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의 자료실-기사들의 기억 (go SGKNIGHT)』 38번 제 목:Ｗhite Ｂlue - Ｒ Vol. 1 올린이:jack21 (이경영 ) 99/04/05 04:14 읽음:1333 관련자료 없음 ----------------------------------------------------------------------------- 이제부터 연재될 내용은 가즈 나이트 출판본에 맞추어 모든 설정이 변경된 상태의 새로운 시리즈...입니다. 제목만 같군요. <-.-> 설정이 거의 변경된 상태에서 연재를 계속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무엇보다 화이트 블루 스토리를 다 까먹었거든요. 그럼, 새로운 시리즈를…재미있게 봐 주십시오. ----------------------------------------------------------------------------- "아바마마­!" 젊은 왕자의 비명은 길었다. 그러나 왕의 숨이 끊기는 시간은 짧았다. 단숨에 목이 날아간 가이라스 왕의 시체는 푸줏간의 고기처럼 대리석의 바닥을 굴 렀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왕자, 길트는 무너지는 성벽처럼 바닥에 무릎을 꿇 었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할버드를 든 고등 악마, 하인켈은 도끼날에 묻은 가이라스 왕 의 피를 바닥에 떨구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늦으셨군요 왕자님. 아, 이젠 왕자님도 아니시죠. 그냥…불쌍한 인간에 불 과하신가요? 하하하핫…." "…어째서, 어째서 우리 왕국을 이렇게…! 왜 모두를 죽였나! 어마마마도, 아바마 마도…그리고 동생도! 도대체 무엇 때문에!" 길트의 머리카락이 분노에 흩날렸다. 대답을 해 주려는 듯 하인켈이 다가왔다. "이유는…당신의 운명 때문입니다. 당신 운명은 위대하신 악마왕, 사탄님의 눈에 거슬릴 정도로 지저분 하거든요. 원래는 당신 하나만 없애면 되지만…당신의 나라 는 미적(美的) 감각이 너무 떨어지더군요. 미를 사랑하는 저로서 당신의 나라 전부 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수도만 날린 것을 이해해 주시길. 후후후 후훗…." 길트는 기가 막혔다. 들어보지도 못한 악마왕이란 존재의 명령과 미적 감각 하나 때문에 자신의 왕국과 혈족이 모두 사라졌다는 무서운 사실은 그의 정신을 가물거 리게 만들었다. "…이해? 이해라고? 도대체 뭘 이해하란 말인가! 왕국이 사라진 이유를? 아니면 네 녀석의 미적 감각을? 미안하지만 난 정상인이라 그런 걸 이해하지 못해! 네 녀석과 여기서 결판을 내겠다!" 길트는 이를 악물며 검을 뽑았다. 그러나, 고위 악마족 하인켈이 보기엔 의미없는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이런…. 진정하십시오 길트 왕자. 아드레날린이 과다하게 분비되면 인간의 얼굴은 붉게 물듭니다. 전 빨갛게 물든 인간의 목은 가지기 싫습니다. 그러니 마음 을 편하게 가지십시오. 후후후훗…." 하인켈의 할버드가 높이 들어올려졌다. 하지만 도끼창의 그늘속에 빛나는 길트의 눈은 위험에 처한 인간의 눈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반짝였다. 이윽고, 하인켈 은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낮게 말했다. "맘에 들었습니다. 이제…죽으십시오." 부릅떠진 길트의 눈에선 한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탁­ 그때, 하인켈의 투구에 무언가 부딪혔다. 길트를 제외한 수도사람 전부가 자신의 할버드에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잘 아는 그로선 의아한 일이었다. "누군가 남아계셨습니까? …음?" 뒤를 돌아본 하인켈의 하얀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역시 그쪽을 바라본 길트 역 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아바마마…?" 그들의 앞엔 목 없는 가이라스 왕의 시체가 당당히 일어서 있었다. 목이 있던 자리 에선 여전히 피가 흘렀지만 시체는 바닥에 떨어진 파편을 하인켈에게 또 한번 던졌 다. "가이라스 왕…! 그렇게까지…!" 하인켈은 날아오는 파편을 멍하니 맞았다. 물론 그런 파편따위가 고등 악마에게 충 격을 줄 리는 없었지만 하인켈은 정신적인 충격을 충분히 얻고 있었다. "에스토드…왕국으로…가거라…길트야…! 클라리스 공주를…반드시…!" 바닥에 놓인 가이라스 왕의 머리가 힘겹게 입을 움직였다. 길트는 눈 앞에 펼쳐진 초자연적인 일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죽음이란 단어를 의지 하나 만으로 초월하다니, 놀랍군요 가이라스 왕. 사탄 님 께서도 이 얘길 들으시면 감동하실 듯 하군요. …그러나!" 순간, 하인켈의 눈에서 악기가 뿜어졌다. 그 무시무시한 압력은 겨우 서 있는 가이 라스 왕의 시체를 다시 넘어트리기에 충분했다. "몸을 갈가리 찢어드리겠습니다. 감동은 한 번으로 족하니까요!" 하인켈은 소리치며 시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이라스 왕의 입이 다시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가거라 길트야! 내 아들아!" "아바마마!" 왕의 몸은 빛으로 변했다. 부서진 알현실을 감싼 그 빛은 하인켈의 몸을 멈추게 했 고 길트마저도 다른 공간으로 날려보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밀가루를 뒤집어 쓴 것처럼 하얗게 변한 하인켈의 몸이 꿈틀하며 움직였다. 그의 몸을 뒤덮은 하얀 물질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절대 마법 '원더'입니까. 후훗, 하긴…. 당신 자신의 영혼을 소멸시켜야 할 정 도의 가치를 지닌 일이기도 하죠. 어쨌건 큰일이군요." 푸념하듯 독백을 늘어놓은 하인켈은 할버드를 바닥에 꽂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의 주인공을 놓쳐버렸으니 사탄 님께서 절 가만두시지 않을 듯 합니다. 후후 …하하하핫…." 그의 웃음은 하늘을 울리고, 땅을 울렸다. 생명을 잃은 가이라스 왕국의 땅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았다. 바람을 잃은 하늘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수십 만의 피를 머금고 강으로 흘렀다. 붉게 변한 강에서 뛰어노는 것은 피 냄새를 맡은 식인어 뿐이었다. 단 하나. 숭고의 이름을 가진 가녀린 꽃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돌 속에서만 꽃을 피운다는 희귀의 꽃, 화이트 블루만은 반항하듯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전설은 없다. 사실만이 있을 뿐이다. White Blue - Dusk of legend ※※※ "…으윽!" 온 몸에 통증이 서려왔다. 꼭 비유하자면 돌이 됐다가 다시 움직이는 기분이랄까. 어쨌거나 길트는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그의 눈에 처음 보인 것은 자신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계곡의 입구였다. 습기가 찬데다가 바람까지 불어 기분은 영 아니었지만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기엔 충분 했다. 「흠…눈을 떴군 젊은이. 내 간호사 생활은 오늘로 끝인가.」 "윽! 누구냐!"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길트는 놀란 나머지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의 몸 은 이상하게도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힘없이 쓰러진 그의 귀에 정체불명의 목소리 가 다시 들려왔다. 「오, 가만히 있는게 좋아. 자네는 2년 동안 의식을 잃고 여기서 뒹굴었으니까. 독 수리 밥이 안 된 것은 정말 다행이야. 독수리 녀석들은 내가 아무리 겁을 줘도 먹 을 것은 다 먹거든.」 길트는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 365일이라는 시간이 두번이나 지나간 것이다. 그는 당황하고 말았다. "…2, 2년이라니요? 게다가 뒹굴다니…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신은 또 누구시고요?" 목소리는 가볍게 웃었다. 「후, 질문은 하나씩만 해 주게. 음…대화를 잘 풀어가려면 서로가 누군지 잘 알아 야 하겠군. 좀 힘들겠지만 위를 올려보게. 내가 보일걸세.」 길트는 천천히 위를 올려다 보았다. 절벽 말고 특별한 것은…그 절벽에 꽂힌 검이 한 자루 보였다. 길트는 설마 하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봐, 뭘 하는 건가. 그냥 시선을 돌리면 내가 섭하지 않나.」 "…예? 그, 그렇다면 설마 당신…?" 「그래. 난 자네가 보고 있는 검일세. 내 이름은 라이세네프. 날 아는 사람들은 내 이름 뒤에 '경'이라는 존칭을 붙이곤 하지. 그럼 자네는?」 뭔가 이상하고도 신기했다. 길트는 일단 속는 샘 치자 생각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전 길트 디모트 알렉세이라 합니다. 2년이 지났다면…이제 스무살이군요." 「…디모트 알렉세이? 호오, 자네 가이라스 왕국 왕자 님이었군.」 길트는 또 한번 놀랐다. "예? 아, 아니 그 사실을 어떻게…?" 「알렉세이라는 성을 가이라스 왕국에서 쓸 수 있는 자는 왕족 뿐이지. 게다가 디 모트라는 제 2의 성을 쓰는 건 가이라스 왕국 제 1 왕자 뿐이야. 자네가 더 잘 아 는 사실이잖나?」 "…그렇긴 하지만, 어떻게 당신께서 이렇게도 자세히 아실 수 있는 겁니까?" 「…그건 둘째 치세. 그런데 자네는 어째서 이런 누추한 곳에 날려왔나? 이곳에 올 때 모습을 보아하니 보통 워프 마법이 아닌 '원더'에 의해 온 듯 한데….」 라이세네프는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길트는 생각했다. 지금으로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저 검은 많은 도움을 줄 것 같았다. 게다가 2년 동안 자 신을 보호하고 간호해 준 듯 하기에 길트는 솔직담백히 모든 일을 말했다. 한참동안 얘기를 들은 라이세네프는 이전보다 훨씬 묵직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탄이…. 하지만 이유를 모르겠군. 인간의 운명에 관여해서 득이 될 게 있단 말 인가. 어쨌든 7인의 악마왕 중 정점에 속한 사탄이 개입됐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문 제는 크지.」 라이세네프의 독백은 길트의 지식을 뛰어 넘고 있었다. 한참동안 생각하던 라이세 네프는 이내 빛을 발하며 말했다. 「일단 이 가이라스 왕국 부터 빠져 나가야하니 내가 자네를 도와주지. 자, 날 뽑 게. 1000년이 넘도록 이 절벽에 박혀 있긴 했지만 자네 하나 쯤 도와주는 일은 할 수 있을 걸세.」 하지만 길트는 자신이 없었다. 일단 박혀 있는 위치 부터가 문제였다. 수직 경사는 물론이고 암벽 자체가 습기 때문에 미끌미끌했다. 그러나, 길트는 자신의 상의를 벗는 것으로 의지를 다졌다. 상의를 찢어 자신의 양 손을 적당히 감싼 그는 천천히 몸을 풀었다. 2년 동안 의식을 잃고 있었음에도 불 구하고 몸은 생각보다 뻐근하지 않았다. 몸을 푼 그는 조심스레 암벽쪽으로 손을 뻗었다. 고등 악마 하인켈을 잠시 멈추게 한 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강렬했다. 그러나, 그 눈빛에서 복수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죽음을 초월하여 자신을 살려낸 아버지, 가이라스 왕의 모습을 그는 잊을 수 없었다. 가이라스 왕이 바란 것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그 이상이었으리라. 길트 는 아버지의 진정한 뜻을 알기 위해서, 클라리스 공주가 있는 에스토드 왕국으로 가기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라이세네프에게로 향했다. ------------------------계속---  『신계의 자료실-기사들의 기억 (go SGKNIGHT)』 39번 제 목:Ｗhite Ｂlue - Ｒ Vol. 2 올린이:jack21 (이경영 ) 99/04/05 19:29 읽음:840 관련자료 없음 ----------------------------------------------------------------------------- ----------------------------------------------------------------------------- 떨어지기를 수 차례 반복한 끝에 길트는 드디어 라이세네프를 뽑을 수 있게 되었 다. 