 먹던 힘을 다해 그 자리를 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아아아! 어서 피해! 어서!” “으아아아!” 그 덕일까? 쿠콰콰콰! 녀석의 오러 덩어리는 맨땅에 거대한 구멍을 하나 더 만드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그러나 그 거대한 구덩이로 만족한 오러 덩어리와 달리, 마수 녀석은 만족하지 못한 듯 씩씩거리며 베르니스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베르니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녀석에게 깐죽거렸다. “그렇게 눈깔에 힘주고 노려보면 어쩔 건데? 씨발, 눈깔의 푸른 먹물을 쪽 짜서 잉크로 써버릴라, 쿠하하하하.........하?” 베르니스는 배를 잡고 미친 듯이 웃다 그래도 굳어버렸다. 동시에 쌍소리가 튀어나왔다. “저, 저런 닝기미.......!” 화려한 빛의 푸른 오러가 허공에 떠 있는 것을 목격한 탓이다. 그것도 조금 전처럼 두 개가 아니라 대충 눈대중으로 봐도 백 개는 넘어보였다. “씨, 씨발.......!” 왠지 마수 녀석이 웃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베르니스만의 착각일까? 제8장 에스티마르의 죽음 블루가 말문을 열었다. “네 친구도 재미나게 노는 것 같은데, 우리도 놀아줘야 구색이 맞지 않겠어?” -쿠케케케! 초록색 마수도 블루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블루가 슬쩍 웃으며 허공을 박찼다. 파팟! 터엉! 과과과광!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음과 처절한 결과만 확인할 뿐이었다. 하늘에 떠 있던 초록색 마수가 어느새 거대한 구멍이 뚫린 바닥에서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마수는 조금 전 자신이 있던 위치를 올려다보았다. 블루가 그곳에서 짓궂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크륵! 화가 났음인가? 블루는 그 녀석의 반응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듯 말문을 열었다. “오우! 생각보다 터프하군.” 그런데 왜 표정과 다른 게 비꼬는 어투로 들리는 것일까? 마수도 그 사실을 인지햇음인지, 거친 포효를 하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바로 그때 생생하게 전해지는 강력한 충격1 터엉! 쿠과과과광! 다시 바닥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블루는 다시 회심의 미소를 짓고 녀석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동시에 또오른 공포감! 초록색 오러가 빠르게 옅어지고 있었다. 블루가 여유로운 걸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마수의 몸에 달려 있는 여러 개의 눈이 가늘어졌다. 뒤로 주춤하던 마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기가 막혔다. 이제껏 자신의 군주와 존 라이튼이란 괴물을 제외하고는 자신에게 이런 공포감을 주는 존재가 없었다. 뻔히 보고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초록색 마수가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자 거대한 압력이 블루한테 날아갔다. 블루는 그 압력을 느끼면서도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아다. 어찌 보면 피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실은 피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뿐이었다. 스슷! 블루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직도황룡(直道黃龍)의 초식으로 내리그어졌다. 동시에 대기가 갈라지며 거대한 막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초록색 마수가 날린 거압은, 그곳을 기점으로 반으로 나누며 블루 뒤쪽에 있던 거대한 바위 언덕을 산산조각 냈다. 쿠콰쾅! -크륵?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믿을 수가 있단 말인가! “뭐야? 더 없어?” 블루가 이죽거리자 초록색 괴물이 자신의 거대한 입을 벌리더니, ‘크하!’ 하는 괴성을 질렀다. 순간 녀석의 입 안에 있던 수백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블루에게 화살처럼 쏘아졌다. 대단위 공격! 누가 봐서 피할 곳이 없었다. 그들 싸움을 멀리서 구경하듯 지켜보던 병사들은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죽음을 예감한 것이다. 그때 블루가 자신의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그때였다. 두두두두둑! 거침없이 날아들던 치아가 블루가 서 있는 위치에서 정확히 오미터 떨어진 곳에 멈춰서더니, 맥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잒지 않은 폭발이 일어났다. 파파파파팡! 목표물에 적중되는 순간, 폭탄처럼 터지는 효과를 지닌 듯했다. 푸슛! 폭발이 일어나며 연막이 피어오르는 순간, 감쪽같이 사라진 마수! 동시에 블루는 자신의 사정권 안으로 파고드는 마수의 날카로운 손톱을 피하며 빠르게 반격했다. 터엉! 가슴을 내리찍다시피 한 가공할 공격에 빈 깡통을 내려치는 듯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놈이 실 끊어진 연처럼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 와중에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손톱을 블루에게 겨냥한 채 화살처럼 쏘는 괴물! 슈슈슛!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손톱이 블루의 심장과 두 눈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블루는 어느새 뽑아든 아슈를 횡소천군의 수법으로 휘두르며 손톱을 절반으로 부러뜨렸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터지는 섬광과 소음! 쿠아아아앙!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마다 하나같이 폭발하다니! 녀석의 몸은 화약덩어리라도 된단 말인가! 모르긴 몰라도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 녀석의 수법인 듯했다. 아슈의 손잡이를 거꾸로 움켜쥔 채 블루는 팔을 힘차게 뻗었다. 허공을 격하는 수법인 격공장이었다. 터텅! 마수의 몸이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날아든 격공장의 위력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마수의 상체가 보기 흉하게 찌그러진 것이다. -쿠켁! 블루는 바닥에 나뒹구는 녀석을 잠시 지켜보았다. 무슨 생각에 선지 선기를 잡았음에도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수십 개의 푸른색 오러 덩어리가 블루를 향해 날아들었다. 슈슈슈슈슝! 멀리서 푸른 마수가 공격해온 것이다. 그리고 베르니스에게 흥미를 잃은 것인지, 아니면 동료를 구하기 위함인지 베르니스를 도외시한 채 블루를 노려보고 있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보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사실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블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순간, 블루의 주변에 다섯 개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검(心劍)이었다. 다섯 개의 심검이 제각각 다섯 방위를 잡고 푸른색 오러 덩어리를 파훼하기 시작했다. 쾅! 콰광! 콰과과광! 연이은 폭발! 푸른색 오러는 길을 잃고 허공에서 폭발했다. 니콜라스와 세바스찬2세를 제외한 헤르마틴의 모든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쩌억 벌렸다.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검이 갑자기 허공에 생겨난 것도, 혼자 제멋대로 날아다니며 공격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하긴, 언제는 상식적인 사람이었던가! 전쟁은 소강상태였다. 모두의 시선이 블루와 두 마리 괴수의 싸움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싸움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자기들 싸움이 왠지 가치가 없게 느껴졌다. 죽어라 힘들게 검을 휘두르는 것이 덧없이 느껴진 것이다. 푸른색 마수의 주변으로 다시 빠르게 기운이 몰리는 것 같았다. 다시 생겨난 수십 개의 푸른 구체! 조금 전 현상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재차 시험하는 모습이다. -죽어버려라, 인간! 완벽한 인간의 언어! 그러나 거친 소음이 동반된 탓인지 듣기에 상당히 거슬렸다. 파앗! 슈슈슈슈슛! 수십 개의 푸른 오러 덩어리가 블루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그 결과는 같았다. 콰앙! 퍼버버버버버버버벙! 거의 동시다발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오러 덩어리는 허공에서 무참히 박살나버렸다. 그때 푸른색 마수 옆에 초록색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때! -크으 푸후! 크으 푸후.......!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초록색 괴물이 찌그러든 옆구리를 부여잡더니 거침없이 뜯어냈다. 그러자 눈 깜짝할 사이에 상처가 아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고통스러운 듯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며 블루가 한마디 했다. “별 거기 같은 짓들을 다하는군.” 피식 블루의 비웃음이 터져 나오기가 무섭게 두 마리의 괴물들이 블루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들었다. 섬광처럼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블루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녀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육중한 주먹을 휘둘렀다. 거기엔 강철도 종잇장처럼 구길 정도의 거력이 담겨 있었다. 사람 정도는 단숨에 피떡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엄청난 힘이 담긴 주먹! 그 주먹에 블루가 적중당하자 주위에 있던 동료들은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돼!” 그러나 동료들의 비명보다 녀석의 주먹이 한발 빨랐다. 퍼억! 블루의 신형이 크게 출렁거렸다. 다들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놀라긴 마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날아가 피떡이되어 바닥에 처박힐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멀쩡히 자리에 서서 입가의 피를 훔치며 자신을 노려보는 게 아닌가. “흠, 생각보다 괜찮은 주먹이군. 하지만 주먹을 사용하는 방법이 틀렸은. 주먹은 이렇게 쓰는 거라고!” 퍼억! 블루의 주먹에 녀석이 풍선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입을 쩌억 벌렸다. 몬스터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왠지 모를 이 괴리감! 지금의 저 현상이 조금 전 블루한테서 나타났어야 하지 않았는가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베르니스와 스콜, 텐시는 블루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주먹으로 웨어울프를 때려잡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진 탓이다. 그들은 그렇듯 왠지 모를 아련한 추억(?)에 빠져 나름대로 현 상황을 합리화 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사람들 반응과 상관없이 블루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주먹이 이뤄낸 현상을 만끽하고 있었다. 푸른색 마수가 당하자 초록색 마수가 뻣뻣하게 굳은 모습으로 블루를 주시했다. “우선 내 힘으로 사람을 팰 수 없어서 말이지. 상당히 답답했거든?” 씨익 블루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오싹 돋는 마수였다. 블루는 태연하게 초록색 마수의 앞을 걸어지나가며 나직하게 말했다. “우선 네놈들은 이곳의 생물이 아니니까 괜찮겠지. 맺 . 집 . 이!” 꿀꺽 왠지 아니라고 부정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블루의 신형은 벌써 저쪽에 쓰러져 일어나려 하고 있는 푸른색 마수의 안면을 드롭킥으로 들입다 박아버리는 게 아닌가! 퍼억! -꾸웨에에엑! “새꺄! 이제부터 시작이야!”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벅! -꾸워워워워워워워워워웍!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흥겨운 박자에 헤르마틴의 병사와 크로타니안의 몬스터들이 들썩이다가 말았다.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지금은 흥에 겨워할 상황이 아니었다. 철썩! 철썩! 철써억! 마수의 뻣뻣하며 기름기 가득한 피부와 블루의 주먹이 맞부딪히며 들려오는 사운드는 정말이지 가슴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들과 다르게 푸른색 마수는 정말이지 죽고 싶었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나 싶었다. 차라리 그때 에스티마르의 손에 죽은 동료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가슴이 빠개지듯 아팠다. 아니, 전신이 다 아팠다.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녀석이 친절하게도 빠짐없이 구석구석 주먹으로 패준 결과였다. 마치 세밀하게 계산하고 패듯 온몸이 고루 아팠다. 회복되어 나을 만하면 또 패고 또 패는데, 완전히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더구나 이곳(중간계)의 물리적인 충격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지 못할 텐데 희한하게도 녀석의 주먹이 닿을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전신이 뒤틀렸다. “우헤헤헤! 이 짜릿한 손맛! 크헤헤헤헤헤헤!” 퍼버버버버벅! 퍼벅! 퍼버벅! 텅! 텅! 터텅! -커거거거거거거거걱! 커켁! 커쿠컥! 어어억! 어억! 그것을 바라보던 블루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남자는 주먹, 구타는 손맛..........!” 그렇게 한 시간쯤 줄기차게 두들겨 팼을까? 보는 사람이 지칠 지경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마수의 비명은 우렁찼다. 기절할 수 있는 몸도 아니고 매번 통증은 처음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블루의 주먹은 아직도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동료를 구타하는 블루를 옆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초록색 마수! 터텅! -꾸웩! 동료의 숨넘어가는 비명을 듣고 나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동시에 초록색의 마수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어서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오로지 그 생각 뿐 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일 뿐이었다. -...........! 눈앞에 블루가 씨익 웃고 있는 게 아닌가! 귓전에 맴돌던 타격음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마치 분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블루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재빨리 뒤를 돌아보자 죽은 듯이 늘어져 있는 동료가 눈에 들어왔다. 그뿐, 블루는 그곳에 없었다. 꿀꺽 블루가 말문을 열었다. “어딜 가시려고?” 문제는 녀석이 그 말을 듣지 못했다는 데 있다. 블루의 주먹이 말보다 빨랐던 것이다. -꾸엑! 블루의 거침ㅇ벗는 타격에 녀석의 몸이 계속 들썩거렸지만, 그 자리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블루만의 탁월하다 못해 소름 돋는 힘 조절의 묘미! “기절할 생각 따윈 하지도 마. 아직 멀었으니!” 뻐억! 블루의 발길질이 강하게 녀석의 복부를 틀어 박혔다. 순간 혜성과도 같은 속도로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녀석! 그러나 갑작스럽게 멈췄다. 블루가 녀석보다 먼저 날아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낸 것이다. 그리고 녀석이 무슨 일이 벌어졌나 하고 두리번거릴 때, 블루가 한쪽 입가를 끌어올리며 나직이 한마디 했다. “잘 가라!” 푸싯! 블루의 손바닥에서 거대한 빛 무리가 뿜어진다 싶은 순간, 녀석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름과 동시에 폭죽처럼 터졌다. 퍼엉! 놈의 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동시에 비릿한 붉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그 즉시 블루는 손을 내렷다. 그 손끝에는 블루에게 맞아 빌빌거리는 마수가 위치해 있었다. “즐거웠다. 너도 그만가라!” 퍼엉! 이번에도 눈부신 빛과 함께 녀석의 몸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블루는 싸움을 멈춘 채 자신을 바라보는 병사들과 몬스터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왠지 뜨끔거리는 느낌에 블루와 시선이 마주친 존재들은 흠칫흠칫 몸을 떨었다. 블루는 뭔가 찾는 듯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곧 시선을 거뒀다. 마수 두 놈과 싸우는 동안 주위에 있던 다크 엘프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바이너리 트위스터까지 함께! 주위에 있다 해도 숲이 있는 곳으로 기척을 숨긴 엘프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다시 모습을 드러낼 테니 말이다. 그것을 깨달은 블루는 흥미를 잃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절벽 위로 날아가 그곳을 걸터앉았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따. 하지만 처음의 결전처럼 치열하지는 못했다. 왠지 하나같이 맥이 풀린 모습들이었다. -크으으, 크와아아앙! 크로타니안 왕성이 떠나갈 듯 들려오는 괴성! -크아아악! 성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괴성이 들릴 때마다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저 괴성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들 가슴에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는 그 무엇! 저 끔찍한 괴성이 왕성 안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은 사흘 전부터였다. 하지만 윗사람들의 입단속에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 괴성이 들려올 때마다 심장이 철렁거리는 것은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비명소리에 놀라 찻잔을 깨뜨린 하녀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힘겹게 청소를 하는 중이었다. 아직도 부들거리는 떨리는 손! 그녀의 애처로움을 알았음인가. 멀쩡하다고 할 수 있는 병사 하나가 와서 깨진 찾잔 줍는 것을 도와주었다. “고맙습니다.” “...........”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대답은 없었다. 그 역시 눈앞의 하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간 익힌 검술의 도움으로 마나를 일으켜 마음을 조금 다스렸을 뿐. “크륵! 네놈을 기필코 죽이고 말겠다!” 붉은 눈동자의 에스티마르의 전신은 붉은 오러가 뿜어지는 것처럼 휘감고 있었다. 가볍게 솟은 송곳니까지. 하지만 그런 에스티마르를 등 뒤에 놓고도 존 라이튼은 태평한 모습으로 대꾸를 했다. “아직도 정신을 흡수당하지 않은 것인가? 대단하군.” 무미건조한 어투였다. 아무런 감정을 찾을 수 없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 해도 저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다. 모르는 집에 불이 나서 불구경할 때 신고는 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감정은 흘러나오는 법이다. 하지만 존 라이튼은 자신의 책에 체크만 할 뿐이었다. 에스티마르의 변화를. “네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난 인간이다! 인간으로 살고 인간으로 생각하고 인간으로 먹는다. 그리고, 그리고.......!” 그때 잠시 멈칫하더니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치, 친구들도 인간이다1 그런 내가 인간이 아니면 누가 인간이란 말인가!” “후후, 미쳤군.” 존 라이튼의 말에서 처음으로 진심이 느껴졌다. 으득! 순간 에스티마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 네놈을 죽이고 말리라. 기필코!” “후후, 능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대답을 하며 등을 돌린 존 라이튼은 에스티마르의 눈물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을 보고는 얼굴에 표정이 생겨났다. ‘흥미’라는 이름의 표정이. “눈물?” 뚝뚝 에스티마르는 치욕을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 하지만 그런 에스티마르의 모습은 존 라이튼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었다. “난 인간이란 말이다........! 크흐흐흑!” 순간 어째서일까? 존 라이튼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무시해온 저 한마디가 왠지 가슴을 후벼 파고 든 탓이다. “.........!” 존 라이튼의 시선이 느껴진 탓인지 에스티마르가 자신을 묶고 있는 마법의 사슬을 강하게 비틀며 자신의 붉은 눈을 치켜뜨고 외쳤다. “내가 인간이다. 오히려 네놈이야말로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길을 버리고 어찌 인간이란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이냐? 네놈이 인간이라는 것보다 오거가 인간이라는 말을 믿겠다! 내가 보기에는 네가 마왕이고 네가 괴수며 괴물이다.” 존 라이튼은 다시 싸늘해진 표정으로 등을 돌려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어쩌면 그럴지도.......” 작은 속삭임과도 같은 혼잣말.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심지어 말을 꺼낸 그조차도 블루는 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 추세흔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참 하늘을 주시하던 블루가 말문을 열었다. “꿈을 꾸었소.” “무슨 꿈이었습니까?” “내 앞에 내가 있더이다.” “.............!” “내 앞에 있던 내가 말을 걸더이다. 어째서 그것을 잊고 있냐고 호통을 치더군요.” “언제 꾸신 꿈입니까?” “조금 전에 명상을 하다 스친 영상이오.” 명상을 하다 졸았다고 말하는 것을 저렇듯 돌려 말할 수 있음을 배운 추세흔은 한참 고심 끝에 말문을 열었다. “꿈이란 뭔가를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생생한 꿈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하던데........ 대부분 현실에서 놓친 것을 무의식이 찾아내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흠.........” 추세흔의 정중한 답변에 블루가 한참 고심했다.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 “아마도 그러지 않나 싶습니다만.” “그게 뭔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군. 잊고 있는 것이라.......” 블루는 자신의 모든 기억을 되돌아보았다. “모르겠군.” “하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쇼. 오히려 더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고맙소.” “별 말씀을....... 그런데 뭔가 좋지 못한 일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그런 일 없소. 그런데 왜?” 하늘을 보던 시선을 돌려 추세흔을 바라보았다. “난폭하더군요.” “난폭?” “마치 울분에 차서 분노를 터뜨리는 듯 하더이다.” “무슨........아!” 추세흔은 그날의 전투를 말하고 있었다. 마수와의 전투! 블루는 바로 이해했다. 사실 그로서도 그때 자신이 왜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 알지를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단 한 방에 죽일 수도 있었다. 굳이 그렇듯 두들겨 패서 죽일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효율적이지도 못했다. 예전에 난폭하던 자신의 모습은 스스로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 무의식적인 분출이었던 데 반해, 스스로의 존재를 명확하게 깨달은 지금은 그것이 모순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두 마리의 마수를 본 순간, 절제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때의 일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꾸었던 꿈과 그것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모르겠소. 다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소.” 표정엔 드러나지 않았지만 순간 추세흔은 뭔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블루 같은 존재가 이유도 모른 채 난폭하게 굴었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얹어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블루의 머릿속으로 블루블랙의 머리를 찰랑이며 유쾌한 미소를 짓고 있던 사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다지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존재임에도 괜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몇 번 만난 적은 없지만 가슴에 남는 존재! 자신에게 언어 마법을 걸어주면서 생긴 영향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라고 말하기는 어딘지 미흡했다. 자신이 느끼는 그에 대한 감정은 친구 이상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그랬다. “에스티마르........!” 그 이름을 입 밖에 내가 정겨운 느낌이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라이튼 경, 대체 어쩌면 좋겠소?” 크로티니안의 왕이 한쪽 팔에 부목을 댄 채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날 부러진 모양이었다. 존 라이튼은 차만 마실 뿐, 말이 없었다. “이미 그들이 중간 경계를 뚫고 이곳으로 오고 있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이오?” 조급한 때문일까?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가 튀어나왓다. 그러다 존 라이튼이 찻잔을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자 뜨끔해 얼른 시선을 피했다. 존 라이튼은 그런 왕한테 신경 쓰지 않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이제 곧 마무리 될 거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모든 게 순리대로 흘러가게 될 거란 말이오.” ‘모두 죽게 될 것이오. 당신도 역시!’ 그 뒷말은 생략했다.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다. “당신만 믿습니다.” “........” 존 라이튼은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크로타니안의 왕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존 라이튼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존 라이튼의 옆에 다크 엘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존 라이튼이 연구실로 향했다. -크오오오오오! 에스티마르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거칠게 몸을 비틀었다. 그를 친친 감은 마법문구가 끊어질 것처럼 팽팽해졌다. 전신에서 뿜어지는 오러의 기운이 한층 강렬해진 것이다. 그가 묶여 있는 곳은 어떤 마법진 한복판이었다. 일곱 개 방위가 있는데, 그곳엔 작은 단검이 하나씩 꽂혀 있었다. 검날이 검 붉은 빛을 띠고 있는 단검으로 기형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주위에 일곱의 여인이 나신으로 누워 있고, 일곱 명의 신관과도 같은 존재들이 주문을 웅얼거리고 있었다. -오시라 오시라 우리의 재물이 여기 있사오니 오셔서 그 눈부신 광체를 세상에 뿌려라! 그 앞에서 존 라이튼이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에스티마르의 변화에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오시라 오시라 우리의 재물이 여기 있사오니 오셔서 그 눈부신 광체를 세상에 뿌려라! 에스티마르의 전신에 거대한 빛 무리가 뿜어졌다. 화아아아앗! 몸이 타들어갈 듯 붉디붉은 광채였다. 닿는 족족 뭐든 붉게 물들어놓을 것만 같은 그 광채! 기다렸다는 듯이 신관이 자신의 앞에 있는 단검을 뽑아 들더니, 여인의 가슴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허억!” 눈을 감고 있던 여인이 몸을 부르르 떨며 경기를 일으키더니 그대로 숨을 거뒀다. 동시에 여인의 몸에서 희미한 광채가 흘러나와 에스티마르의 몸에 흡수되었다. 에스티마르의 몸이 마법무구에 묶인 상태로 떠올랐다. 순간, 목걸이 하나가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폭발하듯 깨졌다. 그리고 사방으로 비산했다. 파파파팟! 일곱 개 중 네 개째 봉인이 풀린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목걸이만 풀어도 봉인은 풀린다. 그 상태로는 마왕이 자아를 지닌 채 깨어나게 된다. 진정한 암흑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왕을 조종할 필요가 있는 존 라이튼으로서는 그 자아를 봉인해야만 했다. 더구나 그 존재가 자신을 반기지 않는 수준을 넘어 거의 경멸을 하는 지경인지라 더더욱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모든 건 그가 예상한 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이미 타외에 의해 봉인이 세 개나 풀려버렸다는 사실. 이것이 최대의 불안요소였다.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는 변수와도 같은. 시간이 충분하다면 어떻게든 준비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던 일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그때, 다섯 번째 봉인이 풀렷다.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크오오오오! 존 라이튼, 널 죽이겠다! “이미 늦었네, 에스티마르군.” -죽인다! 반드시 널 죽인다! 에스티마르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듣는이의 간담을 싸늘하게 만들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존 라이튼은 그가 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냉정을 잃지 않았지만 신관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은 계속 주춤거리며 존 라이튼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존 라이튼이 한마디 했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흘러나온 헛소리일 뿐이다. 개의치 말고 계속 진행하라!” 존 라이튼의 말에 용기를 얻은 신관들은 침음성을 삼키며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오시라 오시라 우리의 재물이 여기 있사오니 오셔서 그 눈부신 광체를 세상에 뿌려라!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섯 번째 봉인이 풀렸다. 그리고 연이어 일곱 번째까지 풀렸다. 그 순간 에스티마르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기운은 가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졌고, 존 라이튼은 에스티마르의 상체에 여인의 피를 흡수한 일곱 개의 검을 쑤셔 박았다. 에스티마르는 축 늘어졌다. 철그렁 팽팽하던 마법의 사슬이 부딪히며 바닥에 떨어졌다. 죽은 것이다. 정적! 모두가 그것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바로 그때!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파핫! 에스티마르의 눈 코 입에서 뿜어지는 거대한 빛이 하늘로 폭사되었다. 그리고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며 빛이 쏟아졌다. 그 빛기둥은 순식간에 크로타니안 왕성을 뒤덮어버렸다. “뭐, 뭐지........ 저 빛기둥은?” 난리도 아니었다. 유슬라니안군, 헤르마틴군, 타르나토스군 중에서 지금 솟아오르는 거대한 빛기둥을 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찌 못 볼 수가 있겠는가. 갑자기 밤하늘이 대낮처럼 밝아졌는데1 왠지 불길했다. 성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빛기둥이었으나, 어째서 인지 거부감부터 느껴졌다. “흠?” 블루도 그 거대한 빛기둥을 바라보다 왠지 모를 소름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블루가 떠는 모습을 처음 접한 일행들 또한 불안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뭐지, 이 느낌은?” 블루의 입에서 나직하게 흘러나온 한마디 누구보다 블루를 잘 아는 이들이라, 지금 블루가 바짝 긴장하고 있음을 모를 리 없었다. “대장, 왜 그래요?” 스콜이 물었다. 그러나 블루는 말없이 빛기둥을 주시할 뿐이었다. “이 느낌은......!” 불현듯 블루의 입에서 독백과도 같은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저게 뭔가?” 아이린 공작의 질문에 군사는 머뭇거렸다. 자신으로서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저것이 뭔지 도무지 감이 오지를 않았다. 타국과의 발 빠른 정보교환으로 크로타니안을 점령하려는 작전의 일환으로 짜였을 뿐인 마왕부활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유슬라니안 지휘본부는 급해졌다. 자신들이 벌인 일이니만큼 대책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면밀히 살펴보니 작전에 허점이 너무 많았다. 특히 상대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몬스터 군단과 키메라 부대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왕의 이야기는 자신들의 공격의 타당성을 위해 외쳤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왕의 존재가 사실이라니1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정보를 모아야 하고, 그것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이곳에 따라온 군사로서는 독자적으로 많은 정보를 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자라 해도 능력엔 한계가 있는 법. 그 과정에서의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결론이 남발되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저 영상을 카르몽 후작님께 보냈으니 곧 답변이 올 겁니다.” “답신이 오면 바로 연결시켜라. 왠지 기분이 나쁘군.” “소, 송구하옵니다.” 소심한 군사는 자신한테 기분 나쁘다고 하는 줄 알고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아이린 공작은 뭐라 한마디 더 하려다 그만두었다. 오히려 타이트하게 나가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시작, 타르나토스 신성 군대한테 거대한 사건이 터지고 있었다. “저 빛은 뭐지? 왠지 기분이 나쁜데.” 잠에서 막 깨어난 율레 대신관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신을 섬기는 입장이다 보니 그는 멀리 보이는 빛기둥을 남보다 더 자세히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성스러우 보이기까지 한데, 뭔가 큰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것. 그 이질감이 무엇을 뜻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하던 찰나, 그의 뒷바라지를 하는 보조신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신관님, 신도들이 술렁입니다.” “무슨 일이 생겼는가?” “저 빛기둥을 보며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흠.........” 율레 대신관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만들어졌다. 인간을 위해 기도하거나 신의 말을 전파하는 것이 삶의 주된 목적인 그로선 사실 이 전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했든 원하지 않든 대교주의 명으로 이미 신도들과 성기사를 이끄는 신분으로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뭔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직위가 총지휘관 격이었으니까. 더구나 인간을 해치기 위해 마귀가 내려왔다고 하지 않던가. 개인적으로 그 소문을 크게 신뢰하지 않고 있지만, 신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먹지 않았던가! “우선 신도들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겠군.” 말을 마치고 서둘러 밖으로 나서던 그는 믿지 못할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빛기둥이 형상된 쪽에서 한 인간이 날아오고 있었다 사실 마법을 익혔다면 하늘을 나는 것쯤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 인간의 몸에서 뿜어지는 사악한 기운이었다. 그것도 대단했다. 그마저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을 정도였다. “아, 안돼! 어서 피해야 해!” 대신관의 중얼거림에 보조신관은 순간 의아한 눈빛을 했다. 그는 대신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보았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신형! “저게 뭐지?” 보조신관 하나가 중얼거리는 순간, -크흐흐흐흐! 하늘에서 섬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중저음이었으나, 그것을 듣지 못한 성기사며 신도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크게 술렁거리는 신도들. “헛1 저것 봐! 누군가가 하늘에 떠 있어!” “뭐라고?”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쏠렸다. 동시에 그들은 보았다. 사이한 기운이 감도는 붉은 오러를 뿜어내던 사내가 손을 내뻗는 모습을. 사내의 손끝에서 쏟아지는 번개들! 파직! 파지직! 콰과광! “으아아아아악!” “이게 무슨?”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죽어나자빠졌다. 땅조차 녹일 듯 강력한 파워 앞에서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 멸망의 이름이 말한다! 모두 죽는 것이다1 순간, 하늘에서 내려오는 붉은 오러의 사내가 신도 앞에 내리섰다. 크게 당황한 신도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퍼벅! 그 신도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심장이 꿰 뚫리고 말았다. 손이 가슴에 박혀 쓰러지지도 못하고 꺽꺽거리는 신도!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마치 신도가 죽으며 반사적으로 일어난 진동을 질기기라도 하듯이. 그 미소를 접한 순간, 율레 대신관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마, 마귀......!“ 붉은 눈!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암흑의 기운1 자신이 섬기는 신과 정반대의 기운으로 현세에선 절대 나타날 수도 없고, 나타나서도 안되는 기운이었다. 시체를 떨쳐버린 사내는 순식간에 율레 대신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고개를 쭉 내밀어 율레의 코앞까지 다가서더니, 씨익 웃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당혹스런 표정의 성기사들이 율레 대신관 옆으로 달려왔다. 저 마인이 율레 대신관한테 다가서다 갑자기 하늘로 날아올랐기 때문이다. “대신관님!” “괜찮으십니까?”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은 율레 대신관. 얼마나 놀랐던지 아직도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성기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이 자신들을 보고 도망치느라 율레 대신관을 죽이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놈이 자신들한테 겁을 먹었다고 판단한 성기사들은 급히 율레 대신관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대신관의 시선은 하늘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리고 흐느끼는 듯한 음성으로 바삐 소리쳤다. “피, 피해!” “예?” “어서 피하라고!” 성기사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하늘로 향했다. “...........!”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망쳤다고 생각한 마인이 하늘에 떠있고, 그 주위로 쏟아지는 붉은 유성우가 눈에 들어온 탓이다. 콰광! 콰광! 콰과과과광! 사팡팔방에서 거대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숱한 신도들이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그것을 뜬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크하하하하하하! 콰과과광1 폭발의 중심에서 사내가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아아!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율레 대신관은 발을 동동 굴렀다. 눈 앞에서 힘없이 죽어나자빠지는 신도들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러나 자신이 뭘 어쩔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을 치유하거나 인간을 위해 신에게 기도하는 것밖에 할 줄 몰랐다. 무력감에 치가 떨렸다. 저렇듯 허공에 떠 폭격하는 강력한 마법엔 아무런 도리가 없었다. 신관이 마법을 익혔을 리도 만무했다. 하늘에 떠 푸른 머리를 휘날리는 악마가 입술을 비틀며 손을 내저었다. 슛슛슛! 무형의 기운이 세상을 짓누를 듯 폭사되기 시작했다. 땅이 움푹 파이며 신도들이 맥없이 쓰러졌다. 하나같이 전신이 터져서 말이다. 인간의 몸으로 이길 수 없는 압력이란 얘기였다. 몬스터 군단과 키메라의 연합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신의 이름을 외치며 용맹하게 싸우던 신도들이, 지금 저자의 등장에는 맥을 추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벌써 수천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크하하하하하! 죽는 거다! 죽일 거다! 붉은 안광이 강렬한 빛을 뿜었다. 목불인견의 참상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어 그는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대신관님, 어서 도망치셔야 합니다! 대신관님!” 하지만 율레는 도망칠 수 없었다. 신을 섬기는 신관이 마귀한테 놀라 쫒겨 도망친다니1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율레가 무릎을 꿇고 더 절실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기사들이 안절부절못했다. 대신관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임무라 도망치더라도 그와 함께 가야 하는데, 율레는 태연히 기도를 울릴 뿐이었다. 그리고 하늘 위에선 아직도 그 마인의 웃음소리와 함께 끔찍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죽어! 죽으라고! 콰광! 콰과광! “으악!” “사, 살려줘! 주여.....커헉!” 들으면 들을수록 소름이 돋았다. “대신관님, 어서 도망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습니다! 기도는 도망치고 나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다급한 성기사의 외침에 율레가 기도하던 중에 대답했다. “우리의 신을 섬기던 신도들이 마귀로 추정되는 자한테 죽고 있습니다. 그런데 속수무책으로 등을 보여 도망치라고요? 전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제 방식대로 싸울 겁니다.” “기도를 하는 것이 싸움이란 말입니까? 이곳은 전장입니다. 칼이 오가는 곳에서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단 말입니다!” 성기사의 말이 분명 옳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 대신관은 왠지 화가 났다. “그게 신을 섬기는 자가 할 수 있는 말입니까?” 그 순간. 츠팟! 율레 대신관의 몸에서 눈을 뜨고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크하하! 모두 죽는.........! 순간 마인은 그 빛이 뿜어지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타르나토스 신이시여!” “주여! 주여!” 모든 신도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했다. 조금 전 놀랄 만 한 기적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사들조차 어떻게 하지 못한 마인을 자신들을 이끌던 율레 대신관이 성스러운 빛으로 쫒아내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성기사들로부터 신관을 포함한 보조신관, 수많은 신도들이 존경스러운 눈으로 대신관을 우러러보았다. 그러나 율레 대신관의 표정은 그리 밝지가 못했다. 물론 자신 때문에 돌아간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성광을 견디지 못하고 물러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삼만에 가까운 신도가 죽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정녕 마왕이 부활했단 말인가! 그리고 조금 전 그 마인이 마왕이란 말인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율레 대신관은 머릿속이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갔던 그 성스러운 기운은? “어서 이 사실을 교황께......” 제9장 마왕의 등장 “성공인가?” 존 라이튼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이 거대한 섬광! 그것은 그의 힘이 세상에 드러났다는 증거였다. 철그렁 마법의 쇠사슬이 힘없이 끊어지며 흘러내렸다. 몸에 틀어박힌 검이 몸속으로 흡수되자, 에스티마르는 감았던 눈을떴다. 순간, 붉은 안광이 폭사되었다. 피보다 더 붉고 뜨거운 존재가 등장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타오르는 지옥의 불길과도 같으며 시간의 흐름조차 깨뜨리는자! 멸망의 이름! 위대한 어둠의 백작!” 아스타로트! 존 라이튼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조차 서 있기 힘들만큼 엄청난 마력이 느껴진 탓이다. 이미 타크 엘프들은 바닥을 기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인간 기사들은 이미 정신을 잃었고, 소환을 돕던 신관들은 벌써 죽어있었다. 이것이 그의 존재감이었다. 아스타로트! 그는 마계에서 최고의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힘은 진짜다 사탄의 후계자인 벨제부트조차 힘으론 그의 상대가 아니라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벨제부트가 그보다 상위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지혜 때문이었다. 파괴의 권능만을 사용하는 아스타로트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돌격만 할 줄 아는 투우(鬪牛)는 결코 무서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존 라이튼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부활을 시도한 것이다. 너무 뛰어난 존재가 오면 컨트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머리는 있기에 그의 힘이 더해지면 못할게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상의 정화를 위해! 그러나 소환되어진 그의 힘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인간중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아니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자신조차 숨을 못 쉴 정도의 위압감이라니! 마신이란 존재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벌써 그가 깨어났기 때문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는 아스타로트의 다음 행동에 주목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두가지. 하나는 녀석이 아무 이성없이 파괴만을 일삼는 괴물이 되어 소환자를 죽인 후 세상을 파멸의 길로 몰아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원래 자신의 인격을 지닌 채 세상에 현신하는 것. 자신한테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아스타로트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둘 모두 위험했다. 만약 그 위험을 피했다면, 그러니까 그의 소환이 성공했다면 그가 대화를 시도해 올 것이다. 바로 그 때, 그가 존 라이튼을 주시하며 말문을 열었다. 내가 여기 왔도다. 무엇을 원하느냐? 어리석은자여, 어찌하여 나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이냐? 그 기쁨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존 라이튼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당신이 멸망의 이름, 위대한 어둠의 백작인 아스타로트가 확실한가?” 순간 아스타로트의 인상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러하다. 내가 바로 그 아스타로트다! 그 음성에 성이 진동을 했다. 아스타로트가 분노한 이유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한 탓이었다. 아스타로트가 분노하는 순간, 존 라이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소환이 성공한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성도 있고 더구나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성공이었다. 그의 생각대로 아스타로트의 인격이 바뀐 것이다. 이것은 아주 복잡하고 면밀한 작업을 요했다. 이제 할 일은 인성을 심어 넣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차분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세상의 정화를 원하는 것인지, 종말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의 죽음 또한 원치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피가 필요했다. 많은 처녀들을 죽여야 한다. 그 기형적인 붉은 검날의 단검!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것의 주원료가 아스타로트의 파편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존재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그의 흔적이 절실했다. 문제는 일곱 개를 모아도 힘이 미약하다는 것. 그래서 아스타로트라는 이름을 지닌 마검을 찾아 헤맸으나 결국 찾을 수 없었고, 결굴 일곱 개의 단검으로 작업을 착수한 것이다. 만일 아스타로트 마검을 찾았다면 여자의 원한과 피를 흡수시키는 번거로운 작업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마신들의 파편이 있다고 말하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태초보다 더 먼 옛날 신들의 전쟁이 있었다. 그 때, 싸우던 장소가 바로 이곳 중간계였다. 그러다보니 마신과 천신이 싸우며 흘린 피와 흔적들이 세상 곳곳으로 퍼지게 되었고, 그 때 가장 많은 피와 살점을 세상에 뿌린자기 있으니 바로 아스타로트였다. 그의 악독한 손속에 모든 천사들이 그를 집중적으로 공격한 탓이다. 그 파편으로 만들어진 것이 조금 전 그의 몸속으로 사라진 일곱 개의 단검과 아스타로트라는 이름의 마검이었다. 가장 강하고 거대한 덩어리로 만들어진 마검은 그의 본신인 아스타로트라는 이름을 가지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물론 세상에는 그의 파편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옥의 이인자라 불리는 벨제부트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대신기’였다. 많은 존재들이 그것을 신이내린 무기라 착각하고 있지만, 실은 아니다. 아니, 사실일 수도 있다. 마신도 신은 신이기 때문이다. 사대신기의 진정한 능력은 바로 몬스터들을 부리는 데 있다. 그것은 바로 벨제부트의 권능이었다. 태초가 시작되고 동시에 존재했던 엘프와 드워프가 벨제부트의 거대한 파편을 발견했다. 그 힘은 어마어마했다. 벨제부트를 이 현세에 현신시킬 수 잇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한테는 그것을 없앨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봉인하기로 마음먹고 사등분한것이다. 그것으로 무기를 만들어 각 종족이 하나씩 나눠가졌다. 엘프에게 바이너리 트위스터라는 검과 사이드 와인더라는 채찍을, 드워프는 파워오브더해머라는 이름의 망치를, 그리고 인간에게는 왕관을...... 그 왕관을 받은자는 인간을 다스리는 힘을 지니게 되었고, 그만의 세력을 지닐 수 있었다. 처음으로 선택받은 인간은 바로 헤르마티아 대제였다. 존 라이튼은 그 사실을 알았고, 모든 신기들을 모으기에 앞장섰다. 다만, 헤르마틴 황제의 머리에 있는 왕관만은 가져올 수가 없었다. 그의 친구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원하는 목적에 사용할 거라면 세 개만으로 충분했기에 굳이 갖출 필요가 없기도 했다. 더구나 네 개를 모으는 것은 불안했다. 어떤일이 벌어질지 감을 잡을 수 없었고, 만에하나 그로 인해 벨제부트라도 부활하게 된다면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존 라이튼이 무감정한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내가 널 이곳으로 불러낸 맹약자다. 나의 말을 들어라!” -좋다. 무엇을 원하느냐? “지금 밖으로 나가 너를 죽이기 위해 다가오는 저들을 처리하라!” 꿈틀 -나를 죽이겠다고? 순간 그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크하하! 누가 나를 죽일 수 있겠느냐? 어쨌거나 괘씸하다. 내가 그들을 직접 벌하리라! 죽이리라! 순간 그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남서쪽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그곳에는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군대가 위치하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하늘에 떠 있는 붉은 오러의 사내가 광소를 터뜨렸다. 그럴 때마다 그의 푸른 머리카락이 중력을 역행하듯 산발되어 휘몰아쳤다. “뭐지?” “저건뭐야?” 유슬라니안 연합군은 웅성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가 바로 타르나토스 신성군을 학살한 악마라는 사실을 말이다. 만일 알았다면 이렇듯 술렁이며 허공의 사내를 구경하듯 바라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야 했을테니까. -너희도냐? 너희도 날 죽이겠다고 했냐? ‘너희도?’ 멀리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있던 아이린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뭔지 모르겠지만 불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아직도 가시지 않고, 하늘로 치솟고 있는 빛기둥, 그리고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정체불명의 사내! 그 둘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 사내의 손끝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파직!파지지직! “저게 무슨 소리지?” “뭔지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병사들이 슬슬 뒷걸음질쳤다. 그것은 본 사내가 일갈을 내질렀다. -크크,좋다! 어디 한 번 죽여 보아라! 사내가 팔을 번쩍 들어올린 순간, 번개가 쏟아졌다. 콰직!콰지지지직! “으,으아아아악!” 갑작스러운 공격에 기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단장급 기사들은 마나를 이용해 전력 마법을 막아냈다. 물론 그것으로 금세 모든 기력을 소진하고 말았지만. 땅이 녹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얼마나 거대한 에너지가 퍼부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 때, 하늘 위로 한줄기 빛이 날아갔다. 그리고 굉음! 퍼억! 아이린 드 크리센도르, 아이린 공작의 공세였다. 손바닥으로 그의 공격을 막아낸 사내가 미소를 머금었다. 씨익 “커헉!”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갑자기 아이린 공작의 허리가 앞으로 꺾였다. 동시에 터져 나온 처절한 비명소리! “케엑!켁!” 비명을 흘리면서도 그는 지금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자신에게 고통을 줄 존재가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있다면 블루라는 이름의 괴물정도일까? “큭큭, 아프냐?” 그 말은 조롱에 가까웠다. 순간, 눈을 크게 뜬 아이린 공작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한 것이다. “오호, 냉정이라......재미있구나, 인간이란!” ‘인간이란?’ 잘못된 언어의 선택으로 들리지 않았다. 확실하게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고 밝히는 듯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스파크가 일고있는 주먹이 자신의 옆구리를 파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허공을 발로 차고 가까스로 피햇다 싶은 순간, 사내의 주먹은 아이린 공작의 안면을 갈겼다. 퍼억! “크흑!” 믿어지지않는다. 자신의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빠르기라니! 흡사 그 녀석과 싸우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순간 아이린의 공작의 얼굴빛이 변했다. 블루가 머릿속에 떠오르자 가슴속에서 뭔가가 이글거리며 타올랐기 때문이다. 파팟! 아이린 공작의 검이 하나의 선이 되어 사내의 목을 노렸다. 기필코 죽여 버리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이는 한 수 였다. 그러나 사내의 신형은 이미 저 편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으득! 아이린 공작이 이를 악물었다. 순간 아이린 공작도 하나의 빛이되어 하늘로 쏘아졌다. 두 개의 빛줄기가 서로 엉키기 시작했다. 쿠궁! 쿠궁! 쿠구구구궁! 두 개의 빛줄기가 서로 부딪힐 때마다 거대한 굉음이 터졌다. 마치 하늘이 울부짖는 것처럼 말이다. 콰과과광! 대기가 갈라지기라도 한 것일까? 거대한 충격파에 밑에서 지켜보던 사람들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붉은빛과 환한 빛이 서로 엉키며 부딪혔다가 흩어지는 장면만 보일 뿐이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에 손에 땀을 쥐었다. 그때부터였다. 쿠르릉! 솨아아아아! 먹구름이 깉게 깔리며 비를 퍼붓기 시작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미 인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어찌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의 충돌로 대기가 흔들리고 먹구름이 형성되겠는가! 인간의 머리로 그것을 이해하려 든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노릇이었다. “타핫!” 퍼퍼퍼펑! 아이린 공작의 검 끝에서 터지는 작은 폭발음. 잔 공격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다.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는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자신이 포기하는 순간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 때 주변에서 압박이 들어왔다. 수백의 기운이 자신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제길! 날 언제까지 가지고 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아이린 공작의 외침과 동시에 전신에서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은 아이린 공작한테 날아가던 모든 기운들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콰콰콰콰쾅! 거대한 충돌음이 연이어 터지며 대기를 밀어내는가 싶더니 한순간 주변의 모든 것을 쓸어버릴듯한 강한 후폭풍이 되어 되돌아왔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되어 지상을 습격했다. 휘오오오! “이건 또 뭐야?” “으,으아아악!” “주변의 아무거나 붙잡아! 흡쓸리면 끝장이다!” 노련한 기사들의 외침은 폭풍에 휩싸여 병사들의 고막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결국 백여명의 병사들이 그 돌풍에 휩쓸리면 끝장이다!“ 노련한 기사들의 외침은 폭풍에 휩싸여 병사들의 고막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결국 백여명의 병사들이 그 돌풍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그 이후, 그들은 영원히 볼 수 없었다. 조금 전 돌풍이 언제 있었냐는 듯 맑게 개인 하늘. 바닥에서 뒹굴던 병사들은 저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점처럼 보이는 아이린 공작과, 그 상황을 연출해낸 원흉을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한 번 자빠진 사람들은 다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또 무슨일이 벌어질 지 몰랐기 때문이다. 또 다시 돌풍이 불어닥친다면, 이번엔 자신들이 사라질 차례였다. 이런 것을 바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하는 것인가! “대체 네놈은 누구냐?” 아이린 공작이 나직한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그의 눈에 분노가 가득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른단 말이냐?” “당연히 모른다!” “흠......” 묘한 눈으로 아이린 공작을 바라보았다. 존 라이튼은 분명 이들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오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곧 그들이 자신을 모른다고 한 이유를 깨달았다. 저들은 저기 얼굴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니 우스웠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죽이겠다니! 스스로 납득한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대체 네 놈은 누구냐?” 질문을 던진 아이린 공작의 눈을 주시하던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놈은 내 이름을 직접 들을 자격이 있다.” “.....” “나는 아스타로트다.” 꿈틀! 아이린 공작의 안면이 크게 반응했다. 설마설마 했던것이 사실로 밝혀진 탓이다. “정말 마왕이란 말인가....!” “마왕? 큭큭큭, 재미난 호칭이군. 뭐, 그렇다고 치지.” “어떻게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냐?” “흠, 글쎄, 그것은 말하기 힘들군. 약속을 했거든.” “약속?” 아이린 공작은 쉬지 않고 계속 말을 건넸다. “그렇다면 중간계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냐?” 그말에 아스타로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하지 않은가! 바로 세상의 멸망을 위해서지, 큭큭큭!” 거짓말이 아니다! 아이린 공작은 그것을 확신 할 수 있었다. 순간, 그는 들고 있던 다크 세이버를 다시 한 번 힘껏 거머쥐었다. 그러자 아스타로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큭큭, 계속 싸우고 싶은가? 물론 네 녀석이 인간으로 보기 힘들정도로 강하긴 하지만, 너도 알고 있을텐데 내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물론! 하지만 내 눈으로 멸망을 보느니 죽음을 택하겠다!” “역시 인간이라는 건가?” “인간이 어쨌다고 자꾸 인간인간 하는 것이냐?” 아스타로트는 다시 입꼬리를 살짝 비툴었다. “인간이 어떻냐고? 이기적이고 가학적이며 잔혹하고 더럽고 추잡하며 탐욕적이지. 더 말해볼까?” 어째서인지 반박하기 힘들었다. 단지 비꼬는 것만이 아니라 제대로 핵심을 짚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심인 것 같았다. “후후, 어때 재밌지 않은가?” “재미?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 재밌단 말이냐?” “사람? 사람이 어떻다는 거지? 너는 개미를 죽이면서 슬퍼하는가?” “그,그건.......” 마왕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그렇게 보일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위치에서 보면 인간이 하등한 존재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마신이라 해도 신은 신 아닌가! “내 눈에 네놈들은 단지 이성을 가진 개미일 뿐이다. 조금 비명을 지를 줄 알고 어디가 아픈지 말할 수 있을 뿐인 개미인 것이다. 주인을 따르는 개를 때려죽이고 고기를 먹는 네놈들이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물론 네놈들이 힘과 지식을 가졌으니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 입장으로 볼까? 미안한 말이지만 네놈들 역시 내 먹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바로 그 때 그의 등 뒤에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내 입장도 들어줄 생각이 있는가?” 흠짓! 아르타로트와 아이린 공작이 동시에 뒤돌아보았다. 기척을 숨기고 지척까지 올 수 있는 실력자가 있었다니! “블루?” 그는 블루였다. 그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아이린 공작과 아스타로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블루!블루!” 텐시의 외침에 추세흔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텐시가 추세흔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그린 경, 혹시 대장 못 봤어요?” “봤소.” “와, 잘됐네요.그럼 지금 어디 있는지 알겠네요? 지금 중요한 회의를 해야하는데 못브이 안 보여서 한참 찾았거든요.” 그 질문에 추세흔의 시선은 빛기둥 쪽으로 돌아갔다. “서,설마?” “빛기둥 쪽으로 날아갔다.” “정말인가요?” “나도 가고 싶었지만, 남아서 이 곳을 지켜달라고 해서 남았다. 뭔가 큰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어째서 나에게 이 곳에 남으라고 한 것인지......?” 텐시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블루는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위인이고, 과격한 성향도 있지만, 불필요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 움직임엔 늘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아마도 저 빛에서 뭔가를 느낀 것이리라. 그렇지 않아도 저 빛 때문에 회의가 소집된 터라, 그녀의 표정은 굳어질 수 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블루의 의견은 들은것이나 다름없었다. 뭔가 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린 경, 저와 함께 가시죠.” “그러지.” 씨익 블루는 말없이 웃었다. 자신을 그토록 분노하게 만들었던 미소였건만 오늘은 반갑기까지하다. 그가 믿음직스러웠다. 적으로 만난다면 최악이지만, 적의 적은 친구라 하지 않던가! 블루를 동지적인 입장으로 얼굴을 마주 대하자, 이처럼 든든한 존재가 없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자네였군.” 마치 짐작했었다는 듯이 말하는 블루. 블루의 입술이 작은 경련을 일으켰다. “나를 아는가?” “물론! 아, 그 몸 주인을 잘 알고 있었지.” 아스타로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처음으로 감정이 드러난 것이다. “에스티마르라는 친구였지. 정말 괜찮은 친구였는데, 음식도 잘 만들고 말이지. 그런데 꼴을보니 죽은 것 같군.” 회한에 잠기는 눈빛이었다. 진심으로 명복을 비는듯한. “그런데 아스타로트라 했던가?” “그렇다, 인간. 그런데 자네도 보통 인간은 아니군.” “음....?” “하지만 이곳의 영혼도 아니군.” 흠칫! 블루의 표정이 완전히 경직되었다. 그러나 아스타로트는 전혀 신경쓰지않고 눈을 감고 코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흐음, 하아....! “역시 냄새가 틀려, 확실해. 다른 세상의 존재군. 큭큭큭, 이것 참 흥미로운걸?” 블루는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블루의 그 감정은 고스란히 겉으로 드러났다. 휘이이잉! 블루의 반응에 맞춰 움직이듯 블루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바람! “뭐지? 인간이 자연의 힘을 다스리다니!” ‘자연의 힘?’ 아스타로트의 말에 아이린 공작은 놀란 얼굴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눈빛에 경악이 어려있었다. 지금까지 여유롭던 아스타로트의 표정도 변했다. 그러나 아이린 공작과는 달랐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호기심이었다. 거기에 흥겨운 미소까지 더해져 있었다. 순간, 아스타로트의 전신에서 붉은 오러가 뿜어지며 주변을 밝혔다. “재미있겠군.” “그렇지? 참 재미있겠지?” 블루가 대꾸했다. “큭큭큭큭!” 아스타로트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말이지.” “무지?” “혹시 더러 사람이 사자한테 물려죽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아닌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블루는 아스타로트의 얼굴에 무형의 기운을 터뜨렸다. 콰광! 그 엄청난 힘이 가져온 파급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대기가 찢기며 강력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직격 당하면 그 누구라도 산산조각이 되어 흩날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에 속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큭큭큭, 따갑군.” 그 말에 아이린 공작이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멀찍이 서 있던 자신조차 적지않은 타격을 입고 말았는데, 흠집하나 생기지 않다니! 아스타로트의 붉은 눈이 안광을 뿌렸다. “그럼 어디 한 번 놀아볼까?” 쿠오오오오! 아스타로트의 전신에서 피어나는 살기! 대지가 흔들렸다. 동물들이 놀라 날뛰고 이성이 존재치 않는 풀과 나무조차 몸을 부르르 떨며 반응했다. 뿐이랴. 지켜보던 병사들 대다수가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드래곤 피어도 이 정도는 아닐 터였다. 그 거대한 살기에 블루와 아이린 공작이 몸을 움츠릴 수 밖에 없었다. “자, 본격적으로 놀아보자!” 파팟! 아스타로트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거의 동시에 블루와 아이린도 한줄기의 빛이 되어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뇌전과 바람이 불어 격돌하며 생성되는 파장에 땅이 갈라지며 거대한 지진이 발생했다. 그것은 블루의 주먹과 아스타로트의 주먹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맞부딪히며 생긴 현상이었다. 퍼벅!파박! 퍼버벅!파바박! 서로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못한 채 끊임없는 공방이 이어졌다. “흐흐흐!” 왠지 즐거웠다. 목숨을 건 싸움인데도 이렇게 흥겨울 수가 없었다. 씨익 블루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을 본 아스타로트의 입가에도 같은 미소가 걸렸다. 다시 블루의 오러가 맺힌 주먹이 아스타로트의 안면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아스타로트의 주먹도 블루의 복부를 향하고 있었다. 싸움구경이고 뭐고 정신없이 도망친 바람에 병사들은 피해가 크지 안았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싸움은 구경할 만한 것이 아니다. 자연재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서 튀어! 도망치란 말이야!” “으아아아아아!” 저 멀리 개미만큼 작은 인간들이 우왕좌왕 뛰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콰지직! 콰지직! 블루와의 싸움으로 사방팔방으로 폭렬하는 번개를 아이린 공작은 힘겹게 막아냈다. 지상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마음에 서였다. 그러던 중 오러 블레이드가 뇌전의 기운이 맺힌 탓인지, 옅은 푸른색으로 변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아이린 공작은 그 즉시 아스타로트의 뒤쪽을 공략했다. 믿어지지 않지만 그것은 이기어검술이었다. 아이린 공작이 블와의 싸움으로 얻어낸 심득으로 완성한 필살기로 플라잉소드라는 이름까지 붙여두었다. 블루와의 결전에 대비해 숨겨둔 것을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왼지 아까웠지만, 동시에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왕이라니! 이거 반칙아냐!“ 쿠슈슈슈슈슈! 천변만화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다크세이버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블루와 손속을 겨루고 있던 아스타로트는 자신의 팔을 뒤로 뻗어 공격을 모조리 무화시켜버렸다. 거기서 그치치 않고 보지도 않고도 검의 변화를 모조리 읽기라도 하듯, 검면을 튕기며 반격까지 가해오는 것이었다. 팡팡! 블루와의 싸움도 계속되고 있었다. 주먹다짐으로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블루는 자신의 심득을 마음놓고 사용했다. 순간, 세상의 삼라만상이 칼날로 변했다. 그는 생각만으로 모든 자연과 사물을 검으로 변화시키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바람, 물방울, 낙엽, 머리카락..... 심지어 먼지까지도 칼날이 되었다. 츠팟!츠팟! 그러나 아스타로트의 옷깃하나 건들지 못했다. 아스타로트가 웃었다. 저 미소! 갑자기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아주 징글징글했다. 터엉! “커헉!커허헉!” 다크세이버를 통해 전해지는 아스타로트의 반격, 그 반탄력을 이기지 못하게 튕겨져 날아간 아이린은 각혈을 하고 말았다. 얼굴이 하얗다 못해 창백하기까지 했다. 플라잉소드를 사용하느라 마나와 심력을 많이 사용한 탓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전력을 다한 자신의 공격이 눈앞의 괴물한테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조금 전 그와의 결투에서 비등한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다는 말이 아닌가! 정작 저자의 말대로 그는 실컷 농락을 당하고 있었던것이다. 아이린은 손을 늘어뜨린채 숨을 헐떨거리며 그와 무관하게 싸우고 있는 블루와 아스타로트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의욕을 상실한 것이다. “......” 아이린 공작은 블루의 몸에서 떠오르는 다섯 개의 무형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곧 검의 형태로 변하는가 싶더니, 자신이 사용한 플라잉소드처럼 움직이는 것이었다. 동시에 지금까지 한 없이 여유롭던 아스타로트의 손속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역시 블루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블루가 지금 아스타로트와 비등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검 하나하나의 위력은 자신의 플라잉소드애 비할 바가 아니었다! 더 빨랐고 더 자유스러웠다. 그리고 더 강했다. 형체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튼 그것은 아이린에게 경악과 함께 놀라움을 선사했다. 아이린은 숨을 멈춘 채 블루의 전투를 바라보았다. 저런 기술이 있으리라곤 전혀 상상도 못했다. 숱한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중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것은 바로 십년전, 자신의 아들인 슈리오와 대련이었다. “덤벼라!” “에이, 아버지. 어떻게 나뭇가지를 든 아버지르 상대해요. 아버지께서 강하시다고 하시지만 그건 오버라고요.” 순간 아이린 공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내가 가마.” 츳!츠팟! 팡!파팡! 그것은 나뭇가지에서 나올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뒤늦게 긴장한 슈리오가 자신의 검을 꼬나쥐고 전력을 다했지만 이미 늦었다. 아이린 공작의 나뭇가지가 이미 자신의 목을 긋고 지나친 후였던 것이다. “........!” 꿀꺽! 공작이 말했다. “검이라는 것은 누가 들고 있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변한다. 보통사람이 들고 있으면 그것은 흉기일 뿐 검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들면 이 나뭇가지까지도 검이 될 수 있다. 그 검으로 이 나뭇가지를 내리쳐 보아라.” 슈리오는 군소리 없이 나뭇가지를 전심을 다해 내리쳤다. 창! 소음과 함께 슈리오의 검이 튕겨져 나갔다. “.........!” 슈리오가 놀란 눈으로 할 말을 잃었다. “놀랄 것 없다. 이 나뭇가지에 검에 넣었던 오러를 주입한 것일 뿐이니까” “헉! 나뭇가지에도 오러가 가능하단 말입니까?” “멍청한 녀석! 검 역시 팔의 연장선일 뿐이다. 당연히 이 나뭇가지 역시 팔의 연장선이다. 검의 존재적 가치가 무엇이냐? 바로 상대방과 거리의 이점을 두기위한 도구가 아니더냐? 너한테는 검이 그렇듯 나한테는 이 나뭇가지 역시 그런 도구다. 그런데 어찌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단 말이냐?” “.......” 바로 그거였다. 나뭇가지에도 맺힌 기운! 그런데 어찌 허공에 맺힐 수 없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아들의 고정관념을 훈계했던 그 역시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아이린 공작의 눈에서 거대한 안광이 뿜어졌다. 동시에 그 주위로 거대한 무형의 기운이 맺혀지기 시작했다. “제길!” 블루의 입가에 맺힌 웃음이 차츰 옅어져갔다. 거듭된 자신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음이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원천 봉쇄당한 탓이었다. 아스타로트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형의 기운을 사용 할 줄 알고 있었다. 아니, 자신보다 한층 자연스러웠다. 블루는 슬쩍 아이린 공작한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함께 싸워야 하는 순간에 가만히 서 있는게 아닌가! 깨달음에 임박한 상황인 것을 알면서도 짜증이 나려고 했다. 축하해 줄 일이지만, 하필 이런 때 깨달음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블루는 슬그머니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아슈를 더듬었다.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보통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그는 신이었다. 마신! 그것이 블루로 하여금 검을 들게 했다. 블루 역시 검사이다보니 검을 들고 들지 않고의 차이가 컸다. 단지 지금까지는 쓸 이유를 느끼지 못해 자제했을 뿐이다. 과거에 검을 뽑을때도 자신의 모자란 힘을 보충하기 위함이었다. 평소 자신에게는 검이 필요 없다고 피력해온 그였지만, 그것도 상대가 일반적인 사람일 때에 한 한 것이었다. 적을 무형검으로 죽이든 몽둥이로 죽이든 죽는 것은 똑같으니까. 하지만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선 검이 필요했다. 힘이 달리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녀석에게는 검을 들고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아슈가 필요했던 것이다. 녀석은 보통 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검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보검과 그냥 검의 형태를 지닌 것. 보검이 어째서 보검이라 불리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슈는 그 보검의 성질을 넘어선 존재였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검! 그래서 더더욱 뽑지 않았던 것이다. 닭 잡는데 소잡는 칼을 사용 할 수 없지 않는가! 이제야 그 검에 맞는 상대를 만났으니 꺼내는 건 당연했다. ‘설마 이것으로도 모자라진 않겠지?’ 속으로 씁슬한 미소를 짓는 블루. 하지만, 아슈의 그립을 움켜쥐자 손바닥에 감겨오는 느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스릉! 매끄럽게 검이 뽑아지며 일어나는 검명! 그때 블루의 몸이 흠칫했다. 아슈가 허공에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팔에 힘을 가해도 얼어붙은 것처럼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블루가 의아한 어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슈?아슈!” 바로 그 때, 아스타로트는 몸이 뻣뻣하게 경직되고 말았다. 그의 시선은 아슈에 고정되어있었다. 경악으로 물든 눈빛! 그가 비명을 질렀다. “아, 안돼!” 순간 아슈의 검신에서 뿜어지는 거대한 빛! 츠파파파파팟! “크아아아악!” 아스타로트의 처절한 비명이 고막을 후벼팠다. 동시에 강렬한 빛이 사위를 밝혔다. 블루조차 눈을 뜨기 힘들만큼 밝은 빛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빛이 흡사 태양의 그것처럼 강렬했기 때문이다. 빛이 잦아들고 검을 꼬나 쥔 순간, “블루?”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블루블랙의 장발머리를 흩날리는 사내가 머리색보다 좀더 짙은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블루를 주시하고 있었다. 순간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사내를 주시하던 블루가 말문을 열었다. “에스티마르.....?” 제1부 다이아몬드를 다듬는 법 “에스티마르?” 블루의 질문에 에스티마르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흔들리는 눈빛으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블루?” 그때 마침 정신을 차린 아이린 공작은 의아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블루와 마왕의 대치상태에 변화가 생겼음을 알아챈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지?” 아이린의 질문에 블루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아직 잘...... 우선 깨달음을 축하드립니다.” “고맙군.” 블루의 말이 진신임을 깨달은 아이린 공작은 정중하게 말을 받았다. 하지만 블루의 시선은 여전히 마왕에게 가 있었다. 무슨 돌발적인 상황이 연출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블루는 자신의 좌우에 무형의 기운을 띄워놓은 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도록 포지션을 잡고 있었다. 그때 마왕의 시선이 움직였다. 움찔! 그가 무형의 기운을 던지려는 찰나, 마왕이 말문을 열었다. “설마 이 상황은 .....? 블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렇군요. 제가 한 짓이었군요.” 의기소침한 에스티마르의 반응에 블루와 아이린 공작은 허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에스티마르가 블루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랜만의 재회인데, 미안하게 됐군요.” “뭐 미안할 것까지야.” “......” “가능하다면 에스티마르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군. 전혀 모르는 표정은 아닌 것 같은데...... 이 모든 상황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표정이었거든, 아닌가?” 블루의 물음에 에스티마르는 흐릿하게 웃었다. “당연히 짐작할 수밖에요. ‘지금의’ 전 어둠의 백작이라 불리는 아스타로트의 화신이니.......” 말을 마친 에스티마르는 무의식중에 자신의 귀와 목을 어루만졌다. 이미 봉인이 풀렸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혹시나 해서였다. 블루가 물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정신을 차린 거지? 정말 에스티마르가 맞긴 맞는 것인가?“ “블루라면 제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스티마르의 대답에 아이린 공작은 의혹이 깃든 시선으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공작의 시선을 느낀 블루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확실히 친숙한 것이었다. 그래서 더 의아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대체 어찌된 상황인지 설명해줄 수 있겠소?” 아이린이 묻자 에스티마르는 쓴웃음을 지우며 블루한테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블루가 들고 있던 검 쪽이었다. “아마도 저것 때문인 것 같군요.” “이것?” “블루, 그게 어디서 나셨죠?” “드래곤 레어라는 곳에서 찾았는데 ...... 무슨 이유가 있나?” 에스티마르는 침중한 표정으로 블루를 주시했다. “그 검을 들었을 때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그제야 잠시 잊고 있던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이 검 한테 잠식당해 몸을 빼앗길 뻔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우습다. 죽다 살아났는데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생각해보니 그런 일이 있었지.” “그 검의 이름을 아십니까?” “ ......까먹었네. 뭐 지금은 아슈라고 하지. 내가 직접 지워줬는데, 괜찮지 않나?” “아슈라고요?” “별론가?” “아니요, 귀엽군요. 후후. 그런데 원래 이름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겁니까?” “뭐 그런 자잘한 것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다보니.” 블루의 뻔뻔한 대답. “후후” 에스티마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블루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푸근해진 탓이다. 그때 아이린 공작이 뭔가 깨달은 듯 입을 열었다. “혹시 ...... 마검 아스타로트!” “맞습니다.” 에스티마르의 확답을 듣자 아이린 공작의 눈가에 작은 경련이 일었다. 마검 아스타로트! 그것은 전설처럼 전해지는 검이다. 이제 갓 말을 배운 아이들조차도 알고 있는 것을 검사인 자신이 모를 리 있겠는가! 아스타로트의 파편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균형에서 무게 그리고 중심까지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검 검사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한 검. 문제는 그것을 지니게 되면 아스타로트가 남긴 사념에 잠식되어 광전사가 된다고 전해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마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다니다니! 새삼 블루가 대단해보였다. “그런데 그것을 들고도 아무렇지 않던가?” “뭐, 별로!” 말을 마친 블루는 아슈의 그립을 움켜잡고 가볍게 휘둘렀다. “......!” 아이린은 바람을 가르는 검명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전설의 검이란 말이 조금도 모자라지 않은 것 같았다. 아이린과 달리 에스티마르는 의아한 눈으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봉인이 풀렸군요.” “봉인?” 에스티마르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아슈는 블루의 손에서 빠져나와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검 아스타로트, 아니 아슈라고 했지?” - 아, 아버지! 아슈의 목소리가 너무도 선명하게 고막을 울렸다. 손으로 잡고 있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순간, 블루는 움찔 몸을 떨었다. 그가 물었다. “아버지?” 끄덕 에스티마르는 지체 없이 수긍을 해주었다. “이 녀석은 제 피부로 만들어진 겁니다. 지금은 별개의 존재이긴 하지만. 인간들이 사용하는 말 중에서 이 녀석과 저의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단어를 찾자면......부자간?”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아주 못 알아들을 정도도 아니었다. 블루는 천천히 아슈와 에스티마르를 번갈아보았다. 마치 ‘이게 에스티마르의 피부로 만들어진 것이라니’라고 말 하는 것 같았다. “네 기억을 다오.” 에스티마르는 그 말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곧 아슈의 몸에서 빛 무리가 뿜어져 나와 에스티마르의 몸으로 흡수되는 듯한 현상이 일어났다. 잠시 후 에스티마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역시 당신은 제가 짐작하던 사람이 확실하군요. 짧지만, 잠시나마 즐거웠습니다.” “아슈를 통해 지금까지의 일들을 본 모양이군. 그게 가능한 일인가?” “당신한테 언어를 선물한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접니다.” “아, 그랬지!” 블루는 새삼스러운 얼굴로 에스티마르를 바라보았다. 다크 엘프숲에서 그를 처음 만난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옛날이라 할 만큼 오래된 것 같군.” “그렇군요, 후후.” “그런데 그때 왜 다크 엘프 숲에 있었던 거지” “누군가의 심부름을 하고 있던 중이었죠.” “심부름?” 블루의 물음에 에스티마르는 말없이 미소로 화답했다. 더 이상 대답할 요의가 없다는 뜻 같았다. 블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뭔지 모르지만 자신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같은 느낌! “하여튼 아주 흥미로운 기억이었습니다.” “재미없게 사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니까.” 그 말에 에스티마르가 화사하게 웃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어투로 흘리듯 한마디 했다. “그래서 ‘그가’ 당신을 택한 것인지도......” “흠?” 에스티마르의 의미심장한 발언에 블루의 눈썹이 다시 한 번 꿈틀거렸다. 그러자 흘러나온 에스티마르의 한마디. “미안합니다.” 동시에 블루와 아이린 공작은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깃털처럼 느렸다. 에스티마르의 힘이 닿았음이었다. 그것은 그의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확인이 가능했다. 사뿐히 바닥에 내려앉은 블루를 지켜보던 에스티마르는 곧 싸늘한 얼굴로 어딘가를 주시했다. 그곳엔 크로타니안 왕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슈우우우! 에스티마르가 훌쩍 날아올라 어디론가 바삐 떠나는 순간, 이곳저곳에 숨어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병사들이 밖으로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고, 공작님!” 블루와 아이린은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뿐, 무슨 말이든 나옴직도 한데 둘은 서로의 존재감을 잊어버린 듯 찻잔만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대장!” 갑작스런 부름에 블루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베르니스였다. 블루의 부름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온 헤르마틴군과 유슬라니안군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런데도 사소한 말싸움 한번 일어나지 않았다. 유슬라니안이 헤르마틴의 병사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결과였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으나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마왕이 출현한 것이다. 결국 대동단결하여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도 마왕의 발등 한번 간질일까 말까하는 마당에 둘이서 옥신각신 힘 뺄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미 마왕의 엄청난 힘을 직접 목격하기까지 했다. 그러기 전까지는 마왕을 소환하든 말든 타르나토스 왕국 정도는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아이린 공작과 블루의 합격마저 손바닥 뒤집듯 가볍게 무위로 돌려버린 그 가공할 파워......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다. 뿐이랴. 수만에 달하는 유슬라니안 대군을 개미 죽이듯 간단히 학살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아니, 이것은 전의의 문제가 아닐지 몰랐다. 문제는 상대가 사람이나 몬스터가 아니라는 것! 어린 시절 전설 속에나 등장하던 마왕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이야기 속에 등장한 마왕과는 차원이 다른, 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힘을 지녔다. 유슬라니안군한테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헤르마틴 병사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치를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블루가 아니었다면, 이미 그들 역시 처참하게 학살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두 도착한 모양이지?” “지금 유슬라니안을 도와 전장을 정리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겁니까?” 블루는 고개를 들고 말없이 베르나스를 바라보았다. “......!” 블루의 그 눈빛이 수만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베르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무, 물론 오면서 대충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마왕이라이뇨! 그게 사실입니까?” “마왕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대도 안 되는 존재가 나타난 건 사실이네. 아이린 공작과 합공마저 간단히 무위로 돌린 것은 물론이고, 난 그의 움직임에 그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한 채 기절하고 말았네.” 블루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갔지만 태연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꿀꺽!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블루가 어떤 사람인가? 하다못해 아이린 공작은 또 어떤가? 드래곤조차 울고 갈 존재들이 아닌가! 그런 그들이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쓰러졌다는데 어찌 그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정말입니까?” “틀림없는 사실이네” “정말로 정말입니까?” “정말로 정말이네.” “정말로 정말 정말 ...... ” 무슨 언어유희도 아니고 결국 참다못한 블루가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텐시가 기다렸다는 듯이 가볍게 베르니스의 뒤통수를 갈겼다. 뻐억! “꾸억!” 어떻게 하면 가볍게 갈기는데도 두개 골이 함몰되는 듯한 소리가 나는지 의문스러울 만큼 타격소리도 크고, 비명소리가 더 켰다. 그 즉시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도끼눈을 뜨고 텐시를 노려보는 베르니스.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텐시가 물었다. 어째서인지 한결 표정이 밝아보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글쎄, 그자가 우리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으면 죽는 수밖에 없겠지.” 장난처럼 들렸으나 블루의 말은 장난이 아니었다. 무성의하게 들리지 몰라도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난 말이었다. 그렇듯 말을 직설적으로 내뱉을 수밖에 없을 만큼 그에게 여유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그자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추세혼의 물음에 블루는 역시 직설적으로 답했다. “그자의 존재감만으로도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였네.” 그 답변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그 역시 그 먼 곳에서 전해지는 거대한 존재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자가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깜깜해졌다. “그럼 이대로 죽음을 기다려야 하나요?” 이어지는 텐시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니꼴라스였다. “강해져야지.” 순간 아이린 공작을 포함한 모든 기사들의 시선이 니꼴라스한테 쏠렸다. 누군가 물었다. “강해 ...... 진다구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는 투였다. 이 이상 어떻게 더 강해진다는 말인가! 니콜라스는 더 이상 훈련으로 강해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더구나 강해진다 해도 아이린이나 블루까지가 한계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모를 리 없을 텐데 저런 말을 하다니!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나름대로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얼른 분간이 안 섰다. 그런 동료들의 마음을 알았음인지 니콜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블루와 아이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다이아몬드를 다듬는 방법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몬스터와의 쓸데없는 소모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사실 이미 타르나토스는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의 사악한 행위가 낱낱이 드러났고, 그로 인해 생긴 명분만으로도 자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타르나토스 귀족들은 이미 너나 할 것 없이 백기를 든 상태였다. 그 수가 팔 할을 훌쩍 넘었다. 절반이 넘는 영주들이 마왕의 정체를 알아차리자마자, 굳게 닫아걸고 농성하던 성문을 열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마왕의 하수인이란 오명을 떨쳐버리기를 원했고, 실제 실토하기까지 했다. 성문을 열지 않은 자들은 음으로 양으로 그 일을 거든 자들이거나, 이 왕국의 녹을 먹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죄를 물을까 두려워 농성을 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그들도 열고는 싶었다. 눈앞에 있는 헤르마틴과 유슬라니안 군대가 몰려올 경우, 병법이고 나발이고 전혀 통하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병법도 전력이 엇비슷한 상황에서나 통하는 것이지, 이처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만큼 차이가 현저한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지지부진한 소모전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 헤르마틴과 유글라니안 그리고 타르나토스 군대가 갑자기 진군을 멈췄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군을 멈춘 것은 두려워서다. 그 결과 마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는 것처럼, 어느 곳을 기점으로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저 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쉽지만, 그로 인하여 혹시라도 마왕이 다시 불러들이기라도 하면 낭패를 당할 수 있었다. 이미 자국과 타국에 원조요청을 해놓은 상태지만, 그 일은 생각처럼 쉽게 성사되지 못했다. 그들이 연락을 회피한 탓이다. 이것은 동화나 전설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성이 한 방에 날아가고 수천 명이 ‘그의 손짓’ 하나에 죽어나가는 말 같지도 않은 현실. 더구나 세계 최강의 검사인 아이린 공작조차 한 수에 쓰러지고 말았다는 소문이 돌자, 그 역풍은 거셌다. 그가 당했다면 주가 덤비든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사실 인간의 힘으로 마왕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심각하군.” “이미 짐작하던 상황이 아닙니까?” 아이린 공작의 발언에 황실에서 지원을 나온 미투스 공작이 덤덤하게 말하면서 한 숨을 내쉬었다. 그도 답답했던 것이다. 자국의 힘을 빌려 압력을 가한다면 분명 군력을 끌어올 수는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자각이 필요한 탓이었다. 자각이 늦어져 곤란을 겪기 전에 깨닫기를 바랐다. 헤르마틴과 유슬라니안이 쓰러지면 그 다음은 자신들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이 와봤자 전력에 도움이 되는 것은 별로 없겠지만. 몇몇 절대자의 전투가 이 전장을 마무리할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린 기사단 수장이라던 그린 경 능력이 그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한순간에 수백의 몬스터를 얼려 터뜨려버리던 그의 가공할 힘에 경악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중원이란 땅에서 절대마공이라 불리던 구음진경의 힘이란 사실을 아는 자는 블루밖에 없었다. 