검을 뽑자 마자 다시 바닥에 떨어지긴 했지만 길트는 기분이 좋은 나머지 고통 을 잊고 검을 위로 치켜 들었다. "와아…." 검술엔 조예가 깊지 않은 길트였지만 라이세네프의 매끈한 디자인과 가벼움엔 감탄 을 금하지 못했다. 게다가 검을 잡은 손에서 부터 밀려오는 엄청난 힘이 피로와 타 박상에 찌든 몸을 깨끗히 해 주는 듯 했다. 「좋아. 이제 의식을 거행하자 길트.」 "예? 의식…이라니요?" 「…좋은 검을 얻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나. 겉치례 같지만 의식은 꼭 치러야 한다. 자, 날 땅에 꽂아라. 그리고 마음을 경건히 해라.」 "예." 길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라이세네프를 땅에 꽂았다. 직후, 라이세네프에선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에 몸을 맡긴 길트는 몸 전체에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을 참을 수 없었다. 「…웃지 말거라. 자, 대답하라 길트 디모트 알렉세이여. 넌 무엇을 위해 나 룰러 오브 소드(Ruler of sword), 라이세네프를 얻으려 하는가.」 너무 갑작스런 질문이었다. 길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라이세네프를 얻으려 한 이 유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길트의 입이 움직였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당신께서 당신 자신을 뽑으라고 하셨기 때문이지만…일단 제 가족과 수십만에 이르는 수도 주민이 왜 저 하나 때문에 죽음을 당했는지 당신 의 힘을 빌어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바마마의 말씀에 따라 에스토드 왕국으로 가서 클라리스 공주를 만나보기도 해야…." 「…아아, 됐다. 그냥 진실을 위해서라고 하지. 대화가 안통하는 젊은이군.」 "예? 아, 죄송합니다…." 「좋아, 어찌됐건 나 룰러 오브 소드, 라이세네프는 너를 새 주인으로 인정하겠다. 너의 진실을 위해, 나 룰러 오브 소드 라이세네프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범위 내 에서 널 도와줄 것을 맹세하겠다.」 "……." 「…끝이야. 날 뽑아.」 "아아, 네." 길트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라이세네프를 뽑았다. 「계곡을 나가는 길은 내가 안내하겠다. 아아, 지팡이처럼 짚을 필요는 없어. 그냥 가지고만 있으면 된다.」 "아, 그렇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죠?" 「좋은 칼은 다 그래.」 무안해진 길트는 아무 말 없이 라이세네프의 정신파 안내에 따라 계곡을 빠져 나갔 다. 얼마쯤 걸었을까. 계곡을 나온 길트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바위와 눈, 그리고 헐 벗은 나무들 뿐이었다. 주위를 한참 둘러보던 그는 손을 두드리며 외쳤다. "…아, 여긴 에르파라스 고원…!" 「그렇다. …그런데 춥지 않나? 상의까지 벗고 있는데….」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길트는 자신의 몸을 팔로 감쌌다. 라이세네프는 긴 한숨 을 내 쉬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것 자네를 간호해 준 또 한 명을 찾아 가세. 그러고 보 니 그 애가 자네가 깨어나면 꼭 말해달라고 했는데 깜빡 잊었군. 나도 늙었나봐.」 "예? 애…라니요?" 「만나보면 알아. 자, 가자.」 길트는 다시금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다리를 움직였다. 추위와 싸워가며 기나긴 언덕과 눈밭을 통과한 길트의 눈 앞에 작은 마을이 들어왔 다. 그는 이제 살았다 생각하며 그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아, 뛰지 마! 함부로 움직였다간….」 철컥­ "아아악―!" 부비트랩을 밟은 길트의 발은 눈 속에 장치된 올가미에 잡혀 공중으로 떠올랐다. 거대한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꼴이 되어버린 길트는 눈을 껌벅일 뿐이었다. 「…조금만 놔 줘도 이렇게 되는군. 잘못해서 폭발형 트랩이라도 밟았다면 어쩔 뻔 했나.」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괜찮아. 마을 주민들이 곧 몰려올 테니까. 그때까지 편히 쉬고 있어.」 그러나, 맨 살을 때리는 찬바람과 머리에 몰리는 피는 길트의 기분을 과히 좋게 만 들지 않았다. 이윽고, 멀리서 사람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트는 이제야 살았다는 생각 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인간이다! 인간이 잡혔다!" "첩자가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길트를 반기지 않는 듯 했다. 눈 위에 떨어진 길트는 머리를 부비 며 주위를 돌아봤다. "저, 죄송하지만 전 나쁜 사람이…윽?" 길트는 마치 먹구름과도 같은 실루엣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주민들의 형상은 대체적으로 인간과 비슷했지만 덩치나 얼굴모습이 보통의 인간과는 상당히 달라보 였다. 엄청난 키와 단단한 근육질, 그리고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얼굴의 무늬 등은 길트에게 위압감을 던져주었다. "헉!" 후두부에 가해진 강한 충격에 길트는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주민들은 쓰러진 길트를 그리 곱지 않는 시선으로 내려보았다. "으윽…!" 2년 만에 눈을 떴을 때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머리와 등골까지 전해지는 통증 은 길트를 여전히 괴롭혔다. 「아, 눈을 떴군. 정신 차릴 수 있나?」 라이세네프의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반갑게 느껴졌다. 길트는 머리를 털며 주위 를 둘러봤다. 약간 늙어 보이는 남자과 걱정스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젊은 여자, 그리고 중 년의 여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 전부였다. 길트가 의식을 찾고 자신들을 둘러보 자 남자가 웃으며 자신에게 다가왔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설마 가이라스 왕국의 왕자 님께서 우리 마을을 찾으실 줄 은 정말 몰랐거든요. 우리 젊은이들의 실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 늙은이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덩치나 무서운 형상에 비해 남자는 상당히 친절했다. 기분이 약간 풀어진 길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제 탓이죠. 그런데, 당신들은 어떤 종족이 십니까? 문헌에서도 당신들의 모습을 본 일이 없는 듯 한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헛, 그러실 법도 하지요. 저희는 호족입니다. 존재를 알리지 말아야 할, 그림자 의 종족이지요." "…호족…이요?" 호랑이를 숭배하는 종족이란 말인가, 아니면 호랑이 인간이란 말인가. 그리고 존재 를 알리지 말아야 할 그림자 종족이란 말은 또 무엇인가. 길트로선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예. 이 마을은 호족만의 마을 타이거 벨리입니다. 그리고 전 촌장 고르바라고 합 니다." 고르바와의 오랜 대화를 통해 길트는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신에게 버림받고 용족으로 부터 멸망의 위기까지 당해야 했던 호족의 옛 일. 그리고 라이세네프와 함께 자신을 2년 동안 간호한 고르바의 딸, 랜시의 이야기까지. "어째서, 어째서 신께서 당신들을 버리셨죠? 당신들도 엄연한 생물 아닙니까?" 길트는 마치 신에게 반항하듯 고르바에게 물었다. 고르바는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 이유는 신 께서만 아시겠지요. 그리고 그 문제는 우리 호족이 떠 안은 숙명. 왕자님 당신께서 염려치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절 2년 간이나 보호해 주셨습니다! 못본 채 넘어갈 순 없습니 다!" "…저희들은 당신께서 거기 계신 사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감사를 표하고 싶으 시다면 제 딸 렌시에게 해 주십시오." 고르바는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길트는 촌장의 뒤에 앉아 있는 랜시를 바라봤다. 자신보다 키도 훨씬 크고 남자 호족 못지 않게 근육이 장대한 체형을 가진 그녀지 만 얼굴과 마음만은 보통의 18세 소녀와 다를 바 없게 생각됐다. 그런 그녀를 보면 볼수록 길트의 안타까움은 더했다. 그때, 묵묵히 대화를 듣고 있던 라이세네프가 다시 빛을 발했다. 「잘 들어라 길트. 지금 네가 아무리 안타까워해도 주신, 하이볼크님의 결정만은 어찌할 수 없다. 넌 이 세상에 퍼진 무량대수의 생물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이성 을 가지고 냉정히 네 일을 생각해라. 길트.」 길트는 길게 숨을 내 쉬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라이세네프 경. 그럼 촌장님, 제게 따님을 주십시오." "예, 데려가만 주신다면…예에―?!" 고르바와 그의 부인, 그리고 랜시는 길트의 갑작스런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 다. 라이세네프의 표면에 흐르던 빛이 흐릿해진 것도 그와 동시였다. 「…냉정히 일을 생각하라 했더니 짐을 떠 안는군. 요즘 젊은이들은 말이 안 통한 다니까.」 그 말을 들었는지, 듣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길트의 미소는 이상하게 밝기만 했다. ----------------------계속--- 『신계의 자료실-기사들의 기억 (go SGKNIGHT)』 40번 제 목:Ｗhite Ｂlue - Ｒ Vol. 3 올린이:jack21 (이경영 ) 99/04/06 06:50 읽음:831 관련자료 없음 ----------------------------------------------------------------------------- ----------------------------------------------------------------------------- 데려간다고는 했지만 물론 결혼은 아니었다. 길트는 그저 숨어 지내야만 하는 호족 의 운명으로 부터 은인인 랜시만은 건져내고 싶을 뿐이었다. "하, 하지만 전 아직 어린데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이후 두번 째로 듣는 랜시의 음성이었다. 길트는 웃으며 고 개를 저었다. "아, 괜찮아요 랜시. 저와 같이 여행하며 절 도와주시면 돼요. 은인에게 도움을 요 청하니 좀 바보같지만 지금의 전 단 한 사람의 도움이라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 일이 끝나면…반드시 행복하게 해 줄께요." "…예." 랜시는 부끄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 라이세네프의 빛이 강해졌다. 「초를 치는 것 같지만, 책임지지 못할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길트. 지금 너에겐 보장된 왕의 자리도, 또 나라도 없다. 또한 네 자신의 미래 역시 보장된 바가 없 다. 경솔한 행동은 너 뿐만 아니라 저 아이까지 불행에 빠트린다. 그래도 저 아이 를 데려가겠는가.」 길트는 눈을 감았다. 약간의 흔들림이라도 없애기 위함이었다. 다시 눈을 뜬 길트 는 밝은 미소로서 자신의 결심을 당당히 밝혔다. "왕이 아니라도, 자신의 나라가 없어도 한 사람 쯤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지 않을 까요? 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다 하더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만은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습니다. …당신도 절 약간이나마 아셨기 때문에 절 주인으로 인정하셨지 않습니까." 라이세네프의 빛은 약간 흐려졌다. 그 속엔 허가의 뜻도 들어있었다. 「…네가 정력에 까지 자신있을 줄은 몰랐지.」 "…네?" 라이세네프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길트와 랜시는 눈을 껌벅거렸으나 뜻을 알고 있는 고르바와 그 부인의 얼굴은 금새 붉어졌다. 어쨌거나, 길트의 일행은 그것으 로 한명 더 추가가 되었다. 마을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타이거 벨리를 떠난 길트의 모습은 자못 달라져 있었 다. 2년 동안 수룩 하게 자란 머리도 정돈되었고, 무엇보다 몸에 입은 백색의 무 광택 갑옷이 눈에 띄었다. 고르바는 먼 옛날 드워프족에게서 받았던 흙 갑옷이라 소개를 했지만 라이세네프는 그 갑옷의 정식 명칭을 잘 알고 있었다. 「오리하르콘 프레임이 내장된 세라믹 아머군. 이런 고급품이 호족에게 있었다니, 의외인 걸?」 "오리하르콘…어쩌구요?" 「…전문 용어는 넘어가지. 하여튼 좋은 갑옷이야. 랜시가 전력을 다해 도끼로 내 려쳐도 부숴지지 않을 정도로 강도가 좋지. 오리하르콘 프레임에 의한 안정성도 뛰 어나고…중요한 얘기는 아니군. 자,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인가? 난 템플톤 항구로 갔으면 하는데….」 "좋습니다. 그럼 템플톤 항구로 가죠. 자 랜시, 이제 갈까요?" 길트는 랜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깨끗한 손과는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손이었 지만 랜시는 나름대로 다소곳이 그의 손을 잡았다. 길트는 다른 손을 그 위에 덮 으며 말했다. "…반드시 행복하게 해 줄께요. 날 2년 동안이나 지켜줬으니…이제부터는 제가 랜 시를 지켜줄께요. 알았죠?" "…고, 고마워요. 히힛…." 사실 길트는 랜시에게 키스까지 해 줄 생각이었지만 기습적인 키스는 신장의 차이 로 인해 불가능했다. 랜시가 그 사정을 알았다면 길트에 비해 머리 하나 반 이상 은 큰 자신의 신장을 아쉬워 했을지도 모른다. 「난 검이라 소름이 돋지 않아. 제발 날 괴롭히지 말아 길트.」 "아, 죄송합니다 라이세네프 경." 그렇게, 불확실한 미래와 운명을 지닌 길트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길트 자 신이나 길트를 주인으로 택한 라이세네프, 그리고 길트를 따라나선 랜시…그들에게 서 불안감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려운 여행이 될 지도 모르는데 상당히 여유롭군.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라이세네프가 물었다. 길트는 씨익 웃으며 답했다. "당신이죠. 룰러 오드 소드 라이세네프. 당신은 좋은 검이잖아요." 「…그런가. 후훗….」 라이세네프는 웃었다. 미소는 보이지 않았지만 길트에겐 그의 웃음이 확실히 느껴 졌다. 하지만 그는 그 웃음이 수백 년 만의 웃음이란 것을 모르고 있었다. Mission 1: [ 용병 ] 수도가 파괴된지 2년. 수도 이외의 가이라스 왕국 대다수 지역은 수 없이 출몰하는 브롤과 투르바, 콜코등의 아인종들에게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식량과 자원 등 이 많은 몇 개의 지역은 여전히 항쟁을 계속 하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길트 일행의 예정지인 템플톤 항구도 그 항쟁지 중 하나였다. 각국에서 몰려든 용병으로 템플톤 항구의 외곽은 시끌벅적했다. 용병들의 수는 상 당히 많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단체 활동이란 없었다. 모두가 각자의 돈 만큼만 싸울 뿐, 같은 용병끼리의 친분 등은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같은 나라 출신이라는 점 뿐이었다. "젠장, 같은 용병이라도 저 녀석은 맘에 안 들어." 말스 왕국에서 온 용병, 보스턴은 팀 용병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도중 불만을 터트 렸다. 수십 발자국 떨어진 막사에서 조용히 스프를 마시고 있는 붉은 머리의 용병 때문이었다. "…맘에 안 들면 어쩔건데. 저 괴물 녀석하고 싸우기라도 할 생각이야? 그럴 생각 이면 관 둬. 우린 자네 시체 치우기 싫어." 동료 용병이 충고하듯 말했다. 보스턴은 옆쪽으로 침을 뱉으며 투덜댔다. "그러니 더 맘에 안 들어. 다른 녀석 같으면 한대 갈겨주면 되는데, 저 녀석은 그 럴 수도 없잖아. 프리 나이트 주제에 뭘 믿고 저렇게 센 건지 원…." "별명이 괜히 붉은 머리의 사신이 아니잖아. 콜코 한 부대를 단독으로 상대하는 녀 석인데…하여튼 재수 없어. 녀석 덕분에 죽는 용병 숫자가 적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때, 그들 뒤에 위치한 수풀이 흔들렸다. "이봐요 아저씨들. 우리 리오 님이 재수가 없다고 하셨나요?" 수풀 속에서 요정 한명이 튀어나온 순간, 보스턴과 동료 용병들의 얼굴은 단숨에 굳어졌다. "…아, 그,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요? 확실히 말씀해 보세요 아저씨." "…에, 에이. 좀 못들은 걸로 해 줘라. 네 주인이 알면 우린 끝장난단 말이야." 보스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안색을 바꾸며 요정에게 빌었다. 요정은 콧대를 더욱 높이며 말했다. "흥, 다음 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남자 답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앞에 나 서서 말씀하시라고요." 말을 마친 요정은 붉은 머리 용병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보스턴 일행의 불만은 점점 더 높아질 뿐이었다. "리오 님, 리오 님! 저 아저씨들이 아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요정은 그 용병의 머리채 속에 파고들며 시끄럽게 물었다. 용병은 스프가 든 컵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열심히 괴물 괴물 하더구나. 어쨌거나 괜히 남의 말 엿듣고 그러지 마 브라 디. 내가 곤란해지잖니." "어? 리오 님도 엿들으신 건 마찬가지 잖아요." 용병, 리오는 요정의 코를 살짝 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너 처럼 티는 안 냈잖아. 자, 식사나 해." "으윽! 알았으니 이거나 놔 줘요!" 리오에게서 벗어난 요정, 브라디는 주인이 준 컵 속의 스프를 훌쩍훌쩍 마시기 시 작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요정이 스프를 먹는다는 것 보다 그 스프 속에 고기 가 들어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리오와 친한 사람들은 브라디를 육식 요정이라 불 렀다. "근데 리오 님. 제가 고기 먹는 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 안 할까요?" 리오는 막사 받침목에 편히 누우며 대답했다. "콜코 20명을 단독으로 상대하는 사람이 눈 앞에 있는데, 요정이 고기를 먹는다 해 서 이상할 건 없지 않니? 후훗…." "…여유 있으시군요." 브라디는 고개를 저으며 컵을 입에 가져갔다. "…음?" 그 때, 무언가를 느낀 듯 감겨있던 리오의 눈이 다시금 떠졌다. 그와 동시에 서쪽 에서 비상을 알리는 호른 소리가 들려왔다. "티라노다! 티라노들이 습격해온다!" 말을 탄 정찰병이 용병대 주위를 돌며 소리쳤다. 그 말에 용병들의 표정은 하나같 이 흐려졌다. "…티라노한테 덤비라고? 픽, 차라리 콜코 발바닥을 핥으라고 하지 그래?" "객기 부리지 말아야 할 상대 5위인 녀석에게 뭐하러 덤벼. 리오 녀석이나 가라고 그래. 우린 죽기 싫어." "그럼 뒤를 부탁하오!" 다른 용병들의 투정을 들은 듯 리오는 빠르게 서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용병들은 이번엔 살아 돌아오지 못하겠지 하는 미소를 지었다. "리오 님! 리오 님! 같이 좀 가요!" 리오의 회색 망토 위로 오색의 빛이 반짝였다. 브라디의 날개에서 떨어지는 빛이 었다. 주인의 망토 속에 겨우 들어간 브라디는 힘겹게 외쳤다. "느낌 상으로는 티라노 여덞 마리에요! 근데, 그 앞에 다른 생명체 둘이 있어요!" "쫓기는 건가? …뭐, 가 보면 알겠지!" 리오는 씨익 웃어보였다. ------------------------------계속--- 『신계의 자료실-기사들의 기억 (go SGKNIGHT)』 41번 제 목:Ｗhite Ｂlue - Ｒ Vol. 4 올린이:jack21 (이경영 ) 99/04/06 19:51 읽음:977 관련자료 없음 ----------------------------------------------------------------------------- ----------------------------------------------------------------------------- "랜시! 아무리 배가 고파도 티라노의 알을 건드리면 어떡해요!" "미, 미안해요 자기!" 「흠…지금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가지고는 용서가 안되는 군. 어째서 호족이 신에게 버림받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라이세네프 경! 여유 까진 좋지만 어떻게 좀 해 보세요!" 랜시와 함께 눈썹을 휘날리며 뛰는 길트의 심정은 급박하기만 했다. 알을 지키던 어미 티라노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지만 그들을 막을 특별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 았다. 「내가 아무리 좋은 검이라 해도 지금의 네 수준을 티라노 여덟 마리와 싸울 정도 까지 끌어올려주진 못해. 기껏 해야 대인 전투만을 도와줄 수 있을 뿐이지.」 "예? 어째서죠?" 「넌 너무 허약하니까. 어쨌든 새 주인을 오늘로서 떠나보내야 한다니 정말 슬프 군. 이것도 나의 운명인가….」 "라이세네프 경!" 길트는 정말로 울고만 싶었다. "쿠워어어어­!" 그때, 긴 울음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길트 일행을 넘어섰다. "으아악!" 길트는 즉시 발길을 멈췄다. 랜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행의 앞을 가로막은 티라� � 는 팔에 비해 무지막지할 정도로 두터운 다리를 구르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일 어난 진동은 지축을 울렸고, 길트 일행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사이 거리를 좁힌 다른 티라노들은 길트 일행을 완전히 둘러쌌다. 진동 때문에 정신이 어찔한 길트는 머리를 매만지며 라이세네프를 뽑아 들었다. "라, 라이세네프 경! 제발 저들을 설득해 주세요! 이대로 가다간 우린 끝장이라고 요! 제발!" "라이세네프 아저씨! 제발!" 랜시는 공중에 붕 떠오른 라이세네프를 향해 절까지 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그 들을 둘러싼 티라노들의 투박한 턱에선 타액이 처절할 정도로 흘러내렸다. 라이세 네프의 표면에 흐르는 빛이 순간 강렬해졌다. 「…좋아. 내가 티라노들을 설득을 해 보지. 여기 가만히 있어.」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길트는 라이세네프의 걸걸한 목소리가 이렇게 고마운지는 몰랐다. 길트는 랜시와 함께 마치 종교의식을 하는 사람들 처럼 강렬히 절을 했다. 라이세네프는 가장 힘이 세 보이는 티라노의 코 앞에 떠올랐다. 이윽고, 라이세네 프는 더욱 강렬히 빛을 발하며 말했다. 「태고의 종족 티라노여. 나 룰러 오브 소드 라이세네프가 말하나니, 이성을 가지 고 이 문제에 대해 차근차근….」 "쿠워어―!" 그러나, 티라노는 맘에 안 든다는 듯 팔로 라이세네프를 강하게 내 쳤다. 라이세네 프는 마치 젓가락처럼 힘없이 날려졌다. 「으아아―!」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는 라이세네프. 길트와 랜시의 얼굴엔 점점 사색이 돌았다. "젠장! 뭐가 룰러 오브 소드에요! 이제 우린 어떡하라고!" "쿠워―!" 길트의 외침은 티라노의 울부짖음에 묻혀 사라졌다. 퇴로가 완전히 막힌 것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는 랜시는 결국 길트의 몸을 꼭 안으며 말했다. "으흑! 미안해요 자기…! 하룻밤은 보내지 못했지만, 우린 영원한 부부…." "그만 둬요! 아직 죽은 것도 아닌데 그러지 말아요, 분명 방법이 있을 거에요! 나 처럼 흔들리지 말아요!" 랜시는 움찔하며 길트의 얼굴을 바라봤다. 잠시간 그런 자세를 유지하던 랜시는 손 으로 길트의 눈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근데 왜 울어요 자기?" "내, 내가 언제 울었다고!" 