그게 마공이든 신공이든 지금 확실한 것은 그가 자신들의 든든한 전력이라는 점이넜다. 그 믿음은 말을 꺼내는 미투스 공작의 밝은 안색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강력한 아군은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기 마련이다. 그것은 절대강자로 통하는 아이린 공작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저번 마왕과의 전투에서 블루의 등을 바라보며 든든한 마음의 위안을 느끼지 않았던가! 그린이란 자도 과거엔 적이었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의 전력이었다. 언젠가 다시 적으로 돌아설 수도 있지만,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할 일이었다. 국가는 물론 세계가 사라질 위기가 눈앞에 닥쳤는데, 밥그릇 싸움을 하는 바보짓은 의회에 있는 머저리들로 충분했다. 밥그릇도 쌀이 있고 나서 필요한 법. 지금은 적아의 구별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료가 되어야 할 때였다. 마왕이란 사상초유의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더구나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수하 셋도 마스터 경지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왜 블루 경 주위에 그런 강자들이 들끓는 것인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 말에 아이린 공작이 대답했다. “나는 알 것 같기도 하오.” “아실 것 같다고요?” “아닐 수도 있지만 아마도 맞을 것이오.” 애매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검술의 천재라는 자들 중에서조차 수좌를 차지하는 아이린 공작이 아닌가! 그가 쓸데없는 말을 할 리 없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아이린 공작이 말했다. “내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오.” “강해지고 있기 때문......?” 그의 강함은 알고 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과거에도 강했지만, 지금은 말로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강한 마나의 율동이 느껴졌다. 그 거대한 힘에 마치 대자연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때는 정체된 삶을 살고 있었소. 이것이 검술의 끝인가 생각했지. 허탈했소. 이것이 설마 무(武)의 완성이라 생각하니 기가 막히더군. 삶의 의욕이 사라지고 목이 마르더군.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지. 하지만 난 믿지 않았소. 그래서 검을 휘두르고 명상을 해보았지. 그럼에도 더 이상의 길은 보이지 않았소. 막혀 있는 벽도 존재하지 않았소. 그 어떤 의문조차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오. 어째서 더 강해지지 않나 라는 의문조차 없었소. 나보다 강한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오. 과거에도 현재에도 말이오. 헤르마티아 대륙을 일궈낸 헤르마티아 대제가 있었다고는 하나, 나는 그것을 단지 전설이 부푼 것으로만 생각했소. 인간이 드래곤보다 강하다니! 그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이오.“ “물론입니다.” 아이린 공작의 말에 미투스 공작이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그때 그가 나타난 것이오.” “블루 드레곤을 잡으러 가셨을 때 말씀이시군요.” 끄덕 “생소했소. 그리고 놀라웠소. 그가 사용하는 검술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운용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소. 더구나 나보다 강한 자가 아닌데 절대자만이 지닐 수 있는 기운이 그의 몸에서 풍겨져 나왔소. 난 그것에 질렸지.” “절대자의 기운?” “그런 게 있소. 나는 그를 보며 어째서인지 헤르마티아 대제가 떠올랐소. 그가 현존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지. 그 당시엔 죽여야만 했기에 목숨을 노렸지. 하지만 결국 놓쳤소. 그리고 난 그때의 기억으로 하나의 단계를 더 넘어설 수 있었소. 그제야 깨달았지. 벽이 너무 높아 벽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오. 본능이 스스로 그 벽의 존재를 무시하고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지.“ “하하, 설마 그랬을 리가요?” “사실이오!” 아이린 공작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소.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넘어선 단계를 넘어서 있었고, 감히 올려볼 수 없는 위치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더군. 우스운 말이지만, 그 덕에 나는 그자를 보며 한계를 버릴 수 있게 되었소. 스스로가 정하는 한계란 얼마나 우스운가를 블루라는 사내를 보며 깨닫게 된 것이지.” “스스로가 정하는 한계라고요?” “아마 당신도 알 것이라 믿소. 마법사들이 지니고 있는 서클이라는 개념이 주는 바보놀이의 정체를 말이오.” 미투스 공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법사를 비하하는 발언처럼 들려 왠지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라 하진 않았다. 그게 사실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을 가둔 틀 하나를 깨고 넘어서면 몇 서클 마법사다, 대마법사다라지 않소? 그런데 어찌 우습지 않단 말이오? 헬 파이어를 사용할 줄 알면 모두 대마법사가 되는 것처럼 착각하니 말이오. 파이어 볼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유용하고 적절하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헬 파이어 이상의 효과를 가져온다는 상식을 모르는 이가 부지기수더군. 그게 바로 서클이라는 것이 만들어낸 바보논리요.” 그 말에 미투스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저 말을 자신의 머저리 같은 제자들한테 해주고 싶었다. “알고 있습니다.” “후후, 그런데 말이오. 곰곰이 생각해보니 검술도 같은 선상에 있더군. 어웨어, 익스퍼트, 마스터 등등...... 마법보다 약간 실전일 뿐이지 서클의 바보논리와 다를 바가 없어. 수준급이라면 확실하게 자신보다 낮은 적들을 제압해야 하는데, 눈먼 칼에 찔리기 일쑤거든? 그래서 자는 틀을 벗어나는 법을 생각하게 되었소.” “틀을 벗어나다니요.?” “흠, 이렇게 설명하면 빠르겠군. 마법사 쪽으로 틀을 벗어난 존재라고 한다면 환광술사 존 라이튼 정도가 되겠군. 잘은 모르겠지만, 검사이인 나와 대등한 능력의 마법사라면 아마도 그일 것이오.” “그렇군요.” 미투스 공작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이린 공작의 강함은 인간을 넘어서 있었다. 영상을 통해 그가 싸우는 장면을 견식하지 않았던가! 그는 마나로 하나의 완전한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법사인 그는 그 일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드래곤의 용언마법에 비견되는 것이었다. 모든 건 하나로 통한다고 하더니 (萬流歸宗), 과연 마법이나 검의 극의는 같은 것이었던가 보다. “그를 만나는 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소. 어웨어로 만족하거나 익스퍼트로 만족하는 지금의 검사들과 달리 한계에 대한 의문 따위를 하지 않았소. 그러다보니 당연하다는 듯이 마스터 경지를 넘은 자들이 속출하는 것이고, 지더라도 다음에 이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흠 .......” 미투스는 한참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정답인 것 같았다. 자신의 한계를 의심하지 않는 것! 자신이 강해지고 주변에서 강해지는 모습을 보며 더욱 궁리하고 움직이니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공작께서는 지금보다 더 강해지실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그 질문에 아이린 공작이 가볍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사실 모르겠소.” “예?” 당황한 미투스 공작의 입에서 의문사가 터져 나온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그토록 열변을 토하던 자신의 말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이린 공작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으로선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오.” “ ......! ” “이미 나는 내가 두려울 정도로 강해졌소. 한 주먹에 바위가 모래알이 되고 강철이 종잇장처럼 구겨지오. 언젠가부터 세상에 대한 현실감이 사라지고 있었지. 그런데 이번의 깨달음으로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임을 알게 되고 현실을 깨우치게 되었소. 더 강해졌다는 뜻이지. 그런 나조차 어쩌지 못할 상대가 있음을 알게 되었소. 더군다나 내가 한수 높이 평가하던 블루 경조차 말이오.“ 끄덕 미투스 공작은 수긍했다. 블루라는 괴물이 패했다는 소식에 자신이 되물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나와는 다르게 블루 경과 그의 수하들은 웃으며 말하더군.” “뭐라고 하던가요?” “더 강해지면 된다고, 후후후.” 그 말에 미투스 공작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기가 막혔던 것이다. 그때 미투스 공작의 머릿속에 자신의 스승이 한 말이 떠올랐다. 검을 든 기사는 모두가 반드시 한두 번의 굴욕을 맛보게 된다. 굴욕을 맛본 적이 없는 기사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일류 기사는 수많은 노력을 해서 그것을 빨리 극복한다. 평범한 기사는 극복이 늦다. 그리고 패자는 언제까지나 땅에서 일어설 줄 모른다. 너는 지금 서 있느냐? 아니면 누워 있느냐?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존재가 바로 블루였던 것일까?’ 이제야 미투스 공작은 블루의 진전한 강함을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왠지 소름이 돋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평가한 블루라는 사내. 너무 턱없이 높게 평가했다고 생각했건만, 실은 더 높았다. 그는 자신이 감히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곳에 있었다. 아이린 공작을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그가 지니고 있었을 심적 부담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때 아이린 공작이 미투스 공작을 보며 물었다. “자네 혹시 다이아몬드를 다듬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나?” “예?” 미투스 공작이 무슨 질문이냐는 눈빛으로 두 눈을 껌뻑거렸다. 제2장 존 라이튼의 야망의 끝 모든 건 헤르마틴 선황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라는 인간은 마법연구에 열을 올리던 마법사 중 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때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그곳에서 마법연구나 하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업적에 혼자 만족하는 네오 나르시스트처럼. 선황은 야망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야망에 찬동했다. 그에겐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었고, 그의 언변과 행동은 누구에게나 믿음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내가 그리던 주군의 모습이었다. 단점이 있다면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는 것이었지만, 그 정도는 그가 지니고 있는 매력으로 충분히 커버가 되고도 남았다. 그것을 장점으로 생각한다면 인간미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그의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주준으로 섬긴 것이었다. 물론 커버가 가능한 단점이 그의 목숨과 직결될 줄 알았다면 진즉에 고치게 했겠지만. 그 비극은 내가 자리를 비웠던 사이에 일어났다.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나는 ‘세상의 중심에 헤르마틴을 세우고 싶다’는 황제의 뜻을 따라 잠시 그를 떠나 있었다. 그 가능성을 연구하기 위해서. 반란소식을 늦게 접한 이유는 오지를 떠돌며 지식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란이 터졌다는 소리에 놀라 돌아가려고 하니 이미 손을 쓰기에는 늦어 있었다. 그래도 갔다. 그러나 그곳엔 이미 다른 주인이 버티고 있었다. 나는 모든 의욕을 잃었다. 저 멀리 보이던 상대한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렸다.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탓이었다. 바로 그때, 헤르마틴의 황태자가 살아서 무사하게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순간, 친구이자 주군이었던 선황에게 못해준 것을 돌려줄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행방이 묘연했다. 그래서 내 위치에 대한 흔적을 남겨둔 채 잠시 멈춘 연구를 재개했다. 연구를 거듭했지만 늘 뭔가 미진했다. 이거다 싶어 파고들면 어딘지 모르게 모자랐다. 그럴 때마다 연구서를 탐독했다. 얼토당토하지 않은 논리로 메워진 부분이 눈에 띄었다. 억지로 꿰맞춘, 마치 고의적으로 삭제한 것 같았다. 인간의 역사는 짧다. 그래서 이런 구멍 난 퍼즐과도 같은 현상이 있다고 생각한 나는 엘프의 숲을 찾아갔다. 그들 자료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드래곤과 함께 창세의 시작과 동시에 등장한 그들에게 뭔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인간을 환영할 리 없었다. 운이 좋았다. 한때 함께 마법한 적이 있는 친구 미사메르티 장로의 도움으로 들어설 수 있었고, 그곳에서 인간세상에서는 구할 수 없는 방대한 자료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때, 청년이 된 에스티마르가 돌아왔다. 떠났을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에스티마르와 만나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오래 전 우연히 광기에 휩싸여 힘을 가누지 못하고 주변을 초토화시킨 소년을 잠재우고 봉인시킨 일이 있었다. 소년의 힘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모든 잠재력을 끌어올려 겨우 그를 눌렀다. 그는 내 상대는 아니었지만, 한 나라를 붕괴시키기엔 부족함이 없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에 대해 조사해본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소년이 바로 아스타로트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뒤늦게 정체를 알아차린 나는 그의 위험성을 깨닫고 그의 머리카락을 녹여 다섯 개의 목걸이와 두 개의 귀걸이를 만들었다. 내가 없는 상황에서 또다시 폭주하면 인간에게 더없이 큰 재앙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일곱 개의 단검을 더 만들었다. 소년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인간과의 골이 깊었던 탓이다. 그래서 그를 거둬 내 모든 것을 가르쳤다. 그는 마치 내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그의 정체가 무엇이든 나는 무척 기뻤다. 마지막 수업으로 나는 인간을 보라며 그를 세상에 내보냈다. 그리고 십수 년이 흘러 그가 돌아왔다. 기쁨에 겨워 우리는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게 틀어져 버리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발단은 에스티마르가 자신이 읽던 자료에서 메모해온 엘프의 잊혀진 노래 때문이었다. 그것은 사대신기에 관한 것이었다. 한줄기 빛이 어둠을 뚫고 더 깊은 어둠을 부르니, 그 어둠의 형상은 파리와 같고 크기는 천공을 덮는다. 그의 위용에 고개를 드는 자가 없고 숨조차 잃어버리지만 팔다리는 움직여 죽은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닌 ....... 왜 이 죽음의 노래 속에 사대신기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각고의 노력 끝에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대마왕 벨제뷰트! 그의 힘은 질병과 몬스터를 다스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결국 질병을 거두고 몬스터를 물리치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신이 내린 무기? 아니었다. 그건 멀고 먼 과거, 그보다 까마득히 먼 옛날에 있었던 전쟁의 흔적일 뿐이었다. 인간을 만들어낸 신들의 전쟁 ...... 그것을 경고하는 노래였다. 하지만 그 노래를 부르면서도 엘프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영생에 가까운 삶을 보장받은 이들에게 죽음이란 낯선 단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이용하고자 했다. 이미 여러 문서를 통해 바이너리 트위스터의 봉인을 푸는 방법을 알아낸 상태였다. 봉인이란 마왕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피(Blood)! 순수하고 순결한 엘프의 피가 필요했다. 그것만 있으면 질병과 몬스터를 물리치는 검은, 반대로 질병을 뿌리고 몬스터를 부릴 수 있는 검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힘니다. 다시 헤르마틴을 돌리기엔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아무 엘프나 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엘프들은 곧 조사를 착수하게 될 것이고, 바로 자신이 범임임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게 뻔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장차 은밀히 진행시켜야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랜 고민 끝에 잊혀진 엘프의 노래 중 하나를 퍼뜨렸다. 곧 마왕이 부활할 것이고, 그 마왕은 아스타로트이며 그를 무찌를 수 있는 것은 이 사대신기뿐이라고. 그들은 내 말을 믿었다. 이 무기를 지킴으로 자신들이 받은 영원에 가까운 삶과 타인의 발길을 막아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엘프의 숲은 이 검이 주는 안전지대의 경계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내 계산대로 자신들이 지키던 검에 책임자를 붙였다. 그때 그녀를 만났다. 정령의 딸, 앤 인셀프(Anne Itself)! 그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시간과 분노로 삭아버린 내 마음을 되살릴만큼 예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난 살아있는 게 아니라 복수의 화신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흔든 여인조차 내게는 복수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난 그녀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밝혔다. 그러자 그녀는 흔쾌히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 그녀를 이용할 속셈을 가지고 있는 한편에, 그녀한테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에 쉬웠던 것인지 모른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진심조차 철저히 이용했다. 슬펐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재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기녀에게 말했다. 나를 진전 사랑한다면 그 검을 훔쳐 엘프의 숲 밖에서 나오라고.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흔쾌히 수락했다. 한달음에 달려간 약속장소에서 나는 그녀가 건네준 바이너리 트위스터로 그녀를 죽였다. 그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한 얼굴로 아무런 반항 없이 내 검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말했다. 사랑한다고, 원하던 것을 꼭 이루라고! 동시에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던 그녀는 검에 흡수가 되었다. 그리고 검이 울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후회가 물밀듯이 몰려왔지만 돌이키기엔 이미 늦어 있었다. 눈물로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니, 시간을 다시 되돌린다 해도 나는 그녀를 죽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듯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슬픔이 가실 무렵, 나는 사대신기를 만들어낸 이들의 깊은 배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존재인 엘프들에게 무기를 맡긴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엘프의 피가 필요하다는 것까지도. 그들에게 전쟁이란 쓸데없는 소모전일 뿐이었다. 엘프끼리 검을 들고 싸울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바에야 차라리 세상이 멸망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듯했다. 여하튼 그렇게 나는 바이너리 트위스트를 손에 넣게 되었는데, 예상대로 그 힘은 실로 엄청났다. 그러나 내 욕심은 이미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보다 강한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다,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의 힘을. 순간 엘프의 고문서에서 읽은 내용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과거의 책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확실히 깨달았다. 사대신기는 그의 힘만을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자를 현세로 이끌어내 부활을 시킬 수도 있었다. 그게 위험해 무기를 각 종족에 하나씩 나눠서 맡긴 것이었다. 마신 부황의 가능성을 확신한 나는 마신을 부릴 방법을 찾는 연구를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는 마신이란, 과거에 등장했다가 드래곤 따위한테 죽임을 당한 어설픈 마왕 따위가 아니라 지옥의 왕좌를 노리는 존재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사대신기를 모아 벨제뷰트를 부활시키는 방법도 생각해보았지만, 곧 포기했다. 알아본바 그자는 너무 위험했다. 내가 컨트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것이 아스타로트였다. 그자 역시 벨제뷰트와 맞먹는 힘을 지녔다. 그럼에도 늘 벨제뷰트에게 당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마왕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주위에 아스타로트의 화신이 존재하지 않는가! 마신의 부활! 그것은 내가 건 봉인을 풀어 폭주상태를 만들면 되는 게 아니었다. 마닝ㄹ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강하긴 하겠지만, 과거에 등장한 그저 그렇고 그런 마왕이나 다를 바가 없을테니 말이다. 내 명령도 듣지 않을 테고. 내가 원하는 것은 근런 것이 아니었다. 완전한 존재였다. 그러기 위해선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벨제뷰트를 연구하다가 알게된 사실 ...... 신들의 전쟁에서 벨제뷰트와 마찬가지로 아스타로트의 피부도 세상에 떨어졌는데, 그것으로 마검 아스타로드를 만들어냈다는 것. 그것만 있으면 완전한 존재를 발굴해낼 수가 있었다. 거기다 내가 원하는 성격으로 이성을 변환시켜 내 명령을 잘 듣는 착한 녀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스타로트라는 검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내가 만든 일곱 개의 단검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 검에 원한과 공포를 담으면 마검 아스타로트에는 한참 모자라겠지만 그자를 부를 힘이 생길 거라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그와 비슷한 시기, 또 하나의 노래를 발견하게 된 점이었다. 그것은 마치 내 심정을 노래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그 노래 속에 등장하는 이방인이라는 존재! 아니, 그의 정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보니 고개를 슬쩍 돌리게 되었고, 사대신기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에 에스티마르를 다크 엘프의 숲으로 보내 다크 엘프의 장로와 접촉을 시도했다. 물론 에스티마르에게 모든 진실을 숨겨야만 했다. 이미 그의 사상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을 알았다면 분명 반대를, 아니 오히려 나를 죽이려 했을 것이다. 그가 떠난 사이, 나는 바이너리 트위스터의 힘을 빌려 몬스터 군단을 이끌고 크로타니안을 흡수했다. 그따위 조그만 왕국 정도는 내 힘만으로도 충분히 요리가 가능했다. 그것은 상당히 손쉬운 일이었다. 이틀 정도의 시간으로도 충분했다. 그런 그들을 흡수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몇 가지 말하자면 타국에 대한 이기심과 복수심 그리고 타국에서 이들에게 내리는 좋지 못한 평가를 꼽을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내 몸이 하나라는 점이었다. 나는 진심을 감추고 그들의 야심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모두 가져보고 싶지 않느냐고 말이다. 달콤한 말로 크로타니안을 꼬드겨 세상의 전쟁을 유발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귀족 놈들은 하나같이 같은 녀석들이라 조금만 건드리면 알아서 폭발해주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고 엘프의 숲에 돌아오니, 황태자가 자신을 찾아와 있었다. 사실 그때만큼 기쁜 적이 없었다. 왜 아니겠는가. 선왕의 혈육을 만났는데. 그때 황태자의 주위에 블루라는 사내를 볼 수 있었다. 동시에 난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오는 줄 알았다. 그가 들고 있던 무기 때문이었다. 그 검을 한눈에 알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찾기 위해 고문서를 이미 수백 번도 넘게 보지 않았던가! 마검 아스타로트! 나는 그를 마왕이라고 치켜세우며 달려들었다. 그 검을 뺏는다면 내가 생각했던 일을 좀 더 앞당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힘은 놀라웠다.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이대로 싸웠다가는 필패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일단 뒤로 물러났다. 저 검이 없다고 길이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담담히 그 검을 포기한 것이다. 빨리한 밥이 설익기 마련이고, 서두르다 꼬리가 밟히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자가 황태자 옆에 있다면 그보다 안전한 일이 없을 터였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이 사내를 영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자신이 마왕을 불러내는 이유는 복수할 목적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의 중심을 헤르마틴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세상을 파멸시킬 마왕이 등장했는데, 헤르마틴 기사가 마왕을 무찌른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헤르마틴을 중심으로 돌게 될 것이다. 더구나 마왕을 무찌를 사내라면, 저 정도 실력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선 그를 헤르마틴에 종속시켜야만 했다. 그런 염두를 굴리던 찰나, 그가 여왕의 증표인 블러디 핸드 용병단의 메달을 꺼냈다. 그리고 그 후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흘러가게 되었다. 황태자는 헤르마틴을 다시 혼에 넣었고, 그들의 기사단은 위명을 떨쳤으며, 타르나토스 신성제국과 유슬라니안 제국의 전쟁으로 국력을 약화시켰다. 그리고 마왕의 부활! 어찌 보면 나는 손쓸 방법이 없을 정도로, 정상을 벗어난 변덕쟁이 갓난아이다. 나에게는 정열이 없다. 이를 악물게 할 복수심만 있을 뿐. 그렇다고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꿈을 버렸다면 이런 글조차 남기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나를 욕해도 좋고 침을 뱉어도 상관이 없다. 다만, 기억해주기 바란다. 나 같은 녀석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 과한 욕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차츰 소멸되는 것보다 한꺼번에 타버리는 것이 훨씬 좋다는 걸. 한 사내가 블루블랙의 눈동자로 한참 읽어 내려간 파지를 촛불에 태웠다. 화르륵! 종이는 순식간에 타들어갔다. 그것이 한줌 재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재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가는 파지를 바라보며 사내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걸었다. “고맙군, 존.” “ ...... ” 그러나 죽은 자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에스티마르, 아니 마왕의 싸늘한 시선은 존 라이튼의 시선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음인가. 찌찌찌찍! 수많은 쥐들이 몰려와 존 라이튼의 시체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절친한 자네를 죽이게 되어 미안하구만. 참 재미있는 글이었어. 만약 이것을 먼저 읽었다면 이렇게 죽이진 않았을 수 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자네와 내가 갈 길이 다르다는 것이네. 미안하게도 나는 자네의 뜻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거든. 하지만 ......” 아삭아삭 “다른 것은 몰라도 자네 바람대로 세상의 멸망은 이룩해줄 테니 걱정말게나, 친구. 큭큭큭!” 마왕은 쥐 때 한복판에서 태연하게 걸음을 옮 크로타이안 왕실의 문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가볍게 비틀었다. 순간 뜨거운 열기가 몰아치며 죽음의 향기가 코를 진동시켰다. 폐가 녹아버릴 정도로 역겹고 더러운 공기였지만, 마왕은 폐부 가득 숨을 들이켜더니 하늘을 올려보며 광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 제3장 염화(炎火)의 말(馬) 마왕! 마왕이 등장했다! 이미 십만여 명의 연합군들이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세상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거짓말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이라 치부하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무엇보다 그 빛기둥을 직접 보지 않았던가! 그랬다. 대륙의 끝이라는 아말렌 왕국에서조차 그 빛의 기둥이 목격되었다. 그리고 마왕이 등장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전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그럼에도 아직은 조용하기만 하다. 마치 눈치라도 살피는 것처럼, 아니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다이아몬드를 다듬는 방법?” 끄덕 사람들은 한동안 생각하더니 결국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 가장 강하다는 광물인데, 그것을 어떻게 가공했던 것이지?” 그 말에 니콜라스가 대답하려 했으나 텐시한테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 자르죠.” 그 말에 블루의 눈빛이 반짝였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독제독(以毒制毒)을 말하는 것이었군” “네?” 블루의 알 수 없는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러자 옆에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을 죽이고 있던 추세흔이 말문을 열었다. “독을 더 강한 독으로 제압한다는 뜻이지. 그런데 이런 말을 한 저의를 알고 싶군. 뭔가 방법이 있는 것 같은 어투니 말이다.” 추세흔이 질문에 니콜라스가 답했다. “주군께서 아스타로트와 아슈 이야기를 해줬을 때 문득 생각이 난 겁니다. 아스타로트의 피부로 만들어졌지만, 아슈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하셨지요?” “분명히 그가 그렇게 말했었지.” 블루가 수긍했다. 그러자 니콜라스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아슈가 그의 약점을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 말ㅇ[ 모두의 시선이 아슈를 향했다. 어째서일까? 검집에 있는 검이 흠칫하는 느낌을 받은 것은. 그때 텐시가 물었다. “설마 안다고 해도 그것을 말해주겠어요?” 그녀의 의혹 어린 어투에 베르니스가 말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지.” “한번 물어보시죠?” 세바스찬 2세의 직접적인 말에 블루가 망설임 없이 아슈를 뽑아 들었다. “너도 이야기 다 들었겠지?” -...... 아슈는 묵묵부답이었다. 평소 말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난 그의 모습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블루는 한참 고심하다 입가를 히쭉 끌어올리며 손가락에 강기를 머금었다. “이 아름다운 검신에 가벼운 생채기 하나 생기면 얼마나 멋질까? 모두들 궁금하지 않아?” 블루의 말에 매끈한 아슈의 검신이 부르르 떨렸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던 일행들은 아슈의 반응에 눈빛을 반짝였다. 대답이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설마 내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입다물고 있으면 돼. 결과가 말해줄 테니까, 크흐흐흐!” 삼류 잡배와 같은 음침한 블루의 웃음소리에 주위사람들은 어깨를 움찔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블루는 역시 블루였다. 스으윽 파란 강기가 날카롭게 모습을 드러내자 아슈가 고함쳤다. -그, 그만! 순간 아슈의 검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던 블루의 손가락에서 나오던 강기가, 불꽃처럼 힘없이 수그러들었다. 동시에 들려온 푸념섞인 목소리. -어흐흑! 어떻게 이 아름다운 검신에 상처를 주겠다며 위협을 할 수가 있담! 주인을 잘못 만난 게 죄지, 주구를 탓하겠어. 그 말에 블루가 피식 웃었다. “별 거지 같은 소리를 다 듣겠군.” -휴우! 아슈는 자신의 묵비권이나 푸념 따위가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가 사람인 줄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궁금한 게 뭐요? 흥정하는 장사치의 어투였다. 한마디로 시건방진 목소리란 뜻이다. 하지만 당장 아쉬운 것은 블루들이었기에 참고 들어주었다. 블루가 짧게 한마디 했다. “아스타로트의 약점!” 그 말에 아슈가 피식 웃었다. -그의 약점이라고요?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이 제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내가 주인으로 인정할 만큼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한낱 인간에 불과해요. 반면에 그는 마신! 한마디로 신이란 말입니다. 신이란 완전무결한 존재! 당신들을 창조해낸 창조주와 동일시되는 자란 말입니다. “그래서?” -너무 거만한 것 아닌가요? 인간으로서 조금 깨달음을 얻었다고 신을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다니? 아슈의 적나라한 어투에 일행들 안색이 차갑게 굳었다. 비로소 자신들 처지를 깨달은 것이다. 아슈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았다. 하지만 블루는 무덤덤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난 한 번도 신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 앞을 가로막는 적을 상대한다고 생각할 뿐. 그가 강하면 내가 죽는 것이고, 그가 약하면 내가 이기겠지. 난 신이고 나발이고 복잡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블루의 말에 아슈가 침묵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말이 모두 진심임을 깨달은 탓이다. 블루가 가볍게 눈을 감았다 뜨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 싸움에서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나 혼자의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거야. 그것은 이미 전에 싸움에서 입증된 사실이기도 하고......” 그 말에 다들 침묵을 삼키며 블루를 주시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검인 아슈 네 능력이라면 내 능력치를 확실히 올려줄 수 있을 테니까.” 그 말에 아슈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한결 밝아진 어투로 대답했다. -그에게 약점은 없어요. 하지만 주인님 말씀대로 가능성은 찾을 수도 있을 것 같군요. 그가 이곳 중간계에 완전히 현신한다고 하더라도 마계에서 힘의 십분의 일도 지닐 수도 있을 것 같군요. 그가 이곳 중간계에 완전히 현신한다고 하더라도 마계에서 힘의 십분의 일도 지닐 수 없기 때문이죠. 그 말에 블루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 자신이 한 수에 당한 힘조차 본신의 능력에 십분의 일도 되지 않다니!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깨달아도 수만 년을 넘게 살아온 존재를 능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이란 호칭은 스스로 붙인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십분의 일?왜지?” -그것까진 말할 수가 없어요. 물론 말해주고 싶어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지만 말예요. 블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네 말처럼 그런 부분까지 알 필요는 없겠지. 십분의 일로 힘이 줄었다는 것이 나쁜 소식은 아닌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를 죽일 수 있다면 그 방법은 알아야겠다.” -신은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그럼?” -물리친다 해도 이곳에서 현신할 수 있는 에너지를 소비해 중간계에서 물러나 마계로 돌아가는 것뿐이죠. 신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신분이니까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은 그를 마계로 돌아가게 하는 방법이겠죠. “그렇군.”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텐시가 물었다. “그 말을 들으니 또 의아한 생각이 드는군요.” -뭐죠? “아슈도 십분의 일밖에 힘을 못 쓰는 겁니까?” 아슈가 짧게 답했다. -아니요. “그의 힘이 줄어들었다면 아슈의 힘도 줄어들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텐시, 당신 말대로 그의 잘려진 피부를 통해 제가 만들어졌어요. 그럼에도 왠지 모르지만, 저는 마계에서나 현세에서나 차이가 없어요. 그건 저처럼 그의 흔적에서 만들어진 존재들은 마찬가지죠. “존재들? 그럼 마왕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야?” -마왕이 아니라 마신이에요. “뭐, 그렇다 치고 말이지.” 클레인의 질문에 모두들 아슈를 바라보았다. -물론이죠. 영혼을 부여하고 생명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바로 신의 권능이니까요. 그 차이가 신과 마물의 차이예요. 물론 힘의 차이도 있지만......문제는 그들이 창조행위를 즐기지 않는다는 거죠. 이유는 강한 녀석은 만들 수 있지만, 아름다운 존재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강한 마왕이라 해도 못 생긴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푸훗!” “크하하하! 미적 감각이라니!” 경직되어 있던 사람들이 로이와 뮤엘을 필두로 웃음을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블루만은 웃지 않았다.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블루의 분위기를 눈치 채고 얼른 웃음을 멈췄다. “그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와 무슨 상관이 있지?” -당연히 있죠. 그가 원해서 만들어낸 존재가 있고, 원치 않는데 만들어지는 존재가 있으니까요. 문제는 그의 성격상 다른 뭔가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왜지?” -관념 차이죠. 전지전능한 신들도 생각이란 것을 하니까요. 사실 아무리 많은 마물을 만들어낸다 해도 자신과 동급인 존재에겐 흠집 하나 낼 수 없거든요. 자리싸움에선 전혀 효율적이지 않거든요, 그래서 만들지 않는 거예요. 물론 모든 신들이 만들지 않는 건 아니에요. 만드는 것을 즐기는 신도 있으니까요.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는 신도 있고요.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그의 부주의나 다른 계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게 있어요. 바로 저 같은 경우죠. 저 같은 경우죠. 저는 그가 원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영혼을 지니고 있는 그의 피부를 다듬어 형태를 만들어 완전해전 존재예요. “그래도 어쨌거나 마검이잖아?” -그건 그의 본질을 정화시키지 않고 만든 탓이에요. 나를 만든 드워프들은 제가 형태를 지니게 되면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고 단지 봉인을 목적으로 만들었거든요. “봉인을 목적으로? -저 같은 존재들은 형태에 따라 영혼이 변하거든요. 그릇 모양에 따라 물이 변형되는 것과 같은 이치죠. 하지만 들쭉날쭉 언제 터질지 모를 상태보다 검이 나았겠죠. 드래곤한테 맡겨 봉인 시킬 생각이었을 테니까 일단 아름다워야 할 테고요. “그래서 성향이 여성스러웠던 거군.” -맞아요. 아무튼 그러다보니 정화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아요. 사실 드래곤한테 줄 것이었기 때문에 정화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드래곤이라면 거대한 정신력으로 감응될 이유도 없고, 누군가에게 줄 이유도 없기 때문이죠. 그 말에 다들 수금했다.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군,” 짧게 수긍한 블루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뒤늦게 말문을 열었다. “알고 싶은 게 있다!” -어차피 어떻게든 들으실 거 아닌가요? 블루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물론이지!” 아슈가 샐쭉이는 어투로 말했다. -칫, 말해요. 뭐가 알고 싶은 거죠? “아스타로트, 아니 에스티마르에 대한 거다.” 아슈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블루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문을 열었다. “그자는 대체 누구지?” 질문의 요지를 모르겠군요.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난폭한 모습의 그의 성향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너를 통해 원래 성격으로 돌아왔다고 하던 에스티마르가 어째서 우리를 보자마자 죽이지 않았지? 내가 너를 처음 만나 느꼈던 살기와 분노는 심장을 싸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나를 알아보고 반색을 표했다.” -신의 감정을 인간의 잣대로 비유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 ......! ” -인간과 마찬가지로 신도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요. 제가 주인님한테 호감을 느끼는 것처럼 그분도 호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거죠. 아니, 그분의 호감이 저에게 전해져 제가 주인님을 따르는 것일 수도 있어요. 아무리 제가 새로운 영혼이라 해도 그분한테 정신적 감화가 없을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분에게서 태어났으니까요. 아무튼 신이란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서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생각을 하고 그것을 표출하고 있어요. 인간들 감성은 그분들이 피워낸 작은 열매에 불과하죠. 그 복잡한 심정이 분노로 느껴지신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제야 블루는 공감할 수 있었다. “인간이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분노로 받아들인 거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것은 희로애락(喜怒哀樂)외엔 없다고 볼 수 있잖아요. 그 말에 블루는 왠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착각인지, 그것이 인도의 한숨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흘러나온 한마디. “고맙군.” -별말씀을요. 무엇을 고맙다고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슈는 블루의 말을 가볍게 받아 주었다. “이야기의 취지가 살짝 벗어난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유익한 정보였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줬으니 말이야.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아스타로트의 약점에 대해 이야기를 마저 진행해볼까?” 블루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말하자 아슈는 잠시 침묵을 고수했다. “다키?” 한참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블루는 아슈로부터 아스타로트가 타고 다니던 애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예, 지옥의 겁화에 태어난 존재로 그가 무의식중에 만든 말이죠. “말이라고?” -정확히 말하면 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여섯 개 달린 다리는 빛보다 빠르고 갈퀴는 불꽃으로 일렁이며 성격은 불같이 거칠어요. 그리고 강하죠. 드래곤보다 훨씬 더! “드래곤보다?” 일행들은 저마다 혀를 내둘렀다.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한 탓이다. 하지만 아슈가 거짓말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아슈가 나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스타로트의 힘이 가장 많이 배어 있으니까요. 마계에서조차 그의 자유분방함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그리 흔치 않아요. 스스로 주인을 택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인정한 존재는 마신 아스타로트밖에 없어요.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거지?” -그 녀석이 지금 중간계에 있거든요. “중간계? 이곳에 있다고?” 세바스찬 2세의 질문에 아슈가 답했다. -쫓겨나?“ 베르니스의 질문에 스콜이 말을 이었다. “마계에서조차 그 녀석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떻게 쫓겨났다는 거지?” -바로 그 아무나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쫓겨났어요. 중간계로 봉인을 당한 것이지요.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이유는?” -....... 텐시의 물음에 아슈는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블루가 물었다. “녀석은 지금 어디 있지?” -찾아가보시려고요? “후후, 그게 네 녀석이 그놈을 언급한 이유 아냐? 내가 녀석을 찾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이잖아?” 아슈는 블루의 확신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대답했다. 그 어투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어투였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엇을 것임을. -바리토 산맥에 위치한 활화산 분화구 속에서 쉬고 있어요. “바리토 산맥? 거긴 북부 끝에 위치한 극한지대잖아. 그곳에 생명이 살고 있다고......커헉!” 다급히 말을 한 베르니스가 머리를 앞으로 내밀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마치 눈이라도 튀어나올 뻔한 충격에 휩싸여 화를 참지 못한 채 분기탱천한 얼굴로 뒤돌아보았다. 텐시가 이를 드러낸 채 미소를 지으며 손을 올리고 있던 중이었다. 베르니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테시의 수도(手刀)를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삐억! “케헥!” “마물이래잖아. 이 등신아!” 텐시는 한심스럽다는 어투로 혀를 찼다. 그리고는 블루를 보며 말을 걸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신경 끄세요.” 모두들 처량한 시선으로 베르니스를 바라보았다. 그 중엔 블루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렇게 두개골이 쪼개져라 맞는 것을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지만, 적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응될 법도 하건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세바스찬 2세와 클레인 그리고 뮤엘은 케르니스를 보고 로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소에 많이 봐온 장면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이의 부인인 꽃집의 로사와 같은 성격을 지닌 여자도 있다는 사실에 암울함을 감추지 않았다. “블루!” 잠시 딴생각에 잠겨 있던 블루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꺼냈다. “다녀오겠네.” “네? 지금 전쟁은 어떡하고요?” 다들 긴장한 얼굴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블루의 있고 없고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라 표정은 한결같았다. 블루는 그들의 걱정을 잘 안다는 듯 말했다. “아마도 그는 움직이지 않을 거야.”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맞다면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거야.” 블루의 말을 모두가 알아들었다. 그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말이다. 그렇기에 블루의 확신에 찬 어투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서며 외쳤다. “블루! 