그런 장면엔 감흥이 오지 않는 티라노들이었다. 알을 빼앗길 뻔 한 어미 티라노는 즉시 자신의 발을 들어 올렸다. "쿠워어어어어―!" 퍼억­! 순간, 두터운 살 위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어미 티라노 의 거대한 몸은 거짓말처럼 옆으로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아, 아니?" 길트는 눈물을 훔치며 어미 티라노쪽을 바라봤다. 거대 파충류가 있던 자리엔 한번 도 본 적이 없는 붉은 장발의 남자가 회색 망토를 휘날리며 서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서 이쪽으로 오시오. 티라노들은 내가 처리할테니." "맞아요, 리오 님이 처리하실 거에요! 이겨라, 이겨라! 싸워라, 싸워라!" "…브라디, 제발 좀…!" 그의 망토 속에서 튀어나온 요정은 응원용 꽃술을 들고 이리저리 춤을 추기 시작 했다. 물론 즉시 잡혀서 망토 속에 구겨 넣어지긴 했지만 그 현란한 몸동작은 길트 일행의 시선을 빼앗기 충분했다. 하지만 처리한다는 말에 길트는 즉시 그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아, 뜻은 감사합니다만, 잘못은 저희들이 먼저 했습니다. 제 친구가 배고픈 나머 지 이 티라노들의 알을 건드렸거든요." 검을 빼 들던 붉은 머리 남자의 표정은 단숨에 굳어졌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 얼댔다. "…번식기의 티라노 암컷은 드래곤도 피해간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소? 뭐, 어쨌건 오래간만에 용감한 사람들을 만나니 기분이 풀어지는군. 후훗…. 알았으니, 이쪽으 로 오시오." 길트와 랜시는 곧바로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가까이 오는 한편 붉은 머리 남 자는 품 속에 가둔 요정을 다시 꺼내주었다. "브라디, 티라노들을 좀 설득해 주겠니?" "싫어요! 응원만 하면 화를 내시고…세이아 님께 이를 거에요!" 머리카락까지 헝클어진 요정은 심하게 투덜댔다. 남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 녀를 달랬다. "…알았어. 쇠고기 철판구이 사줄 테니 부탁한다." "헤헷, 진작 그러셔야지요! 그럼 맡겨주세요!" 요정은 쓰러진 티라노를 향해 재빨리 날아갔다. 라이세네프가 설득할 때와는 달리 티라노들은 그 요정의 말을 순순히 듣는 듯 했다. 길트와 랜시는 다행이다 생각하 며 자신들의 은인을 바라봤다. 호족인 랜시 보다는 작았지만 키는 상당했다. 균형잡힌 몸매에 얼굴 역시 상당한 미남이었다. 길트는 이런 사람이야 말로 영웅의 '스탠다드' 형이다 생각하며 눈을 반짝였다. "저어,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길트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멀뚱히 서 있던 랜시도 길트의 '찌름'을 받고 그에 게 감사를 표했다. "구, 구해줘서 감사해요." 남자는 의외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괜찮소. 그런데 당신들 다친 곳은 없소?" "예, 다친 곳은 없습니다만…아! 라이세네프 경!" 길트는 문득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 라이세네프가 떠올랐다. 길트의 입에서 나온 ' 라이세네프'라는 말에 붉은 머리 남자의 눈썹이 꿈틀 댔지만 그 모습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길트의 걱정도 잠시. 라이세네프는 비틀거리며 주인에게 돌아왔다. 「음…티라노 들은 예나 지금이나 무식하군. 감히 나 룰러 오브 소드를 무시하다 니….」 "아, 라이세네프 경! 무사하셨군요!" 길트는 돌아온 라이세네프를 안으며 즐거워했다. 붉은 머리의 남자는 못본 척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으음…. 그런데 너희들이야말로 무사한게 이상하군. 설마 저기 있는 청년이 너희 들을 도와준 건가?」 "예, 그렇습니다. 한번에 티라노를 쓰러트릴 정도로 강하시죠. …아, 그러고 보니 소개를 못했군요. 저기…." 그러나, 남자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요정에게만 신경 쓸 뿐이었다. 적당히 설득당한 티라노들은 어느새 지축을 울리며 다른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흠.」 그 남자를 가만히 지켜보던 라이세네프는 여느 때보다 더 진지한 목소리로 길트에 게만 말했다. 「지금 내 말은 너에게만 들릴 것이다. 잘 들어라 길트.」 "아, 예." "…?" 그가 대답한 순간 남자와 랜시, 그리고 요정은 약속이나 한 듯 그를 쳐다보았다. 길트는 입을 막으며 별 일 아니라는 듯 손을 저어댔다. 「…저 붉은 머리의 남자…. 인간이 아니다.」 길트의 눈이 꿈틀댔다. 라이세네프는 말을 이었다.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남자가 가지고 있는 검…분명 주신 하이볼크가 만 든 5신검의 하나, 디바이너가 분명하다. 망토 속에 가려져 흘끔 보이긴 했지만 내 눈은 확실해.」 ‘…어떻게 자신하실 수 있죠?’ 「날 짝사랑하던 검이었거든. 음…근데 짝이 생긴 모양이군. 저 길다랗게 생긴 오 리하르콘 레이피어는 뭐지? 겉 멋만 잔뜩 들었군…! …이봐 길트. 정신 차려라.」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길트는 고개를 흔들었다. 라이세네프의 말은 계속 됐다. 「어쨌거나, 저 남자의 몸에서 풍기는 힘과 눈에서 느껴지는 경험 등은 인간이 가 질 수 있는 시간의 한도를 초월한지 오래다. 아마, 가이라스 왕국 수도를 혼자서 날린 고등 악마 하인켈과 맞먹거나 그 이상의 힘을 지녔을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저와 비교해 어느 정도나 강한 거죠?’ 「…….」 라이세네프는 잠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 비웃음을 꼭 듣고 싶나.」 ‘…죄, 죄송합니다.’ 길트는 홀로 머리를 긁적였다. 한편, 길트의 그런 모습을 남자와 함께 지켜보던 랜 시는 걱정스런 얼굴로 남자에게 물었다. "저어, 우리 자기가 이상한 것 같아요…! 머리라도 다친 게 아닐까요?" "…뭐, 괜찮을겁니다. 후훗…." 남자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떠올렸다. 랜시는 고개를 갸웃거릴 따름이었다. -----------------------------계속--- 『신계의 자료실-기사들의 기억 (go SGKNIGHT)』 42번 제 목:Ｗhite Ｂlue - Ｒ Vol. 5 올린이:jack21 (이경영 ) 99/04/11 05:32 읽음:720 관련자료 없음 ----------------------------------------------------------------------------- ----------------------------------------------------------------------------- "호오, 이 항구를 통해 에스토드 왕국으로 가시겠다? 후훗, 하하하핫―! 당신 설마 티라노에게 머리라도 밟힌 건 아니겠죠?" "호호홋, 괜히 그런 소리 하셨다가 동네 꼬마들에게 밟혀도 전 책임 못져요." 자신을 리오라 소개한 붉은 머리 남자는 브라디라는 이름의 요정과 함께 맞장구를 치며 길트 일행을 비웃었다. 비웃음 탓에 성격에 불이 붙은 길트는 최대한 자신을 자제하며 말했다. "…비웃으시는 건 좋지만, 이유나 말씀해 주시고 비웃으십시오." 그러자, 리오는 더욱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이유? 이유라고? 아하하하핫―! 정말 모르는 거요? 이유를? 하하핫!" "알면 물어보겠습니까!" 길트는 식탁을 내려치며 강하게 외쳤다. 리오와 브라디의 웃음은 차츰 희미해졌다. "…실례했소. 그럼 소원대로 이유를 말해 드리죠. 그 전에 주문이나 합시다." '주문'이란 말에 길트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사실, 그에겐 지금 한푼의 돈 도 없었다. "…내가 사는 거요. 당신, 표정 관리법을 배우는 게 어떻소?" "아, 죄송합니다." 길트, 랜시를 위해 간단한 음식을 주문한 리오는 서비스로 나온 차를 마신 후 이유 설명을 시작했다. "간단하오. 오는 배가 있으면 가는 배가 있는 법. 신성 에스토드 왕국 같은 대국에 서 망했는지 말았는지 모를 왕국에 괜히 배를 보낼 이유가 없잖소. 에스토드 왕국 으로 직접 가는 배는 1년 전 끊겼소." "…그, 그랬군요." 대답한 길트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리오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에스토드 왕국으로 가려면 말스 왕국을 경유하는 수밖에 없소. 그런데…하루 식사 비도 없는 사람들이 그런 긴 여행을 하겠다? 당신들이 얼마나 큰 일을 위해 에스토 드 왕국을 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가장 기본적인 것 부터 챙기는게 좋을 거요." 가장 기본적인 것. 길트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알겠습니다. 저어, 잠시 생각 좀 하고 오겠습니다." 길트는 쓸쓸히 식당을 나섰다. 랜시는 걱정 어린 얼굴로 그를 따라 나섰다. 리오는 웃으며 차를 비웠다. 브라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저어, 리오 님. 다른 때 같으면 리오 님이 먼저 도와준다 하실 텐데, 오늘은 왜 아무 말도 안 하셨나요?" "연륜있는 분이 도와주지 않았는데 내가 함부로 도와줄 순 없지. 그렇지 않습니까 라이세네프 경?" 그의 말과 동시에 자리에 놓여 있던 라이세네프는 은은히 빛을 발했다. 「…자네는 도대체 누구지?」 리오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전음을 통해 라이세네프에게 말했다. 「주신, 하이볼크 님께서 만드신 가즈 나이트 중 한명, 리오 스나이퍼라 합니다. 여기선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겠군요. 죄송합니다.」 「…가즈 나이트…그렇군. 그래서 디바이너가 자네에게 있는 것이군. 그런데, 무슨 일로 주신께서 이 세계에 관심을 두신 건가.」 「저도 파견만 됐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당신 같은 분께서 왜 저 소 년을 도와주십니까? '신의 전차'에 대한 일도 마무리가 안됐지 않습니까?」 「…정보에 대해선 영 아닌 친구로군. 난 신의 전차 때문에 저 소년을 도와주고 있 는 걸세.」 리오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라이세네프에게 물었다. 「확실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길트는 참담한 얼굴로 식당 건물에 기대어 있었다. 랜시 역시 그 옆에 있었으나 그 저 흘끔 흘끔 바라보기만 할 뿐, 별다른 도움은 되지 않았다. "…하아. 걱정되요 랜시." 길트가 드디어 말 문을 트자 랜시는 즉시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뭐, 뭐가요 자기?" "…돈 말이에요. 여행하는 데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준비할 생각을 하 지 못했어요." 그러자, 랜시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돈이 뭔데요?" 길트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는 조금 후 길게 한숨을 쉬며 답해주었다. "…음식물이나 무기 등을 새로 얻을 때 쓰는 물건이에요. 사람들 사이에선 아주 중 요한 역할을 하죠. 돈을 얻으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많이 필요하면 필요할 수록 힘든 일을 하거나 일을 오래하는 수 밖에 없어요." "빼앗으면 안돼요?" 랜시의 어리숙한 질문에 길트는 힘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히 안돼죠. …어쨌거나, 갈 길은 급한데 돈은 없군요. 역시 돈이란 현실은 혈 기만으로 극복할 수 없나 봐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랜시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의 팔을 거 칠게 잡아 당겼다. "자, 식사부터 해요!" "예? 자, 잠깐만요 랜시!" "안 먹으면 힘 안나고, 힘 없으면 일 못해요. 고민할 시간에 일 하자구요! 잔 말 말고 들어와요 자기!" 길트는 순간 당황하며 물었다. "아, 잠깐만요 랜시! 일을 하자니, 도대체 무슨…윽!" 랜시의 두꺼운 팔이 큰 구렁이처럼 길트의 목을 휘감았다. 랜시는 씨익 웃으며 말 했다. "일 안하면 돈 못번다면서요." "…!" "히힛, 어서 식사 하고 일거리를 찾자고요. 빨리 이 일을 끝내고 날 행복하게 해 줘야 하잖아요." "…예." 식당에 억지로 끌려 들어가면서, 길트는 자신이 랜시에게 한방 먹었다는 사실을 뼈 저리게 깨달았다. 자금이라는 산 하나에 막혔다는 이유로 자신감을 잃은 그와 달리 랜시는 그 산을 넘으면 될 거 아니냐며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길트는 자신의 나약함을 한탄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들어오기 직전 나온 식사 를 천천히 즐기던 리오는 축 늘어진 길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가서 무슨 생각을 했길래 물에 젖은 수건이 돼서 온 거요? 설마, 에스토드 왕국 으로 가려는 일이 돈 벌 시간도 모자를 정도로 급한 일 아니오?" "…아, 아닙니다. 돈은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겠죠. 식사를 주신 것만 해도 도움은 충분합니다. 저희들 걱정은 말아 주십시오." 길트는 힘없이 스푼을 들었다. 그때, 리오와 눈짓을 주고받던 브라디가 길트의 머 리 위에 걸터 앉았다. "호오, 그래요? 그럼, 우리 리오 님 고용하지 않을래요? 그렇지 않아도 이 동네 떠 나고 싶어 하시는데…." "…예?" 티라노 한마리를 일격에 쓰러트리는 리오의 괴력을 눈으로 직접 본 그로선 상당히 끌리는 제의였다. 검술에 관해서 배울 수도 있을 듯 했고 그의 용병 경험 또한 도 움이 될 듯 했다. 하지만 '고용할' 정도의 돈은 없었다. 그래도 길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저어, 얼마면 될까요?" 브라디는 씨익 웃으며 답했다. "100만 골드." 길트의 다리가 순간 휘청거렸다. "배, 백 만 골드요! 왕국 기사단 출신 용병도 12만 골드인데, 그런 바가지가 어디 있습니까!" "…바가지? 뭐, 그럼 우리도 장사하긴 해야 하니 후불제로 하죠. 당신 일 끝났을 때, 일의 강도에 따라 차등으로 받을께요. 우린 어찌됐건 이 도시면 떠나면 만족이 니까요." 갈등을 일으키는 조건이었다. 길트는 슬그머니 라이세네프에게 물었다. "…저어, 라이세네프 경. 어찌하면 좋을 까요?"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아, 과연 라이세네프 경! 어떤 방법입니까?" 「랜시를 곡마단에 파는 거다.」 .......................... . . . . . . 「거, 검은 농담도 못하나. 좋은 검이니까 농담을 하는 거다. …알았으니 제발 해 머는 치워줘 랜시.」 "…미워요 아저씨." 랜시는 거친 숨을 뿜으며 대형 해머를 내려놓았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라이세네프 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의자 위로 올라갔다. 「자, 잔금을 주게 리오 군.」 리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여기 있습니다." 리오는 큼지막 한 돈자루를 정리된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갑작스런 일에 길트와 랜시는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 잔금…이라뇨?" 길트가 물었다. 리오가 대답했다. "의뢰비 100만 골드는 이미 라이세네프 경께서 보석으로 지불하셨소. 이건 나머지 200만 골드요. 세어 보시오." "아, 아니…이건 라이세네프 경께서 지불하신 돈의 잔금인데 제가 왜 받습니까?" 길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리오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라이세네프 경의 주인은 당신이잖소.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라이세네프 경에게 박 힌 보석이나 하나 빼 주시오." "…!" 길트는 라이세네프를 돌아봤다. 그러나 라이세네프는 침묵할 뿐,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길트는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저, 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계속--- 『신계의 자료실-기사들의 기억 (go SGKNIGHT)』 43번 제 목:Ｗhite Ｂlue - Ｒ Vol. 6 올린이:jack21 (이경영 ) 99/04/12 00:31 읽음:736 관련자료 없음 ----------------------------------------------------------------------------- ----------------------------------------------------------------------------- 「괜찮아. 난 보석 모으는 게 취미다. 하나 쯤 없어진다 해서 나에게 해가 가진 않 아.」 라이세네프의 자루에 박힌 보석 중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길트는 결국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주워라. 이미 내 것이 아니야.」 "…하지만…하지만…!" 「자신을 탓하고 싶으면 더 강해져라. 난 지금 나약한 주인을 동정해서 내 수집품 중 하나를 팔았으니까.」 길트의 얼굴이 순간 꿈틀거렸다. 동정…동정이란 말인가. "…도, 동정이라고요! 어떻게 당신께서 저에게 그런 말씀을…읍!" 순간, 리오의 커다란 손이 길트의 입을 덮어 눌렀다. 그를 자신에게 가까이 끌어 당긴 리오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주 작게. 길트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다 들었어. 가이라스 왕실의 마지막 생존자…길트 디모트 알렉세이." "…!" "하지만 명심하시지. 가이라스 왕국은 공식적으로 '멸망'했다. 아무리 네가 유일한 생존자라 해도, 다른 왕국은 정치적으로나 세력 확장을 위해서나 가이라스 왕국의 멸망을 바라기 때문에 널 인정 안해. 제 아무리 신성 에스토드 왕국이라 해도 널 문전박대할 건 뻔하지. 그럼 넌 어떻게 해야 할까." 리오는 벽에 걸린 거울을 떼어 길트의 눈 앞에 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넌 이 거울 안에 있는 처량한 남자를 강하게 바꿔놓아야 한다. 널 위해서라도, 네 왕국을 위해서라도." 길트는 보았다. 은반의 세계 속에서 울상을 짓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자신과 너무도 닮은 그 남자는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너무도 처량해 보였다. 보석이 박혀 있던 자리를 스스로 매운 라이세네프에서 빛이 발했다. 「처음 만났을 때, 넌 지금 보다 훨씬 강했다. 무모하다 느껴질 정도였지.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약해지더군. 나라는 존재가 그리도 강하게 보였나?」 "…." 「…난 주인이 없으면 그저 말 하는 검일 뿐이다. 아까 티라노에게 쫓겼을 때 내가 말했지? 넌 너무 허약하다고 말이야. 만약, 네가 군소리 없이 날 잡고 휘둘렀다면 티라노는 그저 도마뱀에 지나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넌 그때 내가 뭔가를 해 주길 바랬다. 자신이 뭔가 해 보려는 생각은 없었지.」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랜시는 길트를 위로하기 위해 팔을 뻗었으나 브라디의 매서운 손이 근육질 팔을 제지했다. 이윽고, 길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가 강해질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 말스 왕국 행 정기선. 한 달에 한번 말스 왕국과 가이라스 왕국을 왕복하는 정기선은 언제나 만원이었다. 그 손님 중 가이라스 왕국을 떠나는 난민이 대다수인 것은 당연했지만 그들 중 헌 옷을 입은 난민은 거의 없었다. 정기선을 한번 타는 데 드는 돈은 40만 골드. 말스 왕국에서 에스토드 왕국으로 가 는 데 드는 비용보다 정확히 40배가 비쌌다. 하지만 매일같이 습격의 공포에 시달 려야 하는 지옥을 빠져 나가는 데 40만 골드 밖에 들지 않는 매우 싼 것이 아닐까. "…하지만, 돈으로 지옥을 빠져 나간다는 건 왠지 싫군요." 길트는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내리누르며 말했다. 옆에 선 리오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싫다고 해도…항구에서 목 빠지게 구경하는 가난한 난민들에게 우린 이 배를 탄 사람으로 보일 뿐이야. 그런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강해져야 할까 고민을 하는 게 어때? 후훗…." 리오는 객실로 사라졌다. 길트는 바닷바람에 자신의 한숨을 실어 보냈다. "…어째서 가이라스의 백성들이 고통을 입어야 합니까. 신이시여…." 「대사 읊는데 초쳐서 미안하군. 잘못하다간 우리가 고통을 당할 것 같은데.」 라이세네프가 다시금 빛을 발했다. 길트는 움찔하며 사방을 둘러봤다. "…어, 저것은…?" 수평선 쪽에서 검고 커다란 돛이 보였다. 게다가 그 돛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 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는 것을 보니 보통 배가 아닌 듯 했다. 「말스 왕국에서 몇년 전 개발했다는 스팀쉽이다. 배의 규모와 속도, 그리고 돛에 그려진 문양을 보아하니….」 "해적이잖아요!" 길트의 외침은 주위의 뱃사람들에게 전달되기 충분할 정도로 컸다. 정기선 안엔 곧 바로 비상이 걸렸지만 해적단의 고속 스팀쉽과 여객용 돛단배의 차이는 비상으로만 극복할 수 없었다. "하하하하핫­! 불쌍한 가이라스의 우민들아! 이 '해달' 마르티네즈 베르토의 손에 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급속히 접근한 스팀쉽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솟아올랐다. 정기선 위에 착지한 그 여자 해적은 크게 웃으며 사람들을 위협했다. "하하핫! 가진 것 다 내놓고 목숨도 바쳐라!" 검은 복면에 테가 넓은 검은 모자. 몸매가 드러나는 검은 가죽옷에 부츠…그리고 이상한 각도로 날이 선 특이한 소검까지. 그녀는 자신을 해적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쓴 것 같았다. "이, 이 것이!" 한 선원이 검을 들고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마르티네즈는 피식 웃으며 역으로 그 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이 '프람베르그'의 위력을 몸으로 느껴라!" 그녀의 소검이 마치 뱀처럼 선원의 검을 향해 뻗어나갔다. 프람베르그에 휘감간 선 원의 검은 마르티네즈가 검을 당기자마자 수십 조각으로 나뉘어 바닥에 떨어졌다. "아니!" "그만 자거라!" 거의 수직으로 뻗어 올라간 마르티네즈의 부츠에 턱을 내맡긴 선원은 멀찌감치 날 아 갑판을 굴렀다. "조, 존!" "한꺼번에 덤비자!" 동료의 처참한 모습을 본 선원들은 고함을 지르며 마르티네즈에게 덤벼들었다. 그 러나 공기를 잡아 찢는 프람베르그의 독특한 칼날 앞에 선원들은 속수무책으로 쓰 러져갔다. 그녀가 한참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그녀의 부하들이 정기선 위로 올라왔다. 험상궂 게 생긴 그들은 생긴대로 사람들을 위협하며 자루를 꺼냈다. "자, 무슨 뜻인지 알지? 어서 있는 것들 다 바쳐!" 그들의 '수거'가 진행되는 동안 길트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를 더욱 곤 란하게 만든 것은 라이세네프의 침묵이었다. "라, 라이세네프 경! 어쩌면 좋아요!" 「바다는 역시 상쾌해. 흐음….」 길트는 머리를 감싸쥔 채 괴로워했다. "이 자식들! 감히 누굴 위협해!" "으아아―!" 그때, 랜시의 노호성이 선실 안에서 터졌다. 그와 동시에 덩치 좋은 해적 한명이 장난감처럼 선실 벽을 뚫고 밖으로 튀어 나왔다. 상황을 지켜보던 마르티네즈의 얼 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건 또 뭐지?" "크오오오오옷―!" 이윽고, 선실 밖으로 나온 랜시가 대형 전투 도끼를 거머쥔채 한마리의 호랑이처럼 포효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해적을 만났을 때 이상으로 공포에 떨었지만 길트의 표정은 즉시 환해졌다. "랜시! 무사했군요!" 길트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랜시는 씨익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히힛, 자기도 괜찮군요.