그는 에스티마르가 아닙니다.” 아이린 공작이었다. 블루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물었다. “그럼 당신은 아이린 공작이 확실합니까?” 굼틀! 아이린 공작의 눈썹이 가볍게 경직되었다. 화가 난 것처럼 보엿지만 블루의 선문답 같은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블루가 말하는 말의 요지를 알아들은 것이다. “그는 지금 심심한 것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때 추세흔이 끼어들었다. “설마 신이 고독한 이유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블루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신이 고독한 이유라니? “그게 무슨 말이죠?” 베르니스가 질문했다. 그러자 추세흔이 답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소. 신은 고독하다. 그래서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군. 자신과 대등한 존재가 없기 때문이라고.” 그 때 아이린의 시선이 블루에게 향했다. 문득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파파파파팍! 지치지도 않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정지해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순간 블루의 발차기가 완벽하게 아이린 공작의 안면부를 강타했다. “으윽!” 아이린 공작의 신형이 하염없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웅! 저것이 사람이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란 말인가! “휴우!” 블루는 낙하하는 아이린 공작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슈ㅣ었다. 이제야 겨우 숨 돌릴 틈을 찾은 탓이다. 그는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아이린 공작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죽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힘들었다. 그가 하늘을 주시하며 허탈한 음성으로 말했다. “날 죽여라!” 블루가 물었다. “왜?” 아이린 공작은 어렵게 블루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왜라니?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 온 게 아니더냐?” 끄덕 “당연하지. 복수하러 왔다.” “그럼 어서 죽여라!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 않다!” 그 말에 블루는 씩 웃을 뿐이었다. “구차하게 구걸하지 마라. 나도 그 구걸을 받아줄 생각이 없으니까. 물론 죽일 생각도 없다.” “뭐?” 아이린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블루를 올려다보았다. 블루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굳이 죽고 싶거든 자살해라. 그건 말리지 않으마.” “그럼 어째서......?” “어째서 싸웠냐고?” 끄덕 아이린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자, 블루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애들 싸움에 이유가 필요한가?” “......!” “즐거웠네. 다음에 또 한 번 놀도록 하지.” 블루는 그 말을 끝으로 휘적휘적 걸어가 버렸다. 마치 신나게 논 아이가 집에 돌아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일순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블루의 일행인 니콜라스와 베르니스, 스콜 등은 너무나도 블루다운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이게 애들 싸움이었다고?” “헐, 이게 애들 싸움이라니! 애들 싸움 두 번만 하면 대륙이 침몰하겠군.” 베르니스와 스콜이 투덜거리며 멀어져가는 블루를 주시했다. 순간, 거대한 폭소가 터졌다. 그 폭소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아이린 공작이었다. “크하하하하하!” 미치지 않고서야 저렇게 웃을 수 있겠나 싶어 베르니스와 스콜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누구는 생가를 걸고 싸웠는데, 누구는 놀았단 말이지! 크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무색하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허탈감과 분노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그 누구도 아이린 공작 옆으로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 다만 광소를 터뜨리는 아이린 공작을 조용히 주시할 뿐이었다. “내가 졌군, 확실히 졌어. 큭큭큭.” 거기까지 생각한 아이린의 날카로운 시선이 블루에게 꽂혔다. 아스타로트가 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블루의 말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탓이다. 블루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스타로트의 외로움을. 그것은 과거 자신도 느꼈던 감정이었다. 외로움! 친구가 없다는 것! 그때 나타난 블루라는 강자는 그에게 삶의 활력을 주지 않았던가! 그래서 블루의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아스타로트 정도라면 자신의 상대가 없기에 심심할 만도 하겠지. 사실 중간계를 멸망시킨다고 그에게 득이 되는 것이 뭐가 있겠어. 신들의 전쟁을 다시 일으키는 것?” 순간, 뭔가 엄청난 사실을 깨달은 듯 사람들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군.” 아이린 공작이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블루를 바라보았다. 뭐가 대답을 원하는 눈치였지만, 블루는 듣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아슈가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신들이 중간계를 만들어놓고 일체 간섭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군.” 갑작스런 텐시의 물음에 침묵의 골은 한층 깊어졌다.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이유 없는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이란 말로 통용될 수 있는 게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때 추세흔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말도 있었지. 신이 인간들을 만들고 지식을 준 이유에 관한 것인데, 신이 외로웠기 때문에 완전한 힘을 지닌 존재가 아닌 가능성만 지닌 인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신조차 창조한 ‘그’가 신의 완전성에서 발전가능성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힘은 없지만 발전가능성이 있는 인간을 만들었다고도 했고.” “재미난 이야기군요.” “말 그대로 이야기니까.”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가능성만 있는 인간이란 존재를 만들었다는 말이죠? 그린 경이 꺼낸 이야기에 중요한 요지가 없네요. 아니, 답이 없다고 해야 하나?” 텐시의 의문에 추세흔이 말했다. “답을 말하는 순간 신성모독이 되어버리니까.”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피식거렸다. 하지만 니콜라스는 심각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왜 신은 인간을 만든 거지? 자신의 상대가 될만한 인간을 키워내기 위해서?” “그럼 과거의 무사들도, 지금의 무사들도 모두 그 때문에 끝없이 무공을 갈고 닦는단 말인가요?” 스콜의 질문에 니콜라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에 하나 우리가 말하고 있는 가설이 사실이라면.” 세바스찬 2세가 피식 웃었다. “백 억년은 걸릴 정도의 거창한 계획이네요.” “그렇다면 내가 무공을 익히는 것도 그 신의 백억 년 계획과 조금 이라도 관계가 있다는 거네?” 뮤엘의 말에 모두가 한심한 표정으로 대답해 주었다. “하나 확실한 것은 너랑 그 계획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거다.” 그 말에 뮤엘이 고개를 푹 숙였다. “여긴가?” 혼자서 왔다. 모두가 한꺼번에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위는 온통 흰색 일색이다. 어둠조차 하얗게 보일 정도다. 아니, 사실이 그랬다. 대낮처럼 밝았다. 블루는 주변을 돌아보며 나직이 한마디 했다. “백야인가?” 북해에 가면 이런 백야현상을 볼 수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듯 직접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곳이 중원의 북해가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마치 꿈이고 자신이 홀로 놀러 나온 게 아닐가 하는 망념으로 이어졌다.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무엇을 찾으러 가는지마저 잊을 지경이다. 마음이 조급하다. 그새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눈으로 덮여 있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무작정 걷는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더 가야하는 거지? 위치는 알고 있는 거냐?” -아니 저를 못 믿으시는 거예요? 아슈가 역정을 냈다. 하지만 아무래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저쪽 방향인가? 아니, 저기 같은데...... 이러니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우뚝! 걸음을 멈춘 블루는 아슈를 꺼내들고 간 한숨을 내쉬었다. -아, 아하하하하하하하! 아슈가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뜨끔한 속내를 웃음으로 가추려는 듯 어색하기만 했다. “너 이 자식!” -어머! 숙녀에게 이 자식이라뇨? “숙녀고 나발이고 넌......!” 움찔! 블루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이히히히힝!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는 투레질소리에 귀가 번쩍 뜨인 탓이다. ‘주황색? 아니 조금 더 진한 진홍빛?’ 그의 눈 속에 저 멀리서 무엇인가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설마!” 블루의 시선이 더욱 날카롭게 어딘가를 향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푸득 푸드드드득! 그름인가? 아니지. 구름이 저렇게 빨리 지나칠 리 없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본 블루! 그러나 하늘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니, 온갖 종류의 새들이 하늘을 수놓으며 먼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마치 이 산맥의 모든 새들이 동시에 하늘로 날아오른 것 같았다. 그것이 구름처럼 보인 것이다. 다시 들려오는 투레질소리. 히이이잉! 새들의 움직임이 더욱 날쌔졌다. 그리고 그때 일어난 돌풍! 쿠고고고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블루는 볼 수 있었다. 불길을 갈기처럼 흩날리며 기류를 타듯 곧게 펴고 굳센 여섯 개의 다리가 허공을 마치 땅인 것처럼 힘차게 박차며 앞으로 쏘아나가고 있는 존재를 말이다. 역동적인 강인함까지 느껴졌다. 자신조차 감히 그가 달리는 앞을 막아설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슈가 말한 그대로 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블루의 입가가 올라갔다.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때, 아슈는 누구보다 안도했다. 블루한테서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빛보다 빠른 존재의 위치를 잡고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자신의 주인인 블루가 그 사실을 인정해줄 정도로 섬세한 성격이 아닌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들려온 파공음! 파콰콰콰콰! 그 안에는 감당하기 힘든 살기가 숨어 있었다. 흠칫! “뭐지?” -다키가 적대심을 드러내고 있어요. 퓨콰콰콰콰콰! 날아오는 압력으로 사방에 쌓여있던 눈이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며 두꺼운 눈의 장벽을 만들어냈다. 시야가 복잡하다. 하지만 블루는 그러한 광풍 속에서도 굳건하게 자리하고 서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살기에 대응했다. 아슈를 뽑아든 블루가 녀석의 공격방위를 읽고 검을 휘둘렀다. 파칭! “우웃!” 검으로 녀석의 공격에 맞대응한 게 실수였다. 블루의 손아귀가 찢어진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손아귀가 찢어지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툭툭 붉은 피가 점점이 바닥에 떨어졋다. 하얀 눈 위에 핀 붉은 꽃! 타인에 의해 자신의 피를 본 게 얼마만인가! 어째서일까? 고통보다 쾌감이 전신을 휘감는다. 다시 한 번 파공음이 내려오면서 뭔가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허공을 가르로 있었다. 그것이 블루를 향해 똑바로 날아들고 있었다. 쿠슈슈슈슈! 블루는 맞대응하기에 녀석의 힘이 턱없이 강하다는 것을 깨닫고 아슈의 검결에 녀석의 공격을 흘리기로 마음 먹었다. 블루의 신형이 춤을 추듯 빠르게 회전했다. 사삿! 동시에 아슈의 전신이 눈의 반사광에 반짝거리며 자신의 아름다운 검신을 한껏 뽐냈다. 파창! 찰나의 순간, 가벼운 격돌이 있었으나 충격을 받은 것은 블루가 아니었다. 허공으로 다시 힘차게 솟아오르는 다키였다. 이번엔 공격하지 않고 허공을 선회했다. 어찌 보면 흥분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블루를 관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블루한테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블루가 물었다. “저런 녀석이 어떻게 지금까지 한 번도 드러난 적이 없었던 거지?” -그 표현은 잘못된 것 같네요.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드러날 기회가 없었던 거겠죠. 분명 자신을 목격한 사람을 잡아먹어도 수백은 잡아먹었을 테니. “엥? 말이 사람을 먹어?” -말이 아니라니까요! 날개 달리고 다리가 여섯 개 달린 말 봤어요? 말이든 아니든 더 이상 말이 이어지기 힘든 상황이었다. 파팟! 녀석이 자신의 양 날개 끝에서 뭔가를 쏘아 보낸 것이다. 저 아름다운 날개 속에 저런 게 숨어 있다는 것이 일단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은 빠르게 하강하는 다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흠!” 하하아아앗! 파과과과과! 조금 전에 들엇던 금속음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 슈슈슛! 팍팍팍! 블루가 추광보로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순간 날카로운 뭔가가 땅에 깊숙이 박혔다. 녀석이 앞발을 앞으로 치켜 올리며 입술을 뒤집어 깠다. 푸르르릉! “뭐,뭐지?” -아무리 봐도 즐거워하고 있는 모습인데요? 끄덕 “내가 봐도 그렇게 보인다.” 왠지 모를 감정이 블루의 가슴에 들어찼다. 그것은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분노였다. 왠지 모르게 농락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다시 이어진 파공음! 다키의 날개가 넓게 펼쳐진 순간, 은의 장막이 펼쳐졌다. 순간 그 날개에서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금속이 쏘아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다키의 본신이 블루를 향해 날아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아름다웠지만 얼마나 위험한 지 알 것 같았다. “이런 제길!” 만나자마자 이렇듯 진땀을 빼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제4장 다키(Darkey)의 주인 슈슈슈슈슈슈슛! 날카로운 파공음! 바닥의 눈들이 허공으로 비산하며 눈보라를 일으킬 정도로 강맹한 기운이 솟수쳤다. 정말 빨랐다. 그래서 길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다키의 날개! 아니, 날개에서 쏘아지는 금속! 거칠고 사나운 암기들이 쇄도하는 찰나 블루는 차분하게 검을 종으로 내리그었다. 반원의 기류가 검에서 쏘아져 나와 다키의 공격과 맞부딪쳤다. 파파파파파파팡! 블루의 기운에 암기가 푸른 불꽃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돌발적인 반동에 의해 튕겨져 나간 녀석들이 무수히도 많았건만, 블루의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했다. 그 많은 암기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계산할 정도로 블루는 아직 여두가 있었다. 다키가 날개를 접자 끊임없이 뿜어지던 암기가 거짓말처럼 멎었다. 더 이상 그런 장난이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히히히힝! 즐거운 듯 다키는 다시 한 번 길게 투레질을 했다. “젠장!” 블루가 녀석의 여유가 허풍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욕을 뱉었다. -블루! 아슈의 다급한 외침! 블루는 순간 자신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터엉! “커헉!” 어느새 블루의 등을 점한 다키의 육탄돌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쿠당탕! 블루가 나가떨어지며 신음했다. 그러나 미처 고통을 느낄 사이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다키의 앞발이 블루를 내리찍으려 했기 때문이다. 콰광! 바닥이 움푹 파였다. 아니, 파인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크레이터 수준이었다. 만일 허공으로 피하지 않았더라면...... 꿀꺽! 블루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며 긴장된 눈빛으로 다키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블루한테 그것은 본능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전투본능! 그는 즐거웠다. 이런 전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블루가 아닌가! 아슈의 그립을 다시 한 번 말아 쥐며 그는 웃음을 흘렸다. “큭큭큭, 좋다! 아주 재미있군.” 푸히히힝! 녀석이 블루의 말에 화답하듯 앞발을 번쩍 들었다. 자신도 같은 생각이란 뜻이리라. 블루가 바닥을 박찼다. 파밧!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과 같은 동작으로 아슈를 휘둘렀다. 눈앞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시간조차 베어버리겠다는 뜻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 다키가 흠칫하더니 슬쩍 뒷걸음질쳤다. 검에 실린 기운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뒷걸음질쳐 검을 피할 수는 있었으나 기분이 나빴다. 자신이 도망쳤다는 기분이 든 탓이다. 다키는 이를 드러내 건치를 자랑함과 동시에 자신의 양 날개를 휘저었다. 그것은 날카로운 검 같았다. 아니, 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블루는 자신이 피해야 할 때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얼른 바닥에 누워 굴렀다. 중원에서는 삼류무사조차 부끄러워한다는 나려타곤의 초식이었다. 그러나 일단 살고 봐야 부끄러움도 느낄 수 있는 법. 삼국시대 촉한(蜀漢:220-263)의 공명조차 최고의 한수로 도망을 택하지 않았던가. 일명 삼십육계줄행랑. 파파팟!파파팟! 양 날개가 바닥을 찔러 블루를 공략했지만, 날다람쥐 같은 블루의 움직임에 헛손질만 계속할 뿐이었다. 그러자 화가 났음인지 입을 크게 벌리고 불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제길! 이제는 불까지!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블루가 다급하게 몸을 피하며 투덜거렸다. 눈이 녹으며 수증기로 올라가는가 싶더니 바닥에 있던 바위가 붉게 물들며 용암처럼 펄펄 끓기 시작했다. “히익!” 블루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삼켰다. 재빨리 피하지 않았다면 저기 끓어오르는 붉은 물결에 동화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게다가 눈 깜작할 사이에 다시 한 번 등을 노출하고 만 블루는 이 상황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탕! 쐐에에에에엑! 블루의 신형이 뒤돌자 옷자락이 찢어질 것처럼 펄럭거리며 제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동시에 강철이 부딪히는 굉음과 함께 블루의 몸이 이슈와 함께 한줄기 섬전처럼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뿜어지는 은빛섬광! 그것은 벼락과도 같았다.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벼락! 다키가 공격해오다 말고 갑작스런 반격에 놀라 날개로 자신의 앞을 막았다. 슈웃! 파칭! 다키의 육중한 몸이 바닥에 여섯 개의 줄을 남기며 뒤로 밀려나갔다. 파파파파파파팟! 히히힝! 다키가 고통에 겨운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얼굴을 좌우로 흔들어 충격을 완화시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지금의 블루의 일격에 담긴 거력은 산을 가르기에도 충분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다키에게는 큰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다키의 얼굴에서 호의가 사라졌다. 정 말 분노한 것이다. 하지만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다. 그는 아슈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로소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이다. 자신과 같은 존재임을 말이다. 그것은 자신의 강철과도 같은 몸에 상흔을 입힐 수 있다는 뜻이었다.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없는 것이다. 블루 역시 눈치로 다키의 마음을 읽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올 생각이 없다면 내가 가주지.” 파팟! 블루가 오른쪽 다리로 바닥을 구르자, 아슈가 공기의 결을 가르며 다이렉트로 다키의 목을 행해 날아갔다. 다키는 아슈의 기운이 자신을 향해 날아들자 다급히 목을 뒤로 빼며 거칠게 날갯짓을 했다. 그러자 다키의 몸이 언제 이곳에 있었냐는 듯이 모습을 감췄다. 아니, 순식간에 뒤쪽으로 피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블루는 멍하니 녀석이 점이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대책 없이 빠르군.” 왠지 허탈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허탈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사라진 속도보다 빠르게 돌진해오는 다키의 육중한 말발굽소리가 들려온 탓이다. 그것을 깨닫기도 전에 블루는 자신의 안면을 노리고 날아드는 다키의 발바닥(말발굽)을 볼 수 있었다. 피싱! 블루의 본능적인 회피능력은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었지만, 얼굴에 길게 그어진 상차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날카로운 검에 베인 것처럼 깊이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길!” 블루는 자신의 뺨을 옷소매로 쓸어 올리며 검을 힘껏 쥐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맞설 수 없음을 깨닫고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그래, 좋다! 네가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는 이런 식으로 상대해주마!” “더 이상 이렇게 지체하고 있을 수만도 없습니다. 식량문제도 그렇고 군사들의 사기 또한 흐트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황제 폐하의 전언도 ....... ” “흐음.” 보좌관의 부연 설명이 없다 해도 이미 알고 있는 사안이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전투가 있건 없건 상당한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는 법. 그렇다고 전쟁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 전쟁에서의 패배는 나라의 붕괴 정도가 아닌 세상의 멸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전쟁이 길어지면 어쩔 수 없이 세금을 올려 받을 수밖에 없다. 균형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듯 몇 달이 지나자 몇몇 고위귀족들이 개념 없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마왕이 정말 있기는 하냐는 것이었다. 일부러 이길 수 있는 전쟁을 질질 끌어 세금만 챙기려는 속셈이 아니냐며 확인이 될 동안 자신들은 세금을 낼 수 없다고 버티는 게 아닌가! “쥐새끼 같은 것들! 내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 으드득! 아이린 공작 옆에 있던 벨리어스 장군이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지금이라도 녀석들 멱살을 잡아 패대기쳐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은연중에 드러났다. 아마도 지금 녀석들이 눈앞에 있다면 마왕의 소굴에 처박아버렸을 것이다. “벨리어스 장군 참으시오.” “죄, 죄송합니다.” 벨리어스의 얼굴에 반성의 빛이 떠올랐다. 아이린 공작앞에서 추태를 보였음을 깨달은 탓이다. 그때 밖에서 문지기의 외침이 들려왔다. “헤르마틴의 니콜라스 총사령관께서 오셨습니다.” 아이린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자 문이 열리며 니콜라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에는 텐시와 베르니스 그리고 ....... “엘프?” “엘프의 숲 4장로이신 미사메르티 장로십니다.” 텐시의 소개에 아이린 공작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예을 갖췄다. 엘프의 숲의 장로라년 자신의 예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세상에서 존귀한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륙의 영웅이라 불리는 아이린 공작에게 이런 예를 받게 되다니, 기쁨을 감추지 못하겠군요.” 미사메르티 장로의 인사에 벨리어스 장군의 얼굴이 밝아졌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아이린 공작에게 고귀한 엘프가 예를 보이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자신이 칭찬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어서 자리하시지요.” 벨리어스는 기꺼이 나서 엘프를 자리까지 안내했다. 차가 나오고 뒤늦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고귀한 존재께서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이린 공작의 의문이 섞인 질문에 미사메르티 장로가 답했다. “전쟁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흠칫! 순간 찻잔을 들어 올리던 아이린 공작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설마 엘프의 입에서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말이 나올 거라곤 상상조차 못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엘프들은 평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아닌가! 참전이란 하나의 완벽성을 추구하며 폐쇄적인 그들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닌 것이다. “의문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군요.” “그렇습니다. 당혹스럽기 그지없군요.” 그때 니콜라스가 보이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표했다. 자신도 조금 전에 똑같은 상황을 겪은 탓이다. 잠시 니콜라스를 살핀 아이린 공작이 눈가에 이채를 발하며 미사베르티 장로를 돌아다보았다. “우리들의 허물은 우리가 벗어야 한다고 생각햇기 때문입니다.” “허물?” 끄덕 “이 전쟁에 다크 엘프들이 끼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그게 상당히 골머리를 ...... 그렇다면?” 벨리어스 장군의 의문에 미사메르티 장로가 수긍했다. “그렇습니다. 다크 엘프의 허물은 곧 저희의 허물이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저희가 온 것입니다.” 그제야 아이린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의 개입은 큰 파란을 불러왔다. 그들의 전투능력은 정말이지 탁월했다. 귀신같은 활솜씨에다 민첩한 움직임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매끄러운 검술! 더구나 인간 대 마법사의 능력을 상회하는 마법까지. 헤르마틴과 유슬라니안 군대는 그들이 적이 아님을 안도해야만 했다. 가장 위험한 적으로 판명된 다크 엘프에 대한 걱정을 줄일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그때 연합전신에 들어온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으로 인해 전투가 다시 재개되었다. 엘프들이 마왕을 잡겠다는 일념 하에 다시 검을 들고 전쟁을 부르짖은 탓이었다. 그것이 타르나토스 신의 뜻이라면서. 그 선봉엔 굳은 표정의 율레 대신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전신엔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오오라가 펼쳐져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오오라를 만들기 위해선 엄청난 정신력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마치 아무런 힘의 소모조차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은 타르나토스 신성제국의 교황 아티나 3세의 모습과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 용기를 얻은 것은 타르나토스 신도들만이 아니었다. 그 놀라운 기적에 많은 병사들이 함께 함성을 질렀다. 신을 믿지 않는 자들까지도. 망설임은 있었지만, 피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결국 헤르마틴과 유슬라니안도 그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블루를 기다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블루의 말대로 마왕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처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적들의 움직임을 보건대, 마왕이 정말 있는지마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하 지만 분명히 있긴 있었다. 힐끔 아이린의 시선이 자구만 하늘을 향했다. 뭔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는 눈빛이다. 그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멀리...... 창공의 끝에 위치해 있었다. 너무나 선명하게 말이다. 하지만 움직임은 없었다. 단지 구경꾼처럼 이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자신을 도발해주길 바라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자신과 놀아주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모습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그러한 생각으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다 하더라고 멀리서 느껴지는 그의 존재감이 가져오는 위압감은 두려움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그 압박을 받는 것은 아이린 공작을 비롯한 몇몇 감이 뛰어난 존재들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괜히 병사들한테 두려움을 심어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군!” 아이린의 목소리가 전장 한복판을 가로 질렀다. 모두가 숨죽이며 몸을 움츠렸다. 다시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목소리! “진군!” 우와와와와! 두두두두두! 병사들이 거침없이 평야를 질주하며 몇 주간 바라만 보던 성벽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나가며 검과 활을 뽑아 들었다. 전쟁이 재개된 것이다. 대륙의 사활이 걸린 최후의 전쟁이었다. 휘익! 다키의 전투감각은 정말이지 놀라운 수준이었다. 블루가 전심전력을 다해 상대했지만, 겨우 비등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만약 이번에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오래 전에 무릎을 꿇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은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였다. 힘과 물리적인 파괴력에선 블루가 약간 앞섰지만 그 모든 걸 능가하는 속도! 마치 에스티마르, 아니 마왕 아스타로트의 움직임을 보는 것 같았다. 드래곤보다 강하다! 그 말이 실감이 났다. 사실 지금의 블루 정도면 왠만한 드래곤 따위는 한주먹거리도 되지 못했다. 여기서 ‘왠만한 드래곤’이란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한테 훌륭한 파이팅 파트너가 될 만한 녀석을 뜻한다. 삐익! “크흑!” 블루는 팔목이 부러질 듯한 충격에 비명을 흘리며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잠시 딴 생각을 한 사이 녀석의 발굽이 그의 급소를 가격해 오는 것을 가까스로 팔을 들어 막은 것인데, 최소한 오 분 안엔 감각을 되찾기 힘들 것 같았다. 가볍게 팔을 털어낸 블루는 이를 갈았다. 으득! 조금 전 목숨을 건 도박으로 겨우 녀석의 발을 묶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원상복귀가되다니! “응......!” 어찌서일까“ 녀석의 상체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블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럼 그렇지, 큭!’ 져석도 충격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움직이는 속도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랬다. 빛처럼 빠른 움직임이 조금 느려졌다고 피부로 느껴지지 않았다. “젠장!”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리고 존재감을 느낄 수만 있다면 피하는 것뿐 아니라 반격까지 가능하다. 아무리 빠르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게다가 약간의 차이였지만 블루는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박자였다. 이동속도만 알면 움직임을 볼 수 없다 해도, 공격할 타이밍을 잡을 수 있다. 그 순간을 노리면 되는 것이다. 슈욱!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블루는 숫자를 셌다. 그렇든 그의 움직임을 계산해 급히 상체를 뒤로 빼며 아슈를 휘둘렀다. 파칭! 히히힝! 녀석의 육중한 몸이 블루의 공격에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속도와 무게는 운동에너지라 불리는데, 그것은 자신의 운동에너지를 해소시키기 위해 부딪히는 면적에 물리적인 충격을 준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충격 정도가 아니었다. 거의 폭발에 가까웠다. 콰과과과광! 퍼버버버벙! 바닥에 거대한 크레이터를 형성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충격으로 대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하늘에 떠 있었음에도 대지의 진동음이 블루의 몸에까지 확실히 전해졌다. 그때, 크레이터가 생긴 땅이 서서히 치솟는가 싶더니 갑자기 화산재가 뿜어댔다. 그리고 붉은 물결이 치솟았다. “뭐, 뭐야?” 블루의 몸이 주춤거렸다. 녀석이 떨어지면서 마그마 층을 건드렸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속에서 산다는 것을 의아해하던 차였다. “젠장! 활화산이 있었던 모양이군.” -우선 다른 곳으로 피하세요! “그래야겠지.” 블루는 허공을 박차며 멀찌감치 피했다. 치솟아 오르는 용암 위에 서 있던 다키가 블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벼운 투레질을 했다. 푸르릉! 멀리 피한 블루는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다 잠시 눈을 감았다. 저 불길이 멈춰야 다시 다키와 싸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용암 안에 몸을 숨긴 녀석이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확실했다. “제길!” 하지만 그에겐 지금 일분일초가 아쉬웠다. 그렇다고 용암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연검의 묘리를 살려 용암을 공중에 띄우거나 가르고 들어갈 수는 있다 해도 그 안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필패할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힘을 한데 모아 찔러도 모자랄 판에 힘이 분산된 상태에서 무슨 공격이 통하겠는가! 다키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만 한다. 반드시 얻으리라. 일단 얻기만 하면 날개를 다는 격이다. 다키의 빠른 속도는 그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두 번 다시는 아스타로트한테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른 채 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의 자식들로, 아버지뻘인 아스타로트를 상대한다는 것이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다이아몬드를 가공하는 것이 같은 다이아몬드인 점을 감안할 때 단지 우스운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거기다가 부르는 것만 아들에 가깝다는 것이지, 전혀 다른 존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선 아슈가 자신을 돕는 것 또한 그런 이유니까 말이다. 그때 녀석의 기척이 느껴졌다. 한참의 휴식 끝에 다시 용암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블루! 아슈의 부름에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키를 주시하며 아슈의 그립을 지그시 움켜쥐고 천천히 뽑았다. 녀석은 허공을 디디며 다가왔는데, 일순 부러져 덜렁거리는 녀석의 날개가 눈에 들어왔다. 좀 전의충격이 작지 않았던 것일까?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것 같았다. 히히힝! 녀석이 미친 들소처럼 달려들었다. 너 죽고 나 죽자고 외치는 것처럼 무지막지해 보이는 돌이었다. 그것을 본 블루는 이를 살짝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아슈를 집어넣고 마주 다려나가기 시작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아니, 걸어오는 사람 발밑으로 총총 뛰어 들어가는 병아리처럼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이윽고 블루의 몸이 녀석의 육중한 몸과 부딪혔다. 콰광!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반경 수 킬로미터의 땅거죽이 뒤집어지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키와 블루였다. 파팟! 튕겨져 나간 블루가 허공에서 신형을 잡았다. 그러나 패색이 짙었다. “쿨럭!” 기침과 함께 입에서 피 화살이 튀어나갔다. 동시에 씨익 웃는가 싶더니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마치 줄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인형처럼. 슈우웅. 그대로 두면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심각한 부상을 면치 못할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털썩 블루의 몸이 가벼운 반동으로 출렁였다. 마치 푹신한 침대 위로 떨어지듯 아무런 충격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가벼운 소음이었다. 히히히힝! 블루를 등에 업은 채 입술을 뒤집으며 우는 다키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웃는 것처럼 보였다. 바닥에 발자국을 남기며 어디론가로 걷기 시작했다. 제5장 몬스터 전쟁 그때였다. 사안이 복잡하게 엮이고 있는 회의실로 전령이 뛰어들어와 분위기를 써늘하게 만든 것은. “뭐지?” 니콜라스의 질문에 전령이 뻣뻣하게 긴장하여 굳은 모습으로 경례를 했다. “저 누군가가 찾아왔습니다.” “누군가가?” “한 여성입니다.” 순간 분위기가 살기로 가득 찼다. 으득! “지금 장난하는 게냐? 그게 무슨 중요한 일이라고 회의실로 뛰어 들어왔단 말이냐? 네 놈을 죽여 기강을 바로 잡아주마!” 독기어린 외침! 순간 전령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며 창백하게 변했다. 당장 목을 베겠다는 듯 검을 뽑아 들고 한 장군이 달려든 탓이다. 장군은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어 답답하던 중인데 분풀이할 것이 생겨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브, 브브, 블루 경을 뵈러 왔다고 합니다.” “뭐라고?” 멈칫! 만약 그 말이 조금만 늦었다면, 그의 이승생활은 오늘로서 끝났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그의 목젖까지 다가간 장군의 검에 살짝 피가 내비쳐 있었다. 가차 없이 휘두르던 검이 가까스로 멈춘 것은 블루라는 이름이 주는 파장 덕이었다. 그것은 무릇 그 장군만 그런 게 아니었다. 모두의 시선에 물음표가 새겨졌다. 장시간의 침묵은 덤이었다. 뒤늦게 누군가의 입에서 질문이 튀어나왔다. “블루 경을?” “그, 그렇습니다.” 전령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급하게 대답했다. “......!” 전장 한가운데까지 찾아올 여자가 누구란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블루를 아는 여인이라니......! 일단 블루를 찾아 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단순한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누구지? 설사 정인이 있다 해도 이렇듯 위험천만한 곳으로 찾아올 만큼 간이 큰 여인이 있었다니!” 베르니스의 웅얼거림에 구석에 있던 뮤엘이 흠칫한 표정을 짓더니 나지막하게 한마디 흘렸다. “호, 혹시......” 뮤엘의 의뭉스런 어투에 로이가 즉각 반응했다. “설마!” 조심스럽게 세바스찬 2세를 돌아보는 클레인과 로이 그리고 뮤엘이었다. “열어라!” 뮤엘의 명에 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 찾아간 것은 세바스찬 2세와 뮤엘이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차를 마시던 여인이 천천히 일어나며 세바스찬 2세를 반겼다. “세바스찬 영주님!” “역시 당신이었군요.” 세바스찬 2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의 속내를 알 것도 같았지만, 누구도 내색하지는 않았다. 무의식중에 드러난 표정을 아는 척하는 것이 귀족인 그의 자존심을 건드는 것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에그잔티아는 그의 마음을 알면서도 피하는 입장이지 않은가! “이곳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세바스찬 2세의 정중한 인사에 그녀가 답했다. “이곳에 그분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흠칫! 사실 그 이야기는 마을에서 쉬쉬하는 비밀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들도 세바스찬 2세와 에그잔티아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들로서는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신과 같은 블루보다 세바스찬 2세와 연결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도움도 되며 현실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 실수로 그 이야기를 흘리고 만 모양이었다. 그리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소식을 접하자마자 한 달음에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세바스찬 2세는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이지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줘도 너무 몰라줬다. 아버지가 크게 실수한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일부러 이런 시련과 상처를 주는 것이라면 그녀를 잔혹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물었다. “그분은 어디에 계시죠?” 욱씬! 심장이 강하게 수축하며 통증을 유발시켰지만 세바스찬 2세는 짐짓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분은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두근두근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뻔히 들려다보일 거짓말보다 가슴이 더 뛰었다. 그녀한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과연 그녀의 차분하던 표정이 가볍게 경직되자,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뮤엘이 슬쩍 건드리며 정신을 차리라는 사인을 보냈다. 사실 뮤엘은 세바스찬 2세가 정말이지 한심하고 답답했다. 다른 일에는 그토록 냉철하고 냉정하며 평정심을 잃지 않고 넓은 시야로 일을 처리하는 그가, 에그잔티아 앞에 서기만 하면 바보가 되어 버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말이지 사랑의 바보란 글귀는 세바스찬 2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어디 계시죠?” 에그잔티아는 어느새 냉정함을 되찾고 차분한 모습으로 질문했다. “모르오.” 세바스찬 2세의 답변에 에그잔티아의 시선이 뮤엘을 향했다. 앞서 이상한 기척을 느꼈음에도 뮤엘은 피할 시간조차 없이 그 날카로운 눈빛에 적중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마지못해 말문을 열었다. “저, 정말 나도 몰라......!” “정말이야?” 송곳처럼 날카롭게 파고드는 그녀의 질문은, 또 한 번 세바스찬 2세의 가슴에 살기와 함께 압박감을 전해주었다. “그, 그렇대도!” 거듭 강조했지만 에그잔티아는 좀처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것은 뮤엘 스스로 자신이 어렇게 신용 없는 놈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깨닫게 해주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자신을 타인의 시점으로 돌아보니 그다지 좋은 놈이 아니었던 것이다. 슬쩍 시선을 회피하는 뮤엘. “정말 몰라?” 언성이 슬쩍 올라갔다. 이러다 또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슬쩍 세바스찬 2세의 눈치를 살핀 뮤엘이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제아무리 그녀라도 극한에 위치한 발리토 산맥까지 블루를 찾으러 갈 저도로 무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리토 산맥!” “발리토 산맥?” 역시 예상한 반응이 왔다. 뜬금없이 무슨 수리냐는 듯 질문을 던진 것이다. “지금 주군께선 그곳으로 가셨어.” “왜?” “왜는, 일이 있으니까 가셨지.” 순간, 그녀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그 모습에서 그녀의 고집을 엿볼 수 있었다. 기필코 찾아가고 말겠다는. 그래서 깨달았다.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 똥 밟았다.!’ 세바스찬 2세가 흘리기 시작한 살기 때문에 깨달은 것은 아니다, 결코! “에휴!” 뮤엘은 한숨을 내쉬며 안락의자에 몸을 묻었다. 로이가 다가와 물었다. “웬 한숨?” “에그잔티아 때문에.” “에그잔티아가 왜?”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당연히 모르니까 묻지. 알면 이렇게 물을 이유가 있겠어?” 슬쩍 로이를 올려다본 뮤엘은 답답하다는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로이란 녀석은 원래 이런 녀석이었던 것이다. 뮤엘이 한숨을 내쉬며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뭘 들었냐?” “에그잔티아가 발리토 산맥을 간다며.” 뮤엘은 정말이지 로이의 머리를 해부해보고 싶었다. ‘이 새꺄!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라는 것 좀 하란 말이다! 그러니까 네가 로사랑 결혼을 했지.’ 그렇게 외치고 싶지만 참아야 했다. 혹시나 이 이야기가 로사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그녀한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그게 아니잖아!” “그럼?” “에그잔티아를 말려야만 했어.” “왜? 가게 놔두면 안 돼?” 결국 참지 못하고 분노의 철권이 녀석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퍼억! “케헥! 뭐, 뭐야?” “나니까 이 정도로 끝났다고 생각해라.” 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억울했다. 하지만 마땅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투덜거리며 궁상을 떨었다. 뮤엘이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세바스찬 영주가 그녀를 좋아하잖아.” “당연하지.” 로이의 자신감에 찬 발언에 뮤엘은 입맛을 다셨다. 이런 무책임 무감각 무념무상 같은 녀석조차 알고 있는 사실을 세바스찬 2세만 모르고 있으니 답답할밖에. “너는 에그가 영주랑 주군 중에 누구랑 연결되었으면 좋겠냐?” “흠......” 그 질문에 한참을 고심하던 로이가 주먹을 자신의 손바닥에 내려치며 밝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영주!” 이런 범대륙적인 바보조차 알고 있는 답을 왜 당사자들만 모른단 말인가! 하도 기특해 다시 물었다. “왜?” “주군은 인간이 아니잖아.”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역시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뮤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주군은 인간이 아니잖아! 주군은 인간이 아니잖아! 주군은...... ‘정말 주군은 어떤 존재일까?’ 에그잔티아는 방 안에서 루티시아의 머리를 따주며 딴생각에 잠겨 있었다. “언니, 무슨 생각해?” “으, 응? 아냐, 아무것도......” “피, 거짓말!” 루티시아의 새침한 어투에 에그잔티아가 손을 멈추고 물었다. “거짓말이라니?” “언니는 말이지 뭔가 생각하고 싶어 할 때면 내 머리를 따주더라.” “내가?” 끄덕 루티시아가 볼 듯 말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그잔티아가 다혹감을 감추기 위함인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루티시아의 머리를 묶고 반대쪽을 땋기 시작했다. “후후! 아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 게 아닐 수도 있지만......” 뒷말은 에그잔티아 자신도 듣지 못할 만큼 작았다. 말끝을 흐린 그녀의 시선이 거울을 향했다. 그러자 거울 속의 여인이 그녀를 마주본다. 그리고 그녀가 웃자 따라 웃었다. 그런데 왠지 그 웃음이 슬퍼보였다. 그녀의 눈에 맺힌 이슬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치마 위로 떨어졋다. 그 모습을 보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흐느기고 말았다. ‘흐흑!“ 루티시아가 에그잔티아의 얼굴을 감싸 안으며 위로했다. “울지마, 언니.” 숨어서 그것을 지켜보던 세바스찬 2세는 자신도 모르게 거친 발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달려 나가며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다행히 그곳은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 저 멀리 적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상관 없었다. 이 고통과 슬픔의 무게를 털어낼 수만 있다면. 나는 여전히 시냇가에 젖은 모래밭을 걷는 신비스러운 존재에게 소리친다오 그것은 나와 가장 닮아보이고 진정 나와 흡사한 존재! 나와 전혀 같지 않는 것, 나의 반 자아, 그 모든 상상할 수 있는 존재들을 실험한다오. 그리고 그 존재가 지금 이 형상기호 옆에 서서 마치 그 새들을 두려워하듯 내가 구하는 모든 것을 해명하고 속삭인다오 새벽녘이 되기 전에 소리 높여 순간적으로 우는 새들이 불손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누설이라도 할까봐서 * * * 전투가 재개되고 몬스터들이 총공세를 폈다. 이번에 무너지면 정말 전멸당할지 모른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그토록 죽였건만 이 많은 몬스터들이 대체 어디서 또 튀어나왔는지 의문이다. 마치 전 대륙의 몬스터들이 이곳에 집결했다고 해도, 이렇게 많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질 못했다. 그러나 세바스찬 2세에게는 아무런 걸림돌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에게 그건 축복이었다. 잠시나마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감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광기라는 이름으로. “으아아아아아아! 죽여주마!” 서걱서걱!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피 안개 피 보라 수준을 넘어 붉은 폭우가 주변에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앞을 가로막고 있던 몬스터 피였다. 꺼엑! 꺼어아악! 각양각색의 비명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죽어가는 몬스터들! “개자식들!” 세바스찬 2세의 손속엔 사정이 없었다. 써억! 검이 움직이면 어김없이 몬스터들 목이 바닥을 구르고 피가 솟구쳤다. 일격필살! 조종당하는 몬스터들조차 그의 살기에 짓눌려 본능적으로 피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피에 굶주린 살귀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옆에서 보좌하듯 그의 위험을 거드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클레인이었다. 말리고 싶지만, 그가 어째서 이러는지 알기에 말릴 수 없었다. 아니 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의 폭주상태가 계속 이어진다면 무슨 수를 써야겠지만, 혹시나 이렇게라도 해서 속이 풀릴 수만 있다면 지켜바주고 싶었다. 그나마 폭주하고 있는 세바스찬 2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병사들이 보기엔 세바스찬 2세의 거침없는 행동이 용맹함으로 비춰 보이고 있었는지 뒤를 따르며 함성을 내질렀다. “지휘관님의 뒤를 따라라! 몬스터들을 죽여라!” “몬스터들을 죽이자!” 상관의 모습에 용기백배한 것일까? 부하들은 그를 뒤따르며 몬스터들을 향해 가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실력 이상의 능력을 선보였고, 결국 일방적인 몬스터 학살처럼 비쳐졌다. * * * 이번 작전은 이랬다. 신기들로 몬스터를 조종하는 다크 엘프를 제압한 다음 신기를 탈취하는 것이다. 그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대규모 전투가 필요하기에 선봉장을 뽑았을 때, 헤르마틴에서는 세바스찬 2세가, 유슬라니안에서는 벨리어스 장군이, 타르나토스에서는 미엘 대신관이 나섰다. 누가 앞장서야 할지 결정이 나지 않았지만, 세바스찬 2세의 강력한 요청으로 결국 그가 선봉에 서게 되었다. 타르나토스의 미엘 대신관이 그 후방을, 유슬라니안의 벨리어스가 좌방과 우방을 맏기로 했다. 그러나 벨리어스가 두 쪽 다 맡기는 버거운지라, 그의 후인이라 불리는 막스 부장이 좌방을 맡게 되었다. 각축이 벌어질 때 아직 엘프들이 합류한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적 후방으로 엘프들이 숨어들어가 다크 엘프들을 제압한다는 계획이었다. 다크 엘프의 전투능력이 엘프보다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싸움만 잘한다고 꼭 이기는 것은 아니다. 엘프는 다크 엘프와 달리 엘프만의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반드시 이길 이유도 없었다. 성물만 되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병사들의 바람과 달리 아이린과 추세흔은 군의 총지휘를 니콜라스한테 떠넘기고 자신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엘프들의 공세에 아이린과 추세흔까지 합세한다면 전투는 금세 끝 날 수도 있을 터였다. 엘프들도 그 사실을 알고 은근한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둘이 인간이라 부르기 힘들 만큼 강력한 존재임을 간파한 것이다. 그들 도움으로 몬스터들을 조종하고 있는 성물만 회수한다면, 그 즉시 몬스터들은 분산되고 말 케고 그럼 뒤에 남겨진 타르나토스의 오합지졸 따위는 상대할 이유도 가치도 없었다. 아무리 개조된 인간이라 해도 한 손이 열 손을 막지 못하는 것은 불변의 법칙! 그럼에도 그들이 굳이 움직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 이유는 자신들이 움직이면 마왕을 견제할 수도 없을뿐더러, 최악의 경우 마왕이 움직일 계기를 만들어줄 수도 있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결국 엘프들도 그 사실을 이해했고, 그들을 제외한 상태로 작전이 개시되었다. 이 전쟁은 훗날 3차 제국전쟁이라기보다는 몬스터 전쟁, 혹은 마계대전 등으로 불리게 될 터였다. 그리고 크로타니안은 몬스터 전쟁을 유발한 악의 축으로 역사서에 한 줄 오명을 남길게 분명했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 * * 히히히히힝! 푸릉! “으음?” 블루는 말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찰나, 전신이 욱신거리며 자신도 모르게 휘청했다. “크흑......!” 그는 자신이 왜 이리 고통스러운지 깨달았다. 왜 이곳에 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만은 분명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그러고 싶었다. 아니, 전혀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할까? 그때 아슈가 말을 걸어왔다. -주인님! “아슈! 어떻게 된 거지? 이곳이 어디냐?” -다키의 아지트 같은 곳인가 봐요. 그때 다시 들려오는 말울음소리! 이히히히힝! 힘겹게 고개를 돌려보니, 동굴 입구 너머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지트라...... 내가 봐도 그런 것 같군. 그런데 이곳에 내가 어떻게......?” 블루가 힘겹게 질문을 던지자, 아슈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간략히 말해주었다. “......!” 블루의 입가가 가볍게 올라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한 것 같군. 내가 녀석의 마음에 든 것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의 파장을 읽을 수 있는데, 그가 주인님을 볼 때 느껴지는 파장이...... “파장이?” -나쁘지 않아요! 아슈는 길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블루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가 덧붙였다. -하지만! “하지만?” -설사 다키가 주인님께 호의를 가졌다고는 해도 자신의 등을 빌려줄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어요. “흠......” 뜻밖의 말이었다. 일순 블루의 얼굴에 살짝 긴장감이 어렸다. 다키의 마음에만 들면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뭐가 이리도 복잡하단 말인가! “뭐가 문제인 거지?” 블루의 물음에 아슈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도도한 숙녀의 등을 아무한테나 내줄 리 없죠. 그녀의 자존심은 상당히 세거든요. 마계에서조차 유일하게 아스타로트한테만 자신의 등을 내주었으니까요. 그 말에 블루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거 재미있겠는걸.” -재미요? “그래, 내가 녀석의 등에 올라탄다면 아스타로트와 동급이 되는 것 아니겠어?” -예? 아슈가 짧게 반문했다. 말없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블루가 물었다. “잠깐만! 내가 다키의 등에 올라탔는데, 혹시나 아스타로트를 알아보고 날 버리거나 하지는 않겠지?” -흠......아마도 그럴걸요? 옛 주인을 보면 반가워할 수는 있겠지만, 워낙 자존심이 강하니까 자신이 인정한 사람을 따를 거예요. 마신 아스타로트가 원래의 주인이라고는 해도 중간계에 있는 그와, 마계의 그는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뭔가 복잡한 이야기가 있는 듯한데, 한마디로 내가 생각하는 암울한 전개는 없다 이 말이지?” -예! 일단 인정을 받으면, 그런데 그녀의 등 위에 올라탄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니에...... “큭큭, 좋았어.” -......! 블루는 더 이상 아슈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마치 모든 일이 성사되었다는 듯이 슬그머니 입가를 끌어 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날렸다. 그런 블루를 보며 아슈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내심 블루가 그녀의 등에 올라타는데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언젠가부터 블루라는 사람한테 감염된 것이다. 그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자신감이란 바이러스에. 세상 그 누구보다 자유스러운 그녀의 등 위에 무턱대고 올라탄다고 정말 받아 주리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블루 바이러스의 효능 중 하나는 사람을 낙천적으로 만든다는 데 있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아슈는 검집 안에서 내심 그렇게 중얼거렸다. 제6장 마왕의 움직임 어둠의 몸을 갉아먹은 달이 힘겹게 하늘에 떠 있는 밤하늘. 모두가 잠이 들어도 모자랄 시간이건만, 사람과 몬스터들의 비명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우와아아아아아!” 전쟁의 마지막을 아쉬워하듯 적의 반항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십만이 넘는 제국연합군의 힘은 그들의 반항 따위는 가볍게 누를 만큼 막강한 것이었다. 그들 앞을 막아설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마왕은 어두운 하늘 위에서 잠자코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마왕한테 아이린과 추세흔은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모든 건 마왕한테 달려 있었다. 그가 움직이면 이 전쟁은 그 즉시 끝날 터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연합군의 참패일 것이다. “성공했나 보군.” 추세흔의 나직한 중얼거림에 아이린 공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보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몬스터들이 오합지졸처럼 변했다. 지금까지의 체계적인 지휘체제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엘프들의 다크 엘프 습격이 성공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마왕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으로 거의 기정사실이 되었고, 달려온 전령이 쐐기를 박듯 나직하게 말했다. “신기를 되찾았다고 합니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에 놀람은 없었다. “수고했다!” 아이린 공작이 건조한 목소리로 짧게 치하했다. 전령이 바람같이 사라지자 추세흔이 말을 걸었다. “불안하군요.” 그 말에 아이린 공작의 입에서 가벼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뿐, 차분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린 공작의 모습에서 추세흔은 흥분마져 느꼈다. 마왕이라는 적을 눈앞에 두고도 두려움보다 즐거움이란 감정이 두드러져 보였다. “왠지 기뻐하는 것 같군요” “하하! 그렇게 보이오?” 추세흔의 말에 아이린 공작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덧붙엿다. “어찌 즐겁지 않겠소! 현세에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최고의 적이오. 저 존재보다 강한 존재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등장할 일이 없겠지. 그러니 저자와 싸워서 죽는다면 둘도 없는 명예가 아니겠소?” “명예라......” “당신은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후, 사라졌다고 생각한 감정이 다시 가슴을 뛰게 만들고 있으니까! 이 두근거림! 정말이지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소.” 공작의 말에 추세흔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았다. 동질감을 느낀 탓이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아이린 공작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지금까진 나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존재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소. 그 위대하다는 드래곤조차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지 못했지. 그런데, 더 이상 적수가 없어 싸늘히 식어버린 내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 존재들이 나타난 거요. 눈앞의 저 마왕을 비롯해, 헤르마틴의 니콜라스 총사령관 그리고 블루, 블루의 수하를 자칭하는 당신까지!“ “......!” 공작의 눈빛이 암기처럼 반짝이며 추세흔의 뇌리 속에 틀어박혔다. “난 지금이 너무 행복하오. 늘 최강자라는 자리만 탐했지, 나와 맞설 수 있는 적수가 있다는 것이 이처럼 기쁜 일이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소.” “그 마음을 나도 알 것 같소.” 추세흔의 수긍에 아이린 공작이 씨익 웃었다. “나중에 한 번 붙어봅시다!” “그러지요. 나중에 꼭......!” 뒷말은 잇지 않았다. 만약 살아난다면......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적으로 엘프들의 공이었다. 그들이 신기를 되찾은 덕에 몬스터들이 지휘체제를 잃고 검사들 검 아래 목숨을 잃거나 도망친 것이었다. 이제 크로타니안을 상대로 총공세를 펼치는 일만 남았다. 크로타니안! 이제 그 이름이, 그 국가가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엘프들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자신들이 지닌 무기의 진정한 정체를 알아차린 탓이다. 신이 내린 무기가 아니라 바로 벨제뷰트의 힘을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라는 사실을. “장차 이 무기를 어찌해야 할지 의견을 내보시오!” 미사메르티 장로의 말에 엘프들로 가득 들어찬 회의실이 잠시 웅성거렸다. 그때 제1장로 마르카데시아가 말문을 열었다. “이 무기의 정체를 알았다 해도 우리는 이 무기를 받아들어야만 합니다. 이 무기를 다시 봉인하면 얼마든지 옛날처럼 모든 걸 잊고 평화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 말에 몇몇 엘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정체를 알았다해도 바이너리 트위스터가 가져다주는 평화의 상징만큼은 변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이랴. 사기(邪氣)를 거부하여 마물들을 밀쳐내고 영생에 가까운 삶을 주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마을 찬성하지 않는 부류도 있었다. “말도 안 됩니다! 지금까지 몰랐지만, 알게 된 이상 그 저주 받은 물건을 다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 영생이란 허울은 좋으나, 우리한테 저것의 존재는 일종의 저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저주라고?” 누군가의 의문에 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타 종족과 교류를 끊고 스스로 만족한 나머지 발전을 등한시하는 나태한 습성을 주입해 끝내 바보로 만들려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말에 몇몇 엘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찬반논쟁이 벌어졌다. 정확히 반반으로, 어떤 답도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로의 주장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지 사고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원론적인 이야기로 귀결되어 말꼬리 잡기가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말문을 열었다. “저는 어느 쪽도 아니지만, 그 무기를 인간들한테 넘기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군요.” 그 말의 파장은 실로 엄청났다. 둘로 편을 나눠 목에 핏대를 세우던 두 부류의 엘프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불가하오?” 그러나 미사메르티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젊은 엘프를 바라보았다. 그가 말했다. “흠, 그래도 끝까지 들어봅시다.” 엘프 장로들이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저 어린 엘프가 왜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들어볼 시간은 충분했다. 그 이유를 들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젊은 엘프한테 꽂혔다. “자 말해보시게.” 미사메르티 장로의 말에 젊은 엘프는 잠시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곧 말문을 열었다. “인간들 말을 들어보고 나서 명분이라는 게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저 무기가 신기가 아니라면, 신기로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말에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기로 만들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3장로 유라도르가 물었다. 그가 말했다. “저 무기로 마왕을 때려잡는다면 신기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요?” “......!”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저 신기로 마왕을 잡는다고! 만약 마왕의 존재가 없었다면, 조금 전 설전을 벌이던 두 분파는 계속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을지도 몰랐다. 합의 하에 저 검을 봉인해버렸을 수도 있고. 하지만 마왕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왕을 막아낼 수 있는 존재는 블루라는 사내와 아이린이라는 귀족뿐이었다. 자신들이 강하긴 하지만, 그들 중에선 둘을 상대할 자가 없었다. 상대한다고 해도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존재적 가치를 뛰어넘은 초인들이기 때문이었다. 친구인 존 라이튼만 있었다면......! 미사메르티 장로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라면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해주고 명쾌하게 해답도 내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부재가 아쉬웠다. 그는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모든 상황이 그의 손끝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미사메르티 장로의 한숨이 길게 이어졌다. 다음날 아침.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은 뜻밖의 손님에게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이것은......?” 아이린 공작의 눈빛이 수십 년 만에 사심으로 흔들렸다. 그것은 추세흔도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 마음의 공부를 쌓은 그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들이 받은 물건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런 그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엘프들의 신기라 불리는 바이너리 트위스터였다. 미사메르티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문에 답을 주었다. “맞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이너리 트위스터입니다.” 아이린 공작의 목젖이 가볍게 움직였다. “이것을 나에게 주는 것이오?” “물론입니다.” 그 말에 아이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재차 물었다. “이유가 뭐요? 이런 물건을, 그것도 엘프들의 보물 중 보물이라 불리는 바이너리 트위스터를 인간에게 맡기다니!” 그의 눈빛은 그의 생각만큼이나 날카로웠다. 하지만 미사메르티 장로는 태연히 그의 눈빛을 받았다. 그가 살아온 시간이 얼만가!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괴력을 지닌 사내라 해도, 직접적인 공격이 아니라 살기뿐이라면 얼마든지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뭐요?” “마왕을 처단하는데, 사용해주십시오. 곧 있을 최후의 전투에서 당신들이 패하면, 인간의 멸종만이 아니라 대륙에 생존해 있는 모든 생명이 멸종되고, 결국 이 세상이 멸망할 겁니다. 그것을 방지하는 길은 오직 마왕을 처단하는 것!” 충분히 납득이 갔다. 엘프들이 강한 것은 사실이나 특출 나게 강한 존재는 없다. 인간들과 달리 강함의 높낮이가 거의 없었다. 자연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 정령술, 뛰어난 머리와 마법 그리고 본신의 민첩함을 앞세운 전투력까지! 태어나면서부터 그들은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괜히 완벽한 종족, 혹은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단점 또한 있었다. 뼈를 깎는 자기계발을 통해 재능을 키워나가는 특출 난 존재가 없다는 것. 이는 타고난 능력에 자만한 결과일 수도 있었다. 수련하지 않아도 강한 힘을 지닐 수 있는데, 굳이 새로운 마법을 찾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드래곤은 자신을 먼저 건들지 않는 한 선공하지 않고, 몬스터는 바이너리 트위스터의 영향으로 침입해오지 못했으며, 만일 온다 해도 자신들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 할 수 있는 인간들 역시 그들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자신들은 엘프이기 때문이다. 그 자부심이 엘프라는 종족의 한계를 결정짓는 결과를 낳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러나 인간들은 달랐다. 태어나서부터 약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약했다. 공평치 못하다는 것! 강해지고 싶다는 것! 힘을 갖고 싶다는 것! 이 모든 것은 자유의지로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어진 자신의 재능에 안주한 엘프와 달리 인간은 각자 개성을 지니게 되었고, 그 개성은 힘과 지식이 되어 자유로움이란 이름으로 완성되어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엘프는 물론, 드래곤조차 넘보는 괴물 같은 존재들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헤르마티아 대륙을 통일한 헤르마틴 대제나, 현세의 아이린 공작과 블루 같은 경우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타종족의 뛰어난 존재들과, 인간의 학자들은 그들이 발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보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자신과 관련된 것 외에 모든 존재를 적으로 인식하는 인간의 사고방식이 상상력을 가져다주었고, 그것은 곧 자유란 이름을 빌린 개성이 되어, 결국 자유로운 의지가 되었다고. 한마디로 상상력이 가져다준 한계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의지를 마음껏 실행하다 보니, 상상할 수조차 없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다른 종족한테는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다른 종족에겐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단 말인가? 아니다. 분명히 존재하긴 한다. 다만, 그것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자유의지란 것과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져야 할 뿐이다. 동물들도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일정한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구역이라는 이름의 한계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엘프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정한 틀을 벗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자연스러운 사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신뿐일 것이다. 아무튼 한참의 생각 끝에 아이린 공작은 말문을 열었다.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것도 아니군요. 하지만 하나 더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미사메르티 장로가 중간에 말을 잘랐다. “굳이 사사로운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만.” 끄덕 아이린 공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로 어느새 들고 있는 바이너리 트위스터를 내려 보았다. 생각보다 가볍다. 후후훙! 손잡이와 검날의 중심이 완벽하게 잡혀 있었다. 감각의 극에 달한 자신마저 미세한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그리고 그립이 주는 가벼운 터치감은 팔을 통해 힘의 완급을 적절하게 조절해주고 있었다. 검날은 허공에 떠도는 먼지마저 가를 만큼 날카롭기 짝이 없었다. 블루의 아슈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엘프들의 보물치고 사기(邪氣)가 짙군.’ 공작은 그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미사메르티 장로가 먼저 말하지 않는 이유를 존중한 탓이다. 말하기 싫은 것일 수도 있는데, 그것을 억지로 들춰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자신이 이 검을 들게 된 것이 중요하지, 이 검이 마검이든 성검이든 상관없었다. 지금은 이런 전설적인 무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과연 마왕과 싸워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가슴에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 같은 절정고수에게 작고 사소한 차이점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결코 작거나 사소하지 않았다. 엘프들은 아이린 공작의 변화 없는 표정을 보고 가벼운 미소를 머금었다. 크게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들은 추세흔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에서 느껴지는 동요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아이린 공작도 그러한데, 그라고 어찌 욕심이 없겠는가? “그린 경!” 미사메르티 장로의 나직한 부름에 추세흔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볼일이 다 끝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엘프가 상자 하나를 들고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뭐요?” “당신을 위해서는 이것을 준비했습니다.” 상자를 열자, 은회색 빛이 감도는 채찍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엇이오?” “싸이드 와인더라는 다크 엘프들의 보물이지요. 우리 엘프족 바이너리 트위스터에 버금가는 무기입니다.” 그것은 엘프들이 다크 엘프한테 빼앗은 그들의 신기였다. 가볍게 휘둘러보았는데, 그 감각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뭔가 붕괴되는 듯한 소음에 모두의 시선이 의아하게 변했다. 돌아보니 반대편 벽이 붕괴되고 있었다. 추세흔이 휘두른 채찍 끝이 맞닿는 부분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와 벽을 허물어뜨려버린 것이다. 추세흔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그리고 동시에 하늘 위에 떠 있던 마왕의 눈빛도 변했다. 이히히힝! 왠지 모르게 저 웃음소리만 들으면 배알이 꼴리는 기분이었다. “저 빌어먹을 잡종 돌연변이 새끼!” 블루의 입에서 결국 욕이 튀어나왔다. 정말이지 얼마나 더 이 짓을 계속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녀석은 농락이라도 하듯이 자신의 등을 노리는 블루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푸닥거렸다. 블루는 머리에서 증기가 일 정도로 분노했다. 벌써 잠도 자지 않고 일주일이 넘도록 녀석을 잡기 위해 별의 별 꼼수를 다 동원해 보았지만, 녀석은 넘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녀석의 수법에 속아 물 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블루한테 털끝 하나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다키는 질풍처럼 빠져나가곤 했다. 마치 투우사한테 농락당하는 투우가 된 기분이었다. 블루로선 도무지 그 속도를 따라잡을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그 속도 때문에 녀석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검을 뽑아 단칼에 어쩌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런 미물 따위한테(아슈는 영물이라고 했지만) 농락당해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도 없다고 애써 자위하며 꾹 참았다. 하지만, 곧 폭발했다. 결코 건드리지 말았어야할 성질을 건드린 탓이었다. 그가 살돈 곳엔 이런 말이 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죽여주마!” 그래서 아슈를 뽑아든 것이다. -주, 주인님 자중하세요! “시끄러!” 아슈의 말을 대놓고 씹었다. 누군가의 말림으로 무마되기엔 그의 분노가 너무 커져버린 탓이다. 그 증거로 블루의 이마에 짙은 혈관 마크가 품질 증명서처럼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블루가 절벽을 박차고 검을 휘둘렀다. “파천무흔!” 블루의 손끝에서 처음으로 펼쳐지는 초식이다. -이, 이 힘은......! 블루의 외침과 아슈의 의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 거대한 음영이 생겨나더니 굉음이 터져나왔다. 쿠과과과광! 대기가 갈라지는 소리! 다키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급히 피했다. 그것도 멀찌감치. 몸으로 막아낼 수 있을 만한 기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중간하게 회피하다간 말려들기 십상이었다. 다키 역시 그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 따위가 저런 힘을! 푸릉! 그 진동음에 주변의 산에서 산사태와 눈사태가 일어났다. 블루의 검극에서 시작된 반원은, 모든 것을 흡수하는 블랙홀처럼 주변의 빛조차 빨아들이며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쿠오오오오! 결국 초식명의 이름대로 하늘이 파괴되듯, 그 주위로 한 점 구름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음영이 우주로 사라지자, 다키가 흥분한 듯 콧김을 뿜어내며 푸르릉거렸다. 자신도 화가 났다는 뜻 같았다. 설마 그깟 고기 좀(?) 뺏어먹었다고 저런 기술로 자신을 공격할 줄이야! 푸르릉! “뭐, 그갓 고기? 이 자식아! 일주일 만에 처음 먹는 식량이었어! 그런데 그깟 고기라고!” 아드득! 다키의 말을 알아듣고 블루가 노성을 터뜨렸다. 아슈는 다키의 말을 해석해내는 블루한테 놀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게 분노 덕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아슈가 그것을 알 리 없었다. 사람이 자신을 욕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 블루가 다키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예전처럼 육탄돌격이었다. 그런 블루를 보며 다키가 피식 웃었다. 같잖다는 듯한 웃음이다. 설마 자신한테 또다시 몸싸움을 걸어올 거라곤 상상도 못한 탓이다. 그것도 며칠 전 크게 다쳤음을 모두 잊어버린 듯 무지막지한 속도였다. -으아아아! 브, 블루! “......” 아슈가 비명을 내질렀으나 블루의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력으로 달려드는 블루가 미련하다고 생각하며 다키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 역시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은 성격이었다. 다리로 바닥을 다듬으며 육탄돌격을 시도했다. 두두두두두두! 다다다다다닷! 말과 사람의 형상을 한 두 음영이 맞부딪히는 순간! 푸힝? 다키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몸통과 맞부딪히려는 순간, 블로가 사라지...... 아니, 미꾸라지처럼 자신의 몸을 타고 오르는 게 아닌가! 슈슈슛! 다키는 그제야 블루한테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발광을 시도했다. 그러나 블루의 악력은 가볍게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다 잡은 기회를 한 번 날려버린 적이 있는 그로서는, 이번 기회까지 놓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음 꼼수가 통한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브, 블루 힘내요! 아슈는 자신도 모르게 블루를 응원하고 말았다. 블루는 다키의 발악에 진땀을 빼고 있었다. 승부처는 누가 어 악바리인가? “젠장! 이제 슬슬 포기해라!” 푸히히히힝! “내가 포기하라고? 이런 망할 종자 새끼가......!” 화려한 수식어가 달린 욕들이 블루의 입을 통해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 자신이 이런 욕들과, 이런 꼴 같지도 않은 행위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긴 환생할 거라 생각이나 해봤겠는가! 그 불확실성 때문에 세상이 더 재미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블루는 낑낑거리며 끝까지 매달렸다. 그의 동료들이 보았다면 허탈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을 만큼 처절했다. 문득 전쟁터가 걱정이었다. 그때 아슈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운 좋게 다키 등에 올라탄다고 해도 그가 허락할지는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다는 말은 허락할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 있으면 확실하게 이야기하가고!” -그,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블루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닌지라 일단 입을 다물긴 했지만, 구시렁거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푸히힝! 다키의 발악이 한층 더 거칠어졌다. 블루가 차츰 등을 점하기 시작한 탓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등으로 올라서려는 저 인간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렇듯 노는 것까지는 재미있지만, 저 인간이 등에 올라타면 자신이 지게 된다는 생각이 들자 절대 올려주고 싶지 않았다. 블루의 도전정신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탓이다. 다키는 더욱 강하게 몸부림치며 발광을 했다. “짜샤! 그만 발악하라고!” 낑낑거리며 계속 올라서는 블루! “이제 다 왔잖아! 슬슬 포기해!‘ 푸르륵! 푸르륵! 어느새 거의 등 위에 반쯤 몸을 걸친 블루! 다키가 최후의 발악처럼 저프를 하자 그의 몸이 활처럼 펼쳐졌다. 이번에 느껴지는 압력에 블루가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놓칠지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 블루의 몸이 붕 뜨고 말았다. ‘이, 이런 제길!’ 놓칠 것만 같았다. 블루의 몸이 자신의 등에서 상당히 떨어졌음을 안 다키는 기뻐했다. 바로 그때였다. 팁! 블루의 몸이 기이한 곡선을 그리며 다키의 등 위에 올라타고 말았다. 이것은 블루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다키의 마지막 발악이 오히려 블루에게는 기회였던 셈이다. 순간의 정적! 휘오오오오! 거친 눈보라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블루와 다키는 시간이 정체되기라도 한 듯,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팽팽한 그 침묵을 처음으로 깬 것은 아슈였다. -브, 블루! “......왜?” -올라탄 것 축하드려요. 그런데 이후에는 어쩌실 생각이죠? “생각? 생각이 있었으면 이런 미친 짓을 했겠냐? 대화를 하든지 했겠지.” -하긴...... 블루의 걱정과 달리 한참이 지나도록 다키는 별 다른 반발을 하지 않았다. 딴 청을 부리며 눈을 씹어 먹거나 ‘푸르륵’ 트레질 따위나 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닐 뿐이었다. 마치 블루가 자기 등 위에 없다고 생각하듯이. 조금 전의 발악이 착각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뭐지?” -그러게요? 짧은 생각을 끝으로 블루의 당혹감은 곧 자신감으로 변했다. “날 인정한 게 아닐까?” -서, 설마요. 말도 안 돼요! 믿을 수도, 믿고 싶지도 않았다. 블루의 저렇듯 단순무식한 행위로 정말 성공하다니! 이성적인 자신이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그때 블루가 다키의 불꽃 갈기를 쓰다듬으며 가볍게 목을 치자, 푸르륵거리며 기분이 아주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것으로 확신이 선 블루! “다키!” 이히힝! “하늘로 가자!” 순간, 다키는 질풍처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 순간, 블루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키는 자신을 확실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이 주인인지 친구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 건 크게 중요하재 않았다. 지금은 다키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가자, 남으로!” 이히히힝! 다키는 자신의 불꽃 갈기를 휘날리며, 여섯 개의 발굽으로 힘차게 허공을 박찼다. 그리고 바람처럼 빛처럼 세상에 스며들었다. 제7장 신들의 전쟁 우와아아아! 총공세가 시작되고 제국연합군들이 배수진을 친 크로타니안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소왕국을 비롯한 타국에서 보내온 지원병들로 연합군 수는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나 삼십만을 육박하고 있었다. “타르나토스를 지우자!” “우와아아아!” 창! 차창! 검과 검 그리고 무기와 무기, 몸과 몸이 맞부딪치며 전쟁은 마지막을 향해 달음질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 * * “서, 설마!” 분빛이 크게 흔들렸다. 비단 눈빛만이 아니라 심장도 크게 뛰기 시작해싿. 늘 그 자리에 잇던 마왕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아이린 공작은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없다! 그 어디에서도 그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감쪽같았다. 뒤늦게 아이린 공작의 반응을 알아 챈 추세흔은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입술이 타들어가듯 짧고 빠르게 외쳤다. “어떻게 이런......!” 마왕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는 뜻! ‘어디로?’ 빠르게 두리번거리며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막 총공세로 크로타니안군을 몰아치는데, 이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다니! 그때 추세흔이 다급한 외침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그러나 아이린 공작은 추세흔이 말하기 전부터 거대한 기운을 느끼고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 더 이상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사정은 추세흔 역시 마찬가지. 마왕이었다. 그가 연합군 머리 위 허공에서, 왼손을 오른쪽 사선으로 치켜든 채 강대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들려진 그의 팔로 거대한 마나가 집중되고 있었다. “안 돼!” 아이린 공작이 다급히 외쳤다. 아스타로트가 힐끔 공작을 쳐다보았다. 씨익! 그가 웃었다. 연합군은 아이린 공작의 외침을 듣고 뒤늦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휘둥그레진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것이라 믿고 싶었던 것이다. “마, 마왕이다!” “도, 도망쳐!” 도망치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마왕이 나직하게 한마디 했다. “큭큭, 죽어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손끝에서 수백 갈래의 빛이 호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푸콰콰콰콰콰콰! 요란한 불꽃놀이 같았다. “으, 으, 으아아아악!” “살려줘!” 혼비백산한 연합군이 미친 듯이 도망쳤다. 그 와중에 깔려죽은 사람이 속출했지만, 그것을 도와줄 정신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계속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빛의 호선이 자신들을 향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쾅! 콰광! 콰과광! “으아아아아아악!” “켁, 케헥!”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폭음과 아비규환의 비명소리. 폭발에 몸이 터지고 피가 분수처럼 사방으로 뿜어졌다. 그것이 안개처럼 깔리며 비릿한 혈향이 아이린 공작의 코끝에 간질였다. 으득! 공작은 이를 갈았다. “흐음...... 하아!” 아스타로트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그 비릿한 혈향을 즐기는 것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흡사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을 도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네놈들이 어쩔 것이냐? 몸으로 묻고 있음이었다. 그것도 비꼬는 투였다. 눈대중으로 봐도 최소 수천은 죽은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이토록 허무할 줄이야! 아이린 공작의 표정이 더더욱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건 추세흔 역시 마찬 가지였다. “블루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군.” “이미 각오하고 있었소.” 아이린 공작의 혼잣말에 추세흔이 냉큼 대답했다. 아스타로트의 입가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마치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의 말을 들은 것처럼.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큭큭!” 아스타로트의 안광이 흉흉하게 번뜩였다. 슈슈슈슛!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스타로트에게선 그 어떤 빈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빈틈을 찾기 위해 머뭇거리는 것은 시간 끌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 시간이 아까웠다. 녀석이 또다시 무슨 수작을 벌일지 알 수 없었지 때문이다. “큭큭! 그럼 나도 좀 놀아볼까?” 아스타로트가 양손을 활짝 펼쳤다. ‘빈틈이 없다면 빈틈을 만들면 된다. 아니, 반드시 만들어 내야한다!’ 콰아아아! 삽시간에 아스타로트의 양손에서 붉은 오러가 넘실거렸다. “크흑!” “커헉!”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은 힘없이 공중으로 튕겨졌다. 역시 마왕이었다. 결코 자신들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이곳에 그나마 마왕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곤 그들밖에 없었다. 검을 더욱 힘차게 움켜쥔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은 말없이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전신의 마나를 끌어 모았다. 쿠궁! 쿠구구구구! 단지 기운을 움직인 것뿐인데, 대기가 요동을 쳤다. 순간, 아이린 공작이 사라지고 추세흔이 그 뒤를 이었다. “......!” 아스타로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연속공결이 두 차례 이어진 탓이다. 하나는 뱀처럼 집요하고, 다른 하나는 폭풍과 같은 마력이 담긴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그것이 아스타로트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기 위해 바짝 다가들었을 때, 이번엔 아스타로트가 사라졌다. 파팟! 허공에 나타나 검과 채찍을 휘두르고 있는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 파칭! 휘리리릭! 참으로 아슬아슬한 공방이었다. 잠시 뒤러 빠진 아스타로트의 이마에 살짝 혈관 마크가 튀어나왔다. “설마......!”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도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녀석의 기운이다. “벨제뷰트?” 나지막한 중얼거림은 금세 허공으로 흩어지고 말았지만,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이 그것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 “벨제뷰트? 그게 무슨 소리지?” “흠? 설마 자신들이 들고 있는 무기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단 말이냐?” 아스타로트의 질문에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은 입을 다물었다. 아스타로트가 피식거리며 덧붙였다. “하긴 전투 중에 그 무기의 유래 따위가 중요할 리 없지. 얼마나 잘 먹히느냐? 그것만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게 알면 좀 맞아라!” 휘리리리릭! 추세흔이 휘두른 사이드 와인더가 날카롭게 날아가다 작은 호선을 그리는가 싶더니 거침없이 상대방을 옭아배기 위해 휘감겼다. 아스타로트가 손바닥으로 그 사이드 와인더의 머리를 후려쳤다. 콰광! 거대한 울림! 추세흔이 사용한 마나 양으로서는 생겨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뭐, 뭐지?’ 추세흔은 크게 당황했다. 생각지도 못한 파괴력이 터져 나온 탓이다. 그 바람에 아스타로트와 격돌한 충격으로 그의 신형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서둘러 무기를 회수한 다음 상대의 공격에 대비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것은 마치 내 전력을 모두 쏟아 부은 것과 같은 파괴력이 아닌가!’ 추세흔은 신기가 괜히 신기라 불리는 것이 아님을 실감했다. 처음 그것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저 질 좋고 강한 무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무기의 최대효용은 그의 힘을 증폭시켜주는 데 있었다. 아이린 공작이 들고 있는 바이너리 트위스터 역시 마찬가지일 터였다. 긑에서 발출되는 것이 사이한 기운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아니 참아야 했다. 지금은 그런 세세한 것까지 꼬치꼬치 따질 만큼 한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세흔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생각보다는 엉망으로 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한 방에 나가떨어질 줄 알았는데, 이런 뜻밖의 효용이라니! 문득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욱신! 사이드 와인더를 막아낸 오른팔을 내려다보던 아스타로트가 허공에 흩날리던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광소를 터트렸다.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었구나! 그런데 하필 벨제뷰트 녀석의 마력이라니! 크하핫, 미치도록 재미있구나!” 동시에 아스타로트의 몸에서 가공할 마기가 뿜어졌다. 콰콰콰콰! “허억!” “으음!” 밑에서 그들의 공방을 지켜보던 병사들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알 수 없는 초음파가 고막을 진동하는가 싶더니, 이곳저곳에서 둘조각이며 모래 등이 허공 가득 피어올랐다. 그리고 비명! “으아아아아! 이, 이게 뭐야아아!” “사, 살려줘! 죽기 싫어!” 알 수 없는 현상은 병사들한테 두려움을 선사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맞서 싸우던 타르나토스 병사들과키메라들까지 주춤거렸다. 더 이상 지켜불 수 없었다. 아이린 공작은 자신이 깨달은 무형의 기운을 바이너리 트위스터에 싣고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어찌나 빠른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빠르게 수상한 짓을 시도하는 아스타로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스타로트는 손쉽게 그 공격을 모조리 받아냈다. 파팡! 차차차차차차창! 폭탄이 터지는 듯한 폭음! 병사들은 귀를 막으며 후퇴했다. 베르니스들도 후퇴하면서 그들 전투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저, 저럴 수가!” “저렇듯 빠를 수가!” “흐음......!” 니콜라스는 침음을 삼키며 빠르게 물러났다. 당장 뛰어나가 싸우고 싶지만, 저들한테 괜히 방해만 될 것이 분명한 지라 꾹 참았다.