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녀석들, 뭐에요?" "해, 해적이에요! 그리고 저 여자가 두목이고요!" 길트는 어린아이처럼 마르티네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라이 세네프는 쓸쓸하게 빛을 뿜으며 중얼댔다. 「강해진다며…강해진다며….」 어쨌거나, 랜시는 마르티네즈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몇몇 해적 들이 그녀를 막으려 했지만 성난 소 앞에서 붉은 깃발을 휘두르는 것과 마찬가지였 다. "비켜버려―!" "으아!" 무지막지한 랜시의 힘 앞에 해적들은 낙엽이 되어 바다로 떨어졌다. 모든 방어선을 뚫고 여 두목 앞에 선 랜시는 회심의 송곳니를 드러내며 한껏 도끼를 치켜들었다. "죽어라아앗―!" "싫은데?" 마르티네즈는 여유있는 미소를 지었다. 랜시는 사정 볼 것 없다는 듯 그대로 도끼 를 휘둘렀다. 그러나, 마르티네즈는 여유있게 랜시의 뒤로 돌아 들어갔다. "너무 느려 아가씨." "―!" 공격이 빗나간 사실을 안 랜시는 급히 도끼를 들어올렸으나 마르티네즈의 손이 한 발작 더 빨랐다. "해달의 뜨거운 키스를 받아봐요, 후훗." 그녀는 품에서 꺼낸 검은 물체를 랜시 주위에 뿌리고 즉시 그 자리를 이탈했다. 랜 시는 움찔하며 길트 쪽을 바라봤다. "자, 자기!" 쿠우웅―! 순간, 폭음과 함께 랜시의 육중한 몸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다 름아닌 폭탄이었다. "랜시! 랜시―!" 그러나, 의식을 잃은 랜시는 힘없이 갑판위로 떨어져 내렸다. -------------------계속--- 『신계의 자료실-기사들의 기억 (go SGKNIGHT)』 44번 제 목:Ｗhite Ｂlue - Ｒ Vol. 7 올린이:jack21 (이경영 ) 99/04/13 01:14 읽음:778 관련자료 없음 ----------------------------------------------------------------------------- 이 글은 '가즈 사랑모임'에서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Go 가즈 ----------------------------------------------------------------------------- "랜시―!" 길트는 떨어지는 랜시를 구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중력이란 거대한 힘 이 가진 속도를 길트의 다리가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여기 있어." "예?" 순간, 길트의 옆으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잔상도 남기지 않고 움직인 회색의 그림자는 떨어지기 직전의 랜시를 안전히 받아내었다. 길트의 울상은 단번에 미소 로 바뀌었다. "리오!" "폭탄을 쓰다니, 너무 비겁하지 않나 아가씨? 후훗…." "…크윽!" 정체불명의 남자가 내뱉은 말에 마르티네즈의 눈썹이 꿈틀댔다. 남자, 리오는 랜시 를 안은 채 몸을 일으켰다. "리오! 랜시는 어떤가요!" 길트가 다급히 달려와 물었다. 리오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음? 음…내가 안아본 여자 중에선 가장 무겁군." "…." "…농담을 곁들일 정도면 괜찮은거야. 너무 인상쓰지 말라고." 리오는 랜시를 편히 눕혀준 뒤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객실쪽에서 브라디가 재빨 리 그에게 날아왔다. "녜녜, 부르셨나요? 어머? 랜시는 왜 저렇게 된 거에요 리오 님?" "다 큰 여자의 불장난에 당했지. 치료좀 해 줄래?" "녜녜녜, 물론입죠!" 브라디는 랜시의 상처부위에 다가가 치유주문을 쓰기 시작했다. 한편, 리오는 자신 의 보라색 검을 뽑으며 여 해적을 향해 다가갔다. "자아, 다음 상대는 나다. 어쨋건 대결은 대결인 소개 한번 해 볼까? 우선 '레이디 퍼스트'." 소개라는 말에, 마르티네즈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소개? 후훗…감히 이 '해달', 마르티네즈 베르토 님에게 소개를 바라다니, 너무 건방지군." "…베르토?" 그녀의 이름을 들은 리오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것은 브라디도 마찬가지였 다. 리오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당신 혹시, 말스 왕국의 베르토 집안 사람인가?" "…! …후, 베르토 집안 같은 명문 자제가 여기서 해적질을 할 이유가 없지 않나? 신경 끄는 게 어때 미남?" 말은 편하게 했지만 마르티네즈의 얼굴은 그리 편치가 않았다. 리오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 괜히 분위기를 망쳐서 미안하긴 한데…뒤의 덩어리들은 뭐지?" 리오는 어느새 마르티네즈의 뒤에 진을 치고 있는 거한들을 가리켰다. 마르티네즈 는 그들을 자신의 앞으로 보내며 말했다. "난 귀찮은 걸 싫어하거든. 얘들아, 저 미남 검사 분을 좀 만져드려라." "예! 누님!" 도끼와 곤봉 등을 든 거한 해적들은 대답과 동시에 리오에게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각자 고개를 돌리며 후에 일어날 광경을 보지 않으려 했지만 리오는 안됐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으아아―!" 첫 해적부터 마지막 해적이 바다에 떨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초. 그 사이 열 두명이라는 수의 해적이 바다로 떨어졌다. 마르티네즈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 굴로 리오를 바라봤다. "네, 네 녀석…? 도대체 누구야!" 리오는 여유롭게 검을 집어 넣으며 대답했다. "프리 나이트 겸 용병이지. 어쨌거나 안심해. 오늘 내 일은 여기서 끝이니까." "…뭐?" "자, 그럼 뒷처리는 우리 의뢰인에게 맡겨 볼까?" 리오는 길트의 어깨를 두드리며 뒤로 빠졌다. 길트는 망치라도 얻어 맞은 얼굴로 자신의 용병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리, 리오! 무슨 소리에요!" "난 받은 돈 만큼만 일 하는 사람이야. 하루에 열 셋 이상 적을 쓰러트리고 싶으면 추가 요금을 내." 리오는 그물더미 위에 편히 앉았다. 하지만 길트의 얼굴은 그리 편치 않은 듯 해 보였다. "…그,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난 곱셈보다 검술을 조금 더 잘 할 뿐이라고요!" "그거야 내가 알 바 아니지. 게다가 넌 강해지고 싶다 했잖아. 싸우지 않으면 강해 지지 않아. 그리고 네가 강했다면 랜시도 저렇게 당하지 않았을 거야." "……." 길트는 침을 삼켰다. ‘내, 내가 미리 나섰다면…! 내가 저 여 두목을 쓰러트렸다면 랜시가 저렇게 당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래, 강해지는 거야! 저 두목을 쓰러트리는 거야!’ "조, 좋아요! 못할 것 없죠!" 길트는 우렁차게 외치며 라이세네프를 뽑아들었다. 마르티네즈는 그 모습에 감탄사 를 터트렸다. 물론 감탄의 대상은 길트가 아닌 라이세네프였다. "호오, 검 한번 대단한데? 그런데…검에 주인이 안 어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가 뭘까? 하하하핫…!" "시, 시끄러워! 간다아아앗―!" 길트는 될대로 되라 생각하며 검을 앞세운 채 마르티네즈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하 지만 그의 자세나 표정등은 한마디로 압축해 '가관'이었다. 심지어 부모의 손을 잡 고 있는 꼬마까지 자신의 눈을 가릴 정도였다. "전혀 아니야 꼬마!" 마르티네즈의 프람베르그가 푸른 섬광을 뿜었다. 동시에 길트의 양 어깨에서 핏물 이 길게 솟아올랐다. "윽!" 길트는 뒤로 주춤거렸다. 하지만 마르티네즈는 봐주지 않고 그의 얼굴에 발차기를 날렸다. 마치 체조선수의 공중동작처럼 우아한 그녀의 돌려차기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연발케 했다. "아악­!" 타의에 의해 공중에 떠서 몇차례나 몸을 튼 길트는 힘없이 갑판 위에 쓰러졌다. 랜 시의 치료를 끝내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브라디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휴…끝났네." "아직 아냐." 리오의 웃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브라디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예? 왜요 리오 님? 저렇게 멋지게 뻗은 이상 다시 일어날 것 같진 않은데…?" "…검을 놓지 않았거든." 브라디는 다시 길트를 바라봤다. 꿈틀거리긴 했지만 라이세네프를 잡은 길트의 오 른손은 여전히 굳게 다져진 상태였다. "…허억!" 길트가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이미 풀려 있었다. 마르티네즈는 가식 된 연민이 섞인 얼굴로 그에게 다가왔다. "이게 실력 차이야 꼬마. 네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무리 눈을 부라려도, 아무리 이를 갈아도 실력차이 만큼은 단시간 내에 극복할 수 없어. 자, 그런 의미로 네 검 은 내가 가져가주지." "웃기지 마!" 길트의 목소리가 터졌다. 어깨에서 흐르는 피가 양 손끝을 타고 갑판에 떨어져 내 렸다. 머리에 충격을 받은 탓에 다리 역시 풀려 후들댔다. 그러나, 눈빛은 살아있었다. 패배한 사람의 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그의 눈은 반짝였다. "…내가 당신보다 약하다는 건 내 자신이 알아. 하지만…함부로 내 검을 빼앗길 정 도로 약하진 않아! 검술 선생에게 몇 번이고 차여가며 소질이 없다는 소리는 들었 지만 약하다는 소리는 들은 적 없어! 그리고, 난 약해질 수 없어! 아바마…읍!" 길트는 '아바마마'라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물론 그의 대뇌가 지시한 일은 아니다. 길트는 라이세네프를 잡은 손에서 타고 올라오는 무서운 힘에 말을 잊었 다. 길트의 자세가 점점 바로잡혀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그리고 자신의 몸을 엄습 하는 느낌에 마르티네즈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뭐, 뭐지?"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오는 길게 한숨을 쉬며 브라디에게 물었다. "…너, 라이세네프가 왜 룰러 오브 소드라 불리는지 아니?" "글쎄요?" 브라디는 살며시 리오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리오는 그녀의 작은 턱을 손가락으 로 매만지며 답해주었다. "검의 지배자라는 별칭도 별칭이지만, 라이세네프는 주인의 몸을 지배한다. 완전한 자신의 것으로." "…!" ----------------------------계속--- 『신계의 자료실-기사들의 기억 (go SGKNIGHT)』 45번 제 목:Ｗhite Ｂlue - Ｒ Vol. 8 올린이:jack21 (이경영 ) 99/04/15 03:44 읽음:750 관련자료 없음 ----------------------------------------------------------------------------- 謹弔 ----------------------------------------------------------------------------- - "아아악―!" 길트는 크게 소리치며 라이세네프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비명에 가까웠 다. 하지만 길트가 갑자기 강해진 영문을 모르는 마르티네즈의 놀라움은 더했다. "이녀석, 힘을 숨긴 거냐! 감히 날 우습게 생각하다니, 용서치 않겠다!" ‘아니에요! 내가 하는게 아니라고요!’ 그렇게 속으로 외치는 길트였지만 목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라이세네프가 제어하는 길트의 실력은 구경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저절로 내뱉게 만들었다. 이전의 엉거주춤한 몸동작이나 자세 등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 다. 다만 문제는 길트의 표정이었다. "오오, 대단한데 저 젊은이? 그런데 표정이 왜 저러지?" "저런 표정을 지어야만 나오는 검술이 아닐까?" 사람들의 해석은 각각이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 표정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없 었다. 그러나 잠시 후. 강해졌다고는 해도 길트의 몸이 라이세네프의 조종을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당황 함이 깃든 길트의 얼굴은 점점 피곤함으로 바뀌어갔다. 잠시 밀리는 것 같던 마르 티네즈는 길트가 지친 것을 깨닫고 역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뭐야, 고작 1분인가? 그 정도로는 이 마르티네즈 님을 이길 수 없어!" 마르티네즈의 발차기가 다시금 날았다. 길트, 아니 라이세네프는 가까스로 그 공격 을 막았지만 마르티네즈는 상상 이상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공중에서 잃은 중심 을 허리의 탄력으로만 극복해 다시금 차기를 날린 것이다. "넌 졌어!" 공중에서의 2단 동작. 라이세네프는 분명히 간파했지만 길트의 몸은 그것을 막을 정도의 순간동작을 낼 수 없었다. 「팔을 올려라 길트! 팔을 올려!」 "커헉!" 턱을 정확히 가격당한 길트는 결국 멀찌감치 나가 떨어졌다. 길트가 설마 이렇게 체력이 약할 줄 몰랐던 리오는 긴 앞머리로 자신의 얼굴을 덮으며 한탄했다. "…후우, 운동 좀 하지…." 그는 이제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마르티네즈를 바라봤다. 다행스럽게도 여 해적은 더이상 싸울 마음이 없는 듯 했다. "부하들도 많이 지쳤고 하니 이제 돌아가 주지. 하지만, 3일 내로 난 반드시 이 배 를 털 거다. 각오해! 특히 너 빨간 머리!" 마르티네즈는 손가락으로 리오를 가리켰다. 그러나 복수의 당사자는 어깨를 으쓱거 릴 뿐이었다. "후훗, 얼마든지." '해달', 마르티네즈는 그렇게 사라졌다. 정기선에 탄 사람 중 물건을 털린 사람이 나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지만 길트 일행에겐 걱정이 하나 남게 되었다. 물론 3일 후 다시 온다는 마르티네즈에 대한 걱정이 아니다. "리오 님. 길트 씨가 일어나지 않으시는데요?" "…내가 데리고 들어가지 뭐. 내 책임도 좀 있으니까." 리오는 양쪽에 길트와 랜시를 각각 들고 터벅터벅 선실로 향했다. ※※※ "자자, 열심히 하지 않으면 체력이 늘지 않아." "…하지만 전 당신의 고용인인데 제가 왜…." "강해지고 싶다 했잖아. 기초적인 체력이 있지 않으면 아무리 강해지고 싶어도 강 해질 수 없어." 겨우 정신을 차린 길트.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다름아닌 리오의 특별 훈련이었다. 훈련은 갑판 청소와 돛을 올리고 내리는 일이었지만 '특별'이란 단어가 붙는 이상 쉽지는 않았다. 길트는 양 팔과 다리에 5kg정도의 추를 달아야만 했다. 그런 탓에 길트는 끝날 때 마다 곤죽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갑판 청소를 끝내고 몸을 기댄 길트는 길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안타까운 얼굴로 그를 지켜보던 랜시가 수건으로 그의 땀을 닦아주며 물었다. "자기, 힘들지 않아요?" "우우우…." 물론 입 모양은 '힘들다'였다. 랜시는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아니, 리오도 너무해요! 어떻게 의뢰인에게 훈련을 시킬 수가 있어요! 그것도 이 렇게 힘든 훈련을!" "다 널 위한 건데?" "그래도요! 그래도…윽!" 어느새 랜시의 뒤에 선 리오. 그는 웃으며 랜시에게 말했다. "길트는 널 지켜주기 위해서 강해지려는 거야. 그런데, 네가 응원은 안해주고 싫어 하면 길트가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지 않겠어?" 그 말은 순진한 랜시를 속이기에 충분했다. "저, 정말이에요 자기? 미안해요, 전 그런 줄 몰랐어요! 자, 어서 훈련해요 자기! 날 지켜주는 거예요!" "으어 어 어어 으어…." 길트는 울상을 지은 채 랜시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길트의 입 모양 은 '그런 말 한일 없어'였다. 길트와 랜시가 사라진 직후 리오의 표정은 단숨에 굳어졌다. 오늘이 바로 마르티네 즈가 말했던 '3일 후'였기 때문이다. "늦는군, 그 아가씨…. 후훗." "뭐예요, 또 바람기가 발동하신 건 아니겠죠?" 어디선가 브라디가 재빨리 날아왔다. 리오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럴 리가. 네가 세이아 님께 내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하는 마당에 그럴 순 없지. 그리고 난 바람기 따윈 가져본 일이 없는 사람이야." 브라디의 얼굴은 단숨에 불편한 쪽으로 변했다. "…그런 분이 저번 임무때 여자를 다섯 명이나 울렸어요?" "난 사귈 마음이 없었다니까. 난 임무를 다했을 뿐이야." "흥! 역시 리오 님은 책임감이 없다고요!" "너무 그러지 마. 세이아 님도 별 말씀 안 하시는데 왜 네가…." 그 순간, 브라디는 악의가 잔뜩 실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헤헷, 과연 그럴까요?" "…뭐?" 리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키 30cm의 작지 않은 요정, 브라디는 킥킥 웃으며 역사 를 설명해 주었다. "저번 임무 때의 일을 세이아 님께 보고해 드렸죠. 히힛, 처음엔 말이죠…." .............................. . . . . . "…이런 일이 있었어요 세이아 님. 너무 화 내지 마시고요…." "음? 아냐, 화 낼 일이 아닌데 뭘 그러니 브라디. 그리고 이런 일 하지 마. 리오 씨께서 네가 지켜본다 생각하시면 더 힘드실 수도 있잖니. 넌 나 대신 리오 님을 도와드리는 가디언으로서의 역활을 해 주면 돼." "…네. 알겠습니다 세이아 님." "그래, 고마워 브라디." "세, 세이아 님. 그렇다고 접시를 부수실 필요는…." "음? 어머, 힘을 줘 버렸네? 난 몰라, 호홋…." .............................. . . . . . . 브라디에게 대강의 얘길 들은 리오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감을 눌렀다. 브라디 는 알 수 없는 승리감에 도취된 듯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 리오의 머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 잠깐. 그렇다면 너, 저번 임무 때의 일을 세이아 님께 전부 다 말씀드렸단 말이야?" "…! 그, 그게 말이죠…." "이런이런…. 브라디, 난 널 그렇게 보지 않았다. 아무리 만난지 1년 밖에 안됐지 만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닐까?" 리오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브라디는 승리감을 잊은 채 그에게 빌기 시작했다. "죄, 죄송해요 리오 님! 다시는 안 그럴께요!" "죄송하다는 것까진 좋지만 세이아 님의 마음을…음?" 브라디를 꾸짖으려던 리오의 얼굴이 다시금 굳어졌다. 브라디 역시 뭔가를 느낀 듯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해적이다! 해달 녀석들이 온다!" 메인 마스트의 망루에서 주위를 둘러보던 선원이 소리쳤다. 하지만 리오와 브라디 가 느낀 것은 해적선의 접근이 아니었다. "나중에 얘기하자 브라디!" "예!" 리오와 브라디는 급히 선수로 향했다. 그들의 눈엔 정기선 정면으로 달려오는 마르 티네즈의 스팀쉽과 스팀쉽 뒤로 보이는 거대한 물결의 모습이 들어왔다. "해적선이 위험해! 이보시오 선장! 배를 우현으로 꺾으시오, 빨리!" 해적선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듣고 선장실을 뛰쳐나온 선장은 리오의 외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오는 멍청하게 서 있는 그를 보며 다시금 외쳤다. "'해리플레우트'요! 죽기 싫으면 어서 꺾어!" --------------------계속--- 『신계의 자료실-기사들의 기억 (go SGKNIGHT)』 46번 제 목:Ｗhite Ｂlue - Ｒ Vol. 9 올린이:jack21 (이경영 ) 99/04/18 22:37 읽음:643 관련자료 없음 ----------------------------------------------------------------------------- ----------------------------------------------------------------------------- "뭐라고!" 선장은 급히 조타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치빠른 조타수는 리오가 말 한 순간부 터 키를 우현으로 최대한 꺾고 있었다. 한편, 마르티네즈의 해적선은 배의 좌측이 크게 찌그러져 있었다. 반 철선에 속하 는 배를 처참히 뭉겐 주인공은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해적선을 뒤쫓고 있었다. 해적선의 키를 잡고 있는 마르티네즈는 인상을 잔뜩 쓴 채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부선장! 출력을 올려요!" 그러나 엔진 레버를 잡고 있는 부선장은 "안 니다! 더이상 올리면 스팀 엔진이 폭발하게 됩니다!"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그대로 저 괴물의 식사감이 되고 싶으세요? 차라리 폭발 해서 죽는 게 더 났단 말이에요!" 그녀의 강한 억양에도 불구하고 부선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도 엔진의 출력을 올 리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엔진이 정말로 폭발할 것이란 사실을 그는 어느 누 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우리 선원들은 베르토 가문을 해하고 말스 왕국마저 망친 독재자, 말스 9세를 규 탄하고 베르토 가문의 가장이신 마르티네즈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 이 배에 탔습니 다. 그러나, 고작 괴물 한마리 때문에 여기서 그 대업을 망치긴 싫습니다. 명령을 철회해 주십시오." 마르티네즈는 굳은 얼굴로 자신의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알았어요. 그럼, 스팀 보트를 꺼내 주세요. 제가 저 괴물을 유인하겠어요." 부선장의 얼굴은 금새 하얗게 변했다. "예에? 그, 그만 하십시오 아가씨!" "날 아가씨라 부르지 말아요! 더이상 베르토 가문은 명문가가 아니에요! 그리고, 마르티네즈 베르토는 이제 해적이에요! 당신들은 제 부하고요! 알았나요!" "…." "명령을 따르세요!" 또 한번의 외침. 결국 부선장은 눈을 질끈 감으며 레버를 당겼다. 그 사이, 해적선은 원래 목표였던 정기 여객선을 간발의 차이로 지나쳤다. 해적선 을 쫓는 바다괴물 해리플레우트는 여객선 따위엔 관심이 없는 듯 계속 해적선을 따 랐다. "…잘못 건드려도 굉장히 잘못 건드렸군. 하필이면 해리플레우트라니…. 뭐, 좋아. 두고 볼 순 없지." 선수에서 추격전을 지켜보던 리오는 씨익 웃으며 다른 하나의 검, 파라그레이드를 뽑았다. 주인의 기를 머금은 오리하르콘의 검신에선 우윳빛의 반 투명한 날이 평상 시와 비교해 훨씬 넓게 퍼져 나왔다. "리오 님! 뭘 하시게요!" 곁에서 빙빙 돌던 브라디가 그를 말리듯 소리쳤다. 리오는 씨익 웃으며 파라그레이 드를 바다 위에 던졌다. "수상스키." 바다에 떨어진 파라그레이드는 나무판자처럼 물 위로 둥실 떠올랐다. 그 위로 사뿐 히 내려선 리오는 왼팔을 강하게 내 뻗었다. 그러자, 토시의 팔목에 감겨 있던 강 철실이 길게 뻗어나가 배의 후미 한 부분을 휘감았다. "자아, 가 볼까!" 리오는 강철실을 빠르게 끌어 당겼다. 경이적인 팔 힘은 그를 급가속시켰고 리오는 파라그레이드를 발판삼아 바다 위를 미끌어지듯 달리기 시작했다. 그 놀라운 광경 은 정기 여객선을 탄 모든 사람들의 입을 벌리게 하기 충분했다. "세이아 님의 선물을 함부로 쓰지 말아요! 그 실이 얼마짜린 줄 알아요!" 브라디는 팔을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배의 중간지점에서 리오의 모습을 보 는 길트와 랜시의 시선은 '멍 함' 그 자체였다. "사람이 아닐 거야…." "무, 무서워요 자기." 리오는 엄청난 속도로 해적선과 해리플레우트를 뒤쫓았다. 물론, 팔의 힘 만으로는 그런 속도를 유지할 수 없다. 리오는 사실 아주 낮게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사람 들 앞에서 대놓고 하늘을 날 수 없는 그는 파라그레이드를 타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었다. "음?" 한참을 따라가던 그의 시선 속에 해적선 밖으로 무언가가 던져지는 것이 들어왔다. 미끼인가 생각했지만 그 미끼는 바다괴물 쪽으로 폭탄을 내 던지며 괴물의 시선을 자신쪽으로 돌리기 위해 애썼다. 그것을 본 리오의 검붉은 눈썹이 크게 꿈틀댔다. "젠장, 미쳤군!" 