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에게 그는 거추장스러운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전장을 정리하고 저들이 전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빠른 마왕의 움직임으로 아비규환의 지옥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추세흔까지 합류하자 터져 나오는 폭음은 더 켜지고 한층 다양해졌다. 하지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은 아니었다. 저들은 초인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신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투신들의 전쟁이었다. 병사들은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저들의 공방으로 파생된 폭발에 휩싸여 죽거나 운 좋게 도망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 그밖에 그 어떤 행동도 마왕과 싸우는 저들한테 방해만 될 분임을. 그때, 병사들을 이끌던 장군들이 크게 소리 높여 외쳤다. “마왕은 그렇다 치고 저들이 정녕 인간이란 말인가!......후, 후퇴하라! 모두 후퇴하라!” “으아아아아아!” 연합군들은 정신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 * * 아이린 공작의 바이너리 트위스터가 기운을 솓아내자, 아스타로트가 잠시 주춤거렸다. 자신과 상극이라면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벨제뷰트의 기운이 갑자기 휘몰아친 탓이다.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은 그 이유를 몰랐지만, 검에서 흘러나온 사이한 기운이 그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공격이 마왕에게 효용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공작은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에게 약간의 시간조차 허용되는 순간, 그때처럼 언제 당했는지도 모른 채 바닥에 나자빠질......아니, 죽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공작은 눈에 띄는 대로 무형의 검기를 쏟아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지금으로선 이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파삿! 파츠츠츠츳! 아이린 공작의 쾌속하기 그지없는 동작에 아스타로트가 가볍게 양팔을 내저었다. 원을 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나선을 그리는 것 같기도 한 묘한 손동작이었다. 그의 팔이 부드럽게 허공을 휘젓는 순간, 모든 게 무위로 돌아가 버렸다. 허탈할 만큼 깨끗했다. 이제껏 마왕이 자신들을 상대로 놀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 추세흔이 터뜨린 엄청난 사자후(獅子吼)! “죽어라!” 우르르르! 그 즉시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의 손속이 다시 매섭게 격출됐다. ‘공격하자’고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휘휘휙! 쏴쏴쏴!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는 거대한 무형의 기운이 거센 돌풍을 수반하며 엄청난 기세로 아스타로트를 덮쳐갔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할 맛이 나지. 큭큭, 조금 더 힘을 내보라고!” 아스타로트가 신형을 풍차처럼 회전시켜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의 공격을 막아내며, 반격을 시도했다. 그리고 지금은 계속 몰아붙여야했다. “하압!” 아이린 공작이 기합을 내지르며, 혼신의 힘으로 기운을 쏘아냈다. 순간, 촤촤촤! 촤아악! 가공할 음향을 일으키며, 대해의 성난 파도와 같은 거친 기류가 사방으류 밀려나갔다. 콰쾅! 콰르르릉! 그 힘으로 인해 대륙이 송두리째 날아갈 것 같은 굉음과 여세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그렇지만 아스타로트는 그보다 더 강맹산 마력으로 아이린들의 공격을 상쇄시켰다. 그 결과, 힘 싸움이 시작되었다. 추세흔은 옭아맨 아스타로트의 팔을 힘껏 잡아당겼고, 아이린 공작은 검에 더 강한 무형의 기운을 실어 아스타로트을 바짝 밀어붙였다. “저, 저기 공작님께서 밀어붙이고 계셔! 승산이 있어 보여!” “와아아!” 순간, 아스타로트의 인상이 가볍게 구겨졌다. 밑에서 수만의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하고 있지 않은가! “젠장! 벌레들이 자구 짹짹거리는 것이 괜히 신경 쓰이고 짜증이 나는군!” 파칭! 아스타로트는 아이린 공작의 무형지기를 무시하고 팔을 휘둘렀다. 순간, 거대한 마기가 아이린 공작을 날려버리고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 기운에 밑에서 응원하던 병사들이 먼지가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적아를 구분하지 않았고, 대다수의타르나토스군도 그 힘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기뻐할 상황도 아니었다. 재차 아스타로트의 팔이 휘몰아친 탓이다. 무서운 살격이었다! 분노한 사자의 앞발질과 다름없었다. 쿠쿠쿠쿠쿠! 파죽지세의 비사(飛獅)처럼 짓쳐드는 가공할 장력 앞에서 그 누구도 아스타로트를 제지하지 못했다. 추세흔이 자신의 모든 공력을 쏟아 부은 강기로 맞섰으니 각도만 살짝 비껴나가게 했을 뿐, 막아내진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병사들을 향해 날아가다 방향이 틀린 장력이 크로타니안 왕성을 향해 날아갔다는 것. 콰광! 콰과과과광! 굉음과 함께 한순간 성이 사라지고 황량한 들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믿을 수 없는 파괴력이었다. 추세흔은 살짝 각도를 바꾼 것만으로도 자신이 대견했다. ‘내, 내가 저런 녀석과 싸우고 있단 말인가!’ 무릎이 후들거렸다. 그는 자신의 두 뺨을 양손으로 후려치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가 흔들리면, 그 즉시 이 싸움은 끝이 나고 만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아스타로트가 상큼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후, 이제 다시 놀아볼까? 주위가 너무 시끄러웠거든. 정신이 산만할 정도로 말이지. 이제 좀 조용해진 것 같지?” 아스타로트가 뻔뻔하게 잘도 지껄이자,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은 잠시 공포감마저 잊고 참혹한 전장을 내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병사들의 죽음이 가슴 아팠다. 지켜내지 못했다. 모두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이미 기정사실이 되었지만 허탈할 만큼 너무 많이 죽었다. 결국 추세흔은 분노를 터트렸다. “죽여주마, 아스타로트!” 아이린 공작의 살기어린 목소리에 아스타로트가 피식 웃었다. “큭큭! 그거 정말 기대되는군. 하지만 어쩌나? 너희들하고 노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불청객이 찾아온 것 같은데.” 아스타로트는 멀리 창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도 그곳을 바라보았다. 아스타로트와 같은 존재는 절대 이런 걸 가지고 장난치지도 않고, 뒤를 공략하지도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렇듯 선명하게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들이라니! 저 멀리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형형색색의 존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중간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하며 위대한 존재라 불리는 것들이었다. “드래곤?” 추세흔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에 아스타로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아스타로트! 마계에서 쉬지 않고 어찌하여 이곳 중간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냐?” “큭큭, 신의 전령들인가? 이게 얼마 만에 보는 반가운 모습들인가. 나를 환영해주기 위해 와준 것인가?” 여유롭다 못해 능청스럽기까지 한 아스타로트와는 달리 드래곤들은 별로 반갑지 않은 표정들이었다. 평생 한 마리도 보기 힘들다는 드래곤이 이처럼 떼를 지어 나타나다니! 이제껏 드래곤이 이처럼 많이 모인 적은 없었을 것이다. 마왕의 준동! 그것을 막기 위해 모인 것이다. 그렇다면 적의 적은 동료라는데, 우선 저들은 동료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드래곤들한테 아이린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때 가장 덩치가 거대한 드래곤이 일갈을 내질렀다. “신의 뜻을 거역할 셈인가!” 저 드래곤이 드래곤 로드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의 존재감은 단연 탁월했다. 그러나 아스타로트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피식거리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닌가! “후후, 네놈이 신의 뜻을 안단 말이냐?” 움찔! 아스타로트의 발언에 드래곤은 할 말을 잃었다. 당황해하는 드래곤의 반응을 보며 아스타로트가 말을 이었다. “혹시 아는가? 내가 중간계로 모습을 나타내게 된 것도 신의 뜻일지도......크큭!” 그 말에 드래곤 로드가 발끈하여 반박했다. “내가 신의 뜻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네놈이 결코 이곳에 자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드래곤 피어가 울려 퍼졌다. 만중을 다스린다는 드레곤 피어의 거대한 힘이 진동하자, 정신없이 도망치던 병사들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하나둘 쓰러졌다. 아스타로트는 그런 인간들을 보며 이죽거렸다. “큭큭! 그따위 소음에 저기 저 미물들처럼 내가 겁에 질릴 거라고 생각한 거야?” “시끄럽다!” 동시에 드래곤 로드의 입에서 강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드래곤 최고의 무기라 불리는 브레스였다. 쿠아아아앙! 무시무시한 폭음에 이어 진동! 그것을 필두로 드래곤들 입에서 브레스가 터져 나와 아스타로트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쾅! 콰광! 콰과광!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연환공격을 지켜보며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은 왠지 모를 희망에 들떴다. 저 정도 힘이면 제 아무리 마왕이라 해도 죽지 않을진 몰라도 최소한 중상을 면치 못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드래곤의 브레스는 연속적으로 뿜어졌다. 그리고 그것의 영향이 미친 곳은 초토화되었다. 직접적인 타격이 없었다 할지라도, 땅에 금이 쩍쩍 가거나 구덩이가 움푹움푹 파였다. 주위에 인간이 있음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공격이었던 탓이다. 드래곤의 그 무지막지한 공격에 공작은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저런 인정사정없는 파상공격 말고 달리 아스타로트를 이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간의 입장에서 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니콜라스와 기사들의 민첩한 행동에 제법 멀리 벗어나 있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피할 재간이 없었다. 마왕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있어도 위험한데, 가도가도 그가 보였다. 바로 그때. 콰광! 브레스 기운에 밀린 아스타로트가 땅에 처박혔다. 그럼에도 드래곤들은 계속 브레스를 뿜었다. 마왕의 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왕도 마왕 나름이었다. 아스타로트는 이름이 없는 조무래기가 아니라 마신이라 불리던 존재로, 그의 몸을 빌려 부활한 마왕은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강력한 초마왕일 수밖에 없었다. 쿠과과과과과과! 땅이 갈라지면서 빛이 솟아올랐다. 그럼에도 드래곤들은 브레스를 머추지 않았다. 어느새 땅이 벌어지면서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주변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지도상에서 크로타니안이란 이름만 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왕국이 있었던 대지 자체가 사사질 지도 몰랐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드래곤 로드가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언제 뿜어졌느냐는 듯 브레스가 딱 멈췄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갈라진 대지를 내려다보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시작으로 돌아갈지니, 리스토어(Restore)!” 그러자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빛살이 쏟아지는가싶더니, 흉물스럽게 갈라졌던 대지가 다시 원상복귀 되는 것이 아닌가! 병사들은 자연을 역행하는 모습을 보며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저것이 마법이라니! 그 위에 드레곤들이 숨결을 한 번 불어넣을 때마다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더니, 하나의 초원이 형성되었다. “끄, 끝난 건가?”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신호탄이었다. “끝났다! 와, 이겼다!” “마왕을 무찔렀다!” 병사들은 미친 듯이 함성을 지르며 승리를 자축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은 조용했다. 저 지각 밑에서 뭔가 요동치고 있음을 느낀 탓이다. 드래곤들이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었다. 침중한 얼굴로 숨을 죽인 채 땅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 부글부글 조용하던 바닥이 붉게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돌연 펄펄 끓어오르며 용암으로 변해갔다. 무수한 눈들이 숨소리마저 죽인 채 그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부글부글 끓던 붉은 용암에 거센 소용돌이가 일어나면서 아스타로트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아무런 충격조차 받지 않은 얼굴이었다. 왠지 허무해지는 순간이었다. “재밌었어, 크큭!” 웃는 아스타로트와 달리, 드래곤을 비롯한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의 얼굴은 보기 좋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었다. 크르르르 용암이 들썩이며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괴물! 뱀처럼 생겼으나 뱀이 아니고, 드래곤처럼 생겼지만 드래곤 역시 아니었다. 희한하게 생긴 괴물의 등장에 다들 긴장했다. 그리고 그때, 의아한 목소리로 탄성을 지르는 자가 있었다. “용(龍)......!" 추세흔이었다. 아이린 공작이 무슨 소리냐는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추세흔은 말이 없었다. 눈앞의 황금색 괴물한테 신경이 온통 쏠린 탓이었다. 전신에서 금빛 비늘이 찬란한 광채를 발하고, 두 개의 황금 뿔이 솟아나 있는 괴물! 용암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녀석의 몸길이는 최소한 팔백 미터쯤 되어 보였다. 드래곤들을 바라보고 똬리를 틀 듯 몸을 비틀더니 입을 쩍 벌렸다. 순간, 시뻘건 입 속에서 하얀 기체가 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큭큭! 좀 더 재미있게 놀고 싶어 방금 전에 탄생시킨 내 아들이다. 이름은 뭐가 좋을까?” “크릉?” “뭐, 드래곤들까지 놀라게 만들었으니 드래곤 킬러라 불러도 되겠군. 드래곤 킬러! 가서 저 녀석들과 놀아주어라!” 쿠오오오오오!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날카로운 앞발톱을 뽑은 채 드래곤 킬러가 드래곤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 시각. 이히히히힝! 다키는 최후의 결전이 한창인 절곡을 향해 유성처럼 날아갔다. “......!” 블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독한 살기!’ 마음이 조급했다. 이 살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일층 속도를 높이는데 멀리서 짙은 섬광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거대한 폭발! 쿠르르르릋! 대기가 진동하며 블루의 전신을 마구 뒤흔들었다. 동시에 작은 파편들이 날아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저 먼 거리에서 파편이 보이다니! “그가 움직인 것인가?” -맞아요. 그가 움직이고 있어요. “그런데 저 거대한 기운은 뭐지?” -글쎄요. 우선 인간이 아닌 건 확실한 것 같아요. 드래곤인가? 블루는 아슈의 흐릿한 대답에, 다키의 목덜미를 가볍게 쓸어내리며 짧게 명령했다. “다키, 가자! 전속력으로!” 이히히힝! 다키의 거대한 날개가 가볍게 허공에 휘저어진 순간, 한줄기 빛이 되어 사라졌다. 제8장 드래곤 킬러 쐐애액! 드래곤 두 마리가 드래곤 킬러라는 어처구니없는 이름의 괴물을 향해 날아갔다. “네 녀석을 갈아죽이고 말리라!” 쿠오오오! 말 그대로 갈아죽이고 싶었다. 그래서 날아가는 순간부터 아낌없이 힘을 개방한 상태였다. 물론 방심하지 않았다. 마신 아스타로트가 허접한 녀석을 만들어놓고 저런 이름을 붙이진 않았을 테니말이다. 쿠오! 선두로 날아가던 녀석이 자신한테 맞부딪혀 날아오는 드래곤 킬러를 향해 브레스를 내뿜었다. 그대로 명중될 것 같았다. 그런데, 몸을 교묘하게 뒤틀며 브레스를 피했다. 그리고 마치 농락하듯 아슬아슬하게 브레스 사이를 휘감듯 말아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하지만 녀석은 자신의 능청스러운 움직임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본 드래곤들은 미처 분노를 느끼기도 전에 몸부터 피해야만 했다.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드래곤 킬러가 거대한 꼬리를 휘두르며 공격해온 탓이다. 피싯! 드래곤의 몸이 허공에서 사라지더니 반대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이동한 것이다. ‘위험했다!’ 단 한차례의 공방만으로도 자신이 최강의 생명체라는 사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기에 충분했다. 드래곤 킬러! 걸맞은 이름이었다. 어느새 세 드래곤이 합세해 도합 다섯 마리가 일제히 마법 공격을 시도했으나, 소름끼칠 정도로 매끄럽게 회피하며 도리어 반격을 가해올 정도였다. 어중간한 마법은 통하지도 않아 직접 공격을 시도했지만, 결국엔 드래곤 킬러의 강력한 발톱과 꼬리공격을 피하는데 급급했다. 그 와중에 오히려 반격을 당해 두 마리 드래곤이 그대로 머리가 터져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크크크큭!” 그 모습을 본 아스타로트가 흥이 나는 듯 히쭉거렸다. 두 마리 드래곤을 잡은 탓인지 녀석의 움직임은 훨씬 더 활발해졌다. 마치 자신감을 얻은 것처럼. 드래곤들이 그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파상공격을 시도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려고 할 때마다 몸부림치는 통에 접근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소극적으로 단발 공격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때, 드래곤 킬러가 입을 벌리자 하얀 기류가 사방에 뿜어졌다. 솨솨솨솨솨! 드래곤들은 다급히 하얀 기류를 피해 몸을 뺐다. 그 기류의 위험성을 깨달은 탓이다. 닿는 순간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게 아닌가! 그것은 땅도 마찬가지였다. 그 위험천만한 정체불명의 기류가 인간들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위험해! 모두 피해!” 추세흔의 외침에 저 멀리 있던 인간들이 우왕좌왕하며 도망칠 준비를 서둘렀다. 바로 그때! “이 몸과 영혼을 당신을 위해 바치니, 우매한 어린 양들을 위해 빛을 내려 바른 길로 인도하소서!” 파파팟! 신성한 기도문과 함께 곧 거대한 빛이 뿜어짐과 동시에 기류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중심에 창백한 표정의 율레 대신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급히 몸을 날리려던 아이린 공작은 율레 대신관을 보고 멈칫했다. 병사들은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라는 그의 눈빛을 확인한 것이다. 아이린 공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왕과 드래곤 킬러에게 눈을 돌렸다. 도망치던 병사들은 뒤늦게 자신을 향해 날아들던 기류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환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때, 아이린 공작이 움직였다. “제길! 드래곤도 믿을 게 못되는군.” 드래곤들한테 일임하고 싶었으나, 그들 역시 몸을 사리기 바쁜 인간들과 별 다를 게 없었다. 자신들이 지닌 힘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쩔쩔 매는 모습에, 결국 그가 바이너리 트위스터를 뽑아들고 날아오른 것이었다. 새삼 블루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창! 맑은 금속성에 이어 눈부신 보검의 광채가 폭사했다. 동시에 아이린 공작은 드래곤 킬러의 머리통으로 솟구쳐 오르며 보검으로 한쪽 눈을 겨냥했다. 그 즉시 어느새 생성되어 있던 무형검 두 자루가 드래곤 킬러의 눈을 향해 날아갔다. 슈우웃! 검의 형태는 단순했지만, 거기서 뿜어지는 기세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얼마 전 마왕과 싸울 때보다 깨달음이 한층 깊어진 덕에, 무형의 기운을 자신의 수족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다 바이너리 트위스터의 도움으로 그 힘이 몇 배 증폭되어 있었다. 드래곤 킬러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 격인 아스타로트의 기억을 얼마쯤 공유한 탓이었다. 하여 몸을 틀어 피하려는 순간, 저 멀리스 드래곤의 브래스가 날아왔다. 그것을 보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멈칫하고 말았는데, 그것은 씻을 수 없는 실책이었다. 빗겨나가던 무형지검이 갑자기 직각으로 꺾어져 그의 목덜미에 박힌 것이다. 푸욱! 케헥! 케헤헤헤헤헥! 무형의 검이 목덜미를 파헤치며 깊숙이 파고들었다.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드래곤 킬러! 몸에서 일어나는 돌풍이 회오리가 되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쿠오오오오! “제길! 이것은 또 뭐냐?” 추세흔은 채찍을 휘둘러 그 돌풍을 잠재워나갔다. 휘리릭! 휘리리릭! 병사들이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곳에 있는 괴물들이 만들어내는 피해의 반경이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게다가 아무리 유레 대신관이라 해도 사기(邪氣)에 의한 것이 아닌 직접적인 자연의 힘은 어쩔 수 없었다. 혹여 막아낼 수 있다 해도, 지금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린 공작은 더욱 강하게 드래곤 킬러를 몰아붙였다. “더러운 마왕 자식! 이따위 장난 같지도 않은 장난을 일삼다니!” “큭큭! 왜 재미있지 않은가?” “재미? 네놈을 죽이고 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긴 하군.” 진지하게 대꾸하는 아이린 공작의 반응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아스타로트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드래곤 킬러! 녀석들을 죽여라!” 꾸오오!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드래곤의 시선이 인간들한테 쏠렸다. 지금껏 깡그리 무시해온 인간이 자신들보다 더 효율적이며 보다 직접적인 공격으로 아스타로트가 만들어낸 마물 드래곤 킬러를 공략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아스타로트와 대화까지! 아스타로트와 인간은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분명 그우ㅏ의 대화를 통해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드래곤은 그 사실을 얼른 이해하기 힘들었다. 쉬리릭! 두 개의 무형검이 날아가 드래곤 킬러에게 고통을 선사하는 순간, 녀석이 갑자기 상체를 쭉 펴며 자신의 뿔로 아이린 공작의 몸통을 들이받으려고 했다. 갑작스런 녀석의 기습에 급히 몸을 피한 아이린 공작! 동시에 무형검은 생각보다 섬세하고 세밀한 조종을 요하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이 필수였다. “아직 모자란가?” 자조적인 어투의 아이린 공작. 하지만 이미 몸통에 강한 충격을 받은 탓인지, 드래곤 킬러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쿠확! 쿠화화화확! 그 사이 아이린 공작의 무형검이 대기를 가르며 녀석의 몸통을 수십 번이나 통과했다. 퍼퍽! 푸퍽! 쿠화악! 넝마처럼 찢긴 드래곤 킬러의 몸! 그 몸에서 흐르는 검은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좀처럼 죽지 않고 숨을 헐떡이며 아이린 공작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 사이 블루 드래곤이 기습을 시도했으나, 녀석의 꼬리 공격에 도리어 당할 뻔했다. 머리가 녀석의 꼬리에 터질 번한 것이다. 동료들 복수를 위해 기세 좋게 달려든 것까지는 좋았으나, 녀석이 많은 상처를 입었다고 너무 방심한 탓이었다. 아이린 공작이 무형검으로 그 드래곤을 구했다. 놈의 꼬리가 드래곤한테 닿기 전에 드래곤 킬러의 두 눈을 노리고 무형검을 내기 그은 것이다. 파팍! 꾸워워워워워워! 예리한 무형검이 드래곤 킬러의 두 눈을 명중하는 순간 핏줄기와 함께 고통스러운 괴성이 흘러나왔다. 꾸웍! 꾸워억! 괴성은 실로 엄청났다. 두 눈을 잃은 아픔에 드래곤 킬러는 대륙을 붕괴시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기운을 사방팔방으로 뿜어대며 무서운 위세로 발광을 했다. 삽시간에 드래곤들이 힘겹게 수복한 대지가 박살이 나며 주변이 초토화되었다. 콰쾅! 퍼펑! 드래곤조차 박살내는 녀석의 꼬리가 사방으로 휘둘러지며 대지건 바위건 닥치는 대로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그때 아이린이 다시 무형검을 날렸다. 푸푹! 분수처럼 핏줄기가 솟구쳤다. 드래곤 킬러의 괴성이 다시금 대지를 뒤흔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형검을 회수한 아이린 공작은 재빨리 멀찌감치 벗어났다. 무시무시한 위세...... 실로 엄청난 발광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괴물은 고통스런 몸부림을 계속했다. 하지만 아무도 다가가지도, 공격하지도 않았다. 녀석이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은 탓이다. 어차피 족을 놈한테 다가가다 괜히 된서리를 맞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운이 다한 듯 발광을 멈추고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에서 뿜어지는 피보다 몸통이 먼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혼자 죽을 생각은 없었던가 보다. 녀석의 입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아이린 공작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예컨대 최후의 일격으로, 살기도 기척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눈치 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쿠쿵! 바닥에 떨어진 녀석은 한번 꿈틀거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하지만 녀석의 마지막 공격은 계속 아이린 공작에게 날아갔다. 교묘하게 사각으로 파고드는 공격이라, 아이린 공작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추세흔이 외쳤다. “공작!” “어......?” 그러나 이미 피하긴 너무 늦었다. 그때였다. 푸슛! 거대한 무언가가 아이린 공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드래곤 중 하나가 순간이동으로 아이린 공작 앞을 막아선 것이다. 조금 전 아이린한테 구명을 받은, 바로 그 블루 드래곤이었다. 철썩! 진득한 무엇인가가 드래곤의 본신에 닿음과 동시에, 그곳을 중심으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이익! 상식을 초월하는 고통! 그도 그럴 것이 전신이 썩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꾸오오오오오오!” 드래곤은 흐릿하게 웃더니,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퍼석! 완전히 썩은 드래곤의 몸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썩은 나무처럼 으스러졌다. 그것을 본 아이린 공작은 얼른 드래곤들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드래곤들의 눈길은 죽어버린 동료도, 아이린도 향하고 있지 않았다. 저 멀리서 히쭉거리는 아스타로트를 주시하고 있었다. “후우......” “제길! 끝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시작이었군.” 추세흔의 말에 아이린은 지친 몸을 곧게 펴며 아스타로트를 주시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태로는 녀석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초차 불가능할 것 같은데 어찌해야 할지......” 아이린은 대꾸 없이 가볍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대답할 기운조차 없었던 것이다. 추세흔의 말이 옳았다. 찍소리 못하고 죽기 딱 좇았다. 드래곤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이 강한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웬일인지 너무 몸을 사리고 있었다. 예컨대, 직접적인 공격보다 브레스처럼 원거리 공격에만 의존하는 식이었다.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대로 가다간 몰살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너무나 정확하게 들어맞아가고 있었다. 백여 마리 드래곤이 허공에 떠 있는 장관이 연출되고 있었으나, 지상의인간들은 그들에게 믿으을 줄 수 없었다. 그나마 믿을 만한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은 지쳐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 드래곤 정도는 어렵지 않게 전멸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별 피해도 주지 못하고 이처럼 싱겁게 끝나다니! 버러지 같은 놈!” 왠지 아쉽다는 어투였다. “하긴 빨리 끝나든 늦게 끝나든 달라질 건 없지. 어차피 내 손에 죽게 될 테니까, 큭큭큭!” 파팟! 순간, 아스타로트의 신형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들려온 음성. “하나?” 눈앞에 잔영처럼 남아 있는 아스타로트의 미소! 착각이 아닌가 싶은 순간, 퍼엉! 드래곤이 눈앞에서 폭발햇다. 그리고 가루처럼 흩날렸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금속으로 통하는 드래곤 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사방에 흩날리고 있는 것이다. “두울!” 퍼펑! 또 한 마리 드래곤이 폭발했다. 첫 번째 죽인 것으로부터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드래곤이었다. 실수가 아니라 그를 택한 것이다. ‘보이지가 않아! 아니, 느껴지지조차 않았어’ 공작은 갑자기 모든 의욕이 사라지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채 하루도 안 되는 시간에 느낀 감정이 평생 느껴온 감정보다 더 많은 것 같았다. 처음 싸울 때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철저히 자신들한테 맞춰서 싸워준 것이다. 조금 전까지도 버리지 못한 승리할 가능성이 먼지가 되어 흩날리는 것이 느껴졌다. 눈앞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눈을 감은 탓이다. 그러자 소리가 선명한 색깔로 받아들여졌다. 드래곤들은 여전히 폭발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드래곤 여섯이 터져나갔다. 자멸감이 밀려왔다. “으아아아아아아!” 공작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광기어린 목소리로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옆에 있던 추세흔은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슬펐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고함을 지른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사실 그 역시 같은 심정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고함을 지르지 않은 이유는 아직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블루!’ 그는 올 것이다. 반드시! 추세흔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 즉시, 사이드 와인더를 휘둘렀다. 휘리릭! 사이드 와인더는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빠르게 휘몰아치며, 열 번째 드래곤을 향하던 아스타로트의 앞을 가로막았다. “......!” 아스타로트가 멈칫하더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채직에서 뿜어져 나온 기온이 구름을 걷어내고 하늘의 길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 그쪽하고 놀아주지 않아서 삐진 건가? 이거 미안하군. 나도 모르게 편애를 하고 말았어.” ‘편애(偏愛)? 편애가 이런 데 쓰는 말인가!“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모든 신경이 세포 단위로 그에게 쏠려 있었다. 그리고 짧은 공방. 파팟! 탓! 급작스러운 기습을 침착하게 손속을 놀려 막아냈다. “대단하군.” 아스타로트는 신이 난 얼굴이었다. 반대로 추세흔은 인상을 썼다. ‘개뿔!’ 팔에 마비가 왔다. 팔로 방어한 탓이다. 그렇듯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철저히 대비했음에도 팔을 사용해 막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거의 대응하지 못했다는 말과 동일한 것이었다. “역시 인간은 재밌어, 큭큭!” “제길! 정말 재밌어 죽겠다!” 휘릭! 추세흔은 감각이 겨우 돌아온 팔을 움직여 사이드 와인더를 다시 춤추게 했다. 물론 그 공격이 성공할 리 없었다. 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단지 녀석과 거리를 두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야 그나마 방어라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아스타로트는 피하지 않았다. 촤악! 채찍과 손바닥에 맞부딪히는 소리! 동시에 추세흔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아스타로트가 채찍을 붙잡아 힘껏 당긴 탓이다. 치이이익! 손아귀에서 짙은 연기가 피어올랐으나,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추세흔을 바라보았다. 추세흔은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아스타로트에게 회전킥을 선사했다. 그것을 본 아스타로트가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좀 더 꿈틀거려라!” 말을 마친 아스타로트는 갑자기 잡고 있던 채찍 끄트머리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 바람에 추세흔은 크게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그런 추세흔 눈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아스타로트가 이렇게 말했다. “죽어라!” “......!” 추세흔은 눈을 부릅뜨며 아스타로트를 노려보았다.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에, 드래곤 로드가 위에서 자신을 향해 팔을 뻗고 있는 모습이 잡혔다. 추세흔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너나 죽어라!” “뭐?” 순간, 빛이 번쩍였고 아스타로트가 잠시 멈칫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몸을 빼기엔. 그는 사이드 와인더를 가볍게 휘저어 회수함과 동시에 허공을 박찼다. 파팟! 콰과과과광! 산이 날아갔다. “헉헉헉!” 추세흔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반대편에서 아스타로트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거기, 드래곤 로드가 있었다. 추세흔 역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정말 날 도와준 것인가?’ 믿기 힘들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드래곤 로드의 절묘한 개입과 파워는 강력하지만 상대적으로 늦은 마법 공격! 사실 드래곤 로드의 능력이라면,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어야 옳다. 너무 늦었다. 정말로 도와줄 용의가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드래곤과 인간! 그들은 지금 사상 최악의 적을 앞에 두고 있었다. * * * “이거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이군, 큭큭! 지조 높은 드래곤께서 인간을 구하려고 그런 허접한 공격을 감행할 줄이야! 추세흔은 사이드 와인더의 그립을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때 드래곤 로드가 물었다. “인간? 이곳에 인간이 있던가?” 드래곤 로드의 생뚱한 대답에, 추세흔은 물론 아이린 공작 또한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드래곤 로드가 덧붙였다. “이곳엔 우리의 적과 전우가 있을 뿐이다.” 왠지 가슴을 울리는 그 한마디! 추세흔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다. 그때 다시 들려온 아스타로트의 웃음소리! “크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 크핫핫핫핫핫핫!‘ 아스타로트의 몸에선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정말 혼자 듣기 너무 아까울 지경이구나. 그래, 그렇다면 나도 예의를 갖춰줘야겠지. 중간계 전사들한테 걸맞게 말이야!” 쿠오오오오오! 전신에서 화려한 섬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에 맞춰 세상이 먼저 반응했다. 아니, 반응한 것은 자연이었다. 대기였다. 크르르르릉! 콰과과광!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둥과 벼락이 춤을 추었고, 그 사이로 굵은 빗줄기가 떨어졌다. 그런데, 아스타로트의 몸은 젖지 않았다. “.....!” 다들 비에 젖어 경악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고...... 이는 결코 어느 한 존재가 가지고 있을 만한 기운이 아니었다. 그 존재감에 드래곤 로드마저 빛을 잃고 말았다. 아스타로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인간의 몸을 뒤집어쓰고 있다 보니 내 힘이 백프로 개방하기 힘들거든, 큭큭! 그래서 지금까지 오십 프로만 사용했지.” 푸슛! 다시 피어오르는 기운! “하지만 나도 전사의 예를 안다. 자, 이것이 내 힘의 팔십프로다. 마음껏 즐겨라, 큭큭큭큭!”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아이린 공작이 흠뻑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나직하게 한마디 했다. “꽤 시끄럽군!” 잠시 적막이 흘렀다. 아스타로트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주저리주저리 떠들지만 말고 그 잘난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여 주시지!” 도발이었다. 뜨겁게 달군 못으로 가슴을 후벼 파듯 신랄하기 그지없는 어투였다. “크흐흐!” 아스타로트의 웃음! “재가 너무 기를 살려줬나 보군.” 파샷! 눈 깜짝할 사이에 아스타로트는 아이린 공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빨랐다. “다시 한 번 지껄여보시지?” 퍼억! “그억!” 바닥에 내리꽂히는 아이린 공작의 몸을,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히쭉거렸다. “어때, 정신이 번쩍 들지?” 퍼벅! 퍼버버벅! “큭! 크허헉!” 아이린 공작은 원없이 맞았다. 맞아 반대편으로 튕겨지면 어느새 아스타로트가 그보다 빨리 날아가 그를 공격하는 식이었다. “,,,,,,!” 믿기 힘들 만큼 빨랐다. 도와주고 싶어도 손을 쓰기 힘들었다. 드래곤 로드는 위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며 갈등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스타로트의 모습이 연기인지 아닌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신이 인간의 한마디에 발끈하다니! 정말로 그가 분노한 것이라면, 해결책이 나올 것도 같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때 추세흔이 그 싸움에 끼어들었다. 촤르륵! 사이드 와인더가 허공을 가르며 아스타로트의 몸을 휘감아갔다. “이 자식이......!” 아스타로트는 날아가는 아이린 공작을 놔두고 추세흔에게 달려 들었다. 추세흔 역시 공작한테서 신경을 껐다. 그가 날아가는 쪽에 드래곤 한 마리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박! 파바밧! 공방전이 시작되고 추세흔이 흠씬 두들겨 맞았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몇 번은 방어할 수 있었다. 잔 펀치는 맞아도 죽지 않지만, 강펀치는 죽을 확률이 백 프로였다. 그 강펀치를 벌써 몇 번이나 막아냈다. 처음 그와 싸울 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점점 더 강해지고 더 빨라져갔는데, 왠지 상대하는 것이 한결 쉬워진 느낌이었다. 그때 아스타로트와 눈이 마주쳤다. 붉게 충혈된 눈......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차분하던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인간의 몸으로 불가능한 파워를 계속 쓰다보니, 자신의 힘에 취해 쉽게 분노하고 쉽게 흥분하게 되어 반응이 무뎌진 것이다. 뻐억! 아스타로트의 강력한 발차기! 양팔로 겨우 그것을 막아냈으나 추세흔의 몸은 작은 돌멩이처럼 날아가 삼십 킬로미터쯤 떨러진 성벽에 모이 틀어박혔다. 슈슈슝! 쿠가과과광!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성벽이 무너지며 크로타니안 의 흔적이 또 하나 지워지고 말았다. “크흐, 크흐, 크흡!” 아스타로트는 숨을 몰아쉬었다. 입에서 붉은 김이 피어올랐다. 몸에 있는 피가 끓어오르며 증기로 변한 것이다. 쿠와왕! 드래곤 로드의 브레스가 작렬했다. 팔을 휘둘러 그것을 간단히 튕겨낸 아스타로트는 그 즉시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라 드래곤 로드의 복부를 들이받았다. 퍼억! 드래곤 로드가 휘청거렸다. 하지만 꼬리로 아스타로트의 몸통을 휘감아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드래곤 로드라는 이름값에 걸맞는 몸놀림이었다. 아스타로트에게 큰 충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시선을 잡아끌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드래곤 로드가 움직이자 구석에 있던 드래곤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래곤 로드의 품 안에는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이 안겨 있었다. “이리로!” 텔레파시로 이미 이야기를 듣고 기다리고 있던 율레 대신관이 드래곤을 향해 손짓하자, 그가 거대한 몸을 뒤뚱거리며 아이린과 추세흔을 바닥에 눕혔다. 인간한테 신관이 있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빛으로 그대의 아들을 보듬어 주소서!” 고오오오! 율레 대신관의 손끝에서 뿜어지는 온화한 기운이 아이린과 추세흔에게 빠르게 스며들었다. 동시에 그들의 안색과 호흡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져 갔다. 드래곤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드래곤도 힐링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것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정도였다. 이미 아이린과 추세흔의 깊은 상처도 힐링으로 완치시켜놓은 상태. 겨우 숨만 쉬는, 시체에 가까운 상태였기에 많은 힘이 들긴 했지만, 드래곤의 전지전능에 가까운 능력은 흉터 하나 남기지 않고 모든 상처를 아물게 했다. 그것이 바로 마법과 신관의 신성력의 차이점이다. 마법으로는 육체적인 손상만 복구될 뿐, 체력은 되돌릴 수 없다. 만약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수면으로 지친 몸을 완쾌시킬 수 있지만, 마왕이 눈앞에서 활개치고 다니는 판에 잘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자고 나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중간계가 전멸당한 상황에서 혼자 살아남아 있거나, 혹은 죽거나. 어느 쪽이든 끔찍했다. 사실 드래곤들도 아이린들의 힘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자신들 부다 약할지 몰라도 마왕을 상대하는데 뭔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율레 대신관의 이마에 식은땀에 흥건하게 맺혔다. 이들의 체력이 쉽사리 회복되지 않은 탓이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들이라 그런가?’ 잠시 딴 생각을 했지만, 이내 기도문을 외는데 집중했다. 얼마 후, 아이린 공작과 추세흔은 눈을 떴다. 상황을 알아챈 그들은 드래곤과 율레 대신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소.” 율레 대신관이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기껏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신성력을 불어넣어드릴까 하다, 무기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마기라는 것을 알고 넣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반발이 일어나 무슨 결과가 생성될지 모르니까요. 율레 대신관의 말에 아이린 공작이 대답했다. “잘하신 것 같군요.” 그때 이미 추세흔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본 율레가 아이린과 드래곤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고하십시오. 뒤에서 신의 축복을 빌어드리겠습니다.” “가능하면 지옥 말고 천국에 보내달라고 기도 좀 해주십시오.” 그 말에 율레는 말없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이린 공작의 말에 깊은 가시가 박혀 있음을 깨달은 탓이다.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가시! 아이린 공작의 혼잣말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하긴, 이미 이곳이 지옥인가?” 그 말에 율레 대신관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끝으로 아이린 공작은 추세흔을 뒤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또 한 마리의 드래곤이 죽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츠팟! “음?” 아스타로트는 얼른 뒤돌아보았다. 자신의 등 뒤를 위협적으로 날아드는 무형의 기운이 느껴진 탓이다. 아스타로트가 본능적으로 피했는데, 아이린 공작이 어깨를 앞 세운 채 날아오고 있었다. 충격을 받고 튕겨나간 아스타로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네놈은......?” “그래, 네가 알고 있는 놈이다. 혼자 죽기 아쉬워 네놈과 함께 가려고 지옥에서 돌아왔다.” 아스타로트의 시선이 어딘가를 향했다. 인간들과 드래곤이 서 있는 곳이었다. ‘신관이 있었군.’ 갑자기 짜증이 솟구쳤다. 하지만 곧 입가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큭큭! 그거 반가운 소식이군. 어때, 가서보니 어떻던가? 살 만하던가?” 아이린 공작의 말장난에 아스타로트가 히죽거렸다. “그럼 다른 동넨가 보군. 내가 있던 곳은 살 만하거든. 경치도 화려하고......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지겹다는 거지. 내가 뛰쳐나온 것만 봐도 짐작이 가지 않는가?” “전혀!” “그래? 그렇다면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주는 게 도리겠지?” 파팟! 터엉! “크흑!” 갑작스런 발차기에 팔뼈가 다시 부러지며 어긋났다. 하지만 통증을 느낄 시간은 없었다. 엄살은 곧 죽음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죽기 전까지는 고통도 잊어야 했다. 주위를 맴돌고 있는 무형검을 휘두르며 재차 이어질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아까는 확인 사살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확실히 죽여 우리 집으로 초대해주지, 크큭!” 아스타로트는 말을 마치자마자 허공에서 깔짝거리는(?) 무형검을 잡아 터뜨렸다. 파칭! 그리고 손끝에 알 수 없는 기운을 휘감는가 싶더니, 아이린 공작을 향해 내지르며 소리쳤다. “죽어라!” “안 돼!” 추세흔이 급히 날아왔지만, 손을 쓰기엔 이미 늦어 있었다. 바로 그때! 슈슈슛! 붉은 빛이 날아들었다. 그 빛에 휩사이듯 아이린 공작이 사라지자, 아스타로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추세흔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블루!” 아스타로트가 흥미어린 목소리로 반문했다. “블루?” 고개를 돌려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하자, 눈에 익은 말을 타고 아이린을 들쳐 안은 채 황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은발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아이린 공작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가 좀 늦었지?” 제9장 최후의 전투 “서, 설마!” “정말 대장인가? 대장이 확실해?” “대장! 힘내요! 아자!” 베르니스와 스콜 그리고 텐시가 기쁨에 환호했다. 블루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일이 해결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정은 지금까지 굳은 얼굴로 병사들을 돌보고 있던 니콜라스와 세바스찬 2세도 마찬가지였다. ‘주군!’ 모두의 가슴이 함께 뛰고 있었다. 히힝! 푸르륵! 다키가 투레질을 했다. “블루?” 아스타로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에스티마르, 오랜만이군요.” “그렇군.” “아! 그렇게 오래간만도 아닌가? 저번에 만나긴 했지만, 인사를 못하고 헤어졌죠. 제가 조금 피곤했는지 자고 일어나니 안 계시더군요.” 블루가 평소와 다르게 정중한 존대로 말을 걸었다. “조금 바빴거든요. 인사라도 하고 떠나고 싶었지만,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었거든요.” 차분한 목소리의 대답. 블루를 다시 만난 순간부터 충혈된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는 것 같더니, 입가에 미소가 매달렸다. 그것은 비웃음이 아닌, 친인을 반기는 듯한 환한 미소였다. 그러나 그들의 가벼운 안부인사 속에 칼이 숨어 있음을 주위의 사람들은 알아차랄 수 있었다. 금세라도 살갗을 베어버릴 것처럼 날카로운 칼날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잘 해결되었기를 바랍니다.” “블루 덕에 쉽게 처리할 수 있었죠. 그게 모두 블루 덕이었습니다.” 블루는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뭔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블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요.” “......!” 