리오의 말 대로 그 미끼, 마르티네즈의 행동은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수십 년 전부 터 나타나 전 세계의 바다를 휘젓고 있는 난폭자, 해리플레우트는 마르티네즈의 손 에 들린 작은 폭탄으로 목숨을 위협당할 가련한 물고기가 아니었다. 철갑선에 가까 운 해적선을 반파시킬 수 있을 정도로 두터운 머리비늘과 어지간한 함선보다 큰 몸 을 빠른 속도로 움직이게 하는 힘을 지닌, 한마디로 말하자면 '괴물'이었다. "이봐! 죽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멈춰!" 그러나, 리오의 목소리는 폭음에 막혀 들리지 않았다. 결국, 마르티네즈의 노력에 의해 해리플레우트는 방향을 바꿨지만 다음 목표는 당연히 마르티네즈였다. 그녀는 사력을 다 해 보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배는 이제 괜찮겠지만…으윽!" 순간, 그녀의 보트 밑 수면이 크게 솟아올랐다. 해수면과 함께 마르티네즈의 보트 를 공중으로 내던진 해리플레우트는 거대한 입을 벌리며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보 트를 노려봤다. "아아아악­!" 마르티네즈는 마치 동굴처럼 뚫린 해리플레우트의 입과 내장, 그리고 뼈 사이로 꿈 틀대는 아가미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가지고 있던 폭탄은 다 떨어진지 오래. 마르 티네즈로선 방법이 없었다. "아, 아가씨―!" 한편, 해적선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해적들은 해리플레우트의 입 속으로 사라진 마 르티네즈의 이름을 불렀지만 괴물 물고기는 재빨리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이럴 수가…." 해적들은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자신들이 꾸미던 대업이 물고기 한 마리에 의해 끝났다는 허무감이 그들의 몸을 내리눌렀다. 특히, 보트를 허용한 부선장의 얼굴은 시체나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떻게 건드렸기에 해리플레우트가 끝까지 따라붙는 거요? 어지간해선 도 중에 물러나는 녀석인데…." "그건, 우리가 모르고 하리플레우트의 집에 포격 훈련을 해서…응?" 해적들의 시선은 단번에 반대편으로 돌려졌다. 그들의 눈엔 물에 흠뻑 젖은 리오와 그의 두터운 팔에 안긴 마르티네즈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 아가씨! 아가씨!" 해적들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그들에게 달려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욱?" 달려오던 해적들은 갑자기 풍겨오는 악취에 입과 코를 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리오 는 젖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들에게 물었다. "…샤워할 물좀 주시겠소? 녀석 뱃속에 반 쯤 썩은 물고기가 가득 해서 이렇게 됐 소만…." '뱃속'이란 말에 해적들의 눈이 휘둥그래졌지만 그들의 궁금증은 잠시 후 해결됐 다. 배가 갈린 해리플레우트가 물 위로 두둥실 떠오른 것이다. 해적들은 반대편으 로 우르르 몰려가 해리플레우트의 거대한 시체를 구경하기에 바빴다. "기분은 이해하겠지만 제발 좀…." 리오의 부탁은 마르티네즈가 깨어날 때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계속--- 『신계의 자료실-기사들의 기억 (go SGKNIGHT)』 47번 제 목:Ｗhite Ｂlue - Ｒ Vol. 10 올린이:jack21 (이경영 ) 99/04/21 01:16 읽음:843 관련자료 없음 ----------------------------------------------------------------------------- ----------------------------------------------------------------------------- 리오는 상의와 망토 등이 마를 동안 디바이너와 파라그레이드를 닦았다. 바닷물은 금속류에 있어서 최대의 적. 물론 리오가 가진 검은 부식이란 단어와 그 리 친하지 않았지만 검을 닦는 게 버릇이라면 버릇이라 할 수 있는 그에겐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가 검을 닦는 동안 옷을 갈아입고 나온 마르티네즈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기 만 했다. 답례에 대해 고민하는 눈초리가 역력했기에 주위의 해적들은 웃음을 겨우 참으며 배를 수리했다. 해적선의 메인 마스트엔 하얀 깃발이 걸려 있었다. 행복의 뜻 내지는 해치지 않겠 다는 뜻이었기에 리오가 타고 있던 정기 여객선은 해적선 근처에 정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옮겨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반파되고 흰 깃발이 올려져 있다 해도 일단은 해적선인 탓이다. "리오 님, 제가 머리 묶어드릴께요." "아아, 부탁한다." 어느새 해적선으로 옮겨간 브라디는 산발이 된 리오의 머리를 빗으로 정돈한 후 그 의 머리채를 힘겹게 묶기 시작했다. 리오에겐 어떨지 모르지만 브라디에겐 자신의 키 보다 길고 무거운 리오의 머리채가 상당히 번거로웠다. 그러나 브라디는 즐겁게 그 일을 해 주었다. "자잔∼! 다 됐어요 리오 님." "음, 고맙다 브라디." 리오는 브라디의 작은 볼에 살짝 키스를 해 주었다. 리오로선 상당히 자주 사용하 는 감사의 표시였지만 그래도 브라디에겐 최고의 대가였다. "좋은 몸종을 뒀군." 갑작스런 마르티네즈의 말에 리오와 브라디는 멍하니 그녀를 돌아봤다. 무안함을 느낀 듯, 어떻게든 말 문을 트려던 마르티네즈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 올랐다. 리 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말하고 싶나, 아니면 고맙다 말하고 싶나. 음?" 마르티네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리오는 브라디에게 옷을 가져오라는 듯 턱을 움직여 보였다. 그리고 일어섰다. "둘 중에 하나 같은데, 뭐 들었다고 해 두지. 어차피 이후에도 계속 들을 것 같으 니까." "…뭐라고?" "이틀 전 정기선 선장에게 우연히 들었지. 말스 왕국 베르토 가문의 가장이 수년 전 반역죄를 저질러, 베르토 가문은 멸족을 당했다고 말이야. 2년 전이었나, 3년 전이었나. 이틀 전에 들었는데 기억이…." "4년 전이야." 말을 맺은 마르티네즈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주위에서 보수작업을 하던 해적들 의 얼굴 역시 진지하다 못해 두려울 정도였다. 그녀가 물었다. "…아까 그 말, 무슨 뜻이지? 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면 여기서 없애버리겠어." 리오는 브라디가 가져온 옷을 입으며 대답했다. "베르토 가문 사람 중 상당히 친했던 사람이 있지. 언젠가는 꼭 도와준다고 그 사 람과 약속을 했는데, 이곳 저곳을 떠돌다 보니 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 그래서, 지금이라도 지킬까 해서 말이야." "…웃기지 마. 용병 따위의 도움은 필요 없어." 복면 속에 감춰진 마르티네즈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리오가 물었다. "어째서?" "당신이 도와준다고 해서 우리 가문의 누명이 벗겨지는 건 아냐. 말스 왕국이 저기 떠오른 물고기 한 마리와 같다고 생각되나? 그리고, 만약 벗겨진다 하더라도 우리 가문이 입은 상처는 치료될 수 없어." 리오는 회색 망토를 몸에 두르며 다시 물었다. "그럼 해적질은 왜 하는 거지? 자신의 이름까지 떳떳히 밝혀가며 말이야." "…그것은…." 마르티네즈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묵묵히 머리채를 망토에서 꺼낸 리오는 그녀 의 모자를 기습적으로 내리 눌렀다. "으윽! 이게 무슨 짓이야!" 그녀는 리오의 손을 치우기 위해 노력했으나 압도적인 힘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었 다. 리오는 가볍게 그녀의 모자를 벗겼고 모자 속에 눌려있던 그녀의 젖은 금발이 반짝이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리오는 감탄하듯 휘파람을 불며 빼앗은 그녀의 모자 를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으로 가문의 명예를 되찾고 싶겠지? 이해는 해. 그러나 잘 들어." "…?" "고작 물고기 한 마리에게 쫓겨 배를 반파당한 아마추어 해적에게 말스 왕국이 무 너질 이유는 없어. 당신의 계획은 이랬겠지. 해적질로 돈을 모은 뒤, 군대를 만들 어 말스 왕국을 친다. 그리고 폭군으로 알려진 말스 9세를 왕좌에서 내려오게 만든 다. 그렇지?" 마르티네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그녀에게 모자를 씌워주며 말을 이었다. "말스 왕국을 뒤엎을 정도의 군대가 만들어 지려면 수십 년이 걸리겠지. 그 시간 동안 말스 9세는 병에 걸려 죽든 늙어 죽든 할 거야. 그렇게 말스 9세가 왕좌에서 내려오게 되면 베르토 가문의 누명은 진실이 되어 역사에 남겠지." "…!" "당신 나이가 몇인지는 몰라도, 당신은 4년 동안 헛수고를 했어. 당신 별명 대로, 먹이를 먹기 위해 자신의 배를 두드리는 '해달'에 불과했지. 안 깨지는 먹이를 깨 기 위해 뱃가죽을 날린 해달일 뿐이야. 당신들 모두." 순간, 마르티네즈를 비롯한 해적들의 눈이 부릅 떠졌다. 결국 해적 중 한명이 마대 를 든 채 리오에게 달려들었다. "이, 이 자식이!" 탁! 그러나, 아쉽게도 해적은 리오의 손에 간단히 잡혀버리고 말았다. 리오는 손에 들 린 해적의 안면을 흘끔 보며 조소를 흘렸다. "…후, 역시 아마추어." "크윽!" 바닥을 내 던져진 해적은 분에 겨운 듯 바닥을 수 차례 내리쳤다. 다른 해적들도 마찬가지였다. 리오의 말에 허탈감을 느낀 그들은 도구들을 내 던지며 인상을 흐렸 다. 마르티네즈는 어깨를 꿈틀댔다. 울음을 참고 있는 것이다.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바 라보던 리오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마르티네즈라고 했나? 보아하니 실력은 좋은 것 같군. 프로 밑에서 아르바이트 해 볼 생각 없나?" "…아, 아르바이트?" 그의 황당스런 말에 마르티네즈는 눈을 휘둥그래 떴다. 그 바람에 꾹 누르고 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리오는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스윽 훔치며 말했다. "그래, 아르바이트. 일이 끝나면 비싼 대가를 받을 수 있으니 해볼 만 할거야." "무슨 아르바이트를 말하는 거지? 설마…같이 다니며 몸을 팔라는 건가?" "아, 아가씨…!" 그 말에, 해적들은 당황한 나머지 얼굴을 붉혔다. 뒤늦게 달려온 부선장도 비틀거 렸다. 하지만 더욱 당황한 사람은 리오였다. 그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 그런건 아냐. 어쨌든, 대가를 알면 따라오고 싶을 거야." 마르티네즈는 뭔가 끌리는 듯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래? 대가가 뭔데?" ................................ . . . . 해적들은 멀어져가는 정기선을 향해 작별의 손수건을 흔들었다. 일단 마르티네즈에 게 배를 수리한 후 에스토드 왕국과 말스 왕국 중간에 위치한 스커드 해협으로 옮 겨 가라는 말을 들었지만 '아가씨'를 떠나보낸 그들의 아쉬움은 남달랐다. 모자를 흔들던 부선장은 정기선이 황혼에 묻혀 사라지자 팔을 떨어트렸다. 그의 얼 굴엔 걱정과 아쉬움이 역력했다. "…그 리오라는 남자, 단순한 허풍장이 같진 않았는데…. 그래도 제시한 대가가 너 무 비싸군. 안 그런가?" 옆에 있던 선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죠. 말스 9세의 목이라니, 너무 큰 거 아닐까요?" "…그래도 강하긴 했잖습니까. 물 밖에서도 아니고 물 속에서 해리플레우트의 배를 펑크낼 정도의 녀석인데…가능할지 모르죠." 다른 선원이 희망적인 말을 흘렸지만 걱정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부선장은 모자를 쓰며 중얼거렸다. "…그래, 혹시 또 모르지. 베르토 가문에 내려오는 전설 대로, 베르토 가문이 위기 에 처했을 때 나타난다 했던 가즈 나이트가 녀석일지도." 해적들의 눈이 꿈틀댔다. "후훗, 나도 아직 어리군. 그런 꿈 같은 얘길 아직도 믿고 있다니…. 어쨌거나, 기 지로 가세. 아가씨 명령 대로 배를 수리해야 할 거 아닌가." "예! 집사님!" 해적들은 부선장의 명령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속---