아스타로트의 눈빛이 반짝였다. “......다키?” “오! 이 녀석을 아시나 보군요. 이번에 새로 사귄 친구랍니다.” 아스타로트가 감상에 젖은 눈으로 차분하게 대답했다. “조금 아는 녀석입니다.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녀석인데, 블루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군요.” 이제야 블루가 지금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발을 묶기 위한 수단을 찾아다니던 중에 다키의 존재를 알았을 것이다. 확신하건대,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았다. 가슴이 뛰었다. 어서 싸우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미쳤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을 상대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녀석을 잘 돌봐주십쇼. 섬세한 녀석입니다.” 블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가 물었다. “에스티마르!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겠죠?” 아스타로트는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물론이에요. 만일 중간에 끝낼 생각이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요. 더구나 그의 유언에 따라야 하니까요.” “그의 유언?” “존 라이튼!” 순간 주위가 크게 술렁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반응들이었다. 잠시 아스타로트를 바라보던 블루가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허튼소리는 아니군요.” “블루 군도 아니다시피 저는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블루 군?’ 마치 살람처럼 말하는 아스타로트의 어투에, 드래곤을 포함한 추세흔들은 아연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가지 장난을 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스타로트의 진심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눈앞의 사내를 또 하나의 완성된 자아로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말이다. 중간계에서 가장 완벽하다는 자신들조차 무시했던 그가 말이다. 드래곤들은 그 사실만으로도 큰 충격에 휩싸였다. * * * “유언? 유언이라면 죽기 전에 남기는 말 아냐?” “맞는 것 같은데?” “그럼 존 라이튼이 죽었다는 말이야?” 베르니스의 의문에 텐시가 더 놀란 눈으로 아스타르트를 올려다 보았다. “존 라이튼이 죽었다고?” 연합군 진영이 크게 술렁거렸다. 그들 역시 존 라이튼이 누군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이것 헤르마티아 대륙의 최고의 현자이자 대마법사인 존 라이튼을 모른다면,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닐 것이다. 특히, 인연이 있던 베르니스와 니콜라스들에겐 더 큰 충격이었다. ‘환광술사 존 라이튼이......?’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왕이 쓸데없이 거짓말을 할 리도 없지 않은가? “유언?” “예! 제가 죽였죠, 손수!” 아스타로트 입가에 블루를 만나고 처음으로 경멸어린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나 정신적인 충격에 휩싸인 블루에게 이미 그 미소는 중요한 사항이 되지 못했다. 자신과 호각지세로 보인 존재! 깨달음의 경지가 자신보다 높으면 높았지 결코 낮지 않은 존재! 그가 아스타로트한테 죽었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무사의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전잘 웃으며 술을 마시고 어울렸다 해도 다음날 주검으로 발견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적, 아니 자신과 검을 맞댄 상대보다 약하면 죽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블루의 표정이 편할 리 없었다. 자신이 인정한 사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았다. 블루의 표정변화를 느낀 아스타로트가 말문을 열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표정을 보니 아직 모르는 것 같군요.” “무엇을 말이죠?” “그의 유언 말입니다.” 순간, 호기심이 앞섰다. 대체 무슨 유언을 남겼을까? 아스타로트의 말이 이어졌다. “전 아무 죄가 없습니다. 그가 부탁한 것을 들어줄 뿐이기 때문이지요.” “그의 유언, 아니 부탁이 뭐였습니까?” 블루의 물음에 아스타로트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사무적으로 말했다. “인류의 파멸, 멸종, 세상의 멸망!” 흠칫 듣고 있던 추세흔이 소리쳤다. “그럴 리 없다!” 추세흔 역시 존 라이튼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그가 그런 말을 했을 리 없었다. 그러자 아스타로트가 말했다. “큭큭큭! 네가 그의 속을 알 수 있단 말인가?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그 인간의 속을? 그의 속을 모르면서 그의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온갖 도리를 벗어난 망상들이 없다고 어찌 확신하지? 과연 네놈의 머릿속엔 더러운 생각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는 가? 너는 순수한가?” 쿠쿵! 추세흔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너는 순수한가? 너는 순수한가?’ 그의 물음이 환청처럼 모든 존재들의 고막을 울리고 있었다. ‘난 정말 순수한가?’ 의문에 사로잡혔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한 최소한의 도리! 그것은 최대한 본성을 숨기는 것이다. 예의란 이름으로 가장해. 아스타로트는 지금 그것을 신랄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세상을 파괴하고 싶었다. 그러나 실행하지 못했지. 자신의 힘으론 모자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를 소환했다. 하지만 난 너무 강했지 그래서 수천 명의 여인들을 학살했다. 내 인격을 바꾸기 위해. 그 단 하나의 이유로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죽인 것이지. 온갖 고문이 행해졌다. 자신의 힘만으로 나를 조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들의 저주와 원한을 이용해 나를 조종하고 싶었던 것이지.“ 모두의 얼굴이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의문이 하나둘 풀리고 있었다. 여인들의 실종, 엘프의 숲에서 사라진 신검과 다크 엘프들의 개입, 지옥의 마수 출현, 실종된 사람들과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는 키메라들, 이름 모를 스파이들로 인해 발발한 제국의 전쟁, 끝으로 제국들과의 전쟁을 벌인 크로타니안 왕국의 이유모를 반인륜적 행위까지. 그 모든 게 하나의 계기로 만들어진 사건이었던 것이다. 아스타로트의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그, 그럴 수가......!” 사건의 전말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기사급 존재들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마왕과 맞서 싸우겠다고 마음먹고 직접 목도한 순간보다 그 떨림은 한층 심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사실로 생각하면 모든 게 딱 맞아떨어졌다. 열쇠와 자물쇠처럼. 블루조차 표정이 굳어지고 있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런데 내 자아를 되찾게 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죠.” “아슈......!” “맞습니다. 블루님께서 뽑아든 아슈로 인해 엉망이 돼 있던 내 자아가 돌아온 거죠. 난 그 즉시 분노를 터뜨려야만 했습니다. 한낱 인간 따위한테 농락당한 그 기분을 당신들은 알 수 없을 겁니다.” 아스타로트의 목소리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대기가 가볍게 진동했다. 분노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그러나 블루는 그 압력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가......” 그때 평정을 되찾은 아스타로트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정체가 정말 궁금하군요.” 그 말에 블루는 아스타로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정체? 그게 무슨 말이죠?” “당신을 보면 어째서인지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마치 원래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물론 그럴 리 없습니다. 당신은 인간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의 모든 기억을 뒤져봐도 당신과 비슷한 존재조차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분은 어째서 생겨나는 것일까요? 때문에 난 당신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싫습니다. 기분이 나쁩니다. 이 감정이 나를 불쾌하게 합니다.“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블루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그런 생각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보면 당신을 보면 마치, 마치......”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도 하나의 내가 내 앞에 서 있는......” 아스타로트의 눈빛이 강렬하게 반짝였다. 그것은 광기였다. 하지만 조금 전 드래곤과 싸울 때 드러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이번엔 이성적인 광기였다. “기분이, 기분이 좋군요.” 블루는 그의 말을 듣고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파팟! 그와 그의 격돌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안개...... 그리고 연기! 콰광! 콰과과과광! 우레가 터지고 섬광이 번뜩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뭔가 사단이 벌어지고 있음이었다. 천지가 뒤집히는 느낌이다. “이것이 인간의 능력이란 말인가! 그래서 그분께서 우리들에게 인간을 지키라 하셨던 것인가?” 드래곤 로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침음성을 흘렸다. 무섭게 터져 나오는 굉음이 폭죽처럼 터졌다. 한 번의 강렬한 빛으로 보이지만 결코 한 번의 빛이 아니다. 수십에서 수백 번의 타격이 이 거대한 빛으로 보이는 것이다. 오른손에 들린 아슈가 블루의 마음을 이해한 듯 불빛을 받아넘겼다. 순간, 블루의 입에서 웅혼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뇌룡참(雷龍斬)!” 거대한 용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한줄기 빛이 되어 아스타로트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아스타로트의 반격 역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주먹으로 허공을 격함으로써 블루의 공격을 간단히 무위로 돌려버린 것이다. 블루는 그 순간을 노렸다. “일영참(日影斬)!” 블루의 검이 종횡으로 그어질 때, 석양이라도 베어 넘길 것 같은 강기가 뿜어졌다. 하지만 이미 아스타로트의 신형이 사라진 상태. 동시에 다키가 바람을 갈랐다. 블루가 검을 휘두른 자리에 아스타로트가 나타났고, 블루는 다시 그의 등을 점했다. “치잇!” 아스타로트가 혀를 차며 허리를 살짝 비트는가 싶더니, 발을 내질러 역공을 시도했다. 블루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 공격을 허용했다간 무사하지 못할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공격을 피하며 자신의 공격을 성공시키려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공격하려면 맞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되지만, 이것은 두렵고 말고가 아니라 ‘한 방에 즉사’ 하는 상황이었다. 블루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다시금 일갈을 내질렀다. “뇌룡풍운일섬(雷龍風雲日閃)!” 쿠아아아앙! 콰콰콰콰콰! 이번 공격은 지금까지의 공격과는 차원이 달랐다. 천지개벽하는 음향과 함께 사물이 빨려갈 듯한 현상이 발생하며, 그 주위로 검은 음영이 자리 잡았다. 마치 하늘이 갈라진 듯한 모습이었다. 고오오오오! 어찌나 대단한지 아스타로트조차 피아는 것을 택할 정도였다. 자연의 기운 그 이상이었다. 모든 만불의 근원인 우주의 기운이었다. 마신인 그로서도 버텨낼 수 없었다. “크윽! 이, 이런 힘이......!” 화들짝 놀란 아스타로트가 신음성을 터뜨리며 최고의 속도로 파괴의 범위를 벗어나고자 몸을 뺐다. 놀란 것은 비단 아스타로트만이 아니었다. 드래곤들도 자신에게 날아드는 눈먼 기운을 피해 허겁지겁 순간이동을 펼쳐야만 했다. 그것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날아갔다. “저, 정말 저자가 인간이란 말인가!” 드래곤 로드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탄성을 쏟아냈다. 자신의 전력을 모두 쏟아 부어도 견디기 힘든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새 정신을 차린 아이린 공작과 그 옆에 자리한 추세흔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질투를 넘어 경외감마저 들었다. 블루를 자신들과 같은 범주로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리고 왜 그가 자신들한테 심득을 전수해줬는지도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에게는 자신들에게 그 정도 심득을 알려줘도 자신을 따라올 수 없을 거란 자신감이 잇었던 것이다. 아니, 자신이 그보다 더 강해질 자신감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 사실이 조금 더 가슴에 와 닿는 사람은 아이린 공작이었다. 블루와 처음부터 겨뤄본 그가 아닌가! 이후 그는 블루의 성장을 죽 지켜봐왔다. 블루는 한계가 없는 사람처럼 성장을 거듭했다. “.......!” 꾸욱! 대부분 여기서 한계를 느끼고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린과 추세흔은 달랐다. 그들은 언젠가 블루를 추월해 그와 맞서는 순간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허억! 허억......!” 블루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일시에 모든 기력을 뿜어낸 탓이다. 치고 빠지는 것으로는 몇 년을 싸워도 결과가 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택한 강공이었다.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스타로트가 싸늘한 눈으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팠습니다.” “아픈 정도로 끝나다니! 정말 가슴이 아프군요.” 블루의 말에 아스타로트가 다시 크게 외쳤다. “아팠단 말입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거칠고 차가운 음성으로 외쳤다. 동시에 아스타로트의 신형이 블루를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푸르륵! 다키가 트레질과 함께 앞으로 쏘아졌다. 블루는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는 그의 성격을 뒤늦게 깨닫고 당황감을 금치 못했다. “다키! 안 돼!” 푸르륵! 푸르륵! 다키의 귀에는 블루의 다급한 외침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오너라!” “안 돼!” 블루와 아스타로트의 상반된 반응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달려드는 다키를 바라보던 아스타로트가 준을 빛내며 주먹을 곧게 뻗었다. 그 순간! 팟! 다키가 사라졌다. “허억!” 아스타로트가 비명을 지르며 땅에 처박혔다. 뒷다리를 치켜든 다키가 콧바람을 내뱉었다. 그 모습이 흡사 잘난 척하는 것 같았다. 콰과과과광! 아스타로트가 땅에 떨어진 순간, 땅이 움푹 파이며 지진이 일어났다. 쿠구구구궁! 땅이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며 좌우로 갈라지는가 싶더니, 크로타니안이 대륙에서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믿기지 않을 이 장면을 사람들은 입을 떡 벌린 채 지켜보았다. 특히, 기사들은 높은 산악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그 장면을 하나도 빠짐없이 볼 수 있었다. 푸르릉! 다키가 총총 걸으며 춤추는 듯한 모습을 선보였다. 흡사 승리를 자축하는 분위기 같았다. 그것을 본 블루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블루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저릿저릿한 감각이, 그가 아직 멀쩡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인 블루는 주위로 무형의 검을 뽑아냈다. 그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것보다 최대한 분노하게 만들어, 그 흥분으로 방심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다. 두려움과 긴장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흥분 때문이었다. “후후후후!” 허공에서 들려온 웃음소리. 블루는 이미 시선을 그곳에 고정시켜놓고 있었다. 땅에 무엇인가가 튀어 올라간 것을 일치감치 눈치 챈 것이다. “정말 아주 재밌단 말이지요. 생각보다 화려한 중간계로의 외출이 될 것 같아요.” 아스타로트는 걸레가 된 자신의 상의를 찢어 내팽개치며 손바닥을 번개처럼 앞으로 펼쳤다. “지옥의 불꽃이여! 나의 명을 받아 세상에 그 열기를 전하라!” 파칭! 그의 손바닥에서 형용할 수 없는 열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 열기가 어찌나 뜨거운지 스치기만 해도 대지가 녹아 흐느적거렸다. “끄아아아악!” 인간 연합군이 위치한 곳은 금세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블루를 공격하던 중 열기가 살짝 스친 탓이다. 최소 천여 명이 그 열기에 녹아내렸다. 비명도 없었다. 비명을 지른 사람은 그나마 살아 있는 자들이었다.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서걱! 동료들이 눈을 질끈 감고 그들의 목을 베어주었다. 다른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분노가 두려움을 넘어선 것이다. 블루도 보았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자신이 피하는 바람에 생겨난 현상이었다. 으득! 그는 더 이상 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저들의 죽음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살아 돌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다키! 달려, 바람이 되고 빛이 되도록 달려!” 이히히힝! 블루의 외침에 차키가 응했다. 대지를 진동시키는 강력한 발차기에 속도는 한결 빨라졌다. “금강뇌력신검(金剛雷力神劍)!” 파과과과과! 블루는 정면으로 아스타로트와 마주쳤다. 스걱! 블루는 믿을 수 없는 현상을 경험했다. 뭔가 벤 느낌이 전해진 것이다. “크훗!” 뒤쪽에서 들려온 비명! ‘벳다!’ 블루는 급히 뒤돌아보았다. 피가 뿜어지는 오른쪽 옆구리를 감싸쥔 채, 아스나로트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크윽! 크으으!”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에스티마르!” 블루가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소리쳐 불렀다. 고통 속에서 블루의 목소리를 듣고 힘겹게 고개를 든 아스타로트가 희미하게 웃었다. 순간, 전신에서 피가 뿜어지는가 싶더니 증기로 변해 흩어졌다. 피가 몸에서 발사되는 열기를 감당하지 못한 탓이다. 블루는 몰랐지만, 아스타로트는 지금 한계에 달해 있었다. 백 프로 힘을 개방한 상태로 너무 오래 지체된 탓이다. 다키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게다가 다키의 예상 밖의 일격은 그에게 심각한 데미지를 안겨주었다. 그 이우가 하나둘 모여, 아스타로트는 지금 한계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부풀어 오르던 힘줄과 혈관이 하나둘 터지게 된 것. “에스티마르!” 블루가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스타로트는 팔뚝으로 입가를 쓸어 올리며, 손을 뻗어 다가오는 블루를 막아냈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블루! 멈춰요.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어요. “......!” 블루의 신형이 움찔했다. 아스타로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난 블루를 처음 보았을 때, 이미 지금의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을 지도 몰라요. 아니, 분명히 그랬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째서 나를......?” 블루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어째서? 후후,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도와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마신이 될 것을 예견하고 있었기에, 나를 막아달라는 의미로 말이죠.” “막아달라고? 스스로 막을 수 없단 말인가요? 지금 당신의 모습은 정상......" 블루의 말에 아스타로트가 말했다. “이 모습은 언제 사라질지 몰라요. 이것은 과거 당신이 만난 인간 에스티마르에 대한 기억의 단상일 뿐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인지 당신에게만은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당신 앞에서는 평소의 제가 아니에요. 당신의 앞에서만은 말이죠.” 믿을 수 없는 말이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그의 행동들을 보건대, 블루에게 보여준 행동만은 각별했다. “나를 죽여요!” “에스티마르!” “나를 죽여요, 블루! 하지만 난 쉽게 죽지 않을 거예요. 만에 하나 당신이 나를 죽이지 못한다면 난 세상을 파멸시킬 거예요, 분명히.” 아스타로트의 말에 블루가 아슈를 말없이 움켜쥐었다. 그의 말대로 그를 죽여야 했다. 자꾸 가슴이 아려왔다. 지금 이 순간 다시 얻은 삶이 왠지 저주받은 운명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크아아아아!” 아스타로트가 모세혈관이 터져 붉어진 눈동자로 블루를 응시한 채 달려왔다. 그리고 강철 같은 주먹을 휘둘렀다. 후우웅! 주먹에서 일어나는 거센 풍압 앞에서 잠시 블루는 자신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시달렸다. 그만큼 강렬했다. 그 공격을 피하자 기다렸다는 듯, 그의 손바닥에서 어둠보다 짙은 기운이 뿜어졌다. 일순, 블루는 검은 천을 뒤집어쓰는 기분을 느꼈다. 검은 기운이 블루를 휘감듯 진득하게 달라붙으려는 순간, 블루의 몸이 사라졌다. 잔상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위기감을 느끼고 주인을 지키기 위해 사용한 다키의 능력이었다. 아스타로트는 어두운 기운이 블루의 잔상을 뭉개고 사라지자 손가락을 부챗살처럼 펼치더니 다섯 줄기의 붉은 기운을 쏘아 보냈다. 블루는 다키의 몸을 옆으로 틀며 아슈로 그 기운을 막아냈다. 타탕탕! 사방으로 튕겨지는 기운! 블루의 표정이 굳어졌다. “크훗!” 팔에 찌릿한 통증이 밀려온 탓이다. 그로 인해 잠시 주춤거렸는데, 그 틈을 노리고 아스타로트가 쇄도해왔다. “......!” 블루의 안색이 굳어졌다. 펑! 퍼펑! 공방이 오갈 때마다 블루는 자신이 지치는 것보다, 아스타로트 몸에서 뿜어지는 붉은 기운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 속도도 파워도 전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달려들고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팽팽한 접전! 활시위를 당긴 듯 팽팽하면서도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치열한 공방 속에서 블루와 아스타로트는 점점 지쳐갔다. 하지만 외곽에서 그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더 치열해진 싸움에 손바닥과 등이 젖어갔다. 드래곤들까지 숨을 죽인 채 그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대였다. 푸슉! 푸슈슈슈슛! 아스타로트의 몸에서 다시 한 번 피분수가 뿜어졌다. “끄아아아아악!” 고통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아스타로트! 블루는 여전히 갈팡질팡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정말 죽여야 하는 것일까? “크르르! 크르르르!” 아스타로트가 광기어린 눈으로 블루를 바라보더니, 연합군들이 뭉쳐 있는 곳을 향해 팔을 뻗으며 소리쳤다. “헬 파이어!” 순식간에 형성된 거대한 기운이 그들을 향해 뿜어졌다. “안 돼!” 그러나 이미 늦었다. 블루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그 무리 중에서 누군가가 앞으로 나서 헬 파이어를 검기로 잘라버렸다. 퍼펑! 퍼버벙! 두 갈래로 잘린 헬 파이어가 허공에서 폭음을 발하며 빠르게 수르러들었다. 그것을 자른 사람은 니콜라스. “후욱, 후욱!” 그는 허리를 굽힌 채 한동안 거칠게 숨을 골랐다. 전심전력을 다해 막은 것이었다. “주, 주군! 이곳은 거, 걱정 마십시,......!” 털썩! 블루는 니콜라스를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스타로트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당신의 마음을 받아주겠다!” 처음으로 블루가 아스타로트에게 달려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아스타로트는 마기로 응수했다. 흉흉하기 짝이 없는 힘과 힘의 맞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그간 피하는 감이 없지 않았던 블루는 이제 인정사정없이 검을 휘둘렀다. 잠시 후, 블루와 아스타로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하지만 흉흉함만큼은 처음보다 몇 배나 심했다. 블루의 얼굴은 분노로 이글거렸고, 아스타로트의 전신에서는 핏빛 안개와 마신에게 어울리는 기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스타로트가 천천히 다가서며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블루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틈을 보였다간 아스타로트가 가공할 빠르기로 공격해오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스타로트처럼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고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 어설픈 방어는 곧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다시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핏줄기! 그는 고통에 겨운 눈으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블루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왼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아스타로트를 더 이상 에스티마르로 보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시 한 번 다지는 한편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친구 에스티마르는 죽었다.! 그는 그의 유언을 받아들여야 했다. 세상을 위해? 아니, 그렇게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친구였던 에스티마르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크르륵! 죽이겠어, 죽이겠어!” 눈이 돌아간 아스타로트가 흰자위, 아니 피로 물든 붉은 눈동자를 드러낸 채 달려들었다. 드디어 이성이 붕괴된 것이다. “크하하하하! 아스타로트가 흉폭한 웃음을 흩날리며 날아왔다. 블루는 검을 더욱 단단히 움켜쥐며 무형의 기운을 넘어 우주의 기운을 실어 외쳤다. “검우귀환(劍友歸還)!” 슬픔이 절절이 묻어나는 블루의 최후의 초식이었다. 쿠콰콰콰콰! 노도처럼 퍼지는 검기의 강렬한 광채가 아스타로트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갔다. 아스타로트는 그 강렬한 검기에 휩싸여 빛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끄아아아아악!” 순간, 블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빛 속에서 마지막으로 그의 미소를 본 탓이다. 자네가 말한 저주받은 운명이란 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장난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 마신인 내가 이렇듯 무료하게 마계를 도망쳐 나왔는데, 우리를 창조한 그는 얼마나 따분하겠어. 저주든 뭐든 반가웠네. 그리고 나름대로 즐거웠어, 큭큭 그럼 지옥에서 보자고, 친구. 제10장 헤르마틴 제국의 날갯짓 마왕이 죽자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빠르게 평온을 되찾았다. 그것도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고 승리를 쟁취한 존재들이 바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허탈하게 말이다. 하지만 변한 것도 적지 않았다. 몬스터가 대륙에서 자취를 감춘 것과, 구 크로타니안 왕국의 땅이 지도에서 사라진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이름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땅까지 사라졌다. 영웅들과 마왕 아스타로트가 싸우며 생긴 전투의 여파를 대지가 견디지 못하고 붕괴한 것이다. 그곳에 가면 거대한 섬이 하나 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섬을 ‘몬스터 아일랜드’라 불렀다. 대륙에 있던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마계대전이라 불리는 제3차 제국전쟁 중 그곳으로 끌려가 이용만 당한 뒤, 크로타니안 왕국의 절반쯤 되는 땅이 섬처럼 떨어져나갈 때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 있게 된 탓이다. 그것을 본 많은 대륙인들이 만세를 불렀다. 늘 몬스터한테 시달렸는데, 이젠 일부러 찾으러 깊은 숲을 들어가도 만날 수 없었다. 마왕이 몬스터를 싹 쓸어가다시피 해서 전투에 사용한 결과였다. 그 덕에 늘 몬스터한테 시달리던 화전민들과 백성들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전공에 따라 전리품을 분배할 때, 오랜 토의 끝에 유슬라니안은 해상권을, 헤르마틴은 쓸모없는 크로타니안 땅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전란으로 황폐해지고, 그나마 반 이상 뚝 떨어져나간 크로타니안에 가치 있는 물건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철광석, 산나물, 약초 외에 수익이 될 만한 게 없었는데, 그마저 독으로 오염되고 용암이 들끓는 통에 효용가치를 따질 수 없었다. 게다가 몬스터 아일랜드조차 몬스터 천국으로 별 쓸모가 없다고 판단한 유슬라니안은 큰 인심이라도 쓰듯 크로타니안 국경을 모두 헤르마틴 제국에 넘기고 해상권을 챙긴 것이다. 헤르마틴 황제가 해상권 대신 그 버림받은 땅으로 택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바보라서 해상권을 포기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바로 전쟁으로 고향과 땅을 잃은 크로타니안 유민들을 자국으로 이입시키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헤르마틴 황제도 해상권이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익보다 죠셉의 말대로, 그 안의 유민들을 헤르마틴 국민으로 받는 것이 후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듯하지 않게도 우스운 일이 생겨났다. 국적이 존재치 않는 대다수 마법사들이 마법의 재료를 위해 유령의 도시가 된 구 크로타니안과 연결되어 있던 해안가에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곳에 자연스럽게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마법사들한테 일거리를 맡기기 위해 용병들이 하나둘 모여들자 마을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은상업도시의 시초가 되었다. 어처구니없는 건 주요 거래품목이 몬스터였다는 점이다. 타국의 몬스터 품귀현상에 힘입어 고가에 팔려나갔다. 그것이 큰 수익을 거두게 되자 헤르마틴은 웃게 되었고, 유슬라니안은 침음을 삼키게 되었다. 설마 이런 일이 생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뛰어난 두뇌의 마법사들은 그곳에 대학을 설립해 마법학파의 근원지로 삼았다. 많은 인재들이 그곳에 유입되었고, 헤르마틴 황제는 그들 신분을 따지지 않고 능력에 따라 중용했는데, 그것이 헤르마틴 제국을 부흥으로 이끄는 디딤돌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기가 무섭게 헤르마틴은 전 대륙에 최강국으로 군림하게 되었고, 헤르마틴 제국과 유슬라니안 제국, 타르나토스 제국을 1강 2중으로 구분했다. 바야흐로 헤르마틴 제국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모든 공은 마왕의 존재를 미리 알아채고 그의 준동를 막기 위해 목숨까지 버린 환광술사 존 라이튼에게 돌아갔다. 그 슬픈 소식에 대륙이 눈물을 흘렸고, 또 환호했다. 그밖에도 새로운 영웅이 대거 등장했다. 마왕 슬레이어라 불리는 추세흔과 아이린 공작 그리고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여섯 개의 발이 달린 말을 타고 나타나 이들을 도와준 은발의 사내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 은발의 사내는 특히, 헤르마티아 대제라 부르기도 하고, 하늘에서 내려준 무신이라고까지 불렸다. 사람들은 그들을 일컬어 세계를 지키는 세 개의 점이라 불렀다. 또, 마계대전의 전장을 진두지휘한 니콜라스와 세바스찬 2세는 신흥귀족으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신성력으로 그들을 뒷받침해준 율레 대신관은 신관을 넘어 신의 사자라 불리며 신성제국의 제2의 전성기에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사람들은 과거의 영웅보다 현재의 영웅들한테 더 열광했다. 한편, 내정을 총괄하게 된 죠셉은 부국책을 강행했다. 재무장관 빈센트의 반발을 무릅쓰고 전쟁으로 거둬들인 세금 때문에 휘청거리는 국민들을 살피기 위해 조세를 대폭 감면해준 것이다. 그는 백성이 잘 살아야 나라가 잘 사는 것이라 주장했다. 여러 귀족의 반발에도 마왕과의 혈투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유민들한테 토지를 나눠주기까지 했다. 그밖에 유민의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일년 간 모든 조세와 부역을 면제한다는 파격적인 공고문이 나붙었다. 부족한 인구를 늘리기 위한 일환이었다.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훗날 반드시 달콤한 과실이 되어 돌아오리라 믿었다. 그들은 크로타니안 사람들로 나라를 잃고 떠도는 떠돌이들이었다. 집을 잃고 어찌 살아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던 그들한테 헤르마틴의 파격적인 제안은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군대징발에서 해제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병사들에겐 땅을, 전사한 병사들 가족들에게는 금화 다섯 개를 내려주었다. 실로 파격 그 자체였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위축된 상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상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국경의 검문 절차를 대폭 줄였으며 불법적인 통행료 또한 모두 근절시켰다. 그러자 귀족들의 불평이 없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너무합니다. 어찌 이러한 중대사항을 홀로 추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를 굶겨 죽일 작정이오?” 그 말에 죠셉은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출렁거리는 그 뱃살을 보건대, 굶어죽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소.” “뭐, 뭐라...... 이런 무엄한!” 그러나 죠셉은 어느새 자신의 수제자가 된 클루토를 이끌로 종종걸음으로 멀어져가고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뒤따르던 클루토가 물었다. “스승님! 저들의 의견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힘들다 해원하는데 이제 어느 정도 제재조치를 풀어줄 필요도 있지 않겠습니까? 귀족들의 불만을 줄이며 다독여주는 것도 국정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어느새 말더듬가지 말끔히 고친 클루토의 맑은 목소리에 죠셉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웃는 낯으로 뒤돌아보며 말했다. “후후! 하나를 받아주면 또 다른 하나를 받아주어야 한다. 한번 꺾인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은 다음에 또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이번 한 번이란 말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때문에 강할 때는 강하게 나가야 한다. 저들이 저렇게 외치는 것은 별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귀찮기 때문이다. 그것을 그들은 귀족의 신념이라 착각하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렇게 키워져왔기 때문이거나, 더 나은 것을 배울 기회를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내가 한 처음의 말과 반대로, 이번 일을 무사히 넘기면 다음에도 이 정도 일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군요.” 클루토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입 안이 껄끄럽긴 했지만 자신이 생각해봐도 사부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클루토 사제지간과 헤어진 귀족들은 분노를 참다못해 황제한테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황제는 그들의 상소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말만 번지르르한 귀족들보다 죠셉을 믿었던 것이다. 그 믿음은 얼마 후 효과를 드러내가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상회상인들의 증가로 물가가 눈에 띄게 안정되었다는 점이다. 전쟁으로 인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곡물가격이 서서히 낮아지면서 겨울나기조차 걱정스럽던 헤르마틴 제국의 식량사정을 크게 개선시켰다. 추운 동장군이 물러가고 온화한 봄의 향기가 몸을 따사하게 녹여주는 계절. 사람들은 앞 다투어 그간 꽁꽁 닫아둔 창문을 열고 다가오는 봄의 기운을 반겼다. 헤르마틴 황제는 중신들을 붉은 대전으로 모아 백관회의를 개최했다. 마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던 블루가 처음으로 공식 회의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의아한 눈빛과 반가운 눈빛으로 블루를 보던 황제가 말문을 열었다. “모두들 반갑소.” 황제의 인사에 대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군신의 예를 보였다. “안녕하셨습니까?” “그렇소. 모두들 반갑구려. 날이 쌀쌀한데 경들의 건강이 걱정이오. 모두 자신의 몸에 각별히들 신경을 쓰시오.” “망극하옵나이다.” “오늘 왕성을 나가보니 하딘 평원에 푸른 기운이 가득하더이다. 이제야 겨울이 지나간 것을 느낄 수가 있었소. 싸늘한 기운이 마치 거짓인 것처럼 말이오.” “모든 것이 전하의 성은이옵나이다.” 헤르마틴의 황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우리 제국이 이처럼 평화를 누리는 것은, 모두 경들이 불철주야로 애써준 덕이오.” 그 말에 제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망극하옵니다.” 단하에 도열한 제신들을 훑어본 헤르마틴 황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논의할 안건을 살펴보도록 하겠소.” 헤르마틴 황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아......” 황제든 백성이든 대소관료든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건만, 전혀 웃지 않는, 아니 웃지 못하는 사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세바스찬 2세였다. 그의 시선은 언제부턴가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에그잔티아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그잔티아의 시선은 앞에 있는 블루한테 고정되어 있었다. 옆에서 동료들은 세바스찬 2세를 지켜보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사상 최강이자 최악의 라이벌을 지니게 된 동료가 측은하게 느껴진 탓이다. 블루야말로 넘을 수 없는 산이 아니던가! 아니, 산이 아니라 아무리 올려다봐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와 같은 존재였다. 그를 연적으로 두게 되었으니, 세바스찬 2세의 속이 얼마나 타들어가고 있겠는가! 포기해도 주위에서 위로를 하면 했지, 바보라거나 등신이라는 말은 하지 않을 터였다. 오히려 포기를 못하는 것이 바보라고 생각할지언정. 그러나 세바스찬 2세는 그녀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실제로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에그잔티아야말로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연적이라 할 수 있는 블루한테 전혀 질투심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화를 내보려고 해도 그를 보기만 하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무한한 존경과 경외심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결국 모든 화는 자기 자신한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 죄라고 생각했다. 이미 모든 걸 각오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현 상황을 짐작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녀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짧은 기쁨과 행복! 그는 그것이면 족했다. 시간이 유수 같다고들 하는데, 그는 가끔 자신이 먼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불면 날아가는, 불지 않아도 지키기 힘든, 잊고 있다 돌아보면 구석에 쌓여있는...... 사랑은 그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 있었다. “후......” 블루를 후쳐보는 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올 때, 그런 그를 훔쳐보고 있던 일행들도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하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는 스콜을 보고 어느새 친구가 되어버린 로이와 뮤엘이 함께 하품을 시도했고, 이유도 모른 채 수군거리던 베르니스와 클레인까지 늘어지게 하품을 쏟아냈다. 하품의 강한 전염성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다. “에구! 찌뿌둥하다.” 스콜이 온몸을 비틀며 기지개를 켰다. 정말이지 무료하기 그지없는 일상이었다. 신료들 경합이나 말싸움 따위가 재미있을 리 없고, 결국 검술수련 외에는 할 일이 없다보니 남아나는 것이 시간이었다. 정말이지 하릴없는 군상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흥밋거리가 하나 생겼는데, 바로 세바스찬 2세와 에그잔티아의 사랑이야기였다.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는 가슴 절절한 사랑이야기는, 이미 궁정 안 여인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여인의 뒤에 숨어 가슴을 졸이는 세바스찬 2세를 훔쳐보는 것도 처음에나 쏠쏠한 재미를 주었지, 이젠 시들해지고 말았다. 남자가 좀 강하게 나가야지 이렇듯 숨어서 훔쳐보기만 하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하긴 여자가 블루를 사랑하고 있는데, 그런 여인을 사랑하게 된 녀석이 바보지.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 “아, 그런데 블루 대장은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요즘 속내를 통 알 수가 있어야지. 예전처럼 얼굴도 비치지 않고, 그나마 간혹 만나면 저기 에그잔티아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이해 불가능한 표정을 짓고 있기 일쑤고.” 그 말에 일행들이 단체로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블루를 바라보았지만, 블루는 말을 걸고 있는 에그잔티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용히 차만 마실 뿐이었다. 에그잔티아와 차를 마시고 있지만, 블루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간ㄱ산히 미소지어주며 그녀의 말을 듣는 것처럼 행동할 뿐이었다. 그나마 그녀였기에 만나준 것이었다. 현민을 빼닮았다는 이유로. 지금 블루의 머릿속은 아주 복잡했다. 에스티마르가 남긴 의미심장한 말 때문이었다. “당신을 보면 어째서인지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마치 원래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도 들지요. 물론 그럴 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인간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의 모든 기억을 뒤져봐도 당신과 비슷한 존재조차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분은 어째서 생겨나는 것일까요? 때문에 난 당신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싫습니다. 기분이 나쁩니다. 이 감정이 나를 불쾌하게 합니다.” 블루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그 생각을 해봤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보면, 당신을 보면 마치, 마치......”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또 하나의 내가 내 앞에 서있는 기분이......” 거울이라..... 사실 나도 에스티마르를 보고서는 그런 감정을 느낀 것 같다. 어째서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일까? 우연히 이곳으로 온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나를 되살렸고 일부러 이곳에 보낸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안배대로 난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는 것 같다. 그는 마치 내가 강해지기를 바라기라도 하듯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생각의 갈피가 뚜렷하게 잡히지 않고 횡설수설하기까지 했다. 이런저런 잡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에스티마르와의 전투가 끝나면 홀가분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오히려 깨달음을 얻기 전보다 더욱 복잡해진 느낌이다. 혼란스럽다. 혼란스러워서 머리가 터질 기분이었다. 그때, 한 여인의 얼굴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흠칫! “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 에그잔티아였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데 부르는데도 듣지 못해요?” 그 질문에 블루는 잠시 망념에서 벗어났다. “아, 별것은 아닙니다. 조금 .......” 블루가 머리를 긁적이자 그녀는 입가에 매력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남자라면 누구라도 심장이 철렁할 만큼 아름다운 미소다. 그러나 블루는 아니었다. 그는 더 화사한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그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미소에 에그잔티아의 방심이 크게 흔들린다는 것도 모른 채. “그런데 소문으로 듣자하니 전쟁이 끝나고 황제폐하와 독대를 나누셨다면서요?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죠?” 블루가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게 왜 궁금하죠?” “그 일로 의견이 분분하거든요.” “어떻게요?” 블루의 의문에 그녀가 답했다. “폐하께서 변하셨다는 풍문이에요. 예를 들어, 추상적으로 거친 느낌의 캐릭터가 파스텔 톤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그 후로 국정정책이 변한 것은 사실어거든요. 그와는 별도로 궁정 내의 여인들이 환호하고 있어요. 황제폐하한테서 남자다움이 물씬 느껴진다고 하며 말이죠. 후후, 과거엔 단지 무서운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네요. 대체 그때 무슨 이야기가 오갔기에 그리 변하셨는지 알고 싶어요.” 블루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듣고 보니 요 근래 황제의 표정이 많이 밝아진 것 같기는 했다. 그가 생각해도 그날 이후인 것 같았다. “별 것 아닙니다.” “사람이 변한 일이에요.” 별것 아닌 일로 사람이 변할 리 없다는 뜻으로, 그 이유를 듣고 말겠다는 의지가 깃든 말투였다. 블루는 그 말을 알아듣고 대답해주었다. “재미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듣고 싶어요.” 사실 블루의 이야기가 재미없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것뿐이니까. 그 사실을 모르는 블루는 ‘여자의 호기심이란 참 유별나군’ 하는 결론을 내리며 그날 황제와 나눴던 이야기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황제는 기사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수고에 치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늘 블루를 향하고 있었다. 블루는 황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존 라이튼’의 생사 여부였다. 블루한테 그 대답을 듣기 위해 기사들과 대소신료들은 물론 황제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리고 잠시 후, 황제는 작게 침음을 삼켰다. 블루의 말을 통해 전 대륙을 뒤흔든 분란의 원인 제공자가 존 라이튼이었음을 알게 된 까닭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것처럼 담담했다. “짐작이요? 하하, 그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위치에 자리하다보니 흘려듣는 벌을 찾아낸 결과라고 해야 할까요? “흘려듣는 법?”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종의 포용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포용성이라 ......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군.” 블루의 말에 헤르마틴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하! 검황이라 불리시는 블루 경께서 포용성이 거리가 멀다고 하면, 세상 누가 그 단어를 쓸 수 있겠습니까?” 블루가 물었다. “검황이라고?” “후후! 이미 황궁 안의 모든 사람들이 블루 경을 그렇게 부르더군요. 블루 경의 신위를 확인한 병사들이 떠들고 다닌 것 같은데, 하루도 안 돼 모르는 사람이 없더군요. 이 두 눈으로 직접 그 소문이 떠도는 현장을 목격했으니, 지금은 헤르마틴 전 국민이 알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검황이라......” 블루는 알 수 없는 얼굴로 피식 웃었다. 그 표정에서 그리움이 느껴지는 것은 황제의 착각이었을까? 황제가 무거운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최대한 가벽게 말하려는 것 같았는데, 그것을 모를 블루가 아니었다. “존 라이튼이 그랬군요. 하긴, 왠지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것 같네요.” “그의 마음이라.” “블루 경께서도 이미 과거에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나쁜 자는 없다고. 다만 각자의 생각이 다를 뿐이라고. 그래서 저는 그 말에 생각을 덧붙여보았습니다. 생각이 같ㅌ다하더라도 그것을 행하는 방법이 다를 수 도 있다는 것이죠.” “실천 방법이 다를 수도 있더라...... 어떻게 말인가?” 블루의 물음에 황제가 즉답했다. “저는 누구보다 존 라이튼 경을 가까이 봐왔고, 조금이나마 더 잘 아는 사람일 겁니다. 누구보다 선황에게 충성했고, 우정을 나눈 분입니다. 헤르마틴을 위해 일하시던 것이 결과적으로 마왕을 부활시키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군요. 조금 오버해서 생각해보면 그분께선 블루 경께서 마왕을 물리쳐주실 것이라 이미 생각하시고 부활시킨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블루가 멋쩍게 웃었다. “후후! 그건 너무 오버했군.” “그런가요? 어찌되었든 마왕은 블루 경께서 무찌르셨고, 그 덕에 헤르마틴의 이름을 세계에 떨치게 되었지요. 그 이름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무시할 수 없을 거랍니다.” “하긴 나도 생각을 복잡하게 하는 것을 싫어하니. 좋은 게......” “...... 좋은 거죠!” 피식 씨익 블루와 황제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동시에 그려졌다. “어찌되었든 그는 행복한 사람이군.” “누구 말이죠?” “존 라이튼 말일세.” “......!” 황제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블루가 덧붙였다. “그토록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사내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축복받은 일이라 할 수 있지.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인 줄 아는가? “사는 것이 아닌가요?” “후후! 사는 것도 어려운 것이지. 먹고 산다는 것은 나라도 어려운 문제니까.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이 있지.” “그것이 무엇이죠?” “바로 타인한테 인정을 받는 거지. 이리저리 떠도는 철새와 같은 인기는 인정을 받았다고 할 수 없지. 그것은 갑자기 생긴 것처럼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그것을 좀 더 유지하기위해 자신의 본성을 감추고 더 좋은 사람, 더 착한 사람을 연기해야만 하지. 하지만 인정받는 것은 그와 다르지.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하게 되는 것이니까. 그가 나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과묵한 사람이든, 시끄러운 사람이든, 중요한 사람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냐. 그가 떠나도, 시간이 지나 더 이상 그가 존재하지 않게 되어서도 가슴에 남는 것! 그리워지는 것! 그때야만이 비로소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혼자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는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렵겠어. 그렇지 않은가?” “듣고 보니 그렇군요. ‘먹고, 산다’는 것으로 가득 들어찬 사람들 가슴 속에 이름을 새기는 것이라...... 어려운 일 같네요. 아니, 어려울 것 같아요.” 헤르마틴 황제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가슴에 와 닿지만, 머리론 아직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블루가 말했다. “머리로 이해할 필요 없어. 가슴으로 이해하면 된 거야. 머리로 이해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입증되었다는 거야. 그럼 그 느낌이 가벼워질 수밖에 없거든, 감정이란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 이해해서도 안 되고.” “그렇군요.” 그 말에 헤르마틴 황제가 다소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해하지 못했다고 모든 것을 감정이라 생각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되네. 그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그 차이점이 뭐죠?” 그러자 블루가 손가락을 들어 헤르마틴 황제의 가슴을 찌르며 말했다. “그것은 여기 있는 녀석에게 물어봐. 그럼 대답해줄 거야. 그런데 조금 전에 말이야......” “말씀하세요.” “나한테 포용성이 없다면 다른 사람한테도 없다니, 그건 무슨 뜻이지?” 그 말에 헤르마틴 황제가 웃었다. “그 말 그대로입니다. 블루 경도 가슴에 있는 녀석에게 물어보세요.” 블루가 한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 자그만 소년이, 어느새 한나라의 기둥으로 버티고 있었다. 블루의 입가에 가슴 속에서 피어난 미소가 머금어졌다. 그가 말했다. “이제는 황제로서 자네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군.” “후후! 저는 처음부터 황제였습니다만.” 블루의 말을 가볍게 받아넘긴 헤르마틴 황제의 얼굴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어린 소년의 표정이 슬쩍 드러났다. 왠지 유쾌했다. 가슴을 펴고 웃음을 터뜨리고 싶을 정도였다. 블루가 자신을 바라보며 딴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보며 다른 사람을 보고 있음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누구를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그 앞에 있는 것은 자신이라는 점이었다. 자신은 없긴 하지만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쉬지 않고 지껄였다. 그는 재미없는 횡설수설에도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것이 예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뻤다. 늘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그를 만났다. 지금 보고 있고, 질문을 던지고 목소리가지 들을 수 있다. 행복했다. 이 행복이 계속되었으면 싶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그를 소유하고 싶었다. 그는 소유랄 수 없는 사람이기에,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그를 소유하고 싶었다. 그의 목소리, 숨결, 시선...... 모든 것을. 그런데, 그의 시선이 다시 흐트러지고 있다. 뭔가 다른 생각에 빠져들고 있음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 그의 앞에 얼굴을 들이댔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 순간, 블루가 흠칫 놀라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런 표정은 자신이 처음 본 것이리라. 기분이 좋았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데 부르는데 듣지 못하세요?” 에그잔티아의 질문에 블루가 머뭇거렸다. “아, 별것은 아닙니다. 조금......” 블루가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것이 어찌나 귀엽던지 자신도 모르게 미소로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러자 그도 마주 웃어주었다. 처음으로 이처럼 환한 미소로 답해준 것이다.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소문으로 듣자하니 전쟁이 끝나고 황제폐하와 독대를 나누셨다면서요?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죠?” 블루가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게 왜 궁금하죠?” “그 일로 의견이 분분하거든요.” “어떻게요?” 블루의 의문에 그녀가 답했다. “폐하께서 변하셨다는 풍문이에요. 예를 들어, 추상적으로 거친 느낌의 캐릭터가 파스텔톤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그 후로 국정정책이 변한 것은 사실이거든요. 그와는 별도로 궁정 내의 여인들이 환호하고 있어요. 황제폐하한테서 남자다움이 물씬 느껴진다고 하며 말이죠. 후후, 과거엔 단지 무서운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네요. 대체 그때 무슨 이야기가 오갔기에 그리 변하셨는지 알고 싶어요.” 그 말에 뭔가 떠올랐음인지 블루가 웃었다. “별 것 아닙니다.” “사람이 변한 일이에요.”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듣고 싶어요.” 에그잔티아는 블루에게 꼭 듣고 싶었다. 사실 그 이야기에 관심은 없었다. 누가 뭐라 떠들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다만 그녀는 자신만 들을 수 있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녀는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어째서일까? 별 이야기도 아닌데 가슴이 아려왔다. 그 이야기 속에서 뭔가 깨닫고 싶지 않은 무엇을 깨달은 기분이었다. 바로 이 대목 때문이었다. “바로 타인한테 인정을 받는 거지. 이리저리 떠도는 철새와 같은 인기는 인정을 받았다고 할 수 없지. 그것은 갑자기 생긴 것처럼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그것을 좀 더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본성을 감추고 더 좋은 사람, 더 착한 사람을 연기해야만 하지. 하지만 인정받는 것은 그와 다르지.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하게 되는 것이니까. 그가 나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가벼운 사람이든, 과묵한 사람이든, 시끄러운 사람이든, 중요한 사람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냐. 그가 떠나도, 시간이 지나 더 이상 그가 존재하지 않게 되어서도 가슴에 남는 것! 그리워지는 것! 그때야만이 비로소 인정받았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혼자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는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렵겠어. 그렇지 않은가?” “듣고 보니 그렇군요. ‘먹고, 산다’는 것으로 가득 들어찬 사람들 가슴 속에 이름을 새기는 것이라...... 어려운 일 같네요. 아니, 어려울 것 같아요." 헤르마틴 황제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가슴에 와 닿지만, 머리론 아직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블루가 말했다. “머리로 이해할 필요 없어. 가슴으로 이해하면 된 거야. 머리로 이해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입증되었다는 거야. 그럼 그 느낌이 가벼워질 수밖에 없거든. 감정이란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 이해해서도 안 되고.” “그렇군요.” 그 말에 헤르마틴 황제가 다소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해를 못했다고 모든 것을 감정이라 생각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되네. 그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이해하지 못한...... 감정이라고?’ 그 말이 자신을 짓눌러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있었다. 그때 떠오른 의문. -난 정말 블루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한 집착은 아닐까? 잔잔한 수면 위에 던져진 작은 파장은 물결처럼 퍼지며 에그잔티아의 귓가에 하울링처럼 울려 퍼졌다. 순간 그 의문을 부정했다. -나는 그를 좋아해! 그거면 되는 것 아냐? 하지만...... 그대 누군가가 갑옷을 쩔그렁거리며 이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차를 마시고 있는 블루에게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황제폐하께서 찾으십니다.” 그 말에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블루는 미안한 웃음을 담아 에그잔티아에게 말했다. “저는 가봐야겠습니다.” “폐하께서 찾으신다니 어서 가보세요. 소녀에게 시간을 나눠주셔서 감사했어요.” “하하! 아닙니다. 즐거운 티타임이었습니다.” 블루는 가볍게 인사하고 등을 돌려 그 기사를 따라갔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복잡하게 변했다. “......!” 앞에 그늘이 지는 느낌에 고개를 슬쩍 들어올렸다. “에그잔티아!” “세, 세바스찬 영주님!” 세바스찬은 굳은 얼굴로 에그잔티아를 내려보고 있었다. 헤르마틴 황제의 손짓에 블루를 안내한 기사와 집무실 안 시녀 및 수하들이 물러갔다. 황제가 말했다. “바쁘신데 오시라 해서 죄송합니다.” “뭐, 상관없네. 어차피 할 일도 없이 차나 마시고 있었으니까.” “하하하!” 블루의 사심 없이 솔직한 발언에 헤르마틴 황제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부른 이유가 뭔가?” 블루의 질문에 헤르마틴 황제가 입가의 미소를 지우고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아이린 공작이 방문할 뜻을 내비쳤습니다. 그가 외교적인 문제로 유슬라니안을 벗어난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뭔가 다른 이유로 온다는 말이지요.” 황제의 말에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때문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쪼르르륵 레몬티의 향이 집무실 안에 그윽하게 퍼졌다. 황제가 따라준 차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블루 경은 이미 대륙을 지키는 세 개의 검 중 한 분이십니다. 아이린 공작이 블루 경을 만나러 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그가 외교적인 문제를 들고 찾아온다는 것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이유? 어떤 이유일 것 같은가?” 블루의 날카로운 질문에 황제가 잠시 머뭇거렸다. 블루 앞에만 서면 왜 자구 작아지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속내를 모조리 읽히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분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말하기 편했다. 스승한테 속마음이 들켰다고 기분이 나빠진다면, 오히려 그게 부끄러운 것이리라. 블루는 헤르마틴 황제의 마음의 스승이었다. “아마 블루 경께 해를 끼치기 위해 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런 마음을 가지고 했다고 해도 성공할 확률은 없겠지만, 우선은 알아두시라는 마음에 이렇게 부른 겁니다.” 블루가 말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자는 그런 자가 아니다. 맺고 끊음이 확실한 자다. 우선 자네의 말대로 외교적인 문제가 주가 되지는 않을 것 같긴 하군. 하지만, 나를 해하기 위해 오는 것 또한 아닐 것이야.” “마치 어째서 그가 오는지 짐작하시는 어투시군요.” 끄덕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수긍을 표한 블루는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헤르마틴 황제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찻잔을 들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가 아니라고 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의 몸에 해가 가지만 않는다면 그 이상 알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블루가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헤르마틴 황제는 환한 얼굴로 블루를 힐끔 바라보고 이내 창밖의 햇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제11장 최후의 검 “아이린 공작께서 당도하셨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린 공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제께 예를 올립니다.” “어서 오시오. 먼 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았소.” 헤르마틴 황제는 아이린 공작의 예를 받아주었다. 헤르마틴 황제의 환대에 아이린 공작 측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적대감까지는 아니어도 복잡한 표정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환대를 받은 탓이다. 오히려 자신들 얼굴에 드러난 아리송한 표정을 지우고 황송한 듯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래, 그동안 잘 지냈소?” “황제폐하께선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하하, 물론이오.” “여기, 유슬라니안 황제께서 전하라 하신 것입니다.” 헤르마틴 황제는 아이린이 건네는 서찰을 받아들고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뭔가 고심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아이린을 슬쩍 바라보았다. 서찰을 갈무리하며 그가 말했다. “수고 많았소. 결정사항은 대소신료들의 건의를 받고 대답해주겠소. “황공하옵니다.” “그럼 쉬도록 하시그려. 공작이 묵을 곳은 여기 조셉 재상을 따라가시면 알려줄 것이오. 재상 수고해주시구려.” “알겠사옵니다. 공작께서는 따라 오십시오.”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헤르마틴 황제는 아이린 공작의 예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역시 통상적인 서찰이었다. 물론, 무시할 수준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신경을 쓸 것도 없었다. 아이린 쯤 되는 사람이 사신으로 오면서 가져올 만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흠 ...... ” 그는 생각을 접었다. 블루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결론을 내린 탓이다. “아버지! 굳이 아버님께서 찾아오실 필요가 있었습니까? 이것은 그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슈이오의 질문에 아이린이 예의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검을 든 기사는 반드시 한두 번의 굴욕을 맛보게 된다. 굴욕을 맛본 적이 없는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일류기사는 많은 노력을 통해 그것을 빨리 극복한다. 평범한 기사는 극복이 늦지. 그리고 패자는 언제까지나 땅에서 일어설 줄 모른다. 그리고 변명으로 일관하지. 너는 내가 어떤 자라고 생각하느냐?” 얼른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자는 훌륭한 자다. 누구보다 뛰어나며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지.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느냐? 배우기 위해 찾아왔다. 검의 마음[劍]을, 검의 방향[劍道]을!” “아버님 ...... ” 아무리 그가 대륙을 지키는 세 개의 검 중 하나이며, 마왕을 물리친 사내라 해도 자신에게는 아버지인 아이린 공작이 최고였다. 그런 아버지가 그자에게 꿀리듯 발언하는 것이 싫었다. 그는 이를 악문 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이린은 슈리오의 등을 바라보며 가볍게 눈을 감았다. 그를 통해 그는 몇 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달빛이 서늘한 밤. 수풀이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스산한 울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직 서늘함이 가시지 않은 새벽 공기 속에서, 가벼운 경장을 걸친 블루는 가벼운 흔들림조차 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언젠가부터 이를 악다문 채 그를 지켜보던 슈리온는 자신의 검을 들고 잠시 망설였다.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서려던 순간, 슈리오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 거대한 검이 대기를 덮고 있음을 보게 된 탓이다.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재빨리 자신의 몸을 성벽 뒤로 숨겼다. “저, 저게 뭐지?” 꿀꺽! 힘겹게 침을 삼켜보지만, 목뒤로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전신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전쟁터에서조차 느껴보지 못한 감장이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공포라는 이름이 감정! 구웅! 왠지 알 것도 같았다. 검명이었다. 검이 우는 소리가 분명했다. 문제는 이곳에 마땅히 검명을 일으킬 만한 검이 존재치 않았다는 것. 설마 블루라는 사내의 몸에서 피어나는 건 아니겠지? 통 믿을 수가 없었다. 꿈이 확실했다. 하지만 여전히 귓가에 선명한 검의 흐느낌! 구웅우우웅! 흘러내린 땀이 눈썹을 비집고 파고들었다. 눈을 감았다. 순간 느꼈다. 아니, 보았다. 보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검 앞으로 바람이 다가서자 그 날카로운 예기에 바람조차 잘려나가는 듯한 영상이 눈앞에 그려졌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 거대한 기운에 전신의 힘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바로 그때, 덥썩! 흠칫! 놀라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은 순간,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어린 아이요. 장난이 너무 심하구려.” “후후후!” 아이린 공작의 발언에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 그제야 슈리오는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블루가 자신한테 장난을 쳤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 장난? 저게 장난이라고? 조금 전 그 검의 잔영이...... 그 압력과 힘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이린 공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포감이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이다. 그 거대한 기운을 눈 깜짝할 사이에 거두다니! “늦었군.” “망아지 같은 아들 녀석 때문에 고민을 하다보니 조금 늦어졌습니다.” “그래서 혼내주기로 결정했군?” “예, 물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더 늦게 나오게 되었죠. 이왕 늦은 것 확실하게 늦으면 블루 경께서 시간을 때우기로 버릇없는 소년을 적당히 혼을 내주실 것이라 짐작했으니까요.” 그 말에 블루가 피식 웃었다. “잔혹한 아버지군.” “꼭, 모르시고서 하신 것 같은 말씀이시군요.” “쩝, 할 말 없네.” 둘의 대화를 엿들으며 슈리오는 더욱더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아버지가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눈앞의 은발의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찾았는가?” “이런 것을 어째서 찾으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찾긴 찾았습니다.” 아이린 공작은 자신의 품속에서 작은 책자 하나를 꺼내 블루에게 건넸다. 블루는 그 책을 받아 합번 읽어보고 허공에 띄워 삼매진화로 태워버렸다. 드래곤 로드가 말한 그것이 확실했다. 세상에 나와서는 좋을 것이 없다는 그것! “읽어봤는가?” “검을 한번이라도 더 휘두르기 바쁜지라 ....... ” 가볍게 말을 회피하는 아이린 공작. 그 말에 블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고맙군.” “별말씀을!” 둘은 마주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검을 뽑아 들고 마주섰다. “오게.” 달빛에 블루의 아슈와 아이린 공작의 다크 세이버의 검 날이 번뜩였다. 그리고 슈리온는 그날 하늘 위의 하늘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검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느새 검을 거둔 블루가 아이린에게 말문을 열었다. “검의 이름을 사용할 줄 알게 되었군.” 끄덕 아이린 공작은 블루의 말에 수긍하며 검극을 내렸다. 그 움직임이 불안하기만 했다. 전신의 모든 힘이 빠진 탓이다. “바람이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알고 있나?” “모릅니다.” “바람은 바로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 시작되어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 끝이 난 것이오.” 어느 새 곁에서 블루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슈리오가 질문했다. “그게 무슨 뜻이옵니까?” 처음의 반말은 어디 갔는지 정중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세상에 자신이 없다고 생각해보아라.” 그 말에 슈리오가 눈을 감았다. “무엇이 느껴지느냐?” 한참 후 슈리오가 대답했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다. 세상에 자신이 없다면 바람이 있다는 것조차 알 수가 없지. 그렇다면 세상에 있는 자신이 느끼는 바람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착각인 것일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 세상의 바람은 내가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고, 내가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군요.” “그렇다! 물론 네가 세상에 없다고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존재들은 그 바람을 느끼기 때문이지. 내가 느끼는 바람을 너는 느낄 수 있느냐?” 슈리오는 블루가 말하는 말의 본질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기쁜 얼굴로 대답을 했다. “느낄 수 없습니다.” “그렇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낄 수 없는 것이지. 한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한 가지의 감정이 존재한다. 만 명이 있다면 만 명의 감정이 생겨난다는 뜻이지. 그러나 얼마든지 공유할 수도 있다. 이런 느낌이라는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는 있단 말이지. 분노, 슬픔, 기쁨이란 이름으로 말이지.” “이름으로?”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말한 말의 진의는 내 몸에서 시작된 바람에 관한 것이다. 원류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내 몸에 부딪혀 나간 바람은 분명 나를 기점으로 불게 될 것이다. 내가 움직이고 숨쉬고 내뱉을 때 만들어진 새로운 바람! 그럼 너에게 묻겠다. 바람이 무엇이냐?” “바람이 무엇이냐구요?” 순간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딱히 꺼낼 말이 없었다. 말을 꺼내려고 하면 다른 생각이 막아서고 그 생각을 말하려 하면 다른 생각이 다시 그 앞을 막아선 탓이다. “내가 느끼는 바람은 감정과도 같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에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바람이라고.” 블루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볍게 쓸었다. 무의식중에 슈리오의 손도 허공을 쓸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아니 스치고 지나가는, 아니 부딪혀 흩어지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 작은 탄성! 어째서 이것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세상의 모든 사물에 붙여진 이름! 그것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인간은 언제부터 인간이었고, 검은 언제부터 검이었으며, 오크는 언제부터 오크가 된 것인가? 그 이름은 대체 누가 지었을까?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존재하긴 했지만, 존재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이름이 생기면서 비로소 그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슈리오 자신이 이름이 없던 아기에서 슈리오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처럼. 순간 슈리오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것을 본 블루와 아이린 공작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떠올랐다. “영특한 아이군.” “애비 속을 누구보다 썩이는 녀석입니다.” 블루가 이이린 공작을 돌아보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째서인지 기쁘게 들리는군. 내 착각인가?” “후후후!” 아이린 공작이 뜻 모를 웃음을 흘렸다. 세상 어떤 아비가 아들을 칭찬하는데 기쁘지 않겠는가! 그것도 자신이 인정하고 존경하며 존중하는 사람 입에서 나온 칭찬이라면 더욱! “정말 힘들군요. 자식을 가르친다는 것이 이리도 힘든 것인 줄 몰랐습니다.” “세상에 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축하하네. 녀석의 속도라면 십수 년 후 자네를 능가할 수 있을 듯하군!” 그 말에 아이린 공작이 투덜거렸다. “흥! 그런 말씀 마십쇼. 저는 블루 경을 능가하기 전에는 죽을 생각이 없으니 말입니다.” “큭큭! 최소 삼백 년 후에나 가능할 것 같은 발언이군.” “최소 삼백 년은 더 살 생각입니다.” 아이린 공작의 말에 블루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큭큭큭큭! 크하하하!” 블루의 웃음에 아이린 공작의 뺀질거리던 얼굴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블루 경, 아니 스승님!” 잠시의 적막! 세상에 아이린 공작의 입에서 스승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블루는 내색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떠나실 생각이십니까?” “후후.”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 웃음! 아이린 공작은 어째서인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스승님!” “날 그렇게 부르지 말게. 스승은 바로 나 같은 작은 존재가 아닌, 세상의 자연이 되어야 하고 드넓은 우주가 되어야 하네. 나 역시 세상의 이치를 아직도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 검을 들고 백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깨달은 하나가 무엇인 줄 아는가?” ‘백여 년?’ 짐작하고 있었지만 블루의 입으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천재라도, 온갖 기연을 다 얻는다 해도 십수 년 만에 마왕과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대자연을 깨닫기는커녕 우주가 뭔지도 알 리 없었다. 그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 왔을까? 이 의문이 떠오를 때, 블루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것 때문일세. 아직도 명확한 이유는 모른다네. 다만 강해져야 하고 그 강함으로 뭔가를 이뤄야한다는 것뿐. 물론 막연한 이야기지. 하지만 의심하지 않는다네. 사람은 모두 목적과 이유를 지니고 태어나는 것일세. 불행? 어찌보면 그것도 사람의 운명일세. 평등은 사람의 망각이 만들어낸 산물일 뿐.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점은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지 없는 지로 나뉘는 것일세. 부자라고 행복할까? 가난하다고 불행할까?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네. 그래서 배워야하지. 알아야하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숨쉬는 것이, 움직이는 것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것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이 모두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것임을.” 블루의 말이 끝나자 아이린 공작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스승님께서 아직도 배우실 게 남았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나는 아직 나의 공부가 끝나지 않았고, 아직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알지 못했네. 그래서 떠나려고 하는 것이지.” “스승님!” “나라고 왜 미련이 없겠는가? 슬픔이 없겠는가? 감정이 없겠는가? 떠날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그립네. 베르니스, 스콜, 텐시, 크루토, 니콜라스, 에그잔티아, 루티시아, 세바스찬, 클레인, 뮤엘, 로이, 죠셉, 헤르마틴 황제, 아니, 케산 그리고 에스티마르와 존 라이튼까지! 모두 다시 보고 싶을 것이네. 하지만 이게 그들과 나의 마지막 인연인 것을 어쩌겠는가! 물론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사치일세. 내 마음이 흔들려 이곳에 남아서 운명을 거부하려한다면, 난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지.” “스승님......!” 길게 여운을 남기는 아이린 공작의 목소리에 블루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를 만나서 정말 즐거웠네.” 그것이 블루의 마지막 음성이었다. 달이 밝던 어느 날 밤. 세상을 지키는 세 개의 검 중 두 개가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에필로그 이십 년이 흘렀다. 강산이 변했고, 사람도 변했고, 마음도 변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헤르마틴 황제를 향한 백성들의 충성심과 애국심이었다. 현 헤르마틴 황제를 전설의 헤르마티아 대제를 떠올릴 정도로 확실한 황권정치를 바탕으로 세계 최강국의 이름을 부끄럽지 않게 했으며, 자국의 부패를 척결했고, 백성들에게 노력하는 만큼 수익을 보장해주는 자가 자산제를 실시해 성군으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크하! 역시 일을 마치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와 비견될 만한 것은 없단 말이지!” 베르니스의 화통한 한마디에 스콜이 잔을 부딪히며 맞장구쳤다. “물론이지! 벌컥벌컥! 크하...... 좋다! 이 자리에 블루 대장만 있다면 더 좋을 텐......” ‘아, 아차......!’ 순간 착 가라앉은 분위기. 스콜은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 이십 년 전 한마디 인사도 없이 사라진 자신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둘도 없던 친구! 그가 종적을 감췄음을 알게 된 그날, 얼마나 울었던가! 가장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사람은 다름 아닌 베르니스였다. 말 한마디 없이 떠난 것을 이해, 아니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절대 떠난 게 아니라고, 반드시 다시 돌아올 거라고 중얼거리고 고함을 쳤다. 그렇듯 수십 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아무 일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블루에 관한 말은 금기처럼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만 실수로 그 말을 꺼낸 것이다. 스콜은 조심스럽게 베르니스를 바라보았다. 베르니스의 슬픈 눈! 예전의 광기는 찾아볼 수 없지만,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단숨에 맥주를 들이켠 베르니스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뭐가 걱정이야? 어디 가서 맞아죽거나 굶어죽을 사람도 아니잖아!” “그, 그렇지?” “분명 잘 지낼 거야. 꼭, 그럴 거야.” 벌컥벌컥 베르니스는 다시 단숨에 맥주잔을 비웠다. 그때 스콜이 말했다. “야! 그건 그렇고 오늘 일찍 들어가 봐야 하지 않냐? 어 벌써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며? 텐시가 지금 잔뜩 벼르고 있다던데.” 흠칫! 갑지기 베르니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지만, 그것은 곧 뻔뻔함으로 돌변했다. “훗! 어딜 감히 지아비가 행하는 일에 아녀자가 사사건건......!” 흠칫! 무의식적으로 자리를 피한 베르니스와 스콜. 그때 들려온 굉음. 콰광! 우지직! 그들이 앉아 있던 테이블이며 의자가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튀었다. “뭐, 뭐야?” 다급히 시선을 돌린 베르니스와 스콜의 눈에 친숙하다 못해 눈에 익은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테, 텐시!” 텐시의 날카로운 시선이 번뜩였다. 동시에 스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가 꽁지 빠지게 달아나버렸다. 베르니스가 외쳤다. “스콜! 같이 가세!” “친구, 미안하네!” 베르니스의 목소리에선 안타까움과 분노가 절절히 묻어났다. 우정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혼자 내빼다니! 으득! 이를 갈았다. 반대 입장이었다면 자신도 같은 선택을 했을 테지만, 당하는 입장이란 늘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법이다. 그때 들려오는 살벌한 텐시의 목소리. “큭큭! 도망을 치시겠다?”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래?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다시 한번 말해봐? 아녀자가 사사건건......뭐라고?” “아, 아니 그건 말이죠......” “아, 아니 그건 말이죠......” 변명이 시작되려는 순간, 텐시의 손놀림에 거대한 물의 정령이 강력한 물줄기를 뿜어내며 베르니스를 공격했다. “여보! 히, 히익!” 우지직! 쾅쾅! 무척이나 살벌한 부부싸움이었다. 탁턱! “주목!” 황실에서 나와 학자의 길을 걷게 된 클루토는 강의실에서 칠판을 두드리더니 제자들에게 말했다. “옛 현자들은 이것을 보고 이렇게 논의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생명의 나무라는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한 학생의 질문에 클루토가 예를 들어 대답했다. “자, 이곳에 하나의 판이 있다 가정해보세.” “예.” “그 판을 세상의 중심이라 말하고, 그 가운데 하나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고 보면 기본적인 세계관의 틀이 완성되지. 이 세계관을 들여다보면 다차원 우주공간은 세피로스(Sephiroth)의 사과나무, 즉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를 기본의 틀로서 만들어졌다는 것이야. 그러니 한마디로 하자면 이 생명의 나무는 다원우주(多元宇宙Multiverse), 다차원(多次元)의 우주공간(宇宙空間)이고 열매는 하나의 차원계라는 말이지.” 그렇다는 말씀은 생명의 나무란 우주의 기원과 삶의 근원을 상징하는 나무라는 것인가요?“ “그렇지.” “죄송합니다만, 이건 제 개인적인 궁금증이거든요? 한번 들어주세요,” “그래, 말해보게.” “성경에서 나오는 하느님이 인류의 시조인 ‘그’에게 따먹지 말라고 했던 그 과일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뭔가를 알고서 말하는 것 같군.” “아닙니다.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겁니다.” 클루토가 그의 뻔뻔한 대꾸에 피식 미소 지었다. “아는 대로 말해보게.” “그럼, 큼큼. 제가 알기로는 하느님이 ‘그’에게 다른 모든 것은 먹어도 좋으나 동산의 가운데 있는 나무의 과일은 먹지 말라 명했다고 합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론 그 과실을 선악과라 한다고 합니다. 선과 악을 깨닫게 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그리 지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고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안다고 그들을 동산에서 내쫓을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요?” “흠,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하네. 물론 내가 설명하는 것도 그 중 하나네. 어찌 우리가 신의 의지를 모두 이해할 수 있겠는가? 과일을 따먹고 그 죄로 동산에서 쫓겨나 땅을 일고며 일을 하게 되었다는데, 한 학자의 설을 인용하면 ‘그’가 신이 된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을 하고 있다네. 생명의 나무를 아까 말한 다원우주라 생각하면, 그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란 것은 하나의 차원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다는 것은 하나의 차원의 주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해석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뭐, 종교인들로부터 반발을 살 만한 해석이긴 하지만요.” “후후, 그렇겠지. 그래서 이 질문은 여기서 접고 본문으로 들어가지. 저번 강의 때 말했던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은 다들 생각해봤겠지? 그럼 죽음이란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때 예쁘장한 여학생이 팔을 높이 들었다. “그래, 루티시아! 대답해 보거라.” “죽음이란 것은 죽음! 더 이상 존재치 않을 한순간의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클루토는 넌지시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루티시아는 당돌하게 입을 열었다. “어째서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말하고 더러는 미화해 시와 수필집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죽어서 느낀 것을 얘기한 것은 아니지 않나요?” “흠, 물론 그렇지” “당연히 그렇지, 물론 그렇지가 아니잖아요. 그들이 죽음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그들은, ‘아 죽음이란 것은 그런 것이겠구나’ 하며 자신의 생각과 죽은 자를 보고 느낀 감상을 정리하는 것뿐이겠죠. 죽었다 살아나 글을 쓸 리는 없으니까요.” 루티시아의 의견에 클루투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그럴 수도 있어. 좋은 생각이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말이었다. 좋아.” 루티시아는 클루토의 칭찬에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 앉았다. “자, 루티시아와 다른 생각을 가진 학생이 있는가? 있다면 손들어보게. 과연 죽음이란 것은 무엇일까? 죽음이라......어떠한 고명하고 유명한 학자나 마법사, 랍비들조차 죽음이란 무한한 안식 속으로 사라져갔다. 하지만 그들의 지식과 행동양식은 책을 통해 후손들 머릿속으로 대물림되고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사상의 이동을 삶의 연속이라 했지.” 그때 우슬라니안의 하트레스 왕자가 물었다. “삶의 연속? 무슨 말씀이시죠?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클루토는 슬그머니 웃으며 말했다. “삶의 연속이란 말 그대로 영생을 말하는 것이다. 위대한 환광술사 ‘존 라이튼’ 경은 육신이 살아 있다고 모두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의 사상과 지식이 그의 후손에게 전해지고 그것이 발전되어 지는 것! 그것을 바로 영생이라 했지. 사람들 머릿속에서 자신이 영원히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했지.” “어려워요.” “물론 공부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하는 것이지. 우선 존 라이튼 경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리포트로 작성해 다음 이 시간까지 제출하도록. 수업 끝.” 강의실을 벗어나자 흰 수염으로 덮인 죠셉이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역시 대단하군!” “스승님!” 클루토의 정중한 인사에 죠셉이 수염을 쓸며 말했다. “다시 황실로 돌아올 생각이 없는가? 황실에 인재가 필요하다네.” “인재는 많지 않습니까? 그들을 들이십시오.” “하하! 그들 모두가 눈이 빠지게 자네만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하네만.”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블루 대장이 황실을 떠난 순간, 제 자리는 사라졌습니다. 이곳이 제 자리입니다. 블루 대장도 이것을 원할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죠셉의 질문에 클루토는 침묵을 지켰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도망치지 말게! 내가 검황이라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걸세. 문은 언제든지 열려 있으니 돌아오고 싶다면 아무 때라도 오게나. 기다리겠네.” 꾸벅 클루토는 허리를 깊이 숙이고 자신의 연구실로 발길을 돌렸다. “다녀오셨어요?” 다다다다 세바스찬 2세는 자신의 공국을 돌아보고 성으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는 작은 아이를 잡아들고 번쩍 들어올렸다. “아이쿠, 우리 아들! 이제는 이 아버지와 팔씨름을 해도 이기겠는걸.” “헤헤헤헤.”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발버둥을 쳤다. 뒤로 청년 하나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공작전하,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블루! 별일 없었느냐?” “물론이옵니다.” “수련은 열심히 한 듯하구나. 호흡이 한결 부드러워진 것이 깨달음이 있었느냐?” “작은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래, 수고 많았다.” 얼굴 가득 믿음직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큰 아들인 ‘블루’의 어개를 두드렸다. “어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흠, 자리를 오래 비우긴 했지. 그래, 어디 계시냐?” “오랜만에 로이 백작님과 뮤엘 백작님께서 오셔서 정원에서 담소를 나누고 계십니다.” “알았다.” “쩝, 대체 언제까지 아가씨 뒤처리를 해야 할지.” 프랭크의 투덜거림에 애꾸눈 팽크가 코를 후비며 대꾸했다. “보스가 없는 이상 물 건너간 거라니까.” “셋째가 고생이군.” “흥! 어쩌겠어. 막내인 것을 탓하는 수밖에 없지.” 팽크의 말에 프랭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자신이 팽크의 형님으로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말이다. “결혼하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흥! 저런 왈가닥을 누가 데려간단 말이요?” 그 말에 프랭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스콜 기사단장이 아가씨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던데?” “에엑?” 경악한 팽크의 목소리에 프랭크가 피식 웃었다. 자신도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팽크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벌써 삼십대 중반인데 언제 결혼하려는 거야?” “내 알 바 아니지!” “제길! 지랄 같긴 했어도 보스가 있을 때가 좋았어.” 팽크의 말에 프랭크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이 시간에......!’ 슈리오는 아버지 아이린 공작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뒤를 밟았다. 아이린 공작이 향한 곳은 개인 연무장이었다. 자리를 잡고 한참을 눈을 감고 있던 그가 검을 뽑았다. 놀랍게도 그 검은 바로 ‘아슈’였다. 블루가 떠나며 그에게 맡긴 것이다. 스릉! 공작은 정지된 그림처럼 두 시간이 넘도록 서 있었다. 그럼에도 슈리오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조금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긴장감에 숨이 막혔다. 내심 아버지를 거의 따라잡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어림도 없었다. 평생 피나는 수련을 거듭한다 해도 과연 아버지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자괴감이 앞섰다. 그 말은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검황을 넘볼 수도 없다는 뜻이었다. ‘에휴!’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뭔가 몰랐다. 그 사이에 기운이 달라진 것이다. 동시에, ‘허억! 저, 저것은......!’ 거대한 검이었다. 검황의 몸에서 뿜어지던 그 거대한 검! 착각이 아니었다. 달빛에 반짝이는 그 검광은 블루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 거대한 검이 흐느끼며 우는 듯했다. 마치 누군가의 일검을 기다리듯이...... <검황 이계정벌하다 제1부 완결> 글쟁이의 변 짧지않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네요. 이렇게 검황의 이계 종횡기는 끝이 나지만, 그들의 동료들은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또 다른 시작이라 할 수 있지요. 처음 이 글을 시작한 것이 2004년 12월 초였을 것입니다. 2005년 1월 책으로 출간되고 나서 지금까지 1년 7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정말 힘들게도, 재미나게 달려왔네요. 이 글을 쓰는 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했고, 아들도 태어났으니까요. (지켜봐준 여보, 사랑하고 고마워요.) 시간이 유수와 같다고 하죠. 그 말이 누구보다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마감으로 허덕거리던 순간들까지 모두 추억이 되어 기억에 남네요. 하지만, 저의 늦은 마감 때문에 ‘검황 이계정벌하다’를 기다려주신 독자님들께 죄를 지은 기분이 듭니다. 원치 않게 피해를 보신 분들도 계실 테고요.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카페에 가입해주신 가족여러분들께도 감사하며 죄송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제가 자주 들어가서 함께 어울리지 못한 것이 가슴에 걸리네요. 완결을 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는지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뭔가 말을 더 쓰고 싶어서 수십 번이나 쓰고 지웠습니다만, 가슴에 묻어두라네요. 이게 끝이 아니니까요. 검황 이계정벌하다 무림편으로 곧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